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 미사하란 - 예은낭자
- 잃을 것은 사슬 뿐이니
- 이제.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
그곳으로 가는 길은 차분하지만, 결코 우울하게 늘어지지 않는 분위기였다.
다음에 올 때는.
반드시.
#그 석가장주때 황금 먹였던 개방도 기지로 가용
***
호남으로 이동합니다!
용이 되어 날아가 금방 도착합니다!
개방들은 여전히 다리 밑에 모여서 구걸해온 밥을 먹고 있습니다.
***
"글쎄, 정보를 좀 모아달라고 황금을 무더기로 바쳤거든요."
"며칠 후에 가보니까 그 치들이 단체로 납치를 당해서 사라져있었고..."
어색한 침묵이 적적했던 그녀는 개방과 있었던 일을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결국 뒷처리는 제가 다 했거든요."
그 빚, 지금이라도 갚아라. 그녀는 식사에 정신팔린 개방도들 뒤로 슬금슬금 유령처럼 다가가서...
"맛있어요?"
***
"히익?!"
딸그랑.
철로 만든 개밥그릇이 떨어집니다.
...철로 만든?
"무, 무,무,무,무, 뭐요?!"
***
뭐긴 뭐야 채권 추심이지.
"나 기억나요?"
내가 기억난다면 이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도 떠오르게 될 것이야.
"전 총관한테 납치를 당하셨길래.... 어떤가 걱정을 조금 했거든요."
"때깔이 좋아 보이니 천만다행이에요!"
***
"무, 무슨 말씀이신지요."
거지들은 비굴하게 웃으며 말합니다.
***
일부러 그러는 걸까? 아니면 정말 모르니? 하란이도 따라 웃는다.
흐흐흐흐.
"실 여섯개 다신 분. 지금 어디 계세요?"
그분과 깊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
딸꾹.
거지는 주눅이 든 채로 하란을 데리고 어딘가로 이동합니다.
거기에는 거지 주제에 근엄한 표정과 자세로 하란을 맞이하는 붉은 실 여섯개를 만지작 거리고 있는 거지가 있습니다.
하란은 기감을 통해 상대와 스스로의 경지를 가늠해봅니다.
....!
상대는 하란보다 일단 윗줄입니다. 경지는 같으나 간극은 확실하게요.
***
"그날 후 오랜만에 뵙습니다. 무탈하십니까?"
일단 살아는 계시니 다행입니다. 그녀는 손을 겹쳐 예를 표한다.
"진즉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뒷처리에 바빠 걸음하지 못하였습니다."
싱긋 웃는다. 조금 늦었지만, 빚을 받으러 왔다.
***
"오랜만이구만."
그가 끅끅 웃으며 우적우적 뭔가를 씹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리 찾아오셨소?"
***
"호남에 우환이 있을 적에 호남 땅의 개방 제자들 또한 변을 당하였다 들었습니다."
"그 총관 놈이 간악한 술수를 부려, 저희 간의 정당한 거래를 어긋나게 하였으니."
"다시금 고쳐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우리같은 거지들은 멍청해서 빙빙 말을 돌리면 잘 알아듣지 못한다네. 끅끅."
그가 트림을 하면서 그리 대답합니다!
시간끌지 말고 바로 말하라는 것 같군요.
***
"피차간 말이 오감에 막힘이 없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나와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그 때 맺었던 계약은 이제 쓸모가 없어졌으니 폐기하고, 새로운 의뢰를 맡기고 싶습니다."
"지불해야 할 비용은 저번에 드렸던 황금들로 갈음하시지요."
***
"저번에 받았던 황금으로라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만. 의뢰의 성공과는 별개의 의뢰금 아니었던가?"
그는 눈을 빙글 돌리며 말을 피합니다.
***
이 인간이...그 때 계약서를 쓸 걸.
"그 때 착수금에 관하여는 논의한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단지 원하는대로 정보를 구해다 줄 수는 있으나, 황금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었는데요."
왠지 금소협을 불러와야 할 것 같다...
"황금을 수레째로 끌고 왔는데 그게 오직 착수금일리 있습니까."
***
"우리는 그렇게 알아들었고, 그리했네만."
후비적.
그가 코를 파서 손가락으로 뭉쳐봅니다.
"잘 뭉쳐졌군."
뭐가 그리 흡족한지 원...
"아무튼 그 때 그건 그거고. 지금 이건 이거요."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합니다!
....
거지들은 언제나 배가 고픕니다!
황금따위보다 당장 먹을 수 있는 밥 한 끼가 더 중요한 이들...
그러나 황금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높으신 분.
그렇다면.
높으신 분이 아니라 아랫것들과 직접 계약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
"아니 어찌."
코딱지를 파네. 내 앞에서? 나는 이렇게 예의를 지켜주는데?
"어찌 그리 나오실 수 있습니까!"
신의 없는 거지 놈. 하지만 어떻게 할지는 대책이 섰다. 하지만 그저 침착히 웃으면서 돌아간다면....분명 의심받을 터이다. 뭐가 되었든 간에 흑심을 품었다고 의심받는다.
고기가 질기면 먹기 힘들지 않는가? 의심물을 쭉 빼 놔야 고기가 연해질 것이다. 그녀는 크게 당혹스러운 척을 하며 따지고 든다.
내가 말이야 어! 너네들 구한다고 어!!
***
거지는 익숙한 일인듯 여상치 않게 반응을 합니다.
그는 평범한 위생관념을 지닌 사람이 보았을 때 아주 더럽고 끔찍한 짓들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며 하란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습니다.
***
하란이는 자기 혼자 씩씩대다가 천막을 박차고 나와버린다. 아마도 천막 앞을 누군가 지키고 있다면 보았겠지.
전원을 내린 것처럼, 순식간에 무감히 돌아오는 그녀의 표정을 말이다.
그리고 다시 스위치 온. 웃는 표정으로. 아까 다리 밑에서 밥을 먹던 친구들을 다시 찾아간다.
***
다시 찾아갑니다!
거지들은 구걸을 하는건지 팔자좋게 누워 자는 것인지 모를 오묘한 자세로 하란을 맞이합니다.
"머선 일이슈?"
***
"별건 아니고."
방긋방긋!
"오늘 식사 뭐 드셨어요? 든든히 드셨나요?"
클로징 멘트를 날리는 것이다.
***
"저런."
그녀도 그 마음을 안다. 꼭 앎과 공감을 같이 할 필요는 없지만...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되지.
"괜찮으시다면 국밥이라도 한 그릇씩 드시겠어요?"
"그래도 백도 무림의 동도들인데, 매일 그런 것만 드신다 하니 마냥 넘기기 힘들어서..."
***
거지들의 눈에 탐욕이 어립니다.
"...사주시는거요?"
***
그들은 연신 허리를 굽히며 하란을 '대협'으로 칭합니다!
은화 4개를 지출하여 거지들에게 국밥을 사줄 수 있습니다.
지출할까요?
***
이거 모용법카 아니다..하란이 카드다...
감사하십시오 개방도.,
***
은화 4개를 지출합니다!
현재 남은 은화는 46개입니다.
국밥을 배불리 먹이자 거지들은 배를 두들기며 좋아합니다.
***
"접때 받아가셨던 황금은 벌써 다 쓰셨나봐요."
개방도들 옆에 앉아서 연초불을 당기는 하란. 그녀의 검은 속이 연기처럼 스물거린다.
"하긴 사람도 많고... 꼭 먹는 데에만 돈을 쓰시는 건 아니니까."
하란은 거지들이 당연히 황금을 받았다, 그녀가 들이부은 황금에서 비롯된 수당을 받았다는 틀린 전제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
그들의 표정이 조금 우울해집니다.
"황금이라니. 그런게 우리같은 거지들에게 가당키나 하겠수?"
호오?
***
"예?"
슬슬 입질이 오는구만. 조금 더 흔들어볼까나.
"저번에 그....그 분 여기 안 계신가?"
"여름에 일이 있었어서 개방에 황금을 많이 부었었거든요. 그 때 누가 보셨을 텐데."
그녀와 일행을 실 6개에게 안내해주고 콩고물을 받아간 그들 말이다. 그들이 콩고물을 받았다고 직접 말하면 너만 받고 숨기고 있었냐! 하고 싸움이 날까 싶어. 말하지 않았다.
자기네들끼리 싸우지 말고 윗선이랑 싸워야지.
***
"그런것들은 다 윗 사람들이 가져가는 거지."
"암. 그렇고 말고. 우리들한테 올리가 있나?"
아예 자포자기 상황입니다!
***
하란이 : 개방도들이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게 선동하고 싶어
뉴런 : 멋지군요. 어떤 방법을 쓰실 거죠?
하란이 : 그걸 지금부터 네가 생각해야 해.
뉴런 :
***
"아니..그..."
이 답답이들아! 내 작업의 수월성을 위해(?) 좀 욕심을 가져보라니까? 상호간에 이익이 되는 거잖아.
"그 때 보신 분도 계시겠지만 제가 개방에 쏟아부은 황금이 많습니다. 상당히요."
"분명히 여러분들 대다수가 수혜를 입을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방의 재산이야 윗사람들이 관리하는 것이 도리가 맞죠. 하지만 그것을 수고한 이에게 안배하는 것은요? 그것은 도리가 아니란 말입니까?"
"더군다나 최근 호남 개방이 수고가 많았다는 것을 제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에 따른 위험 수당은요?"
그녀는 잠깐 기억을 되짚어본다. 내가 거지 시절에 뭐가 힘들었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더라?
"어쩌면 거지 생활을 청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건 제가 직접 겪어보고 이야기하는 건데 말입니다...."
***
잘 쓰일데가 없었던 하란의 '녹의홍상' 이 이럴 때에 쓰입니다!
패널티도 조금 완화 되었겠다, 이런 아름다운 미녀가 예전에는 자신들과 같은 거지 부랑아들이었다니요?
거지들은 쉽사리 믿기 어려운 표정입니다.
"그, 그걸 우리가 정말 믿으란 소리요? 애초에 뭔가 많이 다른 것 같지 않소..."
***
"어머, 모용세가에 영입된지 며칠만에 절 알아보시는 개방도 분도 계셨길래, 당연히 아실 줄 알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이 친구들이 날 믿을까....아!
"호남에선 짤짤이 어디어디 돌아요? 제가 저, 산동에서 짤짤이 돌 때는 XX시에 일어나가지고 OO절이랑 ZZ파랑 돌고 CC절에 가면 딱 조반 먹을 시간이에요. 거기서 동전 한개로 소박하게나마 한 상 차려주거든요."
***
그제서야 거지들의 얼굴과 눈에는 신뢰와 믿음, 동지애와 전우애, 안도와 기쁨이 어우러지면서 편해집니다!
"허허허! 같은 동지의 말이라니. 그렇다면야 믿을 수 있겠지요."
하란은 이들의 신뢰를 조금이나마 얻어내는데 성공합니다!
***
"제가 처음으로 집에 들어가서 살 때 가장 좋았던게 뭐냐면..."
넘어온다! 넘어온다! 넘어와라!!
"큰 게 아니에요. 자기가 돌아갈 든든한 곳이 있다는 것 자체로도,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상당히 바뀐답니다."
"하루하루 급급한 처지에서 벗어나 내일, 모레, 일주일 후, 일년 후를 바라보고 행동할 수 있게 되지요."
사람 마음이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 '황금'들만 수당으로 받아낼수만 있다면.."
***
그렇게 말할 때 그들 중 하나가 이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개방의 제자요. 실력은 미천하나 무공을 한두개 익혔거늘 그건 어찌해야한단 말이오?"
***
그녀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광해방검진. 개방도의 입에서 말이 튀어나오자 아, 하고 하란의 말이 막혔다.
그 문제의 해결법을 그녀가 안다면 일단 자기 자신부터 살폈을 것을.....
"혹 개방에 강령과 같은 것이 있습니까? 반드시 거지여야 한다거나, 재산을 가지면 안된다거나.."
***
"어...반드시 거지여야만 하기는 하는데."
하란은 이마를 탁 칩니다.
아 ㅋㅋ 거지만 가입할 수 있다고 ㅋㅋ
***
아차...이마를 탁 치고..한숨을 푹 쉬고..
"집이나 건물을 사서 거지를 위한 쉼터, 걸인 보호소. 이런 현판 붙여놓으면 안됩니까?"
"명목상 구휼원 같은 데서 만들었다 치고, 여러분이 들어가서 자면 되지요."
***
거지들은 당신, 천재인가? 하는 표정으로 하란을 바라봅니다.
천재 맞는데.
***
"그렇게 하면 되지요! 한번 집을 가져보세요. 분명 더 유쾌한 미래를 내다보실테니."
이게 통하네. 즐겁다! 그녀는 박수를 한번 짝 치면서 활짝 웃었다.
"누구는 마음가짐을 새로 해라, 너 자신을 바꿔라 같은 공허한 소리만 하더군요."
"하지만 날 때부터 화경고수의 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야, 물질이 일단 충족되야 정신이 안정하는 법이랍니다!"
***
그들은 그제서야 납득하게 됩니다!
이제 이들을 고용해서 움직일 수 있을겁니다...
***
이들은 이제 내 뜻대로 움직인다. 후후후후....
"좋습니다. 좋아요. 황금을 받아낸다고 해서 윗선이랑 전쟁을 벌이라는 건 아니랍니다."
그렇게까지 했다간 지금 이 사람들은 모조리 목이 따일 것이고, 그녀도 내란 선동 뭐시기로 개방의 적이 되고 말테니까.
"파업이나 태업...우선 태업이 좋겠습니다. 윗선이 여러분을 때릴 명분을 주지 못하도록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 행동해보도록 하죠."
나에게 엿을 먹인 누군가에게 다시 엿을 돌려주려 궁리하는 그녀. 턱을 하란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행복하게 웃으니 더 예뻐...그건 아닌가? 좀 쎄한데 웃음이?
"앞으로 업무를 할 때는 필요한 업무만 최소한으로만 유지하시고, 규정을 필요 이상으로 아주 엄격하게 준수함으로써 능률을 떨어뜨리도록 하십시오. 수당을 받아내기 위한 시위이자 쟁의행동으로서 말입니다."
이른바 준법투쟁이란 것이지.
***
거지들은 그냥 원래 하던대로만 하는거라서 어렵지 않게 여깁니다!
이들은 당분간 태업하게 될 것입니다.
- 체호프의 구미호
- 흠흠흠~ 하란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태업하러 가는 거지들을 배웅했다. 이제 주변에서 대기하며 기다리리라.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서어-"
유령처럼 따라다니던 진군을 돌아본다.
"남환진군도 하계에서 여러가지 보셨을텐데 느끼시는 소감이라도 있나요오?"
***
흠흠흠~ 하란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태업하러 가는 거지들을 배웅했다. 이제 주변에서 대기하며 기다리리라.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서어-"
유령처럼 따라다니던 진군을 돌아본다.
"남환진군도 하계에서 여러가지 보셨을텐데 느끼시는 소감이라도 있나요오?"
***
"아시다시피 여러가지 일이 복잡하게 얽혀있는지라.."
남환진군은 장군이었지. 병력을 여기서 저기로 옮기는데만 해도 지형, 산업, 수송 등등 여러가지를 고려해야 하는 것과 같은 원리인 것이다.
"그런데 건안이 어디에요?"
문제를 뿅 하고 해결해주는 요술 주전자가 있는 선계의 지명인가?
***
- ?
- 건안이 건안이지 어디인가.
아 ㅋㅋ 삼국시대 지명 쓰지 말라고 ㅋㅋ
***
아. 그 건안. 하...ㅋㅋㅋ
"남환진군....옛날 지명 쓰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봐요. 지금은 복건이라구요."
"제가 갑자기 하나라는 어디갔냐고 물어보면 남환진군도 당황스럽지 않을까요??"
***
- 무슨 소리인가? 걸왕이 백면금모구미에게 농락당해 나라를 망치고 멸망한지가 오래이거늘.
- 주군은 조금 더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군.
말을 말죠.
***
"와..."
이건 '진짜'다! 도무지 이길 수가 없다. 관용어로나 쓰였던 걸주의 걸을 한 달 전에 있었던 일처럼 이야기하는 존재라니. 선계인의 벽은 높기도 하여라.
말을 말지. 이 할아방탱이야 하는, 짜게 식은 눈으로 진군을 쳐다보던 하란...그러다 문득 뭔가 생각났다. 백면금모구미라고?
"걸왕이 백면금모구미한테 꼬였어요? 그 썰이 진짜였나요?"
은나라 주왕, 주나라 유왕과 관련된 설화는 들어봤었다. 하지만 걸왕까지?
***
- 크흠.
남환진군이 헛기침을 합니다.
- 선계에서는 유명한 일이네. 백면금모구미가 선계에 도전장을 내민 첫번째 일화이기도 하고. 선인들의 제자가 세운 나라를 무너뜨림으로써 선계 모두를 욕보였지. 아 하나는 빼고.
천마를 말하는거겠죠. 천마였다면 직접 잡아서 죽여버렸을테니까요.
- 백면금모구미 정도 되는 대요괴라면 능히 그럴 힘이 있긴 하지만 딱 그 정도 뿐. 하계에서 난리 피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쭉정이들일세.
- 그러고보니 주군은 대요괴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 가장 최근에 나타난 대요괴라면 아무래도 필마온 정도겠군.
***
"몰라, 몰라요! 말해줘요!"
새로운 정보. 더 넓은 세상의 정보. 다른 눈으로 보는 세상에 대한 정보다. 어찌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랴!
하란은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
- 세상에 요괴들이 넘치는만큼, 강력한 요괴들도 있기 마련이오.
남환진군은 촉수...를 움찔거리며 말합니다.
- 그렇다고해서 마냥 강한 요괴를 대요괴라 부르지는 않소. 대요괴라 불리우는 조건은 오직 하나.
그가 약간 으스스하게 입을 엽니다.
- 선계에 도전할만한 힘이나 권능이 있는가.
- 필마온은 단신으로 선계를 한 번 뒤집어 엎은 전적이 있고, 백면금모구미는 선계의 인물들까지 유혹하였소. 그 외에도 선계에 도전할만한 많은 대요괴들이 숨죽여 살고 있소만. 그 이유가 참으로 웃기다오.
그리고는 피식 웃습니다.
- 천마, 그 작자 때문에 대요괴들이 숨죽이며 살고 있소이다. 아직까지는 천마가 인세에 제법 관심을 주고 있으니 대요괴들이 날뛰지 않을테지만...
말끝이 흐려져갑니다.
- 글쎄. 천마가 하계에 신경을 조금이라도 덜 쓰게 되는 사건이라도 발생한다면 어찌될지 모를 일이오.
***
숨죽여 살고있는 대요괴들. 마치 은거기인 같다. 천마의 눈을 피해, 세상의 눈을 피해. 선계에 도전하기 위해, 선계에 오르기 위해. 같으면서도 다른 세상의 은자들이라.
"그럼 만약에 말이죠..... 우리가 숨어사는 그네들과 마주치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역시 인간들처럼 내단을 해먹으려고 침을 흘릴까요?"
***
- 재앙이자 동시에 축복일....수도 있겠군....
- 대요괴들의 힘이 인간들의 '물리적' 힘보다 항상 강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주군.
백면금모구미의 예를 들며 남환진군이 설명을 이어갑니다.
- 그 잡것의 특기는 매혹과 둔갑술이지 싸움은 개미만도 못하외다. 물론 이건 선계의 기준이고 하계에서는 그래도 나름 이름 정도는 날릴 수준일 터.
- 그렇다하더라도 하계의 강자들에게는 한낱 간식거리일 수도 있겠지. 왜 굳이 왕을 유혹해서 나라를 망쳤겠소?
