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modified: 2022-12-15 15:47:50 Contributors
이야기의 주 무대가 될 인요의 낙원, 환상향에 관하여 설명합니다.
2.1. 환상과 실체의 경계 ¶
서기 1388년, 요괴의 약화를 예견한 요괴의 현자가 이름 없던 땅에 설치한 술법이자, 결계입니다. 만져지는 결계 따위가 아닙니다. 정말이지 독특하게도 세상에 일종의 '개념'을 씌우는 결계로, 이름 없는 땅 안쪽은 환상의 세계, 땅 바깥쪽은 실체의 세계로 정의하여 전세계 모든 환상을 이름 없는 땅, 다시 말해 환상향에 불러모으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환상이란 인요, 사물 불문하고 허구로 치부되거나 잊혀져버린 모든 것을 이르지요.
으악 하고 강제로 잡아서 넣는 것과는 다릅니다. 경계는 단지 은밀히 이끌어올 뿐입니다. 어디를 돌아다니든, 얼마나 걸리든, 어쨌거나 최종적으로는 환상향에 귀결되게끔. 설령 그곳에 당도한 것이 자의라고 생각할망정 사실은 경계의 술법에 저도 모르게 이끌려 온 것일지도 모르는 겁니다. 경계는 딱히 물리적으로 작용하는 건 아닌지, 환상향과 하등 관련없는 외국의 강에서 노닐다가도 허구로 치부되거나 잊혀진다는 조건에 들어맞으면 정신을 차렸을 때 환상향의 강에 있는 일도 가능하다는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다양한 방법으로 바깥의 환상을 불러 들여오죠.
몽접 대결계로 인해 환상향의 외부와 내부가 격리된 지금도 아직 수많은 환상이 이끌려 들어오고 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 유입되기도 하지만, 바깥 세계에서의 존속을 거의 포기한 상태에서 환상향을 알게 되어 차선책으로 선택해 들어오는 존재도 다수죠. 충분한 힘이 있다면 저 자신뿐 아니라 원하는 건물, 더 나아가면 지형지물도 충분히 함께 들일 수도 있는 모양입니다.
서기 1876년, 요괴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다가오자 환상향의 현자와 몽접 무당이 합심하여 세운, 환상향의 외부와 내부를 완전히 격리하는 대결계입니다. 현자들과 무당이 꾸준하게 관리하는 성싶지요.
환상향 전역을 감싸는 이 결계에 의해 안팎의 왕래는 제한되어 있습니다. 인간이며 요괴 가릴 것 없이, 바깥으로 향하려고 하면 어느새 같은 풍경으로 돌아와 있고 계속 반복하다 보면 그제야 아, 향할 수 없는 곳이구나 하고 깨닫는 것이죠. 아무리 힘 있는 자라도 기본적으로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반대로 들어오는 것은 상대적으로 널널한 편인데, 상술했듯이 환상과 실체의 경계에 의해 자동으로 이끌려 오는 경우는 기본이요, 인요 불문 환상인 존재가 자의로 들어오고자 한다면 각자만의 적절한 방법을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들어올 수 있습니다. 뭐, 후자의 경우는 대개 바깥 세계에서의 존재를 거의 포기한 상태이므로 어렵고 쉽고를 따질 상황은 아니지만.
종종 결계의 일부가 약해지거나 할 때도 있어서 그 탓에 뜬금없이 아무 관련도 없는 바깥 세계 인간이 눈을 깜박이자 깡촌에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거나, 산속이든 어디든을 돌아다니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 들어오기도 합니다. 이러한 인간을 외래인이라 부르는데, 이들이 운 좋게 인간에게 우호적인 인물을 만나면 인간 마을로 안전히 안내되어 거기에 눌러살기도 하고, 더욱 운 좋게 그 인물이 무당 또는 현자에게 안내해주었거나 그 외래인이 직접 무당이며 현자와 마주쳤으면 선택에 따라 바깥 세계로 돌려보내지기도 합니다. 멋모르고 요괴에게 잡아먹히거나 자멸하는 대신에요.
환상향 주민은 이렇게 어떠한 방식으로든 인간, 요괴, 사물 등이 환상향에 유입되는 현상을 환상들이라 부릅니다.
3. 몽접 무당 ¶
지금의 환상향이 이름이 없던 시절부터 오랫동안 땅을 수호해온 무당입니다. 다양한 무당의 특징이 혼재하며 환상향에서 '무당'이라고 한다면 대부분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죠. 이 환상향의 수호자며 관리자와 같은 존재입니다.
홍백의 무복을 걸친 이색의 무당, 이들이 예로부터 해온 일은 굿, 요괴 퇴치, 기타 퇴치, 이변 해결, 인간과 요괴의 균형 관리, 각종 행사의 주관, 땅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 수습, 중재...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꽤 엄선되기 때문에 다른 건 몰라도 역대 무당의 영력이며 실력은 진짜배기이죠. 솔직히 좀 무서울 정도로 말입니다. 뭇 퇴치사, 이변해결사 중에서도 단연 최상위권 실력인 만큼 만약 당신이 요괴 퇴치 또는 이변 해결을 의뢰하고 싶다면 돈을 들고 무당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뭐 싫다면 다른 퇴마사며 이변해결사에게 가면 그만이지만... 그럼에도 가장 보장된 권위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죠.
몽접의 무당을 상징하는 것이 있다면 나비와 방울입니다. 모든 몽접의 무당은 입무入巫할 때 자그마한 무령을 입에 넣어 삼켰습니다. 사망 시 장례는 화장으로 치르는데, 그때 무령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불로 이루어진 나비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신이한 광경이 펼쳐지고요. 당장 이름부터가 몽'접'이지 않습니까.
후계자가 선대의 자리를 이어받는 의식을 치르면 신의 가호라도 되는 것인지 그 순간부터 신체적 성장 및 노화를 멈추는 성싶습니다. 더러더러 무령 소리가 몸에서 들리기도 하고요. 항상 들리는 건 아니니 무엇이 기준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안타깝다면 안타까운 점은 날이 갈수록 환상향의 요괴가 증가해감에 따라,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몽접 신사에 굳이 방문하려는 인간의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실제 신앙과는 별개입니다. 가다가 요괴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런 위험을 구태여 감수하겠어요?
1대부터 끊임없이 내려와, 현재는 29대가 환상향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4. 환상향의 현자 ¶
현재의 환상향은 이들 덕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환상향을 굽어보고 보살피는 것은 뭇 신, 무당뿐이 아닌 것이죠. 요괴의 현자는 환상과 실체의 경계를 설치했고, 그 뒤 그를 비롯한 현자들은 무당과 합세하여 환상향을 바깥 세계로부터 격리했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지성스레 환상향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아, 눈치채셨나 봅니다. 그래요, 환상향을 다스리는 어진 자라 하여 환상향의 현자賢者입니다. 많은 주민들이 감사히 여겨 우러르고 있지요.
환상향은 기본적으로 바깥 세계와 다릅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오래전부터 갖은 괴이가 우글거렸을 뿐더러, 격리된 지 100계 넘게 흘렀는걸요.
가장 큰 차이는 요괴들이 노골적으로 날뛴다는 점입니다. 본능적으로는 야행성이어도 인간 마을 이외의 언제 어디에서든 만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환상향은 요괴 천지입니다. 환상향에는 바깥 세계에서 비상식이 된 것, 존재감이 희박해진 것이 오히려 적합하다고 여겨져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요괴의 존재와 인간을 납치하거나 습격하여 먹는 활동, 또는 이들의 기이한 능력이 일상생활 안에서 숨쉬고 있습니다. 무당이 하늘을 나는 것도, 요정이 인간에게 장난을 치는 것도, 어느 날 불현듯 이변이 발생하는 것도 환상향에서는 매우 당연한 일이지요.
설마설마 했더니, 술에도 미친 듯이 관대해서 어린아이가 마셔도 별 문제 아니라는 분위기가 아니겠습니까. 부어라! 마셔라!! 담배도 술만큼은 아니지만 상관없다는 인식이 일반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어린아이가 젖만 떼도 담배를 피웠다더니... 아 물론 환상향은 그런 통상적으로 알려진 조선시대와도 사실상 백만 광년 넘게 떨어져 있지만요. 격리된 지 100계 이상 지났다고 했지 않습니까, 아직도 격리 전의 조선과 같다고 생각한다면 매우 크나큰 오산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바깥 세계 사람 기준으로는 희한하기 그지없겠습니다. 그쪽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문화가 태반, 심지어 평범한 대화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나사 빠진 엉뚱한 형태를 취하는 때가 적잖습니다. 대다수 요괴 그리고 일부 인간이 매우 호전적인 것도 특이한 점이네요. 누군가를 맞이한답시고 다짜고짜 공격을 날리는 부류도 있으니까요.
문화가 거의 다 옛날옛적에 머물러 있기는 하지만(환상향 사람은 옛날옛적이라는 자각도 없는 것 같습니다), 환상향의 사람이 맨날 사극스럽게 지내고 사극스러운 말만 쓰는 건 아닙니다. 넌지시 바깥세계나 요괴의 영향을 받았는지 머리모양과 같이 은근슬쩍 조선시대답지 않은 구석도 있고, 외래어를 섞어쓰기도 하는 성싶네요. 한반도의 환상이 좀 더 먼저 환상들이되는 경향은 있어도 저 위 지나支那나 바다 너머 팔도八島, 아니면 태서泰西의 환상이라고 환상들이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요. 다양한 문화가 혼재되어 요괴의 경우는 그 경향이 특히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편입니다.
인간 마을도 다를 것은 없습니다. 나름대로는 고집 있게 전통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같지만 요괴에게 둘러싸여 사는 이상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허울만 그럴 듯하며, 정작 껍질을 들춰보면 머리모양도 쓰는 말도 조선 고유의 것이 아님에, 두루 믿는 신과 요괴도 타국의 환상이 적잖이 끼어있음에(텐구가 대표적이죠), 쓰는 물품도 언뜻 조선다워 보일지는 몰라도 하나하나 자세히 뜯어보면 조선은커녕 이게 어디 전통적이냐는 말 조금 과장해서 하나 건너 하나 튀어나오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러니까 통상적으로 알려진 조선시대를 생각하고 들어오면 반드시 뒤통수를 맞는다는 것입니다.
대략적으로는 이렇게 설명해보았는데, 자세한 내용은 하단을 참조해주시죠.
- 의衣
많은 문화가 혼재합니다. 요괴 같은 인외는 특히 시대에도 덜 구애받기 때문에 조선 이전 옷부터 타국의 복장, 퓨전 복식까지 다양한 차림새가 목격되지요. 환상향 토박이라고 해도 바깥 세계 출신에게 영향 받기도 하고... 뭐 그런 겁니다. 다만 완전한 현대 복식의 경우는 일부러 피하는 요괴가 좀 있지만요. 인간의 발전된 과학의 상징과도 같다나 뭐라나.
인간 마을이라면 십중팔구 아직 조선 복식에 머물러 있습니다만, 완전히 전통적인 모습은 아닙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전통이 흐려진 탓인지, 조선 후기뿐만 아니라 전기나 중기에 가까운 복식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고, 아예 서로 상관없는 복식을 섞어 입는 경우도 발견할 수 있거든요. 머리스타일도 전통적인 형태라고 보기는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부족합니다. 저 정도면 현대의 머리스타일과도 진배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요. 주로 신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하는 편이긴 하지만요.
