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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서가2 | ||||||
장르 | 현대판타지 | |||||
성격 | 육성, 학원 | |||||
성향 | ALL | |||||
스토리 | 창작 | |||||
시작일 | 2021/09/09 | |||||
종료일 | 2024/07/12 |
Contents
[-][+]1. Intro ¶
첫번째 이야기가 가디언에 대해 다루었다면 이번 이야기에선 새로운 인물들에 대해 다루도록 하죠.
싸울 수 있는 의념 각성자, 그 중 가장 밑바닥이라 평가받는 존재들.
환영합니다! 여러분은 헌터로서 영웅서가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 현실적인 자유도
- 영웅서가 1에서의 가디언들은 상당히 다양한 규제들을 받아왔습니다. 이는 가디언이라는 역할이 단순히 잘 싸우는 의념각성자임을 넘어, 엔터테인먼트와 국력, 재산 등에도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웅서가 2에서의 여러분은 다릅니다. 좁은 학원도에서 벗어나 더욱 더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보십시오! 기본적인 법만 제대로 지킨다면, 또한 들키지 않을 자신만 있다면 당신의 자유는 유한할 것입니다!
- 10년의 시간에서 오는 변화
- 영웅서가 1의 시점에서 1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과거의 불편함이 더욱 강화되었을수도, 아니면 감소하였을지도 모르죠.
미지의 힘 의념과 함께 준비된 세계를 경험하십시오. 그리고 주어진 이야기를 완수하여 이 세계에서 여러분의 목표를 이루어보세요. 저는 여러분께 새로운 세계를 체험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 혁명
- 영웅서가의 세계는 유동적입니다. 하나에 고정되지 않고 어지럽게 움직이는 세계에서 여러분은 크고 작은 영향력들을 행사하게 될겁니다.
1기에서의 여러분이 가디언이라는 제한적인 역할에 묶여 자신이 하고자 하는 날개를 펼치지 못했다면 그 순간에 진심으로 사과의 말을 전하겠습니다. 그러나! 2에선 다릅니다. 자신있다면 얼마든지 마음껏 행동하십시오. 그 결과는 온전히 여러분의 책임일겁니다!
2. 우리들의 생활 ¶
편리성, 돈과 같은 우리들의 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들이 영웅서가에선 어떻게 존재하는지 알아보도록 하죠!
- GP(Guardian Point)
- 의념 시대에 어울리는 기축통화
가디언 포인트. 줄여서 GP라고 부르는 화폐는 국제 가디언협회와 중경한가가 보증하는 인정받는 기축통화입니다.
현 시대에 다달라선 가디언 포인트를 현금처럼 사용하고 있으며 가디언 포인트만 존재한다면 어느 세계에서라도 마음껏 소비 생활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가디언 포인트는 1 GP당 100원의 가치를 지니게 되며 100포인트가 모이는 것으로 만원의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모든 가치는 전 세계와 중경 한가, 그리고 가디언 협회가 보증합니다. 안심하고 사용하세요!
- 헌팅 네트워크
-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대화의 장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모색하거나 같이 공략할 사람들을 찾아보거나, 아니면 게이트를 같이 공략할 사람들을 찾거나 길드의 공고를 확인하고, 의뢰를 조희하는 것은 모두 헌팅 네크워크에서 이뤄집니다.
헌팅 네트워크는 UHN에서 헌터 자격을 부여받는 것과 함께 각막에 헌팅 네트워크를 연결할 수 있는 마이크로 칩을 주입받게 됩니다. 이를 통해 헌터는 헌팅 네크워크에 접속할 수 있으며 자신의 상태창과 연동하여 어디에서라도 헌팅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다만 게이트 안에서는 전파가 잘 안터지긴 합니다.
- 상태창
- 주의. 동태창이나 명태창이 아닙니다.
어느샌가부터 의념 각성자들은 자신의 허공에 나타나기 시작한 의문의 창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자신의 이름과 의념 속성, 자신이 가진 특성들이나 스킬, 심지어 인벤토리라 부르는 특이한 능력까지 가지고 있었죠.
세간에서는 마왕이라 불리는 일본의 영웅 서유하가 신들의 신에게서 그 권능의 일부를 뜯어내어 만들었다고 하지만 실상은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상태창을 통해 자신의 정보를 확인하고 자신의 능력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벤토리 기능을 활용할 수 있으니 잘 활용하도록 합시다.
가끔 생태창이라 불러도 나오기도 합니다.
- 의념과 망념에 대해
- 의념意念
인류에겐 힘이 주어졌다. 단지 그것을 어떻게 쓰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을 뿐.
게이트가 열린 직후. 인류에겐 갑작스런 힘이 주어졌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검은 길. 그리고 나를 부르는 듯한 환한 빛이 나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이리로 와. 네가 바라는 모든 것이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것같았다.
의념을 각성하는 나이는 최소 4~17세 전후이며 이후에 의념을 각성하는 경우는 극히 희소하다. 물론 13영웅 대부분은 이러한 제약을 넘어 각성한 경우이므로 의념의 늦은 각성이 강한 의념을 타고나는 조건이라는 소문도 알음알음 존재한다.
의념을 각성함과 동시에 발현되는 것은 신체의 강화로 가장 미약한 의념 각성을 이룬 각성자도 일반인을 상회하여 운동 선수 이상의 신체 능력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신체 능력과 함께 부가적으로 추가되는 요소가 바로 신체의 유지이기도 하다. 의념은 각성자의 신체를 전성기의 상태에 고정하려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20대의 나이에 전성기를 맞는다면 의념 각성자의 신체 나이는 20대에 고정되는 것이다. 다만 완전히 노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 기준이 일반적인 비각성자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자신의 의념이 어떤 방향성을 가지느냐에 따라 각성하는 '의념 속성'이라 부르는 힘이 있다. 의념 속성은 일부 의념 각성자에게 강하게 발현되는데 가장 기본적인 불과 물을 이루는 원소로서의 속성과 이매망랑, 하늘과 같은 개념으로의 속성 등. 다양한 부분에서 특이점을 보이곤 한다.
이러한 의념 활용이 극에 다다르면 일시적으로 의념의 증폭을 발생시켜 의념기라 부르는 특별한 힘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의 의념 각성자에 한정한다고 한다. 다만 가디언 아카데미나, 몇몇 헌터 길드에 한정하여 이러한 의념기를 발현시키는 몇가지 방법이 존재한다고 하나 그 실상은 비밀로 전해지고 있다.
망념妄念
결국 모든 행동에는 반작용이 오기 마련이다. 의념의 반작용은, 욕심에 잡아먹히는 것.
소년은 웃고 있었다. 눈앞의 남자가 두 눈에서 시커먼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가엾다는 듯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 우습지 않아? 이런 힘이 주어졌음에도 너희는 이 힘이 당연한 것처럼 사용하곤 하더라? "
소년의 말대로 누구도 자신들에게 이런 힘이 주어졌는지 몰랐다. 단지 이 힘이 있다면 저 사냥꾼들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만 생각했다. 두 눈에서 흐르기 시작한 것은 남자의 후회와 미련, 원망과 같은 것들이었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남자가 바라던 것. 바꾸고자 했던 것.
소년은 그것들을 손을 모아 한가득 담았다. 그것을 빤히 바라보며 내게 물었다.
" 정말로 그것들을 원해? "
원한다라. 그 말은 틀린 구석이 있었다.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내가 후회했던 그것들을 해소할수 있다면. 지금의 힘이 그때 있었더라면, 아니면 더 강한 힘을 가졌더라면.
소년은 꺄르르 웃더니 두손 가득 모은 것을 삼키며 날 바라봤다.
" 이젠 더 울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네가 원하는 것을 이뤄줄게. "
의념 각성자는 필연적으로 망념이란 리베이트를 안고 살아간다. 어째서 의념의 뒷면에 망념이 존재하는지, 어째서 의념을 사용할수록 망념이 증가하는지. 과거부터 쭉 연구되어왔지만 저 위대한 대현자도, 마왕도 속 시원히 밝힌 것은 없었다.
단지 수많은 학자들은 망념에 대해 이렇게 고찰했다. 우리가 물리적인 행위를 한다면 이뤄지는 저항, 망념 역시도 우리들이 의념이라는 힘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라고 말이다.
의념을 사용하지 않으면 망념은 증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념이 존재함에도 사용하지 않으면 의념 각성자는 가치를 잃게 된다. 그런 생각을 가졌기에 의념 각성자들은 망념이란 저항을 안고 오늘도 의념을 사용하고 있다.
망념이 한계에 도달하면, 각성자는 망념의 껍질에 휩쓸리게 된다. 그리고 그 껍질을 부수는 것으로 게이트의 존재가 되고 만다. 그렇기에 망념의 한계치를 넘는 상황을 '망념화'라 부르며 수많은 의념 각성자들이 경계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의념 각성자는 꾸준히 망념을 감소시켜야만 한다. 망념은 의념 각성자의 초인적인 육체에 고통을 주게 되고, 망념을 가진 채 시간이 오래 지나면 의념 각성자의 육체는 점점 마모되기도 한다.
이러한 망념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의념각성자는 꾸준히 망념을 감소시키는 행위를 하게 된다.
가장 간단하게는 같은 의념 각성자와 만나 서로의 의념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망념을 해소하는 것이 있다. 이 방법은 다른 부작용이 없으나 시간이 오래 걸리고 타인과의 접촉을 필요로 한다.
다른 방법으론 약물의 도움을 받거나, 게이트 내부의 특별한 도구를 이용하거나 하는 방법들이 있지만 그것들의 부작용은 적지 않고 각성자에게 다양한 부작용을 야기시킨다. 그런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망념의 해소는 필요하기에 여전히 많은 의념 각성자들이 망념을 해소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2.1. 일상과 일상 코인 ¶
하지만 오직 망념의 소모를 목적으로만 일상을 돌린다면 여러분은 쉽게 지치고 따분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일상 코인 제도는 여러분이 일상을 돌리는 것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지급하고, 일상을 통해 시간을 소모한 것에 대한 대가가 될 것입니다.
모두에게 평등이 주어질 수는 있겠지만 그중 조금 더 앞서가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대가를 지불하는 여러분에게 그 보상을 드리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일상을 돌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된 시스템까지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일상에 대해서
- 일상을 통해 망념을 해소하고, 코인을 수급해보세요.
일상은 여러분이 다른 부작용을 감수하지 않고 망념을 깎을 수 있는 유일한 시스템입니다. 이따금 캡틴의 재량으로 망념을 초기화하거나, 중화제를 지급하는 등의 활동을 할 수는 있더라도 외에 망념을 해소하는 것에는 어느정도의 패널티가 따르게 되겠죠.
이런 패널티를 일상을 돌리는 것으로 가볍게 무시할 수 있다면, 또한 거기에 더해 적절한 보상이 주어진다면 여러분이 만족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일상으로 감소시킬 수 있는 망념은 총 300입니다. 영웅서가의 이전 시즌과는 그 양이 많이 달라 놀라셨을 수 있을겁니다. 이전의 망념 시스템은 0에서 100까지의 한계를 지니고 있었기에 다양한 부분에서 여러분에게 불편을 드린 바 있습니다. 정보를 습득하고 지식을 획득하였지만 그 대가로 진행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였으니까요.
그렇기에 여러분의 망념량을 획기적으로 늘려드렸습니다! 아마 시트에서 확인 가능하시겠지만 여러분의 망념 한계치는 200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잠깐. 뭔가 이상함을 느끼셨나요? 네 맞습니다! 감소 가능한 망념은 300이라고 하셨는데 왜 망념의 한계치는 200인가요? 하고 물으실 수 있을겁니다. 그 대답은 이 아래에 답변드리도록 하죠.
망념은 자신과 상대의 일상을 모두 더한 뒤 * 3하여 계산하실 수 있습니다. A가 7개, B가 6개의 일상을 주고받았다면 감소되는 망념의 양은 (7+6)*3=39의 망념이 감소하는 것이죠!
또한 일상을 마치는 것으로 일상 코인을 하나 지급받을 수 있으며 일상 레스의 개수가 16개를 넘어갈 경우 하나를 더 지급합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 너무 단문으로 빠르게 주고받거나, 억지로 일상을 늘려 코인을 수급하고자 할 경우 위 추가 지급 항목은 ★삭제될 수 있음을 명심해주세요.★
- 잔여 망념
- 여유롭게 일상을 돌렸다면 타인에게 자신의 망념을 나눌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일상을 열심히 돌려 300의 감소 가능한 망념을 모두 채우셨다면 최대 200까지 쌓을 수 있는 망념을 제외하고 100의 망념은 잔여 망념으로 보유하실 수 있습니다.
이 망념 감소의 경우 타인과 중화제의 형태로 교환할 수 있으며 절대로 100을 넘어 저장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자신과 의뢰를 가야하는 참치가 너무 열정적으로 수련을 하여 진행에 차질이 생겼을 때, 잔여 망념을 거래하는 것으로 차질이 될법한 수단을 제거할 수 있다면 문제점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을겁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망념을 거래할 수도 있겠죠!
- 일상 코인
- 졸고 있는 강아지 모양(Doggy)이 새겨진, 아주 귀여운 코인입니다.
이렇게 일상을 돌려 수급한 코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여러분은 제게 질문하실 수 있을겁니다.
일상 코인은 다양한 요소에서 사용되며 사용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상 코인 하나당 수련 코인으로 교환 가능 - 교환비는 일상 코인 1 : 수련 코인 1.
수련 코인은 수련에 사용 시 망념 10을 지불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지님.
코인샵에서 코인을 지불하여 다양한 물품을 구매할 수 있다.
진행 당 한 번, 30개를 지불하여 자신이 선택한 결과를 되돌리기 가능. 단 진행 지문을 받은 당일만 되돌리기가 가능함.
사실 일상 코인은 주 수입원보다는 보조적인 목적이 강한 요소입니다. 일상을 돌린 대가로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자잘한 보상이니까요.
물론 코인샵에는 이따금 여러분도 놀랄법한 물건들이 출고되기도 합니다. 또한 가끔 이벤트에서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서도 일상 코인이 필요할 수 있으니 많은 관심과 열정으로 코인을 수급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총 레스 개수가 10레스 이하로 끝난 일상에는 도기코인이 지급되지 않습니다.
* 인당 8레스 이상 작성되어야 추가 코인이 지급됩니다. (2인 16레스 이상, 3인 기준 24레스 이상부터 2개. 특수도기 생성기준도 동일)
- 신입 및 복귀러를 위한 간단 특수코인 가이드 by 강산주
*특수도기코인 :
- 현재 활성화된 특수 일상 배경 중 하나를 배경으로 하여 진행된 일상을 돌릴 때마다 특수 도기 코인을 하나씩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단, 인당 작성 레스 8개 이상부터 획득가능.)
- 유효기간 1개월.
- 일반 도기 코인과 호환 불가. 특수 진도 코인과는 1:1로 동일한 가치를 가집니다.
*특수진도코인 :
- 특수도기코인과 동일한 용도로 사용가능하지만 사용가능한 범위가 더 넓은 상위호환 재화입니다.
주로 위키 보완 이벤트 등의 기여 보상으로 지급됩니다.
- 유효기간 2개월.
- 현재 활성화되지 않은 특수 일상 배경에도 사용가능하지만, 비활성화된 사이 시스템상의 변화가 있거나 특수 배경 게이트의 환경이 변화하였을 수 있으므로 사용 전 캡틴에게 문의할 것을 권장합니다.
3. 헌터양성기관 미리내 고등학교 ¶
미리내 고등학교는 신 한국에 세워진 헌터양성기관으로 UHN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졌다. 입학 난이도가 높아 적은 학생수 / 헌터라는 부정적 이미지 / 포기하는 학생의 수가 많음 |
명문 헌터 아카데미
미리내고는 특이하게도 UHN에서 직접 지원하여 건립한, 유일의 헌터 아카데미입니다. 길드의 영향력에 따라 교육의 수준이나 방침이 달라지는 여타 아카데미들과는 달리 미리내고는 UHN에서 권고하는 교육 커리큘럼을 따르고 있으며 비록 가디언 아카데미에는 뒤쳐지나 다른 아카데미들을 상회하는 뛰어난 교육적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헌터 아카데미가 헌터 길드의 연합, 또는 특정 길드의 후원으로 돌아가는만큼 헌터 아카데미를 졸업한 학생들은 아카데미를 지원한 길드나, 그 하청 길드에 소속되어 헌터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미리내고에서는 이러한 헌터 길드의 지원 없이 UHN에서 직접 운영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신의 성적과 실적을 통해 길드에 가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미리내고에 입학하기는 어렵고 그 수업을 따라가기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미리내고에 존재하는 모든 커리큘럼을 통과하였을 때. 많은 길드에게 질문하도록 하십시오. 여기서 가장 뽑고싶은 아카데미 출신은 어디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대부분의 길드에선 이렇게 답할 것입니다.
베니온, 황서비고, 그리고 미리내고라고 말이죠.
- 시설 목록
- + 훈련실 :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훈련실입니다. 학생들의 수련 행위가 가능해집니다.
+ 매점 : 학생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감소합니다.
+ 제작 훈련실 : 후방 지원계 학생들을 위한 제작 훈련실입니다. 학생들의 제작 수련이 가능해집니다.
+ 대련실 : 학생들간 대련이 가능한 대련실입니다. 대련을 통해 학생들이 경험치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 자료실 : 일부 학생에게 개방되는 자료실입니다. 헌터 협회에서 모은 중요 데이터들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 동아리실 : 별관에 존재하는 동아리실입니다. 동아리를 개설할 수 있으며 동아리 활동을 통한 여러 활동이 가능해집니다.
++ 전투연구실 : 전투에 대해 연구, 분석할 수 있는 전투연구실입니다. 수업중이거나 일부 학생에 한해 사용 가능합니다.
+ 식당 : 급식, 또는 선택을 통한 특식을 제공 가능한 식당입니다.
++ 상담실 : 학생들의 정신 보호 목적으로 제작된 상담 시설입니다. 학교 내부에서 정신력 감소 속도가 하락합니다.
++ 보건실 : 학생들의 부상을 치료하는 보건실입니다. 뛰어난 담당자가 배치될수록 학생들의 부상으로 인한 컨디션 감소치가 하락합니다.
+++ 특별 기록 보관실 : 학생회에 한해 개방되는 특수 시설입니다. 미리내고등학교의 비전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 단거리 텔레포트 게이트 : 서울 전역을 자유롭게 이동 가능한 텔레포트 게이트입니다. 허가를 통해 이용할 수 있습니다.
++ 가상 전투 생성기 : 여러 마도를 통해 복합적으로 제작된 가상 전투지를 생성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의념을 통해 강화된 햄스터들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 특별반 수련장 : 특별반에 한해 허락된 수련장입니다. 수련 효율이 크게 증가합니다.
++ 미리내고 보호 결계 : 미리내고등학교의 방어 목적으로 제작된 결계입니다. 미리내고 반경 5KM의 게이트 발생을 억제합니다.
++ 파견 가디언 휴식 시설 : 대치동 지역에서 활동하는 가디언들의 휴식을 위한 공간입니다. 가디언들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 특수 보관실 : 학생들에게 개방된 특수 보관실입니다. 전시된 물품을 관람하여 버프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또는 축제 개관 시 전시실로도 이용됩니다.
++ 길드 연락소 : 각 길드와 자유롭게 연락할 수 있는 연락 시설이 존재합니다.
+++++ 교장실 : 미리내고등학교의 교장실입니다. 이 시설이 존재하는 한 미리내고등학교가 파손되더라도 기능이 정지되지 않습니다.
+++ 수호 석상 : 미리내고등학교의 정문을 지키는 두 대의 골렘입니다. 평시에는 기능 일부를 봉인한 채 선도부원의 역할을 대신합니다. 이때의 레벨은 30입니다.
3.1. 학생 기록부 ¶
4. 스레드 및 사이트 일람 ¶
- 시트어장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6301070/
- 사이트 https://lwha1213.wixsite.com/hunter2
- 1스레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6301087/recent
- 엔딩스레+에필로그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7049352
- 도서관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7032968/
- 이벤트 정산스레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96937065
- 망념/도기코인 보유 현황판
- 특수배경 기타사항 현황판
4.1. 연성 목록 일람 ¶
- 영서콘을 디씨콘처럼 손쉽게 쓰는 방법 (유저 스크립트 사용)
- PC (Chrome 사용) : 바이올런트 몽키 확장 프로그램 설치 (설치 주소 : https://chrome.google.com/webstore/detail/violentmonkey/jinjaccalgkegednnccohejagnlnfdag) - https://greasyfork.org/ko/scripts/499476-hero2con 에서 스크립트 설치
안드로이드 (키위브라우저 사용) : PC와 같이 바이올런트 몽키 확장 프로그램 설치 - 3점메뉴 - 확장프로그램 - 바이올런트몽키/템퍼몽키 클릭 - 확장프로그램 옵션 - 설치된 스크립트 - + 아이콘 누르고 Url에서 설치 - https://update.greasyfork.org/scripts/499476/Hero2con.user.js 복사 붙여넣기
애플 (사파리 사용) : 앱스토어에서 유저스크립트 설치 - 실행해서 유저스크립트 저장할 위치 설정 - https://greasyfork.org/ko/scripts/499476-hero2con 에서 스크립트 해당 위치에 다운로드 - 설정 - 사파리 - 확장프로그램 - 유저스크립트 On
or
앱스토어에서 stay 설치 - 사파리로 https://update.greasyfork.org/scripts/499476/Hero2con.user.js 들어가기 - 우측 하단 Install 버튼 클릭 - 확인 - 사파리 - 확장프로그램 - stay On
영웅서가 어장 클릭 - 영서콘 클릭 - 스크롤 내려서 사용하고 싶은 이미지 클릭 - 해당 이미지 파일 자동 업로드 - 마솝버튼 클릭
- 연성목록
- 빈센트 - 범죄 수사는 경찰에게 맡겨야 하는 이유 (12-13 어장)
"그래. 내일 보자. 그리고, 항상 기억해. 나처럼 할 자신 없으면, 그냥 증시추종 펀드에 넣어."
친구의 전화를 끊고, 빈센트는 10층 계단에 첫 발을 내딛었다. 첫번째 발은 두번째 발의 기초가, 두번째 발은 세번째 발의 기초가 되어, 중력을 거스르고 빈센트의 위치를 차츰차츰 높였다. 평범한 사람들의 등허리에는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땀이 식으며 몸과 속옷을 적시고, 계단참이 쉬라고 유혹하며 그들을 붙잡는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이고, 빈센트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평범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으니. 의념으로 강화된 두 다리는, 계단을 걷는 정도로 부하를 느끼는 것은 더 이상 불가하게 되었고, 빈센트의 폐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범한 호흡 패턴을 유지했다.
하지만 빈센트는, 옛날을 생각하며 걸었다. 계단 한 층, 한 층이, 마치 외계의 거성인 것처럼, 절대 올라갈 수 없는 저 대기권까지 뻗은 산처럼 느껴졌던 시절을 생각하며. 그 때의 빈센트는, 의념을 각성했기는커녕, 남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 하고 있는 그런 것들을 하지 못했으니까. 그 발에 자신의 체중을 10초도 실을 수 없었고, 심박 보조 임플란트의 도움이 없이는 심장이 스스로 100번도 뛸 수 없었고. 그 때. 그 때 보았던 계단을, 지금은 사뿐사뿐 밟았다. 그러면, 쓸데없이 생생한 유년기의 악몽도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었으니까.
"..."
띠릭, 띠리디릭. 의념으로 작동하는 도어락의 벨소리가 빈센트를 환영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빈센트가 없는 동안 이곳에 도사리고 있었던 어둠이 빈센트를 반긴다. 후우! 빈센트가 바람을 불자, 빈센트의 눈 앞에 있던 모든 전등들과 횃대가 일제히 빛을 발하고, 어둠은 빛의 틈새에 가려 물러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추방당했다. 추방당한 자리에는, 그간 어둠이 꽁꽁 싸매고 보여주려 하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보였다. 100인치 TV, 불곰의 털을 깐 가죽 소파, 우윳빛이 감도는 매끈한 대리석 바닥, 하이엔드 컴퓨터, 완벽하게 작동하는 최첨단 패시브 하우스 시스템, 수천 권의 책을 품은 채 주인을 기다리는 가구. 빈센트는 그것을 보고 웃으려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어림도 없지."
그의 집이 가지는 진가는 그런 데 있지 않았다. 빈센트는 그가 보고 싶지 않았지만, 봐야 했던 현실로 눈을 돌린다. 싱크대에는 흰 접시들이 잔뜩 처박혔다. 그게 에르메스 브랜드 접시건, 아니면 1000원용품점에서 산 싸구려 접시건, 마치 조그마한 어린이용 풀장에 수십마리의 백조를 억지로 집어넣은 듯 그 모습이 흉하다. 그 옆에는 고기인지 뭔지 모를 것이 말라 비틀어져서 후라이팬에 딱 붙었고, 가스 레인지도 기름과 음식물 찌꺼기가 튀어서 어지럽혀져 있었다. 그뿐인가, 고개를 돌리면, 바닥에는 바퀴가, 천장에는 거미가 돌아다니고, 빨래통에는 며칠 전에 진작 돌렸어야 할 빨래들이 잔뜩 쌓여서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빈센트는 그것을 보고 씨익 웃었다.
"이게 인생이지."
빈센트는 자신을 잘 알고 있듯, 집도 잘 알고 있었다. 빈센트는 누구인가? 빈센트는 그가 입고 있는, 중국 공장에서 싸게 풀려버린 가디건도 아니다. 아무 의미 없이 남들 다 차길래 차 놓은 비싼 시계도 아니다. 의념 각성자라는 각인이 찍힌 사회보장번호도 아니고, 빈센트가 사놓은 자동차도 아니다. 빈센트는 빈센트였다. 의념 각성자 주제에 몸은 더럽게 약하고, 자기 집을 홀랑 불태워 쳐먹었고, 그러고도 제 버릇 못 고쳐서 지나가는 곳마다 사람 엉덩이에다가 불을 놓고, 산 채로 사람을 태워죽이는, 그러면서도 UHN이나 UGN에 찍히지 않은 미친놈 겸 병신 새끼였다.
그렇듯, 이 집도 그랬다. 이 집은 이 집이 얼마나 잘났냐가 아니라, 이 집이 얼마나 후졌냐로 판단할 수 있으리라. 빈센트처럼 생긴 것은 멀쩡하지만, 살다 보면, 함께하다 보면 계속 뭔가 문제가 보이는 이 곳. 이 곳이 곧 빈센트였고, 빈센트가 곧 이곳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빈센트는 헛소리가 너무 길었던 것 같아,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청소 드론을 잡아, 그것의 사료가 기다리는 곳으로 이끌었다.
"적당히 충전되면 알아서 청소해라."
"..."
청소 드론은 말 없이 충전기에 꽂혔고, 청소 드론의 맨 위에 난 디지털 계기판에 빨간색 불이 들어왔다. 빨간 불은 일반적으로 정말 재수없는 일이 일어난다는 신호지만, 적어도 이 드론에 한해서는 아니었기에, 빈센트는 바로바로 일을 처리했다. 쌓인 빨래들을 전부 세탁기에 집어넣고, 물을 먹으면 재수없는 일이 일어나는 레이온과 울 의류는 따로 드라이클리닝용 용기에 넣고 유기 용매를 붓는다. 그 다음으로 해야 하는 일은 설거지. 빈센트는 하는 김에 식기세척기도 들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설거지를 하려고 주방으로 가다가, 뭔가 잊은 게 있는 것 같아서 뒷걸음질친다.
"TV, 41번."
"41번. UGN 뉴스."
빈센트의 취미는 그랬다. 100인치짜리 TV를, 그저 소리를 듣기 위해 켜두고, 다른 일을 했다. 지금의 경우는, 설거지였다. 빈센트가 거품을 내서 식기들을 하나하나 닦기 시작할 때쯤, 충전을 마친 드론도 날아올라 빈센트의 일을 덜어주려고 부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TV에서는 여러 피 튀기는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다 그런 식이었고,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빈센트는 그 뉴스들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게 그의 특질인데.
- 한 주가 끝나가는 금요일이지만, 곳곳에서 들려오는 사건사고 소식에 시민들의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각성자 우월주의를 주장하는 세력이 UHN 지사 살해를 모의하다가 꼬리를 밟혀...
- 다음 소식입니다. 게이트 내 헌터 살해 및 게이트 공략 방해 혐의로 생사불문 수배령이 내려진 용의자 베로니카씨가, 가디언 후보생을 살해하고 도망치다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습니다. 베로니카 씨는 범행 당시 향정신성 약물을 치사량으로 복용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상세한 조사를 위해 이송 중에 있다고 UGN-경찰 합동본부가 발표했습니다.
- 만취한 의념 각성자가 일반인 일행과 충돌하여 4명이 사망하고 10명이 크게 다쳤다는...
"오늘은 꽤나 심심하군."
그게 빈센트의 생각이었다. 옛날에는 지금보다 더 피가 튀겼던 적이 있다. 지금보다 더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다. 언제 내 집 문이 박살나도 이상하지 않고, 언제 바로 옆의 믿고 있던 경찰이 악당으로 돌변해도 이상하지 않을 때가. 빈센트는 그 때를 생각했다. 그 때는 얼마나 끔찍했던가, 얼마나 공포스러웠던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던가, 그리고... 얼마나 재미있던가.
죽여도 죽여도 죽일 범죄자가 끝이 없고, 태우고 태워도 태울 것이 넘쳐나던 그 때. 대폭동 당시에는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해봤자 의념범죄자가 누구를 죽였다, 그 정도니 딱히 감흥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접시를 닦다 보니, 가득 차 있던 접시가 하나 둘 건조대로 올라가고, 마침내 접시가 하나도 남지 않은 싱크대의 회색빛 바닥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제야 만족한 빈센트는 후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끝."
설거지를 끝내도 아직 할 일은 남아있다. 세탁기에서 다 돌아간 빨래를 건조기에 던져넣고, 유기 용매에 절은 옷을 빼내야 한다. 특히 유기용매는 의념 각성자도 의념을 두르지 않으면 유해할 수 있었기에 조심해야 한다. 그 다음은 먹지 않고 내버린 것도 다 치워야 했다. 이것 하랴, 저것 하랴, 바쁘게 돌아가던 시간이 그렇게 끝나고, 빈센트는 30분, 백수에게는 짧지만, 직장인에게는 긴 시간을 들여서 집안을 어떻게든 정리하는 데 성공했다. 성공했다... 성공했다...... 아니,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빈센트는 눈 앞에 쌓인 택배 박스들을 보면서 느꼈다.
"젠장, 여기에 식기 세척기가 있었네."
빈센트는 그간 참 많은 걸 시켰다. 계속 사야겠다고 생각했던 식기 세척기는 일주일 전에 이곳에 도착했고, 필요도 없을 것 같던 이케아의 군식구가 또 또 또 늘었다. 그리고 사놓고 몇 번 써보지도 않은 파이어스틸을 빈센트는 또 산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생존주의 동호회에서, 너처럼 불을 쉽게 피우는 애가 생존의 절박함을 알겠냐고 뇌까리던 놈의 말을 들었으니까. 그래서 산 것이었는데... 절박함은 모르겠고, 귀찮음이 빈센트를 잡아끌어서 쉽고 재밌는 불의 기예로 번번이 이끄는 탓에 결국은 버림받았다. 그런데도, 또 샀다고? 빈센트는 한숨을 쉬고 그것을 정리하고, 마지박 박스를 잡는다.
이건 분명, 정말로 필요해서 산 거다. 중고 노트북, 중고왕국에서 만난 상대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3년밖에 안 썼지만 마누라한테 걸려서 반값에 팕 ㅔ되었다는 물건이었다.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박스를 열었다. 하지만, 박스를 열자마자 나온 건...
"벽돌."
빈센트는, 속았습니다.
다큐에서 봤던 미어캣의 처지에 자신을 대입한 빈센트, 그의 이빨이 꽈득, 하고 물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 유식하신 선생님. 화나신 마음은 알겠는데..."
차갑게, 빈센트가 다시 묻자, 경찰은 한숨을 쉰다. 한 명은 뽕쟁이에, 한 명은 한 마디를 안 지는 왕재수 빨갱이라. 중고왕국에서 싼 값에 좋은 물건 건졌다고 좋아라 했다가, 이제 보니까 받은 것이 물건이 아니라 벽돌이었다. 평범한 사기다. 멍청하게 계좌번호로 거래한 덕분에, 매우 평범하게 사기범의 신원을 특정했다. 그리고 상대방이 출석요구서에 대답을 하지 않기에, 평범하게 구속 영장을 신청해서 그를 붙잡았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가, 100만원 떼먹은 것 정도는 범죄로도 보이지 않는, 무시무시한 마약투약 범죄자였음이 드러난 뒤로는, 일어난 일이 평범하지 않았다.
마약 같이 비싼 걸 사느라고 사기를 쳐서 돈을 끌어모은 것이니, 당연히 마약을 다 빨아버린 뽕쟁이에게 뭔가를 변상할 돈이 있을 턱이 없다. 그렇다고 감방에 보내자니, 저 상태면 감방이 아니라 정신병원이나 마약치료센터에 무기한 감금당할 게 뻔했다. 그리고 빈센트는, 돈을 떼였고, 눈 앞에 가해자가 있는데도 돌려받기는커녕 처벌도 어렵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계속 쳇바퀴. 빈센트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지만, 멱살을 잡히고 두들겨맞아도 본 경찰은 심드렁했다. 하지만, 빈센트는 심드렁한 경찰에게, 정말로 기억에 남을 이벤트를 해줄 생각이었다.
"어쨌든 유식하신 선생님. 이 세상에 다 법도란 게 있고... 선생님? 선생님? 어디 가십니까?"
"그럼 그 마약 범죄자들한테 제 돈을 돌려받아야죠."
빈센트는 사기꾼 겸 마약 중독자가 갇힌 철창으로 향한다. 마약 중독자는 금단증상 때문에, 극단적인 가려움을 겪으며 자신의 몸을 긁어대고 있었다. 이 세상의 자연 현상(불)을 보는 것만으로 기쁨을 느끼는 자신과는 달리, 그런 끔찍한 걸 몸에 투약해야 하는 상대를 보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뭐 어쩌랴, 그건 그 사람 사정이고, 빈센트는 돌려받을 돈이 있었으니. 빈센트는 마약 중독자를 보고 말했다.
"당신. 돈 좋아하지 않습니까?"
"돈... 돈... 좋아... 약 살 수 있어... 돈 좋아..."
"좋습니다. 가져가세요. 대신, 그 새끼들 어디 있는지 말하십시오."
"...동."
"어디요?"
"탄호동 고성로 1141-1 3층..."
"..."
빈센트는 돈을 뿌렸다. 돈! 돈이다! 약을 살 수 있어! 마약 중독자가 기분이 좋아서 돈을 마구 쓸어담으려 했고, 경찰은 빈센트에게 삿대질을 하며 다그쳤다.
"어어! 선생님! 그러시면 안 되는데!"
"됩니다."
"어?"
마약 중독자는 자신이 붙잡은 돈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름을 눈치챈다. 크기도 달랐고, 찍힌 돈의 액수도 달랐다. 대한민국 원은, 신권 발행 이후로도 최고 금액이 10만원이고, 최소 금액은 100원이다. 그런데 이 돈은, 100억원이 붙어있었고, 한국은행권이 붙어있어야 할 곳에는... 마약 중독자의 눈이 그곳으로 가더니 벌벌 떨렸다. 마약 중독자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끼며 빈센트의 붉은 눈을 올려다본다. 하지만 빈센트는 무덤덤했다.
