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 내 옆자리의 신 님 4U
니시케다모리 이스즈 | |
나이 | 18 |
성별 | 여성 |
학년과 반 | 3-B |
성적 성향 | 에이섹슈얼 헤테로 로맨틱, HL |
1. 외형 ¶
154cm의 아담한 키에 마른 체형. 체구에 맞게 조그마한 손발. 머리카락은 흑발에 직모이며, 길게 길러 높게 묶어올리고 있으며, 앞머리는 일자로 단정하게 잘랐다. 눈동자 역시 머리카락과 같은 짙은 흑색이며, 눈매가 둥그렇고 이목구비가 단정하며, 생글생글 웃는 일이 많기에 밝은 인상을 준다. 교복은 규정에 맞게 입는다. 주로 치마에 리본을 매고 있지만, 가끔 바지에 넥타이를 매기도. 사복은 블라우스에 뷔스티에 원피스와 같은 단정한 느낌의 의상을 즐겨입는다.
2. 성격 ¶
밝고 서글서글한 겉모습 안에,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고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면모가 숨어있으나, 가미유키 마을에서 2년동안 지내면서 제법 둥글둥글해졌다.
막연하고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잔걱정이 많다. 연소자들 앞에서는 가끔 꼰대같은 면모가 나오기도.
막연하고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잔걱정이 많다. 연소자들 앞에서는 가끔 꼰대같은 면모가 나오기도.
3. 기타 ¶
재벌가인 니시케다모리 가문의 장녀. 그러나 지금은 여동생인 노에루에게 부모님의 총애를 빼앗겨 쫓겨나다시피 시골로 내려왔다.
학비를 제외하고는 전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생계를 과외와 유튜브 채널 운영을 통해 겨우 유지하며 가난에 시달리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지금의 생활에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다.
털 달린 복슬복슬한 동물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한다. 다만 펫 로스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기도 하고 집을 비울 때가 많기 때문에 애완동물을 들일 생각은 없는 듯.
달달한 디저트와 향긋한 차를 좋아한다. 화이트 초콜릿이 들어가는 디저트를 특히나 좋아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없는 살림에도 사다놓은 화이트 코코아 파우더를 우유에 타 마시며 진정하기도 한다. 말차와 동양차류도 좋아하나 형편 때문에 자주 즐기지는 못하는 편.
진짜 성으로 불리는 걸 좋아하지 않아, 남들에게는 니시케다모리는 너무 길다는 핑계로 니시나 모리 정도로 불러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학비를 제외하고는 전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생계를 과외와 유튜브 채널 운영을 통해 겨우 유지하며 가난에 시달리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지금의 생활에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다.
털 달린 복슬복슬한 동물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한다. 다만 펫 로스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기도 하고 집을 비울 때가 많기 때문에 애완동물을 들일 생각은 없는 듯.
달달한 디저트와 향긋한 차를 좋아한다. 화이트 초콜릿이 들어가는 디저트를 특히나 좋아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없는 살림에도 사다놓은 화이트 코코아 파우더를 우유에 타 마시며 진정하기도 한다. 말차와 동양차류도 좋아하나 형편 때문에 자주 즐기지는 못하는 편.
진짜 성으로 불리는 걸 좋아하지 않아, 남들에게는 니시케다모리는 너무 길다는 핑계로 니시나 모리 정도로 불러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4. 관계 ¶
니시케다모리 노에루
동생이야. 지금은 따로 살고 있고, 그렇게 좋은 사이도 아니었지만... 그 애, 아직도 나를 언니라고 생각하고 있더라고. 언젠가는 화해할 수 있으면 해. 그 애도 나도 마음의 준비가 된다면 말이지.
와타나베 슌
2년지기 친구야. 단골 도시락집인 먹는 행복의 사장님 아들이기도 해. 착하고 구김없는 애라서 가미유키 마을에서 가장 먼저 마음을 열게 됐어. 지금은 얼굴 보면 괜한 참견을 하고 싶어질 것 같아서 당분간은 안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 일상
- 산장에서의 하루
- 494와타나베 슌 - 니시케다모리 이스즈 (RTFa7xp2Fu)
2025-3-15 (토) 오후 08:04:56
2018년 어느 이른 봄날. 우리는 열차를 타고 먼 길을 떠났다.
행선지가 적힌 빛바랜 이정표 앞에 멈춰서 형의 손을 잡은 그때의 나는 첫 여행을 앞두고 부푼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차창 밖으로 쏟아지는 햇살과 풍경은 어린 소년의 작은 호기심을 잔뜩 자극했고.
한평생을 자라온 마을을 잠시 떠나 이름 모를 장소를 향한 첫 도약에 마치 모험의 시작을 밟는 용사가 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25년의 겨울. 그때의 어린아이는 이제 졸업을 앞둔 어엿한 고교생이 되었다.
비록 형만큼 어른스럽지도 키가 훌쩍 자라지도 못했지만 드넓은 스키장에서도 홀로 설 수 있을정도로 씩씩한 아이가 되었다.
여행 전날, 슌은 거의 제 몸통만한 캐리어에 짐을 한가득 실었다.
아니 정확히는 온가족이 그 짐 하나를 놓고 옹기종기 모여 잔뜩 참견을 받아냈다.
고작 며칠일 뿐이라고 가볍게 시작했던 짐은 하나둘씩 늘어나서 간신히 잠길정도로 빵빵해졌다.
부모님의 눈에 들어오는 거라곤 이제 이 철부지가 전부라서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겠다는 마음이 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얼마 안되는 거리를 지나 버스에서 내리고 나선 휘황찬란한 시설에 눈앞이 어지러워 쫓기듯이 짐을 풀었다.
워낙 넓은 곳이기에 토모군과 후유카. 유토와 시게카타까지 멀리서 손을 흔드는 정도로 인사를 나누는 것밖엔 하지 못했다.
사실 그건 핑계였고 그보다 급한게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높고 널따란 슬로프에 매료되어 코가 얼어붙을듯 차디찬 바람을 삼키며 보드를 품에 안았다.
아직 때이른 리프트는 텅 비어서 그 넓은 자리를 혼자 차지한채 끝이 보이지 않는 하얀 언덕을 올랐다.
머지 않아 꼭대기에 올라서면 까마득한 점이 된 것들과 두 다리에 묶인 보드만이 시선에 가득 사로잡힌다.
몇년만인지 가물한 기억을 따라 조심스레 앞으로 몸을 쓸어내리다보면 머지 않아 여유로운 카빙에 자연스레 몸을 맡기게 된다.
낮춘 자세로 눈발을 휘날리며 완만한 언덕을 빠르게 타고 내려간다. 은빛 설원이 온통 자신의 것이 된듯 자유를 누린다.
누군가의 곤란한 뒷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요~ 스즈~ 스즈~ 일찍 올라왔네?"
미끄러지듯 옆에 멈춰서서 마치 '나야 나-'라고 말하듯 느긋하게 쓰고 있던 고글을 들어올려 인사했다.
장비를 스캔하듯 아래로 스윽 눈길을 두곤 양팔을 아슬아슬하게 휘젓다가 바닥에 털썩 넘어지듯이 앉았다.
"영상 찍고 있었어?"
왜 코스 중간에 멈춰서 있냐고. 상대편의 사정은 생각도 못하고 순수한 호기심으로 물었다.
727니시케다모리 이스즈 - 와타나베 슌 (4IhZmY0Uc.)
2025-3-16 (일) 오전 12:24:09
이스즈에게 있어 여행은 참 오랜만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해외로 자주 가족 여행을 가곤 했지만,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학업을 이유로 가족 여행에 함께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졌거니와, 부모님의 관심을 잃기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학교에도 잘 나가지 않으니 수학여행같은 것을 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가미즈나 마을로의 여정에 대한 이스즈의 기대는 학업과 생업으로부터 잠시간의 해방 정도였다.
