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국립 청월고교 ¶
- 이성현
- 선관: 학교 4년 다니면서 얼굴 몇번 본 사이. 이름은 안다.
청천-성현 3인 일상: 훈련장에서 만난 학생. 간단하게 의뢰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다.
1회 일상: 메카-댕댕의 청월 침공을 계기로 한번 밟히고(?) 실드차징을 날리며(??) 진정한 우정을(???) 쌓았다? 라기보단 완전히 휘말려 버렸다??
- 연바다*
- 1회 일상: 저 아이 뿔이 대단하다. 도서관에서 쪽지로 이야기 나누고 학년 이름과 연락처를 공유한 사이. 전화번호를 쪽지로 받았기 때문에 따로 서적화하지 않고 쪽지 그대로 앨범에 보관하고 있다.
- 에릭 하르트만
- 1회 일상: 추모의 장소에서 만난 인연. 자신은 상대의 이름을 모르지만 상대는 자신의 이름을 안다. 그 '악당주의'에는 허점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를 싫어하진 않는다.
레이드: 마지막까지 지켜보다가 결국 나오고 말았다. 검... 괜찮아...?
전시회: 이 그림들의 모델이 누군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2회 일상: 싸웠다. 납득할 순 없는 승리지만... 네게 누님이라고 불리긴 충분했나 보지. 충분히 마음을 추스르고, 누나 동생 하는 사이로 보자고.
- 신은후
- 선관: 필기구 동맹을 경배하라! 그냥 적당히 사서 쓰던 과거는 No! 학원섬의 필기구 전문점에서 헤매던 과거도 No! <신>은후를 찬양하라!! ...같은 건 아니지만, <필기구 동맹>이라는 이름의 묘한 콤비가 되었다. 관련한 이런저런 정보와 꿀팁을 나누거나 하는 사이.
1회 일상: 신상이 나온다는 소문이 돈다? 그러면 당연히 그곳에 있겠군! 하고 찾아간 필기구 전문점에서 딱 마주친 필기구 동맹. 은후는 신상품, 비아는 쓸 펜. 각자 살 물건을 사고, 후배랑 의뢰를 가고 싶었던 비아의 영입으로 준비안됨팟 서포터로 영입되었다. 잘됐구만 잘됐어요!
의뢰 이후: 내 실책으로 의뢰를 실패했다. 언젠가 사과해야겠어...
- 미나즈키 하쿠야
- 선관: 아는 선후배 사이.
1회 일상: 같이 의뢰를 가기로 한 랜스.
의뢰 이후: 의뢰를 실패했는데 연락도 못 했네. 괜찮을까...
1.1.2. 아프란시아 성학교 ¶
- 한지훈*
- 선관: 태양왕 게이트 이후 2주간 같이 다녔던 동료. 우연히 만나 파티를 이루고, 2주가 지난 후에는 서로 실력을 알아보고 대련하는 사이이다.
1회 일상: 조금 짓궂은 아이. 같이 영화를 보러 갔다가 호러 영화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화현-지훈 3인 일상: (사전동의 없이)(영화라고 듣고 갔는데 영화가 아니었던)퓨어퓨어보이스 2기를 같이 보고 의념에 대해서 얘기한 사이. 화현이라는 새 인연을 얻을 수 있었단 점에서 싫진 않다.
2회 일상: 베개 사러 왔다가 우연히 마주쳤다. 눈여겨보고 있던 하프물범 인형을 선물받고, 뗑컨이를 선물했다. 아무것도 듣지 않고 위로해줄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잠 깨운다고 빙수를 먹이려 갔다가, 유대라는 말 때문에 어색해졌다. 이해할 수 없지만 자신이 잘못했던 것 같다.
3회 일상: 고백을 받았다. 그리고 무려 한 달 후로 결론을 미루기로 했다.
...왜그랬지??
4회 일상: 데, 데, 데이트는 아니니까!
날 울리고 위로해 줬어... 병 주고 약 주기지만, 응... 음. 크흠.
- 이하루*
- 선관: 도서관에서 만난 예쁘고 착하고 똑똑한 아이.
영성 S이기도 하고 다른 포지션인 서포터이니만큼 가끔 청월 기출문제를 가지고 같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는데, 어느 날 워리어와 서포터의 협력관계에 대한 문제를 풀던 중 동료를 위해서 몸을 던질 수 있는 하루의 사상과 동료를 지키는 건 워리어의 일이라는 사비아의 원칙주의가 부딪치는 일이 있었다.(삭제된 설정)
1회 일상: 카페 가서 바닐라라떼 마시고 얘기 좀 했다. 애가 어떻게 검술을... 그래도 본인 생각이라면 함부로 말릴 순 없고, 응원할 뿐이다.
- 이청천*
- 선관: 파쿠르를 하는 청천을 뒤에서 보았지만 따라잡지 못해서 '저런 사람과 전투에서 호흡을 맞추려면 더 열심히 단련해야겠다'라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던 일방적인 관계.
청천-성현 3인 일상: 청월 훈련장에 들어온 아프란시안. 간단하게 의뢰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다. 음료수나, 젤리를 받은 건 기뻤다고 한다. 자신만만한 후배(클라우디 모드).
1회 넷상: 잠깐 대화했다. 커엽다.
1회 일상: 이름이 靑天이 아니라 晴天이었구나. 얘기하면서 더 친해진 것 같다. 새 카페도 찾고.
- 유진화*
- 선관: 같은 반, 같은 학년 친구였지만 진화가 전학가고 1년 꿇으면서 서먹서먹해졌다.
같은 무기였기에 처음 관심을 가지고 같은 목표로 인해 친해졌다. 아무리 영웅을 꿈꾸고 있다 해도 시기상조인 1학년 때부터 그런 말을 하고 다니지 않았을 비아는 같은 꿈을 가진 진화에게나마 그 꿈을 털어놓고, 같이 영웅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을 가졌다. 하지만 그 이상에 맞지 않았던 청월에서 밝고 솔직했던 진화는 움츠리고 소심해져갔고, 비아는 점점 같은 영웅의 꿈을 가진 친구라기보단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진화를 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진화가 내가 도와주는 걸 원치 않는다'라는 생각에 정서적인 위로 이상으로 '보호'하진 않았다. 결국 진화는 존경하는 선생님의 권유로 말없이 전학을 결정했고, 멀어졌다. ─까지가 비아가 아는 사실이지만, 진화는 동정받지 않고 낯선 환경에 가서 자립함으로서 다시 같은 시선으로 걷게 되길 바랐다.
그 관계가 어떻게 될지는...
1회 일상: 유리조각 (괜히)줍는 걸 도와주고(?) 같이 스파게티와 리조또를 나눠먹으며 조금도 두근두근하지 않은 업무(방패)얘기를 주고받았다. 죄책감 같은 부분보다는 '여전히 친구', '지켜주고 싶은 친구'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시험기간에 같이 공부하러 가기로 했다. 요리 잘하는구나... 비아는 호감도가 +1했다!
2회 일상: 잠깐;진화야;내가;다;설명할수;있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진 모르겠지만, 연애서적을 들키고 말았다. 그리고 뭔가 증거인멸 시도까지(?) 완전히 글렀어...
- 서진석*
- 선관: 2학년 때 취미 탐색으로 유흥가에 왔다가 길을 잃었을 때 도움을 받았다. 이후 의뢰를 함께하면서 연락처를 교환했다.
- 다이안 맥스웰
- 강찬혁
- 1회 일상: 무서운 사람이다!!!!!!!! 때, 때려달라는 사람이라니...
2회 일상: 파인애플 맨을 자처하다 못해 이상한 말들까지 해버렸다. ...내가 미쳤지. 정말 미쳤지. 정말 괜찮을까...
1.1.3. 제노시아 특성화고 ¶
- 이화현
- 화현-지훈 3인 일상: (사전동의 없이)(영화라고 듣고 갔는데 영화가 아니었던)퓨어퓨어보이스 2기를 같이 보고 의념에 대해서 얘기한 사이. 불청객으로 처음 만났다보니 태도를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 의념이 신기함.
- 기다림*
- 선관: 제노시아에서 제봉 동아리 학생이 판다는 한정판 인형의 위치를 찾지 못하던 사비아를 안내해 주고 두 개 남았던 인형을 나눠 가졌다. 이후 연락처를 공유함.
1회 일상: 잠깐 운동나왔을 때 항구에서 만나서 잠깐 얘기했다. 학교를 옮긴 친구 얘기, '꿈'에 대해 밝힘.
2회 일상: 크흑... 다림아 옷 추천 고마워... 필살기는 자자자잘쓸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근데 설마 지훈이랑 알고 있진... 음흠. 않겠지.
3회 일상: 데이트...용은 아니지만 옷을 골라달라고 부탁했다. 어째 다 털린 것 같은데 기분탓이겠지?
- 신정훈
- 젤리 가게에서 만난 아이.
...오너로서는, 여기 뭐라고 쓸지 생각하기 어렵네요.
1.2. NPC ¶
- 하나우라 유우(유노하라 미츠)*
- 첫 친구. 말투가 이상하다와. 왜 이런 말투 쓰쉐이?
21차원으로 유명한 아이. 실력은 뛰어나다.
말투에 중독성과 전염성이 있다.
학생회라고 한다.
- 청월고 교장 - 무룡칠천창◆배기운
- 다윈전쟁에서 활약했던 가디언이자 1세대 극 초기 각성자. 수많은 창사들을 키워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영웅에 가까운 수많은 준영웅 중 하나. 의념을 극히 제한한 상황에서 자신의 경험과 기술에 의존한 전투법을 펼친다. 전투할 때 위태롭고 아슬아슬하지만 결국 활로를 찾아내 적을 해치우는 모습을 보인다.
무려 청월 새 교장선생님!! 정말 상상도 못했다에요🤦♀️
- 약속했다. 그가 교장의 자리를 지키는 동안, 그 시간 안에 그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게 되어 돌아오기로.
- 가디언 세계사 / 담임 - 이수진
- 와!! 담임선생님!!
동아리 관련해서 상담하고 전투연구부를 추천받았다. 감사해요!
- 아키하라 소켄
- 전투연구부에서 만난 은발적안의 소년. 지훈이한테 내 소식을 들었다던가? 4년 전부터 친구였다던가,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걸 말하는 걸 보면 그의 과거와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
2. TMI ¶
- 시트 만들던중 TMI
- TM1...청월 19살로 설정한 이유 : 성현이랑 대련하고 싶음
TM2...3학년으로 설정한 이유 : 진석이랑 같은 학년이라서
그래서 4학년 19살이 아닌 짭누나입니다
TM3...미소녀로 스텟 BBBB 찍은 매력 원툴 해보려했는데 워리어론 에바여서 기각됨. 대신 계기가 될 과거사 하나 넣고 영웅의 씨앗 픽.
TM4...서사비아 은사비아 하사비아 등 성은 여러 후보가 있었다
TM5...똑같은 이름으로 여러 캐 구상하고 있었음. 사비아(邪卑兒)라는 흉흉한 이름(성없음)의 캐릭터가 원형. (1)의념각성자를 악마 취급하는 사이비 종교에 푹 빠진 부모님 아래에서 의념을 각성해버린 종교극혐걸(이지만 특성은 시선), (2)좀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떠돌이 음악가 타입. 악기로 패는 워리언데 기술은 마도(특성 미소녀) (3)(2)에서 냉소를 빼고 빈곤을 잔뜩 끼얹은 짠돌이 음악가. 특성은 토끼. (4)무기로 키보드 들고 다니면서 마도로 댓글 구현해서 디버프 거는 악플러(실성!) (5)현재 사비아+매력원툴이고 사이비종교의 신체로 떠받들어졌던 과거가 있음 (6)현재 사비아+부모님이랑 친구들은 그저 그런데 선생님 영향으로 다소 밝아짐 (7)현재 사비아에서 고지식함을 뺀 쿨한 누님. 특성 탈것. (8)외모가 뛰어나다기보단 분위기 쪽으로 미소녀 버프가 다 간 '인간적인 매력'의 지휘관 타입 사비아. 이거랑 지금 영웅의 씨앗에서 한참 고민했는데 워리어 필요해서 그냥 워리어 함
TM6...난 이 어장 지박령 될듯
- 의념기술 뭐하지
- 사비아 방어력 떼서 아군한테 주는 거 or 1번 공격을 맞을 때 사비아 방어력으로 판정하기
- 플러팅 안돼용
- 사비아 특) 여여간 플러팅에 면역력이 없음(2)
학원섬 밖의 친구들과 있을 때도 갑자기 포옹하고 매달리고 손잡고 화장실 갈 때 좀 어색한 표정으로 볼 붉히고 있었을 것... 그거에 적응해서 친구 간엔 약간 면역이 생김. 방패들고 전투태세일 때 안친한 사람(특히 남자)이 플러팅하면 실드로 치기(실성!) 나올 수 있으므로 주의...
- 이름의 유래
- Flos라는 노래에서 전주에 나오는 꽃 이름 중에 Sabia(댕댕이덩굴)라는 걸 Salvia(샐비어)와 헷갈려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거 생각하다가 외국적이기도 한국적이기도 한 이름인 사비아를 한자로 끼워맞춰서 한국인 이름으로 지어놓으면 되게 예쁘겠다... 하고 생각했슴다!
- 기타등등
- tmi)비아 4학년까지 정말 미세하게 크다가 성인 되고 나면 약간 더 커서 182.5cm는 될거같음
TMI)비아의 호감도
연상~동갑은 신뢰>호감인 편, 연하는 호감>신뢰인 편. 전자가 성현, 후자가 청천이나 다림이 같은 좋아하는 후배. 호감은 인간적인 친밀함, 신뢰는 믿고 맡길 수 있음이지만 연하는 못 믿겠다던가 연상은 싫어한다던가 하는 건 아닙니다. 전자와 후자 사이에 있는 캐릭터도 있음. 번외로 봄파편 파티원에겐 미안해하고 있음.
신뢰 쪽에 가까움 - 진석, 은후, 에릭
중간 - 진화, 지훈, 하쿠야
호감 쪽에 가까움 - 하루
외전1(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님) - 화현(친해지면 신뢰 쪽으로 들어갈듯), 찬혁(신뢰 쪽으로2)
외전2(만난 횟수가 너무 적음) - 바다(친해지면 호감 쪽으로 들어갈듯)
외전3(만난 적이 없음) - 카사, 경호, 시현, 지아, 에미리, 춘심, 정훈
같이 싸우면 신뢰가 싹트는 편이라 '같이 의뢰에 갔다'라는 선관이 있으면 초반 신뢰에 보너스가 붙는 편입니다(진석이나 지훈이). 같이 의뢰에 갔다(은후, 하쿠야), 싸울 때 모습을 대강 알 만큼 친하다(진화)(사실 진화가 선배조 중 유일하게 호감 쪽에 가까워야 하는데 에릭 일상 중에 진화 전투법을 알고 있는 늬앙스로 말해버렸다 보니), 아예 대련으로 싸워봤다(지훈, 에릭) 정도가 신뢰~중간에 분포해 있어요. 하루는 원래 그냥 인간적으로 친한 친구 후배에 속해 있다가 저번 일상으로 중간에 가까워진 것. 그리고 은후는 왠지 엄청 편할 만큼 친하진 않은데 지니어스할 듯한 오너의 이미지 때문에(?) 신뢰 쪽이 됐습니다.
단순히 말하면 호감과 신뢰라는 건... 위기상황에 처해 있을 때 호감이 높은 쪽은 보호의 대상으로 보고 신뢰가 높은 쪽은 같이 이 상황을 돌파하자고 제안할 느낌? 어느 쪽도 '좋다'인 건 확실합니다.
어렸을 때 세계동화전집 같은 거 읽었겠지...
- 캐해목록
그런 긍정적인 감정들이 그만큼 많기에 빼버릴 걸 가정하면 한없이 추락해 버리는 거지, 평상시에는 아주 멀쩡하다! 자존심보다는 자존감이 아주 높은 유형이라고 볼 순 있지만, 자존감을 건드리는 부분에선 자존심도 있달까. 학원섬 처음 왔을 땐 약간 자만적인 이상주의자였지만, 지금은 튀어나온 부분은 깎여나가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과거사 부분에 있었듯이 비아에게 처음 영웅이란 선생님을 꿈꾸면서 생긴 막연한 목표였다면, 지금은 적극적으로 원하면서도 멀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것. 영웅의 꿈과 선생님의 꿈을 동일선상에 두고 있음! 이라는 것...
2.1. 앵커 모음 ¶
- 얼레벌레 보석앵커
- 이청천
"3월 17일의 다이옵타스(Dioptase). 장신구로 만드려 했지만 그게 널 묶는다면 이걸 주는 의미가 없으니 원석으로 줄게. 네가 바라는대로, 어디에 써도 괜찮아."
대체로 푸른 색을 띄는 보석이죠! 뜻은 '자유로운 삶'이라고 하니... 청천이가 생각나서 가져와본 거에요. 장식품으로 두면 장식품을 두고 자유롭게 떠나게 될지도...?
- 한지훈
"5월 25일의 블루 앰버(Blue Amber). 햇빛을 잘 받을 수 있게 핀 형태로 만들었어. ...그걸 하고는 거울을 보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괜찮을까?"
블루 앰버의 뜻은 '조용히 타오르는 마음', 평범한 호박(야채 호박 말고 황금색 보석 호박)같은 색이지만 햇빛 같은 자외선 아래 놓이면 금빛과 섞인 아름다운 푸른 색을 띕니다. 차기 전 가지고 있을 땐 황금색이지만 차고 밖으로 나가면 푸른색이 된다는 거죠. 색깔이 변하는 걸 최대한 늦게 알아차리라는 일종의 장난 같은 걸까요.
- 기다림
"2월 8일의 루틸레이티드 쿼츠(Rutilated quartz). 어디든 네가 남고 싶은 곳, 네가 돌아갈 곳이라고 여기게 되면 그걸 놓아줘. 그리고 더러워지거나 깨지지 않도록 잘만 관리해 줘."
루틸레이티드 쿼츠는 금색 침 모양 내포물이 든 수정이에요. (짤을 올리려 했는데 타노스 당하네용) 이렇게 공격적으로 생겼지만 뜻은 '가정의 평화'. 남고 싶은 곳, 돌아갈 곳이란 건 다림이의 가족을 말하는 거에요. 아무리 네 마음속에 침이 많을지라도, 그 날카로운 침들은 모두 이 수정 안에 가둬놓고 네 가족과 행복을 찾으라는 것? 그걸 깨트리지 말라는 건... 보석 자체를 깨트리지 말란 것보단 네 행복을 잃지 말라는 뜻이겠네요. 그리고 또 얼핏 평면적으로 보면 깨지고 긁혀서 상처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상처처럼 보이는 부분도 수정을 채우고 있는 한 부분이고 만져보면 상처없이 매끈한 수정 느낌이 날 거니깐... 대충 그런 느낌... (졸려서 어휘력 소실)
- 서진석
"그렇다고 하네. 12월 2일의 흑산호(Black Coral). 뜻하는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며, 목걸이로 만들었어."
4월 28일의 킴벌라이트. 사랑의 수호. 다이아몬드가 포함된 감람석... 주로 다이아몬드만 떼서 가공하는 편이고 킴벌라이트 자체는 잘 가공되지 않는다... 근데 이건 진짜 돌 같은데()
8월 21일의 흑옥. 망각. 이름은 흑옥이지만 진짜 옥은 아니고, 나무가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석탄처럼 검게 변한 것...
12월 2일의 흑산호. 냉정한 기지.
노아 관련해선 킴벌라이트, 진석이 개인으론 흑옥이나 흑산호.
- 이지아
"6월 15일의 옐로우 재스퍼(Yellow Jasper). 너는 이미 내가 없는 사이에 시작을 했으니, 나는 너의 과정에 축복을 빌도록 할게. 반지지만, 괜찮을까?"
여행의 안전. 스스로의 발로 드디어 삶이라는 긴 여행의 첫자락에 발을 딛은 너에게. 밀화 호박과 비슷한 노란색이다.
- 이청천
- 당캐에게 고백
- 릴리
그 조그만 푹신함을 평생토록 품에 안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언제였지?
" 릴리, 나와 사귀어주지 않을래? 연인으로서... "
- 다림
네 많은 어려운 말들과 들여다볼 수 없는 이야기들은 내 심장을 할퀴고 지나갔던 모양이야.
" 다림아. 난 평생 너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몰라. 하지만, 네가 괜찮다면... " 나에게 기회를 줘.
- 하루
크림 위에 짓뭉갠 장미꽃잎 같은 입술을, 가장 진한 향수 한 방울의 향기를 맛보고 싶었다.
" 예쁘다. 정말 예뻐, 하루야. 넌 언제나, 왜 이렇게 예쁘니. "
- 정훈
오늘 아침 너만 생각하다 이마를 부딪치고 말았다.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 네가 좋아, 정훈아. 친구나 후배로서가 아니라... 난... "
- 진화
" ...오늘은 내가 나 자신을 지킬 힘이 없어. 그러니 오늘만큼은 나를 지켜주지 않을래? "
네가 필요한 날이었다.
- 릴리
- 아무 일도 없는 앵커
- 에릭 보고 생각난 흑화 세계관의 무언가.
- 성현
" ...성현이 너랑은 오랜 연이 있지. "
이제는 가디언의 적이 되어버린 이전의 친구, 사비아는 손짓으로 당신 앞에 날카로운 보석의 칼날들을 만들어 빈틈없는 살수로 베어내려 한다.
" 그 의념기로 버티기 전에 끝내 줄게. 미안하지만, 너는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적이라서. "
- 다림
" 벌써 네가 나를 막아서려 올 줄이야... "
당신의 선배였던 것, 지금은 적으로 맞서고 있는 사비아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당신을 바라보다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방패로 내리찍으려 한다.
" 종잡을 수 없는 행운이라니, 그거야말로 무서운 일이네. "
- 지훈
" 그래, 내가 이제 소중하지 않은 모양이구나. "
그렇게 만들어진 조각상의 모습처럼 세워 놓은 방패에 기대 눈을 감고 있던 당신의 적이 눈을 뜨고, 손에 방패를 들어 당신의 검격을 흘려넘길 준비를 한다.
" 나를 끊어낼 때가 왔겠네. 유대는 거짓이었지? "
- 정훈
" 날 더 깨트리려 왔구나. "
든든한 당신의 동료들이 이미 상처입혀 놓은 사냥감은 조금 비틀거릴 뻔한 몸을 다잡고, 아직 버틸 수 있다는 듯 어떤 공격에도 멈추지 않고 당신을 향해 다가온다.
" 원하는대로. 하지만 바라보게만은 두지 않아. "
- 하루
" 공주님이 기사님을 구하러 왔구나. "
깨져버린 보석, 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반짝이는 파편들. 그런 파편들이 휘몰아쳐서 오색 눈보라가 치는 것처럼 보이는 사이, 힘없이 늘어지듯 앉아 있는 악당이 보였다. 당신의 붉은 기사를 어디에 숨겼지?
" 하지만 이 눈폭풍을 뚫지 못하면 지나갈 수 없어. 너에겐 천사를 내려 줄 신이 계시던가? "
- 성현
- 커플 된 상상함ㅋㅋ
- situplay>1596258400>145
- to 릴리
" 읏챠. 이 책일까? "
" 안 들리나보네. " ( 한숨지으며 살짝 미소짓는다. )
" ...그래도, 이렇게 네 열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이 순간이 정말 좋아. " ( 책더미 사이로 보이는, 문자들이 비칠 만큼 반짝거리며 책을 훑는 새벽빛 눈동자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눈을 감는다. ) " 네가 진리를 찾을 때까지만은 너의 조수로 있어도 되겠지. 분명,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까. Ma Chérie. " ( 그러다가, 살짝 숨을 들이켜고는. ) " 그때야말로 나는 너를 지키는 너만의 영웅이 될게. Mon trésor, Mon bijou. "
- to 다림
" 마침 혜성이 떨어지는 걸 이렇게 좋은 장소에서 볼 수 있게 되다니, 행운이네. " ( 짙은 남색이 칠해진 듯한 밤의 언덕, 풀밭 위에 누워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두 눈에 별을 담았다. )
" ...사실 행운이 아니야. 똑똑한 너라면 이미 눈치챘겠지만, 난 일부로 오늘 여기 널 데리고 온 거거든. "
" 그림책에 나오는 혜성처럼 네 머리카락 색, 흰빛과 푸른빛이 섞인 색은 아니네. 오히려 그냥 하얀색. 하지만 네 눈동자 색을 닮았으니 이것도 좋다. "
" 난... 네가 좋아. 시원한 잔디 위에 같이 손 잡고 누워서 별을 보는 이 시간이 좋아. 네 손, 시원해서 정말 좋아해. 죽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 ( 이제는 그 말이 너에게 얼마나 무거운지 알지만,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말이기에 숨기지 않고 그대로 내보이며 너를 마주볼 수 있었다. ) " 사랑해, 다림아. "
- to 바다
" 바다야, 바다야. " ( 물에 반신이 잠긴 채, 가만히 짠 바다공기를 들이마시다 그렇게 말했다. )
" 내 손 잡아줘. 불안해. 네가 여기에 그냥 날 놔두고 가버릴까 겁나. 너는 해룡이니까, 날 물 위에 띄워놓는 만큼 물속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겠지? 난 용궁으로 끌려가고 싶지 않아. 그러니 손을 잡아줘. "
" ...옳지, 잘했다. " ( 당신의 뺨을 양손으로 감싸면서, 그렇게 하면 네가 떠나지 않을 거라 착각하는 것처럼, 이대로 감싸쥐면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것 같았다. ) " 너는 역시 나의 사람이야. 나와 같은 공간에서 쭉 숨쉬어줘. 어디론가 떠나지 말아줘. 그렇게 평범한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나의 행복이야. "
" ...아니, 역시 더는 푸른빛이 아니어도, 검은빛이 되었어도, 너는 내 사랑이야. "
" 그렇다면 나를 차라리 너의 소유품으로 삼아줘. 너의 둥지에서 밝게 빛나며 너를 기다릴 뿐인 너만의 보석으로, 빼앗기면 분노하고 되찾아오려 할 너의 자존심으로. 부탁해... "
- to 정훈
" 정훈아, 무슨 생각해? " ( 살짝 몸을 숙여 너의 회색 눈동자를 마주치며 물었다. )
" 나는 네가 열중하는 모습이 좋아. 함께 의뢰를 갈 때면 내가 네 앞에 있으니 널 보진 못하지만, 네가 활을 쏠 때면 언제나 등 뒤에 있는 내 존재를 느껴. 그래서 너와 함께할 때면 더 힘낼 수 있게 돼. "
" 하지만, 지금은 의뢰가 아니니까. 적이든 뭐든 다른 거에 신경쓰지 말고 나만 봐줘. 나에게만 신경써줘. 여기 널 사랑하는 내가 있는걸... " ( 볼이 빨개진다. ) " ...아니, 방금 한 말은... 무시해줘... "
" 흠흠. 잊어, 잊어. 빨리 갈 길 가자. 아, 아직 널 어디로 데려가고 싶은 건지 말 안 했던가? " ( 너의 손바닥을 쓰다듬으며 미리 말해줄지 말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도착하면 말해주기로 한다. 매번 똑같은 옷만 입고 똑같이 살아가는 네 모습에 내 손으로 변화를 주고 싶어서, 오늘은 너만을 위한 옷을 사주고 싶다... 같은 걸 말할 순 없으니까! 너는 신경쓰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신경쓰이는걸... )
- to 릴리
- 치떡앵커
- 춘심 : .dice 1 100. = 65
" 여동생! "
" ...아, 초면에 죄송합니다. "
" 왠지 어장에 처음 왔을 때(>1596251069>109-115)부터 제 여동생 하기로 오너분과 약속했었단 생각이... 이런, 내가 뭔 말 하고 있는 거야? "
- 진화 : .dice 1938288218181 4929238181811. = 3585607923395
" 유진화씨 처음 봤을땐 완전 순진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진지할 때 의지되는 모습이 쭉 이어져서 약간 > 허당끼 있을 뿐인 오빠로 보이기 시작했다 "
" 라고 누가 전해달래 "
" 음... 난 잘 모르겠지만 요즘은 밝아진 것 같아서 다행이야. "
- 하루 : .dice 1 10. = 7
" 예쁘고, 착하고, 똑똑하고, 이런 하루를 신부로 데려갈 사람은 대체 누가 되려나... "
" ...음? 이미 있다고? "
( 대충 음료수 흘리는 짤 )
- 지훈 : .dice -9223372036854776832 9223372036854775808. =
" 성학교 도서관에는 수상한 책이 있다는데 사실이야? 한 번 보면 죽는다던가... "
" 그, 서문이 '투명드래곤이 울부지저따 크아아아앙'으로 시작하는 그 책 말이야... "
" ...있긴 있어? "
**
" 있기는 있는데... "
" ....안 보는게 여러모로 좋을 걸. "
" 주로 정신 쪽으로. "
- 에미리 : .dice 10 19. = 18
◇망념 중화제(5)
- 의념각성자의 혈액을 채취해 만들어진 망념 중화제이다. 불결한 시설과 저급한 공법으로 생산된 물품이라서 결함이 생기기도 한다.
→ 망념이 싹! : 마시면 중간 확률로 망념이 5 하락한다.
→ 살짝 따끔해요~ : 적은 확률로 삼킨 망념 중화제가 의념과 반응해 체내에서 광물로 결정화한다.
- 정훈 : .dice 77 100. = 96
" 이거 보고 있어봐. "
" 30분 동안 눈을 한 번도 안 깜빡이고 보고 있으면 신기한 일이 일어나는 영상이래. "
" 정훈아- 아이스크림 사왔어- ...어?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고? "
- 진석 : .dice 7778 291739. = 276657
( 보석으로 폭탄을 만들어서 던지는 마법사가 나오는 애니메이션 영화 시청중 )
" ...저런 거 할 수 있어? "
" 가성비가 없어? 그건 그렇네. "
( 극장에서 누군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난다. "진석이는 이제 투척 없어서 못해-!" 라는 말 같기도 하다. )
누가 영화관에서 떠드는 거야... "
- 바다 : .dice 5 31. = 23
" 바다야 그거 알아? 사실 이 중에 인간으로 변장한 몬스터가 있다고 해... " ( 행사 도우미 중 )
" 아, 아니, 너 말하는 게 아니라... "
" 바다야-! 미안해-!! "
- 춘심 : .dice 1 100. = 65
2.2. 자캐해시 ¶
보석을 만들어서 쏠 수 있으면 총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마도가 필요할 것 같은걸요...? 그러니 어느 쪽이냐 하면 칼에 가깝습니다.
#자캐와_어울리는_풍경
가족과 함께 느긋하게 거니는 녹색 낭만 가득한 정원. 동료들과 함께하는 전장. 꿈을 위해서 달리고 땀흘리고 노력했던 3년의 시간이 바다 위로 떨어진 비 한 방울처럼 존재없이 스며들어 있는 학원섬의 풍경들.
#자캐로_우리_친구_그만하자
"미안. 너와 더 대화하고 싶지 않아."
#자캐가_속상한_사람을_달래는_방법
꼭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주며 위로해준다.
왜 속상해졌는지 말을 들어준다.
뭔가 맛있는 걸 사주거나 같이 놀러가자고 한다.
현실적인 속상함의 해결방법을 제시한다.
#자캐가_수업중_딴생각을_한다면_무슨_생각
공부 힘들다.
(지금 배우는 내용은 아니지만 연관지어서 기억해둬야 할 내용)
#자캐의_주량은
최종보스. 의념 안 쓰면 평범하게 취함.
#자캐가_만약_고양이라면
노르웨이 숲 고양이. 도도하게 굴면서 할퀴는 고양이는 아니지만 사람 사는 데는 잘 안 오고 독립적으로 행동하길 좋아할 듯. 만약 숲이나 도심에서 만나서 은혜를 입혀두면 누가 흘린 오천원짜리를 주워와서 보답할 만큼 영리할지도? 사냥 잘할듯.
#지각에_대처하는_자캐의_자세는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고 90도로 허리를 숙인다.
#자캐별로_사심이_있다면_어쩌실_겁니까_를_말해보자
"그것만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거야?"
#자캐_이름의_한글패치
김비아(?)
농담. 지금 이름도 한글패치Ver.에요.
#자캐가_두려워하는_상황
게이트 갔는데 돌발상황 발생으로 몰살
학원섬에 태양왕 게이트 비슷한 초대형 게이트 또 발생등등
엄청난 참사
#자캐를_상징하는_꽃
매발톱꽃! 탄생화인 거에요!
#수련회_캠프_파이어_때_자캐는_운다or안운다
#자캐가_무디거나_서툰_감정은
#자캐는_눈물을_어디_무엇에_닦는가
#자캐는_따뜻한_말에_무너지는가_차가운_말에_무너지는가
어느 쪽이라고 하면 따뜻한 말에 무너지는 편입니다. 자신 때문에 죽은 사람이 꿈에 나와서 비난한다고 하면 눈 좀 비비고 방문 앞까지 비틀대다가 복도에 내딛는 순간 곧게 선다면, 죽은 사람이 언제나처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격려해주고 사라진다. 같은 꿈을 꾸면 베개에 눈물을 닦게 되겠네요. 상황에 따라선 차가운 말 쪽일 수도 있겠지만요.
#자캐가_두려워하는_것
유령이나 깜짝 놀래키는 거 조금 무섭고. 의뢰를 실패한다거나 크게 다친다거나 하는 것도 무서울 거고. 제일 두려워하는 건 죽는 거겠지만 당연히 살아있음을 가정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거기에 크게 얽매이진 않을 것 같네요.
#자캐가_지우고_싶어_하는_과거는
딱히 지우고 싶은 과거라고 할 건 없을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부끄러운 에피소드 같은 걸 부모님이 하하호호 하다 보면 잊어달라고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요, 진지하다곤 볼 수 없고.
#자캐가_선호하는_계절은
봄. 예쁘잖아요. 오너는 꽃가루 때문에 고통받지만 얘는 건강 S라 알레르기도 없고...
#식사를_대접_받아_먹는데_양이_많다면_자캐는
먹기 전이면 양해하고 미리 덜어놓기. 먹은 후면... 축하합니다. 함정에 빠졌군요. 예의니까 왠만하면 그냥 다 먹습니다.
#자캐가_좋아하는_디저트는
글쎄요. 양갱이나... 과일만 쓴 종류...? 크림이나 우유나 들어간 건 그 후순위. 찹쌀떡 좋아합니다.
#자캐가_어렸을_때와_가장_많이_바뀐_점은
좀 더 어른스러워졌습니다. 어렸을 땐 지금보단 좀 더 허황된 꿈을 꿨을지도 모르겠네요.
#자캐의_리듬게임_실력
의각자(의념각성자를 대충 줄임)니까 잘 하겠죠? 물론 의념각성자 기준으로 만들어진 천수관음용 리듬게임엔 속절없이 발립니다.
#자캐의_교복_입는_스타일은
단-정 퍼-펙 여름에도 단추를 풀지 않아요
#자캐가_보내는_답장의_내용
(대충 받은 게 없다는 내용)
#사람_많은_곳에서_빙판길에_미끄러진_자캐반응
경쾌하게 미끄러지고 일어난 다음 아무도 신경 안쓰지만 조금 얼굴 붉히면서 조심조심 다시 걸어가기
#자캐의_평상시와_싸울때의_갭차이
평상시 - 다림 하루 청천 일상
비상시(평상) - 지훈 일상
싸울때 - 에릭 일상
좀 더 와일드해집니다.
#자캐가_누군가를_신뢰하는_기준
평범한 신뢰라면 그냥 좀 보고 괜찮으면 믿음. 뭔가 맡길 만큼 신뢰할 정도면 성과를 보여줬거나 같이 싸웠거나 하는 등.
#자캐가_결여되는_감정은
감정이 풍부해서 그런 건 없다.
#자캐의_기상_시간은
아마 6시? (대충 성실한 사람의 기상시간)
2.3. 설정질문 ¶
007 매운 것을 잘 먹나요?
엄청 잘 먹습니다.
198 캐릭터의 친한 사람의 기준은?
모름 -> 안면 -> 친숙 -> 친구 -> 절친 -> 메가베스트프렌드(임시호칭)
모름-비아의 삶에 존재가 없는 사람들.
안면-같은 반인데 안 친한 애, 같은 반이었던 애 같은 애매한 위치의 사람들.
친숙-안면보단 더 친근하지만 친구라긴 부족한 사람들. 초면에 무례하게 굴지만 않으면 금방 오를 수 있습니다. 후배나 연하나 자신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여기까지 오릅니다. 연락처 공유할 때쯤이면 대부분 여기엔 속해있을 것.
친구-사적인 얘기도 나눌 수 있는 사람들. 여기까지 정말 쉽게 오릅니다. 기본적으로 깊은 관계는 아니기 때문에 "나 너 싫어. 안녕" 하면 "그래 안녕."으로 되받아줄 수 있을 만큼, 구속하지 않습니다.
절친-여기부터 스킨십 해도 괜찮음. 나너싫어 시전하면 상처입니다. 동성이면 더 쉽게 오름. 아직 연락하는 학원섬 밖의 친구들은 일반 친구와 절친이 섞여 있음.
메가베스트프렌드(임시호칭)-오르기 어렵습니다. 아무튼 친함.
친밀도 / 호감도 / 신뢰도 / 사랑은 필요할 경우 따로 계산함.
레스캐들은 다음 단계에 속해 있습니다.
친구: 지훈, 하루, 다림, 진석
친숙: 성현, 청천
모름: 이외 관계 없는 캐릭터들
012 혈액형성격론, 별자리별 성격 같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들을 때는 잠깐 솔깃하기도 하지만 쓸모없다는 걸 알고 있으므로 믿지 않습니다. 예언에 어울리는 의념을 가진 사람이 말하면 의외로 쉽게 넘어갈지도 모릅니다.
사비아:
196 죽음에 대한 생각은?
나한테든 다른 사람한테든 찾아오지 말았으면 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죽길 바라진 않는다. 막을 수 있을 동안 막아내야 하는 것. 하지만 너무 불연듯 찾아올 수 있는 것. 그래서 슬픈 것.
298 본인이 재미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는지?
자신은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사비아한테 놀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봐를 시전해보는 건 어떨까요?
202 캐릭터의 이름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뜻, 호불호,지어준사람 등)
시트에 있듯이 맡을 사司, 비유할 비譬, 맑을 아雅를 씁니다. 성은 온(溫)입니다. 독특한 이름이긴 하지만 이상한 이름은 아니기도 하고, 뜻도 정성들여 지어준 것인 만큼 자기 이름을 좋아합니다. 지어준 사람은 당연히 부모님! 다만 4글자면 이름이 좀 복잡해지기도 하고 이름 세 글자만 대면 성이 사고 이름이 비아인 평범한 이름 같아 보여서 평소엔 사비아란 이름만 대고 다닙니다. 비아라고 불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기분.
사비아:
284 칭찬받거나 인정 받는 부분은?
참을성이 강하고 정직한 부분.
331 생년월일
5월 14일.
매발톱꽃 - 꽃말: 승리의 맹세
169 뒤끝이 있나요?
없진 않습니다. 더 신경쓰지 않겠다(넘어간다, 용서한다)는 말이 나왔으면 속으론 좀 앙금이 남아있더라도 겉으론 확실히 없습니다.
039 '눈이 녹으면' 뒤에 올 말을 상상한다면
" 봄이 오겠는걸. "
213 손에 음식물이 묻었을 때 빨아먹는다vs닦는다
혼자 있을 땐 무심코 입으로 갔다가 머쓱하게 닦고 밖에선 그냥 닦습니다.
196 죽음에 대한 생각은?
상실. 두려운 것.
236 그가 죽으면 슬퍼할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가족 2
친구 nn
134 얼굴과 몸의 점의 갯수와 그 위치는? 특이한 점이 있나요?
딱히 안 정해놨습니다.
종아리 뒤쪽 위쯤에 하나 있을지도요?
350 현재 가까운 사람/측근은 누구이며, 가깝게 지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 딱히 하나 꼽을 만한 사람은 없는데..
3. 정보 ¶
- 책 - 게이트와 보석
- [ 비코팔렌트
- 게이트 '이졸데'에서 발견된 보석.
- 불과 관련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강도와는 달리 침에 녹아 사라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음.
- 입에 넣은 채로 섭취 시 쁘띠 브레스(E) 사용 가능.
.... 중략 ]
게이트의 보석들에 대한 지식을 일부 얻었습니다!
**
[ 펠리아모로노티아
- 게이트 '미요느의 별빛 전차'에서 발견된 보석
- 말의 인장, 또는 말 자체에 심을 수 있다. 말에게 사용하는 경우 말의 신체 스테이터스에 영향을 주고, 인장에 심는 경우 사용자의 피로를 감소시켜준다.
- 매우 단단하지만 그 단점으로 투박한 녹색을 띄고 있다.
- 단, 그 형태와는 다르게 큰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어 큰 가치를 지닌 채 거래된다.
.... 중략 ]
읽었습니다!
- 코인 상품 - 영웅의 씨앗 정보
- 영웅의 씨앗에 대한 정보를 구매합니다.
- 13영웅. 또는 그에 준하는 영웅들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경우 영웅의 씨앗은 반응하게 된다.
현재 사비아가 가지고 있는 영웅의 씨앗은 한때 영국의 영웅이었던 '나폴레옹' 쟝 비엘르의 영웅의 씨앗으로 군대의 지휘에 특화되어 있다.
- 책 - 종교와 명망, 매력
- [ 종교. 선망의 대상, 신앙의 대상. 초월적 무언가에 대해 '믿음'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 말이나 사례를 더해 '말씀'이라 부르는 이야기를 통해 깨달음을 얻어 가는 대중적 정신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 중략.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을 살피면 그들은 평범한 모습과는 다른 면모를 가진 경우가 많다. 불교의 석가모니를 살피더라도 그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하였을 때 수많은 수행자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 고갤 숙였다는 문장이 있듯. 종교 지도자들이 가지는 알 수 없는 분위기 등을, 대중적인 의미에서의 카리스마라 부른다. 사람을 이끌고, 따르게 하는 힘. 종교가 매력적인 이유는 이런 부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 중략
그렇기 때문에 유명 종교일수록, 세가 강한 종교일수록. 그 종교를 이끌고 있는 이의 행동이나 영향력에 영향을 받는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영향을 상대에게 느끼게 하여 상대를 따르게 하거나 짓누르는 것. 이러한 방법의 카리스마가..
... 중략. ]
꽤 많은 내용이 비어있고, 알 수 없는 내용도 많습니다.
즉 종교적인 카리스마란 결국 개인의 말이나 행동 등에서 영향을 받아, 상대를 이끌게 된다. 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 소정보 - 전투연구부의 활동들
- 사비아는 겉눈질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살펴봅니다.
" 그러니까 워리어의 전투 상황에서 몬스터의 특성이 있을 거 아냐. 가령 고블린의 경우에는 자신보다 큰 덩치와, 자신의 무기를 상회하는 방어력을 지닐 경우에 공포에 빠지기 쉽다던지 하는. 약한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방법 말야. "
저기 보이는 학생들 틈에 끼어들어 전투 방법에 대해 토론해도 좋을 것이고
[ 3교 회장들의 전투 방법 분석을 통한 3교 친교 대련에서의 승리 플랜 분석 ]
저런 논문을 살펴도 될 것 같고
" 자세가 살짝 앞으로 쳐지네. 이런 쪽으로 기술을 개량해 보는 거는 어떨까? "
" 흠.. 오히려 난 원본 쪽에는 이 자세가 맞다고 봐. 다만 지금 너의 경우에는 원본 사용자보다 키가 작은 편이잖아? 그걸 의념의 도움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단 말이지.. "
아니면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자세를 개량하는 방법도 있겠네요.
- 소정보 - 장난스런 지휘
- 허수아비는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손을 내밉니다.
어.. 뭐지? 때리려는걸까요?
조심스럽게 사비아가 손을 잡자, 다시 허수아비는 손을 떼고는.. 사비아의 말대로 지휘를 따라줍니다.
아하..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장난스런 지휘는 강제 지휘 계통의 기술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직접적으로 하는 지휘와는 다르게, 간접적으로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것 같네요.
다만 그걸 말로 하지 않더라도 의념을 움직이는 것으로 간접적인 의도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조언 - '봄은 그 곳에서 파편이 되었다.' 게이트 클로징 실패에 대하여
- 이번 '은후, 사비아, 하쿠야' 파티의 실패 요인
1. 사비아의 자신의 역할 망각 + 주위 환경 파악 실패
배경을 보면 알듯이 낡은 전화기라는 점, 각 도시간의 전쟁이 있었다는 점, 여전히 상인이 돌아다닌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어야 했음. 아니라면 캐릭터의 지식을 살려 주위를 둘러보거나, 판단하는 것도 방법이었는데 이러한 부분을 망각하고 '내 역할은 상인이니까'라는 부분에만 집중한 것을 알 수 있음.
거기에 더해서 캐릭터의 역할이 '상인'이라는 점에만 집중하였는데, 더 자세히 보면 '이제 갓 초행에 든 상인'이라는 점을 알아야 함. 그래서 사비아의 행동이 어수룩하더라도, 사람들은 첫 상행이라는 점에 집중하고 이해하게 됨. 이 부분은 캡틴이 캐릭터가 실수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상황을 유도하기 위해 덧붙인 설정임(원래는 초행 상인이라는 이야기는 없었음. 다만 입장 묘사를 잘 보면 첫 상행은 떨린다는 묘사가 있었음).
즉 이런 부분을 이용하고 + 제공된 물건과 상행을 통해 '마을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이 상인 캐릭터의 역할이었는데 이 역할을 망각하고 빠른 진행을 위해 '난 누굴 찾아왔다'라는 무리수를 둬버림.
차라리 이걸 은후가 했다면 이야기는 달랐을 수도 있음. 왜냐면 은후는 마을에서 살다가 떠난 사람이고, 아내에게 들었기 때문에 알고 있다 식으로 말했다면 은후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을 수도 있음. 이런 '백그라운드 설정'을 잘 참고하는 것이 '소설 재현형' 게이트에선 중요함.
2. 은후의 경우에는 오너의 문제보단 캐릭터의 성격 문제가 컸음.
은후라는 캐릭터는 은연중에 어린 아이를 어려워하는 모습을 가끔 보이곤 함. 이건 오너의 문제보다는, 캐릭터가 아직 어린 아이를 꺼려하는 듯한 성격에서 나오는데 이런 부분을 참고, 재현형을 클리어하려는 모습에만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싶긴 함.
영웅서가는 육성 어장임과 동시에, 세계관적으로 가디언은 게이트의 전문가이기도 함. 캐릭터가 잠시 캐붕을 하더라도 '게이트를 위한 연기였다'라는 식으로 어물쩡 넘어갈 수 있음. 이런 부분을 참고하여 다음 번에는 조금 더 능글맞고 장난스럽게 아이같은 캐릭터에게 다가가보아도 좋다고 생각함.
3. 하쿠야는 사실 제3자, 즉 이 이야기의 관찰자로서 참여하는 역할임
얼마 전 마을에 들어와 땅을 사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 농부라는 점에서 같은 농부들과 어울려 소식을 접하기 좋고 모르는 척 옷을 사려는데 좋은 옷이 있느냐. 와 같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했음. 다만 이건 하쿠야주가 뉴비이기 때문에 생긴 문제이기도 하고 세 사람다 재현형 게이트의 악명만 들었지 실제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던 부분이 큼.
- ' 영국의 영웅 ' 키워드의 책은 없다.
4.1.1. 01~10회 ¶
- 01: 86-87스레
#black [어머니, 아버지.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여전히 시험기간이다 보니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요.] [쉬는 시간에도 다들 엄청나게 조용해요...] [그리고, 또...]
그렇게 부모님에게 몇 줄 더 안부문자를 보내고 나서 수업으로 지친 몸에 기지개를 쭉 펴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었다.
...그러고보니, 새 선생님이 오신다고 했지.
시험 기간이라 닫혀있을지도 모르지만 교무실로 한 번 가볼까...?
#교무실로!
**
교무실로 이동하지만.. 학생들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습니다.
시험기간이 시작됩니다!
**
출입 통제 중이다...
나는 좀 황망한 표정을 지으면서 학생 출입 불가 표시를 바라보다가 발을 돌렸다.
...그래, 공부 해야지.
#도서관으로!
**
도서관으로 이동합니다!
**
청월 3학년의 시험범위는 그거겠죠?
1, 2, 3! (123학년 다라는 뜻)
...뭐지. 어디서 쓰는 사람의 사적인 말이 들린 것 같은데. 아니 내가 무슨생각을..
공부나 해야겠다.
#망념을 20 들여서 시험범위 공부!
**
학기 초임이 다행인 것 같습니다.
다행히.. 꽤 공부를 잘 마칩니다.
**
구체적으로 이미지를 그려 보기 위해 공책 위에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배운 사람에 비하면 못하지만, 그래도 한눈에 알아보기 편할 정도로는 잘 그려졌다.
외울 것이 많다. 정리하고, 필기하고, 암기한다.
암기만으로 안 되는 게 있으면 두고 골똘히 고민한다. 꼼꼼히 따져보아 생각하고 분석하고 가정한다.
답이 나왔다. 정답일까.
...꽤 잘 된 것 같다.
#망념 70 꽂아서 시험공부를 더 한다!!
**
그리고.. 적당한 수준으로 공부는 했습니다.
다만 아직 한참 남았을 뿐!
**
열심히 공부를 하다보니 가디언칩이 울렸다. 딱 90의 망념, 가디언칩에서 의념을 제한하게 된 것이다.
...그리 피곤한 건 아니지만 집중해서 공부할 순 없을 것 같다.
나는 천재가 아니고, 수재도 아니다. 누군가는 한 번 보고 배울 것을, 세 번 보고 익힐 것을, 나는 일곱 번 여덟 번을 봐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해도 공부가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쉴까...?
#키워드 '보석'으로 책을 검색해봅니다.
**
[ 게이트와 보석 ]
검색됩니다!
**
[ 게이트와 보석 ]이라... 게이트의 희귀한 보석 같은 게 나와있는 책일까? 나한테 도움이 될 것 같다.
#[ 게이트와 보석 ]을 읽어봅니다.
**
[ 비코팔렌트
- 게이트 '이졸데'에서 발견된 보석.
- 불과 관련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강도와는 달리 침에 녹아 사라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음.
- 입에 넣은 채로 섭취 시 쁘띠 브레스(E) 사용 가능.
.... 중략 ]
게이트의 보석들에 대한 지식을 일부 얻었습니다!
**
...!
신기한 보석들이다. 아직 내 의념 정도로는... 만들지 못하겠지. 앞으로 의념 수련을 좀 더 철저히 해야겠다.
손에 넣으면, 보석에서 힘을 이끌어내는 수련을 할 수 있을지도?
새로 얻은 지식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중요한 건 적어가면서 읽는다.
#읽어욧!!!!!! 계속!!!!!!!
**
[ 펠리아모로노티아
- 게이트 '미요느의 별빛 전차'에서 발견된 보석
- 말의 인장, 또는 말 자체에 심을 수 있다. 말에게 사용하는 경우 말의 신체 스테이터스에 영향을 주고, 인장에 심는 경우 사용자의 피로를 감소시켜준다.
- 매우 단단하지만 그 단점으로 투박한 녹색을 띄고 있다.
- 단, 그 형태와는 다르게 큰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어 큰 가치를 지닌 채 거래된다.
.... 중략 ]
읽었습니다!
**
오... 특수한 성질을 가진 보석 중에도 특정한 대상에게만 적용된다는 점이 신기하다... 이런 보석같은 책을 어째서 몰랐던 걸까. 조금 신나서 열심히 읽어내리고 있다.
투박한 녹색이라곤 해도 음... 나름 괜찮은데. 장신구로서 가치는 떨어지겠지만 보석은 외향으로만 결정되는 건 아니니까.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보석이라면 내가 만들어낼 순 없겠다.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해도 그 정도의 힘을 보석 만드는 데 쏟을 수도 없고, 나에게 그리 필요하지도 않지만, 큰 가치를 지닌 채 거래되는 거라면... 자칫 의념으로 시세조작 같은 의혹이 생길 수도 있고. 아니, 의념으로 만들어지는 보석엔 가치가 없던가? 게이트의 에너지 파장과 의념의 에너지가 다르면 게이트 내의 보석을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게 가능할까?
#읽어욧! 계속! 다 읽었습니다 라는 말이 뜰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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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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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내 시간이 어디로 간 거지? 내 기력은?
정신차려보니 공부하는 것처럼 열성적으로 책을 다 읽어버렸다. 아니, 이것도 따지고 보면 공부였긴 하지만. 잠깐 숨돌리기로 시작했을텐데...
의지의 부족이다. 이럴 땐, 아는 사람과 대화하면서 사기를 고취시키는 게 제일.
#가디언칩을 확인해봅니다. 있나요... 있나요 친구...!
**
연락은 딱히 없습니다.
친구는.. 있네요.
(하나우라 유우.. 라는 이름의 친구를 발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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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처를 뒤지다가 하나우라 유우라는 이름을 찾았다.
...연락해볼까.
#적당한 말투로 인사와 잘 지내냐는 말을 보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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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 Yes. 잘 지내고 있다와. ] [ 친구는 잘 지내고 있쉐이? ]
- 02: 88스레(내용 없음)
- 스루됨(실성!)
이슬은 유해합니다.
- 03: 88스레
- [나도 잘 지내고 있어]
[요즘은 시험기간이라서 한가한 편은 아니지만]
[근데 그 말투는 뭐야...]
#대화!
**
[ 너무하쉐이. ]
[ 말투로 사람을 차별하는거쉐이..? ]
사비아는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유노하라 미츠는 원래 21차원으로 유명했으니까요. 뭐.. 실력은 뛰어난 녀석이니 괜찮을겁니다.
**
[ 그... ]
[ 그런건... ]
[ 아니쉐이... ]
온사비아은(는) 패배했다!
[ 미안하다와... ]
#대화해요...
**
[ 그럼 된거쉐이 ]
[ 설마 사비아가 한글주의자라도 된 줄 알고 놀랐다와 ]
[ 나도 이리저리 바빠서 연락 잘 못했쉐이 ]
생각보다 쓰다 보니 중독되네요..?
**
[ 한글주의자는 뭐다와? ]
[ 바쁠 일이 많았단건.. 이해되쉐이 ]
...아니 이런 말투를 쓰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그치만 쓰다보니 생각보다 재밌어...
[ 근데 무슨 일 하고 있었 쉐이? ]
음... 저 사이의 띄어쓰기는 내 안의 맞춤법 수호자의 최후의 반론이라고 생각하겠어
#대화
**
[ 큰 일은 아니고 곧 교장선생님 새로운 분 오신다고 하지 않았쉐이. ]
[ 그것 때문에 이리저리 바빠졌쉐이. ]
[ 그리고.. 선생님들도 새로 오시다 보니 그렇게 됐쉐이. ]
그리고.. 사비아의 인맥은 학생회였네요.
여기서 주사위 운이..
- 04: 89스레
- ...!!
[ 새로 오시는 선생님들이 어떤 분인지 알아?? ]
[ 어떤 분이셔? ]
[ 뭐하는 분이셔? ]
[ 봤어?? ]
무심코 따발총같이 보내버렸다... 평소에도 이렇게 빠르면 신속 S 금방 찍을텐데.
#추궁?해요
**
[ 정보를 알려줄 수는 없지. 어디까지나 기밀이니까. ]
[ 단지 학생회라서 조금 일찍 들었을 뿐이지. ]
알려줄 수 없다고 합니다!
**
[ ... ]
[ 나도... 학생회 들어갈거다와... ]
저 말투 사라진 거... 정색한거지...
[ 무례하게 캐물어서 미안하쉐이... 안녕이다와... ]
...멍하니 책상을 내려다본다.
공부나 해야지.
#분노의 망념 90 공부법으로 시험공부를 합니다.
**
현대의 고3들에게 의념을 이용한 망념공부법이 있었다면 모두가 1점짜리 문제를 걸고.. 공부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공부합니다!
어느정도, 윤곽이 잡히기 시작합니다!
**
망념 잘빼는 인싸가 모든 걸 가져가는 세상... 싫어요 그런거...
어디서 이상한 생각이 들리는 것 같은데... 음... 됐지 뭐. 가디언칩에서 90 알림이 삐삐 울리는 걸 보고 공부를 끝냈다. 정말 열심히 했어...
이 이상 공부해봤자 머리에 안남겠지? 그럼... 뭘 할까.
가볍게 뛰고 올까...?
#도서관 밖으로 나가서 설렁설렁 뛰면서 산책해요..
**
산책을 합니다.
슬 날씨가 꽤 어둑해지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날에는 갑작스런 만남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등에는 세 자루의 창을 걸친 채, 꽤 전통적인 느낌의 개량한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머리카락과 눈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고히 보이기라도 하듯 검은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슬쩍 보이는 외모는 40대의 초줄에 들어가는 듯, 꽤나 노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 흠.. 학교가 꽤 넓군. "
구시대에 어울리는 커다란 지도를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남자를 만났습니다!
- 05: 92스레
- 망념이 꽉 차도 열심히 뛰는 건 가능하지만 지금은 산책, 공부하다 지친 중에 산책이니까 적당히 뛴다. 느린 바람을 거슬러오르고 심장의 존재를 명확히 느낄 수 있을 정도만. 어둑어둑해져가는 하늘 아래서 시간의 단위를 넘어가는 중간의 공기를 들이마실 때, 본 적 없는 사람을 보고서 잠시 달리기를 멈추고 그 앞에 가 섰다.
"저, 혹시 어딘가 찾고 있는 곳이 있으신가요?"
커다란 지도를 들고 두리번거리는 남자, 학교가 넓다고 말하는 걸 보면... 귀한 손님이실지도 모르겠다. 우선 정확히 알아야 하니 말을 걸어봤다.
#대화해요..
**
남자는 두리번거림을 멈추고 사비아의 말에 지도를 집어넣습니다.
그 눈빛이 사비아를 바라보자, 꾹꾹 숨겨두었던 공포가 자극되는 것 같은 알 수 없는 감각이 듭니다.
" 이런. 실례했구려. "
꽤 클래식한 형태의 안경을 꺼내어 얼굴에 쓰면서 말합니다.
" 다름이 아니라 교무실을 찾아가고 있소. 아쉽게도 내가 어디 안내를 받는 것을 잘 모르다 보니 말이오. "
지금은 시험기간이라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되었을 것인데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합니다.
**
......
뭐지, 이 사람은...?
쳐다보는 순간 느껴지는 낯설고 익숙한 기분에 쥔 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려는 찰나에, 뭐지. 안경?
" ...아, 그러면 제가 동행해도 괜찮을까요? "
역시 범상치 않은 사람인 건 맞아. 속으로 생각하면서 살짝 떨리는 기분으로 그렇게 말했다.
"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청월 3학년생 온 사비아라고 합니다. "
#대화해요..
**
그는 자신의 옷깃에 슬쩍 손을 올린 채 짧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받습니다.
" 창수 배기운이오. 미약하나마 사람들에게 무룡칠천창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소. "
무룡칠천창이란 이름을 들은 사비아는 얼굴에 당황을 떠올리고 맙니다.
그야 다윈전쟁에서 활약했던 가디언이자 1세대 극 초기 각성자인 배기운은 수많은 창사들을 키워낸 것으로 유명한 가디언이니까요. 사비아가 존경하는 '영웅에 가까운 수많은 준영웅'중 하나입니다!
" 쑥쓰럽다만 안내를 부탁해도 되겠소이까? "
**
" ...!! "
와...
와...
진짜 장난 아냐. 진짜 장난 아닌데, 이거 진짜 장난 아냐. 얼마나 장난 아니냐면 진짜 장난 아냐.
그 이름이 누굴 가리키는지 알고 떠오른 혼란한 생각뭉치들이었다.
이런 사람...이런 분도 여기 오는구나. 아니 오시는구나.
" 물론이에요! "
#망념 50을 꽂아 정말 열심히 안내해드려요! 불꽃안내!
**
배기운은 사비아가 의념을 증폭하여 안내를 하려고 하자, 어깨에 천천히 손을 올립니다. 알 수 없는 차가운 기운이 사비아의 몸에 흘러들어가고, 증가하려던 망념은 천천히 가라앉습니다.
" 의념 사용자들은 대게 의념의 힘에 의존하여 자신의 한계 이상으로 힘을 끌어내려 하곤 하지요. 생도 역시 들뜬 것은 알겠으나 안내는 느긋히 하여도 좋습니다. 느린 걸음으로 이곳 저곳을 다니며, 보는 것도 즐거움이 있지 않을지요. "
그는 웃으며 의념을 이용하는 것이 꼭 장점이 되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해 들었던 지식이 떠오르네요!
배기운은 의념을 극히 제한한 상황에서 자신의 경험과 기술에 의존한 전투법을 펼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투를 하는 모습을 보면 상당히 위태롭고, 아슬아슬하지만 결국 활로를 찾아내어 적을 해치웠다고 하죠.
그런 그의 성격이 똑같이 느껴지는 기분이라 어쩐지 사비아는 즐거운 미소가 떠오릅니다.
**
" 그러면... 천천히 풍경이라도 보면서 걸을까요? "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것 같아서 화끈해진 뺨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받은 가르침을 거듭 마음에 새겼다. 그래... 지금의 나는 의념이 있지만, 의념이 없었을 때도 아무것도 못한 건 아니었잖아.
그렇게 생각하지만... 생각하지만... 지금은 동경하던 사람과 나란히 걷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너무 기쁘다. 생각하던 그대로의 모습이었기에 기쁘다.
...물리적인 의미가 아니라 비유적으로 같은 위치에 서려면 지금보단 더 열심히 해야겠지. 어쩌면 평생 노력해도 닿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안내해요.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지만 느긋함을 즐기기엔 딱 좋은 속도로.
**
두 사람은 그렇게 느긋한 걸음걸이로 교무실로 향합니다.
많은 학생들의 눈길이 배기운을 향할 때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천천히 고갤 숙입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며 그를 안내하고 있는 사비아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곤 합니다.
어쩐지 어깨가 올라가는 듯한 기분도 들지만 천천히 사비아는 자신의 역할을 다합니다. 곧 넓은 청월의 부지를 다 돈 뒤에 교무실에 도착한 배기운은 문을 두드리며 말합니다.
" 배기운이오. 안도. 거기 있는가? "
곧 교무실의 문이 열리고, 순백색의 무녀복을 입은 소녀가 천천히 걸어나옵니다. 소매로 입가를 살짝 가린 채, 살짝 몸을 굽혀 절을 올린 교감. 안도 츠요리는 그를 향해 말합니다.
" 결정하셨는지요. "
" 그렇소이다. 아무리 그래도 짧게나마 가르침의 온정을 받았음즉, 온정을 갚고자 하여 이곳에 왔소이다. "
그 말을 듣고 기쁜 분위기를 풍기던 안도는 천천히 사비아를 바라보고 옷깃을 내립니다. 연한 미소가 떠오른 얼굴이 눈에 들어옵니다.
" 고생하였어요. 이 분은 배기운이라 부르는 분으로 청월의 새로운 교장선생님으로 부임하게 되셨답니다. "
그 말을 들은 사비아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깃들기도 잠시.
배기운은 사비아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 도움을 받았으니 도움을 갚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니. 혹 바라는 것이 있는가? "
- 06: 93스레
- 저분이... 새... 교장님.
놀랐지만, 오는 길에 조금씩 생각하면서 예상하긴 했던 일이었다. 이런 시기에 오실 '귀하신 손님' 중에는 새로 오신 교사 분도 계실 것이다...정도는 예측할 수 있었으니까. 그치만 예상할 수 있었으면서도 놀랄 일이었다.
그리고. 도움을 받았으니 도움을 갚는다. 바라는 것이 있는가를 물었다. 내 앞에 선, 이분이─
누구라도 바라 마지않을 일이다. 저 사람에게 무엇인가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인 사람도 드물겠지. 정말 희귀한 기회를 잡은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지만...
나는 대단한 걸 요구할 만큼의 일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거부하자면 갚기로 한 저분의 의지를 욕보이게 된다. 그러니 내가 요구할 것은 이것이다. 잠깐의 길안내로 요구하기엔 과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오늘 내가 그에게 쓴 시간만큼을 그대로 받아간 것뿐이다.
" 제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잠시 이야기를 들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
수락을 들었다면 아래의 말을 했을 것이다.
" 저는 선생님이 되기를 꿈꾸고 있어요. "
파이로 비유하자면 인생의 부스러기 같은 시간에 가치를 찾고, 그걸 평생의 길로 삼으려 드는 것은 어찌나 미련한 일인지.
" 이 학교에 학생이 아닌 선생님으로 돌아오는 게 제 꿈이에요. "
" 그렇기에 최고의 가디언을 키워내기 위한 학교인 국립 청월고교에 왔어요. "
" 제가 돌아왔을 때도 배기운 님께서 교장의 자리에 계실지, 아니면 다른 분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
무수한 노력 끝에 이 자리에 올랐을 사람들 앞에서 당신과 같은 지위에 서겠노라 말하는 건 어찌나 수치스런 일인지.
" 이렇게 말하는 학생, 온 사비아가 당신의 앞에 선 적이 있었다고 기억해주세요. 그러길 바랍니다, 배기운 님. "
라고, 미련함과 수치심을 생각했다면 이런 걸 고백할 일도, 애초에 마음에 품을 일도 없었어야 옳은 일이다.
#바라요
**
듣습니다.
분위기는 조용합니다. 말을 마친 사비아를 두고, 안도는 살짝의 미소를 짓고 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화의 주인인 배기운은 천천히 눈을 감고 생각을 더듬습니다.
벌써 수십 년이 지났던가요? 의념 각성자가 나타나고, 정신 없이 문을 닫으러 다녔던 시절이 말입니다. 한 자루 창을 들고 위험 속에 몸을 던졌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웃음을 짓습니다.
수많은 희생 위에 기반이 마련되는 법입니다. 그 기반이 어찌 만들어졌는지 알리는 것이 바로 교육이 되고요.
그 기반 위에서 자란 아이. 3세대인 사비아와 1세대인 배기운의 사이에는.. 그만큼의 격차가 있습니다.
" .. 흐 "
웃습니다.
" 하하하하하하!!!!!! "
웃습니다.
" 그래. 그래. 한 방 먹었군. "
그의 얼굴은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 내가 상상한 것은 세 개 정도라네. 좋은 무기를 주세요. 가르침을 주세요. 돈을 주세요. 그런 것을 요구할 것을 상정하고 무엇을 줄까, 같은 생각을 했었다. 그러니! "
배기운은 웃음을 지은 얼굴로 사비아를 바라봅니다.
" 사과하겠네. 비록 그대는 아직 가디언은 아닐지언정. 가디언에 한없이 가깝단 것을 망각한 듯 하니 말야. "
그 미소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 한 가지는 약속토록 하지. "
그는 자신의 등에서 한 자루의 창을 꺼내듭니다.
배기운의 상징 무기이자, 마스터 웨폰 중 하나. '일천년'을 꺼낸 배기운은 천천히 사비아를 이끌고 걸음을 걷습니다.
모든 방향으로 이어지는 청월의 중심.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지만, 어디라도 통할 수 있는 길 위에 그는 자신의 창을 쥐고 그대로 내려꽂습니다.
쿵, 깍, 뜨드드드드득.
땅을 그대로 파헤쳐버린 창은 마침내 견고히 일어섭니다.
" 그대가 제대로 된 영웅이 되어, 가르침의 입장이 되기 전까지. 이 배기운. 이 청월의 교장으로서 이 자리를 지키도록 하겠다! "
그리고,
두근.
사비아의 심장이 미친 듯 뛰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바랬던 영웅의 형상을 보았기 때문에.
그 영웅에게 향하는 '길' 하나를 찾은 것만 같았기 때문에.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참고, 대신 웃습니다.
" 그러니. 늦지 않게 따라오라. 이 노구의 몸이 이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음즉! "
배기운은 웃으며 말합니다.
" 날 뛰어넘어, 청월의 장이 될 마음을 가지라! 그것만이 진정한 영웅. 그대의 미래에 어울리는 꿈이 될 것이다! "
아주 작은, 그대를 이루고 있는 씨앗에 오늘의 이야기를 불어넣으십시오.
꿈을 키워내어, 더 높은 곳으로 향하십시오!
영웅의 씨앗이 반응합니다! 스테이더스 포인트 2를 획득합니다! 매력과 행운을 제외한 어느 스테이더스에나 자유롭게 분배할 수 있습니다!
배기운은 미소를 지으며 답합니다.
" 내 대답은 이로 충분할 것이다! "
- 07: 93스레(2)
- 큰 웃음소리에 순간 놀랐고,
즐거운 미소에 안도감을 느꼈다.
좋은 무기. 필요하다.
가르침. 흙바닥에 머리를 찧어서라도 빌어 한 줄 가르침을 얻으려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돈. 다른 두 선택지에 비하면 한참 못해 보이지만 이것도 배기운 님의 손에서 빠져나온 금이라면 무엇이든 부족할 리 없다.
하지만, 좋은 무기도 돈도 언젠가 얻을 수 있고, 가르침은 귀하지만 미약한 성취로 다 삼킬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지금의 내가 이 사람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도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다.
걸음.
걸음.
...멎음.
그리고, 곧음.
" 그대가 제대로 된 영웅이 되어, 가르침의 입장이 되기 전까지. 이 배기운. 이 청월의 교장으로서 이 자리를 지키도록 하겠다! "
라고.
" 그러니. 늦지 않게 따라오라. 이 노구의 몸이 이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음즉! "
가슴이 뛴다. 심장이 뛴다. 마음이 뛴다. 무엇에 닿으려고 그렇게 바쁘게 뛰어가는가? 그 아래 무엇이 보이기에 뛰어내리려고 안달을 하는가? 고개를 숙이자, 땅을 파헤친 창의 끝이 눈에 들어왔다.
아.
" 날 뛰어넘어, 청월의 장이 될 마음을 가지라! 그것만이 진정한 영웅. 그대의 미래에 어울리는 꿈이 될 것이다! "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고, 은은한 열이 떠오르는 걸 눈치조차 채지 못했던 뺨에 한 줄기 바람이 스쳐 뒤늦게 열을 자각하게 된다. 어떤 감정이 온몸에 뜨거운 피를 팽팽 돌게 만들었다. 그래, 즐거움이다. 지금 나, 너무 즐거워.
" ...너무 늦지 않게 올게요. "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뺨을 붉히며 눈을 반달처럼 둥글게 굽히고, 눈동자 속엔 호승심 많은 소년처럼 탁탁 부딪쳐 발화하고 폭발할 듯한 전기 같은 열정을 담고, 자신감만큼 끌어올린 입꼬리로 마주보는 미소를 자아낸다. 지금의 나를 시적으로 묘사한다면 그런 한 문단이 완성될 것이다.
얼굴 없는 영웅의 형상에 한 사람의 형상이 깃들어, 언뜻 그렇게 가라앉아 사라진 것처럼, 하지만 확실하게 색을 남기고 사라졌다.
" 충분하고말고요. "
나는 정중하게 깊이 고개숙여 인사를 했다.
어디로든 일단 가고 싶고, 무엇이든 일단 하고 싶다는 고양된 마음을 억누르며. 갈 곳도 없는데 다리를 움직이려는 나를 애써 억누르며. 그저 미소지었다.
# 크흑... 감사합니다 센세이...
**
" 그것과는 별개로. "
기운은 자신의 품을 뒤져 작은 비급 하나를 꺼내듭니다.
" 보상은 제대로 주는 것이 형평에 맞는 것이다. "
▶ 소철경小鐵炅 ◀
[ 중국의 한 소수 문파 '경철문'에서 비롯된 무공. 의념 발생기 이전에 나타났으나 그 잔혹한 수련법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의념의 각성 이후 다시금 주목받게 되었다. 그러나 게이트에 의해 경철문의 문주가 사망하고, 문파원들이 뿔뿔히 흩어지게 되어 현재는 실존되게 되었다. 이 비급은 경철문의 무공 중 내공 심법인 '소철경'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총 5성의 경지까지 수련할 수 있다. 단순히 몸을 튼튼하게 하고, 근력을 강화하는 무공이 아니라 무른 몸을 단단하게 하고 강도를 조절하는 등 쇠를 단련하는 외공에 가까운 형질을 지니고 있다. ]
▶ 소철경 1장 : 단鍛 - 인간의 몸은 무르다. 무른 몸을 두드리고, 두드려 쇠에 어울리는 강도를 지니게 한다. 소철경을 수련하는 것으로 건강 스테이터스를 최대 5 증가시킬 수 있다. (현재 0)
◆ 사용 제한 : 레벨 15 이상. 건강 A 이상.
" 먼 과거 경철문의 문주가 사망하였을 당시 문주가 나에게 맡겼던 물건일세. 만약 이 물건에 어울리는 자가 있다면 전해달라 하더군. 그러면서 쓰러진 '경철문景鐵門'을 다시금 세워달라는 부탁을 했다네. "
기운은 추억을 떠올리며 웃습니다.
" 꼭 그대가 문을 일으킬 필요는 없네. 그 역할에 어울리는 이가 있거나, 아직 경철문의 후손들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니 말일세. 하지만 언젠가 문을 일으킬 자격이 있는 자가 나타나면 가르침을 내리고, 오늘의 내 말을 전해주기만 해도 충분할걸세. 어떤가? "
하고 묻습니다.
- 08: 96스레
- " ...! "
내가... 이 물건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작은 비급인데도, 손이 무겁다.
그리고 또 볼이 빨개질 것 같아...
" 네... 꼭, 이 물건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로 이 말들이 이어지도록 힘쓰겠습니다. "
이 비급에 있는 말語.
경철문의 이름 모를 문주가 남긴 말語.
배기운님이 남긴 말語.
모두, 없어지지 않고 이어지도록.
비급을 든 배기운님의 손을 향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 받아요 ...!
**
받습니다!
" 그럼. 다음에 또 보도록 하겠네. "
말을 마지막으로 기운은 자리를 뜹니다.
단지 이 만남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듯, 사비아의 손에 들려있는 소철경과 함께요.
**
" ...안녕히 가세요. "
잠시 동안, 정말 폭풍같았던 시간이었다고 방금 전을 회상하고 있다가...
아, 맞다. 현실.
시험공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잠깐 쉬러 나온거였지...
#기숙사로 갑니다.
**
기숙사로 이동합니다!
**
"드디어 기숙사다..."
방에 가서 공부해야지...
#방으로 가요..
**
이미 방입니다!
**
충격) 이미 방이었음
" 내 정신 좀 봐... "
쓰는 사람의 정신입니다.
아무튼... 불꽃이라기엔 장작이 좀 부족하지만 불꽃공부다... 약속과 선물까지 받았으니, 그에 부족한 모습을 보일 순 없지.
영웅이 되려면, 꿈만 꿔서는 안 된다.
그에 맞는 능력이 있고. 업적이 있고.
과정이 있어야지.
#망념을 75 쌓아서 불똥공부를 합니다!
**
시험공부를 합니다!
.. 뭔가 알 것 같기도 하네요. 좀 많이 남긴 했지만요!
- 09: 97-98스레
- #잠시 잡니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시X스 침대..
정신력이 회복됩니다!
**
얼리버드가 아닌 얼레벌레 기상!
...?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거지.
아무튼... 깨끗한 정신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잠깐 스트레칭으로 몸 풀고, 방을 나선다.
밥 먹고 와야지...
#식당가로..
**
식당가로 얼리버드 이동합니다.
- 10: 112-113스레
**
현재 학교 식당가에는 메뉴 점검 중이라 주문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단체로 레벨이 증가함에 따라 몇몇 기능을 점검중인 캡틴의 의지로 보이네요!
**
밥... 안돼...
보석-시무룩.
빈속에 공부라니 최악이지만 돌아가야겠다.
# 기숙사로 가요...
**
돌아갑니다.
4.1.2. 11~20회 ¶
- 11: 116스레
- 얼리버드 복귀!
자... 이제.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지.
이번엔 별똥공부다!
#망념을 99 쌓아서 시험범위를 별똥공부!
**
공부합니다!
슬슬 끝날 것 같습니다!
- 11: 120스레
- 슬슬 끝날 것 같아!
라는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불똥공부에도 불구하고 시험은 하루 뒤까지 다가왔고...
...답이 없다.
바람이나 쐬고 와야지.
하늘이 잘 보이는 곳으로...
#거주구역으로 갑니다..
**
거주구역으로 이동합니다!
거주구역의 하늘은 맑고, 쾌청합니다.
특별한 사건은 없어보입니다.
**
" ... "
맑고 깨끗한 하늘을 보면 내 마음도 하얗게 바람에 널린 느낌이어라.
" ...오늘은 상쾌한 하루가 되겠어. "
사람이 무슨 생각을 품더라도 하늘은 변하지 않는다.
구름이 움직여도, 해가 움직여도, 하늘이 있다는 것만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하늘이 좋다.
내 마음이 하늘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이스터에그!
**
상쾌한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망념이 초기화됩니다!
**
...그래, 지키기로 한 것이 있었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기숙사로 돌아가요...
**
항구로 이동합니다.
**
# 캡틴 저 기숙사로 갈거에요!!! 항구로 보내지 말아주세요!!!!!!
**
기숙사로 귀환합니다.
**
...왠지 길을 잃었다가 돌아온 느낌이지만 기분탓이겠지?
이 상쾌한 마음을 공부로 이어나가야겠다.
다시 책상 앞으로.
#망념을 99 쌓아서 하늘같은 시험공부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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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념 83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시험공부를 마칩니다!
영성이 1 증가합니다!
- 12: 122-123스레
- 총 437의 망념을 들여 결국 공부를 끝내고 말았다.
...정말, 어떻게든 됐다는 느낌이야.
일단 씻고... 좀 잘까...
# 샤워합니다. + 특성 영웅의 씨앗의 관련 내용을 100코인에 구입할 수 있을까요?
**
씻습니다!
망념이 5 감소합니다.
영웅의 씨앗에 대한 정보를 구매합니다.
- 13영웅. 또는 그에 준하는 영웅들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경우 영웅의 씨앗은 반응하게 된다.
현재 사비아가 가지고 있는 영웅의 씨앗은 한때 영국의 영웅이었던 '나폴레옹' 쟝 비엘르의 영웅의 씨앗으로 군대의 지휘에 특화되어 있다.
**
잠깐... 나 시험 친 거... 맞겠지...?
아니, 쓰는 사람이 흔들려서 헷갈리네.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니 아무리 한국인이라도 생각 앞에 아니를 왜 이렇게 많이 붙이는 거야. 아니-!
...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교무실로 쫑쫑따리 가봐요
**
교무실로 이동합니다!
출입이 가능한 것을 보니 시험이 끝난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
...시험 끝난 것 맞구나.
청월의 시험을 얻어맞고 잠시 정신이 가출했었나? 3학년이나 됐지만 여전히 어렵긴 어렵다니까.
" ...계신가요- "
교무실에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는다.
#담임선생님을 찾아봐요-!
**
교무실로 이동합니다.
사비아의 담임 선생님, 이수진은 다음 수업을 준비하는지 여러 자료들을 참고하다가 사비아를 발견하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듭니다!
/
찾아갑니다!
각성자 법학의 김 재우는 두꺼운 법전을 들고 다음 수업을 준비하다가, 사비아가 다가오는 것을 바라봅니다.
" 무슨 일이지? "
꽤 냉랭히 물어옵니다.
**
...
...
...반짝
......반짝반짝
지금의 나를 객관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런 느낌
" 선생님...! 안녕하세요! "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시는 수진 선생님을 엄청나게 반짝이는 시선으로 쳐다보며 힘찬 느낌으로-하지만 너무 큰 소리가 되어서 선생님들께 폐를 끼치게 되면 안 되니 오히려 살짝 소리죽인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왠지 오랜만... 오랜만이 아니라 처음 보는 것처럼 반가운 느낌이지만 기분탓일거야! 오늘도 학생들을 위해서 열심히 수업을 준비하고 계시는 거겠지! 그 근데 방해해도 괜찮을까?
" ...혹시 잠깐 시간 괜찮으신가요? "
# " 아직 가입한 동아리가 없어서 어떤 동아리에 들어가면 좋을지 조언을 구하러 왔는데요... " 하고 살짝 덜 반짝반짝하게 물어봅니다!!!!!!!!!!!
**
" 학생이 원하는 동아리 활동이나, 아니면 우선시하는 활동이 있나요? "
이수진은 조곤조곤 물어옵니다.
**
내가 우선시하는 활동, 바라는 활동.
순간 머릿속에서 여러 단어가 스친다. 공부라던가, 영웅 같은 내 삶에 중요했던 단어들.
...하지만,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이라면.
" 많은 전투경험을 쌓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이런 것?
" 부원들 간의 활발한 대련이 이루어지는 곳, 혹은 대련이 아니더라도 가디언들의 실제 전투자료 등을 열람하고 분석할 수 있는 곳. "
앞은 실전, 뒤는 이론이다.
# " 그런 동아리가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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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합니다.
" 전투연구부? "
**
" 전투연구부... "
따라하듯 그 이름을 읊고 확실히 기억해둔다. 바로 가입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일단 가서 확인해보는 게 좋겠지. 그래도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만큼 여러 번 찾아와서 폐를 끼칠 일이 없으면 좋을 것 같다.
" 상담 감사드립니다. 전투연구부로 찾아가봐야겠네요. "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려다가, 다시 돌아서 이수진 선생님을 향한다.
# " 혹시 제가 뭐 도울 일 같은 건 없을까요? " 그냥 가기엔 죄송합니다.
**
" 딱히 없습니다. "
수진은 손을 저으며 이만 가보라고 표현합니다.
**
" ...그럼. "
손을 젓는 모습에 간단히 고개만 숙이고 돌아나온다. 자신이 필요하지 않다면 더 있을 필요는 없다. 이렇게 된 거, 바로 가는 개 낫겠지... 나오는 길에 보이는 선생님이 계시면 전부 안녕하세요 한 마디라도 드리면서 교무실을 나선다.
# 전투연구부실로 가요.. 무 섭 다 !
**
전투연구부로 향합니다.
전투연구부라는 이름답게 입구에서부터 수많은 참고 서류들의 향연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런 서류들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수많은 학생들이 시뮬레이터를 돌리며 결과값에 대해 유추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왁! "
누군가가 사비아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자 깜짝 놀란 사비아는 등을 돌려 확인해봅니다.
" 사비아 양. 맞지? "
살짝 미소를 지은 채로 사비아를 바라보고 있는 붉은 눈의 은발 소년은, 가볍게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짓습니다.
" 지훈이한테 들었어. 전투연구부에는 무슨 일이야? "
- 13: 126스레
- 입구부터 한가득 쌓여 있는 서류들과,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토의하는 학생들. 전투연구부의 공기. 열의있는 분위기에 잔잔한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어쩐지 어렵다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 앗! "
깜짝이야 !
이런 분위기 속에서 누굴 놀래키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갑작스런 터치에 살짝 불편함을 느끼면서 뒤를 돌아봤다.
" ...맞는데요. "
모르는 사람인데 왜 내 이름을? 그렇게 알려져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하고 생각하다가 이어진 말을 듣고 눈을 깜빡거린다.
" 음... 지훈이요...? 제가 아는 지훈이라곤 한씨 쓰는 지훈이밖에 없는데요? 혹시 그 지훈이 맞나요? "
" 일단 방문 목적은 동아리 가입이에요. 좀 늦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아직 동아리가 없어서... "
뭐 꼭 들어간단 건 아니지만, 선생님께 추천받은 이상 아주 맞지 않는 한 들어가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수수께끼의 소년과 대화. 그는 무슨 아키하라인가?
**
" 어라. 이 녀석 꽤 맘에 안 드는데? "
그는 장난스럽게 미소를 짓습니다.
" 내 이야긴 하지도 않았단 말야? 그러고 너희 이야기는 했다 이거지? 나중에 만나면 봐야겠구만. "
**
" ...? "
뭐지.
지훈이가 자기 친구 자랑이라도 했었던 걸까? (메타적인 지식이 일부 개입된 추론)
" 네... 일단 당신에 대해 들은 건 없어요.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
# 그는 도대체 뭐시기 소켄인가? 더 대화합니다.
**
" 하하. 그럼 한 번만 말해줄게? "
그는 웃습니다.
" 아키하라 소켄이라고 해. 지훈 녀석과는 대충.. 4년? 정도 전부터 친구였지. "
그 녀석. 그때도 제정신은 아니었긴 해. 하고 큭큭 웃습니다.
- 14: 133스레
- " 아키하라 씨군요. "
하고 끄덕끄덕 하다가...
" ...? "
" 마도일본식 이름인데 4년 전부터 친구였다고요? "
특이하네. 신 한국이랑 마도일본이 가까운 국가라곤 해도 국가를 뛰어넘은 오랜 친구라니...
신기한 인연이라고 생각하며 눈을 반짝였다.
" 근데... 제정신이 아니었다고요? "
무슨 일이야...?!
# 역시 너였구나! 악기하라! 지훈주도 모르는 과거를 뜯어주겠어!
**
" 어.. 너 국경주의자*였어? "
아키하라는 꽤 의외라는 표정으로 사비아를 바라봅니다.
" 뭐. 이 이상은 비밀이지만. "
꽤 능글맞게 빠져나갑니다.
TIP. 국경주의자란 각 국가마다 특징이 다르고, 방향이 다름을 주장하며 그 양식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을 말합니다. 가령 한국에서 최다니엘이란 이름을 허용하지 않고 최대영과 같은 식으로 바꾸자는 이야기이죠.
**
" ...앗, 혹시 실례한 건가요? 제 주변에는 마도일본식 이름을 쓰는 사람은 없었어서. "
국경주의자... 뭔진 모르겠지만 안 좋은 느낌이...
생각해보니 마도일본식 이름이라고 마도일본 사람일 거란 보장도 없던가.
그리고 비밀이란 말엔 끄덕끄덕한다. 일단 물어보고 말았지만 실례였을 거란 생각도 들고.. " 괜한 걸 물어봤나요? 죄송해요. " 하고 쓴 표정으로 사과했다.
" 그보다... 동아리 가입을 위해 온 건데, 혹시 부장님이나 가입을 인도해주실 수 있는 분은 어디 계신가요? "
# 대화대화. 미안해 소켄아 오너가 그랜절 박을게엣
**
" 가입이야 뭐. 자 여기 신청서가 있으니까. "
그렇게.. 끄적끄적.. 이름.. 나이.. 성별.. 뭐 그런 것을 쓰고!
사비아는 전투연구부에 가입합니다!
그 뒤에 뭐 어쩌고 저쩌고 하시는 내용은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
" ...아... 못봤... "
살짝 붉어지는 얼굴을 문지르며 아무튼 가입...
좀 둘러보고 가입하려고 한 거 아니었냐고 어디서 요상시런 성좌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지만 기분탓이다. 어차피 당신 귀찮잖아... 빨리 가입하고 넘어가자.
#아무튼 이제 우리 동아리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부활동을 하고 있는지 잠깐 둘러봐요!
**
둘러봅니다!
" 그러니까 여기서 의념 지수 있잖아. 의념 지수의 변화를 통해서 게이트 파장의 붕괴를 발생시켜서 일시적으로 근력의 효과를 강화하고.. "
어딘가에선 이론에 대한 열정적인 토론이 이뤄지고 있고
" 시뮬레이터 상으로는 건강 A 기준으로 방어적 효율 전략을 통해 전투를 지속하려 하는 경우에 대형 게이트 정예 몬스터 기준 8분을 버틸 수 있다고 나오네. 역시 대형 게이트 까지는 무리라는 거겠지? "
어딘가에선 시뮬레이터를 통해 자신들의 이론을 확인해보는 장면을 가지기도 합니다.
**
" ...... "
여기 잘못 들어온 건 아니겠지...?
둘러봤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각자 열심히 하고 있어!
일단... 아무나 붙잡고 신입 부원은 뭘 하면 좋을지 물어볼까?
적당한 사람을 찾아보자.
# 사람을 찾아요.. 도와줄 사람을 찾아요..
**
다들 바쁘기도 하고, 시험 때문인지 사비아를 신경 쓰기 어려워하네요.
- 15: 137-138스레
- " ...타이밍이 안 좋았던 건가. "
아무래도 오늘은 때가 아닌 것 같다.
잠깐 유노하라에게 가디언넷이라도 보낼까 했지만, 다들 바쁜 한가운데서 가디언넷만 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밖으로 나가야지.
#기숙사로 돌아갑니다..
**
기숙사로 돌아갑니다!
소철경을 익혀보는 것은 어떨까요?
**
잘됐네요. 마침 딱 그 생각 하고 있었는데.
차분히 책상에 앉아서 비급을 쳐다본다. 펼치지 않은 채로.
▶ 소철경小鐵炅 ◀
[ 중국의 한 소수 문파 '경철문'에서 비롯된 무공. 의념 발생기 이전에 나타났으나 그 잔혹한 수련법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의념의 각성 이후 다시금 주목받게 되었다. 그러나 게이트에 의해 경철문의 문주가 사망하고, 문파원들이 뿔뿔히 흩어지게 되어 현재는 실존되게 되었다. 이 비급은 경철문의 무공 중 내공 심법인 '소철경'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총 5성의 경지까지 수련할 수 있다. 단순히 몸을 튼튼하게 하고, 근력을 강화하는 무공이 아니라 무른 몸을 단단하게 하고 강도를 조절하는 등 쇠를 단련하는 외공에 가까운 형질을 지니고 있다. ]
▶ 소철경 1장 : 단鍛 - 인간의 몸은 무르다. 무른 몸을 두드리고, 두드려 쇠에 어울리는 강도를 지니게 한다. 소철경을 수련하는 것으로 건강 스테이터스를 최대 5 증가시킬 수 있다. (현재 0)
◆ 사용 제한 : 레벨 15 이상. 건강 A 이상.
...내 손에 들어온 이상 내 것이야.
괜스레 긴장이 도는 가슴을 심호흡으로 가라앉히고, 펼쳐보려 한다.
# 소철경의 습득을 시도해봐요!
**
획득합니다!
소철경(F)
- 중국의 한 소수 문파 '경철문'에서 비롯된 무공. 의념 발생기 이전에 나타났으나 그 잔혹한 수련법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의념의 각성 이후 다시금 주목받게 되었다. 그러나 게이트에 의해 경철문의 문주가 사망하고, 문파원들이 뿔뿔히 흩어지게 되어 현재는 실존되게 되었다. 이 비급은 경철문의 무공 중 내공 심법인 '소철경'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총 5성의 경지까지 수련할 수 있다. 단순히 몸을 튼튼하게 하고, 근력을 강화하는 무공이 아니라 무른 몸을 단단하게 하고 강도를 조절하는 등 쇠를 단련하는 외공에 가까운 형질을 지니고 있다.
- 소철경 일본 소철 小鐵境 一本 小鐵 인간은 무르다. 또한 나약하다. 그렇기에 꾸준히 두드려 단단해져야 한다. 의념 발화를 대처하며 의념 발화를 통해 방어력을 강화할 수 있다. 의념 발화의 숙련도는 소철경에 합쳐진다.
- 소철경 제 일형 단小鐵境 弟 一形 鍛 - 인간의 몸은 무르다. 무른 몸을 두드리고, 두드려 쇠에 어울리는 강도를 지니게 한다. 소철경을 수련하는 것으로 건강 스테이터스를 최대 5 증가시킬 수 있다. (현재 0)
**
기술로 인정되어, 습득했다.
의념각성자 수준으론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이건 역시 일반인 수준으로 하기엔...
응. 안 될 수준이었다고 생각해.
그래도 이젠 내가 익혀야 할 거니까.
그나저나, 이걸로 의념 발화를 대처할 수 있는 건가?
근력 대신에 방어력 위주긴 하지만...
의념발화 습득을 못한 나로선, 이렇게 딱 맞는 기술을 얻었단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왜 못 얻었었지? 그때 졸았나? 음... 뭐 됐지.
그것보다 중요한 건 스테이더스를 증가시킬 수 있단 거구나.
수련... 하면 될까...?
일단 가봐야겠다. 지금은... 만전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할만한 상태인 거 같고. (53)
# 트레이닝 룸으로 가봐요..
**
트레이닝 룸으로 이동합니다. 소철경은 사용이 완료되어 평범한 책.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않게 됩니다.
**
그렇다 쳐도 소철경이라는 책... 정말 대단한 귀물이었다고 생각해...
상자에 넣어서 소중히 보관해둘까. 펼쳐서 보관하는 게 좋을까. 아무튼, 아무한테도 안 주고 간직해둬야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어느새 트레이닝 룸에 도착!
근데... 이거이거.
그냥 수련하면 되나?
하고 성좌도 아닌 그냥 쓰는 사람과 같은 의문을 품으면서... 아무튼 시도해본다.
뭐야, 잔혹한 수련법.
# 망념 46을 들여 소철경 수련 시도!
**
수련합니다.
온 몸을 허수아비들에게 맡긴 채. 사비아는 눈을 감고 구결을 외웁니다.
인지주신철. 인주천인생. 人只鑄申鐵. 人周天人生
가하도모함. 과색해모나. 可何到母含. 課穡該貌懦
인간의 몸은 철을 펼쳐 이르는 것처럼, 인간의 삶은 하늘이 점지하는 것이 아니니.
어미가 네 몸을 품을 때 말하던 것 처럼. 나약함을 알고 고치며 깨달아야 한다.
온 몸을 허수아비가 두드리지만, 소철경을 외워갈수록 고통이 멀어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소철경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
공격에 일방적으로 몸을 맡기고 있는 건 좋은 기분이 아니다.
당장 이 상태에서 움직이면 허수아비를 뻥 걷어차줄 순 있겠지.
그러려고 온 건 아니지만...
맞다 보면, 온몸이 아프다.
둔탁한 고통. 타박상. 그런 상처들이 보이지 않는 피부 속에 새겨져가는 것.
그럼에도 견디어 내는 것.
받아들이는 것.
망념이 99까지 차올랐을 때, 비로소 멈춘다.
...탈진했어!
여전히 평범한 인간보단 강하지만 의념의 영향 하에 강화되지 않은 몸이, 욱신욱신하고 아프다.
그래도, 열심히 했다는 증거니까.
꾸물꾸물 벽에 기대앉아 가디언넷을 켠다.
[ 안녕안녕 ]
[ 좋은 아침점심저녁 다와 ]
#You know hara-아니 유노하라에게 뻘문자 보내기!
**
[ 반갑다와~ 바빴던 것이다와~ ]
꽤 해맑게 답변이 옵니다!
**
[ 그럴 만도 하다와. ]
[ 시험기간이었다와... ]
[ 청월 후배 중에 시험 망쳐서 퇴학 위기라는 아이도 있었다와... 으레 있는 일이지만 슬프다와... ]
[ 그동안 잘 지냈다와?? ]
# 점심나갈거같이 유노하라와 대화합니다!
**
[ 원래 세상이란 그런거다와. ]
[ 살아남기 위해선 강해져야 한다와 ]
[ 나도 시험 대처해준데서 죽어라 공부한 게 다행이었다와 ]
[ 학생회 최고야 ]
어쩐지 말투가 붕괴된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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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나도 학생회 들어갈거다와...! ]
잠시 자기 자신의 스펙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합시다.
[ ...어림도 없구나. ]
[ 너는 대체 학생회 어떻게 들어간 거야... ]
[ 아, 맞다. 혹시 질문 하나 해도 돼? ]
[ <장난스런 지휘>라는 기술, 알고 있나 싶어서. ]
생각난 김에 혹시 뭔가 알고 있는게 있는지 물어본다.
이름도 모르는 후배 싸움에서 뭔가 영향이라도 받은 건지 문득 깨달았던 기술.
이라곤 해도 아는게 없으니... 원
# 대화대화!
**
[ 그게 뭐다와? ]
[ 지휘가 장난이다와..? ]
모르는 눈치입니다.
**
[ ...모르면 됐어. ]
희귀한 기술이던가 보통 지휘에 비해선 너무 마이너한 하위호환 기술이던가. 그런 거려나? 유노하라가 모른다면 더 물어볼 필요는 없다.
[ 그러고보니 오늘 화이트데이던가? ]
[ 사탕은 많이 받았어? ]
많이 받았겠지만... 자랑하겠지만...
그래도 물어봐줘야지.
# 대화대
**
[ 꽤 받았다와! ]
[ 왕사탕도 일곱개나 받았단! ]
꽤나 상기된 듯한 말투입니다.
**
[ 부러워! ]
[ 난 한 개도 못 받았는데... ]
[ 그렇다고 화이트데이에 내 돈 주고 사먹는 건 좀 아닌 것 같고. ]
아... 그건좀...
[ 으으...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먹으러 갈까... ]
[ 그러고보니 너는 지금 어딨어? ]
갈 만한 곳에 있으면 메루나 한개 사다줘야지
# 화대화
**
[ 장강이다와! ]
음. 사비아. 고민해봅시다.
수영을 통해 학원도에서 남해를 통과하여 중국 장강으로 향한다.
음.. 지옥의 메로나 배달 과정이 되겠군요.
**
[ 어쩌다 거기까지...? ]
🤦♀️처럼 살며시 얼굴에 손을 얹는다.
[ ...부진장강곤곤래. 내가 중국 갈 일 있으면 메루나 하나 사다줄게. ]
[ 그럴 일이 있으면... ]
있을 리가 없잖아-!
[ ...굳 럭. 😎 ]
하고 채팅을 마쳤다.
이제 뭘 한담...? 도서관 가서 책 검색... 이라기엔 캡틴이 반탄술-! 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누군가 말하는듯 하구나...
아이스크림? 부진장강곤곤래... 먹을 생각이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취미생활? 딱히 생각나는 게 없다!
결국... 하나로 귀결되는가...
# 대화종료. 결국 도서관으로 이동합니다.
**
도서관으로 이동합니다!
**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
하지만... 역시 청월 도서관은 언제 봐도 방대하다.
하루종일 찾아도 원하는 책을 깜빡 지나칠 수도 있겠는걸.
음음. 도서검색이 안돼도...
그건 내가 도서관에서 길을 잃은 탓일거야.
# 키워드 - [영국의 영웅] 으로 책을 찾아봅니다!
**
검색합니다!
...
나오지 않습니다!
- 16: 139-140스레
- 믿었는데- 청월-!
없는 거냐구...
잠깐 책장 사이에서 이마를 짚다가 다시 책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번엔... 좀 다른 키워드로.
# 키워드 - '카리스마'로 책을 검색합니다.
**
검색합니다!
[ 종교와 명망, 매력 ]
검색됩니다!
- 17: 143스레
- #[ 종교와 명망, 매력 ]을 읽어봐요..
**
읽습니다!
[ 종교. 선망의 대상, 신앙의 대상. 초월적 무언가에 대해 '믿음'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 말이나 사례를 더해 '말씀'이라 부르는 이야기를 통해 깨달음을 얻어 가는 대중적 정신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 중략.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을 살피면 그들은 평범한 모습과는 다른 면모를 가진 경우가 많다. 불교의 석가모니를 살피더라도 그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하였을 때 수많은 수행자들이 그의 모습을 보고 고갤 숙였다는 문장이 있듯. 종교 지도자들이 가지는 알 수 없는 분위기 등을, 대중적인 의미에서의 카리스마라 부른다. 사람을 이끌고, 따르게 하는 힘. 종교가 매력적인 이유는 이런 부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 중략
그렇기 때문에 유명 종교일수록, 세가 강한 종교일수록. 그 종교를 이끌고 있는 이의 행동이나 영향력에 영향을 받는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영향을 상대에게 느끼게 하여 상대를 따르게 하거나 짓누르는 것. 이러한 방법의 카리스마가..
... 중략. ]
꽤 많은 내용이 비어있고, 알 수 없는 내용도 많습니다.
즉 종교적인 카리스마란 결국 개인의 말이나 행동 등에서 영향을 받아, 상대를 이끌게 된다. 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
# 계속 읽어봅니다.
**
캡틴의 '다 읽었습니다.' 가 없더라도 책은 내용이 더 없는 한 한 턴에 끝납니다! 참고해주세요!
- 18: 148스레(내용 없음)
- 19: 154스레(내용 없음)
- 20: 160스레
- # 전투연구부실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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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연구부로 이동합니다.
**
" 오늘도 별 일은 없네... "
몇 번이나 왔다고 이런 말을 하냐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이번에는 소득 없이 돌아가고 싶진 않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한 번 살펴보자.
# 전투연구부에서 어떻게 활동하면 좋을지 살펴봅니다. 사실 길 가는 데 있는 서류나 모니터 보고있으면 부활동이 되는 건지 모르겠어서...
**
사비아는 겉눈질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살펴봅니다.
" 그러니까 워리어의 전투 상황에서 몬스터의 특성이 있을 거 아냐. 가령 고블린의 경우에는 자신보다 큰 덩치와, 자신의 무기를 상회하는 방어력을 지닐 경우에 공포에 빠지기 쉽다던지 하는. 약한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방법 말야. "
저기 보이는 학생들 틈에 끼어들어 전투 방법에 대해 토론해도 좋을 것이고
[ 3교 회장들의 전투 방법 분석을 통한 3교 친교 대련에서의 승리 플랜 분석 ]
저런 논문을 살펴도 될 것 같고
" 자세가 살짝 앞으로 쳐지네. 이런 쪽으로 기술을 개량해 보는 거는 어떨까? "
" 흠.. 오히려 난 원본 쪽에는 이 자세가 맞다고 봐. 다만 지금 너의 경우에는 원본 사용자보다 키가 작은 편이잖아? 그걸 의념의 도움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단 말이지.. "
아니면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자세를 개량하는 방법도 있겠네요.
**
" 그 이야기 좀 더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
분명 지금 거울을 보면 내 눈은 반짝이고 있겠지...
전투 방법에 대해 토론하면서 '워리어가 몬스터의 특성에 맞춰 약한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방법'에 대한 논제를 내놓고 있는 듯한 학생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말을 걸어봤다.
# 부활동해야 말 걸 수 있는 거면 기술 습득을 위해 망념 50을 투자해 부활동을 해요! 아니면 그냥 학생님한테 말을 걸어봅니다.
**
대화는 망념을 소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번만입니다!
턴손실은 다음에는 방지해주지 않습니다!
" 특별한 이야기는 아냐. 3학년 워리어 심화 수업 중에 몬스터 심화 연구라는 과목이 있는데 거기서 나온 특징들로 이야기하는 중이야. "
즉, 몬스터들마다 각자의 특징이나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워리어의 경우는 이런 특징이나 성향을 이해할 수 있다면 다수의 적을 상대로도 우위를 점한 상황에서 방어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로 보입니다.
동아리 활동을 합니다!
망념이 50 증가합니다!
아직.. 잘 모르겠네요!
4.1.3. 21~30회 ¶
- 21: 163-164스레
- 부활동 하는 사람 찾았을 때 나온 사람이어서 순간 망념 투자 안 하면 뒷내용을 못 듣나? 라고 생각했다는 모양입니다. 캡틴의 자비에 감사 또 감사합니다, 라고 전해달라네요.
" ...아하. "
...나 저 수업 듣던가?
왜 나 내가 듣는 수업 모르지... 🤦♀️
아무튼, 미리 몬스터의 특징에 대한 이론을 배워 놓으면 그걸 이용할 수가 있단 거군.
예시에서 나온 고블린은 몸집이 큰 상대한테 공포를 느낀다고 하니까, 빠르게 길을 뚫어서 흩어 버려야 할 때는 몸집이 큰 모습으로 위장하는 게 좋을지도 몰라. 마도를 가진 서포터라면 가능할까. 하지만, 평소에 파티 사냥을 하는 경우에는 공포를 느낀 나머지 어그로가 풀려 버릴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몸을 움츠리는 게 좋겠지. 무기를 상회하는 방어력을 지닐 경우에 공포에 빠진다면, 좋은 방어구를 가진 아군이 있다면 다른 아군보다 앞에 나오도록 오더하는 게 좋을까? 아니, 그건 최악을 가정하는 거니까. 그보다는, 아예 공격을 맞아주지 않고 회피기동을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 점에서 대방패를 쓰고 공격을 다 받아내는 진화는 이득을 보기 어려운 적이겠는걸... 어그로 기술이 있다면 당장은 괜찮겠지만 어그로가 쭉 가는 건 아니니까. 진화를 만나면 얘기해 줘야지. 흠... 마저 고블린 생각을 해볼까. 다수의 고블린을 상대할 때 최적의 환경은 좁은 길일 것 같아. 일단 좁은 길이란 점에서 상대는 다수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몸을 움츠린 채로 적게 오는 적 정도는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내가 가로막고 있으면 뒤쪽도 지킬 수 있고... 하지만 근접 랜스는 공격 자체를 못 하겠네. 워리어는 랜스의 역할을 일부 수행하기도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야. 차라리 랜스를 앞세우고 뒤쪽에서 상황을 살피며 오더를 내리는 게 나은 상황이 있을지도...
...생각이 너무 갔잖아.
그리고 열중하다 보니깐 벌써 망념이 99. 피곤해...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 일단 감사인사는 하고 아까 자세 개량하던 분들께 가서 "기술 개량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는 건가요?" 하고 호기심을 표출해봅니다.
**
" 그렇다고도 볼 수 있지. "
꽤 친절히 대답해준 부원은, 신입이 말을 걸어준 것이 내심 뿌듯한 눈치입니다.
" 사실 완전히 같다고 보긴 힘든 게 쟤네가 연습하는 거는 방향실존기술이거든. 방금 쟤네가 재현하려고 한 기술은 천근격이라는 기술이야. 일시적으로 강한 무게로 내려치는 기술인데 기술의 발전 과정이 조금 다른 것 같다고 원형은 다르지 않았을까 하면서 수련하고 있는 거지. "
아하.
**
" 아하... "
" 창시자가 일정한 규격에 맞춰 기술을 만들었더라도, 몸에 맞게 사용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거나 하면서 조금씩 바뀌면서 발전하기도 하고 틀어지기도 하는... 그런 걸 연구하고 있는 걸까요? "
비아주는 '캐릭터는 아하 하는데 전혀 모르겠다. 아무말 하겠다.'라고 하고 있지만요.
앗 내가 무슨 소릴 하는 거람?
아무튼 그렇게 답했다.
# 대화를 해요 대화
**
" 그렇다고 볼 수 있지. "
네. 그렇다네요.
이 사람도 슬슬 바빠보이니. 다른 활동을 해보도록 하죠.
**
앗.
" 바쁘신데 너무 오래 붙들고 있어서 죄송합니다. "
# 꾸벅 고개를 숙이고 상점가로 이동! 딜리버리 서비스 막차 제바알!
**
딜리버'이'로 이동합니다.
**
뭐랄까 충동적인 생각으로 상점가에 와버렸네...
이게 우주의 의지란 건가 뭘까.
아무튼 살 것도 없고 터벅터벅 나의 인생... 이 아니라 상점가를 걷다가.
아니 이게 뭐람?
" 아, 전에 그 지훈이랑 함께 찾아뵈었던 분... "
조금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근데 상점가에서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라...
그러고보니 그림을 그리는 의념이라고 했었지. (이젠 아님)
" 전시회 중이신 건가요? "
그리고 조심스럽게 첫째 그림에 다가가 감상해본다.
세상을 구하길 바라는 고독한 영웅.
하지만 정작, 그 세상에는 영웅의 자리는 없다.
신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나요?
그렇게 모든 것을 바쳐야만 영웅이 될 수 있나요?
만약 모든 것을 바쳐야만 하는 순간, 나를 온전히 지킬 수는 없어지는 순간, 나뿐만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과 세상의 인연으로부터 나를 끊어내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 기꺼이 나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일부의 나를 희생하겠다 말했던 나는, 영웅이 되길 바랐던 걸까요, 거짓말쟁이가 되었을 뿐인 걸까요.
문득 그 연한 황금빛이, 진한 붉은빛이, 누군가와 겹쳐보였다.
역시 기분탓이겠지 하고 생각해버렸지만.
그리고 두 번째 그림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복을 입은 남녀, 섬세하게 뻗어오른 가지의 다채로운 홍매화와 연꽃이 마주보듯 옷깃에 실려 있는 모습.
그 모습을 둘러싸지만 과하지 않은 존재감으로 개나리꽃이 밝게 빛나고 있다.
발그레한 두 사람의 모습 하나하나가 서로를 바라보며, 부담스럽지 않은 열기로 서로를 보담는다.
작은 꺾임과 휘고 굽은 곳마다 빛과 그림자가 고여드는 섬세함이 눈에 띄었다.
정말, 보는 나마저도 더워질 것 같은 이 그림의 주인공들 중 하나는...
확실한, 아는 사람이었다.
이런 표정을 짓는 걸 보지는 못했지만.
이 그림이 그려졌을 땐 이렇게 웃고 있던 사람인 걸까, 아니면 그림을 그린 사람이 상상했던 미소일까.
거기까지 보니, 어깨에 짐을 진 영웅의 그림이 겹쳐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짝사랑이 아니어도 외로이 사랑을 할 것이랜다. 마음은 가깝고도 멀지만 따스했다더라.
느슨한 미소를 지으며 그림을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역시 한 번 더 만나봐야겠다. 그 사람.
#[ 봄과 함께 ]와 [ 영웅의 형상 -고독한 자- ]를 감상합니다.
- 22: 166스레
- ...그림도 봤고, 이제, 아.
의뢰 구해야지...
순서가 좀 바뀌긴 했지만, 원래 의뢰 구하고 인원을 구하는 게 맞고.
지금이라도 찾아보자...
# 가디언칩으로 의뢰를 검색해봐요..
**
검색합니다!
[ 봄은 그 곳에서 파편이 되었다. ]
[ 테일즈 오브 아이덴시아 ]
[ 네게 하는 거짓말 ]
검색됩니다!
**
...다 어려워 보이는 이름인데?
은후야...
...은후야... (텔레파시)
# [ 테일즈 오브 아이덴시아 ]를 확인합니다.
**
▶ 테일즈 오브 아이덴시아
▶ 일반 의뢰
▶ 최대 인원 : 3인
▷ 게이트 '그 목소리'를 클로징할 것.
▶ 보상 : (개인당)6000GP
**
...!
어디선가 은후가 진짜로 텔레파시를 보낸 것 같은 기분이...!
# [ 봄은 그 곳에서 파편이 되었다. ]를 확인합니다.
**
▶ 봄은 그 곳에서 파편이 되었다.
▶ UGN 발급 의뢰
▶ 최대 인원 : 3인
▷ 게이트 '먼 과거에서 걸린 전화'를 클리어하시오.
▶ 보상 : (개인당)7000GP, (1인 한정)낡은 전화기
**
더 어려워 보이는 게 나왔는데...
식은땀을 흘리면서, 마지막 의뢰를 확인해본다.
# [ 네게 하는 거짓말 ]를 확인합니다.
**
▶ 네게 하는 거짓말
▶ 일반 의뢰
▶ 제한 인원 : 3인
▷ 게이트 '낡은 동화책 이야기'를 클리어하시오
▶ 보상 : (개인당)6000GP
- 23: 168-169스레
- # [ 봄은 그 곳에서 파편이 되었다. ]를 수락합니다.
**
의뢰가 수락되었습니다!
**
# 청월 트레이닝 룸으로... 더는 기술을 주지 않는 허선생님을 만나러 갑니다!
**
트레이닝 룸으로 이동합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수련을 하고 있습니다.
**
좋아... 트레이닝 룸에 도착했다.
허수아비를 찾아 좀 두리번거리다가...
아 저기있네 허수아비!
# 허수아비를 보조용 모드로 온!
**
허수아비가 보조 모드로 변경됩니다.
어떤 행동을 시도해보나요?
**
혹시... 지만 먹힐지 모르겠네.
에잇, 한 번 해보는 거야.
# 망념을 5 쌓아 장난스런 지휘(F)로 이동방향을 지시해봅니다. 저리 갓!
**
허수아비는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손을 내밉니다.
어.. 뭐지? 때리려는걸까요?
조심스럽게 사비아가 손을 잡자, 다시 허수아비는 손을 떼고는.. 사비아의 말대로 지휘를 따라줍니다.
아하..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장난스런 지휘는 강제 지휘 계통의 기술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직접적으로 하는 지휘와는 다르게, 간접적으로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것 같네요.
다만 그걸 말로 하지 않더라도 의념을 움직이는 것으로 간접적인 의도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24: 171스레
-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요
내 악수(握手)를 받을 줄 모르는 ─ 악수(握手)를 모르는 왼손잡이요
그에 비하면 악수를 받아주는 허수아비는 거울 속 나에 비해 훨씬 더 훌륭한 친구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무슨 소릴 한담?
아무튼, 이건 강제로 상대를 움직이는 유형의 기술은 아니구나.
직접적으로 어떤 행동을 어떤 타이밍에 한다-라는 걸 지시하는 게 아니라, 대충 어떤 행동을 하게 하고 싶은지 유도하고 알려주는 느낌? 장점이 있다면 말로 지시하지 않고도 의도를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단 걸까.
예를 들면 말로 뜻을 전할 수 없을 때 정확히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던지.
...당분간은, 오더를 내릴 때가 있다면 말로 하는 쪽이 더 도움될 것 같긴 하지만, 이것도 수련하다 보면 쓸 날이 올 수도 있겠지.
# 망념을 5 쌓아서 장난스런 지휘(F)로, 말을 하지 않고 10초 후 손을 흔들어봐─라는 것을 전달해보려 합니다.
**
나요.
나랑 닮고, 나를 똑 닮은 데다가, 내 얼굴을 하고, 내 입술을 움직이는 나요.
내 말을 좀 들어주오.
그런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사비아는 허수아비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허수아비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즉, 어딘가로 유도할 수는 있지만 그보다 자세한 행동을 시키기에는 랭크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
...이제, 솔직히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바지만, 준비는 끝났다.
슬슬 갈 준비를 하자.
# 온사비아/미나즈키 하쿠야/신은후 파티 결성!
**
파티가 결성됩니다.
지금부터 모든 파티 레스가 통합됩니다!
**
【신은후】
- 재현형 검색중
- oh 그렇군요 확인 완료입니다. 문제는 하쿠야주 오셔서 이번 턴에 연락 못할것 같아요... 기껏 데이터 찾아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수휘씨. 성학교 4학년이셨지. 성학교도 막 시험이 끝난 직후이지만, 4학년이니 바쁠것이라 생각해 청년은 그에게서 먼저 연락이 오길 기다리거나, 나중에 따로 연락하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가디언 넷을 열어, 재현형 게이트에 대해 검색해본다.
#가디언 넷으로 [재현형 게이트] 검색해봅니다.
