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히어로 vs 빌런? S2
"...전부, 괜찮아질 수 있을거에요."
"따스한 차라도 한 잔 드시지 않겠나요?"
1. 외모 ¶
흑발에 가까운 정도로 짙은 남색 머리카락.
견갑골까지 오는 장발은 양 쪽으로 차분하게 넘긴 상태이다. 흔히 말하는 여신앞머리...라고 불리는 스타일.
부드러운 눈매에 검은 눈. 평소엔 안경을 끼고 다닌다. 164cm.
견갑골까지 오는 장발은 양 쪽으로 차분하게 넘긴 상태이다. 흔히 말하는 여신앞머리...라고 불리는 스타일.
부드러운 눈매에 검은 눈. 평소엔 안경을 끼고 다닌다. 164cm.
4. 독백 ¶
- (시즌1) 상담사와 소년.
에릭은 반가운 뒷모습을 발견한다. 과거 자신을 포함한 고아원 아이들의 상담을 도와줬던 선생님이다. 에릭은 선생니이임! 하고 달려들어 껴안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자신도 이제 어른이다. 에헴! 하고 헛기침을 한 뒤, 얌전하게 그녀를 불러본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사미가 뒤돌자 그 곳에 보이는 것은 미소를 띈 익숙한 얼굴. 그녀는 에릭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오랜만이에요. 선생님!"
"많이 컸네. 에릭."
그녀의 다정하고 차분한 미소에 에릭은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 그 때와 변함없는 상냥한 선생님이었다. 에릭은 사미를 도도도 따라가 옆에서 걷는다.
"에스터씨랑 상담은 잘 되어가요?"
"응. 많이 나아지셨어."
"와아! 역시 선생님에게 에스터씨를 맡기길 잘했어요."
"그래...?나는 오랜만의 상담이라서 긴장했는데."
추운 계절이닌 만큼 둘다 꽁꽁 싸맨 모습이었다. 사미의 검은 목도리 안에 긴 머리카락이 붙잡혀있다. 눈길을 소복, 소복 걷는 소리가 귀를 기분좋게 건드린다.
"에스터씨는- 늘 주변 생각 안하고 무리를 해대니까 문제에요. 쉴땐 쉬고, 놀땐 놀아야 하는데!"
"워낙 책임감이 강하신 분이니까."
"그리고요- 자기가 다치는 거를 신경쓰지 않으신다고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사미는 훅 하고 입김을 불어본다. 뽀얀 숨결이 앞을 가렸다가 사라진다. 겨울이었다.
"그렇지만, 정말로 좋으신 분인건 사실이야."
"물론이지요!"
김이 서린 안경을 닦지 않은 채 말한다. 사미는 눈앞의 새하얀 광경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앞이 흐려져도, 시야에 가득 담길만큼 눈부신 하양. 그녀는 에스터를 바라보며, 굉장히 올곧고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상담을 하는 입장에 서긴 했지만, 만약 에스터가 상처입지 않았더라면 반대의 위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만큼 사미가 바라보기에 에스터는 올곧은 모습이었다.
...이즈모에 있는 게, 걱정될 정도로.
눈길은 몇 번이나 사람들의 발걸음이 오갔지만 아직 그 흰색을 잃지 않은 채였다. 짓밟혀서 회색이 되는 것이 먼저일까. 아니면 작열하는 태양이 그것을 전부 녹여버리는 것이 먼저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소복소복 눈길을 걸어간다. 아직 흰 눈밭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선생님?"
"아. 아니. 미안. 길이 미끄러워서."
"눈이 쌓인 쪽을 밟으면 안 미끄러워요!"
"...그래야겠네."
사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미소로서 순수를 모방한다. 에릭은 생글생글 웃으며 그녀를 따라 걷는다. 소복소복하는 소리가, 다시 한 번 두 사람의 귀를 간지럽힌다.
축복이 깔린 거리를 걸어가는 어느 겨울의 2시 10분.
- 상담
- "...네. 그래서..."
사미는 언제나처럼 상담을 해주고 있었다. 다시 상담일로 복귀하게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어떻게보면 이것도 다 에릭의 덕분이겠지. 그녀는 웃으며 환자분하고 대화한다. 나이드신 노인분이다.
"아. 최근에는 빌런에게 당할 뻔하고... 굉장히 무서우셨겠어요."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어드린다. 언제나 상담의 기본은 듣기. 안 그래도 힘드신 상탠데 그런 일이 있었으면 또 다시 트라우마가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했으나 상담자는 씨익 미소짓는다. 사미는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대답을 듣고 이해한다.
"히어로에게 도움받았다, 라..."
불을 쓰는 능력자.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이로구나. 괴로운 사람에게는 약간의 절망도 그를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데에 충분하다. 그런 상태에서 누군가의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안도되고,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는 아직 좋은 사람들이 많아.
"네. 그런 분들이 세상에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사미는 활짝 미소짓는다. 오늘도 위험한 일을 해가면서 누군가를 도와주는 히어로분들이 있기에 우리가 안전한 거겠지. 다들, 고맙습니다.
- 에피소드2 후일담
- (1)
-그, 그게... 이상한 소리인건 아는데, 최근에... 인체실험을 당한 적 있는 사람들이 제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그 중에서는 빌런으로 전향하였던 경우도 많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저는 정말 운이 좋아서 구해졌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조금, 망설임이 생겼다고 해야하나... 죄, 죄송해요. 이상한 소리였죠...?
-아니. 그게. 요즘 히어로들 숫자도 부족하고... 과잉진압 논란이라던가... 어... 그런 얘기가 돌길래...? ...그냥 무시해주세요.
...에스터는 누군가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현재 이즈모에는 한 명의 상담사가 존재한다. 하지만 최근 어째선지 어딘가로 사라져버려서, 여러가지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그렇기때문에, 일을 위해서는 한 명을 더 구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 갱생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잘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뭐, 중범죄자가 경범죄자로 변하는 정도의 효과는 기대해볼 수 있으려나. 파크같은 경우는 정말 기적적인 케이스였고.
띵동.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그녀는 언제나와 같이 개인 상담소에 있었다. 마침 차를 끓이던 중인 그녀는, 잠시 내려두고는 찾아온 손님에게 먼저 문을 열어준다.
"에스터씨."
사미는 다정하게 웃으면서 에스터를 맞이한다. "오랜만이네요." "...그렇군요. 꽤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그런 평범한 인삿말들이 오간 뒤에는, 시시콜콜한 잡담이 이어진다. "요즘은 이명에 시달리는 일은 없나요?" "괜찮습니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선생님이라니, 상냥한 어감이네요. 그녀는 그렇게 생각한 채 미소지으며 차를 마신다. 역시 과묵한 말투라도 다정한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에스터에게도 차를 권유해보나, 거절하였다.
"...일단, 제가 찾아온 것은 단지 안부인사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그 쪽 일은 눈코뜰새없이 바쁜 모양이니까. 특히 에스터같은 경우 자신을 몰아붙이며 과로하는 습관이 있어서 상담을 맡은 사미로서는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실까요? 부드럽게 웃는다. 언제나의 온화한 얼굴이었다.
"...이직 제안입니다. 개인 상담소가 아닌, 더 큰 곳에서 상담을 하실 생각 있으신가요?"
그러자 사미는 무슨 일인지 알겠다는 듯이, 한편으로는 약간은 슬픈 듯이, 하지만 그러면서도 다정한 태도를 잃지 않은 채로 말하였다.
"아마도, 이즈모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에스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사미는 이즈모라는 말에 조금은 먹먹한 어감을 느낀다. 그 사람이 일했던 곳도, 그 곳이었지. 나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시던 그 자를 떠올려본다.
"...저는 그런 대단한 곳에 있을만한 사람이 못 된답니다. 이렇게 개인상담으로라도 상담 일에 복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뻤어요."
사실은, 단순히 그것때문만은 아니지만... ...사미는 말을 삼킨다. 조금은 울컥하고 무언가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자신의 반쪽을 잃어버렸던 경험은 아직도 자신의 속에 가라앉아있던 것이다. 상담사로서 이런 상처를 끌어안고 있다는 것은 실격일지도 모르는데.
"...이즈모가 그닥 좋은 곳이 아니라는 것은, 저도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권유가 무례하다는 것 또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즈모는 필요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위치. 쉽게 무너질 수도, 무너져서도 안 되는 곳이지요."
따스한 차가 그녀의 몸에 온기를 불어넣어준다. 사미는 평온하게 미소지은 채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게도 보일 정도로 짙은 남색의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져있다.
"그렇기때문에, 적어도 이즈모에서 일하는 히어로들을 위한 복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존재하는 상담사분이 어딘가로 사라져버렸기에, 사미씨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
...사미는 정갈하게 정돈된 말들을 차근차근 듣는다. 테러 이후에는 말 하나하나를 잇는 것도 그렇게 힘들어하셨는데, 이제는 이렇게 자신을 설득하는 위치에 있을 만큼 다시 단단해졌구나. 역시- 내가 틀리지 않았어. 에스터라는 사람은 그 정도의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리라, 사미는 믿고 있었던 것이다.
"...또, 에릭이 어처구니없는 계획을 세워버린 탓에... ...조금이지만 어울려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
어디까지나, 실험적인 프로젝트니까... ...이 부분은 거절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런가. 어처구니없다고 하면서도 동조해주는 걸 보면, 어쩌니저쩌니해도 두 사람 또한 서로를 믿고 있구나. 좋은 관계야. 지금은 혼자인 자신은 그런 신뢰관계의 두 사람을 조용히 축복해줄 뿐이다. "그래서. 그 프로젝트의 내용은?" ...에스터는 입 밖에 내는 것을 망설인다. 아무리 그래도 무모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빌런 갱생 프로젝트..."
...콜록. 그 이름에 사미는 마시고 있던 차를 분무기처럼 뱉어내고 만다.
(2)
결국엔 와버리고 말았다. 어째서였을까. 이즈모같은 곳이랑은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남색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린다. 안경을 낀 여성은, 조금은 추운지 몸을 떨고 있었다. 목도리를 하고 겉옷을 두껍게 입었는데도, 날씨가 좋지 않구나.
"사미 선생님!"
그녀를 본 에릭이 반갑다는 듯이 인사를 건넨다. 사미는 인사를 건네는 에릭에게 미소지어준다. 춥지도 않은 걸까. 어려서인지 기운이 좋네... 그런 감상을 속으로 남겼다.
"...에릭. 정말로 할거니?"
사실은 사미가 마지막의 마지막 결국 이즈모로 올 것을 다짐한 것은 에릭의 탓도 있었다. 머리가 좋은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이상한 부분에서 센스가 어긋나있는걸까. 어쩔 수 없이 자신이 곁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판단 아래 이 곳에 온거였다.
"여, 역시 안 될까요...? 그렇지만, 분명 성공사례도 있기도 하고..."
삐질삐질거린다. 본인이 하겠다고 해놓고 이렇게 자신이 없으면 어쩌자는 건지. 한숨이 뿌옇게 입김으로 번져나간다. 역시, 내가 지켜봐야겠네. 그러니까 보호자의 심경이었던 것일까.
"...너무 무리하지 말고, 안 되겠다 싶으면 물러서는 것도 중요해. 가능성이 희박한 계획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이런 긍정적인 모습이야말로 이 애의 장점이겠지. 비록 그 속에서 이리저리 방황하고 고뇌하긴 하지만. 어른 된 입장에서 내가 해야할 것은 아직도 어리기만 해보이는 이런 아이를 보호해주는 일이 아닐까. 그렇게 다짐한다. 지금은 이능력을 잃어버린 그녀였지만, 정신적인 지지가 되어주기로.
"앞으로, 동료로서 잘 부탁해."
그 말에 에릭도 미소지으며 대답한다. 잘 부탁해요. 선생님.
MPC 이사미가 추가됩니다.
