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 도술학당 도화(都華)
"신이라는 존재는, 자비가 없기에 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그렇다면 인간도 신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임 가현 | |
나이 | 19 |
성별 | 女 |
기숙사 | 흑룡 |
고향 | 곡옥 |
1.1. 외형 ¶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곧 저물어버릴 한떨기 꽃같은 느낌. 마르지는 않았고, 적당히 살이 붙기는 했으나 어딘지 모를 연약해보이는 인상은 변하지 않았다.
어깨에 닿을락말락 하는 검은 머리칼은 새하얀 피부와 대비를 이루었다. 잘 때를 제외하면 행동하기 편하고 용모가 단정해 보이게끔 한데 올려 묶어두는 편이다. 진한 자수정색 눈동자는 임씨 가문 사람들의 특징으로, 맑은 색감이지만 동시에 탁한 느낌이 서려 있다. 오른쪽 눈가 아래에는 소위 말하는 눈물점이 하나 자리잡고 있다.
눈매 때문에 제법 앙칼져 보이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나른하게 반쯤 내리깔고 있어 티가 많이 나는건 아니었다. 오차범위 없이 딱 170cm의 키로, 비율이 좋은 편.
교복은 자신이 입는 옷의 사이즈보다 한치수 크게 시켰으며 본인은 오버핏 옷의 나풀나풀함을 한껏 만끽하는 중이다. 용 모양으로 예쁘게 세공된 흑요석 선추가 달려있는 부채는 두루마기 소맷단 안에 넣어놓고 다닌다.
어깨에 닿을락말락 하는 검은 머리칼은 새하얀 피부와 대비를 이루었다. 잘 때를 제외하면 행동하기 편하고 용모가 단정해 보이게끔 한데 올려 묶어두는 편이다. 진한 자수정색 눈동자는 임씨 가문 사람들의 특징으로, 맑은 색감이지만 동시에 탁한 느낌이 서려 있다. 오른쪽 눈가 아래에는 소위 말하는 눈물점이 하나 자리잡고 있다.
눈매 때문에 제법 앙칼져 보이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나른하게 반쯤 내리깔고 있어 티가 많이 나는건 아니었다. 오차범위 없이 딱 170cm의 키로, 비율이 좋은 편.
교복은 자신이 입는 옷의 사이즈보다 한치수 크게 시켰으며 본인은 오버핏 옷의 나풀나풀함을 한껏 만끽하는 중이다. 용 모양으로 예쁘게 세공된 흑요석 선추가 달려있는 부채는 두루마기 소맷단 안에 넣어놓고 다닌다.
1.2. 성격 ¶
항상 침착한 분위기를 두르고 있으며, 온화하고 자애로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곤란한 상황 속. 화가 나고 분한 상황 속. 슬픈 상황 속. 그 어느 상황에서도 나긋함을 유지하며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되, 자기 할말은 또 꼬박꼬박 잘 하고 살았다. 지기 싫어서 내뱉는 말도 아니고 남에게 좋게 보이기 위해 하는것도 아니다. 자신이 진심으로 상대를 포용하고 있기에. 혹은 포용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애정을 담아 충고한다고 여기는 어딘가 조금 이상한 사고방식을 가진 애일 뿐이다.
소유욕이 이상할 만큼 크고 조금 과할 만큼 자신의 물건에 대해 집착하는 편. 하지만 그게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은 물건이라고 여겨지면 관심을 완전히 꺼버린다.
아주 가끔, 핀트가 나가버리면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감정 컨트롤이 자유자재로 되는 만큼 자기주장이 나름 강하고 고집도 있다. 정신승리도 제법 잘 한다. 약간의 4차원 기질과 더불어서 가끔 의미없는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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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보여지는 것을 믿지 말라. 은은함과 자애로움은, 그 속에 숨은 뒤틀림을 가리기 위한 허상일 뿐이다.
한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크레이지 싸이코 광신도. MA의 명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거리낌 없이 앞장서 수행할 마음가짐이 되어 있으며, 소실된 인간성을 흑룡의 독기로 덮어 가리는 면도 존재한다. 선악의 개념 따위 MA를 알현할 적 모호해졌기 때문에 흑룡의 독기와 제 기분에 휘둘려가며 내키는 대로 이랬다 저랬다 하는 편.
하지만 가현은 사람이었다. 필요할 때 그것들을 내비치고, 불필요할 때 친절이라는 겉껍데기를 다시 둘러쓰는 당연한 컨트롤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간혹 어리숙하고 어설프며 엉뚱한 모습도 보이지만 그것 마저도 어렸을적 4차원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이후로는 자신의 성격이 4차원이라서 그럴 뿐이라며 묻어갔다.
특유의 광적인 집착과 뒤틀리고 엇나간 애정 또한 MA를 알현할 적 굳어진 성향. 룸메이트였던 농질이 학당을 나간 이후 그 성향이 더욱 강해졌으며 6학년이 되고 흑룡의 독기에 강하게 노출된 지금, 그것은 정점에 달했다. 가현 본인은 독기의 영향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지만.
1.3. 기타 ¶
- 林 家
수풀 림 자를 쓰지만 두음법칙의 적용으로 임씨로 읽는다.
- 곡옥에 자리잡고 있으며 해씨 가문만큼 아니마를 중점적으로 배출했던 가문도 아니고 해씨 가문에 비하면 유명세 면에서는 뒤쳐지지만, 그래도 아니마를 선출해내는 규정만큼은 해씨 가문과 맞먹을만큼 엄격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가문. 더불어서 해씨 가문과 마찬가지로 제사장의 선별과정 중 낙오되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거리낌없이 산 제물로 바쳐버리는 가문.
- 낙오된 아이들을 산 제물로 바치는 것. 이 과정은 그저 자기네들의 사리사욕이나 정신승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중간에 실패하거나, 이후의 행적이 가문의 신념에 맞지 않으면 바로 제물로 바쳐버리는 것은 MA에 대한 자신들의 신앙심을 더욱 확고히 보여주기 위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아니마로 등극되지 못한 실패작이더라도 유이하게 MA에게 제물을 바치는 해씨 가문을 능가할수 있을 만큼의 퀄리티 높은 제물. 즉 자기네들의 기준으로 볼 때 MA가 최대한으로 만족할 수 있을만큼의 '훌륭한 실패작'으로 키워내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자신들의 가문원들에게는 이리도 엄격하지만, 비슷하게 제사장을 배출해내는 다른 가문들과의 사이는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다. 해씨 가문의 파문당한 아이에 대해서도 수치심보다는 되려 자신들과 같은 길을 걷지 않은것에 대한 동경심이 더 컸다. 간혹 영향력이 강한 가문원 중 일부가 그를 알게 모르게 도와주기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 물론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자존심이 강한 몇몇 가문원은 이러한 생각을 하는 가문원에 대해 부모님/조부모님이 답답하네, 자식농사 잘못 지었네, 손주농사 말아먹었네 하며 서로서로 만날때마다 혀를 차며 비난하지만 산제물로 바쳐지지 않고 가문의 일원으로 남아있는 것은 어찌 되었든 가문원들 절대다수의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기 때문에 비난 이상의 감정소모는 하지 않았다.
- 백씨 가문과의 사이 역시 돈독한 편으로, 작고 힘없는 약소 가문이라고 해도 무시하는 일 없이 임씨 가문 특유의 친화력을 내세우며 친분을 유지하였다. 간혹 가문 간의 교류 또한 있었으며 이에 임씨 가문의 일원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를 갖추었다.
