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제가 알면 무어라도 도움이...으, 으브으..."
말을 이어가려는데 뺨 잡으시기 있으십니까...? 억울하다는 눈치 한껏 보내고 있다가 문 바깥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귀를 쫑긋한다.
"갑자기 UHN에서 호출이라니... 무슨 일 있으신 겁니까, 성주님?"
#대화
" 하나뿐이지 않겠니. "
그녀의 주위로 알 수 없는 의념의 기류가 느껴집니다.
" 너를 데려가려 온 게 분명하구나. "
- 성주님. 이곳에 계신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 잠시 나와주시지요.
공손한 말투이지만 조금도 인간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듯,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바깥에서 들려옵니다.
두 강력한 의념 각성자가 대치하는 것만으로 한결은 목이 얶메이는 듯한 고통을 느낍니다.
" 손님으로 온 것이라면 그 기운을 숨기는 건 어떠시련지. "
- 죄송합니다만.
곧, 문이 열립니다.
그 앞에는 마치 어울리지 않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듯. 어색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 듯한 남자가 있습니다.
감정이 죽은 듯 그 눈은 죽어 있었고,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그 모습은 한결의 몸에 소름이 들도록 만들었습니다.
" 한결 님도 계시는군요. "
곧 그는 성주의 감시 하에 한결에게 명함을 건네줍니다.
< UHN 중국 지부장 >
리오 후잉
" 본래라면 신 한국의 지부장이 오시는 게 맞겠습니다만, 최근 헨리 파웰 님의 묘가 테러를 받으며 썩 좋지 못한 상황이라 제가 오게 되었습니다. "
그 손이 잠깐 닿았을 때. 그 몸에선 느껴질 수 없는 거대한 질량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거인이 손가락을 뻗은 것만 같은. 그런...
나를...? 어째서요? 왜요?
수많은 ???가 혼재된듯한 표정으로 스승님을 바라다본다.
"저 이번엔 진짜 사고 안 쳤습니다."
손사래를 치며 조금은 창백해진듯한 얼굴로 고개 가로저었다. 아니 애초에 물고기밥 될 뻔한 사람이 무슨 사고를 치고 다닐 리가 없었으니...
자신을 보호하려는 듯, 낯선 이를 경계하려는 듯 일렁이는 스승님의 기운과 그에 맞서기라도 하듯 지지않고 기류를 불러일으키는 상대의 대치만으로도 목에 무언가 콱 메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것이 격의 차이인가. 아직은 범접할 수 조차 없는 아득한 경지인 것인가.
"...이한결입니다. 예까지 걸음하시게 하여... 폐를 끼쳤습니다."
공손히 포권을 취해 보이고는 양 손으로 명함을 건네받았다. 거인에게 주시당하는 듯한 그런 기분... 개미가 된 것만 같다.
#대화
" 아닙니다. "
그는 한 걸음 물러납니다.
그가 서있던 곳에... 아주 무거운 것이 올려졌던 것 같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 그래서. "
스승님은 후잉을 바라보며 묻습니다.
" 무슨 일로 배로흑왕倍輅黑王께서 내 제자를 데리러 왔단 얘기인가요? "
" 아시지 않습니까. 특별반의 계약. "
UHN의 호출이 있을 때.
특별반은 긴급한 상황을 제외하고, UHN에 합류해야만 한다.
" 유럽에서 구원 요청이 왔습니다. 다수의 게이트가 폭주하며 몬스터가 범람하고 있지요. "
무언가 자리에 있지만, 그리고 데려가지는 주체는 본인이지만, 대화에서 살짝 소외된 듯한 기분이었다.
"..."
기분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혼자였으면 저를 데려가는 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 기세에 눌려 끌려가듯이 데려가졌을 것이라는 것 정도는 간단히 눈치챌 수 있었다.
#눈치...콘
스승님과 지부장의 눈빛이 가볍게 교환됩니다.
" .... 이곳은 양양성이네. 나는 이 성의 성주이고, 이 아이는 언젠가 이 양양성의 성주가 되겠지. "
곧 그녀를 중심으로 네 개의 속성이 휘몰아칩니다.
" 그대는 이 양양성에서, 내 제자를 데려갈 수 있다고 보는가? "
" 예. 불가한 일은 아닙니다. "
그러나 그는 조용한 표정으로 한결을 바라봅니다.
" 한결 군. 따라오십시오. UHN은 특별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
" 죽을지도 모르는 곳으로 내 아들을 데려갈 셈이냐!!! "
그녀는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그를 죽일 듯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나를 끌고 가려는 UHN의 지부장과, 자식과도 같은 제자를 사지에 밀어넣고 싶지 않으신 스승님의 대치. 멍하니 상황을 지켜볼 때가 아니었다. UHN에 직접적으로 대치하게 되는 형국은 막아야만 했으니.
#망념을 20만치 쌓아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큰 소리로 외친다.
"마마...! 어머니께서는 항상 말씀하셨죠, 언젠가 양양성의 성주가 되기 위해 더욱 정진하라고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배워가고, 싸워야만 합니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스승님께, 아니 어머님께 고개를 90도로 숙인다.
