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껄.. 아무렴 어떻소?"
1. 정보 ¶
이올코스 지톤 트윈힐스 | |||
나이 | 28 | ||
성별 | 남성 | ||
종족 | 인간 | ||
국적 | 예르하임 제국 | ||
출신지 | 갈로란드 주(State Galoland) | ||
특성/기사의 소양 | 평민/예술-조각 | ||
소속 | 유령기사단/제 9기사단, 까마귀 기사단 |
- 인증코드: ◆7BvqvRuabA
1.1. 외모 ¶
어린 시절 실외환경에 많이 노출된 탓인지 피부는 다소 그을린 상태. 그에 비해 톤은 그런대로 밝은 편. 살짝 날카로워 보이는 눈매에는 옅은 갈색빛을 띠는 눈동자를 담고 있다. 비오는 날씨에 숭숭 뚫린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처럼 군데군데 청명한 푸른빛을 머금은 잿빛 바탕의 머리칼은 이마와 귀를 가리지 않으며 뒷목을 1/3 가량 덮는다. 특이점으로 왼쪽 눈 아래만 유독 내려앉은 다크써클과 마찬가지로 같은 쪽의 눈썹에 과거 공방에서 작업하던 중 날카로운 대리석에 베인 제법 큰 흉터 때문에 그쪽 눈썹이 대각선으로 갈라져 있다. 체형은 키는 약 170대 중반에 다소 마른 몸매. 그나마도 어릴 적 사정상 목공소에서 장기간, 장시간 작업하면서 붙은 근육이 그의 외형을 덜 말라보이게끔 보정해주는 정도. 보통 사람이 보기에 항상 일에 쫓기는 사람처럼 피곤한 인상, 때론 수심 가득한 상념에 잠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실제로도 그럴 수 있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으나 그건 그냥 과거 그에게 가르침을 준 사람의 영향으로 버릇처럼 그러는 것뿐이다.
1.2. 성격 ¶
한 단어로는 차분하다. 조금 늘려쓰면 만사에 관대하며 매사에 관조적이다. 그렇지만 최우선의 가치로 탁월함을 삼는다. 그에게 있어 탁월함이란 탄산수처럼 뻥 뚫리고 막힘없으며 콸콸 쏟아지는 것들. 그런 것들을 크게 치는 것이다. 그래서 통상적인 성격상으로는 관조적이며 차분함에도 자기에게 명백한 책임의 소재가 있는 일은 최대한을 다하여 시원시원하게 처리하려한다. 이렇듯 탁월함이라는 가치를 추종하는 그이지만 그렇다고 탁월함과 반대에 있는 경우를 또 절하시키지는 않는다.
1.3. 특징 ¶
한참 성장할 때 그는 조각을 하였다. 조각이란 고도의 집중력과 세심함, 자제력을 요하는 작업이어서 그 당시의 경험과 습성을 기사가 되어서도 고스란히 간직하여 그는 때때로 한 곳에 몰입하면 다른 곳은 신경도 안 쓸 때가 있다.
1.4. 과거 ¶
이올코스가 태어난 곳은 쌍둥이 언덕을 낀 평범한 목장에서였다. 목장은 언덕 아래 도시의 수요로 그럭저럭 먹고 산 편이었고 이올코스는 어릴 때는 가업을 잇기 위해 양몰이부터 양털을 미는 일이나 젖 짜는 일, 건초를 베는 일 등을 배워 나갔다. 그러나 주변의 간헐적이던 건기가 지속적인 가뭄으로 번지더니 점차 양들을 먹일 풀부터 제대로 자라나지 않게 되었다. 그 중 쌍둥이 언덕은 최악이었다. 여덟 줄기로 갈리며 흐르던 시냇물도 그 줄기가 하나둘 말라 비틀기 시작했으며 양들을 먹일 건초 등을 구하지 못하게 되자 다른 곳에서 이를 사와야 했다. 그렇지만 이는 수지타산에 맞지 않았다. 밀이나 귀리 같은 작물은 물론 사료용으로 다듬어진 건초 하나를 두고도 이례적으로 시세가 폭등한 것. 시간이 지날수록 목장의 양과 염소에 대한 상품으로서의 가치는 나날이 떨어져가고 그것은 곧 목장의 내리막길을 의미하는 바나 다름없었다. 인근의 다른 농장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고 하나둘씩 주변의 농장들은 폐허로 변해갔다. 결국 부친 지오토는 가족을 먹여 살리던 염소와 양들을 팔기로 결단하였고 경매에 넣지만 일대 사정을 잘 아는 잔뼈 굵은 도축상들만이 값을 매겼다. 결국 이들과 협상을 해 장사 수완이 부족했던 부친은 어쩔 수 없이 거의 헐값에 전 재산이나 다름없던 양과 염소떼를 매도하고 만다. 더는 수익을 낼 어떤 건덕지도 없었던 목장에서 부친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가족들과 도시로 이주한다. 하지만 도시도 사정은 크게 다를 바는 되지 못했다. 그의 부친은 그나마 친분이 있던 장사치들로부터 외항상선을 타라는 제의를 받게 되고 결국 그는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홀로 먼 길을 나서게 된다. 기약 없는 약속과 함께.