- 물론, 정말로 그들이 타 가문에게 온전하게 친밀감만 가지고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 해씨 가문의 파문당한 아이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잘 구슬려서 해씨 가문의 약점을 알아낼 기회를 잡기 위한 것이었다. 타인의 명성에 연연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넘어서겠다는 욕심은 새벽 동이 틀 무렵 채 걷히지 못한 밤의 어둠의 잔재마냥 그들에게 남아있었고, 결국 남들 앞에서는 티내지 못한 욕심과 어찌 되었든 해씨 가문의 명성에 미치지 못한다는 열등감이 자아낸 결과였다. 같은 가문원들마저 친밀하게 구는 가문원들에 대해 비난을 쏟아낼 만큼, 그들은 감쪽같았다.
- 백씨 가문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그토록 모시는 MA가, 자신들의 선조는 그리도 무참히 뒤엎었으면서 백 가의 사람들만큼은 터치하지 않은 것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MA의 신당이 위치한 정원을 담당하는 가문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심. 가능하다면 그 비법을 조금이나마 얻어가서, 훗날 그들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MA에 대한 광적인 지지를 더욱 빛내기 위한 야망이 친화력의 뒷면에 음침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 현 시점. 그들이 바라는 것은 타 가문들을 전부 제거하거나 몰아내고 자신들이 신의 은총을 받을 유일한 가문으로 남는 것. 실천될 가능성이 없다시피 한 개꿈같은 바람이지만 그래서 야망이라고 불릴수 있는 것 아닐까.
- 곡옥에 자리잡고 있으며 해씨 가문만큼 아니마를 중점적으로 배출했던 가문도 아니고 해씨 가문에 비하면 유명세 면에서는 뒤쳐지지만, 그래도 아니마를 선출해내는 규정만큼은 해씨 가문과 맞먹을만큼 엄격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가문. 더불어서 해씨 가문과 마찬가지로 제사장의 선별과정 중 낙오되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거리낌없이 산 제물로 바쳐버리는 가문.
- 건강하지 않게 생기기는 했지만 정말로 몸이 안좋거나 한 것은 아니다. 타고난 형질이 그런 것으로, 이런 면은 자신의 어머니 쪽을 빼닮았다.
- 평소에는 세상 느긋하고 나른하다. 급하게 서두르는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을 만큼 삶에 있어서 여유가 넘친다. 그 대신 성질 잘못 건들면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타입.
- 임씨 가문의 차기 당주이자 가문에서 선출해 낸 제사장 후보. 상상 이상으로 엄격한 가문의 규율 속에서 모든 조건이 부합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규율이 아니라 가문 내에서 짜여진 주관적인 규율이기 때문에 도술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도술을 좀 더 배워야겠다 싶은 수준이다.
- MA를 왕이라고 부르는 건 타 가문 사람들과 별반 다를게 없으나, 가현 혼자서는 돌려말하지 않고 신이라고 부르는 일도 가끔 있다.
- 사실 힘이 꽤 세다. 약해보이는 몸의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몇몇은 키에서 나오는 거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 농질과는 한때 기숙사를 같이 사용하던 룸메이트였다.
2. 관계 ¶
- 농질(백 서화)
-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 언니야~♡"
"언니가 나간 이후로, 아직 따로 만나본적은 없지만... 내 마음속 한켠에는 항상 언니가 있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우리. 언젠가 따로 만나는 날이 오길 바랄게? 그때가 오면..... 나는 언니를 쉽게 놓아주지 않을거니까 각오해."
"영원히 내 곁에 잡아둘거야. 두번 다시는 어디 못 가게 그 예쁜 발목에 내가 친히 족쇄를 걸어줄게. 영원히, 영원히 내 곁에서 나만 바라봐줘. 나만 즐거울 수 있게.. 내게 한껏 속삭여줘. 우후훗..."
- 과거, 백씨 가문과의 교류 중에서 함께 놀고 친해지며 가까워졌다.
- MA를 처음 알현하고 난 이후로 생긴 인간성의 공백을 메꾸어주던 유일한 사람이자 MA 다음으로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사람.
- 류 온화
- "보자... 저번에 천부에서 잠깐 만났던 적룡 아이 말이지?"
"옷차림 헐거워보여서 놀랐어. 추운 날씨였는데도 불을 품은 적룡이라면서 아무렇지도 않아하던데, 나는 절대 그렇게 못 할거야~ 그리고 그날 꽤 이것저것 얻어먹었는데... 으음... 내가 어린애가 된 기분이었달까? 그래도 고마웠어."
"그런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숨기는게 많을까. 응? 나한테도 조금 알려줬으면 좋을텐데 말이야~"
- 송 보리
- "아. 그 송씨 가문의 귀염둥이?"
"아직 두번밖에 못 만나보기는 했는데~ 뭐라고 할까. 애가 그냥 겁이 많아. 진짜로 많아~ 뭐만 하면 놀래고, 겁먹고. 이런 애가 신 님의 존엄성 앞에서 어떻게 까무러치지 않을 수 있는지 궁금하달까?"
"그래도 귀엽더라고. 앞으로도 자주 놀려줘야겠어~"
- 인어
- "그으... 입가에 귀여운 타투 있는 늘 졸려보이는 오빠 말이지?"
"귀여워~ 귀여운데 또 마냥 귀여워하진 못하겠더라. 아무래도 나보다 훨씬 강하고,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날 죽여버릴수 있는 사람이라 그런건가?"
"그래도 의외로 말도 잘 통하고 상식도 있는 오빠니까~ 그리고 은근히 나랑 닮은게 많으니까. 언젠가 또 만날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때가 된다면, 우리 서로에게 몰랐던 걸 더 많이 알려주는 시간을 가져보자?"
- 모 윤하
- "내 사람 하면 또 윤하가 빠질수 없지~ :D"
"학당에 들어오고 처음 만났는데, 아무래도 나랑은 조금 많이 다른 애다 보니까 이래저래 자주 다퉜지? 그때는 내 성격이 지금같지도 않았어가지고 나한테 맞춰주느라 애좀 먹었을텐데."
"그래도 지금은 완벽해~ 서로가 서로를 포용해주고, 맞춰줄건 맞춰주고..."
"가끔 너무 제멋대로 굴긴 하지만 뭐 어때? 그게 인간미이자, 목표가 있는 사람의 당연한 행동이잖아. 나는 그것도 포용해줄수 있지만.... 내 허락 없이 날 벗어나지는 마."
"절대."
- 1학년부터 차근차근 친분을 쌓아왔던 소꿉친구 느낌의 사이.
- 중간중간 의견충돌도 있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으나, 흑룡의 독기가 강해진 지금은 서로 매우 가까워졌다.
- 쿠즈노하 니오
- "아아... 내가 잊을 리 있겠니. 우리 친애하는 니오. :)"
"내 소중한 물건, 네가 찾아줬잖아. 언니가 떠나고, 네가 날 많이 달래줬잖아. 내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적도 있었고 네가 힘들때는 내가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했지. 그러니까... 우린 서로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야. 그렇지?"
"이제 내가 네 목줄을 쥐었으니까. 절대 날 벗어나지 말아주렴. 목줄이 내 살갗을 파고들어 뼈에 닿고 나서도, 나는 절대 놓지 않을거니까?"
"너는 절대 언니처럼 날 떠나게 하지 않겠어. 네가 저항하고 반항하고 벗어나려고 해 봐야, 결국에는 내 손아귀 안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고 상기시켰으면 해~"
- 잃어버렸던 물건도 찾아주고, 힘들 때 위로해주며 친분을 쌓았다가 농질 사건 이후로 집착 쎄게 들이박게 되었다.
