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초능력 특목고 모카고 R2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요? 쉽게, 그리고 좋게 가요, 우리."
1.1. 외모 ¶
명확한 주관을 품을 수 없는 몽중의 인물.
사내, 그렇다고 여인이라기에도 모호하니 그 중간을 정확히 집어내어 물에 담근 듯 옅은 모습이었다.
따스한 색감을 지닌 결 좋은 백발은 속과 앞머리 일부가 창백한 하늘색으로 물들었으며, 허벅지 중간에서 살랑거렸다. 길이 탓에 물기 말리기 버거운 나머지 쉬이 엉키곤 했거니와, 평균보다는 체구도, 키도 현저히 작았기 때문인지 웅크리고 있으면 거대한 고양이 내지 털 뭉치 같기도 했다.
따스한 색감을 지닌 결 좋은 백발은 속과 앞머리 일부가 창백한 하늘색으로 물들었으며, 허벅지 중간에서 살랑거렸다. 길이 탓에 물기 말리기 버거운 나머지 쉬이 엉키곤 했거니와, 평균보다는 체구도, 키도 현저히 작았기 때문인지 웅크리고 있으면 거대한 고양이 내지 털 뭉치 같기도 했다.
단정한 듯 어수선하니 더듬이 하나 달린 앞머리 밑으로 드러난 피부는 무릎이나 팔꿈치에 봄결처럼 핏기가 살짝살짝 감도는 것으로 보아 죽은 사람은 아닌 것 같으나 어째 지나치게 새하얗다 못해 눈사람 같은 면이 있었고, 흠결 없는 낯가죽이 덮은 동서양 모호한 듯한 이목구비는 작고 오뚝한 코를 기준으로 대칭이 일정하니 고양이를 연상케 하는 미인이었다. 미소를 지으면 잔잔하고 보드랍게 말리는 입술과 일정한 치열, 자연스레 올라간 눈꼬리, 깊고 깊게 팬 쌍꺼풀과 그 위에 가지런히 놓인 눈썹……. 한 번 작위적으로 표정을 짓기 시작하면 서구 만화 속 인물을 연상케 하듯 움직임이 다채롭고 풍성하여 큰 매력을 더했다. 하지만 귀여운 인상과 달리 눈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풍성하고 긴 속눈썹, 그 밑으로 병약하고 잠 모자란 탓에 붉어진 눈가와 옅은 다크서클보다 번뜩 뜨인 눈동자가 시선을 빼앗으며, 그 자체로도 큰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공막과 홍채의 경계, 그리고 동공마저 안개처럼 흐린 눈동자. 평상시에는 금빛을 희미하게 머금은 듯 색이 지나치게 옅어 창백한 원반을 보는 것 같으나 눈을 내리깔아 진한 그림자가 질 때면 석양처럼 금빛 색채가 짙어졌으며, 밤에는 혼자 발광하는 듯한 착각 심어주는 것 같았으니, 그 기이한 눈동자에 정점을 찍는 것은 시선이었다. 자그마한 몸집과 달리 눈만큼은 그 기백 섬찟하여 아무리 말갛게 웃어도 그 속내를 읽을 수가 없었다. 끔찍한 상황을 마주한다 해도 인간의 정해진 삶은 지켜볼 뿐이지 자신이 어쩔 수는 없다는 듯 가만히 관망할 듯한, 마치 피조물을 보는 제3의 존재가 보일 법한 시선에 가까우니 혼란과 의뭉스러움, 본능에서 기인된 불쾌한 골짜기와 혐오감을 심어주기엔 충분하리라.
혼란한 눈에서 시선을 떼면 귀의 피어싱 요란하다. 좌이 우이 도합 8개는 넘거니와 가끔은 경박하게 색안경을 끼고 나타날 때도 있었다. 길쭉한 손가락에는 아무 장신구도 없었고, 손톱은 가지런하되 푸르스름하나 겉옷의 소매 때문에 손을 보이는 일이 적었다. 근육이 잡히지 못하고 호리호리하고 가느다란 다리가 쭉 뻗어 나오니, 낭창낭창한 가벼운 걸음 돋보이는 것이 특징인 체형. 날렵한 곡선 잘 빠졌으나 어느 정도 여백이 남는 옷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교복 또한 속에 늘 목을 가리는 타이트한 받침옷, 와이셔츠 위에 주로 연구소의 백의나 담요, 후드가 달린 길다 못해 바닥을 끌 듯한 점퍼를 걸치고 다녔다. 사복 또한 체구를 가리는 옷이 아니면 입지 않고, 뙤약볕 내리쬐는 여름이 되어도 옷차림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나마 더워보이지 않게 반바지 입는다마는.
키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확히 160cm. 남들보다 성장이 현저히 느린 편이라 지금은 작아도 꾸준하게 크고 있다. 품에는 가끔 다이소제 5천 원 인형 하나를 안고 있었다. 간혹 홀로그램으로 낯짝을 덮어 가려 어딘가로 훅 사라질 듯한 불안정한 모습, 조그마한 체구, 고저 모호한 듯 사근사근한 목소리, 사람들 사이에 쉬이 섞이고 스치면 흐려질 것만 같은 인상……. 이는 마치 모닥불 뛰어넘다 연기되어 사라지는 스네구로치카와 같지 않은가.
그리 깨달을 적이면 어느새 희야는 의뭉스레 웃곤 했다.
1.2. 성격 ¶
"으음- 담배 피우는 걸로 혼나기 싫어요? 그럼 희야랑 내기할래? 두 사람 중에서 가위바위보 해서 진 사람이 죄 뒤집어 쓰기로. 어때요? 어, 진짜 하는 거야? 재밌다. 그래도 갈게요? 가위, 바위... 보! 응, 넌 가도 돼요, 그래, 잘 가요. 남은 너는… 아! 쟤 이름이 뭐야? 으응-? 배신이라니! 원래부터 이럴 생각이었는데. 눈치 되게 빠르구나~ 그래도 벌점은 안 깎아줄래요. 둘 다 잘못했잖아?"
─ 순찰하던 중에 있던 일.
현실과 유리된 자, 마이페이스, 독고다이, 유유자적, 천진난만, 유아독존, 백일몽, 스네구로치카…….
세상을 퍽 낙관적으로 보았다. 평소에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듯 몽롱하니 이건 이거, 저건 저거! 와 같은 자신만의 기준으로 상황을 판단했다. 어울린다의 기준이 깊고 웃음이 많아 사람을 좋아했으나 어떤 순간에는 그 기준 없었다는 듯, 한없이 가라앉고 선을 그었다.
보듯 뭔가 실마리를 쥐었다 싶으면 바로 뒤집히니 도통 알다가도 모를 제멋대로의 죽 끓듯 변덕스럽다. 열린 생각을 기반으로 한 느긋한 어조, 여유로운 모습을 겸비하고 있었다. 간혹 그런 어조로 가끔 경박하다 못해 천박한 문장을 툭 뱉을 적 있으니 얄미울 법도 하나 특유의 현실과 유리된 천진난만함, 그리고 기묘한 차분함 때문인지 도통 미워할 수 없다.
보듯 뭔가 실마리를 쥐었다 싶으면 바로 뒤집히니 도통 알다가도 모를 제멋대로의 죽 끓듯 변덕스럽다. 열린 생각을 기반으로 한 느긋한 어조, 여유로운 모습을 겸비하고 있었다. 간혹 그런 어조로 가끔 경박하다 못해 천박한 문장을 툭 뱉을 적 있으니 얄미울 법도 하나 특유의 현실과 유리된 천진난만함, 그리고 기묘한 차분함 때문인지 도통 미워할 수 없다.
낙관적이고 몽롱하니, 부탁이든 이야기든 고분고분 들어주는 보드라운 성정과 다르게 누군가 눈앞에서 크게 다치거나 사고가 나도 지나치게 덤덤하며 상황에 개입하려 들지 않고 지켜만 보는 면도 있다. 분명 어딘가 맞물리지 않는 부분이 있으나, 대체 어디가 그런지 원체 제멋대로인 듯한 성정 탓에 쉬이 가늠하기 어렵다. 마치 신나게 뛰놀다 끝내 연기가 되어 홀로 사라질 것만 같다.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모습이 다반사이나 그 모습 속에서 드러나는, 타인을 신이 빚어낸 피조물을 관찰하는 듯한 제3의 존재와 같은 미묘한 어긋남은 '눈알과 더불어 속내 알기 참어렵다'라는 평을 듣기엔 충분했다.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모습이 다반사이나 그 모습 속에서 드러나는, 타인을 신이 빚어낸 피조물을 관찰하는 듯한 제3의 존재와 같은 미묘한 어긋남은 '눈알과 더불어 속내 알기 참어렵다'라는 평을 듣기엔 충분했다.
1.3. 능력 ¶
하이드로키네시스(Hydrokinesis) | |
콜드 프리즈 (Cold Freeze) 최초 스캔 : 114,903 |
2. 기타 ¶
- 애매한 반존대, 그리고 3인칭 구사자. 평범하게 이야기하다가도 갑자기 풀 악셀 드리프트 꺾는 경우가 많다….
- 야구, 그리고 당구! 화수목금토일은 야구 보는 날, 월요일은 최강 야구 보는 날, 비 오거나 겨울이면 내 인생의 낙 어디로 갔는가……. 아! 당구를 치면 되겠구나? 당구 치자, 당구!
- 모 연구소의 연구소장이 법적 보호자로 있으며, 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뷰 좋은 오피스텔에서 자취하고 있다. 집 상태는 모델하우스인 것처럼 깨끗하며, 유일하게 어질러진 것은 빈백 주변에 널브러진 다이소제 인형들. 하교할 때도 가끔, 아니, 꽤 자주 연구소장이 직접 찾아온다. 두 사람의 사이는 좋은 듯하다.
- 성 붙여서 두음법칙으로 부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드물게 싫은 기색 보이니 '안 희 야' 또박또박 발음해 주길 바란다. 외자 이름도 아니다!
- 취미 생활에서 야구와 당구를 제하면 무엇이든 깊게 파고들지 않았지만 음악 하나는 깊게, 외길로 우뚝 파고들었다. 제법 자주 무선 이어폰을 귀에 끼고 있었으며, 플레이리스트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록 인디밴드가 주였다. 하드, 데스, 사이키델릭 가리지 않아 난잡하기 그지없었다마는. 입문하게 된 계기는 연구소장의 탓이 크다. 둘 다 락 페스티벌이 열리면 나가고 싶다 손톱을 깨물곤 했으니.
- 좋아하는 건 많지만 또 잘 먹지는 못하고, 자잘 자잘 먹는다. 그러다 가끔 입 터지는 날엔 잔뜩 먹고 다음날 아무것도 못 먹는다. 한 가지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간식으로 삼으니, 현재 꽂힌 것은 나나콘. 그 외에도 감자 과자 같은 간식도 좋아해서 늘 뭔가가 입에 물려있다.
- 정말이지, 약하다! 두 번 말하지만 약하다. 1L 생수도 들고 휘청일 정도로 체력이 저질스럽다.
- 주 제압 무기는 저질스러운 체력과 다르게 맞춤제작한 큐대. 희야는 이 큐대를 게임과 더불어 제압용으로 제작한 것이라며 유달리 아꼈다...
- 주 제압 무기는 저질스러운 체력과 다르게 맞춤제작한 큐대. 희야는 이 큐대를 게임과 더불어 제압용으로 제작한 것이라며 유달리 아꼈다...
- 칩 이식자. 생체전기와 신호를 기반으로 무선 네트워크와 연결해 홀로그램을 주변에 구현하거나 클라우드에 짧은 순간을 저장하거나 페이 기능 또한 탑재하고 있으나, 몸이 허약한 탓에 오류가 자주 나서 있느니만 못하다…….
2.1. 관계 ¶
선관은 뒤에 ❄가 붙음!
- Npc
안승환 - 법적 보호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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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휘 - 안티스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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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layer [3학년_일부_1학년_동기선관]
최은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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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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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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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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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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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여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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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배경&떡밥 정리 ¶
"음- 사람 사는 게 거기서 거기지, 그런데 우리 사이에 알 필요가 있을까요? 희야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병원 생활을 길게 했으며, 2학년 때는 학교에서 수업조차 받지 못하고 아침에 잠깐 얼굴만 비춰 출석 인정만 받을 정도로 몸이 좋지 못했다. 이하 공란.
- 가치관
"남들은 모두 자신에 대한 결핍을 이해 받길 갈망하는데, 정작 타인의 결핍은 이해하지 않아요. 그러면서도 자신의 결핍을 이해하는 사람이 생기면 뭐가 그렇게 좋은지 선 안으로 들이려 들어요. 그렇게 들어가면 멋대로 재어보다 실망하는데, 어째서 희야가 타인에게 이해를 바라야 하나요? 실망하는 사람도 될 수 없고 선 안에 들이고자 하는 욕망도 없어야만 정결할 수 있는데. 타락이죠. 뭐, 그래서 삶은 덧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인간이란 존재는 태양이 졌지만 다시금 떠오르는 것처럼 영원한 굴레에 있지 않거든요."
─ 희야, 말갛게 웃으며.
"인간의 몸은 육, 영, 혼이니 육의 주인은 오로지 그분이며, 육은 그저 그분의 뜻대로 창조되었으매 서로가 거룩한 뜻 나누는 자녀의 상호작용을 위한 것이니, 육신은 그저 그릇일 뿐이라."
"영은 그 육에 존재할 수 있도록 말뚝에 가까운 것이니, 이는 연결의 밧줄이라."
"혼은 우리의 본질이며, 끝내 그분 곁에 남을 수 있는 종착지라!"
"그러니, 육은 그저 그릇일 뿐! 이 몸의 주인은 오로지 그분이라, 우리는 감히 주인되지 못하는 자니 내려놓으라!"
─ ?
- 뿌리 깊은 인간 불신은 상처로 비롯된다.
- 뿌리 깊은 인간 불신은 상처로 비롯된다.
- EDEN
-
"네가 없으면 나는 어떻게 살아요, 나는, 나는……."
─ 희야, 영정사진을 끌어안으며.
유이든, 향년 14세.
인간의 손에 잃어버린 제물.
