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modified: 2021-02-25 02:37:39 Contributors
1. 세계관 소개 ¶
해질녘의 저녁 노을은 항시 그곳의 하늘을 비추고 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세계, 이브닝이 그곳의 이름이다.
하늘은 언제나 저물어 가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무에서는 저녁 쯤의 풀 젖은 냄새가 났고, 구름은 비가 오는 날 처럼 언제나 조금 어두운 기색을 풍겼다. 그곳은 언제나처럼 조금 어둡고 조금 습해서 해질녘의 골목을 연상케 하는 곳이었다.
이브닝의 모퉁이 한 켠을 돌아가면 네온 사인이 수 놓인 거리가 나올 것이다. 공기중에 달콤한 빵 냄새가 퍼지는 것이 느껴지는가? 당신은 곧 웨이 팡의 빵 가게를 찾아가게 될 것이다.
그곳의 시간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누구도 말하지 않으며 사라진 시간 속을 살아갈 뿐이다. 마녀, 고양이, 죽은자와 산자가 공존하는 기이한 정경이 펼쳐진다.
2. 관련 독백 ¶
- 끝사랑
해질녘의 거리에는 빵 냄새가 가득 찼다. 거리에 퍼지는 풍부한 단 냄새는 사랑에 빠지듯이 순식간에 홀려 들어가게 만들기 충분했다. 사랑을 하는 순간은 각자가 다르겠지만 사랑을 하는 기분만은 명백히 달콤하다. 그녀는 손 쓸 도리 없이 이미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오래된 습관처럼 기억을 더듬었다. 아주 오래 전 소중하기 그지없어, 결국 마지막 까지 놓지 못했던 사람을 말이다. 그 추억은 빛으로도 바랠 수 없이 찬란해 끝내 웃음이 새었다. 그녀는 오래된 기억에 이끌려 그를 골목 옆길로 불러내고 말았다.
해질녘의 그림자가 부쩍 길어 두 사람의 발을 붙들고 서 있다. 그녀는 말 수 적은 입을 애써 달싹이고서 오래 전 간직했던 마음을 읊었다. 마치 오래된 약속 같기도 하다. 그러나 달콤한 말은 이내 형체를 잃고 공기중으로 스며든다. 그에게는 닿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내게 사랑은 이른 감이 있어서. 누굴 좋아할 여유가 없네. 그래도 고백 고마워!"
그때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더라, 그는 금세 그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의 삶은 그의 빵 처럼 달고 행복한 기억으로만 가득해서 나쁜 기억은 금세 잊게 되는 법이었던지라.
- 제시의 방문
저녁이 되면 위온(we on)사에서 만든 전자시계에서 알림이 울린다. 하늘만 멍청히 바라보고 있다가는 퇴근 시간을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팡은 서둘러 조리복을 벗으며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가게의 문 끝에 달린 벨이 울리며 문이 열렸다. 오랜 친구의 방문이었다. 그는 제시가 들어온 방향을 바라보며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어서와, 제시. 다행히 늦지 않았네. 널 위해 빵을 남겨뒀어."
"고맙다. 팡, 가능하면 신세를 지고 싶지 않지만... 빵을 먹지 않으면 악몽을 꾸거든."
멋쩍은 표정을 짓는 검은 고양이는 흉터가 진 눈으로 눈치를 보며 빵을 계산대로 가져갔다. 제시는 성인 크기의 고양이로 세상에 남겨진 어쩌면 유일한 고양이다. 제시는 아주 일부이지만, 자신의 나쁜 기억을 말한적이 있었다. 제시는 오래 전 전쟁이 있던 시절부터 살아온 고양이로 종종 악몽을 꾸며 밤잠을 설쳤다고 말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기억은 제시를 뒤좇았고 전쟁만큼 긴 시간을 괴로움에 떨며 보냈다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나쁜 기억을 지운다는 빵이 팔린다는 소문을 듣고서 찾아온 제시는 제법 오랜 시간동안 빵을 사러 찾아왔다.
"제시, 기대해. 내가 특별한 선물을 줄 테니까."
놀란 것인지 눈을 멀뚱히 뜨는 검은 고양이를 보며 그는 생각했다. 시간이 멈춰버린 친구에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 할 것이라고. 영원한 해질녘이 아닌, 해가 뜨고 달이 지며 계절이 바뀌는 동안 마모될 수 있는 축복을. 무뎌질 수 있는 하루를 그에게 선물하겠다고. 그는 웃으며 빵을 포장하고는 생각했다. 언젠가 빵 없이도 잠 못 이루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