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3주 동안은 쉰다고?"
"일단은."
"그걸 왜 나한테 와서 말하는 건데?"
예상하지 못한 답이었는지, 한동안 다른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냥, 별 일 없나 해서."
"별 일 없어, 야. 너를 좀 봐라. 나같아도 뭘 할 생각 같은 건 하나도 안 들겠구만."
그건, 사실이긴 했다.
레벨 5라고 분류되는 초능력자, 사소한 위협이라도 놓치는 일은 없는 랑이 있는 한... 몰래 나쁜 일을 꾸밀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스트레인지 내에 도는 소문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그런 시기인 것일까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거라면, 어떡할 건데."
"뭘 어떡해, 그게 확실하면 해산이지. 각자 자기 인생 좀 살아야 하지 않겠어?"
이미 그런 생각까지 해 뒀구나 싶어, 랑은 입을 다문 채 창 밖을 쳐다보았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무뎌진 걸까, 그저 과거의 악몽으로만 남겨둔 채, 앞으로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정답인 걸까.
"너도 그러니까 그만 좀 찾아와, 아직도 네가 저지먼트라는 게 이상하냐? 그렇다고 해도 네가 뭘 어쩔 수 있는데, 여기 돌아다니는 녀석들한테 다 물어봐라, 나랑 다른 말 하나."
"여기도 내 집인데."
탕 하고 탁자를 내리치는 소리와 함께 비단이 소리를 쳤다.
"개소리좀 하지 마! 여기가 왜 네 집인데, 여긴 내 은신처야. 그 동안엔 갈 곳도 없고 하니까 냅뒀지만 이젠 아니잖아. 너 돈 잘 벌고 친구들도 있다며. 이제 좀 그만 찾아와. 귀찮아 죽겠네 진짜."
"인정 좀 해라, 넌 이제 나랑 서 있는 장소가 달라. 그러니까 그 자리에 맞게 좀 살라고, 애초에 너랑 나랑 무슨 관곈데? 이제 신경 좀 끄자 제발."
"여기서 더 이상 네가 할 건 없다니까. 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더니 기억 안 나냐? 이 곳에 저지먼트는 필요 없다고."
"......"
비단은 자신 앞에 마주 앉은 랑의 팔에 걸쳐져 있는 코뿔소 형상의 완장을 빤히 쳐다보고는 혀를 쯧 하고 찼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됐네. 아무튼 난 할 말 다 했으니까 가."
"...기분이 좀 가라앉으면 다시 오지."
"난 지금 100% 냉정하거든? 오지 말라고 좀."
끝까지 냉정하게 구는 비단을 뒤로 하고, 랑은 낡아 빠진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떠나는 랑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비단은 그제야 담배를 꼬나물었지만 불을 붙이지는 않은 채 필터의 끝을 질겅질겅 씹을 뿐이었다.
"진짜 괜찮겠슴까?"
"뭐가?"
그제서야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온 준명의 물음에, 비단은 짜증스럽게 되묻는다.
"아무 일 없는 거 아니잖슴까, 그... 뭐더라, 데 뭐시기..."
"너, 바깥에서도 이런 식으로 입 열고 다니면 어디 한 곳 부러지는 걸론 안 끝날 줄 알아."
"죄송함다..."
서슬 퍼런 비단의 목소리에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인 준명의 뒤로 도환과 림이 걸어들어왔다.
"복귀했습니다."
"대강 일정이 잡힌 것 같은데, 어떡할까?"
"유정이는?"
비단의 물음에 도환이 어깨를 으쓱이고, 림이 고갤 저으며 대답했다.
"말을 안 듣습니다. 그래도 말씀하신 대로 다른 곳에 맡겨 뒀으니까... 일이 끝나기 전까진 못 따라올 겁니다."
"그럼 됐어, 이제 일정 공유해. 확인하는 대로 어떻게 할 지 결정할 테니까."
씹어댄 필터가 끊어지고 불을 붙이지도 않은 담배가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비단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런 건 잃을 게 목숨밖에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