* 상위 항목:특수 수사대 익스레이버
"조금 더 가까이 와봐."
J | |
성별 | 남성 |
나이 | 31 |
랭크 | S |
성적 지향 | SL(변동가능) |
1. 외관 ¶
175cm/마르고 가는 체형, 기본체력이 평균을 훨씬 따라가지 못한다.
상냥한 미소. 웃는 얼굴이 퍽 다정하다.
깔끔하게 정리한 잿빛의 머리칼. 흘러내린 옆머리는 자연스럽게 귀 뒤로 넘긴다. 전체적으로 동안이며 남자치고 말쑥하고 단정된 이목구비. 눈썹은 짙고 콧대는 바르며 입술은 얇다.
붉은 눈매 끝이 늘 젖어있고 피곤에 젖은 눈동자는 탁한 청록색. 눈 앞에 있는 당신을 보고는 있지만 어딘가 멍하고 그 너머를 보는 듯한 초점없는 시선. 시력을 잃은 탓이다. 평소엔 비단같은 흰 천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다. 그럼에도 위화감 없이 잘 움직인다.
마른 몸 이곳저곳에 남겨진 화상자국. 물론 제복으로 보이지 않는다.
왼손 약지의 검게 그을린 은반지 외에는 어떤 장신구조차 하지 않고 있다.
상냥한 미소. 웃는 얼굴이 퍽 다정하다.
깔끔하게 정리한 잿빛의 머리칼. 흘러내린 옆머리는 자연스럽게 귀 뒤로 넘긴다. 전체적으로 동안이며 남자치고 말쑥하고 단정된 이목구비. 눈썹은 짙고 콧대는 바르며 입술은 얇다.
붉은 눈매 끝이 늘 젖어있고 피곤에 젖은 눈동자는 탁한 청록색. 눈 앞에 있는 당신을 보고는 있지만 어딘가 멍하고 그 너머를 보는 듯한 초점없는 시선. 시력을 잃은 탓이다. 평소엔 비단같은 흰 천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다. 그럼에도 위화감 없이 잘 움직인다.
마른 몸 이곳저곳에 남겨진 화상자국. 물론 제복으로 보이지 않는다.
왼손 약지의 검게 그을린 은반지 외에는 어떤 장신구조차 하지 않고 있다.
- 조선시대AU(이벤트용)
3. 능력 ¶
파이로키네시스
원소계 중 불을 다룬다. 기본적으로 아무런 연료없이 불을 일으키거나 소화, 조종하며, 자기 몸이나 허공에서 도구 없이 발화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연소에 필요한 연료가 없더라도 불길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능력을 사용하는 거리가 가까울수록 위력도 늘어나며, 반대로 능력을 사용하는 거리가 멀 수록 부작용도 심해진다.
*온도조절 : 열의 온도를 자유자재로 올릴 수 있다.
*폭파 : 대상이나 그 주위를 폭발시킬 수 있다. 조건은 주위에 폭발물이나 인화성 물질이 있어야 한다.
*방패 : 화염으로 물리적인 공격이나 능력을 막는다.
*폭파 : 대상이나 그 주위를 폭발시킬 수 있다. 조건은 주위에 폭발물이나 인화성 물질이 있어야 한다.
*방패 : 화염으로 물리적인 공격이나 능력을 막는다.
패널티 : 기본 체력이 매우 부족하다. 평소에 쓰는 능력 정도로는 단순한 피로감뿐이다. 그러나 무리하기 시작하면 오감 중 몇이 퇴보한다. 어느 쪽인지는 랜덤. 주로 충분한 휴식을 거치면 원래대로 돌아오지만 정도를 넘어서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시력을 잃게 된 것도 개중 하나.
또한 기본적으로 본인은 불에 의해, 혹은 자신이 만들어낸 불에 한해 피해를 입지 않으나, 부작용으로 인해 스스로 화상을 입을 수 있다. 특히 이성을 잃고 폭주하면 화상 뿐 아니라 또 다른 오감을 잃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한 기본적으로 본인은 불에 의해, 혹은 자신이 만들어낸 불에 한해 피해를 입지 않으나, 부작용으로 인해 스스로 화상을 입을 수 있다. 특히 이성을 잃고 폭주하면 화상 뿐 아니라 또 다른 오감을 잃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4. 기타 ¶
▷경력만 해도 10년 베테랑. 수사1과 계장. 이후 특수 수사대 아롱범 팀으로 스카웃.
▷시력을 잃은 건 처음 익스파가 발현될 때 폭주가 동시에 일어나 실명하게 된 것. 이하 공란.
▷현장에서는 올라운더. ……이긴 하다만 전방보단 서포트를 더 선호하는 듯.
▷시력을 잃었으나 위화감 없이 움직일 수 있는 까닭은 어째서인지 사람이나 사물의 실루엣 만큼은 분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검은 바탕에 타오르는 불마냥 흐물거리는 선명하지 못한 잿빛 실루엣.(feat.유령) 실제로 눈을 감고 걸어도 그 외의 다른 감각들이 예민하게 곤두서있어 대충 앞을 파악할 수 있는 정도는 되긴 한다.
때문에 혹자는 시력이 멀쩡한 건 아니냐 하다지만 그런 비아냥조차도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때문에 혹자는 시력이 멀쩡한 건 아니냐 하다지만 그런 비아냥조차도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의외로 사람의 체온을 즐긴다. 몸이 찬 반면 손이 따뜻하다. 서늘한 것을 좋아한다.
▷위태로운 곳에 섰을 때 느끼는 아찔함과 높은 곳을 좋아한다.
▷체력도 몸도 좋지 못하다. 잔병치레도 많을 뿐 아니라 기본체력조차 일반인보다 허약한 수준.
▷왼손 약지에 껴있는 은반지. 불에 그을린 자국이 남겨져있다. 누군가 이에 대해 묻노라면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 같이 "손가락이 허전해서."
8년 전의 인질극과 함께 일어났던 대규모 화제사건 이후로 사별한 아내.당시 인질극의 희생자라는 게 과거사에서 밝혀짐 시력을 잃은 것도 그 즈음. 기일은 아직까지 챙기고 있는 모양.
