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특수 수사대 익스레이버
" 안녕. "
1. 외관 ¶
애쉬 퍼플색 머리카락을 가슴 아래까지 길렀다.
앞머리는 길러 넘겨 6:4의 비율을 유지한다. 피부가 매우 하얗다. 그녀의 말로는 유전이라고 한다. 크고 시원한 눈매 안에는 짙은 검은색의 눈동자가 자리 잡고 있다. 그렇게 짙지 않은, 조금 연한 쌍꺼풀이 있다.
위로 조금 치켜 올라간 듯 시원한 눈매는 그녀의 매력 포인트라고. 높은 콧대와 날렵한 콧매. 전형적인 차가운 도시여자. 굉장한 미인형의 얼굴, 하지만 어딘가 독기를 품은 듯 보이는 외관. 보통은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녀의 웃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다. 키는 170cm로 큰 편. 몸무게는 비밀이라고. 적당히 마른 체격에 적당한 잔근육이 보기 싫지 않게 붙어있다.
앞머리는 길러 넘겨 6:4의 비율을 유지한다. 피부가 매우 하얗다. 그녀의 말로는 유전이라고 한다. 크고 시원한 눈매 안에는 짙은 검은색의 눈동자가 자리 잡고 있다. 그렇게 짙지 않은, 조금 연한 쌍꺼풀이 있다.
위로 조금 치켜 올라간 듯 시원한 눈매는 그녀의 매력 포인트라고. 높은 콧대와 날렵한 콧매. 전형적인 차가운 도시여자. 굉장한 미인형의 얼굴, 하지만 어딘가 독기를 품은 듯 보이는 외관. 보통은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녀의 웃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다. 키는 170cm로 큰 편. 몸무게는 비밀이라고. 적당히 마른 체격에 적당한 잔근육이 보기 싫지 않게 붙어있다.
-드림셀피 : 웃을 때
-드림셀피 : 고교시절
- 최선을 다해 보았으나...
- 어딘가 미화 된 면이 없잖아 있는
2. 성격 ¶
악하지는 않다. 다만, 마냥 선하지도 않다. 경찰이라는 직업적 정의감은 있지만 개인 고유의 정의감,도덕성은 미약하다. 조금 과격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데, 범죄자는 죽어 마땅하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1] 하지만 아니러니하게도 마음은 약하고 여린 편. 그러나 강력범죄자에게는 한 없이 잔인한 면모를 보인다. 낯을 잘 가리는 성격 덕에 차가워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본인은 먼저 다가가고 싶어한다. 직업에 대한 책임감이 막중한 편.
3. 능력 ¶
Copier
자신 혹은 타인의 분신을 만들어내며 원하는 물체를 복제시킨다. 분신은 개체의 시전자 랭크 수준으로 익스파를 구현 가능하며 생물/무생물 모두 기본적으로 접촉이 기본 조건이다. 생물체의 경우 머리카락 한 올, 손톱도 가능하나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며 옷과 같은 섬유 위로도 접촉이 가능하다. 다만 섬유와 같은 매개체 아래 반드시 대상의 신체부위가 존재해야 한다. 무생물의 경우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 존재시키는 것이 가능하며 대상과 같은 강도와 강성을 유지한다. 무게에 제한은 없지만 크기가 크고 무거울 수록 몸에 무리가 많이 가게 되므로 적절히 사용해야한다.
오버익스파 - EXwave mix
타인의 익스파를 최대 5개까지 카피 후 그것을 융합하여 사용한다. 대상자와의 접촉의 유무는 상관 없으며 카피 된 초능력들을 융합하여 이용할 수 있다. 서로 상성인 익스파도 카피 후 혼합이 가능하며 최대 5개까지 모두 혼합이 가능하다.
4. 기타 ¶
노을빛으로 사랑했던, 나의 일부와도 같았던.
윤찬경 (사망 당시 22세)
유혜의 첫사랑[3]이자 3년 짝사랑[4]의 주인공.- 과거(스포일러)
- 고등학교 졸업날 ‘ 서로에게 떳떳하게 인사를 건넬 수 있을 때 다시 만나자 ‘ 라는 약속을 남겨놓고 졸업 후 이 년뒤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크리스마스가 기일이며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기일을 챙긴다고. 윤찬경이 사망하고 나서 유혜 인간관계의 대부분이 끊어졌다.
- 단 음식을 아주 좋아한다.
주머니에 사탕 혹은 초콜렛이 없으면 불안해한다.
주머니에 사탕 혹은 초콜렛이 없으면 불안해한다.
- 어깻죽지에 화상 흉터가 있다.
손바닥 크기. 덕분에 여름에도 민소매를 입지 못한다.
손바닥 크기. 덕분에 여름에도 민소매를 입지 못한다.
- 익스퍼로 각성한 것은 17세때 어느 여름날.
큰 부작용은 없었다고. 아주 드물게 환청,환각이 보이지만 괜찮다고 한다.
큰 부작용은 없었다고. 아주 드물게 환청,환각이 보이지만 괜찮다고 한다.
- 고양이를 키운다. 이름은 나비 (1세). 집 앞에 버려진 길고양이를 데려온 것, 새카만 털이 예쁜 고양이다.
5. 독백 ¶
- 숨겨온 이야기
- “ 유혜야, 잘 들어. 아빠는 괜찮아. 언니도 괜찮을거야. 그러니까 울지 마. 응? “생명이 꺼져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져갔기 때문이었을까.
난생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과 기분에 나는 어린 아이처럼 이유 모를 울음을 토해낼 수 밖에 없었다. 당신은 그러한 나를 위해 당신을 희생했는데도,
나는 어린 아이 같은 겉모습 속에서 철저히 나의 안위만을 걱정하고 있음에 나는 구역질이 났었다.
나는 위선자였다. 점점 꺼져가는 촛불과 같은 당신의 모습을 보며, 혐오스럽게도 난 살고 싶었다.
나를 위해 온 몸을 바쳐 불에 타서 반쯤 쓰러진 기둥을 받치고 있는 당신을 보며, 당신에 대한 걱정 보다는 무서움이 나를 먼저 감싸쥐었다.
“ 유혜야. 엄마 어디있는 지 알지? 엄마 부터 찾아. 응? 울지 말고. “
당신의 끝을 본 날, 나는 당신의 모습에서 두려움이란 감정을 느껴버렸다.
나를 위해 희생한 당신을 보며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난 아직도 당신의 마지막 얼굴을 잊을 수 없다.
고통에 일그러진, 하지만 마지막까지 나를 위해 입꼬리를 끌어당기던 그 얼굴을,
잊어서는 안되는 그 얼굴을 난 아직 기억하고 있다.
매일 밤 달의 얼굴에 당신의 웃는 얼굴을 덧씌웠었다.
그렇게 당신을 잊으려 하지 않았다. 당신의 장례식날, 몰래 가족 앨범에서 훔쳐들고온 사진 한 장을 닳아 없어지도록 문질렀다.
아, 사실은 당신의 마지막 모습만을 미치도록 잊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우습게도, 난 당신의 마지막 모습 하나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십몇 년 전 나를 놀이동산에 데려가 웃음짓던 당신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해도
남몰래 속으로 잊고 싶어했던, 당신의 그 일그러진 얼굴만 또렷하게 기억나고 있었다.
