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 무림비사/스토리 - 미사하란
- 미지와의 조우
- 자경단원들도 다들 자기 할 일이 없어서 놀기 시작하고, 신채훈과 금소협은 꺄륵 거리며 장난을 치고.
하란은.
매우 심심해서 금방이라도 승천할 것 같은 이 밤!
쿵쿵쿵!!
누군가가 석가장의 대문을 두들겨옵니다!
***
외로운 아싸천재 하란이는 홀로 마당을 서성...서성...
심심한데 수련 더 하고 승천이나 해볼까 생각하던 중이었다. 바로 그때.
병병병! 저 쿵철인데요!
"게 뉘시오?"
누가 찾아온 것인가. 장주님 손님?
***
"크, 큰일! 큰일이요!"
대문이 끼익 열리자 우당탕! 하고 사람이 넘어집니다.
어? 석가장의 삼류 무인이군요.
"산에서, 산에서 요괴가 나타났습니다!!!"
와! 요괴!
아, 아니죠. 너무 레스주적으로 말해버렸군요.
음, 요괴라니! 그런 괴력난신이 있을리가요!
***
"요괴?"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두들기는 소리여. 귀신이면 모를까 호남에 온 지가 몇 달인데 요괴?
그녀는 한심하게 보는건지 안쓰럽게 보는건지 업계포상인지...어쨌든 짜게 식은 눈으로 넘어진 그를 내려다보았다.
"헛것. 보셨어요?"
***
"아 참말이라니까요! 저...저어 산에! 산에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물도 아닌 기괴한 것이 나타났다니까!!!"
괴 력 난 신
공자님은 그런거 없다구 하셨어 현혹되지 말라구 하셨어~~~
***
"나ㅋㅋㅋ참ㅋㅋㅋ"
그녀는 낄낄 웃었다. 저어 산에 요상한 게 있다 해서 가보면 보통 그냥 산짐승 아닌가. 겁 먹은 사람의 마음은 토끼 그림자에도 놀라는 법.
"그래 뭐, 당신이 업어주면 같이 가보지요."
그저 흉가체험 수준의 것으로만 생각하는 그녀였다.
***
"...저, 제가 누굴 업고 갈만큼은..."
아 그래서 안업으시게? 그럼 안가구.
그의 얼굴이 참으로 볼만해집니다.
"가, 가다가...고꾸라져도...전 모릅니다...."
그렇게 그가 하란을 업고 산으로 갑니다.
그리고 정말 한 일곱 번 정도 고꾸라지고 나서야 하란은 그냥 걸어가는게 더 낫겠다고 판단합니다!
***
"이상하다? 난 다리 한 짝 무게를 뺀 만큼 가벼울텐데."
이게...삼류 무인? 나 약 하 다!
아녀자 한 명을 업고 산을 오르지 못하다니. 우리 경단이들은 나 잘 업어줬었는데 그 넓은 등짝 그리워라.
그녀는 울며 겨자먹기로 무사의 등에서 내려왔다.
***
하란과 삼류무사는 열심히 걷고 걸어서.
산의 초입에 도착합니다!
"저, 저는 너무 무서워서...이 이상 올라가기는 조금..."
자경단이 낫다. 인정? 어 인정. 동의? 어 보감.
***
"나처럼 가련한 외다리 미녀를 요괴산에 홀로 보내요? 난 요괴신부로 팔려가는 제물인가요?"
이게 같이 와줬더니 확 마... 그녀는 방긋 웃고 있지만 미간에는 짜증이 매달려 있었다.
산에 아무것도 없으면 확 거꾸로 매달아버릴까 하다가도, 어쨌든 장주님의 사람에게 그럴 수 없다는게 안타까웠다.
그녀는 무사를 지긋ㅡ히 째려보더니 고개를 흥 돌렸다.
***
산으로 올라갑니다.
.
..
...!
뭔가.
뭔가가 이상합니다.
용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는 하란은, 조금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를 느낍니다.
이 이상으로 올라가면.....분명 이상한 것과 마주하게 될겁니다.
***
산을 오를수록...오를수록...그녀의 입에 걸린 웃음은 사라져 갔다.
"이게...뭐지?"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기이한 기감. 그녀는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검을 뽑았다.
***
- 크르르르륵....
쿵. 쿵. 쿵. 쿵.
하고.
무언가가 다가옵니다. 하란은 검을 뽑아들고 침을 꼴깍 삼킵니다.
시이이이이이.....
....?
그런데 왜 아무것도 안보이죠?
***
이 알 수 없는 작것이 이상한 술수를 부리는구나! 그녀는 직감했다.
"갈! 인간이든 귀신이든 모습을 드러내라!"
분노한 교룡은 호통을 친다! 어딜 감히 내 앞에서!
***
교룡검법 - 포효
강렬한 소리가 주변 일대를 진동시킵니다!
쿵. 쿵. 쿵. 쿵.
그러자 발걸음 소리가 빨라지더니.
나무만큼이나 커다란.
사람의 얼굴을 한 거미가 나타납니다.
하란은 직감합니다.
저건 못이긴다.
***
"......?"
산을 오르기 전에는 흉가체험인 줄 알았고, 산을 오르는 중에는 산음로인 줄 알았는데.
크툴루였을줄은 상상도 못했죠.
"뭐 이 ㅆ..."
죄송합니다 거미님 미천한 교룡은 물러날테니 다시 주무세요.
***
교룡검법 - 승천형
하란은 곧바로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그 거미 괴물이 쫓아오지는 않았습니다....
***
"야아 이놈아!!"
산 아래로 훌쩍 뛰어온 그녀. 벌벌 떨면서 기다리고 있던 무사에게로 휘청휘청 뛰어갔다. 사실 뛰어가다가 그의 눈 앞에서 한 번 넘어졌다.
"뭔데 저거! 뭐냐고!"
무사의 양 어깨를 붙잡고 짤짤 흔든다. 살면서 많은 경험을 했다고 자부하지만 '저런 거'를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
"마...말씀 드렸잖습니까!"
짤짤 흔들리는 삼류무사는 열심히 항변합니다.
"요괴! 요괴가 나타났다구요!!!!!!!!"
공자, 당신은 틀렸어.
***
"아하아아아.... 이 놈이 진짜 날 사람대갈거미한테 신부로 갖다바칠려고...."
그녀는 그의 어깨를 쥔 채로 스르륵 녹아버리듯 주저앉았다.
"나 다리에 힘 풀렸어요..."
그러니까 업어조. 여기서부턴 산길 아니잖아
***
하란은 업힌 채로 석가장에 복귀합니다........!
대체 뭐였을까요? 그 괴물.
***
"하으으아아으으..."
하란이 다크서클 두 배! 그만큼 사람대갈거미는 충격적이었다.
장주님한테 알리는 건 이 친구가 알아서 할 것이고, 그녀는 즉시 하란팸을 소집한다. 신씨랑 금소협이랑 킹용배 어르신...
"웃기는 소리인줄 알지만, 지금 웬 야산에 사람 대가리가 달린 거대 거미가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적어도 일류 무인 혼자선 엄두도 못 낼 기백이었습니다..."
하아...간담이 아직도 서늘해...그녀는 뜨거운 차를 홀짝거렸다.
***
모용배는 이 자리에 없습니다!
모용세가에 돌아가있습니다.
신채훈은 하란의 말에 얼굴에 물음표만 가득 띄우지만 금소협은 뭔가 아는 듯 합니다!
"그...그거 혹시. 인면지주 아닌가요?"
인면지주라!
***
"인면지주라! 냉큼 그게 뭔지 말하세요!"
산음로에서 트롤짓하더니 이번에는 캐리를 하는구나! 아이구 착하다 우리 금소협
***
"인면지주는..."
금소협이 엄청나게 진지한 얼굴로 말합니다.
"사람의 얼굴을 한 거미에요."
...
"끝이에요."
?
"그리고 엄청나게 강해서, 절정 고수 정도 쯤 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내단도 있구, 독도 엄청강한데...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사람고기를 좋아해요."
히이이이이이이이잉이ㅣㅇ이이이이이ㅣㄱ
***
"사람 얼굴은 나도 보고 오는 길인데^^"
정말 그것뿐? 그것뿐? 다행히도 진짜 그게 끝은 아니었다. 절정고수, 내단, 독, 식인.
"절정고수라..절정고수 정도라면..."
그녀는 슬쩍, 신씨를 본다.
"장주님 편하시게 우리가 가서 반 갈라놓고 올까요? 어때요?"
***
"...정말로, 가실 생각입니까? 말을 들으니 좀 위험해 보이던데."
신채훈은 난색을 표합니다.
"저.....는 빠져있을게요..."
산음로에서의 일이 기억났는지 금소협은 의기소침해집니다.
***
"신씨. 지금 대외적인 우리 직함이 뭐죠?"
자경단장, 그녀의 참모.
"인면지주라는 괴물이 장주님의 백성을 씹고 계시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야 있나."
"물론 꼭 우리 둘이서만 가야 하는 건 아니고. 자경단에 그 누에고치 친구들까지 끌고 가던지 말던지 상관 없긴 한데..."
"그래도 어쨌건 잡아 죽여야 하는 건 바뀌지 않아요."
***
무림뇌 신채훈은 설득당해버리고야 맙니다!
"...그, 그렇게 말씀하신다면...가는게 맞는 것 같긴 한데. 우리 둘은 조금 불안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정말 은잠무사들을 데려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
"둘만으론 좀 불안하긴 하니까..."
"...자경단 애들 마지막 실전이 언제였죠?"
***
"인면지주를 상대하는데 그 친구들을 데려가시겠다구요?!"
금소협이 놀랍니다.
"전부 죽을겁니다!"
아 렙제요 ㅡㅡ
***
"아.. 그럼 역시 장주님한테 손을 벌려야겠네요."
그렇게 선조둘째아들방검진이 6성에 다다르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굳이 우리 사비 더 털어서 용병을 살 이유도 없고, 요괴 하나 때문에 세가에 구원요청하기도 모양 빠지고, 자경단이랑 우리 빼면 전력도 없으니까.. 아으으...그럼 전 장주님 뵙고 올게요."
사실 자경단들도 용병이란 건 안 비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지개를 쭉 켰다.
***
늦은 밤, 하란은 석가장주 석지훈을 깨웁니다!
".....뭔 일인가."
흐트러진 모습으로 나오는 석지훈은 짜증이 난 얼굴로 하란을 맞이합니다.
***
"장주님. 늦은 밤중에 외람되지만.."
지금 주무실 때가 아녀요!
"지금 인면지주라 하는 사람 머리를 한 식인거미요괴가... 장주님의 땅을 활보하며, 장주님의 백성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대체 어디 숨어있다 이제사 튀어나온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존재는 제가 직접 확인하였습니다. 장주님의 하급 무사 한 명과 함께."
***
"????"
석가장주 석지훈은 이게 뭔 소린지 이해를 못한 것 같습니다.
"....이 새벽에 그런 농을 할 사람은 아닌데.....일단 앉으시고 자세히 설명해보시게."
일단은 믿어주는군요!! 하란이는 안믿었는데!
***
"아...그...경위가..."
하급무사 친구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녀는 장주님이 내어주신 자리에 착석했다.
"하급무사 한 명이 요괴가 나타났다고 난리를 치길래 속아주는 셈 따라갔다가, 그 요괴를 포착하였습니다."
"크기가 매우 크고, 사람 머리를 하고 있으며, 사람 고기를 먹고 또 독을 품고 있다 합니다."
"그 강함은 대략 절정의 무인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 내단도 품고 있답니다."
이런 걸로 설득될 리가 없잖아
"아닌 밤중에 홍두깨인 것은 알지만 장주님..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입니다."
"자경단으로는 어림도 없고 신 대주와 저 둘이서 잡아볼까 하였지만 역시 어렵다는 결론이 나와, 결국 장주님께 이런 흉보가 날아들었으니 송구스럽습니다."
***
".....정녕, 내가 그 말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석지훈이 생각하더라도, 하란처럼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 조사대를 먼저 파견해봐야겠군. 그런건 전설 속에서나 나오는 것인 줄 알았는데."
***
즉시 조사대가 파견됩니다!
***
아닌 오밤중에 인면지주를 찾으러 가는 조사대. 그녀는 멀어져가는 그들의 등을 대문간에 서서 바라보았다.
"이상하다. 이상해."
뒤통수가 간질간질하다. 저 거대 요괴가 어디서 나왔냐 하는 건 차차하고, 조사대가 모조리 잡아먹혀 돌아오지 못하거나, 아니면 아예 인면지주를 보지 못하고 돌아와 그녀 자신만 거짓말쟁이로 몰릴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직감..
당장 그녀도 인면지주를 즉각 눈으로 확인한 건 아니었으니까.
"내가 또 무슨 엉뚱한 생각을. 쟤네들 돌아올 때까지 시간이나 보내야지."
그녀는 터덜터덜 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신경 거슬리게 엇갈리는 발자욱 소리가 작게 울렸다.
***
나무 동방 청제보아 천룡신
나무 남방 적제보아 천룡신
나무 서방 백제보아 천룡신
나무 북방 흑제보아 천룡신
나무 중앙 황제보아 천룡신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
제질병고액 피구설 철마장군
순행오방 윤회겸신사자
풍사장군 파적간귀 영불내침
옴 급급 여율령 사바하.....
75%!
수련을 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흘렀습니다.
낮이 되었군요.
쿠웅!
그 때 대문이 열립니다!
거기에는, 상처입고 피를 흘리는 부상자들이 가득한 조사대가 있었습니다!
"의원! 의원을 불러오라!"
조사대 책임자가 급히 소리치고 석가장은 난리가 납니다.
- 작전명 대모벌
- "후..."
어느새 아침 해가 떴다. 예전에는 행공을 하면 열기 덕분에 온 몸이 땀에 푹 절곤 하였는데, 이제는 그런 것 없이 피부가 뽀송뽀송하다.
하지만 몸에 배인 습관은 참으로 무서운 법이라 그녀는 평소처럼 몸을 가볍게 씻으려 했다.
씻으려 했지만... 뭐 그럴 수는 없었지. 그녀 또한 정신없는 분위기에 맞춰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다.
"맙소사, 그 거미의 짓입니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
책임자는 인상을 팍 씁니다!
"괴물...정말 괴물이었습니다. 산해경같은 요괴 모음집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인면지주의 생김새와 완전히 똑같은 놈이..."
그는 그리 말하더니 쿨럭쿨럭 기침을 합니다. 땅바닥에 검은 피가 왈칵 쏟아집니다.
"어....?"
털썩.
쓰러집니다!!!
하란의 얼굴이 굳습니다.
이거, 절대 가벼운 사안이 아닙니다.
***
"이보시오 당신 피 색이...?"
꼭 검은 먹을 풀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이것은 분명...맹독에 당한 징후.
하란은 쓰러진 책임자를 끌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양 손으로 머리를 쓸어내렸다. 일이 생각했던 것 보다 커지고 있다.
그녀는 휘청거리면서 장주님이 계신 곳으로 달려갔다.
***
석가장주 석지훈을 향해 하란은 절뚝거리며 달려갑니다!
쿠웅!
문을 거칠게 열자 석지훈은 강서궁문의 아가씨와 서로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가 깜짝 놀랍니다.
"아니.........."
뭔가 화를 내려다가 하란의 굳은 얼굴을 보고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눈치챈 것 같습니다. 그는 곧바로 벌떡 일어나 검을 챙깁니다.
"내 잠시 다녀오리다."
"석가가. 언제나 몸을 중히 여겨주세요."
"걱정 마시오."
그리고는 하란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옵니다.
"우선 자리를 옮기지. 무슨 일이 벌어진겐가?"
***
"아, 장주님."
둘이서 사이좋은 시간을 보내고 계신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급하다구요!
"장주님의 조사대가 인면지주의 존재를 확인하였습니다. 그 증거를 온 몸에 달고 돌아왔더군요."
"이거 아무리 보아도 예사 일이 아닙니다. 속히 잡아 족치지 않는다면, 또 놈이 민가로 내려간다면, 어떤 참상이 일어날지 모르겠습니다."
***
석지훈의 얼굴은 하란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굳어만 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둘은 조사대가 난리난 그 현장에 도착합니다.
우득.
석지훈의 손에 핏줄이 올라옵니다.
"...당장 그 괴물을 쳐죽이러 가도록 하지. 정예들을 모으겠네. 자네도 갈텐가?"
***
은잠무사들이 다시 일어나는 건가? 자신을 향하던 그들의 무공을 다시 볼 수도 있겠다는 작은 바람이 몽글거린다.
"기꺼이. 신 대주를 불러오겠습니다."
이런 큰 일에 적호검희 미사하란이 빠질 수야 있나! 그녀는 즉시 신씨를 부르러 간다. 그도 요괴 사냥에 호의적이었으니 같이 데리고 갈 수 있으리.
그러고보니 금소협은 너무 혼자서 따로 노는 모양인데... 이번 일만 끝나면 좀 챙겨줘야겠다. 능도도.
어라...? 큰 싸움을 앞두고 이번 일만 끝나면...?
***
신채훈을 불러옵니다!
석가장주는 은잠무사들이 아닌, 다른 이들을 데려옵니다.
절정 고수 셋입니다.
"나머지는 당장 치안을 강화하도록 하라."
추상같은 명령이 떨어지고 총 여섯 명이 모입니다.
초절정 고수 하나.
절정 고수 넷.
일류 고수 하나.
출발할까요?
***
출발합니다!
하란의 다리가 이동에 살짝 걸림돌이 되지만, 초절정 고수 하나의 힘으로 모든 것이 괜찮아집니다.
일행은 순식간에 하란이 처음 인면지주를 맞이한 그 장소에 도착합니다.
"여기인가?"
석지훈이 하란에게 묻습니다.
***
"그렇습니다. 분명히...."
그녀는 눈을 지그시 감고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선다. 이곳이 확실한지 다시 확인해보자.
두 손을 살며시 들어 보이지 않는 흐름을 더듬는 것처럼. 처음 이 산을 올랐을 때 느꼈던 이질적인 기운을 다시 잡아채 보려고 시도한다.
***
기감이 느껴집니다.
바로.
뒤에서!
"흥!"
석지훈의 검이 번뜩하고 빛나고 검사劒絲가 솟구쳐 오릅니다!
- 키에에에에에엑!!!!
서걱.
인면지주의 다리 하나가 가볍게 잘려나갑니다! 곧바로 인면지주는 실을 뿜어 나무에 붙이고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뭣들 하는가! 쫓아라!"
석지훈이 소리치자 모두가 달리기 시작합니다! 하란도 마찬가지입니다.
***
뒤?
황망히 뒤를 돌아보자 보이는 것은 떨어져 나가는 인면지주의 다리였다. 역시 초절정이나 되는 고수란!
한한검의 신호에 따라 모두가 뛰기 시작한다. 그녀 또한 처음에는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역시 머잖아 뒤쳐지기 시작한다.
"앞길을 불로 막겠습니다!"
거미줄은 불에 잘 녹아버리지. 그녀는 내공을 끌어올리고 검을 뽑았다. 승천형으로 비스듬히, 높게 뛰어오르고는.
"게 섯거라 이놈아!!"
화룡포로 놈의 앞길을 빗자루 쓸듯 하여 버린다.
***
교룡검법 - 승천형
콰아아앙!
하란의 몸이 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하란이 검을 휘두릅니다.
교룡검법 - 화룡포
검이 일직선으로 쭈욱 뻗자 불길이 뻗어나갑니다.
화르르륵.
하지만 인면지주는 그 불을 뚫고 도망칩니다!
"뭐 저런...!"
신채훈은 어이 없어하며 앞으로 달려나갑니다!
***
"저 겁대가리 없는 놈..!"
꼴에 강한 요괴다 이거지! 하늘에서 뚝 떨어져 반쯤 넘어지며 착지한 그녀. 이를 갈고 다시 뛰어오른다.
어젯밤에는 홑몸이라 부리나케 도망쳤다. 하지만 강력한 아군이 뒤를 받쳐준다면 필요 이상을 두려워할 것은 없다.
다시 한번, 승천형. 높게 뛰어올라...
