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초능력 특목고 모카고 Second!
나 말이야? 걱정하지마, 난 할 수 있으니까.
2. 외모 ¶
178cm의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 후려치기라도 하면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만 같은, 어딘가 위태로운 모습의 소년이다. 그는 옅게 구불거리는 결좋은 연갈색 머리카락을 가졌으며, 집중이 필요할 때는 눈썹을 덮는 길이의 앞머리를 깔끔하게 옆으로 넘겨 핀으로 고정시키곤 한다. 그 아래의 눈썹은 얇지만 진하고 힘있는 모양으로 평소에는 앞머리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눈은 눈매가 부드럽고, 전체적으로 크고 긴 모양이라 유순하면서도 시원스러운 인상을 준다. 특이한 점은 그 안의 눈동자가 형광빛이라고도 할 수 있는 밝은 하늘색이라는 것. 분명 여느 한국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진한 갈색의 눈동자는 긴 실험의 끝에 어느순간 이러한 푸른 빛을 띄게 되었다. 게다가 눈동자의 크기가 크고 눈빛이 맑은 편이라, 어둠 속에서 보면 어쩐지 고앙이의 그것처럼 번뜩이는 것만 같다. 그러한 눈이 부담스러워인지, 아니면 단순히 눈이 나빠서인지 언제나 동그란 모양의 은테 얀경을 쓰고 다닌다. 안경의 중심을 받치는 콧대가 높은 편이라 퍽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전체적으로 피부가 희고 투명하다. 선이 얇다고 할 수도 있는 이목구비 형태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스럽다고는 할 수 없는, 딱 소년다운 외모다. 그렇게까지 마른 편은 아니나 손에 특히 살이 없어 조금만 힘을 줘도 뼈가 도드라져 보인다. 옷 안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항상 얇은 은목걸이를 하고 있으며 불안할 때마다 그것을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있다.
전체적으로 피부가 희고 투명하다. 선이 얇다고 할 수도 있는 이목구비 형태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스럽다고는 할 수 없는, 딱 소년다운 외모다. 그렇게까지 마른 편은 아니나 손에 특히 살이 없어 조금만 힘을 줘도 뼈가 도드라져 보인다. 옷 안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항상 얇은 은목걸이를 하고 있으며 불안할 때마다 그것을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있다.
3. 성격 ¶
부드럽지만 강단있고, 다정하지만 솔직한 성격이다. 어딘가 유약해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확실히 하며 책임감이 강하다. 상대와 의견이 부딪히는 일이 있다면 뒤로 조금 물러나는 듯 하면서도, '난 이렇게 생각해-'라며 자신의 의사를 확실히 전달한다. 항상 옅게라도 미소를 띄고 있고, 발화점이 높아 흥분하는 일이 거의 없지만,그렇다고 해서 정색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화가 나면 오히려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유형으로 일이 심하게 꼬일 때나 상대에게 견디기 힘든 모욕을 받았을 때는 표정을 굳히고 따박따박 말하는 일이 드물게 있다. 전체적으로 어른스럽고, 배려심 있으며, 의지적인 성격이다.
4. 기타&특징 ¶
-이름의 한자는 각각 버들 양, 박달나무 단, 연잎 하. 단하의 어머니가 직접 지은 이름으로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향기로운 사람이 되라는 의미이다. 한자로 쓰기 굉장히 어려운 이름이지만(...) 그래도 단하는 슥슥 잘 외우고 다니는 것 같다. 공교롭게도 세 한자 다 뜻이 식물류인데, 단하의 어머니가 젊었을 때 식물 키우는 걸 좋아하셨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A형. 그러나 흔히들 말하는 A형의 소심함은 단하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목소리는 듣기 편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낮고 깔끔해서 듣기에 딱히 거슬리는 점이 없는 목소리다. 하지만 노래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는 것 같다(...) 음치라기 보다는 음역대가 심하게 좁다.
-부모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혼하셔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엄마 쪽 성을 따르고, 한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다른 형제자매는 없다.
-혼자 끼니를 떼워야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간단한 요리정도는 할줄 안다. 설거지나 청소 등 가사일도 꼼꼼하게 잘 한다. 부지런하고 생활력이 강한 타입.
-어쩌면 당연하지만, 집안 사정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았다. 그래도 학원 한두개 정도는 잠시나마 다닌 적이 있다.
-항상 하고 다니는 목걸이는 인첨공으로 떠나는 단하에게 어머니가 선물한 것이다.
-겨울에 태어난 사람이 추위를 안 탄다는 속설은 거짓말이 분명하다. 한겨울에 태어난 단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위를 많이 타는 편으로, 추울 때면 얼굴이 확연히 붉어진다. 다행히 더위에는 강한 편이다.
-매운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잘 못 먹는 것이 맞다. 식생활에 있어서 딱히 가리는 것은 없지만 매운 것 만큼은 사양이다. 더 정확히는 자극적인 맛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좋아하는 과일은 귤. 싸게 많이 살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한 박스씩 사놓고 심심할 때마다 먹곤 하는데, 손끝이 노래질 정도로 냠냠냠 잘 먹는다. 겨울의 유일한 장점이 귤이라고 할 정도(...)
-단하의 취미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뉜다.
1)손재주가 굉장히 좋다. 십자수, 갖가지 종이접기 등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아기자기하게 장식하는 것을 은근히 좋아한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뜨개질로 날씨가 좋을 때 기숙사 창가에 앉아 뜨개질 하는 것을 즐긴다. 다 뜬것을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한다.
2)수학에 큰 흥미가 있다. 암산이 빠르며 어려운 수학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좋아한다. 끈기가 있어서 어려운 문제는 몇 시간이고 붙잡고 고민할 정도. 심심할 때 책상에 앉아 턱을 괴고 문제를 풀곤 한다.
3)독서를 좋아한다. 시도 좋아하지만, 더 좋아하는 쪽은 소설 혹은 수필로 성장물 등의 잔잔하고 따뜻한 내용을 좋아한다. 가끔은 삶이나 사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철학적인 책도 읽는다.
-이성애자에 가까운 양성애자. 소수자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거의 없다.
-몸 쓰는 일은 그냥저냥 평균 정도는 한다. 축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 류도 즐기지는 않지만 대충 중간은 하는 것 같다.
-A형. 그러나 흔히들 말하는 A형의 소심함은 단하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목소리는 듣기 편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낮고 깔끔해서 듣기에 딱히 거슬리는 점이 없는 목소리다. 하지만 노래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는 것 같다(...) 음치라기 보다는 음역대가 심하게 좁다.
-부모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혼하셔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엄마 쪽 성을 따르고, 한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다른 형제자매는 없다.
-혼자 끼니를 떼워야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간단한 요리정도는 할줄 안다. 설거지나 청소 등 가사일도 꼼꼼하게 잘 한다. 부지런하고 생활력이 강한 타입.
-어쩌면 당연하지만, 집안 사정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았다. 그래도 학원 한두개 정도는 잠시나마 다닌 적이 있다.
-항상 하고 다니는 목걸이는 인첨공으로 떠나는 단하에게 어머니가 선물한 것이다.
-겨울에 태어난 사람이 추위를 안 탄다는 속설은 거짓말이 분명하다. 한겨울에 태어난 단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위를 많이 타는 편으로, 추울 때면 얼굴이 확연히 붉어진다. 다행히 더위에는 강한 편이다.
-매운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잘 못 먹는 것이 맞다. 식생활에 있어서 딱히 가리는 것은 없지만 매운 것 만큼은 사양이다. 더 정확히는 자극적인 맛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좋아하는 과일은 귤. 싸게 많이 살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한 박스씩 사놓고 심심할 때마다 먹곤 하는데, 손끝이 노래질 정도로 냠냠냠 잘 먹는다. 겨울의 유일한 장점이 귤이라고 할 정도(...)
-단하의 취미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뉜다.
