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 자, 명문 유클리드 마법학교에 어서 오세요 Plus!
뭔가 필요해요?
백 | |
picrew ぼんやり男の子メーカーとぺこ | |
성별 | 남 |
나이 | 18 |
속성 | 무 |
학과 | 지원과 |
생일 | 08월 20일 |
키/몸무게 | 174 cm / 54 kg |
부활동 | - |
성적지향 | ALL |
1. 외형 ¶
자, 명문 유클리드 마법학교에 어서 오세요 Plus! 시트 스레 >>98
(이미지 참고)
▶ 전체적으로 아주 옅고 서글한 인상.
▶ 아주 얇은 테의 까만 안경을 끼고 있다.
▶ 안경 때문에 보이진 않지만 왼쪽 눈밑의 작은 점이 있다.
▶ 키는 174cm 몸무게는 54kg
(이미지 참고)
▶ 전체적으로 아주 옅고 서글한 인상.
▶ 아주 얇은 테의 까만 안경을 끼고 있다.
▶ 안경 때문에 보이진 않지만 왼쪽 눈밑의 작은 점이 있다.
▶ 키는 174cm 몸무게는 54kg
2. 성격 ¶
인상만큼 서글서글하다. 웃는 인상이다. 우는 모습은 잘 볼 수 없다. 왠지 뭔가 감추고 있는게 많은 느낌. 곤란한 질문을 할땐 애매모호한 대답으로 넘어가기 일쑤이다.
3. 각성마법 ¶
비상한 아이큐, 지식을 바탕으로 타인을 강화시키거나 괴물을 약화시킬 물약을 제조한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물약을 제조할 경우, 만든 물약에 비례하여 최소 10분~ 하루 이상~ 혹은 그 이상 깊은 잠에 빠진다. 옆에서 어떤 짓을 하든, 그를 건들든 죽은듯이 잔다.
4. 기타 ¶
▶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의사 가운 같은 것을 항상 입고 있다. 이름도 새겨져 있다.
▶ 얇은 테의 까만 안경은 항상 코끝에서 흘러내릴듯 걸쳐져 있다.
▶ 시력이 매우 좋지 않다. 원시, 근시, 난시가 무척 심하다.
▶ 체력이 매우 좋지 않다. 대신 머리가 아주 비상하다. 모든 지식이 그의 머릿속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수학, 과학 쪽에 특화되어있다.
▶ 후배, 동급생, 선배, 선생님.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사용한다.
▶ 잠이 무척 많다. 누구든 그를 본다면 대부분 졸거나 자는 모습이다. 어디에서나, 아무대서나 잔다.
▶ 목떡 https://youtu.be/xFVarolUqJU
▶ 얇은 테의 까만 안경은 항상 코끝에서 흘러내릴듯 걸쳐져 있다.
▶ 시력이 매우 좋지 않다. 원시, 근시, 난시가 무척 심하다.
▶ 체력이 매우 좋지 않다. 대신 머리가 아주 비상하다. 모든 지식이 그의 머릿속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수학, 과학 쪽에 특화되어있다.
▶ 후배, 동급생, 선배, 선생님.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사용한다.
▶ 잠이 무척 많다. 누구든 그를 본다면 대부분 졸거나 자는 모습이다. 어디에서나, 아무대서나 잔다.
▶ 목떡 https://youtu.be/xFVarolUqJU
▶ 갓난아기일때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발견되었다.
▶ 고아원 출신으로 핍박받고 자랐다.
▶ 성도 이름도 없이 그냥 '백' 이다. 고아원 원장의 성을 따왔다.
▶ 고아원 출신으로 핍박받고 자랐다.
▶ 성도 이름도 없이 그냥 '백' 이다. 고아원 원장의 성을 따왔다.
TMI
▶ 평소 백의 이미지 : 얼굴 주변 꽃만발+항상 눈을 반쯤 접고 생글생글 상냥한 미소+올라간 입꼬리+조금 나른
▶ 각성마법 후 이미지 : 전부 비슷하지만+나른함 극대화+슬리퍼 질질 끌고 다님
▶ 평소 백의 이미지 : 얼굴 주변 꽃만발+항상 눈을 반쯤 접고 생글생글 상냥한 미소+올라간 입꼬리+조금 나른
▶ 각성마법 후 이미지 : 전부 비슷하지만+나른함 극대화+슬리퍼 질질 끌고 다님
5. 선관 ¶
▶ 라비 : 어휴.. 저 선배 또 다쳐서 왔네.(과다한 물약제조로 쓰러짐)(쓰러진 백의 얼굴에 낙서를 하는 라비)(대 라비용 공격/방어용 클래식 음악 준비)(너무 자주 다쳐서 오면 클래식 음악으로 심술부린다) ...저 선배 어딘가 문제가 있는거 아닐까?(자주 봤음에도 처음본것처럼 대하는 라비에게)
7.1. 일상에서 ¶
- 나승연
- 백은 오늘 왠지 깨어있었다. 왠지. 정말로 오랜만에 깨어있는 모습이었다. 온 얼굴엔 잠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어서 꼭 죽기 직전인 모습 같았지만 어쨌든.
백은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학생 중 누군가 부탁한 대 괴물용 이동속도 하락 물약을 두손에 꼭 쥔채였다.
꼭 쥔채라고 해도 누군가 부딪히면 와장창하고 떨어트려서 깨질것 같았지만.
"...어라. 여기 어디..."
그리고 멍청하게 정신을 놓고 걷다가 어느새 교문가까이 도착했다. 그 몸으로 언제 이렇게 온건지.
"저기..."
흘러내리는 안경을 천천히 올리며 앞에 있는 사람에게 여기가 어딥니까? 하고 묻기도 전에 종잇장마냥 풀썩 쓰러졌다.
물약을 만들고 난 여파로 잠이 쏟아진 모양이었다.
다행히 만든 물약은 깨지지 않았다.
✲
잠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그러니까... 마치 괴물처럼 순식간에 하나의 사람을 잠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
일단 잠의 세계로 끌려가긴 했으나 백도 나름대로 장신을 차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쓰러지면 앞에 있던 사람이 얼마나 놀라겠는가!
"...ㅈ...ㅈ..ㄱ..."
백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무슨 말인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끄응. 하고 심호흡을 하더니 자기힘으로 일어나려고 노력하고 있긴 했지만.
시간이 흐른뒤에야 정신을 차린듯 몸을 일으켰다. 온 몸이 흙무더기였다.
"죄송합니다..."
일단 놀랐을 승연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물약이 깨졌는지 확인했다. 만약 깨졌으면 또 이 짓을 반복해야할지도 몰랐고.
"졸려..."
백은 흘러내리는 안경을 계속 올리면서 제자리에서 휘청거렸다.
✲
"...힘을.. 써서... 반동으로... 졸려서..."
백은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금방이라도 끊어질것 같아 위태로워보였다. 손에 쥔 물약을 흐느적흐느적 흔들어 보였다.
눈이 반쯤 감긴채로 흘러내린 안경을 끼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뭐하는 사람인가 싶었다. 거기다 흙먼지로 뒤덮여 꾀죄죄한 몰골이 더 그랬다.
"아... 이거.. 전해줘야... 그래서 기숙사로 못돌아갔어요..."
왠지 계속 사과해야할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백은 흙먼지로 뒤덮인 소매로 눈을 비비더니 앞에 있는 승연의 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아. 리더... 왠지 색다른 모습.... 이네요..."
백은 잠이 쏟아질것 같은 말투로 말하면서도 헤실헤실 미소를 지었다.
✲
"당장 받길 원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백은 천천히 생각했다. 누구였더라? 백의 머리가 살짜쿵 기울여졌다. 기억 안나네. 백은 그저 헤실헤실 웃어댔다.
승연이 비닐봉지를 뒤적거리자 궁금한듯 물었다.
"뭐예요 그건? 리더 혼자 먹을거예요?"
백은 스스럼 없이 물었다. 다분히 장난기가 넘쳐나는 말이었긴 했지만.
그리고 빠르게 눈을 맞춰오는 승연을 그저 웃는낯으로 바라보았다. 1초, 2초, 3초, 4초, 5초. 정확히 5초만에 승연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달리 더욱 낮아졌다. 쿨한... 모습이겠지.
"언제나보다 조금 더 멋있는 모습이셔서요."
백은 여전한 장난기가 넘치는 말투로 말하고선 어깨를 으쓱했다.
"그랬던가요? 하지만 평소의 모습을 생각해본다면... 이런느낌일텐데."
백은 평소의 승연의 모습을 생각해보았다가 누군가 앞에서 쓰러졌을때의 대처― 쿨한 승연편― 을 보여주었다.
잠깐 앞에 섰다가, 바로 휴대폰을 들고 119로 전화하는 척했다.
✲
"아. 내일... 아! 내일 이었어요?"
백은 까먹은 모양이었다. 하루종일 잠만 자니 시간개념이 사라진 모양이었다. 엉거주춤 서선 정말 시계 대용으로만 사용하는 휴대폰으로 날짜와 요일을 확인했다. 약 만들어달라는 999+을 돌파하는 메시지는 무시하기로 했다.
"냉혈한 인건가요? 쿨하지 않았나..."
백은 진지하게 생각했다. 어쨌든 승연이와 장난친 덕분에 정신이 조금 멀쩡해진 기분이었다. 기분만은 그랬다.
백은 승연의 헛기침 소리에 묘한 웃음을 내비쳤다.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운동장에 있을거라고 하긴 했거든요. 그대로 나오다가 지나쳤을수도 있겠지만."
이미 멀리 나와버린 탓에 뒤를 조금 돌아보았다. 멀리서 누군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 저기 오네요. 공격과의 1학년이었던가..."
공격과면 필요할만 하지. 대 괴물용 이동속도 하락 물약.
✲
"내일 이구나..."
백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백의 정신머리라면 잊어버릴 가능성이 너무나 높았다. 100퍼센트. 아니, 오만퍼센트.
"그렇게 할게요. 바쁘신것 같으니 리더는 이만 가봐도.."
그러나 백은 말을 마칠 수 없었다. 누가봐도 쿨한 표정과 누가봐도 쿨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승연에게 너 가세요, 하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다 저기 오는 1학년 후배님은 왠지 동경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것 같았고.
"자, 여기 있어요."
백은 잠에 취한듯 나른한 목소리로 상대에게 물약을 건네주었다. 연신 고개를 꾸벅이던 상대가 백의 몰골에 흠칫거리는게 보였다.
"넘어진것 뿐이니까요―"
어쨌든 안심시키려고 그렇게 얘기를 해주었다. 백은 뒤돌아 뛰어가는 상대를 바라보다가 승연에게로 몸을 돌렸다.
"이제 쉬러 가야겠네요. 리더도 이제 기숙사로 돌아가는거죠?"
물약을 건넨 상대가 사라지자마자 더더욱 잠이 몰려와서 더더욱 힘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
"그러시구나― 기숙사에 복잡하지 않아요?"
백은 자기 기숙사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무엇을 생각한것인지 승연의 기숙사도 걱정해주었다.
"하긴. 공용이든 사유물이든 잘 보관하는게 중요하죠."
백은 가볍개 고개를 끄덕이며 헤실헤실 웃었다.
이어진 승연의 말에 당연히 기숙사로 가야죠. 하고 대닺하려고 하던 백의 입이 다물렸다.
"아. 만나야할 사람이 있었네요. 여기서 헤어지는게 낫겠어요. 조심히 가세요. 리더."
만나야할 사람이 있었다. 정령과 1학년의 이 율이라는 아이. 그 아이도 혹시 모르니 대 괴물용 물약 여러개를 만들어 달라고 했었다.
두 다리가 없는, 휠체어를 끌고 다니던 여자아이였지.
백은 잠깐 상념애 잠겼다가 정신을 차리곤 승연을 바라보았다.
"그럼 리더― 내일 봐요."
백은 나른하게 미소를 짓고 흐느적거리며 손을 흔들며 기숙사와는 반대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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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현
- 팀 프로메테우스에 들어오고나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 일들 가운데 가장 백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건 단연 괴물과의 조우였다. 지원과인 백에게 괴물을 보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이었으니 당연했겠지만 정말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래서 백은 그 가슴 떨리는 일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하고 묻는다면 무서웠다. 라고 답하진 않을것이었다. 오히려 흥미로웠다. 저 괴물은 어디에서 발생했으며 어째서 괴물이라고 불리게 되었는지에 관한 기초적이고 철학적인 생각과 더불어 어떻게 하면 저 괴물을― 박살낼 수 있을까. 하고.
"...어려웠지만 성공했어. ...물론 그 확률은 실험 결과에 따라서 71%지만... 어렵네. 언제쯤 더 낮아지려나?"
백은 손 안에 든 작은 물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웃었다. 잠깐 본다면 즐거워보이는듯한 미소, 하지만 그 이면엔 조금 걱정스러운듯한 미소가.
"―그래서 실험체가 될만한 사람은..."
백은 즐겁게도 그 실험체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
놀래라. 백은 물병에 집중하고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에 놀라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말을 잃고 정말 마법소년같은 대사를 듣고 있던 백이 금세 생글거리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물론 겉으론 사람좋은 미소처럼 보였지만 속으론 마침 좋은 먹잇감을 찾은듯한 검은 미소인진... 알 길이 없었다.
"아. 전리더님이시구나. 안녕하세요."
백은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후 곤란한듯한 미소를 보이며 볼을 긁적였다.
"실은 새로 실험한 물약의 실험대상이 되주실 분을 찾거든요. 보다시피 저는 지원과이고 싸움은 전혀 못하거든요. 실험용 쥐들에게 사용한 결과... 부작용이 너무 극심해서 모두 꺼려하길래... 그래서 실험체가 되어주실분을 찾고 있었어요."
백은 미소를 지었다가 덧붙여 말했다.
"파워출력은 만족스러웠는데 말이죠. 꽤 강한 괴물을 상대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출력으로 보였는데... 단점이 그 모든걸 상쇄했나봐요."
곤란하다는듯 턱을 톡톡 건드린 백이 작게 소근거렸다.
"70% 이상의 확률로 대머리가 되어버리지 뭐예요."
실험용 쥐들이요. 백은 작게 소근거리듯 말하고선 웃었다.
✲
"그럼 정현 선배님으로 할게요."
백은 미소와 함께 시원스레 대답했다.
"아쉽네요. 30%의 확률에 도전해볼 사람은 없나 했었는데. 여자친구분이 계신다면 역시 30%의 확률은 무리겠네요."
백은 물병을 바라보다가 정현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괴물의 힘에 비례해서 올라가는 파워쪽 자체에 문제가 있거나 그 파워쪽과 방어쪽 화학식에서 충돌이 난 모양이예요. 만약 고친다면... 힘이나 방어쪽의 파워를 줄여야하는데..."
그럼 아쉽잖아요. 백은 아쉽다는듯 에메랄드빛으로 빛나는 물약을 흔들어대다가 정현의 말에 눈을 반짝떴다.
"대머리인 분들! 그것도 괜찮... 아니. 안될수도 있어요. 물론 실험용 쥐들은 온몸 전체가 털이라 머리쪽이 빠졌겠지만 이미 대머리인분들에겐 어떤 작용을 할지 모르겠네요. ...대머리 독수리한테 실험을 해봐야하나..."
백은 눈을 반짝였다가 진지하게 돌변했다. 혼자 중얼거리듯 말하고 있다가 등을 두드려주는 정현을 보고 웃었다.
"그런가요? 정현 선배님이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면 기쁘지만요."
백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
"충돌에 관련되선 조금 더 알아봐야겠지만요. 공격이랑 방어. 둘 중에 하나를 놓치긴 싫으니까요."
백은 시원스레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다 정현의 난감한듯한 미소와 이어진 말에 하하. 하고 소리내어 웃었다.
"머리가 빠지는거랑 머리를 미는건 다르잖아요. 모근이 사멸됐냐 아니냐의 차이인데... 실험용 쥐들의 머리를 살짝 밀어서 실험해봐도 아마 결과는 같을거예요. 그래서 처음부터 대머리지만 다른 털은 나는 동물이 필요하죠. 눈썹털이 빠질지 다른 털이 빠질지 무척 궁금한걸요?"
백은 흥미로운 듯 미소를 지었다가 정현의 말에 눈을 반짝이며 물병을 흔들어보였다.
"만약 관련된 식이 완성되서 조금 더 안정성이 확보된다면, 실험대상이 되어주시겠어요?"
백은 정현에게 제안했다.
✲
"그거야... 어떻게든 구할 수 있어요."
백은 생글가리며 웃었다. 장난스러운 미소였다.
"마법소년 데뷔라― 제가 처음으로 아는 마법소년이 되겠네요."
백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하하. 하고 웃었다. 후배나 다른 친구들은 몰라도 그 여자친구분 만날 시간은 있으시겠죠. 라고 굳이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뭐 어차피 당연한 대답이 돌아올게 분명했으니까.
"아직 정현 선배님 졸업까지 한참이니까, 열심히 해볼게요."
백은 기지개를 켜고선 완성이지만 결국 실험대상을 찾지 못한 물약병을 가운의 가슴 주머니에 넣고 톡톡 두드렸다.
"그럼 아쉽지만... 이건 다른 실험 대상을 찾아봐야겠네요."
아직 포기할 생각은 아니었다.
✲
"별로 흥미를 끄는 사람들은 아닌걸요."
백은 웃으면서도 딱 잘라 말했다. 그게 담임이든 뭐든 백에겐 교사들이란 사람들을 눈 여겨 볼 만큼 흥미를 이끈 사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정현은 장난치듯 말했지만 백의 웃는 얼굴은... 장난일까, 아닐까.
"하하. 이런쪽에서 심플하게 가면 모두 죽을수도 있다구요? 뭐, 그런 얘기라면 몸은 잘 챙길게요.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큰 간도 가지고 있지 않구요."
백은 승연에게 피해를 가게할 정도로 큰 일은 저지르지 않을 셈이었다. 그냥, 뭐. 정현의 말대로 심플하게 갈 수 있는 일들이 많을테니까.
흔들리는 머리카락과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했다.
"같이 다니는 후배? 아. 율 말이군요. 그 친구는 이미 정했던데요. 그래서 같이 놀 이는 없을지도요."
백은 그래도 아무래도 상관없다는듯 기지개를 켰다.
✲
"네, 그런면에서 믿어주세요. 아뇨. 정현 선배님이라면 그 정도 간섭은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백은 정현을 향해 웃었다. 어쨌든 정현이야 말로 팀 프로메테우스의 가장 깊은 관계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이었으니까. 그 사람이 그 정도의 간섭을 한다는것을... 정말로 간섭이라고 취급해도 괜찮은걸까?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수학여행이라고 해도 잠만 잘게 뻔하니까요. 다른 분들에게 피해주긴 싫고요."
지원과엔 이제 거의 백 혼자 남아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까 남은 검술과, 공격과의 수많은 사람들을 책임질 사람이 선생님 말고 백, 그 정도겠다. 딱히 그런 과들이 아니어도 물약을 원하는 사람은 많았고, 그래서 백은 물약을 만들고, 그 반동으로 잠에 빠지는 일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사실은 수학여행도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율 때문에 가려고 했었는데, 근데 율에겐 같이 갈 사람이 생겼으니 이제 괜찮은거 아닌가? 수학여행, 안가도. 백은 문득 그 생각이 들자 한숨 쉬듯 미소지었다.
"청춘, 좋네요. 정현 선배님도 마음껏 즐겨두셔야겠어요. 일단은, 마지막 학년이니까."
백은 부드러운 제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넘기며 정현을 보고 살짝 미소지었다.
✲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게 눈꺼풀이라고 하잖아요? 실험대상 찾으라 신경쓰고 있었더니 지금 조금 졸리기 시작했어요..."
백은 눈을 깜빡였다.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눈을 끔뻑거렸다.
