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modified: 2025-02-17 21:31:17 Contributors
凤玲华 |Fèng Línghu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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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niji・journey AI |
신명 | 통칭 | 리샹냥냥(丽祥娘娘)여상낭랑 |
이명 | 즈자오(支昭)지소 |
존호 | 태상려군(太祥旅君)
화영현휘사지성조태상명군(華榮絢輝賜祉聖鳥太祥命君)
태천태상옥령보음운요왕(太天泰祥玉玲輔音運曜王) |
봉호 | 도위응화천선보운영주숙명원세향호옥령태상려군(導韡應華天宣普運榮主淑明元勢響呼玉玲太祥旅君) |
모티브 신 | 봉황 |
성별 | 여성체 |
학년과 반 | 1학년 A반 |
연인 | 야츠메 히키 |
명랑한 생동과 활기로 빛나는 소녀. 매끄러운 머릿결은 늘상 수선스레 뛰어노는 탓에 조금쯤 부스스하게 흐트러지고, 뺨에 뜬 발그레한 혈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둥그런 눈매 안에 반짝이는 눈동자는 천춘 새순의 색을 닮았다. 허리 아래까지 늘어지는 머리카락은 짙은 난색의 흑발. 검은 부분을 들추면 안쪽은 선명한 청록색으로 물들어 있다.
치장을 좋아하는 성격이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이 바뀌기도 하고, 늘상 가볍게 화장을 하고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학생으로 지내야 하는 만큼 교칙 위반선을 넘나들지는 못하기에 평범한 수준 이상의 꾸밈을 하지 못하는 것이 소소한 불만. 흔히 말하는 ‘과한’ 꾸밈을 금지당한 탓에 이 이상의 치장이나 장식이 없이 노상 ‘무난하게’만 지내는 중이지만, 그 대신인지 색색의 실로 땋은 길다란 매듭 장식만은 머리칼 안쪽에 언제나 달고 다닌다.
신장 162cm. 땅에 발 붙이고 있으면서도 때로 표연히 떠날 것만 같은 기분이 느껴지는 품, 날 듯이 파사하며 가벼운 육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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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으로서 인간 형상을 취하면 검은 머리 사이사이로 적, 청, 황의 빛 섞이는데, 등 뒤로는 오색찬란한 날개가 눈 닿지 않는 먼 곳까지 끝없이 드리운다. 길게 늘어진 옷자락 위로 황금빛 꼬리깃이 번쩍이며 거기에 각양의 장신구와 꽃을 머리 위에 관(冠)처럼 얹고 화려한 자수 놓인 비단을 거듭 두르니, 이야말로 도원과 낙원에서 온 형상이라.
두 눈은 각도에 따라 갖가지 채광으로 빛나고 홍채 안의 눈동자는 만개한 수산호 빛으로 반짝인다. 눈가에 든 화장은 연연하게 고운 도색(桃色), 갖가지 귀물로써 화려히 치장했다 하나 고혹과 같은 정취보다는 복작하게 모인 방비(芳菲)와도 같은 멋만 난만하다.
존체로부터는 은은한 신광이 흘러 그저 휘황히 꾸민 인간이라 여기기엔 신묘한 태와 기운이 느껴지나, 그러면서도 사람으로 하여금 우러르게끔 하는 압도감보다는 온몸에 아이 같은 친밀감과 호의를 가득 두르고 있다. 고고하고 신성한 분이라기엔 낭랑(娘娘)께서는 언제까지고 천진하고 낭랑한 존재인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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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연의 모습은 닭의 머리와 제비의 턱, 뱀의 목과 학의 다리, 원앙의 깃과 매의 발톱,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길게 늘어진 공작새의 긴 꼬리깃과 거북의 등과 같은 몸을 지닌 거대하고 신비로운 형상의 새. 오색 난만한 깃털과 신체 각 군데에는 오상(五常)과 우주의 이치가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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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난만, 명랑, 활달, 밝다, 낭창하다,⋯⋯ 기타 등등 온갖 생기 넘치고 즐거운 표현이 적확하게 들어맞는 성격.
낯가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누구에게나 최고조의 친절과 친밀감을 갖곤 하는 극도의 외향형 신이다. 좋게 말해 밝고, 나쁘게 말한다면 다소 과할 정도의 흥을 지닌 성격. 발랄함이 과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기가 죽지 않으며, 그 정도가 심해 도무지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한 모습도 자주 보인다. 일례로 험한 말을 듣더라도 자기는 험언 따위 듣지도 못했다는 양 넘겨 버리거나 아예 제멋대로 좋은 뜻으로 곡해해 버리곤 하는 일이 다반사. 다소 변덕스러운 기질까지 있어 상극인 사람에게는 이만큼 끔찍한 존재가 따로 없을 테다. 다만 떠들썩한 것 좋아하고 변덕스러운 편이라 해도 산만한 편은 아니라는 사실만은 위안이 된다.