- 희야와 제단에서 함께 생활했던 친구. 희야처럼 빛에 따라 금빛이 짙어지는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 친구는 엘리트에 의해 지속적인 괴롭힘을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는 희야가 엇나가고 그릇된 가치관을 가지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 희야와 제단에서 함께 생활했던 친구. 희야처럼 빛에 따라 금빛이 짙어지는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 병원 생활
1년 전, 데 마레의 연구원 네다섯과 경호원이 주변에 상시 대기하던 신기한 아이. 어쩌다가 온 것일까. 완강하던 목화 고등학교도 데 마레의 의견을 수용했다지?
- 희야는 어쩌다 병원신세를 졌나.
- 2년 전 희야는 체포 과정에서 음독 자살을 시도했다.
- 2년 전 희야는 체포 과정에서 음독 자살을 시도했다.
- 희야는 어쩌다 병원신세를 졌나.
- 데 마레
"바다. 그 드넓은 곳."
2학구의 하이드로키네시스 전문 연구소 중 하나로, 어원은 라틴어 바다Mare.
인첨공이 생길 적부터 같이 존재한 역사 깊은 곳으로, 무엇보다 학생 친화적인 성향이 높아서 비윤리적인 커리큘럼을 최대한 줄이려 노력하고 놀이 친화, 특화형 커리큘럼을 추구하고 있다.
연구 신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괴로워하면 뭐가 됐든 즉시 중지. 인첨공에 처음 들어와 신청서를 작성하여 능력을 개화하는 과정 등 강도 높은 커리큘럼을 진행할 때도 있으나, 계약서와 더불어 이후 트라우마 케어를 확실하게 약속하기도 한다.
연구소장은 희야의 법적 보호자 안승환.
학생 친화적인 성향이 높아서 연구소 분위기가 부드러우나, 외골수같은 면이 있어서 여타 비인륜적 커리큘럼 연구소와 크고작은 마찰이 잦은 편이다.
- 데 마레는 어떠한 곳인가.
- 희야는 한때 임시 연구원으로 인정받아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으나, 스스로 내려두었다.
- 데 마레를 뒤집어 놓은 사건이 있으며, 희야는 이 사건을 알고 있으나 함구하고 있다. 이것은 과연 무엇일까.
- 데 마레는 어떠한 곳인가.
- 솔리스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호버 택시를 훔쳐 몰아, 상가 유리창을 들이받은 뒤 사제 폭탄을 터뜨리는 테러가 벌어져 현장에서 범인을 포함한 아홉 명이 숨지고 다섯 명이 크게 다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오늘, 3학구에서 흉기 난동이 벌어져 10대 학생 2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두 사건의 범인은 모두 같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차일드 에러였습니다. (중략) 연고지 없는 아이들, 이른 바 '차일드 에러'로 이루어진 집단 범죄 조직을 잡기 위해 안티스킬 당국에서 수사에 나섰습니다…….
"어라-?"
"……응?"
"저거, 꿈을 이루고자 했던 우리 형제들의 이야기가 아닌가요?"
"그런가요? 아, 그렇군요. 확실히 알겠어요."
"tv에도 나오나 보다. 우리의 형제는 한때 매체에 나오기를 간절하게 바라였으니 평생 원하던 꿈을 여기서 다 이루었군요. 부디 좋은 곳에 가야 할 텐데……."
- 약 3년 전, 차일드 에러가 사회에 불만을 가지고 대낮 시가지에서 호버 택시를 훔쳐 몰아 돌진해 자폭테러를 감행한 사건. 밤인은 상가 유리창을 들이받은 뒤 사제 폭탄을 터뜨렸으며, 현장에서 범인을 포함한 아홉 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 다섯 명이 크게 다쳤다. 이후 두 명이 치료 중 사망했다. 엘리트 토막 살인 사건 이후 벌어진 일이라 사회의 분위기가 험악하던 찰나 벌어진 사건이거니와 범인이 레벨 2의 차일드 에러라는 사실이 밝혀져 세간의 많은 공분을 불러 일으키며 열등생과 엘리트 사이의 갈등을 깊어지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 심연을 들여다 보면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볼지니.
- 희야가 몸 담던 종교. 교리는 새로운 세계의 초석을 위해
- 희야는 그릇된 종교의 선지자로 불리며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기 위해 욕망과 육신을 내려두었다.
- 인첨공 사상 최악의 테러단체.
- 약 3년 전, 차일드 에러가 사회에 불만을 가지고 대낮 시가지에서 호버 택시를 훔쳐 몰아 돌진해 자폭테러를 감행한 사건. 밤인은 상가 유리창을 들이받은 뒤 사제 폭탄을 터뜨렸으며, 현장에서 범인을 포함한 아홉 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 다섯 명이 크게 다쳤다. 이후 두 명이 치료 중 사망했다. 엘리트 토막 살인 사건 이후 벌어진 일이라 사회의 분위기가 험악하던 찰나 벌어진 사건이거니와 범인이 레벨 2의 차일드 에러라는 사실이 밝혀져 세간의 많은 공분을 불러 일으키며 열등생과 엘리트 사이의 갈등을 깊어지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 윤 씨
"유년시절의 버팀목"
그리고 증오하던 자.
누구보다 데 마레를 위하던, 학생을 사랑하던 자.
─(중략)재단 이사 윤 모씨로 밝혀져 큰 빈축을 사고 있습니다. 이에 각 재단과 협업하는 연구소들은 윤 모씨와는 어떠한 관련도 없다며 입장을 표명했으며…….
윤 모씨는 재단 이사로 선임된 이후 차일드 에러 인신매매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혐의 및 불법 암거래, 약물 유통의 혐의 또한 받고 있습니다.
- 어쩌다 그는 나락으로 가길 택하였는가.
- 어쩌다 그는 나락으로 가길 택하였는가.
3. 독백 ¶
- 눈
- 인첨공은 바깥과는 차원이 다른 과학 기술의 발전을 도모했고, 그 중심에는 2학구가 있었다. 그는 지금 2학구에서 한 섹터에서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있었다. 오늘을 위해 구두를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닦았고, 머리카락이 한 올도 뻗치지 않게 세심하게 포마드를 발랐다. 그뿐만이 아니다. 혹시라도 백의에 이물질이 묻을까 싶어 이곳에 도착하기 전 클리닝 서비스까지 받았다. 덕분에 그는 멀리서 보아도 깔끔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났다. 가끔은 연구에 찌들어 씻지도 못하고 게으름에 빠지고 싶을 때가 자주 있지만, 오늘만큼은 그러면 안 된다. 마지막으로 손목에 달린 시계를 확인한 그는 고개를 들어 눈앞에 있는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의 건물을 웅장한 신전을 보듯 경외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다, 정신을 차리고자 심호흡을 했다. 오늘은 아주 중요한 날이다! 그의 꿈이 눈앞에 있다. 지금까지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가 인첨공에 처음 왔을 때부터 키워오던 꿈이 있었다. 데 마레De Mare와 함께 하는 것이다. 하이드로키네시스 연구로는 가장 역사가 깊고, 그 위상이 굳건한 꿈의 연구소. 인첨공이 아직 개발 단지일 때부터 설계도에 함께 있었고, 한때 큰 스캔들에 휘말린 적이 있지만 15년의 역사를 괜히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는 듯 다시금 우뚝 일어선 2학구의 연구소 중 하나에 그 또한 함께 하고 싶었다. 막연한 감정은 그의 진로를 정했고, 누군가는 그의 꿈을 보며 허황된 꿈이라고 코웃음을 쳤지만, 그는 그런 사람들을 어리석은 존재라고 생각하며 꿈을 향해 달렸다. 가끔은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면 교우관계까지 모두 내팽개치고 공부에만 몰두하는 길을 선택한 자신을 채찍질했다. 비록 데 마레의 일원이 되진 못했지만, 데 마레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연구소의 일원이 되었고, 그는 오늘 막중한 임무를 성사시킬 수 있는 존재로 우뚝 설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것도, 스물여덟이라는 연구원 치고는 아주 어린 나이에!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문 앞의 보안요원들이 질문하자 그는 가슴을 쭉 폈다. "C 구역 오션스에서 왔습니다. 오늘 미팅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잠시 확인 절차가 있겠습니다. 연구원증을 볼 수 있을까요?"
"여기 있습니다."
그가 연구원증을 꺼내자 보안요원 하나가 스캐너를 가져다 댔다. 그는 그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조치임은 알고 있지만, 내심 마음이 상했다. 자신을 못 믿는 건가? 장치는 삑 소리를 내며 녹색 원을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위조한 연구원증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자 보안요원은 그를 친절히 맞이했고, 그는 어깨를 으쓱이다가 의기양양한 태도로 안으로 들어섰다.
드디어 시작이다. 그는 이번 일을 반드시 성공시키겠노라 다짐하며 가슴을 쭉 폈고, 마침내 연구소장이 있을 방의 문을 정중히 두드렸다.
"그런 이유라면 오션스와 연구를 같이 할 생각은 없습니다."
"네?"
그의 다짐은 30분도 채 되지 않아 무너졌다. 방금 전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불과 25분 하고도 10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눈앞에서 자신의 우상을 마주하며 간단한 다과와 함께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데 마레의 연구소장, 안승환이다. 오션스의 연구소장과 달리 그의 우상은 배불뚝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연구소의 사람들처럼 머리가 벗어진 것도 아니었다. 한때 스치듯 보았던 그 모습에서 세월만 조금 더해졌을 뿐이다. 희끗한 기운이 있는 머리는 단정한 가르마를 탔고, 둥근 은테 안경과 턱수염은 지적인 면모를 더했다. 거기다 세월의 흐름을 맞이하기 시작한 얼굴에 깊게 팬 주름은 그야말로 멋들어진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질문했을 때 표정을 일그러뜨린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어째서인지 물어도 괜찮겠습니까?"
"저희는 학생의 안전을 우선시하고 있고, 오션스의 커리큘럼 방침은 저희와 맞지 않기 때문이고, 저희로서는 해당 연구의 강도를 묵과하기 매우 힘듭니다."
"하지만 발전이 눈앞에 있습니다. 저희 연구소에서 가져온 자료를 보신 뒤 재고해 주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들도 모두 인첨공에 들어올 적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견디겠다 서명을 합니다!"
"당신은 지금 이 일에 서명할 것 같습니까?"
"네? 무슨 소리입니까, 전 연구원입니다!"
"그리고 서명하는 건 아이지요. 연구원의 머리를 가진 게 아닌 평범한 바깥의 아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인첨공은 발전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학생들의 커리큘럼의 강도는 가끔 보는 자신도 괴로울 때가 있지만, 그만큼의 성과가 있지 않은가! 그는 지금껏 개화한 수많은 학생을 생각했다. 그리고 과학의 발전도. 이미 책임을 지겠다고 한 아이들의 몫이 아닌가? 절박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들에게 왜 저렇게 관대한 걸까! 아무리 데 마레가 여타 연구소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해도 결국 한계는 존재하기 마련인데, 자신의 연구소가 뒤처지는 것을 개의치 않는 걸까? 그는 점차 감정적이게 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우상이 망가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 치기 어린 감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머리를 굴리다, 어떠한 사실을 떠올렸다. 연구원이라면 도무지 모를 수 없는 사실을.
"소장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말씀하십시오."
"혹시 데 마레는 혹시 연구기밀 유출 때문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겁니까?"
"뭐라고 하셨습니까?"
"분명 과거에는 데 마레도 강도 높은 커리큘럼 과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달칵. 갑작스럽게 문이 열리는 소리에 두 사람은 고개를 동시에 돌렸다. 시선의 끝에는 이제 막 잠에서 깬 것처럼 하품을 하며 부스스한 머리를 가진 조그마한 몸집의 학생과, 그 뒤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연구원 하나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그는 조그마한 아이를 보며 갑작스러운 짜증을 느꼈다. 아무리 이 연구소가 학생 친화적이라고 해도 그렇지, 노크도 없이 중요한 곳의 문을 열어젖히는 것이 묵인되는 것인가? 그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아이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연구원이 제지하지 않는 걸 보니 다른 사람들도 들어가지 말라고 막지 않았겠지! 무례하기 짝이 없다!
"깼니?"
"응."
그는 승환을 휙 쳐다봤다. 살벌하던 분위기 속에서 튀어나온 목소리는 놀랍도록 부드러웠다. 자신을 환영할 때도 저렇게까지 친절하진 않았다! 아이는 눈을 비비더니 다시금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시끄러워서 와 봤는데, 좋은 얘기가 나오는 건 아닌가 봐요."
"소장님, 지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저기, 있잖아요."
그는 정신을 차리고 아이를 내쫓기 위해 고개를 더 올렸다가, 몸을 우뚝 멈췄다. 어느새 다가온 아이가 그를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소장님이 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데 마레의 소장이고 연구원이고 싸고도는 아이가 있는데, 그 녀석 눈만 마주치면 그렇게 기분이 나쁠 수가 없다고. 그는 그 아이가 누굴 말하는 건지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아무리 인첨공의 학생들이 커리큘럼을 거쳐서 휘황찬란한 외모를 가졌다고 해도, 이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아까 얘기하는 거 다 들었어요. 그렇구나, 응."
어떻게 사람이 저런 눈을 가질 수 있지? 새하얀 원반 같은 눈동자는 금빛 기운만 희미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물론 새하얀 눈이라면 인첨공에 널렸다. 하지만 그 궤를 달리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가느다란 웃음이 아이의 얼굴을 덮었다. 야살스러운 호선을 그리며 길게 뻗은 속눈썹이 안구에 그림자를 드리우자, 금빛 색채가 점차 짙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양광이 되어 눈 주변에 부서지듯 색채가 산산이 흩어져 온전한 금안金眼이 되었을 때, 그는 깨달았다.
"너는 목표가 아닌 시야를 더 넓게 보라. 너는 자신을 고작 한 큐빗에 담고 있으며, 한 큐빗이 전부인 줄 알고 있으니, 네가 보는 만큼 행하였을 때 사람들이 잠잠하였더니 그들이 너와 같은 줄 아느냐?"
저건 본능적인 거부감을 일으키는 눈이다.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고 무언가가 만들어낸 것으로 인식하는 제3의 존재와도 같은 시선이다. 저 아이는 절대 떠날 것 같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시선을 마주하며 대화를 했다간 미팅이고 뭐고 성황리에 끝날 보장도 없었다. 그는 심리적인 불쾌함을 느끼며 시선을 피하더니, 연구 자료를 주섬주섬 그러모았다.
"……미팅은 나중에 다시 와도 괜찮겠습니까?"