내 몸의 흉터는 당신을 잊지 말아달라는 마지막 부탁이었을까. 아니면, 당신을 잊어달라는 마지막 바람이었을까. 나는 당신의 마지막 모습을 죽어서도 잊지 못 할 것이다. 당신의 웃는 얼굴을 잊더라도, 매일밤 나를 반기는 것은 당신의 마지막 모습일테니.
- 첫사랑
- 마음 한 구석에 놓인 낡고 작은 박스 안, 먼지가 자욱히 쌓인 그 상자 안에는 꽁꽁 싸매고 숨겨놓았던 한 때 나를 잠 못들게 만들었던, 우리들의 첫사랑이 있다.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비밀스러운 추억. 첫사랑.
첫 사랑의 시작은 벚꽃내음이 코를 간질이는 봄도 하얗게 피어오른 눈송이가 하늘을 수놓는 겨울도 아니었다. 늦봄과 초여름 그 사이의,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을 좋게 만들던 그 어느날. 그렇게 갑자기 피어오른 이름 모를 새싹 하나가 나의 마음을 가득 채워냈다.
그 작은 새싹이 말하길, 처음 벚꽃이 피어오른 날 누군가가 마음에 피어날지, 피어오르지 못할지 모를 작은 씨앗을 심어두고 갔더랬다.
모든 사랑을 그렇게 시작한다고. 그리고 그렇게 자라나는 거라고, 그 작고 어린 새싹의 속삭임은 벚꽃잎 처럼 부드러웠다.
처음에는 그에게 눈길이 갔다. 사랑이라고는 생각치 않았다. 사랑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감정이었기에,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지었다.
어쩌다가 가끔,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을 때 그의 생각이 나면 홀로 뺨을 붉히기만 할 뿐이었다.
사랑이었단 걸, 홀로만 외면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느낀 감정이 사랑임을 깨닫게 된 건,
늦여름의 어느날. 그가 내 이름을 입에 담아주었을 때,
그의 눈에 비친 나를 보았을 때.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하지 못 할 감정. 신기루처럼 이제는 잡히지 않을 그 감정을 처음으로 맛 본 짜릿하고도 환상적인 순간이었다.
처음 느낀 감정의 파도는 금세 나를 덮쳐 쓸어버렸다.
파도는 너무나도 높고 억세서, 열심히도 가꾸었던 나의 모든 것을 쓸어덮쳤다. 대신에 가벼워진 마음을 그라는 존재로 다시 가득 채워냈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었다. 비록 나의 모든 게 비뚤어지더라도 어느 한순간을 온통 너로 채울 수 있음이 사무치게 행복했다.
밤하늘에, 꼭 감긴 내 눈에, 손톱만한 달에. 그렇게 너를 그리며 두 눈을 감았다. 그래, 그렇게 나는 매일밤 너를 그렸다.
첫사랑은 그 어리고 미성숙한 어딘가에서 비로소 빛을 보인다. 아주 찬란하게, 내 삶의 밤하늘 어딘가에 박혀 그 아름다움을 내비춘다. 그 떨리고 두근거리는 첫사랑을
절대 잊을 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가장 완성되지 못 함에 있지 않을까, 처음 느낀 그 오묘한 감정들이 다시는 내게 올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지 않을까. 여겨본다.
- 겨울-짝사랑
나는 겨울이 좋아. 어떤 계절이 가장 좋냐던 너의 질문에 내놓은 대답이었다. 나는 겨울이 제일 좋아.
한 겨울날 눈이 내리면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던 너의 얼굴이 좋았고, 입김을 후 불며 함께 몇 천원 어치의 붕어빵을 먹곤 했던 기억도 좋았다. 운동장에 쌓인 눈을 보라며 나를 부르던 너의 목소리도 좋았어. 찬 바람이 코 끝을 스치면, 내 코가 빨갛게 되었다며 짓궂게 놀리던 너 마저도 좋았어.
응, 나는 겨울이 좋아.
있지, 너는 모를거야.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계절은 여름이었단거. “ 너가 가장 좋아하던 겨울 “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야. 응, 나는 겨울이 좋아.
너가 좋아하는 팥이 들어간 붕어빵도, 너가 즐겨 마시던 달콤한 핫초코도, 너가 즐겨듣던 그 노래도. 난 모두 좋아.
언젠가 고백할 수 있기를, 너가 좋아하던 모든 걸 함께 좋아했단 사실을. 그리고, 너 또한 내 마음에 새겨두었단 비밀을. 하얀 눈이 내리는 날 고백할 수 있기를.
- 수년 전, 11월 24일의 일기.
- 천유현-If
If - 천유현
ㅡ
애쉬 퍼플색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잘라 투블럭를 연출했다. 6:4의 비율로 갈라진 쉼표머리는 늘 같은 모습을 유지한다. 피부가 매우 하얗다. 그의 말로는 유전이라고 한다. 살짝 감겨있는 눈매 안에는 짙은 검은색의 눈동자가 자리 잡고 있다. 그렇게 짙지 않은, 조금 연한 쌍꺼풀이 있다. 눈과 눈썹 사이가 좁고 눈썹뼈가 나온 서양인 골격.
살짝 감겨 나른한, 그러나 날렵한 그의 퇴폐적인 눈빛과 눈매는 매력 포인트라고. 높은 콧대와 날렵한 콧매. 전형적인 차가운 도시남자. 굉장한 미남형의 얼굴, 하지만 어딘가 독기를 품은 듯 보이는 외관. 보통은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의 웃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다. 키는 184cm로 약간 슬림한 체격에 적당한 잔근육이 보기 싫지 않게 붙어있다.
-천유혜 위키참조
ㅡ
“ 천유현 경위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
그다지 사회적인 남자는 아니었다. 숫기가 없고 과묵해보이는, 한마디로 차가워 보이는 남자였다.조금 퇴폐적인 듯한 눈빛과 너른한 눈매는 그런 그의 이미지를 한껏 돋보이게 만들었다.
독특한 색으로 물들인 머리 또한 늘 깔끔한 모양새를 유지한다. 아마도, 자기 관리에 철저한 남자인거겠지. 183cm라는 큰 키에 약간 마른 체형을 가졌지만, 오랜 운동 덕에 몸에는 보기 좋은 잔근육들이 붙어 그의 체형을 보정해준다.
연한 애쉬 퍼플색 머리칼과 하얗다 못해 흰 눈과 같은 피부는 그를 신비롭게 만들어준다.
그와는 상반되게 깔끔하고 신사적인 옷차림은 또 무엇일까. 그는 패션센스가 꽤 좋은 편에 속해있었다. 니트에 슬랙스를 입거나 하얀 셔츠에 슬랙스를 입는 둥 그는 깔끔한 옷차림을 선호했다. 그 중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옷차림은 네이비, 혹은 블랙 수트를 몸에 딱 맞게 입는 것이었다. 그는 몸에 딱 맞는 수트를 입고 검은 롱코트를 입고 다니는걸 좋아했다. 물론, 그가 속한 부서의 특성상 정장은 좋지 못한 선택이었지만.
ㅡ
윤채경, 그는 이 이름을 그리워했다.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 이름을 찾아 납골당을 찾아가곤 했으니 말이지.
윤채경이란 이름을 가진 여자는 눈동자가 저 아름다운 밤하늘과 같은 어여쁜 여자였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수년 전 스스로 제 목숨을 끊었지만 말이지.
그는 매년 크리스마스ㅡ그녀의 기일ㅡ마다 그녀를 찾아간다. 그의 첫사랑이라서,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짝사랑 상대여서? 글쎄..., 그는 늘 왼쪽 뺨을 긁적이며 ‘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 ‘ 라는 답변을 내놓는다.
