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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 항목 : 무림비사/스토리 - 미사하란
- 너 모용의 식객이 되어라
- 이불 속에서 눈이 뜨였다. 아침 일찍이라 하긴 해가 높다. 허물 벗는 뱀처럼 이불 안에서 꾸물꾸물 빠져나왔다.
흰 잠옷 차림으로, 머리도 묶지 않고서 마루로 나왔다. 털썩 소리와 함께 삐딱하게 앉았다. 곰방대 연통에 담파고를 다져넣고 불을 붙인다. 그리고 물부리를 입에 대고 빨아들였다. 연기 향이 핏줄을 타고 온 몸으로 퍼지는 기분이다.
"후우우....."
서늘한 연기가 코 끝을 간지럽힌다. 그 느낌을 음미하다가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그녀의 입에서 구름이 피어오른다.
하란의 멍한 눈은 담벼락과 흙바닥 사이 그 어딘가를 힘없이 주시한다.
***
나른합니다. 아니 찌뿌둥한걸 수도 있고 아직 졸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없어진 한 쪽 다리처럼 공허한 시선이 허공에 머뭅니다. 곰방대를 입에 물고서 부싯돌로 불을 피우자 매캐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뻐끔. 뻐끔.
연기를 들이마셨다가 내뱉으니 허공에 하얀 연기가 뭉실뭉실 피어오릅니다. 이게 끽연이고 이게 인생입니다.
그런데 저 멀리에서부터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란은 안력을 돋아 자세히 살펴봅니다. 평범한 키에 평범한 체격. 허리춤에 메고 있는 검 한 자루. 호랑이가 옷에 새겨져있습니다.
뭐죠?
그는 하란이 누구지? 하고 고민할 때 눈 앞에 도착합니다.
"하란 낭자 맞으십니까?"
관자놀이 근처의 태양혈이 볼록 튀어나와있는걸 보아하니 최소한 절정의 고수입니다.
"저는 모용헌이라고 합니다. 저희 어르신께서 한 번 뵙고자하십니다."
말은 정중하지만 뜻은 너, 나랑 같이 좀 가줘야겠다. 라고 들리는군요. 하란, 초대를 받아들일까요? 거절할까요?
***
"맞습니다만, 모용? 모용세가에서 저를 어쩐 일로 부르시는지..."
말하는 게 꼭 한숨을 쉬는 것 같다. 흡혈귀에게 피 대신 기를 빨리면 이런 분위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시선을 내리깔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하란은 마음의 결정을 하고는 모용헌이라는 남자를 다시 올려다본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대협. 아까 막 일어난 참입니다."
곰방대를 마루 모서리에 탁탁 부딪혀 담파고 재를 털어내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어디 시정잡배도 아니고, 모용세가에서 부를 정도면 무슨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첫 번째 이유요, 괜히 초대를 거절했다가 미운털이 박히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하란은 세수를 하고 의복을 갖춘다. 의족을 차고 품 속에 비급서를 넣어둔다. 그녀는 언제나 이것을 잃어버리진 않을지 도둑맞진 않을지 전전긍긍하곤 했다.
마지막으로 지팡이검을 손에 쥐고 다시 방의 밖으로 나왔다. 마루에서 내려와 모용헌 앞에 선다.
"가시죠."
***
하란은 절뚝이며 걷습니다.
모용헌은 잠깐 눈을 감더니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한 차례 쓸어내립니다. 몸이 불편한 하란을 오라가라 한 어르신이 문제인 것인지, 다리 하나가 없는 하란이 어르신을 뵙는게 마음에 안드는 것인지.
하란으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괜히 있을까요.
열심히 걸어가지만 남들이면 한 번에 이동할 거리를 하란은 꽤 시간을 들입니다.
한 번 더 이동레스를 써주세요.
***
"대협. 잠시만... 같이 좀 갑시다."
의족과 지팡이는 역시 진짜 다리만 못하다. 그녀는 힘겹게 절뚝거리면서 걸음을 내딛지만, 모용헌의 걸음을 제대로 따라가질 못했다. 마음이 조급해져 무리하게 걸으려다 의족이 삐끗했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하란은 잠시 숨을 가다듬으면서 모용헌에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제가 다리병X인 것 이미 알고 오신 것 아니었습니까? 어찌 그렇게 성큼성큼 걸으시나요."
그녀는 조금 서운한 마음에 되도않는 투정을 부려보았다.
***
"무인이 다리를 잃은 것이 무에 자랑이라고 그러십니까 낭자."
모용헌은 냉정하게 말합니다.
...자비가 없군요. 팩트로 명치를 두들기다못해 뚫어버렸습니다.
하란. 기억하세요.
선즙필승입니다.
투닥거리다보니 모용세가에 도착했습니다.
....으리으리하군요. 대저택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습니다. 저택 안에서는 병장기들이 부딫히는 소리가 들립니다. 수련중인가보죠?
안으로 성큼성큼...하란은 절뚝절뚝.
외다리의 불편함은. 마음이 아픕니다.
한참을 들어가자 모용헌은 멈춰섭니다.
"이 곳부터는 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낭자."
하란은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침이 꼴깍 삼켜지는 것이 괜시리 긴장이 됩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오. 왔는가."
한 장년인이 홀로 바둑을 복기하고 있습니다.
***
"다리가 날아간 것은 무인이 되기 전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사람 가슴에 말뚝을 박아버리네. 하란은 눈물을 짜내며 잉잉 울어버릴까 하다가 겨우 참았다.
아무튼 모용헌의 안내를 받은 하란은 안으로 들어가 알 수 없는 장년인을 만난다. 아마 높은 사람이겠지.
저택의 위용에 눌린 하란은 공손히 포권지례를 취하며 예를 갖춘다.
"이 미사하란이를 부르셨습니까. 대협."
***
"어서 앉으시게."
어르신, 이라 불리우는 사람은 손을 휘젓습니다. 그러자 시비 하나가 와서 바둑판을 조용히 치우고 차를 내옵니다.
"오는데 불편함은 없었는가?"
다리를 보고 묻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가 왜 하란을 이 곳 까지 부른걸까요? 짐작이 되질 않습니다.
***
"어차피 먹을 것 사러 저자에 나가는 길도 불편한 몸입니다. 개의치 마소서."
치마를 정리하면서 의자에 다소곳히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남자의 말에 대답했다.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으로 애끚은 제 무다소곳히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남자의 말에 대답했다.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으로 애끚은 제 무릎이나 긁적거리던 하란은 먼저 말을 꺼내었다.
"어인 일로 소인을 부르신 것입니까. 그것도 모용세가의 대협께서 말입니다."
***
"대단한 것은 아닐세."
차를 한 모금 마신 그는 차향을 음미하는듯 눈을 감고 가만히 있습니다. 하란도 거기에 맞춰서 가만히 앉아있습니다.
........
시간이 흐르고 한참흘러 좀이 쑤실때 쯤에서야 그가 눈을 천천히 뜹니다.
"우리 세가의 식객이 될 생각이 있는가."
강호에서도 깊은 심계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그. 하란의 뛰어난 두뇌로도 그의 의중을 짐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체 왜일까요?
"별 다른 이유는 생각치마시게. 예, 아니오. 정도만 대답해주면 될 것 같구만."
***
'더러운 일을 시키려는 것인가.'
운이 없어 붙잡힌다 해도 곧장 손절할 수 있는, 별로 안 유명한 무림인. 직접 자기 사람을 쓰면 모양 빠질테니까.
정보를 주려 하지 않는 남자의 폐쇄적인 태도는 부정적인 예상을 불러온다. 하지만...
"하겠습니다."
'보상은 짭짤히 줄지도 몰라. 입을 막아야 할 테니까.'
어차피 식객은 슬그머니 들어왔다가 나가는 것이다. 시키는대로 일하고, 시간을 끌며 이득을 보다가 정말 이건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자고 생각했다.
그 때까지 가서 모용세가가 하란을 놔 줄지는 모르지만, 길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니.
"어떤 일을 시키려 하십니까."
***
"당장은 아닐세."
어르신은 차를 홀짝이면서 대답합니다.
"일단은 숙소를 이 쪽으로 옮기고 푹 쉬고 있게나. 다른 사람들과 안면을 터놓는 것도 좋겠지. 조만간 피바람이 불어올 수 있으니 수련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네."
피바람...? 좀 무서운 이야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되네. 호남에서 여러가지 일이 벌어지려는 것 같으니. 우리 세가도 덩치를 좀 불려놔야하지 않겠는가. 허허허."
***
예상이 얼추 들어맞은 것 같은건 기분 탓인가? 하란은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어둡다.
남자가 말하는 것들. 피바람, 여러가지 일, 덩치를 불린다 등등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뭔가 심상찮은 일이 시작되려 한다는 걸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승낙한 김에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남자의 말대로, 하란은 집에 들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나 질문을 한다.
남자는 아까 예/아니오로만 답하라 했다. 하지만 이미 '예' 를 선택했다. 질문 하나정도는 괜찮을지도.
"대협께선 많은 무림인 중 왜 하필 소인을 고르셨나이까?"
***
어르신은 하란의 얘기를 듣고 멈칫합니다.
"왜 골랐는가...글쎄. 그 대답은 자네가 이미 알고 있을 것 같네만...."
후룩. 차가 다 식어갑니다.
"다리와 머리. 무공과 외모. 이것들을 조합해서 한 번 잘 생각해보게나. 정답을 맞춘다면 선물을 하나 주지."
끌끌 웃으며 어르신은 방으로 가보라는듯 손짓합니다.
하지만 천재인 하란은 순식간에 답을 도출해냅니다. 생각한 것이 완전히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정황과 조건들을 조합해보았을 때 결론입니다.
먼저 몇 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상대방은 하란이 뛰어난 천재라는걸 진즉 알고 있다. 하지만 다리가 없으니 쉽게 도망치지 못한다.
무공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훌륭한 머리는 반드시 세가에 보탬이 될 것이다.
무공이 일류고 무림인이니 무림의 생리에 밝고 여차하면 자기 한 몸을 지키는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을 것이다.
다리 하나가 없지만 뛰어난 외모는 세상물정 모르는 강호초출이나 외모에 신경쓰는 녀석들을 낚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 자신을 지금 모용세가에 묶어둔다. 남들이 함부로 채가지 못하도록.
-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호남과 호북의 일처리를 맡긴다.
- 나중에 능력을 보고 적재적소에 활용한다.
왜냐하면.
- 자신은 그만한 천재니까.
이것이 하란이 도출해낸 결론입니다.
***
미묘히 찰랑거리는 찻물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잘 생각해 보라는 어르신의 말. 그래서 하란은 잘 생각해 보았다.
어르신은 그만 가 보라는 듯 손짓했다. 하지만 그녀는 눈을 다섯 번 깜박인 후 즉시 답을 내놓는다.
".....계륵이로군요."
"소인을 당장 쓰기는 애매하나 남 주기는 아까우니, 호남과 호북을 맡기어 저를 시험하시기 위함입니까."
자신과 자신 주변을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분석해 내놓은 결과였다. 하란의 어조는 평탄했다. 종이 위에 쓰인 글을 그대로 줄줄 읽는 것만 같다.
말을 끝내고도 하란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까 선물을 주신다 하신 것 같았는데?
***
그러자 어르신은 씨익 웃습니다.
"시험을 잘 통과했구나."
그 말에 하란은 소름이 돋았습니다. 과연. 자신이 여기서 문제를 맞추지 못하고 물러났다면....어르신은 다시는 자신을 부르지 않았을겁니다.
"선물이라. 그래. 줘야지. 언제든 원할 때 나와 차라도 한 잔 하자꾸나."
그리고 정말로 가보라는듯 손을 휘젓습니다. 아니 선물 준다면서요? 왜 안줘요?
라고 하지만, 하란의 천재적인 두뇌는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하란은 방금 전,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고 그 대가로 모용세가의 가주와 언제든지 독대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습니다.
독대를 하면서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말을 들을지. 그것이 득일지 해일지는 하란 하기 나름입니다.
하란은 방에서 물러납니다!
- 눈도장 찍기
- 하란은 꾸벅 인사를 올리고 물러난다. 이게 시험이었다는 것과, 다이스가 잘 나오지 못했다면 말짱 도루묵이었다는 사실에 소름을 느끼면서 말이다.
"아으... 집에서 물건 가져와야 하는데. 어느 세월에 집까지 또 걸어갔다 와?"
집까지 낑낑대며 가기 귀찮았던 그녀는 일단 식객노릇을 하며 어디서 머물게 될지 한 번 가 보기로 했다. 아까도 어르신이 방이라 하셨으니 그녀의 방이 있는 것 같긴 하다.
그런데....어디 있는 거지... 누구 없나? 내 방 어디에요? 하란은 두리번거리며 저택 안을 어정쩡하게 거닌다.
***
어정쩡하게 거닐다보니 시비 하나가 자연스럽게 하란을 안내합니다.
그렇게 들어간 방에는 이미 하란의 물건들이 전부 정리가 되어있었습니다. 모용세가...무서운 아이들같으니라고!
이제부터 하란은 모용세가의 식객으로서 여러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해볼까요?
1. 인맥다져보기
2. 수련
3. 모용세가의 이름을 등에 업고 갑질시도.(비추천)
***
"우와아....."
맥없는 감탄사. 언제 집에서 이걸 다 챙겨온 걸까. 책장 뒤에 떨어져있던 연애소설까지 챙겨왔어.
아니 것보다, 집 문에 자물쇠 걸어두고 왔는데 그걸 또 용케 풀어냈나보다. 하긴 모용세가 무림인들에게 자물쇠가 대수겠냐만.
의족에 눌려서 뻐근한 곳을 주무르다 하란은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지팡이를 잡았다.
이렇게 앉아만 있지 말고 한 번 돌아다녀보자. 저택에 누가누가 있나 보고, 얼굴도장이나 찍어보자. 하는 생각이었다.
***
하란은 밖에 조금 나돌아다녀봅니다. 불편한 다리 때문에 불편한게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사람이 하란에게 다가옵니다.
20살 정도 되었을까요? 이제 막 강호에 발을 디딘 삼류나 이류 정도되는 무사인 것 같습니다.
"아...안녕하세요!"
귀엽게 생긴 남성입니다. 하란의 얼굴을 보고 밝아졌다가 다리를 보고 표정이 굳었다가 얼굴을 보고 다시 밝아집니다.
....뭐하는 놈이죠?
***
"안녕..하십니까."
아직 어린 티를 못 벗은 귀염상 남자와 마주쳤다. 무슨 손바닥 뒤집듯 표정을 바꾸네. 대단하다. 뭐 하는 사람이지?
"본인은 성은 미사씨에, 이름은 하란이라 하옵니다. 모용세가의 식객이온데. 대협의 존함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일단 침착하게 자기소개를 하자. 그리고 남자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어디선가 조무래기 냄새가 나는 남자다. 하지만 혹여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니, 공손히 대협이라 칭했다.
***
"대...대협이라니요! 강호에 이제 막 나온 초출입니다. 그리 높여부르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나...낭자."
여기서는 여성 무림인은 소저라고 부르고, 아니면 낭자라고 부릅니다.
...무림인으로 보지를 않는군요.
"저는 그냥 금 모라고 기억해주십시오."
히히히...하고 바보처럼 웃는게 어설프기 그지 없습니다.
"작은 문파에서 수련을 하다가 요녕으로 오게 되었는데 몸을 잠시 이 곳에 의탁중입니다."
***
하란은 금 모의 말을 정정하려 입을 열었다. 낭자가 아니라 소저라고. 하지만 말이 턱까지 올라왔을 때 다시 닫아버렸다. 무림인인 것을 알면서도 낭자라고 부르던 아무 세가의 모용 아무개보다는 낫지. 이 정도면 호인 아닌가. 알고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바로잡힐 것이다.
"그럼 금 소협이라 칭하겠습니다."
아까 예상했던 자신의 쓸모 중 이런 사람들을 홀리는 것도 있었다. 아까 정직하게 감정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도 그렇고, 세상에서 쓴맛을 보지 않을까 걱정되는 사람이다.
"문파라 하시면, 무공이나 무술도 사용하시겠군요. 어떤 종류의 것을 쓰십니까?"
하지만 속에 능구렁이 천 마리를 품은 어르신이 몸을 의탁하는 것을 허락했다면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란은 금 소협에게 질문한다. 부드러운 낮을 띠고서.
***
"말씀드릴만큼 대단한 문파는 되지 못합니다. 낭자. 하하하...."
금씨는 수줍게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저야 그냥 얼떨결에 소개를 받아서 들어왔습니다. 뛰어난 인재라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요..."
뒷머리를 긁적입니다. 그 모습에 하란은 그닥 대단한 인물은 아니라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한 번 더 의심해볼까요? 아니면 그냥 넘어갈까요?
선택은 하란의 몫입니다.
***
하란이 만나본 어르신은 그러지 않는다. 얼떨결에 받은 소개로 사람을 들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생각되는 가능성은 두 가지. 금소협이 힘을 숨김, 혹은 절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제가 뵈었던 어르신은 그리 허술하게 사람을 들이실 분이 아니었는데, 참말이신지요? 으응?"
하란은 손 안에서 지팡이를 살살 굴리며 가볍게 금소협을 떠 보았다.
어르신의 시험을 통과했을 때 목 뒤를 지나던 소름. 그것이 하란을 의심케 한다.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어.
***
"하하. 참말이고 말고요. 낭자."
하란은 한 번 더 추궁해보았지만 금 모는 고개를 내젓습니다.
더 이상 물어보았다가는 안물어보느니만 못한 상황이 될 겁니다. 다른 이와 이야기를 할까요? 아니면 더 이야기를 해볼까요. 더 이야기를 해보아도 금 모에 대해서는 알 수 없을겁니다.
***
정말 힘을 숨긴 게 아니라면야... 아까 예상대로 잠재력을 가진 걸까. 아니면 적당히 쓰다가 내보낼 사람일지도. 의문은 남았지만 더 캐묻지 않기로 했다.
"장차 큰 사람이 되실 겁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금 소협."
하란은 금소협에게 인사를 한 번 하고 물러난다. 머릿속 인물 목록에 금소협을 추가하고 정보를 기재해 놓았다.
이제 다른 사람도 만나보자.
***
금 모와의 이야기를 끝내고 하란은 정처없이 떠돌아다닙니다.
약간 어둑어둑해질 시간. 주홍빛 노을이 이쁜 그 시간에 누군가가 수련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만나러 가볼까요?
***
커다란 저택은 의외로 인적이 드물다. 느긋하게 돌아다니다 석양이 질 때. 하란은 마침내 금소협 말고 다른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누군지 모를 이는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이를 향해 한걸음씩 가까이 다가간다.
***
모용세가의 검법인듯 과연 하란이 보기에도 뛰어난 무공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하란이 절뚝거리면서 다가가자 그는 땀에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서 검을 멈춥니다.
"아. 이번에 새로 식객으로 오셨다는 분이군요. 모용세가의 3번대 대주를 맡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름은....말하지 않는군요. 뭐지?
***
"미사하란입니다."
3대주.. 3형제 중 셋째라는 뜻인가. 대주가 무슨 뜻이었지. 아 모르겠다. 지금은 생각하지 않도록 하자.
하란은 이름을 말하지 않는, 자칭 3대주에게 예를 갖춘다. 자연스럽게 그의 관자놀이를 관찰한다. 솜씨가 상당해보인다. 높은 경지에 이르른 사람일 것이다.
"얼핏 보아도 칼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시군요. 그것이 모용세가의 검법인 것입니까."
***
"하하. 외인에게 함부로 보일만한 무공은 아니나. 그 실력이 뛰어난 편은 아닙니다. 소저."
금 소협과는 다르게 하란에 대한 호칭이 정확합니다.
"수련장에는 어쩐 일로 오셨는지요."
관자놀이를 보자 툭 튀어나와있는것이....최소 절정의 고수입니다.
***
그는 하란을 소저라고 불러주었다. 감격스러워라.
"보동 첫 만남에 소인을 소저라 칭하는 분은 몇 없었는데... 감사합니다."
말로는 실력이 대단찮다고 하지만 관자놀이와 아까 칼솜씨를 보니 꼭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란을 바로 소저라 하는 것도 그렇고.
"혹 대협의 성함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이름을 안 알려주는 거지.
***
"음."
상대방은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입을 엽니다.
"신채훈이라고 합니다."
....모용씨가 아니군요?
***
".....?"
모용씨가 아니야? 그런데도 외인에게 못 보여주는 모용세가 검법을 쓰고 3대주?
이걸 더 캐물어야 하나? 그러다가 분위기가 싸해질까 걱정이다.
"그렇다면. 신 대협이라 부르겠습니다."
일단 그 주제는 잠시 묻어두기로 한 하란이었다.
***
"대협이라니요. 그렇게 불릴만한 이는 아닙니다."
하란에게 호사가가 없기 때문에 신채훈에 대한 것은 짐작밖에 할 수 없습니다.
"소저는 제가 뭐라고 불러야 하겠습니까?"
***
"그냥 소저라 부르셔도 좋고, 이름도 괜찮습니다. 편한 대로 하시지요."
통성명 후 잠깐 정적. 하란은 잠시 머리를 굴려 신채훈과 엮일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내었다.
"어르신께서 그러시더군요. 곧 피바람이 불 테니 수련을 게을리하지 마라고. 마침 수련장을 찾은 김에, 제 몸이나 지킬 만한 기술을 갈고닦아볼까 하는데..."
"괜찮으시다면 조금 도와주시겠습니까?"
어르신이 누군지는 말 안해도 알 거라 믿는다.
***
"아쉽지만 함께 어울리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신채훈은 웃으며 고개를 흔듭니다. 그의 시선은 하란의 다리에 가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뛰어난 실력자가 아니라 자칫 힘조절을 하지 못하면 서로 크게 다칠 수 있으니까요."
***
하란 또한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귀찮다는 거군! 아무튼 신씨가 그렇게 나온 이상 더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
"그렇습니까. 어쩔 수 없군요. 짧은 만남이지만 즐거웠습니다."
하란은 다시 예를 갖춘다. 이 사람에게선 더 이상 뭔가를 얻거나 알아내기 힘들어 보인다.
- 달리는 마차 위에 중립은 없다
- 금 모와 신채훈.
하란은 둘을 만났지만 둘 모두에게서 딱히 얻어낸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둘을 만남으로서 미사 하란이라는 무림인이 모용세가의 새로운 식객이 되었다는걸 알린건....분명 도움이 될겁니다.
우선은 돌아갑니다!
가만히 있으니 똑똑하고 방문을 누군가 두들겨옵니다.
"식사입니다."
밥이 나왔군요!
***
책장이나 뒤적이면서 시간을 죽이던 중 저녁밥이 배달왔다. 저녁밥을 자기가 직접 안 해도 된다는 것이 하란은 마냥 신기했다.
그녀는 방문을 열고 밥상을 가져온 이를 맞이한다. 과연 무슨 밥일까? 오대세가에서 나온 요리니까 뭔가 맛있고 고급스럽지 않을까? 하란은 기대해본다.
***
요리를 봅니다!
하란의 눈이 동그래집니다. 만약에 바보털이 있었다면 물음표 모양이 되었을겁니다.
나온 음식은...
개구리 뒷다리입니다.
개구리 뒷다리가 그렇게 맛있다고는 하는데 솔직히 먹기는 좀....
아니 시x 이딴걸 쳐먹으라고요?
당신은 사람입니까?
***
"개구락지...."
하란은 밥상을 멍하니 나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어두운 눈이 더 어두워진 것 같다.
옛날에 먹을 게 없으면 개구리 잡아서 먹고 그랬는데.... 실수로 무당개구리 먹었다가 토하고 배탈나고 난리가 났었지.....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지만 암만 그래도 그렇지 개구리 다리를.... 허 참...
그녀는 정말이지 당혹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저녁을 거르기는 또 싫었다. 하는 수 없이 개구리 다리를 천천히 입으로 가져가본다.
그래, 개구리라 해도 모용세가 개구리는 다를 것이다. 먹으면 건강해진다던지 내공이 오르는 양산형 영물 개구리라던지! 믿습니다 모용세가!
***
우물우물...깨구락지 뒷다리를 씹어삼킵니다. 튀긴 것이라 그런지 의외로 식감이 바삭한 것이 먹을만 하네요!
우득.
윽.
갑자기 이상한게 씹히길래 하란은 퉤, 하고 입 안의 음식물을 뱉어보았습니다.
....무슨 쪽지같은 것이 있는데요? 펼쳐보니 오후 9시, 뒷마당.
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습니다.
***
세상에. 뭔가 씹었어. 개구리 고기를 준 것도 모자라 이물질까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한 것 같다. 이럴 거면 왜 오라고 한 거야.
하지만 입 안에 있는 것을 퉤에엣 뱉어내자 하란은 생각을 고쳐먹어야 했다. 이게 웬 쪽지?
술시에 뒷마당. 누군가 하란을 은밀히 만나길 원한다. 턱을 짚고 고민하던 그녀는 시간이 되자 지팡이검 한 자루를 들고 뒷마당으로 간다.
***
하란은 9시에 뒷마당으로 갑니다! 절뚝이면서 걷는 것이 여간 불편한게 아니로군요. 어쩌겠습니까....후...
도착하자 사람은 없고 텅빈 모래바닥 뿐입니다. 뭐지? 개꿀잼몰카인가?
하란이 쯧, 하고 혀를 찰 때 쯤 돌멩이가 툭....하고 굴러와 발치에 닿습니다.
주워보자 거기에는 또다시 쪽지가 써져있군요.
- 창궁, 매화 動
강서궁과 장강검 위기
교좌해인交坐害人 난동
석주石主 졸卒 예정
요녕의 향방에 답하라
기한은 길지 못하다
짧다면 짧은 글입니다. 하지만 하란은 눈을 찡그립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정보가 부족해 무슨 말인지 해석을 할 수 없습니다!
***
"???"
뜬금없이 이게 뭔가. 적어도 모용세가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런 삼척동자도 알 만한 건 큰 의미가 없다.
하란은 다시 머리를 쥐어짜낸다. 할 수 있다. 자신이 이 정체불명의 문구와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하란은 그만한 천재니까!
***
다시 한 번 집중해서 봅니다....그러자 하란의 천재적인 두뇌는 이제야 알아먹었다는듯 빠르게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 창궁, 매화 動
강서궁과 장강검 위기
교좌해인交坐害人 난동
석주石主 졸卒 예정
요녕의 향방에 답하라
기한은 길지 못하다
창궁은 창궁무애검법으로 유명한 남궁세가를 뜻하고, 매화는 화산파의 상징이니 곧 화산파를 뜻합니다. 남궁세가와 화산파가 어디론가 움직였습니다.
강서궁, 장강검은 정파삼남단을 구성하는 강서궁문과 장강검을 일컫습니다. 강서궁은 강서궁문주의 별호이고 장강검은 호남장강검으로도 불리우는 호남장강검문주의 별호입니다. 두 문파가 위기에 처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교좌해인 난동.
교좌해인은 30년 전 마교의 교주와 맞서싸운 100인의 고수중 교주에게 큰 부상을 입히고 살아남은 다섯명을 말합니다. 각각 구월검 허창언, 사마외도 호재필, 소림방장 금호대사, 화산장문 매화신검.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이미 죽고 없습니다. 이 중에 최근 난동을 벌인 이는 모르겠으나 구월검 허창언은 본래부터 세력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소림방장, 화산장문은 움직일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
사마외도 호재필입니다. 최근 호재필이 호남과 호북 언저리에서 큰 일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석주 졸 예정. 석가장의 장주의 임종이 임박했나봅니다.
요녕의 행방에 답하라. 기한은 길지 못하다.
빠른 시일내에 요녕. 모용세가가 어찌 움직여야 할지를 생각하란 뜻입니다.
여기서 하란은 두 가지를 생각해냅니다.
하나는 지켜보다가 제갈세가와 그 무리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 있고.
또 하나는 제갈세가를 도와 빚을 지워두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용세가의 전력은 확실하게 꺾이게 되며 승리한다는 보장 또한 없습니다.
이 두 대전제 중 하나를 골라 하란은 생각에 살을 붙여야합니다.
***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란은 눈을 감고 쪽지를 꽉 쥐었다. 이것도 어르신의 시험일까? 아니면 그것을 빙자해 정보를 훔치려는 세작의 장난질인가? 내일 아침 어르신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
하지만 그 전에 자신의 의사를 정해야 한다. 오늘 밤을 꼬박 세워 운기하며 생각을 정리할 것이다. 기가 돌아야 머리도 맑아지는 법이니까.
***
교룡심법의 숙련도가 70%에 이릅니다!
***
그렇게 밤새워 수련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기의 느낌이 달라진 건 기분 탓인가. 알록달록해진 기분인데.
"흐아아...."
창 밖은 어느샌가 밝아져 있다. 곧 시비가 아침밥을 가져올테니, 그 때 어르신을 뵙길 청한다고 말해두도록 하자. 언제든 차 한 잔 하자고 하시긴 했지만 기별은 미리 넣는게 예의겠지.
***
하란의 의사는 곧바로 어르신에게 전해졌습니다!
점심이 되자 어르신은 하란을 방으로 부릅니다.
"무슨 일인가?"
다 알고 있으면서...모른척 차를 따르는 모습은 무림인이라기보단, 은퇴한 고위 관료와 같은 느긋함입니다.
"궁금하구먼."
***
하란은 말없이 상 위에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개구리 요리에 숨겨져 있던 밀서, 그리고 돌멩이에 묶여 굴러온 쪽지.
"대협께서 보내신 듯 하온데, 만에 하나 세작의 농간일 수 있으니 확인차 여쭙고자 하옵니다."
"이 또한 대협의 시험이옵니까?"
그녀는 차분하고 안정된 어조로 어르신께 질문하였다.
***
어르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확인은 끝났으니 답을 말해보게."
그는 찻잔을 손에 들고 조용히 하란을 쳐다봅니다...
섬짓.
한 것이 하란의 등을 훑고 지나갑니다. 온 몸에 소름이 돋고 손끝이 떨려옵니다. 몸이...몸이 움직이지 않고 입술을 달싹거리고 눈동자만 굴릴 수 있을 뿐입니다. 어르신의 눈동자는 깊고 현기로 가득합니다.
초절정에 이른 무인의 능력. 단순한 기세를 쏘아보낸 것 만으로도 하란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땀이 비오듯 흐르며 등을 적셔갑니다.
"허허허. 그리 긴장할 필요없네."
말과는 다르게 여전히 그의 기세가 하란을 옥죄고 있습니다. 맹수가 으르렁거리며 목덜미 바로 앞에 입을 벌리고 침을 뚝뚝 흘리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하란은 그제서야 겁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걸 깨닫습니다.
시험. 시험입니다.
이 어르신은 항상 사람을 시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의 시험은...
배짱입니다. 대답해야만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하란이 생각한 바를 가감없이 밝힐 수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아마...이 시험마저 통과한다면...
하란은 가솔이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읏....!"
하란은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 신음을 내었다. 황소만 한 호랑이가 앞발로 가슴을 짓누르고 코 앞에서 송곳니를 드러내며 그렁거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것은 시험이다. 정말 어르신이 그녀를 죽이려는 게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도 말을 할 수 있을지를 시험하는 것이다. 불안한 평정을 되찾은 하란은 굳어버린 혀를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남, 남궁세가와 화산파, 장강검문과 강서궁문, 그 뒷배인 제갈세가. 그리고 호재필, 석가장, 흑천성이 서로 대립하는 형국이옵니다."
"두 세력이 서로 싸울 때는, 가능하면 한쪽 편을 들어 공개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유익하옵니다. 중립을 지킨다면 승리한 세력의 힘에 밀려나게 될 것입니다. 물론 패배한 쪽에게는 기쁨과 만족을 주겠지만 말이옵니다."
"이 경우 대협께선 우방이 없는 무방비 상태에 빠지옵니다. 승리한 쪽은 자기가 어려울 때 돕기를 꺼린 대협과 함께 하길 원치 않을 것이며,
패배한 쪽은 대협을 도와 공연히 위험에 처하는 상황을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그리고 남궁과 화산이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지켜보고만 있다간 그들에게 모든 지분을 빼앗길 것이옵니다."
목이 탄다. 하란은 떨리는 손으로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쉬었다. 찻방울이 손에 흘렀지만 뜨거움도 느끼지 못했다.
"우유부단한 자는 현재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중립을 택하나, 그러지 않고 한쪽을 지지한다면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사옵니다."
"대협께서 지지한 쪽이 승리한다면, 비록 그가 강하게 된다 한들 신세를 졌고 둘 사이에 우호 관계가 성립되었기에 배은망덕하게 모용세가에게 등 돌리지 않을 것이옵니다. 승리가 정의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좋을 정도로 모든 것을 허용하지는 않기 때문이옵니다."
"설령 패배한다 해도, 그들은 가능하다면 모용세가에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도울 수 있다면 그들이 돕는 것이 도리지 않겠나이까? 당초 흑천성을 필두로 한 세력의 1목표는 모용세가가 아니옵니다. 곤궁에 처해 물러난다 한들 그들은 당장 무리하며 쫓지 않을 것이오며, 운이 좋다면 대협께서는 다시 기회를 잡으실 것이옵니다."
"기왕 호남호북의 일을 이용해 덩치를 불리기로 하셨다면 그것은 곧 모험으로, 안전한 길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아니되옵니다. 반대로 모든 길에 위험이 있음을 아셔야 하옵니다. 하나의 위험을 피하려 하면 다른 위험을 만나게 되는 것이 만물의 이치니, 차선으로 가장 덜 위험한 대안을 택할 뿐이옵니다."
"청컨대, 대협께서는 제갈을 도와 작금의 사태에 개입하시어 그들에게 빚을 지우시옵소서!"
눈을 질끈 감고 말을 마치니 진이 쭉 빠졌다. 원래는 적당히 단물이나 뽑아먹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의심이 드는 하란이다.
***
어르신, 모용벽은 눈을 감고 수염을 조용히 쓰다듬습니다.
기세는 거둬들여졌고, 하란은 제대로 호흡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흘러내린 땀은 옷을 축축히 적십니다.
한 다경(5분), 일각(15분), 반시진(1시간)이 지나갑니다.
하란의 하나 남은 다리가 쑤셔올 때 쯤 모용벽은 반 쯤 눈을 뜹니다.
"제갈을 도우라."
수염을 쓰다듬던 그의 손짓이 멈춥니다.
"흑천성, 특히 호재필은 매우 위험한 인물이다. 구월검 허창언이 작금 무림제일인이라고 일컬어지기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호사가들의 이야기일 뿐. 이전에 호재필과 허창언이 맞붙은 사건을 기억하느냐?"
하란의 나이 스물일곱. 호사가가 아니니 들어본 적 없으며 들어봤다하더라도 10대의 나이였을겁니다. 관심도, 신경도 쓰지 않았을 시기입니다.
"치정문제였지. 호사가들은 사마외도와 구월검이 겨뤄 구월검이 이겼다고 떠든다. 그렇게 알려져있고. 사마외도에게는 끔찍이 아끼던 딸이 있었지. 구월검은 그 딸과 사랑에 빠졌고...아니 납치였을 수도 있겠다만."
껄껄 웃으면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처럼 말을 이어갑니다.
"갑작스러운 딸의 행방불명과 그 범인이 구월검이었다는 사실. 몇 년간의 추적 끝에 사마외도가 구월검을 죽이려들었다. 그리고 구월검이 이겼다...여기까지가 호사가들이 아는 이야기지만 뒷이야기가 있다. 사마외도가 구월검을 찌르려던 순간에 딸이 대신 아비의 칼 앞에 자신의 몸을 들이댔지. 사마외도는 딸을 잃었고, 구월검은 분노해서 사마외도를 쓰러뜨렸다. 그러나 누구도 이 일화는 말하지 않고 구월검이 사마외도를 이겼다는 말만 전해진다. 참 재미있는 이야기지 않느냐?"
전혀요. 슬픈 이야기입니다.
"다행히 구월검과 그녀 사이에 딸이 하나 있어 사마외도와 구월검이 서로를 더 죽이려 들지는 않는다고 하지만...둘 사이는 완전히 파탄이 나버렸지. 오직 손녀만이 둘이 싸우게 하지 않는 족쇄인 셈이다. 그리고...다시 싸우게 된다면 구월검이 이길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찻잔을 들어올리며 잠깐 그 안을 봅니다.
"작금의 무림제일인에 가까운 것은 사마외도 호재필이다. 앞으로 몇 년은 더 그러할 것이다. 우리가 정말 그와 맞붙어서 이득을 취하는 것이 그와 적대하는 것보다 이득인지 고민할 가치도 없었다."
당연히 피해야한다, 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꽤 재미있는 생각이로구나. 그래...내가 너무 사마외도를 두려워했어. 그래. 그렇고말고. 그들이 당장 우리를 치지는 못할 것이다. 허허."
씨익 웃으며 어르신이 하란을 쳐다봅니다.
"좋다. 네가 말한대로 우리 모용세가는 제갈세가를 도와 참전할 것이다. 그 사령탑은 너가 되어야하겠지. 이번 일. 네게 맡겨보마. 생각한 바를 마음대로 펼쳐보거라. 나 요녕제일검 모용벽이 네 뒷배가 되어줄테니. 원하는만큼 날뛰어봐라. 필요한 사람을 차출해라. 지금부터 너가 이번 일에 있어서는 내 대리인이나 다름없을지니."
모용세가의 참전이 결정되었습니다!
"가서 생각하고 뜻한 바를 행하라."
- 작전 준비
- 몸에서 물이 빠져나가자 목이 탄다. 하란은 잔 속의 차를 한 모금씩, 단숨에 마셔 버렸다. 그것을 다시 상 위에 달각 내려놓았다. 그리고 말한다.
"존명."
의자 등받이를 짚고 일어나려다 다리에 힘이 빠졌다. 휘청거리면서 그만 넘어질 뻔 했다. 그녀는 가주께 인사를 올리고 물러났다.
밖으로 나오니 5년은 더 늙은 기분이다.
"으, 좀 씻어야겠다."
흘린 땀 때문에 온 몸이 흠뻑 젖었다. 하란은 따뜻한 물을 받아두고 그 안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겸사겸사 심법의 수련까지 겸해서.
***
교룡심법이 90%에 도달합니다!
따뜻한 물로 시원하게 목욕을하니, 기분이 참 좋습니다.
피로가 풀리지만 원래 피로가 크게 쌓이지 않았던터라 별다른 효과는 없었습니다.
***
단전에서 이상한 기분이 느껴지는데. 뭔가 잘못된 것 같진 않아서 방치하기로 했다.
어르신은 하란의 안건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게 대충 사람 뽑고 호남호북으로 쌩 달려가 쾅 들이박으라는 뜻은 아니다. 움직이기 전에는 생각해야 한다.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 중 데려가면 좋을 사람을 가려내야 한다. 들고가야 하는 물건도 생각해야 한다. 적을 어디서 언제 어떻게 칠지도 계획해야 한다. 할 게 산더미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 시작하면 나아가야 할 일이 조금씩 보일 것이다. 하란은 생각에 잠긴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
하란은 생각합니다....일단 정보가 없어도 너무 없습니다!
누구를 뽑아야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배경정보가 없으니 아무리 천재라도 쉽지가 않군요. 먼저 하란은 이런 일에 대해 잘 아는...
총관을 부릅니다!
"부르셨소?"
하란보다 훨씬 전부터 모용세가에서 일하던 총관이 허허 웃으며 하란 앞에 나타납니다.무엇을 물어보시겠습니까? 무엇을 요청하시겠습니까?
***
그녀는 총관에게 예를 표한 후 단도직입적으로 원하는 바를 말한다.
"소인, 가주 어르신의 명으로 작금 장강의 일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소인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면 정보가 필요합니다."
"혹 가문의 정보통이나 세작을 통해, 아니면 풍문으로 흘러들어온 하찮은 것이라도, 현 장강의 사태에 대해 수집된 모든 정보를 열람하기를 청하는 바입니다."
아는 게 많을 수록 운신의 폭은 넓어진다. 일단 닥치는대로 읽고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이 중요하다. 황소도 여물을 주어야 힘을 내서 쟁기를 끌지 않던가.
***
하란의 요청에 총관은 당연히 그래야지, 라고 반응하면서도 무언가 곤란하다는 얼굴입니다.
"전부 정확하게 알고 있지는 못하니. 새겨들으시오..."
총관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30년 전의 정마대전 이후. 정파의 세력은 급속도로 축소되었소. 수많은 문파들이 봉문을 당하거나 폐문을 하거나, 사라져버렸지. 장강 이북에는 그래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들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 비교적 재건의 여지가 남아있었지만...장강 이남은 혼란의 도가니 그 자체였소이다."
그는 크흠, 하고 수염을 쓰다듬습니다.
"그 때 등장했던 것이 사마외도로 이미 무림에서 이름을 날리던 흑천성주요. 그는 처음에 복건성에 있던 자신의 사문, 흑천문을 기반으로 세력을 닦았지. 복건성의 모든 문파가 흑천문의 산하에 놓이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오. 그렇게 복건성은 사파가 완전히 주도권을 쥐게 되었지. 그 뿐만이 아니었다오. 그는 복건성을 제패하고서, 사문의 이름을 흑천성으로 바꾼 뒤 본격적인 행보에 들어가기 시작했소."
"가장 먼저 광동을 주릅잡던 팔룡방이었지. 팔룡방주가 흑천성주에게 죽고나서 팔룡방은 흑천성의 일부가 되었소. 광동도 얼마 지나지 않아 흑천성의 세력이 되었지. 여기까지 정마대전 이후 단 1년도 걸리지 않았다오. 그 후부터는 말 그대로 파죽지세였소. 흑천성주는 자신의 이름으로 장강이남을 제패하고 안정화시키겠다는 야망을 내비쳤지. 차례대로 사파의 거두들이 그에게 몰리기 시작했소. 매리곤문, 파계회, 혈검문....마지막에는 금봉파까지. 아직 흑천성에 들어가지 않은 사파의 거두들 몇 몇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건 이따가 이야기해주도록 하겠소."
"30년이 지난 지금에서는 장강 이남은 상당히 회복세에 들어선 상황이외다. 장강이남도...사실 흑천성이 거진 다 제패하다시피 하면서 안정적인 상황이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곳이..."
툭. 총관은 지도를 꺼내 호남지방을 가리킵니다.
"이 호남지방이요. 그 곳에는 금봉파가 자리잡고 있었고, 유일하게 흑천성의 세력권이 아닌 곳이었지. 정파의 문파들도 있었으니. 그렇기에 흑천성주는 이 곳을 목표로 삼았소. 겸사겸사 강서 쪽에서 강서궁문과 대립하던 사파의 거두. 석가장도 들어오게 하면 좋았을 생각이었지. 하지만 일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소."
"금봉파가 흑천성에 대항한거요. 놀랍게도 지금의 상황과는 꽤 다르지. 제갈세가, 정파삼남단. 석가장. 이 모두가 연합해 흑천성에 맞섰소. 그리고...흑천성주는 금봉파의 전대 장문인의 무공을 폐해버렸지. 초절정에 이른 무인이 단 십여합도 겨루지 못하고 개처럼 두들겨 맞았다고 하오. 그 다음에 금봉파는 이를 갈면서 흑천성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고. 입성하면서 분풀이로 전각을 좀 때려부쉈다고는 들었소만...아무튼 무게의 균형이 확 기울어버린거요."
"금봉파가 흑천성에 입성하자 호남의 정파들은 곧바로 금봉파와 흑천성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소. 정파삼남단을 제외한 모든 정파가 문을 닫게되었지. 그럼에도 석가장과 제갈세가, 정파삼남단은 맞서고 있었소. 금봉파는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어제의 아군과 적이 되어 어떻게든 최선을 다했고. 그러다보니..."
"시간이 흘렀소. 흑천성은 장강 이남 대부분을 통솔하다보니 인력이 많이 필요하오. 흑천성주는 금봉파까지 들어왔으니 호남은 금방일거라 여겼소. 실수였지. 모았던 무인들을 돌려보내고 흑천성의 위치를 호남으로 옮겼소. 그리고 본인은 유유자적하게 놀기 시작했지. 그러니 정파 쪽과 석가장 사이도 틀어질 수 밖에 없었소. 흑천성의 공세도 약해졌고 금봉파마저 등을 돌린 상황에서 당분간은 이대로 형세가 지속될거라고 판단한 모양이지. 석가장주는 흑천성에도 들어가지 않지만, 정파삼남단과 제갈세가를 돕지도 않겠다 결정했소. 그리고...어느날 갑작스레 석가장주가 쓰러진거요. 병에 걸렸다고 하더군. 흑천성주는 석가장주도 쓰러지고 정파삼남단도 기울어가는데 왜 금봉파가 호남을 먹지 못하냐고 안달이 나버렸지. 그래서 직접 나서기로 했소."
"그리고 겨울이 지나고 올해 봄이 되었지. 흑천성주는 금봉파를 압박하며 호남을 먹어치우라고 하고 있소. 스스로도 날뛰고. 제갈세가는 틀어져버린 연합을 재건할 수가 없었고, 석가장의 후계자들은 흑천성에 매우 호의적이지. 지금의 석가장주가 병을 털고 일어나지 못한다면 결국 석가장도 흑천성에 들어가게 될거요. 그렇다면 정파삼남단은 멸문이냐, 복종이냐. 아니면 호북으로의 도주냐.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겠지."
이것들이, 총관이 아는 사건의 전말입니다.
***
그녀가 생각하던 것보다 호남호북의 일은 더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것이었다.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쇠사슬처럼 이어진다.
"석가장의 후계자들. 혹여 그들에 대한 정보 또한 있으십니까?"
그들에게 손을 써 상황을 유익하게 만들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가장을 모용세가의 괴뢰로 만들어버린다던지?
***
"석가장의 후계는 3명이 있고, 사생아가 하나 있는 것으로 알고있소만..."
세 명에 사생아?
"그 모두가 흑천성에 호의적이라는게 문제지. 셋째는 망나니에 주정뱅이로 유명하지만 지닌바 무공이 세 형제 중에 제일 뛰어나고, 다른 형제들도 절정에 달하는 무재들이라오. 사생아는, 사실 석가장주의 첫째아들인데...나이는 마흔이고 초절정에 이르렀다고 들었소이다. 하지만 사생아가 석가장주의 뒤를 이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
"석가장을 괴뢰로 삼아 부릴 수 있다면 일거양득일텐데..."
금봉파의 공세도 저지하고 호남호북지방에 모용세가가 손을 뻗치기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수월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확언할 수 없는 단계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차후 여쭤볼 것이 생기면 차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머리가 아프구만. 누차 말하지만 단순히 가주 어르신이 시키시는 명만 받아 이행하면 될 줄 알았는데. 시원하게 땀을 빼면 정신이 한결 맑아지려나. 하란은 검을 뽑는다.
***
당신의 교룡검법 숙련도. 80%이다.
***
하란을 눈을 감고 생각했다. 석가장을 표적으로 삼아보자. 골골거리는 석가장주를 되살려내든, 후계자들끼리 내분을 붙여 흑천성이 먹지도 못할 정도로 박살을 내 버리던지, 아예 모용세가의 꼭두각시로 만들어 버리던지! 만약 성공한다면 흑천성과 금봉파에겐 참 재미없는 일일 것이다. 다 된 밥 위에 횟가루가 수북히 쏟아진 격이니까.
하란은 다시 총관에게 찾아간다. 그에게는 귀찮은 일이겠지만...밍기적거린다고 좋을 건 하나도 없으니까.
"석가장을 주 표적으로 삼을 것입니다. 석가장에 대해 모든 것을 알려주십시오."
***
총관은 턱을 긁으며 말하기 시작합니다.
"강서에 유명한 사파일세. 검과 장(손바닥)을 무섭게 잘 쓰는 것으로 알려져있지. 그 외엔 별로 대단하지 않은 정보들 밖에 없다네. 여긴 요녕이고 거기는 강서인데 우리가 개방도 아니고, 속속들이 알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허허."
별로 대단하지 않은 정보들은, 하란이 말해보라고 부추기자 총관이 말해봅니다.
들어본 결과, 정말 대단하지 않은 정보들이었습니다.
석가장이 세워진 유래라라든지...하란에게는 쓸모없는 정보였으니까요.
총관으로는 정보에 대한 접근권한이 부족합니다!
더 많은 정보를 원한다면 더 많은 정보를 취급하는 자들이 필요하겠군요!
***
"흐음, 그렇군요...."
예의상 흥미로운 척 했지만 그닥 쓸모가 있는 정보가 아니다. 총관이 하란에게 정보를 고의로 숨길 이유는 없다. 아무래도 접근할 수 있는 정보도 여기까지가 한계인듯 하다. 하지만 정보가 더 많이 있었으면 좋겠는데...정보...정보...아? 하란의 머릿속에 촛불이 반짝 켜진다.
"혹 이 근방의 걸인들 중 개방이 있습니까? 대협이 내어주신 정보로 뼈대를 잡았으니, 그들에게서도 정보를 보강하여 살을 붙이고자 합니다."
하란은 공손히, 적당하게, 기분 나쁘지 않도록 말을 돌려하면서 총관에게 질문하였다. 아마 이게 마지막일 것이다.
***
총관의 얼굴에 난색이 가득합니다.
"개방...말이오...?"
고개를 젓습니다.
"그들은 만나지 않는 편이 이로울 것이외다. 소저."
완곡한 거절입니다!
***
⭐누락
"그런 연유가 아니오. 엮이지 않는 편이 이로울거요. 난 이만 가봐야겠군..."
총관은 빠르게 자리를 뜹니다!
하란은 혼자 남아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뭔가 문제가 있나?
***
다이스 갓의 농간으로 홀로 남겨지게 된 가엾은 미사하란....적어도 이유라도 얘기해달란 말이오 총관선생...