"이것도 뚫고 갈 수 있나 보자!"
폭룡강하. 그녀가 인면지주와 육박하게 될지라도, 아주 잠깐의 시간만 벌면 아군들이 도착할 것이다. 그녀는 그들을 믿었다.
진노한 화룡 수 마리가 거미의 사방을 노리고 떨어진다.
***
교룡검법 - 승천형
하란의 몸이 다시 한 번 납니다.
"소저!!!!!"
신채훈이 소리를 내지르고, 나머지 세 절정 고수도 비명을 지릅니다!
교룡검법 - 폭룡강하
용이 땅으로 내리꽂히면서 강력한 충격파를 만들어냅니다!!!
콰아아아아앙 - !!!!
그러나.
인면지주는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섬짓.
하란은 급히 검을 듭니다!
퍼억!
실이 하란의 검을 붙잡고 저 멀리 던져버립니다. 하란의 눈이 인면지주의 얼굴을 봅니다.
중원의 전통적인 아리따운 미인의 얼굴.
그 얼굴은....
한 쪽 눈은 왼쪽을 바라보고, 오른쪽 눈은 위를 바라본 채로 웃고 있습니다. 인면지주의 다리가 들어올려지고 하란의 가슴을 노립니다.
석가권 - 풍광타
퍼어어엉!
강력한 내기를 담은 일격이 다리와 맞부딫히고 그 뒤로 신채훈의 검이 날아듭니다.
비취검 - 혈비검루
촤아아아악!
인면지주의 몸통에 긴 검상이 일어나고 인면지주는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훌쩍 뛰어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
쾅쾅쾅쾅! 화룡 네 마리가 유성처럼 연달아 꽂힌다. 십년 공력을 단 일 검에 담아. 힘있게 내려쳤건만.
깡-
?
검이 놈의 다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엄습했다. 이 감촉이 아닌데?
다급히 검을 들었으나 그마저 거미줄에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큰 낭패라 직감하면서도, 본능적으로 와룡수의 초식을 열 준비를 하며 다음 공격을 대비하였다. 맨손으로 막거나 피할 수 있는 공격인지는 미뤄두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엎어질 수는 없으니.
거미의 괴기한 대가리와 날아오는 다리. 그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질 때, 구원의 손길이 마침내 찾아왔다. 그녀에게 한 눈을 팔던 거미는 아군의 공격을 허용하고는 다시 도망친다.
"빌어먹을...."
검도 저 멀리 날아가선! 그거 찾으러 가는 사이에 거미와 아군들은 천 리도 더 가겠다! 괜히 따라왔나? 그녀는 검이 날아간 곳으로 뛰어가며 이를 갈았다.
***
하란은 급히 검을 찾으러 움직입니다.
신채훈은 어느새 훌쩍 뛰어 하란의 검을 쥐고 건네줍니다.
신씨가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아니 이게 머선소리죠.
"너무 무모한 돌격이었습니다! 미사 소저!"
신채훈은 검을 돌려주면서 살짝 화를 냅니다.
아니...화낼 것 까지는...
***
"믿고 있었으니까~ 신뢰의 도약 같은 거죠?"
사실 아군 그 자체에 대한 신뢰라기보단, 그녀가 죽고 나면 그들은 뒷일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니 반드시 지켜내려 할 것이다.. 이런 믿음이었지만.
"그럼 신씨가 대신 돌격해줄래요? 거미 앞길로 데려다줄게요."
그녀는 신씨의 허리를 팔로 감았다. 어머나 세상에.
"꽉 잡아요!"
***
"다 큰 아녀자가 무슨...."
신채훈의 말은 끝맺음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하란이 다짜고짜 허리에 팔을 감았기 때문이죠. 아 ㅋㅋ 꼬우면 떨쳐내라고 ㅋㅋ
꽉 잡으란 말이 있고. 하란의 심후한 내공이 미친듯이 회전하기 시작합니다!
교룡검법 - 승천형
콰아아앙!
내공이 발에서부터 폭발적으로 터지고, 둘의 몸을 가볍게 하늘 위로 쭈욱 올려버립니다.
"거리가 너무 멉니다 소저!"
채훈은 눈매를 좁히며 저 멀리 보이는 인면지주를 보고 말합니다.
***
벌써 저만큼 도망쳤나? 다리가 하나 잘려도 7개나 남아있다고 저래 빨리 달리나? 난 하나밖에 없는데! 괘씸하다!
"신씨! 밟고가요!"
그녀는 칼로 교룡린의 초식을 취하면서 신씨의 발판을 자처한다.
***
교룡검법 - 교룡린
검을 앞세워 내지르고 소리칩니다! 신채훈은 고개를 끄덕이곤 발을 검끝에 내딛습니다.
?
아무런 느낌이...?
터엉!
검이 부러질듯이 급격하게 휘고 곧 하란의 눈에는 저 멀리 날아가 검기를 뿜어대는 신채훈의 모습이 보입니다!
카가가가가각!!
검과 다리가 맞부딫히면서 불꽃이 튀어오릅니다.
하란은 이대로 있다간 금방 떨어져내릴겁니다!
***
"으...으아아..!"
역시 무시무시한 힘이다. 공격이 아니라 단순히 밟고 가는 것으로도 이만큼의 충격이 전해지다니.
남의 힘에 밀려서 떨어질 바에야 자신이 직접 땅으로 뛰어내려버리는 것이 훨씬 안정적일 것은 자명하다.
그녀는 꼴사납게 휘적거리는 것을 멈추고 아래를 주시했다.
***
교룡검법 - 폭룡강하
완전히 힘을 쏟지는 않고, 하란은 기수식을 취하고 내공을 조금 사용하며 안정적으로 착지합니다!
쿠우우우웅....!
흙먼지가 비산합니다.
저 멀리 인면지주와 4명의 절정 고수들이 맞붙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란.
왜 저 인면지주는 여기에 있을까요?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을까요?
분명히 사람을 몇 번이고 마주쳤는데 계속 같은 위치에 있다니요?
***
쿠웅- 성한 무릎을 꿇고 영웅 착지를 하였다. 고운 흙먼지들이 난폭하지 않게, 부드럽게 비산한다. 저기 먼발치에서 아군들이 인면지주와 맞붙는 것이 보였다.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기감만으로도 그들의 힘과 살기가 느껴졌다.
서둘러 합류하기 위해 한 발을 내딛었을 때. 그 때 어떤 생각 하나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저게 왜 여기에 붙박혀 있던 거지?'
그녀가 아는 것만 해도 세 번이다.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기 전. 인면지주는 하급무사, 그녀, 조사대와 무려 세 번을 조우했다. 그리고 조사대와의 만남에서는 피 맛도 봤지.
하지만 인면지주는 도망치지도 않고 피를 더 보려 하산하지도 않았다. 어째서일까. 지켜야 할 것이 있나? 지켜야 할 것. 둥지..새끼..알..?
"....!"
그녀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어차피 당장 저리 가도 큰 도움은 못 된다. 혹 놈의 둥지가 있다면 필경 그 놈의 냄새가 진하게 묻어있을 것이다. 그 사이한 기운이!
"어디냐...!"
귀뚜라미 더듬이처럼 그녀의 기감이 까딱거린다.
***
과연 그게 새끼나 알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감을 펼치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합니다.
.
..
...
....
.....
.....!
절벽.
저 끝에 있는 절벽 어딘가에 무언가가 있습니다!
***
그녀는 싸우는 아군들을 한번 더 보았다. 저 진짜 괴물 4명이 괴물 조무사 거미한테 당하는 일 따위는 없겠지?
그녀의 기감으로 펼친 작은 천라지망에 걸린 것은 바로 저 쪽의 절벽. 지체없이 그 쪽으로 뛰어간다. 뭔진 몰라도 아주 딱 걸렸어!
***
절벽으로 갑니다!
....거긴 정말 깎아지른듯한 단애절벽입니다!
저 아래에 뭔가가 있는 듯 한데........
***
"아이구, 내 팔자야."
잔질인이 되어서 안락한 삶을 누리지 못할 망정 절벽이나 타게 생겼구나.
눈쌀을 찌푸리면서 깎아지른 절벽 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검을 허리에 다시 차고. 사지가 아닌, 가지고 있는 삼지라도 잘 써서 내려가보자.
***
내공을 이용해 절벽의 돌에 손가락을 박아넣고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
한참을 내려가자, 꽤 큰 동굴이 단애절벽 중간에 떡하니 위치해있습니다.
***
"후, 하나 둘 세엣..!"
절벽 중간에 큰 공동이 있다. 예전 절벽을 부수다 찾은 동굴을 생각나게 한다. 그녀는 동굴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두 세번 다리를 흔들어 반동을 주고, 그 힘을 이용해 동굴 안으로 쏙 뛰어내렸다.
스릉!
그 안에 착지하자마자 무릎을 꿇고 검을 뽑아 주변을 경계하는 하란. 어두컴컴하지만 안력을 돋우고 기감에 집중한다면 아무 문제 없다.
소리를 죽이고 동굴 안으로 걸어들어간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기분이다.
***
착.
안으로 들어갑니다!
고오오오오오...
바람이 몰아치고, 살짝 춥습니다.
...흠?
하란은 안 쪽으로 들어갑니다.
딸랑...딸랑...
무언가 방울 소리가 들립니다.
...방울?
***
딸랑..딸..랑...따...ㄹ...라.....ㅇ
그녀의 귀가 쫑긋 선다. 칼 끝은 어김없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정렬되었다.
느낌이 좋지 않아. 이 쪽으로 오세요.. 이리 오세요.. 하면서 꼬드기는 느낌이다.
그녀는 은잠무사들과 싸울 때처럼 불덩이를 소리가 나는 곳으로 던진다. 시야를 더 또렷히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 때 신씨는 너무 귀신같은 것들과 싸운다고 짜증을 부렸지만, 이번에는 진짜 귀신이었다.
***
불덩이를 던져봅니다!
퍼엉!
이글이글....
안에는 아무것도 안보이고 오직 어둠 뿐입니다.
그렇지만 방울 소리는 선명합니다.
***
"뭐, 이렇게 되겠지."
귀신 같은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는데 진짜 귀신이 보일 리가 없잖아.
좋아, 누군진 모르지만 네놈의 꾀에 속아주마. 그녀는 입을 앙다물었다.
더 이상의 조명 없이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길 기다리면서. 오직 검 한자루와 의족 한 쪽만을 부여잡고. 소리를 따라간다.
따각, 딸랑, 따각, 딸랑.
- 한 짝의 다리로 도착한 그곳에
- 소리를 따라갑니다.
딸랑...딸랑...
한참 앞으로 가자, 새하얗고 삼각형으로 긴 모자를 쓴 여인이 방울을 들고 흔들고 있습니다.
딸랑....
뚝.
"....어머?"
여인이 뒤를 돌아봅니다.
"쥐새끼가 들어왔네?"
***
"누가 쥐새끼지? 시궁창에서 구른 것처럼, 망측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검을 들어, 가로로 눕힌 상단세. 가늘게 뜬 붉은 눈이 푸른 칼날 위에서 빛난다.
"나한테 할 말은 없고? 그 거미 관련해서 말이야."
***
"그 귀여운 아이 말이냐?"
여인이 빙긋 웃으며 방울을 흔듭니다.
딸랑....딸랑....
방울소리가..........?
윽!
하란의 몸이 순간적으로 무너집니다! 정신타격 1단계를 입습니다!
"알아서 뭣하려구...으응?"
***
"으으윽!"
일순간 하늘과 땅이 뒤바뀌듯 머릿속이 흔들린다. 하마터면 완전히 넘어질 뻔 하였다. 요물 주제에 감히...?
캬라라라락!
교룡검법 - 포효.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소리에는 소리로. 그녀는 즉시 자세를 고쳐잡고 여자의 공격에 맞받아쳤다.
"하! 귀여운 아이? 자기 입으로 다 말해주고 알아서 뭣 하게는 무슨..."
"내 구역에 그깟 것을 풀어놓은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야."
***
딸랑...딸랑....
방울이 계속 흔들립니다! 하란의 내공이 용솟음 치면서 검을 휘두르지만, 머리가 아파오면서 내공은 흩어집니다!!!!!!
"호호호....말이 너무 거칠구나. 서생鼠生아...."
방울의 소리가 점점 더 커져만 갑니다!
정신타격이 2단계로 변화합니다!
지금까지의 적과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적입니다!
***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뭔가를 기대한 행동이 아니라 그저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행동에서 단서를 얻었다.
기운이 단전에서 타고 올라 귓구멍에서 몽글몽글 맺힌다. 그녀는 고개를 조금 숙이고 도끼눈을 뜨며 여자를 노려보았다.
***
내공으로 귀를 막습니다!
".......? ......! ......."
뭐라 말을 걸고 방울을 흔들지만 안들립니다!
한결 낫군요!
하지만 정신적으로 두려움이 스멀스멀 가슴으로 올라오는 기분입니다.
***
교룡검법 - 포효
검을 꺼내들면서 튕기자 뭔가 진동이 울립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찌르기!
불꽃이 앞을 가르며 화악 날아듭니다!
우웅...웅...우웅....웅...
진동이 느껴지면서 기이한 결계와 함께 불꽃이 막혀 흩어집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이제까지의 적과는 완전히 다른 유형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신' 입니다.
***
머리가 팽팽 돌기 시작합니다.
천재의 머리는, 범인의 그것과는 궤를 달리 합니다.
지금부터 아주 잠시간의 여유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
하란.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서 생각해봅시다.
몸은 점점 용에 가까워지고 있으나 그 정신은 아직 인간에 가깝습니다.
당신은 용입니까? 사람입니까?
용이라면 그 강대한 정신이 어찌하여 저 한낱 술사에게 농락당한단 말입니까?
사람이라면 남들보다도 굳건한 정신을 가지고서 술사에게 일방적으로 휘둘린단 말입니까?
왜?
이유가 뭐겠습니까?
하란.
당신은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인간 사회에 녹아들어 살아가며, 용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어떻게든 일을 하려 하면서도.
스스로 용이 되어가고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 불합리함.
그 불일치성.
그 모든것들.
심기체불일치.
기와 체는 일치를 이루었으나 심마가 당신 안에 가득합니다. 상대는 그 균열을 교묘히 파고들어 당신을 농락하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균열을 막아야 할 때입니다.
선택하십시오!
당신은.
누구입니까?
***
이럴 리가 없는데. 내가 용이 아니라 덜 된 교룡이라도, 내가 정말 그와 같은 존재라면 저런 방울 따위에 휘둘릴 이유가 없는데.
내가 왜.....왜.......
....
아직은 아니었던 건가? 용이 될 거라고 하면서 세속에 뿌리내린 것이 실수인가? 몸은 용이 되어가는데 정신은 인간에 붙들려서. 그 경계 사이에 선 채 이 쪽으로도 저 쪽으로도 가지 않고. 그저 그 경계 위에 서 있기만 하며....
아아, 달리는 마차 위에 중립이란 없거늘, 너의 친우가 아닌 자는 네게 중립을 요구할 것이나, 진정한 친우라면 과감하고 비범한 결단을 요구할 것이다.
스승님의 가르침이 불현듯 떠올랐다. 자신이 써먹고도 그만 잊고 있었다.
중립은 없다. 중간은 없어.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것은 언제나 극렬주의자의 손...
그녀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세속에 걸치고 있던 발을 떼어.
옮긴다.
***
용의 비늘이 솟구쳐 올라가고, 동공이 가늘어집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용이 되었으매.
당신은 인간으로 화한 용의 현신이라.
쩌엉!
까드드드드득.
무언가 깨졌습니다.
정신이 3단계로 상승합니다!
심장이 아파옵니다.
뿔이 자라납니다.
- 호거용반
- 담천조룡
- 복룡봉추
- 용반봉일
- 용사비등
- 와룡봉추
- 항룡
- 비지중물
- 파벽비거
- 운증용변
- 어룡장화
...
- 화룡점정
- 등용문
끄아아아아아악!!!!!!
정신이 움직입니다.
위로.
위로.
그 위로.
더 위로.
더 위로!
우주와 삼라만상을 아래로 굽혀보고 온 인세를 구슬 하나로 바라보는.
저 천상의 세상!
선계로!
빛이 번쩍입니다.
하란은 정신을 차립니다.
스스로의 몸은 벌거벗고 있으매, 없었던 다리가 멀쩡히 자라나 있습니다.
다리는 오색찬란한 구름을 밟고 있고 그 앞에는 거대한 신주문이 자리잡고 있으며 고개를 한참이나 꺾다못해 허리를 꺾어야 보이는 현판에는
- 등용문 -
이라 적혀있습니다.
선녀들이 다가와 하란에게 옷을 입혀줍니다. 필기구가 주어집니다.
쿠우웅!!!!!!!
사아아악 하고 문이 하란을 통과해 지나칩니다! 어느새 하란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기와를 입힌 거대한 누각 아래에 꿇어 앉아 있습니다.
- 지금부터!!!
거기에는 얼굴에 빛이나 알 수 없는 존재가 앉아 있습니다.
사람인지, 영물인지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가.
- 등용문의 시험을 시작한다!!!!
문제가 주어집니다!
통치권역 내의 인간들과 용의 권속 간에 시비가 걸렸다.
인간들은 물고기를 잡아 생을 연명한다.
권속들은 강과 바다의 존재 들이다.
인간들은 용에게 더 많은 식량을 베풀어달라 간청하고, 권속들은 씨가 마른다 여긴다.
이 경우에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방향과 권속에게 이로움을 주는 방향으로 각각 판결하고 그 이유를 서술하라.
단, 폭력적인 방법은 사용할 수 없다.
***
평생 살아온 곳에서 발을 뗀다.
두렵지만, 옮겼다. 옮긴다.....
걸쇠가 풀린다.
.....
콰아아아앙!!!!!!!!
가슴 속에서 화산이 터질 듯 한 충격이 그녀를 덮친다. 그녀는 정말, 화산 위에 앉아있던 것 마냥 솟구쳐 날아가버린다. 몸의 혈관 한 줄기 줄기에 쇳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괴로움에 잔뜩 찌푸린 눈으로, 어느새 저토록 작아져 가는 세상을 내려다보며, 한 번 질끈 감았다 떴다.
"아....."
그곳에는 천당이 있었다. 그녀가 작은 세상에서 배웠던 바에 의하면 천당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오색구름을 밟고 있어도 부끄러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밀려오는 감정은 시원한 개방감이었다.
태산보다 높은 현판을 지나, 옷을 입고, 붓을 쥐고, 두 무릎으로 꿇어앉으니 황금 기와 아래의 누군가가 크게 외치는 말. 등용문의 시험을 시작하겠다.
언젠가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게 지금 당장일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녀는 언제나 지금 당장에 있고, 미래에 살지 않으므로, 시험이 언제 찾아오든 그것이 지금 당장이라는 사실이 변하진 않으리라.
'맙소사 스승님.'
과거 보라고 그토록 노래를 하시더니 이 모든 걸 예측하셨던 건가요?
기쁘면서도 긴장을 억누르기가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그런 사정 알 것 없이 문제는 주어지고. 그녀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것을 풀어야만 한다.
그녀는 혀를 잘근거리면서 머릿속 내용물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붓을 들었다.
- 하란의 답안지
- 인간에게 이로움
가령 금어의 시기나 잡을 수 있는 물고기의 크기 따위를 정하는, 인간과 권속 사이에 모두 지켜야 하는 규칙을 새로이 정하겠사옵니다.
표면적으로는 쌍방에게 공정한 규칙이겠사오나 결과적으로는 인간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규칙이옵니다.
아무렴 영물이 아닌 이상 규칙을 해석하는 것에 있어서 물고기의 심계와 인간의 심계가 같을 수는 없는 까닭이옵니다.
인간들은 제 상전에게 세를 바치고 이웃과 싸우며 법률 규칙을 다루는 데에 이골이 난 자들이옵니다.
규칙에 교묘히 빈틈을 심어 둔다면 인간들은 노련히 틈을 파고들 것이오나, 인간과 마주할 권속들은 그러할 수 없을 것이옵니다.
