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modified: 2018-03-25 23:40:26 Contributors
이지은 |
성별 | 여성 |
나이 | 24 |
랭크 | S |
성적 지향 | ALL |
뒤로 느슨하게 하나로 묶인 머리카락은 누가봐도 인위적으로 염색한 것 같은 주황색에 가까운 갈색이다. 그녀의 풍성하고 결좋은 머리카락은 길게 늘어져 허리까지 온다. 왼쪽 머리에도 흉터 자국이 있기 때문에 가발을 쓴다. 본인은 숨기고 싶어하지만 자세히 보면 누구나 그것이 가발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발을 벗으면 짙은 흑발의 숏컷(생머리)이다. 왼쪽 얼굴에 화상 자국이 있다.
검은 오른쪽 눈에 비해 왼쪽 눈은 그보다 옅은 회색을 띄고 있으며 초점이 없다. 어렸을 적 화상으로 인해 왼쪽 눈이 실명되었기 때문이다. 눈 근처에 있는 울긋불긋한 화상자국을 감추기 위해 그 부분만 유독 공을 들여 화장한다.
외관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다면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화낼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다. 주로 이가 환히 들어나도록 웃고 있어 장난스러워 보인다.
키는 160대 중반. 몸무게는 50kg중후반으로 정상 체중이다.
장난스러운 성격이다. 평소에는 밝고 쾌활하다. 항상 잘 웃고 농담도 많이 하지만 극악 범죄를 저지른 자와 대치할 때나 자신의 외모(화상관련)에 대해 조롱한다면 성격이 확 바뀌어 차가워진다. 정의감 때문에 익스레이버에서 일하기보다는 범죄자에 대한 개인적 악감정 때문에 일하고 있다.
최근 경찰일을 하면서 범인 체포보다는 민간인 보호를 더 중요시하게 되었다. 그래도 범죄자를 싫어하는 것은 여전해서 범죄자를 과격하게 다룰 때가 많다.
투명화
자기 자신을 투명화 시키는 것은 물론 다른 물체(생명체 포함) 또한 투명하게 할 수 있다. 투명화된 물체끼리는 서로가 보인다.
제약: 자기 자신을 투명화 할 경우 다른 사람과 접촉하게 되면 바로 투명화가 풀린다.(다만 자신이 먼저 접촉한다면 상대도 같이 투명화 시킬 수 있다.) 자신이 아닌 다른 물체도 경우도 마찬가지. 물체를 투명화시키기 위해서는 자신과 접촉하고 있어야 한다. 직접적으로가 아닌 간접적으로 접촉하고 있어도 된다.(ex. 상대와 끈으로 연결되어 있거나 옷끼리 접촉되어있어도 투명화는 가능하다.) 자신을 포함하여 여러 물체를 투명화시킬 수 있다만 많은 정신력이 소모된다. 주로 투명화를 사용해 상대의 뒤를 공격하는 방식. 그때는 총을 애용한다.
오버 익스파 : 하이딩(hiding)
그녀 일정 주위의 있는 물체를 접촉 없이 투명화 시킬 수 있다. 이때 투명화된 물체(지은 제외)는 다른 이가 먼저 접촉하더라도 투명화가 풀리지 않는다.
제약 : 지은은 격렬한 활동을 할 수 없으며 상대가 지은에게 접촉한다면 모든 투명화가 풀린다.
- 자신의 화상 흉터 자체에는 딱히 불만이 없지만 외모 때문에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숨기고 다닌다.
- 친해지면 자신에 화상 흉터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낸다.
- 하지만 아직 친하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 언급하면 꺼려하는 기색.
- 범죄자들은 살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과잉진압을 할 때가 많다. 본인은 실수라고 하지만 고의다.
- 아재개그를 즐겨 하는데 이유는 아재개그가 정말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반응이 재미있어서라고 한다.
- 싫어하는 상대가 있다면 웃으면서 악담하는 타입. 하지만 싫어하는 수준이 혐오 수준으로 넘어간다면 인상을 찡그리고 경멸한다.