"작년에는 안 갔거든요. 그땐 날 잡고 수학여행 기간때 계속 잤으니까... 아, 관심받는거 좋아하시는구나. 정현 선배님은... 처음봐도 잊어버리기가 힘들것 같은데요. 그리고 학교에서도 여러가지 일을 하셨으니 꽤 알려진거 아니었어요? 아, 그건 학교 내의 일인가..."
백은 고개를 기웃거렸다. 정현의 신경쓰지 말라는 말에 정말로 그럴 속셈이었는지 그냥 잊어버리려는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게요. 아직 한참 남았는데... 그래도 3년이란 정말 빠른 시간이죠. 저도 벌써 2학년이고... 곧 3학년이고..."
백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리고 락커가 된듯 몸이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앞뒤로 흔들흔들. 피곤함을 느끼자마자 정말로 잠이 쏟아지는 모양이었다.
"뭐... 선배도 선배 나름대로 생각을 가지고 계시겠죠... 나이스한 정현 선배님..."
백은 중얼거리듯 말하곤 실내화를 질질 끌었다.
"그럼... 다음 실험대상... 찾으러... 가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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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토르 '비탸' 아나티누스
- 오늘도 어찌나 그리 다치는 사람들이 많은건지. 백은 오늘도 짧은 잠을 여러번 잔 참이었다. 그래도 쏟아지는 잠에 이젠 기절하듯 자는 잠이 아니라, 정말로 백이 좋아하는― 내가 자는구나, 하고 가슴 깊이 충만함을 느낄만한 포근한 잠을 자고 있었다.
"―백, 백. 밖에서 1학년이 찾는데?"
그 단잠을 깨우는 불청객에 백은 겨우겨우 눈을 떴다. 그러니까― 친구들이 돌아가며 찌르고, 조금 힘을 주어 툭툭 치고, 머리카락을 살짝 잡아 당긴다거나 하는― 괴롭힘은 전혀 아니었고, 백을 깨우는 방법이었다.
"으응...? 1학녀언―?"
백은 느른하게 하품을 했다. 옅은 인상만큼이나 미성인 목소리가 푹 잠겨 있었다. 백은 주변에 두었던 안경을 주섬주섬 끼고선 의자 등받이에 걸쳐두었던 의사 가운을 어깨에 두르듯 매고선 일어났다.
"가다가 넘어지지 말고. 어어, 왼쪽으로 가고 있는데? 똑바로 걸어!"
백은 비척비척 걸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듯 질질 끌리는 발이 제멋대로 옆으로, 옆으로 걸어갔다. 겨우겨우 빅토르의 앞에 선 백이 부스스 눈을 뜨며 고개를 올렸다. 옅은 하늘빛과 노을빛이 섞인 부드러운 머리가 스륵 떨어졌다. 옅은 물빛의 눈동자가 빅토르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에요?"
언제나 그렇듯, 눈을 반쯤 접고, 입꼬리를 올린 기분 좋은듯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
백은 빅토르의 자기소개를 초당 2초의 느릿느릿한 끄덕임으로 들었다. 그리고 빅토르의 자기소개가 끝나자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쟤 또, 또 저런다― 하는 소근거림이 들렸다.
"안녕하세요. 2학년 지원과 백이에요―"
여전히 느릿느릿한 말투였지만 조금은 정신을 차린듯 보였다. 가운을 제대로 챙겨입고서 빅토르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핫, 최고까진 아닌데―"
백은 조금 부끄러운듯 작게 헛기침을 하면서 웃었다.
"아, 강해지는 물약 말이죠? 만들어드리기야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후배님의 성미에 맞을지는 모르겠네요. 만능인 물약은 아니랍니다."
백은 조금 고심하는듯, 아닌듯한 말투로 고개를 옆으로 아주 살짝 기울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전한 미소였다.
✲
간단한 인사가 끝나고 등을 곧게 펴고선 눈을 깜빡였다. 백은 빅토르의 말에 바람빠진 웃음소리를 내비쳤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지원과엔 저 말고 대단한 분들이 많답니다."
백은 손사레와 도리질을 동시에 치며 강하게― 하지만 느릿한 몸놀림으로 부정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살짝 미소짓고 있어서 조금 무서운 느낌이었다.
"네. 당연히 해 드려야죠. 그게 제가 하는 일인걸요."
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교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 돌리려다가 다시 빅토르를 올려다 보았다.
"빅토르라고 했죠? 일단 구체적으로 어떤 물약이 필요한건지 알아봐야하거든요. 거기다가 어느정도 약이 필요한지 알아야 해서, 몸무게도 알려주시겠어요? 약이 독이 되지 않게 하려면, 제대로 몸에 맞춰서 써야하거든요."
백은 가운의 양쪽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여전히 웃는 얼굴로 빅토르에게 알아듣기 쉽도록 설명해주었다.
✲
"검으로 전격을 날려버리는 마법이라..."
백은 여전히 웃으며― 하지만 조금 진지해 보이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얼굴 옆으로 떨어지는 얇은 머리카락들을 잘 정리해 귀 뒤로 슬쩍 넘겼다. 빅토르의 기나긴 말을 빤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빅토르의 이어진 말에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것 치곤, 이 사람, 정말로 내 말 듣고 있는거야? 하고 의심이 들만큼 아무생각 없어 보이는 미소였다.
"변신한 몸에 적응을 못하시는건가요? 지금 현재 몸이랑 차이가 큰가 봐요?"
백은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채 필요한 질문을 골라 던졌다. 빅토르에게 따라오세요, 하고 나른히 말하고선 몸을 돌렸다. 교실 안으로 들어가서, 더 구석으로 빅토르를 데리고 들어갔다.
"아, 그렇게 말하시는데 제가 믿어드리지 않을리가요. 보기에도 근육으로 보이긴 하네요. 그래도... 여기 키랑 몸무게 나오는 체중계가 있거든요. 여기 서보시겠어요?"
백은 빅토르를 향해 웃었다. 웃는 낯은 퍽 순수해 보이기도, 조금 날카로워 보이기도 했다.
예전이야, 직접 찾아 오지 않아도 한명이 오면 다른 사람것들도 죄다 만들어 주긴 했고, 키나 몸무게를 확인하지도 않고 만들어 주었지만, 그렇게 받아간 사람들이 사실은 몸무게를 너무 적게 적어 약의 효과를 보지 못해 적반하장으로 따지러 온다던가, 혹은 약의 효과를 강하게 받고 싶어 늘려서 먹었다가 몸 어느 한곳의 기능을 잃었다거나,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었다.
뭐, 지금은 절대 그러지 않겠지만.
✲
아.
백은 이제야 알았다는듯 잠깐 멈칫했다. 그러나 그 멈칫은 너무나 짧아서 빅토르에게 들키진 않을것 같았다. 백은 언제나처럼 하늘하게 미소지으며 빅토르에게 체중계 위로 올라가는걸 빤히 바라보았다.
"아, 그건 많이 변신해보고 그 몸으로 많이 움직여 보는수밖에 없겠네요. 힘들겠어요."
백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남을 토닥여주는 모습치곤 여전히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얼굴에 미소말고 다른 표정은 지을 줄 모르는것 같았다.
"...그럼 어쩔 수 없죠. 바로 만들어 드릴게요."
백은 꽤 빨리 포기했다. 올라가기 싫다는데 계속 부탁하는것도 좀 그렇다고 생각한 모양일까? 백의 의중은 알 수 없었지만, 백은 빅토르를 데리고 자리로 향했다. 물약 제조에 필요한 비커, 알 수 없는 물질들, 보통 하루종일 들여다보아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모를 물건들이 가득했다.
"잠시 기다려 주시겠어요?"
백은 조금 떨어져 있는 간이 의자를 가리켰다. 빅토르에게 앉으라고 권한 후, 따듯한 차를 내주었다.
"89로 알고, 만들어 드릴게요. 오래 걸리진 않을거예요."
백은 웃으며 자리로 향했다. 정말로 오래 걸리진 않을거였다. 아주 느긋히 차를 마신다면, 그 전에 끝나겠고, 그 따뜻한 차를 입천장 데여가면서 마신다고 해도 비슷한 속도일 것이었다.
✲
빅토르의 말에 백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무리, 무리라. 이 세상에 무리라고 안 되는 일이 있을까? 백은 그 웃고 있는 낯짝과는 다르게 머리는 비상한 사람이었다. 지식, 잠깐의 시뮬레이션, 실험 정도면 가능할지도 모를일이고.
"결명자차에요. 눈에 좋다네요?"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을 건네고선 웃는 낯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근력강화 물약은 대체로 많이 만들어달라고 하는 물약이니까, 제조는 능숙하고도 빠르게 진행됐다.
빅토르가 차를 두모금, 정도 마셨을까― 여전한 웃음을 띄고 있는 백이 빅토르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여기 있어요. 근력강화 물약. 꼭 최대한 넓은 곳에서 드세요. 평소 힘보다는 확실히 강해져 있을거예요."
물론 힘은 강해져 있겠지만― 빅토르가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겠지.
✲
"많이 만들어서 그런지 조금 익숙해졌나봐요."
백은 무거워서 흘러내리는 안경을 제대로 고쳐 쓰고선 대답했다.
"학교 건물을 부수면 곤란해지잖아요. 네, 꼭, 반드시, 필요할때만요."
백은 나른히 미소지으며 꼭, 반드시에 강조하듯 숨을 내뱉았다. 물약을 건넨 빈손을 가운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고선 고개를 기웃거리다 웃었다.
"아뇨, 대가는 필요없어요. 제 물약 제조의 실력을 높이는데 큰 도움을 준거나 마찬가지니까요."
백은 다시금 흘러내리는 안경을 천천히 올렸다.
"차 다 드시고 가셔도 괜찮아요. 저는 조금..."
피곤해서 쉬어야겠어요, 하는 백의 나른한 말이 아주 작게 들렸다. 휘청휘청 걷는것도 힘들었는지 바닥에 주저앉을뻔 했다. 다행히 쓰러지진 않았고 옆에 있는 간이 의자에 주저앉듯 앉았다.
달콤한 잠을 자다 깨서 물약 제조를 하고, 그 패널티로 얻는 잠의 대가는 무시무시했다.
백은 금방이라도 잠들것 같았다.
✲
백은 빅토르의 대답에 살짝 웃었다. 학교 건물을 부술정도로 강하다는건― 그만큼 조심하라는 소리였다. 하긴, 빅토르의 체구정도되면 기본 힘이 있기 때문에 아주 적은 약물이라도 부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음... 그럴게요. 하지만 지금은 딱히 생각나진 않네요."
백은 심각한 표정― 이라곤 해도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불은 괜찮아요. 아, 저기서 또 절 부르네요. 죄송해요.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백은 끙, 힘겨운듯 몸을 일으켰다. 빅토르에게 살짝 허리를 숙여 인사한 후, 휘청휘청― 여전히 일자로 걸어가진 않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양새로 자기를 찾는 목소리의 주인을 찾으러 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한동안 귀찮게 하는 사람들도 없을... 줄 알았는데.
"백― 전에 왔던 1학년이 또 너 찾아!"
오늘 백은 다행히도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백은 느릿하게 일어나 천천히 흰가운을 챙겨입고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쓴뒤 문 앞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빅토르. 오랜만이네요. 무슨 일이세요?"
아마 그 전 물약은 효과가 없었기에 다시 만들어 달라는 의뢰일지도 몰랐지만. 백은 얼굴에 미소를 지은채 자기보다 한참 큰 빅토르를 올려다보았다.
✲
백은 빅토르가 제대로 말을 할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얼굴엔 전과 같은 다정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빅토르가 뭔가 꺼내들었다. 저게 뭐지? 하고 한참을 생각하게 되는 색과 거품이었다. 물병만을 본다면 지원과에서 쓰는 물병이 맞는것 같은데.
"...아."
백은 빅토르의 말을 듣고서야 무슨 일인지 파악했다. 저렇게 색이 변하고 거품이 나는데 그냥 마시겠다니, 빅토르는 간도 참 크다고 생각하면서. 백은 작게 소리내어 웃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안되는게 당연하잖아요?"
백은 상큼하게 미소지으며 빅토르가 내민 물약을 잡아 빅토르의 손에서 빼냈다. 화학약품이니 아무대서나 파기하는건 절대 할 수 없었다.
"색과 거품을 보아하니, 시간이 지나서 화학 반응이 달라진걸지도 모르겠네요. 새로 만들어 드릴테니까 기다리고 계세요. 저번처럼 결명자차... 드릴까요?"
백은 가운 주머니에 물약을 집어넣고 웃으며 빅토르에게 물었다.
✲
백은 빅토르의 절망하는 표정에 쿡쿡거리며 웃었다. 덩치는 산만한것 같은데 하는 행동은 정말로 아이같아서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백은 빅토르의 어꺠를 다정히 토닥여주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백은 천천히 구석으로 걸어가 결명자차와 함께 바삭바삭한 쿠키 몇개를 정리해 담고 빅토르에게 다시 다가갔다.
"그럼 드시고 계세요."
백은 뒤돌아가며 흘러내리는 안경을 고쳐 올리고선 나른하게 하품을 하는 입을 톡톡 치며 자리로 향했다.
예전에도 그랬듯, 백이 그 약을 다시 만드는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것이었다.
✲
백은 이전에 있던 데이터를 토대로 빅토르에게 전해줄 물약을 다시 한번더 만들었다. 다시 만드는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일단 데이터가 있고, 한번 만들어 본 물약이었으니까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백은 이제야 생각난 것이었다. 이 물약, 여전히 빅토르에겐 효과가 없을텐데... 일단 힘은 몇 배로 강해지긴 하겠지만서도.
"다 됐어요. 빅토르. 쿠키는 입맛에 맞으신가요? 굉장히 잘 먹네요."
백은 천천히 다가와서 빅토르를 보며 웃었다. 빅토르는 백이 걸어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쿠키를 입 안으로 밀어넣고 있는 중이었다. 맛있나 보다, 다행이네. 하고 백은 생각했다.
"그 쿠키, 선물 받은건데... 꽤 입에 맞나보네요? 다행이에요. ...역시 좀 더 만들어 둬야...."
백은 무언가 숨기는듯 어색하게 웃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방금 왔어요. 먹는 모습만 봐도 흐뭇해지던걸요, 빅토르."
백은 웃으며 물약을 빅토르에게 건넸다.
"아, 계속 드셔도 괜찮아요. 방금 만들어서 따듯할..."
백은 차마 제대로 말을 끝맺지 못하고 입을 닫고 어색하게 웃었다. 빅토르의 말에 조금 생각하는듯 하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은 지원과 사람들의 등쌀에 휩쓸려서 만든거거든요. 제가."
...그때, 처음부터 만들지 않았다면 쿠키 셔틀이 되진 않았을텐데. 백은 볼을 긁적였다.
✲
"잘 먹는걸 보면 부러워요. 저는 먹을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먹을 시간이 무슨 소리인가, 그 시간이 있다면 다행인것이었다. 백은 놀란듯 보이는 빅토르를 보며 볼을 긁적이며 웃었다.
"네. 직접 만들었어요. 아, 혹시 마음에 드셨으면 드릴까요? 어차피 오늘 만든거, 오늘 소비하지 않으면 곰팡이 피니까요. 아직 많이 남았거든요."
백은 생글 웃으며 흘러내리는 안경을 올리곤 쿠키를 가지러갔다. 후배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 선배의 모습인지 모르겠지만.
"여기 있어요."
작은 박스로 생긴 쿠키 상자를 빅토르에게 건네며 웃었다.
"뭐든지 잘 만들진 못해요. 그냥, 요리랑 실험은 비슷하니까 우연히 잘 됐던거예요. 우연히. 빅토르도 관심이 있고 그에 합당한 노력을 하신다면... 잘 하실 수 있을거예요."
백은 가법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
"물약 값은 정말 괜찮은데... 그래도 정말 주시겠다면, 감사히 받을게요. 계속 거절하는 것도 실례니까."
백은 살짝 웃음 지었다. 에너지바라, 너무 고열량이면 그거 하나를 가지고 일주일은 먹을지도 몰랐다.
"에너지바라, 이름만 들어도 에너지가 생길것 같은 느낌이네요. 거기다 영양도 충분하다니..."
맛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열량이 충분한것으로 됐다. 왜냐하면... 백은 요리를 할 줄 아는것 치곤 잘 못 먹는 사람이었으니까. 고급진 입맛을 가질것 같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그 반대였다.
"네. 맛있게 드셔주셔서 감사해요. 다음엔 다른거 만들어 놓을테니까, 그 물약... 어떤지 알려주러 오세요."
백은 살짝 웃곤 빅토르의 각오에 기특하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검술이나 마법이나 잘 하실 수 있을거예요. 빅토르라면,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멋진 마법소년, 기대하고 있을게요."
백은 빅토르의 팔 부근을 두드리며 격려해주곤 흘러내리는 안경을 올렸다.
"그럼, 다음에 또 봐요. 조심히 가세요. 빅토르."
백은 쿠키 상자와 물약을 들고 되돌아가는 빅토르를 배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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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텔라
- 슬리퍼를 질질 끌며 복도를 걸어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눈엔 졸음이 가득해서 뜬간지 안뜬건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고개를 꾸벅꾸벅이며 휘청휘청 걷던 백이 돌연 걸음을 멈춘것은 어딘가에서 대화 아닌 대화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뭔가 달콤한 냄새가 나는것도 착각이 아니었겠지만.
연구와 잠으로 하루를 다 보내고 있던 백이 달콤한 냄새가 난다는 그 사실 하나에 그 냄새를 따라 가는것은 배가 고팠기 때문이었다.
"...뭘 만들고 계시나요?"
뭔가 만들고 있는 에스텔라와 크로우씨를 보고 백은 고개를 기울였다. 언제나의 미소와 함께 묻는 목소리가 잠에 취한듯 보였다.
✲
"안녕하세요. 에스텔라. 안녕하세요. 크로우씨."
백은 고개를 살짝 까딱이며 에스텔라와 크로우씨에게 인사했다. 얼굴에는 여전히 잠이 가득한 미소가 있었다. 백은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쿠키요? 직접? 대단하시네요."
백은 감탄하듯 말하면서 크로우씨의 쪽지에 웃으며 에스텔라 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렇지 않은척 하는 크로우씨 옆에 백도 아무렇지 않게 옆에 섰다.
"그래도 괜찮나요? 마침 배도 고팠는데 잘됐네요. 기대되는데요?"
백은 에스텔라를 바라보며 웃었다.
"다른 분들에게도 드리는거군요? 기특하네요, 에스텔라는."
✲
백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지는 에스텔라를 향해 웃어보였다. 에스텔라가 쿠키 반죽을 틀에 붓는것을 흥미롭게 보던 백이 에스텔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누가 뭐라고 하겠나요? 믾은 분들과 즐기는거 좋죠. 그리고 또 많은 분들과 만나기 위해서 에스텔라도 노력하고 있고요. 쿠키를 만든다던가― 하는 일말이죠."
백은 살짝 웃으며 오븐 속으로 들어가는 쿠키틀을 바라보았다.
"요즘도 물약 만들고 잠 자느라 바빴거든요."
백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고선 소리내어 웃었다.
"그건 농담이었고, mt때도, 회식때도 계속 같이 있었어요. 율이랑은. 사람들이랑 조금 더 함께하고 싶다고 훤... 정령을 안부르니, 저라도 옆에 있어줘야 할 것 같아서요."
백은 어깨를 으쓱였다.
✲
"항상 잠은 잘 자고 있답니다."
백은 소리없이 웃었다. 물약을 만드는것을 제외하곤 겨울잠 자는 곰마냥 잠만 자댔으니까 큰일은... 안날지도. 잠 자는 시간보다 먹는 시간이 현저히 적어서 큰일 날지도 모르겠다.
"...크로우씨가 겪어본 일이래요?"
백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물었다.
