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situplay>1596245505>247)
“나는 슈가 핑크가 무지 좋은데, 친구들은 안 좋아해.”
윽. 안 좋아하는구나. 자신의 인기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슈가 핑크는 속으로 마음이 축 처지는 것을 느끼지만, 겉으로는 씩씩하고 사랑스러운 마법소녀의 모습을 유지한다. 사람이 없는 공원 벤치에 꼬마와 마법소녀는 함께 있었다. 아무래도 마법소녀의 모습이 눈에 띄다보니 커다란 후드로 변신복과 머리모양을 감췄지만.
“친구들은 왜 안 좋아할까? 슈가 핑크가 뭔가 잘못한 게 있었으려나…!”
“그런 것도 아니야. 근데, 슈가 핑크를 좋아하는 건 어린애래.”
아이는 칭얼거린다. 어린애인가. 그러고보면, 초등학생쯤 되면 분홍색을 좋아하는 건 공주병이라는 인식이 생기곤 했지. 마법소녀는 여전히 핑크색을 좋아하지만 감췄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그래서, 좋아하는 거 들키면 놀림받아.”
“그건, 슬프네….”
어쩔 수 없나. 어렸을 때는 별의 별 이유로 남의 눈치를 보기 마련이니까. 막상 가온 본인도 변신해있지 않을 때 슈가 핑크를 좋아하는 티를 내라면 못 했고. …뭐. 이건 본인이기 때문에 민망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렇지만, 솔직하게 좋아한다고 말해줘서 슈가 핑크는 무지 기뻤어!”
다시 발랄한 마법소녀다운 모습으로 슈가 핑크는 눈을 빛낸다. 아이는 발그레한 뺨으로 마법소녀를 본다.
“있지. 무언가를 좋아하는 건, 절대 부끄러운 게 아냐. 놀림받는 게 싫으니까 친구들에게는 숨길 수 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그것만은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
“좋아하는 마음은 그 자체로도 멋진 거야. 세상을 반짝반짝하게 만드는 마법이지. 다솜이가 슈가 핑크를 좋아해주는 걸로 나는 행복해지고, 그 좋아함에 보답하고 싶게 만들어. 그리고 다솜이도, 무언가를 좋아하는 걸로 기쁨을 얻을 수 있지.”
슈가 핑크는 좋아함에 대한 지론을 늘어놓는다. 사랑을 테마로 내세운 마법소녀인 만큼, 이런 이야기에는 제대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마법소녀는 생각했다. 그리고는 슈가 핑크는 다솜에게 환한 미소를 보인다.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그치.”
“…응.”
-
“…정말로 나를 싫어한 게 아니라서, 다행이야-“
“그게 그렇게 신경쓰였어?”
한숨을 쉬는 가온의 머리 위에 고양이 니나는 올라타있었다.
“그렇지만, 미움받는 건 누구나 싫잖아. “
“그래봤자 어린애가 하는 소리라고.”
“어린애가 하는 소리든 아니든, 똑같이 중요한 거야!”
거 참. 그런 거 하나하나를 다 신경쓰다간 마법소녀를 어떻게 하려고 그래. 니나는 본인 일이 아니니까 그렇지…! 공감해주지 않는 니나에게 조금 억울하다는 듯 하소연한다. 그렇게, 평범한 고등학생 김가온과 마법소녀 슈가 핑크의 하루가 흘러갔다.
-
“아. 다솜이다.”
“다솜이는 아직도 핑크색 마법소녀 좋아해? 어린애구나!”
“…….”
평소라면 놀려대는 짖궂은 친구들의 말에 안 좋아한다며 우겼을 다솜이었다. 그러나 그런 다솜이 평소와는 다른 반응을 하게 만든 것은, 얼마 전 있었던 슈가 핑크와의 만남이었다. 그 날 실제로 그 마법소녀와 만나면서, 다솜의 어린 마음은 나름대로 자극을 받은 것이다.
“어린애는 너희들이야…….”
“응?”
