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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중
- 1. 용궁 경제 개발(기연)
2. 용궁 군대 육성(기연)
3. 용궁 대 혈검문 외교(기연)
4. 진룡검법 탐색(기연)
5. 광해방검진 10성까지 수련(기연)
6. 용이나 용왕으로서 알아야 하는 선술들 탐색
7. 혹등고래에게 유교 제왕학 배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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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하란은 용궁 경제, 군대 육성, 혈검문 외교, 진룡검법 탐색, 광해방검진 10성을 위해 기연을 사용해 5년간 활동하고 남은 2년간은 용왕 혹은 용으로서 다뤄야하는 선술을 탐색합니다. 마지막 1년은 왕사에게서 유교에서 펼쳐지는 제왕학을 학습합니다.
무려 5년간 기연을 다섯 번 사용한 덕택일까요?
용궁의 경제적 능력은 매우 크게 향상될 것입니다.
관련된 건물이 추가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용궁의 자체적인 군사력이 크게 증가합니다.
일류 고수에 해당하는 전력들이 추가됩니다.
혈검문과의 외교는 굉장히 운이 좋았습니다.
당장은 전쟁이 터지지 않을 것입니다.
서로간에 사절을 보내고 탐색하는 시간을 가지게 될 터이지만...여전히 전력은 혈검문의 압도적 우위에 있는 상황입니다.
혈검문의 사절들은 오만하지는 않을테지만 그렇다고 비굴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이 인근의 절대적인 패자이며 용왕이 약한 모습을 보이면 언제든지 이빨을 드러낼 맹수들입니다.
폭풍이 불기 전 밤은 고요하고 적막하기 마련입니다...
진룡검법에 대해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정의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을겁니다.
광해방검진을 수련합니다!
대성을 이룩할게 틀림없습니다!
선술을 탐색해보기 위해 선계로 향해야만 할 것입니다.
과연 선계에서는 어떤 선술을 얻었을지 기대가 됩니다.
왕사에게서 유교의 제왕학을 배웁니다.
미사하란은 유교의 제왕학을 배운 영향으로 패도적인 정책이나 정치에 일부 제한을 받게 되나 이에 따라 왕사의 호감도와 능률이 상승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따른 연성이 차후 이루어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
피비린내가 코를 찔러온다. 미사하란은 곤룡포의 소매자락으로 코를 살짝 가렸다.
눈 앞에 있는 세 명의 인물은 덤덤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무엄하게도 미사하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허나 무엄하다고 할 수 없다. 고개를 들라고 하였으니 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당장 저 세 인물이 검을 뽑아든다면 개천궁은 오늘 사라질게 분명하다.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무인들의 기세가 대전을 가득 메우고있다.
"해협의 용왕전하의 용안을 이리도 뵙게되어 감읍할 따름입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자가 포권을 취하며 말해왔다. 미사하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혈검문에서 선물을 준비하였사온데 부디 받아주소서."
말은 정중하지만 기세는 흉험하다. 미사하란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신하 하나가 혈검문의 사자에게 다가가 자개로 만들어진 함을 받았다.
"아름다우신 자태에 어울릴만한 보석들로 치장한 장신구이옵니다."
안타깝게도 보패 수준은 아닌 것 같아 내심 아쉽지만 미사하란은 선물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그대들의 선물을 여는 기쁘게 받아들이겠노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혈검문의 세 인물이 그리 말하며 고개를 숙이지만, 그 안에 있는 그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미사하란은 허리를 쫙 폈다.
초절정 무인 셋의 앞이지만 자신은 해협의 여왕이다. 군주가 어찌 사절에게 두려움에 가득찬 모습을 보여야겠는가?
"아까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소인은 혈검문의 장로직을 맡고 있습니다. 저희가 전해듣기로는 용왕 전하께옵서는 저희와 친교를 다지고자 하신다 들었사옵니다만은...어떻게 친교를 다지고자 하시는지 감히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미사하란은 그 뛰어난 머리를 이용해 적절하게 답했다.
"내 비를 내려주겠노라."
그 말에 혈검문 장로의 얼굴은 꽤나 볼만하게 바뀌었다. 기괴하게 일그러뜨린 그 얼굴을 본다면 누구라도 웃음을 참지 못하리라.
"비...말씀이십니까?"
인세와 선계의 통공이 단절된지 어언 몇 천 년. 선술이라 함은 전설이나 동화, 패관문학에서나 나오는 무언가이고 용도 물론 그러하다.
그간 있어왔던 용들이라 해봤자 그리 대단치 않은 어린 것들이지 않았는가?
제 육중한 몸과 물리력만 믿는 멍청한 포악한 맹수들일 뿐이었다.
아니지. 개중에는 대단한 용도 있었지. 비와 우레를 부리고 해일을 다스리는 용들도 결국 혈검문의 검 앞에 여의주를 내어주고 죽음을 맞이했지만 말이다.
혈검문의 장로는 그렇기에 미사하란의 말에 코웃음을 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전설처럼 선술이라도 부리실 요량이신지?"
명백한 비웃음과 조롱이 담겨있는 말. 옆에 있는 왕사가 조용히 고개를 양 옆으로 흔들었다. 이를 바드득 간 미사하란이 입을 열었다.
"그래. 전설처럼 선술을 부려 비를 내려주겠다."
"그것 참...대애단히 감사한 일이오나, 저희 혈검문에는 따로 비가 필요치 않사옵니다. 무릇 하늘의 일은 하늘에게 맡겨야 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여가 곧 복건의 하늘이니 그대는 걱정말라."
"허허허."
그 말에 뒤에 있던 혈검문의 다른 인물들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재밌는 농담은 잘 들었습니다 전하. 이제 분위기도 달아올랐으니 진짜를 말씀해주시지요."
혈검문의 장로는 농담으로 치부하고 넘겼다. 그의 눈빛은 사뭇 진지해보인다. 그럼에도 미사하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분명 비를 내려주겠다 하지 않았는가? 군주의 말은 강철과도 같이 무겁다. 내 거짓을 말한다 여기는가?"
세 무인의 표정은 다시금 볼만해졌다. 혈검문의 장로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미사하란이 씨익 웃었다. 혈검문의 장로는 눈을 찌푸렸다. 오른손을 쥐었다핀다. 저 손에 내력이 실리면 패울부가 곧장 나서 막을 수 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나머지 두 무인이 미사하란을 공격해오겠지.
미사하란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손을 들어 휘저었다.
"이렇게."
이 날, 용궁 안에는 비가 내렸다.
차갑고 선명하게 맑은 빗방울이 흘러내려 바닥을 적실정도로 말이다.
- 무친룡
- 시간이 흐릅니다.
중원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대사건들이 지나가고, 마교와 정파간의 분쟁이 끝난지도 어언 7년이 지나버렸습니다.
사건들은 잊혀지고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집니다...
전쟁이 오면 평화가 오고, 평화가 오면 전쟁이 오는 법.
7년이 지나 새로운 봄이 오고, 어둠이 태양을 가립니다.
불길한 천둥소리가 천지를 울리고 성난 벼락이 땅을 거세게 때립니다. 홍수가 세상을 뒤덮습니다!
때아닌 봄에 닥친 재앙에 농민들은 울음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온 중원에 한 가지 소문이 퍼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산동에 용이 떨어져 내렸다고 말입니다.
- 산동에 용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고 합니다.
- 미쳐버린 용이 산동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습니다!
- 광검문의 무인들은 속수무책이라는군요...화경의 고수도 어찌할 수 없다는 뜻일까요?
모든 레스캐는 이 소문을 접합니다.
***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교룡검법이 그 자체로 끝이 아닌, 또 다른 무공으로 통하는 관문임을 깨우친지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러나 손에 넣은 것은 이곳저곳 찢어저 온전히 내용을 파악할 수도 없는 종이뭉치들이었다. 그녀는 족자 위에 종이조각들을 올려두고 가만히 내려다보곤 했다. 이렇게 하면 아귀가 맞을까. 저렇게 하면?
"으으음....."
머리를 쓸어넘겼다. 종이쪽에 그려진 모습들을 따라하기도 하고 사라진 조각에는 무엇이 있을지 흐름을 따라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큰 진전은 없었다. 누구 진실을 알아 속 시원히 물어볼 이도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사람을 풀어 알아보고자 해도 결국 선계에 올라갈 수 있는 것은 그녀 하나뿐이니 말이다.
손 안에서 한참을 데굴거리던 찻잔은 이미 한참 전에 식어버렸다. 그리고 또 다시 데워지고 식어가기를 수 차례 반복한다. 그녀는 머리가 아파져 종이뭉치를 끼워놓은 족자를 말아버리고, 다른 것을 펼쳤다.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사나운 시간이 시작되리라는 이 기분은 무엇일까. 어르신이 그녀의 정체를 알았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대관절 왜 산동에 용이 떨어졌다는 거냐??
***
신하들이 급히 정보를 가져왔습니다!
"전하, 정말로 산동에 용이 나타났다고 하옵니다. 헌데..."
미쳐버린 용이 화경의 고수를 부상을 입혔다고 하는군요.
무림비사에서 전투력 판독기처럼 쓰이던 불쌍한 용들의 위엄이 바로 서는 이 기분!
아니..이게 아닌데...
***
".... 어째서 지금? 왜?"
그녀도 들은 게 있었다. 진군에게서나 선계에서나. 용의 개체수가 고작 한자릿수라는 충격적인 사실. 심지어 그녀까지 합한 수치다. 그래서 용끼리는 동족을 서로 끔찍히도 아낀다고.
"이건...이건 여가 나서야 하는 일인가? 여가 산동으로 가서 광룡을 진정시키고 궁으로 데려와야 하는가?"
천하에 광룡이 아닌 용은 그녀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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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가보시는 편이 낫지 않으시겠나이까?"
신하들이 조심스레 그리 말합니다.
광룡...광룡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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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있다간 무림첩이 돌아갈게다. 천하의 내로라하는 인간 고수들이 산동으로 모여들 것이야."
같은 용으로서, 광룡이라지만 동족이 ㅇ/ㅛ/ㅇ이 되는 꼴은 보지 못하겠다. 그녀가 용 중에서는 아기나 다름없으나 나름 하계에서 용왕 노릇을 하고 있는데. 광룡이 사냥감처럼 죽어 오체분시를 당하면 그녀의 체면이 무엇이 되냐는 말이다. 어쩌면 광룡을 잡았는데 협해적룡을 잡지 못할 것은 또 무엇이냐고.. 그런 불경한 생각을 할지도 몰라!
"...해협삼검에게 준비를 갖추라 이르라. 가능한 빨리 산동으로 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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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셋이 급히 검을 챙기고 준비합니다!
용으로 변한다면 산동으로 바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동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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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웃고 있다. 부드럽게 웃는 것처럼 보이나 뒷덜미에선 땀이 흐르는 기분이다.
시간이 촉박하다. 가능한 빠르게 움직여 선수를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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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하란은 산동에 도착합니다!
어린 용왕이 산동에 이르니, 용왕의 여의주가 붉게 빛나기 시작합니다.
이게 길일지 불길일지는 아무도 모를테지요...
대사건 - 비극의 용생자가 시작됩니다!
비극의 용생자悲劇之龍生子
산동에서 미쳐버린 붉은 이무기가 날뛰기 시작한다. 이무기의 난동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낳았다. 관군은 휩쓸려나갔고 산동의 고수들도 속수무책이다. 무림맹에서 무림첩을 돌려 의기넘치는 협객들과 고수들을 불러모은다.
미쳐버린 이무기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막대한 희생을 치룰것이다.
용에게서 났으나 날때부터 용이 되지 못해 결국 실성한 이무기는 눈물을 흘리리라.
::대사건 해금조건::
- 레스캐 중 하나가 산동에 갈 것
- 레스캐가 어떤 방식으로든 여의주에 영향을 줄 것
- 레스캐가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는다면 평균적으로 레스캐의 경지가 절정 이상일 경우에 무작위로 발발
***
인간의 모습으로 변합니다!
거북이 셋도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는데, 그 모습이 키 크고 어깨가 넓은 헌헌장부 셋입니다.
얼굴도...제법 괜찮게 생겼군요.
거북이보다도 못생긴 사람들이 수두룩한 인간세상같으니라고...
산동의 길거리를 지나다니니, 대부분의 건물들은 물에 젖어있거나 부숴져있습니다.
저 멀리까지 쭈욱이요.
말 그대로 대재앙이 닥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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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리도 심각하니 그녀의 잠저와 곁에 뭍힌 스승님의 관짝까지 쪼개지지 않았나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산동의 상황은 처참 그 자체였다.
"다른 것은 신경쓰지 마라. 오직 광룡을 포착하는 것에 온 집중을 기울여야 한다."
그녀는 언제부턴가 계산을 포기한 채 움직이고 있었다. 동족이니까 구한다는 단순하고 본능적인 감정 하나를 품은 채. 용으로 살아가며 생각하는 것도 점차 그답게 변화하는 것일지도.
눈알을 굴리고 귀를 쫑긋거렸다. 이 어쩜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이란 말이냐
***
용의 기운은 저 멀리있는 산에서부터 느껴집니다.
- !!!!!!!!!!!!!!!!!!!!!!!!!!!!!!!!!!!!!!!!!!!!!!!!
용의 포효소리. 사람들은 귀에서 피를 흘리고 일류의 경지인 해협삼검도 피를 흘리며 비틀거릴 지경입니다.
사람 하나가 풀썩 쓰러지는걸 미사하란이 목격합니다.
...일단 확실한 것은, 저 용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는 겁니다.
***
용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화경고수마저 패퇴시킨 광룡이 울부짖는 소리다. 그녀는 가슴 속에서 뭔가가 찌르르- 하는 것을 느꼈다.
그간 허벅지에 살이나 찌우다가, 다시 아수라장 싸움터로 그녀가 돌아왔다. 사람들은 깃털처럼 쓰러지고 천지를 덮은 잿가루 냄새가 코로 들어와 몸을 가득 채운다. 위험을 알리는 직감의 등불이 켜지자 무거운 긴장이 구렁이가 되어 목을 죄기 시작했다.
"7년 만이군..."
궁에서 소매 넓은 옷이나 걸치고 있으면 볼 일이 없는 것들. 오랜만에 나온 세상은 아직도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근맥 한 줄기 한 줄기의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천하의 고수들이 산동으로 오고 있음을 기억하거라. 그 전에 광룡을 확보하고 궁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의주 원플러스원에 거북내단 3개까지 덤으로 바치는건 극구사양이야!!
"이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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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전진합니다!
저 멀리 보이는 산에서 거대하고 길쭉한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 거대한 것이 한 번 움직일 때 마다 산사태가 일어나듯 산 일부가 움푹 패여 아래로 떨어지는 와중입니다!
...
사람의 모습으로는 저 용에게 다가가봤자 개죽음을 당할게 분명합니다!
***
싸움을 걸었다가 고래 지느러미에 새우등이 터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무력으로 광룡을 제압해서 끌고가는 방안은 처음부터 논외였다. 광룡을 진정시켜 이성이 돌아오도록 하거나, 불의의 기습으로 기절을 시킨다면..... 지금 저리 거대한 모습으로 기절을 시키면 어떻게 끌고 가지? 커다란게 커다란걸 끌고가면 세상의 구경거리라. 결국 광룡을 진정시키는 방법뿐인가!
