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 자, 명문 유클리드 마법학교에 어서 오세요 Plus!
이거, 또 만들었어!
1. 외형 ¶
자, 명문 유클리드 마법학교에 어서 오세요 Plus! 시트 스레 >>110
(이미지 참고)
▶ 하얗다기 보다 허여멀건한 피부.
▶ 흑단같이 까만 머리칼이 하얀 피부를 더욱 아파보이게 하는듯.
▶ 다만 입술은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항상 빨개서 진짜 아파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 앞머리는 처피뱅으로 아무렇게나 잘려있으며, 결 좋은 까만 머리는 허리 중간 부분까지 자라있으며 항상 풀고 다닌다.
▶ 짙은 쌍꺼풀에 긴 속눈썹의 소유자. 흑안의 눈은 약간 치켜 올라가 상당히 쎄보이는 인상.
▶ 키는 알 수 없으며, 근육없이 상당히 가볍다.
(이미지 참고)
▶ 하얗다기 보다 허여멀건한 피부.
▶ 흑단같이 까만 머리칼이 하얀 피부를 더욱 아파보이게 하는듯.
▶ 다만 입술은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항상 빨개서 진짜 아파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 앞머리는 처피뱅으로 아무렇게나 잘려있으며, 결 좋은 까만 머리는 허리 중간 부분까지 자라있으며 항상 풀고 다닌다.
▶ 짙은 쌍꺼풀에 긴 속눈썹의 소유자. 흑안의 눈은 약간 치켜 올라가 상당히 쎄보이는 인상.
▶ 키는 알 수 없으며, 근육없이 상당히 가볍다.
3. 계약정령[3] ¶
▶ 백발, 백안의 인간형의 미남자.
▶ 백발은 엉덩이까지 덮는 길고 부드러운 생머리로 하나로 땋아 내렸다.
▶ 꽃이 수놓아진 붉은 댕기로 머리를 묶고 있다.
▶ 화려한 색감과 빛나는 갑옷 위로 왠지 까만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다.
▶ 키는 190cm, 몸무게는 잔근육이 잘 짜여진 마른 몸.
▶ 백발은 엉덩이까지 덮는 길고 부드러운 생머리로 하나로 땋아 내렸다.
▶ 꽃이 수놓아진 붉은 댕기로 머리를 묶고 있다.
▶ 화려한 색감과 빛나는 갑옷 위로 왠지 까만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다.
▶ 키는 190cm, 몸무게는 잔근육이 잘 짜여진 마른 몸.
4. 각성마법 ¶
▶ 정령을 소환, 부린다.
▶ 정령에게 검이 나타난다.
▶ 검을 뽑아 베거나 찌르거나 하는 등으로 공격한다.
▶ 칼날이 암속성의 검기이며 흩어지게 하거나 단단하게 하는등의 자유로운 공격이 가능하다.
▶ 공격력은 율의 정신력에 비례한다.
▶ 힘을 심각하게 사용할 경우 정신을 잃는다.
▶ 정령에게 검이 나타난다.
▶ 검을 뽑아 베거나 찌르거나 하는 등으로 공격한다.
▶ 칼날이 암속성의 검기이며 흩어지게 하거나 단단하게 하는등의 자유로운 공격이 가능하다.
▶ 공격력은 율의 정신력에 비례한다.
▶ 힘을 심각하게 사용할 경우 정신을 잃는다.
5. 기타 ¶
▶ 율은 정령을 '훤님', 정령은 율을 '유리'라고 부른다.
▶ 채소, 야채를 굉장히 좋아한다. 생식 할 수 있는 당근이나 파프리카 따위를 곧잘 먹고 있다.
▶ 정령에게 두루마기라도 걸치라고 종용했다. 갑옷 위로 어색하게 어깨에 걸치듯 두르고 있는 두루마기는 율의 작품.
▶ 꽃을 수놓은 붉은 댕기도 율의 작품이다. 직접 수를 놓아 선물해주었다.
▶ 손으로 뭔가 하는걸 굉장히 좋아한다. 십자수, 프랑스 자수, 페인팅, 미술관련, 등등.
▶ 부활동은 성악부.
▶ 채소, 야채를 굉장히 좋아한다. 생식 할 수 있는 당근이나 파프리카 따위를 곧잘 먹고 있다.
▶ 정령에게 두루마기라도 걸치라고 종용했다. 갑옷 위로 어색하게 어깨에 걸치듯 두르고 있는 두루마기는 율의 작품.
▶ 꽃을 수놓은 붉은 댕기도 율의 작품이다. 직접 수를 놓아 선물해주었다.
▶ 손으로 뭔가 하는걸 굉장히 좋아한다. 십자수, 프랑스 자수, 페인팅, 미술관련, 등등.
▶ 부활동은 성악부.
▶ 어릴적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잃었으며, 왼쪽뺨 부분 약간부터 그 밑으로 온몸에 화상자국이 있다.
▶ 화상자국을 가리기 위해 온 몸에 옷가지를 두르고 있다. 최대 15겹까지 껴입어 보았으며, 옷의 색감은 상당히 화려하다.
▶ 원래 추위를 엄청 타서 아무렇지도 않아하고 있다.
▶ 허벅지 2/3 지점 아래로 다리가 없다.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다.
▶ 분홍빛 바탕의 아기자기한 하얀 토끼가 그려진 두터운 담요로 다리 부위를 가리고 있다.
▶ 시력에 이상은 없지만 대부분 눈을 감고 있다. 자기 상황을 상당히 신경쓰지 않으려고 하는듯.
▶ 목떡 https://youtu.be/-EgowPqnMZY
▶ 화상자국을 가리기 위해 온 몸에 옷가지를 두르고 있다. 최대 15겹까지 껴입어 보았으며, 옷의 색감은 상당히 화려하다.
▶ 원래 추위를 엄청 타서 아무렇지도 않아하고 있다.
▶ 허벅지 2/3 지점 아래로 다리가 없다.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다.
▶ 분홍빛 바탕의 아기자기한 하얀 토끼가 그려진 두터운 담요로 다리 부위를 가리고 있다.
▶ 시력에 이상은 없지만 대부분 눈을 감고 있다. 자기 상황을 상당히 신경쓰지 않으려고 하는듯.
▶ 목떡 https://youtu.be/-EgowPqnMZY
6. 선관 ¶
▶ 앨리스 : 평소에는 가볍게 같이 그림그리면서 드로잉 토크 하다가, 힘들때는 서로를 위로해주는 그런 관계, 기쁨도 슬픔도 나눌 수 있는 관계
▶ 에스텔라 : 첫만남 이후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 더 친해진 관계. 에스텔 언니, 율아. 하고 반말하면서 친근한 사이.
▶ 에스텔라 : 첫만남 이후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 더 친해진 관계. 에스텔 언니, 율아. 하고 반말하면서 친근한 사이.
8.1. 일상에서 ¶
- 사유
- 오늘은 자수를 놓을 생각이었다. 햇살도 따사롭고,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도 좋으니까 바깥으로 나갔다.
따사로운 햇살과는 반대로 두껍게 껴입은 옷이나 마스크, 목도리, 모자따위는 전혀 분위기에 맞지 않았지만.
휠체어는 여전히 혼자 굴러가고 있었다. 푸른 잔디 위에 적당한 크기의 푸른 나무 그늘 밑에 휠체어가 섰다.
"빨리 마무리 하고 싶네요."
식물원에서 그려둔 도안은 이미 새하얀 천 위에 수놓아진 상태였다. 율의 옷가지만큼이나 화려한 색과 모양의 꽃들이었다.
자수가 거의 다 놓아지자 기지개를 켰다.
열린 창문 사이로 누군가의 얼굴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눈이 마주친이상 인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자수를 놓던 손을 들어 사유에게 인사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인지 휠체어가 다시 굴러갔다. 사유에게 조금 더 가까이.
✲
"네, 안녕하세요."
율은 밝게 인사했다. 그림을 그리고 있을때만 누군가와 마주치나 싶었는데 자수를 놓을때도 마주치는 모양이었다.
"아. 아니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율은 들려오는 변명어린 말에 황급히 두손을 내저었다.
두손을 내젓자 자수를 놓은 천과 바늘과 실들이 떨어져 여기저기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아!"
정신을 놓고 있었어. 하고 작은 자책감이 섞인 목소리가 들리더니 허리를 굽혔다. 하지만 휠체어 높이 때문에 잡히지 않았다.
✲
갑자기 하늘에서 사람이 떨어졌다.
훤이 알아서 할 일이었지만, 떨어져내리는 사유덕에 일시정지된 모양이었다.
그 덕에 일이란 일은 모조리 사유가 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사유가 줍지 못한건 훤이 주웠다.
"그, 괘, 괜찮으세요?"
율은 안절부절 못하며 사유에게 물었다.
모르는 분에게 신세를 져버려서 굉장히 면목이 없는 느낌이었다.
"감사합니다!"
율은 황급히 고개를 계속 꾸벅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그러다 사유의 손가락을 본 모양인지 안그래도 아파보이던 얼굴이 사색이됐다.
"괜찮으세요?! 손이... 정말 죄송해요. 반창고. ...아! 반창고 있으니까요."
율은 횡설수설하며 품안에서 반창고를 꺼냈다.
빨간 바탕에 노란 꽃들이 가득 담긴 반창고였지만 약도 발라져 있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손 주시겠어요?"
율은 사유를 올려다보며 말갛게 물었다.
✲
"아, 아니예요. 반가워서 인사를 하다가 떨어트린것 뿐인걸요."
율은 손사레를 치며 아니라고 계속 말했다.
손가락에 박혀 있는 피묻은 바늘을 닦아내며 돌려주는 사유를 보며 여전히 사색인 얼굴로 어색하게 얼굴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을 숨기며 들려오는 뒷말에 율은 왠지 엄한 표정이 되었지만.
"안된다구요.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더 큰 병이되요. 어서요. 주세요."
손을 젓는 사유의 손을 낚아채듯 붙잡고선 반창고를 떼내어 조심히 붙여주었다.
다 하고나서야 조금 안도한듯 혈색이.. 여전히 아픈듯 보이긴 했지만 돌아왔다.
"이상한 소리라뇨. 아니예요. 전혀. 그러니까..."
율은 그제야 아차싶었다. 황급히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정령과 1학년 이 율이예요. 그러니까... 호, 혹시 더 아프다거나... 하시면 저에게 치료비를 청구해도 괜찮으니까요...!"
율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소리쳤다.
✲
율은 사유의 억하는 소리에 쿡쿡거리면서도 반창고를 단정히 붙여주었다.
"흉흉?"
율은 그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흉흉했던가? 싶은 반응이었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율에게도....
아. 이상한 상념에 젖어들지 않기로 했었다.
율은 그저 사유를 바라보며 웃었다.
"쪼짠? 그런가요?"
당연히 원인은 율에게 있었는데, 자기 몸이 아프면 아무리 작은거라도 율에게 청구해야겠지만, 사유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나보다.
어쩐지 조금 또렷해보이는 사유의 눈을 바라보다가,
학년을 되묻는 사유의 말투에 율은 소리내어 작게 웃었다.
"3학년이셨군요. 공격과... 사유 선배로군요. 안녕하세요."
율은 다시한번 인사를한후에도 미소지은 채였다.
"그런데 저때문에 밑으로 내려오시고.. 어떡하죠? 귀찮게 해드렸네요."
율은 열려진 창문과 사유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
"하지만 신경 쓰이는걸요."
처음보는 사람에게 이런말 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미 내뱉았다.
율에게 사람이란 그다지 가까운 존재가 아니었으니 어느정도의 거리감을 둬야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충분히 멋지신것 같은걸요?"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이렇듯 떨어트린 물건도 주워주러 저 높은 창문에서 뛰어내리셨고,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치료비도 청구하지 않겠다고 한 사유에게 생글거리며 웃었다.
"그래도 고마운걸요."
여전히 되돌이표로 돌아가는 대화에 여전히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아. 방해 아니예요. 다 했거든요. 보실래요?"
율은 환하게 미소지으며 자수를 놓은 천을 찾았다.
새하얀 천에 울긋불긋한 꽃들, 색깔도 모양도 다양한 꽃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율은 조금 두근거리는듯 볼을 복숭아빛정도로 물들이곤 말했다.
"학교 식물원에서 본 꽃들이예요. 식물원.. 가보셨어요?"
순수하게 물었다.
✲
"친절한가요?"
율은 친절의 정도를 모르는듯 고개만 갸웃거렸다.
어쨌든 하는 만큼 마음을 쏟아붓고 있다는건 사실이었다.
"그렇죠? 예쁘죠?"
사유가 자수를 보고 건네는 말이 율에게 정말 기뻤던 모양이었다.
사유가 조금 오랫동안 바라보는듯한 느낌에 들고 있던 천도 조금 더 오랫동안 들고 있었다.
좋은거라면 더 오랫동안 보여주고 싶은건 사실이었으니까.
"아. 여기에 있는 꽃들 전부, 식물원에 있는 꽃들이거든요. 알아볼 수 있을것 같으세요?"
율은 자수와 사유를 번갈아 바라보며 사유에게 물었다.
특징이 잘 잡힌 꽃들의 자수를 못 알아볼 순 없을것 같았다.
사실 크기고 모양도 색도 제각각인 꽃들을 못 알아보기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
"그렇게 느껴졌다면 감사한 일이네요."
율은 잠깐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고개를 들어 사유를 바라보며 웃었다.
사유가 유심히 자수를 바라보고 있다는것을 알고선 율도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생각내는 대로 말을 하는 사유를 향해 눈이 반짝였다.
"대단하시네요! 대체로 다 맞았는걸요? 하나가.. 아! 이건 혼동하기 쉬운거였어요."