그래서 그 날 다솜은 거짓말을 하는 대신, 자그마한 뺨이 빨개지도록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멋지다고, 슈가 핑크가 그랬어-! 너네는, 바보야!”
-
…그리고 가온이 그런 소소한 사건을 잊어갈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마법소녀 슈가 핑크로서 가온은 괴수와 싸우기 위해 출동을 나섰던 것이다. 어느 초등학교 근방에 괴수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어린 아이들이 있는 곳에 괴수를 만들어내다니, 역시 악의 조직 녀석들은 비겁해! 라고 생각하면서.
“…오래 기다렸지. 사랑과 평화를 수호하는 마법소녀, 슈가 핑크야!”
그렇게 말하며 교실에 그 마법소녀는 선다. 교실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책상이며 의자들은 제자리에 있는 것이 없었고, 아이들은 괴수에게 위협당하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종이학을 닮은 커다란 괴수가 아이들을 향해 날개로 바람을 일으킨다.
“…핫!”
슈가 핑크는 아이들의 앞에 재빨리 발을 딛는다. 가드를 취하듯 요술봉 양 끝을 두 손으로 잡고 뻗어, 근처에 커다란 보호막을 만들어낸다. 몰아쳐온 강한 바람이 아이들에게 닿지 못한 채 흩어진다.
마법소녀는 자신의 마법으로 아이들을 꾸준히 보호하는 한편 괴수가 빈틈을 보여줄 때를 노리며 집중한다. 종이학 괴수는 날개를 펄럭이고, 입을 벌려 에너지파를 날린다. 요술봉을 휘두르며 바람을 막아내고, 재빨리 도약하며, 그 공격을 맞받아친다! 그리고는 내리찍듯이 하트모양 빔을 연사한다. 조금씩 괴수가 밀리는 것이 보인다.
아이들은 긴장한 채 두근거리는 심장소리와 함께 마법소녀의 싸움을 바라본다. 핑크색 마법소녀는 유치하다고 말했던 아이나, 그걸 빌미로 다솜을 놀렸던 장난꾸러기들도 이 순간만은 한 마음이었다. 맨 뒤에서 울먹이던 다솜은 자신의 영웅이 모두를 위해서 싸워주는 것을 보고 있었다.
“힘내. 슈가 핑크!”
“괴수에게 지면 안 돼!”
몇몇 아이들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야. 그런 소리 했다가 괴수가 이 쪽을 공격하면 어떡해!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걱정하는 아이도 있었다. 슈가 핑크는 그런 앳된 응원의 목소리들을 듣고는 실망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윽고, 마법소녀의 필살기가 펼쳐진다.
“멜팅 – 스위트 !”
괴수가 공중에서 새하얀 빛이 되며 흩어져간다. 마침내 아이들의 교실에 평화가 돌아온다. 휴. 한 건 해결한 슈가 핑크는 아이들의 상태를 확인한다.
“다들, 다친 데는 없어?”
그리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다같이 마법소녀를 향해 달려든다.
“…우아아아앙!”
떼거지로 달려오는 아이들을 보며 슈가 핑크는 조금 당황한다. 그런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은 다같이 마법소녀를 둘러싸고 와락 끌어안는다. 슈가 핑크는 아이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었다!
“…앗. 잠깐. 얘들아. 저기…!”
그러던 중 마법소녀는 뒤늦게 인파 틈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다. 다솜은 슈가 핑크에게 달려드는 대신 한 발짝 뒤에서 뿌듯한 표정을 지은 채 서있는다. 드디어 모두가 슈가 핑크의 멋짐을 알아줬다는 기쁨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슈가 핑크. 완-전 멋졌어!”
얼마전까지 핑크색 마법소녀는 유치하다고 하던 아이들이 맞는지 곳곳에서 환호가 쏟아진다. 저기. 조금만 더 여기 있다 가주라. 응? 아니. 그건 곤란한데 – 슈가 핑크. 아까 필살기 한번만 더 해줘! …아무래도, 오늘의 업무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