그런 생각이 서서히 바뀐 것은, 버스에 어느새 알고 지낸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친구, 와타나베 슌과 함께 앉게 된 뒤부터였다. 버스 안에서 숙면을 취하겠다는 계획은 틀어졌을 지언정, 슌과 나누는 수다는 먼 길이 지루하지 않을 만큼 즐거웠다. 이스즈는 스스로에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곧 2년지기라지만, 남에게 이렇게나 내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될 줄이야. 아쉬운 점이라면 슌의 이야기를 물으려던 차에 가미즈나에 도착해버린 것이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짐을 풀고 소꿉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슌과 헤어진 이스즈는, 자신도 짐을 풀고 스키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곧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딛히고 말았다. 멋있어보인다는 이유로 호기롭게 보드를 고르고, 짧은 강습을 받은 뒤 슬로프에 올라 내려가기 시작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쇄애애액!!!
"으아아아!!! ...히익... 죽는 줄 알았네..."
슬로프의 중간쯤을 지날 무렵 속도를 주체하지 못한 채 반쯤 넘어지다시피 급정거를 해버린 뒤로 제대로 겁을 먹고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이대로면 영상거리는 고사하고 내려가질 못하겠는데. 그냥 한계를 인정하고 걸어서 내려갈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중, 한 스노우 보더가 이스즈에게 다가왔다. 슌이었다.
"아, 슌 군 안녕~! 강습 끝나고 바로 올라왔어."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슌이 묻는 말에, 이스즈는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하하, 아니. 내려가고 있었는데 사고 낼 뻔 해서 멈춰있었어. 그 뒤로 내려가기가 겁나더라구~."
계속 슬로프에 있는 것도 그렇고 그냥 벗어서 들고 내려갈까... 라는 생각도 잠시, 오기가 생겼다. 내 운동신경 나쁘지 않은데, 감만 잡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아까 내려오는 거 봤는데, 슌 군 잘 타더라!"
"괜찮으면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멈추는 것 까지는 좀 알 것 같은데 내려갈 때 속도 조절하는 게 좀 어렵더라구."
62와타나베 슌 - 니시케다모리 이스즈 (5o2hoEE0yC)
2025-3-16 (일) 오후 08:31:57
situplay>2247>727
이스즈를 알게 된건 작년 2학년이 시작될 무렵즈음이었다. 운동에 미쳐있던 그때에는 오가며 인사 몇번 나누는게 전부였는데.
니시씨라고 부르던 호칭이 니시양이 되고 스즈가 되는데까지는 생각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간이 모든걸 해결해준다곤 하지만 역시나 관계의 절대성을 채워주는 것은 한 그릇의 즐거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학교에선 말수가 많질 못해서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지만 줄곧 가게를 찾아줄때마다 실없는 소리라도 늘어놓을 기회가 생겼으니까.
코스 중간에 고립된 사정을 듣고 여기서 얼마나 버티고 있었던거지 싶어 머쓱한 미소(◉◃◉)를 짓게 된다.
그런 모습이 낯설진 않다. 저도 예전에 토모군이랑 스키장 처음 왔을땐 겁 잔뜩 먹어서 호들갑을 떨며 거의 구르듯 기어 내려가곤 했었지.
"오케~ 그럼 바로 내려가볼까? 뒤에서 자세 봐줄게."
가볍게 폴짝 일어나 손을 털고 데크를 기울였다. 기습 칭찬에 화악 피어오르는 낯부끄러운 웃음기를 고글을 눌러쓰는 손길 사이로 감추면서.
저도 오랜만에 타는터라 꼭대기에서 몇번이고 굴러댔지만 그런건 금방 잊어버리고 시동을 걸듯 양팔을 흐느적거렸다.
"하나 둘 셋하면 같이 출발하는거다?"
하나 둘, 그리고 셋을 가볍게 외치며 미끄러지듯 아래로 눈을 쓸어 내려간다. 보드는 가로로 잡은채 약간의 거리감을 두고 뒤를 따라갈 생각이다.
94니시케다모리 이스즈 - 와타나베 슌 (4IhZmY0Uc.)
2025-3-16 (일) 오후 09:27:30
situplay>2329>62
사정을 듣는 슌의 얼굴에도 머쓱한 미소가 떠오르는 걸 보며, 이스즈는 보드 타는 건 처음이었단 말야! 라고 변명이라도 할까 했으나, 이내 그만두었다. 타다 말고 코스 한 가운데서 버티고 있는 것만 봐도 겁먹은 초보자 꼴인걸, 뭐. 그도 잠시, 뒤에서 자세를 봐주겠다는 말에 이스즈는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살았다, 히히. 그럼 잘 부탁할게!"
슌이 고글을 고쳐 쓰는 동안, 이스즈 역시 헬멧과 고글을 바로 쓰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괜찮아, 스키복도 잔뜩 껴입었고 헬멧도 했으니 넘어지더라도 엄청 아프진 않겠지.
"좋아! 그럼... 하나, 둘, 셋!"
두려움을 누르며 동시에 셋을 세고, 일자로 눕혔던 보드를 모로 기울여 쭈뼛쭈뼛 경사를 타기 시작했다. 가다가 멈추고, 또 가다가 멈추고를 반복하던 이스즈는...
58
1~25 가속도가 붙더니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데굴데굴 굴러갔다.
26~50 잘 타나 싶더니 가속도가 붙자 멈칫하더니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50~75 여전히 가다가 멈추고, 가다가 멈추고를 반복한다.
76~100 불안불안하지만 S자를 그리며 조심조심 내려간다.
113와타나베 슌 - 니시케다모리 이스즈 (5o2hoEE0yC)
2025-3-16 (일) 오후 10:29:29
situplay>2329>94
살짝 뒤편에 서서 자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데 뭐임, 약간 어색한 기색이 있긴해도 잘 하는 것 같은데?
"나이스한데?! 역시 그냥 풍경 구경하고 있었던거지?"
속도에 맞춰 옆으로 살짝 돌아 손을 들며 외쳤다. 이정도면 무서워서 내려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호기 있게 홀로 오른건 이번이 처음이라던가. 저도 익숙해질때까진 혼자 리프트 탈 생각 못했으니까.
"다리에 중심 딱 잡구! 사선으로 살짝 쓸어봐 그리고 턴. 다시 중심 잡구 사선으로 쓸면서 턴."
그냥 옆에서 봐주기만 하면 되는데 이 운동쟁이의 참견이 또 발동해버렸다.
스즈보다 살짝 앞으로 나아간 자리에서 잠시 멈춰서서 연계동작을 가볍게 설명하듯 시연한다.
인간 마네킹이 된듯 양팔을 쭈욱 뻗어 슬리핑 자세를 취하고 사선으로 쓸어 내려갔다가 살짝 턴,
"재밌지? 여기서 좀더 익숙해지잖아?"
슌은 장난스럽게 아슬아슬 두 어깨를 흔들어대다가 빠르게 옆으로 몸을 꺾어 거의 바닥에 눕듯 과감한 엣징과 함께 한손으로 눈을 쓸며 내려간다.
그대로 눈발을 흩날리며 좌우 카빙턴을 반복하다가 눈앞의 키커 위에서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듯 푸른 하늘 높이 백플립을 한차례 꺾는다.
"와- 와아아아아앗-!!"
반사적으로 바닥에 착지하면서도 자신도 성공할줄 몰랐다는듯 미끄러지는 와중에도 두팔을 번쩍 들어올려 도파민 가득한 함성을 내지른다.
방금 그거 봤냐고- 한껏 높아진 어깨로 고글까지 들어올리다가 결국 중심을 잃고 뒤로 자빠져 스무스하게 안전망에 걸려버렸다. 하얀 입김 틈새로 가벼운 실소가 우하하 터져나온다.
231니시케다모리 이스즈 - 와타나베 슌 (WHrviQEfZq)
2025-3-17 (월) 오전 12:20:35
situplay>2329>113
소심하게 천천히 가다 멈추고, 또 가다가 멈추고를 반복한다. 동영상에서는 좀더 부드러우면서도 과감하게 내려가던데, 역시 초짜라 이게 한계려나. 발끝만 바라보며 쭈뼛쭈뼛 내려가려니, 뒤에서 들려오는 칭찬에 이스즈는 짐짓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치? 초보 치고는 나쁘지 않지?"
