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히어로 vs 빌런? S2
"거 참, 귀찮은 짓들 하시네요."
??? | |
이명 | 아무개씨 |
소속 | 빌런(수장) |
성별 | 남 |
나이 | 27세 |
성향 | Sl>All |
등급 | 위험 |
1. 외모 ¶
공식선상에 나설 때는 얼굴이 비치지 않는 헬멧으로 얼굴을 가리곤 한다. 헬멧 안에는 음성변조기가 들어있는지, 헬멧을 썼을 때와 헬멧을 쓰지 않았을 때의 목소리가 다르다. 나름대로 2대 곰돌씨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헬멧에는 큐트한 곰돌이귀가 달려있다. 175cm의 키에, 마른 몸매. 스키니진을 예쁘게 소화하는 각선미를 보여준다. 긴 머리카락은 돌돌 말아 묶어두는지라 헬멧을 쓰고 있을 땐 머리길이를 가늠할 수 없다.
헬멧을 벗었을 때는 언제나 졸린 눈매에다 갈색 눈. 허리를 덮는 갈색 장발의 머리카락을 대충 흩어놓곤 한다. 회색 양복에 붉은 넥타이.
헬멧을 벗었을 때는 언제나 졸린 눈매에다 갈색 눈. 허리를 덮는 갈색 장발의 머리카락을 대충 흩어놓곤 한다. 회색 양복에 붉은 넥타이.
2. 성격 ¶
자타공인 귀차니스트. 이렇게 만사 온갖 것을 귀찮아하는 인간이 어째서 이리 세상에서 가장 귀찮아보이는 일을 맡았는지 알 수 없다. 첫 연설부터 그 모양이었으니 원.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수장다운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냉정하고 비정한 이미지를 연출하고자 하는 듯.
늘 귀찮은 듯한 얼굴의 눈매가 냉정하게 변하는 것이 인상적...이지만 헬멧을 쓰고 있기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능력때문인지, 원래 성격인지, 상당히 네거티브하다. 늘 "거짓말." "안 될거야." 가 입에 붙어있다.
늘 귀찮은 듯한 얼굴의 눈매가 냉정하게 변하는 것이 인상적...이지만 헬멧을 쓰고 있기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능력때문인지, 원래 성격인지, 상당히 네거티브하다. 늘 "거짓말." "안 될거야." 가 입에 붙어있다.
3. 이능력 ¶
위선의 미학
비슷한 제목의 어느 노래하고는 관계 없다. 거짓말을 지적받지 않았을 때, 상대를 일시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다. 하하하. 그게 뭐에요 ~ 정도로 넘기는 정도도 안 되고, 반드시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지적받아야 한다.
무력화라고 함은 일시적인 마비. 이능력 해제. 그 순간을 이용해서 날카롭게 살해하는 것이 주 싸움방식.
약 30초~1분간 무조건 스턴당하며, 어떤 말이 거짓말이었다...까지 생각이 도달해야지만 다시 30초~1분 후 스턴이 풀린다. 현재는 이 능력의 파훼법이 어느정도 이즈모측에 알려져버린 탓에, 자주 사용하진 않는다.
- 예시
- 아무개씨: "나는 백만장자야!"
A: "그렇군요!(무력화)"
B: "그게 뭐에요~(무력화)"
C: "뻥까지 마라.(무력화 피함.)"
약 30초~1분간 무조건 스턴당하며, 어떤 말이 거짓말이었다...까지 생각이 도달해야지만 다시 30초~1분 후 스턴이 풀린다. 현재는 이 능력의 파훼법이 어느정도 이즈모측에 알려져버린 탓에, 자주 사용하진 않는다.
4. 일상 ¶
- -Mr.아무개 - 하이디
- (4스레)
곰돌이귀 헬멧의 불편함을 한 몸으로 느끼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1월의 날씨는 결코 만만하지 않게 춥건만, 이 헬멧을 쓰고 하루종일 돌아다니려니 더위가 느껴지는 것이다. 덥다고 할까, 답답하다. 왜 이런 귀찮은 일을 시작해버렸을까. 아무개씨는 오늘도 세계가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차. 생각해보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세계가 망하게 하는 것이었다. 반복된 단순노동에 지쳐서 결국 본인이 뭘 하고 있었는지도 잊어버리는 수장이라니. 역시 저 말고 더 똑부러지는 사람이 하는게 좋지 않습니까? 2대 곰돌씨라는거 말이에요.
애초에 곰돌이귀 헬멧이라니, 누가 생각했는진 몰라도 센스 꽝이지 말입니다. 익명성이 필요한 거라면 그냥 헬멧인 편이 낫지 않습니까? 이런 디자인의 헬멧, 누가 쓰고 다닌단 말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수장으로서의 상징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라고 그 사람은 얘기했지만. ...상징성이니 뭐니,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라는 생각 뿐이었다. 안타깝게도 저는 그런 낭만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센스없다고 비난해도 소용 없다고요?
"...하아."
한숨을 쉰다. 헬멧 안에는 음성변조장치가 있어서, 누군가가 자신의 원래의 목소리를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나마 이건 좋은 센스라고 생각했다. 언제든지 때려치고 싶으면, 체격이 비슷한 자신의 대역에게 맡기고 다 때려치고 싶다... 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마음대로 될 것 같진 않지만.
아. 그래서.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니. 어디까지 생각했더라? 뭐라고 해야하지? 자신을 빌런이라고 칭하는 몸 약하고 맹랑한 아가씨가 이 근처에 자주 돌아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귀찮은 일이지만, 빌런의 신원을 확보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아마도. 빌런 부활을 알린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 '신 빌런'의 구심점은 그다지 크지 못하다. 그렇기때문에 구 빌런과 빌런을 자칭하는 자들을 하나하나 알아갈 필요가... 아... 진짜 귀찮은 일이다. 왜 이런 일을 시작해버렸지. 세계가 망해버렸으면... 다시금 의식의 흐름은 앞부분의 것으로 돌아간다.
ㅡ
1월의 날씨는 살을 에는듯 추웠다. 간식으로 먹을 푸딩을 사러,그리고 산책을 할 겸 나왔지만 괜히 나온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감사합니다."
푸딩은 언제나 달콤하고 맛있었다. 부드럽게 혀 위에서 녹는 그 감각은 상상만해도 기분좋아졌고,어서 집으로 돌아가서 저 달콤함을 음미할 생각에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혀 위에 가져다대면 달콤하게 사르르,녹을. 한 순간에 흩어져 의미없어지는,푸딩. 선악과를 탐하듯 이끌리는 달콤함.
혀에 닿은 무엇보다도 쓰고 독한 담배연기. 깊숙하게 폐로 들어가며,입 밖으로 다시 나올때는 제 생명을 갉아먹은채 뱉어지는.
눈 앞에 보이는 저 헬멧은,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없는 나라지만 한 눈에 알수 있었다. 2대 곰돌이씨. 왜 여기에? 여기는 내 행동반경 안이었다. 나를 찾아온건가? 느릿하게 담배를 태우며 생각에 잠겼다. 너무 깊게 생각하는걸까. 수가 부족했다. 알고있는 정보는 너무 적었고,저것과 나는 초면이었다.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는것처럼 의미없는 일...이라고 하기에는,너무나도 큰 저 존재. 롱패딩 안쪽에 달아놓은 권총을 매만진다.
다치지 않아야 하는데. 내게 무엇보다도 중요한건 언니와의 행복한 삶. 그리고 나누었던 약속.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성과 꿈과 모자라고 보잘것 없는 나. 느릿하게,절반쯤 태운 담배를 입에 물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하나,둘,셋. 어느덧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고,빙그레 눈을 휘어 웃으면서 속삭였다.
"안녕하세요. 이야,유명인을 보는건 처음이네요."
괜히 너스레를 떨며. 우선은 침착하자. 단순히 내 과민반응일수도 있고. 한 쪽으로만 깊게 생각하는 버릇은 내 악습이었다. 무엇때문에 이리도 지레 겁을 먹는단말인가? 나를 죽이려 덤벼드는 히어로도 아닌데. 경계를 할 뿐으로 족하자.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을까. 그 흥미에 이끌려 다가온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ㅡ
"아."
찾았다. 라는 말을 대신해서 그런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담배를 문 당신이 그에게 다가온다. 유명인이라니. 거 참, 농담도 적당히 해주시죠- ..라고 하기에는, 일을 너무 크게 벌려버렸다. 무슨 얘기부터 하는 게 좋을까.
"괜히 경계는 하지 말아주십쇼- 저는 나쁜 사람이긴 하지만, 그 쪽을 해치러 온건 아닙니다."
솔직하게 대답한다. 거짓말이라고 의심받는 것은 싫으니, 솔직하게. 너무 솔직했던 탓에 모양새가 우스꽝스럽긴 하지만서도. 안전함을 나타내기 위한 표시인지 가죽장갑을 낀 두 손바닥이 패배선언을 하듯 올라온다.
"빌런 동지를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중이라구요. 그 쪽에게 득이 되면 득이 되지 실이 되는 얘기는 아닙니다?"
상대의 정보는 어느정도 알고있었다. 하이디 에르게라. 구 빌런이자 탈옥범. 그렇지만 신뢰를 얻을 때 까지는 입을 다물도록 하자. 의심받는거야 익숙해졌지만, 동료에게까지 의심받는 것은 조금 싫다구요.
"유명인이라고 해주시니까 쑥쓰럽달까, 좀 창피하긴 합니다만, 아마 저를 방송으로 보신 거겠지요? 감상은 어떠셨습니까?"
아무개씨는 자기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머저리같다는 답변이 나와도 상처입지 않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사실이니까.
ㅡ
당신이 아. 라고 말을 한다.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깊게 담배를 빨고,연기를 길게 내뱉는다.
"하하,저를 찾은것같은 반응이네요~ 제가 아무리 예뻐도,죄송하지만 제겐 임자가 있는걸요?"
부드럽게 눈을 휘어 웃어보인다. 분명 그런 이유로 나를 찾은건 아니겠지. 그리고....내가 먼저 다가와서,아. 하고 작게 반응한걸수도 있다.
"헤에....글쎄요,그건 모르는 일 아닌가요? 물론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그게 맞는걸수도 있죠. 당신은 우리 빌런들의 구실점이고,또...우리는 같은 빌런이니까요. 제가 당신을 경계하는 이유는,글쎄요...너무 많은 가능성이 보여서겠죠. 세계를 파괴해준다는 사람이잖아요? 당신."
안그래요? 가볍게 덧붙이고는,당신이 손바닥을 들어올려보이자 작게 웃었다. 붕대를 조금 느슨하게 해두는게 좋겠어. 붕대를 살며시 매만졌다.
"동지라..... 여고생일적 나였다면 대 환영. 오히려 내쪽에서 받아들여달라고 부탁했겠지만,지금의 저는 단지 사랑하는 사람과 조용히 살고싶을뿐이니까요? 그리고... 이루고 싶은 계획도 있구요. 아아,어쩌면 당신이 저와 뜻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덜컥 제 목을 물어버릴까봐. 그게 겁났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당신을 경계했던걸까요. 그래도 몇년새에 배운게 있다면,이해타산으로 끈끈하게 얽힌 관계가 말만 번지르르한 관계보다 더 신용있다는점? 어떤 얘기를 들려주실까요,당신은."
기대되네요. 길게 연기를 뿜으면서,차가운 눈빛으로 당신을 올려다보았다. 빌런 하이디 에르게라,뜻만 맞는다면 당신의 동료,기쁘게 되고싶네요. 가볍게 속삭이며.
"흐음.....글쎄요. 또 큰 일이 벌어지겠구나? 히어로측에서도 난리가 났을테고요. 재밌게 봤어요. 재밌게."
가볍게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ㅡㅡㅡ
"아. 거참. 작업 아닙니다. 진짜 아니에요."
격하게 부정한다. 고등학생 빌런이라는 이야기를 전에 들었기 때문인지, 지금은 성인인데도 '어린애 건드린다'라는 느낌이 강했다. 세계파괴를 공언하고 이능력범죄자의 대빵이라는 위치를 맡은 주제에 왜 이런건 신경쓰는 걸까. 애초에 연애에 관심이 없기 때문도 컸지만.
"세계를 파괴한다니, 그거 참 말로만 들어도 귀찮은 얘기네요... 어떤 의욕넘치는 머저리가 그런 일을 자원했답니까?...그게 나지만."
하루종일 헬멧을 쓰고 다니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 곰돌이귀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왜 1대 수장은 곰돌이 탈을 쓰고 다닌다는 미친 발상을 한걸까. 그런 남들이 못하는 일을 태연하게 해내는 점이 진품이라는 거겠지만. 저같은 삼류 카피캣이 이해할 수 있는 사고가 아니겠지요.
"그렇습니까. 뜻이 맞지 않는다...라, 적어도 한 부분에 있어서는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만."
이해타산으로 끈끈하게 얽힌 관계가 말만 번지르르한 관계보다 신용있다...라. 그거 참 뼈아프긴 하지만, 맞는 말이네요. 영혼의 파트너니 유일한 사랑이니 주절거려봤자, 결국에 마지막까지 두 사람을 묶어놓는 것은 실리였다. 사랑하는 사람이라, 좋은 울림이긴 하다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뭐. 굳이 그런 얘기를 하며 빈정거리지는 않겠지만.
재밌게 봐주셨다니. 거 참 다행이네요. 생각한 것 보단 나은 반응이라서. 슬슬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편이 좋겠지. 시간은 그리 많지 않고, 만나야 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까. 아. 진짜 왜 이런 귀찮은 일을 맡아버렸지.
"그래요. 어떤 얘기라. 우선 말하자면."
그리고 아무개씨의 헐렁하게 풀어져있던 목소리는 이내 진지해진다.
"재판장 테러, 커다랗게 저질러주셨다면서요?"
2년 전의 이야기였다. 당시 테러에 참여했던 빌런들중 하나였던 하이디 에르게라는 사형 판결을 받았고, 그것을 포에버 러빙 유라는 전직 히어로가 탈옥시켰지. 빌런으로의 진영변경과 함께. 아마 그녀의 '사랑하는 사람'도 그 사람일 확률이 높겠고.
"유감스럽게도 세상은 테러리스트에게 관대한 곳이 아닙니다. 연약한 고등학생에게 사형을 때려버리는 이즈모도 이즈모지만요- 즉살명령이 아니더라도 테러라는 범죄의 죄질은 높고 말이에요. "
그런 이야기를 조목조목 해나간다. 뭐. 개인적으로는 멋지다고 생각합니다만. 얼마전의 비행기 테러를 생각해본다. 그런 귀찮고 효율나쁜 일을 스스로 벌일 용기는 없지만, 실천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은 가지고 있다. 어쩜 그렇게 준비하기 귀찮고 뒤처리도 귀찮기 짝이 없는 사치스러운 일을 벌일 수 있을까. 범인으로서는 상상못할 행동이다.
"그런데다가- 이즈모는 빌런살해 방침을 언제 다시 가지고 나올지 모르는 일이고요. 그러면 그 쪽의 입지라는 것도 조금 위태위태해지지 않겠습니까-"
즉슨, 당신의 현 위치를 상기해주는 말이었다. 언제 어떤 꼴을 당할 지 모르는 불안한 신분.
"전직 빌런, 이즈모 테러경력 존재, 사형수 출신. 이야. 하이디 에르게라라고 하는 사람도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되게 무서운 사람이네요. 휴..."
고등학생 신분으로 무슨 짓거리를 저지르고 다닌 건지. 내가 저 나이때는 기껏해야 살인밖에 몰랐는데. 요즘 학생들 무섭습니다. 아. 이런 꼰대같은 생각을 하는 어른은 인기없는데. 역시 속으로만 말하길 잘했군.
"...근데. 아까 말했지만서도, 저는 나쁜사람이지 말입니다?"
...그것도 그 나쁜사람의 우두머리격인 사람이다. 본인은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싫은 모양이지만.
"범죄자 한둘 보호해주는 거- 저에겐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말이에요."
ㅡ어떠신가요? 충분히 뜻이 맞을 법한 이야기 아닙니까?
ㅡㅡㅡ
"아하하,부끄럼쟁이씨네요. 그건 모르는거잖아요? 아니라고 해놓고서는,사실 말의 결론이 저를 꼬시는거라면... 아하하,농담이에요."