뭐 당연하지만 조선식 이외의 복장은 인간 마을에서는 결코 고운 시선을 받지 못합니다. 저 저저저 저놈의 자식, 저거 요괴 따라하는 것 아니야, 어? 아주 정신이 썩어빠졌지!
- 식食
예상하셨을 겁니다. 전형적인 한국인- 아니, 조선인의 밥상! 전통적인 것으로만 그득합니다. 비스켓이며 홍차며 그런 것은 기대도 할 수 없죠. 그나마 누구에게서 기대해야한다? 그렇죠, 요괴에게서 기대해야죠. 마계이며 서양 출신 요괴는 말할 것도 없고, 동양 출신 요괴 중에서도 서양식에 눈을 뜬 부류가 있으니까요. ...물론 인간 중에도 파격적인 요리를 선보이는 사람이 있고, 서양식을 어찌저찌 익히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환상향 인간들이 여간 보수적이어야죠. 아직까지도 외면 받고 있음이 현실입니다.
- 주住
이쯤 되면 답이 술술 튀어나옵니다. 그놈의 조선식, 조선식, 조선식! 인간 마을에 가면 잘 사는 집은 한옥 마을이요, 못사는 집은 초가요, 기와집과 초가집이 체스판처럼 늘어선 곳도 있습니다. 너와집도 좀 보이고요. 시장도 조선식, 광장도 조선식! 전깃불? 기대도 마세요, 요괴마저도 전기는 없어요. 사실 의식주 중 이 주住는 그나마 요괴도 아직 전통을 유지하는 폭이라서, 본능에 따라 야생에서 자는 요괴를 제외하면 대부분 집이 조선식, 더 나아가도 여전히 동양풍에 머물곤 합니다. 드물게 서양식 주택이며 저택도 보이기야 하지만 말할 것도 없이 마계나 서양 출신 요괴의 것이리라 싶습니다. 아니라면 조금 독특한 동양 요괴이거나, 아예 인간 마을에서 떨어져 사는 특이한 인간일 수도 있긴 하지만서도요.
요괴는 야행성에 생각보다 짐승 같은 면모가 짙은지라, 건물로 된 집 없이 야숙하는 경우가 기본이지만 집을 마련하는 요괴는 꾸준히 있었고 점차 늘어나는 추이입니다. 인간은 인간 마을에 사는 것이 기본이지만, 마을에 떨어져 사는 일부 특이자도 있고, 극히 일부지만 요괴와 함께 사는 자마저 있습니다. 이유는 저마다 달라 확언할 수 없겠지만요. 한 가지 확실한 건, 마을에서 벗어나 살아가는 인간은 그렇지 않은 인간에게 도저히 보통의 인간으론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겠습니다.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
- 종교
환상향에 사는 자는 대부분이 깊은 신앙심을 가집니다. 환상향에서 약자 되는 인간은 말할 것도 없음이요, 요괴 중에서도 생각보다도 적극적으로 종교에 의탁하는 자가 많습니다. 아예 힘의 원천이 특정 종교와 관련되기도 하고요. 뭐, 실제로 신은 존재하기에 믿고 말고가 있겠냐마는...
환상향에는 무교도 불교도 도교도 그 밖 다른 것도 있지만, 가장 일상적인 종교는 그중 어느 것도 아닙니다. 가장 많은 신앙을 받는 것은 다름 아닌 순수한 애니미즘. 만물에 신이 깃든다는 범신론적 사상으로 바깥세계 기준으로는 몹시도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사상이지만 환상향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성싶습니다. 농사가 잘 되면 자리에 깃든 신 덕분이야, 역병이 돌면 병의 신이 화를 내는 것이야 등등. 종교라는 자각도 없이 하루하루 일상에 당연스레 깔려 있고 대개의 주민은 의심조차 품지 않습니다. 이러한 '정신'이야말로 숭앙되는 것이지, 환상향에는 묘하게 체계적인 종교(상술한 무교, 불교, 도교와 같은 것)는 큰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나마 인기 있는 것은 무교. 애초에 무교가 어느 정도 애니미즘에도 바탕을 두고 있고, 환상향을 오래 수호해온 몽접 무당도 있는 만큼 그나마 신앙을 넓게 모으고 있죠. 몽접 무당이 '대신大神님'이라 불리며 숭상되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 도교도 물론 무교에 비해서만 약할 뿐 의지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환상향에 절은 왜 있고, 선인이 되겠답시고 수련하는 사람은 또 왜 있겠어요. 다양한 종교가 환상향에는 조화로이 공존합니다.
- 단위
기년법부터 바깥세계와 달리하는데, 몽접 대결계가 설치된 해를 원년으로 한 계季라는 독자적인 단위를 사용합니다. 역법 체계 자체는 기존의 시헌력과 다를 것이 없기는 합니다. 대결계 설치일은 0계 1월 1일이고, 올해는 147계입니다.
화폐는 엽전입니다. 동화 한 닢을 문文, 은화 한 닢을 전錢, 금화 한 닢을 냥兩이라는 단위로 부릅니다. (안타깝게도 실제 금은은 아니라네요.) 10문이 1전, 10전이 1냥, 10냥이 1관.
1문의 가치는 바깥 세계로 치면 100원에 가깝습니다. 무슨 놈의 100원 가치 원래는 그렇지 않다고요? 이곳은 환상향입니다. 1전은 천원, 1냥은 만원, 1관은 십만원에 가까운 가치를 가지는 셈입니다. 관貫은 편의상의 보조 단위로 따로 주화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이 엽전... 표면에 새겨진 글씨 상평통보 맞지요? 세상에, 바깥 세계 놀랄 일.
화폐는 인간의 도구로 요괴는 물물교환 중심이지만, 인간 마을과 은근슬쩍 교류하는 요괴의 경우엔 이 화폐를 톡톡히 이용해먹기도 합니다. 요괴 사이에도 간간이 주화가 오가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인간 마을 역시 화폐가 주력이기는 하지만, 조선 시절 때의 영향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닌지 물물교환도 어느 정도 활성화된 편이죠. 마치 보조 경제행위와 같이요.
길이, 무게, 시간 따위. 역시 조선식 단위를 쓰나, 출신 배경에 따라 조선식이 아닌 단위도 종종 쓰인다고 하네요. 인간 마을에게는 아직 까마득한 이야기지만요...
- 이변
환상향의 기본 틀에서 벗어나는 모든 기이한 현상을 이변異變이라고 부릅니다. 규모는 크게 상관없는 성싶죠. 이틀테면 환상향 전역이 붉은 안개로 뒤덮인다든가, 봄이 오지 않는다든가, 아침이 밝지 않는다든가 등등.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는 편입니다, 이런 대환장파티들.
꼭 그러란 법은 없지만 십중팔구 요괴의 소행이곤 합니다. 애초에 요괴의 본능이 인간에게 공포와 경외를 안겨주는 것이고, 그렇기에 제 힘을 과시해야 할 순간도 더러더러 옵니다. 그래서 눈에 띄는 거대한 변이를 일으키는 것이지요. 물론 그런 것 없이 다른 목적을 지니고 이변을 일으키거나, 무슨 일을 저질렀는데 그 부산물로 이변이 생겼거나, 저도 모르던 사이에 발생했거나, 아예 실수로 생기거나, 단순히 화풀이로 일으키거나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본능에 충실한 결과로 이변을 일으킨다, 이 말입니다.
말씀드렸듯이 꼭 요괴만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다른 종족들도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일으키는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평범한 인간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변을 일으키는 경우도 몹시몹시 드물지만 없는 건 아니니까요. (뭐 이런 경우는 자의가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몽접의 무당의 역할 중 하나가 이런 이변들을 해결하는 일입니다. 원인을 찾아 찾아가고- 때려잡고- 필요하다면 혼내기까지 하고. 무당 말고도 자발적으로 이변해결에 일조하겠다고 의뢰를 받거나(이 경우에는 수입도 보장되죠!) 아예 스스로 나서는 이변해결사들도 있습니다. 대체로 퇴마사, 또는 강한 힘을 지닌 인간이 이 일을 부업으로 삼고는 합니다. 드물지만 요괴도 이변을 해결하기도 하는데, 대체로 이 경우는 자기에게 어떻게든 이득이 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 대개겠죠. 요괴란 하도 자기중심적이니.
- 규칙
환상향은 국가는 아니기에 형식적인 법은 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암묵의 룰 투성이입니다. 막 환상들이한 자나 간혹 방문하는 이계의 존재는 곧바로 알기가 어렵죠. 이 아래는 그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마을 인간 사냥 금지 : 요괴 사이에서 도는 불문율입니다. 마을 인간도 어느 정도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죠. 이 불문율은 아주 정확히 말하면 '마을 안쪽의 인간 사냥 금지'로, 반대로 말하면 마을을 벗어난 인간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일까요. 그러나 마을에 콕 틀어박혀 살지만은 못하는 법, 마을 밖에서만 할 수 있는 것도 많은 고로, 산중이 위험함을 알면서도 산행을 감행한 옛적처럼 밖으로 나서는 사람은 적지 않습니다. 모든 요괴가 마을을 나선 인간에 눈이 먼 것도 아니니까요.
요괴는 죽일 수 없다 : 이 역시 특히 요괴 사이에서 묵시적으로 통용되는 불문율입니다. 일부 인간, 특히 지식인이나 퇴치사 또한 인지하는 불문율이지요. 인요 공생입니다. 한데 '마을 인간 사냥 금지'에 비해서는 존재감이 흐리며, 또한 각자의 편의에 따른 가변적인 면모가 없잖아 있는 편입니다. 글로 지적하지 않은 불문율이란 게 뭐 다 그런 것이겠지만요.
환상향에 거하는 인간이 요괴가 되는 것은 환상향에서 가장 큰 죄 : 문자 그대로입니다. 뭐, 굳이 요괴가 되고 싶은 인간이 있을까 싶지만요. 마을 인간이 요괴화를 기꺼워할 리는 천지 만무하기에.
스펠카드 : 후술합니다.
- 스펠카드
스펠카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흡혈귀 이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환상향에 돌연 힘 있는 흡혈귀가 나타나 그 세력을 떨쳤다는 크나큰 이변.
말씀드리자면 환상향에서 요괴의 세력은 그다지 큰 힘을 쓰지 못하는 편이었습니다. 물론 인간에게는 충분히 두려운 힘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강한 힘을 유지하는 요괴는 있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보잘것없었다는 말씀이지요. 그럴 만도 합니다, 아무리 환상향의 시스템으로써 인간으로부터의 공포와 신심은 보장 받게 되었기로서니 규칙상 마을로 직접 사냥을 나서는 일은 허락 받지 못했으며, 또 환상의 낙원이라는 미명 하 요괴끼리의 과한 세력 다툼, 목숨을 건 혈투는 허락 받지 못했으니까요. 무엇보다 당시 26대와 27대 무당이 피로 소매를 물들이는 일조차 꺼려 하지 않으며 인요의 균형을 무너뜨리려는 자들은 모조리 힘으로 찍어눌렀기 때문으로.