- 절대 반전될 일 없는 일방적인 상하관계를 유지중. 가현은 이것을 자신의 애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 "진짜, 볼거야?"
- MA
- "... 어찌 내가 신 님을 감히 평가할수 있겠냐만은."
"내가 평생 몸바쳐 모셔야 할 존재이며, 내 존재 의의와도 같은 분이니. 설령 인간을 증오하고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 내 신념은 결코 흔들리지 않아."
"결국 난 신의 이름으로 재앙을 섬기며, 대행이라는 모독을 품지 않은 채 신 님만을 위해 살아갈 뿐이니."
"..... 설령, 이 세상에 신 님과 같은 존엄성을 지닌 존재가 더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 분만을 모실 뿐이야."
- 가현의 존재의의. 아이덴티티. 가현의 성향이 지금처럼 굳어지게 만든 원인.
- 그 무엇도 MA의 존엄성과 공포에 비교될 수 없다고 굳게 믿고 있으며, 첫 알현에서 느꼈던 압도감과 공포심에 굴복되고 매료되어 오직 MA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되었다.
3. 독백 ¶
- Contradiction.
- 뱀을 갈망하는 자를 믿지 마라- 칼날을 감은 자비는 항상 벼려진 채 나뒹굴고 있으며,
뱀을 마주하는 자를 믿지 마라- 은은한 햇살은 칠흑을 가두기 위해 존재할 뿐이며,
뱀을 광신하는 자를 믿지 마라- 신념은 선악마저도 마비시켜 그 구분선을 모호히 하며,
뱀을 위해 움직이는 자를 믿지 마라- 종언의 발걸음은 언제 너를 지나쳐갈지 모르며,
뱀의 그림자에 숨은 자들을 믿지 마라- 언제 시커먼 아가리를 벌려 심연보다 깊은 속내를 드러낼지 모르며,
뱀으로 불리는 것을 믿지 마라- 그것은. 언젠가 너의 덧없는 명줄마저 노릴 것이기에.
-그것들을 불신해라. 그것들을 경계해라.
- Fanatic.
- 뱀을 불신하는 자를 경계하라- 무지함의 끝에서는 심연보다 어두운 파멸이 기다리며,
뱀을 배척하는 자를 경계하라- 영겁이 자리를 지키는 것은 결국 자비를 받고 있음을 깨우치며,
뱀을 거스르는 자를 경계하라-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대행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며,
뱀을 더럽히는 자를 경계하라- 그릇되고 더럽혀진 것들은 두려움으로 통치하며,
뱀과 반목하는 자를 경계하라- 이에 반하는 것들은 무한한 심연으로 인도할 뿐이며,
뱀을 모독하는 자들을 경계하라- 경배하지 않는 자. 영원히 침묵할 뿐일지어니.
-그들을 구원해라. 그들을 회개해라.
- Hypocris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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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너는 어디 가문 사람이냐.
물을 적 답한다. 임씨 가문의 사람이옵니다.
그렇다면, 묻겠다. 너는 정말 모든 것을 순수히 포용하느냐.
물을 적 답한다. 아닙니다. 흑룡의 독기와 불순물이 함께하고 있사옵니다.
그렇다면, 묻겠다. 불순물이 무엇이냐.
물을 적 답한다. 임씨 가문의 핏줄으로써, 품고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묻겠다. 불순물을 품은 채 독기를 사그라트릴 것이냐.
물을 적 답한다. 독기는 그저 저에게 있어 훌륭한 수단일 뿐일지어니. 사그라지지 않사옵니다.
그렇다면, 묻겠다. 너가 바라는것은 평화롭고 안온한 일상이냐.
물을 적 답한다. 신께서 바라는 것에 어긋난다면, 저 역시 원하지 않사옵니다.
그렇다면, 묻겠다.
너는 무엇이냐.
물을 적 답한다.
"임씨 가문의 차기 당주이자 제사장 후보. 신의 존엄성을 감히 빌려, 뱀이라고 불리는 것."
"덧없는 피조물이 만들어 낸 선악의 개념과 윤리를 부수고, 오직 신을 위해 저와 같은 피조물의 피를 취하고 살갗을 찢어내며, 그 추악함을 찬란한 존엄성 앞에 바치는 자-"
"신을 갈망하고. 신을 마주하며. 신을 위해 움직이는 자. 저는 신의 대행인이 아니라, 이단을 벌하기 위해 벼려진 칼날이옵니다."
모든 것은 그분의 뜻대로. 모든 것은 그분이 바라는 대로. 신을 불신하고 모독하는 자들을 무한한 심연 속으로 인도할 것이며, 버젓이 존재하고 움직이는 신의 존재 하에 대행을 입에 담음은 신의 존엄을 해하는 죄악일지어니. 자신이 정식으로 당주 및 제사장에 오르고 나면- 모든 것은 바뀔 것이다. 오직 신과 자신이 바라는 대로. 전부 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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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여기저기 열심히 쏘다니면서 도하학당 사람들이라면 기숙사를 불문하고 말을 붙이고 도와주고 참견하는 가현. 하루 일과가 거의 끝나갈 쯤이면 기숙사 방으로 돌아와 묶었던 머리를 풀고 제 침대에 힘없이 몸을 뉘인다. 제아무리 사람 만나서 떠들기를 좋아하는 것이 자신일지라도 충분히 휴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제가 제사장 후보가 되고 나서, 신을 알현하고 차기 당주 자리까지 오를 적 가문 내에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던 말이었으니.
무엇이든 효과적이고, 능동적으로. 확실하게. 효율을 추구하며 동시에 그것들을 취함으로써 받는 이득을 거리낌 없이 받는다. 말의 본질을 파악하고, 허점이 있으면 맹렬하게 파고들며, 상황에 따라서는 자신이 그 허점을 역이용함으로써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훗날 이득으로 치환시키는 양날의 검 또한 품는다. 지금껏 자신이 들어왔던 교육을 짧게 요약하자면 그런 것들이었다.
가현은 그것들을 착실히 수용하고 받아들였다. 치밀하고, 계산적이며, 냉철하고, 이기적으로. 간혹 지나치게 계산적인 면모가 해가 될 지언정, 흔들리지 않고 그것 또한 신의 뜻이라며 마냥 웃어넘길 뿐이었다. 당장 맛보는 약간의 쓴맛은 훗날 찾아올 단맛에 비하면 정말 별 것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마냥 싸늘한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임씨 가문의 구성원인 만큼, 그들이 타 가문에게 보여주는 '대외적'인 이미지 또한 가현은 가지고 있었다. 자비롭고, 친절하며, 예의바른 면모.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누구에게나 평등했으며 그 빛을 잃지 않았고. 간혹 이게 저의 의지가 맞나 싶을 만큼 타인을 진심으로 걱정하는듯한 모습도 없지 않았다.
허나 그것이 정상적인 종류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었다. 임씨 가문이 가지고 있던 껍데기 뿐인 친화력에 흑룡의 독기까지 더해진 포용심은 괴롭힘당하는 약자를 넘어서서, 자신이나 남을 해하려 드는 악인에게까지 그 범위를 넓혔다. 누가 누굴 죽여? 그럴 수 있지. 누가 누굴 괴롭혀? 그럴 수 있지. 내 목에 칼을 들이대? 사연이 있겠지. 갈등과 폭력, 살인, 악행을 포함한 모든 것 앞에서 가현은 평등했으며, 그것은 간혹 방관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어찌 되었든 모든 것은 신이 바라는 대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니. 자신은 대행자가 아니었기에, 간섭할 권한은 없다고 여기며.