율은 열심히 비슷한 모양의 꽃 두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두 개가 혼동된걸 제외하면 사유가 잘 맞힌 모양이었다.
"기억력 좋으신걸요!"
율은 사유를 가만히 칭찬하면서 천을 단정히 접어 정리했다.
"좋은 감상평도 감사합니다. 사유 선배."
율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 빅토르 '비탸' 아나티누스
- "...아, 또 떨어져 버렸어."
율은 테마파크를 둘러보다 일행과 떨어진것을 알아차리곤 곤란한듯 볼을 긁적였다. 이럴땐 훤을 소환하는게 제격이겠지만, 수학여행 기간 동안이라도 훤을 부르는 일을 자제하고 싶었기에 꾹 참았다.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진 찾아봐야해. 훤님도 그걸 원하셔. 혼자 뭔가 하길..."
율은 중얼거리며 휠체어를 끌었다. 두리번거리는 그 고개가 당황스러움에 물들었다. 테마파크는 너무 컸고, 사람이 가득했다. 더욱이 휠체어에 타고 있는 키 작은 율을 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
그렇게 한참을 서성이다 빅토르를 발견했다. 이건 행운이야! 율은 소리를 지를뻔한걸 간신히 참고 끙끙 거리며 휠체어를 끌었다. 너무 신경을 곤두세웠더니 온 몸에서 열이 날것 같았다. 왼쪽 뺨에 있는 화상 흉터는 보이지 않도록 조심스레 마스크를 살짝 내렸다.
"빅토르님! 빅토르님!"
율은 환하게 웃으면서도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아주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빅토르를 불렀다.
✲
"네! 율이에요!"
율은 아주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맞춘 빅토르에게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얼굴엔 안도감을 띄우곤 다가오는 빅토르를... 한참이나 올려다 보았다. 백님보다 엄청 크잖아! 대박.
율은 빅토르 덕에 공간이 생긴것과 동시에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안도감에 환하게 웃었다.
"앗! 그래요? 혼자해도 괜찮은데... 그치만... 그럼 그렇게 해주시겠어요? 죄송해요. 번거롭게 해드려서... 놀고 계신거 아니었나요?"
율은 기뻐서 말이 많아졌다. 기뻐서 그렇다. 기뻐서.
"테마파크가 너무 크고 넓어서! 신기해서 조금 둘러보고 있다가 일행이랑 떨어져버렸거든요. 굳이 찾으러 온다는거, 너무 넓어서 또 못 찾을 수 있다고 말리긴 했는데... 그래도 빅토르님을 만나서 다행이예요!"
율은 볼을 빨갛게 물들이면서 흥분한 어조로 장황하게, 자기가 혼자 있는 이유를 빅토르에게 설명했다.
혼자 헤쳐나갈 위기를 당당하게 맞서나갈 생각이었으나, 역시 조금 힘들었나보다.
✲
"쉬는 중이셨구나! 제가 방해한건 아니죠? 뭐하던 중이셨나요?"
율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빅토르에게 궁금한듯 물었다.
경호하듯 주위를 삼엄(?)하게 살피는 빅토르를 흘끔 보곤 소리죽여 웃었다.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면 다행이지만요."
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빅토르의 멋진표정 no.3는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무거운 휠체어는 빅토르의 힘에의해 천천히 사람들이 적은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치 조종되는 기분이야! 율은 또래의 소녀처럼 속으로 즐거워했다.
"정말요? 저는 처음이라 더 신기한것 같아요."
율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람이 적은게 안심되었다.
"한시름 놨어요. 정말 고마워요. 빅토르님. 휠체어가 너무 크다보니 도통 사람들 틈으로 저혼자선 못가겠더라구요. 아. 빅토르님이 옆에 있어주시면 좋긴 하지만... 그래도 노는데 방해한거 아닌가요. 저?"
율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물었다.
✲
"아. 그러셨군요."
율은 빅토르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해준다면 뭔가 조금 더 안심되는 기분이었다. 마음의 짐이 조금 덜어진 느낌? 아. 그렇게 따진다면 빅토르님이 마음의 짐을 지어준것도 아닐텐데.
율은 혼자 고개를 가만히 내저었다.
"정말 천국이네요. 비록 많이 하진 못했지만..."
놀이기구도 탈 수 없어, 할 수 있는건 그림을 그리거나 도안을 그리는것 뿐이었다. 율은 혼잣말처럼 내뱉다가 화들짝 놀랐다. 바보. 이런곳에서 혼잣말이라도 박토르님이 듣고 있으니까 정신차려야해.
율은 생글 미소지으며 가벼운 말투로 대답했다.
"그래도 되요? vr! 말은 많이 들어봤어요! 해보고 싶었어요. 일행한텐 연락해둘게요!"
율은 금방 신났다.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며 휴대폰으로 찾지말것! 이라는 의도가 담긴 문자를 전송해놓곤 빅토르를 바라보았다.
"저 조금 기대되기 시작했어요!"
두근두근거려요!
✲
율은 빅토르의 말에 쉽게 넘어갔다.
빅토르가 고민한것치곤 날아다니듯 쉬운 반응이었다.
율은 눈을 반짝이며 빅토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솜사탕 맛있죠! 이런데서 먹으면 더 맛있을것 같아요. 분위기라던가, 그런것도 먹는데 한몫하잖아요!"
율은 빅토르의 말을 따라 눈을 반짝이며 가끔 고개를 끄덕였다.
자랑하는 상상력의 힘이 발휘되는 모양이다. 쪼꼬미 빅토르는 상상이 안됐지만... 나름 귀여운 쪼꼬미를 상상한 율이었다.
"이왕 둘이 있으니까 팀을 짜서 하는게 나을까요? 아! 그치만 하는건 처음이라 못할것 같은데... 빅토르님의 발목만 잡는게 아닐까요? 아니면 개인전으로 빅토르님과 1:1로 전투해봐요!"
율은 꽤나 열심히 게임에 임할 생각인듯 했다.
비록 게임은 못할 가능성이 100%에 달하긴 하겠지만.
✲
율은 빅토르의 말에 소리내어 웃었다.
무의식으로 나온것 같은 빅토르의 말이 귀여워서였다.
커다란 키와 덩치에 비해 무척 귀여운 분이시다. 하고 율의 마음속엔 빅토르가 정의됐다.
율은 살짝 웃곤 고개를 끄덕였다. 황급히 주제를 바꾸는 빅토르의 흐름에 따라갈 생각이었다.
"네. 솜사탕. 먹어봐요...?"
하지만 빅토르는 숨쉬는 것도 잊은 모양인지 말이 아주 빨랐다.
율은 고개를 기웃거리다 웃었다. 먹어봐요! 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물음표가됐다.
"좋아요! 빅토르님을 이겨보이겠어요!"
율은 되도않는 꿈을 꾸었다.
✲
맞다.
그 괄호 안에 아니다. 라는 말이 맞다.(진지)
"그럼 저는 분홍색 솜사탕이 좋아요!"
율은 벌써 솜사탕을 사러가는것처럼 색깔까지 지정해놓곤 웃었다.
열여섯의 마음처럼 요동치는 것은 없을것이었다.
"일단은 열심히 해볼게요! 가르침을 주세요. 한수 배우겠어요, 빅토르님!"
율은 열심히 휠체어를 끌 준비를 하며 파이팅을 외치듯 작은 주먹 두개를 쥐었다.
빅토르를 향해 아무런 악의없는 한수배운다는 말을 남기곤 휠체어를 끌 준비를 했다.
"얼른 가요! 빅토르님이랑 얼른 해보고 싶어요!"
율의 눈이 반짝인다.
✲
"그럼 제가 추천드려도 될까요? 빅토르님은 초록색이랑 어울려요!"
율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말했다.
빅토르가 움직이자 율도 휠체어를 끌며 빅토르를 따라 나섰다.
"4년차면 고인물이 되는구나! 빅토르님만 믿을게요!"
율은 휠체어를 끌며 vr게임장이 있는 곳으로 박토르와 함께 도착했다.
"어떤 게임인가요? 총 쏘는거예요?"
율은 두근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
초록색 마음에 들어해서 다행이다.
율은 해맑게 웃었다.
귀를 문지르는 빅토르를 의아하게 보던 율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랭킹까지요? 정말 대단하세요. 왠지 자신감이 결여되는걸요?"
율은 말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빅토르를 따라가면서 고민했다. 진짜 괜찮을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vr게임의 기술이 대단하네요!"
율은 감탄했다. 언제 이렇게 기술이 좋아진거람. 왠지 할머니가 된것 같은 기분이었다.
"저는 정령과이기도 하니... 저에겐 큰 힘은 없거든요. 저는 다른분의 능력을 빌려올게요."
율은 웃으며 말했다.
✲
"에이... 실력 중심인 게임 속에서 초심자의 행운이 통할리가 있겠어요?"
율은 생긋 미소지으며 빅토르의 말에 대답했다.
왠지 차가워보이기도 하는 그 말은 현실적이기도했다.
하지만 율은 빅토르를 따라 파이팅 포즈를 취하며 웃었다.
"그래요? 그런 기술적인 발전은.... 잘 모르겠어요."
율은 아쉽다는듯 씁쓸하게 대답했다.
vr이라는것 자체를 처음봤으니 모를만도 했다.
"그럼 저는! 역시 뢰 속성이 좋을것 같아요! 멋지고! 하늘에서 땅으로 꽂는것도! 손끝에서 나가는 것도 좋으니까!"
율은 가볍게 대답했다. 비밀이란건 안중에도 없었다.
✲
율은 무서워졌다.
비록 초심자의 행운이든 뭐든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게임 속 공평한 세상이긴 했으나 무서워도 너무 무서웠다.
율의 기분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래.
X됐다!
율은 달달 떨며 빅토르가 도와준 접속과 동시에 얻어맞았다.
아픈지 뭔지 그것은 잘 모르겠고, 이거 움직이지 않아도 움직일 수 있는건가 의심스러웠다. 휠체어 끌면서 전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꺄아악!"
율은 빅토르의 썬더 공격에 맞서려고 했으나 이미 정신이 너덜해졌다.
율은 덜덜 떨며 전격을 쏘아 보냈다. 뭐든 진심은 아니다.
dice(1,100) value : 73
✲
율은 매우 놀라서 쓰러질 타이밍을 잊은것 뿐이었다.
이미 hp의 대부분이 깎여나간 이상 정신력으로 버티는수밖에 없었지만 그 정신력도 언제 바닥날지 모를 일이었다.
분명 hp바는 빅토르의 승리를 말해주고 있었는데도 칭찬의 말을 쏟아붓는 빅토르를 보며 율은 감탄했다.
"초..초심자의 행운 아닐까요?"
분명 게임에선 초심자의 행운은 적용되지 않을거라고 말한 율이었으나 이번엔 말을 바꿨다. 무척 당황했다.
"그... 그럼 다시 해볼까요?"
왠지 처음처럼 잘 될것 같진 않은 불안감이 있었다.
율은 두손을 꼭 붙잡았다. 무섭다!
✲
율은 빅토르의 말을 들으면서도 못내켜했다.
진짜 초심자의 행운 아니야? 정말로?
그럴리가 없다. 초심자의 행운이여야만 한다. 이 모든 것은 운이여야만 한다!
왠지 초심자의 행운을 믿게 되었다.
"그... 그럼 다시 한번 해볼게요?"
vr게임이란 이리도 심오하구나.
율은 차오르는 hp를 잠시 보았다가 빅토르의 아바타에게 다시 뢰 속성 공격을 시도했다.
dice(1,100) value : 26
✲
아무리 약화됐다고 해도 한자릿수 다갓은 너무해요. 빅토르님. (아우성)
빅토르가 의아한만큼 율도 의아했다.
"저... 빅토르님...?"
율은 고개를 갸웃했다.
게임이 이상해진걸까...? 율은 고민하며 빅토르를 불렀다.
hp바를 힐끔 보니 개미 눈물 만큼 hp가 줄어들어 있었다.
"....어... 다시 공격해보시겠어요?"
이런 예의바른 공격 주고받기를 보았나.
✲
빅토르의 공격에 율도 고개를 기웃거렸다.
분명 전보단 조금 세진것 같은 공격이라고 느꼈는데 hp바가 깎이는게... 그 전이랑 비슷했다.
"역시 게임이 고장난걸까요? 이런 기술적인 부분은 어려워서..."
율은 진지하게 중얼거리더니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럼 제가 해볼테니 정말로 기슬적 문제인지 확인해봐요! 에잇!"
율은 뢰 속성 공격을 빅토르의 아바타에 집중했다.
dice(1,100) value : 22
✲
율은 결론지었다.
첫번째는 초심자의 행운이 맞았고. 그 다음부턴 진짜 제 실력이라는걸!
그 결과로 율의 눈 앞에는 아무런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다.
율은 빅토르를 따라 접속을 종료하며 vr기기를 벗었다.
'무슨일이예요. 빅토르님?"
율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물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차단이요...?"
율은 여전히 고개를 기웃거렸다.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핵을 깔다니. 대단한 범인이구나.
✲
율은 자기보다 덩치가 한 3배쯤 큰 사람이! 거기다 키도 그만큼 더 큰 사람이 자기 변호를 하며 뻘뻘거리는게 귀여웠다.
"아. 그렇군요? 저는 게임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요. 후후."
율은 작게 웃으며 휠체어를 끌곤 빅토르에게 다가갔다.
"그럼 그렇게 할까요? 저 솜사탕 너무 먹고 싶었거든요! 진짜 기대되요!"
율은 반경 30m 안팤으로 꽃이 둥둥 떠다닐것 같이 기쁨을 표출하고선 박수를 짝 쳤다.
"빅토르님 말이 너무 빠른것 같아요. 진정하세요. 진정."
빅토르의 말돌리기 스킬을 들통난지 오래였다.
