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이 쓰러지면서 영감은 더 이상 사병들을 습격하는 일을 그만두었고 나 또한 그만 두게 되었다. 언제 죽을지 모를 영감을 걱정하면서 그와 함께 옆에 있는 것으로 나는 시간을 사용하기로 정한 것이었다.
그나마 집에 나서는 시간도 장볼 때 만이다. 그 이상으로 영감에게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영감의 내상은 생각보다 끔찍했던 것 같았다. 이제는 걷는 것조차 불가능해서 TV가 보이는 거실 소파에만 누워살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말하는 수도 줄어들었다. 한밤중에 그를 보게 된다면 설마 죽은 것은 아닌가? 하며 심장이 철렁 가라앉는다.
영감네 친구가 일하는 병원에서 의료기기라도 빌려오는 것이 어떠냐 제안했더니

“그딴 것 없이도 오래 살 수 있어.”

라며 거절했다. 평소에도 욱하는 성격의 이상한 노인네지만 허세도 작작 부려야지.
시간이 흐르고 흘러 1년지나 난 20살이 되었다. 당시에 나는 딱히 어른이 되었단 것에 자부심이 들지 않았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영감의 안전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영감 돌아왔어~ 오늘은 아주머니가 호박죽 만들어 주시더라구.”

집에 돌아왔더니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소파 쪽으로 걸어갔더니 그곳에는 원래 있어야할 영감이 없었다.

“영감탱이?!”

혹시 반란분자인 것을 들킨 것은 아닐까? 불길한 생각에 숨이 차기 시작하였다.
바로 그때, 뒤에서 문이 열리었다.

“설마...!”
“오~ 테디, 벌써 왔느냐?”
“으헥?!”
영감의 태평한 말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 망할 영감탱이가! 잘 걷지도 못하면서 어디를 갔다 온거야! 정말이지. 이 인간은...”

내가 말도 끝나기도 전에 영감은 내 손에 묵직한 무언가를 건내 주었다.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린 나는 영감이 건네준 물건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어디를 봐도 케이크 상자였다.

“내일이 네 생일이잖느냐. 작년까지만 해도 그것 때문에 시끄럽게 굴더니 올해는 까먹었냐?”

생일? 그러고보니 요즘 영감에게만 신경 쓴다고 그런 것에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영감이 먼저 내 생일을 신경써주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말대로 먼저 이벤트가 있으면 졸라대면서 영감에게 상기시켜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아이고~ 오랜만에 걸었더니 힘들다. 뭐하냐? 얼른 먹자.”

영감은 어제까지만 해도 다 죽어가던 사람이 딴 사람이라고 믿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나를 신경써줘서인지 말투까지도 평소와는 다르게 부드럽게 느껴졌다.

“아니, 영감 몸은...”
“몸은 뭐, 석 달 동안 소파에 누웠더니 말끔히 나은 것 같구만. 너 답지 않게 내 신경은 쓰지 말려무나.”

그 석 달 동안 본인을 돌봐준 사람이 나란 것은 새까맣게 잊은 것인가? 여하간 안 그래도 좁은 집 안에서 키가 큰 내가 계속 서 있는 것도 그림이 요상하니 나는 군말 없이 식탁으로 가 케이크를 꺼내었다.
새하얀 크림에 둘러 싸여진 평범한 케이크였다.

“영감, 요즘 시대에 이런 케이크라니...하다못해 I LOVE YOU~ 라고 적힌 놈으로 들고와야지.”
“에잉, 그런 낮간지로운 놈을 나에게 부탁하지 마라.”
“하하하!”

영감도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하고 있으니 나 또한 언제나처럼 밝은 성격을 유지하며 영감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케이크를 먹었다. 평범하게 맛있고 달달하였다.
영감은 또 다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그것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새까만 검은 색의 재킷이었다.