앞으로 모든 히어로들과 생포된 빌런들은 사미에게 상담을 받으러 올 수 있습니다.
- 사미 - 반응(진성)
"...그가, 다시 잡혀왔다고요."
그녀의 손이 멈춘다. 상담내역을 정리하던 도중 찾아온 손님이 전해준 소식이었다.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는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사미로서는 조금은 심란한 기분이었다. 사미는 후배로서의 그를 만났던 일을 떠올린다. 네. 그리고... ...알겠습니다. 소식 감사합니다.
방문자가 상담실을 떠난 뒤에는 혼자만의 정적이 흐른다. 조금 단호하게, 약간은 부러 냉정한 눈을 하며 기록 노트 한 장을 뜯어낸다. 상담의 기록을 자신만 알아볼 수 있도록 마구 흘려적은 노트이다. 잠금을 건 핸드폰에 옮기는 대로 파기하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것이다.
그래. 너는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범죄로서 범죄자를, 폭력으로 폭력을 벌하는. 하지만 그거 아니. '죄인'이라고 하는 꼬리표는 굉장히 이용하기 쉬운 거라고. 아무리 인도적이고 올바르고자 하는 사람조차도 조금의 흠만 보이면 처형대에 목이 날아가는데. 그런 방식의 정의 추구가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 같아?
...생각이 자신의 꼬리를 문 뱀처럼 빙글빙글 돈다.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침착해지자. 그렇게 자신을 타일러나간다. 하필 그 시기의 인연과 이런 형태로 다시 조우하게 되었기 때문일까. 그렇게 노트를 파기하던 도중 헝클어진 글씨가 가득한 곳에서 'Answer'라고 하는 글자를 본다.
"......"
그녀는 상담 스케쥴을 잡는다. 개인적인 것이었다.
5. 일상 ¶
- 파크 - 사미
- 저벅저벅 하는 발걸음으로 이즈모 내부의 복도를 걷는다. 최근에 예약해두었던 상담사에게로 향하는 발걸음은, 조금 무거웠으려나. 평범한 신체검사도 귀찮아하던 그가 왜 이런 상담을 예약했냐 하면, 최근에 있었던 집안에서의 난동이 그 이유였겠지. 자신도 모르는 이유로 갑자기 감정이 조절이 되지 않아서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말이야. 예약했던 상담사가 있다고 들은 상담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똑똑.
"오늘 예약했던 파크인데, 들어가도 괜찮을까?"
노크 몇번을 하고 문 너머에서 말을 걸었다. 들어가도 되는지 묻는 행동은 나름의 매너라는 거겠지. 곧 허가가 떨어지자 파크는 문을 열고 천천히 상담실의 내부로 느릿하게 걸어갔다. 반말이라서 조금 건방질수도 있는 말투로 말을 건넴과 함께.
"뭐라고 호칭하는게 좋을까? 이사미 의사선생님? 아니면 본명 그대로?"
ㅡ
당신의 노크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들어오세요." 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한다. 서재와 수납장, 상담 테이블, 의자 정도가 존재하는 조촐한 상담실이지만 휑하다기보단 깔끔하다는 인상에 가까웠다. 차분한 분위기가 드러난다고 할까. 당신이 상담실에 들어오면,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사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선생님'이 좋겠네요. 상담사지만, 의사는 아니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미소짓는다. 실제로 그녀는 구제프와 달리 정신과 의사가 아닌 상담사였다. 상담을 맡았다는 점에서 이즈모에서 하는 역할 자체는 비슷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에 있어서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그럼, 이 쪽은 파크씨라고 부르는 편이 좋을까요?" 그녀는 묻는다.
"상담에 앞서서, 저에게 상담을 받고자 한 이유가 있는지 자유롭게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나요?"
ㅡ
헤에, 발을 내딛자 나름 깔끔한 광경의 상담실이 눈에 들어온다. 이정도면 훌륭한 상담실이지. 상담실에 뭔가 침대라던가 찬장에 이상한-사실 그렇게 이상한것도 아니었지만- 과자가 있다던가 하는 그 곰돌이놈의 상담실 보다는 훨씬 더 상담실같잖아 이거. 파크는 미소짓는 사미를 보고 씨익 웃어주고는 그녀 앞에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럼 사미 선생님이라 부르지 뭐. 어감이 좋네, 사미 선생님."
그런가. 의사는 아니었구나. 나는 그 곰돌이처럼 의사인줄 알았는데. 사실 그 곰돌이놈도 의사라고 칭하기는 좀 그랬지만-빌런의 수장이니 당연하긴 하다-어쨌든 나름 의사 학위를 가지고 상담을 했으니, 이즈모의 상담사가 되려면 의사여야만 하는 줄 알았지.
파크는 머릿속으로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그녀의 질문에 "파크씨던, 그냥 파크던 상관없어."라고 대답했다.
"이유라.....음 잠깐만, 조금 정리해볼게."
파크는 잠깐 의자에 등을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 자아 증상이.....최근에 있었던 집에서에 난동 외에도 있는지 생각해본다. 케므누와의 첫대면에서도 그랬고......츠루와의 만남에서도 그랬지 아마. 케므누때는 말에도 가시가 설 정도로 통제가 안되었고, 처음 그런증상이 나타난 츠루와의 만남에서는 간신히 참아내었.....조금씩 증상이 악화되어가고 있는데?
"음 그게, 사실 최근에 분노라고 해야할까? 그래 분노가 조절이 잘 안되어서 말이야. 처음에는 마음속 깊이에서 이유없이 분노가 느껴지더니, 두번째에는 갑자기 입이 험악해지고, 세번째는 완전히 폭력으로 변질되었어."
"......세번째 경우에서는 집 안에서 그랬기에 별다른 피해는 없었지만, 만약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끔찍하다. 배트가 부러질 정도로 휘두른 것을 보아하니, 분명 전력으로 내리쳤던것 같다. 그정도 세기로 사람을 내려쳤다면, 아마도.......내 히어로 생활뿐만 아니라 정신도 산산조각 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런 증상때문에, 사미 선생님을 찾아온거야."
조금 엄숙할 수도 있는 말투로 무덤덤하게 그녀에게 이야기하였다.
ㅡ
사미는 곰곰히 증상을 적어본다. 의도적으로 휘갈겨쓴 글씨가 종이에 적혀간다.
"혹시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었나요?"
평소에 표현하지 않고 쌓아뒀던 것이 한번에 쏟아져나오는 걸수도 있으니까. 또한 이러한 충동조절의 문제는 만성적인 우울감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다. 거기다가 상대가 히어로라고 하는 점은 스트레스가 쌓였으리라는 추측에 조금 더 신빙성을 불어넣어줬다. 통제되지 않는 감정이 일으킨 결과에 좌절하는 것은 분명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확실히,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큰일났겠네요...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게 다행이에요. 일찍 찾아왔으니까, 차근차근 느긋하게 이야기하다 보면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아갈 수 있을 거에요."
차분한 말투였다. 지금은 아직 차 세트가 준비되지 않아서 차를 대접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따스한 차 한잔과 함께 하는 상담이 무엇보다 좋은데.
"히어로라고 하는 직업은 이래저래 힘든 일들이 많으니까요. 보이지 않는 피로가 쌓였을지도 모르는 거에요. 짚이는 일이 있다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까, 전부 이야기해줄래요?"
ㅡㅡ
무언가 적고있는데, 저게 뭐려나. 휘갈겨져 있어 알아볼 수는 없었다. 뭐, 딱히 관심있는건 아니니깐.
"스트레스라......뭐, 일이 스트레스지. 사람들의 비명소리, 죽어가는 사람들의 신음소리,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여기에다가 수많은 위기 상황속에서 느껴지는 무력감. 꽤나 훌륭한 스트레스 아닐까나. 솔직히 힘들거든."
정신적으로ㅡ말이다. 육체가 피곤한적은 글쎄, 있었던가. 적어도 기억상으로는 없었던걸로 기억한다. 잘 지친적은 없으니깐.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최근 정신공격을 엄청 받았으니깐 좀 피곤하지. 그것도 일하던 도중에-사실 처음은 그냥 일탈이 목적이었지만-벌어진 사건이니깐.
그리고 저 일들이, 하나같이 극한의 스트레스를 준다.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매일 밤에 사람들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뒤섞여서 악몽으로 찾아온다. 죽인 사람들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환영으로 나타나 환청과 함께 나에게 비난을 가한다. 스트레스를 안받을수가 없는 상황이네 이거.
"흐음, 되게 진정되는 말투네. 고마워 사미 선생님. 조금 편안해진것 같아."
차분한 말투에 저도모르게 편안한 느낌이 든다. 파크는 등받이에 편하게 기대며 사미에게 조금 긴장이 풀린듯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러게, 딱히 짚이는 일은 없지만......최근에 멘탈이 한번 와장창 나가서 폐인이 된적은 있어. 근데 이런 증상은 폐인이 되기 전에도 그랬고....흐으으으음....."
파크는 깊게 생각에 잠겼다. 진짜 뭐 19년 살면서 기억에 남는게....음....
설마 2년전에 이 머리색 바뀌는 약물때문이겠어. 말할필요 없겠지 이건.
ㅡㅡㅡ
"...아무래도 그렇겠죠. 힘들 수 밖에 없는 일이니까..."
일이 스트레스라는 당신의 말에 그렇게 긍정을 표한다. 당연한 일이었다. 매번 사지에 내몰려서 사람이 죽는지 아닌지와 끊임없이 마주하게 되는 일인데.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으면 이상하다. 고개를 끄덕인다.
"늘 고생이 많으시네요. 아직 어린 나이인 걸로 보이는데, 과하게 고생하는 건 아닌가 싶어요. "
그렇게 부드럽게 묻는다. 긴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긴다.
"언제 무너져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환경에서 매일매일 싸우고 있는 거에요.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자진해서 위험을 도맡고. 그런 히어로들에게 저는 언제나 감사드리고 있고, 동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면서 당신께도 감사를 건넨다. "늘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정한 미소였다.
"이것이 제 일인걸요."
그렇게 말하며 미소짓는다.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쁘다.
"...폐인이 되었다니, 자세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ㅡ
"그런가? 어린 나이지만........과하게 고생하는건 아니지. 동료들이 있으니깐 말이야. 언제나 내 고생조차 나눠들어주는걸."
일이 스트레스라는 말에 긍정을 표해주며 자신을 위로해주는 사미에게, 파크는 웃었다. 동료들이 있기에 버틸 수 있어. 그래, 신뢰하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별히 좋아하는 그들이 있기에 아직까지 히어로 일을 할 수 있었지. 서로가 서로에게 등을 맞대고 고통의 무게를 나누니깐, 고생이라고 할것도 없었던것 같은데.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하하. 그런 극한의 조건......실로 극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조건에서 아직까지 히어로를 하고 있단건, 대부분의 히어로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겠지. 나도 히어로지만, 같은 히어로들에게 매번 감사하고, 동경하는걸. 내가 구하지 못한 사람들조차 구해주니깐."
내가 히어로를 하면서 느낀건, 이건 절대로 쉬운일이 아니라는것. 더욱이 이 일은 스스로를 좀먹는 일이라는 것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히어로를 하고있는 다른 히어로들을 보며, 지치지 말아야지, 더욱 열심히 해야지 라며 다짐할 수 있었다. 모두가 열심히 하는데 나만 쉬고있을수는 없잖아.
"헤, 나도 그대로 돌려줄게. 이것이 내 일인걸."
감사인사를 받고서는, 파크는 자신의 말에 대답하는 사미와 같은 대답을 하며 웃었다. 당연한 일을 감사받으니 오히려 머쓱해서 그런거려나. 그에게는 위험에 ㅓ처한 사람들을 구한다는게 꽤나 당연했으니깐.
"엄......자세히....? 상관 없지만 조금 길어질 수도 있을텐데?"