✲
율은 어색하게 큰 소리를 내어 웃는 빅토르를 보고 키득거렸다.
"색깔말고 동물 모양이요? 와. 그런 솜사탕도 있나보네요? 신기해라... 어떤 동물이 좋을까..."
토끼, 곰, 강아지, 고양이... 율은 솜사탕으로 만들 수 있는 동물들을 생각하며 볼을 빨갛게 물들였다.
빅토르의 반응에 다시 후후. 웃었지만...
"괜찮으세요. 빅토르님? 솜사캉은 제가 사드릴테니까, 이제 달달한거 먹고 푹 쉬어요. vr은... 뭔가 착오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율은 차분하게 말하며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
"토끼랑 강아지... 일단 가서 보면 알겠죠!"
율은 두근두근한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재촉하듯 빅토르에게 말했다. 핑크색 토끼, 하늘색 강아지도 있지 않을까! 율은 신났다.
"앗! 그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괜찮은데...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오는 호의 막지 않고 가는 호의 막지 않는 율이었다.
"저는 토끼 솜사탕 먹고 싶어요! 귀가 있어서 왠지 양이 많아 보이잖아요?"
율은 이색적인(?)이유를 남기고 웃었다.
✲
"감사합니다. 빅토르님!"
율은 휠체어의 손잡이를 단단히 붙잡으며 빅토르가 이끌어주는 솜사탕 마차로 향했다.
왠지 상체를 좌우로 살짝 흔들며 콧노래를 부르다가 뒷쪽에 훤님이 아니라 빅토르가 있다는것을 알아차린 모양인지 깜짝 놀란 토끼처럼 심하게 몸을 움찔거렸다.
"곰돌이! 빅토르님은 곰돌이랑 잘 어울릴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치만 닮은 동물을 찾는게 아니니까 양 많은 토끼가 좋을지도요!"
율은 초록색 토끼를 상상하다 후후 하며 웃었다.
솜사탕 마차에 도착하자 정말 다양한 솜사탕들이 있었다.
율은 등 뒤에 놓아둔 작은 버건디색 반지갑을 꺼내고선 두근거리며 솜사탕 마차를 올려다보았다.
"저는 분홍색 토끼가 좋아요!"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둔것도 있었던 모양.
✲
"토끼? 양? 왠지 그런 순한 동물들과 닮았다는 말은 처음 들어 봤어요!"
율은 활짝 웃었다.
웃으면 16살 소녀같긴 했지만 무표정하다면 꽤 앙칼진 동물과 많이 닮았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는데.
어쨌든 좋은게 좋은거다!
"그렇네요. 일석이조!"
율은 후후 웃으며 빅토르가 고르는것을 기다렸다.
침착하게 기다렸다가 빅토르가 고른 초록색 토끼와 분홍색 토끼가 만들어지는것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빅토르님! 빅토르님! 초록색 토끼가 만들어지고 있어요!"
빅토르도 같은걸 보고 있다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율은 잔뜩 흥분한 말투로 하나하나 얘기했다.
빅토르님! 빅토르님! 토끼 귀가 만들어지고 있어요!
아주 시끄럽다.
✲
"고양이 닮았다는 얘기는 몇번 들어본 적 있는것 같아요! 그렇지만 토끼나 양 닮았단 소리도 듣기 좋은걸요?"
율은 장난기 가득하게 웃곤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양이 많은걸 선택한건 잘한것 같아요!"
고양이와 토끼의 솜사탕 비율이 두배 차이가 나는것을 바라보았다.
저 정도차이면 뭐... 값에서도 차이가 나겠지만.
"동그랗게 만들어지는것도 신기하지만 귀가 만들어지는건 더 신기해요!"
율은 완성된 초록색 토끼를 반짝거리는 눈으로 보다가 분홍색 토끼가 만들어지는걸 또다시 바라보았다.
마치 분홍색 토끼 솜사탕이 만들어지는걸 처음 봤다는듯 똑같이 두근거리는듯한 모습이었다.
"맛있을것 같아요!"
분홍색 토끼를 받아들고 토끼 솜사탕 두개 값을 지불했다.
얼굴보다 두세배쯤 커보이는 솜사탕을 들고 눈을 반짝였다.
"빅토르님. 빅토르님! 어디 앉아서 먹을까요?"
휠체어 끌면서 먹는건 조금 힘들지도...
✲
"예전에 몇번 들어본게 다라... 사실 지금 듣는게 더 좋은 어감이예요!"
율은 뜻모를 말을 남긴채 웃었다.
"분명 컸던것 같은데 빅토르님이 들고있으니 왠지 작아보여요."
율과 솜사탕. 빅토르와 솜사탕! 분명 같은 크기였는데도...!
착시현상이란 무섭구나.
"혹시 모자라시면 제꺼 드셔도 괜찮아요. 큰걸 사긴 했지만... 분명 다 못 먹을게 뻔하거든요."
율은 완성된 분홍색 토끼 솜사탕을 흔들거리며 빅토르에게 말하곤 웃으며 남은손으로 휠체어를 끌었다.
"그럼 그렇게해요! 마침 조금 쉬고 싶었거든요."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솜사탕을 먹을 시간이 무척 기대됐다.
✲
"예전엔 웃을일이 없었거든요."
율은 해맑게 웃었다.
율이 무표정한것과 웃는 표정은 많은 차이가 있다.
이게 바로 갭모ㅇ....(아니다)
"뺏어먹는거 아니니까, 혹시 더 먹고싶으면 말씀해주시는거예요?"
율은 웃으며 대답하곤 빅토르가 건네는 초록색 토끼 솜사탕을 건네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세져서 죄송해요. 잘 들고 있을게요!"
그리고 빅토르가 테이블이 있는곳으로 열심히 가고 있을때 율은 분홍 토끼 솜사탕의 동그란 눈동자를 이기지 못하고 얼굴을 파묻고 솜사탕을 베어물었다.
음! 달달하다아.
✲
율은 빅토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듯 고개를 기웃거리다 웃었다.
"전부 유클리드에 입학하고나서, 팀 프로메테우스의 여러분들을 만난 덕분이예요."
그리고 훤을 만난 덕분이다.
율은 그 말을 굳이 입밖으로 내진 않고 해맑게 웃었다.
"빅토르님이 좋다고 하시니 웃는것도 연습해둬야겠어요!"
왠지 이상한곳에 불타올랐다.
"네! 빅토르님 토끼는 무사해요!"
율은 얼굴을 파묻고 베어문 분홍 토끼 솜사탕 옆에 동그란 초록 토끼 솜사탕이 잘 있는것을 확인하며 오물거렸다.
오물거리기전에 확실히 다 녹아 없어져버렸지만.
"날씨가 무척 좋아요. 빅토르님은 vr 이후에 놀이기구라던가 타러 가지 않으시나요?"
율은 빅토르에게 벤치에 앉으라고 권하곤 물었다.
✲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율은 당황한 빅토르의 얼굴을 보며 키득거리며 웃었다.
분명 장난이었을게 분명했다.
"vr시설에서 놀다가 스파 다녀오고... 그것도 꽤 멋진 하루네요. 오랜만에 놀이기구를 타면 의외로 재밌을지도 모른다구요?"
율은 해맑게 웃었다.
아직 동그란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초록색 토끼 솜사탕을 빅토르에게 건넸다.
조금 녹아 없어진 분홍색 토끼 솜사탕을 다시 베어물며 헤실거렸다.
단게 들어가니까 사람이 속없어 보이기도 했다.
"이번해 수학여행은 굉장히 재밌네요."
율은 솜사탕을 뜯어 입에 넣고 작게 오물거리곤 말했다.
✲
"그래요? 그렇게 되면... 솜사탕을 먹고 난 후에 가보는것도 나쁘진 않을거예요!"
율은 빅토르의 말에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귀 한쪽과 머리 위쪽 일부가 사라지는 초록색 토끼 솜사탕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대단하다. 라는게 율의 감상이었다.
"천천히 드세요. 아무리 솜사탕이지만 체할지도 몰라요...?"
율은 자기가 말하고도 고개를 기웃거렸다.
솜사탕 먹어도 체하나? 하긴, 물 먹어도 체하는데 솜사탕도 체하지... 않을까?
율은 조금 실없이 웃었다.
"저도 이쪽으로 수학여행 올거라곤 생각도 못했어요. 학교에서 꽤 힘을 써준것 같아요."
율은 살짝 미소지었다가 빅토르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빅토르님, 빅토르님. 코에 솜사탕 묻었어요."
율은 말과 동시에 작은 손을 뻗어 초록색으로 몽글한 솜사탕을 떼내며 살며시 웃었다.
✲
"탈만한게 있을까요?"
율은 고개를 기웃거렸다.
탈 수 있어도 중심이나 잡을 수 있을까 싶었다.
"앗... 그러게요...?"
율은 빅토르의 솜사탕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솜사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귀 뒤짝과 얼굴 일부를 잃어버린 빅토르의 솜사탕과는 다르게 율의 솜사탕은 아직 귀 한쪽만 잃어버렸다.
"...앗! 무심코 얼굴에 손을 대버렸네요! 말씀을 해드릴걸 그랬어요..."
율은 창피한듯 크게남은 솜사탕으로 얼굴을 가렸다.
✲
앉아서 타는, 느린것.
율은 빅토르의 말에 홀린듯 입을 열었다.
"대관람차...?"
는 아니지. 거긴 좁고, 느리고! 빅토르님이 불편하실거야.
율은 고개를 도리도리 젓곤 웃었다.
"좀 더 드시겠어요? 아쉬워 보이셔서..."
율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아직 한참 남은 분홍색 토끼 솜사탕을 빅토르에게 내밀었다.
"저... 입 댄 부분은 손으로 뜯어놨으니까요! 더럽지 않으니까요!"
횡설수설하는 율의 얼굴은 부끄러움에 빨갰다.
✲
"네...? 그래도 괜찮을까요?"
율은 눈을 반짝거리며 되물었다.
어찌됐든 아무것도 타지 못하고 가는것보단 하나라도 타는게 낫겠지! 싶었다.
"그럼 갈래요! 가고싶어요!"
율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넷! 조금 먹으니까 혀가 달아서요! 괜찮으니까 드세요."
율은 당황하는 빅토르를 따라 팔을 파닥거리며 빅토르에게 솜사탕을 건네주었다.
✲
"네. 가져가세요."
율은 계속 되묻는 빅토르를 향해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먹는 사람은 언제나 보기좋군!
율은 흐뭇하게 웃으며 작아지는 분홍 토끼를 보았다.
"그냥 버리는것보단 누군가 먹어주는게 좋지 않을까해서요."
어쨌든 율은 솜사탕을 먹는다는 소원하나를 이루어냈다.
율은 빅토르의 말에 천천히 움직이는 대관람차를 바라보았다.
"대관람차에선 야경을 보면 아름답다고 하던데. 정말인가요?"
율은 궁금한듯 문득 물으며 웃었다.
✲
분홍 구름이 빅토르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율은 고개를 끄덕이긴 했으나 그리 간단히 금방 헤치울줄은 몰랐다는듯 눈을 끔뻑였다.
"우주를 떠돌며..."
율은 빅토르의 말을 따라말하며 멍때릴뻔 했지만 금방 정신을 차렸다.
"그런 예쁜 별들을 보는건 아직 시간이 이르겠지만, 분명 예쁠거예요."
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밝게 웃었다.
"그럼 가볼까요?"
대관람차!
기대된다!
✲
분홍 토끼 솜사탕도 초록 토끼 솜사탕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몽글한 구름들은 어디로 가고 막대기 둘만 덩그러니 남아버렸다.
빅토르가 막대기 두개를 버리고 오는것을 본 율이 살짝 웃었다.
"제일 꼭대기에 닿으면 구름에도 닿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율은 처음 타는 대관람차에 이상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한껏 기대되는 표정을 지은 율은 상상속에서나마 다른 사람들처럼 뛰어다니고 있었다.
구름에도 닿고 하늘에도 닿고! 개미만큼 작아진 사람들 위에 날아다니는 환상!
"앗! 네! 감사합니다."
율은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하지만 빅토르가 끌어주는 휠체어 속에서도 즐거운 기분은 숨길 수 없는 모양이었다.
다시금 나오는 콧노래를 주체하지 못한채 흥얼거리며 상체를 옆으로 왔다갔다 했다.
"저기 있어요. 빅토르님!"
한층 가까워지고 한층 더 커진 대관람차를 바라보며 율은 준비했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 두껍고 넓은 토끼 모양 담요를 허리에 묶어 하반신 전체를 보이지 않게끔, 혹여나 있을 불상사에 눈총 받지 않도록 했다.
✲
율은 빅토르의 반응에 즐거운듯 웃었다.
귀여운 분이라니까, 빅토르님은!
하지만 대관람차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구름까지 닿기엔 너무 큰 꿈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율은 빅토르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탄채 준비된 담요를 토닥였다.
저번에 리더님한테 그랬던것처럼 누군가 안아서 데리고 들어간다면 전부 괜찮다! 고 생각했지만
직원을 부르러 간다는 빅토르를 보며 당황스러워했다.
"아, 아뇨! 그... 휠체어 접히니까 괜찮아요. 휠체어는 두고... 저... 아, 안으면 되거든요..."
허리에 묶은 담요를 토닥거리며 율은 새빨간 얼굴로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지, 직원분한테 안아서 옮겨달라고 하면 될것 같기도 하고요..."
율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말했다.
✲
"그... 부.. 부끄러워서 그런거예요!"
율은 두 손을 들어 새빨간 얼굴을 가렸다.
귀까지 빨개진것은 가릴 수 없었지만.
어쨌든 빅토르가 안아준다니 안심... 안심인가?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 안아주는게 더 나은거 아냐? 아는 사람이 안으면 더 부끄러운거 아냐?!