"소장님께 저희 측에서 직접 연락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배웅도 해주지 않는 못돼먹은 사람 같으니! 그는 씩씩거리며 바깥으로 나선 뒤, 다시금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나서, 고개를 돌리기가 무섭게 깨달았다.
아이가 건물 안 창 너머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이 마주치자 그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 부운조로
- 희야는 복도를 걷느라 여념이 없었다. 18살, 2년이면 성인이 되는 나이. 여타 학생처럼 평화롭다면 평화로이 보내며 정규 교육과정을 마무리하고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면 좋았을 테지만, 희야에게 있어선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1년을 통으로 병원에서 보내야만 하는 특수한 상황이다. 희야는 출석을 위해 아침에 연구원 세 명을 이끌고 학교에 얼굴도장만 찍은 뒤 다시금 병원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학생들은 그런 희야에 대해 제각기 쑥덕이고는 했다.
저 애, 레벨 0인데도 머리가 좋아서 연구원이 될 애라서 그런 거래. 선생님 말로는 2학구에서 채간 거라는데.
뭔 소리야, 내가 듣기로는 쟤 스킬아웃이라던데……? 우리 가족 중에 안티스킬 있잖아. 현장에서 잡았는데 보호 처분 받은 거래. 연구원이 빽이라서.
내가 듣기로는 쟤 교통사고 나서 그런 거라던데? 저번에 호버 택시가 횡단보도 그대로 쓸어버린 사건 있었잖아. 거기 피해자인데 호버 택시 만든 연구소에서 재활 도와주는 거래.
어떻게 정확한 소문이 하나도 없냐? 쟤랑 아는 애 없어?
아…… 미안. 쟤가 사람이랑 어울리는 걸 본 적이 없어서. sns도 없을걸?
아, 진짜? 그런데, 어떻게 됐든 쟤─
야, 야, 지나간다.
과거, 희야는 지나가며 자신에 대해 떠드는 소리에 고개를 기울였다. 희야에 대한 소문은 희야도 잘 알고 있었다. 연구원을 빽으로 삼았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병원에만 있는 애. 애초에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기분도 나쁘지 않다. 친해질 생각도 없었지마는. 어차피 언젠가 저 사이에 잘 섞이기만 하면 되니, 무언가에 자신을 맡겨 규정짓는 것은 멀리하는 것이 나으리라.
"너는 강가의 갈대이나 바람에 휘둘리지 마라. 네 심지 굳세어 철새 앉을 버팀목 되고 뿌리내리어 번성케 하라."
"우리 희야, 무슨 얘기 하니?"
"군집 속의 사상과 삶에 대한 고찰이요."
"그, 그렇구나. 결론은 어때?"
희야는 눈을 굴렸다.
"역시 덧없네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학교에 다시금 발을 들였을 때, 희야를 향한 호기심 어린 시선은 본능적인 불쾌감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희야와 눈을 마주한 사람 대다수는 그랬다. 희야와 눈을 마주치면, 아무것도 없는 게 뭔지 알게 된다고. 조금이라도 그 시선을 타파해 보고자 선택한 것이 저지먼트였건만, 이런 사건에 휘말릴 줄은. 희야는 생글생글 미소 지었다. 여전히 속을 알기 어려운 눈동자가 호선을 그었다.
"위로 오르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이 끝이 없구나. 응, 이해했어요."
역시─
"그런 것이 있대요-"
"그렇구나. 희야야, 넌 어떻게 생각하니?"
"응?"
"느낀 점이 있을 것 아니니. 먹어보고 싶다거나, 그런 약은 어떻게 만들까? 같은 생각 말이다."
"아, 그거요?"
희야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더니 누군가 앉아 열심히 현미경 속을 들여다보는 것을 구경했다. 그러니까… 뭐라고 했더라? 하이드로키네시스 계열의 능력을 통한 수질 개선 연구라고 했던가? 미생물이랑 눈 맞춤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역시 미물은 덧없구나-"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니?"
"뭐, 그야…… 같은 미물이니까요."
희야는 의자에 늘어졌다.
"허가받지 않은 약은 매력적이죠. 사람들은 늘 그래. 내가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은 것이 본능적인 욕구일까요? 아니야, 그저 사회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인간은 위험을 추구하는 면이 있어요. 음- 그래서, 결론이 뭐냐면…… 그 뒤에 벌어지는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내 일이 아니거든. 어떻게든 현재에 목이 마른 탓에,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그 뒤에 어떤 위험이 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아요."
"사람이 다 그런 법이지. 밥 먹을 때 농부의 노고와 품종 개발에 대해 신경 쓰는 사람은 없지 않니."
"그래서 어렵네요-"
"먹을 거니?"
연구소장, 승환은 고개를 들더니 차트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희야가 그 모습을 보다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하여 성자께서 양광과 함께 가로시되 너희는 삿된 유혹을 뿌리쳐야 하는 법을 알아야 하느니라."
"……."
그리고 고개를 온전히 돌렸다. 안경을 고쳐 쓰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는데 그러냐."
희야는 대답 없이 웃었다. 두 눈이 휘어 다시금 그림자를 드리우자 금빛 색채가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 쓸모
- 새벽 2시,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루를 마무리하고도 충분할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새벽 시간대의 조용한 건물 내부에서 사람을 닮은 안드로이드가 은은한 미소를 띠며 사람들을 맞이했다. 하나하나 사람들을 맞이하면서도 완벽한 미소를 유지하는 비결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프로그래밍 덕분이다. 사람들은 그런 미소를 본 척도 하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하릴없이 내려가는 뒷모습을 망막 센서에 담던 안드로이드의 머리에서 환풍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안면인식 시스템이 오늘 처음 본 사람을 판독한다. 다행스럽게도 새로운 사람은 없었다. 안내원을 안드로이드로 둔 것은 잘 한 일이었다. 완벽한 프로그래밍이 된 고철 덩어리들은 끊임없이 돌아가는 감시 카메라 역할을 톡톡히 해냈기 때문이다. 거기다 자신이 하는 일에 어떠한 의문도 품지 않을 것이다. 대화를 나눠도 듣지 못할 것이고,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다. 만약 듣거나 AI 시스템이 이해를 시도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칩셋을 하루에 한 번씩 리셋하니까. 안드로이드는 사람들을 시각 센서에 담다, 빠진 사람이 없음을 체크하더니 인간적인 몸짓을 하며 지하로 향하는 문을 닫았다.
건물 지하에서는 여러 방이 있었다. 구석의 협소한 방에는 연기가 가득했다. 방 중앙에는 연기 사이에 얌전히 무릎을 꿇고 앉은 인영이 일렁였다. 바깥은 사람들이 오는 소리로 웅성거렸지만 듣지 못했다. 세상이 돌아가는 소리가 고막을 채웠기 때문이다. 먹먹한 귀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삐 소리에서 단어가 하나 둘 정도는 들렸지만 금세 흩어졌다. 그림자가 일렁였다. 고개를 드는 모습이 보였다. 눈을 반쯤 뒤집고 고개를 연신 기울였다. 그리고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흐를 때, 천천히 고개를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바닥을 세차게 긁었던 모양인지 손끝이 새빨갰다. 이명이 멈췄다. 꾸벅꾸벅 조는 사람처럼 고개를 크게 까딱이던 것도 멈추고, 앞에서 수건을 들고 대기하고 있던 사람에게 손을 뻗었다. 옷자락을 잡는 손길에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시선을 내려 인영의 눈을 마주했다.
"깨어났구나."
"……."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은 옷자락을 쥔 앙상한 손을 잡아주더니 부드럽게 손등을 토닥였다. 금방이라도 눈을 뒤집고 혼절할 것 같은 몰골이지만 늘 있던 일이라 괜찮다. 혹시라도 일이 생기면 의료용 안드로이드를 들여와 상태를 확인하면 된다. 앙상한 손등을 토닥이며 눈을 마주하자, 일렁이던 인영은 고개를 다시금 위태롭게 휘청였다. 그리고 부축을 받으며 몸을 일으켰다.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은 수건으로 정성껏 코에 흐르는 피를 닦아주고, 겉옷을 입혀주는 손길에 팔을 꿰었다. 겉옷을 여몄을 때, 앙상한 몸을 가진 인영이 입을 벌렸다. "계시가 내려왔다." 동공은 확장된 모습에, 몸을 오들오들 떠는 것으로 보아 미친 사람이 중얼거리는 것 같았지만 여기에선 모두 옳은 말이었다.
"도달할 진실은 없으니 끝없이 의심하라. 그리고 여정 길에 오르라."
"그렇군요."
"그리고 하나 더."
너는─. 인영이 속삭이는 말에 존재는 환히 웃었다. "인첨공 안에서 그런 끔찍한 일이 있었으니, 어서 알려야겠구나. 그렇지?" 비틀거리는 걸음을 맞춰주는 모습이 상냥했다. 안드로이드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문을 열었고, 연기가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두 사람이 나서기가 무섭게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비틀거리는 몸짓 뒤로 앙상한 자가 고개를 다시금 들어 올렸다. 코에서 피가 다시금 흐르기 시작했다.
"몸이 좋지 않으면 쉬어도 됩니다."
"……있잖아, 요."
"응?"
"저, 언제까지 이래야, 해요?"
"안드로이드가 고장 난 것 같군요…… 그렇죠?"
"아?"
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존재가 미소 지었다. 그러자 길을 안내하던 안드로이드에서 갑작스레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안드로이드는 몇 차례 움직이려다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다가와 무언가를 겨누더니 두어 번 쏴 갈겼다. 꿈틀거리는 고철 덩어리 사이로 기름이 바닥을 적시고, 발을 적셨다.
"……."
"안타까운 일입니다. 쓸모를 다 했더라면 폐기되지 않았을 텐데……."
존재는 고철 덩어리를 한참이고 바라보다, 시선을 흘끔 올렸다. 눈을 마주치자 금빛 눈동자가 샐쭉 휘었다.
"ㅅ, 새로운 안드로이드가 필요하겠어요."
"그렇죠?"
"네."
"들어갑시다. 다들 기다리고 있을 테니."
안드로이드가 아닌 사람에 의해 문이 열렸다. 그리고 다시금 문이 닫혔다.
- 녹취록
- ─ 2XXX년, 7월 16일의 녹취록 사본.
해당 녹취록은 면담 대상자인 H의 동의를 받음.
녹취 일자: 2XXX년 7월 16일
녹취자 및 담당 형사: 서지훈
사건 담당 프로파일러: 박정선
제시자료: 음성 디지털 파일(18분 27초)
대화자: 서지훈 / H(미성년자, 익명 처리 요구)
청취 불능: (……)으로 표시.
지훈: 이런 곳은 처음이라서 무섭지?
H: 괜찮아요.
지훈: 편하게 얘기해 주면 된단다.
(바스락대는 소리. 정선과 지훈은 해당 시간에 다과를 제공했다고 공통된 추가 증언을 함.)
지훈: A랑은 어떤 사이였니?
H: 같은 재단에서 자란 친구요. 재단 룸메이트였어요.
지훈: 재단?
(종이 넘기는 소리)
H: ─요. A랑 저는 차일드 에러라서, 후원 재단에서 저희를 돌봤거든요.
지훈: 그렇구나. 재단에서 A는 어떤 친구였는지 알 수 있을까?
H: 특이한 점은 없었어요. 어린아이들도 잘 돌봐주고, 간식 시간에 자기 몫도 나눠주고. 착한 맏이 느낌이었어요. 그래서인지 그렇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고요. 저희는…… 그러니까, 모두 가족같이 지냈거든요. 정말 가족이기도 했고…….
지훈: 그렇구나. 휴지 있으니 울고 싶으면 맘껏 울면서 얘기해도 좋단다. 힘들면 조금 쉬어도 좋고.
H: 아니, 에요. 그냥……. 계속할게요.
지훈: 괜찮겠니?
H: 네.
(약 10초 침묵)
(종이 넘기는 소리)
지훈: ……A랑 마지막으로 뭘 했는지 알 수 있을까?
H: A랑 마지막으로……. 그러니까…….
(3초 침묵)
H: 아침에 같이 재료를 사러 갔어요. A는 요리가 취미라서, 최근엔 직접 머랭 쿠키를 만들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댔거든요. 그래서 같이 만들었어요.
지훈: 그다음엔?
H: 만들고 저한테 선물해 줬어요. 그 이후엔 다른 친구한테도 주고 싶다면서 나갔어요.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같이 갔어야 했는데.
지훈: (침음하는 소리)
지훈: ……혹시 최근에, A에게 평소랑 다른 점은 없었니?
H: 아, 그게…… 최근에 몸에 멍이 가득했어요. 그래서 괜찮냐고 했는데, 연구소의 커리큘럼 때문에 그렇다고 저한테 말을 했어요. 레벨이 낮아서 혼났다고.
지훈: 연구소의 커리큘럼 때문에?
H: 네. 그래서 이건 너무 심했다고, 항의하면 안 되냐니까 아무것도 아니랬어요. 그리고 자기는 아무리 해도 레벨 상승은 노릴 수 없는 것 같다고 했어요. 엘리트 반열에 들면 행복할 거라고도 최근 자주 그랬는데, 저는 커리큘럼 때문인 줄 알았어요.
(침묵)
H: 저는 다들 지켜줄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지훈: 그랬구나. 하나만 더 물어봐도 괜찮겠니?
H: 네.
지훈: B에 대해 아는 게 있니?
H: 네. 걔도 제 친구예요.
지훈: 친구라고?
H: 네. 그런데 그럴 줄은 몰랐어요. 저랑 A랑 붙어 다니면 맨날 B가 와서, 같이 놀자고 했거든요. A도 그때는 같이 어울렸어요.
지훈: B가 따로 뭔가 이상한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니? 평판이라든지…….
H: 엘리트잖아요. 평판이 나쁠 리가 없죠.
지훈: 그런 편견은 나쁜 거야. 엘리트도 범죄를 저지른단다.
(5초 침묵)
H: (…….)
지훈: 뭐라고 했니?
H: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B는 선생님께 엘리트라고 칭찬도 많이 받고, 연구원들도 B를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더 모르겠어요. 둘 다 제 친구였는데, A의 유서에는 B가 그런 짓을 했다고 적혀있으니까…….
지훈: 그랬구나. 힘들겠네.
H: 형사님, 저 질문 하나만 해도 돼요?
지훈: 그래.
H: A는 왜 죽어야 했어요?
