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다. 목적지는 하남 북부였을 터인데...
...어제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일단 여기는 어디지?
#잠에서 깨어나 우선 주변을 파악하는것입니닷...!!!
*
눈을 뜹니다.
녹사평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눈을 찌푸립니다.
평범한 짚으로 엮어만든 침대, 빈대가 돌아다니고 썩 좋은 살림살이라고 볼 순 없는 단촐한 가구들.
햇빛이 간신히 들어오는 창문.
그리고 약간 꿉꿉한 냄새.
일어나서 두 걸음만 걸어가면 바로 문 앞에 설 수 있을만큼 작은 방.
여기는 여관업을 겸하는 객잔입니다. 하남 북부에 있는 작은 객잔이지요.
*
별 문제없이 도착했었지 그래.
주변을 보니 조금 기억이 살아나는 것 같기도 하다.
민간인이 별 문제없이 먼 길을 떠났는데 그것도 별 일 없이 도착했다니.
여래께서 지켜보심이 틀림이 없음이야.
"오늘도 잘 좀 부탁드립니다."
#기!도를! 합니다!!! 붓다에게!!!
*
기도를 드립니다!
정신이 조금 맑아집니다. 선한 인물을 만날 확률이 매우 소폭 증가합니다.
*
음, 뭔가 머리가 맑아진 것 같은 기분이다.
잠에서 깨기도 했으니 일단은 객잔으로 내려가도록 하자.
큰 일정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몸, 무언가를 하려면 정보부터 모아야지!!!
#객잔!!! 객잔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닷!!!
*
객잔으로 내려갑니다.
객잔은 한적합니다. 식탁에 엎어져있는 소년이 보이지만, 저건 점소이입니다.
일찍 출근하는군요. 부지런하다 중세 중국인!
*
...조용한데. 너무 일찍 일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하긴 아침부터 객잔이 가득 차있을리도 없지.
일단은 꺠워볼까.
"이보시게. 그만 자고 일어나는건 어떤가."
#점소이를 깨워보는 것입니닷...!!! 나약한 중세 중국인...!!! 일을 하라는 것입니닷...!!!
*
점소이를 깨워봅니다.
"으어어어 만지지 마세요! 거기는 안돼요! 거기는 돈이 들어있어요!"
....?
"헙."
점소이는 퉁퉁부은 눈으로 녹사평을 멀뚱멀뚱 쳐다봅니다.
"...?"
뭐.
"어엇. 안녕하십니까 손님! 좋은 아침입니다! 식사하러 오셨나요!"
*
"뭐 그렇지. 자네도 일찍부터 고생이 많구먼."
생각해보니 이른 아침이기도 하니 당연한건가.
...어지간히도 잤나보구먼. 저리 퉁퉁부어서는.
반응이 조금 그렇기는 하다만.
"간밤에 별일 있던가? 피곤해보이는구먼."
#모를때는!!! 알아봐야하는 것입니닷...!!!
*
"그으...별 일은 아닙니다. 대협. 헤헤...식사는 뭐로 하시겠습니까!"
거짓말이군요. 다만 녹사평은 손님. 손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한다면 객잔에 썩 좋은 소문이 돌 것 같지는 않다고 판단했나봅니다.
*
"별 일이 아니라면 문제 없지않나."
"나름 협객행을 하고 있는 몸이니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돕고싶다네."
바보라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티를 내는 탓에 되려 넘어가기 애매해졌다.
무엇때문에 저러는 것인지는 대충 알것 같다만... 그렇다고 매번 당하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괜찮네. 내 어디 고할만한 인연도 없으니."
#점소노이는 피해를 고하는 것입니닷...!!! 변호사가 되어주는 것입니닷...!!!
*
"아니...그..."
점소이가 우물쭈물해하더니 한숨을 푸욱 내쉽니다.
"제가, 누나가 하나 있는데 말입죠..."
그렇게 말하더니 신세 한탄을 시작합니다.
뭐, 그냥 흔하디흔한 하류계층의 일상이니 넘어가도록 합시다.
"이 인근에 부호가 여럿이라지만, 장 노인한테 글쎄 누이가 큰 돈을 빚졌다지 않습니까! 누이가 장사를 좀 해보려다가 잘 안된 것 같은데...돈을 얼른 갚으라고 성화입니다...하하..."
....이것만으로는 협행이 성립되지 않는군요! 그냥...채무자인데요?
"그런데 그것이 하필, 고리대금업인지라...이자가 원금의 열배가 넘어선지 오래입니다..."
이렇다면 말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어제 밤에도 돈을 좀 갚으려고 일을 했다보니..."
점소이는 녹사평의 눈치를 살피다가 밝게 웃습니다.
"흐흐. 그래도 손님이 들어주시니 한결 기분이 낫네요! 감사합니다. 식사는 뭐로 하시겠습니까?"
*
"거기가 어딘가."
