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 어딘가의 초차원 오픈 카톡방, 어딘가의 초차원 오픈 카톡방/캐릭터 목록
- 관련 항목 : The City
현재 엔딩이 나서, 본스레에 등장하지 않는다.
리테 | |
https://picrew.me/image_maker/371228 | |
상태 메세지 | |
최초 레스 작성 일시 | |
알아야 하는 정보 | |
더 시티의 사냥꾼. | |
본명 | 리테 |
나이 | 21 |
성별 | 여 |
국적 | 더 시티 |
종족 | 결국에는, 변이체. |
생일 | 11월 19일 |
직업 | |
상태 | 실종 |
1. 소개 ¶
https://picrew.me/image_maker/491920
더 시티의 사냥꾼.
정신체까지 사냥할 수 있는 고급인력.
불같은 성격.
리테가 너무 말을 함부로 하면 카밀을 불러주세요.
2. 특징 ¶
정신체를 쓰러뜨리다가 그 파편이 몸에 박혔다. 이로 인해 다소 신경과민. (정확히 말하자면, 쓰러뜨리지 못했다. )
동료였으나 변이해버린 에스텔을 (죽이기 위해)쫓고 있다.
동료였으나 변이해버린 에스텔을 (죽이기 위해)쫓고 있다.
https://picrew.me/image_maker/30843
사실은 변이체. 이 사실을 숨기고 있다. 이를 알고 있는건 더 시티의 인간중에서는 카밀 뿐.
안대 뒤의 눈은 사냥꾼이 되기 전에 잃어버렸으나, 변이하면서 재생되었다.
물리적으로 크게 타격을 입으면 좀 더 인간에서 벗어난 외양이 된다. 비늘이 돋아나고 눈이 가려진 쪽과 같은 형태가 되는 등.
현재는 모습이 인간에서 다소 벗어난 외양으로 고정되어버려 변이함을 숨길 수 없게 되었다.
현재는 모습이 인간에서 다소 벗어난 외양으로 고정되어버려 변이함을 숨길 수 없게 되었다.
4. 인간관계 ¶
- 모브 캐릭터
- 에스텔
https://picrew.me/image_maker/234517
https://picrew.me/image_maker/45053
변이 후에는 한쪽 얼굴을 가린 가면을 쓰고 다닌다.
과거 동료였으나, 에스텔이 변이한 이후로 팀이 분해. 이후 에스텔을 쫓고 있다.
티나
과거 동료였으나, 에스텔이 변이한 후 사냥꾼을 그만뒀다.
5.2. 자세한 정보 ¶
사냥꾼다움을 가장하기 위해서, 생기있는 감정을 절실하게 느끼기 위해서,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늘 화를 내고 있다. 분노하는 것을 멈추는 순간 찾아올 허무가 두려워서. 끝없는 투쟁속에서 살아가는 사냥꾼다운 존재임을 가장하기 위해. 어째서 화를 내는지도 이제는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별거아닌 일들에 불같이 화를 내면서도 막상 의외의 순간에 차갑게 식어버릴때가 있다.
변이를 감출 수 없게 된 이후로는, 도시를 떠나 카밀과 함께 우주를 떠돌고 있다.
6.2. 독백 ¶
- 리테와 마블
- 무섭게 돌격한 마블의 창이 리테의 두부를 비껴간다. 그것은 벽에 꽂힌 채 커다란 금을 가게 했다. 자신을 밀어붙이곤죽일 듯이 노려보는 후배에게 리테는 싸늘한 시선만을 돌려준다. 마블은 확연하게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마블이 이런 식으로 표정을 바꾸는 것은 오로지 에스텔과 관련된 일일 때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마블에게 굳이 에스텔을 들먹이며 도발할 수 있는 것은 아마 리테 정도겠지. 리테는 코웃음을 치고는, 마블이 겨눈 창을 움켜쥔다. 콰득. 창에 금이 간다.
"이 정도 실력으로 그 녀석을 죽이겠다고?"
견고한 강도로 되어있는 창이 과자처럼 그의 손에서 두동강난다. 무정한 얼굴이었다. 마블은 이를 악문다. 노기가 서린 채로 리테의 한 쪽뿐인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웃기지 마. 수명 아까운줄 모르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내던져서 뭘 할건데?"
"닥쳐."
"현실성 없는 꿈에 매달리려고 사냥꾼이 된거야? 스스로의 몸값을 냉정하게 바라봐. 죽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닥치라고 말했어. 개자식아."
지금의 마블에겐 선배고 뭐고 없었다. 애초에 마블이 관심을 가지는 인간이라곤 에스텔밖에는 없었다. 다른 개체들에게는 알 바 아니었다. 마블에게 에스텔은 삶의 의미이자 목표였다. 지극히 불손한 태도에도 리테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평소에 장난삼아 '어디 선배가 얘기하는데' 같은 추임새를 붙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리테는 메고 있던 칼을 마블의 옆에 내던진다.
"어디 힘으로 닥치게 해보시든가."
흔히 푸주칼이라고도 부르는 그것과 닮은 거대한 칼이었다. 마블은 눈 앞에 있는 칼을 줍는다. 그리고 휘두른다. 집요하게 리테의 머리를 노린다. 목을 베어버리려는 듯이. 하지만 묵직하게 휘두르는 검을 리테는 손쉽게 피한다. 마치 움직임을 예측하고 있는 것 같다. 살기를 띈 눈에 동요하기는 커녕, 차가운 무표정을 유지한 채로. 기젤라와 하이넬은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으나 각자의 이유로 차마 말릴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었다. 기젤라는 말리기 겁이 나서, 하이넬은 결과를 알고 있었기에.
괴물들의 싸움이었다. 사냥꾼의 전투력은 평범한 인간하고는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마블은 분명 굉장히 실력있는 사냥꾼이었다. 평소 쓰던 무기가 아니니까 익숙치 않을 법도 한데도 마치 원래부터 칼의 주인이었던 것 마냥 능숙히 칼을 쓰고 있었다. 휘두르고, 돌리고, 꽂고, 찌르고, 베면서.
하지만 리테의 연륜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다. 공격 하나하나가 재빠르고 움직임과 움직임사이 틈이 없는데도 리테는 그 모두를 읽어내고, 가볍게 피한다. 되려 피하는 동작 하나하나에서 마블이 리테를 벽으로 몰아넣는 것을 못 하게 하기까지 한다. 흐름을 장악하고 있는 쪽은 누가 봐도 리테였다.
더군다나 리테는 무기를 쓰고 있지 않았다. 상대에게 자신의 무기를 주고 자신은 맨몸으로 싸우고 있는 것이다. 리테에게 창은 너무 약했다. 분명 결코 약하게 만들어진 창이 아닌데도 그것을 맨손으로 부숴버렸지. 그래서 일부러 무게있고 부서지지 않는 무기를 리테에게 던진 것이다.