필연적으로 광룡의 공격 몇 번은 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이러는 와중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너희는 더 이상 다가오지 말고 주변을 호법하여라. 문파에 속한 인간들이 접근한다면 교전하지 말고 속히 알려야 한다. 알았느냐?"
그리고 이를 악문다. 뿔이 커지고 주둥이가 늘어난다. 박차는 땅에는 발자국이 아닌 발톱자국이 남는다.
***
- !!!!!!!!!!!!!!!!!!!!!!
하란이 용으로 변해 땅을 기어가기 시작하자, 다시 한 번 저 거대한 광룡에게서 포효가 울려퍼집니다.
용들의 언어가 미사하란의 귀에 꽂혀들어옵니다.
하란은 지금 자신이 들은게 맞는지 놀라서 움직임을 잠깐 멈춥니다.
어 지금 그러니까...
'날 죽여줘'
라고 한건가요?
***
대화산논검을 마무리하고 석가장으로 돌아가던 길. 주변 작은 것들의 말이 들렸던 것처럼, 이번에도 인간이 들을 수 없는 것들이 흘러온다.
흉참하였다. 걸음을 멈추고 헛것을 듣지 않았나 되새겨야 했다.
'죽여달라니?'
미친 것인가! 이런 사달을 내는 게 이미 미친 짓이지만!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구나!
***
이동합니다!
마침내 하란은 그 용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 용을 보자마자 하란은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이거, 용이 아닙니다.
생김새는 용에 가깝고 동족의 냄새도 짙지만 결정적으로 용의 상징인 뿔이 보이지 않습니다.
눈 앞에 있는 이것은 용이 아닌...
승천에 실패해 미쳐버린 이무기입니다.
- 용....용이구나....
쇠를 긁는듯한 목소리가 하란의 귀에 들어갑니다.
- 아주 어리고...싱싱한...용...
그르르르륵. 그르륵.
- 용아, 용아, 어리디 어린 젊은 용아. 내 꼴을 보려무나. 불쌍하지 않던? 내 용의 자식으로 태어나 한 평생 용이 되기를 꿈꿔와 수련하였으나 마지막에 승천해 실패해 이리 땅에 처박히게 되었다. 내가 가엾지 않으니? 응? 날 어여삐봐다오...
이무기의 혀가 날름거립니다.
- 아주 아름답고...빛나는 붉은 비늘이구나...참으로 아름다워...어린 용아. 너는 용이 되어 모든 것을 이루지 않았느냐? 날 가엾이 여기어 조금만 도움을 다오.....
스르륵...스륵...
거대한 이무기의 몸이 천천히 하란에게 접근합니다.
- 네 여의주가 있다면...난 다시 승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슷..스스스스슷.
- 여의주! 여의주를 내놔! 네 여의주를!!!!!!
콰아아아아아아앙!
이무기의 몸이 거칠게 움직이면서 산사태가 일어납니다!
***
가까이 다가가 알아챈 그의 정체는 이무기였다. 승천에 실패하고 이성을 잃은 이무기. 휘두르는 힘으로 짐작컨대 이무기라 해도 하루이틀 묵은 영물이 아니다. 왕사처럼 오랜 시간을 산 영물이 틀림없었다.
무서운 말을 하는 이무기에게 놀라 그녀는 몸을 떨며 몇 발자국을 물러섰다. 대화는 가능한게 다행인지,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라는게 불행인지...
"제발 진정하시오! 하루이틀 묵은 영물도 아닐진저 어찌 이리 난폭하게 구시오!"
"천하의 탐욕스런 인간 고수들이 그대 하나만 쳐다보고 있는 걸 어찌 모른단 말이오! 진정 가죽이 벗겨지고 내장이 파헤처지는 욕을 당하고 싶은 것이오?!"
***
- 네 여의주만 있다면 내 다시 하늘로 올라 승천할 수 있을것인데 하계의 일이 무에 중하리?
그 거대한 몸집으로 이무기는 하란의 몸을 천천히 감싸오기 시작합니다.
- 나도 네게 상처를 입히면서 여의주를 빼앗고 싶지는 않구나. 순순히 내어준다면 내 너를 보내주마.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
용에게 여의주를 내놓으란 소리는 죽으란 소리냐. 부족한 일신의 무력이 원망스럽다! 힘만 있었어도 골통에 머리를 쥐어박고 강제로 끌고갔을텐데!
구렁이 담 넘듯 사방을 감싸는 이무기의 비늘이 닿는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황급히 몸을 빼려고 했다.
"나는 상제께 명받고 하계로 내려온 복건 용왕이오! 내 여의주를 가지고 승천한다 해도 상제께서 당신을 인정할 리 없지 않소!!"
"한번 실패하면 더 이상 기회가 없는 거요? 아니면 셀 수 없이 실패했다고 이리 구는 거요!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이오!"
***
- 어리구나! 어려! 여의주에는 이름표같은게 없다! 어린 용아!
꽈아아아악!
몸을 빼려하는 하란의 꼬리를 이무기가 자신의 꼬리로 꽈악 눌러버립니다!
- 네 여의주를 내놔아!!!!!!!!!!!
***
히야아아아아악!!!!!
"내가!!! 다른 방법을 알고 있소!! 용생자로 승천할 수 없었다면 등용문으로 가면 되는 게 아니오!!"
그녀가 갔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가망이 있을지. 지금으로선 거기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설득해야 한다.
"내가 도울 수 있소, 내가 한 번 가봤던 길이란 말이오... 제발 이러지 마오..!"
그녀는 반쯤 애걸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봉변인가.
***
우뚝.
이무기의 몸이 멈춥니다.
- 방법을, 안다?
크르르르르르...
침이 뚝뚝 흐르는 이무기의 입이 하란의 코앞까지 다가옵니다.
- 들어나보마....헛소리를 하는거라면...네 이쁜 비늘들이 뜯겨져나갈게야...뜯어낸 다음에는...내 비늘로 쓰면 되겠지....
단단히 미쳤습니다!
***
손짓 한번으로 그녀를 보내버릴 수도 있는 자 앞에서 말해야 하는게 세 번째다. 이제 익숙해질만도 하지만 얄궃은 세상의 조건은 하늘의 별보다 많았고, 마주할때마다 새로움이 느껴졌다.
사실 놓고보면 크게 어렵진 않을지도 모른다. 정신이 흐리면 깊은 심계도 보이지 않는 법. 승천 하나에만 눈이 멀었으니 살살 꾀어내면 응할 것이다. 꾀어낸다 하여도 이무기를 속이는게 아니다. 그녀는 실제로 내어줄 것을 가지고 있었다.
"교룡비급에 대하여...들어보셨소...?"
그러나 코앞까지 들이대는 침을 흘리는 아가리, 송곳니. 그리고 이무기가 내뿜는 광기는 또 새로운 맛이었다. 그녀는 몸을 낮추고 난감한 낮빛으로 말했다.
"교룡비급을 극성까지 수련하면 용문의 시험을 치를 자격이 주어지오."
우선 이무기를 진정시켜 바다로 돌아가는게 급선무였다.
"얌전히 나를 따라오면 당신에게 비급을 알려주겠다고 약조하리다."
***
- 뭐라?
우두두둑.
이무기의 몸이 순식간에 해체되더니 빛으로 화합니다! 곧 그 모습은 백발이 성성한 늙은 노인의 모습으로 변합니다.
"지금, 뭐라고 했지? 교룡비급? 그 보물을 어찌 네가 가지고 있다는게냐?"
성큼성큼 다가오는 노인의 위세는 거대합니다!
"내 부모의 물건을 어찌 니가 가지고 있단게야!!!"
부모의...물건?
***
와! 교룡비급 아시는구나! 아시는데... 어어어...
일단 인간의 모습을 취할 수 있으니 다행이로다. 시뻘건 큰 것이 또 다른 시뻘건 큰 것을 데리고 가는 꼴을 보이지 않아도 되니. 그러나 세상일은 생각되로만 되지 않는 것이니. 알면서도 그에 당하는 게 세상 이치라.
"부모라니..? 나, 나는 그런 거 알지 못하오. 독사굴에서 우연히 주웠을 뿐이오!"
"비급을 지킨다 할 만한 영물도 없었소. 그냥 독사들뿐이었다는 말이오.."
그녀도 이무기를 따라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몸가짐이 사람의 정신을 결정한다고,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
이무기의 얼굴이 팍 일그러집니다.
"빌어먹을! 일단 당장 안내해라! 내 직접 눈으로 봐야겠으니!"
***
비급 원본은 당연히, 개천궁 금고 안에 있다. 이미 내용을 달달 외워버렸으니 꺼내서 볼 이유는 없고. 언젠가를 위해 보존하려는 뜻이었다.
"알겠소.... 궁에 비급이 있으니 서둘러 갑시다."
그런데 영물들은 사람으로 변하면 어르신 얼굴을 하고있다. 격이 되는 영물들은 하나같이 그러니 혼자서 젊은 낯을 한 그녀는... 어르신들 술자리에 붙잡힌 청년의 기분이 든달까.. 나만 동년배 없어..
***
"아니! 안돼! 아니된다!"
그렇게 떠나려고 할 때. 늙은 노인이 소리를 버럭 지릅니다.
"이 곳을 떠나서는 아니된다! 난 이 곳을 떠날 수 없어!"
아.
"그걸 여기로 들고와라! 당장!"
***
"당신 여기 있으면 죽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오?!"
세상일..생각대로..아아...
"천하의 기라성같은 고수들이 산동으로 모이고 있다니까! 당신이 산동의 화경고수를 꺾었을진 몰라도...!"
화경이 복사가 된다고. 초절정과 절정들은 덤으로!
"지금 하계에 용은 나 하나에, 이무기가 당신 하나요! 이미 내가 산동까지 온 것만 해도 얼마나 위험을 감수한 것인데!"
***
"나라고 가고싶지 않은게 아니다! 아니란 말이다!"
노인이 역정을 내며 검지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킵니다.
"나는 갈 수 없다!"
어? 패울부가 생각납니다.
그 때에도, 무언가 하늘의 제약 때문에 함부로 자리를 옮길 수 없다고 했었지요?
이 이무기도 비슷한 금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아.. 선계의 금제!
"이익..익..!!"
이건 이무기에게 화를 낼수도 없으니. 머리를 싸매고 혼자 성을 내는 그녀다. 이무기를 쥐어박을수도 없고! 따질 시간에 그녀가 다녀오는게 더 빠를 것이다.
"빨리 다녀올테니 문제 일으키지 말고 인간 모습으로 숨어 계시오! 아시겠소?!"
그녀는 겅중겅중 뛰어 그에게서 멀어진다. 빨리, 빨리!
"삼검! 집결하라!"
***
개천궁에 도착합니다!
"전하?"
신하들은 놀라서 하란을 쳐다봅니다. 음! 오늘도 한 껏 무엄하군!
***
"놀랄 것 없다. 금고에서 교룡비급을 꺼내오니라, 어서!"
뭘 멀뚱멀뚱 보고만 있나! 비상 시국이니 빨리 움직이란 말이다!
"광룡이 금제로 인해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 하니, 그 자리에서 승천시킬 것이다!"
***
비급을 가지고 재빨리 이동합니다!
교룡비급을 그가 얻는다고 해서 그가 승천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무기는 여전히 인간의 모습으로 씩씩거리고 있다가 하란이 오자 바로 하란의 멱살을 잡아챕니다!
"어서! 내 부모의 보물을 내놔!"
아. 줄거에요. 제발. 좀!
***
지금 미치고 팔짝 뛸 사람, 아니 용이 누군데.. 그녀는 속절없이 멱살을 잡혀 흔들린다.
"여기 있소. 좀.."
고만해..
***
이무기는 곧바로 교룡비급을 뺏어 촤르륵 펼칩니다.
"......."
무언가 잘못된걸까요?
"빌어먹을...빌어먹을....빌어먹을....!!!!!!"
그는 교룡비급을 내팽개칩니다! 아니 미친놈아!
"내가, 내가 익힌 것과 별 다를바가 없잖느냐! 다를게 없어!!!!!!!!"
?
잠깐 그러면 이 말은.
이 이무기는, 하란과 동문...이라는건가요?
그러니까.
하란과 똑같이 교룡검법과 교룡심법을 익혔다는 말입니다!
"내게! 내게 기회가 없단 말이냐! 부모가 내게 가르친 것과 다를게 하나도 없다! 나를! 나를 속였어! 네 년이 나를 속인게야!!!!!!"
또다시 이무기의 광증이 도지려합니다!
***
"그게 무슨 말이오?"
똑같다니. 교룡비급의 전승자는 천하에 자기 하나인줄로만 알고 있었지만. 이리 동문이 남아있었다니. 참으로 기뻐할 일이...
- 네 년이 나를 속인게야!!!!!!
...기뻐할 일이 아닌가?
"침착하시오. 일단 심법이 9성까지 다다른 건 맞소? 나 또한 거기서 깨달음이 모자라 꽤나 정체하였으니 실망할 단계는 아니오!"
그녀의 경우에는 인간과 용의 경계에서 어중간한 인식을 가지고 있던게 문제였다. 그렇다면, 이무기는? 나이와 힘을 고려하면 마지막 하나가 모자라 승천이 안 되는 게 분명하다.
"아니면 여의주를 여럿 가지기라도 한 거요?"
설화에선 그러던데. 여의주를 놓지 못하는 욕심많은 이무기 이야기..
***
"?!"
이무기의 몸이 우뚝 멈춰섭니다.
"...네 년. 그걸, 어떻게?"
님 진짜 어떻게 알았어요?
***
"인간들 사이에선 유명한 이야기인데. 여의주가 여러 개라 승천을 못하는 이무기 말이오!"
비로소 그녀는 활짝 웃을 수 있었다. 뭐해. 당신도 웃으시오! 실마리를 찾았잖소?
"일단 그걸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해 봅시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않겠소?"
이무기 친구는 여의주를 많이 갖고 싶었구나~ 그러면 승천이 안되는데~
***
"....."
이무기는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얘 왜이래?
"섞였다."
네?
"섞였다고."
***
"......"
...여의주..반으로 쪼개...?
"여의주가 무슨 달군 쇳덩이도 아니고..어쩌다가.."
그녀의 앎을 초월한 문제였다. 여의주가 섞인다는 이야기는 듣도보도 못했고, 섞인 여의주를 다시 떼어놓는 방법은 더더욱..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오..?"
일단 사건의 전말을 훑는것부터 시작하자.....
***
"그것이..."
이무기는 한탄하듯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들어보니...
죽은 부모로부터 받은 여의주와 자신이 만들어낸 여의주. 이렇게 둘을 가지고 있었는데, 승천하면서 더 강해지고 싶어 여의주 둘을 한 꺼번에 집어삼켰답니다.
속이 들끓고 타오르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여의주 두개가 불완전하게 섞여버렸고 결국은...
승천에 실패해 땅에 추락했답니다.
선계에서는 여의주를 되돌리기 전까지는 절대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았고, 난동 부리지 말라며 산동을 감옥삼아 가둬놓은 상황이군요.
머리가...아픕니다...
***
"내 여의주를 갈취해도 승천은 못하셨겠소?"