폐인이 된 이야기를 설명해달라는 그녀를 보며 조금 의아해한다. 꼭 필요한 일이려나. 엄청 재미없는 이야기인데 말이지.
ㅡ
"든든하네요. 하지만, 동료들도 고생하지만 파크씨도 고생하는 게 맞아요. 주변의 동료들 덕분에 고생이 덜어진다니, 말로만 들어도 다행이지만요."
사미는 미소짓는다.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설령 언젠가 잃어버리게 되더라도, 소중한 사람과 쌓아왔던 경험들은 자신의 안에 어떤 형태로든 남아있는 것이다. 사미는, 그렇게 믿었다.
"...히어로들, 대단하지요."
이렇게 고생하고 있어야 할 위치의 사람들이 아닌데. 조금은 분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상담중에 상담사가 부정적인 감정을 내비치면 안되니 그저 미소지을 뿐.
당신이 자신이 한 말을 돌려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아하하." 파크씨는 재미있는 사람이네요.
"...길어지더라도, 꼭 이야기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더니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런 길고 긴, 어딘가에 얘기하기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곳이라면 이 곳밖에 없지 않나요.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이야기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없이 좋지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모든 상담의 기본이니까요. 당신의 괴로움을 있는대로 털어놓고, 저는 그것을 들어준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의 일이랍니다.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 만으로도 많이 나아지는 법이에요."
히어로가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듯, 상담사는 절망에 빠진 사람을 구한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이야기하고, 상처를 치유해간다. "그러니까, 제가 '저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으실래요?"
ㅡ
"그렇게 말하면 좀 쑥쓰러운걸. 그렇지. 동료들과 함께 고통을 나눌 수 있다는건, 정말 다행인 일이야."
그녀가 웃자 파크는 마주웃는다. 서로의 고통을 나눌수 있는건 어쩌면 그들이 소중한 동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정말로 다행인 것 이었다. 소중한, 좋아하는 동료들이 있다는건 정말로 다행인 일이었지. 그런 동료들은 2년전에 자신이 그토록 바랫던 따뜻한 온기나 다름없었으니.
그리고 대단하다며 중얼거리는 사미에게, 파크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그런 대단한 사람들을 상담해주는 너도 대단한데ㅡ라는 의미의 미소를.
"하하하하......정말, 그렇게 말하면 안말할 수가 없잖아. 알겠어. 너의 일을 할수 있도록......말이지. 어디부터 시작하는게 좋으려나ㅡ"
상담사의 기백이 드러나는듯한 그녀의 말에, 파크는 항복했다는듯이 실소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좋아, 일을 하게 해줘야지. 눈을 감은 후 대충 30초정도 지났으려나. 파크의 입이 열렸다.
그리고 곧 파크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때의 일을 빠짐없이 담고있었다. 자신은 그때 그저 열차를 타고 있었고, 바론이라는 남자가 우연을 가장하여 자신과 합석하였던 것. 그 남자는 사실 빌런 바론이었으며, 기차를 조종하여 인질로 잡고 그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붙잡았던 것. 자신이 과거에 보냈던 스너프 필름과 자신이 했던 그 끔찍하고 추악한 테러들을 이야기하며 정신적으로 상당히 큰 충격을 주었던것. 그 이후로는 깊은 무의식의 세계에 같혀서 잘 기억이 안나던것까지 전부.
하지만 그래도 그 다음의 이야기는 조금 따뜻했으려나. 그를 돕기위해 자신의 소중한 동료인 에스터와 유현이, 이제는 친구라 생각되는 에릭이, 마지막으로 자신을 치료해준 고마운 사람인 이브가 와서 자신에게 따뜻한 말을 건넸다는것. 대충 얼마나 오래 말을 한지 모르겠지만, 매우 긴 시간동안 이야기한게 틀림없었다.
"ㅡ해서, 나는 결국 소중한 사람들에게 치유받고, 결과적으로 다시 히어로로 복귀할수 있었다는 이야기지. 좀 재미없지?"
라며 이야기를 마치고는 멋쩍게 웃었다. 딱히 자랑할만한 이야기는 아닌데 말이지.
ㅡ
...사미는 당신의 긴긴 이야기를 듣는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얼굴은,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중간중간에 슬픔이, 탄식이- 당신을 대신해서 조금씩 얼굴에 드러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얼굴에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듣는 입장에서 과하게 감정을 쏟아내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렇군요."
그렇게 조금은 가라앉은, 하지만 여전히 차분하고 온화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 동안, 많이 힘들었겠네요. ...열차가 인질로 잡혔던 것 부터, 당신을 상처입히기 위한 것만이 목적인ㅡ 노골적인 악의와 마주하게 된 것에,"
도망칠 수도 없는 채로 열차에 갇힌 상황이었다. 그 모든 일이 당신을 붙잡기 위해 일어난 일이었다는 부담감에다가.
"과거의 치부를, 트라우마를 타인에 의해 악의적으로 헤집혀지고."
"...지금까지 계속 애써왔어요. 파크. 정말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사미는 당신의 높은 어깨를 향해 조심스레 손을 뻗고는, 토닥여준다.
"파크에게 든든하고 소중한 동료들이 잔뜩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런 일들을 겪었는데도 일어설 수 있다니, 파크는 정말 강하고 멋진 사람이네요."
옛날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곁에서 들었으면 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은 상담사이다. 아무리 충격적인 이야기라도 그런 감정적인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분명, 파크가 그만큼 대단하고 멋진 사람인걸 모두가 알아줬으니까 그런 좋은 동료들이 잔뜩 생긴 거에요."
물론, 멋지고 대단한 사람 곁에 언제나 좋은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좋은 사람에게 둘러싸여있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사미는 그렇게 생각했다.
"거기다가- 자신의 과거를 극복해낸 거잖아요.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에요. 아직 열 아홉밖에 안 되었는데, 정말정말 고생해왔고, 그 고생속에서 계속 성장해왔네요. 대단해요. 파크. "
그렇기때문에, 언제나처럼 온화한 미소를 띄워보인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질 수 있도록.
"...파크는, 조금 더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지만, 이야기 속에서 파크가 얼마나 상처받고 괴로웠을지가 드러나는 느낌이었어요. "
문득 에스터를 떠올린다. 히어로들중에서는 유독 자기희생적인 사람들이 많은 걸까. 하긴. 일 자체가 희생을 요구로 하는 일이니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그래도 남을 챙기는 것의 반만이라도 자신을 챙기면 좋으련만.
"그 후에, 그 빌런이 또 파크씨를 괴롭혀오지는 않았나요?"
그리고, 걱정되었던 이야기를 조심스레 질문해본다.
ㅡ
중간중간 나오는 탄식에, 슬픔에, 몰론 완전히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몸짓에서 나타나는 약간의 그 감정은, 파크에게는 흥미로웠다. 이정도 이야기에 이런 반응이라......역시 상냥하구나. 사미 선생님은. 신기하단 말이야. 어떻게 해야 그렇게 상냥할 수 있는거지? 나는 내 이야기이지만, 나 자신에게 일말의 동정도, 슬픔도 느껴지지 않는데 말이야.
"노골적인 악의라고 해야하려나. 글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위로를 들으니깐 뭔가 좀 기분이 묘한걸. 고마워 사미 선생님."
자기가 겪은일도 아닌 일에 깊이 공감하고, 위로까지 전해주는 사미에게 파크는 이유모를 따뜻함을 느꼈던가. 이때 파크는, 자신이 참 행운아라고 느꼈다. 자신을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전부 좋은 사람들이여서. 한명 한명의 마음이 모두 따뜻해서. 이러한 사람들을 만나는 행운에 감사하며, 스스로를 행운아 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런가. 나 스스로를 강하고 멋지다고 생각한적은 없어서. 그런 평가는 처음들어서 그런가 조금 낯간지럽네."
일어서는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어서, 일어났다. 모두가 일어나라고 일으켜 세워주었기 때문에 일어났다. 그것 뿐이다. 그런데 너는, 나를 이렇게도 치켜세워주는군. 정말 상냥하잖아 사미 선생님.
"그런 생각도 해본적 없어. 그냥......운이 좋은거지. 운좋게 좋은 동료들을 만난거야. 멋진 사람이기에 좋은 동료들을 만났다는건 나에게 과분해."
과분한 소리였다. 이렇게 쓰레기인 내가 대단하고 멋질리 없잖아. 그동안 죽인 사람들이 이런식으로 히어로 흉내를 낸다고 돌아오지는 않는다. 이렇게 착한척을 해봐도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저 억누르고 있을 뿐, 또다시 살인을 하면 광기에 먹혀서 결국 미친 살인광이 되어버릴텐데. 그런 칭찬은 나에게 과분해.
"하하하.....그런 칭찬은 과분하다니깐. 그저 당연한 일을 한 것 뿐이야. 어렵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지. 해야 하고, 하고 싶기에, 한것뿐. 그뿐이야."
그래도 그녀의 온화한 미소에, 파크는 마음이 잔잔해지는 느낌이었다. 아아, 따스한 느낌. 정말 기분좋은 온기야.
"그런....가. 글쎄,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는 개념조차 몰라서 말이야. 이정도야.......다른 사람들이 겪는거에 비하면, 별거 아니야. 그런 말 들을정도로 상처받지는 않았어."
그 바론이라는 사람에게 별 감정이 없는것만 봐도 그렇지. 나는 그냥 나약해서 상처입은 척 했을뿐, 그에게 일말의 분노조차 이제는 느껴지지 않으니깐. 그냥 내가 너무 약해서, 그렇게 주변인들에게 떼쓰고 투정부렸을 뿐이야. 정작 상처는 입지도 않았는데 엄살피운거지. 그러니깐, 나는 괜찮아.
"딱히 괴롭히지는 않았어. 그냥......아무 일도 없었거든. 진짜로 만난적도 없고. 최근에는 좋은사람들만 만나서 말이야."
조심스럽게 질문하는 사미와는 달리 꽤나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기에 그런 것이겠지.
ㅡ
"...그렇다면 그 개념을 차차 알아가야겠네요."
사미는 부드러이 말한다. 파크가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어줬으면 좋겠다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방법을 알면, 타인을 소중히 여기고- 상처입히지 않는 방법을 알게 돼요. 자기 자신에게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거지요."
어째서 당신은 이렇게 자기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과거의 일 때문에? 상담을 계속해가며 당신의 그런 마음을 낫게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자신을 미워하며 살아가는 것은 버티기 힘들만큼 괴롭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그 후에 아무 일도 없어서."
미소짓는다. 슬슬 시간이 제법 지났으려나.
"언제든지 상담실에 찾아오세요. 다음에는 차랑 다과를 준비해둘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아. 그리고. 참. 상담을 계속해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편이 좋아요. 저는 정신과의가 아니라 상담사기때문에 약 처방을 해드릴 수는 없지만, 믿을 만한 곳을 소개해드릴수는 있어요."
ㅡ
"그렇지.....조금씩이나마 알아가는게 좋으려나."
글쎄. 과연 좋을까. 이런 본성은 쓰레기인, 그저 억누를 뿐인 이를 소중히 여긴다는게.
"....그.....렇군........음. 타인을 상처입히지 않기 위해서라도.....배우긴 해야겠어."
타인을 위해서, 라는 말 때문에 배우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하긴 힘들었다. 차라리 타인을 소중히 하는 법을 배우는게 좋을텐데 말이야. 죄를지은 자에게는 벌을ㅡ그치? 나 자신에게는 벌을 줘야해. 당근같은건 필요없어. 오로지 채찍.....채찍.......경마장의 말처럼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할 뿐.
"그래. 나중에 한번 더 찾아올게. 수고했어 사미 선생님."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 문쪽으로 다가간다. 으음. 그래도 조금 마음이 많이 편해진 기분인걸.
"에이. 약물치료 까지 할 필요는 없어. 걱정마. 약물을 쓸 정도는 아직 아니니깐."