비록 흑룡의 독기에 침식당해 핏 속에 서린 예리함은 변질되고 뒤틀렸으나, 그 뜻은 한결같았다. 순수한 호의라는 것은- 가현을 포함한 임씨 가문의 인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저 뱀의 그림자에 숨은 채. 뱀을 갈망하는 자들일 뿐이다.
오히려 그렇기에 흑룡의 독기에 침식당한 뒤에도 한결같았을지도 모른다. 가현은 독기의 특성을 금방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포용. 친절. 그 모든 것이- 자신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줄 수 있음을. 가현은 이곳에 들어오기 전부터 미리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임씨 가문의 이중적인 모습을 아는 자들은 그들을 뱀으로 매도한다. 뱀의 그림자에 숨어들어, 점차 뱀과 동화되버리는 자들. 그와 동시에 자신들이 품은 야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소재로 남들을 이용하는 자들. 적대라는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방법 대신, 친근함과 친화력을 무기로 다가서는 자들. 그리고 친해지며 오고가는 말들 속에서 받는 은혜를 기록하고, 훗날 그것을 원수로 갚는 자들. 그것이 임씨 가문이었다.
야망은 지나치게 커져 결국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온화한 겉껍질은 속에 숨긴 독아를 감추기 위할 뿐이며, 탐욕스러운 본질만이 그들의 속에 살아 숨쉴 지어니.
신은 자비로운가? 아니. 신을 향한 애절한 기도들은 무시되고 단절되며 끊겨갈 뿐. 신은 자비롭지 않은 존재이기에, 신으로 불리는 것. 그렇다면 인간 또한 신에 '가까워'질 수 있겠지. 한 걸음 더 신에게로 나아가며, 신의 곁에서 평생을 몸바칠 수 있겠지.
가까워진다는 것은 대등해진다는 의미를 품은 말이기도 하지만- 서로간의 거리를 좁힌다는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의미도 포함하고 있는 중의적인 단어이기 때문에. 가현은 그 말을 저 혼자 있을 적이면 입버릇처럼 중얼거리곤 하는 것이다.
그보다. 보름 뒤에는 가문을 잠시 찾아야겠다. 제 소식을 애타게 바라고 있을 가문원들- 뱀 새끼들에게, 그동안 쌓은 교우 관계와 겪은 일들을 전해준다면 필히 좋아하겠지. 왼쪽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
꽃을 따라 황홀경으로.
피를 취해 축복을.
바람결을 타고 이상향으로.
꽃을 찢어 영원을.
그들과 발을 맞추며, 한 없이 의지에 몸을 맡긴 채, 그 분에게 나아갈 그 날만을, 자신은 바라고 있을 뿐이니.
- Ambitious.
- 곡옥에 갈 적. 가현은 치장에 꽤나 힘썼다. 본낯은 그대로 그대로 둔 채, 누구한테 그리 잘 보이려는 것인지 선물받았던 머리띠와 지난번 샀던 목걸이를 하며, 포목점 주인이 줬던 꽃과 나비가 새겨진 한복을 걸쳐입고 고이 나선다.
이 장소도 꽤 오랜만이다. 학당에 간 이후로, 방학을 제외한 평일에 이렇게 제 발로 거닐어본 적은 적었으니까. 오라버니와 동생들은 모두 잘 지내고 있을까. 아버님과 어머님은 평안하실까. 자신이 전서구처럼 물고 온 여러 소식들을 들으신다면- 어떤 흥미로운 반응들을 보여주실까. 묘한 기대감을 가득 품은 채 가현은 가족들에게 줄 선물들을 한가득 사 들고 북적이는 인파 틈새로 사라진다.
".. 어? 누나다!"
"언니!"
늘 그랬듯 자연스럽게 제 집 대문을 밀어 들어갈 적에, 마당에서 날아다니는 나비를 바라보며 소꿉장난을 하며 놀던 동생들이 강아지처럼 쪼르르 달려나와 가현을 반긴다. 우리 귀여운 동생들, 잘 있었니. 그 어느때보다도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가현은 동생들을 마주 반기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품에 소중하게 안아주기도 했다. 젖살 덜 빠진 볼을 한껏 만지작거리기도 한다. 사랑스러운 내 동생들. 적어도 너희는 나랑 같은 길을 걷지는 않을테니 다행이야.
몹집은 자그마한 두 아이가 목소리는 어찌 그리도 옥구슬 굴러가는 듯 낭랑면서도 당찬지. 부정적이지 않은 일련의 소동은 이윽고 집 안에서 용무를 보던 제 오라버니들과 어머니를 불러 나오게 만드는 것이다.
"와.. 너가 왠 일이냐? 방학도 안 했는데 집을 찾아오고."
"호들갑 떨기는...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겠지..."
"시끄러! 콱 씨. 하여튼 이건 맨날 퍼질러 자는 주제에 형한테 반말로 토 달고 야단이야 야단이."
"성질 더러우니까 그런가보지..."
"쉿. 둘 다 조용히 하렴. ... 네 아비의 서신에 대한 답장이라면 똑같이 서신으로 보내도 될 것을, 연락도 없이 찾아오다니. 급한 일이라도 있는거니? 아가."
저마다 제각각의 방식으로 가현을 반겼고, 소란스럽던 두 오빠는 가현을 아가라고 칭하는 여인의 말 한 마디에 토를 달지 못하고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가현은 두 꼬마와 눈높이를 맞춰주느라 쭈그려앉았던 몸을 바로하고 허리를 숙였다.
"그럴 리가요. 급한 일은 아니랍니다. 그저- 간만에 부모님을 뵐 겸, 안부 인사라도 올리러 왔을 뿐이예요."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어머니도, 오라버니들도. 예를 갖춘 곱고 부드러운 동작 하나하나에 정성이 들어간다. 과거나, 지금이나. 자신은 가족들에 대해 한결같았다. 차기 당주로 올라서기 전에는 칼바람보다도 매서웠던 것이 제 가족들이었으나 지금은 그때와 비교하면 딴판이었다. 가현은 그에 대해 그 어떠한 의구심도 품지 않았다. 제 가족들 또한 임씨 가문의 시험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니. 부모님 뿐만 아니라 삼촌, 이모, 고모, 이모부, 고모부. 연장자들이라면 모두가 빠짐없이 같은 길을 걸어왔는데 혼자 모난 돌마냥 삐져나오는 것은 원치 않았기에.
"그래도 가능하면 오기 전에 연락이라도 해. 그게 예의범절이잖니."
뒤늦게 걸어나오는 가현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차이나는 훤칠한 키를 가진 거구의 남성이 안경을 올려쓰며 이야기하자 가족들은 일순 침묵한다. 딱 봐도 지금 이 집안의 실세가 저 남자라는 것을, 어느 누가 보더라도 알 만큼 부자연스러운 정적이었다. 가현은 익숙한 듯 정적 속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네에, 그렇게 하는 것이 맞지요.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제가 걱정하지 않아도 그간 평안하셨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답니다."
늘 그랬듯이 뾰로통하면서도 밉지 않은 투로 가현이 대꾸하자 가현의 아버지가 먼저 입꼬리를 올려 웃었고, 가현도 따라 웃었으며, 그것을 시작으로 점차 웃음소리가 번져나간다. 간만에 느껴보는 화목함과 단란함에 가현은 그저 즐거웠다. 굳이 시간 내어 찾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참 호탕하게 웃던 아버지는 웃음을 가라앉히고 헛기침을 한다.
"그래.. 쯧. 너도 이제 내 뒤를 이어받아야 할 터인데, 언제까지 내가 이렇게 간섭할 순 없지. 일단 들어와."
