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결혼식 ¶
여름날, 뜨거운 햇빛이 항구도시의 포장로를 비춘다. 결혼 행렬의 한 쪽에 서있던 아리오네는 신부와 함께 걷고 있는 친구를 향해 밝게 웃었다. 그도 이쪽을 잠시 응시하더니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순간 그의 옆에서 걷는 백의의 신부와, 검은 옷의 자신이 대조된다고 느꼈다.
코나와 함께 우아하게 춤추는 신부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풍만한 몸매에, 절도 있는 몸가짐,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금발은 마치 미의 여신이 이 땅에 강림한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듣기에는 유복한 집안의 딸이라고, 하객 사이에는 유력한 상인들 간의 결혼 동맹이란 얘기가 오간다.
몇 없는 친구 중 하나인 코나의 결혼식에서, 아리오네는 혼자 테이블에 앉아 새로 탄생한 부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한테는 얘기도 없이 저런 참한 아가씨와 알고 지내고 있었구나... 어쩌면 모르는 것은 나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몇 번인가 춤을 청하는 청년들의 손길을 싸늘한 눈빛으로 뿌리친다. 청년들은 자기들끼리 떠들더니 웃으며 뒤돌아선다. 결혼식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두 가장의 앞에서 사랑을 맹세하는 부부. 생각보다 별 감흥이 없네... 시시한 거구나 결혼은.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던 바구니에서 사과를 하나 꺼내들고 굴려본다. 여신의 축복을 받기라도 한 듯 훌륭한 빛깔의 사과였다. 그것은 테이블 위를 구르더니, 그 끝에 이르러 맥없이 툭 떨어진다.
몇 없는 친구 중 하나인 코나의 결혼식에서, 아리오네는 혼자 테이블에 앉아 새로 탄생한 부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한테는 얘기도 없이 저런 참한 아가씨와 알고 지내고 있었구나... 어쩌면 모르는 것은 나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몇 번인가 춤을 청하는 청년들의 손길을 싸늘한 눈빛으로 뿌리친다. 청년들은 자기들끼리 떠들더니 웃으며 뒤돌아선다. 결혼식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두 가장의 앞에서 사랑을 맹세하는 부부. 생각보다 별 감흥이 없네... 시시한 거구나 결혼은.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던 바구니에서 사과를 하나 꺼내들고 굴려본다. 여신의 축복을 받기라도 한 듯 훌륭한 빛깔의 사과였다. 그것은 테이블 위를 구르더니, 그 끝에 이르러 맥없이 툭 떨어진다.
"아빠는 왜 결혼을 안 해요?"
자신이 어린 시절에 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아버지의 얼굴은 건장한 병사의 것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여기저기 쏘다니며 처음 보는 여인들에게도 농을 걸곤 했지만, 정작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일은 없었다.
낡은 침대 위에 누워있던 아리오네의 아버지는 술에 곯아떨어진 것인지 불편한 신음을 뱉으며, 몸을 뒤척일 뿐이었다. 이미 늙어 뱃살이 나온 그의 모습은 동네 여인들에게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정말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달빛으로부터 그의 몸을 숨기듯 발치의 이불을 덮어 올렸다.
미리 준비해둔 짐을 건너편 벽에 기대고 있는 자신의 침대 밑에서 꺼내어 들었다. 벽에 기대둔 어머니의 유품을 챙긴다. 문을 열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신다.
"잘 다녀오렴."
아리오네의 뒤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면, 이불을 덮어쓰고 작게 중얼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있었다. 잠시 아버지의 움직임을 살피던 아리오네는 말없이 문을 닫는다.
자신이 어린 시절에 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아버지의 얼굴은 건장한 병사의 것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여기저기 쏘다니며 처음 보는 여인들에게도 농을 걸곤 했지만, 정작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일은 없었다.
낡은 침대 위에 누워있던 아리오네의 아버지는 술에 곯아떨어진 것인지 불편한 신음을 뱉으며, 몸을 뒤척일 뿐이었다. 이미 늙어 뱃살이 나온 그의 모습은 동네 여인들에게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정말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달빛으로부터 그의 몸을 숨기듯 발치의 이불을 덮어 올렸다.
미리 준비해둔 짐을 건너편 벽에 기대고 있는 자신의 침대 밑에서 꺼내어 들었다. 벽에 기대둔 어머니의 유품을 챙긴다. 문을 열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신다.
"잘 다녀오렴."
아리오네의 뒤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면, 이불을 덮어쓰고 작게 중얼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있었다. 잠시 아버지의 움직임을 살피던 아리오네는 말없이 문을 닫는다.
"하나같이 바보들뿐이야."