몇 번이고 검이 휘둘리던 중, 마블이 칼을 치켜들었을 때였다. 리테는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낮게 읊조리고는 상대에게 파고들듯이 다가간다.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빈틈."
아차. 마블이 그렇게 생각했을때는 이미 늦었다. 리테는 칼을 손날로 쳐서 떨어뜨리고, 바닥에 꽂히기 전에 칼 손잡이를 낚아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마블의 눈앞에 칼을 겨눈다.
리테의 압승이었다.
"……!"
분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문다. 마블의 공격은 리테의 머리칼 끝자락마저도 베지 못했다. 빈틈이 없었다. 분노에 휘둘릴 것 같은 인상과는 달리 전투에 임하는 태도는 한없이 냉정했다. 그야말로 타고난 사냥꾼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도 노력했어. 엄청나게 노력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니 마블에게는 다시금 분노가 끓어올랐다. 저것은 어째서 숨쉬듯이 나의 평생을 부정하는가.
"싸우고 싶으면 더 실력을 쌓아와."
그렇게 말하고 리테는 칼을 다시 등 뒤에 메고 돌아선다.
/
"…저기- 그, 미안해. 리테가 한 일."
상황이 종료되고 나서 뒤늦게 카밀과 린이 나타난다. 두 사람은 같이 쇼핑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린의 입에는 딸기 도넛이 물려있었다. 에스텔의 팀이 뿔뿔이 흩어진 이후에도 선배들중 비교적 가장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있다면 카밀이었다. 아예 사냥꾼을 그만둔 티나나, 그 태도가 확연히 날이 서게 된게 눈이 보이는 리테와는 달랐다. 여전히 그는 온화한 성격에 누구에게나 여유로운 태도를 보여주었다.
"신경쓰지 마세요. 카밀 선배가 한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친구니까…."
사실은 친구라고 일축하기엔 상당히 깊은 사이였다지만 카밀은 거기까진 굳이 말하지 않은 채였다. 입가에 설탕가루를 묻힌 채 무슨 일 있었어? 라며 갸웃거리던 린은, 자초지종을 듣고 난 뒤에는 그 건에 관해서는 입을 다문다. 그 대신 카밀과 간 쇼핑에서 일어난 일들같은걸 이야기하면서.
"…변호를 조금 해주자면, 리테는 아마 속으로는 마블을 생각해주고 있다…고 생각해. "
카밀은 리테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리테를 가장 깊이 이해하는 사람을 꼽자면 단연 그였다. 리테는 카밀이그 누구에게도 말하거나 보여주지 않는 부분까지도 알고 있었다. 이를테면 안대로 가려진 부분이 어떻게 생겼는지나, 몸 곳곳에 새겨져있는 흉터들, 그리고 그것들이 지금의 형태를 갖추기까지 있었던 일들까지.
"리테는 아마 마블이 에스텔과 마주하고 나서 좌절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그럴 거야. 죽이는걸 성공하든, 성공하지 않든, 무거운 일이니까. 소중했던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단순히 그 일 자체도 위험하고…말이지."
"……."
"그렇다고 해서 리테의 방식이 정당화되는건 아니야.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드러나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
마블은 그 말을 들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히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제나의 무표정과는 달랐다. 단순히 패배의 굴욕을 곱씹는 것 이상으로 깊은 심연과 같은 감정들이 얽혀있었다. 언젠가의 무능했던 자신에서부터, 구원이었던 사람을 잃어버리기까지.
"…카밀 선배도, 저희가 하는 일이 의미없다고 생각하나요?"
하이넬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기젤라는 하이넬의 질문에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이 된다. 어찌보면 그들의 여행 그 자체를 부정하는 말이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의미가 없다곤 생각하지 않아. 단지 힘들 뿐이지."
카밀은 잠시 침묵하더니 답한다.
"갑작스러운 이별의 의미를 찾고 싶은 심정은 알고 있어. 그 감정을 마무리짓고 싶은 기분도. 소중했던 사람을 자기 손으로 보내준다는 것은, 무척 의미가 큰 일이지. 하지만…."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하이넬과 기젤라, 린은 그의 말을 경청한다. 만약 카밀이 좀 더 에스텔만큼 적극적인 성격이었다면 별의 여행자들의 은인은 한 명 뿐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단지 마블은 말을 듣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에스텔을 찾아내는 것 자체도 굉장히 막막한 일일 뿐더러, 만약에 만난다고 해도 죽일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어. 실제로 우리 팀 역시 한 번 에스텔에게 패배했었으니까. "
변이한 에스텔이 살아있는 이유는, 그 때 리테 일행이 에스텔이 변이한 순간 그를 제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스텔은 그렇게 그들을 떠나가버렸다. 그것은 도망친것과는 달랐다. 이별을 선언한 것이다. 카밀은 떠올려본다. 에스텔이 자신들을 적대하는 눈으로 보고, 에스텔에게 다 같이 무기를 겨눠야 했던 그 날을.
"그리고, 죽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주변따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돌진한 사람이, 막상 목표가 사라지고 나니 더할나위없이 허무해지는, 그런 일은 흔한 법이다. 리테는 그 허무감을 알고 있었다.
리테에게 있어 에스텔은 마블과는 다른 의미로 삶의 목표였다. 때때로 리테는 에스텔을 보며 자신의 삶 전부가 부정당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에스텔에게 친근함을 느끼면서도, 증오하고, 끝없이 의식하고 있었다. 에스텔을 인정못하면서도 인정하고 있었다. 일종의 라이벌의식이었다. 그런 에스텔이, 그렇게 되어버려선 안 되는 거였다.
카밀은 그 허무감을 아는 리테를 알고 있었다.
'진흙탕에 굴러들어가는건 우리로 충분해.'
언젠가 리테는 마블 일행에 대해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목표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이유를 일축한 말이었다.
사실 더 최악의 경우로는 에스텔이 이미 다른 사냥꾼에게 살해당한다는 경우의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리테도 카밀도 경우에 넣지 않았다. 왜냐하면 에스텔은 강했다. 만약 에스텔이 변이하는 것을 눈앞에서 본 게 아니라면, 정신체라고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에스텔을 아는 자신들이 이기지 못했는데, 에스텔을 모르는 이들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만약 에스텔을 쫓는 것을 계속 한다면, 일이 전부 끝났을 때 뭘 할지도 생각해두는 게 좋아. 에스텔은 좋은 사람이지만, 사람이 사람의 인생의 전부가 될 수는 없잖니."
