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향―
환상향의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147계였으며, 여월如月*이었지요.
현재 시각은 진시辰時. 아침때의 모든 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거나 이미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은 때입니다. 물론 이는 인간적인 사고방식일 테지만요, 요괴는 대개 야행성으로 지내고 있고 아침에 기상하리라는 법도 없으니.
평범하디 평범한 아침일 텝니다.
당신에게도 그럴까요? 아니면 오늘은 왜인지 모르게 어딘지 특별한 기분이 들었으려나요.
어느 쪽이든 좋습니다.
당신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을 말미에 달아 자유롭게 행동해봅시다.
* 음력 2월을 달리 부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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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밝아온다. 안개가 짙은데다 항상 어둡고 침침한 이 숲에도 아침이 되면 간신히 빛이 비집고 들어온다. 작은 면적에 햇빛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나름 나쁘지 않은 감상을 읊을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고 있을 시간은 없다. 딱히 바쁜건 아니지만 겨우 쏟아지는 햇빛에 감상을 말하고 있을 시간도 없으니까.
" 슬슬 돌아가보실까. "
그나마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말려두었던 육포(그렇지만 안개 때문에 잘 마르지는 않았다.)를 가져온 바구니에 다 쓸어넣고서 나는 음림 어딘가에 위치한 작은 공터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 음림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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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집에 가는 길에 방해될 만한 것은 딱히 없었습니다... 아키히요는 무사히 육포를 가지고 공터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집 있는 쪽에 방해가 없다고는 하지 않았지만요.
산발이 된 금빛 머리칼을 늘어뜨린... 남성? 여성? 이 흰 한복을 풍성하게 입은 채로 발발발 떨고 있었습니다. 추운 것인지, 음림이 무서운 것인지 여기저기 심히 곁눈질을 하더니 아키히요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더군요.
"거... 거기 자네! 당..신? 저기 그, 잠시 괜찮을까요... 오래 방해는 하지 않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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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으나 집에 도착했을즈음엔 평소와 다름이 있었다. 뭐, 평소와 다르다곤 해도 음림에 이렇게 누군가가 나타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니까. 다만 꼴을 보아하니 귀신으로 의심해도 무리는 없을듯 했다.
" 음림은 함부로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고 들었을텐데, 꼴을 보아하니 꽤 오래 돌아다니셨나보오. "
산발의 금빛 머리카락은 환상향에선 쉬이 보기 힘든 머리색이었다. 선인... 그래, 신선이 된다면 머리가 형형색색이 된다고 했는데 형색을 보아하니 신선은 아닌 것 같고.
" 용건이 있다면 말하시게. 다만 별거 아닌거라면 ... "
귀가 쫑긋인다.
" 또 육포를 말리러 갈지도 모르겠구만. "
# 일단 용건을 들어보기 위해 아무 바위 위에 걸터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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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그런 셈.. 이지요.."
붉디붉은 눈. 금빛 머리는 민망한 듯이 눈동자를 굴려대며 아하하, 음, 흠, 웃음을 지어보이다가 현타가 온 듯이 가라앉혔습니다. 선인인지, 인간인지, 혹은 다른 무언가인지. 육포를 말리러 간다는 말에 합죽이가 되어서 입을 일자로 길게 다물어보던 금빛 머리는 의외로 쇠몽둥이처럼 튼튼해 뵈는 손가락을 끄트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이리 보면 체격답지 않게 소심한 태도입니다- 조심스럽게 말을 골라 뱉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곳이 어디인지,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하겠어서 말입니다. 어쩌다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이런 어두운 숲이고.. 출구는 아무리 보아도 모르겠고, 그냥.. 여러모로 사정이 있어서. 말씀 물을 자도 보이지 않아 한참을 헤맸거든..요."
금빛 머리는 생소한 것을 보듯이 아키히요를 슬쩍 눈질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말이 통하는 아해- 통하는 분을 찾아서, 덕분에 한시름 놓은 것 같습니다."
금빛 머리가 슬쩍 미소했습니다. 그러다 여전히 민망한지 금세 관둔 듯하지만.
"그래서, 음, 그러니까! 요지는 뭐냐면, 괜찮으시다면 안내를.. 좀..."