자연스럽게 제대로 된 싸움은 없이 가능한 한 사리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며, 전투에 대한 경험이 미비해 그 위력이 떨어진 요괴가 존재하는가 하면, 사냥을 제대로 나서지 못함으로써 공포가 결핍되어 기력이 낮아진 요괴도 있으며, 속에서 들끓는 호전 성향을 견디지 못하고 커다란 불만을 품은 요괴 또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한가운데 어디의 누구인지 모를 강력한 흡혈귀가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수많은 요괴를 무릎 꿇려 부하로 삼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는 환상향에 있어서는 큰 충격으로, 환상향의 요괴의 약화를 그 언제보다 또렷하게 드러나게 한 이변이자 대사건이었습니다.
종내 환상향의 현자가 직접 나서 흡혈귀를 제압하고, 부하로 종속되었던 요괴들을 해방시키며 각종 금기를 정해 가뜩 긴장된 요괴 사이에서 화해를 도모했지만 당시의 이변은 그동안 억눌리던 요괴들이 비로소 불만저의를 표출하게 할 명분으로는 충분했습니다.
같은 뜻을 품은 요괴들은 직접 현자를 찾아 개선을 요청했습니다. 현자는 어려움 없이 그러한 항의를 수용하였고, 27대 무당도 전투할 수 있는 환경에 있어 개선은 필요하다는 요괴의 생각에 동의한즉 거기에서 나온 것이 목숨에 큰 지장은 주지 않으되 승패를 명확히 가릴 수 있는 규율인 스펠카드 룰(규율)이었습니다. 주패결투법呪牌決鬪法 또는 명명결투법命名決鬪法이라고도 하지요. 스펠카드 룰은 불필요한 살생을 줄였으며, 실력이나 종족에 따른 근본적인 격차마저 어느 정도 좁혀주었기 때문에, 과연 그 제창 목적대로 환상향에서의 결투를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게 하는 든든한 발판이 되어주었습니다. 물론 인간과 요괴끼리도 결투를 위해서는 해당 룰을 애용하였습니다. 인간을 죽이지는 않되 싸움만으로도 충분한 공포심을 안기는 일이 가능하니 요괴가 꽤 만족했음은 물론이요, 어느 정도 힘 있는 인간들도 종족의 격차와 상관없이 계속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 인요 모두가 반기는 규율이 된 것입니다. 이가 인요의 낙원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스펠카드 룰은 말뿐이 아닌 주술로서 환상향에 새겨진 상태로, 오늘날까지도 계속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0.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 환상향에서 벌어지는 모든 결투는 본 규율을 따르도록 한다.
1. 스펠카드(이칭 주패)란 독특한 개성이 있거나 자신이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기술에 이름을 붙인 것으로, 사용할 때는 반드시 몸에 지닌 채 의식적인 발동을 요한다. 스펠카드는 누구든지 지닐 수 있으며, 어떤 기술이든 스펠카드가 될 수 있다.
2. 스펠카드는 어떤 재료로든 어떤 형태로든 제작할 수 있다. 제작은 쉽다. 자유롭게 제작한 스펠카드에 기술명 및 소정의 표식을 쓰거나 새기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제작된 스펠카드는 표식이 피 같은 붉은빛을 띠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3. 결투를 벌이는 구성원은 각자가 사용할 스펠카드 장수를 앞서 제시한다. 이때 장수는 상이해도 무방하지만 원칙적으로 0장은 제시할 수 없다. 결투 구성원의 자율로 결투의 제한 시간을 합의하기도 한다. 이때 제시된 스펠카드 수는 결투자 주위에 떠도는 갑 형태의 반투명한 허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4. 제시한 스펠카드 장수를 먼저 모두 소모하거나, 합의된 제한 시간을 초과하였을 때 잔여 장수가 상대적으로 적거나, 스펠카드 숫자와 상관없이 결투가 곤란해진 쪽은 반드시 패배를 인정해야 한다. 결투 도중 항복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패배로 간주한다.
5. 통상적인 경우, 한 결투 내에서 한 개의 스펠카드는 중복하여 사용할 수 없다. 결투자의 조율에 따라 달라진다.
6. 모든 스펠카드에는 시간 제한이 있다. 일회성 기술인 경우에는 보통 적용되지 않으나, 오래 지속하거나 반복하는 기술일 경우엔 특정 시간을 넘기는 순간 자동 해제된다. 시간 제한은 기술마다 다르다. 사용자가 집중을 잃는 등, 온갖 상황에서 기술은 자동 해제될 수 있다.
규율의 역사가 반백년을 넘김에 따라, 스펠카드 규율에도 일종의 불문율이 몇 가지 생겼습니다. 주로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1. 스펠카드 명은 기술 종류/특징/유형『기술명』 의 양식에 따라 짓는다. 기술 종류/특징/유형은 없어도 무방하다. 글자수 역시 자유다.
2. 기술 종류/특징/유형 이름으로 부호 부符 자를 이용하는 경우가 꽤 잦다. 스펠카드의 형태로서 부적을 닮은 카드가 곧잘 쓰이기 때문인 것 같다.
3. 스펠카드 기술은 의식적인 발동을 요할 뿐 명칭을 선언할 필요는 없지만, 일부는 읊조리거나 외쳐 발동을 알리기도 하며 그다지 상식에 반하는 행동이 아니다. 물론 일일이 선언하지 않는 자도 있다.
환상향에서 마주칠 수 있는 수많은 종족을 다룹니다. 일반적인 동식물 등은 제외합니다.
가장 뻔하고 약한 종족. 환상향에는 요괴에 비해 소수가 존재합니다. 그중 십중팔구는 인간 마을에 살고요.
물론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약하게 태어나지는 않습니다. 몹시 드문 일이지만 기이한 힘을 타고나기도 하고 인간답지 않은 힘을 얻기에 적합한 특이한 체질을 선천적으로 가지기도 하지요. 아니면 아예 이도저도 못하도록 보통 인간에 비해 훨씬 약한 몸으로 태어나기도 하고요. 인간은 약하나, 모두 동등하게 약하지는 않은 것입니다.
그들 중 소수는 요괴에게 대항하기 위해 힘을 갈고 닦는데, 그중 대부분은 퇴치술에 속하는 힘을 익힙니다. 환상향 규칙상 마을의 인간을 잡아먹는 것은 요괴에게 금지되어 있지만 반대로 인간이 요괴를 퇴치하는 것은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인간 마을을 중심으로 환상향에는 극소수의 퇴치사가 존재합니다. 생각보다 잦게 찾을 수 있는 것이 퇴치 의뢰이기에 이것 생업으로서 꽤 쏠쏠한 모양이에요. 비록 실력이 뛰어난 퇴치사는 거의 없어 의뢰를 완수한다 해도 요괴 소멸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불문율에서도 그렇게 말하듯 인요 공생 차원에서는 오히려 그러는 편이 마땅하다는 것 같습니다.
요컨대, 인간의 천적. 인간의 공포와 신심, 그리고 육신을 먹어치우며 제 존재를 확고히 하는 존재.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존속 자체가 어려워지니 요괴에게는 인간이라는 양식을 섭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습니다. 잘못하다간 정체성에 위기가 찾아오고, 점차 힘을 잃어가며, 자신이 요괴가 맞는지 긴가민가해지는 지경에 이르다가 종국엔 소멸하거나 아예 인간이 되기도 한댔나요? 명예를 중시하는 경향이 큰 것이 요괴란 종족인데,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 심한 불명예로 취급되는 일이지요.
사실 전체적 식생활은 인간과 크게 다를 것 없기는 합니다. 존속에 인육이 불가결하다는 것만 제외하면 인간과 아예 동일하다고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그래도 인육이 가장 맛있기는 한가 봐요, 굽고 찌고 튀기면서 세상 행복하게들 즐기곤 하니. ...생 살점을 그대로 뜯지는 않냐고요? 그런 요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요괴 사이에서도 그건 흔히 야만스러운 행동으로 치부되곤 하죠.
규칙상으로 마을 인간 사냥 금지인데 도대체 어떻게 환상향에서 삶을 영위하냐고 묻는다면, 사실 방법은 많다는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 모를 소량의 인육이 정기적으로 지급됩니다. 의무 섭취인 것치고 고기의 질은 나쁘다는 단점이 있지만 존재의 존속용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하지요. 실행자는 환상향의 현자, 직접적인 배급은 텐구가 담당합니다. 꼭 지급되는 맛없는 고기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잘 생각해보면 인간 마을을 벗어나는 인간, 또는 헤매 들어온 외래인을 사냥하면 안 된다는 규칙은 없는지라 그들을 먹는 천운을 노리는 요괴도 있으며, 규칙 같은 것 생까고 몰래몰래 마을의 인간을 노리는 요괴도 적잖이 있지요. 하여 환상향의 요괴는 큰 애로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요괴라는 이름답게 이들은 수명 기백 년쯤은 기본으로 먹고 들어가고, 부상을 입어도 섬뜩할 만치 빠른 속도로 회복합니다. 관련된 연맥이 없거나, 수행이라도 쌓지 않은 이상 신체 능력 자체는 인간과 비슷하지만 이들이 부리는 기이한 능력은 그런 아쉬움쯤이야 삽시에 대수롭지 않은 일로 만들어버리죠. 개인차는 물론 있지만("야, 어떤 요괴는 고작 쥐덫으로 잡힌다?") 으레 요괴 앞이라면 인간 맨몸은 꼼짝도 못하기 마련입니다.
요괴는 보통 그다지 무리지어 움직이지 않습니다. 본성이 자기중심적인 족속들이라 후술한 요수나 텐구, 일부 도깨비 같은 몹시 특수한 예외를 제외하면 제 형편을 우선시함이 통상입니다. 그 밖 무리 짓는 요괴는 십중팔구 단순히 지성이 낮아서 멋모르고 몰려다니거나 언뜻 무리짓는 것처럼 보여도 겁 한번만 주면 저부터 살려라 꽁무니 빠지게 도망가는 놈들일 텝니다.
요괴 중에서도 특정 공통성이 강한 요괴들은 하위 종족으로 묶이지만, 대다수는 제각각 공통성이 희박한 1인 1종족 요괴에 가깝습니다. (간혹 무리라고 통틀기는 애매한 소수가 종족이 같은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우연이거나, 혈연이거나, 그밖 다른 연유거나.) 아래는 전자에 속하는 몇몇 종족을 소개합니다.
※ 도깨비, 오니, 마법사, 흡혈귀. 악마는 선택 불가 종족입니다.
- 요수
언뜻 보면 단순한 짐승이지만 말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인간의 형태를 띠기도 하는 요괴. 모종의 이유로 요괴화한 짐승이 이들입니다. 요괴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짐승의 특징은 일부만 남고, 전체적으로 인간형에 가까워지고는 하는데 인간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과는 별개로 지능은 대개 그리 높은 편은 아니라고 합니다... 참고로 동물의 모습을 할 뿐 근원이 진짜배기 짐승이 아닌 요괴는 요수라는 명칭으로 부르지 않습니다만... 알못은 그런 거 없이 다 요수라 싸잡기도 합니다.
특별하지 않은 이상 의외로 근력이며 체력 따위는 인간과 큰 차이가 없는 보통의 요괴와 달리 신체적 능력이 본 바탕인 동물만큼이나 우수하다는 것이 요수의 특점이라 할 만한 것입니다. 힘이 무시무시하다거나, 민첩하다거나, 도약력이 강하다거나, 어두운 곳에서도 눈이 밝거나, 소리에 민감하다거나 한 등. 대신인지 요수가 아닌 요괴에 비해 부상 회복은 더딥니다만, 뭐 그럼에도 인간보다는 빠르니까요.