1)손재주가 굉장히 좋다. 십자수, 갖가지 종이접기 등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아기자기하게 장식하는 것을 은근히 좋아한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뜨개질로 날씨가 좋을 때 기숙사 창가에 앉아 뜨개질 하는 것을 즐긴다. 다 뜬것을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한다.
2)수학에 큰 흥미가 있다. 암산이 빠르며 어려운 수학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좋아한다. 끈기가 있어서 어려운 문제는 몇 시간이고 붙잡고 고민할 정도. 심심할 때 책상에 앉아 턱을 괴고 문제를 풀곤 한다.
3)독서를 좋아한다. 시도 좋아하지만, 더 좋아하는 쪽은 소설 혹은 수필로 성장물 등의 잔잔하고 따뜻한 내용을 좋아한다. 가끔은 삶이나 사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철학적인 책도 읽는다.
-이성애자에 가까운 양성애자. 소수자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거의 없다.
-몸 쓰는 일은 그냥저냥 평균 정도는 한다. 축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 류도 즐기지는 않지만 대충 중간은 하는 것 같다.
5. 배경 ¶
단하가 태어나기도 전에 부모님은 이미 이혼한 상태였다. 홀어머니와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두 분의 전폭적인 지지와 사랑 아래에서 단하는 매우 바르게 자랐고, 이렇다할 탈선을 겪은 일도 없었다. 열한 살이 되던 해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버팀목 하나 없이 아들을 위해 너무 많은 희생을 각오한 탓이었을까. 중학교 3학년, 기침하다가 각혈한 어머니가 암 판정을 받았을 때 단하는 망설임 없이 인첨공으로 향했다. 만약 단하가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가 있다면, 그는 아마 입원해 있는 어머니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6.1. 통지표 ¶
본교커리큘럼을 통해 개화시킨 양단하 군의 초능력 개발 결과:
대분류: 텔레파시(Telepathy) - 정신 조작
소분류(특화능력): 라디올리시스(Radiolysis)
개요: 보컬 텔레파시(Vocal Telepathy)
보편적인 독심술. 상대방의 목소리를 해석해서 상대방의 의중을 짐작할 수 있는 능력. 거짓말을 가려내거나 거짓으로 감정을 숨기고 있는 상대의 목소리를 들으면 즉시 알아차릴 수 있다. 상대방의 목소리만으로 독심술이 가능하다. 레벨이 낮을 때는 목소리를 듣는 동안만 단편적으로 기능하는 것이 단점이지만, 레벨이 올라가면서 점점 완전한 독심술로 태어난다.
소분류(특화능력): 라디올리시스(Radiolysis)
개요: 보컬 텔레파시(Vocal Telepathy)
보편적인 독심술. 상대방의 목소리를 해석해서 상대방의 의중을 짐작할 수 있는 능력. 거짓말을 가려내거나 거짓으로 감정을 숨기고 있는 상대의 목소리를 들으면 즉시 알아차릴 수 있다. 상대방의 목소리만으로 독심술이 가능하다. 레벨이 낮을 때는 목소리를 듣는 동안만 단편적으로 기능하는 것이 단점이지만, 레벨이 올라가면서 점점 완전한 독심술로 태어난다.
판정: 레벨 0
※비고 : 양단하 군은 특화능력 적성자로, 추후 능력개발 시 보편적인 독심술인 보컬 텔레파시(Vocal Telepathy)를 가지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비고 : 양단하 군은 특화능력 적성자로, 추후 능력개발 시 보편적인 독심술인 보컬 텔레파시(Vocal Telepathy)를 가지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 능력계수
- 1411913-> 1274251 (2회 훈련)
-> 1210538 (3회 훈련)
-> 1125800 (4회 훈련+유나)
-> 1069510 (5회 훈련)
-> 1016034 (6회 훈련)
-> 965289 (7회 훈련)
-> 917024 (8회 훈련)
-> 871172 (9회 훈련)
-> 827613 (10회 훈련)
-> 786232 (11회 훈련)
-> 746920 (12회 훈련)
-> 724512 (13회 훈련)
-> 702776 (14회 훈련)
-> 700776 (레주의 선★물)
-> 679752 (15회 훈련)
-> 670752 (새벽의 선물)
-> 650629 (16회 훈련)
-> 631110 (17회 훈련)
-> 612176 (18회 훈련)
-> 569323 (이벤트 참여)
-> 552243 (19회 훈련)
-> 535675 (20회 훈련)
-> 519604 (21회 훈련)
-> 504015 (22회 훈련)
-> 488894 (23회 훈련)
-> 474227 (24회 훈련)
-> 460000 (25회 훈련)
-> 446200 (26회 훈련)
-> 432814 (27회 훈련)
-> 419829 (28회 훈련)
7. 연성 ¶
- 글 연성(일반)
- 인첨공으로 떠나는 길
- "말씀 드렸었죠, 어머니."
새벽의 병원은 고요하다. 창문 틈으로 스미는 한기에 이따금씩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내곤 했던 환자들도 오늘만큼은 어머니와 아들의 작별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침묵한다. 불안정한 맥박이 일정한 소리와 함께 모니터 화면에서 꿈틀댄다. 어둠으로 검게 물든 순백과 코끝을 찌르는 소독약 냄새만이 방자한 가운데, 소년이 앉아있다. 말없이, 다만 검은 눈동자가 사진을 찍듯 제 어머니를 가만히 응시한다. 오랫동안 기억될 마지막 모습이다. 아름다운 어머니. 기억되는 마지막 모습이 햇볕 아래에서 아름답게 웃는 그것이 아니라 마음이 쓰리다. 소년은 천천히 손을 뻗어 비어있는 어머니의 손을 잡는다. 투박하고, 거칠고, 차가운 손이다. 따뜻한 두 손으로 냉기가 흐르는 그것을 천천히, 아주 오랫동안 지핀다. 막연한 기대로 문득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다정한 두 눈은 떠나는 아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 편안하게 감겨있다. 어머니. 갈라진 목소리가 또 한번 서투른 작별을 고한다.
"저 오늘 떠나요."
"......"
"솔직히 말하면 좀 긴장되기도 하네요. 이렇게 오래 집을 비우게 된 적은 처음이라..."
소년은 울음을 삼킨다. 짧은 정적이 눈꼬리에 매달린 축축한 눈물을 힘겹게 먹어치운다.
"저 없는 동안은 이모가 어머니를 보살펴 드릴 거예요."
"......"
"아들 보고 싶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
"편지 자주 하시고..."
목이 메여 쥐어 짜는 듯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소년은 결국 참던 울음을 터트렸다. 차가운 새벽, 고통 속에 신음하다 힘겹게 잠든 이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입술을 깨무는 숨죽인 울음이 마른 어깨를 떨게 한다. 어머니가 사랑했던 웃음을 마지막까지 보이고 싶다. 눈은 감고 있어도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잖아요, 어머니. 터져나오는 울음을 입 안에 가두고 덜덜 떨리는 입꼬리가 휘어진다. 축축하게 젖은 처연한 눈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린다. 그녀가 사랑하는 맑은 눈동자가 물에 젖어 흐릿하게 빛난다. 학생. 보다 못한 옆 침대의 간병인이 떨리는 어깨에 조심스레 손을 올린다. 괜찮으실거야, 아줌마가 잘 돌봐드릴게. 응? 서툴고 따뜻한 위로에 소년은 두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로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억지로 닦아 눈물이 옮은 새하얀 셔츠 소매가 회색으로, 회색으로 축축하게 젖어들어간다. 어머니. 떨리는 손이 다시 한번 주름진 그것을 새게 모아쥔다. 나의 어머니.
"이미 알고 계실거, 알고 있지만..."
"......"
"사랑해요..."