**
[ 재현형 ]
(영웅서가는 만 17세 이상 이용가에 나오는 수위를 준수하고 있으며 아마 직설적인 욕설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어장의 수위 또는 여러분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서술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이 곳에 적힐 욕설은 여러분의 상상 하에 게이트를 만든 존재에 대한 욕설과 단군 이래로 내려온 한민족의 정체성을 곰이 아닌 개와의 이중사촌으로 만들며 그 모든 것이 모여 어머니와 아버지의 정체성을 하프 댕댕으로 변신시킬 정도의 욕설을 써두었다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ㄴ 재현형 피해자 모임임?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갈 곳 아님 ㄹㅇ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아니 사건 몰입이나 현장감이나 이런 거는 문제가 없지. 근데 문제는 이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 멘탈을 깎아도 난 개입을 못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냐고?재현형이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존슨...기억할게!!!!!!!!!!!!!!!!!!!!!!!
**
...?
[님들아 재현형은 왜 개입을 못하는거임?]
있던 사건 그대로 재현해야해서? 그럼 의뢰받아 들어간 게이트 내용이 X되는거여도 걍 내용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거임????
#가디언 넷에 질문글 한 번 써봅니다.
**
ㄴ 개입하려고 하면 게이트가 붕괴됨.
ㄴ 사실 개입이 완전히 불가능한 거는 아닌데, 어느 기점을 넘어가면 게이트가 점점 붕괴되거나 난이도가 기괴하게 높아짐. 즉 정해진 일정 기준치를 넘는 순간 게이트가 미쳐 날뛰기 시작한단 의미도 됨.
ㄴ 그냥..ㅋㅋㅋㅋㅋ눈치 챙겨 게이트 수준.. 하..
ㄴ 뭐.. 특정 트리거를 타면 ㄱㅊ긴 함. 그게 쉽냐 물으면.. 아니..
# 은후가 검색을 하고 있으므로 한턴 대기...
**
# '먼 과거에서 걸린 전화' 게이트에 돌입합니다.
**
돌입합니다!
..
이 마을에는 특별한 전화기가 하나 있어요. 어른들은 절대 가지 말라는 깊은 숲에는 작은 오솔길을 지나고 나면 커다란 나무를 베고 남은, 나무 밑동 하나가 있어요. 그 위에는 낡은 전화기 하나가 있는데 가끔 마을 친구들이 거기서 전화기를 들고 소꿉놀이를 하거나, 서로 장난을 치곤 했어요. 저는 그런 친구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바보도 아니고, 전화도 걸려오지 않는 전화기에 대고 여보세요? 하고 얘길 한다고 누가 말을 해주겠어요?
그렇지만.. 이건 비밀이에요? 사실 그 전화기에는 특별한 비밀이 있어요. 우리 엄마는 아주 먼 과거에 우리 아빠가 먼 곳에 떠났다고 해요. 먼 곳에 떠난 아빠는 이따금 나의 생일에 옷을 보내주시거나 용돈을 주시라고 말하며 돈을 주셨다고 해요. 엄마의 그런 말에 왜 나는 아빠를 만나지 못해? 하고 얘기했지만 엄마는 아빠가 너무 바빠서 그렇다고 해요. 그래서 나는 가끔 우리 아빠를 상상하곤 해요. 저는 마을 아이들 중에 힘이 제일 세요! 그러니까 우리 아빠도 저처럼 힘이 세겠죠? 할머니는 제가 아빠를 닮아 큰 사람이 될거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 아빠는 아주 큰 키와, 멋진 얼굴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 우리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이따금 할머니에게 물으면 아빠는 너무 바빠서 들어오지 못한다는 말만을 했어요. 어느 날은 또 그게 너무 화가 나서 가족들과 싸우고 밤늦게 숲으로 도망간 적이 있어요.
훌쩍이며 오솔길을 걷고 있을 때, 너무 걸어 어두운 숲속에 혼자 남겨졌어요. 그게 또 무서워서 울음을 터트렸는데 저 멀리서 전화가 걸려 오는 거 있죠? 그 소리를 들으면서 천천히 그 방향으로 갔어요. 그 곳엔 전화도 걸리지 않는 전화기가 울리고 있지 뭐에요? 저는 조심스럽게 전화기를 들었어요. 곧 짧은 침묵이 이어지고, 어떤 목소리가 들렸어요.
여보세요? 듣고 있나요?
저는 깜짝 놀라 전화기를 두고 도망가고 말았아요. 결국 엄마와 마을 사람들에게 잡혀 마을로 돌아왔죠. 볼기짝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맞았지만.. 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전화기에서 들린 목소리는 아주 멋진 남자 목소리였어요! 그 목소리는 상냥하면서도 부드럽고, 또 아주 멋졌어요!
그리고 얼마 뒤. 가족들 몰래 숲에 나왔을 때.. 전화기가 울렸어요! 저는 그 전화를 받았어요.
여보세요? 듣고 있나요?
여보세요. 듣고 있어요.
누구니?
저는 천 짜는 아멜라네 아들 칼이에요.
.. 아멜라? 네가 칼이니?
네! 제가 칼이에요!
오.. 이럴수가..
그 목소리는 매우 놀란 것 같았어요. 아주 잠깐의 흐느낌이 들린 직후에, 그 목소리가 저에게 물어왔어요.
혹시.. 네 할머니의 이름이 요한나시니?
네! 아저씬 누구세요?
오.. 이런.. 신이시여..
그 목소리는.. 저에게 말했어요.
" 나는 네 아빠란다. 칼. "
......
.....
..
.
자 지금부터 세 사람은 역할을 정해야만 할 겁니다.
마을 농사꾼
타지에서 온 상인
떨어진 곳에서 약초를 채집하는 과부
역할을 정하여 주세요!
- 25: 176스레
- # 역할을 정했습니다.
마을 농사꾼 - 미나즈키 하쿠야
타지에서 온 상인 - 온사비아
떨어진 곳에서 약초를 채집하는 과부 - 신은후
**
덜그럭, 덜컹, 덜컹.
마을에는 낡은 마차가 들어오는, 조금 넓은 길이 있다. 이따금 타지의 상인들이 여러 물건을 짐마차에 담아 마을로 가져오기 위한 길이었다. 유독 말을 잘 듣지 않는 말에게 채찍질하면서 사비아는 마을로 향했다. 유독 떨리는 첫 상행이었다.
마음이 떨리면 그 반동이 몸에도 찾아 온다고 하던가. 어설픈 말 모는 솜씨가 썩 좋지 않았다. 긴장한 티가 혁혁한 모습이었다.
저 바깥에는 아주 긴 전쟁이 있었다. 두 도시가 서로의 분쟁으로 무기를 겨누고 으르렁거렸고, 결국 죽은 사람의 수가 수도 없이 많아진 뒤에야 전쟁은 마쳤다. 그 전쟁이 마친 틈을 노리고 돈을 벌기 위해 말을 몰고 있는 자신이었지만 그런 중에 돈을 벌고자 하는 것에 딱히 마음을 쓰진 않기로 했다. 결국 돈이 있어야만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고, 더 큰 돈을 바랬으니 말이다.
곧 마차가 마을로 들어섰다. 별 볼 일 없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그런데로 첫 상행의 위치로는 나쁘지 않은 위치였다. 마을의 광장에 물건을 늘여놓고, 상인은 첫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귀를 쫑긋 세워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모아보았다.
"그 소식 들었어?"
"아유. 벌써 들었지."
마을 아낙네들의 입은 한없이 가벼웠다. 등에 기다란 괭이를 걸친 채 하쿠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봤다. 열에 아흐레는 쓸모 없는 마을의 이야기들이었지만 가끔 하나는 들어줄 만한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분쟁이 끝났다지 뭐야?"
"그래? 하이구.. 길기도 했어."
"그러니까 말야.."
전쟁이 끝났던가. 하쿠야는 밀짚모자를 쓴 채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길었던 전쟁이 끝나고 산 생존자들이 돌아가기 시작했더랬다. 그런 소식에 신경이 쓰일 리가 있는지. 그냥 시원한 맥주나 한 잔 들이키고 싶었다.
"하쿠야 씨는 누구 기다리는 사람 없어?"
하쿠야는 웃으며 고갤 저었다. 잘 모르겠다는 티를 냈다. 그럴 수밖에. 하쿠야는 아는 것이 없었다. 얼마 전에 마을로 왔고, 겨우 작은 땅을 사다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까. 하쿠야 씨가 농사 짓는 곳. 거기 그 땅 아냐?"
"하구.. 그 댁도 불쌍하지. 아내 잃고서 마을을 두고 떨어져서 살겠다고 나간 그 댁 말여?"
"그래.. 이름이.. 은후였나..?"
"맞어맞어."
그런 마을 아낙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깰 으쓱인 하쿠야는 다시금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셋은 천천히 눈을 떴다. 시간이 꽤 지난 듯 싶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스며들어 세 사람은 각자의 역할을 자각했다. 농사꾼과, 사별한 연인이 있었던 남자, 마을 초행의 상인. 그런 세 사람의 역할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이제 찾아봐야 할 것이다.
온 사비아
상행(C)
- 기초적인 상행과 관련된 기술을 획득한다. 재현형 게이트의 효과로 획득하였다.
미나즈키 하쿠야
농업(C)
- 농업과 관려된 전반적인 기술에 대한 이해. 재현형 게이트의 효과로 획득하였다.
신 은후
사냥(C)
- 짐승의 사냥에 대하 전반적인 기술에 대한 이해. 재현형 게이트의 효과로 획득하였다.
획득한 기술들은 게이트에서 탈출하는 순간 모두 삭제됩니다.
- 26: 179스레
- 【신은후】
...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남자인가.
눈을 뜬 은후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그것이었다. 자신의 역할. 다만, 단순히 그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뭘 해야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이 역할을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도 중요한 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료의 수집이다.
서서히 의념의 힘을 끌어올려 관찰력을 강화한다.
연인을 어떻게 잃었는가? 전쟁통에서? 아니면, 전쟁과 무관하게 다른 이유로?
왜, 남자는, 은후 자신은 연인을 잃고 마을에서 떨어져 살기로 마음먹었나? 단순히 다른 사람들을 보기 괴로워서?
모든 이유를 찾을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삶의 터전에는 사람이 그동안 살아온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기 마련이다.
동화 속의 이야기라도, 그것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단... 망념 20 쌓고 관찰력 강화 후 주변을 둘러봅니다(자료수집)
**
【신은후】
주위에는 낡은, 헤진 것들로 가득했습니다.
연인이 떠난 직후,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았는지 듬성듬성 찢어진 옷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고 입고 있는 옷은 억지로 옷을 기워낸 것 같은 티가 선명히 났습니다.
집 안에는 여러 동물의 가죽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는데, 그 솜씨는 좋다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벽에 걸린 낡은 엽총 하나 정도만이 그럴싸하게 관리가 되고 있었던 흔적이 보입니다.
**
【신은후】
…
여러 의미로 연인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는다. 남자는 자신이 입고 있는 너덜너덜한 옷을 만지며 입술을 깨물었다.
널린 옷들의 상태를 봐선, 마을 사람과의 교류는 일절 하지 않고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가던 확률이 높아 보였다.
마을로 주기적으로 내려갔다면, 적어도 옷을 수선하거나 할 순 있었을 테니까.
낡은 엽총은 그나마 관리가 되어있고, 사냥 기술에 관한 지식이 있는 것을 보아, 마을에서 떨어진 이후엔 수렵을 통해 생활을 이어나갔을 확률이 높아 보인다.
다만, 동물의 가죽은 상태가 좋지 않고 전문적인 기술이 없는 것을 보아, 수렵 활동 자체는 예전부터 해 오던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해야 할 역할은, 마을 사람들과 최대한 만나지 않으면서, 마을 밖, 깊은 숲속을 다니는 아이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짐승을 사냥하는 것인가.
아니, 아직 그것까지 생각하는 건 이를지도 모른다.
#이것만… 시도해볼래요…. (사실 해보고 싶었음) 망념 20 쌓아서 판별(F) 사용해봅니다.
【온사비아】
마을 초행의 상인. 그것이 지금의 나의 역할이다.
멍하니 눈을 떴을 땐 시간이 조금 지나 있었지만, 여인은 덧씌워진 아래의 자기 자신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돌려놓는다. 적어도 지금은 들춰야 할 때가 아니다. 이곳은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재현형 게이트기에.
'일단 더 뭔가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좋겠네. 상인이니까... 물건을 팔면서려나.'
...마차와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물건은 어디 있지? 어떤 물건을 가져왔지? 얼마나 있지? 그것도 모르고서야 물건을 팔 수는 없다.
#광장에 늘어놓은 것들과 가지고 있는 물건을 확인합니다.
**
【신은후】
사실, 판별을 사용하여도 딱히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F의 숙련도로는 정확한 판단이 어려울 듯 보입니다.
【온사비아】
대부분의 물건들은 사람들의 일상에 필요한 옷가지, 랜턴, 초, 비누 등등의 물건들입니다. 비싸다고 보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헐값에 넘기기도 어려운 물건들이군요.
곧 마을 안쪽을 느긋하게 구경하던 사비아에게 누군가가 다가옵니다. 인자한 주름이 자글히 피어 있는, 늙은 할머니가 사비아의 마차를 바라보며 묻습니다.
" 상인 양반. 장사 하시우? "
**
【신은후】
은후주가 모니터 뒤에서 수련 안 하고 게이트 들이박기 한 걸 후회하고 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이것이 준비 안됨 팟이다!
알 수 없다고 여기에서 더 시간 낭비를 할 순 없다.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까. 남자는 벽에 걸린 낡은 엽총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고 문밖으로 나간다.
#엽총 들고 문밖으로 나갑니다. 숲 속 을 걸 어 요
【온사비아】
여인은 손때가 타지 않도록 눈으로만 물건을 살펴봤지만 딱히 특이한 점은 없었다. 생필품은 어딜 가나 필요한 물건이고, 전쟁이 끝난 지금 팔기엔 그래서 더 좋은 물건들일 것이다. 라는 걸 짐작했다. 그 이상 얻을 것도 없기에 시선을 마을 쪽으로 돌렸다.
마을을 찬찬히 바라보다가 자신이 상인 사비아로서 처음으로 맞는 손님, 늙은 할머니가 온 것을 보고 여인은 버릇처럼 머리카락을 옆으로 살짝 잡아 넘기고 미소를 지었다. 여인은 늙은 사람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하는 것에 가까웠다. 어떤 말투를 쓰면 좋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평범하게 경어를 골랐다. 예의를 차려서 나쁠 것은 없다.
" 물론이죠. 뭔가 원하는 물건이 있으신가요? "
#대화
**
【신은후】
참새들.. 은 이미 다 죽었는지 꽤나 조용합니다.
마을 어귀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집에는 누군가가 찾는 흔적은 없습니다. 짐슴들의 흔적도 딱히 보이지 않는군요.
어디로 갈까요?
1. 마을로 내려간다.
2. 숲의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3. 호수로 간다.
【온사비아】
" 비누를 좀 사려고 하이. 우리 영감이 하도 꼬질허이 맘에 안 들으서. 박박 닦는 걸로 주시게. "
할머니는 스윽 마차 안을 바라보다가 비누가 쌓여 있는 쪽을 가르키며 말합니다.
**
【신은후】
...다른 사람들이 궁금하지만, 마을로는 내려가지 말자.
호수에는 굳이 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남자는 천천히 깊은 숲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 2. 숲의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온사비아】
" 고생이시겠네요. 아무리 좋은 비누를 사도, 깨끗해지려면 꾸준히 닦는 게 중요한 거에요. "
여인은 비누가 쌓여 있는 쪽에서 괜히 좀 예쁜 모양을 골라 손에 쥐고 다시 할머니가 있는 쪽을 돌아보며 미소지었다.
'긴장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첫 손님이 할머니시니깐 뭔가 봉사활동 나온 것 같네...'
" 아무리 그래도 너무 박박 닦으면 나이 많으신 분들은 피부가 약해서 아플 수 있어요. 꼼꼼히 닦으라고 전해주세요. "
#적당한 가격을 부르면서 첫 판매를 개시!
**
【신은후】
숲의 깊은 곳으로 이동합니다.
곧 주위 시야가 천천히 어두워지고, 위험한 감각이 등 뒤를 스칩니다.
숲의 외곽과는 달리 숲의 깊은 곳은 정말로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온사비아】
몇 개의 동화를 지불하고 할머니는 비누를 사갑니다!
그리고.. 곧, 아무 소식도 없어지는군요..
**
【신은후】
너무…. 깊은 곳까지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요? 은후주는 띵킹을 하고 있습니다. 띵-킹...
이런 곳을 아이들은 잘도 다니겠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엽총을 금방이라도 쏠 수 있을 정도로 자세를 바로잡으면서, 길을 찾는다.
# 나 찾는다. 작은 오솔길…. 괜찮아요. 이 팟은 준비 안 됨 팟이야
- 27: 184스레
- 【신은후】
이런 곳을 아이들은 잘도 다니겠다! 주변이 어두워지자 자리에서 잠시 멈추고 엽총을 금방이라도 쏠 수 있을 정도로 자세를 바로잡으면서, 청년은 조심스럽게 의념의 힘을 끌어올렸다.
짐승의 움직임이던, 사람의 움직임이던, 청력을 강화해 주변에 무언가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한다.
# ...우선 망념 5 쌓아 청력 강화해서 무슨 소리가 들리나 확인합니다
【온사비아】
" ...결심하자마자 그냥 넘어가버리면 어떻게 해─. "
중얼거리면서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냥 팔아버리면 안 되었는데...
됐다. 이 다음 손님은 좀 더 얘기해볼 만한 사람이길 바라볼까...
#대기대기
**
청각을 강화해보지만 특별한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아주 조금이지만, 띠- 띠- 하는 알 수 없는 전화음이 들리는 것 같긴 하네요. 다만 방향을 유추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온사비아】
기다리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사비아를 두고 지나갑니다.
어쩐지 관심사에서 밀려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따금 마을 아낙네들이 눈길을 주곤 하지만,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보다는 뭐가 있으려나 하고 돌아보는 것에 가깝게 느껴지곤 합니다.
- 28: 184스레(2)
- 【신은후】
…
위치를 알기엔 너무 희미하게 소리가 들려온다….
이대로 더 숲속으로 들어가는 건 위험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게이트의 효과로 사냥 스킬이 생겼다고 해도, 사비아 선배나, 랜서인 미나즈키군이 없는 지금, 운이 나쁘게 전투 상황으로 돌입한다면 혼자만의 힘으론 힘들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슬슬 돌아가 봐야겠지.
다만….
#가디언 칩으로 파티원 망념 체크합니다.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도 파티원 전원의 체크가 가능한가요?
【온사비아】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게 있었나? 수업 내용을 떠올려 보면 도움이 될지도 몰라!
곰곰...
# 망념을 50 쌓아 청월 수업 중 재현형 게이트에 관련된 내용이 있었는지 생각해봅니다. 인스턴트 복습!
**
【신은후】
문제 없습니다.
가디언칩은 은후의 확인에 따라, 파티원들의 현재 망념 수치를 분석해줍니다.
하쿠야 : 13
사비아 : 16
은후 : 38
입니다!
【온사비아】
복습을 시도하지만 사비아는 천재도 아니고, 이 곳은 기숙사나 학교가 아닙니다.
실패합니다!
- 29: 187스레
- 【온사비아】
...게이트 한복판에서 수업 내용 회상이라니 잘 떠오르지 않는 것도 당연한가.
" 자아, 이것저것 생활에 쓸만한 게 있답니다. 한 번씩 보고 가셔요─! "
조금 어색한 목소리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열과 성을 다해 한 번 호객을 해본다. 손님을 불러오지 않으면 이 상황은 헤쳐나갈 수 없어!
#망념을 5 쌓아 상행(C)를 발동해 호객해봅니다. 관련된... 거 맞겠죠?
【신은후】
더는 위험할 수도 있는 숲에 있을 순 없다. 일단 다른 곳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호수로 가 보자.
#호수로 이동합니다.
**
【온사비아】
상행과 호객은 별개입니다. 상행은 돈을 벌고, 거래를 하는 것에 대한 여러 지식들이 포함된다면 호객은 사람을 끌어모으고, 사람에게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비아가 할 수 있는 호객 행위로 가장 좋은 행동이 있습니다.
자신의 물건이 얼마나 좋은지, 다른 물건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설명해보는 것도 방법이라 할 수 있겠죠?
【신은후】
호수로 이동합니다.
햇빛을 받아 긴 천 위로, 반짝이는 모래를 뿌린 것처럼 아름다운 호수로 찾아갑니다. 호수에는 몇몇 아이들이 멱을 감고, 장난을 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직 아이들이 눈치를 챈 것처럼 보이진 않군요.
**
【신은후】
...전쟁이 막 끝난 곳이다. 총을 들고 아이들에게 다가갔다간,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그렇게 판단한 은후는 주변을 둘러보아, 엽총을 숨길만 한 법한 곳을 찾아본다. 풀숲 사이라던가, 바위 사이라던가…. 아이들이 눈치채기 전에 숨겨야 한다.
#엽총을…. 잠시 숨길만 한 곳을 찾아봅니다….
【온사비아】
호객을 한다면, 자신의 물건이 상대한테 필요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게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좋은 걸까? 이런 부분엔 문외한인지라 잠시 속으로 끙끙거렸다. 조금 편하게 생각해보면... 어차피 이 물건들은, 저 사람들한테 필요한 것이다. 상인이라면 살 사람이 없는 물건을 싣고 오지는 않을 테니까.
일단 타겟은 조금이라도 이쪽에 관심을 보여 주는 분이다. 나는할수있다나는할수있다나는상인이다나는상인!!
" 자, 거기 계신 숙녀 여러분. 혹시 예뻐지시는 거, 관심 없으신가요? 제가 오늘 가져온 이 비누로 말할 거 같으면, 절대 다른 평범한 상품과 같은 게 아니에요. 저 멀리서 온 귀한 약초가 들어 있어 아름다운 숙녀 분들의 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해 줄 상품이랍니다. 한 번 보고만 가세요. "
그렇게 말하면서 (양심상)조금이라도 예쁜 비누를 꺼내서 보여준다.
진짜 그런 거 들어 있냐고?
몰라.
이건... 이건 거짓말... 이긴 하지만 착한 거짓말이다... 거짓말도 잘만 하면 논 닷 마지기보다 낫다더라. 어차피 살 거 좀 더 좋은 기분으로 물건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립서비스...... 표정에만 드러나지 않길 바란다.
# 과감한 개뻥을 칩니다. ㅠㅠ
**
【신은후】
은후는 익숙하게 가디언 칩의 기능으로 총을 수납합니다.
수납되었습니다!
【온사비아】
" 어머. 이 사람 봐. "
언제나 호객의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칭찬하는 것이고, 그게 어렵다면 상대가 바라는 것을 찌르는 것도 되죠.
사비아는 40에 가까워보이는, 통통한 여인에게 비누를 내밀며 가볍게 호객행위를 시작합니다.
" 내 나이가 벌써 서른 일곱인데, 벌써 애가 둘이랍니다? 예뻐져서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
하지만 그녀는 기분이 좋은지 비누를 흘끔흘끔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곧, 다른 여성들도 천천히 비누를 살피기 시작하네요.
**
【신은후】
아니 이게 인벤토리에 넣어지네? 가디언 칩은 대체? 인벤토리는 대체??? 라는 은후주의 감상은 뒤로 하고
좋아, 인기척을 내면서 호수로 내려간다. 처음부터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몰꼴을 보아 경계를 사기 좋으니, 우선 세수라도 하는게 좋겠지...
#호수에 발을 담그고 세수라도 합니다. 현실에서 은후주가 더워서 세수하고 싶어서 그런건 아니고....
**
【신은후】
은후가 차가운 물에 얼굴을 씻는 동안, 마을 아이들 몇몇이 은후를 보고 소곤거리는 것이 들려옵니다.
아, 생각해보니 지금 입은 옷은 게이트에 들어오며 변화한 옷이었죠.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그런 옷이기에 아이들의 입장에선 신기해 보이는 모양입니다.
" 아저씨. "
개중에는 용기 있는 꼬마가 다가오기도 합니다.
" 아저씨가 그 사냥꾼 맞죠? "
왠지 이젠 아니라고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
【신은후】
"마을 애들이냐? 참나, 마을을 떠난 사람인데 아직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아이의 말에 쯧, 하고 혀를 차고 그렇게 궁시렁거리다, 몸을 일으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맞아. 그래서, 나한테 뭐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냐?"
#대화합니다
【미나즈키 하쿠야】
미나즈키는 눈을 가늘게 찌푸린 채 밀짚모자의 챙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짜고짜 사비아와 은후를 찾아다니는 쪽은 수상하게 보일 가능성이 있으니 기각. 마찬가지로 농사꾼이 절대 하지 않을만한 행동도 기각.
평범한 행동을 하면서도 게이트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챌 정도로 정보를 수집하긴 해야 하는데... 일단 전쟁이 끝났다고 했으니 이 마을에도 돌아오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있겠지. 이번 게이트에서 신경써야 하는 것이 그쪽일 가능성도 없진 않았다.
이럴 땐 친구의 친구도 나의 친구라는 느낌으로 천천히 주위 사람부터 알아보는 게 나을까. 미나즈키는 모자에서 손을 떼고 자신이 아는 다른 농사꾼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망념 10을 들여서 다른 농사꾼이 있는지 열심히 마을 안을 찾아봅니다!
【온사비아】
" 서른 일곱이라니, 거짓말도 참 잘 하셔요. 이렇게 어여쁜 서른 일곱이 세상에 어디 있을라고요. 화사하게 웃기만 하시면 서른 일곱은 무슨, 스물 일곱으로도 보이시겠는데요? "
보통 서른 일곱이 스물 일곱으로 보일 일은 없다. 하지만, 아주머니들은 어지간해선 젊고 예뻐 보인단 말을 싫어하지 않았다. 일부로 그렇게 말해준다는 걸 알면서도 기쁘게 속아주곤 했다. 왠지 친한 아주머니들이랑 얘기하는 느낌이 들어서, 진심과 농담 사이의 말투로 살갑게 이야기를 했다. 조금 뻣뻣한 게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 이제 보니까 이 물건들이 올 장소를 참 잘 잡았구나 싶네요. 질 나쁜 도끼날은 좋은 숫돌로도 백날 갈아 봐야 광이 안 나는데, 빛을 낼 만한 사람들을 찾았으니 물건으로선 얼마나 좋은 일이겠어요. 참, 제가 여기에 물건 팔러 온 사람이긴 하지만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잠시 숙녀 분들의 시간을 빌려서 이야기를 나눠봐도 될까요? 실은, 와본 적 없는 곳에 올 때마다 그 지역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게 소소한 낙이랍니다. "
...입만 열면 거짓말이야. 역할상으로도 이번이 첫 상행인데. 얼굴 빨개진 건 아니겠지 정말로?
이 물건을 쓰면 어떻게 된다느니,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나는 모르니까. 그 대신 상대가 들으면 좋을 만한 말, 일부러 하는 말인 건 알아도 웃어줄 만한 말을 하며, 은근슬쩍 화사하다는 말을 끼워 넣는다. 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해줄 만한 비누와, 화사한 웃음. 이걸 쓰면 화사해진다는 거다. 그걸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고서. 빛나는 무구의 비유를 꺼낸 것도 의도다. 얼굴에서 빛이 난다, 라는 건 많은 장소에서 아름다움의 표현이니까.
그리고 소소한 낙이니 뭐니 하는 말을 꺼낸 건, 당연히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마을의 이런저런 정보를 잘 알기 마련이니까. 전쟁... 도 끝났으니만큼, 민감하게 느껴지는 말은 아니길 바란다.
# 입만 열면 그짓말이 자동으로 나오는 대화
**
【신은후】
" 우리 숲에는 어엄청 커다란 늑대가 있다고 했잖아요! "
은후는, 제공받은 사냥꾼의 기억을 뒤지다 고갤 끄덕입니다.
" 왜 안 잡아요? "
아이는 어려서 겁이 없는 걸까요.. 아니면 늑대가 동네 배 까고 있는 강아지 정도로 아는 걸까요..
【미나즈키 하쿠야】
마을을 돌아보자 꽤 많은 농사꾼이 있습니다.
개중에는 옆 땅에서 농사 짓는 혼스 씨도 있네요.
기억하십시오. 이 시대의 99%는 농사꾼입니다.
【온사비아】
곧 수많은 비누가 팔려나갑니다!
그런데.. 물건 파는 것에만 집중해도 되나요..?
**
【신은후】
어린 아이라는 것은 다 그런 거... 지... 은후는 아이의 말에 피식 미소를 지으며, 상체를 약간 앞으로 숙였다.
"늑대라는 놈들은, 사람들의 생각보다 여기가 좋거든, 상상 이상으로 똑똑하단 말이지."
오른손 검지를 들어, 자신의 관자놀이 부분을 살짝 두드리는 동작을 취하고선 말을 잇는다.
"그래서 함정을 파둬도 귀신같이 요리조리 피해 가고, 잡으려고 해도 마음만큼 쉽지 않아."
"...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냐?"
#대화합니다
**
【신은후】
" 그냥 그런 늑대 가죽을 보고싶어서요! "
아이는 용기 있게 말합니다!
- 30: 192-193스레
- 【온사비아】
내 재능이 무섭다... 숨겨진 장사의 재능...
......이 아니잖아! 얘기를 해본다고 해놓고서는! 비누만 팔고 있어 나!!
이래서는 안 되는 거야! 잘못된 거야!
" 좀 얘기할 수 있을까요? "
이럴 땐 얘기하자고 직구를 날리자!
" 혹시 이 주변에 천 짜는 집이 있나요? 다음 상품으로는 천을 생각해보고 있어서 말이에요. "
# 전에 합의했던 대로 칼네 집을 찾아보자...
【신은후】
은후주도! 은후주도 드립 쳐볼래!
"용기 있는 발언이야."
그렇게 말하고 잠시 웃음소리를 낸 은후는 아이를 향해 물어본다.
"너, 실제로 동물 가죽을 본 적은 있냐? 아니면, 동물은? 마을에서 말고, 저 숲 속에서 말이다"
#대화 계속 합니다
**
【온사비아】
몇몇 아주머니들은 사비아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쑥덕거리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 그거라면 내가 도움이 될 것 같구려. "
그 중에서 한 할머니가 앞장서자,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수긍하고 고갤 돌립니다.
손에 유독 다친 흉터가 많은 것 같은, 나이가 꽤 지긋한 할머니입니다.
" 난 모나라고 한다우. 이 마을에서 방직 하는 사람 중에 내 손을 안 탄 사람이 없지. "
【신은후】
" 네! "
아이는 당당히 얘기합니다!
" 늑대도 봤고, 토끼랑, 여우랑, 멧돼지랑도 만나봤고.. "
아이의 짬밥이 아닌데요?
**
【신은후】
...?
은후는 당돌한 아이의 말에 그저 잠깐 눈을 깜빡깜빡할 수 밖에 없었다.
"요놈, 물건이구먼 물건!"
경쾌한 목소리로 웃어 보이고선 아이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치려고 하면서 말을 잇는다.
"요 녀석아, 그럼 그 동물들이랑 어떻게 만났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겠어?"
#대화 계속합니다
【미나즈키 하쿠야】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알 수 없는 혼스~ 혼스.... 이게 백 년쯤 전에 유행하던 노래였던가? 미나즈키는 이 상황에 별로 도움이 되진 않는 것 같은 생각을 하면서 혼스의 근처로 슬쩍 다가갔다.
그리고 가볍게 인사를 건네려다가, 제일 기본적인 것도 생각을 안 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잠시 멈칫했다.
이웃이니까 친근하게 반말을 써야 하나? 아니면 예의 있게 존댓말? 이 정도는 가디언 칩이 알아서 커버해주나? 그냥 손만 흔들고 가야 하나?
하지만 말실수를 하는 것보다는 기껏 인사하러 와놓고 아무 말도 없이 그냥 가버리는 쪽이 더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았으므로, 침묵이 어색한 수준으로 길어지기 전에 미나즈키는 일단 어떻게든 인사를 해봤다.
"혼스 씨. 어디 가?"
#혼스에게 말을 걸어봅니다!
【온사비아】
방직 하는 사람 중에 손을 타지 않은 사람이 없다. 굳이 유심히 살펴보지 않아도 손에 뚜렷하게 보이는 상처의 흔적. 아마... 이 노인은 이 마을의 방직공들에게 기술을 전수해왔던 사람인 걸까? 우선 그 나이에 경의를 표하며 정중히 인사하고 용건을 물어보려 했다. 게이트에 처음 들어왔을 때 얻은 정보. 천 짜는 아멜라네 아들 칼...
...외지인인데, 대상에 대한 자세한 정보도 없이 바로 이름을 꺼내면 의도를 의심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 혹시, 너무 젊지 않은 사람 중에서 몇 명 추천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 그리고 여행자에게 길을 안내하는 친절을 베풀어 주실 분도 한 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안내인을 구하는 말을 하면서는 일부러 동전을 하나 꺼내들고는 짤랑, 하는 소리를 가볍게 냈다.
어차피 누구라고 이름을 들어도 모르니 대신 마을 길을 안내해주면 보상을 주겠단 뜻이다. 기왕이면 '깊은 숲'에 대해 알고 잘 대답해줄 만한 아이가 있으면 좋겠지만...
# 대화해요
**
【신은후】
아이는 우물쭈물하면서 숨기려고 하는군요!
무언가 비밀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미나즈키 하쿠야】
그는 입에 무언가를 대고 마시는 듯한 손동작을 취합니다.
해석하자면.. 한 잔 하러 간다고 하네요!
【온사비아】
할머니는 미심쩍은 눈으로 사비아를 바라봅니다.
" 상인이 되어서 길을 잘 모른다고..? "
이런, 위기로군요!
**
【신은후】
...
!
무언가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걸 티를 내지 않으려고 피식 웃으면서 은후는 어깨를 으쓱인다.
"뭐, 누구에게나 말하기 싫은 내용은 존재하기 마련이지."
하지만, 상체를 숙여, 자신과 대화하고 있는 아이에게 조용히 속삭임과 동시에 자신의 의념 속성을 불어넣으려고 한다.
"하지만 꼬마야, 나에게 엄청 커다란 늑대의 가죽을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니? 네 비밀을 알려준다면, 내가 널 위해 커다란 늑대를 사냥할 수도 있겠는데 말이지."
#망념 50 쌓아 아이를 대상으로 의념 속성취재
를 사용하려고 합니다. 되… 나…?
【미나즈키 하쿠야】
(당연하게도)마셔본 적은 없고 마실 생각도 없었지만 그래도 혼스를 따라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잔 하러 가는 거라면 당연히 같이 마시는 상대도 있을 것이고, 거기서 정보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빈 자리 있으면 같이 가지?"
미나즈키는 적당히 친한 이웃간에 어울리는 것 같은 거리를 침범하지 않게 주의하며 혼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같이 가고 싶음을 강하게 어필해봅니다..
【온사비아】
" 이 마을에 와본 건 처음이니까요. 위치를 듣는다고 한들 제대로 찾아가리란 보장도 없고, 대뜸 이방인이 문을 두드리기보단 같은 마을의 사람과 같이 가는 편이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요. "
혹시 내가 뭐 잘못했나?
설마... 상인이라면 처음 보는 마을에서도 척척 길을 찾아서 누구누구네 집으로 갈 수 있어야 하는 거야?! 이 게이트에선 설마 그게 상식? 나... 낭패야...
애써 표정에 당황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며, 낭랑한 목소리를 낸다
#오마이갓 비상사태 큰일났다 살려줘요 할머니
**
【신은후】
의념 속성을 통해 은후의 세상은 조금 더 넓어지고, 조금 더 세밀해집니다.
" 그게요.. "
우물쭈물한 표정, 입술이 살짝 뒤틀려 긍정적이기보단 부정적인 비밀, 눈빛이 아래를 향하고 있음. 현재의 상황에 겁을 먹은 듯 보이는 표정. 눈이 아래를 향하면서도 손을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음. 현 상황에 대해 벗어나고자 하는 상황이 강함. 주위에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움직이고 있음. 즉, 말하자면. 이 아이의 말은 거짓이 아니나 그 경험이 무엇인지 겁을 먹은 현재는 알아내기 힘들어 보일 것 같습니다.
【미나즈키 하쿠야】
혼스는 혼자 마시고 싶단 표현을 합니다.
얼굴이 살짝 붉은 것이.. 괜히 끼어들어서 눈새짓을 하지 않으면 좋겠네요!
【온사비아】
할머니는 가볍게 주위를 스윽 둘러봅니다.
마을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고, 이 시대에 성과 떨어진 곳에 세워진 마을은 그 크기나 규모가 매우 작은 편입니다. 즉 10~30개 정도의 집이 모여 일종의 무리를 이룬 것을 '마을'이라고 칭하는 편이죠.
그런데 그런 마을에서 안내가 필요할 정도로 사람이 필요할까요? 그저 누구누구네 집이 어디냐 물으면 알려줄 사람이 여기 한가득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시선이 사비아를 향해, 조금은 부정적인 형태를 띕니다. 혹시 사비아가 가끔 나타난다는 인신매매를 일삼는 상인은 아닌가 하는 시선이 닿습니다.
Tip. 자주 얘기하지만, 주위를 꼼꼼히 둘러보는 묘사는 한 번쯤은 하는 게 좋습니다. 참치의 생각이나 판단과는 다르게, 실제 묘사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죠.
언제나 전쟁이 끝난 직후 혼란스러운 정세에는 사람들의 실종이 자주 일어나는 편이지.
특히 저렇게 전산이 확실하지 않은 시대에는 더더욱 심할 수밖에 없고 말야.
4.1.4. 31~40회 ¶
- 31: 197스레
- 【신은후】
"뭐, 어쩔 수 없지."
아이가 겁을 먹은 지금 상황에서는 알아내고 싶어도 더 알아낼 수 없으리라 생각하며 은후는 상체를 일으킨다.
"난 뛰어난 사냥꾼이긴 하지만, 어린아이한테는 무력을 쓰지 않아."
"...내 이름은 은후라고 한다. 마을 어귀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집에서 살고 있지. 나중에라도, 네가 언젠가 마음이 내키면 날 찾아와주렴. 오늘 일에 대한 사죄로, 멋진 동물 가죽이라도 준비해둘 테니까."
#아이한테 저렇게 말하고…. 몸을 돌려 호수에서 나갑니다...
【미나즈키 하쿠야】
저 얼굴이나 반응을 봤을 때, 아무래도 혼스는 애인이나 그런 관계가 될 예정인 상대를 만나러 가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방해할 순 없지. 억지로 따라가봤자 커플 사이에 끼어서 분위기만 이상해질테고. 미나즈키는 다른 사람을 찾아보는 편이 낫겠다 싶어 손을 흔들며 혼스를 보내줬다.
...이제 뭘 한담. 돌아다니는 것 말고는 딱히 할만한 게 떠오르지 않는데 이렇게 계속 걷기만 하다가는 뭣도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일단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기로 했다.
#망념을 10 들여서 청력을 강화해 뭔가 이거다! 싶은 소리가 없나 확인해봅니다.
【온사비아】
실수했다...
주변에서 보내는 의심의 눈초리를 느끼며, 꾸욱 손을 쥐었다.
자신만만하게 나서 놓고 결과는 이런 걸까.
아니다, 난 이걸로 끝을 내고 싶지 않아.
의심을 받긴 했지만, 아직 게이트가 무너지려는 낌새가 보이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날 의심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날 의심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이미 '최선'은 무너졌으니 차악을 살리는 일만 남았다.
이 모든 사람 중에서 '지금' 나에게 필요한 사람은 저 사람, 모나. 지금 내가 얻어야 하는 건 정보. 어떻게든 부딪쳐서 설득해야 한다. 의심을 받더라도 정보를 얻어야 한다.
이 순간에서 포기하려고, 한 번 실수했다고 포기하려고 난 여기 있는 게 아니야.
" 실례했습니다. 제가 마음이 급해져서 무언가 실언을 한 것 같군요. 그러나, 저에겐 목적이 있습니다. 실은 그게 제가 이곳에 온 이유와도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
그러니, 저는 여러분에게 거짓말을 했던 셈이군요.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손해니까.
" 저는... 천 짜는 집을 찾아온 게 아닙니다. 천이라는 상품도, 아직 다뤄 볼 생각은 없군요. 정확히 말하자면 저는 사람을 찾아왔습니다. 아멜라. 아멜라라는 사람입니다. "
" 저에게 무언가 의혹이 있다고 한다면, 제가 가져온 모든 것을 모나 님께 맡겨 두죠. 그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
깊숙히 고개를 숙이며.
그래, 우둔한 나에게는 정면돌파라는 방식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이걸로 게이트가 흔들리더라도. 무너지더라도.
...그렇게 되면, 어느제 그랬던 것처럼 울면서 나서겠지. 믿고 맡겨 달라고 했던 내 후배들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다. 파티장으로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감수해야지.
#망념 99만큼 매력을 강화하고 설득합니다.
**
【신은후】
호수를 나섭니다.
조금 꺼림칙한 기분이긴 했지만, 유독 아이가 긴장한 것 같은 이유가 있을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은후는 손톱을 가볍게 물어 뜯습니다. 여전한 버릇입니다.
【미나즈키 하쿠야】
청력을 강화해보지만, 딱히 특별한 이야기는 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요.
【온사비아】
그녀는 눈을 흘기며 다시금 한 가지 질문을 합니다.
" 이보우. 젊은이. "
그녀는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천천히 사비아에게 다가옵니다.
" 하나만 물어도 되겠수? "
곧 건장한 남성 둘이 사비아의 두 팔을 붙잡습니다.
" 아멜라를 어찌 알고 오셨수? 그녀가 천을 짜서 판다 해도 보통 천을 모아서 판 거는 이 마을의 촌장인 휴톤 씨라우. 또 어느 수준에 맞지 않는 천은 내가 팔지도 못 하게 했고 말이야. 그녀의 천 실력은 그리 빼어나거나 하진 않다우. 그리고 무엇보다. "
모나는 사비아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 그 가족은 일평생 이 마을에만 살았다우. 도시 밖에 나갈 일이라곤 그 집 아들밖에 없었지. 설마 그 아들에게 들었단 말은 하지 않길 바라우. 그 가족과 전쟁터로 간 것은 촌장네 아들이었으니 말이야. "
기회는 한 번입니다.
이번 대답에 실패할 경우 게이트는 실패 처리됩니다.
캡틴: 정석적인 루트라면 이제 아이와 관련된 정보를 통해 가족과 접근하는 역할은 은후가 하고, 사비아는 그동안 마을 사람들과 친해져야 하는데 말이지..
은후주: 은후도 아이랑 친해질 첫번째 기회를 성급하게 굴다 놓쳐버렸으니... 아쉽게 되었군여
캡틴: 딱히 늦진 않았다고 생각하는 게.. 재현형은 난 길게 보는 편이거든. 내가 괜히 소설 단편 하나정돈 가볍게 나온다는 게 아니기도 하고..
**
【신은후】
(손톱 물어뜯으면 정훈이가 힝 하는데 라는 은후주의 몸짓)(하지만 말을 듣지 않는 은후)
다른 사람들은? 차도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가디언 칩을 통해 파티원들의 망념을 확인해본다.
#일단 망념체크 한 번 더 합니다
**
【신은후】
은후 21
비아 39
하쿠야 17
입니다.
- 32: 202스레
- 【온사비아】
#캡틴, 질문 대답하기 전에 의념으로 영성 강화 한번만 시도해봐도 실패 처리되나요?
**
늦기 전에 시도했다면 모를까, 지금은 늦은 상황입니다.
- 33: 204스레
- 【온사비아】
" 잠시, 이야기를 들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
양팔을 붙드는 남성들. 의념을 쓴다면—아니, 쓰고 있기에 가볍게 내쳐버릴 수 있는 존재. 하지만 그건 최악이다. 무너지지 않을 게이트도 무너질 것이다. 당장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닐지라도 밥인지 아닌지는 가려야 한다.
" 여러분이 저한테, 무엇을 의심하고 있느냐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이 혼란스러운 정세, 사람이 없어지는 일도 잦으며, 때때로 인신매매를 일삼는 상인도 나타나곤 하는 세상이지요. 하지만 제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누구를 찾고 있는지 정확히 밝히지도, 물건을 맡긴다는 선택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점에 대해선 조금 의심의 그림자를 걷어 내고 제 말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
선입견 멈춰!
" 그 사람을 어찌 알고 왔느냐-라는 걸 저에게 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천을 짜는 사람이란 걸 알고 있지만 그 일로 그 사람을 알게 된 것은 아니며, 일평생 마을 밖으로 나온 일이 없는 사람에게 들었던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저는 이 마을에 처음으로 상행을 나온 상인으로서, 부탁받은 일을 처리하기 위해 이곳에 왔을 뿐입니다. 아멜라라는 사람에 대한 것도 그 때문에 들었을 뿐이고요. "
음. 음.
틀린 말은 아니다.
상인이라는 역할을 받고, 부탁받은 일(의뢰)을 해결하기 위해 이곳(게이트)에 왔으니까. 정말 거짓말만 아니다. 게이트에 진입하면서 아멜라에 대해 들은 것도 사실이고.
" 그래서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은 말을 전하는 일인데, 사람이 많은 곳에서 증명을 위해 밝히거나 해도 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증명할 수단은 없으나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온 것은 결코 아니라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
" 사람은 머물러 살 수 있을지라도 말은 떠돌이라서 울타리 하며 산맥도 국경도 넘어 다니는 법이지요. 그리고 상인으로서 길 찾는 법은 못 배웠을지언정 그런 말을 주워 담는 것부터 먼저 배운 게, 이 몸일세라. 빛바랜 연정戀情을 실어나르는 이 몸을 이만 가야 할 곳으로 보내 주시지 않겠습니까? "
# 이젠 나도 뭔 말 하는지 모르겠다~~ 가자
**
노인은,
아니.
게이트의 그녀는 사비아를 바라봅니다.
" 말은 부드럽게 하나, 그 말이 스스로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하는 것은 아닌 듯 하나 보오? "
곧 마을 남자들은 사비아를 그대로 들어올립니다.
.. 의념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어찌 알고 왔느냐 - 해도 천을 짜는 사람이란 것은 아나 누구에게 들은 것은 아니다. 마을 밖에 나온 사람에게 듣는 것도 아니다. 부탁받은 누군가에게 들은 것이다. 마을 밖에 나간 적 없는 그녀가. "
곧, 게이트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망념 붕괴 현상입니다!
" 웃기지도 않는군. "
곧, 가디언 칩이 시끄럽게 울기 시작하고.
게이트가 무너져 내립니다.
파티가 해산됩니다!
- 34: 205스레(불참)
- 35: 208스레
- 게이트가 붕괴되고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왔을 때.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모든 일이 잘 될 수가 있겠나, 하지만 잘 할 수 없어도 잘 해야 하는 게 가디언이란 거지.
우선... 여기 계속 있을 순 없고.
조금 쉬고 나서 생각해봐야겠다.
# 기숙사로!
**
기숙사로 복귀합니다.
**
차분히 방의 책상에 앉아서 호흡을 가다듬고, 책을 꺼냈다.
어떤 생각이든지 비우자. 다른 생각을 해서 덮든, 생각을 안 하려고 하든.
실수했고, 의기소침해졌을 땐, 차라리 잘 되진 않더라도 조금 더 진전하려고 해보는 태도가 꽤 도움이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도, 우선 공부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 망념을 79 쌓아서 시험공부.
**
시험 공부를 합니다.
… 그렇기에 가디언은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매우 다양한 사건을 겪어 왔다. 특히 게이트와 관련된 사건 중, 가디언이 참여하지 않은 역사는 매우 적다고 할 수 있다. 개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
공부를 마칩니다.
- 36: 210스레
- ...공부는 끝냈고. 망념은 많이 차 있고. 마음은 아직 심란하고.
이럴 땐 샤워를 하면 왠지 마음이 가벼워진단 말야.
막 게이트에서 다녀온 참이었으니... 제일 먼저 했어야 하기도 했고.
그만큼 마음이 급했나?
뭐 됐어... 느긋하게 따땃한 물에 씻어야지... 크으 시원하겠다아...
# 망념 -5를 합니다. 가 아니라 샤워
**
캡틴이름하였습니다.
- 37: 211스레
- 씻을 땐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떠오르는데 왜 씻고 나오면 금세 사라지는 걸까.
망념과 같이 씻겨져내려간 걸까.
캡틴이름을 마치고 나와서 멍하니 의자에 다시 앉는다.
그리고... 또... 뭘 하지...
...좀 순서가 바뀐 것 같긴 하지만.
# 기숙사 밖으로 나갑니다. 바람이라도 쐬야지
**
나섭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 38: 211스레(2)
- ...바람 좋다.
오늘은 상쾌한 하루가 되겠... 은 왠지 '이미 썼으니까 안돼'라는 느낌이긴 하지만, 정말로 상쾌한 하루가 될 것 같은 기분. 가볍게 산책이라도 해야겠다. 예쁜 돌이 있으면 주워야지.
# 월크월크 산책을 해요
**
학원도의 계절은 유독 사계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풍경이 유명합니다.
특히 삼월의 말기가 되면 연분홍빛으로 아름답게 피어나, 학생들의 감정을 복돋우곤 하는 봄철의 풍경이 사비아에게도 들어옵니다.
만개한 벚꽃의 떨어지는 첫 꽃잎을 쥐면, 사랑이 이뤄진다고 하던가요? 아마 대부분은 미신이라고 하기도 하는 그 말이지만 괜스런 변덕에 사비아는 나무 앞으로 향해봅니다.
의념을 사용하지 않은 채. 만개한 벚꽃이 바람에 흔들려 살랑여 떨어지는 것을, 손을 펼친 채 가만히 기다리자 대다수의 꽃들은 사비아의 손 위를 흩어가지만 가장 늦게 떨어진 꽃 하나가 조심스럽게 사비아의 손 끝에 기대어 자신의 색을 사비아의 손에 물들이고 있습니다.
만연한 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우연한 행운을 마주하였습니다. 하루 간 호감도 증가 속도가 상승하며, 연인 관계의 캐릭터 또는 NPC가 있다면 '벚꽃의 축복' 버프를 받습니다.
사비아는 연애 관계가 아니므로 벚꽃의 축복 버프를 받지 못했습니다.
행운이 1 상승합니다.
- 39: 212스레
https://picrew.me/image_maker/210483/complete?cd=kQGuBfdfjs
연분홍빛으로 반짝이는 사랑의 계절, 그래요, 학원섬에도 시린 이별이 지나고 이젠 새 꽃이 피는 날이 찾았나봐요. 사랑과 아름다움은 사람에 앞서 시를 짓는다던가. 그런 우연한 행운이, 지금 이곳에 나오길 잘했단 생각을 들게 한다.
봄을 배경으로 한, 흰 손가락 사이에 낀 수줍은 벚꽃잎을 찍어 보내며 활짝 미소지었다.
# 밋쨩! 내 자랑을 받아라! 가디언넷.
**
미츠는 즐거운 듯한 이야기로 기디언 넷을 보내옵니다.
- 40: 215스레
-
사진까지 찍어 보낸 보람이 있다니까~ 가디언넷의 화면을 싱글벙글 쳐다보면서 웃다가...
그런 가벼운 태클을 걸어본다.
# 대화 대화 가디언넷 토크
**
미츠의 물결 표시에서 어쩐지 푸근히 웃고 있는 누군가가 보인 것 같습니다.
예리하네요.
4.1.5. 41~50회 ¶
- 41: 215스레
- [ 그럴 리가 없잖아, 유노하라.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하는진 모르겠지만 내가 말한 건 그냥 벚꽃잎 사진하고 벚꽃을 잡았다는 말을 보냈던 것 뿐이니까? 어디서 사랑이라는 말이 나올 게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엄밀히 말해서 벚꽃이 사랑과 관련이 있다는 건 사람이 그렇게 믿고 싶기에 생겨난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할 뿐,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허황된 전설에 불과한 일이지. 신빙성이 없다니깐? 아니 근데 그 말을 한 것 가지고 남자가 생겼다던가 하는 건 너무 앞서간 말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청춘이라는 것에 사랑이나 두근거리는 시추에이션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곤 못하지만 꼭 청춘을 보낸다는 것에 연애가 관련되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청월고교의 학생으로서 가디언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연애에 시간을 쓰는 것보다는 더 가치있는 일에 시간을 쓸 필요도 있는 거지. 그리고 왜 그렇게 콕 집어서 말하는진 모르겠지만 남자가 아니라 여자일 수도 있잖아? 그렇게 막 짚는 태도는 좋지 않다고 생각해. 그렇다고 여자라는 건 아니지만. ]
# 장문의 가디언넷 메세지를 보냅니다. ...뭔가 이상한데?
**
원래 부정하는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와.
[ 평상시에도 별로 남자 얘기가 많지 않은 애기도 했고, 벚꽃잎을 잡으면 사랑이 이뤄진다. 같은 미신을 좋아하는 애도 아니었잖아. 그런데 그 미신에 관심이 가서 벚꽃을 잡으려 하고, 잡았다고 자랑할 애는 아니었던 것 같거든. 너는 냉철하진 않지만 냉혹하진 않고, 그렇다고 시간이 그냥 갈 법한 일은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그래서 물어봤어. 남자 생겼어? 하고 말야. ]
[ 맞아. 그런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 실질적으론 허황된 전설에 신빙성 없는 주제일 뿐이니까. 그런데 우리들은 가디언 후보생이기 이전에 청소년이 아냐? 사비아는 지금 정규 가디언인 20세를 넘었어? 그것도 아니면 내가 지금 '맞아. 연애에 시간을 쓰느니 차라리 공부나 하는 게 이득이지. 아님 의뢰 하나를 더 나가는 게 이득일거야. 라고 하면 과연 너는 그렇지? 맞아. 라고 얘기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
그리고 사비아는 바보라 너무 쉽게 들어난다와~
말투가 오가면서도 꽤 냉철한 부분이 보입니다.
이래서 서포터란 녀석들은..!!
**
...
완전히 털리고 말았다...
뭐시냐...
음.
# 다 털린 충격으로 벚꽃을 흩날리는 벚나무 아래에 앉아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가디언넷
**
미츠는 아무렇지 않게 사비아에게 말을 겁니다.
**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자판을 톡톡 두드리다 보니 그 기분이 말에도 나온 걸까,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의 채팅이 톡 떠올랐다.
아무리 가디언 후보생이기 앞서 청소년이어도, 자신이 아닌 타인의 마음을 걸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을까? 후회 없는 청춘을 보낼 수 있을까? 앞으로 더 무모해지면 무모해졌지 신중해질 것 같진 않다는 자각이 있다.
...이렇게 생각할 것까지 포함해서 과감하게 생각하라는 말을 했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사랑보다는 친애이고, 의식한다는 게 꼭 성사로 이뤄지진 않을 것이다.
조금 자는 게 좋았을까... 하지만 벌써 들어가고 싶진 않다. 자리를 옮기자, 벚꽃이 안 보이는 곳으로.
# 전투연구부실로 가요.. 오늘은 부장님이 있을까요?
**
전투연구부로 이동합니다.
한창 시끄럽던 부가 오늘따라 조용합니다. 사람이 적기 때문에 나타나는 정적의 문제인지 아무도 없는 듯한 수가 오히려 소리를 잡아먹고 있습니다.
사비아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며 익숙하지 않은 얼굴을 찾아봅니다. 이미 한 번, 아니면 두 번 정돈 보았던 얼굴들 속에 처음 보는 사람이 하나 보입니다.
연한 잿빛의 머리카락이 길게 늘여진 성숙한 외모가 돋보이는 여성입니다. 한쪽 눈에는 외안경을 쓰곤 눈동자는 청색으로 물들어 쉽게 다가가기 힘든 듯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말하자면 우리들이 흔히 논하곤 하는 안락의자 탐정이 구현된다면, 그리고 그게 매력적인 여성이라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사비아와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를 살짝 올리곤 손을 든 채 가볍게 흔듭니다.
" 안.. 녕? "
목소리는 작습니다. 또한 여린 느낌이 있습니다. 성숙한 외모와는 반대되게 소심한 듯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냅니다.
" 전투연구부.. 새 부원이지? "
그녀는 어떻게든 대화를 이끌어 가려는 듯, 빠른 템포로 말을 꺼냅니다.
- 42: 216스레
조용하네...
전투연구부의 풍경을 돌아본다. 많이 본 얼굴은 아니지만 한 번씩은 봤던 것 같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처음 보는 잿빛에 눈을 향하자마자 그 눈이 바로 마주쳐, 살짝 흠칫하며 고개를 흔든다.
" 안녕하세요... "
시끄럽지 않으니 작게 말해도 들릴 거란 생각에 이쪽도 너무 크게 말하지 않고 힘을 뺀 소리로 작게 대답했다.
" 네, 이번이 두 번째로 오는 거네요. "
근데 누구시지...?
#대화
**
그녀는 사비아가 자신의 인사를 받아준 것에 안도한 듯, 부드러운 미소를 깊이 띄워냅니다.
볼 부근에 살짝 생겨난 보조개가 귀여운 느낌과, 어쩐지 상큼한 느낌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 다행이야. 부원들이 신입이 왔는데 다들 바빠서 잘 알려주지 못했다고 했거든. "
그녀는 가슴께에 손을 올린 채, 가볍게 고갤 숙입니다.
" 처음 뵙습니다. 전투연구부의 부장인 안이령이라고 해요. 잘 부탁해? "
**
" 그랬었군요... "
고개를 숙이는 상대방에 맞춰 같이 고개를 숙이려다가 잠깐 멈칫했다. 그리고 다시 꾸벅 고개를 숙였다.
" 부장님이셨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새 전투연구부 부원인 사비아라고 합니다. "
첫날에 못 봤던 부장님이 이분이셨구나... 미소가 예쁘신 분이다.
# 그냥 인사만 하시려던 건가? 아니면 뭔가 다른 용건이 있으신가? 대화.
**
" 응. 그럼.. 모르는 거 있으면 물으러 와요? "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짓고 다른 부원들에게 향합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던 듯 싶습니다. 단지 새 부원이 적응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던 것 같네요!
**
" 네. "
상냥한 인상의 사람이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물으러 가 봐야지. 그러려면 우선 동아리 활동을 해야 하고!
이론적인 부분밖에 못 채우긴 하겠지만 논문을 한 번 봐야겠다. 방패를 이용한 무기술을 쓸 때 참고할 만한 논문이 있으려나...?
#망념 99, 무기술 - 방패를 수련하기 위한 수련 활동을 합니다.
**
수련합니다!
숙련도가 18% 상승합니다!
현재 숙련도는 38%입니다.
? 비아 방패 숙련도 D 50이야?
나 왜 나한테 C 18이라고 되어있어??
- 43: 217스레
**
38% 올리시면 됩니다.
- 44: 217스레
- 방패를 쓸 때의 움직임은 다른 무기술보다는 체술을 더 닮았다. 보통 손에 쥐는 무기라면 손의 연장선, 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검 같은 무기랑은 많이 다르지. 창하고는... 비슷한 부분이 있을까? 찌르는 무기... 내가 찾는 건 봉술과 관련된 걸 찾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 하고 열심히 논문을 뒤지다가...
왠지, 캡틴한테 >>0의 정산 어장 앵커가 어그로 때문에 터진 어장으로 걸려 있다고 알려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가 아니라 망념이 빵빵해진 기분이었다. (일상을 안돌린 자의 말로)
더 뭔가 하는 건 무리인 거 같고, 다른 사람들이 활동하는 걸 볼까...
#전의 그 기술개량 하는 선배들이 있나 찾아봅니다.
**
오늘은 다들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매번 같은 것만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
" 으음. "
오늘은 다들 다른 일 중이신가?
" 부장님- 혹시 바쁘지 않으시다면 같이 얘기해도 될까요. "
#어쩔 수 없지. 부장님께 대화를 걸어본다.
- 45: 218스레
- " 으음. "
오늘은 다들 다른 일 중이신가?
" 부장님-. "
#어쩔 수 없지. 부장님을 찾아보자.
**
부장은 커다란 책에 기대어 머릴 박고 있습니다.
이건 이것대로.. 청월에서 신선한 캐릭터네요..
**
" ...부장님, 부장님? "
주, 주무시고 계신건가?
#불러봐요
**
" .. 음. 하앗.. "
살짝 눈을 비비며 부장은 사비아를 바라봅니다.
" 응.. 무슨 일이야..? "
매우 나른한 표정은, 정말로 잠들었던 게 맞는 것 같네요.
**
" 별일은 아니고, 대화를 좀 하고 싶었는데... 깨워버렸네요... "
자고 있다곤 해도(?) 부장님인데 별 거 없는 이유로 이렇게 깨우다니 괜찮은걸까!?
" 죄송합니다. 진짜로 주무시고 계신 줄 몰랐어요. "
그냥 기대서 쉬고 계신 줄 알았지. 수업시간에 졸고 있는 거 같아서 흔들어 깨우면 졸려서 엎어져서 듣고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처럼...
#대화해요!
**
" 아냐.. 괜찮아. "
부장은 에헤헤, 하고 웃음을 흘리며 얘기합니다.
" 나 남들보다 잠이 많은 편이라 그래. 특히 각성하고 나선 더더욱 그렇더라구.. "
**
" 각성하고 나서도요...? "
건강 문제? 체질? 의념을 각성하고 나선 질병 같은 건 어지간해서 해결될 거 같긴 하지만, 혹시 모르지. 서포터도 아닌데 의념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 같은 걸 자세히 배우진 않았으니까... 아니면 의념속성의 영향일지도.
" 음. 혹시 전투연구부에 영상 자료도 있나요? "
목소리를 가다듬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야 질문했다.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서류... 로밖에 안 보였으니까. 절대 할말 없어서 적당히 하는 질문은 아니다.
#대화해요
4.2.1. 청월고교 ¶
- 성현 일상[1] (88스레~89스레) - 5월 21일(새벽)
-
"야!!!!!! 개짖는 소리 좀!!! 안나게 하라!!!!"
공부를 하다가 하다가 잠을 자고 있는데 기숙사 주변에서 개가 짖는 소리가 나자 창문을 벌컥 열고 소리를 지른다. 벌서 한두번이 아니다.
누가 키우는건지 들개인지 그것도 아니면 도바인지 걸리기만 하면 가만 안둘거다.
멍! 멍!
"야아!!!! 개 짖는 소리 좀 안나게 하라!!!"
맞아! 맞아!
멍! 멍!
"이젠 못참아"
그대로 창문을 열고 의념으로 신체를 강화해서 기숙사에서 뛰어내린다. 내가 직접 찾아가서 개 주인과 단판을 지을것이다.
**
-멍! 멍! 멍멍멍멍멍멍! 왈왈! 컹컹컹! 캥! 왈왈왈!!
"요즘따라 메카 독 우는 소리가 많이 들리네."
제노시아에서 만들어놓은 걸로 추정되는 기계 동물들, 통칭 '메카 시리즈' 중 하나인 메카 독. 보통 메카-멍멍이라고 자주 부르지만... 영어랑 한글을 섞어서 쓰다니 이상하잖아. 육군 군가에 있는 아미타이거 같은 거. ...? 내가 뭐라고 하는 거지?
아무튼 이것들은 유난히 청월 남기숙사 앞에 많이 모인다. 게다가 개소리 스트레스에 지친 학생들이 몇 번 걷어차거나 부순 걸 학습하고 나서는,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공부하거나 잘 시간대에 일제히 짖어댄다던가 하는 식으로 어그로를 많이 끈다. 창문으로 뛰어내려와서 부수지 않는 한 잡으려고 내려오기 전에 도망칠 수 있으니까. 악랄한 것들이다.
-야!!!!!!
?
-개짖는 소리 좀!!! 안나게 하라!!!!
뭔가 익숙한 목소리인데... 목청이 엄청나게 좋다! 포르티는 실존했던 걸까? 증폭 의념이 아닌 이상 저 목청은 말이 안 되니까.
-야아!!!! 개 짖는 소리 좀 안나게 하라!!!
-맞아! 맞아!
...그냥 엄청 화난 청월 남학생이었구나. 남기숙사의 유리창을 올려다보고, 여전히 컹컹컹 짖어대는 메카 독의 울음소리와 함께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괜히 뛰쳐내려와서 헛고생 하기 전에 나라도 메카 독을 잡으러 가야겠-
?
왜 사람이 낙하
아니
콰앙─!!
**
"범인이 잡히면 죽을 줄 알아라!!! 나 4학년 이성현이다!!!! 불만 있으면 덤벼!!!!! 이 개짖는 소리
야
아
아
아 창문에서 나와 공중에서 뛰어내리며 소리를
아 지르며 성현이 아래쪽으로 떨어진다.
아 신체능력 S는 이정도해도 문제가 없다.
!
! 바닥에 거의 내려 온 순간 무언가랑 충돌하자
! 큰일났다 싶은 생각과 함께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라고
! 생각하며 얼른 수습할 준비를 한다.
"
"헉!"
내 운동 친구인 사비아였잖아?! 세상에 이럴 수가!
"야 괜찮아!?"
후다닥 뒤로 비켜서 몸을 잡고 흔든다. 워리어니까 죽지는 않았을거야!
"이 개 소리내는 놈들이 내 친구를!!!"
**
뭐지... 뭐지...
정신이... 흐려진다...
-비아야... 사비아...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가...?
-사비아야... 그 강을 건너지 말거라...
앗... 엄청 늙은 할머니...
근데 우리 할머니는 두 분 다 살아계신데...?
(회상)-비아야. 여기 계신 분이 네 고조할머니시다.
(자료화면)(불당)(흑백사진에 찍힌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고조할머니 고조할아버지)
앗... 안녕하세요 고조할머니...
근데...
흑백이시네요...
아...
의식이 멀 어 져
간
다...
-
"...누구야 그건..."
힌트: 파워맨 특성 설명(낮은 랭크의 신체를 상대하는 경우 압도할 수 있다)
비아 신체:A 성현 신체:S
의념 강화 여부 비아:X 성현:O
죽지 않은 게 다행이다...
성현이 먼저 개소리내는 놈들한테 복수하러 간 후 일어난 나는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멈춰있다가, 여전히 들리는 멍멍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그, 그 사람... 아까 소리지르면서 떨어진 사람이었지? 4학년... 4학년 누구랬는데... 머리를 부딪쳐서 생각이 안나... 아무튼 개를 잡으러 갔겠지? 개들이 짖는 곳에 있겠지?
...
...누군진 몰라도 각오해라.
길거리에 버려져 있는 우산을 주워, 매끄럽게 잘 펴지는지 확인한 다음 들고 뛰었다.
**
"감히 내 친구를 이런 꼴로 만들게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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ィ, _从∠=彡==┐/ / / /
γ'″~ ̄`゛゛゛` ̄`ヽ ノ } '/ . /
/_ ミ ヽ ∨ / /"//
/.: :. . `:,ハ , 이 주먹쥔 손에 맹세한다. '/
r㌢゙`ヽ`У / 나의 친구 사비아를 이런 꼴이 된 원인인 개소리 내는 것들을
,イ゙ ミ 、 `寸 ノイ 모조리 부수고 찢어서
,イ圦゙、 ーヾソ `く' .: 다시는 짖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_,二汽、ィヾ ヘ Y=≠イ:'/. Ξj
〃 ;ゞイ'x,"ー\、く ノ=ミ、 V/'/,: ミ{
У-=f´゙、″ 、, >=彡 》x:, ∨/:, ,:_ゝ
/′イ{、ヽ-゙ y/ _,.x 、゛/´ ̄ヾ!:'/; /ノ
{圭圭圦廴../"´、^,.、゛/ ー ゙/⌒Y匕 /
゙寺圭圭斗1{、) y゙_,: 〃` ( ゙/ メ、Ⅵイ
`…ヘ圭圭、ヽ._/r'゙ )ーc゛ノ:,Ξ }「
゙寺圭圭f圭{ ^´ ゝ/´.゛ `、{
¨¨~
寺≧zゞ='ミ、^ー ,ゞ
 ̄ `¨¨¨゛
그렇게 결의를 다지며 눈을 감고 개짖는 소리가 나는 곳을 탐색한다.
멍! 멍!
"넌 이제 죽었다."
소리의 방향을 찾아내고 중얼거린다. 사비아 내가 너의 복수를 위해 성현펀치가 될게
그 다음 소리를 향해 달려간다.
**
"...의념을 쓰니깐 좀 살 것 같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깔리면서 머리를 박아서 어질어질했지만 건강 S의 스테이더스가 제대로 작동하자 한결 나아졌다. 상처가 저절로 나은 건 아니겠지만 적응이 되는 느낌일까. 지금은... 원흉을 찾아야 해... 나는... 참기만 하는 워리어가 아니니까... 보면 우산으로 한 대 때려줘야지.
"...성현아?"
그리고 댕댕거리는 메카 독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땐...
그는 신이야! 성현 펀치! 성현 펀치!!
...가 아니라 성현이 있었다.
순간 청천의 놀래킴으로 뛰어올랐다 천장을 박고 떨어지는 순간의 기억부터 다소 기행에 가까운 수련들을 본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한다. 에이 설마 신체 S라고 기숙사 창문을 열고 뛰어내릴 리가... 리가...
-범인이───죽을──알──라─나─4학─이성──다───으면 덤───개짖───아아아아아아!!!!
확인부터.
"저기 나 지금 아까 기숙사에서 뛰어내려서 날 깔아뭉갠 사람을 찾고 있는데..."
"...뭐해?"
**
콰과과광!!
"
성
현
오른주먹을 내질러 바로 앞에 있던 녀석을 처리한다. 펀
치
!
"
"아직이다. 이 정도로 내 원한이 풀릴거라고 생각하냐?!"
다른 로봇 개한테 다가가 한쪽 다리를 잡은 상태로 위로 들어올려서 왼쪽으로 패대기 오른쪽으로 패대기치는 걸 반복한다. 아직이다!
그리고 왼손을 강화해서 손가락을 몸체에 넣은 후 양쪽으로 잡아당겨서 그대로 찢는다.
"내 공부를 방해한 죄! 그리고 내 친구를 다치게 한 죄! 절대 용서치 못한다!"
그렇게 한창 부수고 있을 무렵 누군가 부르자 뒤를 돌아본다.
"오! 무사했구나!"
들고있던 로봇 개의 다리 한쪽을 뒤로 휙 집어던지고 다가간다. 무사하니 다행이다.
"시험 공부를 방해한 녀석을 잡기 위해 뛰어내렸는데 하필 네가 있었고 내가 널 다치게 한 원인인 이 녀석들을 처리하고 있었지"
주변에 굴러다니던 로봇 개의 머리를 주워서 보여준다음 양손으로 잡고 안쪽으로 힘을 줘서 찌그러지게하고 한손에 들어올 크기로 만들어 오른손으로 잡아서 최대한 압축시킨 다음 입안에 넣고 씹어 버린 다음 바닥에 뱉는다.
"복수는 끝냈어!"
**
저 콰과과광 이라는 글자가 메카-댕댕(이었던 것)이고 그 아래에 있는 성현펀치는 글자는 오른주먹으로 메카-댕댕을 올려쳐 박살내는 듯한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모습... 이것이야말로 현대미술(텍스트 아트)!! 이란 게 사견입니다.
아무튼 나는 메카 독들을 그야말로 처참하게 부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메카독들과 수수께끼의 제작자를 동정했다. 그래도 저거 다 공들여서 만들었을 텐데... 물론 말리진 않았다. 공들여서 만들어서 지키고 싶었다면 제노시아에만 풀어놓고 즐겼겠지.
"음... 아마 완전 무사하진 않은데."
그리고 성현이 날 깔아뭉갠 범인이라는 걸 정직하게 알려주는 말들... 이미 찢어져서 떨어져버린 메카 독의 머리를 휴지 구기듯 둥글게 구겨 압축시키고 씹었다 뱉는 모습에 성현의 기행목록(목격담)에 한 줄을 추가하고서...
"그렇구나..."
우산을 펼친 다음 침식하듯 의념을 뒤덮어 보석의 단단함을 부여한다. 우산 위로 광물이 결합하고 엉겨붙어 뒤덮은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부드러움을 유지한 채 강도만 증가시키는 건 내 수준으로 못한다. 그래서 아마 원본이 우산이다보니 한 번만 쓰면 그대로 산산조각나 버릴 것 같지만... 그건 됐다.
"그럼 나도 내 복수를 해도 될까?"
시험 공부를 방해하기 위해 뛰어내려서 날 밟게 한 이유가 이것들이니까 이걸 제거한다... 음... 어떻게 그런 결론이 났는진 모르겠지만...
"...아무리 봐도 네 잘못이잖아...!!"
기숙사에서 뛰어내리긴 왜 뛰어내려!! 생각을 하고, 하고, 또 해도 이건 성현 잘못이다! 어질어질한 머리를 끝까지 굴려 생각한 결과 이 결론에 아무런 오류도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남은 건, 필살 실드차지(철분맛)이다-!!
.dice 1 100. = 91
**
"복수?"
내가 방금 끝냈는데 무슨 복수를 말하는거지? ......아하! 내가 한 복수만으로는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는거구나
아직 멀쩡히 기능하고 있는 로봇 개를 잡아서 사비아쪽을로 내민다. 이거라면 본인이 직접 부술 수 있겠지
"얼마든지 하도록!"
그렇게 말한 순간 사비아의 필살 실드차지가 날아오는 것을 뒤는게 확인한다/
"
크
아
아
콰아아아앙 아
아
아
아
악
!
"
동시에 대비를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뒤로 날아간다.
본인이 받은 데미지 사비아 다이스인 91 - .dice 1 100. = 84
**
얼마든지 하라고? (플래그)
자세를 잡는다. 딱딱하게 굳은 우산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드차지' 할 수 있도록 우산대를 몸 옆에 밀착하고, 양손으로 꽉 잡은 다음 힘껏 땅을 박찬다. 말은 없지만 나 자신의 신속을 강화하면 그 정도의 속력을 내는 건 거뜬하다. 누군가 .oO(이봐... 그건 방패술이 아니라 창술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기분탓이겠지. 자, 그대로 들이받는다─!!
콰아아아앙! 하는 추돌음과 함께 날아가는 성현과... 같이 뒤로 넘어가는 나. 앞부분이 산산조각난 우산을 놓아버리면서 데미지 없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상대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보면...
...정말 완벽하게 '실드차지'했는데 별 데미지가 없어 보였다. 숫자로 따지면 7 데미지 정도. 왜 구체적인진 모르겠지만. 이건... 나의 수련 부족인가... 아무튼 들이민 숨을 내쉬고 차분하게 말했다.
"애초에 기숙사 창문으로 뛰어내려서도 안되지만... 꼭 뛰어내려야 한다면 사람이 있는 걸 확인하고 뛰어내려주길 바라..."
그리고 반으로 부러진 우산대로 우산파편과 메카 독 파편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어디 버려야 할진 모르겠지만 일단 분리수거는 해서 버려야 하니까. 그래도... 아까 씹다 뱉었던 것만은 도무지 우산대를 댈 엄두가 나지 않았다...
**
멀리 날아갔지만 어째서인지 큰 데미지는 들어오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내가 튼튼한 것도 있겠지만 이런 공격을 맞고도 멀쩡하지는 않다. .....헉! 설마 친구인 나를 위해 마지막에 힘을 뺀건가?
"오 나의 진정한 친구여!"
이유는 모르지만 나를 공격 해도 마지막에 힘을 빼는 그 우정. 나는 감탄했다.
"앞으로 친구의 부탁이라면 가능한 선에서 들어주겠어!"
이미 로봇 개에 대한건 있었는지 눈물을 찔끔 흘리며 말한다.
"너의 의견을 받아들여 앞으로는 뛰어내릴때 주의를 주고 뛰어내릴게"
거기 비켜! 라던가 10초 후 이성현이 뛰너내립니다! 같은 경고?
그 이후 사비아를 도와 파편들을 주워모으기 시작한다.
"이걸 불태워서 복수를 완전히 끝내는거지?"
**
"...어?"
어디서 '진정한 친구'라는 말이 나올 부분이 있는 거지? 크게 뜬 눈으로 그를 쳐다보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간다. 아니, 그 세계를 따라잡질 못하겠는데...!
"...으, 으음? 나도 그럴, 게?"
뭔진 모르겠지만... 부탁을 들어준다고 해도 무리한 걸 부탁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냥 서로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 좋다는 점에서 나도라는 대답을 했다.
"주의... 음... 아예 안 뛰어내리는 쪽이 좋지만 그나마 주의하는 게 좋겠지..."
평소대로였다면 단호하게 뛰어내리지 말아. 를 말했겠지만... 난 이 상황을 못 따라가겠어... 그나마 그쪽이 낫다는 걸 간신히 떠올리고 끄덕끄덕거렸을 뿐이다.
"불태우면 환경 호르몬이 나오지 않을까? 재활용 수거함에 넣으면 되겠지."
뭔가.. 단어 선택 하나하나 가 강렬하다... 불태워서 복수... 순간 맨손을 나무에 초속으로 비벼서 큰불을 내고 불붙은 손으로 메카 독의 시체?를 화형하는 성현의 모습이 상상됐다. 오... 그냥 갖다버려...
"근데... 진정한 친구란 건 뭐야?"
**
"그래 뭐든지 사전에 경고하는 건 중요한거지"
그래서 자동차들오 깜빡이를 키고 다니고 신호등도 노란불이 있거나 깜빡이는 기능이 있는 것 아닌가
"그런가? .....아니면 이거 원래 주인들한테 던지고 올까?"
쓰레기 유성군이라는 신 필사기 명칭을 생각하며 물어본다. 하늘에 이 고물들을 던지고 공중에 뛰어올라서 주먹이나 발차기로 날려보내면 그건 그것대로......는 막히겠구나
"날 생각해서 마지막에 힘을 빼줬잖아?"
이유는 모르지만 흥분한 상태에서 날린 공격을 취소해 준것이다.
"내 기분 보다 더 위해 줄 수 있는 사람. 그것이 진정한 친구가 아니면 뭐겠니 친구야!"
**
"음... 경고하면, 미리 피할 수라도 있으니까."
비아는 잘 모르겠어. 하고 제정신으로 기겁할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 응.
"청월에서 제노시아에 선공 날린다고 생각할 거야..."
애초에 성학교 학생들이 만들었을 거란 생각은 전제에도 없다. 원래 청월 기숙사 앞에서 난동부리는 메카 애니멀들은 제노시아에서 먼저 보내긴 했겠지만... 그쪽에서 잡아떼면 그만인데 쇳덩이 투척은... 학교 대 학교의 싸움으로 번질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시험도 코앞이라 다들 예민하니까 시험 끝나자마자 옮겨붙어 폭발해버릴지도.
"그... 그건..."
너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아냐? 진정한 친구란 말을 들었을 때부터 생각해야 했는데, 눈앞의 이 남학생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살짝 붉어진 볼로 손사래를 쳤다.
"그, 아니, 뭔진 몰라도, 내가 의도해서 한 건 아니었을 거야. 나는... 그냥 내 욱하는 감정에 맡겨서 너한테 공격을 날렸을 뿐이고... 정말, 미안!"
아무리 먼저 밟혔다... 곤 해도, 그걸로 다짜고짜 공격을 날릴 이유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걸 저렇게 긍정적으로 해석해서 받아들여 주다니... 속인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고 부끄러웠다.
**
"그럼 성학교에 던질까?"
청월에 있던 제노시아의 물건이 갑자기 성하교에 떨어지면 대혼란이 찾아와 마음껏 싸울 수 있는 분위기가 될텐데
저번에 다른 학교 학생들이 여기에 왔으니 우리라고 못 할건 없다.
"그건?"
손사래를 치며 뭔가 말하려는 걸 기대하며 바라본다. 무슨 말을 하려고!
"무의식 수준에서 날 생각해주다니!"
욱하는 감정으로 공격했지만 마지막에 무의식이 그걸 제어 했다는 것이 더 대단해!
"슈퍼사이어인 갓 슈퍼사이어인이 있듯이 너는 친구 진정한 친구구나!"
나였다면 나에게 해코지를 한 사람을 욱하고 공격할 때 제어 못한다. 대단해!
**
"성학교는 가만히 있다 왜 맞는 거야...?!"
아니, 성학교에 선공을 날리는 것도 안돼...!
"그게 그렇게 해석되는 거야?!"
완전히... 완전히 말려들었다... 도저히 이 긍정해석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현기증이 날 것 같다...
"아니.. 그건... 그건 정말 아닌데..."
무수한 ...와 ?와 !가 날아다닌 끝에... 나는 마침내 결심했다.
나는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어.
"성현, 친구야...! 나는 이만! 수련을 하러 갈게!"
그렇게 뒤돌아보지 않고 나는 줄행랑을 쳐버리고 말았다...
**
"그래! 열심히 수련해!"
뒤도 안돌아 보고 수련을 하러 가는 저 자세를 본 받아야 한다. 나는 수련 하려고 하면 항상 다른일도 같이 하게 된다.
"열심히 수련해서 제노시아랑 성학교를 박살내버리자!"
오늘 이 사건은 제노시아와 성학교를 부수기 위한 초석이다. 그 증거로 친구도 열심히 수련을 하러 달려가고 있고
"옛 성현이 말하기를 누구에게나 배울 수 있다고 했는데 정말이네"
이 잠깐 사이 친구한테 엄청 많이 배웠다.
- 바다 일상[1](90스레~101스레) - 5월 29일
- 저 아이... 뿔이 대단하다.
저 아이 뿔이 대단하다 !
갑자기 든 생각이었다.
나는 청월 도서관에 자주 공부하러 오는 편이지만, 요즘따라 눈에 띄는 아이가 있다... 도서관에 들어올 때부터 참고서적을 빌리고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할 때까지도 눈에 확연히 띄는 사슴뿔을 단 아이. 3년 동안 청월 다니면서... 한 번도 못 본 것 같은데? 1학년? 아니면 그냥 아이템이나 코스트를 낀 평범한 학생?
크흑.. 궁금해
대화를 나누거나 하진 않았지만 많이 봐서 그런지 일종의 내적 친밀감(?)이 생긴 나는, 결국 내밀고 말았다...
[ 저기요... 그 뿔 뭐에요...? ]
중학교 때도 친구들이 주고받는 걸 보곤 했던(나는 수업시간 중에 딴짓을 안 해서 안했다) 쪽지를. 공책 한장을 날카로운 보석으로 소리없이 쓱 잘라내 쓴 쪽지를 내민 것이다. (책을 보고 있으면 책 아래에 살짝 끼워준다던지, 옆에 앉아있으면 슬쩍 내민다던가...)
**
바다가 읽고 있는 책의 이름은 노인과 바다. 어렸을 때 그 제목을 보고 깜짝 놀라서 할아버지랑 나랑 무슨 관계이길래 책이 나왔냐고 가정교사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읽어본 적은 없던 녀석이었다. 천천히 페이지를 넘겨 가며 산티아고의 눈물겨운 사연을 익혀 나가는 찰나
[ 저기요... 그 뿔 뭐에요...? ]
라는 쪽지가 책 아래로 슥 하고 내밀어졌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바다는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사비아를 발견했다. 아마 그녀가 보낸 쪽지겠지. 두 눈을 깜빡이다가 공책에 답변을 쓰려 품 안을 뒤졌지만 아쉽게도 필기구는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지배력을 사용해, 물로 적신 쪽지를 다시 사비아에게 넘겨주었다.
[ 물려받았어요. ]
**
집어넣은 쪽지가 다시 돌아왔다. 뭔가 답장이 있나 봤지만 물자국만 있고 아무것도 없다. ...뭐지? 불로 지지면 보이는 편지 같은건가?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빛에 비춘 물자국에 희미한 글씨 같은 게 보였다. 도서관 조명에 쪽지를 들어올려 비춰보니...
-> [ 물려받았어요. ]
라는 짧은 글씨가 있었다.
물려받아...?
[ 어디서요...? ] <-
단문으로 쓸 거면 너무 큰 건 필요없을 것 같다. 작게 쪽지 한 조각을 잘라내서 다시 수수께끼의 뿔몬학생에게 펜 하나와 함께 건네고 아무렇지 않게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공부하면서 보내니까 진짜 수업시간에 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
어디서 물려 받았느냐. 이것은 꽤나 중요한 문제겠지.. 물려받았다 라는 중의적인 표현이 큰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바다는 그 오해를 풀지 않기로 했다. 도리어, 더 꼬아서 상대가 큰 오해를 해주면 즐거울 것 같았다.
[ 엄마요. ]
받은 펜으로 짧게 답장을 하고 쪽지를 돌려주었다.
**
돌려받은 쪽지에는...
-> [ 엄마요. ]
라는 혼란스러운 말이 있었다.
...뭐지...?? 어머님이 사슴이신가...??? 해룡입니다. 아아 니 그럴리가 없잖아... 있긴 있다. 가디언인 부모님이 쓰던 아이템을 물려받았다던가. 청월에는 대를 이어서 가디언이 되기 위해 들어온 아이들도 있었으니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 가보세요 ]
가보세요? 라고 쓰려다 문득 생각났다. 아니... 가보에 존칭을 쓰면 안되잖아... 가보세요란 말을 쭉쭉 긋고 뒷면에 썼다.
[ 음... 대단하신 분인가 보네요 ] <-
무난하게 써서 다시 발송. 음... 굳이 눈에 띄는 사슴뿔 같은 걸 물려주시다니... 어느 의미로 대단하신 분이다.
**
[ 가보세요 ]
??
무슨 의미이지?
갑작스러운 축객령을 내린 비아의 쪽지에 바다는 눈을 둥그렇게 뜨며 비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얼마 안 있어 두 줄이 쭉 쭉 그어지고, 정상적인 내용의 답변이 오자 바다는 이전에 온 쪽지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었다.
[ 대단한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마음에 안 들어요. ]
쓸데없는 TMI 발싸!!!!!!!!!
**
-> [ 대단한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마음에 안 들어요. ]
앗... 부모님이랑 사이 안 좋은 건가.
가디언이면 기본적으로 바쁠 테니까... 그럴 수도 있지. 나도 부모님이 나한테 무관심했으면 안 좋아했을지도 몰라. 물론 난 우리 부모님이 정말 좋지만.
[ 그랬군요... 죄송합니다. ] <-
[ 그래도 그 뿔 저는 정말 예쁘다고 생각해요. ] <-
두 줄 쓴 쪽지를 날린다!
**
[ 감사합니다 ]
[ 저도 제 뿔이 참 마음에 들어요 ]
[ 뿔이 있어서 입을 수 있는 옷이 한정된다는 부분이 걸리지만 ]
[ 입어본 적이 없으니까 얼마나 편할지는 모르겠네요! ]
네줄의 쪽지가 날아간다.
뿔이 있어서 불편한 점이라면 이 외에 무엇이 있을까. 돌아 누울 수 없다는 점, 좁은 문은 옆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점, 무릎베게의 자세가 굉장히 제한된다는 점, 그리고..
일상화된 불편은 인식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었다.
[ 혹시 ]
[ 에릭 하르트만 이라는 학생을 아시나요? ]
**
-> [ 감사합니다 ]
-> [ 저도 제 뿔이 참 마음에 들어요 ]
-> [ 뿔이 있어서 입을 수 있는 옷이 한정된다는 부분이 걸리지만 ]
-> [ 입어본 적이 없으니까 얼마나 편할지는 모르겠네요! ]
어...?
탈착 가능한 게 아니었어?
순간 다른 사람한테 넘기지 않으면 벗을 수 없는 뿔을 가지고 고민하던 얼굴 없는 여성 가디언이 딸내미가 좀 크고 의념을 각성하자 뿔을 떠넘기는 광경 같은 게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아니...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 전까지 뿔 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을 안 입어봤을리가... 하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뿔을 가지고 태어났다=라는 전개면 어머님이 사슴이셔야 하는데... 용입니다.
결국 결론은 어머님이 참 나쁜 가디언이었다... 라는걸로.
[ 많이 불편하셨겠네요... ]
라는 쪽지를 쓰고 보내려다가 또 온 두 줄의 쪽지를 보고 멈칫했다. 그리고 아래에 덧붙여 보낸다.
[ 많이 불편하셨겠네요... ] <-
[ 아뇨, 모르는데요. ] <-
선관이 없으면... 모르는 것이다...
**
[ 인제는 익숙해서 괜찮아요 ]
바다는 가볍게 답장을 써주고는 에릭 하르트만을 모른다는 사실에 안심하였다. 만약 눈 앞의 상대가 에릭과 지인이라면, 수상할 정도로 뿔을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고, 그 둘이 서로 알고 지낸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리고 방사성 물질은 한번에 다량이 있을 수록 위험도가 제곱이 되는 법이다.
[ 그 사람도 뿔을 좋아해서 혹시 아시나 하고 여쭤봤어요 ]
**
[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 <-
그래도 불편하긴 할 것 같은데... 하지만 괜찮다고 하니 똑같은 웃는 표정을 보내면서 답장했다.
[ 저는 뿔 자체가 좋은 건 아닌걸요. 그쪽 분께서 달고 계신 걸 보니까 사슴 뿔이 되게 멋있게 느껴져서 예쁘다고 말했을 뿐이에요. ] <-
하고 그냥 보내려다 한 줄 더 추가...
[ 소개를 깜빡하고 있었네요. 저는 3학년 워리어인 사비아라고 해요. 그쪽 분은요? ] <-
**
" ..... "
사슴뿔이라는 단어 선택이 마음에 걸렸다. 왜 다들 사슴 뿔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런 사슴이 어디 있다고... 바다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려다, 미간에 검지를 얹고 문질러 표정을 풀었다.
사슴뿔 이라는 쪽지의 단어에 두 줄을 죽 죽 긋고는 용 뿔 이라고 크게 적어두었다.
[ 1학년 렌서 연바다에요. ]
**
용뿔...?
[ 그 뿔이 용의 뿔이었던 건가요? ]<-
용의 뿔이라니, 대단해...
아니 근데, 용 뿔이 사슴 뿔 아닌가?
[ 오해해서 미안해요. ]<-
[ 랜스셨군요. 이것도 인연인데, 연락처를 교환하시지 않을래요? ] <-
라고 쓴다. 1학년이란 걸 알았지만 존댓말은 계속 쓴다. 초면이니까... 사실 청천성현3인일상에서는 본인만 안면있는 초면이라도 청천이한테 바로 반말을 깠지만 그건... 그때는 캐릭터성이 안잡혔고...
근데, 사슴뿔에 줄 죽죽 긋고 용뿔이라고 크게 써서 돌려준 거... 귀엽네...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떠내듯 손가락으로 입술을 누르며 답장을 썼다.
**
[ 맞습니다 이것은 사슴 따위가 아닌 용의 뿔입니다 ]
뿔에 대단한 자부심을 보이는 연바다. 사슴따위는 용의 식사거리도 되지 못하는 저급한 생물. 절대로 비교대상에 올라선 안 될 일이다.
" 음.... "
뿔을 보고 접근하는 사람에게 연락처를 교환한다는 것은 과연 맞는 일일까.
잠시 고민을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상대의 얼굴을 보면 입술을 손가락으로 누르고 있었다. 이거 뭔가... 데쟈뷰가......
[ 혹시 뿔이 목적이신가요. ]
단호한 질문
**
[ 뿔에 자부심이 있으신가봐요... ]<-
살짝 웃으면서 그런 쪽지를 또박또박 써내려갔다. 벌써 귀여워보이기 시작했어...
[ 아니에요! ]<-
[ 같이 친하게 지내면서 이 인연을 이어나가보고 싶다, 라는 생각밖에 없어요. ]<-
아... 하긴 저 정도 아이템아니다.이 있으면 누군가 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지. 별로 마음에 안 들어도 가져가게 내버려둘 정돈 아니라던가. 하지만 난 정말 뿔이 목적은 아닌걸.
[ 초면에 믿어달라고는 못 해도, 저는 정말 흑심은 없으니까요. ]
하고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쪽지를 써내려간 뒤 책 위에 올렸다.
**
뿔에 대한 자부심. 그것은 군인이 제 훈장에게 갖는 마음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고, 운동선수가 스스로의 몸에 갖는 마음과도 궤를 달리 하는 것이었지만 자부심이라는 단어는 적절했다. 그래서 바다는
[ 네 ]
라는 짧은 답변 뒤에 흑심이 없다는 비아를 빤히 볼 수 밖에 없었다. 키 커보여..
[ 음 그럼 좋아요 ]
[ 가디언칩 번호 교환 하실래요? ]
**
[ 그러면... ]
[ 제 번호는 (대충번호-번호-번번호)에요! ]
실제로 이렇게 써있단게 아니고 대충 번호가 저 자리에 들어가있다는 뜻.
원래 가디언칩이 심긴 손목을 맞대서 번호를 교환하지만 지금은 거리가 있다보니 찾아가서 찍기가 애매하다. 그래서 가디언칩을 켠 다음 내 번호를 쪽지에 적어서 바다에게 써보냈다. 맨날 가디언칩만 써서 내 번호를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 의뢰에 워리어가 없을 때 편하게 불러도 되고, 그냥 사람 한 명 더 있으면 좋겠다 할 때 불러도 괜찮아요. ]
[ 아... 그러고보니, 편하게 말해도 되나요? ]
**
" 오. "
구시대적인 번호교환에 바다는 짐짓 놀라움을 표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비아의 옆까지 천천히, 그리고 도서관에 어울리는 조용한 발걸음으로 이동하여 손목을 맞댈 준비를 하고 있던 바다에게는 꽤 유쾌한 놀라움이기도 했다.
[ 좋아요 ]
[ (번호-전화번호 -번호) ]
[ 저는 이유 없이 불러도 상관 없어요 ]
[ 사람 좋아. ]
**
앗, 번호 받았다. 가디언칩을 톡톡 두드려 번호를 저장. 가디언칩에 떠오르는 바다의 가디언넷 닉네임을 확인하고 창을 종료한다.(씨드래곤이 본계면 씨드래곤, 아니면 다른 닉네임?) 마찬가지로 바다도 [ Salvia ] 라는 닉네임을 확인할 수 있었겠지.
이번엔 쪽지가 아니라 가디언넷으로 메세지를 보냈다.
Salvia: [ 저에요 ]
Salvia: [ (안녕! 하고 손을 흔드는 까만 강아지 이모티콘) ]
저에요 라는 말만 보내면 부담스러울까 봐 웃는 이모티콘이랑... 이것도 보내야지. 움직이는 이모티콘.
Salvia: [ 아, 그러고보니까 책 읽으러 오셨는데 제가 시간을 너무 빼앗았으려나요? ]
책상 위에 놓인 바다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구겨지지 않게 책 사이에 꽂으며 그런 문자를 보냈다. 노인과 바다... 바다인데 바다를 읽고 있었어...
**
CDragon : [ 오랜만에 편지로 전화번호를 써 봤어요 ]
CDragon : [ 사실은 처음... ]
CDragon : [ 책에서만 보던 행위를 직접 하는 행위는 언제나 각별하다고 생각해요. ]
바다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책을 덮었다. 페이지 수는 기억해 놓았으니 다음번에 와서 다시 읽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가졌기에 한 행동이었다. 물론 누가 갑작스레 이 책을 대여해 가지만 않는다면 충족될 기대였지만, 청월의 학생들은 보통 더 복잡하고 더 형이상학적이거나 더 실제적인 내용을 다룬 책들을 좋아하지 않겠는가?
//슬슬 막레? 둘은 나가서 커피라도 마셨다 엔딩?
**
Salvia: [ 저도 마찬가지에요. ]
Salvia: [ 이 쪽지는 앨범에 넣어놓아야겠어요. ]
Salvia: [ 그게... 로망이란 거겠죠? ]
Salvia: [ 아, 슬슬 가실 건가 보네요. ]
Salvia: [ 오늘 질문도 여러 개 했고 바다씨 이야기도 많이 들었으니, 커피라도 한 잔 사드릴까요? ]
그 문자를 보내고 책과 공책과 이것저것을 정리하면서 같이 일어났다. 오늘 공부는... 더 안 될 것 같았으니까. 음.
//오케이. 이걸로 나가서 커피라도 마시고 헤어졌다- 해서 막레하죠! 수고하셨습니다!
- 에릭 일상[1](102스레~137스레) - 6월 16일
- " ...그 날을 기억해? "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었다.
따뜻하면서도, 살짝 시원하고 꽃냄새가 살짝 섞인, 학원섬에서 3월 즈음에 피어오르는 꽃들의 냄새가 섞인 기분 좋은 바람이었다.
하지만 그 바람 끝에 섞인 푸른 풀냄새 역시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 처음 만난 날에 말이야, 머스킷에 대해 이야기 했잖아? 사실 가지고 싶었는데, 조금 양심없어 보일까 싶어서 쉽게 제안하지 못했어. 뭐어 나중에 당신이 제작자라는 걸 알았을 때는 엄청 놀랐다니까.... "
침묵
" 아 그리고, 그 다음에.. 같이 의뢰를 갔던 것도 기억하지? 성현 선배와 같이 엄청 고생했지, 그땐 제법 멋있었어. 당신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분명 실패했을거야. 고블린들의 독이랑 언덕 때문에 개고생을 했지, 나중에서야 고블린 킹이 언더 안쪽에 숨어있다는 걸 눈치챘지만..... "
두번째 침묵
" ...... 내가 매일 여기 찾아오는거, 부담스럽게 생각 안했으면 좋겠어. 그냥 오고 싶어서 온거니까... 그리고, "
에릭은 주머니에서 주섬거리며 한 회중시계를 꺼냈다. 깔끔해보이는 철 위에 꽃과 여우의 무늬가 장식되었고,
살짝 기울이자 붉은색 잉크가 색을 반짝이며 장식을 멋지게 꾸며주는 잘 만들어진 회중시계였다.
" 이런 선물을 받아버렸으니, 이대로 당신을 잊어버리는 것도 좀 그래 "
에릭은 자신의 앞에 놓여진 무덤을 보며, 그렇게 읊조렸다.
**
제가 죽는다면 제 어린 시절의 꿈 속에 묻히면 좋겠어요.
싱싱한 녹색보단 노란색이 많이 섞인 부드러운 연두색의 무늬 없는 클로버가 가득 핀 언덕, 한 사람을 묻고 나서도 큰 언덕 하나와 작은 집이 올라있는 언덕 하나가 남아있는 작은 세상. 나의 천국.
그런 한 뼘의 땅 속에 묻히면 좋겠어요.
아픔도... 고생도... 아무도... 없는... 달콤한 비가 내리는, 내가 마지막으로 꾼 아프지 않은 꿈, 다섯 살의 꿈 속에...
죽음을 상정해본 적 없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어느 한 사람은 문득 그렇게 말했더란다.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던 말을,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것 같은, 자기 옷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게 할 달의 침묵 속에서.
3월. 이미 겨울은 다 지나갔다며 풀이 돋아난지도 한참 지난 완벽한 봄. 따뜻하진 않지만 겨울의 추위는 한결 씻겨나간 바람 속에 생명냄새가 섞여있었다. 무덤 앞에 선 사람을 보며 비아는 부드러운 풀과 달라붙지 않는 흙 속에 발소리를 살짝 감춰볼까 고민하다가 이내 발걸음을 멈추기를 택했다. 집중을 깨고 싶지 않았고, 추모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단지 목에 맨 금속 줄을 손가락으로 들어올려, 안식처들이 많이 보이는 곳을 바라보다가 두 손 사이에 작은 은빛 십자가를 쥐고 가만히 눈을 감았을 뿐이었다.
너무 많이 죽었다.
너무 큰 비극이었다.
죽음을 상정하고 있어도 견디기 힘들 만한 그런 일이었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지. 그렇다면 이 희극에 웃는 사람은 누구일까.
언제라도 여신은 잘못이 없다. 잘못이라면 고통이란 걸 가진 인간의 잘못일 것이다.
침묵을 지새고, 침묵을 지새고, 읊조림이 끝났을 때 그 옆으로 다가갔다.
이곳은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다...미련을 포함한 모든 감정이 엉켜있는 사람을 위한 곳이다.
바스락거릴 만큼 마른 잎이 없는 싱싱한 녹색들은 듣기 힘든 작게 속삭이는 소리를 내서, 어쩌면 듣지 못했을 수도.
연기 없이 냄새만 남아 어른거리는 옅은 탄내와 차갑게 황홀하게 녹아가는 철냄새. 그 옆자리의 무덤 앞에 섰을 땐 그런 냄새가 나는듯했다. 무얼, 아마 유령은 아닐 것이다. 죽은 사람은 멈춰있기에, 그 바람도 더는 불지 않으니까.
" 잘 지냈어요? "
"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
당신이 저 세상에서 듣고 있을라 꾸며내기 힘든 미소를 만드려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내 좋은 친구, 당신이 나 걱정할까 봐 나는 걱정을 해요.
비아는 꽃을 여러 색 모아 묶고 종이로 감싸 자홍색 스피넬을 붙인 꽃다발을 앞에 내려놓고 잠시 기도했다. 그리고 무언가 생각하다가 느리게 고개를 돌려, 에릭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추모하러 온 사람은 다르지만, 추모하러 온 것은 같다.
...잠깐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조금, 시간 괜찮으신가요. "
**
손에 든 회중시계를 꽉 쥐면서 내려다 보았다.
아직 반지 못 받았는데, 검도 못 받았는데.. 아직 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많고 하지못한 이야기도 너무나 많은데.
사람 한명 한명에게 주어진 시간은 공평하지 않았기에, 남겨진 사람은 그저 주어진 시간을 가지고 살아갈 뿐이다.
자신 보다 먼저 시간이 멈춰버린 사람과의 추억을 짊어지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뿐 이다.
" .... "
녀석의 무덤 앞에서 회중시계를 보던 나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슬쩍 고갤 돌렸다.
청월의 교복을 입은, 보라색의 눈동자가 인상적인 여자아이 였다.
평소라면 친절하게 굴었을 것 이다. 애써 친절하게 무해하게 굴었을 것 이다.
그러나 나는 너의 무덤앞에서 더 강해지기로 마음먹었기에, 네가 강화한 강철을 품에 안고 나아갈 것 이다.
" 무슨 일인가요 "
초면인 사람에게 호구마냥 해실거리며, 욕이나 모멸감을 받아도 그저 참고 넘어가던 시기는 지나갔다.
" ... "
**
삶은 멈춰도, 세상은 언제나 멈춰주지 않았다.
당장 손을 뻗으면 끄집어낼 수 있는 추억에 더 이상 손을 뻗으면 안 될 순간도 찾아온다.
" 그냥, 조금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
당신의 고통을 나누고 싶다. 비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은 내 고통이 어딘가로 나눠지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 꼭 여기가 아니라도, 어디든. 어떤 말이어도,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잠깐만 시간을 내주신다면... "
고마울 것 같아요, 까지 속삭이고 손에 쥐고 있던 십자를 다시 옷 위로 돌려놓았다.
타인이기 때문에 털어놓을 수 있는 게 있고, 친한 친구들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게 있었다.
비아에게 지금 이 순간은 전자였다.
오늘의 우리는 꽤 공감할 수 있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하고. 거절된다 해도 이상할 건 없었지만 그런 말을 했다.
**
손에 들린 회중시계를 바라보았다.
나는... 너와 같이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하는 영웅을 만들어낼 것 이다.
네가 만약 살아있어서, 나에게 그러지 말라고 해도 상관없다. 분명 너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알게된다면 말리겠지.
그래도... 소중한 사람이 죽는 것을 항상 각오하고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난 만들거다.
거기서 지켜봐라 루
" 괜찮아.. 그런거라면 괜찮아. ...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
회중시계를 닫고 재킷 안주머니에 넣은 나는 눈 앞의 여학생에게 한걸음 다가갔다.
특이한 사람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어려보이면서도 보여지는 분위기는 나보다 훨씬 연상처럼 느껴졌으니까.
종교를 믿는 것 일까?
옷위에 보여지는 십자가에...그가 잠깐 시선을 두다가.
곧 그녀의 보라색 눈동자를 마주보며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
그 사람, 그렇게 착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하지만 당신이 그런 일을 하려 했다면, 말리지도 긍정하지도 않고 마른 천으로 피에 젖을 두 손을 닦아주었을지도 몰라. 이제와선 추측과 가능성에 불과할지라도.
" 기다리는 사람 얘기, 그냥 요즘 살아간 얘기. 무엇이라도 괜찮지 않을까요. "
이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과거가 될 때까지, 이 과거 속에 남아서 기다릴 멈춰버린 사람들 이야기. 비아는 그렇게 풀어서 이야기하지 않고, 은유적으로 그런 말을 하다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 아니면 제 이야기라도 들어주실래요? 괜찮으면 어디 카페에라도 앉아서 이야기해요. 음료수나 이것저것, 바라는 메뉴가 있다면 제가 살게요. "
...근데 이 일상 시점에서 에릭이 점장대리인 카페는 어떤 상태인 거지? (초장기 텀의 업보)
**
" ....당신의 이야기? "
딱히,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어째서인지 그녀의 사는 이야기, 살아갈 이야기를 들으면 루와의 이야기도 어느 정도 정돈 되겠지.
마침표가 찍혀버린 이야기를 억지로 질질 끌어 가는건.
너에게도 실례가 될테니까.
" 그럼 들어볼까. ... 카페는 내가 아는 곳이 있어, 앞장설게 따라와 "
무덤가를 나오면서 여러 모습이 보여졌다.
죽음에 익숙해지면서 웃어보이는 사람, 죽음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오열하는 사람.
아니면 나 처럼 미련이 많아서 그저 멍하니 무덤을 보고있는 사람.
어떤 모습이든 나에겐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방금 까진 저런 모습 중 하나였다고 생각하니. 어색하다.
" 여기 온 이유는 뭐야? ...누가 죽었지? "
**
" 그러면 그쪽으로... "
비아는 에릭이 향하는 길을 따라가며 느긋하게 숨을 내쉰다. 이곳에서 빨아들인 이곳의 분위기가 숨결에 담겨 다시 빠져나가는 듯한 상상이 든다. 그래도 익숙해지지 않으면 좋을 이곳의 분위기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서, 여전히 친숙해서, 싱싱한 이파리가 발에 밟혀가고 있어서, 순수한 숨결만을 내뱉어가며 길을 나섰다.
" 좋은 친구에요. "
객관적으로 중요한 사람이 될 사람은 아니었지만 성품이 좋았다. 많은 사람에게 소중한 사람이 될 만한 사람이었다. 의지할 사람은 아니었지만 같이 걷고 있으면 나쁘지 않은 기분이 되는 사람이었다.
비아에게는 잃어버린 지금, 어떻게 느끼면 좋을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 당신은요? "
**
" 내가 봤던 대장장이 중 가장 뛰어났을거야. "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믿지 못하였기에 나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그것은 내가 무슨 영웅심을 꺼내보여도 극복하게 만들 수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그가 죽었다는 걸 알았을 땐 좌절했다.
아, 나는 결국 그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구나.
" 이야기를 길게 한 건 아니지만. 엄청 친하다고도 할 순 없지만. 그래도 잊기 싫었어. "
사람에게 주어진 망각이란 개념은 축복도, 저주도 될 수 있기에. 그저 어느날 갑자기 나이젤 그람이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것이 내 기억속에서 사라지는게 싫어서.. 나는 이곳에 온다.
" 저 카페야. "
마침 카페가 보이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점심이 지나고 한참 한가한 시간이기에 손님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리고, 날아다니는 드론이 나를 보자마자 비웃듯 빙글 거리며, 주방에서 나온 너구리가 나를 반겼다.
" 점장님 어서와라구리. "
**
" 안타깝네요. "
영웅도 구할 수 없는 사람은 있다.
누군가를 구하려면 그 이상의 구하지 못하는 사람을 마주쳐야만 한다.
구제 불능(救濟 不能).
삶의 모든 순간을 도망으로 채워 왔던 사람은, 위험 속에서 큰 손이 들어올려 꺼내 준다 할지라도, 또 위험으로 달려가서 끝내 부딪쳐 깨져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 도망을 쳤다.
인간의 사회는 구제 불능(救濟 不能)의 인간을 어디까지 용납하고, 어디까지 받아들여줘야 한단 말인가? 도덕심과 동정은 어디까지의 손해를 허락한단 말인가?
" ...... "
비아는 그의 얼굴을, 눈동자를 쳐다봤다.
눈을 바라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붉은 눈동자. 피의 색일까, 물기에 낡아버린 철의 색일까.
" ...점장? "
학생인데 카페 점장? 비아는 그가 안내한 카페로 멍하니 들어서다가 놀라고 말았다. 주문... 을 해야 하긴 하는데, 드론과 너구리와 그 중 어느 쪽에 주문을 할지 헤매는 듯 시선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
나이젤을 구하지 못했다.
메리가 사라졌다.
태양왕 게이트에서 수 많은 얼굴만 아는 이들이 죽어나갔다.
영웅이 되자고 다짐했지만 실패. 실패. 실패. 실패.
영웅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은 아직 존재했다. 이대로 그저 나태하게 굴기 싫었다. 그래서 내 짐을 떠 넘겼다.
이기적이고. 비겁하고. 비열하며. 음흉하면서도. 구역질나는.
나의 자기혐오를 새로운 사상이란 이름의 화려한 천으로 덮어 가리고 나는 그들에게 새로이 주장했다.
'인류를 위해서! 재능있는 소수를 압박하여 영웅을 만들어낸다! 그것을 위해 내가 악이 되어주겠다!'
헛소리.
하루는 그것을 주인공병이라 하였다.
옳은 표현이다.
" 안타깝지 "
나이젤도. 나도.
카페로 들어온 나는 어디에 주문할지 갸웃거리는 그녀를 보다가 맥스를 가르켰다. 맥스는 그녀에게 조금 다가와 주문하면 된다고 말하며 추천 메뉴인 에그타르트나 탕후루, 치즈케이크 등등을 보여주고 있었다.
" 점장대리야. 이 카페는 내가 바지사장으로 운영하고있어. "
**
...실패하면 무언가 잃는 게 있다
너무 잃고 나면 실패가 두려워지고 만다.
그것이 옳지 않은 방향이라고 해도, 결코 자신이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 자신이 완벽히 통제하고 있는 상황 속으로 들어가 나오고 싶지 않아질 때도 있다. 자신이 패배하더라도 그것까지 자신이 바란 일이라면 괜찮을 거라고.
그걸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없진 않을 것이다.
" 점장님한테 신뢰받고 있는 모양이네요. "
비아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AI 드론봇이 보여주는 메뉴를 보면서 자기 몫으론 주스에 치즈케이크, 에릭 몫으로는 적당히 이것저것 주문하려 했다. 취향을 모르니까 적당히 호불호 안 갈릴 만하게...
그리고 사람 적은 카페의 적당한 위치에 앉아서 얘기를 시작할 준비를 했을까.
" 먼저 제 소개를 하자면 저는 청월 3학년생, 온사비아. 성이 온이고 이름이 사비아, 인 신 한국인이에요. 쓰는 무기는 방패, 의념속성은 보석(寶石). "
처음 얘기는 신상정보부터.
" 최근 있었던 일... 은 많지는 않네요. 시험기간이니까 열심히 공부를 했단 거? 쉴 때는 평범하게 쉬었지만요. 특별한 일이 있었다고 하면... 정말 영웅 같은, 멋진 분을 만났다고나 할까요. 이분 얘기는 비밀이라서 자세히는 못 말해드려요. "
우연히 먼저 만났을 뿐이지 기밀이니까. 비아는 유노하라의 말을 떠올렸다.
" 언제나, 열심히 해야 하는 순간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요. 언제나 노력한 만큼 잘 되진 않았지만요. 이번 시험도 간신히 진도를 맞춘 정도고, 그리 잘 보진 않았으니까. 전에 '파보나스의 체스 대결'이라는, 사실상 망가졌던 게이트에 참가했을 때, 그때는 정말 어떻게든 해냈었죠. 선생님들께도 그 점만은 좋게 보이고 있는 것 같아요. "
씁쓸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어두운 기색 없이, 알듯말듯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찬찬히 이어나가는 말이었다.
이야기는 이후로 몇 개의 일화를 엮어 현재로부터 과거로 뻗어내려가고 있었다.
" ...내 좋은 친구 얘기는 아직 안 했었죠? "
그와 사비아가 만난 이유. 찾아가야 했던 이유.
물에 젖으면 주변의 빛을 굴절하는 섬유로 우산을 만들어서 비오는 날 목 없는 학생 괴담으로 악명을 높였던 제노시아 학생의 실물을 봤던 우스운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와 마찬가지로 덤덤하게 그렇게 물으며, 바로 말하지는 않고 뜸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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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과 의념 속성, 학년에 대해 들었다. 나보다 선배였던건가?
무덤에서 만난 인연으로 카페에 오게 된 것이 전부인거라 이렇게 자세히 들을 수 있을 것 이라고 생각은 못했지만.. 그래도 체스대결 게이트까지 들어보니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가 잔뜩 있었고 듣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 호오. 뭐. 이제 본론인가? 그래, 이제 그 이야기 차례야. "
죽어버린 친구.
나는 이런 상실이 익숙하지 않기에, 어떤식으로 극복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저 내가 내 사상을 가슴에 품고, 그 녀석에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행동할 뿐이다.
" 그걸 말해주면. 나도 내 이야기를 해줄게. "
곧이어 춘덕이가 뾱뾱 거리며 주문한 디저트와 음료를 서빙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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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얘기해줄게요. "
어린이용 뾱뾱이 신발을 신은 것처럼 뾱뾱거리며 다가오는 춘덕이에게 잠시 시선을 빼앗기던 비아는 서빙된 주스를 한 모금 삼켜 목을 달달하게 코팅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 제가 아카데미 처음 왔을 때 일이에요. 그 때, 처음 와보는 길에서 헤매고 있었죠. 근데 같은 청월 교복을 입고 있는 그 사람이 있어서 길을 물어봤더니, 글쎄, 자기도 길을 잃었단 거에요. 나보다 아카데미에 오래 있었으면서. 울먹거리기까지 하고. "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 그래서 결국 그 사람 손을 잡고 더 헤매서 청월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어느 날 시험기간에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 사람한테 전화가 온 거에요. 1학년 때 배운 건데 기억이 안 난다고. 결국 그래서 1학년 과정을 같이 공부하고... 둘 다 사이좋게 저공행진을 하긴 했지만요. "
" 객관적으로 보면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어요. 어딜 가나 헤매고, 노력을 한다 해도 성과는 안 좋았고, 가끔 힘들다면서 그 노력도 놓아버리곤 했어요. 그냥 평범한 사람, 청월에 들어오기엔 어울리지 않았고, 가디언의 자격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분명 그 사람에겐 없었을 거에요. 하지만 친구의 자격이란 게 존재한다면, 분명 모두 갖고 있었을 거에요. "
" 헤실헤실 웃고 있으면 못미더우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내 손으로 잘못을 덮어 주게 되었고, 건강을 강화하는 걸 까먹을 만큼 어디서 얻었는지 술에 취해서 돌아다니고, 제노시아에서 열린 장터에 가서는 이름도 없는 장인의 물건을 아무도 안 사줘서 슬프단 이유만으로 사들고 돌아왔었죠. 그래도 귀여운 사람이었어요. 자기는 맨날 구르고 다니면서 남 걱정부터 하는 사람이었어요. "
" 카페에서 시킨 메뉴보다 훨씬 싼 메뉴가 잘못 나왔는데 안 먹어본 걸 먹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싱글벙글 자랑을 했죠. 뒤늦게 '아, 나 그거 알레르기 있는데!' 하고 놀라기도 하고. 의념 각성 안 했으면 진작에 죽었을지도요. "
" ...진짜 죽어버렸지만요. "
그 사람과의 좋은 추억을 회상하는 것은 사비아가 죽음을 버티는 법이었다.