자기 형편밖에 생각하지 않는 보통 요괴와 달리 본능적으로 동족간의 결속력이 단단한 편입니다. 여기서 동족이란 같은 근원에 속하는 종을 말하지요. 개 요수라면 같은 개 요수 혹은 개 그 자체, 고양이라도 마찬가지. 비록 단순 짐승에서 탈피하여 요괴의 반열에 든 요수들이지만, 같은 종인 동물은 어쩐지 요수를 알아보고 저보다 높은 서열 취급하고는 합니다.
- 텐구
환상향에서 가장 크고 높은 산인 요괴의 산에 자리잡아 거주하고... 터줏대감 행세를 하는 특정 요괴 무리입니다. 환상향이 격리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환상들이하더니 순식간에 산을 차지했어요.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일본 출신. 일본도 어지간히 요괴 살기 각박한 환경이었던 모양이지요.
이들은 요괴로서는 정말 특이하게도 무리지어 체계화된 조직 생활을 합니다. 위계질서 꽉 잡힌 전체주의, 상명하복, 까라면 까. 그런 정신은 그들의 뼛속까지 새겨져 있습니다. 요괴라면 자기중심적 본능에 충실한 것이 보통인데 이들은 조직을 위해 개인 의사를 포기할 줄 알며 극심히 발달한 사회성까지 갖추었습니다. 환상향의 강대한 세력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그 덕이라고 그들은 자부하곤 하죠.
제각기 가문을 이루고 있는 것도 특이점 중 하나. 의사가 맞는 자가 모여 한 가문을 이루기도 하며, 정의대로 혈연으로써 가문을 구성하기도 합니다. 새로이 텐구가 된 자라 해도 정식되게 입적해야지만 텐구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 받을 수 있습니다. 한 가문은 서로 같은 종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문중에 속한 텐구를 사회의 일원으로서 제 구실을 할 수 있게끔 양성하는 역할을 합니다. 가문 중에도 명문으로 통하는 가문이 있으며, 가문과 가문이 혼인관계를 맺어 친분을 맺거나 서로 견제하며 경쟁하는 일도 종종 발생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인간이 이루는 가문과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산에 보초를 세우고 저들이 허한 자, 대체로 요괴만 진입 및 거주를 용납하는 터줏대감 행세, 용납한 자에게조차 텐구 영역은 침범하지 않도록 엄금하는 배타적 경항 등 이기적으로 뵐 수 있는 행보로 유명한 이들. 하지만 그 말고도 문제가 있다 하니 바로 악명 높은 교활성과 그 밑에 교묘히 감춘 자만심입니다. 입만 가지고 살아가는 족속, 유서 깊은 강약약강, 강해도 대충 힘을 빼고 똑똑해도 시치미를 떼는 부류...라고 같은 일본 출신인 모 요괴가 화가 머리 꼭지까지 올라 증언한 적도 있다지요. 물론 개체마다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환상향에서 텐구가 전체적으로 지닌 곱지 못한 이미지는 변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정식 복장 양식은 통일되어 있습니다. 슈겐도修験道의 야마부시山伏 옷. 신발은 대체로 굽 하나 달린 잇폰바게타一本歯下駄를 신고. 개인 활동을 할 때는 자유 복장을 취해도 상관없으나, 본텐게사梵天袈裟의 털장식(본텐梵天)이 0개에서 많으면 10개 넘게도 달리는 토킨頭襟만큼은 쓰라고 텐구 사회에서 권고하고 있습니다.
- 계층
텐구 사회에 꼭 카라스텐구, 카와텐구, 하쿠로텐구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된 계층은 있기 마련입니다. 본 항목은 그러한 계층을 소개합니다. 아래로 갈수록 낮은 계층으로 취급됩니다.
텐마天魔
혹은 천마. 텐구의 수장입니다. 원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그분의 모습을 아는 텐구는 손에 꼽는다는 소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텐구大天狗
텐마를 제하면 텐구 사회에서 가장 강하고 지고한 위치. 위엄 넘치는 날개와 우단선羽団扇의 보유가 그 신분의 증빙입니다. 중대한 결정은 대부분 이들 선에서 처리되며, 모습에서 유추할 수 있듯 카라스텐구 계열. 사십팔대텐구四十八大天狗라 불리기도 하지만 실제로 48분인지는 텐구 사회에서도 불명입니다.
카라스텐구烏天狗
혹은 까마귀 텐구. 자유자재로 펴고 접고 숨길 수 있는 까마귀 날개를 등에 단 텐구로 날개를 제외하면 겉으로는 인간과 큰 차이가 없곤 합니다. 날쌘 몸놀림과 바람 조종 능력으로 유명하지만, 텐구 사회 속에서는 카와나 하쿠로에 비해 비상한 힘이며 지혜를 지닌 객체가 많기로도 인식이 단단합니다. 사회에서의 역할은 정보 관리와 여러 출장 업무가 주. 그 밖 중요 업무를 맡기도 합니다. 속도가 원체 빨라서 그런지 어쩐 이유인지 신문을 제작하는 객체도 많습니다. 애당초 윗사람들이 은근히 장려하는 분위기이긴 한데.
카와텐구川天狗
혹은 강가의 텐구. 엘프같이 뾰족한 귀와 쟈노메가사蛇の目傘 소지가 특징인 텐구입니다. 들든 펼치든 등에 매든 허리에 묶든 언제나 우산을 가지고 다닙니다. 물 조종이 능력으로, 컨셉에 충실하기라도 하고자는 것인지 물 주변에 많이들 거하고, 또 발견할 수 있습니다. 텐구 사회에서 맡은 역할은 갖은 잡무. 사무, 인쇄, 시중, 보조, 인원 충당 등등... 편견일 수 있지만 성격은 보통 차분하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하쿠로텐구白狼天狗
혹은 백랑 텐구. 백랑白狼의 귀와 꼬리, 일부는 이빨과 발톱까지 지닌 텐구입니다. 텐구 중에서도 특히 야성적인 특성을 지녔죠. 바람이나 물 조종 같은 거창한 능력은 없지만 대신 오감이 예민하고 극히 일부는 아주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다고 합니다. 텐구 사회에서의 역할은 초계 중심의 무관으로, 어... 까놓고 말하면 고기방패 담당입니다. 슬프지만요. 대부분 검술을 구사합니다.
- 수인
조건(보름달이 뜨면, 술을 마시면, 심하게 화를 내면, 물을 뒤집어쓰면- 같은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라는 듯합니다)에 따라, 또는 명확한 조건조차 없이 불시에 인간에서 짐승으로 변하는 요괴입니다. 잘 알려진 예시를 들면 늑대인간이 있죠. 인간으로서 있을 때는 인간치고 다소 더딘 성장에 긴 수명, 요괴가 으레 그렇듯이 인육을 섭취해야하는 정도를 제외하면 여타 인간과 동일한 특성을 가지지만 한번 짐승으로 변하는 순간이면 인간의 모습은 어디 가고 무시무시한 요력의 경외되어 마땅한 요괴로 변모하고 맙니다. 이성을 잃냐고요? 그것은 객체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른 듯싶습니다.
선천적인 수인도 있지만 인간이 어떠한 일을 겪어 후천적으로 수인이 되는 사례도 더러더러 있다고 전해집니다. 제각기 이유는 다르다던데... 가령 끔찍한 저주를 받아 본의 아니게 수인으로 화했을 수도 있겠네요. 비참하기도 하지.
누가 뭐라 하든 본바탕은 인간. 그러므로 결국 요괴보다는 인간 사이에서 소속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괴에 비해선 인간을 더 가까이하고 싶고, 인간 사이에서 섞여 지내고 싶고... 말이죠. 그렇지만 정체는 결코 쉬이 밝히지 않는 편인데 물론 당연할 것입니다, 그 속에서 오래 오래 지내고 싶을 테니 말이죠.
- 도깨비
'우리'의 바깥 세계 상식으로 도깨비 하면 딱 떠오르는 것에 가깝습니다. 호피 무늬 옷 입고 징 달린 방망이 든 괴물요? 아니, 그건 오니 이야기고. 전설에 보이는 각양각색의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사람의 모습이기도 하고 사물이나 물질의 모습이기도 하고, 뿔이 달렸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지독하리만치 똑똑하기도 하고 우스우리만치 멍청하기도 하고, 사람과 친하기도 하고 다가가기조차 무섭도록 흉포하기도 한 다양한 모습을 갖추었지만 단 하나, 도깨비라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춘 존재들. 힘쓰는 일, 요술, 기술 등에 능한 요사스러운 존재로, 흔히 보이는 듯 보이지 않고, 드물게 보이는 듯 꽤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텐구가 환상들이하기 전까지만 해도 특정 무리가 요괴의 산에 군림하다시피 하였으나 지금은 어째 그만큼 대단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네요. 여기저기 도깨비 소재 동화를 방불케 하는 자잘한 소식은 여전히 틈틈이 들려옵니다만.
- 오니
걸걸하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일본의 괴물. 요괴의 산에 일부 살며, 천하장사인 도깨비와 어깨를 나란히 한 적도 있었다고 일단은 전해집니다만... 이상하게 목격담은 많지 않은 희귀종이라면 희귀종. 무서운 색 피부에 흉악한 뿔, 날카로운 이빨에 금쇄봉을 들고 밤의 마을을 이따금 누빈다는 소문이 돌기는 합니다.
- 마법사
종족명이 어떻게 마법사?? 지금부터 받아들이세요, 직업이 아닌 종족으로서의 마법사란 마력으로 식사와 수면을 대체하는 사식의 마법을 익힌 존재라고. 또한 요괴라는 큰 분류, 마족이라는 작은 분류 속에 속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죠. 사식의 마법을 타고난 선천적인 마법사도 있고, 본디 다른 종족이었으나 사식의 마법을 익힌 후천적인 마법사도 있습니다. 뭐, 어느 쪽이든 육체의 성장과 노화를 멈추는 사로의 마법까지 익혀야만 완전한 마법사로 인정 받지만요.
환상향에 적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리 흔한 편도 아닙니다. 마법의 숲에서 자주 목격됩니다. 어째 태반은 건강이 나쁜 성싶고, 대체로 제 마법에 몹시도 골몰해 있습니다. 마법사임에도 어쩐지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생각나는 존재들입니다.
- 흡혈귀
인혈을 먹는 요괴이자, 마족. 요괴 중에서도 손꼽히는 강한 종족입니다. 흡혈귀 이변도 주체가 이름대로 바로 이 흡혈귀였지 않습니까. 그만큼 약점도 많다고는 하지만. 환상향엔 흡혈귀 이변의 주인공이었던 자를 제하면 거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약점 때문에 다들 꽁꽁 숨기라도 한 걸까요?
- 악마
대표적인 마족이지요. 정확히 어떠한 종족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에요. 흔한 악마다운 괴담으로만 존재할 뿐.
- 요정
자연 현상, 생명이 있는 곳에 자연히 있는 것. 정확히 말해, 자연 현상이 실체화되어 인격을 갖춘 것. 인간도 요괴도 신조차 아닌 그것들은 요정이라 불립니다.