- ‘가장 힘들 때 도움을 청한다면 기꺼이 곁에 머무르겠다’라는 과거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미유키에 오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사실상 히키가 은인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남이나 다름없다는 것은 이미 알지만, 그 상대가 누구이든 도움이 필요해 자신을 부른 한 돕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 올해부터 일본에 온 중국인 유학생⋯⋯ 이라는 설정을 인간 신분으로 쓰고 있다. 일단은 외국인이라는 신분이지만 설정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일본식 이름도 따로 만들어 두었는데, 실질적으로 쓰이는 상황은 적어 슬퍼하고 있다. 그 이름이 무어냐 하면 공식적인 신분의 한자를 옮겨 써서 ‘호우카 레이센(鳳華玲泉)’이라 한다. 어느 쪽으로 불러도 잘 반응해 준다. ⋯⋯사실 열심히 만든 이름이라 호우카라고도 불러주길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 일본어는 회화와 학습에 지장이 없는 수준으로, 얼핏 들어서는 어색한 부분을 찾아보기 힘들다. 단 종종 단어 뒤나 어미에 儿을 무의식적으로 붙인다거나, 흥분할 때면 통상적인 일본어보다 억양이 강해지고 말의 속도가 빨라지는 등 중국어의 습관이 조금 묻어나는 편. 세계 곳곳을 유랑하는 신이기에 일본어 외 다른 언어에도 능통하다.
- 예로부터 봉황은 덕 높은 천자와 청렴한 선비, 오상(五常)과 조화를 상징하는 상서로운 길조로 여겨졌다. 그 습성마저도 고고하기에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어 쉬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아니하며 예천(醴泉)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고 전해지는데⋯⋯.
이 봉황님은 평소 황금과 보석과 비단으로 치장하기를 즐기고(지금은 못 하지만), 패스트푸드와 향신료가 가득 든 음식을 꺼리지 않으며, 코타츠에 누워 과자를 먹고 최근에는 카페인과 밀크티에 맛 들려 계신다. 알려진 전설과 실상의 괴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실례다.
- 새의 형상을 한 만큼 새 같은 기질이 꽤 있다. 가만히 있다가도 난데없이 노래를 부른다거나, 기분이 좋아지면 흥이 올라서 즉흥적으로 춤을 춘다거나, 아닌 척 사실은 대단한 고집불통인 점이라거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에도 사족을 못 쓴다. 본모습의 휘황찬란한 깃털이며 몸에서 빛까지 나는 것 하며, 평소 지니고 다니는 소지품에 붙은 장식들도 모두 그 취향의 산물이다. 대표적으로 스마트폰과 가방에는 와펜, 스티커, 키링, 스트랩, 뱃지, 인형 같은 것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고, 방에도 자질구레한 장식품과 그림과 굿즈 등의 잡다한 수집품들이 한가득. 요즘은 학업에 필요한 필수품이라는 핑계로 문구 용품도 잔뜩 수집하고 있다. 확신의 맥시멀리즘 파.
- 비슷한 이유로 미인(당연히 미녀와 미남 모두 포함된다)에게도 아주 약하다. 얼굴에 쉽게 홀려버리는 얼빠.
신으로 있을 때도 날지 않는 한 인간의 형상으로 있기를 선호하는데, 그 편이 더 다양한 방식으로 몸을 꾸밀 수 있기 때문이다. 치장을 위해 수를 놓고 장식을 만드는 등 손재주 역시 무척 뛰어나다.
- 좋아하는 것은 가극, 평극, 뮤지컬과 같은 각종 화려한 공연 문화. 본인이 선호하는 모든 요소가 들어가 있으니 오히려 좋아하지 않기가 힘들다.
- 매운 음식에 강하다. 역시나 조류 아니랄까봐⋯⋯. 좋아하는 음식은 사천 요리. 호남식의 매운 맛도 좋아한다.
- 신성의 특성 상 인세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하기에 생애 대부분의 시간을 신계에서 지내 왔다. 그간 인경에 내려온 경험은 손에 꼽으며 그마저도 한 곳에 오래 발 붙이지 못하곤 했다. 이유는 그가 한 자리에 지나치게 오랫동안 머물렀을 시에는 지나치게 몰린 복상으로 인해 운액의 균형이 어긋나기 때문.
신이라 해도 가지 못하는 곳에는 마음이 이끌리기 마련이므로, 그동안 남모르게 인세에 지대한 동경을 품어 왔다. 그런 만큼 현재는 가미유키의 생활 전반을 완벽하게 즐기고 있는 상황. 현재까지 가장 큰 목표인 ‘히키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에 더불어, ‘인간 절친 사귀기’도 틈틈이 노리는 중이다.