아이고 두야..두야... 허탈하고 또 어처구니가 없다. 여의주가 두개라 쫓아냈더니 세개를 들고 돌아오는 이무기라. 선계의 신선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흙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부러진 나무둥치에 머리를 기댔다. 이 꼬인 실타래를 어찌 푸나. 생명의 실이라 칼로 자르지도 못한다.
".....저기 그런데."
"그,따지고 보면 우리 동문이잖소."
눈이나 끔벅거리던 그녀는 고개를 들고 이무기를 올려보았다. 책 한 권을 벗삼아 평생 홀로 비급을 수련했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좀 반가운가?
"사형이라 불러도 돼요?"
***
"다른 여의주의 힘을 이용해 분리하려 하였느니..."
그런데 그게 니 맘대로 될까 싶습니다.
"..."
이무기는 얼척없는 눈으로 하란을 바라봅니다.
"사형이라기에는, 배분 차이가 좀 심하게 많이 날 것 같은데."
아아! 이럴 때 친화성 장점이 있었으면 바로 오케이났을건데! 조금 아쉽군요!
***
아이고! 어디갔냐 하란이 옥골선풍!
"그럼 대사ㅎ......아니오."
말을 말자. 하지만 다른 여의주를 이용해서 분리한다는 발상은 괜찮아 보인다.
용과 이무기의 여의주가 불완전하게 섞였다. 그럼 용의 여의주끼리 섞인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무기 여의주보다 용의 여의주끼리 결합하는 힘이 더 강하지 않을까?
허면 그녀의 여의주와 이무기의 여의주를 가까이 둔다면? 결합하는 힘의 차이를 이용하여 엉겨붙은 용의 여의주를 떼어낼 수 있는가?
모래에서 지남석으로 사철을 골라내는 이치처럼....
"한번 해보는게 어떻소? 그 분리하는..."
***
"해, 해봐도 되겠느냐?"
잘못하면 하란의 여의주도 같이 박살이 날 수 있습니다...
해볼까요?
***
뭐 뭐 씨 안돼면 도화전 갈기면 돼! 나 지금 1기연 있어!
"해..봅시다. 나도 다른 생각이 나지 않소."
그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거 성공하면 우리 사형 사매 되는 거요."
***
진짜 할까요?
하란은 용에서 떨어져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
"아..아니 잠깐잠깐잠깐..."
사실 좀 무서워... 못하겠어..
"주인없는 여의주가 하나만 더 있었어도!"
이름모를 뉴비님 보셨죵? '진짜 할까요?' 이건 하지 말란거에용.
***
이무기는 실망합니다.
조금 시무룩해하는 것 같은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당신 때문에 용에서 다시 인간이 되는건 조금...
인간이 되어버리는 순간 선술들도 다 내려놔야할겁니다.
***
"선계에 가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용이나 여의주 하는 이야기는 그쪽이 더 잘 알고 있을 터.
같이 시무룩해진 그녀는 중얼거렸다.
"아니면 일단 내가 여기서 선계로 올라가는 거요. 그럼 뭣모르는 인간들은 그걸 보고 용이 돌아갔구나! 할테니 더 이상 당신을 찾진 않을지도 모르니까.."
***
"...내 모습과 네 모습이 다른데 인간들이 그리 쉽게 믿겠느냐?"
이무기가 예리하게 지적해옵니다!
하란의 크기와 이무기의 크기가 좀 많이 다르기는 하지요...
***
*sign
"가능한 빨리 아는 이를 찾아 물어보겠소."
선계에 다녀왔더니 도끼자루는 다 썩었고 이무기가 새로운 도끼자루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절대사양이다.
"절대로 나서지 마시고, 들키지 마시고. 하여튼 쥐 죽은 듯 계시오."
"남들 모르게 방법을 찾아보면 더 좋고."
선계로 가자. 어쩌면 '그녀'는 알지도.
- 예쁜룡
- 선계로 향합니다!
화르르륵!
용이 되어 구름을 뚫고 올라가니, 붉은 칠로 화려하게 장식된 돌다리가 보입니다.
오색찬란한 구름과 구름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이 다리를 넘어서면 곧바로 선계에 진입합니다.
선계에 진입하시겠습니까?
***
진입합니다!
오색찬란한 선계에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해협용왕.
다리를 건너자 선계의 거리가 펼쳐집니다.
아름다운 선녀들이 부채를 들고 구름을 타고 돌아다니며, 신선들이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바둑을 두고 있습니다.
저 멀리에는 옥황상제의 궁전이 보이고, 그 옆에는 유명하디 유명한 서왕모의 복숭아 나무들도 보입니다.
***
선계에서도 한참을 이동합니다!
폭포를 두 개 넘고, 절벽을 일곱개 넘어갑니다.
까마득한 단장지애를 넘어서자 다시 한 번 폭포가 보이는데, 하란은 젖는 것을 신경도 쓰지 않고 폭포 안으로 들어갑니다.
또옥. 또옥.
들어가자 그 안에는 물방울이 맺혀 바닥으로 떨어지는 차가운 동굴이 나옵니다.
동굴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자...
화사한 꽃과 풀들이 가득하고 중앙에는 사시사철 지지않는 벚나무가 보입니다.
중앙을 따사로이 비추는 햇살, 그리고 그 나무에 기대어 앉아 손가락에 새를 올려놓고 조심스레 쓰다듬고 있는 여인.
하란처럼 붉게 물든 머리카락과 눈, 아름다운 미모를 갖춘 여인이 찾아온 손님을 쳐다봅니다.
"조금 있다가 보자꾸나 아이야."
새의 가슴팍을 간질거리자 새가 푸드덕 날갯짓을 하더니 이내 위로 날아가버립니다. 등을 나무에 기댄 여인은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하란을 쳐다봅니다.
"자주 보는구나. 아가야."
그녀가 살포시 웃습니다.
***
"분명 여기에... 그렇지."
세찬 폭포 뒤로 몸을 쑥 집어넣었다. 뒤에 숨은 통로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는 열기를 뿜어 순식간에 젖은 몸을 말렸다. 치이익... 증기가 올라온다. 물방울 떨어지는 동굴 안을 타박타박 걸어간다.
그 끝, 하늘이 열린 공동에 그 분이 계신다. 하란은 다소곳이 무릎을 꿇으며 절했다.
"소녀, 어르신을 뵙사옵니다."
나이 서른 다섯에 소녀 소리하는게 낮간지러도 어쩔 수 없다. 오백 년을 살아도 새파란 젊은이 취급인게 이 선계다. 반백도 채우지 못했다면 그야말로...핏덩어리..
"하계에서는 이미 수 년이 흘렀으니, 소녀는 오랜만이라 말씀 올리겠사옵니다."
그 분을 보고 있자면 진군이 왜 그랬는지 알 것도 같다. 나랑 비슷하다. 확실히.
***
"그러니?"
그녀는 길게 뻗은 손가락으로 바닥의 풀들을 천천히 쓸어내립니다.
"하계는 역동적인 곳이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이 벌어지는 곳이야. 천년도 백년도 느긋하게 눈을 감고 수양하는 이들 천지인 선계와는 다르니 말이야."
그녀의 손길이 닿았던 풀들이 서서히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네게는 오랜만이고 내게는 방금이겠구나. 내 제자...아니. 아니다. 내 실언을 했구나. 이번에는 무슨 일이니?"
***
제자.. 따져보면 틀린 말도 아닌가.
"알고 계시겠지만, 지금 하계에 어떤 이무기 탓에 큰 변고가 생겼사옵니다."
"아직 소녀의 경험이 일천하여 허락하신다면 어르신의 고견을 듣고자 하옵니다."
여전히 무릎을 꿇고, 양 손을 그 위에 얌전히 올린 채 시선을 가볍게 내리깔고 말한다. 훈장님 앞에 선 꼬맹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가 성급히 제 부모의 여의주를 삼켰다가 승천에 실패했다 하옵니다. 하여.."
"용의 여의주와 이무기의 여의주를 어찌 분리할 수 있는지 아시옵니까?"
말이 끝난 줄 알았다. 그녀는 뒤에 황급히 덧붙인다.
"그! 다른 용의 여의주를 사용하는 위험한 방법을 제외하면 말이옵니다."
그래도 인간으로 다시 돌아가긴 싫어!
***
"...나도, 그 아이도 죄인이다. 선계에서 함부로 언급해서는 아니 될 일이니."
그녀가 조용히 눈을 내리깔며 말합니다.
"부모의 여의주라면..아. 그 어르신이로구나. 내 어릴 때 참으로 나를 예뻐해주셨는데."
?
"결국 그런 선택을..."
고개를 푹 숙인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듭니다.
"하지만 나도 섞여버린 여의주를 되돌리는 방법은 들어본 적이 없단다. 아가야. 난 그리 나이가 많은 용이 아니니까 잘 모르는 것도 있지. 다른 일족들을 찾아가보았느냐."
***
"소녀는 아직 어리고 무식하여 두 분이 부끄러운지 모르겠사옵니다. 진군이 없으셨으면 용궁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것인데.."
몰라 개자식이건 성인군자건 우리편이면 된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그런데 어르신이요? 예? 잠깐만 그분 도대체 이무기로 얼마나 묵으셨으면..와... 사형 소리 했다가 한 대 맞지 않은게 다행인가..
"송구스러우나 아는 일족이 어르신 말고는 없사오라.. 알 만한 분을 일러주시면 제가 찾아가 뵙도록 하겠습니다."
***
그녀가 조용히 눈을 감더니 손을 하늘로 뻗습니다.
짹짹!
주먹만한 크기의 참새가 그녀의 손가락에 내려앉습니다.
"이 아이가 너를 인도해줄거란다."
그녀가 손을 흔들자 참새가 날아가기 시작합니다.
"따라가렴."
***
"감사하옵니다 어르신."
다시 꾸벅 절한다.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참새를 따라가려다.. 몇 걸음 가지 않아 그녀는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혹 남환진군께 전할 말씀은 없으시옵니까? 접때 어르신을 뵈었던 이후 소녀에게 그날의 일만 줄곧 묻고 있사옵니다. 몇 년 동안 똑같이."
"슬슬 새로운 이야기를 전해주어야 할 듯 하여..."
***
"...보고싶구나."
그녀가 처량하게 웃습니다.
***
"....그리 전하겠사옵니다. 소녀 물러가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참새를 따라간다. 나도 한때 저런 표정을 지을 때가 있었을까. 어르신을 보니 자신까지 상념에 잠기는 느낌이다.
하지만 시간은 무정하게도 흘러간다.
- 응애룡
- 참새를 따라갑니다!
.
..
...
....
.....
.....!
참새가 어느 순간 으리으리한 저택 앞에 멈춰섭니다.
그러더니 포르르 하고 하늘로 날아가 사라져버립니다.
여기...라구요?
대체 누구를 소개시켜주시는거죠.
***
여기? 여기야? 참새는 하늘로 사라져버렸다. 참새도 선계참새라 날아다니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네.
어르신이 알려주신 분이니 훨씬 더 경륜있는 용일까. 어떤 분일까.. 침을 꿀꺽 삼키고 대문을 두드려 본다.
쿵. 쿵. 쿵
***
끼이익....
궁궐같이 으리으리한 저택의 대문이 열리더니 웬 소년이 하란을 올려다봅니다.
"누구세요?"
***
시동인가. 내가 알던 소년들은 지금 어떨까. 모두 어른이 되었을까.
그런데 뭐라고 말해야 하지.
"복건용왕..이다. (대충 여친님이 불리는 뭐시기)의 소개로.."
일단 공식적인 직함을 내밀어보았다. 이리로 가라던 어르신의 소개도.
***
"?"
소년은 동그란 눈으로 하란을 바라봅니다.
"할아버지한테 물어보고 올게요!"
할아버지?
도도도도.
소년은 문을 반쯤 열어둔채로 안으로 뛰어들어갑니다.
***
시동이 아니라 손자였어? 혹시 몇살..이세요? 이놈의 선계는 얼굴로 나이를 가늠할수가 없어..
그녀는 달려가는 소년의 등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들어오라는 말은 없었으니 발을 들이기는 뭣하고.
고개만 빼꼼 들이밀어 대문 안을 둘러보았다.
***
대문 안을 들여다봅니다!
으리으리해보이는 외관과는 다르게 안은 황량하기 그지 없습니다.
마당에는 잡초들이 무성하고 몇몇 건물은 쓰러져있습니다.
도도도도도.
다시 소년이 달려옵니다.
"들어오시래요!"
***
안쪽은 또 왜 이리 삭았어. 관리가 전혀 되질 않아보인다. 종잡을수가 없구나.
그녀는 소년을 따라 들어가며 슬쩍 말을 걸어보았다.
"얘 혹시.. 할아버님이랑 둘이 살고 있니?"
***
"네!"
소년이 그리 말합니다.
"옛날에는 엄~청 사람도 많았는데. 갑자기 다 사라졌어요! 할머니도, 아빠도, 엄마도, 형도 없어졌어요!"
소년은 시무룩해합니다.
"주방장 아저씨도, 청지기 아저씨도, 누에치는 아줌마도 다요..."
***
"그렇구나.."
예전만큼의 세를 가지지 못하고... 으음...
....설마 그분들이 다 용이고 전부 천마에게 잡아먹힌 건 아니겠지? 그녀는 끔찍한 상상을 하고 말았다.
***
방 안으로 들어갑니다.
소년은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반면, 비단 방석에 화려한 병풍으로 장식된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1장이 조금 안되어보이는 길이를 가진 용입니다.
축소화 술법 뭐 그런건가요.
시시시싯...
뱀처럼 혀를 날름거리던 용의 수염이 움찔거립니다.
"네가, 일족의 가장 어린 용이구나."
"헉!"
그런데 옆에 있던 소년이 놀랍니다.
"할아버지! 그럼 이 누나가 제 동생이에요?"
??
"너보다는 어리겠지."
소년은 충격받은 얼굴로 하란을 쳐다봅니다.
뭐. 왜. 뭐. 임마. 왜.
***
"인간으로 28년 살고 용으로 7년 살았는데."
내 이럴 줄 알았다. 무슨 반로환동한 할배라도 되냐? 하는 짓은 진짜 꼬맹이면서.
"그렇지만 인간이 28살이면 성년이 되고도 10년이나 더 지난거고.."
구질구질하게 변명하던 그녀는 텅 빈 눈으로 한숨을 쉬었다. 다 하잘것없는 짓이야.. 이 노친네들..
"노안이라서 미안하네.....요..."
***
"인간은 너무 짧게 살아!"
외마디 비명은 이제 무시하도록 합시다...
"그래. 가장 어린 용아. 무슨 일이더냐?"
***
단명종(이었던 것)이라 참 미안하네요 예..
각설하고, 산동광룡이 용들의 사이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기색이었다. 또한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오래 묵은 이무기였나보다. 이 분도 바로 알아들으실런지.
"큰 이무기가 승천에 승천에 실패하고 산동 지방을 완전히 해먹어 버리었습니다."
"한시바삐 승천하지 못한다면 개미 떼처럼 몰려드는 인간들에게 살해당할 것입니다."
"하여 여쭈온데, 뒤섞인 여의주를 안전하게 떼어내는 법을 아시옵니까...?"
***
"안전. 안전이라."
쉬잇쉬잇. 하며 혀를 날름거리던 늙은 용은 똬리를 굳건하게 틉니다.