권속들을 위한 최소한의 걸쇠는 걸어두겠사옵니다만 그것은 오직 인간들이 막무가내로 그물을 던져 미래에 먹을 것들까지 망쳐버리는 우를 막기 위함이옵니다.
인간들과 권속들, 주변 환경에서 도출되는 여러 수치를 종합한다면,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 먹음 먹이를 물에서 얻을 수 있을지 계산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리고 규칙을 농락하면서도 규칙에 얽매이는, 탐욕스러운 인간들의 수확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최대치에 가깝게 수렴할 것이옵니다.
그처럼 산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날마다 변화하는 숫자들을 면밀히 살피고 규칙을 치밀히 보강하고 변통케 하는 것을 부지런히 해야 하옵니다.
이로써 권속들의 피와 살로 인간들을 배 불리는 도축의 체제가 완성되는 것이옵니다.
권속에게 이로움
인간들에게 하늘과 바람을 읽는 법을 깊게 알려주어, 더 먼바다로 나가 고기잡이를 하도록 명하겠사옵니다.
또한 그 먼바다에 진귀한 것들이 숨어있다는 소문을 인간들 중에 적절한 방법으로 전파하겠나이다.
이는 가까운 권속들에게 지워진, 인간의 어로에 대한 부담을 먼 권속과 일부 나누어지게 함으로써 연안의 권속들의 숨통을 당장 트이게 할 것이옵니다.
인간이란 족속은 본디 산이 있으면 올라가고, 바다가 있으면 나아가고, 또 할 수만 있다면 그 시꺼먼 물속까지 얼굴을 들이밀려하는 습성이 있사옵니다.
만약 적절한 능력과 동기가 주어진다면 인간들은 기꺼이 고난과 죽음을 무릅쓰고 그곳으로 향하리라 의심치 않사옵니다.
많은 인간들이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일부는 뭍으로 되돌아와 손에 넣은 진귀한 고기와 보화들을 내보여 다른 인간들의 부러움을 살 것이옵니다.
오직 죽음의 위험을 뚫어내는 소수의 인간들에게 귀한 것들을 쥐여주다 보면, 그들은 위험 속에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학습하고 깨달을 것이며,
마을의 아해들은 앞선 어른들의 영웅담을 듣고 자신도 언젠가 먼바다에 나가 보물을 얻겠다는 꿈을 꿀 것이니,
그들은 스스로 제 기질과 탐욕에 눈이 멀어 사지로 뛰어드는 것이옵니다.
이처럼 폭력과 무력 없이 인간들을 현혹해 그 수를 조절하여, 권속들은 한결 편하게 자식을 낳을 것이오니, 이것이 권속에게 이로운 판결이옵니다.
***
제출합니다!
선계를 잠시간 둘러보실 수도 있고 시간을 스킵하셔서 바로 채점 결과를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종이에 답안을 제출하고....잠깐 기다리라구요? 아 알겠어용...
그녀는 잠시 황금 누각의 시험장을 뒤로 하고 걸어나왔다.
두 다리로! 지팡이 없이 절뚝거리지도 않고! 그녀는 이 낮선 기쁨에 말을 잃고 되찾은 다리를 매만졌다.
"와...와...선계가...이게 선계야?"
탁. 탁. 타탁..타타타탁..
오색구름 위를 뛰어다닐래용! 두 다리!
***
하란은 두 다리를 이용해 오색찬란한 구름 위를 뛰어다닙니다!
와!
이게...두 다리가 있는 사람의 삶...?
약간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립니다.
다리는 자유롭고, 바닥은 살짝 푹신합니다. 다리가 아프지도, 시큰거리지도 않습니다.
구름은 마치 하늘과 지평선을 이루듯이 쭈욱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퍼져있는데.
신기한 것은 아까의 시험장 외에는 아무런 건물도 보이지 않습니다.
***
"와! 와아!"
아무것도 모르던 천진한 소녀 시절이 이랬을까. 가진 것 하나 없이 흙탕을 굴러도 행복했던 그 시절.
그녀의 얼굴은 어울리지 않게 그 때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제 풀에 지칠 때까지 두 다리로 구름 위를 뛰어다녔다.
내공이던 외공이던 있는대로 끌어모아, 끝없는 저 구름 끝까지!
한 짝의 다리로 달려서 도착한 그곳에 천당은 있었던 것이다.
***
모든 내공을 다 소진하기 직전까지 원 없이 선계의 구름 위를 뛰어다닙니다!
두 다리.
너무나 소중한 이 두다리.
지금 이것이 꿈이라면 절대 깨고 싶지 않은 너무나 소중한 상황.
그렇지만 시간은 흐르고, 현실은 언제나 잔인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 충실하게 신나게 두 다리를 놀려 선계의 구름 위를 거닐고 하란은 돌아옵니다.
이제 채점이 시작됩니다!
- 판결 : 인간의 이로움 채점결과
인간에게 유리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나 권속들은 아예 배제되는 쪽에 가까워 보이는 것이 아쉽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권속들로 하여금 인간들을 살지우는 표현을 보아 극단적인 면모가 보이며 이에 주의하기를 요한다.
앞으로 정진하여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면서도 권속들을 신경쓰는 성군의 자질을 갖추기를 기대한다.
채점결과 : 美
- 판결 : 권속의 이로움 채점결과
권속에게 유리하면서도 인간과의 상생을 꾀했음에 훌륭한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들에게 새로운 방법과 지식을 전수함으로써 갈등의 원천을 없애버리는 것에 있어 뛰어난 재치라 논하겠다.
다만 아쉬운 점은 권역 내의 인간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점인데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며 경험과 지식의 부재로 인한 것이니 괘념치 않는다.
경험과 지식의 부재 속에서 이만한 답을 내었다는 것은 곧 재능이라 볼 수 있다.
채점결과 : 秀
종합평가 : 優
합격여부 : 合
미사하란은 등용문의 시험에.
합격합니다!
까득.
까드드드드드드드드득!!!!!!!!!!!!!
몸이 커지고, 피부는 벗겨지며 붉은 비늘이 완전히 몸을 뒤덮습니다. 뿔은 거대해져 사람보다도 커지고 손과 발은 4개의 발톱을 달고 있는 짧은 발과 다리로 변합니다.
수염이 생기고, 몸은 길어지고.
입에는 붉고 영롱한 기운이 가득 채워진 여의주가 물려집니다.
- 승천하라!
파아아아앙!
하늘. 저 높이.
지금 이 곳 보다 더욱 더 높이!
미사하란은 날아오릅니다.
인간이던 시절, 이도저도 아니던 시절.
그 때에는 보지 못했고, 볼 수 없었고, 보이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 선계! 오색찬란한 아름다운 세상이여!
구름 위에 지어진 오색빛깔의 전각과 누각들아! 구름을 타고 활보하는 신선들아!
등용문 주변에 빼곡히 몰려있던 수많은 신선들은 하란이 하늘을 날며 첫 비행을 마치자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칩니다.
마침내.
하란은 등용하였습니다!
교룡심법의 10성이 개방됩니다.
- 10성 항룡지 파벽비거 즉 화룡점정 와룡승천 - 적룡 : 종족이 용으로 변화하며 인간/용으로 언제든지 모습을 바꿀 수 있다. 도술의 진화형인 선술 중 종족 : 용의 전용 선술을 배울 수 있다. 선계로부터 최하급신선으로 인식되며 권역을 지정받을 수 있다. 용궁을 건설할 수 있다. 선계에 자유로이 올라갈 수 있으며 선계에 있는 동안에는 두 다리가 솟아난다. 농사에 대한 권능을 일부 획득한다.
종족이 용으로 변화됩니다.
【 용龍 - 赤 】
불과 갈등, 화덕과 농사를 관장하며 판관들이 신앙하는 적룡.
선인善人에게는 화기火氣를 거둬들여 농사를 잘 되게 해주고, 악인은 가뭄이 찾아오게 하는 전설이 있다.
- 명판관 : 판결을 내릴 때 보조를 받습니다.
- 불의 지배자 : 자신보다 격이 낮은 존재의 불길에 어떠한 피해도 받지 않으며 지배할 수 있습니다.
- 갈등의 상징 : 온갖 갈등들을 판결해달라고 요청해올 수 있습니다.
- 농사의 수호자 : 모든 용은 비와 구름을 다룰 수 있습니다. 농사와 어업에 일정부분 관여합니다.
- 현현 : 언제든 인간/용의 모습을 바꾸어 취할 수 있습니다.
하란의 경지가 절정 초입으로 상승합니다. 용으로 승천하며 기존에 가지고 있던 약점을 제외한 모든 부상이 회복됩니다.
상태창이 변경됩니다.
【 미사 하란 】
경지 - 절정
간극 - 초입
내공 - 89년/93년
세력 - 정파(무공비급 -2)
정신 - 4단계
명성 - 3단계
재산 - 은화 50
인물 호감도 - 3
정신타격&부상 - 0
도화전 - 0
강점 - 녹의홍상(-3) 천재(-5)
약점 - 외다리(+5)
무릉도원 물품 - x
***
어딘가의 이계에서, 왕을 끌어내리는 심판을 할 때, "그러나" 한 마디에 천하가 요동쳤듯. 하란의 마음도 그러하였다.
머리가 어지럽고 귓가가 흐려 모든 말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合
일순간 가슴이 철렁거렸다. 합? 합! 불합이 아닌 합!
허물이 찢어지고 그녀는 신선들의 환송을 받으며, 한 마리 용이 되어 등용문에 오른다.
여의주를 쥐고 높이..더 높이...더 넓은 세상을 향해!!
엄연한 현실임에도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제 그 꿈 속에서 살아가리.
***
하란은 더 높이 더 높이 더 높이!
올라갑니다!
쿠우우웅...
붉고 푸른 피부를 지닌 선계의 신장들이 흐뭇해하는 표정으로 날아다니는 하란을 봅니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왜인지 이리로 가야할 것 같습니다.
하란은 큰 문을 10개나 통과해 쏘옥 들어갑니다.
거기에는 백발백염에 아주 화려한 옷을 입고 면류관을 쓴 존재.
옥황상제와 문무백관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문무백관 중에는 여우도, 원숭이도, 용도, 인간도 있습니다.
"네가 새로운 용이로구나."
자연스레 고개가 숙여집니다. 옥황상제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하란은 기어가는 목소리로 예 하고 대답합니다.
"걱정말거라. 내 너를 선적에 올리고자 함이니."
이 시간부터 하란은 최하급 신선의 격을 가집니다.
"용이 되었고, 신선이 되었으나 너는 아직 인세에 묶여있는 존재이니. 너는 용으로서 권역을 다스리고 권속들을 잘 보살펴야할 의무를 지닌다. 세상에 용이 없어 가뭄이 일어나고 질서없이 혼란스러우니 속히 일을 시작해야 할게야. 혹여 다스리고자 하는 땅이 있더냐?"
***
그녀는 날고 날아 십 관문을 통과하여 상제의 앞까지 당도하였으니.
상제께서는 면접 합격한 바로 그 날부터 일하라고 진언하시더라..예?
"소인, 아니 소룡..? 의 무지함이 헤아릴 수 없으나 감히 말씀을 올리자면."
"산동 땅으로 가기를 원하나이다."
솔직히 기쁘긴 해요! 기뻐 마다않죠!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거미 사냥을 결의한지 몇 시간 만에 갑자기 분위기 승천은 조금 당황스럽긴 하단 말여요..
그녀는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조심히 말했다. 그래도 산동이 고향이니 그나마 익숙하고 편할 것 같았다.
***
"...산동은 불허한다."
옥황상제는 고개를 젓습니다.
"거기는 아니된다. 이유를 말해줄 수는 없으나 다른 곳을 말해봄이 어떠하냐?"
고향 땅에는 관리를 배치시키지 않는다....
***
앗참 그런 게 있었지. 그럼 어디로...흠...
"그러하다면 상제님의 고견에 따르고 싶나이다."
***
"복건은 어떠하냐?"
복건으로 결정하시겠습니까?
***
"받잡겠사옵니다."
거기 혈검문 있는 곳 아닌가?
ㅋㅋㅋㅋㅋㅋㅋ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꼴이구만.
하지만 나는 화룡이지.
***
복건을 권역으로 지정받습니다!
"그럼 이제 돌아갈 시간이구나. 더 지체하면 인세의 흐름이 꼬일터이니."
툭.
하란은 그대로 인세로 돌아옵니다!!
우선 눈 앞의 방울 여인과 인면지주를 처리하고서...
복건성으로 향해야겠지요.
어. 그런데 모용세가에는 뭐라 말하지.
- 대모벌의 시간
- 꾸벅 인사를 올리자 그 동굴 안이었다. 흰 모자를 쓰고 방울을 흔드는 여인과 함께.
그럼 이제 이것들 잡고 복건으로...그런데 어르신한테는 뭐라 말씀드리지?
일단 눈 앞에 이것들부터 치우고 생각해보자.
***
"......어?"
더 이상 내공으로 귀를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란은 천천히 앞으로 다가옵니다.
딸랑...딸랑...
아무리 방울을 흔들어보아도, 하란에게는 그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합니다.
"대체. 아니! 이럴리가! 이럴리가!!!"
방울을 든 여인은 당황했는지 미친듯이 방울을 흔들어댑니다!
***
내공으로 막아두었던 귀가 스르르 풀렸다. 그러나 저 방울은 이제 아무 소용도 없는 짓이었다. 그녀에게만큼은 그저 평범한 방울이다.
"거, 서생."
옥죄듯이 앞으로 다가가며 그녀는 짧게 말했다.
"시끄러워."
짤칵. 일순간 칼집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툭.
데구르르르...
정말 쉽게 방울 여인의 목이 잘려나갑니다.
***
...끝? 진짜로?
어떻게든 저항할 줄 알았는데. 그녀는 방울녀가 정말 죽었는지 이리저리 확인해 보았다.
틀림없이 죽었다면 방울이랑 모자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보자
***
모자와 방울을 가집니다.
【 현혹령 】
사람의 정신을 현혹시키고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방울.
내공을 불어넣어 흔들면 기이한 파동을 일으켜 시전자를 제외한 모두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준다.
- 흔들어라! : 내공을 2소모해 정신타격
***
"신기한 방울일세. 모자는, 그냥 모자인가?"
그래도 뿔 정도는 가릴 것 같은데. 나중에 써 봐야지.
아무튼 스스로의 힘도 없이 이 기물 하나를 믿고 일을 벌렸다는 게 퍽이나 우스웠다. 가볍게 흔들어 보았다. 딸랑딸랑~
"그럼 이제 인면지주 차례구나."
솔직히 그네들이 다 잡았을 것 같은데. 돌아가자.
***
사실 실력도 일류 정도 되는 사람이었지만, 절정이 된 하란에게 그런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절정과 일류는 애초에 전투 자체가 성립이 안됩니다...
인면지주를 상대하는 아군을 향해 돌아갑니다!
태양혈은 우뚝 솟았고, 발걸음은 더욱 경쾌합니다!
의족을 단 발로도 절벽을 살짝살짝 부숴가며 금방 올라갑니다!
"크으으윽...!"
인면지주는 다리가 하나 더 잘려있고 몸통에 여러개의 상처가.
아군 하나는 독에 중독되었는지 쓰러져있고 다들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
오, 오오. 몸이 가볍다. 이것이 절정지경이로구나.
그 인면지주 괴물조무사는 진짜 괴물들이 처리했겠지. 가벼운 마음으로 사뿐사뿐 흔적을 쫓아갔는데.
"이보시오! 저 돌아왔습니다! 인면지주를 풀어서 작당을 하려는 원흉을 찾아...."
아직 안 끝났어? 심지어 크게 다쳤어? 초절정과 절정 무사들인데. 인면지주가 저렇게나 강했었나!
"대협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까?!"
우선 그녀도 다시 발검하고 내공을 모아 전투태세. 상황을 파악한다.
***
한한검은 이 자리에 보이지 않습니다.
....무언가 다른 문제가 생긴걸까요? 일단 이 인원으로 처리를 해야한다는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절정 넷 중 둘이 전투를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인면지주는 상당히 지쳤습니다.
***
"장주님은 또 어딜 가시고..!"
어쨌든 상황을 불평하기 이전에 싸워 이겨야 한다.
"저 놈을 화력으로 묶어 둘 터이니 가서 다리를 끊어 주십시오!"
***
"소저! 위험하니 물러...."
신채훈이 말리려고 외쳐보지만 늦었습니다.
이전까지와는 격이 다른 거대한 세 갈래 불꽃이 발톱처럼 솟아오릅니다.
"....나.....야....?"
신채훈은 멍하니 그 불길을 쳐다봅니다. 그리고 하란의 관자놀이를 쳐다봅니다.
"소저!!!!!!"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인근이 화염으로 뒤덮입니다!
곧바로 신채훈과 석가장의 고수가 앞으로 달려들어 다리를 노리고 달려듭니다!
그런데 선조둘째아들방검진은 안사용하나요?
***
아 안쓰고 있으니까 흑호도 광해도 다 까먹네 아.
"완풍백의 진으로!"
막고 있던 방패로 후드려 팬다! 그녀는 여전히 불덩이를 쏘아대며 거미의 발을 묶는다.
***
하란은 계속해서 적룡조격참을 쏘아냅니다!
콰아아아앙!!!
3장은 족히 넘어가는 불길이 치솟아오릅니다....!
광해방검진 - 완풍백
수세에 몰려있던 세 고수는 일순간에 공격적으로 나섭니다!
촤아아아악!
신채훈의 검이 인면지주의 목덜미를 반쯤 가릅니다! 녹색 체액이 튀어오릅니다!
"피하시게!!"
석가장의 고수가 외치고 신채훈은 간신히 체액을 피해냅니다.
이어서 석가장의 고수가 주먹을 날려 인면지주의 다른 다리 하나를 부러뜨리는데 성공합니다!!!
인면지주는 불에 가로막혀 움직이지 못합니다!
***
"몰아붙여라!"
승기를 잡고 그대로 굳혀버리리라!
***
인면지주는 지친 상태와 제법 큰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반항합니다!
하란의 거대한 불길이 인면지주의 행동을 강제하고, 신채훈이 익힌 모용세가의 절기들이 터져나옵니다!
석가장의 고수는 주먹을 이용해 인면지주를 견제하지만...
상황은 백중세입니다!
이 상황을 타개할만한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
"버티기는 왜 이렇게 잘 버티는 거야! 짜증나게!"
보다못한 그녀는 직접 뛰어들기로 했다. 논검에서 못한 거 지금 해볼까?
***
세 갈래의 거대한 불길이 인면지주를 향해 내리꽂힙니다. 인면지주는 그 사이로 얼마 남지 않은 다리로 사사삭 움직이며 피해냅니다!
피하는 방향으로 석가장의 고수가 기합과 함께 권을 내지릅니다!
콰아앙!
인면지주의 몸통이 움푹 파입니다. 그 뒤로 신채훈의 검이 날아듭니다! 인면지주는 다급히 방향을 전환합니다.
그리고 그 경로를 정확히 파악한 하란은 불길을 가르며 날아듭니다!
흑호난지평정 - 영웅일격
무언가 번쩍입니다.
꽝!
절정고수의 거력이 담긴 일격이 인면지주의 몸통에 깊숙히 박히고, 인면지주는 비명을 내지르며 다시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어찌저찌 잡은 것 같군."
석가장의 고수는 씨익 웃으며 바로 그 뒤를 쫓아갑니다! 신채훈은 하란을 등에 업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
"멀리 가지는 못할 겁니다."
안 그래도 지치고 낡은 인면지주, 흑호를 정통으로 맞고도 기력이 남아있을 리가 없잖아?
업힌 채 용검세 뿅뿅하면서 쫓아간다!
***
교룡검법 - 용검세
붉은 이무기가 인면지주에게 달려들어 다리 하나를 물어뜯습니다!
우당탕탕탕...! 쿠우웅!
인면지주가 그 자리에 고꾸라집니다!
***
다리가 그리도 많으니 나도 좀 나눠주면 안되겠니? 하는 생각이 담긴 공격, 잘 먹혀들었다.