"이거... 뭐지?"
"허리디스크, 목디스크, 네브라 스카이 디스크, 하드디스크. 댁이 저한테 마음껏 쓰라고 벽돌이랑 동봉해서 넣어놨던 상품권 쪼가리들이죠. 그 쥐알만한 마음은 참 고맙습니다만, 저는 이런 거 필요 없어서, 돌려드리겠습니다. 누가 압니까. 그거로 마약도 살 수 있을지."
"너... 너... 너!!!! 죽여버릴거야!!!!!"
"것 참 무섭군요."
마약 중독자가 발광해서, 철창에 머리를 부딪치며 빈센트를 죽이겠다고 한다. 네 주소도 안다. 네 전화번호도 안다. 널 죽여버리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여버릴 거야. 그렇게 말하지만 빈센트는 코웃음만 쳤다. 열심히 해 봐라. 배달 대행지를 3곳이나 거치는데, 넌 아마 아무것도 없는 산 위에서 빈센트 이 개새끼가 어디 갔나 찾고 있을 거다.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약 중독자가 말했던 주소를 생각한다.
"탄호동 고성로 1141-1 3층."
그곳에 가야겠다.
서울의 새벽 공기는 차갑다. 유난히 차갑다. 빈센트의 감상이었다.
지하철에 실린 채, 자신들을 강타할 채찍이 기다리는 곳으로 실려가는 이들. 폐지를 줍는 이들. 길바닥에 누운 채 기나긴 밤이 끝나고 또다시 해가 뜨는 것을 두 눈으로 살아서 봄에 감사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고민하는 노숙자들. 그들을 경멸하며, 무시하며, 혹은 존재를 인지하기조차 거부하며, 자신이 응당 있어야 할 높은 자리로 향하는 서울의 잘나신 샌님들. 그 모두를, 생기라고는 없는 새벽의 푸른색이 덧씌웠다. 그들이 펼쳐보고자 했을 꿈들, 살아보고자 했을 삶, 그들이 원했을 모든 것들의 색은 부정당하고, 그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자리에 처박힌 채, 서울의 푸른색에 씌여 있었다.
"유난히 이런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군."
탄호동, 새로 지어진 서울의 슬럼이요, 할렘가요, 파벨라요, 하여간 이 세상 안 좋은 빈민가들의 이름이 전부 그곳에 붙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만, 이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빈센트는 그들 사이를 지나가면서, 그들에게 미리 애도를 표했다. 그 누구도 모른 채 죽을 이들. 이 세상에 휴대폰을 포함해서 수십억의 카메라가 풀렸음에도, 한번도 찍히지 않을 이들이여, 이 세상에 매일 수백억 부의 신문이 발행되고 태워지는데도, 그곳에 짧게 기사 한 줄 올라가지 않을 이들이여. 그들은 태어났지만, 누군가 알아주고 교류해야 진정으로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 사회의 관점으로 보면, 태어나지 않았다. 누군가 죽었다고 기억해야 죽었다고 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그들은 죽지도 않았다.
"...아저씨. 돈 주시면 안될까요."
"...저런."
평정심을 유지하며 걸어가던 빈센트는, 한 아이 앞에서 멈춘다. 죽어버린 노숙자의 시체는 적당히 뛰어서 넘어가겠고, 터진 채 죽은 시체는 적당히 돌아가겠다. 하지만, 이 아이는, 그렇게 돌아갈 수가 없었다. 이 아이의 빈 깡통에 돈을 준다고, 재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빈센트는 재미가 아니라, 그냥 자기가 편한 대로 행동하기로 했다. 이 돈이 정말로 이 아이를 먹이는 데 쓰일지, 아니면 이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자처하는 인간 쓰레기들의 술, 매춘, 마약, 그 외 기타등등의 비용으로 쓰일지는 알 수 없었다. 빈센트는 전자기를 바랬지만, 만약 후자라면 그래도 이 아이가 한 대라도 덜 맞기를 빌며 종이쪼가리를 던졌다.
"...돈은 흩날릴 뿐이란다."
라고 말했지만, 빈센트가 아이의 깡통에 던져넣고 간 10만원짜리 지폐에는, ~~디스크로 끝나는 정체불명의 웹하드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다.
고성로 1141-3.
"...이상하군. 분명 이런 모습이 아닌데."
빈센트는 지도가 가리키는 건물 앞에 섰다. 벗겨지고 까진 벽에서 페인트 너머의 추한 모습이 드러나고, 벽에 달라붙은 이끼는 이 건물의 내력을 말해주었다. 하지만 빈센트는 그런 건 신경쓰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분명 3층이라고 했던 건물은, 3층이 아니라 2층까지만 세워져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2층까지만 남아있었다. 빈센트가 본 사진에서는, 분명 건물이 낡긴 했어도 3층까지 있었는데.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 사진에 있던 건물은 지금보다 훨씬 깨끗했고, 사진의 화질도 훨씬 좋았음을 상기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는 적어도 십 년 전에 갱신이 멈췄구나.
빈센트는 탄호동이라는 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이해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이들을 지나쳤다. 예측치안 시스템조차 이곳은 신경쓰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이들을 기억하기를 거부했다. 시대가 이들에게 영원한 망각이라는 보금자리를 주었다.
태양보다 밝은 스포트라이트가 유찬영을 비추고, 밤과 싸우는 수많은 조명들이 영웅과 준영웅들을 비추고, 자애로운 불빛이 이 세상에서 살고자 하는 이들을 내려본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불빛은 없다. 이들은 그 누구도, 어떤 것도 비춰주지 않는다. 이들을 비춰줄 불빛은 태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니, 빈센트의 생애에 그 불빛이 켜지는 일은 볼 수 없으리라.
"헤... 아흐... 에..."
옆에서 들려오는 가쁜 숨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한 여자가 주사를 흘린 채, 풀린 눈으로 빈센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머리칼은 푸석푸석해졌고, 눈동자에는 수많은 혈관들이 눈동자를 포식할 기세로 달라붙어서 눈을 붉게 칠했다. 그 눈동자를 받치는 눈가는, "마약"이라는 선택을 한 그녀의 검은 죄악으로 칠해졌고, 이를 벌리면 하나 둘 빠져서 무너진 이빨들이 보였다. 빈센트는 손바닥을 뻗어 그 중독자를 조준하고 고뇌했다. 사람들은 어디에서 안식을 찾을까. 누군가는 사랑하는 가족과, 누군가는 성취에서, 누군가는 평생을 먹고 살 돈을 벌고 나서 남국의 무인도를 사서 여생을 보내며 안식을 찾는다. 하지만, 이 세상의 가장 비천한 이들에게도 공평한 안식이 있었으니, 죽음이었다.
빈센트가 손가락만 튕기면, 이 여자는 죽음에서 안식을 찾으리라.
"..."
하지만 빈센트는, 안식을 거두기로 했다. "재미"를 위해 선을 넘을 수 있다고 자신한 빈센트지만, 저 여자에게는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정말로 들지 않았다.
내가 길바닥에서 죽어갔으면 짓밟고 가실 양반들이! 맨날 당신들 옆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해놓고. 그럼 걔네들한텐 왜 그래? 토머스 웨인이 TV에 나와서 애도해 줬으니까?
옛날에 보았던 영화의 한 구절을 생각한 빈센트는 한숨을 쉰다. 이 세상의 모든 훌륭하신 영웅들과, 성직자들과, 정치인, 그리고 제일 악의적인 악당들까지. 그들이 죽으면 그들은 신격화되고, 그들의 삶은 한 편의 잘 만들어진 비극이 된다. 가장 끔찍한 악당조차, 유명해지면 어쩌닥 그가 그렇게 됐는지 사람들은 생각하고, 그를 동정한다. 하지만, 이 밑바닥에서, 그저 밑바닥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죽어가는 이들에게는 아무 관심도 없다. 그들은 그저, "매 1분마다, 11명의 사람이 굶어죽고 있습니다."라는 무미건조한 통계를 위해 존재하는 이들이었고, 그들의 죽음은 소위 "행복도"와 "빈부격차"를 논할 때 나오는 통계수치에 불과했으니. 빈센트는 이 여자도 얼마 가지 않아 "통계"가 될 운명이라 생각하고, 짧게 애도했다. 빈센트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녀의 삶을 불태우는 쾌락으로 가득찬 마약을 없애는 것이 유일하리라.
"시작해볼까."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마약상들이 있을 건물로 들어갔다.
"없어요. 여긴 마약 같은 거 없어요."
"...그런가요."
두건을 쓴 남자는, 그런 건 여기 없다며 시치미를 뗐다. 이걸로 세 번째, 빈센트를 보자마자 경계하던 사내는, 빈센트가 대뜸 마약을 요구하자 무슨 큰일 날 소리를 하냐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빈센트는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 이미 예측했다. 허우대는 멀쩡한 녀석이, 옷도 멀쩡하게 차려입고서는 대뜸 와서 마약을 달라 한다면... 빈센트가 마약상 입장이라도 시치미를 뗄 것이다. 빈센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곳에서 조용히 놀 생각은 없었고, 잠시 떠봤을 뿐이다. 빈센트는 돌아서서,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자신의 손을 가디건 속에 넣은 채 손가락을 튕겼다.
빈센트의 두 다리를 감싸는 폭발과 함께 빈센트를 이 땅에 잡아주던 바닥 겸 천장이 사라지고, 빈센트의 몸을 중력이 잡아끌었다.
"으아악!"
"뭐, 뭐야 씨발!"
부서진 콘크리트가 회색 먼지를 내뿜고, 바닥을 구르는 이들의 비명 소리가 망가진 벽을 대신해 신음했다. 빈센트는 그렇게 지하로 내려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사방에서 노기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격적인 싸움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뭐, 의념 각성자만 없다면 상관 없다. 빈센트는 느긋하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빈센트의 바로 앞에는 수많은 플라스크와 구체가 놓여있었고, 거기에는 온갖 불길한 색깔로 빛나고 온갖 독한 향기로 코를 찌르는 화학 물질들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감옥 같은 곳에 수많은 흰색 가루들이 투명한 포대에 잠든 채 쌓여있었다. 빈센트는 그 뽕쟁이가 틀린 말을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교육은커녕 당장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동네다. 이 동네에서 고작 애들 화학실험이나 하자고 퀴퀴한 지하에다가 화학 작업대를 갖다두지는 않았으리라. 그리고, 저 흰색 가루들은... 다른 곳이었다면 빈센트의 뇌에 자리잡은 오컴의 면도날이, 저건 마약이 아니라 밀가루 봉지라고 최대한 선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가장 깊은 심연인 탄호동에서는, 오컴의 면도날조차 저것이 마약이라고 단정했다. 이제 시작해보자. 빈센트는 양 팔을 쭉 뻗고, 누군가의 칼이 빈센트의 옆구리로 날아왔다.
"이야아아아아악!!!!"
슬쩍 허리를 아래로 숙이자, 찌를 곳 잃은 칼은 허공으로 자신의 주인을 인도하고, 칼을 든 사내는 빈센트의 몸에 걸려서 땅을 굴렀다. 그 칼잡이에 발이 걸린 몽둥이 사내도 꼴사납게 넘어졌다. 누군가 칼을 던지지만, 의념 각성자의 청각이 바람 가르는 소리를 구분하고,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그 칼은 빈센트의 얼굴에 난 솜털 하나 베지 못한 채 반대편에서 총을 들고 뛰어오던 다른 이의 목에 꽂혔다.
"꺼허억!"
컥, 크허억, 어억... 바닥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있던 빈센트. 그 빈센트에게, 넘어진 채 엉켜있던 두 사람이 일어나 칼과 몽둥이를 휘둘렀다. 두 명, 복도를 채운 그 모습을 보고 빈센트는 더 이상 피할 수 없겠다고 느끼고 두 주먹을 들었다. 하지만 그 때, 뒤에서 칼을 던지던 친구가 한번 더 빈센트의 아군이 되어주었다.
"으아아악!!! 내 눈! 내 눈!"
빈센트의 뒤통수에 꽂혔어야 할 칼이 칼을 든 남자의 눈에 정확히 꽂히고, 빈센트는 칼잡이가 달려오던 방향으로 슬쩍 몸을 틀어 몽둥이 사내를 피했다. 몽둥이 사내는 슬쩍 회피하려는 빈센트를 눈에 담으려다가, 빈센트의 다리에 걸리는 자신의 발을 미처 보지 못하고 화학 작업대 위로 넘어졌다. 쿠당탕! 쨍그랑! 파삭! 화학 작업대가 부서지고, 플라스크들도 함께 박살났다. 빈센트는 수많은 화학물질들이 무질서하게 사내의 몸으로 흘러드는 것을 보고, 마침내 웃을 준비를 했다.
"으으...?! 악! 흐아악! 아아아아가가아악! 끄하아아아악!"
빈센트가 아무 능력도 쓰지 않았는데도, 통제 없이 섞인 화학물질은 사내의 체온만으로 발화했다. 화학물질이 온 몸을 적셨으니, 그의 온 몸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스턴트맨처럼 불탔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지옥에서도 들리지 않을 비명을 지르면서 뛰어다니며, 사내는 온갖 곳에 불을 붙였다. 마약 포대를 붙잡고 울어대고, 어머니를 부르고, 열기에 바싹 구워져가는 폐를 두들기며 제발 살려달라고 하고. 빈센트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크게 웃었다.
"풉, 푸하하하하!!!"
시중일관 진지하던 빈센트의 얼굴이 구겨지며, 미친 듯한 웃음을 보였다.
웃겼다. 너무 웃겼다.
빈센트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피했고, 또 피했다. 그런데 저들끼리, 빈센트가 아군인지 적인지도 판단하지 않고 마구 달려들다가 넘어지고, 칼을 던지다가 죽이고, 마지막에는 화학물질과 부딪쳐 온 몸을 화끈하게 달궜다. 손 하나 쓰지 않았는데 벌써 세 명이 죽었다. 웃겼다. 너무 웃겨서 웃음이 다 나왔다. 이게 웃기지 않으면 뭐가 웃기단 말인가, 저 끔찍한 고통이 웃기지 않은 이들은 불행하다. 그리고 빈센트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가장 행복했다. 빈센트가 미친듯이 웃던 와중에, 불타던 사내는 마약 포대를 껴안은 채 늘어졌고, 마약포대가 불타면서 화재가 일어났다.
"어... 어어어?! 안 돼! 마약이 불타잖아!"
죽은 동료보다도 마약이 중요한 이들이여. 빈센트는 너무나도 완벽한 인간쓰레기의 교과서를 만났음에 감사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제 부모보다도 소중할 마약을 지키겠다고 수많은 조직원들이 뛰쳐나왔다. 소화기를 든 그들은 불타는 사내는 무시한 채 소화기를 가져와서 진화하려고 했다. 빈센트는 저들에게 파이어볼을 날리려다가, 더 우스꽝스럽고 재미있는 광경이 생각나 손가락을 튕겼다.
"야! 위에다 쏘지 말고 아래에다가..."
팝!
"야! 너 안 끄고 ㅁ..."
팝!
"야! 너네 뭐야! 왜 그래!"
팝!
손가락을 튕기자, 사람들의 머리가 부풀어올랐다. 흉측하던 사내의 머리는 대두형 외계인처럼 위로 솟아오르고, 비실해보이는 사내의 머리는 푸슉! 하며 머리의 모든 구멍으로 김을 뿜고, 마맛자국이 난 사내의 얼굴은 터지다가 말았다. 아아, 이렇게 웃길 수가 있나. 이렇게 웃기니까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다 망하는 거다. 빈센트는 웃으면서, 마약을 잡아먹고 더 크게 솟아오르는 불꽃과 마주했다. 빈센트는 그 불꽃을 붙잡고, 어떻게든 진화하려고 용쓰고 있는 조직원들에게 날려보냈다.
"어... 어어?! 불길이 왜 이래!"
"으... 으아아아!!!"
그들은 왜 그곳에 서 있었을까. 마약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빈센트는 그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고통받기 위해 그곳에 서 있었다.
"...이 개새끼..."
"너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빈센트를 욕하는 세 사람을 묶은 채, 빈센트는 장갑을 고쳐 끼웠다. 기회만 되면 빈센트를 죽여버리겠다는 듯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빈센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만약 그들 중에 의념 각성자가 있었다면 빈센트도 힘든 싸움을 각오해야 했겠지만, 일이 너무나도 싱겁게 끝난 것으로 봐서는 아니었다. 아니면 의념 각성자더라도, 레벨이 5도 안되는 아기 각성자였거나. 그렇기에 그들이 저주를 퍼부어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 새끼야, 너 두고 봐. 내가 너네 집 찾아내서, 니 애비랑 애미 둘 다 죽여버릴 거야!"
"우리 부모님은 제가 다섯 살일 때 돌아가셨습니다. 유감이군요."
"아 그래? 너 부모 없는 새끼였구나! 하하하! 넌..."
딱, 손가락을 튕기자, 빈센트를 어떻게든 화나게 하려던 사내의 머리가 불덩이로 변했다.
빈센트를 향하던 도발이 1초만에 살려달라는 애원이 되었고, 2초만에 죽여달라는 지옥의 애원이 되었다. 하지만 빈센트는 그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빈센트가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머리에 붙어있던 불이 전부 꺼졌다. 하지만 빈센트가 불을 거둘 수는 있어도, 불이 그의 머리에 남긴 끔찍한 후폭풍은 지울 수 없었다. 분명 얼굴이었을 것이 필설로 나타낼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서, 열풍에 구워진 폐로 쌕쌕거리는 광경. 한 사람은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한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벌벌 떨면서 빈센트에게 고개를 돌렸다.
"설마 너... 방화범 동전이냐?"
"내가 그렇게 유명했나? 뭐, 알아봐주시니 영광입니다. 네, 제가 그 방화범 동전이고, 전 협조하지 않는 친구를 저렇게 만드는 취미가 있죠."
"..."
빈센트는 자신의 정체를 간파한 사내의 턱을 붙잡고, 얼굴을 강제로 머리가 불탄 동료 쪽으로 돌렸다. 빈센트는 저 모습을 똑똑히 보여주면서, 무미건조하게 경고했다.
"그러니까, 대답할 혓바닥이 남아있을 때, 대답을 잘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아니면... 저기 저 친구처럼 머릿고기 구이가 되던지."
"그... 그래! 알았어!"
"대답할게! 제발!"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힘의 논리만큼 훌륭한 대화수단도 없다. 참으로 동물적인 이들이지만, 심문할 때는 이들이 편하다. 빈센트는 그들에게 많은 것을 물어봤고, 그들은 회피 없이 대답했다.
"우리가 돈 때문에 시작한 건 맞아... 하지만 우리도 형님들한테 바치면 남는 게 별로 없었어! 겨우 입에 풀칠만 했다고... 그래서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모으려고, 한 봉지라도 더 팔려고 자극을 세게 만들었지. 우리도 어쩔 수 없었어!"
"그 마약을 합성하는 방법도 윗선에서 알려준거야. 이봐. 우리도 밑에 바닥이야. 정말이야."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시작도 안 하는 건데... 엄마..."
빈센트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조용히 물었다. 회피 없이 질문하던 그들의 눈에 두려움이 서리고, 빈센트의 질문을 거부했다.
"그럼 그 형님들은 누구고, 윗선은 누굽니까? 어디로 가면 볼 수 있죠?"
"그... 그건..."
"모... 못 말해! 그걸 얘기하느니 차라리 죽을 거야!"
차라리 죽겠다라. 빈센트는 피식 웃었다. 죽음이라. 저들은 빈센트의 사악하고 배배 꼬인 본성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다. 빈센트는 한 명을 걷어차서 눕혔다.
"큭!"
그리고, 빈센트는 넘어진 사내를 바닥에 결박했다. 너무 빡빡하게 묶어서 피가 안 통할 정도였지만 빈센트는 그를 오래 살려둘 생각은 없었기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빈센트는 주머니를 뒤져서 동전을 잔뜩 꺼냈다. 10원, 100원, 500원, 다양한 크기의 동전들이었다. 빈센트는 그 동전을 넘어진 사내 위에 뿌리면서, 그 사내가 겪을 운명을 간접적으로 예언했다.
"차라리 죽는다, 라. 그거 저도 잘 하는 일입니다. 좋은 말로 얘기할 때 안 들은 친구들은, 전부 '차라리 죽여달라'고 부탁했지요."
"...다, 당신... 대체 무슨 일을..."
빈센트는 앉아 있던 사내를, 넘어진 사내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손가락을 튕겼다.
"보시면 압니다."
사내의 몸 위에 뿌려져 있던 동전 위로, 파란색 불꽃이 타올랐다.
불꽃에 달궈진 동전은 점점 그슬리다가, 이내 빨개졌고, 노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랗게 변한 동전은, 얼마 가지 못해 흐물흐물 녹아내렸고, 자신의 뜨거운 몸에 덩달아 녹거나 불타지 않고, 자신을 온전히 안아줄 땅바닥을 찾아 내려가고 또 내려갔다. 빈센트는 동전(이었던 것)들이 몸에 올라간 사내를, 의자에 앉아있는 사내에게 보여주었다. 그제야, 의자에 앉아있던 사내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빈센트는 그들을 살려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대답을 잘 한다면, 빈센트가 이 세상의 악인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혜택을 줄 생각이었다.
"...그래. 말할게. 우리 윗선은... 인신매매 집단이야. 습격 장비를 구해야 한다고 빨리 돈을 구해오랬어. 그래서 마약을 더 팔려고 했던 거야. 주소가 복잡해. 인천광역시에..."
"...그렇군요. 협조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다 말한 사내는, 후우! 하고 긴장에 찬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두려움에 가득찬 눈으로 빈센트를 바라보며 물었다.
"약속, 지킬 거지?"
"그럼요."
빈센트는 웃으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팍! 앉아있던 사내의 머릿속에서 뭔가 끊기는 소리가 들려오고, 힘을 잃은 몸은 축 늘어져서 넘어졌다.
그는 죽음에서 안식을 찾았다.
빈센트는 이미 죽어버린 그에게 관심을 끄고, 아직도 살아있던 머리가 불탄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고백하자면, 전 당신 같은 사람이 좋습니다."
"..."
"내가 사람을 태우면, 나는 괴물이라고 불리지만, 당신을 태우면, 나는 영웅이 됩니다. 내가 사람을 고문하면 감옥에 가지만, 당신을 고문하면, 나는 법이 어쩔 수 없는 부분을 속 시원하게 긁어주는 다크 히어로가 되어서 기사로 가죠. 사실 그건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겁니다. 난 당신들 죽는 게 정말 좋아요. 고통스럽게 죽으면 더 좋죠. 그렇기에, 난 댁들이 존재한다는 게 감사합니다. 기뻐하세요. 당신은 고통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
빈센트는 숨이 완전히 멎은 사내를 뒤로 하고, 건물을 나왔다. 빈센트가 열심히 태운 덕분에, 안에 마약이라고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경찰들이 증거를 찾느라 개고생을 하겠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이면 UGN이건 UHN이건 조사관을 불렀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빈센트는 사내가 알려준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준비는 철저해야 했다. 이 세계에서 아직도 인신매매를 할 깡이 있는 집단이, 설마하니 의념 각성자 하나 없을 리도 없을 테니까.
방화범 동전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이야기가 끝나려면, 아직 죽어야 할 사람들이 더 많았다.
뚜루루, 뚜루루.
새벽 4시. 눈을 뜨면, 홀로그램 화면에 청록색 숫자가 떠서 시간이 되었음을 알려주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인천 광역시의 마천루들은 하늘로 빛을 쏴댔다. 빈센트는 수평선에서 올라오는 태양의 파랑과 힘을 합쳐, 이 세상의 어둠과 싸우는 것을 감상했다. 때가 되었다. 아직 '작업'을 시작할 시간은 아니었지만, 빈센트가 '준비'를 시작할 시간은 되었다. 허우적대며 일어난 빈센트는,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얼음물을 마시고 욕실로 들어가 온 몸에 차가운 물을 끼얹었다. 사기를 당했을 때의 분노 때문에, 탄호동의 마약굴을 불태울 때의 희열 때문에, 빈센트의 몸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지금은 그것을 식힐 필요가 있었다. 빈센트는 차가운 물을 맞으면서, 눈을 감고 피식 웃었다.
"나도 참 웃긴 인간 군상이란 말이죠."
빈센트는 사실 이럴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냥 사기꾼을 신고해서, 사기꾼을 잡아 처넣은 다음에 그 중고 거래를 위해 지불한 금액을 돌려받거나, 아니면 합의금 명목으로 새 물건을 그놈 돈으로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마약을 위해서 수습할 수 없는 사기를 친 마약 중독자였고, 그 때문에 빈센트는 화풀이 용도로 탄호동의 건물 하나를 불태워버렸다. 그곳에는 변변한 소방서도 없었고, 그곳에서 난 불이 다른 곳을 덮쳐야 소방차가 출동할 테니 빈센트가 어떻게든 수습했지만. 그리고 지금, 빈센트는, 의념 각성자가 몇이나 있을지, 대 의념 각성자 장비를 얼마나 갖추었을지도 모르는 인신매매 조직으로 혼자 들어가려고 한다.
멍청한 마약 중독자 하나가 일으킨 일치고는 나비효과가 너무 컸다. 어쩌다가 빈센트가 여기까지 왔을까? 빈센트는 식은 몸을 닦아내면서 고민했다.
그 불쌍한 마약 중독자를 위해? 죽음의 계급화를 타파하기 위해? 그들의 마약 때문에, 그들의 악업 때문에 죽어간 수많은 불운한 영혼들을 위해?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세계의 공의를 위해? 정의를 이 땅에 다시 세우기 위해?
아니, 그건 아니었다. 빈센트는 그런 인류의 대의를 위해 봉사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 것을 위해 죽는 건 위인전 속 위인이면 족하다... 아니, 생각해보니 이것도 괜찮다. 다음 번에는 이렇게도 한번 싸워봐야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어쨌든, 빈센트는 그것을 위해 인천까지 달려온 것은 아니었다. 빈센트의 동기는, 더 개인적이고, 더 이기적이었다.
사기당한 게 화나서? 범죄자들 생긴 게 좆같아서? 사람을 불태우징 않으면 죽는 병에 걸려서? 어쩌다보니 엮여서?
대의보다는 좀 더 그럴싸하고, 빈센트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몇 가지는 그런 이유로 저질렀지만, 빈센트는 더 좋은 답을 알고 있었다. 정장을 갖춰 입은 빈센트는, 문을 열면서, 웃으면서 그 답을 내놓았다.
"재미있으니까."
빈센트는 자신이 얻은 모든 정보를 짜맞췄다. 한글 초성과 키릴 두문자어로 구성된 복잡한 인신매매 광고문을 독파하고, 수많은 '판매 품목'들의 원산지와 '생산자'들을 특정했다. 그들 중에서 동아시아에서 노예를 주로 수집하는 이들을 선별했다. 그리고 그들을 현지 수집책과 중간 운반책으로 나눴다. 심문 결과에 따르면... 빈센트가 노리는 이는 "노예 수집"과 "노예 운반", 그리고 "노예 판매"를 모두 겸하는 조직인 것 같았다. 빈센트는 토르 v2. 브라우저를 실행하고, 그들에게 향하는 비밀 암호문을 입력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확인했다. 그들은 참 많은 것을 팔고 있었다. 빈센트는 그 모습을 보고 눈을 찡그렸다.
인종도 백인, 흑인, 이 정도가 아니었다. 백인을 예로 들면 켈트, 게르만, 슬라브...였고 미국, 영국, 러시아, 이란 등등 개체의 "원산지"까지 꼼꼼하게 따졌다. 나이와 복종도 같은 것까지 전부 나와 있었다. 빈센트는 그들을 보다가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을 느끼면서 스크롤을 아래로 내렸다. "자주 묻는 질문"란이 나와있었다.
Q: 의념 각성자도 취급하나요?
A: 미쳤냐?
"...그렇군요."
빈센트는 상대 조직이, 어렵긴 하겠지만 파훼가 불가능한 조직은 아닐 것이라고 예측했다. 의념 각성자를 팔아먹으려는 조직이면, 상식적으로 의념 각성자를 짓누를 수 있는 보험이 있어야 한다. 의념 각성자가 행패를 부린다면 사람 하나 둘 쯤은 매일 죽어나갈테고, 이판사판이 되어서 아무나 멱살 끌고 지옥으로 들어가자고 한다면... 조직의 존망이 걸린 문제가 될 테니까. 하지만 그 정도 보험을 갖출 수 있는 조직은 아니다. 저 조직은 의념 각성자가 없거나, 있더라도 의념 각성자를 억누를 만큼 강한 조직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빈센트는 브라우저를 끄고, 인천광역시 경찰국 사건파일을 보았다. 보도자료 정도였지만, 빈센트는 그 안에서 행간을 읽어냈다. 상대는 (가디언 기준으로) 위험도는 낮아도 군대와 같은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군대의 조직체계라면, 이 피와 살이 넘쳐흐르는 세계에서 군대의 무기를 가지지 않았을 리가 없다. 빈센트는 잘못하면 뒤통수에 총알이 꽂힐 수 있음을 상기하고, 그들의 경계를 깨버릴 방법을 생각했다. 다행히도, 개활지가 아니라 항구. 컨테이너와 크레인 같은 엄폐물들이 가득하다. 그렇기에 저들은 빈센트를 쉽게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알 수 있는 건 여기까지군요. 이제는 시작해야겠어요."
택시에서 내린 빈센트는, 인천항의 어두운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청력을 최대한으로 강화한 빈센트의 귀에 여러 소리가 들렸다. 비통에 찬 울음소리, 끔찍한 비명소리들 사이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거래하고 협상하는 목소리였다.
- 그 정도로는 안 돼. 요즘 단속이 얼마나 빡세졌는데. 게다가 이 미친 놈들아. 이번에 뭘 납치했는지 너네가 알기나 해?
- 이봐, 그런 말 들은지가 몇번째야. 여태껏 문제 없었잖아. 여기서 더 가져가면 우리 뭐 남는다고.
- 여태껏 아무 문제 없었던 게 나 덕분이지 너네 때문이냐?
빈센트는 어둠 속에 숨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한 명은 펑퍼짐한 재킷을 걸친 여자고, 한 명은 경찰이었다. 단속 현장을 가장하려는 것인지, 길바닥에는 수많은 노숙자들이 뒤로 꿇려서 수갑에 결박당한 채 누워있었다. 빈센트는 그들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적당히 지나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들려오는 소리에, 빈센트는 멈춰야 했다.
- 경찰 나리. 이렇게 하지. 이번에 들어온 애들 중에... 저기 밑바닥 빈민가 거지들 사이에서 사온 애치곤 꽤나 반반한 놈이 있어. 대어야. 대어.
- 그래서? 뭐 어쩌라고?
- 그 녀석을... "운반 과정 중 유실"된 셈 치고, 댁에게 넘기지. 어때? 자, 봐봐 사진을...
- 밥만 축내는 노예 새끼가 얼마나... 뭐야, 이거 좀 괜찮네?
"..."
찾았다.
빈센트는 웃으면서, 어둠 바깥으로 나와서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좋아. 딜. 이 녀석으로 해. 대신에 사진 보정빨 먹인거면 너네 각오해."
"알았어. 알았어어어?! 저새끼 뭐야!"
경찰과 여자가 놀라서 빈센트에게 삿대질을 날렸다. 빈센트의 맞잡은 양 주먹이 이글이글 불타는 것을 보면서, 두 사람은 빈센트의 정체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최소 의념 각성자, 최대 가디언. 정확히는 그 중간인 헌터였지만. 경찰이 권총을 꺼내 겨누고, 여자도 질 수 없다는 듯 칼을 꺼냈다. 빈센트는 여자가 든 칼에서 알 수 없는 의념의 흐름을 느끼고 눈을 찌푸렸다. 젠장, 의념 각성자였나.
"멈춰, 손 들고 무장 해제해! 경찰이다!"
"그딴 말이 통하겠어?! 야! 그만 쳐 누워있고 저새끼 덮쳐!"
그 말과 함께, 바닥에 누워있는, 또는 누워있는 척하던 이들이 수갑을 힘으로 풀고 빈센트에게 달려들었다. 빈센트는 손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던 불을 던지고, 불은 바닥에 닿더니 빈센트의 의념을 연료 삼아 타올라서 그들을 덮쳤다. 그 모습은 마치 수천 마리의 붉은색 늑대 같았다. 흐아악! 으악! 빈센트에게 달려들던 잡졸들이, 자신의 몸에 달려드는 불타는 늑대에게 물렸다.
"으악! 살려줘!"
"아아악! 흐끄아아아악!!!!"
의념을 각성하지 않은 악당은, 몇 명이 와도 그저 놀잇감일 뿐이다. 빈센트는 그들에게 흥미를 거두고, 자신에게 달려오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오, 꽤나 머리 쓰는군. 빈센트는 웃으면서 그 사람을 본다. 빈센트에게 집중한 나머지, 자기의 발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군. 빈센트는 지그재그자로 달려오는 그녀를 위해, 자신의 머리 위에 술식을 그렸다.
클랩!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두 팔이 날아갔다. 여자는 어떻게든 빈센트를 죽이려고 허우적댔지만, 비어버린 양 팔은 애석하게도 그녀를 돕지 않았다. 뒤늦게 자신의 사라진 두 팔을 보고 패닉에 빠졌다. 빈센트는 비명을 지르는 그녀를 보면서 혀를 찼다.
"좀 더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보시지 그러셨습니까. 당신이 그렇게 지그재그자로 오건, 아니면 직선으로 오건, 결국 당신은 날 찌르기 위해 온다.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경찰에게 다가간다. 수십명을 불태우고, 의념 각성자의 양 팔을 날려버린 괴물이 다가오니, 경찰은 자기도 모르게 오줌을 지렸다. 두 눈은 눈 앞에 다가오는 불타는 죽음을 보고 풀렸고, 입도 뭔가 달싹거리면서 말을 만들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잘 됐다. 협조는 잘 하겠군. 빈센트는 아직 식지 않은 손으로 그의 목을 잡고 물었다.
"짧게, 간결히 대답하시죠. 어디와 거래했습니까. 어떤 내용으로 결탁한겁니까."
"으... 으아악! 말할게! 제발! 말한다고!"
'그 녀석들은 총을 들고 있어. 이제는 정규군을 운용하는 국가에서는 전부 퇴출된 구식이지만, 여전히 사람 죽이는 데는 쓸만한 자동 소총을 들고 있어. 그리고 의념으로 강화된만큼은, 아니지만 야시경도 있고. 통신 체계도 있어서 누가 죽었다는 걸 알면, 모두가 빠르게...'
빈센트는 경찰이 죽기 직전 성실하게 이야기했던 것들을 생각한다. 빈센트는 그들에 대응할 행동 양식으로 '속전속결'을 생각하며, 어둑어둑한 항구의 옆에 난 개구멍으로 들어갔다. 이곳으로 누가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지, 두 병사가 총을 든 채로 낄낄대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야, 5달러가 뭐냐. 과자 하나면 된다 이 말이야. 과자... 응?"
"응?"
두 사람의 어깨에, 빈센트의 손이 올라갔다. 두 사람이 빈센트를 돌아본 순간, 빈센트가 양 손에 힘을 주었고, 빈센트의 양 팔에서 흘러나온 의념이 그들의 몸으로 파고들어갔다. 준비는커녕 인지조차 못 한 이들의 몸에, 통제되지 않은 불타는 의념이 들어가면 그 결과는 뻔했다. 두 사람은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잿더미로 화했다. 빈센트는 사회악을 땅에 뿌리면 유용할 잿거름으로 만들었음에 자부심을 가지며 나아갔다. 하나, 둘, 셋, 넷. 빈센트가 지나간 곳에는 서 있는 병사들 대신 잿더미만 남았다. 정말로 완벽하게 은폐하려면 어떤 잿더미도 남지 않을 정도로 연소해야 했지만, 그걸 이 안에 있을 수많은 병사들에게 하기에는 빈센트의 능력이 딸렸기에 이쯤에서 만족했다.