물론, 이라고 하며 말이 이어집니다.
- 개중에는 필마온과 같이 무력적으로 대단한 대요괴들도 있으나, 그런 대요괴들은 진작에 천마에게 잡혀 식사거리가 되었거나 부처가 되었거나 진인이 되었거나 하외다.
***
천마. 참 대단도 하시지. 용탕에 요괴탕에 오만가지 것을 다 잡수시는군.
"매혹과 둔갑술이라. 둔갑술..."
백면금모구미의 싸움실력이 하찮다는 것은 꽤나 의외이다. 꼭 강함이 육체의 강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나, 무림인의 강함은 일단 육체의 강함이 맞기에. 쉽게 말해 고정관념이었다.
매혹은....하란이도 쪼금 할 수 있지만 둔갑술이라니. 신묘하다. 그런데 어라?
"남환진군도 둔갑술 쓰실 줄 알죠?"
***
남환진군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 쓸 줄 아오만, 주군은 딱 봐도 둔갑술에 재능이 없어보이오.
아니! 그거 인종...아니 종족차별이야!
- 그리고 둔갑술은 생각보다 고난도의 술법이라오.
***
남환진군 당신 모용통통배랑 만난 적 없지? 내가 말이야 어? 광해방검진을 어?!?!
"아아~ 남환진군이 안 가르쳐주면 어떡하지~? 그 구미호한테 찾아가서 부탁해야 하나아~?"
하란이는 진군을 살살 놀려먹는다. 야, 야야! 진짜 안 가르쳐주냐? 어?
"하긴 둔갑술이라 하면 여우랑 너구리들을 따라갈 수가 없다죠? 전통적으로 둔갑의 대가라잖아요."
***
남환진군은 살짝 울컥한듯 하지만 용케도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선계의 장군이 이런 격장지계에 너무 쉽게 넘어가면 그것대로 선계의 비극일겁니다.
- 용이 그럴 수 있을리가 없으니 괜찮소.
? 이건 또 뭔 소리래요.
***
역시 안 넘어가는가... 아 씁 사실 둔갑술만 보면 여우짱이 더 잘할 것 같긴 한데 말이야?
그런데 이건 또 머선 소리고?
"왜요? 용이랑 여우는 친하게 지내면 안돼요? 아님 둔갑술이 용 문어 용대로 다 따로 있는 거에요?"
***
- ...
남환진군은 살짝 한숨을 내쉽니다.
그 뭐랄까, 어린 조카가 왜 땅에 떨어진걸 먹으면 안되냐고 묻는 삼촌같습니다.
이제 조만간 김캡도 겪게 되겠죠....
- 요괴와 신선이 서로 선술을 교류할만큼 좋은 관계가 아니라서 그렇소.
- 신선을 먹으면 요괴들은 불로장생을 한다지.
***
"에엥..."
내단을 노리는 놈들이 많기도 하다! 천마에 인간에 요괴들까지. 내 팔자야!
"그러면 남환진군이 가르쳐 줘요! 어려운 걸로만 따지면 사람이 용되는게 더 어렵죠!"
하란이는 명절날 놀러온 조카몬처럼 '줘'를 시전한다!
***
- 그러니까....
남환진군은 자신의 촉수를 살짝 잡아당깁니다.
- 먼저 선술부터 제대로 익히시오. 제대로.
그런거 없는뎅.
- 둔갑술은 굉장히 어려운 선술이니 기본적인 선술의 이해도가 없으면 익히실 수 없소이다.
***
"선술을 익히려면 선계로 가야겠네요."
쳇, 질척거리던 하란이는 마참내 진군에게서 떨어진다.
"시간이 될런지.."
선계 갔다오면 3대사건 끝나있고 그런건가
***
그럴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복건으로 이동하는게 좀 더 우선순위가 높으니 기억해두세용!
- 호남의 개방도여, 단결ㅎ....
- 홍..일단 개방도들 소식을 기다려볼기ㅣ용
***
개방도들이 흠씬 두들겨 맞았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래도 황금 때문인지 알음알음 개긴다는군요....
시간이 조금 더 흐릅니다.
개방도들의 절반은 폭력에 굴복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거지들에게 논리적으로 말하는 법을 가르쳐보시는건 어떨까요?
거지들특)교육 못받음
***
"아이구 이 멍청이들."
세상에 왜 이리 바보같은 사람들이 많을까? 상품 날려먹고 교환도 안해주는 놈, 또 하란 일도 못하고 맞고 다니는 놈들...
이렇게 하란은 왕재수 스택을 쌓는다. 그녀는 거지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그들을 처음 보았던 다리 아래로 향했다.
***
거지들을 만나러 갑니다!
거지들은 전보다 조금 우울해져있습니다.
***
"많이 힘드시죠^^?"
이 화상들. 나 혼자 좋자고 하는 일이니? 너희들에게도 좋은 일 아냐. 의욕을 보이라고!
"제가 몇 가지를 알려드려 소협들의 힘을 덜어드리려 하는데..어떠신지?"
물론 선택권은 없다. 수업 시작할테니 앉아!
***
거지들은 엉거주춤하니 자리에 앉습니다.
상급자와 관계가 틀어진 지금, 이들이 기댈것은 하란 뿐입니다.
***
"논리학은 '무엇이 올바른 추론인가?'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발한 학문이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말하고 듣고 쓰는 말이 타당하고 합당한 논증으로서 잘 성립하는지 따지는 것. 즉 흔히들 '난 논리적인 사람이야!'라고 말할 때, 논술에서 '글을 논리적 흐름에 맞춰서 써라!'고 말할 때 '논리적'이라는 것은 비형식 논리를 기준으로 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령, '순환논증 오류', '논점일탈의 오류', '인신공격의 오류', '피장파장의 오류',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 등이 비형식 논리학에서 다루는 것들이다."
하란은 거침없이 강의를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거지들을 살피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이 바로 이걸 이해하리라곤 바라지도 않으나, 한 명이라도 이해하는 자가 있으면 일이 수월해지니. 능도처럼.
***
안타깝게도 거지들 중에서는 머리가 좋은 이들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오호통재라!
***
아...보고싶다 능도야....
세상에 바보들이 가득해..
***
실전적으로 강의를 해주지만 이들은 애초부터 제대로 교육받은 인원들이 아닙니다.
개방의 진짜 전력이라기 보다는, 십만개방이라는 말에 걸맞게 인워수만 불리우는 그런 쭉정이들이군요.
하란의 천재성이 발휘되어 그나마 이해는 시켰습니다만...이들이 잘 해낼지는 미지수입니다.
***
"틀림없이 양 떼로군 양 떼!"
이 정도에 이르면 내가 바보라서 이해를 못 시켰나 의문이 든다. 이것들이 과연 쓸모있는 패인가?
"지휘하는 놈이라도 사자여야 할 텐데요."
분명 그렇겠지. 명색이 구파일방의 일방 아닌가. 분명 그래야만 해...
***
거지들을 배웅해줍니다!
저들을 마음대로 잘 쓰려면, 저들을 지휘할 '지휘관' 같은 인물이 필요합니다.
하란은 한숨을 푸욱 내쉽니다.
황금을 다 받아쳐먹고 내빼버렸지만 저 거지들을 능수능란히 지휘하던 인물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건 잘 알 것 같습니다.
목적을 다시 세울 시점입니다.
하란은 거지들을 어떻게 하고 싶으냐가 주요 쟁점입니다!
1. 잠깐 버리고 말 패라면, 그냥 거지들에게 돈을 쥐어주고 일을 따로 시키면 그만입니다.
2. 유용하게 사용한다면 지휘관을 설득해야만 할겁니다.
3. 휘하에 넣는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4. 그 무엇도 아니며 다른 것입니다.
어떤 것입니까?
***
이 사람들은 높으신 개방을 압박하기 위한 패일뿐... 다만 추가금을 쓰긴 싫어용 황금을 얼마나 쏟고 대가를 받지도 못했는데 돈을 더 내라고?!?!
***
이는 지휘관 격의 인물인 거지를 찾아가서 다시 협상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거지는 대가를 지불했다고 보고 있으며.
하란은 대가가 지불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는 것이 사건의 쟁점입니다!
개방의 6결 제자는 하란의 생각보다 상당한 고위 인물입니다!
붉은 실이 9개 달려있는 9결제자는 개방 방주이며.
붉은 실이 8개 달려있는 8결제자는 개방의 장로나 원로들.
붉은 실이 7개 달려있는 7결제자는 능히 일대를 주름잡는 개방의 관리자들.
붉은 실이 6개 달려있는 6결제자는 실무진의 최고봉에 있는 위치입니다.
물론 이렇게 아름답고 정중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대가를 받지 못했다면 피로 받아내는 방법도 있으며, 지금과 같이 거지들을 선동하여 일을 틀어막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다만 후자의 방법은 시간이 상당히 걸릴겁니다...
***
흑흑 육결제자를 만나러 가용..
***
육결제자를 만나러갑니다!
그는 굉장히 불편한 표정으로 하란을 맞이합니다. 저번보다도 더 불퉁스러워졌군요.
"빨리 용건만 말하고 가시게."
***
어휴 어쩌나 육결제자님! 전 시간이 썩어넘칠만큼 많은데!
"기분이 좋아보이십니다. 오늘 부탁하면 들어주시겠습니까?"
아마 이 자도 하란이 거지들을 선동중이라는 걸 알고 있겠지?
***
"용건만 간단히 하고 가시게. 내 기분이 오늘 아주 무.척.이나 좋으니 말일세."
거지가 그렇게 대답하며 심기가 불편한지 탁주를 들이킵니다.
***
"제가 드릴 말씀은 저번과 같습니다. 새로운 일, 지불된 대금."
하란은 양 손의 검지를 하나씩 펴 내보였다.
"이건 단순히 저와 대협 사이의 일이 아닙니다. 저는 그 때 세가의 정무를 수행중이었고, 그 황금도 제 사비가 아닌 세가의 공금이라는 점에서."
"이는 모용세가와 개방 사이의 작은 오해라 할 수 있겠군요."
***
그제서야 육결제자의 얼굴이 더욱 더 찡그려집니다.
"허. 내 알기로는 모용의 공금이 아니라고 하던데?"
...
어디까지 알고 있는걸까요. 이 놈.
***
모용의 공금이라는 건 허세가 아니었다. 아니, 그거 진짜로 공금 아니었어?
"제 동료 중 한 명이 끌어온 자금이온데, 사실 그 사람도 모용세가 소속인지라."
잠깐 금소협 떡밥이 여기서?
"그 친구가 '놀고 먹을 돈을 주세요' 했으면 그만한 돈이 잘도 모였겠습니다. 업무 자금이라는 명분이 있었으니 그랬지."
"모용의 사람이 모용의 일을 위해 끌어온 자금이 공금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모용의 공금이올지?"
***
"허. 홍단표국의 돈이 어째서 모용세가의 것이던가? 으응?"
그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듯 싱글벙글 웃으면서 끌끌 거립니다.
그러니까 이 자는...뒤탈이 안날거란골 다 눈치채고 꿀꺽해버렸다 이거....?
***
"홍단표국?"
"작은 문파에서 수련을 하다가 요녕으로 오게 되었는데 몸을 잠시 이 곳에 의탁중입니다."
사실 그만한 돈을 끌어오는 것만 봐도 작은 문파는 아니리라 짐작했다. 헌데 홍단표국? 지금 일이 어찌 돌아가는 것이야?
"하, 대협."
홍단표국이라면 그리 말하면 될 것을 왜 숨겼을까...특별취급을 받기 싫었나.
아무튼 지금은 현상에 집중해야 한다.
"개방의 정보원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정보를 수집하는지 면밀히 아는 것은 아니오나, 저도 그와 딱 붙어다니며 겸상한지가 꽤 되었습니다."
"황금 수레를 주머니에서 꺼내듯 가져오는 인사인데, 그만한 일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의 소속이야. 쉽게 추려낼 수 있는 것을..."
***
"크음..."
그는 헛기침을 합니다. 살짝 불편한가보군요.
"아무튼. 그러하니 그게 어째서 모용세가의 황금인가? 홍단의 황금이지."
***
"저희는 뭐, 그 황금을 그냥 받았을까요."
홍단표국의 공자가 신분을 숨기고 식객 노릇을 한다? 이것은 분명히 모용과 홍단 간에 물밑접촉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홍단이 주는 것들 중 금소협을 통하는 황금이 있었고, 그 대가로 모용이 주는 것도 있었을 터!
"대협. 저희는 이런 걸 '교환하다', 혹은 '구매하다'라고 사회적 합의를 보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뭔가를 얻어오면 소유권이 바뀐다는 것도요."
***
거지의 얼굴이 굉장히 불편하게 바뀝니다!
"제기랄. 배가 터져 죽게 생겨버렸군."
그는 탁주를 끝까지 들이키고는 사나운 얼굴로 하란을 쳐다봅니다.
"많은 것을 할 수는 없소. 원하는걸 말하시오. 과한 것은 바로 쳐내리리다."
***
예에에에에쓰!!! 등골 빨아먹힐 준비나 해라!!
.....라고 말하려 했지만 그랬다간 파토가 나겠지. 지금은 전시가 아님을 고려해서 저번보다 더 많이 부르려 했는데..
"일단은 복건 땅을 고려중이고, 혹 이주 섬에도 연이 닿으십니까?"
***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는듯 거지의 표정이 굉장히 변화무쌍해집니다!
음, 이건 어려울 것 같군요...
***
이주는 혈검문이랑 같이 알아봐야겠다...쳇.
"아, 알겠습니다. 떼를 쓰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서로가 어디까지를 생각하는질 알아야 중간의 타협점을 찾지 않겠습니까?"
"이주가 어려우시면 복건 쪽 하나로 하시죠. 요즈음 혈검문 돌아가는 꼴이 어떤지. 군사, 경제, 정치, 외교의 네 분야를 중심으로."
***
"직접 가는건 어렵네."
탁주를 거칠게 거지가 내려놓습니다.
"알려줄 수는 있겠군. 그 일로 이번 불미스러운 일은 모두 없던 일로 하는 것으로 하지."
제안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
그런데 말입니다. 일이 이렇게 풀려버리면 그 일결급의 개방도들은 다 어찌되는겨?
"좋습니다. 서로가 만족할만한 지점을 찾은 셈이군요."
김하란은 같은 사람에게 한번 데였음에도 계약서를 쓰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사실 개방에 와서 혈검문의 정보를 묻는 것 자체가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아예 문서화된 증좌까지 나오면 뭐... 호재필과 일대일 면담을 하게 되겠지.
***
거지가 입을 열기 시작합니다.
군사.
"혈검문은 복건성에서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문파지. 일대의 모든 사파는 혈검문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세. 초절정 극에 달한 문주와 그 일가, 그리고 혈검문을 대표하는 혈검수들을 필두로 한 혈검문의 무인들은 복건성은 물론이고 사파 전체에서도 명문 중의 명문으로 불리우는 힘이라고 할 수 있네만...사마외도에게 문주를 비롯한 모든 혈검수들이 굴욕적으로 패배하면서 그 위상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지."
"그렇지만 여전히 복건성 내부에서 혈검문의 이름이 가지는 힘은 절대적이라고 볼 수 있네."
경제.
"혈검문은 크게 두 가지 수입원을 두고 있네. 하나는 해상 무역이고, 두번째는 복건성 자체에서 걷어들이는 막대한 양의 보호세. 이 쯤 되면 사실 보호세가 아니라 그냥 세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서도. 혈검문은 직접 무인들을 파견해서 선을 넘으려드는 사파들을 억제하고 관리하는 동시에 여러 상가와 가게들을 직접 관리하는 편이네. 그만큼 인원도 많고. 다만 그 중에서 진짜 제대로 된 고수는 적은 편이네만...혈검수들은 혈검문에 상주하거나 가끔씩 복건 일대를 돌아다니며 주변을 관리하는 편이네. 말 그대로 복건성의 경제는 혈검문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세. 쉽게 생각해보자면 우리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와도 비견될만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구만. 제갈세가보다는 경제력이 약하지만 적어도 모용세가나 하북팽가보다는 뛰어난 편이니....부유함으로 따져본다면 사천당가 혹은 남궁세가 정도로 볼 수 있겠네."
정치.
"혈검문의 정치는 어렵지 않지. 혈검문은 문주와 장로들, 그리고 그들을 받쳐주는 혈검수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네. 충성을 바치는 휘하의 사파들과도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있지만 사실상 혈검문의 의견이 절대적인 편이네. 그렇기 때문에 사마외도가 복건을 칠 때 오직 혈검문만 무릎 꿇리고 돌아간 것이네. 다만 지금 흑천성 내부에서 혈검문의 위상은 그리 뛰어나지 않네. 사마외도의 기세가 어디 범상치 않은 수준을 넘어선 자가 아니던가? 패배해서 아래로 들어갔으니 관계가 그리 매끄럽지만은 않다고 볼 수 있겠네."
외교.
"복건성 내부는 확실히 혈검문의 영역이라지만, 근방의 팔룡방과는 그리 사이가 썩 좋은 편이 아닐세. 흑천성 내부에서도 그렇고. 그 외 다른 명문 사파들과는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네만...사마외도에게 필요 이상으로 겁을 먹은 모습 때문에 위상이 예전같지가 않지."
***
머리를 움직이면 수족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혈검문을 아는 것이 곧 복건을 아는 것이라고 하란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과거에 비해 완전히 쪼글이가 되어버린 모양입니다? 위상이 떨어지다, 굴욕적이다 등등. 같은 맥락의 단어가 수 차례 등장하는군요."
개방이 제공하는 정보, 하란이 머릿속에(스토리페이지에) 저장되었다.
"혈검문 스스로도 상당히 짜증나겠네요. 아니면 패배주의에 절어 빌빌거린다거나.."
***
"허. 당연히 그렇겠지. 사마외도에게 문주를 비롯한 혈검수들이 한꺼번에 덤볐는데도 모조리 박살이 났으니."
딱.
하고 그가 혀를 찹니다.
***
"어휴.."
그녀가 석가장 근처에서 뽈뽈거릴때 사마외도는 호북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두 지점 사이의 거리는 멀다. 그러나 직접 대면치 않고, 하나의 거대한 대전략 속에서, 그에게 맞서 행동하였다는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위인이다.
혈검문은 이를 벅벅 갈고 있을지.. 아니면 힘없이 머리를 숙이고 있을지.. 그건 아직 알 수 없겠지.
이걸로 하란 또한 복건에 씨앗을 심은 셈이다. 싹을 틔울지 땅 속에서 썩을지는 이제 그녀 하기 나름이다.
"아무튼, 이 정도면 좋습니다."
***
"다시는 안봤으면 하는구만."
거지가 그제서야 다시 탁주를 들이킵니다.
누런 빛깔의 액체가 턱과 목을 따라 흘러내립니다.
축객령입니다.
***
이걸로 일결놈들의 운명은 결정되었구나. 혁명의 배신자 엔딩이잖아.
그놈들이 달라붙어서 귀찮게 하기 전에 빨리 도망가야겠다.
"다음엔 더 기쁜 일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대협. 좋은 하루 되십시오."
꾸벅. 포권례를 올리고 천막에서 나온다. 남환진군은 어디에 있나.
***
하란은 밖으로 나옵니다!
남환진군은 혼자서 나무에 기대가지고는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
진군. 왜 그러는 거에요. 그러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지금은 저주에 묶이고 추방자 신세지만, 생사경의 경지까지 올라 선계의 장군까지 지낸 사람이잖아요. 왜 그렇게 처량해요...ㅠㅠㅠㅠㅠ
"남환진군..! 여기...!"
하란은 도둑이 작당 모의를 하듯 속살거리며 진군에게 다가갔다.