좋은 추억 속의 그 사람은 즐거워하고 있었다. 늘 즐거운 순간만을 새기고자 했다. 하지만 좋은 추억으로만 남아버린 것들이 늘 그렇듯 끝은 소실로 맺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학원섬에서 처음 죽음을 겪어본건 아니에요. 다른 위험한 곳들만큼은 아니어도 여기는 죽음에 가까운 곳이니까. 그리고 그 죽음들 중에 제가 자세하게, 가깝게 알 수 있는 것들은 없었어요. 내가 눈치 못 채는 사이, 다른 일들을 하는 사이 여린 불꽃처럼 픽 터져버리고, 타인의 입으로 그 사람은 죽었다고 전해듣곤 했어요. "
슬프지 않은 건 아니지만 슬픈 티를 내지 않으며, 그 이상의 의문을 풀기 위한 말을 한다.
" 저는 죽음을 많이 겪어오진 않았지만, 그리고 행운으로 그 죽음 중에서 제 탓이라고 할 건 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한 가지 의문이 생겼어요. "
"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요? "
" 죽음이란 걸 극복할 수 있을까요? "
" 애초에 죽음은 극복의 대상인 걸까요? "
이제 와서 누군가의 죽음에, 슬픔에 젖어 무너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슬프더라도 나에겐 남은 게 있으니까 딛고 일어설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러면 죽음은 어떻게 대접받아야 한단 말인가?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견뎌낸다는 것은, 그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것과 같이 취급될 수 있는가?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극복한다는 것은, 그 죽음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이 취급될 수 있는가?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그 죽음의 원인인 자가 감히 품을 수 있는가?
-내 안에선 그 감정들이 갈무리되었지만 매듭짓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만약 내 탓으로 누군가 죽는다면? 나에게 그 죽음을 극복할「잊을」 권리는 있는가, 없다면, 그 죽음을 평생 책임져야「기억해야」 할 의무만 있는가? "
풀 수 없는 난제지만 괴롭고 엉망진창 얽힌 생각을 풀어놓듯이 말하는 게 아닌 차분하고 정결하게 의문을 품는다.
말 그대로, 생각하는 주제일 뿐이다.
워리어라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일.
어디까지를 누구의 책임으로 보아야 하는가? 라는 것도 있지만, 섣불리 자학하진 않아도 자신에겐 엄격하게 굴곤 하는 게 사비아란 사람의 천성이기에 그런 의문은 축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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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들었다.
그것 뿐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죽어버린 그 친구에 대한 기억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상실에 대한 경험은 뚜렷하기에 비슷한 형태의 상처로 남겨져 있겠지.
잔인한 시대다. 좋아하는 사람이 죽을까봐, 혹은 자신이 죽고 그 사람만 남겨질까봐 고백을 주저한다.
가족이 죽을까봐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런 시대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죽어버린 이와의 추억을 짊어지고 싸구려 애도를 읊조린 다음 또 다시 나아간다. 애석한 일이다.
" 잘들었어.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인상깊었어. "
일부러 끊어내지도 않고 차분히 들었으니 이젠 나의 이야기를 들려줄 차례였다.
에릭 하르트만의 이야기는 자신의 사상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좋게 말하면 영웅주의. 실상은 공리주의. 소수의 희생을 비롯하여 만들어진. 피와 뼈와 철로 쌓아올린 기둥위에 올려진 멋들어진 평화.
조금만 들어도 반박이 가능한..애석한 이야기
" 그래서. 오늘 저녁. 그 카사란 아이를 대리러 갈꺼야. "
그리고 혈철의 용린을 두른 우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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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너는 과연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쳐가면서도 비아는 입을 다물었다. 약속대로 이제는 이야기를 들어야 할 차례였으니.
좋게 말하면 영웅주의, 실상은 공리주의. 소수의 희생을 전제하에 만들어진, 피와 뼈와 철로 쌓아올린 기둥 위에 올라간 멋들어진 평화. 조금만 들어도 허황된 꿈이란 소리를 듣곤 할 애석한 이야기. 그런 꿈을 꾸는 건 너무도 익숙했던 비아는 그 이야기를 굳이 끊지 않고 쭉 듣다가, 그녀를 데리러 간다는 것으로 말이 끝나자 비아는 치즈케이크를 조금 서툴게 떼어 내어 입에 넣었다.
" 이르지 않아요? "
모든 걸 결정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은가.
" 영웅이 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면, 영웅을 만드는 것은 그 몇 배는 어려운 게 인지상정일 텐데. "
또 한 입.
" 악당이 되려면 악당의 재능이 있어야지요. "
만화에서 나오는 영웅의 적, 악당도 그렇다. 거의 모든 악당은 패배하지만, 주인공보다 떨어질지언정 어느 정도의 능력은 갖고 있어야 한다. 그 정도도 없으면 잊혀지고 말기에.
누군가의 바람을 부정한다면 그녀의 삶 자체도 부정되어야 할 것이기에, 일단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지금의 에릭이 이뤄낼 수 있는 것인가'를 묻고 있는 비아였다.
**
" 내게 악당의 재능은 없어 "
냉철하게 자아성찰은 한다. 자신에게 악당의 재능은 없다.
계획하고, 생각하고, 동지를 모집하는 재능은 떨어진다.
이른바 삼류. 잘 해봐야 이류
"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좋아 "
" 끝내 패배한다는 거잖아. "
잔혹한 이야기지만 나는 카사를 이길 수 없다.
지금으로선 기껏해야 서로 피터지게 싸우고 빈사상태까지 몰아넣는 정도.
준비를하고 생각을하고 즉흥적인 센스를 응용하면 이길 수 있겠지만, 카사에게 먹힐까?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좋다. 결국 끝내는 패배하고야 마는 악당이야 말로, 영웅을 만들기에 덧 없이 좋은 재물이다.
" 난, 오늘 저녁에 성학교로 가서 카사라는 아이를 끌고갈꺼야. 물론 막아서는 녀석들도 있겠지...한..8명 정도? "
하루가 힘들게 돌아다닌다면..그 정도 쯤?
후배에게 부탁하고, 쓸만한 사람을 고용하고.
어딘가의 인연으로 대려온다면 대충 8 명이다.
" 힘들겠지만, 해봐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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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배한다고 끝이 아니잖아요? "
가장 좋은 악당은 패배로 끝을 맞는 악당이지만, 악당도 악당 나름이다.
" 주인공에게 일곱 번 패배하면 여덟 번 도전하는 악당이 있고. "
" 패배했다고 한들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을 적에게 최후의 반격을 개시하고 패배하는 악당이 있고. "
" 힘이 부족해서 졌을지언정 사상과 사상의 부딪침에서는 밀리지 않았던 악당이 있고. "
" 모든 게 실패로 돌아갈지언정 세상에 어떤 결과를 내고, 변화를 주었던 악당도 있어요. "
" 사람들은 그런 걸 매력적인 악당이라고 해요. 금방 패배하고 잊혀지고 마는 건 악당이 아니라 엑스트라라고 부르죠. "
" 덧없는 패배는 아무 의미도 없어요. 어차피 패배하더라도 잊혀지지 않을 패배를 만드는 것, 악당의 재능이란 게 있다면 그것 외에 아무것도 없겠죠. "
" ...당신은 철저하게 엑스트라가 되기 위해 노력했네요. 그게 아니라면, 당신은 안일해. "
" 악당이 되겠다면 마지막에 승리할 각오로 해야지. "
" 악당이라곤 해도 자기 자신의 삶에서만큼은 주인공이어야 할 거 아니야?"
" 지는 걸 바라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 주인공과 맞부딪쳐 이기는 순간 악당은 주인공이 되니까. 결국 주인공과 악당이 부딪치는 것은, 주인공이 되고 싶은 두 사람의 대결이 되어야만 하는 거야. 주인공도 악당도 그런 대결이 아니라면 가치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얻을 수 없어. "
"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
비아는 목은 아프지 않지만 음식을 삼켜넘겼다.
"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해봤자 듣지 않을 건 알지만요. "
" 멈추기에도 이미 너무 늦었죠? "
이해할 수 없는 사람. 학원섬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왜 그런 생각을 품게 되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 삐뚤어진 사람들. 그리고... 그건, 비아에게도 적용되는 평가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친한 사람이었다면 이해하려 했겠지만, 그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친한 사람이었다면 친애 담긴 설교를 했겠지, 이번엔 그저 당신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겠노라 말하며 자신의 생각을 부딪칠 뿐이다.
그리고 '당신'-은 부딪쳐도 휘어지지 않고 도리어 더 단단해질 뿐인 연단의 단어를 품고 있는 사람일 터.
**
" 내가 듣고싶었던 건..! "
비아의 말이 끝날 즈음 에릭이 소리친다.
잠시 눈을 감고 반박하지 못할 상대방의 논리로 느끼는 노기를 가라앉히며 천천히 숨을 고른다.
" 내가 듣고싶었던 건, 당신이 어떻게 죽음을 극복했는가지... 악당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야"
" 괜한 참견이야."
구석에서 전투를 대비해 다림이와 같이 열심히 디저트를 만들고 있는 춘덕이가 걱정스러운지 힐끗 쳐다보았지만.
나는 손을 저으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 세상이 구원받기 위해선 소수의 영웅이 필요해.. 이게 뭐가 틀렸다는거야. "
" 당연한거잖아, 홍왕같은 마왕같은 영웅이 더 늘어나면 게이트도 조금 더 빠르게 클로징 되겠지. 그럼 사람들은 더욱 평화롭게 살테고...이렇게 간단한거잖아!! "
그 소수의 희생 때문에 주저하는거라면.
약해 빠졌어.
" 정 내 이론이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당신도 찾아오던가...성학교 기숙사 앞에 말이야 "
**
" ...그러니까, 당신은, 당신이 듣고 싶은 내 이야기를 들으려고 여기에 불렀던 거구나. "
똑같이 노기를 돌려주지도, 겁을 먹지도 않고, 하지만 들어주고 흘려넘기기만 할 생각도 없다는 듯, 비아는 굳은 표정으로 몸을 곧게 세우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 나는 물었지.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우리는 죽음을 극복할 수 있을까, 애초에 죽음은 극복의 대상일까. 나는 죽음과 상관없이 내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게 죽음을 극복했다는 뜻은 되지 않아. 애초에 나한테도 그것은 의문이니까. 나는 그저 살아있는 내 친구들과 같이, 죽은 내 친구들도 쭉 기억하며 살아갈 뿐. 의문을 풀어낼 수 없었어. 어쩌면 그 누구도 풀 수 없는 의문일지 몰라. 당신에게 말했던 건, 오직 같은 죽음을 겪은 당신과 이야기하면 뭔가 답에 가까운 게 번뜩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 때문이었어. 하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잖아. 그리고... "
" 그 이야기가 내 기준으로 용납될 수 없고 타인의 의지를 무시하는 부도덕적인 계획이라는 걸 알아. 하지만 부정하지 않았어. 틀렸다고 하지 않았어. 이 세상엔 확실히 영웅이 필요해. 영웅. 너무 먼 허상 같은 단어지만 누군가는 그 허상을 꿈꿔야 세상이 돌아가. 실패하면 몽상가가 되고, 성공하면 희망이 되지. "
그리고 온사비아라는 사람은 꿈꾸는 사람에 속했다.
" 당신이 영웅의 초석이 될 수 있다면 세상엔 왕이 수십 명도 더 있었을 거고, 카사란 아이가 그런 영웅이 될 수 있는 아이라면 꼭 당신이 있어야 영웅이 되리란 보장은 없어. 애초에 당신, 지금 모습으론 교육자로 보이지 않는데. 어느 쪽이나 당장...은 안 되겠지만, 영웅을 만드는 것보단 당신 자신이 영웅이 되려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거란 생각이 들어. 당신이 직접 영웅이 되기 위해 노력할 생각은 하지 않은 거야? 아니면, 했지만 좌절하고 혼자 벽에 부딪치고 말아서 자신보다 더 영웅이 되기에 가까울 것 같은 사람의 삶에 자기 발자취라도 남겨서 숟가락을 얹으려고 하는 거야? "
그리고 당신도 찾아오던가, 란 말에는...
" ...그래. 그 앞에 찾아갈게. "
라고 말하며, 네 '악당 예행연습'에 어울려줄 생각은 없지만. ─라는 생각을 비아는 속으로 삼켰다.
그리고 잠시 간격을 띄웠다가, 책상 위에 자홍색으로 빛나는 보석─알만딘 스피넬(7월 28일, 영혼과의 교류). 자신의 좋은 친구의 생일을 수호하는 보석이자 이번 추모식 때 꽃다발과 함께 바쳤던 보석을 똑 떨어트렸다. 이내 비아는 힘없는 듯이도 느껴지는 무른 목소리를 뱉었다. 어쩌면 오늘 처음으로, 체념과 비슷한 성질의 얌전히 바닥으로 가라앉는 밀도 높은 감정을 담은 말을.
" 있잖아. 당신. 당신이 추모하고 있던 그 사람한테... 당신은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야? "
당신, 「케이론에릭 하르트만」.
영웅이자, 교사. 의 가능성.
당신이 없었다면 온사비아라는 사람은 없었을 텐데,,이 가능성을 떠올릴 수 없었을 텐데,,······.
어째서 당신은 그 경험 덕분에 지금은 없는 그 사람에게 승리의 과실을 가져다 줄 수 있었고, 그 경험이 있기에 검의 길을 찾았는데도, 그때의 기억을 잊어버린 것처럼 행동하는가. <지금의 에릭 하르트만>도, <용살자>도, <에릭 블러드하트>도 검을 쥐었지만 검 대신 펜을 쥐었던 단 하나의 가능성. 당신이 악역이 되지 않아도, 당신은 영웅을 만들 수「의념기 영웅작성」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
정말로, 당신은, 지금 검으로 스스로를 증명하고 있는가?
이라는 것을 하나도 말할 수 없을 뿐더러 알 수도 없는 소녀는 또 하나의 보석을 손에 쥐고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
정론.
정론 다음 정론 다음 정론. 그의 사상에 남아있는 헛점을 정론이 파고들어 미혹을 만들어낸다.
그럴듯한 사상이란 많은 물을 담은 어리석음의 잔에 만들어진 흠집에서 사상이 빠지고 나면, 컵의 제일 밑바닥에는 후회만이 남아있을게 분명하다 라는 것은 모두가 안다. 다만 오직 그만 모른다.
그 후회를 보지 않게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 하며 다시 사상이라는 물을 채운다.
흠집을 통해 사상이 빠져나가고 그 위에 다시 사상을 채운다. 명목상 대의, 실상은 컵 밑바닥의 후회를 보지 않기 위한 발버둥.
순간 연단의 의념이 불길처럼 이글거리며 그가 검을 뽑는다.
의념발화에 이어지는 참격을 비아에게 내려찍으려는 순간.
픽 ㅡ!
" 경고 [-ㅁ-]. 사용자의 과격한 행동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드림 [>ㅁ-] "
패널에 다양한 표정이 떠오르며, 맥스가 쏜 생물학분해빔에 의해 내 몸이 우뚝하고 멈춰섰다.
..아직 남에게 한 번도 안쏴본건데 그걸 주인에게 쏘다니..저 깡통이.
" ..너, 온 사비아 라고 했던가? 성학교 기숙사 앞으로 나와라, 너를 포함해서 내가 틀렸다고 말하는 녀석들을 전부 박살내줄테니..."
**
이런, 무기도 없는 상황인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공격이 들어올 건 예상하진 못했지만 그나마의 판단으로 스텟을 강화해서 테이블을 낚아채려는 순간─
깜빡.
하고 쳐다보자 뻣뻣하게 굳어있는 점장군과 얼굴(?)에 이모티콘을 띄우고 있는 드론이 있었다.
뭐야... 뭔가 반짝 했는데. 저 드론이 뭔가 한 건가, 하고 빤히 쳐다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 ...그렇게 굳은 상태로 말해도 말이야. "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말했잖아. 간다고. 좀 늦을지도 모르겠지만... "
물론 싸우러 가는 건 아니지만.
" ...그리고, 난 당신이 틀리다고 말하지 않아. 지금 이 장소에서 당신이 틀렸다고 말하고 있는 사람은, 당신뿐인걸... 저 드론은 사람은 아니니깐. 난 당신의 이름도 모르지만... "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 위에 놓인 알만딘 스피넬을 다시 집어들다가, 문득 원래 손에 들고 있던 보석의 행방을 알아차린다. 칙칙한 녹색을 띈 보석, 강해진 몸으로 어딘가에 내던져버린 보석은 멀지 않은 곳에 조각나 튀어 있었다. 한숨을 쉬며 스피넬을 주머니에 넣고 손을 내젓자, 손 위로 빛나는 에피도트 파편이 반짝 올라왔다. 주머니에 넣으면 찢어져 버릴 테니 들고 갈 수밖에 없구나. ...진화한테 뭐라고 할 처지가 아니야.
" 스스로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걸 꿈으로 삼는 건 자신에게 너무 잔혹하지 않을까, 하고. "
그리고 가디언 후보생의 증표인, 가디언칩이 심긴 손목을 드론을 향해 내보이며 가게 밖을 향했다.
" 계산 부탁해요. "
- 은후 일상[1] (156스레~162스레)<임시스레7> - 6월 29일(새벽)
- ~ 오늘은 기필코 사고 만다. 신상 필기구 ~
머리카락이 샛노란 청년은 즐거운 기분으로 상점가를 걷고 있었다. 특별 상품 이벤트가 어느새 끝났더니, 상점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대로의 인파만 보였다.
그놈의 커플 게임 이벤트. 사실 은후는 다림 덕분에 실보다 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만, 그 이벤트 하나 때문에 신상 필기구를 첫날에 사지 못했다는 것이 필기구 동맹의 회원으로선 슬프기 짝이 없었다.
이걸 같은 동맹인 사비아 선배에겐 들키면 안 되는데.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코너를 돌자, 늘 들리던 필기구 전문점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익숙한, 키가 큰 여성 또한.
"어…."
망했다! 힝, 하는 표정을 감출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막 문을 열고 가게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비아의 어깨를 그는 툭툭 치려 했다.
"사비아 선배! 마침 여기서 뵙네요."
좋은… 아침?
**
오늘의 쉬는 시간(학교 쉬는 시간 아님), 나는 상점가에 나와 있다.
이유는 터무니없다. 사람 한 명을 만나려는 것이다.
소문 퍼트리기 좋아하는 학생들 때문에, 학원섬에 어떤 변화가 찾아오면 가디언넷에도 거의 비슷한 시간에 정보가 올라온다.
그리고 이번에 올라온 것은 신상 필기구가 들어왔다는 정보였다.
마침 여러 개 사둔 펜도 거의 잉크가 떨어져서 새로 살 겸, 그리고 이 소문을 들었으면 바로 찾아왔을 만한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에 지금의 목적지도 평소에 자주 다니던 필기구 전문점이다.
이미 와 있으려나? 먼저 가...진 않았겠지 설마.
그리고 [당기시오][당기시오][당기시오][당기시오][당기시오]라고 붙어 있는 문을 당기면서 들어가려다 막히는 느낌에 물음표를 띄울 때쯤,
" 어? 은후야? "
네가 왜 뒤에서 나와?
" 미리 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좀 늦었네. 좋은... 점심이야. "
굉장히 힝한 표정이다... 나라도 웃는 얼굴로 맞아줘야지.
아무튼 아무리 당겨도 안 열리던 문이 미니까 열리는 걸 보고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면서 문을 열었다.
" 역시 여기 온 건 그 소문 때문이지? "
//일단 다림-은후일상 당일(이후)로 설정했어용!
**
무슨 일이 있었나…?
늘 이 가게의 [당기시오]는 반대로 밀어야 한다는 걸 알 텐데, 계속해서 문을 열지 못하고 있던 그녀를 보며 은후 또한 물음표를 머리 위에 띄웠다.
"아. 아하하…. 선배는 조금 전까지 상점가에 사람 꽉 차있던 거 못 보셨나요?"
자신이 늦은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한담. 손가락을 제 입가에 가져다 대고 아주 잠깐, 골똘히 고민하던 청년은 간단하게 조금 전까지의 상황을 정리했다.
"점심시간까지 다른 가게에서 경품 이벤트를 했거든요. 어쩌다 보니 인파에 휩쓸려서 거기 참여하다 좀 늦었네요."
참 알기 쉽죠?
늘 짓던 표정대로 방긋 웃으면서 그는 입술에서 검지를 떼고 가볍게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려 보였다.
"당연하죠! 떠오르는 중국의 브랜드! Y사의 신상 만년필! 기존 Y-057 모델의 단점을 개선하고, 다양한 색상을 추가한 Y-N05 모델이 막 들어왔다는 소문이요!"
선배도 같은 소문 듣고 왔죠? 하고 천연덕스럽게 덧붙이고선, 빨리 들어가자는 듯 가게 안으로 팔을 쭉 뻗어 여성을 안내하는듯한 자세를 취했다.
**
물음표를 뿅 띄우는 은후의 시선을 피한다.
체감상으로 처음 와보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오랜만에 와서 그럴 뿐이니까, 응.
" 사람이 우르르 빠져나가는 건 봤는데. "
아마도 은후랑 타이밍이 좀 엇갈렸던 것 같다.
늦게 와서 더 빨리 온 셈인가...
" 어쩌다가 그런 걸 했대... 경품은 탔어? "
아무튼 아까의 힝한 표정에서 웃는 표정이 된 건 다행이다.
경품 타는 게 어디 쉽겠냐마는... 그냥 물어보는 거니까.
" 왠지 더 자세해졌네. 나는 그냥 신상이 나왔단 말만 듣고 온 건데. 역시 은후야. "
덧붙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고, 안내해주는 듯한 모습에 기꺼이 받아 먼저 들어선다.
그리고, 두리번두리번거리며 소문의 신상을 찾아본다.
" 어느 쪽에 있으려나? "
**
"거기서 다ㄹ…. 아니, 제 친구를 만나서요! 친구도 경품에 관심이 있어서, 그 자리에서 의기투합했죠. 뭐."
아무래도, 내용이 커플 게임이었다 보니(그렇다곤 해도 게임의 내용은 나름 평범했지만) 조금 머쓱한 표정으로 청년은 말을 잇다가, 아 하고 겉옷 안 주머니를 뒤졌다.
"짜잔! 선물이에요. 친구 덕분에 왕창 따서, 이건 저에게 필요 없거든요."
▶ 상점가 할인 쿠폰 ◀
[커플게임에 참여신청을 하면 지급하는 쿠폰. 상점가의 모든 가게에서 사용할 수 있다.]
▶ 일상 아이템
▶ 할인이요! - 일정 할인가에 상점가의 물품을 구매할 수 있다.
▶ 시스템적 허용 - 아무런 효과가 없는 일상용 아이템이다.
다림과 참여 접수를 할 때 받았던 할인 쿠폰이다. 청년은 1등 상을 떠맡듯이 받은 덕분에 무료 증정권까지 받았으니, 할인 쿠폰은 딱히 필요 없기도 하고…. 그렇기에 선물이랍시고, 태연스럽게 그것을 사비아에게 건네는 것이다.
"음, 만년필 코너는 저 안이었는데…. 배치가 좀 바뀐 것 같죠?"
가디언 넷에서, 며칠 전에 코너부터 시작해서 브랜드의 배치까지 싹 다 갈아엎었다는 소문을 들었으나, 정말일 줄이야.
우선, 두 사람은 볼펜이 잔뜩 꽂혀있는 자리부터 시작해서, 샤프가 있는 자리까지는 쉽게 찾았다. 대다수 문방구의 패턴을 볼 때, 만년필 코너도 이 근방일 것이다.
**
" 무슨 경품이었는지 궁금해지네... "
딱히 못 들어도 상관은 없지만.
그리고 은후가 내미는 걸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 주는 거야? "
일단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할인쿠폰을 받고 " 고마워. "라며 답례인사를 한다.
근데 경품 이벤트에서 친구 덕분에 땄다니 대체 뭔 내용의 이벤트였을까?
뭐, 부정 행위는 안 했겠지. 은후니까.
어디에 쓸까... 식당가에서 쓸 수 있으면 비싼 카페 메뉴 같은 데 쓸 텐데.
" 혼자 왔으면 헤맬 뻔했네... 좀 더 깔끔해진 것 같긴 하지만. "
하고 가볍게 투덜거리면서 눈으로 필기구를 훑어본다.
다행히 망념으로 시력을 강화할 필요 없이, 순서대로 찾다 보니 만년필이 있는 쪽을 찾을 수 있었다.
Y사... 여러 색... Y-N05 모델... 혹시 이건가?
" 이거? "
하고 살짝 갸웃거리며 한쪽을 가리켰다.
**
무슨 경품이냐면, 상점가에서 다양한 혜택을 주는 각종 쿠폰들…! 이지만 일상에서만 쓸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영웅서가의 일상이니까. (고개 끄덕이는 펀쿨섹 짤)…. 메타발언은 여기서 마치자.
"경품으로 더 좋은 걸 받았거든요. 오늘은 운이 좋네요!"
사실 이 모든 것은 다림의 운이었으나, 청년이 소녀를 만나서 같이 팀을 이루게 된 것마저 그 자신의 운이라고 부른다면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다른 쿠폰을 꺼내 흔들어 보이며 그는 그렇게 대답했다. 사비아가 얼핏 그것을 본다면, 이 필기구 전문점에서 쓸 수 있는 무료 증정+각인 쿠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죠? 예전보다 상품별로 잘 모여있어서 전 이쪽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이만하면, 주인도 배치를 바꾼 보람을 느낄 것이다-. 여성과 함께 차례로 코너를 지나 만년필이 있는 곳을 찾자 신 한국, 마도일본, 중국, 아메리카 등등 다양한 곳의 브랜드가 표기되어 있다.
"아, 그거 맞아요! 그래도, 신상은 따로 빼주지."
방금 말했던 거, 취소. 라고 덧붙이며 그녀가 가리킨 칸에 꽂힌 만년필 하나를 빼서 쥐려고 시도한다.
"선배, 그거 아세요? 인류에게 의념이 주어지기 전에, 중국제 만년필은 싸구려 취급을 받았대요."
남색. 청년이 사복으로 꼭 입던 코트와 같은, 짙은 남색의 컬러가 멋들어지게 입혀진 만년필이었다.
"이렇게나 잘 만들어졌는데. 신기하네요."
**
" 기분 좋은 것 같아서 다행이네. "
은후가 흔드는 쿠폰을 보며 살며시 미소지었다.
여기 제법 비싼 것도 많은데 쿠폰이라니.
갖고 있으면 든든해질 것 같은 느낌이다.
거기다 각인도 보너스니까.
" 아무리 그래도 난 갑자기 바꾸면 적응이 잘 안 되는걸. "
좀 익숙해지고 나면 괜찮지 않을까 싶지만...
자주 오는 곳은 가던 데로 가는 게 버릇이 되니까.
빨리 익숙해져야지 별 수 있을까.
" 이래서야 꽁꽁 숨겨 놨다고 해도 할 말이 없네. "
은후가 만년필을 뽑아 가져가는 걸 보고 나는 살짝 발을 돌린다.
나는 신상을 바로 사는 성격은 아니니까...
" 그래? "
갑자기 의념 시대 이전의 이야기를 꺼내는 은후를 갸웃거리며 보다가...
" 그때도 잘 만들었다면 분명 써주는 사람은 있었을 거야. 가치는 오명으로 가려지지 않으니까. "
그렇게 말하며 오면서 봐둔 볼펜을 쓸 만큼 칸에서 쥐어 빼냈다.
마이 페이버릿. 신 한국어로 순화하면 즐겨찾기...
" 그거 외에 살 거 있어? 없으면 계산하고 나서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할 얘기가 있어서. "
**
기분이 좋지 않을 리가 없는가…! 라고 하더라도, 이 쿠폰을 받기 위한 게임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기분이 슬펐다만. 청년은 대답 대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죠? 불만이어도 어쩔 수 없는 거지만요."
배치 변화도, 매출을 위한 노림수가 분명 있을 것인데, 손님이 편하자고 가게 사장보고 야, 순서 바꾸지 마! 할 순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슬픈 일이지만, 앞으로도 들리며 차차 다시 익숙해져 가야 하는 거다.
"당연히 그렇겠죠? 뭐, 그렇지 않다고 해도 예나 지금이나 싼값에 막 쓰는 사람들은 있으니까…?"
그럼 사람들이 선호했을지도 모르는 법이죠.
비닐에 쌓인 만년필을 상세히 살펴보면서 사비아의 말에 그렇게 대답했다. 분명, 그 시절에도 그들과 같은 필기구 동맹은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런 동우회의 세부 정보는 지금 와서 잘 찾아볼 수 없다만.
"아니요. 전 오늘은 이것만."
그녀가 신상을 바로 사는 선발대가 아니라, 후기를 듣고 사는 유형이라는 것은 그도 짧지 않은 만남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계산대로 향한다. 쿠폰을 내밀고 후련한 얼굴로 계산이 완료된 만년필을 받아들고는, 사비아가 계산을 마치는 것을 기다렸다.
"긴 이야기면, 어디 카페라도 가서 이야기할까요?"
**
" 사는 사람이 익숙해져야지. "
끄덕끄덕.
배치가 바뀌어서 헤맨다는 이유로 점장을 불러내는 건 진상밖에 안 되는걸...
" 싼 값도 싼 값 나름이지. 아무리 싸도 못 쓸만한 것도 있고,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싼 물건은 비싼 물건에 비해 뭔가 부족한 게 있기 마련이니까. "
파는 물건을 아예 못 쓰게 만들겠냐마는, 품질 저하는 이때나 저때나 있었을 것이다.
가격과 품질은 대부분 비례하니까...
자신도 적당한 가격-적당한 품질에 타협하고 있다.
더 비싼 걸 사면 이점이 있겠지만, 양이 중요하니까.
" 그렇다면 다행이네. "
이것저것 살 게 있거나... 갑자기 고르고 싶은 날도 있으니까.
은후도 그런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은 아닌 모양이다.
할인 쿠폰을 쓰긴 애매한 물건이기에 쿠폰은 주머니에 넣어두고, 볼펜들을 계산했다.
" 긴 이야기면 긴 이야기고 짧은 이야기라면 짧은 이야기지만, 요청하는 입장이니까 뭔가 사는 게 좋겠지. 어디 아는 카페 있어? 얘기 잠깐 들어주는 데 적당할 만한 곳으로. "
카페... 하니 생각나는 곳은 있지만.
거긴 가기가 영 껄끄럽단 말야.
그때 상태 안 좋아보였는데 몸조리 잘 하고 있겠지?
**
"싼 물건에는 싼 이유가 있고, 비싼 물건에는 비싼 이유가 있으니까요.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도 그 시대와 지금의 위상이 바뀌었다는 건, 그 당시에도 소비해주는 마니아층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리라.
요청하는 입장이라니, 은후는 사비아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사비아가 음료까지 사 가며 그에게 할 요청이 무엇인지 감이 전혀 오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곧 알게 될 것이다.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게의 문을 열었다.
"그런 곳이야 많죠! 여긴 상점가니까요."
자, 따라오세요. 하고 한 걸음 빨리 앞서 걸었다…. 그러고 보니 카페라, 청년의 뇌리에 문득 지나가는 이미지가 있었으나- 여성과는 관련 없는 이야기였다. 입을 떼다 말고 오른손을 입으로 가져다 댔다.
3분도 채 걷지 않아, 자그마한 규모의 개인 카페가 그들의 눈앞에 보였다.
"이 정도 규모면 적당하겠죠?"
어때요? 하고 꽤 뿌듯한 얼굴로 그녀를 돌아본다-
그 사이, 잘근잘근 알차게도 물어뜯은 이빨에 손끝 사이로 작은 핏방울이 맺혔다. 이 정도라면, 신경을 쓰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튼 팔리긴 하니까 만들어졌던 거겠지.
누군가는 그걸 필요로 했다는 이야기고.
내가 굳이 생각하거나 비난할 문제는 아니다.
" 심각한 일은 아니니까. "
갸웃거리는 은후를 보며 작게 미소짓고, 앞서가는 은후를 뒤따랐다.
그리고 말하려다 마는 듯한 모습을 보며 무슨 말을 하려던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캐묻지는 않았다.
말하지 않는 건 이유가 있겠지...
" 괜찮네. "
하고 뿌듯한 얼굴을 하는 은후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웃었다.
오늘따라 더 귀엽네. 후배들은 원래 귀엽지만. 언제나 귀엽지만.
손톱 무는 습관이 있다는 건 같이 걷고 있기에 보이긴 하지만, 위생상 안 좋을텐데─이상의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뭐 이런저런 안 좋은 점이 있다지만 의념각성자한텐 무의미할 테고, 보이는 게 안 좋을 뿐이니까.
그랬기에 피가 맺힐 정도로 물고 있다는 걸 볼 만큼 자세히 보지는 않았던가.
" 아무튼 하려던 말은, 의뢰 한 번 같이 가볼 생각 있냐는 거야. "
" 아직 세부사항이 정해진 건 없지만, 조만간 워리어·랜스·서포터 3인 파티로 한 번 의뢰에 가 볼 생각이거든. "
" 난 거기에 너를 데려가고 싶어서. "
**
타인에게 자신이 선정한 무언가를 인정받는 것은 꽤 기분이 좋은 일이다. 그것은 청년에게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같은 필기구 동맹인 그녀의 평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이며,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가 시킨 음료는 간단한 아이스티.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카페이다 보니, 사비아가 시킨 음료도 같이 자리에 가져다줄 것이다-.
"의뢰… 요?"
그녀의 말에 은후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그것도 각 포지션별로 한 명뿐인 파티요…?"
왜 하필 자신을? 그런 말은, 곧 쟁반을 들고 다가온 점원에 의해 삼켜졌다. 감사합니다, 하고 아이스티를 받아들고, 빨대로 괜히 내용물을 흔들어놓았다…….
3학년인 선배가 의뢰에 데려갈 정도로 그가 서포터로써의 자질이 뛰어난가? 그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 스스로 그리 생각하였다.
"먼저 왜 하필 저인지 이유를 들어보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1, 2분 정도의 침묵 끝에, 청년은 겨우겨우 다시 입을 뗐다.
어쩌면, 상대의 화를 불러올 수 있는 말이라는 걸 그 자신도 모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
카페 안으로 따라들어가서, 아이스티를 주문하는 은후 옆에서 블루베리 스무디를 주문하고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큰 카페는 아니지만 그만큼 사람도 적었기에 자리가 부족하지도 않았고.
그리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하는 은후를 보고 뭔가 잘못 말했던가 고민하다가, 점원이 음료를 가져오자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는 블루베리 스무디. 요거트와 꿀 맛이 느껴지는 달콤한 음료.
" 3인을 초과한 인원이 갈 만한 의뢰는 어려운 게 많으니까. "
각 포지션 별로 한 명-이라는 말에 대한 약간 늦은 답변.
3인 정석 조합 정도로 갈 만한 의뢰를 구해볼 생각이었다.
" 음... 혹시, 의뢰에 갈 수 없는 사정이 있어? "
그런데 권유하게 됐으면 좀 미안한데.
라고 생각하며 스무디를 홀짝였다.
" 일단 너를 부르려고 한 이유는, 생각나는 후배 중에 연락이 닿는 사람이었으니까야. "
" 이번엔 그렇게 어려운 의뢰를 받으려고 하는 건 아니거든. 시험기간에 시험공부만 하다 보니까 감이 떨어진 것 같아서 가볍게 받아볼 만한 의뢰를 찾을 생각이었어. 그런 데 3-4학년을 부르는 건 좀 그렇고, 후배들이랑 가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
바다는 요즘 바쁜 것 같고, 지훈이나 하루는 이미 의뢰 중인지 연락이 안 되고, 청천이는 그렇게 많이 만나 본 사이는 아니니까. 다림이...는 잘은 모르겠지만 의뢰 갈 상황이 아니라던가, 하는 듯한 모양인데.
**
과연, 은후는 고개를 끄덕인다. 3인을 초과한 인원이 갈 만한 의뢰는 어려운 게 많다, 라-.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3인 의뢰라고 해서 가디언 칩에 쉬운 의뢰만 뜨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것이 그가 두려움에 떠는 이유였다.
"아뇨, 특별한 사정은 없다만…."
자신이 없다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며, 청년은 사비아의 눈을 피해 시선을 내리깔았다. 말없이 아이스티를 빨대로 빨아들였다.
#white "그런 이유라면 알겠어요. 몸풀기 정도의 가벼운 임무는 실습까지 나갈 3~4학년한테는 그렇겠죠…." "다만, 가벼운 임무라도 제가 도움될지 알 수 없어서…."
파보나스의 체스 대결
. 그의 담임 선생님이 골치를 썩였다고 소문이 난 게이트. 그의 앞에 앉아있는 여성은, 선생님들조차 골치를 썩인 게이트도 클리어한 가디언 후보생이다.
3학년인데도 불구하고 17레벨이라는, 청년보다 낮은 레벨을 가지고 있다고 만만히 여길 수 없는 대상이란 이야기이다.
"선배도 아시다시피, 저는 공격을 통한 보조를 할 수 없어요. 거기다. 회복 스킬도 없고요."
"물론, 선배의 튼튼함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몸풀이라고 하더라도 절 데려가면 보조가 답답하실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요."
**
특별한 사정은 없다만─에서 말을 흐리는 것에 살짝 고개를 낮춰 테이블을 바라봤다.
똑바로 바라보던 시선이 낮아지자, 서로 같은 곳을 보고 있지만 눈이 맞지 않게 되었다.
비스듬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힘없어 보이기도, 무언가에 겁먹은듯 보이기도 했다.
" 물론, 기본적으로 의뢰니까 완전 쉬울 거라고 생각할 순 없지만... "
#white 가볍게 받을 수 있는 의뢰. UGN·UHN과 관련된 것은 피하고 되도록 순수 전투 의뢰를 고른다. 하지만 예상외의 지뢰 의뢰가 튀어나온다던가,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다는 일은 자주 발생한다.
" 글쎄, 그런 점을 네가 약점이라고 여기고 스스로 보완하고 싶다면, 폭발물이나 치료도구를 구입하는 식으로 해보라는 조언은 해 줄 수 있겠지. "
" 하지만, 파티장은 나고 워리어─, 지휘자도 나야. 네가 나를 따라준다면, 난 할 수 있는 한 '네가 보여주는 너'를 있는 그대로 이용해서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자 행동할 거야. 그게 제 효과를 내지 못한다면 내 잘못이겠지. 억지로 책임을 돌리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
그걸 두려워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을 이유가 없겠지.
" 오지 않을 거야? "
**
도핑제, 버프 포션이나, 힐 킷을 사들이는 방법은 청년도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맞아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지휘자는 워리어이니….선배에게 보이는 저 자신
이 의뢰에서 어떠한 이용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신다는 이야기인가요."
질문은 아니었어요. 그렇게 덧붙이며 아이스티를 마신다.
서포터는 만능이어야 하는 포지션이다. 하지만 모든 가디언 후보생들이 처음부터 만능일 수는 없는 법이기도 하다.
"갈게요. 단, 절 데려간 후회도 선배의 몫으로."
의뢰가 실패한다면 말이죠. 그제야 청년은 여성을 마주 보며 곤란하다는 듯한, 특유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의뢰를 받으시면, 연락 부탁해요. 아무리 선배가 튼튼하다고 해도 제가 힐 킷이 하나도 없으면 불안할 것 같거든요."
보조 물품을 살 GP는, 음료를 사고 나서도 충분히 남아있었다.
**
" '이용할 가치가 있다'라는 것과 '가치있게 이용하겠다'라는 건 좀 다른 느낌이 들지만... 그런 셈이지. "
얌전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사람에게 이용가치라는 말은, 왠지 도구같은 느낌이라 좀 그런걸.
그래도 아주 어긋나진 않을 거다.
" 후회는 넘겨줄 생각도 없지만 내가 가질 생각도 없어. "
" 실패할 가정을 하고 싶진 않지만, 실패한다면 또 다른 곳에서 새롭게 도전하면 돼. "
그건 '모두 살아서 돌아온다'를 가정할 때의 이야기지만...
자신감? 아니면 허세?
그런 말을 자연스럽게 소리로 만들어낸다.
곤란한 듯하면서도 확실한 미소를 띈 은후를 보며, 나도 입꼬리를 올렸다.
" 물론, 잘 부탁해, 서포터. "
블루베리 스무디를 비우고, 일부러 컵 모서리를 바닥에 부딪치듯 살짝 내려놓자 맑은 소리가 울렸다.
- 하쿠야 일상[1] (166스레~171스레)<임시스레7> - 7월 3일(새벽)
- 복도를 걷는 길... 나는 조금 회상을 하고 있다.
뭔가 순서가 뒤바뀌긴 했지만 파티원으로 서포터를 구했고, 의뢰도 수주했다.
생각보다 더 엄청난 의뢰를 맡아버린 기분이지만, 이미 맡은 걸 어떡하겠어.
나머지 한 명의 인원을 구해보는 수밖에.
처음부터 후배들과 가기로 한 거였으니 랜스도 후배들 중에 골라야겠지.
하지만... 후배 중에 연락이 닿는 사람이...
하고 멍하니 생각하다가 복도 건너편에서 오는 사람을 보고 아, 했다.
" 미나즈키. "
친한 사이... 라고 하면 조금 애매할지 모르겠지만, 아는 청월의 후배였다.
정신없어서 잠시 깜빡하고 있었지만, 랜스였지.
" 마침 잘됐다... 가 아니구나, 혹시 지금 시간 있어? "
반가움을 표시하기도 잠시, 먼서 이야기를 할 시간을 빌릴 수 있는지 묻는다.
복도에 있는 건 보통 어디 가려는 거니깐, 일이 있다고 하면 잡을 수 없을 테니까...
// 아는 선후배 사이인 걸로, 복도에서!
**
"안녕하세요, 사비아 선배."
그녀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인맥이 그렇게 넓지 않은 미나즈키에게 있어 온사비아는 그래도 꽤 친한 사람 축에 속했다.
마침 잘됐다, 라고 하는 걸 보면 무언가 용건이라도 있는 거겠지. 미나즈키는 굳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요."
...그리고 약 3초 뒤, 이건 선배한테 너무 싸가지 없게 구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뒤늦게 덧붙여 물었다.
"긴 얘기면 음료수라도 하나 사올까요?"
**
" 아하하... 나도 안녕. "
딴생각하다가 용건이 앞서서 인사도 안 했네. 나도 참...
" ...어- "
...대답이 빠르네. 하고 생각한 지 3초만에 덧붙여진 말을 듣고 고개를 저었다.
" 아니, 이번엔 내가 살게. 좋아하는 음료수 있어? "
그렇게 말하고 앞서면서 자판기가 있는 쪽으로 따라오라는 듯 손짓했다.
이 근처 복도자판기 중에 적당히 마시면서 앉아서 얘기할 만한 벤치가 가까운 곳이 있던가?
아예 그쪽에서 얘기를 꺼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 긴 얘기는 아니지만 네가 사게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라서 말야... 자세한 건 도착하면 말해줄게. "
**
"저 복숭아 아이스티 좋아해요."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럴까. 미나즈키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내심 긴장한 상태였다.
본인이 음료를 사야 할 정도라면 뭔가 부탁이 있는 걸까. 처음 마주쳤을 때 마침 잘 됐다고 했던 걸 보면 사비아는 여태 자신을 찾아다닌 것 같기도 했다.
긴 얘기가 아니라곤 했지만 자리를 옮길 정도라면 정말 말 몇 마디로 끝날 얘기도 아닐테고. 미나즈키는 역시 무슨 일이냐고 먼저 물어보는 게 나았을까, 하고 방금 전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
" 응, 그러면 아이스티랑 포카리스웨트 뽑아야겠다. "
굳이 말할 필요는 없지만 복숭아 아이스티와 자주 마시는 이온음료 캔 버튼을 누르고 가디언칩을 가져다 대면, 적은 양의 GP가 빠져나가고 덜커덩 음료수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뽑은 음료수를 양손에 쥐고 다시 미나즈키가 있는 쪽을 바라보니, 긴장한 듯한 느낌이 들어 일부러 캔을 흔들며 찰랑 소리를 냈다.
" 너무 긴장하진 마. 제안하려는 거니까. "
아예 긴장하지 말란 건 아니고...
아무튼 미나즈키의 손에 아이스티를 쥐어주려 하며 말을 꺼냈다.
" 사실은 이번에 의뢰를 같이 갈 사람을 구하고 있거든. 서포터... 는 좀 확실치 않아도 구하긴 했지만, 랜스에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
...생각해 보니깐 말야.
사실 그냥 아는 사람들 중에 의뢰 갈만한 사람이 없었어. 후배 아니어도...
3-4학년까지 올리면 아직 제안 안해본 사람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왠지 하늘의 계시적인 느낌으로 '그 사람들은 모두 다른 의뢰 가려고 김치사거나 오세아니아에 출장 가 있단다. 포기하렴.' 같은 느낌이 든달까.
아니 내가 뭔 소릴 하는 거야...
" 의뢰 내용 보고 결정해도 괜찮아. "
그래, 원래 이랬어야 했는데.
가디언칩을 톡톡 두드려 의뢰 내용을 띄운다.
▶ 봄은 그 곳에서 파편이 되었다.
▶ UGN 발급 의뢰
▶ 최대 인원 : 3인
▷ 게이트 '먼 과거에서 걸린 전화'를 클리어하시오.
▶ 보상 : (개인당)7000GP, (1인 한정)낡은 전화기
// 사실 아직 받은거 처리 안됐는데... 다음 진행에 받을 거니까!
**
이게 바로 관록이라는 걸까? 최대한 멀쩡한 척 했는데 아무래도 티가 난 모양이었다.
미나즈키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는 캔을 따서 아이스티를 마시다가 이어진 사비아의 말에 잠깐 콜록거렸다.
어쩌면 처음부터 예상했어야 했던 걸지도 몰랐다. 제일 가능성이 높은 일을 왜 제쳐두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저는 랜스고요...."
실력도 되지 않는데 아무 의뢰나 막 받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기에, 일단 미나즈키는 사비아가 띄운 의뢰 내용을 천천히 살펴봤다.
먼 과거에서 걸린 전화. 그렇게 위험해 보이는 이름은 아니었다. 이 정도면 괜찮을까......
**
" 사레 들렸어? 괜찮아? "
콜록거리는 미나즈키를 걱정하며 다가가려다 금방 멎은 것에 머쓱하게 뻗던 팔을 거뒀다.
그냥 잠깐 놀라서 그랬던거구나.
" 그렇지. "
다른 포지션이었으면 권유하면 안 되지.
워리어 워리어 서포터라던가...
워리어 서포터 서포터라던가...
안돼 이런 악마의 조합은...! (캡틴과 참치들이)고통스러워...!!
" 어때, 괜찮아 보여? "
**
"네, 뭐..."
미나즈키는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치고는 다시 의뢰 정보를 찬찬히 살폈다. 이름이나 보상을 봐서는 딱히 위험할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UGN 발급 의뢰라는 점이 조금 걸리기는 했지만, 사비아가 2학년이 가기 힘든 게이트에 굳이 자신을 데려가려 하진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조금 있었다. 어쩌면 후배를 챙기기 위해 일부러 쉬운 걸 골라서 보여주는 것일 가능성도 있고. 미나즈키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같이 갈게요, 선배."
**
" 그래, 잘 부탁해 미나즈키. "
" 정말...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다행이네. "
그런데 어떻게 복도에서 딱 마주쳤네...
" 나중에 출발할 때 되면 부를 거니까, 그때까진 자유롭게 있어도 괜찮아. "
" 그리고 약속이라면 약속이지만 나중에 시간날 때 한 번 만날래? "
" 은후하고 얘기할 땐 카페였는데 너한텐 자판기 음료수뿐이라니 좀 미안하니까... 아, 은후는 서포터로 구했다는 애 말이야. "
그렇게 이것저것 설명을 하면서 대화를 마치려 했던가?
**
미나즈키가 알고 있는, 이름이 은후인 사람은 같은 2학년인 신은후 한 명 뿐이었다.(심지어 알고만 있을 뿐이지 그렇게 의미있는 대화를 해본 기억도 없었다.)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있지만... 어느 쪽이건 사비아가 직접 데려가기로 결정한 사람이라면 별 문제 없을 것 같아서 미나즈키는 그 은후가 정확히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더 캐묻지 않기로 했다.
"편하실 때 아무 때나 부르셔도 괜찮아요. 저도 잘 부탁해요, 선배."
그리고 저는 선배가 사주시는 거라면 뭐든 좋아요, 라고 가볍게 덧붙였다.
- 에릭 일상[2] (210스레~212스레) - 8월 6일
- 【1】
하늘을 올려다보면 잔뜩 먹구름이 끼어있었다.
살짝 먼지가 낀 너의 무덤을 내려다보며 멍하니 들고 왔던 꽃을 내려둔 나는 허탈하게 웃으며 혼자 이야기를 시작했다.
" 베온은 당신을 미워하지 않았던 것 같아. 당신이 연락을 늦게주고 말고는 상관없었던거야. 하지만 그 사람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제일 화가 치밀어오르는 부분은 역시... 손을 뻗어도 잡지 않고 떨어져나간 것 이겠지. "
유감스러웠다.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올라오라고 소리쳐도 상대방이 잡지 않는다는 것은 슬프고도 유감스러웠다.
내가 또 다시 누군가를 구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회중시계의 덮개 위에 새겨진 여우와 꽃 모양을 살펴보며, 가볍게 흔들자 붉은 잉크가 움직여 강철 위에 새겨진 여우와 꽃에 스며들었다.
당신은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나보다도 빛났었는데, 태양이 떠오르기 직전인 순간이 가장 어둡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왜 너는...
이것은 미련이다.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해도 어쩔수 없는 미련이다.
이미 늦었다, 떠나갔다, 남겨진 이는 살아가야 한다. 이 모든 사실이 진실이지만, 그럼에도 납득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난이도는 하늘과 땅 차이다.
그렇기에 미련을 가지고 머뭇거리는 나를 당신은 못마땅하게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회중시계에서 작게 울려퍼지는 째깍 거리는 소리에 맞춰,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 정말 여기까지 와주시고, 감사해서 몸둘바를 모르겠어. "
덩그러니 남겨진 나이젤의 묘비
그리고 그 주변에 피어오른 녹색 풀들이 살랑거리는 그곳에서
나는 당신과 싸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 이건 지난 번 카페에서의 일에 대한 화풀이도 맞고, 남겨진 사람이라는 처지를 공감해주라는 절규도 맞아. 더 쉽게 말해주자면..그냥 내가 찌질한거야. 물론 어떻게 생각해도 상관없어, 단지 내가 당신과 싸우고 싶을 뿐이니까. "
【2】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가 있다. 중국 사람들은 이런저런 것에 의미를 붙여서 꺼려하고 반기는 상징물이 있다고. 헤어지고 흩어진다는 한자와 같은 우산, 곧 필요 없어 폐기되고 잊힐 것이라는 의미의 부채, 이별과 발음이 같은 배 같은 걸 선물로 주는 건 일종의 금기로 속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의 말미엔 괘종시계에 대한 것도 있었다. 괘종시계를 나타내는 종(鐘)은 끝나다, 죽다를 뜻하는 종(終)과 발음이 같아, 보내다, 선물하다를 뜻하는 송(送)과 같이 쓰면 송종(送終). '임종을 맞아 장례를 치른다.'와 같은 발음이 된다고 했었지. 이 소리가 괘종시계의 소리는 아닐지라도, 소리를 크게 울리는 텅 빈 곳에서 나고 있으니 두껍고 무거운 바늘 소리가 겹쳐 울리는 환청이 들리는 듯하다. 내 발소리에 맞춰 무덤가를 울리는 날카로운 째깍 소리가 날 저승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끌어들이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 별 말씀을. "
느낌은 느낌이고, 현실은 현실일 뿐.
금속의 소리로 더럽혀선 안 될 곳을, 누군가의 무덤 근처를 싸움터로 삼는 건 안 될 일이다. 악취미처럼 느껴졌다. 분명 잠든 자도 편히 쉴 수 없게 될 것이다. 얇고 긴 금속 줄 끝에 매달린 은빛 십자가를 따뜻해질 때까지 손바닥 안에 쥐고 있었다. 그의 앞에 도착할 때까지.
" 그래. 나도 너와 싸우고 싶었어. 그러니 이야기는, 싸우고 난 후에도 하고 싶다면 그때 가서 하도록 해. "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를 보내고 끝을 맺는(送終) 일이라고 한다면.
조금은 용서받을 수 있겠지.
" 선공은 가져가. "
그저 방심만은 아니라, 한 수 유리하게 두려는 것.
빈 손에 나타난 방패를 느슨하게 쥐었다.
【3】
선공은 가져가 라는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내 몸은 이미 그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방패를 상대방과 싸우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변칙성.혹은 압도적인 힘
순간 순간 떠오르는 센스를 이용해서 녀석을 쓰러트린다.
단지 그것만을 생각하며 로포텐의 노을을 휘두른다.
노을빛 검신이 반짝이며 그녀의 방패를 향해 내려 쳐지는 순간.
나는 연단의 의념을 검신에 감으며 힘을 주었다.
" 원래는, 유진화를 상대로 쓰려고 했는데 말이야... 이렇게보니 방패들은 하나같이 거슬리내....! "
연단의 의념을 응용하여,
연단이란 과정을 통해 단단해졌다는 결과가 아닌. 연단의 과정 중에 발생하는 강한 충격을 떠올리며 검을 휘두른다.
엘로앙과 싸우면서, 내가 그 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했다.
나를 기대하는 여왕으로 부터 나를 지키면서 최대한 힘을 쓰기 위해서
또 위에서 나를 기다리는 만석이나 이카나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법 부터 익혀야했다.
" 마음에 안든다고.. 니가 지니고 있는 그 정신력이...! "
【4】
" 급하... "
네.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노을을 닮은 검이 묵직하게 내리꽂는 감각이 손을 울렸다. 아플 정도는 아니지만... 강하다. 한 방 한방이 부딪치는 것으로 상대를 무너트려 버릴 만한 기세를 담고 있다. 상대는 검, 둔기처럼 강한 충격을 주는 무기에 속하지 않는 것을 쓰고 있는데도.
" 진화를 알아? 미안하지만, 그애랑 나는 전문 분야가 조금 달라서. 버티기만 하는 거라면 그애가 나보다 낫지. "
가혹한 땅에서 옮겨심은 나무, 신선한 청(靑), 춘(春)의 이파리가 오르기 시작하는 단단한 가지. 휘지 않지만 부러질 때까지 버티는 미련한 단단함.
난 진화만큼의 방패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제자리에서 버티기만 하는 것도 따라가질 못한다. 그 말인즉, 이대로 버티기만 하면 필패한다. 내가 남아 있더라도 방패가 부서지면서 끝나고 말겠지. 하지만 분야가 다르다는 건, 싸우는 방식도 같지 않다는 것이다.
"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너도 충분히 강함을 지니고 있을텐데. "
그 열등감은 만들어낸 것인가, 아니면 묶여 있는 것인가? 흘려낼 수 없는 공격을 방패로 막아내는 걸 포기하고 상대에게 파고들었다. 스친다면, 스치는 정도라면 몸으로 받아낼 수 있다. 튼튼하다는 건 더 과감하게 싸울 수 있다는 것의 다른 말에 불과하다.
몸의 움직임에 맞춰 움직이며 몸을 지키던 방패를 옆으로 비킨다. 인간은 무르고 나약하기에 꾸준히 두드려 단단하게 해야 한다. 인간의 몸은 철을 펼쳐 이르는 것처럼, 인간의 삶은 하늘이 점지하는 것이 아니니. 경구가 무거운 숨결이 되어 입을 떠나자 일순, 의념이, 의념을 담은 이 몸이 한 가닥의 찬 불꽃으로 변한다. 상대가 검을 휘두르는 정면으로 파고들고, 비껴놓았던 방패를 끌어당긴다. 그의 왼쪽 어깨를 모서리로 내리찍기 위해. 달려들어 끌어안듯 가까워진다.
너의 공격을 받으며 느꼈다. 나는 반응속도도, 판단력도 너에 비해 부족하다. 신속도, 영성도 부족하겠지.
네가 나의 당황을 노려야 하는 쪽인가? 아니, 내가 너의 당황을 노려야 한다! 공격을 당하는 쪽이 주도권마저 쥐지 못한다면 약자로 전락할 뿐이다! 방어력을 강화하는 의념 발화를 쓰며 굳이 적중을 각오하고 파고든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5】
입술을 강하게 깨물고, 공격의 속도를 올린다.
그저 상대방을 부수는 것에만 집착하며 검을 휘두른다.
연단의 의념을 응용하여 만들어낸 충격파가 주변의 풀들을 날려보내며,
한발자국 더 파고든다.
사실 알고있다.
여기서 이 녀석을 쓰러트려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 이라는 사실을.
애써 그 사실을 떠올리지 않도록 더 빠르고, 거칠게 검을 휘두른다.
허나 내가 한발자국 더 파고든 그 순간,
방패가 내 왼쪽 어깨를 향해 휘둘러졌다.
이건 예상한적이 없다.
" ...! "
깡 소리와 함께, 왼쪽 어깨에 휘둘러진 방패의 모서리가 막힌다.
급하게 착용한 공훈갑은 투구부터 생성되기에, 일부러 모서리를 투구의 이마 부분으로 빗겨내면서 조금의 시간을 벌고
그 다음으로 생겨난 건틀릿 부분으로 방패를 막을 수 있었다.
입술을 깨물며 터져나온 피 탓에, 입안에 혈향이 퍼진다. 비릿한 맛에 인상을 쓰는 순간
방패의 충격에 이마가 찢어져 흘러내린 핏방울이 투구의 턱부분에서 빠져나와 뚝..뚝 하고 떨어진다.
" 보통내기가 아니라는건 이미 조사해뒀어. 하지만 방금 건 정말로 놀랐어. "
아쉬운건 방심한 나의 머리를 노렸다면 더 쉬웠을 거다.
방패를 밀어내며 공훈갑을 완벽하게 생성한다.
곧 은은한 회색의 아우라가 공훈갑을 덮으며, 저 멀리서 하나의 드론이 나의 주변을 배회하며 비아를 주시한다.
" 이번엔 내가 양보할게, 들어와라 "
【6】
방패를 부수려는 듯, 깎아서 평탄하게 만드려는 듯, 우그러트리려는 듯, 공격이 들어오는 속도가 빨라지고,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싸움은 더 격해진다. 공격할 틈을 낼 때까지는 버텨야 한다. 방패를 몸 쪽으로 끌어당기고 비스듬히 눕혀서 공격을 살짝 흘리고, 건강을 강화해 몸의 균형을 잡으면서 일부러 공격에 밀려나 충격을 분산한다. 난 한 자리에 뿌리박고 서서 막아낼 필요는 없으니까. 조아리듯 누운 풀을 짓밟아 밀려나며 파헤치기를 몇 번, 잡풀의 무덤처럼 끌린 자국이 풀밭 위에 여럿 자라났다. 거리가 좁혀질수록, 상대가 먼저 밀고 들어올수록 많이 생겨난다.
공격을 한 번쯤은 버텨낼 각오로,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졌을 때 과감히 들어간 결과는... 제법 신통치 못했다. 예상치 못하게 모습을 드러낸 묵빛 투구에 방패가 긁히며 움직이던 손의 방향이 약간 틀어졌고, 그 틈을 타 투구와 짝... 아니, 갑주의 일부인 농수가 방패를 밀어냈다. 도박이 실패한 이상 방패론 몸을 지켜야 하기에, 밀려난 방패를 회수하면서 뒤로 물러나 다시 태세를 정비했다.
" 후배한테 맞고만 살 만큼 헛되게 살진 않았단다. 그 수엔 나도 놀랐지만... 처음부터 꺼내서 싸우지 않은 게 실망스럽네. "
그렇게 날 깨트리려는 듯이 부딪치면서, 정작 전력을 다하지 않다니. 일방적으로 생긴 친밀감이 껍데기처럼 바스라지며 작은 배신감이 흘렀다. 네 투구 밑으로 흘러 씨앗처럼 파인 흙 위로 떨어지는 뜨거운 액체처럼.
평범한 정복이라고 생각했던 옷이 빠르게 먹색 전신갑주의 모습을 갖추는 것을 보며 나는 물었다.
" 학생이 평범하게 구할 만한 물건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그것도— "
그 사건 때 얻은 거니.
태양왕.
기여도를 GP로 바꿨다던 후배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최근 그것 외에 평범한 학생이 저런 물건을 구할 만한 기회는—그만큼의 공적을 얻을 만한 위기는, 그때밖에 없었다는 걸 떠올린다. 우리가 언제 죽은 사람을 추모하고 있는가. 그때, 사고이며 비극이고 재앙이었던 때였다.
" 좋아. "
한 수를 먼저 두었다면 물러날 때도 있어야 한다.
상대가 기술이 아닌 의념의 응용을 사용했던 것처럼, 똑같이 상대의 검에 내 의념으로 보석의 성질을 부여하려 한다. 보석은 반짝이고, 아름답고, 단단하지만, 잘 깨진다(劈開). 방금 전 같은 수를 쓰면서 검을 막 대하면 칼날이 예쁘게 여섯 조각으로 깨져버리도록. 물론 저 정도의 검이 그럴 리는 없겠지만 도발로는 충분하겠지.
그때, 검이 깨졌던 게 꽤 화났나 봐. 이렇게 내 방패를 부셔져라 두드리는 걸 보면. 하지만 한 번 더 깨지지 않으려면 잘 해야 할 거야. 너 자신을 두드리고 벼리어 날카롭고 단단하게 해서 나와 싸워. 나의 보석들 중 하나, 내 귀엽지 못한 후배, 나한테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던 몽블랑의 점장 대리.
" 간다, 에릭 하르트만. "
상대가 검을 휘두르면 그 경로에 빗기도록, 쌍둥이의 다툼처럼 방향만 다른 공격을 향한다. 무모하게 보일 만큼 몸과 방패를 함께 움직이며, 몸 앞에 내세운 방패를 공격을 위해 휘두를 때마다 전신의 힘을 실도록. 2라운드의 시작을 공세로 끊었다. 옅은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7】
" ... "
알면서 뭘 물어보냐는 듯, 에릭은 시니컬한 태도를 보이며 다시 자세를 갖췄다.
이전처럼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것 과는 다른, 하나의 형이 존재하는 누가봐도 어딘가에 근본을 둔 검술이었다.
" 이름은 또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군, 거기다.. 아까와는 동작이 조금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
분명 어딘가에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휘둘러진 방패를 검과 팔을 이용해 가로막으며, 힘겨루기 자세로 돌입하던 찰나.
청지일검류를 사용하며, 틈을 열려고한다.
" 지난번 프룬이 부숴진건, 어디까지나 요행이야... 내가 당신에게 예의를 갖출 필요도 없으니, 적당히 봐줄거라곤 생각하지마 "
난형변상을 사용하며 휘둘러진 검의 방향을 꺾어 방패의 사각을 노려 검을 휘두른다.
【8】
학원섬에 오기 전 검도를 배웠던 학생의 자세처럼 일종의 격식이 있지만, 그것과는 다른 좀 더 깔끔한 형태의 자세. 정말 모든 것에서 나보다 강하구나를 느꼈다. 당해줄 순 없지만.
" 청월 근처 카페에, 맨날 하와이안 셔츠 입고 영업시간에 끔찍한 기타연주를 해서 손님들을 쫓아보내다가 직원들한테 맞고 쫓겨난 학생 점장이 있다고... "
이름을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음, 뭔가 이럴 때 꺼낼 이야기는 아닌 거 같은데, 나도 그런 일로 이름을 알게 되고 싶진 않았다. 동작이 달라진 건 단순히 공세로 나가기 위한 변화일 뿐이지만.
" 언제라도 난 봐준 적이 없었고, 그건 예의도 아니야. "
상대가 수비하면서 힘겨루기의 양상이 되려고 할 때, 대비하지 못했던, 대비하고 있어도 대처하지 못했을 만한 것은. 갑자기 찾아왔다.
맞부딪치던 검과 방패가, 나아가려는 힘과 나아가려는 힘이 한 점에 모여 이루던 작은 선이 모습을 바꾼다. 엇갈려 있던 선과 선이 비로소 한 점에서 교차하는 더 넓은 개념으로. 길이가 아닌 힘과 시간으로 이루어진 선이 불연듯 교차를 멈춘다. 교차점이 사라지고 두 무기의 방향이 엇갈리며 뒤집어지고, 비틀리고, 그 와중에 한 치의 쇠붙이 부딪치는 소리도 없이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그 가벼움이, 그 나선 같은 직선이 마치 나비를 닮았다. 나비가 바삐 날개를 움직이면서도 소리 없이 요사하게 내려앉는 것처럼, 결국 쫓지 못하고 눈으로 놓쳐 버린 검끝은—차게 식은 피부에 절상을 남기고 제 주인이 흘린 피의 열 배를 갚아준다.
물러나고 추스를 시간이 없다.
지금 갚아주지 않으면 갚을 기회가 오지 않으리란 어떤 직감으로. 어느 때보다도 많이 신속에 의념을 불태우고, 그 이상으로 뚫린 상처를 틀어막기 위해 건강을 강화하며, 집중하여 의념을 끌어올리고 미지근한 숨과 함께 내쉰다. 숨쉬는 한 순간도 아까울 때, 잠시 숨을 멈추고, 들이쉬는 순간 방패에 가려질 만큼 몸을 웅그리며 앞으로 내민 방패에 의념발화로 강화된 근력과 체중을 실어서 그대로 들이박듯 부딪치려고 했다.
【9】
못 들었다.
에릭은 비아가 말한 혁명당해 뒷방 늙은이가 되어버린 비루한 점장의 이야기 따윈 듣지 못했다.
여전히 표정을 유지하며 난형변상을 사용한다.
유와 강이 공존하는 방패술이라 까다롭기에, 그 역시 유의 기술을 사용하여 그녀를 몰아붙이려고 했을 것 이다.
그러나 한순간 느껴지는 충격은 명확하게 현실을 알려주었다.
의념발화를 통해 강화된 근력이 돌진이 깔끔하게 옆구리에 박히자, 아무리 공훈갑을 입었음에도 충격은 갑주를 넘어 파고들고 있었다.
폐 안에 차오른 산소가 뱉어지는 짧은 탄식에 이어, 두 다리가 떠올려져 밀려나간 에릭은 그 상태로 묘비 근처에 있던 소나무에 처박히고 말았다.
" ..... "
한순간 의식을 잃을 뻔할 정도로 깔끔하게 들어온 공격을 스스로 피드백하며 갈비뼈 부분을 붙잡고 있을 때.
공훈갑의 투구 안쪽.. 귀에 꽂아둔 이어폰을 통해 맥스의 목소리가 전해져 들어왔다.
" 역시 3학년 짬은 어디 안가네요. "
" ...비꼬냐.. "
" 준비는 다 됐습니다. "
그건 호재로군.
하지만 지금 바로 다시 달려들 순 없다.
설상가상으로 지금 기회를 그녀가 놓칠 일도 없을 것 이다.
고민하던 에릭은 비장의 패로 숨겨둔 그것을 꺼냈다.
갑옷 뒤쪽에 숨겨둔 것을 왼손으로 쥐고, 비아를 향해 쭉 뻗어 겨눈다.
그렇게 묵색의 머스킷은 제작자가 점지한 주인의 손에서 첫번째 화염을 쏟아부었다.
【10】
막아내려고 하면, 혹은 공격과 공격이 부딪치려고 하면 버티지 못한다. 나는 공격을 흘려내려고 할 때 상대는 방패를 흘려 빗겨내고 공격으로 이어나가니까. 상대가 방패를 흘려도 공격으로 잇기 힘들도록, 방패가 몸이 있는 반대쪽으로 향하게 하며 전진해 빗기는 게 최선. 거기까지 오는데 몸에 몇 개의 상처가 새겨졌고 아까전에 당했던 특이한 기술 같은 검으로 들어올 때는 어지럽게 흔들리다가도 방패를 방어구가 아니라 무기로 쓸 때 오는 필연적인 틈을 정확히 찔러들기 때문에 마땅히 대처조차 할 수 없었다. 다행인 건 상대의 검이 무척이나 날카로운 '명검'이라는 것. 무딘 칼은 의외로 질긴 사람의 살갗에 보통 약간 뜯어지거나 밀린 듯한 상처를 내지만, 예리한 칼은 깔끔하게 자른다. 의념으로 강화된 재생력으로 상처가 조금씩 원래 형태를 찾아가려고 한다. 이걸로 출혈이 조금이나마 줄고 움직이는 데 덜 지장이 되겠지. ...상처가 낫진 않겠지만.
" 핫...! "
무모한 수였다, 하지만 들어갔다. 갑옷을 뚫으려 하기 보다는 강한 충격이 갑주 안까지 전해지도록 하는 게 공략의 정석. 그 점에선 방패는 그럭저럭 적절한 무기였으나...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밀쳐내서 나무에 부딪친 것까지 확인했지만 의념각성자 기준으로 좀 튼튼하면 저 정도는 그냥 털고 나올 수준이니까. 그러니 상대는 낮고 자신은 높은 위치에 있을 수 있는 짧은 시간 안에 더 타격을 입혀야 한다. 내가 방패를 들고 뛰려는 찰나였다.
" 총? "
저 총은.
언젠가의 전시회에서 스쳐 지나간 물건을 닮은 듯한─
오버랩된 기억을 떠올리는 동안 총성이 무덤가를 울렸다. 주인이 바란다면 이 무덤 옆에 한 자리를 더 만들고 말 탐욕적이지만 주인에 충실한 도구. 들어올린 방패 뒤 몸을 숨기며 손뿐만이 아니라 팔로도 방패를 지탱했지만 큰 울림이 몸에 전해졌다. 금속 울부짖는 소리. 이번 공격과 방어의 대결은 패배에 가깝다. 뚫리진 않았지만 전쟁도 20%가 죽으면 전멸이라 불린다.
하지만 아직 부서지지 않았다. 이 방패도, 보석도.
숨겨놓은 수는 그것뿐? 아니, 분명 더 감춰둔 게 있을 것이다. 네 카페에서 메뉴판을 보여주던 드론, 중간에 나타나서 나를 주시하던 그건 어딨지? 전에 그 드론이 널 마비시켰지. 지금 꺼낸다면 분명 몸을 추스를 여유 정돈 우습게 날 텐데. 그건가?
보지 않은 건 믿지 않겠다. 지금은 그저 너를 공격하기 위해 너덜한 것들을 이끌고 뛰어갈 뿐이다. 한 걸음.
【11】
방아쇠를 당기며 방페를 세워 다가오는 너를 주시한다.
다시 한번..다시 한번.
의념을 무식하게 집어넣어 방아쇠를 당긴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진작에 나에게 주지.
그렇다면 나도 괜히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고 그저 지금에 만족했을 것 이다.
괜히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니, 떨어질 때 아팠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의지가 넘치는 듯한 눈동자가 퍽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같은 녀석이 마음에 안든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지만.
그래도, 지기 싫었다.
" 잡았다 "
왼손의 손가락에 걸어둔 의념사를 당긴다
맥스가 이곳 저곳에 걸어둔 의념사들이 조여들며, 비아의 주변에 하늘거리던 의념사에 연단의 의념이 불어넣어지며 압박하려했다.
그리고 손에 쥔 검이 뻗어나가며, 청지일검 수하견행을 사용한다.
【12】
무거운 불꽃이 튀며 또 한 번 방패를 뒤흔든다. 이런 감각은, 마음 깊은 곳에서 건져올린 후회 덩어리의 감촉을 닮았다. 무겁고 매섭게 덮쳐오고 흔적을 남긴다. 진동에 손이 미약하게 저려온다. 풀밭에 또 발을 디디고 뛰었다. 방패로 나 자신을 지키며.
" 실...! "
까딱, 하는 순간 눈치채지 못한 투명한 실이 거미줄처럼 옭아매온다. 의념의 힘으로 만들어진 거라면 의념의 힘으로. 보석의 의념이 날카로운 형태를 이루어 몇 개의 실을 잘라내는가 하면, 어느 순간부터 실이 카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보석의 칼날을 파고 들어간다. 이래서야, 잘라낼 수 없다! 잡아늘린 얇은 실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묶인 순간 또 한번의 공격을 허락했다. 촛불이 아지랑이로 주변 공기를 왜곡하며 흔들리다 훅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가깝게 좁히던 거리가 상대에 의해 먼저 좁혀지며 균형을 잃은 몸에 먼저 닿는다. 검이 왼팔을, 어깨 바로 아래를 잘라냈다. 가죽 아래, 혈관을 찢어내고 근육을 찢으며.
한 쪽 팔을 쓰지 못하면 균형도 잡지 못한다. 한 번 더 균형을 잃으려는 몸을 그대로 신체를 강화한 다음 딛은 발을 중심으로 거칠게 돌려 의념사를 끊어내려 하며, 돌려차기로 이었다. 체술은 배운 적이 없으니 개싸움이 되겠네. 유감스럽게도.
【13】
의념사가 끊어졌지만, 청지일검류의 기술이 들어갔으니, 더 이상 싸울 수 없을 것 이다.
분명 그럴 것 이었다.
하지만 눈 앞의 여성은 몸을 돌려 나머지 의념사를 끊어버린 뒤, 나를 다리로 걷어차버렸다.
예상치 못한 일격을 허용하며 뒤로 죽 밀려난 나는 검 끝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 강한 선배님이네. 상대를 치켜세우는 건, 기만같아서 싫어하지만.. 내가 이긴건 순전히 당신보다 더 좋은 도구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기본적인 전투센스는 당신이 우위에 있어. "
흘러내린 피가 녹색 풀 위에 흩 뿌려지고, 뉘엇거리며 펼쳐진 노을빛이 무덤가를 비췄다.
" 방패를 든 녀석들은 하나같이 공격에는 잼병이니 무시했던 것도 없잖아 있고 말이야... 그래서, 당신은 이제 어떤 수가 있지? 내가 알기론 딱 하나 쯤은 더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
" 방패 녀석들은 언제나 의념기로 방어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니 하는 말이지만... 내 다음 기술을 그 의념기로 막아내면, 순순히 패배를 인정할게...뭐 누님이라고 불러줄까? "
연단의 의념을 통해 만들어진 강철들이 공훈갑에 달라붙어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면서 증기를 뿜어댄다.
레인메이커 때 처럼 적당적당히 나약하게 휘두르진 않는다.
자신이 새긴 검념을 떠올리며, 처부순다는 느낌으로 휘두를 것 이다.
【14】
발에 묵직한 타격감이 전해지고 거칠게 착지한다. 왼쪽 팔이 무겁다. 당연하다. 움직일 수 없으면 이제 살덩이에 불과하다. 몸에 걸린 의념사였던 것을 털어내며 대답했다.
" 너야말로 강해. 무엇을 가졌던 간에 그것들이 네 손에 있다면 너의 힘이야. 네가 떨어진다 말할 것도 없고. "
어느새 노을, 일몰이다.
노을을 닮은 검이 빛나고 있었다.
" 숨겨놓은 수 같은 건 없지만, 아끼는 수는 있지. 여기 쓰기 적당한 건 아니지만, 동생 하나 생기려면 열심히 해야겠네. 응. "
실전이었다면 여기서 피한다 이외의 선택지는 없다. 맞부딪치는 건 무모하니까. 하지만 대련이니까 그런 건 멋이 없다. 당당하게 부딪치지 않으면 서로 실망하게 될 것이다.
상대가 일격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린다. 느슨하게 한 손으로 방패를 들어올렸다. 마음만은 느슨하지 않은 채로.
【15】
충전이 끝난 연단의 강철들이 갑옷에서 떨어져나가 검에 들러붙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하나의 대검과 같은 형상으로 완성되며, 높게 들어올린 그것은 노을빛을 받아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친구가 되고 싶었던 당신이 없는 하루가 또 끝나간다.
나는 또 당신이 없는 내일을 살아간다.
가디언넷으로 이카나에게 상냥하게 대해주라고 충고해주던, 나의 의뢰에 진심을 다해 반지를 디자인해주던, 나에게 선물해주기 위해 회중시계를 만들어주던, 나의 억지에 의뢰에 같이 가주었던.. 그리고 당신이 만든 머스킷 앞에서 나와 이야기했던.
널부러진 그 모든 추억을 이제는 앨범에 넣어 오랜 기억의 창고에 넣어두려고 한다.
이제서야 왜 베온이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하였다.
사람이 죽어버리면, 그 지인은 그 사람의 추억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은 후회로 인한 미련이기에
이 검을 만들어주며 잊고 나아가라고 한 것 이겠지.
그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후회도, 미련도.
왜 조금 더 나를 믿지 못했냐는 원망과 슬픔도
전부 앨범에 꾹꾹 눌러담아 정리한다.
잘가 나이젤 그람
언젠가 또 만날 수 있다면, 그 때는 내가 겪었던 일을 모두 말해줄게
분명 당신도 좋아할꺼야.
" 사라져 ! "
먹구름이 흩어지며 떠오른 노을을 등지고 나는 힘껏 대검을 휘둘렀다.
연단의 의념을 머금은 그 참격은 대지를 가르며, 그저 온 사비아를 쓰러트리기 위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16】
의념의 힘으로 의념속성을 강화하는 응용의 상위, 의념기. 어떤 응용을 한다고 한들 '보석'이 내 의념이고 본질이다. 주체도 나이고 대상도 나. 증폭된 의념이 나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의념기 - 화씨지벽和氏之璧
시선을 집중시킨다. 의도를 집중시킨다. 그렇다면 흩어놓는 것도 가능하다. 현혹시킨다.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며 영광을 쫓지. 그러니 너도 잃어라. 나를 공격한다는 것 이외에 모든 걸 잃고, 명확한 의도를 잃고, 한순간이라도 망설임을 실어라.
나를 봐. 나를 봐. 나를 봐······!
" 나를 봐. "
무엇이든, 네 눈동자 속에 비친 노을이 아니라 네 앞에 서 있는 날 봐.
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다만 우리들이 돌아갈 뿐이다. 어릴 적에 본 노을도, 지금 네 눈을 흐리는 노을도, 어른이 되어서 볼 노을도, 잠깐 이 세상에 머물렀다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그 찰나가 너무 아쉽고 슬프더라도, 모두 하나로 돌아갔을 뿐이다. 해 아래에 서 있는 이상 그 기억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까, 잊어도 괜찮아.
노을을 머금은 붉은 대검이 떨어진다.
빛을 등진 역광의 너로부터.
보급품일 뿐이었던 방패는 충분히 쓸모를 다하고 부서졌다.
그래, 그거 정말 억울했나봐. 하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분명 완전히 다른 검일텐데, 그만큼 부서진 검을 고칠 순 없었을텐데. 어째서 너의 검을 상대할 때 그 검 생각이 나는 걸까. 닮았기 때문일까. 정말 그 검이 살아나기라도 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공격을 받는 순간 타버렸다.
─자부하던 강한 몸을 비웃듯 베어 낸 일격이었다. 벴을 뿐만 아니라 때려부순 것 같다. 데인 것처럼 크게 난 상처가 뜨겁다. 머리에 몰린 뜨거운 피 때문에 차게 느껴지던 공기가 묽어져 간다. 미지근하다. 머리가 식는다. 마치 뇌에 차 있던 뜨거운 공기가 목으로 통째로 몸으로 내려가는 것처럼, 그 열기가 내려가는 게 느껴진다. 환각인지도 모른다. 즐겁게 싸울 수 없는 일이었지만, 조금은 즐거웠고, 많이 위태로웠고, 그랬다. 생각이 흩어졌다. 어느새 한쪽 무릎을 꿇은 힘없는 몸. 그 몸에 새겨진 뭉갠 상처를 길게 오른손으로 훑는다. 한 손밖에 쓸 수 없기에, 한 손을 이런 곳에 쓰면 손을 짚고 일어날 수 없다. 그래도 멍함 속에 붉은 손으로 상처를 꾹 눌렀다. 울컥 하고, 한쪽은 쏟아지고 한쪽은 올라온다. 정반대라서 꽤 웃기다.
일어서기 힘들 만큼 깊다. 간신히 붙어있는 이 몸이 일어서는 순간 그대로 끊어질 것 같다. 얻어맞은 것처럼 전신에 진동이 전해져 아찔하다. 그래도 결국 무언가에 손을 짚어 일어서려 한다. 방패를 짚고 일어나기엔 이미 부서졌다. 가까운 나무에 한 손과 팔로 기어오르듯 의지해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쓰러지듯 벽에 기대 놓은 마네킹처럼 완전히 기댔다. 일어선 것조차 기적 같다.
" 아우야. 이 정도면 인정할 만하니? 아니면 불합격? "
완전히 식어 버린 머리로 지어낸 미소는 멋이 없다.
【17】
내가 휘두르는 검에 검념을 담는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싶다는 염원과 소중한 사람을 지킬 수 있는 영웅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담는다.
그리고 너에 대한 미련을 담는다.
비를 머금은 먹구름이 흩어지고 하늘이 완전히 붉게 물든다.
석양을 등지고 선, 그런 나를 노을 빛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 너와 선배와 내가 의뢰를 끝내고 올려다본 하늘..
지금 와서는 그런 모든 추억들도 뉘엇거리며 흩어진다.
나는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이제는 너에 대한 미련을 접어두고, 나 자신을 미워하는 것을 그만 두려고 한다.
너를 구하지 못한 나를 원망해도 좋다. 하지만, 너는 그러지 않겠지.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너에 대한 미련과, 노을이 만들어낸 추억에 잠긴 상태로 검을 휘두르려는 나에게.
또 다른 너는 말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너는 말했다.
'나를 봐'
한 순간 공훈갑이 만들어 낸 투구 밑에 번뜩이던 붉은색의 안광이 흔들린다.
눈 돌리지 말고, 지금을 보라는 너의 말에 검자루를 부러트릴 것 마냥 강하게 움켜쥔 나는 사양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의념기 - 베르세르크Berserker
내가 휘두른 일격은 눈앞의 적을 완전히 해치우지 못했다.
미련이었을까? 아니면 후회였을까?
어쩌면 지금 여기서 너를 쓰러트리고 미련에 붙잡혀 있는게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난 너에게 패배함으로서 또 다시 나아갈 수 있게 되었겠지.
..그렇겠지.
공훈갑이 흩어지고, 망념이 한계라는 신호가 가디언칩으로 부터 울려퍼진다.
나는 이제는 보지못하는 너의 무덤에 풀썩 주저 앉아 기대며, 이제부터 봐야할 너를 바라보았다.
" ..차고 넘쳐 누님 "
나는 너를 용서할 수 있겠지.
언젠간 다시 볼 수 있겠지.
그 때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구나 루.
【18】
" 그래. 아우야. "
망념따윈 신경쓰지 않았다. 평소의 장기전을 대비하는 태도따윈 버렸다. 가디언의 망념이 한계까지 치달았다는 신호. 더 싸울 수 없고, 전투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경고. 남의 손목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것에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직감하는 건 나였다.
똑같이 의념이 제한되는 순간 질기게 버티고 서있던 나는 균형을 잃었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어긋난 듯, 그런 고통도 더 큰 고통에 삼켜지고 생각이 흐릿하다. 이 상태로 오래 있으면 위험하다. 다치고 피를 흘린 것도 이 상태라면 치명적이다. 건강이 제약된 몸은 나약하고, 영성이 제약된 두뇌는 우둔하다. 길게 생각하기 힘들다.
" ...보건실 좀 데려다 주련. "
이런 상태로 판정승이라니 큰 자비에 기대는구나. 구차한 몸이 허물어질 땐 긴장을 풀어버렸을 때였다.
【19】
" ...알겠어 누님 "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그녀를 부축하며 보건실로 돌아가던 나는
마지막으로 그의 무덤에 시선을 두었다.
안녕 나이젤, 안녕 루..
안녕 선배
7월 30일에 다시 올게.
지금 보다 더 강해져서 다시 올게..
" 방패들은... 여러의미로 곤란한 녀석들 밖에 없는 것 같아.. "
4.2.2. 성학교 ¶
- 지훈 일상[1] (87스레) - 5월 19일
- Salvia: [지훈아]
Salvia: [바쁘지 않다면 같이 어디 놀러가지 않을래?]
Salvia: [어디라고 해도 딱히 목적지는 없지만... 숨돌릴 겸 누구랑 같이 다니고 싶어서.]
친구인 아는 후배한테 그런 가디언넷 메세지를 보냈다.
이유는 터무니없다. 그냥 시간이 났기 때문이다.
**
[나는 상관 없으려나.]
[어디에서 만날까? 알려주면 바로 갈게.]
최근에는 친구들을 자주 만나는 기분이다. 친구가 많을수록 좋은 그에겐 나쁜 일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놀러다니고 있으니 왠지 인싸가 된 기분이라고 해야하나...
시답잖은 생각은 집어치우기로 하고. 적당히 옷장에서 옷을 챙겨입으며 사비아가 말한 장소로 갈 준비를 했다.
**
확실한 랜드마크가 있어서 약속장소로 잡기가 좋은 곳이다.
그리고 지훈이 읽었다는 걸 확인하고, 책상을 꽉 채우는 배치로 펼쳐져 있는 여러 책과 공책들을 접어 한쪽에 쌓아놓는다. 적당히 입을 만한 옷이 있으려나... 코디네이트엔 익숙하지 않아서. 적당히 괜찮겠다 하는 옷으로 입었다. 의념을 각성하기 전이었다면 3월에 입기엔 추워서 한두 겹 더 걸쳐야 하겠지만 지금은 비키니를 입고 나가도 감기에 안 걸릴 테니 상관없겠지. ...비키니를 입겠단 뜻은 아니다.
"이쪽이야."
그리고 약속장소에 나온 지훈을 보고 가볍게 팔을 흔들었다. (아마 네가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오는 타입이었다면 정시에 맞춰 온 나를 조금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랜만이라고 해야 할까?" 라며 가벼운 인사를 했다.
"목적지가 없다고 하긴 했지만... 불린 사람한테 어디로 갈지 묻는 건 예의가 아니니. 영화라도 한 편 보러 가지 않을래?"
그리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간다. 뭔가 먹으러 가는 것도 좋지만 식사 여부를 묻지 않았으니, 적당히 떠오르는 것 중 한 가지 의견을 냈다. 그리고 "간다면 가격은 내가 낼게. 네가 다른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그쪽도 괜찮지만-" 라고 덧붙인다.
**
비아의 메시지를 보고는 바로 출발했다. 별로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으니까. 이미 준비는 다 해둔 상태였기도 하고?
" 아, 안녕- "
가볍게 팔을 흔들며 다가오는 비아를 향해, 지훈도 작게 손을 흔들어줬겠지. 비아와 마찬가지로 지훈은 후드티에 검은색 슬랙스라는, 3월에 입기에 적당한 옷으로 입고 나온 모양이었다. 가볍게 인사를 하자 "오랜만이네. 저번에 대련 이후로 처음이기도 하고." 라며 고개를 끄덕였겠지.
" 영화... "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표정이 희미하게 밝아진 것을 보면 나름 가고싶어 하는 모양이었던가. "혹시 미리 정해둔 영화 있어? 아니면 보고싶은 장르라거나." 라고 물으며 어떤 영화를 볼 건지 흥미를 드러냈지. 가격은 내준다는 말에 그래도 되나? 싶은 표정을 짓다가도, "그럼 이따가 간식이나 식사는 내가 내는 걸로." 라며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일단 영화를 보러 가는 건 확정되었기에 비아에게 맞춰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지도?
**
"그때가 마지막이었나... 너와의 대련은 생각할 게 많은 편이라 좋다고 생각하지만, 대련만 하고 살 순 없으니까."
(확실한 내용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단언할 수는 없지만, 네가 절단 의념으로 방패를 절단하려 하거나 의념기로 공간을 뛰어넘어서 공격하거나 했으면 꽤나 놀랐을 것이다. 그냥 맞아주기만 하려 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덤덤하게 대련의 기억을 회상하다가 당장 눈앞에 있는 당사자가 더 중요하단 생각에 그만둔다.
"정해둔 영화는 없지만 장르는 생각하고 있던 게 있어. 마음편히 볼 수 있는 코미디라던가, 액션 같은 거 어떨까? ...난 호러 영화는 좀 힘들겠지만."
지훈의 표정이 희미하게 밝아지는 걸 간신히 캐치하고, 네가 덜 웃는 만큼 내가 더 웃는 것처럼 환한 미소를 돌려주려 했다. 표정 변화가 부족하단 말이야... 그리고 호러 영화를 말할 땐 글자 크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신감이 좀 덜어졌다. 근데 글자 크기가 뭐지.
"그러면 나도 고맙지."
간식이나 식사를 내겠다는 말에 대한 대답이다. 이걸로 주고받은 건가. 지훈이 따라오는 걸 확인하면서 한 걸음이나 한 걸음 반 앞서, 유흥가에 발을 딛는다. ...길을 잃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못 찾는 건 아니겠지. 친구들과 (끌려)가본 적 있는 영화관 이름을 스캔하다가, 드디어 발견했다. 고마워 친구들아... 한국에서도 잘 있기를... 나는 옛 친구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듯 목걸이를 쥐다가, 지훈을 이끌고 영화관에 들어가려고 했다.
**
.dice 1 3. = 3
1. 코믹
2. 액션
3. 호러(?)
" 나도 사비아와의 대련은 즐거워. 여러모로 어려운 상대인지라. "
생각할게 많은 상대만큼 재미있는 대련 상대가 없다. 지훈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마따나 사비아와 마냥 대련만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친분은 대련만으로 쌓아지는 것이 아니었으니.
" 좋아. 그러면 호러로 보러가자. "
자신이 부족한 웃음을 채워주려는 듯 환한 미소를 돌려주자 지훈은 고맙다는 듯 인위적일지라도 미소를 지어보였지.
그것과는 별개로 사비아가 알아야 하는 것 이 있다. 이미 대련을 하며 알았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성격 속에는 미약하지만 가학심을 품고 있었을까. 좋게 말하면 짓궂음이라는 단어로 포장될 수준의. 하여튼, 대련 때는 자주 내비쳤던 그의 가학심은, 사비아가 약한 모습을 보이자마자 짓궂음이라는 포장을 두르고선 그녀를 놀리려는 목적성을 띠고 다시한번 드러났던가.
" 생각보다 유흥가에 자주 오게되네... "
생경한 느낌이라는 듯 사비아를 뒤따라가며 중얼거렸다. 그녀에게 이끌려 영화관에 들어가서는, 다른 영화로 바꾸지 못 하도록 서둘러 영화 예매를 하러 사비아를 이끌고 갔지. 만약 사비아가 보기 싫다고 거부했어도 지훈이 혼자서 예매부터 결제까지 전부 하고선 사비아에게 표를 한장 건네주었을 것이다.
**
.dice 1 10. = 4
7 이상으로 설교
3 이하로 놀라지 않음
1학년한테 밀리는 상황이 되고 싶진 않았으니까. 넘겨주지 않으려는 사람과 넘으려는 사람의 싸움이었다.
"...내 얘기 들은 거 맞지?"
만들어진 미소에 위화감을 느낄 틈도 없이, 호러 영화를 보러 가자는 말에 수각황망하며 좀 불안한 눈으로 지훈을 빠안히 쳐다봤다. 대련 중에 내비쳤을 가학심은 전투를 즐긴다는 면에 가려질 수 있었기에, 방패와 창의 싸움에서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의도에 불과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좋은 동료이며 대련상대여도 ‘후배’니까. 그 방심이 처음으로 사적인 만남을 가진 지금, 짓궂음의 대상이 된 지금도 톡톡히 위력을 발휘했기에, 단지 농담이겠거니 하는 생각을 했을까.
"떠들썩하니, 다들 즐거워 보여서 기분이 나쁘진 않은 곳이야."
길을 잃을 것 같다는 점 때문에 다소 마이너스지만. 그렇게 영화관에 들어가서는 갑자기 폭풍같이 돌변한 지훈이에게 후다닥 이끌려가고 말았다. 뭔가 잘못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훈이 예매하려는 영화 제목의 큰 포스터가 눈에 들어오고 나선 설마 했고, 예매부터 결제까지 혼자 해버린 지훈이 표를 내밀었을 땐 '미어캣은 속았습니다' 같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냈다.
"...나는 내가 내겠다고 했는데."
"호러 영화는 힘들겠다고 말했는데."
조금 실망했다는 듯 지훈을 바라보며 뚝뚝 끊어 발음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행동하는 건 좋지 않다는 걸 단호하게 말해줄까 생각했지만, (이 캐릭터는 靑-고지식걸이다) 놀러 온 거니만큼 그렇게 엄격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나중에 따로 말할 생각으로 표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나지막히 "...식사와 간식은 내가 낼게."라고 중얼거린다.
"근데 이건 어떤 영화야?"
호러 영화라곤 해도 그냥 비슷한 분위기의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싸우는 게 나오면 괜찮을 텐데. 갑자기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놀래키거나 음산하고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조장해서 심장 떨리게 만드는 건 사활의 문제다. 친구(절친)와 보러 온 거면 좌석 옆으로 손이라도 꽉 잡을텐데 지훈이랑은 손 잡을 만큼 친한 사이도 아니다! (이 캐릭터는 靑-유교걸이다) 포스터의 사진과 캐치프레이즈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이 표의 원흉인 지훈에게 슬쩍 물었다.
**
.dice 1 100. = 87
영화의 무서움 정도
높을수록 갑툭튀 많음
" 응.. 글쎄. "
느릿하게 답하고는 불안한 눈으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비아의 시선을 일부러 회피했다. 속으로도 너무한 거 아닌가 싶었지만... 그래도 이럴 기회가 얼마마다 있겠어.
" 다들 즐거워하는 분위기는 좋지. 나까지 감화되어서 기분 좋아지니까. "
비아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주변이 우울하면 덩달아 우울해지고, 주변이 떠들썩하면 덩달아 즐거워지는게 사람 심리였다. 그렇기에 그 역시 즐거워하는 분위기를 더 선호했지. 그리고 사비아가 재미있는 표정을 짓자, 자신도 모르게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는 속으로 만족스러워하며 웃었을까.
" 그치만 나, 친구랑 호러 영화 한번쯤은 보러 와보고 싶어서..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은데 부탁하면 거절할 것 같아서... "
"역시 안 되는 걸까..." 라고 중얼거리며 일부러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자신의 표를 빤히 바라본다. 비아의 성격상 후배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받아줄 것 같았으니 그걸 이용하는 거였을까... 사실 비아의 반응이 보고싶어서, 라는 이유였지만, 자신이 말하지 않는 이상 모를테니 얌전히 시무룩한 기색을 내비치며 연기하기로 했다.
" 사람들이 폐 정신병원에 갔는데 귀신들의 장난으로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 하고 계속 도망다닌다는 내용? "
한마디로 말하면 갑툭튀도 잔뜩 나오고 영화 내내 음산한 분위기를 내고 심리적인 공포와 함께 사운드도 빵빵하게 틀어서 하여튼 엄청나게 무서운 영화라는 평가를 비아에게 그대로 말해준다. 포스터를 보고있는 비아의 옆에서 슬쩍 리뷰들을 읊어주며, 비아의 안색과 반응을 살피려고 했던가.
**
"...그래도, 부탁했으면 내가 들어보고 생각할 수 있을 시간이 있었잖니."
그 미소를 봤더라면 몇 마디는 해줬겠지만, 아무리 나라도 시무룩한 모습을 보고도 설교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3cm 차이 나는 후배의 눈높이에 맞춰 살짝 까치발을 들고 시선을 높인 다음 팔을 뻗어 머리를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 쓰다듬으려 했다. 그 다음엔 "이번만 넘어갈게."라고 속삭이려 했다. 가끔은 알면서도 속아줘야 할 때가 있다. 그래도, 영악해...
"그...그건 좀..."
마침 시선을 돌리다가 발견한 화면에 나오는 영화 예고편까지 확인하고 나는 필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청월 시험지(1학년)만큼 무섭다. ...그 정돈 아닌가? 아무튼 무섭다. 창문으로 밤의 어둠이 내리쬐는 폐병원의 복도를 드문드문 비추는 전등이 부딪치듯 불규칙하게 깜빡이고, 스크린의 시야가 빼앗겼다 돌아오는 반복에 맞춰 조금씩 변하는 풍경이 시점에 맞춰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걸음마다 다른 세상으로 끌려들어가는 듯한 연출을 한다. 그리고 예고편이 끝나며 무거운 효과음과 함께 내리찍히듯 나타나는 영화 제목에 퍼뜩 놀랐다가 뻣뻣하게 고개를 돌렸다.
"...간식 사러 가자."
이미... 넘어가준다고 약속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카라멜 팝콘에 콜라 정도면 괜찮을까. 줄을 서고 나서는 줄이 빠질 때마다 긴장감을 느끼면서도 내 차례가 왔을 때 선수를 빼앗기지 않도록 먼저 칩을 내밀었을 것이다. 참고로 나는 호러 영화에 당했다고 해서 후배한테 민트초코팝콘과 펩시를 산다던가 하는 장난은 치지 않는다. 그리고 입장을 기다릴 때면 쿠션 의자 위에 앉아 목걸이를 쥐고 가만히 기도하듯 눈을 감고 있었을 것이다. 누구한테 기도하느냐 하면, 결국 나 자신? 딱히 신을 믿지는 않으니까.
**
" 부탁하느라 미리 말했으면 안 들어줬을 것 같아서... "
이미 자신의 본심을 들킨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제와서 반색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으니. 지훈은 비아를 향해 시무룩한 채로 중얼거리다가,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그 손에 부빗거리려고 하였을까? 이번만 넘어갈게. 라는 말에는 속으로 환호성을 터트리고는 "고마워." 라며 가볍게 미소지었을까.
비아의 반응에 지훈은 만족스러운지 얼굴이 안 보이는 각도로 미소짓고 있었다. 정말 무서워하는구나... 싶기도 했고? 게이트를 닫을 때라던가 대련할 때라던가 당당하고 의지되는 모습을 보여준 그녀였기에, 이런 면모는 꽤나 의외였을까.
" 간식은 그거 두개면 충분하려나? "
비아를 향해 물었을까. 자신은 그 두개로 충분했지만, 혹시 비아가 아닐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봤자 계산은 그녀가 하는 거였지만... 그리고 만약 민트초코팝콘과 펩시를 선물했다면 안색이 파래졌지 않을까...
이윽고 비아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입장할 때라고 알려주었다. 누군가에게 기도하는 듯한 모습이라 종교가 있나? 하고 생각하기도 하고?
" 후우. 기대되네... "
티켓을 검사하고 상영관 내로 들어가 자리에 앉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지훈은 나란히 앉은 비아를 살짝 보며 "혹시 정말로 무리시라면 나가도 괜찮아요..?" 라고 고개를 갸웃거렸지. 이 이상 강요하는 건 장난의 수위를 넘었으니, 그래도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무섭다면 나가자고 말해두었던 걸까.
**
.dice 1 10. = 4 7 이상으로 가벼운 설교
"네가 더 날 믿을 수 있도록 힘써야겠네..."
손바닥에 부벼지는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비비면 헝클어지지 않게 하려 하도 흐트러지겠는데. 검지손가락으로 이마를 툭 건드린 다음 머리카락을 결대로 쓸어내려 정리해 주고 손을 뗐다. 고맙다는 말엔 역시 같이 웃어주면서.
"영화엔 팝콘과 음료수면 충분해."
그리고 지훈도 괜찮은 듯하니 두 사람 몫의 카라멜 팝콘과 콜라를 결제하고 받아들었다. 역시 일반 팝콘보단 카라멜이 맛있지.
"벌써 입장할 때야...?"
그 말에 눈을 뜨자 정말로 입장시간 직전이었다. 아니,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 타임을 외치고 싶은 마음이지만, 늦게 들어가서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으니 혼란스러운 속은 미뤄두고 몸만 움직여 상영관으로 입장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티켓 검사가 끝나고 정해진 자리에 앉아있었다. 아직 영화가 나오지 않는 스크린인데도 곧 호러영화가 나올 스크린이라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건 왤까...
"영화 도중에 자리를 나서는 건 몰입을 깰 수 있으니까. 평생 이런 걸 못 보며 살 수도 없으니, 익숙해져야지."
그리고 정말 무리라면 나가도 좋다는 말엔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유령이 나오는 게이트 같은 걸 갈 때도 있을 테니까. 물론 그런 게이트에 갔을 때 나오는 건 나나 랜스가 마음껏 뚝배기를 깰 수 있는 유령일 거라는 점은 넘어가도록 하자. 이래서 조금 준비시간이 있으면 좋았을 텐데. 광고시간이 시작되서부터는 곧게 앉은 자세로 팝콘에 손을 대지 않고 광고에 집중했다. 광고도 영화를 보는 것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다. 진짜 영화가 시작한 게 아니니만큼 팝콘은 아끼고 있지만.
그리고 영화가 시작됐다. 다섯 남녀가 한 차에 타서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시작이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신나지만 다소 올드한 취향의 노래를 조수석의 여자가 타박하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남자가 그러면 네가 운전하라면서 질겅질겅 껌을 씹었다. 제법 닮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걸 봐선 남매였을까. 결국 조수석의 여자가 말다툼에서 승리해 라디오의 내용은 클래식과 함께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송으로 바뀌었지만, 평화로운 음악과 달리 남매의 말다툼은 멈추지 않았다. 코믹한 분위기 속에서 긴장이 점점 풀어지고 있을 때 상영관을 뒤흔드는 큰 소음과 함께 스크린 속 화면이 덜컹 움직였다. 차가 뭔가에 걸린 것이다.
"악...!"
손으로 바로 입을 틀어막아 비명이 새어나가진 않았지만 깜짝 놀랐다. 이렇게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갑자기 사람을 놀래키다니... 조수석의 여자가 운전 제대로 안 하냐면서 운전하는 남자를 갈구고, 남자는 아무것도 안 보였다며 항의의 말을 내뱉었다. 다른 사람들한테 아무 관심도 없이 보조배터리를 연결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또 다른 여자와, 너무 싸우지 말라며 물병을 꺼내서 갈구는 여자에게 내미는 서글서글한 외모의 남성. 그리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또 한 명의 여자가 불연듯 몸을 돌려 차의 뒷창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차가 달리고 있었던 고속도로의 아스팔트에 가로로 긴 금이 가 있었다. 차가 지나면서 뒷창을 보는 여자의 시선도 뒤쪽으로 끌려가고, 그 바닥의 금도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간다. 이미 넘어버린 선이, 점점 멀어져 가는 것처럼. 의도적인 듯 창밖을 비추지 않았던 카메라가 적극적으로 창밖을 비추기 시작하면서 희멀건한 안개가 멀리 끼어 있는 축축한 도로 풍경이 스크린을 채웠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라디오가 잠시 음소거되고, 고요함 속에서 문득 창밖을 보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
-명아. 우리 어디 가기로 했지?
-있잖아, 그 거기. 무슨 정신병원?
-월선정신병원.
-그렇구나...
마치 홀린 것처럼 높낮음 없는 숨소리 섞인 나른한 목소리가, 창밖을 보는 여자의 목소리가, 흰 안개가 금을 완전히 삼켜버림과 동시에 흩어져 사라졌다. 다시 라디오가 켜졌지만 더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말다툼하는 목소리도 흐려진다. 말리는 목소리도 흐려진다. 작품의 세계와 관객의 단절. 그 침묵을 끊어놓듯 무겁게 쿵 내리찍는 효과음과 동시에 페이드아웃 없이 화면이 암전되고, 잠시 후 어두운 스크린 뒤로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중 <10월: 가을의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dice 1 100. = 89만큼 무섭다)
**
" 이미 믿고는 있어. 다만 이런 부분에선, 어느정도 짓궂음이 느껴지는 부탁이었으니까... "
지훈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자신의 이마를 톡 건드리자 그대로 얼어붙듯이 부빗거리는 것을 멈추었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는 것은 기분 좋게 받아들였겠지만, 아마 손을 뗐을 땐 아쉽다는 듯이 비아를 바라보았겠지. 머리카락을 정리해줄때만 해도 골골거리기 직전이었으니.. 하지만 더 해달라고 조르거나 하진 않았던가?
팝콘과 콜라면 충분하다는 말에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긴 하지- 라는 듯이. 나쵸라던가 더 살 수 있기는 하지만 딱히 즐기는 타입은 아니었고, 비아 역시 그런 듯 했으니까.
" 시간이 꽤 지났어. 눈 감고 있느라 잘 모르겠지만. "
비아의 생각보다도 시간이 꽤 많이 지난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긴장한 마음에 시간이 빨리 간 것처럼 느낀 것이려나. 조금 당황한 듯한 모습이 의외이면서 재미있었는지, 자신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비아를 바라보았다.
" 굳이 싫어하는 것에 익숙해질 필요는 없으니까. 정 힘들면 꼭 말해줘야 해. "
비아의 눈을 빤히 쳐다보려고 하다가,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정말로 무섭다면 말을 걸 거라고 생각했을까. 물론 성격상 말을 안 할 가능성이 높으니 어느정도는 게속 살피면서 영화를 봐야겠지만.
잠시간의 광고 시간이 지나고, 영화가 시작된다. 내용은 생각보다도 클래식한 공포영화였다. 초반부터 긴장감을 주는 연출과 함께 제목이 크게 나오더니, 중반부와 후반부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놀래켰다. 갑툭튀나 징그러운 귀신 디자인은 물론이고, 시간차로 갑툭튀를 하거나, 등장인물이 빠진 공포를 생생하게 묘사하거나, 아예 의자가 흔들리거나 하는 등 관객을 직접 놀래켰다. 생각해보니 이 영화, 4D였다..!
지훈은 멍하니 영화를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비아가 걱정되는지 살짝 몸을 기울여 비아의 표정을 살피려고 했다. 너무 무서워하는 듯 하면 상영관 밖으로 이끌 생각이었을까.
**
"짓궂었단 건 인정하는 거구나."
친구랑 한 번쯤 보고 싶었는데 이 한번뿐인 기회에 부탁하면 거절할 것 같아서-같은 이유를 댔으면서, 부탁 자체를 짓궂음으로 생각한다는 건 처음부터 놀릴 의도였단 걸 인정해버리는 거잖아. 쓰다듬던 손을 떼고 살짝 쏘아보다가 표정을 풀었다.
-
정 힘들면 꼭 말해달란 말에 대답하지 않고 지긋이 눈을 감았다. 약속하면 지켜야 하니까.
그리고 공포와 긴장감과 이완의 반복과 조절로 관객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며 긴장을 놓으려 하면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고 엄청난 메소드 연기로 '영'의 유혹에 정신이 나가버리는 '명'과 그 광기를 모른 상태로 의지하려다 멘탈이 산산조각나며 유리창을 깨고 떨어져내리는 '연'과 누나를 부르며 오열하는 '결'을 이끌고 끝나지 않는 복도를 뛰어가는 '과'. 아무튼 절망적인 상황... 의념각성자도 즐길 만한 기준으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정말 사정없이 관객을 흔들어대는 4D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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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아주 유명한 소설이 있다. 판타지 소설 중에도 게임물 장르가 범람할 때 나왔던 수많은 소설 중 하나였다. 회귀물 테이스트가 첨가되어 있는, 비참한 삶의 주인공이 게임의 히든피스를 모두 알고 과거로 회귀해 성공을 거둔다는 소설. 이 소설이 유명한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결말 때문이었다.
"형님, 이 새끼 웃고 있는뎁쇼?"
"냅둬. 기분 좋은 꿈이라도 꾸나보지"
실제로 이런 대사는 없지만, 아무튼 비슷한 결말이다. 사실 회귀해서 행복한 삶을 거두는 건 꿈이고, 꿈에서 결혼한 여동생은 이미 자살해 있는 현실이고, 최후의 결말에서 주인공은 불법 장기매매 수술을 진행하던 중 과다출혈로 의식이 희미한 상태에서 웃으며 숨을 거두는 것이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왜 꺼내느냐면...
사비아는 웃고 있었다.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앉은 채로... 기절했어...!
굳이 데려가지 말고 내버려둬. 기분 좋은 꿈을 꾸는 것 같으니까... 라고 지훈에게 알리는 듯, 정말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난기택(난 기절을 택하겠다는 뜻)
**
.dice 1 3. = 1
1. 공주님 안기
2. 업기
3. 들쳐메기...(?)
" ... "
쏘아보는 것에 지훈은 아무 말 못 하고 가만히 시선을 피했을까. 들켰다... 눈치 너무 빠르시잖아...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들었다가, 표정을 풀면 "미안.." 이라며 작게 사과했겠지.
-
' 어쩌지... '
기절해버린 사비아를 보며 곤란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본다. 설마 앉은채로 기절해버릴 줄은... 그러니까 무서우면 말해달라고 했는데.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이렇게 되면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하나.
지훈은 가볍게 그녀의 다리와 목 뒤쪽으로 손을 넣어 그녀를 들어올린 뒤에, 일단 상영관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 영화관 내부에 있는 쇼파에 비아를 눕혀두고는 깰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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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꿨나요? .dice 1 5. = 2
1 꿨다. 아주 달콤한 엿 같은 꿈을.
2-4 'ω' 꿀잠
5 행-벅
딱히 비난할 생각으로 할 말은 아니었지만, 시선을 피하는 것에 더더 빤히 쳐다봤다. 괜찮지만 사과하려고 한 건 잘한 일이니 웃음을 돌려줬다. 이걸로 사과는 받은 걸로 됐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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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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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뭐지. 기숙사가 아니다. 침대도 아니고, 이불도 아니다. 신성 로마 제국 같은 건가. 신성하지도 로마도 제국도 아닌 무언가... 아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분명 잠들기 전에는...
잠든 게 아니라 기절이었다. 정정한다. 생생하게 눈앞에 닥쳐오던 공포를 떠올리고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한 번 자고x 기절하고o 일어나서 그런지 좀 정리되긴 했지만... 그러고보니 같이 영화를 보러 왔던 사람이 있었다!
"지훈아, 어딨어?"
나는 누워있던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너를 근처에서 발견했다면 안심한 듯 하다가도, 약간 부끄러운 듯한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아무리 무서워도 같이 영화를 보러 가서 잠들어 버리다니... 영화를 만들어준 사람한테도, 같이 보러 간 사람한테도 예의가 아니었다. ...아닌가? 공포영화 감독한테는 기절할 만큼 무서워해주는 게 좋은 일인가?
**
" 여기. 여기 있어. "
지훈이 희미하게 웃어보이고는 벌떡 일어난 비아를 살짝 쓰다듬으려고 시도했다. 꽤나 무서워 한 것 같았으니 안심시키려는 의도였나..? 부끄러운 미소를 지었다면 지훈은 그 얼굴을 빤히 보려고 했지. 뭔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다른 모습도 그렇긴 하지만 이건 정말 처음이었다.
" 그나저나 너무 무서우면 말해달라니까. "
조금 퉁명스러운 듯, 불만스러운 어조로 비아를 향해 중얼거렸다. 비아가 기절하자 처음에는 뭔가 잘못된 줄 알고 조금 당황했으니까. 기절할 정도로 놀란 걸 보면 기절하기 전까지 있던 장면들도 보기 힘들었을텐데. 억지로 비아에게 보여준 듯 해서 기분이 찜찜했지.
**
"아, 거기 있었구나. 먼저 자...기절해서 미안..."
머리 위로 올라온 지훈의 손을 잡아서 내리면서 그렇게 쑥스러운 사과를 했다. 그리고 빤히 쳐다보는 것에 "왜 그래?"라고 말하면서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에 뭐 묻었나? 괜히 뺨을 손으로 문질러본다.
"...처음부터 버텨볼 생각이었거든."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온 사람 탓이라고 몰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러는 사람이 아니지. 고집부리다가 실수했다고 생각하며 살짝 어두운 표정으로 "미안했어."라고 중얼거렸다. 영화 때문에 나 자신에게 후유증이 남았는가 하면, 그렇게 심하진 않다. 그 영화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찝찝함과 무서움과 긴장이 심화되다가 빵 터져버렸을 뿐, 지금은 밝은 밖이니까.
"영화 보면서 팝콘을 남겨본 건 처음인 것 같은데."
하고 살짝 주변을 둘러보지만, 네가 공주님 안기로 들고 나올 때 팝콘봉지까지 챙겨나왔을 리는 없으니 보일 리가 없겠지. 약간 아쉽긴 하지만 더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그거 가지러 다시 들어갈수도 없고.
"이제... 어떡할까?"
영화를 다 본 건 아니지만 어쨌든 보긴 봤으니 이걸로 잘 놀았다 치고 해산? 아니면 조금 더 다니다가? 갑작스런 변수 때문에 다소 딱딱하게 돌아가는 사고회로에 오류가 생긴 것처럼 잘 생각이 안 난다.
**
" 사과할 필요는 없어. 그런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던 건 나니까. "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다가 저지당하자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짓긴 했지만, 그래도 딱히 내색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말했던가. 왜 그래? 라고 묻는다면 "그런 표정은 처음 보는 것 같아서." 라며 생소하다는 듯이 중얼거렸겠지.
" 버티기 어려운 걸 억지로 버티려고 하는 건 안 좋은 습관이야. "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라며 빤히 바라보았다. 조금은 화내는 걸까... 내지는 걱정하는 걸지도. 물론 참을성이 좋은 것은 좋다. 다만 정도가 지나치면.. 별로 좋은 결과가 나오진 않았으니까. 비아의 성격상 정도가 넘을 때까지 버티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을까?