"전 괜찮을 거예요. 어머니께서 가르쳐주신 것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이 나아갈 거예요. 그리고 더 강해져서 꼭 돌아올게요. 어머니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제 힘으로 차기 성주에 어울리는 이라는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서 전 이 기회를 잡아야 해요."
#혹시 몰라 한번 더 붙이는 #
움찔.
한결의 말에 반응하며 그녀는 몇 걸음 물러납니다.
그럼에도 계속, 그 기세를 흩뿌리며 마치 짐승처럼 분노를 토해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좋은 선택입니다. "
후잉은 그런 한결을 바라보며, 건조하게 답합니다.
" 성주님. 성주님의 걱정 역시 알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희들 역시 이들을 조건 없이 밀어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
곧 그는 허공에서 무언가를 불러냅니다.
그것은 책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제목에는 '하비체프의 선 이해'란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 이런 상황에서 전해주는 것이 좋진 않습니다만. 받도록 하시지요. 저희 측에서 드리는 선물입니다. 이후로도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길 바랍니다. "
치맛자락에 감싸인 채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스승님이자 어머니께 가르침을 받아 성장해 나간다면 언젠가, 무난하게 성주 자리에 오를 지도 모른다.
허나 한결이 망나니같던 어린 시절로부터 뼈저리게 배운 교훈 한 가지. 그것은 다름 아니라 무언가를 손쉽게 얻는다면 그만큼이나 손쉽게 잃을 수도 있다는 담백한 사실이었다.
세상 어느 어머니가 자식이 가시밭길을 걷길 원하실까. 자식의 입에 단 것이 들어가면 자신이 쓴 것을 들이켜도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부모이리라.
그러나. 한결은 제 앞에 거저라는 수준으로 들이밀어지는 스킬북(?)을 바라보며 무언가 구린 냄새가 맡아지는 것만 같았다. 단순히 자신을 소환하는 것이라면, 특별반이라는 이름 하에 그저 데려가기만 해도 됐을 테다. 그러나 부담스러울 정도의 대가를 먼저 쥐어주면서 데려가려 한다는 건? 아무리 성주님이 뒤에서 바라보고 계신다 한들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 정도는 한결 또한 알아챌 수 있었다.
"...호의에 우선 감사드립니다. UHN에서 이렇게까지 사려깊게 일개 헌터에 불과한 저를 배려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허면, 제가 드릴 수 있는 '도움' 에 대해서 말인데... 서로의 기대와 목표를 명확히 이해하고 싶습니다. 제가 정확히 유럽의 어디로 가서 무슨 일을 하면 되겠습니까?"
# 무슨 의미로 이런 대단한 선물을 주세요 님?
무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한 개의 인영은 천천히 한결을 바라봅니다.
" 꽤나 당돌하군요. 당신의 스승이 당신을 어떻게 키워냈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
그 말에 스승님의 표정이 분노로 바뀌지만, 그는 이야길 이어갑니다.
" 제가 오지 않았더라면 당신의 스승이 당신을 보내지 않으려 했겠지요. 꽤나 당돌히 치맛자락에 숨어놓고는, 이제와서 저에게 비꼬는 것입니까? "
그리고.
한결의 몸이 마치 바닥에 짓눌리는 듯한 느낌이 납니다.
거체의 무언가가 한결을 내려보는 듯한 느낌. 차디찬 기계가 기름과 불로 하여금 생명을 얻어 걸음을 걷고 있습니다. 그 거대한 몸체가 한결을 내려보며, 천천히 손을 뻗으려 하고 있습니다.
" ...... 그만! "
곧 한결의 스승은 한결을 옷깃 뒤로 보내며 고개를 숙입니다.
" ... 제자와 내 무례는 사과하겠네. 오늘은 물러나주지 않겠나? "
" 어렵지 않습니다. "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한결을 바라봅니다.
" 또 보도록 합시다. "
어느 정도는 사실인 말이기도 하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것은 또 아니었다. 누구를 치마폭에 아직도 감싸인 갓난아이 취급을 하는 건가.
"큽..."
움직이려 해도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
강철로 만들어진 검은 쇳덩이가 제 쪽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 근처만 중력이 더 거센 듯한 느낌.
꿈 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온 몸이 물 먹은 솜 같았다.
"..."
숨이 막힐 듯한 그 감각이 멈춘 것은 제 스승이 나서고 나서부터였다. 그렇게 격노하던 분이 먼저 고개를 숙이고 나서야 온 몸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겨우 사라졌다.
"...나중에, 다시 뵙겠습니다."
#대화
배로흑왕이 떠난 자리.
곧, 그가 떠난 후에야 한결은 마치 참았던 숨을 한 번에 몰아쉬는 것처럼 과호흡에 빠집니다.
폐로 밀려오는 공기가 고통스러운 것을 선명히 느낄 수 있을 때에야.
꺼허억.....
한결은 입에서 침을 흘려내는 것을 닦으며 겨우 정신을 차립니다.
스승님은 매우 충격에 빠진 얼굴로 한결을 바라보는군요!
하하! 스승님 아니었으면 오늘 생사결 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