카밀은 진심어린 충고를 한다. 꺾을 수 없다면, 방향을 조금 원만하게 틀어주는 쪽이 좋지 않을까. 그러나 마블은 완고하게 답한다. 이를 부정하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겠다는 듯이.
"…에스텔은 저의 전부에요."
- 과거
- 1
- "리테는 왜 사냥꾼이 되려고 하는거야?"
학창시절, 언젠가 누군가가 리테에게 그런 것을 물었었다. 아직 조그마한 그는 진짜 사냥꾼의 실력 발 끝에도 못 미치던 풋내기였지. 리테는 매일같이 연습에만 열중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쌓거나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학생이었다. 그 반쯤 감긴 나른한 회색 눈동자는, 별로 오래 고민하지도 않고 그렇게 말했다.
"별로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거든."
허무했다. 어째서냐고 물으면 본인도 알 수 없었다. 별을 따라해 놓여있는 조잡한 인공조명들도, 보이지 않지만 모든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감시의 눈도, 무기질한 선장의 목소리도, 경쟁적인 학교도, 이런 도시를 위한 숭고한 희생을 가치있게 생각하는 부모도,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자기자신조차도, 전부 리테에게 있어서 지긋지긋한 것들 뿐이었다.
"그건, 조금 슬프네."
그 녀석의 이름이 에스텔이었다는 것을 리테가 알게 된 것은 조금 나중이었다.
/
에스텔, 리테, 카밀, 티나, 훗날 같은 사냥꾼 동료로서 싸우게 되는 이 네 사람이 가까워지게 된 계기는 어느 조별수업 때문이었다. 4인 1조로 팀을 짜야 하는 수업이 있었던 것이다. 리테는 교우관계에 충실하지 않았기에 팀을 짤 상대가 없어 혼자 남겨져있는 채였다. 그런 리테에게 먼저 다가온 것이 에스텔이었다.
"너도 같이 하자."
리테는 상당히 실력있는 학생이었다. 평소 적극적으로 실력을 보이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별로 드러나지 않는 사실이지만. 네 사람은 조금씩 친해져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들이 알게 된 것은, 리테라고 하는 이는 상당히 파멸적인 성향을 띄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느끼게 된 대표적인 사건을 꼽자면, 역시 전투 도중 그가 눈을 잃어버렸을 때였지.
"리테. 상처가 심해…! 빨리 치료해야 해."
"……."
걱정스러운듯이 달려오는 티나에게 리테는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덤덤한 무표정으로 남의 일을 자기 일마냥 걱정해주는 상냥한 동료들을 노려봤다.
"경쟁자가 하나 줄어들면 너희도 좋은 거 아냐?"
그 매정한 말에 대답하는 대신, 카밀은 원래 알고 있던 의료지식을 기반으로 치료를 도왔다. 리테의 눈 부근에 소독약이 발라지고 붕대가 감긴다. '이건 응급처치고, 빨리 보건실로 돌아가는게 좋을 것 같아.' 라는 말을 덧붙인다. 티나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 무섭지 않아?"
"왜?"
"이대로라면, 빨리 치료한다고 해도…한 쪽 눈을 못 쓰게 될거야."
"한 쪽 눈이 없어도 나는 강해."
"그런 말이 아니라…."
남은 한 쪽 눈도 공허하기 짝이 없었다. 리테의 그것은.
"어차피 사냥꾼이 되기로 한 시점에서, 중간에 뒈질수도 있다는 건 각오하고 들어오는 거잖아?"
"……."
"리테. 말이 심해."
그 말에 우물쭈물하는 티나를 보고, 카밀은 리테에게 부드럽게 지적한다. 리테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지만. 잠자코 있던 에스텔은 그런 리테에게 얘기한다.
"그런 식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가시돋힌듯이 밀어내면 좋아?"
"어엉? 뭐 어쩌라고. 시비거는거냐?"
"아니. 그냥. 왜 굳이 알아서 적을 늘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에스텔이 그렇게 단호한 투로 이야기하는 것을 티나와 카밀은 처음 보았다. 다만 의외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에스텔은 자상하지만, 강인한 사람이었으니까. 오히려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게 편하다는 듯이 리테는 조금이나마 생기를 보인다. 날카로운 보랏빛 눈이 그를 응시한다.
"적을 늘린다니, 웃기는 얘기도 다 있네. 그러면 우리가 동료라도 된다는 얘기야?"
"팀 활동에서 협력하지 못하는건 사냥꾼으로서의 자질 부족이야. 그렇게 다친 것도 협력을 거부해서 그런 거잖아? 네가 티나의 보호를 받아들였다면 그렇게 되지도 않았어. "
"애초에 혼자 싸운다는 각오를 하는게 사냥꾼다운 태도야."
"함께 싸우는 상황에서 까지 혼자 싸우는 것 마냥 구는건 그냥 실력 부족이라는 생각이 드는걸. "
"히야. 대단하신 선배님 납셨네. 그래서 아무 쓸모도 없는 꼬맹이들에게도 잘 해주는거야?"
그렇게 말하며 리테는 빈정거린다.
"그 애들 이야기는 상관 없잖아? 논리로 반박하지 못하니까 개인적인 얘기를 들먹이는거야?"
"애초에 네 녀석 이야기는 들을 생각 없었거든. 마음에 안 드니까."
안 그래도 늘상 인상이 나쁜 리테였건만, 한 쪽 눈이 사라지자 상대를 노려보기 위해서 더더욱 인상을 쓰게 되었다.
"너는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어. 사냥꾼 학교의 모두는 경쟁자야. 너희랑 나도 지금 조별활동이 어쩌니 하는 이름으로 짝지어졌을 뿐이지. 마찬가지라고."
그렇게까지 화를 낼 생각은 없었다. 사실 에스텔에게 그렇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그만큼 그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리테는 빈정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분노하기 위해 분노했다. 그렇게 해야지 이 도시에서, 그리고 이 사냥꾼 학교에서 '정상적이고' '평범한' 방식을 택하지 않는 저들을 부정할 수 있었다.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다.
"사람과 유대를 쌓고, 함께 할 것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는 네녀석들야 말로 이 학교에서 이상한 존재야. 당장 주위를 보면 알 수 있잖아?"
리테는 사냥꾼 학교의 모두에게서 미묘한 거리감을 느끼곤 했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다들 다른 사람과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피하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언제 저 녀석이 변이해버릴지 모르니까. 언제 죽어버릴지 모르니까. 그 죽는 사람이 내가 되어서는 안 되니까. 저 녀석이 변이했을 때, 나는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러니까. 함부로 마음을 줄 수 없다. 정을 줄 수 없다. 친해졌다고 생각했다가 잃어버리느니, 모두를 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편했다. 실제로도 어떻게 보면 사회에서는 모두가 경쟁자이기도 했다. 사냥꾼의 수가 늘어날 수록, 이론적으로 사냥꾼 각각이 가지는 수입은 줄어들 것이다. 더 강한 사냥꾼이 더 많은 일거리를 처리하고 돈과 명예를 꿰차겠지.
