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설명 ¶
크엘티아의 직속 시종, 로즈센트. 어디선가 나타난 빛바랜 분홍 머리카락의 인형처럼 사랑스러운 소녀는 자신을 로즈센트라 자칭했고, 본디 그랬던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크엘티아의 수발을 들기 시작했다. 제법 능력 있는 시종인지 주인의 의중을 귀신같이 짚어내 말하지 않아도 원하는 바를 행하고 주인의 마음을 읽어내고 그에 물화된 양 주인의 생각을 제 생각처럼 말하는 그야말로 따라붙는 그림자를 연상시키는 소녀. 때문인지 여주인에게 퍽 신뢰받고 있는 듯해 종종 다른 시녀들을 물리고 둘만의 이야기를 나누는 티타임 시간을 갖기도. 이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물어도 주인은 오로지 미소로, 시종은 침묵으로만 답할 뿐이다. 아픈 여동생을 떠올리게 해 동생처럼 곁에 두고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대세.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에 더불어 다른 고용인들과는 어울리지 않고, 필요 최소한의 교제를 제외하면 오로지 제 주인하고만 말을 섞어 낯을 가린다 생각하는 이도, 이를 흉보는 이도 종종 있다. 크엘티아의 수발을 드는 시간 외에, 사적인 시간에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는 불명. 이 저택의 그 누구도 주인 곁에서 떨어져 있는 그녀를 직접 목격한 적 없다. 이 아름다운 소녀는 그녀의 주인 앞을 제외하고는 팔과 다리, 그리고 관절의 접합부를 결코 드러내는 일이 없다. 본인 말로는 보기 흉한 화상 흉터가 있다지만 그리 큰 흉이 남을 정도의 큰 불에 당했다기엔 다른 부위의 피부는 어떤 흠결도 없이 깨끗한 것을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는 자도 있다.
- 🩰𝓗𝓸𝔀 𝓭𝓸 𝔂𝓸𝓾 𝓵𝓲𝓴𝓮 𝓽𝓱𝓲𝓼 𝓽𝓸 𝓫𝓮?
3.1. 크엘티아 ¶
그녀의 주인. 물건은 주인에게 영향을 받고, 쓰임새를 명받고, 주인에게 휘둘러진다. 그녀는 크엘티아의 욕구로부터 태어난 존재, 그녀의 욕망이 부른 망령. 정원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게 피어난 장미의 잔향. 크엘티아에게 영향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녀의 취향은, 암습의 방식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느 샌가 기묘하게도 주인 크엘티아를 닮아 있었다. 그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주인의 의사쯤은 간단히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저를 이루는 모든 것이 주인으로부터 왔으니.
크엘티아의 욕구가 사회에 배척받는 것이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것이던 로즈센트에겐 상관 없다. 그녀에게 있어 진정 중요한 것은 오로지 그녀의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 이룰 수 있는가. 그뿐. 그녀의 욕망을 이해하고 그를 방해하는 것을 치우기 위해 자신이 존재한다. 영혼의 깃듬 자체가 부정한 물건인 자신에게 이 세상에 필요한 책임을, 의미를, 이유를 부과한 주인을 거역할 리 없다. 결국 로즈센트의 모든 것은 크엘티아의 것 아니던가.
평범한 인간처럼 죽지는 않지만 장미의 잔향은 정해진 의무를 다하고 나면 바람에 흩날려 본디 없었던 것처럼 사라질 터다. 잔향은 잔향이라 그 존재가 미약해 영구히 존재할 수 없으니. 제 주인의 목적 의식을 다하는 순간, 로즈센트의 존재의 의의를 다하는 순간이 바로 그녀의 끝. 그 순간이 온다면 비로소 그녀는 기쁘게 눈을 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