오라버니들을 마저 뵙고 동생들과 놀아주기 전, 부모님부터 뵙고 이야기를 나누는것 또한 임씨 가문원이라면 누구나 해야 했던 일이다. 집안 사람들에게는 한 없이 냉철하고 까다로우며 빡빡하게 구는 것이 이 가문이었고, 그들 역시 지금 가현이 걷고 있는 길과 같은 루트를 똑같이 걸었던 적이 있을 뿐이니. 가현은 오라버니와 동생들과의 해후를 즐기기 전, 자신이 가져온 소식을 선물과 함께 전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거실로 들어간다. 부모님과 자신뿐인 자리. 그러나 그 자리가 부담스럽지 않았다. 어깨를 짓누르는 중압감은 오히려 자연스러움마저 느껴지는 부류의 것이었으니. 섬세하게 부모님의 잔에 차를 따르고 가져온 과자를 늘어놓으며, 제 잔에도 차를 따르고 나서야 가현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 그래서. 요즘 학당 생활은 좀 어떻니?"
아버지 측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목을 축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그게 마치 자기네들끼리 정해둔 암구호인 양, 가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답한다.
"괘념치 않으셔도 된답니다. 전부 저희 가문의 절차에 따라 차근차근 이행되고 있으며, 학당에서 어울려있는 동안 꽤 많은 일들을 보고 겪었지요."
"우선- 그 분께서 친히 그 곳에 행차해 주셨답니다."
가현의 말을 들은 부모님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제사장으로써 있을 적에는 1년에 한번 산제물을 바칠 때 볼까말까한 존재가 아니던가. 역시 그 학당은 심상치 않다니까. 네에.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부모님의 짧은 대화가 오가며 아버지 쪽이 헛기침을 두어번 했다. 역시 눈앞의 이 아이- 가현을 그리로 보낸 것은 꽤 괜찮은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제 딸의 뒤틀려버리다 못해 폭주하고 있는 과잉된 애정만큼은 눈치채지 못한 채로 아버지가 마냥 뿌듯해하고 있는 사이에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얼굴도 채 가리지 못했을텐데.. 그래도 몸 멀쩡히 우리를 보러 왔으니, 잡다한 걱정은 얹지 않을게. 아가. "
"타 가문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니."
타 가문이라고 함은, 어떤 가문이든 신경쓰지 않는 것이었다. 백씨 가문. 해씨 가문. 대표적으로 그들을 추렸으나 그 외의 다른 가문 역시 주시하라면 충분히 주시할수 있는 것이 임씨 가문이었기에, 가현의 입에서 그 어떤 소식이 들려오든 자기네에게 이득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머니가 차를 마시는것까지 본 가현은 뒤이어 목을 축이며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늘어놓기 시작했다. 해씨 가문의 파문당한 사람에 대해서는 아직 얻어낸 것이 없으니 조금 더 신경써서 알아보겠다는 것. 현 아니마/아니무스들의 수장 가문인 송씨 가문의 가문원 중 하나가 잊혀진 채 있다 별안간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 임씨 가문에서 주시하던 정원사가 되지 못한 백씨 가문의 아이를 최근 다시 마주하게 된 것. 그리고 모씨 가문의 재앙이라고 불리는 아이의 이야기. 눈 아래 붉은 점을 찍어둔 수씨 가문의 아이의 이야기. 쿠즈노하 가문의 아이와 얽혔던- 이런저런 일들. 그리고 아직 가문 이야기를 듣지 못했지만, 충분히 흥미로운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까지. 가현은 숨김 없이 날것 그대로 전부 전달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부모님의 표정은 첫 이야기에는 근엄하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만 그것도 잠시. 시종일관 경악을 담았다. 날고 긴다는 뒷조사꾼들을 전부 고용해 이용할 적에도 이렇게 가치 있는 정보는 적거나 없다시피 했거늘. 혹시나 해서 보내둔 학당에서 이렇게나 달콤하고 수많은 가능성을 품고 돌아와줄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가뜩이나 현 아니마/아니무스들의 수장 가문인 송씨 가문의 이야기에 눈이 돌아간 상태에서, 자기들이 그럴싸한 정보를 알아내기도 전에 백씨 가문의 맥이 끊겨버리면 어쩌나 했는데 가현이 그 아이를 다시 스쳐가듯 만났다는 일은 굉장히 감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수씨 가문이라고 함은. 저들이 아는 그 가문이 맞다면 분명 마간홍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다 홀연 사라져버린 가문이었다. 사라진 이후의 뒷조사에 의하면 가문 아이 하나가 타 가문의 후원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들었는데, 설마 그 아이도 그 학당에 있었을 줄이야. 아버지며 어머니며 할 것 없이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주체하지 못한다. 수씨 가문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 않은 채 영영 미궁 속으로 잠길줄 알았는데, 역시 마냥 그러라는 법은 없었나보다.
"듣던 중 아주. 아주 반가운 소식이야! 그래. 지금처럼 타 가문의 아이들과도 변함없는 관계로 지내고. 특히 송씨 가문. 수씨 가문. 이 두 가문의 아이들과는 특히 더 친하게 지내야 해. 네 어미도 그렇고, 이 아비도 그렇고. 바라는건 오직 그것뿐이란다. 알고 있지?"
무슨 뜻인지는 말 안해도 알겠지. 정보를. 더 많은 정보를 가져와.
"앞으로도 친하게 지낼테니 염려 않으셔도 된답니다. 아버지."
네, 그럼요. 두 분은 그저... 저만 믿고 계시면 된답니다.
가벼운 대화와 동시에 눈빛을 통해 무언의 신호가 오고 간다. 그들의 본질은 같은 뱀일지어니, 서로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것은 이득을 취하기 위함이라는 공통된 목적 하에 묵살되었다. 곧 당주에서 물러날 분이라고 해도, 야망을 이뤄드릴 수만 있다면 무엇을 못 하겠사옵니까. 부모님의 야망은 곧 저의 야망과도 같으니. 저는 그 자리에 친히 함께할 뿐이랍니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그저 평범한 담소일 뿐,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없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날 적. 부모님은 가현을 돌려보낸다. 아직 제 동생들과 오빠들과 못 나눈 해후가 있을테니 지금은 놔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군다나 훌륭하고 질 좋은 정보들을 물어와줬으니, 그에 걸맞는 만찬 또한 차려주어야겠다고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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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놀랐어ㅡ 그저 가주로써 도술을 좀 익혀두면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도화학당에 보냈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일들을 겪고 왔을 줄이야."
"그러게요. 역시 여기에 하나뿐인 학당이라 그런가, 꽤 많은 아이들이 모이네요? 그리고 설마 왕께서 친히 장난을 치실 줄은 몰랐어요. 역시, 그리로 보낸 가치가 있네요."
"하아... 이럴 줄 알았으면 빌어먹을 뒷조사꾼들을 전부 거기로 보냈어야 하는데. 남의 돈만 쳐먹을줄 아는 장사치 놈들."
"그래도 지금은 빛도 안 드는 흙 속에 파묻혀 썩어갈테니, 그런 것들에 너무 연연하지 마셔요~ 그보다 다행이네요. 저 아이가 무난히 적응하고, 교우 관계를 펼쳐 나가면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와 주었으니.. 이제 우리의 꿈도 한 결 가까워졌네요?"
아니. 이제 시작인가요. 끝자락에서 연기가 피어나오는 곰방대를 입에서 떼어낸 여인은 연기를 길게 뿜어내고는 고혹적인 미소를 짓는다.