8년 전의 인질극과 함께 일어났던 대규모 화제사건 이후로 사별한 아내.
7. 독백 ¶
- FADE
- BGM https://youtu.be/NN3ystTl1nI FADE (가사 해석본은 읽어보시는 걸 추천해드려요.)
그는 길을 걷고 있다.
언제부터 이 길을 걸었는지, 또 언제 이 길이 끝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기나긴 길이었다. 나는 그 위를 다급하지 않게 천천히 걷고 있다. 언제 이 길을 다 지나갈 수 있을지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걷다 보면 언젠가는 끝나 있으려니 싶었다.
당신은 그의 옆에서 걷고 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딱 나와 같은 속도로 당신은 걷고 있다. 경쾌한 걸음에 문득문득 여유가 묻어났다. 당신다운 걸음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이따금 옆에 있는 당신을 돌아보았고, 그럴 때면 당신도 약속한 듯 나를 보곤 했다. 물론 시선이 어긋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같은 곳을 보고 있는 때가 더 많았다.
기분이 좋았다. 이대로 이 길의 끝까지 당신과 걸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 길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느 순간 당신은 나보다 더 앞으로 가 있었다. 여전히 여유로운 걸음걸이인데도 나는 당신을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손을 뻗으면 당장 닿을 것 같았건만, 마치 환상이라도 되듯 너무도 멀어 보였다. 우리 둘은 더 이상 나란히 걷지 않았다. 당신은 그렇게 빠르게, 빠르게 내게서 멀어지다가 이내 사라져 버렸다. 내 시선도 손도 닿지 않는 어디론가 가 버렸다.
그 후로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입구도, 출구도, 아니, 당장 코 앞에 있는 길조차도 보이지 않는 그저 어둡고 광활하기만 한 공간 속에 갇혔다. 나는 두 손으로 허공을 휘저어보았지만, 어둠에 삼켜진 탓인지 내 손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게 아니라, 나 스스로가 빛에 거부당해 어둠에 갇혀진 것이라고. 영원히 도망칠 수도, 나갈 수도 없는 어둠 속으로.
무슨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비라도 오고 있는 건가. 그는 힘겹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빠져나오자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그는 창문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희미하게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잠시 가만히 있으면서 바깥의 기척을 살폈지만, 창문이나 공기를 두드리는 물방울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저 고요하기만 한 여느 새벽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기어코 이불을 걷어 내고 문가까지 다가갔다. 두 손으로 문을 짚고, 귀를 바짝 대고 소리를 들어보려 했지만 누구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바닥이 울리는 느낌도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를 깨운 그 인기척은 누구였어?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그대로 이마를 기대어보이다, 다시 침대 위로 기어 올라왔다. 침대 옆 탁자에 두었던 약을 입안에 털어넣고 메마른 목을 물로 함께 축였다. 밤새 제 체온으로 겨우 데워놓았던 이불 속은 그 잠시 동안 싸늘하게 식어 있어서, 다시 자리에 눕자 문득 으스스 몸이 떨렸다. 또 다시 버릇처럼 몸을 웅크리고 말았다.
삐뚤어진 베개를 바로 잡고 그 위로 머리를 뉘었다. 다시 자려고 눈을 감자, 아까 자신을 깨운 인기척이 다시 느껴졌다. 자박, 자박. 들려오는 발소리는 꿈에서 들었던 것과 닮아 있다. 감았던 눈을 다시 뜨자 바깥에서 서성거리던 발소리가 문득 멎었다. 잠시 잠잠하다, 다시 서성거리는 게 느껴졌다. 하염없이 돌아다니다 나무에 옷깃이라도 스쳤는지 물방울이 와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기척들을 느끼며 그는 알 수 있었다.
아, 당신이 왔구나.
당신은 당신이 그리도 사랑했던 그 아름다운 곳에서부터 왔을까요. 붉은 노을이 바다를 하염없이 물들이던 곳에서. 마침내 그곳으로 가 있다가 다시 나를 찾아 그 먼길을 돌아왔을까요. 내가 보고 싶어서 왔을까요. 당신이 사랑하던 그 벚나무를 보러 왔을까요. 그 먼 길을 외투 하나 걸치지도 못한 채 돌아오려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혹여 비를 맞진 않았을까. 문 옆에 있던 벤치에 앉아 아픈 다리를 쉬고 있진 않을까. 새벽녘 홀로 서성거리며 외롭진 않을까. 미어지는 그의 가슴으로 당신의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
다정하게, 다정하게 그를 부르는 당신의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그는 더 누워 있을 수 없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휘청이듯 위태한 걸음걸이. 당신은 계속 저를 부르고 있었다. 으응, 그래. 나 여기 있어요. 그는 숨 쉬듯 대답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당신은 제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 목소리 한 토막이 제 팔을 움직이고 또 한 토막이 제 다리를 움직여 일어나게 했다.
현관문을 열고 맨발로 밖에 뛰쳐나갔다. 밤새 차가워진 바닥이 무척이나 시렸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당신이 비를 맞고 있으니까. 당신이 외로워하고 있으니까. 당신이 나를 부르고 있으니까. 그는 맨발로 다급히 마당에 내려섰다. 하얗게 질린 발을 비에 젖은 잔디나 자갈, 흙먼지 따위가 기다렸다는 듯이 덮쳤들었다.
가랑비가 어깨와 머리를 적셨다. 하염없이 내리는 그 빗물이 동그랗게 뭉쳐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차가운 물. 그는 황망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뿌연 새벽에는 비안개만 가득하다. 벚나무 잎 위로 떨어진 빗방울이 머무를 새도 없이 순식간에 방울져 떨어졌다. 그는 덩그러니 그곳에 서 있었다.
당신은 없었다.
그저 봄비 소리만 가득한 곳이다.