환상향의 이곳저곳에 돌아다닙니다. 거의 어디서든지 볼 수가 있죠. 가장 작은 것은 아이의 손에 잡힐 정도로 작고, 가장 큰 것은 아무리 해도 열 살 안팎의 아이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작고 귀엽다면 귀여운 종족입니다. 등에는 각기 개성적인 달개를 답니다. 곤충을 닮은 반투명한 날개가 가장 흔하기에 서양 전설에서 말하는 페어리를 방불합니다. 그 자체가 아닐까 싶기도 하죠.
자연 현상 그 자체이기에 생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든 있고 밤낮조차 가리지 않고 활동하지만, 소란스러운 장소를 좀 더 좋아하고 음침한 장소를 싫어하는 정도의 경향은 있는 것 같습니다. 장난기가 넘치고 동시에 멍청하리만치 단순한 사고방식을 가져서 대상이 저보다 강하든 말든 타 종족을 상대로 짓궂은 장난을 치기 일쑤인데, 단독 전투력으로만 놓고 보면 인간보다도 약한 개체가 많아(어느 정도나면, 심히 약한 요정은 인간의 손짓 한번에조차 스러질 수 있습니다!) 사소한 장난 한번 치려다 나쁜 꼴 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심하면 죽는 경우도 있는데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목숨이라는 개념 자체가 여타 종족과 궤를 달리하는지라 죽을지언정 조금 쉬고 나서 다른 곳에 부활하고 말거든요. '조금'이라는 말에는 케바케 요바요, 적잖은 편차가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튼. 이의 연장선인지 사실 이들에게는 식사와 수면도 무용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잠을 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도 장난스레 인간을 흉내내는 일에 불과한 것입니다.
- 선인
신선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그 왜, 도道를 닦아 보통 인간을 탈피했다는 대단한 존재들. 그중에서도 하늘 오르지는 못하고 지상에 머무는 수준에 그친 지상선. 선인이란 그들을 이르는 호칭입니다. 뭐,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요. 무수한 노력과 재능을 요하는 경지인지라.
그들의 특징요? 뭐, 불로장생함, 궁극적 목표는 더욱 수련하고 덕을 쌓아 천인으로 거듭나기임, 많은 인간이 그들을 경외하며 우러름, 그들 중에서도 특히 덕이 높은 성인과 하늘로부터 인정 받지 못한 사선이 있음, 선인의 경지에 다다라 머리카락 눈 따위가 기이한 색으로 변하기도 함, 근본은 인간인지라 아직 요괴에게는 훌륭한 식사거리임, 더군다나 인간의 높은 경지인 만큼 인육 중에서도 천하 일미라는 소문이 돌더라... 등?
- 천인
저 하늘 높은 곳, 천계에 거한다는 존재들입니다. 도道를 닦은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래요. 수련 없이도 덕을 무수하게 쌓은 인간이 죽어서 되기도 한다는 것 같습니다. 한낱 지상선 따위가 아닌 그야말로 완전한 신선으로, 늙지도 죽지도 않고 평생 떵떵거리는 삶을 산댔나요? 쟤들도 자르면 어차피 인육일 듯싶은데......
- 유령
아무러한 기질이 구현된 것이 유령입니다. 생명이 죽어 남긴 혼도 유령입니다(사실 혼령이든 영혼이든 마음대로 부르는 것 같지만요). 영혼 하면 생각나는 딱 그 모양에, 대체로 희거나 반투명하고, 어두운 곳에선 빛나기도 합니다. 차갑기 때문에 냉방용품으로도 제격입니다. 환상향엔 쉽게 발견되는 편은 아니지만 음침한 곳에 더러더러 보입니다.
- 원령
부정한 기질이 구현되거나, 강한 원한을 품은 생명이 죽어 남기는, 또는 그 자체로 원한을 품은 혼입니다. 대체로 언뜻 보기엔 유령과 다를 것이 없지만 매우 뜨겁고, 매우 위험합니다. 환상향에서 마주칠 일은 거의 없으니 안심일 따름입니다. 원령이라는 개념 자체를 아는 사람부터가 드물 정도인걸요.
- 망령
죽었음을 깨닫지 못했거나, 인정하지 못한 존재가 망령이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정확한 특징은, 글쎄요. 환상향에서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데 하도 상세하질 못해서... 유령과 달리 생전의 모습을 하고 있음 정도? 다른 말로는 소위 귀신일 수 있겠습니다.
- 신
무신론자에게 놀라운 소식 하나, 신은 실재합니다! 환상향의 산하대지서 종종 목격됩니다. 그렇다 할 권능 없는 낮은 신일 확률이 높긴 하지만... 뭐, 신이라면 신인 거죠. 불만 있습니까?
- 저승사자
누가 뭐란들 이들도 일단 신입니다. 검은 옷 입고 검은 모자 썼습니다. 삼도천이나 몰후의 길 말고는 그다지 볼 일 없고, 애초에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만, 일은 하는 것이겠지요, 예에.
환상향은 기본적으로 산간에 있지만 그 전체가 숲인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사는 마을, 인간이 다가가지 않는 위험한 숲, 요괴가 사는 산 등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지면의 경사가 심한 편이지만 구릉이 아닌 평지도 많고, 음... 요컨대 살기 나쁜 곳은 아닙니다. 자연도 풍부하고, 깡촌답게 공기도 맑고... 아니, 이게 아니지. 인간 마을은 특히 경사가 완만한 편이니 말이죠. 어디거나 마음에 들거든 당신 가서 살아도 됩니다. 무사할지는 그 다음 문제고요... 진행 시작하자마자 사망 플래그 찍고 싶지는 않거든 잘 골라야 한다는 말씀을 지금 드리고 있는 겁니다.
※ 환상향의 모든 지역과 지리를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지리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 조건 하 참여자 임의로 지형지물을 설정할 수 있으며, 설정이 구체화될 경우 정식 지역으로 편입됩니다.
- 신전의 영악
환상향 극동의 산. 신과 관련되어 신전이라니 참으로 직관적입니다, 그렇죠? 한자는 글쎄요, 神前, 神傳, 神戰, 神殿, 기록마다 다르게 표기되었다고 하니.
규모는 보아하니 소악小嶽입니다. 대체로 고요하나 시끄러운 때 없는 것 아니요 날뛸 요괴는 되는대로 날뛰는 눈치입니다. 따스한 무당의 손길 두렵지도 않은 모양이지요.
안개 쉬이 낍니다. 짙습니다.
- 몽접 신사神祠
정상- 에 있지는 않고요. 그보다는 조금 아래에 위치하는 큰 신사입니다. 대문에서 내려다보는 환상향의 풍경이 탁 트여 있습니다. 신을 모시는 본당, 무당이 거하는 별당, 손님이 묵는 객당까지 잘 갖춰진 건물. 잘 가꾸어진 마당, 그 한편에는 연못도 있습니다. 곳곳 나무에는 요정 떠드는 소리 이따금 들린다고 하대요. 설마 하니 요괴도... 음... 종종 오간다고. 그것도 생각보다 많이...? 정작 와야할 인간은 다 어디 갔는지 몰라요.
- 신전의 숲
신전의 영악과 붙었다고 설마 신전의 숲이... 맞나? 보통 규모의 숲입니다. 안개 끼고 고요한 것은 영악과 같습니다. 영악을 골고루 감싸는 모양이니 거기 몽접 신사로 향하는 당신, 이 숲을 지나도록 하세요.
- 도취의 화림
신전의 숲으로부터 북쪽에 있는 화원은 드넓고 아름답습니다. 하늘 헤엄치듯한 고동색 가지, 일입하면 은은히 빛나는 꽃잎. 절품이기도 하며, 그만큼 또 기이하기마저 한 야경. 심겨진 것은 매화나무인데 꽃잎 맺히는 겨울과 봄이 차례로 지나면 비로소 과실을 맺은 매실이 빛나 야명주 수없이 달린 광경과 같답니다. 애초에 꽃부터가 범상치 않아요, 흰빛에서 진홍빛, 연청빛에서 순청빛, 크게 두 가지 색감이 공존하여 조화가 기가 막힙니다. 흥취에 취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지요.
이 숲에서 나는 매화향을 맡거나 꽃이나 열매를 먹은 자는 종종 술에 취한 것처럼 변한다고도 합니다. 언제나 그렇지도 않고 복불복. 텐션이 높아지든 낮아지든, 심하게 헤롱헤롱하든, 뭐 꽃을 꺾어 우적우적 씹어먹든 이런저런 주사 뽐내는 자 더러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 '도취'의 화림인지 짐작이 가는 부분입니다.
- 화과의 호수
중앙에 위치한 아늑한 호수입니다. 경치와 분위기라면 과연 절세라, 단연 연회 장소로서 굴지되는 곳입니다.
- 청연궁
화림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하이얗고, 눈 아프게 푸르고, 또 금빛이 적절하게 섞여 꾸며진, 지나치게 크거나 너무 작지도 않아 아름다운 동양풍 저택이 있습니다. 매화나무와 잘도 어우러져서 건물을 배치한 자의 미적 감각을 가히 짐작할 수 있죠. 있는데... 아름다운 건 모르겠고 이 저택만 보면 PTSD를 일으키는 일부 요괴가 있다고 하니...
그래요, 예상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저택의 주인은 크리스티아나 파피 안젤루스로 매혹적인 박쥐 날개의 소유자이자, 환상향을 한 차례 뒤엎었던 흡혈귀 이변의 원흉입니다. 맞습니다, 약점 많은 흡혈귀이기 때문에 외출을 하려면 반드시 지우산을 챙겨들곤 하죠... 요괴 사이에서는 신고식 한번 거하게 치른 무시무시한 대요괴로, 인간 사이에서는 도취의 화림 깊숙한 곳에 함부로 들어서면 안 되는 주된 원인으로 취급되곤 합니다. 물론 흡혈귀 이변의 주인공으로도 드문드문 알고 있지만 말이죠. 그때 여간 떠들썩했어야지. (당시 많은 요괴가 골골댔다는 내용은 어째 쏙 빠져 있는 것 같지만요.)
청연궁은 개방적이면서도 폐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데, 손님이라면 잘만 반기고 교류를 마다하지 않기에 개방적이고, 그럼에도 아무도 청연궁 내부의 사정을 환히 알지 못하기에 폐쇄적입니다. 오리엔탈리즘을 숨김 없이 표출하는 저택의 주인과 이따금 따르는 시종들만이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 마법의 숲
도취의 화림은 신전의 숲에서 북쪽에 있었지요, 이제는 남쪽으로 가봅시다. 다다르게 되는 숲은 괴이하기 그지없는 거대 원생림입니다. 습기와 신비로운 분위기가 가득한 곳. 그 숲에는 기괴한 생명이 자란다고 합니다. 기상천외한 온갖 버섯, 마법과 연관되기도 한 수많은 버섯이 대표적으로, 거대 곤충, 거대 식물, 듣도 보도 못한 곤충과 식물, 아예 식인 파리지옥이나 유사한 것까지. 안 그래도 불길한 마법의 기운이 꼭꼭 눌러 담긴 곳이거늘 이 위험지대는 누군가 보지 않는 사이에 은근슬쩍 모습과 구조를 바꾸기까지 합니다. 한번 간 길 기억한들 대체로 무용합니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숲입니다.
그럼에도 사는 자는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환상향에 거하는 마법사들. 채집이나 연구를 한다고 마계로부터 잠깐 들르는 자도 있습니다. 마법과 마력과 관련된 것들로 이렇게나 들어찬 곳이니 연구에 미친 그들이 좋아할 법하기는 합니다.