고꾸러진 인면지주가 버둥거리며 일어나려고 할 때, 인면지주가 멈춘 그 순간을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
"큰 거 내려옵니다!!"
충격에 대비하라!
***
하란은 신채훈의 어깨에 손을 짚고 힘을 주어 허공으로 몸을 살짝 띄웁니다. 발이 신채훈의 머리를 밟고 저 앞으로 쏘아져나갑니다!
"윽."
신채훈은 조금 아파하는 것 같지만, 뭐 어쩔 수 있...아 설마 의족 부분으로 밟았나. 뭐 아무튼!
교룡검법 - 폭룡강하
인면지주의 등에 하란의 검이 꽂힙니다! 강력한 폭발과, 지진이 일어나면서 일대가 완전히 뒤집어집니다!
수으으으으으으으...
흙먼지가 자욱히 비산합니다...
***
분명히 같은 초식이었다. 논검 때도 지금도 말이다. 하지만 그 위력이 가히 곱절로 늘어버린 것 같으매, 무림인들이 왜 경지가 깡패라 하는지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더라..
스스로 불러온 폭발과 반발력에 의해 약간 뒤로 밀려난 그녀, 바닥에 착지한 후 검을 겨눈 채 침착히 상황을 주시한다. 여기서 먼지폭발을 썼다가는 일행도 휘말릴 지 모른다.
아직 맥동하고 있을지 없을지 모를 인면지주의 기감을 느끼면서... 해치웠다 같은 부활주문을 외우지 않도록 조심하자.
***
인면지주는 죽었습니다!
교룡검법의 숙련도가 15% 증가합니다!
"다 끝났나."
모든게 끝나고 잠시 뒤에 한한검 석지훈이 온 몸에 푸른 체액을 뒤덮은 채로 나타납니다!
"인면지주가 한 마리가 아니었다. 이 놈 까지 총 3마리라 그 것들을 처리하느라 조금 늦었네."
***
"해치웠군!"
그녀와 일행은 비로소 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녀는 납검하였다.
천천히 만신창이가 된 인면지주를 구경할 때 쯤 장주님은 돌아오셨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장주님."
"저희는 이 한 놈을 잡고....또 이 거미들을 내 아이들이라 칭하는 웬 놈이 동굴에 숨어있길래, 그 놈까지 베어버린 참이었습니다."
갑자기 어디 도망간 줄 알았더니. 믿고 있었다구 젠장!
"분명 그 작자가 인면지주를 풀어 호남을 저어하려던 주동이겠지요."
***
"요괴들이 준동하면서 그들을 다루는 요술사들까지 나타난게 틀림없습니다. 장주님."
하란의 말에 석가장의 무인이 덧붙입니다.
석지훈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일단 부상자를 챙기도록 하지. 그리고..."
그가 품 속에서 푸른 체액이 뚝뚝 떨어지는 기이한 구슬 2개를 꺼냅니다.
"이것과 똑같이 생긴 것이 저 인면지주의 안에 있을테니 알아서 가지고 오도록. 내단은 3개인데 사람은 더 많으니 분배를 어찌해야할지가 관건이군."
***
"저는 요술사가 가지고 있던 괴령을 이미 취하였으니, 굳이 내단까지 욕심을 낼 필요는 없을 겁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작별 선물이다.
그녀는 널부러진 인면지주의 배를 뒤집어서, 내단이 어디에 있을지 고민하면서 칼로 배를 툭툭 두드렸다. 꼭 내단이 아니더라도 어딘가 쓸만한 곳이 있을법도 한데.
***
내단을 꺼냅니다!
선언한대로, 하란의 소유물이 아닌 석가장의 소유물이 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석지훈은 하란이 내단을 양보하는 것을 보고 잠시 고민하더니 신채훈을 쳐다봅니다.
"그대 또한 우리 석가장을 위해 미사 소저와 함께 큰 공을 여럿 세워주었지. 내 그대에게 선물을 주고자 하네."
그리곤 석지훈이 하란을 쳐다봅니다.
괜찮냐는 뜻이겠군요. 신채훈은 어디까지나 외인이고 하란의 휘하에 있으니 말입니다.
***
어느 자리에 검을 푸욱 찌르자 그 끝에 단단한 것이 걸렸다. 그 자리를 더 넓게 벌려보니 옳거니! 어김없이 내단이 빛을 발하고 있다.
손에 찐득한 구슬을 든 그녀에게 주변 사람의 시선이 꽂혔다. 그녀는 이렇다할 반응 없이 그저 미묘히 웃고 있었다.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신씨, 장주님이 내리시는 선물이랍니다? 맛있게 드시라구요."
그렇게 말하며 구슬을 건네주는 그녀였다.
***
얼떨떨해하며 신채훈은 내단을 받습니다.
잠깐 표정이 몽롱해진 것 같은데...착각이겠죠?
"이만 돌아가지."
석지훈의 인도 아래에 석가장으로 복귀합니다!
- 이아! 이아!
- 석가장으로 돌아왔다! 개선가를 울려라!
흠흠 아무튼, 인면지주도 해결했으니 이제 진짜 중요한 것에 대해 생각하여야 한다.
어떻게 해야 모용세가와의 연을 끊을 수 있을지..
무단으로 복건을 향해 탈주했다간 분명 언젠가 크게 후회하는 날이 올 거라고 그녀는 믿었다.
흠....신씨는 어르신에 대해서 조금 알고 있으려나.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네가 본 으르신은 어땠냐 난 막 무섭고 그랬는데
***
"아. 확실히 가주님께서는 그런 분이시죠."
신채훈도 하란의 평가가 정확하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
"겉보기에는 그저 온화한 할아버지 같은데도, 시선 하나 말 한 마디에 사람을 일일히 해체하여 보려는 그 어마한 정보량 덕분에.."
첫 만남부터 어르신은 그녀에게 시험을 걸어왔었지. 한숨을 쉬었다.
"그 분 앞에만 서면 꼭 온 몸이 발가벗겨진 기분이란 말이죠..."
***
"아아."
신채훈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르신이 그러신 면모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워낙 그, 현역이셨던 시절에 험난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지 않으셨습니까."
정마대전을 겪은 세대니 말입니다. 하고 덧붙입니다.
"그 때 모용세가 안에서...마교의 끄나풀이 상당히 많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용세가 내부를 단속하고 솎아내고를 반복하셨다고 들었지요. 그 때 습관이 지금도 남아 사람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시험하시는게 아닐까...합니다."
***
모용세가 안에 넘쳐나는 마교 세작이라... 좀 무서워진다.
"믿기질 않네요. 대 마교 전선의 후방 중 후방인 모용세가에까지 마교 세작이라니. 얼마나 험난한 시절이었으면."
그녀가 앞으로 할 행동들과는 별개로, 하늘의 거성처럼 무섭기만 하던 어르신에 대해서 처음으로 동질감이 느껴졌다. 언제 칼끝을 디밀지 모를 사람들 사이에서 신경을 곧추세우고 살아가는 그 기분. 그녀도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전 마교 끄나풀은 아닙니다 어르신. 오히려 어르신만큼 마교와 다투게 될지도 몰라요.
"제가 아는 어르신이라면 그런 세작이니 배신자니 하는 것들. 영원히 쫓아서 반드시 주살하시겠지요?"
***
신채훈은 사람 좋은,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명쾌하게 대답합니다.
"하하하. 아마 무림공적으로 만들어버리지 않으실까요?"
너무 명쾌해서 공포스럽군요!
***
"아학학ㅋㅋㅋ 무림 공적이라니 무섭기도 하여라!"
아아..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 속에는 비가 내린다. 어르신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신씨가 그에 사형선고를 떨군 느낌이야.
어르신을 처음 뵈었을 때부터 다리가 없어 도망치지 못하니, 남이 채가지 못하게 일단 침발라놓느니,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곱게 도망치긴 그른 것인가. 정녕 안전이 보장되는 방법은 없는가??
***
하란의 뇌는 미친듯이 굴러갑니다.
안전하게 도망가는 방법은 오직 하나.
조화지경, 즉 화경의 경지에 발을 디디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안전하지 않은 방법 뿐입니다...
그나마 가장 덜 위험한 방법은 새 문파를 세울 생각이며 모용세가와 종주 혹은 동맹을 맺는 방법이 있습니다!
석가장처럼요!
***
"역시 어르신을 다시 한번 뵐까?"
논검에서도 그러셨다. 일이 끝나면 세가로 돌아오라고.
거기서 최근 근황도 말씀드리고, 자경단에 대한 말씀도 드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하여도 여쭐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모용세가로 돌아가 어르신을 뵈기로 마음먹었다.
***
장주에게 말하고, 요녕으로 떠납니다!
강서와 호남 그 사이. 그곳에서 호북으로 이동하던 사이...
하란은 산을 넘어가지 못하고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는 행상인 무리를 발견합니다!
***
"발이 묶인 행상인이라. 옛날 생각나네."
처음 석가장을 향해 갈 때 길이 막혔다고 어쩔 줄 모르던 이들. 오래된 과거가 아님에도 그렇게 느껴진다. 사람 기억이 참 요망하다.
"거 무슨 일이십니까? 왜 있는 길로 가지 못하시구요."
***
하란의 물음에 행상인들은 한숨을 푹푹 내쉽니다.
"이상한 요괴인지 무림인인지 모를 것이 길을 막고 있은지가 벌써 오늘로 이레째라오. 어서 빨리 넘어가야 할텐데...."
아니 길을 막고 있다니요?
"돈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바라는게 아닌가 하외다. 그냥 이 길을 못지나간다고.....막아버렸소."
***
"그냥 막았다구요."
돈도 아니고 피와 살도 아니면 대체 뭐냐. 길바닥에 엉덩이 붙이고 모가지 집어넣은 거북이 요괴라도 되는 거냐?!
이럴 때는 직접 나서서 확인해보는 게 인지상정! 하란이는 행상인들을 뒤로 하고 길을 따라 올라가본다.
***
하란은 길을 따라 올라갑니다.
키는 상당히 크고, 팔은 기이할 정도로 긴 인영이 보입니다!
허리춤에는 세 자루의 검을 차고 있고 큰 삿갓을 꾸욱 눌러썼습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됩니다.
바위에 등을 기대고 서있던 그것은 하란이 올라오자 천천히 걸어오더니 길 중앙을 막아섭니다.
***
"확실히 인간은 아니어 보이는데. 유씨의 후손이 아니라면야."
그녀는 중얼거렸다. 지팡이로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세상 천하에 과 가 있으면 인 또한 있으매 이것이 인과의 이치일진저."
"사람인지 요괴인지 모를 귀하는 어찌 사람들 오가는 길을 막고 이리 행패를 부리시는가?"
그의 코 앞까지 바짝 다가가서 으름장을 놓아본다.
***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것이 입을 엽니다.
- 하늘의 계시에 따라 내가 주군으로 모실 자가 이 길을 지나가리라 하셨소. 주군을 찾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이 길을 지나갈 수 없소.
***
오오. 이건 좀 재미있어보이는 이유인데? 따지고 보면 하란이도 계시를 내리는 쪽이지만...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귀하께서 주군으로 모실 자가 언제쯤 지나가리라 하셨소? 그 자에 대한 귀띔은 없으셨소?"
그녀는 뒷짐을 지고 고개를 젖힌 채 까치발을 쭉 들었다.
"혹시 아오? 그 계시 안에 본인 또한 있을지. 내가 그 주군을 이 앞까지 가져다놓을 수 있을지 누가 알겠소?"
***
- 보면 알 수 있다 하셨소.
??????
그게...끝이야....?
- 다른 것은 모르오. 딱 한 가지 더 아는 사실은.
푹 눌러쓴 삿갓 아래에서 발하는 강렬한 안광!
- 주군이 나를 쓰러뜨릴 것이란 사실이지.
***
"하하, 그럼 난 아닌가 보오? 이리 길을 막는 걸 보니. 그런데 말이오..."
그녀의 표정이 싸해진다.
"왜 본인에게 눈을 그렇게 뜨시는가? 귀하를 이기기만 하면 아무나 상관없다 이 말이오?"
그녀는 기싸움에 응하며 상대의 경재를 짐작해본다.
***
- 하늘에게 계시를 받았으니, 주군이 될 자가 아니라면 나는 패배하지 않는다.
오만하군요!
경지는 하란과 비슷하나 간극은 그보다 높을 수도 있습니다!
***
"그럼 어디..부하 만들 팔자인지 확인이나 해보실까?"
이걸 참으면 무림인 아니다. 단전 떼야 한다.
다시 몇 발자국 물러난 하란은 시이익..검을 뽑는다.
그 검을 높게 쳐들어..... 적룡조격참!
***
교룡검법 - 적룡조격참
세 갈래의 거대한 불길이 괴이한 것을 향해 덮쳐들어갑니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
파스스스스스....
치이이익...
???
불길이 꺼졌습니다. 하란은 이게 무슨 일인지 큰 눈을 뜨고 보고, 눈을 비빈 다음에 다시 봅니다.
....아무리봐도 적룡조격참의 불길이 꺼졌습니다.
- ....불?
괴이한 것은 천천히 세 자루의 검 중 하나를 꺼내듭니다.
***
세차게 날아가던 불길이..그대로 꺼져버린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다. 지금보다 더 약했을 때도 말이다. 불길을 피하거나 맞받아치는 것도 아니며, 꺼 버리는 것은 대체 무엇인지.
"신묘한...술수를 부리는군?"
그 검, 순순히 뽑도록 두지 않겠다.
포효로 상대를 경직시키고 머리 위로 폭룡강하를 머리 위로 내리찍어 버린다.
***
교룡검법 - 포효
검명이 울려퍼집니다! 괴이한 것은 검을 꺼내려들다가 멈칫하더니 크윽 신음 소리와 함께 한 쪽 무릎을 꿇습니다!
그 때를 노리고 하란이 달려들어 검을 내리칩니다!
교룡검법 - 폭룡강하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
거대한 폭발이 일대를 산산조각 낼 것 같은 굉음과 함께 일어납니다!
쩌적.
하란의 검은 괴이한 것의 삿갓에 막혀있습니다!
....쩍!
그리고, 검이 삿갓을 쪼갭니다! 하란은 반탄력에 뒤로 몇 걸음 물러납니다.
삿갓이 쪼개지면서 드러난 괴이한 것의 얼굴이 드러납니다.
....머리가 매끈한.
크툴루?
***
부르르르.... 삿갓은 쪼개지고 칼날은 웅웅 떨린다. 그 흐름에 맞춰 하란은 뒤로 물러난다.
내가 흐름에 맞춰주고 있는데 귀하는 어쩜 그럴 수가 있소. 삿갓 밑에 그런 호소력 있는 얼굴을 숨기다니.
"....팔초八梢공자?"
하마터면 평정을 잃고 주저앉을 뻔 했다. 하지만 절정무인의 4단계 정신. 굳건히 버텨내었다.
"흐으읍!"
칼끝을 그의 앞으로 겨누고 짓쳐들어간다. 특이하게도 앞손이 손잡이보다 멀리, 칼날을 잡고 있다. 칼날이 울린다.
수십번을 쇄도하는 찌르기 중 실초는 단 하나, 화룡의 울부짖음과 함께.
***
교룡검법 - 치악
하란은 검을 내뻗습니다. 그러나 문어 머리를 한 괴이는 검을 뽑아듭니다.
꽈가가가가가가가가각!!!!!!
공간이.
접혀듭니다!
쫘아악!
검을 완전히 뽑아들자, 공간이 접히면서 하란의 검이 그대로 멈춰섭니다. 말도,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문어 머리를 한 그것이 하란을 쳐다봅니다.
- 기이하구나. 기이해.
***
"지금 그건 내가 해야 할 말이라 생각치 않소?"
칼잡이 문어가 공간을 접어서 공격을 막아내다니. 세상 누구에게 이런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기이하게 뒤틀린 공기를 바라보며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녀는 붙잡힌 검을 잡아뽑고는 뒤로 물러나려 한다.
***
뿌드드드득.
무언가의 압력으로 검이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하란은 눈을 찌푸립니다.
- ....기이하군. 왜 선술을 사용하지 않는가?
!
***
"대관절 선술이란 걸 어디 가서 배우는 건지 모르겠소만."
심법서 10성에 대한 서술 중 선술에 관한 내용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선술을 배울 수 있다' 이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을 일축하니 그녀는 참으로 마음이 답답하였다. 그래서 그게 뭐냐구요 십덕아!
그나저나 젠장, 검이 안 빠진다. 그녀는 울며 겨자먹기로 붙잡힌 검에서 손을 떼고 불쾌검을 뽑아들었다. 또 붙잡히면 아무 의미 없는 짓인데 이거. 팔초공자와 원수가 아니라 참 다행이다. 생사결이었으면 뼈도 추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당신, 전부 알고 있군....?"
어떻게 안 것인지는 모르나, 팔초공자는 이미 그녀의 정체를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녀는 은근한 불쾌감에 눈을 가늘게 떴다.
***
- ....?
하란의 말에 문어대머리...아니 크툴루...아몰랑 아무튼 문어머리는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 모르는게 이상한 것 아닌가. 그 쪽도 날 보자마자 사람이 아니라는걸 알아챈 것 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거늘.
!
- 용이, 선술을 어디서 배우는지 모른다니. 스승이 없단 말인가!
아 ㅋㅋ 스승 얘기 꺼내지 말라고 ㅋㅋ
***
"인간들은 이러고 다니면 아는 놈이 잘 없었거든.."
그녀는 이제 자연스럽게 인간들을 자신과 다른 존재로 말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정신 4단계?
그런데 잠시만, 스승이 없단 말인가? 수염으로 꽈배기를 꼬아주리?
"스승님이 없다니! 내 스승님은 인간이었고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한 때 분명 존재하셨던 분이거늘!"
***
- 그 스승이 용이 되도록 도와준게냐?
어. 그건 아닌데용.
- 용이 선술을 부리지 못한다니, 지나가던 문어가 웃겠군!
왜 하란의 눈 앞에 있는 문어 놈은 웃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
이씨, 이놈이 증말..
"꼬우면 그만 놀리고 알려나 주던가!"
하란이는 용 된지 며칠밖에 안 된 응애라서...가르쳐줘야 해.
아까부터 계속 스승 들먹이고 놀리고 말이야. 에라이 적룡조격참!
물론 맞을 기대는 안 하지만...
***
하란의 불꽃이 움직이지만 예상한대로 맞추지는 못했습니다.
- 아니 잠깐. 그러면 스승 없이 용이 되었다는 것인가?
???
아니 스승있다는데 왜 자꾸 스승이 없다는거야!
자꾸 문어대가리와 하란의 사고가 일치하지 않는 느낌입니다.
흠.
하나 확실한 것은 상대방은 인세에 대해 잘 모른다는 걸 알 수 있겠군요.
하란의 비상한 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일단 저 놈은 영물임에는 확실합니다. 세상 천지 어떤 사람이 문어대가리........어 소림사랑 아미파가 그런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몰골은 갖추고 있습니다.
저것처럼 촉수는 없다 이거지요.
그리고 용이라는걸 보자마자 알아차렸습니다.
선술을 익히고 있고...
용이 되려면 왜인지 '스승' 이 없다는게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 것 처럼 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과 부대낀 적은 거의 없는 것인지, 스승이 인간이었다는데도 그냥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는건....?
선계에서 내려온지 얼마 안된 존재일 수 있습니다.
왜 선계를 내려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
"하하하."
말을 말지. 서로가 자기 말만 하니까 통하는 것이 없다. 그녀는 대화의 주제를 바꾸기 위해 팔초공자가 보였던 모습을 다시 돌이켜보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하나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주인을 찾겠다고 무식하게 길만 막고 있을 때 알아챘어야 했었어. 당신 하계는 처음이지? 환영하네!"
***
간지런 숨에서 매혹을 사용합니다!
"......!"
문어촉수대가리는 움찔거립니다.
"그...그걸 어떻게...! 완벽히 인간의 형상을 취했건만!"
?
***
....완벽? 진심으로?
