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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rofile ¶
하지/선 | |
원본 픽크루 링크 | https://picrew.me/ja/image_maker/2079341 |
소속 세계관 | 계절기 |
*복식은 적당히 동양풍으로 흐린눈 부탁드립니다.
2. 설명 ¶
가장 긴 낮의 전환점, 하지
…그리고, 그의 누나 선
…그리고, 그의 누나 선
누나는 누구보다 지혜롭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늘 나는 두 번째였고, 그녀가 절기의 자리를 포기하고 내게 넘겼을 때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는 스스로의 권능으로 현재의 일을 천리안처럼 굽어보며, 원하는 곳으로 즉시 통할 수 있기도 하다. 그는 천성이 가볍고 종잡을 수 없는 이라서 본래라면 이런 자리에 그다지 알맞지 않았을 터인데, 현재에 이르러서는 완벽에 가깝게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에게는 선이라고 하는 이름의 누이가 있다 한다. 서쪽 끝에 있는 작은 섬에서 살고 있으며, 그곳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아마 하지밖에는 없을 것이다. 선은 그곳에서 아직까지도 젊은 모습을 유지하며 은거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내가 어째서 너에게 물려주는지, 그것은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네 누이가 승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는 그녀의 대체품이다. 그 사실을 잊지 말도록.
스승은 소년에게 저주와도 같은 말을 남겼다. 그 의미를, 모든 것을 둘러싼 진실을 알 리 만무했다.
3.1. 동지 ¶
너는 나를 전부 읽고 있잖아, 그러면서… 그래 놓고 모른 척 하는 건가?
과거를 보고 저승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현재만을 보고 저승에는 쉬이 가지 못하는 자신에게는 늘 신경 쓰이는 상대. 비슷한 시기에 수련하고 계승한 자로서 그 유대는 각별하지만, 묘한 긴장이 감돌아 아주 허물없이 친밀한 사이는 될 수 없다.
그러니까 옛 인연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소리나 듣고 있지.
아버지를 따라 높은 관직을 물려받는 일에는 흥미가 없었다. 바깥 구경이 하고 싶었던 아이는 밤에 몰래 거리로 나갔다. 시장도 둘러보고, 잡화점에도 들어가 보다 어느덧 날이 저물고 길을 잃어버렸다. 홍등가를 지나칠 때, 그를 몰래 찾아나선 누이가 손목을 잡아챘다. 여기 있으면 위험해, 돌아가자. 그때 곁을 지나치던 검은 머리칼의 어여쁜 소년과 마주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관대작이 역모에 가담한 것이 밝혀져 집안은 하루아침에 실각하고 남매는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아무도 통행하지 않는 상점가를 지날 때 선은 예전의 그 소년이 동지가 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제 자신과 동생의 앞날이 평탄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동생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때 죽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같은 이야기를 이제 와서 해도.
선대 하지는 남매 중 누나 쪽을 아꼈다. 도주하던 끝에 제자로 맞아 달라며 직접 찾아온 기개를 높이 사서, 또는 절기의 권세조차도 읽을 수 없는 대의를 품고 있어서. 배움은 확실히 동생이 빨랐지만, 스승은 늘 선을 총애했다. 하지와 동지가 교류할 때도 마찬가지로 동지의 제자 앞에서 누굴 편애하는지 뻔했을 것이다. 누나가 스승님께 불려간 동안 소년은 다음에 동지가 될 녀석과 이야기를 했다. 이상하게 관심이 갔다. 예전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아이의 희미한 표정을 동요시키고 싶었다. 나도 모르는 새 읽히고 있다는 불안과 함께 그를 깨뜨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좋아한다고 하기엔 조잡한 감정이었으나 그 때문에 괴로웠다. 하지만 이 지경을 만든 누이를 원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때 살려 주었으니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라서.
다시 현재, 하지는 분명히 동지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사랑하더라도 섞이지 못하기에 물러설 수밖에 없고, 영원히 대척점에 서 있게 된다. 동지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말해 주지 않고, 하지는 무엇을 알고 싶은지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가 파국으로 치달을까 걱정이 된다. 이대로 영영 아무것도 밝히지 말고 있자. 나는 늘 너의 평화를 부수거나 과거를 전부 말해 달라고 협박하거나 강제로 나를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아서… 그러니 나는 차마 누이에게도 아무 말 할 수가 없더라.