그래서 리테는 꺾일 생각이 없었다. 저들에게 마음을 주면 자신은 지는 것이다. 사냥꾼으로서 패배하게 된다. 삶에 의미조차 가지지 않았으면서, 그 얄량한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그렇게나 소중한 일이었을까? 리테는 애초에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와 같은 인간은 주변에 쉽게 물들기 마련이다. 사냥꾼 학교에 밀어넣어진 리테에게 사냥꾼다움 외에는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꺾였다.
"너는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어~"
"…에이씨. 따라하지 마!"
카밀이 장난스레 언젠가의 리테를 모방하여 얘기한다. 티나는 그걸 보며 소리내 웃는다. 3대 1로 끈질기게 달라붙은 쪽이 마침내 승리한 것이다. 에스텔도 미소짓는다.
"야. 너 웃지 마! 아아악. 짜증나!"
다들 웃고 있는데 굳이 에스텔에게만 시비를 거는 이유는 리테가 에스텔을 유독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그런 척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리테의 증오는 드러내는 것에 비해 한없이 얕았다.
리테의 사냥꾼다움은 결국 그런 얄팍한 것이라고 비웃을 수도 있으나, 그 얄팍함이 리테의 생의 전부였다. 아무것도 없는 인생에 무언가가 있는 척 하기 위해 주어진 장치였다.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진심으로, 삶이 귀중하다거나, 무언가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 같은 것을 리테는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런 걸 가진 사람이 있으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 때의 리테에게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었다면 솔직하게 대답할 리는 없었다. 여전히 사냥꾼의 삶이라고 답했겠지. 그러나 실제로 당시의 리테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게 된 것은―
"나는 네 녀석들이 정말 싫어!"
"아하하."
안타깝게도 이 이야기는 진부한 비극이었다. 이런 나날들이 언제까지고 이어질 리는 없었다. 세계라고 하는 것은 원래가 그렇게 가혹한 것이었다. 처음으로 가지게 된 삶의 의미를, 비웃듯이 무자비하게 빼앗아가고.
- 2
- 몸 전체가 뒤집히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사냥꾼이 된 존재에게 그런 어지럼증같은 것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리테는 알고 있었다. 알고 말았다.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채로, 혼자서. 없어진지 오래인 한 쪽 눈이 꿈틀거리면서 되살아나는 감각이, 리테를 으깨고 짓뭉개듯 계속해서 그 사실을 상기시켜주고 있었으니까. 그 날, 무사히 '졸업'하게 된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그는 사냥꾼이 되는 것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자신은 인간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을.
비스트는 비스트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들이 말하는 것을 인간의 말처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을 들킨다면 변이체는 더 이상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리테는 누구보다 빨라져야 했다. 변이체는 사냥꾼이 아니기 때문에 그 아득히 높은 회복력을 가지지 못했다. 떨어진다고 해도 재생되는 사냥꾼의 팔과 달리, 변이체의 팔은 떨어지는 순간 떨어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리테는 다치지 않기로 했다. 그가 인간이 아니어야 할 증거들을 전부 없애버린다면 그는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가 들리게 되었다는 것이,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한다면, 전부 죽여버리면 되잖아?'
/
'살인자.'
'너는 살인자야. 끔찍한 놈.'
'너도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잖아. 내가 죽고 싶지 않다는 거 알고 있잖아!'
수많은 목소리들을 무시하고 베고 베었다. 지나온 곳들에 온통 죽음의 흔적 뿐이었다. 그 심장을 갈취해 재력을 불리고 명예를 얻어가며 리테는 동족이어야 할 것들을 죽여나갔다. 주변에서는 리테를 이상적인 사냥꾼이라고 생각했다. 리테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자 했다. 근본없는 증오심을 키워나갔다. 저 괴물들이 나의 적이라고, 그런 믿음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카밀은 리테가 상처가 채 낫지 않은 채 싸우고 있단 것을 알았다. 카밀은 언제나 리테를 눈으로 좇고 있었기에,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카밀이 의료쪽에 지식이 있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상처가 낫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그가 사냥꾼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언제부터 너는 인간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리테는 그것을 결코 티내는 일이 없었다. 겉보기에는 무사해보였다.
아무리 실력있는 사냥꾼이라고 해도 다치지 않을 수 없을만큼 거대한 전투가 있었다. 리테는 언제나처럼 괜찮은 척을 했다. 사냥꾼이라면 필시 괜찮아야 했고, 리테는 사냥꾼이어야 했기에.
그날 밤, 카밀은 남들 몰래 조용히 리테의 방에 방문했다.
"리테. 자고 있어?"
사냥꾼은 사냥꾼이 아닌 인간만큼 꼬박꼬박 잠을 잘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짧은 생을 생각하면 잠자는 시간은 일종의 낭비였다. 리테는 사냥꾼으로 보이고자 했기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왜?"
"그냥. 이번에, 다쳤을까봐."
"다쳤다니, 무슨 소리야? 사냥꾼이 다칠리가-"
그렇게 말하다가 리테는 문득 깨닫는다. 카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고 말았던 것이다. 엄습해오는 두려움이 등줄기를 타고 오르고는. 이제 자신은 사회에서 살해당하는 것일까. 더 이상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그런 생각들이 리테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하지만 카밀의 행동은 리테가 생각한 것과는 정 반대의 것이었다.
"……."
둘은 말하지 않고도 서로의 의사를 이해했기에 방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조용하게, 카밀은 리테의 옷을 걷어올린다. 얼룩진 상처자국에 약을 바른다. 리테는 따끔거림을 느낀다. 하지만 신음을 내지는 않았다. 얌전하게, 카밀의 처치를 받아들인다. 목숨줄이 잡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누군가의 목숨을 쥐고 있는 것 치고 카밀의 표정은 무척이나 온화하고, 다정했다. 가는 눈은 부드러운 눈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한다.
"글쎄. 나도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니었나봐."
그 날, 두 사람은 죄를 공유했다.
- 3
-
티나의 소형 전자기포들이 사방에서 변이체를 몰아붙인다. 그것들은 티나가 손짓을 함에 따라 그의 의사대로 움직였다. 카밀이 후방에 보호막을 쳐서 퇴로를 차단한다. 한 때 인간이었던 것은 이제는 꿈틀거리며 징그러운 소리를 낼 뿐이었다. 흘러내리는 점액질을 닮은 그것의 코앞에서 에스텔은 칼을 겨눈다―
"……."