"와, 같이 그림도 그리고 다과회를 하자고 했나요? 재밌을것 같네요. 율의 그림은 꽤... 괜찮거든요. 다과는... 만들 수 있으려나... 먹는거라곤 당근이나 브로콜리같은것 밖에 못봐서 말이죠."
백은 볼을 긁적이며 생각하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
"유명한 화가... 아마 율이 들으면 굉장히 기뻐할거예요. 에스텔라가 직접 말해준다면, 율도 기뻐할거라고 생각해요. 그 아이, 꽤 손재주가 좋으니까 바로 따라할 수 있을 거예요. 아마... 아직까지 못만들어 본건, 높낮이 조절이 되는 싱크대를 못봐서 그럴거예요."
웃으며 열심히 말하던 백이 쿠키를 먹은 크로우가 갑자기 쓰러지자 눈을 깜빡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하고 아직도 상황파악이 되지 않은것 같았다. 검은 액체.. 저거 괜찮은걸까? 백은 차렷 자세로 쓰러진 크로우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크로..."
백은 황급히 치료 물약을 찾으려다가 크로우의 쪽지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깜빡였다.
"아..."
백은 생각했다. 이 쿠키, 먹어도 죽진 않겠지? 하고.
✲
백은 에스텔라와 크로우의 만담(?)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크로우씨... 저 검은 액체는 흘러내리는거구나. 하고 백은 과학자의 자세로 크로우를 관찰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쿠키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뭐... 반죽에서부터 설탕을 넣어? 백은 손으로 이마를 짚고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아, 괜찮아요. 크로우씨 말이 맞아요. 에스텔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죠. 제가 물약을 만드는것처럼, 음식도 배합이 중요하거든요. 에스텔라라면, 분명 다음엔 성공할거니까 너무 걱정은 않을게요."
백은 여전히 웃음 지으며 에스텔라가 구운 쿠키를 하나 집어 작게 베어 물었다. 크로우가 백에게 무언가 전하려고 했던 말은,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음... 역시 설탕이 너무 많네요. 마카롱을 먹은 느낌일까요? 아, 저한텐 그거 하나만으로도 너무 단 음식이거든요. 제가 필요로 하는 하루 열량을 초과하는 음식이라고 할까... 설탕만 조금 줄이면 꼭 괜찮은 쿠키가 나올거예요."
백은 아무렇지 않게 베어 문 쿠키를 오물거려 삼키곤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럼 에스텔라... 잘 먹었습니다. 열량도 채웠겠다, 이제 가보도록 할게요. 아직 만들 물약이 산더미라..."
백은 에스텔라와 크로우에게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한 후 되돌아 나갔다.
머리가 멍했다. 어젠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래서 피곤해서 자고 자고 자고 끝없이 잤는데도 피곤했다.
드디어 수학여행에서 율이랑 재밌게 놀아보나 했는데 이상한 괴물이나 나타나고... 이틀 연속 율한테 놀아달라고 하기엔(?)...그건 좀...아니다싶다.
8비트도 그렇고 hp게이지도 그렇고...진짜 게임같았지...게임...안하지만....
"아...자이로드롭....롤러코스터...타야하는데..."
리조트에서 로비로 터덜터덜 나와 로비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뭐 이상한 신기루 요정은 그렇다쳐도, 쉐도우...쉐도우, 궁금하단 말이야. 혼돈을 즐기려는 걸까, 인간과 마녀를 싸움 붙여서...
"...세상은 전부 흑과 백으로 분리되진 않는데 말이지..."
하암-..피곤하다.
✲
백은 벤치 등받이에 기대서 바닥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에스텔라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반사적으로 입가에 미소를 걸쳤다.
"안녕하세요. 에스텔라. 안녕하세요. 크로우씨."
나른하게 웃으며 인사를 한 백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마지막 날이니까 즐겨볼까 하고요. 겸사겸사 어제 싸운 괴물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요."
대답을 마치고 기지개를 켠 백이 입을 가리고 나른하게 하품을했다.
"에스텔라는 크로우씨랑 산책중이셨어요?"
그럴리가...
✲
"마음 편한 산책은 아니다라..."
역시 어제 일과 관련된 것일까? 그런 일이 있다면 마음 편하고 싶어도 그러질 못하겠지...특히나 유클리드 학생이라면, 더더욱 팀 프로메테우스에 속해있다면.
에스텔라가 편하게 앉도록 자리를 조금 넓혀주곤 에스텔라의 말을 들었다
."...괜찮아요? 일단 진정하세요. 에스텔라. 미안해요, 실례할게요."
에스텔라가 몸을 떨기 시작하자 엉거주춤하게 그녀를 보던 백이 실례한다는 말을 남기곤 천천히 에스텔라의 등을 토닥였다.
"물론 저도 불안하긴 했지만...에스텔라의 불안은 조금 다른것 같네요. 심신 안정에 도움되는 물약이라도 만들어드릴까요? 음... 악몽이라... 악몽과 어제 만났던 목소리나.. 그 신기루 요정과 연관이 있을까요?"
백은 살짝 농담을 하더니 하하 웃다가 다시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에스텔라에게 물었다.
✲
백은 에스텔라의 말을 천천히 들으며 진지하게 고게를 끄덕이며 호응해줬다. 나른한 얼굴에 진지한 표정이라니 상당히 피곤해보이는것으로 밖에 안보인다만....
"에스텔라의 머릿속에 강하게 인상이 남을만큼 확실하게 꿈속에 나타났다면....그건 뭔가 예견하고 있는걸수도 있어요. 에스텔라가 불안해하는 이유도 알겠고요."
백은 하얀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잠깐 뒤적거리더니 주먹을 쥔 손을 에스텔라의 가까이로 내보였다.
"그리고 그런거라면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팀 프로메테우스도 있고, 강한 선배들이랑 친구들도 있잖아요?"
백은 예전처럼 미소지으며 주먹쥔 손을 펴보였다. 작은 초콜릿 하나가 보였다.
"그리고 에스텔라라면 잘 해낼거라고 생각하고요."
에스텔라에게 초콜릿을 건네며 빙그레 웃었다.
✲
"중간에 포기할것 같으면 다들 도와주기도 할테니까요."
백은 에스텔라의 말에 가볍게 웃었다.
"중간에 포기하면 아깝기도 하고요... 아, 크로우씨. 다시 오셨네요."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웃던 백이 감사인사를 건네는 에스텔라를 향해 따라 고개를 숙였다. 동시에 크로우를 반겼다! 엄청난 멀티 태스킹능력이다.
"그건 다행인데요? 크로우씨한테 인정받은 느낌이네요."
백은 장난인듯 아닌듯 말을 걸면서 웃었다.
"수학여행 마지막날인데 많이 즐겨둬요, 에스텔라. 학교로 돌아가면 또 같은 일상의 반복이라구요."
약을 만들고 잠을 자는 그런 일상...
✲
"그런 시간도 소중히 해야죠."
에스텔라의 중얼거림에 백은 웃었다.
"그래요. 그렇지만 후배한테 도움을 요청하게되면 선배 자존심이 조금 상할지도요."
상할 자존심도 없지만 장난스럽게 말해보았다.
"고마워요. 에스텔라. 그럼 저는 수학여행 마지막날을 조금 즐기러 가봐야겠네요. 에스텔라도 남은 시간 잘 보내길 바랄게요."
백은 일어나 에스텔라와 크로우에게 인사를 하고 생글거리며 웃었다. 묘하게 나른한 표정으로 신발을 질질 끌며 로비를 나섰다.
오늘이 바다에 가는 날이었던가...?
백은 문득 율과 함께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백님, 백님! 저 바다가 너무 기대되요! 백님도 그래요? 미리 수영복도 사놨어요! 입을수있을진 모르겠지만요!"
뭐라고 해맑게 말하던 율의 얼굴이 기억났다.
백은 흐음... 하고 그냥 느긋하게 웃었을 뿐이었지만...
바다는 가더라도 다른세상 이야기고...주말엔 느긋하게 쉬어야지...라고...생각했는데...
...그랬을게 분명했을 텐데...
허여멀건한 니얼굴 때문에 지원과엔 죄다 병자밖에 없다는 소리 듣고싶지 않다면서 쇼핑몰에 끌려왔다.
...그리고...길을 잃었다.
친구도 잃고...길도 잃고...
"..."
벤치에서 엎어져 있던 백이 부스스 일어나 멍하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만나면 가만두지않으리.
✲
"...안녕하세요. 에스텔라...크로우씨..."
백은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에스텔라와 크로우를 보고 꾸벅 인사했다.
아직 잠이 덜깬듯 목소리가 잠겼다.
"...여긴 어디죠...?"
멍청미를 내뿜으며 멍하니 중얼거리던 백이 헤실거렸다.
"으음...친구들한테 끌려온건 기억나는데...왜 여기 있는걸까요..."
흐아암...하품을 하고서 벤치에 다시 철푸덕 누워버렸다.
세상의 시선따윈 신경쓰지 않는 남자...
"...그런데 에스텔라랑 크로우씨는 무슨 일이세요...?"
...이제야 물어본다.
✲
"...아...맞다...수영복...사러왔구나..."
벤치에 철푸덕 누워서 중얼거리던 백이 천천히 일어났다.
...주말에도 입고 있는 가운의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그렇네요...바다 가야하니까..."
연신 하품을 하던 백이 눈도 제대로 뜨지않은채 일어나 비척비척 걸어갔다.
"네에...크로우씨...걱정 않으셔도 되요...딱히 보고싶거나 그런건 아니고요...으아..."
기지개를 한번 켠 백이 에스텔라를 보고 살짝 웃었다.
"그러니까 조금 따라다녀도 괜찮을까요? 에스텔라?"
...어째서 결론이 그렇게 나는것인지 알순 없지만...
파렴치한 짓은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에스텔라 아버님...
✲
"...와아...크로우씨한테 칭찬받았네요."
백은 그저 사람좋은 미소로 헤실거렸다.
"그럼 조금만 따라다닐게요. 에스텔라...친구들 찾으면 버리고 가도 되니까요..."
에스텔라를 따라 수영복 코너를 가던 백이 중얼거리며 웃었다.
"저요...?딱히...으음...그렇네요....그럼 저걸로 살까요..."
에스텔라와 크로우를 번갈아 보던 백이 대충 아무 수영복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동용 수영복이었다...
"에스텔라는 어떤걸로 사실거예요? 음...너무 많아서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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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돌아갈것 같다.
✲
백은 에스텔라와 크로우의 당황섞인 한마디에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아,이런.
일어서서 잘뻔했다.
백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파워로 얼굴을 때려...눌렀다.
"아...그렇게까진...."
안해도 되는데...친절하셔라.
멍하니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있었더니 고민하는 에스텔라의 모습이 보였다.
"헤에...수영복 귀엽네요...더 밝은 색깔이어도 에스텔라랑 어울릴것 같은데..."
옆에 있던 같은 디자인의 밝은 색상과 에스텔라가 들고 있는 남색 수영복을 번갈아 보았다.
멍하니 고민하는 사이에 크로우가 다가왔다.
수영복을 들고.
"음...사다리 타기라도 해볼까요..."
에스텔라의 수영복을 고룰때랑 자기 수영복을 고를때의 온도차이란...
백은 크로우가 가져온 수영복에 순서대로 번호를 붙이곤 휴대폰 사다리 게임을 켜서 그대로 사다리 타기를 했다.
"이걸로 할게요."
결정!
✲
"크로우씨가 잘 골라주신 덕에 좋은 수영복을 찾았네요."
백은 사다리 타기로 고른 수영복을 챙겼다.
다른 수영복은 제대로 제자리에 가져다두고...
에스텔라와 크로우의 말을 듣고 있던 백이 가볍게 웃었다.
"그래도 에스텔라가 좋아하는걸로 사는게 좋죠. 이왕이면... 맨살이 보이는게 걱정되면 큰 수건으로 가리면 되고요...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뭔가 크로우를 달래는 느낌이 되어버렸다.
"크로우씨나 팀 멤버들도 있는데 이왕 노는거 신나게 놀아야죠."
그렇게 말하는 백은 따사로운 여름 햇살을 받으며 잘생각이 가득하다.
✲
"그렇죠? 다 방법이 있어요."
아빠와 딸을 보는듯한 흐뭇함에 안경을 끌어올리며 웃었다.
그리고 크로우가 한눈을 판 사이 들려오는 말에 쿡쿡거렸다.
"크로우씨 나름의 걱정일거예요. 보기 좋은걸요? 거기다...그렇게 꽉 막힌 분은 아닌것 같고요."
한가지 조언을 해줬더니 쉽게 받아들이는걸 보면 자기 주장을 확실히 몰아붙이는 꽉 막힌 사람...아니 정령이라고 생각했다.
"에스텔라도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아요. 율은...잘 모르겠지만...잘 놀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백이 율이 아니기에 정말로 그런진 알수없었고...율의 몸으로 보나, 자기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로 보나 입는것에 만족하고 바다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을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에스텔라는 그 수영복으로 고르는걸까요? 저도 이제 계산하고 돌아가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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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쿼터 잭
- 바다...따사로운 햇볕...밀려오는 파도...파란 하늘...푸른 바다...부드러운 백사장...
그리고 활발히 뛰어노는 팀 멤버들과 달리 이리도 힘없이 파라솔 밑에 앉아 있는 쓸쓸한 백 한마리.
백은 무릎을 모아 세운채 턱을 받치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오늘은...수영복을 입긴 했지만 위에 흰 반팔티와 언제나 빠지지 않는 의사 가운도 갖춰 입은 상태였다.
코 끝에서 흘러내리는 안경이 아슬아슬하게 걸터 있었다.
"...음..."
잠깐 소리내었을 뿐인데 백은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장렬하게 모래에 쳐박혔다.
"..."
그래도 깨지 않았다.
...사람 맞아?
...아닌듯.
✲
모래에 쳐박힐때 안경이 코 뼈부분을 장렬하게 누른 모양인지 꽤나 아팠다.
눈 앞이 흐렸다. 그렇게 고통을 주더니 안경이 모래속에 박혀 떠나가버린 모양이었다.
"으..."
말 못할 안경의 고통과 함께 어깨를 치는 고통에 백이 눈을 찡그렸다.
괜찮으니까 빠르게 눈을 두 번...깜빡 거려야 할게 분명했지만 백의 눈 깜빡임은 느려도 너어무우나아 느렸다.
...어쨌든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모래속에 쳐박힌 탓에 온 몸이 엉망진창으로 모래범벅이었다. 새햐안 의사가운은 모래빛으로 변해버렸다.
"...저기...괜찮은데요..."
백은 멍한듯 흐릿한 두눈으로 잭을 보다가 모래에 박힌 안경을 찾으려 손을 모래위로 더듬었다.
물론 안경이 없는 백의 눈앞은 그야말로 흐릿했기에 반대편을 찾고 있는건 백은 모르는 일이었다.
"...안경...어딨죠...?"
백은 잭을 보며 멍청하게 헤실거렸다.
안경에 꾸욱 눌린 코옆이 빨갛게 변해있었다.
✲
"네에...살아있답니다아..."
그늘로 슬그머니 들어온 잭의 행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은 여전히 그저 사람좋은 미소를 지었다.
"오."
갑자기 시야가 밝아져오자 그게 자기 안경이라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백은 그저 좋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눈은 잠이 그렁그렁 맺혀서 반쯤 감은채로.
백은 이제야 잭을 본듯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상황에 맞지않는 인사가 흘러나오면 백은 그냥 웃고만다.
사람 좋구나....하는 잭의 말에 의미를 모르겠다는듯 웃는채로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안경을 찾아준 분이 더 좋은 사람 아닌가요?...아...저를 깨워주신거에서 부터...?"
백은 입을 가리고 느리게 하품을 했다.
좋은 사람의 기준이 낮아도 너어무우나아 낮았다.
✲
잭이 호탕하게 웃자 백은 영문도 모른채로 따라 웃었다.
어느새 재밌는 놈이 된 백은 사실 재미없는 놈이다.
"...아...그거 말이군요...아...?...아...도와주시는걸 보면 좋은 분이시네요..."
물론 백은 그냥 자고있다가 쳐박힌거지만...알리가 없지.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백은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얼굴엔 항상 미소가 걸쳐져 있었다.
신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던 잭이 잠깐 기다리라는 말로 사라지자...백은 그말대로 얌전히 있었다.
어차피 갈곳도 없었지만...이 파라솔의 그늘을 뚫고 나가면 사막이니까.
절대 나갈수없다.
"...?"
그리고 돌아온 잭의 손에는 생수가 있었다.
백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잭을 보았다.
"일부러...안그려셔도 되는데...감사합니다..."
열사병 대책일까.
백은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어쨌든 오는 호의를 내치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백은 생수 뚜껑을 따서 물을 마셨다.
시원하게 넘어가는 생수 덕에 머리가 깨질것 같았다.
크으...!차가워라!
"으아...머리...아파라..."
아픈것도 미묘하게 느리고...그리고 아프다는데 웃고 있는 이 미묘한 백의 얼굴은...
백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가 생수 뚜껑을 다시 잘 닫고 잭에게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잘 마셨어요. 그러니까...이름이..."
그리고 얼빠진 백이 이제야 이름을 묻는다.
✲
"그렇게 해요."
잭이 급속도로 얼굴 표정을 굳혀도 백은 아랑곳않고 웃어넘겼다.
물약 만들면서 이른바 블랙컨슈머...라고 하는 사람들도 가득 봤으니 표정이나 말투로 백을 물리치려면...
어색하게 웃는 잭의 얼굴 표정에도 방긋거렸다.
생수를 그냥 가지라는 잭의 말에 백은 고개를 기웃거렸다.
"...감사합니다...다음에...다른걸로 사다드릴게요."
백은 생수를 소중히 품안에 앉았다.
차가운 물을 마셨더니 정신도 조금 차려진 기분이었다.
쿼터 잭. 백은 그 이름을 곱씹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웃음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인다.
"지원과 2학년, 백이에요. 잘부탁드려요."
이명은 잠자는 숲속의 백. 물약 만드는 잠귀신...이라는건 넣어두자.
백은 자기소개를 마치고 생수를 소중히 두팔에 껴안은채...그리고 아직도 털지 않은 모래를 가득묻혀두곤 잭에게 말했다.
"정신도 조금 차렸으니...이만 가보도록 할게요.잭님도 열사병 조심하시고 얼른 들어가보세요.아니면,파라솔 밑에 계셔도 괜찮고요...나름 시원해요."
그 말을 끝으로 백은 펜션으로 향했다.
아프다.
백은 눈을 떴다.
푸른 하늘...따뜻한 햇살...그리고...뭔가 온 몸 곳곳에 아픈 느낌.
"이자식...가진것도 하나도 없잖아!"
"아 성질나서!스트레스나 풀자!"
"아쒸...좋은거라도 가지고 누워있나 했더니..."
아.
백은 이제서야 생각났다.
햇살이 너무 따가워서 햇살이 없는 건물 구석으로 들어가다가 노곤해진 몸을 가누지 못해서 픽하고 쓰러졌다는걸.
그리고 마침 그곳에서 낄낄거리며 담배를 피고 있던 남학생 셋이 옳다구나 하고 백의 가운과 옷을 뒤적이기 시작했지만...나오는건 물약 뿐이었다.
"뭔 약을 이렇게 많이 하냐?"
"아 씹...담배 살 돈도 안가지고 있는 새낀 처음봤네."
백은 아직도 노곤해 보이는 표정으로 머리쪽에서 흐르는 뜨뜻한 피를 닦아냈다.
배도 아프고...귀도 아프고 얼굴도 아프고 여하튼 다 아프다.
"선량한 시민을 못살게 굴면 안된다구요."
백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백의 반응은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또다시 욕설이 들려오고 심각한 통증이 느껴지긴 했지만...
백은 뭐 아무래도 좋은듯 멍하니 누워있었다.