ㅡ
“ 초콜렛 좋아하십니까? ...저도 좋아합니다. “
그의 두 뺨이 조금 붉어지는 게 눈에 보인다.아무래도, 제 입으로 초콜렛을 좋아한단 말을 꺼내는 것이 퍽 부끄러히 느껴지기라도 한 모양이지. 뭐 어떠하랴, 건장한 20대 남성이 초콜렛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을.
그의 책상에는 꼭 초코바 한 봉지가 놓여있었다. 바로 아래 서랍에는 크런치 초콜렛이, 그 아래에는 코코아 분말이 있었다.
주머니에는 작은 초콜렛 두세 개가 꼭 들어있어야 안심이 되는 사람.
그래, 천유현 경위는 그런 사람이었다.
- 惡夢
당신을 피해 달아난 하늘은 지독히도 새카만 색이었다.
마치 내가 그 아름답던 하늘을 검은 크레파스로 덮어놓은 것만 같이 새카매서, 차마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병상 생활이 끝난 후,
돌아가신 아버지와 언니의 흔적이 묻어있는 그 아파트에서 당신은 나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
이제 이 세상에는 당신과 나밖에 없노라고, 서로를 의지해 살아가야 한다고. 뜨거운 눈물이 손등을 타고 흐르는 그 감촉에 나는 그제서야 시선을 바닥에 떨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서야 고백한다면, 나는 눈물로 얼룩진 당신의 얼굴을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아버지와 언니의 사망보험금과 얼굴 한 번 맞대지 않고 전해진 위로금은 오롯이 나의 어깨에 쏟아들어갔고, 당신은 그들의 흔적에는 손끝 하나 대지 않은 채 시간이 멈추어 차갑게 식어버린 집안을 다시 가꾸어나가기 시작했다. 시든 화분들을 치우고 새로운 화분을 들였고, 멈춘 시계의 건전지를 갈았다. 먼지 쌓인 소파와 가구들을 털어내고 아직 그 때에 멈추어있는 공기들을 흘려보냈다. 태양이 떠있는 세상은 너무나도 무서울 정도로 평화롭게 흘러가서, 잠깐 내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열여섯살의 겨울 끝자락에 나는 늘 꿈에서 아버지와 언니를 만났다. 온통 새빨갛고 뜨거운 그 곳에서, 나는 비명을 질렀고 아버지와 언니는 내 앞에서 녹아내렸다.
가장 참을 수 없던 것은, -나는 항상 그들을 두고 도망쳤다는 똑같이 반복 되던 결말이었다.
당신은 자애롭고 상냥하던 사람이었고, 나는 당신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그랬기에 나를 괴롭히던 악몽들은 내 머릿속에서 꾸물거리며 내려와 내 입을 나와 버리고 말았다. 아, 그 때 당신에게서 짙게 나던 술냄새를 미리 알아챘더라면.
“ 유혜야, 엄마도 힘들어. 엄마도 힘들단말야. “
“ 그 때 엄마가 말했지, 이제 그만 집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
“ 내가 했던 말만 들었더라면, 너때문에 모두가 죽는 일은 없었을거야. “
아, 당신 스스로 그 입을 틀어막는다. 그리고 또 새빨개진 눈으로 눈물을 흘리고야 만다.
나는 당신을 이해했다. 당신은 그 시련을 감당하기엔 너무도 여린 사람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당신을 과분히도 사랑해 주었고, 나의 언니는 너무나도 착하고 어여뻐서 당신이 아주 사랑했었으니. 당신은 내가 아닌 다른 이가 살아남았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겠지. 나를 그토록 원망하면서 말야. 나는 당신의 눈물을 보고서야 방안으로 돌아갔고, 그 날의 꿈에서는 아버지와 언니가 아닌 나를 증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당신을 보았다.
다음날 아침, 당신은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차갑게 식은 집안에서 평소와 같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설거지를 할 뿐이었고, 식탁에는 내가 혼자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아침밥이 차려져 있었다. 내가 식탁에 앉아 수저를 드는 순간에 당신은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현관을 나서버렸다. 혼자 먹던 밥은 너무도 차가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터트렸다.
한 번 뱉어낸 속마음을 다시 뱉어내는 일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밤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온 당신에게서는 늘 기분 나쁜 술냄새가 났었다. 하루는 막 씻고 나왔던 내게 그 징그러운 어깨를 보이지 말라며 소리를 질렀고, 다음날 아침에는 여전히 차가운 아침밥이 차려져 있었다.
당신은 내가 식사를 채 마치기도 전에 집을 나섰고, 또 기분 나쁜 술냄새를 풍기며 집으로 돌아왔지. 당신이 처음을 내게 손을 대던 날에-
나는 창문 밖으로 비치는 달을 보며, 당신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겨울이 지나고 아직은 차가운 봄이 찾아온 어느 날에, 학교에 갈 준비를 하던 나를 보며 당신은 잘 다녀오라는 말을 건네주었다. 나는 온기 없던 그 말 한마디에 너무도 기뻐서,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집을 나섰다.
아, 당신에게도 봄이 찾아왔구나. 라고, 어리석은 생각을 품고서.
더이상 당신에게서 술냄새가 풍기지 않을 거란 상상은 당신의 손에 시들어 죽어버렸다. 그 날은 이상하게도 내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기도 전에 당신이 집으로 돌아와있었고, 내가 현관문을 열고 발을 들인 순간 당신은 나의 뺨을 내려쳤다. 너무도 놀라 밖으로 도망치려던 나의 머리카락을 잡아끌던 당신의 표정이 너무나도 슬퍼보여서, 나는 겨우 잡았던 현관문의 문고리을 놓고 말았다. 멍청하게도.
당신은 나의 교복을 보며 네 언니가 불쌍하지도 않냐고 목을 놓아 울었다.
차마 신발을 벗지도 못하고 신발장에 주저 앉은 나를 보며 당신 또한 바닥에 주저앉고 내 언니의 이름을 불렀다. 내 딸은 그 불구덩이에서 죽었다고, 그 애도 고등학교 생활에 마음이 부풀어 행복해하고 있었다고. 아직도 내 딸의 방문에는 그 애가 직접 걸어둔 교복이 걸려있다고. 불쌍한 당신 딸의 이름을 몇 번이고 부르며, 그토록 서럽게 울다가 당신은 잠들었다. 나는 당신이 무서워 그 한시간 동안 멍하니 앉아있다가, 또 다시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에 당신은 없었다. 그나마 차려지던 차가운 아침밥도 없었다. 나는 너무도 행복했다. 너무도 행복해서, 이 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랬다.
그 날에서야 생각했다. 그 시련을 감당하기에 당신은 너무도 여린 사람이었다고. 그래, 내가 당신을 이해 해야한다고. 멍청하게도, 나의 아픔은 누가 이해해주는가에 대한 대답은 내놓지 못하였다.
그 때의 나는, 서서히 무너져가는 모래탑을 무시하고 아직 건재한 당신의 모래탑을 걱정하고 있었지.
당신이 더 힘들거라며, 당신의 모래탑이 먼저 무너질 거라며. 파도는 다가오지 않고 있었음에도.
당신은 사흘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당신은 꼬박 이틀을 방에서 지냈다. 그렇게 대략 일주일이 흘러서야 당신은 이전과 같은 모습을 되찾은 듯 했고, 나는 당신이 없던 일상에 녹아든지 오래였다.