율이 갈팡질팡 하는 사이에 빅토르의 말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오히려 감사한 일이죠! 정말로! 부끄러워서 그런것 뿐이니까요...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직원들을 보니 다 여자들뿐이어서 율을 옮기기엔 무리가 있었다.
율은 빨간 얼굴을 진정시키려 손부채질을 열심히 하며 심호흡했다.
"그, 그럼... 부탁... 드릴게요...?"
백님, 도와줘요!
율은 마음속으로 소리치며 빅토르에게 두 팔을 뻗었다.
안아달라는 표시입니다.
✲
"정말 괜찮아요! 진짜에요!"
율은 억울했다. 진짜 부끄러워서 그런것인데 빅토르가 계속, 재차 물어오는게 더욱 부끄러웠다.
아니, 이렇게 사람이 있으면 오해할지도 모르고 말야. 부끄러운게 당연하잖아, 열여섯살 소녀인데!
"네, 네에..."
율은 두 팔을 뻗고도 계속 물어오는 빅토르 덕에 눈을 질끈 감았다.
몸이 불편한 사람 편안하게 해주려고 안고 옮기는것 뿐인데도 이정도 반응이면...
율은 실눈을 뜨고 가까이 붙어 있는 빅토르의 빨간 얼굴을 힐끗 보았다.
보면 안돼! 실례야. 율이 숨죽여 있는 사이, 직원이 율의 휠체어를 접어 구석에 놓아두는것이 보였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대관람차 안으로 들어서고, 빅토르에 의해 맞은편에 앉혀지자 그제야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감사해요, 빅토르님."
율은 화끈 달아오른 볼 부분을 차가운 손으로 식히며 재차 감사 인사를 전하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사이에도 계속 움직이는 대관람차의 바깥 풍경에 율은 금세 잊어버리곤 창문에 찰싹 붙었다.
"와아! 하늘이 가까워지고 있어요. 빅토르님!"
신났다.
✲
"정말로 사람들이 개미만하게 보여요! 앗! 저기 풍선 올라가요!"
율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채 손가락으로 하늘로 올라가는 풍선을 가리켰다.
아마 다리가 있었다면 마구 흔들었을 정도로 기뻐하고 있는 상태였다.
"다음엔 정말로 야경을 보고 싶네요. 물론 낮에 보는것도 예쁘긴 하지만, 밤에 보는것도 예쁠것 같아서요!"
율은 생글 웃고선 마스크 위로 목도리를 끌어올렸다.
목도리를 꼬옥 잡은 손과 반짝이는 눈이 기대감에 들떠있는것 같았다.
"와! vr시설이네요. 왠지 고장난것 같아요. 수리하러 온 사람들인가...?"
율은 고개를 기웃거렸다.
아마 핵 때문에 그런거겠지.
"또 뭐가 보일까요?"
율은 신난 표정으로 창문에서 달라붙은채 바깥의 경치에 집충했다.
✲
"소원풍선이요?"
율은 빅토르를 따라 적힌 글씨를 보려고 눈을 가늘게 떴으나... 보이지 않았다. 아쉽다.
"네! 밤에 꼭 와야겠어요!"
율은 들떴다. 이번엔 백님한테 같이 타달라고 할까? 근데 왠지 같이 타면 대관람차를 타는동안 졸고 있는 백의 모습이 상상됐다. 그건 안되는데.
"그렇죠? 그래도 다행이에요. 빨리 수리하러 와주셔서."
율은 다시 vr시설을 보고서 조금 안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청난 긍정파워였다!
"정말요? 리더님? 음... 잘 안보여요. 토끼가 제일 크다고 알려줘야 하는데!"
율은 후후, 소리내어 웃었다가 창문에서 떨어져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계속 옆으로 있었더니 허리가 아팠던 모양이다.
"빅토르님 뒤로도 하늘에 구름이 예쁘게 떠있어요."
율은 작게 웃으며 빅토르의 뒤에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을 보았다. 예쁘다.
✲
"네. 대단하시네요 빅토르님! 풍선이 저렇게 작은데 보이세요?"
말하는 이 순간에도 하늘 높이 날아가는 풍선을 바라보다가 신기한듯 빅토르를 바라보았다.
"좋네요! 사실 방금 백님이라도 끌고와서 같이 볼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율은 방긋 웃었다.
혼자서 대관람차에 다시 오기엔 수많은 난관을 거쳐야했으니까.
"내일이면 아마 고쳐질것 같네요. 다시 와도 괜찮을것 같은데요? 빅토르님."
율은 생글 웃었다.
"저렇게 조그마한 사람이 잘 보이는 빅토르님 시력이 굉장히 부러워지는걸요? 백님이요? 알죠! 결명자차 말이죠? 알겠어요! 다음에 꼭 부탁드려볼게요."
율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백 보다 율이 시력이 좋다는건 안비밀이었다.
"구름에 닿을것 같아요!"
안 닿는다.
✲
"네! 친하다고 할까... 요즘 계속 같이 있었거든요. 제가 훤님을 부르질 않아서..."
율은 후후 웃었다. 백한테 부탁한다고 해도 거절할 사이는 아니라고 봐도 무방했다. ...아마도?
"다행이네요. 아마 vr체험을 많이 해서 빨리 끝날것 같아요."
vr체험장이 있는 시설을 바라보다가 그만뒀다. 아, 눈 아파라.
"그래요? 그치만 어딘가에 좋다고 하는 차는 매일매일 꾸준히 마셔야한다고 하던데... 빅토르님이 원래 시력이 좋은거 아니에요?"
잠깐 하늘을 보다가 빅토르를 보고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생글 웃었다.
"이제 다시 내려가네요. 조금 아쉽지만... 정말 좋았어요! 빅토르님."
율은 해맑게 웃었다.
- 앨리스 캐럴
- 율은 궁금했다.
vr게임장...수리 중이었던것 같은데 수리 잘 됐을까? 하고...
그리고 vr게임장이 보일때쯤 보았다.
하늘을 걸어다닐듯 나비처렁 팔랑거리며 뛰듯 걸어오는 앨리스였다.
오, 신선해.
율은 멀리서 앨리스를 보곤 두 손을 동그랗게 만들어 두 눈가 위로 붙였다. 인간 망원경이다!
"노래를 부르며 뛰어오는 앨리스! 아! 하지만 뭔가 보고 갑자기 텐션이 낮아졌어! ...아. 아직 수리중인가보네..."
율은 눈가에 붙였던 손을 풀어버리곤 휠체어를 밀었다.
"앨―리이―스으―"
앨리스에게 다가가며 밝게 인사하는것도 잊지 않았다.
해맑.
✲
율은 앨리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정말? 아쉽겠다..."
텐션이 바닥을 쳤다가 다시 돌아왔다가 다시 조금 내려가는듯한 앨리스의 표정에 율은 진심으로 아쉽다는 말을 해주고 앨리스를 토닥여주었다.
"수학여행 끝나기전에 고쳐졌으면 좋겠네. vr말야. 앨리가 엄청 좋아할것 같다고 느꼈거든."
아까전 앨리스의 모습이 생각났는지 율은 살짝 웃었다.
"다른 vr게임도 모두 수리중인거야? 다른건... 해보고 싶은건 수리중이었던 저거였어?"
율은 달리 할 게임이 없나 싶어 두리번거렸다.
친한 친구가 시무룩해 있는걸 보는건 마음이 아픈 일이라고 느꼈는지 말이 조금 많아졌다.
✲
율은 앨리스의 말투에서나 표정에서 엄청 아쉽다는 그 감정을 읽어낼수 있었다. 그럼... 그 게임 할 생각에 엄청나게 기분 좋아보였는데 냅다 수리중이라니... 아쉬울만 했다. 그것도 엄청.
"그...렇지? 응! 다음에 하면 되는걸!"
율은 앨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걸로 기분이 풀리면 좋을텐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른거 뭐 하고 싶은건 없어? vr말고도 재밌는거 많더라! 아! 맛있는것도 많이 팔고 있었어! 솜사탕이랑 핫도그랑.. 아! 풍선도 팔아! 놀이기구는 대관람차 타봤는데 정말 재밌었어! 그리고 테마파크니까 놀이기구 말고도 많이 있던데!"
제일 좋아하는걸 못하게 됐을때의 기분을 잘 알진 못하지만... 뭐든 이것저것 갖다 붙혀도 나아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율은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안내책자 읽은 보람이 있어!
✲
"그.. 그렇겐 생각하지 말자. 앨리."
왠지 생각의 흐름이 어두워졌다!
율은 흐릿해지는 눈앞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곤 앨리스의 팔을 톡톡쳤다. 그런 생각 하지마!
"그치? 재밌겠지!"
앨리스가 다시 이 세상 어느 무엇보다 이렇게 기쁜것이 있을까! 히는 미소에 율도 덩달아 활짝 웃었다.
"응! 어디로 갈까? 앨리는 뭐하고 싶어?"
두근두근! 친구와 함께하는 테마파크 여행!
✲
"그렇지! 난 앨리가 웃는게 더 좋아!"
앨리스를 보고 방긋 미소지었다.
"나도! 난 처음이라서 엄청나게 기대했어! 그래서 계속 돌아다녔지 뭐야! 팔이 조금 아파."
흥분한채로 말을 잇던 율이 헤헤 웃더니 팔을 토닥거렸다.
과장스러운걸, 이 율!
"음... 난 놀이기구 제한이 많이 당하니깐 말이야! 앨리가 놀이기구 타면 밑에서 사진 찍어줄게!"
율은 후다닥 휴대폰을 찾아 들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내키지 않으면 다른거 생각해보자!"
앨리스의 표정을 살피던 율이 덧붙이곤 웃어보였다.
✲
"난 항상 웃고 있는걸?"
율은 손가락을 입가로 가져다대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안 그래도 올라가 있던 입꼬리라서 큰 차이는 없었다만.
"앗! 아냐! 그건 과장이었어 과장! 응! 이 몸은 휠체어에 단련되어 있는 몸이라구?"
율은 후후, 작게 웃었다.
딱히 친구에게 힘을 빌리고 싶진 않았던 모양이다.
"일단은― 대관람차는 탈 수 있단걸 확인했어! 그렇지만 그건 좀 지루하겠지? 다리가 필요한 놀이기구 빼면 탈 수 있을텐데!"
아쉬워라!
율은 진짜 아쉬운듯 다시 안내책자를 뒤적거렸다.
✲
"그래? 그럼 앨리를 위해서 더 많이 웃어줘야겠다! 앨리도 날 위해서 많이 웃어주기야!"
율은 장난스런 말투로 말하곤 웃었다.
"알았어. 그땐 주저 없이 말할테니까!"
율은 씩씩하게 말했다.
씩씩..한거 맞겠지 아마도.
"낮에 봐도 좋던걸? 개미만큼 작은 사람 구경이라고 할까."
율은 헤헤, 작게 웃곤 휠체아를 끌었다.
"좋아. 그럼 돌아다니면서 정해볼까? 아마... 떨어질것 같은? 360도로 돌아가는것만 아니면 괜찮을거야!"
율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곧바로 웃었다.
비록 롤러코스터 같은건 못타겠지만 후룸라이드라던가 범퍼카라던가..다리를 안쓰는 거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
율은 앨리스의 새끼 손가락에 자신의 새끼 손가락을 걸었다. 약속이란 말에 활짝 웃었다.
"응! 약속인거야!"
드디어 꿈만 같았던 새끼 손가락 걸고 꼭꼭 약속해를 실현해본 순간이었다. 앨리스의 새끼 손가락과 닿은 손가락을 빤히 바라보다가 웃었다.
"확실히! 그런 기분이 들긴 했어."
율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세개나? 좋아... 그럼 이럴땐 역시 사다리타기지!"
율은 휴대폰에서 사다리 타기를 시도했다.
dice(1,3)
1후룸라이드
2피터*
3지구마을
✲
"지구마을이구나! 뭔지 궁금해!"
율은 눈을 반짝 빛냈다. 휴대폰을 끄고 잘 정리해 넣고 다시 휠체어를 끌었다.
"얼른 가자. 앨리!"
율은 한껏 기대된다는 표정을 지은채 환하게 웃었다. 기대감에 볼이 점점 빨갛게 물들어갔다.
뭐가 그렇게 좋은것인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문득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나! 길을 몰라!"
이제 알아차린 모양이다. 긁적.
✲
"보트?! 음악이랑 인형?!"
율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앨리스의 설명에 무엇을 생각했는지 눈이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얼른 가고 싶어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율이 어디로 가야할지 찾고 있었다.
"응응! 얼른 가고 싶은데에..."
얼른 가고 싶은데 길을 몰라!
길을 몰라 갈팡질팡 하고 있을때 앨리스가 팸플릿을 들고 있다는 희소식에 궁금한듯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음... 좋아! 갈 수 있어! 고마워."
앨리스가 마음 써주는 것이 고마워 활짝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덕분에 지도를 보고 아주 편안하게 길을 찾을 수 있게 됐으니까. 율은 고개를 끄덕이고 휠체어를 굴렸다.
"좋아! 드디어 가는거야, 앨리!"
두근두근 지구마을 탐험대!
✲
"나 너무 기대되기 시작했어! 보트 처음 타보니까말이야! 그리고 인형이랑 음악이라니... 지구마을보단 동화마을이라는 이름이 맞지 않을까?"
율은 무엇을 상상하는지 후후 웃었다.
무엇을 상상하든 앨리스랑 함께하면 진짜 기쁠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율은 지도에서 본 길을 따라 갔다.
"응응! 지도만 보면, 찾아가는건 나한테 맡겨! 의외로 숨은 재능일지도 몰라. 길 찾기는 은근히 잘한다고 생각해!"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고 했다. 율은 후후, 웃었다. 이 어트랙션만 지나서... 여기서 꺾고... 머릿속 시뮬레이션은 완벽했다.
