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설명 ¶
고통은 없습니다.
우리 집 도우미가 가라고 떠밀긴 했는데 내가 왜 여기에 와야 됐는지 모르겠는데요.
차례가 돌아왔을 때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지독히도 비협조적이었다. 흙 묻은 신발을 아무데나 올려놓으려 하질 않나, 손은 주머니에 방어적으로 껴넣었고, 보통 예의로라도 벗을 모자는 당당하게 뒤집어썼다. 그런 모양새로 나타났으니 첫마디를 보기 좋게 말아먹었다고 해서 놀라울 것도 없었다.
테러 사건이 있던 그날 소년은 가장 낮은 곳, 백화점 하층의 의류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손님의 옷을 봐주고 있었다. 그리고 누나는 상층에서 보란 듯이 명품을 사들이고 있었다. 감당도 안 될 카드빚에 덤을 씌우면서 말이다. 소년은 누나를 싫어했다. 싫어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증오했다. 같은 뱃속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시간을 되돌려 누나를 없앨 수만 있다면 없애고 싶었다. 마침 테러가 일어났고 누나는 사망했다. 죽음의 순간에도 백만 단위의 가격표가 달린 외투를 꽉 쥐고 있었다. 시체마저 그런 꼴이 아니었더라면 적어도 애도 정도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족을 잃은 고통? 소년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아니, 없다고 생각했다.
도우미 로봇은 그 사건 뒤로 소년이 평소와 달라 보인다고 했다. 뭐가 달라 보이냐니까 더 신경질적이 되었고 생각에 잠겨있는 시간이 늘었다더라. 우울해보인다고도 했다. 지겨웠다. 허물을 관찰하고 있었다는 것도 기분나빴다. 하지만 남몰래 로봇에게 정을 주고 있었기에 오만상을 쓰면서도 로봇의 권유대로 아카츠마야의 모임에는 나갔다.
테러 사건이 있던 그날 소년은 가장 낮은 곳, 백화점 하층의 의류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손님의 옷을 봐주고 있었다. 그리고 누나는 상층에서 보란 듯이 명품을 사들이고 있었다. 감당도 안 될 카드빚에 덤을 씌우면서 말이다. 소년은 누나를 싫어했다. 싫어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증오했다. 같은 뱃속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시간을 되돌려 누나를 없앨 수만 있다면 없애고 싶었다. 마침 테러가 일어났고 누나는 사망했다. 죽음의 순간에도 백만 단위의 가격표가 달린 외투를 꽉 쥐고 있었다. 시체마저 그런 꼴이 아니었더라면 적어도 애도 정도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족을 잃은 고통? 소년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아니, 없다고 생각했다.
도우미 로봇은 그 사건 뒤로 소년이 평소와 달라 보인다고 했다. 뭐가 달라 보이냐니까 더 신경질적이 되었고 생각에 잠겨있는 시간이 늘었다더라. 우울해보인다고도 했다. 지겨웠다. 허물을 관찰하고 있었다는 것도 기분나빴다. 하지만 남몰래 로봇에게 정을 주고 있었기에 오만상을 쓰면서도 로봇의 권유대로 아카츠마야의 모임에는 나갔다.
나가 줬으니까 됐지? 이제 신경 꺼.
3.1. 742 ¶
744는 이 모임에 협조하지 않기로 이미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742가 울음을 터트렸을 때도, 자신의 사연을 개방했을 때에도 공감의 기역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규칙 고통을 재지 않기. 그러나 마음 속으로 저지르는 범법이라면 단죄의 대상이 되겠는가? 상대가 모든 일을 털어놓고 울기 시작했을 때 작게 코웃음을 쳤다. 아무도 잃지 않고서 자신의 오만함에 스스로 배신당했을 뿐인 상대를 비웃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어지간히도 삐뚤어진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메타적 사고는 사람을 반성시키지만 안타깝게도 곧바로 사람을 바꾸지는 못하는 법이다.
3.2. 747 ¶
겁먹은 태도가 뻔히 눈에 보인다...... 그런 시선에는 예민했다. 뭘 보냐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사람 자체라면 저를 무서워하는 듯한 눈빛이 거슬리고 유약해 보였을 뿐 특별히 좋거나 싫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앉아있어야 하는, 이 상황이 지겹고 싫다. 도우미 로봇만 아니었다면 당장 박차고 나가고 싶을 만큼. 그러지 못하는 상황에 뒷머리를 신경질적으로 털고는 혀를 찼다.
....백화점이 무너지기 직전 그의 친구들에게 옷을 판매하고 있었다. 매장 구석에서 고양이가 번개를 쏘는 괴상한 티셔츠를 찾아낸 747의 친구들은 어떤 이름을 말하며 선물로 주자고 떠들었다. 정말이지 괴상한 이름이었다. 실제 이름이 아니라 게임 닉네임 같은.... 어쨌든 옷을 포장해달라는 말에 새 옷을 찾으러 매장 뒷편으로 갔던 순간 백화점이 무너졌고, 그는 운 좋게 살아났지만 같이 있던 손님들은 그러지 못했다. 백화점이 무너졌는데 우습게도 들고 있던 티셔츠는 찢어진 곳 없이 멀쩡했다. 버릴 수도 있었지만, 손님들의 마지막 유품 같아서 마음에 걸렸다. 아카츠마야 거리의 모임에 나온 누군가가 그 이름을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억을 되살려 747의 게임 닉네임을 태그에 적고 쇼핑백에 티셔츠를 넣어 문 옆에 두었다. 주인이나 주인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가져가겠지.
그리고 청년이 옷을 가져가는 모습을 보았다. 본인인가? 손님들의 마지막 모습을 듣고 싶어할까?........
.........무슨 상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