약물쓰려면 검사받아야 하는데 귀찮다. 라는 이유를 숨기고는 괜찮은척 으로 넘겼다. "그럼, 안녕 사미 선생님."이라고 짧게 인사를 남기고는 문을 열었다.
끼이익. 저벅. 저벅. 철컹. 문이 닫히고 백발의 남자는 밖으로 나갔다.
- 유현 - 사미
유현은 이즈모 앞에서 망설이는 듯 담배를 피우며 이리갔다 저리갔다 움직입니다.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 벌써 애꿏은 담배만 연달아 피고 있었고 이즈모에서 멀리 걸어갔다가도 다시 돌아오곤 합니다.
그러다 마지막 담배를 피고는 꽁초를 버리며 가볍게 한숨을 내쉽니다.
오늘 이 곳에 온 것은 에스터에게 보고를 하거나, 에릭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닌 앤서니 프로젝트에 대해 듣고 상담을 받기 위해 온 것이다.
아마도 자신은 지금 정신병을 앓고 있는게 아닐까 싶어서였다. 왜냐하면 이젠 다른 사람들을 볼 때 얼굴 외에는 보는 것이 힘들다.
이미 수많은 시체들이 자신을 증오섞인 눈으로 바라보며 저주를 퍼붓고 있었으니까.
" .... 가야겠지.. "
술과 담배도 결국 잠깐이었고, 요즘은 그저 누군가를 만날 때는 그 사람의 얼굴만을 바라보곤 했다. 그래야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유현은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매만지더니 귓가에서 ' 그래봤자 소용없을 걸 - ' 이라고 비웃는 환청을 애써 무시합니다.
" 그래, 가는거야..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는 업잖아 "
가볍게 기합을 넣고 유현은 이즈모 안으로 들어갑니다. 들은바로는 이즈모 안에 상담실이 있다고 했으니 아마도 실종된 전 상담사가 쓰던 곳을 쓰고 있을 것 같았다.
유현은 옷차림도 한번 고쳐보면서 천천히 상담실 앞으로 걸어가 문을 두드립니다.
" ...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유현은 침을 삼키며 안에 있을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진다.
ㅡ
"들어오세요."
그리고 당신의 물음에 상담실에서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답해오는 것이다.
기존 상담사가 사용하던 물품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상담실에 처음 와있었을 때 상담실은 비어있었다. 원래의 상담사가 치우고 간 것인지, 사미를 들이기 위해 이즈모에서 미리 치워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상담실이라는 공간 하나를 온전히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어느 날 사라진 누군가의 흔적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조금 쓸쓸하구나. 어찌됐건 라비의 흔적은 드러나지 않는 완전한 그녀의 공간이었다. 서재, 테이블, 최근 추가죈 찬장 정도가 있는 조촐한 공간이지만. 찬장에는 다과와 차 세트가 놓여있었다.
"차를 내드릴 수 있는데, 어떠신가요?"
그렇게 다정한 목소리로 당신에게 묻는다. 또한, "무슨 일로 상담을 찾으셨나요?" 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ㅡ
" .... 차, 좋습니다. 그냥 마실 수 있는거라도 상관없습니다 "
문을 열고 들어오자, 차분한 이미지의 여성이 유현을 반겼다.
유현은 사미의 인사에 자신도 예를 갖춰 인사를 하곤 조심스럽게 의자로 걸어가 앉는다.
사미의 물음에는 생각해보니 오랜만에 차를 마시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마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답합니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물음에 한동안 말이 없이 머리를 매만지거나 시선을 돌리거나 하다가 천천히 입을 엽니다.
" ..... 아무래도 우울증 탓인지 모르겠지만 환각이나 환청이 심해져서 ... 더 나아가다간 제가 망가져 버릴 것 같아서 선생님을 뵈야할 것 같아서 왔습니다 "
거짓말을 해봐야 자신에게 득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 사미에게 나긋한 목소리로 자신이 온 이유를 밝힌다.
지금도 이 작은 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시체들의 옹알거리는 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었기에 사미의 얼굴만을 바라보며 답합니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자신이 더 망가지기 전에 멈출 수 있으면 했다.
" 지금도... 그것들이 보이거든요... 이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어요. 제가 지키지 못한 사람들이, 제가 죽인 빌런들이 하나같이 이 방을 가득 메운체 원망스럽다는 듯 저를 보고 있어요. 거리로 나가던, 숙소로 가던 마찬가지에요. "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으며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합니다.
ㅡ
유현의 침묵이 방을 채우는 동안, 사미는 차를 끓이고 있었다. 차의 향기가 은은히 퍼져나가도 당신의 비탄을 메꾸기에는 더없이 얕았지. 따스한 차가 당신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를 맞춰 완성된다. 사미는 당신의 앞에 조심스레 차를 내민다.
"......"
사미는 잠잠히 그의 증상을 듣는다. 당신과 눈을 맞춘다. 환각, 환청이라는 단어들이 종이에 알아보기 어렵게 날려쓴 채 적힌다. "우선은, 미리 죄송하단 말씀을 먼저 드릴게요." 약간은 슬픈 눈으로 말한다.
"...저는 어디까지나 의사가 아닌 상담사에 속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의 상담만으로 증상이 완전히 호전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어요. 환청과 환각이 나타나는 정도라면 저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
사미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상담사는 사람의 고통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켜볼 줄 알아야 한다. 너무 멀리 떨어지면 상대에게 조금도 영향을 주지 못하고, 과하게 다가갔다간 밀려오는 감정에 집어삼켜져 무엇도 해결하지 못한다. 상대의 고통을 적당선에서 바라볼 줄 알아야지 그 원인을 밝히고 치료를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스트레스를 몸을 괴롭히는 나쁜 벌레에 비유한다면 상담사가 할 수 있는 것은 벌레를 잡는 것을 돕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어디에서부터 벌레가 나타나는지, 어떻게 해야 그것이 퇴치지는지를 차근차근 알아가고 도움을 주는 것. 더 이상 못된 해충에게 시달리지 않고- 혹은 쉽게 잡을 수 있게 되어 안정된 상태로 돌려놓는 거죠. ...주관적인 비유지만."
조심스레 나긋나긋히 얘기한다. 벌레는 너무 징그러운 비유인가? 라는 생각으로 고민해본다. 하지만 못된 개구리는 너무 약해보이고.
"...그렇지만 이미 몸 곳곳에 쏘이고 물려서 생긴 상처들이 없었던 것이 되지는 않으니까요. "
휴식, 상담, 약이 해결할 수 있는 분야는 각기 다르다. 그렇기때문에 상담만으로 나을수 있다는 말도, 약만으로 나을 수 있다는 말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약물치료를 과하게 권유하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약이 필요한 부분들이 있는 것이다... ...사실, 사미는 이즈모에 제발 지금 당장이라도 쉬어야 하는데 쉴새없이 일하고 있는 자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저를 찾아주신건 정말 잘 하신 거에요. 우선, 상담자분의 얘기를 계속 들어봐야 알겠지만 ... 저는 지금 당장이라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계속 부드러운 말투로 얘기하던 그녀였지만, 휴식이 필요하단 말에서는 단호함을 보였다. 그만큼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겠지.
"우선 상담자분에게 있었던 일을... 아, 그 전에 이름을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그러고보니 아직 통성명을 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호칭이 불편하니까. "이 쪽은 '이사미'라고 해요." 사미씨, 사미선생님, 사미, 마음대로 불러주시길.
ㅡ
“ 아.. 딱히 완벽한 해결 같은 걸 바란 것은 아니었답니다. 그저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거든요. 혼자서 품고 있다가는 무너져 내릴 것 같아서.. ”
죄송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며 말하는 사미에게 유현은 손과 고개를 급히 저으며 그럴 필요 없다는 듯 제스처를 취하며 말합니다. 딱히 완전히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찾아왔던 것이니까, 그다지 완치를 원하지는 않았다. 쉽사리 될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했기 때문에. 그저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보는 곳을 털어놓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사미의 이어지는 적절한 비유에 유현은 무슨 말인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짓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이상은 할 수 없다 –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리라 생각하며 유현은 그녀의 비유를 이해합니다.
“ 네, 아마 무엇으로 치료를 한다고 해도 여태껏 쌓여왔던 것이 없어지지 않으리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선생님과 대화를 한다면 조금이라도 완화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
눈 앞의 여성이 신중하게 말을 고르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진심으로 자신을 생각해주는 것을 느낀 유현은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녀가 가져다 준 차를 한모금 마시고 이어진 그녀의 말을 듣고 동의하듯 그녀를 바라본다.
“사실... 쉬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무래도 저희 상황이 아직 그리 친절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아서 쉽지 않네요. 하루가 멀다하고 빌런들이 여기저기서 날뛰니까요 ”
인력은 부족하고 사건은 많으니 이래저래 엎친데 덮친격이죠 – 라고 덧붙이며 어색하게 웃습니다. 자신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지만 라오스에서는 그럴 환경이 되지 않았기에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다.
“ 아, 사미 선생님께 제가 아직 이름도 알려드리지 않았군요.. 이런 거에 익숙하지 않아서.. 하하, 저는 유현이라고 합니다. 이즈모 소속 히어로입니다 ”
유현은 자신의 실수에 부끄러운 듯 옅게 미소를 지으며 사미에게 답합니다.
“ .........그러니까 환각이나 환청이 시작된 건 첫 임무 때 고아원 테러를 막지 못해 아이들이 눈 앞에서 희생당했을 때부터 시작됬습니다. 그 때부터 항상은 아니였지만 잠이 들 밤이 되면 아이들이 제 앞에 나타나서 빌런을 증오하는 말과 저를 증오하는 말을 내뱉었죠. 그렇지만 전 제가 막지 못했기에 달게 받아야 하는 걸로 생각하면서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히어로 생활을 이어가면서 눈 앞에서 지키지 못한 희생자가 늘어갈수록 제 눈 앞에 펼쳐지는 시체들의 환각도 점차 쌓여가기 시작했답니다. 그저 한 구나 두 구가 나타나던 것이 점점 늘어나서 제 주위를 둘러싸고 있기도 하다가 그게 더욱 늘어나서 방안에 한가득 쌓여서 절 노려보며 증오섞인 말을 내뱉곤 해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빌런들에 대한 즉살을 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이젠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 외에는 고개를 돌리기 힘들정도로 시체들이 보이곤 해서... ”
숨을 고르는 듯 차를 한 모금 마시곤 사미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짓습니다. 미소와 다르게 손은 조금씩 떨리는 것 같지만. 유현은 품 안의 담배에 손이 가고 싶은 것을 느끼지만 애써 차를 마시며 자신을 달랩니다.
“ 그래서 손도 대지 않던 술과 담배에도 시작햇어요. 우울증이 있던 터라 약을 먹곤 했지만 임무를 할때는 약에 취해 있을 수는 없으니 잘 때 정도만 어느정도 위안삼을 수 있었죠. ”
ㅡ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그저 털어놓고 싶었다는 말에 사미는 살짝 미소를 띄워보인다. 그것이 자신의 일이니까. "맞게 찾아오셨어요." 라는 말을 다시금 건네고.
"...그래도, 쌓여왔던 것들을 최대한 없애기 위해 - 없애지 못한다면, 정리해서 그것이 상담자분을 괴롭히지 못하게 해야겠지요. "
쉬고 싶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시작으로 당신의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그녀는 묵묵히 당신의 말을 경청한다. "확실히." 세계가 얼마나 혼란한 상황에 있는지는 사미 본인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히어로는 부족한데, 빌런은 수도 없이 많고. ...어색하게 웃는 당신의 미소가 슬프다. 당신이 이름을 알려주자 사미는 고개를 끄덕인다. 유현씨... 로구나.
"......"
사미는, 당신의 이야기를 주의를 기울여 듣고 있었다. 테러를 막지 못해서, ...아이들의 환각. 늘어가는 희생자. 시체의 환각들. 증오섞인 말들의 환청... 중간중간에, "환각...이군요." "...희생자들." 같은 추임새를 넣어가며 당신의 말에 충분히 경청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유현씨."