"나 좀 업어줄래요? 일단 빨리 여기서 떠야 할 기분이에요."
***
남환진군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충 하란의 다리를 붙잡고 어깨에 걸칩니다.
?
이게 업...는건가....?
아무튼 대충 뭐 업는거 비스무리하게 했군요.
어디로 갑니까?
***
"가자! 건안..복건으로!"
- 강압적 창발
- 어깨에 대충 걸쳐진 냉동참치가 된 상태로 하란과 남환진군은 마침내.
마침내!
복건으로 이동합니다.
...
경유지인 강서에 도착합니다!
다행히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 언제까지 매달려있을겐가.
***
강서...강서궁문...사돈 동네에 왔구만 낄낄.
"근데 남환진군. 업어준다는게 무슨 뜻인지 몰라요?"
"꼭 용고기 지고 가는 사냥꾼 폼이네요. 청기와 고래등같은 등에 업히질 못할 망정!"
계속 이럴 거면 내려줘! 하란은 꿈틀꿈틀거린다
***
남환진군은 하란을 내려줍니다.
- 거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시는군.
분명 자기는 업어줬다는듯한 태도!
킹받습니다!
***
하란은 흰 눈 위로 폭 떨어진다. 등에서 소복한 눈이 후두둑 쏱아졌다.
"하긴, 하계서 초가집도 처음 보신 분이. 사람을 목면 이불처럼 포근히 업어준다는걸 알기나 하실까!"
너 사람 아니잖아.
"그 때 초가집 보고 무슨 생각했는지는 아직도 말해주기 싫어요?"
***
남환진군은 묵묵부답입니다.
그에게서 대답을 듣기란 요원한 일일지도 모르겠군요!
***
말을 해도 호감도작이 안되는 기분이다....
복건에나 가자...나중에 뭘 해주든 질문권을 쓰든 해야지
***
다른 여자에게 호감을 품는다니! 여자친구가 알면 경을 칠게 분명합니다!
....이게 머선소리고...
아무튼 다시 복건으로 이동합니다.
둘은 아무런 일 없이 복건에 도착했습니다!
***
앗 아앗 조강지처가 있는 사람이었지 그래...
아무튼 복건 왔다! 와! 그녀는 토끼모자를 벗고 승무모로 바꾸어썼다. 너무 눈에 띄어보였다.
"그런데 이제 뭘...해야하지?"
용은 처음이라... 다스리란게 자세히 뭘 하란 걸까. 혈검문부터 가봐야 하나? 지금 바로?
***
남환진군은 멀뚱멀뚱 하란을 쳐다봅니다..
- ? 뭘 해야하냐니. 용궁을 먼저 세워야 하지 않겠소?
용궁을 어케 세우냐~
남환진군이 턱쪽에 달려있는 촉수로 자신의 이마를 탁! 칩니다.
- ...바다로 먼저 가시오. 가서 모습을 드러내시오.
***
"당신이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진군 네가 짱이야!
그나저나 용궁, 용궁이라! 두 음절이 묵직히 울린다. 사람 인생이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내가 용궁을. 용궁에 가는 것도 아니라 용궁을 세우다니.
흐..흐흫헤헤..
***
하란은 바다에 도착합니다!
추운 겨울 바다는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쏴아아.....철썩....쏴아아아아...처얼써억...
조개와 고운 모래들이 가득하고 바다비린내가 물씬 풍깁니다.
썩은 나무 조각배 한 척이 파도에 나머지 몸을 내맡기고 있고, 뒤에 있는 작은 어촌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뭉게뭉게 올라오고 있습니다.
푸른 바다는 고요하고 또 한편으로는 북새통처럼 시끄럽게 말을 걸어옵니다.
하란은 그 앞에서 조심히 신발을 벗습니다. 의족으로 모래사장을 밟자 푹 하고 꺼져들어갑니다.
사박사박거리는 소리와 함께 하란이 조심히. 그리고 또 천천히 바다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남환진군은 어느새 사라졌는지 뒤에도, 옆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 어어어?"
그 때 낚싯대와 여러 어구를 챙기고 저 멀리서 돌아가고 있던 어부 하나가 신발을 벗고 이 추운 겨울에 맨몸으로 바다를 향해 걸어가는 하란을 목격합니다.
"처, 처자! 위험해요! 위험하다니까! 아잇 참!"
그 어부는 놀라선 낚싯대와 어구를 내팽개칩니다.
어망에 오늘 잡은 물고기들이 퍼덕거리면서 한 많은 생애의 마지막 숨을 펄떡거리며 내쉽니다.
물방울들이 튀어오릅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방울들이 수십개, 수백개 튀어오릅니다.
짚신을 신은 어부가 어쿠쿠 하면서 모래사장에 발을 헛디뎌 넘어집니다. 입과 옷속에 모래가 들어가고 얼굴에 묻습니다.
"처자아아아! 죽으면 안돼!!!"
휘이이이잉.
따뜻한 겨울바닷바람이 불어옵니다.
하란이 쓰고 있던 승무모를 정중하게 바람이 거둬갑니다. 모자는 바람에 휘날려 바다의 저 편으로 멀리 날아가는 것 처럼 보입니다.
찰방.
바닷물에 의족이 담궈지고, 하란의 새하얀 발이 담궈집니다. 어부의 눈이 크게 뜨입니다.
신성하면서 살짝 붉은 빛을 띄는듯한 사슴을 닮은 뿔이 아름다운 자태의 여인의 머리에 나있습니다.
"어...어어...."
모래 위에 무릎을 꿇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입을 벌린 어부의 눈에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이 펼쳐집니다.
오색찬란한 상서로운 구름이 주변을 감싸고 바다를 만난 여인의 모습이 점점 변해갑니다.
온 몸에 아름다운 붉은 비늘이 돋아오르고 몸은 커지며, 영롱한 구슬을 입에 문 한 마리의 용으로.
우르릉 쾅쾅. 우르릉 콰과광.
천둥이 북소리처럼 울리고 번개가 박수처럼 수십번 내리꽂힙니다.
어부의 고개가 점점 위로, 위로 위로. 하늘로 향합니다.
거대한 한 마리의 아름다운 붉은 용이 구름과 여의주를 거느리고 바다 위에 떠올라있습니다.
용 주변에는 수많은 바다 동물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 춤을 추고 있고, 해변가에 머무르던 동물들이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으며, 숲 속에 살던 동물들이 나와 엎드립니다.
"요........"
어부는 놀란 얼굴로 용과 눈을 마주칩니다.
"용왕......"
이제부터 복건에 용과 관련된 새로운 전설, 설화, 민담, 소문이 퍼져나갑니다!
미사하란은 성공적으로 임지 복건성에 도착했습니다!
***
물에 젖어 솜같이 된 모래 위로 흰 포말이 만천한다. 시끄럽게 소리지르는 어부에게는 오직 그 소리만 들릴 것이다. 쳘썩, 쳘썩, 쏴아아...
그러나 하란은 들었다.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들의 소리. 물고기가 아가미를 뻐끔거리고, 바위에 붙어 사는 것들은 열심히 구멍으로 물을 먹고 뱉는다. 성게는 가지와 관족을 펼쳐 그 위를 기어간다. 군소는 보랏빛 가루로 축포를 쏜다.
"용왕이라."
말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보여지면 그것이 곧 말이다. 진정 용이, 용왕이 되려면 흉내만 내는 걸로는 소용없다. 용처럼 행동하고 용왕처럼 생각해야 한다. 그녀가 배워야 할 것들이다.
"모름지기 '내 것'이라고 말하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법..."
부복하는 뭍과 바다의 짐승들을 보며 그녀는 되새겼다.
***
지금부터 하란은 '용궁'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용궁을 건설하고 즉위식을 거친 이후 문파 시스템과 같이 용궁 시스템을 활용 가능하게 됩니다!
용궁은 바다에 건설할 수도, 육지에 건설하실 수도 있으며 원하는 곳을 선택해주시면 됩니다.
다만 한 번 건설된 용궁의 위치는 다시 바꿀 수 없으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용궁은 지금 하란에게 부복하고 있는 백성과 신하들이 땀을 흘려가며 만들어줄겁니다.
***
자고로 수정궁은 물 속에 있어야 하거늘! 바다에 지어용!
***
바다에 용궁이 건설됩니다!
추가적인 자금을 투입하여 용궁을 좀 더 멋있게 꾸미거나 다양한 기능을 추가시키실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용궁 근위대
용궁에 근위대가 출현.
- 금화 5
용궁주목
용궁의 한 가운데에 자리 잡은 신비롭고 상서로운 나무.
- 금화 10
금빛 기와
용궁의 영향력 증가
- 금화 1
은빛 기와
용궁의 영향력 소폭 증가
- 은화 50
불꽃
용궁에 불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꽃들이 심어진다.
- 은화 10
파도잡이
신하 중 하나를 파도잡이로 임명할 수 있다.
- 은화 30
은폐막
용궁을 원할 때 숨기거나 숨기지 않을 수 있다.
- 은화 50
***
하란은 권속들이 용궁을 짓는 곁에 서서 스승님의 찢어진 책을 뒤적거린다. 그녀가 찾는 구절은 훼손되어 사라져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곳에 있는 구절을 기억한다.
신중한 군주는 인색하다는 오명을 신경쓰지 않는다. 인색한 덕분에 재정이 충분하다면 백성에게 필요 이상의 부담을 지우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인색한 군주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관후하다는 평을 듣게 될 것이다.
"쓸데없는 곳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돈을 써야지."
스승님이라면 그렇게 말씀하셨을 터이다. 인색하다기엔 들어가는 돈이 꽤 크지만...
디자인 컨셉은 기본적인 재료들로 정갈하고 엄숙하게..
그리고 파도잡이용!
***
용궁이 건설됩니다!
용궁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
개천궁 開天宮!
***
【 개천궁開天宮 】
복건성 인근의 바다에 지어진 용궁.
엄숙한 분위기에 절제된듯한 외관이 특징적이다.
막 새로 건설된 용궁으로 아직 인근의 해역을 제패하지 못한 상태.
용궁옥좌의 주인은 적룡 미사하란이다.
- 파도잡이 : 파도잡이를 임명할 수 있다.
- 즉위식 : 즉위식 이후 나머지가 개방됩니다.
본래 파도라는 것은 용왕의 권능으로 바다를 잔잔하게 만들수도, 흉폭하게 만들 수도 있는 이유는 파도를 다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도를 이용해 물고기떼를 몰아줄 수도 있고, 어마어마한 높이의 파도를 이용해 해안가를 쓸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용왕의 분노를 대변하는 동시에 바다를 관리하는 역할입니다.
파도잡이는 용왕을 대신하여 바다를 다스리고 외적에 대한 침입에 맞서 싸우는 재상과 수도방위사령관의 역할을 겸임합니다.
용왕 부재시에 지정된 섭정이나 다른 대신들이 없다면 자동으로 파도잡이가 용왕을 대리합니다.
***
하란은 건설된 용궁을 두루 둘러보았다. 붉은 두 눈이 검은 기와 위에서 춤춘다.
"괜찮군."
이만하면 흠 잡을 구석이 없어보인다. 요란하지도 않고.
***
교룡검법을 이용해 포효를 널리 퍼뜨리세요!
의지를 담아!
주인없이 흘러가던 바다에 다시금 주인이 되돌아왔노라고 말입니다!
다만 현재 바다는 주인이 없은지 오래된 상황입니다. 용왕의 권위를 인정치 않는 자들도, 인정은 하되 신경쓰지 않는 자들도, 진정으로 인정하는 자들도 있겠지요.
바다의 모든 세력가들이 용왕이라는 직함 하나만 듣고 하란에게 귀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즉위식이 초라하면 초라할수록 하란의 바닷속 해피라이프는 험난해질겁니다.
원하신다면 초라하나마 세력을 갖추고 혈검문에 대항할 시간을 벌 수 있도록 당장 즉위식을 하실 수도, 인근 바다의 모든 세력가들을 제압하고 일통하여 진정한 바다의 군주로써 즉위식을 치루실 수도 있습니다.
***
홍홍 그러면 토호깨기 하고 멋지게 즉위(데뷔)하고싶어용
***
즉위식은 뒤로 조금 밀려납니다.
참고로 하란은 여전히 용의 모습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인간으로 다시 모습을 변화시키자 그제서야 남환진군이 나타납니다.
***
"남환진군! 어디 갔다왔어요? 아까 동물들 뛰어나오는 거 봤어요?"
걔네들이 궁궐도 지어줬어요. 그녀는 속도 모르고 짐짓 천진하게 진군에게 말한다.
..아니 이뇬 일부러 이러는걸지도 몰라!
***
남환진군의 감정을 좀 더 상세히 살펴봅니다....
그리움의 냄새가 진합니다.
- 하지 않았으면 하오만.
그리고 간파당합니다! 남환진군은 자신의 감정을 조금 더 숨기는 쪽을 택했습니다.
***
"아, 미안해요.."
힉. 그녀는 순순히 향낭을 옷 속으로 집어넣었다. 생각해보면 그럴만도 하다. 하루 아침에 연인과 기약없는 생이별을 당한 셈이니까. 그 연인이 자기 스승님이라는건 조금 신경쓰이지만...
"크흠, 아무튼 내가 하려던 말은."
"여기 용궁. 그러니까 이 개천궁에는 지금 앉을 자리가 딱 두 개 있어요!"
하란은 손가락 두 개를 펴보였다.
"마침 여기에 딱 둘이 있으니 하나씩 자리를 가지면 되겠지요? 남환진군이 파도잡이의 자리에 앉아주면 내 마음이 행복해질텐데.."
***
- 파도잡이?
남환진군은 뭔가 의외라는듯 턱 쪽에 달린 촉수로 물음표 모양을 만듭니다.
아닛! 중세 중국에 물음표 문장 부호라니!
- ...진심이시오?
그리고는 오히려 하란에게 되묻습니다.
남환진군 패을부에게 파도잡이의 직책을 수여하시겠습니까?
***
"내게 신종하겠다고 말했잖아요. 나는 면류관을 써야 하는데~ 파도까지 붙잡고 있으면 쓸려다니다 목이 부러지지 않을까요?"
"부탁할 사람이 남환진군밖에 없기도 하고..."
궁은 넓고 바다는 더 광활한데 안에 들어온 자는 둘 뿐이라. 어어딜 감히 나 혼자 일하게 하려고!
"그런데 제 진심은 왜 궁금해요? 뭐라고 대답하던 파도잡이 직책은 남환진군에게 줄 거니까. 그냥 말해보세요."
***
- ....받아들이겠소.
지금 이 시간부터 개천궁의 파도잡이는 남환진군 패울부입니다!
패울부의 호감도가 1단계 상승합니다.
현재 패울부의 호감도는 4입니다.
***
"으음, 좋아요!"
하란은 팔을 들어 남환진군의 어깨치를 툭툭 쳤다. 그의 키가 큰 까닭에 팔을 높게 들어야 했다. 조금은 모양이 빠지는 느낌이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남환진군이 말해주지 않아도 뭘 해야 할지 알 것 같아요. 저는 즉위식 전에 이 궁을 신하와 병사들로 가득 채우고 싶거든요. 왕실 재정도."
이제부터는 하란도 배웠던 내용이다.
"그건 아마도...이 바다의 전통적인 유지들이 가지고 있겠죠?"
***
패울부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 인간 사회나 바다나 다를게 없소. 인간 사회에 있어 정통한 이 몸이 보증하지.
신뢰도는 0에 수렴합니다...
- 먼저 윽박지르거나 공격하는 것 보다는 복속될 것인지 아닌지를 먼저 물어본 뒤에 정벌하시는 것이 좋소...
오. 이건 꽤...
***
"확실히. 저놈들에게도 기회는 주어야겠죠."
유지들 중에서도 쓸만한 놈들이 분명히 있을것이다. 체로 걸러내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우선 바다 한바퀴 슥 돌면서 우리 왔다- 하고 바다에 누가누가 사는지 얼굴도장부터 찍으면 될 것 같거든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얘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남환진군, 혹시 둔갑 풀면 무슨 모습이에요? 일단 해양생물 계통..이긴 하죠?"
***
- ?
패울부는 멈칫합니다.
- 음...뭐 그렇기야 하오만...여기서 둔갑을 풀기에는 조금 비좁소이다.
개천궁의 크기는 엄청나게 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란이 용으로 변신해서 누워서 쿨쿨 잘 수 있을 정도의 크기는 됩니다만....
***
크라켄..크툴루...그는 르뤼에에 잠들어....
"잘 됐네! 그럼 둔갑 풀고 같이 바다 순방 한번 하자구요."
"언젠가 남환진군의 진짜 모습도 보고싶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둔갑 풀고 나랑 순방(무력시위) 하러가자!
***
- ......
패울부는 멈칫거립니다.
- 알겠소.
그리고는 개천궁 밖을 나섭니다.
쿠르르르릉....
바닷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하고 요동칩니다. 커다란 소용돌이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바다생물들이 주변에서 도망칩니다!
- 둔갑을 푸는데 조금 요란할 수 있소이다.
콰드드드드득!
그 말과 동시에 갑작스레 패울부의 얼굴이 짓이겨지듯 움직입니다! 생각보다 좀 무서운걸요?
우드득.
우드드드득.
꽈지직!
쾅!
폭발음과 함께 패울부의 모습이 팽창합니다. 더 크게. 더욱 크게. 더욱더!
한참이나 크기를 키워가던 패울부의 팽창이 멈춘 것은...
인근에 완전한 어둠을 몰고올 정도로, 바닷속을 조금이나마 비추는 태양빛을 먹어치울 정도로 거대한.
작은 섬과 비슷한 크기의 문어입니다.
문득 하란의 머릿속에 패울부의 말이 스쳐지나갑니다.
- 둔갑술은 고급 선술이오...
지금 향유고래는 커녕 웬 작은 섬 하나 크기인 패울부를 보아하니 왜 둔갑술이 고급 선술인지 알 것 같습니다.
***
문어 영물이라곤 하지만, 사실 문어라는게 인간에게도 친숙한 동물 아닌가. 시장에도 밥상에도 종종 오르는 그 문어. 말랑말랑하고 꼬물꼬물거리는 녀석들 말이다.
해봐야 그저 하란처럼 오색구름 비슷한..신령한 기운을 덮거나 그런 수준이리라 생각했건만.
"....와..."
가히 파괴적인 용모로다. 이런 존재가 적이었다면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부터 들 것이다.
"멋지다. 기싸움에서 절대 밀릴 일은 없겠어요. 와..진짜..."
***
패울부의 다리인지 촉수인지 구분이 안가는 무언가가 움찔움찔거립니다.
머쓱한가봅니다.
...일단 이 모습을 드러낸 것 자체만으로도 복속을 청해오는 무리가 있을게 분명합니다.
아닌말로, 가서 그냥 누워서 구르기만 해도 재앙입니다.
***
아마 지금 하란이도 용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숨을 쉬어야 하잖아?
"지금까지 제가 본 생물 중에 남환진군이 가장 크다니까요!"
사람이 크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세상에 익숙해지고, 능숙해지며 사는 재미가 줄어든다. 새로운 자극과 강한 자극이 아니면 의젓하게 넘겨버리는 걸 우리는 어른스럽다고 부른다.
그리고 28살 아가 하룡이는 섬만한 문어를 처음 본다. 새로운 자극을 받아 애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진군 막..어? 다리 한번만 만져봐도 돼요? 다리 하나하나가 태산 줄기 같아요!"
***
하란이 용으로 변한 상태로 진행이 처리됩니다!
- 크흠...
패울부는 언짢은듯 촉수를 살짝 뒤집습니다.
-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는거로 기억하오만.
***
"아 참...그랬지."