"이거 영락없는 선계쥐와 하계쥐일세. 일단 여긴 하계이니 하계쥐인 내 말에 따르는 것이 이롭겠지요~?"
말투가 계속 바뀐다. 하오체, 하게체에서 이젠 해요체로.. 하룡이는 웃고 있었다.
"지금 날 봐요.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잘 보라구! 내가 촉수 수염을 달고 있어요? 가만히 보니 신체 비율도 엉망이야!"
"장담컨데 그 꼴로 사람 많은 곳에 갔다가는, 한 다경만에 영물 사냥꾼들이 몰려올걸요?!"
***
"??"
문어촉수 대가리는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생겼지 않은가! 완벽히 똑같거늘! 내 친우들도 완벽하다며 박수에 박수를 친 둔갑이란 말일세!"
오. 둔갑술~~~~
***
"그 친우들 하계에서 살아본 적은 있으시고? 지금은 전적으로 나를 믿는 게 좋을걸요."
"하계에서 이십칠년 살았는데 그렇게 생긴 사람은 한 명도 없었거든요."
분위기는 그녀에게로 조금씩 넘어온다.
"야, 선계쥐는 둔갑술도 써요? 대단하네. 그러면 더 자연스럽게 다시 해 보자구요. 일단 팔 길이부터 한 이만큼 줄여주고..."
"일단 한 번 제가 시키는 대로 해 보세요!"
***
얼떨결에 문어촉수 대가리는 하란의 말을 따라 둔갑술을 재조정하기 시작합니다.
....!
펑펑! 거리며 구름같은 연기가 나오기를 십여 번.
그 끝에....!
제법 사람 형태를 갖춘!
문어촉수 대가리가 있었습니다.
아니! 왜! 머리가! 안바뀌냐고!
***
스읍. 다른 건 그럴싸한데 저 문어머리가 안 바뀌네..?
하란이는 팔짱을 끼고 치수를 재는 옷장이처럼 팔초공자를 훑어본다.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한동안 그렇게 보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불쾌검을 납검하였다.
"내 칼 놓아주고 일단 따라와봐요. 이거 여기선 안되겠다. 길거리에 서서 주먹구구로 될 게 아니에요."
그렇게 은근슬쩍 팔초공자를 길에서 치우며 끌고 가려 하는 하란이였다.
인간의 안면과 두상에 대해 더 심도있는 대화를 나눈 후, 정말 안 되면 가면이라도 씌워야 사람 태가 나겠다.
"따라오라니까요! 그렇게 하고 있으면 오려던 주인도 도망가요!"
***
어어어, 하던 사이에 문어촉수 대가리는 하란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메데타시 메데타시..?
***
잉히히히히 이 바보같은 연체동물! 아까 태산같이 버티던 각오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고?
그녀는 팔초공자를 이끌고 인기척이 없는 곳으로 쌩 내뺀다. 어딘가 바위 밑도, 동굴도 폐가도 좋다.
"당신이 인간을 흉내낸다면 어설프게 흉내내는 것보다 위험한 것이 없지요. 맹수들이 피 냄새를 맡듯, 인간들은 자기네들 얼굴에 대하여 극히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어요!"
"아니 인간을 흉내낸다는 생각을 버려! 그냥 인간이 되는 거에요! 인간이 되라고!"
이번에는 땅바닥에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일장 연설을 하는 하란이였다.
***
문어촉수 대가리는 일견 이해하지 못한 듯 합니다.
- 아니 그게 아니라!
그는 답답한듯 가슴을 팍팍 칩니다.
- 인간은 이렇게 생겼다니까!
?
아니 이 정도면 눈깔에 뭔가 문제가 있거나, 저주가 걸려있는게 아닐까요?
약간 뇌주름 펴지는 저주라던가...
***
"으으으으음...."
왜 자꾸 눈 앞에 서 있는 사실을 거부하는 것이지?
팔초공자 눈깔에 이상한 기운이라도 씌여있는지... 그녀는 빤히 쳐다보았다.
***
일시적으로 인간의 육체에 용의 눈을 깃들게 합니다.
...
음, 문어촉수 대가리의 얼굴에는 웬 검고 허연 이상한 구름인지 연기같은 것이 끼어있습니다.
저주가 맞는 것 같군요!
선계에서 쫓겨나며 함께 받은 저주가 아닐까 싶습니다.
***
"아, 이거..."
눈이 불편한 친구였군.. 나는 그런줄도 모르고. 심지어 자의로 내려온 게 아니라 추방당한 것 같다. 가엾어라. 길게 찢어진 홍채의 눈알이 톡톡 굴렀다.
"당신 얼굴에 이상하고 사특한 기운이 끼어있네요."
....어감이 좀 그렇다?
"못생겼다는 소리가 아니라 당신 얼굴에 저주가 씌어있, 아니아니, 저주가 당신 눈을 가리고 있단 말이에요."
***
- ...
문어촉수 대가리의 얼굴에 음영이 깊게 두리우며 침묵합니다.
어떠한 사연이 있나 보군요.
이 사연을 듣고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호감도를 올리거나 주군이 되어야 합니다!
- 크툴루 길들이기
- "...."
역시 사연이 있다니까. 선계에서도 쫓겨나고. 하지만 그녀에게는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
하계초출 팔초공자는 나름의 곤경에 처해있다. 그리고 그녀는 공자의 조력자가 되어줄 수도 있지.
진정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을 주는 이를 어느 누가 밀어내려 하겠는가? 마음을 떡 주무르듯 빚어서 내 사람으로 만들기 좋아 보인다.
또한 반대로 저주를 풀고 선계로 올라가면, 공자가 그녀를 도와줄 수 있겠지.
"괜찮아요. 얼굴 잘 모르겠으면 가면을 쓰면 되니까... 내가 어울리는 거 골라줄게요."
그녀는 인면지주 요술사에게서 빼앗았던 삼각모자 승무모를 그의 머리에 꾹 눌러주었다. 그의 삿갓이 그녀의 검에 두 동강이 나 버렸으니까.
"돈은 있어요? 하계 돈이요."
당연히 없겠지.
***
있을리가 만무합니다!
- 아니 잠깐!
문어촉수대가리는 승무모를 쓰다가 다시 벗습니다!
쳇...거의 다 넘어왔었는데.
- 난 주군을 찾아야 한다. 이만 되었으니 돌아가겠소!
***
"팔초공자, 지금 하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요?"
그녀는 승무모를 벗고 일어나는 공자의 옷자락을 잡았다. 잠깐 기다려봐.
"하루아침에 사악한 요괴들이 황충처럼 끓어오르고, 산에는 산마다 길 잃은 영물들이 헤메고 있죠."
"본디 그곳에서 살아가던 인간들이 기겁을 하니 혼세도 이런 혼세가 없어요. 영물 사냥꾼들까지 고개를 들면서 천하에 피가 흐르지 않는 곳이 없는데."
"당신이 계속 그곳에서 버티고 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진지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
"가지 마요. 지금은 안 돼요. 천명이라는 게 그리도 얕고 얄팍한가요? 그렇게 길을 막고 있어야만 주군을 찾을 수 있을만큼?"
***
- 천명을 함부로 논하지 말아라.
문어촉수 대가리는 갑자기 능지가 떡상하였는지 하란에게 그리 말합니다.
- 주어진 일에 충실하는 것 뿐. 나 하나가 그 길을 막고 있는다고 하여 천하의 운명이 뒤바뀌지도, 형세가 뒤틀리지도 않는다. 그대는 천기를 읽는 법에 대해 도통 알지 못하는군. 당체 어떻게 용이 된 것인지...
정체가 대체 무엇일까요. 수십분 단위로 IQ지수가 오락가락합니다...
***
사실 팔초공자와 하란이의 아이큐가 반비례하도록 연동된 상태였고...팔초공자 아이큐가 올라갔으니 이제 하란이가 몽총해질 차례!
"천기요...? 그건 어떻게 읽는 거죠?"
태어나 살면서 그런 것을 따진 적이 없었다. 반박은 고사하고 이런 얼빠진 소리나 할 수밖에는..
***
- ...
문어촉수 대가리는 한숨을 내쉬더니 뒤돌아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려 합니다!
안알려"줘" 라니!
상대는 "하계"의 일에 전적으로 무지합니다!
하계와 관련된 주제로 계속 대화를 해보십시오!
가령, 선계와 하계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상대가 선계에서 쫓겨내려올 정도이니 그리 모범적인 인물은 아니라는 데에 주목하도록 합시다!
선계에서 혼나서 내려올 정도면, 하계에서도 꼭 천명에 매달리기 보다는 소소한 일탈을 하고자 하지 않을까용?
***
"다른 건 알고 있어요. 하계는 선계보다 시간이 훨씬 빠르게 흘러간다는 거."
그녀는 신선 놀음에 도끼자루 썩는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신선들의 바둑을 몇 판 구경하고 집에 돌아가니, 도끼자루는 모두 썩어버렸고, 집에는 자신의 현손뻘 되는 사람들만 살고 있었다고.
"여기서 수백년을 뻗쳐도 선계에선 바둑 몇 판 정도의 시간밖에 흐르지 않는다는 말이죠. 천기는 몰라도 초조하고 조급해서 좋을 게 뭐가 있어요?"
"천년왕조의 시작과 끝을 보고 올라가도, 선계에 당신 친우들은 단 한 살도 먹지 않았을텐데."
쫑알거리면서 그녀는 곰방대와 연초를 꺼내어 자연스럽게 불을 붙인다. 음 향기로운 냄새~. 느 집엔 이거 없지? 너 하계 연초가 맛있단다.
"후우.. 이것저것 보여주면서 당장 긴장이라도 풀어주려고 했는데..."
***
움찔.
문어촉수 대가리 흠칫거리며 하란의 연초에 관심을 보이더니 이내 힘껏 고개를 돌립니다!
이것이구나! 이것이야!
***
입술 사이로 하이얀 연기가 꿈틀거리면서 피어오른다. 꼭 파초공자 수염처럼.
하란 자신도 반신반의했다. 영물과 인간을 대조시켜 생각하며, 그러니 인간과 다르게 신령 고결 순결한 존재들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공자의 이 반응은....
'내 환상 돌려내.'
영물이나 사람이나 출신지 빼면 다를 것도 없다는 거냐. 곰방대를 쥔 손이 파들거리는 건 착각이다.
"왜 그러세요? 연초 좋아해요?"
***
- 그게 아니다.
그렇답니다!
- 대체 그게 무엇인가?
아 뭔지 모르는, 신기한 하계의 문명에 흔들리셨다...
***
"선계에는 연초 없어요? 별일이네."
정말 이 콤비. 극과 극이다. 천기를 모르는 용과 담배를 모르는 문어영물의 저세상 케미..
"몇몇 풀을 자알 말려서 불을 붙이면 이렇게 향긋한 연기가 난답니다? 연거푸 마시고 뱉다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그저 연초일 뿐인데...정말 해선 안되는 나쁜 짓을 가르치는 배덕감이 느껴졌다.
"해보실래요?"
그녀는 자기가 물고 있던 물부리를 소매로 슥슥 닦는다. 연기는 여전히 잔망스럽게 살랑댄다.
***
문어촉수대가리는 고개를 젓습니다.
- 해보고 싶지는 않군.
일단, 선계와 관련해서는 문어촉수대가리가 확실히 인재라는건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꼬셔서 데리고 다니는게 좋을까요?
한 번 생각해봅시다...
***
체, 금방이라도 넘어올 것처럼 굴더니. 여기까지 와서 빼다니 괘씸하다! 뻐끔뻐끔.
"그러며는... 삿갓이라도 하나 해줄까요? 아까 두동강났잖아요."
그녀는 토끼모자의 팔을 꼭 쥐었다. 토끼에 양 귀가 잔망스럽게 번갈아가며 펄럭인다. 그 짓을 하면서 팔초공자를 올려다보았다.
"하계에 재미있는 모자 많아요. 삿갓도 있고 이런 것도 있고."
"원래는 뿔 가리려고 구한 건데 여기 누르면 귀가 막 움직여요. 신기하죠."
***
문어촉수 대가리는 매우 큰 흥미를 보입니다!
- ....과연....하계에는 놀랍고 신기한 것이 있군...
절대 토끼모자 때문이 맞습니다.
***
"그럼 그거 빨리 다시 쓰고 따라와요! 장터 구경을 시켜줄게요."
그녀는 팔초공자를 환락의 장터로 잡아끌기 위해 승무모를 또다시 강권했다.
***
문어대머리 촉수에게 승무모를 씌웁니다!
하얀모자 촉수를 끌고 하란은 장터로 이동합니다....
***
팔초공자는 길에서 비켰고 하란이는 그 길을 지나왔으니 메데타시 메데타시...
그녀는 한 다리로 어울리지 않게 경쾌히 걸었다. 조금만 더 가면 장터가 있을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나 할까요? 전 미사 하란이라고 하는데."
계속 팔초공자 문어촉수대갈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
- 주군이 아닌 자에게 알려줄 이름 따위는 없다!
거 참 까칠하시기는...
문어촉수 대가리와 함께하면서 '선계'에 대한 지식들을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
"그럼 크툴...아니 팔초공자라고 불러야겠다."
문어촉수대갈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에 감사하십시오.
그런데 입으로는 까칠하지만 따라오는 발걸음은 솔직한걸? 후후후후...
"장터라, 장터. 선계에도 장이 서나?"
***
- 선계의 장이라.
팔초공자는 콧방귀를 뀌며 한껏 오만해보이는 자세를 취합니다.
- 하계에서는 보패라 불리울만한 온갖 귀물들이 즐비한 곳이지! 세력들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장시가 하나 있고말고
***
"세력?"
보패보다도 지금 뭐라 하였는가? 선계에 세력? 하란은 그 단어에 오한과 기시감을 동시에 느꼈다.
여느 하계인들이 그러하듯, 많은 설화와 경구에서 이야기하듯, 선계는 모든 다툼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무릉도원이라고 그녀는 여기고 있었다. 평생을 하계에서 태어나 자란 이의 한계였다.
"선계에서도 사람들이 편을 가르고 다투는 거에요? 그렇다고 말하지는 마요."
마음 속 소중히 하던 작은 환상 중 하나가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
- 다행인 것은 내분은 하계에 비해선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만..
팔초공자는 어깨를 으쓱입니다.
- 선계에 대해 잘 모르는군. 이 몸이 친히 설명해드리지.
...너, 약간 이런 캐릭터였니?
- 선계라는 것은 쉽게 이야기하자면 중원 대륙과도 같은 곳. 이 하계의 중원 대륙을 보면 그 곳을 한 세력이 전부 차지하고 있지 않듯 선계 또한 마찬가지일세. 그리고 선계의 지배자들간에 무력이든, 그 외의 것이든 충돌이 있곤 하지...
***
"선계도 결국은 사람이 사는 곳이나 다름없나보군요. 적어도 그런 관점에서는."
후우우... 곰방대를 빨지 않았는데도 입에서 연기가 나올 것처럼 한숨을 쉬었다.
***
- 선계를 뭐라고 생각한겐가.
그가 역으로 물어옵니다!
***
"하계에선 불가능한 일이 벌어지는 곳."
"더하거나 뺄 것이 없는 이상향이요."
***
- 여러모로 하계에서 불가능한 일들이 벌어지기는 하는 편이지만.
- 이상향...어떻게 보면 이상향이기도 하고.
- 그렇지만 완벽한건 세상에 없으니.
- 선계 또한 마찬가지이네.
***
"하긴...이상은 다다를 수 없기에 이상인 법이니까... 그래도 선계는 다를 줄 알았어요.."
그녀의 발걸음이 조금 무거워진다.
개미들 눈으로 보기에 사람이 사는 세계는 이상항처럼 보이겠으나, 막상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과 같은 논리인가.
"장터...나 빨리 찾아보죠..."
***
장터를 찾아냅니다!
마침 막 장이 열렸는지 추운 겨울에도 입김으로 손을 호호 불어가며 장사 중입니다!
***
선계도 완벽하지 않다면, 자신이 불완전한 하계에서 발버둥치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녀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줄연초나 태우고 싶었으나, 그런 감정을 도가 지나칠 정도로 드러내지 않았다.
"어디, 우리 팔초공자님께서 쓸 만한 것을 파는 가게가 어디에 있을까요?"
아주 잠깐 땅 속으로 기어들어가던 목소리는 금세 다시 돌아온다. 이 영물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
모자가게에 들립니다!
"어섭쇼!"
***
"공자님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봐요. 제가 사드리는 거에요?"
짐짓 살가운 행세를 했다. 하란도 그의 곁에 서서 가게 안을 죽 둘러보았다.
팔초공자가 둔갑으로 얼굴 흉내내기를 어려워하니 덤으로 가면도 하나 해주는 것이 이로와 보인다.
그녀는 공자가 모자를 고르는 사이 서둘러 가면을 파는 다른 가게에 다녀올 셈이다.
그저 무난히 두 개를 한번에 사주는 것보다는, 모자만 사줄 것처럼 하다가 마지막에 미리 사온 가면을 내미는 편이 더 좋지 않겠는가?
***
하란은 지켜봅니다!
- 이봐. 거기 냄새나는 인간.
"..예, 예? 저 말씀이십니까?"
- 그래. 똥을 입으로 싸는건가? 신기하군. 아무튼. 이 웃기게 생긴 모자는 어떻게 쓰는거지?
"어...예에에...그것은..."
...
***
공자....^^
"공자. 사람들이 가진 허물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리 무례하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공자의 고향에서, 그곳에 함께 살던 이들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이곳의 사람들에게도 예의를 갖추는 것이 미덕입니다."
이 남자...혼자 둬도 괜찮을까...?
"특히 이곳에서는 평범하게 생긴 사람, 그저 나약해 보이는 사람이, '용'이고 '영물'이고 무참히 썰어버리는 고수일 수 있기에 더더욱 예의를 갖추셔야 해요."
***
- ? 아니. 냄새가 나서 냄새가 난다고 하는 것이거늘. 한 번 맡아보겠나? 정말 입으로 뭘 먹었는지 탐구욕이 절로 생기는 강렬한 향기라네.
가게 주인의 얼굴은 점점 빨개집니다.
- 거 냄새나는 인간.
"으득...예에...손...놈...님...."
- ? 뭐 되었고. 자네 간이 안좋다는 이야기 안들어봤나?
"예?"
- 말했잖나. 똥냄새가 입에서 난다고. 지독하게. 약방에 가서 헛개나무를 달인 물을 한 달 동안 먹게. 원 냄새나서 같이 서있기가 힘들구만.
대체 이게 머선129?
***
분위기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팔초공자가 의학에 조예를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녀도 신체기관에 대해서는 빠삭하지만, 그녀의 관심사는 그 신체기관을 파괴하는 효율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에....
그러면 잠깐 둘이 같이 둬도 괜찮겠지? 무료 의료 상담이나 조금 해 주고 있으라구!
"잠~깐만요~"
하란은 의뭉스러운 함소를 지으면서 모자가게에서 슈르륵 빠져나오려고 한다!
***
탈주합니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
팔초공자에게서 등을 돌린 순간 하란의 웃음기는 손으로 집은 촛불처럼 사그라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대신 피워올리는 것은 연초불이다.
'개 같은거, 내가 남 등쳐먹는 데 희열을 느끼는 변태라서 이렇게 사는 줄 알아? 음흉하게 살지 않아도 목숨 건사할 수 있다면 진작에 때려치고 말았지.'
입 안이 따끈따끈해진다. 연기와 입김까지 희끄무레한 덩어리가 뭉텅이로 빠져나온다. 그녀는 내심, 선계에 가면 어둡고 피로한 삶을 청산하게 되리라는 기대가 있었던 모양이다.
'선계라며. 신들의 세계잖아. 거기에 천존님 석가님 다 계시는 거 아냐? 그런데 완벽하지 않아? 그럼 내가 거기에, 용에 어울릴까 하던 고민은 다 뭐가 되냐고.'
'이제 선계라도 가서 한숨 돌리고 살까 했더니 XX진짜...!'