울음이 그친 목소리가 잘게 떨린다. 촉촉하게 젖은 눈매가 언제나 그랬듯이 처연하게 휘어진다. 창문을 열면 불어오는 새벽 바람에 금방이라도 깨어질 것만 같은 미소다. 등 뒤의 간병인이 칭찬인지 위로인지 모를 말을 건넨다. 잘 했어. 소년은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의자를 뒤로 밀어낸다.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이 자꾸만 멈춰 서 뒤를 돌아보게 한다. 속눈썹이 내려앉은 어머니의 마른 얼굴은 여전히 평안하게 잠들어있다.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난 채로, 이제 한동안 볼 수 없을 얼굴을 아주 오래 지켜보았다. 아주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떠오르는 태양이 차갑게 젖어있던 병실을 부드러운 손으로 감싸안는다. 소년은 그제야 힘겨운 발걸음을 옮겼다. 눈가를 훔친다.
- 울음을 참는다는 것에 관하여
- 꼭 두 번이었다. 어머니가 숨죽여 우는 것을 본 건.-단하야, 할머니 아직 안 일어나셨어?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언제나 눈코뜰새 없이 바쁜 모습이었다. 격주에 한번, 일요일을 제외하면 내가 학교에 가지 않는 유일한 토요일 아침도 어머니에게는 언제나처럼 전쟁같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 어린 날 내가 살았던 낡은 집을 기억한다. 욕조도 없는 비좁은 화장실, 너무 작아 적은 가구에도 허전할 새가 없는 거실, 있으나 없으나 큰 차이가 없을 침침한 방. 그럼에도 작은 거실에 낡아빠진 텔레비전 하나 쯤은 놓여있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전에 살던 사람이 놓고 간 물건이라고 하셨던가. 고물이라는 말에 한치도 어긋남이 없는 그 지직거리는 텔레비전, 그럼에도 그 너머로 보이는 희미한 무지갯빛 캐릭터들이 좋았다. 단하야. 다급한 부름에 언젠가 커피를 쏟아 누런 얼룩이 진 소파 위에 앉아 아침부터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꼬마가 고개를 든다. 이제 막 일어나 뒷통수가 눌린 연갈색 머리카락에, 크고 동그랗고 새카만 눈동자. 열한 살 즈음의 나다. 분명 내 이름을 불러 물었음에도, 어머니는 대답을 기다릴 시간도 없다는 듯이 구석에 딸린 작은 방의 문을 두드린다. 낡은 장판이 있는 그 침침한 방은 허리가 아픈 할머니의 몫이였다. 엄마, 나 이제 출근해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할머니 어제 늦게까지 일해셔서 피곤한가봐. 할머니 일어나시면 같이 밥 먹어. 알았지?
-네, 어머니.
어린애 치고는 조숙한 대답이다. 옅게 웃는 그 미소가 만족스러웠는지 어머니가 얼핏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부드러운 머리카락 사이로 스치는 서늘한 느낌이, 찰나의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좋았다. 늦었다. 손을 떼어내는 어머니가 작게 중얼거렸다. 엄마 다녀올게. 다녀오세요,할 새도 없이 구두를 신은 어머니가 반쯤 걸친 코트를 들고 허겁지겁 밖으로 뛰쳐나간다. 한참을, 물끄러미 어머니가 나간 자리를 바라보던 나는 곧 화질 나쁜 텔레비전 안으로 시선을 돌린다.-할머니.
곧 토요일 아침, 쉬는 날이면 빼놓지 않고 챙겨보던 어린이 프로그램이 끝났다. 정확한 줄거리까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분홍머리며, 파란 머리의 소년소녀들이 나와 인형들과 함께 그들이 사는 마을을 수호하는 내용이었는데, 항상 뻔한 결말로 끝이 남에도 어린시절의 나는 그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할머니와 함께 조금 늦은 점심을 먹은 후 함께 놀이터에 가거나 근처 공원에 앉아 비둘기 과자를 뿌려준다. 그 후 저녁을 먹고 양치 후 잠에 드는 것이 단순한 주말, 나의 하루 일과였다.하지만 그날은 아니다. 이 단순한 일과가 깨어지는 것은 퍽 드문 일이었으므로 어린 나는 그날따라 일어나지 않는 할머니를 이상하게 여긴다. 할머니. 방 앞으로 가 다시 한번 문을 두드려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나는 결국 혼자 식탁으로 가, 할머니가 전날 끓여둔 국이며 반찬을 스스로 데워먹었다. 무엇이 문제인건지, 왜 겉은 이렇게 뜨거운데 안은 차가운건지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조숙하고 어린 나는 식사 시간이 지나 힘겨워하는 속을 붙잡고 그럭저럭 맛있게 먹었었다.
피곤했던 할머니는 오후 늦은 시간이 될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헤진 소파에 쭈그리고 앉아, 5분쯤 느릿하게 흘러가는 아날로그 시계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할머니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 다시 배가 고파질 때 즈음이 되어서야 무언가 행동해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마침내 문을 열고 들어간 방에는 얇은 이불 여러 장이 덮혀 있는 아래로 문을 등지고 누워 있는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 이불을 들추어낸다. 다가가는 순간, 손끝에 스치던 서늘한 느낌을 기억한다. 차갑게 말라버린 입술은 더 이상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왜. 너도 피워볼래.
작고 조숙했던 나는 피곤할 할머니를 위해 부러 그를 깨우려 방문을 열지 않았었다. 겨울의 짧은 해가 지평선을 넘을 즈음의, 이미 뉴스가 끝나가던 늦은 저녁. 그래서 나는 아직도 할머니의 정확한 사망 시간을 알지 못한다.
조촐한 장례식. 차게 굳었던 그날의 모습은 없어지고 사진으로써 남은 할머니는 우리를 향해 세상에서 가장 환한 얼굴로 웃어보인다. 찾아오는 손님도, 떠나는 이를 그리는 울음소리도 없는 외로운 마지막. 그때 처음으로 어머니가 숨죽여 우는 모습을 보았다.
"야, 아, 제발 한 번만 봐줘. 부탁이야..."
"......"
퍼득 정신이 든다. 나는 고개를 들어 신음소리만이 낭자한 주위를 둘러보았다. 햇빛도 들지 않는 어두운 골목, 스산한 바람을 타고 은근한 피냄새가 풍겨오고, 겁없이 달려들었던 대여섯명의 또래 남자애들이 눈에 밟혔다. 아, 그래. 나 지금 우연히 발견한 스킬아웃들을 처리하고 있었지. 이런 때에 멍하니 옛날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니. 지끈거리는 머리에 한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걸 무슨 내 감정의 동요 쯤으로 생각했던걸까. 내 발밑에 무릎을 꿇고 있던 남자애가 갑자기 우는 소리를 내며 바짓단을 붙잡는다.
"나, 나도 정말 이러고 싶지 않았어. 스킬아웃이 되고 싶지 않았단 말이야. 하지만 정말로, 방법이 없어서..."
"......"
"나 가입한 지도 일주일도 안 됐어. 정말이야. 저기 쓰러져 있는 애들 깨워서 물어봐."
"그게 무슨,"
"보내주면 이제 정말 성실하게 살게. 제발, 정말로... 인첨공 바깥에 우리 할머니가 내가 성공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사정하던 스킬아웃이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다. 그 숨넘어갈 듯한 울음소리 때문인지 지끈, 또다시 머리가 울렸다. -진실이야. 은근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퍼진다. 나도 모르는 새에 내 능력이 또다시 발현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막 개화한 초능력은 자제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주인의 안에서 멋대로 활개치며 이곳저곳 능력을 흩뿌린다. 하지만, 어째서, 내가 원하지 않는 때에만. 지끈거리는 머리 너머로 아직도 우는 것인지, 아니면 내 머릿속에서만 울리는지 모를 격정적인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저지먼트야. 이런 일에까지 감정적으로 대처하고 싶지 않아! 마지막으로 남은 한줌의 이성이 흐물어지는 감성에게 거칠게 일갈한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나는 어느새 눈앞의 남자애에게 손을 뻗고 있다. 뼈가 도드라진 마른 손이 축축해진 얼굴의 스킬아웃의 앞에 내밀어진다. 멍한 눈의 그가 현재 그의 앞에 닥친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나를 올려다본다.