임팩트가 너무 강해서 잊고 있었다. 호족깨기 하러 가야지... 하란이는 손에 현혹령을 들고 있었다.
진군쯤 되는 이가 방울소리에 얻어맞을 리 없다. 물 속에서도 소리가 날지 알 수 없긴 하지만.
바다를 돌며 진군의 옆에서 방울을 딸랑거리면 위엄과 경외에 숟가락을 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크흠, 가자구요. 누가 있는지 보러."
***
패울부가 꿀렁거리면서 살짝 움직입니다!
하란도 살짝 움직입니다!
거대한 바다에서도 섬과 여의봉같이 생긴 것들이 움직이니 주변의 작은 호족들은 자연스레 복속을 청해올겁니다!
그리고 문제는, 큰 것들이겠군요.
저 멀리에 커다란 범고래들이 보입니다.
***
물돼지들이다. 바다의 폭군이자 늑대같은 놈들. 산만한 덩치에 맞지 않게 조직적이고 머리가 좋다고. 하란이 주워들은 것은 그정도였다.
"이상하게 사람은 공격하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하지만 그녀가 사람이었을 때나 통하던 이야기다. 하란은 기선제압을 위해 현혹령을 치켜들었다가, 휙 내리친다.
***
내공을 소모해서 체크해주세요!
잔여 내공은 93년입니다.
현혹령을 흔들어봅니다!
몇몇 어린 범고래들이 꿈틀거립니다!
삐이이이이이이 - !
인간일 적에는 듣지 못했던 고주파의 소음이 주변에 울려퍼지자 꿈틀거리던 범고래들이 정신을 차립니다!
하란의 선제 공격으로 전투 상황이 벌어집니다!
- 어떻게 하면 되겠소?
범고래들은 뒤에 있는 거대한 섬인지 문어인지 하는 패울부 때문에 공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신하될 놈들을 너무 두들겨 패서야 좋은 뒷말이 나올 리 없죠."
손에 방울을 쥐고 있으니 조금 불편하다. 꼬리를 감아서 거기다가 방울 손잡이를 끼워놓았다. 이러면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나겠지.
그녀는 본능적으로 보수적인 방법을 꺼내든다. 용의 몸도, 물 속이라는 환경도, 범고래 적과 거대문어 아군도... 모든 것이 낮설다. 이 상태로는 교룡검법도 봉인이고.
"어떻게 나오나 봅시다."
그러니 방울을 계속 흔들며 놈들의 신경을 긁는 것으로 선수를 놓는다.
***
방울을 흔들어보지만 더 이상의 효용은 없는 것 같습니다.
범고래들은 공격을 해보려 하지만 위압적인 패울부의 기세에 짓눌려 달려들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삐이이이이 - !
범고래 하나가 다시금 예의 그 고음을 내고는 홀로 앞에 나섭니다.
- 이 바다에 지배자가 없은지 어언 몇 천년이 지났소. 어찌하여 용이 바다로 온 것이오? 이 곳은 우리 미물들의 영역이오.
자기들이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걸 파악했나봅니다.
***
광해방검진이 바닷속에서도 통하나 고민하고 있을 무렵. 범고래 하나가 협상을 시도해온다. 역시 패울부의 등빨에 눌린 게 분명하다. 하란은 진군 앞으로 반 발자국 정도 나간다.
"상제께서 내개 복건을 봉분하여 주시오며 말씀하시기를, 세상이 혼란스러우니 기후와 질서를 바로잡고 너희같은 미물들을 보살피라 하시었다."
"그대들의 기세를 보니 나 혼자였다면 망설임없이 이를 드러낼 모양이었구나. 저항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그게 서로에게 이로운 길이야!"
***
범고래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 상제? 이 땅에 지배자가 없은지 몇 천년이 지났소! 몇 천년! 그간 있었던 혼란에 대체 무슨 힘을 보태주었다고 감히 분봉을 하네마네 하는 것이오!!!
쌓인게 많은 것 같군요!
***
아 몰라. 그녀의 앞에서 몇천년 궁시렁거려도 소용없는 일이다. 하란의 영혼 한 조각도 구천에 없던 시절을 이야기해봐야. 그리고 저 범고래들도 몇천년을 직접 산 건 아닐건데.
왜 그녀에게 난리를 치는 것이야. 사실 그 말은 다 핑계고 범 없는 곳의 여우로서 누리는 권세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 그게 바로 본질이다. 하란은 안다.
"남환진군 저것들이 뭐라 꿍얼대는 거죠? 몇천년에다 혼란이라니?"
하란은 뒤돌아 작게 소곤댄다. 그래도 전후관계는 알아야 하는 법. 이럴때는 뭐다? 진군위키!
***
패울부는 잠시 멈칫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냅니다.
- 몇 천년간 용왕은 커녕 용도 없이 버려진 바다인데다가, 영험한 것들은 때마다 인간들이 잡아죽여 약을 만들고 보신하는데 사용해오지 않았겠소.
그러더니 살짝 눈치를 봅니다.
- 최초에는 천마가. 그 이후에는 인간의 고수들이 이 바다의 재물과 생명을 앗아갔고 상제께서는 이들을 돌보지 못하셨소.
***
"흐응..."
여기서 왜 그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상제께선 이런저런 이유로 너희를 돌보지 못했다고 구차하게 변명하기 싫었다.
"네놈들의 한이 깊어보이니 몇 가지 물어나 보자."
"그 몇천년 전 다스림을 받을 때는 평화로웠나? 네놈들만 남은 몇천년간은 속절없이 뜯겨먹히기만 했고?"
***
- 하! 그런 과거의 일 따위를 논하기보다 현재를 논하는 것이 옳지 않겠소!
범고래들은 바로 대답합니다.
- 지금껏 우리끼리 잘 살아왔는데 갑작스레 상전이라니, 우리는 우리끼리 알아서 잘 살아갈 것이오. 돌아가시오!
그렇답니다.
***
??????
"그래, 아까는 몇천년 운운하다가 할 말이 없니?"
이게...미물?
"잘 살기는 뭘 잘 사느냐 아깐 다스림이 없어서 힘들었다 우는 소리를 하더니 이놈들이!"
"천마까지는 나도 뭐라 해 줄 말이 없다. 그러나 인간들에게 뜯어먹힌 건 왜 그런지 아느냐?! 온 바다가 하나로 뭉치지 못했기 때문이야!"
이른바, 창발의 이치이다.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을 이루며 무지한 것이 모여 천하를 굽어살피는 눈이 되는 것.
"물방울이 모여 바다와 해일이 되고, 눈송이가 모여 폭풍으로 화한다. 한낱 개미 버러지들도 힘을 모아 땅굴을 파고 전쟁을 하거늘!"
"인간이라고 다르랴? 수천 수만의 인간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거대한 체體를 이루는 것을 보지 못하였느냐!"
***
지능이 딸렸기 때문에 당한 것일까요?
하란이 그리 말하자 오히려 범고래들은 굉장히 크게 성을 냅니다!
"감히 우리를 모욕하다니!"
이게...미물....
***
"지금 뭍의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아니. 곧 혈검문과 팔룡방이 알아차릴 것이다. 해협에 용왕이 서리라는 것을 말이다."
모욕..? 너네가 용왕의 권위를 무시하고 이빨을 보이는 것은 모욕이 아니고..?
"그들의 손이 곧 이곳까지 미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결코 좌시할 생각이 없으니.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이런 상황에서 네놈들을 느긋히 설득할 생각은 없어. 내가 해 줄것은 두 가지 뿐이야.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지, 아니면 머리를 쳐내는 것!"
아주 보복할 수 없도록 씨를 말리는 것....
"긴말 않겠다. 지금 여기서 죽을지, 나와 함께 인간에게 반격할지. 정하라."
***
범고래들은 하란에게 대항하기를 선택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잔인함이 반드시 잔인함은 아니다. 부패하고 난잡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선 한 사람에게 무제한적인 권력이 주어져야 한다.
잔인함으로 질서를 바로잡고 통솔하여 평화를 가져온다면 그것이 자비요, 잔인하다는 평을 듣기 무서워 칼을 뽑지 않고 무질서를 방조하며 더 많은 이들을 고통 속에 내버려두는 것이 잔인함이야!
"남환진군. 저기 가장 앞에 나와서 말하던 놈... 칠 수 있겠어요?"
설득이 실패했으니 차선은 저들의 머리를 깔끔히 자르고, 주인 잃은 몸을 취하는 것이라.
***
패울부가 촉수를 휘두릅니다!
꽈앙!
앞에 나와 말하던 범고래 한 마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 .....
범고래들은 놀라서 몸을 움츠립니다.
***
"내가 너희들의 본심을 안다. 범 없는 곳에서 여우 스승 노릇을 계속 하겠다는 거겠지."
자연스러운 일이다. 손에 쥔 권력을 누가 놓으려 하랴. 그러니 이에는 교묘한 계책이나 강경한 힘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어찌 범이 돌아왔는데 계속 스승 노릇을 하려는 것이냐. 지금이라도 충성을 맹세한다면, 이 불미스러운 일은 저놈의 독단이라 생각하겠다."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금수의 세계에서 이는 더 직관적이다.
"이것은 최후통첩이다. 나의 수족이 되어라. 나는 네놈들이 그러했듯, 인간들에게 무기력히 당하지는 않으리라."
"모든 힘은 한 곳으로 모여야만 한다."
***
두려움에 굴복한 범고래들이 그대로 복속합니다!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지도자가 쓸려나가는걸 직접 본 그들은 당분간 절대로 고개를 들 생각조차 못할겁니다!
***
"바른 선택을 해 주어 고맙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은 묻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완전히 녹여먹으려면 아직 멀었다. 하지만 당분간은 괜찮겠지...
"뒤를 따라오거라."
패울부와 그녀를 보고도 저항하길 택하는 놈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이리 무릎을 꿇었으니 나머지는 수월할 것 같다.
***
범고래들이 복속하자 대부분의 바다생물들은 복속하는 것 같습니다!
딱 한 녀석들을 빼고 말입니다!
바로!
옛 용왕을 따랐다던 녀석들입니다.
- 타배경駝背鯨
- "옛 용왕을 따랐다는 자들? 지조가 대쪽같구만 그래."
이런 경우라면 범고래처럼 힘으로 때려부수기가 좀...
"그들은 뭐 하던 녀석들이냐?"
***
- 주로 약하고 늙은 이들입니다.
새롭게 하란의 휘하에 들어선 신하 중 하나가 그리 말합니다.
- 작고, 연약한 자들을 이끌고 예전에 재상을 지냈다던 혹등고래 한 녀석이 보호하고 있습지요.
***
"...아"
혹등고래는 반드시 산 채로 잡아야(?)한다. 이전 조정의 실무자라니! 권력을 떠받치는 가장 강력한 유형의 열쇠 아닌가.
"그 자는 내가 직접 만나봐야겠어."
***
하란과 그 휘하의 무리들은 며칠 정도를 움직입니다!
깊은 해협을 거쳐 들어가자 작은 청어들이 재빠르게 도망치는게 보입니다.
- 거의 도착했습니다.
***
바다는 넓구나. 웬만한 십층누각보다 긴 몸뚱이를 가지고서도 며칠을 움직여야 했다. 계속 바다에 있으니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것만 같았다.
"그 혹등고래는 뭔 놈이냐? 그러니까, 평판 말이다."
약자를 보살피고 두 임금을 섬기지 않으며 언제나 올곧고 인자한 유학자스러운 자가 아닐지. 그런 느낌이 났다.
***
"약자를 보호하니 그 인품은 어질다 알려져 있으나..."
왜인지 신하의 말끝이 흐려집니다.
"원리원칙을 중시하고 대쪽같은 성격에 한 번 화가 나면 물불 가리지 않는다 들었사옵니다."
절로 이마를 탁 치게 됩니다.
***
"무골호인 성인군자는 아니구나.."
화나서 물불 안가리는 고래. 인간의 인식이 남은 그녀에겐 조금 무서운 말이었다. 화나서 배를 들이받고 막 그러는 거지?
진군이 있지만, 그를 함부로 화나게 했다가는 설득이고 뭐고 다 수포가 될테니, 조심해야 하리라.
***
곧, 그 혹등고래의 근거지에 도달합니다!
매운탕 재료들로 널리 알려진 친구들이 불안에 잠겨 저마다 바위나 해초 뒤에 숨어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
하란주는 방금 꺼라위키를 보고왔다!
혹등고래:약 15m
하룡이(롯데타워):555m
그렇게 겁낼 필요는 없을지도..? 혹등고래가 180 되는 인간이라면 하란이는 60미터짜리 초거대거인인데.
하란은 무리에서 얼마간 앞서나온다. 경鯨 공은 어디에 있는가!
***
크툴루마냥 거대한 것과 롯데타워마냥 거대한 것 둘, 그리고 짜잘한 것들이 한데 몰려오자 주변의 모든 해양생물들은 공포에 질려 감히 앞으로 나오지 못합니다.
우우우우웅 - !!
저 멀리서 마치 먼 미래의 뱃고동 소리처럼 들려오는, 한 마리의 거대한 혹등고래가 내뿜는 울음소리에 긴장감이 감돕니다.
촤아아악...
물 속에서도 확연히 들릴만큼 강렬한 물살이 주변을 휩쓸고 하란보다는 살짝 작은 크기의, 향유고래보 몇 마리보다도 더욱 큰 거대한 한 마리의 늙고 주름이 많은 혹등고래 한 마리가 위풍당당히 나타납니다. 그 뒤로 해양생물들이 우르르 몰려가 숨습니다.
생김새는 재상이었다기보다는 무관에 가까운 모양새입니다.
- 동남해의 새로운 주인께서 예까지는 무슨 일로 행차하셨나이까.
그 말에 패울부는 뭔가 살짝 아니꼬운듯 촉수를 한 번 꿈틀거립니다. 혹등고래는 의연하지만 그 뒤에 있던 해양생물들이 다시 한 번 몸을 부르르 떱니다.
***
범고래들의 말에 따르면 이 곳은 수천년간 방치된 곳. 눈앞의 고래는 전대 용왕을 모셨던 자. 수천년 전에 있었던 용왕....
'이 고래는 수천년이나 묵은 영물이란건가.'
진군이 촉수를 꿈틀대자 고래 뒤에 숨은 작은 것들이 몸을 떤다. 동남해의 새로운 주인이란 말에 숨은 뼈라도 있는거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신이 전대 용왕을 모셨다고 들어서."
"멋진 제안을 하지. 너도 개천궁으로 오지 않겠나?"
***
- 무릇 전조의 늙은 신하가 새 주군을 섬기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로 아뢰옵니다.
완벽한 거절의 뜻이 담긴 발언입니다!
패울부가 다시 한 번 심기가 불편한지 촉수를 꿈틀거립니다.
혹등고래는 지느러미 하나 꿈틀거리지 않고 꼿꼿합니다.
- 저와 제가 보호하는 이들을 치려 하거든 마음대로 하시옵소서. 패도를 걸으시는 분이 아니십니까?
패울부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는지 촉수의 움직임이 거칠어집니다!
***
"남환진군. 잠시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에 진군은 크게 심기가 불편해진다. 그녀가 모르는 영물간의 신호라도 있는 건지 원....
"제갈공명도 소열제와 회황제 두 군주를 모시었는데 어째서? 이해할 수 없군."
"또한, 나는 당신들을 치고자 하지 않아. 전대의 실무자라니, 이 얼마나 값진 이들이냐."
***
패울부는 멋쩍은지 촉수를 천천히 늘어뜨립니다.
- 패도와 유자는 같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인줄 아뢰옵나이다.
혹등고래가 그리 말합니다.
주변에서 저 늙은이가 드디어 미쳤다, 노망이 났다. 등의 이야기가 숙덕숙덕 들려옵니다.
***
"어찌하여 패도와 유자가 함께 있을 수 없는가? 패도의 순리가 지나가면 그 때 유자의 가르침이 내리는 것일진저..."
세습받지 않은, 신생국의 군주는 극히 불안정하다. 하여 그는 권력과 국체를 보전하기 위해 잔인하고 냉혹한 결정에 더더욱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
"나는 패도를 숭배하는 자가 아니야. 작금의 상황에서 패도가 필요했기에 사용했을 뿐이다."
"백성을 단결시키고 충성을 지키게 하려면, 어찌 잔인하다는 악평을 마다할까. 얕은 자애심으로 혼란 상태를 초래하여 백성들이 죽거나 약탈당하게 하는 군주에 비하면 훨씬 낫지."
혼란은 힘 때문에 일어나는 게 아냐. 힘이 없고 그 서열이 불분명할때 혼란이 생기는 것이지. 나는 반드시 당신들이 필요할 거라고 믿어. 그녀는 말한다.
"내게 유자의 가르침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 것이야."
***
혹등고래의 눈썹이 꿈틀거립니다.
- 그 말의 뜻은 내키지 않으시다면 유자들의 뜻이 존중되지 않는다는 뜻 아니겠사옵니까. 유자는 덕이자 통치 이념이오나 그것을 때에 따라 쓰고 쓰지 않을 수 있다고 하시니 어찌 저같은 늙은 고래가 위대한 용의 궁에 들어갈 수 있겠나이까.
이런! 하란의 발언이 혹등고래에게는 먹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입씨름의 시간입니다...
***
"쟁기질도 않고 씨를 뿌리고 싶니? 유가 또한 제자백가 중 하나일 뿐인데 자기 말만 들어달라고 떼를 쓰는 모습이란..."
너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자가 누군지 알아?
"책을 읽지 않는 자? 모든 책을 읽은 자? 아니지. 단 한 권의 책만을 읽는 자가 가장 한심하다. 자기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아예 안 하니까!"
우리는 그걸 아집이라고 부른다네. 향낭으로 감정을 보며 도발해볼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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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이 살아온 세월보다 몇 곱절은 살아온 혹등고래에게 향낭은 아쉽게도 큰 효과를 보이지 못합니다...
향낭의 성능은 충분하나, 혹등고래의 영성은 기물에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올곧습니다.
그만큼, 그의 정신이 뛰어나다는 뜻이며 훌륭한 인재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 인간의 시황제도 그리 말하였으나 결국 중원을 일통한 것은 유학을 기치로 내건 한고조이지요. 인간들도 그러할진데 어찌 바다의 생물들이라고 다르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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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한 고조 유방... 그 또한 싫은 소리도,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견해도 귀담아듣는 위인이었지...."
그녀 앞에 있는 누구랑은 다르게 말이다.
"유가에 대한 네 생각을 고치는 데는 관심없다. 너도 나처럼 믿는 것이 있음을 안다."
"개천궁으로 오라. 당신이 믿는대로 내게 지껄여라. 내가 믿는대로만 했다가 걸주 뺨치는 미치광이가 되기 전에."
"그게 싫으면 홀로 독야청청하며 내가 주지육림을 벌이는 걸 구경이나 하시던지..."
하란은 비열하게 키득거렸다. 폭군에게 직언하는 것도 유가의 미덕 아니냐? 도망치지 마라!
"바다 생물의 심장에는 구멍이 일곱 개라며?"
너 안 오면 나 폭군 해버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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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하시다가는 하늘께서 벌을 내리실겝니다.
혹등고래는 그리 말합니다.
패울부가 그제서야 더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고함을 내지릅니다.
- 교활한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구나! 이 간악한 고래야! 네 일신의 안위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용왕의 권위를 저울질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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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잉 쯔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이거늘. 그럴 거면 쓸 일도 없을 공부는 왜 했어? 다 하늘께서 하게 냅두지 그래."
그런데 말야, 사실 하늘은 무심하시거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지 못했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 때 나름 분을 참고 있었던 진군은 결국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 진군. 화나는 건 알겠는데 지금.