입을 연다. 조금은 단호한 어투로.
"쉴 순 없더라도, 최소한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않는 편이 좋아요."
유순하고 여린 인상에 강건함이 깃든다.
"...이것은 정의나 도덕이 어쩌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저는 히어로도 아니고, 일개 이즈모에 얼마 온 적도 없는 상담사 하나가 옳다 그르다 할 자격은 없지요. ...더 많은 희생을 줄이고, 더 효과적으로 시민의 안전을 추구하기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 가려내는 것은- 직접 빌런이라는 위험과 싸우는 히어로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
위험천만한 전장에 뛰어들어 맞서싸우는 입장이 아닌 자신이 무슨 훈수를 둘 수 있을까. 한계에 부딪혀가며 끊임없이 자신의 도덕에 의문을 가지고, 그 끝에 이상과 현실속에서 타협적인 결론을 내린 것은 분명 당신들일텐데. 빌런이라고 하는 가지각색의 이능력 범죄자들이 판치는ㅡ 이 혼란스럽고 위험한 사회 속에서. 누구보다도 그 혼란과 위험에 근접해서 싸우는 사람들에게 더더욱 혼란거리를 주게 될 뿐이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분명 올바른 태도에요. 세계를 위해, 모두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죠. 유현씨가 계속해서 애쓰고 노력하는 과정들은 동경받아 마땅한 일들이에요. 지금보다도 더더욱. 저는 언제나 모두의 안전을 위해 힘써주시는 히어로분들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이것만은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다. 얘기해야만 한다.
"하지만,...유현씨 역시 사람이에요."
히어로가 하는 일이 안정된 사회를 위해 싸우는 것이라면, 상담사인 자신이 하는 일은 그 사회속을 살아가는 개개인의 안정을 지키기 위한 일이다. 히어로는 세계를 구한다. 자신은 사람의 마음을 구한다. 세계를 이루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의 안에는 그 사람의 삶에서부터 쌓여온 세계가 만들어진다. 한 명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한 명분의 세계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상담사 역시 세계를 구한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긍정하기에는, 너무 자만이 아닌가 싶지만. 자신이 하는 일이라곤 들어주는 것과 얘기하는 것 뿐... ...그래도, 자신의 일도 역시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사미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렇기때문에 더더욱 노력하고, 더더욱 사람을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이다.
"유현씨라고 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에요."
누군가에게도 한 적 있는 말이었다. 사람을 구하는 자도, 결국에는 사람.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흔히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개인에게 크나큰 스트레스를 줄 수 있어요. 유현씨를 향한 증상들이 그것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지요. 쌓여가는 환각, 환청, 여러가지 증상들이 상담자분을 계속해서 괴롭히고 있는 거니까요."
선천적으로 공감능력이 결핍된 것이 아닌 한, 사람은 대부분 살인에 거부감을 갖는다. 그것은 마음이 약하고 강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그렇게 타고나는 것이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을 쓰지 못하는 것이 무능이나 노력부족이 아니듯이. ...언젠가의 공포를 떠올려본다. 능력으로 사람을 해치게 될까 두려워했던 어느 날을. ...사미는 기억을 묻어버린다. 지금 필요한 생각이 아니었다.
"어떠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몸에서 신호를 보내는 것과 같아요. 유현씨가 지금 쉬어야 하는 상태이다. 무리하고 있다. 정신을 괴롭히는 일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라고 계속 몸이 말하고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사람을 죽이지 말아야... ...그렇게 말하려다 단호하게 말을 튼다. "아니. 역시 쉬어야 해요."
"...히어로라고 하는 일은 쉴새없이 바쁘니까, 쉬는 게 힘들다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길게 생각해보는 거에요. 유현씨는 길고 긴 길 위를 걸어가고 있어요. 내일 죽어버리더라도 오늘 사람을 구한다... 는 태도로는 안 돼요. 계속 살아남고, 본인을 구하고, 무사한 몸과 마음의 건강상태를 유지해야지만 내일도 모레도 사람을 구할 수 있어요. 인간은 소모품같은 게 아니니까."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그런 말을 하는 것이렸다. 내일 사람을 구하기 위해선 오늘은 쉬어야 한다. "사람이 낼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런 말도 덧붙이며.
"술과 담배는 장기적으로 유현씨의 몸을 망치게 될 뿐이에요. 이것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술담배가 가져다주는 안식은 일시적으로는 마음을 가라앉힐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건강을 갉아먹어갈거에요. 신체적인 건강이 나빠지면, 정신건강에도 피해가 간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약에 취한다... ...는 표현은, 별로 좋지 못하네요. 신경계통의 약도 결국 마음의 병을 낫게 하는 약이니까요. 오남용은 안 되지만, 병이 낫기 위해서 약을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적어도, 술담배보단 훨씬 낫고요... 잘 때 정도라는 말에, 당신에게는 수면장애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속으로 생각해본다.
ㅡ
“ .......... 역시 그렇겠죠, 저도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사실 매번 고통스러웠어요. 필요하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 ”
단호하게 살인을 그만둬야한다고 말하는 사미를 보며 유현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도 살인이 지금 자신을 제일 고통스럽게 하는 것임에는 분명했다. 원치 않았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해온 것이지, 바라던 것은 아니었다. 유순하고 여린 사람인 줄 알았던 사람이 강건한 자세로 이야기 해오자 유현은 조금 놀란 듯 사미를 바라본다.
사미가 조곤조곤 자신의 생각을 하나하나 말하기 시작하자 유현은 그저 종종 말없이 차를 마시며 사미의 말을 듣습니다. 그녀는 과하게 공감하려고 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거리를 두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있었다. 사실 히어로가 아닌 상담사가 완전히 히어로들을 이해할 수는 없는 법이다.
오히려 이 이야기에서 완전히 히어로들에게 공감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면 오히려 사미의 말은 신뢰를 잃게 될 것이지만, 사미는 그렇지 않았고 그렇기에 유현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 유현씨 역시 사람이에요 ’ 라는 말에 눈이 조금 커진다.
“ 저를 구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요...?”
분명 여태껏 히어로 일을 해오면서 남들을 구할 생각만으로 여기까지 달려왔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구한다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못했으니까. 그저 자신이 좀 더 분발해서, 좀 더 노력해서 사람을 구해야지 라는 생각만 해왔으니까.
사람을 죽이는 것은 지금 자신에게 커다란 스트레스가 되어지고 있고 그로인해 과부하가 생겨서 환각과 환청이 반복된다. 그렇기에 지금 몸에서 쉬게 해달라고 몸이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사미를 보며 유현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하나도 부인할 수 없었으니까.
어찌보면 여태껏 강박증처럼 살아온 것 같았다. 그저 내일 죽어도 오늘 움직인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으니까, 자신이 부족하니 그렇게 해야만 한다라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여태껏 자신을 혹사 시켜온 것이었다.
그리고 술, 담배, 약 부분에서도 지적을 받자 그저 유현은 쓴 미소를 지어보인다. 하나도 반박할 수 없는 내용이었으니.
“ ....... 일단 휴식을 좀 취해야할까요... 그래야 할 것 같네요. 다른 히어로 분들도 있으니 제가 쉰다고 크게 무언가 달라지지는 않을테니.. ”
에스터씨에게 잠시 휴가를 달라고 해야겠네요 – 라고 덧붙이며 말하곤 옅은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여태껏 휴가라는 걸 해본 적이 없으니 그저 유현은 머리를 긁적여보인다.
“ 뭐, 휴가라고 해도 – 처음이라 어찌 보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쉬려고 노력해보겠습니다. 사미 선생님 ”
당신의 말에 따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ㅡ
"네. 푹 쉬고 오세요."
제 말이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미소짓는다. 히어로들의 휴가 처리 방식은 잘 모르겠지만, 담당하는 사람이 에스터씨라면 분명 잘 되지 않을까... 라고 막연하게 생각해본다.
"너무 부담갖지 말아요. 휴가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 보내는 게 아니라, 쉬기 위해 보내는 거니까요. 휴가기간동안 아무것도 못 한다면, 그 만큼 앞으로 나아갈 기운이 채워질 거에요. 하다못해 기계도 미리미리 충전해줘야 하는데, 인간에게 충전 기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말한다. 차를 마신다. 슬슬 차도 거의 다 마셔간다.
"앞으로도, 고민이 필요하고 힘들어질 때마다 언제든지 찾아와주셔도 돼요."
ㅡ
" .... 그렇겠죠,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네요.. "
총도, 정장도 조금 멀리하고 쉬어볼까, 라는 생각을 하며 사미에게 답합니다.
그저 케므누에게 요리를 해주고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쉬면 되는걸까, 파크나 이브에게 과자를 사가서 대화를 하면 되는걸까, 메리와 게임을 하면 되는걸까.
유현은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것들을 생각하며 옅은 미소를 짓는다.
" 예, 덕분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아요. 다음에 또 찾아뵐 일이 있으면 안되지 않을까 싶지만 또 오도록 하겠습니다 "
유현은 사미에게 방긋 웃으며 답하곤 몸을 일으킵니다. 일단 오늘은 집에 일찍 돌아가서 케므누와 밥을 먹도록 하자.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드는 것이다. 그것부터 시작해봐야 겠네, 라고 생각하며 사미에게 인사를 하고 상담실을 나선다.
- 사미 - 엘리
사미는 감옥을 향해 상담을 가고 있다. 앤서니 프로젝트가 실행된지 일주일 가까이 되어가는 와중, 처음으로 하게 되는 빌런과의 상담이다. 조금은 긴장되지만, 그런 것을 티내서는 안 된다. 상담사는 어디까지나 상담을 하는 사람. 상대가 빌런이든 히어로든 상담사에게 있어서는 상담 대상일 뿐이다.
상대는 엘리자베스 에반스. 헌팅 킬러라는 이명으로도 불렸으며, 뛰어난 사격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대략적인 정보는 어디까지나 참고용일 뿐. 직접 상대와 상담을 해보기 전까진 어떤 사람인진 모르는 것이다.
"엘리자베스씨...를 상담하러 왔어요." 라고 사정설명을 간수에게 전한 뒤, 그녀를 면회실로 불러낸다. 아직 감옥 내 상담실이 만들어질 정도로 프로젝트가 확산되진 못했다. 당장 히어로 상담실부터도 아직 조촐했으니까. 담요나 방석이라도 가져왔어야 하나. 불편하실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속으로 해본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이즈모에 속하게 된 상담사 이사미라고 합니다. 호칭은 편하게 해주시면 돼요."
그렇게 소개의 말을 건네는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상대에게 다정하게 미소를 건네본다. "엘리자베스씨께서 저에게 상담을 신청하셨다고 들었어요." 선량한 눈이 당신을 바라본다.
ㅡ
감옥문이 열리는 소리에 엘리자베스는 눈을 떴다. 고개를 트니 간수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간수가 왜 온 거지? 벌써 식사 시간인가. 그것은 아닐거다. 간수는 그녀에게 밥을 줄 때 감옥문의 밑에 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던져둔다. 간수가 직접 문을 열었다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서이다.ㅡ
아니면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일까?
유현에게 당해 감옥에 갇힌지 얼마나 흘렀을까? 시계도 빛도 없는 곳에서 지내다보니 시간 개념이 망가져 버렸다. 텔리비전은 커녕 잡지 하나 없는 공간에서 살다보니 운동과 식사, 자는 것 외에는 생각할 것이 없었다. 그녀는 몇 번이나 간수에게 대들었고 그때마다 톡톡한 대가를 치뤘다. 볼의 피멍은 간수가 그녀에게 준 일종의 훈장이었다. 그녀가 제일 짜증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냥을 하지 못하고, 화약 냄새와 자연의 냄새를 맡을 수 없으며 살아있는 것의 피를 더 이상은 보지 못한다는 것이 불만스러웠다. 또한 며칠 전에 진행되었던 텍사스 레인저스의 경기의 승패를 어느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
"상담이다."