도시로 유입된 빈민들의 수는 늘어만 갔고 그의 어머니와 그 역시 그중 하나였다. 부친이 배를 타기 전 가족을 위해 남겨두고 간 유산은 그들이 그나마 도시에서 거지꼴은 면한 채 정착을 하는 데에 모두 소진됐다.
결국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배를 곪지 않기 위해 그의 모친은 그 도시에서는 제법 유명한, 삼림지 일부의 지주이자 상당 삼림지의 벌목 대리권자의 가택에서 마침 수요가 있었던 터라 그곳의 식모 생활을 하면서 겨우 입에 풀칠을 했고 그는 그곳에 얹혀사는 조건으로 그 지주의 목공소에서 소년 작업공으로 하루에 17시간의 중노동을 하게 된다. 이 시기의 다른 소년들도 대부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올코스 역시 차차 이에 적응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곧 수익이 차츰 쌓이고 여력이 생겨나면서 가족의 삶은 그런대로 평범함의 궤도에 연착륙하고 있었다. 그가 어느 정도 소년티를 조금씩 벗어날 무렵 그도 이제 최소한 살아가는 데 기초적인 교육은 필요하다는 모친의 의견과 본인의 의욕으로 그를 가르칠 의탁할만한 교사를 찾게 된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이올코스를 목공소 일에서 벗어나게 할 명분으로 더는 이 집에서 더부살이시키지 않으려는 의도에서였다.
도시에서 조각을 전문으로 하던 거리의 한 예술가가 그를 밑에 두고자 했다. 모친은 이를 탐탁치않게 여겼지만 이올코스 본인이 이를 강하게 수락하였고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 모친은 그렇게 하여 그를 조각가의 거리가 있는 한 아뜰리에로 보낸다. 스승인 예술가는 황제에 대한 극렬한 예찬론자였는데 그의 사상에 있어 황제란 예술의 가장 끝의 경지에 다다라야 다룰 수 있는 주제였고 또한 그런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황제였다고 믿고 있었다. 당장 그는 이와 같은 그의 지론을 설파하며 이올코스가 이견 없이 순순히 그를 따르자 그저 잡부로나 부릴 생각이었던 스승은 마음먹고 조각을 가르쳐보기로 한다. 도제로 정식 인정을 받고 그가 먼저 관심을 보인 것은 목공예였는데 과거 목공소 경험을 바탕으로 칠기부터 깎는 일을 했고 스승은 재능을 쳐줬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아뜰리에는 목공예가 주가 아닌 곳이었고 일대에서 주도적인 건 석공예였다. 그에 따라 그는 점차 목공예에서 대리석 공예로 주 작업 전공을 변경, 오로지 대리석 공예에 매진하게 된다.
