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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개의 가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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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y6 - 포장 | |
최초 레스 작성 일시 | |
2020-06-12 19:36:55 | |
알아야 하는 정보 | |
1995년에서 원인불명의 시간이동을 겪어 2020년으로 온 캐릭터. | |
본명 | 角鹿国造 尙 // 新 |
나이 | 서류 상 45세, 신체 상 20세 (둘 다 만 나이) |
성별 | 남성 |
국적 | 일본 |
종족 | 인간 |
생일 | 9월 23일 |
직업 | |
상태 | 숨 쉰 채 발견 |
5.1. 관련 모브 캐릭터 ¶
*현대(2020년대)
- 주인
- 노란 가면을 쓰기까지 독백에서 멍멍이에게 이름을 주고 목줄을 잡은, 현재 멍멍이의 주인. 악의를 그대로 뭉쳐놓은 것 같은 성격을 가진 황의 왕.
이름은 소라(空).
멍멍이가 매우 싫어한다.
- 붉은 눈의 청년, 혹은 플레이아데스.
- 3번 조각글에서 주인과 멍멍이와 접촉하고, 쾌락주의 독백에서 주인과 함깨 멍멍이의 목줄을 잡은 청년. 혼돈 지향 테러 단체 '플레이아데스'의 일원으로서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는 게임을 베포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름은 호시조라 미츠루(星空 宏).
멍멍이가 매우 싫어한다.
- 갈색 눈의 소녀
- 일상 독백에서 멍멍이에게 우산을 받은 소녀.
'그 사이트'에서 꽃이라는 닉네임으로 굴렸던 캐릭터입니다.
*과거(1995년대)
- 형
- 2번 조각글에서 멍멍이에게 찔린 친형. 이 때의 사건은 멍멍이의 가치관 확립에 영향을 주었다.
이름은 츠누가노쿠니노미야츠코 쿄(角鹿国造 鏡).
2020년으로 시간이동을 하기 전 형과 엄청 크게 싸운 적이 있었고, 아직 감정이 풀린 상태가 아니다.
- 아마노코이누가미
- 멍멍이의 집안이 대대로 모신 개의 신이자 시안 일파의 주인. 멍멍이의 사투리는 이 사람의 영향이다.
이름은 아마노코이누가미(天小犬神).
멍멍이가 함무이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대한다.
- 타카요, 코후쿠, 노조미
- 차례대로 이타미가와 타카요(伊丹川 貴代, 여), 나카자와 코후쿠(仲沢 小福, 여), 센리 노조미(千里 希望, 남).
그래도(생략) 독백에서 등장한 멍멍이의 친구들. 참고로 이 셋과 형, 멍멍이 중에서 멍멍이가 가장 나이가 어리다.
6. 캐릭터 TMI ¶
- 잡담방에서 풀린 설정
- 멍멍이가 1995년에서 넘어왔어도 죠죠는 훨씬 전부터 연재 중이었기에 4부까지는 내용을 다 압니다
현대 와서 아직도 연재 안 끝났나고 놀란 작품 중 하나 -3어장 579답글-
Q. 옷은 뭘 입나요?
A. 빨강하양매화무늬 하오리(걸침) + 빨강노랑단풍무늬 기모노(팔만 넣음) + 투피스 정장 + 빨간끈 게다 + 빨간무늬하양바탕 개가면 + 빨간 실귀걸이
투머치라고요? 알아요 ^p^)...... 멍멍이는 빨간색하고 화려한 거 좋아합니다 -4어장 192답글-
(#지나가던_사람들이_갑자기_자캐를_향해_절을_한다면)
뭐임? 뭐임? 대체 뭐임? 하다가 일어나달라고 간청하며 맞절할 것 같네요 -4어장 232답글-
바이카(44세, 노란 개의 가면)는 형이랑 싸우지 않고 현실에 굴복한 √입니다
신체와 명예적으로는 해피지만 정신적으로도 해피라고 할 수 있을지 -4어장 354답글-
2020년으로 넘어오기 전에 형이랑 대판 크게 싸우고 왔습니다. 2020년에서 가족들 안 찾아가는 이유 중에 싸운 거 감정 남은 것도 있지요 -4어장 361답글-
바이카(평행세계 이벤트)는 질서 중립입니다. -5어장 345답글-
멍멍이의 본명에는 사슴과 뿔을 뜻하는 한자가 들어갑니다 -5어장 666답글-
세계관 설정 상, 주인(20/06/25: 여기서 말하는 주인은 정확히는 색의 왕입니다)은 영혼의 상태나 위치 등을 알 수 있음. -5어장 790답글-
본인이 '주인의 명령을 어긴다'라고 인식하고 있는 행동은 절대 하지 못한다. -5어장 796답글-
멍멍이는 일단 질서선이긴 한데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서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기 관련된 논쟁 나오면 아직은 말을 제대로 못 함 -6어장 139답글-
(알두인은 원작 설정상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 전부 파괴라던가 살육이라던가 이런 거라서)
놀랍게도 멍멍이가 가장 싫어하는 인물상(존재상)이 딱 그겁니다 -6어장 141답글-
Q. 뭘 먹고 이렇게 귀여워요?
A. 1995년의 공기에 무언가가 있었나봅니다.(아닙니다)
Q. 노란 개의 가면은 인간인가요?
A. 인간입니다. 유전자 46개 멀쩡히 있습니다.
Q. 멍멍이의 주인은 요괴인가요?
A. 나중 독백에서 암시되긴 할텐데, 현재 시점(20/06/23)에선 대충 반요 정도라고 생각해주세요.
Q. 어디 사투리인가요?
A. 쓸 때는 충청도 사투리를 염두해두긴 하는데 제가 사투리 지식이 없어서 마구 섞입니다.
(20/06/25 추가: 노란 개의 가면은 토사벤을 사용합니다.)
Q. 이름에 사슴뿔이 들어간다고 했는데, 설정과 관련이 있나요?
A. 사람 이름에 아름답다는 한자가 들어가도 아름답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별 관련이 없습니다.
(20/06/25 추가: 정확히는, 멍멍이 가문의 역사와는 상관이 있는데 멍멍이라는 캐릭터만 보면 무시해도 무방할 수준입니다.) -7어장 537답글-
Q. 멍멍이 주인은 어떤 존재인가요?
A. 인간에게서 악한 부분만 뽑아낸 것 같은 딱 전형적인 잘대악 악당을 생각해주세요.
Q. 멍멍이 형은 어떤 사람인가요?
A. 멍멍이와 세 살 차이가 납니다. (?) -7어장 548답글-
이벤트 때 바이카가 말한 주인과 지금 멍멍이의 주인은 별개의 존재입니다. -7어장 565답글-
노란 개의 가면은 칼을 씁니다. 신분 증명을 할 수 없어 도검 소지 허가증을 받을 수 없으므로 도검 소지 자체로 불법이지만! -7어장 840답글-
신분 증명이 불가능해서 인터넷 사이트 가입도 보호자의 도움 없이는 마음대로 못 합니다 -7어장 849답글-
└ 현재 입장 상 보호자는 멍멍이주인. 본인한테 물으면 극혐하면서 아니라고 하겠지만요!
멍무이는 비 맞는 건 좋아하는데 환기 못 시키는 건 별로라고 하네요 -8어장 27답글-
혼자 있거나 주인이랑 함께 있으면 그냥 비 맞습니다 기분 좋아할지도 모릅니다
주인 말고 다른 사람이랑 함께 있으면 자기 겉옷 상대에게 덮어줍니다 -8어장 53답글-
이걸... 뭐라 해야 하죠...? 목떡은 아니고 멍멍이 억양 참고 자료입니다 저기서 1.3~1.5배속정도 하면 멍멍이 사투리 억양이고요... 45초부터 봐주세요... -11어장 630답글-
(롭톰 어울리는 환상체 문구)
멍멍이는... O-02-56 요거
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악행을 저질러왔다. 잘못된 일인 줄 스스로 인식하면서도 굳이 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1어장 809답글-
#자캐는_파도풀에_떠내려가는가
멍멍이는 못 버텨서 떠내려가는 걸 파도풀은 원래 떠내려가며 즐기는 거라고 정당화하는 타입 -12어장 452답글-
(트롤리 딜레마)
멍멍이는... 그 왜 문제 조건을 달리 하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어떤 선택을 하는지 경향성이 달라지잖아요 멍멍이는 그거 그대로 따라갑니다
실제로 그런 상황 닥치면 그냥 열차를 멈추겠지만 -13어장 883답글-
("인종청소 중인 적 군인들의 수색으로부터 들키지 않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덤불 속에 한데 모여 숨을 죽이고 있는데, 한 주민이 데려온 아기가 난데없이 울기 시작한다. 이 아기를 가만히 두면 군인들이 주민들을 전부 찾아내 죽이겠지만, 그런 상황을 막으려면 그 아기에게 울지 말라고 입을 막으면 숨을 못 쉬어서 질식사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우는 아기 딜레마를 드립니다)
어떻게 할지 몰라 우왕자왕하다가 자기가 밖으로 나가 군인들 시선을 끕니다
신이랑 계약 안 맺은 인간들 무기 정도야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으니까는... -13어장 948답글-
(멍멍이 가면 벗기려하면 반응)
다짜고짜 얼굴에 손 쑥 들이밀지만 않으면 벗는거 크게 신경은 안 쓰는데 얼굴 보고 놀라지만 말라고 말합니다 -14어장 108답글-
(가면이 요리 못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냥 단순히 해본 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손재주 자체는 바느질이 취미일 정도로 꽤 좋은 편이에요 요리 좀 더 연습하면 먹을 수 있을 정도로는 만들 것 -14어장 117답글-
(멍댕이에게 종이랑 붓을주면 뭘하나요)
종이와 붓 받고 멀뚱히 서있습니다
멍멍이: (뭐여)
멍멍이: (이걸로 뭘 하라는겨)
멍멍이: (뭐여) -14어장 132답글-
(쬼생즈 중에서 질서선 있었던걸루 기억하는데 걔한테 멍댕이가 sos치면 어케되나요)
(기억해주고 계셨어)(찐한 감동...!)
질서선쫌생이가 도와주려고는 합니다만 실제로 도움이 되지는 못합니다.
어디까지 풀어도 되려나 일단 질서선쫌생이는 멍멍이 괴롭히는 쫌생이를 못 이깁니다 -14어장 132답글-
1. 3번 조각글(>1593057673>980)에서 멍멍이는 플레이아데스가 시안 일파('퍼랭이들')에게 못 이긴다고 예상했지만, 이는 잘못된 추측이다.
1-1. 실제로 당시 현장에 있던 시안 일파는 플레이아데스에게 대원 몇 명이 살해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1-2. 이 현장에는 시안 일파의 왕인 청록의 왕도 있었다.
2. '쾌락주의' 독백(>1593387743>276)에서 플레이아데스는 멍멍이에게 너도 살인자라는 투로 말을 하지만, 사실 멍멍이는 2020년으로 오기 전에는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
2-1. '규칙을 어긴 사람을 닥치는 대로 죽이면서 당당하고 정의로운 척은 다 한다'라는 말이 멍멍이에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2-2. 그러나 멍멍이는 플레이아데스의 말이 자신도 해당되는 말이라 생각한다.
3. 멍멍이는 전형적인 문과뇌다.
4. 멍멍이네 가문은 일반인보다 전투 센스가 좋은 재능을 타고 나는데, 그 중에서도 멍멍이와 형이 가진 재능은 결이 살짝 다르다.
4-1. 형은 검을 다루는 데에 재능이 있고, 멍멍이는 싸움 자체에 대한 재능을 타고났다.
4-2. 멍멍이가 시간이동을 하기 전이면, 형식을 갖추어 대련을 할 때 멍멍이는 형에게 진다. 그러나 둘 다 작심하고 싸운다고 가정하면 근소한 차이로 멍멍이가 이긴다.
4-3. 멍멍이는 치사하고 더러운 방식으로 잘 싸운다.
나중에 풀 내용이긴 했는데, 형이랑 싸우고 멍멍이가 시안 일파를 나간 다음에 시간이동을 당한 상태에서 소속 없는 멍멍이를 황의 왕이 가져간 겁니다 -14어장 443답글-
가정이 저래서 그렇지 대부분은 형이 이긴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웬만큼 빡치지 않는 이상 형한테 진심으로 뎀비는 아이가 아니라서 -14어장 449답글-
(#자캐에게_소중한_것은_과거_현재_미래)
현재!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미래를 만들기 위해 현재를 충실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자캐의_목숨으로_세계를_구원할_수_있다면_자캐의_선택은)
심각하고 처절하게 고민하다가 데드라인 가까이 가서 자살합니다. 아마 다른 사람의 목숨이어도 마찬가지일 것. -15어장 55답글-
멍멍이는 길거리 휴지 비유가 찰떡일 정도로 정은 헤프게 막 퍼주는데 상대의 곁에 있고 싶다고 생각하려면 되게 까다롭습니다. 사랑과는 조금 결이 다르지만 이 이유 때문에 가출한 거기도 하고.
한번 사랑 자격증(?) 통과한 사람한텐 메가데레와 얀데레 중간 정도 되는 애정을 퍼붓습니다 다치는 거 절대 못 보고 항상 같이 있고싶어 해요 -15어장 788답글-
#자캐는_찬란한광명or흔들리는빛or끝없는암흑
밝기가 변하는 변광성 정도지 않을까요. 흔들리면서도 빛은 잃지 않는.
#자캐는_추락이_두렵다or불가하다or익숙하다or어울린다
어떤 추락이냐에 따라 다른데, 명예나 권력이란 의미면 목적을 위해 불사할 수 있지만 도덕적 추락은 두려워합니다.
#자캐는_대체로_사실을_안다or모른다or모르는척한다or알린다or감춘다
대부분은 다 알고 있고, 웬만한 상황에선 알립니다. 잠깐 숨기더라도 계속 찌르면 (본인이 그래도 되겠다 판단하면) 말해줍니다.
#자캐는_꿈을_꾼다or포기한다or외면한다or부정한다
현실을 알기 때문에 이상을 꿈꾸는 친구입니다.
#자캐는_친구or선생or제자or상사or아군or적군or모르는사람으로_두기에_좋은_사람이다
친구: 잔소리를 감수할 수만 있으면 괜찮
선생: 분야에 따라 다른데 검술이나 격투 선생은 비추. 이래봬도 천재라서 "이걸 왜 못 해?"라고 생각합니다
제자: 멍멍이가 흥미 있는 분야라면 좋은 제자가 됩니다.
상사: 적어도 상대를 수단이나 도구로 보지는 않으니 괜찮습니다
아군: 작전 짤 때 윤리적 원칙 준수하지 않으면 옆에서 한 마디 거드는 걸 감수하면 쓸만한 카드
적군: 웬만큼 잘못한 사람 아니면 살생까진 안 가니 목숨 부지라는 면에선 괜찮음
모르는 사람: (어 음 어...) -16어장 82답글-
(학창시절)
평범하게 댕겼습니다. 학교 안에선 깊은 관계는 없었어도 두루 발이 넓은 인싸 스타일이었을 듯 -16어장 76답글-
(캐릭터빌딩과정)
멍멍이는 원래 여기 쓰려고 만든 아이가 아니라 커뮤 뛰려고 만든 아이였어요. (그래서 힘 빡 준 전신하고 설정화가 있는것) 하나는 카겦커고 하나는 단간커였는데 둘 다 광탈하고 얘는 커뮤용이 아니구나 하고 포기했죠
얘 만들 때는 상판 쉬고 있을 시기여서, 저 혼자 갖고 놀 자캐로 전환하니 당시 캐릭터를 새로 넣을 수 있을 만큼 구멍 뚫린 제 세계관이 카부키쵸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여기 집어넣었죠
캐릭터성이나 컨셉, 외형은 처음 만들 때부터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네요. 스토리 내 행적을 빼고 다른 고민은 별로 안 하고 금방 결졍됐는데 머리색에서 빨강-노랑 투톤이랑 노랑 중에 어느 게 더 좋나하고 고민하는 데에서 빌딩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은 것 같아요 -17어장 50답글-
다갓이 멍멍이는 음치랫서여 -18어장 161답글-
멍멍이네 일본에 떨어졌으면은 이상한 어플만 다운받지 않도록 주의하면 심신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18어장 834답글-
멍멍이 키는 169-170cm(20/08/23 추가: 169.7cm)입니다
마냥 작진 않은 키인데 얘네 할머니가 왜 얘보고 작냐고 했냐면... 단적으로 말하자면 멍멍이 조카(한국식 나이 19세, 여성)가 180cm 언저리입니다 -18어장 883답글-
(건강상태)
멍머이: 시력 조금 낮은 것 말고는 전반적으로 ㄱㅊ -20어장 463답글-
해당 대사를 할 자캐를 골라보시오
1.이제 죽는 방법 외엔 없다
2.죽음은 언제나 나를 쳐다봤지
3.한번 죽어보는 것도 괜칞아
4.살다보면 결국 죽는거잖아?
5.싫어 난 죽고싶지 않아!
6.자 오라 죽음이여! 난 두렵지않다!
7.내 주변 사람들만 죽고 난 언제나 살아남았지
1,5 -20어장 414답글-
엔딩 이후에 안경 낍니다(20/08/23 추가:이건 지금 조금... 고민중...) -20어장 471답글-
멍멍이는 ts하면 격기 3반의 여은솔같은 느낌입니다 -21어장 115답글-
멍멍이 어렸을 때는 사고 치고 다니느라 다친 곳이 많을 것 같은 인상 -21어장 303답글-
Q. 어릴 땐 흑발이었나요?
A. 네. 오히려 금발금안이 된지가 얼마 안 됐습니다. -21어장 307답글-
Q. 죽음 관련 대사 세트
A. 이제 죽는 방법 외엔 없다 // 싫어 난 죽고싶지 않아! -21어장 414답글-
Q. 머리가 노랗게 된 이유
A. 황의 왕한테 힘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야 힘 쓸 때 색 변하는 게 멋있잖아요 -21어장 886답글-
Q. 가면은 황의 왕이 강제로 쓰게 했나요
A. 가면을 쓰는 거 자체는 황의 왕이 시킨 거 맞습니다. 다만 가면 종류는 멍멍이 스스로 골랐습니다. 왜냐면... 왕이 쓰는 가면이 촌스러웠거든요 -22어장 657답글-
Q. 이벤트때 쓴 독백에서 가면이 주인이 지금 주인이랑 다른 사람인데 그 주인... 자기 형인가
A. 맞습니다, 이벤트에선 멍멍이네 형이 청록의 왕=바이카 주인입니다! 헉 알아주셨어 어떡해 너무 기뻐
좀 더 덧붙이자면 본편 시점에선 멍멍이 형이 모종의 사건으로 일찍 은퇴를 했는데, 이벤트 때는 멍멍이가 시간이동을 안 했기 때문에 그 사건이 다르게 흘러가서 형도 은퇴를 안 했을 거예요. 스토리에서 풀 일은 없을 설정이긴 하지만 -21어장 666답글-
Q. 멍멍이가 황왕 명령 거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A. 싫어도 몸이 그냥 움직여버리고 의지도 제한시키면 거부할 생각도 못 해요. 대책을 세우지 않는 이상 멍멍이 혼자서 거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21어장 671답글-
멍멍이는 포기가 빠른 편이고 자기 힘이 약한 편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톡방 안에서라면 멍멍이가 보기에 아 저건 좀;;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어도 쓴소리만 몇 번 하고 흐린눈하면서 잊은 척 넘어갑니다. (내색을 안 한다 뿐이지 호감도는 빠르게 깎이겠지만)
눈 까뒤집힐 정도로 화내는 건 상대가 >자기가 하고싶어서 다른 사람을 심하게 피해 입히고 죽이는 존재<일 경우 뿐이라 보기 힘들다는 설정 -21어장 759답글-
멍멍이... 바느질 되게 잘 합니다 자기 하오리랑 기모노 찢어진 것도 자기가 고쳐요. 십자수도 그냥 자수도 수준급입니다 -22어장 716답글-
멍멍이 퍼스널 컬러: 비비드&소프트 -23어장 235답글-
원래 멍멍이가 카부키쵸 세계관으로 데려오기 전에는 카겦 기반 캐였거든요? 여기가 캐들이 기본적으로 초능력 한 개는 갖고 있는 곳이어서 멍멍이도 능력이 있었는데, 얘가 가진 건 타인의 아픔을 자신에게 가져오는 능력이었다네요. 상처는 그대로지만 고통은 느끼지 못하도록 자기가 온전히 다 떠안아주는...
카부키쵸로 데려와서도 처음에는 능력 그대로 들고 있게 하려 했는데 스토리 조정하고 개연성 생각하다보니 나가리 되어버렸지만.. -23어장 438답글-
Q. 멍멍이는 왜 체벌을 옹호하나요
A. 스포일고 무엇보다 사회생활 경험 적고 21세기 체험 못 해본 77년생이 체벌 무조건 안 된다 하는 게 더 신기하지 않을까요 -24어장 722답글-
멍멍이도 ts해도 성격이나 설정이 달라지진 않을듯요
여성용 일본 전통의상은 심심할 때 입고 다니려나 -24어장 387답글-
(현대에서 뭔 게임 좋아할지)
(이미 캐들이 다 현대다)
멍멍이는 칼 쓰는 게임은 '아 내가 하면 저것보단 잘 할텐데'라든지 '저기서 저렇게 잡으면 손 다치는데' 같은 생각이 나서 집중을 못합니다
모동숲같은 거 탐슬 안 하고 수집요소 다 모으는 그런 건 좋아할듯 -24어장 959답글-
카부키쵸 세계관에서 색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머리나 눈 둘 중 최소 하나가 가진 색으로 변하는데, 둘 다 변하는 경우는 왕급(=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매우 드뭅니다. 멍멍이는 머리색이 변하는 케이스죠. 그럼 왜 멍멍이가 금발금안이냐! 하면... 멍멍이네 주인이 안경을 안 사줘서 시력 보정을 색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25어장 159답글-
(모든 스탯은 1. 카부키쵸 세계관에서 2. 자신이 속한 종족 중 3. 능력(=색)이 있을 때를 기준으로 합니다)
주장비: 일본도. 어디까지나 '주'장비라서 상황 따라 기분 따라 자주 바뀝니다
포지션: 굳이 따지면 딜러. 한 딜탱쯤 되려나
HP: 10. 인간 중에서는 최상급입니다.
MP: 정신력이라고 치면 9 정도
명중: 9. 정신상태 따라 흔들리는 정도가 커서 1 깎습니다
시야: 관찰력 혹은 육감, 눈치라는 의미면 인간 중 최상급이지만... 신체적으로 시력이 안 좋아서 6 정도
근력: 9 정도
지력: 전투로 한정하면 10. 싸움머리를 재능으로 타고났는걸
민첩: 8. 옷이 워낙 치렁치렁해서 걸리적거리지 않을까.
운: 3
공속: 9
이속: 7
공격력: 초능력이 있는 왕들을 평균 10으로 두면 9.5
방어력: 8 -27어장 231답글-
─센은 초능력이 있어서 높게 준 거지만 초능력 없이 9를 넘은 멍멍이가 되게 잘 싸우는 거예요. 나쁘게 말하면 재능충이지만 -27어장 238답글-
─멍멍이 카부키쵸 세계관에선 먼치킨 반열인걸
초톡방 기준 일반인이라 그렇지(눈물) -27어장 240답글-
Q. 플레이아데스(호시조라 미츠루)랑 랑댕이랑 황의 왕 명령 없이 싸우면 누가 이기나요?
A. 카부키쵸(도시) 안에서 싸우면 쫌생이(멍멍이 목줄 잡은 놈 중 남자쪽)가 100% 이깁니다.
특수한 조건을 만족하면 쫌생이는 그냥 일반인이라 마찬가지라 멍멍이가 새끼손가락으로 이깁니다. -27어장 248답글-
(약점)
양심? 멘탈? 살살 잡고 흔들면 빈틈 없던 멍멍이에게 빈틈이 슝슝 생깁니다. 물론 멍멍이에게 평생 갈 증오를 안게 되겠지요 -27어장 291답글-
~멍멍이는 어떻게 아침 등산을 나갈 수 있었나~
(새벽 5시 50분)
멍멍 "야" (발로 툭툭)
주인 "어어" (비몽사몽)
멍멍 "나갔다 올겨"
주인 "으응" (이불 머리끝까지 덮기)
허락 받고 다녀왔습니다 -27어장 759답글-
─허락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반반이라 깨우지 말고 닥치라 하면 얌전히 있어야 하지만 -27어장 766답글-
(호그와트 기숙사)
후풀푸프. 얘가 천성적으로 선하기도 하고 그리핀도르로 가기엔 얘가 (스포일러 읍읍 -29어장 747답글-
멍멍이네 형은 저래 보여도 과거에도 현대에도 멍멍이 꽤나 좋아하고 아낍니다. 안 아꼈으면 그나마 감싸려는 행동조차 안 했을 것. -30어장 132답글-
다만 멍멍이쪽 감정이 해소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해서 관계 개선의 가능성이... :3c
Q. 랑댕이가 이 사실 알게대면 어케대나요?
A.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그건 그거고 형이 한 짓거리들은 별개라고 여기고 있슴다 -30어장 140답글-
(형이랑 몸이 바뀐다면? IF)
과거 기준이면... 뭐 별다른 게 일어날까요 괴짜신이 장난쳤나보네 ㅇㅅaㅇ하고 넘어가지 않을까. 맨날 임무 빼먹던 도련님이 나가겠다고 자원하고 완벽주의자였던 도련님이 실수만 한다고 주변 사람들이 놀라긴 하겠네요
현대 기준이면 형(in 멍멍이 몸)은 황의 왕의 소재지를 파악한 거에 1차로 놀라고, 멍멍이가 살아있단 거에 2차로 놀랍니다. 아마 바로 시안 일파 본부로 돌아가서 스스로 몸을 가둬넣지 않을까. 의외로 멍멍이한텐 해피엔딩 루트일지도(?)
멍멍이(in 형의 몸)는 일단 형 몸이 하체마비 상태라 거기서 제일 먼저 크게 충격받습니다. 색도 없어지고 근육도 빠지고 이게 무ㅜ야허어헣허ㅠㅠㅠㅠㅠㅠ하면서 울 듯. 형 몸 안에 있는 동안엔 멍멍이 조카=형 딸한테 엄청 잘 해줘서 다들 엄청 어색해할 겁니다. -30어장 160답글-
형이 하체마비가 올 정도로 심하게 다쳐서 정년보다 은퇴를 일찍 하고 당시 (한국식나이) 7살이었던 딸에게 왕위를 물려줍니다. 어느 정도 나이 찰 때까진 수렴청정을 하긴 했지만.
그래서 멍멍이가 형이랑 감정 풀 가능성이 희박하다 했던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아직 칼도 제대로 못 들 애를 사지로 내몰아...? 딴 사람 있었을 거 아녀...? 미친 거 아녀...?" 하는 감상 -30어장 179답글-
#자캐가_부끄러울_때_가장_먼저_튀어나오는_대사
"아니 어 음" 하고 감탄사 먼저 튀어나옴. 당황해서 고장난 채로 덜걱거린다 -30어장 280답글-
(눈뜨니 황의 왕이 된 댕댕이IF)
바로 시안 일파에 자수하러 가지 않을까............ -30어장 283답글-
Q. (길고양이 관찰기 독백)그래서 소금이(독백에서의 냥냥이)는 정체를 들킨건가요? 어케 안 거지
아 얘가 누구다! 까진 안 갔지만 적어도 마젠타 쪽과 연관 있다는 거는 눈치챘습니다. 현실적으로 분홍색 고양이가 있을리가 없잖아요 -30어장 779답글-
전투 머리는 얍삽빨라서 >>멍멍이 멘탈상태가 좋으면<< 상대 흔들어서 이기고 치사하게 이기고 이런 거 잘 해요 -30어장 791답글-
(댕댕이.. 너풀거리는 후리소데 성가셔하나요?)
