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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 찍고
- 그렇게 여름이 끝났다. 그녀를 다시 강호로 끌어낸 시작의 여름이.
전후처리에 대해서 이미 논의된 바가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마교에겐 경고를 주고 돌아갈 길을 열어주었으나, 총관의 부하들에겐 자비가 주어지지 못했다.
"이러지 마오! 내, 내가 잘못했소! 부디 자비를..."
생포당한 그들의 운명은 크게 셋이었다. 단지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만 한 하인이나 단순 가담자들은 약간의 고초를 겪고 풀려날 수 있었다. 하지만 총관의 주 전력으로 명부에 오른 이들은 모두 처형하였고, 그중 몇몇은 산 채로 자경단원의 놀잇감 신세가 되었다. 장대에 매달린 단원들의 입관이 드디어 치러졌는데, 상례 위로 내려앉은 것은 두 종류의 곡소리였다.
"대협. 만약 제가 자경단을 세가에 바친다고 하면, 가주 어르신께서 윤허해 주시리라 보십니까?"
그녀는 자경단을 세가에 바칠 생각을 하고 있다. 혼자서 언제까지 저들을 책임질 수는 없다. 자경단이 세가에 편입되면 그녀의 충심을 다시 증명할 수 있으며, 혹 그녀와 세가가 척지게 되어도 옛 단원들 중 그녀의 편에 서 줄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장주는 정인을 되찾고, 모용세가와 석가장은 동맹을 맺었다. 석가장은 이전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흑천성의 서진을 저지할 것이다. 강서궁문은 영 꼬와보이지만 어쩌겠는가? 석가장 없이 삼남단만으로 서진을 막겠는가? 제갈세가와 삼남단은 그녀와 모용세가에 빚을 진 셈이다. 황금을 받곤 아무것도 하지 못한 개방은 덤이다.
곧 대화산논검이 열린다는데, 일도 끝마쳤으니 섬서로 느긋하게 올라갈 생각도 든다. 칼을 찬 자로서 어찌 아니 가겠는가!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고 말지.
"그런데 내가 왜 적호야......?"
그즈음 들려오는 자신의 첫 별호에 그녀는 화나진 않았지만, 꽤 당혹스러웠다. 남자 손 한 번 잡지 못한 노처녀에게 불여시라. 그녀는 그런 적이 전혀 없었음에도, 자신이 백 명의 남성과 동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무슨.
"이상하다. 그것 참 이상하단 말이지...."
그녀는 마당 의자에 여유롭게 앉아 연초를 태운다. 계속해서 밀려오는 야릇한 기분을 음미하며.
***
모용배는 팔짱을 끼고서는 씨익 웃습니다.
"어떨지는 직접 올라가서 알아보는게 낫지 않겠는가. 허허허허!"
그는 지금 이 상황이 굉장히 기꺼운듯 호탕하게 웃어제낍니다.
뭐...모용세가의 전략적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했고 전술적 목표도 전부 확보했으니까요.
대승, 대승입니다!
"하지만 절대 싫어하시지는 않을 것일세. 내 장담하지."
하란은 그러한 대답을 듣습니다.
마당의 의자에 앉아 연초를 태웁니다. 야릇한 기분과 함께 그간의 노고가 희뿌연 연기와 함께 하늘로 흩날려갑니다.
뭉게뭉게 구름져진 연기가 퍼져서 창창한 하늘과 구름 너머로 사라질 때, 하란은 어느새 푸르렀던 녹색들이 점차 시들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나뭇잎은 울긋불긋한 빛을 띄우려는지 준비 중이고.
벼는 고개를 숙입니다.
황금빛 벌판에는 농부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마지막 작업 중에 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알게 모르게 변해오고 있습니다.
세월의 흐름은 지나치게 빠릅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더우고 격렬했던 여름이 지나가고 붉은 장미는 져버렸습니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시원하고. 모든 열매와 곡식이 때에 맞춰 무르익고 마침내 동쪽에서는 길고 길었던 장마가 멎어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가을이 되었습니다.
석가장의 분쟁으로 인해 온 중원이 들썩였습니다. 서로간에 눈치를 보고, 제갈세가와 호재필이 맞붙고, 사천당가의 후계가 마교에 의해 전사하고.
...마지막으로 결국 모용세가의 개입으로 석가장을 지켜냄으로서 사마외도의 호남 제페를 간신히 저지했습니다.
호재필은 격분했고, 무림맹은 사절을 보내 그와 협상을 했습니다.
사천당가가 마교를 끼우는데에 극심한 반발이 있었지만 세가 한창 커진 사마외도를 견제하기 위해 마교와 손을 잡고자 합니다.
사천당가는 이에 격분했고 긴장감이 고조됩니다...
이런 혼란들 속에서 평화를 기원하며 예정되었던 대화산논검은 더욱 큰 규모로 치뤄지니.
모든 중원의 무림인들에게 희소식이 하나 들려옵니다.
대화산논검이 곧 열리리라고.
***
"대화산논검....대화산논검...."
그녀는 곰방대를 휘둘러서 껐다.
"논검도 좋지만 의족을 더 단단한 걸로 구했으면 좋겠는데."
의족 때문에 전력을 낼 수 없다니 통탄할 일이다! 비룡갑 가지고 싶어!
하란이는 슬그머니 일어나 어디론가 느적느적 걸어간다. 섬서로 떠날 준비. 하란이 저놈이 일 내팽개치고 놀러간다는 소리는 들을 일 없어서 다행이다. 침방에 잠깐 들르자.
***
이동합니다!
바느질을 하는 고용인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란이 들어오자 딸꾹질을 하며 합죽이가 됩니다.
합!
***
"남는 천쪼가리 있나? 되도록 길쭉한 걸로."
그녀는 뿔만 아니라 손등과 목의 비늘까지 완전히 가려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온 중원이 지켜보는 논검에서 그걸 내보였다간...
영물들처럼 내단 사냥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알 수 없는 오한을 느꼈다.
***
아이템 취급받지는 못하지만, 대충 길다란 천쪼가리를 받습니다.
현사가 쓰고있던 멱리를 뺏어올걸 그랬습니다. 아쉽군요!
***
그녀는 붕대로 하듯 손가락 사이로 천을 감아 손등을 가리고, 목에도 감았다. 목이 졸리는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다.
"저 섬서에 다녀오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주변인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사실 양해가 아니라 통보에 가깝다. 하지만 이건 대화산논검! 대화산논검이라고! 누가 토를 달쏘냐! 거기다 여기서 일류는 그녀 혼자밖에 없는걸.
***
"아니. 소저. 그럼 이 친구들은 어쩌시고."
신채훈이 살짝 당황합니다.
"정말 혼자 가실겁니까? 혼자서?"
금소협이 칭얼거립니다. 아니 얜 또 왜이래?
***
"자경단이요? 느긋하게 원래 하던 치안 업무 하고 있으면 안되나요?"
화산에 쟤들을 다 끌고 들어갔다간 경을 치지 않을지.. 그녀는 질척대는 금소협에 난감해하며 말했다.
***
"으음..."
신채훈은 잠시간 침음성을 흘립니다.
...너, 설마 하란이가 가면 니가 관리해야되는게 귀찮아서 그러는거 아니냐???
"소저. 자경단은 제 말이 아니라 소저의 말을 듣습니다만. 떠나기 전에 확실히 전달이라도 뭘 해주고 가시는게..."
그렇게 말하는 신채훈과...
"저도! 저도 화산논검 보러가고 싶다구요! 이 시기에 섬서로 가시는거면 딱 하나밖에 없잖아요!"
이래서 눈치빠른 애새끼란...헛. 제가 지금 무슨 말을!
금소협이 자기 나이답게 떼를 씁니다.
***
"걱정 말라구요. 단원들한테도 필요한 건 다 말하고 오는 길.."
아 금소협은 진짜 왜이런대니!
"소협이랑 같이 갔다가 어린 남자 잡아먹는다고 사람들이 수근대면 어떡해요! 안 그래도 별호가 이상하게 붙었는데.."
***
금소협은 시무룩해집니다.
신채훈은 방긋 웃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한 번 쉬실 때도 되셨죠. 다녀오십쇼."
허락아닌 허락을 받아냅니다!
***
"미안해요 금소협. 소협이 일류가 되면 그 때 같이 가기로 하죠."
무야호 신난다! 그녀는 금소협에게 약속아닌약속을 하곤, 그대로 행장을 꾸려 도망가버린다.
사천 찍고 섬서로!
***
사천으로 이동합니다!
길을 가던 도중에 저 멀리서 제갈세가의 깃발이 보입니다!
???않이 킹갈세가가 킹째서 이 곳에?
가까이 접근할 수도, 그냥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
어..킹갈세가? 어째서 여기에? 그녀의 호기심이 동하기 시작했다.
제갈세가랑 척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녀는 제갈의 은인이라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녀는 쫑쫑거리면서 제갈의 깃발을 향해 다가가본다.
***
다가갑니다!
제갈세가의 깃발이 있는 곳으로 하란이 다가가자, 왜인지 호들갑을 떨어댑니다.
흠. 방정치 못하게시리....
그러자 누군가가 툭 튀어나옵니다. 하란은 모르는 얼굴입니다.
하지만!
상대방은 하란을 아는듯 포권을 해옵니다.
"강호에 이름이 드높은 여협을 만나뵈어 영광이외다. 본인은 제갈연준이라 하는 사람이오."
들어본적 없는 이름입니다.
"사천으로 가시는 길이라면, 함께 가시지 않으시겠소?"
띠요옹
***
저런 방정맞은 호들갑이라니. 오대세가면서 말이야.
그녀는 저들의 신상을 모르지만, 저들은 그녀의 신상을 아는 모양이다. 스스로를 제갈연준이라 칭하는 이는 포권하며 그녀에게 인사한다. 그녀 또한 예를 갖추었다.
"미사하란입니다. 마침 저도 사천으로 가는 길이나...걸음이 느려서 폐를 끼칠까 그것이 걱정되는군요."
***
"하하하. 마차가 있지 않습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는 왜인지 하나의 고수라도 영입하기 위해 안달난 사람 같습니다.
***
"아하하, 그럼 사양 않고.."
이 사람 단순히 호의를 배풀려는 건가. 다른 꿍꿍이가 있어 뵈는데. 일단 일이 어떻게 되어가나 살펴볼까.
***
마차에 오릅니다!
저 뒤에 화려한 마차 한 대와 하란이와 같은 나름 실력있는 무사들이 타는 마차들 중, 하란이는 후자에 탑승합니다.
다각...다각...다각...
곧 사천당가에 도착합니다!
사천당가를 처음 본 하란이의 감상은.
을씨년스럽다입니다.
***
"아으으!"
마차에서 내려서 기지개를 폈다. 팔은 뒤로 쭉 빼고, 가슴은 앞으로 쭉 내밀고.
사천에 왔으니 사천의 명가에게 문안은 드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혹시 우리가 방문하면 안 되는 때에 방문한 것인가요?"
***
"하...하하..."
제갈연준은 멋쩍게 웃습니다.
사천당가는 제갈세가의 방문에도 문을 열어주지 않고 굳건히 닫혀있습니다.
우선 문을 열고 손님으로서 들어가는 것이 먼저일 것 같군요.
제갈연준은 초조한 눈으로 화려한 마차 쪽을 쳐다보지만, 그 쪽에선 별 반응이 없습니다. 이윽고 한숨을 내쉬는군요.
"소저, 죄송하오나 저희를 조금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
"어머, 마차값이 꽁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녀는 실실 웃는다. 내 이럴 줄 알았지. 하지만 나는 지금 휴가 중인데..
"말씀해 주시지요."
말은 연준에게 하고 있지만 그를 보고 있지 않다. 그녀는 당가의 전경을 둘려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
제갈연준은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냅니다.
"그것이, 저희가 실은 당가와 의논할 지급한 일이 있습니다만...당가가 저희를 손님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강호에 적호검희로 이름 드높은 여협이신 미사 소저라면 능히 이 일을 해결해주실 수 있을거라고 여깁니다만...괜찮겠습니까?"