하지만 그 움직임은 빗나간다. 변이체는 녹아내린 모양새로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그 곁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공중에서 퍼져나간 그것은 사냥꾼들에게 점액을 뱉어낸다. 쏟아붓는 호우처럼 그것은 그들의 시야를 가린다.
"다들 조심해!"
카밀이 경고하기가 무섭게 리테는 순식간에 괴물에게로 다가간다. 리테의 칼이 노리는 것은 괴물의 심장, 핵이었다. 리테는 그것의 위치를 정확하게 노려서 찌른다. 변이체였던 것이 괴성을 지르며 터져나간다. 리테는 인상을 찡그린 채 몸에 붙은 점액들을 털어낸다. 카밀은 언제나의 미소로 모두에게 다정하게 얘기한다.
"수고 많았어."
"별 대수롭지도 않은 녀석이었는데."
"으으. 징그러웠어…."
비위가 약한 티나는 겨우 숨을 고르며 말했다. 모두가 한 건 끝냈다는 성취감에 젖어있었을때, 에스텔은 혼자 그들에게서 떨어진 채 공격을 실패한 곳에서 서있었다. 바닥에 붙은 끈적이는 점액 자국을 바라보면서.
"야. 뭐하냐. 에스텔."
"아무것도."
리테는 그런 에스텔을 조금 신경쓰인다는 듯이 바라봤다. 뒤돌아선 짧은 갈색 머리칼이 한 쪽뿐인 눈에 비친다.
/
밤이었다. 사냥꾼에게는 잠들 필요가 없었지만, 그 시간에는 인간으로서 오늘의 활동을 휴식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잠들지 않은 에스텔에게 리테는 다가갔다. 에스텔은 언제나처럼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띄웠다. 리테는 그 표정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때, 일부러 안 죽였지."
그 성미답게도 퍽 단도직입적인 물음이었다. 에스텔은 고개를 기울인다.
"…왜 그렇게 생각했어?"
"검의 방향 자체가 달랐어. 애초에 죽일 생각이 없었던 거야. 너는."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내 눈은 못 속여. 그렇게 덧붙였다. 리테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그는 하다못해 에스텔이 아는 사람이었다거나 그런 이유도 예상하고 있었다. 죽일 수 있으리라고 으름장놓고는 막상 변이해버린 동료를 보며 망설이는 경우는 흔했으니까. 에스텔은 쓴웃음을 짓고 덤덤하게 의문에 답한다.
"저 변이체는 누군가에게 해를 끼친것도 아니고, 저기에 살고 있었을 뿐이잖아? 한 때 인간이었던 데다가 자아도 가지고 있는데, 죽이는건 살인이나 마찬가지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에스텔. 얼마전의 정신체 사냥에서 훼까닥한거 아냐?"
리테는 인상을 찡그린다. 에스텔은 그런 대답이 나올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평범한 더 시티의 주민이라면, 그리고 사냥꾼이라면 그런 반응이 나오는게 당연하니까. 그러나 태도를 꺾기는 커녕, 오히려 되묻듯이 그렇게 말해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변이체를 죽여야 한다는건, 너를 죽여야 한다는 거잖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푸주칼이 에스텔의 목 근처를 스친다. 에스텔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눈을 굴려 자신을 비껴간 무기를 바라본다. 첨예한 칼날 끝에서 새빨간 핏방울이 새어나온다. 다시 리테에게로 눈길을 옮긴다. 그 이글거리는 시선을 보면서도 에스텔은 여전한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확실히 머리통이 썩어 문드러졌네. 깔끔하게 죽여줄까? 동료들에게 흉한 꼴 보이기 전에."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내 눈은 못 속여."
"근거는 가지고 말하는 거겠지? 아무렇게나 나불대는거면 목을 따는 정도로는 안 끝나. 네 시체를 도시 한복판에 매달아줄테다."
되려 조금 장난스러운 말투로 리테가 한 말을 되돌려주기까지 한다. 칼날이 더 깊숙히 그의 목을 파고든다.
"사냥꾼이 되고 나서, 너, 몸을 꽁꽁 싸매고 다니잖아."
"불결한 비스트놈들과 살갗이 닿으면 변이해버릴것 같거든."
"안대도 절대 벗지 않고."
"앞을 볼 수도 없는 눈두덩이를 굳이 드러낼 필요라도?"
"가려져있는 곳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 여기에서 안대를 벗어보일 수 있어?"
"……."
리테는 침묵한다. 칼을 거두고, 대신 그의 멱살을 움켜쥔다. 에스텔의 목을 베었던 칼자국은 어느새 사라져가고 있었다.
"개자식아. 그걸 알고 있으면서, 너 혼자 모른 척 했다고? 넌 사냥꾼도 아냐."
"네가 죽는 게 싫으니까."
"나를 동정하는 거야?"
공포를 대신해 터져나오는 것은 분노였다. 무릎을 꿇고 구걸하는 것은 그의 성미에 안 맞았다. 오히려 화가 났다. 화를 내야 했다. 그것만이 그에게 허락되어있는 유일한 감정표현이었다. 다른 것을 표현하는 방법따위 알지 못했으니까.
"나를 죽였어야지. 눈치챈 순간 그 잘난 무기로 베어버렸어야지. 내 심장을 뽑아내서 전리품으로 삼았어야지."
왜냐하면 그 외의 감정들에는 의미가 없었다. 슬픔은 그를 약하게 만든다. 공포는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기쁨은 덧없이 흩어져가고 만다. 분노만이, 사냥꾼을 움직이게 했다. 눈 앞의 상대를 향해 끓어오르는 끝없는 증오와 분노가 그를 사냥꾼답게 만든다.
"비스트같은게 동료가 될 수 있을 리 없잖아? 웃기지 마. 변이해버린 순간 인간으로서의 그 자식은 끝이야."
"……."
"괴물 새끼가 인간인 척을 하고 있으면 경멸해야 하는거야. 나는 너희를 속였어. 그런데 왜…!"
"리테. 그만해."
이제는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될 무렵 제동을 걸어준 것은 카밀이었다. 에스텔은 카밀의 반응을 보고 카밀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눈치챈다. 리테는 숨을 고른다. 멱살을 쥐고 있던 손을 힘없이 놔버린다.
"오늘은 그만 들어가자. 다들 너무 지쳤어."
밤도 낮도 구분할 수 없는 우주 한복판이었다. 우주선은 언제나처럼 조용히 황량한 하늘을 떠다니고 있었다. 카밀은 이 건에 대해 유보할 것을 제안하고, 리테는 이에 거부의사를 표하지 않는다. 그걸로 이 이야기는 끝이라고 암묵적인 합의를 구한 것처럼, 사냥꾼들은 다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다. 이후 누군가의 작은 중얼거림따위는, 그 누구도 듣지 못한 것이다.