“단혈산(丹穴山)에 봉황이 사는데, 이 새는 길조와 인애(仁愛)의 상징이며, 사람 사는 곳에 나타나면 천하가 태평해진다.”
─『산해경(山海經)』
“왕이 위로 황천을 감동시키면 난봉이 이른다(王者上感皇天則鸞鳳至).”
─『춘추감정부(春秋感精符)』
: 凤凰 : |
땅 위의 사람이 이 신을 우러러 칭하기를─ 모든 날짐승의 우두머리, 상제의 사자, 군권(君權)과 태평성대의 상징, 태어나기를 무결한 조화의 존재, 길조와 인애의 표상이자 귀하고 성결치 아니한 곳에는 결코 내리지 않는 상서로운 신조(神鳥)라 하니, 뭇 황제와 군왕마저 그의 존체 내리심을 앙원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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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으로서 지닌 가장 큰 능력은 내린 땅 일대에
만복과 선(善)을 유도하는 힘이며, 신으로서 진 의무는 모든 우주와 세계를 널리 떠돌며
운기와 복상(福祥)을 순환시켜 조화로이 다스리는 일이다. 밟고 선 땅에 백록이 찾아들거든 그곳을 떠나 돌아오지 않고, 가장 흉참한 곳에 머무르며 낙향을 일구어낸다. 존재만으로 이상적인 행복을 부르는 신이라 할 수 있다.
봉황을 부르는 성군의 치세와 ‘태평성대’의 전승은 전후 관계가 반대로 알려진 것이다. 성천자의 선정으로 지상이 정히 다스려지기에 봉황이 내려옴이 아니라, 가장 혼란스럽고 흉한 땅을 봉황이 거쳐갔기에 후일 좋은 시대와 성천자가 찾아온다 함이 옳다.
신격의 특성 상 땅 밟고 인간사에 관여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상서로운 신수이자 권위의 상징인 ‘봉황’으로서의 신앙은 존재하나, 신사를 세운 신들과 같은 종류의 신앙은 없다시피 하다. 정확히는 인간들에게 봉황으로서의 신격과 복신으로서의 신격이 따로 알려져 있는 상태. 인세에서 여상낭랑(丽祥娘娘)이란 이름은 봉황보다는 복과 행운의 신의 이름으로 통한다.
“거스를 도리 없는 곡경과 불행이 닥쳤을 때, 견딜 수 없거든 이것을 써 나를 부르라.”
머나먼 과거, 잊히고 소실되어 신만이 기억하게 된 오랜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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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에 원시적인 형태의 국가가 들어설 무렵의 이야기다. 당시 인간들은 여러 부족이 모인 연맹국을 통치 체제로 삼고 있었는데, 나라에 갈등과 분열이 끊이지 않아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내란과 전쟁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에 혼란한 세태를 잠재우고자 봉황이 그곳의 지상에 내렸다.
낭랑이 엉켜 있던 땅의 운기를 모두 풀어내고 하늘로 날아오르니─ 이로써 만사가 형통해졌어야 하나, 그 순간 지상에 없을 진귀한 존재에게 탐심을 느낀 어느 인간의 소행으로 봉황은 활에 맞아 떨어지고 만다.
큰 상처를 입은 신은 멀리로 몸을 숨기던 중 인간 하나를 만나 그에게 도움을 받았다. 만고의 끝에 몸을 회복한 신은 다시 하늘로 올랐고, 은인에게 감사를 표하며 각별한 인연의 보답으로 그에게 언제든지 자신을 부를 수 있는 증표를 남겨주었다.
그로부터 긴 시간이 지났다. 처음에는 흐르는 줄 모르고 지났던 해는 어느새 수십 년이 되고, 일월 어김없이 뜨고 지는 사이 쌓인 세월은 어느덧 수천의 세월이 되어 있었다. 더는 세는 것이 무의미한 시간이 흐르도록 증표는 쓰이지 않았다. 낭랑은 남모르게 치솟는 서글픈 마음을 눌러 참았다. 신을 부르지 않았음은 곧 은인의 복력이 다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불리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사실쯤은 그도 알았다. 그러나 깊이 감춘 흉금에는, 그때의 약속이 언젠가를 꿈꿀 기약이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신마저 갈피를 잃을 만치 기나긴 기다림에 단념하려고 했던 그때.
부름이 느껴졌다. 오래도록 기다려 온 이의 소망이 들렸다.
까마득히 먼 저편의 세상에서 거조(巨鳥)의 날개가 너울지듯 펼쳐졌다. 신은 아래로, 아래로 날았다. 떨어지고 낮아져 마침내 닿은 그곳에 기다리는 얼굴은 낯설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마저도 상관없었다. 오늘에야 처음으로 만난 연이라 해도 그토록 간절히 기다렸던 해후였다. 옛 은인은 오래 전에 죽고 누구인지도 모를 자를 만났다 한들 신은 그마저도 못내 기꺼웠다.