하란이의 휴가. 그 없.
***
"보통 이렇게 사절이 왕래할 시에는 사전에 연락이 오고가지 않습니까?"
제갈에서 말을 걸어도 당가에서 응답이 없으니, 일단 지르고 보자는 식으로 다짜고짜 온 것이 분명하다.
"제갈이 이토록 일을 다급하게 하니 또 일이 터지려는 것입니까? 중원에 불던 피바람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인지..."
그녀는 몸을 휙 돌려 연준을 본다. 바로 말하지 않고 몇 초 뜸을 들인다.
"문만 열어드리면 됩니까?"
***
"하하하."
제갈연준은 얼버무립니다.
....싸늘하다. 비숑이 날아와 가슴에 꽂힌다...
***
".....^^"
그녀는 소매 속의 향낭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당가의 대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리면서 크게 말한다.
"호남의 적호검희와 제갈세가의 사절이 당가에게 문안드리길 원하오-!"
***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감정을 좀 더 선명히 봅니다!
불안, 초조, 두려움, 짜증...
...무엇에? 무엇때문인걸까요?
***
안 열린다. 연준이를 보고 어깨를 으쓱한다. 안 열리는데.
"거 아무도 계시지 않소?"
다시 한 번 말해본다. 날 탓하지 마. 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저 친구가 어째서 저리 불안해 하는지, 나랑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조금 관심이 생길지도..?
***
아무도 나오지 않습니다.
흐음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한담...
당가와 연관이 있는 사람은 없을까요?
***
"아 내가 남궁지원 공자랑 편지 주고받는 사이인데..."
***
하란은 거짓말을 쳐버립니다.
남궁세가의 남궁 지원의 친우가 신세를 지러왔다고 말입니다.
그 말에 사천당가의 문이 열립니다.
"....."
거짓임을 알고 있음에도 사천당가의 일원들은 남궁세가란 이름에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듯 하란을 쳐다봅니다.
"뒤의 사람들은?"
제갈세가에 대해 말을 잘 해줘야합니다.
***
"제갈세가의 사절입니다. 원래라면 제가 이틀이나 더 걸려서 사천에 당도하였겠으나...저 대협분들께서 작은 잔질인에게 온정을 베풀어주사, 여독과 피로 없이 안전하게 올 수 있었지요."
"부디 저들에게도 당가에 문안 올리는 기쁨을 주시겠습니까?"
***
당가의 문지기는 이를 악물고는 그들을 들여보냅니다.
제갈 연준이 감사를 표합니다.
이제부터는, 저들의 일이겠지요.
***
하란은 주변을 돌아다녀봅니다.
타다다다다닥!
무언가 가벼운 날붙이들이 땅을 파고드는 소리가 들립니다.
음?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볼까요? 다른 곳을 찾아볼까요?
***
"오호라"
이것은 분명 작고 가벼운 암기를 날리는 소리이다. 은잠무를 맞아봤으니 조금 안다..
남의 수련을 훔쳐보는 것은 해선 안될 일이고, 대충 기척을 내면서 슬그머니 다가가볼까나.
***
하란은 의족을 딱딱 소리내어 움직입니다.
피잉 - !
그리고 막 연무장에 도착했을 때 하란의 귓볼을 스치고 가는 날카롭고 작은 암기 하나.
암기는 뒤의 목재 벽에 부딫힙니다.
아래로 휘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큰 눈. 길게 기른 머리, 이제 열대여섯이나 되었을까 싶은 어린 얼굴, 자신감없고 소심해보이는 태도와 인상.
"괘...괜찮으세요...?"
미사 하란은 당재연과 마주합니다!
***
이크, 고개를 옆으로 조금 기울자 비도가 날렵하게 귀를 스친다. 피는 나지 않았다.
"수련을 훔쳐보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소저. 그리하여 일부로 기척을 크게 한 것이랍니다."
파공성 탓에 귀가 조금 아리긴 하다. 그녀는 뭉근하게 자기 귀를 손으로 쓸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
"다, 다행이에요."
재연은 몸을 움츠리면서 그렇게 대답합니다.
"거..거기에 독이...있어서..."
아 그런건 빨리 말하라고!!!
***
"독..."
그 독 혹시 만지기만 해도 중독되는 그런 계열의 독입니까 dang-clan-girl?
그녀는 여전히 귀를 부여잡고 뒤를 돌아 벽에 박힌 암기를 본다. 잘 모르겠지만 치지지직 하면서 연기가 나는 기분인데. 갑자기 귀도 화끈거리는 기분이고, 거길 만진 손도...기분 탓인가?
"소저. 스치고 지나갔는데 저 괜찮나요?"
눈은 웃고 있는데 눈썹은 안 웃고 있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어어어
***
당재연은 우물쭈물하며 양 검지손가락을 마주대고 있습니다.
"그, 그렇게 강한 독은 아닐테니까요...네...."
하하하. 그렇군요.
"곧...쓰러지시고 열이 올라올거에요...조금 앓으면 금방 괜찮아지실거에요!"
그리고 눈을 빛내며 그렇게 대답합니다.
아 ㅋㅋ
하란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독에 중독됩니다!
2단계 부상을 입습니다.
털썩.
하란은 바닥에 쓰러집니다.
"소...손님을 모셔가주세요..."
쓰러져 눈이 감겨가는 하란의 귓가로 당재연의 소심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
..
...
....
.....
눈을 뜹니다.
낯선 천장이 하란을 반겨줍니다.
"아. 일어나셨군."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일자로 기른 콧수염을 쓰다듬는 남자가 말을 겁니다.
***
아ㅋㅋㅋ 사악한 당가의 독에 중독된, 가련한 용인은 그만 쓰러지고 마는데... 하란이는 이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서서히 의식이 돌아오고 눈이 뜨였다. 당연하지만 낮선 천장과 낮선 사람이 있었다.
"으음."
그녀는 침음을 내면서 누운 채로 자신의 머리통을 매만졌다. 혹시 아는가 무의식적으로 해독을 하겠답시고 내기를 운용하다가 뿔이 올라와서. 사람들이 다 본 건 아닐지.
***
다행히 그런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운이 좋았네. 해독제를 먹여놓았으니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해독이 될 것이네. 지금은 여기 누워서 안정을 취하는 것이 좋을 터."
그는 콧수염을 만지작 거립니다.
"자네가 살아있는걸 보아하니 아가씨께서 다행히 그 유순한 심정을 잃지 않으신 것 같구만. 그런데 자네는 누군가?"
그러는 당신은 뉘쇼?
***
"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미사하란이라 합니다."
그녀는 뒤에 구구절절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았다. 마! 내가 마! 호남에서 말이야 어?! 마교랑 사파랑 어?!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어지간히 알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문 앞에서부터 제 이름을 크게 외쳤는데...못 들으셨나 보군요."
***
"난 언제나 의약당에 있으니 말일세. 하란 소저라고 부르도록 하지. 난 당각의라 하네. 껄껄껄."
장난을 잘치는 당각의 대협...
"모자라지만 의약당주를 맡고 있지. 그런데 자네는 우리 재연 아가씨랑 무슨 사이길래 독도 맞는 호사를 다 누리는가? 내 질녀라지만 요즘은 아주 무서워서 다가가지도 못하겠던데."
? 다가가면 독침을 날리는데 못다가가는게 정상 아닌가?
***
"저는 당가를 방문하는 것이 처음이고, 재연 소저와도 초면입니다. 당각의 대협."
흑흑 첫만남에 이런 신세라니 불여우는 너무 슬프와요.
"그저 소리가 나길래 기척을 내면서 다가갔더니 이리 되었습니다.."
독을 맞는 호사라니. 당가에선 업계 포상인가? 그렇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독침을 쏴대는대 어떻게 다가가라구!
***
"운이 좋았구만."
당각의는 컬컬 웃으며 약병을 천으로 닦습니다.
"여기엔 어쩐 일로 들어왔는고?"
***
"휴가를 받았습니다.."
내 금쪽같은 시간에 이렇게 맥없이 누워있다는 것이 개탄스럽도다! 그녀는 생각했다.
"화산논검이 열린다기에, 느긋하게 사천을 거쳐 섬서로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유람하듯 말입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제 모든 행동은 모용세가의 입장과는 상관 없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적호검희가 당가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뒤에서 수근거릴 사람들이 많다. 이런 것은 확실히 해둬야지 않겠는가.
***
"허허허. 대체 누가 그런 생각을 안할 수 있는지 난 잘 모르겠구만."
이미 여기에 온 것 자체가 정치적 스탠스로 비춰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곧 아가씨가 이리로 올걸세. 난 이만 일어나봐야겠구만."
당각의를 붙잡고 장난을 잘치는 당각의 대협과 이야기할 수도, 당재연을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뭐..모용가주님의 생각이 중요할 뿐이지요."
난 분명 말했어! 이건 정치와 상관없는 행동이라구! 내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그녀는 고개를 설설 돌리면서 그의 눈을 피했다.
"전 분명 말씀드렸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린 것도 모자라서, 누운 채로 뽀시락거리며 옆으로 누워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마치 나 삐졌어 너랑 안 놀아 하는 열댓살 꼬마애같은 느낌으로...
***
껄껄껄 웃으며 당각의 대협은 밖으로 나갑니다.
.
..
...
....
.....
그리고 작은 여자 아이가 쏙 하고 안으로 들어옵니다.
당재연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
등을 돌리고 누워있던 그녀. 다시 소리가 들리는 곳을 빼꼼 본다.
"아, 소저."
원래는 그렇게 안 봤는데 아무렇지 않게 사람한테 독침을 날리고 그 효능을 일일히 설명해 주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리 안녕한지는 모르겠다마는. 소저, 대체 제가 무슨 독에 중독된 것입니까..."
게슴츠레 뜬 눈에는 은근한 원망이 조금 섞여있었다.
***
"비문철독이라는 독이에요...."
그게 뭐임.
하란은 비문철독에 대한 지식을 얻습니다!
마침, 부상도 해제됩니다.
"괘...괜찮으신지 보러왔어요오...."
***
비문철독...기절과 발열을 일으키는 약독...이런 거 궁금하지 않았어..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모자를 다시 썼다. 토끼 쫑쫑.
"지금은 좀 나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뒤에 이어 말한다. 수련을 아주 열심히 하시더군요.
***
"하....하하..."
당재연은 어색하게 웃습니다...
수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군요.
***
"...논검에는 참여하십니까?"
이야기하기 싫은가. 화제를 바꿔보자.
"저는 한번 참여해보려고 사천을 건너서 섬서로 가려 합니다만."
그녀는 하남으로 가야하는 걸 모르고 있다. 의외의 무식..
***
재연은 굳은 얼굴로 작게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그, 그런데....장소는 하남인데요..."
?
***
"하남이라니요? 화산파의 화산논검이 어찌 하남에서? 예? 맹 주최요?"
그녀는 진짜 모르는 사람처럼, 아니 사실 진짜 모르는 사람이므로, 논검이 하남에서 열린다는 말을 처음 듣는 반응을 하였다.
아무리 약삭빠르고 명석한 사람이라도 모르는 게 없을 수는 없는 것이다. 명탐정 설녹함주도 그렇다. 지구가 태양을 공전한다는 사실을 동료 와순이 말해주고나서야 알지 않았는가?
그녀가 남 말 안 듣고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유형의 사람이 아닌 것이 다행이었다.
"...이게 바로 새옹지마, 전화위복이로군요 당 소저. 소저께 침을 맞지 않았더라면 저는 필시 하남이 아닌 섬서로 향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화산논검 참여는 5년 후로 훨훨 날아갔겠지. 그리고 석가장으로 돌아가서 잘 다녀왔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그 쪽팔린 기행을 설명해주어야 하리. 끔찍도 하여라. 식은 땀 날 것 같아.
그녀는 멋쩍게 웃었다.
