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령, 나 딸 생겼어.”
저격수가 말했다. 혼인 의식을 치르고, 남편의 수명이 끝나고, 드디어 다시 함께하게 되어 가족을 이뤄낸 살인의 신이었다.
그녀의 힘은 이미 이 오라비라고 불러 좋을 전령과는 현격한 차이가 생겨나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를 오라비라고 여겼다.
“그걸 말하고 싶었어.”
어떤 대답이 돌아오기 전에 훅 사라진다. 어차피 반응이 돌아오기엔, 전령의 표정은 굳은 채 어떤 말을 꺼내기 요원해 보였다. 화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리고 저격수는 어차피 오라비의 반응을 듣고자 전한 게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남편의 제안이었다. 가족이 있어 본 적이 있고, 한때 인간이었던 남편이기에 제안이 믿을 만하다고 여겨서 했을 뿐이었다. 살인의 신은 그런 여신이었다.
주체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녀는 자신의 남편인 번개의 신이 살아가며 보여준 삶의 태도를 흥미롭게 보고, 그것을 자신의 구원으로 삼았다.
둘이 함께 전장을 도망쳐, 살기 위해 살아가는 것을 택했을 때.
생의 가치가 행복에 있음을 인정하고, 살인의 신으로서는 방만하게도 저격총을 내려두었다. 신이나 되어 스스로 저격을 다닐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잡귀가 아니고, 자신의 자격이나 신격을 드높이기 위해 스스로 움직이지 않아도 되었다.
시대가 바뀌었다. 그녀가 자주적으로 움직이지 않아도, 인간의 군에서 저격수는 이미 중히 쓰이는 역할이 되어 있었다.
매체에서도 저격수는 로망을 담아 말하는 이름이 되었으니, 그녀는 자신의 상징에 하나둘씩 새로운 것들이 들어차는 걸 느꼈다.
어쩌면 반대일지도 모르겠지만.
상징의 영향을 받아 그녀가 기타를 잘 다루게 된 게 아니라, 그녀가 기타를 연습하며 낭만적으로 살려고 노력했기에 그녀의 상징에 그런 게 붙은 걸지도.
하지만, 어찌 됐든.
세상이 바뀌었다.
살아가고, 병들기도 하고, 굶주리기도 하는 남편과 함께 세상을 떠돌았다. 결국 남편이 인간의 수명 한계에 도달해 죽고 번개의 신이 되었다.
그리고 딸이 생기고, 딸이 커가는 걸 지켜보았다. 언젠가 제 철없는 오라비에게 딸이 생겼음을 밝혔던 걸 잊었을 무렵이 되어서.
딸이 고등학교에 갔다. 커가는 딸을 한동안 못 보는 건 서글픈 일이지만, 정 보고 싶으면 잠시 방문하면 된다. 그래서 어미는 딸을 놓아주었다. 딸이 더 많은 걸 보고,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삶을 즐기도록.
그 뒤로도 그녀의 삶은 변하지 않았다. 매일 기타를 연습하고, 남편에게 애정 표현을 하고, 딸의 실없는 전화며 문자에 답장을 하고, 저격총을 습관처럼 정비하고, 쏘며 연습하는 나날.
어느 날, 딸이 전화를 걸었다.
[엄마.]
“응, 아가.”
[나 삼춘 있었어?]
저격수는 그제야 아, 하는 탄성을 흘렸다. 긴 시간 잊고 있었다. 신이라서 어차피 죽거나 그러진 않고, 철없는 구석이 있어도 자기 앞가림은 하니까 괜찮겠거니 하고 잊고 있었는데.
아가의 삼춘이라는 멍한 발음을 들으면서 떠올렸다. 그래, 굳이 말하자면 삼촌이겠지. 저격수의 검은 눈동자가 잠시 굴렀다.
“응, 전령의 신.”
그런데 그걸 어떻게? 설마 가미유키에서 만났을 리가….
[오늘 삼춘 만났어. 아니, 만난 건 전에도 만났는데… 삼춘이 엄마 전 남친인 줄 알았어.]
“…응?”
조금 서늘하게 나오는 목소리. 저격수가 저도 모르게 아차 하며 입가를 가리면, 아니나 다를까 쭈뼛대는 기색이 느껴졌다.
[화났어?]
“아냐, 아냐. 그냥… 생각도 못 한 거라서.”
[정말?]
듣고 있자니 뭔가 살짝 다른 듯했다. 저격수는 의아한 표정(딸처럼 무표정이다.)으로 전화를 흘긋 보았다.
“전령이 뭔가 반응이 있었니?”
[응, 동생 같은 거라고 소리 지르고 기절했어.]
“저런.”
[어떡해?]
저격수는 잠시 눈을 굴렸다. 전화하면… 별로 좋아하진 않을 거 같은데. 살인을 그만두고 나서도 전령의 신은 그녀를 꺼렸다.
멋대로 자유로워지고, 멋대로 나아간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까. 저격수는 적어도 자신이라면 그랬을 거라고 멋대로 생각하고서, 잠시 무릎을 두드렸다. 토독, 가늘고 긴 손가락이 두드리는 소리 속에서 저격수는 잠시 눈을 깜빡였다.
“건강해 보여?”
[응, 건강해. 전에 삼춘이랑 눈 올 때 포즈 대결했어.]
“…포즈 대결?”
[응, 삼춘 모델이래. 그래서 대결했어.]
저격수는 자기도 모르게 쿡, 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녀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고, 한숨이 나왔다. 나른하기 짝이 없는 한숨이었다.
“재밌었겠네.”
[응, 재밌었어.]
“그럼… 삼촌 잘 봐줘. 철없어서 사고 많이 치고, 흥청망청 쓰니까.”
[알았어. 삼촌 일어나면 코우 할아버지한테 설설 기어서 방 얻으라고 할게.]
“그래, 그럼.”
나머지는 알아서 딸이 하겠거니 하면서, 저격수는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오늘도 열심히 하고. 밥 잘 먹고. 늦지 않게 자. 사랑해.”
[으응, 나도 사랑해.]
전화가 끊어지면, 저격수는 드물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그래, 전령이라.
‘너도 네 행복 찾을 때가 됐지.’
저격수는 멋대로 차드가 혼인 의식을 치르기 위해 갔으리라고 어림짐작했다.
사랑 탓에 전장을 떠난 저격수다운 판단이자, 선지아의 어머니다운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