그런 장난을 하려고 절 찾아왔을리는 없잖아요? 가벼이 속삭이면서 작게 웃었다. 아아,차라리 그런 가벼운 일로 찾아왔다면 더 좋았을텐데 말이지.
"귀찮죠...단순히 흘러가는대로,흘러가는 저 하늘위의 구름처럼 편하게 살수도 있었을텐데..."
당신을 느릿하게 눈을 껌뻑이면서 쳐다보았다. 헬멧 안쪽은 도통 보이지를 않네. 지금 당신은 어떤 표정일까.
"세상에는,단순히 흘러가는대로 살수는 없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모든 빌런의 구실점. 세계를 파괴한다는 그 크나큰 야망.
헬멧은 또 다른 왕관의 상징,당신 어깨에 짊어지는 커다란 중압감. 그 모든걸 다 안고서,당신은 자원한거잖아요? 내 망상일까요? 아니면 맞는 말일까요?
글쎄요....누구도 모르겠죠. 그래서 내가 당신을 경계했나봐요. 그래도 두 팔을 벌려 당신을 안는것보다는 낫잖아요? 우리의 거리는 여기까지가 좋은거같아요.
등 뒤에 숨긴 패를 꽉 붙잡은채로."
담배를 뱉고,신발로 잘근잘근 밟은뒤에,느릿하게 하나를 더 꺼내어 입에 빼어물고는 불을 붙였다. 몇번 뻐끔거리며 연기를 차분히 흩날렸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죠?"
흥미로운 도입부네요. 책의 첫장을 넘기는것처럼. 느릿하게 연기를 뿜어내며,당신의 반응을 살폈다.
"....하하,그게 그렇게 와전이 되었나요?"
당신의 진지해진 목소리. 음성변조기 너머로도 알수있었다. 부드럽게 휘어두었던 눈매는 차분하게 가라앉았고,한없이 진지해진 얼굴로 당신을 바라본다.
"제게 그정도 힘은 없어요. 저는 거기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멍청하게 잡혀버렸죠. ..아아,그 일만 없었더라면..."
마지막 말을 작게 중얼거린다. 당신,나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있지? 내 능력,첫번째 능력은 알고 있는가? 길게 담배를 태운다. 정보가 부족하다.
당신은 나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있어. 당신의 말을 듣다가,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하하,그렇죠. 제가 가지고 있는 무력도,더 큰 무력 앞에서는 무의미하고. 저는 신이 아니니까요. 내 능력이 모든걸 압도할정도로 강대한 능력이었더라면,더할 나위없이 좋았을텐데..."
당신에게 한 발 자국 가까이 다가간다. 손 뒤에 숨긴 내 패를 팔랑거리며. 아니,패를 전부 던진다.
당신의 귓가에 살며시 속삭인다.
아무도 알고있지 못하는,내 두번째 능력에 관해...
"이걸로 당신은,저를 이용할수 있겠네요. 그렇죠? 제가 원하는건 두가지. 하나,나와 내 연인의 안전을 보장해줄것. 둘,내가 당신에게 협조하는 한 당신도 내게 협조할것."
아무에게도 득도,실도 되지 않는 조건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당신,어떻게 생각해?
ㅡㅡㅡ
"글쎄요."
수장자리의 중압감에 대한 얘기에 고개를 으쓱해보인다. 누구도 하지 않으니까 내가 했을 뿐. 조별과제의 조장 같은 위치 아닙니까. 그래봤자. 어차피 전 수장도 그렇게까지 빌런들에게 잘해주지도 않았던 것 같고.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면 아무리그래도 너무 허접해보이겠지.
"중압감이라곤 해도, 헬멧 뒤의 제 얼굴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잖습니까? 얼굴은 가려져있고, 음성변조 기능도 있고요. 인간은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을 생각보다 잘 모르지 말입니다-"
겉모습이 똑같으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전혀 다른 사람이 똑같은 외모를 가지고 그 사람인 척을 한다고 해도, '알고보니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라고 다들 생각하겠지. 왜냐하면 사람은 사람의 본질에 도달할 수 없으니까. 심지어 자기자신조차도 자기자신을 완전히 알지 못하는데, 생판 남인 타인의 본질을 무슨 수로 안단 말인가.
"익명성이란거 꽤나 무시무시한 무기니까요. 그렇습니다. 당신의 말대로 누구도 모르겠죠. 이 정도의 거리라- 좋네요. 개인주의의 시대니까 말입니다. "
고개를 끄덕인다. 비즈니스적 관계라는 것이다. 가족같은 회사를 과하게 내세우는 곳들은 대체로 쓰레기같은 블랙기업일 확률이 높다던가. 블랙이냐 화이트냐를 논하자면 빌런집단이라는 곳은 의심할 겨를 없이 완전히 블랙이지만.
"당신의 능력이라."
무력의 이야기를 논하는 당신이 자신에게 다가온다. 첫 번째 능력은 완전동화. 그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귀에 속삭여주는 것은 두 번째 능력.
"......"
이 거지같은 헬멧을 쓰고 있어서 그나마 가장 좋은 점이 있다면, 내 얼굴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일까. 어떤 생각을 하는지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건... ...아. 귀찮네. 뭣보다도, 이 능력을 활용할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귀찮다. 확실히 말해주지 않았으면 큰일이었을 것 같긴 하지만.
"그 쪽은 괜찮습니까."
친절인지 겉치레인지 모를 말투로 아무개씨는 하이디에게 대답대신 그런 질문을 건넨다.
"그런 능력을 말해준다는 것은, 그 능력을 빌런을 위해 활용할 각오가 되어있다는 거겠지요."
무심한 말투이다. 하지만 이 이상의 감성따위를 보여줄 수는 없었다. 타고나기를 메마른 사람인지라. 자조를 속으로 흘려보내본다.
"그야 별로 어려운 계약도 아니네요. 그 정도면 협조해주지요. 이걸로 오케이. 다음에 만날땐 빌런 대 빌런으로서 만나는 걸까요?"
아무개씨는 그런 말을 건넨다. 만약 당신이 승낙한다면 또 다시 할 얘기가 있었다.
- 아무개씨 - 츠루
(4스레)
얼마전에는 예정에도 없던 비가 추적추적 내렸더래지. 비를 좋아하냐 싫어하냐로 묻자면, 우선 비에 젖는 것은 싫어합니다만. 미끄러운 길바닥도, 축축한 날씨도, 미묘하게 울적한 기분도 전부 싫고, 싫으나ㅡ그 비가 세계를 전부 집어삼키는 초석이 되어준다면 그거 하나는 꽤 기쁜걸요. 이상. 게으르고 멍청하고 모순적이기까지 한 사람의 잡생각이었슴다. 적당히 무시해주시길.
그러니까, 요는 그것이 능력자가 뿌려낸 재앙이었을 확률이 높다는 것. 그렇다면 그 자는 빌런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 뭐 그런 얘기겠네요. 아니면 재해급씩이나 되면서 능력하나 통제 못하는 구제불능이었거나.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평범하게 걷고 있었다. 그 눈에 띄는 헬멧을 제외하면 과연 평범한 사람이었다.
나태를 구현해낸 존재같은 언동과는 달리 나름대로 맡은 일에는 힘쓰는 그였기에, 오늘도 좁디 좁은 빌런 인맥을 동원해가며 열심히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생각도 빌런으로 추정되는 누군가를 스카웃하기 위한 고뇌에서 시작된 거겠지. 이럴줄 알았으면 인간관계좀 넓혀놓을걸. 아. 진짜 어디에 지나가던 빌런같은거 없나.. 그런 생각을 하며 뒷골목에 들어선 것이다.
ㅡ
오늘도 어김없이 고요함 그 자체인 골목길은,이젠 츠루의 집과도 같은 느낌을 주었어.갈 곳을 잃어버린 영혼이 머무를곳은 이런 구석진 공간밖에 없지.그 공간 속에서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오늘도 예쁨받기 위해 일하고.또 일하고.이젠 이런것마저도 익숙해진지 오래였지.몸도 정신도 한껏 망가져버린 세계.거기서 자신을 유지할만한건 얄팍한 연초 한 개비였어.
"하아.."
생각해보면,이런 삶조차도 분명 자신이 빌런으로써의 일을 그만두겠다고 진작에 선언했더라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었을까?그저 도전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안 된다,자신은 못한다,벗어나더라도 악영향이 넘쳐날 것이다 하는 두려움에만 사로잡혀 쉽사리 벽을 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반복했었던 과거를 회상하며,필터를 잘근 씹어.아냐.그런건 고사하고,자신이 정녕 정말로 평화롭고 사랑받는 삶을 원한다면 죽고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어.그렇지만 죽는건 역시 무서웠으니 이번에도 이 빌어먹을 현실을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없으려나?
날씨가 많이 추웠기에 미처 다 잠그지 못한 와이셔츠의 단추를 마저 잠그고 코트위 단추도 확실히 잠가버린 츠루는 러이터를 꺼내 연초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들이켜.싸구려 가스라이터로 붙인 연초는 그 연기마저도 싸구려였기에 살짝 표정이 구겨졌지.
"..어라?"
그때쯤이었을까?자신이 누군가의 인기척을 들은 것은.평소 자신 말고는 사람이 잘 왔다갔다하지 않을만한 그런 공간이었기에 가끔씩 겪는 일이었지만,그때마다 츠루는 여기 사람이?하는 생각이 들었지.자신 말고도 뒷골목에 의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매일 느껴도 신기할거라고 생각하며-곧 드러난 네 모습에 츠루는 가벼이 미소지었어.
"이런이런-귀하신 분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는 왠 일로 오셨으려나~?"
너는 나를 몰라.하지만 난 너를 알지.그거야...곧 자신들을 이끌어줄 2대 수장이 되어줄 사람이니까.빌런으로써 그것도 모르면 쓰겠어?..라기보다는,역시 TV 화면이 전환되고 곧 나온 네 모습을 봤기 때문이겠지.
ㅡㅡㅡ
"누추하신 분이라서 말입니다- "
어울리는 장소에 왔을 뿐이라고요. 그렇게 대답한다. 이런 으슥한 곳에 있는것 하며, 말하는 것 하며, 어쩐지 빌런일 것 같은 기운이 풀풀 풍기지만... 언제나 방심은 금물이다. 아무개씨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이야. 거 참, 사람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네요. 그 쪽은 최근 어떠십니까? 저는 일손이 필요한데."
나이프는 언제나처럼 품속에 준비되어있으나, 예비 동료일지도 모르는 사람하고 칼부림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귀찮아서도 있지만. 아. 고요한 뒷골목인데, 무고한 커플 하나가 지나가는군. 아무개씨는 멍하니 그들을 바라본다. 돈이 많아보이네. 털면 꽤나...
...아니. 지금은 안 된다. 헬멧속의 시선은 어느새 츠루에게로 옮겨져있다. 헬멧의 유리는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재질이었다. 자. 어디. 관찰의 시간이다. 당신은 나에게 고급인력이 되어줄 사람인가?
ㅡㅡㅡ
"아하하하하,자기 재밌네!적어도 내가 보기에 우리 자기는 누추하신 분은 아닌거같은데 말야.응?"
그런 겸손함 마음에 들어.하고 짧게 덧붙이고는 이내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다시 웃음을 흘렸어.네가 누추하신 분이라면 곧 그 밑에서 일할 자신은 뭐가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며.뭐,딱히 지금 해야할 생각은 아니었기에 금방 접어버렸기는 하지만.
"그치?아무래도 빌런 구하는건 힘드니까~게다가 자기의 유명새를 아는 히어로가 빌런인 척 하고 접근한다면 분명 자기도 크게 다칠테고 말이야. ...나?나야 뭐,늘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지~"
TV에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이니까 당연히 유명할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서는 네 말에 어깨를 으쓱거려.눈치가 좋다면,즐거운 나날이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표정은 살짝 굳어버린걸 눈치챌수 있겠지.남들에게는 즐거운 나날이라고 포장하고,사실은 전혀 아니라는거.꽤 흔한 클리셰잖아?물론 매일매일이 진짜 지옥같지는 않긴 하지만서도,거의 대부분의 시간이 그러면 그렇게 되는거겠지 뭐.
하여튼 츠루의 시선이 곧 이곳을 지나가는 커플을 향했어.꼴사나워.보기 싫어.
"...그건 그렇고 자기.일손이 필요하다고 말했지?"
그렇게 말한 츠루는 곧 가볍게 휘파람을 불고 커플을 멈춰세워.그와 동시에 그 쪽으로 암시를 걸어버렸어.지금 당장,둘이 신나게 물어뜯고 죽일 기세로 싸워보라고.주위에 있는건 뭐든 이용해서,이 거리를 혈향 가득하게 물들여 버리라고.곧 멍하니 서있던 커플은 츠루의 말을 듣고서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츠루의 말에 홀린 건 맞지만서도-주위에 쓸만한걸 주워 서로 죽일듯 패기 시작해.의식이 완전히 끊어질때까지,몸이 너덜너덜해져도 의식이 붙어있으니 그들의 팔은 마치 좀비마냥 움직여.
...곧 일련의 과정이 끝나고 난 뒤.방금 전까지만 해도 화기애애한 커플이었던 무언가의 잔해를 짓밟고는 츠루는 다시 네 쪽으로 시선을 돌려.
"어때?이런 사람이라면 한번 써볼만하지 않겠어,2대 곰돌씨가 되어줄
자기?♡"ㅡㅡㅡ
(6스레)
"글쎄 말입니다. 실질적으론 따까리, 잡일꾼이 될 예정이라서요- 셔틀같은거?"
조별과제의 조장이라던가...이 비유는 너무 남용했군. 듣는 사람들이 질려버릴 것이다. 그나저나, 참 붙임성 좋은 분이군요. 처음 만났는데 자기라니. 그 사교성의 반의 반만이라도 배우고 싶습니다. 아아. 내 능력이 능력 복제였어야 하는데. 패널티로 매일매일 병을 달고 살아도 좋...진 않지만서도.
그리고 당신의 활약을 지켜본 아무개씨가 한 생각이란ㅡ
'...빙고.'
이건, 스카웃해야 할 인재다. 빌런을 향한 소속감, 능력, 모든 조건에서 합격이다. 합격이라고 할까, 지나가다 주운 복권이 당첨이었다...같은 느낌이다. 그런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추태는 보이지 않지만서도.
"써볼 만 하다라. 진심이십니까."
이건 써볼 만한 정도가 아닌걸.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린다. 세뇌계 능력의 빌런. 자신을 대신해 수장 자리에 놓고 싶을 지경인걸. 마침, 1대 곰돌씨의 능력도 그런 계통으로 추측되곤 하지 않았는가.
"이쪽의 입장에선 대환영. 오히려 제 쪽에서 부탁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환영입니다. 이름모를 인재님.
ㅡㅡㅡ
"아하하핫,자기 진짜 재밌다~그치만 너무 그러지는 말구 가끔씩은 좀 자부심을 가져보는건 어때?"
너의 비유들을 들으며 츠루는 한바탕 폭소를 터트렸어.그런 겸손함 좋아.수장으로써 압도적인 차이를 두지 않고,서로 엇비슷한 위치에서 동등하게 일해 보이겠다는 그런 말으로도 해석 가능했으니까.그치만 어찌 되었든 수장이니까 가끔씩은 자신의 자리에 약간 자부심을 가지는것도 나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하며,자기라는 호칭은 그냥 입버릇일 뿐이라고 가벼이 덧붙였어.뭐,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자기라고 부르며 벽 없이 대한다는 사실이 거짓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하여튼 능력을 사용하느라 잠깐 잊고 있었던 담배가 자신의 시야에 들어왔고,츠루는 곧 그것을 마저 피우기 시작해.물론 이번에도 기본 에티캣으로 담배연기가 최대한 네쪽으로 가지 않게 만들면서.뭐..헬멧을 쓰고 있으니까 별 상관 없겠지만서도.