방에 혼자 있어봤자 할 것도 없으니 그녀는 쭈뼛쭈뼛 방에서 나왔다. 뒷배는 가주 어르신이 책임진다더니! 마음껏 날뛰라더니! 이런 거에서 막히면 어떡하자는 거에요 어르신!
물론 그렇게 소리치지는 않았고 마음 속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홧김에 칼을 휘두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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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룡검법의 숙련도가 40%에 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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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만 더! 5성이 코앞이라는 걸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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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룡검법이 60%에 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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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님 제게 힘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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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도가 80%에 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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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어.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 개방을 찾아갈 시간이다. 총관이 다리를 놓아주지 않는다면 하란이 직접 뛰어가든 헤엄쳐가든 해야 하는 것이다.
다만 개방의 일원들은 대개 걸인들이고, 그럼 확률상 빈민가 쪽에서 물색하는게 좋을 텐데 그런 곳에 혼자 가기에는 조금 그렇다. 허튼 짓을 하려는 어지간한 놈들은 썩둑썩둑 베어버릴 수도 있겠으나,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검을 지팡이에 꽂아넣은 하란은 마음을 정한 듯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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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뚝이면서 금소협을 찾으러 가보지만...금소협은 자리에 없습니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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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총관한테 빠꾸 먹어서 기분 묘하고 걸어다니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금소협이 이 녀석은 또 어디 있는거야!
하란은 저택 안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금소협을 찾아본다. 가끔 보이는 시비들에게 묻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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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뚝거리며 열심히 저택안을 뒤젹여봅니다!
"어머, 누구 찾으시나요?"
시비하나가 물어오고 하란이 금씨의 식객을 찾는다 하니, 시비는 고개를 젓습니다.
"어젯밤에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없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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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금소협은 저택 안에 없었다. 당신의 금소협 아파오는 다리로 대체되었다. 짜증을 내고 싶었지만 애꿎은 시비에게 시비를 걸어서 뭣하겠나. 입술을 깨물었다.
"저도 잠시 외출을 해야겠습니다. 누군가 저를 찾으신다면 총관 나으리께 가서 물어보라 하십시오, 아마 쉬이 짐작하실겁니다."
에라 모르겠다. 혼자서라도 빈민가로 간다! 하란은 시비에게 언질을 주고선 지팡이칼 하나를 쥐고 저택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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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갑니다!
나가자마자....문 앞에 웬 거지 삼형제가 앉아있습니다. 뭐지? 밥달라고 시위하는건가?
지나쳐가려고 하지만, 하란은 문득 혹시? 하는 마음에 멈춰섭니다.
"뭐야?"
거지들은 하란을 빤히 쳐다봅니다. 하란은 강점 호사가가 없어 이들이 개방도인지 아닌지 구별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확신이 필요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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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나서자마자 거지 삼형제가 그 옆에 앉아있다. 절묘한 우연이다. 별 생각 없이 지나가려던 하란이었다. 그러나 무언가 쎄한 느낌이 뒷골을 잡아당겨 그녀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하란은 다시 거지 삼형제 앞으로 돌아와서 섰다. 그리고 말한다.
"소협들. 내가 개방도들을 찾고 있는데 말야. 혹시 뭐 아는 것 없소?"
모용세가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건 굳이 말 안해도 알 것이다. 저택서 막 나온 참이니. 하란은 묵직한 동전 세 개를 손가락 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면서 슬쩍 떠 보았다. 심리적으로 능수능란하게 떠 볼 수는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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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찾는게요?"
거지들은 소매나 옷 어딘가에 달아놓은 때탄 붉은 실을 보여줍니다. 하나...둘....셋....
세개네요?
"모용세가의 장강 쪽을 책임지시는 미사 소저가 우릴 찾는다라! 하긴 찾을 수 있지. 같은 정파니까!"
거지들이 킬킬 거리며 대답합니다. 뭔가 느낌이 좋지만은 않군요...
"그래서 뭐 때문에 그러시는감? 근데 우리가...좀 배가 고픈데..."
히히 웃습니다. 으...이빨이 누렇습니다...그들은 배를 쓰다듬으며 탐욕스러운 눈으로 하란을 쳐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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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을 왜 찾겠소. 물어볼 게 있으니까 그러지. 석가장에 대해서."
쎄한 느낌은 놀랍게도 맞아떨어졌다. 붉은 실 3개가 개방도의 표식인가보다. 척 보고도 하란이 누구인지 바로 짚어내는 게 에사롭지 않았다. 예사롭지 않은 행색처럼, 하란은 거지들에게 동전을 나눠주면서 말했다. 주막에서 뜨끈한 국밥 한 그릇씩 사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거지들의 누런 이가 신경쓰였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강가에 가서 입이라도 한 번 헹굴 수는 있을텐데. 배가 고파서 거기까지 갈 기력이 없는 걸까. 아무튼 그녀는 거지들의 답변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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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받은 거지들은 만족스러워 합니다!
"그래, 뭐가 궁금하쇼?"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그 돈에 해당하는 값어치의 정보를 알려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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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장 안에도 분파나, 세력이 갈려 있겠지. 그것들에 대해서 듣고 싶소."
"특히 정파 쪽에 호의적인 세력이 있을지 궁금한데 말이오?"
어째 이 개방도들, 결정적인 곳에서 정보를 끊고 궁금하면 500전! 을 시전할 기분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보가 절실하니 알면서도 당해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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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들은 하란의 말에 세상이 다 떠나가라 할 정도로 크게 웃습니다.
"석가장에서 정파에 호의적인 사람이 있을리가 있겠는감? 소저는 사파에 호의적이시오?"
...얼레?
"정파에 비교적 온건한 인물들이야 있지. 하지만 그들이 우리 정파에 호의적이지는 않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호의적이라고 해석할 수는 있겠지만 착각해서는 안된다 이 말이요. 그 치들은 어찌되었든 사파고, 정파를 썩 좋아하지 않으니까. 불리하면 정파랑 손 잡을 수 있는 수준이지 정파에 호의적이라서 막 정파에 귀의하고 그럴 위인들은 아니지."
옆의 거지들이 맞장구를 칩니다.
"1공자랑 2공자가 가장 불안한 입지를 가졌으니 정파에 비교적 온건한 위인들이요. 그러니까, 자기 자리를 위해서라면 우리와도 손잡는걸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란 말이지."
킬킬 거리며 더 이상의 정보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딱 받은 값만 하겠다는 심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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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그냥 문맥으로 대강 알아들으면 될 것을 사람 무안하게 만드시네."
파안대소하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개방도들이 하란은 영 언짢았다. 하지만 자기가 참기로 했다. 배가 고픈 것이 일상이니 예의 따위 차릴 여유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참는 자가 이기는 거야...
"그럼 1공자 2공자에 대해서나 더 말해 보오."
그녀는 거지들에게 동전을 더 얹어주면서 다시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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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삼결제자라서 더 위의 정보에는 말할 권한도, 알 권한이 없는데다가..."
거지들은 빤히 동전을 쳐다봅니다.
"너무 적어!"
이 탐욕스러운 거지새끼들 같으니라고!
최소 재산 1단계를 소모해야 얻을 수 있는 정보입니다. 소모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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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이 잉간들이! 거지 주제에 그 정도면 되었지! 뭘 또 내놓으라고! 하지만 정보에 궁한 것은 하란이니 결국 지갑을 열 수밖에 없었다.
"돈 준 값을 하지 못하면 크게 경을 칠 것이오!"
이 돈은...나중에 세가에 청구하면 공무금 명목으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고말고. 기루에서 돈을 날린 것도 아니고, 엄연히 세가를 위해 사비를 턴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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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의 개인재산이 1단계 하락합니다.
"1공자는 사실 사생아가 없었다면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지. 사생아랑 동갑인 친구고 2달 빨리 태어났나? 석가장주가 아무리 정략혼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대놓고해서 1공자나 정처는 미워할수밖에. 낄낄."
그런 쓸데없는 정보는 필요없는데!
"아무튼, 1공자는 사파인이라오. 뼛속까지 사파인이지. 그래서 원래 흑천성에도 굉장히 호의적이었고. 그런데...흑천성은 혈통과 명분보다 강함과 실력을 추구하는 집단이거든. 그래서 오히려 석가장주의 동생을 지지하고, 그보다는 실력이 뛰어난 망나니 3공자를 지지하고 있수다."
"그런데 1공자는 자신의 체면과 체통, 핏줄, 명분, 명예 이런거에 상당히 집착하는 인물인데...자신이 당연히 물려받아야할 석가장주 자리를 빼앗길 수 없다. 라는 생각으로 정파 쪽에 끈을 찾고 있는 모양이우. 재물과 여색에는 관심이 없다고도 하고. 그는 어떤 방법으로든 석가장주가 되고 싶어하는 전형적인 권력자의 속성을 가지고 있수."
"다음은 2공자인데...2공자는 연인이 정파쪽 사람이라더만. 석가장에서 아는 사람은 2공자밖에 없는 아주아주 비밀스러운 일이요. 어떻게 아냐고? 그건 영업비밀이지! 그 외에 재물을 좀 탐하는 면이 있다고는 하는데...석가장주 자리보다는 정파와 사이를 좀 좋게 만들어서 자기 연인과 혼인을 맺고자 하는 상당한 소인배라오."
이 정도면 돈값은 했고, 더 알려줄 수 있는 정보는 없다! 라고 그들이 덧붙입니다.
이 이상의 정보를 원한다면 이제 진짜 더 높은 거지...를 만나야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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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고맙구만."
1공자와 2공자에 관한 정보. 하란의 기억으로 대체되었다. 지금 이 정도면 그녀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다 얻은 것 같다. 이젠 삼형제들은 돈을 줘도 몰라서 알려 줄 수가 없다고 하고, 더 높은 개방도를 만나려면 총관이 다리를 좀 놓아줘야 할 텐데 단칼에 거부당해버렸으니까. 이제는 현장에 가서 직접 뛰는 일만 남은 것이다.
현장에 가서 뛰려면 혼자 할 수 있나? 같이 갈 사람이 필요하다. 이제 사람을 뽑을 때가 온 것이다. 사람을 다루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인데...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었다. 그녀보고 어디서 떨어진 낙하산이냐고 무시하는 게 장면이 훤히 보이는 것 같다.
"이상한 노름질 하지 마시고, 값지게 쓰시오."
개방도 삼형제들에게 한 마디 한 그녀는 다시 저택으로 돌아갔다. 저택에 데려갈 사람이 누구누구 있나 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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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에게는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안면이 있는 인물을 뽑는다.
둘째.
무작위로 뽑아온다.
하나를 선택해야 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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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신채훈과 금소협. 어차피 한번 만나서 말 몇마디를 한 것 뿐이다. 그래도 아예 초면인 사람들보다는 나을 거다. 모기 눈곱만큼이라도 더 나을 것이라고 하란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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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은 금소협과 신채훈을 뽑습니다!
이제 어느정도 전력이 갖추어 졌습니다...
이대로 호북-호남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이동시 하란의 약점 외다리로 인해서 한 레스의 낭비가 강제됩니다.
- 낮선 조기弔旗
- "자, 그럼...!"
(호남으로 이동합니다.)
***
이동을 시작합니다!
....다리가 불편한 우리 하란이는 아직 요녕에서 하북으로 넘어가지 못했습니다....한 번 더 이동레스를 써주세요!
***
"아이구 외다리 죽는다 아이고...."
길에 가다가 그녀는 결국 바위에 걸터앉아야 했다. 금소협과 신채훈이 눈치를 주는 것 같아 뒤통수가 따가웠다. 온 몸에서 후끈한 열기가 솟아오른다. 턱 밑으로 땀이 한 두방을씩 떨어진다.
아, 짜증나네. 화나네? 온 몸과 머리와 가슴이 막 뜨겁네? 불꽃같네? 불꽃 단전 만들어버려?? 엉???
하란은 잠깐의 휴식을 마치고 일어나야 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공의 속성을 결정한 것은 덤이다.
***
속성을 결정합니다! 5성의 내용이 다음과 같이 변화합니다.
- 5성 불완전여의주 - 火 : 단전이 여의주로 취급되며 오행 중 하나를 선택해 수행할 수 있다. (木 火 土 金 水) 선택한 속성에 따라 기의 성질이 변화한다. 속성이 오행 - 화로 변화되었다.
요녕에서 하북까지는 평화로웠지만, 하북에서 하남을 넘어가면서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산사태가 일어났는지 도로의 상태가 말이 아닙니다. 커다란 바위와 흙들이 쏟아져내려 길을 가로막고 있군요!
그 앞에 그 길을 원래 가던 사람들이 다같이 곤란하다는듯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습니다.
***
"에이 정말.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녀의 다리가 멀쩡했다면 바위길이든 토사에 파묻힌 길이든 펄쩍펄쩍 뛰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렇잖아도 먼 길 가느라 다리가 아파 죽겠는데 이건 또 뭐람. 하란은 조금 짜증이 났다. 그녀는 앞에서 엉망이 된 길을 바라보며 걱정하는 사람들을 살짝 밀어내고 맨 앞에 섰다.
'짤깍'
지팡이검을 역수로 잡아서 뽑았다. 그리고 휘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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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검세.
강렬한 기가 하란의 검 끝으로 모이기 시작합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다들 오오...하는 감탄성을 흘립니다. 거기에는 금 소협도 끼어있습니다. 신채훈은 제법인걸? 이라는 표정으로 쳐다봅니다.
콰아앙!
곧 강력한 일격이 터져나갔고 동시에 하란의 의족이 빠각! 하고 부러집니다.
아.
하란은 자리에서 휘청이자 곧 신채훈이 부축을 해줍니다.
길은 완전히 깨끗하게 청소된 것은 아니지만, 사람 한 둘 정도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정도는 되었습니다!
상인들은 연신 감사를 표합니다! 하란과 일행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에 화답합니다. 저들이 나중에 이 일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군요...
...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일행은 호북에 도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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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착했다...호북... 의족도 두 동강 난채로 어떻게든 도착했구나... 하여튼 걷는 건 딱 질색이야.."
눈그늘이 더 짙어진 것 같은 하란은 넋두리를 하듯 혼자서 중얼거렸다. 석가장이고 제갈세가고, 일단 의족부터 구하고 내공을 회복해야겠다. 그녀는 일행에게 기대고 있던 몸을 조심스럽게 떼어내며 말했다. 허수아비처럼 한 발로 땅에 선 것이 묘하게 아슬아슬해 보인다.
"이 되다 만 몸뚱이 잡아끌고 예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어디서 의족을 구해 올 테니 두 분은 적당한 곳에서 몸을 추스르고 계시지요. 객잔에 방을 잡으시던지, 뭔가 맛나 보이는 걸 사 드시고 계시던지... 하여튼 편히 쉬고 계십시오."
여기서 또 둘에게 기대서 돌아다니려니 그녀의 자존심과 염치가 허락하지 않았다. 하란은 신채훈과 금소협에게 자유시간(?)을 준 후 자신은 홀로 대장간으로 향한다. 이번 의족은 쇠로 만들던가 해야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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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은 꽤 커다란 대장간 하나를 찾아냅니다!
"어서오슈!"
팔뚝이 하란의 허리보다도 두꺼운 대장장이가 쇠를 두들기다 말고 나옵니다.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아래를 쭈욱 쳐다봅니다.
"의족이 필요하시겠구만! 돈을 좀 많이 내면 아주 좋은 의족을 내 하나 내어드릴 수 있네만!"
어떻게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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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말입니다......"
하란은 난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문장이다. 하나, 그러니까 그냥 적당한 의족을 보여달라. 둘, 좋은 의족을 깎아주던지 공짜로 내놓아라. 노골적으로 두 번째 의도를 내비치기에는 애로사항이 너무 많았다. 호북에서 모용세가 이름을 대고 외상을 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그냥 대장장이가 그녀를 잘 봐줘서 그렇게 되기를 은근히 바라는 수밖에. 만약 대장장이가 뭘 깎아달라는 거냐고 역정을 내면 '내가 언제 깎아달라고 했냐 다른 적당한 의족 보여달라는 거지!' 하고 구렁이처럼 빠져나가기도 쉽고 말이다.
"그러고보니 팔뚝이 제 허리만하시군요. 마치질 하나하나에 힘과 정성이 실리는 것이 보이는 듯 합니다."
어떠냐 대장장이! 비록 다리 하나는 없지만 이 고운 상판을 보니 좀 도와주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지 않나? 직접 말하긴 그렇지만 이 몸이 모용세가의 가솔이라서 말이지. 도와주면 보답을 받을 수도 있을 텐데. 그녀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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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으면 일없수다."
대장장이는 단호합니다.
윽...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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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뭘. 적당한 의족이나 보여달란 말이요."
에이 짜다 퉤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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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하고 대장장이가 혀를 차며 의족을 몇 개 보여줍니다.
적당히 셈을 치루고 하란은 새 다리를 얻었습니다!
빠밤!
외다리에서 외다리 비스무리한 것이 된 하란.
이젠 더이상 깽깽이발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재산단계는 감소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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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의족을 얻었다! 좋게좋게 생각하자 그래도 의족을 구한 게 어디야. 하란은 대장간에서 빠져나왔다.
이제 신씨랑 금소협을 찾아야 하는데. 아차, 만날 장소를 안 정해 놨구나. 이런 빌어먹을?
"천재란 것도 이럴 때 보면 참 쓰잘데기 없단 말이야.."
그래도 그들이 어디 멀리 가진 않았을 것이다. 더 멀리 가기 전에 빨리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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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걱정마시라!
하란은 금방 둘을 찾아냅니다!
"음."
신채훈은 새롭게 생긴 다리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금 소협은 잘됐다고 박수를 치며 좋아라 합니다.
우선...석가장과 먼저 접촉을 해봐야할텐데, 무작정 석가장으로 가는건 미친짓입니다.
조심스레 석가장의 영향력이 닿는 사람들부터 물색해볼까요? 아니면 일단 강서로 이동을 해서 생각을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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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건 도착을 했으니 모용세가 일원 되는 사람으로서 일을 해야겠죠. 목표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장주가 죽고 군웅할거하기 시작한 석가장 중 어느 세력을 지원하여 지분을 얻는 것입니다."
"천운이 따라 우리 셋이 석가장을 집어삼킨다면 말할 것도 없고, 석가장의 일부나마 조종할 수 있다면 제갈세가에 빚을 지우고 모용세가의 영향력 투사도 수월해지겠지요."
하란은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말한다. 어딘가 조급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이었지만 정작 그녀는 별 생각이 없다. 그냥 습관일 뿐이라서.
"우선 석가장의 영향력이 닿는 사람들부터 물색해 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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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소협과 신채훈, 하란. 이렇게 셋으로 나뉘어져 석가장의 영향을 받는 이들을 찾아보기 시작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하란의 다리가 뻐근해질 때 쯤, 호북에서 뜬금없이 조기가 걸려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작은 가게로군요.
흠...?
호북에서 뭐 대단한 인물이 죽은 것도 아닌데 갑자기 조기라....수상한 냄새가 풀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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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가게에 弔기가 걸려있네? 설마 가게에서 상을 치르는 것도 아닐테고. 뭔가 구린 냄새가 나는데.
그녀는 일단 가게 안으로 들어가본다. 안에 숙련된 무림인이 있다면 말짱 꽝이겠지만. 그래도 일단 평범한 외발이 미녀 행세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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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아주 평범한 가게입니다.
조기....는 아니고 고깃집이군요! 하하! 갈비는 언제나 맛있죠.
"어서옵셔!"
50대 초반 정도의 주인이 하란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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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옵셔 사는 게 힘들 때 어서옵셔 잘 찾아왔어요
어서옵셔 막 눈물이 흐를 때 어서옵셔 탁월한 선택이야
하란은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목례한다.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살짝 웃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일단 그...조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밖에 조기가 걸려 있던데.. 그리고 유저육 한 접시 부탁합니다.."
유약한 사람인척 만만한 사람인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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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육 하나!"
라고 주인장은 외치고 아차차. 하면서 자기가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내옵니다.
...바보인가?
"흠. 조기 말이요?"
주인장이 턱을 쓰다듬습니다.
"우리 마누라가 적당히 극성이었어야지. 갑자기 조기를 걸어야된다고 난리도 아니었수다. 좀 특이하긴 하지?"
껄껄 웃으며 요리를 내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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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 웃으시는 걸 보니 진짜로 누가 죽지는 않았나 봅니다?"
작게 웃으면서 유저육을 한 입 먹었다. 요즘 힘들어서 그런가. 고기 맛이 달다.
"거지들이 제삿밥 먹으러 쳐들어올라. 어째서 그리 걸어야 한다 하시는 겁니까?"
너무 캐묻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농을 치며 물어보자. 마누라가 뭐 하는 사람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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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잘 모르네. 마누라가 갑자기 편지 한 장을 받더니 펑펑 울면서 막 바락바락 우기는 것을 어찌알겠나."
한숨을 푸욱푸욱 내쉽니다.
"원래 요리는 마누라가 하는데 며칠째 울고 있는 통에 요리도 내가 직접 하고 있수다..."
어쩐지! 그래서 아까 말해놓고 자기가 요리하러 뛰어간 것이군요!
"지인 중 하나가 돌아가신 것 같은데...누구냐고 가봐야하지 않겠냐고 그리 말해도 말해주지도 않고 고개만 저으니 나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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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알 것 같은데 말입니다. 마눌님이 어찌 그리 슬퍼하시는지."
고기를 천천히 씹으며 뜸을 들이던 그녀는 입 안에 있는 것을 꿀꺽 넘긴다. 목이 꿈틀거리더니 이내 잠잠해진다.
"요즘 석가장주께서 골골거리신다 소문이 파다하더니만, 결국엔 졸하셨나 보구려. 그 때문 아닐까 싶소. 내기해도 좋습니다."
여기서 표정연기! 안 그래도 피폐한 얼굴에 더욱 그늘을 드리우며 침통한 표정을 만든다! 당신 마누라만큼 자기 또한 슬프다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진짜 슬프긴 하지. 정정하셨으면 지금 이 사달이 나지도 않았을 테니까. 아니 그러면 하란에게 기회가 오지 않았을 테니 안 슬픈 일인가? 아, 모르겠다.
"괜찮다면 마눌님에게 가서 슬쩍 물어보시오. 며칠 째 곡을 하실 정도로 슬퍼하시는데 지아비가 함께 해 줘야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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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장? 아니 우리 마누라가 석가장주랑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고..."
주인장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하란의 말을 듣고 별채로 향하는 문지방을 넘어갑니다.
그리고 음식을 다 해치울 때 쯤 그가 돌아왔습니다.
"거참 신통하구려. 마누라가 한 마디도 안하다가 내가 그 말을 하니 어떻게 알았냐고 묻더구만. 그래서 당신 이야기를 좀 했는데...미안하게 됐수. 허허...도움을 받았으니 감사를 표해야할 마당인데 안사람이 좀 보고 싶다고 말을 전해달라더만. 영 그러시면 그냥 가셔도 좋소. 나야 마음에 무거운 짐을 좀 덜었으니 음식값은 받지 않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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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보고 싶다 하시는데. 뵈어야죠."
도박이 성공했다! 만약 마누라가 우는 이유가 석가장주 때문이 아니었다면 가벼운 비웃음이나 받곤 고깃값을 생돈으로 물어줘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 따위 생각할 필요는 없다. 성공했으면 된 거지 그런 걸 생각해서 뭐 하게?
그녀는 의자를 젖히고 천천히 일어난다. 별채로 향하는 주인장의 발걸음을 지팡이 탁탁거리는 소리가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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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은 자리에서 일어나 안 쪽으로 향합니다. 주인장은 허허 웃으면서 자리를 피해줍니다.
끼이익.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자 뚱뚱한 중년 여인이 하란을 반깁니다.
"어서오세요. 제 바깥 사람한테 그걸 알려주셨다고 들었어요."
눈가가 살짝 붉은 것이 울음을 그친지 얼마 안되었나 봅니다. 그녀는 왜 그렇게 석가장주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일까요?
***
"그렇습니다. 사실 저도 반신반의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 하시니 저도 놀랍습니다."
"어찌 그리 슬퍼하시는지요. 필시 석가장주께 은혜를 입으신 것입니까?"
하란은 침울하면서도, 배려와 공감이 느껴지는 표정을 지으며 마누라에게 질문했다.
***
"석가장주께서는 제 백부이십니다..."
...네?
하란의 얼굴이 순간 풀릴 뻔 했지만 간신히 표정을 유지합니다.
그러니까...이 눈앞의 뚱뚱한 중년 여성이, 죽은 석가장주의 조카라는 말이지요?
비비적비비적.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으니까 일단 두고 봅시다.
***
"오...."
ㄴ상상도 못한 정체ㄱ 자기가 석가장 조카라는 말을 듣게 되리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그녀는 순간 표정이 풀려버리려는 것을 간신히 붙둘 수 있었다. 이게 진실인지 거짓인지 분간을 할 수 없다. 일단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대화를 이어나가보자.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서둘러 조문하러 가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백부님 마지막 가시는 길인데 찾아뵈지 않으시면 후회하지 않으실까 하여....."
***
"....말씀드리기에는 너무나 긴 이야기가 되겠네요."
다시금 눈물이 흘러나오려는지 여인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칩니다.
"석가장은 아시는대로 사파의 문파입니다. 백부께서도 힘과 능력을 증명하셔서 장주의 자리에 오르셨어요. 장자이시기도 했지만 본래부터 뛰어난 재능과 실력까지 겸비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지요. 그렇지만 제 아버지를 비롯한...셋째 숙부. 막내 숙부지요. 지금은 총관을 하고 계시는 분이요. 두 사람도 뛰어난 재인이었습니다. 정파랑은 다르게 사파의 계승 다툼은 잔혹한 편입니다. 셋째 숙부와 제 아비가 다투었고 져서 목숨을 잃었고 저는 쫓겨났지요. 실력을 증명한 셋째 숙부는 남아 오랫동안 총관의 역할을 해오고 계시지만 제 아비는 아니었습니다."
훌쩍.
"그래도 백부께서는 저희 가족을 딱하게 여기셨는지 여러 지원을 해주셨어요.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가지 않는거에요. 제가 가봤자 더 큰 분란만 일어나게 될테니까요. 저는 무공도 익히지 않은 어염집 여인입니다. 숙부께서는 저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세요."
....꽤나 긴 이야기였지만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
"정말, 정말 유감인 일이로군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머릿속은 솔직하다. 하란은 지금 이 여인네의 활용 방안에 대해서 머리에 김이 날 정도로 고민하고 있다.
일단 이 사람이 정말 석가장주의 숙부라는 가정 하에 생각을 해 보자. 잘만 사용하면 손안에 굴러들어온 으뜸패와 다름이 없는 존재다.
어떻게, 어떻게 활용해야 좋을까? 어떻게 활용해야 잘 활용했다는 소리를 들을까?
***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후계순위는 커녕 집안 자체에서 쫓겨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여인. 그것도 무공이라고는 생전 익혀본 적 없는 사람을 가지고 생각을 하자니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하란은 머리를 굴려보지만, 그 머리는 일하지 않았습니다....
***
"우선 백부님의 작고에 대해 정식으로 조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망할망할망할! 떠오르지가 않는다. 계속 말을 하고 절을 하면서 시간을 끄는 그녀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으니 어떻게든 머리를 짜내야만 한다! 일해라 일!
***
여인은 쓴 웃음을 짓습니다.
"사파 무림인이신가요?"
아. 하긴 석가장주의 죽음에 조의를 표한다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군요.
머리는 여전히 생각을 쥐어짜내지 못하고 있습니다...크흠..
***
"사실 어느 쪽이냐 물으신다면 좀 애매합니다. 무공도 홀로 익혀 영향을 받은 사부도 없으니. 중간에 붕 뜬 회색분자 아닌가 싶습니다."
그녀는 거짓과 진실을 교묘히 섞어서 말한다. 여기서 어느 쪽이다 딱 잘라 말하면 나중의 행동에 제약이 생길 수 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고인의 작고에 애도를 표하는 것은 계파를 떠나서 사람이라면 지켜야 할 예 아니겠습니까....."
굴러라굴러라굴러라굴러라굴러라제발난천재란말이야굴러라머리!
***
일반인보다는 무림에 대해 잘 알지만, 무림인보다는 무림에 무지한 여인.
그녀는 하란의 설명에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갑니다.
하란...혹시 다이스에게 미움받을 일이라도 했습니까?
다이스는 하란의 편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
"백부께서는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들었습니다. 좋은 업을 쌓으셨으니 축복 속에서 먼 길 떠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후....경우의 수는 언제나 옳다 다갓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
***
여인은 그렇군요 하고 맙니다.
슬슬 대화할 거리가 떨어져갑니다...!
다갓은 하란이를 미워하고 있는게 틀림없습니다! 대놓고 물어봤는데도 저런 반응이라니...빨리 회개의 기도를 올리십시오!
***
"후우..."
마음이 심란해서 그런 척 한숨을 하는 척 하면서 마른세수를 하는 척 한다. 이런 망할. 왜 이렇게 생각이 안 나는 거지.
***
곧 여인은 축객령을 내릴 겁니다.
하란의 머리는 결국 아무것도 생각해내지 못했습니다!
...다갓쉑...
***
"그럼 전 이만... 몸조리 잘 하시길 바랍니다."
결국 그녀는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간다. 아 왜요. 다리가 한 짝 뿐이라서 그래요. 그리고 그녀의 골통은 빠개질 지경이었다.
***
하란은 아무런 소득 없이 물러납니다.
"하하하. 그래 얘기는 잘 하셨소? 안사람이 좀 나아졌으면 좋겠구만."
***
결국엔 고깃집 문턱까지 왔다 하..... 그냥 고깃값 드리겠습니다 하고 시간을 끌기에는 주머니 사정이 너무 힘들다.
이쯤 되면 천재 꼬리표 떼야 하는 것 아닐까. 소침해진 모습은 정말로 석가장의 죽음에 비통해하는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
하란의 머릿속에 괴상한 뇌전파가 스쳐지나갑니다!
절대 다갓의 횡포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 스레주의 개입이 아닙니다!
아시겠어요??
...저 여인을 가지고 석가장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하란이 석가장의 후계자들 중 하나와 끈을 만드는 용도로는 충분히 이용가능합니다!
정파이지만 생각하는 것은 노련한 정치인이나 다름없는 것이 슬프군요...
***
"저, 혹시...."
생각났다. 아아 결국엔 생각나고야 말았다. 이 생각 하나를 얻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내적 갈등을 벌였던지. 눈물이 나올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을 뒤따라왔을 주인장인지 마누라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뒤돌아보며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같이 조문하러 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저 말고도 백부님의 작고를 애통해하는 제 친구가 둘 있는데, 둘 모두 무림인이고, 하나는 절정의 경지에 다다른 친구입니다. 저 또한 나름 일류고, 다른 한 친구도 자기 몸 지킬 정도는 되니 불필요한 분란을 막을 수 있을지도...."
***
주인장은 여인에게 돌아가 의사를 묻습니다.
본래라면 다이스를 굴려야하지만, 다갓쉑...아무튼 스레주는 지친 나머지 다갓을 무시합니다.
여인은 조문의사를 밝힙니다!
이제부터 다시 다갓의 개입이 시작됩니다...스레주는 다갓에게 혼나러 가보겠습니다...
***
"그럼 아무 날 아무 시에 친구들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날짜와 시간을 서로 약속한 다음 하란은 깔끔하게 헤어질 수 있었다! 후! 기분이 더러운 건지 산뜻한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대장이 이렇게 뺑이치고 있는데 부하들은 잘 하고 있을까?
***
일행들을 만날 장소로 갑니다!
금소협과 신채훈은 이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로 정보를 교환해보니, 딱히 대단한 건 얻지 못했습니다.
***
"이것 참. 저라도 뭔가 물어왔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 했네요."
속이 쓰리지만 그래도 대장이 모범을 보인 셈 치기로 했다.
"우리는 죽은 석가장주의 조카딸을 데리고 조문을 하러 갈 겁니다. 잘 들어봐요."
하란은 신씨와 금씨에게 자신이 알아온 것과 둘이 알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 꼼꼼히 알려준다. 가령 그 조카딸에게 우리가 친구라고 말해뒀다느니 석가장주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느니 하는 것들 말이다.
***
금소협은 알쏭달쏭하다는듯 고개를 갸우뚱하고, 신채훈은 음. 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남의 감정을 가지고 사리사욕에 이용해먹는다는 것이 양심에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좋은게 좋은거라고 생각합시다.
둘은 하란의 의견에 찬동합니다!
***
"그럼 좀 쉬었다가 시간 맞춰 고깃집 앞으로 가기로 합니다. 아이고 내 머리야...."
***
고깃집으로 갑니다!
주인장은 가게를 비워둘 수 없어서 여인 혼자만 일행과 동행하게 됩니다.
- 탐색전
- 석가장으로 갑니다!
그 곳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잠깐."
들어가려는 하란 일행을 문지기들이 막아섭니다.
"요즘 설치는 놈들이 있어서...무기는 반납하고 들어가주셔야 되겠으."
무기 반납이라니! 무림인에게 치욕적인 일입니다!
***
"지팡이가 없으면 불편한데.... 봐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내가 석가장 네놈들을 뭘로 믿고 무기를 맡긴단 말야! 하란은 자신의 지팡이(검) 만이라도 살려보려고 부탁한다. 그래도 이건 지팡이라 불릴 소지가 조금은 있을 것 같았다.
***
나머지는 다 무기를 빼앗기고 하란의 지팡이만 남게됩니다.
금소협도 신채훈도 표정이 썩 좋지 못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엄숙한 분위기인 장소와 왁자지껄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가득한 장소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
"이것 참.... 싸우러 온 게 아니다만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그렇지 않습니까?"
신&금의 표정이 영 좋지 않다 하란 또한 심기가 불편한지 앓는 소리를 했다. 그래도 우선 여기에 온 표면적인 목적은 조문을 위해서다. 조문은 아마 엄숙한 곳에서 하고 있을 것이다. 그쪽으로 가보자.
....그런데 아까 그거 내 목소리였나? 하란은 자신의 몸이 심상찮음을 감지한다.
***
조문을 하러 들어갔는데...
장례식에서는 대혼돈이 펼쳐졌습니다!
"어억...! 억!"
이쁘장하게 생긴 여인 하나가 자신의 가슴과 사타구니를 마구 헤집고 있습니다.
....왜 저러지? 외설적인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잃어버려 찾는 느낌입니다.
"뭐야! 뭐냐고!"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들은 비명을 지르는데 그것이...여성들이나 지를 법한 새된 비명입니다. 너무나 중후한 저음으로 내지르는 어머머! 꺄아악!이라니.
이런 혼돈도 없을겁니다.
".....저기..."
뒤에서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응? 우리 일행 중에 젊은 여인이라고는 하란밖에 없을텐데요?
뒤돌아보니 금소협과 닮은 여인과 신채훈을 닮은 여인이 하란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
설마요.
하란은 급히 동경을 꺼내 거울을 봅니다.
....이게 뭐야!!!
***
저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만 것이었습니다..........는 아니고! 하란은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서 자리에 주저앉아버릴 뻔 했다.
"아니 그. 허, 이게 뭔..."
그녀 아닌 그가 된 하란은 말 없이 두 사람에게 동경을 보여주었다. 이걸 어떻게 말로 설명하란 일인가. 불가능한 일이다.
"일단, 일단 즈믄브트 흐르글끄요.....??"
자신도 있는 것 다 내팽개치고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가까스로 참을 수 있었다. 하란은 이를 악물고 간신히 같이 온 일행들에게 말한다.
***
이런 상황에서 조문이 제대로 이루어질리는 없지만....어떻게든 간신히 조문을 치릅니다.
사람들 앞에 주안상이 나오고, 일행은 침묵을 지킵니다.
홀리쉿마더퍼커!
***
"적어도 아주머니 탓에 분란이 생기진 않을 것 같으니 다행 아니겠습니까. 모두 제 꼴에 놀라 허둥대고 있으니...."
고개를 푹 숙이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은 채 말했다. 아까부터 샅에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계속 신경쓰여서 죽을 것 같다. 아아악.
하지만 그녀는 어르신의 대리자... 이런 일이 생겼다고 비명만 지르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해야 하는 일은 해야 한다.
하란은 주변을 살펴보며 접촉할 만한 인물이 있는지 살펴본다. 후계자라던지...아니면 가솔이라던지?
***
주변을....둘러봅니다.
우선 상주자리와 그 주변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주요해보입니다.
...그들도 당연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지만요!
***
그래, 차라리 정신이 없을 때 쑥 들이밀면 더 좋을 수도 있다. 저 사람들도 혼란스러울 테니 지금이라면 원하는 바를 더 쉽게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승자는 위기 또한 기회로 바꾸는 법!
"우선 식사도 하시고, 좀 쉬고 계십시오 모두들. 전 잠시 다녀올 곳이 있어서 말입니다."
***
다들 당황했지만 나름대로 의연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3명의 인물이 보입니다.
...전부 여인이지만 왼쪽부터 나이가 많아보이네요.
아마도 총관 1공자 2공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
정파와 그나마 함께할 수 있는 인물이 1공자 혹은 2공자라고 했겠다. 우선 말문을 트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석가장의 어르신들께 인사 올리나이다. 우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바입니다."
하란은 고개를 숙이며 적당한 때에 인사를 올린다.
***
다들 의연하게 손을 들어 인사를 받습니다.
그리고 셋이 서로를 쳐다보며 눈에서 불똥이 튑니다.
...이미 후계 싸움은 시작되었습니다.
***
벌써부터 신경전이 오가는 게 느껴진다. 서로 물고 뜯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다. 어디 떡밥을 하나 던져볼까? 하란은 고개를 숙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아예 엎드려 절하며 말한다.
"먼저 사죄드릴 것이 있사온데, 고인의 쫓겨났던 조카와 함께 이곳에 왔사옵니다."
"혹여 불필요한 분란이 생기지 않을까 조카도 염려하였으나, 며칠 동안 슬픔에 잠긴 꼴이 너무나 서글퍼 이 미천한 자가 손목을 이끌고 왔사옵니다."
"무공도 배우지 않은 여염집 사람인데다 권력 구도에는 일절 관심이 없는 자입니다. 오직 은혜를 입은 고인께 마지막 인사를 올리기 위해 온 것이니 부디 노여워 마소서...."
그 아주머니를 싫어하는 자가 총관이랬다. 총관이 그녀에게 호통을 치기라도 하면 1, 2공자가 합심해 총관을 물어뜯고 그녀를 감싸주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뭘 해도 꼬투리를 잡고 자신을 치켜세우고 싶을 때니까 말이다.
어차피 총관은 표적도 아니잖아?
아, 그리고 몸 원래대로 돌아왔다. 다행이야!
***
맨 왼쪽에 있는 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습니다. 중간에 있는 사람은 눈을 찡그리고 맨 오른쪽의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숙부님. 그리고..."
뚱뚱한 여인이 앞으로 나서 인사를 합니다. 이내 표정관리를 못하고 일그러뜨린 왼쪽 사람이 고개를 돌립니다.
이 자가 총관이겠군요.
"이런 자리에서 뵙게 되어 유감입니다. 백모님."
나름 의연하게 대답하는 이. 그가 중앙에 있던 사람이니 1공자일겁니다.
"제게 백모님이 있으셨을 줄은 몰랐습니다만...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아하다는 얼굴로 대답하는 이. 가장 오른쪽에 있던 사람이니 2공자.
모두의 신상이 대충 파악이 됩니다.
"썩 조문만 하고 나가거라. 석가장은 너를 식솔로 인정치 않으니."
고개를 돌린채 총관이 대답합니다. 1공자와 2공자가 눈을 흘기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습니다. 여인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절을 한 뒤 물러납니다.
하란과 일행도 같이 물러납니다...
***
저거저거! 공자들 눈 돌아가는 소리가 예까지 들린다! 헐뜯니 감싸니 하는 수준까진 아니지만 어느정도 예측한 반응이 나왔다. 우선은 여기서 더 욕심부리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다.
" 생각했던 것보단 점잖은 반응이군요. 아무튼 탈 없이, 아니 탈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조문은 했으니 다행 아니겠습니까?"
그녀는 짐짓 아주머니를 위로하는 말을 하며 상석에 있던 사람들을 흘끗 쳐다보았다.
***
상석에 있던 세 사람은 의연하게 사람들을 맞고 있습니다.
....아직 분란은 일으키지 않는군요. 하기사 지금부터 분란을 일으키면 석가장은 콩가루가 되어버릴...
"아! 술 더 가져오라고!"
쾅!
얼굴이 불거져있는 젊은 공자 하나가 술병으로 탁자를 거칠게 내리칩니다.
살펴보니 상석의 세 사람과 제법 닮았습니다. 저 사람이 망나니 3공자...
망나니 3왕자가 되었다...
저택의 고용인들은 익숙한 일인지 술을 더 가지러 가지만 손님들은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젓거나 불쾌한 기색을 여과없이 드러냅니다.
***
"망나니 3공자."
하란은 저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렸다. 망나니에 주정뱅이지만 삼형제 중 무공이 가장 뛰어나다는 사람이 바로 저 자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할까...
머지않아 하란은 결정을 내린다. 다짜고짜 석가장 요인들에게 가서 나랑 같이 석가장 먹어보자! 하면 바로 피떡이 되어서 나무 말뚝에 매달리게 될 것 같다. 일단 요인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은근히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것이 먼저다. 이 아주머니를 데려옴으로 한 번 눈도장을 찍긴 했겠지만 확실히 해서 나쁠 건 없겠지.
"잠시만...."
대충 행사 같은 데서 쟁반 위에 삼페인 잔 올려놓고 돌아다니는 그런 포지션의 사람에게서 술 담긴 병을 집었다. 적당히 땡깡이나 받아주다가 떡밥 하나 던지고 물러서면 되겠지. 일행에게 잠깐만 기다려 봐라는 손동작을 보이고는 3공자가 앉아있는 곳으로 다가간다.
"여기 술 있습니다 대협. 진정하소서."
하란의 얼굴은 영업미소 모드로 전환되었다.
***
"으으응?"
코 끝이 벌게진 남자가 술병을 받고 하란을 쳐다봅니다. 그러더니 히죽히죽 웃으면서 기분 나쁜 표정을 짓는군요.
"야아! 이번에 새로 들어온 친구인가? 이쁜데? 야! 내가 이쁜 애 들어오면 바로바로 나한테 말하라고 했지! 어! 내 방에 들여보내라고!"
익숙한 일인지 그를 모시는 고용인들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습니다.
망나니가 괜히 망나니가 아니라는걸 증명하는듯한 언사입니다. 하란은 다행히도 꾸욱 참아 넘기며 미소를 유지합니다.
***
"아하하.....온 몸에 활기가 넘치시는군요. 전 고용인이 아니옵니다. 조문을 위해 온 객이옵지요."
이 작자가 내 순정을 짓밟네. 방에 들여보내 뭐라고요? 방에 들어오면 뭐 어쩔려고요? 표정을 망치진 않았지만 얼굴이 시뻘개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차라리 같이 대작을 하고 술 때문이라고 야바위를 쳐야 하나.
하지만 가주 어르신도 그랬다. 하란의 외모는 초출이나 호색한을 낚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자산과 강점이 있으면 활용하는 게 도리다. 비록 그녀의 바람을 져버리고 순정을 갈가리 찢게 되겠지만 사감을 공무에 연루시킬 수는 없다.
필요하다면....그래.....가치가 있다면 이 악물고 네놈 방에라도 들어가 주마. 네놈이 제발 그럴 만한 가치가 없길 바랄 뿐이다. 하란은 각오를 다진다.
"우선 고인의 명복을 비는 바입니다. 부친께서 작고하시어 얼마나 심려가 많으십니까. 이리 슬픔을 술로 달래시고..."
하란은 3공자에게 술을 졸졸 따라주며 형식적인 인사를 한다. 요즘들어 이런 말만 몇번째 하는 건지 모르겠다.
***
"뭐? 우리 꼰대? 죽었으니 다행이지."
킬킬 거리면서 그는 자기 부친의 죽음에 오히려 잘 되었다는듯한 반응입니다. 아아...불꽃 효자...
"드디어 흑천성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그 때의 눈빛은 하란만이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 망나니놈이 또...라는듯 평소대로 행동하고 있지만요.
하란이 마주친 그 눈빛은 짐승의 눈빛이었습니다.
...이런 놈이 흑천성에 들어가게 된다면 정말 큰 일이 일어나도 단단히 일어나게 될겁니다.
아니 정확히는...
정파에 큰 혈겁이 일어날겁니다.
단순한 망나니인줄 알았지만 단순한 망나니가 아닙니다.
피와 폭력에 굶주린 망나니입니다.
섬찟한 기분이 들지만 하란은 의연하게 술을 마저 따르는데 성공합니다.
***
"으음, 다 잘 될 겁니다. 무공 또한 뛰어나시다 들었으니."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란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 자는 혈귀다. 오직 싸움을 위한 싸움을 하는 자다. 되도록 멀리하고 싶고, 가능하면 죽여야 하는 자다.
이 작자가 석가장을 휘어잡는다면 시산혈해가 무엇인지 직접 볼 수 있겠군. 그녀는 어르신의 살기에 비하면 이 정도 눈빛은 거뜬하다며 스스로를 가다듬었다.
"가로막는 자가 있다면 모조리 쓸어버리시겠지요. 사나이답게!"
***
"에이이이....뭘 그렇게까지..."
킥킥 웃으면서 그는 술병 째로 들이킵니다.
"끄으으윽....."
또 다시 술에 거나하게 취하는지 얼굴이 더더욱 붉어집니다. 하란은 직감적으로 이 자리에서 그와 함께 있다간 큰 일이 일어난다는걸 눈치챕니다.
몇 마디 사담을 더 나눈뒤 재빠르게 그에게서 벗어납니다.
- 헛걸음
- 이 사람 눈깔이 점점 돌아간다. 계속 앞에 앉아있다간 정말 손목 잡혀서 어디론가 끌려갈 느낌이라 황급히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저건 망나니를 넘어서 그냥 금수로구만. 쯧쯧."
술퍼먹는 3공자에게 들리지 않게 웅얼거리며 그녀는 일행에게로 돌아왔다. 조문은 끝났으니 우선 이 아지매부터 집에 돌려보내도록 하자.
***
집에 바래다주었습니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누군가를 선택해 지원해야만 합니다!
***
"....일단 우린 이미 석가장에게 찍혔을 겁니다. 언제나 석가장의 감시를 받고 있다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세요."
하란은 아주머니를 배웅하려 손을 흔들며 일행에게 말했다. 뜸을 들이다 말을 이어간다.
"2공자를 한 번 구워삶아봅시다. 1공자보다는 그 쪽을 더 만족시키기 쉬워보이네요. 비밀 연인과 결혼만 하면 되는데다 재물을 탐하는 소인배라 하니."
"석가장주 자리엔 관심이 없다지만 그건 우리가 관심을 갖게 해 주면 됩니다. 장주에 오르지 못하면 혼인도 못 할 환경을 조성해서요."
사실, 2공자를 택한 이유엔 사심도 조금 들어가 있었다. 그녀같이 순정을 신봉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어서.
"모용세가에서 뇌물로 먹일 재물을 지원받고 싶은데...가능합니까?"
아마 누가 요녕까지 또 갔다와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여기서 거기까지 전음이 닿으면 모르겠지만.
***
금소협이 손을 듭니다.
자신이 다녀오겠다는 의미겠지요.
허락하시겠습니까?
***
금소협 착해! 하지만 이제 막 초출이라는 이, 삼류 무인을 혼자 보내도 되는 건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오다가다 물품을 잃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재수가 없으면 아예 슥삭당해버릴지도...
"아니야, 금소협 혼자 떨어뜨리려니 불안한데요. '제일 강한' 신씨가 다녀와 주시겠어요? 신씨라면 혹여 무슨 일이 생겨도 충분히 뚫어내고 오실 거라 믿으니까..."
혹시나 신씨가 마음 상하지 않게 제일 강한을 은근히 강조하는 그녀였다.
***
신채훈은 잠깐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금소협은 탈주에 실패했습니다....
***
"으음..."
소협은 동의하는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못내 아쉬운 마음을 드러냅니다.
...확실히 여기서 개고생하는 것 보다는 모용세가 본가에서 아무것도 안하는게 편하기야 하지요.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이해 못할 마음은 아닙니다.
이제 신채훈은 다음 진행에 돌아오게 될겁니다...
***
금소협의 죄는 하란이 저택에 들어왔던 날 그녀를 만났다는 것 하나뿐일지도. 그거 하나로 머나먼 곳까지 끌려와서 이 고생을 하는 셈이다. 그래도 힘내! 이 일 잘 풀리면 너한테도 큼지막하게 뭐 하나 떨어지지 않겠어?
"강호초출이 다 그렇시다. 힘들고 정신없고."
어차피 2공자를 찾아가기엔 이르다. 석가장 주변을 멤돌며 소문과 낭설 같은 거라도 주워모아볼까.
***
소문을 모아봅니다........
- 석가장주가 죽었다! 강서에는 피바람이 불게 틀림없다.
- 백기문에서 석가장에 반기를 들었다! 백기문에 동조하는 강서 북부의 사파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난 상황이다.
- 망나니 3공자가 반기를 든 사파의 문주 몇을 쳐죽였다더라.
- 흑천성에서 정식으로 석가장의 입성을 제의하는 사신단이 출발했다!
***
"백기문? 백기문이라. 뭔가 흥미로운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마음같아선 사신단을 쳐부수고 싶다. 하지만 싸워서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를뿐더러 부정적인 시선을 엄청나게 끌게 될테니 그건 보류.
대충 백기문 놈들한테 얻어맞고 있는 2공자 파벌 석가장 떨거지들을 구해주면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은데... 일단 상황이 어떻게돌아가고 있나 구경이나 하자고 마음먹는다.
"한번 가 봅시다. 백기문이 뭐 하는 놈들인지."
아, 물론 3공자한테는 가능한 한 안 들켰으면...