***
재연은 작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란은 이제 당가에서 떠나 하남으로 이동할 수도 있고, 남아서 재연이와 담소를 더 나눌 수도. 아니면 사천당가와 관련된 여러가지 일을 겪을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씁 하 그 다리잘린 친구 보고 싶었는데 언젠가 다시 만날 기회 있으려나..있겠지...대화산논검은 이번뿐이니까...빨리 화산논검 가보고 싶으니까..
"하남. 고맙습니다 당 소저! 저는 섬서 아니라 하남으로 갑니다!"
- 즐거운 휴가
- 하남으로 이동합니다!
의족의 효과와, 급한 사정을 감안하여 이동 패널티가 완화됩니다!
하남에 도착합니다!
하남은 현재 대화산논검으로 인해 축제 분위기 그 자체입니다.
마침 오늘까지 접수라는군요!
일류부터 삼류까지 나오는 대회와 일류만 겨루는 대회가 있습니다.
***
시뻘겋게 물든 단풍과 열렬한 축제 분위기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온 도시가 끓어올라 흐물흐물 녹아버릴 지경이다.
온 거리와 뒷골목에 사람이 붐비지 않는 곳이 없으며, 대목을 노리는 장사치들의 목소리가 요란하다.
"아이쿠 이거, 인간들이 버글버글해 아주?"
그 인산인해 속에서 그녀가 걸음하기엔 상당히 까다로웠으리라. 휘청거리고 자빠지고 넘어지기 싫어서 이름모를 남정네 어깨를 잡고 늘어져 가면서, 물어물어 접수처까지 왔다. 험난하여라!
"논검에 참여하고 싶소. 어휴..."
***
예선전을 바로 치루실 수도, 다른걸 하시다가 치루실 수도 있습니다!
***
"일단 처음이니까....처음부터 다 보여주긴 조금 그렇지?"
하란은 꼼질거리면서 가밀라비애루를 달칵 빼낸다. 그리고 전에 사용하던 한철합금의족을 다시 끼우는 것이었다. 설마 초장부터 정신나간 놈이 나오겠어? 하는 생각 절반, 그리고 수를 숨기고 싶은게 절반이다. 이게 좋은 수일지 나쁜 수일지는...부딪히면 알겠지.
***
이미 착용되어 있어용 흑흑....
예선전을 치룹니다!
"모용세가의 적호검희! 그 상대는....!"
이름도, 사문도 별 볼것 없는 무명소졸이 상대로 나옵니다.
"적호검희...소문대로 대단한 미모시구려. 잘 부탁드리외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됩니다!
상대는 의족을 노리고 검을 베어옵니다!
이것이...정파?
***
"부디."
하란은 싱긋 웃으며 기수식을 취하고 자세를 갖추었다.
상대는 무슨 경합이 시작되자마자 의족을 노리고 검을 휘두른다. 그녀는 이런 정직한 반응이 너무나 좋았다. 짜릿해. 늘 새로워. 왜냐하면 그녀가 가장 많이 보아온 유형의 상대이기에, 가장 많은 정보가 쌓여있는 유형의 상대이기 때문이다.
팔이 늘어나는 무공을 쓰거나 태생 자체가 유현덕이 아닌 이상, 검을 내지를 때 어깨높이로 내지르면 길고, 그보다 위나 아래로 내지르면 짧아진다. 그리고 상대는 검을 의족으로, 매우 아래로 내지른다. 검이 급격히 짧아진다는 말이다.
그녀는 큰 동작을 취하지 않았다. 그저 의족을 뒤로 한 발자국 물리고, 허리를 앞으로 쭉 빼면서 2성 치악의 묘리로 상대의 머리를 노린다.
예상대로라면, 그녀의 검이 먼저 목표에 다다를 것이다.
***
하란의 판단은 매우 정확했습니다!
아주 가볍게 의족을 살짝 뒤로 뺍니다. 당연히 검은 허공을 가르고 돌바닥과 부딫혀 까가강 소리를 냅니다.
당황한듯한 상대는 떨리는 눈으로 하란을 쳐다봅니다.
이런. 소협.
너무 쉬운 것 아닌가?
《 교룡검법 - 치악 》
머리를 노리고 하란의 검이 빠르게 날아듭니다. 상대는 허둥지둥 이 악물고 검을 회수하지만 하란의 검이 훨씬 빨랐습니다.
치익.
옅은 생채기를 내면서 하란의 검이 깔끔히 목을 겨눈채로 움직임이 정지됩니다. 하란이 싱긋 웃습니다.
"져...졌습니다."
예선전을 통과합니다!
***
"호남에서도...전부 홀린 듯 다리만 쳐다보시더니 소협 또한 그러하시군요..."
"제 다리가 그리 마음에 드십니까...?"
하란이 얘 표정이 조금 이상하다. 분명 웃고 있는데... 웃고 있는데... 이상하게 기기묘묘하고 또 야릇한 표정...
하여간 그녀가 이겼다. 검을 다시 검집으로 집어넣는다.
"수고하셨어요~"
아까 그 표정은 달궈진 가마솥 안에 떨어진 물 한 방울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장에서 내려와 이어질 다음 경기를 준비한다.
***
아 김캡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무튼 초입 정도 되는 사람이 올라옵니다.
대회 수준이 너무 낮은거 아닙니까? 불-편하군요!
선공을 양보하시겠습니까?
***
'가밀라비애루로 바꿔끼우는 건 조금 더 있다가 해도 되겠네?'
조금 불안했던 것이, 합금 의족을 끼우고 나갔다가 강자와 덜컥 마주치면 그런 낭패도 없으니...다행일 따름!
"자, 먼저 오시지요."
내공은 일단 보류. 하란은 중단세를 취하며 곧 치고 들어올 상대를 면밀히 관찰한다.
***
하란은 중단세를 취합니다. 검끝은 상대의 목을 겨눕니다.
어림도없지!
상대는 똑같이 하란의 불편한 다리를 노리고 검을 찔러들어옵니다.
하.
그러니까.
너무 뻔하다니까?
***
'이 친구 아까 내 시합을 봤나본데?'
상식적으로 그렇다. 아까 썼다가 고스란히 실패한 방법을 들고 나온다? 그렇다면 경우의 수는 둘. 똥멍청이거나 환幻을 걸려고 들거나. 그녀는 후자에 걸기로 했다. 아까 썼던 수는 안 된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검을 내려 맞받아치며 막는다. 두 검이 얽히자 곧장 칼날을 타고 들어가며 치악. 이번에는 상대의 발등을 노린다.
그녀의 다리는 어차피 의족. 칼에 조금 부딪히고 스쳐도 다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는?
***
까가강...!
하란의 판단은 매우 정확했습니다!
검과 검이 마주하면서 일어나는 철의 소음, 기운, 감정!
하란의 검은 뱀처럼 미끄러지듯이 상대의 검면을 타고 위로! 위로 올라갑니다!
《 교룡검법 - 치악 》
저 드높은 하늘 위의 구름을 타고 내달리는 용의 움직임처럼 올라가는 검. 그것을 막아내기 위해 몸을 뒤틀며 피해내는 상대.
그리고 그걸 지켜보면서 한 쪽 입꼬리를 올리고 싱긋 웃는 미사하란.
뚝.
하란의 검은 직각으로 꺾여내려가면서 발등을 내리찍습니다.
퍽 - !
"끄아아악!"
의족을 단 발로 가볍게 배를 차듯이 밀어냅니다.
우당탕탕.
꼴사납게 상대가 데구르르 구릅니다. 하란은 요염하게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걸어갑니다.
터벅. 터벅. 터벅.
척.
쓰러진 상대의 목에 검을 겨눕니다. 햇살을 받아 검이 반짝입니다.
"...졌, 졌소."
승리합니다!
***
수가 환히 보이는데 애써 외면할 수도 없으니! 결국 이리 되는 것이다.
"수고하셨어요."
그녀는 검을 휙 돌려 역수로 쥐고 검집에 넣었다. 스으으윽...짤칵.
꼭 죽이지 않아도 되는 이런 것도 생각보다 뒷맛이 상큼하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
지금부턴 자유행동이에용!!
***
"본선은 기다려야 한다구요.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턴 무엇을 하나. 만남을 추구할지..어찌될지...
그녀는 아직 경기가 벌어지는 연무장이나 아무 곳을 두루 돌아다닌다.
***
하란의 주변에는 상당히 사람들이 몰립니다!
그 중에는 꽤 눈여겨볼만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선 예은낭자라 밝힌 여협.
그리고 남궁세가의 절강대협.
둘이 따로 얘기하고 있으니 지나칩시다.
잡담이라도 나눌만한 인물.........
!
"소저!"
그 때 누군가가 하란을 부릅니다.
"석가장의 대하백입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이름은 처음 들어봤지만, 얼굴은 낯이 익습니다. 한한검 석지훈의 측근 중에서도 말석이었던 자입니다!
***
"어! 아! 그!"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 있는 사람은 장주님 부하 중 하나! 분명 얼굴을 아는데! 이름을 몰라! 그녀는 상대가 이름을 밝히고 나서야 이름을 불러줄 수 있었다.
"대 소협! 이곳에서 뵐 줄은 몰랐습니다!"
적호가 사람 믿기를 즐겨하진 않으나, 그래도 함께 모가지를 걸고 찌그락째그락거리던 사이인데 생판 남보다 각별한 것은 당연한 이치라.
"소협도 논검에 참여하려 오셨습니까?"
***
"하하하. 물론입니다. 금소협과 신대주께서 굉장히 보고싶어하고 계시지요."
대하백이 웃으며 그리 말합니다.
"다들 소저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논검이 끝나고 모용세가에 돌아가기 전에 한 번 쯤 얼굴이라도 비춰주시지요."
***
"당연하죠. 아직 장주께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거늘."
"곧 본선이 열린다는데 구경하실 생각이십니까?"
***
"하하하. 제가 실력이 미천하지만 한 번 참여는 해보려합니다. 일단은 올라갔으니까요."
하백은 멋쩍게 웃으며 그리 말합니다.
"일단은 관전을 하려고요. 만약 실력이 너무 차이나면 어렵지 않겠습니까? 만약 소저라도 마주친다면...어이쿠 하하하."
***
"저도 본선에 나갑니다. 부디 응원해 주시길!"
***
하란은 의족을 갈아끼웁니다!
아 그리고 가밀아, 비애루거든요!
16강에 나갑니다.
상대는....
이런, 대하백입니다.
"아...하하."
그가 멋쩍은 미소를 짓습니다.
***
"이런 얄궂은 운명이라니."
하란은 실실 웃으면서 기수식을 취합니다.
"먼저 오십시오."
이제부터 본선이니까 슬슬 내기를 끌어올릴 때가 되었다. 뜨거운 화기가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른다!
***
"그럼 사양치 않고."
대하백이 먼저 빠르게 들어갑니다. 왼손을 붕붕 휘두르는군요. 하란은 왼손을 대비합니다.
《 석가권 - 일장춘몽 》
순간적으로 꽃밭이 보이는 것 같은 환영과 함께 대하백의 오른 주먹이 하란의 눈에 적중합니다!
뻐억!
...?
하란은 놀라서는 뒤로 살짝 물러나며 자세를 잡습니다.
대하백은 주먹을 쥐고서 긴장된 기색으로 하란의 빈틈을 찾기 시작합니다.
이거. 한 방 먹었군요.
유쾌한 상황에 하란이 파하 하고 웃습니다.
요행은 여기까지일겁니다.
***
"아."
뭐야 방금, 뭐였지? 이것봐라? 본의아니게 얼굴에 한 방 맞은 그녀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도 반격할 것이다.
비단유접보의 묘리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면서, 교룡검법 4성, 용진세. 칼날은 꿈틀거리면서 상대의 방어 사이로, 혹은 몸을 돌려 피하는 방향으로 파고들려 한다.
***
파아아...
마치 한 마리의 나비가 너풀너풀 날아가듯이 움직이듯. 하란의 움직임은 마치 그 나비와 같습니다.
나비가 날아다녔던 곳에는 꿀인지, 독인지 알 수 없는. 비단처럼 햇빛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이는 무언가들이 떨어져 내립니다.