한편 이 무렵 도시는 점차 외부의 지원과 인근의 사정이 차츰 나아지며 그것을 해갈된 것이라 하여 이를 기념하는 축제를 열 계획이었는데 그때 예술가들이 작품을 전시할 기회가 있으니 그때까지를 한 기점으로 잡아 작업을 시작했다. 모티프는 <걸인을 구제하는 기사> 라는 한 유명한 조각상. 그는 스승의 지도로 그 조각상의 윤곽까지 완성하는 데 이른다. 그리고 단순히 그 윤곽을 한 눈에 보는 순간 그는 어떤 경외감에 사로잡힌다. 한 조각의 아류에 지나지 않은 조각임에도 전체적인 외관에서 우러나오는 깊이와 경지, 그 뿐 아니라 그 작품의 주제 의식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 조각을 보는 순간부터 그는 기사라는 존재를 동경하게 된다. 그리고 작품 표면상으로는 한 기사가 한 목마른 걸인에게 물을 붓는 것을 조각한 것이지만 그 작품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만인을 보듬어 살피는 황제’ 였다. 그는 모티프가 되는 그 조각상에 대해 알게 된 순간부터, 그리고 그 작품을 모티프 삼아 조각하는 그 때부터 기사라는 존재를, 그 배후의 황제를 듣던 것에서 나아가 실제적으로 (비록 간접적인 형태지만) 보면서 우러러보게 된다. 모든 예술혼을 담은 작품의 경지 그 끝자락에 있는 자만이 감히 조각할 수 있는 존재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도시의 축제가 잠시 연기되었지만 축제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고 많은 대리석 공예를 하는 공방의 수작, 졸작들이 한 데 어우러져 시장과 광장의 길 한 켠의 도로에 전시가 된다. 그 둘의 작품 역시 찾아보면 즐비한 공예작품들 가운데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비록 결국에는 미완성이었지만. 그런데 그 작품들 중에는 문제작이 하나 있었다. <거꾸로 도는 물레방아> 라는 작품인데 그것이 도시의 뜬소문에 지나지 않던 것 중 하나였던 단승남작의 스캔들을 풍자한 것이라는 얘기가 떠돌기 시작했고 공교롭게 그 무렵에 그곳에 전시된 모든 작품들이 어느 날 하나도 남김없이 뒷골목을 전전하는 패거리들에게 깨부숴진다. 전시되는 구역은 명백히 자기들이 그 일대 토지의 명백한 점유권자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 남작의 환심을 사고자 한 몇몇이 물밑에서 조작한 일이었으나 그 일은 되려 재판장에서 남작의 집행범위를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지를 다투는 데 있어 불리하게 작용한다. 왜냐면 관례적으로라면 남작의 자유재량적인 집행권이 무리 없이 인정되는 게 일대에서는 보통이었지만 형식상 최소로 필요한 것들은 구비될 것을 요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모독죄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품 같은 것들. 그래서 남작은 증인을 내세워 집행권이 있음을 주장했지만 실물 증거가 빠진 증인의 효력은 미약했음에도 집행권은 인정되었지만 그 범위는 3년차 이상 도제와 조각가들로 집행효력이 한정되었다. 이 판결로 그의 스승 역시 잡혀 들어가고 이올코스는 눈앞에서 자신이 모든 공을 쏟았던, 그리고 경배하기까지 했던 작품이 건달들에게 산산 조각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도시의 조각가들 역시 이 사건을 기점으로 맥이 끊긴다.
다시 식모살이를 하며 얹혀사는 집에 돌아온 그는 당장 힘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에게 지금 필요한 건 조각칼보다도 스스로를, 스스로의 작품을 지킬 수 있는 무구였다. 그러나 그것을 익힐 마땅한 곳은 도시에서 찾기 힘들었는데 남작가에서 마침 정원사를 구한다는 공고가 있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모친이 식모로 있는 곳에서 더는 더부살이를 할 수도 없었고 일정한 수익도 없었기에 당장에 그곳으로 간다. 그가 비록 조각가들의 아뜰리에 출신이긴 했지만 정원은 한창 터를 닦던 단계여서 기초적인 대리석 작업을 할 사람들이 도시에는 이제 없었고 도시 밖에서 초빙해야만 했던 터라 그나마 조건을 충족시키는 그를 채용하기로 한다. 한편 이올코스가 노린 것은 그 단승남작 밑에 있는 무관들. 그는 정원사로서 일하면서 틈틈이 단승남작 가의 개인 사병들과 친교를 쌓고 그들에게 조각칼을 다루는 법과 무구로서 가장 흥미를 끌었던 석궁을 다루는 기술을 맞교환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가족을, 그리고 그의 예술들을 보위하는 법을 익혀둔다.