✲
"아,잭님이다.안녕하세요."
백은 누워 있다가 언젠가 들어본적 있는 목소리에 눈동자만 데구르르 굴려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잭을 보며 백은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인사라니...아무리 안면수심인 담배쟁이 남학생 셋이라도 질릴만 했다.
흰 의사가운에 신발 자국으로 도배가 되어도 가만히 있던 백이 눈쪽으로 흐르는 피를 닦아내고 웃었다.
"관계없는 사람이면 꺼져라?"
"아저씨.저희 친구예요.예?아시겠죠?얘가 피흘리면서 누워있길래 도와주려던것 뿐이거든요.그치 친구야?"
"자,일어나세요.친구야?"
잭의 함악한 분위기에도 남학생들은 킥킥거리며 웃었다.
남학생 한명이 백을 일으켜 흰가운에 묻은 신발자국을 털어내는 시늉을 했다.
친한척 하느라 어깨동무를 한 셋 사이에서 백은 힘없이 허리를 구부리고 있었다.
"아이고오...아프다아..."
잭한테 다들리도록 중얼거린 백이 슬금 웃으며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옆에 있던 남학생 옷에 스윽 닦았다.
스윽 닦음과 동시에 썩은 표정이 된 학생이 질린 표정으로 백을 보다가 백을 내동댕이쳤다.
퍽하는 소리가 어딘가 하나 부러졌을것 같다.백은 꽤 충격이 컸던듯 끄응 앓는소리를 냈다.
"아 씨x...x나 더러워."
"거기 아저씨.걔 데리고 좀 꺼져.진짜 거지같네..."
"야,담배나 빨자."
엄청난 욕설이 난무하다가 짜증난다는듯 팔을 휘휘저어 저리 가라는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뭐...주위에 있는 물약은 다 밟아주고.
무자비한 힘에 부서지는 물약을 멍하니 보던 백이 눈을 감았다.
...죽었나?
...아니.
✲
잭의 말에 백은 표정을 구기면서도 방긋 웃었다.
아직도 서성거리고 있는 잭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남학생 셋의 목소리가 조금더 커졌다.욕도 어쩐지 많아졌다.
"아,진짜.씨x,xxx xxxx xxxx xxxx 꺼지란말 못들었냐?!"
"으하하!미친놈아 그만해라!아저씨 울면서 도망가겠다!"
"진짜 울면서 어디 하나 부러지기 전에 친구 데리고 꺼지세요.네?진짜 시x 재수가 없으려니 별 x같은게..."
자기감정에 따라 욕설을 내뱉는 모습이 아주 저급해보였다.
"생일빵?아,이놈?생일빵도 쳐주지뭐."
퍽!하고 강한 파열음이 백의 허벅지에 전해졌다.
한명이 그러나 남은 두명도 퍽 쳤지만 왠지 더러운걸 치는듯 설렁거리며 쳐댔다.
"생일 축하한다,친구야!"
"아저씨도 친구면 같이 생일빵 맞을래?"
키득거리던 세명이 잭의 험악한 얼굴 표정에 자연스럽게 따라 얼굴 표정을 구겼다.
땅에 침을 내뱉더니 담배를 깊게 들이마시더니 잭을 도발하듯 잭의 얼굴을 향해 연기를 후 불었다.
"싫은데?"
키득거리는 얼굴에 허세가 가득하다.
✲
"아저씨,전재산 다 털리겠네?"
키득거리며 웃던 한명이 갑자기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x나 아프네 진짜."
"이 새끼가!"
얼굴을 맞은 학생 한명이 듸로 밀리자 옆에 있던 학생이 바로 잭의 얼굴로 주먹을 내질렀다.
"아으...아파라..."
그사이 백은 멍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비틀비틀거리던 백이 벽에 기대서 어느새 깨진 휴대폰을 들고 신고하려고 했다.
백의 행동에 저지하려는 학생과 위엉켜 난장판이었다.
"으으...!"
갑자기 백이 엄청나게 큰 동작으로 퍽 쓰러져서 빨간 피를 토했다.
엄청나게 과장스러운 행동이었고 남은 사람들이 봐줬으면 할 정도로 직접적인 느낌이었다.
"저기...저 잊지마세요...?아파요...아프다구요..."
학생 하나를 때린 잭의 앞으로 비틀비틀 걸어오며 난장판이 된 학생들 사이로 들어간 백이 귀신처럼 공기반 소리반으로 말하고 좀비처럼 걷자 아주 질린 표정이 된 학생 셋이었다.
"진짜 이새끼 미친놈아냐?"
"야,야.그냥 가자.미친놈이랑 있다가 같이 미친놈될라."
백의 얼굴에 침을 뱉은 학생 하나가 백을 잭쪽으로 밀어버리고 학생 셋은 그대로 도망가버렸다.
...왠지 싱거운걸.
백은 그대로 힘없이 잭에게 밀려났다.
"아...죄송합니다...쓸데없는 일이 말려들게 해버려서..."
백은 매우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잭에게 사과했다.
✲
시끄러웠으나 다행히 사람들이 몰려오는 일은 없었다.
바다도 시끄럽기도 하고 다들 노느라 정신 없었을테고 들었어도 일부러 나쁜 일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았을거다.
"아,괜찮아요."
백은 어느새 굽은 등을 펴고 방긋 웃으며 잭에게 말했다.
입에 흘러내린 피가 흰가운을 적셨지만 신경도 안쓰고 흘러내린 피를 닦아냈다.
"이건 빨간 물약이었거든요.그사람들...빨리 도망가게 하려고요."
...정정.
피가 아니라 딸기맛 물약인걸로.
입가에 묻은 물약을 혀로 닦아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방긋 웃는 표정은 덤.
"그렇게 생각하시면...괜찮다고 생각하지만요..."
입에 흐른건 물약이었으나 머리에 흐른건 진짜 피였는지 비틀비틀거리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뭐...그정도론 죽지 않을테지만요..."
어쩔수없지.
백은 흐릿해지는 눈앞에 눈을 잠깐 꾹 감았다.
"그래도 사람을 때리면 안되요...큰일 날뻔 했어요.잭님."
신고를 하지 않은건 탁월한 선택...이었나?
백은 비틀거리던 몸을 벽에 기대고...잭을 걱정했다.
✲
"네..."
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기 저 산산히 깨져있는 물약들의 여러가지 색들이 어지럽다.
체력 증가,방어력증가,공격력증가,대괴물용 방어 감소물약...등등등 어쩔수없지.다시 만드는수밖에.
"독하다뇨.그냥 상황을 원만하게 하고싶었을 뿐인걸요."
생글거리며 웃는 백은 어느새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다.
"알아요...고마워요.하지만 다음엔...조금 조심하는걸로해요."
...뭔가 어린애 달래는듯한 느낌인데?
"그럼 오늘은...돌아가서 해야할일이 많을것 같아서...이만 가보도록 할게요.감사했습니다..."
물약도 다시 만들어야하고...또 반동으로 자야하고...할일이 많다.
백은 잭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먼저 돌아갔다.
어떻게 된거였더라.
백은 파티가 한참이나 흘러서야 부스스,상체를 들어올렸다.
음료수에 취한것도,고기 냄새에 취한것도 아닌,그저 자기가 자고 싶을때 자버리는 백!
괜히 잠자는 숲속의 백이라는 이명을 가지게 된게 아니었다.
"...으음..."
여전히 콧대를 누르고 있는 두꺼운 안경을 추켜세우며 흐리멍덩한 눈앞에 이리저리 눈길을 옮기던 백이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삐쭉거리며 튀어나온 머리를 정리할 시간도 없이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어딜 가려는 것일까.
흘러내리는 흰색 가운의 주머니에 두손을 찔러넣고서 휘청거리며 걷던 백이 넘어질듯 하다가도 걷고 있는걸 보면 기이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코끝에 흘러내리는 안경에 눈앞이 보이지 않았는지 부딪히는 건,당연한 일이었다.
"아...으...아,죄송합니다..."
사과 마스터 백!
백은 사과의 의미를 담은 미소를 한껏 내비치며 연신 고개를 꾸벅이고 있었다.
✲
술을 마신것도 아닌데 말이다.
연신 휘청거리던 백이 제정신을 차릴 일도 없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저 멍하니 앞을 보았다.
초점없는 흐리멍덩한 눈동자가 멍하니 잭을 보고 있었다.
"...아?음,네...아,잭님이다.안녕하세요?"
전혀 이어지지 않는 물음과 혼자만의 대답과 이름,그리고 혼자만의 인사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백이 이제야 정신차린듯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흘러 내리고 있는 안경을 손수 올려준 잭을 멍하니 보던 백이 언제나처럼 생글생글 웃었다.
...뜬금 없는건 이쪽이었다.
"아뇨,아뇨...전에도 비슷한 일 있었죠...부딪힌건 죄송해요."
고개를 끄덕이던 백이 휘청거리다 벽에 기대어 서서 잠깐 심호흡을 내뱉으며 웃었다.
"...그런데,잭님은...?바람 쐬러 나오셨나요?"
팔짱을 낀채 으슬거리는 가을 밤바람에 팔을 매만지며 물었다.
✲
배가 너무 불러...?
아아,제 귀,들리십니까?배가 너무 부르답니다.이게 무슨 소리랍니까?
백은 멀어지는 정신을 애써 붙잡으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아,쌍방 과실..."
그렇다면 과실의 책임은 몇대몇일까.
...하는 시덥잖은 생각을 하면서.
백은 잭의 가벼운 농담에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몰래...?딱히 많이 먹는게 그렇게 꼴사나운건 아니잖아요...?...아."
그렇게 따지자면 많이 안먹는걸로 핀잔받는 자신도 꼴사나운건가?
백은 미묘하게 고민하다가 미묘하게 시선을 피하는 잭을 멍하니 보았다.
"...아,추운가요...?"
아,그렇게 '행동'했었나?
백은 가볍게 가운 위로 으슬거리던 행동을 자각한것인지 어색하게 연기하듯 팔을 몇번 쓸어내렸다.
그렇네요,하고 대답하듯 고개를 끄덕이던 백이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환하게 웃곤,
"그럼 잠 좀 깨게 저도 산책이나 하러 가야겠어요,제 옆에 잔소리가 심한 아이가 한명 있어서...산책...방해가 될까요?"
안된다면 같이하자는 뉘앙스였다.
✲
...저렇게 말하면 은근히 신경쓰인단 말이야...
...하지만 신경쓰지 말라고 했으니까 안해도 되는거겠지?
다급하게 얼버무리는 잭의 태도에 백의 안에 있던 천사와 악마가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사실은 자웅동체였다.
"그럼요.누가 많이 먹는다고 꼴사납다고 잭님한테 핀잔이라도 주던가요?"
백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물었다.
...잭의 상쾌해진 표정에 금방 백도 웃어버렸지만.
"네에,괜찮답니다...오히려 가운도 벗을 수 있는걸요."
아니,아니지.
그건 행동이랑 너무 반대됐어.
하지만 이미 내뱉은말 주워담을 순 없어서,그저 호기롭게 내뱉은 말이라고 여겨주길 바라며 장난스럽게 웃고말았다.
흔쾌히 답해주는 잭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백도 헐렁헐렁하게 걸음을 옮겼다.
한손은 가운 주머니에 찔러두고,한손은 연신 하품을 해대는 입을 가리면서,
거의 반쯤 감고 있는 눈으로,고개를 꾸벅꾸벅 졸면서 휘청휘청걸었다.
"...으음...아,죄송해요..."
민폐스럽게도 가끔 옆에서 걷던 잭에게 몇번 부딪혀버렸고...
"졸려어..."
혼잣말도 서슴지 않았다!
"...아,이번에 다들 멋있었어요...쉐도우랑...전투말이예요...뒤에 있어서 다 보였거든요."
그리고 더없이 급발진하는 화제 전환!
백은 멍하니 웃으면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
"...양심...?"
양심이 뭐더라.
...으음,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느낌이야.
"그럼 양심님한테 그렇게 전해주는게 좋겠어요...혼자 많이 먹는건 전혀 꼴사납지 않다고 말이예요."
그리고 혼자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잠이나 퍼질러 자도 전혀 꼴사나운게 아니라고...
...내 양심님한테 말해야하나.
"네에,겨울도,여름도 끄덕없어요."
백은 그저 실없이 웃어보였다.
"...음,역시 산책으론 잠이 깨지 않는건가봐요.."
그럼 뭘로 잠을 깨야하는거지?
찬바람 맞으면서 걷는것도 실패라면...뭔가 깜짝 놀랄만한걸 해봐야하는건가?
백은 속으로 고민하면서 잭의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살며시 미소지었다.
"그,'쩔어주는 녀석들'에 당연히...잭님도 포함되는거 아시죠?"
밤바람을 맞으며 걸음을 살며시 멈춘 백이 잭을 보며 웃었다.
코끝에 흘러내리는 안경을 매만지며 스윽 올려두곤.
"역시 '빛'이네요."
좋은 사람 곁엔 좋은 사람만 모이는 법이랬던가.
그러니까 잭에게는 빛처럼 밝고 따뜻한 느낌이 가득한걸지도 모르겠다.
"저도 감사했어요,잭 선배님."
백은 쑥스러워 하는 잭을 보며 고개를 기웃거리다 환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나른하게 웃는 미소를 덤으로,흘러내리는 안경을 스윽 올리며 가볍게 옆머리를 귀뒷쪽으로 넘겼다.
✲
잭의 과장된 전해주겠다는 말에 백은 실없이 웃음소리를 냈다.
어쩐지 율 이외의 사람한테 실없이 웃는다거나,소리내어 웃는건 거의 못한것 같은데...
...정신이 이상해졌나?아니면 성격이 바뀌어버린 건가.혼란스럽네에.
...혼란스러워?...혼란이 뭐더라.
문득 걸음을 멈추며 잘 정리되지 않는 머리를 정리하려 애썼지만 금방 잊어버리고 말았다.
백은 잭의 물음에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잠이 많다고 할까..."
약과 능력의 부작용이라고 할까.
이걸 설명하려면 끝없이 음울했던 과거를 설명해야 하니까...간단하게 생략하도록 할까...
"맞아요.그냥 잠이 많은 타입."
뭉뚱그려 대답한 백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잭을 보았다.
잭의 고맙다는 말에도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던 백이었고,쑥스러워하는 잭이 말을 멈추며 발을 멈추었을 때도 여전히 웃으며 같이 걸음을 멈춘 백이었다.
"..."
하지만 마지막 말은...투정부리면서도 가라앉아버린 잭의 목소리와 '마지막'이라는 잭의 말에 백은 생각했다.
마지막이라고?아쉽네...
...아쉬워?
그런 감정을 느낄 줄 알았던 '괴물'이던가,나는.
아무런 의심 없이 생겨난 감정은 쓰고 있던 미소로 만들어진 가면이 일순간 흔들리게 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백은 미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아무런 말없이 잭을 보고 있었다.
억지로라도 올리고 있던 입술 한쪽 끝이 올라오지 못한채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마음 속 일면을 때린 감각은 걷잡을 수 없이 몰아치는 억센 파도이었다.
백은 한 박자 늦게나마 얼른 잭에게서 몸을 반대로 돌렸다.
...심호흡해,그리고 평정심을 유지하는거야...제발.
"...아,직...마지막은...아니잖아요..."
심호흡과 평정심.
그토록 바랐지만 결국 잘 되진 않았다.
호흡이 흩어져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은 아니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무척 떨려왔다.
항상 햇살을 받으며 꼬리를 살랑이던 고양이같은 나른함은 어디론가 가버린건지.
그러나 한번 무너진 방파제 사이로 밀려오는 파도를 아무리 백이라도 막아낼 순 없었다.
"...아,아...죄송합니다...다시...갈까요?"
갑자기 애가 이상해져선 혼자 말하고 혼자 이상한짓 한다고 생각되면 어쩌나.
백은 비로소 정신을 차린후 미소로된 가면을 얼굴 위로 덮어쓰고 잭을 향해 몸을 돌렸다.
언제나와 같은 미소로,목소리로...그래...잘 하고 있어...잘...하고 있나...?
하지만 묘하게 가라앉은 말투에 모든걸 숨기진 못한것 같았다.
백은 그저 방긋 웃으며 앞을 걸어가려 하고 있었다.
잭과 전혀 눈을 맞추지 못한채.
✲
"...그럴까요...?"
아직 졸업까진 한참 남았는데... 어째서 잭은 가라앉은채였고, 어째서 백은 마지막을 아쉬워 했던 것일까.
무언가 막혀서 나오지 못하는 기분이 이상했다.
이 답답한 기분이 생경해서 백은 제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몇번이나 할 수밖에 없었다.
답답한 마음을 들여다 보아도...다른 '사람'에게서 보고 흉내내는 감정은 껍데기일 뿐이었다. 속이 빈 껍데기. 알맹이는 알수없는 그런 감정들을.
알지 못해도 그저 연기하면 모든게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어째서?
왜?
잭에게만?
"그건..."
그건 그렇지...3학년들이 졸업하면 이제 백이 3학년이 될테고 율이 2학년이 될테고...3학년은...멀리 가버리는구나.
멍하니 생각하던 백이 잭에의해 붙잡아 세워졌다.
진짜...괜찮은거 맞냐고...?
횡설수설.
아무래도 이어지지 못하는 문장을 듣던 백의 투명한 눈동자는 멍한 빛을 담고 있었다.
몇 번의 느릿하고 사소한 깜빡임이 영원처럼 느껴질때, 그제야 백은 막혔던 숨을 토하듯 크게 숨을 들이 마셨다.
"있잖아요..."
백은 여전히 지독히도 나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순하게 쳐진 눈동자가 잭을 곧이 바라보면서도 어딘가 비껴나간 시선을 두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흩어지는 얇은 오묘한 빛의 머리카락을 몇 번 쓸어넘긴 백의 손이 아주 천천히 잭의 손을 붙잡았다.
"...제가 어디 아픈거예요...?아니면...'이건' 뭐예요...?"
백에게는 없는 감정이란 단어를 백은 싫어했다.
어차피 끝없는 연기일텐데.
웃고 울고 아프다고 말하면 그뿐인 생활을 '어머니'는 바라셨기에.
붙잡은 잭의 손이 빠져나갈까 두려워졌다.
백은 붙잡으려 다가갔던 시간보다 재빨리 제 심장에 손을 포개어 올려두었다.
말갛게 묻는 백의 얼굴이 이상하게도 일그러져있었다.
웃는건지,우는건지,아프다는건지 알수없어 보였다.
남들보다 유독 느리게 뛰던 심장이 미약하게나마 가쁘게 뛰어댔다.
잭을 볼때보다 잭의 손바닥을 제 심장에 가져다 댄 그 순간부터 훨씬더.
언제나 창백하게 그지없었던 얼굴에 조금이나마 혈색이 도는건...부끄러워한다는 반증일까.
"...잭님 말대로 그냥...오늘 쉐도우를 쓰러뜨려서 제가 달라져 버린걸까요?"
혹은 그저 오늘을 '기쁘다고 연기해야 하는 날' 이어서?
✲
잭은 알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원래부터 갖고 있던...?
"알 것 같아요...? 그럼 알려주세요..."
몇 번을 생각해보아도 연기했던 감정들은 아닌것 같아.
이렇게 쿵쿵거리는 감각이 어색하고 생소해서 미쳐버릴것 같아.
비상하다고 자부하던 머리는 감정으로만 다가가면 신생아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가 되어서...
아니지,본능에 충실한 아기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제 거라고 말씀해주셨지만,전혀...모르겠어요...
말문이 탁 막힌듯 목구멍 끝까지 솟아오른 말은 채 입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부드럽게 미소지어 오는 잭의 모습에,
심장에 손을 가져다대는 잭의 모습에 낙엽처럼 바스락거리는 제 심장이 요동치는 파도처럼 매서워져서 이젠 더...이상은.