그래도 좀 전보다는 나은 것 같기도? 근데 사선으로 틀었다가 속도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졌는데, 어떻게, 한번 해볼까? 고민하던 찰나, 슌이 앞으로 나오며 보여주는 동작을 보며 어설프게나마 다리를 움직였다.
"다리 중심 잡고... 사선으로 쓸다가... 이렇게?"
사선으로 방향을 틀려니 역시나 빨라지는 속도에 겁이 났지만, 침착하게 몸을 틀었다. 어라, 아까보다 좀 잘 내려가지는 것 같은데? 어느새 두려움보다는 흥분감이 밀려오는 걸 느끼며 슌을 따라 내려가던 이스즈는, 슌이 아슬아슬하게 어깨를 흔들어대더니, 거의 바닥에 눕듯이 과감하게 몸을 꺾은 채 한 손으로 눈을 쓸며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대단해, 스모 뿐만 아니라 여러 운동을 잘 하는구나. 그리고 다음 순간, 이스즈는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가까스로 보드를 멈춰세워야만 했다. 슌이 키커 위에서 높이 뛰어오르더니, 그대로 몸을 한바퀴 굴리며 말 그대로 하늘을 날았기 때문이었다.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고 입을 벌린 채 슌의 궤적을 눈으로 좇던 이스즈는, 슌이 두 팔을 들어올리며 함성을 내지르더니 의기양양하게 고글을 들어올리려다 그만 뒤로 자빠지자, "슌 군!!"이라고 소리치며 - 슌이 가르쳐준 대로 - 보드를 사선으로 틀어 급하게 내려갔다. 그러다 슌의 바로 옆에서 멈춰서려다 마찬가지로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러나 아파할 여유는 없었다. 이스즈는 바로 옆에 주저앉은 슌을 향해 상체를 돌리고 잔뜩 흥분한 목소리를 높였다.
"아까 진짜 대단했어!!! 거의 하늘을 날던데?! 완전 멋있었어!!! ...아, 아쉽다. 방금 그거 동영상으로 찍었으면 좋았을 걸!!"
어디 가서 쉽게 보지 못할 피사체를 놓쳤다는 생각에 으으... 하는 탄식이 절로 새어나왔다. 멈춘 김에 핸드폰 꺼낼걸!! ...어쩔 수 없지. 그런 진풍경을 볼 줄 알았나. 흥분감이 가시자 고개를 든 감정은, 엉덩방아를 찧은 슌에 대한 걱정이었다.
"아, 그나저나 넘어진 건 괜찮아? 안 다쳤어?"
858와타나베 슌 - 니시케다모리 이스즈 (KGSsiu7G.e)
2025-3-18 (화) 오전 12:27:23
situplay>2329>231
만약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원하는대로 찍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스즈의 말에 공감하듯 가볍게 씩 미소지으며 일어나 바지춤에 잔뜩 묻은 눈을 털어냈다.
"이거 생각보다 땅땅하네~ 엄청 폭신할줄 알았는데.. 헤헤"
아무 일도 업섯따, 당당한 표정으로 외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엄살이 너무 심해서 저릿한 엉덩이를 문질러대기만 했다.
하얀 눈길 위에서 서로 가까워지기라도 하면 마치 방금 완전 쩔어줬지? 라고 말하듯 손을 뻗어 뒤늦은 하이파이브를 건넨다.
"재밌지? 보드란거. 처음엔 넘어질까봐 엄청 조마조마해도 한번 맛들리면 나도 모르게 속도 내게 된다니까?"
토모군에게 직활강은 위험하단 소리만 백번은 넘게 들은 것 같다. 이 철부지 도파민 추구자가 교정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그럼 다시 가볼까? 뒤에 사람 오나 봐줄게."
마치 시간에 쫓기는 사람처럼 잠시동안의 쉴틈도 용납할 수 없다는듯이 스즈를 재촉했다. 성격 급한 강사 아저씨들처럼 강압적으로 가르키려 든다는 태도보단 그저 오후 놀이터에서 흙찡구를 하고 놀던 아이처럼 일분 일초가 흥분에 겨운 그런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무작정 앞으로 달려가기보단 옆의 속도에 맞춰 자신도 천천히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팔을 벌려 중심을 잡은채로 멈춰섰다가 사선으로 틀어 미끄러지고 돌기를 반복하며 낙엽처럼 천천히 떨어진다.
슌은 여유 가득한 표정으로 할만 하냐고 묻듯 반짝이는 눈빛으로 스즈쪽을 바라보았다.
널따란 스키장을 내려가다보면 어느덧 맑은 하늘엔 구름으로 가득 채워져 눈발이 하나둘씩 내려오기 시작한다.
작고 포슬포슬한 것들로 시작된 눈은 곧 순식간에 수가 불어나 뺨을 때릴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쏟아진다.
"와악- 눈, 눈 엄청 온다- 빨리 내려가야겠는데?"
함박눈이 맑은 눈동자에 포옥 하고 내려앉자 물에 빠진 고양이처럼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뒤늦게 고글을 눌러쓴 슌은 반대편 스즈에게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위험할 것 같다고 이제 그만 내려가자 손짓한다.
78니시케다모리 이스즈 - 와타나베 슌 (bY73/qCY.S)
2025-3-18 (화) 오후 06:57:05
situplay>2329>858
"아야야, 그러게.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녀서 그런가봐. 나중에도 계속 아프면 병원 꼭 가봐."
슌을 따라 엉덩이를 털며 일어나려니, 역시나 엉덩이가 욱신거려와 이스즈는 잠시 이마를 찡그렸다. 아픈 것보다도 병원비 나가면 골치 아픈데. 살살 타야겠어... 그런 현실적인 고민도 잠시, 슌이 손을 뻗어오자 이스즈 역시 생글 웃으며 손을 가볍게 맞부딛혔다.
"그러게, 되게 재밌다! 아까 슌 군 처럼 공중제비 도는 건 엄두가 안 나긴 하지만. 덕분에 좀 감 잡은 것 같아. 고마워!"
슌 군이 아니었으면 아마 슬로프 가장자리로 이동해서 보드를 들고 걸어내려가며 패배감을 맛보지 않았을까. 다시 가보자는 말에, 이스즈는 다시 자세를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다시 가보자! 이번에도 잘 부탁할게~!"
조금 전처럼 보드를 가로로 한 채 팔을 벌린 채 다리에 힘을 주고 조금씩 내려가다, 조심스레 보드를 모로 기울여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몇번 몸을 틀어 S자를 그리며 내려가다보니, 차차 여유를 찾은 이스즈는, 할만 하냐고 묻듯 물에 젖은 까만 조약돌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로 이 쪽을 바라보는 슌에게 씩 웃으며 엄지를 치켜올려 보였다.
이거, 타다보니 말 타는 것보다 나은데? 엉덩이도 안 아프고 미끄러지는 느낌도 좋고. 언제 겁먹었냐는 듯 보드에 열중하던 중, 와악ㅡ 하는 소리에 이스즈는 급히 보드를 틀어 멈추어 섰다. 멈춰서 보니 하늘에서 굵은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고, 스키와 보드를 타던 사람들도 급히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게, 갑자기 눈이 많이 오네... 이대로 있다간 조난당하겠다. 얼른 실내로 들어가자!"
마음이 급해진 이스즈는 보드를 벗어 한쪽 팔에 끼고, 행여나 눈보라 속에서 슌을 잃어버릴까봐 그의 팔 소매를 잡은 채 급히 슬로프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앞도 잘 안 보일 정도로 펑펑 내리는 폭설을 맞으며 나아가고 있자니, 불안해졌다. 이래서야 리조트나 휴계소를 찾을 수 있을까? 인적도 드물어지고 눈이랑 나무 말고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그러고보니 이런 경우를 대비해 슬로프 중간에 산장을 만들어놨다고 들은 것 같은데, 평지로 이어지는 길이 있는지 잘 살펴봐야겠다. 그렇게 양옆을 살피며 슬로프를 내려가던 도중, 나무 사이로 난 길과, 산장으로 가는 길 이라고 쓰여진 표지판을 발견하자, 이스즈는 "슌 군, 이쪽이야!" 라며 슌을 이끌었다.