지훈: ……정말 B가 그랬더라면, 죄의 값을 치를 거란다. 범인을 찾아주마.
H: 정말요?
지훈: 약속할게.
H: 약속하신 거예요. 그, 그리고, 형사, 형사님. A는 천국에 갔겠죠?
지훈: 그럼, 물론이지.
납골당 작은 구석에 모셔진 작은 유골함을 보았다. 꺼진 초를 다시 켜주고, 조그마한 폼폼푸린 키링을 곁에 두었다. 유달리 폼폼푸린을 좋아했으니까.
유골 주인의 사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B가 범인이 맞았다. B는 학기 초부터 A를 괴롭혔다. 그 사실이 드러나기가 무섭게 학교에 들이닥쳐 사건을 기사화하려 앞다투던 기자들은 발길을 끊었다. 쓴 기사는 모두 내려갔다. 텅 비어버린 빈소에는 자신과 형을 제외하면 누구도 오지 않았다. 공론화를 했을 때, 자신을 제외하고 각자 속한 연구소에서 불이익을 받아 가족들도 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B는 법적 기소를 받았으나 변호사를 다섯이나 대동했다. 열렬한 변호 끝에 미성년자라는 이유와 더불어 반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폭력을 행사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 B는 무죄를 선고 받았다.
사진의 아이를 보며 자신의 뺨을 괜히 더듬거렸다. 눈가를 더듬거릴 적, 홀로그램 사진은 생전 모습을 발랄하게 비췄다. 말갛게 웃던 홀로그램 속 인물이 고개를 기울이자, 희미한 금빛이 감돌던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의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찬란한 금빛으로 물들었다.
"있지, 좋은 소식이야. 네가 부디 웃었으면 좋겠어."
─. 어디선가 아이의 머리카락과 똑같은 금빛이 부서지듯 그림자를 드리웠다.
- 녹취록 - 후일담
- 그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특별한 외양을 타고났다. 평범하게 생겼으나 금빛을 희미하게 머금은 머리카락은 어둠 속에서 찬연한 금빛을 발했고, 빛무리 속에서는 아지랑이가 일렁이듯 그 금빛 기운을 넘실거렸기 때문이다. 차분한 바다와도 같은 눈동자는 한 사람에게서 하늘과 바다를 모두 담은 듯한 모습을 보여 매력을 더했다. 그 찬란한 머리카락이 공기를 타고 넘실거리다 지면에 닿았을 때 사람들은 새된 비명을 질렀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대는 눈을 질끈 감았다. 가지런하게 놓인 편지가 처음 공개됐을 땐 사람들은 얼굴도 모르는 그를 기렸다.
착하게 살아 복을 받지 못한 아이, 불우한 환경 속에서 벗어나려 한 사람, 폭력에서 벗어나 좋은 곳에 가기를 바라는 자, 안타까운 희생자……. 채 닦지 못한 핏자국을 모래로 덮어 가리고, 그 위를 꽃이 장식했으나 한 사람의 삶의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어느샌가 그는 좋은 언사를 붙일만한 사람이 아니게 됐다. 지나치게 착한 탓에 그렇게 된 사람, 노력하지 않고 높은 레벨을 바란 사람, 본인 업보인 녀석, 차일드 에러, 죄 없는 엘리트를 나락으로 빠뜨리려고 한 거짓말쟁이, 쓸데없이 사회적 파동이나 일으킨 녀석……. 여론은 쉽게 뒤집혔다.
목소리를 높여도 사람들은 더 듣지 않았다. 추모를 위해 올려둔 꽃은 길거리를 청소하는 안드로이드가 쓰레기로 판단해 빨아들였고, 모래도 어느새 사라져 핏자국을 없앴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들은 그를 잊었다. 그런 사건은 차고도 넘쳤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사는 것이 더 바쁘기 때문에 누군가를 굳이 기억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사람만큼은, 정확히는 두 사람만큼은 그를 기억했다. 찬연한 금빛 머리카락을 기억했고, 고운 심성을 기억했고, 고통받던 삶을 기억했다. 그리고 빈소에서 마주했던 눈에 서렸던 감정도.
"……오늘은, 네가 부디 기뻐할 소식이길 바란답니다."
그 찬란함을 다 담지 못하는 홀로그램 속에서, 그는 여전히 햇살처럼 웃고 있었다. 희야는 저렇게까지 찬란히 웃을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서로 마주 웃을 수만 있다면, 육신은 불타 유골만 남고 한때의 흔적을 기술력으로 구현한, 그저 그 순간의 편린일 뿐인 무언가와 함께 다시금 웃을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홀로그램 사진을 조심스럽게 끌어당겨 케이스 밖으로 꺼낸 희야는 액자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등을 기대앉았다.
"있지, 선욱이 기억해? 응, 배선욱. 걔."
희야는 그 또한 기억한다. 레벨 4, 엘리트, 착한 줄 알았던 자신의 친구. 사람들은 처음에 그를 손가락질하며 제각기 분노의 시선을 쏟아 보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놓고도 뻔뻔히 얼굴을 들이밀고 다닌다며 엄벌에 처해야 한다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을 유서에 적었느니 뭐니 하며 그의 인생을 대단히 안타까워했다. 앞날이 창창한 사람을 끌어내리지 못해 안달이라며, 열등생과 엘리트가 가진 감정의 골은 악화되었다. 개중에 엘리트가 사건을 묻기 위한 수작이 아니었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들은 결국 감정을 토로하며 싸웠고, 끝은 죽어버린 사람을 탓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희야는 눈을 감았다.
"며칠 전에 죽었단다."
그렇지만 지금부터는 죽은 자를 하나만 탓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그도 죽었다. 정확히는 괴한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했다. 그의 시체는 학교 운동장, 화장실 세면대, 그네 등 여러 곳에서 발견되어 세간의 충격을 샀다. 주변에는 그가 지금까지 저질렀던 폭력의 내용이 낱낱이 적힌 전단지가 피에 젖은 채 같이 발견되었다. 희야는 그 사실 또한 기억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금세 잊어버리니까. 불현듯 든 생각에 눈이 가느다랗게 뜨였다.
"두려워 말아. 너는 낙원에 도달했지만 그 아이는 낙원에 없을 테니까."
홀로그램은 여전히 맑게 웃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그려냈다. 희야는 홀로그램이 웃는 표정에 맞춰 눈을 휘었다. 애써 웃지만 역시 그를 닮을 수 없다. 나는 네 편린조차 닮을 수가 없구나. 희야는 자리에서 일어나 액자를 원래 있던 자리에 밀어 넣고, 손을 모아 짧게 기도한 뒤 납골당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희야를 보호하듯 에워싸고 온전히 떠났을 때, 희야는 뒤를 돌지 않았다.
산 자라고는 아무도 없는 죽은 자만 가득한 곳에서, 기억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만이 여전히 한때의 찬란함을 반복했다.
- 죄사함
- 정신이 멍하다. 희야는 흐린 정신 속에서 무얼 하려고 했는지 가늠했다. 분명 아는 얼굴들을 보았다. 순찰은 아니더라도 샹그릴라 복용 장면을 보았으니 압수하려 했고, 하나는 순순히 주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거절을 하더니 도망치려 들길래 붙잡으려 했다. 그러자 갑자기 벽으로 몸이 날아갔는데……. 희야는 울렁거리는 시야를 뒤로 먹먹한 대화를 들었다.
"너 미쳤어?! 지금 뭐 하는 거야!"
"내, 내가 뭐? 난 그냥 살짝만 밀쳐내려 한 건데……!"
"그러다 저분께서 품으로 돌아갔으면 어쩌려고! 그분께서 우리를 보고 계실 건데!"
"너, 너 말 잘했다. 너 말 잘했어. 그분? 나는 더 이상 그분이고 나발이고 드, 듣기도 싫어."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뭐라고 했냐고? 귀 열고 들어 이 씨*. 에어버스터 그 개*끼 때문에 그분인지 그 새끼인지는 행방불명이고, 우리는 전부 흩어졌는데 저게 더 이상 쓸모가 있다고 봐?"
"그렇지만 저러다가 죽겠어!"
"그게 뭐? 이참에 그냥 죽게 내버려 둬! 우리 여기로 옮기고 나서 그런 게 한두 번이야? 품으로 돌아가라고 해!"
희야의 몸이 움찔 떨렸다. 옥신각신 목소리를 높여 싸워대는 두 사람을 뒤로 손을 들어 소매로 대충 이마를 훑었다. 소매가 붉다. 땀이 나는 줄 알았는데 피였다. 아찔한 시야에 누군가 잡혔다. 희야는 따지는 사람을 향해 적반하장으로 목소리를 높이더니, 거칠게 어깨를 밀어대며 골목 구석에 모는 인영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떠벌거리는 목소리는 점차 격양되더니, 이내 폭발하듯 거세게 밀쳐내며 외쳤다.
"─애초에 그 씨*것이 실존하긴 했어?! 품이 있긴 하냐고!"
그리고 발치에서 서서히 돋아나던 고드름은 일순 강하게 뻗어나가 날카롭게 발목을 찔렀다.
"아악!! 뭐, 뭐야!!"
"처벌이지."
희야는 몸을 비틀거리며 일으켰다. 전치 2주. 그렇지만 이건 순찰이 아니라 개인적 용무였으니 상관이 없길 바랄 뿐이다. 발목에 힘이 풀렸는지 털썩 주저앉기가 무섭게 바닥에 짚은 손바닥을 고드름이 다시금 얕게 파고 들었다.
"너, 너."
"너."
희야는 황급히 떼려는 손바닥을 신발로 꾹 지르밟았다. 비명 소리가 울렸다.
"소, 손! 손 떼! 떼라고!"
"네 눈에는…… 내가 양지에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음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구나.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느냐?"
희야는 허리를 숙여 눈을 마주했다. 새하얗다 못해 홀로 발광하는 듯한, 그리고 상대를 같은 존재로 보지 못하는 저 너머의 제3자의 것이 틀림없는 눈동자가 어린 양을 정확히 마주했다.
"내가 뭔 짓을 해도 너는 여전히 그림자에 묻혀 사라진단 뜻이다. 네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겠다는데, 폐기해야 마땅하지."
희야는 자신의 바짓단을 잡는 누군가를 향해 뒤를 돌았다. 방금 전까지 말다툼을 하던 자는 눈을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벌벌 떨며 고개를 숙였다.
"자, 잘못했습니다. 저 자는 혼란할 때 들어와 저렇게 어리석습니다. 그러니 제 잘못입니다. 벌하실 것이라면 저를 벌해주세요……."
"……."
"양, 양광의 초석이 되어도 상관 없으니까, 제 친구의 폐기만은……."
고드름이 점차 줄어들더니 눈꽃이 되어 휘날렸다. 손을 찔렸던 자는 훌쩍이기 시작했고, 희야는 엎드려 비는 사람과 발치에서 우는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다 상황과 맞지 않게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뭐-! 지금은 저지먼트니까요. 아하하, 너무 무섭게 하면 에어버스터한테 엄-청 혼이 날 테니까- 응, 그게 좋겠다- 봐줄게요! 오늘은 실전을 했다고 넘어갈 수 있는 아량이 있으니 참 다행이에요. 그렇죠?"
"……."
"그렇지만요- 이거 아프네요- 가다가 쓰러질지도 모르겠어요. 이건 잘못이에요-"
"……마, 맞습니다. 제가 감히 미숙한 형제를 다루지 못해 상처를 입혔습니다."
"그렇다면 네 죄를 저 자와 함께 짊어져요. 가서 자수해요! 그게 내가 내릴 벌이랍니다."
"자, 자수요?"
"응. 대신 흩어진 이후 일만. 너는 내게 죄사함 받아 마땅한 존재요 양지에선 쓸모가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기억해요."
"네?"
"계시 받은 자가 어디에서나 너를 지켜보고 있다는 걸."
"다, 당연하죠! 제가 어떻게 속이겠습니까!"
"그러니 가세요. 마지막 기회예요."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황급히 앞으로 기어가 부축하는 모습이 한 번, 그리고 우는 소리와 구석으로 끌고가는 소리가 점차 줄어들 때, 희야는 익숙하다는 듯 손목을 두 번 두들겼다.
─ AI 생체 시스템 분석 완료. 구급대에게 긴급 구조 요청과 자동 위치 수신을 시작합니다. 해당 작업은 5초 정도 소요됩니다…….
자료 송신이 완료되는 소리가 나기가 무섭게 희야는 뒤로 넘어가듯 쓰러졌다. 세상이 암전되는 순간, 희야는 가장 무언가를 떠올리며 정신을 잃었다.
아, ─가…….
- 북서쪽
- 이용 가치를 다해 버려진 것은 그것대로의 매력이 있다. 개발 문제로 입주를 앞두고 계획이 중단된 오피스텔 단지는 외벽에 각종 그래피티로 새로운 옷을 입고 헐어버린 내부 속에서 위험한 것을 안전히 품어주었으며, 유행이 지나 고철이 된 안드로이드는 서로 존재하지 않는 온기를 찾듯 서로의 몸이 이리 얽히고설켜 늘어져 새로운 작품이 되었다. 신소재로 이루어져야 할 바닥은 이리저리 갈라지고 먼지만이 쌓였지만 그마저도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됐고, 근처에 놓인 건축 자재는 훌륭한 모닥불용 땔감이 되어 제 몸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타인의 눈에는 애물단지로 비치겠지만 그들의 눈에는 달랐다. 바닥 그림자에서만 기어다니는 자들만이 알 수 있는 동질감이 있었고, 이따금 두려울 적이면 이용 가치 없는 것 또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는 동기가 됐다. 그들은 제각기 타인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할 수 있었음에 충만한 기쁨을 누렸다. 하나씩 수가 사라지고 새로운 얼굴로 채워진들 그건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얼굴을 가려 누가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늘 다른 그들은 항상 폐허 더미에서 같은 꿈을 꾸었다.
감히 누가 그랬는가, 잠자리를 함께 할 수 있어도 꿈은 같이 꿀 수 없다고. 그들은 달랐다. 잠자리가 달라도 꿈은 같았고, 같아도 다를 바 없었다. 미약한 전력 실린 여름의 눅눅한 바람이 불었다. 전류에 센서가 반응해 안드로이드 한 대에 약 3초간의 삶이 부여되어 엉킨 몸 사이에서 몸부림치다 늘어지는 것을 구경하던 무리의 중심이 고개를 들었다.