"...졸업...안 하면..."
단지 잭이 졸업한다는 그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된다고?
아쉬워서?슬퍼서?
그렇다고 기쁘다는것도 아냐. 웃음이 나올것 같진 않아.
외로워서...?
백은 붙잡힌 손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서...?
그리고 고개를 들어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잭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건 무슨 '감정'일까?
...하고 궁금해 하는것도 처음이었다.
"저 바보네요...무슨 말을 하는지 정말..."
무언가가 간질간질했다.
재채기가 나올듯 날듯한 느낌.
톡 건드리면 무언가 터져나올것 같은 느낌.
백은 일그러진 얼굴로 무심결에 웃어버리곤 곧장 울어버릴것 같은 표정이었다.
✲
끝내주게 간단해서 들으면 허무할 정도라...
무언가 곧바로 알려주진 않을것만 같아서,
그말에 매달리고 있으면 안되겠다고 느껴서...
하지만 항상 잠자는것 아니면 물약 만드는것밖에 하지 않아서 무엇을 먼저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럼 과거로 가볼까.
아주 과거에...'어머니'의 실험체가 되기전으로.
그땐 평범했던것 같아,기억은 잘 안나지만.
그다음은...
"...네...아뇨..."
졸업 이야기에 갈팡질팡하듯 대답을 망설였다.
졸업을 하면 아쉬울것 같아,하지만 그걸 대답한다면 너무나 이기적이야.
...이 복잡한 기분을 어떻게...
"...제대로 쓰기 어려워...?"
그랬나?
그야 '연기'만 하니 모를 일이었다.
오랫동안 이어진 '연기'를 뚫고 제자리를 찾아가려는 감정이 너무나 무겁고 무거웠다.
백은 잠깐 심호흡을 한번 내뱉고 제대로 젝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감정'을 똑바로 마주하는 잭조차도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걸.
지금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것도 당연하다고 느낀다면,
과거의 제자신을 비추어 본다면,
백은 천천히 잭을 마주했다.
잭의 얼굴을 보고,표정을 보고,
아주 천천히,
머리에서부터 얼굴의 솜털까지 뚫어져라 보았다.
시간이 멈춘것 같은 그때,
잭의 말보다 조금 늦은 백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좋아한다'고...말하는거예요."
'그것'을 말하자 심장 끝까지 요동쳤던 파도가 일렁였다.
이제야 제대로된 퍼즐조각을 찾은듯 했다.
답답했던 느낌이 사라지고 나서 몇 초 후,
더욱 요동치는 심장에 어쩔줄 몰랐다.
불이 난듯 생경한 감각에 온몸이 떨리는것 같았다.
"...좋...아한다...고..."
그건 '어머니'가 말하던 '사랑'과는 달랐다.
온전한 내 감정이야.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좋아한다고 말할래요."
백은 부들거리는 손으로 잭의 손을 꽉 잡곤 힘겹게 웃어보였다.
'연기'가 아닌 미소를 보여주는건 아직 어렵겠지만,
지금 이 순간은 '연기'가 아닌 제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기에.
좋아하는 잭에게만은.
✲
"진심은..."
역시 싫어.
그렇게 대답하면 돼.
백은 잭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진지한 상대에겐 진지하게 대답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네...예요."
죽기전까지도 모른다면,
조금은 내려놓아도 괜찮을까?
이걸로 똑같아졌다며 환하게 웃어보이는 잭을 보던 백도 살며시 웃어보였다.
역시 진짜는 어려워,지금은 '연기'여도,
죽기전까지 모를 그감정을 계속 찾는것만으로도 의미있지 않을까.
그제야 백은 언제나처럼의 '미소'를 순수히 보여줄수 있었다.
다시 찾아쓰는 가면이어도 조금은 얇아진 가면을.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로 괜찮다면,
백은 그저 잭을 바라보며,
그저,
좋아한다는 그말을 곱씹으며 한없이 잭을 볼 뿐이었다.
이렇게 좋아하는 누군가를 본다는건 이렇게나 마음이 떨리는 일이었구나.
생각하며.
- 한 휘
- 너는 눈을 떴어.
안경을 끼지 않은 눈은 대단히 동그랗고 커다랬지.
짙은 속눈썹과 무거운 눈꺼풀을 지나 눈을 몇번 깜빡이면 시야가 조금도― 돌아오진 않았지만.
"...아."
너는 바보같이 주위를 두리번거렸어.
그렇다고해서 아무도 없는 반에 누군가 있을리 만무했지만 말이야.
너는 그제야 알아차렸어.
안경을 가지고 오지 않아 오늘 수업은 말짱 도루묵이 되었고, 그 길로 잠에 빠져 환한 낮이 어두컴컴한 밤으로 변해버렸다는걸 말이야.
너는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났어.
하루종일 먹지 못한 몸은 조금 휘청거렸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살을 아무도 보지 않는 틈에 엄청나게 구겨버리곤 말이야.
너는 천천히 아무도 없는 교정을 걸었어.
오늘 하루 안경을 가지고 오지 않은 너를 조금 탓하면서.
그리고 항상 그렇잖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에 누군가와 부딪혀버리는 그 일은 흔한 일이었지.
"죄송합니다."
너는 구깃한 눈살을 황급히 펴며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띄우며 연신 고개를 꾸벅거렸어.
너의 얇고 결 좋은 옅은 하늘빛과 노을빛의 머릿결이 연신 살랑거렸지.
✲
너는 나직히 들려오는 정중한 사과의 말씨에 동그란 눈을 조금 더 크게 떴지.
그러나 그 커다란 눈은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되돌아왔어.
예의 그 사람 좋은 웃음이 얼굴 전체에 도포하듯 퍼졌지.
"죄송합니다."
너는 다시금 사과를 하면서 생각했어.
이제 다시는 변신하고서 지쳤다고 안경 끼는걸 잊어버리지 않으리라.
"아... 시간을 안 보고 잤다가 이제 깨어난 모양이예요."
너는 조금 부끄러운듯 뺨을 긁었어.
눈꺼풀이 커다란 눈을 반쯤 가려져 시선을 아래로 두었지.
너는 부끄러움에 제대로 상대를 바라보지 못했어.
어쨌든, 본다고 해도 아주 흐릿하겠지만 말이야.
정중한 말투에 질책은 묻어나오지 않았지만, 너는 왠지 질책받은 기분이 들었어.
"그, 죄송합니다..."
그래서 왠지 한번 더 사과를 해야할것만 같았지.
✲
너는 아래로둔 시선을 깜빡였어.
희고 얄쌍한 무언가가 눈밑을 아른거렸어.
잠깐 멍하게 그것을 바라보다가 너는 퍼뜩 손이란걸 알아차렸지.
자고 일어난 손은 퍽 따뜻하고 포근했지.
너는 가볍게 맞잡은 손을 위아래로 흔들고선 상대를 보며 웃었어.
마치 상대가 웃는 틈에 따라 웃는듯한 느낌이었지.
그리고 너는 상대의 곁에 녹빛의 무언가가 상대의 곁을 날아다니고 있다는것을 인지했어.
정령일까― 너는 짐작하고선 상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어.
"아, 그렇군요."
그리고 되돌이표를 쓴듯 다시금 죄송하다는 말이 나오려던 입을 다물었어.
옅은 푸른빛 눈이 연신 깜빡이며 상대를 바라보았어.
한 휘― 그 이름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어. 빛날 휘, 빛날 휘, 아름답구나.
"백. 백이예요."
그에 비해 아무것도 없는 단출한 너의 이름은 비교되기 십상이겠지.
그래도 상대를 바라보며 여전히 미소를 지었어.
상대의 말에 너는 고개를 끄덕였어.
"아, 그런데 제가 방해를 한 것 같은데... 산책 중이셨나요? 금방 비켜드릴게요."
너는 허둥지둥 주위를 둘러보았어. 그래봤자 보이는건 없을텐데도 말이야.
상대야 어떻든, 너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곤 조심스럽게 옆으로 비켜났어.
✲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너는 조금 너스레를 떨며 그 이야기를 끝냈어.
선명한 대답이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흐릿하게 어물쩡 넘어가고 말았어.
다시 돌아온 두 손을 단정히 옆에 놓아둔채였지.
상대의 물음에 너는 잠깐 고민하는듯 하면서 고개를 기웃거렸어.
결 좋은 옅은 하늘빛과 노을빛의 머리도 조금 기울어졌지.
"아뇨, 그냥 단지 잠이 많은것 뿐이예요. 낮밤이 뒤바뀐채로 생활하는건 아니예요."
너는 조금 장난스럽게 웃으며 양 손의 집게 손가락을 교차해 보였어.
작은 엑스자를 만들었다가 금방 손을 풀어버렸지.
상대를 피해 달아나던 몸이 멈칫했어.
너는 심심하던 참이라던 상대를 그냥 내팽겨치는 사람은 아니었지.
상대의 손가락을 따라 유심히 정령을 바라보았어.
상대의 옆을 붕붕 날아다니는 정령이 희미하게 보였어.
"아, 심심할만도 하네요."
너는 가볍게 고개를 한번 끄덕이곤 그 끄덕임과 비슷할 정도로 가볍게 웃었어.
"저도 깨고나서 심심한 참이었거든요. 아, 드시겠어요?"
너는 주머니에 있던 작은 초콜릿을 하나 꺼내 보였어.
제발 좀 먹으라고 손에 쥐어주었던 친구의 얼굴이 생생했지.
먹지도 않는 너의 손에 있는것보다, 먹을것 같은 상대의 손에 있는 편이 행복할거야.
✲
"한자요? 글쎄요... 제가 한자를 잘 아는 편은 아니어서요."
너는 진지하게 상대에게 대답했어.
너의 비상한 지식으론― 사실은 모를리가 없었겠지만 말이야.
"에이, 아직 학생인데 낮밤이 바뀌면 되나요? 아, 학생이 아니더라도 바뀌진 않을테지만요."
상대의 유쾌한 목소리에 덩달아 너의 미소도 커졌고, 목소리도 조금 더 발랄해졌어.
여느때와 다름없이 웃어보였지.
손 안에 초콜릿이 사라진 기분이 들자 더욱이 환하게 웃어보였어.
"맛있나요? 친구가 엄청 맛있는거라고 했거든요."
왠지 덩달아 하지 않아도 될 말도 해버렸어.
너는 조금 들뜬 기분을 애써 가라앉혔어.
아직 쌀쌀한 찬바람에 빨개진 볼을 살짝 매만졌지.
✲
너는 흐릿한 눈앞에서 상대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알아차렸어.
그 이름에 대해 무척이나 궁금해하는듯한 느낌이었지.
하지만 너는 그것을 모르는척 그저 웃어보였어.
"한자 공부를 좀 해야겠네요."
너는 여전히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지.
"근데 그게 쉽지가 않아서 말이예요."
생활 루틴을 가능한한 낮에 맞추는게 좋다는 상대의 말에 너는 소리내어 웃었어.
그게 쉬웠다면 이미 했을텐데 잠이 많아도 너무 많은 너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지.
분명 여태까지 잤던 너였지만 지금도 잠이 몰려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면, 말 다한거겠지.
"아, 친구가 들으면 좋아하겠네요. 그렇게 전해주도록 할게요."
물론 너는 네가 먹었다는 전제 하에 친구에게 전할 셈이었어.
제발 좀 먹으라고 손에 쥐어준 초콜릿을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고 말해버리면 목이 졸릴지도 모를일이니까.
너는 그저 상대를 바라보며 웃었어.
✲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너는 잠깐 눈을 깜빡이며 어깨를 으쓱였어.
상대가 그렇다고 말한다면 그렇게 여겨야겠지.
"하긴. 저도 철저하게 해보려고 노력은 해봐야겠네요."
너는 잠깐 고심했어.
그렇게 노력을 해봐도 안될 일이 있는데, 잠자는게 그런 일이었으니까 말이야.
밥 시간까지 거르고 잠을 자니 말 다했지.
"네. 잘 전해드릴게요."
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어.
상대의 호탕한 웃음에 덩달아 소리를 내어 웃었지.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어.
햇빛이 없는 밤하늘은 고요하게 빛났지.
너에겐 아주 흐리게 보였을 뿐이었지만.
너는 다시 상대를 바라보며 추운듯 팔을 가볍게 쓸었어.
"이제 가봐야할 것 같아요. 감기에 걸리면 큰일나거든요."
너는 조금 아쉬운듯 말을 이었어.
감기에 걸리면 물약 제조에 큰 차질이 생길테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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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리스 캐럴
- 와장창.
연약하진 않았던 물약병들이 모두 깨진건 백의 의도가 아니다.
백이 길바닥에서 몰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물약이 가아드윽 담긴 가운 주머니 그대로 딱딱한 길바닥 위로 쓰러진게 잘못이라면 잘못이겠지.
"..."
온 몸에 알수없는 빨간 액체를 둘러쓰고 죽은듯 쓰러져 있는 백을 본다면 누구나 그런 반응일거다.
소리도 지르지 않고 오히려 멀쩡하게 말을 걸어오는 앨리스가 이상한게 아닐까...침착하구나.무서운 아이...
"..."
괜찮냐고 멀쩡하신거 맞냐고 물으며 몸을 흔들어도 백은 일어니지 않았다.엄청난 충격...이 아니면 온화한 방법으로 깨우긴 어려울것 같다.
살아있음을 증명하는건...백의 체온정도였다.
✲
...뭔가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앨리스가 소리를 질러도 백에겐 평온한 대화였다.
...이제야 깨어난것같다.
"안죽었어요..."
백은 느릿하게 말하며 눈을 끔뻑였다.
앨리스의 말에 느낌표가 몇개인지도 모르고 아주 태평한 대답이었다.
수근거리는 사람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백은 빨간 액체들을 그대로 내버려둔채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비틀거리니까 진짜 다친것같다.
...좀비...?이세계에도 좀비가 있습니까...?
"치유과는 왜 찾아요...?"
그걸 몰라서 묻냐는 말이 나올정도로 천연덕스럽다.
백은 눈을 깜빡거리다 그냥 나른하게 웃는다.
...누가보면 미친사람인줄 알기 딱 좋다.
✲
평온하다가 다시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앨리스에게 짤짤이를 당하던 백이 흔들거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으,아,아,아,니,이,거,제,피,아니,예,요"
오오오오오....
한참 늘어지는 백의 말이 하얀 가운에 쏟아진 빨간 액체를 보았는지 아직도 웃는 얼굴로 앨리스에게 말하고 있었다.
"아,직,하늘나라,가긴,젊어서"
어어어어어....
짤짤이 당하니까 뭔가 머리가 띵해.
백은 하얀 가운을 펄럭였다.
빨간 액체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보라!
딸기...체리...사과...아무튼 빨간 과일의 냄새 여러종류가 섞여 달달한 냄새가 난다.
아무래도 냄새로 피가 아님을 증명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
남의 피라니.
백은 앨리스의 말에도 미소짓는걸 멈추지 않는다.
"아아...그렇죠..."
그렇다...오는데 순서는 있지만 가는데는 없다.
하지만 백은 그말을 가볍게 넘기며 대답했다.
확실히...
백은 넘어오는 말을 다시 삼키면서도 평온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뇨,아뇨.괜찮아요.그렇게라도 안하면 안일어나니까요."
이미 더한것도 당해본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백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하다.
✲
아이고 머리야...
"아,아,아아...울진 마세요."
백의 얼굴과 손이 좌우로 세차게 흔들거린다.
울지말라고 하는것치곤 웃고 있는 모습이...
"아뇨,정말 괜찮아요...친구들도 그렇게 깨우거든요.거기다...쓰러진줄 알고 깨우신거잖아요..."
백은 정말로 괜찮다는듯 가벼운 목소리였다.
아주 상큼하게 웃고는 옷을 탈탈 털고 허리를 쭈욱 폈다.
그리고 가운에 완전히 젖은 빨간 물약을 보곤...
"아...다시 만들어야겠네요..."
다시 만들어야한다면서 평온하기만하다.
✲
"그럼 다행이구요."
그다지 부정할 생각은 없었는지 백은 나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그리고 이어진 물음에 상큼한 대답을 그대에게.
백 같은 경우엔 잠자는 공주보다 더한 잠에 빠져들어 그렇게 깨우는것 뿐이지만.
"?...네.그럴게요."
뭘 힘내야하는진 모르겠지만 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하루종일 체리향 나겠다..."
백은 가운을 킁킁거렸다.
"뭐...그것도 나름 좋네..."
....느긋....느....긋.......
✲
"집어던지기도 하는데요 뭘."
백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웃으며 대답했다.
Q...친구를 집어던지기도 하나요?보통?
A아뇨.
"...아.혼잣말이었어요..."
가볍게 대답한 백은 하얀 가운을 벗었다.
...오 웬일.
그야 빨간 가운 보고 기겁할 제2의 앨리스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그런데...어디 가시는 길인거 아니었어요?제가 붙잡아 뒀나요?"
가운을 고이접어 팔에 걸치고 고개를 기웃거리며 앨리스에게 물었다.
✲
"농담이었어요."
진담으로 받아들일줄은.
그 멍청한 미소를 보고도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앨리스에게 존경의 의미를 보냅니다.
"그럼 혼잣말이 아니라 농담으로요."
느긋한 말바꾸기다.
"아...산책...여기 산책하기 좋은 코스가 있죠...율도 자주 간다던데..."
느릿느릿해도 할말은 다 합디다.
바보는 아니었어.
✲
"아하하.귀여우셔라..."
아하하.저기 돌멩이 귀엽다.
아하하.떠다니는 구름 귀엽다.
아하하.숨쉬는거 귀엽다.
앨리스의 얼빠진 표정에 감상평을 내놓은 백이 느긋하게 웃는다.
"헤....아닌데...."
아아주 급진적인 말바꾸기 맞습니다.
앨리스의 물음에 주변을 요리조리 둘러보던 백이 산뜻하게 웃는다.
"저기로 가면되요.따라와요."
...백을 믿으십니까?
혹시 믿지못할 이를 믿는것은...?
호기롭게 백이 성큼 걷는다.
✲
"두개네요?"
앨리스의 손가락을 본 백이 상큼하게 웃으며 말했다.
숫자를 못세는 멍청이가 아니라는것을 입증한 순간이다.
"안쓰러져요..."
아마도.
백은 고개를 기웃거렸다.
자는것은 백이 어떻게 할수없는 부분이다.
"여기서부터 시작이예요."
느릿하게 걷던 백이 멈추어선 곳에 잘가꾸어진 산책길이 있었다.
우거진 나무들에 둘러져있어 얼핏보면 나무덩쿨같았지만 확실히 가까이 오니 산책길이다.
백이 앨리스가 지나갈수있도록 나무덩쿨을 치워준다.
"먼저 지나가세요."
언제나그렇듯 느긋한 미소도 함께.
✲
"안경 벗으면 네개...여덟개로 보일지도요."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니?
백은 안경의 자리를 다시 잡아주고 느긋하게 걷는다.
"네,네에...진짜요..."
대답은 잘한다.
그러니까...쓰러져 자는건 자기도 모를 일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게 눈꺼풀이라니까...
"아...감사할것까지야..."
백은 느긋하게 웃었다.
좋은게 있으면 공유해야지.
율도 그렇게 말했고...
"감사 인사는 율에게 전하는게 나을것 같네요..."
아마 율이라면 엄청 기뻐해주겠지.
✲
7.2. 이벤트에서 ¶
- 이벤트는 이 율과 함께 진행됩니다.
- MT
- "안― 녕 하세요!"
"안녕하세요."
백과 율, 그리고 보이진 않겠지만 훤도 건물 앞에 도착했다. 백의 가방은 묵직해보였고, 율의 가방도 백의 것 못지않게 묵직해 보였다. 휠체어에 대롱대롱 매달린 다른 가방들도 언뜻 보였다.