271와타나베 슌 - 니시케다모리 이스즈 (KGSsiu7G.e)
2025-3-18 (화) 오후 11:38:42
눈발은 더욱 거세어져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려졌다. 이런적 한번도 없었는데. 즐겁다고 하기엔 조금 섬칫한 느낌이 들어서 내색은 안했지만 내려오는 내내 약간 신경이 곤두서버렸다.78
흔한 안내방송 한마디 나오지 않고 뭔가 스산한 기분에 다리를 묶고 있던 보드를 조금 서둘러 풀었다. 이럴줄 알았다면 오늘 일기예보 정도는 챙겨볼걸 그랬나.
코스 아래까지 내려왔지만 여전히 하얀 눈밭밖에 보이지 않았다. 묘한 일이다. 그 높은 리조트 건물도 즐비한 리프트도 많던 사람들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길이라도 잘못 든걸까.
곤란한 눈빛으로 주변을 훑을때 스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가 내려오는 길을 이끌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반대로 도움어린 손길을 받는다.
"저기 스-쨩 뭔가 조금 이상하지 않아? 아까랑 뭔가 엄청 다른 길로 들어온 것 같은데.. 아님 기분 탓인가?"
혹시나 옆구리에 낀 보드를 놓칠새라 꽈악 붙잡으며 물었다. 눈에 반쯤 가려진 작은 표지판을 지나 소복히 쌓인 눈을 밟다보면 조금 낯설어보이는 지붕 하나가 뿌연 눈안개 사이로 들어서기 시작한다.
닿는 발길마다 푹푹 꺼지는 눈바닥에 각자를 의지하듯 소매로 닿는 손길에 한 손을 더한다. 귓가를 시큰하게 때려오는 거친 눈발에 생각할 틈도 없이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곧 외딴 산장 앞에 닿은 슌은 망설일 틈도 없이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차가운 바람이 멎어들고 따뜻한 온기에 곤두선 신경이 가라앉는다.
"와, 나 이렇게 스키장에서 눈 많이 내리는거 처음 봐.."
슌은 살짝 기빨린듯한 표정 ( ◜࿀◝ ) 으로 터덜터덜 고글과 헬멧을 벗어 내려놓으며 말했다. 보드에 심취한 나머지 제법 둥지를 튼듯 까치집 같이 붕 뜬 머리가 푱- 하고 튀어나온다.
"이런데도 있었네? 못봤는데. 다른 애들은 잘 들어갔으려나.."
안도하기도 잠시 창밖으로 매섭게 쏟아지는 눈보라에 당장 친구들 걱정이 앞섰다. 토모군하고 후유카 유토 토고.. 다들 잘 들어갔으려나. 눈 엄청 많이 오는데.
뭔가 마냥 신나는 상황은 못됐지만 왠지 모를 고즈넉한 기분에 긴장이 푸욱 풀린듯 아무데나 대충 걸터앉았다. 눈.. 금방 그치겠지?
289니시케다모리 이스즈 - 와타나베 슌 (KPWRplBaNe)
2025-3-19 (수) 오전 12:37:41
"들었는데,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슬로프마다 산장이 있다나봐. 우선은 안에 들어가서 숨좀 돌리자."271
아까 본 표지판이 누군가의 짓궂은 낚시는 아니길. 그렇게 마음속으로 빌며, 이스즈는 그렇게 대답했다. 푹푹 꺼지는 다리를 애써 움직이려니, 좀 전의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을 증명하듯 눈보라 사이로 지붕과 창문으로부터 새어나오는 빛이 보였다.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쉬던 찰나, 이스즈는 슌의 팔소매를 쥔 손에 무언가 든든한 것이 더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슌 군도 불안했구나. 하긴, 슬로프 한복판에서 조난당할 뻔 했으니까. 혼자 조난당한 게 아니라서 다행이네, 여러모로. 그런 생각을 하며 슌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려니, 훈훈한 기운이 훅 몸을 감쌌다. 벽난로에 불은 켜져있지 않았지만 끝없이 몰아칠 것만 같은 눈보라를 피한 것만으로도 좀 살 것 같았다.
"나도. 세상에, 일본에서 화이트 아웃을 경험할 줄은 몰랐어."
여기가 알래스카나 시베리아도 아니고! 투덜거리던 것도 잠시, 슌이 헬멧을 벗자 푱- 하고 튀어나오는 까치집같은 머리에, 이스즈는 그만 큭큭 웃고 말았다. 머리가 무슨 아기고양이 솜털같이 붕 떴네. 그렇게 실없이 웃은 것도 잠시, 이어진 말에, 이스즈는 덩달아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어 핸드폰을 확인했다.
"흠, 그러게. 우리처럼 슬로프 한복판에서 조난당하진 않았어야 할텐데... 아, 그래도 핸드폰은 터지는 것 같아!"
불행 중 다행이네. 이스즈는 학교에서 슌을 제외하면 알고 지내는 유이한 두 사람, 차드와 후유카에게 별일 없느냐는 라인을 보낸 뒤, 고민 끝에 노에루에게도 라인을 보냈다. ...모르겠다. 셋 다 별 일 없었으면 좋겠네. 이스즈는 보드를 한 구석에 세워둔 뒤 스키복을 벗고서 산장 안을 살피다, 한 쪽에 쌓인 장작을 가져와 벽난로 안에 잘 쌓고는, 라이터로 불을 붙인 뒤 불쏘시개로 불씨를 키우기 시작했다. 어느덧 불이 활활 타오르자, 이스즈는 긴장이 풀린 듯 푹 걸터앉아 있는 슌을 향해 손짓했다.
"슌 군, 이리 와봐! 몸 좀 녹이자."
704와타나베 슌 - 니시케다모리 이스즈 (sNZKuVDTCS)
2025-3-20 (목) 오전 12:49:54
화악 하고 피어오르는 불씨에 어두운 내부가 은은한 주홍빛으로 물든다. 스키복을 벗어던질 틈도 없이 진이 빠져 있던 눈동자에는 어느덧 맑게 피어오른 한줌의 불로 가득 차올랐다.289
"와아, 뭐야뭐야 이거 어떻게 한거야?"
어깨에 내려앉은 눈이 사그라들지 못한 이른 때에 감탄어린 목소리로 불가에 가까워졌다.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따스함을 선사해준 스즈에게 넘버원이라고 외치듯 엄지를 치켜세운다.
두꺼운 스키복 아래엔 한장 츄리닝 정도가 전부라서 완전히 다 벗진 못하고 지퍼만 반쯤 내려둔채로 적당한 자리에 쪼그려 앉아 불멍을 때린다.
핸드폰은 자주 사용하는 편이 아니라 심심한 손은 바닥에 깔린 카페트나 톡톡 두드리거나 눈발이 쏟아지는 창밖을 향해 시선을 옮기기도 한다.
긴장이 풀리니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귓가를 적셔온다. 장작불 타들어가는 소리와 지붕 위로 떨어지는 눈소리. 그리고 여기엔 저를 포함해 오직 둘뿐이라는 그런 생각이 어렴풋이 스쳐간다.
아무리 애들이랑 친해도 방 안에 둘이 있던건 토모군이 거의 유일하다시피해서 바로 옆에 있는 상대가 스즈라고 해도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눈 많이 오는거 보니까 이제 곧 봄 되려나봐."
말수가 많은 편이 되지 못하지만 적막도 그리 좋아하진 않아서 아무 말이나 일단 내뱉었다.
근거라고는 전혀 없는 이야기였지만 이런 큰 눈을 맞이한다는건 겨울의 중심을 지나고 있다는 증거이지 않을까라고, 가미유키에 한평생을 살던 소년은 그렇게 생각했다.
"수학여행, 이번이 처음이랬나? 바쁘겠네 스즈쨩. 처음이자 마지막 수학여행이라니까. 나라면 조금 조바심 생길지도."
만약 자신이 스즈와 같은 사정이었다면 아마 뭔가 더 많이 남기고 싶다는 그런 욕심에 즐기지도 못하고 급급하지 않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추억을 먹고 사는 소년에게 있어 가미유키에서의 남은 시간은 한순간 한순간 모든 것이 소중했으니까.