《 교룡검법 - 용진세 》
한 마리의 나비는 갑작스레 몸을 거대히 부풀립니다!!!
"!"
《 석가권 - 연붕권 》
대하백의 주먹이 검에 마주쳐옵니다. 폭력적인 면모를 숨기지 않고 달려드는 거대한 하나의 용이 이빨을 드러냅니다. 권기가 빛나면서 검을 깨부수려 합니다.
휘리릭!
하란의 검이 기이하게 휘더니 수직으로 꺾여버립니다.
"아."
쾅!
대하백은 양 팔에 권기를 두르고 급하게 양팔로 교차해보지만 하란의 검은 그 위를 강타합니다!
그대로 쭈욱 뒤로 밀려나면서 한 번 구른 대하백은 곧바로 일어나 다시 자세를 잡습니다. 검을 막아낸 양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떨려옵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시지요!"
그럼에도 대하백은 양 주먹을 강하게 쥐고 하란을 향해 곧바로 달려들기 시작합니다!
《 석가권 - 풍광타 》
대하백의 권기가 소용돌이 치기 시작하고, 힘이 빠져 더 들어가지 않는 팔에서 대체 어떤 힘이 솟아나는 것인지, 전방위로 어마어마한 빠르기와 강맹함을 갖춘 주먹들이 몰아칩니다!
***
제대로 들어갔다. 승기를 잡은 셈이다. 이 몸이 몸이라 쓰러진 대하백에게 달려들지는 못했다. 그는 일어나고, 그녀는 검을 고쳐잡는다.
"어허! 너무 가까이 다가오진 마시고!"
사방에서 주먹들이 몰아친다. 교룡린은 전방밖에 막지 못하는데.. 이런 건 막기 어렵다. 승천형으로 뚫고 뛰어오른다면 벗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걸 지금 여기서 보이고 싶지는 않다.
초식을 치는 것이 아니라, 초식을 치는 자를 흔들어 놓으면 초식 또한 자연스레 흐트러지리라. 전면은 막되, 뒤쪽은 조금 맞을 각오를 해야겠다.
그녀는 우선 교룡린의 세를 취하며 검을 단단히 올린 후, 칼날에 손을 얹었다. 어찌됬든 포효는 칼날에 손만 닿으면 펼칠 수 있으니!
***
《 교룡검법 - 교룡린 》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탕 - !!!!!
수십개의 화살이 일거에 내리꽂히듯이 주먹이 날아오고 하란은 검으로 전면을 방어합니다.
하지만.
퍼억!
후두부, 등, 허벅지, 종아리, 골반, 옆구리, 뒷목으로 어마어마한 충격과 타격이 들어옵니다!!
순간적으로 휘청거릴만큼!
1단계 부상을 입습니다.
그 고통을 참아낸 하란은 검을 튕깁니다.
따앙.
《 교룡검법 - 포효 》
키이이이이이이이이잉!!
"커헉!"
그제서야 비로소 공격이 멈추고 바로 옆에서 하란의 턱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 있던 대하백이 귀에서 피를 흘리며 주저 앉습니다!
하란은 욱씬거리는 것을 참고서 천천히 검을 들어 대하백의 목에 겨눕니다.
대하백은 피가 흐르는 귀를 보고 인상을 잔뜩 찡그린채로 웃습니다. 그러더니 한 손을 듭니다.
기권!
승리합니다!
***
"상당히 아팠습니다. 대 소협."
그녀는 검을 거두어 넣었다. 몇 방 세게 얻어맞은 허리가 특히 욱신거리는 것 같다. 그녀는 꼬부랑 할머니처럼 뒷허리를 매만졌다. 앗 따가워!
"수고 많으셨어요. 논검 끝나면 석가장에서 다시 뵙죠."
이 정도 부상이면 치료를 받아야 할 모양이다. 지금 상태로 다음 경기에 나갔다간 진짜 복날 개처럼 얻어맞고 말 것이니. 그녀는 장에서 내려와 의무소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
대하백은 웃으며 마주 인사합니다.
경기가 끝나고, 의무실로 찾아갑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부들거리면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것 참. 자리가 없군요. 한참을 기다려야겠는데요?
"뭣하고 있는가?"
그 때, 뒤에서 누군가 말을겁니다.
...기척을 못느꼈습니다.
"세가의 의료실로 오면 될 것을. 우리 모용가의 가솔이 이런데에 기웃거려서야 되겠느냐."
휙.
하란은 급히 몸을 돌립니다. 허리가 좀 많이 아프지만 참아낼 수 있습니다.
상대를 확인한 하란은 아픈 허리와 목에도 빠릿빠릿하게 숙여 인사합니다.
요녕제일검 모용벽입니다.
- 즐거운...휴가...?
- "사람이 참 많어.."
길거리에도 의무실에도. 어느 세월에 자기 차례가 올까 조금 짜증이 나려던 차였다. 뒤통수에서 어떤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진. 아니 '익숙한' 목소리라니! 그 목소리를 어찌 잊는단 말인가!
기척도 느끼지 못하여 황망히 몸을 돌리자 그곳에는 오 교룡님 맙소사.
"ㄱ, 가주 어르신을 뵙습니다."
포권하고 읍하며 마땅한 예를 갖춘다. 높으신 분들도 관전하고, 또 심판을 보러 온다고 듣긴 했지만. 이런 누추한 곳까지 굳이 비집고 들어오시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니에요. 제게 왜 이러시냐요.
***
"거 아플텐데 그러지 않아도 좋네."
그 말에 하란은 곧바로 허리를 쫙 폅니다.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움직이도록 하자꾸나."
명령이나 다름없습니다! 거부할 권리는 하란에게 없으니까요. 둘은 모용세가의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의무실로 들어갑니다.
더 쾌적하고, 더 좋군요!
"여기서 치료를 받고, 보고는 나중에 하도록 하게나."
히익.
***
"예 어르신..."
보고 한 마디에 간담이 벌벌 떨린다. 어르신을 계속 뵙다간 수명이 뭉텅이로 잘려나갈 게 분명하다.
그나마 세가의 의무실이라 환경이 훨씬 쾌적하므로, 그것이 하란에게 자그마한 안정을 주는 것이 다행이었다. 아주 조금.
***
치료를 받습니다!
부상이 전부 치료되었습니다!!
***
"...."
치료가 끝났다. 그녀는 움찔움찔하면서 주변의 눈치를 본다.
어르신이 말하셨던 그 나중에가, 치료를 받고 난 후를 의미한다면 계속 여기 박혀있어야겠지만, 그게 아니라 논검 끝나고 세가에 와서 보고하라는 뜻이면 당장 튀어나가려고 말이다.
상식적으로 보고가 외부로 유출되면 그건 기밀의 유출과도 같은데, 그걸 이렇게 사람 많은 논검장에서 하겠다고? 설마!
***
치료가 끝나자 모용벽이 직접 찾아옵니다.
이건 몰랐지? 쿠쿠루삥뽕빵뽕!
모용벽이 들어오자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나갑니다. 애초에, 환자는 하란이 혼자였습니다.
키이이잉....
기이한 소리와 함께 귀가 살짝 먹먹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곧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허허허. 기물은 기물이야. 화경의 고수라도 안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다니. 껄껄."
기분이 좋아보입니다.
모용벽은 자연스레 침대 위에 앉았고, 아파서 누워있던 하란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보고하게."
***
돈 많은 어디 가주님은 비싼 기물 손에 넣는 것도 일도 아니란 거지. 결국 그녀는 딱 붙잡히고 말았다.
"일단 호남으로 내려와서..."
그녀는 보고서를 읽는 것처럼 호남에서 있었던 일들을 빈틈없이 나열한다.
***
보고.
보고!
충성!
충성.
미사하란 대사파작계 보고 총원 3...열외2...현재원 1...번호! 하나! 번호 끝!
...
보고를 끝마칩니다!
"석가장은 확실히 우리의 영향권으로 들어왔다고 보는가? 어떻게 생각하지?"
다리를 꼬고 턱에 손을 올린 모용벽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하란을 쳐다보며 묻습니다.
***
"새 땅을 얻었으니 이제 돌을 골라내고 쟁기질을 하여야 합니다."
"한한검도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협력하진 않으려는 기색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외부의 적을 통해 단결되는 법이니 흑천성과의 분쟁이 모용세가와 석가장을 더 단단히 묶을 수 있습니다."
"애초에 우리가 이 일에 개입하며 흑천성의 밥에 재를 뿌린 셈이니.."
***
"그건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네."
모용벽이 고개를 흔듭니다.
"최대의 이익과 최소의 손해. 어떻게 해야하겠느냐."
오늘은 조금 친절하군요?
***
천재다이스 고! 어떻게 대답하지용!
***
하란의 머리가 기가막히게 돌아갑니다.
최대 이익과 최소 이익.
모용세가적인 방식으로 생각해봅시다.
그건....
혼인동맹입니다.
한한검 본인은 어려우니 그의 측근이나 형제. 아 형제가 다 죽었군요? 방계 혈족이나 먼 친척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그냥 약간의 지참금, 혼수와 여식 하나를 보내면 해결됩니다.
석가장은 완전히 모용세가의 편에 붙을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결국 세가의 영향 아래에 놓이게 될겁니다.
그렇지만 문제가 몇 가지 있습니다.
석가장이 혼인동맹을 받아들일 것인가?
보낸다면 누구를 보내는가?
누구와 혼인을 시키는가?
입니다.
***
"그럼 땅을 일구기 전에 우리 땅이다- 하고 깃발부터 꽂으시겠습니까? 혼인동맹으로 말입니다."
히히히 뉴런신공 캡틴말 따라하기!
"저쪽이 그걸 받아들일지, 누굴 보내서 누구와 결혼시킬지는 아직 미지수이나, 그것 또한 하나의 방법입니다."
"어르신께서 원하신다면 한한검에게 슬쩍 운을 띄워보겠습니다."
***
"혼인 동맹....괜찮군. 이번 일이 끝나면 세가로 돌아오거라."
모용벽이 은은한 미소를 띄웁니다.
"내 너를 중히 써야겠으니."
용왕즉위? 어림도없지! 과로사 미래가 눈에 선합니다!
***
"영광이옵니다 어르신..."
고개를 숙인다. 이상하다. 분명히 맞게 대답한 것 같은데 점점 더 수렁으로 끌려가는 이 느낌.
다음부턴 일부러 틀린 말을 해야하는 걸까. 모용세가와의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게 그녀 마음이다. 세상만사는 요지경이니 모용세가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는 없다. 발을 빼야 할 때는 뺄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하는데.
벌써 너무 가까이 가 버렸을지도 모른다.
***
본 스레드는 정부의 방역 지침을 준수하며 촬영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어림도 없지! 바로 집단감염!
이게 아닌데.
모용벽과의 밀담이 끝납니다! 모용벽은 떠났고, 하란은 잠시동안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아니, 자유의 몸이 맞는걸까요?
***
"요지경 세상 흘러가는대로 사는 거지 뭐... 에이씨..."
이 길이 내 길인 줄 아는 게 아니라 그냥 길이 그냥 거기 있으니까 가는 거야.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
머릿속에 흘러들어오는 괴이한 음률과 가사.. 이게 다 뭐람. 그녀도 천막 밖으로 걸음을 옮긴다.
"오늘을 살아야지, 오늘을."
오늘 할 일은 논검 참여하기이다!
***
다음 경기를 준비합니다.
뚜벅. 뚜벅. 뚜벅.
...피 냄새가 납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도는 차가운 인상의 여인이 걸어와 하란의 앞에 섭니다.
"혈검문의 제자, 위주예입니다."
***
"적호검희, 미사하란입니다."
이름값을 하는군. 이리도 피 냄새를 풍기다니.. 혈검문의 무공에 대하여는 일천한 그녀지만, 몇 가지 추측은 할 수 있었다. 당연히 피를 이용하는 무공일테고, 그리고 이건 근거 없는 직감이지만 넓은 범위를 휩쓰는 초식을 쓸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 이렇게 피 냄새를 뿌리고 다니는 걸 보며 드는 생각이다.