"흐흥♡당연히 진심이지~나 정도면 꽤나 쓸만한 장기말이 되어줄거라구.이거 하나만큼은 확신할수 있어♡"
자신이 올해 새로 떠오른 햇병아리 신입 빌런이라면 몰라도,2년 전 1대 곰돌씨가 빌런들을 이끌때부터 쭉 빌런으로써의 삶을 살아왔던 사람이었고 그러면서 정말 별의별 전투는 다 겪어봤으니까.대부분은 좋지 않은 성과를 내긴 했지만 그래도 그러면서 꽤나 좋은 경험들을 쌓았었다구?곧 대환영이라는 말이 들려오고 츠루는 기쁜 듯 웃어버렸어.
"아하핫,대환영이라니 엄청 황송한걸~?내가 그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걸까~굉장히 기뻐♡"
오히려 네 쪽에서 부탁해야하지 않을까 싶다는 말을 들으며 츠루는 한껏 뿌듯해졌어.다른 사람도 아니고 곧 2대 수장이 될 사람이 자신을 그렇게까지 맘에 들어해주고 후하게 평가해주니 다시 빌런으로써 활약하는 건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지.그러다가 곧,아직 제대로 된 통성명도 못 했다는걸 깨달아.다 타들어간 꽁초를 아무데나 튕겨 버리며 입을 열어.
"맞다.자기는 아직 내 이름을 모를테지~?난 츠루.2년 전에도 빌런에 몸담고 있었던 사람이야.잘 부탁해♡"
ㅡㅡㅡ
겸손함-이라기보단 자기비하에 가까운 표현이지만. 뭐 됐나. 아무개씨는 굳이 그 말에 뭔가 반발하지는 않고 "노력하겠슴다-"라고 대충 성의없는 대답을 흘린다. 그 정도는 할 줄 알아야 쓸모있는 따까리가 아니겠어. 그리고 당신의 흡연을 보며 한 생각이란, 담배연기가 들어오지 않는 것도 역시 헬멧의 장점이라고 할까- 정도의 감상이었다. 나에게 지지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인가.
쓸만한 장기말이 되어준다는 말에 "좋습니다."라고 가벼운 대답을 흘린다. 악수를 청할까 하다가, 낯부끄러워서ㅡ기실 이 헬멧이 무엇보다도 낯부끄럽다는 사실은 잠시 접어두고ㅡ그만두기로 한다.
"나쁘게 살다 보니 이런 좋은 일도 있군요. 츠루씨같은 대단한 사람도 만나고 말입니다-"
2년 전에 빌런에 몸담고 있었던 사람이라. 그러고보니 재판장의 테러에 참여했다가 탈출한 빌런중, 세뇌를 주력으로 쓰는 사람이 있었다던가. 이 쪽의 정보통은 꽤나 쓸만한 사람인데, 유감스럽게도 이쪽은 머리가 나빠서 그걸 다 기억하질 못한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는 약간 꾸벅, 고개를 숙인다. 인사라고 알아볼 수는 있지만, 딱히 깍듯하다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는다.
"통성명입니까- 유감스럽게도, 저는 알려줄 만한 이름이 없네요... 그냥 아무개라던가, 수장이라던가 맘대로 불러주심 됩니다."
이름을 숨기는 종류의 빌런은 많이 있었다. 다만 이 쪽의 경우는, 숨긴다고 표현해야 할까. 아무개씨는 별로 생각하지 않으려 애쓴다. 거 참. 과거에 사로잡히면 좋지 못하다니까. 그리고는 당신을 바라보며, 빌런으로서의 첫 임무를 알린다.
"그런데 말입니다. 과거 빌런이었다면, 빌런출신인 사람들도 많이 알고 계시겠네요. 부탁이 있어서 말입니다."
저는 인간관계가 좁아서ㅡ사실이었다ㅡ이걸 알리려고 해도 어디서부터 알려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말입니다. 조금 귀찮은 부탁입니다만- ...실제로도 이것때문에 발 바쁘게 움직이고 있던 것도 컸다.
"이번 주 일요일 3시, 제가 알려주는 위치로 빌런들을 있는대로 집합시켜주실수 있습니까?"
수락한다면 아무개씨는 당신에게 빌런 아지트를 알려줄 것이다. 홍보가 안 돼서 말입니다.
ㅡㅡㅡ
노력하겠다는 대답이 그다지 성의있는 대답은 아니었지만,그런건 아무렴 어때?어찌 되었든 진심이든 아니든간에 자신의 말에 노력하겠다고 대답해준것만으로도 아주아주 감사할만한 그런 일인걸.이어서 들려오는 너의 가벼운 대답에 자신도 가벼이 고개를 까딱여 화답하고는 다시 방긋 웃었어.
"대단한 사람이라니~그런 호칭 매우매우 기분 좋은걸?흐흥,하여튼 나도 여전히 나쁘게 살길 잘한것 같다니까~만약 중간에 빌런에서 나와 히어로로 들어갔으면 자기같은 대단한 사람이랑 적으로 마주해야 했을테니까?"
뭐,그렇다고 해서 히어로측의 인원이 대단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빌런측보다는 덜하지.뭐,이런걸 두고 진영부심이라고 하던가?뭐,자신이 최근 만난 히어로는 파크와 유현 둘밖에넌 없었지만서도.애초에 둘 다 적으로 마주친다면 죽이는 건 고사하고 제대로 싸울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어.파크는 그렇다 쳐도 유현쪽은 자신에 대한 복수심에만 사로잡혀,제대로 된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하는 모양이었으니.네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자신도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잘 부탁한다는 짤막한 말 한마디를 남겨.
"흐흥,괜찮아~나는 1대 곰돌씨도 이름을 모르고 그냥 곰돌이 오빠라고만 칭했으니까~그럼,아무개 자기라고 부르면 돨까?원한다면 아무개 오빠나 수장 오빠도 가능해♡"
어째서 형은 없는지는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하여튼 츠루는 네가 이름을 궂이 밝히지 않는것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어.뭐랄까,1대 곰돌씨부터 자기 이름을 숨기고 살았었으니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달까?물론 1대 곰돌씨의 이름은 거의 마지막에 알게 되었기는 하지만.설마 히어로 측에 숨어서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을줄은 누가 알았겠어?
"음..그렇지?일단 예전에 빌런이었던 사람은 왠만하면 알고 있어.머루 자기라던가,가람 자기라던가,린 자기도 빌런이라고 하던데~"
검지로 제 볼을 톡톡 쳐가며 츠루는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 듯 보였어.자신이 직접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 이외에도 어느정도 소문으로써 많이 들어본 인원들도 꽤 되었지.이를테면,양복점을 하고 있는 테러광 자기라던가.이름이 형수라고 했던가,아마?하여튼 이렇게 정리해보니 자신도 참 인맥이 별로 없다는걸 깨닫곤 헛웃음을 흘려.그러고는 이내 부탁이 있다는 말에 뭐든 말하라며 가벼이 미소지었지.
"일요일 3시에 아무개 자기가 말하는 장소로 빌런들을 집합시켜달라..오케이.그 정도는 뭐,내 친화력정도면 간단하지~♡"
암 리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거리낌없이 접근할수 있으니,자신은 그 임무에 대해 큰 반감을 가지지 않았어.오히려,본격적인 빌런 조직 결성의 첫 스타트를 알리는것같아 반가울 따름이었지.
"그래서..나는 빌런들을 어디로 모으면 돨까~?♡"
ㅡㅡㅡ
...오빠입니까. 독특한 호칭에 속으로 태클을 걸어본다.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편견이었나. 아무튼 성별이나 호칭이 어쩌구 하는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 "마음대로 불러주시면 됩니다." 정도로 대답해둔다. 그나저나, 자기라는 호칭이 입버릇이라는 말은 사실인 것 같군.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름 뒤에 자기라고 덧붙여주는 것을 보니.
"어디라고 한다면ㅡ역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새 아지트. 그런 단어를 입으로 내진 않지만, 조용히 눈짓한다. 눈짓한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눈짓은 아니고. 어찌됐건 대충 전해졌으리라 믿어본다. 그리고 아무개씨는 당신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며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한다. ...의, ...근처에ㅡ...쪽, 지하.
이것으로 당신에게는 빌런의 아지트의 위치가 전달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빌런들에게 퍼뜨리는 일 뿐이다.
"별 거 아닌 일입니다. 그냥 홍보랄까, 오리엔테이션같은 의미니까요."
다시 한 번, 잘부탁드립니다. 츠루씨.
ㅡㅡㅡ
"알겠어.그렇다면 그냥 편안하게 아무개 자기라고 부를게~"
마음대로 부르라는 말에 예전의 입버릇보다는 지금의 입버릇을 쓰기로 하고 그렇게 답했어.아무래도 자기라는 말을 자주 쓰다보니 이젠 오빠라는 말은 조금 특별한 사람한테 쓰거나,그 사람이 원한다면 쓰는게 츠루 입장에서도 조금 더 편안했으니까.
"흐응...내가 생각하는거랑 자기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솔직히 처음에는 술집이나 카페같은 시덥잖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빌런의 수장이 빌런들을 모을 곳이 어디 따로 있겠어?게더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걸 본다면 대강 어디인지는 어림짐작할수 있었지.이제 이 지긋지긋한 뒷골목을 벗어날 날이 머지 않았구나..라고 해도,밤일은 계속될테지만.빌런 활동과 개인적인 욕구의 충족은 별개의 것이었고.
".....흐응...좋아.그 장소,잘 기억하고 있겠어.그리고 별 일 아니더라도 스타트를 끊는 건 짜릿하잖아♡"
나 역시 잘 부탁해.하고 가벼이 덧붙이고서는 이내 살짝 주위를 둘러봐.혹시 몰래 듣고있던 사람은 없는가 하는 생각으로.일단 자신이 보기엔 그런 사람은 없는것 같아 다행이지만.
"아무튼,그럼 난 이만 먼저 가볼게~그 장소를 울 이쁜이들한테 정성껏 전달해줘야지♡"
네게 가벼이 손을 흔들어보이며,츠루는 반대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문자?편지?암시?뭐가 좋을지도 생각해봐야지.
- 바론 - 아무개씨
- (8스레)
낮임에도 어두컴컴한 다리 밑, 아마도 이런 분위기인 것은 금방이라도 눈이 떨어질 것 같은 날씨가 한 몫하는 것이겠지. 새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손을 비비던 남자는 뒷편에서 누군가가 다가오자 슬쩍 시선을 돌렸다.
이전에도 본 적 있었던 헬멧이 과연 그가 진짜인지 의심하게 만들었지만 신장이나 체격을 봤을 때는 틀림없는 그였다.
놀랍게도 그는 "이런 이런, 히어로 선생 안됐네!" 라는 대사나 2층 5번 박스석에 앉아서 관람하다가 느긋하게 가면을 쓰고 내려오는 식의 악당은 아니였다. 등장은 너무나도 평범했다. 요컨데 모리어티나 오페라의 유령 같은 기묘한 등장은 아니라는 것 이다. 하지만 그는 .. 그것과 비스무리한 느낌이 들었다. 그저 가만히 걸어오는 것으로 충분히 그는 등줄기에 한기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 처음 뵙겠네. 이 몸은 바론이라네. 이 몸이 자네를 기억하고 있으니, 자네는 소개할 필요가 없겠군. "
상대방을 훑어주시한다. 삼백안으로 치켜 뜬, 그 검은색 눈동자에 비춰보이는 것은 반사된 그 기묘한 헬멧 뿐 이였으나 그는 생각보다 그 눈동자로 더 많은 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는 알고 싶었다. 눈 앞에 보이는 그 남자가 과연 어떤 사람일지. 아니 과연 남자는 맞을까? 어쩌면 여성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더 다른 것 일지도 모르고.
" 뉴스에선 그대의 사교모임에 대한 사건을 높게 봐주더군. 한동안 비행기 테러 사건이 뉴스의 1면을 차지했으니.. 아 서론이 길었군, 그간 사건의 행적은 그대와 접촉하기 위함도 있었다네, 데스로우와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인 만큼 그대가 이 몸을 찾는 건, 굉장히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일세. "
자 그럼.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왕일까? 아니면 광대일까.
ㅡㅡㅡ
당신의 자기소개에 아무개씨의 시선은 그 쪽을 향한다. 바론이라. 인터넷 방송을 통해 존재감을 과시하던 빌런이었지. 꽤 유명한 일이었으니 모를리가 없었다. 상당히 눈에 띄는걸 좋아하시는 모양이네요-라고 하기엔 지금 빌런중에 자신만큼 눈에 띄는 사람이 없었으니, 입을 다문다.
"기억받을만한 대단한 사람은 아닌데 말이에요- 부끄럽습니다."
이 쪽이야말로 그 쪽을 잘 기억하고 있다고요. 남작님? 그런 대답을 당신에게 건넨다. 형식적이고 평범한 인사다.
"그 사건이요. 환영인사로는 꽤나 화려했죠- 저 같은 걸 찾기 위해 애써주시다니, 수고 많으셨슴다."
당신은 나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오는 걸까. 그렇다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르는데. 겉보기와 전혀 다를 바 없이 아무것도 없는 자가 저라서 말입니다. 이런 게 보고싶으시다면야 말리진 않습니다만. 오히려 제 쪽이 당신에게 압도당하는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 부족한 몸과 접촉하셔서 캐내고 싶은 거라도 있으십니까-?"
느릿하고 헐렁한 말투. 겉으로는 만만하고 허접해보이기 짝이 없는 그이다. 헬멧에 감춰진 졸린 눈매 또한 그런 그의 인상을 잘 드러낸다. 익명성이라고 할까, 얼굴이 감춰진다는 것은 메리트가 많은 거네요.
ㅡ
기억받을만한 위인은 아니다라, 그 말에 자연스럽게 실소를 흘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기억에 남을 수 있겠는가. 악당에게 필요한 행동력을 그것을 지닌 것 만으로 그는 위인이라 불리기 적절했다. 정말로, 정말로 그는 눈 앞의 남자와 바라는 미래상이 다르다는 것을 굉장히 아쉬워했다.
" 예전의 사건을 기억해주다니,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악당들을 통합할 수 있는 그대의 입으로 들으니 황송하기 그지없군. "
지극히 평범하고 편안한 인사. 두 사람이 나누기엔 오히려 평범해서 당황스러운 인사일 것 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신이 났다. 무엇을 캐내고 싶냐는 노곤노곤한 말임에도 신나서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무엇을 알고싶냐..라고 묻는다면 그는 단 한가지 대답만을 보여줄 수 있다. '전부' 하지만 꽉 참는다.
아직은 때 가 아니니까. 이제 극장의 박수갈채를 들으며 막이 오르는데 지금 시도하는 것은 스포일러다.
" 이 몸은 자네가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네, 꼭 자네의 그 계획에 동참하고 싶으니까. "
양 손을 가볍게 기도하듯 모은다. 그저 그의 얼굴이 반사되는 헬멧만이 눈에 들어온다.
" 자네의 전임자는 굉장히 뛰어난 인물이였지. .. 안 그런가? "
차가운 눈송이가 조금씩 떨어지며 바닥에 머무른다. 라오스의 흐린 하늘에서 새하얀 눈송이가 떨어진다.
ㅡㅡㅡ
"글쎄요- 통합이라, 거기까지는 제 능력 밖임다. 제가 할수 있는 건 기껏해야 '연결점'으로서의 역할 뿐이니까요."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나를 너무 과대평가해준다니까. 나중에 과장광고라고 반품신청해도 모른다고요? 그렇게 생각하며 즐거워보이는 당신을 무덤덤하게 바라본다. 미소가 멋지네요. 저는 그런거 못 하는데.
"계획이라."
그 말에 목소리가 조금 딱딱해진다. 미세하게. 비교하자면 막 뜯어 과할정도로 축축한 지점토와 적당한 시간이 지나 작품활동에 좋은 굵기가 된 그것의 차이일까. 기도하듯 모으는 손이라. 신 같은건 안 믿는데 말입니다. 있다고 해도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답니다. 저는.
"굉장히 뛰어난 인물이었죠. 이어받는 입장에 처한 제가 곤란할 정도로 말입니다- "
진심이었다. 자신하고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난 사람을 바라보고 있으면, 열등감을 뛰어넘어 무력감이 들어버린다. 아니. 기실 자신은 열등감같은 생동감있는 표현을 사용할 자격이 있던가. 그런 말은 충분히 노력을 거듭행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이겠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단어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써도 되는 표현은 오로지 무력감 뿐이다. 그 단어만이 오직 완전하게 자신의 손 안에 있었다.