그렇게 돌아온 당신의 얼굴을 마주한 날, 마음 속에서 일렁이던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대답하지 못한다. 그 감정의 정체를 알고서도, 마음 속 깊숙한 곳에 파묻고 말았으니.
내가 당신의 폭언과 폭력에 삶을 포기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던 건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였다. 겨울이 다시 찾아오던 날이었고, 공교롭게도 새하얀 함박눈이 내려 마치 오늘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던 날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기분 좋게 집으로 들어갔던 그날에 당신은 거실 TV옆에 장식 되어있던 미니 액자를 내게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액자 유리가 깨져 손등에 작은 상처가 났었고, 바닥에 떨어진 유리파편들은 전등에 반짝였다. 아름다운 보석처럼 반짝이는 파편 사이에 파묻힌 나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며, 파편 중 가장 큰 조각을 들고 손목을 베어버렸던 건 온전한 나의 의지였다.
그 날 달라졌던 건 나였으니 당신은 미안해하지 말라고.
그날 밤 병원을 나와 새카만 하늘 아래서 당신에게 나직히 말했지만, 당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 愛情 - 上
-
천유혜는 올곧은 인간이었다. 비록 어린 나이에 끔찍한 일을 겪고 그 후의 삶도 순탄친 못했지만, 그녀는 올곧은 인간이었다. 저에게 자극적인 비련이 생길 때마다 그녀는 제 자신을 다독이며 언젠가는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나는 행복한 인간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스스로를 다독이고 불분명한 미래를 행복하게 꾸며내는 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미 구렁텅이에 빠져 진흙이 잔뜩 묻어난 제 인생이 너무나도 불쌍해질 거 같아서. 불투명한 미래를 나아가기 싫어질 것 같아서. 무서웠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녀는 좋게라도 성품이 바르고 단정한 이라 칭하기 어려웠다.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언니가 죽은 지 채 일년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집으로 돌아가면 저를 반기는 이는 그 누구도 없었다. 손목을 그으며 난동을 쳤던 날 이후로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손을 대는 일은 없었지만 그녀를 한기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관심을 걷어내버렸다.
그녀는 또다시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전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래, 나는 이런 인생을 살 운명인거야. 이제는 기대도 하지 마. 끝까지 불운하게 살다가 어느순간 비명횡사 하는 인생일테니. 순응하자. 더이상 좋은 미래를 바라지 말자. 17살이 생각하기에는 가히 가긍한 생각이었다.
더이상 행복한 미래와 한줄기 희망 따위는 믿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녀 앞에 나타난 건, 고작 같은 나이의 남학생 하나였다.
*
“ 뭐야? “
앙칼진 목소리가 교실을 가득 메웠다. 사건의 중심에는 역시나 잔뜩 화가난 듯 얼굴을 찡그린 천유혜와, 이름도 모를 남학생 하나가 땀을 뻘뻘이며 서있었다. 그 외인 열댓명의 아이들은 관중에 불과했다. 남학생은 난처한 듯 불안한 미소를 지으며, 제가 쥐고 있던 하얀 종이를 들이밀고는 떠듬떠듬 제 말을 이어갔다.
“ 동아리, 들어오지 않겠냐고... “
퍽 준수한 외모의 남학생이었다. 피부는 나름 하얗고 깨끗했으며 이목구비는 선명했다. 속쌍꺼풀이 있는 약간 올라간 눈매에, 얼굴에는 미소가 끊임이 없었다. 으레 그렇듯 평범한 헤어스타일에 앞머리는 눈썹을 겨우 가릴 정도였기에 퍽 귀엽게 보이기도 했더란다. 키는 대략 178cm 정도로 또래 중에서도 큰 편이었던 그 남학생은 교복을 단정히 입고 친구와 선생님께 예쁨받던 그런 학생이었다. 그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쯧, 혀를 찼다. 이유는 그저 그녀의 잠을 방해했다는 이유였다. 하기야 집안에서는 혹여나 어머니를 경계하던 탓에 잔뜩 긴장을 하여 선잠을 자기 일쑤였으니 학교에서라도 잠을 자두어야 했던 그녀였는데, 자던 잠을 깨우니 신경질이 뻗칠 만도 했더란다. 그녀는 남학생의 손에 들린 종이를 쏘아보더니 그 시선을 거두고 남학생을 째릿, 노려본다.
“ 안 해. 그니까 좀 꺼져. “
그렇게 말하고는 책상 위에 엎어져버리는 그녀였다. 중간중간 그녀의 성질머리에 대해 비판 혹은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딱히 신경이 쓰이진 않더란다. 그저 그들이 들릴 정도로 욕지거리를 뱉어내면 그들의 목소리는 알아서 사라지기 마련이었으니. 그녀는 오늘도 짜증이 한껏 서린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려—
“ 가입 해주면 안될까? 우리 부원이 모자라기도 하고. 선생님이 꼭 하나는 가입하랬거든. 나중에 탈퇴해도 뭐라고 안할게! “
정적이 흘렀다. 보통은 처음 말한 순간 그녀의 성질머리에 화가 나거나 기가 눌려 자리를 피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다시금 사람 좋은 미소로 그녀를 설득하는 남학생이었다. 게다가 그녀를 툭툭 건들며 응? 싸인만 하면 돼! 라며 자꾸만 성가시게 건드려대는 그였다. 그 정성이 통하기라도 한걸까. 먹으로 물들인 듯 새카만 머리카락을 쥐뜯으며, 그녀가 일어났다.
“ 아이씨..., “
별 수 없었다. 선생님이 한 명당 하나의 동아리는 들라고 했다는 걸 보니. 선생님과 트러블이 생긴다는 건 꽤나 귀찮은 일이었으며 교우관계와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그 와중에도 좋은 대학은 가야겠다 싶어 공부 하나는 제대로 잡고 가던 그녀였는데, 그깟 동아리 때문에 제 완벽한 생활기록부를 망치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이 남학생은 저가 싸인을 하기 전까지는 자리를 피하지 않을 거 같더란다. 그렇게 서명칸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싸인을 끝마치며 그녀는 쿵 소리가 나도록 거세게 머리를 박으며 책상 위로 엎어졌다.
“ 고마워! 부활동은 다음 주부터야! 내 이름은 “
“ 야 시끄러워. 서명 했잖아. 니네 반으로 꺼져 좀. “
한껏 억누른 목소리였다.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었다. 그까짓 동아리 안나가면 그만 아냐? 그녀는 정말 끝까지 억누른 목소리를 툭 내뱉어낸다.
“ 알았어, 근데 우리 같은반이야! “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선생님께서는 한 사람당 한 동아리에 들어야 한다고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셨다.