- NOSTALGIA
- BGM :: https://youtu.be/MQ9_tHE-rk4 BLIND
『──….』
어깨에 기댄 채 한참 침묵만을 유지하던 당신이 희미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숨을 쉬듯 옅은 울림이라,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들을 수 없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당신에게로 귀를 기울였다. 그 짧은 부름에도 형용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이 들어간 듯 당신은 한동안 또 말이 없었다. 살짝 높아진 숨소리의 끝에 평소처럼 괴로운 소리는 없었다. 가쁘게 오르내리지도 않는다. 그 소리는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귀를 기울이기를 한참, 당신의 다음 말은 입술이 아닌 손으로 전해져왔다. 당신은 느리게 손을 움직여 그의 손 위에 겹쳤다. 겨울 밤공기에 차가워진 손이 안쓰러워, 조심스럽게 마주잡으며 감쌌다. 희미하게 웃는 소리와 목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이름, 한 번만 불러주지 않을래?』
『이름?』
『으응.』
갑작스레 이름을 불러달라는 말에도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알고 있다. 당신이 원하는 이름이 무엇인지. 먼 땅에서부터 달려와 이곳에 정착한 때부터, 이 일을 그만두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며 저보다 더 현장에 달려나가던 그 한 때를 그저 떠올리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지금까지, 당신이 원하는 이름은 단 하나였다. 어떤 거창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당신의 이름을 불렀다.
『───.』
당신은 옅게 웃으며 잡은 손에 힘을 주려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듯 손가락을 조금 꿈틀거리는 선에서 그쳐 버렸다. 그는 그 움직임이 안타까워 자신이 힘을 주어 붙들었다. 차라리 제가 대신 아팠으면 싶었다.
그러고도 또 한동안 말이 없었다. 놀랍도록 차가운 손을 잡고 있으면서, 그는 줄곧 당신의 말을 기다렸다. 소리 없이 정원을 덮은 눈의 그림자가 그들의 발치까지 밀려올 무렵, 당신이 옅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확히는, 물어왔다.
『……Do you still love me?』
느닷없이 이름을 불러달라는 말보다 더 예상치 못한 물음이었기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어깨에 기댄 당신을 돌아보았다. 당신의 시선은 어딘지 모를 먼 곳에 닿아 있었다. 별 하나도 없는 하늘을 바라보는 걸까. 밤과 새벽의 경계를 눈부시게 수놓는 눈을 바라보는 걸까. 보이지 않는 시선을 쫓으며 그는 자신을 사랑하느냐는 당신의 물음을 되새겼다.
그리고 대답했다.
***
『──씨께서 식사는 잘 하고 계십니까?』
『거르진 않아요.』
『약은?』
『잘 챙겨 먹이고 있구요.』
『…그렇습니까.』
주치의는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이번에는 당신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걸어 다니는 것은 어떤지, 혹시 앞이 흐릿하게 보이지는 않는지, 귀가 잘 안 들리지는 않은지, 질문도 참 여러가지였다. 당신은 그 질문에 별 거부감 없이 답했다. 걷는 건 괜찮아요, 앞은 잘 보여요, 귀도 마찬가지고요. 곁에서 듣고 있던 그는 유쾌하다고는 할 수 없는 질문 내용에 노골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건 왜 묻는 거죠? 그의 목소리에 어린 불안한 기색을 눈치 챈 듯 주치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의료 도구를 상자에 넣었다. 진료는 끝인 모양이었다. 당신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주치의는 그에게 눈짓했다.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문을 열자, 그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당신의 친구─이자 그의 동료이기도 한 짧은 숏컷의 여성은 수사1과 계장이었다─가 진료가 끝난 것을 알고 냅다 당신에게로 달려갔다. 의자 위에 앉아있던 당신은 자신에게로 뛰어들듯 안는 친구 때문에 뒤로 휘청거리면서도 밝게 웃었다. 마주 웃는지 우는지 모를 친구를 다정하게 달래는 당신을 보던 그는, 곧 문을 닫았다.
『…할 얘기가 뭔가요? 아니, 그 전에 왜 그런 걸 물어본 거죠?』
따지듯 묻자, 주치의는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소리를 죽여 말했다.
『그녀가 듣는 곳에서 하기엔 껄끄러운 말이라 따로 당신을 모셨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지요. 요즘, 그녀의 상태는 정확히 어떻습니까?』
『…특별한 것은 없었어요. 간혹 피를 토하긴 하지만 크게 나빠진 것은 없어 보이는데…….』
『그렇습니까.』
『그 전에 그녀가 대체 무슨 병에 걸린 건지 아직도 말해주지 않았잖아요.』
그의 말에 주치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만, 그건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모른다고요?』
『어떤 병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할 말을 찾지 못한 그의 표정이 무감정한 인형처럼 굳어갔다.
『그럴 수가 있는 겁니까?』
『피를 토하는 것을 보아 폐에 생긴 병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아닙니다. 지금으로선 제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몸의 어느 한 곳이 나빠져 생긴 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잠시, 잠시만. 정확한 병명을 모르면, 치료도 할 수 없는 게 아닌가요?』
『일단은 몸을 보하는 약을 처방하고 있습니다만…앞으로 증상이 더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그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증상.
걷는 게 불편하진 않습니까, 앞이 흐릿하게 보이지는 않습니까, 귀는 잘 들리시는지 혹 이명이 있지는 않으십니까. 주치의는 괜히 그런것을 물어본 게 아니었다. 몸이 더 나빠진다면, 그런 증상이 당신에게 정말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또는 그보다 더한 증상이. 그는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세게 쥐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볼게요. 고칠 수 없다고는 믿지 않으니까. 수고를 끼쳐 미안합니다.』
『아니요. 의사로서 당연한 일이지요.』
돌아가는 주치의를 때마침 방에서 나온 당신의 친구가 배웅할 때까지도 그는 그 자리에 꿈쩍 않고 서 있었다. 돌아온 동료는 그를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닐거야. 우리도 찾아보면 뭔가 해결책이 있지 않겠어? 그러니 기운 좀 차려.』
『……알아요.』
그런 것 정도는, 알고 있다구요. 억지로 짜낸 듯한 목소리에, 동료는 다만 옅게 웃었다.