"계획이라 할 만큼 거창한 건 없습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 노력할 뿐이죠... 유능한 인재분들의 뒷받침을 해주며 말입니다."
아무개씨는 자신을 그런 위치에 두고 있었다. 모두를 통솔하는 리더라기 보단, 훌륭한 이들의 보조를 해주는 어시스턴트. 앞에서 끌어준다기 보단, 뒤에서 밀어주는 걸까. 자신은 빌런분들께서 오시는 길 부상입지 않도록 길을 닦아둘 뿐이다. 그러니까, '가장 귀찮은 역할'을 맡은 존재. 형식상의 총대를 맡은 것이다.
"바론씨는- 빌런으로서 자신을 정의해가면서,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되묻는다. 텅 빈 몸뚱이에서 힘없이 튀어나오는 의미없는 신음보다는, 당신의 꽉 찬 이야기가 듣고싶네요. 저와는 달리 대단한 사람 아니십니까. 남작씨? 이야기의 초점을 전환시켜본다. 헬멧이 삼킨 아무개씨의 갈빛 눈이 당신을 쫓는다.
ㅡㅡㅡ
상대방의 말에 그의 표정은 확신에 찬 듯 입꼬리가 올라갔다. 흑요석처럼 반짝이던 눈동자 역시 생기를 얻은 듯 반짝거리며, 하늘을 올려다 본다. 새하얀 눈결정이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모습을 하나하나 놓치기 싫다는 듯 바라보는 모습이 순수하다면 순수해 보였다.
연결점. 어시스트. 실질적으로 빌런의 얼굴이라는 의미로 앞장 섰다는 용기에는 순수하게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었다.
흩어져 있는 빌런들의 연결점을 해준다는 의미가 어떤 의미인지 범인들은 이해 못한다. 그 책임을 진다는 의미는..
" 소집해보게나. 퍼져있는 악당들을 모조리 한 곳에 모아두는 것 이라네. 빌런의 존재를 널리 알린다면 우리 세력도 늘어나겠지. 자네는 자네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군. 전임자가 너무 유능해서 열등감이 생기는 것 인가? 그렇다면 문제 없다네.. 자네는 충분히 행동하는 자 아닌가? "
그에게 다가와 기대어린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의 어깨를 양 손으로 잡는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가득 차오른다. 이 자라면 빌런을 통합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든다. 이 도시는 혼란에 잠길테지만 그것이 자신의 목표로 향하는 길이라면 그것은 감수 할 수 있을 것 이다.
" 짐승도, 광인도, 괴물도, 뱀도 사회에서 받아주지 않는 이들을 전부 끌어들이는 자네의 계획에 순수한 감탄사를 보내지. "
이 날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그에게 있어선 단지 계획의 1단계일 뿐 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어두운 동굴속에서 한 줄기의 빛이라도 본 것 마냥 밝게 웃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무개씨의 말에 그는 멍한 표정을 보이다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 히어로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이 몸이 바라는 것 이라네 "
.....
ㅡㅡㅡ
아무개씨는 침묵한다. 용기라. 그렇게 말해주시다니 거 참 멋진 단어입니다만. 실상 아무개씨는 자신이 그런 용기있는 자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만용이라는 표현조차도 어울리지 않았다. 살인마를 마주해 벼랑 끝에 내몰린 자가 끝이 어디일지 모르는 바닥으로 뛰어드는 것을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표현하진 않는다. 그것은, 생존본능이었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가치없는 목숨입니다마는 비유하자면 그렇겠네요. 아니, 다르게 비유하자면- 벼랑 끝에 내몰린 자가 살인마를 찔러버리는 것에 가까운가. 마지막 발악이라고나 할까. 구석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는 그런 얘기 있잖습니까. 구태여 그런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하던 끝에 자기자신이 참으로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해놓고 결국 살아있는 이유를 계속 찾아간 것이지 않습니까. 광인이다. 모순이었다. 하지만 뭐 어떻겠는가. 세계가 끝나버린다면 자신이 우스웠다는 사실마저도 없었던 것이 될텐데. 인과관계니 명분이니 숭고한 사상이니 하는 얘기 죽은 사람이 물어보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 전부 다 끝내버린다면,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어지겠지. 조용한 세계. 아무도 없는 세계.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세계속에서 여유롭게 차라도 마시도록 할까. 아니면 거기에서 죽어도 상관없고.
"과찬이십니다."
뭐. 이런 얘기들을 굳이 당신에게 말해줄 필요가 있겠습니까.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하자고요. 저에 대해서 너무 알려고 하는 건 솔직히 불편합니다. 그러니까 예의바른 말로, 본심을 숨겨낸다. 어깨에 손을 올려오는 당신에게도 아무개씨는 보이지 않는 무표정이었다.
"히어로가 없는 세계라."
저와도 비슷하네요. 최종적으로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개씨가 바라는 것은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조용한 세상이었다. 공허.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으로 바라고 있는 다른 것은ㅡ...이것은 아직 비밀로 해두도록 하자. 그것까지 인정해버린다면 저는 정말 더할나위없이 부끄러운 사람이 되니까요. 스스로가 스스로의 자괴를 보는 것은 힘든 일 아닙니까. 삼류 악역다운 구질구질한 사연같은 것은 묻어두고, 어디까지나 악으로서 존재하도록 하자.
"그것은, 히어로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정의로운 세계일까요ㅡ"
아무개씨는 운을 띄운다. 가벼운 목소리. 민들레 홀씨처럼 흩날려가는 농담과 같은 선택지. 설마 이거겠어- 라는 투지만, 사실은 그 가벼운 말을 날려보낸 것에는 가능성을 숨겨뒀던 것이다. 멀리멀리 날려보내서, 언젠가 이것이 파문을 일으킬 만한 장소에 닿도록.
"아니면, 히어로를 전부 없애버리고 빌런만이 존재하는 지옥일까요."
빌런다운 것이라면 후자겠지만, 어쩐지 당신은 전자로부터 일을 시작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히어로가 생겨날 엄두조차 나지 않도록 절망으로 만민을 짓밟고 그 위에 올라서는 것이 보통 빌런들이 하는 행동입니다만. 어째서 빌런에 있는겁니까? 숭고한 사상을 일컬었지만 사실은 당신 또한 저와 같은 모순덩어리인 것은 아닙니까. 날카로운 말들을 삼킨 채로 당신을 바라본다. 거 참. 미소 하나는 정말 아름다우신데.
ㅡㅡㅡ
결국 악당이다. 빌런은 사회라는 기계의 녹슨 톱니바퀴다. 그가 바라마땅한 세상에, 균형이 아주 멋지게 흔들리고 있는 이유도 사실 따지고 보면 빌런들의 존재가 가장 문제가 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가만히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빌런을 심판할 히어로는 많다. 아주..아주 많으니까. 거기다 빌런들에게 어쩌다보니 신세 좀 지게 되었으니.
빌런들이 바라는 세계는 구원이 없는 혼돈의 도시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바라지 않는 세계다. 범죄자에게 마땅한 심판을, 어울리는 최후를..
이어지는 아무개씨의 질문에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멋진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살짝 갸웃 거렸을 뿐 이였다. 그가 바라는 세계가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으면서. 딴 소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바라는 세계는 당연히 전자다.
히어로 같은 자들이 필요하지 않는 멋진 신세계. 평화로운 라오스. 시민들이 나라의 주인이 되어 그 위에서 압력을 가하는 범죄자를 향해 당당히 손가락을 할 수 있는 세계.
" 글쎄. 보통 빌런이라면 후자를 선택하지 않겠는가. "
앞 머리를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꼬아대며, 그는 말을 돌렸다. 어차피 비즈니스 관계다. 깊숙히 밑천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썩 좋은 대화결과라곤 볼 수 없다. 눈앞의 남자가 어디까지 떠볼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의 목적 따윈 금방 눈치채버렸을 것 이다.
그럼에도 곰돌이가 그를 그냥 두는 것은 간단하다. 죽이거나 건드릴 가치가 없기 때문이겠지.
" 목적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다수의 빌런은 후자를 택하겠지? 그가 별나지 않다면 말일세."
내리던 눈은 벌써 바닥을 가리며 천천히 쌓아올려졌다. 폐가 스며드는 한기가 기분이 좋다. 겨울공기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니까.
깊게 숨을 들이내쉬며 하얀 입김을 뱉은 뒤, 다시 입을 연다.
여러가지 잔재주로 대화의 흐름일 바꿀려는 시도는 대충 이루어진걸까. 그는 실소를 흘리며 다시 질문했다.
" 히어로의 정보가 필요하다네. 아주 많이. 사소한 것 이라도 괜찮으니 말일세."
ㅡㅡ
...'보통 빌런이라면 후자를 선택한다'라. 결국에 본인은 전자라는 뜻 아닙니까. 확실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당신이 무슨 목적으로 일을 한다고 해도 자신이 알 바는 아니다. 방해될 것 같으면 죽여버리고, 쓸만하다 싶으면 살려놓으면 그만이겠지. 하지만, 위악이라. 그거 아시나요. 사람들은 어떤 일의 목적이나 명분같은걸 생각보다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온전히 세계를 위해서 자신의 한 몸 기꺼이 바칠 수 있다던가, 만약 실패한다고 해도 자신의 행동에 후회하는 일은 없으리라던가 뭐 그런 뼛속깊이 숭고한 사람이라면 상관없지만요. 만약에 보답을 바란다고 한다면ㅡ그것이 아무리 소소한 것이라도ㅡ당신은 처절하게 몰락한다는 것.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 사건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 지는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일으킬 '결과'는 알 수 있지만, 그 사건이 이야기에 미치는 영향은, 그 '결말'은 알 수 없다.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이야기에서 사실 스스로가 삼류 악역이었다거나, 스탭롤이 올라와도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는 엑스트라였다거나. 그런 것은 흔한 일이다. 이렇게 행동하면 모두에게 칭찬받겠지ㅡ칭찬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런 행동을 하면 모두가 기뻐해줄거야ㅡ기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나는 세계를 위해서 힘썼다고ㅡ세계는 당신으로 인해 더더욱 아득한 절망으로 빠져들어갈 수도 있다고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당신은 그것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지으려나?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행동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따위는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절망을, 파괴를, 멸망을 자신의 가치로서 삼기로 다짐했다. 불확정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확정되어있는 것은 물리적인 결과 뿐. 사람을 찌르면 죽고 건물을 터뜨리면 불탄다. 그 후 인간들이 어떤 태도와 행동을 벌이는지 따위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재해가 되기로 다짐했다. 인간의 몸으로 감히 악 그 자체가 되어보이겠다고 생각했다. 구질구질한 명분을 열거하며 자신을 합리화하고 관객들의 눈물을 뽑아봤자 악당은 악당. 공들여서 입체적인 악당을 만들어내기엔 세상은 그닥 퀄리티 높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삼류 영화에 걸맞는 삼류 악역이 되기로 다짐한 것이다.
...아. 역시 이런 얘기는 부끄럽네요. 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역시 좋은 버릇입니다. 생각만 했는데 뇌세포가 오그라들지 않습니까. 뭐. 어찌됐건 바론씨가 어떤 결말을 맞게 되든 제가 알 바는 아니고.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던가요. 절망이 없는 세계와 절망뿐인 세계는 결국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바란 결과일지도 모르지. 마지막에 당신이 미소를 짓건 절망하건 저는 사람의 반응을 목표로 삼지 않기로 다짐했으니까. 이것 또한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일지도 모르지만!
"히어로의 정보가 필요하다고요."
이야기를 돌려볼까요. 부끄러운 삶을 살았다는 자기고백은 충분히 끝낸 것 같으니. 좀 더 실리적인 이야기를 해보자고요. 오늘 저녁밥 메뉴라던가. 개인적으론 아무거나 빨리 나오는 거라면 뭐든지 좋습니다. 안 먹어도 되는데. 아무튼 그런 감각으로 당신의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인다. 사소한 것이라도 상관없다고. ...그러고보니, 당신을 잡아들인 사람은 '에스터 힐데가르트'라고 했던가? 어디.
"에스터 힐데가르트라고 하는 사람도, 저나 당신 못지 않게 유명하지요."
어떻게 하면 계획이 꼬이지 않는 선에서 이 사람을 이용할 수 있을까. 아무개씨는 부족한 머리를 굴려본다. ...괴물이라는 별명이 있지 않습니까. 위기상황이 되었을때 최종병기처럼 튀어나오는 것 때문에...
"...그 사람이 괴물이라고 자주 불리기 시작한 시점이, 재판장 테러 이후부터라고ㅡ"
정말이지 너무할 정도로 아주 사소한 정보입니다만. 어떠신지? 도움이 될까요? 머리 좋은 사람에게 들어가면 이 정보도 가치를 띌 지 모르지. 아무개씨는 슬쩍 당신의 반응을 지켜본다.
ㅡㅡ
서로에게 어색하고도 잔인한 침묵만이 지속되었다. 나이프로 찌르는 듯한 추위를 지닌 눈송이가 빠르게 떨어지는 와중, 어떻게하면 그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던 그에게 하나의 키워드가 주어졌다. 에스터 힐데가르트.
그의 눈동자가 한 순간 커지고 동공이 확장된다. 그리고 이내 기분좋은 듯 눈웃음이 살풋이 그의 눈가에 자리잡는다. 그녀의 하늘색 머리카락을 기억한다, 그녀의 고운 얼굴에 나있는 상처를 기억한다. 딱딱한 표정과 날카로운 눈매, 그녀의 히어로네임 까지 기억한다. 두개골 안에 얌전히 자고있던 뇌가 무심코 깨어나 듯, 뇌세포가 강렬한 전류에 휩쌓이는 듯 한 고양감이 모든 신경 하나하나를 자극한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와, 시계가 째깍이는 듯한 소리만 울린다. 눈이 쌓이는 소리마저 들을 정도의 침묵이 그를 휘어감는다.
분명 저 남자는 그를 잡아 넣은게 에스터와 유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 이다. 유현의 정보는 모르고, 에스터의 정보를 알고 있으니 그것을 던져 그를 어떻게든 구워삶아 볼려고 했던 것 이겠지. 그렇다면 감독의 큐싸인에 응해주는게 배우 아니던가? 기쁘게 응해주겠다.
웃으면서 마주해주겠다. 달콤한 죽음이 아니더라도 피할 수 없는 대치라면 기쁘게 맞이해주겠다.
" ... "
아무개씨의 말이 끝나자 그는 한 동안 미식가처럼 그 정보의 맛을 천천히 맛보는 것 처럼 침묵했다.
재판장 테러 이후 부터 에스터 힐데가르트는 괴물이라고 불렸다. 그렇다면 자신의 체포하는 것도 재판장 테러 이후라는 것 일까? 어떤 경우이든 재판장 테러가 그녀에게 어떠한 영향을 준 것은 확실하다. 그 영향이 무엇인지 조사한다면.
.....
" 사소한 정보로군. 하지만 고맙네. "
재판장 테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조사해야한다. 그렇다면 에스터 힐데가르트에 대한 정보를 더욱 자세히 채집 할 수 있겠지.
중요한 것은 집중이다.
ㅡㅡㅡ
"정말 사소하지만요."
아무개씨는 어깨를 으쓱 해보인다. 별 거 아닌 정보를 내주며 당신의 반응을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 에스터 힐데가르트의 이름이 나온 순간적으로 당신이 보이는 명백한 흥분을ㅡ그것은, 집착이라고 봐도 되겠지. 그런 구질구질함, 꽤 익숙해서 말입니다. 고상하신 남작님도 어쩔 수 없구만. 인간이란 그런 개체인 모양이다. 아무개씨는 자조를 남모르게 속으로 띄워내본다.
"빌런들의 반응을 봤습니다. 테러 전의 에스터와 상대한 사람들도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테러 후에는 공포...라고 할까요. 그런 걸 보이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괴물이라는 호칭과 함께. 아무개씨는 나름대로 그녀에 대해서 잘 안다면 알고 있는 편이었다. 그 상처가 생긴 정확한 시기와 원인까지도 대략적으로 기억하고 있었지. 이건 진짜로 쓸모없는 정보라 언급하진 않겠지만. 뭔가 스토커같잖습니까.