"가."
그의 납빛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린다. 명료하게 목소리로 내 뜻을 통보해주고서야 그는 허겁지겁 내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골목 바깥으로 뛰쳐나간다. 그의 온기만이 남은 자리에서, 나는 다만 작은 한숨을 쉬었다. 방금 내가 저지른 행동에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또다시 후회를 하는 것이다. 비척비척 앞으로 몇걸음을 걸어가, 방금 전 그의 온기가 아직도 남아있는 벽에 쿵, 하고 머리를 찧었다. 그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아직도 머릿속에 앵앵거리는 것만 같다. 가장 진정이 필요한 순간. 거짓말처럼 내리깐 시선에 방금의 스킬아웃이 흘리고 간 듯한 작은 담뱃갑이 보였다.
꼭 두 번이었다. 어머니가 숨죽여 우는 것을 본 건.
흘러간 기억이 조각난 유리파편처럼 머릿속에 흩날린다. 학교 뒷편,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두는 인적 드문 담장 아래다.
열다섯, 혹은 열여섯의 나. 오래지 않은 기억임에도 인첨공 밖의 얼굴들이 이제는 잘 기억 나지 않는다. 졸업한 중학교는 똥통이라고까지 할 만한 학교는 아니었으나 담배를 피는 학생들이 유독 차고 넘쳤다. 우리반의 남자애들 중 담배를 피지 않는 사람은 딱 네 명, 그리고 그 전날 까지의 내가 그 중 하나. 단정히 넥타이를 맨 그때의 나는 부회장이고 또 학생회 소속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어딘가로 은근히 사라지는 것이 담배를 피기 위함이라는 것 쯤은 이미 알고 있음에도, 친구라는 이름으로 묵인했다. 그러나, 차마, 그 일탈의 현장의 자세한 위치까지는. 폐휴지가 꽉 찬 쓰레기통을 들고 쓰레기장으로 향한 내가 담배를 피는 회장을 발견한 것은 순전한 우연이었다.
왜. 너도 피워볼래. 셔츠를 삐두름하게 풀어헤친 회장이 비릿하게 웃는 얼굴로 제 몫의 담배 하나를 내밀었다. 어쩌면 호기심이었을 지도 모른다. 열여섯의 모범생은 그가 내미는 것을 주저 끝에 받아들었다. 훅, 빨아들여. 가까이 다가온 회장이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들었다. 끝에 불이 붙었고, 힘껏 빨아들인 나는 곧 죽을듯이 기침을 했다. 눈까지 매워 떨어뜨린 담배가 아까울 새도 없이 연신 벽에 기대 마른세수를 했던 것 같다. 회장이 큰 소리로 웃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삼개월. 그 후로 꼬박 삼개월 동안 나는 그것을 끊지 못했다. 어머니는 다행히 알아채지 못했다. 풍기는 냄새를 온갖 방법으로 털어내고, 또 털어냈을 뿐더러, 바쁜 어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겨울의 새벽. 묘하게 흐느끼는 듯한 소리에 반쯤 잠에서 깼던 적이 있다. 할머니가 떠난 후 이사를 간 단칸방, 어머니와 나는 이불 두개를 붙여두고 추운 겨울을 함께 지샜다. 비록 방은 하나 없어졌지만 깨끗한 벽지며 더 넓어진 거실이 굉장히 맘에 들었다. 할머니도 여기서 같이 살았으면 좋았을텐데. 입밖으로 내면 금새 슬픈 표정을 지을 어머니를 알기에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눈을 떴을 때 내게 등을 진 어머니의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 작게 중얼거리려던 입술이 순간 굳게 다물렸다. 어머니의 앞에 훤히 열려있는 내 낡은 가방.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 알기에 말문이 막혔다. 어머니의 손에 들린 흰 담뱃갑이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달빛에 희미하게 반짝였다. 그 와중에도, 내가 깰 것이 걱정되었는지 어머니가 숨을 죽이고 몸을 웅크렸다. 꼭 담뱃불로 심장을 지지는 것처럼 가슴이 끔찍하게 아팠다. 달빛 아래에 어머니의 마른 어깨가 죽을 듯이 떨렸다. 그게 어머니가 숨죽여 우는 것을 본 두번째였고, 내 흡연 인생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괜히 몸을 뒤척이며 편히 자지 못하는 시늉을 했다. 그게 당신 탓이라고 생각하셨는지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더욱 작아졌다. 당장 일어나서 어머니를 안아드리지 않는 내가 정말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짧은 회상이 끝나고 다시 내 눈앞에는 그가 남기고 간 담뱃갑이 버려져있다. 몇 개피 남지 않은 담배들 사이로, 피씨방에서 들고 온 듯한 라이터까지 친절하게 끼워져 있다. 잠시 고민하던 내가 그 중 하나를 천천히 빼어들었다. 처음 마주하던 그 날처럼, 불이 붙은 반대쪽을 세개 빨아들인다. 희뿌연 담배연기와, 몽롱해지는 머릿속 사이로 참을 수 없는 토기가 밀려 올라온다. ...역겨워. 작게 중얼거리는 입술 사이로 연기가 비져나온다. 나는 여전히 불이 붙은 그것을 거친 벽면에 힘주어 지져 껐다.
- 불면
- 석식시간도 이미 한참 전에 지나버렸을까. 초봄의 짧은 해가 수없는 건물들을 타넘으며 붉은 숨을 내쉬고, 그가 사라진 자리에 나타나는 어둠이 이 땅의 모든 것들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때- 단하는 두고 온 완장을 회수하기 위해 신속한 걸음으로 부실을 찾는다. 빠르게 걷는 그의 눈 앞에 익숙한 길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목화고에 입학한 지도 벌써 2년. 그리고 저지먼트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도, 어느새 2년 차. 부실로 가는 지름길 쯤은 이미 꿰고 있는 것이다. 기숙사 한 동을 지나, 급식실을 지나, 또 건물 두어개를 넘으면 있는 부실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늦어 잠겨있기라도 할까봐, 뛰듯이 걷는 단하가 익숙치 않은 어느 광경을 보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단하야.
"여기 왜 다들 몰려있어?"
거의 저물어버린 희미한 태양빛을 받으며 한 무리의 아이들이 담벼락 아래를 에워싸고 있다. 잔잔한 물음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아이들이 천천히 뒤를 돈다. 모두 무슨 심각한 비극이라도 겪은걸까. 어떤 아이는 놀란 표정, 어떤 아이는 찌푸린 얼굴, 누구는 반쯤 우는 듯한. 각양각색의 모습 중 유일한 공통점은 그들 모두 묘한 수심에 잠겨있다는 것이다. 왜 그래. 서로를 돌아보며 우물쭈물 대답하지 않는 학생들 사이로 단하가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꼭 기적이라도 일으키는 것마냥 빼곡히 들어서 있던 아이들이 정확히 반으로 갈라져내린다. 그리고 그 사이, 보이는 자그마한 물체에 단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담 너머 비치는, 오늘의 태양이 흘린 마지막 한숨. 그 빛을 받은 새하얀 털이 미동도 없이 담을 향해 등을 돌리고 있다. 이미 혼이 떠나간 몸에 꼭 피같이 붉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미 오래 되었는지 털끝까지 딱딱하게 굳은 채로 고양이는 숨을 거두었다. 얼마나 전에 죽었는 지도 모르겠다. 아마 이 아이들이 발견해줄 때까지 이 작은 생명의 부산물은 한적한 건물 뒷편에서 외로운 잠을 자고 있었을 거다. 어떻게 하죠. 아이들이 조심스레 물어온다. 단하는 침묵으로서 말을 아꼈다. 사실- 냉정히 말하자면 아주 보기 드문 일은 아니다. 죽은 고양이라거나, 비둘기 같은 것들은, 누구나 살면서 한두 번쯤은 꼭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째서... 불현듯 말문이 막힌 단하가 천천히 손을 들어 입가를 가렸다.
"저, 오빠 본 적 있어요. 저지먼트죠?"