- 왼쪽 눈의 시력은 약간이나마 남아있다. 다만, 흐릿하게 대략적인 형체만 보인다.
- 어렸을 적에 성격이 별로 좋지 않았다. 지은은 그 시절을 회상할 때마다 중2병이 심하게 왔다며 부끄러워하는 듯.
- 평소 크로스 백을 챙기고 다닌다. 유용한 물품을 들고 다니며 위급한 상황에 방패로 쓰이기도 한다.
- 경찰에 대한 로망이 많다. (ex:순찰차를 타보기, 도넛을 먹으며 업무 보기) 대부분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고 생긴 로망.
- 경찰에 존경이 과하다. 자신보다 어리더라도 경찰로서의 경험이 많으면 선배라 인식해 존댓말을 한다.
- 대학생 시절 등록금을 벌기 위해 미친듯이 알바를 했다. 현재 월급을 받고 있음에도 과거 습관 때문에 사소한 소비에도 굉장히 신경쓰고 있다. 현재 목표는 돈을 모아 침대 사기.
-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을텐데 왜 돈이 부족한가에 대한 의문은 독백에서 간접적으로 풀렸다! 부모님이 남겨준 몇 안되는 물건이라 함부로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
유복하고 화목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잔뜩 받으며 자랐다. 태어났을 때부터 <투명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딱히, 실용성을 못 느껴 거의 무시하며 살았다.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 당시 학교에서 주최한 학예회에 나가 합창을 하던 도중 관람석이 폭발했고 화재가 발생했다. 관람석에서 구경하던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즉사, 대피하던 이지은은 머리에 불씨가 붙어 왼쪽얼굴에 심각한 화상을 당했다. 폭발 원인이 테러집단임을 알고 범죄자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이 일을 기점으로 자신의 능력을 범죄자 체포에 사용하기로 다짐, 고아원에 가서도 남들의 눈을 피해 연습했다. 이제는 능숙하게 <투명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가족을 잃은 슬픔 때문에 말수가 적었고 사교관계도 좋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활발해지기 시작. 입양되지 않고 고아원에서 자라 경찰대에 입학했다. 4년간 경찰대에서 알바와 공부를 병행했고 경찰대를 졸업하자마자 익스레이버에 지원했다.
- 이지은의 비밀 일기 - 1 (무덤까지 가져갈 특급☆비밀)
xxxx년 03월 03일
오늘부터 중학교 1학년이다. 내 짝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기분이 나빴다.
(지은 "대체 왜?!!")
xxxx년 04월 02일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다. 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난 내 능력을 『불확정 무의식』이라 이름 지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날 놀리는 고아원 녀석들 모두를 이 '능력(ability)'으로 이 세계에서 없는 존재로 만들 수 있지만 그렇게 된다면 아무도 날 막을 수 없을테니 내 욕망을 절제한다.
(지은 "그래봤자 투명화잖아!! 과거의 난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던 거야!")
xxxx년 04월 28일
학교 애들이 자꾸 나한테 아는 척을 해서 귀찮다. 감히 나랑 친구를 하려고 하다니. 나는 평범한 친구 따위 필요 없다. 진정한 친구를 찾을 것이다.
(지은 "이건 또 무슨 소리야!!!!")
xxxx년 05월 09일
인수분해 따위를 왜 해야 하지?
(지은 "....")
xxxx년 05월 19일
어른들은 더러워. (종이가 눈물로 얼룩져있다.)
(지은 "내 생일이잖아? 설마 아무도 안 알아줘서 삐진 건가.")
xxxx년 06월 09일
왼쪽 눈이 아프다. 나는 지금 광기에 휩싸이고 있다. 하지만 이 광기를 이겨내지 못한다면 나는 다른 '나'에게 잠식되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괜찮아.
(지은 "뭐에 잠식되는 건데? 뭘 알아주는 건데?!!!")
xxxx년 06월 12일
나에게 일상이란 의미 없어. 더 이상 살아가는 것에 흥미 따위 없거든. 이런 날 살아있게 하는 것은 오직 '모차르트'의 월광뿐...