입으면 귀찮아하지는 않습니다 펄럭펄럭 귀찮았으면 평소에 옷을 그렇게 걸치고 다닐까
근데 후리소데가 여성복이여서 입어본 적은 한 번도 없을듯 -30어장 898답글-
(서브웨이)
신문물에 익숙하지 않은 중노년 분들이 서브웨이에 갔을 때를 생각해보십쇼 딱 그겁니다
채소 달라고 할 때 다 넣어줘유 했다가 추가금 붙는 것들까지 넣어서 예산 오버했다고 당황할듯 -31어장 118답글-
(눈을 떠보니 네코미미)
처음엔 놀랐다가 없애지도 못하니까 체념하고 그냥 다닐듯
분명 고양이 귀인데 강아지처럼 움직임 -31어장 964답글-
#자캐에게_자신이_태어난_or_만들어진_목적을_물어본다면
멍멍이 "그런 거 내는 있어도 모른 척 할겨." -31어장 982답글-
#자캐에게_너의_정의는_뭐냐고_묻는다면
멍멍이 (한참을 고민하다가 대답하지 못한다. 너무 당연한 건데 굳이 정의를 내려야 하나? -31어장 982답글-
멍멍이도 마이마이 들고 삐삐 쓰고 그랬으려나 다마고치 칼자루 끝에 하나 매달고 다닐듯
다마고치 이게... 아직도 있어...? 하고 마트에서 발견하고 한참동안 들여다본다든가 -33어장 350답글-
뻘티미... situplay>1594916407>469에서 멍멍이는 왜 자괴감들고괴로워를 시전했나요? 멍멍이가 싫어하는 자기 주인이 입에 달고 사는 욕망에 솔직해라 뭐시기 저시기~~가 자기 손에서 튀어나왔기 때문 -33어장 540답글-
신은 있어: 노란 개의 가면(있긴 있지. 별 생각은 없지만) -33어장 968답글-
멍멍이는 문과뇌인데 예체능을 합니다 -35어장 261답글-
#자캐가_약해지는_유형의_사람은
흠없이 착한 사람. 하고싶은 거 다 해주고 싶어서 계속 져주기만 할 듯 -41어장 516답글-
#자캐가_자고_있는_모습을_서술해본다
이부자리 깔고 이불 팔과 다리로 끌어안고 잘 듯 -41어장 516답글-#자캐는_타인과_함께_잠들수_있나
어릴 때부터 심심하면 자기 방 나와서 본부 내 숙소 들어가서 다같이 자고 그랬다 -41어장 549답글-
(손 어케생겻는지)
흉터가 많고 손가락이 긴 편. 검 잡은 굳은살이 딱딱하게 박혀있음. 장갑 많이 끼고 다닌다 -41어장 892답글-
#자캐가_누군가에게_소중하다는_이유로_100명의_일반인_대신_구해졌다면
자기 구한 사람에게 너는 차라리 나를 죽였어야 한다고 울부짖지 않을까. 그 와중에 자기가 살아서 다행이라는 당연한 감정이 드는 게 혐오스러워서 자낮스택 엄청 열심히 쌓을 듯 -43어장 455답글-
(멍멍이를 구하는 대신 범죄자 100명을 죽였습니다면 어케되나요)
위에 써놓은 거 + '그래도 죄없는 사람들이 안 죽어서 다행이다' + '지금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범죄자가 죽었다고 좋아하고 있는 거야? 여기서 이렇게 죽어도 되는지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인 건 똑같은데?'가 겹쳐서 더 괴로워하겠죠 -43어장 462답글-
(다들 좀비아포가 된다면 어떻게 지낼까요? 복장이라던가.)
멍주가 좀비물을 잘 모르기는 한데
좀비가 사람 모양이니까 '사실 저 안에 사람 영혼이 그대로 있으면 어떡하지? 사람이 생각도 할 수 있는데 그걸 내가 살인하는 거면 어떡해?' 하고 패닉 와서 좀비 공격 못할 듯... 살아도 도움은 안 되지 않을까
(여러분 캐가 판타지 세계 일원이라면?)
멍멍이: 검사 당연히 검사!! 모험하고 세계 구경하고 이런 거 좋아할듯
옳은손: 뭉크라고 하나 격투가? 마왕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만 움직이는 전형적인 주인공 스타일 -43어장 555답글-
)
7. 독백 ¶
유혈 및 폭력, 자해, 비속어, 살해, 사망, 아동살해 표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람 시 주의 부탁드립니다. |
과거(~1995년)
2번 조각글 → 그래도 사람 목숨인데, 수단이나 도구처럼 쓰는 건 좀 아니지 않아? → 살인의 이유
현재(2019~2020년)
노란 가면을 쓰기까지 → 1번 조각글 → 악마와의 산책 → 3번 조각글 → 쾌락주의 → 일상 → 계기 → 길고양이 관찰기 → 모브독백 1 → 5번 조각글 → 원초아 → 살고 싶으신가요? '어떻게'가 빠졌잖여, 친구야. → 6번 조각글
7.1. 초반부 ¶
──── 톱니바퀴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렸다.
- 노란 가면을 쓰기까지
쇳소리가 섞인 조용한 목소리.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처음부터 시작하라는 건가. 전대들은 그나마 물려주는 유산들이 있었을 거잖아?
독특한 음색의 목소리.
그걸 나한테 말해도 줄 수 있는 게 없는걸. 원망하려면 네 선대를 원망해주지 않을래?
소리가, 들린다.
다른 목소리와 견주어야 성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목소리.
정보가 너무 부족해. 뒷배도 없는 지금은 가만히 숨을 죽일 수밖에 없나.
낮은 듯하면서도 가벼운 느낌이 드는 음색.
아, 그래. 선대의 유산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정확히는... 생길 거라고 해야 하나.
정신이 몽롱하다. 새햐앟기도 하고 새까맣기도 한 세계가... 눈을 감았기 때문인지 떴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악의만이 느껴져 불쾌한 목소리.
흠. 쓸만해?
마음이 없는 듯, 관심이 없는 듯, 한들한들 흔들리는 목소리.
나는 몰라? 네가 원하는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을 뒷배경을 가진 건 확실해. 하지만 그 인간의 능력과 재능이 네가 원하는 정도일지는 모르겠는걸.
애초에 나한테 눈이란게 있었나. 있었다고 해도, 눈과 귀와 입과 코와 손과 다리와 심장과 폐와 뇌와 모든 신체가 나한테 의미가 되었던가? 췌장과 간과 신경과 쓸개와 신장과 각막과 피부가 있다는 건 무슨 의미였더라?
흥미가 있는 것만은 확실한지 웃음기가 섞여들은 목소리.
그 재료를 어떻게 쓸지는 너에게 달렸어.
반면에 아무 것도 재미가 없다고 말하는 듯한 목소리.
재밌네. 그건 어디 있는데.
모르겠다. 생각하는 것조차 의미가 없으니 그저 잠들고 싶었다.
나비가 날갯짓을 하는 듯한 목소리.
운도 좋아라, 마침 내일이네. 다음 자정에 우리가 처음 만난 건물 옥상에 올라가면, 하늘에서 사람이 떨어질 거야.
격통이 찾아왔다. 나를 관통하는 아픔이 순식간에 나의 전신을 구성한다. 발가락 끝부터 머리카락 한 올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아프다, 배에서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너무 생생하다. 입을 다물 수 없어 무언가를 쥐어뜯고 싶어도 마땅찮은 게 없다는 것이 지나칠 정도로 아쉽다.
차라리 정신을 잃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복부를 사정없이 누르는 압력과 누군가의 목소리가 현실 도피를 방해한다.
"넝마짝이 된 걸레를 빨아서 행주로 써야 하는 내 신세가 슬프군. 내가 이런 수고까지 했건만 별 볼 일 없는 쓰레기였으면 쉽게 넘어가진 않을 줄 알아라."
근육이 심하게 당기는 눈꺼풀을 겨우 들어올리자 새빨간 세상이 보였다. 하늘은 밤을 담았지만 사방에 번개같은 하얀 불꽃이 튀기는 건 뇌가 그렇게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야경이 눈부신 세상 위에서 노란 가면을 쓴 사람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면 말고는 전신이 시꺼매 잘 보이지도 않는다.
"선택권을 주지. 살고 싶나?"
그게 뭔 소리냐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내 성대를 빠져나오는 건 바람 빠지는 소리 뿐. 쪼그라드는 느낌이 드는 폐에 산소를 들이넣는 것조차 힘겨운데 말까지 하는 건 불가능했다.
살고 싶냐고? 이렇게 아프고, 이렇게 괴롭고, 말조차 안 나올 정도로 세상이 날 압박해오는데 그런데도 계속 살 마음이 드냐고 묻고 있는 건가?
"대답이 없으면 내 판단대로 움직이겠다."
"────허,"
"사, 사, 려어─, 살... 려......"
당연히 살고 싶지. 나는 이런 곳에서 아무것도 못 이루고 이렇게 죽기 위해 살아온 게 아니라고. 아직 못 가본 장소도 못 먹어본 음식도 많고, 날 키워준 사람들한테 고맙다는 말도 다 해주지 못한 데다가─ 형한테 사과도 못 했어. 절대 못 죽어.
아무리 추잡스럽더라도 끝까지 이승에 붙어 가시밭길을 기어가주마. 목구멍을 진동시키며 오는 통증을 참기 위해 바닥을 긁으며 아직도 나를 밟고 있는 그 사람을 노려보았다. 한참동안 말이 없던 가면이 조용한 말을 시작했다.
"정신력 하나는 마음에 드는군. 네 선택은 잘 들었다."
마치 무언가를 으스러뜨리는 듯한 손모양으로 내 이마를 찍어누른다. 지금까진 어떻게든 비명지르는 걸 잘 참았는데 갑작스럽게 새로운 아픔이 찾아오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러버렸다. 생명이 빠져나가 생기는 기묘한 서늘함과는 다르게, 뜨거운 무언가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열기가 비명소리를 더욱더 키운다.
기분 나빠. 징그러운 감각과는 별개로 이 가면을 쓴 악마같은 작자가 하려는 걸 이제서야 알아차린 게 더더욱 짜증난다.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다리근육은 겨우 꿈틀거리기만 할 뿐.
"살려달라고 한 건 너였지 않았나. 왜 날뛰는 거지?"
"익, 놔, ... 꺼져......!"
"반항적인 노예는 싫다. 알아서 기라는 걸 굳이 말로 해야지만 알 정도로 멍청한 놈인가?"
가면 구멍 너머로 보이는 금안이 바로 코 앞까지 다가온다. 엉뚱하게도, 악마의 눈은 노란색이라는 속설을 떠올려버렸다.
아, 내가 왜 살고 싶다고 생각한 걸까.
이 놈한테 목줄 잡힐 바에야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더 나았을 텐데.
"내 이름은 소라空다. 너는 지금부터 소라空의 수족이 되어 움직이나니 옛 이름을 버리고 신新의 이름을 받아라."
이름을 받은 자는 이름을 준 자의 자식이 되어 모든 행동을 그의 의지대로 따라야 하나니.
어째서 이런 끔찍한 사태가 나한테 일어났는지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하고──
──악마의 금안을 보며, 나는 까무룩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악마를 닮은 노란 눈동자가 나의 악의를 바라보고 있다.
- 악마와의 산책
- situplay>1593057673>979
턱을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이 세면대를 더럽히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다. 거슬린다. 나한테서 생겨난 것임에도 짜증이 솟구치는 걸 멈출 수 없다.
좀 더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을 터였는데. 상대가 인간이 아니었다면 인간의 잣대를 적용해서는 안 되었고, 인간이었다 해도 못 본 척 넘어가면 그만이다. 옛날에는 모르는 척 웃어넘길 수 있었던 것들이 살의와 증오가 되어 심장을 갉아먹는다. 저 죄인을 죽이고 싶어. 세상 모든 악인들은 죽음으로 참회하도록 목을 가르고 배를 찔러야 하는데. 악마를 닮은 노란 눈동자가 거울 너머에서 나의 악의를 바라보고 있다.
"... 자기 혼자 하고 혼자 벌받을 것을 왜 남까지 끌어들이냐고..."가장 부끄럽고 창피한 부분은, 나의 분노가 악 자체에서 나온 게 아니라 이름 모를 희생자를 동정한 데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만약 그 하트라는 것이 자기 혼자 모든 걸 실행하는 자였다면 하지 말라고 진심 담은 잔소리는 했을지언정 지금처럼 화를 내지는 않았겠지. 사정도 모르는 사람에게 감히 연민을 품고 동일시를 해서 괜한 화풀이를 하는 꼴이라니.
나는 겁쟁이에, 비겁한 데다가, 화낼 상황을 고르는 위선적인 놈이다.
겨우 가라앉힌 토기는 죄인을 향한 건지 나를 향한 것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여기까지 추악해졌나 싶다. 입만 살아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바꿀 수 없는 나란 놈은.
"나한테 조금 더 힘이 있었다면..."... 힘이 있었다면, 그래서 뭐?
무심코 새어나온 중얼거림에 혼자 되물어본다. 내가 더 강한 사람이었다면 뭘 할 생각이지? 사적 제재를 옳다고 옹호하려는 건가? 아니면 뭐, 죄인을 죽이고 다니기라도 하려고?
그래봐야 살인자나 다름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내 마음은 자꾸만 칼을 들라고 외치고 있었다. 자꾸 왜 이러는거지? 추악한 생각이 언제부터 자라난건지 혼란스럽다. 옛날의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철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아, 그래. 모든 건 저 악인을 만난 게 원인이야. 나쁜 건 내 목줄을 잡은 저 죄인이고 나는, 나는...... 아니, 도망치지 말자. 이유가 어찌 되었건 칼을 잡은 사람은 죄가 없을 수 없어. 알고 있잖아.
복도를 가로지르는 인기척에 가까이 놔두었던 식칼을 손에 쥔다. 현관문 옆에 등을 붙이고 숨을 죽였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바로 목을 노리고 식칼을───
"그대로 칼을 돌려 네 몸을 급소를 피해 찔러라."기우뚱, 하고 내 몸이 기울어진다. 숨을 쉬기 힘든 아픔에 다리도 겨누기 힘들었지만 모순적이게도 요 근래 익숙해진 감각이기도 했다. 낡고 오래된 방에 점철되는 피비린내의 주인은 나였다.
정장을 입은 노란 가면이 한숨을 쉬며 내 앞에 구부정하니 쭈그리고 앉았다
"이런 의미 없는 저항은 언제쯤 멈출건가."나한테서 식칼을 뽑아낸(더럽게 아팠다) 죄인은 곧바로 내 상처를 치료했다. 불쌍하다거나 도와줘야겠단 착한 마음이 들어서가 아니라 멀쩡한 도구가 더 쓸만하다는 논리에 의해서였다. 물어죽여도 시원찮을 놈, 나한테 빨리 질려서 버려줬으면 좋겠는데.
"너나 나 둘 중 하나는 뒤질 때까지...!"
"어차피 나한테 아무 상처도 입히지 못할 텐데. 희망 없는 갈망은 허무한 법이야."
"치료는 다 했으니 가면 쓰고 어서 나와라. 일이다."말을 흐리는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영혼의 파동은 꽤나 이질적이었다. 인간이라기엔 너무 작고, 요괴라고 하기에는 빛이 나는. 확신은 없지만 반요일 거라 짐작은 하고 있었다. 인간이 아니니 저렇게 악의에 가득한 행동을 하고 다니면서도 죄책감 하나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거겠지.
"2020년 일본의 근로노동법은 얻다 팔아먹은겨."
"그런 게 우리에게 의미가 될 거라고 생각하나."
"그건 니가 인간이 아녀서 글타는기가."
"글쎄."
'인간 아닌 존재가 왕이 되다니.' 손을 쥐었다 펴보며 조종을 받을 때의 감각과 지금의 감각을 비교해본다.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왕'은 '신하'를 제멋대로 조종하고 지배할 수 있다고 들었다. 방금 전 내가 내 배를 찌른 걸 봐도 그렇고 기묘한 치유 능력을 봐도 그렇고, 상대가 그 보기 힘들다는 왕이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래도 영 석연찮은 부분이 많았는데...
"늦장부리지 마라. 억지로 움직이는 건 너도 원하지 않을 텐데."대표적인 부분이, 탁상 위에 개가면 있다고 짜증을 내는 저 자가 나를 하루종일 조종하려 들진 않는다는 것이다. 나를 풀어줘서 공격 당할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단 계속 지배하고 있는 게 더 안전할 텐데. 물론 나야 좋지만.
"어이쿠야, 내가 가면을 얻다 떤져놨드라? 이거 찾을라믄 한참 걸리겄는디."
이 쪽으로 더 파고들면 어쩌면 지금 상황을 타파할 실마리가 보일지도 몰라. 몇 번 잡고 싶지 않았던 칼을 잡고서 저 자가 내 공격을 막아놓지 않았다는 건 알았고, 저 자의 허점을 잡으면 이 관계도 끊어버릴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선악이니 정의니 이상한 고민 할 필요 없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고.
가면을 잡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간다.
... 정말 그렇겠지요, 할머니?
"... 신."불안을 가면으로 덮으며 악마의 뒤를 따라나간다. 어차피 지금 내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숨을 죽이고 때를 기다리는 것만이 가능했으니까.
"거 참 참을성도 읎어가꼬. 간다 가."
───나한테 조금 더 힘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죄책감이 하나도 담기지 않은 눈동자가 오히려 소년의 죄책감을 비추었기 때문에.
- 쾌락주의
- situplay>1593387743>276
하루아침에 25년 뒤 세상으로 날려진 소년 입장에서는 현대의 카부키쵸에 신기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전화는 물론 길찾기나 문자 등 모든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판떼기를 다들 하나씩 들고 다니는 것도 그랬고, 처음 들어서는 좀처럼 파악하기 힘든 해괴한 말씨들도 그랬고. 세기말과 다른 새 시대의 분위기는 보잘 것 없는 소년을 알게 모르게 위축시키기 충분했다. 무리와 동떨어져 어울리지 못함은 사회적 동물에게 치명적인 단점이었으니.
'그래도 꽃은 옛날허구 달라진 것 같진 않구만.' 야트막한 언덕길에 나있는 노란 풀꽃들을 가만히 앉아 바라본다. 이렇게 작정하고 바라보면 풀잎하고 꽃잎하고 크게 차이가 나는데 멀리서 보면 하나처럼 보이는 게 참 신기하지. 예전에도 지금도 꽃은 관심이 없어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게 슬프다. 너를 신경써주는 사람 하나라도 있다면 좋겠는데.
"노예씨~ 범죄 저지르러 가자!"혼자 덩그러니 서있으면... 까지 떠올렸다가 시상이 끊겨버려 짜증이 확 치밀어오른다. 자신을 부른 청년을 고개만 돌려 올려다보는 소년의 얼굴은 가면에 가려 보이지 않았으나, 목울대를 힘차게 울리는 그르렁거림이 청년을 심하게 경계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사람이 사색에 빠짔는디 방해하지 마라, 천한 것."소년 옆에 서서 팔짱을 낀 채 삐뚜름하게 서있던 청년이 어이없단 듯 되물었다.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접어가며 세었던 별명들만 한 손을 넘었다.
"노예씨는 들꽃이 뭐가 재밌다고 그렇게 신경써? 좋은 것도 없는데."
"글고 노예라 부르지도 마라."
"신씨도 안 돼, 개씨도 안 돼, 강아지씨도 안 돼, 멍멍이씨도 안 돼, 매화씨도 안 돼, 단풍씨도 안 돼, 신하씨도 안 돼, 이젠 노예씨까지 안 돼? 대체 어떻게 부르라는 거야?"
"안 불름 되겄네."노란 풀꽃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소년의 옆얼굴을 보기 위해 청년도 자리에 쭈그리고 앉았다. 모든 게 재미없단 듯 뚱한 표정만 내리 짓던 청년의 얼굴에 희열을 품은 미소가 피어난다.
"억지 부리기는."
"네 목줄을 잡은 주인이 너에게 뭐라고 명령했었더라?"아픈 부분을 찔리는 바람에 과민하게 반응해버리고 만다. 무엇이 그리도 재밌는지 청년은 으르렁거리는 소년을 앞에 두고 깔깔 웃는다.
"... 왕과 당신의 말씀을 동등히 취급하랬슈."
"그리고 넌 그 명령을 거스를 수 있던가?"
"... 닥쳐, 이 범죄자 새끼가...!"
"자기가 하는 일도 범죄면서!"청년의 말은 다시 말해, 자기 손에 피를 묻힌 사람이 남을 비난할 자격이 되겠냐는 것이다. 이 곳에 와서 소년은 기억하는 것만 두어 명 되는 사람의 몸에 칼을 찔러넣었으며, 정신을 잃어 미처 알지 못한 사람까지 합하면 얼마나 될지 소년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누가 그걸 하고싶어서..."
소년의 말허리를 잘라먹으며 끼어든다. "죄를 인정하고 싶지 않으면 도구란 걸 인정하고, 인간이 되고 싶으면 죄지은 걸 받아들여야지. 인간은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청렴결백한 척은 하고 싶어서 앞뒤 안 맞는 모순만 계속 말하고 있네? 정말 끝도 없이 오만하구나, 응, 재밌어!"
두려웠기 때문에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건 다 느그들이... 억지로, 내는 원한 적 읎는디 시킨 거여. 내 아무 잘못도 읎다. 내는..."어깨에 힘 좀 빼자며 한손으로 턱을 괸 청년이 소년의 어깨를 두드린다. 진정으로 위로하려 한다기보단 약올리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였다.
"어쩌나, 너한테 죄가 없으면 피해자의 가족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범인을 눈 앞에 두고 원망을 풀을 데가 없어 울겠네."
"죄책감 없이 사람 죽이는 새끼한테 들을만한 말은 아녀...!
"내가 언제 나한테 죄가 없다고 했어? 난 너같은 개와는 달리 인정할 건 인정하거든."
"너희 개들은 뻔뻔한게 종특이야? 규칙을 어긴 사람을 닥치는 대로 죽이면서 당당하고 정의로운 척은 다 하네."답할 말을 찾지 못해서 입술을 달싹인다. 소년 본인도 그런 모순을 두고보지 못해서 집을 뛰쳐나온 게 아니었던가. 그래도 자신은, 바뀌려는 노력도 바꾸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형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는 형과 싸운 그 날에서 아무것도 바뀌지 못한 건가?
... 아냐, 휘말리지 말자. 쾌락범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는 없어.
"... 적어도 느처럼 사람 재미로 죽여놓고 쳐웃는 새끼보단 나아."청년의 붉은 눈동자는, 소년이 미워하다 못해 죽이고 싶어하는 악마의 노란 눈과 닮은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집어삼키는 것 같은 그 눈을 어째서인지 피하지 못했다. 죄책감이 하나도 담기지 않은 눈동자가 오히려 소년의 죄책감을 비추었기 때문에.
"같은 살인자 주제에 정당화하기는. 규칙에 사람을 죽이라고 써놓고 악행이 아니라고 우기는 주제에?"
"그럴 거면 내가 사람 죽이는 걸 비난하면 안 되지. 봐봐, 우리 에피큐 어플은 이용 약관에 부정 행위를 저지른 사람은 벌을 준다고 사전에 알려주고 있다고. 꼼꼼히 안 읽는 사람들이 잘못이지."청년이 흔드는 핸드폰 화면에는 소년을 인형 삼아 억지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도구가 써져 있었다. 소년이 표현하기를, 말같잖은 음모를 게임이란 포장지로 감싸 쾌락만 탐하려는 탐욕. 가면 너머 소년의 노란 눈동자는 증오스러운 악을 노려본다.
"사기꾼 새끼."
"내가 틀린 말을 했어?"
"도덕적으로 틀린 말."
"규칙에 네 죄책감을 덜어줄 말을 써줬으니까 오히려 감사해줬으면 좋겠는데. 이건 너와 우리의 세상의 절대적인 법칙이나 마찬가지라고."
저 핸드폰을 물어뜯고 싶다는 악의가 어딘지 모를 장기에서 솟구쳐 오르는 바람에 소년은 그만 울고 싶어졌다.
소년의 동거인이 부족한 살림에도 외식을 즐기게 된 이유와, 소년이 밥을 먹다 말고 편의점을 나온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 일상
- situplay>1593603521>249
편의점 자동문을 넘어서자 빗소리가 소년을 맞아준다.
"워메."
컵라면을 매운 걸 살지 순한 걸 살지 고민을 좀 오래 해버린 모양이다. 집을 나설 때 하늘이 희뿌연 것이 불안하긴 하더니만 결국 저리도 퍼부을 때까지 편의점 안에 있어버렸으니. 그나마 다행인 건 우산을 미리 챙겨둬서 새로 하나 살 필요성은 없단 점이다. 사실 소년은 비를 맞는 걸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으니 별 문제는 없었을 테지만... 눅눅한 과자봉지는 뜯기 힘들지 않은가. 번거로움은 피하고 싶었다.
자동문 옆 우산꽂이에 놔두었던 비닐 우산을 펴든다. 그러자 우산꽂이 반대편에 앉아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유리창 앞에 쭈그려 앉아 턱을 괴고 비 오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누가 보더라도 비를 피해 앉아있단 걸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는 모양새였다.
펼친 우산을 들고 그 사람 쪽으로 걸어간다. 붕대 낀 손을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던 소녀는 인기척에 고개만 들어 소년을 마주본다.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란 걸 감추는 소녀를 모르는 척하면서 소년이 입을 열었다.
"니 여서 뭐다는겨."
"뭐라는 거야."
갈색 눈동자가 담긴 눈매를 와락 구기며 소녀가 응수했다. 내가 뭐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년은 하고싶은 말을 마저 잇는다.
"긍께 뭐다냐고. 요 주변은 가시나 혼자 돌아댕기믄 위험혀."
"당연히 비 그칠 때까지 기다리는 거지. 가출 청소년 아니니까 그냥 가지? 머리는 염색 아니니까 공부 하라고 꼰대짓 할 거면 꺼지고. 훠이훠이."
자기를 내쫓으려 휘젓는 손을 멀뚱히 내려다본다. 딱히 소녀의 노란 머리를 보고 불량아란 생각을 한 적도 없고, 애초에 내 머리도 노란데 그러면 적반하장이고, 공부는 나도 안 하니까 할 말 없고. 그래도 말하는 걸 보아 곤란한 일이 있는 건 아닌 듯하다. 도와줄 게 딱히 없다니 다행이야. 옅게 미소를 지으며 소년은 소녀에게 우산을 내밀었다.
"엥?"
"비싼 거 아잉께 기양 받그라."
"아니, 누가 봐도 편의점 비닐 우산이잖아. 것보다 그냥 줘도 돼? 네 거는?"
"내는 비 맞는 거 좋아혀. 부담 갖지 말어."
비 맞는 걸 좋아한단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지, 우산을 억지로 넘겨준 소년은 빗줄기 속으로 느긋이 걸어간다. 뛰려는 기색도 보이지 않는 게 정말로 비를 개의치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과자봉지 정도야 뭐, 식칼로 뜯으면 되겠지. 우산과 소년을 번갈아 보는 소녀는 골목길을 돌자 보이지 않게 되었다.
"노랑이씨~!"
"으악 씨X 깜짝아!!"
"내 얼굴 그렇게 무서워?! 왜 보자마자 그렇게 놀라?!"
대신 새로운 청년의 목소리가 소년의 세계에 채워진다. 무의식적으로 비닐봉지를 휘둘러 방어하려는 소년의 움직임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막히고, 소년의 귀쪽에서 빠져나와 신체를 구성하는 청년은 위협에 겁먹어 급하게 대여섯 걸음 뒤로 물러난다.
"가, 가가, 갑자기 글케 튀나옴 누구라도 놀라지! 언질 좀 하고 나와라, 아니 그냥 오지 말어!"
"계속 인이어 속에서 보고 있었는데 몰랐어? 노랑이씨, 의외로 매너 좋던데! 나한테도 그렇게 상냥하게 해주면 얼마나 좋아."
"여기서 더?"
"어? 진심? ... 지금까지 우리에게 했던 행동을 되돌아봐주지 않을래?"
어이없단 듯 눈을 흘기던 소년은 청년에게 평소에 하던 것처럼 노랑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쏘아붙인다. 하는 걸 보아하니 일을 시키러 온 건 아닌 것 같고, 그러려 왔다고 해도 가면을 집에 두고 와서 지금 당장 같이 갈 수가 없다. 그렇다면 최대한 말을 섞지 않고... 는 불가능할 것 같으니 최대한 말려들지 않으면서 집으로 가는 게 최우선이겠지. 혀를 차며 가던 길을 계속 걷는 소년의 뒤로 청년이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왜 왔는지 안 물어보네? 슬슬 포기했어?"
"물어보나 마나여."
"너무하네. 일단 같은 편이 되었으니 친목 도모를 위해 과제로 바쁜 사람이 특별히 찾아와준 건데 살갑게 대해줄 수는 없는 거야?"
"같은 편은 개뿔이, 니한테 나눠줄 친절 읎응께 꺼... 아."
습관적으로 꺼지라고 하려다가, 청년을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지 사용처가 생각나 감탄사를 흘린다. 소년이 뒤를 돌아보자 앞날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청년이 보인다.
"그라믄 아지트 올려? 지금 갸 집 나갔는디. 내 먹다 남은 거 있는디 밥이라도 묵고 가그라."
"소라가? 저녁 시간에 일하러 나간 거야? 그렇게 안 봤는데 의외로 성실하네."
"갸는 밥 시간 되면은 나가드라. 우쨌든 올겨 말겨."
"날 재밌게 해줄 수 있는 게 있으면 당연히 가지. 근데 갑자기 이렇게 순순히? 수상한데..."
청년의 불안감은 틀린 게 아니었다. 소년의 동거인이 부족한 살림에도 외식을 즐기게 된 이유와, 소년이 밥을 먹다 말고 편의점을 나온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19년 평생 요리에 손댄 적 없는 사람이 감으로 때려맞추는 요리가 얼마나 궤멸적인지 청년은 알지 못했다.
앞으로 닥칠 위험을 알지 못하고 청년은 캄캄한 길을 걸어나가는 것이었다.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 너머로 소리 없이 읊조렸다.
- 그래도 사람 목숨인데, 수단이나 도구처럼 쓰는 건 좀 아니지 않아?