꽤 신나 보이는 율은 손을 들어서 인사했고, 백은 여전히 미소를 가득 지은채 차분하게 인사를 건넸다.
"기대되네요. 그렇죠. 훤님, 백님?"
"그러게요. 재밌게 놀아봐요."
왠지 율이 더 신나보이는건 기분탓이 아닐지도 몰랐다.
✲
"꽃놀이, 바베큐, 휴식!"
율은 상당히 기분 좋아보였다. 생기없이 아파보였던 두 뺨에 조금 발그란 빛이 들어온듯 싶었다. 율은 혼자 소곤거리듯 말하다가 두 손을 꽉 쥐었다. 굉장히 힘이 넘치는 파이팅 포즈같았다.
정현이 가져다준 팸플릿을 보며 더욱 상기된 표정이었다.
"질문! 음... 질문은 없는것 같아요."
"저도 없어요."
백은 율의 들뜬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받았던 팸플릿은 잠깐 스윽 보고 말았다.
"오늘은 제가 에스코트 해줄테니까 걱정마세요."
백은 율에게 다가가 자상한 오빠인척 했다.
"고마워요, 백님."
율은 백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
백은 정현의 대답에 웃었다. 그리고 율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백이야 혼자 쓰는게 더 좋았으나, 율 쪽은 다른 여자친구들과 지내는게 더 좋아보일것 같기도 했다. 아무래도 혼자 휠체어에서 오르내리기엔 꽤 힘들지 싶었다.
"다른 분들이랑 같은 방 쓰고 싶은데요? 다 같이 있는거 처음이에요."
율은 자기 몸의 상황보다는 그냥 다른 사람들이랑 방을 같이 쓰는데 로망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웃고 있던 백과 율은 정현의 말에 웃는 얼굴을 조금 누그러트렸다.
"네. 알고 있어요."
백은 대답했고 율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 위험한 곳을 혼자 언제 들어가신거예요? 그것도 몇번씩이나?"
율은 놀란듯 두눈을 커다랗게 뜨고 정현을 바라보았다.
백도 아무말도 하진 않았지만 놀란 듯 했다.
"다른 분들처럼 도와드리곤 싶지만 몸이..."
율은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중얼거렸다.
백은 놀란 표정을 지우고 웃었다.
"필요하다면 물약을 지원해드릴게요."
- 캠프장
- 백은 문자를 받고 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간단히, 율을 도와주려고 간것이었다. 같이 있던 정령은 어디갔는지 혼자 끙끙거리고 있던 율을 휠체어에 태우고 온갖 옷가지들을 칭칭 감아두니 납치할 것만 같은 느낌이 없잖아 있었으나 괜찮다. 납치가 아니라 바베큐장 가는걸 도와주려고 할뿐이니까.
"오랜만에 고기를 먹게 됐네요. 율은 어때요?"
"으음... 조금이라면 괜찮을지도 몰라요."
바베큐장으로 들어서자 이미 맛있는 고기 냄새가 주변에 퍼져있었다.
"안녕하세요. 리더님들! 먼저 와계셨군요? 저도 도와드릴걸 그랬네요."
"안녕하세요. 정현선배, 승연선배."
백과 율은 나란히 고개를 꾸벅 숙이며 정현과 승연에게 인사했다. 백은 강아지마냥 코를 킁킁거렸다가 율의 휠체어를 끌면서 물었다. 적당한 자리에 멈춰서 의자 하나를 치우고 율의 휠체어를 세웠다. 어쨌든 도와주는 역할이었으니까 백도 옆에 나란히 앉았다.
"뭐 먹고 싶은거 있어요?"
"파프리카라던가, 당근이 있으면 좋을텐데요."
"그거야 만들면 되죠. 아, 샐러드랑 음료수도 있는데 줄게요. 잠시만요."
백은 다정한 오빠처럼 율을 대했다. 바로 바베큐 꼬지를 하나 들어 고기 몇개를 빼내고 주변에 있던 야채들을 끼워 굽기 시작했다. 샐러드도 율의 앞에 가져다 놓고, 음료수도 따라 율의 앞에 가져다뒀다. 율은 굉장히 미안한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죄송해요. 훤님이 계셨으면 안하셔도 되는 일이었을텐데..."
"괜찮아요. 친구들이랑 선배들이랑 같이 놀려고 보낸거잖아요? 그리고 불 가까이는 위험하니까요. 아, 식기 전에 먹어요."
...다정하지 않은가?
✲
"기분 좋아보이네요. 율."
"네? 그렇지만 정말 재밌었는걸요. 후후."
한바탕 게임이 끝나고 백은 얼굴 가득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율에게 말을 건넸다.
율의 창백하게 아파보이던 얼굴에 살짝이나마 화색이 도는것 같았다.
아마 친구들과 선배들과 게임하는게 재밌었던것 같다.
율은 당근을 오독오독 씹어먹으며 흘러내리는 담요를 끌어올렸다.
그것을 본 백이 흘러내리는 담요와 흐트러지는 옷가지들을 정리해주었다.
- 회식
- 백과 율은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휠체어가 부피가 크다보니 이동에 어려움도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통행에 방해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백은 어쨌든 율을 케어해줘야하는 입장이었으니 같이 하기로 했고, 혼자 두면 심심하기도 하니까 율과 같이 있었다.
"수학여행이래요. 율. 기대되네요."
"그러게요. 기대되요."
"율. 뭐 마시겠어요? 콜라? 사이다? 탄산없는걸로 드릴까요?"
백은 여전히 눈이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지으면서 율에게 음료수를 권했다.
"...오렌지 주스가 좋아요."
율은 탄산을 마시고 따끔거리는 목을 경험하고 싶진 않았는지 탄산없는 음료수를 받아들었다. 둘은 승연의 신호에 맞춰 잔을 들어올렸다.
"건배!"
즐거운 회식이될 것 같다.
- 수학여행
- 율이 오랜만에 백을 끌고 수학여행 마지막날을 즐기려고 하고 있을때, 갑작스런 연락이 도착했다.
"리더님이네요."
"아까 방송도 그렇고, 심각한 상황인가봐요."
율은 당황스런 표정으로 휴대폰과 백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느새 나타난 훤과 함께 리조트의 로비로 재빨리 내려갔다.
백은 지원과인 저는 아무런 도움이 안될텐데요... 하고 중얼거리면서도 이 상황에 대해서 무섭다는 표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에 비해 율은 상당히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ur급이라니..."
율은 토끼 모양 담요를 꾸욱 붙잡았다. 옆에 서있던 백이 아무말없이 율의 어깨를 토닥였다.
✲
휠체어를 타고 있는 율은 조금 떨어져서 승연의 말을 듣고 있었다. 백은 조금 가까이 다가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함께 들었다. 훤이 율의 옆에서 율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훤님..."
잘 할 수 있을까요. 율의 불안한 시선이 훤에게 닿았다. 훤은 율을 바라보며 웃어주었다. 불안한 마음이 그 미소에 조금 사라지면 율은 잠깐 한숨을 내쉰다.
"아무리 바빠도 다치는건 싫으니까 천천히 걸어왔죠."
"휠체어라서 빨리 달려올 수도 없는걸요."
백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농담을 했다. 율은 백의 행동에 키득거리며 대답했다. 훤이랑 백덕에 어떻게든 괜찮아진것 같다.
훤은 크로우의 손짓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그래도 훤은 율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중이었다.
"언니도 조심해."
"아무도 다치지 않게 물약 조달도 잘 할테니까 걱정마세요."
백이 주머니 가득한 옷을 입고 온 이유가 있는듯 여기저기 불룩한 주머니를 토닥거렸다.
✲
나... 게임은 별론데. 백이 중얼거렸다.
율은 머리 위에 있는 빨간색 막대기와 파란색 막대기를 보았다.
옆에 있던 백이 털썩 주저 앉았다.
"여기서 물약 만들고 있을게."
어쨌든 백은 할 일을 다 하기로 했다.
율은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망설이는 모습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벌써부터 싸우려 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런 사람들은 이때다 싶어 싸우려는걸까? 마녀가 국민의 일원이 됐다 하더라도 정서는 빠르게 따라오지 못하는 법이었다.
"아무리 나쁜 사람들이 많다곤 하지만 역시 괴물은 정말 본능적으로 행동하는군요."
사실 근본적인 원인인 쉐도우를 없애면 되는것이겠지만 ur급 괴물을 이곳에 있는 모든 인원을 지키면서 싸우기란 엄청난 무리가 따르는 법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 율은 잠깐 생각해보기로했다.
✲
백은 털썩 주저 앉긴 했지만 아직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사실 괴물을 죽이는 물약이나 아군을 강화시키는 물약만 만들줄 알았지...거기다 무슨 약을 만들어야하는건지도 모르겠다. 일단 지금은 말리려는 사람이 많긴 한것 같은데...그야말로 폭풍전야구만.
"혹시나 이게 환상 마법에 속하는...그런건 아니겠죠? 아무리 ur급이어도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마법은..."
정현의 혼잣말에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바라보던 율이 물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시야가 좁아지니까, 다들 천천히 생각해보는게 좋을텐데요. 평정심, 마음의 평화, 넓은 시야. 쉽지만 어려운 일들이겠지만요."
백은 무릎에 팔꿈치를 대고 뭔가 다른 세상 사람들을 얘기하는듯 한숨쉬면서 중얼거렸다.
✲
일단 사유의 중재에 다들 흥분을 가라앉히자 다행이라고 여겼다. 일단은 말이다. 일단은...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말리 상황을 역전시켜야 할 텐데...
"대피소로 들어가려고 할때 밝은 빛이 터져나왔으니까... 그 주변에 중심핵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율이 고심끝에 말했다. 백은 빈 물약병을 승연에게 흔들어보였다.
"리더님. 가슴 통증에 좋은약이라도 만들어줄까?"
의외로 정상적인 물약도 만들줄 알았나보다.
✲
백은 승연을 그냥 바라보다가 정현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승연이 거절할건 알고 있었고, 그냥 만들 생각이었다. 대괴물 물약도 아니고, 그냥 가슴 아플때 쓰는 약은 일반 화학적 지식과 약학 지식으로 만들수 있었기에 부작용도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과학뇌란 편리하구나.
vr게임기기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려할때 무언가 상황이 변했다. 백과 율이 있는 곳에선 훤이 가장 먼저 알아차려서 율을 보호하며 휠체어를 밀어 넘어지지 않게 보호했다. 백도 나른한 모습은 어딜갔는지 얼른 몸을 피해 간신히 밀려 넘어지진 않았다.
"휴우...거참 되게 과격하신 분들이시네요."
백은 율을 살피며 과장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보이는...신기루의 요정?역시 그건 마법의 일종이었구나. 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꽤 재밌었어요. 사람들이 위험할때 어떤 본능이 일어나는지 알수 있었고 말입니다."
백은 웃었다. 이 상황에서도 웃는건....좀 이상해보였다. 과학뇌란 좀 이상하구나. 너무나 이성적이야.
율은 흘러내리는 토끼모양 담요를 간신히 붙잡아 놓고 다시 가지런히 정리했다. 아무말없이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
허...백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악랄하기로는 정말 악랄하구나.괴물이란 존재는.마녀와 인간과는 다르다는걸 뼈저리게 느끼고 말았다.
hp게이지가 빠르게 깎이는 그 모습에 혼돈이 된것은 물론이었으나...우리 이외에 다른 누구도 막지 못할거라는 생각은 없었다. 난세에 영웅이 태어나는 법이고, 영웅은 굳이 특별한 히어로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될수 있는 법이었다. 그러니까... 다들 정신만 차리면 될텐데.
"퍽이나 재밌겠습니다..."
백은 중얼거렸다.
율은 이어 보이는 메시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녀는 어차피 차별 당하는 존재고 인간은 어차피 이기적인 존재라는 말에 큰 슬픔에 잠겼다. 그 어차피란 말 속에 들어있는 인간이자 장애로 차별받는 이 율은 그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말처럼 들렸으니까.
훤은 율의 표정을 보았는지 얼른 율을 토닥여주었다. 율은 곧바로 울것같은 표정으로 훤을 향해 상체를 돌려 훤의 허리를 붙잡아 안았다.
""저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인간이나 마녀가 있을 수 있다는거, 그렇게 조종하는걸로 너의 생각을 관철하려하는건 정말 큰 잘못이라는걸 알려드리고 싶네요."
초점없이 아우성쳤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단지 쉐도우에게 조종당했을 뿐인 불쌍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백은 실소를 머금은채 말했다.
도대체 저렇게까지 해서 어차피 마녀, 어차피 인간이란 존재를 만들고 싶어하는 쉐도우...괴물의 마음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역시 괴물은 없애버려야 마땅한 존재였다.
- 에스텔라 개인이벤트
- 하나뿐인 생명
백은 오늘도 열심히 물약을 만들며 갈려 나ㄱ...아니, 즐거운 물약 만들기와 기절을 반복하고 있었다.
울릴리 없는 휴대폰이 울리자 백은 손만 움직여 휴대폰을 찾아 고개만 살짝 들어 문자 내용을 확인했다.
백은 여분의 물약을 챙겨 느릿느릿 양호실로 향했다.
양호실로 가는길에 율을 만났다.
율은 정원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열중을 하고 있다가 문자를 받은것인지 완전히 사색이 되어 있었다.
백은...정말 미세하게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율에게 다가가 떨어진 스케치북과 연필을 주워서 정리해주고 휠체어를 밀었다.
양호실에 도착하자 이미 다른 학생들은 온것 같았다.
죽은듯이 자고있는 에스텔과 그 옆을 지키듯 쓰러진 정령 크로우의 모습에 율의 몸이 떨려왔다.
백은 한손으로 율의 어깨를 토닥이며 에스텔과 크로우에게 다가갔다.
"괴물에게 습격을 당했다..."
백이 문자 내용을 곱씹으며 혼잣말을 했다.
-
백은 율의 휠체어에서 떨어져 크로우와 에스텔의 얼굴을 보았다.
언제나 상냥하고 어딘가 나른해 보이는 백은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런 동요없는 표정이었다.
율은 휠체어를 밀어 에스텔의 가까이 다가갔다.
"에스텔 언니..."
율은 금방이라도 울것같은 표정으로 에스텔의 이름을 떨면서 불렀다.
유린처럼 밖으로 보이는 반응은 아니었지만 율도 꽤 분노하고 있었다.
...그렇게 안보이겠지만.
백과 율은 양호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돌아올 선생님을 기다린다.
그동안 백은 벽에 기대서 꾸벅꾸벅 졸았다.
...정신은 나가지 않았다.
-
백은 안면이 있는 지원과 선생님이 양호실로 들어오자 정신을차리고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선생님의 수정구슬에서 보이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마지막에 에스텔이 쓰러지는 그 모습에 율은 가까스로 뜨고있던 눈을 질끈 감았다.
선생님들이 기숙사로 돌아가라는 말에 순순히 돌아갈 백이 아니었다.
"물약이 더 많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네요."
백은 선생님들 눈을 피해서 수십개의 눈이 달린 SR급 괴물을 보고싶다는 말을 돌려서 말했다.
"만약 에스텔 언니와 크로우씨가 살아있다고 그 괴물이 판단한 순간, 여기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겠죠?"
그럼 이 사실을 안 여기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해야할까.
율은 휠체어를 밀어 백에게 다가갔다.
-
"에스텔 언니...!"
에스텔이 깨어나자 백에게 다가갔던 율이 다시 휠체어를 밀어 에스텔에게 다가갔다.
어느새 눈물을 흘릴듯 에스텔을 걱정 가득한 눈으로 보았다.
"괜찮아? 지금 중요한건 언니의 몸상태야."
율은 그래도 꽤 던호한 표정으로 에스텔에게 말했다.
목소리는 엄청나게 떨리고 있었다만...
"크로우씨... 에스텔 언니..."
율은 무너져내려 어깨를 들썩이며 검은 액체를 뚝뚝 흘리는 크로우와 앞에 있는 에스텔을 보곤 아무말도 할수없었다.
백은...뒤에서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복수의 아이즈
"암속성인 저도... 눈이 많다면 눈을 감게 할 순 있지 않을까요?"
그거랑 그거는 다른가?
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훤님의 검에 암기를 담는것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 눈 앞을 암흑으로 만드는거라면 할수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sr급이라면... 자기 기척을 감출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일단 r급과는 격이 다르다고 생각을 했으니까.
백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탐지 물약은 만들 수 있는데... 물론 자기 기백을 완전히 감춘 sr급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요."
백은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율은 어쨌건 일단 훤을 소환해놓았다. 일단 미리미리 준비하는게 맞는거겠지...
-
아이즈라고 불린 작자가 있는 곳에 백과율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사유 앞에 경고처럼 광탄이 날아오자 율의 앞을 가로막은 백이 사유앞도 가로막곤 사유에게 소곤거렸다.
"일단은 평정심. 평정심이 제일 중요해요. 아무리 도발하더라도 냉철한 판단력 앞에선 지기 마련이예요."
혹여 사유가 욱해서 도발에 따라갈까봐 말리고선 백이 사람들의 뒤로 물러나 물약 제조를 시작했다.
"에스텔 언니가 살아있으면 어쩌시려구요? 당신이 에스텔 언니에게 갈 일은 절대 없을거예요!"
동시에 율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즈...부숴버리겠어!
나날의 미래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에...
진짜 그럴일은 없고.
백은 수많은 눈을 보고 번뜩이던 그 생각을 위해 실험실에 쳐박힌 채였다.
대괴물용... 아니 아이즈를 위해 특별 제작한 4도 화상 물약들, sr급에 들지 안들지 모를 방어력 하략 물약들...
아직 sr급이 버거운 시기이기도 했고 정말로 될지 안될진 모르겠지만.
백은 하품을 하며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았다.
기숙사에서 율은 생각했다.
아이즈의 수많은 눈은 그의 강점이기도 했지만 수많은 약점이었다.
눈이 빛을 바라볼수 있게하는 도구라면, 어둠은 그와 반대되는 속성.
율은 율이 가진 어둠 속성을 구상했다.
아이즈의 수많은 눈들을 가릴수 있는 어둠을.
...물론 훤과 함께.
-
에스텔라가 기숙사에 없다.
선생님의 말에 율은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니, 이언니가 진짜! 상대는 sr급 괴물이란 말이야!
율은 훤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기숙사 밖을 향했다.
...근데 나와서 뭐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라고 안절부절 하고 있을때 백이 보였다.
실험을 마치고 한결 잠이 쏟아지는 눈으로 기숙사에 들어가서 쉬려고 했던건지...그러다가 연락을 받고 멍청하게 서있었다.
"백님!백님!"
율은 백의 가까이로가 백을 흔들었다.
아...하고 멍청한 소리를 낸 백이 정신을 차리자 율에게 만들어둔 물약 몇개를 줬다.
"일단 예비용으로 받으세요. 그리고 빨리 찾으러가요. 에스텔라."
드물게 정신을 차리고 건실한 대답을 했다.
-
선생님을 따라 에스텔라가 있는곳에 도착했다.
"선생님 말이 맞아요. 에스텔라. 혼자서 싸운다면... 선배 체면이 서지 않는걸요."
백은 말하면서 웃는것도 잊지 않았다.
뭔가 상당히 동떨어진것만같은 느낌이지만...
율은 에스텔라를 보며 울먹거렸다.
"에스텔 언니... 혼자 가지마. 응? 나도 도와줄테니까..."
율은 우럭이됐다.
-
율은 에스텔라의 말에 울먹거리면서 웃었다.
"진짜아...바보야...!"
바보같은 행동에 욕을 해줬...율에게는 욕이었다.
울먹거리며 감동의 재회를 할 시간도 없이 아이즈가 등장했다.
뒤에서 멀뚱히 서있던 웃고 있던 백이 웃는 모습을 풀...지 않았다.
sr급임에도 이 여유!
사실 웃는것밖에 모르는 바보였다.