"고마울 것은 없슴다. 완전 사소한 정보니까요-"
슬슬 대화가 끝나간다고 생각하는지 아무개씨는 기지개를 편다. 늘상 피곤하지 않은 날이 없는 것 같다.
ㅡ
" 이번 정보의 빚은 어디까지나 빚으로 달아둬야겠군. 사소한 정보라곤 하지만 이 몸에게 있어선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서 말일세. "
차가운 목소리가 차가운 공기에 섞인다. 허공에 뱉어진 문장은 단어로 끊어지고, 또 글자로 끊어진다.
결국 완전히 분해되어버린 말을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실 뿐 이지만 자신의 말을 곱씹어본다.
결국 너도 완전한 영웅은 아니라는 것 이군. 괴물이라 불리우는 그녀와의 대치를 고대하며 조용히 손바닥을 비벼본다.
음험한 귀족의 음험한 집착이 유현에게. 그리고 에스터에게 향한다. 단지 제외의 그 순간만을 생각하는 것도 황홀한 것 인지 그는 자신의 눈가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누르며 몸을 떨었다.
" 하아아.. 그럼.. 다음에 봐야겠군. 수장님. 다음에 만날 때는 실적을.. 아주아주 많이 쌓아올려두지. "
- 아무개씨 - 머루
- (9스레)
"아아아."
과자가 잔뜩 남아버렸다. 다들 왜 이렇게 의심들이 많은거야. 왜라고 해도 사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전 수장의 방침 때문이겠지. 거 참. 빌런끼리 돕고 살아야지. 무서운 세상이라니까요. 이래서 악랄한 빌런들은 서러워서 살겠나. 헬멧을 살짝 열고 우적우적 먹어본다. 아이고. 헬멧쓰고있기 귀찮다.
파티가 끝난 뒤 아무개씨는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다. 테이블 두 개 정도를 치우고... ...그대로 테이블 위에 늘어져버린다.
"피곤함다..."
헬멧에서부터 신음소리가 새어나온다.
ㅡㅡㅡ
"파티 다 끝났어?"
지각생도 받아주니? 그런 능청스런 말을 덧붙이며 머루는 눈을 잔뜩 휜 채 저멀리서 발소리를 숨기지 않고 늘어져있는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도성이 생각보다 집에 일찍 와주었지만 아무래도 수장이 되버렸다는 그를 오랜만에 마주해보고 싶기도 했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을지가 궁금하기도 했고. 그를 남기고 온 것은 마음에 걸렸으나 어쩔 수 있나, 호기심은 머루를 이기지 못했으니.
"안녕 아무."
잘 지냈어? 근 2년만의 그의 얼굴이 새삼 궁금해져 머루는 그의 머리맡에 선 채 고개를 숙여 웃는 얼굴로 헬멧 안의 그를 들여다보다 손을 슬쩍 올리고 그의 헬멧을 벗어주려했다.
ㅡㅡㅡ
"그렇슴다- 아이고. 그거 막 벗기면 안되지 말입니다."
제 익명성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요. 아무개씨는 헬멧을 붙잡는다. 어차피 지금은 보는 사람도 없지만, 혹시나라는게 있지 않습니까.
"머루씨는 잘 지내셨습니까- 애인 생기셨다면서요. 축하드립니다."
그의 심심한 축하가 이어진다. 성의없는 박수가 뒤따른다. 짝짝. 연애라니. 상상만 해도 귀찮은 일이었다. 귀찮다고 할까. 귀찮기 이전에 사람의 마음을 의지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불안한 일이다. 그녀같이 변덕스러운 고양이에게 온전한 사랑이 생겼다니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얼굴이 보고 싶은걸.
"과자가 엄청 남았습니다. 다들 뭐가 들었는지 의심한 것이 분명합니다."
의심받을만 하지만서도. 입속의 과자를 우적우적 씹는다.
ㅡㅡㅡ
"너무해~"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냐? 머루는 큭큭 웃으며 건들지 않겠다는 의미로 두 손을 들었다. 조심해서 나쁠 게 없긴 하지. 그게 내 앞이라면 더더욱이.
"네가 알 정도면 이미 다 소문난 거 아냐?"
난 그다지 말하고 다닌적 없었는데, 사람들은 어쩜 그리도 남의 사랑 얘기를 좋아하는지. 그의 심심한 축하에 머루는 어깨를 으쓱이며 보고싶네, 라고 작게 읊조렸다. 그러고보니 도성은 명목상 히어로일텐데 그와 마주하는 일이 머지 않았으리라 예상이 되고. 머루는 그다지 개입하고 싶지 않았으나 둘이 마주한다면, 글쎄.
"물리지 않게 조심해."
걔한테든, 나한테든. 과자가 엄청 남았다는 말에 머루는 당연한 거 아냐? 라고 웃음을 터트리며 근처의 과자의 봉지를 뜯어 입 안에 넣었다. 이걸 이대로 바닥에 쏟아부으면 우리 아무가 좋아해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수장이 되셨다면서요, 축하드립니다."
그리곤 방긋 눈을 접은 채 그의 말투와 어조를 똑같이 따라하고서 박수를 두어 번 정도 짝짝. 심심한 축하를 전해주었다. 네가 그런 귀찮은 일을 할 줄이야, 정말 놀라고 볼 일이다. 귀찮아 죽진 않을려나 몰라.
ㅡㅡㅡ
"머루씨는 불참이냐고 물었더니, 애인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대답이 돌아왔슴다. 소문은 무진장 빠르죠."
정말이지. 남의 사랑얘기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은 걸까. 동감한다. 자신은 자신의 사랑얘기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뭐. 사실 1년이 넘게 사귀었으니 다른 사람들도 알 법도 하지만.
"뭡니까. 머루씨 애인은 강아지라도 되는 겁니까?"
아니면 수아레스? 그런 취향일줄은 몰랐습니다만. 아. 혹시 그런 쪽 능력자인가. 아무개씨는 큰 강아지를 안은 머루를 상상해본다. 과자를 먹는 당신을 보면서는, 저걸 머루씨가 바닥에 쏟아부어버리는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이고. 귀찮습니다. 아니. 감사합니다."
그만 본심이 나와버렸군. 아무개씨는 앞으로의 귀찮은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생각만 해도 귀찮다. 정말 당신의 생각대로 귀찮아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다.
ㅡㅡㅡ
"잘생겼으니까 한 눈에 알아볼걸."
머루는 그의 얼굴을 떠올리다 웃음을 흘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역시 소문은 소문이라고, 나는 혼자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말 너무하네.
"강아지라니, 너무해."
우리 도성이가 듣는다면 섭섭해 할거야. 그런 뒷말은 내뱉지 않고 머루는 서운한 표정으로 그와 눈을 빤히 마주하며 그대로 들고 있던 과자 봉지를 거꾸로 뒤집어 바닥에 부어버렸다. 그리고선 아무렇지않게 활짝 웃으며 아차, 실수. 하고 귀엽게 말해주는 것이고. 우리 도성이가 잘생기긴 했어도 사냥개를 강아지라 부르면 안되지. 안그래? 그러다 정말 물린다구.
"너도 지구 멸망을 원해?"
그 건방진 고양이는 이유가 뭐더라, 이젠 가물가물해서 기억도 잘 안나네. 머루는 고개를 의식적으로 갸웃해보이며 그의 헬멧 위로 손을 뻗어 검지로 톡톡. 규칙적인 소음을 내었다.
ㅡㅡㅡ
"어이구. 잘생긴 사람이 한둘입니까."
사람 얼굴이 거기서 거기지. 개 얼굴은 더 거기서 거기고. 얼굴에 머루 애인이라고 써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어떻게 구분한답니까. 정말로 적어놓으면 학대겠지만.
결국 쏟는구만. 그렇게 생각하며 와르르 쏟아지는 과자들을 그저 바라본다. 처참한 꼬라지가 바닥에 아른거린다. 아무개씨의 퀘퀘한 눈은 헬멧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어딜 봐도 일부러잖슴까."
아무개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빗자루를 가져온다. 머루씨는 여전하시네요. 어쩐지 안심했다. 이런건 빨리 버리지 않으면 벌레가 끓는다. 여러 명이 사용하는 아지트니까 얼른얼른 치워둬야지. 그렇게 빗자루질을 하던 아무개씨의 귀에 당신의 목소리가 얹힌다. 너도 지구멸망을 원해? 그런 소리를.
"......"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대답한다.
"당연하죠."
이런 귀찮은 일을 제가 뭣하러 하려고 했다고 생각합니까. 헬멧을 톡톡 치는 소리에 머리가 울린다. 한 번 칠때마다 지진이 한 번씩 나면 좋을텐데요.
ㅡㅡㅡ
(10스레)
"아무튼 마주친다면 잘 부탁해~."
걔는 널 무척이나 싫어하겠지만, 우리 대단하신 수장님이니까 그 정도는 알아서 하겠지? 라고 생각하며 머루는 너스레 웃어보였다. 혹시 또 모르지, 물리기 직전에 나를 들먹인다면 넘어가 줄 수도. 근데 그건 너무 구질구질 하지?
"응, 일부러지."
그가 빗자루를 가져오는 틈을 놓치지 않고 머루는 과자들을 발로 바사삭, 마구 부숴 밟으며 웃어보였다. 지구도 이렇게 손 쉽게 부숴진다면 얼마나 좋아. 발 밑에서 하찮게 짓밟히는게 꼭 누구들 같네. 아, 더러워졌다.
"어째서 일까?"
나는 궁금하거든. 머루는 눈을 휘어보이며 근처 테이블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았다. 너의 대단한 포부를 들려줬으면 하는데, 싫을까?
자신이 더럽힌 바닥을 대신 치워주고 있는 그를 도와 줄 생각은 안중에도 없어보였다.
ㅡㅡㅡ
"아. 이런."
당신이 과자를 짓밟는걸 보고 작은 탄식이 나온다. 쓸기 힘들어지잖습니까... 그러라고 한 거겠지만. 한숨을 쉰다.
"어째서, 라."
이런 화제가 나온다면 아무개씨는 어떻게 대답해야하는지 곤란해지는 것이다. 솔직하게 전부 털어놓자면 '부끄럼 많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로 시작하는 자전적인 소설 한편이 나올 것 같고. 핵심만 찝어 말하자면 그건 더 부끄럽고. 뭐랄까. 궁지에 몰린 거네요. 솔직히 말하자면, 세계를 멸망시키는 데 이유가 어딨습니까. 그냥 하는거지.
"머루씨는 즐거움이 없는 삶에 이어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래서 추상적인 말로 뭉뚱그려버린다. 이런 말하기 방식은 솔직히 귀찮다.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본심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더 귀찮다. 진심을 드러냈을 때 돌아오는 반응들과 마주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아예 숨겨버린다면, 귀찮아질 일도 없다. 어차피 그것은 전부 다 실없는 소리니까. 돌아오는 반응은 오해라고 한 마디 해버리면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다.
"가치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선택이란, 죽는거 말고는 어떤 게 있겠습니까. 가치를 만들어낸다 빼고요."
그것은 불가능하니까. 만약 가능했더라면, 자신이 지금 이 지경으로 굴러떨어지지도 않았겠지. 아니. 굴러떨어졌다라. 그런 표현은 위에 있었던 사람이 쓰는 말이죠. 저는 언제나 밑바닥에 불과했으니까.
"무의미한 쾌락에 빠져드는 것이 현실을 도피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요. 저는 그 방법으로 이걸 택한 것 뿐입니다."
부스러진 과자들을 다 담아낸다. 다 부서지고 짓밟히고 흐트러진 꼴이 꼭 누군가의 인생과도 같구나. 아냐. 아냐. 부서지고 짓밟혔다는 표현조차 쓸 수 없었다. 처음부터 과자 부스러기만한 인생을 살았을 뿐이었네요. 어째서 자기자신의 인생에 내릴 수 있는 평가에는 끝이,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생각해봤자 의미없는 일이다.
"뭐. 시덥잖은 변명입니다. 잊어버리셔도 됩니다. 나중에는 또 다른 대답을 할지도 모르지요."
어차피 자신의 진심이라는 것은 자신조차도 알 수 없는 것이거늘.
ㅡㅡㅡ
"있지, 곰돌이는 꽤나 흥미로웠어."
누구의 손에도 닿지 않게 이리저리 피해다니는 꼴이 꽤 요망스러웠지. 그런 희소성은 나를 자극해서, 그다지 질릴 틈을 주지 않았단 말이야. 머루는 테이블 위로 손을 옮겨 토도독, 하는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어내었다.
"그런데 넌?"
나에게 어떤 즐거움을 줄 수 있지? 머루는 입꼬리만 올린 채 가늘게 뜬 눈으로 넌지시 덧붙여 물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즐거움이 없는 삶의 가치라.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적어도 난 아니잖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버렸으니까 이제 지구멸망 따위야 아무래도 좋겠다. 굳이 말하자면 지구 멸망에서 지구 정복으로 바뀌려나? 의미없는 생각일 테지.
"죽는 게 무서워?"
너도 잘 알고 있네, 그런 것 따위 네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는 게 빠르단거. 머루는 살며시 눈을 접어 웃으며 고개를 다시 다른 방향으로 기울였다. 역설적인 사람. 귀찮다면서 수장 자리를 떠맡고, 지구 멸망까지 원한다니. 게다가 저렇게 움직이는 꼴이 퍽 부지런하기 까지하다. 조금 우스워 소리내어 웃었다. 수장이란 것도 결국 네가 지금 과자 부스러기를 치우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지 않니? 어차피 놔두면 썩어 없어질 것들을, 굳이?
"실망스러운 변명이었어."
무의미한 쾌락이라, 그런 적 없을텐데. 머루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려했다. 우리 새로운 수장님은 현실 도피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구나? 참으로 귀찮기도 해라.
"네가 원하는 건 그게 다야?"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너에게 볼 일이 없을 테고, 이 이상 네 얼굴을 볼 일도 없을 것이다. 톡. 규칙적인 소음이 그쳤다.
ㅡㅡㅡ
"그게 답니다."
떠난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이다.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오래 전에 다짐했으니까. 아무개씨는 덤덤하게 어지럽혀진 쓰레기들을 보고 있었다. 실감나는 자화상이구나.
"흥미롭지 못해서 유감이네요. 원래부터 재밌는 사람이 아니어서 말입니다."
머루씨도 아실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애초부터 저는 이런 귀찮고 성가신 놈이라서. 곰돌이. 곰돌이. 곳곳에서 그 분을 질리지도 않게 찾아주시는군. 아아. 부럽기도 하지. 그런 대단하고 압도적인 존재가 있어버리면 저 같은 거는 어떤 식으로 살아가면 좋단 말입니까.
죽는게 두렵진 않습니다. 다만... 같은 말을 하려다가, 아무 말도 입으로 나오지 못한다. 자신은 죽음이 두려운 것일까. 가치없는 삶보다 더 무서울 정도로. 그렇게 저울질을 하다보면 저울 위에 올려져있던 무거운 저울추 하나를 발견하고 마는 것이다. 모순이로구나. 정말이지. 저란 놈은. 구제할 수 없는 쓰레기네요.
스스로의 장점에 대해 어필할 수 있는 부분따윈 없고, 아지트도 지금의 당신에게는 필요없는 것 같고, 복지니 대우니 하는 것들도 딱히 당신에게 '재밌을' 거리는 아니겠죠. 길고양이와의 인연은 여기까지. ...쓸쓸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ㅡ
"아하."
머루는 감정 실리지 않은 짧은 감탄사를 내뱉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썩 괜찮아 보이던 이 새 아지트의 지하에는 아무개와 머루, 단 둘 뿐이었다. 꽤 여럿의 사람들을 파티에 초대했으리라 예상하지만 그들은 그의 호의를 그다지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다. 저 무수히 남아있는 과자들을 보면 말이다. 데인 게 크긴 했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 먹고 죽으면 그만인데. 담배의 연기를 내뿜었다. 파티가 시작한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지만 이미 모두 끝나 쓰레기들만 나뒹굴 뿐이고. 딱히 고용인도 존재하지 않는 이곳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은 단 한 명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무슨 신데렐라, 뭐 그런거야? 비극의 남주인공? 짧게 웃으며 테이블에서 내려왔다.