- situplay>1593687763>336
※해당 독백에선 문화적 배경(?)을 따라 만 나이를 사용합니다.
1995년 8월 1일.
우리 집안이 이누가미를 모시는 집안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던가? 이미 알고 있었다면 박학다식하다고 칭찬을 해주고 싶고, 몰랐다면 지금부터 알아가면 되는 거니까 괜찮다. 몰라도 일상 생활에 아무 지장 없는 잡지식이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 가문은 대대로 아마노코이누가미天小犬神님을 모시고 있으며 그 분의 천명을 위하여 청록의 힘을 다룬다. 5년 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될 요즘 시대에 이 무슨 고리타분한 이야기인가 싶긴 하지만. 어쨌든 그렇다.
"—글서, 인자 담달이면은 니가 18이 된단 말여. 다시 말해 부분적 성인이 되는겨... 하-따, 은제 일케 커부렀다냐? 핏덩이가 응애거리던기 엊그제같은디."
"18년 간 쫌쫌따리 자라지 않았겄어유? 함무이 키 따라잡을려고 내 음청 열심히 컸슈."
"하이고, 말은. 울 아가들 중서 니맨치 짝은 놈 본 적 읎으야."
뭐... 솔직히, 우리 신님이 대단한 분은 맞지만 대단한 분을 모신다는 인식은 없다. 중요한 말이 있다고 불러놓고 저리 퍼지게 눕듯이 앉아서 무게감 없이 장죽이나 뻑뻑 펴대는 데에서 위엄을 느끼기도 쉽지 않을 거다. 실제로 우리 신님도 주종관계보단 동등한 가족으로서 대해주길 바라는 눈치기도 하고?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친근하게 할머니라고 부르지도 못했을 거니까.
어쨌건간 할머니가 말씀하신 대로 한 달 뒤면 내 생일이 오고, 그 말은 지금껏 미뤄왔던 중대한 결정을 내릴 시기가 왔다는 뜻이다. 할머니의 태도가 어쨌든 우리—나와 나의 형—은 바짝 긴장을 하고 자리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울 짝은 애기 키완 별개로, 인자는 증말로 누가 왕이 될 건지 정해야만 한단겨. 알긋나."
... 아니, 형이 긴장을 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평소와 똑같이 각 잡힌 자세로 딱딱한 표정만 짓고 있으니까. 나야 이 화제가 영 껄끄럽기도 하고, 진지한 분위기는 나와 안 맞아서 무릎 꿇은 방석이 가시 달린 것처럼 느껴지고 있지만. 할머니 앞에선 저절로 나오던 웃음이 지금은 얼굴 근육 뒤로 숨어버린 게 여실히 느껴진다.
"느이 어무이도 슬슬 은퇴를 해야 쓰겄지 않겄냐. 효도를 할라 캐도 언넝 정하는기 좋을겨. 근디 이게 쪼-까 애매하단 말여."
기대듯이 늘어져있던 상반신을 반대로 앞으로 쏠리도록 하면서, 장죽 든 손으로 턱을 괸다. 붕대에 가려진 눈은 아마도 우리 형제를 바라보고 있을 터였다.
"형 쪽은 실전은 쬐까 못 한다지만은 조직을 통솔하고 이끄는 능력이 뛰어나지. 반대로 동생 쪽은 리더쉽은 야악간 모자라지만서도 타고난 싸움꾼이고 뭣보다 정의롭지. 둘 다 훌륭한 임금감이여, 암, 그렇고 말고. 내만 아이라 우리 늙은 아가들도 누구를 왕으로 시켜야 앞으로 시안 일파가 승승장구할지를 두고서는 계속 싸우고 있잖여?"
마음만 같아선 우리를 한꺼번에 왕으로 삼고 싶다고 할머니가 한숨을 쉰다. 만에 하나 그 고지식하고 꽉막힌 타카마가하라에서 그걸 허락하더라도 형과 같이 왕을 맡는 건 거절할 테지만, 우선 지금은 가만히 듣기로 했다. 어르신 말씀하실 때 말 끊는 거 아니랬으니까.
"글서 느이들 부모랑 이래저래 말을 하다가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정하자는 결론이 났으야. 즉, 지금 내 하는 말은 내 으지기도 하믄서 느이 왕의 으지기도 한겨."
할머니는 복주머니에 손 집어넣듯이 허공을 휘젓고, 곧이어 문서 한 뭉치를 우리 앞으로 내밀었다.
"타카마가하라에 허락받지 않은 계약이 거 보고서에 적힌 곳에서 진행된 정황을 포착했으야. 그리고 주모자들의 인적 사항도 확실허지. 우리들이 지금까지 하던 대로, 너희들의 임무는 그 자들이 있는 곳을 습격해서 처리하는 게 임무인겨. 것도 니 행님보다, 니 동상보다 먼저. 열 명 이내로 부대를 편성할 수 있도록 해놓았으니 인원은 알아서 차출하그라."
바닥에 놓인 서류를 받아들고 할머니를 바라본다.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걱정과 너무 무거운 짐을 지는 것 같다는 부담감, 그리고... 할머니의 말 속에 양심의 가시에 걸려 넘어지는 부분이 있어 아픈 마음이 섞여 쉬이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할머니의 마음의 창은 붕대에 막혀있는 탓에 마주본 그 사람이 어떤 기분인지까진 알지 못했으나.
"하늘의 뜻을 거역한 자들의 목을 따서 가져오그라."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나의 주인이시여."
망설임 없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대답하는 형을 곁눈질로 보다가,
"... 함 해보겄슈."
떨떠름함을 숨기지 못한 채 나도 고개를 숙였다.
* * *
"그건 네가 나한테 매달릴 이유가 안 되는데."
"하아기 싫어어어어"
"꺼져."
"타카요오오오오"
마루를 걸어가던 타카요를 소년이 발견하고 매달린 게 10분 전, 안 그래도 빠른 말투를 가지고 재빠르게 쏟아내던 이야기가 끝난 게 몇십 초 전. 완전히 평소와 같다고 말할 순 없으나 장난스레 투정 부릴 기운은 남아있는 친구를 메쳐버리고 싶다는 욕망을, 타카요는 필사적으로 억누른다. 대신 '내가 뭐가 좋아서 이딴 것과 친구를 하고 있나'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자신에게 계속 던지는 것으로 자기 자신과 합의를 보았다.
마루 끝에 앉아 한쪽이 일방적으로 어깨에 기대어 있는 두 사람의 머리 위로 달빛이 부서져 내렸다.
"너 어렸을 땐 왕 되고 싶어했었잖아. 반란을 일으키겠다느니 피의 혁명을 준비하라느니 무시무시한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면서."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겨?! 소학교 들가기도 전이잖여."
"어릴 적 꿈 여든까지 간다잖아. ... 그럼 지금은 왕 되기 싫은 거야?"
"글씨다, 어떨련지." 말을 흐리면서 타카요의 어깨에 이마를 부빈다.
소년도 자신이 왕이 되기 싫은건지 아닌지 확신을 못 하는 상태였다. 왕이 되어 하고싶은 일은 많았지만 정작 기회가 주어지니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아 곤란했다. 자신이 누군가를 이끌만한 재목인지도 모르겠고, 이 곳이 자신이 평생을 바쳐 일하고 싶은 곳이냐 물으면 그런 것도 아니었고. 누가 봐도 형이 더 청록의 왕에 어울리는 인재였건만, 존경하고 사랑하는 할머니에게 그 정도의 기대를 받으면 자신은 물러나겠다고 선뜻 말하기가 주저스러울 수밖에는. 용기 없는 자신은 언제나 자각하고 있었으니 한숨만 피어나왔다.
... 무엇보다, 지금 내가 심란한 이유는 그것 뿐만이 아니었지만.
"있잖여, 타카요 니는 증말로 이게 옳다 생각하나."
"뭔데."
"뭐가?"
"우리 좋으라고 딴 사람을... 잠깐 이건 또 누구여."
새로운 목소리 하나가 두 사람의 대화에 섞여들었다. 그리고 새로 더해진 발소리는 하나가 아니라 총 셋이었다. 성공적으로 끼어들었다고 방실방실 웃는 코후쿠 뒤로 걱정스레 소년을 내려다보는 쿄, 그리고 일행이 다 나온 장지문을 닫고 나오는 노조미까지 세 명. 딱히 보고싶지 않았던 사람이 무리에 있어 머뭇거리는 소년에게, 소년의 형인 쿄가 표준말과 다른 억양이 섞인 말씨로 말을 걸었다.
"왜 그래? 생각한 대로 안 풀리는 거라도 있어?"
"아니, 뭐... 형님은 코후쿠랑 노조미 델꼬 갈려 그려유?"
"훌륭한 전력이니까. 그리고, 말 돌리지 말고."
"나는 전력이 안 된다는 거야 뭐야." 하고 투덜거리는 타카요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소년은 형을 올려다보았다. 소년은 형을 싫어하진 않았다. 어쩌다 보니 라이벌이 된 지금 상황에서도 진심으로 동생을 걱정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뭐랄까. 속내 이야기를 하기에는 이 잔소리 많은 타카요보다 좋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이야기 안 한다고 버티면 끈질기게 달라붙겠지. 귀찮은 일을 떠맡으려 체념한 소년은 마루 밑 마당으로 시선을 떨어뜨리고 타카요에게 하려던 말을 형에게로 돌린다.
"비허가 계약자면은 죽이는기 원칙이잖어유."
"..." 무슨 당연한 말을 하냐는 듯, 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 캐야 하나, 그 사람이 나쁜 짓을 한 거는 맞지만서도. 그래도... 거기에 우리 중 누가 왕을 할지 정하기 위해서란 이유가 붙으면은, 거시기, 고건 쫌 아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도 사람 목숨인디..."
소년의 말은 다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쿄가 어깨를 토닥여주는 행동에 부자연스럽게 끊기고 만다. 상대의 고민을 다 안다는 듯이 옅은 눈웃음을 짓는다. 그러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은 소년이 듣고 싶은 말이 아니었다.
"불안한 거구나. 너는 옛날부터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게 문제될 때가 종종 있었지. 다각도로 바라보는 건 좋지만 필요없는 부분까지 신경쓰면 너만 힘들어질 뿐이야."
"... 필요 읎어?"
"잡념은 칼날을 무디게 만들 뿐이야. 중대한 임무인데다가, 너는 실제로 나가는 건 이번이 거의 처음이지? 불안한 것도 당연해. 나도 그랬는걸. 그래도 너는 나를 이길 만큼 재능 있고 뛰어난 사람이니까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돼."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며 평소엔 짓지 않던 미소까지 지어주는 형에게 소년은 아무 말도 돌려줄 수 없었다.
"저거, 네가 한 말 하나도 이해를 못 한 거 같은데." 쿄에겐 안 들리도록 귓속말을 해오는 타카요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 대답해준다. 형과는 도저히 마음이 맞지 않는다고 본능적으로 생각하던 것을 지금 이 자리에서 확인받은 것 같다고,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 너머로 소리 없이 읊조렸다.
인간에겐 착한 부분이 분명히 있으야. 고거를 선택할 가능성이 쪼꼼이라도 있으면은 내는 그걸 고를겨.
- 계기
- situplay>1594053493>553
계획이라고 표현하기도 미안할 정도로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야 할 사람의 이름만이 나열된 목록 속에서, 오늘은 생소한 문구 하나를 찾아냈다. '반드시 생포할 것'이라고 특별할 것 없는 이름 옆에 적힌 짧은 문장. 별다른 이유도 설명도 없어 소년의 고개는 절로 기울어졌다.
"여, 야는... 뭐라고 읽는건질 몰겄네. 야는 와 죽이지 말란겨?"
빌딩 옥상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검고 노란 가면을 쓴 여성이 뒤를 돌아보았다.
"센리 코우카다."
"어어. 갸."
"해야 할 일이 있다."
"긍께 그기 뭐냐고 묻잖여."
"말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군. 찾으면 잡아서 내 앞으로 데려오면 될 뿐이다."
진심으로 귀찮다는 듯 땅을 향해 길게 한숨을 내쉰다. 더 쪼아봐야 말을 해줄 것 같지도 않았기에 소년도 다시 시선을 핸드폰으로 내려버린다. 이유가 뭐든 간에 나는 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거겠지. 저어 저 개쉬끼놈 아주 그냥. 속으로 꿍얼대는 소년에게 검은 여자가 하고싶은 말은 따로 있었나보다. 이제는 소년의 시선이 그녀를 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붉은 개가면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화를 걸었으니까.
"더 추궁하지 않는건가? 왜 죄없는 사람을 납치하냐는 둥 한참 더 캐묻는 걸 각오하고 있었건만."
"와 그려. 구찮은 시끼가 구찮게 안 허니께 허전혀?"
"처음 일을 시켰을 때만 해도 왜 사람을 죽여야 하나며, 자기는 안 하겠다면서 끝까지 날뛰고 반항하지 않았나. 익숙해진 건가. 그런가."
저 여자가 웃을 때는 남을 괴롭힐 때 뿐이다. 한달동안 그걸 학습한 소년은 작정하고 여자를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다 읽은 화면만 아래로 내리고 있다.
"애완견을 키우는 부류를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실제로 훈련의 성과를 보고 나니 공감이 가는군. 주인을 거역하지 않는 훌륭한 사낭견이 되고 있지 않은가. 너 자신도 느끼고 있나?"
"..."
옥상 난간에서 시작한 구두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내가 늘 말하지 않았는가, 선과 정의는 착할 수 있는 환경밖에 모르는 사람들의 헛소리란 것을. 자타공인 성인이라 할지언정 주변 맥락이 조금만 바뀌어도 손쉽게 욕망에 따르곤 하지. 그게 인간이다. 그게 바로 우리들이지."
헛소리다. 악행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과 악행밖에 하지 못하는 환경은 천지차이지 않은가. 지금 저 자의 행동은 말대꾸를 못 할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왜 말을 하지 않느냐며 부당한 비난을 하는 작자들과 다를 바 없다. 그래, 소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사람과는 달리 정의를 놓지 못하는 착한 사람일 거였다. 그러할 것이 틀림 없었고, 그래야만 했다.
"슬슬 네 악함을 인정할 때도 되지 않았나?"
그렇지 않으면 소년은 자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으니.
휴대폰 액정이 바닥과 맞부딪는 소리와 동시에, 허리춤에 차두었던 칼자루를 세게 잡은 손이 멈추었다. 칼을 빼들기 위한 근육은 끊임없이 꿈틀대고 있었으나, 가만히 있으라는 노란 가면의 말에 막혀 실제로 칼날이 검집 밖으로 뽑히진 못했다. 당장 저 입을 막지 않으면 또 어떤 헛소리를 들을지 모르는데도. '아니, 마냥 헛소리로 치부할 수 있을까?' 자각하지 못했던 내면과 마주하는 건 끔찍하게 괴로운 경험이라, 소년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여자를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여자의 손이 얽어드는 어깨에선 왠지 모르게 익숙한 기분 나쁜 열기가 느껴졌다.
"내가 밉겠지. 어째서 너에게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왜 스스로 악행을 저지르는지도 알지 못할 테지. 증오스러워, 혐오스러워, 저 죄인만 없었더라도 내가 이렇게 힘든 일은 없었을 텐데. 없애버리고 싶어, 죽여버리고 싶어, 저 시끄러운 입을 두 번 다시 열지 못하도록 난도질해버리고 싶어!"
"......"
"그렇지 않다면 칼을 들려 한 이유가 뭐가 있지? 결국 너도 선을 핑계삼아 욕망을 채우려는 족속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웃음기 섞인 여성의 목소리가 멈추는가 싶더니, 곧이어 자기 동료는 재미 좀 보려던 차에 온다고 연락이 온다며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소년의 어깨를 누르듯이 밀어내며 여성의 구둣발은 원래 있던 난간자리를 향한다.
소년은 움직일 생각 없이 가만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움직여도 좋다."
고민에 고민을 더하던 소년은 아직까지 쥐고 있던 칼자루에서 손을 떼어낸다. 실상 그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진이 다 빠져버려, 힘없는 목소리로 소년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내는 니같은 놈은 되지 않을겨."
악의밖에 담기지 않았던 노란 눈동자에 의문이 더해진다.
"내 말을 안 듣고 있었던 모양이군."
"상황이 지랄맞고 속내에 시커먼기 들이앉아도 인간에겐 착한 부분이 분명히 있으야. 고거를 선택할 가능성이 쪼꼼이라도 있으면은 내는 그걸 고를겨. 암것도 안 하고 주변 탓만 하고 있을까보냐."
그건 자기정당화일 뿐이라고 쏘아붙이는 말을 가만히 듣고있던 여성은, 자신의 가면 밑부분을 한손으로 쓰다듬듯 만지며, 쇠를 긁는 듯한 낮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가면에 막혀 보이지 않는 얼굴은 분명 우습다는 듯 비웃고 있을 터였다.
"확신하건대, 계기만 주어지면 너는 욕망을 선택할 거다."
7.2. 중반부 ¶
누구도 반박 못 할 이유를 얻고 싶었다. 저들이 누구나 인정할 사악한 자들이라는 확신을 원했다.
- 살인의 이유
- situplay>1594652743>89-90
1995년 8월 2일 오후 5시 경, 본부.
복도같이 널찍한 마루에서 타카요와 쿄가 마주쳤다. 상사의 방 앞에서 각 잡힌 자세로 보초를 서던 타카요가 기세를 약간 누그러뜨리고 쿄에게 손인사를 해준다. 거기까지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겠지만, 타카요가 소스라치게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평소대로면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지나갈 텐데 오늘은 고개까지 끄덕여주며 타카요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누가 봐도 자신 아니면 방주인에게 볼일이 있는 게 틀림 없겠지. 방주인이 방 안에 없는 걸 들키면 안 되는데. 타카요는 본부 사람들 다 듣도록 혀를 차고싶은 걸 꾹 눌러 참는다.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아~ 망했어요~ 라는 해설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그나마 쿄가 사투리 섞인 어투로 말했다면 어물쩡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저렇게 딱딱하게 흔들림 없는 말투로 말해왔으니 타카요도 어쩔 수 없이 공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상사한테 해이하게 손만 흔들어 인사하는 게 무슨 버릇이냐며 혼나지 않은 게 다행이지.
"쿄님을 포함한 대원들을 안으로 들이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만날 수 있겠냐 물어보도록."
"곤란합니다. 쿄님의 명령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라는 명령입니다."
"형으로서 아우에게 조언을 주고자 찾아와서 부탁하는 것임에도?"
"쿄님께서 부탁을 하시면 이렇게 말하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염탐은 쪼까 거시기허지 않나 싶어유 행님아.'"
안경 너머의 눈을 가늘게 뜨며 쿄의 다음 행동을 경계한다. 만약 그가 억지로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면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 한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타카요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미인계까지 쓸 생각을 할 정도였다. 십몇 년을 같은 지붕 아래서 자랐으니 먹힐 가능성은 전무했지만, 아무리 쿄라도 어이없어서라도 잠시라도 멈춰서지 않을까. 다행히도 쿄는 타카요의 행동이 미심쩍은 듯 의심을 거두지는 않았지만 일단 방으로 들어가려는 건 멈춘 기색이었다.
"염탐이라니, 내 동생은 나에게 상처주는 걸 즐기는군. 부대 지휘는 처음일 테니 진심으로 도움을 주려 했을 뿐인데."
"저희측도 뛰어난 대원들만 모였습니다."
쿄는 아마 모를 테지만, 지금 방 안에 없는 방주인은 이번 임무에 나갈 인원을 자신과 타카요 둘만으로 구성했다. 다시 말해서 그녀가 말한 뛰어난 대원은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며, '내가 지금 능력이 부족하다는 거냐? 너 먼지나게 쳐맞아서 내일 임무 못 나가볼래?'를 상황과 장소에 맞춰 정중히 돌려 말한 것이다. 대화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렸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쿄는 형식적으로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얼버무릴 뿐이었다.
"전할 말씀이 있으시면 나중에 전하겠습니다."
"축객령인가. 그래... 저녁까지 나랑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바쁘던가?"
"모르겠습니다."
"못 만날 가능성이 더 클 것 같군. 그렇다면 내가 전할 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온정에 일을 그르치지 말 것. 내가 아는 너희의 인원이 이타미가와, 평소에도 잡념이 많은 너 한 명 뿐이라 돌이킬 수 없을 실수를 저지를까 걱정이 된다고 전해주게."
'이열, 한번에 둘 다 싸잡아 낮잡아보는 거 좀 보소~' 속으로 빈정거리면서 입으로는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어차피 뒤이을 말도 잔소리겠지.
"나머지 하나는, 아침에 가져간 그 소설책은 내 책이었다는 것이다."
"... 엥?"
"한창 재밌을 부분에서 덮어둔 책이 없어졌더군. 최대한 빨리 돌려달라고 전해줬으면 한다."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며 다시 제 갈길을 가는 등을 보며 타카요는 멍하니 생각했다. 이 형제도 평범한 형제같은 대화를 할 때가 있구나, 하고.
그러나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이 알 수 없는 위화감의 정체가 무엇일까. 방에 들어오려 한 것 치고는 지나치도록 시원하게 돌아간 것 같다는 찝찝함과 더불어 이유 모를 불안감까지 발뒷꿈치를 스멀스멀 오르기 시작해, 타카요는 쿄가 사라진 정문 쪽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지금 시간이 점심도 한참 지나 땅거미를 기다릴 시간임을 떠올렸다. 이상하다. 분명 걔는 아침에 본부를 나갔을 텐데, 어떻게 아침에 책을 가져갔다고 말할 수 있었지?
자신의 추측이 그저 기우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리고 방주인이 칠칠맞게 무전기를 흘리고 다니지 않기를 바라며, 타카요는 무전기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 * *
1995년 8월 2일 오후 5시 30분 경, 놀이터.
이 소설 너무 재미없다. 책 하나를 세 번 읽는 걸 각오하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겨우 반을 읽었다. 사찰을 숨긴다는 목적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때려쳤을 정도로, 정말로, 지나치게, 소년의 취향과 맞지 않는다. 책장에 있는 걸 아무거나 집어왔더니 형이 읽는 책을 잘못 집어온 모양이다. 대체 형은 어떻게 이런 고리타분한 걸 술술 읽을 수 있는 거야? 차라리 게임보이를 가져오는 게 나았다고 소년은 한숨을 아주 길게 내쉬었다.
나무 그늘이 적당히 가려주는 벤치에 누운 교복소년 말고도 놀이터엔 소년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대부분은 두 손으로 나이를 다 셀 수 있을 어린이었다. 웃고 떠들고 울고 가끔은 화를 내는 소리들이 시끄럽다고 느껴질 법도 했지만 소년은 지금 분위기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평화롭고, 아무 불안도 없고, 부모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에게 인사할 때 느껴지는 쓸쓸함이 유일한 걱정거리일 시절의 틈바구니에 비집고 들어간 느낌이었다. 그러는 소년의 걱정거리는 무엇이었냐 하면, 이 놀이터에 노을이 찾아오는 것이었다. 유일하게 아침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는 저 남자아이의 운명을 결정지을 시간이 이 곳을 비껴나가길 원했다. 왜냐하면 저 아이를 반드시 죽여야 할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으니까.
살인의 이유를 찾기 위해 보낸 하루가 보람찼냐고 물으면 절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어제 소년이 할머니에게 받은 서류에 의하면 저 아이는 틀림없는 요괴일 것이고, 자신이 죽여야 할 대상 중 하나였다. 그래, 뭐. 인간과 요괴의 계약은 타카마가하라에 고지가 되어야 하고 규칙을 어기는 건 나쁜 짓이지. 그래도 겨우 그것 때문에 목숨이 오가는 건 지나친 처사가 아닐까? 게다가 계약을 한 인간 쪽은 이번 사태 이전엔 평범한 일반인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자신이, 우리가, 저들을 죽여야 한다는 걸 납득하지 못했다. 그래서 소년은 누구도 반박 못 할 이유를 얻고 싶었다. 저들이 누구나 인정할 사악한 자들이라는 확신을 원했다. 그렇지만 소년의 노력은 오늘 하루동안 아무 결실을 얻지 못했다. 기껏해봐야 저 아이가 미끄럼틀을 거꾸로 오르다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친구랑 같이 떨어졌다는 둥 아무 쓸모 없는 잡지식을 얻은 정도.
아, 진짜 하기 싫어. 차기 청록의 왕을 정한다는 아아주 대애단한 명분만 없었어도 진작에 때려치고 놀러나갔을 텐데. 애초에 그런 데 관심도 없는데...
"히로시, 돌아가자."
놀이터 입구를 돌아본 소년의 눈이 더 크게 뜨인다. 서류에서 본 얼굴이 아들을 부르고 있었다. 저 아이, 이름이 히로시였구나. 그네를 타던 아이가 작은 발로 힘껏 뛰어가는 것과 동시에 소년이 벤치에서 일어난다. 오늘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말해주는 아이와 눈을 맞춰 웃음지으며 손을 잡아주는 아버지. 소년에게로 점점 다가오는 두 사람은 누가 봐도 돈독한 부자 관계라고 평가할테지. 아니... 실제로도 두 사람의 관계는 그저 그것 뿐일 터. 적어도 소년은 도구로서 다룰 요괴 사역마에게 친자식처럼 이름을 붙여주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와타나베씨 되셔유?"
저 두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고 결심을 굳혔다. 이건 분명히 정의가 될 수 없었다.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걸어오는 인상이 불량한 학생을 보고, 낯가림과 약한 경계를 품은 회사원이 아이를 쓰다듬느라 굽혔던 무릎을 폈다.
"네, 네. 무슨 일이신지..."
"중히 할 얘기가 있어유. 여서는 쫌 글코 사람 없는 곳으로 가갖꼬 시간 좀 내줬으면 허는디유."
"... 죄송하지만 저희는 이제 가봐야 해서요. 시간 없어요."
"아드님, 요괴지유?"
아버지의 다리 뒤에 숨어 소년을 보던 아이가 흠칫 몸을 떤다. 소년의 입에서 나온 '요괴' 두 단어에 놀라 말다운 말을 하지 못함에도 무의식적으로 바짓단을 잡은 아들을 한손으로 뒤로 물린다.
"어떻게 그걸..."
"... 제 소속을 밝혀드려도 아실란진 몰겄지만, 내는 시안파서 아마노코이누가미님의 비호 아래 개의 정의를 실천하는 몸이어유. 아드님과 당신 목숨이 걸린 문제 땜시 전해드려야 할 게 있슈."
"이 형아, 오늘 아침부터 계속 놀이터에 있었어."
소년이 소속을 밝힐 즈음부터 아이의 감정은 경계에서 공포로 급격하게 바뀌었다. 아이의 공포는 아버지에게 전이되어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든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하늘색 개야. 아빠, 도망쳐야 해. 우리를 다 죽일 거야. 사냥견이야. 무서워. 죽기 싫어."
저 시선은 필시 시안이라는 이름이 져야만 할 업보일 터. 우리가 가는 길이 정말로 옳은 길이라면 두려움이 자라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태생적 우울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걸 무시하며, 소년은 자신의 오른팔을 옆으로 살짝 들었다. 소매에 숨겨두었던 나이프가 손아귀로 들어왔다 싶으면, 떨그렁, 하고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예비로 가져왔던 나머지 한 자루도 왼손에서 떨어뜨리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은 양손을 활짝 펴서 보여준다.
"내 무기 더 없슈."
"......"
"의심 가면은 몸수색 해봐도 되어유. 진짜로다가, 내는 절대로 여러분을 해치지 않을 거여유. 긍께 내 말을 제발 들어주셔유. 이렇게... 부탁할 텨잉께."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한 미소에 섞여든 절박함이 전해진 걸까. 길지 않은 고민을 마친 남성은 멀리 가지는 말자며 앞장서서 소년을 데려간다. 괜찮아, 저 분을 한번 믿어보자. 여전히 무섭다며 눈물을 고이는 아들을 아버지가 도닥여 달래준다. 어쩌다가 자신이 납치를 하는 듯한 입장이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소년은 미소 아래로 한숨을 쉰다.
사람이 오고가지 않는 골목길은 가로등 전구마저 나가 색이 흐려질 정도로 어두웠다. 하늘은 소나기라도 내릴 듯 흐리기까지 해서 그들을 쉽게 찾아낼 이는 없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소년을 돌아보는 중년 남성의 모습은 이런 어둠에는 영 스며들지 못한다.
"그래서, 할 이야기란 건...?"
"큰소리 내지 말고 조용히 들어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르면 오늘 저녁에 댁들을 죽일 사람들이 찾아올겨유. 당..."
"왜요?!"
"소리 질르지 말랑께도! ... 하여튼. 당신이 아드님과 맺은 계약이 문제가 되어가꼬 하늘에서 우리를 움직였슈. 아마 만나면은 아드님 정도 되는 힘만으론 살아남을 수 없을 거유."
"그럴수가..."
아들을 감싸안는 중년에게서 낙담과 절망이 섞인 비탄이 절로 나온다. 어쩔 수 없다, 저 남자 입장에선 하루아침에 사형 선고가 내려진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적어도 목 뒤까지 다가온 죽음을 알리는 소년은 흔들려서는 안 되었다.