그녀는 검을 수평으로 뉘여 얼굴 옆에 붙이는 상단세를 취한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패를 하나씩 꺼낼 차례다. 지금까지 일절 보이지 않았던 원거리 기공술. 어떻게 받아칠지 지켜보자. 이번에는 내가 먼저 친다.
"후우..."
내공을 끌어올린다. 토끼 귀가 스스로 쫑긋 선다! 그녀는 심판이 신호를 주자마자 교룡검법의 5성, 용검세를 상대에게 쏘아낸다.
***
《 교룡검법 - 용검세 》
하란의 막대한 내공은 기氣가 되어 곧장 뛰쳐나갑니다!
"!"
상대는 급하게 검을 들고 옆으로 휘두르면서 몸을 날립니다!
콰아아아앙 - !
강렬한 기가 그녀가 서있던 장소를 정확히 타격해 부숴버립니다.
"...."
땀을 한 방울 흘리면서 천천히 검을 다시 듭니다.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느낀걸까요?
그녀는 곧바로 칼로 자신의 팔뚝에 얕은 생채기를 내버립니다. 칼이 붉게 물들기 시작합니다.
....? 하란은 순간적으로 벙찝니다. 쟤 지금 뭐하는 짓...?
***
"어딜!"
저게 뭐냐 싶지만, 뭔가를 할 틈 따위 주지 않겠다! 이번 판은 화력전이야!
하란은 검을 휘둘러 다시 조준한다. 이번에는 두 발을 쏜다. 하나는 지금 적이 있는 곳으로, 그리고 둘은 적 뒷발의 반대 방향으로. 바닥에 붙어서 움직인다면 뒷발에 무게를 실으며 그 반대쪽으로 튀어나가는게 편할 테니.
***
하란은 자세와 장소를 고정한 채 상대에게 용검세의 묘수를 계속해서 날립니다!
콰아아앙!
콰앙!
상대방은 전력으로 용검세를 피하는 데에만 급급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군요!
이렇게 강력한 공격을 하면 내공이 순식간에 소모되어 쉽게 지치기 마련이지만...하란은 내공 또한 절륜합니다.
몇 번 만 더 휘두르면, 상대는 먼저 나가떨어질겁니다.
***
상대가 용검세 탄막에 적응하면 그때부터 조금 더 재미있어질 것이다. 그때부턴 패턴에 화룡포가 추가될거거든 히히!
하란은 동 실력자들에 비하여 압도적인 내공량을 조금 더 공격적으로 활용하기로 한다. 가급적 시합에서 다치고 싶지 않다.
자기 몸 소중한 건 그녀도 아주 잘 알고, 치료소 갔다가 또 어르신 만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에는 삼점사! 받아라!
***
쾅! 쾅! 퍼억!
다시 한 번 용검세를 날립니다! 그것도 무려 세 번!
말도 안되는 농락입니다. 상대는 힘들게 피하다가 마지막 한 방에 얻어맞아 그대로 장외패를 당합니다!!
승리....승리했습니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승리입니다. 사람들이 거세게 환호하며 외칩니다.
- 적호검희! 적호검희! 적호검희!
***
그녀는 적당히 지팡이를 치켜들며 웃어주다가 장에서 내려온다.
"어휴~ 다리 하나 없어도 어떻게든 살 길은 있는 거지~"
결국 혈검문의 무공을 목도할 기회는 없었다. 압도적인 힘으로!
그런데 너무 압도적이라서 그런가 다른 참가자들은 숙련도가 오르는데 하란이만 안 오르는 것 같은 슬픈 기분.
흑흑...이제부터는 준결승전이다. 어떤 쟁쟁한 사람들이 자신과 붙게 될지, 그녀는 한번 살펴보기로 했다.
***
경쟁자들을 염탐.....
다들 일류 극 정도의 실력자들이 살아남아 준결승에서부터 만나볼 수 있을 듯 합니다.
특히, 삿갓을 쓰고 있는 여고수의 실력이 인상적입니다.
남궁세가의 둘째도 제법 혁혁한 무공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
"역시 지원 공자님도 올라오시는군. 그리고 저 사람이 팽가의 공자를 단 한 합에 보내버렸다는 그 이변의 주인공..."
이름 앞에 남궁이 붙은 시점에서 이미 준수한 실력은 보장된 것이 아니겠는가. 하물며 승백검에 절강대협이라는 큰 별호도 가진 사람이라면.
따라서, 그녀는 알려진 바가 없는 삿갓 아가씨에 좀 더 궁금증이 생겼다. 하란은 저 발치에서 삿갓을 쓴 여고수를 빤히 관찰한다.
모퉁이 뒤에 숨어서 얼굴만 절반 내민 게 스토커 같지만,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
여고수를 염탐합니다!
염탐한 끝에 나온 결론은...
매우 이쁘다는 것과 근본을 알 수 없는 잡다한 무공을 여러개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뭐지.
***
뭐지.
무기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것이 꼭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였다. 그 누군가의 무공은 근본이 있다는 것을 넘어 그 자체로 근본이나 다름없지만서도....
그녀는 일단 기억해 두기로 한다. 준결승전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오랜만에 하지 못했던 수련을 하기 위해서. 그녀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간다!
***
이전에는 드럽게 살아온 내가 용이 될 자격이 있나 고민하였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내가 더럽건 잔인하건 비굴하던,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또 살아왔기에 용문 앞까지 올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이 세상에 신선과 악선이 있든, 선룡과 악룡 또한 있을 것이매.
그래, 내게도 자격이 있다. 나는 기어코 이 거대한 관문을 열고 말 것이다. 용이 되나 못 되나. 어디 해 보자고.
조금씩 조금씩. 생각이 흐려지고 모든 것은 관성으로 움직인다.
뜨거운 내기는 바람 부는 날의 모닥불처럼 이곳저곳 휘날리며, 달아오른 몸에서는 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
25%!
***
수련을 끝마친 그녀는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간다. 수많은 관중들의 열기가 끓어오른다!
#이제 준결승 하러 갑니다!
- 용살자
- 4강이 시작됩니다!
하란이 올라가고, 맞은 편에는 한 남자가 올라옵니다. 가슴팍에 보이는 천마신교의 문양. 팔에 있는 기이한 문신. 축 처진 눈꼬리와 화려하게 뒤로 넘긴, 중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머리 모양.
그는 아무런 무기도 들지 않고 올라옵니다.
둘은 마주보고 포권지례로 인사합니다.
나, 모용의 미사하란이오.
"교국의 천강단 소속. 호란금가의 금평일이라 합니다."
그의 기세에서는 명문가의 자제에게서 볼 수 있는 오만함과 자신감. 그리고 당당함이 엿보입니다.
"준비하라!"
심판인 남궁철언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선수를 양보하지요."
금평일이 천천히 양 손을 들어올립니다.
***
'권각술, 어쨌든 무기는 보이지 않는데. 아니 암기인가?'
"그럼 선공을 받아가겠습니다."
초반부터 모든 것을 쏟아내진 않을 거다. 식사에도 전채요리가 있지 않은가. 그녀는 상단세를 취한다.
내기가 흐르며 칼 끝으로 뜨거운 불줄기가 솟구친다. 타오르는 채찍은 꾸불텅거리며 상대에게 달려든다!
#화룡포를 채찍처럼 휘두르며 공격해용88/90
***
《 교룡검법 - 화룡포 》
하란의 검이 일직선으로 쭈욱 내뻗어집니다. 불처럼 뜨거운 열기를 품은 양의 내공은 괴물이 불을 내뿜는 것 처럼 금평일에게 쇄돱니다!
"음."
금평일은 여유롭게 웃으며 한 다리를 뒤로 빼고 오른손을 뒷짐을 집니다. 앗. 왼손을 손바닥을 쫙 펼쳐서 앞으로 내미는군요.
《 벽력혈장 - 파破 》
콰아아아아아아앙!
화룡포와 금평일의 일장이 맞부딫힙니다! 불길은 금평일의 손을 기준으로 정확히 반으로 갈라져 뒤로 흘러갑니다.
지금껏 만나본 적 없는, 새로운 강자입니다...
긴장하십시오! 상대는 하란과 동격.
"이제 제 차례겠군요."
금평일이 웃으며 달려듭니다.
《 제례장무 - 제례장무 4식 영장례 》
양 손이 하란의 허리와 턱을 향해 덮쳐옵니다!
***
역시 권사였나. 팔보다 칼이 더 길다는 게 위안일 따름이었다.
"쯔읏.."
금평일 이놈. 역시 그 기세에 걸맞는 힘을 가진 사람이다. 이전처럼 쉬운 싸움이 되지 못하리라 쉽게 짐작 가능했다.
하지만 그녀는 침착을 잃지 않는다. 잘 막아내기만 해도 최소 패배는 면할 수 있다.
금평일이 정직하게 공격하진 않으리. 저 공격을 막을 수에 대비할 또 다른 수를 숨겼을 것이다.
그녀는 교룡린을 바짝 세워 방세를 취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적룡지기의 묘리로 내기를 더욱 끌어올려, 전방위로 터뜨리듯 방출한다.
화염 방출에 준비동작은 필요없다. 검을 통해서 쓰는 무공이 아니니까!
#84/90 교룡린으로 막고 적룡지기로 전방위 화염방출
***
《 교룡검법 - 교룡린 》
하란의 검이 턱을 향해 덮쳐오는 손을 향해 움직입니다. 강대한 적룡의 기운은 불꽃으로 화해 주변을 뒤덮습니다.
전방위로 화염이 솟구칩니다!
터엉!
턱을 향해 날아드는 검은빛의 일장은 막아냅니다.
화아아악 - !
그러나 불꽃을 뚫고 들어오는 검은 빛의 손바닥.
아니.
붉은 빛의...손바닥!
《 벽력혈장 - 혈장 》
불꽃을 가를 때 부터 알아봤어야 했습니다! 상대는 불꽃을 가르고 하란의 허리에 강력한 일격을 꽂아넣습니다!
쾅!
큭.
부상 1단계를 입습니다.
하란의 이점을 살리고 적의 약점을 물고 늘어져야 합니다!
***
"칵.."
몸이 휘청이며 뒤로 밀려난다. 제길, 저 놈도 염화불침지체라도 되는 거냐! 갑자기 불꽃이 터지면 움찔거리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상대의 공격이 적중하였고 흐름을 빼앗겼다. 기세를 몰아 다시 밀고 들어올 것이다. 날뛰게 둘 수는 없지.
몇 발 물러난 그녀. 상대가 먼저 들어올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녀는 칼날을 두드려 상대를 흔들고, 칼은 닿지만 손은 닿지 않는 거리에 다다르자 곧장 찌르며 뻗는다. 칼 끝이 세 번 꺾이며 상대를 노린다.
#상대가 계속 들어올 것 같아용. 포효로 들어오는 상대를 흔들고 칼만 닿는 거리로 들어오면 용진세로 반격할래용! 내공 4! 80/90
***
《 교룡검법 - 포효 》
- !!!!!!!!!!!!!!!!!!!!!
"윽!"
듣기 싫은 쇳소리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퍼져 나갑니다. 연이어 공격해오려던 금평일이 멈칫합니다!
"...이, 소리. 들어본. 기억이. 끅."
비틀거리다가 금방 자세를 다시 갖춥니다.
"쉽지 않으시군요."
천천히 빙글빙글 검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그는 하란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합니다.
***
금평일은 칼끝 앞에서 딱 멈추었다. 좋아, 흐름을 끊었다. 다시 대치 상태. 이번에는 그녀가 흐름을 가져가리라 마음먹었다.
"들어보셨다면 우리가 언젠가 만났던 적이 있나요? 전 잘 모르겠는데."
원의 중심과 원의 끝자락처럼 서로 빙빙 돌며 노려보던 두 사람. 그녀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검이 닿지 않는 거리. 검이 안 닿을 뿐이지. 검을 통해 발산하는 기공술은 닿는다. 아주 멀리까지. 아까는 막혔지만 그건 전력이 아니었다! 이번엔 좀 다를 것이야!