"…역시, 잘못됐어…."
#
카밀: 과거에도, 지금도, 계속해서 리테의 동료. 리테가 변이체라는걸 가장 먼저 눈치챘음. 리테의 브레이크를 맡고 있다.
에스텔: 현재 변이. 마블이 쫓고 있는 동경하고 사랑하는 선배이자, 리테의 과거 동료. 에스텔이 변이한 후, 리테가 속해있던 사냥꾼 팀은 분해되었다.
티나: 리테의 과거 동료. 에스텔의 변이 이후 사냥꾼을 그만뒀다.
- 뒷이야기
- ※모브캐릭터만 나오는 독백 주의!
티나: 리테의 과거 동료. 에스텔이 변이한 후 사냥꾼을 그만둠
에스텔: 마블과 리테가 쫓고 있는, 그 다정했던 선배. 지금은 변이했다.
기젤라: 마블의 동료 사냥꾼. 세상의 잔혹함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마블 관련 독백 '일지'의 화자.
카밀: 이 독백에선 몰라도 되는데 아무튼 과거도 지금도 리테 동료
에스텔과 리테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겼다는 것은 티나 역시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아주 사소한 금일뿐이며, 그것을 이겨낼 만한 견고한 유대감이 존재한다고 티나는 믿고 있었다. 모두가 다 같이 있으면서 안정과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고. 그리고 이런 나날들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하지만 티나의 기대는 보기 좋게 부서졌다-
사실, 사이가 좋았는지 아닌지는 별로 상관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변이해버리는 순간, 사살대상이 된다는 것은 자명했으니. 그러므로 티나는 더 이상 두 사람의 관계가 어땠는지에 대해 생각할 의무가 없었다. 그런데도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갔다. 몸을 쓰지 않게 되니까 쓸데없는 생각을 할 시간이 많아진걸까. 사냥꾼을 그만둔 뒤로 의미없는 생각들만이 계속해서 휘몰아쳤다.
“……”
모두는 눈앞에서 에스텔이 변이하던 날을 기억한다. 그 차가운 눈초리를. 더 이상 도시의 인간들에게 아무런 기대조차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듯한 그 모습을. 리테는 사라진 에스텔을 쫒아서 죽이겠다고 선언했다. 카밀은 그런 리테의 곁에 있겠다고 얘기했다. 티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티나는 자신만이 꿈 같은 기대를 품고 있었던 어린아이인 것처럼 여겨졌다. 자신에게는 얼마 전까지 동료였던 이에게 무기를 겨눌 만한 각오가 없었다. 그것이 사냥꾼다운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평생을 바쳐온 사냥꾼이라고 하는 직업이 자신에게 맞지 않았음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는 사냥을 그만두었다.
사냥꾼의 수명은 짧아서 티나에게 남은 여생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계속 사냥꾼으로 일하는 것보다는 오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십년도 채 남지 않은 나날들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고민하던 끝에 내린 결정은 그것이었다.
“글을 쓰기로 했어.”
티나는 알지 못했지만, 티나가 해줬던 이야기들은 기젤라에게 있어서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만큼의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 전까지 기젤라는 어렴풋하게만 생각했을 뿐이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이 감정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티나의 이야기는 기젤라에게 답이 되었다.
“도망친 패배자의 형편없는 글따위를 누가 읽어줄지는 모르겠지만.”
“…….”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남은 시간이 아까우니까.”
남은 시간이라는 말에 기젤라는 말의 무게를 느꼈다. 사냥꾼의 수명은 길지 않다. 더 이상 비스트랑 싸우지 않는다고 해도, 남은 수명은 십년도 채 안 될 것이 뻔하다. 기젤라는 자신의 남은 날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사냥꾼은, 그렇게 죽어가는 존재다. 이 짧은 생명은 오직 도시의 영광을 위해서 바쳐질 것이다.
그렇게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한 결과는 이후 기젤라가 혼자 적어내려간 일지들로 남게 된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알 수 없다. 출판 소설도 아닌 그 일기는 주인과 함께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서 시신조차 남지 않은 채 소멸될지도 모른다. 도시에 있어서는 안 될 사상을 다룬 글이라며 불살라질 가능성도 있다. 그 모든 것을 기젤라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딘가에 기록으로 남기는 것 만으로, 자신의 존재가 조금이라도 짙어지는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패배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조적인 말에 뒤늦게 이의를 제기한다. 여린 후배의 소극적이지만 또렷한 그 의사표현에, 티나는 웃는다.
“고마워.”
- 마지막
- 리테는 숨을 몰아쉰다. 그는 형편없이 바닥에 쓰러진 채였다. 한계에 다다른 리테와는 달리 눈 앞의 괴물에게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거대한 뱀은 이 불완전한 변이체를 내려다본다. 이대로라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리테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시, 검을 잡는다. 양 손으로 쥔 검으로 바닥을 짚어 비틀비틀대며 가까스로 다시 일어선다.
“계속 할 텐가?”
리테의 피부가 갈라진다. 흉한 파충류의 비늘이 도드라지고, 안대로 가리지 않은 쪽의 눈도 빛깔이 바뀌어버린다. 평소 리테의 모습은 인간이 아니게 되었음을 감춘 채 생활할 수 있을 정도였으나, 이런 식으로 목숨의 위기가 닥쳐왔을때는 그렇지 않았다. 리테가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은 이 전투에서가 처음이었다. 리테는 자신이 인간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도망칠 수는 없었다. 카밀이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
검을 든 채 자신에게 달려드는 리테를 정신체는 경멸한다. 극악무도한 살육자에게도 자기 사람에 대한 인정은 있는가.
“그대가 그 자를 소중하게 여기듯이, 그대가 죽여온 수많은 나의 동족들도 그랬을 터인데.”
돌진하는 리테를 괴물은 튕겨낸다. 리테는 이것을 이길 수 없었다. 이것은 리테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리테가 어떤 것에 동요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어째서 이것이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리테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추한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고 만 리테는 이미 패배한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괴물은 리테의 불안을 자극하고 그것을 먹어치워가며 점점 더 강해져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리테 그 자체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그만.”
그런 전투를 멈춘 것은 익숙한 목소리였다. 에스텔. 괴물 뱀은 그 말에 움직임을 멈춘다. 리테는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에 귀기울인다. 헤어졌었던 그 날과 같이 차가운 시선은 한 때 동료였었던 리테를 바라본다. 흰 가면으로 얼굴의 반 정도를 가린 에스텔은 그리 큰 외관변화가 드러나지는 않았다. 단지 그가 서있는 등 뒤 땅 밑에 구불구불한 가시덩굴이 그의 의사에 따라 자라나있었을 뿐.