"북서쪽으로."
안드로이드가 꿈을 꾸는 바람이 부는 곳으로. 얼굴을 가린 일원 하나가 다가와 종이 가방을 쥐고 고개를 숙였다. 손을 얹고 눈을 감으면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따스한 손길이 함께 하기를."
"함께 하기를."
"눈길에 닿을 만큼 가치 있기를."
"가치 있기를."
"그들의 손에 고통받지 않기를."
"설령 받더라도 고통은 단 한 번이기를."
손을 떼고 눈을 마주쳤다. 우리는 모두 같은 꿈을 꾸니, 보라. 저 너머의 안드로이드는 꿈을 꿀 수 없다. 우리는 저 미욱한 생명의 발버둥처럼 살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니 우리는……. 코에서 흐르는 피를 대충 훔쳐내며 마지막 문장을 읊었다.
"좋은 꿈을 꾸기를."
- 조기교육 - 락
- "삼촌, 이게 뭐예요?"
어린 희야는 블랙 레터로 쓰여진 로고를 발견하곤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원숭이로 추정되는 사나운 괴수가 글자를 부여잡고 날선 이빨로 물고있는 모습의 로고를 가리키는 손짓에, 승환은 껄껄 웃으며 희야의 복슬복슬한 머리를 쓸어주었다.
"삼촌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주는 그룹의 상징이야."
"M, o, n, k, e y…… 몽-키 헤드?"
"멍키헤드라고 부른단다. 희야보다 나이가 많은 그룹이야."
"우와아, 멋지다! 근데 무슨 노래예요?"
"헤비메탈이란 건데, 희야가 듣기엔 귀가 아플 수도 있어."
"들어볼래!"
그랬던 적이 있었지. 희야는 연구소에 울려퍼지는 노래를 따라하듯 흥얼거렸다. 실례 실례합니다, 실례 실례할게요. 쏙쏙 들여다보는 부채도사 댁이 맞나요……. 연구 자료를 받아오기 위해 들렀다 예상치 못한 고막테러에 오만상을 쓰는 연구원을 빤히 올려다 보았다.
"정신 없죠?"
"……네."
"앞으로 더 정신 없어질 건데, 빨리 달라고 하는 건 어때요?"
"이것보다 더요?"
"응."
희야는 고개를 쭉 빼들었다. 멀리서 리듬을 타는 승환을 빤히 쳐다보다 연구원을 슬쩍 바라보았다. 거친 생각과 불안한 연구원의 눈빛과 그걸 지켜보던 희야는 소매를 모아 조그마한 손 확성기를 만들더니……
"2022년 라이브 버전으로 가져와-!!"
사자후에 가까운 쩌렁쩌렁한 외침에 연구소를 울리던 노래가 뚝 끊기더니, 승환이 마찬가지로 쭉 고개를 빼들더니 엄지를 치켜올렸다.
"접수! 헤이, 이모티!"
─ 여러분의 친절한 인공지능 서비스, 이모티Emoty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 그만……."
"볼륨 높여!!!"
"못 돌아가!!!"
연구원은 그날 먹먹한 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 소란
- "꺄아악!! 소장님!"
"마, 말려!"
"그만 두세요, 그만!"
데 마레의 연구원들은 갑작스러운 소란에 소장을 붙잡았다. 연구원 하나가 갑작스러운 주먹질에 코피를 흘리며 놀란 눈으로 저 멀리 떨어진 안경을 향해 시선을 꽂았다.
"아무리 애들 뇌에 전기 자극 준다고 해도 결국 우리 모두 그 아이들로 살아가는 연구원이야. 돌고 돌아서 다시 아이들이니, 무엇보다 아이를 위해야 한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는데, 다른 곳도 아니고 데 마레에서 이런 짓을 벌여?!"
"저, 저는. 그, 그냥, 희야가 걱정이……."
"입 닥쳐! 걱정이고 자시고 네가 한 일이 가벼운 줄 알아?!"
소란을 들은 희야가 달려와 두 사람을 가로막듯 팔을 벌리며 섰다.
"사, 삼촌."
"비켜라, 희야야. 삼촌 화낼 거야."
"내, 내가 달라고 했어."
"뭐?"
"내가… 내가 달라고 했다고, 사, 삼촌, 선생님 때리지 마."
"너 그게 무슨─!"
"자, 잠! 잠 못 잔다고, 검색했는데, 그거 먹으면 된다고 해서, 선생님한테 내가 졸랐어."
"너 그게 얼마나 위험한 약인지 알고 지금!!"
"아픈 걸 어떡해!!"
희야는 빽 소리를 질렀다.
"커리큘럼 아프단 말이야!! 계속 몸도 아프고 그래서 잠도 못 자고, 삼촌은 맨날 이상한 선생님 붙여주고!! 조금 잘까 싶으면 또 커리큘럼이고, 어차피 달라지는 거 하나 없는데!! 내 마음은 하나도 알지도 못하면서, 선생님 때리지 마!!"
"너, 너……!"
승환은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다, 주먹을 꽉 쥐었다.
"안희야, 너는 방에 들어가."
"사, 삼촌."
"자네는 정직이야. 당분간 연구는 꿈도 꾸지 말아!!"
잠든 듯 잠에 들지 못하는 세상.
희야는 피가 흐르는 코를 대충 손등으로 훔치더니, 이내 고개를 비틀거리며 기울였다.
"왔다."
왔어.
샹그릴라는 멍청한 것들이나 먹는다. 그게 저지먼트를 넘어 안티스킬도 수시하는 불법적인 약물이라는 걸 알면, 무엇과 동급인지 알 텐데도.
그저 레벨이라는 열망 하나로, 혹은 호기심으로, 그것도 아니면 유행이기 때문에 법을 뛰어넘고,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며 먹다니.
"욕심은 끝이 없고 형제자매의 업은 반복되는구나."
- 안드로이드
- 안드로이드의 안면 센서 조정은 까다로운 일이다. 시중에 쉽게 보급되는 만큼 사람들이 마음대로 커스텀 할 수 있고, 자칫하면 실존 인물과 닮게 만들어 무분별하게 악용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구분 짓기 위해 내린 특단의 조치는 사람과 닮을수록 복잡해졌다. 지금 눈앞에 있는 모델도 그렇다. 사람을 완벽하게 빼닮은 해당 모델은 아무리 평범한 미소를 짓게 명령어를 입력해도 끔찍한 불쾌감을 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손을 거치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그는 무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 안드로이드의 뒤통수를 더듬다 걸쇠를 찾아 손톱으로 밀어 열었다. 달칵 소리와 함께 열린 뒤통수 속에는 비어있는 부분이 있었다. 길쭉한 손가락이 칩셋 하나를 끼워 넣자 딸깍 소리와 함께 뒤통수의 뚜껑을 닫자 안드로이드는 고개를 천천히 들더니, 놀라울 만큼 완벽하고 섬세한 미소를 지었다. 은은한 미소가 마치 명화 속에 나오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미소와 같다! 그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안드로이드를 면밀히 살폈다. 섬세한 손길로 하나하나 완벽하게 조정한 프로그래밍 칩셋 덕분에 안드로이드는 오래 살펴도 모난 부분을 찾을 수 없고 은은한 미소만 얼굴에 가득하다. 귀에 돋아난 이어셋이 아니었다면 매끈한 인조 피부와 신소재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머리카락 때문에 사람이라고 착각하겠지!
"완벽해."
그는 이따금 사람을 면밀하게 관찰했고, 그 표정을 안드로이드에 옮기곤 했다. 물론 처음부터 잘 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어찌나 어려웠는지! 그는 가장 처음 칩셋을 프로그래밍 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가 처음 본 안드로이드는 끔찍한 미소를 짓다가, 머리카락이 비죽 설 정도로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기계음으로 된 울음을 터뜨렸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기분이 썩 좋지 못하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시도하는 것을 보며 일찍이 포기하라 말했다. 그가 나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괜한 오기였을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눈썹이 휘어지는 각도마다 표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입술을 휘는 모습에 따라 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하나하나 관찰하고 안드로이드에 옮겼다. 그럴수록 표정은 정교해졌고, 지금은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내는 AI를 이식하면 하나의 사람과 다를 바 없겠다 생각될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 장족의 발전이다. 사람들은 그가 프로그래밍한 안드로이드가 징그럽지 않다며 좋아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관찰한 만큼 사람은 새로운 것을 알아갈 수 있다고 했던가? 그 또한 여러 표정을 자연스럽게 지을 수 있게 됐다.
"이제 됐어."
그는 안드로이드와 똑같은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었다. 그러자 검은 옷을 입은 사람 하나가 그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안드로이드를 향해 무언가 쏴갈겼다. 무시무시한 소리를 뒤로 안드로이드는 격렬한 스파크가 튀더니 몸을 꿈틀거리다 냉각수를 줄줄 흘리며 축 늘어졌다. 그는 안드로이드의 얼굴을 확인했다. 안드로이드는 여전히 성모 마리아처럼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다. 아마 고철 처리장에 버려도 저 미소는 유지될 것이다. 그거면 됐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냉각수가 발치에 닿지 않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저런 것이 옷깃을 적시는 건 싫었기 때문이다.
"치워."
"예."
그가 뒤를 돌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주머니에서 호출 버튼을 눌렀다. 머잖아 청소를 위해 안드로이드 하나가 환풍 팬 돌리는 소리와 함께 다가왔다. 그리고 은은한 미소를 지은 고철덩이의 다리를 잡고 질질 끌고 가자, 쇠가 바닥을 긁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공간을 찢을 듯 울렸다. 주변에 남아있던 두어 명의 사람들은 표정을 절로 찡그렸지만, 그는 끔찍한 소리에도 안드로이드와 똑같이 은은한 미소를 유지하며 걸음을 앞세웠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걸음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제각기 소음을 참아내듯 표정을 찡그리면서도 걸음에 합류했다. 오늘 세심하게 만들어낸 미소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졌다간 저기 질질 끌려가는 안드로이드 꼴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대기해."
"예."
그는 한곳에 도착해서 문을 열었다. 문을 열기가 무섭게 좋은 냄새가 난다. 그가 성심성의껏 준비한 향 덕분이다. 누군가 기도를 하다 몸을 벌떡 일으켰다. "세상에! 날 기다렸나요? 어서 와서 안아줘요!" 그는 너스레를 떨며 팔을 벌렸다.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알았고, 그런 데서 실수하는 일이 거의 없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표현을 하는 걸 봤을 때면 인간이 가진 원시적인 소유욕의 발산이라며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막상 본인이 하게 되니 썩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에게 있어 이 사람은 아주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는 품에 안긴 사람을 토닥여주며 은은한 미소를 유지했다.
"오늘은 어땠나요?" 부드럽게 묻는 것은 아주 잘 하는 일이다. 지금껏 한 번을 틀린 적이 없다!
그리고 당신은 늘 그렇듯 자그마한 목소리로 얘기하겠지. "정말 좋은 하루였어요."라고!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나쁜 짓을 저질렀어요."
그의 표정이 흔들릴 뻔했지만, 그는 특유의 초월적인 인내심으로 버텼다.
"어떤 일인지 들어볼까요?"
"그, 그러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괜찮다는 듯 의자로 함께 걸어갔다. 자리에 앉은 뒤 몇 번 토닥여주자 당신은 더듬더듬 입을 연다. 느릿하던 말은 점차 다급해지더니, 종국에는 흐느끼는 것 같았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쉴새 없이 말을 쏟아내다 "전 지옥에 떨어질 거예요!"학 외치지만 어두운 비밀을 털어놓는 것이 더없이 기쁜 듯한 목소리였다. 그는 여전히 평온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인간이란 저런 이유 하나로도 무너지는구나!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자신은 무너지는 존재를 붙들 수 있다. 말 한마디, 약간의 공감, 그리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어린 빛무리에게 고민 있을 적 손 뻗어주는 존재가 누구이더냐?"
"비, 빛입니다."
"하여 이르시되 네 죄를 사할 자는 누구이더냐."
"그 또한 빛입니다."
"영원한 분께서 이르시니 네 죄를 고백하라 하였으니, 너는 고백하였도다."
"그렇습니다."
"그리하니 내가 이 모든 것을 들었고, 그분께서 모든 것을 들었다. 내 네 죄를 사하노라."
"아, 아아……!"
그가 적당한 너비로 팔을 벌리자 손을 모으며 울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여전히 안드로이드처럼 은은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연신 숙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수를 셈했다. 하나부터 서른까지, 천천히 셈을 마쳤을 때 당신은 고개를 올렸다. 죄의식과 양심의 가책을 떨친 눈가는 촉촉이 젖어있다. 그는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주 잘 안다.
"두려워 말아. 너는 낙원에 도달할 테니."
우리는 그 미욱한 생명의 발버둥처럼 살 수 없음을 깨달았지 않았는가, 안드로이드는 꿈을 꿀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꿈을 꿀 수 있다. 그를 통해서 형제와 자매는 결집되고, 낙원에 도달할 것이다. 가진 죄를 모두 뱉어내고 끝내 그분의 곁에 도달하면, 세상은 안온하고 평화로워질 것이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세계다. 당신 또한 깨달았는지 두 눈을 크게 뜨더니, 환히 미소 지었다.
"맞아, 두려워하면 안 됐어요."
"그렇지요?"
"당연한 일이에요, 도망치면 안 돼요."
"옳은 말이에요."
환희에 가득 찬 목소리가 예배당을 울렸다.
"새로운 세계를 위해, 구원의 초석이 되기 위해서……!"
조만간 구원의 초석은 호버 택시를 탈취할 것이다. 그리고 어리석은 자들에게, 꿈조차 꾸지 못하는 자들에게 벌을 내리겠지. 완벽한 계획이다. 안티 스킬이 개입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괜찮다. 어차피 그들도 그분의 뜻 앞에서는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새하얀 머리카락을 기울이며, 품에 다시금 소중한 신도를 안았다.
"우리는 모두 구원받으리라."
그는 여전히 안드로이드와 같은 미소를 유지했다.
- 안우재
- 기억하건대 안 우자 재자 쓰는 남자는 난놈이었다. 훤칠하니 영준한 인상은 물론이요, 꿈이 있었다. 꿈을 위해 달리고 스스로 가꾸어낸 기로는 탄탄했으며, 생각이 깊었다. 끝없이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성정 탓에 하나를 생각하면 열을 보여주었고, 그 공이 커 인첨공에서 일할 수 있는 영광을 얻기까지 했으나 스스로 거절한 사람이었다. 난놈인 것과 달리 사람 인생사는 부족하여 여럿 혀 차며 고개를 저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인첨공을 거절할 법한 사건이 연달아 터졌으니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그를 동정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결심했던 모양이다.