간수는 그렇게 말하며 엘리자베스에게 수갑을 채웠다. 상담? 내가 그런 것을 했었던가... 아아, 얼마 전에 신청했구나. 이런 곳에서 정신이 썩을 바에 상담이라도 받자는 마음으로 상담을 신청했었다. 간수는 엘리자베스를 끌고 면회실로 데려갔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이즈모에 속하게 된 상담사 이사미라고 합니다. 호칭은 편하게 해주시면 돼요."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흑발에 가까운 짙은 남색 머리카락의 여성.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이사미의 맞은편에 앉았다.
"엘리자베스씨께서 저에게 상담을 신청하셨다고 들었어요." 라고 말하며 이사미의 선량한 눈이 엘리자베스를 바라본다. 그녀는 질린 표정으로 턱을 손바닥 위에 올리며 입을 열었다.
"아아, 그거. 잠깐 바람 좀 쐬고 싶어서 신청한 건데 딱히 하고 싶은 말도 없으니까 이렇게 시간이나 때우다 서로 헤어지자고."
본인이 상담을 신청해놓았으면서 정작 그녀는 상담에 관심이 없다는 듯 다른 사람이 보면 욕을 지껄일 정도로 반항적으로 그녀와의 첫 만남을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태도다. 별로 큰 기대는 없이 신청했던 걸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신청해줬다거나... ...어느쪽이건 상담자에게 상담의 의지가 없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런 상황은 겪어보지 못했는데. ...사미는 언젠가의 일을 떠올려본다. 상담에 찾아와놓고 역으로 자신을 상담해줬던 사람이 있었지. 그녀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을까. 곰곰히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서로 시시콜콜한 얘기들이라도 하도록 할까요."
우선은 사미는 시간을 떼우자는 말에 승낙한다. 정확히는 승낙한 것과 같이 행동한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유도해보는 것이다.
"최근 생활은 어떠신가요? 저는 당신과 처음 만나니까, 엘리자베스씨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요."
이야기라도 하는 편이 시간이 더 잘 가니까요. 그렇지요? 그렇게 덧붙인다. 예의바른 목소리와 차분한 미소를 유지한 채.
ㅡ
"그렇다면, 서로 시시콜콜한 얘기들이라도 하도록 할까요."
엘리자베스의 무례한 행동에도 이사미는 당황하지 않고 대화를 유도하려 한다. 그녀는 자세를 바꿔 두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렸다. 솔직히 딴 생각만 하다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무료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는 감방 안에 있는 것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ㅡ
그래, 조금은 이야기를 나눠볼까...
"최근 생활은 어떠신가요? 저는 당신과 처음 만나니까, 엘리자베스씨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요."이사미가 질문을 전졌다.
"나를 알고 싶다고? 그럼 너에 대해서도 알려줘. 박사 나리."
엘리자베스는 이사미의 질문을 무시하고 오히려 자신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그래, 컨트로 뮤직은 좋아해?"
"컨트로...뮤직이요?"
역으로 질문을 받았다. 박사 나리라니. 놀리는 걸까. 아니면 비꼬는 걸까. 어느 쪽이든 상관 없다. 사미는 진지하게 대답한다.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전에 캠핑을 갔을 때 들어본 일이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캠핑을 갔었거든요. 별이 박힌 시골 밤하늘 아래서 모닥불에 몸을 쬐며, 기타 연주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나요."
고등학교때의 수련회의 경험이다. 가을 밤에 모닥불을 피우고 옹기종기 모여있으면 괜스레 감수성이 살아난다. 엄마 보고싶다던가 집에 가고싶다는 얘기를 친구들과 도란도란 나누곤 했었지. 그 때 어떤 학생이 분위기 살린다고 치지도 못하는 기타를 들고와서 폼을 잡고 있었다. 그러니까 줘보라며 옆에 있던 밴드부의 아이가 훌륭한 연주를 보였던...그런 기억이 난다.
"학생때였어요... 어리니까, 감성도 괜히 풍부해져가지고는. 가을밤의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는데, 모인 아이들이 가족이 보고싶다고 하나 둘씩 서러워하는 거에요. 저도 괜히 슬퍼져가지고... 우는 애들도 있고. 그 때 학생사이에서 영웅같이 나선 누군가가 멋진 연주를 선보인 거죠. 멋졌어요. "
별가루를 풀어놓은 밤하늘과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불타는 모닥불. 때맞춰 나타나준 기타 연주는 그 날의 캠프파이어를 최고로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사미는 감상에 젖는다.
"시간이 지나면 선명했던 기억도 점점 흐려지고 잊어버리게 되는데, 엘리자베스씨가 그런 말을 물어줘서 다시 되살아났네요. 좋은 추억을 도로 떠오르게 해주셔서 고마워요."
그렇게 웃는다. 진심이었다. 소중했던 기억들도 한해마다 나이를 먹으면 빛을 바래간다. 그러다보면 한 때 즐거웠던 일들마저도 전부 희미해진다. 슬프지만 당연한 일이다. 한해마다 쌓아올린 것들을 하나하나 잃어버리고 마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서는, 가끔씩 보물같은 기억들을 꺼내 먼지를 털어내고 생기를 불어넣어줘야 하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형태가 그 방법중 하나일까.
"엘리자베스씨는 컨트로 뮤직을 좋아하시나요?"
ㅡ
아무 생각없이 던진 질문에 성실껏 대답하는 이사미의 모습에 엘리자베스는 조금은 당황했지만 굳이 티를 내려하지 않았다. 조금은 그녀가 진심으로 엘리자베스와 상담하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씨는 컨트로 뮤직을 좋아하시나요?"ㅡ
추억에 빠진 이사미의 진심어린 미소를 뒤로 그녀가 엘리자베스에게 질문했다.
"나? 텍사스 출신한테 컨트리 뮤직을 좋아하냐고 묻는 것은 영국인한테 비틀즈를 싫어하냐고 묻는 격이라고. 당연히 좋아하지. 기타랑 맥주만 줘. 기깔나게 한 곡 연주해 줄 테니까."
엘리자베스는 아버지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사격, 사냥, 서바이벌 기술, 기타치는 법과 노래하는 법까지 지금의 엘리자베스 에반스라는 존재를 그녀의 아버지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그녀의 아버지는 컨트리 뮤직을 좋아했고, 조니 캐쉬라는 싱어송라이터를 존경했다. 사냥을 끝내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아버지와 같이 노래를 부른 추억이 그녀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자, 그럼 다음 질문."
추억은 추억. 현실은 현실. 과거의 엘리자베스는 자연에 있었지만 현재의 엘리자베스는 감옥에 있었다. 그녀는 추억에 깊이 빠져있을 정도로 배려심 깊은 사람은 아니었다.
"당신의 능력은?"
엘리자베스는 특유의 능글맞는 미소를 지으며 이사미에게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그렇군요! 엘리자베스씨의 노래, 언젠가 꼭 듣고싶네요."
텍사스 출신에게는- ...그런건가. 기타와 맥주가 면회실에 반입이 가능할리는 없었다. 그렇지만 사미는 언젠가를 기약한다. 이런 차갑고 딱딱한 곳이 아닌 찬란한 자연속에서, 학생때의 자신처럼 도란도란 당신과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비록 상담에 협조적인 태도는 아니었지만, 대화의 시작을 순조롭게 끊었다. 이대로 순탄하게 즐거운 대화가 이어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당신의 능력은? 이라는 질문이 사미를 잠시 멈칫하게 만든다. 이내 애써 담담히 대답한다.
"...저는 별다른 이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흔히 말하는 무능력자였다. 무능력자 차별이 사회적인 현상으로 대두되게 될 정도이니, 능력이 없는 사미에게 조금은 민감한 화제였다. 하지만, 사실은 사미는 능력을 도로 가질 기회가 생긴다면 절대 싫다고 생각한다. 무능력자로서 받는 차별이, 자신의 능력에 대한 두려움보다 낫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기때문에 이즈모나 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요. 그렇지만 저는 제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왜냐하면 이능력이 없는 만큼, 이능력이 아닌 다른 감각들을 개발해낼 기회가 생겼으니까요."
진심이었다. 진실이기도 했다. 거짓은 섞여있지 않았다. 이능력에 관한 화제에 대해서는 사미는 조금 마음이 무거워지곤 했다. 하지만 그것을 모른 체 하고서는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간다.
"엘리자베스씨의 능력은, 어떤 것인가요? 어렴풋하게 소문은 들었지만, 엘리자베스씨에게서 직접 설명을 들어보고 싶어요."
ㅡ
이사미는 자신이 무능력자라는 사실을 엘리자베스에게 알렸다. 애써 담담히 말하고는 있지만 무언가 슬픔이 있는 것 같다고 엘리자베스는 생각했다.
"그렇기때문에 이즈모나 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요. 그렇지만 저는 제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왜냐하면 이능력이 없는 만큼, 이능력이 아닌 다른 감각들을 개발해낼 기회가 생겼으니까요."ㅡ
"아아,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겠다는 건가? 정말 굿 닥터시네. 근데 어쩌나, 네 앞에 있는 사람은 나쁜 유대인일 뿐인데."
그런 이사미의 진심을 엘리자베스는 조롱했다. 그녀는 이사미를 놀리거나 비웃으려고 한 행동은 아니다. 이 대화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재미를 느끼기 위해 무례하게 행동했다.
"엘리자베스씨의 능력은, 어떤 것인가요? 어렴풋하게 소문은 들었지만, 엘리자베스씨에게서 직접 설명을 들어보고 싶어요."
이사미가 물었다.
"별건 아니야. 피, 땀, 머리카락 같은 신체의 일부를 섭취하면 내 왼쪽 눈이 표적의 이동경로를 보여주지. 가까이 갔을 때는 표적이 빛나서 표적을 알게 해주는 것 뿐이야. 사냥이 취미인 나한테는 안성맞춤인 능력이지. 혹시 이건 궁금하지 않아, 내가 언제 어떻게 능력을 얻게 되었는지. 아니면 내가 언제부터 인간 사냥을 하게 되었는지?"
엘리자베스 에반스의 눈이 서서히 광기로 물들어갔다. 그녀는 사냥감을 바라보는 그윽한 시선으로 이사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알려줄까, 내 과거를?"
"착한 사마리아인이라, 성경에서 나온 이야기였나요. 엘리씨는 박식하시네요. 그때그때 자신의 지식을 적절한 때 인용하는 거, 말솜씨가 무척 좋다는게 느껴져요. "
조롱하는 당신에게도 꾸준히 칭찬을 건넨다. 사탕발림을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상대를 진심으로 존중해야지만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뭣보다 웬만한 조롱에는 끄떡없는 그녀이기도 했다.
"그렇군요..." 라며 당신의 능력의 설명을 듣는다. 표적의 이동경로를... 인간 네비게이션같구나. 아. 이건 좀 실례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당신의 질문에 반응한다. 언제 능력을 얻었는지, ...인간사냥을 하게 되었는지.
그녀가 과거 무슨 일을 하던 범죄자인지는 익히 들었다. 그렇지만 사미는 상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즈모 감옥에 갇힌 죄수라는 신분에서 자신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리라는 추측때문만은 아니었다. 상대에게 미리 편견을 가지고 다가갔다간 균형이 깨져버린다. 상대에게서 나오는 단서들을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되면, 올바른 상담을 할 수 없게 된다. 덮여있는 밑그림이 과하게 짙어 그림을 완성시킬 수 없게 된다. 그렇기때문에 사미는 빌런 헌팅 킬러로서의 행적들을 눈 앞의 상담자 엘리자베스 에반스와 분리하고 이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다. 그녀에 대한 어떤 정보들이 있다 해도, 자신과 그녀는 초면이었다. 상담사와 상담자였다.