"가장 안전한 것은 막대한 선기를 지닌 고명한 신선의 도움을 받는 것이지. 하지만...지금 그걸 해줄 수 있는 자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네.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피해도, 대가도 치루지 않고 분리하는 방법 따위는 없겠지."
이런...
"그나마 방법이 하나 있다면..."
늙은 용이 몸을 바로 세웁니다.
"분심을 하는 것이지."
분심?
***
"분심이라 하심은....마음을 나누는 것이옵니까?"
마음을 나누면 여의주도 다시 떨어진다는 건지 뭔진 몰라도. 마음이 두쪽나는건 보통 부정적인 의미가 강해보였다.
설마 광룡의 인격과 그 양친의 인격이 한 몸 안에 공존하는 괴상한 일이 일어나는건 아니겠지??
***
"그렇지."
늙은 용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여의주가 무어라고 생각하느냐? 어린 용아. 우리 용들에게 있어서 여의주는 삶의 또다른 결정체나 이름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물건이느니."
옆에 있던 동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자신의 삶에 타인의 삶을 녹아내렸으니 미치지 않고 배길 수가 있겠는가. 한 용 안에 세 용이 들어가 있는 셈이지. 등용문은 오직 하나의 용만 받아들이고, 이미 용이 된 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니 말이네."
***
"여의주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용의 내단. 용의 상징. 소원을 이뤄주는 보옥.'
하지만 그것은 모두 인간의 관점에서 본 여의주일 뿐. 여의주의 진정한 주인인 용들이 바라보는 여의주는 신령한 도구에 불과한 인간의 생각과 사뭇 달랐다. 역시 나도 아직 어린가. 외모만 보면서 억울해하다가도, 약간 체감이 되는 듯 하였다.
"분심을 한다면 여의주 또한 함께 떨어져 나오는 것이군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직 중요한 이야기가 남아있었다.
"허면 어찌하여야 분심이 되겠사옵니까? 운기조식이나 명상이 방법이옵니까?"
이런 건 오직 광룡에게 달린 것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호법뿐인가. 그 와중 무림인들이 몰아닥친다면..
***
"욕심을 버리는 것이지."
하지만...하고 늙은 용이 고개를 젓습니다.
"용이 되고자 여의주를 삼킨 이무기가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용이 되기를 포기해야한다는 것이네. 그래야만 진정한 용이 되어 등용문을 통과할 수 있게 되는 것."
늙은 용이 다시금 똬리를 틉니다.
"자네가 그 이무기의 욕심을 버리게 할 수 있겠는가?"
***
"저는...."
말이 턱 막혔다. 그 욕심을 칼로 잘라 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재주는, 천재인 그녀마저도 스스로 없다고 말할 만한 것이었다.
"...확신할 수는 없사오나, 시작하겠사옵니다. 시작을 하면 다음에 뭘 해야 할지 알게 되겠지요."
대단한 자신. 대단한 각오가 없더라도. 그렇게 한 걸음씩 걷다보면 끝에 다다르는 거라고 그녀는 믿었다.
***
늙은 용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광증이 도진다면 도망치게나."
천 년을 넘게 묵은 이무기는 어린 용보다 더욱 위험하니 말이네.
늙은 용이 고개를 늘어뜨립니다.
"피곤하구나. 이제 가보게나."
***
"도움을 주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소녀 물러나옵니다.."
절을 하고 뒷걸음질하여 건물 밖으로 나왔다. 누구는 다급한 상황에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건만, 산들바람은 그러거나 말거나 태평스럽기나 하다.
...이제 돌아가자.
- 마교도가 준동하고
- 선계를 떠납니다!
.
..
...
....
.....!
인세에 도착했습니다.
***
"어르신...어르시인..! 어디계세요...!"
그와 처음 만났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말투에 존어가 붙은 건 덤이다.
***
- 여기있다.......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 깊숙한 동굴 안에서 이무기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
동굴! 잘 숨어계셨구나. 또다시 날뛰지는 않는 모양이니 다행스런 일이다.
"어르신! 제가 다른 용들께 여쭙고 왔습니다."
"아직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대요...!"
그녀는 주변에 다른 기척이 없나 가볍게 훑고, 동굴 안으로 총총 뛰어들어 이무기의 곁으로 간다.
"분심을 하면 여의주가 떨어져 나간다고 합니다!"
***
- 분심?
이무기가 고개를 갸웃합니다.
- 그걸 어떻게 하란 말이냐?
***
"몸뚱이는 하나인데 안에 들어간 영혼이 셋이니, 그것들을 분심한다면 여의주도 자연히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들은 대로 이무기에게 소상히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이 되고 싶다는 욕망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답니다. 용을 버려야 용이 될 수 있다고...."
***
- 그 무슨 개같은 소리냐!
그러게요...저도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 내 용이 되고자 이리 살아왔건만 용이 되겠다는 욕심을 버리라니? 그게 가당키나 하단 말이다!
늙은 이무기가 고함칩니다. 산이 진동하는 듯 우르릉, 하고 떨려옵니다.
***
"....."
호통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기세가 몰아치자 옆머리가 흔들리고 산이 우릉거린다. 들키면 어쩌려고. 이러지 마요.
"제가 어찌 어르신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제 말은 용이 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그녀는 난처한 미소를 띠며 이무기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다만 과한 집착과 욕망을 버리는거지요."
"지금 어르신은 벌겋게 빛나는 쇳덩이를 손에 쥐고 고통스러워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선 내려놓고 생각해야지요."
***
이무기는 오히려 성을 냅니다!
- 이게 어찌 욕심이란 말이냐! 어찌! 내 천년을 넘게 수련을 해온 모든 것을 버리라니? 네가 나라면 그리할 수 있겠느냐!!!!!
포효가 하란의 고막을 뒤덮어갑니다.
***
"어르신...."
귀가, 머리가 울린다. 손주 두신 할아버님이 할 수 있냐고 물은 것이 떠올랐다. 이걸 할 수 있을까.
"어르신께서 걸어오신 시행착오와 시간들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시련을 거쳐 예까지 오셨습니까? 저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무기가 계속 고집을 부리면 정말 그 시간들이 무의미한 것들로 삭아버릴 것이다.
"정말 고지가 코앞이지 않습니까! 어르신께서 극복하신 수많은 역경의 의미를 위해서라도 하셔야 합니다."
"주인공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결국 마지막에 승리하지요. 고난의 방점을 성공으로 찍어야 기승전결의 서사시가 만들어지지 않겠습니까... 어르신...!"
***
- 듣기 싫다! 나가라! 썩 나가!
이무기가 주먹으로 동굴을 후려칩니다. 석영들이 떨어지고 동굴이 울립니다!
- 당장!!!!!!!!!!!
***
아...아이고 아이고... 천 살 먹은 이무기가 채 오십도 넘기지 못한 아가용을 핍박하네 아이고....
"그, 그럼 홀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시..히익..."
계속 여기 있겠다고 억지를 부렸다간 인간도 아니고, 이무기에게 내단이 뽑히고 가죽이 벗겨지리라. 잠시 혼자 있을 시간을 주자,,,
***
하란은 동굴에서 나갑니다!
나갔는데...
어?
왜 사람이랑, 사람이랑 비슷하게 생긴게 밖에 있죠?
***
'돌아버리겠네. 저걸 어느 방법으로 설득해야 한단 말인가?'
그녀는 도망친 동굴 안을 보면서 서성서성, 궁시렁궁시렁. 그러면서도 동굴 주변을 아주 떠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 있다. 그녀는 일순간 표정을 지우고 그들을 주시한다. 한 쪽은 사람이...아니다. 요괴인가.
"재희....?"
그리고 다른 쪽은... 예전 바닷가에서 보았던...
***
둘은 속닥거리고 있습니다.
이 쪽을...아직은 못본 것 같은데요.
***
들어봅니다...
!
- ...죽는다.
이런 조금 늦었는지 이 말 밖에는 듣지 못했습니다!
***
뭐가 되었든, 저들을 그냥 보낼 수 없다. 그녀는 두 손을 모은다.
풍상설우-안개
저들이 그녀를 보지 못하게, 또 방향까지도 분간할 수 없게. 짙은 안개를 사방에 뿌리려 한다.
***
안개가 주변을 뒤덮기 시작합니다...
***
겉옷을 풀어 머리를 가린다. 짐짓 낮게 깐 목소리로 말한다.
"말세다, 말세로다! 노한 용이 발톱을 휘두르니 4천년 도읍 제남이 불타고 태산마저 고개를 숙인다! 곡부의 유자들은 수해입은 논을 보며 공자의 가르침도 잊은지 오래라."
말투까지 바꾼다. 과장하고 비튼다.
"그것도 모자라 천강단이 아닌 마교도가 버젓이 산동 땅을 횡행하니 이 어찌 말세가 아니라고 하겠는가...?"
***
외칩니다!
용의 힘으로 안개 너머를 바라보실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
용안 온! 안개를 투시해서 봅니다
***
안개 속을 투시합니다!
무당파 도사의 차림새를 한 인물과...어 저거 누구야? 구면인가? 싶은 익숙한 얼굴 하나.
그리고 저 쪽에는 아까봤던 재희...와 웬 이상하게 생긴 요괴 놈이 하나 있습니다!
***
"정파? 아...."
보이는 걸 신경쓰는 놈들이 오셨구나.
"잠시만 기다려 보소. 이 녀석만 잡아두고..."
아무튼, 와룡수의 묘리로 재희를 붙잡고 무당파의 사람들에게 다가가려 한다. 어릿히 형체가 보일 때까지.
***
팍!
하란의 몸이 움직입니다!
무언가 저항하려는듯한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런건 잘 모르겠고, 순식간에 재희의 목을 잡아챕니다!
도사들에게 다가가자 저 앞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이 느껴집니다.
대충...
- 저거 사람 모습 아닌가?
- 사람? 사람이라고?
***
"마침 이걸 어찌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백도의 호걸들께서 잘 오셨소이다."
"마교도를 생포하였으니 대협들께서 적법하게 해결하여 주시오!"
그리고 재희에게 작게 속삭이는 것이다.
"저들에게로 곧장 걸어가라. 내가 보고 있으니 허튼 생각 말고."
***
하란은 재하를 보냅니다.
그런데 정말 보내도 괜찮을까요?
여성처럼 가녀린 몸, 아름다운 외모, 거기에 병약한 안색과 각혈한 모습.
이게...누가 봐서...마교도....?
***
일단 자리를 피합니다.... 다음진행부터 참가가 심각하게 불투명해지므로 더이상 뭔가 할 수가 없으요.....
***
재하를 앞으로 보내고 자리를 빠르게 피합니다!
***
(현생으로 인해 하란주.exe를 잠시 종료합니다)
(왜 하필 이럴때)
- 몽롱하여 희미한데 구름을 타고 멀리 가도다
- (대충 선술로 무당파 도사들과 강건, 재하, 경의를 쫓아냄)
인간들이 물러난다. 지금 당장은 말이다. 곧 다른 인간들을 데리고 돌아올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인간들 중에는....
"용을 잡는 비책을 아는 자도 있겠지."
도망칠까? 아니, 이르다. 나는 저들이 어떤 방식으로 용에 대응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어차피 알아야 하는 것이며, 어차피 한번쯤은 부딪히게 될 일이다.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시간을 끌면서 이득을 얻을 수는 없다고.
하지만 그 전에 우리 정신나간 사형도 알아야겠지. 젠장, 무섭단 말이야. 나는 도망가는 인간들의 등을 노려보다가 다시 사람의 형상으로 돌아온다. 동굴로 쭈뼛대며 들어갔다.
"어르신...인간들이..."
다 죽여버리겠다면서 뛰쳐나가진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
- 나가!!!!!!!
어마어마한 고함,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오는 폭풍과도 같은 기의 흐름.
하란은 다시 한 번 쫓겨났습니다...
무언가, 무언가 방법이 필요합니다.
위협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습니다...!
***
으아아아아아
#천재다이스 한번만 굴려줘용... 일단 말문이라도 트는 방법을...
***
현재는 이무기와 대화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합니다...
내신 망해서 N수하는 장수생에게 수시로 대학을 가자고 한다면 당연히 며칠 동안은 말을 못붙입니다!
내신 9등급도 서울대를 갈 수 있다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
내가 여의주 2개 이야기를... 책에서..'
그래, 설화를 담은 책에서 보았다. 고릿적 신화시대로부터 언과 문과 극으로 전해져 오는 이야기들이다. 여의주 하나를 버리고 용이 된 자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면 사형도 믿을지...
아, 어쩌면 이야기의 주인공들 중에 사형이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일단 그런 내용을 담은 책은 닥치는대로 가져가야지.
지금은 다 떨어져가는 책방에서 종이에 파묻힐만큼 한가한 상황은 아니지만! 당장은 인간들과 맞붙어야 한다.
"어르신 그럼...안에 계세요...."
밖은 제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나는 큰 바위와 이끼 낀 흙들을 그러모아 동굴 입구를 막고 흔적을 지운다.
***
최대한 지워봅니다!!
...과연 이게 효과가 있을지는 하란 자신도 알 수 없습니다...
***
내가 사냥꾼도 아니고. 잘 될진 몰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 하하하하하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빠르기도 하지. 그저 몰려오는 속도만 빠른 거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개마저도 밀려나고,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웃음소리에서 광오한 기가 느껴졌다. 뭔가를 설치하지도 않았고 기나긴 문을 외우지도 않았다. 단지 웃는 것으로만. 선술을 헤쳐버렸다.
'정말 웃는게 다인가.'
한번만 더 보자. 어떻게 한 건지. 그녀는 다시 안개를 깔면서 옷음소리가 들린 곳으로 살금..살금... 나아간다.
***
안개를 다시 한 번 퍼뜨립니다!
- 노력이 가상하구나.
목소리에 끔찍한 마기가 깃들어있습니다. 목소리에 깃든 마기가 공기 중에 퍼져나가면서 풍상설우의 신묘한 법칙들에 달라붙어 연결고리들을 부식시킵니다!
안개가 곧 파훼됩니다.
- 어디있느냐?
쿠웅.
한 발자국을 내딛을 때 마다 주위 땅이 왜인지 검게 죽어가는 듯 합니다.
***
7년 전인가, 8년 전인가. 석가장 총관의 수하와 싸울 때. 그 때는 신씨와 해태단 녀석들과 함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롯이 그녀 하나였다. 사형의 강대한 무력은 신뢰할 수 없었다. 그녀는 숨을 깊게 쉬었다.
안개를 헤치는 열쇠는 목소리에 깃든 마기였다. 그럼 목소리를 덮어버리면 되는가? 어려울 것이다. 나보다도 경지가 높아보인다. 게다가 내공을 물 쓰듯 흘려버리는 것도.
- 어디있느냐?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다. 정면으로 붙으면 사망뿐이다. 조금이라도 놈들의 눈과 귀를 가려야 한다. 이건 통할까?
***
꾸르르릉...쾅! 콰과광!
벼락과 비, 천둥이 휘몰아치기 시작합니다.
- 호오...제법이구나.
불길한 기운과 검은색으로 채색되었던 산이 다시금 제 색을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으냐?
'괴물'이 손을 크게 휘젓습니다.
사아아아아악...