추락의 종착점,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워진 허공에서 낭랑이 소년에게 환연히 외쳤으니─
“──找到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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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鳳皇來儀
왜인들의 땅에 기나긴 난이 있어 영토가 오래도록 혼란하였다. 전란의 끝에 부족을 다스리는 여러 군장들이 모여 마침내 비미호(卑弥呼)를 새로운 왕으로 옹립하였다. 왕이 국가의 기틀을 닦고 귀도(鬼道)로써 무리를 다스렸으니, 그 나라의 이름은 사마대국(邪馬臺國)이며, 기하(旗下)에 든 나라의 수가 족히 서른이 되었다 전해진다⋯⋯(중략)── 『북서(北書)』
一.
사마대가 통일을 이루기 전의 일이다. 사람들이 서로를 치고 정벌하는 풍진과 내란이 끊이지 않자 상쟁의 난무를 잠재우기 위해 봉황이 그곳 지상에 내렸다.
상서로운 새가 하늘을 날며 다섯 소리 묘음으로 우짖으니 각지 전장에서 창칼의 부딪침이 멎었다. 이어 신조(神鳥)가 마른 황지를 지르밟고 밤낮 동안 춤을 추매 천지가 감심하여 단비를 내렸다. 마지막으로 봉황이 흩어낸 액살을 붙잡고 높이 날아오르던 때─ 어느 곳에서 돌연 화살이 날아와 그의 날개와 배를 꿰뚫었다. 새는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고 땅 위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길상이 피를 흩뿌리며 추락하니 상서(祥瑞)는 곧 지독한 흉조로 뒤바뀌었다. 멈추었던 싸움은 보다 무참히 난발하였고, 땅을 축이던 비는 육생(陸生)을 묻어 죽일 호우가 되었다. 물 아래 점점이 번지다 핏자국마저 사라졌으니, 신의 자취를 알 자 어디에도 없었더라.
二.
그로부터 반나절이 지났다. 때 아닌 폭우에 급히 길을 떠나던 여인은 검은 하늘에서부터 영롱히 빛나는 무언가가 떨어져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예사롭지 않은 징조라 생각한 여인은 급히 그곳으로 가 떨어진 빛이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상황은 기이해져 가기만 했다. 살을 때릴 듯이 퍼붓는 빗발이 그리로 다가갈수록 사그라들고 있었고, 어둡던 사위는 도리어 밝아지기 시작했다. 빗소리 사이, 우거진 수풀 너머로 알연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여인이 몸짓 조심히 하며 풀숲을 넘어다 보자 화려한 금옥(金玉) 장신구와 비단 옷가지를 갖추어 입은 낭랑(娘娘)이 그곳에 있었다. 아름다운 잠거를 걸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형상이 몹시나 애련하였는데, 그는 어깻죽지와 옆구리에 화살이 박힌 채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기이하게도 주변에는 족적이나 핏자국 따위의 흔적이 전혀 비치지 않았고, 등에는 우중 흐린 하늘 아래서도 요요히 빛나는 날개가 달려 있었으며, 입고 갖춘 행색은 당대 그 어떤 귀인의 것보다도 빼어났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모습에 여인이 선뜻 나서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낭랑 문득 고개를 들고 이르기를 “나는 저 하늘의 신명으로서 이곳의 흉기凶氣를 잠재우고 복상을 일깨우고자 하림하였는데, 그만 무도한 자에게 활을 맞아 쫓기는 중에 있다. 내가 예서 죽는다면 길상을 해한 죄로 이 땅은 종차 무엇도 품지 못할 흉지가 되고 말리로다.”하며 눈물을 흘렸다. 구슬피 우는 모습에 두려움이 사라진 여인은 다친 낭랑을 데려가 몸이 낫기까지 정성껏 돌보았다.
三.
끊이지 않는 비에 사람 사이 아귀다툼마저 잦아들었다. 넘치도록 젖어든 물을 타고 병이 번졌다. 뭇 짐승들은 빗속에 자취를 감추고 해가 구름에 갇히니 세상이 곧 암흑천지라. 이에 사람들은 모두가 하늘을 우러르며 치성을 올렸다. 뭇사람의 간정(懇情)이 쌓이고 쌓여 하늘에 닿을 무렵, 어디에선가 맑고 드높은 새의 노랫소리가 들려 왔다. 귀를 기울이니 어느덧 빗살마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의아히 여기면서도 저마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모여들었는데, 온통 진창이 된 땅 위에 단 한 곳만이 해를 받는 광경이 보였다.
서서히 개어 가는 흑운 사이로 찬란한 서광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 아래 선 어느 여인이 하늘을 향해 기도하자 이어 눈부신 빛살로부터 거대한 새 하나가 날아 여인의 앞에 내려앉았다. 그것은 휘광하는 오색 깃을 입고 홀로서 성(盛)하였으니, 스스로 입 열어 노래하듯 말하였다. “그대에게 인덕과 도리 있으라.” 신령한 새는 여인의 앞에 깊이 고개 숙여 절한 뒤 이내 하늘로 날아올랐다. 신이하고도 아름다운 그 모습에 금번은 누구도 경거하지 못하였다.