"... 그려도 아직은 시간이 남았슈. 우리네 기동력에도 한계는 있응께 지금이라도 도쿄도 밖으로 멀리 도망가면 오늘 안에 찾진 못할 거유. 당장 쓸 돈은 있슈?"
"세상에. 네. 네. 있어요."
"천만다행이구만유. 걸로다가 지금 당장 급행 타갖고 나가셔유. 그 뒤에... 어디 보자, 오늘이 수요일잉께 앞으로 내는 매주 수요일 여섯 시마다 여 놀이터에 올거유. 안전해졌다 싶으면은 찾아오셔유, 오셔가꼬 어케 해야 아드님과 오손도손 살지 알려줄 텨잉께."
"잠깐, 미안해요, 너무 빨라요. 따라가기 힘들어요. 잠깐만요."
갑자기 쏟아지는 말에 정신을 못 차리고 손을 흔들어 제지한다. 그 전에, 라며 조심스럽게 운을 떼고는 지금껏 궁금했던 걸 조심스럽게 입에 담아본다.
"당신은 왜 저희를 살리려는 거죠?"
왜? 사람을 살리는 데 이유가 필요하다는 걸까. 소년은 눈을 깜박였다.
물론 이 행동으로 소년이 져야 할 부담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수준이었다.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았고, 만약 들키기라도 한다면 가벼운 징계 정도로는 끝나지 않겠지. 그래도──
"이게 맞는 일이잖어유."
소년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 미소는 아이의 비명으로 인해 산산히 부서졌다.
아들이 밀치는 힘에 다리가 꼬인 아버지가 넘어지고, 작고 하얬던 몸은 검은 피에 덮힌다. 아버지 뒤에 숨어 상황을 보기만 하던 아들의 돌발 행동에 놀란 두 사람이 아들 쪽을 돌아보자, 푸른 제복을 입은 사람이, 소년의 형이 일본도로 확인사살을 하는 광경만이 세상에 가득 들어찼다. 얼이 빠진 남성과는 달리 상황파악을 빨리 끝마친 소년은 미끄럼틀에서 넘어졌던 아이를 애도하기도 전에 형을 향해 맨주먹을 날렸다. 격노가 뇌를 지배한 탓에 소년의 자세는 많이 흐트러져 있었고, 흐트러진 공격을 막아내지 못할 형이 아니었다. 그래도 괜찮다, 유효타를 먹이지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한 사람이라도 도망칠 수 있을 시간을 버는 게 먼저였다. 무기가 없는 소년이 오래 버틸 수는 없으니 그야말로 목숨을 내던지는 각오를 한 셈이었다.
그러나 소년의 기대와는 달리 형은 동생을 상대하지 않았다. 빈틈 많은 공격을 옆으로 흘려 피하곤 땅을 기어 도망가던 남자를 향해 칼을 던졌다. 남자는 한순간에 즉사하여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비명소리부터 침묵까지, 이 모든 것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였다.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온 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에 넋이 나가있던 소년에게 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땅에 박혔던 칼을 빼내어 날에 묻은 피를 털어낼 뿐이었다.
"...... 어째서."
검은 피웅덩이 위에 무릎을 꿇고, 물방울 되어 서로 뒤엉킨 감정들을 참지 못하고 흘려보낸다. 소년을 좀먹어가는 감정들이 너무 많아서 되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 같다.
"왜, 왜 죽인겨. 이 사람들이, 죽어야 할 이유는... 아무 잘못도......"
"타카마가하라가 다스리는 하늘 아래 그 분들의 뜻을 거스르고, 도망치려 했다. 네가 했던 말을 빌리자면, 죽이는 것이 맞는 일이니까 죽였을 뿐."
검집에 칼을 넣고 쿄는 서슬 퍼런 눈으로 소년을 내려다본다. 드물게도 화를 내고 있는 상황임에도 표정은 오히려 평온한 것이 기이했다.
"너에겐 실망했다. 지휘 경험은 처음이니 지휘관이 직접 정찰을 나선다든가, 자만에 빠져 부대원을 제대로 편성하지 않은 것 정도는 백 보 양보하여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정도를 지나쳤다 생각하지 않는가. 죽여야 할 대상과 교섭을 하는 것도 모자라 직접 도망치도록 도와주다니, 네가 그러고도 츠누가의 이름을 업은 자인가."
"잘못을 하덜 안 한 사람을 닥치는 대로 죽이는기 진심으로 옳다 생각혀? 정말로? 히로시는 기양 짝은 애기나 마찬가지였고, 와타나베씨는 증말로 일반인이었는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을...! 일말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죽여버리는기! 지 좋아서 사람 죽이는 살인마랑 뭐가 다르냐고!"
씹어뱉듯 한 자씩 또박또박 말하는 형과 악에 받쳐 비명을 지르듯 외치는 소년. 태어나서 처음 보는 시체가 자신이 살리려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심지어 그들을 죽인 게 자신의 형이라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소년의 눈에는 형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선악을 모르는 요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무언가 잘못 알고 있는 듯하군. 잘 들어라, 우리는 죽일 이유가 있어 죽이는 게 아니다. 그저 죽여야 하기 때문에 죽일 뿐."
거기에 선악 따위 들어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 주인의 검이자 도구다. 판단은 우리의 주인, 더 나아가 하늘이 하는 것. 우리는 재판관이 아닌 집행관이다. 우리는 사냥꾼이 아닌 사냥견이다. 그걸 헷갈려하니 신입조차 하지 않을 이런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실망과 짜증이 여실히 느껴지는,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타이르는 듯한 어조로 말하던 그는 나이프 두 개를 꺼내 소년의 앞으로 던져준다. 놀이터 입구에서 소년이 버렸던 그 나이프였다. 칼자루에 새겨진 눈을 가린 개의 문양이 보기에 유독 아프다.
"버리고 갔더군. 주워서 본부로 귀환해라. 이번 일은 첫 실수니 공식으로 보고하진 않겠지만 어르신들껜 알릴 예정이니 징계를 각오하도록."
"... 같잖은 배려는 관둬유. 보고 하시든가유."
줄 끊긴 인형처럼 비틀거리며 일어난 소년은 자신의 앞에 있던 나이프를 형 앞으로 차서 밀었다. 형이 눈살을 찌푸리는 걸 고개를 숙이고 있던 소년은 보지 못했다.
"애초부터 각오하고 있었슈. 그 잘난 규칙대로 함 다스려 보셔유, 쿄씨."
왕이 된 걸 축하한다는 말을 남기고 소년은 골목길을 떠났다. 구역질이 나서 더 이상은 그 공간에 있을 수가 없었다.
───── 어긋난 톱니바퀴는 어긋난 나사 위에서 계속 돌아가서는,
- 길고양이 관찰기
- situplay>1594652743>767
응? 지금 벽돌담에서 식빵을 굽고 있는 이 깜찍하고 귀여운 고양이가 누구네 집 고양이냐고? 후후, 내가 누구인지 물어보신다면... 대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
카부키쵸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사랑과 진실, 희망을 뿌리고 다니는 정의의 자경단원! 어린아이도 들으면 눈물을 뚝 그치는 비밀조직의 행동 대장! 비밀조직인데 어떻게 어린아이가 알고 있냐고 묻지는 말고. 매일매일 이 거리를 수호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자랑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아아주 나아쁜 전대 자홍의 왕이 남긴 실험 기록을 도둑맞았다는 걸 알아차렸지 뭐야! 그걸 안 우리의 대빵 쪼꼬미 왕누님이 극대노를 하셔서 "고양이 손을 빌려서라도 당장 도둑 잡아와!!!!!!"라고 날 밖으로 내쫓았지! 그래서 내가 귀엽고 깜찍한 부농부농 꼬냥이가 되어서 여기서 이렇게 도둑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는 말씀!
... 거기까지 물어본 적 없다고? 뭔데 이렇게 오바 떠는 거냐고? 좀 봐주라. 고양이인 척하는 것도 엄청 피곤하단 말야.
이런 이유로 내가 유력 용의자 중 한 명을 미행하고 있는 거야. 워낙에 신출귀몰해서 꼬리를 잡기가 힘들었지만 그나마 셋 중에 머리가 노란 놈은 빈틈이 많아보이더라고? 예상보다 시간은 더 걸렸어도 어떻게든 뒤를 밟는 데에 성공했어. 잘 하면 녀석들의 본거지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지금 내가 있는 주택가에 아지트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긴 하지만... 아. 미행 상대는 시내에서 한 어플 이용자에게 벌칙을 준 이후로는 계속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주택가 쪽으로 이동만 하고 있어. 처음에는 자택에 있을 이용자에게 가는 건가 싶었는데 내 감이 그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고... 일을 다 끝낸 거려나? 할 일만 끝내고 퇴근하다니 무슨 회사원같잖아. 나쁜 악당이면 좀 더 하루종일 사람만 괴롭히고 다닐 것 같은 인상이 있는데. 뭐, 내가 할 말은 아니겠지만.
쟤가 피곤에 찌든 사회인처럼 흐느적거리며 걸으니까 나까지 피곤하고 졸려지잖아. 몸을 한번 부르르 털어 잠기운과 피로와 날벌레를 털어낸 다음에 다시 집중하자, 집중. 별일 없이 계속 걷기만 해서 긴장이 하나도 안 되잖아.
"......"
아니아니아니, 잠깐만 방금 말 취소. 쟤 나 본다.
뭐야, 내가 아무리 예쁘게 생긴 고양이어도 그렇지(자뻑인 거 인지하고 있으니까 그냥 넘어가자) 갑자기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건데? 설마 들켰을 리는 없을 테고. 내가 지금 너 경계하고 있는 건 내가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원래 길고양이는 모르는 사람 다 경계하고 그런다?
"... 허어."
한숨인지 감탄산지 모를 걸 내뱉고서는 오던 길을 되돌아간다. 뭐야, 진짜 들킨 거야? 쟤 지금 도망가? 깜짝 놀란 나는 헐레벌떡 천천히 일어나 마음이 급해서 조심스럽게 벽돌담 위를 걷는다. 어딜 가 이 자식아, 내가 순순히 보내줄 줄 알아?
이상 행동을 보인 그 남자가 도착한 곳은... 편의점이었다. 저기 안에 비밀 통로라도 있나 싶어서 나도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자동문 센서는 고양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이 나쁜 종족차별주의자야, 나도 인간이라고! 문 열어! 유리문을 벅벅 긁으며 야옹대고 있으려니 하늘이 도왔는지 문이 옆으로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미행 대상이 등장했다. ... ... 이럴거면... 왜 들어갔다 나온 거야? 설마...
"뭐여, 따라와준겨? 내 으데 안 가니께 기당기고 있어도 되는디."
웃으면서 말한 그 남자가 손에 쥔 건... 참치캔이었다.
내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정체를 들켜선 안 된다는 사명감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내 줄 게 이것밖에 없다야. 별 좋은 건 아이지만서도..."
편의점 옆 구석진 골목으로 들어가 쭈그려 앉아서는 뒤따라간 내 앞에 참치를 놓아준다. 거 참 눈물나게 고맙네요 인간님. 아마 내가 여기까지 따라온 이유를 배가 고파서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고, 여기서 안 먹으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나는 눈물을 머금고 캔에 입을 박았다. 그냥 밥에 참치 통조림 올려 먹는 거라고 생각하자. 그래. 이건 엄청 맛있는 참치회다...... 참치뱃살 정말 맛있다......
"글케 배고팠단겨?"
배는 고팠지만 이런 걸 먹고싶진 않았어.
"내 만날 여 앞 지나가니까는 서두르지 않아도 디야. 원하면은 매일 챙겨줄 텨잉께."
나도 모르게 꼬리가 삐쭉 섰다! 자존감을 포기하고 좋은 정보 하나를 얻었다. 물론 매일 참치캔 챙겨준단 거 말고 그 앞에 거. 매일 지나가는 길이라는 소리는 본거지가 이 근처에 있을 확률이 높아진단 소리겠지. 평범한 주택들 사이에 만들어놨나? 어쩌면 다음에도 다시 만나서 미행을 계속 이어갈 수도 있을 거야. 오늘은 허탕 안 쳤다고 누님하고 아줌마에게 자랑할 수 있겠네!
"아, 글고... 내 실은 고양이보단 개를 더 좋아하거든."
와... 되게 쓸데없는 tmi다. 네가 굳이굳이 평소에 개가면을 쓰고 다니는 이유를 알고 싶지는 않았어.
"담부터는 고양이 말고 멍무이가 와줬음 좋겄는디."
등털이 삐쭉 서는 느낌이 들어 곧바로 두어 걸음 물러선다. 턱을 괸 채 날 내려다보던 저 남자는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쾌감을 끊임없이 갈구하며 그 과정에서 끝없이 타인을 상처입힌다.
- 원초아
- situplay>1595321516>680
가로등이 하나둘 할일을 시작하는 시간, 가면을 쓴 여성은 주택가의 벽돌담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간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별 생각 없었다. 그녀는 본능에만 충실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흥미가 돋는 사건이 없는 이상 주위 환경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곤 했으니. 그나마 의미 있었던 사건은 여성의 부하─강아지 가면을 쓴 소년이 맨션 복도에서 난간에 기대있던 걸 발견한 정도일까. 소년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자신 쪽으로 손을 흔든다.
"왜 나와있는 거지?"
"안에 쫌섀이 그 섀끼 있는디 가만 있을 수가 있어야제. 이 정도 좌표 이탈도 못 봐주나? 글케 속좁나?"
소년이 자신과 방 안에 있을 동업자를 얼마나 싫어하는지는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 반항에 눈살을 살짝 찌푸리긴 했지만 그 행동을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도망치지만 않으면 됐지 뭘. 도망쳐봤자 어디로 갔는지는 바로 알 수 있으니 도망치면 죽이면 될 뿐. 심기를 건드리는 행동을 지적하지 않은 채 여성은 철계단을 한 단씩 오른다. 여자가 복도를 지나고 문고리에 손을 올릴 때까지도 소년은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 이만 들어가지."
"들가시든가유. 내는 쫌 더 있다 갈랑께."
자기 처지를 걱정하는 저 겁쟁이가 요즘 들어 여자의 말을 저만큼 거절하는 적은 매우 드물었는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대로 등을 돌려 무시하면 목에 칼이 들어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들어, 그녀는 문을 열려던 걸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둘 말고는 아무도 없었던 그 복도 난간에 자홍색 청년이 나타났다. 아무 저항도 하지 않는 소년을 향해 쇠파이프를 내리치는 광경을 목도한다. 세상이 너무도 느렸던 탓에 여성의 뇌 활동은 그 반동으로 훨씬 더 빨라졌다.
"막아라!"
소년이 칼을 검집째로 빼들었다. 검집과 쇠파이프가 맞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크게 퍼지고, 급하게 막느라 저릿한 팔근육에 전해지는 충격이 머리로 온전히 향했으면 좋았을 거라며 마음 속으로 혀를 찼다. 천만다행으로 소년에게 내려진 명령은 막으라는 것 하나 뿐이어서 난간 아래로 사라지는 청년을 그냥 보낼 수가 있었다. 그런 소년이 답답했던 여성은 낮고 위협적으로 읊조린다.
"죽이고 와라. 전부 다."
소년에게 있어 의식이 멀어진다는 것은 이젠 너무도 익숙한 감각이었다. 끝없이 불쾌하고, 더없이 괴로웠으며, 약간은 편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정신을 잃은 소년의 몸뚱아리가 칼을 빼들고 밑으로 뛰어내리는 걸 확인한 뒤 여성은 급하게 문손잡이를 잡아당긴다. 안에는 분명 동업자가 있다고 했다, 지금은 여기서 도망쳐야 할 때다.
갑자기 문을 열려던 손을 멈추고 자기 목을 손바닥으로 때린다. 목에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는 게 이유였다. 손을 떼어내자 나무가시같은 작은 칼이 깊게 박힌 목덜미에서 피가 한 줄기 흐른다. 다쳤다. 내가? 이 내가, 다른 것들에 의해 몸에 상처를 입었다고? 이 █ █ █ █가? 분노와 짜증, 불쾌감을 드러내며 범인을 향해 몸을 돌린다.
검은 밤하늘을 닮은── 선명한 정오의 하늘의 색을 담도록 변해가는 머리카락이 바람을 따라 휘날렸다. 청록의 왕이 황의 왕의 단죄를 위하여 두 번째 검을 빼든다.
* * *
"야, 안 다쳤나?"
"막았어."
"막았단 거 치고는 상태가 개판인데."
"방어했단 게 아니라 피 안 나게 막아놨다고."
"미치겠네."
소년의 무의식은 판단했다── 중학생 즈음의 여자 목소리와 스무 살 정도 되는 남자 목소리. 자기들 딴에는 조용히 말하겠다고 하는 걸테지만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공원에선 어떤 기척이든 평소보다 곱절은 더 크게 느껴진다. 나무신 특유의 가벼운 소리가 공원 벽돌바닥에 닿고, 나무소리가 닿았던 흔적은 공원 내 풀숲으로 가까워진다. 의욕이 담기지 않은 걸음걸이는 산책 나온 사람처럼 느릿하고 평화롭다. 그러나, 오른손에 들린 피묻은 장검이 소년의 위험성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핏자국이, 핏방울이, 소년이 비정상이라는 증거가 구부러진 직선을 그린다.
정작 당사자는 그것이 비정상인지도 느끼지 못하고 있을 테지만. 소년의 인지에 들어온 존재들을 죽여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고, 반드시 지켜져야 할 세상의 진리였으니. 의심조차 품지 않는다.
갑작스런 바람 소리. 그리고 휘청거리며 물러날 정도로 강한 충격. 깨진 가면조각이 벽돌바닥에 후두둑 떨어지고, 목에는 불길할 정도로 시원한 새로운 감촉이 더해진다.
"그렇다고 진짜 짱돌을 던져?"
"뭐임마. 니가 접근전은 하지 말라며."
소년의 의식은 생각했다─ 그래, 소년은 머리에서 피를 흘린 덕분에 의식을 약간이나마 되찾을 수 있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바닥에 점점 늘어나는 핏자국을 멍하니 바라보며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왜 나는 다쳐있고, 이렇게 아프고, 이렇게 괴로운 거지? 심장을 잡아찢는 아픔이 양심에 의한 당연한 고통임은 꿈에도 모른 채 괴롭다는 결과만을 느낀다.
이상한 건 하나 더 있었다. 방금 전부터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저들을 죽이라고 자신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 목소리에 대해 소년은 너무나도 당연한 의문을 던진다. 왜? 나는 저 자들을 왜 죽여야 하는 거지? 욕망과 이상의 불합치를 경험하며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하는 불안을 느낀다. 불안보다는 블쾌감에 더 가까울 이상사태를 없애기 위해서, 움직이지 않는 자신을 두고 위치를 옮긴 두 사람이 다음 공격을 준비할 때쯤, 소년은 충동에 이유를 붙이기로 결정했다.
"왜... 낼 공격한겨?"
숙였던 고개를 들고 정면보다 조금 위의 나뭇가지들을 보며 말했다. 자신의 말을 듣고 있을 상대들이 숨은 곳을 보며 말하자, 조준을 정비하느라 생기는 섬유 소리가 새로 생겨난다. 그것마저도 소년에겐 더없이 불쾌했다.
"낸 암것도 안 혔는디." (노란 머리카락의 소녀는 지랄을 떤다며 작게 중얼거렸다.) "암것도 안 허고, 피해도 안 끼치고. 나름... 착허게 살라꼬 노력도 혔는디. 내는 기양 이 자리에 존재했을 뿐인디. 와 내는 일케 아프고, 괴로워 하고, 슬퍼해야만 하는겨. 대체 왜? 왜 내만? 대답 좀 해봐라, 착하게 살면은 행복해질 수 있담서! 내만 힘글어야 할 이유가 으뎄단겨!"
깨지고 금이 간 가면 아래로 드러난 맨얼굴이 일그러진다. 눈가를 가로지르는 화상 흉터나 이마에서 흐르는 피얼룩 때문이 아니라 부조리를 토로하는 억울함이 만들어낸 균열이었다. 격양된 채 씨근덕거리던 숨소리에는 점차 희열이 섞여든다. 사람은 오랫동안 고민하던 문제의 해답을 찾아내면 으레 기쁨을 느끼는 법 아니겠는가.
"... 전부 니들이 나쁜 탓이잖여?"
편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그럴듯한 해답을 내놓았다.
"남한테 상처 주는 느그들이 나쁜겨. 악인과 죄인의 잘못에 내가 고통받을 이유가 뭐가 있는디. 애초에 처음부터 너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세상 사람들이 전부 다 착했다면, 아무도 슬프지 않았을 거여. ... 하하, 뭐야. 다 너네가 잘못했네. 악인은 느네였잖여."
전부 다 죽여버리자는 충동이 악은 나쁘다고 외치는 이상에게 그럴듯한 해답을 내놓았다.
"뒈져버려, 죄인 놈들."
아, 드디어, 편해질 수 있어. 행복에 겨운 미소가 어그러진다.
소년이 칼자루를 고쳐잡는 걸 본 청년이 두 번째 마취탄을 발사한다. 그것이 소년의 '해답'을 공고히 다지는 시작점이 되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목적이 생긴 소년의 움직임은 쫓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똑바로 곧장 달려드는 소년의 첫 목표는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떨어지는 소녀 쪽이었고, 그녀가 던져 맞춘 돌은 소년을 옆으로 한 발자국 길을 새게 하기만 했을 뿐 완전히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역시 일반인은 움직임이 커서 읽기 쉽다. 잠깐, 일반인이면 왜 죽여야 하지? 그걸 왜 물어, 없애야 할 악이니까 죽여야 하지! 아귀가 맞지 않는 논리를 들고서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자지러지게 웃고 있었다.
"죽어, 죽어! 죽어버려!"
"이 씨...!"
순식간에 코 앞까지 다가온 칼날을 피하기 위해 상체를 뒤로 젖혀 앉다시피하며 피한다. 하늘을 향한 시야에는 방금 전까지 소녀가 등을 기대고 있던 나무 줄기가 횡으로 베어 넘어가는 게 담긴다. '미친 거 아냐?!' 욕설을 뱉을 시간도 없어 옆으로 굴러 나무 밑으로 일부러 떨어진다. 내려간 소녀를 뒤쫓느라 생긴 빈틈을 놓치지 않고 세 번째 마취탄이 팔뚝에 꽂힌다. 전투에 의한 흥분 탓에 빨라진 혈류로 퍼지는 마취약이 슬슬 사지를 둔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못마땅해 이가 갈리면서도, 스스로 죄를 더하는 모습이 우스워 웃음을 멈출 수 없다..
"참회하지는 못할 망정."
"그걸 니가 말하냐?!"
거추장스러운 마취탄을 빼내 던져버린 뒤, 중력가속도의 도움을 받아 말대꾸를 하는 소녀를 목표로 하단으로 길게 내려벤다. 가까이서 공격하면 질 거라는 처음 판단대로 마취탄만 쏘던 청년이 달려와 막아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소녀의 상반신엔 크게 상처가 나있었겠지. 찌그러지다 못해 잘리기 직전인 쇠파이프를 양손으로 잡고 버티는 청년의 뒤로 소녀가 왼손손을 크게 휘둘러 소년을 노린다. 공격 궤도가 눈에 보임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행동을 취할 수 없다는 건 미쳐버릴 정도로 답답한 일이었다. 주먹을 피하는 대신 덜 아픈 부위로 받아내고 청년을 발로 차고 소녀의 빈틈에 칼을 찔러넣고. 뇌의 처리 속도에 몸이 따라오지 못하는 게 불만스럽다. 일시적인 욕구불만에 그간 참아왔던 (현재로선) 이유 모를 울분이 더해져 소년의 공격이 거칠어진다. 손속이 없어지고 급소를 노리는 걸 망설이지 않는다, 만약 소녀와 청년의 합이 조금이라도 안 좋았다면 지금쯤 한 명은 치명상을 입었을 정도로.
참지 못한 비명소리와 참을 생각 없는 웃음소리가 어지러이 공돈다. 아무 생각 없이 칼을 휘두른다는 게 정말, 너무, 미쳐버릴 정도로 기분 좋다. 자신을 괴롭혀왔던 '악'을 자기 손으로 죽인다는 게 이렇게나 행복한 행동이었을 줄이야! 쾌감을 끊임없이 갈구하며 그 과정에서 끝없이 타인을 상처입힌다. 본능을 만족시키는 데에만 전념하는 소년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싹하고 기괴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소년의 주인이 심어놓은 계기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소망대로 그저 인간이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도록 만들었을 뿐.
"씨X."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한 소녀가 비장의 수단을 꺼냈다. 소년과 거리를 두고선 소음기 달린 권총을 꺼내들고는, 즉사할 만한 급소가 없는 심장 아래쪽을 조준한다. 죽이면 안 돼, 죽이면 안 돼, 쟤한테선 정보를 캐내야 해. 부상에서 오는 통증으로 인해 손이 떨려 방아쇠를 쉽게 당기지 못하는 사이에 소녀가 총을 든 걸 소년이 발견한다. 호랑이의 형태로 수화(獸化)한 팔로 찍어눌러지던 걸 엎어쳐버린 다음 곧장 소녀에게 달려든다.
한 발째. 살짝 빗겨나간 총알이 소년의 옆구리에 긴 흔적을 남기고, 아랑곳않고 칼을 내찌른 소년도 자세가 흐트러져 소녀의 어깨 윗부분만 살짝 내찔러졌다. 그래도 괜찮다. 소녀는 총을 손에서 놓쳤고, 칼로 안 됐다면 손으로 발로 머리로 이빨로 싸우면 그만이었으니까.
"인자 못 쏘겄네?"
두 사람의 몸이 거의 껴안다시피 가까워졌다. 소녀는 소년의 얼굴이 동공 풀린 눈을 한 채 뒤틀린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소년은, 분명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었던 총이 소녀의 오른손에 들린 걸 발견했다.
"쏠 건데."
두 번째 총성. 소음기 달린 총소리는 격통 속에서도 듣기에는 턱도 없이 약했다.
그래, 소년을 상대하는데 어찌 마냥 평범한 일반인을 보낼 수 있겠는가. 냉정한 머릿속 한 부분에서 기현상을 납득한 것과는 별개로, 어깨가 터져 팔이 몽땅 잘려져 나가는 듯한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소년의 의식은 다시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뿐이지 않은가.
- 살고 싶으신가요? '어떻게'가 빠졌잖여, 친구야.
- situplay>1595942431>1000
──한심한 패배자가 되어 꼬리 말고 도망칠 셈이냐. 무엇 하나 바꾸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서 그대로 도망쳐 놓고, 나는 어쩔 수 없었다며 한심하게 자기 위로만 반복할 테냐? 도망치지 마라. 선만 보려 하지 말고 악을 똑바로 마주해라. 네 살 배기 어린아이같이 투정만 부리지 말고 불만이 있고 힘이 있다면 그걸 바꿀 노력을 해보란 말이다, 이 한심한 것아."
꿈을 꿨던 것 같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기억.
1995년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소년은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 때에도, 소년이 마음 놓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차라리 죽고싶냐고 묻는 게 고민하는 시간이 더 짧을 정도였다. 물론 죽는 건 싫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허망하게 죽을 바에야 끝까지 이승 바닥에 붙어있고는 싶다. 그렇지만... 이렇게 원하지 않는 피를 손에 묻히고 살아갈 바에야 누군가가 억지로 멈춰주는 게 더 나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소년도 분명히 있었다.
... ...
...
'어라,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현실판단이 불가능한 소년의 자아는 무의식 속 생각의 근원을 파악하지 못했다. 대신 머릿속을 가득 메운 명령은 사람을 죽이라는 본능. 소년의 세상이 고한 당연하고도 절대적인 법칙. 공원에서 미처 해소되지 못하고 억지로 끊겨버린 의식을 본능이 멱살 잡고 움직이고 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왼쪽 팔과 어딘지 멀게 들리는 방 안 소음을 무시하면서 소년은 몸을 일으킨다. 싸구려 간이 침대 위에 놓인 붕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죽여야 한다. 누구를? 명령받은 그 사람들을. 왜? ... 왜? 소년의 자문자답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멈춰서면 안 될 것 같다는 불안이 너무나도 커서 소년은 계속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에 그제서야 소년이 깨어났단 걸 눈치챈 누군가가 다급히 소리를 질렀지만 소년하곤 상관 없는 일이었다. 문이 열리고 복도에서 말다툼을 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기 시작한 것도 소년의 목적과는 하등 상관 없는 일이었다.
"──지금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건 제가 아니라 타카요씨가 아닐지요?"
"어렵게 잡아온 포로를 갑자기 목을 쳐버려야 한다고 날뛰는 게 이성적이라고?"
"제가 틀린 말이라도 했습니까? 어차피 포로로서의 가치도 거의 없는 거, 이 자리에서 죄값을 치르게 하자는 게 그렇게 틀린 말입니까!"