그녀는 비단유접보로 뒤로 물러나며 아까 실패하였던 화룡포 채찍공격을 다시 시도한다.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 어지럽게 휘두른다! 저번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뒤에 적룡조격참을 숨겨서 쏘아보냈다는 것이다.
아무튼 겉보기론 비슷해 보이는 일렁이는 화기고, 동작도 둘 다 휘두르는 동작이니 뒤에 숨겨서 자연스럽게 잇기 쉬울 것이다.
#비단유접보로 백스텝>아까처럼 화룡포 채찍>그 뒤에 숨겨서 적룡조격참 샷! 76/90
***
"천강단은 중원 곳곳을 돌아다니지요. 예전에 한 번 만나뵈었던 기억이 있을겁니다. 호남에서."
금평일이 싱긋 웃습니다.
《 교룡검법 - 화룡포 》
《 교룡검법 - 화룡조격참 》
금평일은 다시금 손을 내밉니다.
《 벽력혈장 - 파破 》
화룡포는 아까처럼 막힙니다.
"다른 수는 무엇....!"
그리고 바로 달려드는 화룡조격참. 금평일은 입을 다물고 급히 손을 움직입니다!
콰아앙! 쾅!
붉은 빛이 감도는 손바닥과 불길이 맞부딫힙니다! 그 힘은 백중세!
아니, 살짝 금평일이 우세합니다.
하지만 시간은 하란의 편입니다.
"큭."
***
"아, 호남?"
아지랑이처럼 춤추는 불꽃 뒤로 그녀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불을 뚫고 온 목소리라 물기가 전부 말라버렸나보다.
어쨌든 좋아좋아. 다가오지 마라! 꼴사납게 바닥을 구르긴 싫단 말이다! 그만 포기해라.
그녀는 불길을 막느라 붙잡힌 금평일에게 다시 한번 용의 발톱을 날린다. 당연히 막겠지, 그렇겠지.
그런데 말이야. 한 자리에 딱 서서 손으로 막던데 하체는 어떻게 하려고? 어디 산탄 용검세도 막아보시지.
#금평일이 막는 사이에 적룡조격참 한방 더>팔을 올리고 있게 유도한 후 비어있는 하체로 용검세 여러발 발사!
72/90
***
《 교룡검법 - 적룡조격참 》
어렵지 않게 막아냅니다. 금평일도 이 뒤에 있을 공격을 대비하고 있겠군요.
이번에는 하체란다.
《 교룡검법 - 용검세 》
다리를 향해 이무기의 형상을 한 기가 달려듭니다!!!
"아하."
그러자 금평일은 한쪽 발을 높이 듭니다.
"제가 대비를 안했겠습니까."
그리고 구릅니다.
《 화혈마보 - 곤륜비극 》
콰아아앙!
이무기들이 죄다 사라져버립니다!
"다들 이렇게 말씀을 하고들 하십니다."
그의 손바닥에 붉은 악귀의 형상이 아로새겨지기 시작합니다.
"예전에 용을 잡으셨었다고."
검은 마기는 사라지고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하란의 기운과는 다른, 끈적하고 폭력적이면서. 아주 위험한 기운이.
"진짜 용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곤륜파 장문인을 격살한 일을 말하는 것 같군요.
"손자인 저도 용을 한 번 잡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 벽력혈장 - 혈귀장 》
거력이 날아옵니다!
***
"이상한 말씀을 하시네요."
티를 낼 수는 없지만 솔직히, 움찔했다. 그녀에게 이처럼 말한 사람은 저 금평일이 처음이다.
게다가 권사인줄 알았더만 권각이 두루 강한 놈일 줄이야. 그녀의 일격은 실패하고, 저 쪽에서 준비한 회심의 일격이 날아온다. 저건 막을 수 없다. 피해야지.
그리고 반격한다. 교활하게. 이것도 한번 먹어봐라,
***
교룡검법 - 승천형
의족에 살짝 무리가 갑니다. 하지만 수리가 필요한 단계는 아닙니다.
콰아앙!
하란의 몸이 하늘 높이 뛰어오릅니다.
그리고 혈귀장은 여전히 하란을 따라오고 있습니다!
교룡검법 - 폭룡강하
내기가 온 몸에서 뿜어집니다! 형태는 하늘에서 땅으로 추락하는 용과 같은 모습으로, 하란은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내리꽂힙니다!
한 마리의 용이, 유성처럼 땅으로 떨어집니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
연무장의 바닥은 완전히 박살이 나 조각이 되어 터져나가고,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릅니다.
시야가 가려집니다! 그 상태에서 하란의 다리가 다시 한 번 진각을 밟습니다.
다리를 높이들고, 상대의 머리가 있는 곳을 향해!!
퍼억....?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쿨럭 -
하란의 옆구리가 뜨겁습니다. 부근의 옷이 타버린듯 찢어져있었고 드러난 맨살에는...피처럼 붉은 마귀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있습니다.
하란은 부상 2단계를 입습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이죠?!
"말씀드렸잖습니까. 곤륜의 용을 잡은 초식이라고."
금평일은 어깨의 옷이 터져나가 피를 흘리면서 말합니다. 눈을 찡그리는 것이 하란과 비슷한 수준의 부상을 입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건 꽤 아프군요."
하란과 금평일은 서로 한 수를 주고 받습니다! 서로의 실력은 가히 막상막하!
누군가 하나가 실수한다면, 그대로 경기는 승자를 가리고 종료될게 분명합니다.
***
"어쩌나. 나는 곤륜이랑 아무 상관이 없는데. 넓은 중원에 용이라곤 곤륜 하나뿐인가? 아니면 청해에 틀어박혀 그 사람들만 보며 시야가 좁아지셨나요?"
그리고 곤륜 걔넨 따지고 보면 용이 아니라 용의 힘을 흉내내는 자들 아닌가. 그 말까지 나오려 했지만 책잡힐 여지가 커서 하지 않았다.
그녀는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 허리를 숙이고 어깨를 구부리고, 피격범위를 최소화하며 천산갑처럼 웅크린다. 그럼에도 수평으로 쭉 뻗은 칼날만은 형형하다.
옆구리가 휑하고 또 너무 아프다. 의족은...아직 더 버틸 수 있다. 승산은 있다. 아직 내공의 삼분의 일도 쓰지 않았어. 화력으로 짓누른다.
"크흐흐.."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소나기들. 그 중 하나라도 잘못 대처하는 순간이 네놈이 끝장나는 순간이다.
***
교룡검법 - 적룡조격참
세 갈래로 나뉜 내공이 불길처럼 금평일을 향해 쇄도합니다.
금평일은 양 팔을 쫙 펼칩니다. 어깨를 움찔거리는걸 보니 저 쪽도 조금 무리하는 감이 있군요.
제례장무 - 십육방방
그러더니 양 팔을 크게 돌리기 시작하더니, 희미한 기가 16방위를 점하며 적룡조격참을 막아내기 시작합니다!
그는 슬슬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하란은 지구력, 상대는 화력.
그가 승부수를 던져올겁니다.
파앙 - !
적룡조격참의 기세가 사그라들자 금평일은 곧바로 하란에게 달려옵니다! 그가 바라보는 곳은.....
눈치챘나보군요.
의족을 달고 있는, 불편한 다리입니다!
***
상대의 자세가 완전히 잡히기 전에 품으로 파고들까? 아니. 모험은 자제하자. 공세를 견뎌내면서 철저히 놈을 말려죽이는 방법을 고수할 것이다. 뒤로 물러난다.
캉캉캉캉캉!!!!!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말 듯 날아가버리는 나비처럼. 접룡은 울부짖으며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공중에 살짝 뜬 몸이 다시 땅에 닿을 때, 그녀는 한 발을 세게 굴러 박살난 바닥장의 조각이 상대에게 날아가게 한다. 약간이라도 시간을 벌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가까이...다가오지 마라!!"
마르지 않는 화수분의 단전. 그녀는 다시 그 우물에서 붉은 기를 한 됫박 퍼올렸다. 아니, 두 됫박으로 할까?
....받고 한 됫박 더!
***
하란은 내공으로 초식을 강력히 강화시킵니다!
발로 차 돌조각을 내보냅니다.
콰앙!
어렵지 않게 격파하곤 쫓아오는군요!
교룡검법 - 승천형
교룡검법 - 폭룡강하
세 마리의 용이 세 방향으로 나뉘어 동시에 달려들고, 거대한 용 하나가 아래로 내리꽂힙니다!
그리고 금평일은....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꽈아아아아아앙!!! 다시 흙먼지가 치솟는다. 그녀가 만들어낸 충격파에 그녀의 몸까지 뜨끔거린다. 눈을 가늘게 뜨고 검을 세로로 세운 채로.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상대의 기감을 쫓는다. 쓰러졌나, 버텼나. 어디로 들어올까.
***
흙먼지가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방어태세를 고수합니까?
***
".......!"
그 때 하란이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던 그 생각. 은잠무사들이 숨어있던 동굴. 거기에 내가 원래 뭘 하려고 했었지?
자욱한 먼지. 자욱한 먼지. 자욱한 입자....그리고 불꽃. 쾅.
행동으로 옮기기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거꾸로 쭈뼛 섰다.
***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불꽃이 폭발합니다!
"큭...!"
과연, 하란의 등 뒤에서 신음소리가 일어납니다.
"하...하하...."
그는 상태가 썩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서있습니다.
"쉽게는 안되겠군요....쉽게는...."
그는 덜덜 떨면서 팔을 들어올립니다. 막지 못한다면, 하란의 패배. 막아낸다면 하란이 승리할겁니다.
***
"그대로 멈춰라!"
즐겁게 손을 손을 들다가 그대로 멈춰라!
그녀는 남은 내공을 모조리 소진하여 용검세를 상대의 팔을 향해 쏘아보낸다.
시합 초반에 쏘았던 그저그런 용검세가 아니다. 소쿠도와 오모사.... 빨리 쏘아서 그냥 겁나 빠르게 쏘아보았습니다 하는 용검세란 말이다! 광검문의 그 각오처럼!
***
하란은 눈을 감습니다.
검을 들고, 앞으로 뻗습니다.
강렬한 기운이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흙들이 굴러다니고, 벽돌이 덜덜덜 떠립니다. 비녀로 고정해놓은 머리카락들이 제멋대로 풀러지며 하늘을 향해 조금씩 치솟습니다.
교룡검법 - 용검세
모든 내공을 담아, 기운을 내뿜습니다.
붉은 화기가 뭉치고, 모이고, 어우러져 거대한 이무기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 丘兒兒兒兒兒兒兒兒兒岳 !!!!!!!!!!!!!!
불꽃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이무기는 거대한 포효를 내지르면서 하늘로 올라갑니다!
비늘 하나하나는 뜨겁고, 열기로 가득합니다. 갈라지는 틈새 사이로는 강렬한 불길이 치솟습니다. 이빨은 무엇이든 부숴버릴 것 처럼 단단하고, 입에서도 불꽃을 내뿜는, 용의 기운을 담은 이무기 한 마리.
그 크기가 어찌나 거대한지!
연무장을 전부다 뒤엎고 관중석의 끝에서 끝까지 달할 정도로 긴 모습입니다.
미사하란의 막대한 내공을 담은 이무기는 말 그대로 하나의 걸작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늘로 한 번 치솟은 이무기는 구름을 가르고 연무장에 불을 떨구며 한 바퀴 회전하고는.
아래로 내려와 하란의 검에 깃듭니다.
하란의 눈이 반개합니다.
스으으으으....
하아아아아아아.......
빠지직.
서있는 땅이 살짝 갈라집니다. 발에서부터 다리, 다리에서부터 골반, 골반은 흔들리고, 골반에서부터 다시 허리. 허리는 꺾이고, 허리에서부터 가슴, 가슴은 쭉 펴고, 가슴에서부터 팔, 팔은 완벽한 일자를 그리고, 팔에서부터 손목, 손목은 한 번 크게 떨리고, 손목에서부터 손가락, 손가락은 강하게 검을 움켜쥡니다.