"승환아."
"어어, 우재 너 이자식, 몸 상한다니까 왜 자꾸 여기까지 찾아오고 그래."
"괜찮아. 허락 맡았어."
"아니, 김 교수님이 허락을 해준다고? 거 별일이네."
승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우재를 부축했다. 그는 우재의 대학 동기요, 친구이자, 연구소 동문이고, 우재가 인첨공을 포기하며 데 마레 프로젝트를 넘겨받은 친우였다. 같은 성씨였으며 우재의 키가 원체 컸던지라 큰 안 선생, 작은 안 선생 별명 붙이고 다녔던 죽마고우기도 하였다.
"승환아, 놀라지 말고 잘 들어라."
"뭔 일이냐?"
"나는…… 우리 희야 인첨공에 보내고 싶다."
승환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희야라면 그의 아들 아닌가? 어찌 아비는 인첨공을 포기하고 아들을 인첨공에 보내나 싶은 발언이지만 그는 쉽게 의중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니, 이 새끼야, 희야 데려가면 못 나와. 그걸 알면서도 말이 쉽게 나와?"
"그러니 네가 맡아줬으면 좋겠어."
"아, 새끼, 돌아버리겠네 진짜. 야!"
승환은 먹먹한 심정을 숨길 수 없었다. "너는 무슨…… 오자마자 더 가망이 없다는 듯이 말을 하냐?"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먹먹한 승환의 목소리와 달리 우재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차분했다. 승환은 그 목소리에서 김 교수가 어찌하여 우재의 외출을 허락했는지 깨달았다.
"너……."
"그러니 염치 없지만 부탁하마. 우리 희야 인첨공에서 살게 해줘."
"……애를 가둬서 대체 무얼 하려고 그러냐. 낭만적인 삶은 아닐 거야. 우리야 서로 기밀유지 서류라도 썼으니 이렇게 얘기 나눌 수 있지만 그 아이가 낭만적이게 이런 얘기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승환아, 나는 두렵다."
우재는 눈을 감았다.
"내 아이도 내 꼴이 날까 겁이 나. 넓은 세상에 풀어두기엔 세상이 너무나도 험하다. 그러니 부탁하마. 응?"
"……생각은 할 테니까 지금은 쉬기나 해라."
"고맙다, 고마워."
"해준다고 한 적 없어! 너 이 새끼, 이래놓고 애 못 키웠다고 지랄하기만 해봐라!"
"이것 봐라, 애 키우는 거 경험은 해봐야지. 결혼은 안 할 거니?"
"개소리! 나는 독신으로 살 거다, 너 형수님이랑 있던 일 보고 안 그래도 없던 마음 더 떨어졌다."
"하하하."
"이거 보소? 웃음이 나와? 미친놈이네 이거!"
"……그러고 보니 인첨공에는 무덤도 생기나? 너는 거기에서 묻히겠구나."
"아직 인첨공 입주 시작도 않았는데 끔찍한 소리 말아!"
"하하, 농담이다. 농담."
그리고 우재는 고개를 들어 흐리게 웃었다. "승환아, 하늘이 무심하다."
승환은 흐릿한 인상을 여전히 기억한다. 한 올도 남김없이 빠진 머리카락과 앙상한 듯한 몸과 새하얀 안색 사이로 삶의 총기가 가득하던 눈을 기억했고, 무엇보다 의지가 가득하던 목소리를, 문장을 기억했다.
그렇지만 승환아, 나 죽거든 거기로 묻어주라.
뭐?
거 1호 입주자 내가 하게. 그리고 옴싹달싹 못하는 네 꼴 구경좀 하자. 희야도 보고싶고, 윤아라면 내가 여기 있는 것도 모를 테야.
승환은 볕 잘 드는 곳에 털썩 주저앉았다. 비석에는 여전히 난놈 이름 적혀있다. 안 우자 재자 선명히 적힌 비석 물끄러미 보다 소주 한 병 까더니 생전 그리도 좋아하던 독한 술 휙휙 뿌렸다.
"인첨공도 험하더라. 면목이 없다. 우리 희야 그렇게 만든 놈도 못 찾겠다. 나는 어쩌냐. 우재야, 네 말대로 하늘이 무심하다. 어찌 너를 데려갔을까……."
그는 시름하는 소리를 냈다. 희야는 여기를 모른다. 어쩌면 알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잘 된 일이다. 제 아비가 그냥 인첨공에 맡기고 갔노라 생각하길 바랄 뿐이다. 잔을 내려둔 승환은 천천히 얼굴을 싸쥐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울음기를 겨우 참았는지 목이 콱 메인 소리였다.
"그러니까 이 씨발놈의 새끼야, 나 애 못 키운다고 했잖냐……."
날이 좋다. 봄 바람 살랑이는 것이 아름다운 날이다.
- 허심탄회
- 바깥보다 과학 기술이 20년가량 발전했다는 인천 첨단 공업단지에 대한 소문은 누구나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인첨공에 발 들이는 순간 그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게 만드는 것이 있다. 다름 아닌 길가에 널린 호버 택시다. 바퀴 없이 일정 거리의 공중에 뜬 택시는 일반 사륜 차보다 빠르고, 승차감도 좋으며, 친환경적이고, 2학구의 연구를 기반으로 한 탄탄한 인공지능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시켰다. 그야말로 이동 수단의 혁명이었다. 때로는 인공지능을 믿지 못하는 불안감에 직접 운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호버 택시의 인공지능을 애용했다. 편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어디에서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은 때때로 증거를 인멸하는 좋은 변명거리가 되기도 한다. 호버 택시를 탄다는 말은 일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야는 호버 택시를 타지 않았다. 스트레인지는 호버 택시의 안전 규정상 진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외곽의 스트레인지는 온갖 인간 군상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엇나가기 시작했는지 담배를 입에 물고 독한 연기에 눈물을 찍 흘리는 스킬아웃 학생, 그저 이런 불량한 분위기가 좋다느니 어서 도망가자느니 쑥덕거리는 괴짜들, 고철 안드로이드에서 쓸만한 부품을 뒤적거리는 갈 곳 없는 부랑자……. 희야는 그 틈새에 능숙하게 섞였다. 지나치는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도 자신을 잠깐 보긴 했지만 금세 잊을 것이다. 아무렇게나 개조한 생체이식 칩의 안면인식 저해 기능 덕분이다. 아무리 강렬한 인상을 가진 희야라고 해도, 재머가 켜진 이상 사람들이 알아볼 수는 없었다. 안면을 덮는 홀로그램과 함께 희야는 어지간한 스트레인지 사람들도 향하지 않는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캄캄한 밤이라 걱정이라도 한 건지, 마지막 양심이 남은 누군가 거기로 들어갔다간 인첨공 내부에서 어디 아픈 사람의 일부가 되어 흩어질 거라 말했지만 희야는 단 한 마디로 일축했다. "알아요."
골목을 지날 때면 습격하려는 멍청이들이 있으나 희야가 손에 쥔 것을 보일 적이면 제각기 놀란 눈을 하며 길을 텄다. 개중에는 동경의 시선을 비추는 자도 있었다. 그렇게 골목을 빠져나가고, 으슥하다 못해 스트레인지 내부에서도 인적이 끊긴 곳에는 높다란 건물이 하나 있었다. 이곳은 한때 스트레인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모종의 사건이 생긴 이후 주변은 자연스럽게 몰락하게 되었고, 텅 비어버렸다. 그렇게 점점 낙후 되어가는 계열에 가세하더니, 결국 스트레인지의 일부에 삼켜지고 말았다. 먼지가 쌓인 폴리스라인은 끊겨있지만 이곳의 흉흉한 소문으로 인해 사람들은 들어가지 않는다. 아마 세월이 지나 각종 자연 현상으로 인해 낡아 끊어졌을 것이다. 진작 사람의 발길이 끊겨버린 폐건물은 을씨년스럽다 못해 당장 뭔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희야는 이 익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암부 '그림자'를 만난 이후에도 이 장소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렇지만 제법 많은 것이 달라졌다. 계단을 내려갈 적 발에 이따금씩 채이던 쥐의 시체는 이미 다른 쥐가 뜯어먹은 지 오래고, 벌레는 자신이 얼려버린 탓에 이젠 없다. 미처 치우지 못한 흰색 테이프는 사람이 쓰러진 흔적을 그대로 본땄지만, 이건 치울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 복도를 지날 적이면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소리다. 사람들은 모두 제각기 이야기를 나누고, 희망에 대해 토론했다. 그리고 끝내 복도의 끝에 도달할 적이면 이 거대한 문을 열었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덥석 잡은 문은 여전히 경첩에 기름칠을 하지 못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고, 여는 것도 꽤 많은 체력이 필요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안드로이드를 이곳에서 얼어붙게 만들었던 탓인지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싸늘한 한기가 볼을 감쌌다. 희야는 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전경을 훑었다.
"선객이 있었네."
먼지가 쌓였지만 여전히 이곳만큼은 웅장하다. 거미줄이 켜켜이 쌓였지만 신소재로 된 둥그렇고 우아한 기둥과 대리석으로 되었지만 먼지가 굴러다니는 바닥, 홀로그램의 기동이 멈춰 캄캄하고 이곳저곳 금이 갔지만 인공 태양이 뜰 적이면 이 장소에서 화려하게 비산하던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높다란 계단과 그 위에 놓인 제단, 그 모든 것을 비추는 태양까지. 계단 밑에는 목과 팔다리가 부자연스럽게 뒤틀린 안드로이드가 여전히 얼음 속에 갇혀있고, 그걸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던 남성이 고개를 돌려 이젠 희야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 이 새끼, 왜 여기에 있어."
희야의 협소한 인간관계 중 안티스킬에 속하는 사람, 그중에서도 강력 범죄를 수사하는 남성 대원이다. 나이는 젊은 편에 속하나 모종의 사건에서 지대한 공을 세워 특수한 목적으로 이루어진 작은 팀의 반장으로 승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평소와 달리 제복을 입지 않고 사복을 입고 있다. 그렇지만 희야는 저 남자가 누군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는 늘 선글라스를 끼고, 장갑을 손에 끼고 있기 때문이다. 표정을 와락 구긴 것이 어두운 공간에서도 떼놓지 않는 선글라스 너머로도 눈에 확실히 담겼다.
"그쪽이 신경 쓸 일이 아니지. 여자는 어디 갔지?"
희야는 그를 향해 걸어가며 고개를 까딱였다. 그는 늘 희야를 향해 따뜻한 말을 하는 여성 하나를 곁에 두고 다녔다. 파트너라고는 했지만 두 사람은 영 맞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을 하나의 아이로 두고 얘기하는 모습에 그저 두고 볼 뿐이었던 여자가 없으니 어딘가 어색하다. 희야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는지 남성은 희야가 스쳐 지나가 계단을 오르자 뒤를 따르며 답했다.
"……4학구 치안 유지 때문에 잠시 파견 나갔는데, 그것보다 너 진짜 여기에 왜 있는지 말해."
희야는 계단에 온전히 오를 때까지 답을 하지 않았다. 이내 제단 가장자리에 능숙하게 걸터앉더니 다리를 꼬았다. 무릎이 올라선 쪽으로 팔꿈치를 괴고, 이내 손에 턱을 괸 희야의 자세는 아래를 시시하다는 듯 내려다보는 것 같기도 했다.
"희야가 있겠다는데 뭐가 문제죠?"
"폴리스 라인이 있으면 들어가지 말라는 거 몰라?"
"끊겼잖아. 그쪽은 왜 여기 있는데?"
희야는 위에서 주변을 훑었다. 계단 아래의 전경이 확실하게 눈에 담긴다. 만일 제단에서 내려와 계단에서 몸을 기울이면 대략 5m 남짓한 아래에서 얼어붙은 저 안드로이드 꼴이 날 수도 있겠다. 희야는 주변을 모조리 훑은 뒤에야 시선을 돌려 남성을 쳐다봤다. 어둡기 때문에 주변에서도 새하얗게 빛나는 것 같은 원반 같은 눈동자를 마주한 남성은 불쾌감을 느꼈는지 선글라스 너머로 시선을 피했다.
"……이곳에서 신호가 잡혀서."
"아, 그런가요?"
"…아무렇지도 않나 보다?"
"희야가 신경 쓸 일이에요? 아, 그래. 어디 있냐 물어볼까?"
"알려줄 리가 없지."
"왜, 희야를 안 믿어서?"
"기밀이라서. 새끼야."
희야는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어련하시겠어, 비아냥거리는 소리에 남성은 희야에게 비키라는 듯 손을 내젓더니, 이내 옆에 털썩 걸터앉았다. 희야는 남성이 앉기가 무섭게 눈을 흘겼다.
"신성모독이다."
"네가 앉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고?"
"당연히 나는 문제가 없지요."
"그래서 왜 왔는데."
아마 남성은 자신이 대답할 때까지 절대 이 제단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을 심산인 것 같다. 이런 찰거머리 같은 녀석이 뒤를 밟았으니까 다 조졌지. 희야는 질린다는 듯한 형식적인 반응을 보내고는 이 장소가 깨끗해지면 얼마나 웅장하고 아름다울지 가늠하는 듯한 남성에게 툭 던졌다.
"어이, 죽을 각오라고 알긴 하나?"
같은 저지먼트 동료 중 나랑이라고 이름 붙여진 인간에게 보였던 시건방진 말투였다. 남성은 선글라스 너머로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금세 미간을 좁혔다. 저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 대답은 퉁명스러웠다. 마침 이곳에서 둘의 유치한 말다툼을 막아줄 여성도 없었다.
"갑자기?"
"대답이나 하시지."
"맹랑하긴, 우리 같은 안티스킬이야 늘 있는 일인데, 왜."
"그러면 죽여본 적 있어?"
"사살이라면…… 그래. 있지. 그건 또 왜."
"종용한 적은?"
"뭐? 없지."
"죽어본 적은?"
"없지, 왜, 갑자기 또 그 지랄이야? 이 맹랑한 애새끼야."
"난 있어."
"뭐라는 ㄱ- 에취!"