빗방울에 맞자 제 색대로 돌아왔던 풀과 꽃, 나뭇잎들이 검고 불길한 기운이 닿자 더욱 새까맿게 변하기 시작합니다. 조만간 저 불길한 기운은 하란이 납작 엎드린 곳까지 다다를게 분명합니다!
가장 약한 사람은 아까 자신이 쫓아내려보냈던 경의입니다!
***
'안돼, 이건.'
근본적인 힘의 차이다. 힘을 겨루는 계략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몸이 비에 젖어 머리카락이 뺨에 달라붙고, 엎드렸던 배와 가슴에는 진흙이 묻었다.
힘싸움을 피하면서 저들을 묶으려면...
- 딸랑....
자세를 낮추고 장대에 매단 현혹령을 낮게 흔들어 본다. 빗소리 바람소리 천둥소리를 갸냘프레 뚫고 나아간다. 그녀의 위치와 현혹령의 위치에는 꽤 차이가 있었다.
달려들어라. 달려들면 대형은 물렁해지고, 빈틈이 생기겠지.
***
딸랑...딸랑...
괴물은 방울소리에 반응합니다.
- 거기냐?
콰아아아아아아앙!
하란의 바로 옆자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이, 이 뭔....!
- 흐음...아닌가? 용이라 그런지 숨기는 재주는 옹골차구나!
원격으로 조종이라도 해야하나...?
***
장대의 중간이 부러지고, 아니 사라지고. 손에 들린 건 짧은 가지요 땅에 떨어진 건 현혹령이라.
그녀는 사라진 곳을 기어 지나가 현혹령을 주웠다. 나보고 어쩌라고. 그녀는 다 포기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작전 변경, 일단 후퇴다. 그러나 도망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후퇴하는가?
그녀의 원거리 곡사 공격이 적들에게 닿을 수 있는 최대 유효사거리까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거리가 조금 떨어지자 뛰기 시작했다.
와중에 나무에다 커다란 발톱자국을 남겼다. 보고 조금이라도 발걸음을 멈추길
***
말 그대로 미친듯이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 몸을 숨기고 도망칠 때에는 들키지 않은듯 합니다!
그러나 상대는 초절정에 이른 괴물...하란의 본체에 비하면 훨씬 작은 크기이지만 그 작은 몸 안에 들어있는 것은 거력이요, 파괴 그 자체입니다.
뚜두두두둑.
하란이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할 때 뒤에서 무언가 짓이겨지고 뒤틀리는 끔찍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끔찍하고 불쾌한 기운이 목덜미를 서늘하게 간지럽힙니다.
대비하세요!
***
X...X발...들켰다?!
이렇게 되면 빌빌 기어다니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눈을 가려야. 빌어먹을. 내가 지금까지 하던게 그거였다고!
망할! 망할! 망할!
그녀는 또 안개를 깐다. 소리 한번에 흩어질 안개가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90년 내공은 벌써 삼분지일을 소진했다. 그녀는 절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
쾅!
하란의 바로 옆에 무언가 거대한 것이 떨어집니다. 강력한 충격에 하란의 몸이 옆으로 튕겨나갑니다!
- 오. 빗맞았는가.
먼지와 안개가 섞여 시야가 굉장히 좁아졌을 때, 하란의 온 몸에는 소름이 돋습니다. 충격파가 떨어진 쪽에서 그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들려오니까요!!!
- 이 근처일 터.
적과 가까워지니 숨을 쉬기가 어렵습니다...! 꾸덕하고 끈적하고, 점성이 높은 무언가가 코와 입을 막아놓은 것만 같습니다!
***
더 이상, 작전의 의미가 있는가? 이대로는 내공이 다하여 말라죽을 뿐이다. 폭풍우가 내린 땅은 진흙이 되어서 그녀를 끌어당기는 듯 했다.
진흙....옛날에 표행을 습격할때 진흙 속에 숨은 적이 있었는데.
'하하.'
이게 이성적인 판단인가? 급박함에 시야가 좁아져 멍청한 짓을 하는 게 아닌가? 그녀는 판단할 수 없었다. 놈을 기습한다..
***
넘쳐나는 선기를 숨기기 위해서는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야합니다!
하란은 급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진흙 속을 파고듭니다!
- 여긴가?
콰아아아앙!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저 괴물이 하란의 바로 옆 바닥을 쳤습니다! 강력한 충격파가 하란의 다리와 허리에 다다릅니다! 끔찍한 격통이 밀려오지만,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하란은 겨우 고통에 찬 신음을 삼키는데 성공합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하란의 천재적인 두뇌는 빠르게 해결됩니다.
아까부터...저 괴물은 계속 하란의 옆을 빗맞히고 있습니다. 처음 한 두 번이면 모르겠지만 지금에 와서도?
- 눈치챘느냐?
하란은 처음으로, 제대로 저 괴물과 눈을 마주칩니다. 진흙 속에 숨어 어둠이 가득한 곳에서 마치 어린 하란이 긴장된 몸을 스스로 끌어안았던 그 때 처럼.
그 때에는 밖의 빛을 보았다면, 지금은 괴물의 눈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 머리가 좋구나.
저 괴물은 처음부터...하란의 위치를 알고 있었음에도 마치 가지고 놀듯 일부러 빗맞히고 있었던게 분명합니다!
- 무언가 강대한 기운이 다가오고 있으니 이 쯤에서 끝낼 시간이다.
거대한 손이 하늘을 찌를듯이 위로 치켜져 올라갑니다.
하란은 아. 하고 탄식인지 한숨인지 모를 것을 내뱉습니다.
***
어릴때. 독사굴에서. 작고 부르튼 발목을 뱀에게 물렸을때. 그 때도 이만큼 아팠을까. 빚쟁이에게 들킬까봐, 괴물에게 들킬까봐 이를 악물었던 것은 하릴 의미없는 일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지. 처음부터 여기 오지 않았어야 했나. 나는 이렇게 죽기 위해서 살아왔나? 그녀가 죽였던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겠지. 당장 닥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감정이 있듯. 이제는 죽음이 보였다. 돌아가야 하는 개천궁도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상황, 숱하게 겪어봤어.'
들판에서, 늪에서, 목잭에서, 산불 속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의 문턱을 넘었단 말이다! 나는 언제나 살아남았어. 지금도 살아남을 거야. 제발..!!!
***
선술 - 木의 두루마리가 발동됩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하란은 뒤로 훌쩍 물러나고, 하란이 원래 있던 곳은...뭔가 있었던 흔적만 남아있습니다.
- 호오...
괴물은 씨익 웃으면서 하란을 바라봅니다. 저 얼굴은 뭐지?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어떤 동물의 형태도 아닙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 같기도 무언가로 고정되어 있는 것 같기도...
아윽!
하란의 머리가 아파옵니다!
- 다음은 없을 것이다.
꽈드득.
대비하세요!
***
사, ㅅ, 살았다. 하지만 저 놈이 죽지 않았다. 저 놈이 죽지 않으면 그녀가 죽는다. 저 놈을 어떻게 죽이지. 어떻게 죽이지. 어떻게 죽이지. 어떻게 죽이지. 어떻게 죽이지. 어떻게 죽이지.
다리가 너무 아프다. 뛰기는커녕 보법을 펼칠수는 있을까.
'어, 다리?'
저 놈은 그녀를 얕보고 있다. 처음부터 죽일 수 있어도 그러지 않았다. 지금은 강대한 힘이 뭐니 하면서 헛소리를 하지만.. 그래도 정말 바로 죽일거야? 날 봐. 절세가인이 고통에 신음하며 눈물흘리고 있잖아. 좀 더 가학심을 발휘해봐.
그 사이에 아주 작은 틈. 조금만 낼 수 있다면... 흑호를...
#비단유접보로 달려들면서 의족을 맨 앞으로 내세워서 공격 한번을 받아낼 준비 해용. 성공하면 흑호난지평정 날릴것
***
정말 시도하시겠습니까?
***
죽음은 합리적이지도 공평하지도 않으며 대개 준비할 수도 없다는 것을. 사실 알고 있었어.
하지만 왜 하필 지금이냐. 이럴 거면 기쁨도 희망도 주지 말지.
***
하란은 비단유접보의 묘리를 이용해 괴물에게 달려듭니다!
- ?
콰아앙!
괴물의 급소, 명치에 하란의 일격이 확실하게 명중합니다.
- 컥.
숨이 막히는 소리와 함께 괴물의 몸이 뒤로 밀려납니다! 하란의 의족은 완전히 박살나버리고 그 자리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땅에 떨어집니다.
철퍽!
뿌드드드득. 뿌드드드득. 꽈득. 꽈드극. 꽈드드드드드드드득.
양 손으로 땅을 짚고 다리를 옆으로 뻗은 상태의 하란. 흘러내리는 땀은 닦아내지도 못합니다. 땀은 눈물과 비와 함께 섞여 몸을 적셔갑니다.
흐릿한 시야에는 가쁜 자신의 숨이 만들어내는 새하얀 연기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 새하얀 연기 너머로...괴물의 명치가 뒤틀렸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하란의 천재적인 두뇌가 잠시 멈춰버립니다.
지금? 저게 뭐지? 왜 살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무공 중에 저런게 있나? 선술같은건가?
그리고 상황을 완전히 인지한 하란의 두뇌가 답을 내놓습니다.
재생.
- 재밌구나. 재생은 오랜만인데.
쿠웅..쿵....쿠우웅...
괴물이 하란에게 천천히 걸어옵니다. 괴물은 거대하고, 하란은 지쳤습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하란의 몸이 힘없이 팔랑거리는 나뭇잎처럼 날아갑니다.
하악....하악....
하란은 대자로 누워 땅에 눕습니다. 아니, 사실은 일어날 힘이 없습니다. 일격에 모든 내장이 기능을 정지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몸이, 움직이질 않습니다. 떨려오는 눈꺼풀을 최선을 다해서 감지 않으려 노력할 뿐입니다.
우중충하고 어두운 잿빛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이마와 코를 두들깁니다.
후우우우우우우웅 - !
무시무시한 거력이 하란을 향해 날아옵니다. 바람은 세차게 몰아치고, 흘린 피는 식어 딱딱하게 말라붙습니다. 비가 내리면서 딱딱하게 말라붙은 피를 씻어내려갑니다. 눈은 녹아버리고, 번개가 칩니다.
하늘이 슬퍼하며 울듯이 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우뚝.
하란의 바로 코 앞에서 괴물의 주먹이 멈춰섭니다.
- ...잔챙이들이 들어왔군.
허억...허억.....허억....
하란은 가쁘게 숨을 쉽니다. 숨을 쉬는데도 머리가 아찔해지고 시야가 어두워집니다. 분명히 호흡에는 문제가 없지만 목이 막혀있는 것 같습니다.
- 흠.
괴물은 하란을 한 번 쳐다보고는 바깥 쪽을 다시 한 번 쳐다봅니다.
빠드득.
괴물의 이가 갈립니다.
하란은 눈도 감았다 뜨지 못하고 시야를 완전히 가리고 있는 거대한 주먹만을 바라봅니다.
- 날 따라해봐라. 나약하고 어린 신선아. 천유양월, 천세만세, 지유본교, 천존교주, 독보염혈, 군림천하, 천상천하, 지상지하, 광명본교, 천유본교, 천세만세, 마유신교."
입에선 소리가 새어나오지 않습니다. 꺼걱, 꺼억 거리는 소리조차도요.
- 그런가.
괴물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의 입에서 기도문같은 것이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 악즉선, 선즉악. 내 저지르는 악행이 미래에 있을 더 큰 악행을 막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주먹이 갑작스레 사라집니다. 하란은 괴물의 눈을 다시 한 번 바라봅니다.
그 눈에 서려있는 것은, 연민? 동정? 안타까움? 적대적인 것은 아니고, 호의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저게, 대체 뭐지?
- 천유양월.
곧, 시야가 암전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 천마신께서 너를 가엾이 여기기를.
그리고 더 이상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춥고, 어두운 곳에서 몸은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모든 오감은 차단되어버립니다.
- 죽임을 당해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 부활을 사용하시겠습니까? 』
***
사투 끝에, 그녀만의 사투 끝에 그녀는 완전히 무력하게 되었다. 괴물이 옷을 벗기고 살을 씹어도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다. 그저 눈물 흘릴 뿐. 이제 먹기 좋게 차려진 고깃덩이 꼴이다.
연민인지 동정인지. 괴물이 기도문을 외웠지만 귀에 듣지 않았다. 죽음을 직감한 그녀는 빌듯 생각했다. 이전에 겪었던 죽음의 위협을 넘어, 죽음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죽어가요. 저들이 나를 죽여요.
죽임을당해도죽지않고살아남아
내 몸을 부수고 조각내려고 해요.
나의삶을제대로살아낼거라고
나는 죽어가고 있어요. 나는 죽을거에요.
죽임을당해도죽지않고살아남아
이번에도 살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내 착각이었나요.
다시는누구도날함부로하지못해
나는 이렇게 사라지나요.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누구에게 말하는지 알지 못했다. 부모님, 스승님, 모용벽, 개천궁의 신하들, 옥황상제. 모두 아니었다.
입에서 마지막 호흡이 빠져나간다. 숨 없는 불씨는 사그라든다. 괴물이 마지막 일격을 날렸나, 그녀가 제 풀에 숨이 멎었나, 알 수 없었다.
***
컴컴한 어둠 속. 저 멀리에서 하나의 빛이 보입니다. 빛나는 구체가 따스하게 주변을 밝히기 시작합니다.
- سيكون الموت نهاية آخر وبداية
죽음은 나중의 끝이요 시작이 될 것이다
기이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
..
...
....
.....
.....!
미사하란은 눈을 뜹니다.
거칠게 숨을 내쉽니다. 아직도 몸을 꿰뚫던 고통이, 그 감촉이 생생히 남아 머리를 옥죄어옵니다.
부들부들 손이 떨려옵니다. 아마 다음번에 죽음에 가까운 일을 겪는다면 끔찍한 기억에 몸서리치게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사하란은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간극이 상승합니다.
현재 미사하란의 경지는 절정 - 완숙입니다.
여의주를 빼앗겼습니다. 육체가 재구성되면서 여의주 또한 돌아왔지만, 한 번 잃은 여의주로 인해 내공이 일시적으로 하락합니다. 다음 진행이 끝날 때까지 최대 내공이 75년으로 고정됩니다. 그 이후에는 본래 내공으로 돌아옵니다.
***
나는 사라지나요? 사라지나요...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물 속을 부유하다 세상은 한 점으로 줄어들고, 그 점마저 사라지는...사라지는....아아....
"커허헉..!"
다시 몸이 움직인다. 눌려있던 용수철처럼 몸을 일으켰다. 다시 호흡이 시작되고, 있는 대로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것이 그녀의 작은 인내심이었다.
'도망, 도망가야해. 여기서 나갈래. 못하겠어. 난 할 만큼 했어!!'
일어서려고 했다. 의족이 박살나있어 다시 고꾸라졌다. 그녀는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
이제 대사건은 완전히 마교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나는 죽었잖아. 왜 나는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는거지? 왜?
바닷물에 몸을 담그면 냉기에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일이 있을 수 있나?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그녀는 울고 웃으며 하염없이 달렸다.
***
개천궁으로 복귀합니다!!