(지은은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모차르트가 아니라 베토벤이다.)
-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
아직은 이른 아침이었다. 벌써부터 출근할 준비를 모두 마친 지은이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화상을 지우려면 오랜 시간이 걸렸기에 이렇게 일찍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울긋불긋한 자국이 난 왼쪽 얼굴로 손을 뻗어 어루어 만졌다. 오돌토돌 튀어나온 화상자국이 매끄럽게 느껴지는 반면 정작 만져지는 자신의 흉터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질적인 감각이다.
싫었다.
아침마다 내 흉터를 숨겨야한다는 사실이.
내일도 어쩌면 평생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해야한다는 사실이.
모두 싫었다.
죄를 지은 기분. 나를 숨기는 기분. 나를 부정하는 기분.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섞여있었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이름 내리기에는 지나치게 애매한 감이 있었지만 확실히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구겨졌다. 지은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화장품을 들었다. 잘못했다가는 늦을 수 있다. 스스로 세뇌라도 시키듯 행복한 생각이라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애써 빙긋 웃어 보이지만 마음 깊은 속에 우울감이, 물에 퍼진 검은 물감마냥 존재하고 있었다.
그 흉터 징그러워.
아직은 앳된 목소리, 내 앞에 서있던 남자아이, 호기심 어린 듯 지켜보던 시선들. 먼 과거로부터 넘어온 기억이었다. 지은은 억지로라도 움직이지 않는 굳은 얼굴을 포기하기로 하고 화장을 계속했다. 유쾌하지 않은 과거였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지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렇게 가끔 찾아오는 불청객이었다. 화장을 마치자 깨끗한 얼굴이 거울에 비쳤다. ’보통‘과 같은 얼굴을 하게 된 거울 속의 여자는 기뻐해야 하건만 여전히 슬퍼보였다. 익숙하면서도 괴리감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아직 가발을 안 썼구나.
큰일 날 뻔 했다며 가발을 챙겨와 가발을 써본다. 이것으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싶어 고개를 들었는데도 여자는 영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러면 곤란했다. 언제나 즐거운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다.
“...있지. 난 너를 한번도 징그럽다고 생각한적 없어.”
원래 흉터가 존재해야할 부분을 손으로 슬쩍 쓰다듬었다.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거울의 차가운 감촉이었지만 여자는 그것만으로도 기쁜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정확히는 지으려 했지만.
내 눈에는 징그러운데 그냥 가리면 안 돼?
오늘은 글렀구나. 지은은 혀를 작게 차고 현관문을 열었다. 순탄치 않은 하루가 될 예감이다.
- 그 후로 남겨진 건
"아빠, 나 사탕 꽃다발. 꼭이야. 사탕 꽃다발!"
"그래 우리 예쁜 딸 가지고 싶은거 아빠가 다 사줘야지."
"그렇다고 사탕 많이 먹으면 안된다?"
추운 겨울이었다. 입에서 하얀 김이 나오는 것을 느끼며 선물 받은 벙어리 장갑을 손에 끼고 엄마와 아빠를 맞잡았다. 벙어리 장갑너머로 따스함이 느껴졌다. 이유도 모르게 만족스러워 실실 웃고는 엄마의 팔에 머리를 비볐다. 행복한 학예회 날이었다. 행복해야할 학예회 날이어야 했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는 검은 색 정장을 입고 있었고 아빠는 갈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사람들은 북적였고 모두 행복하게, 모두 활기차게. 위를 올려다보면 분명 자상한 미소로 날 쳐다보고 있을 부모님들, 이었을텐데
그 둘이 어떻게 생겼었더라?
스멀스멀 밀려오는 불안감이 개미처럼 온 몸을 감쌌다. 차오르는 불안감을 무시하고 용기를 내 천천히 위를 보자 욱하고 토기가 일었다.