생각해보면 중학교때부터 고3을 맞이할때까지도 늘 그렇게 지내왔던 것 같다.
욕심 가득한 아이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싶어했고 그래서인지 매 순간이 조바심 가득한 순간이었다. 지금에 와선 그런건 다 내려놓았다고 생각 정도는 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런 공상에 빠지는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이거, 처음인데 엄청 따뜻하네."
18년을 살아오면서 실물 벽난로는 처음 본다고. 불이 피어오르는 자리를 손가락으로 살풋 가리켰다.
50니시케다모리 이스즈 - 와타나베 슌 (e49DJ5Mo1q)
2025-3-20 (목) 오후 10:39:09
situplay>2381>704
"히히, 땔감도 있고 라이터도 있으니 일도 아니지~ 어릴 때 캠핑 자주 갔는데 그땐 이런 거 스스로 해야 했거든. 그땐 라이터도 없어서 마찰식 점화법으로 피워야 했다?"
그때 비하면야 라이터가 있으니 식은 죽 먹기지…. 어느새 불가로 다가와 앉은 슌에게 뻐기듯 이야기를 늘어놓다 보니, 어쩐지 자위대 무용담을 늘어놓는 아저씨 같단 생각이 들어 이스즈는 머쓱하게 웃으며, 슌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렇게 잠시 말이 없는 사이, 적막 사이로 이런저런 소리가 끼어들었다. 어쩐지 ASMR 영상 속에 들어온 것 같네. 그런 실없는 생각과 함께 벽난로에서 전해져오는 훈기에 취해 불멍을 때리고 있자니, 문득 슌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날씨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슌 군도 이 상황이 조금은 어색한가보다. 그러고 보니, 나도 다른 사람이랑 단둘이 밀실에 갇혀보는 건 처음인 것 같네. 그래도 긴장보다는 편안함이 더 느껴지는 건, 상대가 슌 군이라서일까? 가미유키 마을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짐짓 서글서글한 모습을 연기하면서도 모두를 경계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타인을 조금은 신뢰하게 된 제 모습이 조금 낯설기도 한 이스즈였다.
"그러게, 작년에도 그렇고 이렇게 잔뜩 퍼붓고 나면 얼마 따뜻해지더라."
"따뜻해질 때쯤에는 슌 군도 나도 가미유키 마을에 없겠네."
슌 군은 진학, 도쿄에 있는 학교로 간다고 했었지. 나도 대학은 도쿄로 갈 거고. 서로 다른 학교고 도쿄는 넓지만, 그때도 친하게 지낼 수 있으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 희망 사항을 마음속으로만 떠올리려니, 슌이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처음이자 마지막 수학 여행. 도쿄에서 보낸 고등학교 1학년은 반항하느라 거의 학교에 나가질 않았고, 2학년 때도 일하느라 바빠서 수학여행 같은 건 챙기지 않았었다. 그랬는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미련이 생겼었다. 왜일까. 그렇긴 해도….
"그렇게까지 바쁘진 않아, 여행은 느긋하게 즐기는 주의거든. ...아, 그래도 여행 끝나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은 있긴 해. 키즈나 신사. 눈이 내린 신사 풍경 멋질 것 같지 않아?"
꼭 브이로그용 영상에 담아가고 말 거야! 그렇게 벼르듯 말하며, 이스즈는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그러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슌 군은 어떨까? 슌 군에게도 이번 수학여행이 마지막 수학여행이긴 마찬가지일 텐데.
"슌 군은 남은 기간은 어떻게 보낼 거야? 역시 소꿉친구들과 함께려나?"
그렇게 물으며, 이스즈는 부지깽이를 들어 장작을 조금 뒤적거렸다. 조금 기세가 약해졌던 불길이 도로 살아났다. 옳지. 이 정도면 오늘 밤은 끄떡없겠다. 그렇게 불길을 살려내고 슌의 옆자리로 돌아오려니, 들려오는 말에 이스즈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따뜻하고 낭만 있는 것 같아. "
여기다 뭔가 구워 먹으면 더 좋겠는데…. 벽난로도 있는 산장인데 뭔가 먹을 거 없으려나? 그런 생각이 들자, 이스즈는 "슌 군, 잠깐만"이라고 말하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을 뒤지던 이스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부엌 벽장에서는 마시멜로 한 봉지와 코코아가루가 담긴 상자를, 냉장고에서는 우유를, 부엌에 딸린 다용도실에서는 구워 먹기 좋은 굵직한 고구마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슌 군네 가게 도시락을 자주 먹었으니까, 약소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대접해야지. 슌 군에게는 고마운 것도 많으니까. 이스즈는 마시멜로를 꼬치에 꽂고 고구마를 호일로 감싸 준비하고, 냄비에 우유를 따끈하게 데운 뒤 코코아를 잘 섞어 김이 올라올 때쯤 머그잔 두 개에 나눠 담았다. 그러고는 간식거리와 코코아 두 잔을 쟁반에 받쳐 들고 다시 난롯가로 향했다.
"짜잔~"
"뒤져보니 먹을 게 좀 있더라구!"
소오인 차드
학교에서 맺어준 내 멘티야. 사실 처음엔 내 하숙집 꼬마들하고 비슷한 아일까봐 각오를 단단히 했었는데, 공부는 영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지만 착하고 내 수업을 잘 따라오려고 애써 주는 착한 아이야.
- 일상
- 리조트 오락시설에서
24차드 - 이스즈 (OT6546f4q2)
2025-3-20 (목) 오후 10:00:02
스키 리조트에는 스키 뿐만 아니라 여러 위락시설이 존재한다. 어른들이 안마의자에서 쉬는 동안 아이들은 범퍼카라던가, 미니 바이킹이라던가, 오락실의 여러 미니게임을 즐기도록 되어있다. 양쪽에서 돈을 버는 리조트의 간악한 설계.
그 중 가장 인기있는 것이라면 바로 범퍼카겠지. 바이킹이나 오락실에 비해 '수상할 정도로' 줄이 긴 범퍼카 코너에 이스즈가 문득 시선이 가면, 거기에는...
"햣―하―!!!!!!"
어린이를 상대로 진심 교통사고를 내고 있는, 선글라스를 낀 소오인 차드가 있었다. 소오인 차드는 이스즈와 눈이 마주치자, 선글라스를 손끝으로 살짝 젖히고 멋들어진 포즈로 말을 던진다.
"오랜만이군 선생, 돈은 내가 내겠다, 사양없이 타!"
라고 하다가, 건방진 초딩이 쾅!!!!!! 옆으로 들이받아 '으겍, 억, 이 망할 꼬맹이가!' 하며 다시 부웅 몰기 시작했다...
84니시케다모리 이스즈 - 소우인 차드 (e49DJ5Mo1q)
2025-3-20 (목) 오후 11:05:53
가미즈나 마을로 수학여행을 온 지 사흘 째. 이스즈는 셀카봉에 핸드폰을 매단 채 리조트의 여기저기를 탐방하고 있었다. 물론 목적은 하나였다. 브이로그를 위한 영상을 건지는 것. 그러던 이스즈가 도착한 곳은, 아마도 리조트에서 가장 소란스러운 장소, 바로 오락실이었다. 고등학생이지만 이런 장소가 그리울 때가 있단 말이지~. 미니게임이나 한판 해볼까 하는 마음에 오락실에 들어선 이스즈의 주의를 끈 것은, 수상할 정도로 길게 늘어선 범퍼카의 줄이었다. 궁금한 마음에 줄을 서보고, 어느덧 가까워질 때 쯤, 이스즈는 경악하고 말았다. 못말리는 자신의 멘티, 소우인 차드가 어린이를 상대로 진심으로 교통사고를 내나 싶더니, 이 쪽으로 다가와 멋들어진 포즈를 취하며 말을 건넨 것이다.24
"제자한테 얻어타는 선생이 어딨, 그보다 차드 군 고등학생이면서 어린애를 상대로 너무...... 가버렸네."