"......"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기쁜 듯, 조심스럽게 팔꿈치를 잡아당기는 1학년 여자애에게도 아무 확신을 주지 못한다.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영상이 있다. 단하가 느릿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고양이의 작은 몸으로부터 피어오르는 그것들이,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단단한 외면을 덥쳐온다. 그 성난 파도가, 꽁꽁 포장된 겉을 깎아내리고 연약한 내면을 내보이게 만든다. 고양이는 저 멀리 쓰러져 누워있는데도 손끝에 차갑게 굳어버린 살결이 생생하게 만져지는 것만 같다. 쿵. 쿵. 빠르게 뛰는 심장이 꼭 제것이 아닌 것처럼 귓가에 웅웅거렸다. 아니야- 침착하자. 단하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 때는 이미 지났어. 벌써 7년도 넘게 지난 일이야.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것은 고양이야. 내 잘못도 아니고. 여기는....
"-오빠."
"......"
오빠. 단하는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꼼짝없이 그쪽에만 시선을 두는 그가 이상했는지 ...오빠?,하고 1학년 여학생이 또 한번을 되묻는다. 흠칫 눈을 뜬 단하가 고개를 내려 그 작은 후배를 내려다보았다. 내려다보는 그 밝은 눈이 여전히 조금 떨린다. 가까이에서 본 눈의 창백한 안광은 안경으로조차 가려지지 않는다. 노려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기어들어가듯이 작아졌다. 그러니까, 저지먼트...냐구요....
"...그래, 저지먼트야."
안심시키려는 듯 지어보이는 옅은 미소가 다정하다.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자 그제서야 안심한 듯 1학년 아이도 어색하게 마주 웃어보인다. 단하가 뒤를 돌아 몰려있던 다른 아이들을 보았다. 지금은 저지먼트로서 행해야 할 책임이 있어. 그래, 책임이야. 내가 지금 해야 할 일.
"자, 이 고양이는 내가 연락해서 처리할게. 이제 다들 돌아가자."
어서. 주춤거리던 학생들이, 또 한번 손을 휘저어 주고서야 천천히 해산한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우는 얼굴의 남자아이까지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서야 단하는 손을 내렸다. 아이들을 해산시키는 것으로 일차적인 상황은 일단락 되었고, 이제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러나 차마 다시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지금 뒷편, 담장 아래에 무엇이 남아있는 지를 알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눈앞에서 재생되는 영상이 있다. 할머니. 작게 웅얼거리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만. 그만 생각하자. 한손으로 안경을 벗겨낸 단하가 반대편으로 거칠게 마른세수를 한다. 그만. 칭얼거리는 머릿속의 목소리가 멈춘다. 그는 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고양이는 그가 부른 청소부 아주머니와 다른 저지먼트 부원에 의해 머지 않아 처리되었다.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할머니.
짙은 어둠. 안개 속에 길을 잃고 헤메는 소년이 제 손을 내려다본다. 자신의 손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린 아이의 것이다. 한참을 어둠 속에서 유영하던 그의 뒷편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할머니. 내가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인자하게 웃는 얼굴은 반쯤 어둠에 잠겨 얼핏 올라간 입꼬리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 웃는 내가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손이 닿는 순간, 손끝을 타고오르는 지독한 냉기에 순간 소름이 끼친다. 할머니는 그대로 어둠에 잠식당해 한줌의 재로 사라진다. 아니야. 나 때문이 아니야. 앳된 목소리가 절규한다.
"헉, 헉... 후....."
내 것이 아닌 듯한 밭은 숨소리가 들린다. 침대 위임을 확인한 단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운 날씨도 아닌데 자꾸만 흘러내리는 식은땀이 지독하게 거슬렸다. 얼굴을 부벼 땀을 닦는 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천천히 그것을 앞뒤로 돌려 확인했다. 익숙한 손. 익히 알던, 긴 손가락과 선명한 핏줄이 도드라져보이는 자신의 손이다. 단하는 비틀거리며 계단을 밟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기숙사에 비치된 두 명 분의 2층 침대, 그 윗층은 높은 곳이 무섭다는 한솔을 위해 항상 단하의 몫이 되어왔다. 그 짧은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동안에도 단하는 몇번이고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질 뻔했다. 기듯이 내려온 침대 아랫층에 한솔이 보인다. 벽을 향해 등을 돌리고 있다. 얇은 이불에 휩싸인 몸이 미동도 없이 잠들었다. 한솔아. 단하가 낮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서 그런지 평소의 매끈한 저음이 아닌, 어쩐지 반쯤 잠긴 듯한 탁한 목소리다. 한솔아. 단하가 다시 한번 그 이름을 불렀다. 한솔은 여전히 미동도 없이 단하에게 등을 보이고 있다. 한솔아. 한솔아! 마침내 손을 뻗은 단하가 그 어깨를 강하게 흔들었다. 으윽, 잠에서 깬 한솔이 신음을 뱉는다.
"...왜. 왜에... 뭐. 무슨 일 있냐."
잠에 취한 목소리가 짜증 섞인 말투로 용건을 물었다. ...정한솔. 그제서야 이쪽을 향해 돌아본 몸이 끄응,하고 또 한 번 신음을 흘렸다. 너... 무언가를 더 말하려던 단하가 뒷편을 잘라냈다. 왜, 뭐,하고 또다시 묻는 한솔을 뒤로하고, 그는 어깨를 흔들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 아니야. 미안해. 다시 자."
"뭐야, 싱거운 놈..."
크게 하품을 한 한솔이 그대로 다시 눈을 감았다. 긴장이 풀린 단하가 낮은 한숨과 함께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젠장. 낮은 욕짓거리가 고요한 기숙사를 울린다. 아직 수면 시간이 세 시간도 더 남은 한밤의 새벽. 더 이상 잠들지 못하는 단하가 허리를 수그린 채로 거칠게 눈가를 부볐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분명 잊었다고 생각해도, 아주 작은 계기만으로 묻어두었던 기억은 봇물처럼 타고올라와 가장 약한 부분을 잠식한다. 아아.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그 때만큼은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는 것이다.
다시 침묵에 젖어든 기숙사가 고요하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새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차 깊어갈 뿐이다.
- 애착의 그늘
-
아마도 사랑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 정도로 어린 나이에, 훨씬 더 앳되고 미성숙한 신체였지만, 그럼에도 그때의 그 격정적인 기억을 떠올리자니 아직까지 가슴 속에 선연히 피어오르는 따뜻한 감정을 보면. 사랑을 속삭이는 TV 속 인물들의 그 만큼이나, 아마도 사랑이었을 것이다.-
"좋아해."
"......"
"좋아해, 단하야."
그 찬란했던 시간 속의 너와 나.
너를 처음 만난 것은, 열다섯의 추운 겨울. 다시는 누구도 좋아하지 않고 싶다고 생각한지 채 석 달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너를 만나기 이전 생각이 여물지 않았을 시기에 시작된 준비되지 않은 두 번의 만남은 지독히 쓰라리고 씁쓸하게 끝을 맺었다. 품 안의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감정이 지독하게 공허하다. 이런 게 사랑이고 연애라면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아- 그래, 다시는 누구도 좋아하지 않고 싶다고. 유치하게 생각했었다. 확실히 지금보다도 훨씬 어리고 서툴었을까.-
그럼에도 발랄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해 오던 너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을 기억한다.
"반가워, 안수정이야."
양단하야. 습관대로 웃으며 차분히 소개했다. 나는 너를 내 친구의 하나뿐인 동갑내기 사촌으로서 소개받았다. 사촌이라지만 성별도 생김새도 전혀 달라 겉으로 보이는 공통점이라고는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것 밖에는 없는. 그래도 성격이나 분위기 같은 것들은 두 사촌이 어느 정도 닮아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의 첫만남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내 친구이고 네 사촌인 선호가 가운데 서고, 그 오른편에는 내가, 왼편에는 네가 서서 서로에게 인사를 나누었던,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이 평범한 처음이었다. 하지만 마주치던 시선 사이에 얽힌 것은 분명한 이끌림이었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선호가 근처의 어느 건물로 들어가버린 사이, 눈이 마주친 내게 수정이 얼핏 눈꼬리를 휘어보였던 것을 기억한다. 참 예쁘다. 문득 생각했다.