***
강서 북부로 이동합니다!
...강서 안에서의 이동은 딱히 다이스를 굴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란의 다리 때문에 레스를 한 번 더 소모합니다! 이동레스를 하나 더 써주세요!
***
"내공으로 날아다니는 법을 배우던가 해야지. 소협, 혹시 서점에서 그런 비급 좀 찾으면 저한테도 귀띔 좀 해 주시오. 어흐..."
***
강서 북부에 도착합니다....
거리는 한산합니다.
***
"어디보자~ 백기문이 어디있나~"
말에 음률을 붙이는 건 나이먹은 사람 특징인걸까.
***
백기문을 찾아 서성거려봅니다.
....매우 수상해뵈는 조합이긴 하지만 다이스를 굴리기 귀찮은 누군가의 개입으로 의심을 피해냅니다!
딱히 특별한 점은 바깥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
석가장 놈들이랑 신나게 치고받고 있을 줄 알았더만 의외로 조용하다. 실망스럽게도.
그럼 이쪽에서 쌈박질 하는 쪽을 찾아다녀야지 뭐..
***
왜인지 조용합니다.
...분명 무슨 사유가 있으니 이렇게 조용한 것일텐데요! 분명 소문으로는 장난 아니었다고들 하던데....다른 세력의 개입이 있던걸까요?
***
"그, 누구였더라."
화산파랑 남궁이었나? 아무튼 누가 움직였다는 쪽지를 받긴 했다. 혹시 그쪽에서 선수를...
***
사람들은 고개를 젓습니다.
...그럼 남궁세가?
***
"아이고 공자..."
남궁에서 뭔갈 했구나. 결국에는 그쪽도 경쟁자라는 거겠지. 어쩔 수 없다. 싸움이 없다 하면 싸움을 붙여주는 수밖에.
...그런데 어떻게?
***
굴러라. 당신의 머리.
이제부터 천재는 다이스를 굴리지 않기로 마음먹은 스레주는 최선을 다해 짱구를 굴립니다.
싸움을 붙인다면 어디와 어디를 붙일것이고 규모는 어느정도로 할지부터 생각해야합니다.
문제는, 이 쪽이 석가장에 대해 정보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목적을 이룰 수 있을지가 불투명합니다!
***
(일단 근방에 석가장 인원이 있는지 확인)
***
석가장 인원이....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파인 것 같은 사람들은 보입니다!
- 기연의 푸른빛
- 신채훈은 돌아와있습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무엇부터 들어볼까요?
***
"그냥 둘 다 말하세요. 싫다고 안 들을 수도 없으니."
***
신채훈은 머리를 긁적입니다.
"우선,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짤랑이는 은화소리가 들립니다. 기분좋은 소음입니다.
"하지만, 뇌물을 줄 수 있는 만큼의 금액에는 크게 못미칩니다."
모용세가에서 도대체 어떻게 판단을 하고 있는거지요! 신채훈은 뒤이어 셋이 쓰기엔 모자람이 없는 금액이라고 덧붙입니다.
***
"뒷배가 되어줄테니 맘껏 날뛰라 하시더니만..."
신씨가 분명 2공자에 바칠 뇌물이라 했을 텐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건 지원을 받았으니. 뭐 필요한 거 있습니까 모두들? 곧 무력 충돌에 휘말릴지도 모르니."
***
금소협은 살짝 두려운 기색을 내비쳤고 신채훈은 없다며 고개를 젓습니다.
어르신은 대체 무슨 생각이실까요...
***
다시 생각해보니 이 애매한 지원도 어르신의 시험인 것 같기도 하고.... 뭐, 딱히 필요한 게 없다면 일단 그너부터 돈을 덜어가도록 하자.
"그러면 저 의족 좀 괜찮은 걸로 하나 구하겠습니다. 기를 쓸 때마다 빠작 부러지면 낭패일테니."
***
다들 그러라는듯 선선히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란은, 의족을 구매할 수 있겠군요!
하지만 재산단계가 변동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주세요!
***
일단, 전투 한 번을 버틸 만한 의족을 찾아보자. 아직도 돈이 모잘라...
(대장간 쇼핑)
**
재산단계를 소모한다면 매우 훌륭한 의족을 구할 수 있지만, 그 아래라면 하란이 끼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를바 없는 성능들입니다!
외다리 약점은 많은 돌을 주는 대신, 그만큼의 단점도 안고가는 법. 선택은 하란의 몫입니다.
**
"아흐흐흐윽"
손이 떨린다. 돈 아까워라!
**
하란은 거지가 되었습니다.
...흑흑...
【 만년한철이 아주 조금 섞인 의족 】
희대의 금속 중 하나인 만년한철이 아주 소량이나마 섞인 의족이다. 너무나도 미약한 양이라 만년한철의 특징은 존재하지 않지만 무쇠와 강철보다도 훨씬 단단하고 내구성이 좋다. 최하급의 아이템이다.
- 매우 튼튼해 검기로도 잘 부숴지지 않는다.
***
비싼만큼 값을 하길 바라는 수밖에...흑흑. 하란은 의족을 시험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인적이 없는 곳으로 가서 자세를 잡는다. 그때처럼 용검세를 날려본다. 표적은 바위든 절벽이든 아무튼 적당히 크고 딱딱한 것이었다. 설마 이 비싼 의족이 부러지진 않겠지..
***
절벽의 일부분이 살짝 무너집니다!
커다란 돌덩이들 몇개가 강 속으로 풍덩풍덩 빠져듭니다.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레주 몰래 돌을 던지자~
....하란은 자신이 만들어낸 위력에 잠깐 경탄하고 멀쩡한 의족을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기연을 구매하시겠습니까?
***
안 부러진다! 그리고 나는 강력하다! 만세!
(기연 구매)
***
기연을 구매합니다!
......뭔가 오늘은 엄청나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습니다.
***
"아하하하핳!! 비싼 게 좋긴 하구만!"
시무룩한 것도 잠시. 하란은 이제 마음껏 날뛸 수 있다는 것에 신이 났다. 텐션이 올라간 그녀는 절벽을 향해 한 번 더 검을 휘두른다.
***
절벽이 있는 강과 산의 산신령들이 스레주에게 민원을 넣을 것만 같습니다!
하란은 절벽을 향해 용검세를 뿌렸고 커다란 돌덩이들이 쩍쩍 갈라지며 강 속으로 떨어집니다!
풍덩...풍덩!
....그리고.
이상한 작은 동굴같은게 눈에 보입니다.
띠용?
***
"웬 동굴?"
산림파괴의 악업을 쌓으며 배덕적인 쾌락을 만끽하던 하란! 그녀는 깨부수던 절벽에서 정체불명의 동굴을 발견했다. 띠용?
"교룡비급도 저런 곳에서 찾았었는데."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하란은 별 생각 없이 그 안으로 몸을 밀어넣어 본다.
***
안으로 들어갑니다.
....한참을 들어가고 들어가자. 일류고수의 눈으로도 앞길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둡습니다.
음...그만 나가봐야하나? 라고 생각이 들었을 때 저 멀리 희미한 빛이 보입니다.
녹색인지 푸른색인지 잘 모르겠지만 빛이 저런 색깔을...낼 수 있던가요?
***
하란은 안력을 돋구어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지만 그녀를 맞이하는건 침침한 어둠뿐. 이제 그만 나갈까 생각하던 와중 무언가 기묘한 것이 눈에 띄었다.
"저게 뭐야?"
미간을 찌푸리며 은은한 빛깔을 쳐다보던 하란은 눈이 번쩍 뜨이는 듯 했다. 설마, 설마 하면서도 그녀는 빛을 향해 허위허위 나아간다.
***
하란은 안으로 안으로 들어갑니다.
....웬 파란색 잎을 가진 약초가 녹색빛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이게 대체 뭐에 쓰는 물건인고...?
***
그녀는 황급히 빛 앞에 엎어져 그 광원을 확인해 보았다. 그것은 식물이었다.
그런데 잎이 파란색? 파란 식물이란 건 평생 들은 적이 없다. 이렇게 은은히 빛나는 걸 보니 분명 예사 식물은 아닌데. 약초거나, 아니면...영약?!
일단 하란은 고개를 숙여 그것을 코 밑에 갖다대본다.
***
킁킁. 냄새를 맡습니다.
...피톤치드 향이 납니다. 한 번 생으로 먹어보는건 어떨까요? 진행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
이걸 어떡해야 하나 고민한다. 혹시나 독초면 어쩌지? 이상한 거면 어쩌지? 하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뭘 망설이는 거야...딱 봐도 기연이잖아 이건!"
이마에서 땀을 한 방울 흘리면서도 씩 웃는 하란. 그녀는 손으로 조심히 식물이 상하지 않게 뿌리까지 뽑아내었다. 그리고 그것을....전부 먹어버린다!
***
하란은 '청삼'을 섭취합니다!!!!
꾸르르르르르릉...
머릿속에서 벼락이 치는 느낌과 함께 털썩 쓰러집니다! 스레주 네 이놈!! 드디어 네가 나를 암살하려고 드는구나!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게냐!
어림도 없지! 갑작스럽게 엄청난 양의 내공이 단전으로 쏟아져옵니다! 그걸 받아낼 재간이 없는 단전은 당연히 재빠르게 확장공사를 하겠지요!
그러고도 절반을 훌쩍 넘기는 양의 내력이 그냥 허공에 흩어져버립니다...
후우....
정신을 차려보니, 하란의 내공은 무려 3배가 증가했습니다!
현재 하란의 공력은 무려 1갑자(60년)입니다! 기연이군요!
***
"헙..,?!"
띠링! 내공이 1갑자가 되었다. 축축한 돌바닥에 퍼질러져 있다 일어난 하란. 그녀는 곧 영약에 담긴 내공을 반도 취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을 터뜨렸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일단 일행에게 돌아가자. 대체 여기서 시간을 얼마나 보낸 건지!
- 너 나하고 일 하나 하자
- 다들 초조한 얼굴로 하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저. 더는 미뤄선 안됩니다. 석가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못되고 간악한 스레주가 무슨 일을 벌이기 시작한게 분명합니다!
***
하란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어째 자기 때문에 계속 시간이 밀리는 기분이었다. 서둘러 일행과 함께 나와 2공자가 사는 곳으로 향한다. 그는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니 물어서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석가장이 지금 어떻죠? 그 흑천성 사절이 도착하기라도 한 건가요?"
***
2공자는 자신을 따르는 가솔들을 이끌고 석가장 밖으로 나왔답니다!
아무리봐도....분가를 하려는 건 아닌듯합니다.
"마교쪽에서 사생아를 내세웠고, 흑천성은 총관을 내세웠소."
초절정 고수 둘이 격하게 대립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2공자는 내부세력다툼에서 밀려나 일단 몸을 피한 것 같군요.
"사절은 미끼였소. 모두가 흑천성의 사절에 신경을 곤두세울 때 총관이 힘을 썼고 그 때에 우연찮게 사생아가 개입하며 마교의 입김이 불어닥쳤소이다. 일각 전의 일이오. 1공자는 어디있는지 알 수 없고 2공자는 안가에 피신해있소이다."
***
"마교 쪽에서도 끼어들어요? 정말 난장판이 되어가네요..."
그래도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2공자가 곤궁에 처했다니, 도움의 손길을 함부로 뿌리치기에는 힘들지 않겠는가. 바짝 신경이 곤두서서 하란의 일행까지 두들겨 패려 할지도 모르지만...
손톱을 딱딱거리며 생각하던 그녀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 개망나니 3공자는 뭐 하고 있는지 아시나요? 흑천성이 3공자를 좋아한다고 그러던데, 총관이 간택되었네요?"
***
"그는...."
신채훈이 난처해하자 금소협이 말을 이어받습니다.
"...백기문이라고 하던 곳을 점거하고 자기 세력으로 편입시켰다던데요..."
?????
***
"거 참. 그답군요. 아무 세력이 그쪽에서 무력충돌을 억누르고 있는 것 같던데. 거기선 퍽이나 싫어하겠네요."
그 사람은 석가장주는 모르겠고 그냥 피가 보고 싶은 것 아닐까. 3공자의 면면을 생각하니 기분이 나빠졌다.
***
2공자의 안가, 라고는 하지만 이미 그를 따르는 무림인들이 우글우글거리는 곳입니다. 석가장 내에서는 총관과 사생아의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고 2공자는 자신이 이 곳에 있다는걸 딱히 숨기려는 기미조차 없습니다.
그 덕분인지 하란과 일행은 손쉽게 그의 안가 앞까지 도달합니다.
어떻게 접촉을 해야할까요?
대충...신세계 그룹 승계권을 두고서 회장 아들 중 하나가 자기 백화점을 들고 거기서 사장노릇하며 농성하고 있는 셈입니다!
***
사실 저자거리 같은 곳에서 얘 어디 높으신 분의 공자가 비밀연애를 하고 있다더라! 하고 속닥속닥거려서 제발저린 2공자가 일행에게 잡았다 요놈을 시전해 대면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디 2공자가 누군지 만나나 봅시다."
이제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 정공법으로 가 보자. 따지고 보면 나 지금 모용세가 가주 어르신의 대리인인 거잖아? 하란은 마음속에 허세를 장전했다. 그리고 대문을 쿵쿵 두들긴다.
***
대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하란과 그 쫄따구들을 막아섭니다!
"무슨 용무로 오셨소? 이 곳은 함부로 외인이 들어설 수 없소이다."
음...지극히 타당한 이유기는 하군요.
일단 상대는 세력다툼에서 밀려 이 곳으로 피신해온 상황입니다.
***
"저는 모용세가의 가솔. 미사하란이라 합니다."
"세가주 모용벽 어르신의 명을 받잡고, 2공자께 협조적인 용무를 위해 찾아왔지요. 공자님을 뵙고 싶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그녀가 누군지 모른다. 신씨와 금씨도 모르겠지. 당연히 믿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 모용세가의 후광을 등에 업는 수밖에. 하란은 기품있으면서도 거만하지 않은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
모용세가, 라는 말에 문지기들의 말이 일그러집니다!
중요인물 만나기가 너무 힘들군요! 왜! 왜 어째서!
***
"당신들이 정파 싫어하는 거 압니다. 표정만으로도 다 보이는군요."
저거 사파 아니랄까봐 표정 일그러지는 것 봐 저.
"허나 저는 가주 어르신을 대리하여 이곳에 온 것이고, 그것은 세가가 그대들에게 격에 맞는 상대를 보내어 각별하고 마땅한 예와 성의를 갖추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2공자를 뵙게 해 주십시오."
***
단순히 하란 개인이라면 분명 볼기짝을 호되게 맞고 쫓겨났을겁니다.
그렇지만 하란은 스스로를 지우고 요녕제일검의 대리인임을 내세웠습니다.
하란은 사실상 모용세가의 전권대사이며, 그 역할은 모용벽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만약 여기서 하란을 내친다? 요녕제일검이 어떻게 나올지. 그리고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문파들이 2공자를 어떻게 바라볼지는 자명한 일입니다.
상대는 이를 갈면서 하란을 안으로 들여보냅니다.
금소협과 신채훈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군요.
***
지위와 권위는 이렇게 쓰는 거구나! 오늘도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하란이다.
"다녀올테니 잠시 기다리고 계셔요. 잘 될 겁니다."
그녀는 신채훈과 금소협에게 말하고는 대문 안으로 천천히 들어선다. 잊지 말자. 함부로 얕잡아 보이면 안 된다. 그렇다고 상대를 마구 깎아내려도 안 된다. 오대세가의 이름을 걸고 들어왔으니,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해. 꽤나 질박하게 살던 그녀는 절로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
안으로 들어갑니다.
고르댕같은 으리으리한 저택입니다. 아니, 이건 저택이라기보단...좀 더 성에 가깝습니다. 담장의 높이는 4m에 달하고 그 위에는 사람들이 두명이 지나다녀도 괜찮을만한 공간, 그리고 요철까지 있으니 2공자가 얼마나 자신의 안위에 신경을 쓰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니.
자신의 안위가....아닐 수도 있겠군요!
한참을 안으로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자 2공자와 하란 사이에는 낮은 단상과 상대의 모습을 가려주는 발이 쳐져있습니다.
"그래."
피곤한 기색의 목소리입니다.
"나를 보고자 했다고? 요녕제일검의 대리인이?"
***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협. 이전에 한 번 뵈었었지요?"
하란은 예를 표하며 가벼운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서로 얼굴 아는 사인데 저 발은 뭣하러 치고 있는 걸까?
***
2공자의 형체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자리였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상속자의 등장으로 조금 당황했었던 기억이 있소만."
그의 표정을 볼 수가 없습니다.
"모용세가의 대리인이라. 그래 요녕제일검이 내게 무슨 제안을 하려 이리 먼 곳까지 다리도 불편한 이를 보냈는가?"
***
2공자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저쪽만 그녀를 본다고 생각하니 약간 기분이 나빠졌다.
"제안을 위해서입니다. 건설적이고 협조적인 제안이지요."
"모용세가는 대협께서 제갈세가와 협력하시길 바라고 있나이다. 아예 장주에 오르시면 더 좋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저희는 대협께 지원을 아끼지 않으려 합니다."
***
"하하."
그는 무미건조하게 웃습니다. 아니, 웃었다기보다는 하하라는 글자를 소리내어 읽은 느낌입니다.
"정파와 손을 잡으라는건가? 이 나보고? 석가장은 사파다. 모르지는 않을텐데?"
그는 어이가 없다는듯 되묻습니다.
***
2공자는 웃는다. 그녀 또한 미소짓는다. 아직까지는 예상 내의 반격이었다.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이다.
"당연히 알고 왔습니다. 석가장이 사파이고 모용세가가 정파인 것을 누가 모르리오까?"
"다만 저는 그것 말고도 한 가지를 더 알고 있지요. 대협께서 정파와 친하게 지내길 원한다는 것 말입니다."
***
발 너머의 형체가 흔들립니다.
"...모두 물러나라."
- 주공. 하지만 저 자가....
"다리 하나도 없는 자가 어찌 나를 해칠 수 있단 말이냐? 내 본신의 실력이 뒤떨어지지 않음은 잘 알터.
- 허나...
"어서 물러가래도."
대화가 끝났지만 하란은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나 확실한건 분명히 어디에선가 하란의 목을 노리는 자객들이 있을 거라는 사실 뿐입니다...절로 다시금 긴장하게 됩니다.
"허튼 소리를 지껄였다간 살아돌아가지 못할걸세. 자세히 이야기해보지."
이제야 좀 '대화'를 할 의향이 생겼군요!
***
역시 자객이 대기하고 있다. 간담이 쫄깃해진다. 하지만 괜찮다. 하란은 천재다. 능히 견딜 수 있다. 저것 봐라, 상대가 동요하고 있음은 분명 그녀에게 긍정적인 징조 아닌가?
"저희 입장에선 당연히 정파와 친해지려 하는 대협과 손잡는 것이 좋지요. 거듭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대협께 건설적이고 협조적인 제안을 위해 온 것입니다. 척을 지러 온 것이 아닙니다."
"모용세가는 대협을 지원해 제갈에 빚을 지우거나, 대협을 장주로 만든다면 운신의 폭이 더 넓어지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중원 진출이야 저희의 숙원 아니겠습니까?"
"물론 일방적인 내정 간섭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대협의 석가장과 모용세가는 이전보다 훨씬 더 우호적인 관계가 될 것입니다."
하란은 잠시 뜸을 들이다 뒤에 덧붙인다.
"그렇게 되면 대협의 소원도 이루실 수 있겠지요...."
***
까드득. 이빨이 갈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걸 내가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난 순진하고 멍청한 어린 아이가 아닐세."
하지만 한사코 거절한다는 말은 내뱉지 않는군요!
***
짜증나지? 조급해지지? 너는 결국 내 뜻대로 휘둘릴거야! 하란은 속으로 깔깔거리며 웃었다.
"석가장이 어디 산골 속의 군소 문파도 아니고, 모용세가가 석가장을 한 손에 쥐고 흔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아니 불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아해같은 순진함이 아닌, 넓은 배포로 믿어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협박을 하시겠다..."
발 너머로 어두운 형체만 보이던 그에게서 안광이 쏟아져나온듯한 착각이 듭니다.
"...허튼 소리를 하면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을터인데. 사생아 놈은 껄끄럽지만 숙부께 찾아가서 사정을 말씀드리고 장주 자리를 포기하면 되는 일이다."
허나 내치지는 않습니다.
그렇겠지요.
***
"대협, 전 대협을 협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하려고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그 분, 이 성채로 하여금 보호받는 분에 대해서 모릅니다. 기껏해야 정파 여성이라는 것 밖에는 모르지요."
"하지만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파급력은 충분할 것임을 유념해 주십시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저 하나만이 아닙니다."
"저희와 손잡으시면 상호간에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
으득.
이빨이 부러지겠네요! 하하하!
"....잔머리가 좋군."
괜히 머리 좋다는말 하기 싫어서 최대한 깎아내리는군요.
"그렇지만 내가 장주에 올라설거란 확신은 어디에서 나오지? 내 경쟁자는 사생아 놈과 숙부님이다. 둘 다 초절정의 고수지. 그 뿐이냐? 사생아 놈은 마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고 숙부님은 흑천성에 사실상 입성한 상황이다. 얼마 전에는 흑천성주와 대작도 했다지."
거의 자포자기한 상황이었군요...!
***
"그거야...."
나는 레스캐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기에는 좀 무리고. 머릿속 괴전파를 물리친 하란은 어휘를 순화한다.
"제가 요녕제일검의 명을 받잡아, 대협을 도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
자기는 그만한 천재니까.
***
그는 하란을 불신하고 있습니다. 하기사 협박으로 이루어진 반강제적인 관계이니까요! 하란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도 않고 그냥 할 수 있다라. 그래. 어디 한 번 해보게. 속아주도록 하지. 허나 당장의 성과가 없다면...."
하란은 섬뜩한 살기를 느낍니다!
"곱게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을걸세."
그는 언제든 하란의 뒤를 찌르고 살인멸구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
어디 한 번 해 보라구요? 그럼 한 번 해 볼까?
하란의 머리야 굴러가라!
***
.....지금까지의 정보로만 결과를 도출해보자면, 숙부에게 머리 숙이고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 최선입니다.
지금까지의 정보로는요.
***
일단 2공자는 숙부에게 숙이는게 좋아뵈는데. 그대로 말했다간 목이 날아갈거야.
"대협 맘에 드실 적당한 것을 구해오겠습니다. 그리해야 상호간의 신뢰가 생기겠군요."
이 일은 독자적으로 해야겠다. 정보를 공유해달라 해도 칼이 날아올 것이다.
***
2공자는 하란에게 가보라는듯 손짓했고 하란은 살아나옵니다!
와!
진짜 죽을 뻔 했네요.
- 물질만능주의
- 호! 숨쉬며 살 수 있단 건 아름다운 일이야! 그렇게 하란은 다시 정문 밖으로 나섰다.
"일단 협력관계를 맺긴 했어요. 그런데 공자님께서 뿔이 많이 나셨네요."
"역린을 건드려서 그런가. 흐흐. 기분을 풀어주려면 선물을 줘야겠죠?"
물질적인 선물 말고, 정치적인 선물 말이다. 선물의 재료는 당연히 새로운 정보다
***
저잣거리에서는 이미 모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모은 상태입니다!
어느 곳에서 정보를 모을지가 중요합니다.
***
"범을 족치려면 범 굴로 들어가야지."
숙부의 저택 근처에서 알짱거려본다.
***
하란은 알짱거려봅니다!
....석가장 주변에는 피비린내가 가득하고, 아무도 얼쩡거리고 있지 않습니다. 이크! 하란은 급하게 빠져나옵니다.
석가장은 당분간 어렵겠군요...안에서 또 한 바탕 싸운게 분명합니다.
***
아이쿠야. 장주가 죽으니 피 냄새가 끊이지 않는다. 시체성도착증 환자가 아니라면 여기서 볼 일은 없다. 다른 곳으로 가볼까?
3공자님은 뭐하고 계신가....백기문 있는 곳에 계시려나. 암튼 가보자.
***
백기문으로 갑니다!
....조용하군요. 그렇지만 대문도 완전히 잠겨있습니다. 여기서 정보를 얻기란 힘들 것 같군요.
신채훈과 금소협은 하란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의견을 구해볼까요?
***
"흐음....."
뒤에서 멀뚱멀뚱 쳐다보는 시선에 뒤통수가 따갑다. 어디서 읽은 글 중에 군자는 주변의 말에 귀 기울인다 이런 말이 있던 것 같은데..한 번 실천해보기로 하란은 마음먹었다.
"지금의 정보만 가지고 보면 2공자는 총관에게 숙이고 안전을 도모하는 게 최선입니다. 하지만 그건 2공자에게도 제게도 맘에 안 드는 선택지지요."
"새로운 결과를 만들려면 새로운 변수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정보 말입니다. 당신들 생각에, 그 새로운 정보를 어디서 얻으면 좋겠습니까?"
***
신채훈이 말합니다.
"개방을 이용하는건 어떻습니까. 소저."
돈먹는 거지들?
"하오문도 좋아보여요!"
금소협이 말합니다. 하오문....하오문이라.
"아니면, 집안에 연락을 좀 해볼까요?"
??
***
"개방...개방 좋지요. 돈이 있다면..."
돈 벌어야 하나. 그 돈 먹는 그지들 또 보기엔 영 그런데. 하오문은 또 사파 쪽이라 그녀를 보자마자 눈을 부라릴 것 같았다. 그런데 아까 뭐라고 하셨습니까 금씨?
"...집안이요? 어떤 집안이십니까?"
금소협이 집안을 거론하는 건 처음 듣는 것 같다
***
"어...."
금소협이 살포시 웃습니다.
"별로 대단한건 아니고 이럴 때에 도움을 주실 분들을 몇 몇 알고 있어서요...."
...더 캐내려고 할 수는 있지만 금소협이 싫어할 것 같군요!
***
적당히 쓰다 말 인력으로 쓰기 위해 어르신이 들이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틀린 생각이었나? 뭔가 어르신 입맛에 맞을 인맥을 가지고 있나...
"그렇다면야, 정확히 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뭐라도 해 보시지요."
아 그리고, 웃으니까 귀엽네.
***
금소협은 잠시동안 하란을 떠납니다!
다음 진행은 되어야 돌아올 것입니다!
***
"조급하게 굴어봐야 실수밖에 더 하겠어요?"
그러니까 할일 없을 때 쓰는 키워드 돌아다니기!
***
돌아다녀봅니다!
음침하고 싸늘합니다...거리가 한산합니다.
이 주변의 영주나 다름없는 석가장이 내전 중이니 활기차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겠지요.
시장은 문을 닫았고 가게들은 휴업중입니다.
***
"유령도시같구만."
혹시나 땅에 떨어진 동전이나 없을까 땅을 쳐다보며 그녀는 천천히 거닐었다.
***
앗...! 액면가치 10원 정도의 동전을 발견한 하란은 얼른 주워 담습니다!
"..."
신채훈은 그걸보고 하란을 참...그런 눈빛으로 쳐다봅니다.
***
"왜...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이런 거 잘 모아둬야 나중에 과자 하나라도 꽁으로 먹죠."
부족한 것 없이 자란 당신은 모르겠지! 돈 없는 설움을 말야! 그렇게 생각해봐야 10원짜리 동전을 소중히 주워 소매로 닦는 건 그냥 거지근성이었다.
***
"그냥 하나 사드릴테니까 그러지 마십쇼...체면이 뭐가 됩니까..."
신채훈은 정말 안타까운 눈으로 하란을 쳐다봅니다.
아...내 신세가 어쩌다 이렇게...
***
"체면은 볼 사람 있을 때나 차리는 거죠! 저도 가주 어르신이나 2공자 앞에선 잔뜩 오그라들어 있답니다."
근데 주변에는 아무도 없지롱! 유령도시지롱!
***
신채훈은 두 눈을 꿈뻑거립니다.
"...아니...하...."
말을 말자. 라는듯 입을 다뭅니다.
***
흥이다 흥 이사람아. 부자한테 물어봐라. 돈을 아껴서 부자됐는지 돈을 낭비해서 부자됐는지!
그나저나 슬슬 금씨가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
하란은 원래 약속했던 장소로 돌아갑니다.
그 곳에는 우마차 두대가 서있습니다. 금소협은 그 중 한 마차에 타있었고 마부로 보이는 장년인 하나가 있습니다. 다른 우마차 한 대에는 빛바랜 잿빛 천으로 물건들이 뒤덮여있습니다.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하란의 눈에는 빛바랜 잿빛 천 아래, 번쩍이는 노란 빛이 얼핏 스쳐지나갑니다.
뭘...가져온 것...?
***
금소협이 마차를 끌고왔다. 웬 마차? 뭐에 쓰려고 가져왔지? 뭘 싣고 온...?!
"소협.....이게 다 무슨..??"
이런 걸 생각하거나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눈을 땡그랗게 뜨곤 이게 다 뭐냐고 묻는다.
***
"모든 일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일을 해결해줄 수 있는게 뭔지 아세요?"
그 말에 신채훈이 나! 나 알아! 정답! 하려는듯이 손을 번쩍 들려다가 하란의 눈치를 보고 손을 멈춥니다.
하란은 당연히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노랗고 무르고 번쩍이는 것이지요.
"바로 황금이죠!"
따란~
하란~
엌ㅋㅋㅋㅋ
금소협이 잿빛 천을 걷어내자 그 곳에 보이는건 황금으로 만들어진 금송공예품들이 한가득입니다.
못해도...못해도 하란이 저걸 취한다면 재산 4단계, 아니! 5단계에 도달할만한 거금입니다!
"이 정도면 거의 무엇이든 할 수 있겠죠?"
이 정도 황금이면 초절정 고수를 하나 살 수도 있습니다.
***
....ㅋ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녀는 신채훈의 어깨를 팍팍 치면서 파안대소했다. 이래서 식객으로 들어왔구나! 어디 거대 상단의 외동 자제라도 되나 보지?!
한동안 웃던 그녀는 숨을 고르고 씩 웃는다. 저걸 혼자 꿀꺽할 수는 없지만, 어디에 써야 값질지는 잘 알고 있다.
"일단 저것들로 개방도들 뚝배기 후리러 갑시다. 이 건방진 거지들, 아주 본때를 보여주자고요."
***
그 때 금소협이 한 마디 거듭니다.
"그, 꼭 개방 거지들한테 갈 이유가 있을까요?"
금소협은 어깨를 으쓱거립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이 정도 황금이면 무림맹의 정의단, 흑천성의 흑천대를 한 달을 고용할 수 있는 금액이에요. 돈으로 사고판다면 초절정 고수의 목숨 하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금액이구요. 개방...의 도움이 필요할까요?"
음, 확실히 재무관리자 쪽이라 그런지 예산을 사용하는데에 대한 이유를 납득받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전문 경영인이 되어버린 하란은 이만한 금액을 가져온 금소협에게 이유를 말할 수도, 안할 수도 있습니다!
***
"흠. 생각해보니 흑천대를 고용해서 금봉파를 치는 것도 웃기긴 하겠지만...."
무력과 정보 중 택일하라면 정보가 아닐까. 그녀는 생각한다.
"지금 더 필요한 건 정보라고 생각합니다. 큰 힘을 돈으로 산다 한들 어떻게 쓸지 모른다면 소용이 없을 테죠."
"이 정도 돈이라면 정말 고급의 고급 정보들까지 손을 넣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력은 2공자의 전력도 있으니 필요하다면 약간 덜떨어진 자들을 고용해도 괜찮습니다."
"은밀하며 올바른 정보로, 알맞은 곳에 무력을 찔러넣을 수만 있다면. 지피지기 백전불태 아니겠습니까."
***
이것이 정보화 혁명을 겪은 현대인의 논리구조다 미개한 중세 무림인!
금소협은 완전하게 납득하지는 못했지만, 하란이 자신에게 설명을 해준다는 것에 만족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제 이 막대한 양의 황금은 하란이 당분간 전용하여 원하는 곳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모용세가 x까!
***
낄낄 모용세가X까 돈이 최고다!
개방을 찾아랏!
***
이미 황금을 보고 몰려든 사람들 중에 거지쉑들이 몇 몇 있습니다. 그 중에는 빨간 실을 달고 있는 사람도 있군요!
***
저리 끼저라 날파리들아!
개방도는 부르고 그냥 거지는 쫓아낸다
***
탐욕과 적개심을 가득 안고서 사람들이 흩어지고, 일결제자 둘 만이 자리에 남아 침을 꼴깍 삼킵니다.
***
"좀 높은 지위의 개방도를 만나고 싶은데...좀 데려다주겠나?."
설마 안된다고 히진 않겠지?
***
"황금만 주신다면...."
거지들의 눈에 탐욕이 그득그득합니다!
***
우르르르.
주변에서 눈치를 보던 사람들까지 한 데 몰려들어 거지들과 황금 쟁탈전을 벌입니다.
그리고 개방의 제자라는게 헛된 간판은 아닌지 경쟁에서 거지들이 승리합니다!
희희낙락하며 그들은 자신들보다 훨씬 윗사람에게 하란을 안내해줍니다.
그리고.....
붉은실 여섯개를 달고 있는 중년 거지 하나가 하란을 쳐다봅니다.
"날 보자고 했다고?"
기름기 묻은 닭고기를 입으로 주욱 찢는 것이 참된 거지새끼입니다!
***
"개방을 찾는 게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정보를 원하는 것이지요."
"요즘 석가장의 후계자들이 난리를 피우고 있는데, 상황이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뭐 숨겨진 비밀은 없을지.. 가능한 한 많은 정보. 아니 모든 정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황금을 살짝 보이는 그녀였다.
***
"....석가장 후계쟁탈이라."
중년 거지는 먹던 닭고기를 내려놓습니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어린 거지들이 신나서 그 닭고기를 들고 어디론가 가버립니다.
"우리라고 정보를 내놓으라고 하면 다 알아낼 수 있는건 아니다. 전가의 보도가 아니란 말이지."
그는 기름기가 남은 손을 땟자국이 가득한 옷에 슥슥 문지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로는 당연히 성에 차지 않을 것이고, 사파 놈들은 거지라고 하면 개방 때문에 거부감을 가지는 놈들이 많지. 원하는대로 정보를 구해다줄수는 있네. "
그리고 씨익 웃습니다.
"대신 황금이 많이. 아주 많이 필요해."
***
"절묘하군요."
그녀는 맞서 씨익 웃는다. 원하는 대로 정보를 구해준다면. 아마 새 정보가 수집되는 대로 그녀에게 언질이 간다는 걸까?
"마침 저희도 황금이 많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
계약 성립! 순식간에 황금의 절반이 날아갔다. 하지만 쉽게 얻은 돈은 당연히 쉽게 나가는 법이고. 유흥비로 탕진한 것도 아니니 괜찮겠지 뭐.
"그래서, 정보는 어떤 방식으로 전달받으면 되겠습니까?"
***
"걱정말라고. 우리가 알아서 찾아갈테니."
기분나쁘게 미소를 짓는 거지쉑을 보면서 하란도 같이 어색한 미소를 지어줍니다.
이제 다른 준비를 하러 갈 차례군요!
***
다른 준비라 해도 아직 뭘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고...오너도 잘 모르겠고..뭘 해야 할까... 일단 소문수집?
***
석가장의 대립이 한층 더 격화되고 있다는 말들만 들려옵니다. 거기에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다는 정보는 덤이군요!
***
"마교는 사생아, 흑천성은 총관, 우리가 2공자, 그럼 남궁과 화산이 1공자한테 붙었나?"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아직까진 추측일 뿐이지만.
***
민심이 흉흉해졌습니다. 민심이 흉흉해졌는데 이걸 돌봐야할 석가장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있네요!
이럴 때 일수록 민심을 잡아놔야, 민중의 지지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와 관련한 일들을 해내봅시다!
***
"전 장주께선 민심을 잘 돌보셨다더니..후계자들은 그럴 마음이 없어 뵈는군요."
"그럼 우리가 해야지 어쩌겠습니까? 민중의 지지라는 보석이 땅바닥을 구르고 있으니, 잽싸게 낼름해봅시다."
***
이 일은 2공자의 이름으로 진행됩니다!
금덩이 몇 개를 돈으로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금 자체는 곧 돈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이것으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
"저, 금소협. 영향력있는 중산층들을 지원해서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은데 그냥 돈만 주면 분명 먹튀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럴 땐 어느 방법을 사용해야 좋겠습니까."
***
가만히 등을 긁던 금소협이 깜짝 놀랍니다.
"절 잊지 않으셨군요!"
어...언제나 잊지 않고있었다구 동료여!
금소협은 자신이 아는 이야기가 나오자 신나서 마구 떠들어대기 시작합니다.
애지아수 상자라느니, 팔애토 효율이라느니, 무차별곡선이라느니. 이상한 이야기가 한껏 나오지만 결과는 하나입니다.
돈을 직접 주는건 단기적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만한 돈이 있지도 않으며 시간이 흐르면 그건 그대로 2공자와 하란의 부담이 되어 오히려 민심에 악영향이 끼칠거라는 것을 말입니다!
원래 주다가 안주면 뿔나는게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금소협은 알아듣기 어려운 말에 화룡점정을 찍습니다.
"그 돈으로 무인들을 고용해서 치안부터 안정화해야해요!"
경제로 이야기가 시작해서 결국 폭력으로 귀결되는 곳. 무림입니다.
***
(대충 끄덕짤)
역시 사람이 칼만으론 살 수 없다. 금소협처럼 지혜도 있어야지. 머릿속에서 금소협의 평가가 올리간다. 처음엔 그냥 어리버리한 무림초출이었는데..
하란은 즉시 치안과 민생을 안정시킬 뜻 있는 무림인을 모은다는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한다. 보수 있음!
***
2공자의 이름을 내걸고 무림인들을 모집합니다!
반응은 썩 신통치 않지만 황금! 황금! 더 많은 황금을 미끼로 내걸자 제법 사람들이 모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사파라는겁니다!
하란은 정파고,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사파적인 인물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하란에게 우호적이고 배신하지 않을만한 인물이 말이지요!
***
"혹시 간부를 맡고 싶으시다 하는 분 계십니까?"
사파를 휘두르려면 사파가 해야지! 간부 몇 명을 뽑아 특별대우해주며 자경단의 실무를 일부 맡긴다면, 아마 터져나올 불만이 간부들에게 향하지 않을까?
자기네들끼리 물어뜯고 싸우라 이거야! 나는 저 위에서 공명정대한 리더 역할을 맡을게! 일단 사람을 뽑아보자.
***
놀랍게도 그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앗! 한 명이 손을 듭니다.
"조장 하면 금을 더 받는거요?"
하란은 그 말에 뭔가를 깨닫습니다.
이들은 오직 돈을 보고 몰려든 이들입니다!
***
그러자 사람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기 시작합니다.
신채훈은 영 마음에 드는 장면이 아닌지 고개를 돌리고 금소협은 돈....돈이...하면서 남은 황금을 세고 있습니다!
어떻게 정할까요?
***
"지원자분들 이리 나와 보시오."
그녀는 지원자들을 따로 분류한다. 여기 온 사람들의 숫자를 고려해 간부를 얼마나 뽑을지 생각해본다.
"뭐...선정에 대해선 공명하고 정당하며 합리적인 방법이 있지요. 여기서 가장 강한 N명을 뽑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생사결이 아니라 선정 시험이니 서로 크게 다치게 하지 마라고 덧붙이는 그녀였다. 어차피 무링뇌들의 중원이다. 정파라도 이런 방식을 고깝게 보진...않겠지?
***
N명이 뭐냐는 말은 무시하고 아무튼 제일 강한 순으로 3~4명 정도를 뽑는다고 공지합니다!
자.
지금부터 서로 싸워라.
촤아아앙!
그 말에 한 사람이 바로 칼을 꺼내들더니 옆 사람을 바로 공격해갑니다.
하란은 놀라고, 신채훈은 그럴 줄 알았다는듯 자연스럽게 하란을 뒤로 빼내고 금소협은 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파!
***
어이쿠야. 그녀는 신씨에게 몸을 기대며 몸을 물렸다.
"크게 다치게 하지 마시오!"
저들이 듣기야 하겠나만, 경고는 확실히 해야지.
***
그 말을 들을거라고는 말을 한 하란도 기대하지 않게될 폭력의 현장입니다.
싸움은 한창 이어지더니 한 일곱명 정도가 피칠갑을 한채로 숨을 몰아쉬고 있습니다.
...최소 일류입니다!
***
신씨 3명만 추려봐용.
***
신채훈은 고민합니다.
"남아있는 자들의 실력은 거의 엇비슷합니다. 누구하나 특출난 자는 없고 서로 먼저 공격하거나, 비장의 수를 숨겨왔던 사람이 압도적으로 유리할겁니다."
신채훈마저도 고르는데에 어려워보입니다!
"저로서는...누굴 골라집을 수가 없군요."
***
"그렇다면야 지금으로선 아무나 골라잡아야겠군요."
그녀는 다시 뒤돌아 후보들과 무림인들에게 말하기 시작한다.
"전 4명 정도라 했는데, 7명이 나와버렸군요. 하지만 그 실력을 활용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
그녀는 아무나 세 사람을 지목하면서 말한다.
"그대들 셋은 즉응예비대로 삼도록 하겠습니다. 쉽게 말해 5분대기조라 이겁니다. 현장 인원만으로 버거운 사태가 보고되면 그대들이 가장 먼저 달려가 지원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간부급으로 대우할 것이고, 수당도 그만큼 있을거라 약속하겠습니다."
***
그 셋은 당연히 반발합니다!
"아니 간부 시켜준다면서! 차별입니까!"
수당도 대우도 간부급으로 해준다니까..왜 말귀를 못알아먹는걸까요!
5대기라니, 그 힘든걸 시킨다니!
그래서 그런걸까요?
***
"정 그러시다면야 여기서 3명을 또 쳐내야합니다."
"저는 상관없지만 여러분들은 상당히 힘드실 것 같은데.."
그냥 즉응예비대 하던지..3명을 또 밀어내던지..맘대로 해라! 봉급 줄 사람 줄어들면 이쪽이야 편하지.
***
다들 서로 눈치를 봅니다. 무림인의 체면상 먼저 내가 나서서 그리하겠소! 라고 할 수가 없군요...
이를 타개할 좋은 방법이 있으면 좋을텐데요!
대기라는 이름은 너무 노예처럼 굴리겠다는 의미가 강하니, 이름이라도 바꿔보는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하란의 머릿속에 번뜩 스쳐지나갑니다.
동쪽의 어떤 반도에서 심심하면 해대는 이름바꾸기를 대륙의 기상으로 해내봅시다!
***
대충 전근대 중2병 감성으로 해태단? 악인을 구별해서 들이받는다는 그 해태!
***
이제부터 간부가 된 이들을 제외한 실력있는 자들을 호칭하는 명칭은 해태단 입니다!
머쓱한듯 쑥쓰러워 하고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걸린 것이 즐거워 보입니다...
이것이 1000년 전의 낭만 감성...
***
"그리고 한가지 더 안내드릴게 있는데 보호비 명목으로 시민들에게서 돈 뜯지 마십시오."
"그들이 자발적으로 주는 거라면 상관없으나, 칼을 들이밀어서 어쨌든 자기 손으로 줬으니 자발적이다 이런 소리 하시면 안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그런 짓 하다가 들키면 감봉이든 해고든 경중에 따라 처벌이 있을 것이며, 그것을 신고한 자에겐 소정의 포상금이 있을 것이니 그리 아십시오."
그럼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그녀는 사람들을 나누고 조장을 배정하며 각각 구역을 할당하기 시작한다.
***
그들은 그 말에 충격을 받고 반발하려 하지만, 그러기에는 하란이 나눠준 황금이 너무나도 컸습니다.
그들은 불만없이 하란의 말을 잘 알아듣습니다.
본격적으로 자경단이 구성되었습니다!
이제부터 2공자의 이름으로, 석가장의 권역은 점점 치안 안정을 되찾아가기 시작할겁니다.
***
"그래서..금소협?"
"아까 금을 열심히 세던데. 우리가 이 자경단을 며칠이나 운영할 수 있겠습니까?"
***
"1년은 무리지만, 그 아래라면 너끈하니까 크게 걱정은 마세요!"
아직 스레 시작하고 계절이 하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요!
***
"좋아. 순조롭군요. 이제 자경단 돌리면서 개방 친구들을 기다려 봅시다."
가져다바친 황금이 얼만데! 언제쯤 정보가 오는 거얏!
- 죽기 싫다면 싸워 이겨라
- 자동플레이? 어림없죠~?
벌써부터 사고가 터졌나봅니다! 무기를 들고 싸우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
어이쿠야. 이게 무슨 일이래.
***
그 곳에는 잡양아치들 수십이 자경단 둘을 상대로 자강두천을 벌이고 있습니다!
자존심 강한 두 양아치들의 대결...!
한 쪽은 일반인이고, 다른 한 쪽은 수준낮은 무림인이라지만. 삼류 무인 둘로도 양아치 수십을 상대로 선전 중입니다!
도울까요?
***
"...쳇."
자경단이 선전중이다. 여기서 끼어들면 몫을 가로챘다고 화내겠지. 흑흑.
"자경단 멋지다! 꺄아!"
그래서 그녀는 바람잡이 역할로 만족하기로 했다. 자경단의 존재가 널리 알려져야 득을 볼테니까.
***
옆에서 누가 응원하자 다들 황망한 표정으로 하란을 쳐다봅니다.
아 뭐요. 뭐. 뭘 그렇게 보는데. 사람 부끄럽게 만들지 말고 하던거나 마저 하셔들!
하란이 눈을 찌푸릴 때, 자경단원 하나가 기어코 머리통에 몽둥이 일격을 허용하고 맙니다!
이런!
***
응? 머리에 한 방? 저거 괜찮은 건가?
조금 불안한 느낌이 든다. 그녀는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주고 한 걸음씩 다가간다.
잘 싸우더니만 설마 자경단 무너지나요 아 설마 무너지나요~!
***
한 명이 그렇게 쓰러지자 남은 한 명도 위태위태합니다!
도우려면 지금 뿐입니다!
***
이건 원래 해태들이 해야 하는데. 에라 모르겠다. 그녀는 촹! 하고 지팡이검을 뽑아든다.
암만 수가 적다지만 무림인이 일반인한테 밀리다니. 믿고 맡겨도 되려나 몰라.
그녀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칼을 찔러 들어간다.
***
파앙!
검을 뽑고 내지르는 것만으로도 사람 하나가 죽을 수 있습니다!
하란, 살수를 쓰시겠습니까? 저들은 하란의 공격을 맞고 버틸만한 무림인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입니다!
***
반쯤뽑았던 칼은 다시 집어넣고....적당히 지팡이로만 때려줍시다.
***
적당히 지팡이를 몇 번 휘두르자 어느새 절반에 달하는 양아치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습니다!
이것이 일류무인의 위엄이지만, 하란은 그저 탐탁치 않은 불쾌감 뿐입니다....
그리고, 하란의 시선에는 누군가가 급히 빠져나가는 것이 잡힙니다.
흠?
다리가 이 모양 이 꼴인지라 직접 쫓을 수는 없겠지만, 신채훈이 활약할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쫓을까요?
***
"신씨? 신씨! 저 자식 좀 잡아주세요!"
질투나게, 잘도 뛴다. 그녀는 도망가는 양아치에게 고춧가루를 살짝 뿌려 신채훈을 돕기로 했다. 지팡이 안에서 칼날이 고개를 밀어올린다.
***
스릉.
어지간해서는 잘 뛰쳐나오지 않는 하란의 칼이 오랜만에 세상 공기를 맛봅니다. 하란의 손가락, 그리고 검면이 부르르 떨리더니 곧 기괴한 울음소리를 만들어냅니다!
거대한 동물이 내는 울음소리를, 쇳소리로 표현한 것 같은 느낌.
들을 때 마다 항상 새로운 소리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리는 귀머거리를 제외한 누구에게나 평등한 법이지요!
끄아아악!
주변에 쓰러져있는 양아치들, 그리고 평범한 주민들도 귀를 막고 고통을 호소합니다! 도망치던 놈도 어쩔 수 없이 달리다 넘어지면서 귀를 틀어막습니다.
얼레, 너무 셌나?
하란이 머리를 긁적거릴 때 신채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망자의 목을 쳐 기절시키고 하란의 앞으로 끌고옵니다!
***
좀 셌나. 머쓱타드...^^ 하지만 신씨는 멀쩡해 보이니 상관없다.
"어딜 그리 급히 도망가시나. 뭐 켕기는 게 있나?"
찰칵. 칼을 다시 집어넣곤 기절한 양아치를 톡톡 두들겨본다. 찬물 같은 걸 끼얹나.?
***
찬물? 그런 것은 무림인들에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현대의 기준으로는 상남자 중에서도 상남자. 마초중의 마초. 그들보다도 더한 사람들!
신채훈은 아무렇지도 않게 칼집으로 그를 일어날 때 까지 후드려팹니다!
자연스레 그 양아치는 얼굴에 빨갛고 파란 파스텔톤으로 분칠을 한 채로 일어나 비틀거립니다.
"그, 그만...그만....말할게요. 말할게요!"
조금 불쌍해보이지만 뭐 어쩔 수 있나요!
***
"그래. 뭔진 모르지만. 빨리 켕기는 걸 말해보거라."
"만약 말하지 않겠다면 나랑 같은 방에 가둬두고 하루 종일 교룡의 울음소리를 들려주마."
***
"히...히익..."
왜인지 옆에 있던 신채훈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 같지만, 히익이라는 소리는 눈 앞의 양아치가 내뱉은게 맞습니다!
"알...알리려고...고수가 끼어들면 자신에게 알리라고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예...예...그렇습죠...그래서..."
흠, 배후의 냄새가 솔솔 나는군요.
***
"....신씨는 왜 그렇게 놀라요?"