“생일 선물이다.”
“오오, 영감 주제에 센스가 있잖아?”
“너를 옆에서 얼마나 봐왔는데 이 정도 즈음이야. 하지만 평범한 재킷은 아니지. 네 전투 스타일을 생각해서 특제로 받아 온 것이라구? 안에 수납공간도 많고 방탄복 기능도 있지.”
“뭐?! 쩐다!”

영감이 특별히 건네준 재킷을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결국에는 입어 보았다. 가벼워 보이지만 묘한 무게감이 있었고 겉으로는 센스가 있어 보이는 멋있는 재킷에 나는 감탄을 금치 못하였고 그런 나의 모습에 영감은 훈훈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영감이 이렇게 센스 있는 선물은 첫 선물 받았을 때 다음으로 처음인걸!”
“뭐? 그럼 전에 것은 마음에 안 들었던 거냐?!”
“당연하지. 애초에 크리스마스인데 폭발하는 달걀 따위를 선물하는 가정이 어디에 있어? 순간 머리가 괜찮은가 싶었다구? 하긴 그때부터 몸이 편치 않으니 제정신이 아니었으려나?”
“이게 좀 봐줬더니 기어오르는구나!”
“우오오옷! 폭력반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영감과 함께 즐거운 일상을 보내면서 시간을 보냈더니 문득 저녁이 되었다.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영감은 오랜만에 몸을 움직였다는 이유로 소파에 누웠고 나는 소파 근처에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영감 곁에 있어주었다.

“테디야, 오랜만에 영화나 한번 보자. 추천하는 것이라도 있냐?”
“오? 왠 일이야? 내가 보는 것들은 시끄럽다면서 싫어하더니.”
“내일이 네 생일이니깐 네 분위기에 맞춰줘야지 별 수 있나?”

나는 배시시 웃으며 ‘어바웃 타임’이란 영화를 골랐다.
그날 밤은 나만의 영화관을 만들어 영감과 시간을 보내었다. 내가 추천하는 영화들도 영감이 즐겁게 보는 것 같아서 나 또한 매우 즐거웠다. 그렇게 새벽까지 두런두런 영감과 잡담을 하면서 영화를 보았다. 대화가 끊겼을 때는 영감이 옛날 일을 꺼내면서 놀려고 그것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고 그러다가 또 놀리고 다시 이야기하고...
문득 깨어났을 때는 이른 아침 시간이었다.
영화 러닝 타임이 다 지난 TV는 검은 화면으로 나와 소파에 있는 영감을 비추었다. 나는 시선을 살포시 영감에게 옮겼다.
영감은 편안하게 누우며 잠들어 있었다. 그것이 영원한 잠이란 것이 약간의 문제였지만...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은 눈치 챈 탓일까? 슬픈 감정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한 동안 소파에 편히 누운 영감을 바라보던 나는 몸을 일으켰다.

“혼자서 가면...역시 쓸쓸하겠지?”