"나랑 고래랑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그쯤 하시죠. 그녀는 진군을 제지하며 다시 말했다.
"그래 뭐 천벌....기다려 보시던지? 천벌은 즉효성이 아니라서. 그게 내릴 때쯤엔 다 죽고 없을 거야."
천벌 운운이 구차하구나 진인사대천명 모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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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울부는 굉장히 언짢지만 하란이 그리 말하자 입을 다뭅니다.
- 늙은 몸이나 천년을 넘게 살아왔으니, 그 동안 온갖 혼란을 보았습니다. 천벌이라 함은 바로 오지 않으나 확실하게 내려오는 법이지요.
이대로 가다간 영입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상대는 유학자입니다.
본래 유학이라 함은 동양의 통치 이념이자 철학으로써 실리를 추구하나 그 근본은 덕치를 이름입니다.
패도로 대표되는 힘, 무력, 법이 아닌 인과 덕으로써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리라는 것을 말합니다.
하란이 저 자를 영입하고자 한다면, 자신은 패도밖에 모르는 이나 유학의 이념에 관심이 있다. 그러나 패도를 버리기는 혼자서는 어려울듯 하다.
내게 스승이 필요하다. 유학을 알려줄 학식이 깊고 올곧고 목숨의 위협과 패도의 공포에도 떨지 않고 의연하게 말할 이가 필요하다.
라는 식으로 말을 잘 풀어나가면 혹등고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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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는 답이 안 나오는군. 조금 더 '진솔'한 이야기를 서로 나눠볼까.
"자리를 옮기도록 할까. 둘이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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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혹등고래는 맑은 눈으로 하란을 지그시 쳐다봅니다.
몇 초간 정적이 주변에 흐르더니 이내 혹등고래가 먼저 지느러미를 움직입니다.
-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지체높으신 분을 바깥에 이리 오래 세워두는 것 또한 예가 아니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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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다녀올테니 기다려주세요."
그녀는 섬만한 남환진군도, 바다를 빼곡히 메울듯한 미물들의 무리도 그대로 두고 홀로 나섰다.
앞서 있었던 '홀로 다녀오겠다' 들과 이번의 차이점은, 내가 우위에 있다는 것인가. 상대가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존재도 아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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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들어갑니다!
낡은 해초들과 바다의 조약돌들로 장식해놓은 작은 동굴입니다. 혹등고래는 몸을 한 번 크게 돌리더니 이내 땅딸막하고 꼬장꼬장하게 생긴 인간 노인의 모습으로 변한 채 동굴로 들어갑니다.
하란도 마찬가지로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뽀글뽀글...
바닷물이 점점 사라지고 안으로 들어가자 인간세상과 크게 다를바 없는 작은 방이 하나 나타납니다. 단촐한 책상에, 낡은 의자. 그리고 따뜻한 차가 두 잔 올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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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자기하군. 아니 정갈하다고 해야 하나. 눈이 편해지는 장소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명절에 가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 같은 느낌. 그녀는 경험이 없지만 말이다. 어느새 눈 앞에는 키 작은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진짜 할아버지 집이었네.'
그녀 또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앉기 전에 그의 뒤통수에 대고 뭐라고 하였다.
"미안하다 내가... 내 생각과는 다르게 이상한 말을 하게 되는구나. 살아온 세상이 세상이라서 그런 거겠지. 아니면 용왕이라는 지위가 나를 취하게 하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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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도를 논하시던 분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군요. 앉으시지요.
혹등고래는 조용히 자리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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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잠자코 자리에 앉았다. 찻잔에서 김이 오른다. 무슨 차일까? 그녀는 살포시 집어 입술에 대었다.
"........"
습관적으로 또! 혀끝으로 기미를 보고 있었다. 빌어먹을 습관..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알아채고 즉시 교정한다. 한 모금을 목으로 넘긴다.
우선 지금까지 했던 말을 스스로 취소한 상태이다. 그를 설득하는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으니 계속 가지고 갈 이유가 없다. 호경(虎鯨, 범고래)들은 우두머리를 쳐죽여서까지 데려왔는데 이 자는.... 아니다, 천년묵은 전조의 신하. 이렇게 해서라도 데려오는 게 맞아.
"사실 나도 잘 알고 있네. 패도란 고통스러운 길이고, 이대로 가면 마지막엔 파멸만이 오리라는 것을. 절절히 느끼고 있으니. 이제 지긋지긋하다. 그만하고 싶어. 이게 내 진심이다."
마음에 손을 얹고. 이건 거짓말에 가까운 말.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은 고통스러우나 멈출 수는 없는 것. 멈추는 그 순간 파멸이 찾아오는 것. 그나마 고통스럽고 지긋지긋하다는게 진실 한 숟가락이었다.
그녀가 패도를 쥔 것이 아니다. 패도가 그녀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었다. 유학의 기치를 받아들여 한 손에는 왕도, 다른 손에 패도를 든 왕패병용의 형세를 취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패도를 온전히 버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조차 없었다.
어쩌면 인간 태생이라는 한계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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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만하고 싶으시다면 그만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혹등고래는 조용히 차를 음미하며 말합니다.
천 년을 훌쩍 넘게 살아온 혹등고래의 말은 의외로 싱거운 것 같군요.
- 군왕께서는 패도가 유학보다 낫다고 여기고 계시는 것 같으니 당연히 그만두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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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도를 멈춘 이들은 모두 죽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이들 중에서는, 전부."
"나는.... 그들처럼 죽기 싫었다."
부모님은 애시당초 패도니 유학이니 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논외. 스승님은 그리도 세상은 냉혹하다고 말해놓고서, 마지막 순간에 사람을 믿고 부탁하러 갔다가 맞아죽었다. 중원을 떠돌며 본 많은 사람들도 그러했다. 아주 가끔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을 빼면 말이다.
"걷던 길만 계속 걸으려는 굴레를 벗는게 어찌 쉽겠다. 마치 아편굴에 들어가는 자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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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어내는 것은 단번에 하셔야할 일이니 지금 이처럼 후회한다고 하여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혹등고래는 냉정하게 딱 잘라 말합니다.
- 패도를 버리시고 유학을 공부하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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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악물었다. 꾸욱... 이놈이 지금 내 삶을 부정하는 것인가?
"....배우겠다."
빌어먹을. 일단 하겠다고 하고 어떻게 행동할지 보자.
"다만 하루아침에 머릿속이 천지개벽하는 것은 어려우니 헤아려 주겠나."
"외워야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해야 납득할 수 있고, 납득해야 비로소 행할 수 있는 게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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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학이란 본디, 사람을 보는 학문입니다.
혹등고래는 찻잔을 내려놓습니다.
- 패도는 인사와 세상사에 있어서 자신의 이득과 효율을 추구하지요. 유학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진 마음으로 사람들을 보살펴야만 합니다. 군왕께서는 지금껏 패도를 걸어오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허나 생각해보십시오. 패도로 이루어낸 길은 결국 피로 점철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혹등고래의 말이 이어집니다.
- 사람들은 영악하기도 하여 거지들이 선량하다 할 수 없고, 가진 자가 재물을 나누어주니 부자가 악하다 할 수 없는 법입니다. 유학은 악한 자를 교화하고, 주군에게 충성을 바치며, 부모에게 효를 행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군왕께서는 왜 유학이 만들어졌는지 아시나이까.
- 힘으로는 공포를 불러올 수 있지요. 허나 언젠가 그 힘이 약해지는 순간 공포에 짓눌려 있던 자들은 굴레를 벗어던지고 분노로 군왕을 대할 것입니다. 왜 유학이 중원과 인간 세상의 기치가 되었겠습니까.
- 붉은 꽃이 일년 내내 피어있을 수 없듯이 강자가 영원히 권력과 힘을 가지고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군왕께옵선 패도를 지향하시지요. 그렇게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여기시니 말입니다. 허나 그것은 당장 보이는 것이 그러할 뿐. 지금 저 밖에 있는 군왕의 신하들 중 군왕을 진심으로 따르는 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 마음을 얻으셔야 합니다. 믿음을 이끌어내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군왕께서 언젠가 약해지고 노쇠해졌을 때...
혹등고래가 허허 웃습니다.
- 또 다른 패도를 일컫는 이가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패도를 걷는 이가 그리 하여 왕이 되었으니, 자신이 되지 못할 이유가 무어냐고 말입니다.
하란의 말에 따라 혹등고래는 조금 그녀에게 우호적으로 변한듯 싶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마음을 얻지는 못한 상황입니다.
- 저를 신하로 삼고자 하시지요. 패도를 버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증거를 보여주십시오.
그러더니 혹등고래가 씨익 웃습니다.
- 제 마음을 움직여 보시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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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건... 입술을 달싹였다. 말이 턱끝까지 올라왔다.
됐다. 그녀는 당장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반박은 반박을 낳고 의미없이 평행선을 달리게 할 뿐이다. 그녀가 타배경을 찍어누르려면 말도 필요없이 도륙을 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왜 그러지 않고 있는가. 너의 목적을 상기해라 미사하란.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다.
"따라오라."
증거? 원한다면 보여주겠다.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바다로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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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되돌아갑니다!
어떤 행동을 취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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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등 뒤의 타배경을 돌아보았다. 젠장, 이런 짓까지 해야 하나 정말.
"호경들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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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목숨을 잃은 그 우두머리는 이름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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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끼리는 바다 중에 으뜸이라 하여 해원이라 불렀습니다..."
범고래들이 지극히 몸을 낮추며 말합니다.
이렇게 훌륭한 예절 주입기인데 저 혹등고래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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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팔려서 죽을 지경이다. 사람을 두자릿수, 간접적인 것까지 더하면 세 자릿수는 죽였지만 한번도 그에 대해서 사과해 본적이 없다. 사람에게도 이 지경인데 고작 범고래 하나를 죽였다고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정말?!
타배경 너 이놈. 내 밑에서 편하게 일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야. 넌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 그녀는 호경들에게 마주 고개를 숙였다. 충격과 공포의 현장이다.
"내가 순간의 분을 이기지 못하고 그른 행동을 하였다. 참으로 면목 없고 미안하구나."
호경들이 이 사과를 진심으로 받아들일지, 이놈이 갑자기 왜 이러나 무서워할지 모르겠다. 그녀가 호경이라면 무서워 하겠지.
"내 궁 안에 해원을 위하여 묘와 영전을 짓고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그 어리석은 행동을 되새길 것이다."
번뇌와 심마가 그녀의 뱃속에서 휘몰아친다. 노기 띤 음성과 저절로 터지는 헛웃음, 힘이 들어가 부들대는 몸을 붙잡기 위해서 그녀는 애를 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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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울부를 제외한 복속된 신하들이 모두 공포에 잠깁니다!
신하들 중 일부는 앞다투어 나와 고개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으며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였는가, 충성을 맹세한다던가 하는 말을 빠르게 쏟아냅니다.
혹등고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습니다.
음, 반응을 보아하니 뭔가 잘못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선조의 왕위 선양 파동 사건을 떠올려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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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아닌가."
그녀는 중얼거렸다. 쪽은 쪽대로 팔고 오답은 오답대로 고르고 바로 이게 어리석은 짓이 아니라면 뭐가 어리석은 짓이냐. 그녀도 광란에 빠진 신하들의 난동에 아주 조금 겁을 먹었다.
그냥 이것들 전부 내단으로 만들고 모용의 진정한 괴뢰 루트 함 타? 어?? 자신의 정치력에 대하여 다시 돌아보게 된 하란이였다.
그래도 타배경 마음은 어떻게든 움직인 모양인데. 반대쪽으로. 아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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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등고래가 말한 자기의 마음을 움직여보라는 말의 뜻은, 과연 당신이 진실로 유교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인지 거짓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인지를 증명하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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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이는 울부짖는 신하들ㅋㅋㅋㅋㅋ을 외면하고 타배경의 곁으로 다가가서 말한다.
"진심이었다.... 가르침을 받아들일 자세와 각오를 보이려 한 것 뿐인데..."
일단 매운탕들이 뭐라고 하던 타배경만 데려오면 되잖아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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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등고래는 하란을 빤히 쳐다봅니다.
- 무릇 군주란 인과 덕으로써 다스려야 하는 법입니다. 신하들이 저리 반응한다는건 그동안 얼마나 많은 피를 보았는가에 대한 반증이 아니겠습니까? 인자함을 보이소서.
안타깝게도 이 혹등고래도 매운탕의 일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원복지에 굉장히 신경을 쓰는 것 같군요.
하란주가 힘들어하시는 것 같으니 아주 살짝 힌트를 드리자면...
사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공포정치를 펼쳐라! 라는 말은 '절대적인 군주권'을 가진 군주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며 그렇지 않은 군주에게는 친절과 예의로 남을 대하라고 말합니다.
하란은 현재 절대적인 힘은 가지고 있으나 행정력의 부재와 통치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그 절대적인 힘을 발휘할 수 없으며 이를 위해선 유능한 신하들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현재 하란은 '절대적인 군주'라고 볼 수 없는 상황임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유교의 통치이념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공포와 힘, 억압과 기만을 제외한 부분과 놀랍도록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는 편입니다.
인의예지와 덕이라는 것은 현대 한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의 훌륭한 CEO나 리더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필수적인 모습입니다.
물론 절대군주권을 얻게된다면 공포와 피, 기만으로 상대할 수 있겠으나 그 때 부터는 신하들과 지긋지긋한 정쟁이 이어질겁니다.
동양의 군주들은 막강한 행정력을 얻는 대신 절대적인 군주의 권한 사용을 스스로 제한시켰고, 유럽은 행정력을 포기하는 대신 절대적인 군주의 권한을 왕권신수설이라는 이름으로나마 얻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절대군주권이라는 것은 동양에 비해서 한참이나 떨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하지만 우리 무림비사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양자택일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하란에게는 제 3의 길이 남아있습니다.
천자, 하늘, 신비, 용, 상서로움, 정당성, 명분, 신의 대리자, 신, 현인신 등.
이렇게 힌트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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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함.....?"
나도 피밖에 본 적 없는 사람, 아니 용이야 왜 이래. 해봤어야 알지 그걸. 하란은 짜게 식은 눈을 하고 신하들의 앞으로 돌아왔다. 이걸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할꼬.
"침착해라 이놈들아, 좀. 개천궁의 손과 발이 될 이들이 이토록 혼비백산하면. 나는 누구랑 함께 일을 도모하겠나."
"하늘의 상제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다스리라 하셨던 것이지, 모두 잡아먹고 홀로 옥좌에 앉으라는 뜻이 아니다. 그대들이 곧 나의 정당함이 될 것인데 정당함이 없다면 그게 왕이 되겠나! 아무리 탁월한 왕이라도 홀로 통치할 수 없다. 다스릴 백성이 없다면 어찌 그것이 왕인가!"
"그 대ㄱ.. 머리로 생각들 해 보라. 내가 실로 그대들을 모두 죽이려 하였으면 등용문을 넘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 거기서도 도축의 체제 운운하긴 했다. 하지만 여기서 등용문을 넘은 자는 그녀 말고 없었다. 안 가봤으면 말을 말라고. 그녀는 석지훈의 문지기와 대화할 때처럼 바깥의 권위를 가져오려 했다.
"이 용선은 어진 만선萬仙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왔다. 그 울음을 그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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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매운탕 재료가 되는줄 알고 혼비백산했던 매운탕 재료들이 조금은 안정감을 되찾습니다.
스트레스가 줄어들었으니 더욱 감칠맛이 나겠...큼큼.
혹등고래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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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란이는 선계에서 하루도 살아보지 않은 토종 하계 촌룡이다. 선계의 권위를 이렇게 끌어와도 되나. 모르겠다. 용선 직함 달고 선계의 권위를 가져오지 않으면 어디서 권위를 가져오랴.
타배경은 아직도 복지부동이었다. 곧은 길을 두고 굳이 먼 길로 돌아가는 회의가 든다.
"용이란게 무엇인가. 또 용왕이란 또 무엇인가. 하늘의 뜻을 땅으로 통하게 하는 전령. 신을 대리하는 상서로운 존재. 하늘을 날고 땅과 물 속을 기는 미물들을 보호하는 현신이다."
여기서 하란이 식으로 하면 '내 뜻이 곧 하늘의 뜻이니까 닥치고 따라와라' 가 된다. 실제로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참는다. 忍忍忍
"하지만 그 모든 것들도 그대들이 없다면 한낱 물거품일 따름이라. 거듭 말하지만 그대들은 나의 수족이자 존재 자체로 나의 정당성이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 손발을 자르고 정당성을 팽개치는 미치광이의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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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신하들이 크게 안심하고 길게 읍소합니다!
"전하의 덕이 사해에 광명을 비추듯 밝사옵니다!"
저 놈은 아첨꾼인 것 같은데...
혹등고래는 살짝 흡족한지 고개를 살짝 끄덕입니다.
***
"아까 해원에 관하여 이야기했던 것은 한 치의 거짓이 없는 진심이었다. 그의 신주 앞에서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끝없이 되새기고 다짐할 것이다."
"다시 한번, 미안하다."
이번에는 뜻이 전해질까. 어차피 죽은 녀석. 뭘 해주든 손해볼 것이 있나. 이쯤은 산 자의 아량을 베풀어주지.
***
누군가는 믿을 것이고 누군가는 경계할 것입니다.
패왕의 길로 시작하였으니 그 끝이 어디로 갈지라도 모두가 당신을 두려워하리니...
끝없이 증명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동양 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철학에 대한 증명을 말입니다.
혹등고래는 진심으로 하란에게 복종되지는 않았으나, 왕사王師이자 재상으로서 당분간은 함께할 것입니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
비로소 모든 준비는 끝났다. 협해의 적법한 지배자 앞에서.
휘이이...휘이잉...
육지도 섬도 하늘의 구름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위에 그녀는 칼을 들고 섰다. 힘차게 부는 바람이 머리칼을 휘날리게 하여 이마를 드러낸다.
검을 역수로, 가로로 쥐어 다른 손의 손가락으로 칼날을 훑는다. 우우, 우우웅. 검은 옅게 떨며 그르렁거렸다.
"멀리도 왔다. 산동의 길바닥에서 협해의 옥좌까지."
하지만 그녀에겐 지나간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걸어온 것보다 더 긴 길이 남아있다. 헛웃음이 나왔다.
손을 높게 들어, 내리친다.
***
오늘만큼은 그 어떤 인간도 바다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천둥과 번개, 폭풍과 비가 바다 위를 뒤덮습니다.
어두운 폭풍우 아래에 컴컴한 수면에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휘몰아칩니다.
우르르릉. 쾅.
콰과광. 우르르릉...번 - 쩍!
번개가 휘몰아칠 때 마다 파도가 높이 치솟습니다. 멋모르게 바다로 배를 끌고 나왔던 인간들은 모조리 도망치거나 바닷물에 휩쓸려 육지로 돌아갑니다.
위대한 해협의 왕께서 탄생하시는 이 순간.
그 어떠한 불청객도 신성한 땅에 발을 디딜 수는 없습니다.
수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갑니다.
풍덩!
홍옥처럼 붉게 빛나는 아름다운 81개 비늘을 가진 거대한 용이 하늘에서부터 수면 아래로, 소용돌이를 지나 내려갑니다.
부우우우우우우우웅 - !
소라껍질로 만든 대라들이 일제히 웅장한 소리를 내뿜습니다.
해초들과 산호로 만들어놓은 피리가 그 위를 감쌉니다.
고래들이 배에 힘을 주고 노래를 부르며, 상어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경계합니다.
게와 바닷가재들이 자신들의 집게로 딱딱거리며 박자를 맞춥니다.
관복을 입은 인간과 어류들을 합쳐놓은 신하들이 저마다 천천히 머리를 조아립니다.