"예나 지금이나, 머저리들만 가득한 건 여전하네."
역겨워라. 어쩜 변한 게 너 뿐인지 모르겠네. 머루는 자신이 쏟았던 과자의 빈 비닐봉지를 들고, 근처의 쓰레기통에 넣은 뒤 무심하게 쓰레기통을 발로 차 그자리에서 쓰러뜨렸다. 의미없는 행동이었고 단순한 화풀이였다. 이러한 행동에도 그는 머루에게 화를 내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안녕 아무."
실망스럽네. 쓰레기통을 발로 찬 건 결국 너야. 알고있어? 쓰레기 같은 과자 부스러기만 처량하게 보면서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었다고. 흥미를 끌만한 재미있는 무엇 하나 만들어내지 못하고 평생 이딴 뒤치다꺼리만 하며 사는 것도 참 즐거운 일이겠다 그치? 누구의 도움없이, 이렇게 혼자서. 쓸쓸하게. 나라면 차라리 죽어버렸을텐데, 내가 아니라 아쉬울 따름이야.
머루는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던져버리고서 무표정한 얼굴로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무심히 스쳐지나쳐 그곳을 빠져나갔다.
5. 독백 ¶
- 2년전 그 남자는 뭘 하고 있었는가
- (시즌1 끝날무렵 올린 독백 재업)
(1스레)
"그거 들었어? 빌런의 수장이 실종되었다는 소식."
"에이. 설마. 언젠가 아무렇지도 않게 파티라도 하면서 돌아오지 않을까?"
"해외여행 갔다는 거 아니었어?"
동료 비슷한 자들이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그는 평소대로 묵묵하게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장발의 갈색 머리카락이 정돈되지 않은 채 흘러내린다. 그는 칼을 뽑는다. 상대의 심장팍을 정확히 찔렀던 나이프에 선명한 적색이 감돌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위험한 거 아닐까. 그 사람, 얼굴 다 공개됐잖아."
"구제프라는거 확실해? 그것도 결국 심증 아닌가?"
"전에 얼굴 본 사람이 있대. 본인 맞는 것 같다는데..."
남자는 시체의 옷을 뒤진다. 남녀 커플 한 쌍이 사이좋게 천국으로 간 모습이다. 어디. 이 쯤에 지갑이 있으려나. 여자의 겉옷을 뒤적이다가 두툼한 지갑이 손에 잡힌다. 오. 럭키... 그런 생각을 하며 대화는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던 귀에, 문득 신경쓰이는 단어가 꽂힌다.
"그러면, 빌런 망하는 거 아냐?"
망한다. 라,
그렇게 알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돈을 세고 있었다. 뭐, 망한다고 해도 자신은 지금까지처럼 하던 일을 해오면 되지 않겠나. 내가 속해있는 곳이 빌런집단 뿐인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이능력같은게 없었다고 해도 그럭저럭 하루 먹고 살 정도는 꾸준히 벌 수 있었다. ...아닌가? 알게 뭐람.
"곰돌이탈의 익명성이 깨져버렸으니까. 이대로라면 수장을 이어가기에는 조금 위험하겠지."
"역시 그러려나."
"하지만, 어차피 그 전까지는 아무도 그의 얼굴을 알지 못했잖아?"
그렇다면, 새로운 사람이 이어받아도 되지 않을까?
...라는 말이 마지막으로 들려오자, 이름없는 사내는 그런 생각을 했다. 다들 구질구질할 정도로 과거에 집착하시네요. 끝이면 끝인거지, 뭐가 그렇게 아쉬운 게 많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새로운 사람, 세계 멸망, 빌런의 몰락... 같은 키워드들은 조금이지만 머릿속을 툭툭 건드리는 것이다. 이대로 세상이 평화로워진다고 해도 괜찮냐고. 자신은 그런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냐며. ...죽으면 죽죠 뭐.
하지만, 그런 귀찮은 짓에 나서는 것은 빌런이 사라지는 것 보다도 싫은걸. 그렇게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떤 기운넘치고 할일없는 사악한 분이 대신 해주시겠지. 거 참, 상상만 해도 엄청 귀찮은 일이네. 시간에 재력에 의욕까지 갖추고 있지 않으면 못 할 짓이겠는걸ㅡ 자. 오늘의 벌이는 끝. 내일의 일이라면 내일 생각해보자고.
...그런 무계획적이고 생각없는 삶을 이어왔으니까, 벌을 받게 되는 것이겠지.
설마 그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일'을 떠맡게 되리라고는.
- -Welcome.
- (형수 독백 반응)
(1스레)
"...다음 소식입니다. XX행의 비행기에 알 수 없는 사고가..."
그는 뉴스를 보고 있었다. 한 손으로는 턱을 괸 채, 다른 손으로는 리모콘을 잡은 채였다. 망고칩을 대충 입에 물고 우물거린다. 거 참, 화려하게도 하셨구만. 본인은 멀쩡하신가? 턱을 괸 손에 긴 갈색빛의 머리카락이 갈라져 흘러내려있었다.
"...현재 확인되는 생존자는 없음... 전원 사망하였으며..."
리모콘을 내려두고는, 망고칩 봉지로 손을 가져간다. 반 정도 남은 망고칩이 봉지에서부터 쏟아져나온다. 하나를 또 다시 입에 넣는다. 맛은 그닥이지만, 씹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외출나가기 귀찮아서 아쉬운대로 집어먹고 있다는 이유가 크긴 했지만. 용케 숨쉬는건 안 귀찮은가보다.
"관계자들은 이를 이능력을 이용한 범죄로서 보는 시각이 대다수이며, 이것이 최근의 빌런 부활 연설과도 관련이 있는지는..."
으직. 그는 망고를 씹는다. 다음 소식입니다... 또 다시 빌런 연설과 관련된 뉴스. 그는 혼자서라도 중얼거려본다.
"여기고저기고, 저를 너무 과대평가해주셔서 말입니다-"
귀찮은 일들 투성이라고요. 그는 한숨쉰다. 하지만, 그렇게 기분나쁜 눈치는 아닌 모양이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저런 것까지 터뜨려주시고, 얼굴 한 번 보고싶네요."
그도 그럴게, 절 위해 저렇게까지 해줄 부지런한 사람이 어딨답니까-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요. 뭐. 귀찮게 되었지만. 그는 뒷통수를 긁적인다. 이어지는 지루한 뉴스들에는, 이윽고 티비를 꺼버린다. 그는 기대있던 소파에 힘을 빼고 늘어지면서 내일 할 일을 정리해본다. 정말 귀찮은 일을 시작해버렸네요.
- 머루와의 일상 후
- (10스레)
아. 쓰러지는 쓰레기통을 보면서 떠올린 것은 '역시나' 라는 생각이었다. 또 실패했군요. 뭐. 타격은 없습니다만. 그는 당신이 사라진 자리와 널부러진 쓰레기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느릿느릿하게 그 곳을 향해 걸어간다. 여기에 제가 들어가면 딱 어울릴까요. 실없는 생각이었다.
그. 뭐냐. 케므므...라는 아이가 당신을 그리워할겁니다? 그 애에겐 당신이 필요합니다? 파티에도 당신이 없어서 오지 못했으니, 괜찮은 권유일지도 모르겠다. 역시 상황에 맞는 말은 늦게 떠오르는군. ...아니. 내가 어린애 하나 어떻게 된다고 눈 깜짝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 쯤은 당신은 알고 있었을 터. 거기다 케므므씨가 당신을 정말 그리워하는지 어쩐지도 저로서는 추측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것을.
여러가지 명분으로 움직이는 빌런들이 있습니다만, 그녀같은 타입이 누구보다도 까다롭다고 아무개씨는 생각했다. 위악을 자처하는 자, 보금자리가 필요한 자,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의 안전, 부와 명예, 기타 등등의 이유들. 그렇지만 '흥미'라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동기는 제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다고요. 저같이 재미없는 사람에게 어떤 것을 기대하는 겁니까. ...그렇게 말해봤자, 자신의 잘못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어쩐답니까. 감정에 호소하는 거, 가장 소질없는 거라고요.
...아무개씨는 다시 빗자루를 든다. 엎질러진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면, 치울 수 밖에.
- 아무개씨 - 뒷골목
- (12스레)
'대수술 끝에 사람을 구한 의사... 훈훈한 소식'
'건물의 화재를 진압한 '히어로'... 의혹?'
'연쇄살인마 패러독스의 활동재개... 빌런들에게도 목숨의 위협'
그의 갈빛 눈에는 핸드폰 화면의 불빛이 비친다. 여러가지 뉴스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개씨는 핸드폰을 놓는다. 외출을 나선다. 쓸데없이 평화로운 세상이라니까요. 나라도 일해야 쓰겠구만. 오늘도 툴툴거리면서도 성실한 그이다.
밤의 뒷골목에는 위험이 도사린다. 헬멧을 쓰지 않은 얼굴의 그는 겉보기에는 평범한 민간인. CCTV가 없는 이 길은 은밀한 일을 하기에는 딱 적합한 곳이다. 긴 머리카락이 살랑인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 방치된 길이지만, 어째선지 늘 바닥의 페인트칠만은 새로 되어있다. 왜냐고 한다면, 부지런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겠죠. 수고 많으심다.
평범한 커플이 지나간다. 여기 무서운걸- 걱정마. 누나가 지켜줄게! 그런 시덥잖은 대화가 오간다. 연상의 여성인 듯한 상대는 손 끝에서 얼음결정을 만들어낸다. 근처 벽을 쫙 얼어붙이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해보인다. 아이고. 거 참 대단하군. 아마도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길로 온 거겠지. 눈에 띄는 곳이라면 신고당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보통 굳이 이런 길로 다닌다는 것은, 죽고 싶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능동적으로 자살하는 것은 힘드니까요. 저도 압니다. 그러니까, 제가 그 무력한 소원을 이루어드려야죠. 아아. 너무 사람 좋아서 탈이라니까.
"거기 참, 보기 좋은 커플이십니다."
아무개씨는 지나가는 커플에게 예의상의 미소도 띄지 않은 채 말한다. 두 사람은 경계하지만,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다. 여자쪽에서 너는 뭐야? 라고 한 마디를 하자마자, 그녀는 갑작스럽게 몸에 전류가 흐르듯 마비되는 감각을 느낀다. 그런 그녀의 이상을 느낀 남자쪽도 뭔가 말하려고 하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굳어버린다. 자신의 능력이다.
...유감스럽게도 이거 거짓말이었는데, 쉽게도 속아주셨네요. 아니면 이런 것이 거짓말이리라곤 생각 못한 건가? 하긴. 당연하지. 이런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빌런의 수장이라는 정보가 없으면 대처하기 힘든 것이다. 굳어진 커플에게 다가가 그는 익숙해진 나이프를 뽑는다. 사랑스러운 커플에게, '죽을 때 까지 함께'하는 축복을.
...이윽고, 제법 시간이 지난 뒤에 그 곳에는 수많은 시체가 쌓여있었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해둘까. 슬슬 조금 지났으니, 야간순찰이라도 하면 귀찮아지지 말입니다. 시체의 처리를 고민하던 그는, 평범하게 강에 버리기로 한다. 정석이니까요.
그리고 그는 뻔뻔스레 페인트를 가져온다. 피가 있었던 곳을 묻어버릴 생각이다. 냄새가 날지도 모르지만 그건 제 알바 아니고. 성실한 살인마로서의 활동을 마친 그는, 아지트에 돌아갈 채비를 한다. 피 묻은 옷은 태워버리면 되겠지.
관리되지 못한 채 방치된 그 뒷골목에는 어째선지 늘 페인트칠만이 새로 되어있었다.
Dice(5,20) value : 17명 살해
- -Enchain
- (13스레)
"무의미하게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만두세요."
문득 당신이 그런 말을 해온 것이다. 아무개씨는 최초의 반응으로 의아함을 보이다가, 이내 약간 언짢은 듯이 되물었다.
"뭐가 문젭니까?"
애초에 빌런이 되어달라고 부탁한 것은 당신이 아니었나. 물론 당신만의 제안은 아니긴 했지만서도. 나는 이 일의 시작에 당신의 소망이 깊숙히 관여해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 말 그대로 실현하기 위해서 충성을 바쳐왔는데. 당신을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고, 당신이 세간에 빌런으로서 드러나는 일 없이 자신만이 악역으로 남아왔건만. 그렇게 생각하다가 또 다시 자기모순을 깨닫는다. 아. 또 기대해버렸구나. 자신은 어디까지 멍청한 존재인 건지.
"저는 빌런이 되어달라고 했지, 이렇게까지 사람을 죽이라는 말은 안 했는데요. 이것이 끼칠 뒷영향은 생각하고 저지르는 건가요."
당신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쭈그린 채였다. 그늘진 표정에 음침한 모습. 언제나와 같은 생기없는 눈이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둡다. 어두운 당신이다. 자신보다도 어두운 사람을 꼽는 것도 쉽지가 않은데.
"...빌런이 하는 일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면 뭡니까? 애초에 당신의 목적하고도 걸맞는다고요. 빌런이 압도적인 악으로 군림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벌레목숨처럼 죽어가야지 당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거 아닙니까? 당신이 요구한 것은 최대한 많은 혼란 아니었습니까."
"...혼란을 일으키는 방법은 이런 것 만이 아니야."
언제나 당신은 자신의 일을 방해해온다. 당신을 위해서. 당신이 바라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뿌듯해하면 꼭 경멸어린 눈과 함께 그만두라는 말을 내뱉는 것이다. 에스터를 죽이려 했을 때도, '그녀'를 죽였을 때도 그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지. 나의 인생을 뒤집고 멋대로 희망을 줘놓고서는, 또 다시 송두리째 빼앗아가버린다. 그런 당신을 볼때마다 자신은 뼈저리는 무력감과 함께 자기혐오를 느끼고 마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세계에는 커다란 위협이 도사릴거에요. 그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종류의 '사회 혼란'수준이 아냐. 세계에 대정전이 일어났던 것과 같은, 그런 종류의 재해가 일어나는 거라고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이 세계는 이미 충분히 혼란이 가득한 상태니까요."
이현상이니 인구수 보존이니 어쩌구저쩌구 하는 이야긴가. 당신도 그분이나 죽은 그녀같은 이야기를 하는거네요. 솔직히 이런 쪽에는 전-혀 흥미가 없습니다만. 뭐. 저보다야 당신께서 훨씬 머리가 좋으시겠죠. 저의 인생이 쓰레기같다는 걸 저보다도 먼저 눈치챈 당신이니까! 빈정거림을 삼키면서 경청하는 시늉을 해본다.
"그것은 당신이 바라는 바일지는 모르지만, 제가 바라는 바는 아니에요. 적어도 제가 임무를 완수할 때 까지는 참아주세요. "
머루와 당신은 추구하는 바는 조금 성질이 다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막연하고 추상적이고, 아무개씨가 생각하기에 명분에 있어 가장 어렵고 까다로운 타입이라는 점에서. 고상한 척을 해봤자라고요. 문득 자신이 머루씨를 쫓아내버린 것에 후회가 밀려오고. 아. 멍청하기 짝이 없지. 앞에서 춤이라도 출걸 그랬나. 나름대로 재밌어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아무개씨는 한껏 빈정거려본다. "그러면 제가 빌런활동을 어떻게 하면 좋다는 겁니까."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서 벽에 낙서하고 TV방송에 장난질을 하고 그러면 되는 거냐며. 그러자 당신은 얘기한다. 언제나와 같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저는 '무의미하게' 죽이지 말라고 했지, '죽이지' 말라고는 안 했어요."
소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소를 도축할 필요가 있지. 생명을 죽여야 한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인간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야. 그런 말을 하는 것처럼 당신은 담담했다. 당신의 욕망을 위해 수도 없는 사람들은 스러져가거늘. 그런데도 언제까지고 자신은 '선량하고 무해한 피해자'로 있고 싶다는 얘기지. 헛웃음이 나온다. 나를 웃게 만드는 것은 당신 뿐이야.
"그러니까, 최대한- 끔찍하게, 중요한 사람들을 위주로, 질 높은 살인을 하도록 하세요. 지금처럼 마구잡이로 죽여대봤자, 후폭풍만 심해진다는 것 아시죠?"