그녀는 자신처럼 거무튀튀한 인격이 그런 지위를 얻어도 될까 고뇌했던 것이 전부 무익하게 느껴졌다. 감정이 끓어오르려는 순간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걸음을 멈췄다. 숨을 크게 쉬자 겨울철 찬 공기가 가슴 속을 간질였다.
'침착하자. 아직 실망할 단계는 아니야. 단지 그를 통해 전해들은 것이 다니까. 내가 직접 가서 진득히 보고 판단한 후에 짜증을 부려도 늦진 않겠지.'
'내가 말하는 완벽과 그가 말하는 완벽이 똑같다는 보장도 없고..... 그의 눈에는 완벽하지 않겠지만 내겐 차고도 남을 수도 있고...'
다시 평정을 찾은 그녀는 걸음을 앞으로 내딛는다. 그건 그때 가서 판단할 일. 지금은 지금에 집중하자.
***
과연!
선계가 어떤 곳인지, 하란은 전부 단편적으로나마 알고 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자라온 하란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세상에 그런 흉악무도한 인간이 따로 없었더니, 직접 만나 이야기해본 사람은 굉장히 신사적이고 교양있는 경우가 있듯이 말입니다.
어떠한 것이든, 스스로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마음으로 판단을 내린다는 것.
한 명의 성숙한 인간으로서, 또한 인세를 다스릴 용으로서 훌륭한 자세입니다.
하란은 가면가게로 이동합니다!
"어서옵쇼!"
***
무거운 생각은 잠시 마음 한켠에 넣어둔다. 하란은 허리를 숙이고 어떤 가면이 그에게 어울릴지 고민한다.
"머리 크기가 한 이만했었지."
늑장부릴 시간은 없다. 빠르게 판단하자!
***
대충 구매합니다!
비싸지 않군요! 은화는 차감되지 않았습니다.
***
"둘이 설마 싸우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녀는 가면을 품 속에 숨겼다. 모자가게로 호다닥!
***
돌아갑니다!
- 그러니까 이 혈이...아 거 입 좀 다물게. 정말 똥이라도 먹은겐가? 이를 닦을 때 혀도 좀 닦게.
"아유. 죄송합니다. 의원 나리. 제가 모자라서 어휴..."
- 아 그러니까 제발 입 좀...
...뭐, 아까보다는 다행히 나은 상황이군요!
***
"아 공자...좀....예의를..."
하계의 예의범절도 가르쳐주던 해야지 이거. 저렇게 혀를 함부로 놀리다가 큰 화를 입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란 말이다.
"모자는 고르셨구요?"
***
- 마음에 드는게 딱히 없구려.
팔초공자는 고개를 젓습니다.
- 하계의 심미안과 내 심미안은 극히 다른듯 하니...
음...그럼 그냥 아무거나 쓰면 안될까...?
***
하긴 보패가 널린 장터를 보시다가 누추한 곳에 오시니 뭐가 눈에 들어오시겠어.
"그럼- 제가 골라줘야겠네요. 딴데서도 특별히 다른 모자는 찾기 힘들거에요."
그녀는 켜켜이 쌓인 모자들을 이리저리 건드려본다. 싸늘하고 거친 직물의 촉감이 느껴졌다.
***
정말 아무거나 고릅니다!
대충 푹 눌러쓸 수 있는 삿갓입니다.
***
"어디보자. 잠시만요."
그녀는 주인장과 공자 사이에 끼어들어 공자의 얼굴을 몸으로 가렸다.
손수 승무모를 벗겨 자기 겨드랑이에 끼우고, 농부가 모의 뿌리뭉치를 땅에 심듯 삿갓을 그의 머리에 꾹 눌러주었다.
"음... 꽤 괜찮아 보이네요."
턱끈까지 손수 매어주는...스윗한 하란이...
***
멀뚱멀뚱 팔초공자는 뭐 어쩌라는 표정으로 하란을 쳐다봅니다.
??? 아까는 분명...
아 혹시.
지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
"이거 얼마죠?"
그녀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
구매합니다!
이것도 금액이 작아 은화가 소모되지 않았습니다.
***
그나저나 팔초공자 아까와는 이상하게 다른 반응이다. 그 때와 지금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그녀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역시 무당모자보다는 훨씬 낫네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비뚤린-사실 그저 실험을 위한-삿갓 챙을 고쳐잡아주었다.
이번에는 여전히 주인장을 등진 채 용안을 띄우면서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차이점은 그뿐이다.
***
파초공자는 굉장히 머쓱해하며 시선을 피합니다.
그러면서도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이...
말그대로 파초공자는..
인간들과 심미안 자체가 다릅니다!
***
'이것보게?'
절세미녀까진 아니더라도(?) 어디 가서 얼굴로 쉽게 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코 앞에서 봐도 무덤덤하더니, 용안 하나를 띄웠다고 이리 반응이 바뀌어?
취향이 참 특이하십니다그려. 사람이 아니라 그런지 사람과는 많이 다르시네요.
"...이제 나갈까요?"
***
나갑니다!
둘은 거리를 걷습니다만, 파초공자는 하계의 건축물에 꽤 큰 관심을 보입니다.
***
"공자, 뭐 구경하고 있어요?"
그의 시선이 얌전히 앞을 향하지 않고 여기저기 들쑤시는 것이 느껴졌다. 뭘 보나 했더니, 건물들?
"혼자 보지 말고 나한테도 이야기해줘요."
***
- 하계의 건물, 그 중에서도 지붕을 보고있네.
팔초공자는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 선계는 모두 기와이거늘....어찌 초가로 만든단 말인가?
***
"그거야, 기와지붕은 초가보다 훨씬 값비싸기 때문이지요."
흙을 퍼와서 다지고 유약 바르고 굽고 하는 공정을 일일히 설명할까 하다가도, 그가 진정 궁금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방향을 틀었다.
"하계에서 기와집은 특별함과 부유함의 상징과도 같지요. 보통 사람들은 저리 초가나 너와를 얹고 사는 게 대부분이에요."
"푸른 기와를 쓴 집들은 하나같이 그 덩치가 으리으리하니, 꼭 고래등 기왓집 같다는 말도 있을 정도랍니다."
***
팔초공자는 무언가 고민하는듯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입을 꾹 닫아버립니다.
***
왜 이러시나. 하계의 누추한 현실과 빈부격차에 대하여 고민하는 중이신가요?
그건 천년 전에도 천년 후에도 변하지 않을 하계의 황금률이에요. 그런 걸로 고민하지 않으셔도 된다니까요.
"공자님- 표정이 굳으신 것 같아요. 초가지붕이 맘에 안 드시나요?"
"기껏 선물도 하나 더 준비했는데 그렇게 꽁해 있으시면 저도 슬프다구요~."
이제 슬슬 용안과 함께 선물을 꺼낼 타이밍이 되었..나? 그렇겠지?
***
!
매혹 불가 상태입니다.
매혹에 실패합니다.
***
헉 생각보다 훨씬 깊게 고뇌하고 계셨던 것?
하란이가 지금까지 진행 중 이렇게 대놓고 아양떠는 것도 보기 힘든 일인데 문어촉수대갈주제에 감히!
하지만 너그러운 그녀는 잠깐 선물 이야기를 접어두고 그의 생각이 정리될때까지 기다려 주기로 하였따.
***
조금 부러운 팔초인지 초갈공자인지 하는 것에서 문어촉수대가리로 돌아온 그 놈은 한참을 가만히 말도 없이 고민합니다.
...
그리고 고개를 듭니다.
근데 아무 말을 안하는군요.
***
"공자.....?"
도당체 머선 생각을 하시고 머선 말씀을 하시려고 이리 뜸을 들이시는가.
그의 속을 읽을 길 없는 그녀는 그저 옆에서 멀뚱히 쳐다볼 뿐..
***
- 아무것도 아닐세.
팔초공자는 고개를 젓습니다.
- 입 밖으로 꺼내기에는 책임지기가 어려운 말인지라.
....?????????
***
"자신이 한 모든 말에 책임을 질 필요는 없어요 공자. 그저 냇물처럼 흘러가는 하소연도 있기 마련이죠."
아니면 그것도 천기와 천명과 저주에 얽혀 함부로 할 수 없는 말인가요. 그렇다면 유감이지만...
"털어놓아서 마음이 편해지신다면 제게 말하셔도 좋아요."
"하계에서는 비밀을 지키는 것과 듣고 잊어버리는 것도 아주 중요한 덕목인데, 저는 그걸 아주 잘한답니다?"
***
- 선계의 존재이면서 하계의 존재인 그 쪽에게?
팔초공자는 어림도 없다는듯 고개를 젓습니다.
- 그런데, 대체 언제까지 따라붙을 셈인가?
...칫.
***
"사실 선계는 등용의 시험을 치르기 위해 딱 한번 가 본것이 다인지라..."
그녀는 팔초공자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선계행 프리패스만 끊었다 그뿐이지 아직은 하계물이 하나도 안 빠진 그녀였다.
"이건 아까 제가 드리려다 못 드린 건데... 어울릴지 모르겠어요. 한번 써 보실래요?"
"얼굴 흉내내기 힘들어하셨잖아요. 전처럼 삿갓이 동강날지도 모르고."
은근히 쭈뼛거리는 시늉을 하면서 그녀는 가면을 꺼내서 내밀었다.
***
팔초공자는 흠칫거리면서 가면을 받아듭니다.
그러면서 살짝 의아함을 느낍니다.
- 으음...그런데 왜 자꾸 이상한 기분이 느껴지는건지...
선계의 인물들은 참으로 어렵군요!
인간들은 막 써도 모르던데.
***
"흠, 저는 잘 모르겠네요."
아~ 거기서 그걸 직접 받으면 안 되지! 한번 튕겨줘야 하란이가 그걸 직접 씌워줬을텐데!
하지만 이미 받아버렸으니 어쩔 수는 없고... 그래도 반응이 솔직하니 이쪽에서도 꽤 맛이 났다.
"그럼 아까 그 길로 다시 돌아가시는 거죠? 돌아가는 길에 또 만났으면 좋겠네요!"
사실 말장난 조금 보태면 그녀에게도 주군 될 자격이 있는 것 아닌가. 주군이 이 길을 지나가리라 했고, 하란은 팔초공자가 막던 그 길을 지나왔다.
"이건 흘리는 말이 아녜요. 이 말에는 꼭 책임을 지고 싶어요."
***
- 아. 그렇군.
팔초공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 너도 돌아가야 한다. 주군을 제외한 그 누구도 지나갈 수 없으니.
...????
무친.
***
"아니 그....예?!"
그녀는 귀를 의심했다. 여기까지 와서 다시 돌아가자..고?
"공자님 어차피 여기까지 온 거 그냥.... 보내주시면.."
난처하게 웃으면서 움찔움찔 뒷걸음을 친다. 주변의 상황을 살폈다. 보는 사람이 있나없나.
당장 손목을 잡혀서 끌려갈 마당이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
주변은 기이하게도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합니다.
....?
- 천기는 이뤄져야 한다.
눈이 빛나고 있습니다.
***
"어라?"
사람들이 갑자기 왜 저러지? 그녀는 공자가 말하는 천기가 이곳까지 얽어버린 건가 하는 불명확한 직감을 느낀다.
분명 그는 자신보다 강한 존재이다.
그러나 아빠한테 귀를 잡혀 질질 끌려가는...그렇게 무력히 당하진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녀는 몸을 뒤틀며 용의 모습으로 다시 현현한다. 너무 크게는 말고, 대략 사람보다 조금 더 높은 정도로.
불타는 듯한 비늘과 윤기나는 뿔! 그리고 하나가 없는 뒷다리. 그녀는 자세를 숙이고 땅에 발톱을 단단히 박는다.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라는게 할 말이에요! 얌전히는 못 가요! 배째!"
***
여든 한개의 붉은 비늘이 온 몸을 감싸고 집 서너채를 합친 것 보다도 큰 덩치의 붉은 용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나가 없는 뒷다리와, 요사스러울 정도로 아름답게 빛나는 비늘.
그는 조용히 미사하란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
뭐지? 왜 귀싸대기를 꼬집으려 달려오지 않는 것이지?
그녀와 공자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사실, 그녀는 낭패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홧김에 모습을 바꿔버렸지만 더 익숙한 건 사람의 몸이기 때문이었다.
"....."
그녀는 공자의 눈을 쳐다보며 한발짝, 두발짝 물러난다.
***
용은 천천히 뒤로 물러섭니다.
오색찬란하고 상서로운 구름이 하란의 몸 주변을 옷처럼 가리고 있습니다.
- 아.
팔초공자는 정신을 차린듯 앞으로 걸어갑니다.
- 이거였는가.
그러더니 가면과 모자를 벗습니다.
- 나를 패배시키는 자가 주군이 될 것이라더니. 그게 이 뜻이었단 말인가.
그는 하늘을 향해 소리치듯 말합니다.
- 상제시여! 너무하신 것 아니오! 이런 식으로 내게 사슬을 채워야만 안심이 되셨소! 한 때 당신을 모시던 내게!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냐는 말이오!
울부짖듯 소리칩니다.
- 상제여.
- 홍옥과도 같이 아름답게 빛나는 저 두 눈을 보시오. 비단과도 같은 윤기가 흐르는 비늘들은 어떻소? 모습을 감추는 오색찬란한 구름들마저 향기롭소.
- 어찌!
- 어찌 떠나간 그녀와도 같은 모습이란 말이오! 상제가 죽으라고 기거이 내보낸 내 스승의 모습과 이토록 닮을 수 있단 말이오!
- 스승을 사랑한 것이 그리도 큰 대역죄란 말이오! 내게 어찌 이런 시련을 주시오!
우드드득. 공간이 우그러집니다.
- 내가, 그녀와 비슷한 모습을 한 용을.
- 공격할 수가 없지 않소....
털썩.
하늘을 향해 분노와 울분을 터뜨리던 공자는 그 자리에 주저앉습니다.
- ...
그리곤 말없이 하란을 쳐다봅니다.
곧, 그의 입에서 노랫소리와 같은 시가 흘러나옵니다.
- 하늘의 사자들이 내려와 내게 일컫기를.
- 내 주군이 될 자가 고개를 넘으려 할 것이다. 나는 주군을 결코 이길 수 없으니 주군이 될 자를 따라 신종하고 명을 잘 수행한다면 죄를 사하여 주겠노라.
- 그리하니 내 알겠다 하여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거늘.
- 미처 버리지 못한 미련을 들고 어린 용을 쳐다보는구나.
- 내 어찌 미련을 떨치지 못했거늘 과거의 미련을 이길 수 있겠는가.
- 어린 용이여, 내게 그대의 이름을 말해주오.
- 상제를 모시며 신장들을 지휘하던 장군이 그대를 따르리오다.
- 스승을 사랑하여 속세에 미련을 두던 죄인이 속죄를 위해 신종하리오다.
- 남환진군南煥晉君이 그대에게 복속을 청하니.
- 그대 용이여 이름을 밝히고 우자愚者를 받아주오.
***
상제여! 상제시여! 하늘을 향해 울분을 토하는 그를 보면서, 하란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란의 모습은 과거에 존재하였던 그의 소중한 누군가와 매우 유사한 듯 하였다. 하란은 조금 안쓰러워졌다.
'단지 과거에 붙잡혀 외형만을 보고 저리 슬퍼하다니. 우리는 만난 지 하루도 되지 않았고, 분명 알면 알수록 그 둘이 다른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을."
'공자가 나와 함께하며 더욱 절망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그건 공자가 이겨내야 할 일. 그녀로선 편이 생기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 존재가 선계의 장군씩이나 지낸 자라면 더욱!
"나는... 미사하란이오. 아까 말했듯."
"내 곁에 머물기 원한다면 그리 해도 좋소...."
공자가 내뿜는 준엄한 분위기에 방정맞은 말투도 쏙 들어가버렸다.
***
【 남환진군南煥晉君 패울부覇蔚夫 】
옥황상제 휘하의 장군으로 본래 하계의 신장과 산신령, 토지신들을 다스리는 직책에 있던 인물.
선술에 능하고 뛰어난 무술 실력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실력자. 그 실력은 하계로 치자면 생사경의 고수와 비견될만 하다.
패울부에게는 스승인 용이 있었는데, 스승과 사랑을 나누는 대역죄를 저질러 스승은 전선으로 쫓겨나고 본인은 하계로 저주를 받은 채 추방당했다.
온갖 봉인을 당해 현재는 초절정 수준의 실력을 낼 수 있으며, 저주로 인해 화경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다.
- 베일을 벗고
- '봉 잡았다.'
어르신과 신씨, 금소협. 세가의 입장에 따라 언제든지 그녀를 내칠 수 있다.
능도, 경단이들. 충성 서약을 맺었지만 아직까진 돈을 보고 머무른다는 느낌이 든다. 실력도 어중간해.
그러나 진군 패울부. 이 자는 다르다. 모종의 선계의 계약이나 징벌로 예속된 몸. 그녀를 배신한다는 건 곧 선계의 계약에서 등돌리는 것이다. 불가능해보인다.
들인 수고에 비해 상상도 하지 못할 호박이 넝쿨채 굴러온다.
"그럼 앞으로 진군이라 부르면 되겠소?"
그녀는 속마음을 감추고 조심스레 묻는다.
***
- 남환진군이라 부르시게.
패울부는 고개를 저으며 그리 말합니다.
- 영락해버렸으나 본디 상제께 직접 군의 칭호를 받았으니, 그걸 어찌하여 함부로 줄여부른단 말인가?
줄임말이 허락되지 않는 세상!
***
쳇. 어차피 자기도 미사하란이라고 안 할 거면서. 미사 주공이나 하란 주공이나 둘 중 하나겠지.
"알겠소, 남환진군. 내 아직 하계의 연에 사지가 묶인 신세라 그것을 하나 둘 끊어보려 하는데."
"날 도와주시겠소?"
***
남환진군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 속세에 속한 자가 어찌 속세의 연을 끊으려 한다는 것인가?
***
"상제께서 복건으로 가라고 명하셨으나 요녕의 연이 나를 붙잡고 있소."
"내가 인간이었다면 이로운 연이나 용이 되고 해로운 연으로 변모하였지. 무서운 놈에게 물리고 말았소."
그녀는 남환진군에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 말해준다. 자신을 둘러싼 인물과 사람들도. 용이라면 잡아먹고 보려 하는 무림인의 생태도.
"그래서 차라리 나한테 복건의 용신이 들렸다고 미친 척을 한 후에, 그 용신의 권능으로 혈검문을 구워삶겠다고 설득할까 생각도 드오."
"하하. 미친 짓이지."
***
- 내가 속세의 연에 개입하면, 매우 고달파질 터인데.
남환진군은 고개를 젓습니다.
- 연이란 것은 스스로 맺고 끊는 것. 하지만 이 두 눈으로 보았을 때는 그대와 모용세가라는 곳의 인연은 상당히...굵직하구려. 쉽지 않을 것이오. 내가 함께 한다고 하더라도.
- 일단 여기서 이야기한다 하여 변할 것은 없으니 이동부터 하는게 어떻소.
***
"안 그래도 세가의 수장을 만나러 가던 길이었소."
그녀는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태어나 자란 그 모습으로 말이다. 진군은 용 모습을 더 보고 싶어할지도 모르지만..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속이 막히네. 서로 나쁜 짓을 한 사이도 아닌데."
***
마침내 요녕에 도착합니다!!
바로 모용세가로 이동할까요?
***
모용세가로 가는 길...가는 길... 그 위에 있는 책방. 하란은 안으로 쏙 들어갔다.
비급작 말고 보고 싶은 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무속학 연구'나 '무속문화의 이해' 등등
화공이 빼어난 산수를 화폭에 박는 것처럼, 그녀는 책장을 팔랑팔랑 넘기며 내용을 통으로 집어넣는다.
"당신을 세가에 그대로 데려갔다간... 심각한 도발이 될 수 있어요."
출처를 알 수 없는 초절정 고수를 불쑥 대동하는 것에 달가워할 사람은 없다. 거기다 주박당한 육신만 초절정이지 그 껍데기 안에 있는 본질은 생사경의 고수.
생사경...와...
"아니면 벌써 우리를 미행하고 있을지도."