하지만 결국 단승남작은 그의 아뜰리에 경력을 문제 삼으면서 그를 정식 인력을 구할 때까지 임시직으로 통보하고 그 기한까지 계약내용대로 정원의 대리석 작업을 서둘러 마칠 것을 종용했다. 그러던 중 기사인 단승남작의 아들 페테가 휴가 차 본가에 방문한다. 그와 우연히 마주친 기사는 그에게 흥미를 가졌다. 집안의 정원사로서 대리석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한 단순한 흥미, 그리고 그가 보인 오러에 대한 재능에서 오는 흥미. 단승남작의 아들은 그를 추천 써줬고 배우려면 기사 학교로 가라고 일러준다. 임시직으로 계약이 만료되는 날. 더 이상 어디에도 갈 곳 없는 그는 결심한다. 그날 아뜰리에에서 스승과 빚은 조각상과도 같은 기사가 되기로, 예술. 그 지존의 경지에 위치한 황제의 아래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기로.
도시로 유입된 빈민들의 수는 늘어만 갔고 그의 어머니와 그 역시 그중 하나였다. 부친이 배를 타기 전 가족을 위해 남겨두고 간 유산은 그들이 그나마 도시에서 거지꼴은 면한 채 정착을 하는 데에 모두 소진됐다.
결국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배를 곪지 않기 위해 그의 모친은 그 도시에서는 제법 유명한, 삼림지 일부의 지주이자 상당 삼림지의 벌목 대리권자의 가택에서 마침 수요가 있었던 터라 그곳의 식모 생활을 하면서 겨우 입에 풀칠을 했고 그는 그곳에 얹혀사는 조건으로 그 지주의 목공소에서 소년 작업공으로 하루에 17시간의 중노동을 하게 된다. 이 시기의 다른 소년들도 대부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올코스 역시 차차 이에 적응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곧 수익이 차츰 쌓이고 여력이 생겨나면서 가족의 삶은 그런대로 평범함의 궤도에 연착륙하고 있었다. 그가 어느 정도 소년티를 조금씩 벗어날 무렵 그도 이제 최소한 살아가는 데 기초적인 교육은 필요하다는 모친의 의견과 본인의 의욕으로 그를 가르칠 의탁할만한 교사를 찾게 된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이올코스를 목공소 일에서 벗어나게 할 명분으로 더는 이 집에서 더부살이시키지 않으려는 의도에서였다.
도시에서 조각을 전문으로 하던 거리의 한 예술가가 그를 밑에 두고자 했다. 모친은 이를 탐탁치않게 여겼지만 이올코스 본인이 이를 강하게 수락하였고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 모친은 그렇게 하여 그를 조각가의 거리가 있는 한 아뜰리에로 보낸다. 스승인 예술가는 황제에 대한 극렬한 예찬론자였는데 그의 사상에 있어 황제란 예술의 가장 끝의 경지에 다다라야 다룰 수 있는 주제였고 또한 그런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황제였다고 믿고 있었다. 당장 그는 이와 같은 그의 지론을 설파하며 이올코스가 이견 없이 순순히 그를 따르자 그저 잡부로나 부릴 생각이었던 스승은 마음먹고 조각을 가르쳐보기로 한다. 도제로 정식 인정을 받고 그가 먼저 관심을 보인 것은 목공예였는데 과거 목공소 경험을 바탕으로 칠기부터 깎는 일을 했고 스승은 재능을 쳐줬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아뜰리에는 목공예가 주가 아닌 곳이었고 일대에서 주도적인 건 석공예였다. 그에 따라 그는 점차 목공예에서 대리석 공예로 주 작업 전공을 변경, 오로지 대리석 공예에 매진하게 된다.