“…….”
“오랜만이네. 리테.”
반가운 기색이 드러나는 목소리는 아니였다. 리테는 에스텔을 노려본다.
“…이제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거냐.”
“그야 정면으로 승부하면 죽였을 거잖아?”
그제서야 어째서 이 정신체가 리테를 다 안다는 듯이 얘기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과 에스텔은 공생관계였다. 에스텔은 한 때 사냥꾼이었던 변이체인 자신에게 이 우주는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사냥꾼들은 말할 것 없었고, 비스트들 역시 에스텔의 편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이 정신체는 드물게도 그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와줬던 것이다.
“수치스럽지도 않아? 비스트놈들과 살아가는 길을 선택하다니-“
“수치스러워해야 할 건 내 쪽이 아닌걸. 지금 네 모습을 봐. 리테. 너를 알던 사냥꾼들이 본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정곡이었다. 지금의 리테는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변이한 모양새였으니까. 그는 분한 듯이 이를 악문다.
“…그래서? 너도 나도 똑같은 괴물이라고 조롱하고 싶은거야?”
“글쎄. 어째서 비스트가 괴물이라고 생각해?”
“그야 너희들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고, 멍청하고, 함께 어울려 살 수 없는 존재들이니까.”
에스텔은 작게 한숨을 뱉는다.
“여전하네. 논리가 없어. 비스트를 죽여야 한다는 결론이 정해진 상태에서 이유를 가져다붙일 뿐이야. 그런 식으로 미워해야 하는 존재를 정해두고 살아가는 건 괴롭지 않아?”
“네놈들이 헛소리만 하지 않는다면 괴로울 건 하나도 없어.”
“얼마전까지 평범한 인간들 틈에 섞인 채로 인간으로서 살아가던 작자들도 변이하는 순간 죽여야 할 괴물 취급받는게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
“그게 도시의 평화를 위한 일이야. 네녀석들의 말은 들을 필요 없어. 당장 지금도 카밀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뻔뻔하게 아무 잘못 없는 척 하겠다는 거야?”
“먼저 죽이려고 공격해온 것은 그 쪽이란걸 잊으면 안 되지. 그리고, 사냥꾼은 이 정도로 죽지 않잖아.”
에스텔은 고개를 기울인 채 리테를 본다. 싸늘한 눈초리였다.
“우리는 죽어. 너희들에게 하루에도 셀 수 없는 숫자가 죽어나간다고.”
‘우리’라는 표현에 거슬림을 느낀 리테는 인상을 더더욱 찡그린다.
“사냥꾼이 아닌 인간은? 그 녀석들도 툭하면 비스트에게 죽어나가는데?”
“그야 자기를 죽일 수 있는 인간이 먼저 쳐들어오니까. 공격 의사가 없는 비스트조차 보이는 대로 죽이는 건 너희들이 먼저 한 짓이야. “
“이 쪽도 마찬가지야. 너희가 인간들을 죽일지도 모르니까 죽이는 거라고.”
“그래서 일부러 인간 눈에 안 띄려고 꼭꼭 숨어 사는 생명체들을 먼 우주까지 친히 찾아내러 행차하시고?”
리테는 에스텔에게 무기를 겨눈다. 그에 따라 커다란 뱀도 리테를 공격하려는 태세를 갖춘다. 그에 반해 에스텔은 아무런 공격 의사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리테를 동정하는 것 같은 기색마저 보였다.
“…….”
저 눈이, 리테는 싫었다. 자신을 불쌍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시선. 적대하고 경멸하는 시선은 참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그만큼 자신이 우위에 있는 존재이며, 상대의 행동은 자신에게 아무런 위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것은 달랐다. 저 시선은 리테 쪽이 패배하는 위치에 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만약 이 상태로 에스텔을 죽여버린다고 해도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 도시는 모순으로 지탱되고 있고, 리테는 그 도시에서 언제 배제당할지 모르는 존재였으니.
“돌아가자.”
그런 리테의 속을 읽은 것인지 에스텔은 커다란 뱀과 함께 돌아갈 채비를 했다. 리테는 차마 그것을 붙잡을 수 없었다. 그 혼자뿐이면 모를까, 이런 상황에서는 카밀마저 위험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위험의 원인중 하나는 리테 자신이었다. 분했다. 자신이 이런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도시에 적합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한참 뒤 카밀이 눈을 뜨면 그 곳은 언제나 함께 생활했던 우주선 안이었다. 하지만 리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카밀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상처가 낫고 다시 인간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리리라는 것을 리테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날의 격렬한 전투는 리테의 몸에 씨앗을 심었다. 정신체를 끝없이 공격해나가던 끝에 튕겨져나온 자그마한 정신체 조각이었다. 그것은 리테에게 꾸준히 그 날의 일을 상기시키곤 했다. 에스텔이 했던 말들과, 하지 않았던 말들을. 입에 담지는 않았지만 아마 에스텔은 리테를 동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의 치욕이 계속해서 환청이, 악몽이 되어, 리테를 괴롭히고 있었다.
- 악몽
- ※괴기하고 잔인한 표현 주의.
수많은 군중들의 눈이 리테를 보고 있었다. 리테는 자신을 보는 경멸하는 시선을 느낀다. 알고 있던 사람의, 알지 못하던 사람의, 수도 없이 많은 눈과, 눈. 안대는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있었고, 리테는 두 눈으로 무수한 수의 눈길을 담았다. 숨막힐 정도의 정적 속, 신체는 꿈틀거리며 변이하고 있었다.
리테는 이 상황이 두려웠다. 죽음이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모두로부터 배제되는 것이 겁이 났다. 도시에 없어야 할 존재가 되는 것이. 있어야 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 끝없이 발버둥쳐왔다. 그런데도 이렇게 허무하게 들켜버리다니. 피부는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뼈와 살이 뒤섞이며 녹아간다. 인간의 형상이 아니게 되어간다. 인간이 아니게 된다. 이미 진작에 인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있고 싶었다. 인간으로 존재하고 싶었다.
이제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성대로 기괴한 비명을 질러봤다. 무기들이 일제히 자신을 겨눈다. 아. 죽는건가. 차라리 그게 나았다. 이런 감각을 계속해서 느끼고 있느니― 공격은 느릿하게 그를 향해 닥쳐왔다.
/
개인실 침대에서 굴러떨어진 채로 리테는 눈을 뜬다. 베개는 있어야 할 위치를 모른 채 리테의 얼굴을 누르고 있었고, 시계 소리는 규칙적으로 째깍, 째깍, 하고 고요한 방 안을 메웠다. 건방진 베개를 냅다 던져버리고는, 리테는 한 손으로 눈가를 더듬어본다. 언제나처럼 안대는 한 쪽 눈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씨X…"
평범한 악몽이었다. 정상적인 사냥꾼에게는 규칙적인 수면이 필요없었지만, 사냥꾼이면서도 사냥꾼이 아닌 리테에게 수면은 필요했다. 이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 밤을 새며 보냈던 매일매일은 수면부족으로 늘 예민한 상태였다. 뭐. 지금은 안 예민하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았지만.