『…손이 차갑잖아요.』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정원은 늦여름의 빛으로 뜨겁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차갑기 그지없는 당신의 체온이 안타까워, 그는 조용히 속삭였다. 당신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게. 조금, 추운 것 같아.』
작은 목소리로 말하던 당신의 표정이 갑자기 묘해졌다가, 조금 꺼림직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당신은 손을 들어 코 밑에 가져다댔다. 모호한 표정이 짙어지고, 손을 확인해 본 당신은 눈을 가늘게 떴다. 입술 위쪽에 살짝 번져 있는 피는 창백한 피부 위에서 섬뜩한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약을 먹은 게 방금 전인데. 당신은 피를 토하지 않은 대신 코피를 흘렸다. 약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이렇게 보여줄 필요는 없는데.
그는 얼른 손수건을 찾아 주었다. 고마워. 짧은 인사를 하고 당신은 피가 흐르기 전에 얼른 코를 막았다. 그는 대신 닦아주지도 못한 채 복잡한 심정으로 당신을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아프진 않고?』
『응. 코피가 날 줄은 몰라서….』
다행이도 피는 금방 그쳤다. 당신은 피가 얼룩진 손수건을 곤란하게 바라보았지만 그는 버리면 된다며 손수건을 도로 가져갔다. 이러다가 남아나는 게 없겠네. 당신이 우스갯소리를 했다.
문득, 바람이 불어왔다. 둥근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당신을 쓰다듬고, 그의 눈가를 어루만졌다. 바람이 스친 눈가가 차가웠다. 그곳에는 아마도 물기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좀 누워요.』
당신을 끌어당기자 당신은 의외로 선선히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몇 번 뒤척거리며 머리를 옮기다가, 편한 위치를 찾았는지 움직임을 멈췄다. 그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조금 묘한 기분이 되어, 그는 누워있는 당신의 머리칼을 살짝 쓰다듬어 보았다. 당신은 작은 소리를 내며 웃었다. 고작 무릎에 누운 것 가지고 뭐가 그렇게 좋나 싶었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 같아 계속 머리칼을 꼼지락대며 쓰다듬어 주자, 당신은 미소 띤 얼굴 그대로 스르르 눈을 감았다. 졸린 모양이다.
『…이대로 자도 돼?』
『그렇게 해요.』
『──야.』
『응?』
『내일, 놀러가지 않을래?』
느닷없는 당신의 제안에 그는 당신을 내려다보았다. 당신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중얼거렸다.
『매번 일이 바빠서 미루기만 했잖아. 꽃구경도 놓치구…, 꼭 보러가고 싶어.』
『…괜찮겠어?』
『응.』
당신은 아이에게 하듯 조근조근 말했다. 가자고 조르는 어투가 아니었다. 놀러가자, 가 아니라 놀러가지 않을래, 라고 물어왔다. 요컨대 제 몸을 걱정한다는 이유로 거절해도 좋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선선히 승낙했다. 아까 동료가 던졌던 말이 생각나서였을지도 모르겠다. 걱정이 지나치면 참견이 된다는 말.
『으응, 응, 그럼 가자. 내일은 특별히.』
『우리 둘이서만.』
『알겠대두요.』
그의 대답을 들은 당신은 부드럽게 웃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자려는 모양인지, 그렇게 눈을 감은 이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숨소리가 고르게 잦아들었다. 이대로 잠들어버린다면 깨어날 때까지 움직일 수가 없겠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숨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아서, 그는 조심스레 당신의 손을 잡았다. 손목에 닿은 손끝으로 뛰고 있는 맥박이 느껴졌다. 작고 규칙적인 박동…, 그는 마음을 놓았다.
『잘 자요.』
잠결에 그 인사를 들었는지, 당신은 어깨를 움츠리며 살짝 웃었다.
『That was the last day I can see her sleeping on my knees.』
- 相思花
『속보 입니다. 9월 20일 15시 30분, 성류시 ㅇㅇ구에 위치한 ㄷ빌딩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소방당국은 긴급 출동하여 소방차 15대를 투입, 화재 진압 및 시민들을 긴급 대피시켰으나 뒤늦은 대응으로 초기 진압에 실패하여 피해는 손 쓸 새도 없이 커지기만 합니다.
부상자만 300여명이 넘으며, 사망자는 총 10명으로 번진 이 끔찍한 사건의 당시 목격자 진술을 들어보겠습니다.
(잠시 목격자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나며 진술을 모은 영상이 차례로 지나간다. 마지막으로 누군가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불길에 휩싸인 ㄷ빌딩의 영상이 띄워진다.)
사건인 즉슨, 화재가 일어나기 약 1시간 전에 ㄷ빌딩 안에서는 난데 없는 인질극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 후 범인은 인질로 잡고 있던 시민을 살해하고 도주했고, 동시에 건물이 흔들리며 불길에 휩싸인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과 사건의 경위를 밝히기 위해 조사중에 있으나,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수사망으로 인해 애를 먹어 네티즌들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고 있습니다. 한 편 인질로 위협을 받으며, 결국 목숨을 잃고만 ──씨는, 경시청 수사1과 계장으로, 건강악화로 인하여 몇 달 전 퇴직한 것으로──……(잡음과 함께 영상이 꺼진다)』
벌써 세 번째 수술이었다. 한 달, 아니 기껏해야 열흘 남짓. 제대로 소독도 하지 못한 채 응급 개복을 했던 첫 번째 수술. 떨어지지 않는 뇌압과 혈압 상승에 의한 뇌출혈로 인해 마찬가지로 응급 개두를 해야 했던 두 번째 수술. 그리고 방금 회복실에서 깨어난 자신이 마주한 것은 그만큼의 상실감. 십 킬로그램도 더 넘게 줄어버린 체중과 이곳저곳 화상자욱으로 물든 깡마른 몸. 무언가를 다시 쥘 수는 있을까 의심될 정도로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손. 동맥 때문에 한 수술 탓에, 이젠 잘 뛰지도 못하고 약 없이는 생활이 안 되는 몸이되었다.