그렇게.
검이.
찔러갑니다.
화아아아악 - !!!!!!
이무기가 금평일을 향해 내달립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금평일은 피를 흘리며 이를 악물곤 한 팔을 내밉니다.
벽력혈장 - 벽력혈 천관중 마귀절복
피처럼 붉고 찐득한 손에 기운이 뭉쳐지고 이무기와 충돌합니다!
──────────────────────┤○├─────────────────────
빛과 빛, 붉은 기운과 붉은 기운, 힘과 힘, 내공과 내공이 맞부딫히고.
하란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비틀거립니다.
머리가 핑 돕니다.
내공을 한 꺼번에 다 써버린 후유증 때문일까요?
탁.
비틀거리면서 하란은 땅에 주저앉습니다.
저벅. 저벅. 저벅.
그리고 주저 앉은 하란의 앞으로 금평일이 힘겹게 걸어옵니다.
온 몸 곳곳에 화상을 입고, 상반신에 걸쳐있던 옷은 넝마가 되었습니다. 화려하게 뒤로 넘겼던 머리는 그을리고 살짝 타있습니다. 봉두난발이 되어버려있군요.
하란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일어나려 애써봅니다.
"매우."
금평일은 쇠를 긁는 목소리로 하란의 목을 향해 손을 겨눕니다.
"훌륭했습니다. 한 수 배웠군요."
하란은 피식 미소를 짓습니다. 몰골이 참 말도 아니군요. 양 팔을 등 뒤로 해 땅을 짚고서 하늘을 쳐다봅니다.
이무기가 가르고 간 구름이 뭉게뭉게 떠다니고, 가을 하늘답게 맑고 높은 하늘은 그 색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햇빛이 하란을 잠시 훑고 가는듯 따뜻한 느낌이 납니다.
미소를 지은채, 살짝 눈을 감습니다.
피곤합니다.
지금은 조금, 쉬고 싶군요.
하란은 혼절합니다!
.
..
...
....
.....
그리고, 모용세가의 천막에서 깨어납니다!
"훌륭했네."
모용벽이 말을 걸어옵니다.
아. 체할듯
***
그녀는 깨어났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모용벽이 있었다. 헙.
"어, 어르신...아윽."
벌떡 일어나려다가도 삭신을 저미는 격통에 다시 힘을 빼고 침대에 누워야만 했다.
"면목없습니다...제가 아직 무능해서..."
***
"괜찮네. 아주 훌륭했어. 마교 1장로의 손자에게 그 정도의 상처를 입히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
모용벽은 오히려 흡족해하는 것 같습니다.
"아주 잘해주었네. 우리 가문의 면목이 섰어."
***
그럼 살려주시는 건가용? 애벌래처럼 꿈틀대던 그녀는 이제서야 잠잠해졌다.
"다음에는 더 잘하겠사옵니다. 어르신"
색색 숨을 몰아쉬면서 힘들게 말한다.
"죽진 않았으니 다음이 있을 것이옵니다.
***
"그러면 되었다. 푹 쉬시게나."
모용벽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후...뎬장...
***
후 젠장.... 그렇게 어르신은 떠나가시고... 그녀는 천천히 오랜 시간을 들여서 비로소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익! 이익..!"
이길 수 있었는데! 90년 내공을 가지고도 그렇게 쓰러져? 이 못난 놈! 아무리 세상을 차갑게 보는 그녀라도 결국 무림인은 무림인. 호승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나보다. 그녀는 자신에게 너무 부끄러웠다. 실전이었으면 그대로 인생 하직이었어 임마!
그녀는 성치 않은 몸을 휘적거리면서 주먹으로 베개를 퍽퍽 내리쳤다.
***
배게는 주먹질 몇 방에 펑! 하고 터져나가버립니다.
오늘 밤에는 배게없이 자야겠군요....
***
힝힝힝.....
그녀는 혼자서 소리없는 발광을 이어가다 홀로 탈진하고 말았다.
***
하란은 한참동안이나 발광을 이어가다, 탈진하여 잠이 듭니다...
..
....
......
깨어납니다!
밤새 잠든 새에 치료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부상이 제거됩니다!
***
야! 힘세고 강한 아침! 그녀는 침상에 걸터앉아 자기 의족을 쏙 잡아뺐다. 논검 도중 어딘가 삐걱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혹시 문제가 생겼다면 지금 고쳐둬야지.
***
다행히 문제는 없습니다!
***
"이제 휴가도 다 끝나가는구나. 그래도 썩 괜찮았어.."
이미 끝난 일이고 감정도 혼자서 다 풀었으니(...) 더 이상 구질구질히 굴 필요는 없겠지. 패배한 자는 변명하기 전에 스스로 사라지는 법.
석가장으로 돌아가자. 본업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
호남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
돌아갑니다 하란이는 쿨하니까.
인터뷰, 곤란(아무말
- 영물토크
- 모자를 쓰고 붕대를 감아서 가릴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니 사실 가릴 수 있긴 하다. 또 다른 문제가 있긴 하지만.
하루 종일 머리를 토끼모자로 가리고, 팔과 목에 붕대를 싸매고. 그렇게 첫 하루는 괜찮았다. 하지만 이틀, 사흘, 나흘.. 시간이 흐르며 그녀는 서서히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끄으으으...."
간지러간지러간지러답답해답답해답답해! 결국 쌓고 쌓았던 짜증은 하남에서 호남으로 돌아가는 길에 터져나왔다. 그녀는 씩씩거리며 어디론가 향한다. 저 소저 왜 저러냐 하는 눈초리를 뒤로 하고 길도 없는 산 위를 오른다.
걸어올라가는지 기어올라가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올라간다.
***
사람 없는 곳을 찾아 갑니다!
하란은 커다란 바위 한 가운데에 앉습니다.
단풍이 져 붉고 누런 빛의 나뭇잎들이 산을 차지했습니다. 서쪽에는 붉은 빛의 단풍이, 동쪽에는 노란 빛의 은행이. 중앙에는 고고히 푸른 물결의 강이 지나갑니다.
그것을 바라보며 하란은 모자와 붕대를 몸에서 빼냅니다.
휘이잉.
시원한 가을바람이 하란의 목과 허리를 간질이며 지나갑니다. 비녀로 꽂아놓았지만, 미처 정리하지 못한 잔머리들이 바람에 휘날립니다.
꽤 시원하군요.
***
안에 텁텁히 갇혀있던 공기들이, 시원한 바람에 기뻐 춤추며 날아간다. 그녀는 머리카락 사이사이, 목덜미와 팔을 간질이고 지나가는 바람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후우...."
새싹과 이끼가 돋는 것처럼 뿔과 비늘은 피부를 밀고 올라온다. 뿌드득, 뿌드득... 주변에 사람도 없으니 이것들도 지금 바람을 쏘이고 싶었다.
그녀는 아직도 자기 몸이 낮설었다. 다리가 날아간 후 이런 감정은 오랜만이다.
"으흐, 흐, 흐헤.. 히히..."
뿔을 손톱으로 쓸고 지나가자 그 진동이 여실히 느껴진다. 의심할 바 없는 자신의 몸이다. 그녀는 작게 웃었다. 어처구니없다는 웃음. 아니면 조금은 음습한 웃음인가.
***
하란은 자신의 뿔을 쓰다듬고, 비늘을 바라봅니다.
우헤헤헤....
용의 상징.
그것은, 그야말로 인외의 존재.
허나 스스로는 인간인지 용인지...잘 모르겠군요.
어쨌든 스스로를 쓰다듬으며 이상한 웃음을 흘리는 하란. 그 앞에 갑자기 웬 다람쥐 한마리가 도토리를 들고 아장아장 달려와 넙죽 업드립니다.
그리고 도토리를 내려놓습니다.
....?
***
조아써 버킷리스트 하나 완료했다(?)
어쨌던 자기 비늘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걸 구경하고 있던 그녀. 일류무인의 기감은 바위 위로 쪼르르 달려오는 작은 발자국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돌아본 그곳에는 다람이 한 마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꺄악! 커여워!
사람 없는 곳에 사는 녀석이라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는 걸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도토리를 내려놓는 다람쥐를 보곤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나 주는 거야?"
보통 다람쥐는 도토리만 보면 자기 볼때기에 홀랑 넣어버리는 게 습성 아닌가? 귀엽고 이상한 짓을 하네? 그녀는 도토리와 다람쥐를 빤히 보면서 생각없이 말했다. 강아지 키우는 사람들이 강아지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말이다.
***
다람쥐는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하란이에게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음....음....음.....
스승께 불초 제자가 감히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뭐지 이거.
***
고개를 끄덕였어....? 내 말 알아들어...?
그리고 심지어 머릿속으로 뭐가 흘러들어와.....?
"히익."
이게 뭐야! 깜짝 놀란 그녀는 옆으로 넘어질 뻔 했다. 지금 그녀 옆에 앉아있는 건 사악하게 집적거리는 바람둥이가 아니라 그저 귀엽고 작은 다람쥐였음에도.
두 눈을 휭둥그레 뜨고 다람쥐를 내려다 보는 그녀는 떨리는 입술을 다시 열었다.
"지금 네가 말한 거야? 나한테....말하는 거?"
***
그제서야, 하란이는 동물들의 말이 귀에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귀가 트였습니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려옵니다.
짹짹짹.
- 아아아아! 결혼하고 싶다아아아아!!!
그리고 다람쥐가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립니다. 꼬리도 같이 흔들리네요.
- 예. 그렇습니다. 스승. 불민하지만 제가 감히 스승께 가르침을 청하옵니다.
***
아아 결혼하고 싶다! 저 호소력있는 문장과 우렁찬 목소리에 누가 뒤돌아보지 않으리오! 그녀는 꼭 제 이름이 불린 것 같이 고개를 홱 돌렸다. 지금까지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기 시작한 까닭이다.
새소리, 풀벌레 울음소리... 전까지는 그저 높낮이가 변하는 소리에 불과했던 것들이 이제는 명명백백한 뜻을 품고서 그녀의 귀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작은 다람쥐의 뜻까지도!
이것도 교룡심법의 힘인가? 그녀는 몸을 떨었다. 그녀의 앞에 또 새로운 세상이 트였다.
"그...래, 어떤 가르침을 청하느냐..아니 청하니?"
그녀는 더듬거리면서 다람쥐의 말에 대답했다. 온 중원의 동물 애호가들이 들으면 까무러칠 일이, 이 아무도 없는 바위 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
- 예. 스승. 제가 다름이 아니오라 이번에 영물이 되고자 하늘의 시험을 칠 준비를 하고 있사온데, 도통 어찌 준비를 해야할지 모르겠사옵니다.
- 제 나이가 올해로 쉰을 넘겼사오나 도저히 짐작조차 가지 않으니 실례를 무릅쓰고 이리 찾아뵈었나이다.
생각 외로, 멀쩡한 가르침을 원하나봅니다.
***
"쉰?"
나보다 두 배는 더 살아놓고 당최 뭘 가르쳐달라는 거야 이 쪼끄만게. 다람쥐가 쉰 살 살았으면 그걸로 영물이지!
"흐음, 하늘의 시험이라.."
사실 그녀도 그 시험을 치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쪼꼼이를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시꺼먼 속을 숨기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귀여운걸! 따라서 그녀는 지금 당장이라도 적당한 말을 만들어 다람쥐에게 전해줘야 할 책임이 있었다. 그녀는 진지하게 생각하는 척을 하면서 머릿속 논리들을 수도없이 짜맞추기 시작한다.
"인간들은 보통 거대한 자연을 우러러보면서 아름답다, 신비하다. 이런 찬사를 보내며 자연의 순리를 찬양하곤 하지."
"하지만 그것은 문명에 적을 두고 자연을 응시하는 관찰자의 생각일 뿐. 직접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견해는 다르리라, 나는 생각했단다."