"그렇지. 아직 속 시원한 부분은 없지만.. 분명 저 아이가 필요한 것들을 더 듣고 와줄거라고 믿어. 아는것은 곧 힘이고, 정보를 캐내다 보면 언젠가는 그들의 허점 또한 알게 될테니까. 사소한 것이라도 좋아."
"해씨 가문. 그리고 송씨 가문..... 우리는 제사장 가문들뿐만 아니라 그 외의 모든 가문들을 넘어설거야. 정보를 캐내고, 그것들을 한껏 이용하고 휘둘러서... 훗날 우리 임씨 가문 앞에서 신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알아서 기게 되겠지. 자연스럽게 우리의 명성은 드높아질거고, 그 중에서 방해되는 것들을 없애다 보면 결국 신께서 은총을 베풀어주실 것은 오직 임씨 가문 하나 뿐일 테니까. 설령 그게 내가 죽고 없을때가 되더라도 상관없어. 우리 임씨 가문이 정점에 서는 날이 올 수만 있다면야. 죽음따위 무슨 소용이겠어."
어두운 밤. 소리 없이 피어오르는 야망은 심연보다 더 어두운 속내를 한껏 내비치다 습기를 머금은 채 불어오는 동풍에 휩쓸리며 자취를 감추었다. 바람이 눅눅하니 내일은 비가 오겠어요. 여인의 말을 마지막으로 창문이 닫혀 새어나오는 빛마저도 가려지고, 모든 것이 칠흑같은 어둠속에 잠긴다.
- Sacrifice.
- 아직도 그 아찔한 피비린내를 지울 수 없다. 손에 느껴지는 감각이 너무나도 생생하기만 했다.
그것이 의미 있는 죽음이든, 의미 없는 죽음이든. 사람의 형상을 닮은 범을 찔러 죽이며. 사람을 찔러 죽이는 것과 같은 희열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었다. 익숙한 희열이었다. 이미 자신은, 많은 혈육의 피를 손에 묻힌 채 미소짓지 않았는가.
어린 가현은 가문 내에서도 유독 별난 존재였다.
제사장이라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된 제 오라버니들 대신 제사장의 후보에 앉혀지게 될 것이라는 이유 하나로 제대로 된 사랑도. 제대로 된 애정도. 그 무엇도 받지 못한 채 컸건만, 그 모든 것을 마치 제 숙명이라도 되는 양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항상 그 나른한 웃음을 낯짝에서 지우는 일이 없었다.
공포를 이겨내야 한다는 이유 하나로 어린 가현은 제 눈 앞까지 다가온 시린 칼날을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으며, 제사장이 되고 산제물을 바칠 때에는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는 이유로 어린 나이에 아끼던 애완동물을 제 손으로 직접 죽여야만 했다. 생명의 위협을 받은 적도 없지 않았으며, 그 모든 것은 가문원들과, 당주인 아버지의 감시 및 시행 하에 철두철미하게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가현은 묵묵히 그 모든 것을 받아내었다. 눈 앞으로 시린 칼날이 들이닥칠 적이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바라보았으며, 제가 아끼는 애완동물을 해할 때에는 그 어떤 눈물도 보이지 않았다.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내는 것보다, 이것들 중 하나를 이겨내지 못해 끝내 쓸모 없는 실패작 취급을 받는 것이 가현에게는 더더욱 어려웠고, 버티기 힘들었다.
그랬기에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어떻게든 예쁨받고 싶다고. 잘 했다는 말 한마디를 듣고 싶다고. 한 없이 바래 왔으나, 돌아오는 것은 냉담한 평가 뿐이었다. 칼날이 들이닥칠 때 조금이나마 주춤하지 않았던가. 애완동물을 해할 때 망설이지 않았던가. 아주 미세한 오차마저도 임씨 가문에서는 용납되는 일이 없었다.
그 모든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자신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욱 잔혹하고, 더욱 강경하게. 고통과 슬픔이라는 어둠마저 옅어지게 만들 만큼 자신이라는 존재가 강인해야만 했다는 것을 어린 가현은 금방 알아채고, 변화하며, 결국 정말로 그들이 바라는 것 하나하나 흠 없이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이렇게 되어야만 했던 운명이었으니, 스스로 나침반의 바늘을 비틀어버려 옳은 길을 버린 셈이다.
그렇게 차근차근 인정받을 무렵. 마지막으로 왕을 알현하러 갔을 때, 가현은 울부짖는 어린 혈육들 사이에서 끝까지 고개를 조아리고 그 어떤 불필요한 동작도 취하지 않았다. 방계 직계 할 것 없이 MA를 알현한 제 혈육들이 미치고, 공포에 휩싸여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끌려나가 그 장소에 끝내 저 혼자만 남게 될 적에도 가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실 이 때부터 왕에게 매료된 것일지도 모르지. 어린 가현이 왕을 알현하기 전, 그 장소에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내려다보았던 풍경은 그토록 잔혹하고 냉정하던 가문원들 모두가 MA라는 절대적 존재 앞에 벌레만도 못 한 존재로 보이게끔 고개를 조아리고, 그저 경외하며, 두려워하고 있었던 풍경이었으니까. 이 존재라면. 자신이 지금껏 느꼈던 고통과 두려움을 전부 감수하고서라도 모실 만한 존재라고 느꼈다.
끝내 남아있던 마지막 인간성조차 어둠에 잠식되는 순간을. 모두가 반겼다. 가문원들도. 가현 자신도.
가문원들에게는 순종적인 장기말이 되었고, 그 장기말은 제 신념 하나만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갔던가. 그 어떠한 의문도. 반발심도. 저항심도 품지 아니한 채로 모든 과정을 차근차근 짓밟았다. 제 부모가 산제물을 바칠 적이 되면 항상 따라나가 곁을 지켰다.
인간의 급소는 생각보다 여러 곳이었다. 그 곳을 제 부모가 찍어내릴 때마다 새빨간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고, 가려진 얼굴 너머로 유심히 그 꼴을 지켜보며 그 소리를 속에 담았다. 저길 찌르면 어떻게 되고, 또 다른 곳을 찌르면 어떻게 되는지. 그 과정 속에서 어떤 비명이 제일 간결하며 잡음이 없는지. 마지막에는, 어떤 모습이 신에게 있어 가장 보기 좋은 모습일지. 신에게 바쳐지는 제물은- 그 마지막마저도 고운 모습이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야 그 절대적인 존재가 자신을 좀 더 어여삐 여길 것이기에.
그렇게 지켜보기만 하던 자신이 처음으로 산제물을 바칠 적.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오빠라고 부르며 아련한 울림을 담은 채 따르던 그 사람을 제 손으로 찔러죽이며. 가린 얼굴 너머의 가현은, 웃고 있었나. 당신도 기쁠 거야. 신에게 바쳐지는 과정을 내가 수행해주니까. 당신을 예뻐하던 그 사람이 끝내 당신을 그 존엄성을 품은 존재의 곁으로 보내줬잖아?
그러니까, 오빠도 웃어야지. 행복하게.
차가운 금속이 살갗을 찢는다. 뼈를 부수고 속을 헤지는다. 칼 끝이 떨린다. 미세한 떨림. 피의 선율. 그 모든 과정은, 신을 위한 합주일 뿐일지어니.
저는 당신에게 인간성을 바치고. 인간이라는 덧 없는 존재로써의 삶을 포기한 채- 오직 이단을 벌하며 만족을 채워 줄 칼날으로써의 삶을 약속하겠나이다. 어린 가현은 끝내 웃음을 터트렸다. 환희에 가득 찬 웃음을. 황홀경에 잠긴 광소를. 더더욱 짙게 머금으며, 제 혈육들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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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취해 축복을. 꽃을 찢어 영원을.