" 챙겨오는게 좋았으려나... "
살짝 아쉬운 듯 고개를 갸웃하지만 그 상황에서 챙길 정신이 있었을리도 없고, 들고 나올 손도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 사비아가 피곤하다면 지금 들어가는게 좋겠지. 아니라면 더 노는 것도 좋을지도? "
선택은 비아에게 맡긴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나.
**
.dice 1 3. = 3
1,3 얌전히 집에 갑시다
2 차 가자
"어쨌건 간에 수락한 건 나였어."
지훈의 얼굴에 스쳐지나간 아쉬움의 흔적을 찾듯 잠시 빤히 쳐다보다가 그렇게 대답했다.
"나도 꽤 다양한 표정을 짓는 편이니까. 이런 표정을 보일 일은 좀처럼 없으면 좋겠지만..."
물론 내가 내 표정을 제 3자의 입장으로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대충 어떤 느낌이었을지는 감이 오는 것 같아서.
"나라고 해도 무조건 한계까지 참고 보는 성격은 아니야."
그건 걱정해 주는 사람들한테도 실례니까. 싸울 때 엉망진창으로 다쳤는데 서포터 기운을 빼고 싶지 않다고 치료를 안 받고 버티거나-이건 극단적인 예시지만, 그런 일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걱정해주는 걸 알기에 묵묵히 그런 말들을 받아들인다. 팝콘 얘기에는 "괜찮아. 그런 걸로 아깝진 않으니까."이라며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피곤하니까 슬슬 돌아가봐도 괜찮을까?"
선택을 맡았기에 돌아가본다는 선택을 한다. 물론 이렇게 말했지만 기숙사로 바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지칠 때까지 가볍게 운동 한 번 하면 잠도 잘 오고 푹 잘 수 있으니까. 마음정리를 할 겸 수련에 집중하는 것도 좋다.
**
" 제안한 건 나였으니까. "
빤히 쳐다보는 것에, 마치 감정이 들여다봐지는 것 같아 살짝 고개를 돌리다가도
" 다른 사람 입장에선, 더 많은 표정이 보고싶으니까. "
살짝 고개를 끄덕였을까. 특히 지금과 같은 의외의 표정이라던가는 한번쯤은 꼭 보고싶어 했을지도 모르겠다.
" 그렇게 말해주면 다행이지만, 아까 그런 일이 있어서 그런지 걱정되네. "
한계까지 참는 성격이 아닌데 기절할 정도로 버틴 거냐며 살짝 다그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심했다. 비아가 거짓말을 하는 성격은 아닌만큼 분명 위험한 상황일수록 극단적으로 버티는 일은 없는 거겠지.
" 그럴까- 오늘은 즐거웠어. "
"그럼 다음에 또봐." 라며 정석적인 인사와 함께 손을 약간 흔들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 진화 일상[1](90스레~91스레) - 5월 23일(새벽)
- "하아."
나는 짧은 한숨과 함께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바닥에는 널부러진 유리조각 천지.
그럭저럭 주웠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많이 남아있네. 허리를 숙여 한조각 더 줍는다. 마치 모내기를 하는 농부가 된 느낌이야. 낯선 기숙사에서 홀로 밥먹자니 무서, 아니 어색해서 바깥에서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먹고 외로움을 달랠 만화책이라도 사갈까 생각했는데.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된걸까.
푸념하듯 조금전을 떠올려본다. 사실 그다지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잔뜩 취한 누군가가 비틀거리면서 가다가, 홧김에 유리창을 후려쳐 부순 것을 봤을 뿐. 불쌍한 화풀이 대상이 된 유리창이 산산조각 났을 뿐, 나와 크게 관련있는 일조차 아니었다. 그래 그냥 지나쳤으면 되잖아.
다만 나는 그러지 못했을 뿐이다. 바닥에 산산조각 깨어진 날카로운 파편들이, 혹여나 누군가의 발에 찔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나는 그 앞에 쪼그려 앉고 있었다. 결국 나는 궁상맞은 모습으로 신세한탄을 하면서 유리조각이나 줍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고, 내 자신이 자처한 것인데도 말이야. 조금 웃겨서 허허 하고 소리내어서 웃었다. 손에 모아둔 유리조각은 별거 아닌것처럼 작더라도, 그런대로 뾰족한 모퉁이가 손바닥을 가볍게 찌르고 있었다.
그래. 궁상맞은 바보짓일지도 모르지만, 이걸로 혹시나 누군가의 상처를 덜 가능성이 생겼다면 싼 값이라고 생각하자. 나는 쪼그려 앉아 묵묵히 유리조각을 계속 주웠다.
**
공부를 마치고, 꽉 찬 망념이 살랑살랑 존재감을 드러내는 듯한 감각에 잠겼다. 쌓인 피로로 인한 환각에 불과하지만 가슴이 약간 답답해졌다. 마음도 의념도 망념도 가슴에는 없다. 모두 내가 나라고 인식하는 무언가에 저장되어 있을 뿐이다. 가디언칩을 톡톡 조작하면서 누구와 함께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화면을 종료하고 트레이닝복을 꺼내들었다. 오늘은, 그냥 달리자.
3월의 바람 사이를 달리다가, 반대쪽으로 달리는 사람을 엇갈려 지나가다가, 문득 그렇게 멈춰섰다. 준비도 없이 격하게 뛰기 시작한 터라 숨이 격했다. 쾅쾅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하면서도 숨소리가 크지 않도록 눌러담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진정될 리 없건만 그렇게 하고 있었다. 성학교 기숙사와 가까운 구역. 유리파편을 맨손으로 줍고 있는 사람. 최대한 들키지 않는다고 흙을 긁는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하고 숨도 줄였지만, 의념도 쓰지 않고 의념을 멀쩡히 쓸 수 있는 가디언 후보생에게 숨기긴 어려웠을까?
그가 고개를 들지 않았다면 그림자가 고개숙인 그의 등 위로 드리워지도록 가깝게 걸어갔다.
"...안녕."
그건, 언제나 나에게 밝은 모습을 보여주려 하던 너에게 뒤늦게 돌려주는 장난이었을 거야.
"좋은 점심이야."
**
아무 생각 없는 반복 활동은 상념을 깊게 한다. 요 근래 나의 선택은 잘한 것이었을까. 나 자신으로썬 발전없는 수렁에서 벗어나 나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정말 진심으로 조금도 '도망치고 싶었다' 라는 의향이 없었다고, 나는 단언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자연스레 누군가를 떠올린다. 가장 친했던 그녀. 어쩌면 이제는 과거형으로써 '친했었던' 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속으로 생각할 때 정도는 고집을 부려도 괜찮지 않은가. 나는 과연 잘한 것이었을까. 어려운 난제다.
뒤에서 다가오는 발걸음을 느끼면서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이런 뒷골목에 쪼그려 앉아 있는 사람을 신경쓸 인물 따위 많지 않다. 선도부라면 어쨌거나 좋은 의도로 행동하는 것이니 잘 설명하면 된다. 그 외엔 지나쳐서 걸어갈 것이다. 나는 단정짓곤 난제에 대해서 좀 더 고민했다. 그녀와 나는 공통점이 참 많았다. 좋게 말하면 호인이고, 나쁘게 말하면 괴짜일지도. 그렇기에 마음도 잘 맞았고, 나는 그녀와 지내는 시간이 순수하게 즐거웠다. 물론 그 시간을 손수 직접 없애버린 것도 나 자신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이 유리줍기처럼 모순적일지도 모른다.
"......."
그렇기에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을 땐, 난 진지하게 양호실로 가서 정신검정을 받아봐야 할까 고민했다. 이상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엔 나는 그녀를 그리워하곤 있었지만 환청과 환각에 시달릴 정도로 심각한 증세를 앓은 기억은 없다. 내가 모르는 정신 질환이라도 생긴걸까.
다음 마디가 들렸을 때 비로소 나는 고개를 돌렸다. 서로 서있을 때에도 나보다 훨씬 큰 크기의 그녀는 쪼그려앉은 자세에서 올려보니 너무나도, 너무나도 드높게만 보이는 것 같았다. 바닥과 천장. 어쩌면 지금 인식하고 있는 실제의 거리감보다, 나는 더 멀리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 어...."
동공이 크게 떠지고 입에선 스스로가 생각해도 얼빠진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아니 왜 여기에?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가라앉는다. 일단은 답변, 그래, 답변을 해야지. 그런데 뭐라 말하면 되는걸까. 그런걸 제대로 알 수 있었다면 애초에 교우관계가 좋았을 것이다. 일단 확실한건, 그녀와 어색한 관계가 되고 싶진 않았다. 결국 나는 활짝 웃기로 했다.
"....오랫만이야! 잘 지냈어?"
**
"으응. 나는 잘 지냈지."
"요즘 다들 시험기간이니까, 열심히 시험공부를 하고 있긴 하지만."
쪼그린 자세, 낮은 자세로 이쪽을 돌아보는 진화는 엄청 놀란 것처럼 당황하고 있었다. 사실... 나도 당황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데서 만날 줄은 몰랐던 옛 친구. 안 좋은 일로, 멀어져야 했던 옛 친구. 하지만, 최대한 덤덤하게 대하려 한다. 성학교도 청월도 제노시아도 시험기간이니까 굳이 청월이라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됐다.
나는 유리파편이 팔을 뻗으면 닿을 곳까지 가서 같이 쪼그려앉았다. 의념으로 손을 강화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굳이 맨손으로 잡진 않았지만. 대신 주변에 굴러다니던 돌을 주워서 작은 유리파편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이런 건 보석의 힘을 빌려서 더 반짝이게 하면 확실히 발견할 수 있을텐데, 어려운걸. 이라고 생각하며.
"너는 잘 지내고 있었어?"
똑바로 쳐다보지 않으면서 평범하게 말을 건네고 있으려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기분이 된다. 그렇진... 않았겠지. 손바닥을 찌르는 유리조각들을 쥐고 있는 걸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말을 했다.
"아니다. 이런 거 줍고 있는 거 보면, 뭔가 선도부에 걸릴 만한 짓이라도 한 거야?"
"흔히 그러잖아. 일탈행위 처벌을 위한 사회봉사... 그런 거."
당연히 너라면 잘못된 일은 안 했을 거야. 라고 믿고 싶지만, 진화라면 자기가 한 일이 아니더라도 쉽게 덮어쓰고 대신 해주거나 하겠지. 직접 남한테 해를 끼치라면 못 하겠지만, 자신만 피해 보는 일이라면 가볍게 받아들이곤 하니 말이야.
**
"그,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면서 긍정한다. 그러고 보면 그랬지. 교무실에 찾아갔을 때 시험기간이라고 막혔던 기억을 떠올린다. 진정하고 기색을 보니 비아는 좀 피로해보이는걸 봐선,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걸까? 나는 돌이켜보면 하나도 안하고 있구나. 그럴 겨를도 아니었지만.
"......"
옆에 쪼그려 앉아서 조각을 보던 비아는 돌로 같이 모아주기 시작했다. 도와주려는걸까. 다른 사람이었으면 '괜찮아. 내가 괜히 하는거야.' 라고 말렸을텐데, 그녀에게 그런 얘길 했다간 섭섭해 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가끔은 배려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배려일 수도 있다.
"응. 담임선생님께서 참 친절히 대해주셔서. 동아리도 들어가볼까 생각중이야."
나는 최대한 평범하게 대답하려 애썼다. 너무 평범하게 대답하려다보니 오히려 한바퀴 돌아서 무엇이 평범한지도 잘 모를 정도로. 이러고 있으면 마치 변함없는 사이인 것만 같다. 그러나 실제론 굉장히 어색하다. 비아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라는 느낌의 기색을 띄고 있다. 나도 남말할 처지는 아니다. 아마 거울을 보면 비슷한 꼴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될 건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작게 한숨을 내쉰다. 어색함을 덜기 위해 조금 정도는 진솔히 덧붙이자.
"널 자주 만나지 못하는게 조금 아쉽긴 해."
청월에서 지낸 시간과 경험들이 기쁜 것만은 아니었지만, 그녀와 친하게 지냈던 때는 분명 내게 있어서 즐거운 기억이었으니까. 그 부분에서만큼은 오해가 없길 바랬다. 그러니 내 딴에서는 나름 노력해서 얘기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단순히 멀어지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고.
"아하하, 그런 화려한 전학생 데뷔는 하지 않았어. 그냥...술먹고 취한 아저씨가 유리창을 깨부쉈길래. 누가 밟으면 다칠까 싶어서."
이어지는 질문엔 볼을 긁적이면서도 비교적 시원스럽게 답할 수 있었다. 스스로 자조했을 정도로 미련할지도 모르는 짓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다지 눈치가 보이지 않는건 내 안에선 역시 그녀를 변함없이 친근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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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나도 아직 동아리 안 구했는데."
"시험기간 끝나면 찾아봐야 하려나?"
어쨌건 작은 조각도 모아놓긴 했는데, 이걸 어떻게 할까. 진화의 손에 올려주기엔 못할 짓이고, 나는 절대 맨손으로 유리조각을 쥐고 싶지 않다. 지금이라면 손에 상처가 날지도 몰라. 진화는 멀쩡하게 손에 쥐고 있지만... 튼튼한 건 전과 다를 게 없구나.
"...그랬구나. 나, 이제 3학년이니까, 2년 있으면 가는걸. 지금 많이 안 만나두면 만나기 어려워질 수도 있어?"
자주 만나지 못하는 게 아쉽다는 말에 조금 기뻐서, 혼란스러운 마음이 약간 가라앉았다. 그래서 조금 말을 고른 다음 내놓았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길 바라듯, 나는... 네가 내 옆에 없어도 쭉 친구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날 만나는 게 좋다면 조금은 자주 만나자... 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도 맨손으로 치우려 하는 건 위험하잖아. 빗자루까진 아니어도 티슈 정돈 가져와야지."
아저씨... 학원섬에 온 민간인이라고 해도 학원섬에서 술 취해서 유리창을 부술 사람이 있나? 아마 엄청 노안인 술취한 성학교생이었을지도. 아무튼 남의 강요는 없는 자발적이란 일에 안심하고, 굳이 그걸 맨손으로 주우려 했다는 것에 답답해졌다. 다들 신발 정도는 신고 다니니까 잠깐은 놔둬도 괜찮을 텐데.
"정말... 넌 하나도 안 변했구나."
손에 바닥 먼지를 묻혀가며 하는 미련한 선행. 이해할 순 없지만 나쁜 뜻으론 행동하지 않는다. 그 점이 참 애매하다...
유리조각들을 앞에 두고 머뭇거리다가, 저지 소매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고 쥐었다. 이렇게 하면 옷에 박히거나 했을 땐 문제지만 당장 손은 안 다친다. 저지를 뚫을 만큼 큰 조각은 진화가 모두 들고 있으니 괜찮아. 그리고 쓰레기통이 있는 쪽으로 앞장서면서 유리조각을 쥐지 않은 손을 진화에게 흔들었다.
"빨리 버리고 오자. 손도 씻고."
(따라와줬으면 가까운 쓰레기통으로 이끌어 유리조각을 탈탈 털어 버리고 공공화장실 쪽까지 데리고 갔을 것이다. 이쪽은 유리를 손에 잡진 않았으니 손 씻을 필요는 없지만 넌 이것저것 묻었으니까... 하고 화장실 입구에서 나오길 기다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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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가입신청서만 받아놓고는 아직 찾아가보진 않았어. 비아는 시험 공부에 열중하는 중인거야? 사실 착각이면 다행이지만, 조금 지쳐보여서. 무리하지 않으면 좋을텐데."
나는 내심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그리 물어보았다. 안색이 창백하다고는 말 못해도, 역시 자주 봐온 입장으로써 어딘가 피로한 기색 정도는 느껴지는 것이다. 복장을 보니 조깅을 하던 모양인데, 바람이라도 쐬러 나온걸까.
"아."
그런 시시한 추리는 이어지는 대화에 깔끔히 절단 되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식을 흘렸다. 그래, 그녀와 나는 이제 학년이 달랐지. 멍청하긴. 스스로에게 욕을 내뱉는다. 뭐가 '무리하지 않으면 좋을텐데.'냐. 2학년 주제에. 3학년이 되고 졸업을 앞둔 그녀는 당연히 시험에 대한 무게가 나랑 다르겠지. 그와 함께 가슴이 아팠다. 내가 방황하느라 날려버린 시간의 격차가, 가시가 되어 심장에 박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걸 티내서는 안된다. 절대로. 어쩐지 울고싶은 기분이 왈칵 들었지만, 손안에 쥐고 있는 유리조각의 뾰족함이 간신히 억제해줬다. 고마워. 살짝 피가 흐르지만, 싼 값이야.
"....그렇네! 이것저것 바빠서 연락도 잘 못했는데. 그럼 적극적으로 만나자고 해도 되는걸까."
자신의 실수랑 꼴사나움으로 어색해진 친구에게, 다시 자주 만나자고 물어보는 모습이라니.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만큼 부끄럽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아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어쩐지, 여기서 꼴사납다는 이유로 도망치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조소당하거나 궁상맞아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결심한건 나다. 그래, 용기와 뻔뻔함만은 있었다.
"아하하."
뒤이어 얘기하는 비아의 말에는 그저 쓰게 웃었다. 정확히 그 말대로야. 방금전 힘을 줬던 손바닥이 가볍게 따끔거린다. 이걸 보이면 안되겠지. 비아를 따라가 유리조각을 버린 뒤엔, 제딴엔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이런 사소한걸로 걱정을 끼치고 싶진 않았다. 마침 비아가 배려해줬기에, 나는 공공 화장실에서 가볍게 묻은 피를 닦아낼 순 있었다. 그러면서 수 많은 상념에 잠겼던 나는, 고민 끝에 나오자마자 어색하게 얘기했다.
"혹, 혹시, 그럼 이후에 시간 있어?"
물론 말한 직후에 후회했다. 이런 멍청한 멘트를 하려고 고민한 것은 아니었을텐데. 나란 녀석은 정말로 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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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너랑 얘기하면서 나아지고 있으니까."
일종의 정신적 피로와 같은 망념. 그냥 피로와 다른 점은 한계까지 치달으면 확정적으로 죽는다는 점? (가디언칩이 90 이상의 망념을 제외하니 '죽기'까지는 갈 일이 드물지만...) 그 망념은 무슨 원리인진 몰라도 다른 사람과의 교류로 줄어든다. 망념도 줄고, 그냥 피곤했던 것도 대화하면서 힘이 나니까, 중의적 표현이란 거다.
"응. 누가 친구 없다고 놀리면 당당하게 부르고, 카페 가서 2인 메뉴 못 시킬 때도 그냥 불러. 바쁜 일 없으면 얼마든지 가줄 테니까."
네 손에 피 흘리게 하는 게 없었다면 손이라도 잡아줄텐데. 진화가 부끄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주며, 네가 하는 말이 정말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란 걸 알려주기 위해 단언했다. 4학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3학년이니까, 여유없진 않아. 졸업보단 입학에 가까운 너에 비하면, 난 입학보다 졸업에 가까워졌지만.
"시간이 없었으면 기다리고 있진 않았겠지."
하고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세웠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밥이라도 같이 먹으러 가자. 아, 이미 식사한 건 아니지?"
식사든, 디저트든 원하는 메뉴로 같이 먹자. 당장 떠오르는 게 없으면 식당가를 걸으면서 같이 찾아보면 돼. 그렇게 느긋한 만남이어도 괜찮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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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행이네!"
요근래에는 드물게도 활짝 웃었다. 사소하지만 친구에게 있어서 도움이 되었단건 기쁜 일이다. 아니, 사실 그런 도덕 교과서 같은 소리가 아니더라도. 나 또한 울적했던 기분이 대화할 수록 풀려가는 것을 느낀다. 가디언에게 있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필수적이라고도 하지만, 그건 사실 가디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마찬가지겠지.
"그, 그렇게 부르는건 좀 부끄러운데....그냥 평범하게 만나자고 할게....아니면 비아쪽에서 불러줘도 기뻐. 마찬가지로 바쁜일이 없다면 언제든 가줄게!"
친구 없다고 놀리면 부르거나, 카페 가서 2인 메뉴 못 시킬때 부르는 상상을 잠깐 해보자. 한계를 넘은 부끄러움에 결국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곤 고개를 저었다. 무슨 칭얼거리는 아기도 아니고 말이야. 큼큼, 헛기침을 몇번 하곤 나도 밝게 웃으면서 똑같다는걸 되돌려줬다. 당당하게 말하기 위해서 손으로 가슴도 탕탕 두드리고, 주춤했던 허리와 어깨도 나름대로 쭉 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 차이 때문에 비아를 훨씬 올려봐야만 했지만.
"그것도 그렇네. 응, 밥도 먹고 놀러다닐겸 나온거라서 아직 안먹었어. 기숙사에선 좀 한가했거든."
상당히 어색한 멘트였지만 그래도 잘 된 것 같아 기쁘다. 더 이상 손을 감출 필요도 없겠다, 자유로워진 손이 신나는 기분에 따라 말할 때 마다 가볍게 흔들거렸다. 옆에 비아만 없었다면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그녀가 없었다면 그런 심정이 될 일도 없었겠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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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울 게 뭐 있어. 필요하면 부르는 거지... 그러면, 진화랑 같이 놀러가고 싶을 땐 얼마든지 부를게!"
모르는 척 하기도 힘들 만큼 새빨갛게 물든 얼굴을 보면서 정말이지, 하는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밝게 웃으면서 당당한 체하는 걸 보고, 귀엽단 생각이 들면서도 안심이 되어서, 등을 툭툭 건드리면서 말했다.
"구부정하게 다니면 키 안 큰대. 아직 성장판 안 닫혔을 거니까, 지금이라도 크려면 그대로 몸 쭉 펴고 다니는 게 좋을거야."
뭔가 잘못한 것처럼 움츠려 다니는 것보단 몸 펴고 다니는 게 낫다. 네가 성학교에서 다시 시작하게 됐다면, 그곳은 몸을 잘 펴고 다닐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그렇게 생각했다.
"잘됐네. 그러면 같이 가자."
하고 기쁨을 표출하듯 흔들리는 손에 손을 뻗어 잡으려 하며, 잡혀주었든 그렇지 않았든 나는 식당들이 몰려 있는 쪽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그러고보니 뭐 먹으려고 했어?"
하고 물었다.
**
"비, 비아야.....나 19살인데. 성장판은 이미 거의 닫히지 않았을까."
비아는 종종 묘하게 누나 같은 말투를 한다. 어쩌면 그녀의 안에서 나는 덜렁거리는 16살 정도로 보이는 걸까. 어쩐지 조금 분해서 나도 동갑 남자애란걸 어필하기 위해 볼을 부풀리곤 대답했다. 짐승들도 자신의 존재감을 강하게 위협하기 위해 몸을 부풀리곤 했으니, 분명 효과적일 것이다.
"......"
다만 그 뒤에 어떤 의도로 말했는지를 짐작하면 조금 씁쓸한 기분도 든다. 결국 내가 움츠라들었던 것을 보았으니 걱정되서 하는 이야기 아닐까. 이럴 땐 뭐라 대답하면 좋은 걸까. 의도를 이해했다는 것을 알리되 너무 스스로가 비참해지지는 않는 센스 있는 대답이라던가, 나에겐 허들이 너무 높아. 본심으론 당장에라도 가디언넷에 익명으로 물어보고 싶을 정도야.
"이렇게 보여도 나름 튼튼하니까!"
결국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뉘앙스로 웃으면서 팔의 근육을 자랑하는 제스쳐를 취했다. 물론 나에게 그런 근육 같은건 조금도 없다. 부끄러울 정도로 새하얀 피부와 어쩌면 비아보다 얇을지도 모르는 불쌍하고 여리여리한 팔이 드러났을 뿐. 의념을 실으면 그럭저럭은 괜찮지만, 순수한 알맹이는 아군을 지키는 워리어라기엔 빈약해보이는 현실이었다. 비아를 따라 운동이라도 좀 해야 할까. 그래도 튼튼하단 자신만은 진짜였다. 『그래도 나는 영웅을 꿈꾼다』는 오로지 튼튼해지기만 하는 의념기니까. 상대에 대한 공격 성능도, 모종의 특수효과도 일절 없이, 속도마저 낮추는 패널티를 가지고, 오로지 튼튼해지는 힘이니까. 그것만은 꽤나 확실할 것이다. 나는 달인 샌드백인 것이다.
"와앗."
손을 잡으려고 뻗어 오는 손에 조금 놀란다. 전혀 싫지는 않았기에 기다리다보면 깔끔하게 붙잡혔다. 웃던 얼굴이 다시금 붉어진다. 처음 만났을 때 비아는 분명 이런 접촉을 몹시 부끄러워 했던 것 같은데. 이젠 내가 부끄러워 하는 입장이 되었다. 이건 그녀가 날 남성으론 조금도 보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도 학교 생활 나름대로 변화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그 때에 비해서 친해진걸까. 가장 첫번째 가능성만 아니길 바라면서 억지로 잡힌게 아니라고 주장하듯 나도 손을 꼭 마주 잡았다.
"음......사실 구체적으로 정하진 않았어. 돌아다니면서 맛집처럼 보이는 곳을~...."
'혼자서 밥먹어도 눈치보이지 않을만한 곳을 적당히 찾을 생각이었어' 라고 솔직히 말하는건 너무 부끄럽다. 적당히 그럴듯하게 돌려 말하자.
**
"...아, 그... 런가?"
앗, 말실수했다. 복어처럼 볼을 부풀리는 모습에 햐악~ 거리는 고양이를 떠올리면서 어떻게 달래야 할지 고민하다가...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잠시 멈췄다.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어도 됐는데. 왜 한 말인지를 알았을까?
"그래... 든든하네."
굳이 그렇게 근육을 강조하는 듯한 포즈는 하지 않아도 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서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런, 나도 딱히 정해둔 곳은 없는데. 그러면 같이 맛집찾기 하면 되겠다."
꼭 잡은 손을 앞으로 이끌면서 무작정 전진하려다 우선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그럭저럭 검증된 장소일 테니까, 그런 곳을 찾으면 되겠지? 저 사람들은 아마도 커플...밥보다는 카페 가서 데이트를 할 것 같은데. 저쪽은 친구랑 같이 온 것 같고, 아... 맛대가리 없는 데로 가자고 했다고 한 대 맞았어. 저긴 안되겠네.
"..저기, 파스타 맛집이라고 써붙여놓은 데 있는데. 사람도 적당히 있고, 저기 어때?"
목재와 따뜻한 색감으로 꾸며 놓은 가게를 가리키며 말했다.
**
"어쩐지 영혼이 없는 것 같은데...."
뭐라고 해야할까 진짜 든든하다기 보단 기특해하는 뉘앙스가 느껴져선 드물게도 눈매를 좁히고 추궁하듯 올려본다. 그러다가 이내 어쩐지 뭘 해도 비슷한 패턴으로 이어질 것 같은 슬픈 느낌이 들어 가볍게 어깨를 떨어트렸다. 그다지 폼잡는 것과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단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뭔가 그녀 앞에서도 당당할만한 결과를 낼 수 있다면 좋겠네.
"비아는 요즘에는 주로 뭘 먹어?"
그녀의 손을 잡고 따라 걸으면서 마찬가지로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살폈다. 그러고 보니 아까도 들었던 생각이지만, 이런 거리에서 남녀가 당당히 손잡고 걸어도 괜찮은건가. 내가 너무 소극적이거나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는걸까? 요즘 친구들은 사이좋게 손잡고 걷는 것 정도는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걸까? 만약 그렇다면 이 순간만큼은 감사하고 싶다.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와 다르게, 결국 나는 주변 사람들이 관찰할 우리에 대해서 계속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부분에서도 비아와 나는 정 반대였다.
"어, 어? 응! 괜찮을 것 같아!"
따라서 그녀가 본 목적을 달성해 음식집을 권유했을 때, 나는 화들짝 놀라면서도 황급히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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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야."
그 포즈 자체는... 좀 없어 보이는 게 맞았지만... 그렇다고 정말 못미덥게 여기는 건 아니니까. ...아닌가? 추궁하듯 올려보다가 갑자기 추욱하는 걸 보고 다시 기운차리라고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혼자 이상한 거 생각하고 침울해지면 안 돼.
"백반정식. 좀 집밥같은 느낌이 그리워지기도 해서. 여러가지 먹는 건 주로 친구랑 밥 먹기로 약속했을 때나 그러지."
집밥 느낌이 아니라 집밥같은 느낌인 건... 우리 어머니가 요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셔서 집밥이라던가 엄마의 손맛 같은 걸 실감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작요리하면 귤 된장찌개 같은 게 나오고 인터넷에 나오는 레시피대로 하면 그대로의 맛이 나는데 괜히 어레인지하려 하면 또 망하고... 그래서 우리집 밥은 늘 맛이 똑같더라... 반찬도 똑같고... 안 좋은 추억이 떠오를 것 같다.
손을 당당히 잡고 가고 있는 이유는... 닭이 병아리 데려가는 느낌이다...
응? 왜 놀란 거지? 잘 모르겠지만 진화가 괜찮을 것 같다고 했으니... 파스타집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세련보다는 따뜻한 느낌으로 꾸며놓은 인테리어가 있었다. 빛이 잘 드는 창가자리는 대부분 차 있었지만 하나 비어 있는 2인 테이블이 있어 그쪽으로 걸어갔다.
"뭐 먹을래? 나는... 까르보나라로 할 건데."
메뉴에 있는 까르보나라 파스타가 정말 먹음직스럽게 찍혀 있어서 이건 시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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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그런가. 그러고 보면 비아는 부모님이랑 자주 연락했었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느정도 납득했다. 가족과 사이도 좋았던 기색이었으니, 멀리 떨어져서 오랫동안 지내면 그리워질법도 하다. 집밥, 인가. 내가 그리워하기엔 너무 옛날 일이다. 무엇보다, 그리워 해봤자 내가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는 날은 다시는 오지 않는다.
"그럼, 다음엔 내가 요리해줄까? 화려한건 못 만들지만.....자취는 오래 했으니까. 요리는 할 줄 알아."
그녀의 손을 잡고 쫄래쫄래 뒤따르다가도, 머뭇거리면서 제안해봤다. 이래보여도 혼자 살면서 요리를 해온 횟수는 어지간한 주부보다도 길다. 그럭저럭 괜찮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요 근래는 그렇게 시간들여 만든 요리를 혼자 묵묵히 체 절반도 안되는 시간에 먹다보면, 쌓인 설거지를 닦을 때 울 것 같은 외로움이 덮쳐왔기에 외식을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는건 분명 즐거울 것이다. 그게 친한 친구를 위해서라면 더더욱.
"음.....그럼 나는 토마토 베이컨 리조또. 서로 조금씩 나눠먹을까?"
창가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살펴보던 끝에 그녀에게 대답했다. 까르보나라도 확실히 굉장히 맛있어 보이지만, 그녀가 시킨 이상 똑같은 메뉴를 시키는건 어쩐지 아깝다. 그렇다면 크림치즈의 꾸덕함과 반대로 조금 매콤달콤한 메뉴를 시켜, 서로 어느정도 나눠먹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 제안을 건넸다.
**
"정말?"
요리해줄까라는 말에 눈을 크게 뜨면서 진화를 바라봤다. 화려한 걸 좋아하는 편은 아니니까, 평범한 요리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기숙사 식단이라던가 식당가 외식이라던가 있지만, 직접 만든 요리라는 건 묘한 느낌이 있다. 물론 요리사 분들도 직접 만들겠지만... 여럿을 위한 요리와 서툴지만 소수를 위한 요리의 묘한 차이랄까.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며 대답한다.
"그러면 나중에 진화가 차려준 식탁을 받아보고 싶어. 돈 내야 하려나?"
돈 얘기는 반쯤은 농담이다. 보통 이런 분위기에선 돈 내야 하냔 말을 들으면 대부분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대답하겠지만, 얻어먹는 입장에서 아무것도 안 내긴 뭔가 미안해진단 말야... 쿠키 정도라면 몰라도 요리까지 가면 더욱.
"좋아. 이대로 시킬게?"
그렇게 음식을 시켰으면, 기다리는 동안에 조금 얘기를 나눌 수도 있었을 것이고... 시킨 게 나올 만큼 시간이 지났으면 나눠먹기로 했으니 까르보나라 파스타의 3분의 1 정도를 먼저 앞접시에 덜어서 식탁 중간으로 밀어주려 했을 것이다.
"이 정도면 될까?"
식기 댄 다음에 나눠주는 건 좀 그러니까 미리 확인한다.
**
"응, 물론이지."
생각보다 비아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나는 다시금 활짝 미소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에서 의욕이 펑펑 솟는 느낌이다. 조만간 장을 보는게 좋겠다. 집밥이 그립다고 한 비아였으니, 기합을 담아서 요리하되 어디에나 있을법한 가정 요리가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된장 찌개라던가. 잡채라던가. 조금 더 노력해서 소고기전 같은걸 추가할까.
"됐어. 우리 사이에 뭘. 후후, 굳이 말하자면 자주 만나서 놀자는 얘기가 실현되는 것만으로도 값은 충분해."
웃으면서 간단히 손사레를 쳤다. 솔직히 어색해질 단초를 제공해놓고 '우리 사이에' 라는 표현을 언급하는게 스스로가 조금 뻔뻔하기도 했으나,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다만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결사부정을 해버리면 오히려 부담이 될지도 몰라서, 미소지으면서도 이후에도 관계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너무 약삭빠른걸까?
"응, 응."
서로 합의가 마쳤으니 별 불만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음식이 나오는 사이에는 가볍게 근황 얘기를 해보려고 했다. 아마 적응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을 비아에게, 담임 선생님을 만나 격려 받은뒤 '경호부'의 입부 추천서를 받았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러고 보면, 방패는 역시 메이저한 '무기' 는 아니라고 했어. 검의 벤다, 창의 찌른다, 총의 쏜다와 같은 명확한 공격 형태가 없다고 하셨던가. 대신 그걸 중점으로 다른 요소들을 살릴 순 있데."
그녀와 나는 본래부터, 특이하게도 '방패' 를 내세우는 동질감에서 시작된 관계였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즐겁고, 나도 모르게 수다스럽게 되어버린다.
"아, 응. 충분해. 나도 덜어줄게."
그녀가 먼저 앞접시에 음식을 덜어주는걸 보고 나서야, 나도 황급히 절반 정도를 덜어 중앙에 내밀어줬다.
"이러니까 물물교환 하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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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값이 될만한 것도 아니잖아... 그래도 기대되네."
친구가 있어서 좋은 점이란 그런 거다. 같이 놀러가고, 같이 밥먹고, 같이 대화하고. 무엇이든 같이 할 수 있고, 그렇게 즐거워진다면 그런 게 친구다. 그러니까 자주 만나서 놀자는 건... 더 친구답게 하자는 거다. 그것뿐이었다.
"방패는... 일단 큰 방패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크고 무겁고 단단한 만큼 이점도 있지만 약점도 많으니까. 벤다, 찌른다, 쏜다에 비유한다면 벤다는 방패를 휘두르는 것, 찌른다는 방패로 밀어 치는 것, 쏜다는 방패를 던지는 것에 비유할 수 있으려나?"
경호부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방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그렇게 말했다. 명확한 공격 형태가 없고 다른 요소를 살려야 한다... 잘 이해되지 않는걸...
"물물교환 맞잖아?"
입맛이 없는 건지 반이나 덜어준 토마토 베이컨 리조또를 노려보다가 우선 까르보나라부터 한입 했다. 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맛있는데? 진짜 맛집이잖아? 그리고 리조또도 한입 우물거리며...
"맛있네."
너는? 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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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끝나고 와도 되고. 아니면 으음, 그렇네. 아니면 같이 공부할래? 서로 시험 범위는 다르겠지만. 시간이 되면 내가 차려주면 되고."
공부를 물어보거나 알려주긴 아마 어렵겠지. 다만 그래도 서로 '상대도 노력하고 있다' 라는 분위기가 집중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간간히 잡담을 나누는 것도 삭막하거나 피로해질 정신을 달래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사실 이런건 거의 다 핑계다. 시험이 끝난 뒤에~ 라고 얘기해버리면 꽤나 시간이 지나고서야 만나게 될테고, 그럼 어쩐지 흐지부지 될 것 같아서..
"바로 그거야! 우린 늘 그렇게 생각했잖아? 방패를 이용해서 어떻게 활용할까, 라는 부분.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으론 방패는 결국 '막는 것' 이야. 그렇게 휘두르거나 밀어 치거나 던지는 것으론 임시변통일 뿐이고, 또한 그게 봉쇄 되었을 때의 방법도 찾아야 한데."
비아와 나는 어디까지나 방패를 이용한 공격과 견제 수단을 연구하곤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우리끼리 대련하면 뭔가 어딘가 좀 모양빠지고 어색한감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지.
"그 방법중 하나는 맨손격투기를 권하긴 하시더라. '손'을 이용한 기술을 섞으면 그 부분의 어색함과 공백을 채울 수 있다는 얘기였어. 나와는 어쩐지 방향성이 맞지 않아서 관뒀지만."
비아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상당히 '적극적'인 성격이다. 본인은 부정하지만 내가 보기엔 대련을 무척 즐기는 것 같았으니까. 그렇다면 사람을 지킨다는 마음은 나와 같지만, 상대에 대한 억제력이나 스스로 능동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요소를 익힐 수 있다면 더욱 잘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왓, 맛있어!"
너무 많이 덜어준건가? 다급히 덜다보니 좀 많이 덜어진 것 같은데. 비아의 눈치를 보면서도 나도 한입 먹었다. 그리곤 깜짝 놀라선 허겁지겁 우물우물 먹으며 맛을 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신경쓰지 않고, 친한 누군가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오랫만에 겪는 즐거운 식사에 나는 조금 칠칠치 못한 모습이 되어가면서도, 아이처럼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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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같이 공부하면 서로 제대로 공부하는지 감시하는 것처럼 될텐데 괜찮아? 괜찮으면... 다음에 네 새 방으로 놀러갈게. 아프란시아 기숙사로 옮겼을 텐데 집들이도 못 했잖아."
쫓기듯 떠난 게 아니라 이사한 것처럼, 그저 새 집에서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 것처럼. 웃으며 그렇게 가볍게 말했다.
"방패를 활용하는 건, 날아오는 화살을 칼로 쳐내는 것과 같단 걸까. 임시변통일 뿐 결국 칼은 '베는 것'이니까. 그런 게 봉쇄되었을 상황이라면, 아군이 적한테 잡혀 있다거나 하는 상황일지도 모르겠네. 방패는 기본적으로 크기만큼 상대의 공격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을 만들어내는 게 목적인 무기니까, 그렇게 적극적으로 공격해야 하면서도 한정적인 영역을 노려야 하는 때-방패의 이점을 무효화할 수 있도록 상대가 주도권을 가진 상태에서는 활용하기 힘들 거야..."
방패 대 방패의 대련이 어색한 이유도 그런 것이다. 방패는 보통 상대가 먼저 공격하려 할 때 그걸 막거나 받아넘기기 위한 도구지, 먼저 공격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보통 방패 그 자체를 무기로 쓰기보단 방패로 몸을 보호하면서 검을 썼던 것도 방패만 쓸 때의 부족한 공격력을 보충해주기 위함이겠지...
"나도 격투술을 배우는 걸 생각해본 적은 있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야."
어떤 무기를 쓰던 간에, 결국 쥐어서 쓰는 무기는 '손'의 확장이다. 팔을 뻗고, 손이 나가고, 그 손에 있는 무기가 움직인다. 능동적으로 상대의 공격에 대응하고 회피하는 움직임에 방패의 영역을 섞어넣는 게 방패의 전투다. 그러니 체술을 익혀둘 필요는 분명히 있다. ...라곤 해도 뜬구름 잡는 소리다. 당장 방패도 잘 못 다루는데 그쪽으로 나가봤자 이도 저도 못 잡는걸.
"너무 급하게 먹으면 체하잖아. 천천히 먹어도 되는걸."
방패 얘기를 생각하다가... 굉장히 허겁지겁 먹고 있는 진화를 보고 저러다 꼭 흘릴 것 같다, 란 생각을 하면서 면박을 줬다. 더 줘야 할것같은데. 까르보나라를 포크에 돌돌 말아서 한입 씹으면서 냅킨으로 숟가락을 닦은 다음 리조또를 절반보다 조금 작을 만큼 나눴다. 진화가 먼저 다 먹으면 줘야겠다. 이쪽은... 내가 먹고. 우물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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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감시라니....조금 무섭네. 그렇지만 괜찮아. 설마 비아가 잡아먹진 않을거 아냐. 요리도 대접해주고 싶으니까 놀러와."
잠깐 풍부한 상상력이 발휘되었다. 가시방석(진짜)에 앉아 문제지를 풀고 있는 나.
다 풀고 나서 내리는 비에 비아의 표정이 싸늘해지더니, 이내 회초리로 때리며 호통치는 광경.
'게이트 너머의 슬라임이 너보단 공부를 잘할거야!' '히에에에엑!'
..... 설마. 엄한 부분이 있는 비아지만, 그렇게 혼나기야 하겠어. 조금 무서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초대하고 싶었다.
"응. 내가 이해하기론 그랬어. 물론 방패로 휘두르기도, 밀치는 것도, 분명 기술의 일환으로써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결국 그 목적은 '막는 것' 이니까. 그러고 보니 그렇네. 방패가 봉쇄되는 환경이란건 어떤 것일까? 평범하게 생각하면, 방패를 떨어트렸다던가. 혹은 강력한 공격에 의해 큰 파손이 생겼다던가. 아니면....그렇네. 벽을 지나칠 수 있는 게이트 같은 상황도 있을 수 있겠다. 방패는 비아 말대로 일종의 벽이니까. 안개형이라던가, 액체형이라던가, 혹은 여러가지 얇은 다발이라 방패와 팔 사이를 둘러 파고들 수 있다면 돌파할 수 있지."
이런 대화를 나눌 상대는 드물다. 나는 오랫만에 진지한 기색으로 여러가지 의견을 교환했다.
비아가 말한대로 방패는 기본적으로 해당 크기만큼의 '벽' 을 만들어내는 도구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벽과 정면으로 부딫히는 힘에 관해선 뛰어난 내구를 보여주지만,반대로 그걸 통과하거나 돌아오는 형태의 공격엔 취약하다.
"그래서 손을 이용한 격투인가. 확실히 한 팔로 방패를 앞에 내세우면, 다른 한 손은 비게 되지. 선생님은 어느쪽을 메인으로 세울지에 따라 또 다르다고 하셨어. 우리 같은 사람들이 격투를 보조로 쓴다면, 뭐라고 할까, 그렇네. 손을 단봉처럼 방패를 쥐고 있는 손 뒤에 대기시켜, 파고드는 공격을 쳐내는 또다른 방어기제처럼 쓰는걸지도 몰라. 손의 움직임은 유연하니까, 여러 상황에서도 대비할 수 있고."
거기까지 말하곤나는 흠. 하고 생각에 잠겼다. 당시의 나는 단순히 공격용으로만 이해했는데, 깊게 고찰해보면 결국 그런 기술 동안 방어력에 연결될 수도 있는걸까. 그러나 서로의 의견이 결론에 도달했을 땐, 결국 매나 비슷했다.
"그렇네. 적어도 나는 한참동안은 배울 예정이 없다고 생각해. 나는 역시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거니까. 그 기반을 다지기전에 격투술은 오히려 방향이 헷갈려. 무엇보다, 의념기와의 상성이...."
내가 화려하게 격투술을 펼치는 것도 솔직히 잘 상상이 안간다. 거기에 정작 의념기를 발동한 나는 움직임이 느릿해지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 어설프게 배운 손격투술을 써봤자 허우적 허우적 거릴 뿐일 것이다. 육중한 백색 갑옷을 걸친체 허공에 손을 휘적 휘적 거리는 모습이라니. 코미디엔 괜찮을지 몰라도 진지한 사태에선 자중해야겠지.
"아. 미, 미안. 오랫만에 이런 얘길 하다보니 기뻐서."
비아가 면박을 주고서야 나는 머쓱한 얼굴로 숟가락을 잠시 멈췄다. 맛있다, 라고 만 느낄 뿐 솔직히 무슨 맛인지도 모를 정도로 서둘러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구나. 여유로워 보이는 상대에 비해 뭔가 부끄러운 꼴만 연속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손으로 눈가를 짚었다. 이후엔 조금 천천히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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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불러 놓고 게으름을 부리면 잡아먹을 거야. ...농담이지만. 맛있게 해줘."
휴식은 상관없지만 괜히 설렁설렁한다던가... 하는 건 곤란하다. 그러지 않도록 같이 공부하는 거니까.
"떨어트리는 건 높은 랭크의 의념사를 이용하면 회수할 수 있을 것 같고, 파손이 생긴 경우엔 확실히 전투를 이어나가기 어렵겠네. 장비 정비를 배운 서포터가 있으면 좋을 텐데. 방패가 주는 영역을 파고들 수 있는 적이 있다면... 확실히 방패로는 대처할 수가 없을 것 같아. 랜스나 서포터가 도와주길 기다리는 것 외엔."
이것저것 길게 생각...
"방패를 가지고 있어도 막을 수 없는 공격을 상대로 할 때는 그렇게 하고, 상대가 방패로 막을 수 있는 공격을 한다면 막아내면서 카운터를 날리는 느낌으로 하면 어떠려나. 아니, 맨손은 범위가 너무 짧아서 맨손으로 공격을 하려면 초근거리여야 하구나. 자칫하면 방패의 영역 안으로 적을 끌어들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렵다...
"상성이 안 맞는 거구나."
하긴 신속이 느려지니깐.
"나도 기쁘지만 이렇게 느리게 먹고있잖아?"
나도 느린건 아니긴 하지만.. 진화에 비교하면 느리게. 숟가락을 멈춘 진화를 보고 다시 먹으라는 듯 내가 먼저 식기를 움직였다. 양이 많을 정돈 아니다보니까 먹는 데만 집중하면 금방 다 먹을 것 같은데. 진화의 접시가 빈 만큼 따라잡기 위해 먹는 데 속도를 붙이기 시작한다. 빈 접시 앞에 앉아있게 할 순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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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에엑....! 알겠습니다!"
표범 앞의 병아리가 된 것 마냥 떨면서 삐약 삐약 대답했다. 농담이라고 말하기엔 방금 조금 기세가 담겼었는데!? 다만 그녀가 성실한 성격이라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고, 나도 그다지 농땡이치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다. 공부는 제대로 공부답게 할 것이다. 찔릴 부분은 없다.
"그 정도 랭크의 의념사라면, 사실 방패를 쥐고 있는 부분을 애초에 엮어서 놓치지 않도록 고정하는 기법이라던가는 어려울까. 일반적인 무기와 달리 각도나 자세 조정에 비해 놓치지 않는 메리트가 크니까. 으으음......랜서나 서포터가 도와주길 기다린다, 라. 그렇지만 워리어는 선봉장인거니까 결국 그런 유형을 상대로도 시간을 끌거나 견뎌낼 수 있어야 하는거겠지? 나중에 선생님에게 물어볼까..."
어렵다...학생들 둘이서 열심히 생각해도, 답이 안나오는 문제는 있는 것이다.
"그건 의외로 가능성 있을지도 몰라. 근접 공격을 하는 상대라면 충분히 사거리에 들 수도 있고...봐봐, 이렇게. 정면에서 버티고 있는게 아니라. 상대방의 공격에 맞춰서 공격을 옆에서 빗겨쳐내는 식으로 막았다고 생각한다면, 튕겨져 나간 상대의 중앙에 준비된 주먹을 때려넣을 수 있지 않을까.....다만."
머릿결을 매만지면서 고민하다가, 쓰게 웃었다.
"엄청나게 힘이 좋아야겠네. 한손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는 것도 아니고 튕겨내서 반격을 먹이려면."
어설프게 시도하면 그대로 중심이 실리지 않아서 방패와 몸 째로 뒤로 날라가 구르겠지.
"내 의념기는 그다지 응용력이 없으니까....그런 면에선 비아가 좀 더 생각해봐야할 문제일지도. 주변의 이목을 끈다는 것은, 사방에서의 공격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는거니까."
워리어가 둘이라면 그런 부분을 서로 커버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조합은 솔직히 잘 없다.
"....응. 헤헤. 조금 천천히 먹을게."
비아의 움직임에 맞춰 나도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들었다. 자신이 먹고 있는데 내가 아무것도 없이 앉아있으면 분명 불편하겠지. 그렇다면 너무 티나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속도를 조정하자. 그녀가 맛있다고 감탄한 음식을 급하게 먹어치우게 할 순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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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패를 놓쳐버릴 만큼 큰 충격이 왔는데 의념사로 억지로 엮어서 붙들고 있으면 손에 너무 충격이 올 거야. 차라리 그때는 놓쳐주고 회수하는 게 피해가 적을지도..."
"그래도 확실한 건, 워리어가 선봉장이라도 모두 혼자 할 필요는 없단 거야. 워리어도 서포터의 서포트를 받을 수 있으니까."
안개라면 강한 바람으로 흩어놓는다거나, 액체는 고열로 증발시킨다거나, 얇은 다발이라면 그 다발 모두를 잘라낼 수 있다면...
"하지만 다른 손으로 공격을 하려면 결국 그쪽 팔은 방패 밖으로 내밀어야 하는걸. 힘이 좋은 것 말고도 정말 언제 쳐야 할지를 빠르게 파악하지 못하면 할 수 없겠어..."
결국 힘들다는 결말인가.
"사방에서 공격이 일어나면... 그건 확실히 큰일이네. 의념기를 쓰고 나면 제대로 공격할 수가 없는데. 더군다나 주변이 둘러싸여서 아군이랑 떨어지게 되면 아군이 아군 오사를 걱정해서 공격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내가 파티원 보호의 역할을 수행할 수가 없게 되어버려."
"네 의념기랑 반반 섞으면 지금보단 더 나아질 것 같은데. 아무리 방어력이 크게 올라도 신속이 떨어져서 대응 못 하는 사이 주의가 파티원들한테 쏠려버리면 큰일이잖아?"
뭔가 디스하는 것 같지만... 디스 맞나?
"으음, 그러면... 조금 더 얘기를 해볼까. 최근에 뭘 했는가... 같은 거라던가."
그렇게, 지독하게 오르지 않던 레벨이 최근 2주에 열심히 게이트를 도는 동안 부쩍 올라서 허탈하기도 했단 이야기. 자기한테 반말을 쓰는 후배 겸 친구 이야기. 그 친구에게 휘말려서 곤란했던 이야기. 제노시아 교에 가서 친절한 친구와 한정판인 귀여운 인형을 얻은 이야기. 길에서 파쿠르 하는 발빠른 후배를 본 이야기. 아마 친구...같은 사람?과 진정한 우정?을 쌓은 혼란스러운 이야기? 그리고 또 다른 인연들의 이야기와, 학교에 새 선생님이 오셨을 거란 이야기. 그런 올해에 쌓인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웃으면서, 둘의 접시에 남은 음식 양이 점차 평균에 가까워지도록, 추후엔 0이 되도록 이야기를 했을까.
- 지훈 일상[2](96스레~101스레) - 5월 29일
- " 살만한 거 없으려나... "
그는 천천히 걸어다니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가에는 여러가지 종류의 가게가 일렬로 주욱 늘어서 있었지만, 슬프게도 그의 관심을 끄는 가게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던가. 흐음. 방어구나 무기 상점을 가는 것도 좋겠지만 그건 살 여유가 안 되고...
여러모로 고민하던 찰나, 지훈은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던가. 저번에도 만났던, 비아의 얼굴이었지. 오랜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길거리에서 만난 아는 사람의 얼굴에, 꽤 반가운 나머지 뭘 하고있는지 살펴보지도 못 하고 그저 말부터 불쑥 걸었다.
" 비아, 오랜만. "
비아의 뒷쪽에서 기척도 없이 불쑥 나타나서는, 무표정하지만 미약한 반가움을 내비치며 인사했으려나.
**
" 음... "
뀨우, 하는 듯이 이쪽을 보고 있는 새하얀 하프물범을 보고 나는 침음을 흘렸다. 물론 진짜 하프물범은 아니고... 잘 만든 인형베개다.
전에 제노시아 학생이 만든 아이템화는 안 됐어도 섬세하고 따뜻한 손길로 만들어낸 인형은 그야말로 최고였지만, 이것도 길거리에 내놓고 있는것치곤 귀엽게 잘 만든 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바깥 진열대 위에 가득 쌓여있었겠지만 바닥이 보이고 있는 인형베개들을 보고, 다시 가게 안으로 시선을 돌린다. 침구용품점. 푹 잠 잘 자려면 베개정돈 좋은걸로 사는게 좋을지도...?
그러다가 깜짝.
" ! ...깜짝이야. "
딴생각 중에 이름을 불려서 깜짝 놀랐다.
" 그래, 오랜만이네 지훈아. "
**
" 놀랐어? "
놀래키듯 인사한 것이 조금은 고의였던 건지, 희미하게 웃어보이고는 비아에게 살짝 가까이 다가와 시선을 빤히 마주보려고 했다. 굳이 답하지 않아도 이미 놀란 듯한 기색에, 조금 기뻐하는 듯한 감정이 내비쳐졌으려나.
그러다가 비아의 뒤쪽에 있는 하프물범 베개를 보더니, 빠안히 그것을 응시하다가 다시 비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귀여운 베개에 관심 많구나, 비아. "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하프물범 베개를 무표정하게 빠안히 응시하기 시작한다.
...솔직히 말하면 그 역시 귀여운 것을 엄청나게 좋아했기에, 지금쯤 마음속으로 살까말까를 꽤나 고민하고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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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ce 1 10. = 10
" 놀래켰잖아. "
라고 한마디... 이런 걸로 재밌어하다니 정말 짓궂은 애다. 빤히 마주보는 시선을 똑같이 바라보다가 시선이 뒤쪽으로 움직이자 하프물범이 있는 쪽으로 다시 돌아보고, 제자리로.
" 귀여운 건 누구나 좋아하잖아. 너도 그렇지 않아? "
지적받으니까 괜히 부끄러움이 생길 것 같아서, 부끄러워지기 전에 화살을 돌렸다. 빠안히 쳐다보고 있는 걸로 봐선 관심이 없어보이진 않는데.
" 말해두지만 난 그거 안 살 거야. "
" 귀엽긴 하지만 베개는 제대로 된 걸로 고르고 싶으니까... "
라고 말하면서 침구용품점 문을 열었다. 유리창으로 보이는 안쪽의 세계에 발을 딛는 순간 잠드는 사람의 방처럼 고요한 분위기 속에 물들듯 합류하고, 향초 타는 은은한 냄새가 실내에서 실외로 흘러나와 공기 중에 섞여나갔다.
왜 안 사냐고? 베개가 두 개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기숙사에서 이미 내가 쓰는 침대에 있는 것도 있고... 베개를 안고 자는 타입이라면 둘 다 사도 되지만 이정도는 불필요한 지출이다. 그러니 미련 버려야지.
" 아무리 그래도 밖에 안보다 좋은 물건을 놔두진 않겠지... "
밖에서 '손님'을 끌어모은다면, 안은 '단골'을 만들어내는 공간이어야 한다.
//아니 10이라니... 그냥 미련 딱 끊어내고 침구용품점으로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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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알았어? "
살짝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눈을 반쯤 감음과 동시에 눈꼬리를 살짝 휘어접어 눈웃음을 희미하게 지었을까. 짓궂은 성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이었겠지.
" 그렇지. 귀여운 건 좋은 거야. 그게 뭐든지 간에. "
요컨데 귀엽다면 사람이건 동물이건 식물이건 무생물이건 그것은 진리이자 정의였다... 라고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났던가. 정말로 그게 진리이자 정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귀여운 것을 볼 때면 그것이 어느정도 이해가 가긴 했겠지.
" ....흐응. "
안 살거라는 말에 의외라는 듯 비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녀의 뒤를 천천히 따라들어갔다. 은은한 향초의 향이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 같았다. 편안한 기분이네.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고는, 비아가 안 보는 새에 아까 자신이 보았던 하프물범 베개를 두개 구입했을까.
안쪽에서 좋은 물건을 사는 비아의 뒷머리에, 베개의 코를 살짝 부딪혀서 꾸욱 누르고 있으려고 시도했을까. 비아가 뒤를 돌아보면 하프물범 베개 하나는 들고있고, 하나로는 비아를 누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겠지.
" 안 산다니까, 선물. "
고개를 살짝 끄덕거리고는 무표정하니 비아와 시선을 마주치려고 했다.
**
" 어떻게 알았긴... "
그렇게 기척도 없이 다가오는 게 고의가 아니면 뭘까. 눈웃음이 묻어난 얼굴을 보며 살짝 눈가를 찌푸려주다 표정을 풀었다. 화나진 않았다.
" 귀여운 몬스터... 같은 건 좋다고 하긴 좀 그럴지도. "
게이트가 워낙 많다보니 그런 게 있다고도 하지만. 굿즈 제작이라던가 팬클럽이라던가...? 그건 좀 아니지.
" ...! 이거... 엄청 좋아보이네... "
침구용품점 안에 들어와서 눈에 띈 건 솜으로 둥글게 가운데가 부풀어오른 네모난 하얀 베개였다. 심플한 디자인이지만 손으로 눌러보자 적당히 부드러우면서 탄력있는 감촉. 조용한 밤 같은 분위기에 무심코 샌 말은 조금 컸지만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 이거 베면 밤에 악몽 안 꾸고 푹 자겠다. "
하고 베개를 집어들었을 때, 뒤쪽에서 누가 머리를 꾹 눌렀다. 누구지? 살짝 돌아보자 아까까지 보고 있던 하프물범과 딱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건 하프물범을 두 개나 들고 있는 지훈이였다. 장난이려나.
" 베개로 안 쓸 건데 괜찮은 거야? "
선물이 헛되게 되는 건 좀 싫은데 말이야... 하면서도 아주 싫진 않아서 고른 베개를 품에 안고 하프물범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굳이 살 필요 없지만 선물이라면 거절할 필요도 없으니까... 그런 거야...
**
" 화나진 않았지? "
눈가를 찌푸려주다 표정을 푸는 모습에, 지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다행이지만 그런 기색은 없었던가. 다만 숨기고 있는 걸지도 모르니, 확인차 물어보기로 했지.
" 베개로 안 써도 딱히 상관은 없어. 내 멋대로 산걸. "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아가 품에 안고 있는 베개 위에 하프물범을 살포시 놓아주려고 한다. 이미 결제까지 끝난 물건이라, 어차피 지금 와서 주기 싫다고 하기도 애매하다. 줄 생각이 미묘했다면 애초에 사지도 않았겠지만.
" 대신 잘 때 껴안는 용도로 사용해준다거나. "
잠시 비아를 빤히 바라보다가 "농담이야." 라며 인위적으로 짓궂은 표정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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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났다면 말했을 거야. 말 안 해도, 나는 티가 잘 나는 편이라고 하니까... "
나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더라...
" 그러면 의자 쿠션으로라도 쓸까. "
한순간에 베개에서 쿠션으로 전락해버릴 위기의 하프물범. 인형베개일 뿐인 하프물범이 왠지 반짝반짝 쳐다보는 듯했지만 기분탓이겠지. 베개 위에 올라오자마자 눈에 빛이 사라진 것도 기분탓이다.
" 어렸을 땐 인형을 안고 잔 적도 있었던 것 같긴 한데. "
지금은 좀... 아니, 더 늦었을 땐 정말 안 되려나? 하고 생각하다가 농담이라는 말에 좀 어리둥절했다. 뭔가 농담이었던 건가?
" 너는 잘 때 인형 안고 자? "
**
" 그런가? 비아는 뭔가 표정 잘 숨길 것 같았는데. "
고개를 갸웃. 그러다가도 의자 쿠션으로 쓴다는 말에 잠시 비아를 빤히 바라보다가
" 선물을 의자 쿠션으로 쓰는 건 나라도 조금 상처받을지도... "
라며 작게 속삭였으려나. 물론 그렇게 쓰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어렸을 때 인형을 안고 잤다는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어린 비아가 인형을 안고 자는 것을 떠올렸는지 이유모를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 인형 안고 자는 거 싫어할 줄 알아서. 안고 자고싶다면 그쪽이 나는 더 감사하지. "
고개를 끄덕이며 베개 위의 하프물범을 빤히 바라본다. 새로운 주인(?) 품에서 열심히 잘 자라렴..
" 으음. 인형을 안고 잔 적은 없으려나... "
그 때는 인형을 신경쓸 때가 아니니 당연하겠지만서도, 뭔가를 떠올렸는지 씁쓸한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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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렇게 생각한 거야? "
거짓말해도 티나고 기쁠 땐 더 잘 티난다... 라는 것도 주변인의 평가였는데. 학원섬에 와선 뭔가 달라졌나? ...많이 달라졌을 법도 하지. 이것저것 겪었으니까.
" 깔고 앉겠다는 건 아니야. 등받이 쿠션이니까... "
그게 그건가? 상처받는다는 말에 그렇게 덧붙이다가 조금 무안해졌다. 그리고 미소짓는 것을 약간 빤히 쳐다보다가 다시 하프물범으로 시선.
" 요즘은 쭉 뻗은 자세로 자려고 노력하고 있어. 이제 좀 잘못 자고 일어나도 찌뿌둥하진 않지만, 곧은 자세로 자면 잠이 조금 더 잘 오는 느낌이니까. 하지만 인형을 안게 되면 그때 습관대로 웅크려 버리지 않으려나... "
하프물범은 너를 응시하고 있다. '쭈인님... 버리지 마세요...' 하는 듯이... 빤히...
귀여운 베개조차 도구로 써버리는 지훈 더 한지훈. 그의 행패는 어디까지인가?
" ...그러고보니, 요즘은 잘 자고 있어? "
" 잘 못 자면 몸만 피곤한 게 아니라, 정신도 피곤한걸. "
씁쓸한 표정을 짓는 지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수면 보조 용품이라고 적힌 곳에서 이것저것 둘러본다. 그리고 땡글땡글한 파란 눈을 가진 펭귄 모양의 물건을 하나 집어들었다. 더듬다 스위치 같은 게 만져져 딸깍 올려보니 무겁지 않을 정도의 어둠이 깔린 가게에 펭귄이 발산하는 흐릿하고 따뜻한 빛이 조용히 나타났다. 무드등 같은 거구나.
" 이런 것도,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름 괜찮을지도. "
팔에 안은 베개 너머의 그 은은하고 작은 빛을 보고 있었다.
**
" 으음. 그러게. 그냥 느낌? "
명확하게 어떤 점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냐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려웠지만 말이다. 지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비아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단순히 외모에서 그런 인상을 받은 걸지도." 라고 중얼거렸으려나.
" 등받이 쿠션 정도면, 괜찮으려나. "
고개를 살짝 끄덕이다가 무안한 표정을 짓자 "반쯤 농담이니까 신경쓰지마." 라며 너스레를 떨었겠지.
" 웅크리고 자면 불편해? 그럼, 그냥 옆에 두고 자는 건 어떨까나. "
잠시 고민하다가 하프물범을 살짝 바라보았다. 뭔가 말하는 것 같은 시선이...
...뭐, 기분탓이겠지. 베개가 말이라니. 베개는 베개일 뿐인 걸.
" 요새... 그러고보니 잘 못 자고 있는 느낌이네. "
잘 보니 눈 밑에 옅게 다크서클이 낀 느낌이다. 잠을 많이 못 자서 그런가... 잠을 잘 때마다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 되살아나니,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덕분에 요샌 뭘 해도 기분이 나아지질 않는 느낌이다. 한숨을 작게 쉬고는 비아가 무드등을 보고있자 어깨 너머로 그것을 보고는
" ...좋네... "
은은하고 작은 빛에, 느릿하게 눈을 반쯤 감으며 중얼거렸다.
**
.dice 1 10. = 1
" 외모? 음... 평소엔 무표정이라서 그런 느낌이 드는 걸까. "
외모라고 해도 잘 모르겠는데... 고민하며 의식적으로 미소를 지어보려다 포기했다. 등받이 쿠션 정도면 괜찮다는 말에 적당히 그런 용도로 써볼까 하고 통통한 하프물범을 응시한다. ...이녀석 눈동자가 더 초롱초롱해진 거 같은데.
" 그냥 옆에 두고 자는 게 의미가 있어? "
옆에 두고 있다가 팔에 닿으면 안게 될 것 같은데. 아니면 툭 쳐서 침대에서 떨어지거나...
" 여기서 자면 안 돼. "
느릿하게 눈을 감는 지훈을 보고 강하진 않지만 확실히 들릴 만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을 했다. 졸릴 때 잠깐 눈을 감았다 떠보니 아침이라는 것도 없는 건 아니니까... 라는 거?
" 괜찮다면, 줄게. 선물엔 답례가 필요하니까. "
그렇게 말하며 계산대로 가서 물건들을 사고 포장하려 했다. 펭-귄까지.
**
" 그럴지도. 웃는 모습, 저번에 딱 한번 보여줬으니까. "
의식적으로 미소를 지어보려고 하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렇게." 라며 일부러 입꼬리를 손으로 올리며 인위적인 미소를 보여주었을까. 갑자기 눈빛이 더 초롱초롱해진 듯한 하프물범 베개를 바라보았다. 이녀석 사실 살아있는거 아냐? 싶어 베개를 꾹꾹 찔러보기도 하고.
" 누가 옆에 있어주는 것 같아서 기분 좋잖아. "
잘 때 누군가 옆에 있는 것 만큼 안심되는 것이 없다. 잠에 들며 안 좋은 기억이 하나씩 되살아날 때 가장 힘든 것은, 꿈 그 자체가 아니라, 일어나서 아무도 없는 방에서 위로조차 받지 못 하고 혼자서 감정을 삭혀야 한다는 것이다. 허나 지금 누군가 옆에 있어주기는 힘들다. 그러니 적어도 그런 기분이라도 내고 싶었던가.
...너무 생각만 했네. 눈을 감으며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잠깐 보인 환각으로부터 눈을 돌리기 위함이었다.
" 하지만 너무... 잠이 올만한 환경이지 않아? "
마음이 편해지는 향기며, 느릿한 노래... 은은한 조명... 잠이 오기 최적의 환경인데. 자지 말라는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른하게 하품했다. 수면부족인가...
" ...펭-귄까지 사는 걸 보면, 비아도 역시 귀여운 거 좋아하는구나. "
희미하게 웃어보이며 비아를 바라보았겠지.
**
.dice 1 10. = 8
" 그래도 나, 안 웃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
일부로 입꼬리를 올리며 짓는 지훈의 억지미소에 무심코 푸흣, 얕게 숨을 내뱉었다. 뭐야, 그거. 따라한 거? 나 그렇게 이상하게 웃으려고 했던 거야?
" 잘 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믿어야 할 사람이니까. "
잠들기 전에 자신이 곁에 데려다놓은 사람, 밤을 지켜주려는 사람. 어렸을 땐 그 역할을 부모가 맡고, 조금 지나선 인형이나 애완동물이 맡기도 하고, 결혼하고 나면 동반자가 맡는다. 나는 그만큼의 사람은 못 되지만, 낮이라면 얼마든지 옆에 있을 수 있어. 눈을 감는 지훈의 어깨를 격려하며 톡톡 치려고 한다.
"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잘 때 같은 기분으로 정확히 필요한 물건을 고르란 거지 잠들란 뜻은 아니지 않았을까. "
나른하게 하품하는 지훈을 보며 좀 난처해지다가, 그래도 길 한복판에서 푹 잠들진 않겠지란 생각에 멈췄다. 그래도 어디 벤치에라도 자게 하는 게 좋을까. 여기 아무리 졸리게 생긴 곳이라고 수면실 같은 건 없겠지? 침대 체험이라던가. ...은근히 있을지도 모르는게 무섭다.
" 귀여운 걸 좋아하는 건 너잖아. "
" 네 거야. "
하얀 리본으로 목 부분이 앙증맞게 묶였을 뿐인, 포장했다고도 보기 힘든 뗑컨을 지훈에게 내미려고 했다. 답례라는 거다. 하프물범의 답례치곤 싸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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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ce 1 100. = 33
" 방금 진짜로 이렇게 웃었어. 완전 어색하게. "
얕게 숨을 내뱉은 비아를 진지한 표정으로 -그저 무표정이었을 뿐이긴 하지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정도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이전에 봤던 웃는 모습을 보고싶었던 까닭일까. "정말로 표정이 잘 드러나네.. 라며 그녀를 빤히 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 ...혹시, 잠시만 기대도- "
"아냐. 신경쓰지 마." 라며, 자신의 어깨를 톡톡 쳐준 비아를 보며 뭔가 말을 꺼내려다가 다급하게 말을 집어넣었다. 비아가 접촉같은 것을 싫어했기 때문도 있겠지. 다만 그는 평소대로의 '장난'이 아닌, 자신의 진짜로 나약한 모습을 꺼내기가 두려웠다. 항상 가면 속에서 살았기에 가면을 벗는 것에는 신중하게 되었던가.
...애당초 자신의 짐을 받아줄 거란 확신도, 그럴 의무도 없었기에, 그는 목이 간질거리는 느낌과 함께 말을 억눌렀다.
" 애초에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게 나쁘다고 생각해... "
느릿하게 숨을 뱉어내며 살짝 흐느적거리며 움직였다. "잘 때 기분으로 사라니 그럼 이성적인 판단을 흐려지게 만들잖아..." 같은 소리를 중얼거리기도 하고? 금방이라도 잘 것 같은 기색을 내비쳤을까.
" 아, 내 거인가... 고마워. 귀엽네. "
앙증맞은 크기와 모양의 펭귄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는 펭귄을 콕콕 건드리다가, 자신의 후드 속에 펭귄을 잘 앉혀놓았다. 귀여우니 이대로 들고가야지. 라는 생각이었으려나,
**
.dice 1 10. = 4
" 역시 나는 표정을 숨기고 그런 건 안 맞아... "
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온 지훈을 보며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표정을 못 숨긴다는 걸 이렇게 인증하고 싶진 않았는데. 부끄러워... " 그러니깐 말했잖아. " 라고 빨개지진 않아도 뜨거워진 볼을 손바닥으로 비벼 식혔다.
" ... "
신경쓰지 말라는 말에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살짝 다른 방향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떨구며 투명한 숨을 소리없이 뱉어냈다.
" 기대지 않아도, 가끔은 아무것도 듣지 않고 위로만 해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 "
떠맡기기 힘든 짐이라면 맡기지 않으면 된다. 무거운 어깨를 안마해 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짐이 짓누른 부분엔 손이 닿지 않아도, 어깨 위에 올려놓은 짐이 무너질라 힘내서 해주진 못해도, 그런 한계뿐인 위로라도. 나는 약속할 수 있었다. 책임감이 필요하지 않은 위로의 얕디얕은 영역이다.
" 조금 비이성적으로 비싼 물건을 사게 만드려는 걸지도 모르겠네. "
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다가 졸려서 흐느적대는 지훈을 보고 부축해줘야 하나? 생각했다. 아니, 물건 샀으면 그냥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지. " 지훈아, 지훈아. 일어나. 학교 가야지. " 라고 농담을 던지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 물건 다 샀으면 가자. "
그렇게 말하면서 발을 서두르다가 펭귄을 콕콕 건드리는 모습에 " 떨어트리면 다시 안 사줄 거야. " 라는 말을 하고, 하프물범과 베개가 든 큰 쇼핑백을 지훈에게 먼 쪽의 손에 쥐고, 옆에서 걸으러 한다.
**
" 그렇네에. 하지만 그쪽이 더 좋아. "
표정을 숨기지 못 하는 편이, 표정을 숨기는 비아보다 더 좋았을까. 자신이 하지 못 하는 것을 대리만족한다는 의미도 있을테고... 하여튼. "부끄러워하는 반응은 처음이려나." 라며 빨개진 볼을 살짝 건드리려고 시도했다.
" ...그걸로 충분해. "
책임감이 필요하지 않은 얕은 위로라도, 때로는 그것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었던가. 깊은 관계를 쌓지 않았기에, 그 이상으로 바라진 못 했던 걸지도 모르겠지만..
" 그렇지? 여기... 나쁜 상술이야.. "
살짝 흐느적거리며 걷다가도 비아가 재촉하는 말에, "5분만 더..." 하고 장난스레 답하고는 비아를 향해 나른한 시선을 향했으려나.
" 절대 안 떨어트리니 걱정마. 다음은 어디로 갈까? "
희미하게 웃어보이고는 비아를 따라 가게를 나선 뒤, 살짝 갸웃거리기도 했던가.
**
" ...숨길 필요가 없다면 숨기지 않는 것도 좋겠지만. "
감정이 다 드러나는 것도 좀. 볼에 대고 있던 손으로 건드리려는 지훈의 손을 살짝 밀어냈다.
" 그 정도로 괜찮으면 필요할 때 말해. "
누구라도, 털어놓고 싶지 않은 속은 있을 것이다.
친하다고 해서, 특별한 사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털어놓을 필요도 없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은, 서로 불편해지기만 하는 말은. 조금 숨겨두어도 괜찮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내 방에서 바퀴벌레 나왔지만 잡았으니까 이제 괜찮다던가 하는 거. 아니, 말하지 말라고. 말 안했으면 바퀴벌레는 죽었으니까 있던 것도 몰랐을 거 아냐. 왜 굳이 말해줘서 방에 바퀴벌레가 있었고 내 가방이며 옷이며 책 위를 기어다녔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게 만드는 거야.
" 그래그래, 상술에 걸리기 전에 가자. "
라고 하다가, 5분만 더라며 장난스럽게 말하는 지훈에게 " 5분 후에도 5분만 더라고 말할 거 아니야? " 라고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 졸리면 기숙사까지 데려다줄게. 방 가서 자. 아니면 잠 깨게 시원한 거라도 먹을까? "
아이스크림... 빙수... 얼음 들어간 음료수...
커피는 왜 후보에 안 넣냐고? 잠 잘 못 자는 애한테 카페인을 먹이긴 좀...
**
.dice 1 3. = 1
1. 빙수 먹으러 가자
2. 파르페?
3. 카페인....
" 그런가... 그럼 기쁜 감정만은, 계속 표현해줄 수 있을까? "
고개를 끄덕였다. 기쁜 감정이라면 숨기지 않아도 부끄럽진 않다고 생각했으려나. 손을 살짝 밀어내자 비아를 빤히 바라보다가 "비아는 치사해..." 라고 느릿하게 속삭이며 반쯤 눈을 감았다.
" 필요할 때 비아를 찾아와서 귀찮게 굴지도 모르는데. "
그래도 괜찮겠냐는 듯이 빤히 바라보았다. 필요할 때마다. 라고 말을 들으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버렸으려나. 다만 그 이상을 요구하지는 않을 거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정도가 적당하다. 비아는 자신에게 책임감을 가지지 않아도 되고, 자신은 최소한의 위로를 얻고. 정말 그거면 된 걸까? 글쎄.
" 안 통하네에.. 5분만 더 있으면 정말 상술에 걸릴지도 모르니, 갈까. "
이마를 짚으며 말하는 비아를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다가, 느릿하게 가게를 빠져나왔다.
" 빙수 먹으러 갈래? "
팥빙수라던가, 과일빙수라던가... 좋은 생각이라고 여겼는지 비아의 허락만 있다면, 바로 빙수가게로 비아를 이끌려고 했을까.
**
" 그건 숨기고 싶지도 않고 숨겨지지도 않는걸. "
하고 살랑 미소를 짓다가 치사하단 말에 풀었다.
" 키는 나보다 크면서 어린애같이. "
손 닿는 곳에 있는 물건은 다 쥐어보려고 팔을 뻗는 어린애같다. 입에 넣으려까진 하지 않는게 다행일까? 그냥 후배처럼 보이긴 하지만 이미 결혼도 할 수 있는 나이고 가디언 후보생인데. 이대로 놔둬도 괜찮은걸까. 하고 손가락으로 지훈의 손등을 툭 툭 두 번 치려고 한다.
" 언제나 받아주진 못하지. 내가 남을 위로할 만큼 여유롭지 않을 땐 거절할 거야. "
" 하지만 그 외엔 언제나 환영이야. "
책임감 없이 언제나를 언급할 순 없으니 그런 조건을 건다.
" 내가 할 수 있는 건 토닥토닥하고 격려해 주는 거, 안아주는 거, 아무 말 안 하고 같이 있어주는 거, 같이 맛있는 걸 먹으러 가거나 놀러간다거나... 아, 책 읽어주는 것도 할 수 있고, 대련도 할 수 있어. 노래는 잘 못 부르지만... "
" 그런 걸로 안 될 때는 나보다 믿음직한 사람을 찾는 거야, 알겠지? "
내가 슬플 때 받아왔던 것들을 떠올리며 말한다. 가짓수는 적지만, 어쩌면 그만큼 사람한테 필요한 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게 아닐까.
" 으음... 좋아. "
그리고 지훈이한테 이끌려서 정신차렸을 땐 빙수가게 앞에 있었다. 왠지 걷는 동안이 타임스킵된 기분이지만 기분탓이겠지? 음, 가끔 이럴 때가 있다니까.
**
" 그걸로 좋아. 비아는 그렇게 있어줘. "
희미하게 미소를 짓다가도, 어린애같이. 라는 말에 살짝 표정을 굳혔을까.
" ...아, 그런가... 그렇네. 조금 자제하는게 좋으려나. "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느릿하게 손등을 치는 것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일부러 손가락에 손등을 갖다대서 잠시동안 맞닿도록 시도하다가, 이내 이제 자제하겠다는 듯이 다시 손을 내렸나.
" 성실하구나, 비아는. 성실한 사람이 싫은 건 아니지만. "
어찌되었건 간에 무책임한 사람 보다는 비아만큼 성실한 사람이 좋았으려나. 무책임한 사람은 책임을 다른 이에게 떠넘겨버렸으니. 어쩌면 스스로와 같이.
" 같이 있어줘. 위로라던가 격려라던가 해주면 좋긴 하겠지만, 안 해줘도 괜찮으니꺄... 같이 있는 것 만으로도 정말 고마운 걸. "
누군가 옆에 있어줬으면 했기에. 말없이 기댈 사람이 필요했기에 그랬을까. "그리고 나도 비아가 필요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줄테니까 꼭 말해줘야 해." 라며 그 답례로 자신도 똑같이 해주겠다며 속삭였을까.
" 비아는 뭘 먹을 거야? "
잘 아는 빙수가게인지 꽤나 익숙한 듯 안쪽으로 들어갔을까. 타임스킵이 된 건... 어... 메타적인 이유로 생각을 그만뒀다. 그와는 별개로 구석 자리를 잡고 비아와 마주앉은 지훈은, 초코 빙수를 시키기로 결정하고는 메뉴판을 비아에게 밀었겠지.
**
.dice 1 10. = 1
그렇게 있어줘란 말에 고개를 느리게 끄덕이다가-
" 그럴지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
나도, 접촉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걸로 너까지 싫어하게 된 건 아니야. -라고 하는 것처럼 살짝 미소를 지었다. 표정이 굳은 지훈이 걱정되었으니까.
" 그런 말 자주 듣는 편이야... "
성실하다 못해 너무 고지식하단 말도 자주 듣는 게 문제긴 하지만.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 괜찮단 말에 끄덕 하곤 나지막히 말했다.
" 그러면 나도 힘들 땐 부탁할게. "
라곤 해도 후배인 지훈이한테까지 의지하려 할 상황은 잘 안 올 거란 생각이 들지만... 이럴 땐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 나는... 팥빙수. "
붕어빵 먹을 때도 팥을 먹고, 빙수도 팥이다. 구석 자리에서 받은 메뉴판을 둘러보다가 단숨에 메뉴를 정해버린 것도 익숙함 때문이었다. 그래도 초코빙수엔 흥미가 가는 편이니 초코빙수가 나왔을 때쯤은 맛이라도 볼 수 있을까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
" ...나도 비아 때문에 표정 굳힌게 아니야. "
희미하게 웃어보이며 비아를 바라보았다. 물론 어린애란 말 때문인 건 맞다. 다만... 피곤한 탓이기는 해도, 그가 주변인들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것을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안 들었을까.
" 그래도, 그런 바보같을 정도로 성실한게 비아의 장점이니까. "
누군가에게는 고지식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훈에게 그것은 하나의 장점이었다. 그는 잠시 비아를 바라보다가 "난 너무 헐렁하다고 스스로도 생각하다보니, 내 주변에 성실한 사람이 있어서 든든하네." 라고 작게 속삭이기도 했으려나.
" 좋아. 윈윈이려나? "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아의 생각을 살짝이나마 읽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잘 의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래도 그는 딱히 서운하게 여기지 않았다. 다만 저런 생각 때문에 언젠가 극한까지 몰려도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을까 고민되었을 뿐. 그래서는, 곤란했던가.
팥빙수라고 말하자 지훈은 익숙한 듯 팥빙수와 초코빙수를 시켰을까. 팥빙수와 초코빙수가 나오자 지훈은 비아의 눈빛을 보고는 살며시 미소지었지.
" 자, 여기. "
초코빙수를 잘 섞은 후, 한 스푼 떠서 비아에게 내밀었으려나?
**
" 음. 나도 내 성격은 좋아해. 적어도 게으른 것보다는 나으니까... "
자신이 게을렀으면...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청월이 아니라 성학교에 들어가 있었을지도.
"그러고보면 지훈이는 어찌보면 성학교답다고, 나는 청월답다고 말할 만한 성격이네. 각자 맞는 자리로 간 거 아닐까. "
헐렁한 거... 장난기라던가, 무뚝뚝해 보이지만 대화해보면 좀 가벼운 느낌인 것도 헐렁한 거에 들어가려나?
" 공생관계 같은 거지. "
사실 평범한 친구관계에서 좀 더 신경쓰는 친구관계로 갔을 뿐 딱히 특별한 건 아니다. 나도 평범하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고 싶을 때가 있고,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꺼이 도와주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 친한 후배인 너를 위해선 해 줄 수 있는 평범한 일일 뿐이었다.
" 아, 혹시 보고 있던 거 들켰어? "
그리고 남의 숟가락에 침을 묻혀도 되나 싶어서 내밀어진 스푼을 약간 난처하게 쳐다보다가... 입속에 스푼을 털어넣어 먹여주는 것에 말없이 우물거린다. 그리고 한 스푼을 받았으니 자기 몫의 팥빙수를 섞다가 " 팥빙수도 조금 먹어볼래? " 라면서 제안했다.
**
" 그러게. 둘 다 자신의 학교다운 성정이네. 난 어느정도 풀어져 있고, 비아는 엄청나게 성실하고... "
잠시 고민해보다가 "누군가 짠 것 같네. 재미있게도." 라며 희미하게 웃으며 비아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게 내 지금 성격인지도 헷갈리지만... 뭐, 일단 그렇다고 하자.
" 공생이라고 하니 너무 딱딱한 것 같은데. "
조금 더 나은 표현이 없을까.. 라고 고민하다가, "협업 관계?" 라며 중얼거렸으려나. 잘 모르겠네. "아니면 친구 관계라던가." 라며 비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것과는 별개로 물론, 그 역시, 비아를 독차지하여 도와달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그 역시 필요하다면 다른 이에게도 손을 뻗을 거고. 다만 그 행위에 비아의 경우 좀 더 거리낌없이 도와줄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 빙수가 녹는 줄 알았어. "
가볍게 놀리듯 말하고는 비아의 입 안에 빙수를 털어넣어 주었을 것이다. 그녀가 그런 것을 꽤나 곤란해하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자제하겠다고 한 만큼 좀처럼 커플적인 느낌이 나는 건 자제하려고 했으려나..? 팥빙수도 조금 먹어볼래, 라는 말에, 지훈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한숟갈 빙수를 퍼갈려고 했다,
**
" 누군가 짰다면 어느 학교로 갈지 결정한 우리들 자신이 짠 거겠지. "
아니다.
" 유대紐帶 관계라는 말은 어때? "
협업이나 친구 관계라는 말을 듣고 애매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그렇게 대답했다. 맺고 매는 것, 혹은 끈 자체를 의미하는 글자와 두르다, 혹은 띠 자체를 의미하는 글자. 무언가를 묶는 두 글자가 만나 연결과 결합의 의미를 가진다. 서로가 잡아빼면 바로 끊어질 만큼이지만 우리는 얇고 가느다란 마음을 엮어 서로의 위안을 약속했다. 그런 의미로 떠올린 건 아니고, 그냥 떠올랐을 뿐이지만...
" ...아직 안 녹았어. "
초코빙수를 우물우물거리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갑자기 스푼을 내밀어서 놀랐잖아... 그리고 팥빙수를 떠가는 스푼이 지나고 난 다음에 나도 팥빙수를 먹기 시작했다. 으깨지지 않은 팥이 입안에서 뭉개지며 달콤한 맛이 났다. 그 달콤하게 녹아가는 맛을 입안에서 굴려가다가 말했다.
" 잠은 깼어? 기분은 어때? "
달콤한 걸 먹으면 슬플 때도 기분이 좋아진다. 아닌 사람도 있지만. 너도 그럴까?
**
" 뭐, 가끔 생각하는 거지만, 우리들을 조종하고 있는 누군가가 짠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 "
느릿하게 농담을 말하지만... 그게 농담이 아닌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을 날은, 앞으로도 없겠지.
" ...유대... "
지훈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유대. 맺고 매는 것.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지훈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선듯 대답을 내놓지 못 했던가. 친구라던가, 협업이라던가, 결국 자신에게는 수단의 일종이나 다름없었다. 진심으로 대한다고 해도 아직은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유대는? 자신은 이미 그런 수단이나 다름없는 이들에게 이미 매인 상태였다. 자신이 수단으로 대하는 이들마저도 자신의 마음 속에 파고들어와 스스로를 얽매었다. 지금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 자신은 비아에게 매이게 될 것이다. 아마도 지금껏 내가 얽매였던 이들 누구보다도 더 본질적으로.
잠시 말을 멈추던 그는 비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스스로도 그 말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 하겠지. 내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말을 한 것이겠지. 그러니까, 지금은 안 된다.
" ...역시 나는 친구나, 협업이 더 좋을 것 같은데. "
그는 잠시 가라앉은 말투로 말하며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한 마디 말 이후에도 잠시간 침묵이 이어졌던가.
" 유대는... 안 돼. 영원히는 아냐.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안 돼. 내게 그건 너무 위험한 관계니까... "
위험하다. 본질적으로 자신을 붙잡고, 얽맬 수 있는 관계였다. 그렇기에 지금은 거절했다. 다만, 언젠가는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는... 그런 느낌이었을까.
" 잠은 깼어. 고마워. "
"기분은 나아진 것 같은... 아닌 것도 같은..." 하며 말꼬리를 흐려버렸다. 유대같은 것을 깊은 곳에선 원하지만, 그것을 거절한 까닭이었을까.
**
" 이상한 소리네. "
역시 피곤한가보네. 아무 생각 없이 그 말을 넘겼다. 알 일 없는 진실을 넘겼다.
그리고 달라진 너의 표정을 보고 그 말이 너에게 거슬리는 점이 있는 말이었는가 생각하면서, 대답이 돌아올 때까지 침묵을 기다렸다. 네가 말을 하며 나를 쳐다볼 때, 나도 너의 눈을 봤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니 무언가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이미 여러 번 봐서 알고 있는, 네 눈이 파랗다는 정보 외엔 아무것도 얻지 못했지만.
...눈만 보고 서로의 뜻을 알아차리는 소설의 묘사 같은 것은 역시 거짓이다. 눈으로는 생각을 읽을 수 없다.
" 그래... 그러면 우린 친구인 걸로 하자. "
왜 친구는 되고 유대라는 단어는 안 되는 걸까.
그렇게 중요한 걸까? 너한텐 그럴 수도 있겠지.
" ...기분을 풀어 주고 싶었는데. "
기분이 나아진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애매한 것...에 방금 전의 일도 포함되어 있을까? 없진 않을지도 모른다. 딱히 할 말도 없는 상태로 그릇은 비어 가고, 차게 식은 입안만 남게 된다.
**
.dice 1 100. = 94
지훈주의 다이스는 지훈이 가면이 얼마나 흔들렸느냐에 대한 다이스였습니다(따란)
" 기분은... "
뭔가 말을 하고싶지만 하고싶은 말은 나오지 않고 입안에서 맴돌 뿐이었나. 기계적으로 빙수를 먹으며 말 없이 허공을 응시하다가, 비아 쪽으로 시선을 돌리려고 했다.
" 기분이 풀어진 건 맞지만... 조금 슬퍼졌다고 해야하나. "
"비아 때문에 슬퍼진 건 아니니..." 라고 중얼거리며 비아가 혹시라도 스스로 말을 잘못한게 아닐지 걱정할지도 몰라, 미리 그 답을 해주었으려나. 사실은 그녀 때문이 아니라 자신 때문이었으니까. 이렇게나 비틀리고 꼬인 자신의 신념 때문이었으니까. 그는 무표정하게 비아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작게 쉬었다.
이대로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경멸당할까. 아니면 관계가 단절당할까. 잘 모르겠다. 별로 좋은 결과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언젠간 말해야만 했다. 다만, 지금은... 아니었던가.
" ...미안해. 오늘은 조금, 피곤하네. "
그는 비아를 보던 시선을 그대로 땅으로 내리꽂고는 마른 세수를 하듯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잠시 흔들린 이것 또한, 그저 환청과 환각으로 인해 잠깐 흔들렸던 것에 불과하다. 그는 애써 마음속에 그것을 억눌러두고는, 비아를 향해 "오늘 고마웠어. 덕분에... 정말 즐거웠어." 라며 희미하게 -어딘가 인위적인 미소로- 웃어보였을까.
**
" ... 그랬구나. "
그렇다면 그 단어에 관련된 지훈 개인의 문제일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나눠지지 않기로 한 짐.
...그래도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 그래. 그러면... 이만, 돌아가자. "
각자의 방으로? 어디든, 있어야 할 곳으로.
피곤하단 말을 하는 지금의 지훈에겐 그저 휴식이 필요해보이기도 했기에.
" 나도 즐거웠어. 정말. "
쇼핑백에서 빠져나온 까맣고 동그란 플라스틱 눈의 하프물범을 쓰다듬으며 시원하게 가라앉은 미소를 보이다가, 이내 앉아있던 의자를 테이블 쪽으로 밀어 가지런히 정리했다.
" 고마워. "
//막레는 이렇게 헤어졌단 것으로. 수고하셨습니다-
- ?
- 60 이상으로 깨짐
.dice 1 100. = 96
.dice 5 15. = 13 (=> 진 호감도 다이스)
지훈이 가면 살짝 깨져서 다음에 비아를 만나면 수단이라는 거 밝힐 예정(실성!)
**
1. 침구류 관련해서 사는 비아를 일상으로 내보낸 건 처음부터 비아주가 지훈이가 잠 못 자는 게 신경쓰여서이다.
2. .dice 1 10. = 10이 나왔던 다이스에서 숫자가 낮았으면 비아가 샀다.
3. 의자 쿠션 얘기할 때 진짜 깔고앉는거 생각했는데 선물을 의자쿠션으로 쓰면 상처받는다는 말에 등받이 쿠션이라고 변명하게 만들었다.
4. 실제로는 어떻든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장식용으로 썼을 예정이었다.
5. 뗑컨은 까만색이다. 까만 뗑컨이 땡글땡글한 파란 눈을 가졌다는 묘사는 역시 지훈이 전용으로 만들어낸 무드등(?)
6. 진지한 파트 이어지니까 굴리면서 캐해 헷갈릴 뻔했다.
7. 어린애같이라는 말은 싫다는 건 아니었다.
8. 자제하는 게 좋다는 말에 4가 나온 다이스는 숫자가 높던가 낮았던가 하면 꼭 자제할 필요는 없단 식으로 말이 덜 딱딱해짐 or 머리를 쓰다듬는다거나 하는 일도 있을 수 있었음
9. 비아는 공생이 딱딱하다고 듣긴 했지만 협업이 더 일 같은 말이라서 딱딱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10. 그래서 친구관계라고 하긴 했지만 정확히 따지면 이건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11. 털어넣는 것도 조금 신경쓰였다.
12. 유대는 직접적인 키워드는 아니지만 절친과 관련이 있는 말이다.
13. 비아는 지훈이에게 유대라는 말을 꺼내긴 했지만 아직 친구다. 조금 일찍 나왔을 뿐.
14. 비아는 유대란 말을 거절하는 지훈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15. 졸리면 기숙사까지 데려다줄게. 에서 수락함 or 빙수를 먹는 중 졸린 티를 냄 or 잠은 깼어? 기분은 어때? 에서 아직 졸리다고 대답함 -> 확정적으로 비아가 헤어질 때 지훈이에게 아까 산 베개를 선물함. 그래서 결과적으로 지훈이가 선물해 준 하프물범 베개를 베고 자게 됨.
16. 졸려하지 않아도 막레쯤 상황 봐서 베개를 줄 수도 있었는데 유대 관련해서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바람에 그냥 헤어짐.
17. 15, 16번이 있는 이유는 당연히 1번.
18. 현재 비아는 지훈이를 친구라고 생각한다.
1596249237>387은 절친 기준이다.
19. 다음에 비아를 만나서 도구 관련 발언을 하면
1596249237>387처럼 비난의 말 없이 잔잔하게 관계가 무너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 비아에게 '친구'는 소중한 건 소중한 거지만 '꼭 필요한 것' '비아를 매는 것'과는 별개다.
**
.dice 1 100. = 70
50 이상
비아주 지금 진호감도 쌓여서 수단 발언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음데...
1. 진호감도 초기화
2. 살짝 서사 비틀어서 진호감도 쌓는 걸 미루고 호감도 락 걸기
어느쪽이...더 좋으신가요...
호감도 락이라고 해도 비아랑 절친 되기 전까지만 진호감도 쌓는 거 막다가 절친 되면 그때 해금되는...? 그거겠지만요
**
으으... 2번이요...
+Tmi 추가
[누구라도, 털어놓고 싶지 않은 속은 있을 것이다.
친하다고 해서, 특별한 사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털어놓을 필요도 없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은, 서로 불편해지기만 하는 말은. 조금 숨겨두어도 괜찮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내 방에서 바퀴벌레 나왔지만 잡았으니까 이제 괜찮다던가 하는 거. 아니, 말하지 말라고. 말 안했으면 바퀴벌레는 죽었으니까 있던 것도 몰랐을 거 아냐. 왜 굳이 말해줘서 방에 바퀴벌레가 있었고 내 가방이며 옷이며 책 위를 기어다녔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게 만드는 거야.]
>1596258072>225 이 부분이 지훈이를 보면서 제가 하는 생각인 동시에, 비아 관계의 힌트같은 말이에요. 굴리면서 사설이 섞이다보니 TMI 6번에서 말한 캐해 헷갈리는 일 같은 게 발생하기도 했던 그런 부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서로 불편해지기만 하는 말=꼭 털어놓지 않아도 되는 것=그얘기 입니다.
그랬다는 걸 모르고 넘어가면 아무런 일도 없는 정도지만 들으면 확실히 기분이 나빠질 걸 말할필요는 없다... 라는
아래쪽에 있는 바퀴벌레 얘기는 말이 너무 진지하게 빠지지 않게끔, 혹은 비아 과거 관련 떡밥(그런 거 없음)같은 걸로 오해되지 않도록 살짝 개그 얘기를 섞은 부분이에요. 맥락에선 조금 이탈했지만. 그리고 비아는 표정을 못 숨기긴 하지만 표정을 숨기는 걸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표정을 숨길 필요가 없다면 숨기지 않는 것도 좋겠지만 감정이 다 드러나는 것도 그렇다' 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렇다고 비아가 남이 속마음을 들려주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아무것도 듣지 않고 위로해주겠다고 한 건 지훈이가 말하기 싫어하는가보다 하고 꺼낸 얘기라서요. 조금 숨겨뒀다가 꺼내고 싶을 때 꺼내라는 뜻. 뒤에서 내 뒷담화 까도 앞에선 하하호호 하면 용서해주겠단 것도 아닙니다. 생각으로 끝내면 됐는데 실천으로 가면 실드차지 맞아야지.
요약: 어떤 관계든 도구 or 수단 말 듣고 기분이 안 상하진 않습니다. 지훈이가 영원히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계속 친하게 지내면 절친이든 (언젠가)메가베스트프렌드건 가능할 거고, 그게 인간관계로선 이상적입니다. 아무 일 없이 평탄한 관계를 유지하려 하면 그래야 합니다. 말하게 된다면 더 깊이 아는 관계로 나아가겠지만 지금은 너무 빨라요.
요약의 요약: 오너는 도구발언이 좋은데 캐릭터가 엄근진해서 곤란한 사건.herostory
아니다 1번... 여기선 망설이지 말고 1번을 해야...
근데 3번이 뭐죠?
Q.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A. 진행에서 야마모토 만나러 갔는데 캡틴이 긴 서사와 감정묘사를 초장문의 명문으로 풀어내면서 야마모토가 청혼하는 진행레스를 줬지만 캐릭터가 혐관이라서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 걸까요?? 🤔🤔 술이라도 드신걸까요? 하면서 거절하는 에미리를 써야 하는 에미리주의 심정 같은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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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롤백해서 트리거 발언 이전부터 다시 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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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을 고를경우 서사가 어떻게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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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고르면... 그냥 잠시 흔들렸을 뿐 딱히 말하지는 않게 됩니다. 그냥 평범한 친구 관계로 돌아가는 것.
진호감도가 안 쌓였기에 수단으로 대하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절친 되면 진호감도를 자동으로 쌓는...그런 루트입니다
그럼 비아 진호감도는 13에서 락을 걸어두고 아직 안 쌓인 것으로 처리...
지훈주도 진도 너무 빠르다는 건 아는데 지훈이가 ㅋㅋ 진호감도 쌓으면 무조건 수단이라는 거 털어놔야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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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감도가 쌓이는 이유...
비아가 유대라는 말을 했을 때 지훈이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깊은 곳에서는 정말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고 싶었을 거에요. 언제나 깊은 곳에서는 진실된 관계를 맺고 싶었고, 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테니까요. 다만 문제는 비아가 그런 의미로 말한게 아닐테고 그렇기에 거절을 했는데, 그 때문에 엄청나게 혼란스러워진거죠. 속으로는 정말 유대라는 관계를 비아와 맺고 싶은데, 그걸 맺는다고 해서 비아가 자신이 생각한대로 받아줄리가 없으니... 그로 인해서 가면이 깨져버렸고... 혼란을 어느정도 진정시키기 위해서 임시방편으로 진호감도만 쌓은 거죠. 지금은 무리라도 언젠가 유대 관계를 맺을 때, 망설임 없이 동의할 수 있도록. 문제는 그렇게 진호감도를 쌓았는데 그러면 수단이라는 것을 고해해야만 하는... 그런 상황이 된 겁니다....
비아주 저 기막힌 서사 생각났는데
비아에게 진호감도 쌓인 방식이 가면 깨져서라는 비정상적인 방법인만큼... 호감도가 쌓이긴 쌓였는데 자각하고 나서 쌓인게 아닌지라, 혹시 호감도가 쌓였나 싶으면서도 속으로는 부정해서 고해하지는 않는다는 서사 괜찮나요?
본격 비아에게 유사 입덕부정기...입친구부정기? 겪는 지훈이
다음부터 비아 보면서 입친구부정기 겪는 지훈이가 나올 거라는 애옹
- 청천 넷상[1](99스레~101스레) - 5월 30일(새벽)
- [(어떤 건물의 옥상에서 찍은 듯한 사진입니다. 난간 너머로 학원도의 야경이 보입니다. 그 야경을 배경으로 누군가가 손으로 브이자를 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사비아 선배님]
[잘 지내셨나요?]
**
Salvia: [ 응. 잘 지내고 있어. ]
Salvia: [ 청천이 너도 잘 지내고 있었어? ]
Salvia: [ 옥상이네. 어느 건물에서 찍은 거야? ]
**
Cloudy : [그럭저럭입니다]
Cloudy : [시험공부 일단...할 만큼 해뒀어요.]
Cloudy : [사진 찍은 곳은 성학교 남기숙사 옥상이에요!]
Cloudy : [잠시 나왔는데...추워서 이제 방에 들어가려고요...😢]
**
Salvia: [ 미루지 않고 했다니 열심히 했구나. ]
Salvia: [ 뭔가 옥상을 점프로 넘어다니다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옥상에서 승리의 V 같은 걸 생각했는데 그냥 기숙사 옥상이었구나... 😌 ]
Salvia: [ 감기들진 않지만 아직 3월이니까 밖에 있으면 많이 춥지. 빨리 들어가. ]
Salvia: [ 그러고보니까 이제 곧 수학의 날이던가? ]
Salvia: [ 파이데이 말이야. ]
**
Cloudy : [밤에는 저도 쉬어야지요!]
Cloudy : [방금 들어왔습니다]
Cloudy : [선배님도 따뜻하게 하고 계십시오!]
Cloudy : [파이 데이요?]
Cloudy : [앗]
Cloudy : [아!!! 그렇네요 원주율! :0]
Cloudy : [베이커리에서 기념 파이를 파는 걸 봤어요]
Cloudy : [그땐 3월 14일이 사장님 생신이신가 했는데!]
**
Salvia: [ 응. 밤에는 구름 낀 하늘도 보이지 않으니까... ]
Salvia: [ Cloudy도 쉬어야지. ]
Salvia: [ 난 아직 공부해야 하니까... 졸리지 않게 방 온도는 약간 시원하게 하고 있어. ]
Salvia: [ 3월 14일. 원주율을 3.14로 치니까... ]
Salvia: [ 학원섬에 있는 베이커리에선 3월 14일에 소수점 50자리까지의 원주율이 적힌 파이도 팔더라. 그것도 한정판이 아니라 엄청 많이 있었어... ]
Salvia: [ 어째서 그렇게 공을 들인 걸까... ]
//정답: 화이트데이 사탕을 못 받은 제노시아 학생 분노의 파이굽기
**
Cloudy : [그러고보니 청월은 공부량이 어마무시하다던데...]
Cloudy : [파이팅입니다!]
Cloudy : [와...숫자 다 넣기 힘들텐데...그 집 굉장하네요!]
Cloudy : [저도 당일에 가봐야겠어요.]
Cloudy : [맛있을까요!]
//엌...ㅋㅋㅋㅋㅋ쿠ㅡㅠㅠㅠㅠㅠㅠ
앋 레스 세는 거 깜박할 뻔. 7번째던가요 이게? 맞겠져...!
**
Salvia: [ 공부량이 많긴 해도 그만큼 교육이 확실하니까. ]
Salvia: [ 응원 고마워. 너도 시험 힘내. ]
Salvia: [ (동그란 나무 판에 담긴 파이. 인쇄한 것처럼 파이가 새겨져 있다) ]
Salvia: [ 퀄리티도 전부 균일하고 맛도 밖의 맛집에서 산 수준인데 수제래. ]
Salvia: [ 근데 커플인 사람한텐 안 판대. 갈거면 그때까지 여자친구 만들지 않게 주의해. ]
Salvia: [ 맛은 이미 말했지만... 정말 가격을 뛰어넘는 맛이야... ]
Salvia: [ (기묘하게 감탄하는 검은 개 이모티콘) ]
**
Cloudy : [헐]
Cloudy : [대박...맛있어 보이는군요]
Cloudy : [근데 커플에겐 안 판다니]
Cloudy : [아하]
Cloudy : [빵집 사장님이 솔로부대이신가 봐요!]
Cloudy : [화이트데이 견제용!]
Cloudy : [저한테는 해당 사항 없지만요... ㅋㅋㅋㅋㅋ]
Cloudy : [내일 가봐야지!]
Cloudy : [사비아 선배님도]
Cloudy : [시험 파이팅입니다!]
**
Salvia: [ 사장님보다는 알바 관련이라던데... ]
Salvia: [ 견제용... 맞겠지. ]
Salvia: [ 미리 가면 없을텐데? 다른 빵들도 괜찮긴 하지만. ]
Salvia: [ 특히 단팥빵이 심플하게 맛있었어. ]
Salvia: [ 그러고보면 학원섬에선 밖에서 찾아보기 힘든 상품이 많단 말야. ]
Salvia: [ 독특한 기술들과 독창성이 어우러져서 생긴 결과물일까... ]
Salvia: [ 이런 건 좀 싫지만. ]
Salvia: [ ( 모자이크. 누르면 개구리 뒷다리와 똑같이 생겼지만 찢긴 단면이 평범한 빵인 무언가가 나온다. ) ]
Salvia: [ 그것도 성학교나 제노시아 중심이지 청월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서도... ]
**
Cloudy: [당일에만 한정으로 파는 제품이로군요...]
Cloudy: [맛있는 빵집 알아둬서 나쁠 건 없지요 ]
Cloudy: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Cloudy: [저거...전에 저런 게 있다고 듣긴 했는데]
Cloudy: [진짜로 이런 걸 파는 곳이 있다니 놀랍군요 :0]
Cloudy: [맞아요 확실히...제노시아를 끼고 있어서 그런가 신기한 게 많아요]
Cloudy: [설경이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희한한 게 많다고 그랬는데...]
Cloudy: [몇 번은 걔가 저 놀리려고 장난치는 줄 알았지 뭐에요!]
**
Salvia: [ 평소에도 만들기엔 손이 엄청 많이 가니까... ]
Salvia: [ 그쪽은 특성화 쪽으론 지원을 잘 받으니까, 넉넉한 환경에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겠지. ]
Salvia: [ 나도 처음 봤을 땐... 놀랐는데... 지금은 어지간한 건 괜찮아졌어. ]
Salvia: [ 설경이? ]
Salvia: [ 그건 누구야? ]
**
Cloudy : [어 맞아요...]
Cloudy : [여기 성학교 쪽은 요즘 재정이 안 좋다던데...]
Cloudy : [이럴 땐 조금 부럽네요]
Cloudy : [아...설경이는 제 쌍둥이 누나랍니다]
Cloudy : [제가 알기로 지금 제노시아 2학년이에요]
Cloudy : [저보다 스카우터 선생님을 일찍 만났거든요!]
Cloudy : [그래도 성학교에 온 게 후회되진 않네요. :)]
Cloudy : [선배님도 그러신지요?]
**
Salvia: [ 그쪽은 기부로만 유지된다던가...? ]
Salvia: [ 그래도 하나의 학교를 유지하는데 교회의 기부금과 개인을 향한 기부금만으로도 된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해. ]
Salvia: [ 그만큼 성녀님이 대단하시다는 거겠지. ]
Salvia: [ 누나분이셨구나. ]
Salvia: [ 하긴 나잇대만 맞으면 스카우트하러 오니까 그렇게 갈라지는 경우도 있겠네. ]
Salvia: [ 그래도 이미 아카데미 생활을 경험해본 입장에서 조언하는 걸 들을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을 수도 있겠지만. ]
Salvia: [ 물론이야. ]
Salvia: [ 청월은 힘들지. 열심히 해도 노력만으론, 내 능력만으론 안 될 때가 많아. ]
Salvia: [ 그래도 역시 오길 잘했다고 생각해. ]
**
Cloudy : [사실 그렇죠]
Cloudy : [학교가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감사할 일이겠지요]
Cloudy : [음]
Cloudy : [아쉽게도 설경이랑은 평소에 조언을 들을 정도의 사이는 아니네요]
Cloudy : [게다가 저희는 꽤 많이 다르니까요]
Cloudy : [그리고 시험 기간이니 걔도 바쁘겠죠?]
각성한 시기도, 입학한 해도, 의념 속성도 달라서...
누가 보면 쟤네 쌍둥이 맞냐?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고, 비아에게 보낼 글자들을 치며 청천은 생각했습니다.
Cloudy :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Cloudy : [이 학원섬에서의 시간이]
Cloudy : [후회 없는 시간이길 바랍니다.]
Cloudy : [ ]
**
Salvia: [ 음... 유지 못하면... ]
Salvia: [ 운영비가 없어서 폐교된다던가... ]
Salvia: [ ...그런 일은 없겠지. ]
Salvia: [ 그리 친하지 않은 거였구나. ]
Salvia: [ 쌍둥이지만 다르다는 걸까? ]
Salvia: [ 그러고보니 사람은 비슷한 걸 볼수록 차이점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아. ]
Salvia: [ 예를 들면... ]
Salvia: [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차이점을 말할 수 있어? ]
Salvia: [ 후회 없는 시간이란 게 있을까... ]
Salvia: [ 그래도, 청천이도 꼭 그랬으면 좋겠어. ]
**
Cloudy : [...그런 일은 없었으면 하네요.^^;;]
Cloudy : [사실 생긴 것도 그리 비슷하진 않아요]
Cloudy : [이란성이니까요, 저희는]
Cloudy : [컴퓨터와 스마트폰...크기 차이? 저장 용량 차이? 흠...]
Cloudy : [스마트폰도 일종의 컴퓨터라고 할 수 있다더군요]
Cloudy : [하긴 인터넷이 되고 정보를 저장하거나 연산을 할 수 있다는 건 비슷하니까요]
Cloudy : [후후]
Cloudy : [사실 그렇죠]
Cloudy : [이런 건 안 하고 싶다고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Cloudy : [감사합니다 :)]
Cloudy : [시간 잘 가네요...]
Cloudy : [자러 가볼까 싶습니다]
Cloudy : [사비아 선배님도 좋은 밤 되십시오🌙]
**
Salvia: [ 나도 없었으면 좋겠어... ]
Salvia: [ 똑 닮은 쌍둥이는 아니구나. ]
Salvia: [ 사실상 축소된 컴퓨터지. ]
Salvia: [ 그 글의 뒤쪽에 있던 건 컴퓨터와 고양이의 차이점을 찾으라는 말이었어. ]
Salvia: [ 종을 넘어서 애초에 무생물과 생물이다보니 당연한 차이점도 찾기 힘들어진다, 같은 말이 있던가... ]
Salvia: [ 후회는 안 하고 싶다고 안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
Salvia: [ 그 때의 나는 그게 최선이었기에 고른 거라고 생각하면 후회도 결국 어쩔 수 없는 거지. ]
Salvia: [ 후회는 그러면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과 다름없는 걸까? ]
Salvia: [ 응. 길게 얘기하느라 수고했어. ]
Salvia: [ 나쁜 꿈 꾸지 말고, 내일 아침도 파이팅. ]
Salvia: [ 청천이도 좋은 밤 보내요. ]
- 지훈 일상[3] (191스레~196스레) - 7월 21일
- 뛰는 것도 느긋하게 걷는 것도 아닌 적당히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걸으면서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하고. 그도 그럴 게, 나는 방금 전에 친구... 라고 생각하고 있는 후배한테 갑작스런 데이트 신청(?)을 받고 항구로 가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내 성격에 그런 메세지를 받으면 진지하게 생각하다 못해 곤란해질 것도 알고 있을 텐데. 자제한다고는 했지만 원래 장난기가 많은 아이였으니까, 그냥 날 놀리려고 그런 걸까.
그래, 아마 만나면 평범하게 놀러가자던가 같은 얘기를 할 거다.
" 안녕. "
항구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너를 만나서, 아무 말도 못 들은 것처럼 평범한 안색을 가장하려고 하며 인사를 건넸다. 이런 건 보통 아무 반응 안 보이는 쪽이 좋다고 했던가...
**
" 오랜만이네. "
비아가 저 멀리서 다가오자 지훈은 비아를 눈치챘는지 희미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넸을까. 데이트 신청이 장난스럽게 보였겠지만, 마냥 장난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듯이 그의 차림은 꽤나 꾸민 티가 났지. 평소에 잘 입지도 않는 검은색 코트 같은 걸 입고오기도 했으니? 표정이 반쯤 무표정해서, 과연 어느 쪽이 진실일지는 알기 어려웠지만.
" 그럼 데이트, 갈까. "
이런 말에 익숙한 건지, 부끄러움이 없는 건지... 혹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지훈은 비아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항구 주변 산책로 쪽으로 그녀를 이끌려고 했다. 일단, 좀 걷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으니.
" 그동안 잘 지냈어? "
형식적인 인사. 산책로를 걷던 도중, 지훈은 평소와는 달리 말문을 트기 어려웠는지 살짝 무미건조한 인사를 건넸다.
**
" 그거... 농담 아니었어? "
당황해서 조금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물론 그렇게 듣고 나온 거긴 하지만. 평소에는 맨날 후드티만 입고 다녔으면서 오늘은 제대로 입고 나온 느낌이긴 했지만. 그래도 남녀 사이에 데이트란─좀 낡은 사상이라는 자각은 있지만─ 가볍게 다뤄져야 할 말은 아니며, 주로 연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닐까.
" 자, 잠깐만, 먼저 끌고 가지 말고. "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소매를 잡아당기는 것에 같은 방향으로 몇 걸음 끌렸다. 어디로 가는가 보면, 흔히 데이트에서 갈만한 뭔가... 라기보다 평범한 항구 산책로였다. 못 갈만한 곳은 아니다. 왜...가 신경쓰이긴 하지만. 느릿하던 발을 맞춰서 산책로까지 도착하고, 말도 없이 산책로를 걸으며 약간 어색함을 느꼈을 때였다.
" 응, 나야 잘 지냈지. "
...머뭇거리다 나온 말 같다. 지훈이가 누군갈 장난스럽게 데리고 나와서 할 말이라 생각하기엔 무뚝뚝한 듯한. 흔히 놀러 다닐 때라면 상점가 같은 장소를 골라서 시끌벅적함 속에 좀 가려졌겠지만, 들리는 건 항구의 파도소리뿐이었다. 이전 만남의 끝을 떠올리며 말을 꺼낸다.
" 별 일 없었단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지만... 별 일 없는 것도 나름 잘 지냈다고 할 수 있는 거겠지. 너는? "
**
" 그러게. 어느 쪽이려나. 맞춰볼래? "
당황해서 얼굴을 붉히는 비아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다만 짓궂게도 입꼬리만 살짝 올리며 비아를 바라보았다. 그는 평소에도 단순히 친구들과 노는 일을 데이트라고 표현하기도 했기 때문인지 데이트라는 단어의 사용에 별로 거리낌이 없어보였나.
" ...너무 들떴던 모양이네... 미안. 그래도 잘 지냈다니 다행이야. "
먼저 끌고가지 말라는 말에 살짝 정신을 차렸는지 고개를 꾸벅 숙여 사과했을까. 이후에는 평범한 친구처럼 비아와 나란히 길을 걸었겠지. 잘 지냈다는 말에 조금 안심했지만 그 뿐. 다시 침묵과 함께 어색함이 감돌자 지훈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던가. 다행히도 비아가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다.