*
“ 유혜야, 너 미술 해본 적 있어? “
“ 있겠냐? “
거참, 까칠한 대답이었다. 그러니까 동아리에는 얼굴도 비치지 않겠다던 그녀가 이 미술부 교실에 오게 된 이유가 무엇이냐면, 또 다시 그 남학생의 끈질긴 권유 때문이었다. 한 번은 출석 해야한다고, 나오지 않는다면 동아리에서 잘리는 건 물론이고 우리 동아리도 사라진다고, 다른 동아리를 알아봐야 하는데 받아주는 곳도 없을 거라며 끈질기게 그녀를 설득해댄 끝에 겨우 이 자리까지 오게 된 일이었다. 당연히도, 그 과정 속에서 심한 욕을 대여섯 번이나 얻어 먹어야했지만.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굳이 타인에게 욕이란 욕을 다 먹어가면서 까지 저를 이 동아리에 끌고 와야 했는지. 그리고 왜 다른 부원들은—
“ 너가 유혜구나? 반가워! “
“ 얘기 많이 들었어. “
“ 아니 너희가 왜 내 얘기를... “
그녀의 시선이 남학생을 향했다. 필히 날카롭고 부정적인 눈빛이었건만 남학생은 그 마저 좋은지 방긋방긋 웃고 있기만 할 뿐이었다. 제 앞에 나란히 앉은 남녀 둘에게로 다시 시선을 옮긴 그녀가 낮고 깊은 한숨을 내쉰다. 동아리 개설의 최소 인원 4명. 그들은 유혜가 있기에 그 조건을 충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도대체 왜 이 낡아빠진 학교에 미술부 하나가 없었던 거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기뻐하는 그들의 얼굴에 차마 그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지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제 짜증 가득 한 감정을 내비치는 대신 제 뒷목을 몇 번이고 문지르며 숨을 고르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녀는 그들의 교복에 달린 녹색 명찰을 읽어냈다. 별 뜻은 없었다. 그저 이름 정도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근거로 그녀는 이미 반 친구들의 이름을 모조리 외워냈다. 차례대로, ‘ 김현우 ‘ 와 ‘ 소 희 ‘. 마지막으로 제 옆에 앉은 남학생의 명찰을 읽으려 고개를 돌리자, 남학생이 방긋 미소를 짓는다.
“ 내 이름은 윤찬경이야. 잘 부탁해, 유혜야! “
그러니까. 이게 윤찬경과의 첫 만남이었다.
- 愛情 - 中
-
언제였을까.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던 너의 사소한 모습들이 내 눈에 들어왔던 건. 너는 고민이 있으면 귓볼을 만지작 거리는 습관이 있었지. 웃을 때는 입가의 보조개가 움푹 들어가곤 했어. 너는 콜라를 좋아했지. 아침에는 늘 이어폰을 끼고 교실로 들어와. 그림을 그릴 때는 늘 근처에 달콤한 사탕들을 한가득 부어놓고말야.
—네 하루가, 네 모든게. 언제부터 나의 일부가 되었던걸까?
*
매미의 울음소리도 점차 멎어가는 늦여름이었다. 푸르른 나뭇잎들이 옷을 바꾸어 입을 준비를 하고 어둠이 하늘을 색칠하고 나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도 했던, 그러면서도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생각나는 늦여름. 봄처럼 달콤한 계절도 아닌, 겨울처럼 새하얀 계절도 아닌. 마치 너를 닮은 계절.
“ 천유혜, 너는 왜 방학동안 연락이 안된거야? 걱정했잖아. “
얇은 커텐이 바람에 팔랑이며 파도가 치듯 일렁였다. 창 밖으로는 뒤섞인 소음들이 간간히 들려왔고 그 뒤로 불어온 미지근한 바람은 교실의 끝에 채 닿기도 전에 네 목소리에 짓눌려 바닥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나는 느릿히 책가방을 챙기던 손을 멈추고 바람의 손 끝이 내게 닿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본다.
“ 그냥..., 집안 사정. “
창문 밖에서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힐긋 시선을 던진 창 밖은 마치 주황색 물감을 흐트러놓은 듯 아름다운 노을이 저물고 있었다. 온통 주황빛의 하늘은 마치 내가 꿈을 꾸는 것같은 착각을 하게끔 아름다워서, 쉽사리 시선을 떼기가 어려웠다. 지금 이 순간도 꿈이라면 좋을텐데. 아쉬운 시선을 다시 돌리며 책가방을 메고, 너에게는 말할 수 없을 사정을 씹어삼키며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 미안. “
“ 뭐, 멀쩡하니까 괜찮아. 집 같이 가자. “
평소와 다를 게 없던 네 목소리인데 오늘따라 왜이리 네 목소리가 내 마음 깊게 다가온건지, 나는 느릿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목소리가 너무도 가깝게 다가와서 내 마음 한 켠을 간질여. 먼저 발걸음을 떼낸 네 뒤를 쫓으며 나는 내뱉을 수 없을 한마디를 꿀꺽 삼켜냈다.
아이들이 떠난 학교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웃음소리와 조잡한 소음들이 사그라진 학교는 그 나름대로의 운치가 있었지만 나는 이 고요한 학교가 싫었다. 그덕에 나는 이상하리만치 크게도 울려대는 심장 소리가 혹여나 너에게 닿을까 걱정을 해야만했으니. 혹여나 꽃이 한가득 피어오른 마음을 들켜버릴까, 구태여 네 뒤를 밟겠다며 발걸음을 늦추어 올려다본 네 뒷모습에 그리 가슴이 뛸 수가 없었다. 새카만 머리카락과, 나와 같은 교복. 그 하나로도 이리 가슴이 뛸 수 있다니 너는 참 대단한 아이었다. 계단을 한 칸 내려갈 때마다 심장이 주저앉을 듯 요동치는 바람에 나는 일부러 시선을 돌려버리고 말았지.
“ 방학동안 철이라도 든건가, 애가 달라졌네. “
그저 친구에게 던지는 시덥잖은 농담이었다. 그런데 왜 그 한마디가 그리도 기분이 좋았던걸지. 또다시 요란스레 요동치는 심장 소리가 들릴까 걱정했건만 늘어지는 매미 울음소리가 다행히도 눈치 없는 심장 소리를 덮어냈다.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바람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 이따금 들려오는 자동차들의 소음. 미적지근한 바람과 서서히 어두워져가는 하늘. 그 가운데에는 네가 있었다.
“ 그런가. “
그러고보면 나는 참으로 바보 같았다. 짧디 짧은 단어로 막을 내린 내 대답에 너는 어떤 생각을 품었을까. 하지만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는걸. 아까와는 달리 마음 속이 샤프로 찔리듯 콕콕 쑤셔오는 느낌에 나는 편히 웃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물쭈물 네 뒷모습만 쳐다보며 한참동안 한숨을 쉬어내야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너와 나의 눈높이가 달라진 건. 너를 보는 나의 눈높이가 달라진 건. 크레파스로 뭉뚱그린 그림과도 같던 네가 언제 이리 정교하고 세밀한 작품이 되어 있었을까. 나는 언제부터 네 얼굴의 보조개를 보고, 네가 자주 하는 말버릇을 알아채고, 네가 하는 말들을 기억하려 안달이었을까. 문득 궁긍해졌다. 그 시작은 어디였을까.
“ 너 여기서 버스타고 가지? 기다려줄게. “
네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학교 앞 정류장이었다. 네 생각과 목소리에 잠겨 눈을 감았더니 앞도 보질 못하였구나. 이리도 너에게 흠뻑 잠겨들었으니 어찌하면 좋을까. 나는 얼굴을 만지작 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나는 너의 그런 점이 좋았지만 너의 그런 점이 불만이었다. 감히 원하건데 나에게만 그런 웃음을 지어주라는 이기적인 소원을 바람에 흘러보내며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내가 타야할 버스의 타이어가 펑크라도 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다가오는 버스들을 보며 제일 먼저 숫자를 읽어내고, 숨을 내쉬고. 겨우 몇 센치가 될까 싶은 너와의 거리에 숨을 졸이고. 매미가 조금만 더 크게 울어주기를 바랬다.