하류에는 하류인생의 법도가 있는 법이다.
태어나기가 비천해 너무 과한것을 탐하지 않아야 하나 그렇다고 오욕칠정을 버리면 시체가 되는 것이고
큰 뜻을 품어도 그 뜻을 이루기가 하늘의 별을 따는 것 보다 어려운 법.
장사를 하려다 망하는 것 까지는 별일이 아니다. 스스로 극복해야할 난관이니.
허나 홀로 넘칠만큼의 물질을 탐하는 것은 인간임을 포기하고 돼지가 되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과거 맹가선생께서 권력자가 사람답지 않은 행동을 해 백성을 크게 괴롭힌다면
백성은 그런 이들을 끌어내려도 된다고 하셨으니.
부당함에 맞서는 것이야말로 참된 의로움이리라.
"장 노인이라는 파렴치한은 어디에 살고 있는가."
#거 함 달려보는 것입니닷...!!!
*
"어...그게..."
점소이는 굉장히 당황한듯 합니다.
"그...장가장이라고, 인근에서는 제법 유명합니다만은..."
그가 우물쭈물합니다.
"가시지 않는게 좋습니다...제법 이름있는 협객들을 식객으로 받아들여서 지내는...그런 인물이라..."
고리대금업을 하기 위해선 마땅히 튼튼한 자본이 기반되어야겠지요.
확실히 일류 무인을 고용할 정도의 돈은 충분할겁니다.
그렇지만 녹사평!
그게 중요합니까?
*
'"부당한 돈으로 쌓아올린 부 위에서도 제 목숨은 소중한가보군."
확실히 그 정도의 사람이라면 위험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해서 멈출 수는 없다!!!
일단은 정보부터 모아보아야겠지.
"일류정도는 있다고 보는것이 좋겠군. 더 아는 것은 없나?"
#계속 물어봅시다!
*
"쇤네가 잘 알아봐야 얼마나 잘 알겠습니까만은..."
점소이가 말끝을 흐립니다.
"아무래도, 협객이라고는 말하지만 협객은 아닌 것 같습디다...흑도 중 하나이지 않을까 다들 수군거립니다요 나리."
정파, 사파, 마교도 아닌 흑도!
"인근을 꽉 잡고 있는 흑도 무리들도 그 식객이 한 번 저잣거리에 떴다 하면 숨죽이고 도망칩니다요. 무당파에서는 개인간의 일이라 끼어들기가 너무 난처하다고 주시만 하고 있다고..."
무당파는 덩치가 너무 커서 잘못 나섰다간 장가장이 박살나는게 문제가 아닐 수도 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
"흑도... 흑도란 말이지..."
흑도!!! 집을 불태우고 아내와 딸을 죽인 그녀석들!!!
심지어는 무당파역시도 손을 대지 않는다... 그런가...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다.
"내 아내와 딸이 흑도에게 죽었지."
"그렇다면 그들의 목이 떨어져도 개인간의 일이라 할 수 있지 읺겠소?"
#한번 찾으러 가봅시다!!!
*
"엇. 어엇! 대협! 대혀업!"
점소이가 따라붙습니다.
"으, 음식값은..."
얼레.
*
자! 나온것은 좋지만 어디로 가야할지는 모른다! 사실 아무것도 모른다!!!
뭔가 점소이의 비명소리 같은 것이 들리기는 했다만 그것은 협행을 이루는 와중의 사소한 찐빠에 불과합니다.
삶이라는게 어떻게 항상 마음대로 되겠어요!!
"...급하게 나오느라 제대로 듣지도 못했군."
#일단 근처에서 탐문을 해보겠습니다!!!
*
우선 시장바닥을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봅시다!
녹사평은 천천히 시장바닥을 돌아다녀봅니다.
활기차군요!
상인들은 열심히 호객을 하고 있고 손님들은 하하호호 웃기도 하고, 꼬마들이 탕후루를 들고 이집저집 기웃거리기도 합니다.
가다가 어떤 꼬마는 아저씨에게 부딫혀서 혼나기도 하고, 부모가 달려와 연신 사과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아저씨는 껄껄 웃으며 보내주고, 아이는 부모님께 잡혀 집으로 돌아가기도 하는.
아주 평범하고.
행복하고 화목한.
그런 일상이 보입니다.
녹사평의 마음 한 곳이 아려옵니다.
남 모르게 입술을 한 번 세게 깨문 녹사평에게 상인들의 호객 소리가 들려옵니다.
"자자자! 비단입니다 비단! 이번에 녹색 비단이 들어왔어요! 때깔좀 보십쇼!"
*
마을의 모습은 무척이나 평온해보인다.
행복을 좇으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에 허, 하고 조금 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편안하지 못합니다. 그날은 어떻던가요. 아침에 가족에게 인사를 하고, 친구와 헛소리를 하며 나무를 하고... 위험이라는 것은 평범함 속에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떻게 안심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이번은 흑도가 엮인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해야지요.