" 나도, 잘 지냈다...에 가까우려나.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이전보단 조금 성장했기도 하고. "
여러 일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크게 나쁜 일은 없었다. 다행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지. 비아와의 마지막 만남을 떠올리다가, "그 때 받은 거, 아직까지 잘 간직하고 있어. 고마웠어." 라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고는 이건 좀 부끄러웠는지
" 그럼 이제부터 어디로 가볼래? 영화라던가, 아니면 식당이라던가... 카페도 괜찮으려나 "
비아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짓고는 말을 돌렸다. 여러가지 선택지를 주욱 나열해주던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 싫으면 보여주고 싶은 장소가 있는데, 그곳으로 갈까?" 하고 덧붙이기도 했던가.
**
" ...농담이지. "
난 괜찮지만 상대한텐 안 괜찮은 걸 아는 미소인걸, 이건.
" 아니─괜찮아... "
평소였다면 장난기 넘치게 밀어붙이지 않았으려나 하는 상황인데 좀 가라앉은 듯한 느낌이네. 지훈이의 말을 듣고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인다. 어떤 일이었든, 본인이 성장했다고 느끼고 있는 만큼 잘 풀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 그렇게 말해주니 나도 고마운걸... "
순간 뭔가 했더니, 뗑컨이 말하는 거였구나. 뗑컨 무드등. 잘 쓰고 있는 걸까, 간직하고 있다고 했으니까 그냥 보관하고 있는걸지도. 선물한 쪽으로는 잘 써주고 있길 바란다.
" 역시 평범하게 놀러가려던 거잖아. "
살짝 삐죽거리는 것을 감추지도 않고 말했다. 아무리 봐도 데이트라기보단 심심해서 같이 갈 사람 불러낸 장소 선정이잖아. 알고도 당했단 것에 띵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에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승낙하고 말았다.
" 보여주고 싶은 장소라니, 뭐야? ...그러면 그쪽으로 한 번 가볼게. "
**
" 단정지을 수 있어? "
농담이라는 말에 지훈의 입꼬리가 살짝 내려가 무표정하게 바뀌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비아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단정지을 수 있냐는 물음. 그 이후의 잠시간의 침묵. 지훈은 그렇게 비아를 바라보다가, 다시 한번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리고는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을까.
" 아직도 키고 자진 않지만 책상에 둔 상태니까. 귀엽거든 그거. "
무드등이라는 것을 키고 잘 날이 그렇게 많진 않으니까. 다만 어딘가에 넣어두고 보관하기만 하는 것은 선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기에 책상에 여전히 놔두던 상태였다. 물론 귀여웠기 때문도 있지만.... 사실 이쪽이 진짜 이유에 가까웠을까.
" 평범하게 놀러다니는 건 싫어? "
괜히 농담을 하며 장난스럽게 삐죽 튀어나온 입술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두드리려고 시도한다. 비아가 싫어한다면 그대로 피할 수 있었으려나. 비아가 승낙하자 기분 좋아졌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아의 소매를 다시 잡고는 이끌기 시작했지.
산책로를 따라 길을 걷다보면 해변가로 이어졌을까. 해변가를 따라 걸으며 인적이 드문 곳으로 비아를 이끌어가던 지훈은, 자리에서 멈춰서더니 무언가를 찾듯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내 찾았다는 듯 작게 탄성을 지르며 비아를 이끈 곳은, 불쑥 튀어나온 해변 끝에 자리잡은 전망대였다. 아무도 찾지 않은지 꽤 되었는지 조금 낡고, 녹이 슬었던.
" 여기. 이곳에 꼭 누군가를 데려와보고 싶었어. "
평소 산책하다가 높이 서있는 건물을 먼 발치에서 보았고, 그것을 향해 계속 걷다보니 우연히 발견했던가. 자물쇠가 이미 끊어져있던 문을 익숙하다는 듯이 열고선 전망대를 올라가자, 바다의 전경과 함께 저 멀리에 아카데미가 저 멀리서 보이고 있었다. 지훈은 난간에 기대어 소금기가 섞인 바닷바람을 한껏 들이마시더니, 느릿하게 숨을 뱉으며 비아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을까.
**
단정지을 수 있냐는 말. 무표정으로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면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 응. "하는 단호한 말로 끊었다. 고민할 뻔했잖아. 아니, 벌써 고민을 한 건가? 놀릴 거라고 빤히 알고 있는데 분위기에 넘어가 고민해버렸다니... 아무튼 말을 주고받다가 부끄러움도 떨어져서 다시 식은 볼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 장식으로라도 잘 쓰이고 있다니 다행이네. "
지훈이의 방을 상상해 본다. 이미지만으로 생각하면 필요한 물건 빼고 깔끔하다 못해 텅텅 비어 있는 휑한 방이 생각나지만... 혹시 모른다, 침대 위에 옷이 늘어져 있는 평범하게 귀찮은 사람의 방일지도. 그 한구석, 책상 위에 올라가 있을 지훈이를 닮은 뗑컨 무드등이 생각나서 문득 웃어버렸다. 귀엽잖아.
" 싫지 않아. 너랑 같이 다니는 건 재미있으니까. "
얼굴로 올라오는 손을 잡아 아래쪽으로 다시 돌려놓으려 한다. 피하는 건 하수. 제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막아내는 게 일류. ...같은 생각이 어디선가 수신되는 것을 털어냈다. 옷소매를 잡는 정도는 받아줄 수 있으니까, 느긋하게 발걸음을 맞추며 따라 걷는다. 온 기억이 있는 산책로의 끝에 닿아, 해변가에 이르러 와본 적 없는 곳을 향해. 보여주고 싶다고까지 말한 곳은 어떤 곳일지, 기대로 찬 마음에 기분 좋은 기다림이 와닿았다.
" 이런 곳이 있었어...? "
찾기 힘든 곳에 지어진, 바닷바람과 함께 늙어온 바랜 전망대. 문을 열고 들어가는 지훈이 뒤에서 내려다본 바닥에 끊어진 자물쇠가 있었다. 어쩌면 이보다 더 전에 이곳을 발견한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혼자 안 쓰는 전망대의 자물쇠를 끊고 들어가,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혼자만의 공간으로 썼을 만한 선배. 상상하다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의 흔적도 지워진 지 오래된 곳이다. 그렇게 바다가 널리 보이는 곳까지 닿았을 때.
" 와─. "
무심코 그런 탄성을 뱉었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시선. 다른 장소에서의 시선. 늘상 있었던 장소가 오늘만큼은 창문 너머의 풍경처럼 낯설고 멀어 보였다. 과연, 다른 사람한테도 보여주고 싶을 만한 곳이야. 속으로 납득하고 있을 때 날 이곳으로 데려온 사람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마치 감상평이라도 말해 달라는 것처럼. 그 기대에─어쩌면 내 생각을 말하기 위해 너의 제스처에서 기대를 연상하는 내 마음에─ 부응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딱 좋을 정도로 불어오는, 불쾌하지 않은 공기를 실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느끼며.
" 정말 예쁘다. 고마워. "
**
응. 하는 단호한 말. 지훈은 그 답을 듣고 잠시 비아를 빤히 바라보았다가, "그렇구나." 라는 말로 끝맺었다. 아쉬움인지 씁쓸함인지 모를 의미심장한 미소만 남길 뿐이었던가. 조금은 고민해주길 바랬지만, 어쩔 수 없으려나.
다행이라는 말에 "설마 내가 서랍장에 넣어둔 채로 잊어버렸을까봐." 라며 장난스레 농담을 던졌다. 사실 이미지상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만... 같은 자조적인 생각을 하다, 문득 웃어버린 비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얼굴에 물음표가 띄워진 채로 비아를 빤히 바라보았을까. 뭘... 생각한 거지?
" 흐응. 그거... 다행이네. 적어도 억지로 어울려주는 건 아니구나. "
잡혀서 다시 돌아온 손가락을 빤히 바라보다가, 그대로 살짝 주먹을 쥐며 비아를 바라보았다. 이번엔 감정을 숨기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살짝 미소가 새어나왔다. 처음 느끼는 감각에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뜰 뻔 했다. 평소에 그는 감정표현이 잘 되는 편이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그런 병이 있다고 진단까지 받았으니. 그 오랜 세월동안 연습해서 희미하게 표현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오늘따라 괜시리 억눌러도 살짝 터져나오는 감정이, 지훈은 혼란케 했다.
" 나도 최근에 발견했는데... 누가 이미 들어갔는지 자물쇠가 열려있어서, 어렵지 않게 들어갔다 나와봤어. "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이미 자물쇠를 끊어놨던 버려진 전망대. 그 사람의 흔적은 스스로 지운건지, 그마저도 세월에 풍화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어쩌면 아직도 이 학교에 있으려나. 그런 생각들을 하며 전망대로 올라가는 걸음을 한 걸음씩 내딛는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 장소를 기억할지조차 알 수 없는 이름모를 선배가 아니니까.
시선을 비아에게 향한 채로 바닷바람을 느꼈다. 짠내가 살짝 코를 스치며 코를 간질였다. 지훈은 비아를 빤히 바라보며 답을 기다리다가, 그녀의 말에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사실, 이곳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건 네가 처음이야. "
그는 바다를 등지고선 난간에 기댔다. 혹시 발이 미끄러지면 여기서 이대로 떨어질까. 같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은 위험해서가 아닌, 단순한 감상이었다. 난간에서 보이는 아카데미들의 풍경과, 뒤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의 짠내, 그리고 머리카락을 바닷바람에 기분 좋게 흩날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너와 눈을 마주치려고 했다.
" 여긴 둘이서 보고싶었거든. "
**
" 그렇게 말했으면 조금 실망했을 거야. "
물음표를 띄우며 쳐다보는 지훈이를 보고 한 번 더 웃었다. 내가 왜 웃는지 모르는 걸까. 그 모습까지 귀여워서 웃지 않을 수 없다. 나중에 지훈이 방에 찾아갈 일이 생기면 한 번 보러 가야지.
" 매번 느끼는 거지만, 너는 날 뭐든 참고 견디는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 내가 너를 걱정을 하면 했지, 내가 걱정받을 처지가 아닌걸? "
이번엔 조금 가벼운 말투다. 평소의 잘 움직이지 않는 표정과 달리 가볍게 미소가 스치는 얼굴을 보며 나도 같이 웃었다. 같이 다니는 게 재미있단 말이 뭐가 그리 기쁜지, 평소랑도 다르게 그러고. 더 크게, 나를 보고 따라 웃으라는 것처럼 부드럽게 미소지어 보인다.
" 원래 이런 데는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일텐데... "
그래도 이번만큼은 별 말 하지 않고 봐주기로 했다. 그야, 이런 곳에 흥미가 생기는 건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고 했던가, 사소한 무질서가 큰 무질서를 부른다고 했지. 그 말대로였다. 열려있는 문턱을 넘는 건 어렵지 않았다.
" 정말? "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 위로 손을 덮었다. 놀라서 벌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위태롭지만 위태롭지 않은 듯이 난간에 기댄, 한 점의 사진으로 남겨두면 좋을 만한 네 모습을 보며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기쁘다. 라는 감상이 바로 나오려는 것을 멈췄다. 혹시, 혹시라며 떠오르는 생각을 흩었다. 손을 휘저으면 갈라지는 힘 없는 연기처럼. 공기 중에 퍼져나갈지라도 손짓만으로 사라지진 않는 연기처럼. 나와 네 사이를 유령처럼 떠다니는 추측. 그런 생각.
" ...으응, 날 그렇게 생각해주다니. 기쁘네. "
한 박자 느린 대답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나요?
**
" 다행이네. 널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거든. "
안심한 듯이 반쯤 눈을 감으며 눈꼬리만 휘어 웃다가도, 비아가 계속 웃자 지훈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비아를 빤히 바라본다. 가르쳐주지 않을 거야? 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을 비아에게 보냈다.
" 비아는 어른스러우니까. 그렇지 않다고 말해줘도, 자꾸 너 혼자 모든 걸 짊어지려고 할까봐 걱정돼. "
가벼운 말투였지만, 지훈은 살짝 무겁게 받았다. 농담이 아닌 진심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무거운 말투나 표정도 비아의 더 큰 웃음을 보며 점점 가벼워져, 마침내 크게 미소를 그려보았다. 비록 입모양만 호선을 그린 모습이라고는 해도, 인위적으로 따라한 미소이긴 해도, 분명한 미소였다.
" 아무도 안 찾아오니까, 괜찮지 않을까? "
비아와는 다르게 지훈은 모범생이라는 거리가 조금 있는 편이었으니. 별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비아가 이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은 다행이었지.
"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데. "
눈을 느리게 깜빡이는 비아의 눈을 빤히 응시했다. 놀란 모습을 숨기려고 하는 그 행동이, 조금 귀엽게 보여 저도 모르게 나른했던 표정이 살짝 풀어져서 미소지어버렸다.
그리고 나온 대답은, 한 박자 느린 기쁘다는 대답. 지훈은 그 대답을 듣고 잠시동안 입을 다물고 비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건 내가 원했던 대답이지만, 내가 원한 대답이 아닌데. 속으로 살짝 웃었다. 침묵을 깨고 발을 내딛어 비아를 향해 다가갔다.
" 설마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건 아니지? "
조금 더 거리를 좁히고 싶었다. 다가가는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간 지훈은 비아와 겨우 한두뼘 남짓한 거리를 두고 멈춰섰다.
네 추측을 확신으로 만들고자 했다.
" 널 좋아해, 사비아. "
아까 너에게 가르침 받은대로, 입꼬리를 살짝 말아올리며 큰 미소를 지어보였다.
**
계속 웃고 있으려니 시선이 강해지는 게 느껴진다. 귀엽다고 생각하는 걸 안 건지, 왜 웃는지 모르겠단 건지. 아마 뒤쪽이어도 뭔가 말해줄 생각은 없다. 그도 그럴 게, 너도 날 놀렸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잖아?
" 나는,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 짊어질 뿐이야. 네가 나를 존중한다면 내가 짊어지고 싶은 걸 짊어지게 해주길 바라. ...그 이외의 짐을 같이 들어주고 싶은 거라면 정말 고맙겠지만. "
모든 걸 짊어지고 가는 건, '희생'이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 그 이상의 어떤 틀도 씌우고 싶지 않아.
무거운 말에 단호하게 말하며 살짝 표정을 흐리다가, 곧 다시 미소를 띄웠다. 나를 따라 미소짓는 너를 봐서. 억지로 지은 미소라고 해야 할지, 어렵게나마 지은 미소라고 해야 할지 모를 미소. 나는 후자라고 생각했다.
" 이번만이야. 아무도 안 찾아오니까─라는 건 이유가 되지 않는걸. "
차라리 그냥 당당히 멋대로 들어간다면 모를까, 그걸 이유로 대면 변명이 된다. 살짝 째릿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한 박자 느린 대답과 온쉼표.
"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
내 세상의 온쉼표를 찢고 걸어오는 음표.
한 걸음 물러나면 거부를 표현하기에 충분할 거리. 팔을 쭉 뻗으면 밀어내기에 충분할 거리. 너의 눈 앞에 손을 내밀어 막아낼 수 있는 거리. 더 이상 팔을 뻗지 못할 거리. 부담스러울 만큼의 거리. 네가 나에게 닿으려 해도 밀어내기 힘들 만큼...
가까운 거리.
그리고 지금, 엇박.
" 그렇구나. "
나와 네가.
" 나도 너를 좋아해Like. "
엇갈리고 말 오선보.
엇갈리다: 마주 오는 사람이나 차량 따위가 어떤 한 곳에서 순간적으로 만나 서로 지나치다.
" 하지만, 너의 '좋아'가 '나의 좋아'와 다르다고 한다면... "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 순간을 악보로 쓴다면 분명 무수한 숨표가 박혀 있을 것이다. 뜻은 '숨소리만 들릴 만큼 조용하게, 길게'.
길게, 길게.
떠다니는 단어들 속에서 말을 골라내면서, 떨리는 마음은 멈추지 않아도 집중은 흐려진다. 파도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길게.
" 네가 오랫동안 나에게 보여준 모습 중엔 그런 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어. 그렇다면 답은 두 가지겠지. 처음부터 철저히 숨기고 있었거나, 갑자기 생겨난 감정이거나. 어느 쪽이건, 나는... 지금 너의 고백을 받을 수 없어. 그리고 후자라면 더더욱. "
전자일 가능성을 추호도 생각하고 있지 않는 나를 무시하고, 허울뿐인 선택지를 내미면서.
" 난 네 감정이 진심인지 알고 싶어. "
자신 안에서만 고이고 섞여서 탄생한 감정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가끔씩 감정적으로 내뱉은 말을 진실이라던가, 자신의 진심이라고 착각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 친근함을 사랑으로 착각하기 쉬운 열일곱. 유대라는 단어를 거부하면서 좋아한다 속삭이는 너. 나는, 네가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지 무섭다. 그냥 불안해져버린 건 아닌지. 묶이는 걸 두려워하면서 네게 묶여 있을 누군가를 바라는 건 아닐지. "
착잡한 파도소리가.
부글거리는 물거품이.
" 있잖아, 나는. 사랑에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
흩으려 했던 연기를, 너와 나 사이를 유령처럼 떠다니던 추측을 망설임도 없이 태워버려서 남은 잿가루. 연무.
그것에 남은 온기가 어쩔 수 없이 시름다와서.
" 지금은 네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아. "
" 하지만 네가 진심으로 날 좋아LOVE한다면. "
언제 이렇게 먼저 거리가 좁혀진 건지 가까워진 너의 뺨을 양손으로 감싸며 한 걸음 더 다가선다.
" 한 달, 한 달 후에 다시 얘기하자. "
까치발을 들고, 가볍게 이마를 툭 맞댔다.
그 때 가서, 내가 너를 더 좋아하게 되어버렸다면, 네 쪽의 마음이 식었더라도 다시 이쪽으로 오게 만들어 줄 거야.
그러니까 나를 반하게 만들어 봐. 지훈아.
**
비아가 알려줄 생각이 없어보이자 살짝 삐뚜름히 입을 내민다. 토라짐의 표정이다. 비아에게는 그마저도 항의가 아니라 그냥 귀엽게 보일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름 항의였다.
" 그럼 그 이외의 것 정도는 들어줄게. 아니, 내게 줘. 내가 널 존중하니, 그정도는 나를 존중해줄 수 있지? "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그정도는 존중해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짐은 나눠들고 싶었다. 그 권리를 받아내고 싶어, 억지를 부려버렸다. 이러면 안 되긴 하지만... 어느정도는 이해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단호한 표정이 살짝 흐려지자 미소를 유지하며 비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
지훈은 비아를 빤히 바라보며 숨을 내쉬었다. 느린 숨이었다. 어느정도는 납득할 수 있었지만, 어느정도는 납득가지 않았으니까. 아니, 납득가지 않는다기보단 그저 부정하고 싶은 것에 가까웠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란 원래 그런 거였으니까.
" ...응. 알았어. "
그럼에도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납득하는 감정도, 납득하지 못 하는 감정도 묻어두고, 그가 가장 잘하는 무표정으로. 그 이유는 거절당하지도 수락받지도 않았기에.
단순히 감정에 휩쓸리면 안 되는 걸까. 우린 아직 어리잖아. 같은 말은 묻어둘 뿐이었다. 자신은 비아를 존중했다. 그렇다면 그녀의 방식 또한 존중하고 싶었다. 그 말 또한 무표정 뒤에 숨겼다.
가면 아닌 가면. 그 표정 뒤에, 수많은 말과 감정을 숨기고선,
첫 사랑에 대한 감정마저 숨기고선,
" 좋아. "
늘 그랬듯이 어렵게나마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었다.
지훈은 이마를 맞대고선 눈을 감는다. 부드럽고, 기분 좋은 온기가 느껴졌다.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비아를 향해 속삭였다.
" 딱 한 달만 기다려. "
눈을 떠서 바로 앞에 있을 비아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려고 했다.
" 내가 널 사랑한다는 걸 분명히 보여줄게, "
지금은 어울리지 않더라도, 지금은 엇갈리고 말았을지라도,
지금은 조금 이르더라도.
그 때는 완벽한 화음을 이룰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
" 물론. "
다음 의뢰의 랜스는, 너였으면 좋겠네.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사람의 사정이란 게 언제나 맞아떨어지지만은 않으니까 지금은 그냥 희망사항으로 두기로 한다.
-
열일곱과 열아홉, 어떤 사람들은 감정에 휩쓸리다 못해 그 이상 불타오르고도 남을 나이지만. 나는 그렇게 해서는 사랑하고 싶지 않아. 나에게 존중받고 나를 존중해줄 사람. 언제나는 아니라도 나를 근본적으로 이해해줄 사람. 그걸로 충분했다.
그래서 지금, 날 이해해준 네가 고마웠다. 가깝게 보이는 눈이 기꺼웠다.
" ...기다리고 있을게. "
사랑의 증명이란 쉬운 것이 아니다.
이 감정이, 한 달이라는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시간이 친애라던가 동정 같은 이름으로 명명되지 않길 바라.
함께, 듀엣을 하자.
- 진화 일상[2] (196스레~198스레) - 7월 22일
- 좋아, 있다.
그렇게 ─기뻐할 만한 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나이스! 라는 듯한 자세를 하고 있는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건 평생 지나가면서 기억에도 남겨 보지 않은, 내가 관심을 보일 거라곤 생각도 한 적이 없던 바로 그것. '연애 서적'이었다...!
꼭 그렇단 건 아니지만 학교별로 학생들의 성향이 극명히 갈리는 만큼, 어느 쪽이 주로 이용하는 서점엔 특정한 책이 없다거나 한단 말야. 청월에 가까운 서점에는 주로 참고서 같은 책─공부법 책은 적다─이 종류별로 있는 반면, 아프란시아에 가까운 서점엔 만화책과 소설책부터 시작해서 '초심자에게 추천하는 종이접기 시작법' 같은 취미 관련된 책이 다양한 분야별로 있는 편. 참고로 이 정보는 가디언넷에서 얻은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이 서점으로 온 나는, 무려 한쪽을 차지하고 진열되어 있는 반짝반짝한 연애서적 코너를 발견하고, 마침내 사냥감을 무엇으로 할지 고르는 일만 남았던 것이다.
근데 이거 집기 전에 제목을 안 봤네. 표지가 엄청 강렬한데. 어디, 책 이름이...
[ 남자 여럿 울려본 언니의 남자 꽉 잡는 법 ]
...잠깐, 뭔가 기억나는 거 같은데.
<회상>
[ 가디언넷 ]
[ 제목 : 연애법 책 샀다ㅋㅋㅋ 이제부터 나도 카사노바 ㄱㄴ? ]
[ 내용 : (대충 제목으로 어그로 끄는 연애서적 표지 화질구지로 찍은 사진) ]
ㄴ [ (욕설)ㅋㅋㅋㅋㅋㅋㅋㅋ ]
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ㄴ [ 왜 다들 웃으시죠ㅡㅡ 전 이분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봅니다. 도전해보세요! ]
ㄴㄴ [ 얘가 제일 나쁘네ㅋㅋㅋㅋㅋㅋ ]
ㄴㄴㄴ [ 악질쉑ㅋㅋㅋㅋㅋㅋ ]
ㄴ [ 여자가 넘어오는 게 아니라 님이 선을 넘어가겠네요ㅋㅋ ]
ㄴㄴ [ 좀 치네 ㄷㄷ ]
<회상 종료>
......응, 가디언넷 스타가 되고 싶은 게 아니면 이 책은 내려놓는 게 좋겠다.
표지를 보면서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느낌으로 웃다가 그렇게 책을 내려놓으려는데...
거기엔, 친구가 있었다!
나랑 정말 안 어울리는 책을 손에 쥔 채로 마주치고 말았다!
" 자, 잠깐. 뭔가 생각했다면 모두 오해야. "
" 서-설명할 수 있어! 조금만 기다려! "
괜히 허둥지둥하면서 손에서 책을 놓는 것도 깜빡하고 ─딱히 진화가 도망치진 않았을 수도 있지만─아무튼 잡으려 했다...!
**
"......!?"
나는 지금 충격에 빠졌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오랫만에 좋아하는 만화책이라도 사려고 서점에 온 나는, 익숙한 장신의 여학생을 마주했던 것이다. 나와 어쩌면 가장 친하고도 할 수 있는 친구를 보고 오랫만에 반가운 마음으로 아는체를 하려다가 그녀가 어떤 책을 발견하곤 나이스! 라고 하는 듯한, 엄청나게 기뻐하는 자세를 취하는걸 봤기 때문에.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그렇게 좋아하는지, 호기심이 생겼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먼저 말걸기 보다는, 그 책을 잠깐 살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 남자 여럿 울려본 언니의 남자 꽉 잡는 법 ]
".....?!......!!"
세상에 내가 제대로 본 것이 맞기나 한건가. 그녀가 저, 저런 책을....!? 여, 연애를 시작하려는 건가?! 성실하고 성실한 그녀의 이미지를 180도 꺾어버리는 듯한 강렬한 책에 나는 사랑이 사람을 바꾼다는 말이 구구절절 옳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발자국 뒷걸음질 쳤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고.....잠깐의 정적이 흘렀다가....
"와, 왓, 미안 - !!"
나는 어쩐지 사과하면서, 서둘러 등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
" 미안할 거 없으니까 도망치지 마─! "
이 책을 당장 놓으라는 영혼의 지시와 당장 도망치는 진화를 쫓으라는 뇌의 판단이 부딪쳤다. 이럴 때 사람은 제대로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는 법이라서, 그냥 책 놓고 쫓아가자 vs 책을 던져놓을 순 없다, 정중히 놓고 가자 <- 그럴 시간이 어딨냐! 라는 공방전이 먼저 뛰기 시작한 후에야 시작되고 말았고, 결국 나는 책을 들고 달렸다.
서점 문을 통과하는 순간, 삑- 하고 가디언칩 결제 메세지가 날아왔다. 가격이 얼마인지도 확인 안 해봤는데...
몰라! 일단 이 오해를 풀어야만 한다!
" 당장 도주를 멈추고 투항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
아니, 이게 아니잖아!
" 힘세고 강한 아침! "
이건 더 아니다!
일단 의념으로 신속을 강화하고 엄청 달린다─!!
.dice 1 100. = 53
**
"그, 그런가?"
미안할 거 없으니까 도망치지마, 라는 외침에 순간 이성을 되찾고 잠깐 뛰는걸 망설인다. 생각해보니 뭔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돌아가서 얘기를 하면 확실히 뭔가 알 수 있는게 아닐....
"히에에엑 - !!"
뒤돌아보니 그녀는 살벌한 기색으로, 당장 도주를 멈추고 투항하면 목숨만을 살려주겠다는 선전포고를 하고 있었다. 내가 봐온 만화 책에선 저런 말을 하고 살려주는 케이스는 한번도 없었다고 할까. 저런건 주로 악당의 대사이지 않은가. 그 무시무시한 기세를 본 나는 다시금 이성을 날려버리며, 묶어둔 머리가 찰랑거릴 정도로 열심히 뛰고 마는 것이다.
"....마, 맛이 갔어....!!"
알 수 없는 소리를 외치며 달려오는 비아를 보고, 나는 그녀가 지금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자, 잡히면 안된다!!
.dice 1 100. = 80
**
이젠 나도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어... 하아
근데 엄청 빠르잖아?! 마치 다이스 100으로 치면 80이 나온 것 같은 속도랄까?! 나도 한 53 정도의 속도로 달리고 있지만 따라잡을 수가 없어...! 분명 전에 만날 때까지만 해도 똑같은 신속 B였을 텐데 어디서 신속 올려주는 약이라도 먹고 왔나?!
" 놓치겠다...! "
이럴 때는 어쩌면 좋지?
그-그래! 실드차지다!
인벤토리에서 ─이런 상황에서 상태창을 남용하지 맙시다─방패를 꺼내서 진화한테 투척─이러면 안 됩니다─하려던 나는, 문득 한쪽 손에 그대로 들려 있는 책을 발견했다.
...이런 곳에라도 도움이 되어라─!
그대로 나는 진화의 머리에 [ 남자 여럿 울려본 언니의 남자 꽉 잡는 법 ]을 투척했다. 쓸데없이 두꺼워서, 얼마나 비싼 책이었을까 생각하면 눈물이 날 거 같지만... 던지고 나서 생각해보니 진화가 이거 봤다고 어디 가서 떠들고 다니지도 않을 거 같고 오해는 차근차근 풀면 됐을 거란 게 떠올랐지만 난 후회하지 않아... 안 한다구...
.dice 1 100. = 74
**
"우리 동갑이잖아!?"
나는 달리면서도 냉정하게 딴죽을 걸었다. 이녀석이고 저녀석이고 날 어쩐지 아이처럼 보고있잖아! 라는 영문 모를 분노와 함께 달리는 것이다. 비아와 나는 본래엔 신속 차이가 그다지 나지 않는 편이지만...지금은 테베로스의 장화덕에, 내가 압도적으로 빨랐다. 후아. 뛰다보니 갑자기 왜 뛰고 있는지 의아함이 들고, 역시 대화로 해결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을 때 쯤..
퍽 !!!
맹렬한 충격이 뒤통수에 작렬했다. 계속 자랑하는 것 같지만, 나는 이래보여도 건강이 S 다. 요컨데 책으로 머리를 좀 맞았다고 쓰러질 정도는 아니란 것이다. 그러나...상대는 엄청난 집념을 담아 힘껏 내던졌다. 내가 알기로 그녀의 신체도 적지 않으니, 거기서 전력으로 투척된 책이 불의의 상황에서 머리에 명중한다면..
"히엑."
사랑은 친구관계 조차도 간단히 뛰어넘게 만든다는 배신감과 함께, 나는 앞으로 고꾸라져 기절하고 마는 것이다...
▶ 기절한 유진화씨 ◀
[ 누군가에 의해 억울하게 의식을 잃은 유진화 이다. ]
**
" 지금은! 내가! 1학년 더 선배야!! "
맞는 말이긴 한데 심하다! 란 생각은 이미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는 상태였다.
" ...진화야? "
아무리 그래도 같은 신체 A 건강 S 동지인데 이 정도로 쓰러질 리는 없지─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 고꾸라진 진화를 보고 말을 걸어보니...
대답이 없다. 평범한 시체 같다.
아니...! 시체가 아니야! 왠지 인벤토리에 담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살아있고... 기절한 진화잖아!
▶ 기절한 유진화씨 ◀
[ 누군가에 의해 억울하게 의식을 잃은 유진화 이다. ]
이걸 어떻게 하지...?
일단 1인 안기 운반법으로 진화를 들어올린다. 절대 공주님 안기...가 아니라 1인 안기 운반법이다. 어쩌다 보니 좀 사람 없는 곳으로 오긴 했고, 근처에 케챱이 묻은 포대─토마토를 담았나보다─가 있긴 하지만, 저기에다 사람을 담는 건 정말로 인신매매 같으니까...
정말 어떡하지.
건강이 높은 만큼 기절에서도 빨리 풀려날 가능성이 높고, 어디 멀리 데려가려고 했다가 중간에 깨서 시끄러워지면 큰일난다. 아니, 애초에 이 상황을 다른 사람한테 보이고 싶지도 않다!
...
어쩔 수 없다. 이거 절대로 케챱이 아니라 다른 게 묻은 거 같지만, 아무튼 붉은 얼룩이 있는 포대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만악의 근원인 [ 남자 여럿 울려본 언니의 남자 꽉 잡는 법 ]과 함께 진화를 포댓자루에 밀어넣고... ─근데 이거 진짜, 남자를 잡았네(물리)─ 들쳐맨 다음, 의념으로 신속을 강화해서 재빨리 달린다.
목적지는 근처의 공원! 절대 수상한 장소가 아니다!
속도가 생명이다. 적당한 벤치 위에 진화를 담은 포댓자루를 올린 다음 [ 남자 여럿 울려본 언니의 남자 꽉 잡는 법 ]의 표지 위에 가지고 다니는 수첩을 한 장 뜯어 올려놓은 다음 급하게 펜으로 글씨를 흘려썼다. 대충 모든 게 오해고 이 책은 너 줄 테니까 가지고 기절시킨 건 미안하고 적당히 돌아가라는 말...
**
"....아야야..."
나는 머리에 혹을 매만지면서 정신을 되찾았다. 어쩐지 주변이 갑갑한 느낌이 들어 의아하게 여겼더니,왠 자루에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을 기절시켜서 포대에 담아 납치하자던 에릭하르트만식 인재 영입법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나는 깜짝 놀라 의념을 실어 주먹을 내질러 포대를 꿰뚫곤, 그대로 거칠게 찢으며 고개를 내밀었다.
"푸핫!"
....
거기엔 내 친구가 문제의 발단이 된 과격한 연애 조언서 위에 메모를 올려놓고 있던 참이었다. 이윽고 우린 눈이 마주쳤고, 싸늘하고 무거운 정적이 가라 앉았다. 나는 아마도 그녀에게는 처음 보여주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눈꼬리를 올리며 짧게 말하는 것이다.
"할 말이 있으면 지금 해봐."
그래도 그녀는 내 소중한 친구였기에, 이 모든 사태를 해명할 찬스를 줘보기로 했다. 이걸 수습하려면 아주 진솔된 증언을 해야할 것이다.
**
" ...... "
큰 일 났 다 !
그 네 글자를 마음에 새기게 되는 순간이었다.
진화가 화내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아니, 그게 아니라.
" 난 개인적인 사정으로, 연애서적을 구하려고 아프란시아에 가까운 쪽의 서점으로 갔어. "
" 그리고 이 책을 들고 있다가... "
말하기만 해도 기가 막히네..
하지만 일단 [ 남자 여럿 울려본 언니의 남자 꽉 잡는 법 ]을 들어 보여준다
" 네가 갑자기 도망치기 시작해서 당황했어. "
" 그래서 아무 말이나 하면서 너를 뒤쫓기 시작했고... "
" 이 책을 던졌다가. "
근데 이 책은 던졌는데 왜 모서리조차 구겨지지 않은 거지?
대체 정체가 뭐란 말이야...
" 네가 기절해서... "
" 상처는 없긴 하지만 뭔가, 기절한 사람을 들고 다니기도 그렇고. 더 큰일이라고 곡해될지도 모르고. 그래서 일단 근처에 있는 포대에 담아서 근처 공원에 데려다 놓으려고... "
말로 하니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던건지 모르겠네.. 스트레스인가
" ...죄송합니다! "
아무튼 상황설명은 끝났으니 이제 사과를 했다.
**
"...."
태클 걸 곳이 너무 많아서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도망치는 나를 붙잡으려 한 것 까진 이해가 되었으나, 거기서 전력으로 책을 던지다니...사실 여기까진 당황했다고 치자. 말로 하겠다는데 놀라서 전력으로 뛴 나도 나빴다. 그렇지만...
"자루엔 왜 담은거야......"
이것만은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냥 평범하게 업고 다녔더라도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을텐데, 도대체 왜 사람을 수상쩍은 자루에 담고 다닌단 말인가. 그 쪽이 명백히 큰 일처럼 보일텐데....그녀 답지 않은 기행에 한숨을 내쉬었지만, 일단 더 화내진 않기로 했다. 아마 그 만큼 당황스러웠던...거겠지...
"그럼. 이젠 그 개인적인 사정에 대해서 들어볼까. 그것도 분명 설명 해준다고 했지?"
그녀는 애초에 이 것에 대해서도 오해를 풀겠다고 말했지. 그럼 나에게는 들을 권리가 있을 것이다. 만약 그 개인적인 사정이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었단 것이 밝혀지면, 오늘의 이 해프닝도 충분히 설명되고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난 팔짱을 끼고 다시금 이야기를 기다렸다.
**
" 그-그러게... "
다시 한 번 토마토즙이 묻은 포대를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대체 누구의 토마토즙인진 모르겠으나... 저거에 사람을 담을 생각을 한 나도 참 신기하다, 같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어지는 비주얼이다. 사실 담는 순간도 누가 봤다면 영락없이 사람 한 명 처리(?)하는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 아니, 그건 이 책을 들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한단 거였지... "
순간 이 모든 일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생각나서 머리가 아파왔지만, 이번 일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이게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고 하는 걸까. 그래도 일단 진화는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이야기를 꺼낸다.
" 하아. 누군지는 말할 수 없지만, 나한테 고백한 애가 있어. 근데, 그걸 내가 수락하지도 거절하지도 않는 방법으로 대답해버렸고. 그래서 뭔가 이런 상황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찾아보려고 했는데... 정말, 이 책은 살 생각도 없고 볼 생각도 없었다니까! 이거에 대해선 뭘 오해하던 간에 모두 아니야... "
**
"음...수락하지도 거절하지도 않는 대답이라는게 뭐 였는데?"
일단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생긴 첫 감상은 그거였다. 개인적으론 조금 의외다. 비아는 똑 부러진 성격이니까. 거절이든 동의하든 그 자리에서 답을 내릴거라 생각했다. 사실 그녀에게 고백한 누군가의 정체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호기심도 들었으나, 친구라곤 해도 그러한 것을 캐묻는건 좋은 태도는 아닐 것이다.
다만...
나는 평소 답지 않게 지리멸절한 변명을 하는 그녀를 보며, 이해한다는 듯한 따뜻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조금 기가막혀서 할 말은 하기로했다.
"비아야. 그 책집고 나서 좋았어! 같은 포즈 한거 봤어."
거기에 도대체 무슨 오해의 여지가 있단 말인가.
"고민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연애상담 책을 찾는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나도 그랬었는걸."
저 정도로 과격한 책은 아니었다만, 그래도 가디언넷에서 물어보거나 그랬던 기억이 나서 나는 음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그 애를 유혹하고 싶은거야?"
본인이 수락하지 않았는데, 책은 과감한 유혹의 기술이라...비아는 고백해준 상대를 마음에 들어하는 걸까. 그런데 그렇다면 왜 사귀는데 동의하지 않았던걸까? 나는 순수히 궁금해졌다.
**
" ...한 달 후에 다시 말하라고 그랬어. "
역시 물어보는 건가.
...사실, 그날 그 말에 그렇게 말했던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슬아슬한데 좀만 더 기회를 주자-같은 건 당연히 아니었고. 명확히 여지 없이 거절하는 것도, 마지못해 받아주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선택을 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가...도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진화의 따뜻한 오해를 듣고 나는 마침내 조금 큰 소리를 냈다.
" 그건 드디어 찾았다! 란 거였다고! 제목도 안 보고! "
네가 보지만 않았으면 평범하게 내려놓았을 텐데!
" 오히려 반대지... 유혹이라고 한다면 그애가 나한테 하려고 하는 입장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해야 한단 걸까... "
이 말을 했을 땐 아, 얼굴 빨개졌겠네... 할 만큼, 뜨거워진 게 느껴지고 있었다.
**
"음...그렇구나. 이유가 있었어?"
이런 경우엔 대체로 '우리 친구부터 시작하자' 패턴인 경우가 많다는 모양인데(만화에선 그랬다). 이미 친구이기에 그랬던걸까? 사실 나도 지금의 연인인 춘심이에게 사귀자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땐, 시간을 달라고 말하고 싶었던 감정이 아주 없진 않았음으로. 전혀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녀 입장에서의 감상이 궁금했다. 무엇을 위해서 한달의 유예를 준걸까.
"그래. 그렇지. 물론 그렇겠지..."
그 부분에 대해 너무 추궁하면 그녀를 울릴지도 몰라서, 나는 따스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이면 그러한 것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솔직히 과격적인 책이었다만, 뭐...연애 관련 서적을 찾는 것이 이상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상대가 상당히 적극적인가보네."
유혹이라는 말에 얼굴을 빨갛게 붉히고 부끄러워하는 그녀를 보면, 춘심이의 적극적인 어필에 얼굴을 붉게 물들이던 내가 떠올라 어쩐지 간지러우면서도 흐뭇해진다. 친구사이라고 이런 것 까지 닮을 필요는 없을텐데. 우린 역시 너무 닮았다.
뭐? 이건 일반적으론 여자애들이 취하는 포지션이니, 내가 닮았다는건 어딘가 이상하다고? 내가 여자애 같을 뿐이라고?
...
닥쳐.
**
" ...동정일까. "
그래, 동정이었다.
어쩌면 그 애가, 나한테 '친구'의 일을,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을 잘못 잡은 건 아닐까 걱정되어서.
아니, 걱정이 아니지. 이건 내 편협함이었다.
그래서 한 달 동안, 네가 착각한 게 아니라고 증명해보라는 동시에, 처음부터 잘못된 마음이었다면 아무렇지 않게 대해줄 테니 평범한 친구로 돌아가자고. 그런 비겁한 제안을 했다.
" 진화야. "
심신을 가라앉히고 자칭 170cm의 쓰다듬기 좋은 머리카락을 팔을 뻗어 쓰다듬으면서 따스한 미소를 돌려주었다.
내가 기억하기론 네 영성이 B인 것 같았는데.
좀 더 잘 써봐.
" 적극적이...려나. 그런 쪽으론 경험이 많이 보이긴 하지. "
**
".....동정?"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와 별로 어울리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더더욱 솔직하게 말하자면, 누군가의 고백에 나올만한 감정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했고. 상대방의 진심을 수락하거나 거절할 것은 그녀의 권리라고 생각하지만, 그걸 동정할 권리도 있는걸까. 자칫 잘못하면 상대방에게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나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눈썹을 조금 찌푸리면서도, 어딘가 걱정되는 시선으로 내 친구를 바라보는 것이다.
"....."
상냥하게 머리를 쓰다듬는 그녀에게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무언가 통한 것이겠지. 아니면 서로 통했다고 생각하면서 지독한 오해가 생기고 있거나....다만 이 문제는 별로 심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애초에 난 그녀의 사생활을 여기저기 퍼트릴 생각 같은건 추호도 없으니까.
"으-음....?"
여자 유혹의 경험이 많다고? 조금....바람둥이 같은 애인가? 내 주변 사람중에 그런 애는 지훈이.....아니지. 최근엔 가쉬도 늘었지. 그 둘 밖에 없는데. 비아처럼 성실한 타입은 그런 쪽으로 경험이 많은 타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편견이었나보다. 어쨌거나 방금부터 얼굴을 붉히거나, 연애 서적을 참고로 찾을 정도면 분명 흔들리고 있는 것일테니.
**
" 동정으로라도 함부로 받아줄 순 없었어... 하지만 거절하지도 않았지. "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식으로라도 수용했던 것은 후배에게 약한 성정 탓이었겠지. 작지도 않으면서 장난기는 많고, 스킨십을 좋아하는 후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면을 가졌기에 의구심이 들지라도. 그에 앞서 사랑스럽고, 걱정스러워서, 시름스럽다 했더라. 어쩌면 이게 더 못된 일이었다 할지라도, 나에게 최선은 그랬을 뿐이다.
" 아무튼, 뭔가 오해하고 있다면 전부 오해한 거니깐 오해하지 마. "
오해하는 중인데 뭐가 오해인지를 알 수 있는지나 같은 말이 여러번 반복됐다던가 하는 건 잠시 치워두자
지금 진화가 왠지 140% 오해하고 있단 예감이 든단 말야..
" ...이만 가봐도 될까. 어쨌건 이 책은 환불해야 하고. "
급하게 뒤쫓느라 결제가 되버리긴 했지만... 얼덜결에 사람 머리에 던져버리기까지 했지만...
...엉망이잖아. 이거 환불이 되긴 할까
- 다이안 일상 (199스레~201스레) - 7월 24일
- 【1】
여기는 넓은 상점가 중에서도 좀 한적한 편에 속하는 한 가게 앞. 거기에서, 청월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있는 나는 벽 앞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친구도, 수수께끼의 약속상대도 아닌 바로 이 벽을 이따위로 만들어 놓은 범인!
그랬다. 다림이와의 쇼핑으로 가디언칩 잔고를 떠나보낸 나는 당장 빈곤해지진 않았지만... 아무튼 가디언칩에 일정 이상의 잔고가 남아있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타입이기에 GP를 얻기 위해 의뢰를 받은 것이었다. 그 의뢰는 바로 '요즘 성학교생으로 추정되는 학생이 자꾸 벽에 낙서를 하고 도망친다'는 이 가게 사장님의 의뢰였고, 나는 그 범인을 잡기 위해 여기서 잠복하는 중이었다.
대놓고 있는데 그냥 호위의뢰 맡은 거 아니냐고? 최선을 다해 잠입하고 있는 거다. 아무튼 그렇다. 근데 진짜 이 벽의 그래피티, 그린 사람의 정신상태가 의심될 정도로 기괴한 원색이 뒤섞인 그림이다... 대체 세상에 얼마나 불만을 품었으면 이런 그림을 그리는 걸까. 가게에 들어가려던 사람도 이 그림을 보면 잠시 멈춰서서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
아니, 그래피티 감상할 때가 아니지. 꼭 그런 건 아니더라도 상습범이고, 범행장소에 다시 올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근데 진짜 가게에 손님이 하나도 안오네...
그렇게 봄바람을 맞으며 좀 기다리다가, 문득 내 눈에 키가 큰 한 명의 남자가 보였다! 왠지 벽을 부수러 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아니, 이게 아니라. 썩 말끔하게 생기긴 했지만 혹시 모른다, 저 속에 악질 그래피티 아티스트의 혼이 들어 있을지. 나는 그 사람을 —좀 부담스럽다 싶을 만큼—빤히 쳐다보면서 경계하기 시작했다.
【2】
주말이다. 늘 멀리 있는 것 같으면서도 항상 1초도 늦는 법이 없는 주말은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기숙사 방에만 틀어박혀 있자니 숨이 막힐 지경이라 오랜만에 주말을 맞아 상점가로 나왔다.
사람이 많은 곳도 좋아하고 없는 건 조용한데로 좋아하지만 이 더운 날씨에 인파가 붐비는 곳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기에. 그는 한적한 상점가로 발길을 향해 가던 중이였는데..
" 오.. "
그는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래피티에 온 정신을 빼앗겼다. 영국에도 후드에 비니를 쓰고 이상한 패턴의 두건으로 마스크를 만들어 쓰던 형들이나 이런 걸 깨나 그렸더랬지. 이걸 먼 타국에 와서 볼 줄이야..
근데, 이 여자는 왜 날 노려보는 눈치지? 나 좋아하나?
【3】
나는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손님1─너무한 호칭이라고 생각은 있다─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 무슨 일로 오셨나요? "
근-엄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장승 같은 느낌의 진지함으로 말했다. 이것이 K-문지기다...!!
그렇게 쳐다보고 있던 것도 잠시. 갑자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려오자마자 과할 만큼 빠르게 그쪽을 돌아보고, 이내 수풀에서 애옹거리면서 나오는 작은 고양이였단 것에 무안해져서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 크흠... 별일은 아니고, 요즘 이 주변에...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
낙서를 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그걸 잡으려고 서 있다- 라고 말하려던 것도 잠시. 나는 말을 끊고 다시 근엄하게 벽에 기대서 팔짱을 꼈다. 그야 이 사람도 용의자 중 하나니까.
【4】
" 아뇨 그냥.. "
손사래를 치며 머쓱하게 웃었다. 역시 K-응대는 너무 부담스럽다니까.. 바라보는 시선이며 너무 진지한 말투까지. 그리고 너무 예민해 이 사람. 고양이도 경계하듯이 보고 있어. 응대가 아니라 K-경계야.
" 아~ 네~ "
뭔가 엄청 할 말이 있어보였지만 하지 않는 걸 보니 수상함은 2배다.
" 그나저나 이 낙서 조금 심오하지 않나요? 보고 있자니 멋있네요. 반항,자유 그런게 느껴지고. "
【5】
음...
자연스럽게 넘기면서 용건에 대해선 말하지 않고 있다...라.
그냥 내 태도가 부담스러워서 그렇다 vs 범인이다! 두 개의 가능성이 있다. 놀랍게도 아직은 앞쪽이 앞선다... 왜냐하면 방금 내가 생각하기에도 좀 많이 진지했거든.
왠지 지금 서로 수상해하는 것 같다고? 기분탓이다 괴전파.
" 확실히 무언가 느껴지긴 하는 것 같네요... "
수상함이 느껴진다.
이 낙서에서 감명을 느끼다니. 예술감각은 다른 편이라지만...
" 마치 이걸 그린 사람의 혼과 정신이 담겨 있는 느낌이랄까?
범인의 혼란한 정신상태 말이다.
일단 반응을 보기 위해 칭찬같이 말해봤다.
" 아 맞다, 가게 오신 분인데 잡고 있었네요. 들어가실래요? "
참고로 이 가게는 잡화점같은 느낌의 이것저것 팔고 있는 가게다...
수상할 정도로 손님이 없단 거 말고는 특별할 것도 없다.
일단 사장님 앞으로 데려가보면 여기에 낙서를 한다는 그 성학교생과 닮은 점이 있는지 살펴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가만히 서 있기 심심한 거 아니냐고? 아니다. 이건 일이다.
(만약 다이안이 가게에 들어갔다면 은근슬쩍 따라 들어가서 카운터 보고 있는 사장님과 수상한 눈빛교환을 했을 것이다. 대충 '갸가 갸가?' '아녀유 몰라유'같은 뜻이지만 아무튼 수상하게.)
【6】
" 정확합니다. 그린 사람의 혼과 정신(영혼)이 담겨 있어요. 억압된 자유를 위해서. "
" 아 참 , 외람된 말이지만 저 성학교에 다니고 있거든요. 자유란 theme가 굉장히 강렬하죠. "
이런 그래피티에 감명을 느끼다니. 이 사람도 예술감각이 굉장한 것 같다.
그녀도 런던이나 맨체스터 , 에든버러 같은 곳을 와봤을까. 우중충한 날씨에 그려진 그래피티는 최고다.
" 네..네?? "
가게에 손님이 없는 휑한 잡화점이라니. 너무 수상하다. 아, 강매인가?! 그래 강매다. 나에게 어울려주는 척 공감대를 형성하고 나에게 강매를 강요하는거다.
손님 이해 못하셨나본데. 물건 안 사면 여기서 못 나가신다니까? 같은 K-가게에 내가 들려버린거다. 저 낙서도 날 꾀기 위해 일부러 말을 걸기 편한 일종의 장치.
" 전 이걸 좀 더.. "
【7】
" !! "
애써 놀란 기색을 감추려 하지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난 범인의 정체에 더 가까이 다가간 것일지도 모른다.
억압된 자유에서 해방되는 것... 성학교에 재학중인 학생.. 굳이 말에 영어를 섞어쓰는것
이 사람 「힙」하다...
" 과연, 성학교는 그런 느낌인 거군요.. "
게이트에서 술담을 한다던가 하는 악성 소문이 떠돌고 있긴 했지만 그래피티가 성행한다니
어쩌면 여기 말고 다른 곳에도 피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 어허. 어허. 잠깐만 물건 좀 보고 가세요~ "
뭔가 찔리는 듯한 모습에 활짝 웃으면서 이름 모를 성학교생을 가볍게 밀기 시작한다. 신체 A에 달하는 스텟을 의념으로 강화해가면서 '가볍게'라니 이 얼마나 기만인가 싶지만.
일단 잡화점 주인분에게 창문 너머로 가볍게 손짓한다. 잡화점 주인분은 뭔가 심상찮은 표정이다. 설마, 인상착의와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는 것인가. 어쨌든 사장님은 범인이 나오면 잡을 수 있게 미리 준비해둔 듯한 못이 박힌 방망이를 꺼내며...
?
...뭐지. 그런 걸 꺼낸 거 같았는데 잘못 봤나. 어느새 사장님의 손이 빈손이다.
아무튼 이 수상할 정도로 범인의 특징과 흡사한 성학교생을 끌고.. 아니 '권유'해서 어떻게든 가게 안으로 데려가고 IYAGI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좋겠다. 그렇게 나는 게임에 흔히 돌멩이 밀어서 길을 만들어 지나가는 퍼즐 맵을 하는 것처럼 수상할 정도로 수상한 성학교생을 밀었다..
【8】
이 여자.. 괴력이..! 게이트의 소행인가!
" 으아아악!! "
" 여기 무슨 물건이 있다 그래요!! "
다 똑같은 잡화점,드럭스토어 아닙니까? 전 여기서 모xx구를 사 마시는 음료점이라고밖에 생각 할 수가 없어요.
그나저나 당신 뭐야. 뭔데 못 박힌 스파이크를 들었다가 놓는거야. 빈 손인 척 하지마. 나 다 봤어 이 사람들아.
인신매매 당하는 거 아니야? 그는 두려움에 의념을 반 쯤 발현시켰다.
" 그래피티에 관심 있는거 아니였어요? "
여차저차해서 잡화점까지 끌려오고 그녀에게 신경질적으로 묻는다. 배신 당한 느낌이 너무나도 컸다.
【9】
게이트가 아냐! 의념의 힘이다!
" 한 번 보시면 아실지도 모르잖아요! 한 번 보고만 갑시다!! "
사실 아까 살짝 보긴 봤는데 딱히 볼만한 물건은 없다.. 그래도 일단 상대를 붙들어 놓는 게 우선이었다.
그것도 잠시.. 상대가 의념을 쓰려고 하자, 나는 소극적으로─라기엔 강압적이었지만─ 밀던 것을 멈추고 상대를 붙잡으려고 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잡화점까지 데려와서─자기 신속 랭크 이하의 신속을 가진 상대에게 우위/압도를 가지는 황금비 특성상 다이안이 그냥 도망쳤으면 못 잡았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지만, 그걸 알지는 못하고 있었다─ 나는 상황설명을 시작하기로 했다.
" 관심이 없다곤... 못하지만. 지금 관심을 가진 쪽은 이 가게 벽에 낙서를 한 사람을 잡는 쪽이라서요. "
그래피티에 관심 있는 거 아니었나요... 라니, 범인이 할 만한 말이 아닌가. 범행장소로 돌아와서 자신의 그래피티에 관심을 가져준 사람을 발견했다가 가게로 오게 되서 몹시 당황한 범인 성학교생. 있을 만한 이야기다. 범인은 엄청 빠르다곤 하지만, 보통 사장님이 없을 때 슬쩍 하고 발견되기 직전에 도망치는 식이었다고 하니...
" 잠깐, 자네.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아닌가? "
" 저렇게 훌륭한 안목을 가진 모범적인 학생을 두고 뭘 하는 중인가 지금? "
그리고 들린 사장님의 목소리와 이번엔 정말로, 어두침침한 가게의 희미한 조명 빛을 받아 번쩍이는 못이 박힌 스파이크를 느슨하게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라 사장님...? 그거 뭐에요?? 하고 무수한 물음표가 쏟아진다...
【10】
" 낙서를 한 사람을 찾는다고요? "
정확히 머리가 굴러돌아가기 시작한다. 이건 유도심문이고 함정수사에 당한 처지란걸. 순식간에 SNS에서 본 얘기가 지나간다. 즉결재판 즉결사형으로 재판 후 1시간만에 사형 당한 꼬마아이 얘기. 난 내 살 궁리를 찾아야했다.
" 전 낙서 안 했어요! 물론 제가 보기에도 상황이 얼추 맞아떨어지고 했다고 본인 입으로 말하고 다니는 장본인도 없겠지만. "
" 진짜로 아니라구요! "
빛나는 스파이크를 보고야 말았다.
" 그쵸 사장님? 진짜 전 그냥 안목이 좋은 지나가는 행인이였을 뿐이였다구요. "
믿어주세요 제발. 여차하면 의념을 써서 도망갈 생각이였지만 그렇다면 내 몽타쥬와 성학교를 포함한 인적사항이 널리 퍼져 삽시간에 난 낙서를 하고 튄 19살 영국인 성학교 학생으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
" 제..제대로 입장을 얘기해주시죠 사장님..! "
【11】
내가 사장님의 말을 듣고 붙잡고 있던 상대를 놓고, 상대가 제대로 입장을 얘기해 달라는 말을 하자마자. 사장님이 줄을 잡아당겨 카운터 위의 조명을 켰다. 그리고 역광이 비치는 채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짤 참조)
aaaaaa " 뭔가 오해를 한 건진 모르겠지만, 저 벽에 그려져 있는 화려한...그림은, 내 작품일세. 절대 낙서가 아니야. "
사장님의 그 말에 나는 입을 벌렸다. 아니... 저게 사장님이 그리신 거였다고요...? 자세히 보면 뭔가 현대미술적인 미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한 것 같기도라기엔 그냥 원색 섞인 걸로밖에 안 보이는 그래피티가...?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aaaaaa " 내가 낙서라고 했던 건 저 작품에 매번 골탕을 먹이고 가는 저 졸라맨일세! "
사장님은 핸드폰에 찍혀 있는 사진을 한 장 보여주었다. 아까 벽에서 봤던 낙...그래피티와 비슷하지만 묘하게 다른 그래피티 속에 정말 교묘하게 숨겨졌지만 한 번 알아차리고 나니 굉장히 거슬리는 졸라맨이 있었다...!! 서, 설마 낙서범이라는 게 이거?!
aaaaaa " 그 졸라맨을 그린 예술도 모르는 고얀 놈은 틀림없이 성학교생이겠다고 생각한 참이었네. 하지만, 저 청년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꾸었지. 성학교에도 자유의 혼을 알아보는, 훌륭하기 그지없던 학생이 있었던 게야. 자네가 신호했을 땐 정말 저 청년을 의심하는 게 맞나 싶었지만, 이제 보니까 확실히 그러지 않는 편이 좋았겠단 생각밖에 들지 않는군. "
여기까지 모두 얘기하는 데 6초. 내용 전달력도 매우 뛰어났다.
뭐... 뭐지...? 이 사장님은 신속 S인가?
아무튼 뭔가 감정이 북받치는 듯 벽을 향해 스파이크를 몇 번 내리찍는 사장님. 쾅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벽이 파이고 먼지와 페인트 묻은 돌덩이들이 떨어져내렸다. 사... 사장님... 무너지겠어요... 그만...! 그러다 사장님이 마침내 움푹 패인 벽 위로 스파이크를 내던지고 쭉 손을 뻗어 나를 가리키다가 그 손끝을 상대에게 향했다.
aaaaaa " 이렇게 된 거, 저런 예술의 예도 모르는 몰지각한 학생에게 내 예술작품을 지키기 위한 의뢰를 맡길 순 없네! 자네가 낙서범을 잡아 주지 않겠나? "
히익.
사장님이 카운터에서 불쑥-하고... 뭔가 공포영화에서 텔레비전에서 기어나오는 유령처럼...! 상체를 내밀고 있다...!
아, 뭔가 참으려고 하는 것 같지만 안 참아지는 것처럼 입꼬리가 실룩실룩... 사실 멋지다고 한 말이 꽤 듣기 좋았던 걸까...? 왠지 기분나빠...
아무튼, 의뢰자가 의뢰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는 상황... 나는 용의자(舊)-성학교생이 있는 쪽을 보면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폈다.
【12】
" 어라. "
형형색색한 색깔을 오히려 담백하고 절제되게 그려놓은 그래피티. 역시 이 사장님은 내 편이였고 이 여자는 그저 예술의 예, ㅇ자도 모르는 여자였던건가? 하.. 이래서 나란 남자는. 아니, 아티스트는.
" 크윽.. 감히 이런 아트의 작품에 졸라맨을 그려넣을수가.. "
눈을 질끈 감으며 본인이 더욱 더 분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장님 사실은 좋은 분이였구나.
내 이미지는 순식간에 반전되었달까. 길거리의 소박한 예술의 가치도 알아 볼 수 있는 선구와 혜안을 가진 ' 아프란시아 성학교 ' 의 아티스트로. 본인의 생각이지만.
" 이제 됐죠? 이제부터 제가 사장님의 의뢰인이 될게요! "
기운만땅이 되어 흥분한 다이안, 사장님의 참을 수 없는 광대뼈승천과 기분나쁜 입꼬리 움직임에 본인도 상응하는 의뢰수락을 하려던 찰나였다.
【13】
" ...아니. 저기... "
아니... 저게 아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 있단 거야? 하지만 분한 표정의 사장님과 눈을 질끈 감으며 그 분노에 공감하는 전 용의자 사이에 내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되고...
aaaaaa " 그래... 그럼, 의뢰를...! "
하고 졸지에 GP를 위해 구한 의뢰가 취소되려는 찰나, 창밖에서 급하게 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설마─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진범이 나타났던 건가!
창문까지 달려가 살펴보자 각도상으로 벽은 보이지 않지만 뚜껑 따인 파란 매직이 막 바닥에 떨어져 흙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아뿔싸!
당했다...!
▶ 고얀 놈의 낙서쟁이
▶ 일상 의뢰(일상의 설정일 뿐, 실제 진행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 망할 놈의 낙서쟁이가 내 가게 앞에 낙서를 하고 갔다네. 분명 성학교생이겠지! 빠른 시일 내로 체포하지 않으면 내 머리가 다 빠지고 말겠어!
▶ 보상 : ----GP
" 번화가로 가서 사람들 사이에 섞이면 잡을 수 없어요! 어서 쫓아야 해요! "
삑 하는 소리와 함께 가디언칩의 의뢰 창이 공유 화면으로 바뀌었다. 일단... 파티인 셈 치고 같이 쫓아가기로 할까. 가디언칩이 심긴 손목을 그에게 내밀며, 달릴 준비를 시작했다. (내민 손목에 손목을 맞댔다면 [온사비아 / Salvia](본명/가디언넷 아이디)라는 이름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14】
" 졸라맨! 졸라빌런이 튀고있어! "
한국짬밥4년이라 이런 말도 할줄 안다. 그나저나 우리가 이렇게 한가하게 아트니 예술이니 하는 순간 진범이 현장을 또다시 급습한 것 같다.
다이안은 급한대로 그녀의 손목에 자신의 손목을 맞대었고 의뢰를 공유 받았다. 같은 파티원이 되버린건가.
" 빨리 뛰어가자. "
이젠 산책의 짬밥도 보여줘야할때다. 수년간 단련된 산책과 경보와 달리기 실력을 여기서 써먹을때.
그나저나 성학교 학생이면.. 내가 알만한 학생일수도 있을까. 범인이 잡히면 그건 그거대로 아이러니하지만 지금은 신경쓸때가 아닌 것 같다.
【15】
" 같은 성학교 학생인데 뭐 아는 거 없어요? "
터무니없는 소리란 건 알지만(동북아시아 각지에서 몰려든 학생이 어디 한둘인가. 청월도 아니고 가장 인원이 많은 아프란시아인데) 일단 말을 뱉어본다. 졸라빌런... 이라는 뭔가 욕 같은 별명을 보면 모르는 게 맞아 보이지만. 낙서(?) 쪽으로는 뭔가 알아야 하는 거 아니야?!
다행히 진범은 아직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았다. 빨간 후드티에 회색으로 뾰족한 귀가 붙어 있고 뒤통수에 ('ω')같은 무해한 그림이 흰 실로 되어 있는... 졸라맨 낙서범 주제에 왜 저렇게 귀여운 걸 입고 다니는 거야.
" 일단 덮치죠! "
의념으로 신속과 건강을 강화하면서 진범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교복을 입었으면 더러워질 일도 없었을 텐데, 잠입한다고 사복을 입고 나와서 아쉽다...
.dice 1 10. = 7
【16】
" 저 아웃사이더라 친구도 없는데 무슨..! "
눈물이 주륵 흘러나오려나 싶었지만 어림도 없지. 성학교생이 깍은 이미지를 성학교생이 다시 올려놔야한다. 그래야 원점이니까. 이걸 다른 학교 학생이 의뢰를 처리한다면 학교위신이 말이 안 되게 되버려.
저 귀여운 옷을 둘러입은 예술무뢰한을 얼른 잡아야만 한다. 본인도 신속의 최대한을 끌어올려 전력질주해 따라잡곤 몸을 던져 바디태클을 걸어 제압하려 했다.
【17】
" ... 괜찮아요! 곧 만들 수 있을 거에요! "
라고 말하곤 있지만 뭔가 늦어버린 격려를 해버린 기분은 왤까
뭔가 반짝 했던 거 같은 느낌이..
" 뭐야 이건! "
내가 본 가장 빠른 사람... 청천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뛰쳐나간 상대가 바디태클을 걸고 진범은 허망하게 내동댕이쳐졌다. 뒤늦게 상황파악을 하고 있는 거 같지만 도망갈 수 없었다!
" 으아악!! 미친 고양이다 사람 살려! "
왜냐하면 아까 나를 과민반응하게 했던 그 고양이가, 갑자기 수풀 속에서 나타나 진범의 얼굴에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진범은 몸부림치며 고양이를 떼어 내려 했고, 마침내 떼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 실드차지-! "
후드도 벗겨지고 깨끗하게 드러난 안면에, 상태창에 탑재된 인벤토리에 탑재된 내 영원한 친구-넓데데군(방패)을 던져버렸기 때문이다. (짤-자료화면)
아무튼 진범을 잡았다면...
" 이제 저거 가지고 돌아가죠. "
하고 쓰러져 있는 진범을 가리키며 말했을 것이다. 또 도망치면 안 되니까 꽉 붙들고, 혹시 그렇게 되면 수배해서 전단지 쫙 뿌리게 얼굴을 캡처한다. 주머니 속에 있는 파란 매직 뚜껑도 발견. 이걸 손에 쥐어주고 얼굴도 나오게 찰칵...
됐다. 이제 꽉 붙들어서 데려가야지.
근데 몇 시간 동안 서 있었는데 오해만 하고 보상이 없게 됐네... 어쩔 수 없지만. 가게에 돌아가면 제대로 사과 해야겠다.
【18】
" 조용히 해!! "
범인을 잡는데 집중하자. 근데.. 마음이 쓰리다. 친구랑 애인이 다는 아니라지만 내 나이대는 그게 다라고.
" 가만히 있어! "
본인의 온 몸을 쭉 빼 절대 밀어낼 수 없게 만든 뒤 고양이의 활약. 그리고 넓데데? 뭐 이름이 그래. 네이밍 센스 구려. 순식간에 옆으로 굴러 범인의 몸부림을 피하고 방패를 적중시키게 도와주었다.
" 죽는게 아닐까? "
그런걸 얼굴에 실드돌격! 같은 말을 하면서 던져버리면 말이야. 의념을 써도 죽는다고?
" 그나저나 온사비아 , Salvia 라고 하는구나, 너. "
【19】
넓데데의 네이밍 센스가 구리다고?
당신은 캡틴을 모욕했다. 죽어라.
...라는 괴전파가 어디서 들려오는 느낌이었다.
" 이 정도론 서포터도 안 죽어요. "
건강 D정도의 서포터라면 또 모르겠지만...
아카데미에 있는 이상 아무리 낮아도 C정돈 되겠지*
방패 한방 세게 맞았다고 안죽는다. 의념발화도 안했고 신체강화도 안했으니까.
" 그렇죠. 성이 온, 이름이 사비아. 이래뵈도 신 한국식 이름이랍니다. Salvia는 가디언넷 닉네임이고... "
그러고보니 상대 이름은 못봤다...
당신은? 이라는 느낌으로 상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가게에 돌아갔을 땐 사장님이 방긋 웃으면서 맞아줬을 것이다. ─아니, 방긋이라고 해도 좀 썩소 같은 느낌이 들긴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순수한 웃음이다─)
*보통 아카데미 생도의 스텟은 A 하나 C 여럿 or B에 C 여럿 등. 레스캐들의 스텟인 SABB나 AAAA 정도면 유망주 취급.
【20】
뭐가 됐든 넓데데란 네이밍센스 구려. 캡틴 네이밍 센스 구려.
이건 다이안의 생각이고 다이안주의 생각과는 다름을 알려드립니다.
" 그렇다곤 해도 낙서범한텐 너무 과잉진압이 아닐까. "
얄미워서 꿀밤 500배를 날려버리고 싶긴 하지만 얼굴가격은 좀 심한거 같다.
" 아~ 날 낙서범 취급한 사람한테 알려주기 싫은걸~ "
그는 곁눈질로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21】
캡틴 여기에요!!
" 아무리 성학교생이라도 학교에 앞서 가디언 후보생이니까요. 부적절한 행위를 해서 도망치고 잡아야 할 빌미를 제공한 쪽이 잘못 아닐까요? "
이렇게 말하고 있긴 하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긴 한다.
음... 좀 생각 없이 던졌나. 아니, 이런 상황에서 무기 안 쓰고 맨손으로 제압이란 것도 어렵잖아.
재빨리 도망쳐버리면 어떻게 하려고..
" ...그 점은 죄송합니다. "
오해했던 걸 생각하니 새삼 볼이 빨개진다.
─의뢰주의 그래피티와 낙서를 오해하고 있었긴 했지만─아무튼 그땐 낙서라고 생각하고 있던 걸 두둔한다던가, 성학교생이라고 당당히 밝힌다던가. 아직까지도 낙서범과 이 사람, 그리고 의뢰를 안 받았으면 오지도 않았을 나 빼고 아무도 안 오는 곳에 갑자기 왔다던가. 미안한 건 미안한 거지만 이 사람은 정말 수상했다!
하지만 결국 아니었고, 의뢰주에겐 의뢰 취소를 받을 뻔했고─사실상 진범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바로 취소되었을 거다─, 의심했던 사람이랑 협력해서 진범을 잡은 꼴이라니.
" 그치만, 사과의 의미로 나중에 뭐라도 산다던가... 하고 보상을 해드리고 싶은데. 이름을 모르면 할 수 없는걸요? "
뭐 받는 거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아까 손목 맞대면서 연락처는 교환됐을 거 같으니 가디언칩을 확인하면 이름은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상대가 알려주지 않는데 내가 그렇게 이름을 봐버리는 건 비겁한 일이다.
그러니 그건, 정식으로 소개를 들은 후로.
한 번 깊게 고개를 숙였다.
【22】
" 그렇게 얘기하면 또 그렇네. "
" 에라이! "
상대는 끽해봐야 나랑 동갑,동급생. 높은 확률로 나보다 후배일테니.. 그는 부끄러운줄 알라며 낙서범의 머리를 굉장히 빠른 속도로 후려갈겼다. 감정을 실어서 한번 더.
" 장난이야. 나였어도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였을거야. "
" 다이안이라고 해. 다이안 맥스웰. 아이디는 house coffe. "
수상하긴 했지. 범인은 범행장소에 다시 온다고 하기도 하고 성학교라는 공통점에 그 그래피티에 눈독들이는것도. 아무튼 결과만 좋았다면 OK입니다. 좋은게 좋은거라고 하지 아니하던가.
" 당신은 어디 학교학생? "
【23】
" 그렇게 빨리 설득되어도 되는 거에요? "
라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태클을 걸었다.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꾹 닫고 있던 낙서범이 " 악. " 하고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상대를 불만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다가 한 대 더 맞고 눈을 까는 모습이었다. 성학교의 선후배 문화 이래서 안 된다. ─선후배라고 확정된 건 아니지만 아무리 봐도 낙서범은 1학년 정도로 보인다. 그 전부터 범행(?)을 시작했다면 잡혀도 진작에 잡혔을 테니 당연한 일이지만...─
" 이해해주셔서 고마워요. "
하고 멋쩍게 웃었다. 이름이 다이안이었구나. 가디언넷 아이디까지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는 건... 조용히 입을 닫았다. 알아서 나쁠 것도 없으니.
" 청월이에요. 오늘은 사복을 입고 왔지만요. "
이유는 바로 잠입.
잠도 입도 아니었다는 건 제쳐놓자..
【24】
" 맞는 말이니까. "
그는 하찮게 낙서범을 노려보다 시선을 돌렸다. 이런 애도 가디언 후보생이라니.
" 잠복수사 , 유도심문은 경찰들도 하면 안 되는거 아니야? "
이거 이상하네. 가디언의 범주인가? 의뢰라곤 하지만 나 같은 억울한 사람이 늘어난다고. 잠복수사까진 이해해도 말이지. 그나저나 뭘 얻어먹을까. 만년필 사달라고 할까.
" 하여튼 나중에 봐 청월학생. 온사비아, 라고 했던가. 비싼거 받을테니까 말이지. "
손을 흔들며 미련도 없다는 듯이 뒤를돌아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25】
" 범인을 잡기 위해서... 니까요? "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 네에네에. 안녕히 가세요. "
라고 보낸지 몇초후
아니 이사람 진짜 범인만 잡고 갔잖아..
상황을 깨닫고 망설임없이 도망치려는 낙서범의 목... 이 아니라 옷을 꽉 붙잡으며 어이없는 눈으로 다이안이 미련없이 떠나간 곳을 쳐다보다가..
..씁 어쩔수없지.
나는 사장님한테 가서 낙서범을 반납하고 의뢰를 완수했다.
적자뿐이 된 것 같은 의뢰였다... 고생만 하고...
그래도 새로운 인연을 얻었단 거면 그리 나쁜 건 아닐까? 얼마나 비싼걸 요구할진 알 수 없지만...
" ...아. "
그리고 조금 지난 후 깨달은 사실.
의뢰를 공유설정을 해서 그런가. 인당 몇gp를 주는 의뢰가 아니어서 그런지 의뢰금액이 반절 가디언칩에 들어와있었다.
다음에 만났을 때 얘기하고 돌려줘야겠다...
- 청천 일상[1] (203스레~208스레) - 7월 30일
- 【1】
생각이 많을 땐 아무 생각 없이 달리는 게 도움이 된다. 일반인이 그렇듯 지치거나 하진 않지만, 다른 행동에 집중하는 것 자체가 꽤 마음을 안정시켜준다.
" 아. "
하지만 오늘따라 집중이 잘 안 되어서, 달리고 있던 주택가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을 때. 푸르게만 보이는 형체가 앞을 지났다. 눈에 의념을 집중해 지그시 쳐다보면 또렷하게 보이는 사람, 아는 사람이었다.
" 청천아~ "
놀라서 헛디디지는 않을 정도의 성량으로, 하지만 확실히 들릴 만하게. 손을 흔들며 한 말은 제대로 들렸을까?
【2】
봄날 저녁, 청천은 집 사이사이로 난 골목길을 달립니다. 그도 마찬가지로 아무 생각 없이 달리는 중이었지요. 그렇지만 아무 생각 없이 달리다보면 어느 새,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르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지금처럼요.
의념 각성자가 되어서 좋았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밤중에 골목길을 달리고 있어도 일반인들이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혹시나 누군가가 건드리더라도 본인 쪽에서 대응할 방법이 전보다 많았다는 것.
청천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멈춰서서 뒤를 돌아봅니다. 그 눈빛은 순간적으로 경계심을 담고 있었지만...그가 목소리의 주인을 인식하자마자 그런 눈빛은 어느새 사라져 반가운 눈웃음으로 변해 있습니다.
"아, 비아 선배님!"
주택가니까 너무 크지 않은 적당한 성량으로 외치면서, 청천은 팔을 흔들어보입니다.
"안녕하세요."
【3】
" 오늘도 달리고 있었구나. 정말, 열심이네. "
보자마자 미소지어 주는 귀여운 후배를 향해 웃었다. 그리고 슬슬 흔들던 팔을 내린다. 과연 계속 흔들고 있으면 청천이도 팔을 계속 흔들까 라는 호기심이 생겼던 건 비밀이지만.
" 잘 지냈어? 어디 다친 데는 없고? "
이건 의례적인 인사.
" 내가 즐거운 시간을 방해한 건 아닐지 몰라. "
생각해보니 달리기 중이었는데 멈춰세웠구나. 딱히 용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음, 오랜만에 얼굴 봐서 반가운 느낌이 들어서 그런가...
【4】
"길도 미리미리 익혀둘 겸 달리는 거죠. 여기 오기 전부터 해오던 일과이기도 하답니다...이제 봐둘 만한 곳은 다 봐둔 것 같지만요.?"
청천은 웃으면서 답합니다. 학원섬에 온 지는 이제, 한 달이 좀 넘어서 두 달째니까요.
잘 지냈냐고 묻는 말에는...잠시 멈칫하지만, 이내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어보입니다.
"...그럼요."
최근에 의뢰 갔다가 열망자들의 합동 마도에 죽을 뻔했다는 건...일단은 비밀입니다. 일단은요.
"아뇨, 괜찮습니다. 딱히 방해는 아니었어요. 즐거운 시간...이라기에도 애매하고?"
오히려 비아를 만난 것이 청천의 입장에서 조금 더 즐거운 시간이겠지요. 추억의 일부를 같이 한 사람이 멀쩡히 살아있다는 건 언제나 반가운 일이니까요.
【5】
" 음. 길은 기계적으로 외우는 것보다도 직접 다녀보는 게 빠르지. 이제 아카데미생 다 됐구나? "
하고 살짝 또 웃는다. 생각해보니, 올해 시간은 참 빨리도 지나가는 것 같은걸...
" ...으응, 다행이네. 나도 잘 지내고 있었어. 성학교에도 별 일 없지? "
뭐, 잘 지내냐느니 다친 데 없냐느니 하는 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말이다. 애초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순 없으니까... 네가 괜찮다면야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학교까지 묻는 이유? 으음으으음.
" 하긴, 두 달이나 봤으면 슬슬 길 보기가 지루할 만도 하네. 평범한 거리보단 이런저런 일이 많이 일어나서 소소하게 보는 재미가 있긴 하지만 말이지. "
예를 들면...
" 얼마 전에 사악한 자판기 개조범-제노시아 학생을 무찌른 마법...? 소녀...? 라던가. "
마법도 아니고 소녀도 아니었지만.
...정말 뭐였을까 그건.
[ adelt ]......
【6】
"별일...일단은요? 저는 신입생이라 자세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청천은 아직 새로운 교감선생님을 만나보지 못했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어떤 사람일까요.
"아, 그 동영상 저도 봤습니다. 가디언 아카데미가, 그것도 각자 개성이 강한 학교가 세 곳이나 한 섬에 붙어있으니 조용할 날이 없더군요."
비아의 말에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기분탓일까 싶었지만 확신이 없어 말을 흐립니다. 한 명은 사실 청천이 확실하게 아는 사람이고, 다른 한 명도 같은 학교 신입생이라 청천이 오며가며 봤을 법한 사람이었지만....비아가 올렸던 영상은 조금 떨어져서 촬영된 영상이었고, 청천은 그걸 굳이 의념까지 써보며 분석해보진 않았으니까요.
【7】
" 그런가... "
하긴, 뭔가 일어났다면 알아도 고학년이 알 테니까. 라고 소문 같은 건 잘 모르는 3학년인 내가 생각하고 있으니 참 이상하네.
그러고보니 그 성학교의 낙서범은 뭐 하고 있을까. 낙서한 가게 사장님한테 잡혀갔으니까 혼나긴 했겠지만. 음, 스파이크로 맞았을지도.
" 그렇다니깐. 정말... 성학교나 제노시아의 선도부는 바쁠 거라고 생각해. 그래도 유명인사가 하나둘 나오는 걸 보면 바빠서 놓치는 걸까, 다 잡고도 남은 게 그 정도인 걸까... "
자판기 제작자들은 솔직히 그냥 안 잡는 거 같기도 하고... 사실 선도부 중에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조금 충격이다.
" ...본 적 있는 사람들이야? "
청천이는 성실한 이미지인데 그런(?) 사람들이랑 연관이 있다니 조금 상상되지가 않는다. —사실 다림이랑도 친한 후배긴 하지만 안 그래도 좀 멀었는데 찍으면서 보려다 보니 아예 못 본 편이다.—
" ...됐다. 모르는 사람 일 가지고 왈가왈부할 게 아니니깐. 만난 김에 음료수라도 사줄 테니까, 잠깐 쉴래? "
【8】
"...선도부가 통제하기엔 학생들이 너무 활발한 게 아닐까요."
청천은 잠깐 쓴웃음을 짓습니다. 그냥 일반인 학생들도 아니고, 전부 하나같이 의념을 각성한 가디언 후보생들이니까요.
"확실하진 않습니다."
본 적 있는 사람들이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래도 음료수를 사주겠다는 제안에는 곧 기쁘게 웃었지만요.
"좋아요! 꼭 안 사주셔도 되지만요. 최근에 기여도를 GP로 변환해서 여유금이 좀 있답니다."
그러고보니 근처에 편의점이나 자판기가 있던가요? 주변을 휘휘 둘러봅니다.
【9】
" 그야말로 최강의 말썽꾸러기들이구나. "
나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인원확충이라던가 하지 않으려나.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청천이가 선도부에 들어가면 어떨지 상상해본다. 빨라서 빨리 와서 잘 잡을 텐데. 그냥 해 보는 생각.
" 성학교 학생이라서 지나가다 보기라도 한 걸까나. "
하고 확실하진 않다는 말에 대답한다.
" 음료수쯤이야 뭐. 근데 기여도는 어디서 얻은 거야? 의뢰? "
국가 기여도가 걸린 의뢰도 많지 않을텐데. 주변을 휘휘 돌아보는 행동을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적당히 자판기를 찾아본다. 하지만 맥콜만 있는 자판기라던가 민트초코우유만 있는 자판기라던가 이상한 것들만 당장 눈에 띈다. 이 주택가엔 이미 제노시안의 마수가...?
" 으음. 좀만 더 찾아보다 적당한 자판기가 없으면 상점가로 갈까. "
【10】
지나가다 보기라도 한 걸까, 라는 말에 청천은 잘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습니다.
"기여도는 아마도 태양왕국 게이트 때일 겁니다. 저번에 말씀드렸던 대로 학생 여섯에 선생님 한 분과 같이 일류무사 하나를 상대했었죠. 상대가 말이 무사지 반쯤 사령술사였지만 말입니다. 끝나고 나서 보니까 기여도가 지급되어 있더라고요."
기여도에 대한 설명을 담담하게 하는 청천이었지만...속으로는 그 동안 만났던 적들을 떠올리며 강해져야지, 하는 다짐을 되새기는 그였습니다.
그러다 청천 또한 적당한 자판기...라기보다는 뭔가 이상한 자판기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게 좋겠네요. 곧장 상점가로 가는 것도...나쁘지 않을지도요..."
느낌이 조-금 좋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냥 자판기도 잘 없는 곳에 굳이 이런 자판기들이 놓여 있는 것인지...
청천은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합니다.
【11】
" 아아... 그때. "
" 입학하자마자 고생이었네, 정말. 흔히 있는 일은 아닌데. "
흔히 일어나진 않는 비극.
그때,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더라. 잘 기억나진 않지만, 적들을 상대하고 있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나도 싸웠다면 조금이라도 뭔갈 바꿔봤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너무 늦은 일이었겠지.
" ...응. 이러다 뭔가 출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
어느 쪽이든 무서운 거다.
청천에게 손짓하며 바로 상점가로 가자는 의사를 표하고, 그리고 나는 청천이보다 느리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으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청천이를 바삐 따라갔다.
그렇게 상점가에 도착하면,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꽤 되는 수의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곳이었을까.
" 생과일 주스 어때? 꽤 괜찮지 않아? "
【12】
상점가로 바로 가자는 비아의 손짓에, 청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더랬죠.
"흔한 일은...아니로군요. 앗, 미안합니다."
비아의 말에 꼬박꼬박 답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조금 성큼성큼 앞서나갑니다. 그러다 비아가 자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조금씩 뒤처진다는 것을 깨닫고 아차 싶어서 속도를 맞춥니다. 여기서부터는 사람이 많아서 안 그래도 속도를 줄이는 편이 좋긴 했네요.
"좋아요! 맛있겠네요."
생과일주스! 비아의 제안에 청천은 눈을 빛냅니다.
"맛있는 곳 혹시 알고 계신지요? 제가 아는 다른 친구도 과일맛 좋아하는 것 같던데..."
이번에 소개받으면 정훈이한테도 알려줄까, 생각해봅니다.
【13】
" 흔한 일도 아니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지. "
" 아니 괜찮아... "
초대형 게이트의 출현 자체가 여러 번 있을 만한 일은 아니다. 초대형 게이트가 여러 번 붕괴되면서 마굴이 된 아프리카 같은 곳은 정말 초대형-예외니까...
그러고보니 구-북한이나 구-일본도 초대형 게이트로 인한 영향을 받았었던가. 그러면 이번엔 정말로 영향이 적었던 셈이다...
그리고 청천이가 뒤늦게 처지는 날 눈치채고 걸음을 맞춰줘서 비슷하게 걸을 수 있었다. 눈치빠른 아이 같은데, 아마 방금 전엔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 맛있는 곳이라기보단 저기, 한 번 가보고 싶어서. "
마침 앞에 보이는 입간판이 있었다. 깔끔하고 화사한 느낌의 디자인에 '봄바람을 따라잡다'라는 글귀와 봄에 관련된 시를 한 수 인용한 글이 유려한 필기체로 씌어 있었다. 그 느낌이 처음 보는데도 썩 마음에 든다. 정작 내용은 오렌지나 딸기 같은 생과일 주스를 살 때 약간의 세일과 봄 디자인의 컵홀더가 함께, 라는 정도였지만.
" 나도 가본 적 없는 곳이긴 한데, 괜찮으려나? "
Ciel bleu*. 카페 간판에는 그런 이름이 붙어 있었다.
*Ciel bleu: 프랑스어로 파란 하늘을 뜻함
【14】
"가끔은 새로운 시도도 좋지요."
청천도 주스 가게에 관심이 생긴 것인지, 화사한 느낌의 디자인의 주스 가게와 입간판을 기웃기웃 살펴봅니다.
마치 제철을 맞은 듯한 모습이네요.
"계절이 바뀌면 컨셉도 바뀌려나요?"
비아를 돌아보며 묻습니다. 기억해두고 여름에도 다시 와볼까요.
"멜론은...아직 철이 아니려나요."
벅에 적힌 메뉴판을 보며 뭘 마실지 잠시 고민해봅니다.
"선배님은 과일 뭐 좋아하세요?"
【15】
" 그렇지? "
많이 꾸며져 있지는 않지만, 푸른 간판을 한 가게의 하얀 벽에 봄 같은 느낌을 주는 옅은 분홍빛 꽃 그림이라던가. 그런 게 있어서 어쩐지 풋풋한 느낌이라고 할까.
" 아마 그럴 거 같네. 여름이 되면 한 번 더 와볼까... "
그때는 간판에 먹구름이 그려져 있는 거 아닐까? 같은 생각을 한다. 장마철이 온다면 말이지.
" 좀 이르지 않을까. "
" 너무 시지만 않으면 과일은 다 좋아하는 편이야. 새콤달콤한 정도면 신맛도 괜찮고. 이벤트 중인 거에서 골라보면... 난 딸기로 할까. "
청포도도 있지만 오늘은 딸기를 마시고 싶은 기분이라.
청천이가 메뉴를 고를 때까지 기다리며 적당히 자리를 둘러봤다. 적당한 갈색 테이블 자리... 저기가 좋으려나.
【16】
"그렇게까지 한다면 굉장히 디자인에 공을 들이는 것이라고 봐야 하려나요!"
청천은 어린아이처럼 히히 웃습니다. 여름에 왔을 때가 궁금해집니다.
"으음...그럼 전 청포도로!"
청천도 곧 메뉴를 고르고는 비아를 따라 들어갑니다.
"저 쪽에 앉을까요? 그러면 제가 주문하고 올게요."
음료수 값은 이따 송금해 주세요!라고 덧붙이고는 카운터로 향하려는 청천이었습니다.
말리지 않았다면 곧 음료를 주문하고 진동벨을 받아오겠지요.
【17】
" 귀엽다. "
무심코 말이 나왔다.
하지만... 귀엽다.
청천이가 귀엽다.
조심조심 하늘색 머리카락 위로 손을 가져가면서 슬쩍 눈치를 봤다. 처음 만난 고양이 쓰다듬는 것처럼...
" 청천이라서 청포도인거야? "
그럴 리는 없지만 살짝 말장난.
" 으응. 다녀와- "
하고, 아까 봐뒀던 자리에 미리 앉아서 청천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적당히 세련된 느낌이면서 고급지진 않은 카페라고 할까. 눈이 편하다. 갈색 나무 벽지에 붙어 있는 메뉴판을, 더 읽을 필요도 없지만 시간을 떼우려고 눈으로 읽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 이 카페 이름이 파란 하늘이라는 뜻이구나... 청천이 오면 얘기 해 줘야지.
【18】
비아가 무심코 귀엽다,고 말해버린다면 청천은 "네?"라며 잠깐 굳었겠지요. 피하진 않았겠지만 잠깐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멜론이 없으니까요...? 색도 비슷하고..."
청포도맛을 고른 이유에 대해 그렇게 말했더랬지요. 물론 맛은 전-혀 다르지만요.
아무튼 청천은 음료를 주문하고 진동벨을 받아와서 자리에 앉습니다.
"이 카페 이름, 프랑스어로 파란 하늘이란 뜻이래요."
앗, 선수쳐버렸네요. 가디언칩이 이걸.
물론 그걸 모르는 청천은...언젠가 같이 밥을 먹었던, 분홍머리의 청월고교 여학생을 떠올립니다. 그를 클로디라고 부르던 릴리. 잘 지내려나요.
【19】
잠깐 굳은 청천이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려 한다. 묶은 머리니까 묶인 게 흐트러지거나 엉키지 않게 조심조심 결대로...
귀여워. 크윽 후배 귀여워.
청포도를 고른 이유에 대해 듣고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하긴 같은 초록색이긴 하구나. 그리고 청천이가 도착했을 때...
" 아, 그거 내가 말하려고 했는데. "
약간 아쉬운 표정.
—상대가 누굴 떠올리는지는 모르는 채로—말을 이어갔다.
" 청천이랑 같이 왔는데 딱 카페 이름이 '파란 하늘'이라니 신기하단 생각이 들어서 말야. "
—그 환상을 부숴 주마...는 아니더라도, 착각이 풀리기까지 앞으로 1레스.—
【20】
비아가 약간 아쉬운 표정을 짓자 청천은 장난스레 킥킥거립니다.
"아, 그건 말이죠..."
같이 왔는데 카페 이름이 딱 '파란 하늘'이라니 신기하다는 말에 청천은, 가디언칩으로 홀로그램 그림판 창을 하나 띄웁니다.
"사실 가끔 오해받곤 하는데, 제 이름엔 '파란'이란 말은 들어가지 않아요."
비아에게도 잘 보이도록 홀로그램 창을 배치하고, 손가락으로 써내려가는 푸를 청靑자. 그리고 그 왼쪽에 날 일日자를 작게 덧붙이니...
"갤 청晴자에요. 날 일자 부수랍니다. 합하면 '맑게 갠 하늘'이 되지요. 예전엔 제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 때 지은 게, Cloudy란 닉네임이고요."
담담하게 말합니다.
그럼 지금은? 글쎄요, 예전만큼 싫어하진 않는 것 같습니다.
【21】
" 정말? "
갑자기 그림판을 켜는 것에 물음표를 띄우다가 날일부가 붙은 晴을 보고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파란 하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하고 부끄러워졌다.
" 맑게 갠 하늘과 Cloudy라니, 정말 정반대네... "
청천(靑天)으로 알고 있을 때도 느꼈던 거긴 하지만, 진짜 이름을 알고 나서는 더 느끼게 된 감상이었다.
" 지금도 이름은 별로 안 좋아해? "
【22】
"음은 같으니까요."
부끄러워하는 듯한 비아를 보고 이해한다는 듯 청천은 가볍게 말합니다.
"그런 이름도, 이 머리색도...한 때 저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런 별명을 짓게 된 건데...지금은 전만큼 싫어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옅게 웃으며 괜히 뒷통수로 손을 가져가, 묶은 머리를 한 번 흔들듯이 잡았다 놓아봅니다.
"어울리냐 안 어울리냐랑, 되고 싶은가 안 되고 싶은가는 또, 별개더라고요. 예전에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러게요, 요즘은 어떻죠? 잠깐 생각하다 다시 말을 잇습니다.
"요즘은, 어느 쪽이든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3】
" 그러고보니 그 머리색과 눈색, 의념을 각성하고 바뀐 거려나... 처음엔 어색했을 거 같은데. "
청천이 묶은 머리를 살짝 흔들자, 하늘이 그려진 깃발을 휘두른 것처럼 희고 푸른 그라데이션이 출렁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괜히 묶은 머리카락을 끌어와 끝부분을 만지작거렸다. 이 머리카락은 의념을 각성하기 전엔 어머니를 닮아서 강한 햇빛이 머릿결에 흩어 부서질 때면 한순간 황금처럼 빛났더란다. 지금은 빛을 다 흡수해 버릴 새까만 색이라지만. 그래도 눈색 외엔 크게 바뀌지 않은 나와 달리, 외모에 적응하지 못할 만큼 변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적응하기 힘들었겠지.
" 으음, 그래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걸까. "
이름에도 머리색에도 어울리는 사람. 맑은 하늘과, 구름 섞인 하늘. 이름과 머리색은 잘 모르고 보면 우연히도 관련이 있구나, 란 생각이 들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정반대의 뜻이다.
어느 쪽이든 어울리는 사람이라면 분명 맑은 하늘도 구름 섞인 하늘도, 어쩌면 어둑어둑할 만큼 구름이 가득 채운 하늘조차도, 자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인 거 아닐까.
막 다시 입을 열려고 할 때, 진동벨이 작게 울리기 시작했다.
" 난─...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났지. "
【24】
"그랬죠."
처음엔 어색했을 것 같은데, 라는 말을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걸까.라는 말에 청천은, 옅게 웃으면서도 뭐라 답할지 생각합니다.
그 때, 진동벨이 울립니다.
"아하하...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가네요. 제가 가져올게요."
청천은 진동벨을 집어들고는 카운터로 쌩 하고 달려갑니다. 곧 그는, 갈 때보다는 느린 속도로, 음료를 든 쟁반을 들고 조심조심 테이블로 와서 음료를 자신과 비아 앞에 놓습니다.
"...처음엔 이 머리색 마음에 안 들었는데...보통 남자들은 머리 잘 안 기르니까요?그래서 모를 뻔했는데, 어쩌다보니 기르면 끝이 하애진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건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처럼 기르게 되었어요."
머리에 쓴 미니햇을 떼내면서 말합니다. 이 미니햇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던가요.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머리색이라든지, 제가 어떤 사고를 겪었든지...그런 건 제가 바꿀 수 없지만, 이런 건-...머리를 기를지 말지라든가 같은 건 바꿀 수 있으니까요. 그저 제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이라도 제가 원하는 대로 되도록 하는...그런 거랄까요."
그렇게 말한 후 옅게 웃으면서 청포도 주스를 마시기 시작합니다. 아, 맛있네요. 너무 시지 않으면서도 청포도의 청량한 맛을 잘 살린 주스입니다.
【25】
" 어, 잠깐만... "
내가 가져오려고 했는데... 하고 청천이가 달려간 지 좀 지난 후에 뒤늦게 말했다. 음료수 가지러 가는 것까지 빠를 필요는 없는데, 정말. 그리고 음료수를 서빙(?)해주는 모습에 카페 알바 하면 귀엽고 빨라서 좋겠다, 같은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 아하. 스스로 바꿀 수 있는 것부터 바꿔나간다는 거구나... 별로 마음에 안 드는 하늘색에서, 마음에 드는 '하늘'색으로. "
사고. 의념 각성의 계기가 사고라던가 하는 건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이다. 나는 그렇진 않았지만. 그래도 너는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던 간에, 모든 게 무너졌다면 손에 잡히는 돌이라도 쌓아서 청사진을 만들 수 있는.
강한 사람인가보다.
난 그런 친구를 좋아하는데.
" 새로운 시도 치고는 꽤 괜찮은 카페네. "
딸기향이 제대로 나는 딸기 주스. 적당히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처음 온 카페다보니 뭘 몰라서, 이럴 때 괜히 맛없는 게 나왔으면 분위기가 미묘해졌을지도 몰라.
【26】
내가 가져오려고 했는데...라는 말을 멀찍이서 들은 것일까요, 청천은 멋쩍은듯 히힛, 웃습니다. 그래도 음료수는 이미 가져왔는걸요.
청포도 주스를 한 모금, 두 모금 빨아들이며 비아의 말을 잠자코 듣다가 그는 입을 엽니다.
"그냥 당하고만 사는 건 불행하기만 할 뿐이잖아요?"
그렇게 말할 때, 그의 얼굴에 짓궂은 미소가 지나갑니다. 그게 강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청천이 사비아의 속마음을 읽었더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은 그렇다기보다는, 그저,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로 가득한 세상 속으로 떠밀려가면서도 발버둥쳤을 뿐이라고요.
"그렇네요, 맛있어요. 다른 친구들이랑 또 같이 올래요."
물론 그런 속마음을 알 리 없는 청천은, 가끔은 새로운 시도도 좋다는 비아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무래도 과일주스다 보니까, 처음 만났을 때도 같이 과일음료를 마셨고 그 뒤에도 청천에게 처치곤란의 과일젤리들을 나눠주었던 정훈이 생각나는데, 그렇다보니 다른 친구들도 과일주스를 좋아할까?하는 궁금증이 또 드는 것입니다.
"덕분에 좋은 곳을 또 하나 알게 되었네요."
【27】
" 가능하면 되갚아줘야지. "
짓궂은 미소를 아슬하게 잡아내며 웃었다. ─들었더라면 더 이상 당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게 되는 것이 최소한의 강자의 조건이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으나, 아무리 그래도 생각을 읽을 순 없어서.─
" 친구들 부를 때마다 이름 다시 소개해 주는 거야? "
라고 가벼운 농담을 던진다. 문득 오해했던 게 생각나서.
" 그러게. 나도 아는 카페가 늘어나면 좋은 입장이라, 잘됐어. "
청월 쪽에 있는 카페가 있었는데, 가는 게 조금 껄끄러워졌지... 하고 생각한다.
【28】
가능하면 되갚아줘야지, 라니...
"역시 그렇죠?"
이 선배님, 모범생같은 느낌이지만 은근 나랑 비슷해...! 청천은 그런 생각을 하며 개구지게 웃었습니다. (사실 청천도 수재 특성이라 성적만 보면 모범생 축에 들긴 합니다...?)
"그러려나요? 사 비아 선배님."
친구들을 부를 때마다 이름 다시 소개해주는거냐, 는 질문에는 그렇게 말하며 히히, 웃었더랬죠.
"다음에 또, 같이 산책이라든가 조깅이라든가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제 다른 친구들도 언젠가 소개해드릴게요."
그렇게 웃으며 청천은 느긋하게 음료를 마시곤 했던, 그런 한때였습니다.
음료를 다 마시면 청천은, 잘 마셨다고, 즐거웠다고 인사하며 기숙사로 돌아가겠지요.
- 하루 일상[1] (203스레~208스레)<임시스레9> - 7월 30일(새벽)
- 【1】
요즘은 어쩐지 카페에 자주 가게 되는 느낌이다... 이건 설마 카페중독? 주-중독 멈춰!!
...할 때가 아니지. 왜냐하면 지금은 약속을 잡아서 가는 거니까. 그것도 예쁘고 귀여운 후배와의 약속을 잡아서 말야.
얘기라고 했으니까 스터디 같은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해서, 딱히 뭘 챙기진 않고 그대로 카페로 향했다.
" 하루야- "
느긋하게 도착해서 이름을 부른다.
【2】
" 언니...! 언니..! "
요즘은 몽블랑에서 양갈래머리를 자주 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양갈래 머리와 새하얀 원피스를 걸치고 나온 하루는 먼저 카페에 도착해서 앉아있었다. 주문은 비아가 온 후에 할 생각이었기에, 느긋하게 턱을 괴고 앉아있던 하루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몸을 벌떡 일으킨다. 그리곤 비아를 향해 힘껏 손을 흔들어 보이다 못해 자리에서 벗어나 비아에게로 향한다.
" 오느라 힘들진 않았지? 막 이상한 사람이 언니 보고 치근덕대고 그런건 아니지? "
하루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요즘 서로 바빠서 제대로 만나지 못한지 꽤 된 상태였기에 더 반가운 것일지도 몰랐다. 늘 만나려고 했지만 어째선지 스케줄이 좀처럼 맞지 않았던 두사람이었다.
" 자자, 일단 자리 잡고 앉자, 언니..! "
신이 난 어린 아이같은 하루의 양갈래 머리가 강아지의 꼬리처럼 살랑거리고 있었다.
【3】
앗, 하루다.
아는 척을 하는 미성이 들리는 쪽을 돌아보자, 그곳에는 빛이 있었다. 그리고 다가오고 있었다...!
...흠흠. 내 이미지에 안 맞는 생각을 해버렸네. 그래도, 안 꾸며도 예쁜데 더 꾸며버린 하루가 거기에 있었다.
" 힘들 게 뭐 있어. 그리고 난 네가 더 걱정되는걸. "
자기 예쁜 걸 모를 애는 아닌데 이렇게 항상 예뻐서 어떡해. 밖에 조심해서 다니라고 하고 싶어진다.
어쨌건 오랜만에 만나기도 했고, 상대도 들떠있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 응응. 오랜만이다 정말... "
희게 살랑거리는 머리카락을 보며 미소짓고, 손목을 잡아 부드럽게 끌어당기며 하루가 먼저 앉아있던 자리로 향하려고 한다.
그리고 앉고 나서는...
" 주문은 아직 안 했지? "
라고 들은 건 없지만, 아마 그랬으리라 짐작하며 말한다.
【4】
" 나? 나야말로 전혀 걱정할거 없는걸? "
하루는 비아의 말에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을 돌려준다. 하루의 눈에는 그저 비아가 훨씬 예쁘고 다정하게만 보였기에 비아의 걱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뭐, 그래도 눈 앞에서 비아가 편안하게 웃어주고 있었으니 그다지 길게 신경을 쓰는 것 같진 않았지만. 그러다 비아가 자신의 손목을 잡아 이끌어주자 얌전히 맑은 웃음을 흘리며 그 뒤를 따라간다.
" 좀 더 일찍 만나고 싶었는데.. 언니 스케줄에 맞춰줬어야 하는데 나도 이래저래 일이 많아 버렸네.. 미안. "
미소를 지어보이는 비아에게 상냥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한 하루는 미리 앉아있던 자리에 도착해서 앉는다. 그리곤 미리 받아둔 메뉴판을 비아에게로 내밀며 양손으로 턱을 괸 체 베시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꽃받침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 응, 주문 안 했어. 언니가 먹고 싶은거 물어보고 싶어서. "
하루는 고개를 끄덕끄덕 해보이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한다. 메뉴란 건 같이 이야기를 맞춰 고르는 편이 만족도도 높았으니까. 하루는 살며시 손받침을 풀곤 메뉴판을 열어보였다.
" 언니, 뭐 먹을래? "
【5】
" 아니야. 난 네가 더 걱정돼. "
갸웃대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미소를 꾹꾹 눌러담고 단호한 표정을 짓는다. 하루 정도를 보면, 그래, 지나가다가 눈 돌아가는 정도는. 어쩔 수 없지. 왜냐하면 그만큼 예쁘니까. 어떤 감정이 드는 것도...음, 감정은 불가항력이니까. 그래, 거기까진 참아주지만. 그래도, 누가 하루한테 손이라도 대려고 한다면...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그래도 맑은 웃음에 한숨도 흩어지고 만다.
" 어디 일이 사람 사정 봐주면서 생긴대? 만나고 싶지 않은 건 아니지만, 난 하루가 괜찮을 때 만나는 게 좋아. "
하루 맞은편에 앉아서 하루가 주는 메뉴판을 받아서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정말, 요즘은 바쁜 일이 많을 시기라니까. 그래도 시간이 나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 착하다, 우리 하루. "
─비아 호감도가 왜 이리 높나요?: 오너 호감도가 폭주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하루가 넘겨 주는 메뉴판을 보면서 뭘 고를까... 고민했다.
" 바닐라라떼. 너는? "
【6】
" 으음.... 힘낼테니까 걱정하지마세요, 언니! "
뭘 힘낸다는걸까. 알 수 없지만 자그마한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며 초롱초롱하게 빛을 내는 하루였다. 아무튼 비아의 말을 듣곤 어떻게든 힘을 내서 안전하게 다닐 것이 분명한 하루였다. 화사한 얼굴에 담겨있는 감정은 분명 기쁨이었다.
"하긴 그거도 그렇네요. 제가 이렇게 언니를 만나고 싶어하는 걸 알면 일이 알아서 눈치껏 빈틈을 만들어줬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아무튼 앞으로는 언니랑 자주 만날거에요. "
하루는 비아의 말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허공에 장난스레 화를 내고는 다시 금빛 눈동자를 비아에게로 옮긴다. 그러다 자신의 말에 칭찬을 돌려주는 비아의 말에, 하루는 새하얀 볼에 분홍빛 홍조를 띄우며 베시시 웃곤 장난스레 몸을 베베 꼽니다.
" 언니도 참.. 부끄럽게.. "
하루는 칭찬에 정말로 기쁜 듯 말하더니 메뉴판을 보던 비아가 메뉴를 고르자, 이미 머릿속에 정해뒀었는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두사람이 같이 먹을 디저트로는 애플 파이를 추가로 주문한 하루는 돌아가는 점원을 바라보다 다시 비아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언니? "
【7】
" 파이팅. "
하고 작게 말하면서 똑같이 양손을 쥐었다. 신체 B도 약한 건 아니니까... 누가 이상한 짓 하려 하면 신체 B로 한 대 쳐버려! 라고 말하고 싶다. 한방... 하루도 의념발화가 있으면 좋을텐데. 청월이 아니니 어쩔 수 없지.
" 그래, 일이 나쁘네. 앞으로도 이렇게 만나면,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
가상의 적(?) 일거리를 향해 화내는 하루를 웃으며 지켜본다. 그리고 부끄럼 타는 모습을 보고서는
" 맞는 말 듣고 부끄러워하면 어떡해. 당당해져야지. "
하고 드물게 한쪽 눈을 찡긋하면서 윙크 비슷한 걸 해보려 하지 않았을까. 그 모습이 조금 어색하긴 했겠지만. 애플파이를 추가로 주문하는 것에 역시 센스 좋네-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 뭐, 이런저런 일 하면서 지냈지. 옷을 사러 간다던가, 간단한 의뢰를 맡았는데 누굴 오해해서 완전 큰일이었다던가... "
하고 테이블에 팔을 올려 손등 위로 턱을 괴었다. 예의 없게 보일 수도 있는 제스처지만, 편하다는 뜻도 되니까. 이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약간 한숨을 내쉬는 시선 옆 창문이 밝다.
그것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닐 일은 아니다.
" 하루는? 무슨 일 있었어? "
【8】
" 응! 파이팅! "
비아의 내면에서 무슨 생각이 떠오르고 있는지 알지 못한 체, 그저 기분 좋게 양갈래 머리를 살랑이며 힘껏 고개를 몇번 끄덕여 보이는 하루였다. 그저 좋아하는 언니가 자신을 보며 파이팅을 해주는게 좋은 모양이었다.
" 자주 만나면 좀 더 서로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도 있고... 그리고 못 보면 멀어진다는 말이 있잖아. 물론 비아 언니랑 나랑 그런 걸로 멀어질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왠지 멀어지면 슬플 것 같으니까."
하루는 자신을 보며 미소를 지어보이는 비아에게 자신은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는 듯 장난스런 울상을 지어보이며 말한다. 물론 오랫동안 보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이 비아를 싫어하거나 멀리하게 될 일은 없지만, 고작 못 본다는 것으로 멀어지는 것은 바라지도 않고, 겪고 싶지도 않았다.
" 왠지 칭찬을 받는 건 익숙치 않아서.. 게다가 언니 칭찬이면 더욱 더 그렇지.. "
하루는 몸을 베베 꼬다, 비아의 윙크에 숨이 멈춰 뒤로 넘어가려는 시늉을 해보이더니 맑은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을 돌려준다. 정말이지, 치명적인 언니구나. 하루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 헤에.. 언니도 고생이 많았구나... "
비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을 하던 하루는 고생했다는 듯 장난스럽게 턱을 괸 비아의 팔을 주먹으로 콩콩 두드려주는 시늉을 하며 대답을 돌려준다.
" 나는 사실 검술을... 배우게 되서 그것 때문에 게이트에 가서 고생 좀 하고.. 혼자 의료파견으로 중국으로 가서 다친 사람들을 돕기도 하고 했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가 이제 좀 정신이 있다니까. 게다가 언니를 만나니까 기분도 업되는거 있지? "
주인을 만난 대형견이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몸을 살짝 좌우로 흔드는 통에 살랑이는 양갈래 머리를 한 체 하루가 기쁨을 맘껏 뿜어낸다. 마침 하루의 말이 끝날 즈음엔 주문한 메뉴들도 나왔다.
【9】
귀여워라...
흰 양갈래가 뻗어나온 머리에 손을 가져가 최대한 묶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쓰다듬으려 하며 웃는다.
" 으응. 계속 함께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슬퍼하지 마. "
그런 의미는 아니겠지만 멀어지면 슬플 것 같다는 말이 유달리 가엽게 느껴져서, 안심시켜 주고 싶다. 나한테 의지해도 된다는 것처럼 무겁지는 않아도 진지한 표정을 짓다가, 미소로 흩었다.
" 이 정도로 고생이라 할 것도 없지. "
팔을 두드리는 것에 멋쩍게 웃으며 대답하다가,
" ...검술? "
뭔가, 하루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 말이 나와서 잠깐 혼란했다. 의료파견을 나갔다던가, 하는 건 그럴 만하단 생각이 들지만. 으음─... 잠깐 고민하는 사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애플파이, 바닐라 라떼가 나왔다. 생각할 타임 리미트는 여기가 끝이라는 것처럼.
" 전투 보조 쪽의 서포터로 전직하려는 거야? "
그런 것치곤 의료 파견이 걸리지만, 현재 있는 능력을 활용하는 것뿐이니까. 먼저 컵을 집어 들고, 한 모금 맛을 봤다.
【10】
비아의 조심스런 손길이 가까워지자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갸웃거리며 바라보던 하루는 이내 머리에 손길이 닿고, 상냥하게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베시시 웃으며 소리 죽여 맑은 웃음소리를 흘린다. 마냥 좋아하는 언니의 손길이 기분 좋은 모양이었다.
" 후후, 언니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정말 불안한게 싹 사라졌어요. "
하루는 비아의 말에 눈이 한순간 커졌다가 베시시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방금 전까지 울상을 짓던 것도 한순간에 싹 녹아내린 듯 한껏 풀어진 미소였다. 그리 무거운 말은 아니었지만, 저렇게 따스한 말만큼 마음에 와닿고, 들뜨게 해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 네에.. 검술...이요. 뭐, 그렇다고 서포터를 하지 않는건 아니지만.. "
하루는 혼란스러워 하는 듯한 비아를 잠시 바라보다, 메뉴가 놓여지는 것을 본 훼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간다.
" 음... 그것도 아니에요. 뭐라고 해야하지. 지금처럼 제 역활을 다 하되, 제가 할 수 있는 선택지의 가짓수를 늘리고 싶었거든요. 예를 들면, 다른 분들이 무언가에 막혀 아무것도 못 할 상황에서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라도 잠깐이나마 지켜낸다던지.. 그런거요.. "
왠지 모르게 컵을 들고 바닐라 라떼를 맛보는 비아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해나가는 하루였다. 이야기를 마치곤 꿀꺽 침을 삼킨 하루는 비아를 바라보며 아메코를 한모금 마신다. 왠지 친언니한테 괜찮아? 하고 묻는 것처럼.
【11】
" 다행이네. "
안심시키는 데 성공했나 보다. 여전히 조심스럽게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
죄책감이 들지 않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 으음. 무기술을 배우는 서포터도 많이 있으니까. "
조금 놀라긴 했지만 없을 만한 일도 아니다.
" 그런 거였구나... "
그것이 하루의 선택이라면, 존중하고 싶은 일이다. 조금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강하지만...
...역시 조금 그렇다.
" ...아직은 조금 이르지 않으려나. "
" 눈치볼 건 없어. 틀렸다던가 말하려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내가 알기론, 치료술이랑 무기술은 병행해서 수련하기엔 힘든 걸로 알고 있어서 말이야. 너도 그걸 모르진 않았을 거고... 왜 그렇게 선택했는지가 궁금해진 거지. "
컵을 내려놓고 조그마한 애플 파이 조각을 떼어내며 말했다.
" 서포터가 옆에 있는 사람을 지킨다. 라는 건... 정말 최악, 혹은 예외의 수를 가정한 일이지. 근데 다른 수단이 아니라 무기술을 배웠다, 라는 건 뭔가 생각이 있어서일텐데. 그렇지 않아? "
【12】
조심스럽게 말한 후에, 비아의 눈치를 살피던 하루는 비아의 말이 이어지자 역시나 비아가 그렇게 물어올 것이라 생각했는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듯 했다. 물론 아무런 생각 없이 검술을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자신을 걱정해서 생각해주는 말을 들으면 움츠려드는 기분이었다.
확실히 하루가 택한 길이 쉬운 선택지는 아니었으니까.
" .... 제가 그런 선택지를 고른건 단순하면서도 명쾌해요. 그냥 제가 손놓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쳐오는게 싫었어요."
하루는 양갈래 머리의 끝을 손가락으로 말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모두의 이해를 얻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 역시 쉽지 않을 길을 가게 될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납득이 갈 수 있는 설명을 하지 못해서 눈 앞의 비아가 멀어진다면? 물론 방금 전에 멀어지지 않을거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만약 실망을 한다면 멀어질지도 모르니까.
" 예를 들면, 비아 언니가 다쳤어요. 앞에서 저희를 지켜주지 못할 정도로 다쳐서, 제가 아닌 다른 서포터 분이 언니를 치료해주고 있을 때, 제가 아무것도 하지 못해서 두사람을 위험에 고스란히 둘 수 밖에 없다면? 적어도 언니가 치료를 하는 동안에나마 잠깐 언니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제가 아끼는 사람들, 소중한 사람들을 말이에요. "
하루는 중간중간 아메리카노를 마셔가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갑니다. 불안한 듯 손 끝이 떨려오는 것은 눈 앞에서 검이 겨눠지는 것보다도 비아라는 사람과 멀어지는 것이 더 무서운 탓이었다.
" 그렇게 하기 위해선 조금 힘들더라도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택한 길이에요. "
【13】
생각을 정리하는 하루를 기다리다가, 하루가 입을 열자 말을 듣기 시작했다.
그렇구나. 너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거구나.
조금 더 고지식했을 때라면 조금 다른 말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려 손을 뻗을 때마다 조금씩 떨고 있는 그 손을 당장 잡아주진 않을지언정 가만히 들어주며, 나 자신도 할 말을 정리했다.
" 너는... "
이 말이, 너에게 실망했다는 걸로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 아무것도 못하고 누군가 떠나가게 내버려둔다는 걸 무서워하고 있구나. 그 상황이 되면 올 죄책감을 두려워하는지도 몰라. "
자신의 생각만을 직설적으로 찔러넣는 건 오랜 버릇이다.
그것이 너의 속(裏)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정말, 이 정도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군갈 잃게 된다면 정말 슬플 거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 나는 널 이해하지만은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가디언에게 '전형적인 포지션'이란 게 나눠진 건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 포지션 안에 갇혀 있진 말더라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명확하게 정해 주는 것. 그 영역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각자가 노력하는 것으로 화합을 이루고 뜻을 모아 원하는 걸 해낸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미덕이다. "
충(忠).