부탁하고 싶어서..... 하고, 금빛 머리가 말끝을 흐립니다. 이렇게 다 듣고 보면 애초에 사람과 대화하는 법을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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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머리에 붉은 눈, 인간이라기엔 너무 눈에 띄는 외모라 요괴인가 싶기도 했다. 세상엔 다양한 요괴가 존재하니 이런 외모를 가진 자들도 물론 존재하겠지.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에 나는 잠깐동안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 인간이나 요괴나 자주 오지 않으면 길을 찾기엔 쉽지 않은 곳이지. "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들 사이로 햇빛은 거의 들어오지도 않고 안개까지 끼어있으니 방향을 잡는 것도 힘든 곳이다. 거기에 지나치게 고요하기까지하니 공포심에 판단력은 더욱 흐려지는 곳이고.
"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로군. 음림에 들어와서 여기를 찾은걸 보면 말이야. "
들고 있던 주머니에서 육포 몇개를 꺼내든 나는 걸터 앉아있던 바위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걸어가 육포를 건네주며 말했다.
" 따라오시게. 나가는 길이 가깝지는 않지만 또 그렇게 멀진 않으니. "
요괴의 산에서 나온 이후로 줄곧 살았던 곳이다. 숲 깊은 곳은 몰라도 집 주변의 지리는 훤히 꿰고 있다.
# 숲을 나가는 길을 안내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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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머리는 어버버하다가 얼결에 육포를 받습니다. 무언가 중얼거린 듯하지만 아키히요의 뛰어난 청력으로 듣건대, 뭐 별 대단한 소리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기왕이면 술도 있음 좋았겠건만..." 종알거리듯 투정하는 소리에 뭐 대단한 뜻이 담겼겠습니까?
어찌됐건 "감사합니다.." 하며 금빛 머리는 얌전하게 아키히요를 뒤따랐습니다.
좀 더 대화를 하며 걷습니까, 바로 음림 밖까지 안내해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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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안내도 해줘, 육포도 줘, 거기에 술까지 달라는건 양심에 좀 찔리지 않나? "
분명 듣는 귀가 밝지 않았으면 듣지 못했을거다. 못들은척 해줄 수도 있었지만 생각하는게 괘씸해서 일부러 얘기까지 해준다. 그래도 감사인사는 했으니 됐다고 생각하며 앞장 서서 걷고 있으니 뒤에서 따라오는 자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 그 머리색과 눈색은 일반적인 인간은 가지지 못하는데. 혹시 요괴인가? 아니면 신선? "
신선의 고기가 그렇게 맛있다고들 하던데. 먹어본 요괴들이 어찌나 자랑을 하던지. 나는 뒤를 흘끔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 애초에 음림에 왜 들어오게 된건가? 딱봐도 들어오기 싫게 생긴 곳인데. "
담력 시험 같은 어이없지만 그래도 납득이라도 할 수 있는 이유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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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잊지 말아주세용!
양심에 좀 찔리지 않나?
켈록! 음, 큼, 읏 으큼... 금빛 머리가 겨우 목청을 다듬습니다. 들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한 걸까요? 짐승의 귀는 폼으로 단 줄 아나...
"말씀을 드렸지.. 않습니까. 어쩌다 보니 저도 모르게 들어왔다고... 저도 이런 곳인 줄 알았으면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았네, 아니, 않았지요...! 애초에 여기가 어딥니까? 도무지 낯선 곳이라서 참......"
다시 초조하게 주변을 살피다가 아차, 하며 금빛 머리가 엷은 미소를 짓습니다. 어딘지 비굴한 미소군요...
"신선인지 요괴인지는, 때가 되면 아실 겝니다... 그때가- 오기만 한다면 말이지요..."
그때라니,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완벽하게 알아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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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들어올 정도로 접근성이 좋은 곳인가? 하고 생각해보았지만 환상향에서 말이 안되는건 생각보다 별로 없으니 이 자의 거짓말 같은 이유도 믿어주기로 했다. 앞장서서 출구를 향해 나아가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거슬리는 부분이 하나 귀에 꽂힌다.
" 그 때? "
어느 때를 말하는 것일까. 환상향의 역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특정한 때를 지칭할 수 있을 정도는 아마 대결계가 생길때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말이다. 용모도 말하는 것도 하나 같이 수상한 이 사람을 어쩔까, 잠시나마 고민해본다.
" 알 수 없는 이야기만 하는구만. 자꾸 그러면 여기에 두고 가는 수가 있네. "
대화란 적어도 서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진행 되어야하는 법이라 생각한다.
# 가던 길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았다가, 다시금 출구로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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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읍, 하고 이상한 비명소리가 아스라하니 들린 것 같습니다....... 기분탓일까요? 아니, 글쎄... 그런 이상하고 자그마한 비명... 금빛 머리한테서 들려온 것 같은데요. 참으로 안쓰럽지 않을 수가... 아마 당신의 협박에 가까운 말을 듣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한 것 같은데요. 금빛 머리는 흰 한복 소매로 입을 살짝 가리며 눈을 안쓰럽게 깜박였습니다.