"禮 - !!!!!!!!!!!"
학의 모습을 한 흉배를 새겨넣은 붉은 관복을 입은 패울부가 크게 소리지릅니다.
일제히 신하들이 조심스럽게 허리를 완전히 숙이며 두 팔의 소매를 겹치고 들고 있는 패를 머리 위로 들어올립니다.
물보라가 일어납니다.
한 걸음걸음 사박일때마다 물방울이 보글보글 올라갑니다.
저벅. 저벅. 저벅.
불편한 외다리가 오늘만큼은 자랑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느린 발걸음이 움직일 때 마다 하란의 눈에는 문무백관이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조아리는 그 광경이 들어옵니다.
붉고 푸른 용들이 지배했던 위대한 용궁들의 역사를 담은 계단을 밟고 천천히 올라갑니다.
대리석과 진주로 장식해놓은 계단을 밟습니다.
여덟 머리를 가진 거대한 용이 최초로 밟았었고 그 이후로 위대한 용왕들이 밟았던 위대한 계단들의 후신입니다.
최초의 용왕은 무너지고 흩어져 작은 지역들에 만족하기 시작했고 그 흔적이 남아있는 계단.
그것을 밟고. 도깨비와 요괴들이 새겨진 돌을 밟고 올라갑니다.
옥으로 장식된 면류관의 끈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소리를 냅니다.
적색과 검은색으로 만들어진 의복을 입고서 천천히 계단을 완전히 올라섭니다.
"忠 - !!!!!!!!!!!!!!!!!!"
백발이 성성한 혹등고래가 거대한 목소리로 내뱉습니다.
하란은 온갖 진귀한 보석들로 장식된 의자를 뒤로 하고 높다란 계단에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千世萬世!"
패울부와 혹등고래가 일제히 외치며 고개를 조아립니다. 옥과 진주, 바다에서 나지 않고 육지에서 나는 온갖 귀한 홍옥, 청옥, 금, 은, 장인 중에 장인이 만들었을게 분명한 정교하고 화려한 문양들이 가득한 그 의자에.
하란은 앉습니다.
교룡검법 - 포효
- !!!!!!!!!!!!!!!!!!!!!!!!!!!!!!!!!!!!!!!!!!!!!!!!!!!!!!!!!!!!!!!!!
상上께서 하교하십니다.
왕이 돌아왔노라고.
용왕의 치세가 시작되었노라고 말입니다.
이제 미사하란은 용왕이자 개천궁의 주인으로서 그 모든 권한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비정기적으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사신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일은 미사하란의 마음대로 이루어집니다.
바로 지금.
개천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 복건성에 관련된 전설과 민담이 더욱 구체적으로 펼쳐집니다.
- 새 용왕의 즉위가 온갖 신선들과 영물들에게 널리 퍼집니다.
- 팔룡방과 혈검문이 새로운 용왕의 즉위에 극도로 경계합니다.
- 절대거악이 새로운 용의 탄생을 흥미롭게 지켜봅니다.
- 근방 해협의 모든 지성체와 영물들은 용왕에게 복종합니다.
감축드리옵나이다.
전하.
현재 건설 가능한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건설 가능 목록 : 1티어
- 어용영
용왕의 병사들을 키워내는 병영입니다.
가격 : 금화 5
- 대학
용왕의 신하들을 키워내는 교육 기관입니다.
가격 : 금화 10
- 궁전개축
궁전의 규모를 확대합니다.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고, 더 많은 기능을 제공합니다.
가격 : 금화 100
- 수도 도시 계획 一
궁전을 중심으로 수도 도시 계획을 설립합니다.
일차적으로 신하들과 병사들이 머무를 수 있는 집들이 건설되고, 그에 따른 시장과 백성들이 유입됩니다.
가격 : 금화 100
- 문명뇌 ON
- (크아악 비싸다)
즉위식이 끝나고 그녀는 곰곰히 생각했다. 풀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해야 할 일 목록
1. 모용세가 어쩌구
2. 혈검문 팔룡방 저쩌구
3. 신하들 내부단속 얼씨구
4. 혹등고래 절씨구
초장왕 흉내를 내며 신하들을 솎아내고 싶었다. 탱탱 노는 척 하면서 누가 쓸 만한 놈인지 못 쓸 놈인지 봐두었다가 한방에 쓸어버리는 그거. 하지만 그런 짓을 할 여유가 없을 것 같다..
무무무무엇을 해야 하오 상소문에 옥새찍는 기계가 되면 되나용? 어전회의에서 신하들이랑 싸우면 되나용?
***
일단.
세금부터 징수하시겠습니까?
매 진행마다 개천궁에는 금화가 1개씩 세금으로 들어옵니다.
지금은 튜토리얼로써 하나씩 알아가보도록 합시다!
***
ㄴㅇㄱ 세금은 돈의 단위가 다른거에용 역시 법인계좌인가...
히히 그럼 세금을 내라 아비는 칼맞아 스러지고 자식은 세금에 찢겨죽고
***
세금을 징수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따로 징수하지만, 다음부터는 세금은 자동적으로 법인계좌...
아니 개천궁에 적립될 것입니다.
이 외에 돈을 벌기 위해서 특별세금, 갈취, 상업활동 등을 하란이 지시하거나 직접 수행할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개천궁에 금화 1개가 적립됩니다.
현재 개천궁의 재정은 1금화입니다.
***
일정 시간당 금화 한 개치의 세수가 들어오는건가. 개인에게는 큰 돈이다. 하지만 궁이나 문파, 세가에게는 무척 큰 돈이라고 하기엔 어렵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천방표국과 홍단표국같은 곳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이 거둘 터였다.
"흐음..."
그녀에게는 그들에게 없는 신선, 용왕이라는 직함이 있었다. 그러나 역시 하계를 돌아가게 하는 것은 힘과 돈. 돈에 죽어라 목을 걸 것까진 없어도 돈을 중요하게 생각해야한다.
건물을 짓고, 군대와 학자를 양성하는데는 직함이 아니라 돈이 필요하니까.
오늘 들어온 세금을 합치면 2금화군용! 다음 튜토리얼은 무엇인가용?
***
세금이 들어옵니다.
금화 1개가 들어왔습니다. 현재 재정은 금화 2개입니다.
오늘은 금화의 쓰임새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금화는 명시된 쓰임새 뿐만 아니라 현실에 가깝게 사용처를 따로 물색하실 수도 있습니다.
또한 여러가지 민담과 전설, 설화들은 개천궁 자체의 힘과 영향력을 더욱 늘려줍니다.
쉽게 말하면 개천궁에게 존재하는 '명성'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명성이 높을수록 많은 이들이 존경을 표하거나 쉽게 굴복할 것이며 때때로 뛰어난 인재들이 스스로 복속을 청해옵니다.
명성이 낮을수록 이와 반대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복건성은 혈검문의 영향력이 말 그대로 절대적인 상황이며 개천궁이 혈검문에게 협상을 걸기 위해서는 최소한도의 명성을 획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화를 이용해서 설화나 민담, 전설 등을 만들어보도록 합시다.
개천궁의 인근에는 아주 작은 어촌이 하나 있습니다. 용왕전하의 뜻에 따라 이 어촌은 부강한 항구 도시가 될 수도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시골 어촌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재물 때문에 바깥 도시로 팔려나가듯 결혼을 해야하는 불쌍한 시골 처자가 한 명 있습니다.
그녀를 도와주실 수도, 다른 금화 사용처를 물색하실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저 처자는 무엇이 문제냐. 이미 마음에 담아둔 다른 사람이라도 있더냐?"
"그것까진 알 수 없사오나 집이 가난하여 팔려가듯 결혼하는 처지라 하옵니다."
새삼 특별한 일이 아니다. 드넓은 중원 전역에서 하루같이 일어나는 일이다. 불행의 크기만 놓고 보면 별로 크다고 할 수도 없는 불행이다. 하지만 시큰둥하였던 그녀는 신하의 추가 설명을 듣고 생각을 고치기로 했다.
"일종의 선전이라고 생각해 주시옵소서. 그러한 민담들이 모이고 모여 전하와 개천궁의 명성을 드높일 것입니다."
아하. 그게 그렇게 연결되는 것이었나.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그러하면 저 처자는 어떻느냐. 매일 정화수로 기도를 하거나, 아니면 평소 행실이 고왔다던게 있는가? 작더라도 명분이 있어야 도울 수 있겠지."
민담의 권선징악처럼 말이다. 어릴적 듣던 순수한 민담의 실체가 사실 신선의 선전이었다고 생각하면 없는 동심도 무너지는 기분이지만 어쩔 수 있나.. 허허..
***
전하께서 처자를 돕기로 결정합니다.
신하들이 소상히 아뢰기 시작합니다.
"처자가 기도나 행실이 고운 점은 잘 모르겠사오나 그 용모가 빼어남이 익히 알려져있다 하옵니다."
다른 신하가 아룁니다.
"처자는 그러하나 처자의 어미가 천지신명은 물론이고 바다에 나와 항상 물과 소금을 떠다놓고 밤마다 울면서 기도를 하고 있음을 아뢰오."
과연!
바다의 깊은 곳까지 이런 이야기가 들려오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
앗 시골 어촌 마을의 예쁜 아가씨... 가진건 돈밖에 없는 돼지들이 탐내기 좋은 사람이군 그래.
"부모가 자기 배나 채우겠답시고 딸을 팔아치우는 모리배는 아닌 모양이로고."
암튼 그녀는 부모가 나쁜놈인줄 알았다. 옛날 이야기를 보면 그렇잖은가 신데렐라가 어려서 부모님을 잃구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그저 재물만 물려주고 끝내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 손의 재물이 없어질떄마다 딸을 매물로 내놓고 울면서 기도한다면 용궁의 재물을 모두 뜯어줘도 모자랄 것이야."
"그 처자의 부모는 어떤 일에 종사하는 인물인가?"
***
"아비는 어부였으나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어지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고 어미는 삯바느질로 생계를 연명해나가고 있음을 아뢰오."
신하 한 명이 고개를 깊게 숙이며 말합니다.
가정을 보호해줄 사람이 없는 전근대 중세 사회...모녀 둘이 살아남기에는 참으로 어려운 세상입니다.
어떤 방식을 택하시겠습니까?
***
"재물은 당장 급한 불을 끌 정도로만 쥐어주고..."
삯바느질을 한다? 그럼 바늘이 필요할 것이다. 그냥 쇠바늘이 아니라 용왕이 축복한 바늘 말이다.
"바다 깊은 곳의 돌을 갈아 영검한 바늘로 만들어 주는 건 어떠한가? 바느질하는 손이 빨라지고 손가락을 찌르지 않으며, 그 바늘이 닿은 옷감은 새 것처럼 질기고 부드러워지도록..."
이렇게 말하고 보니 삯바느질이 그 어미에게만 전부 몰려 삯바느질로 생계를 잇던 다른 사람들은 모조리 망하는게 생각나는데... 그런 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선택과 집중이라고 치자..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모녀가 받은 축복을 시기하여 해코지하지 않도록 당분간 지켜볼 필요도 있겠다."
***
"영험한...바늘...말입니까...?"
신하들은 살짝 당혹해하는 것 같지만, 용왕 전하의 뜻이 있겠거니 합니다.
영험함과 바늘이라니, 살짝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그럼 어떻게 전해주어야 하겠습니까?"
약간 신하들이 상기된 목소리로 묻습니다.
"오색찬란한 구름을 몰고 선녀들을 모집함이 좋을듯 하옵니다."
아...
예산은 누구한테 나오는건데...?
***
그 왜 절굿공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들겠다던 할머니도 있었는데 뭘... 그냥 그게 생각나서..그냥 그랬다구...
그런데 너희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니. 그녀는 오색구름과 선녀를 운운하는 신하들을 그렇고 그런 눈으로 보았다. 그건 너무 지나친 것 같다. 황제를 만나거나 아무리 못해도 거대 문파의 장문인 정도는 되어야 하는 규모 아닌가.
"그렇게까지 할 건 없고. 어미가 바다에 나와 기도할때 파도에 실어서 조용히 보내주거라... 시골 아낙을 만나는데 오색 구름에 선녀가 다 무어냐? 그 정도만 해도 내가 도왔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냥 조용히 보내줘...
***
신하들은 무언가 실망한 눈치이지만 받아들여집니다!
밤이 되고 처자의 어미가 눈물을 흘리며 흰색 무명 옷을 입고 바닷가에서 간절히 기도를 하고 있을 때.
달빛도 그녀를 비춰주지 않을 때에.
갑작스럽게 바다에서 물보라가 일어나며 파도가 그녀 앞에 밀려옵니다. 분명 파도가 밀려올 거리도 시간도 아닌데 말입니다.
"에구머니나!"
밀려온 파도는 그녀의 앞에서 크게 기둥처럼 솟구치더니 촤아악! 하고 아래로 꺼져버립니다.
"이, 이게 뭔 일이래..."
당황하고 공포에 질린 처자의 어미가 뒷걸음질 칠 때. 파도가 쓸려가고 젖은 모래 위를 달빛이 비춥니다.
유독, 아름답게 빛나는 바늘 하나가 어미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기이한 현상, 범상치 않아보이는 바늘.
어미는 복잡한 표정으로 바늘을 주워 집으로 돌아갑니다.
자신이 겪은게 무엇인지 알게 될 때 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겠지요.
- 누구인가?
- "잘 받아갔더냐?"
어련히 알아서 잘 사용하리라 믿는다. 마하의 속도로 바느질을 하건, 갈라진 사람 살을 꿰메건. 물건은 주인을 따라서 쓰일 길을 찾아가는 법 아니겠는가. 사람은 어떻게든 길을 찾아내는 법이다.
그럼 용왕이 하는 일이 세수를 모아서 적당한 곳에 쓰기. 평판을 모으기. 그리고...
***
신하들이 그렇다며 읍소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 다음은 이제 마지막입니다.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이 많이 있는 것 처럼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 또한 많이 일어납니다!
용왕으로서 주변 인간들에게 풍작을 내려주는 일도 있겠지만 그것 못지 않게 판결을 해야하는 일 또한 자주 일어납니다.
"전하! 육지의 어민이 감히 성역에 발을 디뎠나이다.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혀 물 속으로 우연찮게 들어왔다 하였으나 그 말이 심히 의심스럽나이다. 우선 붙잡아 구류해두었으니 어찌 하시오리까?"
***
판관들이 신앙하는, 판결을 내리라 요청하는. 판결에 보정을 받는. 그런 게 있었지. 어민이 풍랑에 휘말려 개천궁 앞까지 떨어지다니,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다.
"그 놈은 무공을 익힌 자인가?"
그녀는 가장 기초적인 사실부터 물어보았다. 무공을 익혔다고 하면 그 때부터는 일이 아주 재미있어질 것이다...
***
"아주 기초적인 양생법에 가까운 수준이오나 분명히 익혔사옵니다!"
신하가 그리 외칩니다.
"직접 국문하시겠나이까?"
***
그녀는 허허 웃었다. 혈검문이나 팔룡방, 혹은 하오문이나 개방의 하청 세작인가? 넷 중 어느 곳이든 본격적으로 세작을 보내었다면 이토록 엉성하지는 않을 것이다. 혹은 억세게 좋은 운이 따라 심법을 익힐 기회가 있었던 민초이거나.
"그리하겠다."
분명한 것은 정체가 세작이건 민초이건, 그녀 앞에서는 운이 좋아 무공을 익혔다고 잡아떼리라는 것이었다.
***
한 여자가 끌려옵니다!
머리는 산발이 되어 흐리멍텅한 눈을 가진 여자는 덜덜 떨면서 무릎을 꿇고 엎드립니다.
"전하, 하문하시옵소서."
이 얼마나 크툴루적인 공포일까요?
말하는 문어와 메기와 붕어와 명태와 방어와 광어와 연어와 참치들이 있으니 말입니다.
***
여인? 신하는 분명히 어민이라고 말했었다. 여인이 낚시를 하거나 얕은 바다에서 물질을 할 수 있을진 몰라도. 남정네들을 따라서 깊은 망망대해까지 고기잡이를 하러 온다? 확실히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도무지 짐작하질 못하겠구나. 남정네도 아닌 여인의 몸으로 이 깊은 바다까지 배를 타고 왔다는 것이냐? 무슨 연유로?"
진짜..머선 129.. 그녀는 하문하였다. 또한 끌려온 이의 기감을 살펴보려 했다.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또 정사마 중 어느 성질의 무공인지.
***
고작해야 1년~2년 수준의 단전입니다.
경지를 논하기에도 아까운 삼류 이하의 수준이로군요.
이 수준으로는 정파인지 사파인지도 알아볼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저, 저, 저는...그, 그저..."
여인은 덜덜 떨며 말을 잇지 못합니다.
"전하, 실은 같이 나온 남자가 있사온데 그 남자는 풍랑 때문에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사옵나이다."
신하의 말을 들은 하란의 천재적인 두뇌가 상황을 잡아냅니다.
몰래 바다에서 밀회를 즐겼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군요.
하지만 아직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단 둘이서 말이냐.."
그렇다면 고기를 잡으러 나온 것은 분명히 아니다. 어느 누가 먼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갈 때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으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하겠나. 그러면 밀애를 즐기기 위하여 나름 아무도 없는 곳을 찾겠다고 찾은 건지 원.
둘의 사이가 그 정도로 가까웠다면 이 자는 죽은 남자에게서 무공을 배웠을 법도 하다.
"다른 것을 묻겠다. 너랑, 너와 함께 온 남자는 어디에 사는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는가?"
***
"그, 그 남자는..."
여인이 벌벌 떱니다. 신하 하나가 크게 호통치자 그제서야 몸을 움찔거리며 입을 엽니다.
"자기가 산청검문의 속가제자라고 하였고...그 기루에서 일을...하였사옵니다...이름은 다들 수검이라고 불렀사온데 사실 이름이 아니옵고 직책이라...했습니다..."
산청검문은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마을에 작은 기루가 있어 그 곳 기루를 지키는 자들의 대장이었...습니다...."
기둥서방이다 이거군요.
흐음...
뭔가 사실 의심스럽기는 한데, 심증만 있을 뿐입니다.
***
산청검문, 기루의 기둥서방 왕초. 작은 마을에서 아무나에게 머리를 숙이는 인물은 아닐 것이다. 산청검문과 기루가 정말로 있다면 말이다.
불륜을 저지르면 당당하게 저질러도 꿀릴게 없는(...)인물이 아닌가? 정처 되는 사람이나 그녀의 뒷배가 만만하지 않아 굳이 이 바다까지 나와 밀회를 가졌나...아 머리아파.
"그렇다면 너는 누구냐? 듣기로는 어민이라고 하던데?"
***
"저, 저는...그저 한낱 아녀자일 뿐이옵니다..자식과 남편이 있습니다..."
흐음, 확실히 하란의 생각대로 무언가 조금 수상한 것 같습니다.
굳이...이렇게 밀회를...?
***
"....더 소상히 고하라. 네놈도 바닷물에 손을 담그는 일을 하느냔 말이다."
역시 이상하다. 고작 불륜을 위해서 망망대해까지 나오는 인간은 없다. 할 짓 없고 돈만 썩어넘치는 졸부가 호화 함대를 이끌고 오지 않는 이상에야.. 진짜 뭐하는 인간인가? 조금 짜증이 난 그녀는 매섭게 쏘아붙였다. '너도 바닷물에 손을 담그는가.'
여인이 정녕 어민이라면, 손이 성할 리가 없지. 분명 굳은살 따위가 여기저기 박혔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보는 것은 굳은살만이 아니었다. 굳은살은 농민에게도 무인에게도, 아무나 길거리에서 잡아챈 사람에게도 있을 정도로 흔한 것이다.