종언을 고하는 손짓으로 저물어간 못다 핀 꽃은 몇 송이째인가.
깊은 밤이 끌어온 먹구름에 덮인 세상 속에서 빛을 갈망하며 저물어간 꽃은. 시듦에 의미가 있는가.
유언 대신 남긴 외마디 비명은, 고통의 신음인가. 피지 못한 분통함인가.
허나. 사사로운 것에 휘둘리며 칼 끝의 무게를 재지 말아라.
그것은 그저- 덧 없는 제물의 목숨이 지닌 무게보다도 가벼울 뿐이니.
네 손으로 나침반의 바늘을 뒤틀 적.
그 무엇에도 의미를 담지 않겠노라고 다짐한 것일 뿐이니.
- Distortion.
- 꿈결 속. 환상같이 안개 속에 떠오른 실루엣.
그 너머의 목소리는 이명처럼 들려오지만, 들리지 않아.
꿈일까. 환상일까.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아.
어둠은 낮과 밤을 에워싸고 가두며 모든 걸 앗아갈 뿐이니
듣기 위해 소리를 잃어도
찾기 위해 미래를 잃어도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기우는 칼날을 거머쥔 채
모든 것을 불사르며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
거짓처럼 사라지는 기억 속에서는
그 무엇도 들리지 않아.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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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짊어지고, 모든 인간성을 소실하고 난 후. 제가 가문원들의 마음에 쏙 들어 제사장 후보니 차기 당주니 하는 자리에 앉게 된 시절, 백씨 가문과의 교류가 있었다.
제아무리 보잘것 없는 가문이고, 맥이 끊길락 말락 하는 굉장히 적은 규모라고는 하지만 임씨 가문이 눈독들이기에는 그 무엇보다 좋은 가문이었다. 그야 당연히- 자신들의 바램에 큰 보탬이 될 것 같았으니까. 최초 선조까지 넘어가는 먼 과거. 그 어떤 인간보다도 MA가 좋아하는 호박밭을 잘 가꾸어 어여삐 여겨지던 자들. 현 시점인 지금조차도 몇 안되는 인원들을 이끌며 신당 주위의 자연을 독점하며 가꾸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임씨 가문에게 있어 눈엣가시임과 동시에, 배워갈 것 많은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으니. '정원사'로써의 지식과 요령을 배워가며 인용하고, 백씨 가문의 맥이 끊길 적 그것들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백씨 가문의 뒤를 이을 또 다른 정원사가 되기 위해. 커다란 야망을 친절 뒤에 덮어 가리며 그들과 교류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보고 배우라고 이 자리에 데려온 가현의 관심은 교류와는 다른 곳에 꽂히기 시작했다. 백씨 가문 내에서 유독 소심했으며, 시선에 잘 띄지 않았던 사람. 제 가문 어른들이 백씨 가문원들과 소통할 적,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얼추 전해듣고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지. 가현 역시도 그 이야기를 귀띔들었다. 소심한 성격은 둘째치고, 정원사로써 너무나도 불완전한 재능을 가졌으니. 우리 가문의 교류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할 사람이다. 우리는 효율 있는 교류를 해야만 하니- 가급적이면 다가서는것을 삼가고 어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라.
거절하지 못할 아버지의 당부를 들었음에도, 어린 가현의 시선에는 그녀가 계속 밟혔다. 어째서일까. 그 이유는 십 년이 넘게 흐른 지금조차도 확실히 단정짓지 못할 것이었으나 그럼에도 가현에게는 교류 다음으로 신경쓰이는 존재가 그녀였다.
"언니. 언니는 왜 항상 혼자서 있어?"
순수함이라곤 이미 MA를 알현할 적 말아먹었으나, 그 나잇대 어린애들이 늘 그렇듯 악의적이지 않은 의도를 담아 그 사람에게 자그마한 고사리손 내밀며 활짝 웃었다.
"으음. 나랑 같이 놀자! 혼자 있는건 외롭잖아. MA님도 같은 인간끼리 소외시키는 거랑.. 누군가 외로워하는 건 원하시지 않을거야!"
지금 와서 다시 되짚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개꿈같은 말이었으나- 그때의 자신은 아직 모르는게 많은 어린 아이였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순수한 이야기에 어떻게 답했을까. 소심함을 감추지 못하고 망설였을까? 오히려 반기며 작은 손 마주잡고 웃어줬을까? 저와 같은 혈육들의 피를 흠뻑 머금고서 더럽힐대로 더럽혀진 손이었지만, 그럼에도 좋아해줬을까. 그저 불분명한 기억의 조각이었지만 확실한 것은, 자신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것에 후회란 없었다는 것이다. 아는 것이라고는 오직 MA의 존엄성과 압도적인 분위기 뿐이었던 자신에게, 그녀는 너무나도 색다른 의미를 심어주었다.
같이 대화를 나누며 세상 물정이라곤 전혀 알지 못했던 어린 가현에게 다양한 것을 알려주었고,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가현은 항상 먼저 다가가 동틀 무렵의 참새 새끼마냥 쉴새 없이 재잘거렸다. 소심하고, 소극적인 당신이 제게 마음의 문을 열어줄 때까지. 먼저 다가오지 않더라도, 적어도 자신을 보고 웃어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함께 어울려 놀아줄 때까지. 임씨 가문의 어른들이 따로 가현을 부르는 일이 있지 않았다면 가현은 항상 그녀의 곁에서 떠나가지 않았다.
자신의 가문에서는, 이렇게 자신과 잘 놀아주고 많은 대화를 나누어준 사람이 없었으니까. 인정받고 나서도 제 존재를 어여삐 여겨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메말라버린 눈물샘이 다시 채워지는 일 없었으나 뚫려있는 마음 속 빈 공간을 채워주는 그 느낌. 소실된 인간성의 공백을 조금이나마 메꾸어주는 느낌만큼은 확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허나 그런 행복은 항상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 가문간의 교류가 끝나면 자신은 계속 이 곳에 있을 수 없었으니. 짧지 않은 기간동안 서로 교류했기에 점차 정이 들어버린 것일까. 헤어지고 나면 또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른다는 점이 가현에게 있어서는 끝내 이겨내지 못할 큰 상실감으로 다가왔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일찍 철이 들어버린 어린 아이는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 언니. 나중에, 나랑 또 만나면... 그때도 나하고 많이 놀아주는거야. 알겠지? 자, 약속.."
담담하지만 서운함이 씻겨 나가지 않아, 떨리는 목소리로 기약 없는 약속을 전하며, 새끼손가락 내밀어 걸었다. 훗날 반드시 다시 만나자고. 그때까지 서로가 서로를 절대 잊지 말자고.
그렇게 긴 시간이 흘러 자신이 학당에 입학하게 될 무렵. 곱게 차려입고 단장한 채 흑룡 기숙사로 첫 걸음을 내딛으며, 앞으로 자신이 오랫동안 사용할 방으로 들어갈 적, 가현은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맙소사. 설마. 설마..
".... 언니? 진짜 언니야?!"
자신을 알아보았을지, 못 알아보았을지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가현은 제 몸 날려 그녀를 힘껏 껴안았을테니까. 너무나도 반가워서. 뭔가를 배워가는 학당이라곤 여기 한 곳 뿐이었으니 당연한 만남이었겠으나, 그런 당연함따위 상관 없게 만들어질 만큼 좋아서. 그리고 그만큼 보고 싶었으니까. 벅차오르는 제 기분을 그저 힘껏 안아주는 것으로 표현해내며, 가현은 그 어느때보다도 맑고 순수하게 웃었다.