"아, 핸드폰 좀 줘볼래? 너 이선호가 뭐 알려준거 없지."
"여기. 번호는 못 들었어."
찍어준 번호를 안수정, 밋밋하게 저장했던 것이 생각난다. '정없게... 그냥 수정이라고 저장해줘.' 슬쩍 핸드폰 액정을 훔쳐본 네 투정에 아하하, 나도 모르게 작게 웃음을 터트렸었다.
나는 너를 만나고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내가 무엇때문에 너에게 이끌렸는지 그 때는 도저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특기할 것 없이 평범했던 그날의 첫만남 이후 나는 혼자 있는 시간에도 종종 너를 생각했다. 안수정. 딱 한번 들었을 뿐인 네 이름임에도 그걸 되뇌이고 있자면 어쩐지 가슴 한켠이 따뜻해졌다. 영화 보고 싶다. 같이 보러 갈래? 그 후로 여러 번의 만남, 새로 개봉한 시리즈물을 보고 싶다던 네게 불현듯 묻는다.
좋아해, 네가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했을 때는 서있는 그대로 굳은 채 꽤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지독하게 떨리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도 좋아해 수정아,하는 내 긍정의 말이 떨어진 후에는- 아까의 용기는 대체 어디로 갔는지. 이번에는 되려 네가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 못박힌듯 서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사랑스러워서 나는 또다시 상황에 맞지 않는 작은 웃음을 흘렸다.
수정이는 부유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너의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 사실을 더욱 실감했다. 밝게 빛을 발하는 네 팔십만원짜리 모니터에 근사한 TV 하나 없는 나 자신을 초라하게 여기지는 않았으나, 그 첫 방문으로 비좁은 내 집에 네가 어울리지 못할 것임을 확신했다. 그래서 만남이 시작된지 꽤 오래도록 너는 내 집 안까지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너는 조금 아쉬워하는 것도 같았지만 곧 장소가 어디든 우리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내게는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너와 나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이제 어디 가지? 카페 들어갈래?"
"미안해, 내가 지금 좀 여유가 없네. 그냥 아무데나-"
"그럼 우리집 가자. 엄마 있긴 한데 우리 엄마가 너 좋아하니까 괜찮아."
그래서 우리의 데이트 장소의 마지막은 자주 너의 집이 되었다. 따지고 보자면 나와 수정이는 비슷한 듯 또 아주 다른 두 사람이었다. 수정이는 적극적, 나는 그보다는 네게 맞춰주는 편이 좋은 타입. 취미도 관심사도 어느 하나 완벽히 맞아 떨어지는 게 없었다. 처음에는 무어라도 흥미을 공유하고 싶어 부단히 노력했으나, 만남이 계속될 수록 꼭 무언가를 같이 하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의 방에 함께 머무르는 종종의 데이트에서 나는 네 침대 밭에 기대어 앉아 책을 읽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너는 헤드폰을 귀에 걸고 컴퓨터 앞에 앉아 한 판이 끝날 때마다 '양단하, 재밌어?' 씩 웃으며 돌아보곤 했다. 남녀가 바뀐 거 아니냐. 언젠가 수정의 방에 들어와 우리가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던 선호가 짖굿게 물었던 것을 기억한다. 이런 커플도 있는거야, 충분히 행복했기에 가볍게 마주 웃어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 시간이 영원할 수 있을까.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네 옆모습을 보며 이따금씩 생각했다. 너와 함께 있는 것은 편안했다. 아주 격정적인 감정은 아니더라도 편안하고, 부드럽고, 함께 있으면 어쩐지 마음 한켠이 점점이 따뜻해졌다.
그러나 우리 만남의 사소한 걸림돌은 내 편안과는 정 반대의 위치에 있는 수정의 불안이었다. 단하야, 너는 가끔 나를 보면서도 왠지 다른 곳을 보는 것 같아. 어느날 긴 대화 중 수정이 맥락없이 뱉은 말에 꽤 많이 당황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너도 나와 같은 편안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꾸만 불안해하는 너를 안심시켜주려 언제나 부단히 노력했다.
"양단하."
"응?"
"너는 내 어디가 좋아?"
평소처럼 너는 컴퓨터 앞에, 나는 네 침대맡에 기대어 책을 읽던 어느날. 빼꼼히 고개를 돌린 네가 잠시의 정적 끝에 뜬끔없이 물었었다. 네 컴퓨터의 타닥거리는 기계음이 멈추고 넘기던 내 책장의 사각거리는 소리마저 숨을 가두었다. 짧은 고요에 똑딱이는 초침 소리만이 이 공간을 지배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조금 당황했으나 이내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글쎄, 일단 참 예뻐."
"장난 치지 말고!"
휙, 수정이 던지는 쿠션을 잡으며 아하하, 웃었다. 알았어. 제대로 대답할게. 읽던 책을 잠시 내려두고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렇지만 진심이었어. 전하지 못한 말이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린 네 뒷통수에 쏟아졌다. 처음부터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다. 꼭 외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네가 네 아름다움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어디가 예쁜데?"
여전히 게임 쪽에 눈길을 주고 있는 네가 재차 물었던 것은 꽤 의외의 일이었다. 또다시 당황해서, 잠시동안 멍하게 눈만 깜빡이고 있었을 뿐 아무런 대답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결국 고개를 저으며 으음,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는 너를 응시했다. 너는 여전히 게임을 하고 있는 양 화면에 집중했으나, 바보... 손이 안 움직이고 있는데. 발끝까지 곤두세우고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큼, 괜히 헛기침했다.
"제일 예쁜 건 마음."
"...뭐야, 그게."
이번에도 진심이었다. 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얼핏 웃었다.
"그리고 네 머리카락. 갈색도, 웨이브도... 정말 잘 어울려. 처음 만났을 때 깜짝 놀랐어."
"......"
"목소리도 정말 예뻐. 맑고, 높고, 노래도 잘 부르고. 노래 부를 때 특유의 온화한 분위기도 좋아."
"내가 뭐가 온화하냐아."
"네가 자주 자랑하는 것처럼 웃을 때 입가에 파이는 보조개도. 아, 네가 좋아하는 그 자주색 바지도 너한테 정말 잘 맞아."
조목조목 내가 생각하는 네 장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네 아름다움에 대해 가끔 생각해본 적은 있었지만, 이상할정도로, 생각보다도 더 막힘 없이 네 구체적인 부분 하나하나가 입밖으로 술술 흘러나왔다. 그리고 또- 다시 이어지는 내 목소리에 한참을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던 네가 휙 자세를 돌린다. 네 얼굴 옆으로 언뜻 보이는 컴퓨터 화면은 그러나 오래 전에 게임이 꺼진 듯 푸른색 바탕화면만을 보여주고 있다. 됐어, 그만 말해! 잔뜩 빨개진 얼굴로 의자에서 내려와 옆구리에 파고드는 수정에게 아하하, 웃어보였다.
언제나와같이 즐거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왜였을까- 그럼에도 이따금씩 내비치는 네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족을 제외하고 너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 내가 포함될 거라고 생각했음에도 나로서는 그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이었다.
불안해하는 너를 걱정했다. 이따금씩 떨리는 네 눈에 마음이 아팠다. 내가 너를 얼마나 많이 좋아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주고 싶다는 내 말에, 너는 조금 망설이다가 우리 집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의외의 말에 한참을 미루던 대답의 끝은 마침내 긍정이었다. 네가 원한다면 들어주지 못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기대할 필요 없어. 애초에 나랑 어머니 둘이 사는 작은 집이고-"
"괜찮아, 너네 집인 게 중요한거지."