***
남환진군은 멀뚱멀뚱 서있습니다.
- 그러면 나는 어디에 있으란 말인가?
***
"근처 어디에 계셔도 상관없어요. 산이나 길거리나."
문제는 목화색처럼 순결한 남환진군의 하계 지식. 그리고 예의범절!
"하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아요."
"돈을 지불하지 않고 물건이나 음식을 취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하여 시비를 일으키거나....."
그녀는 무언가 생각나 책에 박고 있던 눈을 들어 진군을 보았다.
"아니다! 제가 없는 동안 얌전히 사람들을 관찰하는 건 어떤가요? 그들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잘 지켜보는 거에요."
***
남환진군은....무언가 표정을 지어보이는데 하란은 그 표정을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문어의 표정을 알아차리기에는 아직 하룡이는 어립니다. 응애.
- 음...고려는 해보지.
그리 대답을 듣습니다!
***
"좋아요!"
저게 사람 얼굴이 아니라 무슨 표정인지 모르겠네. 사람 구경 싫으면 전에 초가지붕 기와지붕 사색을 하던지!
하란이는 책을 딱 소리나게 덮어 어깨 뒤로 던진다. 책은 표창처럼 책장의 빈 곳으로 날아가 정확히 꽂혔다.
"그럼 저는 세가주를 만나고 올 테니까."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웃는 게 아니었다. 용이 된 후로 으르신이 일갑자는 더 무서워졌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이상함을 감지하는 건 아닐지....
"제가 살아 돌아오길 기도해줘요...."
호랑이 아가리 속으로 그녀는 떠나간다..으아아아
***
- 무운을 빌지.
남환진군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하란은...
모용세가로 떠납니다.
.
..
...
....
.....
오랜만에 보는 모용세가의 저택은, 여전히 거대합니다.
"아. 적호검희께서 오셨구려."
문지기가 반갑게 하란을 맞이하며 거대한 대문이 열립니다.
***
'오늘은 아무 일도 없다. 아무 일도..'
그녀는 여느 때처럼 가벼운 미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니 내가 평소에 웃으면서 다녔었나? 무표정으로 다녔었나?
확신이 없어진 그녀는 얼굴에 힘을 그냥 풀어버렸다. 문지기에게 목을 까딱거린 후 어르신에게 접견을 청하고...
일이 닥치는 것보다 더 긴장되는 시간. 일이 닥치기 직전의 시간! 그 시간을 하란은 견딘다.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의식적으로 호흡을 고쳐잡는다. 박자에 맞춰서 하나 둘 셋 넷.. 무념 무상으로 네 숫자를 왼다.
***
어르신을 뵙기 위해 안으로 향합니다!
절정이 되면서 느껴지는 것이지만, 새삼 모용세가 안에 있는 하란 이상의 고수들이 느껴집니다.
최소 스물을 넘어가고, 경지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수들도 손 하나는 다 써야 셀 수 있습니다.
수많은 기관진식의 기운은 물론, 각종 보패들의 기운도 살짝 느껴집니다.
의족으로 예전보다는 자연스러워진 발걸음으로 한 방 앞에 선 하란은 조용히 미닫이문을 옆으로 드르륵 엽니다.
"오랜만이구나."
어르신, 모용벽은 처음 하란을 만났을 때 처럼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
모르는게 약이라고 할지. 그녀는 더욱 강해졌으나, 그로 인하여 세가의 강성함을 더욱 체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긴장할 것 없다. 그 때와 비교하여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내가 바뀌었을 뿐이다. 더 강해진 것도, 더 겁먹은 것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말한다.
"어르신을 뵙습니다."
공손히 포권지례를 올리며 허리를 깊게 숙인다. 한 발자국으로 문지방을 넘고.
문을 다시 닫는다.
드르륵...
탁..
***
후루룩.
모용벽은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달그락.
찻잔을 내려놓은 모용벽은 허허 하고 웃습니다.
"이 녹차가 말일세. 저 황제에게 진상되는 물건이라고도 하더군. 정확하게 이름은 잘 기억이 안나네만...한 잔 들어보겠는가?"
***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녀는 어르신께 받은 녹빛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거짓 없이 말하자면, 의심된다. 정신을 흐리게 하는 약이 있을까봐.
마시는 척만 할까, 혀끝만 살짝 댈까, 침을 모아 섞어서 아주 조금만 삼켜볼까.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둔한 자는 자신의 의심과 꾀에 발이 걸려 넘어진다.'
그런 잔재주가 통할 상대는 아니다. 방에 들어온 이상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정면으로 서서 견디어야 한다.
하란은 고개를 돌리고 호록, 한 모금을 삼킨다.
***
아주 진귀한 용정차를 섭취합니다!
내공의 총량이 2 증가합니다.
현재 내공 총량은 95입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모용벽은 찻잔을 들어올립니다.
"말해보게나."
***
"아.. 실로 대단한 차입니다."
약은 아니었다. 그래도 영약일 줄은 몰랐다. 생각을 말로 하지 않아서 참으로 다행이다.
황제는 매일 이걸 마신다고 생각하니 놀라웠다.
"드릴 말씀이 여럿 있으니 차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은 자경단 건부터 시작하자.
"어르신께서 허락하신다면. 지금 제 아래에 있는 현지 자경단을 바치고 싶습니다. 즉 그들을 세가의 하급 무사로 들이는 것에 대한 건입니다."
***
"석가장을 이름인가?"
모용벽은 허허 웃으며 차를 음미합니다.
별 것 아니라는 듯한 반응입니다.
***
"그렇습니다."
그녀 밑에 있는 자경단이라면 그거 하나뿐이지.
"그들은 지금 제 사병이나 다름없는 상태이니 이는 좋은 일이 아니고, 저 개인적으로도 그들을 안는 것에 한계가 오는지라..."
금소협이 올해는 버틸 거라고 얘기했던 것 같다. 그 올해가 다 저물고 있지 않은가.
"자경단은 석가장 권역 치안의 한 축을 맡고 있으니, 미약하더라도 세가의 눈과 손이 그곳에 있다는 상징과도 같아 섣불리 해체하기도 마땅찮다고 생각하였습니다."
***
"그렇지만 그들의 충성은 여전히 자네에게 향하겠지...그렇지 않느냐?"
모용벽은 허허 웃으며 조용히 하란을 쳐다봅니다.
"그래....그래....자네의 세력을 온존시켜주는 댓가로."
달그락.
찻잔을 내려놓습니다.
"내게 무엇을 주겠느냐?"
***
그것이 절실하진 않으나, 보전해 주신다면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어르신.
눈을 감았다 떴다. 지금부터 그녀는 작두 위에 오른다. 급조한 태가 어쩔 수 없이 날지 모르나 이제 뒤를 돌아볼 여유는 없으리라.
"어르신, 생뚱맞을지 몰라도 혹 복건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어쩌면 제가 요녕과 복건을 이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모용벽의 얼굴에 처음으로 호기심이 어립니다.
"그게 무슨 말인고?"
***
"만약 우리가 복건의 기후를 조정할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더 구체적으로 말하여 복건 지방의 농업, 어업 소출에 영향을 직접 줄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나 갖가지 요사스러운 괴물들이 온 중원을 활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것들을 제압하고 균형을 되찾기 위하여, 천계의 신령한 존재들까지도 우리 세상에 개입하기 시작한 듯합니다. 복건의 어린 용 또한 그 중 하나지요."
지금까지 살아왔던 용 중에 이렇게 야바위를 치는 용이 있었을까? 자기를 모시는 무당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용 말이다. 그녀는 어이가 없어 나오려는 헛웃음을 참았다.
"지금까진 그저 두려워 숨겨왔으나. 사실 이제 막 나이를 채웠다는 용이 복건을 다스릴 것인데, 저더러 그곳으로 가 대역을 하라고 우긴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그는 혈검문에 은혜를 내리며 두텁게 지내고 싶어합니다. 그럼에도 혈검문의 과오가 있어 직접 그들과 대면하는 것이 불안하다더군요."
"이제 와선 내림굿도 받지 않았거늘 보여선 안 되는 것과 들리면 안 되는 것이 들리기 시작하니...."
"이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것을 제 삶의 일부로 여기고, 세가를 위해 쓸 각오가 섰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
툭.
툭.
툭.
모용벽은 찻잔을 내려놓은 채로, 하란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손가락은 반상을 일정한 가락으로 천천히 두들깁니다.
"계속 해보게."
그는 계속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입니다.
***
"어르신께서 허락하신다면 당장이라도 밑 작업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대놓고 할 일이 아니니 은밀하게 진행하겠습니다."
"용이란 것이 본래 축복과 재앙의 양면성을 가진 바. 혈검문은 용 소리를 들으면 가시부터 세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전과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허나 사람 감정이 오묘하여, 결딴을 내려고 각오하다가도 친선의 손길을 내밀면 그들은 필시 안도하리라 확신합니다."
"나쁘게 굴던 아이가 갑자기 착한 일을 하면 더 예뻐보이는 법."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용을 잡는 것은 혈검문에게도 상당히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 될 테니까요."
신생 군주는 대개 흔쾌히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군주를 환영했던 사람들보다 더 충성스럽게 될 수 있다고.
스승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용이 베푸는 은혜란 곧 소출의 증대입니다. 혈검문이 흑천성에 분명 상납하는 게 있을진저, 구멍을 메워주다 보면 혈검문은 그에 의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잃을 게 없다면 잃을 것을 만들어주면 되지요."
"그리고 그 소출의 증대에 우리의 협조가 있었음을 계속 강조하면 됩니다. 그들은 차차 우리에게 물들게 될 것입니다."
"제가 앵무새처럼 용의 결정을 예언처럼 전하여 그에 대비토록 하거나, 혈검문과 용 사이를 중재하는 것만 해도 그들에겐 차고 넘치는 협조 아니리이까?"
"이 미사하란. 복건룡과 인세를 잇는 유일한 연결고리입니다. 모용세가의 허락 없이 혈검문은 용의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
"입만 꾹 다물어도 예언은 없는 것입니다. 제가 혈검문에 대한 험담만 해도 용의 생각이 바뀔지 어찌 압니까?"
"모용세가에 거슬렀다간 은혜는커녕 재앙을 맞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입 안에 용정차는 아직도 달거늘...슬프다!
"그 용이라는 자도 성해 보이진 않습니다. 용생자로 나서 곱게 자라다가 막 세상에 나온 도련님 같다고 할지..."
"인간과 인세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얕보이기 싫어 허세를 부리지만 순진한 면이 많습니다. 사실 용이 자신이 있었으면 대리인은 무슨. 직접 나섰겠지요."
"혈검문이 무섭다고 이리 저를 거치고자 하는 것을 보아도 그 뒷사정이 훤합니다. 설득하는 것에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모용세가의 도움이 있어야지만 대리인 행세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그 일은 제게 맡겨 주십시오."
"어쨌든 용은 제 몸뚱이가 복건에만 있어도 아쉬울 건 없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자기가 복건의 기후를 은혜롭게 주무르겠다 그것뿐이니."
"어차피 그 너머는 혈검문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성 모독에 가까운 말이다. 일반적인 무당이 할 말이 아니다. 그러나 어르신 앞에서 두 주인을 섬긴다는 인상을 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자신을 아무리 깎아내려도 후환은 없을 텐데 무엇을 망설일까? 내가 나한테 천벌이라도 내리지 않는 이상에야.
"그렇게 혈검문과의 장벽을 없애고 포섭에 성공하면 본격적으로 공작할 때가 될 것입니다."
"우호 관계를 위한 밀약을 맺거나, 혈검문을 통해 흑천성의 정보를 얻거나..."
"아무튼 제가 혈검문을 바치면, 어떻게 드실지는 어르신 마음입니다."
***
그렇게 이어지는 하란의 말을 모용벽이 중간에 뚝 잘라먹습니다.
"용을 직접 봐야겠구나."
...
ㅇ, 예?
"이 두눈으로 직접 보아야 네 그 허무맹랑한 소리가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 허허."
모용벽의 두 눈은 차갑습니다.
진실여부는 둘째치고, 그는 그 용이 하란이 말한대로 써먹을 수 있을지 가늠하려들게 분명합니다!
***
"하...하하.."
역시 만만치는 않다 이거지. 후...
기껏해야 네가 용을 받았다는 증거를 봐야겠다고만 예상하고 있었다. 용을 직접 보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
"안 될 것은 없지만 그 용을 잡아먹으려는 것은 아니시지요...? 예?"
***
모용벽은 빙그레 웃고 있습니다.
그는 하란의 행동, 말 하나하나를 보며 시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
"근방에 적당한 장소를 조율해 보겠습니다. 전서응 한 마리와 잠시의 말미를 주신다면..."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그는 응할 것입니다. 반드시 그리 만들겠습니다."
***
"자네를 대동해야겠지?"
모용벽이 그리 묻습니다.
"대리를 맡길 정도로 인세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는 '용'이니 말이네."
***
"저는 함께할 수 없습니다. "
진군에게 둔갑을 시키고 그녀의 대역을 맡겨? 그럴거면 아예 여의주도 빼다가 어르신한테 맡기고 말지. 입에서 똥냄새난다는 소리나 하는 치를 말야.
함께할 수 없는 이유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다. 아ㅋㅋㅋ말할 수 없는 천계와 영적인 사정이 있다구요ㅋㅋ.
"다만 그의 수하 한 명을 대동하고 내려올 것입니다."
***
모용벽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하란을 조용히 쳐다봅니다.
.
..
...
....
.....
......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그가 입을 엽니다.
"내게 숨기는게 있군. 그렇지 않은가?"
***
아 그냥 톡기모자 벗고 아잇 내가 용이다! 라고 하면...
...죽겠지?
"천기니 천명이니. 그들에겐 이해하지 못할 면모가 많습니다."
***
모용벽은 입을 엽니다.
"미사하란. 자네는 누굴 따르는가?"
덜컹.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입니다.
"용인가? 이 모용세가인가?"
용인걸 숨기는게 오히려 독이 되어버렸어용...
모용벽은 사람 의심하는걸 미덕으로 여기는 사람이라는걸 잊지 마세용...
숨기는 것 보다는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는걸 내단이 뽑힐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나을것...
모용벽의 과거에도 나와있듯이, 마교간자들에게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다보니 약간 사람 의심하는게 PTSD에 가까운 인물이니 그 부분을 자극하시면 큰일나는거에용!
***
"아 어르신..."
손으로 얼굴을 덮어 가렸다. 난 왜 이 인간을 이길 수가 없는거야. 왜 이 사람 앞에만 서면 알몸이 되는 거냐고.
난 절정이고 어르신은 초절정이지만 그래도 슬퍼!
"그냥 지금 불러오겠습니다. 넓지만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공간을 준비해 주십시오... 그 안엔 오직 어르신과 저만이 있어야 합니다."
***
잠시 고민하던 모용벽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장소를 준비하거라. 그리고 모두 듣지도 보지도 말라."
허공에 그리 명하자 하란의 뒷통수를 살짝살짝 간질이던 기운들이 모조리 사라집니다.
"뒷산 정상이 제법 넓은 공터지. 그리로 가있게나."
***
"예. 어르신."
꾸벅. 인사를 올리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세상에나마상에나 이게 머선 일이야. 왜 일이 이렇게 돌아가는 거냐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뒷산을 한 발자국..두 발자국 오르는 하란이..
"엄마....오늘 나 죽나봐..."
산 정상 그루터기에 쭈그려 앉아서 울먹거리는 그녀였다.
***
곧 모용벽이 아래에서 올라옵니다!
준비는 되셨습니까?
***
"으..힉..히익..이히이.."
소매로 눈물을 닦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얼굴을 잘 풀어서 자연스러운 표정이 나오도록 돕는다.
"아아..진군이도 부를 걸..으으아.."
여기
뒤늦게야 그 인간 생각이 나버렸다.
***
모용벽은 정상에 올라와 하란을 쳐다봅니다.
"용은 어디에 있는게냐?"
님 눈 앞에요. 쿠 쿠 루 삥 뽕 ~
***
용이용?
"어르신 눈 앞에..."
뜻 모를 소리를 하곤, 한참을 쭈뼛거리고 몸을 배배 틀던 그녀는 마참내 마음의 결단을 내린다.
이를 악물고 힘을 주자 하란의 몸이 변해간다. 뿔이 자라고 비늘이 돋으며 붉은 사조룡의 형으로.
누군가는 평생을 찾아도 보지 못할 광경이어요 어르신.. 제게 감사하십시오 무림 휴먼..
***
하란.
모용벽이 놀란 모습을 스레를 진행하면서 본 적이 있습니까?
없다면 지금 오늘. 마음껏 감상해두시길 바랍니다.
붉은 용으로 변한 하란을 본 모용벽의 눈은 커지고 입은 살짝 벌려집니다.
...하란은 긴장합니다.
여의주와 내단을 외치며 달려들지는 않을까....
***
어르신이 진심으로 놀란 표정. 처음 본다. 평생 보지 못할 줄 알았다. 황천길 노자로 쓰라는 어르신의 배려인가?
"어어어어르신 사실 제가 복건의 그 용입니다!!!"
"상제님이 복건으로 가서 다스리라 하셨는데 세가를 버리고 내빼면 분명 무림공적이 될 테고."
"그렇다고 상제님의 명을 가벼이 여길 수도 없었습니다! 상제님 아니십니까 상제님!"
사실 하란이도 정신이 입 밖으로 도망나가고 있는 상태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당황스럽고 두려운 이 순간이란!
"저는 그저 그 둘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고자 한 죄밖에 없다구요 어르신..."
되는대로 내지른 그녀는 머리를 숙이고 기다란 몸통을 움직움직하면서 더 이상 말은 없었다.
***
모용벽은 말이 없습니다.
한참이 지납니다.
"...일단 사람으로 돌아오게. 머리가 조금 아프군."
***
"..."
그녀는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다. 뿅.
"어르..신..."
땅에 맥없이 떨어진 지팡이를 다시 주워든다. 몸을 가리려는 양 두 손으로 꽉 쥐었다.
어르신이 손을 뻗기라도 하면 빗자루로 고양이를 쫓는 아낙마냥 휘두를 폼이다. 통하기나 할까.
***
모용벽은 수염을 가다듬으며 하란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표정은 미묘합니다.
분노하는 것 같기도, 흥미로워하는 것 같기도, 즐거워보이기도 하고, 씁쓸해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란은 알고 있습니다.
드러난 표정 중에 어르신의 진짜 감정은 없다는걸 말입니다.
"우선 앉지."
모용벽은 근처에 잘려나가 앉기 좋은 나무 밑동에 앉습니다.
"할 말이 있을 터인데."
먼저 말해보라는 듯 턱짓합니다.
하란은 본능적으로 눈치챕니다.
어르신은 여전히 하란을 자신의 휘하에 두고 있다 판단했습니다.
***
"제가 드렸던 제안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도박이 통했다. 그녀의 목숨줄은 더 연장된다. 언젠가 죽을진 모르지만 그게 오늘은 아니라고!
"그리고 이 사실은 부디 어르신만 알고 계십시오.."
***
"그러면 이제 숨김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구나."
모용벽이 그리 말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말해보거라. 낱낱이 숨김없이. 네 속에 있던 계획까지도 말이다."
***
어차피 이제 숨길 것도 없다. 당당하기라도 해야지.
용이란 걸 들킨 이상 그것보다 더 중한 비밀이 있나?
"혈검문과 유착관계를 맺고 그곳에 용궁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려면 우선 제 몸을 복건에 박아넣어야 하고, 만약 어르신이 제 제안을 윤허하신다면..."
...그런데 설마 교룡비급 물어보는 건 아니시겠지?
"황망하게 모용세가의 목줄을 벗겠다고 날뛸 필요가 없어지겠지요. 중요한 것은 장소이니 말입니다."
그녀는 등을 꼬고 목줄같은 말을 서슴없이 했다.
***
모든 이야기를 들은 모용벽은 하란을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뭐지? 내단이 있나 없나 확인하는 눈빛인 것인가?
"감찰단을 안으로 들이고 정기적으로 보고를 보내야 할 게야."
반쯤은 허락입니다!