보통 충(忠)이라고 한다면 충성만을 뜻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한자에는 정성이라는 뜻도 있다.
무언가를 위해 정성과 성의를 다한다.
그런 뜻 때문에 그 한자를, 좋아했던 것 같다.
" 내가 만약 너와 함께 의뢰를 간다면, 워리어로서 우선 내가 쓰러질 걸 가정하고 있는 서포터를 보고 기분이 좋아질 순 없을거야. 그런 위기가 올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게 하는 게 워리어로서의 역할이니까. "
마치 전쟁에 나서는데, 패배하고 끝까지 밀려나면 배를 만들어서 도망칠 수 있도록 조선기술을 배웠다는 아군을 옆에 두고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 그래도 나는 네가 좋아. "
" 그 마음가짐도 싫지만은 않아. 단지 조금 성급했던 건 아닐까 생각해서, 무엇 때문에 성급해졌는지가 궁금했을 뿐이야. "
친하다고 해서 서로가 서로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순 없다.
이해하려 할 수도, 서로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엔 잠시 눈을 가리며 관계를 이어나가려 할 수도 있다. 어느 쪽도 옳다.
웃었다.
【14】
"제가 사랑하는 아이가 워리어에요, 언니."
차분하게 자신을 다독이듯 말해오는 비아의 목소리에 힘을 얻은 듯, 조금이나마 떨리던 손 끝이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목이 타는 것은 어쩔 수 없는지 아메리카노를 몇모금 더 마신 하루는 작게 숨을 뱉어내며 대답을 이어간다. 비아가 자신의 선택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건 아니까, 그저 조금이라도 더 자신이 이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말해주고 싶었다.
" 저도 저와 함께 한 워리어가 무너지는 것을 바라지 않아요. 언제까지나 제 앞에서, 제가 나설 일 없이 굳건하게 서있어주길 바래요. 제가 잘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요. "
하루는 눈을 지그시 감은 체, 천천히 이야기한다. 자신도 자신과 함께 한 워리어가 쓰러지는 것을 바라지 않고,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런 상상은 끔찍해서 죽도록 하기 싫었다. 에릭이 자신의 앞에서 몸이 날아갈 때도, 질끈 눈이 감고 싶었다.
" 그런데, 만약에.. 정말 만약에, 제가 사랑하는 그 아이가 앞에서 피를 토해내며 죽어가고 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무것도 없다...? 그건 너무 무서워요. 제가 사랑하는 아이의 목숨을 앗아갈 그 대상을 원망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저 자신을 원망하게 될거에요. "
" 그 아이는,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뛰어다니는 아이니까 더욱 더 불안해져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불안감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못할 바에야, 불안감을 없애줄 검 한자루를 잡아서 제가 뒤틀리지 않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 밖에요. "
하루는 가느다란 두 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며 떨려오는 눈으로 비아를 본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해맑던 하루가 두려움에 휩싸인 체 바들바들 떠는 것처럼.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한숨을 내뱉은 하루가 팔에 들어간 힘을 조금 풀어냈다.
" ...물론 그 아이한테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에요. 언니도, 다른 사람들도.. 저에겐 소중한 사람들이니까요. "
【15】
" 정말 열렬하네. "
말없이 듣던 중 하루가 몸을 감싸자, 나는 그 어깨 위에 손을 올려서 부드럽게 감싸려 했다.
이미 많은 걸 싣고 있는 가련한 어깨엔 힘줘서 누르지 않아도 이 두 손만으로 무겁겠단 생각이 들어, 거부하지 않았더라도 금방 내려놓으려 했겠지만.
" 사랑이 사람을 바꾼다더니, 너도 이제 변할 때가 되었던 거구나. "
어쩌면 내가 너를 만나기 전부터, 너는 내 생각과는 훨씬 다른 모습이 되어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문득 너는 어째서 그 원망을 스스로에게 돌릴 것을 생각하고 있을까, 라는 의문에 스스로 낸 답조차 정답과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너를 재단하는 걸 일단 멈춰두기로 했다.
" 나도 너에게 소중한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건 기뻐. "
" 가능한, 너에게 지켜질 상황 같은 건 만들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지만... 그 만약을 대비하지 않아서 네가 불안해진다면. 내가 그걸 막을 권리는 없겠지. "
조그마한 파이 조각을 하루 앞으로 밀어주면서, 바닐라 라떼를 아까울 만큼 빠르게 목으로 넘겼다.
" 개인적인 거지만, 질문 하나 해도 될까. "
【16】
" 그러게요.. 제가 생각해도 이렇게 행동할 줄은 몰랐거든요 "
비아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따스한 비아의 손에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인 하루가 차분한 목소리로 중얼러린다. 자신도 몰랐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이렇게 필사적이 될 것이라고는 절대로 몰랐으니까.
" ..변하지 않는 것은 없더라구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말이에요. "
그저 비아의 말에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이며 하루는 잔잔한 대답을 돌려준다. 바뀌지 않을 줄 알았다. 자신의 삶은 그저 신께서 내려준 한번의 기회라 생각했기에, 누군가를 이렇게 아끼고 매달리고 싶은 마음이 생길 줄은 몰랐다. 하지만 학원도에 오고 나서 자신은 변해버렸다. 수많은 일들을 겪고 지금도 변해가고 있었다.
"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언니를 믿지 못하는 것처럼 비춰질까 걱정인데.. 그런건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지는 말아줘요. "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인 하루가 이해해줘서 고맙다는 듯 말하곤 목을 커피로 축인다. 비아가 건내어주는 파이 조각도 오물거리면서 맛을 본 하루가 포크를 내려놓으며 다시 비아를 응시한다.
" 물론이에요, 언니. 제가 언니의 말을 거절할 리가 없잖아요? "
【17】
뻗은 손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도 관성처럼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어버렸네. "
뻣뻣하다 해도 될 성격이다. 하지만 자신도 처음부터 되짚어보면 원래의 성격과는 꽤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가끔 바뀌는 게 싫기도 하지만, 살면서 바뀌지 않는다면 성장도 없겠지. 한편으론 자신이 바뀔 만한 일이라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지, 두근거리기도 한다.
" 방금 들었잖아. 네가 그런 생각이 아니란 건 들었으니까, 괜찮아. "
그리고, 나도 아직은 널 믿고 싶다.
파이를 먹고 있는 하루를 쳐다보며 손 위에 턱을 올리고,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 사랑을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니? "
그것이 네 목숨을 버리지 않을지언정 네 신념을 버려야 하는 일인데도.
그것이 네 사랑을 위해 필요하다면.
할 수 있을까?
순전한 호기심으로 그렇게 물으며 테이블 위에 올린 팔을 내렸다.
【18】
"... 믿어줘서 고마워요, 언니. "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조금은 안심한 듯 하루는 속삭여 대답했다. 눈 앞의 언니에게 미움을 받는다면 분명 며칠간은 눈물로 베개를 적셨을테니까. 부드럽게 미소 짓는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게 하루의 눈에 비췄는지 비아는 몰랐을 것이다.
" 아마도. 제 목숨을 바쳐서 그 아이를 살릴 수 있다면 전 얼마든지 그럴거에요. "
하루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내 목숨 하나로 그 아이를 살릴 수 있다면, 내게 그럴 능력이 있다면 하루는 망설이지 않고 행동할 것이다. 그 아이가 고작 자신의 목숨으로 다시 삶을 되찾을 수 있다면 하루는 얼마든지 해낼 것이다. 해내고 말 것이다.
" ...물론 그렇게 되지 않게 하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요. 목숨을 거는건.. 최후의, 최후의, 어쩔 도리가 없을 때에 택할 일이니까요. "
저도 그냥 앞뒤 안 가리고 그러려는 건 아니에요, 라고 말하는 듯 하루는 차분하기 그지 없는 말투로 대답을 하곤 조심스럽게 커피잔을 들어 입을 축인다.
" 저, 혼나려나요..? 언니한테..? "
【19】
" 혼낼 일이 뭐 있겠어. 그냥, 정말 열렬하구나 하고 다시 생각했을 뿐이야. "
그리고 사랑을 위해 저울에 걸어야 할 '무엇이든'에 너는 당연히 목숨을 올려놓는구나. 라고 느꼈던 것도.
" 혹시 또 불안하게 했니? 그러면 미안해. 이번엔 정말 개인적인 호기심이었으니까 말야. "
어떻게 풀어지든 간에 별로 바뀌지 않았을 만한 그런 것이다.
사랑을 올려놓은 저울에 가끔은 거래를 거부할 수도 있는 그런 사람이 품는 자그마한 의문이었을 뿐.
" 파이가 많이 남았다. 음료수를 더 시킬까... "
【20】
" 그렇구나... 다행이다.. "
언니랑은 웃으면서 이야기 하고 싶으니까. 하루는 그렇게 덧붙이며 비아를 바라보며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말을 끝으로 한결 안심이 되는 듯 편안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분명 그만큼 비아를 믿고 있다는 것이겠지만.
" 언니는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랑은 다르게 행동할 것 같아요? "
하루는 이건 그저 궁금증이라는 듯 차분하게 미소를 지으며 물어봅니다. 과연 눈 앞의 언니는 어떤 선택을 할까. 어쩌면 자기보다 현명한 판단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 언니가 더 마시고 싶으면 얼마든지요. 이번엔 과일 쥬스는 어때요? "
하루는 분위기를 다시 밝게 바꾸려는 듯 자신의 텐션을 처음으로 되돌리려 하며 밝은 목소리를 냈다. 그녀의 양갈래 머리가 강아지 꼬리처럼 살랑이고 있었다.
【21】
" 나도 너 우는 건 보기 싫어. "
이번엔 약간 농담처럼 양손을 들며 가볍게. 이렇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는 쪽이 더 좋다. 안심하고 있는 것도. 그리고 최악을 가정하기보단 믿고 있어줬으면 좋겠다. 귀여운 후배니까.
" 상황에 따라서 다르지? "
대답을 회피하기 위한 대답은 아니라, 말 그대로였다. 무엇을 끝에 달고 있느냐에 따라서 무엇을 버릴지도 골라야겠지.
요즘 내 마음을 심각하게 점유하고 있어서 내쫓을 필요성을 느끼는 한 후배를 문득 떠올렸다. 난 너에게 이해를 요구하고 싶지 않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너는 날 이해해주려 할까. 아니면 네가 나에게 이해를 바라게 될까.
" 단 거 마시고 과일 주스 마시면 시겠다. 나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한 번 마셔봐야지. "
커피는 좋아하진 않지만, 변덕이다. 일부러인지 다시 밝은 모습을 보이는 후배를 보며 갑자기 쓴 게 마시고 싶어져서. 여전히 하루는 밝았다. 귀엽고, 작았다.
【22】
" ..그건 기쁘네요. 언니도 항상 웃어주세요. "
하루는 부드럽게 비아를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을 돌려준다. 당신이 바란다면 한계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웃는 얼굴을 조여절 것이다. 그러다 한계에 다다르면 울면서 당신을 찾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분명 그만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리라.
" 뭐, 그런거죠. 어떤 일이,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거니까요. 상황이라던가.. 어떨지 모르니까.. "
비아의 말에, 하루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선택지는 단 하나만 존재하지 않을테니까 단정지어서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비아도 하루도 마찬가지였고 다를 바 없었다. 그저 궁금한 것은 비아가 그런 선택지 앞에 섰을 때, 자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였다.
" .. 그러면 주문해드릴게요. 마시다 싫다고 하면 안되요, 언니? "
하루는 장난스레 겁을 주듯 말하면서 가볍게 손을 들어보인다. 이제 심각한 이야기는 집어넣어두고 비아와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냐고 싶었기에. 하루는 비아와 함께 새 음료를 주문해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비아는 사랑스러운 언니였고, 믿음직한 언니였다
이 언니를 좀 더 기쁘게 해주고 싶다. 그것이 하루의 머릿속에 떠오른 가벼운 목표였다.
【23】
" 사람이 어떻게 항상 웃을 수 있겠니. 노력은 해볼게. "
필요할 경우엔 울고 싶어도 숨기려 하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면 슬퍼도 힘들어도 쉽게 티나는 게 나였다. 이 눈치 빠른 후배 앞에선 쉽게 들켜버릴 테니 숨기는 것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 으응. 예를 들어서, 트롤리 딜레마라는 이야기 같은 거지. 사람이 한 명이 누워 있는 선로와 열 명이 누워 있는 선로가 있는데... 라는 거. 사고실험으로 나온 대답과 실제로 목숨이 걸려 있을 때 행동은 다를 수밖에 없지. "
원래대로였다면 죽지 않아도 됐을 한 명을 죽이는 대가로 죽을 운명이었던 열 명을 살리겠다고 대답한 사람이, 정말 광산차가 달려오고 있을 때 사람을 죽이는 레버를 당길 수 있는가.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 ...싫어도 다 마실 거니까 좀 봐줘. "
라고 앓는 소리를 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이 똑부러진 후배, 과연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하루야.
빛나는 후배야. 네가 웃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 찬혁 일상[1] (209스레) - 7월 31일
- 【1】
강찬혁의 수련법은 정말 지독할 정도로 미련했다. 건강을 수련한다고 다른 이들이라며 자살이라며 도시락 싸들고 가서 말릴 미친 짓도 해냈고, 신체를 수련한다고 트럭과 줄다리기를 하다가 그만 트럭이 망가지면서 도망치기도 했다. 그의 미련함은 전부 퍼져서, 다들 수련에 있어서는 강찬혁을 기피했다. 아무리 의념의 힘을 빌릴 수 있는 사람이더라도, 그런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미친놈과 수련하는 게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후우... 같이 수련할 사람이 없네. 쉬운데."
강찬혁의 수련은 간단했다. 사실, 엄청 쉬웠다! 강찬혁은 아이언 스킨(F) 스킬을 발동한 채 두들겨 처맞고, 상대방은 계속 두들겨 패면 되는 간단한 수련법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그를 상대해주지 않으니, 그냥 평소에 화난 거 많아보이는 사람한테도 갔으나 다들 퇴짜를 맞았다. 강찬혁은 계속 가다가, 한 여자를 붙잡게 되었다. 그보다 키가 크고, 근육이 단련된 흑발 자안의 여자에게.
"수련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대가는 음... 인간 두더지잡기 체험이요."
【2】
...뭘까, 이 사람.
자신을 잡은 사람... 아까부터 퇴짜맞으면서도 이상한 수련법에 동참해주길 바라는 것 같던 사람을 잠시 쳐다보다가, 한숨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 ...아까부터 사람들 잡는 거 봤는데요, 대련도 아니고 수련을 위해서 일방적으로 맞고 싶다는 말을 들으면... 보통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
라고 일단 정론을 말해본다.
" 그러니까, 사람한테 때려달라는 것보다는 허수아비를 작동시키는 쪽이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
혹시 이 사람은 수련을 해본 적이 없는 건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며, 팔 닿는 곳에 있는 수련용 허수아비를 수비용으로 작동시켰다. 그리고 선공으로 살짝 머리를 내리치자 허수아비가 좀 따갑게 팔로 나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 하나가 부족하다면 여러 개를 작동시키면 되고요. "
전에 소철경을 수련했을 때처럼 쓰는 사람 없이 멀뚱히 서 있는 허수아비 여러 개를 작동시키자, 나를 타겟으로 한꺼번에 공격이 들어온다. 윽 이건 좀 아프다...!
【3】
또 그런 반응이다. 그래도, 저렇게 자기도 처맞는 건 좀 신선한데. 하지만 허수아비는 한계가 있다. 강찬혁은 그에 대해 자신의 지론을 설명하며 수련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음. 말하는 건 알겠는데요. 그런데 허수아비는 보다 보면 동작이 뻔하거든요. 여기 보세요..."
강찬혁은 허수아비를 작동시켰다. 난이도는 강찬혁 수준에 맞게 고치고, 변칙성 레벨을 최대로 올렸다. 그리고 시작 버튼을 누르자, 허수아비의 눈에 불이 켜지더니 강찬혁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강찬혁을 때리려고 주먹을 뻗는 순간, 강찬혁은 그 동작을 눈치채고 바로 말했다.
"왼쪽"
퍽! 강찬혁의 고개가, 왼쪽에서 온 주먹을 맞고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오른쪽, 이라고 말하자 오른쪽에서 주먹이 날아오고, 정수리, 라고 말하자 정수리에서 공격이 들어왔다. 마치 입으로 리듬게임이라도 하는 것처럼 강찬혁은 자신이 공격을 받는 방향을 전부 다 예측하고 있었다. 강찬혁은 처맞고 있는 상태로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준비 동작만 봐도 다 답이 나오거든요. 인간 특유의 변칙성이 없어서, 저도 모르게 몸이 눈치채고 어디서 공격이 들어올 지 알고 대비를 하게 된답니다. 그래서... 맷집 훈련에는 그렇게 좋지 않아요. 맷집은 맞는다고 훈련이 되는 게 아니라서..."
그래서 강찬혁은 결론을 말한다.
"그러니까 한 번 어떨까요? 저는 맷집 수련해서 좋고, 그 쪽은... 네 뭐. 사람 때리는 스킬 수련해서 좋고."
【4】
여러 개의 허수아비를 정지해 놓고 상대의 허수아비론(?)을 경청한 결과... 나는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설마 이 사람은 이 수련장의 전설적인 고인물(?)이었던 건가.
" 아무리 그래도 빅데이터의 산물인 허수아비보다 변화무쌍하게 공격할 수 있을까 싶지만요. "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면서... 음. 그, 그만 맞으셔도 되지 않을까요. 그보다 오는 방향은 알고 있는데 알고 다 맞다니 이게... 맷집 수련...?
" 그래도 일방적으로 때리기만 하는 건 마음이 불편하니까요. 대련으로 한다면... 상대해 드릴 수 있어요. "
고지식하다고 해도 좋지만, 내 성격이 이런걸.
//찬혁이 오케이할 경우 바로 방패를 꺼내서 옆면으로 휘두릅니다.
【5】
"그 빅데이터도 결국 사람한테서 나온 거랍니다."
그게 강찬혁의 생각이었다. AI가 인간을 뛰어넘는다 해도, AI, Artificial Intelligence, 즉 인공 지능은 외계인과 괴물의 지능을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게 아니라, 인간의 지능을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할 뿐. 결국 인간의 모사품이고, 인간들 중의 최고의 인간이 될 뿐이라. 강찬혁은 그녀의 걱정을 불식시키면서, 방패를 꺼내서 옆면으로 휘두르는 것을 맞았다.
쾅!!!
방패를 맞고 강찬혁의 얼굴이 또 돌아갔다. 얼굴 옆면이 얼얼했다. 강찬혁은 얼얼해진 뺨을 어루만지면서, 눈 앞의 상대에게 물었다. 동작이 빨라서 예상은 못 했지만, 생각보다는 덜 아팠다.
"방패의 넓은 면이 아니라 모서리로 때리는 게 어떨까요. 접촉면적이 너무 넓어서 타격이 분산되네요."
【6】
"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사람 말이죠... "
뭐, AI와 인간 중에 무엇이 우월한지 따지고 싶진 않으니 이 대화는 이쯤하자. AI 하니까 전에 본 드론봇이 생각나긴 하지만...
그리고 손잡이를 쥔 손에 쨍한 진동이 전해지는 것을 꽉 잡는다.
" 방패를 이용해서 싸울 때 공격과 방어를 겸하려다 보면 면을 주로 이용하게 되니까요. 원하신다면. "
하고 이번엔 방패를 내리찍듯이 모서리로 찍어내리려 한다. 둘 다 멀쩡하게 서 있는 상황이다보니 배 쪽으로 향하겠지만... 음, 맷집 좋다니까 괜찮겠지.
【7】
"크억!"
이번에는 좀 강했다. 강찬혁이 예상하지 못한 수준의 고통이, 강찬혁의 신경에 입력되고, 강찬혁의 뇌를 튀겼다. 강찬혁은 배를 맞자마자 배를 움켜쥐고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공격이 들어오지 않자,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위를 올려다보고, 상대방에게 뚱한 표정으로 왜 때리지 않냐고 물어왔다. 맞는 사람이 때리는 사람에게 따지는, 보통의 학교폭력에서는 보기 힘든 정말로 신기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안 때리냐고 말하는 점에서는 더더욱.
"왜 안 때리세요? 방금 엄청 좋았는데."
그 모습은, 지켜보는 사람에게나, 듣는 사람에게나 참으로 기괴하고 초현실적이었으리라. 하지만 강찬혁은 자기가 기괴한 짓을 하고 있건, 초현실적인 헛소리를 내뱉고 있건, 그게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흉하게 보이건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가 강해질 수 있는가였다.
【8】
" ...하아. "
" 지금 조금 인생에 회의감이 들어서요. "
나는 왜 맞은 게 좋았다고 당당하게 평가하고 있는 기괴하고 초현실적인 사람을 위해 내 소중한 넓데데군을 들고 일방적 폭행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왜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는 걸까? 과연 이 차원은 누구의 손에서 태어났으며 무엇을 위해 움직이고 의념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모든 것이 허무하다.
...이럴 때가 아니지.
" 가 아니라, 이건 대련이 아니잖아요. "
일방적 폭행일 뿐이지!
주변 사람들이 안 좋게 걸렸지만 아무튼 내가 잡힌 건 아니라 다행이라는 듯한 눈빛을 지나가면서 보낸다 할지라도.
정말 이건 좀.
" 저도 워리어에요. 그러니까, 맷집을 기르는 건 저한테도 필요하다고요? "
" 적어도 한 대씩 주고받는 걸로 해요. "
하고 이쪽도 뚱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방패는 어따 놨냐고? 마왕 서유하제-만능-상태창에 인벤토리 기능이 탑재되어 있으니까 인벤토리에 넣었다. 비바 의념.
【9】
"...흠. 워리어셨군요."
강찬혁은 상대측의 말을 들어보았다. 사실 강찬혁은 맞는 게 중요했지 때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상대방은 때리는 실력을 수련하는 대가로 강찬혁의 맞는 실력을 수련하는 도움을 주는 상호호혜적이고 상호간의 이기심에 기반한 더 큰 선을 이루는 보이지 않는 손의 조화라고 생각했건만, 상대방이 워리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워리어! 당연히 워리어도 워리어지 공격을 쳐 맞는 망부석 내지는 이족보행 기능이 달린 돌하르방이 아닌 만큼 공격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맞는 게 중요했고, 그렇기에 강찬혁이 맞고 있었는데, 상대방도 워리어라면... 이를 어찌한담.
"흠. 확실히... 워리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랜스나 서포터일 거라고 생각해서, 상호호혜적인 거래, 예를 들어서 누이 좋고 매부 좋고인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쪽 말을 들어보면..."
강찬혁은 그러다가, 손가락을 딱 퉁기고 그녀에게 제안한다.
"그렇다면, 둘 다 때리면서 동시에 맞는 방법이 하나 있어요."
그리고 자신의 이마를 까면서 당당하게 제안했다.
"박치기."
【10】
" ...... "
나는 박치기라는 희대의 명답을 듣고, 흔히 여신앞머리라고 불리는 이마 양옆으로 앞머리가 될 부분을 넘기는 헤어스타일을 해서 드러나 있는 내 이마를 손바닥을 지그시 만졌다. 그리고 신사적이고 현대적인 의사소통 수단을 고안해냈다.
미쳤어요? 라고 튀어나올 뻔한 말을 삼키며.
" ...공격도 중요하죠. "
아래에서 위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대각선 한 방. 턱주가리를 노리는 방패 어택.
이어서 맞은 쪽의 반대편을 노린다. 방패로 관자놀이를 맞아보셨습니까? 이제부터 맞을 수도 있을 테니 각오해라.
플랜은 완벽했다.
이건?일방적폭행이아니라?박치기같은걸들은?내?정신적고통의?보상이아닐까?
【11】
아래에서 위로 맞으니 얼굴이 천장을 향하고, 목이 꺾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도로 돌릴 틈도 없이, 머리통이 왼쪽으로 돌아가고, 그 상태에 강찬혁의 목을 완전히 꺾어버리려는 듯 대각선으로 쳐 들어오는 공격에 목이 한계점까지 꺾였다. 그리고 상대방은 고통에 익숙해질 틈도 없이, 강찬혁의 관자놀이를, 방패의 가장 날카로운 부분으로 콱콱 찌르기 시작햇다.
퍽! 퍽! 퍽! 퍽!
강찬혁은 분명히 선의로 제안한 내용이건만, 상대방은 악의로 받아들이고 진심의 폭행을 선물했다. 하지만 강찬혁은 오히려 좋았다. 의도치 않게 이것이 상대방의 구타 욕구를 촉발시키는 도발로 작용했다면, 음, 그러면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찬혁은 그 생각을 하면서 쓰러진 채 계속 맞고 있다가, 머리만 계속 치는 상대방의 방패를 턱 붙잡고, 고개를 돌려서 부탁했다.
"머리도 좋지만 다른 데 먼저 때려주실래요. 머리부터 때리면, 머리가 멍해져서 고통이 느껴지지 않아요."
【12】
아...
아악...
이런 식으로 인간의 한계를 보고 싶지 않다!!
의념각성자 상대로 맨몸으로 맞지 마 이 미친 고인물아!!
그저... 어지럽다...
" ...그대로 기절하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
때리다 못해 골고루 때리고 싶지까지 않다. 처음부터 싫다...!
신속에 망념 20을 투하한 후, 왠지 1턴에 2번 때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방패를 상체 쪽으로 내리찍었다.
사실 머리로 더 때리면 이대로 피를 흘리며 먼 곳으로 떠나가지 않을까 싶어...
이번 한방... 아니, 두방! 으로 부디 기절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신체 A를 담아 힘껏 쳤다.
【13】
"커허억!"
뚜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방패가 상채에 내리꽂혔다. 강찬혁은 맞다가, 등 쪽은 고통이 들어오지 않아서 그 사이에 방패를 붙잡고, 등 쪽을 하늘로 보이게 엎드린 후 다시 맞고, 이곳도 맞고 저곳도 맞기를 반복했다. 갈비뼈, 명치, 하복부, 여러 곳에 고통이 입력되었고, 강찬혁은 자기가 살아있음을 느끼며 계속 맞았다. 강찬혁은 기절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물음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거 듣다 보니 좋은 생각이네요! 그런데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그동안 많은 상대를 만나봤지만 워리어 중에서 이렇게 잘 치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그리고 계속 두들겨맞던 강찬혁은, 뭔가 잊은 것 같아 다시 얼굴을 들이밀고 말한다.
"아! 남의 이름을 물으려면 제 이름을 먼저 말해야죠! 전 강찬혁! 아프란시아 3학년입니다! 워리어고요!"
【14】
" ... "
거짓말을 해도 전혀 죄책감이 없을 것 같은 이 기분.
" 제노시아, 파인애플 맨 2세입니다. "
이런 사람한테 함부로 개인정보를 알려주지 말라고, 모두들 어렸을 때 제대로 배웠지? 아니라고? 왜 그랬어.
얼굴에 철면피를 깔고, 이번만큼은 티나지 않게 뻔뻔한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고 나 자신의 마음살려주세요을 담으며 반복적으로 방패 무쌍-마구 치기! 를 시전한다.
" ...플이다. "
경을 외우듯 작게 뭔가를 외우기 시작했다.
" 이건 파인애플이다... 이건 파인애플이다... "
내가.
" 이건 팔다리 달린 파인애플이다... 팔다리 달린 파인애플이다... "
그런 나 자신을 무심으로 관조한다.
【15】
제노시아의 파인애플 맨 2세. 강찬혁은 아주 옛날에 봤던 쾌걸 헬스맨 2세를 생각했다. 거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전부 ~~맨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지. 덮밥맨. 깡패맨. 메탈워그레이맨. 포켓맨. 피카츄맨. 그 외 기타등등. 설마 그런 건가? 말로만 듣던 영웅의 등장이라 기뻐하고 있었는데, 입고 있는 옷이 청월고교 옷이라 약간 깼다. 그래서 물어보고자 했다.
"그런데... 왜 입고 있는 옷이 제노그라시아 교복이 아니라 청월고교 교ㅂ..."
퍽! 그 말은, 반론을 차단하려는 상대방의 말 앞에 끊겼다. 강찬혁이 말 좀 하자고 말하려 해도, 파인애플에 미친 상대는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폭력은, 강찬혁이 기절한 다음에도 한동안 계속되었겠지. 강찬혁은 그런 미래를 보고, 머리에 흐르는 피로 다잉 메세지 같은 문자를 남겼다.
<기절시 근처 양호실에 연락해주세요>
가 마지막이었다.
【16】
얼마나 지났을까.
아까 들은 말에 대해 뒤늦게 대답을 했다.
" 이게 청월고교 교복이라고요? 이제 빨간색이니까 적월고교 교복 아닐까요? "
조용해진 상대를 보며 조용히 눈을 감고 파인애플로 가득 찬 정신을 가라앉혔다.
나무아미타불.
부디 평안을 빕니다.
다음 생에는 파인애플-별에서 태어나기를...
...이 아니잖아!
나는 빠르게 ─상대의 상처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아프란시아 3학년 워리어 찬혁 강씨를 들쳐멘 다음 아프란시아 보건부로 향했다.
" 대련 중 일어난 불상사입니다. "
오늘의 교훈, 갑자기 길 가던 맞는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 잡혀서 맷집 단련을 위한 공격용 허수아비 일을 하게 되었어도 결코 정신을 놓지 말자. 이걸 어떻게 안 놓을 수 있는가 싶지만 아무튼 놓으면 안 된다...
나무삼.
- 지훈 일상[4] (209스레~213스레) - 8월 8일(새벽)
- 【1】
" ...어울리나? "
지훈은 미리 약속장소에서 비아를 기다리며 자신의 복장을 점검했다. 검은색 오버핏 맨투맨에 흰색 셔츠를 넣어입고, 청바지를 입은... 정말 정석적이라는 느낌.
솔직히 말해서 이런 식으로 조금이나마 차려입은 횟수가 많진 않았기에 언제나 이런 일이 있을 때면 걱정이 앞섰다. 특히나 이번 경우에는, 단순히 옷을 잘 입었느냐가 문제가 아닌 상대가 마음에 들어하냐가 문제였으니 더더욱.
어울리지 않으면 어떡하지- 라고 걱정하던 찰나, 저 멀리에서 아는 얼굴이 보여 지훈은 반가운듯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 왔어? "
"오랜만이네." 라며 작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사실 저번에 고백한 이후로 말을 건네는 것이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려나. 잠시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그녀의 곁에 다가가려고도 했겠지.
【2】
이건, 전투다. 갑옷을 차려입고 전장으로 나가는 기사처럼 나 역시도 알맞은 차림을 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어깨 라인을 따라 파란 포인트컬러가 들어간 검은 티셔츠를 입고 왔을 뿐이다. 흠흠, 절대 '어필'까지는 아니고, 그냥 좀, 그렇단 거지.
" 오랜만이라 할 만큼 오래 지나지도 않았잖아. ...안녕. "
기분이 약간 어색해지려고 한다. 고백받고 애매한 여지를 남겨버린지 며칠, 성대하게 신경써버리고, 진화나 다림이한테 애매하게 밝혀지기도 하고. 그런 시간이 폭풍같이 지나가서 다시 만났다. 분명 너도 어색할 텐데.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살며시 맞추다가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나도 한 걸음 다가간다.
" 그보다, 이번의 데이트란 건... 그, 뭐야? "
알아차리라고 입은 거긴 하지만, 괜히 상대방의 색에 맞춘 것을 입고 왔단 생각이 들어서, 괜히 포인트컬러가 지나가는 어깨가 화끈한 느낌이었다. 눈치채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그냥 넘어가주길 하는 마음도 있고. 다림이가 말했을 땐 은근슬쩍 눈 색으로 포인트컬러를 잡는 게 좋다─고 말했지만 생각해보니 지훈이를 만나러 오는 데 까만색에 파란색으로 포인트 컬러는 은근슬쩍이 아니라 200km/s 회전없는 돌직구 아니야?!
아뿔싸!
프로의 실력이 아니면 섣불리 스스로 코디네이트를 해선 안되었던 걸까. 그렇지만 보라색 포인트컬러였으니까 그건.
【3】
" 오랜만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꽤 긴 시간이 지난 건 맞지? "
"보고싶었어-" 라며, 비아 역시 어색해하는 것을 눈치채고는 어색함을 환기하기 위해 일부러 능청스러운 흉내를 냈으려나?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마주하다가, 시야 바깥에 들어온 비아의 옷을 본다. 자신의 눈 색과 같은 푸른색 라인이 그려진 티셔츠... 흐응 흐응. 비아를 보던 지훈의 눈이 살짝 휘었을까.
" 혹시, 데이트 기대하고 있어? "
직설적으로 묻고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모른척도 하고싶었다. 그렇게 생각해서 내민 답은 은근히 말하는 것이었나. 비아의 어깨에 있는 푸른 선을 가볍게 매만지고는 눈웃음을 지으며 능청스레 물었다. 기대하고 있어서, 자신을 생각해서 이런 옷을 입고 온 거냐고.
" 응. 같이 영화 보고싶어서. 영화관으로 갈까 싶네. "
데이트가 뭔지 묻는 비아를 향해 가디언칩을 이용한 채팅으로 영화표를 하나 보여준다. 정확히는 쿠폰...이었지. 커플석 쿠폰. 자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설명했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냐면 그 쿠폰, 아직 예매도 안 한 쿠폰에 불과하니까. 자리 어쩌고 얘기하는 것은 거짓말이었을까. 비아가 눈치챘을지는 모르겠지만.
【4】
보고 싶었어, 란 말에 또 드는 어색함을 속으로 꾹꾹 씹었다. 아주 잠깐 못 본 동안에도 보고 싶었다란 말은 흔한 너스레지만 의미를 부여하면 꽤나 부끄러운 말 아니던가. 그리고 평소 무표정만 짓던 후배의 얼굴에 미소의 끄트머리나마 스쳐 지나간 순간, 정말 한결같이 당했단 걸 깨달았다.
" 딱히, 그렇진... 않았던, 건 아니지만. "
기대했던가. 오늘 너를 만나기 전까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하긴 했지만, 잘 모르겠다. 친구이자 후배를 만나서 옷을 추천받고 아프란시아에 가까운 쪽 서점에 들러서 흑역사까지 만들어 가며 지냈던 최근의 일은 모두 너와의 관계를 위해서 했던 일들이지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데이트까지 나왔으면서 '싫다'란 대답을 할 수도 없단 걸 알았기에, 너의 함정에 어김없이 빠져서 부정만은 아닌 대답을 하고 말았다.
" ...커플석 티켓? "
또, 또 함정이다! 지훈이가 나를 빠트리려는 함정을 파고 있어! 정말 미워!
얘기로는 자리가 없어서라고 하지만... 딱 커플석만 빼고 자리가 다 차버리는 일이 하필 이럴 때 일어날리가. 하지만 끙끙대면서도 들은 이상 믿을 수밖에 없다. 주먹쥔 손을 바닥으로 쭉 뻗으면서 곤란한 표정을 짓고 지훈이를 바라봤다.
" ...그래, 가자. 가면 되잖아. 무슨 영화야? "
손과 발이 같이 나가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방향도 모르는데 아무 방향으로든 앞질러 나가려고 한다. 조급함의 표시로 보일 수 있다는 건 부정하진 않겠다.
【5】
" 아니지만? "
그녀의 행동에서 이미 어느정도 마음을 눈치챘기는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냥 넘어가도 될 것을, 굳이 한번 더 물어보는 것은, 비아를 놀리는 것이었던가. 그는 가끔씩 이렇게 눈치채지 못 했다는 듯이 행동하고는 했다. 단순히 재미있어서. 놀리고 싶어서. 라는 것이 이유라는 점에서, 꽤나 성격이 나쁘기는 했지만.
" 상관은 없지? "
비아가 거절하지 못할 것을 알고는 일부러 재확인했다. 그런데, 믿는 건가? 진짜? 그 어설픈 거짓말을 믿는다고? 억누르지 않아도 될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억누른다. 어차피 그의 표정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 했다. 그야, 귀여웠으니까. 순진하게 자신의 말을 믿고 속아넘어가는 모습이, 거절하지 못 하는 그 모습이 귀여웠으니까. 괜히 입가를 한번 매만지며 비아를 빤히 바라보다가,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 로맨스 영화. 이쪽이야. "
먼저 앞질러나가려고 하는 것에 비아의 손을 붙잡고는 앞장서서 이끌려고 했다. 조급함을 제지하려는 의도임과 동시에, 은근슬쩍 손을 맞잡으려는 시도였다. 비아가 피했다면 소매로 만족했겠지만.
그렇게 앞장서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영화관 입구에 도착했을까? 지훈은 비아를 상영중인 로맨스 영화들의 포스터가 모여져있는 곳으로 비아를 데려갔다.
" 어떤 영화가 좋으려나. "
달달해보이는 영화가 하나, 슬픈 분위기의 영화가 하나, 조금 코믹스러움이 섞인 영화가 하나... 그리고 조금 수위가 있어보이는 영화가 하나 있었다. 네가지 중 어떤게 좋을까. 비아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마음에 드는 거 있어?" 라고 물어보았다.
【6】
" 그만 놀려. 갈 거야. "
약간 샐쭉한 태도를 보이면서 되묻는 지훈이한테 팔을 뻗어 툭 가볍게 밀었다. 이런 건 단호하게 거절하는 쪽이 좋다지만, 난 어째 어떤 반응을 하든 재미있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단 말이야. 적당히 하라구, 적당히.
" 로맨스? "
장르 선정까지...! 치를 떠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손을 잡는 걸 이번엔 먼저 막지 못하고 손이 잡혔다. 칼을 잡는 손. 이 몸만 크고 속은 장난기로 꽉 차서 어리게 느껴지는 후배의, 남자의 손이 내 손을 맞잡고 있었다.
...뭐야, 정말!
적당한 때 떼버려야지 하고 유야무야 손을 잡았다. 영화관 입구에 도착할 때쯤 손을 빼려고 잡은 손을 꾸물럭대며 움직였다. 놔라. 느르그...
" ...잠깐만. 미리 표를 예매한 거 아니었어? "
포스터들이 있는 곳까지 도착해서 여러 포스터 앞에 눈이 돌아갈 뻔하다가... 영성 B가 위기를 감지하고 경고하는 것에 문득 깨달았다. 커플석 티켓이 아니다. 커플석 쿠폰이었다.
...속을 뻔했다!
【7】
" 미안. 화났어? "
샐쭉한 태도를 보이는 비아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살짝 시무룩한 기색을 내비쳤다...만 이것 역시 연기였을까. 표정에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편했지. 물론 비아가 알아챌 수도 있었겠지만.
" 응? 그야 데이트니까? "
비아 입장에서는 덫이었겠지만, 지훈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데이트에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러 가자고는... 못 하잖는가. 적어도 분위기가 있는 영화를 보는게... 하여튼, 그는 손을 붙잡고는 이끌면서도, 손 끝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 때문에 조금 긴장했는지 힘이 들어가 비아의 손을 꼭 쥐었을까.
손을 꾸물럭대기 시작하자 살며시 장난기를 내비치며 불길한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그냥 놔주었지. 더 놀리면 화낼지도 모르니.
" ...음- 음, 이제와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
"자아자아, 무슨 영화가 좋아?" 라며 능청스레 포스터를 가리켰다.
...쳇. 조금만 더 있었으면 완전히 속아넘기고 넘어갈 수 있었는데. 눈치가 빨랐다...
【8】
" 아직 안 났어. "
귀엽게 굴어도 너무 놀리면 안 봐줄 거야. 시무룩한 표정을 한 지훈이 앞에 손등 보인 손을 내저었다. 설마 저게 연기는 아니겠지? 맞을 거 같은데.
" 다른 친구들한테도 데이트 간다면서 로맨스 영화나 보러 가고 말야? "
연인 사이의 각별한 만남과 친구의 만남 사이의 경계가 옅은 거라고 생각했던 이 후배는 사실 '친구끼리의 데이트'란 명목으로 여러 사람을 홀려왔던 건 아닐까. 지그시 쳐다보다가 손을 꼭 쥐는 것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안 아프지만 왠지 아야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 아야. "
조금 늦게, 엄살은 맥없이 튀어나왔다. 의식적으로 튀어나올 말이 아니라서일까.
사악한 표정을 짓는 지훈이를 꾸우우욱 쏘아보다가 잡은 손이 풀린 걸 느꼈다. 한순간 묶여 있던 손이 풀리자 시원한 느낌. 허공에 손을 털듯 살짝 흔들며 걸음을 빨리한다.
" 중요하잖아? "
뭐가 안 중요해. 한지훈 또 너야? 어이없다는 눈으로 지훈이를 바라보다가 영화 포스터로 시선을 돌렸다. " 로맨스 영화까진 봐줄 수 있지만, 그래, 커플석은 절대 안 돼. 그걸로 타협하자. " 봐줬다는 것보단 지훈이를 무시하고 영화 쪽으로 눈을 돌린 것에 가까웠지만.
" 일단 네 번째는 안 돼. "
수위 있는 영화라니 당치도 않다!
" 첫 번째는... 으으음, 이건 아니고. 두 번째는, 같이 와서 슬픈 분위기의 영화를 보고 싶진 않으니까. "
구체적으로 울기라도 하면 놀릴 것 같다.
" 세 번째. 분위기도 가벼워 보이고 좋은데, 이건 어때? "
【9】
" ...아직, 이구나. 더 놀리면 안 되겠네. "
시무룩한 표정 뒤에 미약하게 아쉬움이 느껴졌을지도... 하여튼, 너무 놀리면 분명 화낼테니 적당히 조절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려나. 화내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으니.
" 그건... 데이트때 로맨스 영화 보는게 나쁜 건 아니잖아, 응. "
잠시 눈을 피하며 말을 돌리려고 했으려나. 짚이는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아, 그렇다고 해서 누굴 홀리고 다닌 것도 아니지만... 하여튼. 지훈은 비아가 눈쌀을 찌푸리며 뒤늦게나마 아야. 라는 소리를 내자 살짝 당황하더니
" 아, 그, 아팠어? "
보기 드물게 당황했다.
...의외로 이런 부분에선 쉽게 속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정말 당황한 듯 비아의 손을 살피려고 했을테니.
" 그래도 나름 커플석 쿠폰이었는데... "
미리 준비해놓은 것을 못 써먹게 되자 뇨롱해진 표정을 짓는 지훈이었을까.. 돈 내고 새 표를 사면 되겠지만... 그래도 커플석에 앉아보고 싶었으니까. 사심 때문이라도. 그래도 비아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 그렇게 하기로 했을까.
" 뭐, 나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럼 그걸로 할게? "
3번 영화를 예매...예매...
...좌석이 없다. 다른 상영관도.. 없다. 인기가 많은 영화였구나.. 다음 영화는 한시간 정도 기다려야 하고...
" 저기, 다른 영화들은 다 좌석이 없는데, 2번도 괜찮아? "
비아에게 다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1번이나 3번은 좌석이 없었고... 4번은 애초에 논외였다. 그건 비아가 싫어할 것 같았으니.
【10】
아직이라고 말했는데도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훈이를 보고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웃었다. 아직 화 안 났다니깐. —하지만 이 표정의 이유가 더 못 놀리는 게 아쉬워서라면 꿀밤 한 대 예약이다.
" ...뭐 찔리는 구석 있어? "
떳떳한 사람의 이럴 때 반응은 "아니야, 이런 걸 보러 가는 건 너뿐이야!"같은 게 아닐까 싶은데... 저 돌아가는 눈 하며 합리화하는 말투.
지켜보겠어.
" 아플 리가 없잖아. "
좀 늦어서 왜 그랬지 하고 후회할 정도의 엄살이었는데, 이런 건 또 속다니. 아웅다웅하며 뛰어다니다가 보호자가 쓰러진 척을 하면 꼬리를 내리며 종종종 옆으로 다가오는 까만 댕댕이를 보는 느낌이다. 어디 아픈 구석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손을 잡고 이리저리 보는 것에 웃음을 터트리며 지훈이의 손을 잡아 올렸다 내렸다. 뭔가 한 방 돌려준 느낌이라 시원하기도 하다.
" 쿠폰이 있으니까 쓰자는 것도 아니고, 이미 예매해 둔 것처럼 속였으니까 문제지. 다른 사람이랑 영화 볼 때 써. "
( ̄^ ̄) (´・ω・`)
조금 심술궂은 말투 같은 말이 나갔다. 그래, 괘씸한 것도 있지만... 아, 아직 난 커플석 같은 건! 좀 부담스럽고! 그, 내가 앉아본 적은 가족과 같이 앉은 거 외엔 없지만, 두 사람이 한 좌석에 앉을 수 있게 해놓은 거지. 그렇게 가깝게 붙는 건 좀 그러니까, 우리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 음, 친구긴 하지만. 아무튼 말야.
" 응. "
하고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지훈이가 예매하는 걸 옆에서 열심히 살펴보다가...
" 정말이네... "
정말로 좌석이 없는 사태가 일어나다니. 어쨌든 같이 놀러왔는데 슬픈 영화 같은 걸 보면 분위기가 가라앉을 거 같아서 후보에서 제외했는데.
" 그러면 2번이라도 보자. "
아무것도 안 보고 이대로 돌아가거나 어색하게 한 시간을 기다리는 것보단 나으니까.
그래도 커플석은 안 돼, 라고 미리 해놓은 게 다행이다. 붙는 게 부담스러운 것도 있지만 눈물이라도 터졌는데—난 흔히 신파극이라고 하는 눈물 쥐어짜기에도 못 버티는 편이다!— 지근거리에서 빠안히 쳐다봐진다고 하면 수치심을 못 참았을 것 같아. 커플이라면 그런 슬픈 로맨스를 보면서 우는 연인을 옆에서 끌어안는다 같은 건 두근거리는 시츄에이션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랑 지훈이 사이에 그런 걸 기대할 순 없으니.
【11】
비아의 예상이 맞았지만... 그것을 괜히 알려 꿀밤을 맞으려고 하지는 않았으려나?
" 아무것도 없어- "
지훈은 일부러 비아의 눈을 피하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이미 눈치챈 것 같은데... 으윽, 그렇지만 이전까지는 데이트나 놀러가는 거나 비슷한 어감으로 사용했으니 어쩔 수 없는 걸... 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지.
" ...진짜? "
아플 리가 없다는 말에 비아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했을까. 눈을 보아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은- 곧 안심한 듯이 한숨을 내쉬더니 웃음을 터트리는 비아를 보며 "왜 웃어?" 하고 물었지. 자신은 정말로 비아가 왜 웃는지 몰랐으니까.
" 이걸 다른 사람이랑 쓰고싶진 않은데... "
심술궂은 말투에 살짝 시선을 돌리며 들릴 듯 말 듯하게 중얼거렸으려나. 딱히 들키고 싶어서 중얼거린 것은 아니었던지라 비아가 못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비아의 말에, 잠시동안 뇨롱한 표정을 유지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깊게 내쉬었지.
여담으로 저 이모지... 비아랑 지훈이 표정인 것 같은데 귀엽다...
" 그럼 2번으로 할까- "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두자리를 예매하고선, 영화관 안쪽으로 향했을까.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고, 잠시간의 광고가 지나간 뒤에서야 영화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영화 내용은 전쟁중인 적국에서 태어난 두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지만 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거나, 잠시 헤어지거나, 심지어 죽을 뻔 하기도 하는... 그런 내용이었을까.
꽤나 정석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재미있게 보던 와중 문득 비아의 반응이 궁금해져 옆을 슬쩍 돌아보았다.
【12】
" 음, 나도 아무렇지도 않아. 너한테 안 두근거리게 될 것 같긴 하지만. "
시선을 피하는 벽색 눈동자를 따라가며 눈을 사알며시 찌푸리다가 풀었다. 뭔가 선수 같으면서도 진짜 선수였으면 이럴 때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어쩔 수 없이 어설픈 점이 귀엽게 느껴져도...
지켜보겠어(2).
" 정말. 너 오랜만이라고 하더니 전에 나랑 싸웠을 때는 잊어버린 거야? 그때 나 완전 튼튼했잖아. "
그리고 왜 웃냐며 어리둥절하는 지훈이를 보며 그냥 웃었다. 여기서 귀여워서라고 말해봤자 안 귀여운 반응만 돌아올 뿐이겠지? 그러면 계속 궁금해하게 두는 게 낫겠다. 왜 사람을 놀리는지, 하던 말을 끊는지... 조금 알게 될 것 같기도 하고.
" 응? "
뭔가 말했는데, 시끌시끌한 소리에 묻혀서 놓쳤다. 영성을 강화하면 뭐라 말했었는지 알만할 것 같은데... 됐다, 혼잣말 하나 듣는다고 무슨 영광을 누린다고. 얘는 참, 혼잣말 작게도 하네. 왠지 뇨롱이라는 의성어가 생각나는 뚱한 표정을 보다가 한숨 쉴 때쯤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려고 한다. 한숨 쉬면 복 달아나. 자 여기, 내 복 나눠줄게. 잘 갖고 있어. 라는 실없는 생각을 해서였나.
" 좋아. "
그리고 같이 영화관에 들어가서 나는... 정말 영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장애물이 있는 사랑의 슬픔과 애절함.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듯 이어지는 애정. 산지 얼마 안된 셔츠인데 늘어나 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포인트컬러 티셔츠의 목 부분을 양손으로 꾹 잡고 잡아 늘리면서 경기 구경하듯 보고 있었다. 아마 배우 빼고 절대 정숙해야 하는 영화관이 아니라 집에서 보는 거였으면 입술을 꾹 깨물면서 힘내를 외치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13】
" ...그건, 곤란한데... "
눈을 찌푸리며 자신과 시선을 맞추려는 비아의 모습에 한껏 의기소침해져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이 표정은 진짜였을까? 적어도 연기는 아니었겠지. 안 두근거릴 것 같다는 말까지 들어버렸으니. 어쩔 줄 몰라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미안..." 하고 작게 중얼거린다.
" 그 때는 의념으로 강화했을 때고... 지금은 그냥 맨몸이니까. "
생각보다 걱정이 많은 성격인 건지 자꾸만 기웃거리며 비아의 손을 살피는 지훈이었다. 그냥 웃을 뿐인 비아의 볼을, 쿡 누르는 시늉을 하듯 손가락을 펴서 찌르는 척 했으려나. 진짜 찌르지는 않았겠지?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은 중얼거림. 들리지 않았어도 괜찮다. 어차피 딱히 들키고 싶던 말도 아니었으니. 비아가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자 비아를 맑은 얼굴로 빤히 바라본다. 그러다가 톡톡 두드려주는 것을 멈추면, 그제서야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으려나. 그 무언의 바라봄이 조금 더 해달라는 뜻이었나보다..
' 재미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
비아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조금 꺼려하더니, 그래도 재미있어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려나..
영화는 점점 끝을 향해 가고, 두 사람은 전쟁이 끝나 만날 수 있게 된다. 여성은 남성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간다. 여성은 낯선 나라에서 수소문 끝에 남성의 집을 찾게 되지만... 남성은 전쟁의 끝자락에서 숨을 거뒀던 상태였고, 허망하게 남성의 사진을 보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나게 되었다.
" ....후우. 마지막이 조금 슬프네... 그래도 재미있었지. "
그렇지? 라며 동의를 구하듯이 비아를 바라보았으려나?
【14】
" 나한테 사과할 게 뭐 있어. "
라고 말하면서 슬쩍 지훈이의 안색을 살폈다. 이번엔 정말로 기운 없어진 거 같기도 하고. 어떻게 할지 잠깐 안절부절하다가 " 안 그럴 수도 있어... "라고 짧게 덧붙이면서 지켜보겠어 포인트를 0.1 깎는다. 이걸로 지켜보겠어(1.9).
" 괜찮아. 아직 튼튼해. "
하고 힘을 빼서 만지면 얇은 살이나마 말랑하게 느껴졌을 손에 힘을 줬다. 손바닥을 눌러도 단단하게 만져지도록. 웃다가 갑자기 볼을 찌르려는 것처럼 올라오는 손가락을 피하려고 잽싸게 뒤로 물러나면서 자연스럽게 지훈이가 살펴보는 손도 빼려고 했다.
(´ ω`)ノ≡≡≡3
" 정말 고양이 닮았네. "
하고 속마음을 내뱉으면서 지훈이의 검은 머리카락에 손을 뻗고 뒤로 두어번 쓸어내리려고 한다. 뭔가 친한 사람이 궁디팡팡 해줘서 꼬리가 올라가는데 갑자기 멈춰서 꼬리가 쭈욱 내려가면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고양이 같달까. 묘하게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가상의 고양이를 떠올리다가, 후배를 동물 취급하면 안 된다는 (당연한) 생각을 떠올렸다. 이쯤 해야지.
-
" 이제야 겨우 만날 거 같았는데 낚시라니이... "
。:゚(。ノω\。)゚・。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나는 텅 빈 집에서 멍하니 사진을 바라보는 여성의 잔상을 곱씹으면서 슬픈 결말의 여운에 젖어 있었다. 전쟁이 끝났다.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국민의 이득이 아닌 지도자의 이득만을 위해 목숨이 터져나가는 전쟁은 끝이 나고, 전쟁의 기억이 흐지부지된 뒤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을 찾아 나섰다. 그전까지 전쟁을 하던 나라로 태평하게 여행을 떠나는 여자를 가족마저 손가락질하고, 낯선 나라에서 금방까지 적국이었던 나라의 여인이 찾아나서는 남성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려줄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전쟁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어느 여자의 동정으로 여주인공은 마침내 남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주워듣고, 모든 고통을 보상받을 달콤한 사랑을 찾아간다. 고생 끝에 달콤함이 온다, 그렇게 이 영화에서 제일 달콤했고 점점 쓴맛으로 흐려졌던 둘의 만남보다 더 희망차고 밝게 그려지던 장면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잘 관리된 집의 문을 열었을 때, 그녀를 맞아준 것은 단지 관리인이었다. 남성이 없어진 집을 단지 선의로 관리해 주던 관리인이, 아무것도 모르고 희망에 차 있던 여주인공에게 현실을 들이민다. 남성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깔끔하고 삭막한 집에 장식품으로 남아 있던 사진 한 장, 그게 아무도 남기려고 하지 않았던 유품이었다...
" 쿠훌쩍... "
。゚(゚´Д`゚)゚。
양손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사이, 감상을 묻는 누군가의 질문은 묻히고 말았다.
【15】
" ...정말이지? "
비아를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리고 조금 안심했는지 이내 표정이 살짝 밝아졌지. 지켜보겠어 포인트 같은게 있는지조차 모르고... 사실 그걸 모르는게 더 나은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 이렇게 하면 당연히 튼튼한데.. "
지훈은 힘을 줘서 딱딱해진 비아의 손을 만지작거리다, 푸훗. 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네- 그러다가 잽싸게 몸을 피하자 비아를 빤히 바라보았지. 내가 만지는게 싫은 거야? 하고 묻는 듯한 눈빛? 물론, 반쯤 장난이겠지만.
" ...냐아-? "
고양이 닮았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양이 흉내를 내보았다. 곧 자신이 뭔 짓을 했는지 깨닫고 비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는 조금 떨어지려고 했지만. 고양이 울음소리라니... 나도 모르게... 왜 수치심은 일을 저지른 후에나 오는 걸까. 후회와 함께 부끄러움이 몰려와 비아를 제대로 쳐다보기도 어려웠다.
" 어, 괜찮아? "
비아가 우는 모습에 지훈이 조금 당황했을까. 이렇게 우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어쩌지, 어쩌지. 왠지 자신이 영화를 보여준 탓인 것 같아 미안함이 듬과 동시에 당황 때문인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 했다. 평소라면 조금 놀리거나, 위로하거나... 아.
잠시 머뭇거리다가, 비아의 손을 잡아 자리에서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는, 조금 조심스레 그녀의 어깨 위로 팔을 둘러 끌어안아주려고 했을까.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였을까. 자신 쪽에 기대게 해주려는 듯이 살짝 끌어당기고는, 그대로 뒷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며 괜찮아라는 말과 함께 비아를 다독여주려고 했다.
【16】
" 응. "
나한테 사과할 건 아니지. ...다른 사람한테면 몰라도. 지켜보겠어 포인트는 아직 1.9나 남아 있다. 데이트의 탈을 쓴 놀러가기에 로맨스 영화를 같이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던가... 그런 건 오해 살 만한 일이니까. 사실 내가 뭐라 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음부턴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잽싸게 뒤로 빠지자 빠안히 쳐다보는 시선. 내 손바닥에 구멍 뚫리기 전에 그만 보란 뜻이니까 시선 내려라. 라고 정말로 말하진 않았지만 쫙 핀 손을 주물주물하면서 눈을 피했다.
" ...진짜 고양이라도 되게? "
그래도 사람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는 건 부끄러웠는지 시선을 피하는 것에 내심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빨리 자리를 뜨려고 걸음을 재촉했다. 이 중에 아는 사람이 없으면 어차피 두 번 기억할 사람도 아니니까.
" 빨리 와. "
-
" ...훌쩍. "
안타까운 일에, 최선을 다해 허무하게 연출된 불행. 거기에 당해서 울고 있는 나와, 앞이 흐려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를 나의 동행자. 아, 싫다. 몰입해서 무심코 울어버릴까봐, 그래서 이런 게 싫었는데. 장난스럽게 웃으며 놀릴 준비를 하는 얼굴이 흐리게 스쳐 지나간다. 손 위에, 손등 위에. 한 번 느껴본 적 있는 감촉이.
네 손이다.
네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네 품에 안긴다. 내 성격을 배려해주는 것처럼 닿는 부분은 많지 않지만, 어깨 위에 무겁지 않게 얹혀지는 사람의 온기. 등을 타고 내려오는 듯한 온기. 몸의 따뜻함이 전해질 듯 전해지지 않을 듯 가까워진 거리로 머리를 쓰다듬어진다. 괜찮긴 무엇이 괜찮단 말인가. 괜찮지 않을 건 또 무엇인가. 하지만 굳이 뭘 생각하지 않고, 익숙한 온기에 편히 기댔다. 무책임하고 흔한 비극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며.
" 이걸로 나중에 놀리면... 너 죽어. "
하지만 이것만은 말해야 했다.
【17】
" ...아니. "
진짜 고양이라도 될 거냐는 말에 입술을 살짝 내밀며 중얼거렸다. 놀림받는게 이런 기분이었던 건가.. 으윽. 직접 놀림받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본 그는, 앞으로는 조금 자제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했으려나.
비아가 빨리 오라고 말하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느릿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겨 따라갔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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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나중에 놀리면 너 죽어.
그 말에 지훈은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정말로 나중에 놀릴 생각으로 웃은게 아니라, 귀여워서. 이렇게 약한 모습을 내비치는 거라던가, 그 와중에 이걸로 장난치지 말라고 말하는 거라던가... 끌어안던 손에 힘을 풀어 살짝 비아와 떨어져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거리를 벌리고는, 비아와 시선을 맞추려고 하였으려나.
" 내가 그렇게 짓궂지는 않으니까. "
소매를 조금 끌어당겨 비아의 눈가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눈물을 닦아주며 동시에 희미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안심해도 괜찮다는 듯이 웃었다. 웃으면서, 어쩌면 비아가 보이기 싫어할지도 모르는 얼굴을 찬찬히 살피고는 눈물자국을 찾아 닦아주려고 했다.
" 놀리지 않을테니 편하게 울어도 괜찮아. "
손을 들어올려 비아를 천천히 쓰다듬으려고 했을까. 어쩐지, 연상인 비아를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듯한 손길이었을지도.
【18】
눈앞이 흐리다. 검은 화면에 흰 글자로 크레딧이 올라갈 때마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흰 빛이 시야에 들어와 눈가에 맺힌 눈물에 반사되는 게 꽤 거슬렸다. 눈을 깜빡이며 눈물방울을 떨쳐내려 하면서도 네 눈을 흐리게 바라본 것은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 거짓말쟁이. "
여태까지의 행적을 생각해 봐.
톡톡 눈가를 두드리는 부드러운 감촉이 낯설다. 나에게 웃음을 준 사람은 많았지만 눈물을 닦아 준 사람은 없었다. 늘 혼자 닦아내고, 남은 슬픔은 같이 닦았지. 얼굴을 가리려고 손을 올리다가, 눈 양옆으로 흘러내린 곳을 닦는 소매자락을 느끼고 멈췄다. 이제 예민하지 않은 피부는 붉어지진 않았겠지만 물자국은 남아 있을 것 같았다.
" 괜찮으니까, 이제 안 울어. "
그래도 어린애 취급하는 그 손길을 밀어내지 않은 건 어째서일까. 그래, 어린아이가 우는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던 미숙하고 따뜻한 우정을 떠올린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들은 대개 어설프고 아름답다.
" 얘는, 슬픈 영화 가지고 우는 거 가지고. 날 울보로 만드니. 내가 슬픈 게 아니라 영화가 슬픈 거라니까. "
【19】
" 진짠데... 믿어줘. "
물론 여태까지의 행실이 안 좋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누군가 우는 모습을 놀릴 정도로 못 되지는 않았다고, 적어도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으려나.
지훈은 비아의 눈가를 닦아주고 물기가 묻어있는 부분을 바라보았다. 붉어지지는... 않겠지? 조금 걱정되었다. 물자국을 열심히 소매로 닦아주다가, 가만히 비아를 바라보더니 이내 비아의 볼을 가볍게 매만져보려고 시도했을까.
" ...안 울어도 조금만 더 이렇게 있으면 안 돼? "
어린애를 대하듯 비아를 쓰다듬다가, 조금 힘을 주어 끌어안으려고 했다. 지금 붙어있는 이 감촉이, 온기가, 자신이 바라던 것이라 행복했을까. 비록 그에게 완전히 허락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더 안아도 되냐며 허락을 구한 것이었겠지.
" 그럼 영화도, 비아도 슬픈 걸로 할까. "
그럼에도 비아가 조금 진정한 듯 하자 어김없이 놀리려고 하는 것은, 그의 나쁜 습관이었다. 비아를 향해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려보이더니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던가.
【20】
볼 위로 올라오는 손을 이번엔 손으로 잡아, 볼과 너의 손 사이에 엄지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떼어내려는 것도 아주 허용한 것도 아닌 그 정도가, 나에겐 아직 너무 가깝지만 괜찮다 할 만했다.
" 영화관에서 이런 걸 하고 있어도 되니. "
질문이 아니라 타이르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가면서도 흘깃흘깃 쳐다보는 게 묘하게 신경쓰이기도 하고. 사람 시선을 그렇게 많이는 아니어도 꽤 신경쓰는 편이었다. 끌어안으려는 품 속에서 몸을 버둥버둥 흔들며 지훈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역으로 손을 너의 머리카락으로 뻗으며, 거리를 벌리려고 한다.
" ...죽어, 진짜. 타협안은 안 받아. "
또 놀림 모드가 된 걸 보고 한껏 째려보면서 가슴팍을 내리치려 한다. 의념은 안 담았지만, 정말 힘껏. 랜스 적성을 인정받지 않을까 싶을 만큼 강하게 양주먹으로 퍽퍽. 조금 감동하려 하면 이 모양이니, 어떻게 네가 날 설레게 만들겠어.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도 화는 나지 않았다.
" 이만 우리도 나가자. 영화 끝났잖아. "
네가 안 나가면 질질질 끌고 나가려고 하며, 거절을 거절하는 말을 했다.
【21】
" ...안 된다는 말은 없었는데. "
타이르는 말, 손 안에 들어온 엄지손가락과 그로 인해 벌려진 미묘한 거리, 버둥버둥 흔들리는 비아의 몸...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쓰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중얼거렸다. 아직은 이정도 거리감이구나. 싶었던가. 물론 그것을 예상하지 못 했던 것도 아니고,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 아쉬움의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결국 비아의 엄지손가락을 사이에 두고 살짝 매만지다가, 버둥거리는 비아를 살며시 놓아주었으려나?
" 아, 아, 아악... 잠깐만 나 정말 아파... "
정말 힘껏 내리치기 시작하자 신체 B에 불과한 지훈이는 몇대 맞고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기색을 내비쳤을까? 과장한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말 죽을 것 같은 것은 사실이었으니. 심지어 양주먹...
기절하지 않은게 스스로가 장했던 지훈은 비아의 주먹을 손으로 붙잡고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 조금 더 있고싶었는데... 아쉬워라. "
비아의 말에 얌전히 따라나가며 (처음엔 질질 이끌렸겠지만.) 아쉬운 듯 중얼거렸던가.
【22】
" 암묵적인 규칙이란 게 있고 매너란 게 있고 그 위에 사람이 있는 거야. "
지훈이가 떨어지자 그 머리카락에 뻗은 손으로 가볍게 쓱쓱 쓰다듬어 주려고 하며 한숨섞인 말을 했다. 평소엔 쉽게 접촉도 허락 안 하면서 자기는 남을 쓰다듬으려 하는 건 꽤 모순이지. 그래도 오늘은 주고받은 편이니 괜찮지 않을까 하고.
" 엄살부리지 말고. "
아픈 척을 하려나보다 하고 또 치려는데 어째 기색이 이상하다. 진짜 아파 죽겠다는 것처럼. 그리고 주먹을 붙잡고 도리도리하는 건... 어라, 너무 세게 쳤나? 당황하며 손을 거뒀다.
" 아쉬워하지 마... 어째, 너랑 영화 보러 오면 되는 일이 없단 말야. "
아쉬워하는 지훈이를 질질 끌다가 얌전히 따라주기 시작하면서 평범하게 같이 나올 수 있었다. 그나저나 그냥 영화관에 마가 낀 건지 영화 선정이 밖의 사람들의 농간으로 몹시 잘못됐던 건지. ...아, 메타발언은 자제하자.
" 맞은 덴 좀 괜찮고? "
때려놓고 이런 말 하긴 너무한데 정말 아파보였기도 했고... 살짝 고개를 숙이면서 두드려맞은 지훈이의 가슴팍을 바라본다.
【23】
" 암묵적인 규칙도, 매너도 지키고 살면 너무 빡빡하잖아... "
한숨섞인 말을 듣고는 조금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지만, 그와는 별개로 손길은 거부하지 않았으려나. 오히려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편안하다는 듯이 눈을 감았고? 또 반사적으로 이래버린 자신의 모습을 깨달았지만, 그래도 본능을 거부하고 싶지는 않았지.
" 엄살... 아닌데... "
만화적인 효과가 있었다면 피를 토했을 법한 기분이 들었으려나? 양손 풀스윙을 가슴에 맞은 건 꽤나 아팠다...만 솔직히 말하면 맞을 때는 아팠는데 맞고 나보니 생각보다 괜찮았겠지. 비아의 당황한 모습이 계속 보고싶어서 조금 아픈 척을 한 거겠고.
" 그래도 다음번에 또 같이 와줄 거지? "
비아의 투덜거림을 듣고는 입꼬리만 가볍게 올리다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이런 일이 있었어도 다음 번에 같이 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겠지.
물론 그 일들은 조작된 것이기는 하지만 일단 넘어가자.
" 쓰다듬게 해주면 조금 나을지도... "
살짝 고개를 숙인 비아를 빤히 바라보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아픈 건 다 가셨긴 한데... 평소에 항상 비슷한 눈높이에 있다가 조금 아래로 숙이자, 쓰다듬어보고 싶은 느낌이었던가.
【24】
" 그래도 그 갑갑한 삶 속에 숨통 트일 때가 지금은 아닌 거겠지. "
눈까지 감으며 편안하게 쓰다듬받는 모습에 잠시 손을 멈췄다가 마저 쓰다듬는다. 그리고 남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턱선을 따라 손으로 쓸어내리려 한다. 무의식 중에 그렇게 하려 했단 걸 늦게 깨닫는다. 이건 귀여운 후배를 대하는 태도인가, 그보다 가까운 무엇을 대하는 태도인가... 끌어안는 널 그런 핑계로 밀어낸 지 얼마나 됐다고, 얼굴이 뜨거워지는 느낌이다.
" 정말? "
이, 이건 아픈 척이 아니라 진짜인 거 같은데. 띄엄띄엄 내뱉는 반론에 당황하다가, 결국 이도 저도 아니게 나와 버리고 말았지만.
" ...안 올거야. 오기 전에 커플석인지 아닌지 무슨 영화 볼 건지 좌석은 있는지 다 확인하고 미리 예매하고 오는 거 아니면. "
그렇게 말해도 그런 상황이 필요할 때면 인원정산 시스템 오류든 뭐든 갖다 붙여서 결국 그런 상황이 될 거라고? 일상을 위한 초☆차☆원 개입 멈춰!!
아무튼, 변수는 없는 편이 나으니까 정말로. 울어버린 걸 생각하면 다시 부끄러워질 만도 하고... 괜히 슬프라고 만든 영화 결말이 원망스러워지기도 하고...
" ...내 머리가 만병통치약이야? "
이건 실리를 챙기려는 함정이다. 공명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옆에서 가슴팍을 들여다보려고 살짝 숙인 고개를 보자마자 머리부터 탐이 났던가. 부들부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나서 등 뒤로 팔을 돌려 등의 절반보다 조금 더 긴 길이까지 내려온 묶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아하.
" 이거라도 쓰다듬을래? "
말 꼬리를 내미는 것 같은 느낌으로 지훈이 손 위에 묶음머리 끝을 탁 올리려 한다. 이대로 —그러진 않을 거 같지만— 머리카락 잡아당기면, 음, 두피 힘으로 버텨야지. 구미호 건강 강화!
【25】
" 그 때가 언제쯤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
잠시 쓰다듬을 멈추자 비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 그러다가 다시 쓰다듬으면 늘어지듯이 노곤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말꼬리도 늘려가며 말을 이었으려나. 턱선을 쓸어내리는 기분 좋은 감촉에 저도 모르게 골골거렸다.
한참 골골거리던 와중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쓰다듬고 있는 비아를 눈치채고는, 지금이라면 허락해줄까 싶어 손에 머리를 부빗거렸을까.
"진짜야..." 라고, 정말 아픈 듯한 기색을 내비치며 중얼거렸다. 다행이게도 눈치채지 못 한 느낌이라, 속으로 그만 살짝 웃어버렸을까?
" 그런 것들만 아니라면, 와준다는 거지? "
"언질 잡아뒀어." 하고 조금 사악한 듯, 짓궂은 듯 미소를 짓는 지훈이었다.
두 초차원적인 존재의 개입으로 어떻게든 비아와 지훈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는 분위기가 생기겠지만 그건 그 때의 이야기(?)
" 적어도 나한테는 그렇다고 생각해. "
장난기 반, 진심 반이 담긴 말투. 지훈은 비아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가, 비아가 머리카락을 건네자 잠시 고민했을까. 묶은머리 끝을 만지작만지작... 그러다가 가볍게 떠오른 생각에, 지나가듯 물어보려고 했다.
" 머리, 풀 생각은 없어? "
【26】
언제, 언제라고 한다면. 무엇이든 지금 불명확한 것은 모두 한 달 후에 전해지겠지. 이제 한 달이라기엔 조금 줄었나. 정확히 며칠 남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늘 영악하고, 이럴 땐 온순하고, 짓궃고, 아이처럼 껴안을 때 따뜻한 아이. 하지만, 내가 많이 알지는 못하는— ...잘 모를 소리를 내고 있어. 뭐지, 정말 반인반묘인가. 아무튼 기분 나빠 보이지 않기에 쓰다듬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 확실하게 온다곤 안 했어. 말장난으로 놀려먹으려고 하면... "
흠.
지켜보겠어(2.9).
그땐 이 포인트를 다 쓰기 위해서라도... 두개골 분쇄(비유)형에 처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아프다는 뜻.
이게... 요상시런 성좌들...?
" 뭐야 그게— "
가벼운 말에 볼멘소리를 하다 흠짓한다. 왠지 내 머리카락이 침범벅의 위기에 빠졌다 풀려난 거 같은데 기분탓이겠지? 흠... 무서운 상상이다. 먹을 것도 있는데 머리카락을 먹으려 하는 건 좀. 머리카락을 만지작대는 지훈이를 보며 중학교 때를 떠올린다. 여자끼리 머리카락을 만진다면 땋아주거나 묶어주거나 같은 거였겠지만, 남자애니까 그런 건 못하려나.
" 당분간은. 묶은 쪽이 편한걸. "
머리카락을 챡 흔드려다가 잡혀있는 걸 깨닫고 관뒀다. 앞머리는 자르기 불편하니까 넘기고 뒤는 되는대로 묶기. 참 편한 머리스타일이다. 머리숱이 많다 보니 풀고 다니면 머리카락이 어디 걸릴지도 모르고, 흔들거리면 걸리적거린다. 한 덩어리로 모아 두는 게 낫다.
" 갑자기 그건 왜? "
【27】
손을 멈추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골골대었겠지?
물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났다면 만족했는지 알아서 손에서 머리를 떼어냈겠지만... 그러기까지 꽤나 오래 걸려 비아가 먼저 손을 뗐을지도 모르겠다.
" 놀려먹지만 않으면 함께 와줄 거지? "
마치 비아를 믿고 있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는 지훈이었을까. 그러다가 이유모를 섬뜩함이 느껴지자 순간 고개를 갸웃거리며 비아를 바라보았지. 기분탓인가...? 비아가 뭔가 섬뜩한 일을 할리가... 응응. 착각이겠지.
" 정말인데에- "
볼멘소리를 내는 비아를 바라보며 투덜거리다가 흠칫거리는 모습에 의문스럽다는 듯이 쳐다보았을까.
..머리카락을 우물거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읽은 걸까..?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만. 괜히 불안한 느낌이다. 하지만 정말 눈치챈 걸지도 모르니... 라고 생각하며 비아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만족하자고 생각한 지훈이었던가.
" ...비아는 머리 푼 쪽이 더 예쁠 것 같아서? "
빤히 바라보다가 비아가 머리 푼 모습을 상상한다. 으음... 역시 푼 쪽이 어울려보인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진 모르겠지만서도. 긴 생머리를 늘어트려놓은 모습의 비아...
" 그래도 불편하다면 편한 쪽을 고르는게 낫겠지. "
비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미리 단념하는 지훈이었으려나. 딱히 강요로 보이고 싶지는 않았으니...
【28】
이러다가 영원히 쓰다듬을 거 같아서 먼저 손을 뗐다. 이러면 또 아쉽다는 듯 빠안히 쳐다볼지도 모르지만...
" ...뭐, 그렇겠지. "
그리고 뭔가 느낀 듯 갸웃거리는 것에 살짝 들켰다!는 표정을 한다. 뭘 하려는지 알아챘나, 눈치가 빠르네. 그러면 그 눈치를 길이 간직해서 두개골 분쇄(비유)형에 처해지지 않도록 슬기롭게 대처하렴. 배부른 늑대 같은 미소를 지어보인다.
" 그래? "
예쁘단 말 싫다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약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도 풀고 다니면 어색할 것 같은데... 그래도, 언젠가는.
" 나중에 한 번은 풀고 다녀볼까. "
머리카락을 묶기 위해 돌돌 말려있는 머리끈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가볍게 웃었다.
"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머리카락이 좀 많이 펄럭거리긴 해도 덥지는 않을 테니까. "
【29】
" ...으응... "
배부른 늑대같은 표정을 짓자 지훈은 누군가 말하지도 않은 것에 대해서 작게 대답을 해버렸을까.
그것과는 별개로 비아가 손을 떼면 아쉽다는 눈치였지만, 그와 동시에 어느정도 만족스러운 기색을 내비쳤겠지?
" 응. 언젠가, 그래줬으면 좋겠네. "
그리고 그 모습을 간직하고 싶었을까? 사진은 싫어할테니, 두 눈으로 보고 기억으로 간직하는 거지.
가볍게 웃는 비아를 보며 희미하게 마주웃으며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머리를 푼 비아와 함께 데이트하는 그런 상상을.
" 그럼 다음에는 어딜 가볼까... "
그렇게 비아와 함께 데이트를 하며, 하루를 보내고는 서로 헤어졌겠지.
- 찬혁 일상[2] (215스레) - 8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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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좀 살려주시오! 나 좀 살려주시오! 강찬혁은 그렇게 비명을 질렀다. 대체 무슨 상황인고 하니...
강찬혁은 온사비아의 조언을 따라 여러대의 허수아비들을 조작한 다음 열심히 맞고 있었는데, 강찬혁을 때리다보니 인간>로봇이라는 생각이 인간>=로봇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고, 허수아비들은 그 순간 자기들도 인간과 동등한 계약과 거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청월고 선도부에 10만GP급 현상금이 걸린 강찬혁을 청월고 선도부로 붙잡고 가서 내다 팔아서 배터리와 수리비 등 생필품비를 받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로봇이 인신매매를 한다!!!!"
강찬혁의 비명소리가 온 수련장에 울려퍼졌다. 강찬혁은 허수아비에게 팔다리를 잡힌 채로 끌려가고 있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반갑게 붙잡는 독특하게 생긴 사람을 지나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많이 있던 일은 아니지만 꽤 있는 편이었다. 그도 그럴 게... 지금 내 모습은... 외계 깨고락지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좀 키가 크긴 하지만. 이게 어찌 된 일이냐고? 초☆차☆원 세계의 사람들이 이 학원섬에 들렀다 갔을 때 얻은 특이한 아이템, 바로 슈트와 헬멧을 세트로 착용하면 이 아이템의 출처인 외계 깨고락지들과 비슷한 외양이 되는 장비 때문이다!
▶ 케론인 슈트 ◀
[ 딱 봐도 지구인이 입을 법해 보이진 않는 모양새를 띄고 있지만 아무튼 지구인도 입을 수 있는 크기의 슈트. 게이트 너머 어딘가의 행성에 사는 우주 개구리 종족인 케론인의 외양을 본따 만들었다. 특이하게도 머리 부분까지 완벽하게 재현하였으며 그때문인지 슈트와 헬멧이 세트로 되어있다. 착용시 사용자의 신체에 딱 맞게 사이즈가 변한다. ]
▶ 일반 아이템
▶ 이거 강화슈트야 - 50의 망념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일격에 한정하여 방어력을 15% 추가하여 판정합니다.
▶ 님 hoxy...아니죠? - 이종족 출신 NPC들과 첫 만남시 출신에 따라 호감도가 조금 증가합니다.
나도 이런 걸 입고 싶진 않았지만 공용 수련장에 조금 안 좋은 소문이 도는 것 같아서. 크흡... 진짜 파인애플 맨 2세가 되다니. 슬프다(슬프다)
"로봇이 인신매매를 한다!!!!"
" 음? "
어디선가 소리가... 나서 바라본 곳에는 전에 그 사람이 허수아비에게 잡혀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크, 크윽. 구해주기 싫어.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거 같긴 한데 정말 휘말리기 싫다. 저것도 혹시 자업자득인 건 아닐까? 나올 일이 드물던 이기심이 오늘따라 무럭무럭 자라나는 걸 느꼈지만... 주변의 시선이 따갑다. '어이, 거기 여기서 제일 이상한 놈! 너라도 빨리 가서 도와주라고!' ...라는 느낌. 에라 모르겠다.
나는 그대로 신체를 강화해서 상대의 한쪽 다리를 붙잡아 끌고 가는 이상한 허수아비를 향해 날아차기를 날렸다. 라이더 킥!!
허수아비들 중 하나가 박살나면서, 강찬혁은 허수아비들과 함께 땅바닥을 굴렀다. 허수아비들이 급작스런 충격에 저도 모르게 강찬혁을 놔버리고, 강찬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빠져나와서 몽둥이를 붙잡고 허수아비 중 하나의 머리를 내리친다. 쾅! 쾅! 쾅! 세 번, 아니면 네 번, 그 정도를 내리치자 허수아비의 머리통이 박살나면서 안의 전자부품들이 빠져나온다. 강찬혁은 처참하게 박살난 허수아비의 모습을 보고는 그에게 말한다.
"알파고에게 전해라! 강찬혁은 로봇의 노예도 아니고 인간으로서, 제 자신의 주인으로서 살 것이라고! 하하!"
그렇게 말하고, 자신을 도와준 것으로 추정되는 웬 인간... 아니... 외계인... 케론인... 아니면 이족보행형 깨구락지별에서 온 이족보행 깨구락지같은 모습의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강찬혁은 그 모습을 보고 큰 혼란에 빠졌다. 저게 뭐지? 어디서 뭐 하는 사람이지? 아군인가? 적인가? 강찬혁은 한참 고민하다가 물었다.
"그... 고향이 케론별입니까? 목성입니까? 여기가 아니라 MIB에 가서 등록 수속부터 마쳐야 할 분 같은데..."
그렇게 묻기도 잠시, 허수아비가 강찬혁의 정수리를 주먹으로 내려치고, 강찬혁이 순간 힘을 잃고 주저앉는다.
4
기다렸다는 듯 허수아비에게 반란을 일으키며 힘차게 몽둥이를 내리치는 남자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사실... 그냥 이대로 내버려뒀어도... 알아서 풀고 나오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공용이라곤 해도 허수아비 내구도가 고작 저 정도일 리가 없는데, 이상한걸.
" 아, 저는... "
어이쿠. 뒤에서 정수리를 힘껏 내리치려는 허수아비를 봤지만 '당황해서' 대처하지 못했다. 상대로 워리어니까 괜찮 지않 을까? 그런 기능은 없지만 왠지 입었더니 좀 high해진 느낌에 깨고락지같은 색 슈트로 덮인 팔을 휘둘러 달려드는 허수아비를 밀쳐내고 방패를 꺼내 내리찍었다. 이거면 알겠지.
" ...예, 아시겠죠? 파인애플-맨 2세입니다. 고향은 지구고요. "
어머니. 아버지. 지구에서 태어난 당신들의 딸은 지금 와일드한 남자 앞에서 깨고락지 슈트를 입고 파인애플 맨 2세라고 자칭하고 있습니다. 정말 눈물이 날 뿐이에요...
어느새 강찬혁은 그녀의 이름을 지독하게 꼬아서 바꿔버렸다. 원래는 파인애플-맨 2세였지만, 방금 정수리에 주먹이 찍히면서 잠깐 정신이 오락가락한 탓에 온갖 이상한 명칭들을 붙였다. 2세니까 쾌걸 근육이 생각났고, 파인애플 하니까 과일이 생각났고, 과일이 생각나니까 황도복숭아가 생각나고, 황도복숭아 생각하니 황도복숭아 캔이 생각났다.(참고로, 황도복숭아통조림 12개의 권장소비자최저가는 12900원으로 개당 1000원-1100원 선에서 공정가가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강찬혁은 손가락을 딱 퉁기다가, 결국 정정했다.
"아니, 2세는 맞지만 쾌걸 근육 그런건 없었고, 황도복숭아캔도 없었군요. 하여간에... 그러면 Dole 파인애플-맨 2세, 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니, Dole만 파인애플을 취급한다는 편견을 버려야지. 편견은 가디언의 적이니까..."
혼잣말을 여러번 하던 강찬혁은 허수아비에게 밟히면서 물었다.
"그런데 그 슈트는 어디서 난 건가요? 깐따삐야별?"
이 사람의 정신세계는 도대체 어떻게 되어있는 거지? 너무 많은 게 붙어서 돌아왔잖아, 내 가짜 이름... 게다가 황도복숭아통조림의 가격까지 알게 되다니 너무너무 유익해!
...음? 황도복숭아통조림의 권장소비자최저가에 대해 내가 들었던가?
" ...그냥 편한대로 불러주세요. "
말을 말아야지 내가 정말. 근데 모습 완전 달라졌는데 그걸 그대로 동일인물로 인식할 수 있다니 이것도... 신기하다... 이 사람, 어디 정글 속에 던져놔도 그렇구나 하고 적응할 것 같아...
" 타임 코스모스 깐따삐야~ 가 아니라... 이게 어디서 났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일단 전 학원섬에 떨어져 있던 상자에서 주웠는데... "
성별을 일시적으로 바꿔준다던지, 마법소녀 복장을 입힌다던지 하는 것도 있었지. 지금은 전부 회수됐다곤 하지만, 제노시아에서 그걸 연구해서 말썽을 부린다고도 하던데. 다른 생각을 멈추고 일단 상대를 밟는 허수아비를 조금 소극적으로 때린다.
...죽어라! 권성 펀치! (풀파워)
" 당신은 어쩌다가 허수아비한테 그러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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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한대로... 음... 그러면 파인애플 아나나스 3세라고 불러도 되겠네요. 그거 아세요? 파인애플은 영어권에서만 파인애플이라 부르고, 다른 곳에서는 전부 아나나스라 부르거든요. 이렇게 들으니 바나나 생각이... 으엑!"
강찬혁의 머리통을 뒤에 있던 허수아비가 다시 내리쳤다. 강찬혁은 머리를 처맞고 나니 화제가 바뀌어서, 섬에서 주웠다는 온사비아의 대답으로 포커스를 돌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오다 주웠다! 정도로 받아들였을 그런 내용이지만, 강찬혁의 쓸데없는 범죄 관련 지식과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가 그러도록 두지 않았다.
"어... 학원섬에 떨어져 있는 상자에서 주웠다면..."
사실 이제 와서는 아무래도 좋을 이야기다. 왜냐하면 강찬혁은 범죄와 완전히 손절했고(지금 하는 짓들이 상당히 심각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과태료와 범칙금, 그리고 막대한 액수의 민사소송 선에서 정리될 일들만 저지르고 다녔다.) 이전의 폭력조직과도 관계를 완전히 청산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옛날에 범죄로 먹고살던 전력이 있어서 경찰서를 제집 드나들듯 하며 경찰서 형사님을 강찬혁은 꼰대라고, 강찬혁을 형사님은 애새끼라고 부르면서 서로 애증을 기르기도 했고, 법적 지식과 폭력조직 내부 정보를 교환하던 입장에서 온사비아의 행위가 무엇에 해당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 뭐냐, 점유이탈물횡령죄라고 해서, 소유권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물건도 함부로 주우면 문제가 될 수 있거든요. 이게 왹져에게도 재산권 등의 권리가 보장되느냐가 문제긴 한데..."
퍽! 퍽! 퍽! 그딴 거 알바냐는 듯, 허수아비가 다시 강찬혁을 두들겨패자, 화가 난 강찬혁이 허수아비를 두들겨패서 박살내버렸다. 그런데 또다시 기억이 리셋되어서 말했다.
"그래서 청월고 출신 쾌걸 근육 파인애플 황도복숭아캔 2세님. 우리 어디까지 대화하고 있었죠?"
하고 대답하자마자 허수아비한테 맞는 걸 보고 찔끔해 허수아비를 슬쩍 밀어내고 얘기를 들으려고 한다.
" 아, 그건 괜찮아요. 그 외계인이 일부러 학생들한테 이상한 걸 주려고 풀었다는 모양이니까. 왠 아이스크림이나 피자 같은 것도 있었단 거 같고... "
그리고 다시 돌아온 허수아비를 때려 박살낸 찬혁을 보고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방패를 꺼내 신체를 강화하고 힘껏 머리를 내리쳤다.
" 제노시아-출신-파인애플-맨-2세요. 제노시안 말이에요. 제노시안. 그리고 당신은 절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 왹져 모습이었죠? 그렇죠? "
아까 나가떨어진 허수아비가 다시 오는 걸 몸으로 붙잡아 두고 상대가 어떤 대답을 하는지 살폈다. 이 대답 여하에 따라 당신은 몇 대 더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강찬혁은 머리가 방패에 찍혔다. 강찬혁은 얼얼했는데, 생각해보니 뭔가 억울해서, 그 나름대로는 꽤나 논리적으로 말했다. 정말로 기적의 논리였지만, 기적의 논리도 강찬혁 입장에서는 논리였다. 강찬혁은 논리야 놀자 반갑다 논리야 고맙다 논리야, 즉 논리야 씨리즈로 강화된 자신의 논리를 유감없이 발현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폭력적이에요. 아까 전에는 편한 대로 부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사람을 다짜고짜 때리는 거에요. 제가 알기로 제노시아 사람들은 그렇게 폭력적이지 않다고요. 제노시아-출신-아나나스-맨-2세 님."
그리고 강찬혁은 논리가 너무 완벽함에 놀라서, 훗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음. 완벽한 논리였다."
" 제가 편한 대로 부르라고 했다고요? 정말 그랬어요? "
기억을 지우면?없던일?아닐까?
" 아직도 제노시아 사람들이 비폭력적인 거 같아 보여요? "
그렇게?안보이게?하면?되지않을까?
방패를 들어올리며 지은 일그러진 웃음은 왹져옷 헬멧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을까.
그래...
" 강 파인애플 씨... 아쉽게도 당신은...
엑스맨이...
아닙니다...... "
▶ 이거 강화슈트야 - 50의 망념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일격에 한정하여 방어력을 15% 추가하여 판정합니다.
그리고 나는 50의 망념을 증가시켜서, 깨구락지 기술력을 완벽하게 발휘하는 헬멧으로, 그에게 박치기를 하기 위해 있는 힘껏 뛰어들었다.
강찬혁은 정말로 그렇다며,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 시계를 거꾸로 매달아도 시간은 간다. 그것이 강찬혁의 신조였고, 그렇기에 강찬혁은 자신의 기억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상대는 분명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래서 강찬혁은 편하게 이야기했을 뿐. 이것이 어떻게 잘못이란 말인가. 강찬혁은 어이가 없어서 항의하려는데... 깨구락지 옷을 입은 상대가 화를 내더니 갑자기 박치기를 하려는 모습을 보고는, 강찬혁 자신도 모르게 박치기 하기 좋게 이마와 앞머리가 정면을 향하도록 고개를 숙였다.
깡!
<최후의 1초까지!>
이번 공격은 좀 심했는지, 의념기가 발동되었다. 강찬혁은 의념기가 미처 없애지 못한 반동을 온 몸으로 느끼며 비틀거리다가 다시 섰다. 허수아비는 박살났고, 온사비아는...
"괜찮아요? 좀 셌는데."
12
깡!
...아프다...! 엄살이 아니라 진짜 아파!! 박치기를 한 것도 이쪽이고 방어력도 추가됐는데 단단한 것끼리 부딪치다 보니까...
하지만 그 고통에 그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나는... 나는... 방금 전까지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 아... 네. 괜찮아요. 정신이 확 드네요. "
그리고 몇 번 더 헬멧을 문지르다가 말한다.
" ...제가 헛소리를 좀 하고 있었네요. 방금 전까지 한 말은 잊어주세요. "
방금 전까지의 나는... 뭔가... 본능이었을까... 자신의 흑역사를 지우기 위한...
" 그리고 그냥 파인애플 2세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
강찬혁은 어깨를 으쓱인다. 그래도 이렇게 대답하면 상대가 뻘쭘할 테니, 강찬혁은 상대에게 나름의 예의를 담아서 말했다. 최대한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은 해보겠다. 그런 식이었다. 그리고 상대가 파인애플 2세로 불러달라고 하자, 강찬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네. 파인애플 2세 님. 그런데 파인애플은 어디 귀족인가요? 하와이? 남미?"
강찬혁은 갑자기 이상한 데로 화제를 돌렸다. 이쯤 되면 병이다. 강찬혁은 자기도 모르게 상대를 질리게 만드는 데에 일가견이 있었다.
//12번째, 막레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왜일까. 나는 아마 이 공용 수련장에서 만든 흑역사가 졸업할 때까지 안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가 아니라 진짜 그럴 거 같은데. 인상이 너무 강렬하잖아.
" 러시아입니다. 풀네임은 лимонка ананасович ананасный이고요. "
상대도 진지하게 어느 쪽 귀족이라고 생각하고 물은 건 아닐테니 적당히 대답했다.
" 그러면 이만... "
괜히 개굴락지 헬멧 안에 있어 보일 리 없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듯 손으로 헬멧 표면을 쓸어내리며, 나는 그렇게 도주했다.
...정신 똑바로 잡고 살아야 해...!!
4.2.3. 제노시아 ¶
- 다림 일상[1] (88스레) - 5월 19일
- 시험공부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세상에 제노시아가 이정도인데 청월은 어느정도인가요.. 머리를 식히기 위해 항구 쪽 바닷가로 향했습니다. 3월이지만 바닷가인 만큼 바람이 거셉니다. 날씨도 묘하게 꾸물꾸물한 게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은데
"이 날씨에 나온 분이..?"
다림이야 뭔가 맞아도 상관없다는 느낌으로 생각합니다만.. 나온 분이... 라는 생각을 하며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면 사비아 언니입니다.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려 합니다.
"안녕하세요 사비아...언니?"
오늘 다림의 복장은 펄럭펄럭거리는 옷이네요. 바람이 세서 그런가 팔락팔락이 좀 세요. 머리카락이 길었다면 분명 뺨싸다구를 때렸을 겁니다.
**
"아, 다림아?"
나 말고 또 누가 나왔나 했더니, 다림이였구나.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것에 같이 손을 흔들어주려다, 펄럭거리는 옷에 시선이 닿았다. 바람이 짓궂어서 많이 흩날리고 있는 모양새에 걸어가는 동안 겉옷을 벗어서 손에 들고, 곁까지 걸어갔을 땐 건네주려고 했다.
"날씨도 안 좋은데 항구엔 왠일이야?"
"난 운동하러 나왔다 쉬고 있는 거지만, 운동할 옷으론 안 보이는데."
하고 로우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걸었다.
**
사비아 언니를 보고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천천히 걸어가려 합니다. 왜 나왔냐는 물음에는 약한 한숨을 쉬었습니다.
"시험공부 하다가 나왔어요.."
머리에 열이 너무 몰려서 머리카락이 변할 수 있다면 용암같이 변했을지도 몰라요.. 같은 말을 하면서 펄럭거리는 것에 옷을 건네주려 하자 그건 괜찮다면서 정중히 거절하려 합니다.
"운동하러 나오신 건가요?"
하긴 운동하기엔 좀 적절치 못한 옷이긴 하지만.. 그래도 활동량은 많아도 괜찮은 느낌? 옷자락을 계속 정리하고 있네요.
"그러고보니 사비아 언니는 청월이셨죠..."
엄청나게 빡빡하다고 하던데요.. 라고 중얼거리며 슬쩍 보려 합니다.
**
"머리에 열이 날 땐 물리적으로 식혀주는 것도 괜찮지."
그러면서 용암이라는 말에 다림의 머리카락을 빤히 쳐다봤다. 저 눈에 편한 물 같은 색이 강렬한 색으로 변한다면... 나쁘진 않지만 지금이 더 괜찮은걸. 옷을 거절하는 모습에 다시 겉옷을 걸쳤지만 이번엔 지퍼를 잠그지 않았다.
"나도 시험기간이라 공부해야 하긴 하지만, 너무 하나만 잡으면 잘 안 되니까."
구체적으로는 망념을 안 쌓고 공부하는 건 머리에 안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예전에는 없어도 멀쩡히 공부했던 것 같은데.
"...응. 그래서 내 친구들 중에는 다른 학교로 간 아이들도 많아."
"다른 학교라고 해서 무조건 쉬울 거라는 보장은 없는데. 분명 어느 학교든 각자의 어려움은 있을 거야."
하고 몇몇 아이들에 대한 실망을 담아 한숨을 내뱉는다. 학교 진도를 따라갈 수 없어서 다른 학교로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안타깝게 여기지만, 그래서 아직 연락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청월 이외의 학교를 무시하면서 다른 학교에 가면 무조건 쉬울 거라고 의기양양해하던 아이들과는 굳이 연락하지 않았다. 그 아이들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게 되겠지. 자신이 무시하던 학교에서.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제노시아는 특성화 쪽인 만큼 다른 학교랑은 다른 걸 배운다고 들었는데. 광물이라던가?"
그런 걸 말하지만 물어보진 않는다. 진행에서 안 풀린 걸 물어볼 순 없으니까... 라는 어른의 사정이 개입되어 있는 걸까.
"그러고보니 다림이는 뭘 특성화하려고 제노시아에 간 거야?"
**
"그렇죠. 조금 식히려고 나왔어요."
너무 하나만 잡으면 안 되는 것이긴 하다. 이것저것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가디언인 만큼,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런가요? 다른 학교도 만만하지만은 않을 텐데요."
그냥 다른 곳에 가겠다. 그건 조금 다를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원래는 청월과 많이 고민하긴 했는데.. 청월은..."
교복이.. 라고 하면. 하긴.. 파란 머리카락에 교복까지 파랑색이면 그건 참... 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매칭해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네요. 간단하게는 장신구 만드는 그런 수업도.. 있었던 것 같네요."
"사실.. 학원도에 온 것은 조금은.."
말하다가. 아차 하고는 입을 다뭅니다. 그것의 자세한 사항을 말하지는 않네요.
"특성화이기는 하지만.. 조금은 생각지는 못했었네요."
생각보다는 일반적이군요.
**
"비가 올 것 같아서 조금 불안하지만 말야..."
의념각성자라서 감기에 걸리진 않지만 몸이 비에 젖으면 불편하다.
"응. 그나마 성학교는 그 자체가 좀 널널한 만큼 시험도 쉽다고 하지만, 그 자유에 너무 취해버리면 좋은 결과는 못 낼 거야."
정성을 다하여 할 수 있는 걸 한다면 어딜 가든 못 할 리야 없겠지만, 말이 쉽지 그런 걸 못 하는 아이들이 갔다간... 성학교에서 음주나 불건전한 행위들을 일삼아 학교의 명성을 흠집내는 문제아들 사이에 끼어서 하고 싶은 일도 하지 못하는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말겠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파란색인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교복이... 라고 말을 흐리는 다림을 보고 잠깐 생각하다가 머리색에 눈길이 닿고 무슨 말인지 알아차린다. 교복 자체가 아니라 색상 문제였구나.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본인은 다를 수도 있겠지.
"장신구라면, 보석 같은 걸로 만드는 건가?"
"다림이는 잘 만들었어?"
하고 순간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봤다. 학원도에 온 것도 조금은... 하고 입을 다무는 다림에게 "조금은?"하고 묻는 듯 운을 떼지만 대답하고 싶지 않아보이는데 캐묻진 않았다.
"그냥 온 거였구나."
하고 조금 어색하게 웃었다. 제노시안이긴 하지만 장인이나 예술인은 아닌가? 좀 편견 같은 생각이지만 제노시아라고 하면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
"비는.. 안 올 거에요"
그럴 거에요. 라고 확신을 가지면 뭔가 날이 좋아질지도 모릅니다..는 농담이고. 비는 안 오긴 할 겁니다. 날이 좋아지지는 않아도.
"널널하다곤 하지만 저는 그건 조금 그래서요."
청월과 제노시아라는 생각을 했어요. 라고 하다가 머리부터 발끝까지라는 말에 아 언니이.. 라며 조금 빤히 바라보려 합니다. 보석 같은 걸로 만들었나. 라는 말에
"사파이어랑.. 운석 조각..이었던가요."
글쎄요? 라고 말하지만 다림주도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모릅니다. 아마 이게 제노시아 첫 수업이었던 것 같은 느낌인데.. 조금은이라는 물음에는 그저 먼 산을 보려는 듯 멍합니다.
"아하하.. 그러니까요."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비아 언니는 청월에 오신 이유가 있나요? 라고 넌지시 묻습니다.
**
"확신하는 거 같은 말투네."
서포터 중에는 날씨를 바꾸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있다던가-하는 것도 들었지만 다림이 뭔가 하는 걸 본 적은 없는데. 하고 살짝 의구심을 가지다 그러려니 했다. 그냥 바라는 걸수도 있으니까.
"아무리 자유를 강조한다 해도 너무 널널하긴 하지."
조금 빤히 쳐다보는 다림을 보며 미소지었다. 싫었나? 살짝 미안하네.
"사파이어면 몰라도 운석 조각은... 어디서 구하란 거야?"
진짜 운석이 떨어지는 걸 기다리는 게 아니면 관련된 게이트에서 구하거나 비싸게 사야 할 텐데. 그런 재료를 다 주진 않을테니 아마 보기만 하는 수업이었으려나. 아마 탄생석 중 2월 29일을 상징하는 탄생석이 석철운석-팰러사이트...이었겠지만, 자신이 만들 수 있을진 잘 모르겠다. 애초에 탄생석 중엔 진짜 보석의 분류엔 속하지 않지만 끼어있는 것들이 많단 말이야.
"나는 꿈을 이루려고 청월에 왔어."
딱 하루 내 인생에 스쳐 지나간 나의 은사. 이름 모를 '선생님'. 그 사람의 인생에서도 내 인생에서도 짧은 만남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귀한 인연이었다. 작아도 값진 보석처럼, 다른 광물들 사이에 파묻혀 있어 아주 조심스럽게 깎아야 보이는 조그마한 보석처럼.
"원래는 일반인으로, 선생님으로 살아가려고 했어. 하지만 머슴살이도 대감집에서 하라는 말이 있잖아? 그래서 나는, 선생님이 되어 이 학원섬에 다시 돌아오려고."
다른 모든 꿈을 현실과 타협해도 버리지 못할 꿈.
"청월은 최고의 지원을 갖추고 최고의 가디언을 키워내기 위한 학교니까. 이 학원섬에 있는 선생님들과 동등한 자리에 오르려면 시작점부터 높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높은 곳에 닿는다는 걸 몸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운동화를 신은 발로 바닥을 박차고 한 번 뛰어올랐다 가볍게 착지한다.
**
"이래저래 날씨 관해서는 생각보다 잘 맞아서요"
어딘가의 날씨를 바꾸는 분이 있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자유를 강조하는데 널널하다는 건
"그렇죠.."
그래도 그 곳에서 열심히 하는 분들은 열심히 하니까요. 라고 덧붙입니다.
"게이트에 떨어지는 건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르죠..?"
농담이지만요. 라고 말하다가 그 때 어땠는지는 다림주가 몰라서 넘어갑시다.
"꿈이 있으시네요.."
그런 면은 좀 부러워요. 라고 중얼거리며 저는 꿈이라고 할 게 불확실해서요. 라고 말하면서 이제부터라도 꿈에 대해서 생각해보려 할까요. 라고 생각합니다. 그치만 몸으로 보여주겠다는 것처럼 뛰어올랐다 내려오는 것을 바라보네요.
**
"그러고보니 비 오는 전날에만 묘하게 기분이 안 좋아져서 깜빡한 날 빼곤 절대 비 안 맞고 다닌다는 친구도 있었던 것 같은데. 다림이도 그런 거?"
묘하게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게 아니라 관절이 쑤신다는 거지만, 그 부분은 비밀을 지켜주자. ...약속했으니까. 그리고 날씨를 바꾸는 사람이 있으면 어쩔 수 없단 말엔 "설마 일부로 비를 내리는 사람이 있겠어?"라고 말한다. 설마.
"맞아. 성학교에도 좋은 사람들은 있지."
지훈이는, 전투와 대련 쪽으론 열심히지. 청천은... 음, 달리기하는 걸 보면 성실한 거 아닐까? 그냥 취미일지도 모르지만. 진석이는... 알아서 잘 하겠지. 그리고, 하루도...
...
"운석이 비처럼 쏟아져서 지구가 멸망해버리는 영화 같은 게이트라면 많을까?"
라는 건 가벼운 농담이다.
"아직 1학년이니까, 시간이 많잖아. 나는 꿈은 있지만 사실 그 꿈을 뒷받침해줄 걸 명확히 이뤄놓은 상태는 아니거든. 얼마 전까지 5레벨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했기도 하고."
"그러니 다림이도 현재를 살아가면서 천천히 꿈을 구체화해가자."
그렇게 말하며 웃다가 쳐다보는 걸 보고 좀 쑥스러워져서 미묘하게 시선을 깔았다. 갑자기 뛴 건 좀 이상했나?
**
"으음... 그냥 그렇더라고요."
일단 학원도 들어오기 전까지는 날씨에 곤란을 겪은 적이 없었다고 말하면서 일부러라는 말에는 고민하지만
"있을 것 같아요"
라는 매우 단호한 말을 합니다. 왜인지는 몰라도 가능할 것 같아. 성학교에도 좋은 사람이 많다는 말을 하는 사비아 언니를 바라보고는
"....그렇죠.."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농담을 듣고는 키득키득 웃습니다. 그럴지도 모른다.
"사비아 언니가 좋은 말을 해줘서 기분이 좋네요"
"맞는 말이라서 좋네요"
느릿느릿하게 말하고는 5레벨이라는 것에 그건 그렇다고 자신도 5레벨이었다고 하네요. 쑥쓰러워져서 시선을 깔자.
"그럼 사비아 언니랑 저랑 같이 조금 걷다가 들어갈래요?"
말합니다.
**
"다림이는 운이 좋구나."
날씨에 곤란이 없으면 편할 것 같은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부모님이 데리러 와 주시길 기다렸다가 추울 땐 따뜻한 국물이라고 난데없이 외식을 하고 돌아갔던 기억, 친구와 놀러왔던 상가에 고립되서 서로 가진 돈을 탈탈 털어서 편의점 우산 한 개로 서로 장난스레 어깨를 밀쳐가며 옷을 적시고 집에 돌아갔던 기억이라던가. ...아주 나쁜 기억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불편한 건 없는 게 좋다.
"날씨를 조종할 정도의 사람이면 좀 사람들을 위해서 그 힘을 써주면 좋을 텐데 말야."
물론 농업구역처럼 비가 필요한 곳도 있고, 학원섬에 있는 식물과 동물들도 필요로 하긴 하겠지만... 일부로 내릴 것까지야. 키득키득 웃는 모습을 보고, 웃는 모습이 더 예쁘다고 생각하며 나도 웃는다.
"네가 웃어줘서, 좋은 말이라고 해줘서, 기분 좋아해 줘서, 나도 정말 기뻐."
진심이야.
자신도 5레벨이었던 말에는 "누구나 그런 적 있겠지." 하고 느껴지는 흐뭇한 감정을 그대로 표정으로 내보였다.
"그럴까?"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뒤 앞서 걷기 시작했다. 어디로든, 바닷속만 아니면 어디로든 가면 되겠지.
**
"음.. 그렇죠. 운이 좋은 편이에요"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힘을 쓰는 게 좋다는 말에는
"글쎄요. 뭔가 비가 오거나 맑은 날에만 사용 가능한 게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가 좋은 말이라는 말이나 기쁘다는 말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으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저도....조금은 기뻐요"
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고는 걸어가는 사비아를 따라갑니다.
"그냥 해변을 걸어도 좋고.."
아니면 산책로 쪽도 좋겠죠. 일까요?
**
"그런 걸까?"
음... 쓰려고 해도 안 될 수도 있단 걸까.
"조금 말고 많이 기뻐해주면 좋겠네."
"그러면, 산책로 쪽으로 갈까?"
다림이가 따라오는 걸 확인하면서 빠르지 않게 걸었다. 평소의 맑은 하늘과 잔잔한 바다는 볼 수 없지만, 아주 나쁘지만은 않은 경치. 산책로로 접어들어선 가끔씩 멀리서 사람이 보이기도 했다.
"...이제 갈까?"
길의 중간쯤에 도달했을 때의 말이었다.
**
//이걸로 헤어졌다로 끝!
- 다림 일상[2] (198스레~199스레) - 7월 22일
- 다른 거에 깜빡 정신이 팔려서 늦을 뻔했다. 아무리 늦어도 지금 나온 이상 최대가 정시겠지만, 왠지 다림이는 약속시간 1시간 전에 가도 "일찍 오셨네요?"라면서 태연하게 있을 것 같은 이미지니까. 아무렇지 않아도 기다리게 한 것 같은 기분인걸.
" 안녕, 다림아. 기다렸어? "
의념으로 신속까지 강화해서 숨차거나 땀이 나지 않을 만큼 최대한 빠르게. 약속장소인 상점가 앞으로 도착했다.
오늘의 옷차림은... 간단한 영어 글귀가 쓰인 흰 셔츠와 청바지. 정말 무난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앞으로 노력하면 되지 않아?
**
그것이 맞다. 다림이는 약속시간 1시간 전에 도착해서 여러 군데를 슬쩍 둘러보고 코스를 적당히 맞아뒀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고 의념으로 신속을 강화해서 온 비아 언니를 보고는 반가운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반가워요 사비아 언니."
느릿느릿하게 말하며 옷을 사러 가기로 했던 약속을 상기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언니의 옷차림은 베스트. 가장 간단한 것이 꾸밀 맛이 나는 걸요?
"어떤 옷이 좋으려나요.."
다림의 오늘 옷차림도 조금 간단한 편인데요. 검은민소매를 받쳐 입고 단추를 적당히 풀어둔 상의에 하의는 스키니진이네요. 목에는 검은 초커가 있네요.
**
초커인가... 패션 아이템이라곤 하지만 뭔가 목줄에 매여 있는 걸 떠올리게 만드는 장신구인걸.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용건을 꺼냈다.
" 그게... 말이야. "
직접 말로 꺼내기엔 조금 낯뜨거운 말이지만, 어쩔 수 없지. 다림이를 부른 목적은 이것이었다.
" 남자애랑 데이트할 때 입을 만한 옷... 아니, 데이트를 한다는 뜻은 아니고. 그냥 그럴 때 편하게 입을 만한 걸 고르고 싶은데... 괜찮을까? "
확신했다. 빨개졌을 거다... 아니, 말마따나 정말 데이트를 한다는 뜻도 아니고. 저번에 지훈이랑도 예상치 못한.. ...!를 듣긴 했지만! 데이트란 건 농담... 농담이었을까? 농담이었겠지. 아니, 정말로. 그렇다니까. 뭐가 뭔진 몰라도 그런 게 그렇다니까?
" 너무 화려하다던가 그런 건 아니더라도... 음, 과감한 느낌이라던가 들면 좀 그렇다던가? "
횡설수설하고 있어 말이랑 지문 둘 다 횡설서술하고있어!!
그치만... 뭔가 의식하고 있긴 하지만 내가 좀 평소보다 특별할 만큼 꾸미면 주변인으로부터 아예 사귀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을 수도 있고. 그야, 평생 운동복이나 교복차림으로 살았으니까...
**
"으음.. 데이트 할 때인가요.."
고개를 갸웃합니다. 데이트도 어쩌면 조금 나눠지는 만큼 종류가 많은데요.. 조금 짖궂은 표정으로 사비아 언니가 좋아하는 남자애가 생긴 걸까요? 라고 놀리듯 말해봅니다.
"그거랑 별개로.. 언니가 원하는 스타일이 어떠냐에 따라서 옷은 달라질 수 밖에 없는걸요."
"그리고 부탁은 들어드려야 하는걸요?"
예를 들자면 놀이공원에 가는 타입의 데이트라면 치마보다는 바지를 권유한다거나.. 가볍게 만나는 거라면 원피스류도 어울린다거나요. 같은 예시를 들어보입니다.
"청순계라면 지금 입고 계시는 것도 충분히 데이트용으로 정석인걸요."
마치 밤중에 만났을 때 이런 거 입고 막 머리를 감은 것처럼 옅은 샴푸향과 촉촉함이 있다면요? 라고 답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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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건 아니야. 일종의 대비라고 해야 하나... "
그래, 이건 대비다.
싸울 때 방패와 갑주─없지만─를 챙겨서, 상대의 창을 방어하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한 달 동안 사랑한다는 걸 보여준다던가 했으니까. 지훈이가, 그 지훈이가─미안하지만 지훈이니까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순 없으니, 나도 그에 맞는 태도를 보여줘야 할 거라고 생각했을 뿐!
" 원피스... 라면... 청월 교복 서코트는 입고 자주 만났던 거 같은데... "
...뭔가 말하고 나서 부끄러워졌다.
" 놀이공원에 가는 건 생각해본 적 없지만 바지를 입고 가는 게 더 낫긴 하겠구나. 하지만 지금 생각하는 건 평상시에 입을 거니까... 아무래도 치마를 입는 게 낫지 않으려나? "
그리고 지금 입은 옷도 정석이란 말엔 고개를 끄덕이며...
" 그래도 이렇게는 평소에도 사복으로 자주 입었던 거 같아서. "
어필이 안 된다고 해야 하나, 좀 더 의식하는 느낌에...
아니 의식하는 건 맞는데?? 조금 그쪽은 아닌데??? 뭔가 이것도 오해될 말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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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을 입고 만나는 건.. 청월이나 제노시아에게는 그다지 이상하지 않지만요.."
그러면 아프란시아나.. 확률은 낮지만 제노시아인 걸까요. 라고 생각해봐도 아는 분들 중 아프란시아가 많아서 꼽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는 치마라는 말에 치마도 좋고 바지도 좋지요. 다리가 자신 있다면 의외로 바지도 좋지요? 라는 말을 합니다.
"평소 사복으로 자주..."
"언니도 은근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는 걸까요?"
요즘 주위 사람들에게 봄이 오는 것 같네요. 아는 분들이 이런저런 일들로 봄을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음.. 봄이 나쁜 건 아니지요.
"그러면. 조금 '어필'을 하고 싶은 사비아 언니의 옷..."
인 걸까요.. 라고 말하며 조금 짖궂게 말합니다.
"그러면.. 슬쩍슬쩍..일지도요.."
라고 고민하면서 이미지 변신이면 조금 파격적인 것도 좋겠네요. 라면서 안 입던 옷이 있나요? 라고 물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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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가 자신있다...라. 달리기는 자신 있었긴 했는데. 옛날에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는 반대항 달리기 때 맨날 주자로 불려나갔었고. "
─객관적으로 보면, 오너의 취향 때문에 다리가 예쁜 편이긴 하다. 쭉 뻗어 있으면서도 살이나 근육이 붙어 있다기보단 늘씬하게 매끈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러나 그걸 본인이 알 수는 없었으므로─그런 조금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살짝 다른 곳으로 빠지는 잡담이랄까...
" 으음. 아직은 아니야. 정말로. "
미래지향적인 관계다. 이젠 평범한 친구도 연인도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지만. 애매한 거리감이야...
" ...놀리진 말아줘? "
장난스럽게 배신감 느꼈다는 듯 말했다. 내 마음이라도 읽고 있는 건지 정확한 공격점을... 어디까지나 상대에 맞게 하려는 것뿐이니까, 상대가 알아차리기를 조금 의도하고 싶을 뿐이니까!
" 무릎 위로 오는 치마는 거의 안 입어봤던 거 같은데. 크롭티....도. 내가 그런 걸 입기엔 좀... "
남사스럽다!
요즘 젊은이들은 남사스럽다!!
라는 말을 속으로 꾸욱꾹 삼켰다.
" 화려한 색이라던가. 빨간색 같은 색을 쓴 건 많이 안 입었던 거 같아. 장식이 많은 것도 안 입고... 기껏해야 옷에 글씨가 쓰인 정도? "
지금 입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슬쩍 셔츠를 내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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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가 자신있다니 부럽네요..."
저는 달리기는 그다지 잘 못했거든요. 라고 말합니다. 다림이는 가녀린 느낌이니까 좀 다르려나? 쭉 뻗어있긴 하지만.
