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금석(어딘가의 초차원 오픈 카톡방)

역시 이것은 어머니보다는 너에게 잘 어울린다. 리본으로 동생의 머리를 묶어주며 나는 생각했다. 뒷머리를 곱게 묶은 너는 슬픈 미소를 지어보였다. 예의 습관이었다. 언제나 감정을 길들이는 것에 익숙해져온 우리들이니까.

지금껏 나는 줄곧 천둥은 영탄적인 기쁨과 닮아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렇게 말하면 다들 웃었다. 그렇지만 어제 내가 똑같은 말을 했을때는 누구도 웃지 않았다. 그것은 긍정적인 뜻은 아니었다. 나의 발언이 여느때와 같은 '조금 이상한 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서는 안 될 말이야.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나의 말이 부적절하고 모욕적이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나는 그 날 확신했다. 천둥은 찬란하게도 극한의 기쁨을 표출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그 날 목을 맨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 날은 폭풍우가 쳤다. 거실이 눈이 아프게 천둥빛깔로 번쩍거렸다. 나는 어머니가 토해내는 기쁨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눈이 아팠기 때문이다. 번쩍, 번쩍하고 당신은 고장난 가전제품마냥 발광하고 있었다. 어머니였던 목매단 시체가, 거실에 매달려있었고. 눈물을 훔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당신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죽어도 그대로였다. 당신의 죽음은 그 자가 끊었던 담배에 다시 손을 댈 정도의 가치도 없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이번 일로 그 리본끈이 내 예상보다 훨씬 견고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맨손으로도 끊을 수 있는 리본끈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구나. 아니. 아니다. 그깟 리본끈은 그 정도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나는 어머니를 죽인 것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것이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엄마는 이미 화장된지 오래인데, 어떻게 머리를 묶어줄 생각인가? 동생의 발걸음을 따라간다.
예정에 없던 외출이었다. 그저께 천둥번개가 쳤던 것이 거짓말같이 하늘은 무척이나 새파랬다. 동생의 뒤로 묶은 긴 머리칼이 명랑하게 찰랑댄다. 사람들이 우리들을 보고 수군거린다.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동생도 그런 소리따윈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이 환한 얼굴이었다.

동생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마을에서 조금 먼 곳에 있는 강이었다. 이 정도 걸었으면 지칠 법도 한데 이 애의 얼굴은 쌩쌩했다. 숨이 차서 주저앉은 나와는 달랐다. 나는 이 때 동생이 내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그 리본하고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미리 약간 잘라둔 리본을 강에 흘려보낸다.

당신을 태운 연기가 하늘로 올라갔으니까, 비가 내리면 다시 내려온다는 소린가. 나보다 이 녀석이 똑똑할지도 모른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무력한 내가 하지 못한 일도 해낼지도 모르지. 그런 동생이 조금 기특해서, 나는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사흘 째 되는 날이었다. 나는 엄마가 죽었을 때보다 배로 경악했다. 그것은 이 광경이 괴로웠기 때문이 아니었다. 전혀 예상도 못하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엄마를 죽인 진범은 무력하게 매달려있었다. 공중에서 대롱대롱 흔들리는 아비를 나는 올려다본다. 익숙한 리본이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목을 맸고, 너의 머리를 묶었던 것이다.

지금껏 나는 나의 아버지는 남들보다 훨씬 견고하고 강한 사람이라서 손쉽게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는 두 개의 심장을 가지고 있고, 몸은 살갗대신 무쇠로 되어있어서 칼로 찔러도 꿈쩍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그 안에 흐르는 것은 피가 아닌 끓는 기름이라고 하는 그런 인상이 무의식중에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목을 매달고 죽어있었다. 그는 그럴리가 없었다. 쉽게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도 우리들과 똑같이 물렁한 살덩이로 이루어진 인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런 짓을 한 사람이 누구일지는 대충 짐작이 가는 바였다. 왜냐하면 그가 스스로의 목을 매달리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것만은 절대 그럴리가 없었다. 그의 몸뚱이는 물컹한 고기덩이일 지언정 그의 머리통은 고철이었다. 너희때문에 내가 힘들어졌다면서 머리를 벽에 박아 쾅쾅대는 소리를 내면서도 아비는 결코 상처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 작자가 자기 스스로 죽을리가 없었다. 누군가가 죽인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이 일에 대해서 동생에게 말했다. 그러자 동생은 대답했다.

옛날의 일과, 얼마전의 일과, 언젠가의 일을 마구 뒤섞은 발언이었다. 나는 구태여 그것을 지적하진 않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고 있었다. 모두가 손가락질했듯이 우리들은 결국 그런 인간이다. 상관없었다.

동생을 향해 내가 가지고 있던 어렴풋한 예상은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