소년에게 중요한 건 눈 앞의 인물들이 죽여야 할 사람인지 아닌지 여부 뿐. 낡은 나무문 소리를 듣고 반응을 보이는 저들이 '전부 죽이고 와라'라는 명령 대상에 포함되는가? 당연히 그렇다. 왕께서는 전부 죽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망설임 없이 허리춤에 손을 가져가고는── 허리띠에 달고 있어야 할 검이 없다는 것에 놀라버린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푸른 눈의 소녀가 소년에게 쏜살같이 달려든다. 목을 조를 기세로 셔츠의 옷깃을 한손으로 움켜잡고는 그대로 벽에 내다꽂아버린다. 아물지 않은 상처들에서 비롯된 통증이 시야를 조금이나마 깨끗하게 해준다. 세상이 한바퀴 돌아가기 전 소년의 눈에 들어온 장면은, 푸른 눈의 소녀가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소년의 뺨에 주먹을 날리는 모습이었다.
"시안, 좀!"
"말리지 마십시오."
두 번째 공격을 위해 소녀가 오른팔을 든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소년의 형과 닮아서, 검은 머리카락도 푸른 눈도 어금니를 깨문 입조차도 겹치지 않는 부분이 없어서. 멱살 쥔 팔을 잡았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빈틈 투성이야, 하체 쪽은 아무 방어도 안 하고 있잖아. 소녀를 제압하고 죽이기 위해 방어가 가장 무너지는 공격 순간을 기다린다. 항상 나를 방해하고 괴롭게만 하는 형에게 복수하는 거야, 나쁜 건 내가 아니야. 멍이 남을 정도로 손에 힘을 준 소년을 향해 주먹이 날아오고─
"멈춰!!"
덜걱, 하고. 실이 끊어진 듯 소년의 몸에서 모든 힘이 빠져나간다. 오히려 실이 다시 연결되었다 표현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안개 낀 듯 희뿌옇고 몽롱했던 머릿속이 깔끔해지며 소년을 좀먹던 욕망이 무의식 아래로 숨어들었으니까. 미처 멈추지 못한 주먹이 다시 한번 얼굴을 치고 지나가고, 대신 멱살이 풀려 의지할 힘이 사라진 등이 벽을 타고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온다.
"그만해! 너 왜 그래, 좀 진정해봐!"
"말리지 마! 왜 날 말려? 왜? 나쁜 건 저 쪽이잖아! 사람 죽이고 다닌 건 저 쪽인데! 죽은 대원들 복수해주겠다는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왜 말리는 거냐고!"
"첫째, 우린 쟤한테서 아무 정보도 못 뽑아냈다. 둘째, 저래봬도 저 새낀 환자라서 네 힘으로 잘못 패면 뒤진다. 셋째, 그런데도 넌 저 새낄 그냥 패죽이려고 하고 있잖아! 갑자기 왜 이래? 쟤를 살려서 데려오는 건 너도 동의한 거 아녔어? 제발 진정 좀 해. 제발."
갈색 눈의 소녀가 광분한 친구를 진정시키는 사이 소년은 혼란스러운 정신을 갈무리한다. 사실, 마음대로 잘 되진 않고 있긴 하다. 일단 지금 상황부터가 말이 안 되는 상황이지 않은가. 소년은 본인이 공원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전부 기억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갈색 눈의 소녀 또한 자신이 죽이려 한 대상인 걸 잘 알고 있다. 지금 정신이 이렇게 말끔한 데다가 저 소녀를 봐도 끔찍한 살인 충동이 일지 않는 걸 보면 황의 왕이 소년에게 걸어두었던 명령은 효력을 잃었다고 보는 게 맞겠지.
그렇다면 어째서?
왜 나는 원래대로 돌아온 거지?
한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 고민을 해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 답이 나오기도 전에 억세고 주름진 손이 소년의 손을 아래로 내려버렸으니. 나이가 꽤 있는 여성이 안경 너머의 자홍색 눈을 똑바로 마주해왔다.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생각이 든 것도 잠시, 여성은 복도 속 혼란이 잠시 사그라든 틈을 타 소년의 정체를 물어본다. 25년 전에 두고 온 이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던 그 이름을 입에 담으면서. 그걸 안다는 소리는 25년 전부터 소년을 알고 있던 사람이란 뜻이었다. 소년은 여성이 누구인지를 바로 눈치챘으며, 그토록 원해온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눈 앞에 있었음에도, 떨리는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끊어질 듯한 숨만 드문드문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서 기댈 곳을 바라기엔 자신은 너무 멀리 돌아오지 않았나. 대답을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와도 죄책감에 짓눌려 입술을 움직이지 못했다.
"... 그래서, 넌 또 왜 기어쳐나오고 앉았냐?"
이제 겨우 진정시킨 걸까. 어느샌가 칼을 빼들고 있던 푸른 눈의 소녀는 색색거리며 들뜬 숨을 가라앉히고 있었고, 노란 머리를 하나로 묶은 소녀는 싸늘하게 가라앉은 시선을 소년 쪽으로 내리꽂는다. 명백히 적대감과 경계가 담긴 눈빛이었음에도 소년은 그걸 불평할 입장이 아니었다. 말을 제대로 하기 위해 폐속 깊이 쌓인 숨을 토해내고, 평소 습관대로 미소를 지으려다가 얼굴 근육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그만두었다.
"기양, 우찌다보이."
"너, ......"
"지금이 어떤 상황인진 아냐? 수상한 행동 조금만 보여도 넌 바로 모가지야, 알아?"
"그러네. 지금 당장 죽여도 할 말 없는 거잖아."
어깨를 잡고 흔들던 여성도 제치고 날 선 눈으로 내려다보던 소녀도 제치고서, 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술을 달싹거리던 소년의 앞을 칼을 든 소녀가 가로막는다. 묻지도 않고 주먹을 날리려던 모습은 사라졌다지만 노기 어린 표정 자체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적개심과, 울화와, 그리고 어딘지 모를 혼란. 바뀌어버린 건 푸른 눈을 올려다보는 소년밖에 없었다. 2020년에 소녀를 보았던 때를 떠올려버린 소년밖에는.
"안 그렇습니까? 변명할 말이 있으면 해보십시오."
"......"
"당장에라도 당신 울대를 뚫어버리고 싶은 걸 하나를 봐서 필사적으로 참고 있는 중이니까 어디 한번 그 잘난 입 놀려보시란 말입니다. 나 만족스럽지 않은 말 꺼내는 순간 바로 죽여버릴 거니까."
턱을 들어올리는 칼날이 그렇게 차가울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분명. 플레이아데스와 처음 만났던 그 겨울날에 소년과 소녀는 처음 만났었다. 제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시야 속에서 소년은 푸른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요괴로 변해가는 걸 목격했고, 소녀는 자신의 부하가 베어넘겨야 할 적이 되는 순간을 어찌할 방도 없이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푸른 제복을 입은 사람들의 피를 손에 묻혀오던 범인 중 하나를 소녀는 드디어 잡은 것이다. 그런가, 저 아이는 내가 만들어낸 피해자였구나. 소년이 오른손을 들어 칼날을 자기 쪽으로 살짝 끌고오자 한 줄기 피가 아래로 흘러내렸다. 소녀가 흠칫거리며 칼을 무르려는 걸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막는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뿐이지 않은가.
"죽여."
"......" 소녀의 눈이 크게 뜨인다.
"그게 니가 내헌티 내리는 벌이라 카믄, 망설이지 말고 기양 죽이라."
"............" 숨을 깊게 쉬느라 칼끝이 떨린다.
"나땜시 생긴 피해자가 죽은 사람들 대신 내더러 죽으라 카는 거잖여. 직접 죽이고 싶다 카는디 죄인된 입장으로서 피하면은 그건 진짜로 인간이 못될끼다. 죽여. 니 마음가는 대로 죽여도."
상처 입은 오른손을 내리고 곧 찾아올 끝을 눈을 감고 기다린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죽여서 복수를 마칠 수 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해줘야 하나? 아니야, 말하지 말자. 죄인이 행복하다고 하면 오히려 더 칼을 쓰지 못할 거다. 차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그대로 시간이 멈춰버린 것같은 시간. 잘게 떨리던 칼끝을 바닥으로 내린 소녀가 아무에게도 시선을 두지 않은 채 조용히 입을 연다.
"타카요씨. 당신은 저에게 이 사람이 누군지를 알려줘선 안 됐어."
대답을 바란 게 아닌 말인 걸 알았던 걸까, 이름이 불린 여성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둡게 가라앉은 소녀의 눈이 허공을 헤맨다.
"유부님."
"......"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호칭이었음에도, 소년은 삼촌을 부르는 저 말이 자신을 향하는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몰라 눈을 살짝 찌푸린다.
"아버님께서 당신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하셨는지 모릅니다. 잘못된 걸 잘못됐다 말할 줄 아는 분이셨다 하셨죠."
"...... 형님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린 그 말은 소녀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주인께서도 기분이 좋으신 밤이면 달을 올려다보며 당신을 입에 담으시곤 하셨습니다. 그토록 착하고 강직한 분이 없었다면서."
'나같은 건 금방 잊어버리시길 바랐는데.'
"분명 당신이 살아있단 걸 아시면 두 분 다 기뻐하실 겁니다. ... 당신이 한 짓을 모르신다면. 아뇨, 아마... 안다고 해도 기뻐하시겠지요. 거기에 제 감정따윈 들어가지도 않겠죠!"
"친구야."
"왜 하필 당신인가요. 저는 아직도 제 부하들이 당신들에게 유린당하던 그 날이 이렇게 생생한데! 하필이면 당신이, 제가 함부로 죽일 수도 없는 당신이 왜 여기서 나타나는 겁니까... 저더러 뭘 어쩌라고. 아예 아무 생각 없이 죽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더 편했을 텐데."
"그 사람들은 우리 둘의 관계에 크게 상관읎는 사람들 같은디. 니 자신이 어케 하고 싶은지를 묻고 싶으야."
이제는 갈 방향 잃은 혼란이 크게 차지하는 표정이 소년을 향한다. 칼을 거세게 잡는 손이 하얗게 질린다.
"어째서 당신이 그런 걸 말하나요.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 왜, 하필이면."
"아... 미안, 입을 너무 놀렸나벼."
"...... 차라리 당신이 누구도 부정 못 할 정도로 극악무도한 악인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나쁜 사람이어서, 당신을 죽여선 안 된다고 소리치는 내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칼을 집어넣으며 사이에 끼어 이도저도 못하고 있던 또다른 소녀에게 빠른 속도로 말을 늘여놓는다.
"하나, 회의 시작은 조금 더 미뤄달라고 자홍의 왕께 전해줘. 너무 늦는다 싶으면 나 없이 시작해도 괜찮다고도 해주고."
"어... 어?"
"생각 정리하고 올게."
표정을 보이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인 상태로 밖으로 향하는 소녀. 사라지는 푸른 제복과 바닥에 앉은 두 사람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갈색 눈의 소녀는 따라가보라는 신호를 받고 구두 소리를 뒤따라간다. 어떻게, 결국 이번에도 소년은 살아남은 것 같다. 긴장이 풀리자 어깨와 옆구리에서 통증이 물밀듯이 닥쳐왔고, 그걸 억누르기 위해 소년은 한숨을 길게 쉬었다.
소녀는 무언가 마음대로 안 풀린 일이라도 있었는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남은 의자 하나에 털썩 앉는다. 앞머리를 쓸어넘기는 모습을 소년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 취조
- situplay>1596240168>199
쇠사슬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다.
"수갑?"
"취조할 땐 수갑 채우는 게 국룰이쟈낭."
"의미 있나 이거."
"없지."
"업쪄. 끊어버리면 바로 때찌할 거라는 경고의 의미려낭?"
'워메 살벌한거.' 책상 다리와 수갑으로 연결된 손목을 얌전히 내린다. 지금까지 자신이 저지른 짓도 있고 하니 이런 위험인물 취급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뭔가, '세 개씩이나 채운 건 너무 나간 거 아녀...?' 싶어져서 수갑 있는 아래쪽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소년도 그랬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이 정도 속박을 해결하지 못할 사람은 여기엔 없긴 하겠지만. 이 수갑들을 야무지게도 채운 저 여자아이도 아마 시간벌이용 외엔 의미를 두지 않고 그저 소년을 골리기 위해 장난을 친 것일 테지. 소년에 맞은편에 앉은 분홍 머리의 여자아이는 양손 깍지 위에 턱을 올리고 개구지게 웃는다.
"슬슬 시작할까??"
"걔네 둘 안 왔는디 시작해도 디야?"
"나츠쨩이랑은 상관 없다 모! 못 들음 걔네만 손해징. 그리구 소중한 시간 낭비하기두 싫구."
다리를 꼬아 위에 올려둔 오른발을 까딱거린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우리도 딱히 네가 예뻐서 살려둔 건 아니거든? 나두 내 동생들두 괴앵장히 초조해서 심장이 벌렁벌렁이라구. 이상한 소리를 하거나 입을 안 열면 나츠쨩두 모르게 손이 나가버릴지도?"
"잘 부탁혀."
"... 상황 이해는 한 거야?" 황당하단 듯 눈썹을 까딱이며 물었다.
"고걸 못하믄 등신이게? 묻는 말에 대답 잘 하라는 거 아녀."
히죽히죽 웃는 표정이 꿍꿍이를 꾸미고 있기 때문인질 모르겠다고 아이는 생각했다. '뭐, 상관 없나.' 조금이라도 속이려는 기색이 있으면, 그녀가 믿는 다른 단원들이 알아서 조취를 취해줄 것이다. 소년의 양 옆에 자리잡은 두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소녀는 먼저 가벼운 질문부터 들어가기로 했다.
"그럼 우선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당~"
"허 참, 부끄러운디... 이름이야 다들 아실 거고. 시안 일파와 마젠타 일파에게 잡혀버린 나아쁜 황의 왕 똘마니여유. 응."
"참고용으로 묻는데, 황의 왕 밑에 들어간 이유가?"
"계약사기 당해부렀슈. 이런 곳인줄 알았음 안 들어갔을겨."
'자기는 죄없는 사람이라고 어필하려는 건가?' 소년이 죄악감으로 물든 자기 자신과 속내를 살이 찢기는 기분으로 말한다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막연히 추측한다. 뭐, 시안쪽 청록의 왕이면 몰라도 자홍의 왕이 궁금한 건 소년의 신상이 아니었으니 더 캐묻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아이가 정말로 원하는 질문으로 넘어간다.
"쪼아죠아. 그럼 다음 질문인뎅, 혓바닥 잘리기 싫으면 대답 잘 해. 너네가 훔쳐간 전대의 실험 기록. 어딨어?"
"몰러. ... 잠깐 말을 끝까지 들어봐!"
총상을 입은 왼쪽 어깨를 통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다급하게 외친다. 생각도 안 하고 튀어나온 모른다는 대답에 짜증이 난 검은 초커의 자경단원이 어깨를 짚은 손에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전제부터 잘못된겨! 두 놈이 같이 다니긴 허지만 황의 왕과 플레이아데스는 동맹일 뿐이고 같은 편인 건 아녀!"
"동맹해서 같이 다니면 그게 같은 편이지?"
"은제 내도 모르는 사이에 시안허고 마젠타가 같은 편이 되었다냐?"
"왕이 싹 다 바뀌었는데 집안끼리 사이 좋아질 수도 잇찌! ... 어쨌든. 그래서 다른 쪽이 저지른 건 모르시겠다?"
자기의 진심을 알아달라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자홍의 왕이 참모에게 눈짓을 보내자 어깨를 으쓱인 답이 돌아왔다.
"내가 아는 한 황의 왕은 느이가 찾는 거를 활용만 했을겨. 인간을 억지로 요괴로 만드는 실험... 고거 맞제? 왕이 고걸 갖는 건 들은 적도 본 적도 읎으야. 문서는 아마 플레이아데스에게 있을 것이고, 그 위치는 내도 몰러."
"짐작가는 곳도?"
"몇 군데 그 자슥 세이프 하우스를 알긴 아는디..."
"주소 불어."
"알긴 아는디! 아는디... 거따가 느이네 찾는 걸 뒀을진 몰겄어. 갸 성격이면 내 모르는 곳이나... 뭐 인터넷같은 곳에 저장해놓지 않았을랑가. 원본이 고대로 있을지도 미지수여."
소년의 대답이 못마땅했는지 콧바람을 쉰다. 주소는 지도를 가져다주면 집어주겠다는 말에 대원 하나를 심부름 시키고는, 더 이상 소득이 없을 것 같은 대화보다 다음 주제로 넘어가기로 했다. 다시 꼬리를 밟을 단서가 눈 앞에 온 것만으로도 소득이었으니.
"나츠쨩은 착하니깐 모른다는 말 믿고 넘어가주께. 다음으로 궁금한 건데... 그 자식들, 능력 뭐야."
"황의 왕은 분열, 플레이아데스는 식신 쓰고 댕겨."
"시원시원하게도 말하네." 김이 빠져서 일부러 마음을 다잡기 위해 미간을 찌푸린다. "식신만 쓰는 것 치곤 도망을 잘 치던데. 나츠쨩, 도망치는 사람을 놓친 것도 공격을 했는데 타격이 하나도 없는 것도 처음이었어."
소년은 눈을 지그시 감고 수갑 찬 손을 꼼지락거렸다. 옛날 기억 어딘가에서 허영심 넘치는 그 청년에게 원리를 설명받았던 것 같긴 한데, 기계와는 영 연이 없는 소년으로선 들어도 하나도 이해를 못 하겠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설명을 흘렸던 기억을 찾아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으면 그 때 자세히 물어둘걸 그랬다며 뒤늦게 후회한다. 그래도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있으면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게 뻔했으니 떠듬떠듬 기억 시냅스와 언어 기능 영역을 건드려보았다.
"그... 자세한 건... 모르는...디, 식신을 이용해서 인터넷을 뭐... 어쩌고... 거시기 헌디야."
"맞는다?"
"긍께... 허, 이걸 으케 설명하냐." 자기도 답답하단 듯 몸을 배배 꼰다. "인터넷 쓸람 뭐 선같은 게 필요하담서? 거기에 들갔다 나올 수 있디야. 전뇌세계 어쩌구 하든디. 거기서 자기 식신들도 키우고 게임 관리도 하고 그른디야. ... 답이 됐나?"
"식신만 이용한다는 건 확실해?"
"확실혀. 갸는 색이 읎어. ... 근디 식신을 뺏는단 생각은 안 하는기 좋을겨. 불가능할 텨잉께."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핸드폰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요즘은 인터넷 읎는 곳이 읎잖여."
소년은 플레이아데스가 만든 게임을 설치한 사람들을 떠올린다. 요괴로 변해버린 사람들과, 변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
"저게 있는 이상 갸 손이 안 미치는 곳은 읎다고 봐야 디야. 지금은 룰인지 뭐시긴지 지킨담서 댕겨도 궁지에 몰리면 느그덜까지 요괴로 안 만든단 법은 읎잖여."
"......"
항상 유지하고 있던 미소도 지우고 눈에 쌍심지를 켠 채 어금니를 간다. 아이의 입에서 작게 욕지거리도 들린 것 같다.
"그딴 식으로 악용하라고 지금까지 남겨둔줄 알아...?"
마음속으로 진짜 참회해야 할 사람 대신 사과한다. 지금이 평범한 대화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면 이쯤에서 다른 화제로 말을 돌리기라도 했을 텐데 대답만 해야 하는 입장 상 그러기도 조금 눈치가 보였고. 그리고... 저 아이가 자신에게 울분을 토해낸다면 자신은 그걸 들어줘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는 분을 삭이기 위해 입을 다물었고 누구도 의도치 않은 침묵이 순간 자리잡았다.
그 순간이 너무 무겁고 두려웠기 때문에 소년은 결국 새로운 화제를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건 글타 치고, 다른 한 쪽은 안 물어도 되겄어?"
"황의 왕?"
아이의 표정이 바뀌었다. 여러 생각이 섞인 게 눈에 보였지만, 가장 큰 감정은 웃음이나 분노보단 놀람에 가까워 보였다.
"안 들어도 되는데."
"자신감 늠치네 그려?"
"그런 건 아니고..."
겨우 다시 이어붙였던 대화는 낡은 문소리가 끼어들어 중단된다. 지도 심부름을 보냈던 단원과 함께 노란 머리카락을 뒤로 질끈 묶은 소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하나땅~! 와쪄~?? 어라라, 혼자얌??"
"저 놈이랑 같이 왔잖아." 같이 들어온 검은 초커를 낀 단원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아니아닝. 시안 걔는?"
소녀는 무언가 마음대로 안 풀린 일이라도 있었는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남은 의자 하나에 털썩 앉는다. 앞머리를 쓸어넘기는 모습을 소년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한 가지 석연찮은 부분과 더불어 자기가 찔렀던 부위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는데, 다행히 상처는 크게 덧나거나 위험한 상태인 것 같진 않아보였다.
"혼자 있고 싶대. 생각 좀 정리하고 싶다나 뭐라나."
"허억, 그 피도 눈물도 없다는 청록의 왕이 그렇게 멘탈이 보노보노일 줄은 몰랐눈뎅...!!"
"걔도 17살 청소년인데 뭘 바라는 거야? 그리고... 걔한텐 나나 쟤나 똑같이 보일 테니까."
... 아, 그래. 소녀를 보자마자 계속 마음 속에서 걸렸던 무언가의 정체를 알아냈다. 잠시 말소리가 멈춘 틈을 타 소년이 운을 떼었고, 아무도 막는 기색이 없자 자신이 하나 물어봐도 되냐며 소녀의 갈색 눈을 마주보며 허락을 구했다. 붕대 낀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턱을 괴며 말해보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니 이름이 센리 코우카 맞제. 신분은 기양 일반인이고."
"일단은."
"니에게 묻고싶은기 좀 많어. 내 막 잠에서 깼을 때, 솔직히 내는 제정신 아녔거든. 황의 왕의 명령이 아직 남아있어가꼬 내를 조절할 수가 읎는 상태였으야."
"명령이 남는단 건 뭐야... 엉. 근데?"
"근디 지금 내가 말짱히 있는기 이상해가꼬 생각을 해봤는디, 니한테 관두란 말 듣고서 정신 돌아왔드라고."
소년이 물으려는 걸 짐작한 소녀가 시선을 피한다. 소년의 노란 눈을 마주보던 걸 자신 앞의 책상 나뭇결로 고정시킨다.
"니는 정체가 뭐여? 뭐, 요괴라든가 반요라든가 그른 거여?"
소년의 질문이 달갑지 않은 듯 눈을 가늘게 뜬 소녀는, 검지손가락으로 자기 얼굴을 두드리며 생각을 하다가 옆에 앉아있던 아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소년과 그 둘은 거리가 있었기에 대화 내용이 확실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사실을 말해도 위험하진 않겠느냐는 식의 이야기였다. 여차할 땐 자기들이 제압하겠다고 대화를 결론내고 소녀의 눈이 다시 소년과 마주한다.
"그야 뭐, 나는 복잡한 건 모르지만. 나도 네 주인이라고 인정이 되나보지."
"......뭔 소리여."
"너랑 있던 인간이랑 내가 똑같은 사람이라는 소리... 실감은, 없지만. 내가 황의 왕이라는 거."
소년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체험을 했다. 머리로도 향하고 있었을 피가 순식간에 땅 아래로 꺼지고 눈이 핑 돌아 쓰러질 것 같은 감각. 하마터면 수갑을 끊고 달려들 뻔한 걸 양손을 깍지끼는 걸로 겨우 무마시키고, 일단은 상황 설명을 듣는 게 먼저라며 자신을 나무랐다. 자신의 목소리가 몸만큼 떨리진 않기를 바라며 소년이 느릿하게 묻는다.
"설명을... 들어야 쓰겄는디."
7.3. 후반부 ¶
내 있어봤자 암도 변하지 않을기고.
- 제비 날아가던 날
- situplay>1596241413>771
1995년 8월 18일.
보름 간의 근신이 끝나고 소년이 먼저 찾은 곳은 소년의 할머니가 머무는 안채였다. 안방 안에서 장죽을 피우는 할머니는 여전히 보름 전과 변함이 없었다. 아마 일 년 뒤에도, 몇십 년 뒤에도 제 할머니는 언제나 한결같으시겠지. 지금 이 장소에서 변한 건 소년뿐이었다. 소년이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지 않은 것 또한 할머니 뿐이었다. 소년을 반가이 맞아주는 할머니에게 가볍게 인사를 올리며, 방석을 가져와 그녀의 앞에 앉았다. 제비 지저귀는 마당을 향해 열린 방 안에서 소년은 오랫동안, 그러나 길지는 않은 시간동안 자신의 결정을 차분히 할머니에게 전해주었다.
재떨이에 장죽을 부닺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나 그것 말곤 들리는 소리가 없어 담백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독립하긌다꼬."
"예에."
할머니─젊은 여성의 외견을 갖춘 개의 신은 자신의 양쪽 관자놀이를 한손으로 꾹꾹 눌렀다. 그 행동이 느릿한 게 대답을 기다리는 소년에겐 지나치게 답답하였다. 그러나 소년으로서도 갑작스레 자식이 집을 나가겠단 걸 들은 그녀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니 이어질 말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긴 했다. 아마 속내는 심각하게 복잡하겠지. 소년은 말없는 자신의 신을 보며 막연하게 추측했고, 이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깊은 숨을 내쉬는 그 신은 차마 할 말을 정하지 못할 정도로 생각이 많았다.
신은 소년이 이런 결정을 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정확히는, 세 장짜리 보고서를 통해 사건의 경위를 알긴 알았다. 자신이 큰 고민 없이 정한 임무의 내용 때문에 제 형이랑 크게 싸운 게 원인이겠지. 그러나 그 사건이 소년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어떤 사고를 거쳤는지까지 알고 있진 않았다. 15일 동안의 근신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와서 되돌아보면, 그녀에겐 지난 10년 간 소년과 함께 고민과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를 한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얌전한 아이니까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거야, 이렇게 착한데 고민될 일 하나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야. 안일하게 생각하여 대화를 게을리 했던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진작부터 이 아이에 더 많은 관심을 줬더라면 불미스럽게 이 곳을 떠나겠다는 결정을 안 했을까? 아이가 겪었을 고통을 덜어내줄 수 있었을까?
그러나 소년을 잡아두고 싶은 건 욕심일 터였다. 지나간 일은 되돌리기 힘들며 소년은 이미 자신의 미래를 결정한 상태였다. 후회에 발목잡힐 시간이 있으면 그 시간에 자식의 앞길을 응원하는 것이 가족된 자의 도리. 그렇게 생각을 굳힌 신이 할 수 있는 건 미안함을 담은 미소밖에 없었다.
"잡어주길 원하진 않제, 그제?"
"함무이 맘이라 생각허긴 혀유. 그래도 더 있다가는 폐만 끼칠 것 같응께 내는 기양 보내주셨음 좋겄어유."
"폐는 무슨, 오히려 사내놈 둘이 붙어묵은 거 치고 울 아가들이 느무 안 싸우든겨. 그래... 아무도 폐라고 생각 안 하니까는."
소년은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 대답할 말을 찾다가 별 대꾸는 하지 않고 웃으며 얼버무리기로 결정했다. 타들어간 담뱃재를 다시 털어버리고는 신이 말을 잇는다.
"니 어무이 아바이나 딴 가족들헌텐 니가 잘 말허고. 말하는 김에 혼도 좀 나고 그래라잉."
"함무이가 허락해줬는디 딴 사람들이 찍소리 할기 있겄어유?" 너스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말도 마라, 걔네들이 잔소리가 을매나 많은디. ... 그래서, 내더러 색 지워달라고 온 거제?"
"예에. 염치 읎지만 부탁드려유."
신이 내민 손 위에 소년의 손이 올려진다. 손을 잡는 게 지금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혹시라도 이제는 자신을 찾으러 오지 않을까봐. 손등을 가만히 엄지로 쓸며 감촉을 잊지 않기 위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소년의 영혼에 덧그려졌던 하늘색이 영혼으로부터 점차 떨어져나간다. 온몸이 오그라드는 듯한 불쾌감이 남지만, 아프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따스함도 같이 밀려들어와 마냥 나쁜 감각은 아니었다. 바깥에선 사람들의 어지러운 발소리가 들려와 마냥 조용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소년은 자신의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돌아올 거냐."
"내키면유."
"갈 곳은 있고? 지인 집 간담서도 계속 거 머무를 수만도... 어."
바깥마루를 돌아다니던 발소리 하나가 가까워지더니 안방 문이 거칠게 열어제껴졌다. 평소보다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돈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소년의 형, 쿄는 문을 열자마자 제일 먼저 방주인에게 눈인사를 올렸다. 갑자기 들어와 죄송하다고, 동생을 찾고 있는데 보신 적이 있냐고 묻는 청년의 시야에 점점 소년이 여성 앞에 앉아있는 방 안 풍경이 들어왔다. 소년은 청록색을 잃고 있었다. 머리카락에 남아있던 푸른 하늘색이 점점 검은 밤하늘로 변해가고 있었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채지 못할 청년이 아니었다.
청년이 동생과 대화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든 건 손이 먼저 나간 뒤였다. 소년의 뺨을 검집째로 후린 뒤에야 주인 앞에서 정숙치 못한 태도를 보였음을 자각했다. 형과 마주치면 좋은 말이 오가리란 생각은 안 했지만 다짜고짜 맞는 건 너무도 예상치 못한 사태였던지라 소년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엉거주춤하게 일어선 채 형을 노려본다.