어민의 손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있다. 하루 종일 바닷물에 손을 담가 올라오는 소금독. 손가락 끝의 살껍질이 벗겨지고 손톱 옆 파인 곳에서는 매일같이 고름이 끓어 붉게 열이 오른다.
여인의 진술과 여인의 손끝이 같은 말을 하길 바랄 뿐이다.
***
"그렇느냐? ^^"
옳지. 떡밥을 물었다. 놈의 혀끝과 손끝이 따로 논다! 그녀는 빙글 웃으며 신하에게 하문하였다.
"그럼 네놈의 손끝에 소금독이 오른 흔적이 없는 것은 무어냐?"
어느것을 골라볼까요 주리~ 인두~ 압슬~
"국문장 구경하기 싫거들랑 있는대로 고하는게 좋을 것이야. 너 누가 보냈어?"
***
"히, 히익.."
아녀자는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저, 정녕입니다! 정녕 저는 한낱 어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아주 의심스럽다. 하지만 무턱대고 고신을 했다가는 이놈에게서 진실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듣고 싶은 말만 하게 될 테니까. 여인을 쥐잡듯 잡는 것은 잠깐 미뤄두기로 했다. 물론 그 동안 편하게 지내지는 못할 것이다.
"이년을 다시 하옥하라. 그리고 하루에 한 시진만 재우도록."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어서 잔머리 굴릴 여지를 없애는 고전적인 방법이었다. 뭍으로 올라 산청검문이니, 기루니 볼 것이 많았다. 함께 왔다는 놈의 시신과 그들이 타고 온 배도.
***
여성은 다시 하옥당합니다!
"전하, 어찌하시겠나이까?"
신하들이 모두 하란의 입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
"저년의 증언만으로는 얻을 것이 적다. 뭍으로 올라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거짓인지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너희들 중에 나만큼 인간사회 잘 아는 매운탕..? 나만큼 무림을 잘 아는 매운탕 있니..? 그녀는 숙였던 허리를 젖혀서 옥좌에 등을 기대었다.
"미복 암행을 나가볼까 하는데. 어떠한가."
아직 스타트업(?) 초기(?)니까 수뇌가 직접 발로 뛰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고 생각하는데... 사람과는 생각하는게 다른 여기 매운탕 친구들은 어떨지..
***
신하들이 결사반대합니다!
그 와중에도 혹등고래와 패울부는 가만히 있습니다.
저 둘을 이용한다면 하란이 원하는대로 이어질지도...?
***
"궁을 세운지도 얼마 되지 않은 이 시점에, 저런 수상한 자가 들어왔다는 것이. 고는 아주 중하고 찜찜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만..."
내가 안 나가면 너희들이 나갈래 매운탕들아! 가서 물정 모르고 칠렐레 팔렐레 하다가 코 베이고 진짜 가마솥에 들어가 봐야 정신을 차리지!
"파도잡이와 왕사의 생각은 어떠한가...?"
***
- 전권대리인이 있다면 아주 잠시동안은 괜찮지 않겠습니까.
패울부가 격식을 차려 말합니다.
- 민생을 돌보기 위해서는 군왕이 자주 암행을 나가보는 것도 좋습니다. 훌륭하신 판단입니다.
혹등고래가 말합니다.
그들은 하란이 없더라도 국정운영에 별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이 둘의 능력은 과연 뛰어납니다!
***
'그들은 하란이 없더라도 국정운영에 별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찬동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녀는 살짝 뒷골이 시려왔다. 이래서 사서 속 왕이라는 놈들이 권력을 유지하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일까?
직접 옥좌에 앉아보니 머리 위에 매달린 칼이 무엇인지. 아주 조금이지만 알 것도 같았다.
"..그렇다면 파도잡이가 잠시간 섭정을 맡고 왕사가 보좌하면 어떻겠는가?"
일단 규칙상으론 파도잡이가 1순위 섭정이니까. 또한 그녀가 심정적으로 그와 더 가깝기도 했다.
***
파도잡이는 실질적으로 재상의 역할을 겸임합니다.
수관, 총리, 재상, 상, 국상, 대신, 정승 등 부르시는건 자유이며 그것이 하란의 개천궁에 있는 관료 체계로 정해질 것입니다!
패울부와 혹등고래 그리고 다른 신하들이 그에 길에 읍합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 하란이 없는 동안에는 파도잡이 패울부가 지명 섭정으로서 용왕 전하를 대리합니다!
***
"좋다. 그럼 다녀오지."
뭍으로 가는 길에 변장 말고도 그녀가 더 준비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놈과 함께 왔던 남자의 시신과, 뒤집혔던 배도 준비하도록 해라. 가는 김에 그것들을 모래톱에 밀어놓고 누가 찾아오는지 봐야겠다."
누가 찾아올지는 모른다. 영문을 모르는 어부나 아이일수도, 일이 꼬였다는 걸 알아챈 누군가일지도..
***
용왕전하께서 원하시는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모든 준비가 갖춰집니다!
- 절대기녀해
- 미복의 정석.
챙 넓은 모자
얼굴을 가리는 얇고 가벼운 천
바닥에 끌릴락말락 하는 장포
지팡이(검)
너무 수상해보인다고?
뭐씨 이게 정석이거든 무협알못아!
그녀는 말이 없는 시신과 함께 육지를 향해 간다. 배가 파도에 일렁이며 끽끽댄다. 사방에 육지와 섬이 없는데, 밤바다의 하늘에 별이 소금처럼 뿌려져 있다. 이것도 장관이로세.
"...."
잠자코 눈을 깜박였다.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귀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있더라도 용왕이 계시는데 어찌 감히 잡귀들 따위가 남아있겠습니까?
무협알못이 되어버린 김캡의 울음을 뒤로하고 하란은 오랜만에 육지에 발을 디딥니다.
***
"아무도 없네."
길을 걷다가 우뚝 멈춰 그만 모습을 드러내라 일갈하는데 진짜로 아무도 없었다는 머쓱함.. 그녀 혼자 있는게 다행이었다.
마을 근처의 모래톱으로 배가 올라온다. 그녀는 배에서 내려 바위 위에 올랐다. 누가 찾아오는지 확인하기, 그리고 산청검문과 기루에 대해서 조사하기. 시간을 너무 끌기는 싫으니 즉시 행동할 것이다.
그녀가 찾아볼 곳은...
1. 산청검문
2. 기루
3. 모래톱 근처에 숨어서 기다리기
.dice 1 3. = 1번! 다갓에게 맡긴다.
***
산청검문.
사실 이름만 검문이고 그 실상은 왈패들의 집합체.
쉽게 말해 건달 조폭들이다 이 말입니다.
몇몇 작은 마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도시의 외곽에도 사업체를 몇 개 거느리고 있는, 나름 근방에선 큰 세력입니다.
신하들이 끊임없이 바다에서부터 기이한 공능의 힘으로 하란에게 정보를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산청검문으로 가볼 시간입니다.
...꼴에 나름 검문이랍시고 장원을 커다랗게 차려놓았군요.
돈을 제법 버는지 현판도, 정문도 큼직큼직하고 웅장하게 지어놓았습니다.
"응? 웬 년이냐?"
문지기로 보이는 껄렁한 양아치 둘이 하란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
'어어쭈, 겉보기엔 그럴싸한데?'
하지만 오대세가, 구파일방과 같은 물에서 놀던 그녀의 눈에는 어린애 모래성같을 뿐이었다. 기껏해야 건물 한채에 마당 하나를 겨우 가진 놈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조금은 생각을 고치지 않을 수 없었다.
"혹 잃어버린 사람이 있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푹 찔러보기로 했다.
"지금 사변에 죽은 사람이 밀려왔소."
***
경비들은 얼굴에 물음표를 가득 띄웁니다.
"그게 우리랑 뭔 상관이요?"
잃어버린 사람? 뭐 누구 나갔냐? 이러고 있군요.
정보가 통제되고 있거나, 그런 정보도 모를 정도로 이 둘이 말단이란 의미일겁니다.
"흐흐흐. 그런데 뭔 천으로다가 얼굴을 숨기고 그런다냐. 으응? 뭐 아주 귀한거라도 감쳐놓으셨수?"
경비들은 낄낄 거리며 하란의 얼굴을 가린 천에다가 손을 가져다대려 합니다.
***
"살펴보니 무인의 시체같아서. 근방에서 가장 큰 문파가 여기 아니오."
침입자들의 출항은 확실히 비밀스러운 일이었다. 참말로 해상밀애를 위해서였던 사주를 받고 용궁을 찾기 위해서였던. 그건 당연한 일이지.
"당신들이 모르면 윗선에 말이라도 전해주오."
그리고 내게 함부로 대하지 말아. 그녀는 우악스런 손을 피해 쫑쫑 뒤로 물러서면서 말했다. 충분히 그녀의 인내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
"허 참. 까탈스럽기는."
낄낄 웃으며 경비 하나가 말을 전하러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잠시 뒤.
"그런거 없다는데?"
...?
***
"없어...?"
이뇬이 참으로 거짓을 고한 것인가! 산청검문 소속의 기루 왕초라는 것은 모두 위장 신원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산청검문 측에서 자체적인 정보검열을 행하고 있던가.
"그런가... 아무튼 알겠소."
우선 겉으로나마 없다고 하는데 그녀가 뭘 어쩔까. 멧돼지처럼 박아댔다가 여기 적호검희가 있다고 온 동네에 소문을 낼 일은 없다.
"수고하시오..."
이젠 기루라는 데로 가봐야지. 저것들이 필요 이상으로 질척대지 않는다면 말이야.
***
뒤에서 들려오는 음담패설들을 무시하고 하란은 기루로 향합니다.
.
..
...
음 제법 때깔을 빼놓은 기루가 눈에 보이는군요!
***
이놈들이... 양 손으로 머리채 두 개를 휘어잡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버릴라... 그녀는 소리없이 헛웃음을 켰다.
길을 타박타박 걸어 기루에 도착했다. 이곳도 산청검문처럼 꽤 구색을 갖춘 장소였다. 이 근방은 그녀의 생각만큼 낙후된 곳은 아닌 모양이다. 구중궁궐에서 엉덩이나 지지고 있었다면 한참 후에나 이 사실을 알았으리라.
"기루며는 술을 사고 뭔갈 물어봐야 하겠는데."
적어도 여기는 그렇게 한다면, 묻는 것에 가급적 친절히 답해줄 것이다. 기루는 소식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녀는 기루를 싫어하지.
약간의 내적 갈등 끝에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기루 대문턱을 넘기로 하였다.
***
드디어 마침내.
하란이가 기루에 들어섭니다!
하란이 안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시선이 집중됩니다.
타다다닷!
삼류쯤으로 되어보이는 몸놀림으로 루주가 달려옵니다.
아니 왜 루주가?
"아 거 이제 오면 어쩌니!"
예? 예?
"일을 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빨리빨리 와서 준비를 할 줄 알아야지! 그게 아랫사람의 도리란다!"
예에?????
아니 무언가 착오가 있으신 것 같은데요...
"어서! 빨리! 얘들아! 신입 교육 대충 시키고 얼른 씻기고 치장좀 시키렴!"
"네에 왕언니이..."
이게 머선129
***
"네?"
이제 오다니요? 저 아세요? 나 초행 손님이에요!
"네?!"
일? 신입?? 대체 루주는 그녀의 무엇을 보고 오해한 것일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녀는 순식간에 기루의 기녀들에게 팔을 붙잡혀 끌려가는 꼴이 되었다. 어린애 손목 비틀듯 뿌리칠 수도 있었으나, 그녀는 기녀들이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어어어..."
생각에 앞서서 본능이 먼저 말했기 때문이다. 정보를 캐려면 이 오해를 유지하는 것이 더 낫다. 네가 기루를 싫어하는 것은 알지만 너는 용왕이고, 사감을 공무에 끌고 와서는 안된다고.
"잘...부탁드립니다아.."
어린 시절 빚쟁이들에게 잡혔다면 그녀는 필시 기루에 팔렸을 것이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들에게 쫓기던 기억이 나서 마음이 섬칫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에게는 목표가 있고,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다. 그 때 기녀가 되었다면 무력한 갈대처럼 휘날렸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마음을 바로잡았다.
***
기녀들이 데리고 와서는 일단 씻기려고 천과 삿갓을 벗기니..
"어머? 붉은....머리? 머리에 색을 입히기라도 한건가? 너무 예쁘다."
신기해하고 있습니다!
"아유. 왕언니가 몸이 닳은 이유가 있었네. 그 왜 얼마전에 누가 자기 딸을 기녀로 판다고 했는데 정말 선이 고왔다고. 대박이라고 그렇게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더니만..."
그녀들은 조잘거리면서 하란을 치장합니다.
"화장 너무 잘먹었다 얘!"
깔깔 웃으면서 기녀 하나가 하란의 등을 팡 칩니다!
***
그녀가 바늘을 준 아낙의 딸과 그녀를 혼동하는 건가? 하지만 그 자는 기루가 아닌 팔려가듯 결혼할 처지라고 신하들이 말하였다. 원래 와야 할 여인이 누구인지는 알 바 없으나 운수가 좋구나. 아무것도 팔지 않고 돈을 받게 될 테니까.
그녀는 답지않게 낮선 곳에 떨어진 괭이처럼 눈을 끔벅였다. 이 공간은 그녀가 살아온 세상과 다른 곳임을 느꼈다. 피와 철이 아닌, 알록달록한 비단과 요사스러운 노랫소리. 간드러지는 웃음과 구물거리는 손길들이 지배하는 세상임을. 달나라에 내동그라진 기분이다. 그녀의 방식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중원의 많은 필부와 같이 그녀도 얼굴에 분 한번, 몸에 비단옷 한 벌 걸쳐보지 못했다. 게다가 그녀는 강호의 길 위에 올랐으니 칼날 긋고 지나간 옷감이 비단이요, 진흙 먼지와 피와 눈물이 화장이었다. 그렇잖아도 성애에 관하여 엄숙주의를 고수하는 그녀에게 달리 기회가 있었겠는가? 자신의 외모가 괜찮은 축에 든다는 사실만 겨우 알고 있었을 뿐, 그것이 정확히 어느 정도이며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아..아파요 머리.. 힉?"
동백기름 바른 빗으로 머리를 빗자 엉킨 머리칼이 펴지면서 우드득거리는 소리가 난다. 차라리 비수를 들이밀고 말지. 등은 또 왜 때리는 거야. 그녀는 이런 손길이 어색하기만 했다. 촉새같은 기녀들이 나에게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인가. 불안하면서도 궁금하다.
그녀는 몸을 기울여서 면경을 들여다보았다.
***
하란은 거울을 봅니다.
이 아름다움을 어찌 표현해야하겠습니까 전하?
우유처럼 하얘 마치 만지면 흰 것이 묻어나올 것 같은 잡티없는 피부에 세상 무엇도 잘 모른다고 느껴지는 크고 순하게 둥그런 눈동자.
그 인상을 조금 다듬기 위해 눈매를 따라 옆으로 길게 꼬리를 이은 연분홍빛 색조.
볼과 광대는 살짝 붉은 끼를 내 마치 사람을 볼 때 몽롱하게 쳐다보게 하는 느낌을 줍니다.
그 뿐입니까?
도톰한 입술은 자연스럽게 붉은 칠을 하여 생기를 더하면서도 윤기가 흘러 빛을 받아 반짝입니다.
깨끗한 창포물에 붉은 장미잎을 띄워 우려낸 물로 감은 머리는 옥으로 장식한 비녀를 꽂아 고정시키니 그 단아함은 가히 일국의 왕도 보고 깜짝 놀랄 것입니다.
머리카락 색과 어울리게 붉은 옷에 아름답지만 이름모를 흰 꽃들이 수줍게 수놓아져 있으니.
가히 경국지색이라!
치장을 도운 기녀들도, 거울을 직접 보고있는 하란 자신도, 그리고 성을 내며 얼른 준비시키라던 루주마저도.
모두가 생각을 잊고 한참동안이나 입을 벌린 채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
"어어?"
이게...나? 그녀는 망연하여 거울을 본 채로 망부석이 되어버렸다. 이게 나라고? 가히 경악에 가까운 놀람이라.
살면서 수백 수천번은 거울을 보았다. 그 때마다 비추어지는 건 피곤한 얼굴, 칼에 베인 얼굴, 흙투성이인 얼굴... 거기에 흉터가 지지 않은게 천만다행이었다.
"저 이거..처음 해 봐요..."
놀랍다. 보물을 찾아 천하를 뒤지다가 결국 자기 집 창고에서 그걸 발견한 자의 심정이 이러할까. 고개를 천천히 돌려가면서 다시 보았다. 자기 얼굴이 아닌 것 같다. 기녀들이 가면을 씌워놓기라도 했는지..
그녀는 오늘 무인으로서의 미사하란이 아닌, 한 여인으로서의 미사하란을 처음 마주한 것이다.
***
다들 그 아름다움에 넋이 나가있을 때 하란의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루주가 정신을 차립니다.
"다들! 뭣들하는게야!"
그리 소리치더니 우악스럽게 기녀들에게 뭐라뭐라 말을 합니다.
곧 기녀들이 알겠다고 대답한 뒤 하란을 데리고 큰 방으로 이동합니다.
...본격적으로 기녀 일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
참 기녀. 나 지금 기녀였지. 봄눈처럼 녹던 마음에 다시 찬바람 한 줄기가 불어온다. 지금은 취하여 헤롱댈 수가 없으니 그 편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런데 기녀 일이라는 것이...그녀도 살면서 들은 것이 있었다.
"손님들 술 시중 드는 거죠? 맞죠...?"
그것보다 더 심한 꼴도 다반사 아닐까. 흔히 기녀를 주무른다고...하니까. 상대가 삼류 나부랭이라도 저항하면 안 된다. 여기는 다른 세상이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진짜로 그렇게 하는거야? 그녀는 낭인으로서 첫 일을 받을때만큼 긴장하고 있었다.
***
주무르기만하면 다행이라고 여기십시오 드래건...
아무튼 하란은 방 안에 들어갑니다!
옆에는 다른 기녀 둘이 같이 있는데 이것을 보아 미루어 짐작하건대, 방 안의 사람도 3명이겠지요.
들어가서 보니 아니나다를까 험상궂게 생긴 3명의 남자가 자리에 앉아있습니다.
"....호오."
다들 멈칫하고는 하란의 얼굴을 뜯어살펴보더니, 제일 중앙에 앉아있는 자가 하란을 손가락으로 가리킵니다.
"너, 이리 와라."
나머지 둘도 자연스럽게 기녀를 고르고는 자리에 앉힙니다.
***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忍忍忍...'
그녀는 수없이 되뇌이며 방으로 들어갔다. 험상궂은 남자 3명과 기녀 3명. 중앙에 앉은, 가장 서열이 높은듯한 남자가 그녀를 부른다.
어색하게 웃는 표정은 포기했다. 거짓 미소를 아예 모르는게 아니지만 이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는 결국 적응할 것이다. 그렇게 믿었다. 지금까지 잘 살아남았으니까. 그녀는 담담한 무표정을 유지했다.
'걸어가서, 앉는다.'
스스로에게 명령하고 그대로 따른다. 남자의 곁에 살포시 앉았다.
***
참치어장에 어긋나는 표현, 수위의 대화가 오가기 시작하고 물론 신체적 접촉도 이어집니다.
어허. 설마 김캡이 정말 적나라하게 쓰겠습니까?
쓰면 우리 스레는 참치어장의 절대 권력자에 의해 갈갈이 찢겨나갈게 분명합니다...
하란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 걍 기녀인척을 계속한다.
2. 일단 파악부터 한다.