동공지진을 일으키며 버벅거리던 이스즈의 말은, 초등학생이 차드의 범퍼카를 들이받으면서 맥없이 끊어져야 했다. 자신의 뒤로도 줄이 길게 늘어선 상황. 이대로 서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이스즈는 직원에게 비용을 지불한 뒤 제 몫의 범퍼카에 탑승했다. 그러고는 신나게 폭주중인 차드에게로 돌진했다. 어쩐지 심하게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대사와 함께.
"받아랏, 차드 군!!! 참교육 어택!!!!!"
이스즈는...
3
1. 차드에게로 곧장 돌진했다!
2. 엉뚱한 어린이를 진심으로 들이받고 말았다!
3. 벽에 들이받고 말았다!
122차드 - 이스즈 (K4TYiqXp1G)
2025-3-21 (금) 오전 12:09:27
situplay>2449>84 니시케다모리 이스즈
"오, 이제 온 건가. 기다리고 있었다 선ㅅ..."
"으갹―!??!!"
그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인사를 하러 온 줄 알았던 선생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오히려 풀악셀을 밟으며 들이닥치더니 정면으로 받아버렸기 때문이다. 머리가 엉망진창으로 흔들린다. 머리카락이 까치집이 되고, 선글라스는 거기 아무렇게나 꽂혀진 몰골이 된다. 과연, 청소년의 무게가 실린 범퍼카는 초딩들과는 타격감부터가 다르다.
하지만 내가 누구?
뇌우한테 백드롭을 당해도 죽지 않은 자. 그리고 언제나 보복을 노리는 신 아닌가.
나는 모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몰골을 한 채 핸들을 꺾어 이스즈에게로 돌진한다. 악셀은 당연히 FULL로 밟았다. 언제나 완벽해보이던 선생을 나와 같은 까치집 몰골로 만들 수 있다니,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죽어라 선생―!!!!!"
성적을 올려준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승부욕에 절은 나에겐 거기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승부에 언제나 진심으로 임하지, 그 상대가 인간이더라도 말이야...
140니시케다모리 이스즈 - 소우인 차드 (0y4xMCWEZ6)
2025-3-21 (금) 오전 12:43:49
situplay>2449>122
"오호호~ 이제 고등학생의 무게를 알았겠지, 차드 군!"
예상치 못한 일격이었는지, 제 한방에 단정하던 모습이 단박에 흐트러져버린 차드를 보며, 이스즈 또한 유치하게 느껴질 만큼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니 어린이들 상대로는 살살 하라고 선생이자 선배답게 타이르려던 찰나, 그는 흠칫 했다. 그야말로 훌륭하게 흐트러진 차드로부터 무시무시한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이스즈는 급히 핸들을 틀었다. 그것은 생존본능이었다.
텅!!
정면으로 부딛히지는 않았지만 스친 것만으로도 저만치 밀려났다. 소름이 오싹 돋았다.
"차... 차드 군..."
"...무서운 아이!!"
공포와 맞먹는 스릴에 한껏 고양된 이스즈는 짐짓 오호호호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는 핸들을 바로 잡았다.
"어린이들은 조심하세요, 이제부턴 언니 오빠들 싸움이니까요!!"
이스즈는 (차드의 폭주에 기가 죽은 듯한) 어린이들 사이를 이리저리 달리다, 이내 악셀을 최대로 밟고 차드를 향해 돌진했다.
"받아랏!!! 보충수업 대쉬!!!!!"
...여전히 기묘한 스킬작명과 함께.
177차드 - 이스즈 (K4TYiqXp1G)
2025-3-21 (금) 오전 01:00:07
situplay>2449>140 니시케다모리 이스즈
-어이어이, 그런 뜨거운 싸움을 보여주고서 빠지라니.
-이쪽도 하트가 불타올라버렸다고!!
-자아, 가미즈나방범대 출동이다!
이스즈의 그런 주의는 혈기왕성한 소년들에겐 자극제에 불과했다. 나는 듣자마자 예측하고 있었다. 나 소오인 차드, 가미유키 놀이터의 유명한 광대 형은 어린아이의 마음에 통달해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초딩들마저 합류해, 지금은 완전히 난전이 되어버렸다!
"큭, 보충이라니...! 딸피는 졸업이나 하시지!"
나는 개너무한 발언을 하며 핸들을 틀었다. 이스즈의 대쉬를 옆에서 훼방놔준 초딩1 덕분에 스치는 차원이었지만, 몸이 잔뜩 흔들리며 선글라스가 공중으로 부유한다. 떨어지면 치명타! 범퍼카 바깥으로 몸을 빼 떨어지기 직전의 선글라스를 착 캐치한다. 그 불안한 자세로 핸들을 꺾어, 원심력을 살린 커브대쉬를 이스즈에게 선사한다!
이것도 다 물리를 잘 가르쳐준 이스즈 덕분이다.
"물론 졸업식에는 참석하지 못하겠지만―!!!!!"
죽어서.
216니시케다모리 이스즈 - 소우인 차드 (0y4xMCWEZ6)
2025-3-21 (금) 오전 01:28:33
situplay>2449>177
아차, 나 너무 동심으로 돌아가버린 거 아냐?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꼬마들이 한마디 씩 얹으며 박아오는 통에, 풀악셀을 밟고서 달려들었던 이스즈는 차드를 놓치고 말았다. 공중으로 부유한 썬글라스를 멋들어지게 잡으며 도발하는 차드를 보며, 이스즈는 또 한번 아동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마녀마냥 오호호 하고 높게 웃어젖힌 뒤 기세등등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졸업해도 차드 군 성적이 떨어지면 얼마든지 보충수업 해줄... 꺄아악!!!"
콰앙!!!
차드의 커브대쉬가 말 그대로 이스즈의 차에 직격했고, 이스즈의 차는 한참을 밀려나다 벽에 부딛히고서야 멈췄다. 어느새 머리가 풀려 산발이 된 몰골이었지만, 이스즈의 얼굴은 희열에 차 있었다.
"방금 그거, 제법이었어. 차드 군!! 역시 내 제자야!!"
"자, 그럼... 이것도 받아내 보실까!!"
이스즈는 달려드는 꼬마들을 피해가며 내달리다, 적당한 거리를 확보하고 장애물이 없어진 바로 그 순간, 악셀을 꽉 밟으며 차드를 향해 돌진했다.
"마구잡이 학습 돌지이이이이인!!!!!!"
543차드 - 이스즈 (K4TYiqXp1G)
2025-3-21 (금) 오후 09:30:24
situplay>2449>216 니시케다모리 이스즈
-어이어이 저녀석들... 진심으로 겨루고 있다고...
-자존심을 건 이 승부를 훼방놓을 수는 없지, 자, 들러리들은 빠져주자구.
-후후 녀석... 뭘 좀 아는 걸.
신과 인간 사이의 진심살기가 깃든 눈빛교환을 보고, 가미즈나 방범대는 코밑을 훔치며 눈치좋게 구석으로 빠져준다. 그렇게 나와 선생의 일대일 승부의 무대가 마련되고, 결과는―
쿠 당 탕 탕 탕 !!!
나는 범퍼카에 쭈그려 앉았던 자세 그대로 부웅 떠올라, 범퍼카장 세번 뒷구르기 하다 울타리를 등으로 받고 나서야 멈췄다. 당연히 물구나무를 선 것처럼 거꾸로 돼선 하체도 자유분방하게 울타리에 걸쳐진 채로.
"나의 패배다......"
"큭, 역시 도쿄대는 다르다는 건가."
"그보다 어이, 대학진학을 해도 가르쳐주겠다는 건 방학 때마다 여기 온다는 소리렷다."
일단 일어서야 하는데 이스즈의 대학 이야기에 어그로가 끌려서 그냥 메쳐진 자세 그대로 물었다.
584니시케다모리 이스즈 - 소오인 차드 (0y4xMCWEZ6)
2025-3-21 (금) 오후 09:47:57
situplay>2449>543
쿠당탕탕탕!!!
"꺄아악!!! 차드 군!!!!"
마구잡이 학습 돌진을 시전하던 기세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이스즈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하이 소프라노로 득음을 하며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차드의 몸이 공중으로 부웅 떠오르더니, 범퍼커장으로 세번 뒷구르기를 하다 울타리를 등으로 받은 것이다. 이스즈는 기겁해서는 "멈춰요!!! 다들 멈춰!!!!" 라고 소리치며 차에서 나와 차드를 향해 달려가, 그의 몸을 살폈다.