"오...말은 되게 잘하네요..."
백이 한마디 했다.
율의 휠체어를 밀어두고 율의 앞에 막아섰다.
"왠지 저 대사 같은거, 녹음해두면 나중에 두고두고 흑역사가 될것 같네요."
아이즈의 말을 흑역사 취급하면서 나긋하게 웃었다.
...미친것같다.
-
"꺄악!"
아이즈의 공격과 율의 비명소리와 동시에 훤이 순식간에 움직였다.
훤은 율을 어딘가로 데려다 놓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힘이 떨어지게 되고 어차피 아이즈는 저 많은 눈을 날려서 공격해대니 차라리 가까이 있는게 나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율은 눈을 꾹 감았다가 뜨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정신차려야해, 내 정신력이 곧 훤님의 정신력이 되니까!
율이 훤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훤이 바로 아이즈의 눈알을 피하며 검을 꺼내들어 눈알을 베려고 했다.
그 사이 굼벵이와 다름없는 백은...의외로 잘 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흘러내리는 안경을 잡으며 조금 더 안전한 곳에 자리 잡았다.
"물약 필요하신분? 공격력, 방어력 증가, 괴물한테 터트리면 좋은 폭약, 화상, 방어력 감소, 공격력 감소, 이동속도 감소 물약 있어요─"
약쟁이가 됐다.
-
정현 선배님을 보면 말이지...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정말 자유로운 영혼이 생각난다.
저 바람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백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어 이동속도 증가 물약을 들고 슬리퍼를 질질끌며 정현에게 다가갔다.
시원한 바람이 광풍이 되어 휘날리는 광경은...
...대단히 멋있을것 같다.
"정현 선배님의 바람이 더욱 자유로워지길 바랄게요."
이동속도 증가 물약을 넘겨주었다.
-
"왜 괴물들은 항상 저런 멘트를 날릴까요?"
백은 의아한듯 분위기에 맞지 않는 말을 했다.
마지막 일격이라고해도 아무것도 없는 백이 할건 없었다.
그래서 뒤에서 모든이들을 응원해주었다.
"돌아가면 리더님이 1++ 소고기 쏘신데요!"
그런말 한적 없지만 날조했다.
그리고 율은...멀리서 사유의 날아간 팔과 피를보고 두손으로 얼굴을 감싼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중이다.
훤이 마무리 일격으로 검에 어둠 속성의 기를 부여하며 아이즈에게 마무리 일격을 지을동안 율은 부동자세였다.
"아프지않아...아프지않아...다치지 않았어. 이 율..."
피폐해진 정신을 뒤로하며 고개를 푹 숙인채 휠체어를 끌었다.
- 여름 바다 합숙 독백
- 따가운 햇살, 햇볕에 반짝이는 수평선, 푸르른 하늘, 철썩이는 파도소리.
이 모든 것에 율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찰싹이는 바다에 가까이 오자 주위를 둘러보는 까만 두눈이 반짝이면서도 부산스럽다. 휠체어가 멈추면, 율은 휠체어를 끌어준 백을 향해 돌아보았다.
햇빛에 타들어갈듯한 희멀건한 몸이 이런 뜨거운 햇살은 싫다고 소리치는듯 했다. 선크림은 발랐지만, 그래도 얼른 파라솔 안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율만 아니었다면 백은 지금쯤 숙소에서 자고 있었겠지. 백은 어깨에 메고 있던 바람이 들어간 튜브를 챙겨들곤 스포츠용 가방을 율의 휠체어 손잡이에 걸어두었다.
"백님, 백님.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에요. 얼른 바다에 들어가보고 싶어요. 그치만 수영 못하는 저때문에 쉬시지도 못하고..."
우물쭈물거리며 말을 하는 율의 모습은 기쁨과 미안함이 뒤섞인듯 보였다. 백은 그저 미소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그래도 바다에 왔으니까 한번은 들어가봐야죠. 너무 걱정 마세요, 율."
아픈듯 희멀건한 얼굴에 잔뜩 기쁘다는듯 홍조를 띄고 있는데, 그모습을 보면 누가 거절할 수 있을지. 안그래도 백은 율을 순수히 걱정하고 있었기에 율을 도와줄 생각이 가득했지만...
율은 한여름에도 어울리지 않는 목도리를 풀고선 휠체어 등받이에 정리해서 놓았다. 수영복으로 가려지지 않는 왼쪽 볼의 화상 흉터와 목부분엔 전부 방수가 되는 커버시트로 가리고 손부분 마저도 까만 방수장갑을 끼고 있었다.
바다에 간다고 잔뜩 들떠서 산 래쉬가드는 전체적으로 까만색이었으나 어깨부분이나 옆구리부분은 파스텔톤의 주황색이었고, 바지는 남성용인듯 조금 헐렁했다. 여성용은 아주 길거나 아주 짧은 바지밖에 없었기에 아쉽게도, 허벅지의 3분의 2만 남아있는 율에겐 어쩔수없는 선택이었다. 그래도 남성용 반바지는 헐렁했기에 조금 남은 밑부분은 묶어서 꽁꽁 싸맸다.
"머리 묶어드릴까요?"
휠체어의 등받이에서 머리끈을 꺼내들자 백이 웃으며 율에게 물었다. 율이 부끄러운듯 웃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자 백은 능숙하게 율의 머리를 빗어 하나로 모아 높게 묶어주었다.
"고아원에서 여동생들 머리 묶어주던 일이 이렇게 도움이 되네요."
백은 웃으며 율의 머리를 똥머리로 만들어 주었다. 물에 들어가서도 풀리지 않게 꽉 묶어주고선 휠체어에 있는 율을 가볍게 안아들었다. 바다에 쓸려가지않게 율을 지켜줄 튜브도 잘 챙겨서 바다를 향해 성큼 다가갔다.
물에 젖은 발바닥이 시원했다. 철썩이는 파도를 따라 시원한 바다 안으로 율이 놀라지 않게 조심히 들어갔다. 어린아이처럼 들뜬 율의 모습이 보였다. 배부분까지 물이 차오르자 백은 튜브를 물 위에 올려두곤 율을 조심스럽게 튜브위로 내려주었다.
"백님, 백님! 물이 짜요! 앗, 차거! 앗! 밑에 해파리가 지나가요!"
"율, 들뜬것도 괜찮지만...손잡이를 꼭 잡아야해요."
율은 상당히 들뜬것 같았다. 희멀건한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선 백에게 소리쳤다. 백은 율에게 주의를 주곤 튜브를 잡아 유유자적 걸어다녔다.
밀려오는 파도를 타기도 하고, 지나가는 해파리를 보기도 하고, 부드러운 모래 속에 발을 집어넣어보기도 하며 백과 율은 나름대로 각자 즐거운 오후를 보냈다.
- 캠프파이어
- 왕게임!진실게임!
저번에 참 재밌었지...정현 선배한테 프로포즈도 하....고........
에잇!그건 생각하지 않는거야!
"율..-문자 봤어요? 갈거예요?같이 갈래요?"
뭔가 헌팅하는 남자같지만 백이었다.
바다에 들어갔다 나와서 뽀송뽀송하게 씻고 한바탕 자던 백의 머리는 까치집이었다.
눈을 부비적거리며 하품을 한 백이 로비에서 율과 만났다.
"네에!갈거예요!백님도 가시는거죠?같이 가요!"
바닷물에서 놀던 율도 씻은듯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를 자연바람으로 말리면서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그런것치곤 목도리에 마스크에 옷도 몇겹 껴입고 담요도 다리를 가린채였지만...
일단 율의 동의도 있었기에 백은 율의 휠체어를 끌고 펜션 앞으로 나가 정현과 승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전리더님, 리더님."
"안녕하세요! 전리더님, 리더님!"
백은 차분하게, 율은 발랄하게 인사하고서 백은 율의 휠체어를 끌고...다른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을만한 자리를 찾아 나란히 앉았다.
-
1번과 6번.
이렇게 두명이 나란히 걸릴줄은 전혀 몰랐다.
하지만 왕게임은 언제나 장난으로 하는거고 백과 율은 그걸 알고 있었다.
백은 동영상을 보고도 나른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율은...엄청나게 부끄러워 하고 있었다.
백은 율을 마주보고서 입을 열었다.
평온하게 애교를 부렸다.
"있잖아요...쓰다듬어줄래요?...안돼요?"
반말이 존댓말로 어레인지 되었다.
율이 얼굴을 붉히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백이 우럭이 되었다.
"그럼 안아주세요...그것도 안돼요?"
점점더 울상이 되는 백이 갑자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목소리는....평온한데 눈은 우는 이상한 광경이었다.
"그럼 뽀뽀해주세요...그것도...?"
절정에 달하는 백의 연기가 무르익었다.
"해주세요...해줘어...!"
백이 살짝 뒤를 돌아 페이드 아웃 효과를 노렸다.
율이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여도 아랑곳 않는 연기의 신이었다.
백이 언제 울었냐는듯 고개를 다시 돌리곤 평온하게 말했다.
"그냥 제가 하죠,뭐...-"
백이 상큼하게 웃으며 율의 얼굴에 다가가 볼에 뽀뽀했다.
-
애교 다음엔 달리기라니....오늘은 체력이 남아나질 않네요.
"아..."
백은 나른하게 한숨을 쉬고 천천히 일어났다.
율이 옆에서 조그맣게 화이팅...!하고 소리쳤다.
승연이의 이상한 행동에 고개를 기웃거렸다.
"...아...네....?....네...."
뭔가 의미심장한 말이지 않나?싶었지만...
먼저 달리는 승연의 뒤로 느릿하게 뛰는듯 걷는듯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안 너와 나 나라지키는 영광에 살았다아"
노래가 늘어지는건 백의 체력탓이고....
저 멀리 멀어지는 승연이를 보는것도 백의 체력 탓이다.
잭의 질책이 이어지지만 어쩌겠는가.
백은 정규체육 시간에도 가장 늦는 사람인걸...
항상 꼴찌는 이사람 차지다.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 진 전우야아 산봉우리에 해 뜨고 해가 질 적에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아"
그리고 노래가 끝날때까지 백은 돌아오지 않았다........
- 쉐도우
- 백님은 어딜갔는지.
율은 밤바다의 흥취를 알게되어 매일 밤바다를 보러 나왔다.
밤바다는...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좋은 의미로.
"..."
그리고 너무나 기분 나쁜 유령선의 등장에 율은 멍하니 그것을 보고 있었다.
직접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에 몸을 흠칫 떨었다.
"...뭐야...?"
율이 혼동스러워하는 사이 어느새 훤이 나타났다.
백은...자고 있었다.
...쉣.
✲
모르겠다.
진짜 중2에서 멀지않은 나이를 가진 율도 저정도로 중2중2하진 않은것 같은데...
...아냐?맞다고해!맞아!
"..."
어쨌든 오라고 하는 말에 승연은 이미 가버렸고...정현이는 따라갈것 같고 함정이라고...하면서 피하라고 하는게...어쩐지 전에도 들었던 말인것 같아!
율은 어느새 웃음이 싹 가진 얼굴로 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웃고있던 애가 무표정으로 있으니 꽤...무서워 보이...지...않......나.........?
"백님은 알아서 잘 오시겠죠."
분명 자고 있을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더니 에스텔라와 크로우의 말이 들려 그곳을 본다.
"에스텔 언니...!난 걱정하지마!훤님이 계시니까!크로우씨도 감사해요!크로우씨 말대로 훤님은 에스텔 언니의 눈에 눈물나게 하지 않으실테니까."
율이 에스텔의 말에 방긋거리며 대답했다.
그리고...재빨리 휴대폰으로 백에게 문자를 보내는 사이 훤이 재빠르게 어둠을 타고 율의 휠체어 통째로 유령선 안으로 들어간다.
백에겐...[바닷가에 쉐도우와 유령선이 출현했으니 확인 즉시 와주세요. 아마 진짜 쉐도우는 아닌것 같아요.]하는 단출한 문자를 보냈다.
✲
유령선안에 들어서자 보이는건 승연의 등.
율의 불안한 시선이 팀 프로메테우스의 멤버를 찾고 있다.
입만 뻐끔거리는 승연의 모습에 눈을 질끈 감았다.
훤이 율의 어깨를 다독인다.
"리더님을 이용할 생각일까."
율이 훤에게 들릴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일단은...상황을 지켜봤다.
✲
"...사유 선배!"
율은 사유의 등장에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마음속에 잠깐 일어나는 어둠은...율이 가진 어둠과...닮은듯한 느낌이었다.
율은 옆에 있던 훤의 손을 꼭 잡는다.
불안한 마음을 알아차린건지 훤이 율의 손을 잡는다.
그럼...율의 마음도 조금 편안해진다.
애틋한것도 잠시,아직 잠에 취해 비틀거리며 유령선 안으로 들어오는 백이 있었다.
...호랑이 소굴로 제발로 들어오는 느낌일까.
"흐암...재밌어 보이네요..."
아직 상황파악을 못한듯 하품을 하며 들어온 백은 어느새 말끔한 모습이었다.주머니에 수북한 물약이 있었다.
"정령과 안가도 괜찮았잖아요...물약 만들어서 마시면 되는걸..."
백이 중얼거리며 상황 파악을 위해 주위를 둘러본다.
승연은 촉수가 된 어둠에 붙잡혀 있었고...율은...
백은 조금 빠른 걸음으로 율에게 다가가 율의 어깨를 붙잡는다.
주머니에 있는 사탕을 하나 꺼내 다정하게(?)까서 입에 넣어준다.
"자아...머리가 안돌아갈땐 단거예요.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예요."
율은 갑자기 입안으로 들어온 단맛에 미소지으며 백을 보았다.
그리고 잠깐 심호흡을 한 율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원망하고 증오해선...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단걸 모른다는게 아쉬워요."
"맞아요.결국 마지막 발악일 뿐인걸."
백이 나른하게 웃으며 뒷말을 이었다.
어깨를 으쓱하는 백의 얼굴엔 여유로움마저 느껴진다.
"그리고 상태를 잘못 골랐는걸요.팀 프로메테우스에선 마녀를 차별하는 사람들은 없을테니까."
"경계 안으로 본다면...저번처럼 더러운 수법을 쓰려나요?하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우리라면...결국 그 계획은 성공하지 못할것 같네요."
예전 게임장에서 벌어졌던 일을 곰곰이 생각하던 백이 방긋 웃었다.
어둠으로 조종을 하겠다...그것도 숨은 어둠으로 말이지.하지만 그건 알아둬야 할텐데...그 어둠을 이겨낸 사람도 있을거라는걸.
✲
"혹시 필요한 물약이 있으면 말해주세요."
"훤님.부탁드려요!"
도발은 했으나 물약을 지원밖에 못하는 백과 자기 몸을 의지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율이었기에 백은 율의 휠체어를 끌고 이전과는 다른 재빠른 모습으로 고드름을 피해 이리저리 움직인다.
너무 많이 떨어진다면 훤에게 힘이 닿지 않을테니까 조심하면서.
"..."
백은 주머니에 있는 물약을 몇개 꺼내 율에게 건넸다.
정신력 증가,체력 증가,...
"어둠...어둠을 파괴할 빛...그게 직접적인 빛을 말하는건 아니겠죠?"
생각해라.생각해내!
그사이 고드름을 피해 승연에게 다가가는 훤이 있었다.
율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훤은 솟아나는 고드름을 피하고 떨어지는 고드름을 밟으면서 능숙하게 승연을 향해 다가간다.
일단 촉수를 파괴하는게 먼저일까?
훤의 검이 부드럽게 뽑혀나와 칼날 전체에 검은 검기를 둘러싼다.
촉수를 향해 벨듯 칼을 내지른다.
✲
훤은 눈살을 찌푸린다.
얼어버린 검이 무거워지자 검을 고쳐잡은 훤이 순간적인 어둠의 힘으로 얼음을 몰아낸다.
갑작스럽게 힘이 빠져나가자 초조해있던 율의 얼굴에 핏기가 가신다.
"괜찮아요?"
백이 투명한 물약을 따서 건네자 율은 받아 마신다.
편안한 느낌이 온몸을 감싼다.
그 사이에 훤이 이번엔 직접적으로 검을 휘두르지 않고 검은 검기를 여러갈래로 길게 뻗어 만들었다.
여러갈래로 나눠진 검기들은 쏜살같이 승연 주위의 촉수를 향해 달려나간다.
그사이 율은 휠체어를 굴려 고드름을 피해 승연에게 조금더 가까이 다가가려한다.
백이 그것을 저지하자 율이 크게 소리쳤다.
"리더님!저항하세요!이겨내는거예요!저도,팀 멤버들도 여기서 같이 싸우고 있으니까요!절대 지지 않을거니까요!"
아무것도 못하는 율에게 백이 준 물약은...아무래도 성공한 모양이다.
✲
갑자기 포기하는것도 싱거운 녀석이네.
백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승연이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쥔 율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정현이 잽싸게 승연을 밖으로 빼놓자 조금은 안도했다.
"...오."
"..."
승연의 모습으로 어둠이 모여들자...마치 승연의 그림자같았다.
저건 또 뭐람.
"여전히 입만 살았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어쨌든 진짜 승연은 안전한 곳에 있기에 저건...진짜 승연이 아니니까 안심해도 되겠지.
"...율.조금 진정하는게 좋겠어요.입술에서 피날것 같아요."
"...아!앗...아,네,네..."
율이 황급히 손으로 볼을 짝짝 치고 정신을 차렸다.
...개그콤비...?
✲
백은 여전히 웃으며 어둠을 바라볼 뿐이었다.
뭐가 어떻긴...끝은 정해져 있는거 아니겠어?
쉐도우가 뭐라뭐라 말하는 사이
백은 주머니에서 물약을 한뭉치 꺼내 율에게 건넸다.
"시력 올려주는거,정령과 특화 정령 강화,어둠속에서 볼수 있는 시야..."
등등 물약을 주고서 서서히 어둠에 파묻힌다.
발자국 소리만 들리고...백은 고심하며 조금 큰 물약 하나를 꺼내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될지 안될진 모르겠지만...어둠을 몰아내는 물약이긴 한데..."
파삭하며 깨진 물약을 유심히 보는 백의 눈동자는 흥미로울 뿐이었다.
"..."
그사이 가까이온 훤과 함께 있는 율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무리 ur급이라도 같은 어둠 주제에..."
율은 중얼거렸다.
왠자 무서워...
✲
...이거 공중에 떠오른게 좋은거였나?
빠르게 다가오는 검기에 공중에 있던 백과율이 맞을 위기에 쳐했다.
...만.
그걸 훤이 그냥 지켜보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훤이 앞으로 재빨리 나와 검에 검은 검기를 덧씌우고 다가오는 검기를 쳐냈다.
어쨌든 공중에 있어 움직임이나 공격 이동경로는 보였기에 다행인...거겠지.
훤이 재빨리 검에 채찍처럼 긴 검기를 만들어 쉐도우에게 날린다.
쉐도우가 할수있는 공격은 이쪽도 할수 있다는 말씀!
같은 어둠이면 그정도는 알아야지!
"영차."
그사이 백은 주머니에 있던 어둠을 사라지게 하는 물약을 모든 물약을 모아 밑에 있는 어둠을 향해 날렸다.
"뭐어...이럴줄 알고 많이 만들어 놨어요.학생들 중에서도 암속성이 있는데 괴물중에서도 있겠죠..."
백은 나른하게 말하면서 주머니에서 나오는 물약을 계속계속 던져댔다.
...얼마나 있는거야?
✲
...뭔가 반응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러게요.
백과율이 속닥거렸다.
...사유의 공격에 쉐도우의 반응이 달라졌다는걸...
누구라도 알정도로 크게 반응하는걸...?
"훤님!"
결단을 내린 율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훤을 불렀다.
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검기를 뻗어 쉐도우가 아닌...배를 향해 검기를 무자비하게 휘둘렀다.