내가 지금 말을 입으로 하고 있나? 콧구멍으로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에라 모르겠다.
"자연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추위에 떨고, 배를 주리고, 온갖 질병에 시달리면서...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항상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슬프고 힘겨운 곳으로 알고 있다만. 내 생각이 맞니?"
***
- 역시. 스승께서는 만물의 이치에 통달하시었군요. 그 말이 맞사옵니다. 자연이란 본디 아름다운 것이 아닌 생명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것. 스스로 그러하니 흘러가는 것이오, 순환과 생존이 함께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옵니다.
- 허나, 그것이 하늘의 시험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 불초제자는 어리석어 잘 알지 못하옵니다.
- 스승의 고견은 어떠하신지요?
다람쥐 새x끼 주제에 굉장히 현학적인 말을 내뱉어댑니다.
***
"그래.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즐기며 산다고 표현할 수 있는 놈은. 자연과 살아본 적이 없는 놈 뿐이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숭고하지만 과연 그게 즐길 만한 것인지는...."
내 장담컨데 길가에 가던 아무 사람이나 잡아놓고 이 다람쥐와 말싸움을 붙이면, 이 다람쥐가 이길 것이다. 다람쥐가 생각보다 훨씬 더 지적인 것을 깨닫자 그녀는 식은땀이 나는 기분이었다.
눈을 감았다. 겉으로는 뭔가 있어보이는 행동이지만 그저 다람쥐의 눈을 피하기 위한 따름....
"생존이라.. 그래, 하늘의 맹금이건, 흙 속의 토룡이건. 결국 마지막에 산 자가 승리하는 것도 자연의 법칙이지."
"산토끼를 매섭게 쪼아대는 참매만이 힘을 가진 걸까? 토끼가 결국 도망쳐 삶을 보전한다면 그것은 곧 참매를 굶겨죽이는 것과 같아."
"삶은...삶 그 자체로 강하며. 오직 삶만이 선이고 사망만이 악이란다. 너도 나도. 삶을 지켰기에 여기까지 왔지 않니?"
***
- 실로 그렇습니다 선생! 과연 하늘의 시험이란 것은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에 매몰되지 않고서 객관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자연이란 것은 어떠한지를 보는 것이로군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쓰는 김캡도 더이상 이해를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 크나큰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스승. 불초제자 수련을 위해 자리를 떠도 되겠사옵니까?
***
"오, 오냐... 도토리는 네가 도로 가져가렴. 가져가서 너의 삶을 보전하는데 쓰려무나.."
대충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오래 살라는 말이었다. 깨달음도 영물도 승천도 삶이 있다면 기회가 올 것이고 삶 없이는 아무 의미 없을 테니까.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다람쥐가 자리를 뜨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사실 다람쥐 만져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이젠 아무래도 좋다. 자기가 무슨 생각을 했던지도 다 까먹어버렸으면서 뭘.
***
다람쥐는 돌아갑니다!
한숨을 내쉰 하란은 주변을 무심코 둘러봅니다.
!!
사슴, 두꺼비, 맷돼지, 청설모, 뱀에 심지어 사슴벌레까지.
다들 뭔가 열정적인 눈빛을 하고서 하란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하란은 여기 남아 영물, 혹은 영물이 되고자 하는 동물들과 대화를 더 나눌 수도 도망칠 수도 있습니다.
***
그녀는 정녕 엘프 드루이드로 전직한 것인가? 그녀의 웃는 얼굴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설마 이 동물친구들이 전부...
아니! 쫄지 마! 두려워할 필요 없다! 내가 아는 게 있으면 말해주면 되고,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면 된다. 기실 나보다 더 오래 살아온 친구들인데, 침착하게 대화를 해 보면 저들뿐만 아니라 나도 얻어갈 게 있을 것이다. 지금 나는 새로운 세상에서 견문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너희들도 할 말이 있니..?"
***
- 선생! 저는 이 서쪽 연못에서 나고자라 올해...
- 쉭쉭, 선생 부디 제 말씀을 들어주십사...
- 인간들이 너무 나무를 많이 베갑니다 선생!
- 선생!
- 선생!
- 스승!
너무....너무 많습니다! 교통정리를 할 필요가 있겠군요!!
***
"미안하지만 내 귀는 두 쪽뿐이요, 머리통은 하나뿐이니 너희들도 순서를 지켜서 말해주지 않으련?"
그녀는 잠깐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한 후, 인간들의 습성인 줄서기에 대하여 그 미덕을 설파하였다.
***
그들은 한참동안이나 서로 싸우더니.
가장 나이가 많고 싸움을 잘하는.......
사슴벌레가 제일 먼저 나서게 되었습니다.
- 강녕하십니까 스승. 저는 올해로 백예순아홉해를 살아와 이번 해에 간신히 영물의 말석에 오른 불초제자이옵니다.
- 다름이 아니오라 저 또한 등용문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사온데 스승께선 어찌하여 그리도 젊은 나이에 등용문을 보실 수 있으신지 궁금하여 찾아왔습니다.
- 불민하고 어리석은 제자에게 부디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
"백 예순 아홉... 나보다 여섯 배도 더 살았구나."
영물들의 모습 모습, 한 마디 한 마디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자신이 살던 세계가 이토록 좁았다니!
그녀는 사람을 믿지 않아 속내를 꽁꽁 숨기는 게 기본적인 태도였지만, 지금 영물들을 대하는 태도는 평소의 그것과는 상이하였다. 인간이 아니니까 괜찮아 보인다는 생각과, 한 편으로는 묵힌 속을 풀 곳을 찾던 마음이 꿈틀거리기 때문이었다.
아무렴 이 영물들이 그녀의 적에게 가서 쫑알거리겠는가? 이들이 뭣하러?
"그 질문에 대해서는, 내 이야기를 해 줄테니 너희들이 직접 판단해 보지 않으련?"
각설하고 다시 문답에 대한 내용으로 돌아와. 그녀는 답을 찾는 것을 은근슬쩍 영물들에게로 되던진다. 이렇게 하면 그녀가 직접 머리로 정답을 쥐어짤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들이 그녀의 생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지 은근히 궁금하기도 했다. 남이 알려준 것만 줄줄 읆는 것이 등용문의 시험일 리는 없으니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도 나쁠 건 없잖은가?
"나는...이십 칠년 전에 산동에서 났단다."
***
하란의 일생을 영물들에게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아직 어린 영물들은 '???'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지만, 사슴벌레의 험상궂은 근육 자랑에 눈을 내리깔고 경청을 하기 시작합니다.
하란은, 일생의 이야기 중 어떤 것을 들려주시겠습니까?
***
자기가 용이 되어간다는 걸 깨달으며 정체성 혼란을 겪었던 이야기를 해줍니다.
용을 흉내내는 건줄 알았는데 용이 되는 거라구?
용을 좋아하긴 하지만 일이 너무 커지는 것 같은데 내가 감당할 수 있나?
나 따위가 용이 되어도 되는 거야?
내가 용이 되면 그 이름을 더럽히는 건가?
하면서 혼란스러웠던 경험이용
***
영물들은 하란의 이야기를 듣고 혼란스러워 합니다!
아쉽게도 이들은 하란의 이야기에 공감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건 어떨까요?
***
"내가 너무 어려운 이야기를 했나?"
낭인으로 구르던 이야기를 해줘용. 영물들도 자연에서 구르니 이해하지 않을까...
***
고난했던 이전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많은 영물들이 그 이야기에 공감합니다!
- 인간들의 사냥 덫에서 빠져나올 때 정말 힘들었었지...
- 사냥을 성공 못해도 한 달을 굶었을 때를 떠올리게 되는군...
하지만 이들은 아직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있더구나? 그 시절에는 성취가 거의 오르질 않았다. 험난한 생활을 청산하고 어디 번듯한 곳에 들어가서, 안정적으로 살자마자 깨달음이 폭발적으로 늘어 지금에 이르렀지."
"내가 등용문을 처음 마주한 게 고작 한 두달 전이란다. 이게 뭘 의미하겠니?"
"누구는 노력, 노력, 또 노력하라고 하지만. 꼭 살을 바르고 뼈를 깎는 것에만 깨달음이 있을까?"
"석가께서도 고행을 하다 그만두시고 유미죽 한 그릇을 드셨다는데."
너무 치열하게만 살다가는 번아웃 당해 좀 여유를 가져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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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영물들은 하란의 말에 납득 합니다!
사슴벌레가 대표로 허리....라고 추정되는 부분을 굽히면서 감사인사를 올립니다!
- 선생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또 감사드립니다! 저를 비롯한 말학들은 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더니 약소하지만, 이라며 뭔가....뭔가 과일같은 것들을 가지고 옵니다.
***
그녀 스스로도 시원찮은 가르침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확신이 없는 가르침이 어찌 참 가르침인가.
"아니 뭐 이런 걸 다, 난 괜찮은데"
그러니 영물들이 먹거리를 내놓자 당황할 수 밖에
***
정말 안받으시겠습니까?
***
***
받아둡니다!
【 어린 영물들의 보은 】
한층 더 격을 탈피하고 높은 단계로 나아가고자 배움을 갈구하는 어린 영물들의 마음이 담긴 과일과 견과류.
먹으면 내공이 상승한다.
- 섭취시 내공 3 상승
***
"고맙구나. 내 소중히 먹으마."
오늘로 하란이 뒤에 하란주는 새로운 사실을 학습했다. 꼭 잡아먹지 않아도 영물과 엮이면 내공증진이 따라온다는 것을...전에 사슴연못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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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물들은 다들 배꼽인사를 하며 떠나갑니다!
혼자...남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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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물과일 냠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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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과 견과류를 섭취합니다!!
내공량이 93으로 갱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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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상쾌하다 자연의 맛...그리고 내공의 맛... 그렇게 하란이는 산을 다시 내려와 호남으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하였다.
- 다시, 일상
- 석가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미사 소저!"
금소협이 가장 먼저 밝은 얼굴로 쪼르르 달려나와 반깁니다!
***
"금소협!"
그녀 또한 환하게 웃으면서 사람을 맞았다.
"역시 금소협 안 데리고 가길 잘했어요. 꼴사나운 짓을 조금 했는데, 친한 사람들 보여주기엔 많이 부끄러워서.."
***
금소협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습니다. 뒤이어 신채훈이 나오고 석가장의 몇몇 사람들도 나와 하란을 반겨줍니다.
"장주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하백이 하란에게 말합니다. 너, 언제왔니??
***
"대 소협! 역시 다리가 두 개라 저보다 민첩하게 움직이시는군요!"
그녀는 사람들과 재회의 인사를 하며 우리 장주님을 영접하러 간다요!
***
석가장주를 만나러 갑니다!
한한검 석지훈은 시원한 차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돌아왔군. 적호검희."
그는 빙그레 웃으며 하란을 맞이합니다.
"소식은 들었네. 이번에 화산논검에서 무려 4강에 들었다지."
***
"석가장주 한한검을 뵙습니다."
꾸벅 인사하였다. 논검의 소문은 이미 호남까지도 다다른 모양이었다.
"부끄럽습니다 장주님. 더 잘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하였으니."
***
"4강이면 충분히 잘 한 것이지."
한한검은 차를 호로록 마십니다.
"한 잔 들겠나? 화산논검의 이야기를 내 듣고 싶은데."
***
"가서 한 것도 없는데 말하라 하시니 부끄럽지만, 원하신다면 기꺼이."
한한검의 석가장. 그녀는 자신이 대화산논검에서 어찌 싸워 이기고 졌는지 차분히 들을 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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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장주에게 화산논검의 썰을 풀어줍니다.
하란은, 4강 직후 바로 내려왔기 때문에 지원의 일은 모릅니다.
"과연. 마교의 인물이 그리도 강했단 말이지........"
석지훈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내 소저를 너무 오래붙잡고 있었군. 돌아가서 쉬셔도 좋소."
***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쪼르르, 그녀는 물러 나왔다. 한한검은 그만 쉬라고 했지만 사실 무림인은 지치지 않는다.
특히 수련을 할 때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