"본부. 뭔가 이상하다. 서쪽 섹터의 사람들이 연락을..."
화륵!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병사도 잿더미가 되었고, 하나 둘, 그렇게 이곳에서 범죄의 꿈나무로 자라나던 수많은 생명들이 꺼져갔다. 하지만 빈센트는 이들을 죽이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서쪽 섹터에서 연락이 끊긴 것을 눈치챌 것이고, 좀 있으면 이곳에 누군가 왔음도 깨달을 것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이상 멈출 수는 없었다. 서쪽 섹터를 거의 다 불태운 빈센트는, 컨테이너 위로 올라가서 쌍안경을 들었다. 그 경찰, 꽤나 쓸만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 크레인 위에 저격수들이 올라가 있을거야. 그 녀석들은 진짜 위험하다고. 의념 각성자를 죽일 수 있는 총알을...
"그건 좀 곤란하지."
빈센트는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온갖 위험한 짓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을 생각은 없었다. 빈센트는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서, 살금살금 서쪽 섹터로 다가오던 한 병사를 잡았다.
"어억?!"
어둠 속에서 나타난 인영에, 병사가 어떻게든 저항하려고 했지만 의념 각성자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빈센트는 병사를 가볍게 제압하고, 병사의 옷을 뺏어서 갈아입었다. 빈센트의 몸에 대면 정말로 커서 헐렁했지만, 아무리 스코프를 가진 저격수라도 멀리서 그 위화감을 알 수는 없을 테니 상관없었다. 빈센트가 다시 어둠 속으로 숨어들고, 병사들이 누군가 들어왔음을 눈치챘다.
'흑색 상황! 흑색 상황! 다들 최고 경계 태세로 집결해라! 누군가 침입했다!'
'적의 존재는 미상! 경찰은 아닌 듯하다! 저격수! 주변 확인해!'
'오르카, 여기는 본햄 3-1. 우리 동료...였던 것으로 보이는 잿더미들이 보인다. 열기가 뜨겁다.'
'의념 각성자군. 모두 조심해! 저격수! 위치로!'
"..."
빈센트는 빽빽 울어대는 무전기 소리로 그들의 상황을 파악했다. 빈센트는 어둠 속에서 숨어서, 저들 중 절반을 태워죽인 모양이었다. 빈센트는 절반이나 죽였다고 기뻐해야 하나, 절반밖에 못 죽였다고 슬퍼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밝은 가로등 밑으로 나왔다. 정말로 대놓고 보이는 곳이었지만, 이곳에 자리잡은 데는 이유가 다 있었다. 가로등 아래의 불꽃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의 담뱃불빛 하나가 더 잘 보이니까. 빈센트는 저격수들을 전부 제거할 때까지 모습을 숨길 필요가 있었다. 빈센트의 강화된 시력이,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는 저격수들에게 꽂혔다. 빈센트는 그들을 보고 의념을 집중해 손가락을 튕겼다.
빈센트에게는 작은 손가락질 한번이지만, 저기 서 있는 저격수들에게는 평생에 다시 없을 거대한 폭발이었다. 저격수들의 팔다리가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병사들이 패닉에 빠져서 무전망을 가득 채웠다.
'뭐야! 뭐야!'
'저격수! 보고하라!'
'저격수 생명반응이 없어졌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거야!'
"..."
저격수가 사라졌다, 고 알아서 말을 해주는군. 덕분에 일이 쉬워졌다.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무전기 버튼을 누르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
'...'
여지껏 듣지 못한 이질적인 목소리에 다들 침묵을 지켰다. 빈센트는 자신을 좀 더 적극적으로 소개하기로 했다.
"빈센트. 여러분들을 죽이러 온 사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뭐?'
정신을 차리면, 빈센트는 수많은 고통받는 이들의 비명 사이에 서 있었다. 온 몸을 불에게 내어준 사람, 속에서부터 천천히 끓어서 익어가는 사람, 온 몸의 신경이 집요하게 불타는 사람, 많은 이들이 있었다. 빈센트는 그들을 흡족하게 지켜보았다. 샤덴프로이데, 라는 단어가 있다. 남의 고통에서 행복을 느끼는 심리라고. 그건 정말로 맞는 말이었다. 빈센트는 저들의 고통이 너무 좋았다. 저들이 더 고통받지 못하는게 원통하고 또 원통했다. 빈센트는 그렇게 불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한 가지만 더 끝내고 가기로 했다.
빈센트는 컨테이너들을 돌아다니며 귀를 강화했다. 뭔가, 컨테이너에서 들릴 만한 소리가 아닌 것이 들려왔다.
- 엄마... 여기... 어디...
- 아영아. 기다려라. 아빠가 돈 벌어서...
"..."
문을 열면, 두려움에 빠진 수많은 이들의 눈동자가 보였다. 수갑에 매인 손이 보였다. 그렇게 대접받아서는 안 되었을, 하지만 그렇게 대접받은 수많은 영혼이 보였다. 빈센트는 그들을 내려다보다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이곳은 다 정리됐습니다. 나가서 선선한 공기라도 마시면서 쉬시죠."
"...정리됐다는게... 무슨 말이죠?"
"여러분들을 잡아온 그 사람들. 전부 죽었다는 말입니다."
인천항을 떠나는 배에 실려서, 어딘지도 모를 이국의 땅에서, 그들을 산 얼굴도 모르는 주인의 노예가 되었어야 할 그들은, 천천히 바깥으로 걸어나왔다. 그들은 눈 앞에 적혀있는 수많은 한글로 된 간판들을 보며, 이곳이 한국임을 깨달았다. 공기 중에 섞여오는 짜디짠 소금 내음이 이곳이 인천항임을 알렸다. 그리고... 빈센트의 폭거에 타죽은 이들이 내뿜는 연기가 그들의 코를 간질이며, 빈센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깨달았다.
"아... 아아...!"
"엄마! 엄마!!!"
빈센트는 컨테이너를 하나, 하나 열었다. 시끄러워진 주변에 동요하던 사람들은, 그 시끄러운 소리가 풀려난 다른 사람들의 소리임을 깨닫고, 기뻐서 바깥으로 우르르 몰려나갔다. 해봤자 열 개일 줄 알았던 컨테이너는 수십개로 늘어났다. 지금 빈센트 때문에 살아난 사람만 1000명은 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빈센트는, 저들의 목숨은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한숨을 쉬고, 마지막 컨테이너 앞에 섰다.
"이건 좀 특이한데."
빈센트는 눈 앞에 있는 컨테이너는, 다른 컨테이너와는 모양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다른 건 전부 푸른색인데 이것 혼자 빨갠식이었던 것도 그렇고, 특수하게 강화된 컨테이너의 골격이 드러난 것도 그랬다. 잠금 장치도 복잡해서 빈센트가 쉽게 손으로 열 수 없었다. 빈센트는 그 컨테이너에 손을 대보았다. 딱히 특이한 반응은 없었다. 귀를 대보면, 안에서 뭔가 숨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곳에서는 여러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곳에는 숨소리 하나만 들리는 게 이상해서, 빈센트는 이 사람도 어쨌든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문을 절단해서 열기로 했다.
"집중하자. 집중."
빈센트는 불이 퍼지는 방향을 한 곳으로 집중해, 그 부분에 불을 쐈다.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던 컨테이너는 열을 만나자 점점 붉게 달아오르고 이내 노란색으로 빛났다. 이제 됐다. 빈센트는 웃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불을 아래로 내렸고, 빈센트의 화염 광선이 컨테이너의 굳게 잠긴 문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조금씩 녹여서 강제로 열어버렸다. 마침내 문을 다 녹여버린 빈센트는, 자신이 만든 문 틈을 붙잡았다.
"음?"
그때, 참으로 둔하고, 도움 안 되던 직감이 빈센트의 발목을 붙잡았다.
마치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붙잡고, 그러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빈센트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옆을 봐도 아무도 없었다. 분명 아까 전에 수많은 사람들을 풀어줬건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뿐인가? 이곳이 진저리가 나서 다른 곳으로 갔다면 소리라도 들려야 할 텐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는 도시의 소음도, 바다의 파도소리도.
빈센트는 자신이 뭔가 오해했겠거니 생각하면서, 문을 열어제꼈다.
"...계십니까?"
"...읍... 우우읍..."
빈센트는 눈 앞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눈 앞의 상대는... 뭐라 대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손에는 팔뚝보다 훨씬 두꺼운 수갑이 채워져있었고, 양 발은 족쇄로 매여서 단 한 발짝도 제 발로 걸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머리에는 입구멍만 간신히 뚫려있는 양동이 모양의 구속구가 채워져 있었다. 그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있으니 참으로 비참한 꼴이다. 빈센트는 한숨을 쉬고, 그 사람을 도와주기로 했다. 대체 어쩌다가 그 꼴이 되었는지는 나중에 물어도 늦지 않았다. 빈센트는 묶여있는 상대의 신체부위를 하나하나 열거하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손, 발, 목, 머리."
펑! 펑! 펑! 펑! 폭발음에 쇠조각 떨어지는 소리가 찾아왔다. 상대는 머리가 너무 답답한지 머리를 탁탁 치면서 어떻게든 구속구를 벗으려고 했다. 빈센트는 그 모습이 처량해서, 상대의 머리를 뒤집어쓰고 있는 구속구를 자세히 관찰했다. 이제 보니 위로 밀어올려서 벗는 게 아니라, 앞뒤로 분해하는 방식 같았다. 빈센트는 세심하게 작동방식을 이해하고, 구속구를 한 번에 벗겼다.
"허어억!"
드디어, 그녀에게 찾아온 자유. 황금을 실로 뽑아낸 것처럼 빛나는 금발에 빈센트가 잠시 시선을 빼앗긴 사이, 그녀의 선혈처럼 붉은 눈동자에 빈센트의 얼굴이 담겼다. 빈센트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여인의 얼굴을 보면서, 혹시 자신이 자기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을 구한 건지 돌이켜보았다. 생긴 것만 보면 정말로 귀족 같다. 어디 유럽의 소국에서 귀족의 3녀 정도 되어보이고, 그곳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대체 무슨 일을 했다가 여기에 갇혀 있는지. 사랑의 도피라도 한 건가? 빈센트는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그가 신경쓸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뒤로 돌았다.
"당신."
"...난 당신이 아니라 빈센트입니다."
"비... 빈센트."
여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빈센트는 자신은 당신이 아니라며, 여자를 돌아보았다. 여자의 눈에 빈센트가 다시 꽂혔다. 어둠 속에서, 비록 가로등이 만든 인공의 빛이지만, 그 인공의 빛을 받아서, 절반 정도 빛나는 빈센트의 얼굴이. 아무런 생각도 없어보이는 그 얼굴이. 빈센트는 베로니카를 바라보다가 다시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자, 갓 풀려난 그녀도 바깥으로 따라 나왔다. 그녀는 다시 빈센트를 불렀다.
"당신."
"전 당신이 아니라 빈센트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빈센트. 왜 날... 구한 거죠?"
"흠."
빈센트는 상대를 바라보았다. 가로등 아래에서 보니, 꽤나 괜찮은 여자였다. 그런데 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그냥 구하고 싶으면 구하는 거고, 구해줬으면 고맙다고 말하면 가면 되지. 빈센트는 그냥 가라고 얼버무리려다가, 알 수 없는 소리로 쫓아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녀에게 짧게 던졌다.
"재미있으니까."
"...네?"
"재미있으니까. 그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던 빈센트의 눈에, 허우적대면서 걸어오는 병사가 잡혔다. 빈센트에게 말을 건 여인의 뒤에서, 총을 든 채 서 있었다. 병사는 베로니카를 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나직이 속삭였다.
"베, 베로니카...? 악몽일거야. 분명해..."
"...젠장."
땅을 박차고 여인에게 달려들었다. 빈센트는 여인을 붙잡고 뒤로 돌아서서, 등을 병사에게 내보인 채 눈을 감았다.
2초 동안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도합 20발의 총알이 박히고, 20번의 뜨거운 격통이 빈센트의 등을 강타했다.
그리고 여자가 갑작스런 신체 접촉을 뿌리치려고 빈센트를 밀치며 그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빈센트의 뺨이 총알에 찢겨나가며 여자의 얼굴에 빈센트의 뜨거운 피가 튀었다.
빈센트가 등에 뜨거운 통증을 느끼며 뒤늦게 의념을 전개한 자신을 원망하는 사이, 여자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한 방울, 두 방울 그러모아서 손바닥을 적셨다. 그리고 여자는 그 피의 냄새를 맡더니, 더없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는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불 앞에서 의연하던 모습을 버리고, 끔찍한 공포감에 떨었다. 여자는 빈센트의 양 어깨를 붙잡은 채, 빈센트의 목에 얼굴을 묻고는 그의 이름을 계속 불렀다. 중간에 웃음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웃음소리가 끝나면 여지없이 빈센트의 이름을 계속 불렀다. 빈센트는 방금 전에 자신에게 총을 쏜 병사를 다시 돌아보았다. 끔찍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학생들이 과학실의 개구리에게 하는 짓을, 만약 이 사람에게 했다면 딱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목울대부터 회음부까지 세로로 길게 갈라져서는, 좌우로 벌어져 그 사이에 있는 내용물들을 전부 보여주었다. 그리고 양 팔과 양 다리는 그녀가 부러뜨린 갈비뼈에 꽂혀서 벽에 매달려있었다. 모든 힘줄은 정확하게 절단당했고, 병사의 목에는 열린 배에서 끌어올린 내장이 목걸이처럼 걸려 있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병사는 살아있었다. 아래턱이 뜯겨나가 더 이상 입술로 감정표현을 할 수 없었지만, 남아있는 한쪽 눈이 빈센트와 마주치자 벌벌 떨리며 눈물을 쏟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빈센트는 살아서 처음으로, 악당의 운명을 애도했다. 빈센트는 악당의 고통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저 모습을 보고 나니, 아무리 악당이라도 저런 일을 당할 만큼 사악했는가 싶어서, 빈센트는 손가락을 튕겨서 저 병사의 운명을 끝내고자 했다. 하지만, 빈센트의 손길을, 그녀의 무시무시한 악력이 막아버렸다. 빈센트는 고개를 아래로 내려서, 두려움에 찬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아아... 지금은... 저만을 바라봐주세요. 저만... 저만...♥"
빈센트는 그때 그 뉴스를 생각했다.
- 다음 소식입니다. 게이트 내 헌터 살해 및 게이트 공략 방해 혐의로 생사불문 수배령이 내려진 용의자 베로니카씨가, 가디언 후보생을 살해하고 도망치다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습니다. 베로니카 씨는 범행 당시 향정신성 약물을 치사량으로 복용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상세한 조사를 위해 이송 중에 있다고 UGN-경찰 합동본부가 발표했습니다.
그때 경찰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 그 정도로는 안 돼. 요즘 단속이 얼마나 빡세졌는데. 게다가 이 미친 놈들아. 이번에 뭘 납치했는지 너네가 알기나 해?
"..."
빈센트는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그는 괴물을 풀어줬다. 그것도 그냥 괴물이 아니라, 제일 끔찍한 괴물을. 어떻게든 저항해보려고 했지만 소용 없었다. 잘못하면 빈센트의 숨을 멎게 해버리고, 남아있는 빈센트의 흔적을 가지고 사랑을 속삭일 거라 생각하니, 끔찍한 생각이 들어서 눈을 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빈센트가 풀려난것은, 소요사태를 인지한 경찰들이 가디언과 함께 출동한 뒤였다고 한다.
너무나도 끔찍한 기억이라, 빈센트는 며칠간 잠을 자지 못했다.
"그래. 내일 보자. 그리고, 항상 기억해. 나처럼 할 자신 없으면, 그냥 증시추종 펀드에 넣어."
친구의 전화를 끊고, 빈센트는 10층 계단에 첫 발을 내딛었다. 첫번째 발은 두번째 발의 기초가, 두번째 발은 세번째 발의 기초가 되어, 중력을 거스르고 빈센트의 위치를 차츰차츰 높였다. 평범한 사람들의 등허리에는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땀이 식으며 몸과 속옷을 적시고, 계단참이 쉬라고 유혹하며 그들을 붙잡는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이고, 빈센트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평범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으니. 의념으로 강화된 두 다리는, 계단을 걷는 정도로 부하를 느끼는 것은 더 이상 불가하게 되었고, 빈센트의 폐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범한 호흡 패턴을 유지했다.
하지만 빈센트는, 옛날을 생각하며 걸었다. 계단 한 층, 한 층이, 마치 외계의 거성인 것처럼, 절대 올라갈 수 없는 저 대기권까지 뻗은 산처럼 느껴졌던 시절을 생각하며. 그 때의 빈센트는, 의념을 각성했기는커녕, 남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 하고 있는 그런 것들을 하지 못했으니까. 그 발에 자신의 체중을 10초도 실을 수 없었고, 심박 보조 임플란트의 도움이 없이는 심장이 스스로 100번도 뛸 수 없었고. 그 때. 그 때 보았던 계단을, 지금은 사뿐사뿐 밟았다. 그러면, 쓸데없이 생생한 유년기의 악몽도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었으니까.
"..."
띠릭, 띠리디릭. 의념으로 작동하는 도어락의 벨소리가 빈센트를 환영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빈센트가 없는 동안 이곳에 도사리고 있었던 어둠이 빈센트를 반긴다. 후우! 빈센트가 바람을 불자, 빈센트의 눈 앞에 있던 모든 전등들과 횃대가 일제히 빛을 발하고, 어둠은 빛의 틈새에 가려 물러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추방당했다. 추방당한 자리에는, 그간 어둠이 꽁꽁 싸매고 보여주려 하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보였다. 100인치 TV, 불곰의 털을 깐 가죽 소파, 우윳빛이 감도는 매끈한 대리석 바닥, 하이엔드 컴퓨터, 완벽하게 작동하는 최첨단 패시브 하우스 시스템, 수천 권의 책을 품은 채 주인을 기다리는 가구. 빈센트는 그것을 보고 웃었다. 하지만 웃다가 보니 외로웠다. 다섯 살, 부모님을 잃은 다섯 살 이래, 그는 영원히 혼자였다.
유일하게 뜨였던 머리로, 세상 물정을 최대한 빨리 파악해서 어떻게든 살아남았기에 망정이지, 빈센트는 자신이 앞으로도 이렇게 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재미있는 대로만 살다 보니 이런 결과가 찾아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혼잣말을 했다.
"앞으로도 계속 혼자려나."
'나랑 같이 살아요.'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에, 빈센트가 뒤를 돌아보았다. 빈센트가 생각했던 더러운 집은 없었다. 그 대신 빈센트는, 마치 다른 차원의 자기 집처럼, 너무나도 깨끗한 안방과 마주했다.
빈센트가 현실이라고 생각하면서 눈을 돌린 곳에는, 빈센트가 생각한 현실 따위는 없었다. 흰 접시들이 잔뜩 처박혀 있어야 할 싱크대는 완벽하게 텅 비어있고, 물기 하나 없이 완벽하게 말라있다. 그 옆의 가스 레인지에는 아무것도 올라가있지 않고, 몇 년을 방치했는지 모를 누런 기름때가 벗겨지자, 흰색의 매끈한 타일이 해방의 기쁨을 그 반짝반짝거리는 자태로 외치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면, 바닥에는 바퀴가, 천장에는 거미가... 없었다. 아무 것도 없었다.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마치 그곳에, 빈센트 외에는 그 누구도 살아있을 자격이 없다는 건지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빈센트의 눈길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빨래통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빈센트는 자신이 남긴 삶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수많은 빨래가 쌓여있어야 할 빨래통은 텅텅 비었고, 세탁을 마친 옷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서 옷장 안에 다 들어가 있었다.
빈센트는 기억을 되돌려본다. 빈센트 그가 과소비에 빠졌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소비는 어디가지나 물품에 그쳤을 뿐, 누군가에게 청소를 부탁하는 "용역"까지 구입한 적은 없었다. 다시 말해, 가정부를 고용한 적은 옛날에도, 지금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빈센트는 손에 불꽃을 만들어내고, 풀려있던 오감을 날카롭게 연마했다. 분명 뭔가 있다. 기척을 죽였지만, 빈센트를 피해갈 수는 없으리라. 그리고 방 안을 돌아다니던 빈센트는,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발견한다.
인간의 손길을 완전히 지워버린 모델하우스 같은 이곳에서, 유일하게 사람의 냄새가 나는 음식이었다. 딱 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이었고, 딱 두 사람이 먹으라는 건지 수저와 포크도 두 사람 분량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빈센트는 그 모습을 보고 표정을 찌푸렸다. 누가 이런 짓을 한 걸까. 빈센트를 죽일 의도라면, 기다리고 있다가 덮치면 되었을 텐데. 굳이 이런 짓을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구랑 같이 먹는다고 이런 짓을..."
"저랑 같이 드셔야죠."
이번에는, 어깨에 양 손이 닿고, 귓가에 여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빈센트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면,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빈센트는 자신이 미친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약을 찾았다.
"드디어 내가 미쳤나보군. 빨리 정신병원을 가봐야겠어. 일단은..."
"빈센트, 당신은 미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목소리는, 빈센트에게 정신병이라는 도망칠 구멍 하나 주지 않았다. 빈센트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이번에는 그 여자가 피하지 않고 빈센트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전 당신에게 미쳤답니다."
"...베로니카."
빈센트의 눈동자가 떨렸다. 눈 앞에 서 있는 여자는 베로니카였다. 빈센트가 보는 앞에서, 빈센트에게 총질한 병사를 산 채로 발골해버리고, 빈센트를 껴안은 채 좋다고 사랑을 속삭이던 여자. 가디언 후보생을 살해하고 재판 대기중이던 그 여자. 그 의념범죄자가 빈센트를 보고, 너무 행복하다는 듯 웃고 있었다. 빈센트가 뒷걸음질치려 했지만, 창문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잠겨있었다. 빈센트는 침을 삼키고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빈센트 앞에 어떤 스위치와 편지를 내밀며 이야기했다.
"소개가 늦었지만... 당신만의 베로니카랍니다."
마치 심연의 괴물이 준 물건을 받듯, 빈센트는 편지를 조심히 받아서 뜯어보았다. 편지에는 UGN과 UHN의 소인이 함께 찍혀있었고, 그 안에는 '통지서'라는 제목의 계고장이 붙어있었다.
로젠탈-프레이저 복종 실험 결과: 매우 불안정.
도플러 대인관계 검사 결과: 빈센트 반 윌러에 대한 신앙 수준의 애정. 연인이 곧 윤리의 기준임.
빈센트 반 윌러 신뢰성: 사적제재를 남발하고, 화재를 좋아하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나, 레벨 38의 베로니카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이건 꿈이야..."
"맞아요. 빈센트. 저도 너무 꿈 같답니다... 자아, 그래서... 빈센트. 무엇을 원하나요? 일단 식사부터 하실래요? 아니면...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는 '베로니카를 통제해서, 게이트 공략에 잘 이용하라'는 내용의 고지서를 보고는 기절해버렸다.
베로니카는 빈센트와 여러 알콩달콩한 연애를 기대했지만(사실 될 리가 없었다.), 그녀가 빈센트의 목줄을 차고 나서 처음으로 한 일은, 다름이 아니라 기절한 빈센트를 안정시키는 일이었다.
그러고도 눈 앞에 베로니카가 보이자마자 두 번은 더 기절한 건 덤이다.
- 진오현 - 꿈에서 깨다 (46 어장)
- "응?"
나는 서있었다. 뭐라 표현하기 이상하지만 그렇다고 하는게 맞을것 같다.
약간의 혼란도 잠시 나는 주변을 둘러 보고 내 몸을 살핀다.
내가 있는 곳은 미리내 고등학교다. 내 몸과 레벨 의념의 수준도 상당히 낮고 어린 수준이다.
이건 설마...
지금은 과거인가? 두리번 거리면서 주변에게 날짜를 물어보니 돌아온건 몇십년 전의 날짜였다.
이게 어떻게 된거지? 돌아왔다? 시간 역행?
과거를 재현한 어떤 속임수, 아니면 환각?
...모르겠다. 이게 어떤 속임수라면 치밀한듯 엉성하다.
복잡한 마음에 아무 벤치나 찾아 풀썩 주저 앉아 머리속을 정리해본다.
적어도 나는 지금이 과거라는것을 인지 하고 있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내 기준의 과거에 존재한다.
존재론적인 문제는 둘째치고, 내가 갖고 있던 모든게 다 날아갔다.
아이템이나 코스트 같은건 과거로 돌아왔으니 당연히 없고, 중요한건 지금껏 내 기반이 되었던 카피한 기술들에 대한 기억의 증발이다.
이건 굉장히, 너무나 안타깝다.
나는 지금껏 배낀 기술들에 다른 배낀 기술들을 살짝 가미해 상대를 이겨왔다.
진짜중 진짜가 나오는게 아니면 항상 통했고 더 나았다.
또 다시 그 많은걸 다시 배껴야 한다니 골치가 아프다. 특히 그 기술.
그 기술을 얻고 배껴보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었는데... 아 이젠 그 기술이 뭔지도 기억 안난다. 그 기술이다. 어쨌든 그 기술.
한숨이 나온다.
더불어 일어났던 각종 중요한 사건들도 당연하다는듯 다 흐릿하고 애매하다.
마치 놀리듯이 장난치듯이 재미 있는 것 마냥 기억을 잘라낸것 같다...
그때 아주 강렬하게 뇌리에 남는게 있다.
지금의 상황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으니 놀리듯이.
너는 이걸 기억해야 한다 라는 듯이.
검. 진짜의 검.
나 같은건 감히 대처도 할 수 없는 진짜의 검.
그게 ■■■를. ■■■을. ■■■을 죽였다.
울컥하고 가슴속에 뭔가가 쏟아질것만 같다.
분노와 열등감 그리고 무력함.
쏟아내지 않기 위해 얼굴을 한껏 찌뿌렸다.
"진짜는 못 이긴다는 건가."
결국 내 끝은 그랬다. 이건가.
한장한장 넘기듯 내 최후가 기억되고 마침내 섬뜩할 정도로 기분나쁜 죽음의 순간이 목에 느껴진다.
"윽."
둥실 하는 기분나쁜 부유감의 죽음. 떨어지는 죽음의 감각. 그것이 나를 죽였다.
쥐어 뜯고 싶은 그 감각의 서늘함에 뒷목을 매만지며 내 끝을 되짚어 보는것을 끝내려던 그 때.
"응?"
목소리가 들렸던걸 기억한다.
내가 네게 기회를 준다면 넌 나에게 무엇을 줄 거야?
모르는 목소리다. 아니 죽음 순간에 이런걸 말해줄, 들을 정신머리는 없었을거다.
뭔가 이 목소리가 지금 이 상황의 강력한 중심축인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무엇을 줄 거냐 라..."
왠지 모를 섬뜩함에 뒷목을 매만진다.
"이렇게 된 거, 보여주겠다고 했으니. 이번엔 닿아보겠어."
전부 무너졌어도 다시 돌아왔으니.
처음부터 다시 쌓겠다.
- 마츠시타 린 -불온한 호의 (임시 어장)
- 사방이 붉은 빛으로 가득하다. 가볍게 내딛는 걸음마다 비린 액체가 들러붙어 게타의 굽을 붉게 칠한다.
"인간의 명이란 것이 참으로 덧없사와요."
바람도 잘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 가느다란 빛을 등지고 선 소녀의 인영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윤곽을 뚜렷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가운데 가느다란 손의 음영이 입술께를 톡톡 두드리는 움직임만이 보인다.
"덧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키는 과정마저 불합리하기 이를데가 없사와요."
"..."
"적자생존, 양육강식, 최소한의 양심마저 강자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슬픈 세계인가요. "
애수어린 목소리는 자박자박 천천히 걷는 걸음마다 진정으로 슬퍼하는듯 한탄을 읖조리지만 어둡게 눌러붙은 핏빛 동공은 사냥감을 노리는 포식자같이 어둠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하얀 손이 어둠에 잠겨 무너진 인영의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소녀가 고개를 숙이자 뒤의 가느다란 빛줄기가 흐리게 그 얼굴의 윤곽을 비춘다. 입가에 보기 좋은 호선이 세필로 선을 긋듯 반듯하게 그려진다. 어깨에 닿는 촉감에 인영이 저를 숨기고 싶은듯 바르르 떨며 몸을 웅크린다.
"...저리가. 너도 저놈들이랑 똑같아. 이용할 생각만 가득하고... 뻔해."
잔뜩 움츠리며 가시를 세우고서 그는 가늘게 뜬 눈으로 주위를 훝는다. 쓰러져 싸늘하게 식은 몸뚱아리들이 좁은 골목을 메웠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맹렬하게 자신을 쫒아오던 자들이 앞에 선 가녀린 여자 한 명에게 당했다. 가디언? 아니다. 가디언이 이런 하찮은 뒷골목 주민과 빚쟁이들 다툼까지 신경쓰지는 않을것이다. 그렇다면 헌터? 헌터일까?
소녀, 린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바뀐 상황에 고민을 하는것이 뻔히 보여 조금의 여유를 주었다. 어차피...
"많이 아파보이시네요. 상처부터 살펴봐야 했는데... 소녀의 불찰이와요."
그가 반응할 틈도 없이 작게 손가락을 튕긴다. 그가 화들짝 놀라 몸을 움직인다.
"....!"
...아프지 않아! 지나치게 가뿐한 느낌에 분명 사채업자들에게 크게 베였던 다리를 들여다본다. 상처가 없어진 멀쩡한 맨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내친김에 후들거리는 몸을 일으키려하자 소녀가 다가 와 부축한다.
"이해해요. 아프고 무섭고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할 것이와요."
입구를 막고 선 소녀가 부축을 하려 자세를 바꾸자 가려진 빛이 마침내 그의 얼굴을 비춘다. 옆을 보니 흰 유카타를 입은 앳된 얼굴의 소녀가 살포시 다정하게 웃는다.
"걱정하지 마시와요 우리들의 신은 길을 잃은 자들에게 언제나 자비로울지니."
흔들리는 동공이 붉은 눈에 비친다. 떨리는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며 린은 눈웃음을 지었다.
"아직 덜 아문 상처가 나을때까지 소녀와 함께해 주시와요."
홀린듯 소녀의 손을 잡고 골목길을 나서는 그의 등 뒤에 다리에서 흐른 붉은 자국이 길에 어지러히 떨어진다. 린은 상대의 베인 상처를 한번보다 냉소일지 희소일지 모를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세상은 제멋대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이는 대로 해석해왔었다. 그렇기에 약자에겐 양심이란 사치다.
- 김태식 - 무지개 (47 어장)
-
사람을 반으로 가르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죽을 것이다.
나는 그런 특수한 경우가 아니기에 어느 날 내 절반을 잃고 죽었다.
그리고 그날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
평소와 같이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같이 차리고 아이들을 유치원에 같이 데려다주고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잠깐 이야기하고 서로 조심하라는 대화가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후회는 없다. 슬픔도 없다. 분노도 없다.
서로 언제 죽어도 이상한 거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실제로 몇 번 죽기 직전까지(주로 내가) 상처를 입고 돌아온 적도 많았다.
만약 시체의 일부나 소지품이라도 돌아왔으면 결국 죽었다고 깔끔하게 받아들이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체도 없고 소지품은커녕 어떻게 죽었는지 알려주지도 않는 태도에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나는 한이리라는 인간의 반쪽이었고 평생을 같이하기로 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가디언 협회가 기밀이 많다고 하더라도 나한테는 알려주는 것이 옳은 게 아닌가 싶어 몇 번이나 문의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장인어른은 광화문에서 1인 시위를 하셨던 모양이지만 딸의 죽음에 대한 충격이 컸는지 얼마 못 가 쓰려지셔서 병원으로 가셨다.
장례식은 협회에서 신경 써준 모양인지 돈이 나갈 일은 없었다.
자기는 협회의 무슨 직책을 맡고 있다느니 아내의 학교 동창들, 아내를 가르쳤던 교관들, 그리고 아내가 학창 시절 다니던 동아리 부장이라는 학생부터 가디언이 아니면 만나기 힘든 사람들이 찾아왔고 내가 헌터로서 생활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도 여럿 찾아왔다.
하나 같이 좋은 사람이 갔다고 슬퍼했지만 아무도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 그 모습
그 모습이 나를 점점 미치게 만든다.
가디언은 정의로운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모인 집단도 그럴 수 있나?
인간이 5명이 모이면 그중 1명은 쓰레기라는 옛말도 있다.
그런 말도 있는데 수십 또는 수백 명이 넘게 모인 집단이 깨끗하고 그들 사이의 분열이 없을까
그들 사이에 음모나 설령 그들이 원하지 않더라도 그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의한 문제는 발생했고 아내가 그런 일에 휘말려서 의미 없는 죽임을 당한 거라면?
머리에서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고 미쳐가던 나를 점점 더 압박하자 일상생활에서 호흡곤란이 오고 가끔 시야가 하얗게 변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결국 일 하는 것을 멈추고 아이들을 부모님께 맡기고 한반도를 발 가는 장소로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다녔지만 얻은 것은 없었고 해외로 발을 옮겼다.
아프리카는 너무 위험하기에 입국할 수 없었고 북미와 남미를 돌아다니다가 발신자를 알 수 없는 메일로 예전에 아내가 잡았던 빌런이 탈옥하고 종적을 감췄는데 중국의 어느 지역에 있을 것 같다는 정보였다.
내가 이 빌런을 향해 갈 이유는 없었으나 아내가 죽고 거의 1년 누적되는 피로와 정신적으로 점점 무너지고 있던 나에게 있어 아내와 관련된 정보였기 때문에 남미에서 하던 것들을 전부 멈추고 그대로 중국으로 향했다.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타고 온갖 탈 것들을 이용해서 도착한 곳은 산이 정말 많았다.
“천산산맥이라”
엄청나게 높고 엄청나게 많고 숨기에는 너무 좋아 보인다. 무협지에서 나오는 십만대 산인가 뭔가가 여기인가 싶기도 하고
문득 신경을 쓰고 있지 않던 사실이 떠오른다.
누군가 내가 이곳에 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내가 아닌 가디언 협회 아니, 헌터 협회에라도 정보를 넘기는 것이 탈옥한 빌런을 잡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한데 왜 하필 나인가
나는 가디언이나 고위 헌터들만큼 강하지 못하다.
그런데 이런 정보를 주는 것을 보면 무언가 음모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노리는 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아내와 관련된 유일한 정보니까 어울려주기로 한다.
이런 장소에서 사람을 찾으려면 많은 시간과 끈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많은 시간과 끈기가 있다.
“가볼까”
이 탐색이 끝난다면 우선 집으로 돌아가서 아이들을 만나자
너무 오래 놔두고 돌아다닌다면 아이들은 물론 아내도 좋아하지는 않을 거다.
왼손의 낀 반지를 만지작거리고 산으로 향했다.
대충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지나간 것도 아니고 적당하다고 해야 할까
사람의 흔적을 발견하고 추적한 결과 절벽에 천막으로 입구가 가려져 있던 동굴을 발견했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제법 긴 통로를 따라 들어가자 사람이 지내는 것 같은 공간이 나타났고 이상한 기계장치부터 벽에 걸려 있는지 알 수 없는 그림과 책상 위에 펼쳐진 책과 어떤 조각상이 보였다.