"저라면 배가 아니라 더 작은 곳에 본체를 숨겨뒀을것 같은데요."
백이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부드럽게 웃는다.
...물약이 소용없었으니...나중에 할인은 정해져 있는거겠지.
더 강한 물약을 만들어야지 어쩌겠어.
✲
갑자기 눈동자 문양이 나타났다.
백은 흥미롭게 그것을 지켜보면서 갑자기 차단된 감각에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체력이 깎여나가는것이 느껴지지만...사실 백은 그런것에 관심 없다.
주변에 아무도 안보이지만...일단 율이 옆에 있다는 가정하게 그다지 파괴력이 높지 않은 물약을 몇개 꺼내든다.
무속성에다 지원과인 백이 할수있는 일은 이정도뿐.
백은 물약을 무자비하게 바닥에 던져 깨뜨린다.
백의 일직선 앞으로 갑자기 불길이 활활 치솟아 오른다.
불길이 솟아오르면...다음은 폭약.
백은 치솟아 오른 불길에 트인 시야(가 안된다면 느낌적인 느낌으로)에 집중하면서 눈동자 모양이 있는 곳에 집중적으로 폭약 물약을 떨어뜨린다.
그동안 율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 집중한다.
미소조차 짓고 있지 않은 율의 모습은...꽤...무서웠다.아마도.
...그림그릴때보다 더 집중하는 모습이다.
어쨌든 율은 깊은 어둠을 집중했다.어둠은 곧 나.나는 곧 어둠.
쉐도우의 말대로 율도 비슷하니까.
율의 체력이 깎이기 시작하자 정신력이 흔들린다.
훤은 휘청거리면서도 밑을 향해 검기를 휘두른다.
"...정신차려...정신차려,이 율!"
율은 백이 준 물약을 마시면서 중얼거렸다.
모두를 믿어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믿는것 뿐만 아니라,나도 믿어라.
할수있으니까.
정신력을 다잡은 율을 따라 훤도 다시 차오른 힘에 감응하며 무자비하게 검기를 내지른다.
통할지 안통할지 그것은 몰라도,해보는수밖에.
✲
시야가 트인다.
울분을 토하는 쉐도우가 보인다.
"...꽤..패닉에 빠지길 바라는것 같네..."
쉐도우의 비명이 들려도 백은 그냥 웃고있었다.
율은 약간 긴장하고 있던 몸을 조금 풀었다.
"자,훤님!공격이예요!"
날아오는 검은색 구체를 율에게 오는것을 신속하게 막으면서 훤은 쉐도우에게 공격을 연속적으로 날린다.
칼에서 뻗어나오는 검기는 여러갈래로 갈라져 공격을 시도한다.
그사이 백은 이번에 불이 아니라 냉각 물약을 쉐도우에게 던졌다.
...아무래도 만든 대괴물용 물약을 모두 실험해볼 생각인것 같다.
"자아,받으세요.물,불,낙뢰,빛까지 전부말이에요."
백은 쉐도우에게 물약을 쉴새없이 던졌다.
주머니는 홀쭉해져갔지만...뭐...또 만들면 되니까...
✲
"괜찮아요?"
시야가 보이니 아픈 사람도 보인다.
백은 느릿한 몸으로 사유에게 뛰어가서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마셔요.안마시면...강제로 마시게 할테니까요."
에스텔의 외침도 들리겠다.
만약 이대로 버려둔다면 백의 모가지가 크로우에게 먼저 날아갈것 같으니까.
백은 여전히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뺘도박도 못하게 회복 물약을 따서 사유에게 건넨다.
✲
뭐 됐다.
아무것도 못하는 백과율은 이정도면 충분하지.
주연도 조연도 아닌 엑스트라 정도면.
"훤님..."
율은 상당히 지친 모양이다.
어느새 없어진 훤을 부르는 목소리가 아주 작다.
백이 율의 휠체어를 끌었다.
"율.지쳐보여요.푹 쉬는게 나을것 같아요.전리더님말대로...이제 신경쓰지말고 푹 쉬는거예요."
"...리더님은요...?"
"...괜찮을거예요.너무 걱정마세요."
율이 휠체어에서 그대로 눈을 감자 백이 조용히 휠체어를 끌며 돌아가기로한다.
나중은 나중일.
아무리 엑스트라라도 일단은 휴식이 필요했다.
- 화합제 독백
- 화합제가 시작됐다.
백은 반에 1평짜리 칸을 만들어 물약을 쌓아두고 팔고(?)있었다.
평소라면 절대로,절대로 만들지 않을 것 같은 위험천만한 물약들도 가득했다.
일회성에 그치는 물약은 단돈 천 원.
그리고 10만 원을 호가하는 물약까지.
...미친짓을 한 것은 아닐까.
평소 볼 수 있는 힘 증가,체력 증가,방어력 증가,
대괴물용 방어력 감소,이동속도 감소 물약 등등은 물론이고
슬라임이 되는 물약,
엄청난 힘을 가질 수 있지만,부작용으로 온 몸의 털이 모두 빠지는 물약,
천수관음처럼 팔이 여러개 자라는 물약,
피부색이 랜덤으로 변하는 물약,
아프로 머리가 되는 물약,
투명 인간이 되는 물약...
아,물론 모든 물약은 강도를 약하게 해서 축제때만 즐길 수 있는 일시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범죄는 nono.
가판대를 세워두고 있긴 하지만 백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파리만 날리는군.
그에 비해 율은 화합제가 시작되는 아침부터 바빴다.
목을 보호하기 위해서 목 위로 깨끗한 흰손수건을 감아두고 코를 보호하기 위해 언제나 끼는 마스크에 목에 좋은 생강&대추차를 연거푸 마시고 있었다.
항상 교복만 입고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파스텔톤 분홍색의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물론 화상 자국은 얇은 커버 시트 위로 화장품으로 다 가리고 픽서로 고정했다.
휠체어도 오늘은 왠지 깨끗해 보였다.
등받이에 있던 물건들도 모두 없어졌고 까만 천으로 덮여 휠체어 전체가 가려져 있었다.
어두운 무대 뒤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부원들 사이로 율은 구석에서 휴대폰을 껐다 켰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저 힘낼 수 있을까요...?]아니,아니지...힘내야 하는건 당연한거야,모두 즐기는 축제인데 힘빠지는 문자는 좀 그래...
다시 빈 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저 공연 힘낼게요!승연 오빠도 화합제 재밌게 즐겨주세요.]
...이정도면 괜찮을까?
이러지도 못하고 화면만 뚫어져라 보고 있던 율이 눈을 꾹 감고 전송을 눌렀다.
...저질렀다!
"...다음으로 성악부 공연이 있겠습니다.모두 큰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커튼으로 가려진 어두운 무대 뒷편에 있던 부원들이 사회자의 말에 따라 움직였다.
율도 흰손수건과 마스크를 벗어두고 훤의 도움을 받아 무대 위로 올라갔다.
피아노에 앞에 앉아 있는 남학생 한명,그 옆으로 율이 휠체어를 타고 있었고,
대각선 뒤로 부원들이 자기 파트에 맞춰섰다.
무대의 커튼이 올라가고 천천히 은은한 조명이 켜지면 교복을 입고 있는 성악부 부원들 사이에 조금 특별한 존재가 어딘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흑단같이 고운 깊은 까만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은은한 조명을 받아 반짝이며 빛나는 까만 눈동자 두 개가.
어딘가 아파보이는 허여멀건한 얼굴 위로 빨간 입술과 발그레한 볼 두개가.
저 혼자 어딘가 특별한듯 파스텔톤의 분홍색 오프숄더 드레스까지.
무대 아래에서 지휘자가 지휘를 시작하면서 율의 입이 열렸다.
"Der Hölle Rache kocht in meinem Herzen..."
다른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훤이 허공에서 나타나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꽃무더기를 관객쪽으로 날렸다.
율의 까만 생머리가 세로로 나눈듯한 적갈색과 회색의 머리색으로 순간 변했다.
훤이 암기로 바람결처럼 살랑이는듯 꽃무더기를 작은 조각으로 잘라내자 마치 꽃가루가 날리는듯 했다.
"Tod und Verzweiflung flammet um mich her─"
훤이 사라지면서 율의 머리도 다시 검은색으로 돌아왔다.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떨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율 혼자 부르는 파트가 끝나면서 점차 부원들과 화음을 만들어 가는 모습이 평범한 고등학생의 공연이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 시간을 위해 준비했던 모든것을 후회없이 쏟아붓고 싶어하는 열정마저 보이는 무대였다.
- 최종 보스전 독백
- 아,정말...일일히 시끄럽다니까.
한결같은 미소를 짓는 백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도대체 사람맞아?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저 여유롭게,
...혹은 그저 '그것'밖에 할 줄 없는 '인간'인것처럼.
...아니지.인간,사람이라면 저 한결같은 미소를 뚫고 공포라던가,혹은 냉소라던가,분노라던가.
일말의 감정도 없어보이는 저 껍데기 같은 미소를 뚫고 무언가를 분출해야 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저 흰색의 의사 가운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모습은,
여유인가,혹은 그저 실험의 여파로 '모든걸 잃어버린'사람의 모습인가.
혹은...정말 사람일까?
"백님...?"
주머니를 뒤적이는 백의 옆으로 휠체어를 살짝 끌며 다가오는 율이 있었다.
율의 까만 눈동자와 마주친 오묘한 빛의 투명한 눈동자는 더없이 환하게 웃어보였다.
백의 미소에 율도 따라 웃었다.
...아니지,이런 상황에서 웃으면 안되는거 아냐?!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어요."
훤과 백을 번갈아 보던 율의 표정이 비장해 보였다.
마지막이라...정말로 마지막이 될진 모르겠지만...
...아니지,마지막이 되어야지.
율은 휠체어 손잡이 위에 올려두고 있던 손에 힘을 꽈악 주었다.
여태까지의 이야기를 듣자하니 문득 옛날이 떠올랐다.
인간과 마녀의 차별이 있었을 때도,그리고 그 전에는 인간과 인간의 차별이 있었다.
정상과 비정상,두 가지로 나누어진 세계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있는 기분.
진짜와 가짜,진실과 거짓,흑과 백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껍데기일 뿐이라도 빈 애정을 갈구했던 과거에.
...하지만 세상은 정확히 두 가지로 나누어 지지 않는다는걸 깨닫게 되면 세상은 달라보이기 시작한다는걸.
그 어떤 인간도,마녀도,동물도,식물도 하물며 아무것도 아닌 미물도 공존할 수 있다는걸 깨달으면,
...그리고,이런 몸이어도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감정을 주고받으며 살 수 있다는걸 알게되면...
율은 손에 들어간 힘을 살며시 풀었다.
그리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금방이라도 커다란 웃음을 터뜨릴것만 같은 표정으로 훤의 팔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래,좋아.
한 걸음 떼는게 어렵지 그 뒤는 쉬운걸.
그렇게 생각하면 돼.
가자.
소중한 존재들을 아프게 한 '아무것도 아닌 존재'를 무너뜨리러 가자.
그리고 더없이 행복해지자.
7.3. 독백 ¶
- R.18년전의 조각
- 18년이 지난 지금도, 너는 그 기억이 선연했지.
피처럼 붉게, 독처럼 넓게, 상처처럼 깊게 새겨진 그 기억을 떨쳐내기란 쉬운일이 아니었어.
아니, 모든 기억이 그랬지.
그래서 너는 한순간 그날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어.
그날은 굵은 눈송이들이 수북히 쌓이던 날이었지.
아주 가느다란 초승달이 어스름히 밤하늘을 비추고 있던 날이었어.
이제 막 태어난듯 갓난아이였던 너는 그곳에 누워있었지.
울지도 않고, 가만히.
너는 그곳에서 보았어.
그 약한 달빛과, 그 달빛에 비춰지던 사각형의 어떤것을 말이야.
그리고 멀어지던 검은 그림자까지 보았어.
"깔깔깔, 그래서 말이야. 걔가 뭐라고 했냐면― 아, 드디어 깼네. 야, 야. 이리와봐. 내가 너 깨는것까지 기다려야겠어?"
너는 배려없는 웃음소리에 한순간 현실로 돌아와버렸지.
왠지 그립고도 슬픈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말이야.
아무렴 어때.
너는 원장에게 다가갔어. 시답잖은 이야기를 듣고, 폭언을 듣고, 폭력을 당했지만, 뭐 어때?
그게 지금 너의 일상인걸.
- O.XX년전의 조각
- 너는 부어오른 뺨을 매만졌어.
여지껏 많이 맞긴 했지만 오늘만큼은 왠지 반항하고 싶기도했지.
"내가 준 이름에 먹칠하지 마!"
하지만 너는 그만두기로 했어.
원장실 바닥은 원장이 던져서 깨진 물건들로 산더미였어.
너는 가볍게 생각했지.
또 후원금이 바닥에 쳐박히네.
"어머니, 다신 그러지 않을게요."
너는 언제나 그렇듯 용서를 구하는듯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어.
그럼 상대는 언제나 칭찬을 받은 강아지마냥 들뜬듯 보였지.
아니, 아니야. 오히려 격식을 차리는듯한 느낌이었어.
어머니라는 그 말에, 네가 잘못을 비는것 같은 그 모습에.
사실 너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지만 말이야.
"이만 나가보렴."
너는 맨발로 그 유리조각들과 뾰족뾰족하게 깨진 물건들을 아랑곳않고 밟고 지나갔어.
짙고 붉은 핏물이 잔상처럼 남겠지만, 알게 뭐야.
이것으로 너의 어머니는― 너의 또 한번의 상처에 기쁜듯 웃고 있을테니까. 잘 된 일이겠지.
방으로 가는 길은 쓰라린 상처와 흥건한 핏물로 엉망진창이었어.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를 소독하고 가볍게 붕대를 감았어.
엉망진창이 된 바닥도 닦아냈어.
너의 어머니는 자기가 저지른 일이긴 해도, 남이 치워주길 바라는 분이시니까 말이야.
"아프네―"
너는 전혀 아픈것같지 않은 얼굴로 좁은 방안의 작은 침대에 몸을 뉘었어.
침대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두발을 헐렁헐렁 흔들어댔지.
붕대가 풀리기 직전이었지만. 뭐 어때?
그게 지금 너의 일상인걸
- 어린 실험체
- 팔 한쪽에 따끔거리는 감각이 들어도 울면 안되었다.
울게 되면...언제나 그렇듯 뺨에 불이나고 내던져질지 모를 일이니까.
백은 아무렇지않게 앞을 보고 있었다.
앞에서 흰색 의사 가운을 입은 자신의 '어머니'를 보았다.
"..."
백은 잠깐 고개를 돌린다.
고개를 돌려 팔 한쪽에 따끔거렸던 얇은 바늘과 알 수 없는 색을 띈 주사기 안을 본다.
이것이 무슨 주사인가요.하고 물으면 안되었다.
자신의 '어머니'는 그런것을 묻는걸 좋아하지 않으시기에.
하지만 백은 알고 있었다.
어머니의 일에 얼마나 많은 '고아'들이 죽어나갔는지.
어머니의 일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꺼져나갔는지.
"오늘은 이걸로 너의 반응을 볼게. 너는 착한 아이니까,이번에도 잘 견딜수있을거라고 생각해."
어머니는 천사같이 상냥한 얼굴로 웃으며 백의 새파란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어머니는 이 시간이 되면 더없이 상냥해지는 사람이었다.
"그럼요.저는 어머니의 착한 아들이니까요."
백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무슨 약을 주사한거예요? 하고 물어도 대답이 없을거란걸 아니까.오히려 궁금해한다고 맞을지도 모를일이다.
백은 입을 다물었다.자기만 살 수 있다면...동생들은 이런일을 당하지 않고 행복하게 클수있으니까.
...자기 자신의 기분만 죽이면.
어머니는 백의 두팔목에 구속구를 채우고 백을 앉혀두고 문을 잠군다.
...가만히 보니,사방이 하얀곳이었다.천장에 붙어있는 감시용 카메라 4대만 뺀다면.
백은 가만히 앉아서 바닥을 보았다.
눈물도...나오지 않았다.
계속된 실험과 약의 부작용으로 피를 제외한 몸의 물이란 물은 다 말라버린 것 같았다.
...혹은,백이 그저 닫아버린 감정일지도 모르지.
눈 앞이 흐려진다.
원래라면 푸른 하늘을 닮아 새파란색이었던 머리카락은 어느새 하늘색으로 변했고...그마저도 아랫쪽은 피에 물을 타 흐려놓은 분홍색이 되었다.
눈색도,온 몸의 털도 점차 색소를 잃어가는 실험이었다.
혈색이 돌던 얼굴이 점차 빛을 잃어갔다.
엉망으로 흐려지던 눈앞이 새까맣다가 다시 빛이 들어온다.
"오늘 실험은 실패네."
한동안 들어오지 않던 어머니는 백을 방치해두고 몇시간이 흐른후에야 들어와 조금 딱딱한 얼굴로 말했다.
진이 빠져 있던 백이 고개를 들어 어머니를 향해 웃어보인다.
"이제 나가보렴."
구속구를 푼 어머니는 자유롭게 백을 내버려둔다.
백에게 자유란 그정도였다.
백은 후들거리는 다리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에도 웃는 얼굴을 잃지 않는다.
비틀거리는 백을 내버려두고 어머니가 먼저 방을 나선다.
백은 잠시 멈춰서서...감시 카메라를 살짝 올려본다.
환하게 웃어 보인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던듯 다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방으로 돌아간다.
- 늙은 죽음
- 수많은 실험이 이어졌다.
수없이 많은 약들이 주사되었다.
점차 백은 인간이라고 할수없는 면역력을 가지게 되었다.
모든 감각이 사라진다.
모든 통점이 사라진다.
모든 오감이 사라진다.
백의 살은 매말라갔고,뼈는 툭 치면 부서질 정도로 약해졌다.
시력도 점차 떨어져갔지만...
...백의 머리만큼은 나날이 비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미친 사람처럼.
나날이 백의 능력이 개화한다.
반동으로 잠이 쏟아졌지만.
잠을 자면 어머니가 싫어하신다.
하얀 방안.
여전한 사방의 감시 카메라들.
반복되는 실험.
백은 온몸에 피칠갑을 한채였다.
하지만 백의 눈은 멍하기만 했다.
"..."
백은 아무말 없이 밑을 바라본다.
형체를 알아볼수없을 정도로 다진 고기가 되어버린,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빨간 고기 하나.
피에 젖은 하얀 의사 가운 위의 주머니에 새겨진 이름은 피에 젖어 모두 보이진 않았지만 백이란 글자가 보인다.
"...오늘부터 제 이름은 백이예요.어머니..."
백은 못다한 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어릴때부터 받은 이름이지만,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그이름을 이제서야 진실로 받아들인다.
백은 빨갛게 젖은 의사 가운을 매마른 손으로 잡고 아무렇게나 들어올린다.
빨간 고기가 산산히 부서져 떨어져내리고 피에 젖은 새빨간 냄새가 났지만 백은 아랑곳 않고 피에 젖은 가운을 입는다.
한평생 의사로 살다가 은퇴하여 버려지는 아이들이 안타까워 고아원을 차려 고아들을 키운다.
선량한 마음에 감복한 정부와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시민들이 돈을 준다.
후원금으로 의사의 지연,학연을 빌려 실험에 쓸 약을 사고 실험을 한다.
겉으론 온화한 선량자.이면으론 쏟아지는 고아들에 실험을 하며 밝게 웃는 위선자.
수많은 고아들의 피로 얼룩진 한 의사는 온 몸에 고아들의 고혈을 빨아들인 새빨간 피가 절여진채로 처참하게 인생의 막을 내린다.
...그럼,
...뭘 해야할까...
백은 어머니께 항상 지어보인 선량한 미소를 더없이 상냥하게 드러내며 방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