"차드 군, 괜찮아?! 안 다쳤어?!!!"
목뼈나 척추 어디 나간 거 아냐? 물구나무를 선 것처럼 거꾸로 엎어진 차드를 건들지도 못하고 동동거리려니, 차드가 그 자세 그대로 태연하게 방학마다 와서 공부를 봐주겠냐고 묻자, 사색이 된 이스즈가 빽 소리를 질렀다.
"그게 지금 중요해?! 의무실 가자!! 아니, 구급차를 불러야...!!"
이스즈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차드가 만류하지 않는다면 전화로 구급차를 부를 것이다.
597차드 - 이스즈 (K4TYiqXp1G)
2025-3-21 (금) 오후 09:53:38
situplay>2449>584 니시케다모리 이스즈
"아니, 호들갑 STOP."
"난 아주 건강해."
벌떡 일어나서 걸어도 보이고, 옆구르기도 해보인다. 완전 건강해용. 옆구르기를 말끔하게 하자 옆의 가미즈나 방범대 잼민이들이 박수를 짝짝짝 쳐줘서 어쩐지 우쭐해진다.
"애초에 고작 범퍼카잖나. 3층에서 뛰어내려서 다리를 뽀개먹은 것도 아니고 이런 거에..."
라고 말하다, 깨닫는다. 이건 나의 전생(이라고 취급된다면 말이지) 중학교 시절의 이벤트였지. 그 때는 기절놀이라는 게 국민 놀이였고 10층 맨션 베란다 난간을 넘어다니지 않으면 치킨으로 간주될 시절. 학교 3층에서 뛰어내리는 건 뭇 남학생이라면 다 하던 일.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STOP."
어, 어쩌면 나의 세대차이가 들킬지도 몰라. 급격히 쫄리기 시작한다.
"난 아주 MZ하고 용감할 뿐이야."
611니시케다모리 이스즈 - 소오인 차드 (0y4xMCWEZ6)
2025-3-21 (금) 오후 10:06:07
situplay>2449>597
목뼈나 척추가 부러진 줄 알고 건드리지도 못하던 차드가 벌떡 일어나서는 걸어보이고 옆구르기까지 해보이자, 이스즈는 안도보다 앞선 놀람에 터져나올 뻔한 비명을 도로 삼켰다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데, 요즘 시대에 3층에서 뛰어내려서 다리를 뽀개먹었다고? 그거 되게... 사와무라 아저씨(주: 이스즈네 하숙집 주인부부 중 남편) 세대에나 있을법한 무용담 아냐? 그런 이스즈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차드가 변명하듯 꺼낸 골 때리는 멘트에, 이스즈는 척척척 차드에게 걸어가서는-
"안전벨트는 맸어야지 차드 군 욘석아아아아!!!"
까치발을 들고 팔을 번쩍 들어올린 채 차드의 볼살을 마구마구 늘이려 했다.
"차드 군 뼈가 튼튼해서 망정이지 너 잘못 굴렀으면 평생 휠체어 타고 다녔어!! 범퍼카를 타면서 안전벨트도 안 매는 녀석이 어딨냐구우우우!!!"
십년 감수했네!! 앞길 창창한 애 못 걷게 만드는 줄 알았잖아!!! 그렇게 차드를 나름대로 응징하는데 성공했든 아니든, 이스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차드를 끌고 범퍼카장에서 나가려 했다.
"...일단 나가자, 안 다친 건 다행이지만 뼈나 근육이 놀랬을 지도 몰라."
869차드 - 이스즈 (Qa06TMRLcC)
2025-3-22 (토) 오후 03:34:51
situplay>2449>611 니시케다모리 이스즈
"앋앋한애."
답답하다고 볼이 늘어진 채 말대꾸한다. 생각해보면 저번 생에 운전하다가 깨장창했을 때도 안전벨트를 안 맸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바로 한 번의 생을 마무리했던 건가 하고 15년 늦은 깨달음을 얻는다. 수업에서 매번 말할 때는 다 흘려 들었는데 선생이 몸소 알려주니까 좀 중요성이 실감되는 것도 같다.
"아니, 내가 여러번 굴러봐서 아는데 저정도로는 절대 허리 안 부러진다."
물론 유리인형(전내쌤) 기준이긴 하지만.
"그보다 선생은 너무 걱정이 많은 것 아닌가? 우리 고등어잡다가 마주친 적도 있는데, 그렇게 겁이 많으면서 어떻게 배는 탄 거야. 따지고 보면 안전벨트 안 맨 범퍼카보다 뱃일이 더 위험하다. 설마하니..."
"뱃일이 그냥 힘 쓰는 거라 돈 많이 주는 줄 알았단 이야기는 안 하겠지."
물론 그 업무가 상하차에 비견되고 울렁울렁거리고, 씻기도 힘든 극악한 환경이기야 하지만. 무엇보다 수당이 높은 데에는 언제고 천재지변이 닥쳐올 수 있단 점에 있었다. 둘이 일할 땐 다행이도 그런 일이 없었다만.
878니시케다모리 이스즈 - 소오인 차드 (dF9usj9urm)
2025-3-22 (토) 오후 04:32:05
situplay>2449>869
"으이구우우, 못살아 못살아 증말."
이스즈는 십년 감수한 데에 대한 보복으로 차드의 볼을 슬라임마냥 늘였다 눌렀다를 반복하고서야 놓아주었다. 뭐, 어때. 안 다쳤으니 된 거지... 라고 생각하고 싶어도 뭔 스턴트맨마냥 굴렀잖아! 아니, 심지어...
"저렇게 여러번 굴렀어?!?!"
차드의 발언에 이스즈는 또 한번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모델이라는 애가 몸을 그렇게 막 쓰면 어떡해?"
"그전에 차드 군 그러다가 훅 간다? 몸 좀 살살 써!"
뒤이어 돌아온 걱정이 너무 많은 거 아니냐는 말에, 이스즈는 꼬장을 부리는 어르신마냥 허리에 손을 대고, 그야말로 꼰대같은 발언부터 외쳤다.
"차드 군도 내 나이 돼봐!! 원래 늙으면 걱정이 많아지는 법이야."
"그리고 뱃일은 돈이라도 많이 주지, 안전벨트 없이 범퍼카 탄다고 뭐 도전과제 달성이라도 되는 것도 아니잖아! 오히려 병원비 들 수도 있지."
"그러니까 다음에 탈 땐 안전벨트 꼭 매라구!"
따발총마냥 다다다다 잔소리를 쏟아붓고 나니, 좀은 머쓱해졌다. 엄청 기적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안 다쳤는데 너무 잔소리 했나.
"아이고... 그래도 안 다쳐서 천만다행이다."
"나온 김에 좀 쉴래? 아니면 미니게임 한판 할까?"
968차드 - 이스즈 (Qa06TMRLcC)
2025-3-22 (토) 오후 09:31:16
situplay>2449>878 니시케다모리 이스즈
몸을 마음껏 쓰는 건 하자가 생겨도 금방 수복되는 특이한 몸이기에 그렇다...는 사정을 인간에게 설명하긴 힘들지. 그래서 대충 내뱉는 변명은 간단했다.
"모델을 못하게 된다면 다른 일을 하면 그만이야. 널린 게 일자리 아닌가."
일단 범퍼카 구역에서 벗어나, 위락시설 공간을 둘러보며 걷는다.
"그보다 선생은 나이 적잖아. 열 여덟밖에 안 됐으면서 늙었다고 하긴. 이제 대학 갈 나이 아닌가? 그 때면 걱정보다는 야망과 의욕에 불타오를 나이잖아."
"전에도 느꼈지만 선생은 너무 가타부타 많은 걸 생각하고 걱정해. 그렇게 자기 앞가림 할 줄 알면 스스로를 믿을 법도 한데."
둘러보던 중 시야에 닿는 것은 평범한 인형뽑기 게임이다.