자신이 들어 왔던 길 말고는 다른 통로도 없어 보이고 누군가 들어올 낌새도 보이지 않아 책상 위를 탐색한다.
사람인지 괴물인지 뭔지 모를 형상을 조각상을 잠시 쳐다보다가 책을 펼쳐 읽자 두통이 찾아온다.
인상을 찡그리고 책의 내용을 읽어보지만 수 없는 문자가 쓰여 있고 귀에서도 이명이 들려오자 책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뒤로 세 걸음 물러난다.
“아악!”
갑자기 엄청난 불쾌감이 솟아오르자 바닥을 보고 헛구역질하다가 떨어진 책에서 나온 아내의 사진을 발견한다.
이게 왜 여기에?
“우윽…‥.”
왼손으로 입을 막고 오른손을 뻗어 사진을 주우려는 그 순간 본능이 경고한다.
재빠르게 반응하려던 그 순간 옆구리에 충격이 느껴지며 그대로 동굴의 벽에 날아가 박힌다.
“끄... 어...”
“뭔가 이상하다 싶더라니. 누구냐?”
벽에 박힌 몸을 움직여 바닥으로 떨어져 엎어진 상태로 고개를 들어 올리자 상체의 절반과 양손이 은빛으로 된 팔을 가지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이렇게 약한 거 보면 가디언은 아닌 거 같은데……어럽쇼? 이거 봐라. 그 사진, 그러고 보니 너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비틀거리며 겨우 몸을 일으키고 겉옷 안으로 손을 넣는다.
방금 그 공격 마도 같은 건 아니었고 저 팔로 한 거 같은데 무투가라고 봐야 하나?
“너 한이라 그년 남편이구나? 이야, 이거 잘됬네. 그년이 죽어서 어떻게 할까 싶었는데 남편 새끼가 와주고 고맙네! 그래. 그런데 너 여긴 어떻게──”
쾅!
말을 길게 하자 그런 설명을 좋아하는 부류의 인간으로 파악하고 옷 안에서 연막탄과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아 바닥에 간격을 두고 던지고 그대로 입구를 향해 온 힘을 다해 뛰쳐나간다.
이념을 각성한 사람이라도 이 정도 근거리에서 맞는다면 약한 수류탄이라도 어느 정도 충격을 받았을 테니
그렇게 생각한 순간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돌려 등에 메고 있던 총을 잡고 그대로 달려왔던 방향으로 난사한다.
“씨양... 부부가 쌍으로 또라이냐? 말하는데 이런 짓을 해?”
연막 속에서 기계로 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며 나타나는 그 모습에는 긁힌 수준의 상처밖에 보이지 않았다.
기습으로 던진 수류탄을 인간이 저렇게 멀쩡한 건 아내 이후로는 처음 본다.
어차피 심장이니 뭐니 하는 곳은 쏴봤다 안 박힐 테니까 눈이나 말하고 있는 입을 향해 총을 쏘며 발로 땅을 박차 뒤로 나아간다.
하지만 은색 팔이 쓱 올라와 반짝이더니 쏘아낸 공격을 전부 막아내는 걸 보고 탄창을 버리고 화학탄이 들어있는 탄창을 끼운 다음 쏘아낸다.
“콜록콜록, 이번엔 화학탄이냐?”
걸어오는 것 같으면서도 내 속도와 별 차이가 없이 걸어오던 여성은 피부가 붉게 변하다가 문드러지는 것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더니 그대로 뜯어낸다.
“근데 너 터미네이터라고 아는지 모르겠네”
팔도 그러더니 얼굴도 기계라니 대체 몸에 무슨 짓을 한 건지
“넌 뭐니?”
“네 뒤진 아내가 말 안 해주던?”
“공사 구분은 확실하게 하던 부부라서”
움직이는 걸 멈추지 않고 대화를 계속하다가 잠시 멈춘다.
무작정 도망치기보다는 허를 찌르고 도망쳐야 한다.
“웃긴 연놈들이네. 네 마누라가 내 양팔 자르고 배에 탈 꽂은 다음에 내장을 바짝 구워주면서 내 얼굴까지 베어냈는데 그걸 말 안 해줬다고?”
“그런 징그러운 건 나라도 말하고 싶지 않은데”
“팔 병신 되고 얼굴도 절반 정도 썰렸는데 이 개자식들이 그래도 살려놓고 감방에 넣더라? 팔 없이 시파 진짜 숨 쉬고 밥만 먹고 똥오줌 싸면서 겨우 살고 있는데 누가 갑자기 날 꺼내주고 터미네이터로 개조해주더라고”
누가 어떤 목적으로 저런 짓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가진 능력이 엄청나겠지
빌런을 가둬둔 곳에서 꺼낼 정도의 실력이면 어느 정도일지 감도 안 잡힌다.
“근데 내가 왜 설명 계속하는 줄 아냐? 설명하기 좋아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설명하다가 이 꼴인데 내가 아직도 그러겠냐?”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머리 한쪽에서 오싹한 기분이 들어 의념으로 전신을 강화하고 양팔로 몸과 머리를 최대한 가린다.
동시에 빌런의 오른쪽 기계손에서 붉은색의 빛이 나오더니 그대로 몸에 직격한다.
옷이 불태워지고 피부도 익어가다가 빛의 중심 부분이 되면 약간이지만 구멍이 뚫린 느낌도 든다.
“와, 이 정도나 시간을 끌어서 쐈는데 이게 끝인가? 아니, 개조 전에 멀쩡했던 몸에 비하면 되게 약한데 이거. 역시 메카닉 보다는 네추럴이지 네추럴”
이어서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 팔에서 붉은 전격이 흐르기 시작하고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잡고 억지로 일으켜 세워 시선을 맞춘다.
“여기서 너 죽이고 너랑 그년 자식새끼들이랑 부모형제 죽이러 갈 거니까 저세상에서 니 아내랑 셋째 만들면서 기다리고 있어라.”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한쪽, 머리의 구석에 넣어 놓고 꺼내지 않던 존재들이 떠오른다.
나와 아내의 결실, 세상에 남은 거의 유일한 아내의 흔적이자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존재들.
죽인다고?
누구를?
감히?
“으…….”
“뭐냐 유언이라도 있냐?”
자신 컨디션이 최고에다가 좋은 위치를 선점해서 기습을 했다 하더라도 이 녀석을 이기는 건 거의 불가능했을 텐데 지금은 최악의 상황이다.
그렇다면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최후의 발악이다.
나의 의념은 불
무언가를 태우는 것
그리고 태우는 것이 크면 클수록 불은 커지고 위협적으로 변한다.
지금 여기서 내가 태울 수 있는 건 자기 자신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를 태운다.
내가 쌓아 올린 것들을 태운다.
내가 앞으로 나아갈지도 몰랐던 가능성을 태운다.
내 영혼을 태운다.
내 모든 것을 태우고 지금 이 자리에서 힘을 얻어낸다.
혈관에 피 대신 불꽃이 흐르는 느낌이다.
숨을 내쉴 때마다 불꽃이 흘러나온다.
“이건 또 뭔!”
빠악!
손에 들고 있던 총을 얼굴을 향해 휘두른다.
그 충격은 지금까지 쏘던 탄은 물론 수류탄을 뛰어넘는 위력이다.
하지만 그렇게 강한 충격을 줘서인지 총도 반으로 부러졌다.
“아아아아아아악!”
총에 맞은 부분에서 파직 거리며 전기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빌런은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붙잡고 땅으로 쓰러진다.
이때가 기회다 이 힘은 내 모든 것을 불태워서 얻은 힘
타들어 가는 생명의 반짝임
내 주 무기는 총이었고 총 외에는 기술을 수련한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다쳐오면서 쌓았던 이 기억에는 어떻게 공격을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기술의 영역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것은 된다.
머리를 잡고 쓰러진 빌런을 향해 왼발을 축으로 삼아 오른발로 로우킥을 날려 고장 난 듯한 머리를 향해 공격한다.
약점을 만든 이 순간이 기회다.
발을 회수하고 다시 한번 공격하려던 순간 빌런의 팔에서 붉은색 빛이 마구잡이로 뿜어져 나와 공격을 한다.
“이 X새X가 넌 팔다리 뽑고 얼굴 존나 팬 다음에 빈민가에 던져서 썩게 만들어준다 X바아아아아아알!”
기계 팔 안쪽에서 무언가 모이는 소리가 나더니 빌런이 그대로 복부를 향해 휘두른 주먹을 맞고 동굴의 입구까지 일직선으로 날아가다가 바닥에 떨어지고 튕기면서 몇 바퀴 더 뒹군다.
탁 턱 팍 퍽 퍼버버벅
“끄윽”
뜨겁다.
몸 안쪽에서 나를 태우고 있다.
그리고 저 기계 팔의 빛에 맞은 부분도 익어가고 있는 게 보지 않아도 느껴진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다.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양손을 눈높이로 올리고 왼손 발을 앞으로 오른손 발을 살짝 뒤로 뺀다.
연기투성이인 동굴에서 나온 빌런이 괴성을 지르며 주먹을 날리며 다가오는 것을 보고 발을 살짝 움직여 대각선으로 나아가면서 오른손을 얼굴에 꽂아 넣는다.
빠아아아악!
“큭.”
“쌰아아아아아아앙!!”
상대의 힘을 이용한 건 좋았지만 방금 걸로 오른손이 부러진 느낌이다.
얼굴을 붙잡고 있던 빌런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지만 억지로 오른손을 쥐고 주먹을 휘두르지만 기계 팔에 막힌다.
“맨손 쌈박질은 내 주특기거드으으으은!!!!!”
기계 팔에서 엄청난 소음이 들리며 내 오른손을 강하게 움켜잡자 뼈가 으스러지는 감각에 소리를 지르며 발을 접은 상태로 들어 올린 다음 복부를 향해 발을 날리며 그대로 뒤로 날아간다.
뚜두두둑
공격하며 억지로 빠져나온 건 좋았지만, 어깨가 탈골된 것 같다.
저게 원래의 힘보다 훨씬 약하다고? 저련 녀석을 대체 어떻게 제압한 거지?
태워라 피워 올려라
더욱 커다란 불을
그리고 얻는 거다. 더 커다란 힘을.
의념을 한계까지, 아니 그 이상 사용해서 힘을 얻는 거다.
나를 불태우는 것으로, 아내가 없는 이 세상을, 이 잘못된 세상 전체를 불태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오른팔을 버리고 왼팔과 남은 다리로 격투전을 시작한다.
오른쪽 허리춤에 권총이 하나 더 있긴 하지만 이 상태로 총을 쏘는 건 무리다.
기술도 전략도 뭣도 아닌 인류가 했을 최초의 싸움법을 사용한다.
퍽! 빡! 빠각! 퍽!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개XX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엄청나게 얻어맞고 자신을 불태운다는 의지로 의념을 사용해서인지 힘이 빠지며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짜 최후의 수단이다.
망념화를 해서 이 녀석이라도 죽인다.
죽인다. 무조건 죽인다. 죽여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한계까지 도달한 망념을 더욱 쌓을 각오로 의념을 피워 올리며 왼 주먹을 휘두르려던 순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누군가 뒤에서 안아서 움직이게 못 하게 하는 것처럼
힘이 빠지고 시야가 돌아온다.
동시에 빌런이 휘두른 팔에 맞아 그대로 절벽에서 떨어진다.
완전히 의식이 끊어지기 전 내 시야에 들어온 건 왼손에서 반짝이고 있는 반지였다.
툭
투둑
투두두두두둑
얼굴에 물이 떨어진다.
하늘을 바라보자 비가 내린다.
찰박 찰박 찰박 찰박
검은 호수 위를 걸으며 앞으로 걸어간다.
비가 얼굴에 떨어지다가 눈에 들어간다.
눈을 깜빡여 비를 흘려보내고 손으로 닦아내자 비는 붉은색으로 변해있었다.
그렇게 앞으로 걷는다.
그저 앞으로
뒤를 돌아볼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은 뒤에 없다.
사라졌다.
이 세상에서
계속해서 앞으로 걷다가 숨이 차오르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자 앞으로 쓰러진다.
호수에 얼굴을 떨어뜨리자 그대로 호수에 빠져 입과 코로 물이 들어오자 양손으로 호수를 짚어서 일어난다.
“콜록 콜록 콜록 케윽”
기침하고 비틀거리며 다시 앞으로 걸어가던 중에 누군가가 나타난다.
“넌 만족하는 거냐? 이런 세계에”
붉은색 머리카락에 붉은색의 눈동자를 한 자신이 보인다.
“난 엄청나게 싫다.”
붉은색의 자신은 본인을 기준으로 앞으로 걸어오며 나에게 손을 뻗는다.
“어째서 이리여야만 했지?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거지? 아니, 왜 이리가 없는 세계가 있는 거지?”
바로 옆까지 다가와서는 내 목을 팔로 감싸며 어깨 위에 손을 올린다.
“이딴 잘못된 세상 모조리 불태워 버려야지.”
눈동자만 움직여 붉은색의 자신을 바라본다.
“이리가 저 높은 곳 아니, 혹은 저 아래, 아무튼 그딴 건 상관없지. 저승이라 불리는 곳에 있으면 이 세상 전체를 불태워서 저승으로 보내자. 그렇다면 이리가 죽기 전의 세계랑 다를 게 없지 않냐?”
붉은색의 자신은 목을 휘감은 손을 풀더니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고 다시 손을 뻗는다.
“내 손을 잡아. 그리고 이 세계를 내가, 그리고 네가 태워버리는 거다.”
그렇게 말하는 붉은색인 나의 뒤에 거대한 무언가가 보인다.
저것은 불의 거인인가 용인가 그도 아니면 악마인가 뭔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엄청나게 거대한 힘의 덩어리 라는 거다.
“야.”
“받아들이는 거냐? 당연하지. 나는 너고 너는 나다. 내가 느끼는 것을 네가 느끼지 않을 리가 없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뭐?”
“그래, 니 손을 잡고 얻은 힘이 강하다고 치자. 그래서 헌터부터 가디언들, 준영웅이랑 영웅들까지 어떻게 처리했다고 치자. 유찬영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이야기만 들어도 이름만 들어도 그 힘이 느껴진다.
“그걸 이길 수는 있냐? 못 이기지?”
“…….”
“그러니까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중2병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썩 꺼져.”
세상을 불태우자고? 그런 바보 같은 발상에 따라줄 만큼 난 어리지 않아.
붉은색의 자신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가자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통과되며 그 뒤에 있던 거대한 무언가도 사라진다.
헛것한테도 통하는거 보면 유찬영 폐하 만만세다.
“허읍!”
번쩍, 하고 눈을 뜨자 오랜 시간 동안 숨을 못 쉰 느낌이 들고 숨을 들이쉬지만 축축한 무언가가 같이 들어와 기침한다.
“쿨럭 쿨럭”
얼굴을 바닥으로 향하고 기침을 계속하자 마치 망념이 있다면 이러지 않을까라고 생각되는 검은 피가 입에서 바닥으로 쏟아진다.
“하아…하아….”
숨을 들이쉬고 내쉬다가 옷을 뒤지자 회복용 약물이 잡히자 몸에 주사 하고 뿌리고 먹고 온갖 것들을 전부 사용한다.
부작용이 있겠지만, 죽는 거보다는 훨씬 나을 거다.
한계까지 망념이 어째서인지 많이 줄어 있었고 건강을 강화해서 몸을 회복시킨다.
이어서 주변을 살펴보자 동굴이 있던 부분이 저위에 보인다.
저기서 떨어졌는데 어떻게 살아 남은거지 나무에 걸렸나?
이어서 소지품을 확인하자 허리에 있던 권총과 호신용으로 가지고 있던 단검히 허벅지 부분에서 만져진다.
“…….”
끝내야지.
이렇게 애매하게 끝낼 수는 없다.
절벽을 향해 다가가 손과 발을 박아넣으며 타고 올라간다.
느리지만 안정감 있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위를 향해 올라간다.
절벽 위에 올라오자 피가 엄청나게 뿌려져 있고 부러진 흔적부터 해서 장난이 아니다.
왼손의 반지를 잠시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동굴을 향해 들어간다.
밖과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처참한 흔적이 보인다.
계속해서 나아가자 정체를 알 수 없던 기계 안에 빌런이 눈을 감고 있는 게 보인다.
허리의 권총을 뽑아 들고 빌런의 머리를 겨눈 다음 총을 쏜다.
탕
한발
탕
두발
탕
세 발
탕
탕
탕
탕
탕
파지지지직
“독한놈 아직도 안뒤졌냐?”
기계를 뚫고 빌런의 얼굴에 총알이 닿으려는 순간 정신을 차린 빌런이 자신의 손으로 총알을 잡는다.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겨보지만, 탄이 다 떨어졌는지 철컥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넌 진짜 뒤졌다.”
자신의 몸에 붙어있던 케이블 같은 것들을 억지로 뜯어내며 웃으며 나에게 다가오는 빌런을 바라보며 권총을 허리에 넣고 왼손의 반지를 만지작거린다.
“너 사람이 언제 제일 강한지 아냐?”
“뭔 소리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때다.”
오른손으로 왼손의 반지를 뽑고 그걸 다시 왼손으로 잡는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권총을 들고 반지에 자신의 의지를 흘러 넣자 총알로 변한다.
아내와 나의 결혼반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으로 변하는 기능을 넣었다.
자신의 의념을 담아 상대가 무사하기를 바라면서
아내의 경우에는 검으로 변하는 반지였고 나는 탄약으로 변하는 반지였다.
탄알 일반 장전
철컥
“잘 가라”
아내가 내가 무사하기를 바라며 사랑과 함께 의념을 담아준 탄
내가 가진 비장의 무기인 실버 불렛
탕
빌런은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지만 이번에 내가 쏜 곳은 가슴이었다.
“내 아내의 의념 속성은──당해 봐서 알지?”
“이, 새…끼가아아아아아아!!”
가슴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지만,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듯 붉은 전기를 뿜으며 다가오는 빌런을 보며 피식 웃고 허벅지의 단검을 뽑는다.
지금의 나는 전부 다 불타지 못하고 남은 찌꺼기
그리고 모두가 칭찬했던 아내의 검술도 이제는 찌꺼기인 나와 함께 있다.
원래라면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을 긁어모은다.
재에서 불을 피워 올린다.
한이리식 백귀도白鬼刀
제 일본弟 一本
타오름燒起
검을 타고 한 마리의 뱀이 손에 이를 박아 넣는다.
검 위에 피가 타고 흐르기 시작할수록 검은 더욱 선명한 불꽃을 만들어낸다.
마치 아내의 미소처럼.
태양보다는 무지개 같던 그 미소처럼.
그 이후의 일은 별거 없었다.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헌팅 네트워크를 사용해 구조 요청을 보냈고 이후로 상당히 많은 사람을 만나고 혼나고 골치 아픈 일이 있었지만, 내가 있던 길드에서 도와준 건지 아니면 아내의 친구들과 동료들이 도와준 것인지 어떻게 잘 풀려났다.
그 이후에 깨끗이 떨쳐냈느냐 하면 전혀 아니다.
전과 달라진 건 없었다.
죽음에 대한 진실은 여전히 찾아다니고 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 하나, 바뀐 게 있다면. 나는 내가 사랑한 아내가 사랑한 이 세계를 위해 일할 거라는 거다.
“사랑해”
“사랑했어.”
“그리고 계속 사랑할 거야.”
그저 사랑해
몇 번이나 말했고
몇 번이나 더 말할 거지만
또 말할 게
사랑하고 있어
이 말을 대신할 단어는 없어
사랑해
- 알렌 - 사랑을 아는 사람 (56 어장)
- 이곳은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성당
나는 이주전쯤부터 이곳에서 숙박을 신세지며 근처에서 발생하는 자잘한 의뢰를 해결하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알렌씨."
의뢰를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한 남성이 말을 건넸다.
사랑과 자비가 웃음거리가 된지 오래인 이 시대에 의념도 갖지 않은 몸으로 꿋꿋하게 신의 뜻을 따르며 어려운 이들을 돕는 보기드문 신부였다.
나는 별다른 말은 할 필요를 못느낀채 나이 든 신부에게 다가가 오늘 수행한 의뢰의 보수중 대부분을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알렌씨 전부터 말씀드렸지만 굳이 이곳에 머무는데 돈을 낼 필요는 없습니다. 하물며 매일 이렇게 큰 돈을..."
"받아 두시죠."
내게 돈을 받을때마다 그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항상 그래왔던것처럼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한채 내가 머물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
그녀를 잃은지 2년이 지났다
그녀를 잃고난 뒤 이 세계는 점점 그 가치가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돈도 명예도 사람도 모두 없어도 상관없어져갔다.
이젠 이 목숨에 가치도 점점 사라져가서 삶을 끝내도 상관없지 않을까.
'똑똑'
상념이 길어지던 와중에 누군가 노크를 한 뒤 들어왔다.
"식사 준비 다 됐어요! 와서 식사하세요!"
들어온건 아직 앳되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꽤나 똑 부러진 여자아이였다.
"...생각없어"
"안돼요! 그렇게 매번 끼니를 거르는게 몇번짼데요! 자 어서 나와서 밥먹어요!"
그렇게 말하고서 누워있는 나를 끌어당기며 침대에서 나오게 하려고 낑낑대는 모습에 나는 마지못해 침대에서 나와 식당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를 따라 식당에 들어서니 10살 정도의 꼬마들이 식기를 나르고 있었다.
"아 루나 알렌씨를 데리고 왔구나."
낮에 나를 반겼던 나이 든 신부는 냄비 앞에서 스튜를 젓고 있었다.
"아 신부님! 나머지는 제가 할께요! 얘들아 그릇 다 가져갔지?"
이 아이 이름이 루나였나 들었던거 같기도 하지만 별 관심없다.
루나라는 아이는 신부 대신 냄비 앞에서 서서 스튜를 마저 젓다가 냄비를 들어 식탁 한 가운데 가져다 놨다.
"자 다들 그릇 가지고 와!"
루나는 웃으면서 아이들이 들고있는 그릇에 차례대로 스튜를 담아주었다.
"자 알렌씨도 어서와서 받아가세요."
루나의 말에 나는 내가 국자를 잡아서 스튜를 담아갔다.
"어? 겨우 그거 가지고 괜찮으세요?"
"입맛이 없어."
"안돼요! 알렌씨는 매일 힘든일을 하시잖아요! 그럴수록 든든히 먹어야 해요!"
"부족하면 그때 더 담아갈께."
그렇게 자리에 앉아 나는 내 앞에 놓여있는 빵을 조금 찢어서 입안으로 넣었다.
"..."
아무맛도 나질 않는다. 마치 고무를 씹고있는 것 같다.
스튜를 조금 떠서 입안에 넣었다.
"..."
역시 아무맛도 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 앞에 놓인 음식들을 입안으로 넣는 일을 계속했다.
"...잘 먹었습니다."
음식을 입에 다 넣은 뒤 나는 내 몫의 식기를 정리하였다.
"알렌씨 조금 더 드시지요."
"아닙니다. 입맛이 없어서요."
신부의 말에 대답하고 난 뒤 나는 다시 방안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늘 그러했듯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나는 성당을 나와 의뢰를 확인하고 있었다.
'오늘은 마땅히 할만한 의뢰가 없다.'
애시당초 이곳은 작은 마을에 불과하였다.
처음부터 걸려있는 의뢰가 많지도 않았을 뿐더러 걸려있던 의뢰들도 하나같이 보수가 적어 헌터들이 찾아오질 않아 장기간 남아있던 의뢰들이였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보수는 그렇게 중요한게 아니다.
'카티야라면 지나치지 않았을 의뢰...'
지금 나에게 중요한건 오직 카티야가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지다.
하지만 오늘 남아있는 의뢰중 카티야가 고를 만한 의뢰는 남아있지 않았다.
'슬슬 이곳도 떠날때가 다가오는군.'
이곳은 지난 6년간 카티야와 다닌 곳 중에서도 카티야를 만난지 1년도 되지 않았을때 방문한 마을이였고 지금 머물고 있는 성당의 신부도 그때 처음만났던 사람이였다.
카티야를 잃고 난 뒤 나는 카티야와 함께 다녀간 곳을 차례차례 찾아다니며 그녀의 흔적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다.
한발짝 한발짝 그녀와 다녔던 여정을 되짚다보면 나는 그녀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애시당초 지금 나를 움직이는 것도 그녀에 대한 미련이 아닌가.
나는 상념을 이어가며 의뢰를 뒤로 한채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 알렌씨!"
성당에 도착하자 빨래를 널던 루나가 나에게 다가왔다.
"알렌씨가 이 시간에 돌아오다니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니 마땅한 의뢰가 없어서."
"그러시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빨래를 마저 널고 금방 점심을 준비해드릴께요."
그리 말하고는 루나는 자신이 있던곳으로 돌아가 마저 빨래를 널기 시작했다.
끼이익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신부가 앉아서 기도를 하고있었다.
"아 알렌씨 오늘은 일찍 들어오셨군요."
"기도중이셨습니까?"
"예 알렌씨도 같이 하시겠습니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 날 이후 내가 하늘에 올린건 분노와 증오뿐이였다.
신부가 기도를 마치자 빨래를 다 널은 루나가 들어왔다.
"신부님 빨래 다 널어놨어요!"
"고맙구나. 루나가 이렇게 믿음직하니 나도 언제든 떠나도 안심이야."
"정말! 신부님 그런 말씀하지 말라니까요!"
루나는 신부의 농담에 화를 내고서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정말 착한 아이입니다. 저한테 과분할 정도로."
"그렇군요."
"아직 13살 밖에 안되었는데도 고아원의 어린아이들도 챙기면서 수녀가 되어서 저를 돕겠다고 틈틈히 공부도 열심히 하고있지요. 여건이 되었다면 학교에 보내주고 싶지만 미안하기만 합니다."
그렇게 말하곤 신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점심 준비를 도우러 주방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점심준비가 끝나고
여전히 나에겐 식사 생각이 없었지만 이번에도 루나가 나를 놔두지 않아 나는 어쩔 수 없이 식탁에 앉게 되었다.
"오늘은 할만한 의뢰가 없었다고 하셨지요?"
"네 실은 그것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내일 이 마을을 떠날려고 합니다."
"네? 이렇게 갑자기요?"
옆에서 루나가 끼어들었다.
"원래 해야 할 의뢰를 전부 마치면 이곳을 떠날 생각이였습니다. 그 동안 신경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알렌씨 너무 갑작스러운거 아닌가요?"
"형 내일 가는거야?"
떠난다는 내말에 고아원에 어린아이들의 표정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이렇게 아쉬워 하는데 조금만 더 머무시다 가시면 안될까요?"
"미안 이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어서."
더 이상 새길 흔적이 없다면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으니까.
"흐이잉..."
몇몇 아이들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곤란하다. 여유있는 시간에 카티야가 그랬듯 나도 아이들을 보살피는걸 조금 도와준것일 뿐인데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반응할줄은 몰랐다.
"얘들아 울지마.뚝!"
루나는 능숙하게 아이들을 달래며 나에게 말했다.
"알렌씨가 그러신다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점심을 다 먹고나서 마지막으로 아이들과 놀아주시면 안될까요?"
"알았어 그정도야."
안그래도 이렇게 울고있는 어린아이들을 그냥 놔둘 수는 없으니까
"형 이쪽! 이쪽!"
"그래."
성당 앞마당에서 공을 가지고 조금 놀아주니 아이들은 아까 왜 울었는지도 잊은것 같이 환한 웃음을 짓고있었다.
"얘들아 이것좀 마시면서 해!"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나고 계속 쉼 없이 뛰어다니던 아이들은 조금 지쳤는지 공터 난간에 앉아서 땀을 식히고 루나와 신부는 그런 아이들에게 물을 가져다 나눠줬다.
"정말 감사합니다. 알렌씨."
"아뇨 괜찮습니다."
신부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급하게 떠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건가요?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여기서 머무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아뇨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니 너무 괘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역시 카티아양이 함께 오지 못한 것 때문인가요?"
"..."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오지랖을 부렸군요."
"...아닙니다."
'역시 이미 알고있었구나.'
딱히 티를 낸것은 아니였다. 아니 오히려 숨기고 있었다.
그녀의 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이상해 보이지 않게 행동했다.
"많이 티났습니까?"
"아니요 그저 같이 다니던 분과 따로 오셨는데 아무말도 없으셔서 여쭤본것입니다."
"..."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조금 긴 이야기가 될겁니다. 자리를 옮기시죠."
나와 신부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성당안으로 들어오고 난 뒤
"그녀와 만난지 6년째 되던 날이였습니다."
나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할지 조금 고민한 뒤 입을 열었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초대형 게이트, 그녀를 두고 도망친 자신, 그녀의 흔적을 따라 되돌아간 지난 2년.
마치 자신의 죄를 고해성사하듯
그저 담담하게 그녀를 잃고 난 뒤의 일을 읊었다.
"..."
잠깐의 침묵이 있고난 뒤 신부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알렌씨 그녀와 처음만났던곳까지 돌아가신 뒤에는 어떻게 하실지 생각해 보셨나요?"
"..."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흔적을 쫒는 이 여정이 끝나고 난 뒤 어떻게 해야할지 나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지난길을 되짚는 것은 그저 카티야양이 그립기만해서 인가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째서인가요?"
"자신이 없습니다. 그녀 없이 이 세상을 알아갈 자신이..."
"자신이 없다는건?"
"이 세상을 알아가는 것은 저에게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였습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녀와 함께 다니면서 세상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저에게는 알 수 없는 고통만 늘어만 갔습니다."
"..."
"그녀와 계속 같이 다니다보면 언젠가 그 고통이 무엇인지, 어떻게하면 고통이 사라질지 알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
"하지만 저는 그녀를 버려둔채 혼자 도망쳐놓고 그녀 없이 혼자 세상을 알아가기 두려워 이렇게 그녀와 함께했던 세상을 다시 되돌아가는것 밖에 못하고 있습니다."
혐오감에 구역질이 나올것 같았다.
겁에 질려 그녀를 버려놓고 그녀가 없는것이 두려워 이러고 있다는것이
혐오감에 몸을 떨고있는 나를 보고 신부가 입을 열었다.
"알렌씨 그거 아십니까?"
"무엇을 말인가요?"
"전에 카티야양과 이곳에 오셨을때 카티야양도 저에게 똑같은 고민을 털어놓으신적이 있습니다."
"네?"
나는 신부의 말에 그 의미를 물었다.
"똑같은 고민이라하심은?"
"그녀도 당신처럼 세상을 경험할수록 늘어가는 고통에 괴로워 하고 있었습니다."
신부의 말에 나는 잠시 할말을 잃었다.
그녀는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고 고결하고 강한사람이였다.
그런 그녀가 나처럼 세상을 알아가는것이 고통스러웠다는건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말도 안돼..."
"사실입니다. 그것 때문에 카티야양은 여정을 계속하는것이 두렵다고 하셨습니다."
"..."
"부끄럽게도 저는 카티야양에게 도움을 받았으면서 그런 카티야양에게 도움이 되어드리진 못했지요."
"무엇이..."
나는 간신히 다시 입을 열었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고통스럽게 한 건가요? 아니! 카티야도 고통스러웠다면 어째서 여행을 계속한건가요!"
그녀는 나와 다르게 돌아갈 장소가 있었다.
만약 그녀가 여정을 그만두었다면...
"카티야가 그런일을 겪지 않았을텐데..."
나 때문이다.
항상 그녀옆에 있었으면서, 그녀의 행복을 바랬으면서, 그녀를 사랑했으면서
그녀가 고통스러워 하는걸 눈치채지 못하고 이젠 그녀를 두고 도망치다니
내가 알았더라면, 그녀가 고통스러워 하는걸 눈치챘다면, 그녀의 여정을 막았다면
"내가 막았더라면..."
"알렌씨탓이 아닙니다."
신부는 강한어조로 내게 말했다.
"카티야양은 그러한 고통을 짊어졌기에 여정을 계속한것입니다."
"그게 무슨..."
이해할 수 없었다.
고통을 짊어졌기에 고통을 늘려가야 했다니.
"카티야양이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는지 물으셨죠?"
신부는 슬픈 표정을 지은채 말을 이었다.
"그것은..."
"신부님! 알렌씨! 식사하세요!"
음울했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날아갔다.
웃으면서 들어온 루나는 나와 신부의 안색을 살피더니 뭔가 실수했다는 표정을 지으면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했다.
"저... 중요한 얘기 중이셨나요..."
"하하하하하!"
"후우..."
안절부절 못하는 루나를 보곤 신부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고 나는 거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아까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은 무리겠지.
"그래 곧 가마. 알렌씨 방금 이야기는..."
"이제 괜찮습니다. 어울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나는 먼저 성당을 빠져 나왔다.
저녁을 먹고 난 뒤
나는 늘 그렇듯 침대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는 중이였다.
저녁을 먹기 전까지 신부와 나눴던 대화 때문에 머릿속은 엉망이였다.
카티야는 어째서 괴로워 했을까, 카티야는 왜 여정을 계속한걸까, 내가 세상을 알아갈 수록 괴로운 이유도 카티야랑 같은 이유일까
문뜩 언젠가 카티야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원래는 고맙다고 말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등신같은 나는 고맙다는 말 조차 하지못하고 꼬일때로 꼬인 말만 내뱉었었다.
카티야는 그런 나를 보고도 웃으면서 대답했었다.
나는 아직까지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지금 이 대화가 떠올랐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아침을 먹고난 뒤 성당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떠나시는거군요."
"네 그동안 신세 많이졌습니다."
"오빠 안녕히가세요."
고아원의 아이들도 하나둘씩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어째선지 루나는 보이지 않았다.
"아 루나를 찾으시나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신부는 바로 루나가 어디갔는지 말해주었다.
"식재료가 당장 다 떨어져서 시장에 나갔습니다. 알렌씨한테 작별인사를 못한다고 많이 아쉬워했죠."
"그렇군요."
하긴 마지막까지 기어코 나를 식탁에 앉힌것을 보면 굶기지 않는것에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가세요. 알렌씨 부디 다시만나길 기도하고 있겠습니다."
신부의 배웅을 받으면서 나는 성당을 빠져나왔다.
"..."
어쩐지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의뢰만 확인해보자."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에 나는 마을을 떠나기 전에 의뢰만 확인해보겠다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저기 사과 10개만 주세요."
"루나 장보러 나왔구나. 잠깐만 기다려 아줌마가 맛있는걸로 담아줄께."
마을에서 루나는 누구보다 사랑받는 소녀였다.
비록 고아원에서 자라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신부는 루나를 모자람 없이 보살폈고 마을사람들도 다들 루나를 아껴줬다.
그리고 비록 아직 정식 수녀는 아니여도 항상 신의 가르침에 따라 바르고 착하게 생활하는 아이였다.
"이제 당근이랑 고기만 사면 되겠다. 알렌씨는 벌써 떠났으려나... 응?"
그런 루나에게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꽤나 허름한 차림에 남성은 오랫동안 떠돌아 다닌 것 처럼 지친표정으로 이곳저곳을 살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기 혹시 어디 편찮으세요?"
루나는 남성에게 다가가 물었다.
남성은 루나를 보고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난 뒤 루나의 말에 대답했다.
"그래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 보니 조금 많이 지친거 같네. 조금 쉬고싶은데 도와줄 수 있니?"
"그러면 저희 성당에서 조금 쉬다 가세요."
"성당? 성당에서 사니?"
"네! 다른 아이들도 있는데 혹시 불편하신가요?"
"아니 그럼 신세좀 져볼까."
"흠..."