"알려주신다면, 저로서는 기쁘지요. "
말했다시피, 저는 엘리자베스씨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하니까요. 그렇게 미소짓는다. 그 얼굴에 두려움은 없었다.
ㅡ
엘리자베스의 거듭된 도발에도 이사미는 쉽게 걸려들지 않았다. 본인의 입으로 자신의 과거를 말해주겠다고 했지만 이것을 말하면 오히려 이사미의 페이스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ㅡ
"마음이 바뀌었어. 하기 싫어." 라고 말하면 그만이었지만 그녀는 왠지 그녀에게 자신의 핏비린내 나는 과거를 자랑하고 싶어졌다.
"아아, 언제였더라... 아버지가 늑대에게 죽고, 2년 정도 지났던 해였던가... 아직 20살도 안 되는 때였지..."
엘리자베스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과거를 꺼내기 시작했다. 담배와 맥주가 없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평범한, 아니지 평범과는 거리가 조금 있었지. 그냥 그런 학생이었어. 평일에는 학교 다니고, 야구나 보는... 가끔 총 들고 밖으로 나가서 사냥이나 하고.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아직까지는 동물 사냥이야. 그런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지. 근데 마음 한편 속에는 불만으로 가득했어. 동물을 사냥하는 것도 충분히 재미는 있었지만 더 재미있는 사냥을 하고 싶었거든. 더 많은 쾌락을 원했지만 하지는 않았어. 왜냐고?"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엘리자베스는 이 대목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가슴 속의 쾌락을 억누른 채 지루한 텍사스에서의 인생을 살았어. 근데 말이야. 살아가는게 정말 다사다난하더라고. 이대로 여타의 사람들과 같이 평범하게 살다 뒈질 줄 알았는데 어떤 계기로 지금의 '헌팅 킬러'가 되어버렸거든."
지금으로부터 몇 년도 더 전에 텍사스를 공포로 몰아넣은 살인마가 하나 있었다. 이름은 전기톱 잭. 표적을 전기톱으로 잔인하게 살해해 붙여진 이름이었다. 전기톱 잭에게 살해당한 피해자만도 열다섯 명. 당시 텍사스 경찰은 전기톱 잭을 잡는데 혈안이 되었다.
"텍사스 경찰은 열심히 수사를 진행했고, 전기톱 잭의 은신처도 알아냈어. 경찰들이 출동했을 때 텍사스 잭은 차를 타고 도망쳤지. 경찰과 녀석간의 숨막히는 추격전이 시작됐어. 문제는 여기부터 시작돼. 전기톱 잭이 경찰들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나서기를 좋아하는 남부 남정네들이 총을 들고 차에 타 전기톱 잭을 쫓기 시작한 거지. 나는 당시 사냥을 가려고 했어. 근데 내 사격 실력을 알고 있던 이웃들이 나를 전기톱 잭의 추적에 포함시킨 거야."
전기톱 잭은 주민들과 경찰들의 추적에도 기필코 벗어났다. 그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야생의 땅으로까지 도망쳤다. 극악무도한 살인마를 쫓았던 사람은 단 한 명, 엘리자베스 에반스였다.
"고백하자면 몇 번이나 전기톱 잭의 잡을 기회가 있었어.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 공포에 몸을 떨며 도망치는 녀석을 보았을 때 가슴이 미친듯이 뛰는 것을 느꼈거든. 그래, 이건 바로..."
엘리자베스는 얼굴을 이사미의 바로 앞까지 들이밀고는 말을 이었다.
"사랑이었던 거야."
몇 번이고, 살인마 잭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엘리자베스는 일부러 약간의 상처만 냈다. 바닥에 떨어진 살인마 잭의 피를 입으로 가져갔을 때 그녀는 황홀감을 느꼈고, 그때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현시켰다.
"즐겁고, 사랑스러웠던 시간은 녀석이 지쳐 쓰러지고 나서야 끝이 났지. 녀석은 살려달라고 애원했어. 열다섯 명이나 죽인 연쇄 살인마가 스무 살도 안 된 여자아이에게 빌었지. 나는 미치기 일보직전이었어. 빨리 녀석의 끝을 맺어주고 싶었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엘리자베스는 아버지의 유품인 군번줄과 군용 대검을 행운의 상징처럼 가지고 다녔다. 엘리자베스는 허리춤의 검집에서 대검을 뽑아 전기톱 잭의 목을 베고, 첫사랑과 결별했다.
"그 뒤로 도저히 참지 못하게 되었어. 한 번 맛을 보니까 계속 맛보고 싶은 즐거움이었거든. 나는 사람들을 표적으로 해서 인간 사냥을 즐겼고 어쩌다가 프리덤 사이킥이라는 갱단에 들어가게 되었지. 그리고 잘난 FBI께서는 마음에 들지도 않은 '헌팅 킬러'라는 이명을 붙여주셨고. 이게 끝이야."
어땠어? 엘리자베스는 또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사미는 당신의 말을 조용히 경청한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억눌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어떤 일을 계기로 인해 지금의 빌런이 되어버렸다. 계기, 라. 사미는 집중한다.
당신의 얼굴이 자신의 바로 앞에 온다. 조금 놀란다. 황홀함을 떠올리는 듯한 당신의 목소리. 범죄자를 쫓아가던 것을 계기로, 인간 사냥을 시작했다... 라. 만약에 그녀가 히어로가 되었다면, 온갖 빌런들 못지 않은 악명을 떨쳤을지도 모른다고 사미는 그렇게 생각했다. 오히려, 빌런이었을 때보다 더 많이 죽였을지도. 곰곰히 생각한다. 어떤 말을 하는 것이 좋을까? 어떻게 해야 이 대화를 올바르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
"그렇군요."
사미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그리고는 속으로 생각한다. 사랑, 이라.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야만 했던 처연한 운명...이라는 분위기와는 확실히 다르지. 상대의 감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추측하기 전에 쓸데없는 어구들을 붙여서는 안 된다.
"그를 죽이고 난 후에는,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그렇기때문에 그런 질문을 건넨다. 차분한 눈이었다. 언제라도 감정을 온전히 통제할 줄 할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타인의 감정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혀야 하는 것이다.
"빌런으로서 활동하면서는 - 어떤 기분이었나요?"
느릿하게, 또박또박하게 말을 이어간다. 담담한 목소리로.
ㅡ
"그를 죽이고 난 후에는,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이사미가 물었다. 엘리자베스는 방안이 울릴 정도로 거칠게 웃음을 터뜨렸다. 더 이상 냉철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사냥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내면 속에 있는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것 뿐이다. 고백이라는 것은 정말 마음에 드는 일이었다.ㅡ
"하! 하! 어떤 감정이 들었냐고? 아버지의 대검이 녀석의 목을 베었을 때, 붉은 피가 검의 날을 타고 흘러내려 내 손에 닿았을 때, 가슴의 짜릿함은 최고조로 달했고 녀석이 목을 붙잡으며 쓰러졌을 때 이별의 아픔을 느꼈지. 하지만 어쩌겠어."
사랑은 그런 거잖아. 그렇게 말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말에 대해 고개를 끄덕였다.
영원한 사랑은 없는 법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줄 알아야 하는 법이고, 다시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해야 하는 법이다. 말하자면 엘리자베스 에반스는 최고의 사랑꾼이다. 다만 그 사랑의 방식이 분명하게 잘못된 것이지만.
"빌런으로서 활동하면서는 - 어떤 기분이었나요?"
이사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엘리자베스는 다시금 얼굴을 이사미의 앞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반대로 물을게, 너는 히어로로서 활동하면서- 어떤 기분이었어?"
당신의 말을 듣는다. 자신하고는 역시,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를까봐 두려워했던 한 때를 떠올려본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렇게 정 반대인 면모에서 느낄 수 있는 동질감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 때의 자신이 느낀 '두려움'이란, 어찌보면 뇌에서 작동하는 제어장치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여기에서 절제를 잃어버린다면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다는, 그런. 그렇게 생각하면 의외로 한끗차이일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멋대로의 판단이지만.
"...이별의 아픔이군요."
씁쓸한 단어다. 연모하는 자와의 이별도, 사랑하는 자와의 사별도 해봤다. 그 쓸쓸한 감정을 되살려내면서 당신의 마음을 이해해보려 노력한다. 사랑은 그런 것이라. 그렇게 생각하던 중, 자신에게 질문이 돌아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히어로요...?" 자신은 히어로는 아니었지만, 이즈모 측에서 히어로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자신을 히어로 비슷한 것으로 여겼던 걸까. 그렇지만 그래선 히어로들에게 미안해지는데.
"저는 상담사로서 사람들을 도우면서, 보람과 기쁨을 느꼈어요. 힘들어질때도 많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뿌듯함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에요."
그렇게 말하면서 방긋 웃는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와 위로가 되어주고 싶었거든요. 세상에는 홀로 버텨내기엔 힘든 일들 투성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상담사가 되기로 결정했어요. 저는 비록 히어로는 아니지만... 이즈모에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일하고 있어요. 누군가의 고통과 아픔을 덜어줄 수 있다는 것은 무척 보람있는 일이에요."
ㅡ
"...이별의 아픔이군요." 이라며 쓸쓸함이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이사미에게 엘리자베스는 고개를 저었다. 사냥감에게 사랑의 감정을 품고, 그 사냥감을 끝내 이별의 아픔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엘리자베스는 최고의 기쁨이었다. 그녀는 사냥에 중독된 미치광이었고 사냥이 끝을 낼 때면 사냥감에 대한 사랑이 식어 스스로 이별을 택하는 것이다.
ㅡ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 질리면 버리고 다른 장난감을 찾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행동. 그것이 엘리자베스 에반스라는 인간의 전부였다.
어째서 히어로가 되었냐는 엘리자베스의 질문에 이사미는 성실껏 대답해 주었다.
"고통과 아픔을 덜어준다라... 정말 낭만적인 단어야. 의사 나리. 그렇게 따지면 나는 너와는 정 반대의 인간이야. 나는 사냥꾼이자 무법자야. 타인에게 고통과 아픔을 주고, 목숨을 가지고 놀고, 남의 것을 빼앗지. 어릴 적에는 사회가 정한 기준에서 살며 그런 것은 생각지도 못했지만 이제는 알수 있어. 이것이 내 천직이야. 믿기 힘들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보여줄 수 있어."
엘리자베스는 도발하듯이 수갑찬 손을 들이밀었다.
"이것만 풀어줘. 간수를 떄려 죽이고, 이곳의 모든 감방 문을 열어 혼란으로 몰고가 줄게. 고통을 느낄 사람이 많아질 테니까 너한테는 잘된 일 아니야?"
끔찍한 말을 지껄이며 엘리자베스 에반스라는 최악은 능글맞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고개를 젓는 당신. 살육에 기뻐하는 눈. 수갑찬 손을 들이밀며 위협적인 말을 건네는 모습. 어릴 적에는 당신도 이렇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던 걸까. 사미는 눈을 가늘게 뜬다. 정 반대. 그랬다.
"유감스럽지만 저에게는 풀어줄 능력도, 명분도 없답니다. 엘리자베스씨가 이런 곳에 갇혀있는 것은 안타깝지만요. 언젠가 정식으로 형이 끝나서 다시 만난다면, 그 때는 웃는 얼굴로 맞아드릴게요."
그리고 들려오는 당신의 말. 때려죽이고, 혼란으로 몰고 가고, 고통받는... ...그런 것을, 자신이 바라고 있을리 없었다. 그녀가 그것을 짐작하지 못했을 리는 없고, 이것은 명백히 조롱의 의도겠지. 하지만 반응하지 않은 채, 대답할 뿐이다.
"제가 고통과 아픔을 덜어주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는 이유는, 상대에게서 고통이 사라지기 때문이에요.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고통을 만들어낸다니, 그런 것을 바랄 리가 없지요.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린다 해도 금은보화는 쏟아지지 않는답니다."