"저거나 할까. 이번에 인형뽑기를 잘하는 요령을 배운 적 있거든. 잔뜩 뽑아주마."
19니시케다모리 이스즈 - 소오인 차드 (dF9usj9urm)
2025-3-22 (토) 오후 10:10:28
situplay>2449>968
"차드 군처럼 막 구르다간 다른 일도 못할 수도 있어!"
이건 무모한 건지 혈기왕성한 건지... 잔소리 잔뜩 했으니 그만할까 싶다가도 잔소리하게 된다니까. 차드를 따라 위락시설을 가로질러 걷던 이스즈는, 그에게서 나온 뜻밖의 말에 그런가? 하는 표정이 되었다. 두살 어린 아이(사실은 자신보다 오래 산 신이지만)에게서 나이가 적다는 말을 들은 것도 뜻밖이었지만, 가장 머릿속에 맴도는 것은 자신이 많은 걸 생각하고 걱정한다는 말이었다.
"그런가... 어찌저찌 자기 앞가림같은 걸 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미래가 불확실하게 느껴져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 도쿄에 가면 새 일자리도 구해야 하고 말이지."
"...그것도 그거지만! 보통 사람은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 다칠 것 같으면 쫄리는 게 보통이라구!"
차드 군도 내 나이 돼봐, 라는 말이 도로 튀어나올 뻔 한 것을 이스즈는 겨우 삼켰다. 이러다가 흔히 말하는 젊은 꼰대가 되어버리겠어! 이어 차드가 인형 뽑기를 제안하자, 이스즈는 반색하며 대답했다.
"인형 뽑기? 재밌겠네! 나도 해볼래!"
"아, 하는 김에 그냥 하지 말고 내기도 할까? 먼저 뽑는데 성공하는 사람이 진 사람한테 음료수랑 간식 얻어먹는 걸로!"
츠키모토 후유카
여우 벌판에서 여우를 구경하다 만나서 친하게 지내게 된 후배야. 방과후에 뜨개질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기도 하지. 여건 상 가르쳐주는 게 번거로울만도 한 데도 친절하게 가르쳐줘.
토가미네 마코토
누구에게도 말 안한 건데, 사실 난 인간이 아닌 존재와 만난 적 있어. 일곱살 때였는데, 집에 머리가 길고 특이한 옷차림을 한 오빠가 돌아다니더라구. 근데 나 말고는 그 오빠를 못 본 거야. 그날 밤에 그 오빠가 내 방 창가에 나타났어. 그리고 모종의 거래를 했지. 그건 그런데, 그 신령 오빠랑 말투랑 목소리가 비슷한 후배가 후유카 쨩 네 반에 있더라고? 역시 그냥 닮은 사람이겠지?
5. 독백 ¶
- H
- 야간열차 블루스 ~ 북해 잇폰 그랑프리전 그 이후
- 덜컹거리는 소리도, 사람들의 말소리도 없이 그저 고요하기만 한 열차. 원래라면 컨디션 관리를 위해서라도 쪽잠을 잘 생각이었지만,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아, 그냥 눈발이 날리는 창밖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핸드폰을 만질 기분도 아니고, 연락할 사람도 없어서 핸드폰은 차게 식은 채로 무릎에 둔 채다. 역시, 이 적막은 야속하다. 잠도 들지 못하고 오늘의 경기를 계속 회상하게 하니까.
유도 대회에서, 슌 군은 대단했다. 스모 인터하이 3회전에서도 비록 졌을지언정 끝까지 훌륭하게 싸워냈지만, 오늘의 슌 군은 말 그대로 경기장을 날아다니듯 누비며, 숱한, 그리고 쟁쟁한 상대들을 쓰러뜨리고, 준결승, 결승까지 진출해서는, 막상막하의 싸움 끝에 당당히 승리를 거머쥐었다. 스모 때와 마찬가지로, 난 유도에도 견식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문외한의 시선으로 경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그런 내가 보기에도 슌 군은 정말 대단한 경기를 펼쳤다.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봤다. 지금은 입안에서 쇠맛이 나지만, 경기중에는 목이 아프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목청껏 응원했다. 슌 군의 귀에 닿을 만큼 큰 소리로 응원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있었지만, 슌 군이 이기길, 모처럼 도전했으니 슌 군이 가장 만족할 만한 결과를 거두길 진심으로 바랐으니까.
그랬는데도, 이 경기를 회상하면 착잡하고, 슌 군의 승리를 온전히 기뻐할 수가 없었다. 슌 군의 부상 때문이다. 슌 군은 경기에서 어깨와 손가락에 부상을 입었다. 슌 군의 관장님께서도 시합을 중지하자 조언하실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슌 군은 부러진 손가락에 테이핑을 하고 다시 경기장에 섰다.
그 때 나는 뭘 했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슌 군의 상태를 보러 대기실에 갔다가 아무 말도 해주지 못하고 객석으로 돌아왔다. 말리고 싶었다. 고등학교 시절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부상을 잘 회복한 다음에 다시 대회에 나가도 되지 않냐고. 그렇지만, 그러지 못했다. 관장님의 조언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슌 군이다. 이제 고작 2년 된 친구가 말린다고 들을까. 경기를 앞 둔 슌 군을 심란하게 만들 뿐이라고 생각했다.
슌 군이 부상당한 후부터, 나는 그 전과 다름없이 목이 터져라 응원하면서도, 차라리 슌 군이 그다음 상대에게 지길 바랐다. 경기를 계속하지 않는다면 슌 군의 어깨와 손가락이 나을 가능성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그렇지만, 슌 군은 보란 듯이 이겼다. 그다음 경기도, 준결승도, 결승에서도. 슌 군이 상대를 말 그대로 기술로 던져버리며 우승을 거머쥐었을 때는 말 그대로 기운이 다 빠져서 객석에 주저앉았다. 하루 종일 목이 터지도록 응원했다가 끝이 나니 실감이 안 나기도 했고, 슌 군이 이긴 건 기쁘지 않을 이유가 없었지만, 슌 군의 부상을 생각하면 마음 한 편이 무거워져서다.
경기가 끝나고, 솔직히 슌 군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렇지만 화장실에서 찬물 세수 한번 하고 말끔해진 얼굴로 시상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슌 군의 승리에 대한 기쁨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웃는 얼굴로 슌 군의 승리를 축하했다. 거짓말은 자신 있었다만, 슌 군은 눈치가 빠르니 내 거짓말을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야간열차를 탔다. 삿포로에서 느긋하게 여행할 수도 있고, 슌 군과 같은 열차를 타고 이야기하며 올 수도 있었겠지만, 다른 마음이 하나도 없이 진심으로 기쁜 체하는 건 시상식 때가 한계였다.
솔직히, 모르겠다. 스포츠 하는 고등학생들은 다 이렇게 한 군데 이상 망가지는 걸 불사하면서라도 그 순간에 충실하고 싶어 할까? ...물론 나도, 스포츠에 아주 연이 없진 않다. 승마도, 테니스도 스포츠니까. 다만 나는 스포츠를 즐겼고, 슌 군은 인생을 걸고 한 거지. 그 이유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걸 테고. 솔직히, 산장에서는 그 이유를 알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르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를 알고 공감한다면 나도 그렇게 하고 싶거나 슌 군한테 참견하고 싶어질 텐데 난 스포츠에 인생을 걸고 싶지도, 슌 군의 인생에 깊이 관여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고, 지금 느끼는 이 기분도 곧 지나갈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슌 군을 봐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지.
자야겠다. 지금 기분이 우울하다고 해서 내일 해야 할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내일은 우리 하숙집 이웃집 꼬맹이 녀석들의 과외를 해주는 날이다. 제대로 컨디션 관리를 해두지 않으면 놀고 싶어 하는 꼬맹이들의 페이스에 말려 수업 시간 중 반을 어영부영 날리고 말 거다. 그럼, 하숙비가 올라갈 거고 내 살림은 더 궁핍해지는 거고... 맙소사, 끔찍해. 얼른 자야겠다! 살림 생각을 하니 우울한 기분이 조금 가시는 듯해서, 이불 삼아 덮은 겉옷을 더 끌어 올리고 눈을 감았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