- 마녀의 강
규모만 보면 사실 강보다는 천川입니다. 마법의 숲이 모습을 바꾸는 때 덩달아 위치가 변하고, 기이하게도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곳을 마법의 숲 밖으로 나가선 찾을 수 없습니다. 기이한 마력, 온갖 마법 재료나 매직아이템을 품었다는 소문의 주인공이나 사실 여부가 확인된 바는 아직 없는 듯합니다.
- 미혹의 죽림
마법의 숲과 인접한 음침하고도 신비로운 대나무숲입니다. 대나무가 무수하니 빽빽하고 여기저기 안개가 쉽게 끼는 특성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한번 들어서면 길을 잃고 만다는 사실이 가장 유명합니다. 미궁과도 같은 숲입니다. 이 나무가 저 나무 같고 저 나무가 이 나무 같고, 표지 삼을 물건도 거의 없고, 마치 미아가 되도록 누군가 저주라도 걸어놓은 것 같고... 숲에 몹시 익숙한 자는 그나마 덜하다고 하나, 그들이라도 자칫하면 헤맵니다. 조심하도록 하죠, 집중 꽉 붙들고.
소문이 있습니다. 희귀하지만 가끔은 대나무꽃이 반발하고, 역시 희귀하지만 빛나는 대나무도 있다고. 그리고 이곳 죽순이 정말, 아주 정말로 맛있다고. 발견하는 자는 거의 없어 진위는 불분명한 소문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으니, 이곳에서 올려다보는 달이 대단히 맑고 선명하여 지극히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인지 달과 관련된 요괴가 쉽게 목격됩니다.
- 죽림의 냇물
숲을 헤매는 자가 운이 나쁘면 발견한다는 물줄기입니다. 소문으로 떠도는 이 기이한 물줄기의 모습과 특징은 말하는 자마다 다릅니다. 자그만 개울에 그친다, 아니다, 냇물이라 하나 기실은 강의 경지다. 둘 다 아니다, 그 냇물은 모습을 바꾼다, 마녀의 강처럼 위치도 바꾸니 실로 무시무시하다...
운이 나쁘면 발견한다는 말답게 곁들여진 아주 기분 나쁜 소문이 있는데, 이 냇물을 마주하면 결코 죽림을 빠져나갈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종종 나도는 목격담은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요...... 대체로 지어낸 이야기로 치부됩니다. 아니면 떠벌리는 너, 헤매다 못해 환시라도 본 거야?
- 수없는 언덕
환상향에는 많은 언덕이 있습니다. 유독 남쪽에 몰린 경향이 있지요. 그렇지만 단 하나 제외하고는 변변찮은 이름조차 한 글자 없다고 합니다.
남쪽의 수다한 언덕. 높은 언덕 작은 언덕. 어느 곳은 완만하여 거의 평지 같은가 하면, 어느 곳은 언덕 사이로 빠져들기만 하면 결코 헤어나오지 못할 골짜기같이만 느껴집니다.
- 무명 언덕
언덕 중에 이름 있는 유일한 언덕이 무명 언덕이랍니다, 깔깔. 인간 마을에서 내려가고 내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은방울꽃 무성합니다. 바람 부니 쌀쌀하고 음산합니다.
인간 아이 수없이 버려진 장소라는 이야기 있습니다. 가난, 기근, 제각기 이유 하나씩은 있었으리라. 인간 아이 좋은 결말 못 맞이했을 테지요, 아사하든 은방울꽃에 중독되든 요괴에게 잡아먹히든.
그런데 언덕은 백골도 없이 지나치게 깔끔합니다. 인간 일부 사이서는 이런 소문이 돕니다, 무명 언덕에 아이를 맡기면 누구든 드높은 분께서 친히 거두어 가신다고. 그렇게 아이는 나름의 행복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보다는 굶주린 요괴에게 시체를 빼앗긴다는 이야기가 더 그럴싸한 것 같지만요.
- 유말의 강
남쪽의 수없는 언덕을 조용히 가로지르는 작은 강. 별다른 특징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 태양의 밭
수없는 언덕을 넘어 보다 남쪽으로 향하면 드러나는 분지 지대. 전체가 드넓은 화원으로, 다양한 꽃이 자라는데 태반은 해바라기입니다.
목숨을 부지하고 싶은 인간을 제외하면 누구나가 흔히 들르는 북적북적한 장소입니다. 요정은 장난치며 날아다니고 요괴가 공연을 열기도 하니, 마치 인외의 광장과도 같습니다.
- 강호의 산
요괴의 산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제법 크다고는 할 수 있는 환상향 최남단의 산. 태양의 밭을 지나 몇 개 언덕을 넘은 곳에 자리합니다.
기이한 특징이 한 줌 한 줌 밀집되었다고 합니다. 가령 산기슭 한 구석은 무엇을 심어도 금방 죽는 땅이며, 중턱 어딘가엔 단악의 땅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이 있습니다. 그밖에도 진경을 자랑하는 자리가 몇몇 있으니 다른 특징은 없나 탐방하는 인요도 있습니다.
지리가 썩 험난하고 또 복잡합니다. 인요 불문 은자隱者가 많다는 소문이 있으나 사실 여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 유말의 강
유말의 강은 태양의 밭 근처의 언덕을 가로질러 강호의 산의 기슭을 둘러 돌아갑니다.
- 죽음의 땅
산과 언덕 사이, 억지로 한몸 욱여넣은 듯이 보이는 황량한 땅입니다. 나무 간간이 있으나 거개가 죽어 서있기 고작. 게다가 쓰레기 구르고, 뼈... 같은 것도 널브러져 있고. 불길한 곳입니다, 여러모로. 무엇을 심어도 금방 죽어버리는 땅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이나 요괴라고 해도 살기 그다지 좋지는 못하겠네요.
- 단악의 땅
그곳의 나무는 새까만 줄기에 붉은 잎을 가졌습니다. 모두 단풍인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다양한 나무가 붉은 잎을 가졌을 뿐이며, 사시사철 가지 허전한 법도 없습니다. 떨어지는 잎은 많은데 비는 가지가 없으니 그야말로 기묘하죠.
산의 중턱 즈음에 있는 숲과도 같이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아름다운 만큼, 넓습니다.
- 공황의 음림
태양의 밭을 감싼 언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이름대로 어둡고 침침한 숲입니다. 사시사철 공기는 서늘하고, 안개는 무수하게 끼고, 겨우 비집고 들어온 빛은 안개에 산란되어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요컨대, 공포스럽습니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고요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기성이 들린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허연 안개 너머로 귀신이 보인다 하고, 누군가는 음림에 들어가 미친 사람과 마주할지도 모른다고 하지요.
음침한 곳인 만큼 유령도 많다고 이야기되고, 망령 목격담도 더러더러 발생합니다. 철없는 인간이나 활달한 요괴가 담력 훈련을 위해서도 찾아온다고 해요.
- 유수의 강
강이라는 명칭과 달리 규모가 크지는 않습니다. 졸졸졸. 때로는 시끄럽게, 때로는 지나치도록 고요하게 흐른다고 합니다. 때로는 물속이 비치고 때로는 아무것도 없이 새카맣다고. 아니라면 보는 자의 환각인가?
- 몰후의 길
몰후의 길이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제대로 개척된 길도 없는 적막한 삼림일 따름입니다. 곳곳에 석산과 두견화를 볼 수 있습니다. 인요를 불문하고 굳이 접근하려는 자는 없습니다. 삼도천과 직결되는 숲이거든요. 유령 꽤 많습니다.
- 삼도천
몰후의 길 끄트머리에 도달하면 마주하게 되는 거대하고도 섬뜩한 강입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 이따금 나무배 노 저으며 할일 다하는 저승사자 볼 수 있습니다.
- 주홍 사지
소나무숲은 소나무숲, 다만 전체가 새빨간 주홍빛으로 물든 죽은 소나무숲입니다. 들리는 바로는 방사능에 심각하게 오염되었답니다. 방사능 그게 대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사람은 물론이요 회복 능력이 상당한 요괴조차 그곳에서 오래 버티는 것은 무리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뒤틀린 동식물이 살아가기는 한답니다. 그래서 방사능이 대체 뭔데 씹덕아.
- 요괴의 수해
갖은 나무가 바다 이루는 숲, 갖은 요괴가 살아가는 숲. 이름값 톡톡히 합니다. 야숙하는 요괴든, 집을 지어 사는 요괴든, 살지 않고 전전하는 요괴든 온갖 요괴는 다 여기서 볼 수 있다고 해도 딱히 과언은 아닙니다. 요괴의 산과 인접한 곳이어서도 그렇겠지만, 몇몇 다른 숲과는 달리 기상천외한 특징이 없기 때문에야말로 이리 요괴의 천지를 이룬 것일지도 모릅니다. 인간 마을과 근접했지만 인간이 진입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북편에 가장 넓은 면적을 두고 있을 뿐, 하도 커 동과 서에도 어느 정도씩 걸치고 있습니다.
- 안개의 호수
복판에 위치한 드넓은 호수. 요괴의 산 높은 곳- 구천의 폭포 줄기에서 연결됩니다. 다른 어디도 아닌 요괴의 수해에 자리한 호수인 만큼, 물에 살 만한 요괴 태반은 이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따금 생물, 물건 따위가 떠내려오기도 합니다.
풍경이 그렇게 꿈과 같이 아름답습니다. 자주 끼는 안개마저도 심미를 지닐 정도니.
- 괴이의 강
안개의 호수에서 흘러나온 물줄기. 굉장히 굵어 지류가 많은 것 말고는 유별난 점이 없습니다.
- 향림당
요괴의 수해의 몹시 한적한 곳, 그렇지만 인간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지지는 않은 곳에 덩그러니 자리한 잡화점입니다. 주변에 촘촘히 심긴 복숭아 나무가 목재로 된 포근한 건축물과 어우러져서 꽤나 장관입니다. 동글이 안경을 쓴 요괴, 적각이 계산대에서 여유를 만끽하며 앉아있고 매대엔 다양한 물건이 빼곡히 들어찼으나, 정작 쓸 만한 물건은 찾기 어려워(언뜻 그럴싸하나 쓸모없는 물건이거나, 파손됐거나 심히 오래되어 말 그대로 쓸 수 없는 물건이거나) 얼마 없는 단골들 사이선 고물상이라는 반 농담 반 진담이 도는 것 같습니다. 작고 소박한 가게. 파는 물건보단 사들이는 고물이 훨씬 많은 가게(...). 주인이 장사할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가게로서의 구실은 못하고 단골들의 휴게소가 되어버린 것은 필시 기분탓이 아닐 것입니다.
- 명하사
요괴의 수해에 있다- 고는 명시했지만... 실상은 인간 마을에 보다 가까운 위치에 있는 절. 그것도 꽤 규모 있는 절입니다. 삼운 선혜월이 주지住持로, 인간과 요괴를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수행자를 받고 있습니다. 세상에나, 인요가 함께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하면 명하사의 요괴들은 함부로 인간을 덮치는 일이 없다는데... 과연 진짜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소문이라도 믿을 수밖에.