그거 들어도 아무렇지 않을 거면서! 아무튼 그녀는 시선을 다시 양아치에게 돌린다.
"고수가 끼어들면 자신에게 알려라! 그럼 내 다음 질문이 뭔지도 알겠구나."
그녀는 짖궂은 미소를 짓는다.
***
"그건, 그건....그건...."
그가 그렇게 말하기도 전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옵니다.
저벅저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얼굴, 그리고 그를 호위하는 여러 무사들.
아!
장례식장에서 하란이 직접 마주한 얼굴은 아니지만, 호위받고 있는 인물을 하란은 압니다. 장례식장에서 곁눈질로 사람들을 지나쳐가며 보았을 때, 총관과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인물입니다.
대리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측근이겠군요?
"요즘 길거리가 소란스럽다하여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라 하였더니만...쯧쯧."
양아치는 벌벌 떨고 있습니다.
"웬 버러지가 이상한 입을 놀리려 하고 있군."
"아, 아닙니다! 저는 맹세코 그 어떤 말도!"
퍼억!
하나의 생명이 허무하게 져버렸고 신채훈은 곧바로 칼 손잡이에 손을 올려놓습니다.
"쓰레기는 치우고 살아야지. 안그런가? 자경단장? 맞던가?"
***
웅성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낮익은 얼굴이다. 낮익고 불길한 얼굴이다.
절명해버리는 양아치에 그녀는 두 걸음 물러났다. 신씨처럼, 지팡이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동감입니다. 민초에게 행패나 부리고 피를 빠는 짓은 당장 멈추게 해야죠?"
입은 아직 웃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
"그렇지. 아주 훌륭한 생각이야."
그는 쓰러져 벌벌 떨고 있는 양아치들을 보고 혀를 쯧쯧 찹니다.
"그래서 우리가 조만간 움직이려고 했는데, 그 자경단인지 뭔지가 우리 할 일을 대신해주고 있더라고. 고맙네."
탁. 포권을 취하며 예의를 차린 그는 그제서야 본심을 꺼냅니다.
"이제부터 치안을 유지하는 일은 석가장의 정당한 주인이 되실 분의 이름으로 할테니 걱정말고 가서 푹 쉬시게. 고생 많았고."
***
"저 사람 경지가 얼마나 될까요?"
속닥거리며 우선 그녀 또한 포권을 취했다. 자경단 노릇 그만두라고 그럴 수는 없지!
"우리 사람들을 모아오십시오. 가능한 한 많이. 조장급과 해태단은 무조건 와야 합니다."
삼류 자경단원에게도 언질을 준 그녀는 눈 앞의 사람에게도 말을 꺼낸다.
"호의에는 감사드립니다. 허나 이런 잡스러운 일은 저희에게 맡기시고, 대협께서는 더 큰 일을 도모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
그의 실력은 절정, 그리고 그를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는 자는 하란과 엇비슷한 수준입니다!
삼류 자경단원은 급히 어딘가로 달려갑니다! 저쪽에서 제지하려하지만 신채훈이 눈을 부라리자 이를 아득 갈면서 멈춰섭니다.
"껄껄. 낭자께서는 농도 지나치시군. 이 곳이 누구의 영역인데 남의 손에 맡긴단 말인가?"
낭자라?
하란은 이 단어가 뜻하는 모욕적인 뜻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이건 일부러 하는 격장지계로군요!
***
'조장들과 해태단이 온다면...해 볼 만할지도. 우선 시간을 끌어야 해.'
"남이라니요? 저 또한 2공자님 이름으로 이 일을 하는 것인데.."
그나저나 뭐? 낭자? 네 얼굴에 피가 낭자해지고 싶구나? 이런 모욕 많이 듣긴 했어도 마냥 웃어넘기기도 힘들단 말이지..
"장주 자릴 차지하려 민생따위 나몰라라 하시던 분들이 이제와서? 너무 속보이는 것 아닙니까?"
"땅 속에서 썩어 문드러진 제 다리가 웃겠군요."
***
"칼을 찬 낭자께서는 말씀도 거치시군!"
그는 오히려 껄껄 거리며 웃어넘깁니다. 화가 나는군요! 마! 내가 말이야 어! 느그 총관이랑! 어! 장례식장에서 어! 얼굴도 보고! 말도하고! 다 해쓰 임마!
하지만, 2공자를 돕는 상황에서 현재 하란의 위치는 이 정도일 뿐이란 말입니까!
"2공자는 석가장주가 아니지 않소?"
웃으며 그는 2공자의 이름을 부정해버립니다.
"이 곳은 석가장의 영역이니, 석가장의 주인이 될 사람이 다스려야지. 그리고 무릇 가본이 굳건해야 민생도 안정을 찾는 법...이런 쥐새끼들을 더 몰고 오셨구려?"
마침, 하란이 불렀던 이들이 도착했나봅니다! 해태단이 왔습니다!
***
"쥐새끼라니!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모인 해태같은 이들이올시다."
그녀는 맞받아친다.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졸하신 전 장주는 인자하신 분이라 들었는데, 그 분이 가시자마자 대책없이 싸우기나 하는 사람들이 딱히 가본을 잘 잇는 것 같진 않고...흠.."
***
"이리 비협조적으로 나온다니. 그리 굴어서 좋을 것은 없을 것이오만?"
상대가 드디어 불쾌감을 표시합니다!
***
"우리 솔직히 말해봅시다. 제가 가란다고 예 갑니다 하리라 기대하신 건 아니잖아요?"
2공자의 지분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전투에 목마른 오너의 괴전파가 맞물려 그녀는 저 자들과 싸움을 이미 결의한 상태였다.
"그리고 저 또한 그쪽이 말로 해선 가지 않으리라 여기고 있습니다."
***
"이리 호전적이어서는. 쯧."
그도 싸움을 피할 수는 없다고 여겼는지 천천히 허리춤에 매고 있던 검을 끌러냅니다.
"너가 저 낭자를 맡아라. 나는...손님이 기다리고 계시는 것 같으니."
신채훈은 하란에게 귀엣말로 속삭입니다.
"소저, 저 자는 제가 맡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
"암요. 저자의 호위들은 저랑 해태들이 어떻게든 하겠습니다."
그너는 등 뒤의 해태들에게 소리친다.
"이 어찌 알맞은 때입니까! 우리가 뜻을 모으자마자 저 간악한 무리가 사방을 어지럽히고 있으니!"
"악인을 가려내는 해태의 뿔로! 마땅히 저들은 가슴팍에 구멍 뚫리리라!"
***
딱히 정의롭지도, 의협심있지도 않은 사람들이지만 돈을 준 고용주가 싸우라니 일단 싸워보려는 자세를 취합니다!
"혀놀림이 제법이구나!"
그리고 사파놈들은 하란의 의기넘치는 연설에 감흥을 받은듯 칼로 화답해줍니다!
이런 경우없고 예의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하지만 그런 끔찍한 무례와는 상반되게 깔끔하고 정돈된 일검입니다. 하란은 절뚝이면서 바로 검을 맞받아칩니다!
....다리가 불편한게 너무 크군요!
***
"흣!"
쇳덩이가 쨍 하고 비명을 지른다. 중심을 잃을 뻔 했다. 근육에 힘을 준다. 자세가 되돌아온다. 그녀는 빠르게 생각했고, 빠르게 답을 낸다. 일단 총관의 측근은 신씨를 믿을 수 밖에 없다. 우선 그의 호위를 모두 제거하는 걸 우선으로 한다.
"해태들! 무리하지 말고 붙잡아 놓는데만 집중하시오!"
그런데 어느 쪽이 더 많지? 아군? 적군? 아, 일단 눈 앞의 적부터 치우고 보자. 그녀는 내기를 끌어올린다. 단전의 내단에서 맥을 타고 화기가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평소보다 더 세게!
적과 칼을 엮은 그녀는 칼날을 타고 찔러 들어가기 시작한다. 일단 한 명을 빠르게 없애버려야 한다.
***
하란은 재빠르게 주변의 상황을 파악해봅니다! 숫자는 비등! 머릿수는 한 둘 정도 저 쪽이 더 많습니다!
석가장은 본래부터 이 곳을 지배하던 자들. 끌어모을 수 있는 인력도 당연히 저 쪽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당장 수에서 크게 뒤쳐지지 않는다는건 행운일겁니다.
단전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며 하란의 검이 앞으로 찔러들어갑니다!
허나, 하란은 다리 한 쪽이 없습니다. 그 위력은 당연 반감됩니다!
콰아아앙!
상대는 검을 들어 어렵지 않게 용진세를 막아냅니다! 공력이 꽤 실려있던 탓인지 두어걸음 뒤로 주춤거리지만 그는 곧 다시 자세를 잡습니다.
하란은 혀를 차며 수세를 취합니다. 그는 하란의 불편한 다리를 눈치채고 그 쪽을 집중해서 공략해오기 시작할겁니다. 대비하십시오!
***
마음이 조급해진다. 작전의 아귀가 맞아떨어지게 하려면 당연히 조급해야한다. 하지만 조급함에 휘둘리면 안 될 노릇이다.
"나 같은 놈에게 패배한다면 네 놈 얼굴도 꽤 볼 만해지겠구나?"
놈이 내공을 소모하게 유도해야 한다. 소모전으로 끌고 가면 질 수 없는 싸움이다. 하지만 시간이 문제야 시간이...
그녀는 방어 태세를 취한다.
***
휘리릭!
사파의 검답게 정파와는 다른 변칙적인 검로로 적의 검이 날아듭니다! 하지만 교룡린은 정면 전체를 방어하는 기술. 하란은 그리 어렵지 않게 적의 공격을 방어해냅니다!
터어엉!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찌르기. 이를 위해 하란은 고개를 살짝 피했고 곧이어 상대는 하란의 검면을 코등이로 밀어벌이면서 달려듭니다!
이런! 하란은 멀쩡한 발을 뒤로 빼며 버텨보지만, 상대는 집요하게 발기술로 하란의 다른 발을 노리기 시작합니다! 검은 여전히 맞대고 있는 상황!
이것이 사파의 무공입니다!
***
이거 참 기분이 나쁜데 실전이라서 뭐라 따지지도 못하겠고.
아무튼 저 놈의 발재간을 막을 수는 없다. 막을 수가 없다. 어떻게 막으려고? 굳이 못 하는 걸 하려고 발버둥치기보단 할 수 있는 걸 확실히 하는 게 더 낫다.
그녀는 재빨리 검날을 가로로 눕힌다. 그리고 한쪽 팔을 쭉 뻗는다. 놈의 귀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카아앙!
사실 난전에서 이런 기술 함부로 쓰면 곤란한데. 신씨와 측근은 신경도 안 쓸 테고, 해태와 호위들은 뭐...너도 나도 공평하게 한 방이겠지..괜찮겠지...
***
상대가 변칙적으로 다가오니, 이럴 때는 정공법으로 승부하는 것도 훌륭한 선택입니다. 상대가 다리를 걸고 넘어뜨리려는 순간에 하란의 검은 옆으로 뉘이면서 상대와 검을 맞댑니다.
마치 쇠를 긁어대듯이 검을 빼냈고 불똥이 튑니다!
캬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
들을 때 마다 다른 소리가, 듣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교룡의 울음이 바로 귀 근처에 터져나옵니다!
"끄으으윽!"
하란은 땅바닥에 엎어졌고, 상대는 뒤로 빠지면서 귀 한 쪽을 손으로 막고 있습니다. 휘청거리는 것이 제법 타격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근처에 싸우고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쨋거나 아주 잠깐이지만 기세를 끌어왔습니다! 기회입니다!
***
이크, 역시 피아 구분이 안 되니 함부로 쓰기 힘든 기술이다. 가능하면 불리한 상황을 뒤흔드는 수로만 사용하는 게 좋겠다. 가능하면 말이지....
아무튼 놈이 틈을 보였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바로 저 놈을 죽이든 기절시키든 전투 불능으로 만들어야 한다.
당장 바닥에 엎어진 자세지만 이럴 때도 쓸 수 있는 기술이 있지.
"하아아!"
그녀는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앞으로 쭉 내뻗는다. 검 끝에 기가 모이기 시작한다.
***
화르르르르르륵.
마치 불꽃이 모이고 용과 비슷한 무언가의 형상을 취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모인 기운은 잠시동안 검봉에 머물다가 앞으로 포효를 내지르며 쏘아져나갑니다!
그것은 화살보다도 빨랐고, 맹금의 급강하보다도 위력적이었습니다.
콰아앙!
그는 한 쪽 손으로만 들고 있던 검으로 용검세를 막으려하였으나 하란의 일격은 곧 그의 검을 부수고 가슴을 꿰뚫고 지나갑니다!
뒤의 어느 집안의 담벼락에 크게 구멍을 뚫으며 형상은 흩어졌고 하란은 지친 얼굴로 절뚝 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크륵...크르륵..."
상대는 아직 숨이 붙어있는지 피를 흘리며 무어라 말을 하고 있습니다.
"....!"
신채훈과 겨루고 있던 자는 호위가 죽는 모습을 보고 놀란듯 눈이 커지더니 손을 빠르게 놀리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신채훈이 곧 밀리기 시작합니다!
***
어느 책사가 그랬지. 전투 계획이란 전투 시작 후 5분을 가는 적이 없다고. 신채훈이 밀리는 것을 보자 그녀의 마음 속에 불안이 싹튼다. 간극에서 차이가 나는 건가?
남은 내공은 48년. 아직 여유가 있다. 어쩌지? 신씨를 도와야 하나? 계속 호위를 제거해야 하나?
"미치겠네 정말!"
결국 그녀가 택한 것은 신씨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측근이 신씨에게 집중하고 있을 때 사각을 친다!
***
그의 얼굴에 분노가 서려있습니다. 그가 쓰는 무공은 하란이 보더라도 절학이라고 해도 무방한 기술들입니다! 모용세가의 비인가전들을 잇지 않은 채훈으로서는 다급하게 간신히 방어를 하고 있는 상황. 하란이 다가오자 신채훈은 급하게 안돼! 하고 외칩니다.
그렇지만 이미 하란은 그의 사각을 향해 검을 날리려드는 상황, 그리고 하란은 자신에게 날아드는 기이한 각도의 검격을 보게 됩니다.
촤아아아악!
기술을 쓸 시간도 없이, 하란은 목을 얇게 베이면서 뒤로 넘어집니다!
"쯧!"
그리고 그는 땅을 박차며 몸을 한 바퀴 돌렸고 채훈의 검을 내리치면서 뱀처럼 미끄러지듯이 달라붙더니 땅에 발을 다시 대는 순간 한 쪽 손으로 신채훈의 옷깃을 잡고 옆으로 넘겨버립니다!
채훈은 힘으로 버텨보려하지만, 상대의 내공이 훨씬 월등했습니다!
차기 석가장주로 가장 유력한 자의 측근. 어디에서나 보이는 평범한 조무래기의 관상이지만 그가 측근이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그는 사파의 무인답게 싸울 줄 알았고 능력이 있으며 교활하기까지 합니다!
처음부터 상대가 하란이 접근해 들어오기를 위해 보여준 함정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흑호난지평정의 발동이 취소됩니다!
"감히! 감히!"
그는 하란을 노리고 검을 내리찍어 들어갑니다! 신채훈이 급히 팔을 뻗습니다!
콰직!
그의 손에 검날이 박혀들어가고 검이 빠져나갑니다!
"큭..."
채훈은 다른 손으로 검을 고쳐잡고 하란이 일어설 수 있을 때 까지 자리를 지킵니다!
하란!
당신의 장점은 압도적인 무력이 아닌, 지능과 전략에 있습니다. 부디 이를 잊지 말아주기를 바랍니다! 상대는 정정당당한 정파의 무인이 아니라, 온갖 풍파와 사투를 경험해온 진짜배기 사파 무인입니다!
***
?
뭐야.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게 절정 무림인...? 그녀는 뒷골이 섬칫해짐을 느꼈다. 손바닥으로 목을 훑으니 뜨뜻한 것이 묻어나온다.
"이런...미안합니다. 제가 괜한 짓을."
그녀는 서둘러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의 본분을 깨닫는다.
"정말 미안합니다. 조금만 더 버텨 주십시오. 호위들을 모두 죽이고 해태들과 다시 오겠습니다...망할.."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답지않게 이런 실수를 하다니! 이 싸움에서 만약 패배한다면 그건 다 나 때문이야! 죄책감이 어깨를 누르지만 망설일 틈이 없다. 그럴 시간마저 허용하지 않게 상황은 급박했다.
그녀는 해태와 싸우고 있는 다른 호위를 향해서 다가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동시에 전세를 파악한다.
***
전력은 백중세입니다! 하란이 하나 끼어드는 것으로 분명 전황은 유리하게 바뀔겁니다!
문제는, 아무리 이 전황이 나아져도 저 측근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저 측근이 모조리 이 길거리를 피로 물들일거라는 사실이지만요!
"어딜 가느냐!"
그는 하란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신채훈이 그 앞을 가로막습니다!
***
'일단 해태들을 최대한 보존해야 해!'
뭐가 되었든 이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당장 싸움에 뛰어들어 판을 뒤집어야 한다.
그런데 그 다음은? 일류 무림인 여럿과 상처입은 절정 고수 하나로 저 자를 어떻게 이기나?
어떻게? 어떻게!!
***
하란의 뉴런은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레볼루숑!
압제자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뉴런들의 난!
그러니까, 아무 생각도 안떠오른다~이 말입니다.
***
일단 해태랑 싸우고 있는 호위 아무나 골라서 기습 협공을 가합니다.
***
하란의 검이 앞으로 찔러들어가고 적 하나가 쓰러집니다!
"살수를 그리 쉽게 쓰다니!"
정작 자기들도 남 불구만드는 무시무시한 검격들을 내보이고 있으면서 뭐가 문제라는건지 원! 하란은 침착하게 해태단원 하나와 등을 맞댑니다.
다리가 불편한 하란으로서는 뒤를 보호해줄 사람이 필수적이니까요!
***
"좋아. 우리는 둘이군요. 둘이서 하나를 조지는건 나름 쉬운 일이겠죠."
"우리가 여기서 한 사람을 더 조지면, 다른 해태들도 둘 씩 짝지어 적 하나를 간편히 죽일 수 있을 테니, 그 연쇄반응을 일으켜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이른바 부분적 수적 우세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아군 5명과 적 5명이 5개의 1대1로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적 하나를 잽싸게 죽이면 2대1 하나와 1대1 셋을 만들 수 있다. 두 명이서 한 명을 죽이기는 쉽다. 그렇게 하나를 더 죽이면 2대1 둘과 1대1 하나를 만들 수 있다. 마치 나란히 세워둔 나무도막이 줄지어 쓰러지듯.
그녀가 첫번째 호위를 죽임으로서 연쇄는 시작되었다. 이제 이 연쇄를 가속시킬 일만 남은 것이다.
***
콰드드득.
뒤 쪽으로 돌아가 적을 급습하자 또 다른 하나가 쓰러집니다!
"더 빨리!"
채훈이 다급하게 외칩니다.
서걱!
신채훈의 앞섬과 귓볼이 잘려나갑니다!
***
"혼자인 이는 눈 앞의 적을 붙드는데 집중하시오! 2인1조로 짝을 지은 이는 혼자인 이를 빠르게 지원하시오!"
그녀는 큰 목소리로 외친다. 신씨의 외침이 그녀의 마음을 덜컥 내려앉게 한다. 제발 생각나라 생각나! 필승의 방법!
***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만 같습니다.
힘을..원하는가...?
필승의 방법, 그것은 단 하나 뿐입니다.
저 측근을 쓰러뜨리면 됩니다. 하지만 그는 신채훈을 밀어내면서 하란마저 쓰러뜨릴 수 있는 강자!
그렇다면 아주 기초적인 차륜진으로나마 시도해보는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이게 성공 확률이 낮다는걸 하란도 알고 있다는 것이지요!
합격진도 맞춰본 적 없는 이들이 함께 차륜진이라니! 그렇지만 '필승'을 위해서는 이 방법 말고 없습니다!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 차륜진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나. 지난주 안 한 것까지 지금 굴러라 뉴런
***
뉴런들의 노랫소리가 들리십니까...?
아아...
압제자의 말로란...
***
"서둘러 호위들을 마무리하고 저 놈을 둘러싸라! 차륜진이다!"
말은 차륜진이지. 한번 합도 맞춰보지 못한 사람들로 차륜진을? 차라리 해태들을 제물로 삼아 신씨에게 틈을 만들어주는 게 낫지.
꼭 저 자를 죽이는 게 승리만은 아니지만, 쫓아내든 설득하든 일단 무력의 우위는 점하고 들어가야 한다!
***
마침, 하란의 도움으로 적은 측근 혼자 남았습니다!
측근은 이를 악물고 신채훈을 몰아붙입니다.
촤악...!
검이 휘둘러지고 신씨의 가슴이 얕에 베이며 피가 흐릅니다. 신채훈은 몇 발자국 물러나서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하란의 명령에 차륜진을 펼치기 위해 일단 해태단의 포위를 합니다만, 하란의 눈에도 너무 엉성합니다.
젠장!
***
그 때 머릿속에서 작은 생각이 떠오른다. 통할까? 안 통할 것 같은데? 에이 젠장. 지금 뭐라도 안 하면 죽도밥도 안되겠네. 하자!
"3공자! 3공자는 지원을 약속했는데 지금 어디서 뭐 하는 거야!"
그녀는 자기 옆의 해태를 보고 다그친다. 이 사람이 눈치껏 알아먹어야 할 텐데..
"또 어디 기루에서 술 쳐먹고 있는 거야 뭐야! 빨리 가서 데려오세요!"
아아 교룡님 하늘에 계신 스승님 저를 도와주세요.
***
측근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신채훈을 몰아칩니다!
하란의 방법이 먹혔는지 안먹혔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
그녀는 아까 말 걸었던 해태를 데리고 살짝 뒤로 빠진다.
"한 번 말할테니 잘 들으시오. 질문하지 마시오. 3공자가 오는 것처럼 저쪽 가서 깽판을 치시오. 여기서도 미친놈이다 지르는 소리가 다 들리게!"
***
해태단원들은 끽해야 일류 무인입니다!
절정 무인인 3공자의 깽판을 마땅히 흉내낼 수는 없습니다!
***
저자가 자기의 야바위를 믿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다급한 상황에 별 기대는 않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생각해보았다.
***
하란의 말을 측근이 믿게 하기 위해선 실재하는 위협이 필요합니다.
단순한 말로는 수십년 동안 석가장을 위해 칼에 피를 묻혀온 절정 무인의 감을 속일 수 없습니다.
측근은 현재 근처에 신채훈을 제외한 그 어떤 절정 무인도 없다는 것을 기감을 통해 알고 있는 상태이고 절정 무인이 아니라면 그를 막을 수 없으니 하란의 계략에 오히려 코웃음 치고 있는 중입니다.
즉, 야바위를 믿게 하기 위해선 또다른 절정 무인이 주위에 얼쩡거려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건 조언인데, 하란 같은 경우에는 상대방들을 '현대의 일반인'으로 기준을 두고 작전을 짭니다. 하란 스스로에게도 말이죠.
상대나 하란이나 평범하게 30분 달리면 지치고, 무기 오래 들고 있으면 팔이 아프고 그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절정 무인은 혼자 자동차를 머리에 이고 달릴 수 있고, 일류 무인이면 자동차 정도는 깔끔하게 베어낼 수 있습니다.
이 것에 맞춰서 작전을 다시 짜보세요! 원칙적으로 이 세상은 레스주들에게 유리합니다.
***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
모두가 예상하는대로, 없습니다...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하나의 방법을 고집하기 보다는 새롭게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
뉴런들은 그들의 여왕에게 만수무강을 빕니다!
어떻게...어떻게 해야할까요.
차륜전? 지금 이 꼬라지를 보고 차륜전이 성공할거라고 생각하는 머저리는 캡틴밖에 없을겁니다!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합니다.
필요한 것. 필요한 것. 필요한 것!
도화전을 사용하는 방법이 가장 유력합니다. 이 방안을 채택할까요?
지갑전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현금과 현금이 만들어내는 막대한 힘으로 적들을 찢어발기는 이 시대 최고최강최흉의 전사들입니다.
그리고 하란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막강한 도화전의 힘을 빌어 저 상대를 이길 수도 있겠지요.
부상을 입든 말든 신경쓰지 마십시오!
'금창약' 이면 모든게 괜찮아집니다!
***
화가 난다. 내가 겨우 이 정도였나? 신씨는 저렇게 죽도록 싸우고 있는데 나는? 뒤에서 노닥거리고 있다.
"이 망할 놈이 남의 일에 끼어들어선....!"
이러면 안 되는데. 이성이 마비되는 것 같다. 하지만 생각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
배후를 공격해 들어갑니다!
터엉!
"흥, 다리도 하나 없는 계집이 뭘 할 수 있다고...!"
그러자 채훈이 앞으로 빠르게 검을 날려듭니다.
"이 놈이!"
신채훈이 뒤로 크게 물러납니다!
...신채훈에게 무얼 해줘야 그가 이길 수 있을까요?
***
신씨에게 소금창약을 써줍니다?
***
소금창약을 이용해 회복한 신채훈입니다. 하란까지 가세하자 백중세에 도달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여전히 무언가 부족합니다.
하란, 스스로의 무력을 상승시키는 것도 분명 매우 훌륭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하란을 돕는 이의 무력이 상승하는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스승님은 말씀하셨다. 남을 부강하게 하는 자는 패망한다고. 그럼에도 스승님은 그녀를 거두어 부강하게 하였다. 냉혹함과 순진함이 공존하는 기묘한 인간상이었다.
주변인을 강하게 하는 것. 최상책은 아니지만 차선책은 될 수 있다. 자신이 달리지 못한다면 옆의 사람을 달리게 하고 자신은 업히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일 테니까.
그렇게 달리던 사람이 자신을 내동댕이치고 더 업히는 것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며 관계가 뒤집힐 수는 있겠지만, 어느 길에나 위험부담은 있는 법이다. 중요한 건 부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해소할 방법 아니겠는가?
***
소환단 하나를 구매합니다!
***
"신씨! 받아요!"
갑자기 주머니가 불룩해져서 손을 대보니 출처불명의 소환단이? 그녀는 영문도 모르고 그것을 신씨에게 던진다.
***
하란은 급하게 소환단을 신채훈에게 던집니다. 신채훈은 놀랍게도 그걸 입으로 받아...그대로 꿀꺽 삼킵니다.
지금부터 아주 잠시간의 시간이 신채훈에게 필요합니다.
어떻게해서든 총관이 신채훈을 공격하지 않도록 만드십시오!
***
버텨라 조금만 더 버티면..!
"모두 쳐라!!"
어설프게 합격진 비슷한 걸 치고 있는 해태들에게 소리치면서 검을 치켜든다. 어떻게든 저 놈을 붙잡아야 한다. 사람 몇이 죽는 한이 있어도.
***
한 꺼번에 와아! 하고 달려듭니다. 하란은 제일 늦었고 해태단 중 키가 큰 자가 제일 빨랐습니다.
그리고 그는 달려들자마자 칼에 베여 쓰러집니다!
"이런 잡스러운 것들을 데리고 나를 막겠다고?"
그는 명백한 비웃음을 입가에 달고서 신채훈을 향해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갑니다.
"...꼬, 꼭 싸워야 되는거유?"
돈을 보고 무력을 팔겠다한 사파인들이 바로 해태단입니다. 그들 동료가 너무나도 쉽게 쓰러지자 그들이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조금만 더 피해가 커지면 그들은 도망칠겁니다!
***
뉴런아 저 자를 어찌 막을꼬
***
하란은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3초 뒤에 검을 맞을지도 모른다면 적을 지금 상대해서 압도적으로 이기는 방법같은건 없다는걸 하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해야하는 것은 해태단이 동요하지 않도록 그들의 사기를 끌어올려주는 일입니다.
물론 무림인들에게 저 놈은 혼자고 우린 다수다! 라는 말은 잘 통하지 않는 편이니.
신채훈을 믿어보라고, 거품을 섞는 것은 어떨까요?
거짓은, 적에게 먹히지 않지만 아군에게는 먹힐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
그녀는 말을 되는대로 내뱉기 시작한다,
"이보쇼들! 저 사람이 누군줄 아시오?! 요녕제일검의 직계란 말이오!"
"아까까지만 해도 저 놈과 맞서며 버티는 실력을 보지 못했소? 지금 영약을 복용한 상태니 우리가 조금만 더 버틴다면 능히 승리할 수 있소!"
"아니, 그리고! 여기서 꽁지 뺀다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 마라! 자기 자손을 내팽개치고 도망친 놈들이라고 요녕제일검이 살려줄 것 같으냐! 죽기 싫으면 싸워 이겨야 한다!"
***
하란이 했던 말 중에서 가장 유효했던 것은 바로, 요녕제일검의 직계라는 단어였을 겁니다.
총관의 측근마저 흠칫헀으니까 말이지요!
"요, 요녕제일검? 모용세가의?"
해태단원들은 잠깐 술렁이더니, 사기충천해져서 다시 맞서기 시작합니다!
정확히는 여기서 도망쳤다간 닥쳐올 모용세가의 보복이 두려운 것이겠지만요! 하란은 자신만만한 미소로 측근을 쳐다봅니다. 그는 이를 악물고 하란을 노려보고 있습니다.
움찔.
그리고 왜인지 신채훈이 부끄러워 하는 것 같은데 기분탓이겠죠!
***
"막아! 막아!"
조금만..제발 조금만 더 교룡님 제발!
***
당신의 내공, 10년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
그러면 받아라 용검세! 계속 몰아친다!
***
차그르르르륵! 측근은 검을 옆으로 흘러넘기면서 발재간을 부리려했지만 해태단의 놀라운 육탄공세로 하란은 꼴사나운 일을 면했습니다.
그리고, 화악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
모두가 뒤를 돌아봅니다.
신채훈이 눈을 감은채 서서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싸움의 끝이 보입니다!
***
"그가 일어난다! 우리가 이겼다!"
"쐐기를 박아라!"
***
해태단원 중 한 명은 팔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신채훈은 소환단의 내공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데 성공합니다!
그가 눈을 뜨자 오묘한 현기가 일대를 잠식합니다. 절정의 극에 다다른 자들만이 보일 수 있는 압도적인 공능!
파아앙!
신채훈은 하란을 향해 검을 날리는 측근을 향해 뛰어들어 검을 휘두릅니다!
하란은 드디어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니면 좀 더 무리를 해볼까요?
***
조오오았어! 모험과 도박은 불리할 때 시도하는 것. 승기를 잡은 상태에서 굳이 무리할 이유는 없다. 그녀는 방어 태세를 취하며 뒤로 물러난다.
그러고보니 누가 팔이 잘린 것 같은데. 뭐 어때. 다리 잘리고 이 짓 하는 사람도 있는데...
***
까가가강!
절뚝거리는 다리지만 하란은 간신히 균형을 잡습니다. 무공이 뛰어난 덕분일까요, 하란의 실력이 격전 중에 꾸준히 상승한 결과인걸까요?
"흐압...!"
하란이 시간을 벌어준 시간에 맞춰서 하란이 옆으로 넘어지다시피 빠지자 그 위로 채훈의 강력한 일격이 날아듭니다.
쾅!
공성추가 성문을 두들길 때 나는 소리가 이러할런지. 하란의 수법과는 정반대로 호쾌하고 너무 큰 소리입니다. 순간적으로 귀가 먼 사람들도 있는지 흐르는 피를 보고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크흘..."
측근은 우물거리더니 퉷. 하고 피가 섞인 침을 뱉어냅니다.
승기는 우리 쪽에 넘어온 상황이라지만 아직 방심할 수 없습니다. 상대는 교활하고 경험많은 사파의 무인입니다.
"이럴 때 도망친다면 목숨이야 부지하겠지만 저기 쓰러져있는 아가씨와 같은 꼴이 될 것 같군."
그가 킥킥 웃으며 중얼거립니다. 무언가를 눈치챈 신채훈이 표정을 굳히고 하란의 앞을 가로막습니다.
***
"포기하지 마. 다리 하나 팔 하나 없어도 검은 잡을 수 있을테니."
짐짓 뭐라고 말하면서 그녀 또한 신씨처럼 뭔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럴 때 도망친다면 목숨이야 부지하겠지만 저기 쓰러져있는 아가씨와 같은 꼴이 될 것 같군....그럼 그 꼴이 될 바에야 동귀어진하겠다는 거냐!
그녀는 허둥지둥 다시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저 자식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다시금 화기를 북돋는다. 센 거 한 방이 날아올 것 같다.
***
하란의 직감은 정확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말했다시피 '교활하고' '경험많은' 사파의 무인입니다!
촤악!
그의 발목이 이상하게 꺾이면서 착지하더니 놀랍게도 그대로 관성과 탄성을 이용해 몸을 바닥에 쓸다시피 누워 회전합니다!
"미친!"
신채훈마저도 당황합니다!
화아악!
모래먼지가 짧은 순간 하란과 신채훈의 눈을 가리고 옆 쪽에서 짙은 혈향과 뜨거운 액체가 튀어오릅니다.
쉭...!
뒤에선 그르륵, 하고 숨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흐..."
그리고 뒷통수에서 느껴지는 따끔따끔한 살기. 하란은 방어자세를 취한채 몸을 옆으로 최대한 날렸습니다.
핏....!
옆구리부터 가슴과 어깨께까지 적의 검이 훑고 지나갔고 뜨거운 고통과 함께 하란은 쓰러집니다! 잘리지는...잘리지는 않았습니다만...!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하란의 눈에 신채훈의 검이 적의 검을 쳐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하란이 미리부터 방어를 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신채훈이 늦지 않게 대응한 덕분에 반신불수는 면했습니다.
모래먼지가 천천히 걷히기 시작하자 신채훈은 그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합니다!
적은 아까와는 다르게 상당히 내공을 소모한듯 밀리기만 합니다!
하란의 내공도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
"으...끅...젠장.."
그나마 해태들이 죽어갈 때 단장은 뒤에서 손가락만 빨았잖소! 하는 소린 들을 일 없을테니 다행이다. 하마터면 평생 침대 위에 누워있다 죽을 신세가 될 뻔 했다.
그녀는 상처를 부여잡고 상체를 힘겹게 일으킨다. 신채훈이 일방적으로 몰아치는 형국이다. 그럼 해태들은? 얼마나 죽고 얼마나 다쳤지?
***
단 한 명도 살아남은 이가 없습니다!
하란은 큰 부상을 입었고 신채훈도 이번 싸움이 끝나면 한동안은 정양해야 합니다.
퍼억!
채훈의 장이 적의 명치를 강타합니다!
***
"어처구니가 없구만..!"
떼몰살이라니! 그녀는 조금이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신채훈이 없었다면 그녀 또한 살지 못했으리라.
아무튼 계속 앉아있을 수는 없으니 또 다시 일어난다. 넘어져도 일어나는 오뚜기 하란! 칼을 굳게 쥐고 계속 둘의 싸움을 주시한다.
***
한 번에 쫙 빠져버린 피 때문에 시야가 조금 어질어질하지만 둘의 싸움을 끝까지 지켜봅니다.
퍼어어억!
신채훈의 다리에 강렬한 각이 날아들었고, 그대로 신채훈의 검이 목을 길게 그으면서 그는 쓰러지고 맙니다!
스으윽.
그의 몸이 허물어지는 걸 보는 동시에 하란의 눈도 감깁니다.
***
저는그
만정신
을잃어
버리고
만것이
었습니
다.
***
하란은 정신을 차립니다! 덜렁거리던 살들은 깔끔히 봉합되었습니다. 몸에 여전히 힘은 없고 피로하지만 무공에 분명한 성취가 있습니다! 그리고 총관의 측근. 그것도 절정의 무사를 물리쳤습니다! 희생은 컸으나 하란은 이제부터 석가장이 위치한 강서~호남 사이 일대의 치안을 틀어잡습니다!
"오. 일어났나."
그리고 깨어난 하란을 반기는 것은 신채훈과 금소협. 마지막으로 2공자입니다.
- 산음로 대소동
- "ㅅ..스승님?!"
헛소리를 하며 깨어난 그녀는 머쓱해졌다. 난 또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줄 알았지.
"뭐, 신씨가 잘 있는 걸 보니 우리가 이긴 것 같네요."
많은 걸 배웠던 싸움이었다. 특히 자기가 아직 애송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더 많이 배우고 경험을 쌓아야 진정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긴 거 맞죠?"
사실 아직 정신이 흐리다. 그녀는 했던 말을 또 한다.
***
신채훈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고 금소협은 뭐라 말을 하고 싶은데 옆에 있는 누구 때문에 말을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 2공자는 하란의 말에 대답합니다.
"그래. 이겼다."
....도와주지도 않던 놈이 뭔 일이래.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다."
첫번째 대사건의 분기가 시작됩니다!
히야...드디어...드디어...진행률이 50%를....(주르륵)
***
"드디어 저희와 뭔가 해 보실 생각이시군요. 영광입니다 공자님."
전까진 잡아먹을 듯 굴더니, 이번 일로 어느정도는 그녀를 믿게 된 것 같다. 좋은 일이다. 목표에 또 한 걸음 나아간 셈이다.
"어떤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
"...일단 주변 사람들부터 물리도록 하지."
신채훈과 금소협은 어깨를 으쓱이곤 밖으로 나갑니다.
"나를 그 일을 빌미로 끌여들였으니 잘 알 터. 내 연인의 이야기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하란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구출에 실패했다. 남쪽으로 오려던 길이 막혀서 어쩔 수 없이 북쪽으로 향했다더군. 그녀를 이 곳으로 데려와야 한다. 감숙에 말이다."
아니 감숙이라니! 완전 정반대인데요!
***
"이 저택 어딘가에 계실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설마 여기서 감숙까지 또 걸어가야 하는겨? 으아악! 그녀는 마음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해야 하는 일이지만 걷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다...
"일단 믿을 수 있는 정보통을 수배해놨습니다. 근래 사건에 대한 정보는 모조리 긁어모으라 일러두었습니다."
"혹여나 연인 분의 것으로 짐작되는 정보를 받으면 즉시 공자님과 공유토록 하겠습니다."
혹시나 연인의 정보라고 곧대로 말하면 사실 연인에 대해서 알 사람은 다 안다! 하는 느낌이라 말을 돌려서 했다.
"헌데 그 분은 감숙 어디에 계신지 아십니까? 설마 확실한 보호 없이 그저 호위 한 명이랑 여관방을 전전하고 있다면..."
***
2공자는 침묵합니다.
.....진짜 확실한 보호없이 호위 한 두 명이랑 여관방을 전전하고 있다고? 정말로?
***
"....빨리 회복해야겠군요."
하란의 상상은 현실이 되고..불길한 예감은 항상..
"그리고 길이 막혔다 함은, 혹시 누군가가 연인분을 노려 쫓고 있다는..?"
***
"...그녀의 본가 쪽에서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녀를 유폐하고 있었다. 신임할 수 있는 이들을 보냈고 그들이 구출까지는 성공했지만...강서궁문의 추적이 집요하다."
놀라운 일이군요! 강서궁문이 정파 88문의 말석 중 하나라고는 하나 엄연히 문파! 석가장의 일부중에서도 일부라고 할 수 있는 2공자의 개인 세력만으로 그들의 감시를 뚫고 구출해냈다니!
"강서궁문이 무림첩을 돌리려고 하는 모양이다. 무림첩이 돌고 무림맹 또는 감숙의 명문이 한 둘이라도 나서기 시작한다면 끝장이네."
만약 그대로 연인이 감숙에서 붙들린다면...2공자는 더 이상 가망이 없습니다!
외세에 휘둘리는 자를 어찌 가주로 올리겠습니까?
***
"곤란한 상황이군요..."
정파인은 사파인들처럼 삭삭 썰어버리기가 마뜩찮다. 죽이는 것 자체는 그렇다 쳐도 그 이후에 찾아올 후폭풍이 신경쓰인다. 그곳으로 가면 분명 강서궁문을 필두로 한 무림인들과 맞서게 될 텐데 이걸 어쩌나.
"우선 저는 회복에 전념하겠습니다. 몸이 다 낫는대로 곧장 감숙으로 향하도록 하겠습니다."
***
2공자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
"....."
아직도 정신이 멍하다. 뭐라고 말을 하려는 것처럼 입을 달싹이던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당연히 죽은 건 아니다.
***
휴식을 취합니다...
***
하란은 끄응. 하고 자리에서 상체만을 간신히 일으켜 세웁니다.
꼭 온 몸이 한 번 찢어졌다가 붙은 느낌입니다. 화끈화끈한 격통이 몸 곳곳에 남아있지만 다행히 참을만 합니다.
2공자는 떠나고 신채훈과 금소협만이 남아있습니다. 신채훈의 동공은 떨리고 있고 금소협은 잠시 고민하더니 동경(거울)을 가지고 하란에게 건네줍니다.
헉...설마? 설마? 하란은 격전의 와중에 자신의 어여쁜 미모가 망가진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인채로 동경을 쳐다봅니다.
그 곳에는.
하란과 똑닮은 옅은 붉은 빛의 머리카락과 눈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
축하합니다!
그간의 경험과 조건의 충족으로 교룡심법과 교룡검법이 6성에 올라섭니다!
교룡심법
- 6성 화룡주 : 눈과 머리색에 붉은 빛이 감돌기 시작하며 불꽃에 입는 피해가 절반으로 떨어진다.
교룡검법
- 6성 화룡포 : 검을 일직선으로 내지른다. 화火의 기운이 담긴 내공은 유형의 기운이 되어 적들에게 타격을 입힌다.
***
"왜..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요?"
그녀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눈도 그렇고, 머리카락이 꼭 북적들처럼 붉게 변해버린 것이다.
"아니, 내 머리가, 내 눈이, 이게 무슨..."
이 변화가 비급의 영향이라는 걸 깨닫기까진 그녀에게 약간 시간이 필요했다.
"이거 피가..덜 씻긴 건가요?"
***
금소협과 신채훈의 침묵으로 하란은 이게 진짜 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내가 색목인이라니!
내가 색목인이라니!
***
내가 색목인이라니! 충격에 빠진 그녀는 일 이야기를 함으로서 현실에서 도피하기로 했다.
"2공자님이 말하기를, 감숙에 가서 요인을 구출해 오랍니다. 원래 그 쪽에서 오려다가 길이 막혀 못 오고 있다 합니다. 아직 잡히진 않았지만 강서궁문의 추격이 집요하며, 강서궁문에서 첩을 돌리기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을 겁니다."
생각해보니 묘하네. 강서궁문과 장강검문의 구원이 원래의 목적 아니었나? 뭐, 모용세가의 영향력 투사의 발판을 마련하는게 궁극적 목표긴 하니까. 괜찮으려나..괜찮겠지...
***
"강서궁문을 말입니까? 그들은 상대하기가 지극히 까다로운 자들인데..."
금소협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합니다.
"금소협의 말대로, 강서궁문이 정파 88문 중 말석이라지만 그들의 포위망은 무림일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평상의 무림인들과는 다르게 활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탓에 쉽지 않을겁니다. 거기다가 모용세가인 우리가 갔다가 들키기라도 한다면..."
모든 명분을 잃게될거고 모용세가에서는 하란이랑 관련없다고 주장하게되겠지요...
***
"저도 그게 고민입니다. 이 곳에 오기도 전에 개방도들이 이미 절 알아보던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해 봐야겠습니다."
교전을 회피하고 거부하면서 정체를 들키지 않는다. 뒷공작을 부려서 요인을 빼낸다. 말은 쉽지. 그러다 보니 자그마한 이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침 여름이군요. 습하고 비가 자주 오니 눈곱만큼은 다행입니다. 아교가 녹고 활이 늘어질테니."
말 그대로 눈곱만큼 다행이다. 무림인이 쥔 활인데 습기 좀 먹었다고 못쓰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
금소협과 신채훈은 생각하지 못했다는듯 손뼉을 짝 칩니다.
"생각하시는게 마치 관군의 장수들같으십니다."
약하긴 하지만 효과는 없지 않을거라고 하는군요. 갑자기 오버테크놀러지 적인 활과 화살이 나타날리는 없으니까요!
***
아니 이게 먹힌다고? 감사합니다 킹성계 당신이 옳았어..
"아무튼 상황을 되짚어보면, 우리는 정체를 들켜선 안 된다. 가능한 한 교전을 피해야 한다. 쓸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다."
"최대한 신속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말입니다. 빌어먹을. 보법을 배워놓던가 해야지."
그러고보니 개방과...아니 개방은 강서궁문이랑 싸우려고 할 것 같지 않은데. 그렇다면?
"2공자의 수하로 위장해서 하오문과 은밀히 접촉하면 어떻겠습니까? 이 일이 우리 단독으로 이룰 수 있는 일 같지는 않습니다."
***
"하오문 말입니까...?"
신채훈은 떨떠름해합니다.
이 사람들 이래뵈도 정파인이라구요!
***
"정파인의 탈을 쓰고 강서궁문과 싸울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특히 저는 눈에 너무 잘 띄지 않습니까."
얼굴 예쁘다고 자뻑하는 건 아니고. 다리 말여 다리!
"아니면 감숙은 한창 축제 중이라던데 탈을 쓰고 광대 노릇을 하며 숨어봐도 좋겠군요. 셋 다 몸 쓰는 일은 잘 할테니까요."
광대는 다리 하나 없어도 어색하지 않을 기분이다.
***
하란의 말에 둘은 난색을 표합니다.
명실상부 명예와 근육을 부르짖는 정파인들답게 이런 모략과 음모의 세상에서는 한없이 나약해지기 마련이지요!
금소협은 경제, 신채훈은 무력이라면 음모와 모략은 하란의 영역입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
"아니면 차라리 이렇게..."
그녀는 뭔가 생각났는지 멀쩡한 한쪽 종아리를 뒤로 접었다.
"다리가 둘 다 없는척을 해볼까요. 저랑 싸우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다리만 노리는 것처럼, 누군가 저를 찾는다면 얼굴도 인상착의도 내팽개치고 다리 하나인 사람만 죽어라 찾지 않겠습니까. 그건 바꿀 수 없는 특징이니."
"추적자가 '미사하란은 외다리다' 라는 생각에 매몰될테니 쉽게 속일 수 있을지도요. 정파인이 설마 제 치마를 들추라고는 하지 않겠죠."
***
신채훈과 금소협은 좋은 의견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문제는 남아있습니다.
신채훈은 절정의 고수. 정파에서는 나름 이름과 명성이 있는 인물에 속합니다.
...이럴 때 모용세가에 도움을 청해보는건 또 어떨까요?
***
아마 그녀 다음으로 식별키 쉬운 사람이 신씨다. 이 문제도 해결해야하는데..
"금소협, 이번엔 소협이 요녕에 다녀올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지금 너덜너덜하고, 신씨 또한 정양이 필요하니. 가서 신씨의 신분을 숨기는데 지원이 필요하다고.."
***
"그것만으로 충분하겠습니까?"
한 번 정도는 하란이 직접 모용세가에 보고를 올리는걸 금소협이 추천합니다.
***
"제가...직접?"
여기서 요녕까지 가기도 힘들고. 뭣보다 어르신 무섭단 말야... 하지만 잠깐 고민하던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그리하겠다고 말합니다.
***
한동안 호남 강서 붙박이 신세였던 하란은 드디어 대면보고를 위해 요녕까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안휘성을 넘어가는 과정에서 좋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란은 길을 가다가....
1. 귀여운 댕댕이를 봐서 기분이 좋아졌다.
2. 귀여운 야옹이를 봐서 기분이 좋아졌다.
3. 돈을 주워서 기분이 좋아졌다.
4. 잘생긴 남자를 봐서 기분이 좋아졌다. 왜인지 신채훈은 기분이 나빠졌다.
선택해주세요!
***
떼! 껄! 룩!
***
떼-껄-룩
고양이는 그냥 하란이를 쳐다봅니다. 만져도 봅니다!
꺄악! 커여워!
하란의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왜인지 행운이 따를 것 같군요!
여정에서 긍정적 다이스값이 1 늘어납니다!
그런데!
다이스는 하란이 미운가 봅니다.
감히 나는 없는 떼껄룩을 봐! 나만 고양이 없어!
산길을 걷는 와중에 왜인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집니다...
***
"지금..저만 이상한가요? 뭔가가 지금.."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
왜인지 음산합니다!
오늘은 납량특집이라도 되는걸까요? 여기저기서 음산한 배경이 펼쳐지는군요!
"산음로군요."
신채훈이 중얼거립니다.
그게 뭔데 씹덕아!
"...그렇게 보지 마십쇼. 산음로라고 해서, 산길을 걷는 와중에 갑작스레 나타나는 음기가 강한 길입니다. 특정한 장소에 있는게 아니라 떠돌아다니듯 여기저기서 나타나니, 귀신들의 집합체라고 하기도 합니다."
신기한걸 알고 있군요.
"귀신이요? 그런게 어딨어요. 죽어서 떠돌아다니는 망령들이 뭐가 무섭다고. 니들은 이런거 못하지?"
금소협이 어린티를 내는군요! 뭔가 괴상한 몸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장난을 치는 동시에 신채훈의 목소리가 겹쳐들려옵니다.
"이상한 짓만 안하면 얌전히 지나갈 수 있을겁니다. 가령 귀신들을 도발하는 행위. 그러니까 난 살아있는데 니들은 죽어서 이런거 못하지? 하면서 놀리는 것 등이 있겠군요."
그리고 하란과 신채훈은 금소협을 쳐다봅니다.
"아..."
"하........."
***
"별 신기한 것이 다 있군요. 귀신길이라..."
몸에 오한이 드는 기분이라 손바닥으로 팔을 문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녀는 ㅇ되었음을 알게 되었지. 금소협 때문에..
"또 하나 배우셨군요 금소협. 산음로에서 나대면 안 된다."
***
왜인지 누군가가 낄낄 거리며 웃는 환청이 들려옵니다.
실화냐?