***
빵끗! 그녀는 웃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어르신께 배운 것이다.
"모용세가의 괴뢰문을 허락하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일단 시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세가의 감시가 두려워 시작도 않는 것보다는, 우선 세워놓고 감시를 쳐낼 궁리를 하는 게 더 낫다. 일단 용궁은 남을 테니까.
괴뢰용궁이라니 해괴하기 짝이 없구나.
"또 다른 조건이 있습니까?"
하지만 내가 아는 모용벽은 이정도로 만족하지 않아. 그녀는 아직 말하지 않은 조건이 있으리라 짐작한다.
***
"차차 알게 될 것이네."
모용벽은 허허하고 사람 좋게 웃으며 그리 말합니다.
하란은 복건으로 가는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 귀향
- "즉시 준비를 시작하겠습니다..."
어르신...키워주신다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성의 화신인 당신을 믿었어요. '얼마간은' 황금알 낳는 오리 행세를 충실히 이행하겠습니다.
자경단은 복건에 데려갈 수 없으니 세가에 주고 가야겠지. 실력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고, 머릿수가 많아도 골치아프니까. 걔넨 이제 봉급을 세가에서 받겠구나.
그러고보니 능도도 지금 세가에 있을까.
***
돌아갑니다!
모용벽은 돌아가지 않고 할 일이 있다며 같이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하란은 복건성으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
준비합시다!
***
아 힘 빠진다. 술 마시고 싶어... 익고 익어서 썩기 직전까지 간 독주 말야...
"거기(선계) 가서 필요한 거 있나 보고, 진군이 무공도 낼름하고, 가는 길에 거기(???)도 한번 들르고...변장도 해야 하는데.."
"가기 전에 능도나 구경할까."
해야 할 일 리스트를 중얼거리던 그녀. 문득 통통배에게 끌려간 능도가 생각났다. 얼마나 재미나게 구를 수 있을까?
***
능도를 보러갑니다!
능도는 연무장에서 미친듯이 구르고 있습니다!
하란이 온건 당연히 눈치조차 채지 못합니다.
***
"아핰핰ㅋㅋ"
신나게 치이는군.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그녀는 심한 꼴을 당하는 능도를 보며 웃었다.
방검진을 익혔다고 세가에 의해 죽임당할 줄 알았던 것을. 이리 될 줄은 몰랐지.
어디까지 하나 구경이나 해볼까.
***
곰방대에 불을 지펴넣고 뻐끔거리며 구경합니다!
능도는 정말 이를 악물고 수련에 수련을 거듭 중입니다.
모용세가의 무인들이 자세가 어긋났다며 봉으로 찌르자 넘어지면서도 곧장 일어나 다시 자세를 잡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무인들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습니다.
녀석. 빠끈하구만.
***
그녀는 이를 악문 능도를 흐뭇하게 쳐다본다. 그의 수련이 끝났을 때 비로소 몸을 일으켰다.
아마도 바닥에 자빠져 있을 능도에게 다가가서...
"능도 안녕?"
지팡이에 앞으로 기대 그를 내려다보고 말하는 것이다.
***
능도는 지쳐서 땅에 누워있다가 갑자기 다가오는 달콤하면서도 매캐한 향기에 벌떡 일어납니다.
"누, 누, 누, 누님?!"
그러더니 더러운 자신의 옷매무새를 보고 얼굴이 시뻘개집니다.
***
누님이래 누님. 요 발칙한 것!
"이제 좀 무인 폼이 난다? 옛날엔 그냥 창 든 애기였는데."
이 하란이는 기쁘단다..
"매일 이렇게 수련하는 거야?"
부럽다 능도야. 나도 매일매일 수련만 하고 싶어.
***
"아...예...매일...그러고 있습니다..."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며 능도는 발을 배배 꼽니다.
뭐지. 꽈배기를 못먹어서 한이 되었나.
엌ㅋㅋㅋ 개꿀잼 ㅋㅋㅋㅋ
***
오랜만에 이어지는 남이 보기엔 애제자 플러팅이지만 본인에게는 별 의미없는 무자각 플러팅!
그녀는 깔깔 웃으면서 능도에게 꼭 붙었다. 그의 머리를 헝클어 놓는다.
"능도 얘 잘 하고 있습디까?"
머리 쓰담쓰담 어깨 쭈물쭈물
***
홍시보다도 붉어진 얼굴을 들지 못한채 능도는 가만히 부들대고만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책사님."
무인은 호방하게 웃으며 능도의 어깨를 턱 쳐주곤 말합니다.
"그런데 혹시 책사님 오랜만에 돌아오셨는데 금방 떠나십니까? 아니라면 그 석가장 때의 무용담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한 번 차라도..."
그 때 능도가 와악!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아아아아아!!!!"
그러더니 사라집니다.
"원, 녀석. 갑자기 왜저런담."
***
왜 그렇게 배배 꼬고만 있어 임마! 야 어디가? 기백을 보이라고 어!(?) 볼때기 확찝해버릴라!
"저거 저거, 또 언제 날 볼 줄 알고."
아ㅋㅋ 복건 간다고ㅋㅋ
"안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입니다. 당장 떠나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인지라."
"아쉽지만 오래 있을 수 없을 듯 합니다."
***
왜 그렇게 배배 꼬고만 있어 임마! 야 어디가? 기백을 보이라고 어!(?) 볼때기 확찝해버릴라!
"저거 저거, 또 언제 날 볼 줄 알고."
아ㅋㅋ 복건 간다고ㅋㅋ
"안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입니다. 당장 떠나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인지라."
"아쉽지만 오래 있을 수 없을 듯 합니다."
***
그 말에 모용세가의 무인들은 아쉽다는듯 하란을 떠나보내줍니다!
이제 출발하시겠습니까?
***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날지는 모르겠다 안녕!
그녀는 호다닥 빠져나와 진군과 헤어진 곳으로 향한다.
***
남환진군은 나무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네. 나무요. 그 갈색에 지금은 겨울이라 다 말라비틀어진 나뭇잎들을 데려다 놓은 스텀피같이 생긴 죽은 나무요.
- 아 왔군.
남환진군은 반가웠다며 나무에 인사를 하고 등을 돌립니다.
***
"....지금 뭐랑 이야기하시는 거에요?"
나무라. 결혼을 외치는 짹짹이들처럼 얼굴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으며 의식이 있는가 없는가도 불분명한 나무와 대화를...
젠장, 무섭다고요. 선계에서 내려온 건 알고 있지만 그거 정말 미친놈같단 말야.
"나무가 뭐래요...?"
그녀가 하려던 좋은소식 나쁜소식 이야기는 그만 쏙 들어가버렸다.
***
- 나무라니.
남환진군은 어이가 없다는듯 크툴루적인 얼굴에 달린 촉수를 흔들어댑니다.
- 이 지역을 수호하는 터주인데.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주지 않아 배를 곪아서 저렇게 되었다는군.
***
"으음."
배고픈 나무꾼이 싹둑 잘라갈 것처럼 생긴 나무다.
저런 모양을 하고 신령이라면, 살면서 모르고 지나친 신령들이 한 수레일지도 모른다. 세상만사 요지경이라니까.
"아무튼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좋은 거는 당장 살아나와서 복건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나쁜 거는 음...그 인간이 기어코 내 정체를 알았어요."
그녀는 자신이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어 웃었다. 아핰핰!
***
- 인간사란 본래 그리한 것이지.
인간이랑 부대껴 살아본 적도 없는 남환진군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약간 킹이 받는군요!
- 그래서. 일은 일단락된것인가? 복남성으로 떠나면 되는 그런건가?
복건성입니다. 이 멍청아!
***
"의외네요. 정체를 들켰으니 넌 끝장이라고 호들갑을 떨 줄 알았는데."
아니면 용이 내단냠냠의 대상이라는 걸 아예 모르는 걸지도... 남환진군이라면 가능성 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복건성' 이구요! 그리고 그 전에 들르고 싶은 곳이 좀 있어요."
하나는 황금먹튀한 개방도들 조지러 호남에 다시 가는 것.
그리고 그 전에 갈 다른 하나는...
***
그냥 걸어서 이동하실 수도, 용으로 변해서 이동하실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시간대를 밤으로 변환합니다!
하란은 용으로 모습을 변환시킵니다! 남환진군은 그걸 넋놓고 바라보다가 하란이 물끄러미 쳐다보자 그제서야 다리 부분을 붙잡습니다.
...등에 태우고 싶지는 않으니까 뭐 알아서 잘 매달려 오겠죠.
땅에 떨어져도 안심! 튼튼한 남환진군!
이동합니다!
화아아아아악 - !
.......강렬한 바람과 상서롭고 오색찬란한 구름이 순간적으로 산동 일대에 내리앉습니다.
도착했습니다.
***
그녀는 진군을 다리에 달고 하늘 위로 날아오른다.
서늘하고 맑은 겨울의 밤하늘을 수년간 올려다보았으나 이리 그 속으로 직접 뛰어든 것은 처음이었다.
가면 갈수록 익숙한 지세가 나오는 것에 그녀는 눈을 떼지 못했다.
착륙하기 무섭게 모습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린다. 진군에겐 섭섭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
인간의 모습이 되자 남환진군이 엎드려서 하란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
...
- 험험.
남환진군은 점잖게 커흠 헛기침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하란은 술을 사서는 이동합니다!
***
그녀는 기억을 더듬어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간다.
십년이면 강산도 바뀐다고 하였는데. 떠나간지 십년까지 지나지는 않았으니까. 눈에 익히는 것 몇 가지는 있을 터였다.
길과, 건물과, 나무와, 돌과... 이곳에서 이런 일이 있었으며, 저 곳에서 저런 일이 있었으며....
"남환진군. 우리 지금 어디 가는 줄 알아요?"
스승님 집 근처에 그분들을 묻었었다. 어디였더라..
***
낡고 다 쓰러지다못해 나무에게 침식당한 것 같은 작은 집 하나를 발견합니다.
....하란에게는 익숙하다못해 그리움이 느껴지는 곳.
막기아발의 집입니다.
***
이 집을 떠나면서, 칼밥의 첫 보수를 받고 구석에 주저앉아 울면서, 벌레에 흙탕물이 들끓는 진지 안에서, 순라를 돌면서, 아침에 일어나 연초 한대 하면서....
수천번을 생각했다. 언젠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면 자기 자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유달리 힘든 날은 그 문 앞에 주저앉아 오열하는 상상을 했고. 일이 잘 풀렸던 날은 금의환향하여 세 분의 무덤에 상다리 부러질 제삿밥을 올려주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그런 그리움과 상상마저도 모두 햇빛에 바래 버렸는가.
"집 떠나고...처음 돌아왔네."
막상 슬픔의 궤짝을 열어보니 그 안의 것들은 시간이라는 이름의 쥐새끼들이 거의 다 파먹은 후였다.
슬픔의 눈물도, 기쁨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그저 오랜만이다... 이 물건은 아직도 있네... 여기가 부엌이었지... 그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더 이상 슬프지 않다는 사실에 서글퍼졌다.
***
집을 한 번 돌아봅니다.
...
책을 한권 찾아냅니다. 예전 스승이 썼다가 쫓겨난 바로 그 책입니다.
이름도 지워지고, 내용도 이곳저곳이 찢겨져있습니다.
획득하시겠습니까?
***
이곳은 잡초 자란 앞마당이다.
"아저씨 제자 하며는 진짜 글 가르쳐주는 거에요?"
"그렇고말고. 네가 손 못 대게 하는 그 책도 읽을 수 있게 될 게다."
"그러면 아저씨 집에서 자도 되는 거죠?"
"오냐."
이곳은 내려앉은 부엌이다.
"하란아! 아까운 줄 모르고 밥을 또 태웠구나! 이래서 시집이나 가겠느냐?"
"어차피 다리 하나 없는 여자한테 누가 장가를 든다고...악!"
"이놈이 그래도!"
이곳은 먼지낀 서재다.
"하여, 인간이란 어버이의 죽음보다도 잃은 재산을 더 잊지 못하는 존재인 것이다."
"......"
"......"
"제 얘기에요? 전 재산이란 걸 가져본 적이 없어서."
"크흠. 아니다."
그리고 얼룩진 안방. 내팽개진 책.
"여기...여기 피가, 흐윽, 피가 계속 터져요 스승님..."
"어어...어떡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제발 뭐라고 말씀 좀 해주세요.."
스승님이 손수 쓰신 초안이다. 종이에서 비린 쇳내가 난다.
"이게 여기 있었구나. 그렇게 찾았는데 왜 못 봤지?"
그 시절의 하란은 많이 어렸다. 요동치는 마음에 경황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찾았으니 그녀에겐 되었다.
그녀는 다시금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
【 군주론 】
시대와 세상을 잘못 만난 비운의 천재가 펼쳐낸 희대의 이론.
그러나 세상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시대는 그를 거부하였으니.
찢어지고 잊혀지고 지워진 채로 남아버린 이 책은 다시금 완성되기를 소망한다.
- 성장형 보패 : 특정 조건을 만족할 때 마다 새로운 효과가 해금됩니다.
뒷마당으로 이동합니다!
잡초가 무성합니다...
***
스승님과 부모님을 한 자리에 나란히 묻었다. 익숙한 집 안은 눈 감고도 다니는 것처럼. 그녀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눈과 땅을 가리는 잡초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앞으로 다섯 걸음. 오른쪽으로 두 걸음.
사박...사박...
한쪽 발로 잡초를 꺾어 누르고 지팡이로 걷어내가면서 하란은 걸음을 내딛었다.
***
이렇게 보니 작고 초라해보이는 무덤이 보입니다.
관리가 되지 않아 그냥 언덕처럼 올라온 땅인지, 묘지인지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묘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
짤칵
파스스....
호흡 한번보다 짧은 시간에 그녀는 발검하고, 다시 납검하였다. 무덤을 뒤덮은 잡초들은 허리께가 잘려 넘어진다.
그녀는 목을 돌려 진군을 돌아보면서 말한다.
"남환진군, 저기. 진군이 찾던 내 스승님 계셔요."
끼익..끼이익....퐁. 술병 마개를 비틀어 열었다. 맞지 않게 동글동글한 음색이다. 언젠가 찾아올 마지막도 그렇게 되리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희게 늙은 이들은 잔잔히 유언을 건네고, 그녀는 손을 잡아주며 임종을 지키는 것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하란의 생각보다 훨씬 더 잔인했다.
하란은 무덤에 탁주를 부었다. 그것은 회한처럼 땅을 적셔간다. 반겨주는 이 없는 금의환향은 외로웠다.
"오랜만이에요. 집에 오니까 좋네요..."
"저 출세해서 돌아왔어요. 천하에 저보다 출세한 인간도 몇 없을거에요. 과거급제나 청요직 따위하곤 비할 수도 없이."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까. 그녀가 보았던 수많은 일들을 어찌 다 이야기할까.
술병을 비워버린 그녀는 할 수 있는 말이 많이 없었다. 그동안 힘들었다. 그래도 출세했다. 다시 그동안 힘들었다. 미안하다...
귀신들린 사람처럼 무덤 앞을 쉼없이 서성이며, 멍하니 같은 말만 반복한다.
***
남환진군은 아무 말 없이 그의 멋진 촉수를 가다듬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예의를 차리는 모습입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런 말도 없습니다.
하란은 남쪽으로 흘러가는 구름들과, 차가운 겨울바람과,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스쳐 부딫히는 소리들을 들으며.
무덤에 말을 겁니다.
그럼에도.
스승님은 침묵을 지키실 뿐입니다.
한 마디라도 해주시면 참 좋으실텐데.
잘 컸다고.
잘 버텨왔다고.
잘 살아왔다고.
말입니다.
***
갈 곳 없는 아이를 거둔 것은 선행이고, 그를 행한 자가 응당 받을 것은 후한 보상이다. 그랬어야 했다.
...
...
...
"....제가 칼 쓰는 거 구경하실래요."
만에 하나 용안을 띄우면 정말 그들이 있을까 두렵다. 맨 눈으로 잔디 자란 봉분만 노려보던 하란. 오랫동안 세상을 떠돌며 배운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재롱잔치를 위한 검을 뽑는다.
노나라 사람 노래자는 일흔 살의 백발노인이 되어서도 어버이 앞에서 때때옷을 입고 재롱을 피웠다. 그녀라고 못 할소냐.
하란은 한 방울의 술도 마시지 않았으나, 꼭 무언가에 취한 듯 하였다.
보세요 스승님, 당신이 거둔 외다리 꼬마가 이리 잘 커서 돌아왔으니.
벌레 끓는 진흙탕과 뼛속을 파고드는 새벽의 찬 이슬, 녹슨 낭인의 살검과 대계의 태풍 속에서도.
당신 제자는 모두 헤쳐버리고 살아남아 용문을 넘었단 말입니다. 모두 당신의 위업이라고!
***
무언가가 머릿속에 들어옵니다.
검을 휘두르는 동안 인세에서 살아오며 겪었던 온갖 울분, 분노, 체념, 행복, 기쁨, 슬픔, 즐거움, 사랑, 추억...
모든 것들은 하나로 섞여 물레방아가 돌아가며 곡식을 찧듯 감정들은 곡식이 되어 빻아져 하나로 이루어집니다.
순수한 감정, 순수한 마음으로.
스승을 생각하며.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휘두르는 검은 오색찬란한 빛을 터뜨립니다!
화아아아아악 - !
인근에 상서로운 오색 구름이 뒤덮히고 하란의 모습은 그 안에 담겨 검을 내려놓고 조용히 좌선을 한 채로 눈을 감습니다.
저 오래전 검을 휘두르면서 용이 되고자 했던 뱀이 있었고.
이제는 하란의 차례일 뿐.
하란이 눈을 뜨고 내려놓은 검을 잡아 '인간'은 취할 수 없는 동작을 취합니다!
파아아아아아아앗 - !
하란의 등 뒤에서 사람 서넛은 들어갈만한 거대한 둥그런 붉은 빛의 원진이 그려지고 뜨거운 열기를 내뿜습니다.
그럼에도 주변의 풀은 한 포기도 타오르지 않습니다.
- 선술을.
남환진군이 놀란듯 멋드러진 촉수를 쓰다듬는 일도 멈추고 입을 벌립니다.
- 선술을 익혔군.
이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차가운 겨울 바람 한 줌이 하란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사라집니다.
마치 스승님이 잘해냈다며 웃고는 머리를 쓰다듬고서 앞으로 걸어가시는 것 처럼.
- 10성 진룡검법 기수식 : 이무기가 언젠가 용이 되고 난 뒤에 펼쳐보이겠다고 만들어낸 검법이 천하에 흘러들어와 혼란을 걱정한 이들에 의해 진정한 힘을 봉인당하였다. 오직 등용문을 거쳐 용이 된 진룡만이 이 자세를 펼칠 수 있으리라. 기수식을 한 번 취할 때 마다 火의 기운이 담긴 용선술 구염진 球炎陣 또는 용선술 상생지화相生之禾 중 하나를 펼칠 수 있다. 한 번 펼칠 때 내공 30을 소모한다.
***
먼 옛날, 휘청거리며 막대기를 휘두르던 소녀의 검은, 옛적의 그곳으로 돌아와 비로소 온전해진다.
하늘 천 따 지를 읆던 스승의 앞에서 마지막 조각이 채워지고.
"하아아-!!"
순환하는 불의 고리가, 마침내 이어지노라.
...
...
...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보이고 싶은 것을 보이고.
그 뒤로도 다하지 못한 미련 탓에, 그녀는 쉬이 발을 떼지 못했다.
비록 다 무너져가는 집이라도 불길과 가시밭같은 세상과 비하면 포근한 둥지나 진배없으니.
"꼭 다시 찾아뵐게요. 얼마나 걸리더라도, 꼭.."
하지만 요람에서 태어난 자는 언젠가 요람을 떠나야 하는 법.
말이 없는 그에게 하란이 보일 수 있는 것은, 모진 풍파에도 굳건히 버티는 모습.
그것 하나뿐일테니까.
***
다시 돌아올 때에는.
그 때는....
바람을 뒤로 하고 하란은 산동의 집을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