"역시 앨리야!"
가다가 앨리스에게 활짝 웃으며 원따봉도 날려줬다.
"지구마을~ 지구마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천천히 휠체어를 끌다보니 어느새 지구마을이란 글자가 보였다. 율은 모험을 완벽하게 해낸 모험가처럼 뿌듯하게 앨리스를 보며 웃었다.
"도착했어! 앨리!"
도착했다!
✲
"아! 그렇구나! 그래서 지구마을이구나."
율은 이제야 깨달은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앨리 길치였구나? 걱정마. 절대로 길 잃지 않게 해주겠어!"
뭘 믿고 저런 말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믿음직한 발언이... 발언이었나?
"응! 얼른 들어가자! 보트~ 보트~ 인형~"
건물 내부로 들어가 은은한 조명이 밝혀진 통로를 따라 깊숙이 들어갔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들어가다보니 차가운 물냄새와 찰랑이는 소리가 들렸다.
"앨리! 진짜 보트야! 와! 얼른 타보자!"
율은 엄청난 기대가 깨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리가 있다면 기대감에 동동 구르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앗. 감사합니다아.."
직원의 도움을 받아 공주님 안기로 보트로 배달된 율이 감사인사를 남겼다. 옆자리를 탁탁 치며 앨리스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앨리! 빨리빨리!"
본의아니게 앨리스를 독촉했다.
✲
"그러엄! 나만 믿어!"
마치 오뻐 믿지?를 연상케하는 말을 내뱉았다.
윙크...는 다행히 안했다.휴.다행.
"낭만적이고 경박하다라...뭔가 대조되는 분위기가 있구나!"
율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보트 손잡이를 꼭 붙잡았다. 인형의 위 아래로 쏴대는 밝은 조명이 먼저 눈에 들어오면 귀로는 밝은 음악이 들려왔다. 움직이는 인형에 율은 눈을 반짝였다.
앗.
율은 얼른 카메라를 꺼내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앨리랑 같이 보니까 진짜 좋아! 재밌어!"
목소리에 설렘과 기쁨이 가득이었다.
✲
다양한 인형과 나라마다 특색있는 컨셉,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음악이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특히 처음 보는 율의 시선을 사로잡기엔 충분했다.
동영상을 계속 찍고 있던 율이 앨리스의 말에 활짝 웃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앨리!"
율은 앨리스의 활동적이고 발랄한 모습에 후후 웃었다.
설렌듯한 목소리와 함께 콧노래까지 들려오니 율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사타리 타기야 고마워!
"이거 꽤 길구나? 그 동안 앨리랑 있다니! 뭔가 색다른 기분이야! 안 끝났으면 좋겠다아. 계속 같이 있고 싶은데!"
율은 방긋 웃었다.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을 긴 시간이 끝나가는 느낌이었다.
아, 아쉬워라
✲
율은 앨리스의 말을 들으며 눈을 깜빡였다. 고개를 돌려 앨리스를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응! 다음에 또 오자. 그땐 좋은 시간이 될지도 몰라. 그때가 되면, 나도, 앨리도 더가까워져있겠지! 이미 가깝지만 말이야!"
율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사실이었지만 더 가까워져 있겠고, 다음엔 좀 더 많은걸 할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율은 기뻤다.
지구마을을 둘러보는 시간은 이제 끝나갔다. 율은 동영상 촬영을 마무리짓고 휴대폰을 잘 챙겨 넣었다.
다시 직원의 도움을 얻어 휠체어로 옮겨타면 지구마을 탐험은 종료였다.
"정말 즐거웠어. 앨리! 훤님한테도 빨리 동영상 보여주고 싶어! 그리고 이 동영상은 꼭 잘 간직할게. 그리고 앨리한테도 보내줄게!"
율은 해맑게 웃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훤에게 알려주고 싶어 안달이났다.
다시 되돌아가는 길에 vr시설의 수리가 끝난게 보였다. 놀이동산이고 사람이 많다보니 수리도 꽤 빨리 끝난 모양이었다.
앨리스가 엄청나게 하고싶어하던 게임이었으니까 마음 써주는 앨리스를 억지로(?) 그곳에 남기곤 율은 놀이동산을 빠져나가기러 했다.
- 루이스 캐럴
- "훤님, 훤님. 오랜만에 운동장에 나가봐요. 여름도 됐으니까 운동장 풍경도 새로 그리고 싶어요."
오랜만에 훤과 대화를 나누던 율이었다.
오늘 율은...겨울보단 가벼운 옷차림이었지만 여전히 몇겹은 껴입은듯 보였고 목도리와 마스크는 여전히 착용중이다.
날씨도 좋고 해도 쨍쨍하니 그림 그리기 좋은 날이다.
율은 흥얼거리며 휠체어를 끌며 운동장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어디서 그려야 제일 예쁜 구도가 나올까.
"저기로 가보...앗!루이스!"
익숙한 얼굴이 보이자 휠체어 끄는 속도가 빨라졌다.
율은 루이스를 발견하곤 환하게 웃었다.
"루이스!그리고...!"
율은 앨리스가 열심히 빗질을 해주고 있는 대상을 바라보았다.
하얀색.하얀 털뭉치.하얀 동그라미.하얀 공.하얀 토끼!
"토끼!"
율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
"응! 안녀엉!"
율은 토끼를 보고 들뜬 마음으로 루이스에게 인사했다.
...목적은 시론같아 보였다.
휠체어를 열심히 끌고 루이스의 가까이 다가가서...
...등받이에 있는 스케치북과 연필을 꺼냈다.
"시론? 귀여워!한번 만져... 아니, 그려봐도 괜찮아?"
엄청 들떠보인다.
이미 대답도 안듣고 그릴.생각이 가득한듯 스케치북의 빈곳을 펼쳤다.
"빗으로 빗겨주고 있었어? 루이는 착한 주... 아닌데? 루이 치료과잖아?"
고개를 기웃거리며 궁금한듯 루이스와 시론을 번갈아 보다가 단번에 알아차린듯 아 하는 표정이됐다.
"앨리 정령이구나?"
해맑.
✲
"그럼 만지는거랑 그리는거랑 둘 다 할래!"
율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그럼 실례할게요...시론님...?"
그러니까...손을 뻗어 시론의 복슬복슬 부드러운 털 위로 손을 아주 사알짝 올렸다.
표정이 흐물흐물 녹기 시작했다.
너어무우 귀여업잖아아!
"쓰다듬으면서 그림그릴래..."
시론에게 박힌 눈이 떼질줄 몰랐다.
스케치북에 연필들 대고 슥슥 그리는 폼이...그리는둥 마는둥 보였지만 잘 그려지고 있다.
"진짜 부들부들해...너무 부드러워...!"
얼굴이 홍당무가 됐다.
시론을 쓰다듬는 손이 조심스러웠지만 한층 대범하게 쓰다듬었다.
"몇 주전에...맡겨져....?왜...?"
율은 의아한듯 물었다.
✲
율은 탁월한 선택이란 말에 뿌듯해보였다.
어깨를 으쓱...이진 않았다.
"꼬리?응! 조심할게! 꼬리는 안돼...꼬리는 안돼..."
안그래도 시론의 등을 대범하게 쓰다듬고 있다가 급하게 동작이 조금 소심하게 변했다.
만약 꼬리에 닿으면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응! 어때? 대단하지! 이게바로 이 율의 멀티태스킹 능력이라구."
당당하게 우쭐거렸다가 민망했는지 키득거리며 웃었다.
일부러 목소리를 낮게 깔아 말하는 루이스의 행동에 덩달아 시론을 쓰담쓰담하는게 느려졌다.
"엑...? 정말?...루...루이스 일부러 거짓말 하는거지?아무리 그래도 일주일은...애..앨리한테 물어본다...나중에...?"
긴가민가하면서 동공지진이 일어났다.
✲
"아. 그런거였어? 그래도 안만질래..."
나는 살짝 닿는것도 싫은데.아니. 보는것도 싫을지도...
라고 입밖으로 꺼내진 않고 생각만했다.
"아예? 정말로?"
금방 빵끗 웃었다.
루이스의 말에 뭐가 그렇게 웃는것인지...모르겠지만...
"...진짜야? 그거..."
웃는 얼굴에 점점 공포가 보였다.
진짜 일주일만에 모든걸 끝내버릴줄이야!
가만...근데 정령은 조금 다르...다르지 않나...?
율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연필을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루이. 다 그렸어. 봐줄래?"
시론이 완성되었습니다!
율은 스케치북을 들고 루이스에게 보여주었다.
짜자잔!
✲
"정말? 기뻐한다면 기분 좋은데요, 시론님~"
아주 장난기가 다분한 말투로 시론의 부드러운 털을 토닥하며 해맑게 웃는다.
"아주 조금? 앨리가 들으면 서운해 하는거 아냐?"
키득키득거리다가 루이스의 말에 조금 사색이되었다.
"...진짜야...?"
그거 진짜라면 굉장히 위험한 미다스의 손이로구나...
율은 동공지진을 일으켰다.
"응! 아.이거 시론님한테 선물로 주고싶어! 루이가 대신 받을테야?"
대답도 안듣고 손이 먼저 스케치된 장을 북 찢어버렸다.
찢긴 부분은 실자르는 쪽가위로 잘라서 깨끗하게 만들었다.
동그랗게 말아서 여분의 머리고무줄로 묶어서 루이스에게 건넨다.
"여기!"
여전히 해맑다.
✲
"쑥스러워하고 있어? 어디어디~?"
율은 쑥스러워하고 있다는말에 시론을 바라보았다.
시론...너무 귀엽다!꺄아
하는 표정을 그냥 보여주고 있다.
"안 서운해한다구?..."
약간 이해하지 못한듯 고개를 기웃거렸다.
안 서운하다고?진짜?직접 들으면 서운하지 않을까...모르겠네.
율은 고개를 기웃기웃거리다가 기뻐하는 루이스의 모습에 뿌듯하게 웃었다.
"시론님을 향한 저의 애정! 보이시나요 시론님! 초상화가 되어 돌아왔답니다!"
갑자기 연극톤이 되었다.
아마 둘의 반응에 급격하게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너무 과장스럽다.
"그럼 루이는 시론님 털 빗어주는 중이었던거야? 오늘 날씨도 좋으니까 말이야. 시론님도 기분 좋아보여."
✲
"좋아하는거 같아서 다행...인데 루이, 괜찮아?"
뭔가 고통스러워하는 루이스의 표정에 율이 당황했다.
"정말? 앨리...그렇게 안보였는데..."
실망...?은 안했지만 율의 안에서 앨리스의 이미지에 변화가 생긴것같다.
루이스의 소녀같은 시론 연극에 키득거렸다.
아, 웃겨...
"그럼 날씨 좋은날에 시론님 찾으러 와야겠어. 날씨 좋은날이면 볼수있는거지?"
날씨 좋은 날이면 시론을 볼수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율은 환하게 웃으며 시론의 등을 쓰다듬었다.
✲
"아....안괜찮아 보이는데.....?"
율은 동공지진을 일으켰다.진짜로...
귀여운 토끼인줄 알았더니 손이 매운 작은 토끼였다!작지만 매콤한 친구야!
"...장난 수준이 아닌것 같은데? 정말 괜찮은거 맞아?"
율은 상당히 걱정하는 표정으로 루이스를 보았다.
...쟤...저러다가 솜방망이...아니 야구빠따에 얼굴 날아가는거 아냐?
"정말? 그럼 그때도 보면 이렇게 털 만져도 괜찮은거지? 시론님이 좋아하는 음식은 뭐야? 나, 백님한테 요리 배우고 있으니까... 시론님한테도 만들어줄래!"
율은 상당히 기뻐보였다.
✲
"정말...?"
율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루이스를 보았다.
괜찮은게 아닌것 같은데...하는 표정...
"음...루이가 그렇게 말한다면...믿겠지만..."
믿겠지만...믿겠지만...
...정말 믿어도 되는걸까?
"마들렌이랑 도넛? 다행히 마들렌은 만들 수 있어! 저번에 배웠거든...! 도넛도 금방 배우겠지...?"
율은 금방 방긋 웃었다.
할수있어, 이 율!
"아...아...아아...그렇게 대단한건 아냐...그렇게 따지면 오히려 백님이 더 대단하시고...루이랑 앨리도 대단하잖아?"
헤헿...
✲
루이스의 진지한 척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표정을 풀고 히히 웃는 모습에 당했다!는 표정이 됐다.
"도넛은...만약 기름에 튀기는거면 조금 무서울지도..."
율은 토끼 모양 분홍 담요를 힐끗 보았다.
뜨거운 불...!앞에 서는건 이제 조금 괜찮아졌지만 기름은 역시...무서워...
"왜?루이스도 대단하잖아!치료과에서 열심히 하고있고 시론님이랑 놀아주고 앨리도 잘챙겨주고!"
하나하나 열거하는 모습이 진지하다.
율은 담요를 팡팡 때리다가 시론을 쓰다듬었다.
진정...진정해라...!
✲
"정말? 그럼 그 방법으로 알려달라고 해야지...! 루이 대단한걸? 어떻게 알고 있어? 요리에 대한 지식도 있고...! 역시 대단한거 맞잖아! 루이는 대단한 사람이야!"
대단히 감격한듯 루이스를 보는 율의 눈이 초롱초롱하다.
그리고 역시 자기가 생각한대로라는듯 당당하게 루이스를 대단하다고 치켜세워줬다.
"고맙긴...! 친구니까 열심히 관찰한 결과일까!"
율은 환하게 웃었다.
율은 스케치북과 그림을 그리던 도구를 다시 등받이에 넣어두곤 기지개를 한번 켰다.