"아니...귀신같은건 원래 잡귀들이라서..."
독실한 부디스트인 금소협이 뭐라 변명을 하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볼기짝을 칠 수 없다는게 유감이군요!
"...그런데 생각보다 별 일이 안일어나는군요. 보통 새카맣게 안개가 몰려오는데..."
평온합니다.
왜째서?
***
어디 두고보자 금소협. 볼기짝을 확...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금방이라도 귀신들이 낄낄거리며 덮칠 분위기였는데. 왜 평온하지?
"여의주 때문인가."
그녀는 작게 웅얼거렸다.
***
정답입니다!
어찌 감히 잡귀들 따위가 용이 있는 곳에 오고말고 하겠습니까?
그냥 안개만 뿌려서 자신들의 존재감만 내뿜고.....
생각해보니까 괘씸하네요. 쫄보들 주제에 감히 여의주를 지닌 인간 용용이 길을 막아서!?
선택하십시오!
1. 이 쫄보놈들을 데려다 강제로 천국(불교)로 보내준다.
2. 쫄? 쫄? 쫄?
***
네놈들은 강제 성불이다 인도환생하거라
***
인도인으로 환생하라니...좋은..건가?
아무튼 하란은 이 놈들을 성불(물리)시켜주기로 결심했습니다!
"어...진짜 하실겁니까?"
쫄?
신채훈은 그 말을 듣자마자 발작하듯 자기가 앞장서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중원무림인의 명예!
"...귀신은 좀..."
쫄?
금소협에게도 마법의 단어를 들려주자 용기백배해져서는 앞으로 나섭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귀신들을 어떻게 찾아서 성불시키죠? 신채훈도 금소협도 방법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
쫄? 쫄? 마법의 단어로 사기를 끌어올린다! 그런데 진짜 귀신을 어떻게 성불시키지? 내공 같은 걸 끼얹나?
***
"일단 무당 같은 사람이라도 찾아봅시다.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방법을 알고있을 테죠."
산길 근처에 서낭당이 있는지, 마을에 무당집이 있는지 찾아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인도환생은 천축국 환생이 아니라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
***
인도환생이 그 인도환생이 아니라니 왜인지 실망입니다.
산길 근처에 서낭당은 당연히 없고, 길을 걷다보니 마을 하나가 보입니다. 마을에 안개가 갑작스레 꼈기 때문인지 무당을 불러다놓고 사람들이 성토하고 있습니다.
거 귀신 성불(물리)시키기 딱 좋은 시간에 왔군요!
***
사람 무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하란. 겉모습은 진지해 보이지만 사실 무당이 자신을 보고 용신이든 용선이든 뭔가로 추앙해주지 않을까 하는 헛생각을 하는 중이다. 현실을 살아가세요 미사하란.
"저기 아저씨. 지금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녀는 일행과 함께 무당에게 모여든 사람들 사이로 끼어든다. 그리고 옆에 있는 아무 사람에게나 말을 걸어본다.
***
갑작스레 나타난 하란 일행을 보고 비나이다 비나이다.를 하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잠깐 경계합니다.
"무슨 일이라니. 동자신님을 모시는 분이 아니시오...?"
그리고 그의 눈은 일행이 차고 있는 허리춤의 검으로 향합니다.
"히..히익! 무림인!"
무림인보고 그렇게 놀라면 왜인지 우리가 나쁜 놈 같잖아요...
***
"...아니 저흰 아무것도 안 했는데."
무림인의 인식이란 칼 든 깡패일 뿐인가. 통탄할 일이로다.
"아무튼, 산길을 걸어가다 갑자기 귀신들이 들끓길래 이쪽으로 온 것 뿐입니다. 뭔가 아시는 게 없나 해서..."
그래서 무당 되시는 사람이 여기 계십니까? 그녀는 이어서 질문한다.
***
무당은 한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만나기는 어려워보이는군요.
"무...무림인이 이런데까지는 대체 어떻게..?"
...? 뭔 소리야. 있으니까 왔지!
***
"그냥 길 따라 왔는데요??"
이런 데까지 어떻게? 이런 데의 이런이 무슨 의미일까. 무언가 신령한 기운에 둘러싸여서 아무나 못 들어오지 못하는 마을이라는 건가? 아무튼 이 사람들 반응을 보니 평범한 마을은 아닌..느낌이다.
"아하..여긴 그냥 평범한 산골 동네가 아닌가 봅니다?"
그녀는 악동같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떠 본다.
***
"하하하하."
하하하하.
하란과 동네 주민은 서로 어색하게 웃습니다.
....
그리고 그걸로 끝입니다.
뭔가...뭔가 많이 어색한데요. 귀신이라고는 코빼기도 안보이고. 뭐지?
***
"웃지만 말고 말 좀 해 주십쇼. 예? 혹시 압니까? 그 동자신님이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저희를 이곳으로 오게 하셨을지?"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손은 솔직하구나! 그녀는 은근히 위압감을 주듯 지팡이를 자기 앞으로 딱 소리나게 고쳐짚는다.
***
"나....난 잘 모릅니다..진짜...진짜요..."
그는 뒷걸음질칩니다. 겁먹은 것 같군요!
이 사람 뿐만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수상합니다...
***
"모르면 생각을 하던지, 아니면 아는 사람을 불러오십시오. 저희가 떠올리는 걸 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여기 진짜 뭔가 이상하다. 동자신이 그녀가 아는 그 동자신이 아니라 황천의 뒤틀리고 타락한 동자신인가? 비밀스러운 사교도 마을을 지금 찾은 걸지도? 그녀는 좀 세게 나가보자고 마음먹는다.
"뭔가 생각나시는게 있으십니까?"
그녀는 느긋하게 지팡이를 잡고 엄지로 칼을 살짝 뽑았다 넣었다를 반복한다. 짤깍, 짤깍.
***
으와아악!
하고 그는 도망갑니다.
신채훈과 금소협은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습니다.
***
"신씨, 금소협. 정말 여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 사람뿐만 아니라 이 마을 전체가 말입니다. 어쩌면 아까 그 산음로를 우연히 만난 게 아니라, 이 마을로 들어오는 걸 막는 귀신떼를 우리가 뚫고 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보지만 말고 협조 좀 해 주세요."
***
신채훈과 금소협은 하란의 말에 고개를 갸웃합니다.
"무슨 소리하시는 겁니까 아까부터?"
...?
***
"네? 무슨 소리라니요. 저기 도망치는 사람....?!"
반응이 왜 이래? 마치 다른 곳을 보고 있던 사람처럼. 눈을 두어번 깜빡이던 그녀는 등골이 쎄한 느낌에 고개를 확 돌려 도망가는 사람을 다시 보았다. 설마 귀신을 보고 있던 건가?
***
하란의 눈에는 여전히 도망가고 있는 사람이 보입니다!
아니 실화냐?
***
"아니 저..저..!"
나한테만 보인다고?! 이 무슨 해괴한! 그럼 저 자는 진짜 귀신이라도 되는 건가? 그녀는 도망가는 사람이 더 멀리 가기 전 다급히 돌맹이를 주워 집어던져본다. 귀신 놈이라면 돌멩이 따위는 그냥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지나가겠지!
***
돌멩이를 던집니다!
딱!
"악!"
....?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군요!
***
"!??!?!?!"
상식을 거부하는 상황에 뇌가 정지당한 기분이다. 귀신이면 귀신이다! 하고 놀라기라도 할 수 있지. 돌멩이 맞고 아파하는 귀신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니, 저 사람이 안 보인단 말입니까? 돌멩이 맞고 신음소리까지 내는 저 사람이?"
그녀는 정신이 멍해져 들릴 듯 말 듯 작게 웅얼거렸다. 그리고 황급히 걸음을 옮기면서 사방팔방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
신채훈이 목을 가다듬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정말 실례되는 질문인걸 압니다만, 혹시 미치셨습니까?"
미쳤겠냐!
***
"아니 진짜...귀신에 홀렸나? 여러분들은 지금 이 주변이 어떻게 보이죠? 그냥 평범한 마을인가요?"
침착. 침착하자. 놀라서 허둥대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우선 자신에게 보이는 것과 일행에게 보이는 것을 대조해보자.
***
"...어...좀 낡은 마을로 보이긴 합니다만...사람은 없군요."
신채훈이 대답합니다.
금소협은 대답이 없습니다.
***
"...금소협?"
왜 말이 없습니까 무섭게. 진짜 귀신이 들린 건 아니죠? 정신 차리고 말 좀 해보십쇼!
금소협 눈앞에서 손가락을 딱딱 튕겨본다.
***
딱. 딱딱따!
아무리 손가락을 튕겨봐도 금소협은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금소협? 금소협이 누굽니까?"
넌 또 뭔 소리 하는거야!
***
"돌겠네 정말."
기다려, 당황하지 마라. 이건 귀신의 함정이다!
"신씨, 지금 여기에 우리 둘 말고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 자기 이름은 기억나요? 내 이름은? 우리가 어쩌다 여기 왔는지 기억나냐구요!"
그리고 금소협의 볼따구를 손바닥으로 챱챱 한다.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건 그거대로 낭패다.
***
"헛. 거참."
신채훈은 웃습니다.
"우리 둘 뿐입니다. 처음부터 그랬습니다만...전 신채훈이고, 미사하란님은 미사하란님이지요. 산음로에서 걷다가 이렇게 된 거 아닙니까?"
금소협은 여전히 멍하니 있을 뿐입니다.
***
차라리 나도 미쳐버리면 속은 편하려나.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인 법. 하지만 이대로 앉아있을 수는 없다. 빨리 대면보고 후에 돌아가야 2공자 여친님을 데려오던 하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정확히 모르는데!
"따라오십시오. 여기 무당을 봐야겠습니다."
그녀는 멍해진 금소협의 팔을 붙들고 질질 끌고가려 한다.
***
무당을 찾아갑니다!
무당은 방금 굿을 끝내고 땀범벅과 피범벅이 되어 쉬고 있습니다.
"....하란 소저!"
그리고 무당이 외칩니다.
네?
***
"당신은 또 어떻게 내 이름을...아니, 그런 건 이제 쓸데없는 질문이고. 여긴 뭡니까? 뭐 하는 곳이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그녀는 당혹스러움과 짜증을 담아서 무당에게 소리친다. 눈 앞에 있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은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
"무슨 소립니까 하란 소저! 정신 차리십쇼! 옆에 그 놈들은 대체 뭡니까! 저 금소협입니다! 하란 소저!"
...........?
***
'사실 이거 전부 가짜인거 아냐?'
오빠 저놈 누구야 하는 상황에 빠져서 정신이 혼미해지던 그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 생각이 있었다. 이미 알 수 없는 요술에 빠져버렸으니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게 안전하지 않나? 지금부턴 여러분을 다 가짜로 보고 이야기를 하겠어! 사람들은 모두 썩어빠진 해골뼉다구고 건물은 기둥뿌리가 폭삭 내려앉은 폐허겠지!
'그럼 어디서부터 요술에 빠졌나?'
산음로에 들어섰던 그 시점에 이미 요술에 빠진 것 아닐까? 그녀는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는 것처럼 기억을 되짚는다. 다시 그 길로 돌아가보자.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
산음로를 처음 돌아갔던 길...길....
어?
없네?
***
당연히 나가는 길을 순순히 보여줄 리가 없지! 나는 길을 찾든 만들든 하겠다!
대충 길이 있던 방향으로 죄다 부수면서 앞으로 나아가 본다. 돌이든 절벽이든..
***
다 부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아니!
왜!
어째서!
나 꽈찌쭈는 햄보칼 수가 엄써!
개그였지만,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라는걸 하란은 깨닫습니다.
지금 이건.
갇힌 상황입니다.
***
결국 그녀는 영혼빠진 금소협과 기억상실걸린 신채훈과 자기가 금소협이라 주장하는 무당에게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흑흑...
"후후후...이 잡귀 자식이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좀 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해야겠어. 멍하니 서 있는 것처럼 보이던 그녀는 기습적으로 검집 뽑지 않은 지팡이칼을 휘두르면서 신채훈을 공격한다. '진짜' 신채훈이라면 이 정도 공격에 당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녀를 역으로 몰아붙이겠지.
***
후욱...!
숨 한 번 쉴 짧은 시간에 하란의 검은 기습적으로 신채훈에게 향했고, 신채훈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나더니 그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집니다.
"네 년! 눈치챘구나!"
...어...사실 아무것도 몰라.
***
그냥 간만 보려고 했을 뿐인데 뭔가 얻어걸린 기분이다?! 신씨라면 과연 저런 표정을 지을까? 안 지을 것 같은데.
하지만 아직 방심할 수 없다. 저것까지도 속임수일 수가 있다. 그녀는 아직 검을 뽑지 않았다. 한 번 공격을 피한 것만으로는 가늠하기 힘들다. 조금 더 파 봐야겠다.
"이 잡귀놈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군! 더 이상 이승에 네놈이 발 붙일 곳은 없을 것이다!"
***
"네 년이 감히 우리의 숙원에 훼방을 놓아!"
뭔지 모른다니까!
하란의 공격에 신채훈은 간신히간신히 막아냅니다.
...신채훈이었으면 하란은 이미 땅바닥에 나뒹굴고서 죄송하다며 양 손을 번쩍 귀에 붙이고 벌을 섰을겁니다!
뭔가 구체적인데요?
***
"넌 신채훈이 아니다. 나는 그가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있지."
숙원을 방해해.. 정보가 술술 새는군. 이곳으로 흘러들어오는 사람들을 제물삼아서 악신을 소환하려는건지..
어쨌건 공격을 간신히 막고 있는 걸 보니 검을 완전히 뽑을 필요도 없겠다. 검을 뽑아서 다리 하나 잘랐는데 그게 금소협이면 낭패니까. 오히려 잘 된 건가. 그녀는 칼집을 살짝 뽑아서 금속 부분이 드러나게 했다. 계속해서 몰아붙인다!! 1식 표효!
***
기괴한 울음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신채훈의 몸이 비명을 지르며 양 귀를 손으로 막습니다.
어쩌지?
그런다고 안들리는거 아닌데!
"네 년이이이이이! 넨년인!!!!"
- 끼아아아아아아아악!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
이히히히 신령한 교룡의 울음소리는 효과가 직방이구만! 어딜 인간용용이 앞을 한낱 잡귀가 막아서느냐!
"신채훈은 이 소리를 듣고도 아무렇지 않았다! 사람을 속이려면 똑바로 해야지!!"
***
곧, 신채훈의 몸이 도자기처럼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가루가 되어 바스라집니다!
파스스스스스....
그리고 그 안에서는 회색빛의 희끄무레한 기체같은 것이 휘익 날아갑니다!
***
사방에 울려퍼지는 울음소리에 가짜 신채훈은 가루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튀어나오는 무언가! 저게 본체인가!
"어딜!"
놓칠 수 없다! 화룡포 한번 써보자! 받아라 파이어 브레스!
***
삐이잉!
왜인지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화르르르르르륵!
그리고 검에서는 강력한 불길이 일직선으로 그 희끄무레한 것에게 적중합니다!
그와 동시에.
하란은 눈을 뜹니다!
***
"잡았...아..어?"
이게 뭐지? 지금까지 난 무엇을?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끔벅거렸다.
***
그 곳에는 금소협이 쓰러져있고 신채훈은 땀을 비질비질 흘리면서 이를 악문채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습니다.
산음로라고 불렸던, 그 안개는 깨끗하게 사라지고 없군요.
......대체 무엇이었단 말입니까!
***
이건 '진짜'다!
"신씨! 금소협! 괜찮으십니까!"
신씨는 운기중인 모양이니 함부로 건드리지 말고, 그녀는 널부러져있는 금소협에게로 호다닥 달려갔다. 볼따구를 챱챱 두들기면서 금소협이 어떤 상태인지 확인해보려 한다.
그저 지나가는 해프닝으로만 끝날 줄 알았던 산음로였는데. 젠장!
***
금소협은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어...어떻게 해야...어떻게...
관련된 지식이 없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
"아아 진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금소협 죽으면 안돼는데! 전부 나한테 화살이 날아오는데!!
"금소협! 소협이 보고있는 모든 건 가짜입니다! 사람 몸 속에 숨어있는 회색 혼령을 찾아 죽이십시오!"
그녀는 다급한 마음에 그의 귀에 대고 소리친다. 꿈 속에서도 현실의 소리가 간간히 들리곤 하니까. 혹시나 효과가 있지 않을까...
***
금소협은 낑낑거리기만 할 뿐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이럴 때는...어떻게 해야...
아!
강제로 깨우면 되지 않을까요?
***
"에, 에라 모르겠다!"
그녀는 손을 높이 쳐들고, 금소협의 명치에 장을 꽂아버린다. 이걸로도 안되면 그 때는 죽음의 연주가 금소협을 찾아오리.
***
"소협. 금소협! 괜찮아요? 가만히 냅두면 진짜 영영 홀릴 것 같아서 그만..!"
그녀는 금소협의 등짝을 두들겨줍니다. 그래, 다 토해버리면 속은 편하겠지. 토해라 토해...
***
"크엑...크에엑..."
계속해서 속에 있던걸 게워내고 있군요.
그리고 금소협이 깨자마자 신채훈이 곧바로 눈을 뜹니다.
"금소협을 탈출시키셨군요!"
...신채훈은 아무래도 금소협을 탈출시키려 노력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 꿈인지 환상인지 뭔지 안에서요.
***
"이제 한숨 돌려도 되겠네요. 하이구야. 이게 도통 무슨 일인지.."
사실 두들겨 팬 것 말고는 없지만. 아무튼 모두 일어났으니 문제 해결! 만세!
"보통 산음로가 이런 겁니까? 무슨 숙원을 이루느니 뭐니. 귀신이 그런 말을 하더군요."
***
"저도 산음로에 대해서는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만..."
신채훈은 눈을 찌푸립니다.
"왜인지, 또다시 만날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합니다."
기상청 일기예보만 같아라! 채훈 레이더!
***
"끄으응. 또 오기 전에 빨리 도망갑시다. 안 그래도 할 일이 태산인데 여기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 석가장 쪽에서 또 무슨 대환장 대잔치가 벌어지고 있을지. 서둘러 보고를 마친 후 되돌아가야만 한다. 그녀는 금소협을 부축해 일으키면서 말했다.
***
가려던 찰나에, 훈려된 전서응으로 보이는 것이 하란의 머리 위에 맴돌다가 쓰윽 내려옵니다.
과연, 그 곳에는 편지가 묶여있었습니다.
펼쳐 읽어보니, 당장 돌아오라는 글이 써져있군요.
무슨 일이 벌어진게 틀림 없습니다!
***
"망할."
여기까지 와서 개고생을 했는데...흐윽...
2공자에게 돌아갑시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찾아뵈려고 했는데...
***
그렇다면 한 명을 모용세가에 보내면 되지 않을까요!
모용세가에서 지원을 보내줄지도 모릅니다.
***
"금소협. 몸 상태 안 좋은 건 알지만 그.."
"모용세가 가서 보고 겸 지원도 타오시고 잠깐 요양도 좀 하실래요?"
아아 이것은 마치 대학원으로 학생을 끌어들이는 교수의 혀...
***
금소협은 의기소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미안하다....하지만 너는 싸움에 도움이 안되서...미안하다...
- 도를 아십니까?
- 돌아갑니다!
2공자는 머리 끝까지 분노에 가득차있습니다.
"그 멍청이들이! 그 멍청이들이!"
어이어이. 화가 난다고 벽을 때려부수지는 말라구!
저건 말린다고 해결될게 아니니 하란은 그냥 가만히 그가 진정될 때 까지 기다립니다.
"후우...후우..."
장장 30분이나 근처 기물들을 다 때려부순 2공자는 반쯤 작살난 의자에 앉습니다.
"추태를 보였군."
신채훈의 몸이 가늘게 떨립니다. 무서운가 봅니다.
***
"여관방 전전하던 연인분이 결국 누군가에게 탈취당하셨군요."
2공자가 저렇게 날뛰는 걸 보면 안 봐도 뻔하지 뭐.
"강서궁문입니까, 흑천성입니까, 아니면 마교?"
***
"마교 놈들이오. 그 빌어쳐먹을 마교 놈들이! 감히!"
마교였군요!
....근데 대체 어떻게 감숙에서 마교한테 잡히는거죠? 하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군요!
***
"마교라면 베어넘길 때 명분 따위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 마교라 하셨습니까 지금?"
감숙에서 마교라굽쇼?! 어찌 그런 끔찍한 일이! 오호통재라!
"전 당연히 강서궁문일줄 알았건만. 어찌 감숙에서 마교가 그리 날뛰는 것입니까? 공동파는 손가락이나 빨고 있는 것입니까?"
그 사생아 자식이,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
"...정파인들의 일을 내 어찌 안단 말인가?"
2공자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합니다. 음, 확실히 그는 정파가 아닌 사파이니 이 쪽 일은 하란이 더 잘 알아야하는게 맞군요!
***
"일단 알겠습니다. 도대체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지."
일단 개방을 다시 찾아볼까? 금덩이를 쏟아부은지가 얼만데 아직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건 조금 괘씸하다.
"어휴..서둘러야겠군요. 실례하겠습니다."
***
개방도들이 있던 곳은 휑하니 아무도 없습니다!
띠용!
***
순간 이성을 잃고 2공자님처럼 주변 기물을 때려부술 뻔 했다. 이것들이 감히 먹튀를 해????
"후우..후우...진정...."
대강 앉을 자리를 가져다놓고 거기에 털썩 앉습니다. 그리곤 천천히 숨을 고르면서 분노를 가라앉혀봅니다..
***
과연 그들이 먹튀를 한 것인지 아닌지는 지켜보면 알 것입니다!
10%!
***
좋아 진정했다! 힘들 때 짜증내고 우는 건 삼류랬어. 버티는 사람이 이류고, 웃는 사람이 일류. 나는 일류니까 웃자 웃어. 그녀는 애써서 미소짓는다.
개방이 사라져 버렸으니 길거리에 떠도는 소문이라도 모아봐야겠다. 그녀는 길거리로 나간다.
***
길에서는 온갖 흉흉한 소문들만 돌고 있습니다.
천강단원들이...이 곳에 왔다는...끔찍한 소문이요.
***
이 마교 놈들! 간악한 마교 놈들!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 같다. 저놈들이 여기까지 밀고 들어왔으니 반드시 2공자님을 찾으려 들 것이다!
그나저나 자경단이랑 마교도랑 충돌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되는데..어떡하지?
***
아니나 다를까, 천강단원들과 자경단원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고, 자경단원들은 성을 내고 있지만 상대들이 절정 고수들이라 어떻게 칼을 뽑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
맙소사 절정고수. 그녀는 미간을 꾹 짚으면서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들에게로 다가갔다. 아무튼 자경단장으로서 중재는 해야 할 터이다.
"잠깐잠깐, 싸우지들 마시고. 제가 여기 책임자입니다만 혹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여쭤도 되겠는지요?"
절정고수야. 정확히는 절정고수'들'. 저번처럼 또 맞붙었다간 자경단원들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
천강단원들은 당당히 포교를 하고 있었다고 했고, 자경단원들은 어디서 더러운 사이비 종교를 퍼뜨리냐며 다시 성을 냅니다.
...그러니까 이건, 마혐이군요! 마교혐오!
***
"실례가 많았습니다. 저희가 그...포교..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지금 이 지역의 민심이 상당히 술렁거리는 중이니 혹 불필요한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마교도들에게 그리 말하곤 자경단원들을 말려서 떼어놓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천강단원들이 못 듣게요.
"저 치들은 천강단원 아닙니까. 중원에서 포교를 할 수 있도록 허가받은 자들이니 우리가 막을 수 있는 명분이 없어요. 싸워도 우리가 크게 불리합니다. 앞서서 시비를 걸지는 말고 저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면밀히 관찰하고 내게 전해 주세요."
"그래도 걱정은 하지 마요. 저런 사이비 종교. 포교 한다고 누가 듣긴 한답니까? 백날천날 해 보라지."
***
말했듯이, 그들은 절정 고수입니다.
"천마신교가 사이비라니!"
이런.
***
오 이런. 일이 점점 이상하게 돌아가네.
"아하핳ㅎ하 사이비가 그 사이비가 아니고 師理碑라는 말이었습니다. 스승으로서 다스리는 큰 기둥이라는 말이죠!"
그녀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입을 털어봅니다....
***
"우리는 무림인이자 동시에 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오!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믿을 것 같소!"
라면서 그들은 천마신교가 왜 훌륭한 종교인지 일장연설을 하려고 합니다.
자경단원들은 뒷목을 잡고 있습니다.
***
"자경단원들은 구역의 치안을 지키느라 바쁘니, 제가 들어두었다가 전파토록 하겠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경단원들에게 손짓을 한다. 대략 이런 의미일 것이다.
'너희들은 그냥 가서 할 일을 하세요.. 내가 상대하고 있을게...빌어먹을...'
***
천강단원들은 완고히 모든 이들이 당당히 천마의 말씀을 들어야만 한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아...절정고수라서 때릴 수도 없고...아...
***
빌어먹을....결국 이렇게 되는가...이 못돼먹은 마교도들이...
미안해 자경단원들아 너희라도 빠져나갔어야 하는데 흑흑..
일단 들어나 봅니다. 혹시나 쓸만한 정보를 무심코 흘리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
안타깝게도 하란의 상식 하에서는 그냥 말도 안되는 개소리일 뿐입니다!
그래도 들어볼까요?
***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그녀는 이 황당한 상황을 적에 대한 공부라고 여기기로 한다. 그렇다. 정신승리다.
수첩과 세필은... 필요없겠지. 그냥 외워버리면 그만이다.
***
아주 오래 전에.
중원에서 무를 숭앙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천하에서 가장 높은 고원에 자리를 잡고 서로 무를 추구했습니다.
그런 이들 중에서도 특출난 이들은 인세를 떠나 선인들이 거주하는 무인의 선계로 우화등선을 하며 넘어갑니다.
하지만 그 중 악인들은 절대 선계에 출입할 수 없었으니, 하늘을 향해 오르다가. 우화등선을 하며 날다가 선계의 입구에 도달하였다가 추락해 죽는 이들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악인들은 결코 이 선계에 들어올 수 없다며 말입니다.
그러자 악인들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어찌하여 악인인가? 사람이란 본디 악행을 하는 존재이지 않는가?"
그러자 선계의 선인들은 이리 대답하였습니다.
"그런 악의는 본디 교육을 통하여 억누를 수 있는 바. 그대들은 그런 능력조차 하지 않고 욕구를 풀기 위해 그런 명분에 기대어 숨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악인들은 다시 이리 대답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대들이 정한 규칙이 아닌가? 그저 우리가 그대들보다 약하다하여 핍박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재물을 탐해 집주인을 죽이고 재물을 훔쳐 달아났을 때, 그대들은 집주인의 손님으로 들어가 위선을 떨지 않았는가?"
"집주인의 손님이 되어, 집주인의 아내를 유혹하고, 그 딸을 희롱하며, 가정에 불화를 일으켜 집주인의 눈에서 피를 흘리게 하였으며 마침내 주인을 쫓아내고 주인이 되지 않았는가? 결국 그는 강에 몸을 던져 죽었는데, 피를 흘리지 않았다하여 그대는 선인이고 우리는 악인이란 말인가?"
그러자 선계의 선인이 이래 대답하였습니다.
"명예로운 선계의 선인들을 어찌하여 그리 욕보이는가? 그렇기 때문에 그대들은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강제로 문을 닫으니 악인들은 불같이 성토하였습니다.
"저 우라질 위선자들과 우리가 다른게 무엇인가?"
"우리보다 저 놈들이 더 악인에 가깝지 않은기?"
"어차피 저 놈들이나 우리나 똑같이 악인인데, 왜 저들은 선인이라 불리우며 선계에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저런 치들은 신선이 되는데 우리는 어찌하여 인간으로 남아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리하여 이들은 고원에서 신선들과 인간들을 합쳐 가장 오랫동안 수련한 자를 찾아갔습니다.
"고인이시여. 어찌하여 우리는 들어갈 수 없단 말입니까?"
그러자 고인이 그 말을 듣고 말하시길.
"둘 모두 악행을 하는 자들이니 그 정도에 차이가 있을 수 없다. 허나 그렇다고 하여 너희들의 죄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 그럴 시간에 차라리 반성을 하는 것은 어떠하느냐?"
그 말에 악인들은 분노하여 고인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고인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남아있던 고인의 어린 제자는 부단히 검을 휘두르기 시작합니다.
어린 제자는 점차 성장하여 절세고수가 되었으니. 사방신들을 모조리 잡아 죽였고, 중앙의 황룡마저 무릎꿇리며 고원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선계나 하계나 무를 추구한다는 자들 중에 악인 아닌자가 없도다. 제깟 힘에 취해 검을 휘둘러 재물과 색을 탐하니 그것이 어찌하여 무인이란 말인가? 통탄하도다. 그 어떤 가르침도 힘을 믿고 날뛰는 놈들을 통제할 방도가 없도다. 부처의 말씀은 민중을 압박하는 수단이요, 도교의 가르침은 선계의 타락을 이끌어냈으니. 천상과 천하의 그 어떤 가르침도 이들을 교화하지 못하였다. 이들은 그저 그들보다 강한 이들을 따른다. 그러니 본좌가 이들을 징치하고 가르칠 것이다. 나는 악인들을 잡는 악인이요, 마귀들을 잡는 마귀이니. 불교의 사천왕이 부처가 되었듯 나 또한 그리 되리라."
그리 말한 그는 곧 고원의 모든 악인들을 참했습니다. 악인들의 비명과 피는 선계에까지 울려퍼졌고 곧 선계에서는 그에 놀라 그를 잡기 위해 신선들을 내려보냈습니다.
너무나도 짧은 시간에, 신선들은 모조리 죽음을 맞이했고, 곧 그는 스스로 하늘로 걸어 올라가 선계의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갔으니.
고원의 살아남아있던 무인들은 그를 보며 모두 경외하기 시작하였으니.
스스로 하늘로 올라가 선계의 문을 부순이를 일컬어.
하늘에 오른 악마.
천마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라는 내용입니다!
***
"...다 들었으니 우리 이제 가도 되죠?"
우릴 놓아줘 이 마교도들아!
***
그들은 그러니까 천마신을 모셔야 한다고 아주 강하게 주장합니다.
....이게 뭔...
***
"그러며는... 절 어디로 데려가시겠다는?"
이게 말이야 빵구야. 저 뻔뻔스러움에 칼을 뽑을 뻔 했다. 하지만 잘만 하면 이 상황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잏을지도?
***
당장 함께가서 천마신께 제사를 지내자고 하는군요.
이것이...마교...?
***
포교를 할거면 논리적으로 주장을 펼치던지. 만난지 한 다경도 안 되어서 같이 제사를 지내자고? 마치 남녀가 눈 맞은 날에 물레방앗간으로 돌어가는 싸구려 소설 같군.....
"저..혼자 가면 안될까요. 제가 대표니까 일단 저랑 일 보시죠..."
***
요즘 싸구려 소설들도 만난지 하루 만에 가면 개연성 없다고 까이는 세상이 도래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릅니다.
얼굴이 곧 개연성이라는 것을...쯧...쯧....
천강단원들은 완강하게 모두 다 함께 가서 천마신의 은혜를 받자고 왁왁 소리를 질러댑니다.
그런데, 뭔가 저 쪽에서 제법 지위 있어보이는 사람이 온 것 같은데요?
***
'내가 경공만 익혔어도...'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질끈 깨물고 속으로 생각한다. 사실 역이용이고 뭐고 도망치고 싶어. 내 영혼을 이렇게 빼앗기는가. 산음로도 못했던 걸 천강단원이 하네.
그렇게 영혼이 입으로 반쯤 빠져나가던 와중 누군가 이 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어...높은 천강단원인가? 저 사람은 말이 통할까?
"저..저기 혹시.. 그 쪽 관계자 되십니까?"
***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아니, 그녀인가? 하란은 그 또는 그녀의 중성적인 아름다움에 흠칫합니다. 뭐 저렇게 사람을 홀리게 생겼담?
***
어어, 이 사람 뭐지? 저렇게 예쁜 사람은 나 빼고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그것보다도 남자야 여자야? 아아니, 아무튼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고!
"저희는 근방의 치안과 질서 유지라는 큰 일을 맡고 있기 때문에.... 이만 실례해도 되는 줄 알겠습니다."
아까 그 천강단원들이 아니라 저 미인을 보면서 이야기한다. 저 사람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하란 혼자 북치고 장구치면서 빠지겠다고 헛소리를 하는 꼴이란... 끔찍하군.
***
하란은 달아나기를 시도합니다!
아니 이것은 달아나기가 아니라 전략적 후퇴라는 것이다...
***
아이고.
천마님.
맙소사.
으이그 이 화상들아! 라고 당장에라도 외치고 싶지만 현사에겐 그럴만한 체력이() 없었다. 무엇보다 남을 혼내는 것도 익숙치 않고. 현사는 천강단원을 주욱 훑어보더니 반투명한 베일 사이로 생긋 웃어보였다.
"다음부터는 더 나은 포교를 보여주었으면 하네. 천마님께선 그대의 노고와 신앙심에 감복하시겠지만 가여운 어린 양은 무얼 알겠는가. 언젠가 필히 그분의 품으로 돌아갈테니 보내주거라."
상사가 빡칠 때 보여준다는 전설의 업무웃음을 받아라! 현사는 하란에게로 시선을 돌리곤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길이 바쁘실텐데 이리 시간을 빼앗아 죄송할 따름입니다, 소저."
***
현사의 호통아닌 호통에 하란은 그 난리통을 빠져나가는데 성공합니다!
천강단원들은 풀이 죽거나 뿔이 났습니다!
거의 다 된 밥이었는데!
라는게 그들의 공통적인 의견입니다. 허허...
***
감사합니다 킹갓제너럴엠페러예쁘신분. 하란은 단원들을 이끌고 황급히 빠져나온다!
"보셨죠 다들? 엮이면 어떻게 되는지? 멀리서 보기만 하고 건드리지 마십시오. 확 깨물리는 수가 있어요. 예?"
***
일단 단원들은 멍한 얼굴르 고개만 끄덕거립니다.
혼이 빠져나가기 일보직전이었군요!
***
"알겠으면 빨리 가서 일해요 이 사람들아!"
단원들의 등을 팡팡 치면서 다시 일터로 보내준다. 열심히 일해라 나의 유닛들!
그럼 이제 미행에 주의하며 슬슬 2공자님께 돌아가볼까. 금소협이 와 있을지도 모르니까.
***
일단 2공자에게도 갑니다!
- 총관은 이대로 괜찮은가
- "하이구, 벌써 천강단원들이 거리에 쫙 깔렸습니다.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제사에 끌고 가려 하는데.. 하마터면 저까지 당할 뻔 했군요."
"그 소저께서 마교에 잡히셨다 하니 덩달아 끌려오셨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좀 더 알아보아야겠군요."
***
"....천강단인가. 외당의 논외전력."
2공자는 입술을 질끈 깨뭅니다.
"우리의 전력으로 그들을 상대할 수 있겠는가?"
금소협은 아직입니다....
그 때 밖이 소란스럽습니다!
***
"정면으로는 어려울 것입니다. 절정고수씩이나 되는 자들이 마치 말단직이라도 되는 것마냥 직접 발로 뛰며 전도를 하고 있었으니."
그러니까 전에 그 총관 수하같은 놈들이 일개 발톱에 불과하다는...오호통재라..까딱하면 갈려나가겠는데.
"총관의 세력과 계속 맞붙여서 전력을 소모시킬 수 있다면 좋....?"
금소협은 아직 안 왔고.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여?
***
금소협이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금소협만 온게 아닙니다.
뒤에 누가 있는 것 같은데요?
쿵. 쿵. 쿵.
엄청난 거인입니다! 현대의 미터법으로 계산하면 2m는 넘어갈듯한 거대한 키의 거한!
끝으로 갈수록 진해지고, 두꺼운 눈썹. 그 눈썹의 끝은 길어서 눈꼬리까지 내려옵니다.
우락부락한 근육과 덩치. 그리고 거기에 맞지 않는 앙증맞아 보이는 장검까지.
저렇게 생긴건 하란의 지식 속에서 하북팽가 사람 말고는 없습니다......
금소협은 그의 눈치를 살살 보면서 얼른 하란에게 달려옵니다.
"저래뵈도 모용세가의 사람이에요!"
"이 몸이 모용배올시다!"
쿵!
몸집에 비하면 깜찍하고 앙증맞은 검으로 땅을 내려찍자 바닥에 깔려있는 돌덩이가 쩌적 하고 갈리집니다.
.....모용세가의 초절정 고수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 뒤에는, 모용배를 따라온 모용세가의 고수들이 눈에 띕니다.
모용벽 이 미친 할배가! 대체 뭔 짓을 저지르는겁니까!
***
금소협은 항상 그녀를 놀라게 한다. 이번에도 막 웃으면서 신씨를 때리려다가...의지로 참았다! 그녀는 밖으로 나가서 금소협과 뉴페이스들에게 황급히 달려간다.
"필경 세가에서 지원군으로 보낸 분들이시군요! 아이구 반갑습니다!"
이렇게 되면 행동의 폭이 크게 넓어지지! 원래는 분명 감숙에 슬쩍 들어가서 그 소저를 스리슬쩍 해 오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지원이 왔으니 어쩌면 다른 방법도 가능할지도 몰라! 그녀는 지원군들에게 포권례를 취하며 맞이합니다.
***
하란을 보고 거한이 포권지례를 표합니다.
"모용배라고 하오."
가까이서 보니 더욱 큽니다.
그 수준은 최소 절정. 최대 초절정입니다...
***
와 사람이 아니라 산 같다. 머리만 하얀색이었으면 영락없는 장백산처럼 보이겠다. 동이족 땅에 있어서 가본 적은 없지만.
"미사하란입니다. 대협과 원군이 오니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듯 합니다. 경쟁자들도 더 이상 저희와 2공자를 업신여기지 못하겠군요."
설마 이 사람들이 밤 쥐처럼 슬쩍 오진 않았을 거고. 주변의 경계를 산다는 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될 수 있지..
***
"음."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2공자의 얼굴은 파리하게 질려있습니다.
....왜?
***
2공자님 표정이 왜 저러셔.
설마...저 사람들을 앞세워서 2공자를 갈아치우고 세력을 직접 조종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건가? 확실히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오해를 굳이 지금 정정하진 않겠다! 그냥 잘해주는 것보단 조금 무섭고 나쁘게 굴다가 잘해줘야 효과가 더 좋지! 나쁜 짓만 하던 놈이 착한 일을 하면 사람들이 더 감동하는 것처럼...
"2공자님. 소개드리겠습니다. 모용배 대협이십니다. 모용배 대협? 이 쪽은 석가장의 2공자이십니다. 차기 장주가 되실 분이죠."
***
2공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습니다. 모용배는 2공자를 보더니 껄껄 웃습니다.
"오해마라. 내 사파를 좋아하지 않는다하더라도, 한 배를 탄 이를 갑자기 베거나 하지는 않으니. 내 호적수였던 동출이는 잘 보냈느냐."
"아버지는...끝까지 남은 이들을 걱정하셨소."
"그럴테지. 클."
모용배가 턱. 하고 어깨를 두들깁니다.
"끽해봐야 석가놈의 동생과 사생아 녀석 뿐 아니더냐? 내 우리 가주의 위신을 위해 요녕제일검을 포기했다만 그 실력이 어디 가지는 않았다. 허나."
그가 2공자를 노려봅니다.
"실력도 되지 않는 놈이 석가놈의 자리를 잇는 것도 용납할 수 없으니. 벽을 뛰어넘어오라. 그 전까지는 이 몸이 도와주겠다."
시간이 흐름에도 불가능하다면 더 이상의 도움은 없을 것이다. 라는 발언까지 이어집니다.
수치심에 2공자의 얼굴은 붉게 물듭니다.
"이 놈아. 네 어릴 적 용돈 주던 삼촌이 잔소리좀 했다고 벌써부터 기분이 나쁜게냐? 성질 죽여라. 너보다 월등한 고수 앞에서 그리 관리를 못하여 어찌할꼬?"
뭔가 일이 있었나 봅니다.
"당분간 일은 맡겨놓아라. 고작 절정의 실력으로 어찌 석가장주에 올라가겠느냔 말이다."
지금부터 2공자는 폐관수련을 시작합니다!
***
"어...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
그게 아니라 둘이 원래 아는 사이였어?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폐관 수련 좋지 무공이 늘면 좋긴 한데.. 조금 당황스럽다. 아무튼 이건 저 둘 사이의 일이니 제쳐두고...
"여기까지 오시느라 노곤하시겠지만, 염치불구하고 곧장 공지하겠습니다. 당면의 제1목표는 마교도들에게 납치당한 요인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강서궁문의 여식이며 저 공자님의 연인이기도 하지요. 납치당한 위치가 감숙이라 그곳으로 향할 계획이었으나, 천강단이 남하하며 요인을 이곳까지 데려왔을 가능성 또한 있습니다."
"혹시 은밀행동에 자신 있으신 분 있으면 거수해 주십시오. 지금 개방도들이 싹 자취를 감춰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
모용벽이 손을 듭니다.
"개방도가 없는데 잠입작전을 펼치겠다는 뜻인가?"
그게 뭐 문제라도?
***
"이 없다고 밥을 굶을 겁니까? 미음을 마시건 잇몸으로 씹건 해야지요. 지금까진 있는 듯 없는 듯 찌그러져 있었지만 이제 경쟁자들도 우리를 의식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천강단 지휘소에 들어가라! 이런 짓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깥부터 신중히 탐색합니다."
말하다보니 또 화나네 이 개방도 놈들..내 황금 토해내라!
"탐색의 목표는 지금 이 지방에 있는 천강단의 요인들. 그들의 신상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거리에서 소문을 모으건, 포교하는 천강단원과 이야기를 하건, 아예 교화된 척 하면서 안까지 들어가도 좋습니다. 당장 뒷일을 감당할 수 있다면 말이죠."
"그리고 그 요인들 중 적당한 이를 선정하여 납치할 것입니다."
***
다시 모용벽이 묻습니다.
"개방도들이 왜 사라졌는지는 모르는 건가?"
툭툭. 검으로 땅끝을 긁습니다.
"...개봉에서도 사라진 이유를 모른다고 하던데. 이미 다른 지역에는 암암리에 이 곳의 개방도들이 없어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네만...그게 만약 마교놈들이나 사파놈들의 짓이라면 섣부른 일이 아닌가?"
***
그게 그렇게 되나. 그것도 일리가 있는 생각 같다. 그렇다면 이 일을 어찌해야할까?
천강단에서 사람 하나를 납치해 오려면...
***
딱히 좋은 방도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어허....
***
아 생각 안난다. 떠넘겨버릴까?
"그것 또한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대협께선 어떤 생각을 품고 계십니까?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
"내 이야기를 들어보니, 현재 정보에서 이 쪽이 매우 불리한듯 하네. 그리고 그 석가의 동생 놈도 적대 세력이고."
그는 끌끌 웃으며 검을 들쳐맵니다.
"개방도들부터 구해내고, 양 쪽 모두를 없애버린다. 이게 가장 깔끔하지 않겠는가?"
일단 확실한건, 모용배는 모용벽과 정반대의 사람입니다.
하북팽가 사람이라는게 더 믿을만하군요!
***
"아하. 개방도들에게 빚을 더 지울 수 있겠군요. 대협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그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생각이 났다.
"우선 개방도들이 있던 자리부터 다시 샅샅히 뒤져보도록 하죠. 지난번에 한 번 가 보긴 했다만 단지 그들이 돈만 받고 도망친 걸로 생각해 자세히 보지 않았습니다...흠흠.."
***
모용배와 함께합니다!
이제...석가장 주변의 온갖 고을에 광검객 모용배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합니다!
...
"이곳인가?"
모용배는 개방도들이 있던 자리를 훑어보며 묻습니다.
***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많은 양의 황금을 주고 이 일과 관련된 정보를 계속 공급받기로 계약을 했었습니다만.. 암만 기다려도 기별이 없어 직접 찾아가보니 이리 텅 비어있더군요."
그녀는 이곳저곳을 뒤져보면서 단서같은게 있을지 수색해봅니다.
***
깨끗합니다! 어떤 단서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건, 다시 하나의 단서가 됩니다.
모용배가 툴툴거리고 있습니다.
왜 단서 하나도 없이 깨끗한걸까요? 마치 누가 일부러 흔적을 지운 것 처럼...
***
"누군가 작정하고 단서를 싹싹 지워버린 모양입니다? 시간이 흘렀다지만, 편집증이 느껴질 정도로 현장이 깨끗하지 않습니까?"
"보통 이런 식의 단서 지우기를 좋아하는 놈들은... 살수들? 총관이 살수를 가지고 있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살수......"
모용배가 배를 살살 쓰다듬더니 고개를 젓습니다.
"이건 살수가 아니다. 납치꾼들이지. 애초에 개방도들을 살수를 써서 죽이면, 그 살수 집단은 어떻게 될거라 생각하는가?"
아마 망하지 않을까요? 전국에 있는 10만 개방도의 전력이라면 살수집단 하나 정도는 가벼울 겁니다.
괜히 구파일방의 일방이 아니니까요.
"구파일방의 일원을 그것도 대규모로 죽이는 살수 집단 따위 있을리가 없네. 석가장 수준의 살수들은 이런 능력이 없고. 그러니 납치꾼들이겠지."
***
"납치꾼. 그런 걸 전문으로 하는 놈들도 있군요."
그런 건 여기에 원래 있던 사람이 더 잘 알 것 같다. 그녀는 자경단원 하나를 불러서 질문한다.
"혹시 이 일대에 납치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나요?"
***
"납치를 업으로 삼는 놈들은 없지만, 그런걸 돈 받고 하는 놈들은 알고 있습니다."
호옹2!
자경단원은 골똘히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소규모라서...이런 무림인들을 납치할 정도는 아닐텐데..."
***
자경단원은 자신이 알고 있는 범죄집단들을 하나씩 이야기합니다.
하나씩...
하나는 둘이되고 둘은 넷이되고 넷은 열여섯이되고......
너무 많아요!
***
너무 많잖아! 그걸 하나하나 다 뒤집어 엎으라구?!
"그럼 그 중에 가장 세력이 큰 집단은요?"
***
"전부 고만고만합니다."
개방도들을 납치한 세력이 멍청이가 아니라는건 충분히 알았습니다...
꽤 머리를 썼군요.
***
뭔가 어려울 때마다 뉴런 혹사시키는 것이 국룰이다
***
뉴런들이 열심히 일을 합니다!
...
....!!
이거 아무리 생각해봐도...납치범들을 앞에 내세우고 무공 고수들로 개방도들을 습격한게 분명합니다.
납치범들은 무공 고수들에게 일해라 핫산을 당하며 움직이고, 강력한 고수가 일격에 개방도들을 혼절시켰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가능합니다.
***
"...납치범들은 일개 하청에 불과합니다. 분명 어떤 고수가 개방도들을 기절시키고. 납치범들이 몸뚱이를 어딘가로 옮기고.."
골 때리는군. 그렇다면?
"마교가 의심됩니다. 천강단이 여기에 온 시점, 요인이 마교에게 납치당한 시점, 개방도들이 사라진 시점이 거의 일치합니다."
***
"정말 확실한가?"
모용배가 그렇게 물어옵니다!
"확실하다면 당장 마교놈들을 치러갈걸세."
듣기만해도 끔찍한 소리!
***
"아뇨아뇨 그렇게 정면으로 들어가면 필요 이상으로 주목을 끌지 않겠습니까?"
"길거리에서 포교하는 그 마교도들 있잖습니까. 동선과 위치를 파악하곤 조금조금씩 납치해서 정보를 털어보죠."
***
그의 얼굴이 흠칫 굳습니다.
"포교? 천강단원을 말하는건가? 그들을 건드렸다간 정마대전이야!"
걔네가 뭐길래....
"그건 너무 위험한 방법이네. 정파나 사파. 마교들 모두 이 싸움이 여기서 끝나길 바라지. 천강단원들을 납치하는 순간 이 문제는 단순히 석가장의 일이 되는게 아닐세."
***
납치된 개방도들을 구해주고 싶어용. 어떻게 하면 좋을까용
***
화경을 찍으십시용!
농담이고
납치된 개방도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납치범을 특정해야되어용~~~
그런데 납치범들이 보아하니 개방도들 위치도 알고 납치범까지 고용해서 무공고수가 쓸어버리고 했지용?
정보전을 펼쳤다는거에용!
그런데 여기서 정보전 할 때 가장 유리한건 누구일까용!
1. 총관
2. 마교
3. 하란네
***
"아, 아니 잠시만. 이제 막 여기까지 온 마교가 동네 납치꾼들을 알고 계약해서 협업까지 한다고? 개방도들이 어디있는지도 다 파악을 하고? 이건 또 뭔가 이상한데요."
아악 머리가 깨진다. 태풍치는 날 바다처럼 머리가 흔들리는 것 같다.
"이랬다 저랬다 해서 죄송하지만 역시 마교는 아니야. 총관 놈이 꾸민 짓입니다 이거! 마교도들이 여기 사정을 그렇게까지 잘 알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
"확실한가?"
모용벽은 아까와 같은 말을 합니다.
그 때였습니다!
"급보입니다!"
...!!
"석가장을 총관이 탈환했습니다."
***
"확! 씰! 확실합니다! 총관입니다! 이건 틀릴 수가 없습니다!"
질문권 썼으니 확실해용! 총관 쪽을 찔러봐야겠다! 바로 그 때 속보가 들어옵니다.
"석가장을 총관이 탈환해? 그럼 아까까지 막 싸우고 있었다는 거고, 전력도 그 쪽으로 몰려있다는 건데. 혹시 총관이 지부 같은 걸 두고 있답니까?"
***
"그것까지는..."
정보에서는 총관이 가장 앞서는군요.