한편 이 무렵 도시는 점차 외부의 지원과 인근의 사정이 차츰 나아지며 그것을 해갈된 것이라 하여 이를 기념하는 축제를 열 계획이었는데 그때 예술가들이 작품을 전시할 기회가 있으니 그때까지를 한 기점으로 잡아 작업을 시작했다. 모티프는 <걸인을 구제하는 기사> 라는 한 유명한 조각상. 그는 스승의 지도로 그 조각상의 윤곽까지 완성하는 데 이른다. 그리고 단순히 그 윤곽을 한 눈에 보는 순간 그는 어떤 경외감에 사로잡힌다. 한 조각의 아류에 지나지 않은 조각임에도 전체적인 외관에서 우러나오는 깊이와 경지, 그 뿐 아니라 그 작품의 주제 의식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 조각을 보는 순간부터 그는 기사라는 존재를 동경하게 된다. 그리고 작품 표면상으로는 한 기사가 한 목마른 걸인에게 물을 붓는 것을 조각한 것이지만 그 작품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만인을 보듬어 살피는 황제’ 였다. 그는 모티프가 되는 그 조각상에 대해 알게 된 순간부터, 그리고 그 작품을 모티프 삼아 조각하는 그 때부터 기사라는 존재를, 그 배후의 황제를 듣던 것에서 나아가 실제적으로 (비록 간접적인 형태지만) 보면서 우러러보게 된다. 모든 예술혼을 담은 작품의 경지 그 끝자락에 있는 자만이 감히 조각할 수 있는 존재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도시의 축제가 잠시 연기되었지만 축제는 정상적으로 진행되었고 많은 대리석 공예를 하는 공방의 수작, 졸작들이 한 데 어우러져 시장과 광장의 길 한 켠의 도로에 전시가 된다. 그 둘의 작품 역시 찾아보면 즐비한 공예작품들 가운데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비록 결국에는 미완성이었지만. 그런데 그 작품들 중에는 문제작이 하나 있었다. <거꾸로 도는 물레방아> 라는 작품인데 그것이 도시의 뜬소문에 지나지 않던 것 중 하나였던 단승남작의 스캔들을 풍자한 것이라는 얘기가 떠돌기 시작했고 공교롭게 그 무렵에 그곳에 전시된 모든 작품들이 어느 날 하나도 남김없이 뒷골목을 전전하는 패거리들에게 깨부숴진다. 전시되는 구역은 명백히 자기들이 그 일대 토지의 명백한 점유권자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 남작의 환심을 사고자 한 몇몇이 물밑에서 조작한 일이었으나 그 일은 되려 재판장에서 남작의 집행범위를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지를 다투는 데 있어 불리하게 작용한다. 왜냐면 관례적으로라면 남작의 자유재량적인 집행권이 무리 없이 인정되는 게 일대에서는 보통이었지만 형식상 최소로 필요한 것들은 구비될 것을 요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모독죄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품 같은 것들. 그래서 남작은 증인을 내세워 집행권이 있음을 주장했지만 실물 증거가 빠진 증인의 효력은 미약했음에도 집행권은 인정되었지만 그 범위는 3년차 이상 도제와 조각가들로 집행효력이 한정되었다. 이 판결로 그의 스승 역시 잡혀 들어가고 이올코스는 눈앞에서 자신이 모든 공을 쏟았던, 그리고 경배하기까지 했던 작품이 건달들에게 산산 조각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도시의 조각가들 역시 이 사건을 기점으로 맥이 끊긴다.
다시 식모살이를 하며 얹혀사는 집에 돌아온 그는 당장 힘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에게 지금 필요한 건 조각칼보다도 스스로를, 스스로의 작품을 지킬 수 있는 무구였다. 그러나 그것을 익힐 마땅한 곳은 도시에서 찾기 힘들었는데 남작가에서 마침 정원사를 구한다는 공고가 있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모친이 식모로 있는 곳에서 더는 더부살이를 할 수도 없었고 일정한 수익도 없었기에 당장에 그곳으로 간다. 그가 비록 조각가들의 아뜰리에 출신이긴 했지만 정원은 한창 터를 닦던 단계여서 기초적인 대리석 작업을 할 사람들이 도시에는 이제 없었고 도시 밖에서 초빙해야만 했던 터라 그나마 조건을 충족시키는 그를 채용하기로 한다. 한편 이올코스가 노린 것은 그 단승남작 밑에 있는 무관들. 그는 정원사로서 일하면서 틈틈이 단승남작 가의 개인 사병들과 친교를 쌓고 그들에게 조각칼을 다루는 법과 무구로서 가장 흥미를 끌었던 석궁을 다루는 기술을 맞교환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가족을, 그리고 그의 예술들을 보위하는 법을 익혀둔다.