희야는 허리를 펴더니 괴던 팔을 뗐다. 이내 꼬았던 다리를 펴며 팔을 뒤로 기대고는, 체중을 실었다. 몸은 천천히 뒤로 기울더니, 이내 팔은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제단 위에 풀썩 눕게 됐다. 갑작스럽게 먼지가 피어오르자 남성은 고개를 돌려 재채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남성을 배려하지 않고 희야는 조잘조잘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이야, 누가 죽음이니 뭐니 얘기할 때면 흥미부터 생기더라고. 저 인간들이 과연 죽음의 가치를 알까? 뭐, 아니까 얘기하겠다마는 동조하는 것들은 어떨까? 바깥 것들은?"
"웃기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어이, 애새끼."
먼지가 묻은 것 같은 코 끝을 손등으로 훔치던 남성은 허리를 굽히더니 손으로 제단 끝을 부여잡아 몸을 지탱한 채 희야를 내려다봤다.
"그런 건 네가 더 이상 신경 쓸 게 아니잖냐."
"이제 보니 얼굴 반반하다? 몇 살이야?"
"개지랄 떨지 마라. 맹랑한 애새끼."
"하하하-! 맹랑하다고 해줘서 이것 참, 고마운걸."
희야가 깔깔 웃자 남성은 표정을 다시금 와락 구겼다. 이래서 이 녀석을 대하는 게 싫었다. 이런 사람을 대할 때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남을 아무렇지 않게 따라 할 수 있는 사람을 매체에서 본다면 감탄밖에 나오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다르다. 그 사람들은 대다수 자신이 무엇인지 명확히 고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는 지금 이 맹랑한 고등학교 3학년이 무엇을 따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직감은 말을 해주고 있지만 확답을 들어야 할 것 같아 남성은 미간에 새긴 주름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너, 그거 네 말투 아닌 거 다 알아, 이 새끼야."
"……어떻게 알았지?"
"그야 내가 아는 맹랑한 애새끼는 말이다, 늘 희야는요~ 뭐 했는데요, 아~ 뭐였더라, 뭔가 아무튼 했지 뭔가요? 어라~? 같은 얄밉다 못해 주둥아리 손바닥으로 후려치고 싶은 말투를 쓰는데. 너, 지금 누굴 따라 하는 거냐."
가성까지 섞어가며 자신을 어색하게 따라 하는 모습에 희야는 눈을 반쯤 감았다. 지루하다는 듯, 그리고 안드로이드가 표정 센서를 새롭게 인식하고 새로운 표정을 습득하는 과정처럼 얼굴이 순식간에 차분해졌다. 남성은 사람 같지 않은 눈동자와 함께 저런 표정을 짓자 돋기 시작하는 소름을 지우기 위해 무진 애썼다.
"흉내 내는 인위적인 인격을 알아서 무엇에 쓰려고?"
"글쎄다. 적어도 지금 상황은 막겠지, 소름 돋으니까 하지 마라."
"막지 마. 방어기제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 말 좀 들어보란 소리지. 나 미쳐버릴 것 같아. 이미 미친 새끼긴 한데 진짜 돌아버릴 것 같아. 나 미치겠다니까."
"설명을 해라, 애새끼야."
"아- 새끼, 아가리 존나 더럽네."
"뭐?"
희야는 푸르스름한 손으로 얼굴을 덮어 가렸다. 남성은 희야의 인간답지 않은 손에 시선을 둬야 할지, 아니면 덮어가린 얼굴 너머의 눈을 마주해야 할지 고민하다 이내 손에 시선을 두기로 했다. 적어도 눈보다는 불쾌감이 덜했다.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한다면 익숙한 곳에 있어야 하지 않겠나요? 그런데 불청객이 있을 줄이야. 그것도 평안을 방해하는 녀석이."
"무슨 일인데."
"대답해 줄까 보냐."
"아, 지금 여기서 데 마레로 데려가달라고? 사정까지 낱낱이 설명하고?"
"나 레벨 3이에요."
"어쩌라고, 다시 그때처럼 제압해 줘?"
"에어버스터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던 새끼가."
"적어도 너는 제압했지."
"하아. 어쩌다 저딴 새끼에게 잡혀서 내 찬란하던 인생을 조졌대요?"
희야는 한숨을 푹 쉬었다. 남성은 저 반응이 인위적임을 알고 있지만 달리 말을 얹지 않았다.
"첫째, 샹그릴라를 만든 녀석들이, 그러니까, 암부가 나에 대해 알고 있어요."
"뭐?"
"너는 아가리 가볍지 않은 놈이니까 나랑 기밀을 공유해 줘야 해."
"갑자기? 이 애새끼가. 확 퍼뜨린다?"
"그러면 에어버스터가 터뜨린다."
저지먼트는 아이들 집단 아냐? 학생들에게 암부가 왜? 그렇지만 이 맹랑한 꼬맹이는 좀 다른 세상을 살았으니 이해할 수 있었다. 남성은 일단 현재 상황에 대해 집중하기로 했다.
"아무튼 뭐, 암부가 나한테 그러더라고? 시위 막고 여기에 동조할 자격이 없지 않냐고."
"그 저격 사건 말이냐?"
"응, 암부 짓이죠. 하, 뭐, 이해는 가요."
희야는 메마른 웃음을 뱉었다.
"하하, 뭐 그럴 법도 하지. 내 말 한마디에 다들 호버로 들이받고, 그 난동을 부리고 그랬는걸……. 그쪽과 퍼스트클래스에게 제압되기 전까지 말이야. 그런 수라장이 벌어졌는데 범죄자 녀석들이 나를 모르겠어요? 아는 게 당연하지. 그렇지만 말이죠, 신경 안 쓴단 말이에요. 어차피 알려지든 말든 난 더 이상 책임이 없어. 무죄잖아."
"무죄가 방패는 아니지만 말이다."
"닥치고 내 말 끝까지 들어요."
"이 애새끼를 진짜 확."
"여기까진 괜찮아…… 시위든 뭐든 다 괜찮아. 내가 무슨 짓을 했든지 이제 난 저지먼트고, 무죄고, 아무튼 그렇다고…… 그런데 갑자기 데 마레에 애새끼가 생겼어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저지먼트 중에 하나가 나한테 애새끼들을 맡기고 갔다고. 차일드 에러를……. 그리고 난데없이 다들 죽음을 각오해야 한대잖냐, 죽음을……."
희야의 목소리가 긁히는 것 같이 갈라졌다. "인간들이… 인간들이 이상해졌어……." 작은 짐승이 앓는 듯한 목소리에 남성은 금세 연관성을 찾을 수 있었다. 맹랑한 꼬맹이는 이다음에 일어날 일을 안다. 그리고 남성도 알고 있다. 어째서 이 꼬맹이가 이렇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지도 안다. 남성은 침묵을 지키다 무거운 입술을 뗐다.
"야."
"…뭐."
"……그거 트라우마 증세 같은데, 소장님께 말씀 안 드렸냐?"
남성 또한 저런 반응을 보인 적이 많다. 안티스킬 대원으로서 처음 사살을 경험했을 때, 그리고 이 맹랑한 애새끼를 제압한 이후로도 줄곧 이런 반응을 겪었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희야는 달랐다. 희야는 푸르스름한 손가락 틈새로 빼끔 시선을 내비쳤다. 홉뜬 눈동자는 창백한 달을 그대로 담은 것 같기도 하고, 태양을 온전히 담은 것 같기도 했다. 남성은 피조물을 관망하는 듯한 제3의 존재가 내비치는 시선을 애써 마주했다.
"아니, 이건 그저 시련일 뿐이야."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데."
희야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그리고 표정을 바꿨다. 명령을 입력 받은 안드로이드처럼 표정이 부드럽게 풀리기 시작했다. 은은하다 못해 명화 속에 나오는 어머니의 자애로움을 빼닮은 미소가 얼굴에 가득했다.
"음, 희야가 방금 그렇게 프로그래밍 했다고 하면 믿어줄래요?"
"……데 마레로 간다."
"어라-? 이러면 안 되는데. 어어, 이거 납치야, 이거 납치야-"
"개소리 마라, 애새끼."
"아, 진짜 싫어요! 집에 보내줘요!"
"집이 데 마레 아니냐?"
"희야 사는 곳 따로 있거든요?! 누굴 연구실에서 숙식 해결하는 생물학과 대학원생으로 알아!!"
"어디 사는데."
"알려줄까 보냐!"
"그럼 진짜 데 마레로 간다."
"아! 아!! 3학구! 3학구!"
남성은 결국 희야가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아 짐짝처럼 어깨에 둘러메더니, 그대로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그게 또 재밌다는 듯 깔깔 웃는 소리가 예배당을 울렸다. 경첩 바르지 않은 문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두 사람을 등지고 닫혔다.
거대한 태양이 둘을 지켜보다 문 너머로 사라졌다.
- 테러
- ─ 마레를 규탄한다! 규탄한다!
─ 마레도 한때 강도 높은 커리큘럼이 있었습니다! 로젤, 오션스와는 다르다며 성과를 운운하는 꼴이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 연구소의 걸작이라며 앞으로 내세우던 학생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학생의 소재도, 신원도 지금은 불명확합니다! 마레는 당당하다면 숨지 말고 해명하십시오. 데 마레는 지금 이 사실을 묵인하고 있습니다!
희야는 창밖을 흘긋 내다봤다. 시위대는 자리에 앉아 계속해서 데 마레가 위험하니, 위선자니 외치고 있었다. 승환은 그런 희야를 한 번 보더니 마시던 커피에서 입을 뗐다. 지나치게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태휘 또한 그런 승환의 모습은 처음 봤는지 진짜 괜찮냐는 듯한 눈치였다.
"나가지 않아도 됩니다."
"소장님, 괜찮습니까?"
"괜찮습니다. 돈 받고 저러는 것들이니 기자들 와서 사진 찍어가면 알아서 조용해질 텝니다. 우리는 그때 연락 취해서 새어나가지 않게 막으면 되고요."
"그렇지만……."
─ 데 마레 또한 살인자다!! 커리큘럼으로 희생된 아이의 명복을 빕니다. 악독한 작자들의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준비된 제사상 앞에 절하는 시늉을 하자 승환은 표정을 구겼고, 희야는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머니에 손을 꽂고 설렁설렁 밖으로 나갔다. 경호 인력들이 안 된다며 희야를 급하게 막아섰지만 발을 한 번 구르자 그 모습 그대로 굳어버렸고, 승환은 그런 껄렁한 태도의 희야를 한 번, 그 뒤를 후다닥 뒤따르려던 태휘를 보곤 한 마디 던졌다.
"태휘 군."
"예."
"희야가 요즘 태휘 군을 따라하는 것 같으니, 부디 행실을 바르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제사상 좀 엎어주십시오."
"예?"
─ 데 마레는 살인자다! 살인자다!
희야가 나오자 좌중이 잠시 조용해졌다. 희야의 눈을 마주한 몇몇 시위 인원은 지레 놀라 시선을 피하기에 바빴다. 저게 정상이었다. 아무리 연구소와 저지먼트 인원 중에서 자신의 눈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들, 저 태도가 가장 정상적이다. 누구라도 희야의 눈을 마주하면 저렇게 불쾌감이나 공포심을 느껴야 옳았다. 희야는 시위대장으로 추정되는 맨 앞의 인물을 똑바로 쳐다봤다.
"가요."
─ 저, 저희는 허가를 받고 시위하고 있습니다! 데 마레에 소속된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무례한 태도입니까? 살인을 저지르고도 뻔뻔합니다!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으니까 무례하게 나오는 거죠."
─ 데 마레가 강도 높은 커리큘럼을 벌인 것은 이미 10년 전, 그리고 5년 전 성과 보고회 자료에서도 증명된 사실입니다! 학생이 죽었는데 허위사실이라 하는 것이 옳습니까?
쩡, 소리와 함께 주변에서 고드름이 얼어붙고 희야의 손에 얼음으로 된 창이 쥐여지자 주변에서 시위대를 지키던 안티스킬들이 앞으로 나섰고, 승환의 말에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던 태휘가 희야의 뒤에서 급히 모습을 드러내며 안티스킬 대원증을 꺼내 보이자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럼 멀쩡하게 당신들 앞에 서있는 사람 죽었다며 절하는데 누가 기분이 안 나빠요?"
그제야 태휘는 상황을 파악했는지 당황스러운 시선으로 희야와 제사상을 한 번 번갈아 쳐다봤다.
"너희가 절하는 그 죽은 걸작이 지금 멀쩡하게 살아서 너희보고 꺼지라고 하고 있으니까 좋게 말할 때 가란 거예요. 고소까지 가면 당신들이 불리한 거 알잖아요."
─ 강도 높은 커리큘럼은 인정하십니까?
"여기에서 벌인 일이 아니에요."
"자, 자. 여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제 너는 들어가는 것이 좋겠는데……!"
─ 저거 봐! 인정하지 않잖아!! 인첨공에 안전하고 온건한 커리큘럼은 없어!! 이 위선자들!!
시위대 인물 중 두어 명이 무언가를 씹으며 벌떡 일어서자 안티스킬 대원들은 상황을 파악하고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샹그릴라 복용자다!" 무언가를 쳐내는 소리와 함께 태휘는 희야를 향해 몸을 날렸고, 희야는 태휘 밑에 깔려선 눈을 굴렸다. 자신이 있어야 했던 자리에 불길이 치솟자 희야는 눈을 홉떴다. 금세 난동이 벌어져 안티스킬 대원들이 진압에 나서고자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와, 저 개*끼들. 바로 본색이네. 애새끼, 괜찮아?"
"지금 이게 뭔……."
"테러지 뭐겠어."
"그러니까, 테러가 왜 데 마레에."
"언제는 이유가 있었나?"
희야는 천천히 손을 향해 눈을 굴렸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손이 떨리고 있었다. 태휘는 희야를 꽉 붙들고는 자신을 믿으라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다 안티스킬들이 대기하는 문 부근으로 이끌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 눈 봐, 커리큘럼이 안전하다고 세뇌했을 거 아니야!
─ 옳습니다! 커리큘럼 없이도 이런 성장이 가능합니다! 데 마레는 위선자입니다, 연구소는 살인자들의 보기 좋은 포장지에 불과합니다!
─ 여기서 끌어내야 합니다! 물러서면 안 됩니다!
─ 우리가 역사가 되고 새로운 규정을 세워야 합니다!