"놀린다기보다는.."
언니랑 연애를 잘 연결시키기는 어려웠다. 정도일까요? 저랑 연애도 먼 이야기지만요. 라고 말하다가 비아가 말하는 스스로가 입어본 적 없다는 말에
"으음.. 그러면 포인트컬러 정도에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화려한 걸 막 사놓고 안 입는 것보다는 무난한 것에서 천천히 출발하는 것도 좋으니까요. 그 사람 눈색이나 머리색이 어떻게 되나요? 라고 물어봅니다. '어필'이라면 은근슬쩍 눈 색으로 포인트컬러를 잡는 것도 좋다고 말하면서 내놓아진 옷 중에서 머리를 묶으면 목선이 살짝 들여다보이는 어깨 부분에 보라색 포인트컬러 티셔츠를 한번 대어봅니다.
"이런 느낌으로요."
트임 있는 터틀넥 같은 건 언니에게 추천하기엔 조금.. 곤란할 것 같았으므로 적당히 심플하면서도 입으면 옷 태가 사는 것들 위주로 추천을 해봅니다.
"정숙해보이면서 은근슬쩍도 나쁘지 않아보이고요.."
시스루 느낌? 이라면서 추천하는 원피스는 일단 마네킹이 입은 걸 보면 의외로 단정한데. 스스로가 입는 걸 상상해보면 팔 부분과 흉부 위쪽이 비치는 소재라서 팔이 은글슬쩍 보이고, 어깨끈 부분이 은근슬쩍 보이는 것을 예상 가능합니다.
- 필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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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음... 내가 보기에도 다림이한테 달리기 시키는 건 뭔가 죄 지은 느낌이었을 거 같은데. "
뭐 지금은 의념각성자니까 달리기를 못할 거야 없겠지만. 건강을 강화하면 다리가 안 아프고, 운동신경이 안 좋으면 신속과 영성이 보조할 테니.
"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정말... "
아는 게 하나도 없으니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가볍게 머리를 짚다가 뗐다. 알아가면 되겠지.
" 살짝 포인트만 준 느낌인 거구나. 머리색은... 나랑 같은 검은색. 눈은 파란색이야. "
말해도 될까말까 고민했지만 어차피, 학원섬에 똑같은 색조합인 사람이 얼마나 많을 텐데 이 정도야... 하는 생각에 거리낌없이 말해줬다. 그애는 무채색 같은 느낌이니만큼 회색에 가까운 색상에 파란색으로 포인트를 주는 게 나으려나? 검은색이 아닌 이유는 너무 칙칙하니까. 좀 밝았으면 좋겠다. 다림이가 대보는 셔츠의 보라색을 손으로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리면서 고민했다.
" 무난한 느낌이네. "
─트임 있는 터틀넥 같은 걸 추천받았으면 기절했을지도 모른다!─적당히 맞을 만한 걸 추천해주는 다림이의 솜씨에 감탄하면서 적당히 몇 개를 고르려 했던가.
" 비치는 거구나... "
정숙해보이면서 은근슬쩍이라니 뭔가 말이 근질거려... 그리고 그냥 트이는 것보다도 살짝 흐릿하게 비쳐보이는게 더 위험해 보인다는 느낌이 든다. 왤까.
그래도 눈이 힐끔힐끔 가게 된다. 괘...괜찮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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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요... 사실 전학을 다녔어서 그런지. 운동회 같은 행사에는 언제나 한 발짝 뒤였더라고요."
그런 것도 있었다고 말하며 색을 들어보니... 왠지 모르게 생각나는 분이 있지만.. 일단은 객관적으로. 인 겁니다. 그도 그럴 게. 좀... 미안한 느낌이잖아요. 본인이 착각한 것도 있고.. 그것 때문인지. 옷에 대해서 예쁘게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듯합니다.
"회색에 파란색...은 나쁘지 않긴 하지만요."
흰색과 파란색은 잘 어울리는데 묘하게 회색과 파란색은 둘 다 조금 애매한 감이 있어요. 라고 말하는데. 사실 일반인 입장에서 말하자면 회색은 젖으면.. 티나 나는 법이니까요. 흰색이 주도적이지만 치마 부분에서 푸른색 그러데이션이 그려지는 무릎 밑까지 오는 A라인 원피스를 한 번 대보려 합니다. 위가 민소매이긴 하지만 가디건 하나 입는다면 나쁘지 않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가디건을 끼워서 한번 건네줘봅니다. 검은색 시스루 계열의 가디건을 조합하면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하네요.
시선이 가는 것을 눈치챈 모양입니다. 슬쩍 물어보려 하네요.
"저런 건.. 필살기 같은 걸로요?"
웃습니다. 몸의 선을 드러내는 타입의 원피스다 보니. 필살기같은 걸로 써도 좋다고 말합니다. 허리선을 강조하려면 좀 두꺼운 벨트를 걸쳐도 좋다고 말합니까? 다림이가 탈의실에서 한 번 입은 모습을 보여드리면... 음. 딱 달라붙는 게 은근히.. 색기있어보이게 하고 몸매가 강조되는 것 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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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랬구나. 할 때는 생고생 하는 것 같아도 돌이켜보면 나름 재밌는 게 학교 행사인데... "
...아닌가. 그냥 생고생으로만 떠오르는 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런 안타까움을 담아서 한 말이었다.
" 아, 편하겠네 이거... 좋다. "
지금 입은 배색과 같긴 하지만 원피스라서 좀 더 편한 느낌이기도 할 테고, 가디건이랑 함께 입는 것도 꽤 맘에 들었다. 취향적중이라는 느낌이라서 이건 꼭 사야지, 하고 소중히 킵해뒀다.
" 필살기라니... 무슨 필살기인 거야. "
미묘한 기분에 손등으로 볼을 문지르다가 탈의실에 들어가서 입는 걸 얌전히 기다렸다. 그리고 다림이의 시착 모습을 보고 나는 필살기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말았다.
요망해! 아니, 이건 다림이가 입어서인가...
아니다! 역시 요망하다! 이 옷이 그럭저럭 요망(?)하고 다림이도 요망하다!
둘 다였다!!
" ...꼭 사야겠다. "
아니, 꼭 내가 입는다는 건 아니다. 누굴 준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
옷장 속에 쳐박혀 있더라도 사야 할 것 같은 느낌이야... 저건!
(가디언칩 잔고: 주인님... 죽여...줘...)
...어디서 환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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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준비할 때에는 같이 하지만 참여는 제대로 못하니까요."
생고생만 하고 참여는 잘 못하는? 어 그렇게 생각하니 영 그렇네요.. 라고 말해봅니다.
"가디건을 벗으면 여름용으로도 괜찮고요.."
가디건이랑 함께면 겨울 빼고는 웬만해선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해봅니다. 킵해두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적당히 추천하는 것들이 꽤 됩니다. 예를 들자면 퍼프 소매의 블라우스라던가.. 깔끔한 커프스다 달린 기사 같은 느낌의 드레스셔츠에 조끼라던가.. 그냥 보는 것도 예쁜 것들을 보여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민소매를 안에 받쳐 입고 상의를 걸치듯 입는 것도 의외로 어깨선이 슬쩍 보이게 하는 등등...
"사비아 언니가 입어도 필살기.. 될걸요."
그 분이 코피 터지기라도 한다면 그건 위험하려나요. 라고 농담처럼 말하면서 좀 더 큰 사이즈로 사야지 언니에게는 좀 맞을 것 같지만요. 라고 말합니다. 하긴. 마네킹에 걸린 걸 다림이가 입었는데 치마 끝이 허벅지 중간까지밖에 안 오는데 비아가 똑같은 걸 입으면.. 위험하지..
"어때요?"
짠. 하고 입어보며(아무래도 좀 은근슬쩍한 것들은 다림이가 먼저 입어봄으로써 중화? 그런 걸 하는 모양입니다) 매우... 요망해보이는... 웃음을 지어보입니다. 머리카락이 길었거나 틀어올렸으면 더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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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이 안 좋았구나... "
그렇게 해서 마지막에 온 학교는 의념각성자가 되어 가디언 아카데미...인가. 운동회 같은 걸 한다 해도 초고속카메라로 찍어야 하는 운동회 같은게 되버린 지금은 평범하게 즐기긴 힘들텐데. 학교별 대항전이 되어 학교별로 결전병기 선배들을 끌어모아서 출전시키면 했지.
그러고보니 다림이는 왜 전학을 갔던 걸까? 아마 이사 문제─집이 아니라 보호자를 이사했다는 점에선 틀리지 않았다─라던가... 이사를 그렇게 자주 다녔다면 그것도 좀 그렇지만.
" 확실히 겨울엔 너무 추워 보일 것 같아. "
기본적으로 가디언 퀄리티니 한겨울에 사각팬티만 입고 다녀도 추울 일은 없지만, 추워 보이는 건 좀 그러니까. ...연인 사이에선 추워 보이니까 옷을 덮어줄게─라는 닭살 상황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도 있지만, 난 아니다. 음. 음음. 그리고 지금은 점점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봄이다.
퍼프 소매 블라우스나 셔츠에 조끼 같은 걸 보면서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다림아... 너 혹시 여기 알바생이니...? ─아니다. 악의 소굴 몽블랑의 매니저이다.─ 어디선가 가디언칩 잔고의 단말마가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 같아서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리고 어깨선이 살짝 보이게 입는다는 거엔 고개를 끄덕거렸다. 상의는 조금 헐렁한 느낌으로 해도 되려나...
" 그-그런가? 에이, 설마... "
농담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면서 손사래를 치다가 큰 사이즈로 사야겠단 말을 긍정했다. 다림이도 키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나보다는 작은 편이고. ─똑같은 걸 입으면 어떻게 될지... 거기까지 생각했으면 진석했을 것이다!!─
" ...정말, 남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인데. "
예쁘게 빚어놓은 얇은 석고 마네킹에 옷을 입혀놓고, 이제는 피그말리온의 눈물을 한 방울 떨어트린 것마냥 요망함을 생기 삼아 움직이는 표정까지 깃든 것 같다. 잘 어울리긴 한다. 하는데. 이거 입고 밖에 나가게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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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네요. 조금 좋지는 않았어요."
따지고 보면 다림이 좋은 운을 발휘하면 다른 이들에게 재난이 온다.. 에 가까우므로 실질적으로는 좋다고 말하기 그렇다고 다림은 생각했을 겁니다.
"겨울에는 좀 추울 테니까요... 물론 롱패딩같은 걸 입고 슬쩍 다닌다면 나쁘지 않을지도요.."
라는 농담같은 말을 합니다. 불길한 예감... 이라고 해도 다림은 추천을 할 뿐 사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라고 주장하겠지만요. 상의가 헐렁한 느낌이면 슬쩍 보일락 말락한 그런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까요.
"큰 사이즈로 산다면... 대략 이정도일 것 같은데.. 치수 안 맞는 것 교환은 해줄 테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신이 입은 것을 보고 말하는 것에 쿡쿡 웃습니다.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인가요?"
고개를 갸웃하면 그 모습도 은근히... 일단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구경했으니까. 다림이도 적당히 조절하는 법 정도는 알겠지. 그리고 나서 실제로 사는 옷이 무엇이냐는 건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포인트컬러 티, 필살기, 그러데이션 원피스와 가디건 정도가 다림이 추천하는 것이겠네요. 퍼프 소매나 셔프와 조끼는 그냥 이런 방법으로 입으면 좋다. 정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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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여기에 온 것만은 너의 행운이었으면 좋겠네. "
불행 끝에 낙이 온다던가, 그런 식상한 위로보다도 다림이의 행운을 빌어 주는 것으로 좋지 않은 소재의 대화를 맺었다.
" 롱패딩은 뭘 입어도 안쪽이 안 보이니까 좀 대충 입게 되는걸. 겨울철에 편하게 입긴 좋다지만. "
대충 입던 거 꺼내입고 롱패딩 입고 슬리퍼 신으면 대충 겨울 외출 패션 완성. 크...큰일이다. 너무 편할 거 같아~!
상의가 너무 헐렁하면 그것도 좀 그럴 거 같으니까 적당한 걸로. 라고 생각하며 밸런스를 생각한다.
" 위험하다고 해야 하나...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
...후배가 위험해. 위험하다 뜻. 해로움이나 손실이 생길 우려가 있다. 해로움을 끌어들일 것 같은 모습이야!
아무튼 나는 마침내 가디언칩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 타협하고, 적절한 추천 목록의 옷을 구매하기로 했다. 그렇다 해도 3년치 옷 살 만큼을 한꺼번에 산 거 같은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한번에 옷을 많이 사기보다는 하나하나 늘리면서 옷장을 채워나가는 느낌이었으니.─ 만족스러웠다. 특히 필살기... 흠흠.
" 다림아, 오늘 옷 고르는 거 도와줘서 고마워. "
옷가게를 나오면서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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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으면 좋겠네요."
메타적으론 학원도에 온 게 최고의 복지지만. 같은 생각을 하는 다림주입니다. 다림은 그저 미소지으며 대화를 부드럽게 마무리합니다. 롱패딩에 대한 것으로 화제가 넘어가자 저는 롱패딩은 잘 모르겠네요. 라고 답합니다. 그러고보니 다림이 롱패딩 없었던가... 코트로 버틴다거나..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넘어가자. 그것까지 생각하면 다림주가 다림이 옷장을 정해야 할 것 같다구!
"위험한 걸까요..."
"사실 맞다고 볼 수도 있어요?"
후후 웃는 다림의 얼굴에 그림자가 지지만. 그것은 한순간에 불과했고 그 그림자가 착각이라는 양 부드러운 표정만이 남았습니다. 다림은 적절한 추천 목록을 사는 걸 보고는 가볍게 입기 좋은 티 한 장을 구매합니다.
"무슨 말씀을요. 사비아 언니의 옷을 고르는 데 제가 도움이 된 게 기쁠 따름인걸요."
그리고 사비아 언니가 관심이 있는 것 같은 분이 있다.. 라던가도 알아차렸는걸요? 라고 웃는 다림은 입고 왔던 옷이었지만 표정은 그대로였을까.
"나중에 잘 되면 소개시켜 주시는 거에요?"
이미 알고 있던 분일 수도 있으려나. 라고 생각하며 다림은 예쁜 옷 입어보고 그런 것도 좋다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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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롱패딩... 따뜻하고 편안한 것만으론 제일인 옷이지. "
뭔가 편의점 갈 때도 깔끔하게 차려입고 가는 다림이 떠올라서 살짝 미소지었다.
" ...어. "
순간 뭔가 본 거 같은데? 봐, 봤어! 그림자가 진 걸 봤다고! 의념으로 영성을 강화해서 떠올려봐도 봤어!
하지만 조용히 기억에서 지웠다. 그런 걸 본 기억은 없다.
" 엄밀히 말해서 내가 관심 있는 쪽은 아니라니깐... 그래도, 고마워. "
웃는 모습을 보며 살짝 곤란하게 나도 웃었다. 뭔가... 오해가 확산되기만 할 것 같은데.
어쩌면 알면서도 놀리는 걸지도─비아의 후배기관은 능숙하게 그 생각을 기억에서 지웠다.─
" 그렇게 되면. 먼저 소개시켜줄게. "
하고 볼을 손으로 문지르면서 대답하고서, 유익했던 옷 쇼핑 시간을 마친다...
- 다림 일상[3] (208스레~209스레) - 7월 31일
- 【1】
다림은 가벼운 탐사의뢰를 받았기 때문에 적절한 인선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의외로 탐사 도중에 큰 일은 없을 거라는 느낌이 있었어서(정확하게는 의뢰에 그렇게 적혀 있었음) 랜스보다는 워리어 쪽을 찾아보았고. 그리고 시간도 되고 의뢰를 가는 것이 가능한 사비아 언니와 약속을 잡았습니다.
"탐사... 광물성 식물이나 동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
"다만 게이트 내부에 홀리는 그런 게 일부 있음.."
게이트 클리어가 목표가 아닌 광물로 이루어진 식물이나 동물의 표본이나 근본을 채집해오길 권함... 같은 의뢰 내용을 적은 것을 둔 카페에 오늘 약속을 잡은 사비아 언니가 오는 것을 기다립니다. 모이면 간단하게 마시고 돌입이 가능할 거니까요.
"오셨어요 언니?"
살갑게 인사하며 언니에게도 자료를 내밉니다.
【2】
"안녕, 다림아. "
티는 안 내지만 조금 들뜬 마음으로 카페에 도착해서 만난 다림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야, 이번 의뢰는 큰 일 없는 탐사의뢰라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흥미가 가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방심할 생각은 없지만. 카페를 약속장소로 잡았으니만큼 가벼운 음료를 시키고 자료를 받아서 살펴보기 시작했다.
" 광물성 식물이라니 신기하네. 보석으로 된 꽃 같은 게 있는 걸까... "
그래, 이 부분. 자료를 보면서 그런 말을 중얼거리다가, 홀리는 게 있다는 부분에 살짝 눈을 찡그린다. 그런 쪽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 그래도 클리어가 아닌 채집뿐이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게이트 클로징을 포기하고 빠져나올 순 있구나. 그건 다행인가. "
그리고 다림이한테 의뢰를 공유받으려 한다.
【3】
손을 흔드는 것에 같이 응답하듯 손을 흔들어줍니다. 가벼운 음료는 다림도 시켰었으니까요. 같이 마시며 간단한 부분을 읽어봅니다.
"그런 걸지도 몰라요."
그런 게 있을 수도 있다는 추측의 영역이니까 탐사를 맡긴 것 같지만요. 라고 답하는 다림입니다. 그리고 홀리는 건... 어쩌면 그런 욕망을 경계하라는 걸지도.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확실한 건 없기 때문에, 클로징 포기란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 공유해야죠."
의뢰를 공유하려고 손목을 내밉니다. 대면 의뢰가 공유될 것이고 진입하는 것도 선택이 가능합니다.
만일 진입한다면 은은한 랜턴이 떠다니는 숲.. 같은 느낌의 공간으로 나올 텐데. 그 랜턴이 나무에서 자라난 것이라는 걸 금방 눈치챌 수 있을 겁니다.
"신기하네요. 나무인데 금속성 랜턴이 자라나고 빛을 내는 게요"
일반적으론 드문 느낌이려나.
【4】
손목을 대어 의뢰를 공유하고, 여차여차 진입까지.
" ...정말, 이거 나무에서 자란 거였네. 역시 서포터라서 바로 알아보는구나. "
랜턴을 만져 보고서야 한 발짝 늦게 알아차렸다. 역시 그러라고 서포터가 있는 거겠지만.
" 일단 표본 채집이니까 이런 것도 챙겨가는 게 좋을까? "
하고 인벤토리에서 꺼내 들고 있던 방패로 랜턴 하나가 연결된 가지를 내리쳐 가지채로 끊어내려고 한다.
【5】
"서포터라서... 라기보다는 관찰을 열심히 했다가 맞아보이지만요."
고개를 살짝 젓지만 꽤 신기한 광경이기는 합니다. 바람이 불면 랜턴이 흔들리고, 불빛도 흔들리는 은은한 빛의 광경은 예쁘네요.어쩌면 이것만 보고 돌아갔던 걸까..
"끊었을 때 불이 꺼지는 지 확인해보고, 꺼지지 않는다면 들고 다니며 조금 비춰보고, 꺼지면 채집을 해놓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라고 말하면서 끊으려는 비아 언니를 말리지는 않습니다.
"저쪽은 조금 어둑한 것 같은 느낌이네요... 끊기고도 불이 켜져 있으면 좋을 텐데요."
느릿느릿하게 가리킨 랜턴숲 너머는 확실히 좀 어두운 느낌입니다. 그런데. 어쩐지 어둡다. 라고 느끼면서도 반사되는 빛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인데요.
【6】
" 그런가? "
의념을 쓰지 않는 선에서 열심히 관찰해본다. ...음, 예쁘네. 시력도 강화하고 영성도 강화하면 뭔가 나올지도 모르지만 서포터가 있는데 워리어인 내가 그럴 필요는 없다. 방심하진 말고 구경이나 해야지.
" 그러면 어디... "
가지가 콰득 부서지는 것을 떨어트리지 않고 빠르게 받아냈다. 적당히 들고 다닐 만큼 길이의 가지 끝에 랜턴이 매달려서 여전히 빛나는 모습이... 등불로 써먹을 수 있을지도. 얼마나 갈진 모르지만.
" 일단은 불이 켜져 있는데, 얼마나 갈지 모르니까... 이것만 믿고 가긴 좀 그럴 거 같은데. "
어두운 숲 너머를 보며 가지를 찰랑 흔들어 본다.
" 일단 가보자. 저기도 아주 어둡지만은 않은 거 같으니까. "
【7】
"영성을 쪼금 강화하긴 했지만요."
슬쩍 웃으면서 받아낸 랜턴이 불이 꺼지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가리킨 방향으로 향해 들어올리려 합니다. 언제까지 갈 지 모르니까. 빠르게 진행하는 게 좋겠지요?
"시력 강화를 하면 어둠 속에서도 보이겠지만... 망념은 관리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라면서 등불을 들고 앞으로 가보면. 눈이 부시게 휘황찬란한 꽃밭이 가득 펼쳐져 있었습니다. 빛이 없는 곳에서는 눈에 잘 안 띄는 마치.. 유리조각이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랜턴이 빛을 뿌리자. 빛을 머금은 광물질과 보석 등으로 만들어진 꽃들이 가득한 게 보이네요. 어쩐지 빛을 좀 저장하는 것처럼 랜턴의 빛이 떨어지고도 한동안은 반짝임을 품은 것처럼 보입니다.
"종류....는 어느정도로 채집하는 게 좋을까요..?"
너무 많이 채집하거나 시간을 끌면 곤란할 것 같은데요. 라고 말합니다.
"보통 이런 반짝이들이 놓인 곳은 해가 뜨면 엄청 빛나서 뜨거워진다.. 가 클리셰니까요?"
농담일까 진담일까..
【8】
" 영성 S에 의념으로 강화까지 했다면 내가 따라갈 수 있을리가. "
그도 그럴게, 이제 겨우 1 올라서 17 정도의 영성(B)이니까. 다림이 랜턴을 드는 것에 빠른 걸음으로 숲 너머를 향해간다.
" 내내 시력을 강화하고 싸우려면 힘들기도 할 테고. "
그리고 휘황찬란한 꽃밭을 보고서는 탄성을 애써 속으로 삼키고는 " 뭔가 반짝이던 게 이거였구나. 빛을 잘 흡수하네... 정말 예쁘다. "라는 짧은 코멘트를 남겼다. 그치만 보석으로 된 꽃밭이라니 감탄 안 할 수가 없는걸! 가디언도 아니고 의뢰도 아니었다면 사진으로 찍고 싶었을 것이다.
" 으음, 색깔별로 하나씩 따가는 게 좋지 않을까? "
그렇게 말하면서 방패로 후려치는 대신─깨질 것 같았다─ 광물질 꽃을 신체 A의 손가락으로 뚝 부러트려서 주우려고 한다.
" 뜨거워지지 않아도, 랜턴 하나의 빛 정도로 이렇게 반짝이는데 햇빛 같은 강한 빛을 저장하면 눈부셔서 눈을 못 뜰 거야. 그렇게 되면 방패로라도 햇빛을 가려야겠지만... 음, 일단 빨리 채집해서 빠져나가는 게 좋을지도. "
망념 5정도로 신속을 강화해 좀 더 빠르게 손을 움직이려고 했다. 게이트 안이다보니 언제 기상현상이 바뀔지도 모르고 서둘러서 나쁠건 없겠지...
【9】
"대신 다른 부분에서는 좀 떨어지지만요."
신속이나. 건강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다림은 그것을 알고 있기에 노력해야 하지만.. 공허할 뿐이지. 마주한 들판은 생각보다 너무 아름다운 편이라서 상당히 곤란합니다. 탐욕을 마주하게 하는 용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나요? 비아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빛을 왕창 저장하면 옛날.. 에 본 적 있는 그런.. 솔라빔.. 그런 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게이트 안이니까요. 변화무쌍하게 될 지도 모르겠네요."
색깔별로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꽃의 종류마다 하나씩인가. 아니면 다른 기준인가. 라고 고민했지만, 색깔별로라면..
투명한 반짝임의 꽃이나 분홍빛 꽃.. 여러 꽃들을 채집하다 보면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흐를지도 모릅니다.
"꽃밭을 지나면 저쪽은... 숲인 것 같은데요."
저쪽도 어둑어둑한 게 광물질이나 보석으로 만들어진 것일까요... 라고 생각하면서 들판 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숲을 가리킵니다. 꽃 채집은 얼추 다 된 느낌? 다림도 신속을 조금 강화해서 꽃을 꺾었으니까요.
【10】
" 그런 걸 서로 보완해주려고 이렇게 같이 온 거니까. "
라고 살짝 고개를 저었다. 특별한 위협이 없는 게이트라도 가디언의 능력은 필요하기에 의뢰가 왔을 테니.
" 플래시에 가깝지 않아? "
" 광물이다보니 색이 되게 다양하네. 의념으로 만들어내는 것보단 수집가들이 좋아하겠다. "
라고 말하면서 보석의 의념으로 만든 것들을 떠올린다. 금방 부서지거나 가치없거나. 인간의 감정이나 의식 같은 게 너무 헛되게 사라질 만한 것이라서 의념으로 만들어낸 것도 영원할 수 없는걸까. 아니면 단지 화폐 가치 훼손을 막기 위한 뭔가인 걸까...
" 숲 넘어서 꽃밭 넘어서 또 숲이려나. 그래도 랜턴보단 좀 다른 게 있었으면 좋겠네. "
빛나는 랜턴을 톡 건드리며 다림이가 가리키는 숲을 바라본다. 꽃은 이제 적당히 꺾었으니 저쪽으로 가봐야지. 하고 광원을 든 다림이 출발하면 뒤따를 준비를 했다.
【11】
"그렇네요."
1인 의뢰가 아니고서야 같이 다니는 건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다림은 플래시라는 말에 그런가요... 라고 중얼거리다가 그게 중요하지 않을 거에요.. 라고 말하다가 뒤에 ...아마도요.를 붙였습니다.
"확실히 수집가들이 좋아할 만하네요."
섬세한 꽃잎인데 단단한 광물질에 빛나기까지 하면 저라도 조금은 물욕이 생기게 되니까요. 라는 말을 하며 긴장을 놓지 않은 채 랜턴을 들고 숲 쪽으로 향합니다. 어두운 걸 보면 숲에 랜턴은 없어보이지만요. 라고 말하는데. 빛이 비춰지면, 빛을 흡수하며 매달려 있는 몇가지 것들이 보이려나요? 뭐가 매달려 있으려나. 금속이나 유리 공예품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만져보면 부드러운 열매라던가? 아니면...
"으음.. 여기를 넘어서면 나갈 수 있는 느낌이 들기는 하네요."
뭔가 나가려 할 때에 홀리는 그런 종류인 걸까요. 라고 말하면서 채집품을 슬쩍 봅니다. 과하게 따면.. 이란 조건이 있으면 곤란할지도. 같은 생각이려나?
【12】
" 공예품으로 만든다 하면 어려울 모양이니까. 이런 생명체가 있는 건 게이트 안뿐일 거야. "
사실 나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빼돌릴 건 절대 아니지만. 그리고 다림이를 따라 숲을 향한다.
" 그렇게 넓진 않네. 작은 게이트라서 그런가... "
아니면, 무언가 공간을 제한하고 있는 걸지도?
라고 덧붙이면서 나무에 매달려 있는 신기한 열매를 만지작거리다가 다림 쪽을 봤다.
" 음, 열매까지 따고 갈까? 아니면 이만 갈까. 의뢰에 지정된 채집량이 얼마나 되더라... "
【13】
"그렇네요.. 하나 정도는 장식품으로 가져가는 게 가능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에요"
게이트 안쪽이 아니라면 이런 생명체는 보기 어렵죠. 인간의 상상력에서는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요. 라는 말을 하며 다림은 넓지 않다는 말에 넓었으면 완전 힘들었을지도 몰라요? 라고 말합니다.
"음... 열매는 탐사시에 이런 게 있었다.. 라고 보고서에만 적는 게 어떨까요?"
빛나는 것도 꽃밭보다는 덜한 것 같고요.. 또 솔라빔이나 플래시같은 느낌도 아닐 것 같으니까요.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채집 의뢰가 아니라 탐사니까요. 탐사에 덤으로 채집인 만큼, 이정도 채집한 거면 오히려 상위권일 거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런 뉘앙스.. 일까요?
"그리고 채집량 자체를 엄격하게 정한 것도 아니니까요..."
몇 차례 보내서 비교해본다고는 하지만요. 라는 말을 하면서 앞쪽으로 나아갈까요? 라고 말하려 해봅니다.
【14】
" 그래도 역시 연구용으로 쓰이지 않으려나. "
안 그러면 가디언 후보생들한테 몇 GP 주고 얻은 보석꽃으로 돈이 복사가 된다고~~ 를 시전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제대로 써줄 사람한테 갈 것이다. 아마도... 인간의 상상력이란 말에,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읽어준 황금 잎 나무 이야기 같은 걸 떠올리며 끄덕였다. 어쩌면 비슷한 것도 게이트에 있을지도... 아니, 있겠지 분명.
" 넓었으면 좀 더 많이 걸어야 했겠지. "
그랬으면 워리어로만 파티를 구성해야 했을지도 모르고. 워워워... 윽 머리가. 하지만 탐사로는 정석 파티다.
" 그러면 이번엔 이만하고 돌아가자. 열매는 후속대한테 맡기면 되겠지. "
다림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충분히 됐다라고 생각한다면 파티장의 뜻대로. 가자, 라고 가볍게 덧붙였다.
그나저나, 클로징도 실패도 아닌데 들어온 사람을 밖으로 내보내는 게이트라니, 이런 것도 있구나. 여기엔 식물뿐이어서 다행이지만, 몬스터도 게이트 너머로 올 수 있었으면 큰일났을지도.
【15】
"연구용으로 쓰인 다음에 뭔가... 유용하다면요?"
그냥 아름답기만 하다 하여도 나쁘지 않을지도. 같은 생각을 하며, 다림은 열매를 톡 건드려봅니다. 끄덕이는 것에 도서관에서 동화책같은 거나 민담같은 걸 읽어본 적 있었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봅니다.
"더 걸어야 했을 거고요.. 엄청나게 넓었으면 말이지요."
워워워로 탐사정석파티를 짜야 했을지도.같은 생각이 드는 다림주군요. 이만하고 돌아가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럼 돌아갈까요.."
출구가 보이고 나오면 별 일 없이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탐사 보고서를 쓰고 제출하면 그걸로 끝.인 거니까요. 라는 다림입니다.
카페 쪽에서 써도 좋고 아니면 기숙사에서 써도 좋은데요. 쓰는 거 보실래요? 라고 말해봅니다. 아니라면 채집된 것을 다림에게 넘겨주고 해산! 일까.
【16】
" 으음. 전에 도서관에서 여러 능력이 있는 보석을 본 적이 있고, 이런 것 중에 그런 특이한 보석이 있으면 대발견! 같은 게 될지도. "
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다림이 동화책 이야기를 하는 것에 판타지 느낌의 모험을 하는 동화 얘기를 꺼내면서 보석으로 된 숲은 어디서나 낭만이구나. 같은 말을 한다. 역시 좋아하는 분야니까...
그리고 엄청나게 넓었으면 하는 말에 살짝 표정을 흐렸다. 그랬다간 정말 헤매는 와중에 솔라빔이나 플래시를 맞았을지도 모르는걸.
" 나왔다... "
" 음, 기왕이니까 괜찮다면 쓰는 것까지 보고 갈까. 의뢰는 제출까지가 끝이니깐 말야. "
다림이의 기숙사엔 관심이 있긴 하지만, 여여가 각별한데... 가 아니라, 갑자기 가긴 좀 그러니까. 카페 쪽으로 가려고 한다. 가능하면 보고서 작성도 좀 도와야지.
【17】
"대발견이 되었겠지만... 빛을 잘 흡수해서 빛난다 외에는 아직은 미지수지만요"
"그런데 어떤 보석에 어떤 효능이 있었나요?"
조금 궁금한 지 슬쩍 물어보려 합니다. 채집한 것들은 나와서는 꺼내기 힘들지도. 라고 생각합니다. 암실에서 꺼내서 빛을 조금씩 비추며 연구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습니다.
"그럴까요."
카페로 향하면 아이스 말차라떼 하나를 시키고는 언니는요? 라도 물어보는 듯 바라봅니다. 생각보다 단정한 글씨체입니다.
"주의점. 어두운 꽃밭에 무사히 다다를 시, 게이트 내부의 환경이 변화할 수도 있다는 의념의 흐름을 느꼈습니다. 밝은 환경으로 변화 시 빛의 응집으로 인한(랜턴의 빛 하나만으로도 매우 반짝이는 정도의 자료를 첨부) 심각한 시력적 디버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빠르게 채집할 것을 권장합니다."
그런 뒤 몇 가지 주의사항이나 탐사에서 얻은 것들을 적은 보고서를 적고 있네요. 얼음 다 녹고 있지만 어느 정도 마무리 된 후에야 홀짝이겠지.
【18】
" 그렇긴 하지. 빛이 아니라 다른 것도 담아둘 수 있다면 저장용으론 쓰일 수 있으려나... "
" 아, 내가 읽은 책에 나온 건, '비코팔렌트'라는 보석과 '펠리아모로노티아'라는 보석이야. 둘 다 게이트에서 발견된 거고. 비코팔렌트는 불과 관련된 성질이 있지만 침에 녹아서 먹으면 규모가 작은 브레스를 쏠 수 있고, 펠리아모로노티아는 말이나 안장에 심으면 좋은 효과를 주고 예쁘진 않지만 큰 에너지를 품고 있어서 가치가 높지. "
휴, 위키에 적어 둬서 다행이야! 고마워요 과거의 나!
...라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나.
그리고 채집물을 보면서 그대로 들고 밖의 빛에 노출시켰다간 정말 태양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 난 청포도 주스로. "
왠지 마시고 싶어졌달까.
다림이의 반대편이 아닌 옆쪽에 앉아서 단정한 글씨체로 써내리는 보고서를 지켜본다. 뭔가 조별과제 때 얹혀가는 느낌인걸...
" 나무를 자를 땐 평범한 나무랑 다를 바 없는 느낌이었던 거 같은데. ...다림아, 마시면서 해. 다 녹겠다. "
라고 멍하니 보고 있다가 보고서가 마무리되어갈쯤 뒤늦게 말했다.
【19】
"저장용으로 쓰인다거나요.."
"에너지를 저장해서 일종의 버프로 쓴다거나요? 물론... 아직 밝혀진 게 없어서 추측에 불과하지만요..."
보석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흥미롭다는 듯 눈을 깜박입니다. 어쩐지 반짝인다는 서술이 적은 건 그냥 뭔가 그런 겁니다. 브레스라던가. 에너지라던가. 직접 보면 다들 예쁠 것 같다는 생각일까요?(개인적으로 펠리아모로노티아는 캐보숑 형식으로 하면 나름 예뻐보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청포도 주스를 시킨 비아 언니가 보고서 쓰는 걸 보면 조금 부끄러운 듯합니다. 티는 잘 안 나지만요. 먼저 연필로 쓰고 나서 볼펜으로 다시 적는 걸까요.
"아 그렇네요."
랜턴 채집물의 단면에서 볼 수 있듯이 나무 부분은 확실히 나무였다는 서술을 추가하면서 다 녹겠다는 말에 스무디가 아니라서 녹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라는 말을 하지만. 말차라떼에 물의 층이 좀 생겨서 저어먹어야 했을 겁니다.
"볼펜으로 적은 뒤 제출하면 보수가 들어오겠네요."
고개를 끄덕입니다.
【20】
" 어쩌면 정말 그냥 장식용으로 쓰일 수도 있고 말이지. "
루니루웰이라던가 매력을 올려주는 옷 같은데 장식으로 붙는다던가. 장인의 손을 거치면 평범하게 빛나는 보석도 특이하게 깎여서 검은 드레스를 수놓은 떨어진 별들처럼 달아 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얼음이 녹으면 맛이 없잖아. 빨리 마셔야지... "
하고 얼음 없는 청포도 주스를 홀짝이면서 말한다.
" 응. 슬슬 끝인가? 그럼 제출하러 갈까? "
【21】
"그냥 장식용이라도 예쁘면 효용이 있는 법이니까요"
하긴 그렇습니다. 루나루웰같은 옷에 박혀있는 반짝이는 보석들. 생각만 해도 아름답다고 느껴질 만하죠. 이건 다림주의 사견이니까요.
"아 그렇나요..."
약간 떨떠름해 보일 수 있는 말이긴 했지만 표정이나 마시는 게 떨떠름하지 않아서 중화되었어. 다행이야! 제출하러 가자는 것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 보수를 받아서 기분 좋게 헤어지는 걸로 좋게 끝났지요.
- 정훈 일상[1] (217스레~219스레) - 8월 18일, 우리들의 이야기의 끝
- 【1】
누구인가? 누가 지금 악성 데이터 소리를 내었어? (GUNGYEmiyagugizzada풍)
이런... 어디서 괴전파 수신이. 아무튼 나는 지금, 어느 젤리가게 앞에 줄을 서 있다. 이유는 터무니없다. 가디언넷에서 요즘 핫하다고 유행하고 있는 이 가게의 하루 판매갯수가 한정되어 있는 젤리를 사기 위해서다. 이런 건 상술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변에서 계속 한 번 먹어보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어쩔 수 없이다. ...아니! 나도 학생이니까 이런 거에 관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잖아? 하고 듣는 사람도 없는 변명을 속으로 했다.
...그치만 아직 줄이 빠질 기미가 안 보이네.
가디언넷은 뭔가 다운받는 중이라 다른 창을 켜도 될지 모르겠고.
머엉하니 줄을 바라보던 나는 (나중에 돌이켜보면 왜 그랬을까 하고 생각하게 될 일이지만)문득 어떤 생각이 들어 과감하게 내 뒷줄에 서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 그쪽 분도 한정 젤리 사러 오신 거죠? "
【2】
많은 사람들이 일렬로 나열된 줄, 그 한가운데에서 정훈은 머리를 오른쪽으로 살짝 빼 앞을 보고 있습니다.
일일 한정 판매량은 50개.. 지금까지 사간 사람은 총 13명 그리고 내 앞에 서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 네, 네? "
저 앞에서부터 한명 두명 사람들의 숫자를 세나가던 정훈은 갑자기 바로 앞에 서있던 학우분이 말을 걸자 약간 당황한 모습을 보이다가 곧 대답을 이어나갑니다.
" 그렇죠! 원래는 학교 마치자마자 오려고 했는데, 잠깐 일이 있어서 조금 늦었네요! "
그 때문에 50명 제한에.. 아슬아슬할까요.
정훈은 어쩌면 젤리를 사지 못할수도 있다는 생각에 약간 초조한 기색까지 보입니다. 오늘 젤리를 사먹으려고 요 몇일간 군것질을 아예 금했거든요!
만약 오늘 살 수 없다면 내일 다시 와야할텐데.. 그 하루가 굉장히 길 것만 같습니다.
" 학우님도 과일 젤리 좋아하시나요! "
그야 여기까지 와서 줄 서서 사먹을 정도면 좋아하는 편이긴 하시겠지만.. 정훈의 물음은 그보다 좀 더 나아가서, 좋아하는 음식에 꼽느냐는 느낌일 겁니다.
【3】
" 성학교가 제일 일찍 끝나니까 빨리 안 오면 줄도 못 설 텐데... 그래도 줄은 섰네요. "
청월은 이럴 때 슬프다. 끝나자마자 있는 힘껏 달려와도 일 때문에 늦은 제노시안과 온 시간이 비슷하다니... 앞에 사람이 워낙 많아서 그런지 한정판매품이 내 코앞에서 끊길 것 같다는 슬프고도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난 그래도 내일 또 오면 되지만. 상대도 비슷한 생각인지 좀 초조해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 싫어하진 않죠? 이번엔 친구들이 워낙 한 번 먹어보라고 해서... "
하고, 뭔가의 눈빛에 보답해주지 못하는 답변을 한다. 하지만 그 정도로 추천할 만한 게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서, 나도 조금 눈을 빛내고 있다. 맛있는 걸 먹는 건 행복한걸...
" 한정판 말고도 다양한 걸 파는 거 같은데, 만약에 한정판을 못 사면 다른 젤리라도 사가야겠어요... "
과일젤리. 과일젤리. 조그만 젤리. 딱딱한 젤리. 생과일이 들어간 젤리. 투명하게 찰랑거리는 젤리와 마른 젤리.
...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게는 역시 사람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였다.
" 왠지 우리 앞에서 딱 끊길 것 같지 않아요? "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불길해...
【4】
학교별 하교 시간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정훈주였다//
" 아하.. 친구분들 추천으로 오신거군요! "
상대가 자신과 같은 타입의 손님은 아니었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결국 다 맛있는 젤리를 위해 찾아와 수고롭게 줄까지 서는 손님들인것을!
여기 젤리는 정말 맛있으니 주변의 친구들이 추천해서 찾아왔을 법 하다. 당장 줄 서 있는 사람들중에 그런 느낌으로 온 손님들도 제법 되시겠지!
" 한정 젤리 말고도 맛있는 젤리가 많이 있으니까 이번에 못 구하신다면 다른 젤리 드셔보시고 다음에 다시 오셔서 드셔보세요! "
포장되어있는 맛있는 젤리들도 있고, 주머니에 넣어두고 한개씩 까먹기 좋은 마른 젤리들도 있고.. 기타등등 맛있는 젤리들을 한가득 파는 가게다.
그 사이에서 한정 젤리는 한정인 값을 충분히 할 정도로 맛있지만!
" ...수가 조금, 애매하긴 한데.. 설마요! "
그렇게 말하면서 정훈이 애써 웃자, 앞에서부터 줄이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가게 안에서 판매 준비가 끝나 손님들의 계산을 해주시는걸까요?
【5】
" 여기 자주 오시나요? "
과일젤리 좋아하냔 질문도 그렇고, 여기에 꽤 와본 눈치다. 한정 젤리 때문에 다른 손님이 거의 막혀있는 상황이면 기존 고객들은 좀 불편할텐데, 하는 걱정이다. 그다지 필요없긴 하겠지만.
" 아, 슬슬 줄이 빠지기 시작하네요. "
폭풍 전야. 내 앞에서 끊기느냐 간신히 통과하느냐, 그것은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입으로 숫자를 세면서 하나 둘, 세기 시작한다. 하지만 중간에 "미희야 내 말은 그게 아니고, 잠깐만. 만나서 얘기하자."라면서 뭔가 사정이 있는 것처럼 급하게 줄을 이탈하는 사람과,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람만한 곰인형을 등에 매고 있는 사람─뭐 하는 사람이야?─ 등에 낚여서 처음부터 세기를 몇 번 반복했을까... 앞사람이 점점 줄어가 내 앞엔 잠깐 결제수단 문제로 멈춰 있는 사람까지 총 아홉 명이 남았다.
" 한정 젤리─ 10 개 남았습니다─!! "
에?
그 말을 듣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뒤쪽 사람들을 보며 나는 뒷사람을 살짝 돌아봤다.
만약, 가디언칩 잔고 때문에 현금을 꺼내는 저 사람 몫을 포함하지 않는다면(1인 1젤리로 가정한다) 앞사람이 1개씩 사간다고 했을 때 남는 젤리는 8개. 내 뒷사람도 안정적으로 젤리를 살 수 있다.
하지만 저 사람 몫까지 합쳐서 10개라면, 아슬아슬하게 나와 뒷사람이 젤리를 산 사람과 못 산 사람으로 나뉘게 된다...!
【6】
" 네! 저는 자주 오는 편이에요! "
금전적인 사유로 객관적인 자주 온다에는 모자랄수도 있지만.. 주관적으로, 정훈이 다니는 가게들 중에서는 자주 오는 편이니까요!
과일도 좋아하고 젤리도 좋아하는데 자주 오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그러다가 눈 앞의 학우분이 슬슬 줄이 빠진다고 하자 정훈은 바로 고개를 옆으로 쏙 빼서 앞에 줄서있는 사람들을 체크하기 시작합니다.
이탈하는 사람, 곰인형 페이크, 기타등등.. 여러 혼란스러운 상황에 눈이 갔던곳에 다시 가는일을 수 번 반복했을때. 앞에 있던 사람들은 어느덧 몇 명 남지 않고 가게 안에서 젤리가 10개 남았다는걸 알려옵니다.
그러니까.. 지금 앞에 남아있는 사람이... 내 앞의 학우님까지, 딱 열 명.
" ...어, 음. "
아까까지 사람들로 가득 차있던 등 뒤가 발걸음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휑하게 변해가는것을 느끼며 정훈은 고개를 다시 집어넣고 앞을 바라본 채 살짝 굳어버립니다.
아까까지 대화하던 학우님이 이쪽을 돌아보자 그제서야 정훈은 굳었던 표정을 풀고 어색한 웃음이라도 얼굴 위로 띄워보입니다.
" 그.. 오늘은 다른걸로 사야겠네요! "
하하, 하하하. 어쩔 수 없죠!
다음엔 좀 더 일찍 와야겠어요.. 아니면 성학교 친구에게 부탁한다던가...
【7】
" 그럼... 혹시 좋아하는 젤리가 있다면 무슨 젤리인가요? "
취조하는 느낌으로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혹시 맛있는 거 있다고 하면 사가야지...
" 아, 호, 혹시 모르잖아요. 저기 막혀 있는 사람을 빼고 열 명이면 아슬아슬하게 그쪽 분까지 들어갈지도... "
아슬아슬하게 끊길 걸 말해놓고 혼자 쏙 안전한 곳으로 빠져나간 입장에서 마음이 편하진 않은지라 나도 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볼 만한 건 있으니까!
라고 생각한 게 방금, 나는 나를 마지막으로 마감을 알리는 목소리를 듣고 손 안에 든 젤리를 허망하게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 저기, 저는 맛만 봐도 되니까, 같이 드실래요? "
코시국엔 불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지만, 우린 전염병 같은 건 없으니까. 아니 내가 뭔 소리람? 아무튼 나는 뒷분이 있던 곳으로 슬쩍 그렇게 말을 걸었다.
【8】
"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젤리는 과일젤리네요! 맛을 고르라면.. 감귤이나, 복숭아? "
가게 안에는 다른 맛있는 젤리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정훈에게 좋아하는 젤리를 물어본다면 나오는건 과일젤리뿐이죠!
한정 젤리도 맛있지만 통상적으로 파는 과일젤리들도 굉장히 맛있다고 덧붙이며 점점 텐션을 올려가던 정훈은 더 이상 한정젤리의 남은 수량에 연연하지 않는 듯 밝은 웃음을 띄우며 가게의 맛있는 젤리들에 대해 이야기해줍니다.
학우분의 희망을 가져보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잠시 기다리면 곧 정훈의 눈 앞에 놓일 모습이란 자신의 젤리를 내려보는 학우분과 마감을 알리는 점원의 목소리.
" 아.. 아니에요! 그건 학우님 거니까, 저는 안쪽에서 다른 젤리로 살게요! "
아무리 과일젤리를 좋아한다지만 초면인 학우분의 것까지 탐할 정도는 아니므로 정훈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보이며 괜찮다는 듯 웃어보입니다.
그래도 앞의 학우분이 미안해 할 이유가 없음에도 어쩐지 미안해 하는 것 같으면 한정젤리에 대한 감상이 궁금한데 젤리 제것도 금방 사올테니까 저 뒤쪽 테이블에서 같이 드실래요? 라고 권유해보겠네요.
한정 젤리는 다음에 와서 사먹어도 되는거지만, 그 젤리를 처음 먹어보는 사람을 만나는건 (그것도 줄을 서다가 만난 인연으로) 다음에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니까요!
【9】
" 복숭아는 달아서 맛있을 것 같긴 한데, 감귤 젤리도 있나요? "
상대의 신난 마음이 전이됐는지 같이 즐거운 마음이 되어버려서 나도 즐겁게 대화를 했다. 과일젤리... 왠지 사면 악성 데이터가 될 것 같은 불길한 단어긴 하지만 아무튼 맛있으니까. 전문적인 만큼 과일 모양의 과일젤리 같은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가디언넷에서 이파리까지 먹을 수 있는 감귤젤리를 본 것 같은데...
" 그, 그런가요. "
그 말을 듣고 살짝 시무룩해지면서 이 만남은 이것으로 끝나는가 하면...
" 그러면 같이 먹을까요? "
눈을 반짝이면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젤리인데 테이블에서 먹을 수도 있다니 의외로 본격적인걸.
상대가 젤리를 고르는 사이 나도 한정젤리 하나만 보고 있을 순 없으니 젤리를 이것저것 골라본다. 하나씩 꺼내먹는 과일젤리... 윽... 악성데이터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리고 아까 추천받은 복숭아와 감귤맛은 따로 고른다. 플라스틱 통에 낱개로 담겨있는 젤리와 긴 통에서 하나씩 꺼내먹는 단단한 식감의 젤리, 컵 같은 것에 담겨있는 촉촉한 젤리 등등...
...이러다 상대 기다리게 할라! 빨리빨리 계산하고 테이블이 있는 장소까지 와서 아까전의 상대는 어디 있나, 두리번두리번거렸다.
【10】
" 물론이죠! 왠만한 과일은, 게이트산 과일까지 다 있어요! "
게이트산 과일이라던가 망념화한 과일이라던가 하는 특수 과일까지.. 보통 물량이 안정적으로 수급되지 않아 한정 메뉴로 나오는 편이지만!
그러고보면 일전에 춘덕씨가 보여줬던 망념화 망고도 젤리로 만들면 맛있지 않았을까?
" 저야 좋죠! 그러면 금방 사올게요! "
흔쾌히 같이 먹자고 하는 학우님의 모습에, 금방 먹을 젤리를 사오겠다며 정훈은 매대로 향합니다. 테이블 쪽이 아닌 다른 매대로 향하는 학우님의 모습에 약간 의아했지만 다른 젤리들도 고르는 모습에 고개를 한번 끄덕.
그러면 좀 여유롭게 사볼까요! 돈은.. 충분하진 않지만 젤리 몇개 정도는 넉넉합니다!
" 이거랑.. 이거랑... 됐다. "
그렇게 정훈이 고른 젤리는 지름이 10cm 정도 되어보이는 커다란 망고 젤리(망념화 망고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니 무의식적으로 골랐다)와, 차에서 냉장고에 넣어둘 작은 컵 젤리 몇개, 운전석에 둘 마X구X같은 식감의 젤리 몇 통, 길다란 끈처럼 생겨 겉에 흰 가루가 묻은 젤리 등.
아마 테이블에서는 커다란 망고 젤리를 먹고 나머지는 차에 넣어두려는 듯 하네요! 특이한 점이 있다면, 고른 젤리가 하나도 빠짐없이 과일맛이라는 겁니다. 취향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군요.
고른 젤리들을 카운터에 가져가 계산을 마친 정훈은 테이블쪽 자리로 가 학우분이 이미 앉아계시다면 그쪽으로 갈 것이고, 학우분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면 적당히 자리를 잡고 손을 머리위로 들어 학우분이 찾기 좋게끔 좌우로 천천히 흔들겠네요!
【11】
" 게이트산도요? "
눈을 동그랗게 뜬다. 전에 다림이와 갔던 탐사-채집 의뢰(일상 설정)에서 게이트 안에 있던, 금속과 유리 같이 생겼지만 만져 보면 부드러운 열매들을 떠올린다. 그런 것도 젤리에 쓰이는 거려나...?
" 이쪽이에요. "
아무튼 나는 적당한 테이블을 골라 앉아있다가 이쪽으로 오는 뒷자리 분(?)을 발견하고 손을 높이 들어 흔들었다.
" 상당히 큰 젤리네요. "
나한테 망고맛이란 건 많이 먹으면 질리는 맛 정도의 이미지니까, 저런 크기의 망고젤리를 사서 올 줄은 몰랐다. 뭐, 사람마다 취향은 다른 거니까. 아무튼 상대가 왔다면 먼저 한정판 젤리부터 뜯기 시작했을 것이다.
...근데 어떻게 생긴 거지? 대충 푸딩같은 모양의 투명한 젤리 안에 여러 과일이 가둬진 모습으로 밖의 사람은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 그러고보니 이름이 뭐에요? 계속 뒤쪽 분이라고 부를 순 없을 것 같아서. "
【12】
손이 들어 흔드는 학우분을 보고 그쪽으로 약간 빠르게 걸어간 정훈은 커다란 젤리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맞은편에 앉습니다.
나머지 젤리들은 쇼핑백에 담겨서 의자 아래에 놓여있는 상태고요.
" 이렇게 큰 젤리는, 양에 비해서 가격이 싸거든요! "
많이 먹고 싶은 사람을 위한 가성비 젤리라고 할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면서도 과일젤리를 굉장히 좋아하는 정훈에게 딱 맞는 젤리라고 할 수 있다.
한정젤리는 이쪽 바깥양반(?)도 별 생각이 없었던 듯 하다. 그날의 한정! 이란 느낌으로 어떤 젤리든 자유롭게 가능하지 않을까..
게이트산 과일이나 망념화 과일이 들어있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 앗. 소개가 늦었네요! 제 이름은 신정훈이라고 합니다! 제노시아 전문고 2학년으로 재학중이에요! "
상대의 질문에 자기소개를 한 정훈은 젤리 포장을 뜯는걸 잠시 멈추고는 상대 학우분의 눈을 또렷하게 쳐다보기 시작합니다.
이제 다른 행동을 한다고 아예 듣지 못하는건 아니지만.. 아직은 종종 흘리는 일이 잦아서요.
통성명을 하는데 상대 이름을 못들었다고 다시 말해주실 수 있냐고 하는 대참사는 일어나선 안되니까 이럴땐 집중해야죠!
【13】
" 그건 그거대로 장점이 있네요. "
그럭저럭 괜찮은 젤리를 가득가득 먹는 것도 취향에 맞는다면 장점이니까.
" 음. 저는 사비아라고 해요. 청월, 3학년. 말 놓아도 될까요? "
뭐, 뭔가 눈을 빠안히 쳐다보니까 부담스러운걸. 눈을 살며시 피하면서 나도 이름을 말한다. 덤으로 상대가 학년이 한 단계 낮으니 말을 놓아도 될까 넌지시 말을 띄워봤다.
" 역시 한정이라 그런지 이거 특이하네요... "
상대는 크지만 젤리 한 개. 부지런히 먹어야 다 맞출 수 있다. ...라고 생각하자마자 남은 건 그냥 가져가면 된다는 걸 깨달았다. 테이크아웃 안 된다고 생각할 뻔... 느긋하게 먹자. 포장을 다 뜯은 한정 젤리는 투명한 젤리 안에 체스판처럼 규칙적으로 과일들이 갇혀 있는 특이한 모습이었다. 특징은 스푼이 같이 있어서 과일을 하나씩 떠먹는 걸 추천한다는 내용.
" 어... 어...! 이 맛은...! "
이건 한 입 포도알이 들어간 부분을 떠먹은 내가 한 말. 무슨 맛이냐고?
다음 답레에서 공개됩니다.
【14】
" 선배님이셨군요! 물론이죠. 편하게 말씀하세요! "
학우분.. 아니, 비아 선배님께서 눈을 슬며시 피하며 하는 자기소개와 편하게 말해도 되겠냐는 말에 정훈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학교가 청월이시니 은후한테는 같은 학교 선배님이시겠네요!
" 한정 젤리는 매일 종류나 구성이 바뀌니까요! 특별한 과일이나 재료가 들어오노는 날이면 한정 젤리에 꼭 들어가기도 하고요! "
그렇게 말하며 어느새 포장지를 벗겨 커다란 젤리를 작은 스푼으로 열심히 떠먹던 정훈은 비아 선배님이 한정 젤리를 개봉하자 시선을 눈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정 젤리로 옮겨갑니다.
투명한 젤리 안에 규칙적으로 갇힌 과일들.. 꼭 체스판 없이 맨땅에 배열된 체스말들 같네요!
보기에 멋있는만큼 맛도 좋을지 기대하는 눈빛으로 선배님이 한 입 떠먹는걸 바라보면, 곧 이어지는 감탄사에 묘한 익숙함을 느끼면서도 놀라겠네요.
" 뭐, 뭔가요! 특별한 과일이에요?! "
분명 겉보기엔 평범한 포도알 같았는데 사실은 망념화한 포도라서 특유의 맛이 굉장히 강하다던가, 게이트산의 포도 모양의 과일이라 어떤 특이한 맛이 난다거나 하는걸까요!
【15】
" 으응, 고마워 정훈아. "
수락을 받은 것에 이름을 부르면서 가볍게 말을 놓았다. 밝고 예의바른 후배... 싫어할 수 없다. 아까처럼 보는 건 좀 부담스러울지라도.
" 그러면, 한 번 먹었다고 끝이 아니구나. 재료 상황에 따라서 딱 한 번만 나오는 젤리가 있을 수도 있는 건가. 이래서야 경쟁이 심할 수밖에 없는걸... "
그리고 거기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게 나였지. 역시 한 입이라도 먹어보라고 줘야 할까. 생각하면서 우선 나부터 포도알을 입에 물었을 때였다.
" 이, 이거 평범한 포도가 아닌데? 굉장히 독특해... 약간 탱글하면서 부드럽게 찢어지는 평범한 포도알과 달라. 혀가 닿는 순간 푹신하게 들어간다고 해야 하나... 꾹 눌러 놓은 솜사탕을 누르는 느낌이야. 끈끈하게 엉겨붙은 당분 사이에 공기가 들어가 생긴 부드러움을 살짝 찢으니까, 귤 과육처럼 안에 포도즙이 농축된 과즙이 흘러나와. 그것도 평범한 포도즙이 아니라, 한 방울에 포도 한 송이를 쓴 것처럼 입안부터 코까지 포도향이 가득 채우는 그윽함에, 혀에 달라붙는 이 느낌은 진하게 톡 쏘는 느낌을 내는 탄산...! 과연, 이게 특별한 과일이라는 건가! "
사각사각 짓눌려서 포도즙과 뭉개진 투명한 젤리에 섞이는 포도알 겉부분을 꿀꺽 삼키고, 입 안에서 말랑말랑한 덩어리를 굴린다. 평범한 포도였으면 씨였을 것 같은 부분이지만, 입 안에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향이 가시지 않는다. 이빨로 톡 터트리자 상쾌한 맛이 입안을 깨끗히 쓸어내리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진짜 그렇진 않겠지만 망념이 15 정도는 줄어든 수준의 청량함!
" 따, 딸기도 먹어볼까... "
4.2.4. 다인 일상 ¶
- 청천-성현 3인 일상(85스레~86스레) - 5월 16일
- 오늘의 청천은 청월고교 수련장에 잠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청월고교의 담을 넘어 마치 평범한 청월고교생인 것 마냥 태연하게 수련장으로 들어오는 청천, 아니 괴도 클라우디. 옷은 일부러 최대한 청월고교 교복 비슷하게 푸른 롱코트에 흰 와이셔츠이고...어깨에 걸친 에코백에는 간식거리들이 들어있습니다.
잠입의 이유는 별 것 없습니다. 그저...가장 수업이 빡세다는 청월 쪽에 가면 무언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겸사겸사 아는 얼굴이 있다면 안부도 물을 겸 해서요.
수련장에 들어서니 저기, 때마침 익숙한 실루엣이 보입니다.
소리를 잃어버린 몸짓은,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조용히 머리에 미니 실크햇을 붙입니다. 왜 이제서야 쓰나면...청월에서 미니햇은 눈에 띌 테니까요!
청천은 조용히, 조오용히 차가운 음료수병을 들고...
성현과 그 옆에 있는 흑발 포니테일 여학생에게 접근해서....
성현의 옆구리에 기습적으로 차가운 주스병을 갖다대려 시도합니다!
**
대충 겁나 무거운 운동기구를 들고 운동을 하고 천천히 내려 놓는다.
이런거 아무 생각 없이 던지듯이 내려놓다가 사람 발 위에라도 떨어지면 큰일이다.
워리어나 랜스면 좀 낫지 서포터가 깔리는 날에는......
"앗 차가!"
깜짝 놀라서 그대로 천장까지 뛰어올랐다가 쿵! 하고 머리를 박은 다음 바닥에 떨어진다.
아프지는 않지만 깜짝 놀라서 목에 쥐가 난거 같다.
"쥐가 다난다냐"
준비운동은 충분히 했는데 뭔일이람
"음? 청천이잖아!"
목을 부여잡고 일어나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
의념각성자를 위한 런닝머신 위에서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청월의 수련시설이니만큼 딱 내가 낼 수 있는 속도에 맞춘 난이도에 잠깐이라도 주의를 놓치면 나가떨어지는 함정까지 섞여 있다. 그렇게 계속 달리다가 날아든 공격에 허를 찔리고, 결국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조금만 쉴까..."
그리고 마침 익숙한 얼굴이 보이기에 그 근처에 적당히 앉았다. 운동기구를 내려놓는 걸 보고 잠깐 쉬려는 건가 생각하며 말이라도 걸어보려 할 참에, 3년 동안 꽤 보았던 오버액션 반응으로 뛰어올랐다 추락하는 그를 보고 "어-"하고 놀라서 바보같은 소리를 내버렸다. 괜찮은것 같으니 됐지만. 그리고 그 원인이 누군가 살펴보면, 내가 방금 전까지 런닝머신 위에서 뛰고 있었던 이유인 그가 있었다.
"아는 사람이야?"
청월에선 못 봤던 얼굴 같지만 비슷한 옷을 입고 있으니 청월생이었던 것일까. 하늘색인 그와 성현을 번갈아 바라보며 눈치빠른 사람이라면 '왜 내가 아는 사람을 내가 아는 사람이 알고 있지?'라고 생각하는 게 다 티날 만큼의 정직한 표정을 지었다...고 생각한다.
**
아차, 너무 성급했나요?
선배님을 놀래키는 것에만 너무 급급했는지 성현이 무거운 운동기구를 들고 있다는 걸...청천은 음료를 갖다대기 직전에서야 알아챘네요.
다행히 성현이 운동기구를 내려놓는 게 먼저였는지...운동기구는 바닥에 잘 놓여져 있고 성현만 놀라 천장까지 뛰어오릅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청천은 주스병을 그대로 든 채로 눈을 땡그랗게 뜨더니 목을 부여잡고 일어난 성현을 걱정스럽게 봅니다.
성현의 반응에 되려 청천이 놀랐습니다. 아프겠다...하는 생각도 드네요.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느라 더 놀란 걸까요?
옆의 여학생을 향해 시선을 돌리니 여학생이 조금...묘한 표정으로 청천을 보고 있습니다. 어라?
청천은 잠깐 흑발의 여학생을 바라보더니...목소리를 조금 낮추며,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아프란시아 1학년생 이청천입니다. 지나가다 아는 형님이 계시길래 와봤어요."
그리고는...성현의 옆구리에 갖다댔던 주스를 그의 앞에 내려놓고, 또 다른 음료수 병을 꺼내서 상대에게도 내밉니다. 이번엔 이온음료네요.
"음료수 드실래요?"
**
"응? 다친건 아니고 갑자기 쥐가 나서"
목을 주물주물 거리며 천천이에게 말한다.
만약 운동기구를 들고 있을때 뛰어올랐다 내려왔으면 큰일 났겠지만 내 몸은 이정도에 끄떡 없단 말씀!
"의뢰 같이 가고 몇번 만나선 논 다른 학교 친구야"
같이 밥 먹고 놀고 의뢰도 뛰었으면 그게 친구지! 라는 마인드로 이미 성현이의 친구 목록 안에 들어와 있는게 청천이였다.
"땡큐 땡큐"
주스를 들어서 그 자리에서 따고 한번에 전부 마신 다음 손에 힘을 줘서 캔을 최대한 구부러 뜨려 구슬처럼 만들어본다.
"여기도 나랑 운동 같이하고 이름도 알고 아무튼 친구야"
청천이에게 비아를 소개시켜 준다. 근데 뭔가 아는 눈치인데? 길가다가 번호라도 딴.....그런건가?
**
"옷이 비슷해서 청월생인 줄 알았어..."
성현의 말과 청천의 말을 모두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아프란시아 학생이었군.
"소개가 늦었지만 나도 소개할게. 청월 3학년생 사비아라고 해."
근데 아프란시아 학생이 청월 훈련장 근처를 지나갈 이유가 있나? 어쩌면 비슷한 옷을 입고 있어서 착각하고 들여보내 줬을지도 모르겠다. 청월의 보안이 그렇게 허술하리란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이미 들어와 있으니... (담을 넘어서 들어왔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청천이 음료수 병을 내밀자 고개를 끄덕하고 고맙다고 말하며 병을 따 몇 모금을 들이켠다. 시원해...
"아까 빤히 쳐다본 건 미안했어. 아마 너는 날 모르겠지만, 나는 널 본 적이 있었거든. 파쿠르라고 하던가? 어찌나 빨리 뛰던지 따라잡을 수 없어서, 만약 의뢰에서 너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호흡을 잘 맞추기 힘들 거란 생각이 들어서 방금 전까지 런닝머신을 뛰는 훈련 중이었지만... 오늘은 영 성과가 없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성현과 청천을 보며 말을 잇는다.
"둘은 같이 의뢰를 가 봤다고 했지? 합을 맞추는 건 잘 되었었나?"
**
"쥐만 생긴 정도라니 다행이네요..."
성현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는 슬며시 웃습니다. 우선 안 아프다는 것도 다행이고...친구다 친구. 좋지 않나요!
그리고는 음료를 먹고 남은 캔...이었던 것이 동그랗게 변해가는 걸 보고 "역시 신체 S."라고 짧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비아 쪽을 봅니다.
"그렇게 보였다면 위장 성공이네요, 후후... 성학교생이 청월고교에 들어오면 안 된다는 법이야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시험기간이라 다들 예민해져 있을 것 같아서 좀 덜 튀는 차림으로 와 보았답니다. 친구의 친구인가요? 반갑습니다, 사비아 선배님."
사비아에게 웃으며 오른손을 내밉니다. 악수를 받아들일지는 사비아의 자유겠지만요.
국적이 짐작가지 않는 특이한 이름이라 신기하지만 그런 티를 드러내진 않습니다.
악수를 받아주든지 말든지, 청천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비아의 말들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면서 편하게 훈련장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온음료 한 캔을 땁니다.
"후후...제가 좀 빠르긴 하죠."
이야기를 듣고 입을 여는 모습이 약간 쑥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신속 S의 능력치로 벽을 타고 거리를 가로질러 달려가는 모습이 그렇게 눈에 띄었던가, 싶습니다.
"합이라면 할 만큼은 하려고 애썼었지요. 잘 한 건진 모르겠지만요."
서포터인데 다른 동료를 못 챙겨서 한 명이 전투 불능이 됐었으니까요.... 그러고보니 다림에게 미안한 마음이 떠오릅니다. 그 때 일이 떠오르자 청천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집니다. 다림에게도 잘 지내는지 연락 한 번 해봐야겠다 싶습니다.
//말투가 성현이 처음 만났을 때랑 다른 이유:
그 땐 평상 모드였고 지금은 괴도 모드라서...ㅎ
**
"합?"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자 따로 놀아서 한명이 전투 불능 됬던게 생각난다. 그래도 그 정도면 잘한거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처음 같이 가는 6명이라 힘들긴 했어도 어찌저찌 잘 맞았지"
그러다가 목을 주무르면서 청천을 본다. 얘 뭔가 말투가 이상한데......기분 탓인가
"청천이가 엄청 빠르긴 해"
의뢰때 보긴 했지만 작정하고 달려가면 따라가지도 못한다.
**
"나도 반가워, 청천 후배님."
위장이라니. 속은 것 같아서 좀 신경쓰이긴 했지만,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었단 것에 표정이 누그러졌다. 그런 거라면 탓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청천이 악수하려 내미는 오른손을 마주 잡으며 미소지었다. 그리고 이야기하는 중에는 진지했지만 청천이 칭찬에 쑥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작은 미소를 짓다가, 질문에 대한 답들을 들으면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여섯이 초면인가, 그건 확실히 고전했을 수도 있겠구나."
한쪽은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고, 한쪽은 나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아주 잘 된 건 아니겠지만 희생자가 나왔다면 이런 분위기는 나오지 않았을 테다. 그러니 잠깐 어두운 표정이 된 청천은 조금 격려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처음부터도, 만난지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도 각자 다른 사람들이 합을 맞추기란 어려운 일이지. 무엇이든, 모두 무사히 돌아왔다면 되새기기만 하고 너무 신경쓰진 않는 게 좋아."
그리고 성현의 말을 듣고는 청천에게 묻는다.
"그러고보니 그 속도를 살리면 치고 빠지기엔 유리할 것 같은데... 너는 랜스?"
그러면 둘은 완전 반대되는 타입인 셈이다. 따지고 보면, 성현 쪽은 워리어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라고 오해 섞인 생각을 했다.) 슬슬 훈련을 재개할 시간은 됐으려나? 그러고보니 아까 성현이 들고 있던 운동기구는 대체 얼마나 하는 무게지. 하고 확인해보면 보는 것만으로 기겁할 것 같은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런 걸 쓰고 있었어?"
그러고보니 아까 캔을 구슬처럼 구겼었지...
**
어찌저찌 잘 맞았다는 성현의 말에 청천은 고개를 약간 갸웃, 합니다.
다른 파티원들도 그렇게 생각했을진 잘...모르겠으니까요.
"아주 초면은 아니었지만, 같이 싸워 본 건 다들 그 때가 처음이었을 거에요."
잠자코 사비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청천은, 확실히 고전했을 수도 있겠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합니다.
"...사실 그게 걱정이에요. 저희 파티원들 중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 알고 있지만...지금도 다들 잘 지내고 있을지, 정말 무사히 돌아온 것인지 조금 걱정이 되어서요."
일단 성현은 괜찮아 보여서 다행입니다. 청천은 서서히 표정을 풀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역시 걱정만 할 게 아니라 차차 다른 파티원들 안부도 확인해 봐야겠지요.
"땡, 저는 서포터랍니다. 후후...앗 어디 봐요."
랜스냐고 묻는 말에 장난스레 답하고는 이런 걸 쓰고 있냐는 사비아의 반응을 보고 덩달아 감탄합니다.
"이열, 역시 신체 S."
**
"서로 싸우지도 않았고 최종적으로 회복도 못하게 크게 다친 사람도 없고 목적도 달성했으니 잘된거지!"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한다. 좋은게 좋은거다.
"서포터 치고 엄청 빠른단 말이지."
아니 가디언 후보생 치고도 엄청 빠른거다. 나도 저정도로 빠르면 더 강해질텐데
"힘이 짱이지"
다시 한번 기구를 들어올렸다가 내렸다하면서 대답한다.
"제일 잘하는건 힘쓰는거니 장점을 더 갈고 닦아야지."
**
"잘된 일이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성현을 보고 미소짓다가, 생각이 다른 듯 성현에게 살짝 갸웃이는 청천을 바라보며 말을 들었다. 초면이나, 처음 같이 싸워 본 것이나, 그리 다를 건 없지.
"1학년들은 잘 모르는 경우도 있지만, 당사자가 사망했을 땐 가디언칩의 연락처가 삭제돼. 그러니 가디언칩에 남아있으면 최소한 안심할 수 있어. 자세한 건 직접 연락해봐야 알 수 있겠지만."
그래서, 내 방에는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들이 있었다. 처음 몇몇개는 숫자가 빠지거나 뒷자리가 없는 번호도 있었지만 나중에 쓴 번호들은 모두 온전했다.
...이런 생각을 해서 뭘 할까. 이참에 연락처를 교환하기 위해, 나는 청천과 성현에게 가디언칩이 있는 손목을 가리키고 내밀었다.
"서포터였구나..."
살짝 놀랐다가 그런 것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다. 속도 빨라서 나쁠 일은 없지. 돌발상황에 대처하려면 순발력과 속도도 필요하니까. 워리어와 랜스가 그런 것에 대처하기 힘든 쪽이라면 조합이 맞을 것 같다... 그리고 신체 S라는 말에 어쩐지-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너는 전부터 강하기도 했지만 수련도 열심히 하고 있었지. 약점을 보완하면 평범한 사람이 되고, 장점을 강화하면 특별한 사람이 된다고 했어. 앞으로도 그렇게 힘쓰는 모습을 더 보고 싶은걸."
하고, 생긋 미소지으면서 말한다. 나도 이제 슬슬 다시 수련을 시작하도록 할까.
"나도 너만큼 빨라지고 싶으니까, 이제 슬슬 다시 달리고 싶은걸. 너는 다른 학교 학생이니까 청월의 훈련시설을 이용할 순 없을 것 같은데, 이제 뭘 할 거야?"
**
"엇, 그런가요? 음, 그래요. 다들 잘 있겠죠."
성현과 사비아의 말에 청천은 조금 마음을 놓은 것 같습니다. 표정이 다시 편안해집니다.
"뭔가 차별화되는 장점이 있는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성현이 형은 멋지다고 생각한답니다."
가디언칩이 희미하게 빛나는 오른손을 사비아에게 내밀면서도, 기구를 들어올렸다가 내리는 성현에게 한 번 시선을 주며 말합니다.
"하하, 신속 S를 따라잡으시려면 열심히 하셔야겠어요. 참고로 제 레벨은 지금 20이랍니다? 후후."
레벨도 같이 말해주는 건, 능력치의 절댓값은 스탯 등급과 레벨이 합쳐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스탯은 따로 올리기 힘들어도 레벨은 이것저것 하면 올라가니까요!
"저는...여기서 아는 얼굴들 더 찾아보고, 이참에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좀 해봐야겠어요."
이제 뭘 할 거라는 사비아의 질문에는 그렇게 답했습니다.
"훈련 열심히 하시고, 힘들고 당 떨어지면 이거 하나씩 드세요."
뭔가를 성현 쪽에 하나 던져주고, 사비아에게도 하나 쥐어줍니다. 과일맛 젤리 봉지네요. 그러면서, 손가락을 딱 튕기며 그는 떠날 채비를 합니다. 의념이 흐르자 또 다시, 멀어지는 발걸음은 소리를 잃어버립니다.
"나중에 또 봅시다."
**
"그렇게 칭찬해줘도 뭐 없다? 의뢰 몇번 가는거 정도 말고...."
4학년까지 아무것도 못하다가 최근에 열심히 하는거라 게으르다면 게으른건데 오히려 칭찬해주니 묘하네
이어지는 두사람의 대화를 혼자 팔장을 끼고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라이벌은 좋은거지"
서로 발전도 할 수 있고 말이지
근데 나는 라이벌이 없다.
"나도 슬슬 돌아가보려고....시험기간이잖냐"
**
청천의 편안한 표정을 보고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미소를 짓다가 손목의 두 빛을 결합한다. [Salvia]라는 이름이 떠오를 때, 다시 떨어진 내 손목엔... [Cloudy]라는 이름이 떠오르고 있었다. 파란 하늘(이게 오해라는 건 좀 지난 후에 알게 될지도 모른다)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면서 이름은 구름이라니, 참 특별하기도 하구나.
"이런, 내 속셈이 들켰나 보네. 난 좋은 인연이 쭉 이어지는 것 외엔 바라는 게 없으니까, 그걸로 충분한걸."
하고 팔짱을 낀 성현에게 미소짓다가 성현의 말에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대답한다.
"그것도 너의 차별화되는 장점이구나. 난... 17이야."
학원섬에 온 날부터 3학년 2월 전까지 의뢰를 돌고 또 돌아도 5레벨을 넘지 못하고 무시무시한 경험치에 난생처음 의지가 꺾일 뻔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윽... 트라우마가. 아무튼 신속 S라면 확실히 따라잡기 어려우려나. 다음에 만났을 땐 잠깐이라도 따라붙을 정도가 되고 싶은걸.
"라이벌, 라이벌 좋지. 너랑도... 라이벌이 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서로 비교하며 발전할 수 있는 비슷한 상대, 라고 하면 역시 라이벌일까. 언젠가 한 번 대련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성현을 바라봤다.
"그래, 소중한 인연을 잘 간직할 수 있으면 좋겠네."
그리고 청천의 과일맛 젤리 봉지를 손에 쥐었을 땐 조금 놀랐다가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입이 심심할 때 먹을까... 그리고 시험기간이라는 성현의 말엔 올라오는 트라우마(2)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받았다. 친구들... 친구들이 아프란시아로 가버려...!
"윽... 시험인가. 나도 조금만 더 달리고 들어가봐야겠네."
그리고 발자국 없는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사라지는 그를 보고 안녕-이라며 손을 흔들고, 또 성현에게 손을 흔든다. 둘 다 떠나고 나선, 벗어놓은 겉옷가지 위에 젤리봉지를 내려놓고 시간단위로 맞춰 놓은 런닝머신을 10분 단위로 조작해 작동시켰다. 이번엔, 조금 더 빠르게 달려보자.
//막레! 수고하셨습니다! 지금 생각났는데... 학교 출입 자체는 자유롭다는 거랑 성현이 1-3학년이 비어 있다는 걸 깜빡하고 레스들을 썼던 거에요...🤦♀️ 정신없어서 죄송합니다.
- 화현-지훈 3인 일상(88스레~89스레) - 5월 21일(새벽)
- 드디어
왔다. 오고야 말았다. 오늘까지 힘들게 번 돈을 쓰고 말았다. 퓨어퓨어보이스 2기 ~ 금과 은의 반짝이는 섬광 ~ 블루레이가... 오고 말았다. 그것도... '전집' 블루레이.
TV방영판에는 수록되지 않은 에피소드와 작화팀을 의념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 그렸다는 소문이 도는 이번 작품... 기대가 아주 커...
그리고 오늘은 손님까지 있지. 쿠하하하!
"그런데 언제 오시나..."
저번에 항구에서 만난 뒤로 기숙사에서 같이 퓨어퓨어보이스 신작 보자고 말을 했지만... 승락을 하실 줄은 몰랐지... 하지만, 같은 작품을 보는 동지가 있다는 건 무척 좋지 않아?
영화도 같이 봤잖아!! 그래서 오늘은
쿵-
포대자루를 내려놓는다.
"팝콘도 준비했지~"
포대자루 팝콘. 영화관에서 구매 가능.
**
" 그러고보니 이 영화도 오랜만이네.. "
지훈은 혼자서 중얼거렸다. 예전에 영화관에서 우연이 마주친 걸 계기로 본 이후로, 이 영화는 처음이었나. 퓨어퓨어보이스...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기인 애니메이션이었지.. 오랜만의 휴일을 이런 영화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수락하긴 했지만 멋대로 친구를 데려가도 되는 걸까...
..뭐 어때. 사람은 많을수록 좋을테니. 그러고보니 오늘 기숙사를 참 다양하게도 돌아다니네. 성학교에서 시작해서 청월, 제노시아...
" 아, 다 왔다. 들어가자. "
함께 온 여성을 향해 가볍게 말하고는 기숙사의 문을 똑똑 두드렸다. 화현이 문을 열어주었다면 반갑게 (무표정이긴 했지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지훈과, 그 옆의 처음 보는 여성을 한명 발견할 수 있었으려나.
" 여기는 내 친구 비아. 이쪽은 화현이. 오늘 영화 보자고 하길래, 사람 많은 쪽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불러왔어. 괜찮지? "
희미하게 웃어보이며 서로를 소개해주었을까. 물론 그런 목적도 있고, 비아의 경우 저번에 짓궂은 장난에 대해 사과한다는 의미로, 이번에는 정말 힐링되는 영화를 보여주겠다고 제안했던 거긴 하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으니까.
**
"처음 뵙겠습니다."
전에 호러영화에 호되게 당해서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던 사건... 이후, 또 지훈과 영화를 보러 가게 되었다. 이번에도 호러영화였으면 대련으로 불러내서 방패에 날카로운 보석을 맺은 다음 필살 실드차지(철분맛)을 날릴 생각도 있었지만, 다행히 힐링되는 영화라고 하니까... 사전합의가 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걸 모르니, 당연히 상대도 내가 같이 온다고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문을 열어주었을 땐 정중히 고개를 숙이면서 인삿말을 했을 것이다.
"...먼저 나도 온다고 말한 거 아니었어?"
잠깐만, 어째서 지금 합의를 구하는 거야. 짓궂은 건 알았지만... 미묘한 표정으로 지훈을 바라보면서 태클을 걸었다. 그리고 이 짓궂은 후배의 희생양이 된 것으로 보이는 녹색의 그, 화현이 있는 쪽을 보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뭔가, 뭔가 볼 게... 저기 있네. 포대자루 팝콘. 멍하니 포대자루 팝콘을 응시한다......
**
"아...."
손...님이네.. 그... 뭐냐.. 음...다른 사람을 데리고 와도 되는지 물어는 보시지.. 어떡한담... 초면에 이런 거 보는 거 알려주긴 싫은데... 곰곰...
하지만 기왕에 온 거 그냥 저리가세요^^ 할 순 없는 노릇이니 일반인 같은 웃음을 지으며 "네, 안녕하세요." 하고 대답해준다.
"아, 들어오세요. 오시자마자 그... 저희가 보기로 한 거 보셔야 할텐데 괜찮으세요?"
방 안으로 안내하며 몰래 의념으로 그림을 그려 구현하여 지훈의 발 아래에 레고 블럭을 만들어냈다... 이건 사소한 복~ 수~
아무튼, 손님들을 적당히 편안한 쿠션 위로 안내하고는 재생기에 디스크를 넣고. 재생을 한다.
TV의 화면이 켜지고... 제작사의 로고가 뜬다. 아틀란티스 아틀리에社의 로고는 언제봐도 특이해... 심해처럼 깊고 어두운 푸른 색의 A안에 집처럼 생긴 A가 들어있는 모양.
로고가 조용히 사라지고 회차 재생 화면이 뜬다. 리모콘의 버튼을 눌러서 1화를 재생.
가볍게 무단배포 및 불법복제 같은 걸 금지한다는 주의사항과 함께 전작의 최종보스 디스코드의 큐티 마스코트 버전이 나와 [친구들! TV를 볼땐 방을 밝게하고 TV에서 떨어져 보자에토~] 그리고 곧 2기의 주인공이 나와 [넌 1기니까 저리 가!] 하고 마스코트 디스코드를 날려버리는 것으로... 끝.
그리고 시작된 OP!!! 대충 금발의 소녀와 은발의 소녀가 사고뭉치처럼 가디언 아카데미를 다니며 사고도 치고 수업도 받는 풍경이 제법 흥겨운 노래와 함께 재생된다. 클라이막스 부분에선 하얀 안개가 푸른 색의 구체를 감싸듯한 얼굴을 가진 지휘자의 조종을 받으며 서로를 공겨하는 모습이 나오지만
이내 번쩍이는 섬광이 지나가자 조종이 풀린 듯 두 소녀는 쓰러지지만 다시 일어나 달려나가는... 그런 식으로 오프닝은 끝났다.
"아, 다음 화부터는 자동으로 오프닝 스킵할 거예요."
그러니까 이번만 보라는 듯 말했지만 그런 건 OP가 끝나기 전에 말해!
아무튼 시작된 1화. [금빛과 은빛의 스포트라이트는 우리에게!] 두 주인공이 영국의 가디언 아카데미에 등교하는 것으로 시작된 1화. 곧 증폭 의념 속성을 지닌 '포르티'와 가속 의념 속성을 지닌 '프레스티' 가 전작에 있었던 일을 가볍게 설명하며 엑스트라 서포터와 함께 모의 훈련을 하는 장면이 재생됐다.
그러나 포르티와 프레스티는 상당히 제멋대로에 지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서포터의 지휘에도 아랑곳않고 자기들만의 호흡으로 훈련을 하며, 이에 따라가지 못한 서포터는 두 사람 때문에 상당한 피해를 입고 전투 불능이 되었다.
서포터의 전투불능으로 모의훈련이 끝나자, 두 사람은 엑스트라 서포터를 갈구고 엑스트라 서포터는 울면서 보건실로 달려나간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선생님 캐릭터는 한숨을 내쉬며 훌륭한 재능이 있는 이 둘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고민.
그런 모습도 모른 채 두 사람은 서로의 호흡을 좋다며 칭찬하다가 사소한 문제 하나로 서로를 트집잡고 제멋대로 싸우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1화는 끝났다.
"이열... 퓨어보이스 1기와는 다르게 더블 주인공... 거기다 상당히 제멋대로네요? 이걸 어떻게 풀어갈지... 기대가 되네요."
아그작 아그작. 팝콘을 손으로 퍼먹으며 TV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한다.
**
" ..아. "
지훈은 비아의 물음에 잠시 곰곰히 생각하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까먹고 있었다는 듯 정말 간단하고, 작은 소리였다. 그러다가 부끄러워졌는지 동공이 살짝 떨리고, 비아를 향해 "지금이라도 구했으니 된 거 아닐까." 라고 변명했으려나.
화현의 안내를 받아 방 안으로 들어가던 중, 뜬금없이 있던 레고블럭에 그는 소리없이 비명을 질렀다. 윽, 하는 신음 정도는 내뱉었을지도. 레고 블럭이 어째서 여기에...?
" 이거, 영화가 아니었구나. "
퓨퓨보를 본 것은 영화가 처음이었기에 영화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애니메이션이었지. 지훈은 처음 보는 장르지만 딱히 장르에 거리낌은 없는지 쿠션 위에 편히 앉고는 감상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저런 싸움 방식도 있구나..." 라던가, "저 상황에서는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게 좋았을텐데." 같은 감상을 내뱉었을까. 감상...이라기보단 애니메이션을 현실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는 거긴 하지만. 전형적인 서브컬쳐를 처음 접한 일반인의 반응이었다...
**
"...사후보고는 제대로 된 일처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그렇게 지훈에게 말했다. 그리고 내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손님인데도 웃으며 맞아주는 화현 씨를 보고 친절하신 분이라고 생각하며, 보기로 한 걸 봐야 한단 말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걸 보러 온 거니까. 힐링되는 영화라는 것밖에 못 듣긴 했지만, 설마 그거까지 거짓말이진 않겠거니 생각하며...
"?"
레고를 밟고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는 지훈을 보고 살짝 뭔가 하는 기분이 됐지만 그러려니 넘어간다. 그리고 화현씨가 디스크를 재생하는 걸 신기한 눈으로 빤히 쳐다보다가, 화면이 켜지자 재빨리 TV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재생되는 1화...
"영화라고 했지만 영화도 아니었던 거구나..."
지훈을 지그시 쳐다봤다. 신성 로마 제국의 재림이었다. 합의된 것도 아니고 영화도 아니었다. 이제 힐링까지 아니면 철분맛 실드차지(물리)의 맛을 보게 될 것이다. 아무튼 조금 불편하게 뻣뻣한 자세로 쿠션에 기대고 같이 감상을 시작한다.
"와, 예쁘다-"
어렸을 때 TV에서 보이던 소녀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같았다. 그렇게 자주 본 건 아니었지만, 그 나이대면 우산이나 색연필이나 색칠놀이 같은 굿즈로 자주 접할 만한 나이였으니. 잠깐 전투 장면이 나와서 집중했건만 오합지졸인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가 금방 진정했다. 다들 아직 미숙한 거구나. 화면에서 사라지는 서포터를 가엾게 쳐다보다가 다투는 모습을 보고 아직 갈 길이 머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두 명인 거에요?"
더블 주인공이라는 용어를 듣고 화현에게 질문하다가 기대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서로 화해하고 같이 싸울 수 있게 되는 방향으로 가겠지? 선생님의 입장으로 보다보니 두 문제아가 영 못미덥긴 했지만 어린 후배들처럼 보여서 그렇게 나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언제 다음 편을 들어줄까, 화현 씨를 빤히 바라볼 만큼.
**
1화가 끝나고 자신을 향해 질문하는 사비아를 보고는 당황한듯 "음... 어..." 말을 길게 늘어뜨리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더블 주인공 같네요."
그보다 영화가 아니라고... 말 했는데.. 못 들으셨나? 뭐 됐어. 한 편에 30분이니까 3화만 보고 쫑하면 되겠지. 나중에 더 보거나...
"가끔 이런 애니메이션을 보면 의념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고 좋아요. 1화 모의훈련 씬에서... 포르티는 자신이 가진 증폭 의념으로 아군이 입힌 피해를 증폭시키거나, 신체를 증폭시키는 형식으로 사용했어요. 하지만, 워리어라는 포지션에 맞게 자신의 어그로를 증폭시켜 시선을 확 끌어당기기도 하고요. 대단하죠?
프레스티는 랜스지만, 적절하게 워리어에게 의념사를 통해 의념을 흘려보내 가속의 버프를 줬구요. 공격을 가속 시키거나 출혈같은 상태이상을 입힌 후, 그것을 가속시켜 더욱 큰 상태이상에 빠지게 하거나 피해를 더 빨리 받도록 의념을 사용하네요. 엑스트라는... 뭐, 엑스트라니까 활약하는 모습이 안 나왔고..."
"나중에 의념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면 좋겠네요."
엔딩은 오프닝처럼 경쾌한 음악소리와 코러스, 그리고 주인공인 두 소녀의 전투씬으로 이루어져있다. 두 사람이 적의 공격에 대응하며 서로 합을 맞출 때마다 짝! 짝! 경쾌한 박수소리가 울려 신이나는 음악. 그런데 왜 이게 오프닝이 아니지? 흠...
아무튼, 2화부터는 자동으로 오프닝과 엔딩이 스킵되어 재생된다. 에피소드 제목은 [갑작스러운 스카우트 제의? 그리고 우리가 지도를 받아야 한다고요~?!] 2화는 1화 마지막에 나온 선생님 캐릭터가 두 사람을 불러내어 2인 의뢰를 건네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2인 의뢰를 받은 두 사람은 서포터 없이도 괜찮을까 고민하지만 서로의 합만 있으면 괜찮다며 겁도 없이 도전한다.
그리고 둘은 어느 게이트로 향하는데... 초반까지만 해도 수월한 클로징 작업. 포르티가 의념으로 자신을 증폭시켜 공격을 막아내고, 프레스티는 사고를 가속시켜 빠른 판단력과 신속으로 적을 교란한다. 약간의 상처라도 적에게 입히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포르티는 피해를 증폭시켜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상승시켜주는 조합. 하지만, 적들이 쓰러지며 두 사람의 귓가에는 어떤 음악이 들린다. 아름답지만 어딘가 부족한 오케스트라. 피와 살점, 그리고 푸른 연기로 뭉쳐진 음표. 그 음표들은 하나하나 행열을 맞추고 이내 하나의 악보가 된다.
그 악보를 찢고 등장한... 미지의 존재. 스스로를 지휘자 라 칭한 존재는 두 사람을 보며 웃었다.
[너희 둘을 내 악단에 넣고 싶구나. 하지만... 지금은 너무 제멋대로야. 내가 조율해줄게. 너희 둘을...]
그 존재는 그런 말을 남기며 사라졌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게이트는 붕괴되며, 두 사람은 황급히 게이트에서 빠져나온다. 결국 의뢰 실패! 두 사람은 신기한 경험을 한 덕분에 의뢰에 실패했지만, 축 처지지 않고 자신이 겪었던 일을 떠들며 교무실로 향한다.
그러나, 교무실에 먼저 온 손님이 있었는데... 구름처럼 풍성하고, 안개처럼 흐릿한 색을 가진 장발의 남성... 아니, 여성? 이 사람은 자신을 소개한다. [오늘부터 여러분들의 지도를 담당하게 된 푸른 실, 블루 입니다. 후후, 잘 부탁해요?]
"...딱 봐도 수상해보이는 인물 나오지 않았어요? 타이밍 좋게? 이 애니메이션의 주 타겟층이 12세라서 그런지 통수를 칠만한 요소가 꽤 적어서 좋아요. 전작은 좀 충격적이긴 했지만... 이번 작에는 떡밥도 착실하게 알아보기 쉽게 던지고."
**
" ...으음. 기억해두도록 할게. "
비아의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결국 잔소리 들었다... 애초에 자신의 잘못인 건 맞지만. 까먹은 건 결국 자신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들어가, 애니메이션을 보던 도중, 비아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을까.
" 나도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건 처음이란 말야. "
지그시 쳐다보는 것에 고의가 아니라는 듯 시선을 살짝 피하면서도 억울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런 종류의 애니메이션은 처음 보는데 착각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라고 스스로 합리화를 해보기도 했고?
" 나중에 의념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겠네. 화현이의 의념은 못 들었기도 했고. "
고개를 끄덕이고는 애니를 보는 것에 집중했다. 흐응. 이런 전개로 가는 건가. 정석적이라고 해야하나... 의외로 재미있다. 클리셰가 꽤 많긴 하지만 어린이용이니 그건 감안하고, 일단 애니메이션 자체가 작화라던가 좋다보니 눈호강이 되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스토리텔링도 좋아서 클리셰가 왕도적인 느낌을 줬지.
" 생각보다 흥미진진하네... "
화헌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인물을 주시하면 되는 거겠지... 나름 긴장된 건지 몰입한 건진 몰라도, 그는 편히 기댔던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머 애니를 보기 시작했다.
**
지훈이 억울해하는 걸 느끼고도 잠시 더 지그시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영상에 집중해야지.
"아하, 그쪽 이펙트가 커졌던 게 어그로를 증폭시키는 걸 가리키는 거였구나..."
그렇게 혼자 납득하다가 의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단 말엔 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지훈이는 '절단', 나는 '보석' 그러면 화현씨는 뭘까? 궁금해진다...
아무튼 다시 영화가 아닌 뭔가(?) 관람에 집중했다. 엔딩에 나오는 전투씬도 자세히 살펴보면서 신나는 음악을 듣다가 1화는 완전히 끝. 그리고 2화가 시작된다. 다들 집중하는 사이 포대자루에서 팝콘을 한개씩 꺼내 조용히 씹는다. 티격태격하는 둘이지만 단둘이서만 붙여놓으면 꽤 조합이 잘 맞는 편이네. 그리고 수수께끼의 존재가 나타났다 사라지며 붕괴하는 게이트... 아까전의 푸른 연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푸른색의 손님. 거기에서 끝난 걸 보고 팝콘을 향하던 손을 살그머니 뺀다.
"뭐든 알아보기 쉽게 되어 있어서 좋다고 생각해요."
강하게(포르테)라서 증폭, 빠르게(프레스토)라서 가속. 블루라서 파란색. 지휘자의 이름은... 마에스트로가 아닐까? 통수나 충격적이라는 건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 블루가 지휘자와 무슨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다가 다음 화, 안 나오면 그 다음 화를 보면 다 밝혀질 거란 사실에 다시 화현씨를 빤히 쳐다봤다.
**
3화를 재생하기 전에 음료나 더 들고 올까~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애니메이션이라 그렇게 이야기 했는데... 이거 아직 극장판까지는 안 나왔다구요."
그렇게 말을 하는데 이거, 덕밍아웃인가? 흠... 아닐거여. 냉장고에서 사이다를 꺼내고 찬장에서 컵을 꺼낸다. 그들 앞에 하나씩 놔두고 "제가 의념을... 말씀 안 드렸어요?" 지훈 씨 앞에선 선보이기까지 했는데. 흠..
"그러면 3화만 보고 이야기 나눠볼까요? 3화정도면 1시간 30분이니 보통 영화의 러닝타임에 딱 맞네요." 사이다를 컵에 따라 쭈욱 마신다.
재생되는 3화.
3화의 줄거리를 가볍게 요약하자면... 블루와의 대련이다. 사실, 대련이라고 할 것도 없이 무참히 발리는 프레스티와 포르티
두 사람은 서로 환상의 콤비로 블루와 싸우지만, 블루는 파란 실을 이용해 함정을 설치하여 프레스티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실을 길고 팽팽하게 늘어뜨려 그 실을 살짝 잡아당겼다 놓는 것으로 의념이 깃든 파장을 만들어 증폭 의념을 상쇄하기도 한다.
대련실에는 끊어진 실과 벽에 걸린 실 같은 것들이 거미줄처럼 쌓여가고, 두 사람은 서서히 지쳐간다. 이 모습을 본 블루는 한숨을 내쉬며 [아직 많이 부족하군요.] 한 마디를 하고는... 푸른 실을 그들의 몸에 걸어 꼭두각시처럼 움직인다.
두 사람은 말 그대로 전투불능에 빠지고 블루는 말한다. [당신들이 잘 따라와준다면 저를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굴욕스러워하지만, 언젠가 자신들이 이기겠다 다짐하며 블루의 손을 잡는 것으로 3화는 끝난다.
"와... 이번 화는... 전투 퀄리티가 되게 좋네요! 어디보자.. 여기, 책자에 보면 블루의 의념 속성은 사(絲)라고 하네요. 가느다란 실을 저런 식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도 참 대단하네요."
**
" 보여주긴 했지만, 설명은 안 해줬을 걸. "
어떤 의념 속성인지는 알긴 안다. 다만 정확시 듣지는 못 했다... 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단순히 지훈 자신이 기억하지 못 하는 것 뿐이라, 화현이 말해주면 또다시 기억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3화. 과연, 어린이 애니메이션 치고는 훌륭한 전투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어느정도 서사가 있긴 했지만 일단 전투가 메인이었다. 지훈은 실 능력을 유심히 바라보며 침묵하고 있다가,
" 꼭두각시로 움직이거나, 실 자체를 엮어 방패처럼 쓰거나... 확실히 다양하네. "
만약 저런 능력이 상대라면 나는.. 처럼 작은 말을 중얼거리다가, 다들 먹고있는 팝콘에 살짝 손을 뻗어 조금 담아 우물거렸을까.
**
"저는 듣고 온 게 없어서 말이에요..."
사이다를 받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집중해서 그런지 모르는 사이에 목이 탔는데 마시니 좀 살 것... 같나? 탄산음료는 갈증이 잘 안 풀린단 말야. 의념을 말하지 않았냐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오늘 처음 보는 사이인걸. 3화라던가 1시간 30분... 하는 얘기에도 마냥 끄덕거리기만 했다.
"실이라니 현악기 같아..."
역시 음악 모티브인 걸까, 이것도. 아무튼 잘 활용하고 있으니 온갖 상황에 대응하는 사기적인 능력처럼 보이지만, 사용자 능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저런 활용은 힘들겠지. 실의 형태로 가공된 의념이 아닌 '실' 그 자체의 의념. 지형지물에 이어지고 얽히고 꼬이며 끊어낼 수 없는 실과 날카로운 실과 블러핑을 위한 얇은 실이 함정을 만들고, 팽팽하게 매인 실이 움직일 때 나타나는 파동에 덧씌워져 다른 의념을 상쇄하는 의념 파장... 몰래몰래 팝콘을 집어먹으며 전투에 집중한다.
"꼭두각시로 만드는 건 과시에 불과하지만, 몸이나 무기에 실을 감아서 결정적인 순간에 방향을 틀어버린다면 꽤 위협이 될 것 같네."
실을 엮은 방패 같은 건... 실을 튀어나오게 만들면 이쪽에서도 의념으로 실을 만들어서 그 튀어나온 실을 감은 다음 바늘을 나온 곳으로 집어넣어 풀어내듯 방패를 푼다던가? 저건 뜨개질처럼 촘촘해서 그럴 기회가 잘 없을 것 같은데. 잘못 걸은 매듭을 자르듯 통째로 잘라버리는 편이 쉽겠다.
**
"의념이란 것은 나아가기 위한 길. 그것을 손에 넣는 방법이라고 표현된 이유가 있는 거죠."
전작에 비해서 가디언 아카데미라는 배경에 맞게 의념에 대한 여러 정보를 서술해주거나 보여줘서 꽤 좋은 평을 내려주고 싶다. 그래도 애니메이션이니 고증이 안 맞거나 하는 부분이 있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어우~ 가볍게 눈에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안구 스트레칭을 해준다. 처음 본 사람도 있으니까 기본적인 소개부터 해야겠지...
"반갑습니다. 저는 제노시아 1학년 이 화현이라고 합니다. 제 의념은 회화 예요. 미술에서 흔히 쓰는 그 회화요."
의념으로 가볍게 허공에 선을 긋고, 거기에 색을 채워넣어 달을 그려본다.
"그냥 그림을 그리는 의념이라 생각하시면 편해요. 마도를 활용해서 구현도 할 수 있고, 제가 보고 싶은 것을 그려내어 덧씌울 수도 있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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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면 단순히 목 그 자체를 졸라버려도 되니까. 꼬아서 만든 얇고 튼튼한 실은 교살 무기로 적격이고. "
아무래도 실이라는 의념 자체가 범용성이 굉장한 편이니까. 비슷하게는 와이어를 무기로 쓰는 사람도 종종 보이고. 지훈은 홀로 생각하며 저런 의념을 가진 이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했다. 보통 저런 이들의 카운터는 저의 절단 능력이지만, 쉽사리 실이 끊기지 않는다면...
" 의념 소개 시간? "
화현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회화...인가. 저번의 그거 역시 의념이었구나. 허공에 색이 채워지는 것을 바라보며, 살짝 탄성을 내질렀다.
" 내 의념은 비아는 알다시피 절단. 무언가를 자르고, 베는 것에 특화된 의념이야. "
지훈은 보여주려는 듯 팝콘 하나를 집어들더니 손가락에 의념을 담아 그것을 깔끔하게 잘라내었다. 팝콘 같은 건 뭉개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행히도 그건 아닌 듯 했다. 그러고는 비아의 의념 속성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야겠다는 듯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그녀를 빠안히 바라보기 시작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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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이 끊기면 무엇이든 제대로 대처하기 힘드니까, 튼튼한 실에 교살당한다면 그건 무섭겠네."
물 속에 들어가도 10분은 버틴다지만 호흡이 막히는 순간 패닉할 수밖에 없으니까. 게이트라는 인류의 위협을 상대하기 위한 걸어다니는 전쟁병기로 가공될 원석들의 약점이 평범한 인간처럼 사고하는 것이라니, 조금 우스운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화현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허공에 그려진 달을 보고 놀랐다. 무심코 손가락으로 건드려보려다 일단 남이 그린 그림이니 흐트러트리면 안되지... 하고 허공을 저은 손을 거뒀다.
"그려서 만들기도 하고, 덧씌우기도 하고... 뭔가 신기하네요."
여우에게 호랑이를 덧씌워서 호랑이의 기세로 적을 몰아낸다던가 하는 게 가능할지도... 그리고 깔끔하게 반으로 갈라진 팝콘조각과 빤히 쳐다보는 지훈을 본다. 이렇게 자기소개 같은 시간이 왔는데 그냥 넘어갈 리가.
"저는 국립 청월고교 3학년생 사비아입니다. 의념은... 이런 걸까요."
손가락 사이에 숨겨 놓은 동전을 꺼내는 마술사처럼, 많은 종류를 포괄한 개념 중 단 하나를 선별해 만들어낸 결정-어렵게 말했지만, 그냥 손톱만한 가치없는 다이아몬드를 손바닥 위에서 맺어내 보여준다.
"보석. 이렇게 보석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보석이 가진 성질을 이용할 수도 있어요. 매혹적으로 눈길을 끈다-라는 것 외에 딱히 이용하고 있는 건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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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 씨의 의념도 생각해보니 지금 처음 보는 거 아닌가? 흠, 검을 쓰시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절단... 절단의 의념은 되게 공격적이구나. 그리고 쓰임새가 많아. 의념으로 벤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 한 것조차 절단시켜버릴 수 있겠지.
가령.. 공간을 벤다? 시간을 벤다? 혹은 가능성를 벤다? 절단 마술에도 쓸 수 있을 것 같아. ... 히히. 하지만, 우리 수준으론 그렇게 안되니까... 의념을 무기에 집중시켜 절삭력을 강화 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일 것 같아.
"지훈 씨는 의념을 주로 어떻게 쓰세요? 제가 얼마전에 책에서 봤는데... 의념은 사용하는 방향에 따라 진화한다고 하더라구요."
이제 자신을 사비아라고 부른 사람을 쳐다본다. 이름 특이하네... 청월이구나. 3학년... 나보다 학년이 높네.
의념은 보석...을 만드는 것? 흠, 보석이 의념인가... 의념으로 만들어진 보석은 가치가 없다고 들었는데 생각해보니 너무 아쉽다.
"보석이네요. 음, 다양한 특성을 지닌 보석이 있던데, 그러한 보석을 분석해서 적재적소로 만들어 사용하면 대단할 거란 생각이 들어요."
보석... 인류사의 사치품이라고 하면 보석이 제일 먼저 떠오르긴 해. 보석마다 달라지는 가치만큼 보석마다 뜻하는 것도 다르기도 하고. 마치, 꽃처럼.
꽃하니까 생각나는데, 교장 선생님의 의념이 꽃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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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이 질식되면 그 순간 대부분은 판단력을 상실하고 본능에 따라 발버둥치니, 무섭지. "
침착하게 대처한다면 살 수 있겠지만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는 이가 어디 있을까. 아마도 없겠지. 지훈은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는지 무덤한 표정으로 자신의 목가를 훑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 나는 보통 절삭력을 높이거나, 무언가를 베는 식으로. 내 의념기도 절삭력을 최대한 높여서 공간을 절단해버리는 거니까. "
화현의 말에 간단하게 답했다. 그나저나 사용하는 방향에 따라 진화하면.. 내 의념은 점점 무언가를 자르는 것에 특화되어 가는 건가. 잠시 손을 바라보다가 화현을 돌아보더니 "넌 어떤 식으로 의념을 사용해?" 라고 물었다.
" 보석... 그 보석은 팔 수 없는 거야? "
시도해보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면, 불가능하거나, 아니면 비아가 그런 방식으로 돈을 벌기 싫어하는 거겠지. 어느 쪽이든 흥미로웠기에 비아를 빤히 바라보며 궁금하다는 시선을 보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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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념이 사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면 나는 블러드 다이아몬드 같은 게 되어버리는 건가...?"
하고 혼잣말을 뱉었다. 피의 다이아몬드... 수많은 사람의 피로 채광되어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팔려나간 다이아몬드. 허술한 법으로 금지해봐도 피의 다이아몬드는 언제나 팔려나갔다던가. 유혹적인 성질 쪽으로 계속 나아가면 그런 게 되는 걸까 하고 조금 다른 응용방향을 찾아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특히 게이트의 보석들 중에 그런 독특한 특성을 가진 보석이 있었죠. 만들긴 어려워 보였지만..."
지금 보석을 만들어서 전투에서 써먹을 땐 깨트리던가 해서 그 날카로움을 이용하는 것 같은 거 외엔 딱히 없다. 깊은 살 속에 파고들어서 부러져버리는 날카롭고 약한 보석이라던가... 파편을 흩날린다던가. 어쩌면 내가 활용을 잘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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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물에 빠진 사람들은 구하기 힘들다던가."
목가를 훑는 모습을 보고 가볍게 그런 말을 내뱉었다. 답변을 바란 말은 아니었다.
"절단이라는 의념이니까, 절단이라는 결과에 더 쉽게 다다를 수 있게 되는 걸까?"
그보다 공간을 절단하는 의념기라는 거 어떻게 보면 최강 아닐까? 아무리 몸이 강해도 내장 다치면 오래 못 가니까. 아예 공간을 뛰어넘는 만큼 범위가 크진 않겠지만. 그러면 공간을 초월하는 의념기의 약점이 더 먼 사정거리가 되는 건가? 모순이잖아.
"잡혀가."
보석 만들어 팔아서 돈을 벌면... 평범한 보석 시세는 어떻게 되겠어...
"게다가 의념으로 만들어진 만큼 평범한 보석이랑은 닮아보여도 다르니까... 그 역할을 대신할 수도 없어. 일반인 눈으로 보면 그냥 똑같이 예쁜 보석으로 보인다곤 하지만, 보석은 예쁜 게 다가 아닌걸."
대신 친구들 선물로 나눠주기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딱 그 정도의 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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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식으로는 안 될걸요? 흠, 보석의 주목을 받는 성질을 주로 쓰느냐, 아니면 가지고 싶은 탐욕적인 부분에 주목을 하느냐... 그런 차이가 될 것 같아요.
프랑스의 대원수 로디르몬의 의념 속성은 진군기인데, 로디르몬은 자기 자신이 하나의 깃발, 스스로가 상징이 되는 것으로 아군에게 패배하지 않는 용기를 준다. 라는 해석을 했더라구요.
이런 식으로 해석에 따라 달라질 거예요. 그 뭐냐.. 의념은 방법 이라는 말이 있으니까요. 어떤 방법이 되냐의.. 차이? 저도 잘 모르지만요."
왜 실로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데 목을 조를 생각을 하는 걸까... 굳이 귀찮게 목을 조르기 위해 접근하지? 실로 몸을 묶거나 근육의 움직임을 제어해서 스스로 목을 조르게 만들면 될텐데. 라는 안일한 생각.
자신의 활용을 묻는 것에 레고 블럭을 보여준다. 그리고 구현화를 해제. "직접 겪으신대로." 그림을 그려 마도를 응용해 구현하는 방식으로.
그러다가 의념으로 만들어진 보석을 팔 수 없냐는 질문에 지훈을 쳐다보았다.
"그, 안... 배우신 거예요? 의념으로 만들어진 보석은 가치가 없어요. 그리고, 그런 걸 팔면... 잡혀갈걸요."
제노시아는... 아무래도 전문가 양성 학교라서 그런지... 그런 걸 주의하지 않으면 큰일난다...
아무튼, 사비아를 보고는 "망념 쌓으면 안 되는 건 없어요." 라는 극단적 망념주의자 같은 발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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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단이라는 과정에 더 쉽게 다다르는 거겠지... 아니면 그 의념 자체가 절단을 수행하는 방식이던가. "
자신도 정확하게는 모른다는 듯 애매하게 말을 했다. 직접 실험해본 적은 없었으니까. 그러고보니 어느정도 놀고 난 후에는, 실험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정확히는 놀고, 시험공부도 하고, 그 후에...이겠지만.
" 잡혀가? "
납득한다는 듯 비아와 화현의 반응에 고개를 끄덕였다.
" 보석이 예쁜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건 처음 들어봐. "
그 이야기를 자세히 해달라는 듯 호기심으로 찬 눈빛을 비아에게 보냈다. 꽤나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던가. 그와 별개로 화현의 이야기에는
" 가치가 없구나. 흐음. 의념으로 무언가를 실체화 시킨 건 가치가 없는 걸까... 어째서려나. 역시 원본하고 전혀 달라서일까.
고개를 끄덕이다가 레고 블럭을 보여주자 지훈은 화현이를 빠안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거, 너였구나... 뭔가 배신감이 드는 기분이다. 일부러 놓은 거였다니.
" 그런데 그 능력, 생물체도 구현할 수 있어? "
화현의 능력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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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을 받는 성질과 탐욕적인 부분인가요."
"'나'를 보석으로 두고 탐욕이 나에게로 오게 만들면... 그게 지금의 활용이네요. 단단하지만 전투에서 큰 영향을 미치진 않는 워리어에게 시선이 끌리게 만들 수 있다는 건, 가치의 혼동을 일으킨다는 것... 한순간 워리어가 없을 때 공격을 받으면 안 되는 랜스와 서포터를 공격하는 것보다 워리어를 향하는 게 더 중요한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 이걸 더 세부적으로 나누면, 상대가 어느 쪽으로 공격할지 유도해서 방어하는 데 좀 더 수월해진다던가. 가능할까요."
"아니면 다른 걸 '보석'으로 두고 그것을 나나 다른 사람이 탐욕하게 만든다면, 그것 하나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가 나올 수도..."
"나를 '원석'으로 두고 보석을 '목표'로 둔다면... 원석을 깎아서 보석이 된다, 는 것처럼 내가 나 자신을 깎아내는 것으로 어떤 목표에 달한다? 한쪽을 깎아서 다른 한 쪽을 더 돋보이게 하고, 뭔가를 덜어내서 더 나은 것이 된다?"
일단은 같이 논의하고 있는 거니까 생각나는 걸 다 말해보고 있다. 그리고 밖에서는 졸려서 한창 아무말을 쓰는 중입니다.
"망념을 쏟아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 아닐까요?"
메타발언으로는 망념 30으로 책 관찰이라던가... 아무튼 나는 망념만으로 다 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망념을 쏟았는데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망념이 부족한 게 아닐지 생각해봅시다.'라는 가디언넷의 오랜 명언... 은 잠시 치워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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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가 아니라 과정인 거야?"
절단된 건 결과지만 절단하는 건 과정... 그런 뜻일까? 의념은 절단하려는 것과 절단하고 있는 것과 절단하려던 결과 어느 쪽에 작용하는 걸까.
"어디서 생산되었는지, 누가 세공했는지, 어떤 모습이 되었는지. 부터 어떤 내포물이 들었고 어떤 색을 내는지, 얼마나 희귀한지에 따라서 값은 달라지니까. 별 의미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니야."
최대한 따라하더라도 진짜 보석을 많이 보는 사람 눈엔 완벽히 같지 않다는 게 확연히 보인다는 것 같다.
"어쩌면, 가치있는 걸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도 있을지 몰라."
나는 거기까지 할 순 없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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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 씨께서 절단이라는 것은 결국 벤다는 것이니, 절단 = 벤다 로 해석하신다면... 무엇이든 벨 수 있는 의념으로 진화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검사가 아니라서 해석은 잘 못하겠네... 그런데, 검사들에게 중요한 것은 검인가? 아니면 의념인가? 과학의 발전, 의념의 발전이 계속되어 평범한 총알 대신 의념으로 만들어진 총알을 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검을 놓지 않는 가.
그것은... 아마... 한계가 없는 무기라서 그런 게 아닐까? 의념은 일단 치워두고 생각해보자. 총은 총을 쥔 사람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총에서 발사된 총알의 위력이 중요하지 않아?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저격총, 산탄총, 소총, 기관총 같은 여러 총기류가 탄생했고, 총알도 여러 종류가 생겨났지.
그렇기에 총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총이 가진 그 자체의 한계가. 여기에 의념이나 다양한 기술이 들어가면 또 모르지만... 총에서 기술이라고 할 만한게... 있나?
하지만 검은? 검을 쥐는 방법, 휘두르는 방법, 각도, 검을 쥔 사람의 신체 능력 등등... 다양한 것에 따라 한계가 없다고 생각해. 거기에 여러 유파로 나뉘기까지 하잖아.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검을 쥐었고, 검을 휘둘렀다는 거겠지.
이들이 검을 쥔 이유는 뭘까? 더 멀리서 안전하게 인류의 적을 죽일 수 있다는 이점을 놓고 검을 선택한 이유는? 지훈 씨는 왜 검을 쥐었을까?
"갑자기 든 생각인데, 지훈 씨는 왜 검을 무기로 선택하신 거예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후우... 생각을 너무 많이 했어. 지끈거리는 머리에 눈가를 문지른다.