봉황이 등천하여 자취를 감추매 동시 암운이 모두 걷히고 일광이 돌아왔다. 이는 즉 하늘이 노여움을 거두었음이라. 이에 자리에 있던 모든 자가 하늘의 뜻과 통한 여인에게 스스로 머리를 조아렸으니, 그 섬김 받은 자의 이름은───.
───전하기를, 왕이 간청하자 어둡던 하늘이 갈라지며 찬란한 광명이 내리쬐었다. 그로부터 천신의 사자가 내려와 그에게 절하며 고하므로, 왕의 행함과 바람이 곧 하늘의 뜻과 같다 하더라.
하늘이 사람의 왕을 정하고 왕이 스스로 이름하기를 히미코(卑弥呼)라 하니, 기나긴 난은 종식되고 그 치세 오래도록 평안하였다. 이는 모두 군왕의 어진 덕치로 인함이라.
──『고사기(古事記)』
(註: 현재는 말소된 서장에 해당한다.)
❖祕
그대가 나를 구하였으니 나 역시 마땅히 그대를 돕고 싶은데, 무엇을 원하는가?
⋯⋯당신은 하늘에서 온 신령이시니, 청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소?
이치에 맞으며 이루어줄 수 있는 원이라면 정히.
하면, 내게 영검을 내려 주시오.
그것은 들어 줄 수 없다.
아니, 나는 그것을 꼭 받아야겠소. ⋯⋯부디 내 이야기를 모두 들어 보오.
⋯⋯말하여 보라.
우리 땅 위에 벌어지는 싸움은 들불과도 같소. 눈치챈 때엔 이미 꺼뜨릴 방도라곤 남지 않았고, 우리 사람의 힘으로는 겉잡을 수도 없지. 맞지 않는 자들이 억지로 손을 잡아 묶고 나라를 지었다고는 하지만 누구도 서로를 진정으로 믿지는 못하는 형세요.
우리의 연맹이 위태로운 그 원인은 명확하오. 그것은 모두 단단히 맺은 구심점이, 결속이란 것이 부족하기 때문이오. ⋯⋯그러나 지금의 우리 족속에게는 수십 개 부족을 짓눌러 다스릴 힘을 지닌 우두머리도, 교묘한 말로써 화합을 이룰 재주를 지닌 자도 없으니 안다 한들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 ⋯⋯하지만 내 그날, 빗속에서 당신을 본 순간 알았다오.
그래, 무엇을 알았는가?
칼과 혀의 무정함보다 하늘의 드높음과 신기(神奇)야말로 우리를 깨우치고 또 사로잡는 밧줄이 될 것임을.
⋯⋯그대는 영장(靈長)이로군.
그러니 내게 비할 데 없는 권위를, 다만 당신과도 같이 사람은 결코 닿지 못할 ‘신묘한’ 위상을 주시오. 나는 오로지 말뿐이며 허황스러울 위엄만을 바라오.
⋯⋯.
괴연할사, 귀진한 바람이로다.
좋다. 그것은 내 이루어줄 수 있느니라.
❖해설
1.●
2.첫 문단에서 인용된 『북서(北書)』는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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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 |
⋯⋯있지, 넌 내 유일한 예외야.
행복했으면 좋겠어. |
- 緣
가미유키로 오게 된 이유, 오래 전에 나누어주었던 부적을 가진 아이. 널 만나고 싶으면서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면 말도 안 되는 억지일까?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왔지만 네 곁에 있는 이유가 그것뿐인 것만은 아냐.
나는───
- 一
플래그 아이싱 캐치 대회를 연습하려고 호수에 갔는데, 나 빼고 다들 같이 온 친구나 가족이 있더라구. 혼자 놀기는 심심해서 히키도 데려오고 싶어진 거 있지! 히키가 짜증을 좀 내긴 했지만 결국은 같이 나와줬어. 스케이트 타는 법을 모른다고 해서 내가 가르쳐주기도 했지. 놀러 나가기 싫었는데도 같이 나와 줘서 고마워!
나는 정말 즐거웠거든, 너도 재미있었을까?
- 크리스마스 선물
직접 엮어 만든 길상결(吉祥結).
끈을 엮어 만든 작은 매듭과, 벽면이나 문간에 걸어두기 좋은 중형의 매듭이 각각 포장되어 들어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
안부인사는 생략이야. 그건 직접 만나서 할 수 있으니까, 만나면 편지에 못 쓴 만큼 몰아서 해줄게!