"오늘은 루이랑 시론님 만나서 기뻤어...! 다음주에 바다도 가니까 말야...! 그때도 신나게 놀자 루이!"
신나고 재밌게!따가운 여름 햇살을 받으며!여름에 잘 놀았다는 표시로 살도 조금 태우고!수박깨기도 하고!모래성도 쌓고! 재밌을거야!
- 에스텔라
- 율은 언제나 그렇듯 마스크와 목도리, 몇 겹의 옷가지를 껴입은 채였다. 오늘은 풍경화를 그릴 생각은 아니었는지, 커다란 준비물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휠체어는 그녀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도 잘 굴러갔다.
정확한 목적지가 있는듯 빈틈없이 굴러가던 휠체어는 식물원 앞에서 멈췄다. 율은 잠깐 심호흡을 하고서 휠체어 등받이에 있던 새 스케치북과 연필을 꺼내들었다.
"예쁜 꽃들이네요."
식물원에 들어서자마자 따뜻한 온기가 몸을 감쌌다. 식물들을 위해 적당히 조절된 온도가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율은 여러 모양과 여러 색을 가지고 있는 꽃들을 보니 새로운 도안을 그릴 생각이 마구 난 모양이었다.
율은 식물원 안으로 천천히 휠체어를 굴리면서 스케치를 시작했다. 그 짧은 시간에 순식간에 꽃들의 특징적인 모습만 잘 잡아내 몇 가지 꽃들을 그려냈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보는게 낫겠죠? 식물원 안에는 나비라던가, 새들도 있을지 궁금해요."
율은 아무도 없어 보이는 허공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어떤 대답을 들었는지 웃음소리가 조금 커졌다. 다시 휠체어가 굴러갔다.
"우리끼리만 있는게 아니었던 모양이네요."
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오고, 상대를 알아볼 수 있게 되자 율은 환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연필을 쥐고 있던 손을 빈손으로 만들고서 손을 흔들어보였다.
✲
율은 에스텔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1학년. 정령과의 이 율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율은 스스럼없이 자기소개를 하고서 살짝 고개를 들었다. 에스텔라의 옆쪽의― 아무도 없어보이는 허공에 잠시 눈길을 주는가 싶더니, 다시 에스텔라를 바라보았다.
"식물원엔 어쩐 일이세요? 저는 그림을 그리러 왔답니다."
율은 무릎에 단정히 놓여있던 스케치북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사람과의 만남이 어지간히 그리웠던 모양이었는지 자기가 뭘 하러 이곳에 왔는지 모두 알려주고 있었다.
"여기 되게 예쁜 꽃들이 많아요. 향기도 좋구요."
율은 마냥 해맑게 웃으며 들떠 있었다.
✲
"에스텔이로군요. 만나서 반가워요!"
율은 미소를 지으며 에스텔라에게 꾸벅 인사했다. 그리고 이어진 정령의 소개에 눈을 깜빡였다. 정령까지 소개받을줄은 몰랐다는듯 약간 당황하며 허둥지둥 이쪽에도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크로우 씨! 아, 이쪽은 훤님이세요."
자기도 정령을 소개시켜줘야고 생각했던건지, 에스텔의 정령 소개에 곧장 자신의 정령도 소개하고 말았다. 그냥 소리소문도 없이 잠깐 모습을 드러내선 고개만 짧게 까딱거리는 무사의 인사였을 뿐이었지만.
"그래요? 저는 식물원에서 누군가를 만날줄은 생각 못 했어요. 생각해보면, 그림을 그리러 나오는 날엔 누군가와 만나는것 같네요."
율은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에스텔라의 미소에 따라 생글거렸다.
"우주에 꿈을, 별들에 소원을... 굉장히 멋진 말이예요!"
율은 눈을 반짝였다. 여느 소녀의 감성과 마찬가지로 쉽게 동화된 모양이었다.
"크로우 씨가 안계시면 향기만 맡을 수 있나요?"
조금 궁금증이 생긴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차 싶었는지 손을 좌우로 휘적거렸다.
"아, 아! 이상한 질문해서 죄송해요. 잊어주세요."
부끄러웠던 모양인지 스케치북으로 머리를 때렸다.
✲
크로우가 훤을 예의주시 하는 사이에도 훤은 무신경한 태도였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율은 그걸 아느지 모르는지 그저 에스텔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좋은 분이셨을것 같아요. 너무 예쁜 말인걸요."
율은 우주에 꿈을, 별들에 소원을. 이라는 말에 충분히 감동을 받은 상태였다.
에스텔라의 대답에 부끄러워 머리를 때리던 스케치북이 천천히 내려갔다.
"눈이 보이지 않으시군요. 오감을 공유한다라. 크로우 씨는 대단한 분이셨네요!"
율은 충분히 반짝이는 눈으로 에스텔라와 그 옆― 크로우가 있을법한 곳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 아!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을테니까요."
율은 에스텔라의 대답에 그녀와 크로우의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가는지 짐작하고선 확신을 주듯 말했다.
"―아. 오늘 도안을 다 그려야 하는데... 정말 미안해요. 에스텔. 에스텔의 시간을 빼앗아 버렸네요.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율은 잠깐 시간을 확인하더니 무언가에 쫓기는듯 허둥지둥 에스텔에게 작별인사를 남겼다. 율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휠체어 바퀴는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리조트의 질 좋은 뷔페식 식사!
율는 구석진 곳에 자리잡고 앉아 있었다.
뷔페는... 관심도 가지지 않고 한입으로 작게 썰어 가지고 온 싱싱한 당근조각을 오물거렸다.
"오늘은 박물관에 가볼까!"
아침이라 부스스한 머리로 뭔가 유심히 보고 있었다.
기대에 반짝거리는 눈으로 보는것은... 박물관 책자였다.
"혼자 갈까? 아니면 친구랑..."
율은 중얼거리며 손에 든 당근을 와작거렸다.
✲
"에스텔 언니!"
율은 잔뜩 흥분한 표정이었다.
볼을 빨갛게 물들인 율이 에스텔라를 향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잔뜩 흥분한탓인지 흔들리는 율의 몸을 따라 흘러내리는 토끼 모양 담요를 황급히 붙잡았다.
"여기, 오늘은 박물관에 가볼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 마법소년들이랑 마법소녀들이랑 괴물들 본딴 조형물도 있대! 진짜 멋질것 같아!"
율은 잔뜩 흥분한 말투로 에스텔라의 앞에 책자를 펼쳐 보였다.
"그래서 누구랑 같이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언니는 오늘 뭐 할 예정이야?"
율은 고개를 기웃거렸다.
✲
율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에스텔라를 바라보았다.
물론 혼자 가는것도 느긋하고 즐겁긴 하겠지만 에스텔라와 함께 박물관을 둘러보는건 두배, 아니 세배! 아니 만배는 더 즐거울게 분명했다.
그래서 에스텔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좋다고 했을때 율의 얼굴은 더없이 밝아졌다.
환하게 웃던 율은 책자를 빠르게 정리해서 등 뒤의 스케치북과 함께 놓아두곤 에스텔라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당연히 괜찮지! 나도 언니랑 가는거 무척 기대하고 있었어. 에스텔 언니도 꼭 가보고 싶었구나? 다행이다아! 그럼 같이 가자!"
율은 즐겁게 웃으며 휠체어를 끌려고 하다가 문득 생각난듯 에스텔라에게 말했다.
"언니, 언니! 밥은 먹었어? 아침은 든든하게 먹어야한다고 백님이 그랬어!"
백이 말했다니까 신빙성이 확 떨어졌다.
✲
율은 크로우가 차려준 밥상이란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다행이다. 아침 든든하게 챙겨먹어서. 크로우씨가...? 정말 못 하는게 없으시네요. 크로우씨는!"
율은 감탄하듯 크로우를 바라보았다.
부담스럽게 눈이 반짝거렸다.
"저도 나중에 꼬옥! 먹게 해주세요!"
율은 해맑게 웃으며 크로우에게 말했다.
다시 휠체어를 끌려고 할때, 에스텔라의 조심스런 말이 들려오자 율이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은걸. 훤님이 없었던때도 휠체어는 혼자 끌었고 말야. 보는 사람이 좀 그런가...?"
율은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웃었다.
"그럼 정힘들다 싶을때 언니나 크로우씨에게 도움 청할게. 얼른 가자! 오늘은 하루종일 박물관에 있고 싶어질지도 몰라!"
율은 기대가득한 눈을 반짝이며 휠체어를 끌며 에스텔라와 함께 박물관으로 향했다.
✲
"와아! 감사해요. 크로우씨!"
율은 휠체어를 끌면서 환하게 웃었다.
아마 만약 그 식사 자리에 초대가 된다면 인생에서 손 꼽힐 정도로 성대한 식사 자리가 되는게 아닐까! 하고 허튼 꿈도 꾸었다.
"응? 아냐, 아냐. mt때도 그렇고 지금도... 일부러 훤님 안불러. 훤님도 내가 사람들이랑 지내길 바라셔서... 그리고 훤님이 없었던 시간이 더 기니까 괜찮은걸!"
율은 빙긋 웃고 있다가 에스텔라가 가리킨 건물을 바라보았다.
"앗! 정말이다! 언니! 나 갑자기 두근두근거리기 시작했어!"
율은 상기된 얼굴로 박물관과 에스텔라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바로 박물관으로 질주하듯 휠체어를 끌었다.
✲
율은 휠체어 밑을 보는것도 잊은듯 질주하다가 에스텔라의 말에 아슬아슬하게 멈춰섰다.
조금만 더 갔으면 돌부리에 걸려 큰 사고가 날뻔 했다.
두 다리 잃은것도 모자라 멀쩡한 곳까지 잃을뻔한걸 아는지 모르는지.
율은 그저 해맑게 뒤따라오는 에스텔라를 향해 웃었다.
"언니! 나 엄청 기대돼. 그러니까 조금 진정할 필요가 있어! 잠깐 심호흡 좀 할게?"
율은 격정적인(?)심호흡을 하고 에스텔라를 향해 헤헤 웃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율은 돌부리를 피해 휠체어를 끌며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
에스텔라와 크로우가 자기를 바삐 뒤따라오고 있다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휠체어를 끌고 달려가듯 가던 율이 박물관 안에 들어서자 언제 그랬냐는듯 멈춰섰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마법소년,소녀들,괴물들의 웅장한 조형물이 한눈에 보였다.
"와아..."
율은 감탄하며 고개 빠질듯 고개를 엄청 올려보다가 에스텔라를 향해 흥분!하지만 소근거리며 물었다.
"언니. 언니! 엄청 멋있다. 그치? 나 벌써 오길 잘한것 같아."
율은 눈을 반짝 빛내며 말했다.
"나. 나! 이분의 무기나 방어구 보고 싶어. 정령과의 여신이셨대. 공부도 잘하고 능력도 출중하셨다고 여기 나와있었어."
율은 뒤에 숨겨둔 책자를 다시 꺼내 눈여겨본 페이지를 펴 에스텔라에게 보여주었다.
"본받고 싶어라아..."
율은 말하면서도 조형물에 눈을 떼지 못했다.
✲
한참을 조형물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율이 에스텔라의 크로우를 찾는듯한 말투에 고개를 돌렸다.
율은 벌써 저멀리 가버린 크로우를 보고 고개를 기웃거렸다.
"크로우씨... 무슨 일일까?"
율은 고개를 기웃거리다 에스텔라의 말에 활짝 웃었다.
"응! 우리도 얼른 가보자."
크로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건가 싶은 마음과 정령과의 여신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이 합쳐서 휠체어를 끄는 속도가 빨라졌다.
"여긴가봐."
크로우가 먼저 도착한 그곳에 휠체어를 끌고 도착하자 율은 전시관의 그 규모에 한번, 다양한 무기들과 방어구에 또한번, 벽면 중간중간을 메운 삽화에 또한번 놀라고 말았다.
"역시 박물관에 오길 잘했어."
율은 감격했다.
✲
율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에스텔라와 함께 크로우가 있는곳으로 향했다.
그림 속에 보이는건 젊은 소년과 여기 있는 크로우였다.
그렇다면 저 젊은 소년은...
"에스텔 언니. 언니."
율은 심각한 분위기에 에스텔의 이름을 작게 부르며 에스텔의 팔 옷깃을 살짝 건들였다.
"여기선 그냥 혼자 두는게 낫지 않을까..."
아니라면 괜찮겠지만 꽤 집중하고 있는듯한 크로우를 방해하기엔 미안한 마음이었다.
✲
에스텔라처럼 율도 정령과.
율이 수업시간에 졸지만 않았다면 그 이야기는 귀에 딱지 앉을 정도로 상세하게 알고 있는 일이었다.
젊은 소년과 에스텔라,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크로우.
그렇게 본다면 결론은 딱 하나밖에 없겠지.
"...에스텔 언니.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겠지만... 난 100% 맞다고 추측은 안해. 하지만 왠지 확신하게 돼."
크로우가 그리운듯 멍하니 보고 있던 그림 속 젊은 소년은 에스텔라의 아버지라는걸.
율은 입을 다물었다.
항상 웃고 있던 율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버린건 깊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일지도 몰랐다.
금방 생글거리며 웃는 율은 에스텔라를 보며 말했다.
"크로우씨는 두고 우린 조금 더 둘러보는것도 괜찮을것 같아. 그리고 또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
율은 해맑게 웃었다.
✲
"에스텔 언니도 처음 알게 된거야?"
율은 조금 궁금한듯 물었다가 입을 다물었다.
"응. 그렇게 하자! 박물관 관람하면서 뭘 먹을지 고민을 좀 해봐야겠어."
율은 키득거렸다.
에스텔라와 전시된 작품을 둘러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줄 적당한 이야깃거리도 찾고 전시작품을 보며 에스텔라와 이야기를 했다.