계속 쳐다본다고 없던 의뢰가 생기는건 아니였지만 나는 계속 의뢰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와서 돌아가긴 조금 그렇지..."
보름정도 되는 기간동안 성당에서 지내면서 조금 마음이 누그러든가.
이제와서 떠나는게 아쉬워서 밍기적거리고 있는 자신의 꼴이 퍽 우스워서 헛웃음이 나왔다.
"이렇고 있는다고 도움되는것도 아니고 얼굴에 철판이라도 깔까."
제법 오래 고민하던 나는 결국 성당으로 되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저 들어야 할 말도 있고 작별인사 정도는 얼굴보고 다시해야지."
그렇게 발걸음을 서둘러 성당으로 향하고 얼마안가 나름 익숙해진 성당의 정문이 나타났다.
'그래도 그렇게 떠난다고 해놓고 돌아오니 조금 부끄러운걸.'
그렇게 생각하면서 성당 안쪽으로 들어서자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조용하다. 섬뜩할 정도로
마당에서 놀고있는 아이들도 성당 입구를 청소하는 신부도 보이지 않았다.
("...!")
감각을 집중하자 성당 안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
나는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장 귀찮게 만들기는 열등종 노인네가.)
("신부님! 신부님!)
즉시 성당문을 발로 차날렸다.
"열등종 여자가 영광으로 알것이지... 뭐야?"
"흑 흐윽... 아.. 알렌씨?"
성당 안쪽에서 보여진 모습은 무슨일이 있었는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권총을 쥐고 짜증난다는 표정을 짓고있는 나 보다 조금 어려보이는 남성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신부
옷이 찢어진채로 신부를 감싸고있는 루나
구석에서 울음을 삼키며 떨고있는 아이들까지.
"하아... 또 열등종이냐 지긋지긋하네..."
남성은 귀찮다는 듯이 나에게 총을 겨눴다.
"이따 죽여줄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알겠지?"
"다윈주의자인가?"
"알아서 뭐? 신고라도하게?"
의념각성자인가.
침착하자. 저 녀석의 래벨과 속성도 모른채 섣부르게 행동하는건 위험하다.
녀석은 아직 내가 의념각성자라는걸 모르고 있다. 그걸 이용하는거다.
그래 침착해야한다. 침착해야하지만...
"개같은 새끼가..."
저 꼴을 보고 침착하게 있으라는건 무리다.
"하아... 이래서 열등종은..."
그렇게 말한 남자는 내 미간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나는 검을 뽑아 막아내려 했지만 순간 이상함을 느낀 나는 손으로 총알을 막아냈다.
땡그랑...
손에 부딪혀 찌그러진 탄두가 대리석 바닥에 떨어졌다.
'저 총...'
아무런 의념 처리도 안된 평범한 총이다.
"뭐... 뭐야 너!"
남자는 잠시 멍때리는듯 싶더니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다.
터벅터벅
저 총이 그냥 권총이란걸 안 이상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나는 그냥 권총을 맞아가며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철컥철컥
"제..젠장!"
내가 그 남자에게 거의 다 다가갔을때쯤에는 더 이상 총에 총알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나저나 저 녀석은 다윈주의자를 자칭하면서 왜 그냥 권총을 사용하는 건가?
그저 다윈주의자를 사칭한 일반인 강도인가?
뭐가 되었든 중요하지 않았다.
"죽여주마."
"히..히익"
그 녀석은 내가 다가오자 기겁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쿵
총을 막을 때 보다 강한 충격이 손으로 전해졌다.
"너 레벨 몇이냐?"
이 녀석은 의념각성자가 맞았다.
"레..레벨 1..."
이 빌어먹을 자식은 게이트를 들어가 본적도 없으면서 생긴힘에 취해 사랑받을 사람들을 상처입히며 살아온거다.
나는 검을 뽑으면서 그 녀석을 발로 차 넘어트렸다.
"게흑!"
추한 꼴을 보이며 넘어진 뒤 기어서 도망가려하는 그 녀석의 등을 밟고 목에 검을 가져다댔다.
"너 따위 한테 상처입을만한 사람들이 아니였다."
나는 분노로 가득찬 목소리로 말했다.
"왜... 왜 이런 열등종들을 감싸는거야! 그렇게 강하면서! 왜!"
이 빌어먹을 자식은 정신 못차리고 헛소리를 떠들어댔다.
"됐다. 여기서 죽어라."
"히익!"
나는 칼을 들어올렸다.
그 순간
"알렌씨!"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멈췄다.
"신부님..."
신부는 어느새 정신을 차린건지 녀석의 목을 치려는 나를 멈췄다.
"알렌씨 그 이상은 안됍니다."
"이 녀석은 용서받지 못할짓을 저질렀습니다. 신이 용서한다고 해도 저가 용서하지 못합니다."
"아니요. 저자 때문이 아닙니다. 알렌씨가 더 이상 괴롭지 않길 바래서 입니다."
"그게 무슨..."
"신부님? 신부님!"
신부는 거기까지 말하고 의식을 잃었고 루나는 그런 신부를 붇잡고 다시 울며 소리쳤다.
"...젠장"
휘익
"끄아아악"
나는 녀석의 목을 치는 대신 허튼 짓 못하도록 팔다리에 힘줄을 끊었다.
"일단 병원으로 옮기자. 루나 이리로 와."
나는 신부를 업고 한손으로는 범죄자 녀석을 잡은채로 루나와 병원으로 향했다.
깊은 밤 어느병원
나는 정신을 잃은 신부의 곁에 계속 앉아 있었다.
의사 말로는 수술이 잘 끝나서 별 문제 없을거라 했다
"으으..."
"! 정신이 드십니까?"
나는 신음소리를 흘리는 신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아..아이들은..."
"모두 무사합니다. 조금 전까지 여기있다가 돌아갔습니다."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신부는 한시름 놓았다는듯 한숨을 쉬고는 힘겹게 자리에 앉았다.
"왜..."
"..."
"왜 그 녀석을 죽이는 걸 말렸나요?"
신부는 잠시 나를 쳐다보곤 이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대답했다.
"알렌씨는 어째서 그를 죽이려 한건가요?
나는 신부의 말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야 당연히 그가 용서못할 악행을 저질러서입니다."
"질문을 조금 바꾸죠. 알렌씨는 그의 악행을 보고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감정이라니 그야...
"분노였나요? 아니면 슬픔?"
분노는 당연히 있었다. 슬픔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중 가장 큰 감정은...
"괴로움이였습니다."
그래 괴로움이였다. 마치 모르는 세상을 알아갈때같은...
"신부님과 아이들이 그 자식에게 겁박받는걸 보았을때 너무 괴로웠습니다. 당신들은 이런 불행을 겪을 사람들이 아닌데, 당신들은 행복해야 하는데, 사랑받아야 마땅한데 어째서..."
신부는 내 말을 듣고 조용히 나의 어깨를 토닥였다.
"카티야양도 같은 말을 하셨습니다. 세상을 알면 알 수록 행복해야할 사람들이 고통받는걸 보는것이 괴롭다고, 도망치고 싶다고 말이죠.
그 말에 놀라 나는 눈을 크게 떳다.
"카티야양은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을 돕는 길을 선택했고 그런 고통을 짊어지고도 여정을 계속하신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뒤이어 신부는 말했다.
"알렌씨 살생으로는 그런 괴로움은 더 커질뿐입니다. 죽이지 않아도 될 상대를 죽이는건 알렌씨에게 괴로움을 더 할뿐입니다."
신부는 마치 옛날을 추억하는 듯한 눈으로 내게 말했다.
"철 없던 시절을 망나니처럼 보낸 늙은이의 조언입니다."
"카티야는..."
나는 신부의 말을 듣고 입을 열었다.
"카티야는 저 같은 것도 사랑했던걸까요."
"그 누구보다 잘 알고계시지 않습니까?"
문뜩 다시 카티야가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렇다.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했다.
그저 나만이 가장 중요해서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채워주려해도 그저 밑빠진 그릇에 물을 넣는거 처럼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녀는 그런 내 마음을 자신의 마음에, 사랑에 담았다.
밑 빠진 그릇 같던 내 마음에 넘칠 사랑을 담았고, 사랑을 모르던 나에게 사랑을 알려줬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나를 사랑했고 지금도 나는 그녀의 사랑속에서 살아가고있다.
나는...
"나는 아직까지 당신에게 받은 사랑에 구원받고있어."
눈물이 흐른다. 카티야를 잃고 말라버렸다고 생각한
"흑... 흐윽..."
신부는 그저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다음날 아침
병실은 신부의 병문안을 온 아이들과 이웃들로 가득찼다.
평소 덕망높던 신부가 변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나는 신부를 구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들으며 병실을 살피었는데 루나가 보이질 않았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실을 나와 주변을 살피던 중 구석에서 쪼그려 앉아있는 루나를 발견했다.
"왜 여기있어? 신부님 안만나고."
루나는 내말을 듣자 움찔거리며 놀란듯이 고개를 들었다.
"아..알렌씨"
"어디 안좋아? 저번에 어디 다치기라도 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묻자 루나의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곧 이어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저 때문에... 저 때문에 신부님이..."
"어? 왜...왜 그래? 너가 뭘 어쨌는데?"
"제가... 제가 쓸데없이 모르는 사람을 초대하지만 않았으면 이런 일은 안 일어났을텐데..."
거기까지 말하고는 루나는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대충 무슨일인지 알거 같았다.
아마 그 자식은 루나의 호의를 이용해 성당에 접근한 것 일꺼다.
그저 다른 사람을 돕고싶었던 어린아이를 이용하다니 세삼 그 녀석에 대한 분노가 다시 일었다.
루나는 울음이 조금 진정되었는지 눈물을 훔치며 히끅거리고 있었다.
문득 루나의 모습이 과거의 나와 겹쳐보였다.
자신의 탓이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괴로워 하는 모습
나는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네 탓이 아니야."
"하지만 제가 그 사람을 대리고 오지 않았으면..."
"너는 그 사람을 돕고싶었던거지?"
루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루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사람을 돕는건 좋은 일이라 생각했는데 이젠 너무 무서워요..."
안타까웠다. 이 아이의 선의가 악의에 상처 받은게
"너의 그 착한마음을 이용하려는 그 새끼가 나쁜거야 세상에는 나쁜놈이 많으니까 앞으로 조심하자."
"그치만..."
"무엇보다 루나 덕분에 내가 제때 성당으로 올 수 있었잖아."
루나는 그 말을 듣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나가 밥 안먹겠다는 나 밥먹이고 잘 대해줬는데 인사도 못한게 아쉬워서 성당에 돌아간거거든."
나는 웃으면서 루나의 등을 토닥였다.
"그러니까 루나가 나한테 잘해줘서 결과적으로 모두 무사할 수 있던거야."
"뭐에요 그게..."
루나는 조금 기분이 풀렸는지 작게 웃었다.
"그러니까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너의 마음씨가 결국 모두를 구한거니까."
나는 루나의 머리를 한번 더 쓰다듬었다.
"이제 신부님 만나러 가자 기다리고 계실꺼야."
"...네"
루나는 왜 인지 내 시선을 피한채 대답했다.
2주뒤
나는 신부가 퇴원할때까지 성당의 일을 도우며 성당에서 생활했다.
미사가 있을때는 신부를 병원에서 침대채로 조심히 들고 오기도 했었다.
그리고 신부가 퇴원하고 난 뒤 나는 떠나기전 모두의 인사를 받고있었다.
"형 꼭 다시와야해!"
"오빠 또 오세요!"
"그래 그래"
나는 웃으며 아이들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알렌씨... 또 와주세요..."
"응 루나도 건강하고."
묘하게 우물쭈물거리는 루나하고도 인사를 나눴다.
"알렌씨 건강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신부님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세를 많이 진 신부와도 인사를 주고 받았다.
"그럼 떠나겠습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안녕!"
"잘가!"
"...?"
"왜 그러니 루나야?"
"저.. 알렌씨 눈색이 원래 파랬나요?"
어떻게 해야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너 없이 세상을 알아가는게 무서워.
하지만 나도 너 처럼 나아가보려고 해.
너가 나에게준 사랑을 나도 다른 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
너가 그랬듯 나도 다른이들의 마음을 밝히는 빛이 될 수 있기를.
- 캡틴 연성
- 캡틴 - 태명진 (50 어장)
- 오늘도 별이 보이지 않는 언덕에 서서 묻는다. 우리들은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게 맞는지, 우리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같은 답 없는 질문들을 희뿌연 하늘에 대고 물어갔다. 누구도 답을 알려주지 않고, 알려주는 것도 없다지만 나는 오늘도 하늘을 향해 실컷 소리를 질렀다. 지금의 내 질문들에 머리는 어지럽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누구도 답을 주지 않으니까 옳게 나아가고 있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대신으로 답답한 가슴을 두드리고 생각을 이어갔다. 그것이 내게 어울리는 답이라는 것처럼.
하늘을 뚫고 있는 천공의 탑은 처음 본 순간과 같이 웅장한 자태 그대로, 내게 말한다.
네가 바라는 모든 답이 여기에 있다고. 내가 그 답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발 저는 노인과, 눈 먼 여인, 건장한 어린 아이는 어디까지 걸어 올라갈 수 있습니까?
발 저는 노인의 체력이 떨어지고 나면, 눈 먼 여인의 눈이 잠들 때가 되면 건장한 어린 아이는 어디까지 혼자 걸어갈 수 있을까요?
그러나 저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습니다. 이 셋이 같이 있을리가 없으니까요. 발 저는 노인은 이런 세상에 흔히 있습니다. 눈 먼 여인의 일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디에서 건장한 어린 아이를 찾는단 말입니까?
내 어린 시절을 표현하자면 '이런 시대이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밖에 쓸 수 없었다. 간단히 생각해보더라도 15살의 아이가 2미터의 키를 넘고, 몸무게는 100Kg을 훌쩍 넘어가며 그 몸이 모두 근육으로 차 있다면, 많은 사람들은 그런 아이를 보고 괴물이라고 말하지 평범하다고 하진 않았을 거다.
그러나 게이트가 열리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시대에 있어서는 큰 키와 몸무게 같은 것은 조금 특이한 특징밖에 되지 않았다. 그 덕에 어린 시절 차별을 받은 기억은 없었다.
"명진아."
그러나 보통의 어린 아이들에겐 자신과 다르단 것만으로 차별의 대상이 된다. 거기에 더해 이런 시대이기에 더더욱, 몬스터란 이름을 쓰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이런 시대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을 어려워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조금만 힘을 쓰더라도 물건들은 가벼우리만치 박살이 났고 친구들과의 놀이에선 아이들의 놀이에 어른이 끼어드는 것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지혜롭거나 똑똑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우악스럽게 몸이 튼튼하고 강한, 아이에 어울리지 않는 건장한 아이가 나였다.
"명진아?"
"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서 그렇게 풀이 죽었니?"
국화를 닮은 듯 보이는 사서 선생님은 그런 내게 아무런 차별 없이 다가오는 분이었다. 과거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책을 좋아하기보단 놀기를 좋아했고, 게임을 더 좋아했지 책을 좋아하진 않았으니까. 타인과 접근하는 것에 꺼려했던 내가 도망치기에는 도서관만한 공간이 없었던 것 같다.
"왜 저는 이런 몸을 가지고 태어났을까요?"
"네 몸이 어때서? 선생님이 보기에는 아아주 건강하고, 튼튼한 몸으로 보이는데."
"하지만 그렇잖아요. 제가 가볍게 치는 것만으로도 친구들은 다치고, 부러지고, 친구들관 다르게 큰 키나 몸집도 그렇고.."
"그랬구나."
아이의 투덜거림을 듣기에는 바쁠 시간임에도 사서 선생님은 내 말에 자주 귀를 기울이셨다. 아이들을 혼내주거나, 화를 내거나 하는 행동은 없으셨지만 단지 내 말을 듣고 내 모습에 부정하지 않으신다는 것만으로도 어린 시절의 내겐 충분한 도움이었다.
"하지만 명진아. 너 과학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아니?"
"네. 이종족이시라고 들었어요."
"아이들이 선생님을 어떻게 놀리는지도 알고?"
"키 작은 땅딸보 맥주병.."
그 말을 들은 사서 선생님은 즐거운 듯 미소를 만개하셨다.
"우리들은 과거와 다른 시대를 살고 있어. 과학 선생님의 외모가 다른 것으로 차별할 수 없는 시대란다. 외모는 누군가의 개성일 뿐. 외견은 누군가의 특징일 뿐. 그 모든 게 너를 결정하지는 않아."
"하지만 저는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어요."
"학교라는 공간은 작은 사회라고 많이들 얘기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려. 작다는 부분에선 이해할 수 있지만 사회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 학교는 그저 작은 울타리 같은 것일 뿐이야. 너희들을 둘러싸고 보호하고, 바깥에 대해 알려주는 울타리란다. 꼭 이 작은 울타리 안에서만 네 친구를 찾을 필요가 있을까?"
풀 죽은 어린 내 등을 쓰다듬으며, 선생님은 짠 하고 등 뒤에서 사탕을 꺼내곤 하셨다. 그것을 받아 입 안에 굴리면서 사탕이 주는 단 맛에 기분을 풀어내면 선생님은 웃으며 자신의 일에 집중을 하곤 하셨다.
"선생님."
"왜 그러니?"
"그럼...이 학교 바깥에는 저와 친구가 되어줄 사람이 많을까요?"
"물론."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요?"
그 물음에 선생님은 천천히, 입을 떼며 얘기했다.
"하고자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단다."
눈을 꿰뚫는 것만 같은 섬광이 나를 찔렀다. 그 빛의 너머에 있는 윤곽을 볼 수는 없었다. 어둠으로 가득했던 공간을 마치 거대한 빛이 자신의 존재감을 자랑하듯 빛을 내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 빛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온 몸에 스며들어 내 숨을 가쁘게 만들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만한 행복감이 온 몸을 채웠다. 큰 웃음을 터트리며 나는 앞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숨이 차지 않았다. 계속, 계속, 달리면서 그 끝을 향해 뛰어갔다.
- 고마워. 역시 너야!
- 너 덕분에 해낼 수 있었어.
- 뭐래. 너 없으면 안 됐을 거야.
수많은 인정과 축하, 친밀한 표현들과 함께 나는 한참을 앞으로 내달렸다. 점점 숨은 가빠져왔고, 이제 앞에 보이는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행복하기만 했다. 누군가에게 내게 감사를 표현하고, 누군가와 친교를 나누고 있다. 그 감각이 주는 만족감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미친듯이 내달렸다.
"의념 각성자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오랜 시간 각성자를 다뤄왔다는 의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그래프들을 보며 말했다.
"아드님은...훌륭한 각성자가 되실 것 같습니다. 보통의 의념 각성자는 각성 직후 건강으로 대표되는 능력의 판도가 D에서 B의 사이에 결정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능력치가 평균 이상으로 그래프가 형성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의사로써는.. 이런 말씀을 드리지 않습니다만."
의사는 나를 바라보곤, 신기한 듯 말을 이었다.
" 기적의 세대로 대표되는 3세대 주축 각성자. 그 중 악식惡食 최경호가 아드님과 같은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감히 예측하자면.. 아드님은 워리어로 대표되는 가디언으로써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보이시는군요. 축하드립니다."
그 말은 들은 부모님은 감격스러운 듯,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어쩌면 저희 병원에선 미래의 영웅을 본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그 말씀은..?"
"아마 곧 스카우터의 방문을 염두에 두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내 팔을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리셨다. 누구보다 아들의 다름을 걱정했던 어머니였으니까. 아들이 어떻게 될까 걱정하곤 하셨으니까. 그런 아들이 인류 최고의 방패인 가디언의 자질을 지니고 있다면, 어느 부모가 안도하지 않을까.
그리고 의사의 예상은 빠르게 적중했다.
"Здравствуйте(안녕하세요). 태명진 씨. 맞으십니까? 저는 러시아 이바노 아카데미의 스카우트 책임자 이바노프 이사예프입니다. 피차 제가 무슨 말을 할 지 알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감에 찬 표현으로 내게 말했다.
"이바노 아카데미로 오십시오. 최고의 가디언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러시아의 붉은 곰, 예카르 비토보르비츠의 모든 노하우와 기술을 받아들여 만들어진 저희 이바노 아카데미는 감히 말하건데 당신과 같은 뛰어난 워리어의 자질을 가진 이들을 누구보다 바라고 있습니다."
한 장의 명함을 내게 내밀며 그는 고개를 숙였다.
"처음부터 저희만 의견을 표현한다면 비교하실 수도 없겠죠. 아마 곧 다른 스카우터들 역시 명진 씨를 찾을겁니다. 그 날이 오고 나면 오늘의 저를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저. 이바노프 이사예프는 누구보다 먼저 당신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다른 어느 아카데미와 비교하더라도 당신을 최고의 가디언으로 키워낼 수 있단 점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처음이었다. 선생님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날 인정하고, 나에게 자질이 있다고 한 것은.
명함을 품에 넣은 채로 나는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며 고민했다. 나는, 훌륭한 가디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받고, 환호받는 가디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언제나 운명은 순탄한 길을 바라지 않는다.
불과 물 속에서 더 나에게 단단해지라는 듯. 시련은 나도 예상치 못할 타이밍에 숨 아래까지 밀려들었다.
- 캡틴 - 현준혁(두 번의 배신)(113어장)
- 평탄히 풀려가는 듯하던 집에 불을 붙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었다.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내게 과자 같은 것을 사주며 흐뭇해하던 내 삼촌이 집을 무너트렸다. 미친 테러리스트 집단에 가담해선 동탄을 날려버리려 했다더라.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말도 되지 않는 거짓말이라 했다. 학교에서 보았던 열망자의 기록은 비틀린 신앙과 믿음으로 미치면 미쳤지, 절대 삼촌처럼 따스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날로 우리 집은 크게 휘청거렸다. 자신의 동생이 열망자였단 사실을 안 어머니는 혼절해 쓰러졌고, 그 기회를 노린 수많은 경쟁 길드들은 아버지마저 의심한단 이유로 당시 확실히 굳히지 못했던 우리 길드에 수많은 돌을 던져댔더란다. 어릴 적, 그래도 자주 웃어주며 웃음 많던 우리 아버지는 점점 웃음기를 잃어갔다.
아버지가 바빠지고, 어머니가 생기를 잃어가면서 나는 자연히 아버지에게서 형을 향해 눈을 많이 돌리게 되었다. 형은 그때에도, 내 어린 생각을 뒤져보더라도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 중 하나였다. 아홉 살에 의념을 각성, 열세 살에는 일반적인 의념 각성자라면 불가능할 10레벨을 넘었으니까 자연히 나는 형이 길드를 이을 거라 생각했다.
주변 어른들은 나에게 말하곤 했다.
“ 준혁이는 똑똑하니까. 나중에 형을 많이 도와줘야겠네. ”
당연히 형이 길드를 이을 것을 확신하는 듯한 다른 어른들의 말에 답했다.
“ 네! 언젠가 저는, 형을 도와서 북해길드를 세계적인 길드로 만들 거예요!”
그 어린 시절에는 나는 삼촌보다도, 가디언들이 미웠다. 누구보다 강한 아버지였지만 가디언들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만 했고, 열망자로 밝혀진 삼촌을 구속한 것도 가디언이었다. 세간에서는 가디언을 향해 이 시대의 영웅이라고, 이 세계가 만든 위대한 산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게는 달랐다. 누구보다 강했던 내 아버지를 고개 숙이게 만들었고, 내 어머니를 쓰러지게 만들었다. 그 어린 마음에 쌓인 증오는 쉽게 풀리지 않았는지 내 마음 속 증오는 점점 커져갔다.
헌터가, 가디언을 뛰어넘게 만들겠다.
그 꿈이 생겼던 것도 그 시절의 이야기였다. 나는 자주 형에게 그런 이야길 하곤 했다. 형이 길드장이 되고, 내가 참모가 되어서 북해 길드를 최고로 만들자고. 그리고 그 뒤에 헌터를, 헌터가 가디언을 뛰어넘는 존재가 되게 하자고. 그러면 형은 내 머리를 차분히 쓰다듬으며 웃음을 짓곤 했다. 그 미소가 나는 형의 긍정인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그 미소가 긍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형의 열 여섯 살 생일 때였다.
*
“ 가디언이 되겠습니다. ”
재석은 덤덤하게 말을 뱉었다. 그 행동에는 조금의 고민도, 망설임도 없었다. 단지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니 너희들은 그렇게 알면 된다는 통보에 가까웠다.
“ 삼년 전 스카우터를 만났습니다. 제게 가디언의 자격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뛰어난 가디언이 될 수 있을 거라고요. ”
그래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 말한 재석은 말없이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봤다. 현중석은 아들의 말을 듣고도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무언의 대답이었지만 더없이 두 사람에게 어울리는 표현이기도 했다. 현재석이 바란 것은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길 바란 것이었고 중석은 그 결정에 대답할 자격이 없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그렇게 깨졌다.
그러나 그 대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한 명. 그 자리에 있었다. 준혁은 자신의 형을 바라봤다. 눈동자는 어디에 둬야 좋을지 모르도록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는 웃지 않는 자신의 형을 향했었고, 하나는 그런 형을 말리지 않는 아버지에게로 향했고, 하나는 그 숨 막히는 분위기에 어린 아이가 견디지 못해 겁을 먹어 깔리려 했다.
“ 그만. ”
그러나 어린 준혁의 울먹임에도 중석은 더 듣지 않겠다는 듯 재석을 바라봤다. 두 무표정이 허공에 얽혔다. 그는 재석에게 눈빛으로 물었다. 그러나 재석은 그 질문을 매몰차게 내쳤다.
“ 청월고교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
일 년 느린 입학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 분명했지만 그 시절의 준혁이 알아내긴 힘들었다. 재석의 말을 들은 중석이 느릿하게 서류로 시선을 옮기며 입을 뗐다.
“ 창은 들고 갈테냐. ”
“ 예. ”
“ 이유는? "
" 연을 끊길 바라신다면 그리 하겠습니다. “
그 말에 중석은 힘없이 고갤 끄덕였다. 허락이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었다는 듯 재석은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갔다.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준혁이 따랐다.
“ 형, 형, 형!! "
동생의 다급한 부름에 재석은 고개를 돌렸다. 아까 보여주었던 표정과는 달리, 준혁에게 익숙한 웃음이었다. 역시 형은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이건 열여섯 살 생일을 맞아 형과 아버지가 친 장난같은 것이었을 거다. 조금만 생각한다면 두 사람 다 장난을 칠 만한 사람들이 아니란 것을 알 법도 한데도 준혁은 그렇게 믿었다. 어린 준혁의 생각은 그 이상에서 더 이상 고민하길 바라지 않았다.
“ 가디언이 된다는 거. 거짓말이지? 응? "
그래서 준혁은 더 힘을 다해 형에게 물었다. 웃으며 평소처럼 ‘많이 놀랐지?’ 하고 형이 대답해줄 거라 믿었다. 그러나 형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준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 형이 없어도 부모님 말 잘 들어야 한다? "
그 때의 충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더라.
어린 준혁에게는 인생의 여유가 없었다.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게으름과, 나태함을 알 시간이 없었다. 기억의 나태와 게으름은 사람을 충격에서 도피하고 수습할 수 있게 만든다. 지금의 고통과 충격을 잠시 내려두고 지나가며 수습할 수 있도록.
그러나 어린 아이에게 그만한 여유와 게으름과 나태를 알 시간이 있었을까. 아직 준혁은 한참을 내달리고 있었다. 자신의 형과 함께, 가디언을 이긴다. 최고의 헌터가 되겠다. 그 목적으로 달려오던 어린 준혁은 그날 무너졌다. 누구보다 믿었던 누군가가 자신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단 것. 그것이 준혁을 무너지게 했다.
그리고 그 날 밤, 준혁은 눈이 멀 것만 같은 새하얀 빛을 보았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고, 저 끝없는 길을 향해 내달릴 수 있을 것이라는 만족감, 충족감, 우월감. 그 모든 것들이 몸을 세차게 충동질했다. 한참을, 그 끝모를 어딘가를 향해 내달리면서 준혁은 생각했다. 능력 있는 이들을 자신의 아래에 두고 자신이 그 위에 서서 자신의 목표를 이루게 하겠다고.
의념을 각성한 날 아이의 얼굴에 생겼던 수많은 눈물 자국과 붉게 달아오른 몸은 의념이란 기적적인 힘에 의해 다음 날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누구도 그가 절망했단 사실을, 첫 배신 이상으로 상처를 받았단 사실을 숨겨주려는 듯 말이다.
- 베로니카 광폭화
베로니카는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존재하는 물체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에 따라 어느 정도의 점도를 지니기도 하고, 묽기도 하고 연하기도 하며 때때론 차갑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론 온기를 느낄 정도의 온도를 지닌 액체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이 액체가 노출되는 경우는 이를 보호하고 있는 표피가 긁혀 그 표피의 안을 타고다니던 관이 다쳤을 때, 액체는 노출됩니다.
또한, 베로니카는 이 액체가 무슨 색을 지니고 있는지. 또 맘에 들지 않을 정도로 선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피, 피, 피
눈이 시릴 만큼 붉은, 불타오르는 것 같은, 내 모든 것이 집어 삼켜질 것만 같은.
피, 피, 피!
피!!!
" ...헤. "
베로니카는 낮은 웃음을 짓습니다.
두 손에는 어느새부터 구불구불한 두 자루 단검이 자릴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을 쥔 채로 베로니카는 천천히 걸음을 내딛습니다.
순식간에 몇 걸음 이상을 뛰어넘어, 상대방의 목 아래에 검을 밀어넣습니다. 급히 상대가 반응하기 위해 단검을 들어올리지만
" 난 붉은 색이 싫어요. "
남은 하나의 단검으로 손목을 쳐내고 그대로 상대의 목 위에 단검을 박아넣습니다.
불안감을 느낀 상대가 급히 떨어지지만 목 위에는 선명한 붉은 혈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눈동자는 여전히 가늘게 떨리고, 손은 이례없이 바르르 떨리는 것이 눈에 들어오지만.
입은 어느 때보다 진한, 기쁨을 연기하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파티원 베로니카가 광폭화 상태에 돌입합니다!
여전히 핏방울은 구불구불한 단검의 면을 타고 떨어집니다.
전투의 흥분 때문인지 수축된 채 떨리는 동공이 눈에 들어옵니다. 베로니카는 천천히 걸음을 내딛습니다.
단검을 쥔 손이 허공 위에서 마구 떨리고 있습니다. 떨어져야 하는데, 내려가야 하는데, 아직도 본능은 더 많은 분노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니다.
내가 이렇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결국 죽여야 하는데?
베로니카의 길지 않은 생각은 그곳까지 도달하고, 눈동자에 비친 빈센트를 향해 웃습니다.
사랑하니까.
잃기 전에 먼저 죽이면, 사랑하는 거니까.
나만 나쁠 수 있어.
- 잭 루소/천자 커미션
- 베로니카 연성 - 빈센트도 지키는 규칙
- 빈센트는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부류였다. 평소에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생각하기로는 그랬다.
"누가 여기 쓰레기를 버렸네."
빈센트는 쓰레기를 주워서, 10m 거리에 떨어져 있던 쓰레기통으로 휙 던졌다. 쓰레기는 보기 좋게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갔고, 재미가 들린 빈센트는 옆에 놓여있던 깡통을 발로 차서 올리고, 구두로 걷어차서 쓰레기통에 또 넣었다. 2연속. 의념을 각성한 이래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
빈센트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쓰레기를 보며, 그가 버렸던 다른 '쓰레기'들을 생각했다. 이 희망 없는 세상에서 악을 퍼뜨리던 이들은, 빈센트라는 선의 탈을 쓴 악을 만나며 하나 둘 살아갈 권리를 박탈당했다. 간단했다. 손가락 끝에서 피어오른 불꽃, 의념으로 일어난 거대한 폭발, 잿거름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신체.
그랬다. 빈센트는 일상의 규칙(바깥에 나갈 때는 속옷이랑 옷 입기, 아무데서나 대소변 보지 말기, 사람 얼굴에 침 뱉지 말기 등)은 그 필요성에 동의했고, 잘 지켰다. 하지만 진정한 인간이라면 지켜야 할 규칙(사람을 막 죽이지 말기)은 절대 지키지 않았다. 옛날 슈퍼 히어로들이 정의를 설파하며, 범죄자를 죽이는 것을 선을 넘은 짓으로 간주하던 것을 비웃었다. 아무리 범죄자라도 생명권은 존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의념범죄자를 본 적 없는 옛날 철학자들의 속 편한 소아병적인 헛소리로 치부했다.
사람을 죽이는 건 재밌다. 이 세계에는 많은 인간이 있고, 너무 많다 보니 개중에는 죽여도 되는 사람이 많고, 또 반드시 죽여야 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건 이 세상이 빈센트에게 내려준 축복이었고, 빈센트는 '윤리'네 '상식'이네 같은 귀찮은 개념 때문에 세상의 축복을 걷어찰 생각은 없었다.
"그... 빈센트."
뒤에서 들려오는 베로니카의 목소리. 그리고 빈센트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인간이 지난 수천년간 쌓아올린 소중한 규칙을 다 걷어치운 빈센트가 유일하게 지키는 중요한 규칙을 떠올렸다. 하지만 베로니카의 마음을 생각해, 굳이 입 밖으로 내진 않고 돌아섰다.
"베레니케. 왜 그래?"
빈센트의 표정은 옛날처럼 차갑고 날카롭지는 않았다.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건 평범한 이들에게 이야기할 때의 사무적인 미소였다. 의례적으로 입꼬리를 올렸을 뿐 아무런 감정도 없었고, 베로니카도 그 표정을 읽고는 머쓱하게 웃었다. 베로니카는 양 손을 등 뒤로 모으고 우물쭈물했다. 정말로 아이 같은 모습이었고, 순수해보였다. 하지만 빈센트는, 저 소녀가 저지를 수 있는 일을 알고 있었다.
대학살.
그것도, 수백명이 타고 내리는 이 지하철에서 더욱 훌륭하게 해낼 수 있는 것.
분명 혼자서 어디 좀 가겠다고 했는데, 질기게도 따라붙었다. 그것도 유동인구가 적은 공터도 아니고 지하철에서! 빈센트가 다문 입술 속에서 이빨이 갈렸다. 빈센트는 자신의 규칙을 되뇌었다.
베로니카가 피 보게 하지 말기. 베로니카가 피 보게 하지 말기. 베로니카가 피 보게 하지 말기. 베로니카가 피 보게 하지 말기. 베로니카가 피 보게 하지 말기. 베로니카가 피 보게 하지 말기. 베로니카가 피 보게 하지 말기. 베로니카가 피 보게 하지 말기. 베로니카가 피 보게 하지 말기. 베로니카가 피 보게 하지 말기. 베로니카가 피 보게 하지 말기. 베로니카가 피 보게 하지 말기. 베로니카가 피 보게 하지 말기. 베로니카가 피 보게 하지 말기!
"...그... 호기심에 응모한 게 당첨되어서... 관광지 2인용 패키지 티켓을 받았는데, 그... 같이..."
"...그래? 운이 좋네."
빈센트는 티켓을 받았다. 아무러 문제도 없었다. 시민들 사이에서 싸움이 나지도 않았고, 아이가 막 뛰어다니다가 다치지도 않았다. 그냥 잘 받아주면 됐다. 베로니카의 말에 일단 알겠다고 말하고, 그녀를 데리고 지하철 밖으로 나가서 사람이 적은 공터로 가면 된다. 그러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무도 죽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
빈센트는 멍청한 소리를 내며, 티켓의 모서리에 베인 자신의 손가락을 보았다. 빈센트가 곧 몰아닥칠 대재앙을 예견하고 굳어버린 사이, 베로니카가 빈센트의 손을 살폈다.