"이 짜슥이 미쳤나, 야! 으데 앞이라고 칼을 휘둘러!"
"... 돌았슈?"
"......"
주인이 아끼는 강아지를 그 앞에서 혼내키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자각은 있었다. 그러나 손이 나간 걸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청년은 말없이 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장식되어 있던 일본도 하나를 들어 소년에게 던진다. 소년은 떨떠름하니 그 검을 공중에서 낚아채었고, 신은 청년이 무엇을 하려는지를 눈치채고 그의 한쪽 어깨를 붙들어 잡는다.
"칼 빼라, 쇼."
"진정혀 임마! 왜 갑자기 흥분해가 날뛰고 그려!"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나의 주인이시여. 그러나 이건 지나친 처사를 저지른..."
"내는 니처럼 꼴비게 칼이나 휘두르고 싶진 않은디예."
눈이 돌아간 청년이 만류를 뿌리치고 동생을 세게 쳐낸다. 급하게 방어를 하긴 했으나 무식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걸 버티기는 힘들어 장지문을 망가뜨리며 마루 밖으로 굴러나갈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한숨 소리를 배경으로 한 바퀴를 굴러 마당에 착지한 소년이 칼을 검집째로 두 손으로 고쳐쥔다.
"꼴빈다 했나, 말 잘했다. 어디 가서 동생이라 말하기도 싫을 정도로 한심해 죽겠다, 쇼!"
청년은 허리춤에 찬 칼을 빼내들며 마루를 가로질러 걸어온다.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로서는 드물게도 역증을 내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여간 화난 게 아닌 것 같았다.
"네 꼴을 봐라. 세상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온갖 투정이란 투정은 다 부리고 있잖냐! 지금 네가─ 세 살배기 애새끼랑 다를 게 뭐란 말이냐!"
상단에서 크게 내려치는 공격을 두 손으로 검등을 받쳐 막아낸다. 옆으로 흘려보내 형의 칼을 피한 소년은 양손으로 칼자루를 잡고 경계 자세를 취한다. 그 찰나의 틈을 파고들기 위하여 추가 공격이 들어오고, 마치 사전에 맞춘 검무마냥 몇 합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소년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소년은 지금 형의 얼굴을 계속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다.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주인 가슴에 대못 박는 걸 보면 차라리 어린애가 너보다야 낫겠군."
그렇다고 형과 검으로 승부를 보려고 하면 보나마나 질 것이 뻔하다. 적당히 칼을 받아주다가 빈틈을 찾아 도망치는 수가 가장 좋은 수였다.
"바꾸려는 노력 하나, 바뀌려는 노력 하나 하지 않고 꼴사납게 꼬리 말고 도망치려는 너보다야!"
"......"
"놀이터에 놀고 있을 꼬마애 하나가 너보다는 눈뜨고 봐줄만 하겠다!"
... 도망치는 게 가장 좋을 방법이었을 텐데.
도저히 울분을 쏟아내지 않고는 평생 남을 앙금을 두고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 바꾸려는 노력?"
칼자루를 오른손 한 손 안으로 완전히 밀어넣고, 상대적으로 방어가 약해졌던 복부를 발로 차버린다. 공격만 막아내던 동생의 기습적인 공격에 놀란 청년이 순간 비틀거린 사이, 검집에 넣어뒀던 칼을 둔기처럼 휘둘러 상단에서 머리를 노린다.
"바뀌려는 생각 자체도 없었던 주제에! 입만 살아갖고 나불대는 꼬라지 하고는...!"
두 사람의 사이에서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까득 소리가 야단스럽다. 소년은 한 손으로 검집을 움켜쥐고는 칼날을 밑으로 거칠게 뽑아내었다. 본능적으로 상대의 급소를 찌르려는 걸 급하게 경로를 바꾸어 다리를 내리찍으려 한다.
"내 암만 떠들어봤자 귓등으로도 들은 척 안 할검시로!"
"입 한 번 벙긋 안 하고 튀는 놈이 말도 많다!"
"그럼 말해봐라, 하늘에 꼬리치는 개시끼야. 니가 바뀔 순 있냐? 나 하나도 지대로 못 이기는 놈이 힘도 없음서 세상을 바꾼단 게 가당키나 하냔 말이여!"
소년은 체념한지 오래였다.
방 안에서 칩거하던 보름 동안 소년은 끊임없이 생각했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해왔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되묻는 것을 반복해왔고, 그 결과로 얻어낸 결론은 소년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인간 한 명의 힘은 너무나도 미약하고, 하늘과 그 의지를 따르는 무리의 체제를 바꾼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니, 절대 못 한다.
살인에 가식을 덧붙여 정당화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의를 외치는 소년이 오히려 정상이 아닌 거겠지.
그래서 한 시라도 빨리 이 곳을 떠나고 싶었던 건데.
"관둬라."
커다란 앞발이 땅을 크게 내리쳐 둘 사이를 갈라놓는다. 미처 검을 멈추지 못하고 할머니의 살갗을 때려버렸지만, 소년의 공격 따위 신에게는 따끔한 정도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새끼들 다치는 꼴, 이 이상은 내는 눈 뜨고 못 봐준다. 칼 집어느라."
하늘 높이 솟은 개의 주둥이에서 나오는 으르렁 소리. 열과 흥분에 들뜬 검은 눈과 푸른 눈은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다. 청년은 영 못마땅해보이는 눈치였으나 명령대로 칼을 물렀고, 소년은 손을 놓아버리며 두어 발자국 뒷걸음질을 쳤다. 형이 칼을 빼들었을 땐 말리는둥 마는 둥 하더니 내가 칼을 빼니까 말리는 건가? 결국 할머니도 형 편이었던 거야? 차마 다 풀지 못한 화가 자신 편을 들어주지 않는 할머니를 향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소년은 다시 한번 빨리 이 곳을 나가야 한다고 결심한다.
"결국 모든 게 다 제자리일겨."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에게 반대하는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옷자락을 내리잡고 떨리는 시선으로 말을 잇는다.
"내 있어봤자 암도 변하지 않을기고, 읎다 캐도 니덜 잣대로 칼 휘두르는 건 변하지 않겄제. 고라믄 토나오는 집구석에서 나온다는기 뭐가 잘못됐단 건지 내는 잘 몰겄다."
두 번 다신 안 돌아올랑게 쫓아오지 말어.
마당 바닥에 떨어진 검을 뒤로 하고 소년은 거의 뛰다시피하며 자리를 뜬다. 청년은 곧바로 소년을 뒤따라가려고 했으나, 다시금 자신의 앞을 내리치며 길을 막는 신 때문에 행동이 막혀버리고 만다. 개의 모습을 한 신은 고개를 젓는다, 마음 정리가 되면 돌아올 테니 지금은 뒤쫓지 말라고 부탁하면서. 주인에게 대거리를 할 용기를 낼 수 없는 청년은 꼬리를 내리고 동생이 대문 밖으로 사라지는 걸 볼 수밖에 없었다.
니는 기양 안 좋은 사고를 겪었을 뿐이지 천성부터가 악한 사람인 건 아인 것 같으야.
- 다음날, 두 명 다 늦잠을 잤다.
- situplay>1596241644>872
"어메 씨X 깜짝이야."
"......"
"... 뭐혀?"
"관찰."
마지막 전투에서 나흘 정도가 지난 시점, 다음 작전을 위한 휴식과 준비 기간. 포로 겸 인질로 잡아놓은 노란 눈의 소년은 엄중한 감시 아래 독방에 갇혀 지내고 있었다. ... 사실 그랬어야 하는데, 소년의 긴장감 없고 협조적인 태도에 익숙해진 자경대 인원들은 어느 정도의 일탈 정도는 눈을 감아주는 게 보통이었다. 음성인식으로나마 초차원 채팅방에 접속할 수 있는 건 핸드폰을 기꺼이 빌려주는 소녀와 그 소녀에 대한 믿음을 가진 청년의 협업 덕분이었으니. 소년이 정말로 시안-마젠타 연합을 적대할 생각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악감정을 품었으면 어쩔 뻔했냐며 남몰래 혀를 찬 적도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자신감의 표현일 수 있겠다만은.
그거야 어찌 되었든 소년의 수갑 생활은 예상보다 꽤나 쾌적했다. 이젠 이 침대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다른 사람의 얼굴은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았다. 기적같은 자제력으로 참았을 뿐이지 하마터면 아지트가 다 떠나가라 비명을 지를 뻔했다. 만약 밤마다 자신을 바라보는 게 친숙한 사람이거나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차라리 나았을 거다. 별빛을 닮아 새하얀 머리카락과 달맞이꽃같은 노란 눈동자는 몇 달 동안 소년을 괴롭힌 저 여자와 아주 판박이였던지라. 없던 트라우마까지 생겨날 지경이었다.
'뭐, 따지고 보면 동일인이니 당연하겠지만.' 지금까지는 무시하고 눈을 꾹 감았지만, 아무리 죄인 입장으로 잡혀온 사람이어도 밤마다 트라우마를 자극받고 잠을 방해받으면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화상 흉터로 얼룩덜룩한 눈가를 마구 찌푸리며 소년이 다시 묻는다.
"와 보는 건디."
"...... 생각?"
"거 참 사람 답답하게 말하시네 그려. 말하기 싫은기 아이면은 기양 퍼뜩퍼뜩 말 좀 혀. 몇 번이나 되묻는 거 누군 좋은줄 아나?"
새하얀 소녀는 눈을 살짝 내린다, 무언가를 고민할 때 자주 나오는 버릇이였다.
"말해도 좋을지를 모르겠어요. 당신 입장에서 어떻게 들릴지 저는 판단을 잘 못 하겠어서."
"그게 무신들 밤마다 묶인 사람 방 들와가꼬 잠 방해하다 가는 것보다야 나설겨."
"......"
소녀가 침대 위에 살짝 걸터앉는다. 더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소년은 안쪽으로 몸을 밀어넣고, 자세를 바꾼 소녀는 소년을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다시 말을 시작한다.
"츠누가씨. 당신은 나쁜 사람인가요?"
"무슨 뜻이여?"
"... 그러니까... 츠누가씨는 나쁜 짓을 저질렀죠. 당신의 몸 안에는 아직 그 찢어죽일 것이 심어놓은 욕망이 남아있고요.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당신이 벌을 받아야 할 죄인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러니까, 당신은... 자의가 아니었잖아요?"
소년은 침묵한다. 확실히, 잠결에 듣기에 썩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는 상담사가 아니었고, 윤리 선생님은 절대 아니었으며, 소녀의 말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들을 입장조차 되지 않았다. 소녀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모르겠는 건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목줄을 붙잡은 '센리 코우카'와 소년의 관계에서 그는 명실상부한 피해자의 입장이었으며, 그 행동을 한 주체는 눈 앞의 소녀였으나 그녀가 아니기도 했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두 사람이 같이 앉아 이야기를 해봤자 만족스러운 답이 도출될 것 같진 않다. 그러나 이야기를 종용한 건 소년이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들어줄 의무도 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소녀에게 나름의 대답을 해주기로 했다.
"그건 니가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여?"
"...... 아니요."
소녀는 자신의 두 손을 꽉 맞잡는다. 언제나 확신에 차있던 그녀로서는 드물게도 떠듬떠듬 버벅이면서 자신의 생각을 말해나간다.
"저희는 죄책감을 느낄 수 없어요. 그걸 느껴야 하는 상황이라 추론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느끼는 건 저희의 담당이 아니에요. 제가 이런 고민을 하는 건, 저는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에요."
"책임."
"저의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은 제가 책임을 져야 해요. 저는 그 짐승만도 못한 자를 처단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그런데 당신은... 타인의 욕망에 휘둘린 당신을 봐야 할지, 아니면 타인에게 피해를 가한 당신을 봐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아요."
"......"
"... 저는 당신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죽여야 할 죄인으로서? 아니면 억울한 피해자로서?"
소년은 자신의 심장 속에서 분노가 불씨를 내뱉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만약 자신에게 상처를 받은 피해자가 합당한 권리로써 죽음을 요구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의도는 절대 아니라고는 하나, 가해자의 입장에 선 사람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면 우선 어이가 없을 수밖에. '네가 할 말은 아니지'하고 대꾸하고 싶은 마음이 넘실거려 넘치려고 한다.
그래도, 저들은 같으면서 다른 사람들이다. 게다가 정상적인 판단을 하기엔 영혼 상의 문제도 있지 않은가. 이 분노는 부적절한 분노다. 참아야 한다. 목소리가 무뚝뚝하고 차가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가보려 노력해본다.
"니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해봤자 소용없다 생각혀."
"... 어째서죠?"
"죄책감 읎담서. 미안한 마음 읎이 피해자 대우 받는다 캐봐라, 엎드려 절받기라 X같은 기분만 들겨. 막말로 슨새임에게 부추김 받아서 사과하는 초딩이랑 다를 게 뭐 있나 싶다야."
"......"
이야기를 듣던 새하얀 소녀의 머리가 갑작스레 꺾인다. 마치 순간적으로 기절해버린 것처럼 눈을 감은 소녀, 그녀의 머리카락은 달빛같은 색을 잃고 점점 노랗게 물들어간다. 다시 고개를 든 소녀는 갈색 눈동자로 소년을 똑바로 마주본다.
"너는 내가 소라욕망를 다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 글쎄. 모르겄는디."
"너를 괴롭게 하고, 살인을 하게 한 존재야. 없애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야? 하나도?"
"뭔 대답을 원하는겨? 고거를 직이놓고 가해자는 읎어졌다 말을 하든, 받아들이고 니 자신이라 인정을 하든 고건 니 선택이여. 어느 쪽이든 내는 백 퍼센트 싫어하지는 않을기고, 완벽히 만족하지도 않을겨."
소녀는 말을 멈췄다. 속시원히 풀린 건 없었으나 무엇이 불만족스러운지도 파악하지 못했고, 거기다가 지금 말은 사실상 대화 중단을 제안하는 말이었다. 혼란을 잔뜩 담은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자기 앞머리를 헤집는다. 요즘 얼마나 고민이 많은지 어깨의 베인 상처 정도는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 미안. 너에게 말해봤자 짜증나기만 하겠지."
"부정하진 못 하겄네." 어깨는 으쓱였지만 웃지는 않았다."
"나 모르는 사이에 센이 너 자는 거 방해한 건 미안해. 앞으론 절대 못 오게 할 테니까 걱정 말고. ... 잘 자."
이럴 땐 말주변 하나 없는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원망스럽다. 아니, 오히려 별 말을 안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금방 침대에서 일어나서 방 밖으로 향한다. 소녀에게 있어 이 곳은 기억 없는 죄를 확인하는 곳이었으니 상당히 거북할 만도 했다.
"...... 내는 너무 신경쓰지 않어도 괜찮여."
문을 반쯤 열었을 무렵에 등 뒤에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문을 손으로 잡고 뒤를 돌아본다. 소년이 배웅을 위해 움직이느라 수갑들이 쇠소리를 자아내고 있었다.
"내는 느이들에겐 피해자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기양 살인자일 뿐이란 말여."
"......" 뭐라 대답을 해줘야 할지 몰라서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핸드폰, 챙겨주는 것도. 늬덜은 죄책감같은 거 못 느낀다 캤지만서도... 미안해가꼬 신경써주는 거제? 니는 기양 안 좋은 사고를 겪었을 뿐이지 천성부터가 악한 사람인 건 아인 것 같으야. 내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는. 긍게 딴 사람들은 몰라도 내에게 느무 신경쓰지 않아도 디야. 여서 내가 더 뭘 요구할 수도 읎을 것이고."
노란 머리의 소녀가 눈을 살짝 내린다. 그러고는 소년과 시선을 마주한다.
"항상 생각하는 건데 넌 지나치게 착해. 가해자 사정이나 주위 상황같은 거 신경쓰지 마. 나한테는 네가 X같다 느끼는 걸 어떻게 해소하고 싶은지 더 말해도 돼."
이번에는 진짜로 소녀가 방 밖으로 나갔다.
따지고 보면 다른 364일과 비교해서 특별할 게 하나도 없는 하루일 뿐인데 어떻게 생일이라는 두 글자만으로 이렇게 들뜨는 걸까?
- 축하해줄 사람이 항상 어딘가엔 있다는 걸 잊지 말아줘
- situplay>1596242094>140
다시, 1995년 9월 23일의 신주쿠.
청록의 왕의 신경이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다. 아무리 엄격함과 공정함이 제 1의 원리라고는 하지만 이번 임금님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하지 않냐며 뒷쪽에서 이야기가 오고갈 정도였으니, 그 정도는 굳이 겪지 않아도 알 법했다. 불만은 입과 입을 거쳐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는 소문이 되는 법. 수호대 측에서는 외부로 누출되는 걸 최대한 막고는 있으나, 막내 도련님이 안 좋게 가출했단 이야기는 이미 대원들 사이에선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듣기로는 우리의 신께 대들었다던데? 원래부터 제 형과 데면데면했었잖아. 사실 그게 윗사람들 권력 싸움에 휘말려 들었단 소리가 있던데... 왕께서 일부러 뒷공작을 하는 바람에... 아니아니 오히려 동생이...... 지금 초록의 병원에 비밀리에 입원하고 있다는 말도.........
오늘도 그런 허무맹랑한 헛소문을 들은 타카요는 어이가 없어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우선 그녀는 지금의 왕이 등위하기 한참 전부터 양쪽과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두 사람이 집안이 조금 특이할 뿐인 평범한 형제였단 걸 알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헛소문의 주인공이 자신의 후라이팬을 태워먹고 있었으니까. 타카요는 한손에 들고온 짐을 현관문 바로 앞에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자기 소꿉친구한테 들들 볶이고 온 울분과 헛소리를 어딜 가나 들어야 하는 답답함, 그리고 어제 샀지만 새까맣게 타버린 후라이팬에 대한 격노를 담아 신발을 소년에게 던진다.
"개새끼야 꺼져!!"
"으악!! 아 미안혀!! 미안하다고!!"
"내가 주방 들어가지 말라고 말을 했어 안 했어?! 못살아 내가 진짜 나가서 사먹으라고 좀!!"
"그치만 일하다 들왔는디 외식하러 나가면은 더 힘드니까는..."
"너때문에 혈압 올라서 더 힘드니까 좀 나가!!"
뜨거워진 이마를 팔뚝으로 식히며 소파에 털썩 앉는다. 색이 없어졌으니 명목 상 일반인인 친구를 죽일 듯이 패는 건 양심에 찔린다는 이유였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전까지 그랬던 대로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때렸을 거다. 장담하건대, 100%로. 그래도 자기 잘못은 아는지 쇼는 주방 구석에서 타카요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의도는 좋았다고 하나 어쨌든 결과는 새까맣게 탄 후라이펜과 계란후라이지 않은가.
"..... 다시... 사올까...? 알바 갔다 오는 길에..."
"이번엔 네 돈으로 사라."
"그래야제... 미안혀...... 금방 사가지고 올 테니까는."
"나가서 영영 돌아오지 마."
농담도... 라면서 진담일까봐 무서워하는 소년은 옆걸음질로 슬금슬금 현관 쪽으로 간다. 어차피 집주인이 돌아올 시간에 알바를 하러 나가봐야 하기도 했고, 지금은 무언가 뇌물이라도 바치면서 애교를 부려야 할 타이밍이었다.
지갑 대용 돈봉투를 주머니에 대충 쑤셔넣고 슬리퍼 대용 나막신을 신는 쇼에게 무언가가 날아왔다. 어려움 없이 낚아채고 손을 보니 회양목 빗 하나가 들려 있었다. 윤이 나는 걸 보니 아마 새 거인 듯 싶다.
"이게 뭐여? 이거 받고 끄지란겨?"
"이누가미님랑댕이 할머니께서 주시더라. 너 주라면서."
흥미롭단 뜻으로 작게 콧소리를 내면서 빗을 형광등 빛에 비추어본다.
"함무이께서."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건 내가 주는 거. 갈 때 들고 가든가."
"함무이는 글타 치고 니는 와 주는디? 오히려 내가 줘야 할 판 아녀?"
빗을 조심스럽게 바지 속에 넣고 타카요의 말을 따라 쇼핑백을 들고서도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것도 모르냐고 가볍게 타박을 주고 타카요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생일 축하해."
"응, 고마워."
얼떨결에 대답하고 자연스럽게 문 밖으로 나간다. 친구네 집을 나오고 길을 걸어가면서도 상황 파악이 안 되었다가, 멘션이 보이지 않을 때쯤 되어서야 방금 전 현관에서 있었던 사건을 자각한다. 여러가지로 심란하고 바쁘던 차였어서 오늘이 자신의 생일인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렇구나, 오늘은, 내가, 태어난 날이야! 따지고 보면 다른 364일과 비교해서 특별할 게 하나도 없는 하루일 뿐인데 어떻게 생일이라는 두 글자만으로 이렇게 들뜨는 걸까? 쇼핑백 안을 열자 그 안에서 보이는 건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난 하오리였다. 이걸 길거리에서 입고 다니면 멀리서도 눈에 띌 텐데. 그렇지만 특별한 날에 선물받은 걸 입지 않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싶다. 하오리를 가볍게 걸치고 나막신 소리를 따각따각 내며 골목길을 걸어간다.
인적 드문 주택가의 골목길에선 대로를 오고가는 인파 소리따윈 들리지 않는다.
쇼가 일자리를 구한 곳은 현재 신세지고 있는 멘션에서 걸어서 10분 가량이 걸리는 거리에 있다. 소년의 요리 실력이 바닥을 치는 것을 보았음에도 '그래도 얼굴은 봐줄만하니까' 라며 홀서빙을 시켜주는, 소년으로선 몇 번이나 감사해도 모자랄 은인같은 가게였다. 숫기 좋게 인사를 하며 가게로 들어오는 쇼를 가게 주인이 맞이한다. 손님이 없어 불도 켜놓지 않은 어두운 가게 안, 테이블 의자 하나에 비스듬히 앉아 턱을 괴고 문쪽을 바라보는 금발의 남성. 앞머리를 뒤로 넘겨 이목구비가 훤히 보이는 그 남자는 평소에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으나 오늘은 소년에게 다른 용무가 있는 모양이었다.
"츠누가 쇼-씨?"
"예? 예, 네."
"보호자 동의서, 오늘은 가져왔나요?"
"아... 아-... 아뇨."
망했다. 소년이 이 순간 느낀 단 하나의 감상이었다. 방금 전까지 좋았던 기분이 서서히 하락세에 들어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가져오겠다고 계속 미뤄오긴 했는데, 설마 오늘 잘리는 건 아니겠지? 아니죠 사장님? 에이, 사장님? 소년의 뻣뻣한 미소 뒤로 식은땀이 흐르고 있다.
"분명히 이주 전에 근시일 내에 가져오겠다고 한 것 같은데..."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아... 그게, 그, 쪼까 바쁘셔유! 그래서 오시자마자 골아떨어져갖고... 고거를 여쭤보기가 거시기..."
"오- 아뇨, 혼내는 게 아니예요. 그저 준법 시민으로서 해야 할 건 해야 하니까, 그렇죠? 긴장 풀어요. 우선 옷을 갈아입고 오는 게 좋지 않겠어요?"
적어도 오늘 당장 자르려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가출 청소년의 입장으로서 긴장이 쉽게 풀어지지 않아 쭈뼛거리고 있으려니 등 뒤에서 이미 지나쳐온 점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리에서 일어나는지 바닥에 의자 다리가 끌리는 소리와 함께.
"그런데- 부모님이 많이 바쁘신가봐요? 제가 직접 전화해볼까요?"
"아. 아녀유, 부모님도 아닌데다가 번거롭게 하기 죄송시려웅께로..."
동의서를 가져온다면 세 살 터울 집주인이 적어준 걸 가져와야 할 터다. 멀쩡히 살아계신 부모님을 안 계신다고 하는 건 양심에 찔렸지만, 후에 일이 커지지 않기 위해서 여기선 거짓말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 말이 거짓말이란 걸 금발의 남성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거짓말은 안 좋아요. 내가 아는 게 있는데."
"... 들켰어유? 그게, 일부러 그른기 아이고... 쪼매 복잡한 사정이 있는디예."
"알아요. 하늘의 앞잡이네 막내 도련님이 가출했다는 소식이 제 귀에도 들리더라고요."
무언가가 잘못됐단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다. 둔탁한 무언가가 후두부를 강타하는 아픔과 함께, 쇼의 의식은 순식간에 끊어지고 말았다.
백귀야행이 황혼을 뒤덮는 기이한 광경을 청년이 입을 벌리고 올려다본다.
- 맹격의 시작
몸을 동여맨 붕대는 신음을 감추지 못한다. 카부키쵸의 야경도 희미해지는 골방 속, 뱃속이 휘저어진 여성은 여느 때처럼 가쁜 숨을 내쉰다. 오늘따라 더 쑤시는 복부의 상처가 마치 비극의 전조같다고 답지 않은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은 여성의 노란 눈은 단칸방 안을 헤집는다. 창문 옆의 벽에서 핸드폰을 내려다보는 악마를 닮아 표독스러운 표정. 무질서, 독살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또 다른 악마는 자질구레한 귓동냥에 관심이 있지 여성의 경계에는 별 관심이 없어보인다. 제자리에 멈춰선 그녀는 그의 흥미를 끌기에는 지루했기 때문에.
그들에겐 동료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 - * - *
쇼는 세이프 하우스가 표시된 지도를 손가락으로 두드린다.
"기습을 성공하지 못하면은 요거는 으미가 읎어질겨."
근거로 든 것은 온갖 기계 속과 네트워크 세상을 제 집 드나들듯 오가는 플레이아데스의 능력. 그 자체로는 큰 위협이 되지 않을지 몰라도 전자기기의 숲 속에서 목표물을 쫓아야 하는 입장에선 매우 귀찮아진다. 만약 그 두 명이 소년마저 모르는 은신처로 숨어버린다면 피해자가 얼마나 더 나올지 누가 안단 말인가? 따라서 다음 작전의 최우선 목표는 사냥감이 도망가는 걸 막는 것으로 정해졌다.
자홍의 왕은 지난 전투에서 직접 플레이아데스와 싸워봤기에 도주 방지가 얼마나 어려울지 누구보다 잘 안다. 양쪽 주먹으로 받친 양뺨이 눌린다.
"가장 좋은 건 카부키쵸의 인터넷을 아예 다 끊어버리는 건데......"
"그건 좀..." 분홍색 눈을 가진 중년 여성이 고개를 젓는다.
"나츠쨩두 알아, 그로케 쉽게 끝낼 수 있으면은 세상 살기 어얼마나 편할까아아아~......"
* - * - *
첫 시작은 거래였다. 혼돈스런 탐욕은 나비를 날려보냈고, 탐욕스런 혼돈은 권력을 안겨주었다. 완벽한 쾌락을 좇을 수 있도록 도와준 그녀의 왕위가 불완전하다는 걸 깨달은 건 그 둘이 손을 잡고서도 꽤나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럼에도 손을 뿌리치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청년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 자신의 패를 희생하지 않고서도 몸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 - * - *
마젠타색 머리를 양쪽으로 질끈 묶은 소녀가 길게 탄식하며 책상 위에 상체를 뉘인다. 기계에 대해 잘 모르는 소년은 이 화제는 잠시 물러나겠다며 두 손을 들었고, 대신 푸른 눈의 소녀가 소년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은 채 말을 받았다.
"기밀 엄수는 둘째 치고서라도, 통신회사들과 교섭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바. 그동안 목표물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또한 정전을 일으키는 것도 그에 따른 피해를 피할 수가 없을 것이라 사료하옵니다."
"... 잠만 끊었다가 갸만 직이고 다시 키면은..."
죄 지은 것마냥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소년이 말했다. 그 말에 대답한 건 차가운 눈초리의 푸른 소녀가 아니라 심통이 잔뜩 난 작은 소녀였다.
"걔를 죽이는 게 얼마나 걸릴줄 알구? 너무 길게 걸리면 쿠쿠리병원에서 가만 안 있을거얼."
"아, 초록이네... 고 생각은 모댔구만."
"또한, ........."
"시안쨩 할 말 이쪄?"
"...... 아뇨, 정보가 새어나갈 가능성을 고려하여 조용히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 빛의 왕들과 접촉하는 것은 고려 대상에도 들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위험 부담이 매우 큰 멍청한 의견을 내는 게 제정신으로 할 행동인지와 더불어, 포로 주제에 도움되지도 않는 주장은 왜 자꾸 하는 것인지를 묻고싶은 것 외에는 없사옵니다."
"............"
"자기 의견이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형편 없었냐고 묻고 싶은데 차마 양심에 찔려서 못 말하겠다는 표정이군."
정곡을 찔린 소년은 그런 게 아니라고 조용히 꿍실거린다.
* - * - *
"그런데 그렇게 다 죽어가면 말이지."