"전하?"
신하들이 크게 놀랍니다!
***
내 신하들. 그들을 보자 무의식이 발동하는 듯 했다. 적어도 이들 앞에선 위엄있게, 믿을 수 있게. 다급하게 머리와 옷매무새를 정돈하였지만 파도처럼 일렁이는 마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됐다. 됐다 이제.."
허리를 펴고 곧게 걸으려고 했다. 빈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왜 빈 손인가? 그녀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항상 손 안에 그러쥐여저 있던 그게 없었다.
지팡이검을 산동에 두고 왔다.. 그녀는 바라보던 손을 털어버렸다. 일단 누워야겠어.. 일단.. 지금은...
***
방 안에 틀어박힙니다!!
은신중...
신하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합니다.
***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새우처럼 웅크렸다. 자신의 몸을 수차례 더듬었다. 머리, 팔, 다리, 몸통.. 마땅히 부서져 사라져야 했을 것들이 환영처럼 건재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자신이 아닌 것 같은 이질감을 느꼈다. 그렇게 이빨을 딱딱거리면서 몇 시간을 보냈다. 두려움에 지쳐버릴 무렵 그녀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게 아무도 없느냐.. 아무도.."
승상(패울부)과 왕사를 들라하라..
***
곧 그 둘이 안으로 들어옵니다.
- 전하, 무슨 일이십니까?
왕사가 걱정되는듯 물어옵니다. 패울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
"지금, 지금 내게.. 내가..."
"됐소..."
그녀는 말하려다가 입을 앙다물었다. 울고불고해봐야 미친년 취급이겠지. 너희는 죽어보았느냐. 내가 어떻게 된 건지 알고 있느냐. 모르잖아.
"밀렸던 일이나 합시다. 조경사업이랑 뭐, 옥새만 찍으면 되는 일들, 많이 밀렸지 않소?"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녀는 눈을 돌렸다. 버틸 수가 없다. 당면한 일로 그녀는 도망친다.
"지금 예산이 조금 쌓였을텐데.."
***
남은 금화는 1.9개!
모든 재정을 털어넣습니다!!
이제부터 용궁에는 근위대가 존재합니다! 이로써 당신은 조금 더 안전해졌습니다.
신비롭고 상서로운 나무가 탄생합니다. 이 나무는 용궁에 뿌리내립니다. 주변을 선계와 비슷한 환경으로 꾸준히 변화시키며 각종 병충해와 저주 등을 방어합니다.
금빛기와를 씌워 위엄을 떨칩니다! 신민들이 더욱 고개를 조아립니다.
은빛기와를 함께 씌워 위엄을 살립니다! 주변의 상행을 다니는 영물들이 경의를 표합니다.
불로 이루어진 신비롭고 아름다운 꽃들이 물 속에서 타오릅니다. 이 곳에 방문하는 모든 이들의 적대감이 약화됩니다.
은폐막이 용궁에 설치됩니다. 이제부터 언제든지 원할 때에 용궁을 드러내거나 감출 수 있습니다.
어용영이 설치되었습니다! 용왕의 군대는 이 곳에서 상주합니다! 그들은 이 곳에서 훈련받고, 잠자고, 밥먹으며 충성을 바칩니다!
대학이 설치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이 곳에서 용왕의 신하들을 육성하실 수 있습니다!
근위대의 창설로 새로운 직위가 해금됩니다!
- 근위대장
신비롭고 상서로운 나무가 탄생하면서 새로운 직위가 해금됩니다!
- 주목지기
어용영이 설치되면서 새로운 직위가 해금됩니다!
- 대장군
대학이 설립되면서 새로운 직위가 해금됩니다!
- 대제학
궁전개축과 수도 도시 계획을 마무리 한다면 2티어 건물이 개방됩니다!
***
하란은 옥새를 찍는다. 옥새를 찍으면서 쉼없이 뇌까렸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 마. 할 일이 태산이야."
سيكون الموت نهاية آخر وبداية
"풍상설우 대성한 다음 진룡검법도 빨리 찾아야 한다. 아무튼 선술을 익혀야 해."
سيكون الموت نهاية آخر وبداية
"인간들이 쳐들어와서 뒤집어 엎기 전에.."
سيكون الموت نهاية آخر وبداية
"내가 진짜 신선이 되어야... 궁이..."
سيكون الموت نهاية آخر وبداية
"그만, 그만...!!"
귓속에 سيكون الموت نهاية آخر وبداية로 만든 기다란 송곳을 꽂아 뇌를 휘젓는 기분이었다. 하란은 손바닥으로 눈가를 감싸쥔다. 옥새는 악마의 주먹처럼 떨어져서 종이 위에 붉은 자국을 남겼다. 쿵. 옥새를 다시 들어올리면 종이가 딸려 올라왔다가 도로 떨어진다. 인주가 거미줄처럼 늘어나다가 끊어진다. 하란은 손가락 사이로 아무 말이 없는 패울부를 보았다.
"승상은 왜 아무런 말이 없어요. 할 일 없으면 뭐 하나만 알아봐줘요."
"산동에 마교도들이 들어와 있는데, 그네들이 적룡의 시체를 확보했는지 여부를..."
궁으로 돌아와서 이불보 안에 파묻혀있노라면 두고 온 것들이 생각났다. 문을 들어서면서는 검을 잃어버렸음을 깨달았지. 그리고 또 생각나는 게 있었다. 어째서 그녀가 다시 눈을 뜰 때 주변에 지키는 마교도가 아무도 없었는가?
이 사실은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그녀는 자신의 흉한 상상이 사실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소식에 귀기울이든, 척후를 풀든 상관 없으니까 그것만 확인해줘요. 예/아니오로 간단히 해도 좋아요. 나는 이제 거기 못 가겠어."
سيكون الموت نهاية آخر وبداية
"이제 그만 물러가줘요...... 머리가 아프네."
***
패울부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갑니다.
곧 그가 소식을 들고 올 것입니다.
- 타트 트밤 아시
- 승상과 왕사를 물리치고 한동안 정좌하고 있었다. 하지만 잡념은 끊이지 않았다. 눈을 내리뜨고 이빨을 부득부득 갈던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방을 뛰쳐나왔다.
잡념을 죽이는데는 수련으로 힘을 빼버리는 것이 제일 아니겠는가.
***
심마가 수련을 방해합니다...!
지금하는 수련은 어떠한 발전도 이룰 수 없을 것 같습니다.
سيكون الموت نهاية آخر وبداية
머리가...아파옵니다...
***
"으아아아악!!"
분에 차 허공에 팔을 휘둘러도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휘청거리면서 궁에서 걸어나온다. 궁에서 나왔다. 높은 하늘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곳이 아니면 주변의 잡다한 것들이 눈을 찌르고 귀를 간지럽혔다.
'죽고 되살아났다. 그런 일이 있을 리 없다. 진짜가 아니다. 죽음 직전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의식의 환각이다. 이것은 한단지몽이다. 나는 찰나의 꿈 속에 갇혔다.'
'현실에서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의식이 살아있다. 찰나가 이토록 길 수도 있구나. 사실 영원과 찰나는 같은 것인가? 갇힌 꿈 속이 죽기 전 현실과 똑같다. 그리고 목이 베여 죽고 되살아난 것처럼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 전에도 있었다.'
통제를 잃은 그녀의 사고는 저지대로 향하는 홍수처럼 걷잡을 수 없었다. 되는대로, 있는대로, 무턱대고 이어진다.
'승천, 동굴의 비급.. 사실 승천부터 꿈, 아니면 비급부터 꿈이었을지도. 여기는 꿈 속의 꿈이다. 이 세상은 모두 꿈이었다. 그래서 이성도 합리도 없고 예측불능 좌충우돌인가. 꿈이니까.'
선계의 경계가 보인다. 그러나 하란의 눈은 옆을 향한다. 충동적으로 그곳으로 향한다.
***
후욱!
그녀의 영혼이 선계로 마치 빨려들어가듯이 올라갑니다!
***
한순간의 일탈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용왕의 의무이자 숙명인가.
"하지마!! 하지마 XX! 아아악!!"
선계에 가서. 가서 뭐. 다른 용들을 만나서 나는 죽어서 실패했다고 말해? 미쳤어? 선계로 강제로 이끌린 그녀는 터덜터덜 뛰어간다. 두려움, 생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뛰어서 현실과 생각으로부터 도망치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서부터 꿈의 시작인지 모르겠다. 내가 살아있긴 한가. 내가 태어나긴 했는가. 내가 존재하는가. 내가 존재했던 적은 있는가. 나에게 꿈 이전의 현실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현실 없이 꿈을 꿀 수 없다. 이 세상은 현실을 가진 무언가의 꿈 속이다.'
'나는 그 꿈 속의 허상이다.'
***
정처없이 떠돌아다니기 시작합니다...
언제든지 떠돌기를 멈출 수 있습니다.
***
그녀는 어느 계곡가에 다다라서 걷기를 멈췄다.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흐르는 물에 자신의 얼굴이 비추어졌다.
"나는 남의 꿈 속에서 살아가는 허상... 나의 모든 것은 꿈꾸는 자에게서 훔쳐온 것.."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현실을 가진 자, 꿈꾸는 자의 의식 파편이다. 이 얼굴과 이 육신은 나의 것이 아니다. 꿈꾸는 자의 의식을 훔쳐 넝마처럼 짜맞춘 것이다. 그녀는 손으로 자신의 뺨을 쓸어내렸다.
***
심마에 더욱 더 깊이 빠져듭니다...
과연 미사하란은 심마를 물리칠 수 있을까요?
***
"سيكون الموت نهاية آخر وبداية......"
"سيكون الموت نهاية آخر وبداية......"
하란은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
하란의 뒤에 누군가가 나타납니다.
까악! 까악!
까마귀?
***
신도 신을 믿을까. 어쩌면 그럴거라고 하란은 생각했다.
- 까악! 까악!
"?"
뒤에서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풀어헤친 머리카락이 깊게 드리웠다.
***
콱!
까마귀는 갑자기 부리로 하란을 쪼아버립니다!
??????????
***
콱! 까마귀는 하란의 허리께를 콕 쪼아버렸다. 이 까마귀가 까마귀고기를 구워먹었나 미쳤나.
"??????"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안 그래도 기분이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지경인데 너 잘 걸렸다. 하란은 까마귀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
까악 - !
까마귀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날개를 파닥거리더니 하란의 손길을 어렵지 않게 피해갑니다!
....! 이거, 말이, 되나?
***
한낱 까마귀가 절정지경에 이른 용왕의 금나수를 피한다.. 어 이거 여기저기서 많이 봤는데?
하지만 하란이는 심마 때문에 그런 거 모르겠고 그냥 짜증을 부릴 뿐이었다.
"너..너 이리 안 와?!"
***
깍! 깍! 깍!
까마귀는 허둥거리는 하란을 비웃듯이 짧게 몇 번 울더니 요리조리 하란의 손길을 피해버립니다!
익...이이이익!!!!!
***
내가 살다살다 이깟 까마귀에게 조롱당해 열불이 오를 줄 몰랐다. 지금 내가 육체 없는 몽혼이라고 비웃는 거냐. 너는 다를 줄 아냐. 내가 똑같이 만들어주마.
그녀는 자기 팔뚝만한 까마귀에게 진심으로 칼을 뽑는 추태를 보이고 말았다. 하란아....
***
정확합니다!
까마귀는 깍!깍! 웃으면서 날아다니고 피하고를 반복합니다. 하란은 지칠 때 까지 까마귀를 잡아보려했으나...
어느새 힘이 다해 숨을 거칠게 몰아쉬기 시작합니다.
지치는군요...
땀도 납니다.
약간 후련한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하군요. 안그렇습니까?
***
"왜..왜 여기까지 와서.. 나를 괴롭히는 거야..."
그녀는 휘청거렸다.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된 것 같았다. 세상이 도는지 자신이 도는 지 둘 다 도는지 아무튼 팽이처럼 돌아 방향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육체의 진이 빠져나가고 -역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영혼의 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태어난 적도 없고 존재한 적도 없는 이 몽혼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왜 나만..."
"이런 사실 따위 알고 싶지 않았어. 차라리 평생 무명 속에서 사는 게 나아..."
발이 술 취한 자처럼 꼬이던 그녀는 결국 나무에 옆어깨를 기대며 무릎이 꺾인다. 몸이 천천히 무너져 흙바닥에 내려앉았다. 서러웠다.
찰나의 꿈은 영원 속에서 끝난다. 따뜻한 이불은 바람에 날려 사라지고 차가운 현실이 찾아왔다. 그곳에는 그려가던 장밋빛 미래는 없고 다만 누군가에게서 훔쳐와 얼기설기 기워놓은, 인형과 무대들이 있었을 뿐. 그것들은 싸늘하고 거칠었다.
"왜 나만... 왜 나마안...."
어깨가 들썩인다.
***
까마귀는 이리저리 피하다가 흐느끼는 하란의 어깨에 조심스레 내려앉더니.
까악!
하고 웁니다.
콕.
그리고는 머리를 쫍니다.
***
까마귀는 어깨에 올라앉아 이번에는 머리를 콕콕 쫀다. 이젠 피하고 자시고 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될대로 되라. 죽어봤자 꿈 속의 꿈에 빠질 뿐이지. 사실 꿈 속의 꿈이든 꿈 속의 꿈 속의 꿈이든 이젠 아무 의미도 없다. 무명의 계단에서 한 걸음씩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쓸데없는 발걸음이야.
"나는 기워놓은 누더기인형.. 나는 내가 아니야.."
"내가 훔쳐온 누더기들은 원래 누구의 것이었을까. 내가 꿈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상이라면, 이 꿈을 꾸는 현실을 가진 유일한 존재는 누구일까..."
سيكون الموت نهاية آخر وبداية
"대체 뭐냐고.. 젠장... 빌어먹을...."
까마귀의 부리가 머리에 부딪힐때마다 종이 울리는 듯 했다. 뎅 뎅 뎅...
***
까악! 깍!
까마귀가 울음소리를 내뱉더니, 갑작스레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 죽음은 끝이요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까악! 깍! 깍! 까악!
- 넌 죽었다 살아났으며 이것은 꿈이 아니며 현실이다. 너는 그대로 너로 존재하며 이는 변하지 않는다.
펄럭.
까마귀가 날개를 푸드덕거리더니 이내 새하얀 의복으로 변합니다.
- 이제 내 말이 들리느냐 어린 용아?
***
".....들립니다.. 들려요.."
뒤로 다가와서 콕콕 쪼더니 술래잡기를 청하고 이젠 현학적인 말을 하는 까마귀... 그녀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일이 아니다.
"제가 알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현실이요? 당신이 말하는 현실은 무엇입니까. 현실 없는 몽혼에게는 꿈이 곧 현실 아닙니까? 개미의 세상이 한 뼘 흙구덩이듯.."
"끝이고 시작이 다 무엇입니까. 저는 시작한 적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끝남이란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
- 이런. 귀가 트이니 이제는 장님이 되어버렸구나.
까마귀가 껄껄 웃습니다.
- 너는 너로 존재한다. 생각하고 있지 않느냐? 너가 존재하지 않으면 이 생각의 흐름들은 다 무엇이란 말이냐? 존재함으로써 이미 시작된 것이다. 네 존재가 부정당했다 느껴지느냐?