"빈센트. 왜 그래요. 다쳤어요? 아..."
빈센트는 이 세상의 모두를 싫어하는 시간을 가졌다.
칼도 아니고 고작 종이 따위에 베이는 피부가 싫었다. 고작 종이에 베였을 뿐인데 좋다고 송송 피어오르는 핏방울이 싫었다. 그걸 보고 미쳐 날뛸 베로니카가 싫었다. 쓸데없이 사람이 많은 지하철이 싫었다. 감옥에 잘 가둬야 할 죄수를 떠넘긴 UGN이 싫었다. 그걸 막지 않고 좋다고 부채질한 UHN이 싫었다.
그리고 이 세상이 싫었다.
하지만 빈센트는 이 와중에, 사람들은 싫어하지 않았다. 세상이 싫어도 그들은 싫어하지 않았다. 빈센트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멍청이들을 제외하고.
그렇기에 빈센트는, 테러리스트 역할을 자처하기로 했다.
"불꽃놀이다!"
빈센트가 손을 튕기자, 지하철 주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무인 편의점이 화염에 휩싸이고, 만만한 기둥이 박살나며 벽돌을 쏟았다.
그 다음은, 수많은 이들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이것이 1단계. 빈센트는 바로 다음 단계를 밟았다.
"히끅!"
"베로니카. 날 봐. 버텨. 최대한 버텨."
베로니카의 양 어깨를 붙잡고, 눈을 맞췄다. 두려웠다. 두려워서 미칠 것 같았다. 저 붉은 눈에 살기가 보였다. 베로니카의 일그러지는 표정이 말하는 바는 명백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베로니카는 이 주변의 모두를 죽일 것이다. 하지만 빈센트는 두려워할 권리가 없었다. 두렵다고 도망칠 권리도 없었다. 이를 악물고, 베로니카에게 속삭인다.
"잘 생각해. 여기서 날뛰면, 너가 아니라 나도 죽는 거야. 진짜야. 이건..."
베로니카가 빈센트의 말을 끊었다.
아랫배에 서늘한 통증이 느껴졌다. 빈센트는 굳이 내려다보지 않았다. 벌벌 떨리는 베로니카의 눈동자로 알았으니까.
"빈센트! 빈센트! 제발 이러지 마요!"
"아니! 이래야 해! 커윽!"
지금 이게 몇 시간째일까? 몇 시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직도 도망 못 간 민간인을 꽉 껴안았다. 그리고 민간인을 찔렀어야 할 칼은 빈센트의 내장과 척추를 헤집었다.
속이 뒤집어진다. 세상은 회색빛으로 변하고, 두 다리는 베로니카의 무거운 살의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질 것 같다. 하지만 빈센트는 버텼다.
"제발! 빈센트! 도망쳐요! 당신을 죽이기는 싫어요!"
베로니카가 울음을 터뜨렸다. 양 손에 묻은 그녀의 피는 전부 빈센트의 것이었다. 저렇게 흠뻑 적시고도 내가 서 있을 수 있다니, 내 몸에 피가 많구나.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웃었다. 웃음이 나왔다. 정말로 두려운데, 이 상황에서 죽는 건 빈센트인데. 빈센트는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웃겼다. 사냥하는 베로니카가 두려워서 울부짖고, 사냥당하는 빈센트는 머리가 제대로 안 돌아가서 내 몸에 피가 많구나 따위의 생각이나 하고 있는 게 너무 웃겼다.
"...하."
쿨럭! 빈센트는 핏물에 젖은 폐 조각을 뱉어내고, 웃음을 계속했다.
"하. 하하... 하하하하!!!!"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는 피가 줄줄 흐르는 상처를 불로 지졌다. 베로니카를 공격해도 모자를 판에 제 몸에 불이나 질러? 그리고 그게 웃겨서 막 웃어? 어차피 베로니카가 또 찌를 텐데? 빈센트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인간이었다.
"하하... 베로니카! 베로니카! 지금 이 상황 너무 재밌.. 끄어윽!"
베로니카의 칼 대신 주먹이 명치에 꽂혔다. 오우, 이건 좀 아프다. 빈센트는 그대로 쓰러졌다. 그래도 빈센트는 웃었다. 웃느라 바빠서 숨을 못 쉴 지경인데도, 큰 소리로 웃을 때마다 폐에서 바람 빠지는 풍선 소리가 났지만, 그냥 웃었다.
"빈센트! 당신 왜 이래요! 무섭다구요!"
"베...쿨럭...니카!! 사돈 남 말 한다는... 흐어... 흐어... 격언 알아?!"
"몰라요... 모른다구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베로니카는 통곡했다. 알 수 없는 말들만 줄줄이 늘어놓았지만, 대충 뭘 말하고 싶은 건지는 알 수 있었다. 미안하다는 이야기 같았다.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사랑하는데 찔러서 미안하다고. 진심이 아니라고. 정말로 미안하다고. 빈센트는 베로니카와 눈을 맞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러니 고마웠다. 가디언들이 올 때까지, 이런식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지껄여준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나는... 빈센트를... 으... 흐으..."
빈센트는 손을 들었다. 그의 손은 족쇄가 걸린 것처럼 무거웠지만, 어떻게든 학살을 막아야 한다는 의무감이 빈센트를 거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뺨을 매만지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베로니카. 패키지 고마워. 그러니까... 조금만..."
"여보세요. 거기 경찰이죠? 살려주세요. 여기 테러리스트가... 테러리스트가...!"
이런 썅.
분위기 잡고 시간을 벌려던 계획이 망가졌다. 빈센트는 이 상황에 눈치 없이 산통을 깬 민간인을 노려보았다. 저 미친 놈 때문에 다 죽게 생겼네.
"...다녀올게요."
"베로니카? 베로니카!"
베로니카는 양 손에 칼을 들고, 민간인에게 다가갔다. 한 번에 한 걸음씩, 느리지만 확실하게.
"어, 어어... 오지 마! 오지 마!!!!"
압도적인 공포 앞에 다리가 얼어붙었다. 눈 앞에 서 있는 살인마가 너무 무서운 나머지, 공포에 질린 염소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죽음만 기다리고 있었다. 저걸 죽이는 건 너무나도 쉬울 게다. 베로니카는 새끼손가락 하나만으로 저 사람을 죽일 자신이 있었다. 죽인다. 그냥 죽인다. 다 죽인다. 베로니카의 마음 속에서 빈센트가 사라지고, 프리 핸드가 주입한 무한한 살해충동이 쏟아진다. 초커의 고통 따위는 베로니카를 막을 수 없었다.
"아... 으아... 으아아!!!"
베로니카가 칼을 치켜들었다. 이 민간인을 살려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빈센트가 그랬던 것처럼, 무고한 이나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악인에게는 고통 없는 죽음을 선물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경동맥을 노리는 게 완벽하다. 그리고 칼을 내려치려는 순간
"꺄악?!"
발목에서 격통이 느껴졌다. 베로니카가 움찔하고, 민간인은 난데없는 바람에 저 멀리 밀려났다.
"이... 이게... 무슨..."
아래를 내려다보면, 온 몸이 피에 젖은 빈센트가 보였다. 그것도 그냥 빈센트가 아니었다.
무려 베로니카의 흰 다리를 의념으로 강화한 턱으로 꽉 물어서 근육과 지방조직에 이빨 자국을 남기고, 양 팔을 족쇄 삼아 다리를 휘감고, 자투리 망념으로 바람 마도를 구성해 민간인을 멀리 날려보낸 정신나간 빈센트였다. 빈센트는 베로니카를 올려보다가, 앙다문 이빨을 뺐다. 그리고 웃었다.
"마도로는 생채기도 못 냈는데, 이빨이 더 효과가 좋네?"
자신의 다리를 문자 그대로 물고 늘어진 빈센트를 보고, 베로니카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동경하던 빈센트를 망가뜨린 것에 대한 죄책감, 혹시 저것이 빈센트의 본성이 아닐까 경멸하는 낙심.
그 와중에 빈센트는 죽음을 기다렸다. 이제 민간인들이 죽더라도, 수십 수백명이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면 UHN도 빈센트가 할 일은 다 했다고 인정해주겠지. 빈센트가 원하는 화끈하고 판이 큰 죽음은 아니었지만, "사람 다리 개처럼 물어뜯다가 개처럼 죽은 놈"이라고 남는 죽음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은 빈센트에게 내려야 할 축복이 남아있었는지, 그의 죽음을 유예했다.
"빈센트 이 미친 놈은 다른 데도 아니고 여기서 이 년한테 피를 보여줬냐?"
깡!
베로니카의 정수리에 몽둥이가 내리꽂히고, 베로니카가 빈센트보다 먼저 쓰러졌다.
그 일 이후, 근 한 달 동안 빈센트와 베로니카는 말도 섞지 않았다. 두 달 동안은 같이 다니지도 않았고, 세 달 동안은 겸상도 안 했다.
그래도, 빈센트의 상처가 아물어가고, 미리내고에 입학할 때쯤은 그럭저럭 관계가 괜찮아졌다고 한다.
뭐, 그렇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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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입니다...
베로니카가 피 봐버려가지고 미치면 빈센트가 자기가 대신 맞는 한이 있어도 민간인 지킬거같고
베로니카는 빈센트 찌르면 엉엉 울면서도 해적 룰렛 게임 하는것마냥 빈센트 영혼이 저세상으로 뿅 하고 튀어오를 때까지 찌를거같아요
끝.
- 앨랠래
- 빈센트와 베로니카, 두 광인을 제외한 모든 것이 평범한 도시의 시간마저 평범한 대낮이었다. 하늘에 흰 몸을 뉘여 둥둥 떠다니는 구름도, 침묵한 채 달리는 자동차도. 모든 것이 평범했다.자동차가 온다. 약속이라도 한듯, 두 발짝 뒤로. 어디선가 시비가 붙었다. 자연스럽게, 바윗돌을 만난 계곡물처럼 돌아간다. 당연했다.
둘은 말려드는 모든 것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들에게 더럽고 끔찍한 파멸을 안겼으니까. 호기심에 지시했던 살인 명령이 대학살극으로 번지는 것을 보았던 빈센트는, 특히 더 주의했다.
관심을 가지지 말 것. 우범 지역을 피할 것. 자동차가 빠르게 지나다니는 곳을 피할 것. 그리고 다시, 제일 중요한 것. 관심을 가지지 말 것.빈센트는 그것을 되뇌이며 걸어가다가, 베로니카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서 뒤를 돌아보았다. 설마 하며 철렁한 가슴은, 평범하게 진열코너를 바라보는 베로니카를 마주하자 다시 돌아왔다.
휴우! 안도한 빈센트는 베로니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무엇에 꽂혔는지는 몰라도, 이런 곳에 오래 있어봤자 좋을 일은 없으니. 다가가서, 베로니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미확인동물 관련 작품도 취급
"빈센트?"
아기자기한 동물 그림 여러개가 모여 있었다. 몸을 왼쪽으로 기울인 채 입을 크게 벌리고 "푸하하" 웃는 다람쥐, 손을 공손하게 모은 채 웃으며 "정말고마워요"라고 인사하는 햄스터, 익막을 활짝 펼쳐서 널찍해진 채 날아오며 "안아줘요"라고 부탁하는 날다람쥐, 온갖 동물들이 포근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베로니카는 빈센트를 뒤돌아보더니, 웃으면서 고개를 바로 했다. 그녀의 시선은, 이 포근한 세상에서 조금 엉뚱한 노란 도마뱀을 향했다.
앨랠래.
등이 노랗고, 배 부분이 하얀 도마뱀이 혀를 낼름거리며 "앨랠래"라고 말하는 그림이었다. 빈센트는 그것을 보고, 다른 것들과 비교하면 좀 뚱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베로니카가 그 도마뱀에 왜 저렇게 꽂혔는지 알 수 없었다. 베로니카가 유년기에 이것저것 박탈당한 상태라도, 저런 것에 붙잡혀서 계속 가만히 있을 사람은 아니다.
"베로니카. 그만 가자."
"...이 앨랠래. 빈센트를 정말 닮았어요."
참 갑작스럽다. 이런 거에 눈이 끌리는 것도 그렇고, 저걸 보고 빈센트를 떠올리는 것도 그렇고. 빈센트는 다시 한번, 그 앨랠래 도마뱀을 바라보았다. 저게 빈센트와 닮은 구석이 있나? 대체 어디가 말인가? 빈센트는 피부가 노랗지도 않았고, 혓바닥이 저렇게 길지도 않았고, 네 발로 기어다니지도 않았으며... 결정적으로...
"난 앨랠래 같은 말은 하지 않는데. 저런 말을 할 상황이면 그냥 입을 다물 거야."
"아뇨. 그냥... 표정이 닮았어요. 그리고... 하는 행동도."
진열대를 가로막은 유리 벽에, 베로니카의 흰 손바닥이 닿았다. 베로니카의 사선은, 한 앨랠래도마뱀이 그려진 그림으로 향했다. 앨랠래 도마뱀이 (우파루파라고도 불리는) 분홍색 아흘로틀과 함께 있었다. 그 그림을 자세히 보니 일종의 이야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저녁의 등대에서, 아흘로틀이 용기를 내어 "좋아해요."라고 말하고, 앨랠래 도마뱀이 "...앨랠래."라고 고백을 받아들인다. 그 다음에, 좋아해요와 앨랠래가 벚꽃놀이를 가서, 좋아하는 솜사탕을 든 채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밤늦게 감동적인 로맨스 영화를 같이 보면서, 좋아해요 아흘로틀이 감동을 받아서 울고, 앨랠래는 뚱한 표정으로 함께 본다.
"..."
그런 이야기가 왠지 알 것 같았다. 베로니카는, 자신을 저 아흘로틀에, 빈센트를 도마뱀에 투영했다. 물론 저 '좋아해요'는 베로니카처럼 수백명의 사람을 순식간에 학살할 능력도, 의지도 없겠지만... 좋아한다고 말하고, 감성이 풍부한 면이 있는 게 그랬다. 그리고 저 앨랠래 도마뱀은, 차갑다고 느껴질 정도로 무뚝뚝했고, 언제나, 무서울 정도로, 그리고 화날 정도로, 무표정을 유지했다.
"왜 저걸 보고 날 떠올렸는지 알겠네."
"...네."
앨랠래. 앨랠래. 빈센트는 그것을 보다 보니, 퍽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베로니카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안 그래도 정신적으로 불안한 이에게, 정서적 위안이 생긴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 나쁜 일은 아니었으니까. 빈센트는 이 진열대를 놔둔 가게의 간판을 확인했다. 아마 인형가게일 것이라 생각했다. 괜찮은 인형 몇 개에, 귀여운 그림 하나만 사 가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더 굉장한 이름이 붙어있었다.
대한민국 미확인동물학 연구소
"어..."빈센트는 베로니카의 팔목을 잡았다. 어디가 됐던 여기는 일단 벗어나고 싶었다.
미확인동물. 빈센트는 미국에서 그것을 너무나도 많이 봤다. '크립티드'라고도 하고, 미지생물이라고도 하고, 신비생물이라고도 하고. 하지만 빈센트처럼 (윤리는 몰라도) 이성은 똑바로 장착한 이들은, 그것을 '허구의 동물'이라고 제대로 불렀다. 빈센트는 시선을 아래로 내려서, 그 앨랠래와 좋아해요 그림을 자세히 보았다. 그 옆에는... 온갖 이상한 이름이 붙어있었다.
'좋아해요아흘로틀'
'앨랠래왕도마뱀'
"베로니카. 가자."
"빈센트?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빈센트는 이걸 진지하게 믿는 인간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그 인간들 중 하나에 베로니카가 들어간다는 데 이르면 현기증이 났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설명할게. 일단 가자."
개인적으로, 이런 이상한 것에 푹 빠진 미친놈들은 범죄자보다도 더 무서웠다. 최소한 범죄자는 빈센트를 죽이려고 하거나, 빈센트에게 위해를 입혀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재산, 상해 청부, 뒷조사 등)을 이루려는 불법적인 목적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빈센트는 그들에게 쉽게 무력을 쓸 수 있었고, 만약 아동 성범죄자나 스너프 제조범 같은 두발로 걷는 짐승이었다면 산 채로 태워죽여도 경찰이 고맙다고 박수를 치고 유족들이 사례금까지 챙겼다.
하지만 이 사이비들은 아니었다. 새시대 교회, 미확인동물학자, 일루미나티 사냥꾼들은 이상한 인간들, 아무리 나쁘게 불러도 "미친놈"이라는 말이 한계인 치들이었다. 빈센트는 이들을 불로 태우고 싶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하지만 저는..."
"아! 미확인동물 보러 오셨나?!"
기쁨과 환희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옆을 바라보면 쓸데없이 쾌활해보이는 아줌마가, 머리에 이상한 모자를 쓴 채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빈센트가 망했다고 생각하며 이를 악무는 동안, 베로니카는 자신을 반겨주는 사람을 보고 기뻐서 미소를 지었다."네. 여기 동물들이 귀여워서..."
"안에 더 있어요! 두 분만큼 예쁜 거 많아!"
대체 무슨 힘인지, 빈센트와 베로니카는 아줌마에게 붙들려 미확인동물 연구소로 끌려 들어갔다. 안에는... 가게 이름이 그렇지만 않았다면 참 좋았을 것들이 많았다. 한 쪽에는 인형, 반대편 쪽에는 먹이용으로 쓸만한 밀웜 등이 놓여있었다.
하지만, 가게 이름이 그렇기에 거기서 모든 비극이 시작되었다.
"어머, 이건 뭔가요?"
"아, 그건..."
아줌마는 자신의 역작(이자 빈센트를 위한 지적 고문)들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베로니카는 그 선혈처럼 붉은 눈에, 초롱초롱한 빛을 띄우고 경청했다. 빈센트는 남의 말을 잘 듣는 방법이 아니라, 남의 말을 안 듣는 법을 못 배운 걸 후회했다.
"이건 안아줘 쥐에요. 안아주는 걸 너무 좋아해서, 이렇게 사람을 보면 안아달라고 날아들지. 하지만 다들 안아줘요날다람쥐랑 포옹한 걸 잊으려고 한다우."
"정말요? 저도 이런 날다람쥐는 꼭 안아보고 싶어요!"
"아, 이 친구는 잘했어요달팽이인데..."
"이 앨랠래랑 좋아해요는 특히 귀여워요."좋아해요는 목 양쪽에 막대처럼 길쭉하게 돋아난 아가미를 펼친 채, 입을 벌려 행복하게 웃으며, 눈 앞에 있는 모두에게 다시 한번 말했다.
"아! 이건 나도 직접 봤지! 앨랠래왕도마뱀, 좋아해요아흘로틀. 둘 다 귀엽지만 나름의 생태가 있답니다. 앨랠래왕도마뱀은 뱀목 앨랠래도마뱀붙이과에 속하는 몸길이 50cm의 미확인동물인데, 저 얄밉게 내민 혀로 내는 소리가 앨랠래라고 들려서 앨랠래왕도마뱀이라 한답니다."
"와아..."
"좋아해요아흘로틀은 도룡뇽목 점박이도룡뇽과의 동물인데, 이 동물은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는 동물을 만나도 전부 진정시키고 친구가 되는 신기한 친교호르몬을 발산한답니다."
빈센트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고 부던히도 노력했지만, 아줌마와 베로니카는 질문과 답변을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좋아해요아흘로틀은 부러워요."
"어떤 게 말인가요?"
베로니카는 손가락을 맞대고 비비다, 빈센트 쪽을 바라보았다. 신나게 미확인동물학 강의를 듣던 베로니카는, 빈센트를 곁눈질하며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그러면 날 싫어하는 사람이랑, 친구도 될 텐데요."
베로니카는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랑 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했다. 아이스크림도 먹고, 손을 잡고 걸어보고, 배도 같이 타고, 바다도 같이 가보고 싶다고. 아줌마는 진지하게 들어주고 있었지만, 빈센트는 이제 청각으로 고통을 느끼는 단계에 이르고 있었다.
"그이가 좋아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맛은 어떨까요. 제대로 잡아보지도 못했던 손은 거칠까요, 아니면 부드러울까요..."
빈센트는 힐끔 베로니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유난히 슬퍼보였고, 목소리가 눈물에 젖어 있었다. 뭐, 이러면 오히려 좋다. 축제 분위기에 입 닫고 우거지상으로 앉아있는 것보다, 초상집 분위기에 가만히 앉아있는 게 훨씬 쉽고 알맞으니 말이다.
"..."
아줌마가 빈센트를 쳐다보며, 턱짓으로 눈치를 주었다. 찡그린 눈썹은 대체 이 여인에게 뭔 짓을 했냐고 물었고, 치뜬 눈은 빈센트의 의도적인 무관심을 질책했고, 달싹대는 입은 뭐라도 하라고 눈치를 주었다.
"..."
하지만 빈센트는 어깨를 으쓱이는 동작도 안 했다. 빈센트는 베로니카를 책임질 의무는 부여받았지만, 베로니카를 좋아할 의무 따위는 받은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믿을 것 참 많은 시대에 크립티드 같은 이상한 것이나 주워섬기는 미친 인간에게 빈센트의 행동을 강제할 권리도 없었다.
"...아가씨. 그럼 내가 좋아해요 페로몬 좀 줄까?"
"네? 그게... 뭔가요."
아줌마는 이상한 스프레이를 뿌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냄새가 너무 강해서, 옆에 멀찍이 앉은 빈센트도 그 복숭아향을 느낄 수 있었다. 빈센트가 너무 강한 향수 냄새에 얼굴을 찌푸리는 동안, 아줌마는 그 페로몬에 엮인 내력을 말해주었다.
"이 페로몬 덕분에 좋아해요가 다른 사람이랑 친해질 수 있었답니다. 그러니까..."
아줌마는 빈센트의 몸에도 스프레이를 뿌렸다. 기분이 나쁠 정도의 과한 냄새가 뇌를 찌르는 느낌이었다.
"이게 우리 연구소 최고 효자상품이랍니다. 좋아해요를 다들 좋아하더란 말이지..."
빈센트는 눈을 감고, 그 미확인동물학자 아줌마가 떠들게 두었다. 베로니카도 떠들건 말건, 어쨌든 저런 허무맹랑한 것을 주워섬기는 베로니카가, 피를 보고 미쳐서 다 죽여버리겠다고 날뛰는 베로니카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 끝에, 빈센트를 돌아보면서, 빈센트까지 죽여서 이 참극에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겠다고 다가오는 베로니카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
"..."
어느새 시간이 참 많이도 지났다. 이야기는 끊길 듯 말 듯 하면서도 계속 이어졌지만, 점점 끝이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빈센트는 기지개를 켜서 찌뿌둥한 느낌을 쫓아내고, 베로니카는 온갖 선물을 다 받았다. 좋아해요 인형, 앨랠래 인형, 좋아해요의 페로몬 스프레이. 그 외 기타등등. 베로니카는 이 많은 것들을 그냥 받아도 되는지 물었고, 아줌마는 사람 좋게 웃었다.
"이걸 제가 다 받아도 될지..."
"하하. 물론이죠. 아가씨. 요즘 내 이야기 들어주는 젊은이가 참 오랜만이야."
"...후우..."
빈센트는 입을 꽉 다문 채로 악문 이를 숨기려고 했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은 숨길 수 없었고, 그 한숨은 분위기를 차갑게 얼렸다.
"..."
"...저... 이만 가볼게요."
"그래요. 가 봐요. 다음번에도 꼭 오고."
그 말이 나오자, 빈센트는 속으로 안도하며 먼저 일어났다. 빈센트는 먼저 바깥으로 나가고, 베로니카가 그 뒤를 따랐다. 이렇게, 딱히 관심도 없었는데 베로니카 때문에 또 엮인 귀찮은 일이 끝났다.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집에 들어가서 잠이나 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따라온 베로니카가 빈센트의 생각을 방해했다.
"저기, 빈센트..."
"...왜."
베로니카는 빠른 걸음으로 빈센트 앞을 막아섰다. 또 시작이다. 빈센트는 베로니카보다 훨씬 낮은 자신의 레벨과, 훨씬 약한 신속을 원망하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 손에 좋아해요, 한 손에 앨랠래를 든 그녀는 수줍게 빈센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잠깐 걸을까요?"
"아까 전부터 계속 걷고 있었잖아."
"아, 하하..."
베로니카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빈센트의 옆에 따라붙었다. 그리고, 남들은 전혀 관심없는 것을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줄줄 읊어대는 버릇이 옮았는지, 빈센트를 또다시 고통스럽게 만들기 시작했다.
"이 앨랠래왕도마뱀, 언제 봐도 귀여워요. 어떤 상황에도 앨랠래라고 말한다는게... 정말로 엉뚱하잖아요."
"...그래. 그렇네."
"그리고 좋아해요는... 정말로 모두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모두가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죠. 그리고 더 재밌는 건, 무뚝뚝한 앨랠래도 좋아해요는 좋아하는 거에요."
"...그래."
길고 쓸데없는 설명. "그렇구나"라는 짧은 대답, 그것이 계속 반복되었다. 분명히 길게 말하는 게 힘들고, 짧게 일축하는 게 쉬워야 했건만, 빈센트는 점점 지쳐갔고, 베로니카는 전혀 지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빈센트는 베로니카가 좋아해요와 앨랠래의 관계를 현실에 투영하려고 하자...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누군가의 좋아해요가 될 수 있을까, 제 좋아해요는, 제 옆에 있을 앨랠래의 사랑이 될 수 있을까..."
"저기, 베로니카. 그동안 많이 떠들었으니까 내가 좀 말해도 될까?"
"아, 네."
베로니카는 빈센트의 말대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멋쩍은 웃음은 얼굴에서 가시지 않아, 그 상태 그대로 빈센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빈센트는 웃는 얼굴에 침 뱉는 것 같아 기분이 영 좋지 않았지만, 상대는 무려 가디언 아카데미 졸업 예정자를 두 명이나 살해한 미친 범죄자임을 상기하며 말을 꺼냈다.
"솔직히 말할게, 너가 널 좋아해요라 생각하건, 싫어해요라 생각하건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그거 알아? 난 앨랠래가 아니고, 저 멍청하게 생긴 노란 등짝 왕도마뱀도 아냐."
"...네?"
"아니라고. 이걸 굳이 다시 설명하고 싶진 않은데."
짜증 섞인 목소리에, 베로니카의 입꼬리가 내려갔다. 베로니카는 좋아해요 인형과 앨랠래 인형을 꼭 껴안고, 마치 혼나는 소녀처럼 오그라들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구멍 찾은 쥐마냥 먼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갔다.
"하지만... 저는... 이런 게 있으면... 귀엽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 그래서 있어? 분홍색 좋아해요아흘로틀이랑 앨랠래왕도마뱀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거야?"
"자, 잘 모르겠지만...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있으면 좋지 않겠냐. 빈센트는 저 말을 싫어했다. 어떤 진술의 사실과 거짓 여부를, 사실일 때를 가정한 '감정'에 호소해서 어떻게든 증거의 부존재를 덮어버리려는 한심한 시도니까. 그리고 그 한심한 시도가 한심한 인간들에게 너무도 잘 먹혔으니까. 빈센트는 목에 힘을 주고, 말했다.
"그래. 있으면 넌 좋겠지. 그런데, 있으면 좋겠다는 건 증거가 아냐."
빈센트의 무심하던 눈에, 분명한 감정이 담겼다. 베로니카는 붉은 눈에 보이는 감정들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두려워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총칼은 몰라도 말은 뒤로 물러난다고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빈센트는, 베로니카의 가슴에 세 치 혀로 대못을 박았다.
"난 항상 그렇게 생각해. 내 앞에 서 있는 게 가디언 아카데미 학생 2명을 살해하기는커녕 무단횡단 한번 해 본 적조차 없는 준법시민이고, 피를 봐도 미쳐서 날뛰지 않고 그냥 피가 흥건하다고 생각하고 지나가는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네... 네?"
"매일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부정할 필요 없어. 그거랑 완전히 똑같으니까."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나는... 나는..."
베로니카가 훌쩍이는 동안, 빈센트는 UHN 담당자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생각했다.
'잘 지내 봐. 한 쪽은 법의 ㅂ자도 모르는 사적제재 살인마, 나머지 한 쪽은 다른 것도 아니고 가디언 아카데미 졸업예정자 두 명을 죽인 미친년, 끼리끼리 잘 어울리는구만.'
"퍽이나 어울리는군."
빈센트는 혀를 차며 표정을 구겼다. 생각해보면 공통점은 있었다. 빈센트는 범죄자를 태워 죽이는 예비 범죄자고, 베로니카는 가디언 생도를 둘이나 죽인 미친 범죄자였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공통점이 빈센트가 베로니카를 좋아해야 할 이유를 만들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빈센트는 빈센트고, 베로니카는 베로니카였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빈센트! 하지만 저는...!"
그리고 가려는데, 베로니카가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이 빈센트를 붙잡았다.
"당신을 좋아해요. 다른 모든 이들에게 원망받고, 증오를 받더라도, 당신한테는... 관심을 받고 싶어요."
"..."
"옆에 같이 있고 싶어요. 빈센트한테 칭찬도 받아보고 싶고, 같이 손도 잡아보고 싶고... 그럴 수만 있다면, 이 인형들도 당장 버릴게요. 그러니까..."
또 사랑 이야기다. 빈센트는 약해지려는 마음을 '일방적인 고백은 폭력에 불과하다'는 직장내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의 말을 떠올리며 다잡고,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베로니카가 울먹이고 있었지만, 빈센트가 알 바는 아니었다.
"옆에 있잖아. 그것만으로 난 충분히 힘드니까 그 이상은 요구하지 마. 넌 너고, 난 나야. 간단하잖아. 난 널 구원하러 온 천사도 아니고, 이 세상이 너한테 내려준 선물도 아냐. 그냥 나는..."
헉, 베로니카는 그 말에 숨을 죽이고 가만히 섰다. 그리고 빈센트는,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야."
"..."
그렇게 끝났다. 훌쩍이던 베로니카는 울기 시작했다. UHN에게 애 달래주는 짓거리까지 하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었기에, 빈센트는 그녀를 내버려두고 가기로 했다. 어차피 그녀에게, 빈센트를 따라가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었을 테니까.
"...그래요. 그래도... 제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빈센트."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그리고, 빈센트와 베로니카는 여느 때처럼 인적이 드문 곳을 따라 걸어갔다. 시비가 걸린 곳을 피해서,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해서.
"..."
"..."
아까 전보다 더 조용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그만큼 사람도 없고, 만약 일이 났을 때, 죽을 사람도 없으니까. 무고한 사람들이 죽는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면, 좀 험한 길로 가는 건 언제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아까 전에 짜증나게 굴던 베로니카도 이제는 조용하니, 빈센트는 웃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집도 얼마 남지 않았다. 들어가면 오늘 있었던 찝찝한 일들을 다 씻어내리라 생각하며.
하지만 그 순간, 빈센트는 허벅지를 파고드는 고통에 눈을 떴다.
"이런 씨ㅂ..."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빈센트는 인적이 드문 곳의 문제를 새삼스레 기억해냈다.
인적이 드문 곳은 관심을 잘 받지 못한다. 관심을 받지 못하는 곳은, 고장난 그 상태 그대로 버려진다. 망가지고 고장난 것들은, 무관심 속에서 자신의 슬픔과 고독을 날카롭게 갈고 닦고, 거기에 파상풍균이나 게이트 너머에서 흘러 들어온 기괴한 병원성 미생물들을 장식처럼 흩뿌리곤 한다. 오히려 너무 많은 나머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수천 조각으로 흩어진 유리창, 인간의 발길이 자신을 박살내주기를 바라는 낡은 널빤지, 부적절하게 폐기된 주사바늘, 그리고 이번에 빈센트의 허벅지를 물어버린 것은 녹슨 못이었다. 빈센트가 반사적으로 뒷걸음치자, 빠져나온 못이 빈센트의 붉은 피를 머금고 붉게 웃었다. 베로니카와의 안 좋은 감정과는 별개로, 베로니카와 붉은 피의 관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베로니카가 이 현장을 보고 저지를 짓을 생각하니, 온 몸의 피가 허벅지의 구멍을 통해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베로니카, 절대 여기로 오지..."
"걱정 마요. 빈센트. 다 봤어요."
이런 썅.
빈센트는 눈을 감았다. 베로니카의 목소리가 바로 뒷편에서 들려왔다. 베로니카의 숨결이, 분명 따뜻한 입 안에서 나왔을 숨결이 너무나도 차갑게 느껴졌다.
이렇게 숨결이 가까이서 느껴진다면, 베로니카의 목소리가 이렇게 쾌활하다면, 빈센트의 머릿속에서 나온 결론은 간단했다. 빈센트는 죽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론을 토대로 예상한 그녀의 첫 번째 행동은...
"윽!"
...그리고 실제로 일어난 행동은, 가만히 굳어있는 빈센트의 등에 칼을 꽂아넣는 것이었다.
빈센트는 주저앉았다가, 겨우 몸을 돌려서 벽에 기댔다. 등을 기대고 올려다본 베로니카는, 정말로 무서웠다. 이 상황에서도 그녀가 아름답게 보였지만, 그 아름다움은 이 상황에서 그저 공포에 또다른 색채를 입힐 뿐, 빈센트를 돕지 않았다. 한 술 더 떠서, 베로니카는 빈센트의 목젖에 칼을 겨눴다. 그리고 그 칼은, 점점 빈센트와 가까워졌다.
"...빈센트.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순 없었던 건가요?"
베로니카가 물었다. 빈센트는 죽는 입장, 베로니카는 죽이는 입장이다. 하지만 빈센트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왠지 모를 절박함이, 슬픔이 느껴졌다. 빈센트는 뭐라고 대답할까 고민하다가, 자신이 뭐라고 대답하건 '베로니카가 빈센트를 살해했다'는 사실 관계는 절대 뒤바뀌지 않을 것임을 금방 깨달았다.(그도 그럴 것이, 빈센트가 말 좀 한다고 진정할 광증이었다면 애초에 빈센트와 베로니카가 만날 일이 있었으랴.) 그렇기에 빈센트는, 솔직한 감정을 드러냈다.
"개를 소라고 말할 순 없고... 다 타서 숯덩이가 된 소고기를 ...레어 스테이크라고 말할 순 없어.... 미안해.... 나도 널 사랑한다고는... 말 못 하겠는데."
"...그렇군요."
쾌활하던 베로니카의 표정에 슬픔이 찾아왔다. 베로니카는 빈센트를 보더니 한숨을 쉬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슬픔을 꺼냈다.
"당신을 처음 본 날부터, 당신을 미워했던 적은 없어요. 그저 걱정했을 뿐이에요. 당신이 날 영원히 미워하게 되면 어떻게 할까, 당신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동시에 꿈꿨어요. 빈센트, 당신이랑 함께하고, 내가 당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면 칭찬이 돌아오고, 가끔씩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당신을요."
"...그것 참... 쿨럭... 헛된 꿈이네..."
"맞아요. 헛된 꿈이죠. 제가 당신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는 게 슬퍼요. 이렇게..."
베로니카는 양 손을 빈센트의 머리로 가져갔다. 빈센트는 이 다음에 베로니카가 할 짓을 떠올리고 이를 악물었다. 어쩌면 베로니카가 빈센트의 두 눈을 뽑아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끔찍한 고문을 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으극."