고향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서서 중얼거린다. 천천히 떠오르는 태양이 길을 인도해주는 것 같았다. 동쪽으로.
고향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서서 중얼거린다. 천천히 떠오르는 태양이 길을 인도해주는 것 같았다. 동쪽으로.
2. 코나 ¶
오늘은 나오지 않는 걸까. 슬슬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는 순간, 멀리서부터 오솔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 사람의 모습을 지켜본다. 이 시간에 언덕에 오를만한 바보는 딱 한 사람 있었다.
"아리... 미안 늦었네. 아버지와 중요한 얘기가 있어서..."
나무에 기대 편한 자세로 앉아 못들은 척, 바다에 빠져드는 해를 지켜본다. 태양을 향해 바다를 넘어가는 배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나 아무래도 다음 항해에 같이 갈 것 같아. 항해사로, 아버지 비서 겸..."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당분간은 만날 수 없다. 그렇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앞을 볼 뿐이었다.
"아리... 미안 늦었네. 아버지와 중요한 얘기가 있어서..."
나무에 기대 편한 자세로 앉아 못들은 척, 바다에 빠져드는 해를 지켜본다. 태양을 향해 바다를 넘어가는 배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나 아무래도 다음 항해에 같이 갈 것 같아. 항해사로, 아버지 비서 겸..."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당분간은 만날 수 없다. 그렇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앞을 볼 뿐이었다.
"내가 돌아오면 그 때는 결혼해주지 않을래?"
그렇게 말하는 코나의 얼굴은 황혼의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붉게 물든 바닷물을 가득 머금은 습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을 맞으며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다.
"싫어."
거절과 함께 그에게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코나는 잠시 숨을 삼키는가 싶더니, 이내 허탈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하하... 역시... 그렇지... 음, 그럼 내려가자."
그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치마에 묻어있던 민들레 씨앗이 바람을 타고 언덕을 내려간다. 코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십 분 정도를 내려가니 매일같이 지나는 마을의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 돌아오는 거야?"
급작스러운 질문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첫 대면에서의 총기는 어디로 갔는지, 알아차리고 보니 얼간이가 되어있었다.
"음... 아마 반 년."
그렇게 말하는 코나의 얼굴은 황혼의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붉게 물든 바닷물을 가득 머금은 습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을 맞으며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다.
"싫어."
거절과 함께 그에게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코나는 잠시 숨을 삼키는가 싶더니, 이내 허탈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하하... 역시... 그렇지... 음, 그럼 내려가자."
그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치마에 묻어있던 민들레 씨앗이 바람을 타고 언덕을 내려간다. 코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십 분 정도를 내려가니 매일같이 지나는 마을의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 돌아오는 거야?"
급작스러운 질문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첫 대면에서의 총기는 어디로 갔는지, 알아차리고 보니 얼간이가 되어있었다.
"음... 아마 반 년."
코나는 없었지만 매일 언덕을 올라갔다. 가장 낮은 가지에서 따낸 나뭇잎을 말아 풀피리를 불어본다. 하지만 기대하던 음색은커녕, 허무하게 새는 바람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생각보다 어렵네..."
오른손에 잎자루를 쥐고 천천히 흔들어본다. 금방 실증이 나서 언덕 아래로 던져버렸지만 빙글빙글 돌더니 코앞에 떨어졌다. 그것을 발로 밀어내고는 한동안 턱을 괴고 수평선 너머를 응시한다. 배 여러 척이 오가지만 알고 있는 형태의 깃발이라고는 딱 한 가지였다.
"생각보다 어렵네..."
오른손에 잎자루를 쥐고 천천히 흔들어본다. 금방 실증이 나서 언덕 아래로 던져버렸지만 빙글빙글 돌더니 코앞에 떨어졌다. 그것을 발로 밀어내고는 한동안 턱을 괴고 수평선 너머를 응시한다. 배 여러 척이 오가지만 알고 있는 형태의 깃발이라고는 딱 한 가지였다.
봄, 언덕 위에서 코나의, 정확히는 그의 아버지의 깃발을 보았다. 언덕을 내려와 빠른 걸음으로 부두가로 향한다. 높은 단에 서서 짐을 내리는 선원들의 모습을 구경하는 사이 굉장한 인파 사이로 그의 얼굴이 보인다. 어떻게 찾은 것인지 그는 손을 흔들며 얼빠진 미소를 짓는다. 위로 손을 흔들며 마찬가지로 웃어주었다. 그 때 웃통을 허리에 맨 선원이 그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며 농담을 건넨다. 코나는 그에 답하듯 소리 내어 웃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왠지 슬퍼 보이는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