3. 무림양학
4. 응 나 용왕이야
5. 김캡의 뇌주름은 나약하군...겨우 이것밖에 생각치 못한 것인가? 나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다!
***
야 이 새기들아 니들 꼼짝말고 있어! 내가 지금 해일을 몰고와서 니네들 머리통을 밀어서 잠금해제해버리겠어!
하지만....
"대, 대협...이러시면..."
그녀는 참는다. 참아낸다. 참아야 한다. 기녀 행셀 멈추지 않으며 놈들이 하는 말 하나, 행동 하나를 기억한다. 자신이 왜 여기서 이런 수모를 겪는지 그녀는 명확히 안다.
***
놈들은 산청검문에서 나름 높은 지위에 있는 놈들인 것 같습니다.
중앙에 앉아있던 것은 최중요 간부, 그러니까 한 4인자나 5인자쯤 되는 인물이고 양 옆에 앉아있는 놈들은 행동대장이나 돌격대장쯤 되는 놈들입니다.
***
죽은 놈이 기루 왕초인 수검. 산청검문의 속가제자. 이들은 뭔가 알까?
"요새 피곤한 일이 많지는 않으십니까? 대 산청의 대협께서 편히 있다 가시면 그걸로 족합니다. 요새 용왕이니 뭐니.. 떠들썩하던데요."
***
"어엉?"
하란의 주요한 부위를 주물럭거리던 산청검문의 간부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하란을 쳐다봅니다.
"네 년이 그걸 어찌 안게냐? 용왕인지는 모르겠고 용이 바다에서 나타났다고는 하던데...."
***
"어부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아.."
그녀가 처음 바다로 들어갈 때 어부 하나가 그를 보았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놈의 손목을 비틀어 뜯어내고 싶은 충동을 그녀는 억누르고 있었다. 나타났다고는 하던데. 이자들도 무언가 많이 알고 있는 눈치가 아니다. 헛다리를 짚고 있나? 향낭을 만지작거렸다.
"혹 대협께서도 용왕 이야기에 흥미가 동하실까 하여.."
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리고 입가를 가렸다. 아직 동화 속에 사는 순진한 여인처럼 굴었다.
***
남자의 손놀림은 더욱 거칠어집니다.
"흐으으음. 내 아는게 조금 많기는 하지..."
그럼에도 조금 조심스러운지 말을 아끼는군요.
"옳거니. 네 년이 오늘 처음 기녀가 되었다지? 네 머리를 내가 틀어올려주게 해주면 말을 해주마!"
걸려들었습니다.
어차피 진짜로 하려고 할 때 기절시켜버리면 그만입니다.
***
"흐...참말이십니까..?"
불쾌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나 확실하게 통하는 방법이었다. 놈의 손길이 그저 칼날이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버티었다.
"소녀 언젠가 수정궁에 가보는 게 평생의 소원이온데. 대협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이미 마음이 그곳에 가 있는 듯 하옵니다.."
흘끔흘끔 그를 쳐다본다. 누가 보기엔 괜한 새침을 부리는 걸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걸 몰래 죽여 말아 고민하는 중이다.
***
둘은 단둘이 방으로 향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남자가 용왕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물론 뭐 이것저것 수위를 넘나드는 행동들을 하면서 말이지요.
"혈검문 쪽에서 사람이 하나왔다 갔다. 어마어마한 고수였지...용왕에 대한 사건을 조사하고 있더구나. 흐흐흐. 고년 참 살결 야들야들한 것 보게. 아무튼 혈검문에서 알아보라하니 별 수 있나. 그냥 사람 하나를 보냈더니 웬걸. 실종되어버렸지 뭐냐?"
호오.
***
여기서부터는 줄타기가 중요해진다. 놈이 최대한 많은 정보를 토할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놈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의 앞까지 다다를 때까지 걸리는 시간. 그리고 그녀의 인내심이 버티는 시간.
그녀는 살결이 부드럽다는 말에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무공을 익혀서 단단하지는 않고? 실력이 되는 자라면 어렵잖게 알았을 것을.
"어머나. 그러면 그 분은 용왕을 찾아서 떠난 것이어요?"
***
"무얼. 용왕같은게 있겠나? 그냥 바다나 한 번 가서 뭐라도 살펴보라고 간게지."
그는 낄낄거리며 추잡한 손놀림을 이어나갑니다.
이 정도면...충분히 소득을 얻은 것 같습니다.
***
"아아.."
모든 진상은 밝혀졌다. 그 한 쌍의 연놈은 산청검문이 혈검문의 사주를 받아서 보내 첩자다. 그러니 이제 그만, 거기까지. 손을 멈춰라.
네 머리를 나처럼 붉게 물들여주랴?
그녀는 말이 끝나는 호흡이 완전히 사라지기도 전에, 손아귀를 뻗어 놈의 목을 죄기 시작한다. 주제모르는 개가 진정 엄한 곳까지 입질을 하는 건 막아야지 않겠는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흐트러질대로 흐트러진 옷매무새가 바스락거린다. 이거 원, 기분이 더럽다. 기녀 일도 마냥 할 일은 아니로구나.
***
"커억?!"
남자는 일순 바들바들 몸을 떨다가 시간이 지나자 몸이 추욱 늘어지고야 맙니다!
완전히 기절해버렸군요...
***
이놈 명줄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리 길지는 않겠지. 사흘만 살아있어도 그녀가 자비를 많이 베푼 것이리라. 용궁으로 압송한다.
죽기 전에 실컷 좋은 꼴을 보게 해주었으니 감히 불만을 품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방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창문 따위가 있으면 그것을 열고, 없다면 벽을 열고 나가리라.
***
창문을 탁 열고 나갑니다!
밤바람은 제법 시원하군요.
***
놈을 보따리처럼 메고 나간다. 추잡한 음심으로 달아오르던 안과 달리, 상쾌한 밤바람이 느껴졌다. 여기부터는 나의 세상이란다 중생아.
이제 뭍에 볼일이 없으니 개천궁으로 돌아가자. 그녀는 아까 배를 대 놓았던 곳으로 돌아간다.
배가 남아있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느긋히 가면서 그녀가 당한 짓을 사적으로 되돌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
타고온 배가 있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거기에는 이미 명태를 시작으로 온갖 수중생물들이 떼를 지어 밤바다를 빙글빙글 돌면서 용왕전하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마, 용궁 내부에서 직접 보낸 작고 귀여운 호위병들이었나봅니다.
하란이 처음 뭍에 갔을 때 부터 지금까지 계속 기다리고 있었겠지요.
그 때 거북이 한 마리가 엉금엉금 물 속에서 기어나오더니 고개를 숙입니다.
"돌아오셨나이까. 전하. 궁으로 뫼실까요?"
***
조각배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니 생선들이 그녀를 마중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이놈들, 밤잠없는 그물 어부에게 들키고 싶어서 그러느냐. 하지만 땡그란 눈을 한 생선들이 꽤나 귀여운 짓을 한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너희 먼저 돌아가라. 나온 김에 밤바람이나 쐬면서 느긋히 갈테니."
배에 누워있던 수검의 시체를 모래톱에 툭 내려놓고, 그 자리에 기절한 놈을 척 놓았다. 이놈과 진솔한 이야기를 몇 마디 할테니 먼저 가서 준비하고 있으렴..
"하옥했던 그 년을 꺼내서 국문 준비를 갖추라 알리고."
***
스르르륵.
물고기들 몇 마리와 아까 그 거북을 제외하고 다들 사라집니다.
국문 준비가 시작될겁니다...
***
그녀는 배를 민다. 검은 바다 위에 조각배를 띄운다.
천천히 가자. 물살과 바람을 타고. 하늘의 별과 잔잔한 수면에 비친 얼굴도 구경하면서.
중간에 놈이 깨어날 정도로 천천히...
***
한참을 천천히 밤바닷바람을 맞으며 조각배를 타고 있습니다.
육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질 때 쯤, 사내가 눈을 천천히 뜹니다.
"으...으윽....여, 여긴....?"
***
뜬다 뜬다 눈을 뜬다..
"어머 나으리.. 밤이 깊은데 더 주무시지 않으시고?"
조각배 반대편에 앉아있던 그녀는 옷소매로 입을 가리며 방긋 눈웃음친다. 이전 기루에서 다소 목석같았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그럴수밖에. 원하는 것을 얻었니 어째서 숙이랴. 용왕이 바다에 있는데 한낱 필부 따위를 두려워하라? 바람과 물살의 흐름이 모두 그녀의 손 위에 있다.
***
"무, 무슨....무슨 짓을 한게냐..."
그는 하란이 자신의 목을 졸랐던걸 기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넌....넌 대체 뭐고..."
그런데 아직 상황 파악이 안된 것 같은데요?
'존경'이 담겨있지 않군요.
***
"뭐냐니요? 오늘 첫 일을 시작한 기녀이온데."
일단 주먹부터 날아오리라 여겼건만, 생각보다는 눈치가 있는 놈인가? 재미없구로..
"제 머리를 틀어올리겠다 하셨지 않으십니까?"
그녀는 뱃바닥에 널부러지듯 앉은 남자에게 다가간다. 걸음을 걸어도 배가 흔들리지 않는다. 지팡이를 그의 머리 옆에 세워두고, 그에 기대어 남자를 위에서 내려다본다.
"마음이 바뀌셨사옵니까?"
잠깐이지만 그에게도 보였을 것이다. 그녀의 동공이 움찔대고, 목덜미에 격자굴곡이 일었다 사라지는 것을.
"아니면 이런 건 취향이 아니신가...?"
그리고 그녀는 정체를 드러낸다. 홍옥같은 뿔과 비늘, 그리고 용안을.
***
"히, 히이익..요...요괴!"
남자가 요괴라고 발언하자 순간적으로 파도가 거세집니다!
이런.
남아있는 신하들이 있었지요 참.
이 파도들도 모두 신하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거늘.
용왕 전하를 한낱 요괴 따위에 비교하다니 신하들이 상당히 화가 난 것 같습니다.
***
"ㅇ..요괴...하!"
쓰러질 뻔했다. 지금 나를 인면지주와 같은 선상에. 그녀의 광대가 움찔대며 짝눈이 뜨인다.
"그래. 남자 잡아먹는 바다요괴다. 왜? 계속해. 구석구석 만져 봐!"
구천에 혼백 한 줄기도 남지 않을 것을, 죽기 전에 억울함은 없어야지. 그녀는 여전히 분을 바르고 붉게 흐트러진 차림으로, 웃으며 계속하라 말한다. 허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허리를 굽히고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내 몸. 수만번 베이고, 수천번 찔리고, 수백번의 사경을 넘으면서. 피와 뼈를 뽑아 일생을 쓰며. 용문을 넘고 선계에 오른 이 몸..."
"힘들지만 모두 당신에게 안기기 위해 준비했어. 그런데 내 성의를 무시해? 감히!!!"
콰직! 지팡이가 뱃바닥을 뚫었다. 서늘한 바닷물이 스며들어 남자의 옷가지를 적신다. 나는! 너따위가 감히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용으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어찌! 어찌 네놈이 나를!!
그녀의 숨소리에서 으르렁대는 소리가 묻어나오기 시작한다. 거대한 무언가의..
***
"으, 으아아아아아아악!"
남자는 하란의 변하는 모습을 보고 마치 아이를 낳는 여인처럼 비명을 질러대고, 차가운 바닷물이 옷가지에 닿기 시작하자 몸을 덜덜덜 떨더니 이내 추욱 하고 늘어져버립니다.
윽.
지린내.
***
"네놈이 감히 무엇에 손대려 하였는지, 똑똑히...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허리를 펴서 우뚝 선다. 노기가 조금은 가라앉았나. 목소리의 떨림이 잦아든다. 매무새를 여미며 신하들에거 명한다.
"배를 부숴라. 이제 궁으로 가지."
꾸우욱. 매듭이 돌처럼 여며진다.
***
꼬르르르륵.....
물거품이 일어나면서 배는 조각조각나 사라지고, 바닷물 위에 있던 인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야 맙니다.
고요한 밤바다 위로는 그저 쓸쓸히 바람만이 지나다닐 뿐.
그 어떠한 일도 없었다는듯이 은은한 파도가 육지를 향해 나아갑니다.
***
- 반간자 인기적간이용지
- 바닷속 깊이 깊이. 개천궁으로 돌아간다. 여유롭게 옥좌어 앉아 거드름이나 피울 시간은 없었다.
"국문은 준비되었나? 이 놈도 끌어다가 묶어놓아라."
감히 용궁을 저어하려 들던 이 잔망스러운 것들을 어찌 처분할지 결정할 시간이다.
사실 재판의 결과는 이미 다 정해진 것과 진배없지만. 이 판결의 본질은 놈들이 그녀에게 무엇을 얼마만큼 줄 수 있고, 그녀가 놈들에게 얼마나 자비를 베풀 수 있을지가 아닐까.
***
두 남녀는 죄인들이 쓰는 나무 의자 위에 밧줄로 꽁꽁 묶여있습니다.
얼굴 곳곳에 들어있는 멍과 입술과 머리에서 흘리는 피는 개천궁의 신하들이 썩 부드럽게 대하지 않았다는 것만을 알 수 있게 해줄 뿐입니다.
참고로 현재 개천궁의 재정은 금화 8개입니다.
용왕 전하가 궁을 떠나있던 동안 섭정과 왕사의 능력으로 인해 세수가 증가했습니다.
수십에 달하는 병졸들이 삼엄한 기세로 그 사이를 둘러싸고 있고, 하란은 천천히 용왕을 상징하는 영광스러운 곤룡포와 면류관을 갖추고 앞에 나섭니다.
***
그녀는 소리없이 걷는다. 그렇게 걸을 때마다 옷자락이 좌우로 살랑댄다. 의자에 앉아 등을 곧게 편다. 형틀에 묶인 두 죄인을 붉은 용안이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입을 뗀다.
"네놈들이 아무리 주변을 속이려 하여도 스스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 진실인지."
산청검문의 간부가 그녀를 주무르면서 모든 것을 스스로 풀어놓았으니 더 이상 무엇을 따지랴?
"혈검문의 사주를 받아 용궁을 염탐하려 하고, 또 직접 염탐하러 한 죄! 이미 명명백백한 사실이니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다. 굳이 몸에 인두 놀이를 하고 싶다면 상관은 없지만."
이제부터는 저들이 그녀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에 따라 형량이 달라지리라. 냅다 참수당할 것이냐, 아니면 용궁의 하인으로라도 생을 이어갈 것이냐.
"스스로를 변호할 말이 있으면 해 보아라. 목숨이 소중하다면, 지금부터는 단어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야."
***
그들은 소리를 지르며 말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모두! 모두 혈검문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저같은 힘없는 아녀자가 무슨 일을 꾸미겠나이까! 저희의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억지로 시킨겁니다!"
"하지 않으면 저희를 죽이겠다 했습니다! 일가친척들 모두를 인질로 잡고...!"
하등 들어줄 가치가 없는 말들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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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따갑군. 순서를 지켜서 차분하게 말하면 인상이라도 재고하여 한결 나아졌을텐데. 그녀는 눈을 절반 감았다. 쯧쯧..
"그래 그래. 혈검문은 시켰고, 네놈들은 행했지. 어찌되었건 네놈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냐. 우리보다 그쪽이 더 두려웠을테니. 이해한다."
비릿하게 웃는다. 그런 식의 회피는 어림도 없다 이놈아.
"그런 개인사는 이 자리에서 따질 일도 아니다. 다른 말을 해 보거라."
고 또한 가급적 피를 보고 싶지 않으나, 감히 용궁을 범하려 한 죄를 가벼이 다루면 이 궁의 기강이 말이 아니게 될 테니. 그녀는 말한다.
"네놈들이 무엇을 내어놓을 수 있느냐에 따라. 당장 참수당할 것이냐, 아니면 용궁의 하인으로라도 생을 이어갈 것이냐, 아니면 사지 멀쩡히 집으로 돌아갈지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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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 왕사가 없다는 것에 감사를 표하십시오 드래곤.
"제, 제 가보를 드리겠나이다! 저희 증조부 때 부터 보존해오던 보검이 있사온데...!"
아녀자의 말입니다.
일개 한낱 아녀자의 보검이라?
"저, 저는 산청검문에서 나름 중요한 자리에 있습니다! 산청검문을 내어드리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산청검문을 멸하실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요!!"
이건 그 왈패...라고 해야할지 아무튼 그 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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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왕사가 있었으면..어...ㅋㅋㅋㅋㅋㅋㅋㅋ
"어촌 아녀자에게 보검? 더 자세히 말해봐라."
그나저나 이 친구들은 당황해서 그런지, 원래 그 정도인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것 같다. 특히 이 아녀자. 살려주시면 뭘 드리겠습니다. 좋아. 주고 난 다음에 그녀가 말을 바꾸면 어쩌려고.
그나마 중장기적인 지속이 가능한 왈패의 제안이 명줄 잇기에는 더 좋아보였다. 원래 가지고 있던 직책의 차이로 인한 한계이겠지만...
"멸할 생각은 없고. 그 검문이라는 곳이 꽤 크던데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치지? 어느 수준의 정보까지 모을 수 있나?"
이놈은 산청검문에서 보고 들은 것을 용궁으로 전해준다면 괜찮은 창구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예상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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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희는 인근 일곱개 마을에서 상납금을 걷고 있습니다...그리고 그 상납금의 절반은 혈검문이 휘하에 거느리고 있는...그러니까 혈검문의 직속 문파들에게 갑니다. 저희는 그 중에서도 패무문이라는 곳에 상납을 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말을 이어갑니다.
"패무문은 1년에 4번에 걸쳐 상납을 받으러 직접 오는데, 마침 곧 패무문의 사람들이 올 때입니다! 저를 살려만 주신다면 제가 어떻게든 정보를 빼내오겠습니다! 하명만 해주시고 제발 목숨만은...!"
천재적인 하란의 두뇌는 이 상황을 빠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니까, 산청검문 위에는 패무문이 있고, 그 위에는 혈검문이 있다 이거로군요.
혈검문은 말 그대로 복건성 전체를 아우르는 왕이고, 패무문은 이 인근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영주입니다.
그리고 산청검문은...패무문의 마름 쯤 되는거겠군요.
그런 이들에게 혈검문의 사람들이 직접 왔다하니. 저런 반응인 것도 이해가...되기는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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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 배신하지 못하게 담보를 잡고, 또 받은 정보를 어딘가와 한두번쯤 대조해볼 필요성은 있다. 하지만 정보를 듣는 것 자체는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다. 조정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우선은 보류해놓자. 아직 아녀자가 남았다.
"그 건은 한번 고려해보지."
"그리고 너. 어찌 바닷가에서 그물 마는 여인네가 보검을 가졌다는 건지 모르겠으나... 우선 이야기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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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제, 제 증조부가, 예전에 우연찮게 구하신, 보검이옵니다...! 저희 집에 있습니다! 풀어만 주신다면 제가 가지고 오겠습니다!"
...딱히 별 가치가 있을 것 같지는 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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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가 당기질 않는다. 오래도록 잘 써온, 그녀의 손과 일심동체인 지팡이칼에 이계의 불쾌검까지 가지고 있다. 무슨 신병이기를 우연히 얻었다면 진즉 팔아먹고 대궐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을 텐데. 산청검문의 뒤치다꺼리나 하니 그럴 리가.
"...다른 건 없고?"
이를테면, '높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듯 낮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있는 법이니, 저를 풀어주신다면 이 자가 정보를 빼내는 것을 함께 돕겠습니다' 라던가. 노골적으로 말하여 이 아녀자가 물질적으로 특출난 것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으니.
당연히 또 다른 좋은 생각이 있다면 그것을 말해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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