얼굴이 있어야할 곳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벗어나기 위해 손을 비틀었지만 이상하게 벗어날 수 없었다. 어딘가에 단단히 막힌 듯 꼼짝할 수 없었다. 익숙한 감정이 발목을 붙잡았다. 공포.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입에서는 어째서, 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행복했던 시간이 무너져 간다. 그 모든 것들이 천천히 타들어 간다. 행복은 공포가 되고 따스함은 고통이 되었다. 그 화목했던 시간은 견딜 수 없는 지옥이 되어 나에게 찾아왔다. 눈물이 삐질 흘러나온다. 투둑 투둑 떨어지는 눈물이 얼굴을 타고 양 볼을 적셨다. 영원할 것만 같은 이 지옥이 끝나기를 빌다 문득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 이야기의 끝을 나는 알고 있잖아?
비극이다. 위에서 덮쳐오는 익숙한 불의 열기에 눈을 감았다. 감긴 눈 밑 암흑 속에서 날카로운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나의 비명인지 과거의 파편인지 이제는 정말 알 수 없게 되었다.
번뜩 다시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익숙한 천장이었다. 아직도 비명소리로 웅웅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주위를 살펴본다. 단칸방에 나 혼자. 온 몸을 기어오르는 불안감도, 왼쪽 얼굴이 타들어가는 고통도, 머리를 강타하는 날카로운 비명도 천천히 사그라지고 있었다. 9살이었던 이지은은 다시 24살의 이지은으로 돌아와 있었다. 식은땀을 많이 흘린 것인지 이불이 축축했다. 습관적으로 왼쪽 얼굴에 손을 올려 흉터를 쓰다듬는다. 제 얼굴을 이불만큼이나 축축하게 적신 것이 식은땀인지 눈물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눈앞이 울렁거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지끈거리는 왼쪽 흉터는 신경에 거슬렸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흐릿한 시선 너머로 오래된 서랍장이 보였다.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급하게 서랍장으로 향했다. 서랍장을 열고 옷 틈새를 뒤적이자 오래되어서 껍질이 군데군데 벗겨진 작은 나무상자가 눈에 보였다. 그것을 조심스레 꺼내 뚜껑을 열었다.
크기가 다른 반지 한 쌍과 은행 통장, 그리고 학예회 직전에 찍은 사진.
상자에 들어있는 다였다.
부모님이 나에게 남겨준 다였다.
내 기억만큼이나 색바랜 사진이 부셔지기라도 할까 조심조심 사진을 들고서는 부모님의 얼굴을 눈에 자세히 새겼다. 단란해 보이는 가족, 환하게 웃고 있는 세 사람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 봄은 겨울이 꾸는 꿈
"오늘은 날씨가 좋네."
유리창으로 비쳐 들어오는 햇살의 따스함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의자 등받이에 등을 편안히 기대고 눈을 감았다. 이렇게 밝은 날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유예은
봄날처럼 나에게 다가와 여름날 햇빛처럼 찬연하게 웃던 너
⁎
"안녕, 너 이름이 뭐니?"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 되어, 너가 나에게 물었다. 친절한 음성이 나에게 너무 어색하게 다가와 거부감이 들었지만.
"...이지은"
곱게 휘날리는 벚꽃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는 너의 모습이 너무 찬란하게 빛나서 나도 모르게 얼뜨기 같이 대답해버렸다.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멍하니 너를 바라보는 나에게도 너는 기꺼이 손을 내밀고 다가왔다.
"그래? 이름 예쁘다. 난 유예은이야. 우리 반 반장인데 나랑 같이 밥 먹지 않을래?"
혼자 있는 나를 동정한 것일까, 평소라면 동정하지 말라고 화를 내야했지만 내밀어진 손을 차마 내치지 못하고 어설프게 맞잡았다. 손에서 느껴지는 너의 온기는 따뜻했다. 열린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봄기운 가득한 바람과 햇살처럼 환히 빛나는 너. 일본 순정만화에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관경이었다. 그만큼 네가 너무 아름다웠다. 너의 주위는 알록달록한 색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찰나를 그냥 보내기는 너무 아쉬워서 나는 또 바보처럼 쉽사리 손을 놓아주지 못했다. 너와의 첫 만남이었다.