나는 내 방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권총을 손으로 집었다. 탄알은 충분히 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머리맡에 두고서는 방아쇠를 당기었다. 그러나 총알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방아쇠를 당겨도 당겨도 당겨도...나를 이런 현실에서 내쫓을 탄환은 나오지 않았다. 고장 났다. 영감이 그렇게 장비 정비는 잘하라고 했는데 어이가 없어서 슬쩍 미소를 지었다.
나는 케이크 쪽으로 걸어갔다. 영감과 떠든다고 케이크는 아직 다 먹지 않은 채였다. 이것이 이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케이크를 다시 상자에 안에 집어넣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케이크 상자 안에서 무언가가 잡혔다.
그것을 손에 집어보니 봉투였다. 봉투에는 한 장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네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테디야.
하지만 너도 알겠지만 나의 몸은 이 이상 견딜 수가 없단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너에게 뜻 깊은 시간을 주고 싶었다. 이제까지 5년 동안 가족이었던 너를 위해서 말이다.
먼저 사과하도록 하지. 난 너를 내 밑으로 데려온 것에 대해 큰 후회를 하고 있단다. 만약 그 날 너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만약 너를 훈련시키지 않았다면, 만약 너에게 살인을 가르치지 않았다면...너는 지금 쯤 평범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지. 그러나, 난 너를 복수에 미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고 또 너의 일상을 망가뜨렸고 되돌릴 수 없는 길에 놓았다. 이런 나를 부디 용서해다오.
하지만 후회만 있는 것은 아니란다. 처음에는 너를 살인자로 키우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 너를 한 가족으로 보게 되었고 유일하게 지키고 싶은 사람이 되었고 나의 삶에 희망이 되어 주었단다. 마치, 마음이 맞는 친구와 사랑스런 아들을 둘 다 손에 넣은 기분이었단다.
그 이유는 당연히 너의 그 마음 덕이었겠지. 장난스럽고 우습지만 진지함이 있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상냥함을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모습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변한 것이야.
가족을 잃고서 눈에 오로지 분노만 차오르던 이 미치광이 노인에게 너는 소중한 것을 지키는 마음을 깨닫게 해주었단다.
부디 그 마음을 간직해다오. 나처럼 분노에 눈이 멀어 미치지 말아다오. 그리고 네 의지를 가지고 너만의 인생을 살아가렴. 비록, 너에게 복수란 길을 알려준 사람은 나지만 선택은 너의 몫이란다. 네가 직접 생각하여 네가 향할 길을 정해라.
너는 다른 그 누구도 아닌 테드 레드포드다. 밝고 착하고 어딘가 이상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그런 너 자신을 자각해가며 살아가다오.

편지의 내용을 다 읽고 나니 편지에는 점점 얼룩들이 늘어갔다. 내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젠장...망할 영감탱이...”

나는 눈물을 흘리며 쥐어짜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는 결국 마지막 순간에 나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가르쳐주고 세상을 떠났다. 힘든 몸을 이끌고 나를 축복해준 다음 떠난 것이다.

“흑...흑...흐아아아아아아앙!!!!!!!”

결국 편지를 구겨가면서 까지 그 편지를 소중히 꼭 안고서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목 놓아 울면서 절규와 탄식에 빠진 울음소리를 집 안 곳곳에 가득히 채워나간다.

시간은 이틀 후로 넘어간다. 2월 달에 불어오는 바람은 봄바람이라기보다는 아직까지도 쌀쌀한 겨울바람과도 같았다. 그나마 날씨는 매우 화창하였다. 푸른 하늘과 화창한 태양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서 나는 내가 직접 만든 무덤을 바라보았다. 무덤의 뒤에는 우뚝 선 나무가 있었다.
영감의 집 근처에 있던 눈에 띄는 나무였는데 영감의 어빌리티가 나무를 만드는 것이라 같이 있게할 친구라고 생각하고 이곳에 묻어 주었다.

“안락해 영감탱이? 내가 만든 것이니깐 당연하겠지만.”

남들이 보면 조금 으스스한 광경일지도 모르지만 화창한 햇살 아래에서 무덤을 바라보니 그다지 무서운 광경은 아닐 것이리라.

“나, 살아가볼게. 영감의 말대로. 테드 레드포드란 한 사람으로서 말이야. 그렇지만 복수는 할 거야. 영감의 의지를 잇는다거나 하는 것은 절대 아냐. 영감처럼 복수귀가 되어서 죽는 것은 사양이거든. 나의 일상을 망가뜨린 놈들에게 복수를 한 다음 다시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가서 보란 듯이 행복하게 살아가겠어...반드시.”

나는 결심을 굳은 눈빛으로 무덤에 맹세를 하였다.
바닥에 있는 재킷을 집어 들어 몸에 걸쳤다. 바람과 함께 흩날리는 것이 기분이 좋은 시작이라고 알리는 듯 하였다.

“그럼 갈게. 영감탱이! 천국에서 잘 살아라!”

나는 밝게 웃으며 영감의 무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영감의 바로 뒤에 우뚝 선 나무의 가지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마치 나를 배웅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재킷을 고쳐 입고서 나는 입가에 미소를 가득 품고 앞을 향하여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