“ 나, 갈게. “
“ 어? 그래. 내일 봐. “
네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차마 붉어진 얼굴을 네게 보이지 못하고 쫓기듯 버스에 탈 뿐이었다. 자리에 앉자 버스 정류장에서 나를 보고 있는 네가 창 밖으로 비추었다. 열심히도 손을 흔드는 너였다. 버스가 출발하고, 너의 모습이 사라진다. 나는 그제서야 새카만 책가방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네가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딘다 공허했고 동시에 파도가 일었다. 물밀듯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에 잠시 사고회로의 전원이 과열 되어 픽 꺼져버린 느낌이었다. 푹 숙인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자 약간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부드러운 바람과 구름 너머로 날려보낸 소원이 내게로 돌아와 살랑살랑 살결에 닿는 느낌에 다시금 얼굴이 달아올랐다.
십 몇분을 달려 내가 내린 정거장은 우리를 지나간 다섯 대의 버스들이 서있었다.
내 사랑에 빠져 숨을 멈추면
/새벽 세 시
- IF - 당신과 나의 이별
평소에는 울릴 일이 없던 휴대전화에 낯선 전화번호가 내비친 그 순간에, 차라리 그 불행을 직감하고 현실로부터 도피했다면 어땠을까. 그 전화를 받지 말고 은연 중에 느낀 불행에게서 도망쳤다면 어땠을까. 그녀가 느릿히 제 눈을 감았다. 후회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에, 그녀는 말 없이 숨을 삼킬 뿐이었다.
*
“ 전혜정 씨 따님 되십니까? “
그 이름을 들은 것이 너무도 오랜만이라 하마터면 ‘그 사람이 누구인데요?‘ 라는 바보 같은질문을 던질 뻔 했더란다. 다만 그 이름의 주인이 누구인지 기억하는 일은 수 초도 걸리지 않아, 그녀는 가라앉아 축축해진 목소리로 긍정의 대답을 내놓을 수 밖엔 없었다. 그 낯선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예사롭지는 않았기에, 그녀는 열심히 두드리던 컴퓨터 자판에게서 손가락을 떼내고야 말았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11시 29분의 축축한 공기와, 그 남자가 들인 무거운 공백과, 그리도 따사롭던 햇살과 푸르던 하늘을 그녀가 어찌 잊을 수 있었을까.
“ 사망하셨습니다. “
순간 심장이 덜컥이며 제 기능을 멈춘 것만 같았다. 머리는 멍해졌으며 귓가에는 알 수 없을 소음이 떠돌아 그녀의 정신을 헤집어놓았고, 도저히 생각이라는 걸 이어갈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보호자, 어려움, 전달, 사고. 단어들이 어지럽게 머릿 속을 떠다녔지만 그녀는 그 어떠한 말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져 휴대전화를 쥔 손을 제 귓가에서 튕기듯 떼내어 통화 종료 버튼을 몇 번이나 반복적으로 눌러댄 뒤에야,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울컥 치미는 눈물을 떨구는 수 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겪은 죽음은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
지병을 앓고 있긴 했지만 건강한 사람이었다. 이제 겨우 50대 후반이 된 여자였으며 당신이 앓고 있던 지병이라 해보았자 그다지 큰 병도 아니었다. 그랬기에 솔직하게 말해서, 저보다 오래 살지도 모를 여자라 생각했다. 그런데, 당신은 왜 허무하게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건가. 구토감이 몰려와 그녀가 제 입을 틀어막았다. 제 위에 집어넣은 음식물도 없었지만 제 몸을 끊임 없이 역류하는 저것이 무엇일지 의문이 피어오르더라. 바닥에 다리를 굽혀 주저앉아 입을 틀어막았지만 그 시리게도 아플 감정은 그대로 그녀의 몸 밖으로 흘러내리고야 말았다.
*
“ 병원으로 호송 되시는 사이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저희가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
신고가 늦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살 수도 있었지만 당신은 죽었다고 했다. 누군가가 당신을 발견해 조금만 더 빠르게 신고를 해주었다면 지금쯤 당신은 멀쩡히 살아있을 수도 있을 일이었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수사를 요청하겠냐고 물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그녀 자신이 경찰이었는데, 자신의 직업이 경찰이었는데. 우습게도 제 가족을 죽인 이는 찾지를 못하고 있었으니. 당신의 시신은 영안실에 있다고, 제 앞의 남자는 수 없이 반복되어 결국에 무뎌진 그 목소리로 말을 마쳤다.
차를 타고 거의 한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한 병원에서. 그녀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머리를 감싸고, 울음을 토하고, 결국에 엄마라는 단어를 수 없이 불렀다. 당신을 없는 존재로 치고 살겠다 다짐한 저였는데 왜 정작 당신이 제 곁을 떠나자 그리도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온건지 그녀 스스로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이제 진짜로, 당신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마냥 그저 울음부터 터져나오더라. 그렇게 미워하던 당신인데도 막상 그 소식을 접하니 머리가 멍해지더라. 그녀는 처음부터 증오로 옭아진 관계라 생각했는데, 우습게도 당신을 잃고 나니 그 어떠한 말도 나오질 않더라. 그저 막힌 목을 손으로 조이며 어떠한 단어라도 내뱉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에 흐르는 건 사람의 것이 아닌 울음이더라.
*
마지막으로 갔던 게 아마도 작년 1월 즈음이었던가. 흐릿한 기억을 헤집어 도착한 당신의 집은 너무도 차가웠다. 무거운 철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자신을 엄습해온 썰렁한 공기는 정말 이것이 평범한 가정집의 공기가 맞는 것일지 의심스러웠고, 모든 걸 포기한 눈망울로 둘러본 당신의 집안은 정말 최소한의 것들로 차들어 간결하고도 단조로웠다. 그나마 집안에 생기를 북돋아주는 것이라곤 당신이 아끼던 화분 두어개였으니. 생명이 마르는 회색빛의 집안을 몇 번이나 서성이며 그녀는 당신의 온기를 찾으려 안간힘을 쏟아내었다. 거실 하나에 방과 화장실이 하나씩 딸린 작은 아파트에서 살아온 당신의 흔적들을 되짚어보니 그녀의 얼굴에 헛웃음이 절로 떠올랐다. 잘 정돈 된 이불들과 기타 식기들, 거의 텅 비어버린 냉장고와 식탁. 그 사이에서, 그녀는 당신이 왜 우리 가족의 가족사진이 끼워진 액자를 그리 소중히도 보관해놓은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아, 그 액자를 부여잡고 바닥에 주저 앉아 버렸다.
당신이 깨부숴버린 행복을 왜 당신이 그리워하고 있는건지,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어 반쯤 열린 창문틈으로 살랑이는 봄바람에 얼굴을 파묻어 액자를 품에 안고 한참이나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그녀였다.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당신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었다. 하지만 당신은 내 곁에 없었으니 이제는 당신을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할 수가 없겠구나. 그녀는 지나온 과거를 저주했다. 자신을 저주했고 당신을 저주했다. 끝까지 자신의 인생을 바닥으로 구겨버린 당신을 원망하며, 하늘에게 빌었다. 모든 업보는 제가 질테니, 당신을 한 번만 만나게 해줄 수는 없겠느냐고.