그건 그렇고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정말 깜짝 놀랐어! 짧은 시간만에 상처가 씻은듯이 사라지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만, 적어도 이런 좋은 날에만큼은 아프지 않고 즐길 수 있었으면 해. 그런 마음을 담아서 만들었으니까─ 가지고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몰라! 응, ‘그럴지도 모르는’ 게 아니라 정말 가능성 높다구. 내 이름 걸고 하는 말이니까 작은 매듭은 꼭 하고 다녀야 해!
그리고 말이야. 일본은 이제 음력으로 명절을 세지 않는다고 했지? 곧 새해이기도 하니까, 시기는 좀 이르지만 새해를 기념해서 큰 매듭도 같이 만들어 봤어. ⋯⋯사실은 일본식으로 기념해주고 싶었거든. 그런데 아직은 내가 여기 문화를 잘 몰라서 실수를 할 것 같은 거 있지. 나한테 가장 익숙한 걸로 준비해 봤는데, 역시 어색하려나? 이것보다 더 좋은 걸 주고 싶어서 아쉽기도 해. 그래서 말인데───
있지, 히키. 여기에서는 새해를 어떻게 보내는지,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먹고 어떤 인사를 하면서 누구와 함께하는지, 괜찮으면 히키가 가르쳐줄래? 기대하고 있을게. 크리스마스 잘 보내는 것도 잊지 말고!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새해에는 길하고 좋은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기를(吉祥如意).
아름다운(丽) 길상(祥)의 이름으로 바라며, 링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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밋치 |
틱톡 메이트! |
- 緣
틱톡이라는 거, 엄청 신기하고 재밌어. 나도 자신 있는 부문으로 컨텐츠를 찍어 보고 싶었는데 같이 할 사람이 없는 거 있지! 그렇게 고민하고 있다가 밋치를 만나서 같이 하자고 했어. 왜냐면 밋치는 엄청 예쁘고 스타일도 멋있고 목걸이랑 귀걸이도 반짝반짝하고⋯⋯! 그 뒤에도 가끔 맛있는 라멘이나 중식 요리를 먹으러 가. 재미있고 멋지고 좋은 친구!
- 크리스마스 선물
산뜻한 플로럴, 풍미가 강한 베리, 묵직한 캐러멜, 스모키하고 깊은 향의 커피까지, 여러가지 종류를 체험할 수 있는 고급 드립백 커피 세트(10종).
「메리 크리스마스, 밋치!
최근에는 만나지 못한 지도 좀 되었는데, 요즘도 잘 지내고 있어?
밋치는 멋진 사람이니까 밋치한테 딱 맞는 반짝거리고 예쁜 물건들을 주고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난 아직 밋치가 뭘 좋아하고 어떤 것들이 잘 어울리는 스타일인지 모르는 게 많더라구. 그래도 내가 보기엔 밋치는 감각적이고 세련된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향이 좋은 커피를 준비해 봤어!
이 선물이 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앞으로도 선물을 줄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지금보다 더 확신을 담고 선물할 수 있도록, 내가 너를 더 잘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 언제 한 번 또 재밌게 놀자.
겨울에 만난 따스한 인연에게, 링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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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 |
옆자리 친구! |
- 緣
옆자리에 배정 받은 같은 반 친구. 첫날에 나랑 얘기도 많이 하고, 같이 가라오케도 갔어! 앞으로도 더 친해지고 싶은 친구야. 아, 그리고 키 크고 스타일도 엄청 멋있어!
- 크리스마스 선물
체인 형태로 만들어진 은빛 반지. 지나치게 가늘지도 굵지도 않은 적절한 굵기와 우아한 곡선이 두드러진다. 과하게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밋밋하지 않은, 감각적이고 세련된 형태. 유이가 기존에 차고 있던 반지와 함께 차기에 잘 어울리는 디자인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유이! 크리스마스는 잘 보내고 있어?
이렇게 편지를 쓸 수 있는 기회를 빌려서,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을 하고 싶어. 나는 원래 말이 많은 편이니까, 마주보고 직접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점점 딴 데로 새는 일이 많잖아? 그렇다 보니 글로 써서 차분하게 전하고 싶었어.
있지, 처음으로 전학을 와서 옆자리에 같이 앉게 된 친구가 너라서 정말 기뻐. 쉬는 시간에 이야기를 하고 같이 점심을 먹는 소소한 일상도 네가 있어서 즐거워.
우리가 같은 신이라는 친근감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너는 늘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사람을 대하는 데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는 친구니까. 나는 묵묵하면서도 상냥한 유이가 좋아.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쭉 친하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
옆자리에서 너를 볼 수 있어서 매일매일 학교 가는 날을 기대하게 돼. 그러니까 우리, 내일도 또 보자!