아키히요가 짐작건대, 이 금빛 머리가 말하는 '그때'라 함은 과거의 일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아니면 미래라는 뜻인데.. 으음, 단서가 적습니다. 말한 것이 어디 많았어야지요.
"참으로 염치 없게 되었네만... 아니, 습니다만.. 아니... 하여튼, 목하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그다지 많지는 않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죄스럽게 되었으나... 용서해주시고... 하, 아하하..."
금빛 머리는 조심조심 말하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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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내 협박에 이 금빛 머리가 낸 소리 같았다. 뒤를 살짝 돌아보니 어지간히 당황했는지 식은땀까지 뻘뻘 흘리고 있다. 안쓰럽게 깜빡이는 것까지 보고 있으니 정말로 여기에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차오른다.
" 그런 표정 짓지말게. 정말로 두고 가고싶어지니까. "
물론 그렇게 말하면서도 출구로 가는 걸음은 느려지진 않는다. 그러다 문득 상대방의 신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 나는 그에게 이름을 물었다.
# 이름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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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습니다.............!"
절박하게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감추는 모습이 머리 하나 숨겼다고 다 숨었는 줄 아는 유아 같기도 합니다...... 아키히요가 이름을 묻자 그는 최대한 태연을 가장하며 느릿느릿 응답했습니다.
"...진화.. 라 알아두면 되실 겁니다."
그리고 반대로 물음을 돌려주었지요.
"귀인께서는.... 이름이.. 함자가 어찌 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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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네 이름을 물어본 것은 구해준 것의 답례라고 생각하게. "
그러니까 내 이름을 당신에게 알려줄 생각은 없단 뜻이었다. 이기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애초에 아무런 댓가 없이 이 숲을 빠져나가게 해주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선 잠깐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 다음에 자네가 날 도와줄 일이 생기면 그때 이름을 알려주겠네. "
# 계속해서 출구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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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 그렇지요... 그렇지요. 함부로 물을 이름은 아니었지요..."
그렇다면 그때를, 고대하는 것으로... 하며 진화가 개미처럼 기어가는 말을 묘하게 흐립니다. 출구가 가까워져 옵니다. 이대로만 속도를 유지하면 다음 턴이 되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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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라 함은 내가 그에게 도움을 받는 날을 말하는 것이겠지. 허나 이 자가 인간이던 요괴던 무엇도 아닌 것이던 상관 없었다. 오늘 여기서 만난 것으로 더이상 만날 일은 없을테니까 말이다. 음림에서 나가는 일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니까.
" 출구가 보이는군. "
그렇게 속도를 유지하며 걸어가니 작게 빛이 쏟아져들어오는 곳이 보였다. 빛이 많이 들어오지 않는 음림이라 출구에서 나오는 빛은 다른 곳의 빛보다 한층 강렬한 느낌이 든다. 물론 나야 날아서 빠져나가면 그만이지만.
" 저기 보이는 곳이 출구라네. 다음부턴 함부로 들어오지말게나. 꽤나 무서운 곳이니까 말이야. "
가던 걸음을 멈추고 출구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 가만히 멈춰서서 진화가 출구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무심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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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요가 출구를 언급하자 진화가 고개를 쳐듭니다. 아하, 그에게 있어서는 마치 구원을 발견한 듯한 눈빛이었을까요. 저 끝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공포가 어려 있는 성도 싶지만... 그래도, 나간다는 사실에 의의를 두어 희망을 가지는 눈빛이기도 합니다. 아키히요가 진화를 보았다면 그러한 눈빛을 보았을 테지요. 진화는 아키히요를 보며 쓰게 웃습니다.
"그것이 원하는 대로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그렇더라도 감..사합니다. 나중에 인연이- 된다며언... 이라는 말을 어색하게시리 제대로 끝맺지도 못한 채, 진화가 조심조심 걸음을 옮겨나갔습니다. 아키히요는 그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았을 테죠.
진화가 무엇 하는 치이며, 어쩌다가 음림을 떠돌게 되었는지는 끝까지 알지 못한 채로 남게 되었지만... 그래도 길은 안내해줬으니 별 문제야 있겠습니까? 아마도 없겠죠... 아마도. 붙잡지 않는 이상 진화는 멀리 멀리 나가 아키히요가 보지도 못할 곳까지 가버렸을 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