이만큼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잃어야만 한다는 것은 우습고도 슬픈 일이었다. 그건 한 때 자신의 일부였는데. 이제는 영원히 사라지고 없었다.
죽여줘.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몰라. 이래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걸. 자신이 죽어봤자, 그래도 그 자리를, 일을 대체할 사람은 많을 테니까. 누구의 잘못도 아니게 잊혀지겠지.
차라리 죽여줘.
여기는 너무 차가웠다. 춥고 외로웠다. 그런데 아무도 오지 않기를 바랐다. 라지에이터, 가습기, 그리고 수많은 의료장비들. 일어나 앉을 수도 없는 상태. 서서 돌아다니는 건 먼 미래의 이야기.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차라리 죽여줘.
호흡을 유지하기 위한 기도삽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경동맥 정맥삽관. 자신의 목을 졸라 죽어버릴 것만 같다. 그럼에도 치료니까. 자신을 살리려는 행동이니까. 자신이 느끼는 공포와 절망감과는 상관 없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몸을 둥글게 말아 견딜 뿐이었다. 이젠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눈을 갖고서. 그렇게.
제발 죽여줘.
***
BGM :: https://youtu.be/T-YgbOw_Gsk Deep blue (가사는 따로 읽어보시는 걸 추천해드려요.)
─어지럽다.
세상이 나를 향해 인사했다. 흔들, 흔들. 흥겹게도 흔들리며 내게로 다가왔다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세상과 춤을 추고 있었다. 다가섰다 멀어졌다 다가섰다 멀어졌다. 하늘도 달도 길도 나와 함께 춤을 추고 있다.
머릿속이 몽롱했다. 마약을 한 것만 같았다. 수백 개의 불꽃이 뇌 속에서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걸음을 옮긴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내 몸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가고 싶은 곳은 또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채로 무작정 걸었다.
어느 집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오래된 대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안으로 열렸다. 나는 바닥에 깔린 돌길과 옆의 정원을 오가며 비틀비틀 걸었다. 무슨 힘으로 움직였는지 모를만큼 현관문을 열고 아무 방문이나 열고 들어가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몸을 감싸는 부드러운 촉감, 침대 위에 깔려있는 이불이 분명했다. 나는 꾸물거리며 기어가 침대 위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이번엔 천장이 흔들거리며 내게 인사했다. 방 냄새도 어딘가 이상했다. 꼭 소독이라도 한 것처럼 이상한 약 냄새가 가득했다. 내 방 냄새는 이렇지 않은데. 혹시 꿈이라도 꾸는 건가? 속이 조금 울렁거렸다.
근처에서 소리가 들렸다. 내가 문을 닫았던가, 닫지 않았던가. …이젠 기억까지 같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발소리가 바로 옆까지 다가오더니, 누군가의 손이 내 이마를 짚었다. 누구지. 분명 눈을 뜨고 있었지만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 새카만 그림자가 왔다 갔다 하는 것만 알겠다. 누구지, 누구야. 당신 누구예요. 머릿속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름을 무의식중에 내뱉었다. 그러자 그림자가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그녀는 없어.』
…뭐…가 없다는 말이야.
『늘 말해주는 거지만, ───. 그녀는 죽었어.』
…그러니까 누가 죽었다는 거냐구요.
『따뜻한 물을 가져올 테니 잠시 기다려.』
그림자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발소리가 멀어졌다. 문이 닫히고 그 소리의 여운이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누워 있었다. 무엇? 무엇이 사라졌다고? 무엇이 죽었다고? 그녀? 그게 누구지? 그게 대체……,
「───.」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머리가 쨍 하고 깨져버릴 것만 같은 두통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그러든가 말든가,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그는 몸을 억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국 침대에서 떨어진 그가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온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겁고 나른하고 힘이 없었다. 두 발로 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네 발로 엉금엉금 기었다. 속이 뒤집어질 것 같고 머리가 어지러워 금방이라도 구역질을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계속 기어갔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움직였다. 무언가에 끌려가듯 움직였다.
방 한쪽 끝에 도착해 정신없이 더듬었다. 뭔가가 떨어져 와장창 깨지는 소리와 굴러가는 소리가 허공을 어지럽혔다. 앞이 흔들려 잘 보이진 않았지만 아마 엉망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애타게 무언가를 찾아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없어?
나는 여기에 있는데, 당신은 어디에 있는 거죠.
당신은 어디에 있어요, ───. 어디에 있어요. 왜 여기에 없는거죠. 왜, 어째서, 어디로 가 버린 거야.
「─그녀는 죽었어.」
죽었다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럴 리 없어. 당신이 죽었을 리 없어요. 죽지 않겠다고, 나를 두고선 먼저 죽지 않겠다고 했잖아. 당신에게 남은 건 나 뿐이라고. 이렇게 가지 않겠다고 말했잖아요. 내게 약속했잖아. 당신이 없을 리 없어. 어딘가 숨어 있는 거지요? 지금 다 짜고서 날 놀리고 있는 거지요?
「─그녀는 죽었어.」
시끄러워요! 죽지 않았어. 여기 어딘가 있단 말이야.
「늘 말해주는 거지만, ───. 그녀는 죽었어.」
─정말로, 없어?
당신이 여기에 없는 건가?
그는 바닥에 있던 것을 쥐었다. 날카로운 파편이 손바닥을 사정없이 찔렀다. 아팠다. 아파, ───. 너무 아파요. 손도, 머리도, 눈도, 가슴도, 온 몸이 아파요. 아파서 죽을 것만 같아요. 어디에 있는 거죠?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당신 곁인데. 당신은 어디에 있어. 왜 내 곁에 없지? 언제나 손만 뻗으면 당신이 닿았는데.
나의 사랑, 나의 세계. 날 여기 두고 어디로 가 있는 건가요. 이곳에서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래서 떠나 버렸나요? 그곳에 가 있어서 행복한가요? …내가 갈게. 내가, 내가 당신이 있는 곳으로 갈게요. 조금만 기다려. 지금 갈 테니까.
너무 멀리 가 있지 말아요, 제발.