─ 커리큘럼의 증거가 저기 있잖아! 마레도 한 패다!!
"여기는 ─. 지금부터 제압에 가세하겠다. 규정상 지휘는 이쪽이 맡게될 것 같은데, 이견이 있는가?"
"없습니다."
"스캔된 레벨은?"
"레벨 4 초반 둘, 레벨 3 후반 5명으로 추정됩니다. 나머지는 레벨 2로 추정됩니다."
"사살할 인물이 있는가?"
"없습니다. 현재는 제압에 초점을 맞춰주십시오."
"힘든데, 그거."
"상부의 지침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태휘는 앞으로 걸어 나섰고, 이내 한쪽 어깨를 붙잡으며 빙글 돌리며 목청을 높였다.
"지금 이후의 모든 공격은 시위가 아닌 테러로 간주하여 강경 진압이 가능합니다. 다치기 싫으면 투항하십시오!"
─ 물러서지 마!
"건물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막아!"
"예!"
전쟁이 벌어졌다. 열 명 남짓의 남아있던 시위대가 전부 약을 복용했고, 전격계 능력이 태휘를 향했다. 그러나 찌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빗나가더니 다른 시위대원을 향해 약한 강도로 직격했고, 기절하는 시위대원을 뒤로 안티스킬 대원들이 급히 수갑을 채웠다. 다른 시위대원들도 가세하는 대원들의 손에 속속이 제압했다. 레벨 3 시위대원들의 테러에 가까운 공격은 진압용 방패로 막아세울 수 있었으나, 주변 지형을 무너뜨리는 공격에 대원 두 명이 쓰러졌다. 그렇게 성큼성큼 걸어오던 시위대원 하나는 갑작스럽게 허공에서 나타나 붙들어 잡는 눈덩이를 보며 비명을 내지르다 그 속에 삼켜졌다. 하지만 무언가를 삼키진 못했는지, 새파란 것이 날아왔을 적 희야는 손을 바들바들 떨다 소매로 얼굴을 폭 덮어 가렸다.
농성은 계속되고, 레벨 4 초반까지 단숨에 뛰어오른 시위대장과 일원 하나만이 남았다. 불꽃으로 된 고리가 날아올 적엔 안티스킬 대원들이 방패로 고리를 막아냈고, 태휘는 몸을 천천히 낮추더니 한쪽 다리를 뒤로 길게 뺐다.
"비켜. 단숨에 끝낸다."
"예!"
방패를 치우고 길이 트이는 순간 섬광이 번쩍이더니 제사상이 뒤집어지기가 무섭게 시위대장과 일원이 몸을 부르르 떨다 눈을 까뒤집으며 그대로 쓰러졌다. 10분 남짓한 상황에 시위가 쉽게 진압되고, 태휘는 뒤를 맡기며 급히 희야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웅크린 희야는 소매로 얼굴을 덮고 있었다. 꼭 얌전하게 뭉쳐져 있는 털 뭉치 같았지만 상황이 조금 달랐다. 온통 새하얀 모습에 새빨갛고 이질적인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희야를 구석구석 살피던 태휘는 희야의 옆구리에 시선을 고정했다. 안티스킬의 호위를 받고 있었고 본인도 대응을 했다만 상황이 급작스러운 나머지 공격이 튀었던 모양이다. 허리에는 옅게 무형無形의 공격이 스쳐 옷이 찢어지고 피가 흐르고 있었다.
"괜찮아. 다 끝났어."
"……."
"상처가 깊네. 바로 병원 갈 테니까 지혈하자."
"……."
"야, 애새... 희야야. 대답 못하겠어? 아파?"
"그때, 그때는, 마레, ……니야."
희야는 천천히 소매에서 얼굴을 떼어 고개를 들었다. 멍한 얼굴을 마주한 태휘는 등골에 끼치는 소름을 지우고자 애썼다. 희야의 코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하자 태휘는 황급히 손을 뻗었다.
"희생하지, 않았어. 당연, 당연한 거잖아."
희야는 더듬거리다 줄 끊긴 인형처럼 툭 고개를 꺾었다. 코를 붙들어 지혈하던 태휘는 급박하게 희야를 안아 들더니 뒤를 돌며 외쳤다. "비켜!!" 병원이 있을 곳을 찾아 고개를 돌릴 적, 태휘는 작은 목소리에 우뚝 멈췄다. 뒤에서 벌어지는 소란과 경광등의 번쩍임, 요란한 사이렌 소리, 그리고 승환이 의무팀을 대동하고 혼비백산 뛰쳐 나오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오로지 단 하나. 한 명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태휘의 눈이 천천히 품에 안긴 희야를 향했다. 고개를 뒤로 꺾은 희야가 미처 지혈하지 못하고 코에서 넘어온 핏덩이를 입에서 툭 뱉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 하나면 모두가 구원을 받는데, 대체 뭐가 문제라고……."
태휘는 승환을 천천히 돌아봤다. 승환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축 늘어진 희야를 안아 연구소 건물로 들어서는 태휘를 차마 마주할 수 없는지 고개를 숙였다.
"소장님."
"예."
"희야의 발언이 사건과 연관이 있습니까, 아니면 데 마레의 독단적인 커리큘럼을 말하는 겁니까?"
"……사건과 연관이 있습니다."
"확실합니까?"
"……."
"소장님."
"예.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상부에 보고 올리겠습니다."
불편한 침묵은 의료진의 시끌거리는 소리와 사이렌 소리에 묻혔다.
……2학구 내부의 테러 사실도 축소화 되어 테러가 있었다는 사실만 밝혀졌을 뿐, 데 마레가 피해를 입었음은 기사화 될 수 없었다.
- 진실의 편린
- 승환은 잘 대해주지는 못했지만 부족하지 않게 희야와 혜우를 아껴주고자 했다.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는 것은 인생에서 처음이었거니와, 사랑하는 법에 서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육아에 대한 논문을 읽거나 아동 심리에 대해 공부한다 해도 실제 아이를 대하는 것은 몹시도 어려운 일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수석연구원 윤 씨가 희야를 돌봐주었기에 큰 부담은 덜었지만, 희야는 유독 몸이 약했다. 이따금 이유도 없이 콜록거릴 때면 죽기 전의 우재*가 떠올랐다. 그 파리한 안색과 자신이 마지막으로 확인한 관 속의 모습이 희야와 겹쳐보이는 탓에 심장이 철렁하여 과하게 챙기는 감도 없잖아 있었다.
그런 승환의 지극정성이 통했던 걸까, 아이들은 데 마레의 품을 떠나기 전까지 각자의 꿈을 품고 자랐다. 혜우는 좋은 연구소를 찾아 큰 꿈을 위해 돌아갔으나 불안정하여 노심초사했으나 더 이상 건드릴 수 없었다. 희야는 데 마레와 제단을 오가며 영특한 머리로 하여금 큰 꿈을 품었다. 좋은 친구도 사귀었고, 승환은 희야에게 자유를 보장했다. 그렇게 된다면 이 인첨공에서 빛날 것 같았다.
그 빛을 낚아채는 손아귀가 도사리는 곳임을 깜빡 잊은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승환은 얼굴을 감싸쥐며 울음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박 교수*는 그런 승환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괜찮다는 듯 차트를 넘겼다.
"네 잘못 아녀."
"……내 잘못이지. 우리 희야 이렇게 될 때까지 모르고."
"그 위아래도 모르고 뒤통수 친 육시럴 놈의 잘못이지 왜 네 잘못이여? 느이 잘못 있음 나한테 안티스킬 취조 받게 만든 것밖에 없어야."
"내가 애 돌보는 거 힘들다고 신경 덜 쓰지만 않았어도……."
"너라구 그렇게 될 줄 알았남?"
"우재한테 면목이 없다 내가."
"걱정 말어. 큰 안 선생은 너 용서했을 거여. 갸는 그런 놈이니께."
박 교수는 씁쓸한 표정을 겨우 숨겼다. 승환의 고충을 알기 때문이다. 제단이 불법 커리큘럼을 자행하는 곳일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하물며 그 커리큘럼으로 하여금 희야는 여러 의미로 망가졌다. 이치를 구분하지 않았으니, 에어버스터와 안티스킬 서태휘가 검거했을 적엔 이미 남들이 아는 희야가 아니었다. 귀엽기만 하던 아이가 음독 자살을 시도했다며 병원에 실려왔을 적엔 어떻게든 살리고자 진땀을 뺐고, 여러 번 병원에서 다른 시도를 자행하던 아이를 붙잡느라 시간을 쏟았다.
그리고 그런 희야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비틀렸는지도 알아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승환은 괴로울 뿐이었다. 물질적으로 잘 해주면 무엇하는가, 아이의 인생은 무너졌는데. 자신이 조금 더 아이를 생각했더라면!
"희야 나을 수는 있지."
"허리에 자상 깊게 났는디 뭐 이거는 나을 수는 있거든."
"……하아."
박 교수는 차트를 넘기다 시선을 피했다.
"그런데 정신적 문제는 우리 관할이 아니여."
"……."
"우리는 고문 후유증은 흉터 없이 치료할 수 있고 그렇게 해줬다지만 마음은 치료 못해. 그건 네 몫인 거여. 애한테 잘 해줘야."
"……난 진짜 우재 볼 면목이 없다."
"……나도 볼 면목 없다. 인첨공이 아름다울 거라 생각한 우리가 등신이지."
승환은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
- 악의로 비롯되어
- 본교의 구원은 무엇입니까?
낮은 자와 높은 자 할 것 없이 그분의 품에서 평등한 삶을 쥘 권리가 있음을 알리는 겁니다. 그분의 낙원에서 만인이 평등해야만 합니다.
본교의 평등은 무엇입니까?
레벨의 격차로 고통 받는 자 없이 두루 화합함을 의미합니다.
본교의 화합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까?
누구도 다치지 않고 대화로 풀 수 있습니다. 평화를 외치는 시위와 각종 캠페인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인식을 바꿀 수 있으면 그것이 화합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열등생과 엘리트로 나뉠 권리는 없습니다. 모두 화합하여 어떠한 갈등도 없이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음을 알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시위도, 캠페인도 금지 되었으나 아직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소중하던 형제가 그렇게 죽어야만 했던 이유를 알리고 밝힐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였습니까?
그저 소중했던 가족이, 반쪽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그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것이 죄입니까? 엘리트를 건드렸기 때문에 모든 열등생이 피해를 보는 것이 어째서 당연한 겁니까? 어째서 우리는 탄압되고, 연행되며, 커리큘럼에서 불이익을 받고 담당 연구원 연결마저 끊겨야 하는 겁니까?
희야는 소리를 높여 우는 형제자매를 보았다. 그리고 세상을 돌아보았다. 그분의 뜻을 부정하고 이상을 짓밟는 구더기들이 팽배하다. 희야의 반쪽을 손가락질 하고 뜯어먹어 통통히 살이 올라 꿈틀거리는 모습이 역하고, 서로를 잡아먹는 세상에 숨이 막혔을 때, 누군가 속삭였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였습니까?'
……본교의 교리는 무엇입니까?
낮은 자 높은 자 할 것 없이 그분의 낙원에서 만인이 평등함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행동은 구원의 초석이 되는 것입니다.
본교의 평등은 무엇입니까?
만인이 그분 아래에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겁니다.
본교의 구원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합니까?
우리가 초석이 되고 길잡이가 되어 그들을 낙원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희야는 소리를 높여 우는 학생의 영상을 보았다. 살려달라며, 잘못했다며 비는 낯익은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진다. 그리고 세상을 돌아보았다. 학교 이곳저곳에 숨겨져있던 학생을 발견하고 끔찍해하는 구더기들이 보였다. 이상한 일이다. 자신의 반쪽을 뜯어먹던 것들이 저건 뜯어먹지 않는다. 그러니 저것들이 어찌나 우스운 존재인가.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영광된 성전이자, 구원이며, 구원의 초석이 되는 무엇보다 기쁜 일입니다. 죽음 끝에 낙원이 있을 테니,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서면 안 됩니다…….
그러니 성자시여, 그분의 그릇과 어린 양을 위한 제물이 되어 부디 영광을 받드소서. 영원을 손에 쥐고 시간의 흐름을 멈추소서. 그렇게 영원불멸의 삶을 이어가시며, 끝내 모든 빛무리의 죄를 사하며 그 위에 오르소서. 당신만이 할 수 있습니다. 당신만이 우리를 이끌고 구원을 지휘할 수 있습니다…….
희야는 기쁜 얼굴로 길게 갈라져가는 자신의 몸을 보았다.
"정신 똑바로 차려!!"
희야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 제단에 누웠던 것 같은데, 어째서인자 병원이다. 병실 안은 꽁꽁 얼어붙었다. 조금만 숨을 쉬어도 새하얀 입김이 나오고, 기물이나 문, 창문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얼어붙어 손이라도 올렸다간 같이 얼어붙어 하나의 장식이 되어버릴 것처럼 냉기가 도사렸다. 다시금 목소리가 들렸다.
"심호흡 해."
희야는 눈을 천천히 굴렸다.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손이 새빨갛다 못해 끝이 보랏빛으로 물든 손에서 점차 시선을 올리니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뺨은 창백하고, 속눈썹은 새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금방이라도 얼어 죽을 것 같은 몰골의 태휘는 희야의 눈을 정확히 마주했다.
"다 괜찮아. 천천히 심호흡 해. 들이마시고, 내쉬어."
"……."
"그래. 그렇게. 다 괜찮아. 괜찮아……. 천천히 숨 쉬어. 계속. 잘 하고 있어."
품이 차갑다. 머리를 붙드는 큼직한 손이 벌벌 떨리는 게 느껴진다. 그제야 희야는 자신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뽀얀 숨을 색색대며 내쉬던 희야는 더듬더듬 입을 떼었다.
"쓰다듬어줘."
희야는 품 속에 고개를 묻었다. 온통 구더기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멀미가 났다. 아찔한 여름병과 같은 세상이었다. 조금만 숨을 쉬어도 하루만큼 썩어가는 인간들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드디어 이것만큼은 인정할 수 있게 됐다. 지긋지긋하다. 호의에 가려진 악의가 너무나도 많은 세상이다.
"이번 테러는 네 잘못 아니야. 다 괜찮아. 진정하고 다시 자."
"응."
당신 또한 이 호의 속에 악의를 숨기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그 사실을 쓴 물이 나올 때까지 억지로 곱씹다 결국 시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