그렇게 얘기한다. 놀라울 정도로 담담한 태도였다. 후회할만한 일은 만들어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랑의 기쁨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아무도 죽이지 않으면 되지 않나요? ...같은 말을 하면, 웃음이 나오시겠죠? 엘리자베스씨가 느끼는 감정은 그런 얄팍한 것이 아닐테니까요."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그렇게 이어 말한다. 서로가 바라는 것은 정 반대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 반대는 앞뒷면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것을 뒤집을 방법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엘리자베스씨가 찾은 행복은 - 엘리자베스씨도 말했다시피, '잘못된 것'을 통해 추구하는 행복이지요. ...그렇다면 그 행복은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방해받을 수 밖에 없을 거에요. 히어로나, 올바른 것을 추구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례한 발언일까. 하지만 본인이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것을 알고 있었다'라고 시인했다. 그렇다면 이 정도는 이야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실수였을까.
"지금 엘리자베스씨는, 감옥에 갇히게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ㅡ
엘리자베스가 도발로 던진 질문에도 이사미는 흔들리지 않고 담담한 목소리로 답을 했다.
ㅡ
"제가 고통과 아픔을 덜어주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는 이유는, 상대에게서 고통이 사라지기 때문이에요.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고통을 만들어낸다니, 그런 것을 바랄 리가 없지요. 제비의 다리를 부러뜨린다 해도 금은보화는 쏟아지지 않는답니다."
능글맞게 웃고 있던 엘리자베스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져갔다. 그녀의 얼굴은 표정 하나 없이 차가운 눈으로 이사미를 응시할 뿐이다.
"예를 들어, 사랑의 기쁨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아무도 죽이지 않으면 되지 않나요? ...같은 말을 하면, 웃음이 나오시겠죠? 엘리자베스씨가 느끼는 감정은 그런 얄팍한 것이 아닐테니까요."
이사미가 말했다. 너무나 정반대다, 라고 엘리자베스는 생각했다. 그녀와 며칠이 넘게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도 결국은 평행선이 될 뿐이다. 희망을 주는 히어로와 희망을 앗아가는 빌런. 너무나 전형적인 대립 관계이지 않는가.
"그리고 엘리자베스씨가 찾은 행복은 - 엘리자베스씨도 말했다시피, '잘못된 것'을 통해 추구하는 행복이지요. ...그렇다면 그 행복은 계속해서 누군가에게 방해받을 수 밖에 없을 거에요. 히어로나, 올바른 것을 추구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아아,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스스로가 삐뚫어진 인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편한 소파에 누워 맥주를 마시며 야구 경기를 보는 것도 재밌다. 짧은 시간 동안 노트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삶의 낙 중 하나다. 그러나 사냥을 하는 것은 그녀가 제일로 쾌락을 느낄만한 일이었다. 그 외의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고 만약에 있다해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엘리자베스씨는, 감옥에 갇히게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사미의 물음에 엘리자베스는 턱을 손에 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차가운 시선으로 맞은편의 히어로를 응시하며 엘리자베스는 입을 열었다.
"내가 빌런으로 있기 전에 '프리덤 사이킥'이라는 사이킥 갱단에 있었지. 들어는 봤으려나? 우리는 무법자였고, 온갖 무법 활동을 저질렀지. 정말로 신나는 나날들이었어. 하루는 전 보스인 토마스가 이렇게 말하더군."
우리 같은 무법자에게는 해피 엔딩이란 건 없어. 체포되어 비참하게 살거나 누구의 동정도 받지 못하고 죽을 뿐. 그 두가지 뿐이야, 라고.
"전 보스의 말대로 나는 지금 이렇게 베드 엔딩을 맞이했지. 형을 마치면 웃는 얼굴로 맞이하겠다고? 미안하지만 나한테는 해당사항이 없어. 내가 연루된 범죄가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얼마 안 있으면 미국에서 나를 데리러 올 거야. 특히 FBI가 나를 제대로 벼르고 있거든. 정말로 즐거운 시간이 되겠지."
하지만 말이야, 엘리자베스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눈동자를 옆으로 돌리니 옆 테이블에 전 보스인 토마스 호스맨이 앉아 엘리자베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알고 있어. 나한테는 해피 엔딩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아. 하지만 이것은 내가 원하는 엔딩이 아니야. 나는 내가 원하는 엔딩을 원해. 그 전까지는 엔딩을 맞이할 생각이 없어. 해야할 일이 몇 가지 있거든."
우선적으로 엘리자베스를 이곳에 던져넣은 유현에게 복수하고 맡겨놓았던 아버지의 유품을 가져오는 일. 나머지는 그 뒤에다.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나라는 인간은?
"무법자로서 비참하게 끝을 맞이할지. 사냥꾼으로서 외롭게 끝을 맞이하게 될지. 너는 어느 쪽이라고 생각해?"
"프리덤...사이킥이요."
들어본 적 없었다. 하지만 짐작할 수 있었다. 사이킥 갱이라고 하는 건 이능력 범죄집단을 이르는 말. 지금의 빌런하고도 비슷한 느낌이겠지.
자신이 해피엔딩을 맞이하지 못한다고. 웃으면서, 한편으로는 허탈한듯이 이야기하는 당신을 그저 바라본다. 어딘가 씁쓸하게도 느껴진다.
"......"
스스로의 결말을 영화나 소설 마냥 이야기하고 있었다. 만약에 비참함과 외로움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자신은 외로움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결정같은 것을 내려선 안된다.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마냥 가벼이 다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껏해야 자신은 서른 남짓한 초짜 상담사에 불과하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이 맡은 첫 빌런 상담자였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죽는 것은 역시 싫었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여도. ...'처형'이라는 말은, 그녀에게 있어 무거운 의미를 가진 단어였다.
"...끝나버리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결국 바보같은 소리를 해버리고 만다.
"시시하고 덜 재미있는 인생이라도,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저는 좋아해요. 엘리자베스씨는, 죽음이 두렵지 않나요."
ㅡ
"시시하고 덜 재미있는 인생이라도,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저는 좋아해요. 엘리자베스씨는, 죽음이 두렵지 않나요."
이사미는 그렇게 물었다.ㅡ
죽음이 무섭냐고? 당연히 무섭다. 그렇지 않았으면 FBI가 프리덤 사이킥을 공격했을 때 끝까지 싸우고, 무법자로서의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언젠가 토마스는 엘리자베스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우리의 끝이 왔을 때, 네 손으로 나를 끝내줬으면 좋겠어." 라고, 엘리자베스는 그렇겠다고 맹세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전 보스의 끝을 두 눈으로 보았다. FBI 스왓 팀에게 포위당했을 때 그녀의 저격총의 스코프는 전 보스의 머리를 겨냥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방아쇠를 당기면 FBI에게 걸려 자신또한 추적당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에반스는 도망쳤고, 전 보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한때 가족과도 같았던 프리덤 사이킥은 몰락했다.
"죽음이 무섭냐고? 당연히 무섭지. 하지만 나는 몇 년도 전에 텍사스에서 죽었어야 할 운명이거든. 지금은 내 최후가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는 현실이지. 근데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은 너무 지루하잖아. 좋아하는 것도 하고, 마시고, 놀고, 실컷 저지르고 있었지. 그러다 이 꼴이 되었지만."
전 보스는 자신의 최후를 스스로 결정했다. 엘리자베스 또한 자신의 최후만큼은 스스로 결정하고 싶었다.
"계속해서 살아남는 것도 나쁘지 않지. 하지만 나 같은 무법자 녀석들은 수명이 짧은 법이거든. 이왕 짧게 갈 인생 자기 멋대로 즐기다 가도 별 상관 없잖아. 안 그래?"
내 개인적 유희도 즐기면서 말이야.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말하며 죄수복의 단추를 풀어 그녀에게 상체를 보여주었다.. 몸에는 지금까지 쌓아온 유희와 악행들을 증명하는 킬 카운트와 희생자의 이름들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다.
"마음에 들어? 원한다면 네 카운트도 새겨줄 수 있는데."
이사미를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은 어느샌가 사냥감을 바라보는 사냥꾼의 시선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눈 앞의 상대는 어째서 이런 쾌락주의자가 된 것일까. 확실한 것은, 그 살인마를 쫓은 것이 상대에게 어떠한 방아쇠가 되었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트라우마의 형태와는 많이 다르더라도, 그 사건에서 상대에게 어떠한 것이 새겨진 것이라 사미는 추측했다. 하지만 그것이 평범한 벽에 칼자국을 그어놓은 것과 같은 종류일지, 벽지를 찢어내며 속이 드러나게 된 것일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만약에 후자라고 한다면, 이 상담은 절대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죄수복의 단추를 푸는 당신을 쳐다본다. 무엇을 하려는 건지 그저 바라보고 있다가, 그 안에 있는 그녀의 '흔적'들을 보았다. 당신의 발자취였다. 그것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보고있던 사미에게, 당신은 말한다. ...그리고 그 눈과, 사미는 마주하게 된다.
아. 저것은. 사미는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몸짓이, 표정들이 보내는 신호를 읽어왔던 그녀였다. 꼭 사미여서가 아니더라도, 다른 그 누구라고 해도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의 상대는, 자신을 사람과 사람으로서 마주하고 있지 않았다. 다시는 보고싶지 않았던, 어느 때와 같은 시선.
머리끝이 쭈뼛 곤두서는 것 같은 느낌을 오랜만에 느꼈다. 사미는 이 느낌을 두려워했다. 이 느낌이 단순 공포에 대한 반응이 아니리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다. 침착하자. 단순히, 기분탓일 뿐이야. "...사양할게요." 그런 말을 겨우 읊는다.
조금 동요했다는 것이 드러나버렸지만, 사미는 다시 평정을 되찾는다. ...하지만, 이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실수였다. 이 대화는 더 이상 상담으로서의 가치를 띄지 못했다. 상담 대상으로부터 공포를 떠올린 상담사가, 무엇이 가능하다는 것인지. 하지만 이렇게 끝날 순 없다. 어떻게든 상대에게 계속해서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시도하고...
그렇게 생각하던 사미는 면회실에서의 시간이 상당히 흘렀다는 것을 깨닫는다.
"......"
이것은 분명한 실패였다.
패배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상담의 목표는 승패를 가리는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실패한 상담이었다. 그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사미는 자신의 부족함을 느꼈다. 이런 상대를 만났을 때는, 어떻게 이야기를 해나가는 게 좋을까. 조금은 서글프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사미는 상대에게 미소를 지어보인다.
"재밌는 대화상대가 되지 못해서 미안해요."
다음에 불러주신다면,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준비해오도록 노력할게요. 그런 말과 함께.
ㅡ
"사양할게요..."
엘리자베스의 터무니없는 제안을 이사미는 거절했다. 그녀는 잠깐이지만 이사미가 동요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지루하고 따분한 감옥 생활 중에서 오늘이 제일로 기쁜 날인 것 같았다.
"그래? 하는 수 없지."
애초에 엘리자베스는 이사미에게 사냥하고 싶다는 욕구가 들지 않았다. 어떤 끔찍한 대답에도 동요하지 않고 담담하던 이사미이 동요하는 모습을 한 번 정도는 보고 싶기에 자신의 몸에 새긴 문신들을 공개하면서까지 이사미를 흔들었다.
"시간 다 됐다. 일어서."
간수가 면회실로 들어왔다. 즐거운 시간은 너무나 금방 간다. 그녀는 그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재밌는 대화상대가 되지 못해서 미안해요." 라며 이사미가 사과했다.
엘리자베스는 간수의 우악스러운 손에 이끌려 반강제적으로 일어났다. 그녀는 이사미를 향해 특유의 능글맞는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재미있는 시간이었어. 의사 나리."
그 말과 함께 엘리자베스는 간수와 함께 면회실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