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둡습니다.
※ 키세츠레 이 자식은 태생이 태생이라 그런지 이런 AU에서도 이런 우중충한 내용이 되고 맙니다.
※ 화재, 가족에 대한 상실 묘사 있음.
과학실의 해골이 살아 움직이는 일 따위는 존재할리 없다. 무기물인 해골에 갑작스레 생명이 깃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에 그것이 움직이고 있다면 누군가가 장치를 달아 원격으로 조종하고 있는 것 뿐일 터이다. 그렇기때문에 키세츠레는 오늘 본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아무런 장치도 발견되지 않았고, 조종하고 있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는데, 해골이 멋대로 말을 하고 걸어나가다니! 분명히 뭔가 발견 못 한 장치가 있었을 뿐이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데다, 과학실이 어두웠기 때문에 더 자세히 살펴보지 못한 것 뿐이라며, 그는 속으로 되뇌였다.
10월의 한기가 키세츠레의 뼛속을 저며온다. 사람이 없는 어둑한 복도에서 그의 발걸음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우울한 정적은 사람을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혼란스러운 정신에 난잡한 사고가 멋대로 요동친다. 키세츠레는 이런 감각을 좋아하지 않았다. 고요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 갈 곳 없는 불안감이 머릿속을 채워 어지럽히는 것을 꺼렸다. 생각을 끊어내지 않으면 그 끝은 언제나 스스로의 숨통을 조여오곤 했기에.
키세츠레는 학업에 임하는 자세가 우수한 편에 속했다. 자로 잰 듯한 모범생인 그는 교우관계를 맺는 것 보다도 면학에 열중하였다.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모두와 가까이 하지 않는 타입의 그런 학생이었다. 간혹 얼굴에 난 커다란 화상흉터에 시선이 꽂혀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홀로 골몰할 뿐이었다.
스스로 벽을 만들고, 사람과 거리를 뒀다. 그것은 청소년다운 아집이었고 결핍을 채우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자신이 살아있는 것에 대한 당위를 얻기 위한 행동이었다. 가족을 앗아간 화재 속에서 키세츠레는 홀로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만큼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 상실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을 대신해 살아있는 그에게는 숨쉬는 것조차 채무와도 같았다.
살아 숨쉬는 모든 시간들이 의미를 가져야 했다.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되었다.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했다. 더 쓸모있고, 더 의미있는 존재가 되어야지 그 때의 소실을 보답받을 수 있었다. 그것은 합리적이고 타당한 이유는 아니었으나, 키세츠레가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이치에 맞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으나, 사람은 대개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는 그렇기를 바랐다.
그렇기에 그는 그 기준에 스스로가 부합하지 못한다고 느낄때 때때로 자기혐오를 느꼈다. 이를테면 청소년기라면 당연하게 가질 혼란이나, 불완전함이 느껴질 때,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같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문제가 스스로를 덮쳐오면, 그것들이 쓸모없는 걸 넘어서 옳지 못하다고 느낀 것이다. 공부는 그것들을 생각하지 않기 위한 도피수단이기도 하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가장 쓸모있고 도움이 되는 효율적인 행동이었기에.
올바르지 않은 일은 있어서는 안 되었다. 모든 것은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뒷받침되어야 했다. 일어날 수 없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에는 마땅히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까, 없어야 하는 것이다. 과학실의 해골이 살아 움직인다거나, 이사장의 정체가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라거나 하는 일은.
그렇지 않다면. 불합리하고 말도 안 되는 것이 일어날 수 있는 세상이었다면. 그가 믿고 있는 세계의 법칙이라는 것이 사실은 지극히 얄팍하고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었다면.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비현실이 존재해도 되는 세상이었다면. 말도 안 되는 기적을 바라버리고 마니까.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을 소망해버리니까.
'…나에게도 있어도 괜찮았잖아. 그런 거.'
존재해서는 안 될 생각이 그를 뒤덮는다. 키세츠레는 눈을 가렸다. 살짝 비틀대며 기울어진 몸이 차가운 벽면에 기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