당연히도, 신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거실 한 가운데 전시된 액자에는 딱딱히 굳은 채로 꽃다발을 안고 있는 경찰대학교 졸업 때의 자신과, 그 옆에서 조금 떨어진 채 역시나 굳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 당신이 있었다. 당신은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과거의 당신을 저주했을까, 후회했을까. 조금이라도 용기를 내보려했을까, 지나온 과거를 쉬쉬하며 묻으려 했을까. 이제는 알 수 없을 일이었다.
다음생에 당신이 태어난다면, 그녀는 당신이 자신의 딸로 태어나주길 바랬다. 나는 적어도 당신보다는 좋은 엄마가 될테니, 내게도 당신에게도 다음생이 있다면 당신은 나의 딸로 태어나주길 바라.
5.1. 이벤트 독백 ¶
- 愉暳
제 나이가 벌써 스물 여섯입니다. 정상적인 여인이라면 혼례를 치룬지 오래여야하며, 과부가 되어있대도 이상할 것이 없지요. 그런데 왜 아직까지 이 기방에 눌러앉아 하하호호 웃음이나 파시냐 물으신겝니까? 비싼 이야기는 아니니, 제 나리에게만 특별히 들려드리지요. 술이 잘 넘어가는 이야기는 아닐겝니다.
제 나이 열여섯에 아버지와 언니를 화마에 잃어 힘들게도 살아왔습니다. 글쎄, 제 어미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잡것들이 보인다지 뭡니까? 하기야, 그 나이에 갑작스레 과부가 되어 양반집 마님이 아닌 신분으로 살아가야한다니 정신이 온전치 못 할만 하지요. 한양 근처에서 주막을 한다던가요? 절연한지 오래입니다. 제 어미가 저를 이 기방에 팔아 넘겼기에 말이지요.
제가 불쌍해 뵈이십니까. 저는 불쌍하지 않습니다. 어미의 마지막 정으로 그나마 몸을 파는 처지는 아니게 되었으며 아마 저를 팔고 받은 값이 꽤 될겝니다. 그러니 불쌍한 처지는 아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나리께는 아마 이 나이가 되도록 정인 하나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제가 우습기도 하시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사랑이나 희망같은 이야기를 믿기에는 너무 커버리고 말았지 뭡니까. 한때는 사랑과 희망이 있을거라 믿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데, 그 믿음이 무엇으로 돌아오는 지 아십니까? 믿음은 결국에 실망으로 돌아오는 법입니다. 믿음이 크면 실망도 크고, 제 마음도 더 아파오는 법인데. 제가 바보도 아니고 왜 희망을 믿어야 합니까.
왜 그런 표정을 지으십니까, 나리. 분명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술이 잘 들어가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고. 이런 우중충한 이야기를 한 댓가로 제가 한 곡조를 불러드리지요. 나리가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 물으셨습니까? 아닙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가 없으니, 제가 댓가를 치루어서라도 제 이야기를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나리께도 정당한 값을 드리는 것이니 개의치 마십시오.
*
기생의 이름은 유혜였다. 기쁠 愉, 별 반짝일 暳를 사용하여 그 이름이 유혜라 하더라. 이상한 계집이 아닐 수 없었다. 본디 기생질을 하게 될 계집이라면 기명을 붙여 기생질을 시작하건만, 그 계집은 제 기방의 행수에게 흠씬 두들겨 맞으면서도 제 이름을 고집했다하니. 결국에는 그 기방의 행수가 유별난 기집이라 욕질을 퍼붓고는 제 이름을 쓰도록 허락했다 하더란다. 그 소문이 돌고부터, 그 기방의 행수 또한 여간 사나분 여인이 아니었음에도 그 계집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하니 어떠한 계집인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기방에 죽 늘어져 줄을 서곤 했다. 몸을 파는 관노들과는 달라 그 계집이 부르는 곡조와 다루는 가락에만 술잔을 기울여야 했음에도 그 계집을 찾는 이들이 손과 발을 몽땅 써도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전해진다만, 그래보았자 제 어미에게 버림받아 기생질이나 하는 여인이니 그 팔자가 사납기 그지없더라. 하기야 제대로 된 팔자를 타고난 여인이라면 지금쯤 적당한 나이에 혼례를 올려 새끼를 낳아 오손도손 잘 살고 있을터이니, 불쌍한 계집이기는 했다. 삶의 대부분을 기방에 눌러앉아 빛도 제대로 보지 않고 가락을 연주하며 곡조를 뽑아내야하니, 그 얼마나 불쌍하던가. 아, 혹시 또 모르는 일이었다. 달밤에 홀로 기방을 나와 달놀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만일 운이 좋으면 그 잘난 기집의 얼굴을 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먹으로 물들인 듯 새카만 머리칼에 얼굴은 백옥마냥 하얗다하니 그 성문이 참말이라면 가히 발군의 미인이 아닐 수 없다더라. 그런 미인이라면 기생이라도 좋으니 저와 여생을 함께 하자며 달려들 남정네가 한둘은 있을지언정 그 계집의 곁에는 그 어떤 남정네도 지나치질 않았다. 숨겨둔 정인이 있는 것이 아니더냐는 소문이 흐르기도 했지만 그 기방의 행수가 그럴 일은 없다고 단박에 못을 박았으니 그 소문은 결국에 사그라 들고말았더라. 그럼에도 이따금 그 여인에게 청혼을 하러 들르는 남정네들이 있다고 하니 참 대단한 계집이 아닐 수 없었다.
*
" 오늘도 임께서는 저를 들리지 않으시는가 봅니다. "
달빛이 시리도록 푸른 밤이었다. 그리도 달고 부드러운 달빛이 오늘따라 저에게 매정하고 차가운 걸 뵈니 제 옆에 임이 계시질 않아 달빛도 이리도 제게 매정한건가 싶더란다. 매일 저를 뵈러오는 임께서 오늘은 제 곁을 지키지 않으시니, 혹여나 오시다가 변이라도 당하셨을까. 위험한 일이 생기셨을까 온갖 걱정이 사무치는 와중에도 혹여나 임에게 여인네가 생기신걸까 의문이 드는 걸 보면 저도 영락없는 젊은 여인이었다. 기방에서 하루를 시작하여 기방에서 하루를 끝내어 그 값이 비싸 저도 사질 못하는 웃음을 팔고 목소리가 아름답다하여 곡조를 불러내며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악기를 연주하면 또 임이 없는 밤이더라. 제 아무리 치장을 하고 분을 묻혀도 정작 임은 그녀의 곁에 오시지를 않으니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이던가. 마지막 손님을 내보내고 처소에 들기 위해 준비를 하다 무심코 바라본 그 달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녀는 그만 낙루하고 말았다. 아, 참으로 비참한 인생이로다. 웃음을 팔고 기쁨을 팔거든 저에게 되돌아오는 건 끝없는 그리움과 사무침뿐이었으니 임을 기다리는 하루가 천 년과도 같아 이 몸이 다 닳고 부스러져야 임이 찾아오실 것만 같았다. 시하얀 소복을 거두고 잠시만 달놀이를 하고자 마루로 종종걸음을 해내니 처마에 가려졌던 그 달빛이 그리도 쏟아지더라.
" 하늘도 너무 하시오. 어찌하여 내 팔자를 이리도 짓이겨놓으셨소. "
듣는 이가 없는 한탄은 결국에 제게로 돌아오는 법이렷다. 제 몸을 한껏 웅크리고 그 달빛을 보기 위해 목을 내밀자 달이 구름에 가려지더라. 아, 달님께서도 이 몸이 싫으신가 봅니다. 씁쓸한 미소가 그 얼굴에 퍼져나가고야 말았다. 먹으로 물들인듯 새카만 머리칼이 밤바람에 휘날리자 그제야 오한이 섬찟 드는겐지 그미가 제 몸을 저 스스로 꽉 껴안아냈다. 외로움을 떨쳐내고자 거세게 제 몸을 얼싸안았건만 돌아오는 건 서글픈 달빛의 노랫자락이 전부였다.