확실히, 총관은 죽은 전 석가장주의 어린 동생입니다.
아들들보다도 오래 이 곳의 중책을 맡고 있었으니...
"그 안가를 저희가 다 파악하고 있었다면 안가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그렇긴 한데..
***
하긴 지부가 나 지부요 하고 써놓진 않았겠죠? 그러면...
"조금 장난을 쳐봅시다. 총관 지부를 당장 공격하지는 못하겠지만 위치라도 알아둬야지요."
"밤중에 은밀히 총관을 모독하는 방을 여기저기에 붙이는 겁니다. 낮이 되고 부하들이 방을 본다면 필경 그것을 훼손하려 들 것이고, 그 방을 훼손한 자의 뒤를 밟으면 지부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훌륭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모용배는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굳이 그렇게 소인배스럽게 굴어야하는가? 하는 짓이 꼭 제갈세가 놈이나 우리 세가의 책사들 같구만..."
그래도 모용세가의 사람인지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
"으흐흐 제가 이런 놈인 걸 아시니 세가주께서도 절 들이신 것 아니겠습니까?"
자자 그럼 작전 준비합시다! 종이도 구하고 붓이랑 먹도! 방에 써 놓을 맛깔나는 욕도 생각해 보고 해야죠!
***
작전이 모두 준비됩니다!
이제 실행만 하면 됩니다...
뭐라고 써놓을까요?
***
패드립은 너무 심하고 총관만 콕 집어서 욕하는 내용을 씁니다. 총관의 은밀한 사생활 이중생활을 폭로한다 총관은 이대로 괜찮은가 총관은 대충 (삐-)하고 (삐-) (삐-) 한 천하의 악한이다! 대충 이런 식으로!
***
개방도들이 자주 쓰는 방법이군요!
하란은 벽보를 붙여버립니다!
이제 소문이 천천히 퍼져나가기 시작할겁니다.....
***
"말 안해도 다 아시죠? 방을 훼손해도 절대 제지하지 말고! 눈에 띄지도 말고! 조용히 뒤만 밟는 겁니다!"
자경단원들에게 말도 해 두었으니 이제 슬슬 기다리는 일만 남았나.. 오랜만에 시간이 났으니 운기를 해볼깝쇼?
***
교룡심법을 수련합니다!
오늘따라...무언가 기이합니다.
무언가 보일듯 말듯한...벽!
벽이 보입니다!
콰앙!
심기체. 삼위일체.
마음은 기를 따르며 기는 육체를 따르고 육체는 마음을 따르니.
후우우욱!
잠깐 벽과 마주한 하란은 다시금 뒤로 땅기는 느낌과 함께 벽과 멀어집니다...
교룡심법이 80%에 도달합니다!
***
뭐, 뭐요? 일 할인가 이 할인가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단숨에 팔 할?!
야 이건 못참지 남은 이 할도 채워야죠!
***
- 7성 적룡지기 : 강대한 적룡의 기운. 내공은 정순해지고, 불꽃에 절대 피해를 입지 않는다. 기를 다루어 불을 피워내거나 조종할 수 있다.
***
"허!"
땀을 흘리면서 눈을 크게 떴습니다. 한 단계를 더 나아가 이전과는 또 다른 것이 느껴집니다. 저는 짜릿한 성취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이 느낌! 이 감정! 좀 더 오래 느끼고 싶어! 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벌떡 일어나 칼을 뽑아들었습니다. 검법도 기연의 효과를 받나요 과연!
***
교룡검법을 수련합니다!
10%상승!
현재 10%입니다.
***
"...?"
이게 아닌가? 다시 해 보자.
***
당신의 숙련도
20%!
***
나는 안가를 찾았다, 아니면 찾을 수 없다 보고가 올 때까지 수련만 할 것이다!
이건 다 지친 하란주가 타지를 떠도는 중이기 때문이다.
***
50%!
수련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기다리는 감각을 잡아냅니다.
소문의 효과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
"후우..."
찰칵. 칼을 집어넣었다. 누군가 기다리는 듯 해 돌아보았다.
"어인 일이십니까?"
***
"석가장을 총관이 장악했고 소문이 퍼졌잖습니까."
자경단원이 우물쭈물거리다가 입을 엽니다.
"벽보를 붙인 사람들을 찾아내서 죽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파! 희망편!
***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진짜."
어디 썰 테면 썰어봐라 민심 이탈은 네놈들 몫이지.
"그 정도로 행패를 부리면 누가 총관 부하인지 다 알겠네요."
"막겠다고 객기 부리지 말고 안가 위치나 파악하세요. 험악해진 민심은 안가 습격 후 그 놈들을 매달아 갈음할 것입니다."
***
"알겠습니다! 안가부터 파악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총관의 부하들의 용모파기는 익혀놓을까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당연히 익혀놔야지요. 그렇다고 난 너 안다 하고 티를 내진 마시고.."
***
자경단원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뜹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소문을 흘렸길래 총관이 화가나서 사람까지 죽이려고 하는 것일까요?
캡틴도, 하란도 궁금해지는 시간입니다...
***
#4분 남았다 교룡검법 수련 또 하자!!
***
당신의 교룡검법 60%로 기록되었다.
***
어림도 없지!
70%!
***
뭔가 재밌는게 생각났는데, 일단 수련부터 마무리하자.
#교룡검법 수련 한번이요~
***
당신의 숙련도 80%이다.
***
#교룡검법 수련 두번이요~
***
아, 안돼! 그만둬! 이제 곧 100%라고!
***
#교룡검법 수련 세번이요~
***
캡틴이 고통받습니다!
100%!
- 7성 적룡조격참 : 강대한 붉은 용이 발톱을 휘두르는 모양새. 세 갈래로 나뉜 불의 기운이 적들을 타격한다.
바람의 상처를 얻습니다!
***
오예 멋진 기술! 이제 생각한걸 실현할 때다. 나는 자경단원을 찾아가 묻는다.
"전에 말했던 그 범죄조직들 말입니다. 그놈들이 총관과 사이가 돈독할까요, 영 좋지 않을까요? 아니면 조직마다 다른가?"
***
"까봐야 알겠지만...사파 놈들은 항상 뒤통수 칠 준비를 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정파와 사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신뢰입니다.
하청업체를 등쳐먹는 대기업.
언제라도 대기업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준비를 하고있는 하청업체.
이것이...사파다...
***
"이히히."
하란은 입꼬리를 뒤틀며 웃었다.
***
하란의 뇌가 기가막히게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뉴런 시냅스들이 서로 부딫히면서....아니 전 이런거 모릅니다. 뇌과학? 그냥 뇌는 물렁하고 주름이 많다만 알면 되지 않을까요?
방법을 찾아냅니다!
방에다가 실수인척 그들임을 암시하는 표식이나 문장, 암호 같은 것을 쓰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이것 하나만으로 완벽하게 그들에게 누명을 씌울수는 없겠지만 상대가 의심을 하기 시작하기에는 충분할겁니다.
***
"혹시 그네들 상징표식 아는 거 없어요? 좀 가르쳐줄래요?"
조만간 2쇄를 찍어서 또 방을 붙이려 하는데, 거기에 살짝 넣어보려구! 나는 잡기장과 세필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
"그런 것들이 상징표식같은게 있겠습니까? 다만 그들끼리의 은어로 자신들의 상전을 칭하는 호칭은 있습니다."
"들개 나으리, 라고들 말하지요. 이런 말을 쓰는건 그런 삼류 양아치 놈들의 전매지만, 정확히 상대를 겨냥하고 쓰는 벽보에 그런 말을 쓸 자들은 정해져있지 않겠습니까?
***
"음흠흠~"
나는 방을 준비하고 붙였던 단원들을 다시 소집한다. 그리고 2쇄에 대한 설명을 한다.
"....문구 사이사이에 은근히 들개 나으리라고 써넣는 겁니다. 성공하면 좀 재밌을 거에요. 그 놈들이 총관을 완전히 토벌당하면 보복 겸 아무튼 자기 명을 따르던 스스로 손가락마디를 자르는 것이고, 치안도 향상되겠죠. 잔당이 남으면 다른 세력한테 달라붙어 살려달라고 할 텐데...그 놈들이 설마 마교한테 가겠어요?"
***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질문합니다.
"총관이 거기에 속아넘어가겠습니까? 넘어간다쳐도 자신의 치부를 다루던 놈들을 한 번에 쳐내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초절정 쯤 되는 무인이면 천재에 가까운 편이지 멍청이에 가까운 편은 아니니 나름 일리가 있는 질문입니다.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
"물론 들개아저씨 하나에 완전히 넘어가진 않겠습니다만... 지금 총관 부하들이 우리가 범인이란 걸 알아챌까 불안하기도 하고."
"지금으로선 적절히 연막을 치고 그 놈들 관계를 흔들어 작은 틈을 만드는 선에서 만족하도록 합시다."
"아무튼 그 다섯글자가 나온 순간 의심을 완전히 거두긴 힘들겠죠."
"아무튼 이번에 방 붙일 때는 안 들키도록 조심하시고..."
***
그 정도라면. 하고 다른 사람들이 납득하고 넘어갑니다.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
시간이 되었다..!
"지금 용모파기 기록된 총관 부하들,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파악 가능합니까?"
***
총 열 일곱의 위치가 확인됩니다!
다들 별개의 일을 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치안 안정화 작업입니다.
***
"걔네들 눈에 안 띄게..걔네들 없는 곳에서 아무한테도 안 들키게 살금살금..아시죠? 응?"
어째 내 행동까지 괜히 조심스러워진다. 근데 어이가 없네. 사람 썰고다닐 때는 언제고 치안안정활동???
- 주공을 뵙소
- 이런. 단어의 의미 전달에 있어서 오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림 - 사파식 치안 안정화입니다.
그들의 위치를 피해 방을 붙이기 시작합니다...
병병병! 저 쿵철인데요!
누군가가 문을 두들깁니다.
"셋이 잡혔습니다!"
이런.
***
엌ㅋㅋㅋㅋ 사파식 치안안정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지금 웃을 때가 아니라..
"생사는? 살아있다면 어디로 끌려간 겁니까?"
필경 고신이 가해질 것이다. 가능한 한 빨리 구출해야 한다!
***
"그, 그것이..."
끌려간게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란은 눈을 질끈 감아버립니다.
***
"그렇게 조심하라 일렀는데....!"
책상을 뒤엎..진 않았지만 절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무 책상이 으적 하고 찌그러진다.
"하... 그럼 혹 그들이 자경단이라는 것을 증명할 만한 뭔갈 지니고 있었습니까?"
나는 마른 세수를 하며 묻는다. 지네들끼리 자문(문신)이라도 돌려서 하고 있으면 큰일인데..
***
"그런 것은...다행이라 여겨야할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없었나보군요.
"그들의 목이 장대에 걸렸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
자경단원들의 사기가 낮아질 수 있습니다.
***
에라이! 나는 결국 책상을 엎었다.
"안가 파악은 어찌 되어가고 있죠?"
패배의 치욕은 승리로 덮고 말 것이다. 나는 잠에서 깨어나 으르렁거리는 교룡처럼 말한다.
***
와장창!
책상이 뒤엎어집니다.
"아직 진행 중입니다...그것이 쉽게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하긴 쉽게 파악되었으면 진작에 마교놈들이 선수를 쳤을겁니다.
"그런데...그...어떻게 할까요? 아랫것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시체라도 어떻게 가족의 품에 돌려줘야..."
***
"아뇨. 이미 놈들은 시체를 빼돌리려 할 것까지 예상하고 있을 겁니다. 여기서 더 많은 피해를 발생시킬 수는 없으니..."
그래도 시체 없는 장례라도 치러주라고 나는 일렀다.
"곧 제가 연설이든 웅변이든 할테니 가까운 시일 내에 자리를 준비하세요."
***
그는 시무룩해져서 돌아갑니다...
자경단워들의 사기가 낮아집니다.
연설 자리가 준비되었습니다.
***
나는 연단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사열한 단원들을 둘러보면서 첫 입을 텐다.
"먼저, 저주받을 총관의 수하에게 살해당한 세 명의 용사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내세에서는 칼도 피도 없는 곳에서 평안하길."
***
단원들은 와아아....하고 힘없이 동조합니다.
자경단원들은 동료의 시체도 찾아오지 못하고, 제사도 지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우울해하고 있습니다.
***
그런데 이 친구들 왜 이렇게 풀이 죽은 겨? 어이가 없네?
"여러분, 왜 그렇게 풀이 죽어 있습니까? 저는 여러분들 눈깔이 뒤집혀서 시체를 되찾고 동료의 복수를 하겠다고 날뛰는 것을 말려야 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전부 기우였군요."
"간부를 뽑는다는 말에 망설임없이 검을 겨루고, 겁 없이 천강단원들에게 시비를 걸고, 자신보다 더욱 강한 자에게도 두려움 없이 싸우던 그 패기넘치는 모습은 다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그 야성은 어디로 사라졌습니까? 분하지 않습니까?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 겁니까? 그래도 같이 일하고 한솥밥을 먹던 동료였잖습니까!"
킹반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그녀도 그만 탁자를 뒤엎어버렸다. 그런데 그녀도 그럴진데 무림인들이 이렇게 나와서 될 일인가?
"설마 옆자리의 사람과 말 한마디 섞어보지 않은 건 아니겠지요? 동료의 죽음을 침통해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허나 꼬리 내린 강아지처럼 힘없이 끙끙거리고 있는 꼴이라니!! 오호통재라!!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입니까!"
"여러분! 기억해 보십시오! 놈들의 손에 죽은 그 세 용사에 대해 떠올려 말해 봅시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좋아하는 음식이 있었습니까? 취미는? 자녀가 있었습니까? 그들과 함께하던 당신들이 말해 보십시오!"
***
이들은 사파입니다.
서로 배신하는 것은 저 놈이 멍청하기 때문에 당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기를 치는 것은 당하는 놈이 바보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속이는 것은 속는 놈이 얼간이라서 입니다.
그리고.
고수에게 당해 죽는 것은 당한 놈이 약하고, 멍청하고, 주제를 모르는 바보에 얼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입니다.
무림에서 고수에게 하수가 함부로 설치는 것 만큼 위험하고 멍청한 일은 없습니다.
냇가에서 발을 담구는 아낙에게 물어보아도.
길거리에서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아도.
공을 차는 삼척동자에게 물어보아도.
그 누구라도.
무림에서 고수에게 죽는 것은 평범한 일 아니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재앙입니까?
막을 수 없는 천재지변입니까?
하늘의 일은 하늘에게 맡기되.
사람의 일은 사람이 할 수 있도록 인세에 정해져 있는 것이 법도요 도리입니다.
엄연히 정파적인 생각이라지만, 사파인들도 자신의 동료가 죽어나가는 것에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석가장 인근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그 공포란 하루아침에 걷어질만한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석가장은 정파로치자면 오대세가와 구파일방의 말석에 위치해있는 수준의 거대한 세력.
그리고 그 아래에서 최하층을 맡아 살아가던 일개 낭인들이 자경단원이 되었습니다.
그저 돈을 받고, 그것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내일에 대한 불안감으로 살아가던 이들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분노하지 않느냐는 하란의 말에 분노합니다.
쿠웅!
누구 하나가 기괴하게 생긴 둔기로 땅을 내리찍으며 일어섭니다.
"애초부터 우리가 어떻게 저 놈들을 상대한단 말이오!"
그의 얼굴은 시뻘개져있습니다.
"우리는 이 곳에서 나고 자랐고, 우리 부모님도. 우리 조부모와 그 부모도. 그 부모의 부모도 여기서 나고 자랐소이다!"
"부모가 죽고 자식이 다시 부모가 되는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그 시간 속에서. 석가장은 굳건했소!"
"조정이고 뭐고, 우리한테는 석가장이 법이고 질서고 나라였단 말이오!"
"어떻게 항거해볼 수 없던 거대한 세력이란 말이외다! 아주 오랫동안 자리잡아왔던!"
"우리가 뭘 어째야하오! 내 친구도 이번에 죽었는데! 화가 난다고 무기를 들고 싸우러 가기라도 해야겠소!"
"그랬다간 당신네들은 몰라도 우린 죽어!"
그 말에 다른 이들이 동조합니다.
정파인 수뇌부.
그리고 말단을 차지하는 사파인들.
"외부인인 당신들과 우린 다르단 말이외다!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한단 말이오! 이런 일이 처음이겠소? 난 내 가족을 고수에게 잃어봤어!"
다른 이도 외칩니다.
"내 아내를 빼앗겼어!"
"연좌제라며 내 동생을 베었어!"
"친구들이 사지가 잘려서 폐인으로 살아가!"
"부모님이 울면서 빌다가 돌아가셨어!"
그리고 다시 그 사내가 외칩니다.
"저항! 저항! 해본 적 있지! 여기에 있는 그 누가 안해봤겠소! 우린 이미 패배자들이야! 패잔병들이라고! 애초부터 석가장이나 그에 준하는 곳에 소속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낭인들이잖아! 우린 그냥 돈을 준다니까 하는거라고! 하루 먹고살 돈을 주니까 석가장 비위를 거스르지 않을 정도로 하는거라고!"
"우리보고 화나지 않느냐고! 화나지! 그런데 뭐 어쩔건데! 결국 그 쪽이 원하는건 우리가 나가서 싸우는 거잖아! 우린 나가서 싸우면 무조건 죽어! 그 공포를. 당신같은 높은 사람들이 뭘 알아!"
조장급에 속하는 사람 하나가 그의 어깨를 짚고서 앞으로 나옵니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하오."
그의 눈이 빛납니다.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한단 말이오. 이미 다들 걸레짝이 되어있는 마음으로 사는 하루살이인데."
"본인도 화가 나오! 화가 난다고!"
땡그랑!
그가 무기를 바닥에 던져버립니다.
"친구가, 부하가 죽어도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해! 무서워서 겁먹는 내 모습이 꼴사나워! 고수들과 부딫히는게 무서워! 고수 하나가 수십 명을 베어넘기는 세상인데. 무섭다고! 죽기 싫다고! 그리고 그 생각으로 나를 합리화하면서 죽음을 외면하고 복수를 외면하는 꼴이 더 짜증나고 개같아!"
"화가 안날리가 없잖소! 화난다고! 죽여버리고 싶어! 그런데 방법이 없잖아! 그냥 나가서 맞서싸우면 그냥 개죽음인데! 우리가 뭘 어떡하라는 거야 진짜!!"
그가 핏발 선 눈으로 하란을 쳐다봅니다.
"말해보시오!"
분기점입니다.
***
"...화나셨군. 아주 화가 머리 끝까지 나셨어. 내가 착각해서 미안합니다. 당연히 화가 나셔야지."
나는 표정 없이 그들의 고성을 홑몸으로 받아냈다. 그렇다고 나도 화가 안 난 건 아니다. 우린 나가서 싸우면 다 죽어? 높으신 분들이 뭘 알아? 뭐 임마?
나는 말 없이 상의를 풀어헤쳤다. 헐거워진 의복이 허리춤에 매달려 달랑거렸다. 붕대로 가슴을 매어놓은 그곳에는 길고도 깊은 흉터가 있었다.
"그래. 당신들이 나가서 싸웠으면 좋겠다. 나랑 함께! 나랑 함께 싸워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라고 뒤에서 부채나 붙이고 있는 줄 아나! 총관의 수하의 검이 일 촌만 더 깊이 들어갔어도 나는 영영 검을 잡지 못했을 거다! 얼마 전에도 지원을 청하려 멀리 나갔다가 산음로에 붙잡혔다 간신히 벗어났다!"
"내가 표현하지 않고 너희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서 나의 고됨을 폄하하지는 마라! "
그리고 이제 뭐냐, 감성팔이할 시간인가?
"그리고 내가 당신들 마음을 왜 모를까. 내가 지금 이 나무 단상 위에 있다고 어디 귀족집 규수로 난 게 아니다. 거지들의 딸로 나서, 빚쟁이들에게 부모님이 살해당하셨다. 고작 아홉 살이었던 나는 독사굴 안에 숨어 삼 일을 버텼고! 물린 자리가 썩어들어가 다리를 잘라냈다!"
"양부마저도 고관대작에게 두들겨 맞아 일주일만에 죽어 나자빠져 나는 사문도 뭣도 없이 온 중원을 떠돌아다녔다!!"
"모용? 아! 모용세가! 아마 우리가 실패하고 내가 놈들에게 잡히면 그들은 안면을 몰수하고 우리랑 상관없다 발을 빼겠지. 나도, 나도 막 엄청 대단한 사람은 아냐... 당신들이 죽으면, 바로 다음이 나야. 하루 일찍 죽느냐 늦게 죽느냐 그것뿐이야. 우린 이미 한 배를 탔다고... 당신들을 버리고 간다고 내가 살까? 내 생각은 안 그런데."
후우, 목이 탄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여기 광검배가 오신 것 봤나? 2공자님이랑 구면인 것 같더라. 전 장주님이랑도 가까웠던 모양이고. 일부로 모용에서 신경써서 그를 보내신 거야. 가망이 없으면 미련 없이 잘라내겠지만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이면 어떻게든 해 주겠다는 거야. 말해봐. 당신네들 부모, 부모의 부모, 부모의 부모의 부모 때랑 비교해서 이런 기회가 있었어? 오대세가의 한 기둥이 당신네들을 돕겠다잖아. 이 기회를 그냥 놓치겠나?"
"아까 말하는 거 들어보니 뭘 해도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어차피 죽을 거 앉아서 죽겠나, 싸우다 죽겠나? 걸음은 느리지만 나는 항상 당신들 앞에 있을 거고, 모든 지혜를 짜내어 승리를 궁구할 거야. 그 속 깊다는 모용에서 온갖 가솔을 제치고 내가 온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겠지."
"우리 인간이 무공을 만들고 무기를 쥐고 전략을 짜는 이유가 뭐야. 우리는 너무나 약하기에 정정당당하지 못했다. 설령 비겁하고 교활하다 욕을 먹을지라도 강자의 모가지를 물어뜯어 한 방 먹여줄 수만 있다면. 나는 그렇게라도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붇겠다."
"2공자가 장주가 되면 당신들 숨통도 트이지 않겠나. 자길 위해 목숨 걸고 싸웠는데. 설령 내버리겠다 해도 내가 허락 못 해. 저 사람들 안 받아주면 우린 손 빼버릴 거라도 협박이라도 하지 뭐.."
***
훌륭합니다!
"씨발!"
가장 맨 처음에 기괴한 둔기를 내리쳤던 사내가 둔기를 집어들어 어깨에 걸칩니다.
"그래! 씨발! 솔직히 우리 그 쪽 못믿어! 정파인이잖아! 그냥 돈 주고 산 낭인 새끼들 아니었냐고! 근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건데!"
"우리가 그 쪽을 믿고 따라도 되냐고! 우린 지금까지 배신당한 머저리들이고, 패배한 개새끼들이란 말이다!"
"그런 병신들이 뭐라고 우리보고 싸우라는거야? 어!"
"우리가 진짜 이길 것 같애? 우리가 가서 쫄아서 호로새끼처럼 뒤로 튀려고 하면 어쩔건데?"
"왜 그렇게 우리를 끌어안으려는건데? 그냥 딴 씹새끼들처럼 그냥 쓰고 버려! 그게 니들이잖아!"
"그게 니들이잖아!"
그의 눈에선 눈물이 흐릅니다.
"빌어먹을. 씹어쳐먹을. 개 좇같은 씨발! 씨발! 씨발!"
이들은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섬겨본 적이 없는 이들.
이들은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어본 적이 없는 이들.
"우리가 그 쪽을 믿어도 되겠냐고!"
그는 울부짖듯이 외칩니다.
...
침묵이 찾아옵니다.
간혹 병신새끼...하면서 냉정한 척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궁시렁거리기만 할 뿐 나서서 뭐라하지는 않습니다.
둘 중 하나겠지요.
그가 이 중에서는 꽤 실력있고 유명하거나.
그의 말에 여기있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거나.
아까 나섰던 조장 하나도 조용히 입을 다물고 하란을 쳐다봅니다.
모두가.
모두가 하란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사 하란.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스스로 믿을 용기가 없으니 내가 먼저 믿어주길 바라나? 누구 말마따나 패배자 머저리 개새끼들이도다."
하지만 아주 훌륭해. 나는 덧붙였다.
"약한 인간일수록 훌륭한 전사가 되는 법. 단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다는 건 질 싸움을 피하기만 했다는 뜻이다."
"패배의 경험을 그렇게나 쌓았다면 당신들도 이제 승리를 맛볼 자격이 있는 것 아닌가? 나는 그리 믿는데."
***
"씨발."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대답이 되었습니다.
쿠웅!
자경단원들이 무릎을 꿇습니다.
"주공을 뵙소!"
지금부터 하란은 자경단에게 충성을 받습니다.
물론 이 충성은 아직 얕습니다. 이들에게서 진정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충성을 받으려면 고단히 노력해야만 합니다.
허나 중요한건.
이제 자경단원들은 하란을 '주공' 으로 모실겁니다.
***
하란은 음!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 동녕열도의 어느 관리처럼..
***
충성서약이 끝납니다.
자경단원들의 사기는 여전히 낮은 편이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이들의 사기가 낮은 이유는 그들이 낭인이고, 실력이 보잘것 없기 때문입니다.
적과 정면으로 붙으면 모조리 죽을 것이지만.
하란이 공언한대로, 적들과는 언젠가 반드시 붙어야만 합니다.
시간이 충분치 않고.
석가장주가 누가 될지도 윤곽이 잡혀가기 시작합니다...
***
그래서, 이들을 이제 어찌한담? 이들을 모두 일류의 경지로 끌어올리는건 불가능하다. 숫자도 숫자인데다가 쓰는 무기도 다 다르니까. 하지만 이들도 반드시 싸워야 한다. 이들이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는 상황 따위 절대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단기간에 기량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올리려면.....
"진법과 제식, 합동전술."
1+1은 3이 될 수 있다. 상승효과라는게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함께 훈련하고 합을 맞출 수 있게 가르친다면 적어도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진 않을 것이다. 보통 무림인들은 그런 것 알지도 못하고 가르치지도 못하지만.
"내 스승님은 조정 관료셨지."
나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안가를 찾는 작업은 계속 진행. 치안 유지 업무를 축소하고 그 시간에 훈련을 진행하자.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는 그놈들의 사파식 치안안정 때문에 뭘 하지도 못할 테니.
***
하란은 합동제식 훈련 등에 대한 지식이 있나요?
***
옛날에 스승님이 가르쳐 줬을 것 같아서용...안돼면 말구..
***
조정 관료는 무림인이 아니라서 무림인이 쓰는 진법은 가르쳐주지 않았을 것 같네용!
하지만!
하란이에게는 모용세가라는 뒷배가 있죵!
안그래도 누구 하나가 와있지 않나용?
그들의 진법을 쌔벼오는건 어떨까용!
***
아 맞다 킹용배대협! 그녀는 그에게 뽀르르 달려간다.
"대협. 혹 괜찮으시다면 저들에게 진법을 지도해주시지 않겠습니까?"
***
킹용배...아니 모용배는 검을 어깨에 사파마냥 떡하니 걸칩니다.
"저들에게 말인가? 세가의 진법은 엄연히..."
꼰대소리가 나옵니다.
하란이 배운다음 조금 개량해서 저들에게 가르치는게 낫겠군요!
저들은 하란에게 충성을 바치지 모용세가에 충성을 바치지 않으니까요!
이것이 봉신의 봉신은 내 봉신이 아니다!?
***
"....."
지금 그게 할 소리여? 승리를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아야 할 이 때에! 하란은 그런 속내를 숨기고 말을 바꾸었다.
"흠흠, 그럼 제게라도 가르쳐 주시지요. 그건 괜찮을 것 아닙니까?"
***
모용배는 잠시동안 고민합니다.
"모용세가의 가솔이니. 괜찮겠지."
지금부터 하란은 모용세가의 진법 '광해방검진' 을 배웁니다....
천재의 영향으로 하란은 광해방검진의 원리 대부분을 빠르게 이해합니다!
하지만 광해방검진은 상당한 절진.
획득까지 조금 더 노력을 쏟아부어야할 것 같습니다.
***
"...그래서 이게 이 쪽으로 가고, 저게 저 쪽으로 가는 방식이다. 제가 제대로 이해한게 맞습니까?"
그녀는 바둑판 위에 돌을 올려놓고, 그것을 말처럼 이리저리 움직인다. 말이 병사들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는 다시 모용배에게 질문한다. 몰라서 질문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모르는데 아는 척 하는게 진짜 부끄러운 일이지!
***
모용배는 상당히 놀라운 눈치로 하란을 쳐다봅니다.
".....굉장히...이해가 빠르군."
그는 다시금 하란에게 광해방검진을 가르쳐 나갑니다.
한 번 남았습니다.
***
"아! 이제 정말 알 것 같습니다! 여기가 저렇게 되면 이 부분이 틀어막히게 되니까...."
직접 해 보니 진법도 상당히 재미있는 분야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코피를 쏟으며 진법만 파대는 어느 범재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생각이겠지만.
***
모용배는 놀라움을 더 이상 감추지 못합니다!
"말도 안돼! 어찌...이걸 그리 쉽게 이해한단 말이냐!"
벌떡 일어난 모용배는 숨을 크게 쉬었다가 다시 진정하고 앉습니다.
"놀랍군....놀라워...."
하란은 진법 광해방검진을 습득합니다!
***
"저는 그저 대협께서 말씀하신대로 받아먹었을 뿐입니다?"
겸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으아악 재수없어!
"아무튼, 시간 내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는 공손하게 인사를 꾸벅 올린다. 아직은 1성 정도의 기초밖에 모르지만 반대로 말하면 적어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는 것이다. 단원들이 그녀만큼 진법을 빨리 이해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곧바로 지금 당장 아는 것부터 훈련을 진행해도 될 것 같다.
***
진법을 가르쳐봅니다!
"뭔 개소리를 하는거요 주공?"
이들은 하란처럼 똑똑하지 않습니다....흑흑...나도 천재하고 싶다...
하란은 왜 이걸 못하지? 하고 답답해합니다.
이럴 바에는 그냥 하란이 지휘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하란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습니다.
싹수가 있어보이는 놈들 몇을 찾아 전수해봅시다...
아무한테나 가르쳐주다간 진행 시간을 다 날려먹을겁니다!
으악! 끔찍해!
***
으아악 진행시간 낭비라니! 그건 하란도 하란주도 받아들일 수 없는 천인공노할 일이로다!
"개소리라니 이 싸람들아...지금 내가 얼마나 비싼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 정말 이해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소? 좀 알겠다 싶으면 나와 보시오!"
이대로 하다간 일 년이 걸려도 제자리걸음을 할 것 같다! 그녀는 그나마 가능성이 보이는 사람을 찾아본다.
***
다들 저 악독한 검진의 위력에 덜덜 떨며 나오지 않습니다.
아니 이게 뭐가 어렵다고 그러는 것이지요??
그냥 사람들을 넓게 펼친 다음 함수를 이용해서...
.....
캡틴은 설명을 포기했습니다.
정말 이 자경단원 중에 그 누구도 이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단 말입니까?
***
"아니 보세요. 정말 원리 하나하나까지 알 필요는 없고,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만 알면 되잖아요."
그녀는 바둑돌이나 칠판, 돌멩이같은 직관적인 교재들을 사용해서 필사적으로 그들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한다.
***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 ㅋㅋ
그 때. 가장 앳되어보이는 자경단원 하나가 바둑돌을 집어 놓습니다.
....가장 중요한 장소군요. 거기에 돌을 놓으면 진은 와해됩니다.
"막내야! 너 그럼 못써! 지지야! 지지!"
진법의 공포에 덜덜 떠는 다른 자경단원들이 말립니다.
그리고 하란은 동류를 알아봅니다.
...
비쩍마른 몰골. 퀭한 눈밑. 오랫동안 감지않아 이와 비듬이 있는 산발머리. 땟자국 가득한 남루한 옷차림. 낡은 창.
그리고 총기 가득히 형형하게 빛나고 있는 눈동자!
수재입니다!
***
"옳거니! 너 이리 나와 봐라!"
그녀는 무릎을 탁 쳤다. 사실 무릎이 아니라 의족이라서 찰싹 소리가 아니라 퍽 하는 소리가 났다.
"내가 볼 때 너는 이 진법을 이해할 가능성이 있는 것 같구나. 눈을 보면 알 수 있지!"
목욕 한번 하고 와서 일대일로 같이 이 진법을 파볼 생각이 있니? 그리고 네가 다시 저들을 가르쳐 주거라. 너는 작은 장군이 되는 거야! 그녀는 어린 단원을 슬슬 꼬드긴다.
***
퍽.
아야.
손은 조금 아프지만 이럴 때 아프다고 손을 호호 불고 있으면 제법 웃음...
어? 귀여운데? 기루에서 일하기....호호 손 불면서 아파하기....
아무튼 하란은 녀석을 꼬드겨봅니다.
"읏..."
하란의 외모는 매우 뛰어납니다. 아직 어린편에 사춘기가 이제 갓 온 자경단원은 얼굴을 붉히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면서 자그맣게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왜인지 못된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
"그래그래, 저기 욕탕 가서 한번 씻고 오너라. 뭔갈 제대로 배우려면 몸가짐부터 제대로 갖춰야 한단다."
그녀는 지나가는 하인을 불러서 이 녀석을 좀 씻겨달라고 부탁하며 떠넘겼다.
"그럼 그 전까지, 이런 어려운 것 말고 쉬운 것부터 먼저 배워봅시다. 아주 기본적인 제식 말입니다."
본격적인 진법을 가르치기 전에 기초제식이라도 가르쳐서 일사불란한 움직임에 익숙해지게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
그 놈은 씻으러 갑니다.
후후후...무진장 귀여워해주지...쿡쿡쿡...
하란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침을 닦습니다. 스읍.
근엄한 표정으로 단상에 오른 하란은 이렇게 말합니다.
부대 차렷.
그리고 그들은 그게 뭔지도 모릅니다!
이런 것들부터 가르쳐야 한다니! 벌써부터 한숨과 토가 나오는군요!
왜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멍청하지?
앗.
재수없음이 방금 10레벨 상승한 것 같습니다.
***
후후후 이 우민들이...어떻게 차렷 열중쉬어도 모를 수가 있지? 정말 밑바닥처럼 하나하나 가르쳐야 하나!
"저기, 전에 내가 승리를 위해선 수단 방법 안 가리겠다고 한 거 기억해요?"
"나는 당신네들을 기필코 머리 셋, 팔 여섯, 다리 넷 달린 아수라로 만들어버릴 것입니다. 그 아수라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한몸처럼 움직이게 만들어 주겠습니다."
"내게도 여러분들에게도 꽤 힘든 시간이 될 것 같으니까. 각오하세요~? 으응~?"
나는 미소지었다. 하지만 얼굴엔 싸늘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
하란은 훈련을 끝마치고 한숨을 내쉽니다.
아까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멍청해보이는 모습들입니다.
얼씨구. 저거. 저거 보십쇼. 차렷이라니까 열중쉬어를 쳐 하고 앉았네.
이 똘빡들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훈련이 더 필요할겁니다.
그리고...하란이 이걸 하나하나 다 챙겨야한다는게 문제지요.
인재가 없습니다! 인재가!
- 눈나!
- "갈길이 멀어..."
내가 할 수 있을까? 아니다 할수있다 할수있다 나는 천재다 능히 할수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다들 가서 휴식하세요. 이제부터 이거 매일매일 할 거니까~."
그리고 나는 아까 그 소년을 다시 떠올린다. 지금쯤 다 씻었으려나? 젠장, 나도 쉴 틈이 없군 이거.
***
수재는 이미 다 씻고 대기중입니다!
***
"미안하구나. 저들에게 기본 제식이라도 먼저 가르치려 했더니 제대로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구나.."
그녀는 바둑판과 바둑돌을을 가져와 가르침을 위한 준비를 한다.
"그러고보니 넌 이름이 뭐니?"
바둑돌을 한줌 쥐어 판 위에 뿌리듯 놓았다. 청량한 자그락 소리가 방 안에 울린다.
***
"능도라고 합니다."
꽤나 의젓한 모습으로 대답합니다.
하지만 하란의 눈을 마주치지 못합니다.
아아...못된 눈나같으니라고...
***
"그래, 능도. 이미 알진 모르지만 나는 하란이다."
바둑돌을 옮기던 그녀는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능도를 보고는 소리없이, 보일 듯 말 듯 미소지었다. 그럴 생각은 없지만 순진한 소년을 꾀려 드는 요망한 여인네가 된 것 같잖아.
"그럼 곧장 시작하도록 하지. 소장군 능도."
***
능도는 어떻게든 하란의 공격을 막아보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어떤 부분이 능도의 문제일까요?
1. 너무 수비적이다
2. 너무 공격적이다
3. 전체적인 기량의 문제다
4.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선택지에 따라 능도의 습득 정도와 능력이 달라집니다.
***
"전장이란 예측할 수 없이 변화무쌍한 곳이다. 건장한 장정이 나자빠지기도, 깡마른 소녀 하나가 펄펄 뛰어다닐 수도 있는 곳이지."
"같은 전략을 반복하는 것은 지양하거라. 적이 자신을 예측할 수 없게 하거라. 순식간에 변검하는 무희처럼. 강한 적보다 알 수 없는 적이 더 두려운 법이니."
"너는 어떤 기상천외한 수를 내놓겠느냐?"
***
"으음..."
능도는 고민하고 고민합니다!
다시금 대국이 시작됩니다!
능도는 여전히 막는데에 급급하지만, 전술에 대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조금 더 다양한 상황에서 광해방검진을 사용하는데 유용할지 모릅니다.
또다른 문제점이 하란의 눈에 보입니다.
그 문제점은....
1. 소극적
2. 적극적
3. 예비대의 부재
4. 너무 많은 예비대
5. 본인의 실력 부족
6. 전체적인 기량의 차이
무엇일까요?
***
"너는 공세적 방어라는 개념을 아느냐? 적극적으로 적의 공격역량을 주저앉히고 방어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그리 칭한다."
"광해방검진이 방어를 위한 진법이라지만 계속 적의 공격을 받으며 버티는 것도 능사는 아니지. 적극적으로 몰아붙여 적을 밀어내고 거점을 지킨다면 그것 또한 방어일지니.."
***
하란의 조언대로 능도의 전술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아까보다 훨씬 낫군요. 막기에만 급급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균형이 잡힙니다.
전술도 변화를 주면서 하란도 가끔씩 10초 이상 수를 고민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어째서인지 한 번을 제대로 이기지 못합니다.
이 문제는....
1. 넌 멍청하고 난 똑똑해서
2. 넌 아직 경험이 없어
3. -꼰-
4. -틀-
5. 좀 더 가르쳐본다
6. 뭐 이 정도만 해도 문제는 없을 것 같다
무엇일까요?
***
'이 녀석, 내 수를 이해하곤 있는 건가?'
능도가 자신의 수를 아주 쫓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측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그닥 마음에 들진 않는다. 시간이 있다면야 하나하나 가르쳐주겠지만, 그래서야 어느 세월에 소장군 만들겠어?
"상황별 정석 행마를 일러줄테니 최대한 외워두거라. 같거나 비슷한 상황이 나온다면 또 그것을 적용해보고.."
이해하지 못하면 당장 외우기라도 해야겠지. 왜 그게 정석인지는 경험이 능도에게 알려주리.
***
능도는 뭔가 풀이 팍 죽었지만, 어째서인지 과감한 수가 줄어들고 침착하고 냉철한 수들을 두기 시작합니다.
하란은.
처음으로 수세에 몰립니다!
져주시겠습니까? 승리하시겠습니까?
***
음, 좋아. 어찌 첫술에 배부르랴? 그녀는 세가 기울어진 진을 보며 잠시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결론은 머지않아서 나왔다. 그녀는 능도를 짓밟기 위해 여기 있는 게 아니다. 가르치기 위함이지. 위기를 만들되 그 위기를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그녀의 역할이란 말이다. 또 이 녀석, 풀이 죽은 것 같으니 이번은 져주도록 하자.
***
"좋다. 이것이 바로 방북진이란다."
그럼 다음은 어떡한다? 그녀는 능도를 일종의 통역사로 여기고 있다. 천재인 자신과 범재인 단원들을 잇는 다리, 수재. 내가 장교고 단원들이 병이면 능도는 부사관이다 이마리야! 결론은 능도가 더 잘 알고 유능해져야 자경단을 통제하기 쉬울 것이다.
"그럼 다음은...창을 들어라. 내가 창법은 잘 모르지만, 대련 상대 정도는 해 줄 수 있단다. 사파인들을 통제하려면 권위 또한 있어야지."
***
얼떨떨한 얼굴로 능도는 천천히 창을 듭니다.
....
모조리 헛점 투성이입니다. 창을 쥔 자세는 엉성하고, 다리는 불안정합니다.
상체는 흔들리고 시선은 산만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겁박할 정도는 되어도 진짜 실력있는 무인을 만나면 일초지적도 되지 않을겁니다.
한숨이 나옵니다.
대체 어디부터 가르쳐야....?
***
백지로군. 완전 원석이야. 이걸 어느 세월에 깎을꼬?
"내가 창술은 잘 모르지만 말이다. 중심이 하나도 잡혀있지 않구나! 이놈아!"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녀는 말뚝을 가져와서 능도 앞에 꽂아두었다.
"가장 기본적인 찌르기부터 연마하거라! 네가 중심을 잡을 때까지 내가 계속 널 괴롭힐 것이다!"
***
안정적인 자세가 나올 때 까지 눈나는 악마눈나가 되어버렸습니다.
...포상인가?
아무튼, 하란은 다시 한 번 능도의 자세를 봅니다.
그리고 능도는 확고한 이류 무사로 올라섭니다...
하란의 결정에 따라 능도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정파무공을 익히게 할 수도 있고,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자경단의 훈련은 끝마쳐집니다.
***
"...."
솔직히 교룡비급...자기만 알았으면 좋겠다는게 그녀의 심정이다. 아니 그렇잖아 내가 다리 한짝 날려가면서 천신만고 끝에 얻은 건데 딴 사람 알려주기도 뭣하구 교룡님께 가까워지는건 나 혼자였음 좋겠구....
하지만 그것 아는가? 하란이 손쉽게 습득한 광해방검진 또한 수많은 시행착오와 피고름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이 못된 놈!
***
그렇다면 능도는 지금부터 앞으로 하란의 제자가 될 일은 없을겁니다!
자경단원의 기초적인 훈련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
하란에게 모용배가 찾아옵니다.
"...그 어중이떠중이 사파놈들을 제 수족처럼 부리는군. 대단하오."
털썩.
쿵.
모용배의 거대한 몸집이 하란의 방을 가득 채웁니다.
왜 갑자기 제 방에 오셔서 안방마냥.....
흑흑.
***
"모두 세가의 지원 덕분이지요."
그런데 왜...여기 제 방인데 왜... 예감이 좋지 않다.
"그, 어인 용무로 오셨습니까?"
그녀는 우물쭈물하다 말한다. 뭔가...뭔가 있음...
***
"소저는 모용세가의 가솔이오. 그렇지 않소?"
모용배가 그렇게 물어봅니다...
어...음...네.
뭐 그렇기는 하죠?
***
"물론 그렇습니다...만.."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킹용배씨!
"뜬금없이 이상한 곳에 붙어먹을 생각은 없으니 그런 건 걱정 안 하셔도....됩니다...?"
***
"정말인가? 이리 세력을 키우면서?"
모용배는 사파무리..그러니까 자경단이 하란에게 주공이라고 한 것을 봤군요!
"참으로 그리 말할 수 있는가?"
그의 눈은 착 가라앉아 있습니다.
***
아, 그런 말씀이셨나.
"아까 어중이떠중이라고 안 하셨습니까? 세력이라니요?"
솔직히 자경단이 진법으로 강화되었다곤 하지만, 그 단독으로 뭘 할 수 있겠나? 지금은 뒷배에 모용세가와 2공자가 있다지만 그 두 기둥을 빼면 자경단이 대계에 변수를 줄 수 있을 만한 힘을 가졌다곤 보기 힘들다. 그런 건 세력이라기보단, 그냥 무리 아닌가.
"설마 제가 저들을 이끌고 반란이라도 일으키리라 여기시는 겁니까?"
***
"그 어중이떠중이들에게 가문의 절진을 가르치지 않았는가."
모용배는 여전히 착 가라앉은 눈입니다.
"소저의 의중을 의심할만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 않겠소. 절진을 배워 그것을 펼치는건 이해할 수 있으나 내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그것을 남에게 전수하다니 말이외다."
아...그러니까 이건.
모용세가의 체면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하란의 생각대로 저들의 전력은 한 줌 모래와 같습니다. 모용세가와 비교한다면 말이죠.
하지만 그 한 줌 모래 중 하나가 모용세가의 절진을 배웠다는게 문제입니다.
엄연히 사파인 자가 말이죠.
"하나 묻도록 하지. 소저는 그 사파 아해와 사제의 연을 맺었는가?"
***
"그것에 대해서는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나, 저 혼자 그들을 모두 통제하기는 힘듭니다. 게다가 자기네들이 진법 안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도 알아먹질 못하니, 통역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대협."
"능도와 사제까지는 갈 생각 없습니다. 제 일도 바쁜데 제자까지 받아서 일일히 신경쓰긴 정신없지 않습니까."
***
"불행중 다행이로군."
모용배의 얼굴이 조금 풀립니다.
"이 일이 끝나면 그 아이는 본가에서 데려가야겠소. 소저. 아직 어리고 무공의 깊이도 깊지 않으니 충분히 정도를 걸을 수 있을 터. 동의하시겠는가?"
***
"그리하시지요, 대협."
반대할 이유가 있는가? 능도 입장에서도 낭인 생활 청산하고 든든한 생활을 할 테니 좋을 것이고. 능도 걔를 죽여버릴 것이다 이런 말이 나오는 것 아닌가 걱정하던 그녀 입장에서도 안심되는 의견이었다. 정작 능도가 모용세가에 가기 싫어할지도 모르지만...설마 그러겠어?
***
그제서야 모용배의 표정이 완전히 풀립니다.
"소저의 세가를 향한 마음. 잘 알았네. 허허허."
충성심 테스트에 이것저것이 있었나 봅니다...
확실히 하란은 어떨지 몰라도, 남들의 눈에는 하란이 능도를 꽤 아끼는 것 처럼 보였을 수 있을테니 말이죠.
하란의 행동은 모용배에게 저 서역의 사막잡신(캡틴은 기독교다)에게 자기 아들을 바치려하던 신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그런 레벨로 비춰질겁니다.
모용배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갑니다.
***
킹용배가 떠나간다...저 멀리...멀리멀리... 이 쯤 되면 초절정고수의 귀에도 안 들릴 것 같은 거리까지 킹용배가 멀어지고 나서야 그녀는 한숨을 쉰다.
"어후 이놈의 모용세가... 무슨 시험을 서당 일강처럼 치고 있어... 피 말려 돌아가시겠네.."
"그런데 내가 능도를 그렇게 물고 빨았나? 아닌데..?"
능도를 특별대우하긴 했지만 어느정도 선을 긋고 있었던 그녀에게, 주변의 이런 반응은 당황스럽기만 했다. 간 떨려라.
가슴이 벌렁벌렁해서 안 되겠다. 오랜만에 소주천을 한번 돌려보자.
***
종말이 찾아와버렸어용!! 으아아앙!!
- 8성 용인 - 赤 : 내공을 사용할 때 머리에는 용의 뿔이, 손등과 팔, 목에는 붉은 용의 비늘이 올라온다.
- 삼인성호
- "...어라?"
갑자기 왜 이렇게 몸이 간지럽지. 머리도. 피부도... 땀을 많이 흘린 걸까? 아니 이건 겉이 아니라 속에서 오는 가려움인데...
아무튼 그럼 이제 바깥으로 나가봅시다. 바람도 쐬고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보면서...
***
2공자가 죽었다는 소문이 흐르고 있습니다.
....? 네?
누군가의 공작이 의도치 않은 현상을 발생시킨걸까요?
***
??? 머리 위에 갈고리가 올라온다. 누가 죽었다는 거야 지금 폐관수련 하는 기합소리 들은게 한 두번이 아닌데!
대체 누가 이런 잡소문을 퍼뜨린 건지 모르겠으며, 그 목적조차 예상이 가질 않는다.
"저기 아저씨. 2공자가 죽었다구요? 그게 참말입니까? 어쩌다가요?"
그녀는 그런 소문을 말하는 사람 중 하나를 붙들고, 소문에 대해서 물어본다.
***
"아니...그렇다던데...? 뭐 저기 어디 강기슭인가 어딘가에서 2공자 옷같은게 발견됐다고..."
뭐라는거야. 살아있는데!
***
'또 산음로에 빠졌나?'
나도 모르는 새 귀신들이 보여주는 가짜 세상에 빠져서, 현실을 잊고 그 안을 영영 헤매이는...
아니! 아냐! 이상한 생각은 여기까지! 그녀는 아저씨가 말했던 강기슭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뭔가 알아낼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강기슭으로 이동합니다.
거기는 딱히 아무런 것도 없습니다. 옷을 찾아낸 사람이 가져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냥 졸졸졸 흐르고 있군요.
흠.
***
"뭐야..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당장 2공자가 폐관을 깨고 나오기만 해도 들킬 소문이 왜?"
중얼거리면서 물수제비를 통통 튀기고 있던 그녀는 다시 몸을 일으킨다. 근처에 있는 사공이라던지, 낚시꾼이라던지, 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일일히 물어보면서 조금 더 정보를 모아볼 것이다.
***
하란은 근처의 사람들을 훑어봅니다.
주변에는 뱃사공과 낚시꾼, 그리고 강 너머로 향하려는 사람들. 작은 어물전 가게 주인 정도가 있습니다.
누구에게 가서 물어볼까요?
***
사공..사공한테 가보자! 사람들 옮겨주는 사람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겠지?