그는 손에 든 것으로 손목을 내리쳤다. 뜨거운 것이 눈가로, 얼굴로, 사방으로 튀었다.
동시에 가까이에 있던 병실문이 다급히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 이름을 외치며 뛰어오는 소리, 풀썩 주저앉는 소리. 그리고 저를 끌어안는 감각. 보이지는 않고 들리고 느낄 수 있는 것만 가득한 곳이었다. 당신은 또 누군데 나한테 이러는 거예요. 이것 놔요. 제발 날 내버려두라고. 마음과는 달리 몸은 손 하나 까딱할 수조차 없었다. 축축히 젖어들어가는 손목을 누군가가 욕짓거리를 내며 수건으로 감싸주는 감각이 뒤따랐다. 곧 제 이름이 들렸다. 그제서야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조금은 그리운 것도 같은. …아, 그래. 당신이었구나. 그녀의 친구. 힘겹게 쌕쌕거리며 그저 그 품에 안겨있었다. 그런데, 당신은 내가 보이나요? 아니면 불이라도 꺼둔 거예요? 그것도 아니라면 나는,
『왜 당신이 보이지 않는 거죠……?』
금방이라도 끊길 것만 같은 목소리로 힘겨이 속삭였다.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요. 내 눈이 왜 이러는거죠. 수술이 잘못되기라도 했어? 담담하고도 처연한 귀기를 흘리는 그 물음에 그를 끌어안고 있던 누군가가 결국 흐느껴 울었다. 그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그는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내리감았다.
***
「시신은 이미 훼손이 많이 된 상태였으나, 부검결과 ──씨의 DNA와 일치하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다만 보호자님께서 장기간 의식을 되찾지 못한 상태셨기에, 대리인을 통하여 ──씨의 유골은 화장하여 안치해두었습니다. 아직 회복도 순탄치 않으실 텐데,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이제 그만 그녀를 보게 해줘요.』
누군가가 그를 일으켜 부축했다. 그는 그 누군가가 자신을 잡아당기는 대로 끌려 일어나 몸을 기대었다. 그를 부축한 사람이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고, 그는 그가 자신을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반쯤은 그의 의지로 걸었고, 반쯤은 거의 끌려가다시피 했다. 제 발로 걸어보려 했으나 계속 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가 놓아버리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그녀를 보기 위해선 차를 타고 가야만 했다. 그녀가 있는 곳은 1인실 납골당이었다. 아마 눈이 보이지 않는 저를 위해 옮긴 모양이었다.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더듬더듬 발을 움직였다.
사실 참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나 역시 언젠가 죽게 될 것, 그냥 당신을 조금 빨리 보낸 셈 치고 당신이 남긴 생까지 태연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당신과 함께 했던 나날들을 좋은 추억으로 새기고 웃으며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지 못한 것은 당신이 그리워서. 당신을 그리워하는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알리고 싶은 불안정한 마음 때문에. 자신마저 태연하면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 같다는 불안함 때문에.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죽게 만든 건, 다름아닌 나니까. 내가 당신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으니까. 제딴에 당신을 위한답시고 선택한 게 당신을 죽게 만든 길이었으니까. 피를 쏟아내며 품에서 식어가던 온기를 아직도 잊지못한다. 잊혀지지 않았다. 당신은 제 품 안에서 죽었다. 그건 악몽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태연할 수가 없었다. 그는 슬퍼할 수밖에 없었다. 울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그랬듯.
자신을 부축해주던 누군가를 느릿하게 밀어내며 두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두 손으로 유리벽을 더듬으며 결국 미끄러지듯 주저앉는다. 무너져내린 몸. 목이 메어서, 미안하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는 보이지도 않는 당신을 올려다보며 몇 번이고 말하려 했다. 늘 그랬다. 그러면 당신은 매번 같은 말만 되풀이했었다.
「…괜찮아.」
거짓말.
「괜찮아, ──.」
괜찮지 않다는 거 알아요.
「나는 괜찮아.」
당신이 얼마나 아픈지 알아요. 지금도 당신 몸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을 죽음을 알아요. 그것 때문에 고통스럽게 죽어갈 당신을 알아. 그때마다 말하지 못한 감정이 함축되어 흘러내릴 것만 같은 걸, 필사적으로 참고는 했다. 그랬는데.
유리벽을 짚고 있던 손이 주르륵, 하고 바닥에 툭 떨어졌다. 나는 왜 이렇게 무력할까요. 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을까요. 몸이 덜덜 떨렸다. 그는 떨리는 손을 움추리며 손톱으로 바닥을 긁었다. 결국 터져버린 눈물을 어쩌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이를 악물었다. 입술이 찢어져 피가 나고 턱의 관절이 뻐근하게 아려오지만 흐느끼는 소리조차 내지 않으려했다.
당신은 그때마다 어떤 마음으로 내게 괜찮다고 말했던 걸까. 죽어가는 동안에도 남겨질 나를 보면서 괴로워했을까. 나는 그랬다. 나는 당신을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사랑했고, 꼭 그만큼 괴로웠다.
그날에는 몰랐던 당신의 마음. 하지만 당신같은 몸이 되어서야 알겠다. 당신이 늘 들어야 했던 주치의의 쏟아지는 질문을 이젠 내가 들어야 하는 상황이 닥쳐서야 알겠다. 당신은 늘, 이런 마음으로 살아왔었구나. 이런 마음으로 버텨왔었구나. 죽지 못해 살아가는 나처럼, 당신도.
그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얼굴을 바닥에 처박으며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이젠 듣지도 못할 말을 그 앞에 연신 토해내며 한참을 그 자리에서 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누군가가 물었다.
『개명은 또 언제 했냐. 이젠 외국인 행세라도 할 셈이야?』
누군가의 우스갯소리를 무시하며 그가 대답했다.
『좀 됐는데, 당신만 왜 그렇게 소식이 느려요?』
누군가가 픽,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여간 한 마디를 안 지지. 그래서, 왜 바꾼건데. 이유 없이 일 저지르는 성격도 아니잖아.』
그 물음에, 잠시 하던 일을 멈춘 그가 힘빠진 미소로 누군가를 바라보며 뒤늦게 대답했다.