5.2. 스토리 독백 ¶
- 화이트데이 - 1008
- 나는 네가 언제나 냉정하고 무뚝뚝하다 생각했었지. 어쩌면 그런 네 점이 좋았던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어. 그냥 너를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뛰어오르는데, 그 이유를 정확히 짚어낼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저 그런 적절한 이유를 하나 찾아냈었지.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때의 내가 너에게 빠진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었더라. 그저 너 자체로도 사랑에 빠질 이유는 충분했었어.
초콜릿맛 둥그런 사탕이 입안을 한 번 빙글 굴렀다. 이걸 직접 만들었다니, 그가 직접 만들어준 막대사탕을 두어번 더 입안에서 굴려내며 그녀가 제 책상 위에 올려진 사탕 다발을 제 검지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려냈다. 살짝 눈동자를 내려보니 제 눈에 들어오는 사탕이 9개. 어째 하나를 먹은 게 아까우면서도 차마 맛을 보지 않고 못버티겠던 그녀였다. 아까워서 어떻게 먹지. 마치 꽃다발이 연상되듯 참으로 소중히도 묶인 그 사탕들을 보며, 그녀는 제 얼굴에 어여쁜 꽃송이를 피워내고야 말았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언젠가 꽃다발을 받는 것이 로망이었다 말했었지. 마치 장미꽃마냥 비틀어 접혀진 사탕 포장지를 물그럼 바라보며 그녀가 느릿히 두 손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너무도 행복한 미소가 혹여나 밖으로 새어나갈까. 네가 접어낸 장미꽃마냥 붉어진 얼굴이 혹여나 들켜버릴까. 속으로 홀로만 바라보고 싶은 장미꽃이었기에,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포장지와 사탕 사이에 끼워진 쪽지를 빼내자 제 이름이 그녀의 두 눈에 들어왔다. 벌써부터 이리도 마음이 설레이니 차마 그 내용을 읽을 수가 없을 것같으면서도, 네가 내게 어떠한 말을 남겼을까 궁금해하는 그녀였다. 마음 속으로 수 많은 단어들을 떠올리며, 쪽지를 펴냄과 동시에 그녀가 저를 향해 미소 짓는 그의 얼굴을 천천히 그려냈다.
정말, 너는 어쩜 이리도 사랑스러운지. 한자한자 적어내려갔을 그를 생각하니 그리도 환한 미소가 지어지는 그녀였다.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저 글씨를 보는 것만으로도 네가 생각났으며 마음이 두근거리고 생명을 불어넣은 꽃마냥 생기가 돌았다. 그와 관련된 그 어떤 것이던, 그것들이 전부 그녀의 마음에 찬란한 생명을 불어넣었다. 마치 그녀의 마음에 봄을 피워 내려는 듯, 그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피어올랐다. 그래, 벌써 10년이었구나. 그 긴 시간을 너와 함께 보냈다니 새삼 놀랍고도 고마운 그녀였다. 그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준 것이 너여서, 그녀의 옆에 있어준 것이 너라서. 그녀는 너무도 행복해 그만 꽁꽁 숨겨두던 속마음을 비쳐내버렸다.“ 정말, 그 무엇보다도 너를 사랑해. “
달리 표현 할 단어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가장 상투적이고 흔한 표현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마음을 표현 할 말이 없으니, 이 마음을 어찌 보여줄까. 그렇게도 소중한 너였으니 사실 가장 아름답고 가장 찬란한 말을 들려주고 싶었다. 그녀가 마지막에 쓰여진 1008이란 글자를 제 손가락으로 짚었다. 마음 속 가장 깊은 상자에 보관하고 싶은, 그렇게도 욕심이 나는 글자였다. 정말로, 사랑해.
-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 달빛이 어깨에 쌓이고 어둠이 눈을 가리는 밤, 공허함과 외로움이 그녀를 쓸어덮치고 회의와 절망에 허덕이며 제 발목을 잡아끄는 늪에서 발버둥을 치는 밤, 그렇게 그녀의 기억 한 부분이 처참히 깨져버린 밤이었다.
느릿히 눈꺼풀을 꿈뻑이니 희끄무레한 달빛이 눈시야를 밝혀냈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본 숫자가 6이었고 지금 휴대전화 액정에 비추어지는 숫자가 3이었는데. 모르겠다. 그 얼마나 깊은 잠에 빠졌던걸지 그녀는 딱히 알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새하얀 빛을 내비추는 휴대전화를 침대 모퉁이로 던져내며 오른손으로 느릿히 제 눈가를 문질렀다. 갑자기 제 눈에 빛이 들어와서일지 저도 모르게 인상을 푹 찡그리니 눈이 아프고 시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눈가를 문질렀을까. 제 볼에 붙여두었던 넙적한 밴드가 툭 하고는 제 손가락을 건들였다. 아, 그제야 제가 왜 이리도 우울하고도 아팠던건지 생각이 나는 그녀였다.
서장님의 얼굴이 제 머릿 속을 한 번 스쳐 지나갔다. 서장님. 왜 그러셨어요? 목적지를 잃은 질문은 허공을 방황하다 가라앉아 저 끝 없는 바다의 밑바닥으로 떨어질 뿐이었다. 느릿히 제 눈가에서 손바닥을 치워내자 살짝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다시금 희끄무레한 달빛이 쏟아졌다. 달빛을 보기 싫은 밤이었다.
당신은, 내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나의 아픔을 공감해주지 말아야 했고 나를 도와주지 말아야했다.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 일말의 정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했고 그 날, 당신은 나에게 그 말들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당신을 존경했다. 비단 당신이 서장님이라는 직위를 갖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신은 내가 힘들고 혼란스러울 때 그 아픔을 이해해줬고, 내가 잘못 된 길에 들어서지 않도록 나를 붙잡아줬다. 나에게 당신은 의지가 되고 믿을 수 있었으며 경찰이라는 꿈을 더 다양한 색으로 채워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 사람이었다. 그랬던 사람이었다. 당신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머리가 아파왔고 혈관이 수축하듯 눈 앞이 아찔거렸다. 몸을 두어번 뒤척인 뒤에야 그녀는 한쪽 얼굴을 침대에 파묻은 채로 제 눈을 떠낼 수 있었다. 당신은 우리가 우스웠을까. 정의를 위한다는 어줍잖은 말들을 내뱉는 우리가 얼마나 우스웠을까. 한 때 당신을 믿고 존경했던 우리가 얼마나 우스웠을까. 그녀가 몸을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더이상 달빛은 쏟아지지 않았다.
6.2. voice sample ¶
-すきなうた - yui × 鎖那
Movie しめのソラ @sora_unk
Mix 流歌 @nagareuta
Vocal 鎖那 @sanapri
https://youtu.be/cRIBCezbUhA
Movie しめのソラ @sora_unk
Mix 流歌 @nagareuta
Vocal 鎖那 @sanapri
https://youtu.be/cRIBCezbUhA
이런 느낌의 보이스라고 생각해주시면 됩니당.
문제 되면 알려주길 바람. (무서움)
문제 되면 알려주길 바람. (무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