너와 함께한 시간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책상에 마주 앉아 같이 밥을 먹는 일,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 하는 소소한 일상들, 함께 걸어가는 하굣길. 그런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에 사람이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너와 함께하면서 처음 알았다.
"그랬더니 아빠가 나보고 뭐라고 했는지 알아? 추우면 추어탕을 먹으라는 거야!"
책상 위에 팔꿈치를 대고 올린 손에 턱을 받치고 너의 모습을 마음에 새겼다. 저런 시답잖은 농담에도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는 네가 얼마나 반짝이는지 너는 모를 테지. 너의 이야기는 주로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는 평범한 학생이 될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고아원이 아닌 집에 가면 부모님이 나를 반기고 있는 꿈을 꿀 수 있었다. 잠에 들지 않고도 꿈을 꿀 수 있는 그 순간이 너무 귀중했다.
"내 말 제대로 듣고 있는 거야?"
너의 목소리가 꿈속에서 헤매던 날 깨웠다. 머리채가 붙잡혀 강제로 물 밖에 내쳐진 물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아직도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아 눈을 천천히 깜빡인다. 교실이었다. 허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순간의 행복이 안개처럼 흩어져 허망감만 남게 되었다. 행복의 잔재가 못내 아쉬워 슬쩍 눈을 돌려 너를 본다. 너는 여전히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양 볼이 상기되어 보기 좋은 분홍색이 만들어져있다. 너와 계속 있다보면 나도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그래서 너가 너무 소중했다. 너와 함께한 시간이 소중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는 바다와 같았다. 나는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하늘 아래로 광원하게 펼쳐져 있는 바다에 발을 담그고 서있었다. 발가락 사이사이로 파도가 철퍽거리며 발을 간지럽힌다. 그 간지러움마저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아니, 오히려 기뻤다. 찬란한 축복에 휩싸여 난 너에게 푹 빠지고 싶었다. 설령 흠뻑 젖는다 하더라도.
⁎
깜박 졸았나.
작은 빛이 눈꺼풀 사이로 서서히 들어왔다. 아직도 잘 떠지지 않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등을 굽혔다. 조금 멍한 기분이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어깨를 타고 흘러 내려와 허둥지둥 흩트려진 자세를 바로잡고 창문을 보았다. 따스하게 비추던 햇살은 구름에 가려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창가너머를 보았다.
유예은.
봄날처럼 나에게 다가와 여름날 햇빛처럼 찬연하게 웃던 너
지나간 봄날을 그리워한 꿈이었다.
- 나를 가둔 바다
-
“그래, 예은아. 정말 고맙다. 반장으로서 소외된 친구가 없도록 노력하고 있더구나.”
쿵!
“아니에요, 선생님. 지은이는... 생각하던 것만큼 나쁜 아이가 아니던데요? 흉터 때문에 다가가기 어려운 것뿐이었어요.”
쿵!
심장이 뛰었다. 널 처음 만난 순간보다 더 크게. 입 밖으로 심장이 뛰쳐나올까 입을 막았다.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끌고서 뛰었다. 너와 선생님과의 대화를 외면하기 위해. 너를 향한 분노보다 너와의 관계가 틀어질 것을 걱정하는 내가 싫었다.
정신없이 반으로 달려가 내 책상위에 엎드렸다. 아직도 쿵쿵 뛰는 심장소리가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와 고막을 울렸다. 주위에 시끄러운 아이들의 잡담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큰 소리였다. 소매에 얼굴을 파묻고 숨을 죽이자 갑갑해서 죽을 것 같았다.
숨조차 쉬기 힘든 갑갑함이 나를 옥죄이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을까. 누군가 내 책상을 손으로 툭툭 쳤다.
“지은아?”