카밀과 리테는 약속을 했다. 카밀의 수명이 다 하기 전, 리테를 카밀이 직접 자신의 손으로 끝내주기로. 그것은 명예로운 죽음이었다. 이것으로 리테는 사냥꾼으로서 죽을 수 있게 된다. 그런 약속을 제안한 쪽도 받아들인 쪽도 제정신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제정신아닌 이들을 길러낸 것은 이 도시라고, 리테는 합리화했다.
리테는 카밀이 자신을 아껴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카밀을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너에게 나는 대체 어디서 그 정도의 가치를 가지게 되었는가. 그렇기에 리테가 내린 결론은 그 역시 정상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었고, 오직 리테만을 위한 행운이었다. 네가 멀쩡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를 사랑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늘도 리테는 사냥을 했다. 우리들을 망친 이 도시를 위하여.
- 끝. 그리고…
‘웃기는구나. 너희들은, 아직도 너희가 옳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디까지 가능할 거라 생각하지?’
‘너희들은-‘
/
…마블의 퇴역은 결코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감정이 무너져가는 과정에서 어찌됐건 그 정신체에게 커다란 상처를 냈기 떄문이다. 최후의 일격이라고 표현할 법 하지 않을까. 그렇다곤 해도 다시 살아날지 아닐지 모르는 괴물 하나를 죽이기 위해 누군가의 남은 생이 통째로 날아간 것을 잘 됐다고 말할 순 없는 노릇이지만.
숨을 몰아쉰다. 카밀은, 사냥꾼이기 때문에 그 몸에 상처는 없었지만, 수없이 몸이 찢겨나가고 수복되기를 반복했다. 정말로 해치웠다. 눈 앞의 괴물이 마침내 그 수명을 다했다. 두 사람은 승리하고 살아남은 것이다. 여전의 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퍼졌다. 그것은 말이라기 보다는 환청에 가까웠다. 인간의 정신을 침식해가는 저주였다. 하지만, 그래도 둘은 살아남았다.
“…리테!”
카밀은 리테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달려간다. 그러나 리테는 카밀을 밀어낸다. 카밀은 리테의 동작의 의미를 알기 위해 리테를 살핀다. 리테는 손으로 얼굴을 덮고,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검은 공막이 비쳐보이는 노란 눈동자가 두려운듯이 카밀을 바라본다. 이런 모습을 카밀에게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리테는 변이체였기 때문에 신체가 수복되지 않았다. 그 동안은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만을 쓰러트려왔다. 어떤 적이 오더라도 자신의 몸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노력한 것이다. 그러나 저 정신체는 강했다. 공격을 맞지 않고는 싸울 수 없었다. 각오했던 일이지만, 막상 다시금 변이의 흔적이 드러나는 자신의 신체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두려워졌다.
그 정신체와 다시 한 번 싸우면서 리테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순 없으리라고. 예전과 달리, 이 모습은 아무리 지나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것이다. 더 이상은 숨길 수 없었다. 그동안 리테는 끓어오르는 분노로 자신의 공포심을 감춰왔다. 더 이상 분노를 돌릴 상대조차 없어진 리테는 한없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사냥꾼으로서 존재할 수 없다.
“…….”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다.
카밀은 리테의 두려움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리테의 불안을 없애기 위해 한 발짝 뒤로 물러설까 생각하나, 그런 동작은 리테를 멀리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카밀은 그대로 서있었다. 대신 그 어중간한 거리에서 리테에게 말을 걸었다.
“리테는 이제 어떻게 하고 싶어?”
“…그러는 너는.”
“으음. 글쎄. 별다른 계획은 없네.”
“너는 언제나 그렇더라.”
그랬던가. 그렇게 말하며 카밀은 웃었다. 정해진 레일만을 따라 걸어온 카밀이었다. 어린시절부터 줄곧 그 자리에 자신은 없다고 느껴오고 있었다. 자신이 서있는 모습을 멀찍이서 제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은, 그런 인생이었다. 카밀은 자신의 기호따위는 상관없다고 생각했기에 자신을 버렸다. 가족에, 학교에, 도시에, 세계에 자신을 맞춰왔다.
“갈라서려면 지금이 기회야. 이렇게까지 변이한 모습은, 너는 본 적 없었겠지.”
“…….”
“알고 있잖아? 나를 감싸면 너도 죽게 된다는 거.”
“나는 리테를 버리지 않아.”
그런 카밀이 처음으로 좋아한다고 생각한 것이 리테였다.
“…이해가 안 되네. 왜 그렇게까지?”
두 사람은 약속을 했다. 카밀은 자신의 목숨이 다하기 전에 리테를 죽여주기로. 그것은 리테가 죽는 그 순간까지 도시에 명예로운 사냥꾼이자 인간으로서 남아있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리테는, 그런 카밀이 죽을 때까지 곁에 있어주기로. 카밀은 잔뜩 움츠러들어있는 리테에게 한 발짝 다가간다.
회색빛 머리칼의 여성은 팔을 뻗고 괴물을 끌어안는다. 품에 닿는 것은 부드러운 살갗이 아닌 딱딱한 파충류의 비늘이다. 그대로 굳어버리기라도 한 듯 리테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는다. 인간의 감정을 먹어치우는 괴물보다도 더 강하게 카밀의 존재가 리테에게 파고든다. 화상을 입을 만큼, 따스했다.
- 새로운 시작
-
도시를 거부하고, 도덕과 규칙을 외면하고, 선마저도 포기했다. 오로지 자신과 서로만을 위한 삶을 살아왔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는 벌이 내려질까. 카밀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답하자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도시가 멀어져간다. 때로는 위압적이었고, 때로는 의지하게 만들었던, 태어나고 자라온 우리들의 고향이. 이대로 우리가 사라진다면 도시에서는 사냥꾼 둘이 실종되었다고 기록하겠지. 그리고 그 기록도, 모두의 기억도, 점차 희미해져가서, 둘은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서 흩어져간 사냥꾼들을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겠지.
그거면 됐다.
지금부터는 아무도 모르고, 누구에게도 기록되지 않을 둘만의 여행의 시작이다. 누구의 눈도 신경쓰지 않고, 오직 우리 둘만을 위해 살아가자. 이제는 이기적이라고 욕할 사람조차 존재하지 않으니까.
(커미션 출처: @Sola_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