꽤 즐거운 시간이었다. 정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언니 덕분에 좋은 작품들 많이 봤어. 같이 와줘서 고마워."
율은 생글 웃곤 에스텔라를 향해 물었다.
"그럼 이제 돌아갈까? 시간도 많이 지났고... 크로우씨도 걱정되는걸."
율은 박물관 벽면에 붙어 있는 시계를 보았다.
"흠흠~"
sr급 괴물이 죽어도 평온하구나.
율은 가사실에서 만든 간식거리를 챙겨서 기숙사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이렇게 스트레스 받는 날엔 맛있고 달달한게 최고야!
달달한 마카롱, 부드러운 마들렌, 고소한 쿠키!
담요위로 상자를 고이 모셔두고 옆엔 달달한 간식과 어울리는 씁쓸한 홍차까지!
율이 열심히 휠체어를 끌고 간 곳은 에스텔라의 방이었다.
방문을 몇번 경쾌하게 두드리고 에스텔라의 반응을 기다렸다.
"에스텔 언니―방에 있어?"
율은 조금 들뜬듯 보였다.
✲
"다들 지쳐있을것 같아서 간식 만들어왔어! 쿠키랑 마카...앗!"
문이 열리자마자 에스텔라를 보고 활짝 웃으며 조잘거리던 율이 크로우를 보고 눈을 한없이 크게 떴다.
...너무 놀라서 갖가지 간식들의 보물이 있는 상자를 떨어트릴뻔 했다!
"그...그,그,그!아,아,아,안녀엉...!"
율은 놀란 얼굴을 홍당무처럼 물들이곤 에스텔라와 크로우를 번갈아 보았다.
상당히 동요하는 눈치였다.
놀라도 너무 놀랐다.
인사도 제대로 못하는걸 보아하니...
✲
"바,바,바,바뀐 모습...?"
율이 얼떨떨하게 중얼거리고선 마음을 진정시키자 확실히...에스텔라의 방안에 갑자기 남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기숙사는 남여 따로 있고! 라는게 생각났다.
그리고 중요한건...모습이 바뀌고 목소리가 들리는것만 빼면 에스텔라의 정령인 크로우라는게 확실히 느껴졌다.
"백님이라면 그냥 웃고있을것 같긴 해요. 아, 응!"
율은 크로우에게 농담을 한번 던지고서 에스텔라의 권유에따라 에스텔라의 방 안으로 들어섰다.
와아...심장에 안좋아...생각도 못했네...
"아이즈가 죽고나서 크로우씨도, 에스텔 언니도 뭔가 달라진 느낌이들어. 물론,좋은 방향으로 말이야!"
휠체어를 끌고 방안으로 들어온 율이 활짝 웃었다.
✲
"앗!응! 마카롱이랑 마들렌, 쿠키 구워왔어! 에스텔 언니랑 같이 먹으려구!"
크로우와 에스텔라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있던 율이 간식에 관심이 쏠리자 정신을 차리고 활짝 웃었다.
"모두 고생했으니 말이야!크로우씨도 고생하셨으니까 드세요! 간식은 많으니까요! 아! 홍차도 있어!"
율은 에스텔라의 방을 기웃거리다 테이블 위로 상자와 보온병을 올려두었다.
"언니, 언니! 빨리 먹자! 크로우씨도 어서 오세요!"
...에스텔라의 방이 아니라 율의 방인가 싶었다.
율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기지도 않고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곤 두사람을 재촉했다.
왜 목소리는 소근거리는건진 모르겠지만...비밀인가?
✲
"그건...먹는 시늉이었군요!"
율은 크로우에 대해서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는것에 활짝 웃었다.
친구든 선배든 정령이든 정보를 알아가는건 즐거운 일이다.
"응! 부끄럽지만...백님이 가르쳐주셔서 열심히 연마했어!"
율은 볼을 긁적이며 헤헤,웃었다.
"정말? 맛있다니 다행이야!"
율은 에스텔라의 말에 기쁜듯 박수를 한번 짝 치곤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는 크로우의 농담에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
얼빠진 표정이었다가 금방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곤 고개를 푹 숙였다.
"크..크로우씨...농담이 지나치세요오..."
수줍음에 얼굴이 타들어갈것 같다.
율은 부끄러운듯 말꼬리를 길게 늘리며 양쪽 볼을 부여잡고 열을 식히려고 안간힘을 썼다.
✲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크로우를.보고 율이 부끄러운것도 잊은듯 놀란 토끼눈이 됐다.
그러다 에스텔라가 크로우의 입에 쿠키 한움큼을 집어넣자 깜짝 놀라서 딸꾹질을 시작했다.
빠르게 꾹꾹거리는 딸꾹질을 애써 진정시카려 홍차를 마셨다.
아, 혀데써....
"응? 응...응!응...!"
갑자기 율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하는 에스텔라에게 뭐라 말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응이란 대답만 했다.
갑자기 바보가 된것같아...
"그..그래도 언젠가 에스텔 언니한테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오..에스텔 언니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생길텐데...크로우씨 괜찮으신거예요...?"
크로우의 눈치를 살짝 보곤 마들렌 하나를 집어와 우물거렸다.
맛있다아...백님한테도 가져가서 드려야겠다!아! 사유 선배도...정현 선배님이랑 승연...오빠한테도....아....
...떠올리지마...얼굴 빨개지면 이상한 사람 되는거야!정신차려 이 율!
"그,그,크,크,크로우씨...쿠키 맛은 어떠세요...?괜찮아요...?"
율은 애써 화제를 돌렸다.
침착해, 침착해!
✲
"크로우씨 대단하셔요! ...2대째...그건 정말 가족의 역사를 보는것과 마찬가지네요!"
율은 경이롭다는듯 중얼거렸다.
크로우의 반응에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면서도 기쁜듯 눈을 반짝거렸다.
"가...감사합니다...다음에 또 만들어 올게요! 에스텔 언니랑 크로우씨가 맛있게 드셔주셔서 기뻐요!"
율은 활짝 웃었다.
그리고 에스텔라의 말에...당황에 물든 얼굴에 동공지진을 일으켰다.
"으...응!그럴게!왠지 상상은 안되지만 말이야..."
결혼이란 말에 왠지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서로 초대라니!뭔가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율은 꾸물거리며 마카롱을 물었다.달달하다아....
✲
율은 둘의 대화에 키득거렸다.
누가 뭐라고 해도 에스텔라와 크로우는 최고의 콤비였다.
"언니가 행복해보여서 다행이야."
율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빈 상자를 다시 챙겨들고 보온병도 챙기고...이제 다시 돌아갈 시간이었다.
백님에게 또 뭘 가르쳐달라고 해볼까.
"그럼 다음에 또봐! 다음에 기대할게. 언니!"
즐거운 생각을 하면서 휠체어를 밀며 에스텔라의 방에서 빠져나왔다
날씨 좋다!
계절이 바뀌면 날씨도 그릴 꽃도 바뀌니까 산책과 겸사겸사 생각할것도 있고해서 나왔다.
축제준비로 성악부에서 뭘 부를지 고민하는 중이었는데...
율은 가지고 있던 연필을 스케치북 위로 반복적으로 두드린다.
"에스텔 언니!"
율은 자기를 부르는 목소리에 활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크로우씨도!안녕하세요!앗!언니!뛰어오다가 넘어져!"
율은 바쁘게 인사를 하고 바쁘게 에스텔을 보며 소리쳤다.
✲
"방해 아니예요!진짜로!"
율은 고개를 마구 내저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훤이 에스텔과 크로우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율이 헤실 웃으며 말한다.
"축제 준비는 맞았어요!어떤 노래를 부를지 훤님이 들어주시고 계셨거든요."
스케치북에 적어둔 글 위로 동그라미,세모,엑스가 몇개 그려져있다.
"앗 정말?나도 같이 가도돼?!"
율은 에스텔라의 제안에 기쁜듯 눈을 반짝인다.
"나도갈래!가도되죠?!훤님!"
반짝거리는 눈에 거절할 사람...정령이 있을까.
훤은 고개를 끄덕인다.
반짝반짝.
...율의 눈이 부담스럽다.
✲
"음...나는 에스텔 언니가 궁금한거 들었으면 좋겠어!난...잘 모르기도 하고...어떤 이야기든 즐거울것 같아!"
율은 해맑게 웃으며 에스텔라의 옆으로 휠체어를 끌었다.
"언니는 축제때 뭐할거야?생각해둔거 있어?"
당장 앞으로 온 축제에 뭐할지 궁금한 모양.
"마법전사로 활동하면...재밌을까?"
갑자기 궁금한것도 생긴 모양이다.
✲
"점성술?그것도 좋다!나도 언니한테 가면 점 쳐줄수있어?"
율은 반짝거리는 부담...스러운 눈으로 에스텔라를 본다.
"재밌을것 같아.축제 기대돼!"
잠깐.그전에 어떤 곡을 부를지 생각해내!
율은 잠깐 딴생각에 빠지려던걸 바로잡고 크로우의 말을 듣는다.
"역시 재미로 마법전사가 되기도 하는군요!왠지 위험한 일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은 재능이 대단한것 같아요."
그리고 율은 재능이 없...
율은 가만히 크로우의 말을 듣는다.
✲
"여,연애운..."
왠지 찔리는건...그래...그런거지...아무한테도 말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팔눈토끼?"
이게 바로...할아버지가 해주시는 옛날 이야기!
율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크로우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크로우의 말엔 안타까운 눈을 했다.
"과학자라면 그런 욕심이 생기나 봐...아,아니,배,백님은 그렇지 않으실...거예요...아마도...?"
혼란스럽다.
✲
"배...백님이 알아서 잘...하실거예요..."
율은 백이 아니니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혼자서도 잘하는 사람이니 잘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불쌍하네요.팔눈토끼...결국 원치않는 실험을 당하고 마법전사들에 의해 몰아붙여졌고..."
팔눈토끼도 원해서 눈이 8개가 된건 아닐텐데.
결국 인간의 이기심과 끝없는 욕심으로 짧은 생명에 큰 상처를 입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당근?"
당근...싱싱한거 있는데...
율은 고개를 기웃거린다.
물론 자기가 먹으려고 한입 크기로 잘라놓은 것들 뿐이긴 하지만.
"둘에게요...?"
율은 크로우와 에스텔라를 따라 휠체어를 끌었다.
✲
결계 근처에서 크로우가 가리키는 비석을 본다.
에스텔라를 따라 비석 가까이 다가가서 새겨진 문구를 보고 크로우가 비석 앞에 당근을 놓자 율은 허둥지둥 휠체어 등받이에 손을 뻗었다.
한입 크기로 잘린 당근이 들어 있는 플라스틱 통을 열어 당근 몇조각을 비석 앞에 놓고 두손을 모아 기도하며 명복을 빌었다.
언제 왔는지 율의 옆에 어느새 나타난 훤도 가볍게 묵념을 한다.
"사랑..."
사랑이라.
율은 많은 말들이 떠올랐지만 입을 열진 않았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팔눈토끼가 아무런 억압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뛰어노는 모습이 상상된다.
눈을 뜨고 휠체어를 끌고 비석에서 떨어져서 다시 에스텔라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
"잘살았으면 좋겠다...후손도 낳았으면 더좋을것 같아!"
자신의 유존자를 남기는건 동물들에게 중요한 요소니까.
아마 있지 않을까 싶다.
혹은 후손들과 함께 잘 살고 있을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걸.
"응!돌아가자."
율은 천천히 휠체어를 끈다.
돌아가면 팔눈토씨에 대한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리라 다짐했다.
- 쿼터 잭
- 밤이 어둑어둑해지면, 바다도 낮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활발하던 낮의 바다의 분위기도 좋았지만, 이렇게 차분한 밤의 바다도 나쁘지 않았다.
"..―음."
율은 밤 바다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휠체어를 굴렸다. 여름의 바닷가는 아침엔 너무나 뜨거웠고 밤엔 너무나 차가웠다.
가볍게 허밍으로 단조로운 노랫소리를 퍼트리는 율의 얼굴은 언제나 그렇듯 마스크와 목도리가 있었고, 몸에도 겹겹이 싸인 옷들로 몸이 보이지 않았다.
율은 다리 부근에 있는 분홍 토끼 모양 담요를 매만지면서도 휠체어를 굴렸다. 소금기에 단단히 젖은 해변가 위로 흴체어의 바퀴길이 만들어진다.
밤은 어둑하건만 아직 해변가에 사람이 있었다. 율은 어두워진 지평선을 힐끔거리면서 다가가길 멈추지 않았다.
누군가 봤다면 이렇게 늦은 시간에 몸도 성치 않은 애가 혼자 돌아다닌다며 혼낼것 같았다.
"그래도 밤바다 기분 좋은데―"
율은 해맑게 웃으며 혼잣말을 내뱉았다. 그 말도 노래를 하듯 음율감이 넘쳤다.
초면인 사람에게 다가가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더니 왠지 부끄러움이 밀려오는듯한 어색한 인사가 들렸다.
율은 지평선을 바러보다가 고개를 휙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본다. 그리고 확실히 해맑은 얼굴과 해맑은 목소리로 말하지.
"안녕하세요?"
하고.
아주 발랄하게.
✲
"괜찮아요. 추위를 많이 타서요!"
안 덥냐는 물음에 씩씩하게 웃으며 대답한 율이었다. 괜찮아요! 한마디면 됐지만 친절하게 부연설명까지 덧붙여주었으니 쓸데없이 친절하다고 할만하다.
"?"
뭔가 말하려다가 얼버무리는 잭의 말에 고개를 기웃거리던 율이 갑작스러운 통성명에 키득거린다.
"이 율 이예요! 잭...이나 재키..."
호기롭게 자기 이름을 말해주는 이 여자아이는 경각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게 분명하다.