사비아도 여러 생각을 했는지 말을 내뱉는 것을 하나하나 귀담아 듣는다. 주목과 탐욕. ...아, 말을 듣다보니 하나 더 생각나. 보석은, 그 자체로는 가치가 낮지만 가공을 통해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지.
보석을 깎는 방법도 여러가지가 있잖아. 모양도 그렇고.
"보석... 보석은 다양한 가치를 지닌다. 그러니, 가치...를 정할 수도 있겠네요. 자신을 깃발로 본 것처럼, 사람을 보석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가치를 매긴다... 혹은, 보석을 가공하듯이 사람, 물건, 개념등을 가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어우... 의념 해석에 대해 수업도 해주면 좋겠다!!!
"그래도 혼자서 고민하는 것보다 생각나는 것을 바로 말하며 의견을 교환하는 편이 더 생각이 깊어지긴 하네요. 사비아 씨는 어떤 무기를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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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적용되는 건 과정과 결과 둘 다일지도 몰라. "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잘라지는 과정에서 절삭력을 높이는 것, 잘렸다는 결과를 검과 의념으로 동시에 도출해내는 것, 둘 다 일정 지분을 차지하고 있을 수도, 아니면 한쪽씩 사용하는 걸 수도 있다. 확실한 건 테스트를 해봐야겠지만.
" 겉모습은 똑같을지라도 그 속에 담긴 것은 다르다는 건가... "
지훈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속에 담긴 역사, 의미, 그런 것들이 다르다는 것이겠지. 가치 있는 걸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는 말에, 지훈은 "어쩌면 네가 될지도 모르지." 라며 그녀를 바라보다가 희미하게 웃었다.
" 무엇이든 벨 수 있는 의념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
너무나 터무니없는 것 아닌가, 그것은. 너무나 아이같은 생각 아닌가.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그것을 열망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 한지. 속으로 농담을 던지다가, 화현의 말에 잠시 고민했다.
검을 사용하는 이유. 검을 든 이유. 검을 들고있는, 놓지 않는 이유...
" 가장 익숙한 무기여서. "
지훈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어린 나이에 가장 익숙한 병기류는 검이었으니까. 다만 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 검은 한자루에도 다양한 기능을 내포하고 있어.
" 롱소드로 보자면, 검날과 손잡이를 잇는 부분에 길게 뻗은 크로스가드는 상대방과 검을 부딪혔을 때 손이 다치지 않게 보호해준다. "
" 손잡이 끝의 폼멜은 무게추 역할을 하면서 상대방을 타격하는 둔기로도 사용되지. "
" 옆날을 세우면서도 포인트- 끝부분은 뾰족하지. 찌르기에 적합해. "
꽤나 장황한 설명을 이어간 그는 잠시 숨을 골랐던가.
" 요컨데 나는 그 매력에 빠졌던 거야. 하나의 무기로 수많은 일을 한다. 단순히 팔과 주먹의 연장이 아닌 좀 더 다양한 것들을. 오직 검 하나로. "
그렇기에 많이 찾아보았고, 그렇기에 익숙해졌으며, 그렇기에 첫 무기로 삼았다. 어렸을 적부터 그 매력에 빠졌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지금도 그 매력에 빠져있기에 좀처럼 검을 놓치 못 했던가. 사실, 검을 놓지 못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을지도 모른다
4.2.5. 크로스오버 일상 ¶
- 탐색 - 민트색 상자[3스레]
- ...왠지 내 이름이 잘린 거 같은 느낌이 드네. 오너가 어디 가서 실수로 잘라먹고 온 걸까?
근데 오너가 뭐지.
잠깐 아침바람 쐴 겸 가볍게 학원섬을 몇 바퀴 정도 도는데, 문득 상자 하나가 눈에 밟혔다.
요즘 학원섬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남이 흘린 물건 같은 건 함부로 만지지 않는다는 주의지만 나는 결국 열어보라는 듯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상자를 열었다.
# 개봉맨이야 .dice 1 10. = 4
**
과연 이게 남이 흘린 물건일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놓고 간 물건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비아는 상자를 개봉합니다!
...
.....
.......
사비아는 [ 케론인 슈트 ] 를 획득합니다!
[ ▶ 케론인 슈트 ◀ ]
[ 딱 봐도 지구인이 입을 법해 보이진 않는 모양새를 띄고 있지만 아무튼 지구인도 입을 수 있는 크기의 슈트. 게이트 너머 어딘가의 행성에 사는 우주 개구리 종족인 케론인의 외양을 본따 만들었다. 특이하게도 머리 부분까지 완벽하게 재현하였으며 그때문인지 슈트와 헬멧이 세트로 되어있다. 착용시 사용자의 신체에 딱 맞게 사이즈가 변한다. ]
▶ 숙련 아이템
▶ 이거 강화슈트야 - 20의 망념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일격에 한정하여 방어력을 두 배로 판정합니다.
▶ 매우 가벼움 - 기술 사용 시 증가하는 망념의 양이 소폭 감소합니다.
▶ 님 hoxy...아니죠? - 이종족 출신 NPC들과 첫 만남시 호감도가 조금 증가합니다.
▶ 착용 제한 : 레벨 20 이상, 신체 C, 동북아시아 가디언 아카데미 출신 학생
- 안 일상(3스레~7스레)
- '여긴 또 어디냐.'
머리 속에 문뜩 든 생각은 처음부터 그것 뿐이었다. 의뢰를 위해 문을 여고 나가 전혀 본 적 없는 세상에서 약 2일째. 대략적으로 이곳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인공섬이라는 것은 돌아다니면서 파악하는데는 성공했지만. 단지 그것뿐. 여전히 위화감으로 그득한 세상이었다.
익숙한 풍경 하나 없이 낯선 풍경만이 스쳐 지나가기에 한시라도 돌아가고 싶다고 해야할지.
'돌아간다라..'
아니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도 그곳 역시 시궁창임에는 틀림없다. 사람을 베어가는 것으로 스스로가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하루하루를 멀쩡하게 보지않고 술로 알딸딸해져 일그러진 세상으로만 바라보는데, 그게 돌아가고 싶어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결코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죽기는 싫었고. 살아있다는 그 느낌만을 계속해서 받고 싶었기에 살아있었을 뿐이니까.
그래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이야기한다면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어디가 어디인지는 파악하지 못할 뿐더러
원래부터 하던 맹인시늉은 여기에서는 얕잡아 보인다기 보다는 도와줘야할 약자에 가까운 위치여서 곤란해졌다.
행여나 시비를 걸어온다면 정당하게 응대해줄 생각은 있었는데. 거리에서 분쟁하나 없다. 이쪽의 세상도 이쪽 세상 나름대로의 분란과 혼란은 있겠지만. 겉보기에는 평화롭다. 그런 평화로움이 나에게 있어서는 불편한 요소였기에 되려 맹인이 아닌척 하는 것도 곤란했다.
이런 세상 역시도 맨 정신으로는 바라보기 힘들었다.
가끔 인적이 없을 때 마다 위치적인 요소를 파악하기 위해 눈을 뜨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걸을 때는 개조시술을 한 예민한 청각과 지팡이 처럼 쓰고 있는 내 시라사야가 바닥을 짚고 나는 감각으로만 걷고 있었다. 그것도 이미 질려버렸지만.
이곳은 아마도 소리로 듣기에 교육시설이 세력을 나누고 다니는 모양인데. 무료함에 한 번 이 곳의 학생 수준을 떠 볼 심산으로 나는 가까이 걸어오는 음을 파악하고는 그곳에 보폭을 맞추어 일부러 길을 가로 막기로 했다. 마치 맹인이 앞에 걸어오는 사람을 신경쓰지 못한것 마냥,
"아앗."
시라사야를 슬쩍 앞으로 내짚어 상대의 발과 가까이 짚어버리려고 해본다.
**
명확히 상황파악은 안 됐지만, 요즘 학원섬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상한 상자 하며, 어쩐지 위화감이 드는 사람들이 길에 한둘씩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고. 김진단*씨 같은 수상한 존재의 간섭? 아니면 마도일본 사태**같은 게이트의 영향? 그것도 아니면 제노시아에서 뭔갈 했던가. 학원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상한 일들은 교사의 암묵적인 허락을 암시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해가 될 만한 것을 그들이 내버려둘 리는 없으니까. 살인 자판기***같은 걸 내버려두는 걸 보면 그 기준이 다소 의심되기는 하지만...
그래, 그리 신경쓸 필요 없는 일이다.
진로를 방해하려 하는 것처럼 내 앞에 파고든 물건을, 이미 딛은 발목을 살짝 돌려 피해내려고 하면서 생각을 멈췄다. 아-... 그 상자, 사소한 충격에도 열린다고 하니까 되도록 바닥을 보면서 피해가려고 했던 게 도움이 되네. 아니, 오히려 바닥만 보니까 오는 사람도 몰랐던 건가? 그럴 리가? 짧은 순간에 그런 생각도 하면서.
" 이크. "
약간 거리를 벌렸다. 눈을 감고, 지팡이를 짚고 있다. 시각장애인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판단했다. 시각장애인을 대할 땐 어떻게 하더라. 상식적인 범위로 생각해 보자. 신체에 섣불리 손을 대지 않고 살짝 옆으로 비켜서서 크지 않은 목소리를 냈다.
" 길을 막을 뻔했어요. 죄송합니다. "
*술판, 왕게임, 마피아 게임 등 이벤트를 할 때 불려나오는 수상한 게이트의 주인. 대충 도라에몽이다.
**일본에서 게이트가 열려서 학원섬의 게이트들까지 영향을 끼쳤다.
***평범한 자판기인 척 위장하는 요상한 자판기. 물품을 다른 걸 주는 평범한(?) 것부터 칼날을 빼들고 덤벼드는 과격한 것까지 여러 종류가 있다. 제노시아의 괴짜 공학도들이 만드는 것이라는 (신뢰성이 높은)소문이 있다.
**
표정을 일부러 곤란한듯 일그러뜨리고는 상황을 파악했다. 상대는 꽤 움직임이 좋았다. 목소리를 보아하니 여학생인듯하고.
내 세상에선 보기 힘들게도 맹인을 대하는 배려까지 있다고 판단했다. 자 어떻게 해볼까.
"아니. 오히려 이쪽이 미안하다고 해야겠지."
일부러 걸려보라는 듯 시라사야를 걸리적거리게 진로를 방해했으니까. 이쪽의 인간들은 배려라는건 있는건가.
"이쪽 세상은 익숙하지 못해서 말이야. 이 맹인에게 있어서는 낯설기만 하군."
앞의 말은 진실. 뒤의 말은 거짓이다. 어디까지나 이 세상에 있어서는 나는 이방인이었다 그리고 거짓에 있어서는 당연히도 어디까지나 맹인 시늉을 하는 쪽이니 거짓이라고 해야겠지. 흥미가 생겼기에 일부러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가늠하고 거리를 좁혀들어 갔다.
간격은 약간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깝게. 그래야 거리가 가늠이 안되는 것처럼 보일테니까.
"이틀 정도 걸인처럼 걷기만 했으니, 허기도 지고 술이 마시고싶군."
**
곤란한 듯 상대의 얼굴에서 떠오르는 표정을 보고 무언가 생각날 듯 하면서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 중요한 건 아닐 테지만 느껴지는 찜찜함이라고 할까.
" 이쪽 세상... "
이쪽 세상? 당연하다는 듯 나오는 단어가 낯설다.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 같다.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혼천이일도세渾天異溢塗世*처럼 인류에게 호의적인 게이트에서 온 손님이라면. 인간과 대화가 가능한 몬스터라면. 여러 가능성을 짚어 보다가 상대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그 사이 상대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소리가 오는 쪽을 거슬러오는 건지,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워진다. 거기에 반응을 보이려는 것도 잠시, 생각할 거리가 하나 더 추가된다.
" 이틀이요? "
...동북아시아 가디언 아카데미에 '손님'을 이틀씩이나 헤매게 둘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적'이었으면 내쫓겼을 터.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길래 이곳에 있는 거지?
" 잠깐만요, 혹시 당신을 여기까지 부른 사람이나, 누굴 찾아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던가... 하다못해 어디로 오라던가, 라는 말이라도 들은 적 없나요? "
그건, 들어오는 걸 허락받았으나 섞이는 것은 허락받지 못해 '이방인'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만드는 처사였다. 사실, 목적지가 있다고 해도 이틀 동안 목적지를 찾지 못해 떠도는 맹인에게 안내인이 붙어 있지 않단 것만 해도 평범한 손님이 아니라는 건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상대에겐 표정이 보이지 않을 테니 곤란하게 쳐지는 표정은 숨기지 않지만 목소리는 또렷하고 명확하게. 돌려 가며 사각형 틀에 담아내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 술...은 학원섬의 민간인을 위해 파는 곳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보다 어떻게 왜 여기에 와서 헤매고 계신지가 궁금한걸요? "
*모 무협물 스레와 크로스오버 할 때 상대쪽 스레를 게이트로 취급했다. 그 때의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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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이다. 빌어먹을 세상의 사람이지."
애초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감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 대놓고 나 이방인이오 하고 말해서 어떻게 반응하나도 보고 싶기도하고 이 세상이 이방인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도 관심사였다. 누군지는 몰라도 미끼를 던져 낚아올린게 지금 바로 앞에 서있는 인간이었지만 다른 사람이었더라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리 말했을 것이다.
"그래 이틀. 아무것도 먹지않고 잠을 청하지도 않는건 익숙하지. 그리고 누가 부르거나 그런것은 없다."
의뢰때문에 나가려 사무소 문을 여니 불쾌한 덩어리같은 것을 슬며시 보고 이곳으로 끌려온지가 이틀이니까. 암살을 일로 하기에 상대가 모든 것을 경계하고 나오지 않으려 한다면 주변에서 몇일이고 누군가의 집을 낮에 빼앗아 감시하다가 틈을 노리고 베는 경우도 있으니
식욕이나 수면욕을 견디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였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건 조금 진저리가 났지만.
"곤란해 보이는군. 뭐 그럴만하지만. 도와주려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사양하고 다녔지."
아무리 목소리를 또렷하게 한다고 한들 귀에 들리는 음색에는 그것이 어떻게든 곤란한것을 묻으려하는 것이 느껴졌다.
일단은 상대는 사정을 물어보려고 한다. 그와중에 좋은 정보가 하나있다면 민간인을 위해 술을 파는 곳은 메신저를 통해서도 들었지만 재차 확인한 점일까.
"해매는 걸까. 어디가 어딘지 모른다는건 방황하는게 맞지만. 나는 내 사무소의 문을 열었더니 이 세상으로 끌려왔을 뿐이다.
이상한 메신저에 들어간 이후 얼마 지나지않아 생긴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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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하. "
게이트 너머의 다른 인류... 하지만 자기 세계에 상당한 유감이 있는 사람? 그런 걸까. 대충 그렇게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저희도 오래 안 먹고 안 자고 버틸 수 있지만 어지간해선 그렇게 하진 않는걸요. 정신적으로 지치고 맛있는 걸 먹으면 힘이 나니까. "
이틀 동안 버틴 것에 익숙하다는 말을 향한 답변에 이어,
" 부른 사람이 없다면... 하아, 도무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네요. "
라며 곤란한 감정을 내비치고 복잡한 정신을 정리한다. 말 그대로 손님도 적도 아닌 이방인. 왜 학원섬에 있는가, 왜 학원섬에 있을 수 있는가, 왜 이렇게 있는가. 모든 게 미스터리다.
" 가디언이 되기 위해 모인 학생들이니까, 불편함을 겪는 사람한테는 대체로 친절한 편이죠. 다짜고짜 믿으라 하는 건 무리한 말이긴 하지만, 이틀 동안 밖에서 버티는 것보단 사양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텐데. "
라고 지나치게 이상적인 말을 하며-그리고 스스로도 그걸 자각하며- 감정을 들켰다는 것에 가볍게 자책했다. 아직 미숙하네, 나.
" 사무소... 이상한 메신저? "
자기 자신의 지식으론 딱히 추론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 그나마 수상해 보이는 건 문. 게이트도 '문'이고 사무소의 '문'도 '문'이니, 게이트의 수상한 작용으로 뭔가 일어났을 수도 있겠다. 그러면 이방인보다는 표류자에 가깝겠지만.
" 일단 계속 세워 둘 수는 없고... 가까운 공원 벤치에 앉아서 좀 쉬는 건 어떠신가요. 술은 아니더라도 음료수 정돈 사 드릴 수 있으니까요. "
상대를 이끄려 손을 내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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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실패하는 순간 신뢰를 잃어버린다. 그걸 위해서라면 뭐든 한다."
정신적으로 지치는건 의뢰자 입장에선 아무런 관계가 하등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정해진 시간내에 정해진 의뢰를 달성한다는 것은 결국 신뢰의 문제였고, 배려가 없고 부조리에 당연한 세상에서는 신뢰는 의뢰의 달성 유무와 직결한다. 나의 경우는 신뢰를 잃었을 때 의뢰를 달성한 의뢰비 보다는 의뢰가 없어 사람을 베기 힘들어 지는 것이 문제였다.
"적어도 이틀 정도는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봐야하는게 신중한 태도라고 생각한다만. 내 세상에서는 사람을 쉽게 믿으면 죽는다.
특히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23구는 더 그랬지."
소매로 가린 오른팔은 그런 식으로 잃어버린 의수였다. 해결사로서 자리잡고 나서야 제대로 된 의수를 구하는데 성공했으니 그 이전에는 외팔이 였었다. 맹인 행세에 외팔이. 말그대로 도시에 있어서는 약자. 그렇기에 그것을 짓밟으려는 이들에게는 응당한 대가로서 목숨을 거둬가고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껴왔다. 조금 이야기의 핀트가 흐려졌지만 결과적 믿을수 있는 건 공증으로 만들어진 계약서나 자기 자신 뿐이었다.그 때문에 다른 세상이라고 해서 누군가를 믿는 다는건 섯부른 판단에 가까웠다.
"직업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해결사다. 해결사라는 직업은 사무소에 소속되는 편이지. 아, 혹시나 거짓으로 말한다면 안마사라고 했겠지. 자주 그렇게 속이고는 하니까."
저쪽은 아무것도 모르는 투의 음색이었기에, 일단은 신분정도는 명백히 하고,
"서로가 각자 다른 세상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대화방이 있다면 믿겠는가?"
이 이상 현상을 일으킨 무대에 대해서도 넌지시 이야기 해둔다. 원인은 그 곳을 제외하고는 다른 곳 어디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은 극히 드물다. 도시의 특이점에 휘말리는 경우도 분명 있기는 했지만. 그런 경우와는 느낌이 달랐다. 넘어오기전 느꼈던 검은 덩어리 같은 녀석의 기척은 도시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과는 달랐으니까.
"신세를 져보지. 야끼소바에 우롱차다."
뻔뻔하게 나는 말하면서 시야가 보이지 않는 사람이 아닌것 처럼 내미는 손을 곧바로 잡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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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 같은 발언이네요. "
그런 거라면 나도 어쩔 수 없다. 게이트 안에 들어가면 우리한테도 태평하게 자고 먹을 시간은 없으니까. 오래 머물러야 하는 게이트라면 또 모르겠지만, 학원섬에 있을 때만큼 느긋해지지는 않는다. 붕괴하지 않도록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게 우리의 목적이기에.
" 위험이 많은 곳에서 살아온 사람을 보는 것 같은 말이에요. 아니, 실제로도 그랬을까요? "
어떤 세상이든 약자에겐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호의와 호의로 위장한 악의는 잘 덮여 있으면 쉽게 구분할 수 없는 것이니까. 적어도 그런 동네였겠지. 돌다리를 지팡이로 두들겨 보고 건너는 맹인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 해결사... 음, 의뢰를 받고 그걸 해결해 주는 사람? "
말해놓고 보니 학생들이랑 좀 비슷한 거 같기도 하다. 상대 쪽에서 말하는 의뢰가 게이트 관련된 걸 가리키지 않는다면 뜻은 많이 달라지겠지만.
" 가디언넷이 여러 세상에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려나요...? 아, 가디언넷은 이 동북아시아 가디언 아카데미의 학생들인 가디언 지망생들이 이용하는 전용 회선 채팅방이에요. "
말해도 되는 건진 모르겠지만 존재 자체만을 말하는 건 문제될 것 없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심코 손을 내밀었지만 상대가 맹인이란 걸 깨닫고 손을 거두려다가, 곧바로 잡힌 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 ...그 정도면 자판기론 안 되겠네요. 식당가로 갈 테니까 천천히 따라오세요. "
...뭐 됐다. 공원으로 향하려던 말을 돌려 식당가로 향했다. 당당하게 메뉴를 정하는 점이 어이없기도 하지만, 다른 세계의 표류자와 만나서 밥 한 끼 사주는 정도는 아까운 것도 아니니까. 야타이(일본식 포장마차)가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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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해결사라는 직책은 쉽게 딸 수 있는 부류가 아니니까 말이지. 음 비위 상하는 이야기는 싫어하는 편인가?"
메신저에서도 그랬지만 위험한 곳에서 산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하게된다면 비인륜적인 이야기로 직결된다. 그것을 기겁하고 싫어하는 녀석도 있었기에 한 두번 이야기를 하기는 해도 조금 눈치는 보일만한 발언들이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한번 묻고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의뢰비만 준다면 뭐든 하는 것. 그게 해결사다. 청부업자에 가까울까."
그러면서도 상대가 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곳의 정보를 모아 단서를 짜맞춰본다. 가디언이나 이곳이 학교. 학생이 있다는 것. 그런것을 조합해본다면. 가디언이 무엇을 하는 존재인지는 의문이 들지만. 대략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결론은 나온다.
"그 가디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은 3곳의 양성 시설이 학생을 모집하고 가디언으로 양성하기 위한 계획적인 섬인가."
나는 해결사로서는 그렇게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였기에 어디까지나 간단히 추론할 수 있는 이야기 정도였다. 그냥 촉이 오는대로 적당히 조합한 결론. 눈으로 보고 들은 것을 짜맞춘 결과였다.
"여기까지. 힌트는 주었다. 대충 네가 가진 위화감을 말해볼까."
길을 따라 걸으며 나는 이쯤에서 시늉은 그만두는게 좋다고 판단했다.
감이 좋은 녀석이다. 여기까지 해줬다면 이 시늉을 벗길 정도의 수준은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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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야기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해도 상관없어요. "
상대의 기준에 맡긴다. 위험을 감수하는 거지만 자신의 기준에 맞춰서만 판단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닌 것 같았다. 솔직히 그런 쪽의 이야기가 나오면... 내성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살짝 안색이 흐려지는 걸 느꼈다.
"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이군요. 청부업자라는 말까지 나온 걸 보면, 그렇게 좋은 이미지는 아닌 것 같고. 위험하고 부도덕적인 영역의 일을 남의 손으로 대신 처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한테 능력을 파는 일일까요. "
좋아하는 유형은 아니다. 분명 선인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굳이 들춰내어 말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 인류를 지키기 위해 이 세상에 닥쳐온 위협, 다른 세계와 이어지는 통로인 '게이트'와 맞서싸우기로 한 존재들. 그런 존재를 우리는 가디언이라고 해요. "
일부러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며 가디언에 대한 짤막한 설명만을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가디언이 군인이기에 이곳은 일종의 군사교육시설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 가디언과 관련된 교육을 받을 뿐인 대학교 같은 느낌이라 할지라도.
" 손을 잡았어요. 처음 만났을 땐 모르고 발 앞으로 지팡이를 짚으셨는데. "
처음부터 맹인이 아니었거나, 최소한 주변을 느낄 능력이 있는데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뜻. 시험? 아니면 장난? 우연이었을 수도 있지만 '힌트'와 '위화감'이란 말이 나온 시점에서 상대는 어느 정도 일부러 했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눈이 마주치진 않아도 상대를 지그시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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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는 건 부품이나 재료 수준으로 밖에 취급되지않아. 길가에 시체가 널부러져있다 한들 쥐새끼같은 놈들이 시체에서 내장을 주워담아다 팔아넘길 궁리만 할정도로 도덕이나 윤리같은 이야기는 쓰레기장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다.
내 오른팔은 누군가의 식재료로 쓰였지."
있는 사실대로의 이야기다. 이어지는 이야기를 위해 일단은 대략적으로 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먼저 전하며 코트의 오른 소매를 걷어올렸다. 그곳에는 정밀한 기계로 이루어진 의수가 있었지 멀쩡한 사람의 팔은 있지 않았다.
"다시말해 다른 세상의 침략자와의 싸움, 그것을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가는 존재. 소설에서나 볼법한 이야기로군."
평화로움은 아무래도 이 섬의 한정된 이야기인가. 하고 조금은 생각을 다르게 해보았다. 전선으로 넘어간다면 그곳은 그곳 나름대로 색다른 지옥이 펼치지않을까. 괴물을 베는 것 보단 사람을 베는 것이 직성인 입장에서는 그렇게 흥미가는 이야기는 아니였다.
내 세상의 괴물이라는 것은 단순히 베는 것으로는 해결 못하는 부류가 더 많았으니까.
"그게 우연이 아니라, 의도된 행동이었지."
슬며시 나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의도적인 접근을 했을뿐이다.
**
" 그건... 눈살 찌푸려지는 이야기네요. "
그렇게 표현할 것 이상의 이야기다. 생명이 '생명이라서 존중받아야 한다'라는 기본적인 명제의 보호를 잃어버리고 헌신짝처럼 취급받는 세계. 이 세계도 분명 평안하진 않지만 여기에 비교한다면 지옥이라 부르기에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분명 이전이라면 시체에서 뽑히는 내장과 식재료로 올라와 있을 팔을 상상하고 구역질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겠지만, 의념으로 팽팽하게 돌아가는 영성을 가진 지금은 그만큼 정신적인 충격은 없다. 당장 게이트에 가도 사람 팔 뜯어먹으려고 안달이 난 몬스터는 많으니까. 영성은 단지 덤덤하게 이야기를 대조하며 눈앞에 있는 사람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었다.
" 요즘은 소설을 눈앞에서 만나보는 것도 어렵지 않죠. 소설과 동화 속에서만 있던 이야기가, 게이트를 통해 연결된 다른 세계라는 형태로 직접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요.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더 침략자 같은 게이트가 있는가 하면, 들어온 사람들을 그런 이야기 속에 빠트리는 게이트도 있어요. 게이트 안엔 평범한 인간이 있을 수도,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 수도 있고, 이제 이 세상엔 그런 게이트의 존재들과 자손을 만든 사람들도 있다고도 하죠. "
게이트는 종잡을 수 없다. 이제는 여러 기술이 발달해 어느 정도 예측과 분석이 가능해졌지만, 과거에는 언제 어디 나와서 무슨 문제를 일으킬 지 모르는 재앙이었지. 지금도 재앙이 아니란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는...
...그럼에도 사람들은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세상은 그들이 살아갈 곳이니까. 때론 우리 쪽으로 쳐들어오지 않았지만 게이트가 열렸단 이유로 게이트를 닫기 위해 먼저 쳐들어가기도 한다. 그게 나쁘다곤 아무도 말할 수 없다. 게이트 같은 건 열리지 않는 게 어느 쪽 세계든 좋겠지만.
"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가까이 다가왔어요. 왜 그랬었죠? "
상대가 이득을 볼 만한 건 딱히 없다고 생각한다. 저 미소를 보면 그냥 심심해서 말 한 번 붙여봤다, 라고 해도 말은 되겠지만, 그럴 리가. 망념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지금까지 보았던 징후를 강화된 영성으로 분석한다. 기만을 걷어내고 진실을 찾았을 때, 내가 낸 결론은 맹인'인 척'을 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왜?
왜 맹인인 척을 하지?
이미 한 팔을 잃었다는 되돌릴 수 없는 단점이 있다. 거기서 더 약자인 척을 오래도록 해 와야 했을 필요가 있었나? 아니, 척이 아니다. 정말로 눈을 쓰지 않는다면 약자인 척이 아니라 정말로 약자가 될 뿐이다. 왜 눈을 쓰지 않고 주변 상황을 읽어내는 것에 익숙해져야 했을까?
자신을 막을 수 있는 방향으로 오는 사람과 마주치면, 보통 눈을 통해 그 사람이 자신과 겹칠지 판단한다. 겹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그대로 걷고, 지나쳐 간다. 하지만 상대는 너무 정확한 방향으로, 예상치 못한 박자로 거리를 좁히며 완벽하게 끼어들었다. 눈을 이용한 것 이상의 감각이 필요한 일이다. 왜 그럴 필요가 있었지?
" ...당신은 무엇을 바라는 사람이에요? "
**
"멀쩡한 정신으로 보는 세상은 역겨우니까 항상 술을 마시고 있지."
특이점이라는 이름으로 진일보한 세상은 그런식으로 일그려졌다. 그 이전의 세상이 어땠는지는 모른다.
그저 부조리와 잔혹함으로 점철된 세상을 살아왔을 뿐이고 살아있을 뿐이었다.
"어느 세상이던 지옥은 있는가. 그렇게 친다면 이 섬은 모형정원이로군."
순전히 감상평이었다. 만들어진 평화만이 있다면 그것은 잘만들어진 모형정원이다.
이곳을 벗어나면 이곳 나름의 지옥이 있을 뿐이다. 평범한 세상은 아니라는 것은 말을 들어보면 안다.
말에는 음색에서 감정이라는게 담겨있으니까.
"네가 걸린것은 우연이지. 나는 그저 미끼를 던졌을 뿐이다."
감각이 있는 녀석이라 흥미가 생긴거지만. 이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다면 흥미를 금방 잃어버렸겠지.
정확하게 비집고 들어온것 까지 알았다면 의도적으로 길을 가로 막은것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몰랐다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최소한의 감각을 가진 강함이 걸려든 것은 우연이었다.
"무엇을 바란다라. 재밌는 질문이군."
나는 상대를 잡은 손을 때고 눈을 떴다.
자신의 머리카락과는 정반대 되는 흑요석 빛의 검은 머리카락의 소녀가 시선에 들어왔다.
**
" 여기는 좀 볼만한 세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술이 필요하신가요? "
아까 우롱차를 말한 걸 들었지만 굳이 그렇게 말한다. 사람이 세상을 물들이는 것만큼 세상도 사람을 물들이기에 그 물을 빼는 건 쉽지 않다는 건 알겠다.
" 정원이라기엔 지나치게 평화롭지 않아요. 지옥이라고 하기엔 너무 잘 통제되어 있고요. 적어도 대련장이라는 표현이 더 부드럽지 않을까요. "
"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는 모의전 속에서 '학생'들을 일당백을 거뜬히 해내는 '인간병기'로 '올바르게' 키워낸다. 동북아시아 가디언 아카데미의 의의라면 그것뿐이니까요... "
의념각성자는 일반인과 다르다. 의념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의념을 통해 몸을 강화하면 평범한 사람의 범주를 훌쩍 넘을 수 있다. 이 학교는 그런 의념각성자를 가디언으로 만든다. 더 날카롭게 벼리면서도 손잡이를 만든다. 가디언 스스로가 교육받은 도덕과 선함에 따라 칼끝을 인류가 아닌 쪽으로 겨눌 수 있게 하도록. 그와 동시에 그저 학생이다. 청춘을 즐기고, 일상을 보내는, 평범한 학생이기도 하다...
" 저는 잘못 걸렸던 건가요. "
한숨을 쉬며 살살 이마를 짚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심정은 플러스 마이너스로 제로다. 새로운 인연은 즐겁고, 그 인연이 가져다주는 감정은 좋지 않다. 그런 느낌.
"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것에 따라 행동하니까요. 그런 욕망을 따르는 행동은 논리로는 예측할 수 없을 때도 있고... 그러니 알고 싶어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죠? "
보석에 손을 뻗으며 제 혼자 절벽으로 뛰어드는 어리석은 자를 보라. 저자가 제 목숨을 던진다는 것의 무게를 알고 신중히 따져 본 끝에 목숨을 버렸겠는가? 그럴 리가 없다. 눈앞에 이득에 눈이 멀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가끔 책상에만 앉아 있는 천재의 무수한 해명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낸다. 순순히 눈을 뜬 것엔 놀랐지만 하려던 말을 멈추진 않았다.
" 아니, 입으로 들어간 게 없는데 뭔가 나오길 바라는 게 이상하네요. "
" 야끼소바에 우롱차. 먼저 시키고 얘기해 볼까요? "
이젠 더 몇 걸음만 가면 좋을 거리. 눈앞의 일본어가 가디언넷의 번역 기능에 한글로 덧씌워지는 걸 가리키고, 이번엔 제대로 눈을 맞추려 시도하며 웃어보였다.
**
"다른 의미로 여긴 보기 힘들거든. 역시 애매하게 어지럽게 보이는 시야가 낫다. 그편이 신경을 덜쓰니까."
눈앞의 소녀는 키는 평균을 훌쩍 넘었다. 이쪽이 조금 작아보일 정도 였다.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배려가 깊은편이다.
그럼에도 첫인상은 무뚝뚝하다는 평을 내릴만한 인물이었다. 예리하다고 하는 편이 좋을까.
"사람을 도구로 쓰는건 여기도 매한가지로군. 다만 도구로 씀에 있어서는 질이 다르다고 해야할까. 내 세상은 누가 회사의 도구가 되어서 뒤틀림이라는 괴물이 되는 징조가 있다면 그저 회사에서 잘라버리는 걸로 끝이다. 그건 해결사 사무소도 마찬가지. 의뢰를 달성하지 못하면 즉시 해고당하는건 별로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잘못걸렸다고 말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아니였다. 걸리더라도 형편없는 녀석이었다면 흥미를 가질 이유도 없었을테니까.
이 세상의 무력은 어느정도일까. 남의 세상에 와서까지 사람을 베고 그 리스크를 부담하기는 싫었기에 얼마나 실력이 있는지 가늠하고 싶은 호승심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그러면서 역시 베어보고는 싶지만서도.
"음식과 음료정도에 풀어버리는 입가벼운 여자가 된 기분이군. 대답은 해주겠지만."
거리에 있던 야타이 만큼은 어째 크게 다르지않은 모습이다.
**
" 그런가요. 그럴 수도 있겠죠... "
나는 음주를 좋아하진 않지만, 필요한 사람도 있다는 걸 안다. 적어도 상대는 술이 사람을 마시는 정도는 아니어 보이니까─아니, 아직 본 것도 아닌데 판단할 수는 없지만.
" 도구, 라고 해도 틀린 건 아니지만, 가디언을 도구라고 부르는 사람은 분명 이 세상의 모든 걸 도구로 보는 사람밖에 없지 않을까요. "
" 그건... 우리 쪽에서도 없는 일은 아니에요. 우리 가디언들의 힘의 근원인 '의념'은 사용과 동시에 '망념'이라는 오염을 얻음으로서 대가를 치러요. 망념은 다른 사람과 소통하거나 비싸고 위험성 있는 중화제를 사용하는 걸로 해소할 수 있지만, 만약 망념이 한계를 넘어서면, 그 사람은 '망념화'라는 상태에 빠져서 되돌릴 수 없는 괴물이 되죠. 그 사람이 평소에 미리 '자신이 망념화가 될 경우 죽여줄 사람'을 선정해 놓았다면 그 사람들에게, 아니면 다른 가디언들한테 그 사람'이었던 것'을 토벌하라는 의뢰가 발주되어요. 가디언은 의뢰가 실패했다고 잘리거나 하진 않지만, 의뢰가 실패했을 때쯤은 이미 죽어있을 확률이 높다는 게... 씁쓸한 점이죠. "
학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가디언 전용 회선인 가디언넷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만능 발명품, 가디언 칩. 그 칩이 가디언이 몬스터화가 시작되는 순간 위치추적기로 변모한다는 건... 모르거나 일부로 가르쳐 주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가디언 칩은 그런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의념 사용을 정지하는 기능도 있지만, 망념화가 되었다는 것부터 그 정지를 뚫을 수밖에 없었다는 상황이었을 테니 의미가 없을 것이다.
" 글쎄요, 이 세계의 돈이 있으실 것 같진 않은데... 그렇게 생각하면 평범한 음식과 음료라도 지금 당신에게는 '당신의 힘으로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잖아요? 그런 걸 받고 입을 여는 거라고 생각하면 좋을지도 몰라요. "
그렇게 말하면 세상 무엇이 귀하지 않을까마냐는. 메뉴판을 들고 망설임없이 메뉴를 고른다.
상대를 위해선 미리 말했던 우롱차에 야끼소바. 자신을 위해선 식혜와 라멘. 일본식의 아마자케(甘酒)가 아니라 한국식의 술이 아닌 식혜다. 동북아시아 국가의 문화가 섞여 있다 보니 이런 일도 있다. 미성년자와 성인이 섞여 있는 아카데미이니만큼 공공연하게 나 술 팔아요, 하고 붙여 놓진 않았지만 야타이가 그렇듯 감주나 사케 등도 갖추어져 있을 것이다. 청월 교복을 입고 있는 나를 보고 사장님의 얼굴에 '이건 뭐야?'라는 듯한 느낌이 살짝 스쳐가는 걸 보면, 아마 주 고객은 성학교생*이 아닐까.
" 그럼, 조금만 기다려볼까요. "
*성학교는 자유로운 교풍이지만 정말 자유롭다 보니 학생들이 게이트 안에서 음주를 하는 등 불량아들도 좀 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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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을 쓰는데도 한계가 있고 그 한계를 벗어나면 괴물이 된다라. 그럼에도 세상이 이런 느낌이라면 필요악으로서 가디언이라는 존재는 존속될수밖에없고 누군가는 부담해야 한다는 거로군. 사정은 나은 편이라고 해야할까. 괴물보다는 사람이 무섭거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게 우리쪽의 인간이니. 계약을 잘못쓰거나 해서 한순간에 신뢰를 잃어버리던지. 아니면 죽던지. 많아. "
그렇다고 남의 세상에 비해 이쪽이 고통스럽다고 어필하는 것은 아니였다.
사람의 지옥에는 어디든 지옥같은 부분이 있어서 지옥일테니까.
"금기 사냥꾼이 바쁠 때는 대신해서 의뢰를 받기도 해. 내 세상은 날개라는 회사들과 그 날개의 지배를 받는 뒷골목 두가지로 연결되어있고, 날개는 또 머리의 지배를 받지. 머리가 정한 금기는 머리에서 나온 발톱이라는 정말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녀석들이 금기를 어긴녀석을 주검으로 만들어버리고. 날개의 금기의 경우는 금기 사냥꾼이 파견나와 죽여버리지. 나는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시협회와의 연줄로
사람을 보통은 죽이는 일을 받는다. 혹은 호위해야할 사람을 지키기위해 죽이던지."
궁금점에 대해서 일단은 대략적인 나의 정보를 읆어본다. 그리고는,
"주인장. 우롱차가 아니라 우롱하이로 변경해줘. 이 아이가 착해서 새 선생을 위해 한턱 쏜다는군. 너무 이상하게는 보지말아주게."
적당히 가짜 관계를 둘러대고는 술을 시키는 쪽으로 나의 이익을 좀 더 받아내려고한다.
"자 그럼 하나 이야기하기에 앞서 질문하지. 너는 네가 살아있는 감각을 어디에서 느끼지?"
무척이나 철학적인 질문, 내가 약자인척을 하며 스스로의 리스크를 부담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모두 그 질문에서 비롯된다.
살아있다는 감각 혹은 실감. 나는 태어난 이래 팔을 잃고 살아있다는 감각을 기본적으로 느끼지 못했다.
단 하나의 행위를 제외하고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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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념이란 힘 자체엔 한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그걸 이용하는 쪽인 인간엔 한계가 존재해서요. 모든 가디언이 그렇게 되는 건 아니지만 가디언들의 평균 수명 자체가 짧기도 하니, 가디언을 '희생'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아지는 것도 그럴듯하죠. "
" 괴물을 만나면 행운과 타협할 수라도 있지만, 우연과 행운을 짓밟고 사람을 숫자로 세는 사람을 대하면 구제될 길도 사라질 수도 있다. 같은 느낌일까요. 이쪽에도 사기같은 의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게이트 자체가 예측할 수 없는 재앙 같은 존재다보니 실패했다고 해도 그 당사자의 탓으로 무조건 돌리지는 않는 편인데. "
숭고한 희생인가, 필요악으로 허용될 뿐인 목숨들로 쌓아올린 평화의 파편인가.
누군가의 실패담이나 주워 들어 소화된 소문을 듣는 것은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그냥 적당한 대답을 주워섬길 뿐.
" 무력을 휘두르는 사람과 무력과 무력에 당하는 사람, 셋 중에서 당신은 무력에 속해 있었군요. 암살자라니... "
그것이 그쪽의 세상이고, 그쪽의 사회고, 당신은 그쪽의 일원이고, 그것이 당신의 역할. 누군가를 죽이는 것으로 임무를 다한다. 그럴 만하긴 하지만 역시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 ...당신 같은 선생님을 둔 기억은 없는데요. 선생님은 좀 더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
적당히 둘러대는 사칭에 명확하게 당신을 째려보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술을 팔지 않는 곳으로 가는 게 좋았으려나. 생각해도 야끼소바란 메뉴가 있을 만한 곳으로 바로 떠오른 게 이런 곳뿐이었으니. 그래도 단호하게 끊지 않고 그 폭거를 용납한 것은 아주 선을 넘은 일은 아니라서 그렇다.
" 내가 살아있는 감각이라... 그건 명확히 대답할 수 없네요. 지금 이 세상의 정보를 내가 이용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해서 받아들이는 내 모든 감각기관이 그런 감각을 느끼게 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새 정보를 받고 가지고 있는 정보를 분석하고 생각하고 파고들기 위해 끊임없이 동작하는 내 영성과 사고가 나라는 존재가 남아있음을 깨닫게 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고. "
" 하지만 내가 있다고 확신할 수 있게 하는 가장 확실한 걸 말한다면, 저는 '인간관계'라는 말을 해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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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렇게 말하더군 나 하나 사는 것도 힘들어서 세상의 불공평함을 알고도 어쩔수 없다고 넘긴다고. 살아가는 녀석들은 살아가는 녀석들 끼리 느슨한 관계같은건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말이야. 그래. 썩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 네 목소리에서 티가 난다."
불편한 이야기이기에, 적당한 답을 고려한듯한 말. 그런 곳에서는 목소리의 진동이 다르게 느껴진다.
청각에 손을 댄 입장으로서는 조금 정도 파악이 가능한 부분이었다.
"뒷골목의 밤이 찾아올 때는 지위관계를 불문하고 뭐든 허용되니까 무력을 쓸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어. 당하는자 역시도 무력을 사용하는건 가능하지. 실력의 문제는 다른 이야기지만. 그 밤이 찾아올 때 모든 것이 허용되니까 반대로 최소한의 치안과 최소한의 예의정도가 남은 것이라면 남은 것일까."
꽤나 방금 행동은 폭거에 가까웠다고 스스로도 생각했다. 기분나쁜 눈초리로 보았기에, 적당히 둘러대듯 이야기한다.
"반면교사도 좋은 교사지. 뭐 그것과는 별개로 실전용으로 쓰는 거합도라면 알려줄수도 있다만."
철판에 자글거리는 기름 소리가 퍼지고 조리되는 것을 슬며시보고는 대화하는 상대의 살아있는 감각에 대해서 듣는다.
기본적인 살아있다는 인간의 생체기능으로서의 살아있음. 그것은 분명 생명이 생명으로서 가지고 있는 개념에 가까운 부분을 말로서 설명하는 것에 가까웠다.
"감각기관이 그 모든것을 이해하고 정보로서 머리로 넘어간다면 나는 거기서 실존하는 부분을 부정하지는 않음에도 살아있다는 느낌은 머리에서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기능할뿐이다. 왜 기능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의문이 생긴다."
잠시 과거를 떠올리며 이야기는 이어나간다.
"기본적으로 삶의 의지에 대해서 옅었다라는 게 정확한 표현일까. 내 부모는 시체주워담기에 바쁜 소위 쥐의 부류였고 쥐답게 쉽게 죽었다. 나같은건 태어난 이후에 크게 신경쓰지도 않았고 너 알아서 살든 말든 알 바 아니다. 라는것에 가까웠기에 나는 항상 왜 나는 살아있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었지. 정신이 아득해질 무렵에야 벌레든 시궁창에 사는 동물로서의 쥐를 잡아먹건 가게에서 서리를 하다가 죽을정도로 맞아본다던지 그럼에도 서리는 성공해 뭐든 먹었다던지. 혹은 *바다거북이 들어가지않은 바다거북스프를 먹건 최소한의 생명 유지만을 했었다."
그 지옥같은 풍경에서 살아있음에 대한 의문은 큰 의미로서 그때는 옅어져있는 삶의 의지를 의문으로 버텨 살아있었다는 것에 가까웠다.
"내가 태어난 23구는 이미 조금은 말했지만. 맛의 골목으로 불린다. 맛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 식재료 모든 것을 가리지 않았다.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다른 미식으로서는 더 이상 쾌락을 유발하지 못한 결과가 이 골목의 방식이었으니까. *두다리로 서는 양은 도축의 과정 또한 예술로 승화할 수 있다고 하는 미치광이가 당연하게도 여겨지는 지옥이었다. 그런 곳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건 당연했다.
나 역시 그런 미치광이들에게 내 팔을 잃었다. 살아남는데는 성공했지만, 죽어있는 것과 잃어버리고 살아있는 것 그것에 차이는 더 이상 없다고 느꼈다. 그때부터 몸은 기능하고 있음에도 나는 삶의 실감을 잃어버린것이다. 언젠가 시체가 될 존재라면 그것은 살아있는 것인가? 하고 머리가 사고를 그만둔 것 이다."
이질적인 지옥이 만들어낸 환경은 내가 살아있는 것에 대한 의문을 그런 식으로 결론짓게 만들었다.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며 언젠가 죽는것이랑 지금 죽어있는 것이랑 무엇이 다른가. 생명으로서 유지하고 있더라도 나 하나는 걸어다니는 시체가 가깝다. 그렇게 내 사고는 결론을 매듭지었다.
"너와 같이 인간관계가 있었다면 그런 살아간다는 감각을 조금이라도 느꼈을까? 그건 모르겠군. 그런 내가 지옥속에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베어 죽였을 때 나는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았다라는 감각을 느꼈다. 지옥에서 살아가며 물든 나는 지독하게도 나는 나 나름대로의 미치광이더군. 누군가를 베고 거기서 뿜어져나오는 피가 튀고 이내 생명이라는 기능을 정지했을 때 누군가는 이렇게 죽어버리는구나. 나는 생명을 빼앗은 만큼 살아가고 있는거구나 하고 누군가를 죽였을 때야 살아가는 감각을 느끼고 만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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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이야기일 수 없는 이야기죠. 당연시여길 수도 없지만 멈추게 할 수도 없는, 너무 중요하고 너무 많고 너무 하찮고 너무 쉽게 닳는 세상의 톱니바퀴. 그래도 자기 삶을 사느라 그 밖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반대인 사람도 있어야 세상은 변하는 게 아닐까요. "
좋은 변화는 좋은 사람에서 나온다, 라는 걸 길게도 늘였던가. 정확히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든 사람에게 정당하고 합리적으로 납득시킬 공통된 기준도 없는 허황 같은 '좋은 사람'이라는 말. 적어도 그건 나한테는 '이타적인 사람'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 다의어였을 것이다.
" 모든 법칙을 무시할 수 있게 하는 법칙, 행운과 계략으로 결정되는 기회의 장, 합리적인 분출 수단. 그런 걸까요. "
권역 쟁탈전을 떠올렸다. 그 어떤 문제에서도 자유롭게 싸울 수 있는 시간. 각 학교 간의 합법적인 전쟁과 분쟁이 허용되는 시간. 크게 다투고 나서 권역쟁탈전 때 보자는 경고를 날리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우리 쪽은 죽지는 않는다는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둘러대는 듯한 이야기에도 조금 표정을 찌푸리다가.
" 저는 반면교사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아요. 거합도... 라면, 지훈이한텐 필요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검사가 아니라서요. "
주방과 식당 사이의 간격을 끌어당겨 길거리 위에 세워놓은 작은 음식점. 눈앞에서 조리되는 음식을 보면 식욕이 생기고, 그 식욕을 절제하는 이성이 일어난다.
" 감각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실존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니까요. 그러게요, 머리는 왜 기능하고 있는 것일까요. 결국 모든 감각으로 정보를 받고 있는 건 머리고, 제가 방금 근거로 댄 감각을 받아들인다는 것조차 모두 편한 대로 무의식 중에 조작할 수 있는 게 머리고, 어쩌면 머리는 우리가 '살아 있다'고 판단하고 착각하도록 자신 스스로 근거를 만들어내는 망상만을 위한 기관일지도. 그래도 그걸 스스로 증명할 수 없다는 점이 인간의 어려운 점이에요. "
그리고 긴 이야기를 들으며, 평소에 하는 가끔씩 끄덕이는 것이나 반응을 보이는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생각을 했다. 최초의 반응을 내비치기 직전까지.
" 당신은 매우 지쳤거나, 지루하거나, 병에 걸린 사람이네요. 어쩌면 셋 다일지도 몰라요. "
그리고 그 병이란, 분명 엄청나게 지독한 병이겠지.
" 어린 당신에게 무관심하고 힘든 세상이었군요. 삶은 고통이었고요. 어째서 삶을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생명을 받고 이 땅에 태어났는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삶을 이어가기 위해 살아가는 미약한 삶을 이어나갔을까요. "
" 그곳의 사람들은 이제 풍요에도 지쳐버린 사람들이었겠네요. 모든 사람을 먹여살릴 만큼의 생산력이 있어도 빈곤한 사람한텐 돌아가지 않고, 호화로운 자극에도 질린 사람들이 짐승처럼 자극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예술이라고 포장하는 비겁자들의 돼지우리. 거기서 당신은 병을 얻었어요. 삶의 궁극적인 종결은 죽음이지만, 삶의 목적이 죽음이라고 착각해선 안되었는데. 당신은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탐구를 포기하고 생각을 석연치 않게 매듭짓게 되었네요. "
언젠가 가디언넷에서 본 영상을 떠올렸다. 제노시아 학생들이 만든 시시한 장난 기계. 작동시키면 자기 자신의 전원을 끈다는, 힘을 들여서 작동시켜도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원점으로 돌아가는 기계. 그 기계는 모든 사람에게, 나에게도 '쓸모없는 기계'로 여겨졌다.
그 쓸모없는 기계는 바로 당신이었다. 적어도, 당신이 내린 결론이 되지 못한 결론에서는.
" 당신은 상처입은 자기 자신의 신체를 낫게 하려고 하는 나무인형 같아요. 스스로 나을 수도 없고 치료도 받을 수 없는 무생물이 자신은 나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아요. 얻지 못한 증명을 얻고 싶어하고 있어요. 근본적으로, 23구 사람들과 당신은 다르지 않아요. 완벽하게 같진 않지만.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 체념 속에서, 당신의 공포일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대상인 죽음을 몰고 다니면서 뒤틀린 삶의 목적을 갈아치우고 더 오래 자기 자신을 지속하려 하고 있어요. 당신은 스스로가 삶에 대한 의지가 희박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의 생각과 행동은 살아가기 위한 쪽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당신은 미친 사람에 가깝고 미치기 직전이지만 아직 미치진 않았고, 정상인과 미친 사람 가운데에 걸쳐 있지만 어느 쪽에도 확실히 힘을 싣고 있진 않네요. 이 모든 건 망상이고 비약이지만, 저한테는 그렇게 느껴져요. "
" 이제 보니, 아까 제가 했던 말은 헛소리였어요. 감각을 받아들이는 머리도 살아 있지 않은 존재를 살아 있다고 스스로 속게 할 순 없어요. 살아있는 사람이 스스로를 죽어있는 사람이하고 착각할 순 있더라도요. 몸이 아직 살아있고 앞으로도 살아가도록 기능하지만, 사람의 의식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는 우습고 끔찍한 최악의 생각을 하고 실행하는 것조차 막지 못하는 무력한 것이 어떻게 그렇게 하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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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변할 일은 없겠군. 그런 사람은 보통 죽으니까."
단정지을 수 밖에 없었다. 상대가 반박을 하던 살아온 세상에서 이타적인 행위를 하는 인간은 그 이타적인 행위에 목숨을 잃는 것만을 보아왔으니까. 결국 그런 빌어먹을 세상이었다. 다른 결론이 날만큼 새로운 길은 열리지않았다.
"합리적인 분출 수단. 다른 말로는 불만의 배출구. 혹은 도시의 자정작용. 보통 살아 남으려는 인간은 그 시간을 무척이나 두려워하지.
인간만이 무서운것도 아니고. 청소부라는 존재들이 돌아다니는 시간이기도 하거든. 그 녀석들은 시체도, 살아있는 녀석들도 죽여 시체로 연료를 만드는 녀석들이야."
조금은 딴이야기가 된거지만. 단순히 복수나 계략을 위한 시간은 아니였다는 것은 별첨할 필요가 있었다.
"파트너가 있나보군."
그리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상대는 내가 선생이 되길 원하는 인간도 아니였고, 나 역시 가르칠 생각이 없는 헛소리에 불과했으니까.
다만 본인이 말했던 대로 인간관계는 그녀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였기에 파트너로 추정되는 인물이 있다면 분명 소중한 존재겠지. 그런 추정을 해본다.
"나뿐만은 아니지. 모두가 도시라는 세상에 병을 앓고있지. 누군가는 상명하복에, 누군가는 지령에, 누군가는 약속에, 누군가는 혈연에,
누군가는 복수에, 누군가는 돈에, 누군가는 명예에, 누군가는 회색 도시의 권태를 깨버린 음악에 미쳐서. 나 역시 미쳐있다. 누구보다도 죽음에 가까워 지길 원하며,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고 칼을 들고 죽이고 죽이고 죽였다."
어차피 모두 죽을 뿐이라면, 베어 죽인다고 달라질것은 없다. 삶의 종착점은 죽음으로 연결된다.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어차피 죽는다는 결론에 매몰된지 오래로. 나는 그렇게 미쳐있었다. 언젠가 만났던 뒤틀림을 밝히는 탐정이. 칼날이 옷을 입고 있다는 그 말은 틀리지 않았으니까.
"그런 병의 결과가 뒤틀림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냈다고 탐정은 이야기했던가. 9구 뒷골목의 피아니스트는 그런 뒤틀림의 시작이었다. 그저 좋아하는 피아노를 치고 싶었을 뿐인데 좋아하는 것만으로 세상은 자유롭게 해주지도 않고 멸시라는 평가만을 받은채 30만명을 죽이고
음표로 만들어 연주를 시작했다. 그는 죽었지만, 그 권태를 깨는 음악에 취한채 해어나오지 못한 인간들이 음악을 갈망한다."
나는 병에 걸린 나와 병에 걸릴 수 밖에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유 자체를 모른다. 그렇지만 죽고 싶지도 않다.
이유를 모르기에, 이유라고 선택한 다른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서 이유를 찾고 권태를 빠져나가려는 미치광이였다.
"약자인척을 하며 걸어오는 싸움에 대응하듯 모두 베어넘기고. 그렇게 멸시하는 인간들의 생명을 거둔다. 그것으로 나는 살아있다고 그렇게 느끼고 싶었다. 병을 치료할 방법은 없으니 극독에 손을 대고 결론이 아닌 결론에 손을 댄다. 그렇게 나는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삶을 연장해 가고 있다."
바뀌는 것은 없다. 그것은 바위 위에 계란으로 친다고 한들 바위가 부서지지는 않는다. 이미 응어리 진것들과 잘못된 결론을 바꿀 만큼
나는 유연하지도 않았고, 더이상 거꾸로 되돌리는 것 조차 불가능하다고 이미 스스로 매듭을 지어버렸으니까.
"너는 강하고 이타적이군.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조금 빨리 만났더라면 늦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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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지 않을 만큼 강한 사람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가, 죽어도 죽어도 계속 나오던가. 둘 중 하나도 되지 못하면 바뀌진 않겠죠. "
변화는 희생을 동반한다. 오래전 어떤 동화에서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고래 섬이 나왔더란가. 고래가 가만히 바다 위에 떠 있으니 그 위에 흙이 쌓이고 풀과 나무가 자라서, 올라선 사람들도 누군가 섬의 비밀을 말하기 전까지 그 섬이 사실 고래라는 걸 아무도 몰랐더랬지. 고래의 작은 뒤척임에 혼비백산해 배로 도망치는 사람들처럼, 세계에 아주 자그만 변화만 일으키더라도 사람들은 배로 영향을 받는다. 그 변화를 일으키는 데 드는 대가는 또 어떻고.
...몬스터 거북의 시체 위에 세워진 아카데미의 학생이 하는 상상치곤 기분나쁜 일인가.
" 사람이 재앙에 맞서싸우긴 커녕 주기적으로 작은 재앙을 만들어내는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청소부라는 것들은... 연료라는 걸 보니 기계 같은 걸까요. "
사람을 연료로 쓴다는 것 자체가 기분나쁜 일이다...
" 파트너라기엔 친구죠. 같이 싸우면 든든한 동료이자 사람 놀리길 좋아하는 후배이기도 하고. "
그래, 그는 나에게 그 이상의 의미가 아니었다. 유대라는 단어를 아직 받아들일 수 없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면을 갖고 있는... 내가 그것을 이해하려 해도 될지 확신할 수 없는 존재.
상대가 또 이야기를 시작하면, 다시 찬찬히 듣기 시작한다. 한 번 주고 한 번 받기 같은 느낌이 되어 있다.
" 그 도시엔 무서운 유전병이 퍼져 있네요. 미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서 사람들은 광기와 공생하게 되었어요. 그 상황을 바꿀 일도, 변화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기에, 지긋지긋하게도 계속 태어나는 사람들은 먼저 죽은 사람의 자리를 채우고, 광기와의 공생을 되물림하는 유전병의 숙주가 되었어요. "
그 병은 체념이나 순응, 침체라는 이름을 여러 번 갈아치워 온 변장의 명수일 테다.
" 병이 터져나온 결과를, 그 병이 퍼진 도시에 깨끗한 공기를 불어넣어 주지도 못하는 괴물을 바라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에요. 어쩌면 그 사람들은 무언가 환호할 거리가 생겨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괴로움만 있는 세상에 아름다운 것 하나가 들어오면 시커먼 부분 정도엔 눈을 감아줄 수 있었거나, 오히려 그것에도 환희할 준비가 되어 있었을지도. "
어쩌면,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 뿐인가. 논리적으로 알 수 있더라도 공감하고 싶지 않다.
" ...... "
나는 손만 뻗으면 잡히는 거리에 언제 나왔을지 모를 컵을 쥐었다. 식혜 한 모금. 맑고, 달콤하고, 쌀 냄새가 난다. 평소에 마시던 식혜 맛과 다르지 않다. 똑같은 식혜를 쓰나.
" 아직, 강하고 이타적이라는 말을 듣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만한 사람일지도 모르겠고요. 그래도 그렇게 평가해주신 건 고맙네요. "
또 한 모금, 또 한 모금.
─에 한 모금 더, 조금 빠르게 삼킨다.
" 저를 베고 싶으셨나요? "
눈을 감고 있었을 때 당신은.
" 저를 비웃고 싶으셨나요. "
**
"아니. 그놈들도 그놈들 나름대로의 언어가 있다고 뜬 소문으로 들었고 베어보기로는 살아있었다. 죽여놓아도 또다른 녀석들이 그 녀석의 시체를 연료 삼아 끈질기게도 오더군. 밤의 호위를 맡은 경우가 잦아서 자주 보는 놈들이다."
청소부는 밤의 악몽중 하나였다. 시체를 청소하고 살아있는 것도 청소하는 문자 그대로의 존재. 기분나쁜 부류중 하나였다.
물론 청소부 외에도 미쳐버린 녀석들은 흔하고 그것을 도시 전설, 도시 질병, 도시 악몽, 도시의 별같은 분류로 또 나누기도 한다.
"나는 동료는 없다만, 제자는 있었지. 너는 나를 스승의 부류로는 안보는거 같지만."
그 아이는 보기 힘들게 그 도시에서 올곧은 녀석이었다. 무모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목숨을 잃었다.
그 전에도 그 후로도 그와 같은 인연은 더 이상 만들지 않았다. 한번 잃은 것을 알았기에 더 이상 잃는 것은 그것대로 불편했다.
"아니 뒤틀림은 그런게 아니야. 이미 쌓이고 쌓이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한계에 다다라 말그대로 괴물이나 괴현상이 된거니까. 체념하고 포기하고 고이게 된 환경 속에서 그것은 탄생한다. 나는 그런 것을 베는 전문은 아니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해결하는 뒤틀림 탐정이라는 녀석도 있다."
식혜를 먹는 그녀의 두가지 질문. 첫번째는,
"베려고했다면 이미 베었겠지."
지팡이처럼 쓰고 있던 시라사야의 칼집 사이에 날을 슬며시 보여줬다 닫으며 말하고
두번째 질문에는,
"비웃으려고 했다면 시체를 보고 비웃었겠지."
라고 대답했다. 적어도 어느 쪽이든 내 사고에는 없는 행동이었다. 그저 이 세상의 인간을 가늠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힌트를 주고 풀어보라고 한 시점에서 내가 악의를 가졌을거라고 생각한다면 너는 바보로구나."
**
살아있는데 왜 연료를 필요로 하는 걸까. 단순한 비유? 아니면 일부만 기계라던가. 있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더 이상 묻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기에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것에 그쳤다.
" 선생이나 스승이 하는 일을 비슷하게 하는 건 쉽지만, 진짜 그만큼이나 존중받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
당신이 그 영역에 들지는 않는다는 뜻이었다. 내 꿈인 '선생님'은... 삶의 끝에나 있을 법한 존재이기에. 현재의 나를 넘고, 영웅이 되어서도 넘고, 모든 게 끝난 이후의 일. 꿈꾸기도 쉽지 않은 이상이다.
" 그런 사람도 있는 건가요... "
그 사람도 뒤틀림을 해결할지언정, 그 원인을 지울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런 것을 상상하면 기운이 빠질 것 같았다...
" ...바보가 되고 말았네요. "
가볍게 한숨을 쉬고 컵 바닥에서 떨어지기 시작한 쌀알을 깨물어 본다.
" 순간, 처음 만났을 때까지 당신이 자신을 공격할 사람을 찾아다니고 있던 건 아닌가 생각했어요. "
그 말을 들은 순간. 그녀가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건 아닌지.
갑자기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서늘함이 조급함을 불러왔던 걸지도 모르겠다.
**
"이상적인 이야기로군. 꼭 너의 꿈을 논하기에 선생이라는 표현에 허들이 높은걸지도 모르겠네."
단순한 감에 의한 이야기지만 듣자하면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득히 먼 이상 속의 존경할만한 존재를 선생이라 정의하는 분위기는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뭐, 이쪽 학생의 수준은 깔볼정도로 한심한 수준인가 떠본건 없다고 할 수 없지. 너는 멋지게 간파해냈으니 적어도 너 정도의 학생은 있다는 것이지.그게 아니였다면 시시해서 난동을 부렸을 수는 있겠군 그래도 네 수준의 학생이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는 가늠 할 수 없는 녀석도 충분히 있다는 반증을 가져온다. 괜히 난동을 부렸다간 곤란해지는건 사양이지."
남의 세상에서 시체가 되는건 뭔가 기분 나쁘지않은가. 그렇게 생각했기도 하다. 죽는다면 태어난 곳에서 죽는게 마음이 편하다.
이 세상에 불순물의 시체가 남긴 흔적이 있다면 그것은 역시 기분 나빴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만, 나는 나보다 강자가 나를 죽이는 것 역시 바라고 있다. 그 세상에서도 그렇고. 검을 맞댈 일이 없을 뿐이지. 운이 나쁜건지. 좋은건지."
나온 우롱하이를 마시고 쇼추 특유의 맛을 느낀다. 별로 내 세상의 맛과 다르지는 않았다. 술은 거기서 거기인가보다.
"좀 살거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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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죠. 가깝지만... 거기에 나 자신을 넣으면 너무 멀게 느껴져요. "
이제 와서 그것에 좌절할 만한 나는 아니지만.
" 제대로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있다가 직접 힌트를 제시하고 나서야 알았는걸요. 멋지단 말을 듣기 부끄럽네요... 난동을 부리지 않게 된 건 다행이지만요. "
자신은 그렇게 높은 수준만은 아니라던가, 아카데미 학생 중에선 제일 강한 데다가 홍왕 유찬영의 시선까지 닿아 있는 존재인 청월의 학생회장도 있다던가, 최소 준영웅인 아카데미의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곤란함으론 끝나지 않을 게 분명하다던가.. 할 말은 많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으로 대신한다.
" 당신을 보고 자신이 강자일 거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아닌 진짜 강자 말이죠. "
본메뉴가 나오기도 전에 끝까지 털어마셔 버린 식혜 컵을 내려놓고 라멘 그릇을 앞쪽으로 끌어당겼다.
" 역시 당신을 이해하긴 힘들 거 같아요. 이해하고 말고 할 만큼 오래 만난 사이도 아니지만요. "
갑자기 그렇게 말한 건 변덕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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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평균으로 놓았을때 적어도 특색 해결사나 그에 준하는 해결사들 수준, 발톱 이상이 흔하다는 가정이 되니까. 귀찮은 수준을 넘어선다는건 알 수 있다."
말할 수 있는 선의 수준은 그런 이야기밖에 못한다만. 어느쪽이든 이쪽 세상에 그것을 넘어버린 이가 있을 가능성도 충만했다.
망나니처럼 행패 부려봤자라고 할 만큼 적당히 이 세상에서의 난동은 일찌감치 접어뒀다. 혹시나 살아돌아간다해도 칼집이 부서진다면 정말로 무력해지기도하고.
"하찮다면 하찮은 걸 베어버렸군 하고 잊어버리면 된다. 그게 아니라면 술에 취한 상태도 눈을 감은 상태도 아니게 일전을 다하겠지.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무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이라고 해야할까."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정확히 쪼개고는 접시로 내온 야끼소바를 젓가락으로 빙빙돌려 3분의 1정도를 바로 입안 가득 먹어버린다.
뜨겁거나 한것도 신경쓰지않고, 빨리 빨리 먹어버리는 것이 습관이 된것이 컸다.
"항상 술을 마시는 식당의 맛보다는 못하군.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지만서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게 당연했다. 나는 나대로의 결론을 내었고 그 결론은 스스로도 이질적이라고 생각하니까.
수라의 마음을 가진 인간이라 들은 적도 있었지.
"이해할 필요 없다. 그저 그런 인간도 있었구나.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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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확실히 잘 판단하셨네요. 절 평균으로 잡는게 좋을진 모르겠지만요. "
확실히 이곳엔 강자가 많으니까... 하지만, 말했다시피 자신을 평균으로 잡는게 좋을지는 모르겠다. 성적은... 하위권이라고 생각하는데...
" 그건만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
하찮은 걸 베었다- 라는 부분은 결단코 아니다.
알맞은 상대에게 일전을 다한다. 이쪽이다.
나는 싸우는 걸 좋아했다. 가열차게 붙은 열기 속에서 뒤늦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게 되는 순간. 시원한 물결이 해변에 밀려오는 파도처럼 전신을 쓸고 올라가며 과열되어 가는 몸을 식혀주는 주자의 고양(Runner's High)이 일어난다. 나를 일깨우는 그 감각이 좋다.
" 그래요, 모든 사람을 이해할 필요는 없죠. 친한 사람이라도 너무 깊게 파고들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안 친한 사람이라면 더 그렇고. "
뜨겁지도 않은지 야끼소바를 빠르게 먹어치우는 당신을 보면서도 나는 속도를 맞출 생각도 없이 천천히 한 젓가락을 들었다. 이 일상의 순간에도 나와 당신의 속도는 다르다. 나도 하려고 한다면 이 뜨거운 국물을 한꺼번에 들이킬 수 있을 거다. 의념을 돌리는 한 나는 상태창에 S라는 한 글자로 표현되는 '건강'을 지니기에, 아무렇지 않게 위장 속에 국물을 다 담아 버리곤 '이 정도면 일반인은 목이 꽤 따가웠겠네.'같은 심심한 감상을 던질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건 이게 식사이기 때문이다.
" 준 것에 비하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었네요. 고마워요. "
먼저 감사를 한 건, 상대가 먼저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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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꽤 너는 무인이로군."
호승심. 정정당당. 그런 부류의 무인적인 이야기는 나쁘지않다고 생각한다. 내 세상이 그런 것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빌어먹었지만.
이쪽 세상은 싸움을 배우고 그것을 세상의 위기를 위해 쓰려고 이타적인 사람이 되어간다면 서로간의 대련 역시 피와 중상모략보다는
땀과 열정이 있겠지. 물론 세상에 위기에 있어서 흘리는 피가 있음에도 그렇지 않은쪽이 있다는 말이었다.
"뭐, 술이나 끼니를 제공 받을수 있다면 한번쯤 대련정도는 소개받고는 싶군. 그런식으로 한번더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까지나 직감의 이야기었다. 그렇지만 이쪽의 학생 몇명정도는 실전으로 가르쳐보고싶은 마음은 들었다.
내가 사는 곳이 아니기에 가르치는걸 써먹기는 할테니까.
"고마워 할 필요없다. 대가를 받은 만큼 이야기했을뿐."
어느새 다먹은 야끼소바접시를 내버려두고는 자리를 일어섰다.
"너무 이상에 매몰될 필요는 없지. 너는 네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무리하게 나서 죽을 이유는 없지."
어째서인지 나는 나의 제자를 생각하며 그리 이야기했다. 전혀 다른 인물이었지만. 자격없는 충고였다.
그럼에도 변덕적으로 하고 싶던 말을 그렇게 남기고 먼저 나는 다시 방랑으로 길을 들어선다.
- 생포 - 우주 파인애플[4스레~5스레]
- 초면에 다짝고짜 실드차지-!
순순히 잡혀라 우주-교란종!!
팔다리 달린 파인애플을 보자마자 달려가서 재빠르게 도약하고 애병을 한가운데에 퍽 내리찍었다.
...그리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먼지구름.
자, 잠깐. 생포해야 하는데. 다 죽은 건 아니겠지? 의념으로 시력을 강화해 먼지구름 안을 살펴보고, 다행히 불쾌한 형체가 서 있는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dice 1 20. = 6
생포한 파인애플 수 :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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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다짜고짜 내리찍는 것만 해결법은 아니다. 확실하게 살려 놓을(?) 방법과 포획할 방법도 같이 있어야만 실드차지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겠지...
...하루를 부를까? 될 리가 없지만.
" 아. "
혼자 다니는 파인애플 발견. 저 녀석이라도 잡을까? 생각했지만 다시 고개를 저었다. 한 마리는 너무 적다. 한 마리를 잃어버리는 대가로 시도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시도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 이리온. 혼자 다니는 파인애플아. "
반짝이는 자수정 같은 눈동자가 의념의 힘을 머금어 빛을 빨아들여 거두는 듯 투명하면서 흰 빛깔을 띄며 내밀어진 손바닥을 빤히 바라보는 파인애플을 향했다.
" 네 친구... 있으면, 여기로 많이 데려와줘. "
그리고 나는 매력까지 강화해서 꼬드긴 파인애플을 보내놓고 깜빡 잊고 다른 파인애플을 잡으러 자리를 뜨고 말았다...
.dice 1 20. = 12
생포한 파인애플 수 : 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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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을 열두 마리나 잡고 보람차게 돌아오는 길. 파인애플을 어디에 가둬놓고 있냐고? 그건 여자아이의 비밀이야. (※케이지에 들어 있습니다.) 아무튼 터벅터벅 길을 걷다가...
" 아. "
아까 꼬드겼던 그 파인애플이 아까 그 자리에서 벽에 기대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하지만 무릎을 끌어안기엔 몸이 너무 둥글어서 버거워하는 모습...
근데, 혼자네. 아직도.
" 친구 데려오라고 하지 않았어? "
- 도리도리.
" ...혹시 친구가 없니? "
- 끄덕.
이 파인애플들 정말로 지성이 있는 거 아닐까? 사실 말 안 통하고 나 혼자 상상하고 있는 걸수도 있지만 뭔가 대화가 통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렇게 혼자 한 시간 동안 나를 기다렸을 파인애플을 가엾게 여기며 살짝 꼭지를 잡아 들어올렸다. 바둥바둥거리는 파인애플을 주머니에 집어넣고(꼭지가 삐죽 튀어나와 있다) 다른 파인애플을 포획하러 길을 나섰다.
이번엔 좀 더 전략적이고 지능적인 포획법을 써봐야겠어.
.dice 1 20. = 2-1
생포한 파인애플 수 : 18개
**
" 후후. "
망념은 많이 들었지만 뭔가 됐다!
그것은 바로 파인애플 조각상. 오렌지 지르콘과 크롬 다이옵사이드로 파인애플 부분을 만들고 진주로 희게 팔다리를 만든 파인애플 조각상. (지나가던 제노시안이 보면 웃다가 실신할 정도 아닐까 싶지만, 일반인 정도 눈으로 보면 충분히 파인애플과 닮았다.) 마무리까지 완벽.
이제 의념의 힘을 불어넣는다. 보석 자체로 이루어진 조각상에, 보석이라는 의념으로 불어넣는 이상의 힘. 모든 욕심을 가진 것들, 생명체들의 본능적인 탐욕을 자극하는 아름다움. 의념기를 쓸 때의 응용처럼, 하지만 보다 단순하게. 아름답게 느끼고 갖고 싶다 느끼고 끌리게 한다.
그리고 위쪽에 고정해 놓은 다음 아래쪽엔 구덩이 함정을 파서, 이걸 보고 달려온 파인애플들이 단박에 빠지도록 한다! 흙에 물도 잔뜩 뿌려서 흥건한 진흙 구덩이로 만들어 놨으니 좀 더럽긴 하지만 빠져나가긴 힘들 거다. 주머니에서 파인애플이 버둥버둥거리며 팔을 내밀고 빼꼼 쳐다보고 있는 걸 보면 효과는 확실할 거다. ...아마도.
.dice 1 20. = 8
생포한 파인애플 수 : 19개 (+1)
**
나는 한 시간 후 파인애플 조각상 함정으로 다시 왔다. 그리고 함정의 뚜껑을 열어보자 거기에 있던 것은...
...다른 파인애플들을 올려보내기 위해 진흙을 뒤집어쓰고 굳기를 선택한 여덟 개, 아니. 여덟 마리의 발판이 된 파인애플이었다.
그래. 너희들은... 너희들은.
그 모습을 본 주머니 속 파인애플이 울먹이듯 이파리를 팔랑거리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구덩이 속으로 다가가 그들을 안아 올렸다.
난 지금까지 너희들이 '열매'라고, 단지 팔다리가 달린 '열매'라며 비하하고 있었지. 하지만 너희는 그런 게 아니야. 너희들은 각자의 긍지로, 동족을 살리기 위한 희생으로, 스스로가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한 '첫걸음'동물을 열었다. 그 의지를 존중하기 위해 살짝 고개숙여 목례했다.
하지만, 너희는 그것으로 만족하니?
정말로 그것으로 만족하니?
아니, 그렇지 않을 거야.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우리와 같은 영역으로 올라오고 싶다고, '인류'로 인정되고 싶다고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그들의 희생을 밟고 지상으로 올라온 자들이여. 자격을 증명하라.
너희들도, 『긍지』를 보여———!
지금까지 나는 '포획자'로서 너희를 잡아왔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챔피언」이다.
살아남기 위해, 더 나아지고 싶다는 희망을 가진 존재라는 걸,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라. 목숨을 걸고.
이젠 너희들이 「도전자」다. 와봐랏—!!
.dice 1 20. = 9
생포한 파인애플 수 : 27개 (+1)
**
대롱대롱 매달린 파인애플들을 케이지에 휙휙 던져 넣었다. 점점 이게 귀여워 보이기 시작한다니 머리 이상해질 거 같아... 아 다리 한짝만 빠져나오지 마... 흉물스러워... 보석 의념으로 케이지에 가로줄을 하나 추가했다.
이걸로 아홉 마리 추가네...
아무튼 좀 더 지능적인 방법을 써봐야겠다. 그 말은, 더 지능적인 실드차지를 날린다는 뜻이다.
팔다리 달린 파인애플로 언제 볼링을 해보겠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진열을 짠 파인애플들을 상대로 방패를 돌리며 솜씨 좋게 낮춰 날린다. 나가떨어지는 약한 파인애플 따위 케이지로 받아주지 않겠어! 햣-하-!
.dice 1 20. = 6
생포한 파인애플 수 : 36 (+1)
**
여섯 개나 버티다니 아주 훌륭하군.
신 한국의 선조들은 훌륭한 사냥꾼이셨다. 나도 이제 그 능력을 보여줄 때!
한 쪽 발을 땅에 박아넣듯이 단단하게 꾹 고정한 후, 몸을 낮추고 의념으로 신속을 강화해 박아넣은 발을 파헤치듯 휙 발목을 돌리며 한 바퀴의 칠 할을 돌린다. 나머지 한 다리를 속도에 맡겨서 휘두르는 순간 속도는 힘이 되고, 큰 힘은 여러 힘을 이긴다!
파인애플 걷어차기! 속이 뻥!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람? 정말 정신이 짐 싸고 나가고 있나 봐. 나가떨어진 파인애플이나 주워 와야겠어.
.dice 1 20. = 11
생포한 파인애플 수 : 4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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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파인애플을 독살하고 있다.
미친 소리 같지만 모두 진실이다.
왠지 수상해 보이는 마스크를 끼고 손에 있는 수상한 분무기로 투명한 액체를 뿌리고 있는 청월 학생...
이왜진?
액체가 무엇인지는... 묻지 말도록 하자...
.dice 1 20. = 18
생포한 파인애플 수 : 5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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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미쳐도 괜찮아.
아까전부터 파인애플한테 소금물을 뿌리고 있는데 꽤 효과가 괜찮다.
소금물 자체가 파인애플들한테 효과가 있는건 아니지만, 일단 젖어서 축축하고 기분이 나쁘다. 여기서 1차로 파인애플들이 시무룩해진다. 그리고 소금 때문에 파인애플이 짭짤해진다. 그래서 파인애플들이 2차로 시무룩해진다. 열심히 달려서 도망치다가 소금물이 마르면 몸에 소금 알갱이들이 붙어 있어서 남의 시선을 신경쓰는 소심한 파인애플들은 3차로 시무룩해진다. 그래서 도망치는 속도가 느려져서 잡히고 마는 것이다. (논리적)
...빨리 잡혀라.
.dice 1 20. = 8
생포한 파인애플 수 : 7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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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나무젓가락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나무젓가락인 이유는 내가 주변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나무토막이었기 때문이다. (편의점에서 점원이랑 합의 보고 뭉탱이로 가져올 수 있었다) 아무튼 나는 나무젓가락으로 무언가를 감싸고 있었다. 그래, 모두 예상했겠지만 파인애플.
나무젓가락 구조물만으로 계란을 감싸서 높은 위치에서 떨어트려도 깨지지 않게 하는 경진대회를 알고 있나? 알길 바란다. 아무튼 그런 것과 비슷하게, 나는 파인애플을 감싸서 던질 예정이다.
완성. 음, 마녀사냥 할 때 기둥에 묶어놓은 것 같이 생겼군. 하지만 문제는 없어. 자세를 잘 잡고...
파인애플 ☆ 시구
파인애플 ★ 시구
파인애플 ☆ 더 마제스티 ★ 어썸
슛~~!!!
.dice 1 20. = 6
생포한 파인애플 수 : 7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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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할 일이 생겨서 그런지 전 학원섬의 할 일 없는 가디언 지망생들이 열심히 파인애플을 때려잡고 있다. 그것도 열과 성을 다해 광기와 집착에 미쳐서.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생각하면서 얌전히 파인애플을 때려잡았다. 저 미친 학생들 사이에 아는 얼굴이 보이는 것 같지만... 기분탓이다. 기분탓이야. 오늘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밤의 학원섬을 누비며 희미한 불빛 아래의 초록색을 움켜잡으려 쭉 손을 뻗어간다.
.dice 1 20. = 10
생포한 파인애플 수 : 12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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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포한 파인애플의 수 : 136 (+1)
.dice 1 20. = 19
어어.
뭔가 레스가 거꾸로 뒤집힌 거 같은데.
하지만 거꾸로 뒤집혀 있는 건 방금 내가 내리찍은 파인애플이구나.
근데 레스가 뭐지?
... 모르겠다. 일단 양손에 파인애플을 들고 파인애플들을 때려잡는다. 슉 슈슉 슉 슈 슈 슉 슉 아바타스타 슈 슈슉 파인 슉 슈슉 파인애 슉 파인애플 슈슈슉 크로와상
...아니야! 나까지 물들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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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잡
¿오이것는없도것무아은혹오이것는하재존로제실은분구한팍얄는하분구을상세른다과상세이연과¿소있수할신확는재존의계세¿소있수할신확를재존의신당오이무임인적플애인파덜는기맡게에간인덜를재존닌아도간인도플애인파인적간인더진겨맡게에플애인파덜는무임의신당는무임의신당오이재존는되안는서쳐다는나오되안는서쳐해를나오하야아잡서려살는나오이인방이할못지되도적도님손요이인방이는없수될도쪽느어는나 고이플애인파 더 고이간인 덜 고았않 지닮 을간인 고았닮 을간인 ·리다 ·팔 ·색갈 ·색록초 ·색란노 ·플애인파
·시잠 도것 는있 고하각생 을말 는겠르모 지인뜻 슨무 도신자 나 고라 ¿나쳤미 어디드 가너오 ···야이일 슨무 체대 게이 ·만지이말 라니아 가스레 는히확정 ¡아잖있 혀집뒤 로꾸거 가스레 로말정 라니아 이각착
.dice 1 20. = 4
생포한 파인애플의 수 : 15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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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서 나와라. "
파인애플 주스에 케미컬X(아니다)를 섞은 금단의 살충제. 아니, 살도 아니고 충도 아니니까... 퇴파제. 파인애플을 퇴장시킨다는 뜻이다. 아무튼 퇴파제를 아까 쓰던 분무기에 넣어 칙칙 뿌리고 있다.
-숨어있다고 모를 줄 알고!
-조미료와 향신료에 버무려진 너의 동족의 피륙의 맛을 보아라!
...앗, 이 위의 두 문장, 그것도 바로 윗 문장은 절대 내가 한 말이 아니다. 어딘가에서 나랑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수상할 정도로 파인애플에 미친 학생의 목소리다.
아마도?
.dice 1 20. = 17
생포한 파인애플의 수 : 16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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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내 몸에서 나가 온)
(대충 그럴 순 없지 사비아)
(대충 두 인격이 싸우는 내용)
(대충 두 인격이 화해하고 사이좋게 파인애플 잡는 내용)
(대충 그동안 비아의 쩔 경험치를 고스란히 먹고 레벨업한 파인군과 비아의 육탄돌격 내용)
(대충 대충)
(대충 격鬪 장면)
(격파!)
.dice 1 20. = 1
생포한 파인애플의 수 : 18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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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밤, 불빛을 밝히는 등불들이 있으면 어둠은 몰아져 사라지기 마련.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으리라.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파인애플을 쓰다듬고, 잡아넣은 파인애플들 위에 올려놓았다.
너는, 어딜 가든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 고마워 파인군. "
안녕...
.dice 1 20. = 7+1
생포한 파인애플의 수 : 184
- 토순 드 바비 폭쉰폭쉰 일상(5스레~8스레)
- ...정말, 이게 무슨 일이야? (청월 기숙사 근처에서 도발하듯 짖어대는 메카-댕댕이*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오늘은 다르다. 무려, 메카-댕댕이와 파인애플 간에 싸움이 붙었다! 파인애플을 잡으러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중에 이런 걸 보게 되다니... 솔직히 둘 다 쓰러지길 기다리고 파인애플만 주워가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지만, 기준은 생포니까. 죽을 수도 있는데 내버려둘 순 없다.) 아무튼, 너네 둘 다 말 통하지? 그쪽 댕댕이, 인공지능이던 통신기던 둘 중 하나는 있을 거 같은데. 그 파인애플 생포하라는 의뢰까지 내려온 외계 생명체들이니까? 그리고 너희 파인애플들도 잘한 거 없으니까... 하아... (...말이 통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것들을 중재하자니 현자타임이 올 것 같다. 그냥 방패로 죄다 때려눕히고-를 생각하고 넙데데군을 꺼내려 하다가-) 여기, 지금 파인애플과 메카-댕댕이로 난장판이니까 옷에 과즙 묻히고 싶지 않으면 오지 않는 게 좋을 거에요. (하고 당신이 있는 쪽을 보고 말한다.)
*제노시아 학생이 제작하는 기계로 된 댕댕이. 말 그대로 금속질인 것부터 평범한 개와 외형적으로 구분이 되지 않는 것까지, 제작자의 개성에 따라 다양하다. 이 댕댕이는 청월 침공파인 제노시아 학생의 것이므로 금속질.
**
(토끼-별님은 길을 걷고 있었다. 팔다리 달려서 원숭이처럼 뛰어다니는 파인애플을 밟지 않으려 애를 쓰며 길을 걷고 있었다, 가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하여튼 별님은 길을 걷고 있었는데요.)
어...
(그러니까, 강아지? 저거 강아지 맞지? 하여튼 어딘가 인조적인 강아지와 파인애플이 싸우고 있고, 한 여학생이 그걸 말리고 있었다. 아니 저거랑 말이 통하나?)
어.... 안녕..?
(과즙이란 말에 제 티셔츠 한번 봤다. 확실히 흰색이긴 한데. 어차피 티셔츠 얼룩 정도는 능력으로 대충 지우고 사는 편이라 상관없었다.)
그.. 너는 괜찮아?
(교복 더러워지면 곤란하지 않나. 파인애플 한번, 메카-댕댕이 한번, 비아씨 한번. 다시 파인애플 한번, 메카-댕댕이 한번, 비아씨 한번. 바라보고는 도와줄까? 하고 묻는다.)
**
안녕...하세요. (예상치 못한 인사가 와서 그쪽을 돌아보며 응대하긴 했지만, 이 개-난장판에 뛰어드는 사람치곤 여유로운 인사인데. 하고 생각하면서 과즙 어쩌구 하는 말을 이때쯤 했을 것이다.) 저요? 저는 청월 교복을 입고 있으니까 괜찮은걸요. (당연히 괜찮다. 왜냐하면 동북아시아 아카데미의 교복들은 기본적으로 방어력은 없을지라도 더러워지지 않는다는 효과가 있으니까. 상대는 사복을 입고 있다. 교복이 없는 성학교의 학생이라서 관련된 걸 모르는 걸까...?) 아는지 모르겠지만, 교복은 절대 더러워지지 않아요. (무려 가디언칩의 아이템 설명이 보장한 내용이다. 그리고 도와줄까 하는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말한다.) 도와주신다고 하면 고마운 일이지만, 어떻게 도와주시게요...? (도와준다면 사양할 생각은 없다. 뭔가 지금 도움이 될 만한 기술이나 의념을 갖고 있는 학생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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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월 교복은 절대 안 더러워지는거야?!?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 시끄러웠다는 생각에 입을 합, 하고 다물고 살짝 눈치를 봤다. 하지만 놀란 건 놀란 거라서.. 눈이 퍽 땡그랗게 커졌을지도 모른다. 신기하다! 마법인가? 작게 중얼거리곤 교복을 기웃거렸을지도 모른다.)
청월 교복은.. 편하네. 그러면 안 빨아도 냄새도 안 나? 그건 좀 부러운데.
(그리고 다시 파인애플과 메카-댕댕에게 시선 돌렸다. 세상에살려주세요아무리별님이어도산치체크를해야할일은가끔)
어..떻게 도와..주냐면 말이야...
(심호흡 크게 쉬었다. 귀농한 입장에서 볼 때는 돌아다니는 파인애플은 좀... 정신력에 무리가 간다고 해야하나. 작게 중얼중얼거리며 파인애플 덥석 잡아들었다.)
.dice 1 2. = 2
1. 성공
2. 실패
(성공했다면 이렇게! 하며 자랑스럽게 파인애플을 라이온킹 자세로 비아에게 들여보였을 것이다.. 얼굴이 살짝 새파랗나..?)
(실패했다면 비명 지릅니다. 으아아 살려주세요 쟤가 꿈틀거렸어요 내가 잡았는데 손 안에서 으아악)
**
청월 교복만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제노시아 교복도 똑같이 더러워지지 않으니까요. (목소리가 커진 것을 그리 신경쓰진 않았다. 오히려 당신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합 다무는 큰 반응을 보이는 것을 더 신경썼을지도 모르겠다.) 마법이 아니라 아이템 효과에요. 소속교의 학생임을 증명하고, 절대 더러워지지 않는다는 효과가 붙은 아이템이니까요. 안 빨아도 냄새는 안 나긴 하지만 몸은 씻는데 교복은 쭉 입고 다니는 건 좀 불편하니까 빨긴 빨아요... (이쯤-3학년- 됐으면 그냥 사시사철 빨지도 않고 교복만 입고 다니는 효율의 노예도 하나둘 생겨나는 법이지만, 나는 적어도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의념각성자가 아닌 일반인이 하루에 필요한 만큼 자고-그만큼의 수면이 필요하지 않더라도-, 하루 세 끼를 챙겨먹고-오래 굶어도 별 문제 없을지라도-, 기숙사 세탁기에 규칙적으로 교복을 빨고-더러워지지 않는 물건이라 할지라도-. 그런 규칙성을 지키는 건 고지식함의 발현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좀 비합리적일지라도 그런 규칙성을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었다.) ...괜찮아요? (당신이 중얼거리는 것 하며, 아무리 봐도 괜찮아 보이지 않는 것에 걱정했다. 그리고 파인애플을 덥썩 집어들더니 파인애플이 손 안에서 꿈틀거렸다는 것에 기겁하는 것을 보고 이럴 것 같았어. 하고 소용없는 생각을 하며 파인애플을 잡아 가져오려고 한다.) 무리할 필요까지는 없는걸요. (발에 달라붙는 파인애플을 그 매달리는 팔다리째로 휙 차올려 달려오는 메카-댕댕이 하나와 추돌시키면서 당신 쪽을 바라보고 은유적으로 가라는 듯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 뒤에서 수상할 만큼 붉게 반짝이는 메카-댕댕이의 눈동자를 보지 못하는 채로.)
**
그렇구나, 빠는구나..
(눈 깜박였다. 제 앞의 성실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 사소한 규칙이라도 최선을 다해 지키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은 싫지 않다. 오히려 반대지.)
어, 응.. 괜찮아.
(민폐를 끼친 것 같아 조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거 파인애플 응... 손 안에서 꿈틀대면, 자연스레 그 파인애플을 키운다는 생각까지 이르러버린다. 그러면 으악 파인애플이 텃밭의 당근을 훔쳐가고있어 같은 이상한 생각도 들고)
하지만 말이야, 어... 어....
(자연스레 메카-댕댕과 비아 사이에 서려고 했다. 아무리 봐도 저 강아지 비슷한 건 이상하다. 이상한 분위기를 풍겼다.)
가끔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때가 있잖아?
(엄밀히 말하자면 토끼 손이지만- 하고 웃어버렸다.)
그리고 저 강아지, 응. 눈이 빨개졌는걸. 난.... 그.. 우리 차원에서는 보통 영화에서 기계 눈이 빨개지면 위험한 징조란 말이야.
(마지막 말은 속삭이듯 빠르게 말했다. 말해버렸다. 말해버렸습니다. 심호흡했다. 제발 저 강아지가 이 말을 듣지 못했으면 하고 간절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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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고 나서 안 빤 옷을 입으면 괜히 찝찝한 느낌이 들곤 하잖아요. (...물론! 고지식함의 발현도 있지만 그런 것도 있었다. 평범하게 찝찝함이 느껴지는 게 싫다고나 할까.) 괜찮다면 됐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는걸...? (미안한 걸까, 조금 작아진 목소리에 힘을 주고 싶어 일부러 친근하게 느껴지게 살짝 말을 놓았다. 부담감을 가지게 할 의도는 없으니까.) ...무슨 일 있어요?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때라며 웃는 모습에 빠르게 말투를 되돌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빠르게 덧붙인 말에 표정을 굳히고 뒤돌아봤다. 그리고 있던 건... 메카-댕댕이의 빛나는 눈이 둘둘-하나하나가 아니다. 두 눈이 동시에 빨개지니까.- 붉게 변해가는 딱 봐도 수상한 광경...! 저렇게 변하다가 자폭해버리는 패턴도 봐서 섣불리 공격하지 못했지만, 그 대가는 컸다. 메카-댕댕이들이 불연듯 조각조각 나뉘어지면서 각자 붙고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뭐, 뭐야 저게...! (메카-댕댕이의 합체! 여러 메카-댕댕이들이 하나의 거대-로봇으로 합체!) 저... 저거랑 싸워야 하나...?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합체한 메카-댕댕이였던 것을 바라보다가 바닥에 통통 떨어지는 소리에 파인애플 쪽을 바라본다. 메카-합체로봇과 키를 맞추려고 자기들끼리 인간 피라미드를 쌓으려는데 1층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해서 계속 떨어지고 있다. 덤 앤 더머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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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맞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논리다. 진지하게 고개 끄덕이며 동의했다.)
뭐.. 토끼는 강하니까! 응! 괜찮다고 해야겠-
(그리고 메카-댕댕이 합체하는 것 보고 전혀 안 괜찮아져버렸습니다. 다급하게 그나마 의지되는 사람 -비아-에게 시선을 돌려보았지만 저 쪽도 저게 뭐냐고 반문하는 걸 보아하니 저런 상황은 처음인 모양이다. 로봇이 인간을 공격하는건가? 내가 여기 오기 전에 터미네이터를 보고 와서 업보를 처맞는 건가?)
저..저거, 응.. 선도부에 안 일러도 되는 거야?!?
(그리고 파인애플들 봅니다. 어쩌면 우리가 상대가 아니라 저 파인애플 상대로 합체한 걸수도. 그러면.. 파인애플을.. 도와줘야 하나? 그런 건가?)
그, 파인애플들.. 도와줘야 하는 걸까? 나.. 쟤네랑 싸우면.. 쓰러져버릴 거야..
(비아씨 귀에 대고 속닥이려고 합니다. 가능하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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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부 분야랑은 좀 다르지 않으려나요... (선도부는 의념을 무효화시킬 수 있으니 학생들이야 잘 때려잡지만... 아니, 오려면 진작에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저걸 만든 사람을 처벌해달라고 부르는 거면 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좀 그렇죠. (그야 바로 눈앞에 있으니까.) ,,어... 파인애플을 도와줘야 하나...?,, (삼파전이 아니라 파인애플 쪽에 붙어서 합체-댕댕이와 싸우는 거? 둘 중에 어느 쪽을 도와야 할까 생각하면 파인애플 쪽에 마음이 가긴 하는데. 똑같이 당신한테 속닥속닥거린다.) ,,아마 둘 다 두고 도망치던가 덜 위험해 보이는 파인애플을 도와주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아, 그쪽 분은 어느 쪽이 괜찮을 거 같나요? 물론 억지로 같이 있어 달란 말은 안 할 거에요.,, (아마 이쪽한텐 전투력을 기대하기 힘들 거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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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다른 거야?
(톡방에서 누군가가 선도부를 부른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거구나, 그거. 응. 만능이 아니구나.)
,,나도 파인애플을 도와주고 싶어. 그ㅡ그그런데 그 초차원적인 능력 막 써도 사람들이 의념이라고 생각해줄까?,,
(아무래도 잡혀가면 곤란하니까요. 눈썹이 축 처졌다.)
,,누군진 몰라도 이런 상황에 내버려 두고 가면 토끼의 도덕에 맞지 않는 일이니까.,,
(속닥-결연하게 선언하곤 파인애플 편 쪽으로 섰다. 아 근데 도망치는게 나을지도 하는 생각은 토끼-무의식에 집어넣어서 잠갔다. 넌 들어가있어!)
싸우기 전에! 이름! 물어봐도 될까!
(나름의 기합이다.)
**
선도부는 학생을 잡기 위한 조직이니까요. 저런 로봇을 상대하면 평범한 가디언 이하겠지만 다른 의념각성자를 상대할 때는 의념을 무효화해 어린아이 손목 비틀듯 쉽게 잡아낼 수 있게 하는 심화 클래스, 제압자를 전원이 보유하고 있으니...
(...같은 설명을 하고 있자니 설명충이 된 기분이다.)
,,...저기, 혹시, 그,이세계인?,,
(묘하게 상식이 없다... 라는 것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그 생각에 근거를 실어주는 말이 나와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평범한 성학교생한테 혹시 이세계인이냐고 묻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아서, 좀 주저하긴 했지만...)
,,무엇이든 평범한 인간이 못 하는 일을 하면 대부분 의념 의념기 기술 셋 중 하나로 생각하는 게 보통이죠, 오히려. 악용은 역시 안 되겠지만, 지금은 방위행위로 인정되는 게 아닐까요...?
그보다, 토끼에요...?,,
(정체성이 토끼 같은데, 말이. 아무튼 뜻밖의 기세로 파인애플을 향하는 그녀를 따라가며 방패를 꺼냈다.)
사비아, 청월고등학교의 3학년생 사비아에요.
(그 기합에 맞추듯 당당하게 줄이지 않은 목소리로 이름을 말하고 기계적인 크르릉 소리를 흘려대는 합체-댕댕이 쪽으로 시선을 향한다.)
**
선도부.. 생각보다 대단한 곳이었구나.
(고개 끄덕인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텍스트로 읽는 것과 직접 듣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응응 이세계인이야. 그럼 역시 토끼도 진심으로 해야겠네.,,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서, 눈을 질끈 감고, 제발 맞아라! 하고 속으로 소원을 빌고, 빛 비슷한 것을 쏘았다. 그와 동시에 크게 외쳤다. 이것도 일종의 기합이다.)
그래!!! 난!!!!!!!!! 토끼야!!!!!!!!!! 그런데 사람 모습을 곁들인!!!!!!!!!!! 알았지 사비아?!?!?!?!?!???
.dice 1 4. = 2
1. 머리에 맞았다
2. 가슴에 맞았다
3. 다리에 맞았다
4. 빗나갔습니다 유감
(머리에 맞았다면 메카-댕댕은 높은 확률로 크게 휘청였을 것이고, 가슴에 맞았다면 메카-댕댕은 높은 확률로 뒤로 밀려났을 것이고, 다리에 맞았다면 메카-댕댕은 높은 확률로 넘어졌을 것이고, 빗나갔으면 100% 확률로 토끼-비명을 지를 것이다.)
**
학생회 산하 조직이니까요.
(학생회... 자체도 최-소 가입조건이 무기술 S인 곳이니까. 산하 조직이라고 만만하진 않을 것이다.)
,,그랬나요... 좀 상식 없는 성학교생이라고 착각했는데...,,
(보통 당연히 이세계인이라고 눈치채진 않으니까!!)
알았어요!! 근데 그게 무슨 말투에요?!
(요상한 말투로 인간같은 토끼 인증(?)을 받았지만 손 빵야의 위력은 좋았다! 막 달려올 준비를 하던 합체-댕댕이 토끼 빵야 빛을 맞고 방어태세를 취하면서 쭉 밀려났다고!)
좋아, 그러면 나도...!
(나는 근접공격이다. 그대로 방패를 들고 합체-댕댕이한테 과감한 공격을 시도한다-!)
.dice 1 4. = 3
1. 머리를 쾅! 스턴에 걸린 합체-댕댕이!
2. 맞은 데 또 때리기... 가슴판을 확 박살내버린다.
3. 다리를 후린다! 넘어뜨리기!
4. 파인애플이 다리를 잡아서 넘어지기! (?)
**
학생회는 대단하구나.
(정정했다. 선도부가 아니라 학생회 전체가.. 대단한 거였구나)
,,내가 상식이 없는 줄 알았어?!? 좀 상처인데?!?,,
(실제로 학생이면 상식이 없는 걸 뛰어넘어서 학교 관련된 그 어떤 것도 알지 않으려 하는 그런 축에 속하는.. 지경 아닌가?!? 속으로 눈을 땡그랗게 떴다.)
제모옥은 이상한 말투입니다! 그런데 이제 살려주세요를곁들인?!?!??!??????????????
(메카-댕댕이 쭉 밀려나는 것만큼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그리고 비아의 방패에 다리가 후려져서 넘어졌다-?!?!?? 아니 비아씨 강하잖아?!?)
미안해..! 그런데.. 그.. 파인애플한테 싸움 걸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나한테도! 속으로 외쳤다. 넘어진 메카-댕댕에게 다시 한번 빛 덩어리를 쏘려고 했다.)
.dice 1 3. = 3
1. 덩어리가 맞아서 메카 댕댕이 기절해씀다ㅡㅡ
2. 덩어리가 맞아서 메카 댕댕이 개빡쳤씀다
3. 덩어리가 빗나갔다! 저런! 유감!
(메카댕댕이가 기절했다면 비아에게 하이파이브를 시도할 것이고, 메카 댕댕이 개빡쳤다면 다시 토끼-비명을 지를 것이고, 빗나갔으면 비아에게 미안해!!!!!!!!!!!를 지를 것이다)
**
대단하죠...
(자신의 목표 중 하나이기도 하고, 친구가 몸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없는 줄 알았어요! 미안해요!
(땡그랗게 뜨는 순진한 눈에 좀 미안하지만 사실이었다!)
왜 자꾸 뭔가를 곁들이는 건가요-!!
(합체-댕댕이의 무릎을 노리자 이족보행의 고질적 문제로 균형을 잃어버린 합체-댕댕이를 넘어뜨리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살짝 빈 틈에 태클을 걸었다.)
좋아, 이대로... 어, 어라?
(잠깐만, 미안해라니? 라고 생각하자마자 빛 덩어리가 날아오는데... 빛 덩어리에 나를 휘말아 드셔보세요. ...가 아니야!! 휘말리잖아!!!)
(.dice 0 100. = 81만큼의 데미지를 입는 비아)
**
그건 좀 진짜 상처인데?!?!??
(이젠 목소리 낮출 노력도 안 한다!)
마스터 셰프 안 봤어???? 아, 차원이 다르니까ㅡ
(말을 끝맺지 못한 것은, 제 빛 덩어리가 빗나가서 비아를 가격한 것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라,)
비아씨?!?!?!?!?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비아를 붙들려고 했다. 성공했을지는 미지수지만.)
그, 그, 괜찮아? 미안해! 어.. 괜찮아? 아파? 치료해줄까? 나 할 수 있는데, 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
....어... 생각보다 되게 강하네 당신...
(어질어질. 81/100의 데미지로 얻어맞은 빛은 상당히 강력했다. 그리고 붙드는 토끼씨에게 의지해 몸을 일으켰다.)
아, 아니... 당장은 말고. 그것보다 저 합체-댕댕이를 마저 쓰러트리는 게 좋지 않을까? 슬슬 일어날 거 같은데.
(자세히 보이지 않아서 확신은 못하겠다만, 왠지 파인애플들이 이 광경을 보고 뭔가 깨닫기라도 했는지 합체-댕댕이들을 막아서려고 하는 것 같아서, 파인애플들한텐 미안하지만 아무 도움 안 될 거 같으니 그냥 가라고 말하고 싶다.)
이 정도 위력이면 정통으로 박아넣으면 한동안은 스턴일 것 같으니까... 그 정도면 괜찮아질 거야.
**
아, 아니 그래도 미안한 건 미안한 거니까...
(한 손으로는 비아를 여전히 꾹 붙들고-불안했다-, 나머지 한 손으로 빛 덩어리를 메카-댕댕에게 쏘았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메카-댕댕이 쓰러졌다. 파인애플들이 우왕좌왕하는 게 곁눈으로도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괜찮아? 많이 아파?
(비아를 조심스레 붙들고 이곳저곳 살펴보려고 했다.)
보건실 같은 곳 있나? 내가... 어.... 죽어서 사과해야...
(어지간히 미안했나보다.)
**
그렇게... 많이 아프진 않아. 이래뵈도 튼튼한 게 장점이라서.
(라고 하기엔 여전히 많이 아프지만. 거, 건강 S가 울고 있어...)
아니, 다친 건 고칠 수 있지만 죽으면 살릴 수 없으니까?
(아주 없진 않겠지만.)
우리 학교에는 보건실도 있고, 이 정도는 큰일 아니야. 애초에 이 정도 가지고 쓰러지면 전장의 맨 앞에 설 수 없어.
(라고 말하는 건 조금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이었을까. 속으로 살짝 기합을 넣고 이곳저곳 살펴보는 토끼씨의 머리카락에 손을 올려 살짝 쓰다듬는다.)
봐, 멀쩡하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가 없어서 진짜 멀쩡해 보이는진 모르겠지만, 상대는 민간인이다. 이세계인에, 무력을 가졌어도, 이 세상에선 민간인 신분 이상이 아니다. 원래 성격상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약간의 허세를 섞었다.)
**
(비아의 말을 듣다가 눈에 띄게 동요한 것은 전장이란 말 한 마디 때문이었을까. 전쟁을 이유로 상처에 익숙해지는 건 옳지 않다.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렇게 믿었다. 제 유일한 가족 중 하나는 용병이었고, 종종 다쳐왔고, 그래서 그것은 전쟁과 상처에 더 예민했다.)
아니야, 그런 말은 옳지 않아.
(비아의 몸에 손바닥을 댈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낫게 해주세요, 하고 소원을 빌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전장 맨 앞에 서더라도 아픈 건 아픈 거야. ...그리고, 사비아 씨가 그런 말을 하면, 비아 씨를 아끼는 사람이 아주 슬퍼질 테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마.
(손바닥을 떼고 웃었다.)
우리, 처음 보는 사이지만 말이야. 정작 내가 다치게 한 주제에 잔소리가 너무 많았나, 응..
*나았는지의 유무는 비아주가 결정해주세요(mm )
**
...알고 있어.
(나았다. 수술이나 치료 같은 기술이 아니라, 그냥 나아버렸다. 이세계의 기술? 힘? 뭔진 모르겠지만 당장에 집중했다. 그 말이 오히려 더 불안하게 만들었던 걸까. 생각하며 그렇게 말했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다치면 아프고, 다른 사람을 걱정하게 만드는 거. 알고 있어. 그래도 모른척했는데, 그게 너를 더 걱정하게 만들었나보구나.
(자신은 그걸 알고 있어야 한다. 누구보다 알고 있어야 한다. 자신이 맡고 있는 역할을 희생이라는 단어로 더럽혀선 안 되기에.)
처음 보는 거랑은 상관 없잖아. 그리고 그건 실수였잖아. 그러니까 너무 부담감 가지진 마. 지금은 정말, 깨끗이 나았고... 자, 봐—
(방어력을 기대 못 하는 옷이다보니 교복은 좀... 상태가 안 좋긴 하지만. 난 괜찮다.)
일단 저거... 는 놔두고, 우왕좌왕하는 파인애플들도 데리고 가야지. 기껏 도와줘 놓고 두고 갈 순 없잖아?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웃는다. 적어도 내가 맞았던 걸 파인애플이 맞진 않아서 다행이라고. 팔다리 달린 파인애플이 터지는 모습은 정말 보고 싶지 않았다!)
**
(그제야 풀린 웃음을 지었다. 응, 알고 있다면 됐어. 작게 속삭였다.)
가끔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조금 불안했어. ..응,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걱정은 조금 내려놓도록 할까.
(사람은 너무 연약하다. 머리를 다치면 죽는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도 죽는다. 작은 상처가 감염되어도 죽어버린다. 그러니까,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항상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를 보는 심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파인애플, 응....
(그리고 이건 별개다. 세상에조금산치핀치! 산치핀치! 파인애플! 심호흡을 하고, 파인애플 한 덩이를 양 손으로 꾹 쥐었다. 움직이지말아주세요제발)
..그, 새 옷 필요해?
(파인애플 하나를 집자 나머지 파인애플들이 따라오는 성도 싶었다.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
나도 필요할 때가 아니면 허세를 부리진 않으니까...
(라고 말하며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어디까지 도움을 받는 걸까.)
...근데 그 파인애플 잡는 거 괜찮아? 케이지를 갖고 왔어야 했는데.
(양손에 파인애플을 들고 서로 꽁 부딪쳐 스턴상태에 빠트린다. 100마리 잡았을 때쯤 얻었던 테크닉. 그리고 보면 파인애플 한 덩이(?)를 간신히 잡고 있는 듯한 상대가...)
필요할 거 같은데. 교복은 재지급 신청을 하던가 해도 당장 망가진 상태로 돌아다니는 건 좀 그러니까.
(파인애플을 안으면 좀 가려지는군. 하지만 이런 걸로 가리고 싶지 않다. 돌려줘~ 돌려줘~ 라는 건지 와아~ 영웅~ 이란 건지 모르는 느낌으로 이쪽을 쫄쫄 따라오는 파인애플들에선 시선을 뗀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심정이 이랬을까?)
아, 그러고보니 자연스럽게 말을 놓아버렸는데 괜찮아?
- 탐색 - 우주선![7스레]
- 이런 델 함부로 돌아다니는 것도, 허락받지 않은 걸 가져가서 쓰는 것도 난 그리 할 생각이 없는데.
...지금 하고 있네.
이-이건 고의가 아니라. 전에 파인애플을 잡을 때 정신이 잠깐 가출했을 때 같은 무언가니까. 재미를 위한 캐릭터 붕괴... 아니,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무튼, 별 문제는 안 될 거라고 믿고 싶다.
.dice 1 10. = 7
**
사비아는 집무실로 이동합니다!
문 앞에 번역기로도 번역되지 않는 외계어와 함께 노란 별 로고가 박혀있는 문을 마주합니다.
보안카드에도, 민트색 박스에도 새겨져 있던 로고가 이 문에 새겨져 있는 걸로 보아, 추측컨대 노란 별 로고는 이들 우주인 혹은 그들의 군대를 상징하는 로고로 보입니다.
내부로 들어가시겠습니까?
**
이건...
...일단, 들어가볼까.
들어간다 : .dice 1 10. = 10
**
사비아는 집무실로 들어갑니다.
굉장히 고풍스런 분위기의 가구와 책장, 그리고 모니터가 놓여있는 책상이 사비아를 반겨주고 있습니다.
책상 위의 명패에 나리리 대위 라는 이름이 적혀 있는 걸로 보아 아마 이 대위란 사람이 쓰고 있는 방으로 보입니다.
**
나리리 대위...
대위...?
높은 사람이잖아?
그-그런 곳에 함부로 들어와도 되는 건가?
하지만 나는 불쌍하게도 오너의 손에 놀아나는 캐릭터였다. 씁, 어쩔 수 없지. 책상을 한 번 살펴볼까...
책상을 탐색 : .dice 1 10. = 2
**
사비아는 책상을 살펴봅니다.
사과모양인지 별모양인지 알수없는 로고가 박혀있는 모니터와 마우스, 키보드와 연필꽂이가 놓여져 있는 것 외엔 지극히 평범한 책상입니다. 책상 한켠에 한 개구리의 사진이 담긴 액자가 놓여있는데 아마 사진속 주인공이 이 방의 주인인 듯 보입니다. 어라, 이 모습 아까 파티장에서 본 적 있는 거 같은데 말입니다, 별 거 아닐테니 넘어가도 좋겠지요?
사비아는 책상 서랍을 열어봅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괴상한 음식을 발견합니다.
사비아는 우주-오코노미야키 FX와 조우합니다!
FX HP 200
사비아 HP 400
dice 1 100 을 굴리시는 것으로 오코노미야키를 제압하실 수 있습니다. 싸우시겠습니까?
**
" ...?! 오코노미야키?! 오코노미야키 어째서?! "
ㄴㅇㄱ 상상도 못한 오코노미야키
그것도 뭔가 우주-스럽게 생겼어!
잘은 모르겠지만... 이거랑 싸워야 한다는 건가...
그러면, 걸려온 싸움은 피하지 않겠어!
싸운다! : .dice 1 100. = 42
**
사비아는 방패를 들고 돌격합니다!
오코노미야키가 순간 피하지 못하고 부웅 날아가더니, 이내 자세를 다잡고 기묘한 자세를 취하며 사비아에게로 기어가기 시작합니다!
FX 158
사비아 400
dice 1 100 을 굴리시는 것으로 오코노미야키를 제압하실 수 있습니다. 계속 싸우시겠습니까?
**
" 오코노미야키를 잡는 꿈을 꾸고 있다. "
지금 이 순간, 그것을 실현할 때다!
기묘한 자세로 기어오는 오코노미야키를 보며 나 또한 달려서 서로간의 거리를 좁힌다. 그리고 신체를 강화해서 상대를 밀쳐내다 못해 짓뭉개기 위해 달려가는 원심력에 강화된 신체를 더해 방패로 강하게 들이받는다!
싸운다! : .dice 1 100. = 64
**
사비아는 방패로 오코노미야키를 들이받습니다!
의념으로 강화된 신체로 들이받았기 때문에 제아무리 우주의 음식이라 할지라도 이번에는 멀쩡하지 않겠지....싶었지만 어째서인지 아직도 파닥거리고 있습니다! 다만 충격에 의해 당장은 움직일 수 없는 듯 보입니다.
FX 94
사비아 400
dice 1 100 을 굴리시는 것으로 오코노미야키를 제압하실 수 있습니다. 계속 싸우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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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살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
유감이지만 그런 것의 숨통을 끊는 건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나는 움직이지 못하고 파닥거리는 녀석을 상대로, 일격에 끊어낼 각오로 강화된 신체의 힘을 담아 방패의 모서리를 내리찍는다.
방패 그 자체를 무기로 사용한다면, 공세로 들어갈 때는 상대의 반격을 허용할 여지를 만들 수밖에 없다. 빠르게 끝내거나, 수세를 유지해나가거나, 다른 무기를 얻거나. 나한텐 그런 게 없으니.
내리찍는다.
싸운다! : .dice 1 100. =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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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내리찍고 내리찍었음에도 오코노미야키는 여전히 파닥거리고 있습니다.
우주의 음식들은 다 원래 이렇게 질긴 걸까요? 어떻게 의념으로 강화한 신체로 찍었음에도 살아있는건지 정말 신기한 세상입니다.
FX 38
사비아 400
dice 1 100 을 굴리시는 것으로 오코노미야키를 제압하실 수 있습니다. 계속 싸우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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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정말로 끝내야 해. "
손모가지를 걸어라, 오코노미야키.
다이스를 조작하더라도 고작 한 턴 버틴다는 걸 알아야지.
고통 없이 죽는 쪽이 편하잖아, 안 그래?
이만 죽어라.
제압하기! : .dice 1 100. =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