그러나 주지 스님의 인품만은 진짜배기라는 것 같습니다. 조금 많이 경박하고, 조금 많이 마이페이스에, 조금 많이 직무 유기를 하기는 하는데... 아니 이거 주지 괜찮은 거 맞아? 심지어 머리까지 길게 길렀습니다...... 어음, 일단 법력은 틀림없이 깊음에 언제나 인요 평등의 이치를 설파하고 다니시니 괜찮기는 개뿔 머리부터 깎고 뭐라고 주장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정도면 파계승이 따로 없는데도 어째 대외적인 이미지는 멀쩡해서 지금까지 명하사의 입지는 굳건한 것이 기적입니다. 아하, 이것이야말로 불력 아니겠어요...... 주지를 가장한 가장 미련한 중생마저 이렇게 보듬고야 마는 그 불심......(부주지 현각 도희 曰 인용. 참고로 이 중생도 풍성하다.)
여러모로 험담했지만, 현재까지 환상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불교 세력이라는 점에는 한 치 변함이 없겠습니다. 일단 크고, 수행자 수도 적은 편은 아닙니다. 저쪽 위에서 말했다시피 환상향에서는 체계 잡힌 종교가 그다지 큰 인기를 얻지 못함에도 그치고 선방한 편이죠. 환상들이한 지 3년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 요괴의 산
환상향에서 가장 크고 높은 산. 옛날에는 화산 활동을 했는 성싶지만 지금은 아무 소식 없이 잠잠합니다. 텐구의 본거지이며, 그들의 허가 하에 다양한 요괴가 삶을 영위하는 장소입니다. 과거에는 도깨비가 군림했지만 텐구가 환상들이한 이래로는 몇 발짝 뒤로 물러난 듯합니다.
산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텐구가 폐쇄적인 만큼, 요괴의 산에 진입할 일 없는 인간이며 일부 요괴는 실제로 산중이 어떠한지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산에 살거나 종종 오가는 요괴조차 일반적으로 텐구 영역에는 발을 들일 권리가 없기 때문에 그들이 실제로 어떠하게 지내는지에 있어선 어둡다고 하죠.
- 구천의 폭포
쏟아지는 거대한 물줄기 수없는 요괴의 산에서 가장 큰 폭포입니다. 하쿠로텐구들이 경비를 섭니다. 다시 말해 텐구의 구역.
- 구룡의 폭포
구천의 폭포보다는 소박하지만 절대로 작지는 않은,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폭포입니다. 텐구를 몇몇 마주칠 수는 있지만 막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들도 폭포 감상이나 하려고 왔을 확률이 높거든요.
- 현무의 계곡
과거 요괴의 산이 화산 활동을 했을 적 형성되었다는 거대한 주상절리 계곡입니다. 하쿠로텐구들이 순찰 다닙니다. 아무래도 텐구의 구역.
- 미답의 계곡
카와텐구며 그들이 거하는 건물로 즐비하매 타자의 접근을 물리친다 하여 미답未踏의 계곡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나무가 무성해 햇빛이 잘 스미지 않는 시원한 장소. 계곡 역시 큽니다.
- 청와의 계곡
동물인지 요괴인지는 알 수 없어도 청개구리를 비롯한 양서류가 곧잘 발견된다, 그런 소문이 도는 중간 크기 계곡입니다. 이곳은 텐구의 구역 주장이 딱히 있은 적은 없습니다. 적당히 크고 나무가 우거졌기 때문에 피서의 명소로 불립니다.
- 난가침爛柯枕
요괴의 산 중턱에 자리한 크나큰 도박장입니다. 조선풍인지, 일본풍인지 중국풍인지 모를 화려한 꾸밈새를 자랑하며 다소 어둑한 실내에 분위기 있는 은은한 등을 매달아 이름처럼 잠도 솔솔 올 것 같습니다...... 통칭 난금이 도박장의 주인으로, 신비로운 공기를 감싸는 의문점 많은 요괴 두루미이나 손님은 곧잘 부르는 걸 보니 도박장 운영은 천직인 것 같습니다. 도박 사기도 거의 근절하는 이상적인 운영자라고.
노름은 산의 요괴들이 굉장히 반기는 유흥 중 하나로, 난가침은 연회를 제외하고도 요괴들이 친목을 다지는 한 종류의 사교장으로 기능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 무연총
환상향 외각. 요괴의 수해를 벗어나다 보면 보입니다. 석산과 붉은빛 벚나무로 사시사철 그득한, 어쩐지 쓸쓸한 장소. 묘와 묘표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위험도는 인요 불문 극고. 온갖 세계의 경계가 얽히고설킨 공간이라 언제 어떤 괴변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입니다. 당신이 자살희망자가 아니라면 방문은 삼가도록 하세요.
얽힌 세계 중에는 바깥 세계도 있는지, 외래인 꽤 출몰합니다. 외래인 왈, 본인조차 눈치채지 못한 사이 흘러 들어온다나 뭐라나.
- 재사의 길
무연총에 도달하거나 반대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길을 지나야 합니다. 길 주변 온사방에 석산이 피었습니다. 그도 사시사철.
이곳 석산의 독은 다소 독특합니다. 공기를 타고 길을 지나는 자의 몸에 돌면 그 자는 불쾌감을 느끼는 동시에 살고자는 의지가 넘치게 된다네요. 만일 자살하려 걸음한 사람이라면 효과는 배가된다고도 하죠. 죽음의 꽃으로 알려진 석산이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을 살리는 셈입니다.
- 인간 마을
환상향에서 가장 많은 인간이 거하는 장소입니다. 현재 환상향에서 '마을'이라 하면 대부분 이곳을 가리킵니다. 기반은 외진 땅이지만, 모습은 도시에도 비할 수 있을 정도로 번화했습니다. 일단 대규모에, 대로도 있고, 광장도 있습니다. 사람도 많고요. 근래도 꾸준히 늘어나는 중입니다.
의식주는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신분제는 여전히 남아있어 양반과 상민, 상민과 천민을 구분하지만, 환상향이 격리됨에 따라 사실상 임금과 관료가 사라진(...) 시대에 맞추어 양인과 천민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양반 신분 역시 명목만 남게 되었습니다. 애초에 환상향에 양반도 그리 많지 않았고, 있다고 해도 몰락한 잔반 따위가 대부분이었지만요. 환상향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이제 신분보다는 돈입니다. 그리고 인간 마을은 빈부격차가 유달리 심한 곳입니다. 정 뭣하면 남의 식객이나 사용인으로 들어가면 되고, 자원이며 물자를 놀랍도록 싼값에 제공하는 사람도 더러 있어서 그렇게 살기 각박한 것은 아니지만요.
인간 마을의 지식인은 현재의 환상향을 자멸하는 바깥 세계로부터 격리시킨 낙원이자, 바깥 세계의 우스꽝스러운 물질 문명이 비할 바가 아닌 우수한 정신 문명을 지닌 인요만을 위하여 세워진 이상향이라고 이릅니다. 요괴란 기본적으로 인간의 천적이고, 가까이해서는 큰일날 존재라고도 이르지요.
그 말에 걸맞게 요괴는 꾸준히도 이변을 일으키고, 마을의 사람을 납치하고, 가축을 납치합니다. 이렇듯 마을에 거하는 인간을 공포에 질리게 하는 것이야말로 이들의 본능이지만, 실은 의외로 생각보다 많은 요괴가 오히려 인간을 재해며 각종 이계의 영향, 이계의 멋모르는 방문자로부터 지켜주기도 합니다. 인간의 존재는 요괴에게 필수불가결하므로 함부로 줄어들면 또 곤란하거든요. 이런 선행을 하는 요괴는 환상향의 시스템을 잘 이해하는 요괴. 보호 받는다는 사실을 일부 마을 사람 역시 어렴풋하게는 인지하지만 그들 왈, 어차피 요괴인즉 늘 그렇듯이 꿍꿍이가 있을 따름이리라고 합니다. 뭐, 실제로 마을 인간은 건들지 말라는 불문율이 무색하게도 요괴의 크고 작은 위협이야 예로부터 무수히 있었으니까요.
그 때문인지 인간 마을의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보수적 성향입니다. 새로운 것은 대부분 요괴들이 이미 지닌 문화라서 그런지, 우선 거부부터 하고 보는 경향이 인간 마을에는 짙습니다. 요괴와 관련된 것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피해야 한다는 것이겠죠. 그런 마을에도 그나마 개방적인 사람이 소수 있기야 합니다만, 좋은 시선은 절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마을은 튼튼한 담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동쪽과 서쪽에는 거대한 대문이 하나씩. 담 근처, 물론 안쪽에는 (아주 간혹씩 아예 담 바깥쪽에도 있기는 하지만) 많은 퇴치사가 살아 요괴의 습격을 방지합니다. 상술한 내용처럼 마을 인간은 건들면 안 된다는 불문율을 무시하는 요괴도 많은 만큼요. 마을 사람은 이런 방지책 및 퇴치사를 꽤 신뢰하는 축이지만, 정작 뜯어보면 각자만의 이유로 인간인 척 마을에 섞여 들어오는 요괴가 적잖은 것이 실상입니다. 가령 저쪽에 걸어가는 어여쁜 아가씨가 사실은 요괴일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기가 막혀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몽접 대결계가 설치된 이후로는 요괴 내지는 특별한 힘을 각성한 인간 마냥 기이한 눈색과 머리색을 타고나는 인간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기이한 눈색과 머리색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아졌죠. 요괴와 구분 못하겠다면서 어르신들은 혀를 찼지만, 뭐 어쩝니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닌데.
- 버드나무 강
인간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입니다. 버드나무가 수없이 그리고 어여삐 강길을 따라 줄지었다 하여 이 이름이 붙여진 듯싶지요. 하나의 큰 물길에서는 작은 강도 여럿 파생되어 있습니다.
사공이나 유람선 장사 등등, 중간중간 길게 놓인 다리나 몰려들어 물놀이 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논밭도 수두룩하고요.
- 향회가香會街
향회대로, 향회거리라고도 불리며, 일상적으로는 간단히 대로 또는 큰거리라 불리는 때가 많습니다. 짐작할 수 있듯 마을에서 가장 큰 거리. 온갖 가게 즐비한 상가로 마을에서 가장 번화한 곳입니다. 사람이 원체 많기 때문에 보자기 깔아 장사하기도, 봇짐장수 왔다가기도 제법 쏠쏠합니다. 일시적으로 시장이 세워지기도 하며 성대한 축제가 열리기도 합니다. 뛰노는 아이 심심찮게 보이지요.
버드나무 강 조금 위쪽, 같은 방향으로 길게 펼쳐져 있습니다.
버드나무 강과 향회가를 경계로 하여 인간 마을 북편을 북촌, 남편을 남촌이라 부르는 관습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남촌보다는 북촌이 조금 더 부유한 경향이 있습니다.
- 용호당龍護堂
향회가에서 다소 덜 번잡한 곳에 자리한 중소 사당입니다. 검소한 듯싶지만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 먼저 올라간다고 색칠이며 장식이며 잘 보면 치장이랄 것은 다 되었습니다. 몽접 신사의 부속으로, 용신이 이따금 쉬어 간다고 전해집니다.
건물 곁에 위치한 용 석상은 눈이 알 수 없는 보석으로 되어 그 색이 제멋대로 바뀌곤 합니다. 멀거나 가까운 일을 예지하는 색이라는데, 마을 어르신들 말하기론 대체로 날씨를 예지한답니다. 그런데 항상 들어맞는 건 아니라고.