"이보시오! 사공! 뭐 하나만 물어보겠소!"
***
사공에게 향합니다!
뱃사공은 사람들을 내려주고는 잠시 쉬면서 은전을 세보고 있었습니다.
"으응? 무슨 일..."
그는 하란의 허리에 수줍게 자리잡은 칼을 보고 침을 꿀꺽 삼킵니다.
아 의족같은거로 뭐라하는건 무림인 뿐이라고!
"...이십니...까...?"
무림인을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사람 같군요. 무림인한테 함부로하다가 목 날아가는건 다반사니까요!
***
"별 건 아니고...항간에 2공자가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서 말이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어서."
"혹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중에 뭐 들은 거 없소이까?"
친절한 말에 칼을 더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약간의 돈을 더하면 더욱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녀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엽전 몇개를 짤랑거리며 질문한다.
***
"쇠, 쇤네는 암것도 모릅니다요..."
뱃사공은 엽전을 거부합니다!
그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납니다...
뭔가 찜찜합니다.
***
아무것도 안 했는데, 겁먹었어? 킁킁 어디선가 통제검열의 냄새가 나는데..?
"저기, 이보시오..."
어물전 주인한테도 가서 같은 질문을 해봅니다
***
어물전 주인은 엽전을 받아듭니다.
"흠...그러고보니 저 강 상류에서부터 뭔가 옷가지가 떠내려오기는 했었드랬지요."
그는 엉성하게 난 수염을 관우처럼 매만집니다.
"그리고 그걸 누가 주워갔었는데...아 그게 하필이면 해가 지고나서 가게를 정리할 때 있던 일이라서 말이요. 내 밤눈이 영 어두워..."
***
"흐음...흠..."
서역의 명탐정 설녹함주처럼 곰방대를 뻐끔거리며 설명을 듣던 그녀. 역시 뭔가 찜찜하다 싶어 스으읍 사는 소리를 내면서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거라도 알려줘서 고맙소. 몸조심하시고..."
강 상류라! 거기까지 또 걸어가야겠군! 빌어먹을!
***
하란은 강 상류로 이동합니다!
....거기에는 동굴과 폭포가 있고, 민가가 몇 채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금 시간은 점심.
새참을 먹으면서 강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
"헥...흐엑...이보시오...강태공 소협들..!"
정신나갈것같애! 걷는 건 질색이야! 지팡이검에 반쯤 기댄 그녀는 낚시꾼들에게 비척비척 다가갔다. 예쁜 거지 아니야. 구걸하는 거 아니야. 쓰읍 아니라구!
"여기 어디서 죽은 사람 옷이 떠내려갔다고 그러던데 보고 들은 것 없소?"
***
예쁜 거지를 보는 눈으로 고기잡이 하는 사람들이 하란을 쳐다보다가, 지팡이가 요상하다는걸 깨닫고 금세 공손해집니다.
"죽은 사람 옷?"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쑥덕거립니다.
"아아...저 폭포 위 쪽에서 옷가지가 떨어져 내려오긴 했소만...그게 죽은 사람 것이던가?"
"글씨. 나라도 알겠는감?"
***
"폭포 위?"
저는그만정신을잃을뻔한것입니다. 거기까지 또 올라가라구요? 부하들 좀 데리고 올걸! 이게 무슨 고생이래.
"혹 그 옷이란게 무슨 옷인지 기억나시오? 뭔가 인장이 있었다던지, 어떤 성별의 옷이라던지, 고급인지 저질인지..."
그녀는 냇가에 가서 세수도 하고 물도 마시면서 물어보았다.
***
"그런것까지는 모르지유."
아니 왜?
"우리가 그 옷을 집어간 것도 아니고..."
저런.
일단 단서들을 조합해봅시다...
***
후!후!후!후!
단서를 조합한다! 뉴러언!
***
킥킥킥 캡틴 파업 성공!
***
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럼 그 폭포 위로 가볼게용..영차영차
***
불쌍한 하란이는 의족으로 절뚝거리면서....아! 다리아파! 아프다고!
중간에서 멈춰 바위에 앉아 땀을 식힙니다.
음...여름이라 너무 덥군요.
그런데 왜 추운 것 같지.
바위에 앉아 쉬고 있을 때 나무꾼 하나가 지게를 메고서 올라가다가 하란과 눈이 마주칩니다.
그는 빠르게 시선을 돌립니다.
얼굴이 붉군요.
***
지금 지금 그 느낌이 딱 그 느낌이다! 겉옷을 벗으면 추운데 입으면 더운 그런 아리까리함! 이히히!
이대로 가다가는 내 명에 묫자리도 찾지 못하리라. 주변을 돌아보던 하란은 마침 적당한 사냥감(?)을 발견했다.
"이, 이보시오. 혹시 어디까지 올라가시오?"
***
"저 폭포 위 쪽으로 가는 길....이..오..."
나무꾼은 갑자기 근엄한체 합니다.
***
"거기까지 날 지게로 업어다주지 않겠소? 실한 나무 몇 그루를 썰어줄테니.."
왜 갑자기 근엄한척을 하는 것이지! 다 티가 나는데! 하지만 지금 절실한 것은 나무꾼의 튼튼한 두 다리다.
***
미인계는 확실했습니다.
그런데 왜 무림인한테는 안통하냐고요?
외다리라서 그래요...
하란은 지게에 얹혀서 폭포 위로 이동하는데 성공합니다!
***
"아이고, 고맙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또 반나절 걸릴 뻔 했네."
폭포 위 졸졸 흐르는 계곡에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다. 그걸 보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녀는 아까 나무를 썰어주겠다고 한 자신의 말을 떠올리고 나무꾼에게 질문한다.
"사람들이 이 위에서 무슨 옷이 흘러내려왔다 하길래 조사중인데, 혹시 뭐 본 것 없습니까? 으응?"
그녀는 지팡이로 곧은 나무를 툭툭 쳐보더니 이내 검을 뽑아 단칼에 밑둥을 베어버린다. 그러니까 이것은 은혜값기임과 동시에 무력행사인 것이다. 아는대로 바르게 말해야 할 것이다 나무꾼!
***
나무꾼의 헤실거리던 표정이 겁먹은 것으로 바뀌어버립니다.
나무꾼의 마음이 어떻던 간에 하란의 무력시위는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아....모...모...모릅...니다...."
벌벌 떨면서...어....
지린내가 납니다.
이거 내려갈 때는 혼자서 내려가게 생겼군요.
***
무림인 한두번 보나. 뭐 이런 걸로 지리고 그러나. 이히히 썩둑썩둑.
"그런 이 주변 나무하면서 이상한 것도 본 적 없구요?"
그녀는 거사를 마친 후 주변을 슥 둘러보면서 말했다.
***
나무꾼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젓습니다.
음...
사람 탐문은 여기까지이고, 이제부터는 직접 두 발로 뛰...아 하란이는 발이 없죠.
한 발로 뛰어야할겁니다.
***
"예에..그러신가.."
웃으면서 까딱까딱 손을 흔들었다. 이제 그만 볼 일 봐도 좋아!
그리고 그녀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서 주변을 매의 눈을 샅샅히 살피기 시작한 것이다!
***
나무꾼은 헐레벌떡 도망갑니다!
하란은 한 발로 낑낑거리며 주변을 탐색해봅니다.
.......색적 스킬 내놔 김캡틴!!!
일단 확인할 수 있는건 이 근처에 민가는 없다는 것.
그리고 일부러 오지 않는 이상 여기에 사람이 올 일은 없다는 것 정도입니다.
***
정리를 해보자
1. 근처에 사람사는 곳이 없다.
2. 일부러 오지 않는 이상 사람이 올 일은 없다.
그렇다면 결론
3. 지금부터 눈에 보이는 사람은 모두 거수자로 간주한다. 호남의 치안을 위해 자경단장 나가신다.
그녀는 넓은 반경으로 장소를 옮기며 계속해서 수색을 이어간다. 힘들긴 하지만...그래두..
***
'누가 여기로 지나갔나? 그냥 약초꾼이나 나무꾼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두고 가기도 찜찜하다 말이지. 꺾인 나뭇가지를 내려다보던 그녀는 주변에 그와 같은 흔적이 있는지 확인해본다. 만약 있다면 그것을 따라갈 것이다.
***
부러진 나뭇가지들은 매우 불규칙적입니다!
그제서야 하란은 깨닫습니다.
이거.
수준이 전문가 수준입니다.
일부러 뒤를 밟히지 않도록 흔적들을 어지러이 꼬아놓았습니다.
그러면서 돌아간 방향은 꼼꼼히 지웠고 말입니다.
***
"야 이거 제대로 잡았다."
보통 약초꾼들이 이러고 다니지는 않지? 분명 뒤가 켕기는 누군가의 흔적이다. 문제는 이런 흔적을 어떻게 쫓아가야 할지 막막하다는 것이다.
일단 그녀는 잠시 수색을 중단하고, 지금까지 얻어낸 정보를 토대로 새로운 사실을 유추하려 해본다.
***
이건 다이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왜냐구요?
스킬 빨이기 때문이지용....
***
그럼 계속 돌아다녀봅니다..흐아아악
***
계속 돌아다녀봅니다!
.....뭔가 구슬 파편같은걸 하나 발견합니다.
이게...뭐지...?
***
??? 이게 뭐지? 구슬쪼가리? 이런 곳에 왜 구슬 쪼가리가?
그녀는 면밀히 살펴보고 깨물어보고 손 안에서 굴려보고 하여간 구슬쪼가리를 면밀하게 관찰해봅니다.
***
아무리봐도 뭔지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하란의 지식 내에서는 말입니다.
***
'이건 딴 사람한테 물어봐야지.'
자경단이든 킹용배든 그 휘하 모용무사들이든! 주변에 사람은 넘쳐나니까 알 사람이 하나는 있겠지!
아무튼 시간도 꽤 흘렀고 계속 길도 없는 산을 뛰어다니다 보면 적한테 죽기 전에 제 풀에 먼저 죽을 것 같다. 이만 하산하자..
***
하란은 하산을 시작합니다....
중턱정도 까지 간신히 내려옵니다!
흑흑 발이 넘모 아픈 것이에용....
***
"끄흑..끄..."
내가 잘못했어 나무꾼아. 내가 나무 해줬잖아 돌아와!!!!
..그렇게 외치고 싶다. 괜히 겁을 줘가지곤. 너럭바위에 앉아 죽상을 하고 있던 그녀는 별안간 어딘가 뒷골이 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보통 그런 식으로 흔적을 속이고 다니는 주의깊은 사람이라면, 누가 자기 뒤를 밟거나 하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강에서 사공을 만난 시점에서 이미 그녀의 존재를 알아챘을지도..
"숨바꼭질은 그만하고. 그만 나오지요?"
그녀는 직감의 길을 따라 주변의 기척을 살피며 아무 말을 한다. 없음말고!
***
아무도 없구나 머쓱타드^^
그럼 안심하고 저택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중간에 이상한 사람이 붙진 않는지 신경쓰면서 말이다.
"내가...내가 경공 고수들을 돈으로 사서 가마를 타고 다니고 말지... 이건 할 짓이 아니야..!"
물론 그 길은 길고도 고통스러우리.
***
드디어 집에 돌아옵니다!
흑흑...
***
"킹용...아니 광검배 대협 지금 어디 계시죠?"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킹용배에게로 직행한다. 이 일만 상의하고 당장 쉬자. 당장 드러눕자. 난 오늘 열심히 일하지 않았는가.
***
모용배는 구슬조각을 보고 아리송한 표정입니다.
"....나도 모르겠군. 단순한 구슬은 절대 아닐세만."
모용배쯤 되는 인물도 못알아본다??
흠...?
***
"대협도 모르신다면 분명 예사 물건은 아니라는 건데."
이거 분명...뭔가 있음...뭔가가... 뭔가 거대한 것이... 거대한 흑막이...
"지금 호남에 2공자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2공자 옷가지가 강으로 떠내려왔다길래 거슬러 거슬러 계곡 있는 산까지 올라갔더니, 누군가 의도적으로 지나간 흔적을 찾지 못하게 어지럽힌 흔적과 이것을 찾았습니다. 분명 어중이떠중이의 실력은 아니었습니다.."
***
"...그 사람들이 이미 포섭된 사람일 수도 있겠어. 당분간은 밤에 조심해야겠군."
모용배는 입술을 질끈 깨뭅니다.
아니 킹째서?
"이 곳 개방 지부가 무너지면서 정보를 다루는 자들의 공백이 생기지 않았는가. 누군가는 그 자리를 차지하려 들 테지. 총관 놈의 짓일 가능성이 조금 높아보이는군..."
***
"그럴 수도 있겠군요. 질문을 했을 뿐인데 이상하리만치 겁을 먹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란도 그곳에서 검열과 통제의 냄새를 맡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벌써 하란이가 다녀갔대요! 하고 다 일러바쳤을 수도 있다는 것.
"그런데 그걸 모르겠단 말입니다... 2공자가 폐관을 깨기만 해도 뒤집힐 소문인데. 왜 그런 알량한 소문을 퍼뜨린 건지 원..."
***
"본인 또한 그 연유를 짐작할 수가 없네. 어째서......."
모용배는 온지 얼마 안된 인물!
그는 혼란스러워 합니다.
"혹여 2공자의 인품이 훌륭해 민초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는가?"
....그런...가....?
***
"제가 그런 식으로 포장을 하려고 생각은 해 봤지만 원래부터 그랬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것 봐라 치안을 살피고 사랑을 위해 헌신하시는 저 인애넘치는 2공자를 보라! 는 식으로 선전을 해 볼까 하는 것도 계획에 있긴 했다. 그런데 2공자가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나? 개방은 2공자가 소인배라더만.
"그 소문으로 사람들이 딱히 슬퍼..했었나?"
***
그들은 오히려 총관을 더 신뢰하는 쪽이었습니다.
석가장주가 아프게 된 이후부터 내정을 해오던 것은 총관이었으니까요.
민초들에게 인기있던건 총관이지 2공자가 아닙니다.
***
"아닌데...? 그렇게 막 슬퍼하진 않았었는데?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그런 분위기였습니다만."
지금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야!
***
하란의 머리가 재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총관은 굳이 정보조직을 새로 심을 필요가 없습니다.
민심은 원래부터 총관 쪽이었으니까요.
개방은 정파의 것이니 박살내는 것이었지만,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총관은 정보전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정보전을 싫어하는 쪽이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개방을 써먹을 생각도 하지않고 축출해낼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보를 필요로 하는 자들은?
정보를 조작하여 명분이나 이득을 취해야하는 이들은?
자연스레 2공자와 사생아가 남습니다.
그런데 2공자는 우리입니다.
자연스레...
하나로 좁혀집니다.
***
"총관이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습니다. 우리와 정보전을 벌이고 싶었다면 개방을 써먹지도 않고 저런 식으로 손을 쓸 리가 없죠..."
나왔다 하란 설녹함주! 사실은 캡틴이 말해준 걸 그대로 따라읽는 것에 불과하지만. 홍홍!
"사생아, 마교도 쪽에서 벌인 일 같은데. 지금 2공자의 연인이 마교도에게 잡혀있고..."
희미한 안개 속에서 길이 보일 듯 말 듯 하다. 그녀는 이런 아슬아슬함이 싫었다. 재채기가 나올락말락 하는 이 기분.
"지금쯤 그 연인을 고문하던가 회유하던가 어떻게든 손을 쓰고 있겠지요? 마교도들이?"
***
모용배가 머리를 짚습니다.
폭력적인 리액션을 보여줄 줄 알았는데!
"마교놈들이었군! 이런 젠장할!"
폭력적인 언어를 쓰기는 하는군요!
"당분간 밤에 꼭 조심하게. 마교 놈들의 사고방식은 우리 중원 사람들과는 다르니...밤이 아니지. 그저 매사에 조심하게. 반드시."
***
"당분간은 되도록 저택에 머무르겠습니다. 여기서도 할 일은 많지요.. 수련도 있고, 자경단 놈들도 한참은 더 굴려야 하고."
"아니다, 자경단도 거둬들여야 하나? 하지만 안가를 습격하려면....하여튼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머리맡에 칼을 두도록 하지요."
***
모용배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제부터는 하란이 대비를 해야할겁니다....
***
모용배의 방에서 나왔다. 져가는 노을이 어딘가 섬칫하다. 옛날에는 이렇게 자신을 딱 노리고 죽이려는 사람은 없었는데...찌릿찌릿하군.
그녀는 자기 방으로 돌아온다. 책상 위에 비급서가 있다. 원래는 어디 감춰둬야 하는데, 까먹었었다. 그 비급서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자니..앗..아아....
***
아...아아.......
- 9성 등용문 : 용이 되는 법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날 때 부터 용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용생자. 다른 하나는 수련을 거듭해 등용문에 들어서는 것. 당신의 눈 앞에는 희미하고도 짙은 거대한 문이 보인다. 모든 준비가 되었고, 곧 등용문의 시험이 시작되리라. 신선이 되고자 하는 모든 동물들의 말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은 당신을 스승이나 그에 준하는 존재로 보게 될 것이다.
등용문이 당신에게 열렸다.
- 음흉한 정파 나가신다
- 아아아아아 오늘치 끝!! 하란은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
그리고 다음 날, 해가 뜨자마자 그녀는 자경단의 간부를 찾아가서 묻는다. 일단 자경단들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 분명 자경단을 찔러서 그녀를 끌어내려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안가 파악은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었죠?"
***
"현재..."
자경단원들과 다른 머리들이 한데 모여서 몇 곳을 가리킵니다.
"네 곳이 가장 유력합니다."
네 곳? 뭐이리 많아?
"이 이상은 직접 탐문해보지 않는 이상...더 이상 파악이 불가능합니다."
***
"4곳이라..4곳... 훨씬 낫군요. 이 넓은 호남 땅에서 4곳만 가 봐도 되는 것이니."
사실 임마 더 추려야지 4개가 뭐야! 하고 혼내고 싶었지만..어쩌겠나. 이들이 개방도 아니고 살수도 아닌 것을.
"일단 나가있는 자경단들 모두 저택 안으로 불러모으세요. 당분간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저택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습니다."
그녀는 간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준다. 지금 우리 마교한테 완전 찍혔다고, 공격 징후를 포착했다고! 개죽음 당하기 싫으면 모두 돌아와!
***
다들 공포에 질려서는 안으로 들어옵니다!
당분간 석가장 인근의 치안 상태는 악화되기 시작할겁니다...
***
"흐음. 그래서.."
치안은 악화되겠지. 고육책이지만 당장은 이 수 밖에 없다. 그녀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회의를 연다.
"지금 추려낸 4곳이 어딘지 뭐 하는 곳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
숲 속의 폐가, 호남의 저택, 산 속의 동굴, 강 기슭의 지하.
이렇게 나왔습니다.
***
"우리...이렇게 해봅시다."
(대충 검열된 방법)
***
그들은 고심하고 고심합니다.
"과연 그들이 우리 의도대로 움직여줄 것인가....싶습니다. 제가 알기로 희안한 술수를 많이들 부린다고 들었습니다만..."
이리 하시려면 직접 움직이셔야 됩니다!
경험해보셨듯, 이 친구들은 이상한 술수를 마구마구 잘 부릴 수 있습니다...
***
골치아프군. 그녀는 잠시 화제를 돌린다.
"제가 처음에 말했던 게, 방을 훼손한 자들을 뒤쫓아서 위치를 파악한다는 거였죠. 그렇다면 그 용모파기 파악된 자들이 이 네 곳을 자주 들락거렸다는 의미입니까?"
***
"아닙니다."
그들이 고개를 젓습니다.
"놈들의 동선을 계산해보았을 때 이 네 곳이 유력하게 나왔을 뿐입니다. 그...놈들이 저희보다 무공이 그..."
차마 자존심 때문에 말은 못하지만, 방을 뜯은 자들이 우리 자경단원들보단 고수인가봅니다.
***
어 그래..그렇구나...하...
"저택에 들어간 적이 없던 사람이 정문을 통해서 나온다. 정문으로 들어갔던 사람이 나온 적이 없는데 다른 곳에서 발견된다...."
"그 저택이라는 곳에 비밀 통로가 있다면 십중팔구 비밀 시설이란 거겠죠. 저런 징후가 관측될지도 모르고."
너희들이 그걸 알아보지 못했으니 지금 해야겠습니다. 그녀는 말한다.
***
"저택으로 가보시겠습니까?"
사람들이 채비를 할겁니다.
***
"가봅시다. 너무 소란 떨지는 말고. 그랬다간 놈들이 방을 뺄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
저택으로 향합니다!
한 번 더 이동해야합니다...
***
"이럴 때 생각해보면 전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났어요. 천 년 후에 태어났으면 다리 잘린 것도 척척 붙여줄 것인데!"
투덜투덜..하지만 걸어야만 한다...
***
"천년이 지나도 다리는 못붙이지 않을까요?"
누구 하나가 눈치없이 그렇게 대답합니다.
쟤는 이따가 원산폭격 시켜야겠다.
하란은 드디어 저택에 도착합니다!
저택은...딱히 사는 사람도 없고 방치되어있는듯 을씨년스럽습니다...
사람이 지나다녔는데, 사람의 흔적이 없다라?
***
"방검진을 펼쳐라. 첫 실전이 될지도 모르겠다?"
일단 경계.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무조건 경계 또 경계만이 살길이리라. 그녀는 광해방검진의 묘리에 따라 단원들에게 지시한다.
"신씨. 진의 후방을 받쳐주십시오. 제가 앞에서 함정이 있나..그런 걸 보겠습니다."
***
오랜만에 이름이 나오는 신채훈은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고 뒤로 갑니다.
툭툭.
두들겨보지만 딱히 뭔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거미줄과 먼지가 가득한 저택입니다.
"...그럴리가 없는데..."
잘못짚은 것일까요? 아니면...
***
거미줄과 먼지는 인적 드뭄의 증거가 될 수 없다. 먼지는 하루만 쓸지 않아도 쌓이는 것이고. 한 식경 전에 널어놓은 빨래에도 집을 짓는게 거미인 법.(실화임)
"수색을 계속한다."
모퉁이를 빼꼼빼꼼 내다보면서. 고양이 걸음처럼 사뿐사뿐 가볍고 소리없이..계속 가 봅시다.
***
여전히 인적없이, 오랫동안 누가 들어오지 않은 장소인 것 같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접근법이 틀린게 아닐까요?
가령.
하란은 지팡이로 벽을 쿵 찍습니다.
푸욱.
지팡이가 벽을 쑤욱 통과합니다.
진법이라던가.
***
...아차.
"여긴 진법 안이다! 검림진을 펼쳐라!"
소리를 빽 지르고 칼을 뽑아듭니다. 함정이었던 건가!
***
하란은 검진을 펼칩니다!
................
다들 긴장한채 가만히 대기합니다.
......
아무 일도 없나?
다들 안심하고 검진을 해체하려 할 때 쯤.
스스슥.
핏!
퍼억!
자경단원 하나의 다리가 부러집니다!
"끄아아악!"
광해방검진의 힘으로 다행히 부러지기만 했지, 이게 없었으면 하반신 모두가 사라졌을만한 공격이었습니다.
사람은 아니고, 기관진인 것 같군요.
***
"천천히..침착하게. 이곳에서 빠져나간다. 진의 붕괴가 곧 전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라."
"그리고 저 녀석은 부목 대주고 누가 어깨 좀 빌려줘라."
사람 없이 기관진만 남아있다면 에라 엿되어봐라 하는 함정이다. 여기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어. 나가야겠다. 침착하게..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지. 절대 길을 벗어나지 마라."
***
하란일행은 침착하게 후퇴합니다........
...
....
.....
모두가 떠나고 으슥한 기운과 적막만이 남은 시간.
누군가 하나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섭니다.
"기관진이 발동되었군."
검은 복면을 쓴 누군가는 쯧 혀를 찹니다.
"누가 알아차렸다. 알아내라."
그리고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
"아 이렇게 되면 좀 곤란해지나..."
기관이 작동되었으니까 그걸 설치한 사람도 알아챘을테지. 올무에 사냥감이 걸렸나 확인은 해야 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잔뜩 쫄아서 후퇴하느라 먼지에 찍힌 발자국도 안 지우고 돌아와버렸다. 한번 불로 쓸어만 줘도 되었을 것을!
"마교랑 총관에게 협공을 당하는 건 마음에 안 들어. 한 쪽을 빨리 작살내버려야 하는데."
물론 총관 먼저. 지금 지원 공자가 절강에서 일을 벌이고 계시니, 딱 흑천성의 뒤통수가 간질간질할 때다. 이 틈에 빠르게 총관을 정리하고 싶다. 물론 그 지부도.
"서둘러야겠다."
***
동굴로 이동합니다....
허리를 숙이고 몸을 웅크리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작은 입구의 동굴입니다.
"많이 들어갈 수는 없겠는뎁쇼."
***
"....."
옛날 생각이 난다. 다리를 잃은 독사굴. 하지만 그녀는 그곳에서 새로운 기회 또한 얻을 수 있었다. 저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밀려나왔다.
"밑작업도 없이 들어가긴 불안하겠지?"
손을 휘적휘적. 잠깐 비켜보라는 사인을 준 후에, 그녀는 동굴 안을 향해 무자비한 화염방사를 시작하였다. 혹여나 안에 기관진이나 매복이 숨어있다면. 전부 불타버려라- 하면서.
***
화르르르르르르르륵 - !!!!!!!!!!
불길이 안쪽으로 자꾸자꾸 들어갑니다.....
후끈한 열기가 동굴 밖의 입구 쪽까지 느껴지고, 잿빛 연기가 입구를 통해 흘러나옵니다.
주변을 둘러보게 시켜도 연기는 다른 쪽으로 빠지지 않고 오직 동굴의 입구에서만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천재인 하란은 바로 지읒이 됐다는걸 깨달았습니다.
이거, 연기 다 빠지기 전까지는 절대 못들어가겠는데요.
안의 기관들은 분명 다 타버렸겠지만요.
***
잠깐만. 염화불침지체가 연기를 마셔도 멀쩡한 능력이 있었던가? 아닐텐데?
아, 이거 ㅈ.....
"연기가 빠지면 바로 들어가도록 합시다. 안에 무슨 적대적인 것이 있든 죄다 타 버렸을 테니 아무 걱정 마시고!"
***
자경단원들은 군기를 엄정히 한 채로 연기가 빠지기를 기다립니다.
..
...
....
흘러나오는 연기가 잦아들고 열기도 식었습니다.
하지만 안에는 여전히 독한 연기가 남아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타는 연기는 분명히 위로 뜨는 성질이 있었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엉금엉금 기어가야 하나. 안쪽에 넓은 공간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능도. 내가 들어가 있는동안 네가 지휘관이다. 진을 펼치고 주변을 경계하도록."
모두가 들어갈 수는 없다. 그녀는 몇 명의 인원을 데리고 들어가며 능도에게 남은 인원을 잠시 맡겼다.
***
자경단원 중에서 실력이 뛰어난 편인 이들을 데리고 동굴로 들어갑니다...
동굴은 암흑 속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와 잔불들이 남아 붉게 명멸하고 있습니다.
자박....자박...
발바닥에서부터 열기가 전해져옵니다. 뜨겁군요. 하란은 아무런 영향도 없지만 다른 자경단원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
"많이 덥죠? 뭐라도 빨리 찾으면 그만큼 빨리 나가는 거에요~"
자기 안 덥다고 그러는 게 분명하다. 악독한 놈!
그녀는 허리를 숙이고 지팡이로 바닥과 벽을 헤집으면서 단서를 찾아 헤맨다.
***
"너...너무 뜨겁습니다..."
자경단원들이 고통을 호소합니다!
안에는 잔불과 재들만이 남아있습니다.
그것들이 바닥을 전부 덮고 있으니 쉽지만은 않은 일정입니다.
***
"....그럼 나가서 기댜리세요."
언제쯤 사람됄래 이것들아!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퇴거 허가를 내어주었다.
그나저나 이놈의 재 때문에 수사가 영 지지부진하다. 마음에 들지 않아! 그녀는 자경단원들이 빠져나간 후 검을 뽑았다.
검을 바닥에, 잿가루 속에 반쯤 파묻고 그대로 1성 포효를 사용한다. 이렇게 하면 바닥의 잿가루들이 싹 날아가지 않을까?
***
자경단원들은 급히 빠져나갑니다!
퍽! 퍽!
재를 아무리 뒤져봐도 뭐가 나오진 않습니다. 뎬장.
그러던 찰나에 저 멀리 뭔가 빛을 내고 있습니다.....
***
으아니 챠! 무엇인가 발견했다. 빛을 향해서!
***
하란은 빛을 향해서 절뚝거립니다!
으아! 니! 챠!
내 다리 무엇!
한 번 더 레스를 써주십시오....
***
끄아앙 내다리! 왜 나는햄보칼 수 없는거야 잉잉.
***
이거슨 하란주의 업보인 거시다....
아무튼 하란은 간신히 빛나는 물체 앞에 멈춰섭니다.
이건....뭐죠?
빛나는 파란 꽃입니다.
...이름도 모르겠군요!
***
'이건 지부랑 상관없는 것 같은데. 그리고 불에 안 탔다고?'
기시감..기시감이 느껴진다.. 지난번 그 피톤치드 향 나던 푸르딩딩한 삼이...
또 이거 먹고 운기하면 시간이 걸릴 것인데. 단서를 찾을 시간이 있는건가? 일단 뿌리까지 조심해서 뽑아보기로 했다.
***
뽑으려 합니다!
....
안뽑힙니다!
아니? 네? 일류고수가 힘으로 뽑으려 하는데 안뽑힌다구요?
??????
***
?????????? 안이 이게 무슨 일이여. 일류고수의 힘으로 안 뽑힌다굽쇼? 아래쪽에 무엇이 있는 것이지?
주변을 파봅니다. 흙은 파내고 암반은 부숴라!
***
훌륭합니다!
주변을 파고 부수고 하니 거기에는 엄지손톱만한 크기의 열매가 하나 열려있습니다.
빛나는 파란 꽃과 손톱크기의 열매.
둘 중 하나는 거짓이겠군요.
***
"뭐, 당연히 척 봐도 이 쪽이 본체처럼 보인단 말이야?"
이 꽃은 무언가의 미끼 비슷한 것일까? 초롱아귀의 초롱불이라던지.. 그녀는 열매가 진퉁이라는 쪽에 걸어보기로 했다.
***
열매를 챙깁니다!
아직 정체를 모르겠군요....이상한 열매가 아이템으로 추가됩니다!
【 이상한 열매 】
불타버린 동굴 안에서 빛나는 파란 꽃 아래를 파 본 결과 찾아낸 열매.
어디다 쓰는 것인지, 먹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걸 잘 아는 사람을 찾아간다면 알게될지도...?
- 기이한 향이 나고 있다.
***
그럼 이제 다시 단서 찾을 시간! 불을 질렀으니 어지간한 단서들은 전부 묻히거나 탔을 것이다.
하지만 구조적인 단서. 가령 비밀 문, 벽이나 바닥 속에 숨겨진 장치들은 작동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는 남아있을 것이다. 아까 암반을 부순 경험을 토대로. 벽이나 천장, 바닥을 조금씩 두드리고 깨면서 탐색해보자.
***
벽을 통통 두들기거나 깨봅니다...
음, 손이 아프군요. 지팡이검으로 두들겨봅시다.
딱딱한 동굴 암벽입니다.
깨지지는 않습니다. 깨려면 필시 강대한 힘이 필요할겁니다.
바닥도 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이 근방에 함정이나 기관장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요?
있다면 그건 꼭 함정이나 기관장치여야 할까요?
싸늘한 소름이 하란의 몸을 훑고 지나갑니다.
타다다닥!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옵니다! 방향은 전방! 동서쪽!
피잉!
날카로운 단검이 날아들고 하란은 고개를 옆으로 젖혀 피해냅니다. 동굴 벽에 박힐 기세로 강하게 날아들던 단검은 어느순간 공중에서 떡하니 멈추더니 곡선을 그리면서 다시 하란의 뒤를 노리고 날아듭니다.
쿵.
하란은 멀쩡한 다리에 힘을 주면서 의족을 하늘로 차올립니다. 몸을 뒤집으며 180도로 머리와 다리의 위치를 바꿉니다. 하란의 머리를 노리고 달려들던 단검은 한철이 미약하게 섞인 의족에 흠집을 내면서 휘청이며 올라갑니다.
픽!
그리고 무언가가 잡아당기는듯이 균형을 회복한 단검이 짜르르륵 소리를 내며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갑니다.
***
"...이 개자식이!"
이렇게나 불을 싸질러 놨건만 사람이 안에서 살아있다고? 이것은 상정 외의 사태였다. 비수를 실에 매달아 휘두르는 듯한 공격을 한 차례 피하고, 그녀는 즉시 검을 뽑으며 방어 태세를 갖춘다.
"신씨! 들어오세요! 빨리!"
절정고수는 동굴 입구에서도 어느정도 소리가 들리겠지. 그녀는 어둠 속으로 검을 겨누며 지원을 요청한다. 놈들의 소굴로 혼자 들어갈 수는 없다.
***
콰아아앙!
동굴 벽을 부수면서 신채훈이 난입합니다!
"후우웁...!"
그는 들어오자마자 급하게 숨을 참지만, 빛이 살짝 들어오고 공간이 생기면서 남아있던 연기들이 급하게 위로 빨려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짜르르르르르....
소리를 들은 신채훈은 재빠르게 하란의 목덜미를 낚아채 뒤로 움직입니다!
콰드드드득!
바닥을 무언가가 긁은듯한 흔적이 남으면서 픽! 소리가 나더니 다시 짜르르르르 소리가 들려옵니다.
"눈에 힘을 집중해도 보이지 않고..살수는 아닌듯한데."
그러고보니 하란일행은 석가장의 무공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일단 혼자는 아닙니다."
신채훈이 판단합니다!
***
"좁고 긴 동굴 안이니 숫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운이 좋다면!"
보이지 않는다니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냐. 하란은 손바닥 위에 불덩이를 피워올리더니, 그것을 공처럼 저 안으로 홱 던진다. 일단 시야 확보부터!
***
퍼어어엉!
조명탄처럼 내공을 이용한 불이 터지고 순간적으로 빛을 발합니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뭐 저런!"
신채훈은 당혹해합니다.
"저번부터 우리 너무 귀신같은거랑 엮이는거 아닙니까!?"
산음로를 겪긴 했지만 설마 저게 귀신이겠습니까?
***
이거 자경단 몸빵으로 들어갔다간 몸이 다 갈려나가겠군. 결국 고생하는건 우리 둘이구나! 슬프도다!
"아이고 우리 신세야... 들어갑시다. 귀신 잡으러!"
하수가 앞에 서는 법. 그녀는 횃불처럼 칼 끝에 작은 불을 피워올리며 안쪽으로 한 발짝식 들어간다.
***
하란은 절뚝거리면서 천천히 돌입합니다.
채훈은 조심스레 그 뒤를 따라갑니다...
따각...툭...따각...툭...
짜르르르르....
소리가 들려옵니다! 대비하세요!
***
귀신 같다고는 하나, 분명 사람이 조종하는 기물이다. 사람에겐 모두 귀가 달려있지.
그리고 동굴 안에선 소리가 아주 쩌렁쩌렁하게 울리지 않겠는가?
"옵니다!"
내공을 끌어올린다. 3초식 교룡린. 자세를 잡음과 동시에 칼날을 두드린다.
***
교룡린
짜르르르 울면서 날아오던 검은 하란의 검에 공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후퇴합니다!
"오..그런 방법이..."
신채훈도 따라하려고 하지만, 이건 안타깝게도 모용의 무공이 아니라서...
픽!
한참을 두들겨오던 단검은 하란의 방어를 뚫어내지 못하고 회수됩니다.
"그런데 저게 대체 무슨 무공일까요."
그러게요.
***
"아무리 봐도 암기술의 일종인데. 솔직히 말해서 암기 하면 당문밖에 생각이 안 납니다."
그리고 저것들이 당가의 무사일 리가 없지. 그네들은 마교도 막는다고 피똥을 싸고 있잖은가. 얼마 전엔 후계까지 죽었다더만.
"젠장, 갑자기 맵싹한 사천요리 생각이 나네요."
그녀는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계속 걸어 들어간다.
***
"모르는데 이렇게 막 들어가도 되는겁니까?"
신채훈이 불안감을 표합니다.
"저게 만약 석가장의 비밀병기라도 되면..."
짜르르르르르!
"망할."
***
"역시, 광검배랑 같이 온 모용 무사들이나 2공자의 무사들이라도 끌고 오는...."
우리 둘만 이렇게 들어가기엔 불안.... 아 또 저 소리! 그녀는 다시 교룡린을 펼친다.
***
따다다다다당!
이번에는 단검이 두 개입니다! 하란은 땀을 삐질 흘리면서 막아내는데에 성공합니다.
....아까는 분명 단검이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채훈은 하나가 아니라고 했지요.
흠?
***
"아이 젠장, 저것들 작정을 하고 몰아칩니다. 일단 오늘은 물러나죠!"
***
물러납니다!
그들은 쫓지 않습니다...
***
저택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광검배 대협께 보고를 하러 간다. 원래라면 2공자님한테도 가야 하는데 폐관수련 중이니까...
"동굴에서 적의 징후를 포착했습니다. 처음엔 동굴 안에 불을 지르고 들어갔었는데..."
***
킹용배는 무릎을 탁하니 칩니다.
"석가장의 은잠무!"
그게 뭐여.
***
"은잠무요? 은 은에 누에 잠, 춤 무를 말하는 것입니까? 딱 어울리는 이름이군요."
***
"석가장이 대표적인 사파의 거두다보니 다들 강맹하고 기교보다는 힘을 추구하는 패도적인 면모라고들 생각하네."
모용배가 운을 뗍니다.
"얼추 맞는 말이긴 하지만. 석가장은 본래부터 양잠을 해 부를 축적한 가문이지. 석가장이 무림문파가 되기 전부터 그랬었으니. 예전부터 석가장주 휘하에 살수인지 무인인지 구별안가는 것들이 은잠무라는 것을 익혔다고 들었네만...."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장주에게만 충성할 터인데, 그들이 총관을 따르기라도 했단 말인가?"
***
"어허... 총관이 다음 장주가 되리라 생각하나봅니다."
"누에밭에 불을 질러 버리면 그네들이 튀어나올지도 모르겠군요. 그게 가능하다면 말입니다..."
물론 그게 될 리가. 종전 이후도 생각해야 하고, 상식적으로 돈줄은 매우 엄중한 보호를 받고 있을 것 아닌가.
***
"아니. 석가장주가 되려면 당연히 다른 도전자들은 꺾어내야한다네."
킹용배가 아닐거라는듯 고개를 젓습니다.
"그들이 왜 어째서 거기에...흠...."
앞뒤가 맞지 않는군요!
***
"그럼 만약에.."
"그 자들이랑 뭔가 오해가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당연히 총관 부하인줄 알고 공격하니까 저쪽에서도 반격을 하는 거고.."
***
"알 수 없는 일일세..."
모용배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총관 부하인줄 아는게 아니고, 오히려 거기에 들어간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드네만."
***
"그 동굴이 성역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누에의...성지?"
***
"...? 그런 말은 한 적 없네만. 거기가 그냥 그들의 숙소라거나 그럴 수도 있지 않겠나...그런 뜻이라네.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는가?"
모용배는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 확실한건. 거기 있는 자들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 지긋지긋한 후계 쟁탈전이 끝날거라는 것이겠지."
***
"다시 그곳에 가보던지 해야겠습니다. 여기서 머리통만 굴리기엔 아직 재료가 부족한 느낌인지라."
슬슬 일어나보려는 그녀. 갑자기 뭔가 생각났는지 다시 앉는다.
"그 은잠무라는 것, 이름처럼 실 달린 비수는 날아오는데 그걸 던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찌하면 그것을 깨부수고 나아갈지, 혹시 아십니까?"
***
"...안타깝게도 상대해본 적이 없네."
모른답니다! 킹용배! 당신은 이제부터 킹용배가 아니다!
돌아갈까요?
***
"그럼 일반적으로 암기를 상대하는 법은....?"
***
"이렇게 요렇게...감사합니다 대협.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그럼 보고는 여기서 끝! 다시 그 동굴로 가기 전에, 의원에게 들려보자. 전에 베여서 쓰러졌을 때 그녀를 치료한 의원이 저택 안에 있을 것 같다. 의원은 약초에 통달하니 이 열매에 대해서 알지도 모른다.
***
의원에게 갑니다!
"무슨 일이시오...?"
***
"혹시 이 열매에 대해서 아십니까?"
그녀는 의원에게 열매를 보여주었다.
***
"....?"
의원은 처음본다는듯 열매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처음 보는 열매군요. 이런건 약초꾼들이 더 잘알지요. 저같은 의원들도 약초에 능하다고는 하더라도 이런건 듣도보도 못해봤습니다."
약초꾼 내놔!
***
역시 예사 열매가 아닌가. 봉 잡은 걸지도.
"그렇다면 이 근방에 괜찮은 약초꾼이 있는지 가르쳐주시겠습니까?"
약초를 납품받을 것 아니여! 약초꾼 내놔!
***
약초꾼의 위치는 꽤 멉니다!
아무튼 위치를 확인 받았습니다...
***
여긴 기억해 뒀다가 좀 있다가 가보도록 하자.
"신씨신씨. 우리 둘이서 해 지기 전에 거기 빨리 다시 다녀옵시다. 아까 거기 있던 사람들이 총관 부하가 아니라고 그러시는데, 말이 통할지도 모르겠어요."
***
"예? 단 둘이서요?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신 뭐시기(채훈)은 당황합니다.
"제가 아무리 절정의 무인이라고는 해도...그 놈들 상대하기가 여간 어렵잖은게 아닙니다."
***
"그럼 가볍게 조장급들만 데리고 가자구요!"
이런 식으로 말 길게 할 시간은 없다!
***
조장들이 급히 소집됩니다!
"주공! 거긴 위험한 곳 아닙니까...?"
겁쟁이들!
***
"그래서 나랑 이 사람이 같이 가는 거지. 당신들만 덜렁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아까 그 사람들이랑 오해를 한 것 같기도 해서... 소리를 지르면 의외로 받아줄지도 모르잖아요?"
- 비단을 쥔 자가 호남을 지배하리라
-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자기들보다 훨씬 강한 하란과 신채훈이 어떻게 반격도 제대로 못했다는데 자기들이 도움이 될런지, 이런 느낌입니다.
무엇보다 이들은 사파출신!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자들!
그들은 두려워하지만 하란을 주공으로 모시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갑니다...
***
동굴이다! 그녀는 이전에 신씨가 깨부수고 들어온 구멍으로 향한다.
"흐음...."
저쪽도 아마 우리가 왔다는 걸 알아채지 않았을까? 그녀는 구멍으로 얼굴을 빼꼼 들이밀고 안쪽의 동태를 살핀다.
***
동굴은 얌전합니다.
동굴이 얌전할 수 있나? 뭐 아무튼 당장 위협적인게 튀어나올 것 같지는 않다는 뜻입니다.
***
배에 힘 빡 주고!
"야! 거기 안쪽에 있는 은잠무사들! 이 동굴이 총관이랑 연루됐다고 해서 왔는데! 장주에게만 충성한다는 당신들이 왜 여기에 있나?"
대답해 줄진 모르지만 일단 지르고 보는 것이다.
***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저들은 기본적으로 살수에 가까운 자들이니...말했다가는 분명 위치가 들통나 한없이 연약해질 것을 경계하는게 아닐까요?
스르륵.
띠용 아니었네!
온 몸을 회색 비단으로 칭칭 감은 사람이 하나 등 뒤에서 나타납니다.
"허미! 깜짝이야!"
앙증맞은 우리 조장 친구중 하나가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습니다.
나타난 회색비단의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하란을 쳐다봅니다.
먼저 말하라는 뜻일까요?
***
"...일단 아까 다짜고짜 불부터 싸지른건 사과하겠습니다."
회색 비단 돌돌이라. 영락없는 누에고치처럼 생겼다. 가볍고 뽀슬뽀슬하고 새하얀 누에고치 말이다.
"우리는 석가장의 적법한 상속인, 2공자의 명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총관과 사생아의 세력과 대립하는 중이지요.
"최근 이 동굴이 총관과 연루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습니다. 아까의 공격도 그런 이유에서였던 것입니다."
"헌데 당신들 무공을 토대로 조사를 해보니 진정한 장주에게만 충성하는 존재라 하더군요. 혹시 서로간에 오해가 있는 것 아닌가 하여..."
***
그는 하란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만 있습니다.
일단 공격할 의사가 없어보이는군요...
말이 다 끝났는데도 여전히 대답이 없습니다!
뭐지? 입이 없나?
***
"...이보시오. 내 말 듣고 있습니까?"
선 채로 졸고 계십니까? 대답하십시오 휴먼 moth. 그녀는 손을 흔들거리면서 누에고치의 주의를 다시 끌어오려 해본다.
***
사람은 아무런 말도 없다가 훅! 하고 사라져버립니다!
......뭐지?
끼기기기기기긱.
쿵...쿵....쿠웅...
그리고 저 멀리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새어나옵니다!
...저 안에 기관장치와 문이 있었나봅니다.
문이 열렸습니다.
초대받은 것이겠지요...?
***
"오호라.."
또 한 발자국 나아갔군. 고지가 멀지 않은 기분이 든다. 그녀는 일행에게 턱짓을 하곤 앞장서서 들어간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지팡이 소리와 발자국 소리, 의족 부딪히는 소리가 퍼진다.
"들어갑시다. 예의바르게."
***
딱.
딱.
딱.
딱.
딱.
하란의 지팡이 짚는 소리와 의족이 동굴 밟는 소리는 소름끼치게 울려퍼집니다...
문 안으로 들어가자 몸을 회색 비단으로 칭칭감은 사람들 몇이 다가옵니다.
"안내하겠소. 호위들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소."
어떻게 할까요?
***
"아!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지. 2공자님을 처음 뵈러 들어갈 때."
겁먹을 것 없다는 의미다. 일행의 맨 앞에 있던 그녀는 뒤를 살짝 돌아보고 손등을 올리며 혼자 들어가겠다는 뜻을 전했다.
"다 잘 풀릴 겁니다. 그때처럼."
***
다들 불안해하지만, 믿고 기다리기로 합니다!
"이 쪽으로."
그들과 하란은 안쪽으로 길게 길게 들어갑니다.
..
...
....
마침내 도착한 곳은 따뜻하고 달달한 차와 단아한 탁자와 의자가 있었고 과일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다른 이들보다 체구가 좀 작은 회색 비단을 칭칭감은 사람이 앉아있습니다.
"얼굴을 보여드리지 못함을 용서하시오. 앉으시게."
***
누에고치 누에고치 누에고치...사방이 누에고치이며 수장도 누에고치인가. 기묘하다. 얼굴을 보지 못하니 표정도 읽지 못할 것이 걱정된다.
그녀는 천천히 잘린 다리 끝의 의족을 적당한 곳에 두고, 앉는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를 믿지 못하실 줄 알았는데. 만약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
"이해에 감사하오."
목소리마저 성별을 짐작할 수 없군요! 그 또는 그녀는 하란에게 마시라는듯 손으로 차를 권합니다.
"도련님을 모신다고 하셨소?"
***
"그렇습니다만....아, 2공자께서 살해당하셨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닙니다. 최근엔 저택 밖으로 나서지도 않으셨는데 어찌 생뚱맞은 강가에서 옷가지가 발견되겠습니까?"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누에고치에게 사실을 전해준다.
찻잔을 두 손으로 집어 입으로 가져가지만, 한 모금 마시진 않고 적당히 기울여 혀 끝만 살짝 찻물에 찍어본다. 뭘 탔을 줄 알고.
***
"알고 있습니다."
그 또는 그녀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서려있습니다.
차에는 딱히 뭔가 들어있는게 없는 것 같군요.
"대화를 하고 싶으신거로 압니다만, 말씀드리지요. 저희는 오직 석가장의 주인에게만 충의를 바칩니다."
***
"귀하께서 생각하시는 석가장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뭘 타진 않았군. 그녀는 그제서야 차를 한 모금 넘겼다.
"제 부하들이 그럽디다. 조사해보니 이 동굴이 총관의 것 같다구요."
***
그 또는 그녀가 피식 웃습니다.
"답이 된 것 같군요."
그대로 찻잔을 들어 자신의 입 근처로 가져가더니...찻잔이 비단에 젖지도 않고 후루룩 소리를 내며 줄어듭니다.
이게 뭐지? 요술인가?
"석가장에는 지금 주인이 없습니다."
***
"주인이 누가 될지 모르니 세 후보 모두에게 연을 만드는 것입니까?"
총관 부하의 동선이 이곳에 겹친다.. 그럼 총관도 은잠무사를 포섭하려고 사람을 계속 보내왔던지. 아니면 은잠무사 쪽에서 총관 쪽에 사람을 심어놓은 건가...으음...
***
"우릴 뭐로 보고...그런 삼류 양아치들이나 하는 짓거리를 하겠소?"
기분이 언짢아졌는지 말투가 살짝 날카로워집니다.
"우린 석가장이 세워진 이래로 쭈욱 섬겨오던 자들이오."
석가장은 명문 사파입니다.
"오직 석가장의 주인에게만 충성을 바칠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없소."
다르게 말한다면 이들에게 충성을 얻어낸다면 정통성이 확보된다는 것과도 같다는 이야기군요.
***
"아...조금 오해가 있으신 듯 한데,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당신들이 장주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충성하는 이가 곧 장주로 결정될 것이라 장담합니다."
그녀는 강한 어조와 어휘로 분위기를 자신에게 끌어오려 한다.
***
"그 무슨 불경한 소리를."
그 또는 그녀는 그렇게 딱 잘라 말합니다.
이것이 11세기의 중국 유학....?