누나는 잘 지내는 것 같아.
종종 편지할게. 그 녀석도 역시.
선은 동생에게 절기의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긴 밤의 소년을 연모하기에, 그를 위해 계절의 질서를 어지럽힐까 두려웠으니. 연심은 철저히 숨겼다. 제 스승조차 몰랐다. 다만 동지가 된 그는 알고 있을까, 그녀가 은거하고 있는 참뜻을.
3.2. 대설 ¶
이곳의 뜰은 참으로 아름답네요. 동백꽃 위에 눈이 쌓였어요.선에게는 오래된 벗이 있었다. 누구보다 아꼈던, 지금은 모두에게 잊힌 왕녀. 함께 보낸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했다. 그렇기에 선은 무슨 수를 써서도 친우를 살리기로 했다. 그대가 목표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살아나갈 수 있게. 권력을 차지하려던 왕녀가 역모를 꾀하고, 연관된 집안이 줄줄이 멸문되는 피바람이 불었다. 그 이후 아주 오랜 기간 연락이 끊겼다. 노력이 무색해진 줄로만 알았으나-
하지가 된 그의 앞에 별안간 나타난 것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누이가 이 사실을 짐작했어도 내게 절기의 자리를 넘겼을까. 하지의 고민은 깊어 갔다. 예상치 못한 등장이었고, 대설은 이전의 기억을 잃은 데다 누이는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줄 몰랐던 모양이다. 먼 섬의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에, 오랜 벗이 돌아왔다고 차마 적을 수 없었다. 누나가 섣불리 밖으로 나온다면 억지로 유지한 젊음이 틀어져 상태가 몹시 나빠질 테니까. 오묘한 운명의 장난이었다.
누이가 모른다면 내가 그녀보다 많은 것을 알고,
알고 있다면 나는 그녀보다 용기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실소가 나왔다.
나도 꽤, 뒤틀린 마음을 품고 기뻐하는구나.
알고 있다면 나는 그녀보다 용기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실소가 나왔다.
나도 꽤, 뒤틀린 마음을 품고 기뻐하는구나.
그 이후로는 혼자만의 고뇌로 인한 거리감 탓에, 다른 절기들을 대할 때와 달리 경어를 쓰며 대했다. 이런 고민 같은 거, 자신과는 맞지 않는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 시리게 아팠다. 어릴 적처럼 웃으며 맞이할 수 있었다면 좋을 텐데.
...그리고 반전의 계기는 갑작스레 찾아오는 법이다.
같이 따라오면 늦는다니까! 반항하는 망자는 내가 찾을 테니 그대는 녀석이 다시 못 도망치게 묶을 채비 해."
난폭하게 구는 망자의 제압이 늦어져 탈출하고 말았을 때, 시의적절히 곁에 있던 하지가 능력을 십분 발휘해 상당히 빨리 찾아낸 일이 있었다. 겨울의 관할 지역에서 동지에게 농담이라도 던지는 중이었던지, 왜 거기서 농땡이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는지 의문이었으나, 망자를 발견한 것이 하지였으므로 어쨌든 책임은 묻지 않았다. 대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상황을 재빨리 수습하고 영혼을 제대로 저승으로 인계했으니 사건이 크게 번질 일은 없었다. 탈출부터 사후 처리까지 몇 분 걸리지 않았던 사안이라 아는 이는 극히 드물다.
긴박한 상황에 경어체를 잠시 버렸던 것이 의문이 되어 돌아왔다. 자신이 설마 그럴 줄은 몰랐달까, 대설이 그 일을 언급하자 당황한 하지는 말을 놓는 쪽이 더 편하다고 털어놓았다. 그 이유는 모른다고 얼버무렸지만... 수상한 낌새를 느꼈다면 얼마든지 잡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건, 윽, 그러니까 나도 잘 모르겠다고 하잖아. 대설은 이럴 때만 독설을 한다니까.
서로 편하게 부르게 된 이후, 얼음이 햇볕에 살짝 녹고 있다.
- 머나먼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