***
"제 손 안에 있다고 제 것이 아니고, 제 머리 안에 있다고 제 생각이 아니란 말입니다 선생."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흰 노인으로 변한 까마귀를 보았다. 자신의 말을 하면서도 어디론가 계속 촉수를 더듬는 눈이다. 나무를 베어 건축을 하듯, 촉수로 관념들을 부수고 끌어당기고 얽어 새로운 뭔가를 만드는 것이다.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광소가 낙수처럼 흐른다.
"진정 '자신의 생각'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생각이라 불리우는 것들은 남들이 만든 것을 보고 듣고 엮은 것 아닙니까!"
교룡비급을 낡은 책에게 배웠다. 풍상설우를 그분께 배웠다. 유학은 왕사에게 배웠다. 그녀가 스스로 만들어낸 원형의 생각은 어디에도 없었다. 세상의 모두가 그렇다. 나의 생각, 나만의 생각은 허상이다. 생각은 모두 생각하는 자에게서 훔친 것이다. 그래, 현실을 가진 자, 꿈의 주인으로부터. 그의 생각이 그녀의 속으로 흐른다. 그것은 스스로 생각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생각은, 그 생각들은..."
생각은 어디서 오는가 .....생각을 훔친 것이라면, 훔치는 주체가 있다는 뜻이다. 생각한다는 착각이 있다면 착각의 주체가 있다는 뜻이다. 나는 없으므로 그것이 아니다. 비유가 엇나갔다.
"누워서 잠들면 아는 것, 보았던 것, 생각하는 것들이 한데 뒤엉켜 현몽하지요? 아무리 괴기한 것이 나온대도 그것은 꿈꾸는 자의 조각이 재구축된 것입니다. 꿈에서 꿈꾸는 자의 의식이 아닌 무언가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저는 꿈 속에 있지만 꿈을 꾸는 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생각은 저의 생각이 아니라 꿈꾸는 자의 생각입니다. 그러니 존재도 저의 존재가 아니라 꿈꾸는 자의 존재이므로...."
나무에 기대 몸을 일으킨다. 어깨와 발이 쓸리는 소리가 유달리 컸다. 옷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내가 방금 무슨 말을 지껄인 것이지? 존재는 나의 존재가 아니라 꿈꾸는 자의 존재? 그녀의 꿈에 나오는 모든 것이 그녀의 일부라면, 세상을 꿈꾸는 자의 꿈에 나오는 모든 것들도 그의 일부이다. 그녀는 그의 꿈에 나오고 있었다. 꿈에서 꿈꾸는 자의 의식이 아닌 무언가는 존재할 수 없다.
"어?"
대양도 작은 물방울도, 결국엔 물이듯.
그녀가 그일지니.
***
- 깨달음이 찾아오고 있다.
노인은 그리 말합니다.
- 허나 아직은 미숙하다.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 시간이 언제나 필요할 터. 이 선계는 그런 구도자들이 모여있는 곳이지. 문답이 더 필요하느냐?
***
꿈꾼다. 세상을 꿈꾼다. 하늘로, 땅으로, 바다로, 신과 사람으로. 몽상의 용광로에서 그의 의식은 끓어오르며 천변만상의 극이 펼쳐진다.
"꿈꾸는 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생각 뒤에 숨어있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존재 말입니다!"
하늘, 산, 바람, 바위, 바다, 나무, 동물, 선계와 신선, 하계와 인간, 물질과 관념, 리와 기. 그 모든 것을 세상이란 꿈 속에서 펼쳐보이는 자.
태어나지 않았기에 영원한 자. 시간의 파괴자.
***
- 우리는 그런 것을 '신' 이라고들 부르지. 허나 누군가에게 그것은 신이 아닐 수도 있고, 신일 수도 있으며 스스로 존재할 수 있고 스스로 존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리 생각한다.
노인의 말소리가 점점 더 빨라집니다.
- 내 몸 안에 우주가 있는데 꿈꾸는 자가 내가 아니면 다른 누가 우주요, 나라고 할 수 있겠는가?
***
"......"
영원 속의 찰나, 찰나 속의 영원, 그리고 다시 영원 속의 찰나.
"신 안에 있는 나, 내 안에 있는 신...."
내 몸 안에 있는 우주, 내 몸 안에 있는 신이 바로 꿈꾸는 자의 조각이다.
모든 것은 조각을 품고 있다. 그 조각이 '나'이며, 모두가 그 조각을 가졌으므로, 모든 것이 '나'이다.
모든 것이 '나' 이므로, '나'는 일자, 신이다.
'그에게는 눈이 없습니다. 하지만 눈 없이도 보는 것 이상을 봅니다.'
'그에게는 귀가 없습니다. 하지만 귀 없이도 듣는 것 이상을 듣습니다.'
'그에게는 손이 없습니다. 하지만 손 없이도 일 이상의 일을 합니다.'
'그에게는 피부가 없습니다. 하지만 피부 없이도 느끼는 것 이상을 느낍니다.'
'그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음에도 통찰 이상의 통찰을 합니다.'
'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음에도 존재 이상의 경지에 다다랐습니다.'
그녀는 언젠가 술에 취해 뜻도 모르고 나불거렸던 말을 떠올렸다. 지금을 위해 했던 말 같았다. 그는 느끼는 주체이자 느낌의 대상이다. 그는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의 이원을 초월한 존재이다.
***
- 네 안에 있는 우주를 관조해라. 그리고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아라.
노인의 말소리가 점점 더 멀어져갑니다...
***
"....."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도로 앉았다.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의 자세를 취한다.
밖으로 향하는 감각과 기를 모두 거두어 자기 자신의 안으로 향하도록 하였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성도 본능도 잘라내야만 한다. 꿈꾸는 조각이 아닌 것들을 모조리 도려낸다. 자아를 쳐부수고 그 뒤의 진아를 보아야 한다.
잠자며 의식이 끊어지듯이,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잠에 빠지듯...
***
집중합니다!!!!!!
무엇이 보입니까?
***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본다'는 필요없다.
그녀가 보는 대상, 그녀에게 보여지는 대상. 모두 하나가 된다. 이원을 초월하라.
바다로 흘러드는 물들이 나는 황하에서 왔소, 나는 장강에서 왔소, 나는 하늘에 있다가 떨어졌소. 하면서 자신을 구분하던가?
진리는 앎과 이성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벼락처럼 떨어지는 찰나의 직관 속에 숨어있으니. 찰나를 잡아 그 안의 영원을 헤집으리라.
***
당신은.
누구입니까?
***
현자들은 그것을 일러 불멸자라고 한다.
그것은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으며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다.
그것은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으며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다.
그것은 공기도 아니며 공간도 아니다.
그것은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입과 혀도 없다.
그것은 맛도 없고 냄새도 없고 촉감으로 느낄 수도 없다.
그것은 숨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다.
그것은 안도 없고 바깥도 없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측정할 수가 없다.
그것은 아무것도 먹지 않으며 또한 잡아먹히지도 않는다.
불멸자는 보는 자이다.
그러나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는 듣는 자이다.
그러나 그는 들리지 않는다.
그는 생각하는 자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아는 자이다.
그러나 그는 앎의 대상이 아니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알 수 있는 자는 오직 불멸자 자신뿐이다.
그 말고는 아무도 보거나 듣거나 생각하거나 알 수 있는 존재가 없다.
허공을 둘러싸고 충만하게 채우고 있는 존재가 바로 이 불멸자이다.
우리가 깨닫고자 하는 진아는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우리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고, 맛볼 수 있고, 말할 수 있는가?
느끼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기억하고, 의지를 품고, 바라고, 사랑하는 것은 누가 시키는 것인가?
이런 것은 모두 순수의식인 진아의 활동이다.
모든 것이 진아이다.
모든 신들이 그이며 흙, 물, 불, 바람, 공간과 이들 원소로 이루어진 모든 피조물이 그이다.
큰 것과 작은 것과 자궁에서 태어나는 존재와 알에서 태어나는 존재.
그리고 뜨거운 기운에서 태어나는 존재와 싹에서 태어나는 모든 존재가 다 그이다.
말, 소, 코끼리, 남자, 여자가 모두 그이다.
땅에서 걸어다니는 모든 동물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든 새가 그이다.
날아다니지도 않고 걸어다니지도 않는 것들도 모두 그이다.
그는 만물의 내면에 머물고 있는 순수의식이다.
온 세상이 순수의식의 발현이며 그 순수의식이 곧 불멸자이다.
진아가 불멸자이다.
순수의식이 불멸자이다.
세상이 불멸자이다.
나는 불멸자이다.
네가 그것이다.
내가 그것이다.
سيكون الموت نهاية آخر وبداية
죽음은 나중의 끝이요 시작이 되리라
***
훌륭한 문답입니다!
기연을 사용합니까? 아니라면 기존 진행을 이어갑니다.
***
어 내공에 쓰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여기에다 쓸수밖에 없다(??
***
기연을 사용합니다.
당신에게 깨달음이 찾아옵니다...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왜 무인들이 그리 생사결에 집착하는지 말입니다.
도대체 왜 생사결을 겪어야만 경지가 상승하고, 깨달음이 찾아오는 것일까요?
그냥 당연히 그래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걸까요?
그렇게 정해져있어서 그런걸까요?
그럴리가.
없죠.
죽음을 가장 앞에둔 그 순간. 사람은 모든 힘을 다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자신의 죽음일 수도 있고, 소중한 사람의 죽음일 수도 있겠지만 죽음이 앞에 다가온 순간에 사람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찾아온 초인적인 힘, 생각 등은 살아남아 곱씹어본다면 그 사람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것들을 위해서 죽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죽어버리면 무슨 소용입니까?
그럼에도 수많은 무인들은 죽음을 유사하게 경험하기 위해 미친듯이 달려들고 있습니다. 마치 도박에 중독된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봅시다.
죽음을 겪고, 그 충격을 받더라도...얼마든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은.
위대한 무인이 될 수 있는, 이 얼마나 효율적인 길이란 말입니까?
바라건대 마모되는 정신과 그에 비례해서 찾아오는 강력한 힘에 중독되지 마십시오.
죽음은 끝이요, 다음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생명은 연속적이고 순환하며 죽음은 순환의 고리이니.
죽음을 두려워하되 두려워 마십시오.
!
- 미사하란의 주화입마가 완전히 사라집니다. 주화입마를 극복해냈습니다!
- 최대 내공이 125년으로 상승합니다.
- 정신이 5단계로 상승합니다.
- 간극이 상승합니다! 현재 미사하란의 간극은 절정 - 극입니다.
***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스승님. 불초 소녀 이제사 죽어보고 깨닫습니다."
후우우... 숨을 내뱉었다. 작게 미소지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디에나 계셨군요."
#눈을 떠용!! 정신만은 초절정이다
***
눈을 뜹니다!
선계에 있는 자신의 몸이 은은하고 정갈한 붉은 빛을 내고 있습니다.
이게...초절정의 정신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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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취정이나 오기조원같은 건가? 존재의 뿌리에서는 정신과 물질이 하나가 되나니 육체가 정신을 따라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팔을 뻗어 자신을 살피더니, 다소곳하게 일어났다.
#까마귀선인할배 아직 계신가용 있으면 인사를 올립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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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은 자리에 계시지 않습니다!
...어디갔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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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가 있던 자리에 절을 올렸다.
방황은 끝났으니 있던 곳으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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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을 올리고, 복귀합니다!
- 가재는 게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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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위대장, 주목지기, 대장군 3개의 직위를 임명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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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뽑기 가봅시다
일단 기본적인 능력 있고 종족성별 상관없다는 전제 하에!
근위대장 : 충성심, 전술적 감각
대장군 : 창의력, 대전략적 시야
대제학 : 사고의 유연함, 개방성
주목지기 : 좀 너드같은애.. 자기 분야 얘기 나오면 신나서 티엠아이 푸는 자기 분야에 애정가진 사람... 외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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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추천받습니다!!!!!
수십 명의 인재들을 적어놓은 서류가 하란의 책상 위에 쌓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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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추천받습니다!!!!!
수십 명의 인재들을 적어놓은 서류가 하란의 책상 위에 쌓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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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 읽어봅니다!
잉어, 연어, 고등어, 광어, 우럭, 멍게, 대게, 바닷가재...
쓰읍.
하란은 읽다가 고인 침이 흘러내린 턱을 손등으로 닦습니다.
이거이거 이것들 종족부터 맛있게 생겨가지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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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매운탕즈가 아니라 횟감즈입니다!
바닷가재와 대게, 문어가 각각 근위대장, 대장군, 대제학에 어울립니다만...
주목지기에 어울리는 인물은 없습니다!
아니 어물은 없습니다!
***
'우선 뽑을 것부터 뽑아서 앉혀놔야겠다..'
생각없이 옥새를 찍으려던 그녀는 순간 머뭇거렸다. 그래도 용궁의 중책들인데 서류 한 장으로 붙인다고? 그건 안 될 일이지. 면접을 봐야겠다.
"이 셋을 들라하라. 게랑 가재는 같이 들여보내고, 문어는 그 다음에."
***
게와 가재가 들어옵니다!
"용왕전하를 뵙습니다!"
둘이 어설픈 군례를 올립니다!
***
"그래. 대장군과 금군장을 뽑아야 하는데... 서면상으로 경들이 가장 적합해 보여 조금 하명하겠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서 신하들을 보았다. 가재는 게 편, 게도 가재 편. 둘 다 등이 딱딱해보였다. 그리고 구우면 부끄러워서 빨개지겠지(?)
"궁과 혈검문의 관계에 대해서는 익히 아리라 생각한다."
눈을 감았다, 떴다, 깜빡깜빡. 말하는 그녀의 입술 너머로 날카로운 송곳니와 길고 끝이 갈라진 혀가 얼핏 비쳤다.
"이 누란지세를 어찌해야 하겠는가. 전쟁을 하는가? 전쟁을 한다면 어떻게 하는가? 한 명씩 방향성을 논해보라."
그러면서 둘을 당장이라도 갑각째 씹어먹을 듯 하는 살기를 뿌리는 것이다. 어디서 이 장면을 봤는데. 폭력의 대물림인가?
하지만 이자들의 손짓 한번에 천만 군병들이 살아나고 스러질텐데. 이 정도 압박을 견디지 못하면 재목이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
그들은 높은 자리에 천거된 이들답게 하란의 살기에 겁먹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당당한 태도를 보입니다.
게가 먼저 대답합니다.
"아군은 열세요 적군은 강세이니 때를 기다려야 하옵니다. 제게 책략을 여쭤보신다면 이간계를 사용하도록 하겠나이다. 또한 소규모 정예 부대를 이용해 적들의 보급을 타격하겠나이다. 마지막으로 아군의 거점에서 적들이 보급을 얻을 수 없도록 청야전술을 펼칠 것입니다."
허나, 하고 게가 말을 이어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검문이라 일컫는 인간의 세력과 전쟁이 벌어진다면 십중팔구 아군의 전멸로 이어질 것입니다. 전쟁에 비겁이 어디있겠냐만은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여도 아군은 혈검문을 상대로 달포간 항쟁하지 못할 것입니다. 전하께옵서는 부디 그들과의 전쟁을 염두하시기보다는 화친에 뜻을 두소서."