링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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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레이(雷雷) |
귀여운 꼬마친구! |
- 一
자판기 밑에 머리가 끼어 있는 모습으로 처음 만났어. 뭘 하고 있냐고 물어보니까 안에서 반짝이는 걸 찾았다길래, 나도 같이 머리를 끼웠지! 나는 100엔도 못 건졌지만 재밌었으니까 됐어!
멋있는 번개를 치는 신이니까 레이레이(雷雷)라고 부르기로 하고 이야기를 좀 나눴는데 말이지, 레이레이가 집도 없고 잠도 안 자면서 지낸다고 하더라! 급한 대로 우리 집에 데리고 가서 재우고 집도 얻어 두라고 신신당부 해뒀어. 날 언니라고 불러주는 귀여운 아이야.
- 二
스케이팅 경기에 참가했더니 온천 무료 이용권이 생겼어! 경기 끝나자마자 바로 온천에 갔더니 레이레이도 거기에 있지 뭐야! 같이 온천욕하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아, 그런데 있지! 스케이팅 대회에서 우승하면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꿈에도 몰랐다니까! 너무 늦게 알게 돼서 아쉬웠는데 레이쨩이 같이 춤추고 노래하자고 해줬어. 무대가 아니더라도 놀 수 있다면 즐겁잖아?
씻고 난 다음에 같이 우유도 마시고, 탁구도 하고, 객실에서 동영상도 찍었어. 응, 오늘도 정말 즐거웠어!
- 크리스마스 선물
테크닉스 사의 턴테이블 Technics SL-1500C와 KEF LSX II 스피커, 그 외 턴테이블 관리에 필요한 기초적인 정보가 쓰인 안내문과 빈 앨범 자켓, 브러시 등의 보조 도구들.
「메리 크리스마스!
샤오레이, 크리스마스는 잘 보냈지? 이 편지는 미리 써 놓은 건데, 너라면 묻지 않아도 즐겁게 잘 보냈을 거라는 믿음이 가.
지난번에 보내줬던 아지트 사진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저 자리에 좋은 소리가 더해지기만 하면 완벽할 것 같은데! 가라오케 기계가 있기는 했지만 그건 보통 재생 용도로 쓸 만한 건 아니니 말이야. 그래서 이 선물을 떠올리게 됐어. 네가 만든 아지트에 둘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턴테이블은 섬세하고 연약한 기계라 어렵겠지. 기왕이면 게스트하우스에 두고 써줬으면 좋겠어. 아지트에 두지는 못하더라도, 모두 함께 음악을 즐길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즐겁고 좋은 일일 테니까!
사랑스러운 번개야, 네가 즐겁길 바라.
네가 내게 있어 누구와도 비할 데 없는 좋은 인연이 되어 주었듯── 이곳의 수많은 인연들 역시 너를 이루고 이끌어 주는 힘이 되기를, 내가 기원할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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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얼(隐儿) |
언제까지고 어여쁠 아이.
너도 영영 아이로만 머물러 있지 않는단 것이 당연한데도, 나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모양이야. |
- 緣
전쟁터에서 처음으로 만난 어린아이. 신의 격이란 곧 우리의 의의이고, 그 격으로써 우리는 오롯한 ‘나’를 정의하며 살아기도 하지. 하지만 생득적인 사명이 가혹하게만 느껴질 때가 있다는 사실엔 나 역시 공감한단다. 죽어간 전령들을 위해 괴로워하던 그때의 널 잊을 수 없어.
내가 널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전장에 나타나는 것뿐이라, 네게는 언제나 더 마음을 써 주고 싶구나. 싸움이 없는 이곳에서는 잠시나마 그 고회를 잊을 수 있기를.
- 一
설마설마했는데 여기에서 너를 만날 줄이야! 간만의 해후에 기쁠 뿐이란다. 워낙에 많은 일이 있어─왜, 만나자마자 개떼에 파묻혀서 네가 엉망진창이 된 일이라거나, 지난번에 스케이트를 타다 네 가랑이가 찢어졌던 일이라든지, 개들을 몰던 중에 내가 길을 잃기도 했고─ 짤막하게 정리하기는 힘들겠지만, 오랜만에 너와 함께할 수 있어 즐거웠어. 그리고 내 잘못을 따끔히 꾸짖어주어 고맙구나. 네 덕에 나는 비로소 너를 바로 마주하고 내 마음 역시 돌아볼 수 있게 되었어.
이곳에서는 활기차고도 단란히 지내는 듯해 마음이 좋아. 늘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려무나.
- 크리스마스 선물
검정색 겨울용 가죽 장갑 한 켤레. 눈에 띄는 화려한 장식이 없는 대신 어느 차림에 함께 착용하더라도 어색하지 않은 실용성이 돋보인다. 부드럽고 매끄러운 재질에 마감 처리 역시 섬세한 고급품이다. 어째서인지 사이즈는 ‘현재의 차드’의 손에 자연스럽게 들어맞는다.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절은 잘 보내고 있니? 향자엔 기껏 해후한 첫 때부터 개떼에 휩쓸리고, 나를 찾느라 너도 길을 헤매고⋯⋯ 네 연이어 큰일을 당해 정말 놀랐어. 늘 별사 없이 평강히 지냈으면 한단다.