베로니카는 빈센트의 시력 대신 숨을 거둬갈 생각이었다. 빈센트의 목이, 자기보다 훨씬 강한 자의 양 손에 졸렸다. 숨이 막히니, 눈을 안 뽑힌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이대로 죽게 생겼다는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각성자의 높은 영성도, 훨씬 강한 자가 목을 조르는 이 상황 앞에서는 무력했다. 빈센트의 두 눈이 베로니카를 노려보고, 베로니카는 그 증오스러운 시선을 만끽하며 황홀하게 웃었다.
"아아... 좋아요. 당신은 한번도 제 마음대로 움직여준 적이 없어요. 하지만... 내 손으로, 내 두 손으로... 당신에게..."
빈센트의 삶의 불꽃이, 그동안 중요성을 잊고 있었던 공기를 생각하면서 빠르게 꺼져갔다. 사랑하는 이의 목을 조르면서 황홀감을 느끼는, 변태 살인범 베로니카의 손이 그 범인이 될 차례였다. 빈센트는 자신의 그 어떤 행동도 무의미함을 인정했다. 빈센트의 마도는 베로니카에게 상처 하나 입힐 수 없었고, 마도도 안 통할 판에 빈센트의 빈약한 손으로 베로니카를 쳐내는 건 백일몽에서도 상상해보지 못한 짓이었다.
그저, 숨 쉴 권리조차 박탈당한 이후의 세상은, 정말로 조용할 것이라 생각하며 눈을 감을 뿐이었다...
"좋아해요."
그런데 그 순간, 웬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빈센트의 목을 조르던 끔찍한 압력이 사라졌다.
"커헉! 쿨럭! 쿨럭!"
빈센트는 기대는 것조차 힘들어 그대로 쓰러지고, 밀린 숨을 몰아서 쉬었다.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부여잡고, 관자놀이를 바닥에 기댄 채로 눈동자만 움직였다. 어떻게든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려고 했다.
"좋아해요."
가까이에 베로니카의 검은 치맛자락이 보인다. 시선을 좀 더 멀리에 두면, 빈센트의 허벅지를 찌른 대못이 보인다. 그리고 좀 더 멀리, 좀 더 멀리를 보면...
"이게 무슨...?"
"좋아해요."
좋아해요, 미확인동물 연구소에서 봤던, 좋아해요아흘로틀이 그 자리에 서서 베로니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베로니카도 그것을 실제로 볼 생각은 못 했기에,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좋아해요를 바라보았다.
"좋아해요."빈센트는 눈을 감고, 이를 악문 채 되뇌었다. 그리고, 분명 눈을 뜨면 저것이 없을 것이라 상상하면서 눈을 떴다.
"..."
베로니카는 그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빈센트도 충격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호흡을 회복한 빈센트는, 자신의 눈 앞에 서 있는 저... '좋아해요'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분명히 미확인동물 연구소에서 본 그 모양이었다. 타원형의 머리에 달린 6개의 아가미를 감정에 따라 자유롭게 흔들며, 짤막한 두 다리와 두꺼운 꼬리로 선 채, 입을 벌리고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 동물이었다.
"...난 이렇게 슬픈데, 넌..."
"좋아해요."
베로니카는 웃고 있는 좋아해요를 보고 이를 악물었다. 베로니카는 제 손으로 사랑하는 이를 죽여야 한다는 슬픔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저 동물은 베로니카의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천연덕스럽게 좋다고 웃고 있었다. 남이 슬픈데 혼자 웃는 이는 쉽게 미움의 대상이 된다. 그렇기에 베로니카는, 빈센트를 죽이기 전에 저 좋아해요를 먼저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빈센트는 충격에 빠져서, 자신의 인지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지각은 생각보다 속이기 쉽다고, 있는 것도 없다고 착각하고, 없는 것을 있다고 착각한다고. 저건 분명, 죽기 직전까지 몰려서, 현실과 상상을 구분해서 처리하는 법을 잠깐 까먹은 뇌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좋아해요는 없어. 좋아해요는 없어..."
"좋아해요는... 이런 젠장."
그리고 빈센트의 '착각한 시야'에, 이제는 앨랠래왕도마뱀까지 나타났다. 앨랠래는 네 개의 짤막한 다리를 움직여서 좋아해요 옆에 서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빈센트와 베로니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혀를 쭉 내밀고, 숨소리처럼 자연스럽게 말했다.
"앨랠래."
"...앨랠래?"
베로니카는 땅에 떨어뜨린 칼을 주웠다.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하나는 베로니카의 비극 앞에서 웃고, 또 다른 하나는 무뚝뚝하게 비웃는다. 죽여야 할 대상이 두 개나 늘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저런 작은 동물쯤이야 베로니카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 베로니카는 험악한 표정으로, 두 미확인동물에게 다가갔다.
"젠장..."
비록 인간은 아니었지만, 이 일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생명이 죽게 됐다. 두 동물에게서 눈을 떼는 것조차 죄책감이 들어 힘겹게 그들을 지켜보았다. 이게 빈센트가 그들에게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의 예우였다.
그리고, 두 동물은 빈센트의 호의에 보답이라도 하는지... 이변을 일으켰다.
"좋아해요."
"...어?"
좋아해요아흘로틀이 두 다리로 폴짝 뛰어오르자, 베로니카의 움직임이 멈췄다. 베로니카는 양 손으로 얼굴을 싸맨 채, 자신의 머리를 덮친 혼란과 싸우려고 애썼다. 하지만 좋아해요의 옆에 서 있던 앨랠래가, 베로니카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앨랠래."
"으큭?!"
앨랠래, 짧은 말소리와 함께 앨랠래의 혀가 길쭉하게 늘어났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수준까지 늘어난 혀가 그녀의 목을 휘감았다.
그리고 저항할 새도 없이, 일반인이었다면 목이 잘릴 수준의 압력이 베로니카의 경동맥을 막아버렸다.
"...앨랠래."
그리고 앨랠래가 자신의 혀를 풀면, 베로니카는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베로니카?!"
베로니카가 땅바닥에 쓰러지고, 베로니카 너머에 있던 앨랠래가 시야에 확실하게 들어왔다. 빈센트는 두 눈으로 그 '앨랠래'를 바라보았다. 앨랠래왕도마뱀의 등 부분은 진한 노란색의 비늘이 윤기를 자랑하며 빛났고, 부드러운 아랫배는 연한 노란색으로 수줍게 숨겨졌다. 그 몸통을 짤막한 다리 네 개와 몸통만한 꼬리로 지탱했고, 얼굴 표정은 정말로 무뚝뚝했다.
"...앨랠래...왕도마뱀..."
빈센트는 눈 앞에서 일어난 일을 정리하기 위해 한참을 소모해야 했다. 베로니카가 자신을 죽이기 직전, 실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좋아해요아흘로틀과 앨랠래왕도마뱀이 나타났다. 그리고 좋아해요아흘로틀이 베로니카를 혼란 상태에 빠트리고, 앨랠래왕도마뱀이 베로니카의 목을 휘감아서 기절시켰다. 두 미확인동물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저 두 동물이 베로니카를 이렇게도 쉽게 제압했다는 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쿨럭... 쿨럭... 제기랄..."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빈센트의 그 어떤 정교한 상상도, 베로니카를 막지 못했다. 베로니카를 혼란에 빠트리지도 않았고, 베로니카의 목을 졸라 기절시키지도 않았다. 베로니카가 앨랠래에게 목이 졸려 쓰러졌다는 건, 눈 앞에 진짜로 쓰러져있는 베로니카가 제 존재를 담보 삼아 증언하고 있었다. 어쨌든, 빈센트가 베로니카를 싫어하건 말건, 미확인동물이 없다고 생각했건 말건, 이 모든 상황은 현실이다.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상체를 일으켜, 힘겹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으... 안 좋은데..."
좋아해요와 앨랠래가 빈센트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베로니카를 일격에 제압하는 생명체라면, 빈센트를 사냥하기 위해 5초의 시간도 아까울 것 같았다. 인간이 총을 개발한 이래 한동안 잊고 있었던 피식자의 공포가 빈센트를 엄습했다. 언젠가 죽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죽을 줄은 몰랐는데.
바람 앞의 촛불처럼, 점점 흐릿하게 꺼져가는 눈동자가 두 포식자를 눈에 담았다. 멋지게 죽는 것은 실패했으니, 최소한 웃기게 죽는 것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빈센트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저 동물의 울음소리를 따라해보기로 했다.
"...후우...윽."
구멍 난 허벅지에서, 칼에 찔린 등에서, 빈센트가 말할 힘과, 말할 단어가 모두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어떻게든 입술을 달싹일 힘을 그러모아, 빈센트가 말했다.
"...앨랠래."
그리고 그와 함께, 앨랠래와 좋아해요가 나타난 것만큼이나 기괴한 이변이 나타났다."...나는 존재해."
앨랠래가 말했다.
꺼져가던 빈센트의 인식이, 갑작스런 말소리에 다시 힘을 얻었다. 빈센트는 눈을 뜨고 앨랠래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앨랠래'라고 말하던 그 목소리로, '나는 존재해'라고 선언했다. 빈센트 같은 인간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말이었지만, 그동안 존재를 의심받아온 미확인동물의 입에서 나온다 생각하니, 느낌이 이상했다.
자신의 존재마저 부정하는 이 세상에서, 나는 존재한다고, 나는 살아있다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다른 것도 아닌 자신의 존재를 위해 투쟁해야 하는 이의 절규를, 저 짧은 한 마디로 함축한 것 같았다.
빈센트는 후견인들이 자신을 숨기려 들고, UHN이 자신을 그간의 범죄와 함께 묻어버리려 했던 것을 생각하며, 뭔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며 말했다.
"...나도 존재해."
그리고, 앨랠래는 빈센트를 보고 물었다.
"존재. 너에게 존재한다는 건 뭐야?"
죽기 직전의 철학 시간이라, 빈센트는 피식 웃으며, 피가 줄줄 새는 허벅지를 옷가지로 틀어막았다. 그렇게 잠깐이나마 번 시간으로 대답했다.
"그건... 힘들어."
"...나도 그래. 너희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세상에 내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정말로 많은 힘을 기울여야 하거든. 그렇기에, 나는 너희처럼 오래 생각하고 이야기하기가 힘들어."
"...그래?"
솔직히 말해서, 빈센트는 앨랠래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대화가 어딘지 재밌게 느껴져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풀소리, 새가 우는 소리, 벌레가 자그락대는 소리, 이 모든 자극들이 내 신경을 잡아 끌지만 거기에 생각을 뺏겨서는 안 돼. 그러면 내 존재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거든."
"네 존재가... 사라진다고?"
빈센트가 묻자, 앨랠래는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실체'라는 축복을 받은 너희는, 이 세상의 모두가, 심지어는 스스로가 자기가 누군지를 잊더라도 육신에서, 전두엽 한 구석의 활성화되기를 기다리는 뉴런으로 존재해. 하지만 나는 아냐. 내 존재는 항상 망각에게 쫓기고 있어. 만약 나조차 나를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면, 나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겠지."
자기 자신이라도 기억해야 하는 존재라.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나서, 두뇌 회전에 도움을 줄 당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의념으로 뇌를 강화한 상태에서도 이해하기 힘든 개념인데, 질질 흐르는 피를 막기도 힘든 빈센트가 어찌 이해하리오. 하지만 앨랠래는 그런 빈센트의 상태로 이해하고는, 자신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나는 앨랠래왕도마뱀. 뱀목 앨랠래도마뱀붙이과에 속하는 몸길이 50cm의 동물이야. 수명은 이론상 무한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6개월이나 심하면 1개월에서 끝나지. 하지만 너가 진실로 나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정보는 이게 아닐거야."
"..."
"나는 '사고호흡형 생명체'에 속해. 사고호흡형 생명체는 신경망을 가진 수많은 개체들의 분명한 상상과 믿음을 바탕으로 살아가지. 하지만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았고, 그렇게 묻혀서 망각으로 사라지게 생긴 참이었어. 그래도 인간이 추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뇌를 가진 시점부터 생존해 있었는데... 하지만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준 한 여자와, 내 존재를 고찰해준 한 남자가 있었기에 여기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일지도. 그러니까 말할게..."
앨랠래는 혀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이지만, 검은 눈동자에 밝은 눈빛이 생겨났다.
"...고마워. 이 세상에 내가 있다고 믿어주는 사람은커녕, 상상으로라도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
"...그렇구나."
그래. 존재했구나.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좋아해요를 바라보았다. 좋아해요도 빈센트를 바라보면서, "좋아해요!"라고 크게 외쳤다. 하지만 좋아해요에게 할 말은 생각나지 않아서 말을 고를 때, 앨랠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너 정말 많이 다쳤구나. 내가 치료해줄게."
그 말과 함께, 앨랠래와 좋아해요가 빈센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작은 다리로 베로니카를 타고 넘어와서, 빈센트의 몸 위로 올라타는 게 여간 힘들어보였다. 빈센트는 그들이 귀여우면서도 영 못미더워서 물어보았다.
"고마운데... 너희가 날?"
"그래. 생각만으로 존재를 유지해야 하다 보면, 생각만으로 내 행동을 정의할 수도 있거든."
"...좋아해요."
좋아해요, 라는 말이 들리자마자, 빈센트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구멍이 났던 등의 뒷편은 빠르게 메워졌고, 허벅지를 통해 줄줄 흐르던 피도 사라졌다. 이상하게도, 빈센트의 피로 물든 옷까지 전부 말끔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돌아서서, 베로니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피가 묻어있던 베로니카의 몸도 깨끗해졌다. 원래 이런 이변은 빈센트가 들어본 적도 없었지만, 그렇게 따지면 앨랠래와 좋아해요의 존재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기에 입을 다물었다.
"...고마워. 그래서 이제 어쩔 생각이지?"
빈센트는 두 동물에게 감사를 표했다. 앨랠래와 좋아해요는 서로를 바라보더니, 빈센트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우리는 떠날 거야. 우리의 존재를 생각하고, 서로를 생각해주면서, 언젠가 사진에도 잡히지 않는 우리들을 모두가 기억해주기를 꿈꾸면서."
"...그렇구나. 그러면... 이렇게 떠나는 건가?"
"그래. 하지만 그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할 게 있어."
"그래. 뭔데?"
빈센트는 가볍게 물었다. 그 뒤에 찾아올, 그의 인생을 바꿀 충고는 예상하지 못한 채.
"...이 여자... 베로니카 말이지. 지금보단 더 잘 대해줬으면 해."
"...뭐?"
빈센트가 눈을 크게 뜨면, 앨랠래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너도 알잖아. 이 세상에서 널 유일하게 좋아해주는 사람. 널 사랑하고 지지하는 사람이 바로 네 앞에 있잖아. 이 여자가 너한테 계속 말했잖아."
"좋아해요."
"...라고."
앨랠래가 말하고, 좋아해요가 거들었다. 빈센트는 베로니카를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말이야 많이 했다. 항상 빈센트를 사랑한다, 빈센트 없으면 죽는다, 온갖 주접은 다 떨었으니까. 하지만, 생명을 구해준 은인의 충고라도 솔직히 영 떨떠름했다.
"하지만, 알잖아. 나는... 범죄자를 싫어해. 그리고 얘는..."
"...알아. 네가 베로니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베로니카 같은 부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하지만, 한번만 더 생각해보면 안 될까? 너는 실체가 있으니까,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너를 모른다고 해도 존재하겠지.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상태로 홀로 존재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야. 네 삶을 돌이켜보면 그랬잖아."
"...그랬지."
그렇긴 그랬다. 빈센트는 항상 부외자였고, 자기 일 잘 하는 동료였고, 어딘가 마음이 아파 보이지만 큰 문제를 일으킬 정도는 아닌 사람이었으니까. 딱 거기까지였으니까. 모두에게 언제라도 잊혀질 직장 동료, 딱 그런 존재였다. 그렇기에, 생각해보면... 베로니카는 그런 세상에서, 빈센트를 생각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빈센트는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입꼬리를 잠깐 올렸다가... 다시 그녀를 미워할 이유를 찾았다.
"하지만, 그래도 이 사람은..."
"...이 사람에게 기회를 줘. 베로니카를 위해서 그럴 수 없다면, 너를 위해서 그래 봐. 너가 말했듯이, 너는 누군가의 구원이 될 수는 없어. 하지만, 너는 베로니카에게 기댈 구석이 될 수 있고, 베로니카 역시 너한테 그럴 수 있으니까."
앨랠래가 말을 끊었다. 하지만,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라서 딱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빈센트는 지난 날을 돌이켜보았다. 베로니카를 죽이려고 애썼던 시절, 포기하고 나서 도구로 생각했던 시절, 괴물로 취급했던 시절... 그 많은 시절들이 생각났다. 베로니카는 빈센트 때문에 온갖 험한 꼴을 보면서도, 빈센트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세상을 살면서 친구도 몇 없던 빈센트가,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가끔씩은 진지한 이야기를 하면서 살 사람을 한 명 정도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한 명이, 베로니카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려는데, 빈센트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빈센트의 마음 속에 타오르고 있는 불꽃은 누군가를 품어줄 수 없었으니까. 가까이 다가가면 전부 불탔으니까.
"...정말 좋은 말이야. 정말 좋은 충고야. 하지만... 내 과거를 아니까, 내 의념도 잘 알겠지. 나는 불이야. 모든 것을 태우는 불. 나랑 가까이 있는 것들은 전부... 불타버릴 걸. 저 여자도 똑같이."
그렇게 말하자, 앨랠래는 잠시간 갸우뚱거렸다. 그리고 빈센트에게 잘 모르겠다는 듯 다시 물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그래."
앨랠래는 좋아해요를 바라보았다. 좋아해요는 잠시간 아기 같은 팔을 꼬물거리더니, 품에서 막대기형 폭죽을 꺼내 불을 붙였다. 폭죽은 하얗게 빛나면서, 앨랠래의 노란 피부에 알록달록한 색을 입혔다. 앨랠래는 그 불꽃을 흡족하게 바라보다가, 빈센트에게 설명했다.
"그렇게 생각했을 법도 해. 이해해. 그동안 네 불은 적을 태우고, 모든 것을 잡아먹는 불꽃이었으니까.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어. 네 불꽃은 단 한 번이지만, 다른 누군가를 구원했잖아. 울고 있던 한 소녀에게, 네 불꽃은 난파선을 위한 등대였고, 무거운 혹한을 녹여주는 따뜻한 난로였고, 영혼을 가둔 문을 열어줄 열쇠였어. 한 마디로... 너는 베로니카에게 구원이었던 거야. 네 불꽃이 사람을 구한 거야."
"..."
빈센트는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앨랠래가 했던 말을 곱씹었다. 나는 존재한다. 내 마음 속에는 불꽃이 있다. 그 불꽃은 사람을 죽이기만 하는 불꽃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그 사례가 아주 가까이 있지 않은가. 지금 여기에 누워있지 않은가.
어쩌면 빈센트는 부정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정말로 다양하다는 것을. 빈센트는 미친놈이지만, 단 한순간, 단 한 면모가, 단 한 사람에게는 구원일 수도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의 관계라는 것을. 그리고 사람이 그러하듯, 빈센트가 마음에 품은 불 역시 다양하다는 것을. 하지만, 이제는 그걸 부정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계속 무표정을 유지하던 빈센트는, 빙긋 웃으며 두 동물을 바라보았다.
"...이제 좀 생각을 정리한 것 같아. 네가 말한대로 노력해볼게. 정말 고마워."
앨랠래와 좋아해요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해 줘. 그리고 베로니카를 꼭 껴안아주고, 네 나름의 방식으로라도 좋아한다고 표현해 줘. 어렵지 않아."
"좋아해요."
"그리고, 가끔씩, 우리들도 생각해주고. 잠깐이라도 생각해준다면, 우리 존재를 유지하는데 정말로 도움이 될 거야."
"꼭 생각할게."
그렇게, 두 동물은 몸을 돌려, 골목 속으로 사라졌다.
남은 건, 빈센트와 베로니카, 그리고 바닥을 구르는 앨랠래와 좋아해요 인형이었다.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으니, 이제는 약속을 실천할 시간.
빈센트는 두 인형을 주머니에 매단 채, 등에 베로니카를 업었다.
"히익?!"
등에 업힌 베로니카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깜짝 놀랐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죽이려고 했던 빈센트가, 이제는 자신을 등에 업은 채 어딘가로 데려가고 있었다. 빈센트는 앨랠래와의 약속을 떠올리며 무슨 말을 할까 했지만,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아 일단 꿋꿋이 걸어갔다. 그러기를 몇 분, 베로니카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아까 전에... 피를 봤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잘 해결했어. 걱정 마."
여느 때처럼 짧은 대답이었지만, 확연한 차이를 감지한 베로니카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전의 단답이 차갑고 날카로웠다면, 이제는 부드러웠다. 베로니카를 쳐내려고 일부러 짧게 대답하는 게 아니라, 할 말이 그것뿐이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베로니카는 얼굴을 붉힌 채, 조심스레 빈센트의 어깨를 꼭 잡았다. 빈센트는 처음 베로니카를 만났을 때, 그녀의 옷을 태웠던 일이 생각났다. 이제 와서 보면 좀 미안하기도 했다. 갑자기 미안하다고 얘기를 하면 새삼스러울 것 같아서, 그냥 걸어갈 뿐.
"...저기, 빈센트. 제가 피를 봤는데...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베로니카는 공포에 떨면서 물었다. 베로니카가 미치면 사람 한 둘 죽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았기에, 그녀는 자신이 수십명을 죽였을까 너무나도 무서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빈센트는 "갑자기 앨랠래랑 좋아해요가 나타나서 널 제압했고, 그리고 내 상처를 치료해줬어."라는 말을 이해시킬 자신이 전혀 없어서, 그냥 적당히 답하기로 했다.
"앨랠래랑 좋아해요를 봤어."
"...네?"
베로니카는 빈센트의 입에서 천연덕스럽게 나오는 동문서답에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가디언이 나타났다, 베로니카를 24시간 감시하고 있던 가디언 저격수가 마취총을 쏴서 베로니카를 기절시켰다, 그런 것도 아니고, 앨랠래랑 좋아해요라니. 베로니카는 빈센트가 말한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그것이 맞는지 물어보았다.
"혹시 그게... 앨랠래왕도마뱀이랑..."
"좋아해요아흘로틀이야."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계속해서 걸어갔다.
"네가 말했잖아. 있으면 좋지 않겠냐고. 정말로 있으니까 좋더라. 그 둘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 살아서 여기를 걷고 있지도 못했을 거야."
"...빈센트?"
베로니카는 빈센트의 이야기를, 좀 많이 복잡하고 배배 꼬인 철학 이야기로 알아들은 것 같았다. 하지만 빈센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알아준다면 감사할 지경이니. 빈센트는 웃으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베로니카는 머뭇거리며, 빈센트에게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빈센트는 그게 있으면 좋은 거랑, 그게 실제로 있는 건 다르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랬지.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아. 하지만, 그런 세상이 있으리라는 희망 정도는 품을 수 있잖아. 그리고, 앨랠래랑 좋아해요는 진짜 있었어."
"..."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베로니카는 말없이 빈센트의 등에 얼굴을 기댔다.
비록 베로니카한테 죽을 뻔한 날이지만, 마음은 다른 날보다도 편했다.
...그날, 앨랠래와 좋아해요가 이 세상에서 실체를 얻었다.
- 빈센트 백일장 연성
온 생명이 추위 속에서 느리게 시들다 스러지고, 노랗게 질린 시신들 위에 흰색 커튼이 내려와 모든 것을 덮는 계절이었다.
한해살이 식물과 벌레에게는 힘겹게 뿌리내린 세상의 고통스러운 종말이었고, 수십년을 사는 인간들에게는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고 다음 한 해를 준비하는 무대 뒤의 침묵이었고, 수백년을 사는 나무에게는 잠시 깊게 잠드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 수십억의 생명이 바라보는 수십조의 관점과는 다르게, 이상한 무언가가 이 추운 세상에 발을 딛었다.
"...헤."
느리게 시들다 스러지는 세상에서, 그것은 꼿꼿이 서서 살아 있었다. 노랗게 질린 시신들이 흰색 커튼에 쌓일 때, 그것의 붉게 물든 점막에 내린 커튼은 물방울이 되어 그것의 붉은색을 입었다. 이 겨울을 세상의 종말이라 부르건, 겨울이라 부르건, 깊은 잠이라 부르건,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저 숨고, 변하고, 죽이고, 먹을 뿐. 이것에 시들고 스러지며 노랗게 질리는 세상의 시간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뭔가 이상한데. 살려줘. 지원을 요청한다. 저게 뭐지... 이게 다 무슨 말들이야. 바보들."
그것은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날리는 눈발을 지켜보았다. 굵은 남성의 목소리, 가녀린 아이 목소리, 쌕쌕대는 노인 목소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였던 한 아이의 목소리. 아이의 목소리를 따라하고 다시 비웃은 순간, 그것의 발성 기관에서 종양이 자라나더니, 퍽 터지며 수천개의 돌기들이 드러났다. 피를 질질 흘리는 돌기들은 서로 뭉쳐서, 그것이 잡아먹은 인간의 얼굴을 만들어냈다.
이곳 인간들은, '그것'이 그동안 다닌 곳 중에서 정말 재미있는 곳이었다. 쓸데도 없고 재미도 없는 개념들(이른바 "도덕", "의념 파장", "헌터", "가디언" 등등)을 너무 많이 만든 것만 빼면 말이다. '가디언'과 '헌터'라는 것들은 확실히 위험한 느낌이 나서 피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약한 주제에 아무런 걱정도 없이 마구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것이 일주일 전에 잡아먹은 것들 중에는 붉은 머리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저게 뭐지. 이상해."
그것은 그 아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했다. 눈발 휘날리는 거리에 끈적한 점액을 남기며 지나가던 그것을, 그 아이가 발견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게, 그 아이가 말한 마지막이었다. 그것은 그 아이의 살을 갈랐고, 그 아이의 몸 속으로 파고들어 속에서부터 먹어치웠다. 남은 건 그저 그녀의 속살처럼 붉은 머리칼 몇 올뿐이었다.
"..."
그러고보니, 그것은 자신이 또다른 모습으로 변할 때임을 깨달았다. 약한 이들 가운데서 난 "가디언"과 "헌터"에게 쫓기지 않으려면 냄새를 바꿔야 했다. 그들은 그것의 몸에서 나는 강한 냄새는 못 맡지만, 같은 모습으로 사냥을 반복하면서 생기는 죽음의 냄새는 잘 맡았다. 그리고, 오늘자로 10명을 죽였으니, 다른 가면을 쓰고 냄새를 바꿀 차례였다.
"지원 요청... 세상아 망해라... 우월을 증명하라..."
'그것'이 자신이 집어삼키고 소화한 모든 것들을 반추하며, 그것의 정신이 그렇듯 온 몸에 그것이 집어삼킨 것들의 얼굴이 드러나고, 그것이 각각 제 목소리를 냈다. 총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지원을 호소하던 경찰의 얼굴,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저주하다가 맛있는 고깃덩이라는 가치를 찾게 된 청년의 마지막 저주, 우월을 증명하라면서 정말로 허약했던 다윈주의자. 그 많은 것들의 얼굴이 생겨났다가 지나갔다.
그 수많은 사냥을 되새기니, 어느새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경찰에게서 나던 갓 세탁한 직물의 화학물질 향기, 청년의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알코올의 쓴내, 그리고, 다윈주의자에게서는 맡을 수 없는 강자, 못해도 "헌터"에서 최대 "가디언"의 냄새...
엄청난 강자의 냄새.
여기서 맡으면 안 되는 냄새에, 그것이 만들어냈던 수많은 얼굴들이 동시에 당황했다. 뭔가 잘못되었다. 강자가 근처에 있다. 도망쳐야 한다. 당황이라는 감정이 입력되자, 생존 본능이라는 컴퓨터가 '도망'을 제시했다. 그리고, 부정형의 육신이 노출 면적을 최소화하면서 가장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형태로...
철퍽!
...변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것은 난데없는 격통에 비명을 지르며 꿈틀댔다. 몸이 두 개로 조각난 것 같은 감각에, 눈이 달린 반대편으로 또다른 눈을 만들어 보니, 그것의 육신이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으깨져서, 정말 두조각이 나 있었다. 저렇게 박살난 몸은 당장 붙일 수 없으니, 그것은 도망을 택했다.
"명중탄. 살상 실패."
"차탄 장전해. 추격한다."
증폭된 청각에, 강한 자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그것은 싸운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몸을 간단하게 으깨버린 놈들에게서 도망치는 건 몰라도, 싸운다고? 그것은 이 세상에서 죽고 싶지 않았다. 그것의 그 무엇도 죽음을 바라지 않았다.
"묶었어."
하지만, 그것에게 붙잡혔던 먹잇감들에게 그랬듯, 바람이 구원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온 몸이 무언가에 묶인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묶인 느낌은, 가늘지만 단단하고, 얇지만 예리한 실이 온 몸을 파고들며 고통의 가면을 썼다.
그리고, 표면을 파고든 실은 온 몸과, 장기와, 골격까지 파내려 들어갔다. 수십개의 실이 수백개의 얽힘을 만들고, 그 얽힘 속에서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게 잘렸다. 무의미하게 잘린 몸뚱아리는, 잡아줄 다리도 무엇도 없는 채, 다른 모든 것과 분리되어 허공을 빙글빙글 돌았다.
한번 돌면, 하늘 위로 떠오르는 핏방울이 보인다.
두번 돌면, 잘려나간 모든 것들의 단면이, 그것이 세상에 그리는 붉은 선들이 보인다.
세번 돌면, 핏방울과 살결이 흐릿해지는 너머에, 제 피로 붉게 물든 실이, 그 실로 죽음을 직조한 여인이 보였다.
네번 돌면, 털썩. 죽어가는 그것을 품어준, 서늘할 정도로 흰 눈이 그것의 시선까지 품는다.
수십개의 몸뚱이들은 제멋대로 꿈틀댔다. 해체된 수십개의 몸에서, 수십개의 생각들이 튀어나온다. 그 생각들을 겨우 그러모을 찰나, 몸뚱이처럼 도로 해체된다. 그야 당연했다. 이 상황에, '살아야 한다' 빼고 다른 무슨 생각이 있겠는가. 그것은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강자의 냄새를 피하려고 했다.
"엘모. 대상이 도주하려고 한다. 확인 사살 좀 도와줘."
"뭘 쏴야지?"
"전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것의 몸뚱이 하나가 흉탄에 뚫렸다. 단말마 내지 못하고 멈춘 몸뚱아리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것들도, 기이한 실에 정성스레 묶여서, 살아있는 생명이 아닌 무의미한 유기질 결합체가 될 때까지 갈렸다. 아직 남아있던 그것들은, 고통에 짓눌린 근육을 꿈틀거리며, 다른 것들이 죽기를 바라며 움직였다.
살려줘, 죽기 싫어, 갈려나간 다른 몸뚱이에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잘만 나왔다. 다른 것들이 전부 죽는 동안,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그것은 설원의 절벽까지 기어갔다. 절벽에서 떨어져서 터져 죽기, 뒤에서 다가오는 강한 놈들에게 살해당하기. 양쪽 모두 본능적인 공포심이 거부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 때, 그것을 사냥하던 이가 도움을 주었다.
"이런 씨ㅂ"
퍽! 마지막으로 남은 '그것'의 몸통 가장자리에 총탄이 박히고, 그 충격에 밀려난 그것은 절벽 너머로 떨어졌다.
비록 그것이 이 세계의 물리법칙(중력 가속도, 상대성 이론, 그 외 기타등등)에는 무지했으나, 저 큰 나무들마저 조그맣게 보일 정도로 깎아지른 절벽에서 떨어진 뒤의 몰골은 잘 알고 있었다. 이제 정말로 마지막이다. 어떤 현실 부정으로도 죽음을 거부할 수 없게 된 정신이, 그것이 보고 듣고 맡았던 모든 것을 떠올렸다.
처음 보았던 이 세상의 하늘, 처음으로 입에 물었던 노인의 살점, 마지막으로 잡아먹은 붉은 머리 소녀...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출혈이 너무 심한 나머지 생각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고, 더 이상 생각과 행동을 분리할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마지막 생각이자 행동은, 잡아먹은 그 소녀의 모습이 되어서...
"...저게 뭐지."
올 것이 오게 두었다.
차갑다. 아프다.
살가죽으로 덮인 뺨에 맺히는 눈송이가 차가워 눈을 떴다.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힘겹게 눈동자를 굴리면 까질대로 까진 손바닥이 보였다. 추위와 상처에 빨갛게 퉁퉁 부어오르고, 선혈의 습지가 된 상처에는 더러운 흙과 나무조각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한없이 끔찍해진 그 모습으로, 점점 몸에서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파... 아파..."
눈 내리는 겨울은 잔인하다. 불꽃을 발하는 횃불이건, 그저 안 죽게 제 몸이나 겨우 덥히는 체온이건, 따뜻하지 않은 모든 것들은 이 세상에 제 얼굴을 들이미는 것조차 금지되었으니. 그리고 이 겨울이, 이제는 소녀의 탈을 덮어쓴 이 괴물을 차갑게 덮을 시간이었다.
눈을 뜨는 것조차 힘겨운 이 몸짓으로 뒤를 바라보았다. 정신을 잃은 사이에, 어떻게든 기어왔다는 표시가 도로에 나 있었고, 눈은 그 표식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덮어 버렸다. 그것은 노력했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쳤고, 그 무시무시한 강자들에게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것이 여태껏 잡아먹었던 것들은, 나름대로 머리를 쓰기도 했고, 그것이 생각하기에 꽤나 기발했던 방법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똑같은 죽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수십개로 갈린 제 몸뚱아리를 끌어서 이곳까지 왔지만, 죽음은 죽음이었다.
"...흐으..."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에, 생존 본능마저 체념에 동의하고 침묵한다. 이전에는 생존본능을 추동했을 고통은, 이제 고통 그 자체로만 남아 그것을 괴롭히고 있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은 이 세상의 마지막 순간에, 그 고통만은 홀로 남아 그것을 괴롭게 했다.
"으으..."
이 고통이 싫다. 차라리 아까 죽었다면, 이 고통은 느끼지 못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던 그것의 후각이, 강한 자의 냄새를 맡았다. 가디언, 아니면 헌터. 아까 전이었다면 공포에 떨었겠지만, 지금은 그 냄새에, 자신의 파멸을 기대하는 것이다.
"..."
"..."
그것은, 소녀의 맑은 눈동자로 자신의 파멸을 올려다보았다. 초췌해진 사내의 얼굴주름 사이로, 쓰디쓴 술 냄새가 보였다. 얼굴주름을 거슬러 올라가 마주친 눈동자는, 텅 빈채로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그 눈동자를 보았다. 저 강한 놈이라면 날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가디언이 아니라 헌터라도 좋다.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그리고, 남자가 손을 뻗었다. 남자의 손이, 이 세상의 눈발이나 다름없게 차가워진 그것의 목을 잡았다. 그리고, 점점 느리게 멎어가는 혈관의 울림을 느꼈다.
따뜻했다. 그리고 편안했다. 이 느낌은 왜일까? 당장이라도 그것의 목을 붙잡아 뒤틀거나, 아예 뽑아버릴 수 있는데도, 그 손길이 이상하게 좋았다. 그것을 내려다보던 남자는, 만신창이가 된 그것의 목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그것에게 기대한 것과는 다른 것을 주었다.
"..."
다시는 느낄 수 없을 거라 생각한 따뜻함 속에서, 그것은 입을 다물었다.
차가운 세상 속에, 이 남자가 만든 작지만 따뜻한 세상에 들어온 그것은,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치료 키트라 적힌 것이 그것의 가슴 위에 꽂혀있다. 그리고 남자는 그것의 체온을 재더니,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안도하고는 일어났다.