제가 뭘 알겠습니까. 언제나 당신의 대-단한 뜻을 알지 못하는 무지하고 멍청하기 짝이 없는 범죄자가. 그런 말이 목끝까지 차오르지만 내뱉지 않고, "알겠습니다."라는 짤막한 말만을 건넨다. 역시 당신은 나와 동족이에요 라며 당신이 싫어할 법한 이야기를 속으로 중얼대본다. 당신은 인정하지 않을 지 몰라도 그 얄량한 동지애가 있었기에 내가 당신을 계속해서 따라온 거니까. 그의 사람을 의미없이 죽이지 않겠다는 대답을 듣고서야 얼굴에 미소를 띄운다. 아. 저런 얼굴을 지을 수 있다니 정말로 부러운데.
"그럼, 잘 부탁드려요."
그런 환한 미소는, 여태까지 말하던 사람과 같은 얼굴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눈웃음을 지으며 띄는 천사같은 미소. 유순하고 다정하게만 보이는 인상. 확실히 이런 얼굴을 할 수 있다면 좋은 사람인 척을 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당신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만들어내듯이. 그 속은, 더할나위없이 뒤틀려있었지만. 주제넘은 행복을 바라는 자여.
모순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을 그저 바라본다. 당신이 당신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날은 언제쯤일까.
킬카운트 적립에 경고가 들어갑니다.
- -Troy/빼앗기는 자
- "......"
그는 뉴스를 바라본다. 야만적이군. 내가 분명 질 높은 살인만 하라고 말했을텐데. 얼마나 통제불능의 집단인건지. 그렇게 생각하며 빌런의 수장을 비웃은 그는, 굽이 높은 신발과 익숙한 헬멧을 챙긴다. 그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건 당신의 책임이겠지.
주의가 필요한 시기이다.
ㅡ
살인을 마친 뒤 '그 곳'에 헬멧을 두고간 것이 떠올라 돌아와보니,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사라진 헬멧과 굽이 높은 신발. 그리고, '그 사람'. 아아. 이건.
"...아무래도 밉보인 모양인가."
아무개씨는 한숨을 쉬며 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린다. 이렇게 빨리 직접 움직이시게 될 줄은.
- 뻐꾸기와 까치/경고 해제
- '그 곳'으로 돌아온 그가 가장 처음 마주하게 되는 것은 지긋지긋한 아무개씨의 얼굴이었다. 헬멧을 벗은 그는 그것을 늘어져있는 아무개에게 건넨다.
"...수고하셨습니다- "
갈색의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남자는 헬멧을 받고는 끌어안는다. 아무래도 그가 헬멧을 가지고 돌아올 때까지 계속 여기 있었던 모양이다. 허나 처량하지도 않은지 매정한 눈은 그저 아무개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군. 아무개는 익숙한 그 시선으로부터 눈을 돌리며 말한다.
"첸."
"이상하게 부르지 마세요."
"...아- 너무하심다. 제가 뭐 친한척 하려고 그러는 줄 아십니까- 그렇다고 본명으로 부르면 또 화내실 거 아닙니까."
그러자 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말한다. 일그러진 소망을 당연한 자신의 것이라는 듯이 말하며.
"저의 본명은 그 이름밖에 없다는 거 아시잖아요?"
정말로 뻔뻔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
당신의 소망은 모든 부분에서 잘못되어있다는 것을 이 곳의 누구나가 다 알고 있거늘. 방식과 전개와 목적 전부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소원이다. 그러나 입을 다문다. 괜히 이러니저러니 말할 생각은 없다.
"...그래서, 왜 불렀나요? 이상한 애칭까지 만들어가면서."
"무시당하느라 깜박 잊어버릴 뻔했는데, 아주 중요한 알림이 있다구요?"
"뜸들이지 마."
"...그 분이 부르심다. 끝."
첸은 짤막한 대답을 듣자마자 그 분이라고 불린 사람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우와. 진짜 너무하심다. 아무리 제가 쓰레기라지만, 알겠단 말 정돈 해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라는 그치곤 꽤 긴 항의가 이어지지만,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군다. 아무개씨는 그런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잠시 일으켰던 몸에서 다시 힘을 쭉 빼며 늘어져버린다. 제멋대로인 사람.
그러거나 말거나 뻐꾸기는 둥지를 떠나 날아갈 준비를 할 뿐이다.
ㅡ
첸은 그 분의 개인실로부터 나온다. 문을 닫고는, 침묵한다. 겁쟁이 취급 받은건가. 기분나쁜 늙은이. 그래도, 안심되는 소식이긴 했다. 아무개에게 있어서도. ...본인에게 있어서도.
이 정도의 살인으로는 세계가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좋아. 아직까지는 여유를 가진 채 구경해도 괜찮겠지... 자신이 직접 나설 때는 아직 아니다. 조금만 더, 서두르지 말고 조심스레. 얼굴을 감추자. 완벽하게 적절한 순간이 찾아올 때까지.
킬카운트 한도를 10000으로 정정합니다.
5000카운트부터 경고+패널티가 시작됩니다.
- -xxxx와 xxx
그가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날이었다. 상대는 자신의 어머니였다.
...■□■◇, ▲△▲▽라고,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당신은 스러져갔다. 바들바들 떨리던 손이 구원을 갈구하다가 이내 툭, 떨어지고. 자신은 그것을 커다래진 눈으로 그저 바라보다가- 무심코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하하."
해냈어. 그런 생각 뿐이었다.
"하하하, 하하하."
아버지. 내가 해냈어요. 나에게도 할 줄 아는 게 있었어. 무력하고 무능한 나에게는 평생 손에 넣을 수 있는 구원따위는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손으로 바꿀 수 있는 상황따위는- 성인이 채 되지 못한 나이였다. 이제는 불릴 이름이 없어져버린 아무개는 웃고, 웃고, 웃었다. 손 끝으로 처음 느낀 재능이 너무 짜릿하다. 앞으로의 나의 인생을 드디어 나의 손으로 바꾼 거야. 아버지. ...그리고,
"■□■. "
나는 너의 이름을 부른다.
"내가 해냈어."
너를 구할 수 있게 되었어. 네가 바랐던 것처럼, 너의 구원이 찾아왔어. 복수를 성공하고 자유를 얻었다고. 내가 너의 구원이 되어줄게. 쓰레기같은 인생 속에서, 처음으로 나의 의지로 무언가를 바꾸고, 손에 넣고- 드디어. 자신의 인생에 네가 말했던 '빛'이라는 것이 찾아왔다고 그는 생각했다.
너의 그 싸늘한 눈빛을 보기 전 까지는.
"......"
침묵만이 흘렀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눈이 경멸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것은 명백했다. 아. 뭐가, 뭐가 문제였던 거지. 어째서? 모든 것이 더 좋아졌잖아. 이제 '그녀'는 우리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 그러니까, 네가 말했던 것처럼 희망을. 구원을. ...가까이 다가오는 자신을 향해, ▼▷▼는 더더욱 깊은 경멸을 얼굴에 드러낸다. ...가까이 오지 마.
●○●◇는 자신의 손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구원을 향해 손을 뻗었다.
- -xxxx
- 누군가는 자신의 영웅을 만나 구원받지만, 누군가는 영웅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고통받는다. 아주 운 좋게도 구원을 맞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구원을 맞이하는 사람 바로 곁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도 있다. 혹은 구원으로부터 아주 먼 곳에서 끝없는 괴로움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는 태어난 이후 줄곧 그것이 고통인지도 모르는 삶을 살아왔다.
"...비참해."
처음으로 그의 말을 듣고서야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내일을 살아가는 게 무서워. 죽는 것도 무서운데, 사는 것도 무서워. 왜 나는 이런 곳에 와버리고 만걸까. 능력때문에? 힘들어."
■●■◆는 열 두살인 당신이 뱉은 그런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표현을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막연하게 답답해지는 가슴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것을 그런 표현으로 해내는 당신의 절망에 감탄했다. 괴로움을 표현하는 말도, 괴로움임을 알리는 말도 당신에게서 처음 배웠다. 그렇기때문에 당신은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자인 동시에 구원자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괴로움이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알았고, 그 덕에 자신의 인생이 괴로움 뿐이었음을 다시금 알게 되었으니.
당신이 비참해졌다고 한 인생의 모습은, 그에게 있어서는 태어난 뒤 계속 겪어온 일상이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구원해줬으면 좋겠어. 영웅같은 존재가. 부디 무구한 나를..."
그리고 그 말에 ■●■◆는, 구원자가 되기로 다짐한다.
- 아무개씨와 고양이
- 터벅, 터벅. 시체를 맨 소년이 밤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숨이 가빠온다. 무겁다. 생명의 무게가 이렇게나 무거운 것인가- 같은 도덕적인 말은, 가식이라는 것을 안다. 한심하다. 소년은 골목길에서 털썩 주저앉는다. 열 여덟살의 나이였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사랑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의 구원자가 되고 싶었다. 기대해버린 자신이 바보같았다. 어차피 이 쓰레기같은 인생에서는 구원받는 것도, 구원해주는 것도 가능할 리가 없었는데.
"시체를 처리할 때는 강에 버리는 게 좋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올려다본다. 어둠속에 가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있었다.
"...누구십니까?"
"글쎄 - 길고양이라고 생각해둬."
당연히 길고양이일 리는 없었다. 인간의 말을 하는 길고양이같은 거 들어본 적도 없다. 사뿐. 그 사람은 시체를 안아올리더니, "뭣하면 처리하는 것을 도와줄까?" 라고 말을 걸었다. 어둠 속이라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데 고양이의 웃음만이 남아있다니, 체셔고양이도 아니고.
"...왜 저를 도와주시는 거죠."
"으음. 글쎄. 어린아이니까?"
싱긋 웃는다. 이래봬도 자식이 있는 아빠라서 말이지. ...아니. 이젠 '있었던' 인가. 아이들에겐 친절한 사람이거든. 아직 어린 아이가 살인의 무게를 지고 가야 한다니, 너무하잖아?
"이래놓고 신고하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럴리가. 이 쪽도 막 사람을 잔뜩 죽이고 왔는데."
확실히 그의 몸에서는 치덕치덕한 피 냄새가 비릿하게 풍겼다. 옷에도 얼룩진 피가 잔뜩 보이는 것 같았다. 아무개는 얼굴을 찡그린다. 사실 슬슬 다리도 아프고 몸도 지치고, 뭣보다 정신적으로 무리라서 시체를 처리할 궁리까지 하는 것은 어려웠다. ...다음에 죽이게 된다면, 이번보다는 시행착오 없이 해결할 수 있겠지. "감사합니다." 라고 짧게 거짓말같은 인사를 한 뒤, 시체를 당신에게 넘긴다. 당신은 돌아서려다가, 말한다.
"아. 그래. 댓가없이 처리해주는 게 찜찜하다면, 이름이라도 말해주는 것이 어때?"
"......?"
아무개는 예상치도 못한 제안에 의아해한다. "제 이름이 얼마나 가치를 띄고 있습니까?" 그러자 그는 대답한다. "글쎄. 아저씨의 흥미 충족 정도는 되지 않을까?" 흥미. 흥미를 위주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워낙 재미없는 삶을 살아왔기에 그런 것일까.
"...이제는 저에게 이름은 없습니다. 이름을 지어준 사람을 죽여버렸거든요. 그냥 지나가던 아무개씨입니다. "
"그렇다면 나에게 버리고 가는게 어때? 아무개씨. 원래 이름말이야."
"......"
아무개는 고민한다. 어차피 시체를 처리해주는 댓가로서는 싼 편이었다. 이 이름을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 수치스럽긴 했지만, 어머니와 함께 그녀가 지어준 자신의 이름을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태어난 이후로 계속 당신의 '그것'으로 살아온 입장으로서.
"모르모트입니다."
그렇게 거래는 성립되고, 연구자의 시체는 무사하게 처리되었다.
- 유토피아는 그를 비웃고
※아무개씨의 심리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다보니 상당히 네거티브합니다. 깊은 우울감에 주의.
ㅡ
"...그런 계획을 공포했어요 - 물론,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아요." 아무개는 침묵한다. 헬멧은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다. 긴 머리카락이 아래로 늘어뜨려진다.
"...왜 저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야, 당신은 어차피 보이기 위한 수장이잖아요?"
빙글 웃는다. "거기다, 당신에게는 전부 귀찮기만 한 일 아닌가요- 그렇지요?" 당신은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사실은, 귀찮은 것보다도 두려운 것이 있다는 것을.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인다. 그런 이야기는 무의미하다. 가치가 없다.
"사실은, 얘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당신의 목을 가지고 협박할 생각도 있었는데 - 아. 물론 진짜 죽일 생각은 아니었어요. 모르모트군도 알죠? 제가 당신을 얼마나 아끼는지..."
아무개는 그런 말들을 들으며 평소와 같은 무심한 얼굴...은 아니었다. 조금은 달랐다. 힘이 없는 얼굴이라고 할까. 초췌하다. 언제나 힘이 빠진 듯한 태도긴 했지만서도.
"어라. 왜 그렇게 슬픈 표정인가요-?"
슬픈 표정. 아. 이것이 슬픈 표정인가. 그렇구나. 자신은 슬픈 거구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이해하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자신따위가 그런 것을 이해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태어날때부터 그런 존재였거늘. 그 때는 '그녀'에게, 지금도, 그와 당신에게 이용당할 뿐이다. 그 곳에 자신의 의지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당신의 적성에 맞지 않으니까, 아예 그에게 완전히 맡겨버리는 것은 어때요? 그 자는, 연기에는 꽤 능숙한 인간 아닌가요."
"...그것은 그가 원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처음 시작할 땐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저는..."
무엇이 두려운 걸까. 뭐가 슬픈 거지. 그런 쓰잘데기없는 감정들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 무력감. 무력감만이 있었다. 마음으로 소리쳐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데. 빌런의 수장으로서의 지위가 사라지면, 자신에게 안 되는 일인가? 뭐가 안 되지? 애초부터 그런 경우의 수를 언제나 생각해뒀던 것이 아닌가. 그렇기때문에 익명성을 만들었던 것이지. 음성변조에, 얼굴이 비치지 않는 헬멧.
쓰레기같은 인간군상만이 모여있는 빌런이라고 하는 집단, 그 쓰레기들의 위에 군림하고 있는 자신. 정말 모두 악독하고 쓰레기같은 사람들 뿐인데 말입니다. 근데, 즐거웠다고요. 솔직하게 말하면 계속 곁에 같이 있고 싶어요. ...더 친해지고 싶습니다. 저는 언제나 쓰레기같은 삼류 악역이라서 말입니다. 아. 모순적이다. 그래봤자 여러분에게 저는 무능하고 도움되지 않는 수장일 뿐이겠지요. 누가 저를 대신하더라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에요.
대체 왜, 왜 깨달아버린걸까. 움직이고 움직여봤자 미움받는 것밖에 할줄 모르는 주제에. 멍청하다. 죽어버리고 싶어.
"모르모트. 우나요?"
울지 않습니다. 우는 법은 모르거든요. 그런 말을 하려고 하는데 어딘가 목이 메입니다. 하찮다. 결국 이제서야 깨닫는구나. 차라리 그 전에 죽어버렸으면 좋았을것을. 그냥 죽는 게 무서운게 아니야. ...태어나서 아무 희망도 손에 넣지 못한 채 끝나는 것이 무서웠던 거야.
"저의 인생에는 절망밖에 없어왔습니다."
빌런의 수장이라는 귀찮은 위치에 올라섰다. 그에게 동지애를 느꼈으니까. ...당신에게 친구라고 인정받고 싶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나에게 아무 관심도 없겠지. 그리고 빌런들에게 동료애같은 것을 혼자 일방적으로 느끼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아버리는데. 싫다. 정이 들어버렸으니, 이제 미움받는 일 뿐이다. 그 수많은 눈이 나를 보며 경멸을 쏟아내는 것을 상상한다. 내 멋대로 혼자 머릿속에서 세운 관계는 쉽사리 무너져버려요. "아하."그녀는 뭔가 눈치챘다는 듯이 웃는다.
"빌런으로서 모두와 있는 것이, 당신의 희망이었다는 얘기네요."