이런 기쁜 날에 늙은이의 헛푸념 담긴 편지를 보내게 되어 미안하구나. 하지만 편지가 아니면 전하고픈 말 온전히 전할 길 없을 듯해 글로 써 보내마. 왜, 너도 알다시피 내가 조금 산잡한 편이잖니? 말로 했다간 분명 이야기가 산으로 가고 말 테야⋯⋯.
여하간 접때는 워낙 경황이 없고 일도 많아 미처 말하지 못했는데, 네가 여기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너도 알다시피 나는, 널 이런 곳에서 마주쳐선 안 되니 말이야.
이곳에서의 생활은 어떠니? 여기에서는 잘 지내고 있니? 이런 안부부터 물었어야 했건만─ 병간에서 배운 나쁜 버릇부터 나와 마땅한 인사도 없이 내 좋을 말만 하고 말았구나. 이제 와 그때의 치행 돌이키자면 부끄럽기 그지없어.
너를 만나 반갑다 하면서도 나는 정작 진정으로 헤아렸어야 할 것은 알고 싶어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탓에 네게는 무심히 굴다 못해 상처를 주고 말았구나. 그날 너와 작별한 뒤 돌아가 심고해 보았다. 내 너를 아이 취급해오곤 했지만, 회간하자면 정녕 미숙했던 것은 나였단 생각이 이제야 들어. 내 행동이 네게는 모욕이 될 줄 몰랐단 말만으론 뉘우침이 될 수 없겠지. 그동안 나는 멋대로 여린 것 취급하며 너를 지나간 옛 시절에 잡아두고 있었구나. 그때의 무례에, 그리고 이제까지의 잘못을 통감하며 이때에 이르러서야 사죄를 구하고 싶어. 정말 미안하다.
⋯⋯사실, 이리도 가까운 시일만에 전해질 편지를 써 보내고, 같은 마을에 살며 그리 멀지 않은 때를 기약할 수 있는 경험은 처음이야. 그러니 말이야. 이곳에서 내 잘못을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할 테니, 내 다시금 불미하게 굴 적엔 네가 바로잡아주지 않으련? 부끄러운 장광 써 보내었어도 사의를 받을지 정하는 것은 너란다. 어찌 마음먹어도 좋으니 편히 굴어 주렴.
그리고 선물은── 사과와는 별개의 것이니 받아주었으면 해. 네 호의好衣하는 것은 좋으나 풍한은 들지 않았으면 좋겠단 것이 노생 마음임을 어쩌겠니. 목도리도 외투도 귀마개도 어떨까 하며 고민해 봤지만, 이 편이 맵시 해치지 않으면서도 따뜻할 것 같기에 이리 보내마. 여기까지 읽었다면, 이 졸로의 유언莠言 들어주어 고맙구나.
좋은 날 좋은 때에, 네가 누구보다도 즐거운 하루를 보내길 바란단다.
어여쁜 너의 안복을 바라며, 태상(太祥)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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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메이(蓝妹) |
사랑하는 내 동생,
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는 슬픔을 잊을 수 있어. |
- 緣
너와의 동행은 영영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장장의 춘일과도 같았어. 나는 네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겠노라 호언을 했지만─ 함께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친 쪽은 나였다는 걸, 너는 알까?
너를 통해 나는 누군가와 떠나는 여정의 즐거움을 알았고, 외롭지 않은 밤의 풍경을 기억하게 되었으며, 떠난 자의 빈 자리와 그리움의 무게를 비로소 깨우칠 수 있었단다. 지금도 때로는 너를 지난날의 추억이 아닌 현실에서 그러안고 싶다 생각하고 마는 날이 있어.
그립고도 친애하는 내 동생, 내가 모를 어딘가에서도 행복하게 지내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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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공(武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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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緣
내 오랜 인연이라 하면 전장에서의 것밖에 더 있겠나? 자네와는 온 열도가 한 세기 동안이나 끊이지 않는 전란에 시름할 적 처음으로 만났지.
전신이라 한들 과업이 달갑지만은 않다니, 이런 점은 우리 같이 싸움터에나 나타나는 족속들이 어찌 죄 비슷한 것인지 모르겠어. 자네의 심경을 괴롭히는 주럽이 떠나지 못하는 것은 아마─ 전세마저도 쥐고 이끌며 뒤흔드는 그 손이, 싸움이란 이름이 어울리지 않도록 따스한 탓이리라 짐작할 뿐일세.
내 왕래가 공에게 위안을 준다면 내겐 그만큼 기쁜 일이 달리 없네그려. 그래, 자네는 요즘엔 무얼 하고 지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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