청년은 알람으로 뒤덮인 채팅 화면을 보는 척을 하지만, 망막 뒤로 어둠 속 유일한 별빛을 쫓는다. 그리고는 마음 속 자를 가져와 그 빛의 거리와 크기를 하나하나 재단해본다. 저 도구, 아직 쓸만한가? 계속 데리고 있어도 손해보지 않나?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복부의 상처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청년은 슬슬 여성을 버리는 방향도 생각하기 시작하던 차였다.
"다 죽어가니 내다버릴 셈인가?"
그리고 황의 왕은 그 생각을 알아채지 못할 사람이 아니었다.
* - * - *
"어찌 되었든, 도시 전체의 인터넷을 차단하는 것은 좋은 수단이 되지 못하리라 사료합니다."
"그럼 어쩔 건뎅? 시안쨩 의견은??"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아직은 소녀도 뚜렷한 방안이 떠오르지 않사옵니다."
요괴와 계약한 인간을 제압할 때 사용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현재 사태의 규모와 특이성 때문에 적용시키기 힘들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 말을 들은 자홍의 왕은 턱을 괸 채 꼬아놓은 발 하나를 까딱거린다. 지금 상황이 영 마음에 안 드는 모양새다.
"쇼-땅."
"응?"
"걔가 가진 요괴가 대략 몇 마리인지는 알아?"
"급내 많단 것 말고는 몰러. 것도 지금 으덴가서는 뿔고 있는 중일겨."
"흐음. ... 걔네는 다 어디 가서 숨었대?"
"인터넷에 숨어있다 카든디. ... 뭔가 더 말을 했는디 이해를 모대가꼬 기억을 못혀. 미안혀."
"흐으으으으음."
두 눈을 꾹 감고 길게 신음을 내던 소녀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아 그냥 EMP 터뜨리자니까!!"
* - * - *
"질린 장난감은 쌓아두지 않고 바로바로 버리는 타입이어서."
"멍청하긴. 나 없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지금 와서 그런 주장은 안 통하는 거 알잖아? 카부키쵸 전체가 내 손아귀에 들어오도록 움직인 건 너였어."
숨이 가쁘지만 않았더라면 코웃음을 쳤을 거다.
"모래로 만든 성으로만 만족한다면 말리지야 않겠다만."
"상황 판단이 안 되는 건 너같은데. 아직도 내려다보는 태도를 안 버리네? 간절한 쪽이 빌어야 하는 거 아냐?"
"간절? 아니지. 이건 연민이다. 눈앞의 쾌락만 볼 줄 아는 멍청이를 향한."
* - * - *
"안 그래?! 시안 너네는 EMP 직빵으로 쏠 수 있잖아?! 딱히 뭐 좋은 것도 안 떠오르는데 그냥 터뜨리고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최선의 대책이 나오지 않아 답답하신 것은 알겠으나..."
차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한다. 자홍의 왕의 의견은 실행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으나 결국 뒷처리와 피해 복구가 문제였다. 차라리 기습 공격이 실패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작전을 짜는 게 더 효율적일지도 몰랐다.
그 시각 쇼는 EMP가 무엇인지에 대해 옆사람에게 설명을 듣고 있었다. 대충 범위 내 기계를 아작내는 공격이라는 눈높이 맞춤 설명을 듣고, 소년은 불현듯 지금까지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상기시켰다. 잠시동안 눈동자를 데록데록 굴리다가, 아직도 EMP 작전의 문제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손을 휘젓는다.
"내 말해도 디야?"
"누가 안 된대?"
"안 된다 칼까봐... 거, EMP가 기계 망가뜨리는 고거 맞제? 어케 좀 고 쪽으로다가 추진 좀 해볼 수 읎나. 신님들께 부탁해서라도."
색의 주인에게 손을 빌린다는 이야기는 곧 하늘까지 끌어들이겠단 소리였다. 두 명의 왕은 서로를 곁눈질로 마주보았다.
"츠지는... 안 돼. 우리 츠지는 아마 무조건 안 된다구 할걸?"
"뭐, 그쪽이야... 사고를 마이 쳐갖고 글타 치고. 함, 어, 그 쪽은?"
"언행을 주의하시길. 이번 건은 이례적으로 규모가 큰 사안인 건 맞습니다만 빠른 결단이 필요한 지금 이 상황에서 타카마가하라의 허가를 받아야 할 정도로 손대기 어려운 사안지는 의문이 드는 바이옵니다."
"고라믄 별달리 뾰족한 수가 있는겨? 말해두갔는디 단수이 인타넷만 끊는다고 걔가 도망칠 수단이 읎어지는기 아녀."
"그것을 찾기 위해 지금 이렇게 모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말하는 걸 보니 불가능한 것도 아인 것 같은디 와 글케 기를 쓰고 거부하려 카는지를 몰겄네 그려."
어느샌가 세 명의 주의가 청록의 왕에게 집중되었다. 지금껏 시원하게 대답해오던 것과는 달리 소녀는 말을 하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의문스러운 시선이 느껴지지만 부끄러움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 일에 주인을 끌어들이기 싫어서요.' 푸른 소녀는 생각했다. '마음씨 상냥한 주인께서 당신을 내치지 않고 끌어안는 꼴을 보고싶지 않아요.' 그러나 이 자리에 없는 타인이 거절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은 청록의 왕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변명이라고 비웃음만 받을 게 뻔하겠지.
... 자홍의 왕이라면 몰라도 소녀의 삼촌은 그럴 성정이 아니다. 시안은 평가를 약간 수정하기로 했다. 청록의 왕은 소년의 입에서 주인과 닮은 조언이 나올까봐 두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망설이고 있을 때가 아니다. 중재자가 슬슬 나서려 할 무렵에 시안이 푸른 눈을 홉뜬다.
"좋습니다. 최소한 나흘. 길어도 일주일 이내에 하늘에서 허가를 받겠습니다."
* - * - *
핸드폰 화면을 확인한 청년이 벽에 숨어 창문 커튼을 걷는다. 오늘 낮부터 계속 일관성 없는 특징의 사람들이 규칙성 있게 움직이는 양상이 포착되었고, 이는 두 사람의 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증거일 수 있었다. 남자가 동료를 내칠지에 대한 판단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걷힌 커튼 너머로 창문 밖을 내다본다. 이제 슬슬 숨을 곳을 옮기는 것도 좋을지 모른다.
검을 짚고 선 청록의 왕의 푸른 눈과 시선이 마주친다.
* - * - *
깍지 낀 손가락이 잘게 떨린다.
"물론... 매우 큰 범위를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허가가 내려질지는 확신할 수 없사옵니다만..."
"모야모야, 시안쨩 언제는 나츠쨩한테는 안 된다며?"
"그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자홍의 왕이여."
"고거야 으쨌든 일단은 된단 소리 맞제? 고마워."
"당신한테..."
고맙단 소리 들어도 불쾌할 뿐이라는 말은 지금은 삼가기로 했다.
"죠아죠아. 그럼 큰 줄기는 정해진 거지?"
"허가를 받지 못했을 경우를 대비한 플랜도 같이 준비하는 것이 좋으리라 사료합니다. 솔직히 소녀는 이 사안을 예비 작전으로 삼고 싶습니다만..."
* - * - *
X됐다. 적이 코앞까지 들이닥친 걸 확인한 청년이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불 위엔 이미 아무도 없었다. 급하게 비밀 뒷문으로 빠져나가보아도 이미 저택 주위는 무장 인력에 의해 포위된 상태였다. 핸드폰에 숨겨두었던 요괴는 방금 전부터 아무 반응도 없었고. 어쩌지, 어떡하지, 청년의 턱선을 타고 식은땀이 떨어진다.
구두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푸른 소녀가 빛을 받는 흰 검을 발도하는 걸 보고 청년은 뒷걸음질을 친다.
"생포한 들개가 말하더군요."
"허?!"
"문이 잠긴 세입자는 밖으로 못 나올 뿐이지만, 집이 무너진 세입자는 깔려죽거나 밖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다고. 깔려죽는 것이 어느 쪽에게나 깔끔한 선택지였을 텐데."
"집이 뭐라고? 하, 영문도 모를 소릴..."
무언가가 부서지고 비집고 나오는 소리. 불길함만이 느껴지는 기척에 천천히 자신이 나온 집을 돌아본다. 인간도 동물도 아닌 끔찍한 형상의 생명체들이 제 몸집을 불리며 온 사방의 전선이며 메인보드며 온갖 장치와 틈에서 부풀어 오른다. 백귀야행이 황혼을 뒤덮는 기이한 광경을 청년이 입을 벌리고 올려다본다.
배로 내뱉은 기합이 전투의 시작을 알린다.
"작전대로 행동하라!"
나 혼자 속죄하겠다고 해봤자 결국 자기만족일 뿐이야. 나는 네 요청을 들어줘야 할 의무가 있어.
- 인간으로서
거대한 매 한 마리가 카부키쵸 상공을 활공한다. 매의 발 밑에는 각양각색의 요괴로 인해 난장판이 된 시내가 펼쳐져 있다. 지능이 없는 요괴들을 베고 때리고 죽이고, 지옥도나 다름없는 풍경. 영화 속 한 장면과 멀리 떨어진 고층 건물 위에 한 소녀는 평정심을 가장한 채 서 있다. 자홍색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질끈 묶은 아이였다. 매끄러운 비행으로 하강한 그 매는 소녀가 내민 팔뚝 위에 착지한다. 발톱에 힘을 주지 않는 게 훈련이 잘 된 매라는 증거였다.
"그 쪽은 어땠어?"
꼼실거리며 자세를 바로잡은 매가 부리를 열었다. 성대에서 나오는 건 노랫소리가 아니라 유려한 인간의 언어였다.
"아리는 사역마를 타고 도주 중인 별님을 추격 중. 내가 보기에 걱정할 필요는 없어."
"시오쨩 목표는?"
"저택 내에 진입했을 땐 이미 없었어. EMP를 터뜨리기 직전에 네트워크를 타고 도망친 것 같아."
큰일이네 큰일이야. 놓쳐버린 사냥감 하나를 생각하면서도 소녀의 눈은 전황을 계속 살피고 있었다. 인간의 말을 한 동물, 검은 초커를 단 매는 그런 소녀의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누님, 다음 명령을 내려줘."
"응? 시오쨩 하고싶은대로 해도 괜찮은뎅?"
"지금 작전의 총지휘자는 누님이야. 나는 꽤 큰 전력이잖아? 나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판도가 달라질 거야."
"우후후, 냐하핫! 그러~치! 지금 여기서 가장 높은 사람이 바로 나츠쨩이징!! 근데!"
소녀의 맑은 눈이 매를 똑바로 바라본다.
"좋은 리더는 동료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잖아."
"그래도 지금은..."
"시안쨩네는 시오쨩이 신경 쓸 필요 없다 그랬구 나츠쨩두 그러케 생각하구. 남은 곳은 여기와 하나쨩네인데 양쪽 다 시오를 필요로 해. 그렇지? 어느 쪽을 선택하든 한 쪽이 이득이고 한 쪽이 손해라면 시오쨩 마음대로 해도 상관 없다는 뜻이잖아. 나는 네가 너 하고싶은 대로 선택했으면 좋겠어."
"......"
"나는 너 믿어."
잠시동안 아무 말 없이 시선만 교환하던 두 사람. 멈춰있던 매는 앞으로 몸을 기울여 소녀의 이마에 자신의 머리를 갖다대었다.
* - * - *
"안 가봐도 괜찮겠어?"
"뭐가?"
"모르는 척 하지 마."
"진짜로 뭔 말하는지 몰겄는디?"
하나가 눈을 쭉 찢고 쇼를 노려본다.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는 게 여간 얄미운 게 아니다.
"너는 어떨지 몰라도 저 쪽은 너를 25년동안 못 본 건데. 한 번쯤은 가서 만나고 와도 되잖아?"
그렇게 유혹해도 자신의 결심을 달라지지 않는다며 고개를 젓는다. 몸이 움직임에 따라 수갑 하나도 같이 짤랑거린다. 자경단과 수호대가 임시 아지트로 쓰는 가건물 안에는 신 두 위(位)가 자리잡고 있으며, 바깥에는 호위 인력이 문을 지키고 서 있다. 바로 하나하고 쇼였다.
정확히는... 소년은 소녀에게 짐짝처럼 딸린 존재였다.
"함무이 정신 집중 하셔야 허는디 내 가봤자 방해만 하고 뭐다러 가. 이런 자식 얼굴 보는기 뭐가 좋다고."
"허세 부리기는."
"허세라니 으데가?"
"... 아니다. 아무것도."
"뭐여, 말하다 마는기 사람 화나게 하는..."
실없는 말을 하던 소년이 갑작스레 고개를 홱 돌린다. 소년이 순식간에 경계 태세에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소녀가 주머니 속에서 무기를 꽉 쥔다.
"그 짝에서 놓쳐부렀나벼."
"신. 너, 절대 여기 있는 나 말고 다른 사람 말 들으면 안 된다. 알겠냐?"
"... 그럼. 너무 잘 알고 있지."
건물로 다가오는 검은 인영이 모습을 드러낸다. 느릿한 속도로 다리를 절뚝이며, 질질 끄는 발소리와 철퍽이는 찐득한 소리를 같이 내며. 심한 부상을 입어 불완전한 육체를 유지할 능력마저 손상된 황의 왕은 형체가 점점 무너져내리는 중이었다. 복부에서 검노란 액체를 흘리는 검은 여성이 멈춰선다. 하나와 소라는 자신의 반쪽을 마주한다. 저 멀리 떨어진 도시의 야경과 보름달이 마당의 어둠을 밝다고 착각시키고, 생각을 읽을 수 없는 악마의 노란 눈은 두 사람을 천천히, 느릿하게 훑는다.
"주인을 버린 개새끼가, 어디로 갔나 했더니......"
"......"
"역시 주인도 못 알아보고 그 쪽으로 갈아탔군. 멍청한 개는 키우는 게 아니야. 안 그러나? 나."
왕에게 불린 소녀가 얼굴을 구긴다. 황의 왕과 자신이 동일인이라는, 내심 부정하고 싶었던 사실을 당사자에게 확인받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용건이 뭐야. 죽으러 왔냐?"
"우리 자아씨는 성질도 급하시군. 그리 급할 건 없잖나. 어차피 인생은 한 번 뿐이야, 하고싶은 건 다 하고 살아야지..."
"농담따먹기를 할 정도로 친해진 기억 없어."
"그 쪽이 그렇게 거부해도... 우리는 친해져야 해. 나는 그 몸에 흐르는 그 생기가 정말 마음에 들거든."
말단부의 윤곽이 어그러진 두 팔을 펼친다.
"인간으로서, 즐겁게 살아가려면, 우리가 한 몸이 되어야지?"
탐욕으로 일그러진 미소를 짓는다.
"그러니까 죽어. ... 내 개의 손에!"
왕의 명령에 숨을 죽이고 있던 소년이 곧바로 튀어나간다. 눈 앞의 목표물만 바라본다. 다리 근육을 폭발시키듯 혹사한다. 수갑 때문에 양손은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니 몸을 크게 회전시켜 다리로 복부를 가격한다. 황의 왕은 그 공격에 놀라 숨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소년의 뒤꿈치가 향한 건 소녀가 아니라 검은 여자였기 때문에. 안 그래도 부상이 심한 부위를 불시에 얻어맞은 왕은 비틀거리며 몇 걸음을 물러난다.
"이게, 무슨..."
"하나야, 성공했다!"
"거 봐! 내가 별 일 없을 거라고 했지!"
침 대신 흐르는 검노란 액체를 손으로 닦아낸다. 소년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띈 채 황의 왕을 내려다본다.
"미안혀, 내 멍청해가 니 말한 명령도 잘못 들어부렀나벼?"
"...... 너... 설마,"
"은제 한번 니 말했었제, 계기만 있음 내도 욕망을 택할 거라고."
오랜 시간동안 소년을 옭아매고 있던 수갑은 소년의 의지 하에 제 힘을 쓰지 못하고 부서져버린다. 소라는 실성한 듯 낮게 웃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지금이 그 때인 것 같지?"
본인조차 이유를 알지 못하는 웃음. 그 헐떡임의 끝은 돌진이었다. 쓸 수 없어진 패는 내팽개치는 게 최선. 대신에 원래 목적이었던 먹잇감을 향해 달려든다. 그러나 그 발버둥은 소년에 의해 막힌다. 마음이 조급한 사람은 움직임이 단순해진다, 수를 쓰지 않는 상대의 움직임을 막는 건 간단하다. 무릎을 찍어넣는 것만으로도 소라의 발걸음은 손쉽게 막혀버린다.
소라는 계속 웃는다. 이번에는 낙담에 의한 자포자기가 아니라, 그녀가 평소에 내비치던 것과 똑같은, 공격성을 여과없이 드러낼 때의 쾌감에서 비롯된 웃음이었다. 소년이 꽂아넣은 다리를 오히려 양손으로 잡는다. 소라가 자기 입꼬리를 찢어 올린다.
"쳤나?"
소년의 다리가 끓어오른다. 눈 깜짝할 새 수를 늘리는 세포들은 종양이 되어 다리를 뒤틀어버린다. 사이에 끼어든 소녀가 아니었다면 몸 전체가 끓어올랐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팔뚝을 쳐올리는 발차기를 보고 소년이 외친다.
"센?! ... 이 아니라 하나?!"
"빠져 있어!"
총을 빼든 하나는 소라의 미간을 노리고 방아쇠를 당긴다. 그러나 소라의 손에 밀려 총구가 빗겨 나가 엉뚱한 하늘만 쏘아올렸다. 손바닥이 찢겨지고 화상에 시뻘개져도 다시 재생을 하면 될 뿐. 상처입은 소라의 왼손에 노란색이 감돌더니 손아귀에 또다른 총 하나가 마치 마술처럼 새롭게 쥐여진다.
"이런 좋은 무기를 보여주면 탐나잖아. 안 되지."
소녀는 여자를 밀쳐버린다. 거리를 확보한 뒤 탄창이 빈 권총을 소라 쪽으로 던진다. 그러나 황의 왕은 그 공격을 피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폭력만을 위해 전진한다. 하나는 자신이 쓰려고 준비해뒀던 나이프를 소년에게 던지듯이 건내준다. 단검을 손에 쥔 소년의 표정이 묘해진다. 굽혀지지 않는 오른쪽 무릎을 억지로 접는 걸 멈추고 나이프를 수직으로 고쳐 잡는다. 서로의 안부를 물을 새도 없이 두 사람은 합을 맞춰 공격을 이어나간다. 아주 좋은 연계라고는 말하기 힘들지만 황의 왕이 함부로 색을 못 쓰게 하기엔 충분했다.
언젠가 소녀와 소년이 싸웠던 순간이 있었다. 소년이 지금의 진영에 합류하기 직전, 서로가 적이 되어 서로에게 무기를 겨눴었다. 비록 무릎에 부상을 입었다곤 하나, 몸이 생각에 따라주지 못했던 그 때와 비교하면 지금이 오히려 더 소년에게 고양감을 안겨준다.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단 것은 정말로 오랜만에 만족감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에, 그 덕분에 소년이 오랜만에 제 실력을 다 내며 싸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전세는 점점 두 사람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운다. 황의 왕이 멀쩡한 상태였다면 또 모르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심각한 부상을 입었던 상태였다. 사방으로 붉은 피 대신 검노란 정수가 흩뿌려진다.
두 세력이 경합하는 지옥도나 마찬가지인 카부키쵸. 성단의 별 하나가 발악하고 짐승만도 못한 존재들이 죽어나가는 그 시간.
황의 왕은 마침내 두 사람의 손에 의해 쓰러진다.
소년이 움직일 수 있는 다리는 소라의 복부를 사정없이 누르고, 한 손은 머리를 찍어누른 채 다른 손에 든 나이프 끝을 아래로 향한다. 당장에라도 그 여자를 죽일 수 있다. 전투의 여파로 너나할 것 없이 숨을 헐떡이던 그 때. 저항을 할 힘도 의지도 없는 여자를 내려다보던 소년이 입을 연다.
"으칼겨."
"뭐를."
중심만 겨우 잡으며 서 있던 소녀가 반문했다.
"요 시끼랑 뭐 할 거 있어가꼬 센 거 하얀 놈 안 꺼낸 거잖여. 꺼냄 바로 죽일라 할 터잉께."
"......"
"대화를 하든지 니 손으로 직이든지 알아서 해라. 고거는 니가 해야 할 일인듯 싶다."
나이프를 돌려 손잡이가 하나쪽으로 가도록 내민다. 하나가 선택한 건 나이프를 받는 것도 여자와 대화를 시작하는 것도 아니었다. 소년이 내민 손을 자신의 손으로 살며시 내리며 소년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도록 땅바닥에 앉는다. 하나가 마주보는 건 여자가 아니라 소년이었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맞아. 하지만 이 시커먼 거 말고 너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
"내하고? ......"
"계속 생각해봤어.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게 맞는 건지. 이 놈을 죽여서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하는지 아니면 완벽한 인간이 되려고 이 놈을 받아들여야 할지. 근데, 잘 생각해보니까, 죄를 묻는 건 내가 아니라 나한테 피해를 입은 사람이어야겠더라. 예전에 네가 시안에게 말했던 것처럼, 나 혼자 속죄하겠다고 해봤자 결국 자기만족일 뿐이야. 나는 네 요청을 들어줘야 할 의무가 있어."
"고거는... 어, 그치만, 이건 네 영혼이니까는 네가 결정을 해야......"
당황한 소년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리다가, 쉽사리 끝맺음이 날 기미가 안 보이자 소녀가 다시 자신의 소신을 말한다.
"나는 죄를 갚고 싶어. 하지만 죄책감도 없이 보상만 덜렁 하는 건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을 거야. ... 이 놈을 받아들이면 아마도 그 놈의 감정이란 걸 잘 느낄 수 있겠지. 그래서 나는 이 욕망을 내가 받아들이기를 원해."
"그럼 글케 하면은 되지..."
"안 돼. 말했잖아, 이건 나 혼자서 결정한 거야. 나 하나 좋자고 나 혼자서만 원하는 거라고. 이 놈을 정말 죽이고 싶어하던 사람이 있다면, 그걸 내가 먹어버리면 그 사람 입장에선 복수의 대상이 사라지는 걸 수도 있어. 그러면 나는 속죄라는 내 목적을 못 이루게 되는 거라고. ... 그러니까 진짜 의견을 내야 하는 건 너야, 복수를 할 자격이 충분히 있는 너. 피해자가 내리는 벌은 죄인된 입장에서 달게 받아들여야지. 나는 네 선택에 전적으로 따를 거야. 그게 내 결론이고."
하나는 소년을 흔들림없는 자세를 한 채 마주본다. 소녀의 갈색 눈동자는 센리 코우카의 본연의 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소년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여느 때와 같이 악마를 닮아있던 노란 눈은 지금은 눈꺼풀 뒤로 숨은 상태였다. 막힌 숨을 길게 쉬어보아도 소년의 가슴에 묵직하게 자리잡은 무언가는 빠져나갈 기미가 없다.
이제 쇼는 선택해야만 하는 시기였다.
쇼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품는다. 분수에 맞지 않게 미래를 꿈꿔도 되는가에 대한 불안도 마음 속에 피어오른다. 그러나 그 불안도 함께 떠안고서 쇼는...
- 산다는 것은.
나이프를 내려놓는다.
"고런 말을 들으면은 죽이고 싶었어도 못 죽이잖여."
"... 나 뭐 말실수 했냐?"
"하하. 그른 건 아니고."
소년이 힘빠진 웃음을 짓는다. 여자의 얼굴을 짓누르고 있던 손을 떼어내고 소녀가 더 편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자세를 뒤로 뺀다.
"이 놈을 묵어가꼬 속죄하고 싶다는 말, 믿어줄게."
"...... 고마워."
"니는 충분히 그래줄 수 있는 사람잉께."
소라가 천천히 눈을 뜬다. 욕망을 담은 노란 눈이 본질을 담은 갈색 눈동자와 허공에서 맞닿는다. 눈썹을 찌푸린 하나를 평온하게 올려다본다.
"가출은 잘 즐겼냐, 소라."
"나름 재밌더군. 아무 계산 없이 마음가는 대로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러냐."
"스스로 고생을 초래하는군. 가볍지 않을 거다."
나하곤 아무 상관 없겠지만 말이다.
형체를 잃고 소녀에게 흘러들어가는 여자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겼다. 노랗게 빛나는 색덩어리들이 제 주인을 찾아간다. 불완전했던 영혼이 다시 하나로 합쳐진다. 그 자리에 남은 건 노란색을 품은 소년과 센리 코우카, 그 두 명이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리에 물방울이 터진 자국이 하나둘 늘어간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죽을 듯이 아프고 무거운 심장을 점점 아래로 내리며, 코우카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통곡을 흘린다. 코우카의 머리에 쏟아진 악행의 기억은 하나가 예상한 것보다 더 넓고 깊었다. 그래도 그걸 온전히 떠안는 것이 그녀가 져야 할 책임이다. 뒤늦은 죄책감은 겨우 되찾은 영혼을 다시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만 같아서, 제 몸을 지키기 위해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몸을 웅크린다. 계속해서 흐느낀다. 끝없이 사과하며 눈물흘린다. 그 모습을 소년은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다.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아무도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 코우카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도저히 말로 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다. 말뿐인 사과를 받는 소년이 얼마나 아플지 코우카는 몰랐다. 그럼에도 이기적으로 사과를 반복하는 자신이 너무 혐오스럽고 또 미안해서 다시 한번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올린다.
카부키쵸에 새로운 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 - *
거점을 무사히 방어해낸 시안-마젠타 연합은 플레이아데스도 잘 처리하고 도시 전체의 인식 조작과 피해 복구도 신의 손을 빌려 완수했다. 그러나 뒷처리가 아예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라서 가건물 안은 아주 바쁘게 돌아간다. 정말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쁘다는 말이 딱 맞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노란 머리의 소년은 할 일이 그다지 없었다. 하는 것도 없이 밥만 얻어먹는 식충이의 고충을 경험하며 시간을 축내고 있다. 자경단과 수호대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않아 붕 뜬 기분을 느끼고 있으려니 코우카가 소년에게 말을 건다. 할 말이 있으니 잠깐 밖으로 나와달란 부탁이었다.
* - * - *
부산스럽고 복잡한 실내에서 나와 뒷문 계단에 덩그러니 앉아있다. 부풀어올랐던 무릎과 얼굴을 뭉갰던 화상 흉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평화로이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으려니, 누군가가 일부러 발소리를 내며 소년에게 다가간다. 소년의 조카인 청록의 왕이었다.
"몸조리는 잘 하고 계십니까?"
"...... 응, 네."
"말씀 편하게 하셔도 괜찮사옵니다. 소녀는 이 곳에 화내러 온 것이 아니기에."
'화를 안 내는 게 더 불편혀...' 불만을 속으로 삼키며 소년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난다. 바쁘지 않냐는 안부 질문에도 그걸 딱 보면 모르겠냐고 쏘아대는 걸 보면 소년에게 마음이 풀린 것 같진 않아보이는데.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멀뚱멀뚱하게 쳐다보고만 있다.
"말씀하신 대로 소녀는 후속 처리때문에 바쁘기 때문에 본론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당신의 향후 처분에 대한 제안을 하고자 찾아왔습니다."
"제안? 통보가 아니라?"
"그렇습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릴 것은 아직 누구에게도 보고하지 않고 소녀만이 품고 있던 희망사항이옵니다. 제안에 따를지 말지는 온전히 당신에게 달렸지요."
"내 알던 퍼렁개들치고는 상당히 유하구만."
"과찬이십니다. 다만 피해자가 정한 벌을 따르겠다고 말씀하셨던 당신께서 소녀의 제안에 따르지 아니한다면 소녀는 물론이요 소녀의 주인되시는 분께서 매우 깊이 실망하시지 않을지요."
그렇게 못박지 않아도 제안에 그대로 따라줄 생각이었다. 소년이 어깨를 으쓱인다.
"... 그러고보니, 주인께서는 당신을 만나뵈셨습니까?"
"아니. 안 봤지."
"그렇습니까. 소녀는 가장 첫번째로 저희 수호대측에서 관리하는 영역에 대한 접근 금지 및 즉결처분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들어오면 직이겠다 고거구만?"
"아무래도 소녀도 사람이온지라, 원수와 얼굴을 마주치고 싶지 않사옵니다.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웃지도 않고 가족과의 생이별을 선고한 청록의 왕이 곧바로 다음 제안을 꺼내든다.
"두 번째는 이 카부키쵸의 외부로 나가는 걸 금지하는 것입니다."
"... 엥? 추방이 아니라?"
"마주보기는 싫어도 적어도 감시는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하늘의 입장에서도 죄인이니까요."
설명을 들어도 어딘가 찝찝한 부분이 있다. 곰곰이 생각을 하는 소년을 아랑곳하지 않고 소녀가 덧붙인다.
"아, 그래도 이 부분은 추후 황의 왕과의 조율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미리 알려드립니다."
"거서 갸는 또 왜 나오는디."
"당신을 막을 수 있는 사람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놔둘 줄 알았습니까. 지금의 황의 왕에게 귀속될 것이 소녀가 드리고 싶었던 마지막 제안이었습니다."
"........."