작은 집이 부끄러워 늘어놓는 변명은 아니었다. 너의 집에 비하면 초라한 나의 공간이라고 해도, 중요한 건 너와 내 마음이지 이런 거처 따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래서 불안했다. 평생을 아름다운 공간에서 사랑받고 자라왔을 네가 놀라지 않았으면 했다. 문을 열기 전 우리 집 앞에서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 너는 허름하게 보이는 내 현관문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래, 알았어. 눈에 띄게 기분 좋아보이는 네 머리를 나도 모르게 꾹 쓰다듬었다. 그리고 열쇠를 돌려 문의 잠금을 열었다.
허름한 외면에도 놀라지 않는 수정이 기뻤다. 모든 게 순조롭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예상치 못했던 것은 때마침 집 안에 있던 어머니의 존재였다. 단하야? 문을 여는 순간, 맑은 고음이 작게 떨어진 틈새를 타고 흘러나왔다. 어머니. 조금 당황해서 작게 중얼거렸다.
"단하 왔니?"
"...어머니? 집에 계셨어요?"
"오늘 일이 생겨서 좀 일찍 퇴근,콜록,했어. 아들 밥도 챙겨줄 수 있고 잘됐... 어머. 뒤에는 여자친구?"
문을 열면 바로 부엌이 보이는 구조였다. 환하게 쏟아지는 전등빛 아래 감기에 걸려 작게 기침하는 어머니가 보였다. 아름다운 나의 어머니. 나도 모르게 희미하게 웃었다.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아, 수정이예요. 살짝 고개를 돌려 뒤에 선 네게 우리 어머니, 속삭였다. 너는 사교성이 좋았고, 어른들에게도 흔히 좋은 점수를 받곤 했기에 차라리 걱정하지 않았다. 예상 밖의 상황이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즐거운듯 웃는 어머니의 표정에 마음 한켠이 따뜻했다.
"콜록, 너무 예쁘네, 우리 아들한테 아까운걸? 반가워요. 단하 엄마야."
...안녕하세요. 뒤에 선 네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때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기어들어가듯 떨리는 목소리. 반가워요,하며 악수하자는 듯 손을 뻗는 어머니의 미소 아래 작게 파인 보조개가 보였다. 어머니는 미소가 참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 미소를 보면 어딘가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해졌다. 키가 작은 수정이에게 허리를 숙여준 탓에 흔들리는 어머니의 갈색 머리카락 아래, 두 여자의 첫 악수가 이루어졌다. 한발짝 물러나 그 모습을 지켜보는 그때의 나는 두 사람 사이의 따뜻한 분위기에 참 기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너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들어와요, 과일이라도 깎아줄까? 콜록, 어제 귤도 사왔는데."
"...아, 아니, 죄송해요. 저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서-"
"-수정아, 무슨 일 있어?"
혹시 어머니를 불편해하는 걸까. 양단하, 왜 그랬어. 이렇게 갑작스러운 대면이라니, 내가 너무 배려가 부족했는지도 몰랐다. 불현듯 스친 생각에 같이 나갈까, 수정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하지만 너는 그조차 거절했다. 새차게 고개를 흔들며, 죄송해요, 하는 마지막 한 마디와 함께 갑자기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수정아! 마찬가지로 당황하는 어머니를 아마 별 일 아닐 거라고 안심시켜드린 후 곧바로 네 이름을 부르며 뛰쳐나갔다.
"안수정, 헉, 얘기 좀 해..."
"......"
어렵지 않게 너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수정아. 네 앞에 서서 턱까지 차오른 숨을 훔쳤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이제라도 이야기를 나누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의 너는 내가 처음 보는 아주 혼란스러운 눈으로 그조차도 거부했다. 아니야, 나중에 얘기해. 나를 올려보는 눈빛이 단호했다. 내 어깨를 밀치고 그대로 뛰어가는 너를 도저히 붙잡을 수가 없었다. 한참 네 뒷모습을 바라보다, 우리를 쫓아 나온 어머니를 보고서야 괜찮아요, 어색하게 웃으며 집 안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 삼일이 지났다. 살아온 18년, 가장 마음 졸인 삼일이었다.
어차피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아 수업시간에 하는 일이라고는 영화나 기타 다른 신변잡기 식의 영상을 보는 것 뿐이었다. 그나마도 보지 않고 책상 위에 엎드려, 나는 삼일을 아주 편하게 보냈다. 마음이 죽을만큼 불편했던 것과는 전혀 별개의 의미였다. 수백 수천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어릴 적 온화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갑자기 아파오는 마음에 작게 신음했다. 할머니 이후로 누구도 나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돌이켜보면 나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아낌받기보다는 아껴주는 쪽이었다. 누구에게든 잘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때로는 내 다정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되었나. 아니면... 생각 외로 우리 집이 너무 초라했나. 이유를 알 수 없어 더욱 고통스러웠다.
어느 쪽이든 수정이 내가 싫어진 거라면 헤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네 전에 나를 떠나갔던 두 명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너를 잡고 싶었지만, 네 마음이 떠났다면 어떻게 너를 잡아야 할지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 전에 너와 얘기는 한번 제대로 해봤으면 했다. 내일이면 너와 연락이 끊긴지도 벌써 삼일 째고, 동시에 방학식이다. 방학이 되면 너와 만나기도 더욱 어려워질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갑갑했다.
방학식이 끝나고, 담임선생님이 떠난 교실에 앉아 네게 어떻게 연락해야할지를 수백번 고민하던 네게 결국 네 문자가 먼저 도착했다. 학교 뒷편에서 만나. 망설임없이 교실 밖을 뛰쳐나갔다. 다시 만난다면 네가 무슨 말을 꺼낼지 예상하던 것은 그때만큼은 머릿속에서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다시 네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기대는 뛰어가는 머릿속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뛰어들어간 학교 뒷편, 유난히 높은 담장 아래에는 거짓말처럼 네가 있었다. 발소리를 들은 건지 천천히 뒤를 돌아 이쪽을 바라봤다. 긴 갈색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흩어졌다.
"너 정말 날 좋아한 게 맞니."
며칠 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훨씬 수척해진 너는 또다시 흔들리는 눈으로 화를 내지도, 울음을 터트리지도, 입술을 깨물며 묻어두었던 숱한 서러움을 토로하지도 않았다.
"...그래."
한참을 침묵하다 마침내 나직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긴 침묵의 이유는 내 마음에 대한 망설임이 아니었다. 너를 향한 내 마음을 확신하지 못하는 네가, 너무 마음아파서. 그래서 한참을 침묵했다. 정말 많이 좋아해. 또다시 덧붙이는 말에 너는 그제야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서럽게 흐느끼는 모습에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 수정아. 흔들리는 어깨를 어찌할 바 없이 천천히 토닥였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말하면서도 무엇이 괜찮은건지는 알 수 없었다. 불안해하는 네게 왠지 그렇게 말해주어야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오답이었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울음을 참던 네가 작게 중얼거렸다.
"갈색 웨이브 있는 머리카락. 맑고 높은 목소리..."
"......"
"온화한 분위기, 바지가 잘 어울리는 점."
"수정아."
"그리고- 보조개."
지금, 왜 갑자기. 수정의 저의를 알 수 없어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내가 꼽은 적 있는 수정의 숱한 장점들이었다.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 수 없어 가만히 수정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거기까지 말을 꺼낸 수정이 또다시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흐윽, 흐느꼈다. 울음을 깨문 입술 사이로 흐릿한 발음이 흘러나왔다.
"너희 어머니잖아, 단하야..."
또다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뭐만 하면 네 어머니 얘기했지. 그냥 유일한 가족이라 자주 얘기한다고만 생각하려고 했어. 그런데... 왠지 이상하게 불안한 내가. 미웠어. 응... 널 만나면서 내 자신이 미웠어."