예은이었다. 나에게 찾아온 햇살이자 그늘이었다. 느릿하게 고개를 들고 너를 바라보았다.
“표정이 왜 그래?”
네가 가지런한 앞니를 드러내며 어색하게 웃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너
나를 감싸주던 너
나를 기만한 너
봄처럼 따뜻하게 다가오는 듯싶더니 너는 봄을 빙자한 겨울이었구나.
당장이라도 너의 멱살을 붙잡고 나를 속인 것이라며 소리라도 쳐야 이 답답함에서 벗어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나는.
“...우린 친구지?”
네가 좋았다. 너에게 화를 내기에는 나는 너를 너무 좋아하고 있었다. 내 얼빠진 대답에 너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당연하지!”
너를 믿을 수 없었다. 너는 나를 친구로서 본 것이 아니라 반장으로서 본 것이었구나. 배신감이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천천히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도 어쩌면 진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제야 나는 이 갑갑함의 근원을 알 수 있었다.
바다였다. 나는 심해 속에서 실낱같은 빛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비천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온 몸을 으스러뜨리는 수압에 억눌려 간신히 숨만 쉬고 있었다.
나를 가둔 바다는 바로 너였다.
그래서 나올 수 없었다.
나오고 싶지 않았다.
날 이렇게 만든 너가 미워
어둠 속에서 여자가 아이처럼 울면서 외쳤다. 하지만 표적 없는 아우성은 갈 곳을 잃고 그녀의 앞에 힘없이 쓰러질 뿐이다.
- 그날 밤, 소녀는 흉터를 숨기기로 마음 먹었다.
한참을 뒤적이다가, 또 네가 생각나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숨구멍이 막혀 답답했지만 천근같은 바위덩어리가 마음속에 떡하니 차지하고 있으니, 속이 답답한 거에 비해서는 참을 만 한 것이었다.
또 그렇게 잠을 설치다가 '아니야, 너는 날 친구로 생각할거야.' 라고 생각해본다.
그래도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는 이유는
그 흉터 징그러워.
문득 기억 저편에 숨어있던 불청객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내 자신을 속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미워하고 넘어가기에는 이미 너에게 푹 빠져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들킬까 숨죽여 비명을 질러본다. 비명은 천으로 막힌 입을 타고 올라가 코를 지나쳤다. 결국 억눌린 비명이 도착한 곳은 눈이었다. 눈에서 소리 없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얀 베개 위로 비명이 스며든다.
예은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여전히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 이준 = 델타?
어떤 정신으로 집에 도착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열쇠를 지었다. 차가운 열쇠의 감촉이 손가에 맴돌았지만 정신을 차리기에는 턱도 없었다. 열쇠는 자꾸 힘없이 떨어졌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현관 앞에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아 머리가 텅 빈 기분이었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에 서서 제 얼굴을 한 번 훑고 세수를 했다. 얼얼할 정도로 찬 물인데도 여전히 공허감만 남아있었다.
거짓말로 점칠된 세계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그런 더러운,
나무의 가지처럼 뻗어가던 상념이 잘린 것은 거울 앞의 자신과 마주하고 나서였다. 나를 가리던 화장은 물에 녹아내려가고 있었다. 초췌하고, 부석했다. 검붉은 흉터가 왼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었다. 이 얼굴을 보고 누가 징그러워하지 않을까. 자소가 저절로 나왔다.
누군가에게 속임 당해 분노하면서도 나 역시 모두를 속이고 있지 않은가.
치밀어오는 혐오감에 가발을 붙잡고 그대로 던져버렸다. 나는 누구에게 화난 거지? 배신자 이준, 아니 델타? 그마저도 아니라면 배신을 당하고도 연을 끊지 못하는 멍청이?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귀를 지나 뇌를 울렸다. 지끈거리는 머리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싶었다.
*
아침이었다. 하루 밤이라는 시간 끝에 지은은 결론을 내렸다.
경찰로서 최선을 다하자.
테이져건을 만지작거리며, 이번에는 망설이지 말기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