"나. 언니랑 다시 만났어. 못볼 줄 알았는데, 또 만났어... 절대. 절대 떨어지지 않을 거야. 내 룸메이트, 이대로 그냥 고정시켜달라고 사감님께 건의할거야."
".... 서화 언니랑 나랑. 언제까지고 함께 있고 싶으니까..!"
졸업이니 뭐니 하는 진부하면서도 뻔한 결말따윈 바라보지 않는다. 다가올 미래가 두려워 나아가는 것을 꺼려한다고 해 봐야, 이 세상은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을테니. 기약 없는 불투명함 따위를 겁낼 자신이 아니다. 그런 것에 겁을 집어먹었다면 이미 제 가문 사람들이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을테지.
이후의 학당 생활은 굉장히 순조로웠다. 임씨 가문은 제사장 가문에 공통적으로 전해지는 금술을 제외한다면 특별한가계도술이 없었고, 특화된 도술조차 없었기 때문에, 가현은 항상 도술 면에서 조금 뒤쳐지기 일쑤였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배웠던 것 또한 도술이 아닌 사람과 사람 간의 교류였다. 수업이 끝나고 도술같은 건 자신과 맞지 않는 것이라 판단하고 해이해질 적이면, 서화가 보여주는 도술을 보며 신기해하고.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조금이나마 향상심에 불탈 수 있게 되었다. 많은 건 아니더라도 자신과 놀아줄 적 보여주었던 도술들만큼은, 끝까지 파고들어 완벽하게 익히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기도 했다.
"이걸 이렇게, 그리고 이것도 이렇게 하면... 얍. 어때? 예전보다 많이 늘었지!"
그리고 가현은 그렇게 익힌 도술을 항상 서화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면서 이 정도면 많이 늘지 않았냐며 마냥 웃었다. 학년의 차이. 그리고 재능의 차이는 늘 존재했기 때문에 서화가 보여준 것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하찮아보이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저 방긋 웃으면서 다음에 더 노력해야겠다며. 그렇게 즐거운 나날들을 하루하루 보낸다.
어렸을 적 물어보지 못했던 것들도 다시 물어보며,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냈지만은. 유독 정확한 답을 들려주지 않았던 질문이 몇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저 미소짓는 서화를 마주 바라보며, 아무렴 어떠냐고 가볍게 넘기게 되었다. 그래. 누구에게나 말 못할 사정이란 있는 법이겠지. 그렇다면 이 역시 자연스러운 것. 나는 포용해야만 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야.
허나. 그런 이유 모를 포용심마저 반쯤 꺾여 애매모호하게 되는 순간도 없지 않았다. 유독 서화와 친해 보였던 여학생. 목과 머리에 어여쁜 파란 리본을 매단 여학생이 기숙사에 찾아올 적이면, 가현은 일단은 함께 반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켠이 밍숭맹숭했다. 이 학당에 먼저 왔다는 이유 하나로 서화와 친해졌다는 사실이 황당하면서도, 조금 불편했다. 독기의 영향을 적게 받던 그 시절은- 그저 서화와 그 사람이 함께 놀며 자신까지도 신경써주고 있다는 장점 하나만을 바라보며 애써 견뎌낼 수 있었다.
그렇게 한 학년. 그리고 또 한 학년이 올라가며, 그 여학생을 보는 일이 늘어나고 교류가 잦아지며 자신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흑룡의 독기에 아주 조금씩 영향을 받아가며 미운정 고운정 다 들어버리게 되어, 이젠 그 여학생도 자신의 사람 중 하나로 받아들이게 될 수 있었다. 친구의 친구는 자신의 친구라고 하지 않던가. 비록 질투심은 들 지언정- 과거처럼 불편히 여기지는 않게 되었다.
항상 그렇게 좋은 일만 있었다면 참 좋았을 것을. 신도 무심하시지. 항상 인생은 극적으로 변하기 마련이었으며, 이제 막 4학년이 되던 시점의 가현에게도 그 변화는 평등히 적용되었다.
"......"
참혹하다 못해 차마 맨 눈으로 지켜보기 힘든 광경. 학당 전체에 피비린내가 끊이지 않았으며, 피가 흘러 웅덩이를 이루고. 신체 일부가 잘려나간 수많은 시체 한가운데 서서 끝내 미소짓던 그녀의 모습. 학당은 발칵 뒤집어졌고, 절대 떨어지지 않겠노라고 외쳤던 자신의 약속마저 물거품이 되어 흩어져버리게 되었다. 항상 찾아와주던 파란 리본을 맨 여학생의 시신 앞에 서서. 그 광경을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가현은- 남들이 느끼는 분노 대신 허탈함을 느꼈다.
어째서. 왜 당신이 내쫓겼어야 했는가. 왜 자신의 사람들은 이리도 허탈하게 제 곁을 떠나가고야 마는가. 금방이라도 주저앉아 버릴 양 위태로운 발걸음으로 제 방까지 향하고. 문을 닫기가 무섭게 가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알다.
신 님. 어째서 인생이라는 것은 이리도 덧없는 것인가요.
왜 온전한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항상 모든 것을 잃게 될 뿐인가요.
당신이 쥐어준 카드만으로.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도 의문이 많아서. 그저. 저는.
실소를 흘리며, 탁한 시선 속 이젠 비어버린 기숙사 방 안을 한 없이 바라본다. 기어코 이렇게 또 자신의 곁을 떠나는구나.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했어. 학업이 끝나도. 주말이 찾아와도. 한결같이 반겨주고 예뻐해주던 그 사람은- 이젠 여기에 없어. 그런 당연한 아픔에 앞서 자신을 더더욱 괴롭게 하였던 것은- 끝내 자신에게는 상해를 입히지 않았다는 점이었으니. 차라리 그렇게 나갈 것이라면. 그렇게 쉽게 제 곁을 떠날 것이었다면- 자신도 그들과 똑같이. 당신의 손으로 직접 죽여주지 그랬냐면서. 한탄 섞인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진정되지 않는 마음 속에서, 무언가 한 가지가 불현듯 떠오른다. 그래. 처음에도 그러지 않았는가. 아쉬움을 담은 채 헤어졌으나, 결국 다시 만났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이번 역시 그것과 동일할 것이다. 앞으로도 만날 기회란 남아있을 것이다. 가현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선다. 그래. 애시당초 애정 따위는- 살아있는 모습으로 나누기에는 더없이 모자라며, 방해되는 요소가 한두가지가 아니었으니. 어째서 그 동안 당연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을까?
".... 언니. 언니의 사랑. 내가 그것을 못 받은게 그저 한이지만.... 그래도. 분명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거야. 그렇지..?"
그렇다면 자신은 그 날을 다시 기약하며 기다릴 뿐이다. 오늘 자신이 받지 못한 애정을, 다시 그 날 한껏 받겠노라고 다짐한다.
오직 죽음으로써 완성될 수 있는 영원한 애정을. 덧 없는 몸뚱아리를 버리고, 신에게 나아가며 만들어나갈수 있는 그 영원함을 바라며, 자신의 신념을 더욱 확고히 다진다. 결국 자신에게 있어 사랑과 애정은 제 손에 쥐어진 칼날으로 완성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으며. 당신 또한 그렇게 느끼기를 바라고 믿으며.
훗날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 어떤 모습으로든 영원토록 제 곁에 두어가며 평생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남겨놓겠노라는. 비틀린 다짐을 이어가며 가현은 끝내 웃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