"당신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 ...차라리 끝까지 몰랐으면, 계속 나는 원래 그런 무심하고 무정한 사람이라며 거짓말을 반복했다면 괜찮았을까요? 희망은 이후의 절망을 돋보이게 하는 감미료일 뿐이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어떤 희망도 손에 잡으면 안 된다. 이 쓸쓸함과 고독이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다. 그래서 계속 사람을 밀어냈어요. 잃어버리는 게 무서우니까.
테러를 망쳐버렸다. 동료들이 잡혀가버렸다. 내가 무모하게 벌인 일 때문이다. 무능하다. 수장 자리에서 내려온다면, 더 이상 자신이 무언가를 또 망쳐버릴 일따윈 없겠지. 근데, 그러면 저에겐 정말 아무것도 안 남지 않습니까. 해야 할 일도. 곁에 남은 사람도.
의도와 감정을 가지지 않고 그저 지시에 의해 행동한다고 해도, 그 행동 속에서 감정이라는 것은 피어오르게 돼요. 그리고 그것은 저를 좀먹습니다. ...행복해질 리 없다고 알면서도 자꾸 희망을 바라게 되잖아요.
"외로웠던 거네요."
언어가 되면 감정은 형태를 이루게 된다. 당신의 그 말이 나를 죽여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어. 지금이라도. 왜 나는, 고독에 익숙해지지 못했지. 동료애니 뭐니 하는 구질구질한 것에 집착하고. 계속해서 잃어버리는 것이 인생이라고 깨달았다면- 그것에 익숙해지던가, 그게 안 되면 죽던가 했어야 하는데. 떠나간 사람들을 떠올려봐도, 경멸어린 눈을 하는 모습밖에 생각나지 않아.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나은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 -Blue
- "......"
평범하게 길거리를 걷던 어느 날이었다. 조금은 심란한 마음에 하루 벌이라도 하려 돌아다니던 찰나, 웬걸, 오랜만의 재회였다. 아무개는 조금 놀란 얼굴이다. "데이빗." 맞다. 알바할땐 그런 이름을 썼던가. 데이빗으로 불린 이름없는 사내는, 나이프를 자연스레 숨긴다.
"오랜만이네요." 그렇게 간만에 만난 지인에게 뻔뻔스레 인사를 건넨다.
알바 동료였던 상대는 자신보다 연상의 남성이다. 이래뵈어도 이웃에게의 이미지는 '건실하고 성실한 청년'인 아무개씨였다. 간만에 만난 인연이 다소 초췌해진 얼굴일 때,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라고 말을 건네는 것이 평범한 사람의 행동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선량한 데이비드에게 박수를. 상대는 자신의 말에 조금은 어두운 표정이다. 아. 이거 조금 귀찮아질 것 같은데.
******
조용하고 사람이 적은 커피숍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에스프레소를 홀짝인다. 쓴 건 괜찮지만 양이 너무 적습니다만. 그래서, 눈 앞의 상대는 무슨 일이 있길래 이런 곳까지 저를 불러와 얘기를 하는 걸까요.
"...헤어졌어."
아. 실연담인가. 이런 건 예상 못했습니다만. 그렇게 금술좋고 평생 갈 것 같더니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무개, 아니 데이빗은 묵묵히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평범한 이야기였다. 상대네 집안과 재력 차이가 너무 나서. 양가에서 반대하는 탓에. 점차 만나는 것 만으로 부담이 되고. 대충 그런 얘기. 점점 말을 거듭할때마다 목소리는 흐느끼는 것이 되어간다.
"그래서, 죽을 생각까지도 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상대는 눈물을 터뜨린다. 세상 잃은듯이 우는 모습이 영락없이 어린애같다. 거 참. 사랑이란 게 뭐길래 다들 목숨을 거는 걸까요. 꽤 신기하지 말입니다. 자신이 할 말은 아니지만. 데이빗은 상대를 토닥인다.
"울지 마십쇼. 어른 아닙니까. 분명 더 좋은 인연이 있을 겁니다."
"그치만..."
"...그리고, 죽고 싶다는 얘기는 그렇게 함부로 하는 거 아닙니다."
여차하면 제가 진짜 죽는게 뭔지 보여주는 수가 있습니다. 하하. 농담하지마. 유감스럽게도 진심이었다. 뭐. 기분이 나아졌다니 좀 다행입니다. "그 쪽은 뭐하고 지내?" 데이빗은 지어내서 말한다. "요즘 세상이란게 워낙 흉흉해서, 일을 쉬고 있습니다." "아하하. 하긴 언제 코베여갈지 모르는 상황이긴 하지." 이야기를 하니 조금은 기분이 나아진듯, 상대는 미소를 띄운다. 어쩔 수 없는 사람이네요. 미소가 서툰 아무개는 그저 적당히 무표정을 지켜보인다.
헤어지면서 그는 말한다. "저기." "응?" "조만간 연락하겠습니다." 그 말에 상대는 웃는다. "그래. 또 봐." 오늘은 서툰 솜씨지만, 요리라도 해볼까. 아무개는 생각한다.
******
손수 만든(이라는 설정인) 파운드케이크를 상대에게 건넨다. 상자에 예쁘게 포장된 케이크는 하트모양으로 되어있었다. 상대와 연인의 교제후 첫 기념일에 먹은 것이었다. 이번엔 상대가 조금 놀란 표정이다.
"연인분하고 드십쇼."
유감스럽게도 요리는 서툴어서, 주변 빌런의 도움을 받았다. 이런 일에 동원하다니, 죄송스럽습니다만. "헤어졌다곤 해도, 서로의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보는거라고 생각하고 한 번 만나보세요. " "......" 상대는 침묵한다. 예상못한 호의에 당황한 것일까.
"데...이,빗..."
"거 참, 왜 또 우시는 겁니까."
"으으으...고마워. 너는...정말 좋은 친구야."
"...친구요."
그런 말에는 언제나 마음이 약해진다. 전부 당신이 연인과 자신에 대한 투머치한 정보들을 술술 풀어줬기 때문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내심 쑥쓰러웠다. 정말이지. 나도 못 먹는 케이크를 만들려고 사람까지 동원하고. 저도 참 정이 많아서 탈이라니까요.
한층 밝아진 상대에게 작별인사를 건넨다. 가죽장갑을 낀 데이빗의 손이 흔들린다. 이제 진짜, 다음에 울며 올 일은 없겠지. 손을 흔드는 상대가 멀어져간다.
******
...반대에 부딪힌 연인. 동반자살...
뉴스 구석에 자그맣게 글씨가 지나간다. 아무개로 돌아온 데이빗은 아지트 소파에 걸터앉아 티비를 바라본다. 케이크에 마법을 걸어뒀거든요.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구질구질하고 괴로운 삶으로부터의 구원이다. 자신은 쓸데없는 미련탓에 그것을 이루는 데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사랑하는 두 사람을 위해, 자신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의 선의를.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야, 최고의 해피엔딩 아닙니까. 영원히 고통으로부터 달아나, 두 사람이 계속 함께 하는 결말. 현실에서 구원을 찾기 위해 발버둥쳐도, 이어지는건 끝없는 절망과 고독 뿐이라고요?
이윽고 뉴스가 정식으로 다시 두 사람을 비춘다. 두 사람의 최근 심리상태와 상황을 보아 자살일 가능성 높으나, 남성쪽의 독살시도일 가능성도... ...제 3자의 개입은 확률이 낮으며... 둘만의 기념일에 관련된 음식이었던 것을 보아... 여러가지 말들이 나온다. 위험을 감수해가며 둘을 구원으로 이끌어주다니, 저도 너무 사람이 좋지 말입니다. 제 자신도 이루지 못한 진정한 구원을.
착한 일을 했으니 나쁜 일도 좀 해볼까. 그는 헬멧을 벗고 나이프를 챙긴다. 고민상대 해주느라고 제 일을 오랫동안 방해받았다고요. 그리고 이름없는 남자는, 두 사람의 결혼식을 위해 하객들을 보내러 간다.
2명 사망
이후 dice(10,30) value : 22명 사망.
- 모르모트
- (1)
무력감이라고 하는 것은 무척이나 골치아픈 정서다. 분노나 증오, 이를테면 복수심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그것이 어떤식으로든 살아가기 위한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죄책감이나 자괴감, 고통은 죽기 위한 원동력이라도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무력감은 살아갈 의지도 죽어갈 결단력도 건네주지 않았다. 그것은 모르모트의 생애에 있어 가장 지배적인 정서였다.
"......"
아버지가 죽었던 날을 떠올려본다. 어린 나이였다. 그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과할 정도로 선명한 기억이었다. 부패하고 망가진 덩어리같은 것이 되고 만 자신의 가족의 모습. 모르모트는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즐거웠던 기억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본다.
당신은 어째서 나의 아버지와 결혼했는가. 그런 것을 생각했다. 차라리 두 사람이 맺어지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태어나지도 않았을텐데. 그것이 그 모든 사람에게 있어 좋은 처사였을지도 모른다고, 모르모트는 생각하고 있었다.
"모르모트. 일어났니?"
활짝 웃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린다. 나의 어머니였다. 부패한 팔과, 메스를 손에 쥔 채 미소짓고 있었다.
ㅡ
그녀는 괴짜였다. 두뇌는 비상하지만 압도적인 광기가 그것을 전부 수포로 만들었지. 당신이 나의 아버지를ㅡ당신의 남편을 실험체로 쓰다 죽여버렸을 때까지는, 그런 당신을 그렇게 미워하진 않았던 것 같다. ...아니. 미워했던가. 이미 그의 감정은 너무나도 깊은 무력함 속에 갇혀있었기에, 어느 것이 본심인지는 본인조차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진심을 숨겼지. 본인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서도.
"오늘은, 초능력에 관한 실험을 할거야..."
대정전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 부터도 당신은 그런 소리를 하곤 했다. 그 때는 미친 소리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능력이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는 전부 다 비현실에 가까웠던 시기였으니까. 당신이 정말 그 엄청나게 비상한 머리로 지금의 사태를 예견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미치광이의 망상이 맞아떨어졌던 건지는 모르겠다. 대정전 이전에 당신의 실험이 성과를 봤다면 또 모를까.
모르모트라는 이름을 지니고 태어난 소년은 오늘도 실험대에 오른다. 부디 오늘은 마취제를 쓰는 것을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하나뿐인 재료가 쇼크사하길 바라지 않는다면. 아. 더 구해올 수 있다면 별로 상관없는 내용이려나. 그리고 주사바늘이 팔에 들어온다. 모르모트는 잠에 빠져든다.
꿈에서는 언제나와 같은 악몽을 꾸었다.
ㅡ
대정전. 그 어마어마한 사건이 지나고 난 뒤 많은 곳에서 인체실험이 일어나곤 했었지. 심지어 그 이즈모에서조차 암암리에 그런 일들이 있었다고 하니. 아무튼 그녀의 망상이 허황된 것이 아닌 걸로 밝혀졌고, 그녀는 연구소에서 좀 더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연구소 차원에서 인체실험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연구소에서 모르모트는 나름대로 사랑받았던 것 같다. 오만가지 짓거리를 당해도 어떻게든 살아남은 실험동물을 신기하게 여기며 아껴주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정의한다면 말이다. 잘 길들여진 동물이었지. 화도 내지 않고, 반항하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 그야말로 적합한 실험체. 이름 그대로였다.
그런 삶이 불행하고 절망적인 삶이라고 생각하진 못했다. 당신의 말을 듣기 전까지.
"...비참해."
연구소의 실험이 커지면서, 실험체들도 조금씩 늘어갔다. 유일한 실험체가 아니게 된 입장에서 모르모트는 인체인에게 흥미를 느꼈다. 흰 가운을 입은 어른들이 아닌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어린 아이를 처음 본 것이다.
"내일을 살아가는 게 무서워. 죽는 것도 무서운데, 사는 것도 무서워. 왜 나는 이런 곳에 와버리고 만걸까. 능력때문에? 힘들어."
■●■◆는, ...모르모트는 열 두살인 당신이 뱉은 그런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표현을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막연하게 답답해지는 가슴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것을 그런 표현으로 해내는 당신의 절망에 감탄했다. 괴로움을 표현하는 말도, 괴로움임을 알리는 말도 당신에게서 처음 배웠다.
그렇기때문에 당신은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자인 동시에 구원자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괴로움이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알았고, 그 덕에 자신의 인생이 괴로움 뿐이었음을 다시금 알게 되었으니. 당신이 비참해졌다고 한 인생의 모습은, 그에게 있어서는 태어난 뒤 계속 겪어온 일상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구원해줬으면 좋겠어. 영웅같은 존재가. 부디 무구한 나를..."
이제와서 말해보자면, 인체인은 '무구하고 불쌍한 나'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그것은 그의 결점이었지만, 모르모트는 그것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다. 애초에 정상적인 도덕관과 인간성의 관점에서는 본인을 포함하여 그를 둘러싼 그 누구도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연구소에서 그나마 정상이라고 불릴만한 사람은 인체인밖에 없었을 테지.
모르모트는, 인체인의 구원자가 되기로 다짐한다.
- -Mrs.Distopia
그녀의 목적과 당신의 목적은 달랐다. 그녀는 인체인과 자신이 동시에 수장이 되는 것을 더욱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오히려, 인체인의 얼굴이 히어로들에게 드러날 경우를 분명히 엄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 인생의 가장 큰 행동동기가 '흥미'인 사람은 역시 어렵다.
"모르모트. 저는 '어떤식으로든' 세계멸망을 바라는 사람이 아니랍니다."
그렇게 말했었지. 별로 이해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턱을 괸 채 정성껏 들었다. ...아. 솔직히 말하자면 거짓말이고 정성껏 안 들었습니다. 흥미 없습니다. 나같은게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고상한 취미라는 생각 뿐이라고요.
"세계멸망은 게임의 승리 조건일 뿐. 어떤 추하고 비겁한 수를 써서라도 멸망시킨다... 라고 하는 것은, 멋지지도 않고 재밌지도 않잖아요? 게임이란 그렇게 악착같이 즐기는 게 아니에요. 상대와의 기본적인 예의를 전제로 해서, 서로에게 후회없이 즐거운 게임을 만드는 거죠."
그리고 당신은 말했지. 언제나의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세상이 가장 재밌는 방법으로 멸망하는 것을 보고 싶어요."
가장 재밌는 방법이라. 재미란게 뭔데요. 온갖 것에서 재미를 느끼는 당신이 부러울 뿐이다. 그 재미라는 것을 나에게도 한줌만 나눠줬으면 좋겠군요. 뭐 그런 불평들은 당신에게 닿지 않겠지만.
"그러니까, 지금 제가 하는 모든 것들은... 연습게임이에요. 어떤 전략을 세우고, 어떤 멋진 판을 그릴지를 위한."
어마어마한 말이 저의 손에 있으니, 그에 걸맞는 멋진 경기를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어요-? 당신은 그렇게 말했다. 물론 그 어마어마한 말이란, 나를 말하는 것은 아니었지.
- 아무개씨 - 반응(진성)
"......"
아무개는 문자를 받는다. 대단하고 귀찮은 계획을 세워주셨군. 엄청나게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어디. 이걸 이제 인체인에게 전하러 가야겠지. 그는 남은 한 명을 마저 죽인 뒤, 뒷골목에서 빠져나와 연구소로 향한다.
"인체인."
언제나처럼 연구소 구석탱이에 쳐박혀있는 당신을 불러본다. 이름을 부르니 째려보는 시선이 돌아온다. 일단은 동료까진 인정받지 못한대도, 동업자에게 갖출 예의정돈 갖춰주면 안 될까요.
"이즈모에 갈 기회에요. 당신의 일에 도움이 되지 않겠나요?"
당신에게 문자를 공개한다. 옅은 빛의 눈이 조금은 흥미롭다는 듯한 기색을 띈다. "좋아요." 당신이 미소짓는다. 아. 저 웃음은 오랜만이다. "히어로들의 이목이 감옥으로 쏠리는 혼란을 타서 제 일을 하면 괜찮겠네요."
그리고 인체인은 말한다. "보고 수고했어요. 아무개. ...모르모트. " 당신이 이름을 불러준 것은 어째 오랜만같군. 이름을 부르는 것이 선의인지 악의인지 의미없는 이유인지는 알 수 없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