그때 내가 무슨 대답을 내놓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무슨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거지? 수정이가 무얼 말하고 있는거지?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뒤로하고 답지않게 되는대로 말을 뱉었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사과했었나. 수정이 건네었던 몇 마디 말만 단편적으로 머릿속에 남아있다. 무엇을 말해야 할 지 알수 없었다. 수정이는 어머니와 제가 지나치게 닮았다고 말했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너에게 언제나 진심이었는데, 너는 그것조차 거짓이라고 말하고 있다. 틀렸어, 단하야. 네가 나를 좋아한 건 네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이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돌아서 사라지던 네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 뒤로 너와의 연락은 없었다. 당연히 네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다시 없었고, 나는 연락하지 않았다기보다는 하지 못했다. 지나치게 바빴기 때문이었다. 망설이던 사이 어머니가 일하던 도중 쓰러지는 일이 일어났다. 황급히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어머니와 내 관계를 물었다. 아들이요, 한 마디에 의사는 많이 늦었다는 점을 고백했다. 이미 손 쓰기 어렵게 암세포가 전이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수정이 어머니의 병실을 찾아온 것은 그리 멀지 않은 저녁이었다.
단하는 저와 다른 사람이 생각했던 것만큼 어른스러운 아이만은 아니었다. 어른스럽다고 해봐야 고작 열여섯, 열일곱 하는 어린 남자애였을 뿐이었다. 우스울 정도로 어린 나이에 훨씬 더 앳되고 미성숙한 생각과 신체다. 그 나잇대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이 가장 애착을 가지는 존재는 어머니였으나 그 정도는 조금 더 심했는 지도 모른다.-
수정은 예민하고 눈치가 빠른 아이였다. 가족을 제외하고는 누구보다도 가깝게 단하의 곁에서 보냈던 일년여 간의 시간, 단하 자신도 모르던 그의 애착의 그늘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그늘에 언제나 불안해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이 단하의 본질은 아님을 안다. 단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한 사람이고, 이제는 수정도 그래야만 한다.
단하는 어머니를 닮은 그녀에게 이유없이 이끌렸다. 그조차도 알 수 없었던 그의 무의식이 이끈 일이었다.
안수정.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엇을 말해야할지 몰라 반쯤 열린 턱을 덜덜 떨었다.-
"수정아, 정말 많이 좋아했어. 어머니를 닮아서가 아니라, 그냥-"
"알아. 나도 알아 단하야."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묵혀왔던 감정이 폭발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동안 누구에게도 모두 털어놓지 못했던 어머니를 잃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그 위에 두껍게 얹혔을지 모르겠다. 입술을 깨문 단하의 얼굴에 희미한 울음이 스쳐지나갔다. 수정은 달빛을 등지고 서 있는 단하의 눈물이 반쯤 어둠에 잠기었음에도 어쩐지 처연하게 반짝이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단하는, 그새 시간이 지나 수정이 어쩐지 조금 어른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잔재를 꽤 많이 털어내었음을 깨닫는다. 이리와. 말없이 팔을 벌린 수정의 품에 단하의 마른 등이 안겨든다. 아마도 마지막 포옹일 것임을 직감적으로 안다. ...수정아. 단하가 낮게 중얼거렸다. 이 시간이 지나 이 따뜻한 품을 그리워하게 될 날이 언젠가 분명 올 것이다.
안긴 등에 수정의 느릿한 토닥임이 이어졌다. 단하는 다만 두 팔에 수정을 안은 채로 떨리는 이마를 그녀의 어깨에 내렸다. 마찬가지로 수정의 등을 안은 손이 잘게 떨렸다. 따뜻하게 떨어지는 달빛 아래 두 사람의 마지막을 마주하며, 수정은 어쩐지 자신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참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우는 얼굴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우는 대신 단하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들어 고요히 누워있는 그의 어머니를 보았다. 말없이 누워 각종 기계장치들로 생명을 이어나가는 모습, 그러나 그럼에도 한 사람의 어머니답게 말로 설명할 수 없이 강인하고 결연해보이는 분위기에서 수정은 자신이 정말 그녀와 닮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정했다. 그래서 이제야말로 정말 끝을 맺어야한다고 생각했다. 품 안에서 흔들리는 이 마음 아픈 얼굴을 이제는 밀어내야한다고 생각했다.
등 뒤로 손을 돌려 자신을 안고 있는 단하의 팔을 천천히 떼어냈다. 언제나 어른스러웠던 그 답지 않게 이별을 거부하던 팔은 곧 힘을 풀고 수정의 의지대로 천천히 끌려나왔다. 힘없이 내려앉은 단하의 손을 보았다. 헤어져 있던 동안 더욱 살이 내렸는지 뼈가 드러나는 마른 손등이며, 아직까지도 잘게 덜리는 단단한 어깨가 보인다. 수정은 또한번 눈물을 참아야만 했다. 보이는 그의 모습 하나하나 수정이 좋아하고, 또 사랑했던 부분이다. 하지만 이제 놓아주어야 할 때다. 고개를 들어 애써 가볍게 웃어보인다.
"나보다 훨씬 어른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애같이 굴 때도 있네."
"...애 같다는 말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
평소같이 말끔한 저음이 아니라, 울음이 섞여 어쩐지 탁하게 들리는 목소리다. 이런 면도 있었구나. 마지막에서야 알게 되는 새로운 모습에 수정이 작게 웃었다. 그새 감정을 추스렸는지 손바닥으로 잠시 눈두덩이를 찍어누르던 단하도 ...하하, 희미하게 웃는다. 그래, 강한 사람이다. 수정은 단하가 지금의 아픔을 잘 견뎌내고 다시 일어나 담대히 나아갈 것을 믿었다. 다시 이어지는 고요한 침묵 사이에서 두 사람의 눈빛이 얽혔다. 마지막임을 알아서 마주보는 이 시선을 놓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제 정말 보내주어야 할 때이다. 달빛 탓인지, 단하는 다시 멀리 떨어진 수정의 눈이 촉촉히 젖어있는 것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수정에게 자신이 정말 많이 좋아했음을 고백한 것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전처럼 부드럽게 내려앉는 것을 느낀다. 안녕, 양단하. 꼭 그렇게 말하는 듯 부드럽게 휘어지는 눈꼬리에 희미하게 마주웃어주었다. 안녕, 안수정. 정말 안녕. 흐붓한 빛무리가 쏟아진다.
수정과 함께 본 첫 영화가 떠오른다. 난쟁이와, 요정왕과, 전쟁과 다툼, 그럼에도 그 사이에 분명히 존재했던 사랑이 아름다운 긴 시리즈의 마지막편이었다. 사랑했으나 이루어질 수 없었던, 그럼에도 끝까지 새랑했던 죽은 난쟁이 연인을 끌어안고 흐느끼던 요정을 기억한다. 오열하는 그녀에게 그녀가 마음이 아픈 것은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요정왕의 나직한 목소리가 떨어진다. 요정왕은 잠시의 침묵 후에 그의 시신을 정중히 묻어줄 것을 약속한다.
수정아, 나는 지금 죽을 것처럼 마음이 아파. 내가 마음이 아픈 것은 너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이겠지. 그러니 이건 사랑. 아마도 사랑이었을 거다. 그러나 나는 이제 너를 다시 마음 한켠에 묻어두려고 한다. 너는 좋은 여자친구였고, 또 참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내 마음 한켠에서 이따금씩 기억하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따금씩 꺼내보며 행복해할 미래의 나 자신을 그린다. 지금의 아픔을 딛고 나아가기에 나는 충분히 단단한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믿기 때문이다.
- 그림 연성(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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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연성(선물)
- 단하의 순은 목걸이(아이템)
- 단하의 순은 목걸이.
그가 가장 애지중지하던, 은은하게 빛나는 것 외엔 아무 특징도 없는 물건.
공감은, 아득한 과거로부터 유효한 치유법이었다고 한다. 몰개성하나 주인의 상냥함이 깃들어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마음과 공감하여 착용자에게 평온함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무거운 고민, 가벼운 생각이라도 이해해주는 그것은 마치 어머니의 마음이다.
by 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