또 불타는 걸 보고싶습니까?
"녹색말인가?"
표정을 관리합시다. 위험한 낌새를 눈치채고 녀석들이 도망칠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이런 얼굴인터라 사람 속에 숨어드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저것인가? 확실히 고급져보이기는 하네만... 뭔가 썩 끌리지는 않는군."
"다른 것은 없는가?"
#원래 돈이 통하는 소문은 비싼 곳에 있는 법!!! 비단가게로 들어갑니다!!
*
"오오. 당연히 녹색 말고도 있지요! 자주색은 물론이고 금빛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붉은색도 있지요!"
풍채가 풍만한 주인은 껄껄 웃으며 여러가지 비단들을 보여줍니다.
"더 좋은 것을 원하시면 이제 자수가 새겨진 원단들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어찌, 한 번 보시겠습니까?"
가격은 좀 나갑니다 그려!
라고 덧붙이는군요.
*
"허어 금색, 금색말인가?"
금색이 있단 말이지...
슥 둘러보니 선명한 금빛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그런 문제가 아니지요!!! 다른 것은 몰라도 단하나, 금색은! 황제의 색이다!!!
"그대는 관군이라도 몰려오면 황실 모독으로 경을 치겠구먼."
조금 거만하게 나가도록 합시다.
편하게 넘어가기 위해서는... 그렇네요. 뇌물같은건 어떨까요?
"이 내가 조금 귀하신 분을 만날 필요가 있네. 혹 장노인이라는 분을 아시는가?"
"내 그분께 선물을 좀 하고 싶네만. 무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 좀 골라주게."
#뇌물을! 찾아봅시닷...!!!
*
"하하하...색깔이 조금 빛바래있으니 괜찮을겝니다."
주인이 땀을 삐질 흘리며 대답합니다.
황실에 납품되는건 오직 최상품뿐이니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장 노인...? 아! 장 노야를 말씀하시는게로군요!"
그러더니 주인은 한참동안 고민합니다.
"장 노야께 찾아뵙고 선물을 하시려면...그 분을 직접 뵙는건 어려운 일이지요."
흠...
"그런데 말입니다. 이번에 장 노야가 새로 들인 애첩...아니, 부인이 있습니다 나리!"
호오?
"새로들이신 부인께서 연분홍빛과 붉은빛 비단을 그리도 좋아하신다지요 껄껄. 장 노야가 아니라 부인을 찾아뵙는게 더 빠르고 쉬우실겝니다!"
그러며 비단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게 꽤나 상등품이라 가격이 좀..."
*
"그런가... 헌데 확실히 개봉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이기는 해. 좋군."
어흠, 하고 가볍게 기침을 합니다. 직접 만나는 것이 어렵다니... 확실히 그럴거라고 예상은 했습니다.
게다가 주변에는 일류의 무인들까지... 숨기는 게 하나 둘이 아닌것같네요.
게다가 애첩? 아니 둘째부인? 이 할배가 미쳤나 봅니다. 부부가 유별하거늘 쯧쯧... 중원이 어찌되려고...
장노인에 대한건 둘째로 치더라도 이쪽에 대해서는 정보가 부족합니다.
"허허, 듣던대로 호방하신 분이구먼. 이거 신혼 선물을 준비하는 편이 나을 뻔 했어."
...척 보기에도 좋아보이는 원단입니다. 큰 장식은 없지만 그것 만으로도 훌륭하다고 느껴질 정도.
"가격은 이해가 된다네. 헌데, 가격이 얼마나 되기에 그러나?"
#흥정부터... 들어가보는 것입니닷...!!
*
"그야..."
주인이 손가락 세 개를 내밉니다.
은화 30개?
"금화 3개입니다 나리."
...
*
“흠… 금화 3개인가…”
양심 없는 놈 같으니라고. 비단이 그냥 비단이지 뭐가 그리 비싸? 관군을 불러올까? 아니 참아라 내 안의 소시민. 장사치들이 이러는 것이 하루이틀인가. 저렇게 빤히 나오는 것은 당하는 쪽이 멍청한거지.
내가 살면서 배운 몇 안되는 것… 그것은… 관군은 의외로 위험에 대응하는 일이 드물다는 것.
툭툭, 차고있는 도를 검지로 두들기면서 생각합니다. 가진 돈, 은화 50개. 진짜로 그냥 정문으로 쳐들어가서 불지르고 오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내 잠시 관아에 다녀올 일이 생긴 것 같구먼.”
“잠시만 기다리시게. 일행을 좀 데려올테니.”
#혼자서 덤비기엔 상인이 너무 강했던 것입니닷...
*
"헛허허. 다녀오시지요!"
상인은 살짝 비웃는것 같습니다.
아 기분 나빠!
녹사평은 그대로 자리를 벗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