하지만 결국 단승남작은 그의 아뜰리에 경력을 문제 삼으면서 그를 정식 인력을 구할 때까지 임시직으로 통보하고 그 기한까지 계약내용대로 정원의 대리석 작업을 서둘러 마칠 것을 종용했다. 그러던 중 기사인 단승남작의 아들 페테가 휴가 차 본가에 방문한다. 그와 우연히 마주친 기사는 그에게 흥미를 가졌다. 집안의 정원사로서 대리석 작업을 하는 것에 대한 단순한 흥미, 그리고 그가 보인 오러에 대한 재능에서 오는 흥미. 단승남작의 아들은 그를 추천 써줬고 배우려면 기사 학교로 가라고 일러준다. 임시직으로 계약이 만료되는 날. 더 이상 어디에도 갈 곳 없는 그는 결심한다. 그날 아뜰리에에서 스승과 빚은 조각상과도 같은 기사가 되기로, 예술. 그 지존의 경지에 위치한 황제의 아래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기로.
주변인물관계(가족)
부친 - 지오토 : 평민이라는 한계선에서 달할 수 있는 최대치에 욕심이 있는 야심가. 아들인 이올코스가 8살이 되던 해 목장 일을 접고 도시로 내려오고 그 이듬해 말리는 가족을 뒤로 하고 바다로 나간다.
모친 - 셀리온 : 남편이 떠나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도시에서 꿋꿋이 살아나가며 아들을 가능한만큼 교육을 시키는 데까지 이르는 생활력을 보여준다. 그가 기사가 되어 떠나자 식모살이하는 집에 홀로 남는다.
부친 - 지오토 : 평민이라는 한계선에서 달할 수 있는 최대치에 욕심이 있는 야심가. 아들인 이올코스가 8살이 되던 해 목장 일을 접고 도시로 내려오고 그 이듬해 말리는 가족을 뒤로 하고 바다로 나간다.
모친 - 셀리온 : 남편이 떠나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도시에서 꿋꿋이 살아나가며 아들을 가능한만큼 교육을 시키는 데까지 이르는 생활력을 보여준다. 그가 기사가 되어 떠나자 식모살이하는 집에 홀로 남는다.
주변인물관계(가족 외)
스승 - 플랑드르 코윈 : 남부영지주의(신화,전승 등 초월적 존재와 주제를 다루는 예술 사조)가 대세인 예술의 사조 사이에서 초기사실주의(대체로 영지주의를 거부하고 인간 그 자체와 그들의 솔직한 내면, 감정을 주제로 한 예술)를 받아들인 인물. 물론 그것을 커밍아웃할 때 받을 불이익을 알기에 그는 겉으로나 작품으로나 그것을 드러내진 않았다. 다만 그의 본심을 언제까지고 숨길 수 없던 터 일부 그의 동료들과 함께 탈영지주의 조각가 모임을 결성하고자 하나 영지주의의 그 중에서도 특히 회화의 후원자였던 단승남작의 눈총을 받게 된다. 그 이후 도시의 축제 때 <거꾸로 도는 물레방아> 사건 이후 많은 조각가들과 함께(주로 탈영지주의파) 잡혀 들어가고 그 이후 그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추천자 - 페테 시몬 헤이거 : 갈로란드 주 단승 남작의 아들로 그곳에서 정원사로 일하던 이올코스에게서 오러의 재능을 발견하고 추천장을 써준다.
스승 - 플랑드르 코윈 : 남부영지주의(신화,전승 등 초월적 존재와 주제를 다루는 예술 사조)가 대세인 예술의 사조 사이에서 초기사실주의(대체로 영지주의를 거부하고 인간 그 자체와 그들의 솔직한 내면, 감정을 주제로 한 예술)를 받아들인 인물. 물론 그것을 커밍아웃할 때 받을 불이익을 알기에 그는 겉으로나 작품으로나 그것을 드러내진 않았다. 다만 그의 본심을 언제까지고 숨길 수 없던 터 일부 그의 동료들과 함께 탈영지주의 조각가 모임을 결성하고자 하나 영지주의의 그 중에서도 특히 회화의 후원자였던 단승남작의 눈총을 받게 된다. 그 이후 도시의 축제 때 <거꾸로 도는 물레방아> 사건 이후 많은 조각가들과 함께(주로 탈영지주의파) 잡혀 들어가고 그 이후 그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추천자 - 페테 시몬 헤이거 : 갈로란드 주 단승 남작의 아들로 그곳에서 정원사로 일하던 이올코스에게서 오러의 재능을 발견하고 추천장을 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