『더는 그 이름으로 불릴 자신이 없으니까.』
***
그는 늘 사람을 떠나보내는 얼굴을 하고는 했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붙잡는 손은 애틋했죠. 그러나 잠시 뿐이었어요. 만남이 끝나고 나면 그는 다시 밀어내고, 웃는 얼굴 뒤에 진심은 숨어버리는 사람이었죠. 그는 정말이지 태연히, 숨 쉬듯이, 완벽하게 멀어지는 데 능한 사람이에요. 왜 인지는 모르겠어요. 꼭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사람 같았죠. 그와 가까운 지인의 말로는 원래 그런 면이 있던 건 아니래요. 그저…, 지금은 아직 시간이 필요한 거라고 했죠. 그럼 얼마나 지나야 그가 당신이 말한대로 돌아갈 수 있느냐고 물으니 이리 대답하더군요.
「기다리지 않고 사는 게 적어도 마음 편할 거다.」
…그래서 그 이상은 나도 그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지금은 그가 다른 팀으로 이동해서 만날 일이 없기도 하구요.
(잠시 머뭇거리는 반응을 보인다.)
사실 그를 마냥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었죠. 어느 날은 한번 상상해본 적이 있어요.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가 겪은 일을 내가 똑같이 겪고, 그래서 그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나는 아마 두려워서 그리 살아가지 않을까요. 관계가 깊어지면 떠나 보내는 것도 힘들 테니까, 그 전에 잘라내는 거예요. 더는 그 상실감을 겪기 싫으니까 가까워지기도, 사랑하기도 두려운 거예요. 결국 종국에 혼자 남겨져버릴 사람은 나니까. 그렇게 상상하니 그가 무척 가엽게 느껴지더군요.
음, 하지만 사람들과는 막역하게 어울렸어요. 그는 어디든 그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재주가 있었거든요. 적응이 빠른 편이었죠. …그래도 이젠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벌써 8년도 더 지난…아, 으음, 아니에요. 그럼 제가 해드릴 말은 더 없는 것 같은데. 이만 가봐도 되나요? 또 물어볼 게 남았어요? 아……, 그 사람 이름이요?
제이요. 알파벳 J의 그 제이 말이에요. 특이하죠? 혹자는 부인의 이름 이니셜 중 하나를 따온 거라고 하는데,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제 좋을대로 지껄이는 소문일 뿐이죠. 네? 원래 이름이요? 으음…저도 늘 제이라고 불러서…, (자그마한 침음성이 들린다.) 언제였지. 그와 가깝게 지내던 오랜 지인이 지나가듯 말해준 적이 있는데 그게 꽤 돼서 기억이 잘……
아, 생각났어요.
相思花
7.1. 이벤트 독백 ¶
- 조선시대AU
- BGM https://www.youtube.com/watch?v=ijG-LwBkG_0 꽃잎이 내리다 (음악을 함께 틀어주시면 가독성이 좋아집니다:))
얘, 내가 언제까지고 너희 뒷바라지를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니? 제 무릎에 머리를 뉘인 채 늘어져 있는 제자의 머리칼을 쓸어주며 말했는데, 그때가 언제였을까. 제이의 말에 때마침 마당에서 자그마한 몸으로 무거운 목검을 들고 낑낑 훈련하던 제자 하나가 이해못한 얼굴로 반문했다. 그치만 스승님은 강하잖습니까. 그 말에 제이는 부드럽게 소리죽여 웃으며 말을 아끼기로 했던 것이다. 그래, 그럼 너희가 다 클 때까지. 그때까지만. …어디서 이런 아이들을 데려와서 이 고생을 하는지, 원. 제이가 말없이 곰방대를 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찌되었든, 그는 무른 사람이었다.
*****
이 쥐새끼 같은 도둑놈! 몽둥이로 누군가를 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콧노래를 흥얼이며 거리를 유유히 걸어가던 제이가 문득 그 소리에 걸음을 멈추더랬다. 입에 물고 있던 곰방대를 한손에 감싸 내리며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몸을 반쯤 돌렸다. 어깨에 걸친 도포가 바람결에 하늘거렸다. 누구도 도와줄 마음 없이 방관하고 있는 어느 한 곳에서, 몸집이 큰 주막 주인이 바닥에 쓰러진 아이 하나를 가마솥 음식에 사용하는 큰 주걱으로 두들겨 때리고 있었다.
아이는 무얼 그리 품에 꼭 끌어안고 있었을까. 돌려주는 것이 차라리 덜 맞는 방법이거늘. 고집쟁이네. 저와는 상관 없는 일을 불구경이라도 하는 양 굴던 제이가 발걸음을 옮긴 것도 그 즈음이다.
다시금 높이 올라가 힘껏 허공을 내지르는 주걱을 무언가가 탁, 막는다.
"아이구, 무에 그리 화가났길래 애를 이리 잡는담."부들부들 떨리는 주걱 밑에는 제이의 곰방대가 있었다. 제이? 주인이 제이의 옆모습을 알아보고 천천히 주걱을 치웠다. 이 쥐새끼같은 놈이 저번에도 그러더니 오늘도 장사하는 음식에 손을 대었다고! 도와줄 생각 말게나. 내 오늘 저 놈의 손버릇을 단단히 고쳐줄터이니! 팔까지 걷어올리며 다시금 다가오는 주인의 가슴을 이번엔 손등으로 막으며 제이가 방글 웃어보였다. 고개를 슬쩍 내젓는 모습이 그러지 말라는 모양이었다. 언제든 뿌리칠 수 있는 비실한 손목이었지만, 주인은 그럴 수 없었다.
"그 손버릇은 내가 고쳐줄 것이니, 자네는 일이나 봐요."이런 일에 괜히 힘빼서야 쓰나. 응? 주인의 마음을 달래는 투로 손등을 뒤집어 손바닥으로 가슴을 톡톡 두드려준다.