남자는 이 방에서 유일하게 차가운 상자에서 병 하나를 꺼내고, 뚜껑을 따서 그대로 들이켰다. 양동이에 물 쏟아붓듯 아무 거침도 없이 쓴내 나는 무언가를 들이킨 남자는,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의 상태를 위아래로 훑어본 남자는, 한숨을 쉬더니 그것을 도로 들어서, 물이 나오는 곳으로 데려갔다.
"좀 차가울 거야."
구부러진 쇠파이프에서, 차가운 물이 쏟아졌다. 길도 없는 숲속을 절박하게 헤치고 나간 갈색의 증거가, 손에서 점점이 떨어져나갔다. 남자는 그것에게 상황을 이해할 틈도 주지 않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 빨간색 물을 상처에 바르고, 반고체의 연고를 그 위에 또 바른 다음 붕대를 칭칭 둘러맸다.
"..."
"이 정도면 당장 살아남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거야. 내일이면 의사가 왕진을 올 테니, 조금만 버텨봐."
그것은 남자의 의중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그것의 머릿속은 먹느냐 먹히느냐, 죽느냐 사느냐밖에 없었다.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전혀 다른 것이 꽂히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죽음에 대한 기대가 다시 공포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하면서 계속 굳어있을 뿐.
"...말을 못 하는 건가?"
"..."
어느새, 그것은 옷가지들 앞에 서 있었다. 남자는 옷장에서 대충 꺼낸 옷이라면서, 입으라고 손가락으로 짚어 주었다.
"입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
입어? 입으라고? 그것은 옷가지를 든 채 가만히 서서, '입다'는 행위를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한번도 옷을 입은 적이 없었다. 그것이 사냥했던 것들이, 사냥당하는 순간에 옷을 입거나 벗는 것을 보았지만, 막상 그것이 옷을 입어본 적도, 벗어본 적도 없었다. 만약 다른 옷을 입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냥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리면 그만이었다.
"...저기. 마음에 안 드나?"
소녀의 손가락이, 옷을 꽉 쥐었다. 상대의 의사를 모르니,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죽음의 기로를 벗어나니, 더 이상 죽음이 반갑지 않았다. 변해서 도망치려고 해도, 힘이 너무 빠진 나머지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그것에게, 남자가 가까이 다가갔다.
"어디서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충격이 심했나보구나. 기다려 봐. 옷은..."
남자는, 그것에게 옷을 입혀주었다. 맞는 소매에, 맞는 팔다리를 집어넣는, 그 기초적인 행위. 너무나도 기초적인 나머지, 남자는 그것을 가르치는 것에도 애를 꽤나 먹었다. 하지만 그런 그와 그것을 돕는 유일한 위안거리가 있었다면, 옷의 치수가 그것이 취한 형상에 잘 맞았다는 정도다.
"..."
"그럭저럭 잘 맞는구나."
옷 입기가 끝나고 나서, 그것은 이 상황을 깨달았다.
저 남자는 강자의 냄새가 났지만, 그것의 정체는 깨닫지 못했다.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을 비축하면 바로 도망쳐야겠다. 체념에 잠들었던 생존 본능이 깨어나서 대안을 제시하고, 그것이 받아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궁금해졌다. 이 사람은 왜 그것을 도와줬을까. 그것의 정체를 모르더라도, 왜, 어째서?
"입에 맞아야 할 텐데."
그리고, 남자는 그것의 앞에 식사를 가져다 두었다. 사람을 산채로 포식해왔지만, 이런 음식도 급하면 집어삼키곤 했고, 당연히 먹을 수 있는 음식임은 알았다. 그것은 소녀의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소녀의 눈썹이 찡그려지며, 그 속에 숨은 그것의 감정을 여과 없이 표현했다. 당황스러움, 혼란스러움, 그리고... 호기심.
"먹기 싫나? 하지만 먹는 게 좋을 거야. 그래야 상처가 빨리 나을 거고... 그보다도, 영양실조로 죽을지도 몰라."
"...왜..."
"음?"
그것은, 자신이 관찰했던, 추적했던, 집어삼켰던 사람들의 유언들을 헤집었다. 비록 그것이 인간들의 말을 제대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듣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고, 말도 누군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물론 그대로 따라하는 것과 자신의 생각으로 말을 빚어내서 뱉는 건 달랐기에, 그것은 머릿속을 뒤져서 맞는 말을 찾아냈다.
상대가 왜 그러는지 모를 때. 그리고 알고 싶을 때, 상대에게 이유를 묻는 말.
"...왜?"
왜. 사람들은 그랬다. 어디에 못 들어가게 할 때, 누군가에게 무언가 줄 때. 그런 행위의 이유를 이해할 수 없으면 '왜'라고 말했지. 그것들을 참고한 괴물이 왜라고 묻자,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 굳더니, 잠깐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침묵이 무거워지려는 순간, 남자가 말했다.
"그야. 네가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도와줘야 했어."
죽어가고 있으니까, 도와준다. 그 이야기에, 괴물의 눈이 크게 뜨였다. 괴물의 삶은 어땠는가. 죽어가고 있으니까 잡아먹었다. 오늘은 쉽게쉽게 일이 풀린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는 아니었다. 남자는 죽어가는 이를 보면, 어떻게든 도와주고 살려준다. 괴물의 세상이 의문을 품고, 인간의 세상이 답한다.
하지만 괴물의 물음은 인간의 답으로 해결할 수 없었고, 그저 혼란을 가져올 뿐이었다. 대답은 또 다른 혼란과 궁금함. 하지만 그것이 멈춰있다고 세상의 시간까지 멈추지는 않았고, 뜨거운 음식에서 김이 올라오는 것을 바라보던 남자가 물었다.
"그래서, 안 먹을 건가?"
"...아니. 아니."
그것은 숟가락을 들었다. 옷을 입는 것과는 다르게, 대충 주먹으로 숟가락을 잡는 것 정도는 따라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입으로, 음식을 먹었다.
욱, 욱, 이상한 소리를 내며 수프를 우겨넣는다. 인간을 산 채로 붙잡아서 수천개의 입을 만들어 뜯어먹는 것보다 훨씬 불편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힘도 없었고, 그랬다가는 눈 앞의 남자에게 찢겨 죽을 것 같아서 말없이 먹었다. 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불편한 식사가 끝났다.
"차마 못 먹을 정도로 끔찍하진 않았나보네. 다행이야."
그래도 식사는 식사라고, 몸에 힘이 돌아왔고, 좀 더 따뜻해졌다. 그것도 만족스러운 포식 이후 찾아오는 포만감은, 그것도 익숙하게 느껴온 무언가였다. 소녀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자, 남자도 덩달아 웃었다. 그리고, 남자는 그것에게 물었다.
"그래... 그럼 배도 채웠겠다, 이건 물어봐도 되겠지. 이름이 뭐지?"
"...이름..."
이름. 그것은 이름이란 게 없었다. 이름이 무언지는 알았다. 이 세상에 인간이 너무 많아서, 서로 알아보려고 붙이는 무언가. 하지만 그것은 태어나서 혼자였다. 그것은 굳이 이름을 붙여서 불러야 할 동족도, 아니면 말이 통하는 무언가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것은 이름도 없었다.
"..."
다시 침묵. 남자는 그것의 상태를 조심스레 살피더니, 한숨을 쉬고 그것의 곤란을 덜어주었다.
"그래. 이 세상에는 너 같은 사람이 많아. 이름도 없이 살아오거나, 아니면 이름이 있어도 잊어버려서 누구한테 말을 못 하는 사람. 정말 힘겨운 세상이니까... 다 그렇지. 다 그래. 하지만... 그래도, 사람에게는 이름이 있어야 해."
남자는 잠시 고민하는 듯 턱을 쓰다듬더니,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네가 네 이름을 되찾거나, 아니면 이름을 바꿀 때까지... 네 이름은 일단 '힐데'로 하자."
그것을 '힐데'라 불렀다. 그것이 눈을 크게 뜬 사이, 남자는 자신의 이름도 밝혔다.
"내 이름은 베버. 베버라고 부르면 돼."
"...베버..."
그것, 아니, 이제 힐데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소녀는 베버를 바라보았다. 베버, 베버, 베버. 그 이름을 입 안에서 굴리던 힐데는 곧이어 제 이름도 굴렸다. 힐데. 힐, 데. 힐 ㅡ 데. 힐데는 괴물 같은 본모습을 소녀의 몸 안에 숨겨놓고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떠올렸다.
엄청난 강자 두 명에게 추격당해서, 온 몸이 갈려나간 상태로, 겨우 한 인간의 모습을 본따서 추락했다. 정신도 못 차리는 사이에 어떻게든 길 위로 기어 올랐고, 거기서 누군가가 구해주었다. 그리고 구해준 누군가는 음식까지 대접하고, 힐데라는 이름을 주고, 베버라는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괴물은 힐데라는 소녀가 되었다. 이 변화가 싫지는 않았다. 먹거나, 아니면 먹히거나의 두 가지 선택지만 있던 세상에 또다른 지평이 찾아왔고, 호기심이 그것을 힐데의 모습으로 계속 붙잡고 있었다. 힐데는 조심스레 베버를 바라보았다. 아주 잠시만, 아주 잠시만 이 상태로 있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베버는 힐데라는 소녀를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괴물은 힐데로서 베버 아래에 들어갔다.
"그래서. 힐데. 그래. 거기에 팔을 넣어. 그렇게."
"힐데. 먼저 얼굴을 물로 한번 씻어야지."
"숟가락을... 그렇게. 됐어. 아니, 아냐."
베버와 힐데의 생활은 계속 이어졌다. 베버는 힐데에게 이것저것을 가르쳐주었다. 혼자서 옷을 입는 법, 베버의 도움 없이 알아서 씻는 법, 숟가락을 제대로 쥐는 법. 괴물이 아닌 인간이라면, 당연히 배워야 하는 무언가였다.
"그러면, 한번 닦아 봐. 그래. 그게 닦는 거야."
"그 수세미로 접시를 닦으면... 이런. 다친 데는 없어?"
그리고 힐데는 베버의 감독 아래 사람이 행동하는 방법을 배웠다. 처음은 식사를 끝마치고 탁자를 닦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다음은, 접시를 여러개 깨가면서 설거지라는 것을 배웠다. 설거지 다음은 세탁기를 돌리는 방법, 간단한 음식을 만드는 방법 따위를 배웠다.
"...식탁 닦고, 설거지 했고, 세탁기 돌렸고, 응... 청소."
"잘했어. 힐데. 정말 잘 했어."
힐데는 베버가 가르쳐주었던 모든 것을 해냈다. 베버는 자신이 이뤄낸 기적을 보고 씩 웃으며, 누구한테 하는 것인지 모를 칭찬을 던졌다. 잘 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줘, 그 이야기를 듣자, 힐데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칭찬, 누군가의 행동이나 면모에 동의하고 격려하는 행위. 힐데 이전의 삶, 그저 식욕과 생존 본능만이 존재하던 삶에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무언가였지만, 지금은 힐데가 본래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잠시 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식욕과 생존 본능이 충족된 곳에서, 계속 안정적이고 익숙한 환경에서 살고 싶은 욕구를 베버가 채워주었다. 그리고 인간 사냥보다도 더 어려운 무언가를 해낸 힐데에게는, 이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 그 이전의 삶에서는 알 수 없던 미지의 기쁨을 좇아서, 힐데는 조금 더, 조금만 더 힐데로 살기로 했다.
이외에도 베버는 많은 것들을 알려주었다. 읽기, 쓰기, 기초적인 사칙연산은 베버가 직접 가르쳤다. 하지만 몇 가지는 베버가 말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행동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르쳤다. 추운 날에는 수도꼭지를 틀어서 배관이 어는 걸 막는다던지, 눈이 너무 오면 길을 막지 않게 삽으로 눈을 퍼낸다던지. 그리고 베버는, 행동으로 자신이 무슨 삶을 사는지도 알려주곤 했다.
"네, 말씀하시죠.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힐데. 좀 나갔다가 올게."
"젠장, 하필 지금..."
베버는 누군가에게 일감을 받아서 가끔씩 자리를 비우곤 했다. 베버는 강한 자였지만, 웬지 자기보다 더 강한 자들에게 붙잡혀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것 같았다. 듣고 싶어서 일부러 들은 건 아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알게 되었다.
"네? 거기는 몇 주 전에 푀베 길드에서 소탕한 곳 아니었습니까? 하... 그 녀석들 일처리가 그러면 그렇지. 알겠습니다. 즉각 출동하죠."
"고블린 수백마리... 아뇨. 못 할 건 없습니다. 일단 시간을 좀 주시죠."
"그래. 킴. 올 때 치료키트 좀 가져와줘. 내 쪽은 멀어서 어디를 들르고 그럴 시간이 안 날 것 같아."
베버는 강자, 그 중에서도 '헌터'라 불리는 강자였다. 일감이 들어올 때는 항상 나가서 일을 했다. 어느 날은 웃으면서, 어느 날은 씁쓸한 얼굴로 들어왔다.
"다녀왔어. 힐데."
"...다녀왔어. 오늘은... 영 안 좋군."
베버가 사냥하는 것들은 대부분 다른 세계에서 온... 괴물들이었다. 고블린, 오크, 카드 병정, 마녀 따위의 것들. 그것들의 이름이 베버의 입에서 나올 때마다, 힐데는 잠시 잊고 있었던 자신의 본모습을 떠올리며 작게 떨었다. 힐데 앞에서 식사를 하던 베버는, 힐데의 모습을 보고 물었다.
"...힐데. 무슨 일 있니?"
"...없어요."
힐데는 고개를 저었다. 베버에게 사람의 말을 똑바로 배운 힐데는, 그런 게 없다고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힐데는 걱정하고 있었다. 자신의 정체가, 베버가 사냥하던 그 수많은 괴물들이나 다름없음을 알까봐. 그렇게 되면, 베버가 죽일 것 같았다. 베버가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것을 생각하자, 인간의 그것을 본딴 심장이 쿵쿵 뛰었다.
"정말이지? 힐데. 힐데?"
"...으..."
그리고, 힐데의 본모습을 목격한 베버가 느낄 배신감과 충격을, 그 끝에 지을 표정을 생각하자, 힐데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다시 한번, 힐데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도 베버의 걱정을 떨쳐내려는 마음은 같았다. 하지만...
베버의 손에 죽기 싫다. 베버의 슬픈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 베버와 떨어지고 싶지 않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분명 힐데의 고개를 좌우로 돌렸으리라.
그렇게 해서, 힐데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법을 배웠다. 어차피 고블린이나 오크나 다른 무언가나, 결국은 다른 세계에서 왓다는 것을 빼면 힐데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었으니까.
겨울이 끝나고 봄쯤 되니, 베버에게 몸 조심하라고 말하고, 괴물을 죽이는 이야기가 나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괴물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일 시간에, 베버의 칭찬을 들을 방법을 고민했다.
"...더러워."
그래서 힐데는, 평소 잘 청소하지 않는 곳까지 전부 청소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지가 세월과 함께 쌓여 잠든 침대 밑에 걸레를 밀어넣었고, 세상 빛을 본 지 너무 오래된 접시들도 꺼내 한번 더 닦았다. 지어진 이래 한번도 청소하지 않은 것 같은 창고도 정리하고, 빨래를 널 공간이 남아나지 않을 때까지 빨래를 돌렸다.
혹시 베버가 일찍 돌아올까, 힐데는 자신의 본모습을 조금 드러내 일을 거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베버에게 있어 힐데는 우연히 만나서 거둔 소녀였고, 힐데는 베버가 자신을 계속 그렇게 생각해주기를 원했으니. 방안 곳곳에 숨어있던 일거리를 끌어내서 처리하자,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이제는 베버가 돌아와 그녀를 칭찬해줄 시간.
"...크윽... 힐데... 젠장..."
"베버? 베버?!"
하지만 그런 시간은 오지 않았다. 대신, 만신창이가 된 베버를 맞이했을 뿐이다. 힐데는 베버를 붙잡아서, 그대로 들어 침대로 옮겼다. 베버가 가볍게 느껴지니 오히려 더 무서웠다.
"윽... 오늘은 좀... 심했어..."
"베버, 베버, 베버!"
힐데는 베버의 상태를 살폈다. 머리를 칭칭 감은 붕대는 곳곳이 검은 피로 물들었다. 가슴에 두른 붕대는 마치 처음부터 그런 색깔이었다는 듯 완전히 검게 변했고, 배를 꿰맨 수십줄의 바느질 자국은 속 터진 인형을 억지로 고친 꼴이었다. 그리고 다리는 마치 잘린 걸 우격다짐으로 붙인 꼴 같았다.
"...괜찮아. 힐데. 안 죽어..."
힐데 이전에 사람을 잡아먹으며 학습한 해부학이 생각났다. 이럴 때 하필 이딴 생각이 드는 게 너무 미웠지만, 베버가 너무 걱정되어서 생각을 안 할 수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을 보며 베버의 내장을 주워서 다시 재봉했을 메딕과, 그 모든 끔찍한 과정을 견뎠을 베버의 노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힐데. 괜찮다니까, 잠깐, 너 왜 우는 거야?"
"..."
베버가 죽을 뻔했다. 베버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뻔했다. 베버와 영원히 떨어질 뻔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눈에서 뜨거운 물이 흘렀다. 아무리 아파도, 아무리 배고파도 나지 않던 눈물이, 눈 앞의 망가진 사람 하나 때문에 흘렀다. 베버도 난생 처음 보는 힐데의 눈물에 당황해서, 그 망가진 몸으로 낑낑대며 손수건을 내밀었다.
"힐데. 울지 마. 이쁜 얼굴 다 망가진다."
"하지만,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힐데. 난 안 죽었어. 그리고 이 정도로 죽지도 않아. 그러니까, 눈물 닦고 울지 마. 알았어?"
"..."
난 안 죽었고, 안 죽는다. 앵무새마냥 같은 이야기만 수십번 반복한 끝에 힐데가 겨우 진정했다. 눈물을 닦아내고 들어보니, 이번에 맡은 건수가 좀 심하게 꼬인 모양이었다. 이번에 함께한 사람이 초짜인데다 잔실수도 잦아서, 고블린 두 마리를 똑바로 처리 못해 베버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걸 허용했다는 모양이었다.
"...뭐, 그렇게 됐어. 어쨌든, 난 여기 살아있으니까 됐어."
"그게, '헌터' 일 하다가 그렇게 된 거죠?"
"그래, 이게 일이지. 그래도 어쩌겠어. 이게 내 일인걸."
헌터 일. 헌터 일이라는 게 갑자기 미워졌다. 만약 헌터 일이라는 게 없었으면? 베버는 목숨을 걸고 싸우러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죽음의 끝자락에 발을 디뎠다가 겨우 끌려나온 것 같은 처참한 꼴로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게 다 헌터 일 때문이었다.
"헌터 일. 안 하면 안 돼요?"
"음? 뭐라고?"
"헌터 일. 위험하잖아요. 그거 때문에, 베버가 죽을 뻔했잖아요."
그렇게 묻자, 정신을 차리는 것도 힘겨워 게슴츠레 뜬 눈이 크게 뜨였다. 힐데가 인간으로 산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베버가 무언가 깊게 생각하고 있음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베버는, 깊은 침묵 끝에 허허 웃으며 자신의 '깊은 생각'을 드러냈다.
"힐데. 너 그 아이랑은 좀 다르구나."
"...네?"
베버는 자세를 고쳐서 편히 누웠다. 그리고 천장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옛날을 이야기했다.
"나한테는 아주 예쁜 딸이 하나 있었어. 정말로 사랑스러운 아이였지. 지금은 뭐... 그래. 죽었지만. 그 아이는 내가 헌터라는 걸 자랑스러워했어. 내가 헌터 이름을 달고 무슨 일을 했다 하면, 길바닥에서 담배꽁초 하나를 주웠대도 좋다고 박수를 쳤지."
힐데는 잠자코 들었다. 잠자코 앉아있는 외면과는 다르게, 내면은 호기심이 또다시 눈을 뜨고 있었다. 가족, 힐데는 이야기로만 들은 개념, 모든 인간은 짧게나 길게나 가족이 있다고 배웠으니, 베버에게도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다보니 모르고 살던 당연한 사실이, 베버의 이야기로 살이 붙었다.
"...그 아이가 했던 말이 있어. 세계 최고의 헌터가 되어달라고. 헨리 파웰, 투왕, 그리고... 내 이름, 베버를 역사책에서 보게 해달라고."
"..."
다시 침묵. 힐데는 많은 것을 배웠지만, 이 상황에 무슨 말을 해야 적절할지는 배우지 못했다. 말이야 많이 생각났지만, 무엇을 말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아, 조심스레 베버의 손에 제 손을 포개어 얹었다. 그러자 베버는 피식 웃으며 침묵을 깼다.
"...그래. 우습겠지만, 그래. 난 내 딸과 약속했어. 헨리 파웰, 투왕, 그 정도는 못 되더라도... 준영웅 발치까지는 가봐야지 않겠어. 그래야 나중에 죽었을 때, 내 딸을 만나서 할 말이 있지. 아빠가, 최고는 못 되어도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어쨌든... 이제 자 봐야겠어. 오늘은 너무 힘들었네. 베버는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혹시 몰라서, 힐데는 베버가 죽어가는 것인가 확인했다. 맥박도 호흡도 정상. 베버는 죽지 않았고, 당장 죽지도 않을 것임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나서야 힐데는 마음을 놓았다.
"...알았어요. 베버."
힐데는 그렇게 말하고, 가만히 앉아서 베버를 내려다보았다. 생각해보면 베버는 힐데보다도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자의 냄새가 나긴 났지만, 고블린 두 마리한테 치명상을 입다니. 힐데가 본 모습을 보인다면, 고블린 두 마리가 아니라 수백마리라도 전부 한 번에 잡아먹을 것이다. 어쩌면 그 중 몇마리는 힐데가 잡아먹기도 전에 무서워서 자살할지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베버를 잡아먹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웠다. 베버가 자기보다 약하다는 건, 이 세상에 베버를 단숨에 죽여버릴 게 너무나도 많다는 의미였다. 다시 한번, 헌터를 그만두라고 설득하고 싶었다. 하지만 베버를 막을 수 없었다. 아빠와 딸, 이 개념이 얼마나 강한 건지는 가늠이 어려웠지만, 어쨌든 베버는 그 약속에 매여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힐데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 다음부터, 힐데는 베버의 뒤를 밟았다. 어떤 의뢰는 쉽게 끝마쳤고, 어떤 의뢰는 힘겹게 완수했다. 어떤 때에는, 베버의 능력을 넘어선 의뢰를 포기하고 도망치기도 했다. 베버가 조금이라도 다칠 때마다, 힐데는 눈을 질끈 감았다. 동료가 허술하게 싸운 탓에 베버가 위험에 처하면, 순간 분노가 살의까지 끓어올랐다. 그래도, 베버는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왔다. 계속 이렇게만 한다면, 베버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날도 계속되지는 않았다.
어떤 날, 베버는 유독 어두운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왜 그러냐고 물어봐도 말이 없었다. 못내 불안해서, 힐데는 여느 날처럼 그의 뒤를 밟았다. 그리고 폐허가 된 시가지까지 들어서자, 힐데는 그 어두운 표정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원 요청! 지원 요청! 젠장! 이런 게 나온다고는... 흐아아악!!!"
지휘 역을 맡았던 베버의 동료가, 오우거의 손에 붙잡혀서 허무하게 반 조각으로 찢겨나간다. 오우거가 찢으면서 앞으로 나아갔기에, 그의 죽음은 시간벌이조차 되지 못했다.
"베버! 도망쳐야 해! 이건 우리가 어떻게 ㅎ..."
도망치기를 간곡히 호소하던 동료도, 베버를 돌아보다가 제 머리 위에 올라간 오우거의 발을 보지 못해 그대로 밟혔다.
그렇게 남은 건 오우거 여러 마리와 베버뿐이었다.
"젠장.. 젠장... 젠장...!!!"
"베버...!"
힐데는 건물 틈새에서 베버를 바라보았다.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오우거들이 베버를 둘러쌌다. 이전처럼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오우거들은 이미 승리를 확정짓고는, 어떻게 베버를 찢어죽일지 논의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해... 어떻게 하냐고..."
힐데는 베버를 애타게 바라보았다. 베버가 갑자기 힘을 각성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저 오우거들을 다 쓰러뜨리고, 여느 날처럼 웃으며, 하다못해 씁쓸한 표정으로라도 돌아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힐데의 희망은, 희망을 넘어서 망상이나 다름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베버가 살아남을 방법은 힐데가 돕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두려웠다. 힐데의 정체를 베버가 안다면? 괴물 잡는 의뢰는 전부 다 수주하던 베버가, 괴물이 된 힐데의 모습을 보면? 베버와 쌓아왔던 일상이 다른 방식으로 무너지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힐데의 고민도, 베버의 굳건한 결의도, 오우거의 시간을 멈추지는 못했다.
"구으으..."
"덤벼, 이 오우거 새끼들... 크악!"
베버가 오우거 한 마리에게 달려들고, 오우거는 간단하게 손으로 쳐냈다. 베버는 그대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그것을 보자, 힐데의 이성이 완전히 뒤집혔다. 힐데는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던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베버에게 다가가던 오우거들을 덮쳤다.
"...하아, 하아..."
정신을 차려보면 피바다였다. 살기등등하던 오우거들은 전부 콘크리트 잔해처럼 무의미한 고깃덩이로 변했고, 그저 힘줄 덜 끊긴 눈알이나 내장 몇 더미만이 이 자리에 서 있었던 오우거들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증언할 뿐. 힐데는 고개를 돌려 베버를 바라보았다. 어쨌든 살아는 있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힐데는 마지막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쉬려고 바닥을 내려다보니, 베버가 가지고 다니던 지갑이 보였다. 아까 전에 오우거한테 치이면서 떨어뜨렸겠거니, 그렇게 생각한 힐데는 지갑을 주웠다. 그리고 그대로 멈췄다.
"어?"
힐데의 사진이 지갑에 들어있었다. 정확히는, 가을을 배경으로 한 힐데의 사진이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베버와는 지난 겨울에 처음 만났고, 지금은 봄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가을 배경의 내 사진이 있는 거지? 힐데는 가만히 굳어서 이걸 설명할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힐데는 원래 이 모습이 아니었다. 원래는 그냥 괴물이었다. 이 모습은... 사실 잡아먹었던 한 소녀의 모습을 떠올리고 변한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힐데의 손이 벌벌 떨렸다. 그리고 손이 벌벌 떨리는 건, 힐데만이 아니었다.
".......너 뭐야."
"베버?!"
베버와 힐데의 눈이 마주쳤다. 베버는 아직 멀쩡히 쓸 수 있는 한 쪽 팔로 힐데를 가리켰다. 힐데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그 표정, 그 충격, 그 배신감이었다. 힐데는 입을 다물고, 주저앉아서 베버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일상이 끝날 줄은 알았다. 하지만, 이런 식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베버, 베버... 이건...!"
"그래, 그랬던 거야. 네가... 네가... 그 아이의 자리를..."
"미안해요. 미안해요 베버! 죽으라면 죽을게요! 그러니까, 제발..."
"아니, 그럴 수 없어..."
베버는 고개를 저었다. 힐데는 너무나도 강했다. 베버의 힘으로는 평생을 써도, 힐데를 죽이기는커녕 힘을 약화시킬 수도 없을 게 뻔했다. 자신이 그간 키워왔던 것의 정체에 더해, 자신의 무력감까지 알게 된 베버는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힐데에 대한 배신감보다도,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느낌이 더 끔찍했다.
"...힐데."
"...베버. 제발 죽지 마요. 당신을 구하려면 어쩔 수 없었어요."
그 이야기에, 베버는 힐데를 다시 바라보았다. 구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 말만큼은 진심이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괴물은 분명 베버를 위하고 있었다. 그러자, 또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저 괴물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엿은 먹일 수 있지 않을까. 베버는 저도 모르게 제 생각을 입 밖으로 내버렸다.
"...딸에게 한 약속은 못 지키겠지만, 딸의 복수는 하겠군."
"..."
힐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베버가 자신을 죽이겠지. 그렇게 해서, 딸을 죽인 것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녀의 최후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너무나도 빨리 죽인 나머지 아무 것도 못 느꼈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조심스레 눈을 뜬 힐데는, 자신의 죽음보다도 더 끔찍한 것을 마주했다.
"베버? 베버?!"
베버가 자신의 목에 칼을 꽂은 채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힐데는 저 상태를 뭐라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베버, 죽으면 안 돼요. 베버, 베버!!!!!!"
온 생명이 추위 이후의 따뜻함에 느리게 기지개를 켜고, 흰색 커튼이 적신 자리를 초록색으로 칠하는 계절이었다.
한해살이 식물과 벌레에게는 세상의 창조였고, 수십년을 사는 인간들에게는 새 한해의 시작이었고, 수백년을 사는 나무에게는 잠에서 깨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 수십억의 생명이 바라보는 수십조의 관점과는 다르게, 이상한 무언가가 이 따뜻한 세상에서, 비명을 질렀다.
- 린주-관광버스와 휴게소(그림연성)
5.1. 패치 사항 ¶
- 소지금 보유현황 (갱신 일시 2025.01.05. 10:30 PM)
라디로비엔 : 1,000,000 GP
마츠시타 린 : 1,000,000 GP
알렌 : 1,000,000 GP
오토나시 토리 : 1,000,000 GP
윤. J. 시윤 : 1,000,000 GP
이한결 : 1,000,000 GP
주강산 : 1,000,000 GP
채여선 : 1,929,589 GP
토고 쇼코 : 850,000 GP
하윤성 : 1,000,000 GP
- 영웅서가 2 특별반 소속 NPC
동료를 모집하기 어려울 때는 반 친구를 데려가보세요.
1. 하프오크 에루나 투카샤
레벨 ▶ 34
의념 속성 ▶ 대전쟁大戰爭
스테이터스
신체 190 신속 130 영성 90 건강 160 매력 15
기술
오크 식 쌍부술(C)
- 부상과 악재 속에서도 전투를 지속할 수 있는 오크들만의 전투법. 공격에 치우친 도끼술에 능숙하다.
투쟁의 함성(C)
- 전투 중 아군의 부상 발생 확률을 감소시키고 공격력을 증가시킨다.
외 기타등등
특성
투쟁에서 태어난 전장의 뿔
어느 게이트 안에서 나타난 전쟁 오크의 혼혈
오크가 지닌 여러 특징들을 타고났다.
특성이 성장함에 따라 다양한 특성들이 발현된다.
신체 스테이터스가 50 증가하고 건강이 30 증가하지만 영성이 40 감소한다.
전장에서 태어나 전장에서 죽는다
끝없이 싸움으로 끝없이 단련해나간다. 언젠가 하늘을 부쉈다는 조상의 피를 잇기 위해.
전투에서 승리 시 부상의 정도에 따라 획득하는 경험치량이 증가한다.
내제된 흉포함
싸우고, 투쟁하다, 죽는 종족의 운명.
전투가 일정 시간 지속될 경우 광폭화 상태에 돌입한다. 방어력이 감소하고 공격력이 증가하지만, 후퇴할 수 없다.
2. 건슬링어 진 류
레벨 ▶ 31
의념 속성 ▶ 불가능을 쫓다.
스테이터스
신체 120 신속 150 영성 110 건강 70 매력 10
기술
사일러스 건슬링어(C)
- 흔적도, 소리도, 결과마저도 침묵 속에 남을 기술.
달인의 경지에 다다른 사격술.
기술 단절 - 브레이킹 모먼트(C)
- 적의 기술을 카운터하여 발동한다. 위력을 감소시키고 일정 이하의 공격을 차단한다. 단, 다음 턴 공격할 수 없다.
외 기타등등
특성
실종자
게이트에 휘말려 기억을 잃어버렸습니다. 전투 외 상황에서 디메리트를 받지만 전투 상황에서 보정을 받습니다.
모래바람의 아우라
적이 자신을 공격하려 할 시 명중률을 소폭 감소시킨다.
친절한 보안관
선 성향의 의뢰를 받을 시 스테이터스에 보정을 받는다.
3. 송골매 이자현 (탈퇴)
레벨 ▶ 28
의념 속성 ▶ 탐眈
스테이터스
신체 65 신속 85 영성 265 건강 70 매력 30
기술
전장의 매(B)
- 전황을 살피고, 약점을 집어내고, 아군을 보조하는 데에 뛰어난 능력을 지닌다.
약점 간파(A)
- 의념을 눈에 집중하여 상대의 의념 결정을 찾아낸다.
A랭크의 약점 간파는 특정 상황에 따라 임의적인 약점을 부여할 수 있다.
외 기타등등
특성
타고난 보조자
전투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 외에 보조 상황에선 매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영성 불균형
영성의 효율이 감소하고 여러 디메리트를 받는다.
미인
매력 스테이터스가 20 증가한다.
특이사항 : 김태식과 관련된 에피소드로 인해 특별반에서 이탈함
4.. 이간夷奸 백승주
레벨 ▶︎ 44
의념 속성 ▶︎ 간奸.
스테이더스
신체 160 신속 165 영성 150 건강 155 매력 30
기술
보합창步合槍(B)
어떻게 보면 가장 기초적인 창술에서 발전하여 특성이 없는 것에 가깝지만. 분류적으로는 무공에 속한다.
발걸음과 창의 움직임. 그것을 합해 하나가 된 듯 압박한다 하여 보합창이라 불리나 어떻게 보면 당연한 움직임을 펼치는 것에 가까운 무공이기에 여타 무공의 희소성에 비하면 왜 이런 것을 다루는지 알 수 없다.
등 외.
특성
회귀
후회로 도망치다
- 공개 불가
굳건한 마음
- B랭크 이하의 혼란 상태이상에 면역
전술가
- 전투 중 지휘 시 보너스.
- 아득한 자아 구매횟수 (2023/11/02) (*판매중지)
- *2023.11.14일부로 아득한 자아 판매중지 및 미사용 분량 환불처리됨.
김태식 2
빈센트 2
주강산 2
토고 쇼코 1
알렌 1
채여선 1
- 특별수련장 입장권 보유 현황 (11/20 까지)
- 김태식 **
주강산 **
토고 쇼코 *
윤시윤 *
- 코인샵 50코인 이용권 지급/보유현황 (2023/12/09)
- (아직 가지고 있는 캐릭터들의 목록. 사용한 사람은 리스트에서 제외됩니다.)
마츠시타 린
알렌
- 자유배분 숙련도/기술 포인트 보유내역 (2023.12.18. 09:15 PM, 단위는 %)
- 강 철 75
김태식 20
주강산 0 +❄️15%
알렌 10 (+250) +❄️15%
마츠시타 린 0 +❄️15%
토고 쇼코 0 (+25) +❄️15%
윤시윤 0 (+15) +❄️15%
채여선 0 +❄️15%
한태호 30 +❄️15%
*숙련포인트 A : 기존 자유분배 숙련도
주기술, 비전 기술 배분 O
등급 무관하게 1:1로 적용됨
*숙련포인트 B : 시나리오 2 종료 보상 기술 포인트 (적용 규칙이 기존과 상이하므로 괄호로 분리)
대운동회 참여자들에게 +250 일괄 제공되었음.
주기술, 비전 기술에 배분 불가
고등급에서는 비율 조정되어 적용
(D랭크 이하에서는 1배, C부터는 1/3배, B는 1/5배, A는 1/10배)
*❄️ : 윈터 토너먼트 참가상으로 지급된 숙련도.
주기술을 제외한 전투 기술에 투자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