- 단문점
향회가의 음... 완벽한 비유는 아니지만 대충 바깥세계의 할인점, 크게는 백화점과도 같은 위상을 자랑하는 가게입니다. 단가가 가문 차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대형 상점이지요.
내부는 깔끔하되 지나치게 소박하지 않고, 운영은 군더더기 하나 없고, 파는 물건은 하고많습니다. 품질 역시 보증하지요. 미끼상품과 비싼 상품이 고루 분포되어 있으니 한번쯤 둘러볼 만합니다. 손님은 언제나 끊이지 않습니다.
- 영나암
향회가에 위치한 지나치게 작지도 크지도 않은 중견 대본소입니다. 꼼꼼한 일처리로 나름대로 유명하지요. 곰살궂은 부부가 공동 경영하며 견습하는 것인지, 그들의 아들 천나향이 계산대에 앉은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손님에 집중하기보다는 책을 읽느라 정신 없는 모습이 흔하지만요.
책 대여를 중심 사업으로 하되, 책 판매와 소규모 인쇄도 일정 부분 지원하고 있습니다.
- 향기루
환상향의 오래된, 나름 유서 깊은 주루입니다. 네에, 주루입니다. 설마 다른 것이겠어요?
향기루는 언제나 손님이 끊기지 않지요. 내부는 은은하니 화려하고, 밤이 되면 침침하되 어디보다도 밝고... 들어서면 관능적인 분위기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여인 자화가 고매하게 반기지요. 객관적으로 기려한 여인입니다.
이런, 정확히 짚으신 모양입니다. 그렇지요, 네에, 그렇습니다... 이곳은 기방이지요. 어찌 숨길 수 있을까. 그러나 흔한 저급한 기방과는 궤를 달리해주시길 바랍니다. 이곳의 기생은 모두가 수준이 높고, 특히 가르침을 받은 기생들이나 안주인이 직접 빚는 감홍로가 이름 높기 때문에 웃음팔이에는 관심없이 술만 맛보러 오는 애주가들도 많거든요. 나름 고급 기방이라는 겝니다.
- 북촌
- 경희가
물론 양반이라 해도 몰락 양반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환상향이지만 지금까지 고귀함을 잃지 않는 양반 가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경희 가문이 바로 그중 하나로, 마을에서 손에 꼽는 막강한 재벌이요 그 영향력을 허투루 쓰지 않고 마을을 위해, 안타까운 자를 위해 아낌없이 베푸는 것으로 고평이 자자한 명문입니다.
하지만 경희가가 명문인 것은 그 때문만이 아니니, 경희가는 유서 깊은 가문으로, 환상향의 온갖 기록과 역사를 담당하고 있어 환상향이라는 사회에 있어서도 더없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 역할의 중심에 우뚝 선 것이 경희가의 가주로, 역대 모든 가주는 한번 보고 들은 것은 죽어도 잊지 않는 비상한 머리를 가졌다고 전해지지요.
말 그대로 죽어도 잊지 않는 것인데, 이는 가주가 저승과의 계약을 통해 환생의 술법이라는 까다로운 술법을 치르기 때문입니다. 환생의 술법이란 필멸자가 내세로 접어들어도 전생의 것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술법으로서 경희가의 가주는 겪은 것을 잊지 않는 머리와 축적된 기억을 가져간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가주가 그렇게도 분위기가 비슷해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영생이라 부를 수 있는 한 가지 형태를 이룬 셈이므로.
그러나 환생의 수법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 아니면 어떤 부작용이 있었던 건지, 그렇게 환생한 가주는 환생한 후로 길어야 30년 남짓밖에 살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경희가의 가주는 끊임없이 이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짧게 살다 죽은 가주의 뒤로 새로운 소년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또 그것이 반복되고... 그러한 삶을 가주들은 계속 살아왔던 것일 텝니다.
금년 20대 후반인 당대 가주는 경희아익이 이름으로, 여느 옛날 가주와 다르지 않은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성품을 보여줍니다. 경희가의 가주가 늘 그렇게 칭송되었듯, 존경 받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 마루학당
인간 마을의 대표적인 학당이 있다면 바로 마루학당입니다. 엄격한 분위기, 체계적이고 수준 높은 교육, 엄한 예의작법, 높은 수업료 같은 묘하게 딱딱한 꾸밈말은 거의 전부 가져간 학당이기 또한 하지요. 그렇지만 그렇게 엄숙한 만큼 수업만큼은 진짜배기라고.
유학을 딱히 가르치지는 않지만 어째서인지 제자들이 입는 정복은 흔히 알려진 유생복입니다. 백색 도포 위에 깃에 검은 선을 두른 청전복靑戰服을 입고, 허리엔 대대大帶, 머리엔 유건儒巾을 쓰도록 학칙이 되어 있지요. 물론 고증을 엄밀히 따지면 오류이긴 하나 유명한 복장이라 채용하였음이니 적당히 넘어가주시고...... 그래, 유학이라니요. 그런 것 환상향이 격리되며 자연스레 붕괴되었을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유생복은 아마 그 잔재입니다.
- 일자서당
생각보다 환상향에서 학당에 재학하는 아이의 비율은 그렇게 많지 못한 편입니다. 특히 넉넉하지 못한 층에서는요. 다들 사느라 급급할 걸까요, 집마다 농사일을 시키고 집안일을 돕게 하지 학당엔 쉽게 보내지 않고, 보내더라도 짧은 기간 보내고 말더랍니다.
일부 집안은 학당 대신에 서당에 보내기도 하지요. 물론 기간은 짧은 경우가 많지만. 현재 환상향의 서당은 주로 어린아이들이 글자와 글, 깊게는 역사를 익히기 위하여 다니는 교육 기관으로, 어떤 아이는 초등학교에서 중고등학교로 넘어가듯이 서당에 다니다가 학당에 입학하기도 하며, 어떤 아이는 서당에 다녀본 적이 없이 학당에서 모든 교육을 이수하기도 하지요. 서당에서 가르치는 것은 학당에서도 대부분 가르치니 희한한 선택은 아닙니다.
일자서당은 북촌에 위치한 서당으로, 훈장으로 범시찬이 있으며 그는 호랑이 훈장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절대로 성씨만의 탓이 아닙니다, 절대로...
- 남촌
- 단가
남촌에는 단 가문이라고 하는 몹시 부유한 가문이 있습니다. 비록 양반은 아니며, 평민의 신분으로 막강한 돈을 벌여들여 가주는 이제야 막 4대째인 내력 짧은 가문이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돈인데 누가 나무라겠습니까? 재물이 많기로는 경희가에 비빌 수 있는 수준이며, 가문 자체의 위상과 자존심도 짧은 역사라고 결코 경희가 앞에서도 쉽게 굽혀지지 않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그런 거금을 손에 넣었는고 하니.
당시 초대 가주가 상인商人으로서는 가히 으뜸 가는 솜씨의 인물이라, 현재는 가문 차원에서 경영하는 상점을 통해 전례 없는 대성공을 치렀다지 뭡니까?
장사꾼으로서 가져야 할 능력은 두루 갖췄다고 하지요. 투자하는 안목, 남이 뭐라고 하든 고수하는 강한 고집과 강단, 병적인 향상심, 뛰어난 상황 판단 능력과 임기응변 등. 남이 볼 때 헛웃음을 칠 만해도 초대 가주는 우직하게 가게를 성장시켰다고 하고, 그 성향을 물려받았는지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가문원은 장사하는 일에만큼은 두 말 할 것 없이 뛰어난 수완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렇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단문점 외에 가문원들이 따로 차리는 가게들이 하나같이 괄목할 한만 성과를 거둘 일은 없었을 테니까.
평민 출신일지언정 흡사 귀족과 같은 우월한 생활을 영위하며, 그것은 그들의 자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단문점이나 마을 내부에선 종종 가주의 금지옥엽인 도련님과 아가씨를 목격할 수 있지요. 이름은 각각 단율과 단안으로, 올해 지학을 지난 참입니다.
- 가람학당
흑백의 학창의, 허리의 대대大帶, 머리에 쓴 복건幅巾. 가람학당의 학생들이 입고 다니나... 동시에 입지 않거나, 섞어서 입고 다니기도 하는 정복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상이 가셨나요?
가람학당은 남촌에 위치한 학당으로, 마루학당에 비해 한참 자유로운 분위기를 자랑하는... 나쁘게 말하면 제대로 된 교육은 이루어지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는 몹시 털털한 학당입니다. 이론보다는 경험을 중시하며, 학생들의 자유로운 특별활동을 장려하고 있지요. 수업료가 저렴한 것도 하나의 장점으로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인지 학당 차원의 지원은 그다지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그으래도, 수업료가 저렴하니까요.
마루학당보다 뒤늦어 세워져 역사도 짧고 사건사고 참으로 많은 학당이지만요, 학당으로서의 최소한의 구실은 충분히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요... 아니, 오늘 또 무단결석생이 생겼다니 이게 말이 되냐고.
- 다연정
남촌의 자그마한 골목에 자리한 소박하되 편안한 찻집입니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맛집으로, 단골 확보가 넉넉히 되어 있어 주인 할아버지가 노후 편하게 운영하고 있다고 하죠. 소녀 한 명, 어린 점원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온후한 성품인 할아버지는 노소 막론하고 연 서방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연 서방이 손수 만들어내는 양갱은 단골들 칭송하기로 환상향 일품입니다.
환상향은 다른 여러 세계와 접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바깥 세계부터 시작해, 삼도천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저승, 망자가 머무르는 명계, 하늘 높이 있는 천계, 지상에 질린 요괴 등이 모여 사는 지저 등. 그렇게 인접한 이계의 주민이 간혹 환상향에 방문하는 때도 있습니다.
※ PC의 현 거처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 바깥 세계
격리된 환상향의 외부에 남은 세계입니다. 물질 문화가 발달했으나 그 형태가 자못 괴이하고 정상적인 세계로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탓에 자멸하는 중이다, 라고 마을 인간은 알지요. 환상들이한 요괴에게 있어서는 뭐, 과연 말할 것도 없이 더 이상 살아먹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요괴를 안 믿는 것도 시원찮은데 이상한 기술까지들 개발하니! 자멸하는 세상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지요.
- 저승
삼도천 너머에 존재하는 사후세계입니다. 저승사자가 망자를 인도하기 위해 오가는 것 말고는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 천계
죄를 짓지 않고 무수한 덕행을 쌓은 사람은 저승에서 천계행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살아서 도에 통달한 사람도 천인이 되어 올라가고요. 천계에는 이런 탈인간들이 그득합니다.
- 지옥
죄인은 죽어서 지옥에 가겠지요. 더 설명할 것 있습니까?
- 명계
환생을 기다리는 단계로 접어든 망자는 명계로 이송된다고 합니다. 도대체 출구가 어딘지는 몰라도 이따금 빠져나와 환상향을 돌아다니는 유령도 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명계는 도취의 화림과 정경이 비슷하답니다. 매화 대신 벚꽃이 있을 따름이래요.
- 지저
먼 과거, 지상에 질린 요괴들은 저들만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저 밑 지하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이후 요괴에게조차 미움 받은 요괴도 선뜻 받아들였다고 하지요. 지상의 사람은 그곳을 두려워하여 지저라고 불렀습니다... 애초에 입구부터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 마계
마족과 마법의 메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환상향에 정착한 마족도 있고, 정착하지 않고 이따금 방문하는 마족도 있습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왕래는 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