"자아, 아가. 일어나보련."제이가 주인에게서 등을 돌려 쓰러진 소년을 향해 손을 뻗자, 아직까지도 힘이 남아있었는지 소년은 신경질적으로 제이의 손을 쳐내며 허겁지겁 반대편으로 도망을 치더랬다.
"허어…. 쟤 좀 봐."기껏 구해줬더니 고맙다는 인사도 안 하구.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제이가 허탈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주인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헌데 겨우 저런 것 가지고는 며칠도 버티지 못할터인데. 제이가 한숨같은 숨을 느리게 내쉬며 다시금 곰방대를 물었다.
*****
그 날은 꽤나 추운 날이었다. 비교적 칼바람이 불었으니 춥다고 해도 되는 날씨였을 것이다. 소년을 다시 만난 것은 제이가 사박사박 잔디가 밟히는 소리를 귀로 전해 들으면서 산책을 나왔을 무렵이었다. 산책이라 해도 실상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 어느 때는 반대편 숲 근처까지 갔다 오기도 하고 어느 때는 근처만 돌기도 한다. 요컨대 언제나 가고 싶은 길로 가기 때문에 늘 산책 방향은 달랐다. 그러니까 이것도 우연이라면 우연이고, 인연이라면 인연이었다.
다가오는 인기척에서는 익숙한 내음이 났다. 부딪힐 듯 스쳐 지나간 이와 인사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제이는 몇 걸음 더 가고 나서야 무언가 깨달았다는 것처럼 고개만 틀어 뒤쪽을 보았다. 소년은 이미 저만치서 걸어가고 있었다.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던 제이는 이내 아예 몸을 돌려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빨리 걷지도 않았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소년이 보였다.
소년은 나무에 기대어 서 있었다. 눈을 감고 있던 소년은 제이가 다가온 것도 모르는 모양인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에 제이는 소매로 입가를 가리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 그리고 위화감을 깨달았다.
"얘."
"……."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구나."
안색도 창백하고, 호흡도 거칠고. 이어진 제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년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지척에 있는 제이를 확인하곤 답했다.
"멀쩡합니다."
"……어딜 봐서?"
"그저 날이 흐려 그리 보이는 거겠지요."
소년의 말에 제이는 저 구름 너머에 있는 하늘 위로 시선을 던졌다. 제이의 시선을 따라 소년의 눈길이 이동한다. 흰 비단 너머로 저 하늘이 보일 리 없건만 제이는 머리를 구름의 틈새를 살피듯 기울였다.
"전혀 흐린 날이 아닌데."
"……혹시 보이십니까?"
"아니, 한번 말해봤어."
단조롭고도 뻔뻔한 대답이 돌아왔다. 소년는 입을 다물었다.
"……."
"……."
"……아무튼 전 괜찮습니다."
자리를 떠나지 않는 제이를 피하듯 먼저 몸을 바로 세워 발을 떼어놓으려던 소년은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거리면서 나무를 손으로 짚었다. 눈 앞이 어지러운지 다른 손으로는 눈가를 덮었다 떼어낸다. 신음 소리 하나 내뱉지 않았으나 몸 상태가 더욱 악화된 모양이었다. 소년은 몸을 가까스로 추스르면서 흘긋 제이를 보았다. 그리고 제이가 무슨 생각에 잠겨있는 것마냥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기만 하자 마치 원래부터 이곳에서 쉴 생각이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나무에 기대어 바닥에 앉는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제이는 소년이 깊은 숨을 내뱉을 즈음에 이내 머리를 번쩍 들면서 웃으며 말했다.
"좋아. 내 특별히 도와주지."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도 소년은 끝끝내 단호했다. 하지만 제이는 생각할 여지도 없이 곧바로 돌아온 소년의 거절에도 되려 아랑곳 않고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렇게 벌어져 있던 그와의 거리를 단번에 좁히고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혀 앉는다. 제 긴 소매를 죽죽 잡아 올려서 맨손을 그의 뺨에 가져다댄다. 미세하지만 흠칫하는 기색이 났다. 이어 손등을 뺨에 대었다가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어본 제이는 생각보다 열이 올라 있음에 작게 혀를 찼다.
"너는 의외로 아이 같은 구석이 있구나. 어른스럽지 못해. …앗, 애가 맞지 참."
"……."
소년은 마지못해 제이에게 기댔다. 머리가 핑 돌아서 무의식적으로 제이의 옷깃을 잡았다가 화들짝 하고 자기도 놀라서 손을 뗀다. 입술을 물었다가 놓는 것을 반복하던 소년은 곧 다시 제이의 옷자락 끝부분을 잡아 당기면서 말했다.
"……그 날, 절 왜 구해주셨습니까?"
제이는 소년의 말의 의중을 잠시 파악하지 못했다. 알아도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제이는 대답 대신 소년의 옆자리를 차지하면서 팔로 그를 휘감아 제 쪽으로 당겼다. 억지로 끌려와 강제로 눕혀지자 소년이 움찔했다. 그리고 소맷자락으로 소년의 눈을 가리듯 덮으며 말을 이었다.
"으응, 그건 네가 한 숨 자고 일어나면 대답해주도록 하마."
지금은 조금이라도 쉬어야 하지 않겠니. 소년은 눈 앞이 깜깜해지자 손으로 제이의 소맷자락을 잡았다.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대고 자리를 잡은 제이는 제 다리 위에 소년의 머리를 올려 놓고서 토닥였다.
"아가. 내 호의는 거절하지 않는 게 좋아. 흔치 않거든."
잠이라도 좀 자라는 것마냥 다독이는 손길은 마치 아파서 떼 쓰는 아이를 어르는 듯한 태도였다.
그렇게 시작된 교학상장敎學相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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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病痍 : 병들고 상처입은 자.
*갈 곳 없는 아이들을 가르친다던데.
*해결사라지. 사사로운 잡일부터 그보다 위험한 일까지.
*한량인이야. 어느 한곳에 가만히 있는 걸 못 봤다니까.
*헌데 그 자, 눈이 안 보인다던데. 하여 항상 눈을 흰천으로 가리고 다니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