세 가지 제안 중 마지막 것이 선뜻 받아들이기가 가장 힘들었다. 지금껏 겪었던 경험을 통해 황의 왕의 지배는 벗어나야 한다는 명제가 강력하게 머리에 박혔었다. 때문에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이유라도 물어도 되나."
"이유라 하심은?"
"니 하는 말 다 들어주긴 할 건디, 와 글케 복잡허게 꼬아놨는지 몰겠어가꼬. 솔찍히 기양 직여도 내는 할말 읎잖여. 게다가 니들 입장에선 황의 왕 갸도 못 믿을 놈일 거 아녀."
청록의 왕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다.
"소녀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입니다. 그 외에 다른 이유가 필요한지요?"
"... 글케 말하면은 할말이 읎는디."
"게다가, 소라라면 몰라도 하나와 센은 소녀의 친우이옵니다. 그렇기에 센리 코우카는 믿을 수 있습니다. 결코 소녀의 부하를 죽여버렸던 당신이 얘뻐서 살려두는 게 아니니 착각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거, 하고싶은 말 시원하게 다 해뿌는 건 행님 쏙 빼닮았네 그려."
소년이 은근히 투덜거린 말에 청록의 왕은 과찬의 말씀이라며 은은한 미소를 띄웠다.
* - * - *
해는 점점 저물고 세상 한켠이 붉게 물드는 시간대. 소년을 뒷마당으로 불러내고서도 코우카는 한참이나 말이 없다. 입술을 삐죽 내밀고 불만스레 잡초나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한참을 기다린 소년이 보채자 그제서야 서론을 조심스레 꺼내놓는다.
"그... 너... 들었냐. 그거."
"뭔질 말해야 답을 해주지."
"그게... 좀... 내가... 조금... 심하게 좀, 나댔잖냐. 솔직히. 그것때문에 시안이랑 얘기를 좀 해봤는데, 사형은 안 당하도록 막아보긴 하겠다는데 처벌을 피하긴 힘들 거래. 아마 나는 더이상 색을 나눠줘서 세력을 넓힐 수가 없을 거라던데. 그게 어느 정도로 심한 벌인지 나는 잘 실감은 안 되지만..."
뒷목을 쓰는 그녀가 하는 말은 소년으로선 어느정도 예상을 하던 사항이었다. 비일상과 일상의 경계는 철저히 지키는 타카마가하라가 이번 사태를 그냥 보고 넘길 리가 없지. 오히려 죽이지 않을 거라는 게 소년에겐 더 놀라웠다.
"근데, 봐봐라. 나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 저번 크리스마스 전까진 그냥 알바만 뛰면서 대학 다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 피해 보상이나 그런 비슷한 걸 해주기엔 나는 너무 작아. 현실이 그래. 이래선..."
그녀가 뒤이어 무슨 말을 할지 소년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대신 예전에 푸른 소녀와 했던 대화가 저절로 떠오른다. 굳이 자신을 살려가면서 코우카의 옆에 두는 이유가 뭔가 했더니, 친구가 그나마 가지고 있는 걸 지켜주려는 노력이었던 모양이다. 코우카 본인이 그걸 알고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 젠장, 이런 부탁 하는 것 자체가 개같을 거 다 알아. 미안해! 계속 내 아래에 있는 거 X같겠지! 떠나고 싶겠지! 내가 개X끼야, 알아!"
"갑자기 별 설명도 읎이 글케 자아성찰을 해뿌면 디게 당황스러운디..."
"근데! 정말로! 조금만 더... 떠나고 싶다면 언제든 보내줄 테니까, 조금만 더 내 곁에 있어줄 수 있을까."
"......"
소년은 입을 닫았다. 이미 소년에겐 코우카의 옆에 남는 게 기정사실화 되어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걸 부탁받았다는 느낌에 벙찐 것이다. 그걸 소년이 불쾌해한다고 느낀 코우카는 눈을 내리깔며 자기의 옷자락을 꾹 잡았다.
"속죄하겠다고 한 주제에 기대기만 하는 거 뻔뻔하지. 한 입으로 두 말 한다고 해도 할 말 없어. 애초에 나라는 사람을 믿기가 힘들 거야. 너를 괴롭게 한 소라도 결국엔 나의 일부였으니까, 솔직히 나도 나를 못 믿겠어. 언제 다시 엇나갈까 두려워. 내가 하려는 게 옳은 일인지도 모르겠어. 나 혼자서는 역부족이야, 그걸 알 수 있는 힘이 부족해. 그러니까, 내가 다시 엇나간다면 나를 바로잡아줘. 필요하다면 나를 때리거나 죽여도 좋아. 내가 다시는 나쁜 일을 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속죄를 다 할 수 있도록 네 힘이 필요해. 너와 같이 처음부터 생각해나가고 싶어."
코우카가 쇼에게 손을 내민다. 깎아내리는 듯한 성찰과는 달리 코우카의 표정은 자신감과 굳은 결의가 담겨 있다.
"나를 도워줘."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쇼의 인생은 원해서 선택된 걸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집안은 쇼가 절대 선택할 수가 없다. 2020년으로 넘어온 것도 소년의 선택이 아니었으며, 날려보내진 이 곳에서 하고 다녔던 악행은 쇼가 절대 선택하고 싶지 않은 행동이었다. 사실, 소년의 입장에선 코우카의 손을 잡는 것조차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악행의 업보로서 황의 왕의 밑에서 지내야만 했기 때문에.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는 코우카는 소년을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쇼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쇼의 마음이 동했다. 쇼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품는다. 분수에 맞지 않게 미래를 꿈꿔도 되는가에 대한 불안도 마음 속에 피어오른다. 그러나 그 불안도 함께 떠안고서 쇼는 코우카의 손을 잡기로 결심한다.
"같이 죄인 된 입장에서 도와달란 부탁을 들으면은 당연히 도와줘야제. 동지인디."
맞잡은 손은 날씨에 맞지 않게 꽤나 따뜻했다.
7.4. 이벤트 등 독백 ¶
형과 싸우지 않고 현실에 굴복한 누군가의 이야기.
그는 영영 바뀌지 않을 것이다.
- 한 풀 꺾인 한탄
- situplay>1592573274>564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떨칠 수 없는 고민이 하나 있다.
"우메梅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물방울이 맺혀 차가운 물통을 건네받는다. 후배가 챙겨준 거니 받긴 받았다만, 심장에서 나와 온몸을 쥐어잡은 열기에 들떠 물통 뚜껑을 열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지, 형님이 보면 기강이 빠졌다며 혼내기 딱 좋군. 한손으로 내리눌러 세우고 있는 검의 자루에 이마를 대고 한숨을 쉰다. 냉장고에 한달 째 잠들어 있는 맥주가 그리워.
검집과 칼날이 맞부딪는 소리가 난다. 후배가 말을 걸겠다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일 테지. 귀여워라.
"많이 지치신 모양입니다. 이미 본래 목적은 달성하셨으니 남은 임무에선 후방으로 물러서시는 게 어떠신지요."
"나기야, 삼촌."
"예?"
"짜피 아무도 우리 얘기 안 듣는다. 삼촌이라 불러."
"... 유부님."
"사- 암- 초- 온-."
"...... 삼촌."
"그랴."
안 그래도 눈동자가 시퍼래 차가워보이던 시선이 한층 더 매서워졌다. 아니꼽다고 바라본들 쟤가 뭘 어쩌겠는가, 나이 더 많은 건 나인데. 조카가 한숨쉬는 걸 보며 낄낄거리자 없던 기운이 조금이나마 솟아나는 것 같다.
"울 나기가 웬일로 임무 중에 말 걸나 싶드니만 뒤로 빠지라꼬 하러 왔나."
"상태가 평소와는 많이 달라보였습니다. 주제 넘는 참견이었을까요,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녀아녀, 가족끼리 주제는 뭔 주제여. ...... 그른가. 티 마이 나는가벼."
평소라면 내가 뒤로 가겠느냐고 화를 냈을 텐데 이렇게 아무 생각도 안 드는 걸 보니 지금 내 꼴이 말이 아니긴 한가보다. 속이 타들어간다. 달래기 위해 목구멍에 물을 집어넣는다. 아무리 울대를 울려도 갈증이 가시질 않는다. 모든 게 다 그냥, 짜증나.
"그래도 안 디야. 여서 내만치 칼 쓰는기 니 말고 더 있나. 움직일 수 있는 걸 못 움직여 동료를 못 지키는 사태는 피하고 싶구만."
"컨디션 조절 실패와 자만은 파멸의 지름길이 아니련지요."
"내 몸상태는 내가 젤 알어. 내만한 놈 읎단기 자만으로 들리나."
푸른 눈의 소녀는 잠시 고민을 해보다가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인다.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백날 말해도 저 습관을 고칠 생각도 안 하니 원. 언짢음에 언짢음이 얹어진 혀를 가볍게 차주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세워놓고 기대있느라 칼에 묻어버린 흙알갱이를 한번 휘둘러 털어버리자 조카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말씀 안 해주실 생각이십니까."
"극정도 병이여, 병. 임무 망칠 일은 읎응께 안심혀." 짜증을 떨쳐내기 위해 부러 익살을 꾸며낸다.
"오늘만이 아니라도 요 근래 근심이 많아보이셨기에, 임무가 아니라 삼촌을 걱정하고 있는 겁니다. 같은 피를 나누어받은 자로서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염려이지 않습니까?"
나를 똑바로 향하는 저 눈빛에선 가식이나 거짓을 읽을 수 없었다. 형님의 딸이어도 성격은 완전히 딴판이라는 생각이 들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소녀에게 직접 말로 전하면 상심할 게 뻔하기에 대견한 마음은 머리를 쓰다듬는 걸로 전해주었지만.
"울 나기나기 다 컸네그려. 삼촌 걱정해줄 줄도 알고."
"삼촌."
"응?"
"무슨 고민을 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으나, 너무 마음에 담아두진 말아주시길. ... 우메님께선 지금까지도, 이번 임무에서도 훌륭한 공을 세운 자랑스러운 분이시니까요."
칼자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질문의 의도를 몰라 되묻는 조카를 쓰다듬던 손을 급하게 떼어낸다. 뒤돌아 뛰듯이 걸으면서 황급히 검을 검집으로 되돌린다. 사실은, 이 징그러운 검을 던져버리고 여기에서 도망치고 싶어. 모든 걸 외면하고 사라지고 싶은 내 마음이 허락되지 않는 생각인 걸 알아, 그래서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거야. 까딱 잘못하다간 심장에 쌓인 검은 감정이 터져나올 것 같았기에 한동안은 혼자 있고 싶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이마를 식히는 나무가 모든 걸 듣고 잊어버리길 바랄 뿐이다.
"미쳤어, 다들 미친 거야... 자랑스럽다고? 내가?"
오늘의 임무는 하늘에 허가받지 않은 계약자 단체를 제거하는 것.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정보가 새어나갈 가능성이 큰 목격자들도 제거하라는 명령이었다. 한손으로도 나이를 셀 수 있을 어린아이가 뭘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는가. 그런 아이를 보고서도 나는 검을 들었다. 명령이니 어쩔 수 없었다고? 균형에 위협이 갈 수도 있었다고? 다 변명이다. 너는 아무 생각도 이견도 불만도 의문도 없이 그 아이를 향해 검을 겨눴어. 눈을 돌리려 하지 마라, 나!
어떤 이유를 가져온다 한들, 살인자는 그저 살인자일 뿐이란 말이다.
"... 시발, 맥주 땡겨."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떨칠 수 없는 고민이 하나 있다. 허울 좋은 이유를 덧붙여 살인을 칭찬하는 우리들을 정의롭다 할 수 있는 걸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이 고민은 오늘 밤 맥주와 함께 묻어버려야 할 것이다.
- 조각글 - 4
- situplay>1594178379>793
원본글: >1594178379>675
유혈, 살해 등 표현 있습니다. 주의해주세요.
1594053493>553 <<여기 독백을 읽으면 이해가 조금 더 잘 될지도 안 될지도 모릅니다
탈선루트가 무슨 뜻이냐면 이런 뜻입니다... 순도 100% if 조각글이고 원래 스토리하고 관련 없습니다
"더이상은 네 말따위 안 들을겨. 내는... 니 노예가 아녀. 누가 그런기 될 것 같어?"
세상 모든 악의를 끌어모아 인간의 형태로 빚어낸 것만 같은 검은 여자는 이미 생기를 잃은지 오래였다. 아무리 칼로 구멍을 막고 있다 한들, 심장에서 새어나오는 삶은 틈을 비집고 바깥 공기를 맞이한다. 불완전했기에 실패해버린 어중띤 악의는 제 꾀에 넘어가 져버린지 오래. 색을 잃은 눈동자는 갈색빛만이 남아 바로 코 앞의 소년마저 담지 못한다.
그 모습을 소년은 그저 내려다본다. 복수를 성공했음에도 오히려 괴로움만 남아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흘러내리는 건 바닥에 누운 여성이었건만 무너지는 건 소년이었다.
"내 손으로 저지른 니 악과 함께 사라져라. 참회하라. 지옥에나 떨어져서 영겁동안 피와 살이 떨어져나가도록 후회하라."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 소년은 여자를 악이라고 칭한다. 나는 결코 틀리지 않았노라고 떳떳하게 외치기 위하여. 그러나 시원한 마음은 들지 않고 되려 여자가 언젠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 뿐이었다. 계기만 주어진다면 소년은 욕망을 따를 거라 했던가. 그 욕망은 뭐라고 했더라, 그래, 선을 핑계대며 짜증나는 사람을 죽이고 싶어한다고 했던가. 그 말은 그대로 실현되었고, 여자 입장에선 오히려 독이 되어 모든 걸 끝내놓는 결말로 이끈 꼴이 되었다.
이래서야 마치 저 악의 말을 그대로 따른 꼴이 아닌가.
"나는 나쁘지 않아."
쓸데없는 사념을 없애버리기 위해 소년은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소년은 그저 여자에게 도구처럼 휘둘렸을 뿐. 칼을 휘두른 사람을 원망하지 칼 자체를 원망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 소년은 나쁘지 않았다. 나쁜 건 여자였다. 죄인이었다, 악인이었다. 애초에 세상에 악함만 없었더라도 소년이 이렇게까지 괴로워할 일은 없지 않았겠는가!
여자가 가졌던 것과 똑같은 노란 빛의 눈이 노기를 풀고 원래대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나쁜 건 너희 죄인들이야. 전 주인님, 내 평생동안 그걸 증명해주겠어."
그러나, 아무리 합리화를 하고 부정한다 한들 바꿀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소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대로 사람을 죽였다.
몸을 기댄 검의 칼자루를 내리누르는 양손에서 전해지는 감촉이 그걸 생생하게 알리고 있었다.
8. 조각글 ¶
- 1
- 캐릭터가 사는 환경 이야기가 나오길래...
新 "이게 집이여?"
空 "오만하기는. 너같은 도련님은 이해하기 힘들지 몰라도, 이것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
新 "그게 문제가 아이라 사람 산 흔적이 하나도 없응께 문제인겨! 이부자리는 커녕 후라이빤 하나도 안 보이잖여! 이게 뭐셔 이건 이제 집이 아녀 폐허여 폐허!"
空 "수도와 전기는 들어오니 문제는 없지 않나."
新 "...... 혹시나 해서 묻는긴데 여 니 집은 맞는겨?"
空 "주인 잃은 집에 들어왔으니 이제부터 내 집이지."
新 "아아아아 이런 사람이랑 사는 건 싫어어어......"(주르륵)
空 (드러눕)
新 "이건 뭐여."
空 "밤이 늦었지 않나. 잔다."
新 "물론 뭘 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서도, 다 큰 가시나가 오늘 첨 보는 외간남자 앞에서 딸린 방 없는 단칸방에 칸막이도 없이 느무 긴장감 읎는 거 아녀? 뭘 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서도!"
空 "어차피 너는 나한테 아무것도 못 한다. 경계할 이유가 뭐가 있지?"
新 "그게 문제가 아니잖여! 아아... 오늘 온몸이 불살라지고 시간여행하고 억지로 계약 맺은 것보다 니 상대하는기 젤로 피곤혀..."
空 "말이 많군. 군말 말고 자라."
新 "... 네."
- 2
- situplay>1592838261>874
형을 처음으로 이겼던 날을 기억한다. 우리가 처음으로 진검을 잡았었던 날.
그 날도 나는 저택을 탐험하다가 창고에서 날이 무뎌진 칼을 발견했었다. 꽤 고급품인데도 손질이 안 된 게 아버지가 옛날에 쓰다가 버려둔 검인 것 같았지. 검도를 배운답시고 죽도만 주구장창 잡았던 어린 나에게 진검은 마치 오늘 새로 받은 장난감같았다. 기쁜 마음에 활짝 웃으며 어린아이가 들기엔 무거운 검을 양손으로 잡고 휘두르고. 죽도와는 다른 묵직한 느낌이 꽤나 마음에 들었더랬다.
'형한테도 가져다주면 기뻐할 거야.'
아직 환한 대낮에 어린아이가 칼을 들고 다니면 어른에게 금방 들켜 압수당할 것이 뻔하지. 나는 발견한 자리에 다시 검을 내려놓고 곧장 형에게로 달려갔다. 당시 열 살이 되었던 형은 내가 찾을 때면 항상 연습장에서 죽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형한테로 쪼르르 달려간 나는, 귓속말을 하기 위해 까치발을 들고, 보여주고 싶은 게 있으니 보름달이 남쪽에 뜨면 여기로 오라고 전해주었다. 항상 굳은 표정만 짓는 형의 입꼬리가 양 옆으로 3° 정도 올라간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 형도 아마 엄청 기대를 하고 있었을 거다.
그날따라 푸르렀던 달이 뜨고 대련하던 우리를 항상 봐주시던 이누가미犬神님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는 연습장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창고에서 발견했던 진검들을 형의 손에 쥐어주고, 모처럼 얻은 기회니 진검으로 대련하는 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이제 겨우 두 손으로 나이를 세던 어린 아이들에게 칼이 위험하다고 해봤자 얼마나 마음에 와닿겠는가. 늦은 밤에 생각을 깊게 하지 못한 우리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검을 빼들었다.
형은 언제나 나를 이겼었다. (나이 차이가 세 살이나 나는데 체격만 보더라도 당연한 결과이긴 할 테지만.) 형이 강한 건 나한텐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고, 그 때의 대련도 몇 수 가지 않아 끝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진검의 무게가 손에 익지 않은 게 문제였을까. 형의 손에서 검자루가 미끄러졌고 나는 평소 습관대로 빈틈을 노려 칼을 내찔렀다.
평소처럼 죽도를 썼더라면 형이 다치는 일은 없었겠지. 아니, 만약 그랬더라면 나는 형을 이기지 못했을 거다. 그러나 나에게 찾아온 현실은 두 발 딛고 서있는 나 자신과 옆구리에서 붉은 피를 흘리는 형이었다. 이러려던 게 아니었다고, 내가 다 잘못했다고 엉엉 우는 소리에 집안의 어른들이 다 찾아왔다. 그 뒤로는 형이 병원에 이주동안 입원한 것만 기억나지, 나머지 것들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겠다.
하나 확실한 건, 마냥 즐거웠던 칼싸움이 이 때부터 손에 쥐기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리석게도 나는 사랑하는 가족을 상처입히고 나서야 폭력의 무게를 깨달았다.
- 3
- situplay>1593057673>980
"쟈는 누겨."
"플레이아데스.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혼돈 및 폭력 지향 소수단체라고 하더군. 최근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니도 글코 쟈도 글코 왤케 요즘따라 마이 데뷔를 하는겨? 일본이 뭐 그래 좋은 나라라고 기어들오냐고."
"저 자는 일본인이라 하더군."
"진짜냐. 2020년 일본 엉망이구만."
시안 일파와 한 명의 남자가 대치하고 있는 현장, 을 바로 옆에서 숨어 볼 수 있는 작은 사잇길. 건물 벽에 몸을 붙인 두 사람은 바깥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승산은 있어보이나."
"지금 시대에 얼만치 훈련이 되어 있을란진 몰라도 인간 한 명에 퍼랭이들이 저만치 있음 승리는 따놓은 당상 아니겄어? 장하다 울 애기들, 나쁜 놈 때려잡아부러!"
"승산이 없단 소리군. 오늘 목적은 플레이아데스와의 접촉이다, 목표가 죽어버려서야 곤란하지. 도와주고 와라."
"지금 나한테 쟤들한테 검을 겨누라고 말한겨? 내가?"
가면 아래에 어둠이 가라앉은 샛노란 눈동자가 눈 앞의 개의 가면을 노려본다.
"플레이아데스를 보호하며 추격자 없이 내 앞으로 데려와라. 손속 봐준다고 대충 싸우다가 지지 말고, 앞을 막는 장애물은 베어버리도록. 합류는 아지트에서 하는 걸로 하지."
의지를 잃은 노란 눈동자가 골목길 밖을 향하고, 곧이어 칼이 칼집에서 꺼내지는 날카로운 쇳소리가 전장에 더해졌다.
- 5
- situplay>1595123181>643
검은 목걸이를 찬 고양이. 검은 초커를 찬 남성 회사원. 초커를 찬 여학생. 초커를 찬 노인. 남자아이. 비둘기. 개.
한동안 눈에 띄던 부류들은 어느 순간부터 자취를 감추었다. 검은 초커를 찬 존재들이 다 다른 객체인가 싶었더니 강아지로 와달라는 부탁에 한번 개가 와주기도 했었고, 맹렬하고 끈질기게 쓰다듬으려 하자 질색을 하며 두 번 다시 그 모습이 안 보이기도 했었고. 아무래도 내가 처음 추측했던 대로 자경단 쪽에 있다는 변신 능력이 있다는 소문을 가진 그 사람이 맞는 듯 싶었다.
요 근래 보이지 않는 이유가 뭘까. 나한테 들키지 않을 정도로 미행 실력이 올라간 걸까? ... 그것보다는, 찾아올 이유가 없어졌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이렇게나 눈을 감아주며 내 갈길을 가줬는데 나 사는 곳을 아직도 못 찾았으면 크게 실망했을 거다. 실망만 했을까, 실낱같은 희망마저 못 찾고 껍데기만 이끌고 다니지 않았을까.
나를 멈춰줄죽여줄 사람이 찾아올 거라는 희망마저 없었으면 거짓말로라도 웃을 힘이 났을 것 같지 않다.
우리가 있는 곳을 들켜선 안 된다는 명령을 안 받아서 다행이었지. 나의 주인의 말에 따르는 상태가 아닐 때만 골라서 모습을 보여준 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도움은 줄 수 있는 대로 주었으니 이제는 때가 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그래도 계속 보이던 친구가 안 보이니 쓸쓸허긴 하구만.' 마음 졸이는 것보단 할 일을 빨리 해치우고 빨리 편해지고 싶은 타입이라, 눈치 보지 말고 빨리 쳐들어와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야옹."
"......"
이렇게 빨리 와줄 줄은 몰랐는데. 길모퉁이를 돌자 담벼락 위에 식빵을 굽고 있는 고양이가 울었다. 절대 자연적으로 나올 수 없는 자홍색 털에 검은 목걸이. 놀랐던 가슴을 추스르고 고양이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게다* 특유의 발소리가 가볍다.
"왜 인제 와 야옹아. 우리 올만이제?"
"먁."
"여 왜 왔드나. 내 죽일라 온겨?"
전엔 가까이 가면 몸을 숨기기 바쁘더니 이젠 앉은 자리 바로 밑으로 와도 경계만 살짝 하고 도망가지 않았다. 고양이의 붉은 눈이 날 내려다본다. 한참을 내려다보기만 하다가, 내가 심심함을 못 찾고 계속 가던 길 가려던 찰나에 고양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울음소리가 아니라 사람말로 말을 걸었다.
"기회를 줄게."
기회? 무슨 기회를. 계속 말해보라는 뜻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투항하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우리도 원한이 있으니 무작정 용서해주겠다곤 못 하겠지만, 너는... ...어쨌든. 얌전히 항복해."
내가 눈을 깜박이는 게 쟤한테 보일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았지만 나는 그렇게 못 한다. 이미 너무 늦었기도 하고, 그러고 싶어도 못 하기도 하고.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대답하는 내 목소리에 웃음이 섞인 게 느껴졌다.
"내는 못 혀."
"... 이유를 말할 순 없고?"
"할 수 있음 진작에 했으야. 차라리 지금 끌고 가거나 죽이는 기 나을겨."
고양이는 꼬리를 한 번 팔랑거렸다. 인간 목소리도 고양이 울음소리도 아무것도 내지 않았다. 나를 끌고 갈지 죽일지 고민하는 것 같아 쉽게 다루라는 뜻에서 두 손까지 들어줬건만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머쓱하게 손을 내린다.
"기양 가도 디야?"
"먀옹."
"그랴. 언넝언넝 찾아오고."
손을 흔들고 계속 내 갈길을 가기로 했다. 쿨하게 뒤도 안 돌아보고 가고 싶었는데... 뒤는 안 돌아봤어도 고양이가 나를 정말 보내는 건가 싶어 신경은 계속 뒷쪽에 쏠려있었다. 고양이가 움직이는 기척이 없다... 정말로 투항 권고만 하려고 찾아온 거야? 저렇게 친절해서야 나를 제대로 막아줄 수 있을지, 원.
"능력 읎다고 봐주면 큰 코 다칠겨. 내 니 봐줄 정신 읎어서 기양 막 썰어버릴 거거든."
"......"
"니 정땜시 빈틈 투성이면은 챙길 정신 있거든 새끼손가락으로만 싸워 주겄지만서도"
"왜옹."
날카로워진 울음소리는 얕보지 말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게다: 일본식 나막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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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쪄...?"
"아줌마, 다 끝난 거야?"
소년이 등을 기댄 벽의 바로 옆 방문에서 얼굴을 빼꼼 내민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두 사람이 속한 자경단의 모토가 자기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라곤 하지만 남의 가정사에 함부로 끼어드는 건 역시 좀 그렇지 않은가. 진 빠진 소년의 오른손을 붙잡고 한숨만 푹푹 내쉬던 여성은 방 안의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는 건 더 뒤로 미뤄야 할 것 같다고 덧붙이면서.
"이 화상아, 또 다쳤잖아."
"이 정도는 햝으면 나서."
"둘이 서로 알던 사이야? 아줌마가 아는 사람이 있어?"
"타카찡한테 친구가 있단 마랴??"
"셋 다 맞는다."
"내는 거기 왜 끼는디?!"
소년의 입장에선 세 사람의 대화가 여간 신기한 게 아녔다. 자신들만의 세상으로 완결되었던 친구가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친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니. 자신과는 달리 크게 변해버린 친구의 외형도 그렇고, 바뀌어버린 그녀의 주변 세계도 그렇고, 지금까지는 별세계에 떨어졌단 느낌이 더 컸던 소년의 감상이 점차 정말로 미래로 시간이동을 했다는 실감 쪽으로 변해갔다. 그럴 수록 자신은 이 곳과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는 소외감도 점점 강해져갔고.
"...그래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할 말은 없어?"
나이를 먹더니 속내를 읽기 힘들게 변했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뭐 잘났다고 할 말이 있겄어. 하나도 생각 안 나."
"흥, 그래."
"아... 맞어, 떠올랐다. 집세도 안 내고 말없이 사라진 건 미안혀. 내가 사라지고 싶어가 일부러 나간 건 아녔고... 하하, 니 입장에선 25년 전 일일 터인디 기억하고 있을란진 몰겄구만. 아직 기억력은 말짱혀?"
"나 암만 늙어도 너보다는 나아, 이 자식아."
"거야 글컸제, 그랴. 닌 나보다 머리도 좋고 그랬잖여. 그런 주제에 또 잔소리는 글케 많아갖고 내 쫌만 나쁜 짓 할라 그라믄 어디선가 쏜살같이 나타나선 이상한 짓거리 하지 말라고 귀때기 잡아당기고... 그 땐 그게 참 얄미웠는데 인제 보면은 그게 참 고마운 일이었드라고. 부끄럽지만, 뭐랄까, 그리웠다고나 할까... 그 목소리가 그대로 남아있었으면 좋겠었다고나 할까..."
"......"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놈이 말은 또 드럽게 빙빙 돌려요. 옛날과 하나도 바뀌지 않은 친구를 향해 여성은 양 팔을 얌전히 벌렸다.
"못 본 사이에 왜이리 매정해졌어? 너를 보고싶어했던 친구랑 만났는데 포옹 한 번 안 해줄 거야?"
"......"
갈등을 비집고서 솟아나오는 웃음소리. 정말로 기대도 될까하는 고민도 잠시였고 소년은 여성에 온몸을 맡기고 그 몸을 꽉 끌어안았다. 품에 얼굴을 묻고서는 자신의 등을 두드려주는 온기와 다시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그러모은 팔에 힘을 준다. 자기를 보고 싶었으면 미리 말을 하지 그랬냐며 여성을 향한 자기반성을 말하는 소년. 여성은 소년의 등을 가만히 쓸어주다가 자신의 옷이 점점 젖고있단 걸 눈치채고, 방 안으로 다시 슬금슬금 들어가는 두 사람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전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