음. 조금 건방지군요...
이어서 가재가 대답합니다.
"저런 겁쟁이의 말은 들으실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옵니다 전하."
??? 가재는 게 편 아니었나?
"전쟁을 한다면 소신이 기필코 전하를 지켜낼 것입니다. 전하만 살아계신다면 용궁은 얼마든지 다시 세울 수 있나이다. 허나 전하를 잃으면 용궁은 그 존재가치가 전무합니다. 이 한 몸을 바쳐 전하를 보필하겠나이다."
음...뭐 딱히 방법은 없고 최선을 다하겠답니다.
하란이 파악해보았을 때, 가재도 전쟁을 이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시작부터 자기를 지켜내겠다고 하는걸 보면 용궁이 파괴된다는건 기정사실로 보고 있는 것 같군요!
***
'한 가닥 하는 녀석들이로고.'
나는 어르신이 압박할때 땀을 비 오듯 흘렸는데. 그녀는 잠시 예전의 상념에 빠졌다. 가주...요즘 뭐하고 지내십니까?
둘의 생각은 그녀의 생각에서 크게 궤를 벗어나지 않은 것들이었다. 혈검문과 전쟁하면 파멸이 찾아온다. 전쟁은 피한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대화를 더 끌어내보고 싶었다.
대게에게 묻는다.
"인간이란 족속을 상대로 하여, 평화적인 수단으로만 평화를 꾀할 수는 없다. 청야전술이나 보급로 타격을 시행하기 전, 전쟁을 사전에 차단할 방법이 없겠는가?"
가재에게 묻는다. 사실, 청야전술 보급로 타격이란 말을 이 쪽에서 해주었으면 했다.
"혈검문의 병력이 바다로 짓쳐들어와 유린할 때, 여를 어떻게 지키겠느냐. 상세히 말해보라."
***
"전쟁을 사전에 차단할만한 무력 시위를 이름이십니까?"
게가 고민에 잠깐 빠지더니 말을 잇습니다.
"지금 상황으로는 없나이다. 저 인간들은 거대한 해일과 깊은 바다를 가르고 일순에 용궁에 도달할 수 있는...괴물들이옵니다. 그들이 원한다면 우리는 내어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니 현재 아군의 세력에는 저들의 전쟁 수행 의지를 꺾거나 강제할 수단이 없나이다."
가재 또한 하란의 말에 대답합니다.
"용궁에 비밀 통로를 여러 개 만들어놓겠나이다. 각각 입구와 출구가 다른 비밀 통로들은 모두 엄폐물이 많은 곳을 위주로 지을 것입니다. 적들이 들어오자마자 전하를 모시고 비밀통로로 갈 것이며 제 술법을 이용해 전하의 분신을 용궁 곳곳에 만들어 다른 비밀통로들을 노출시키겠나이다. 그리하면 적들은 혼란에 빠져 전하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 잠깐. 뭐요? 술법? 분신?
***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 궁의 전력으로는 혈검문의 팔 한쪽을 자르겠다고 윽박지르는 것도 힘든 수준이라는 뜻이겠지. 그리고 가재...비밀통로...술법 뭐?
"현 시를 기하여 각각 대장군, 금군장의 직책을 부여한다."
"어용영을 통하여 처음으로 편제될 1군단의 별칭은 금사金沙로 할 것이며, 용궁금군에게는 여명黎明이라는 이름을 내리겠노라."
옥새를 찍는다. 쾅쾅!
"나가보아도 좋다. 금군장은 잠깐 남아보게."
***
금사와 여명, 각각에 이름과 상세 내용을 적어주시면 반영됩니다!
또한 대장군(게)와 금군장(가재)의 이름을 새롭게 내리실 수 있습니다!
가재는 조금 어리둥절한 눈으로 편전에 서있습니다.
***
협해금군 여명 餘命, 黎明
'죽임을 당해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용왕 직할의 근위군단. 궁궐과 요인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요, 용왕군의 척추로서 대외 전쟁에도 참여하는 개천궁의 최정예 무력집단이다. 미사하란은 스러지고 다시 떠오른다는 뜻을 담아 이중적인 별칭을 생각했다. 그러나 금군의 사기를 고려해 黎明을 공식적으로 채택한다.
용궁과 요인을 경호하는 용왕의 방패 금위부
전장에 뛰어드는 용왕의 창 친위부
금군 병사들을 훈련하고 전술을 고안 실험 적용하는 교도부
가재 영물 해운海雲이 금군장으로 있다.
제1군단 금사 金沙
'황금 모래 빛나는 곳 우리가 있다!'
게 영물인 대장군 광안廣安의 지휘를 받는 개천궁의 첫 정규 군단. 복건의 해양 통제, 항로 보호 등을 주 목표로 한다. 물고기들이 떼지은 덩어리와 같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유기적인 전술이 특징. 전 해역에 유연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기병대를 주력으로 하며, 부수 전력은 갑각류로 구성된 육전대와 바다새로 구성된 비공대가 있다.
제2군단 철성 蜇星 (예정)
제3군단 태무 苔舞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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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별건 아니고..."
그녀는 서류를 슬쩍 밀어서 한구석으로 치워버렸다. 그런 종이쪽보다 훨씬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마침 풍상설우를 대성했고, 진룡검법은 아직 멀어보이는지라.
"아까 분신술 무어라 하던데, 술법을 부릴 줄 아는가?"
***
반영됩니다!!
해운은 조금 긴장한 눈으로 용왕 전하를 바라봅니다.
"미욱한 실력이오나 조잡한 술법을 조금 다룰줄 아옵니다."
해운이 길게 읍하며 고개를 숙입니다.
***
"보통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고들 하지. 바둑에서도 두 집부터가 완생이고."
그녀는 답지않게 조금 우물쭈물하는 기색을 보였다. 시장통 당과집 앞 꼬맹이같았다. 이게 아까까지 살기를 뿜던, 범고래 해원을 쳐죽인 그 용왕이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여 또한 술법을 익혀두는 것이 이롭지 않겠는가? 마침 금군장이 술법을 쓸 줄 안다면.."
***
해운은 조금 난감한 기색입니다.
"전하께서 제 술법을 말입니까? 지금까지 익힌 술법이 혹시 어떤 것들이온지 여쭤봐도 되겠나이까?"
악! 술법 뭐 익히셨는지 여쭤보는 것을 여쭤보는 것을 여쭤봐도 되겠읍니까! 악!
***
".....풍상설우?" (해맑)
이 용왕.... 아직 어리다....
인간적 무공을 제하면 그녀가 가진 술법이라고는, 정말로 풍상설우 하나가 전부였다.
분신술도 축지법도. 그녀는 모른다. 오호통재라!!!!!!
***
해운은 집게로 자신의 수염을 만지작거립니다.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용으로서 익히셔야할 술법들은 아니익히셨나이까?"
? 그런게 있서?
***
".....풍상설우?" (불안)
이 용왕... 정말 풍상설우밖에 모른다...
"그것 말고는 술법이랄게 없느니라. 검법이나 심법 따위의 것들은 술법이라 부르기 어려운 것들이고.."
"용으로서 익혀야 하는 것이 풍상설우 말고도 많이 있는 것이더냐....?"
***
"생장술은 익히셨나이까?"
해운이 조심스레 물어봅니다.
"동식물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술법이옵니다만..."
***
"아! 상생지화相生之禾를 말하는 것이냐?"
하룡이 아는 거 나왔다! 신난다!
"일전에 익혔던 무공에 들어있던 초식인데, 내공을 씨앗처럼 뿌려서 아군의 체력을 회복시키는 것이었나..."
"아무튼 그 초식은 자유롭게 펼칠 수 있노라!"
***
"초식이 아니오라...선술을 여쭙는 것이옵니다 전하."
(대충 이마 탁 치는 짤)
***
"....모르느니라. "
풍상설우 빼고 아무것도 몰?루
***
해운의 수염이 덜덜 떨립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전하, 우선...그....왕사께 선술들을 배우심이 어떠하신지요?"
엥? 왕사? 혹등고래요? 걔 호감도작 안되서 술법 안알려줄것 같은데?
"문무백관을 모아 만어소(萬漁訴)를 적겠나이다."
와! 충신! 충신입니다!
***
"옳다. 그 편이 더 좋겠군... 금군장의 뜻대로 만어소를 올리도록 하고, 이만 물러가게."
하란은 입꼬리를 뒤틀었다. 왕사 이놈. 통촉하시옵소서 천부당만부당하옵니다 하며 짜증나게 굴던 대로, 네놈도 상소 폭탄이나 먹어보아라! 명색이 왕사라는 고래가 즉위 7년이 넘도록 기본적인 것도 가르쳐주질 않고! 사서삼경이나 줄창 파게 하고 말이야! 선술 내놔!!!
아무튼 대장군 뽑았고, 금군장 뽑았고, 한 명 남았다.
"대제학으로 추천받은 문어도 들라 하라."
***
문어가 안으로 들어옵니다.
"삼가..."
굉장히 긴 인사입니다. 대충 자신은 어느 학파의 누구에게서 수학하였고 공부한지는 얼마나 되었으며 전대 용왕 때 부터 일을 해왔다...
어? 전대 용왕?
***
"선왕...."
할 일이 해일처럼 밀려드니 빠르게 빠르게 해치우려던 그녀였지만, 전대 용왕이라는 말을 듣고 그냥 넘기기는 어려웠다. 왕사는 아직 호감도가 덜 찼고. 아무튼 선왕은 어땠는지, 선왕보다 잘 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을 해야 선왕보다는 오래 갈 것이 아닌가.
"그대는 선왕의 치세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
"선왕의 치세를 말씀이십니까?"
문어는 반들반들한 머리를 다리 하나로 닦아댑니다.
긴장했을 때의 버릇인걸까요?
"...태평성대는 아니었습니다. 선계와의 통공은 어렵고 인간들은 그 세를 불리우고, 특히나...강대하였으니 말입니다. 남해용왕께서 시해되셨을 적에는 해협의 왕께서도 공포에 질리셨습니다."
***
"지금과 별 다르지도 않군.."
인간들은 강대하고 용왕은 시해당하고. 선계와 통공하기 수월하다는 건 위안거리로 삼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선왕은 그 난관을 타개하기 위하여 무엇에 역점을 두고자 하였는가?"
지금 그녀가 용상에 앉아있는 것은 그가 실패했다는 의미. 실패에서 배운다. 죽음에서 배운다.
***
문어는 좀 길게 뜸을 들입니다. 하란은 천천히 말하라며 차분히 기다립니다.
"...그, 선대 용왕께서는 인간들을 썩 좋게 보지 않으셨습니다. 적극적으로 인간을 배척하셨지요...처음에는 효과를 조금 보았습니다만..."
그 끝은 혈검문의 보패화였나봅니다.
***
"...그대도 알 것이다. 지금 혈검문주가 '용궁을 멸해야지' 생각한다면, 우리는 멸하는 것임을."
개천궁과 혈검문의 전력 차이는 압도적이다. 혈검문이 당장 군사를 일으키지 않는 것은 용왕이란 이름의 무게, 위격. 오직 그 하나뿐이었다.
"여는 혈검문의 뒤통수에 달라붙고 싶다. 머리와 척추에 촉수를 박아넣고 단단히 붙어서, 함부로 뜯어내려다간 자신까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개천궁의 죽음이 곧 혈검문의 죽음이 되도록."
"그 촉수로 때로는 영양을 주고. 때로는 독을 집어넣으면서. 길들일 수 있다면..."
***
"늑대는 길들여지지 않는 법입니다..."
문어가 그리 대답합니다.
"그들은, 맹수입니다. 길들여지지 않는 자들이지요. 우리 용궁이 당면한 가장 큰 대적은 과연 인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 근방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서쪽의 괴상한 종교가 대륙을 지배하는게 아닌 이상에야..."
...그 정도로 격차가 크다구?
"그러하니 대륙 북쪽을 차지하고 있는 인간 세력, 혹은 서쪽을 차지하고 있는 인간 세력을 끌어들이심이 나을 것입니다. 허나 여우를 잡기 위해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꼴이 될 수 있사옵니다."
***
혈검문에 대응하려면 기본적인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복건의 거의 모든 지분은 혈검문의 수중에 있으므로, 개천궁이 지분을 먹는다는 것은 혈검문의 것을 빼앗아 먹는다는 뜻이므로. 그런 짓을 했다간 힘을 키우기도 전에 박살이 나리라.
그럼 있는 지분을 빼앗지 않고, 지분 자체를 키워서 주인 없는 것들을 홀랑 집어삼키면 안될까?
"..그것이 새외가 될 수는 없는가? 이주를 복건에 편입시켜 개천궁의 핵심 거점으로 삼고, 바다로 이어진 북동과 남서의 지방들을 연결하여..."
***
문어가 조심스레 말합니다.
"몇 년을 생각하고 계신지요?"
***
"이미 복건 민상들은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사방팔방을 쑤시고 있더군. 그 흐름에 올라타 중원 혈검문을 막을 수 있는 힘을, 새외에서 끌어와 개천궁의 것으로 만드는 계획.."
그녀는 잠시 골똘히 생각했다.
"최소 100년 단위로 처리해야 하는 계획 아닌가."
***
"현재로서는 저희 용궁이 100년을 버티기가 어렵다고 아뢰옵니다..."
문어는 그 반질반질한 머리를 깊숙히 숙이며 대답합니다.
우리...그 정도로 심각하니...?
***
미간을 짚었다. 상제 폐하. 제발 지원군 좀. 든든하게 믿고 기댈 수 있는 용 한 마리 남해용왕으로 내려주시면 안될까요?
"북방에 연이 있는 모용세가를 끌어들이건, 어디랑 혼인동맹을 하건.. 극약처방이 필요하겠구나."
극단적인 상황에는 극단적인 방책이 동원되기 마련이니..
***
"그러하옵니다."
문어가 그리 대답합니다.
"허나 아직은 시기상조이옵니다. 먼저 내실을 튼튼히 다진 뒤에 극약처방을 하심이 옳다 아뢰옵니다."
***
"그래, 내실.. 역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안마당이 필요하겠어. 이주 점유까지는 최대한 빨리 진행해야지."
이미 번성하는 항구들을 가진 혈검문이 이주 따위에 신경이나 쓰겠느냐. 그녀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중얼거렸다.
"말이 빙빙 돌긴 하였으나. 이제부터 자네가 대학의 대제학이 되어주게."
#대도관大道館
개천궁의 신하를 양성하는 시설. 대학, 연구소, 참모기관의 역할을 수행한다. 문어 영물 민락民樂이 대제학으로 있다. 중원 내의 지식뿐만이 아닌, 해외의 학문을 연구하고 교류하는 것에 매우 적극적이다.
***
민락이 대제학에 임명됩니다!
민락은 길게 읍소합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
"물러가보게."
민락에게 축객령을 내린다. 그가 물러나고 하란은 의자에 파묻히듯 늘어졌다. 어딘가 밖에서 주목지기를 데려오고. 군대는 해적이라도 때려잡으며 경험을 쌓게 하고 싶은데, 그것이 혈검문을 자극하지는 않을지 고려해야 하고. 형세는 끝없는 첩첩산중이었다.
노곤히 손가락을 꼼질거리다가, 벌떡 일어났다. 패울부에게 확인해보라 시킨 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