"신하가 주군을 선택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될 일 아니겠소? 셋의 기량이 비슷하다면 하늘께서 정해주실 것이오."
조선이 유학과 성리학의 대명사라고 생각하십니까 휴-먼?
유학의 본고장은 중-국이라구요!
***
"진인사대천명이라 하였습니다. 사막에서 가만히 앉아있다고 하늘이 물을 내려주지 않습니다. 직접 걸어야지요."
달리는 마차 위에 중립은 없다. 어르신께 보였던 논리를 다시 꺼낼 시간이다.
"이처럼 수동적인 중립은 결코 유익하지 못한 일입니다. 세력들이 서로 싸울 때는, 가능한 한쪽 편에 가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싸움이 끝난 후에 발을 들이면 너무 늦습니다. 승리한 쪽은 자기가 어려울 때 관망만 하던 것을 고깝게 보겠지요."
"또한 패배한 쪽은 당신들과 얽혔다가 도리어 위험에 처하는 형세를 두려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것이 평범한 일이라면 그럴것이나. 이것은 우리의 주인될 자들의 일이오."
여전히 그 또는 그녀는 하란의 말에 단 한치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한치는 맛있죠.
"신하가 주군을 택하면 그 권세로 자연히 아랫사람들을 부릴 것이고, 주군은 신하의 눈치를 보게될 것 아니오? 질서와 기강이 해이해지고 아랫사람들이 불행해지니 절대 옳지 않다고 할 수 있소."
혹시 이 중에 유학자라도 있는걸까요? 유교적 가치의 설파입니다! 그 또는 그녀를 그렇게 말하고서 잠시동안 차를 음미하며 하란을...노려봅니다!
않이 왜 갑자기 노려보고 그래용 무섭게.
"우리는 소저를 좋게 보지 않소."
!
***
"사실 여러분들이 장터에서 물건 고르듯 주군을 고를 필요는 없습니다. '석가장'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이는 결국 하나이기에...."
총관은 흑천성의 하수가, 사생아는 마교의 하수가 되고자 하며 오직 2공자만이 석가장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려 했는데..
"어허허...어째서 그러합니까?"
***
"우리가 소저와 그 배후를 모를 것 같소?"
....어....
***
"모용세가 말입니까? 이해가 일치하니 서로 다툴 것이 없습니다."
난 또 뭐라고. 미움받는 모용세가는 익숙하다 이 말이야!
"흑천성과 마교의 전쟁 목표는 무엇입니까? 바로 석가장을 완전병탄하는 것입니다."
"흑천성이야 금봉파에게 했던 짓을 보면 더 따질 것도 없고. 마교는 사생아를 앞세워 한명한명....석가장을 자기 색으로 물들이겠지요."
총관과 사생아는 석가장주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마교와 흑천성의 하수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녀는 그리 덧붙였다.
"반면 저희의 목표는 현상유지. 석가장의 존속입니다. 이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석가장이 독자적인 한 축으로서 존재하길 원합니다. 전 장주의 뜻처럼."
***
"그게 마음에 안든다는 뜻이오."
그 또는 그녀는 답답한듯 그렇게 내뱉어버립니다.
"결국, 그 쪽이 원하는대로 석가장을 대변해줄 대변인을 찾는 것 아니오? 공자의 부하가 아니라 꼭두각시를 찾는 모양새이지 않은가? 모용의 악명이 세간에 자자하거늘."
모용세가 의문의 1패.
"대화해보면 볼수록 점점 더 마음에 들지 않소만."
뭔가 수치같은거라도 있는걸까요?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을 하면 기회가 깎여나가고, 그게 다 사라지면 쫓겨나는...?
***
"자왈, 군자 불기라 하였습니다. 어찌 한 가지 태도만을 고수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변하지 아니한다 해도 세상이 변한다면 곧 나 또한 변하고 만 것. 큰 흐름에 따라 민첩하게 변통해야 합니다."
너네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유교 공격이다!
***
그 또는 그녀는 차를 내려놓습니다.
"군자불기라 하였으나, 우리는 군자가 아니요. 군자를 모시는 자들일지니. 주군을 제 뜻대로 조종하고자 하는 신하를 어찌 신의가 있다 하겠고, 군자라 하겠는가? 신하에게 간택받은 군주는 정녕 군주인가? 군자인가?"
접근법이 틀렸습니다!
이들의 성향을 잘 생각해봅시다...
***
"아하...평행선이로군. 이대로는 진전이 없겠습니다."
결국 장주가 아니면 누구 말도 듣지 않겠다는 것. 지금 둘의 대화는 꼭 금괴를 얻고 싶다면 일단 금괴를 구해라 하는 말장난과 같았다. 이건 사용할 수 없는 패다. 장주 옹립이 최종 목표인데, 판이 끝난 후에 손패가 들어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판이 끝났는데.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언제가 될 진 모르지만."
***
아직 기회가 남아있는지 그들은 언제든 다시 오라며 배웅해줍니다!
...너네 혹시 외롭니...?
아무튼 돌아옵니다!
하란네의 장점은 하란이 똑똑해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이고.
하란네의 단점은 하란이'만' 똑똑하다는 겁니다!
- 살려는 드릴게
- "저것들 말이 안 통합니다."
"금괴가 필요하다는데 그럼 일단 금괴부터 구하라는 말장난이나 하고 있으니! 2공자님을 장주로 만들러 여기 왔는데 2공자님이 장주가 되면 도와주겠다는게 다 무슨 말입니까?! 도와주긴 뭘 도와줘 장주가 되시면 그건 밥에 국에 반찬에 수저까지 다 올린 건데 그제서야 와서 뭘 하겠다고!"
"아 몰라! 저것들은 무시하는게 이롭겠습니다. 총관이나 사생아한테 달라붙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그냥 총관 조지기에나 집중해야지요."
***
갓갓 킹용배는 허허 웃으며 하란을 진정시키고자 술상을 내오라 이릅니다.
"그 말이 아닌 것 같네만..."
뭐가 아닌데!
"결국 그들이 말하는건 자격의 문제 아닌가? 석가장주로 인정받을만한 자격만 있으면 된다는 뜻일 터. 우리가 아는건 나머지 둘을 모조리 꺾어버리는 것이 있고...다른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르지."
그걸 알았으면 이게 1년을 끌지는 않았겠지 대머리 빡빡아!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총관이 가장 강한 것으로 아는데 사파의 흔한 생리대로라면 그냥 총관이 석가장주가 되면 그만이야. 그런데 왜 그를 따르지 않는 세력들이 있단 말인가."
"사생아도 다르지 않네. 사생아가 어찌 상속권을 주장하는가?"
"상속인이 떡하니 있는데 말일세. 1공자와 3공자. 그리고 우리가 밀고 있는 2공자. 이 셋이 분쟁을 일으키고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공자들은 다 탈락하고 오직 2공자만이 남아서 상속분쟁에 뛰어들어 있는 상황일세."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일세."
"상속권이라는건 자식들에게 있는거 아닌가?"
명분! 정파답게 명분을 말하는겁니다.
"정당한 계승자. 라는건 사실 총관과 사생아가 아닐지도 모르네. 은잠무사라 하였는가? 그들은 지금 충성을 바쳐야할 대상이 셋인게야. 하지만...그들은 오직 하나만 섬기고자 하지 않는가? 석가장이라는 유산을 모조리 상속한 상속인 하나만을."
술상이 나옵니다!
"나도 이 이상은 모르겠구만. 술이나 한 잔 하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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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가 일방적으로 2공자님의 정통성을 내세워서 새로운 석가장의 수립을 선포하고, 총관과 사생아놈들의 세력을 단지 흑천성과 마교의 괴뢰로 매도해버리면....."
이게 맞나. 확신이 안 선다.
"요즘들어 제 미력함이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전엔 마음만 먹으면 천하를 떡 주무르듯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생각을...."
***
"그럼 그건 더이상 석가장이 아니지 않은가."
킹용배가 그리 대답합니다.
"일단 한 잔 받으시게."
꼴꼴꼴꼴꼴....
"개인적인 생각이네만...나머지 공자들에게서 석가장주에 대한 상속 권리 행사는 포기를 약조받았는가?"
***
"부끄럽지만 그들이 잠적한 이후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꼴꼴꼴... 그녀도 킹용배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1공자는 현재 완전히 잠적하였고, 3공자는 백기문을 점거했다는 것이 마지막 소식입니다."
***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사람들을 풀어 그들을 수소문하여 포기 약조를 받아내시게."
쭈웁.
킹용배는 단번에 술을 들이킵니다.
"그리한다면 길이 보일지도 모르겠구만...은잠무사인가 하는 자들은 사파의 색깔이지만 그 속내는 우리 정파와 다르지 않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당한 계승자. 그러니까 명분일세. 그리고 그 명분대로라면 상속권자는 자식과 아내에게 있고 그 다음으로 형제에게 있는 셈이지."
탁. 술잔을 내려놓고는 주전부리를 한움큼 입에 가져갑니다.
우물우물.
"사생아에게는 상속권이 없고. 그러니 1공자와 3공자가 상속권을 포기한다면 정당한 계승자는 오직 2공자만 남는 것이 아니겠는가?"
***
"따르겠습니다."
오오 이것이 경험인가. 사실 킹용배의 탈을 쓴 캡틴의 네비게이션이다!
그렇게 대작을 이어가던 그녀... 자리를 파하고 오랜만에 연무장으로 간다...
***
교룡검법 10%!
***
어느세월에 두 공자를 찾아서 설득까지 할꼬! 멀고도 험한 길이여! 그녀는 비틀거리면서 깜깜한 하늘 아래를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날, 어김없이 자경단을 소집하곤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1공자와 3공자를 찾아야 합니다."
***
"3공자는 백기문에 있을 것 같으니까 그 쪽 찾아보시고! 엄하게 날뛰다가 죽지 마시고! 되도록 교전하지 마시고! 안되겠다 판단되면 그냥 귀환하세요!"
그녀는 단원들을 배웅한다. 물가애 애 내놓은 기분이다. 처음으로 생긴 내 사람이다. 약해빠진 내 사람들.... 내 사람들을 지키려면 뭘 해야 한다?
내가 강해져야 한다!
***
- 8성 승천형 : 하늘로 몸을 일직선으로 쭉 뻗고 날아가는 용의 모습을 형상화한 초식. 물결처럼 몸을 흔들며 이동하는 용의 모습은 내공으로 유형화되어 적들을 향해 달려든다. 하늘을 향해 사용할 경우 시전자 본인도 매우 높이 뛰어오른다.
- 9성 폭룡강하 : 분노한 용이 땅을 향해 내리꽂혀오는 모습을 형상화한 초식. 높이 뛰어오른 상태에서 사용할 경우 시전자 본인도 강하한다. 용의 모습은 내공으로 유형화되며 일대에 강력한 폭발과 약한 지진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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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형과 폭룡강하! 분명 연계되는 초식인데 연계할 수가 없다. 의족이 이 힘을 버티지 못하리라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이제 수련도 할 만큼 했으니 다시 밖으로 나가보자고 그녀는 생각했다. 생각해 둔 일들이 있다. 사실, 조금 많다.
모자도 사고 소문도 듣고 1,3공자도 좀 찾아보고 시간 나면 약초꾼한테도 가보고...
***
이것이 5돌짜리 단점의 영향임미다. 감명받으십씨오 휴먼.
시장으로 이동합니다!
시장경제는 완전히 위축된 상황입니다! 하란이 지금껏 한 일은 상당히 많은 편이고, 그 일들을 모조리 처리하기에는 자경단의 인적, 질적 자원이 한참이나 모자릅니다!
거기에 사생아와 총관의 대립이 극에 치닫기 시작하니 시장경제는 말 그대로 박살났습니다!
시장은 한산하고 휑합니다.
***
"어허, 이거..완전 난장판이군!"
빨리 이 사태를 정상화시키지 않으면 호남에서 빨아먹을 국물도 남지 않으리라. 마치 먼 미래 역병이 창궐해 위축된 경제를 보는 듯한....
"그래도 문을 연 가게가 있으려나.."
그녀는 스산한 장터를 터벅터벅 걸어간다.
***
턱. 턱. 턱.
지팡이검, 창포검을 지팡이 삼아 힘을 줘가며 주변을 싸악 돌아봅니다.
모자가게...모자가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않이 김캡 이게 무슨 일이에용 이렇게 진행 레스를 낭비하게 만들어버리다니!
라고 한탄할 때 쯤, 하란의 눈에 한숨을 내쉬며 문을 닫으려는 모자가게 하나가 보입니다.
***
"거기, 여보세요! 주인장 잠시만!"
앗싸 가게다! 문을 연 가게다!
"매상 조금 올려드릴테니 잠시만 기다려 봐요!"
***
문을 막 닫으려던 주인장은 화들짝 놀라더니 곧바로 표정과 자세를 바꿉니다.
하급자이면서 간신배의 전형적인 자세와 표정이란! 보는 누구라도 아! 이 사람은 간신배다! 싶을 정도입니다.
손은 싹싹 파리처럼 비비며 비굴한 얼굴표정으로 쳐다보고 허리는 곱추마냥 굽은것 처럼 숙입니다.
"아이고오오오! 손님! 어서오십시오오오!!!"
경제 상황이 정말 말도 아닌가 봅니다.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
요즘 손님이 그렇게나 귀한가. 누가 보면 어디 귀족집 규수나 왕녀라도 되는 줄 알겠다. 하긴 사람이 돈을 가지고 있어야지. 돈 없는게 얼마나 서러운데. 돈이 있어야지.... 아 젠장 어릴 때 생각나네.
"모자 좀 봅시다 주인장."
그녀는 가게에 늘어놓은 모자를 쭉 훑어본다.
***
있습니다!
모양새가 좀 웃기게 생긴 모자이긴 하지만, 뿔을 보여주고 다니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
"주인장 이건 무슨 모자요? 이거 괜찮은데 얼마지요?"
이 정도면 뿔을 가릴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그 뿔을 훤히 내보이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지난번엔 너무 방심을 했다. 신씨랑 단원들이랑 다 봤겠지? 뿔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라 그만!
***
우스운 모양새의 모자란 바로바로 토끼귀 모양의 모자인 것입니다! 여러부운!
"아...조금 가격이 나갑니다만은...요즘 손님도 없거니와 싸게 드리겠습니다요...!"
주인장은 손가락을 펼쳐보입니다. 그것을 본 하란의 눈동자가 흔들립니다.
다행히 재산 단계에 변동은 없지만, 조금만 더 쓰면 재산 단계에 변동이 있을만큼 비쌉니다!
"이 모자는..이렇게 당기면...요렇게..."
토끼귀가 움직입니다.
무림에 현대를 부었나...?
구매하시겠습니까?
***
토끼귀...왜 모자에 토끼귀가? 뿔은 확실히 가려지겠는데 어...
비싸도 어쩌겠나 이건 사야 한다. 다시 보니 조금 귀여워보이기도 하고... 쫑긋쫑긋.
***
【 토끼귀 모자 】
모자 아래부분을 잡아당기면 위에 달린 토끼귀가 앙증맞게 움직이는 귀요미 모자.
오파츠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의 기술력이다.
- 인상이 귀여워진다.
- 하란한정 : 뿔을 숨긴다.
무려 아이템!
***
쫑긋쫑긋, 쫑긋쫑긋. 하다보니 조금 재미있..다? 나잇값 못하는 짓인 건 알지만..킹치만..커여운걸!
"밖에 오면서 봤는데 문 연 가게가 하나도 없더라구요. 사람도 없고."
"지금 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죠? 조금 아시나요?"
***
하이고오...하면서 주인은 바로 한숨부터 내쉬기 시작합니다.
"거 말도 마십시오...얼마전까지 치안단인지 자경단인지 뭐시기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거 석가장주 동생이랑 마교놈들이랑 부딫히기 시작했습지요...시장바닥에서 막 사람 팔다리가 날라가고 피가 이리저리 흩뿌려지는데."
그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쉽니다.
"거기서 배짱 좋게 장사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자기 바로 앞에서 사람이 죽고 그 몸 속 내용물들이 흘러나오는 걸 보는데...누가 여길 와서 물건을 사고, 장사를 합니까요...아이고...아이고..."
하란은 그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바라봅니다.
...군데군데 보이는 핏자국, 미처 치우지 못하 썩어들어가는 신체의 일부분. 깨진 철조각들, 부숴진 몇몇 건물들과 도로.
상황이 말이 아닙니다.
***
"어휴.. 이 싸움이 언제까지 갈런지 참."
솔직히 그 둘이 싸우는데 자경단 끼워넣는다고 뭐가 될 것 같진 않지만 조금은 미안한걸.
"솔직히 사생아랑 총관은 후계라 할 수는 없잖습니까? 공자 세 명이서 승부를 딱 봐야 하는 건데. 2공자는 저택에 틀어박혔다가 생뚱맞게 죽었다 그러고. 1공자랑 3공자는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아, 3공자는 백기문에 있으려나. 지난번에 거길 쥐어패고 자기 걸로 만들었다고 하던데요."
***
"아니 뭐, 사실 석가장이 이 근방의 왕이나 다름없습지요...높으신 분들 난리나는걸 우리같은 사람들이 뭘 안다구 왈가왈부하겠습니까...그냥 평안케 장사나 할 수 있음 족합지요."
음 이렇게 발뺌을 하는군요.
"백기문 말입니까? 거 얼마 전에 망했다고 들었습니다요."
예?
"그 1공자님이 3공자님을 찾아가 서로 대판을 싸우고...둘이 죽었다고...얼마전에 저잣거리에서 소문이 일어났습니다요."
?????
***
"둘 다 죽었다구요?! 이 무슨!"
순간 너무 놀라서 큰 소리를 냈지만 다시 평정을 되찾는다. 여기 분위기도 그렇지만 큰 소리 내서 좋을 건 없다.
둘 다 죽었으면 개이득이지!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긴 어렵다. 그 둘이 이미 죽었으면 누에들은 알아서 2공자한테 기었겠지. 애초에 2공자도 소문상으론 이미 고인 아닌가.
"그렇..군요..이것 참."
***
하란은 이 자에게 더 물어볼 수도, 그냥 갈 수도 있습니다.
더 물어보려면 무언가를 더 사줘야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
"하여튼..흠...대화 즐거웠어요. 빨리 정세가 안정되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주인장은 하란이 누군지 모르는 듯 하니 개소리처럼 들릴지도.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더 이상 뭔가를 살 여력이 없다.
"몸조심하세요."
그녀는 가게를 떠난다. 우리 경단이들은 뭐하고 있을까? 애를 먹고 있을까? 가서 조금 도와줘야지.
***
자경단원들을 찾아봅니다!
그들은 깡패들을 잡아 족치고 있습니다!
거리가 이렇게 황량한데 깡패들이나 거지들이 점령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군요...
단순 깡패에게 있어서 삼류 무인이면 중세에 떨어진 기관총과 같은 위력인 법입니다.
깡패들은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얻어맞습니다.
***
경단이들, 이름값 하는군. 분명 저 깡패들에게서 정보를 뜯어낼 심산이겠지? 남한테 얻어맞는게 아닌 남을 때리고 있어서 다행이다.
"잘 돼가요? 조금 도와줄까?"
***
"주공!"
하란을 본 자경단원들은 쭈뼛거리면서 멱살을 잡고 있던 깡패를 뒤로 내동댕이 칩니다.
수줍은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며 피가 묻은 손을 뒤로 하는군요.
.....?
"아, 아무 일도 아닙니다!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안도와줘도 된다고는 하네요!
***
얘네들 왜 이래. 왜 얼굴을 붉혀. 전엔 안 그랬잖아. 서로 사람 죽여본거 다 알면서 피는 왜 숨기는건데?
"1,3공자. 뭐 알아낸 것 있어요? 아니면...이제부터 알아낼 예정인가?"
***
"아! 있습니다! 1공자와 3공자가 중태라는 소식입니다!"
암살각이다!
***
"그것은 소문인가요. 아니면 확실히 확인된 사실인가요?"
"나는 아까 둘이 싸우다가 둘 다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오는 길이거든요. 일단 둘이 싸운 건 맞는 것 같은데."
***
"지금 안그래도 증언과 증거를 대조중이었습니다!"
피떡이 되어버린 저 친구들을 패는 일이 그런 거였나 보군요!
***
"좋아 좋아. 잘 하고 있었군요. 계속하세요! 나도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있을 테니 도움이 필요하면 소리를 지르도록 하세요."
믿고 맏겨봐도 되겠다. 갑자기 총관이든 사생아들 그쪽 사람들이 자경단을 훅 물어갈까 걱정은 되지만.. 괜찮겠지? 공격하려면 진작 했겠지.
그녀는 이제 약재상에게로 향한다.
***
약재상에게 이동합니다!
약재상의 앞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친 사람들이 많군요.
***
다시 생각해보니 약재 감정에도 돈을 내야 하나?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녀는 새치기! 를 하진 않고 얌전히 줄을 서면서 다친 사람들을 쭉 둘러보았다.
***
기다리기 시작합니다....
뉘엿뉘엿 해가 질 때 까지. 딱히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마침내 하란의 차례가 됩니다!
"무슨 일로 오셨소?"
***
"어디 다친 건 아니고, 뭐 물어볼 게 있어서."
그녀는 품 속에서 그때의 열매를 꺼내 약재상에게 보여준다.
"이게 뭔지 아시오?"
***
"으음?"
약재상은 콧잔등을 찌푸리면서 열매를 한참이나 쳐다보더니, 책을 한 권 펼칩니다.
촤르르르륵.
"홍향이구만!"
그게 뭔데 열덕아!
"화火의 기운을 지닌 열매로, 먹으면 무병장수를 하는 건강에 아주 좋은 열매일세. 무림인이 먹으면 뭐...잘 모르겠구만. 내가 무림인이 아니라서. 허허허."
***
홍향? 홍향이라! 화의 기운이라! 흥미가 돋는데.
"혹시 무림인이 먹으면 어떻게 될지 관찰하고 기록할 생각은 없소? 혹시 모르지. 그대의 식견을 더 넓힐 경험이 될지."
***
"으, 으응..? 그건 좀 그렇구만..."
해는 져가고 있고 약재상은 퇴근하고 싶어합니다!
***
끄으응..이놈이.. 혹시나 먹었을 때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옆에 두려고 했건만.
"그러면 하나만 더 물읍시다. 이거 별다른 가공 없이 이 상태 그대로 먹어도 되는 것이오?"
***
"뭐, 가공을 하면 더욱 좋지 않겠소? 모든 영약이란건 가공을 했을 때 더욱 효과가 크다오."
오! 이것은 새로운 정보입니다!
***
앗 새로운 정보! 그냥 꿀꺽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보류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가공을 해야겠소?"
***
"환단으로 만드는 것이 제일이겠지. 나한테 맡겨놓으면 환단 정도로는 만들 수 있소이다."
물론 공짜는 아니랍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그럼 그리 해 주시오. 다음에 와서 찾아가야겠군."
석가장 사태를 해결하고 다시 멋지게 등장하면 아이구 이 난장판을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면서 공짜로 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그녀였다.
***
홍향을 맡겨둡니다!
하란의 재산 단계는 0이 되었습니다...
하하! 거지래요!
***
안이 선불이었나용??????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알그지가 되었다...
해도 지고 하니 저택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자경단이 잘 들어왔나 확인합니다.
***
자경단은 여전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1공자와 3공자의 위치를 파악하는 중인듯 합니다.
중태에 빠졌거나 죽었거나. 어느 쪽이든 확실히 알아오지 않으면 하란한테 혼나기 때문이죠!
저택으로 돌아옵니다!
***
하란은 저택 대문 앞을 서성이면서 물가에 자식 내놓은 어머니처럼 자경단이 돌아오길 기다린다.
"총관이나 사생아나, 우리한테 관심이나 있는 걸까."
지레 겁을 먹고 치안 안정화 활동을 중단시킨지 꽤 지났다. 그 동안 자경단이 저택 안에만 있던 것도 아닌데, 자경단에게 공격이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길바닥에서까지 서로 치고박는걸 보면 서로에게 정신이 팔려 2공자 쪽은 보지도 않는 것 같다. 마교도들은 아가씨까지 납치했으면서.
"그래도 불안하단 말이야. 그래도...."
뭘 할라고 하면 아이고 하란아 그러지 마라 하면서 말리던 부모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다.
***
"이 나약한 것들!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잖아! 무림에선 약한 것도 죄라니까 죄...!"
결국 참다 못한 그녀는 또다시 자경단을 찾아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것이었다...
***
그래 뭐..잘 있었구나 그래... 온 김에 그냥 나도 같이 있을게...누가 너희들 때리러 올까봐 걱정이 계속 돼가지구...
"하던 거 계속 하세요. 이상하게 막힌다 싶으면 말하고.."
***
자경단원들은 자신의 힘으로 충분히 때릴 수 있는 친구들만 골라서 정보를 얻어내고 있습니다!
하란은 주변을 둘러보지만, 여전히 휑하고 별게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딱히 뭔가를 더 찾아보려고 해도, 시장바닥이나 골목길에서 얻을 수 있는 유효한 정보는 더 없다~이 말입니다.
***
"흠음음, 뭘 좀 더 알아낸 게 있나요?"
***
자경단원들은 저번과 똑같은 정보를 내뱉었습니다...
자경단원들의 실력은 기껏해야 이류~삼류.
이들이 족칠 수 있는건 고작해야 시정 잡배 패거리 몇 정도입니다.
그런 그들이 얻어낼 수 있는 정보는 한정되어 있으니...하란이 아까 모자 가게 주인장과 대화한 것 보다 못한 정보만 백날천날 획득 중입니다!
***
"...그냥 백기문에 직접 가보는게 빠르겠어요."
결국 내가 공자들 찾는다..내가 사건을 이끈다..으윽...
- 세상은 요지경
***
자경단원들은 머쓱한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하란을 따라갑니다.
저벅저벅...
낑낑...
하란이 다리 때문에 자주 쉬려그러자 자경단원들이 하란을 업어가면서까지...백기문에 도착합니다!
그렇게 도착한 그곳은........
초상집입니다!
***
ㅊㅊㅊㅊㅊ초상집???? 진짜 죽은 거야???
하지만 진정해야 한다. 초상이란게 공자의 초상이 아니라 다른 이의 상일 수도 있다. 아니면 살았는데 죽은 척 하고 상을 치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들어가 볼까요.. 난리치면 안 되는 거 알죠?"
***
초상집은 조문객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란이 들어가자 조문객들의 방명록을 쓰는 공간이 나옵니다.
"어디서 오셨소이까......?"
이미 하란의 정체를 충분히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확인차 물어보는 것 같군요.
자경단원들은 하란의 말대로 합죽이가 되었습니다.
***
"2공자님 측에서 왔습니다."
"혹시 이게 어떤 분의 상인지요...?"
상상도 못한 상황에 그녀 또한 위축되어 행동거지를 조심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
"....알겠소."
하란은 방명록에 자신의 이름을 써내려갑니다.
"아니, 초상집에 누구 초상인지도 모르고 온것이오? 허..."
뭔가...뭔가 굉장히 예의없는 짓을 한 것 같습니다.
"저기 보시오."
뒤 쪽에 보아하니 장례의 주인공 이름이 써져있는 것 같습니다.
石....
3공자입니다.
그는.
확실하게 죽었습니다.
"그래도 2공자 쪽에서 장례를 열자마자 찾아와 자기 형제라고 신경 쓰는 줄 알았더만...쯧...."
어...음...어....
***
"아니..상이 열린지는 저희도 몰랐습니다... 3공자께서 작고하셨을 줄은 더더욱.."
"여기 오면 3공자님을 만나뵐 수 있지 않을까 했을 뿐인데. 어째서..."
***
하란이 말을 하려하자, 자경단원이 급히 말립니다.
"주, 주공. 장례식장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간 쫓겨날겁니다..."
다행히 눈 앞의 사람은 짜증내면서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던터라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
'3공자님은 가셨고, 그럼 1공자도 죽었거나 크게 다쳤을 거야. 둘이 싸웠다는 게 사실인가 보군.'
"어어..일단 절을..절부터 합시다."
그녀는 사람들을 이끌고 영정 앞으로 천천히 걸어갑니다. 무협에서도 영정을 쓰는진 모르겠지만!
***
자경단원과 하란은 절을 합니다....
"거 3공자와 1공자가 서로 다투다가 둘 모두 그렇게 가버리다니 허허..."
"3공자가 원래 이긴 싸움이라고 들었네만."
"암암. 3공자께서 정정당당히 이기셨지. 분에 못이겨 제 형제의 목을 그렇게 깔끔하게 날릴거라고는 아무도 상상못했지만 말이야."
"그런데 3공자께서는 어찌 이리 먼 길을 떠나셨는가?"
"아 글쎄. 1공자께서 독을 쓰셨지 뭔가."
"도오오옥?"
"3공자께서 목을 베고 백기문의 문턱을 넘으시는 순간 떡하니 쓰러져서 숨을 쉬지 않으셨다고 하더구만. 얼굴이 보랏빛으로 질리고 검은 피를 흘리셨다하니 그게 독이 아니고 뭔가."
"아니 그럼 1공자께서 3공자를 죽이려 독을 쓰셨다, 그 말인가?"
"그렇고 말고. 이제 남은건 2공자 하나 뿐인데, 어쩌겠는가? 총관과 그 사생아가 그리도 강맹하거늘. 둘 중 하나가 장주가 될 것이야."
"어허...그렇다면 조문을 어서 마치고 둘 중 하나에게 가야하는 것 아니겠는가?"
"내 말이!"
.....띠용.
***
맙소사 거짓 기만이 아니었던 건가? 직접 목격한 이도 있는 듯 하다. 그 과정이 매우 상세하다.
하긴. 왕의 형제자매들은 모두 죽여야 하는 것이 맞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수고를 덜었구나.
그녀는 절을 올리고는 유유히 초상집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 저 멀리.... 초상집의 불빛이 아스라이 흐려질때쯤.....
"크흡...큽...크흐...."
그녀는 입을 막고 참아왔던 웃음을 조금씩 터뜨렸다.
"전에 갔던 그 동굴로...크흑.."
***
동굴은 왜인지 저번보다 더 침울합니다.
***
마른세수 마른세수! 하란이는 얼굴에 있던 웃음기를 완전히 싹 지우고, 아무런 표정 없이 동굴 앞에 섰다.
그녀는 긴 말을 하지 않았다.
"제가 다시 왔습니다. 무사님들."
"왜 제가 온 것인지 이미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
누에나방친구들....
아니, 은잠무사들의 머리로 보이는 자가 힘없이 걸어옵니다.
"....무슨 수라도 쓰신게요......?"
그럴리가요.
그 또는 그녀는 여전히 믿기 어려운 소식을 접한 상태로 정신적 충격에 빠져있습니다.
***
"그럴리가요. 저도 한 식경 전에야 사태를 파악했습니다. 파악하자마자 바로 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모용세가가 기업 이미지가 참...
"머리가 어지러운건 저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3공자님 초상집에 가서, 누구 상이냐고 물어보는 무례를 저지르고 말았지요."
"다른 두 공자님들을 설득해서 장주 자리를 포기한다는 확답을 받아낼 생각이었는데..."
그녀는 뜸을 들이다가 다시 입을 연다.
"하늘이 셋 중에서 정할 것이다... 제게 그리 말씀하셨었지요."
- 난지여음難知如陰 동여뇌정動如雷霆
- 그 또는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었던걸까요?
사파에서 의리와 충성을 제 1 가치로 놓고 있는, 정파로 보자면 정상적이지만 사파로 보자면 별종같은 이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요?
상대방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습니다.
하란은 그 또는 그녀의 마음을 짐작할 수는 없으나 배려하는 차원에서 가만히 있습니다.
없어진 한 쪽 다리가 아려올 때 까지요.
.
..
...
....
.....
그렇게 정말 아주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또는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엽니다.
"짐작하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오직 석가장주에게만 충성합니다. 선열께서는 대대로 형제나 사생아가 아닌 정통을 이은 적자에게 장주의 자리를 넘겨주셨지요."
아 그래요? 정.말.도.움.이.됩.니.다.
"사파 주제에 그냥 힘으로 차지하면 되는게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이 석가장은 왕조가 바뀌는 시간에도 이 호남과 강서 인근에서 이름을 떨쳐온 명문입니다. 단순히 힘 만으로는 절대 긴 시간동안 패권자 중 하나로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안 물어봤는데요?
아마도, 자신의 행동에 어떻게든 정당화와 합리화를 하고자 이러는 것 같습니다.
말이 길어질라치자 하란이 말을 끊기 위해 입을 열었음에도 그 또는 그녀는 무시하고 자기 할 말을 이어갑니다.
"선열께서도 자식들을 부탁한다 하셨지요. 그래요. 그랬습니다. 장성한 자식이 멀쩡히 살아있습니다. 상속은 자녀의 것이어야지 형제의 것이 되어서는 안되지요. 그렇고 말고요."
"적자계승이 지금까지 이 석가장이 우뚝 설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입니다...비록 적자간에 항쟁이 일어날 수는 있더라도요.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듯이 빠르게 말한 그 또는 그녀가 하란을 쳐다봅니다.
그 때서야, 하란은 그 또는 그녀의 눈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체념하였으면서도 동시에 열의에 차있는 기이한 눈빛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하란은 그 순간 상대가 웃었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란도 웃게 될 거라는 사실도요.
"정말 빠른 시일 내에 찾아뵙도록 하지요. 제게도 수하들을 다독거릴 시간은 있어야하니."
그대로 하란은 쫓겨납니다!
.......
2공자의 저택으로 돌아왔습니다.
저택이 소란스럽습니다.
***
"곧 다시 뵙겠습니다."
사파같은 정파와 정파같은 사파 사이에도 서로 통하는 게 있을지도 모른다. 하란은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
여기 분위기가 왜 이렇지? 설마 2공자님이?
***
하란주의 지능이 점점 하란이를 닮아가는건 기분탓일까요?
하란의 뛰어난 두뇌가 예측한대로, 2공자가 드디어 폐관을 깨고 나왔습니다!
"아, 어서오십시오."
다급해보이는 얼굴과는 다르게 평온한 어조로 신채훈이 하란을 맞이합니다.
"그보다 큰 일입니다. 2공자가 폐관을 깨고 나왔는데 그것이..."
그것이! 뭐! 빨리 말해!
"....저와 동수를 이룰 것도 같습니다."
!!
2공자가 대성공을 거둬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하란의 천재적인 두뇌로 따져보건대, 이건 모용세가에 그렇게 좋은 소식은 아닙니다.
모용세가에 기대던 이유가 2공자의 실력이 미진했기 때문이거늘....이렇게 2공자가 뒤통수를 쳐버린다고!?
하지만 동시에 다른 이득 또한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모용세가의 지원이 없었다면.
과연 2공자가 폐관을 거쳐서 초절정의 경지에 오를 여유가 있었을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2공자가 뻗대러 나오기 시작해도 논파할 준비는 이미 끝났군요.
그렇게 하란은 신채훈과 함께 2공자를 보러 이동합니다.
"아."
한층 더 기세가 날카로워지고, 이전의 모습은 어디간듯 자신만만한 태도와 표정의 2공자.
'석지훈' 이 하란을 보고 웃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군. 그리 길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야."
***
"그 정도입니까? 대단하군요..."
나도 하고싶다 폐관수련! 이제부터는 깔아두었던 밑밥들이 톱니바퀴들처럼 착착 맞물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녀가 할 일은, 이제 손잡이를 빙빙 돌려주는 것 뿐이다. 그녀는 2공자, 아니 장주, 석지훈 앞에 선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여름이었지요. 여태껏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장주님."
그를 부르는 칭호가 바뀌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차례대로 이야기해준다. 방을 뿌리고, 자경단을 결집시키고, 2공자가 죽었다는 괴이한 소문, 저택과 동굴, 은잠무사, 그리고 형제들의 자멸.
"앞길을 잘 닦아두었으니 이제 제일 빛나고 영광스러운 순간이 장주님을 위해 남아있습니다. 가장 멋진 모습으로, 당당히 아씨를 모셔오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
"물론 그래야지."
석지훈은 시원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모용세가에서 이 석 모를 도운 것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날 믿으셔도 좋소."
?? 2공자의 인성의 상태가...?
"그럼 출발하지. 내 반쪽을 찾으러 말이오. 물론 도와주시겠지."
아 다행히 크게 변한건 아니군요. 모용세가한테 어차피 도움 받을거 끝까지 빼먹겠다 이겁니다.
무엇보다도 무서운 점은.
형제들이 죽었다는데도 딱히 신경조차 쓰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것이...사파...?
하란은 이제부터 전쟁을 준비하십시오! 은잠무사들이 합류한다면 더 이상 저항할 세력은 없을겁니다...
***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물러난다. 문을 탁 닫고 나와 잠시 걷던 그녀는 팔을 번쩍 올리고 힘겹게 기지개를 켠다.
"수확의 때가 왔구나. 아직 가을은 멀었지만."
전쟁! 결코 다시 전쟁! 을 하란이는 준비해야 한다. 일단 홍향 그걸 빨리 찾아와서 먹어야겠다.
***
홍향단을 가지러 이동합니다.
한 레스가 소모됩니다...
다리가 아프군요!
다시 한 번 이동레스를 써주세요!
이후 돌아올 때는 추가 이동 레스가 없습니다.
***
호다닥호다닥 뛰어가고 싶다! 빨리갑니다!
***
이것이 5돌의 위엄.
하란은 약방에 도착합니다!
"아. 오셨구려."
약재상은 준비되었던 홍향을 건네줍니다.
【 홍향단 】
불타버린 동굴 안에서 빛나는 파란 꽃 아래를 파 본 결과 찾아낸 열매를 이용해 만들어낸 환약.
붉은 빛을 살짝 띄고 있다. 일반인이 먹으면 잔병치레가 없어지고, 무림인이 섭취하면 내공이 증진된다.
- 섭취시 내공 20년 증가
***
방 안에 앉아 가부좌를 틀지는 못하고 적당히 앉았다. 단을 삼키고 운기행공에 집중한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그녀는 단의 화기를 흡수할 수 있었다.
후우. 마지막 호흡을 내뱉자 공기가 설설 흘러나왔다. 폐 속에서 달을 대로 달아서 마치 끓듯 하는 공기였다.
"그네들이 올때까지 슬슬 준비나 하고 있을까?"
***
회의를 소집합니다!
은잠무사들은 곧 도착할겁니다...
회의의 기본 골자내용과 결론 정도를 설정해주세요!
어차피 신채훈은 머리를 쓰고 싶어하지 않고, 금소협은 전투의 전략은 잘 알지 못하며. 자경단원들은 하란만큼 똑똑하지 않습니다!
***
"도광양회는 끝났습니다. 은잠무사들이 합류하는대로 우리 또한 공세를 취할 것입니다."
대강 회의의 의제는 이러하다. 총관과 사생아 중 어느 곳을 먼저 칠 것인가? 총관과 사생아의 처우를 어찌할 것인가? 그리고 아씨를 어떠한 방식으로 되찾을 것인가?
"우선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그녀는 흑천성과 총관에게는 다소 가혹하되, 마교와 사생아에게는 어느정도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석가장과 흑천성은 앞으로도 어쩔 수 없이 계속 대립각을 세울 수 밖에 없는 형국이지만 마교는 그들이 물러나면 싸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냥 힘으로 몰아붙이지 않고 아씨를 납치했다는 것. 그것은 마교도들이 협상에 응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 가능하기 때문이다.
***
하란의 의견이 받아들여집니다!
마교와는 협상, 흑천성의 세력이 붙은 총관 세력은 처벌!
아주 간단하게 정리됩니다.
"미사 소저. 그들이 왔소."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손장난이나 하던 신채훈은 갑자기 움찔거리더니 하란에게 말을 전합니다.
그들이라면...
은잠무사들이 왔습니다.
***
"어머, 빨리 온다더니 진짜 빨리 왔네. 신씨는 장주님한테 가서 무사들이 찾아뵈려 할 거라고 전해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하란은 무사들을 맞이하기 위해 저택의 대문으로 나섰다.
***
신채훈은 움직이고 하란은 밖으로 나갑니다.
은잠무사 열 몇 명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드디어 첫번째 대사건을 마무리할 시간입니다.
***
"어서 들어오시지요. 장주님께도 이미 기별을 넣어두었습니다. 분명 그대들을 만나고 싶어하실겁니다."
하란은 잠자코 대문 옆으로 비켜섰다.
아아, 마침내. 마참내! 이 긴긴 여름이!
***
은잠무사들은 석지훈과 마주합니다!
"장성하셨군요."
은잠무사의 대장, 그 또는 그녀. 앞으로는 대장이라 칭합니다.
대장이 오체투지를 하며 그리 말합니다.
"그래. 정말 오랜만이구나."
그 말에 대장의 몸이 살짝 떨립니다. 둘 간에 무슨 관계가 있었던건지, 그런건 알 바가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도록 합시다.
"일어나라. 그리고 모두 들어라!"
쿠웅!
내공을 담아 내지른 사자후일까요? 석지훈의 내공은 웅혼함을 타고서 모두의 귀에 자신의 말소리를 전달합니다.
"지금 이 시간부로. 석가장의 정당한 상속자로서 권리를 행사하러 갈 것이다. 이 석지훈이. 석가장의 주인이다! 내 곁에서 이를 도왔던 이들은 귀히 여길 것이며. 내 적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쾅!
석지훈이 진각을 밟습니다.
"내게 귀히 여겨질 준비는 되었느냐!"
그 말에 은잠무사를 비롯한 석지훈을 따르던 석가장과 사파 무사들이 모조리 한쪽 무릎을 꿇습니다.
"충!"
하란과 모용세가의 전력은 무릎을 꿇지는 않고 동맹으로서 마땅한 경의를 표합니다.
석지훈이 씨익 웃습니다.
"가자! 숙부와 더러운 사생아 놈에게서 내 것을 되찾을 시간이다!"
와아아아아아아!
함성과 함께 석지훈을 필두로 모든 전력이 저택을 나섭니다.
가장 앞장서는 석지훈의 뒤로 모용배와 미사하란, 그리고 오랫동안 석지훈을 모셔왔던 수하가 따릅니다.
거기에 곧장 짧은 발걸음으로 화들짝 놀라 달려가는 금소협. 여유롭게 걷기 시작하는 은잠무사의 대장.
석지훈이 가장 아끼던 정예 전력들.
모용배가 이끌고온 무인들이 그 옆을. 자경단이 후미를 차지하고서.
그들은 석가장에 도착합니다.
도착한 석가장은 이미 한참 전투중에 있습니다!
"모용 공. 부탁 좀 드리겠소."
석지훈이 모용배를 보며 그리 말하고, 모용배는 음. 하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뒤 안으로 들어가 제압을 시작합니다!
"미사 소저. 내 그대를 믿소."
이제 하란의 차례입니다.
***
"맡겨두시지요! 호남의 해태들아! 밥값할 시간이다! 개진하라!"
하란은 호기롭게 검을 뽑아 하늘로 치켜든다. 집결하여 개진하라! 그녀 또한 모용배의 뒤를 따라 진을 이끌고 장 내로 진입한다.
***
모용배가 먼저 들어간 뒤 이렇게 외칩니다.
"모용세가의 모용배가 여기에 왔노라! 나와 생사를 가늠할 자는 앞으로 나와라!"
그 말에 뒤 쪽을 책임지던 총관의 수하들이 여럿 나섰으면 모두 10합을 겨루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그 다음.
"개開!"
그동안 열심히 훈련을 한 보람이 있는지, 자경단원들은 빠르게 검진을 짜고서 안으로 밀고 들어갑니다!
갑작스레 뒤를 공격당한 총관의 무인들은 어어, 하다가 그대로 칼에 찔려 쓰러집니다!
"이게 무슨 일이냐!"
그리고 곧, 총관이 피를 뒤집어쓴 채로 나옵니다. 그의 손에는 사생아. 석주형의 멱살이 잡혀있습니다. 석주형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있고. 한 쪽 팔이 기괴하게 뒤틀려있습니다.
총관도 멀쩡한 상태는 아닙니다. 가슴팍에서는 피가 나고 있고 베인 상처가 가득합니다.
"내가 나설 때군."
석지훈이 검을 들고 나섭니다....
"하! 조카야! 내가 너를 어여삐 여겼거늘!"
"어여삐는 무슨. 숙부가 나를 벌레보듯 본 것을 내 모를 줄 아시오?"
"문답무용! 조카를 죽이고 싶지 않으니 칼을 버리고 투항하거라! 목숨만은 살려줄테니!"
"엿이나 드쇼."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카아아앙 - !
둘이 격돌합니다!
하란은 이제부터 총관 수하들을 제압해야합니다!
아주 쉬운 일입니다.
***
"헛되고 망령되이 움직이지 마라! 걸음 하나하나가 태산처럼 무거워야 한다!"
"우리는 망치가 아닌 모루이니! 때리지 말고 짓눌러서 죽여라!"
하란은 큰 소리로 지시하면서 진을 이끌고 천천히, 무겁게 전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소리만 지르는 것이 아닌, 내공을 끌어올리고 용검세나 화룡포같은 원거리 공격기로 계속 적의 진을 찌름으로서 적의 정신을 빼놓고 틈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
생각 외로, 싱거운 전투였습니다.
하란이 뒤에서 받쳐주고 자경단원들이 수로 압박하기 시작하고.
모용세가의 무인들과 석지훈의 정예가 양익이 되어 미친듯이 들이치기 시작하자.
총관의 수하들은 항복하건, 도망치거나, 싸늘한 주검이 되어 땅에 몸을 뉘입니다!
그렇게 한참.
석가장 안을 제압하고, 마교도들이 조금 남아 힘겹게 숨을 고르면서 원을 그리고 방진을 그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무시해도 좋겠지요.
지금은.
파아아앙!
하란은 절뚝거리면서 전각 위를 바라봅니다.
공중에서 공기를 밟듯 자유자재로, 화려하게 움직이면서 서로 맞붙는 숙질.
총관은 지치고 상처입었고, 석지훈은 쌩쌩하고 건강합니다.
그 차이가 둘의 간극을 좁히고.
결국에는 승자까지 정해집니다.
"흡!"
서걱 - !
깔끔한 일격. 석지훈이 휘두른 검은 군더더기 없이 훌륭했고, 그 훌륭한 일격은 타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폭력으로 변합니다.
"크아아아아아악!!!"
툭.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집니다.
오른 팔꿈치 아래가 텅 비어버린 총관은 바들바들 떨면서 이를 악물고 왼손으로 검을 잡습니다.
척.
그러나 늦었습니다.
석지훈은 여유롭게 다가가 총관의 눈 앞에 자신의 검을 겨눕니다.
시리도록 예리하고 날카로운 그 검은 유형화된 검기를 갖춘채로 이글이글 타오릅니다.
"추합니다. 숙부. 이제 물러나시지요."
"......"
이를 가는 소리와 함께 총관의 고개가 툭 떨궈집니다.
그리고.
와아아아아아아아!
석가장 만세!!
석가장주 만세!
석지훈 장주 만세!
부숴지고, 타오르고, 그을리고, 피와 시체로 뒤덮이고, 병장기가 노을빛을 받아 번쩍거리는 전장 안에서.
새로운 석가장주, 석지훈이 탄생합니다!
***
첫번째 대사건, 석가장주石家場主가 끝납니다!
미사하란, 정파의 승리로 석가장은 정파의 영향을 받아 흑천성을 변절하고 독립적인 단체로 남습니다!
전 무림이 새로운 석가장주의 탄생에 주목합니다...이 일이 향후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지는...시간이 흘러봐야만 알 수 있을겁니다.
새로운 석가장주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모용세가의 깊은 개입이 있었습니다. 석가장과 모용세가는 정식 동맹을 맺습니다!
앞으로 석가장은 동맹이 유지되는 한, 장강 이북의 정파들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대놓고 보이지 않을겁니다.
***
모용세가에서 이 일을 이뤄낸 가솔 한 명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합니다.
모용벽이 새롭게 키워낸 그 참모는 매우 아름다운 외모와, 붉은 머리. 하나가 없는 다리. 그리고 일류 정도의 나름 준수한 무공을 갖췄다고 합니다.
참모는 고작 단 둘을 끌고 내려가 무력 단체를 만들어 민심 장악에 성공했고, 추가적인 증원을 적절히 이용해 석가장주의 탄생에 아주 큰 기여를 했습니다.
세가 안에서는 새롭게 혜성처럼 등장한 가솔을 두고 이렇게 부르기 시작합니다.
적호검희.
【 적호검희赤狐劍姬 】
중원 사파에서 명문을 꼽아보자면 반드시 이름이 거론되는 곳이 있습니다. 흑천문, 금봉파, 혈검문, 팔룡방, 파계회, 홍로문, 석가장...
그 중 석가장은 사파와 정파의 경계에서 오랜 시간동안 정파의 위협이었으며 대표적인 사파의 명문으로 그 위명이 자자했습니다.
16대 석가장주 석동출은 그 성향이 온건하고 굳건하여 경거망동하지 않았으나, 그가 죽은 뒤에 석가장은 큰 위기에 빠졌습니다.
사파제일인 호재필을 필두로 한 흑천성의 위협과 마교에서 내보낸 사생아. 그리고 석가장 내부에서도 벌어지는 장주의 자리를 둔 격렬한 경쟁.
그 모든 도전을 꺾어내고 새로이 17대 석가장주의 자리에 앉은 한한검寒翰劍 석지훈의 곁에서는, 그가 석가장주가 될 수 있도록 돕고 때로는 조종하기까지한 무시무시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아직 그 이름이 중원 전체에 울려퍼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그녀의 무시무시한 두뇌와, 추진력. 뛰어난 검실력과 특징적인 붉은 머리를 두고 이리 부릅니다.
적호검희.
- 석가장과 강한 유대
- 모용세가 내에 한해 명성 +1
- 위명에 두려워하는 자들이 나타남
하란의 간극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이제부터 하란은 일류 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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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보수로 재산이 3단계 상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