율은 금방이라도 까먹을듯 잭의 이름을 천천히 곱씹고선 활짝 웃었다.
"팀 프로메테우스! 맞죠?"
아닐 가능성이라곤 굳이 염두해두지 않아 보였다.
얜...그저 신나보인다.
✲
"네!"
그러냐고 되물어도 율은 씩씩하게 대답하며 웃었다.
"쪼오끔요...?"
율은 장갑을 낀 손을 들어 쪼오끔을 표현해봤다.
해맑게 웃는게 자기가 생각해도 가늠이 잘 안되는 모양이다.
"편하신대로 부르세요!"
근데 편하게 부르라고 해도 율이라는 한글자를 뭘 해야 더 편하게 부를수 있는걸까. 훤님처럼 유리라고 부르라고 할수도없고.
율은 몸을 움찔가리며 신기한듯 되묻는 잭의 물음에 해맑게 웃었다.
"저도 팀 프로메테우스 소속이니까요!"
그런 이유로 잭을 한번에 팀 멤버라고 아는것도 이상하지 않나?
"그리고 저의 촉이에요!"
그 촉 대단하구나.
✲
"잭이란 이름도 부르기 편한걸요?"
한글자 이름을 만난게 얼마만이야.
율은 해맑게 웃으며 농담을 했다.
"앗,찍었는데 맞췄어요?"
너무 당당해서 초면 아닌줄 알았겠지만 초면이 맞다.
"음...어쩌다 한번 맞는 촉이라서 믿을수가 없어요."
율은 잠깐 키득거리더니 장갑을 낀 손을 만지작거렸다.
"정령과이기도 하고...1학년이기도 하고...밖에나가면 노는것보다 꽃을 보러 다니니까 못 봤을수도 있죠."
미묘한 표정의 잭을 위로하려는듯 해맑게 웃으면서도 뭔가 껄끄러운 느낌으로 말을 하곤 하늘을 보았다.
"앗!저기 별똥별이 떨어져요!빨리 소원 빌어야지."
훤님,백님,전리더님,리더님,앨리스,루이스,에스텔 언니,잭님...
앗!이름 부르다가 별똥별 다 떨어졌어!
...그,그,그,그래도 빌어야지...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세요.
"소원 빌었어요?"
율은 해맑게 잭한테도 물었다.
✲
배신감을 느끼는 잭을 모르는척 했다.
모르는척.모르는척.휘파람 휘휘휘.
"정말요?정말 기뻐요!"
적중률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 맞춰버리다니!
대단한걸,이 율!
"3학년 검술과!잭 선배님이네요!잭 선배님!"
율은 노래부르는듯 잭의 이름을 부르고선 흥얼거렸다.
이렇게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작은 세계가 조금 넓어진 느낌이라고 한다면...너무 오바인가?
"저도 놓쳤지만 그냥 빌었어요!잭 선배님 소원도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정말이다.
율은 해맑게 웃으며 목도리를 단정히 여맸다.
"여기 별이 많이 보여서 예뻐요.사진 찍으면 보이려나?"
율은 해맑게 웃으며 휠체어 등받이에서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작은 별들이 무수히 찍혀있는 밤하늘이 카메라에 담겼다.
찰칵거리는 소리가 몇번 들렸다.
"훤님한테 보여줘야지!"
그리고 한 명 더 보여줄 사람이 있지.
율은 키득거리다가 수줍게 얼굴을 살짝 붉히더니 목도리로 눈밑까지 가려 목도리에 얼굴을 부볐다.
"이,이거 보실래요...?예쁘게 찍혔어요."
잭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다.
✲
"그래요?"
그렇게 대단하진 않은데.
율은 부끄러운듯 몸을 베베 꼬았다.
입주변을 꿈틀거리는 잭은 다행히 못본것 같다.
"친하게 지내면 좋잖아요.저는 모든 분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걸요."
이건 진심이다.
"하긴,그러네요.사실 소원이란건 대부분 자기 노력에 따라 실현할수도 있는거니까요."
그러니까 모두 건강하고 행복해지는것도 잘 할수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아닌가?이건 조금 하늘에 바라야하는걸까.
"수전증?"
수전증이라는 잭의 말에 율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 말간 웃음소리가 들렸다.
"칭찬 감사합니다아."
그걸 칭찬으로 알아듣는 넌 또 뭐니.
율은 키득거리다가 잭의 얼굴에 웃음이 떠오르자 고개를 기웃거렸다.
"사진...보여줄 사람이 있나봐요?"
기분좋은 웃음이네요.
율은 뒷말은 흘려 말하곤 수평선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듣기 좋았다.
"아침이 되면 또 바다에 들어가고 싶네요."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율은 뒷말을 삼키곤 웃었다.
✲
"다들 좋은 분이세요. 팀 프로메테우스에 계시는 분들은."
모든 사람들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져,그래서 율은 얼굴에 웃음을 띄웠다.
좋은 녀석이라는 잭의 말에 칭찬 받은듯 헤헤,웃어보였다.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건 율의 장점이자 단점이 아닐까.
"그게 또 좋은것 아니겠어요?잭 산배님도 비슷한것 같은데."
한개성 하시는 선배님이 한분 늘어난건 좋은일이지.
율의 개성이라곤...그냥 잘린 두다리로 휠체어를 끌고 다니는,여름에도 꽁꽁 싸매는 이상한 녀석이지 않으려나.
애초에 과거에는 그랬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만나보시면 좋은 사람들 뿐이란걸 아실거예요.물론...그렇게 느끼는게 저 혼자만일수도 있지만요.선배님은 어떻게 느낄지 모를일이죠."
그야 사람은 느끼는바가 다를테니까.
"저는 칭찬,엄청 좋아하거든요!"
율의 눈이 반짝인다.장갑을 낀 두 손이 주먹을 꼭 쥔다.
정말로 좋아하는듯한 모습이다.
"그래요?...헤에...다정해 보여요.잭 선배님은 어릴때도 예쁘게 생기셨네요."
어릴때...도.라니.
"그래요?아주 아침에 나오면 사람도 없어서 좋아요!펜션도 가까우니까,저는 내일 일찍 나와보려구요."
율은 사람 없는 시간대를 잘 고르는 능력이 있었다.
그야 자기가 보기도 껄끄럽기만한데,남이 보면 더욱 그렇겠지.라는 생각이 깔려있어서였다.
마지막 날이니까 제대로 즐겨두는것도 나쁘진 않으니까.
"아침 일찍 나오면 잭 선배님을 볼 수 있을까요?"
율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된대요."
율은 아무렇지도 않은척 말하면서 웃었다.
제3자의 말을 들은듯한 말이었으나 그건 율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시선을 돌리던 잭이 의아해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다시 시선을 맞추는 잭의 모습에 율은 키득거렸다.
"그래요?그럼 개성으로 받아들일게요.붙임성이 좋다!이 율에게 개성 추가!"
어쩌고저쩌고 이상한 애 다음에 붙임성이 좋은 개성 하나가 추가되었다.삐빅.
"부럽긴요.잭 선배님도 좋은 분이시잖아요.물론,잭 선배님을 성급하게 판단한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개성이죠."
율은 잠깐 웃다가 잭의 말에 그를 보았다.
"아직까지도 있는 마녀에 대한 차별을, 팀 프로메테우스는 하지 않으니까요.그런 소문같은거에 휘둘리지 않은 사람들이란건,당연한 결과예요."
가장 커다란 차별을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사람들이니까,율의 이런 모습이라도 다 받아줄수 있는거겠지.
어떻게보면 승연은...
잠깐 다른 생각으로 흘러가려는 머릿속을 정리한 율이 방긋 웃었다.
"잭 선배님도 칭찬 좋아하시는군요?정말 동지네요!잭 선배님도 착하고 다정하고 따뜻한 좋은 분이세요."
그러니까 겉모습만 보고 판단한 사람들이 안되보였다.
이렇게 대화를 해보려는 시도는 한적은 있을까.
"제 촉이 또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네요."
율은 장난가득히 키득거렸다가 이내 진지하게 말했다.
"많이 바꼈다곤 하지만 눈은 속일수가 없거든요.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요.그리고 보통 여동생이 있다면 여동생과 함께 다같이 가족사진 찍지 않나요?저라면 그럴텐데."
없어서 모르겠지만.
일단 나름대로 논리적인(?)이유를 들먹거려보았다.
"아버지인거 알것 같아요.다정해 보여요."
율은 입을 꾹 다물었다.
✲
"고맙긴요."
당연하다고...아니다.그렇게 말하지말자.
율은 그냥 고맙다고 말하고 웃었다.
"좋아요!그럼 잭 선배님도 모두 추가해두는거예요?알았죠?"
강요 아닌 강요가 이어지고 있다.
알았죠?하고 되물으며 장갑을 낀 오른손의 새끼 손가락을 내민다.
약속이예요?하고 말하는듯한 손가락이다.
꽤 흥분한듯 보이는 잭의 목소리에 율은 방긋 웃었다.
그런 면도 있구나.하는 가볍고 새로운 인상의 적립이다.
잊으라는 말에 키득거렸다.
"안잊을건데요―?"
키득거리며 장난을 치는 율이었다.
안잊을건데요.메롱메롱.
...이렇게까진 하지 않았다.
"남의 목소리를 듣는것도 좋지만,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도록 말이예요."
율은 입을 꾸욱 다물었다가 잭의 반응에 다시 웃을수밖에 없었다.
"그럼 한 번에 하나씩 천천히 할게요?"
율은 손을 들어 하나하나 말하며 손가락을 접었다.
"착하고,다정하고,따뜻하고,좋은...4가지예요."
갑자기 훅들어왔다고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는 잭에게 아주 친절히 4가지라며 알려줬다.
이세상 친절이 아닌 친절이다.
"그럴지도요.원래 자기 모습은 자기는 잘 모르잖아요."
해맑게 웃던 율이 아.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잭 선배님도 상당히 좋아하시나봐요.아버지."
츤데레 특성도 추가해주세요.
✲
순순히 해주실줄은!
율은 기억해둔다는 잭의 말과 눈치를 보며 손가락을 들어올리는 잭의 행동을 보다가 말갛게 웃었다.
"한입으로 두말하기예요―?"
율은 잔뜩 울상이 되어선 툴툴거렸다.
한입으로 두말을 하다니!안될 사람이구만!
"하,하,하지만...천천히 하라고 그랬어요...?"
시무룩해졌다.
그런뜻이 아니었다니...열여섯살에겐 너무 큰 도전과제였나보다.
"..."
그리고 말투완 다르게 앳된 웃음이 피어난 잭을 보며 율도 곧 풀려 말간 웃음을 지었다.
"제가 생각할땐,맞는것 같은데요?...주제넘은 생각일진 모르겠지만."
치고빠지는 밀당의 기술도 인간관계에선 중요하지,암.
✲
잔뜩 울상이던 율의 얼굴이 잭의 말에 천천히 돌아왔다.
후우,하고 내뱉는 숨은 진정시키려는듯 했다.
"저 그렇게 쉽게 안울거든요!"
율은 주먹을 불끈!쥐었다.
뻥이지만.잭이 어떻게 알겠어.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는 잭이 의아한듯 보던 율이 잭의 말에 눈만 깜빡거렸다.
꽤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며 동공을 굴렸다.
도망가기에도 불편한 몸이니...
"그,그,그,그러니까....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정말로!...죄,죄송해요...속뜻을 알아내는덴 서툴러서..."
우물쭈물거리던 율이 힐끔거리며 잭의 눈치를 살폈다.
끄응...막힌 숨을 뱉은 율이 휠체어 등받이를 뒤적거렸다
어디보자...스케치북...아니고.연필...아니고...
한참을 방황하던 손이 천주머니를 찾아내곤 그 안에 손을 쑤욱 집어넣는다.
"이거,드릴게요...그,그러니까...기분 푸시는거예요...?"
율은 초조한 표정의 잭을 향해 눈치를 보다가 장갑낀 손을 내밀었다.
스케치북에 그린 꽃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꽃을 모은 보물 주머니!
그 중에서도 가장 아끼는!네잎클로버!그리고!세잎클로버!
"헤...그렇군요.뭔가 그런거 좋아요...사이 좋은것 같아 보여서..."
율은 살짝 웃었다.
"네잎클로버는 행운,세잎클로버는 행복이래요.제가 그림 그릴때마다 항상 가지고 있으면서 보는 친구들이예요.왠지...가지고 있으면 행운과 행복이 올것 같잖아요?"
율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잭 선배님에게도 늘 행운과 행복이 찾아오길 바랄게요.
율은 중얼거리며 잭을 보곤 웃었다.
✲
"...?"
율은 순수히 궁금하다는듯 고개를 기웃거렸다.
"왜 위험해요...?"
진짜 궁금하다는듯 물었다.
뭐했다고.지금도 그렇게 가까이 붙어있는것도 아닌데 말이지.
"울면 뭔가 위험해지는거예요?"
눈물샘 고자앙?
계속 울지말라고 하는 잭이 수상쩍었다.
"그래요?그래서 행운을 찾다가 행복을 짓밟지말라고...그러잖아요."
율은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을 되새기며 웃었다.
"많거든요!행운도!행복도!"
율은 천주머니를 들어올려 안을 보여주었다.
다른 꽃들 몇개...도 있었지만 질릴정도로 네잎클로버와 세잎클로버가 많았다.
...무섭다.
반환된 세잎클로버를 보던 율이 웃는 잭을 마주보며 웃었다.
"딱히 아깝진 않은걸요.그야...많은 사람들이랑 행복하고 싶으니까."
율은 돌려받은 세잎클로버를 유심히 보다가 잭에게 물었다.
"정말,필요 없어요?"
율은 손바닥에 세잎클로버를 두고서 잭에게 다시 물었다.
✲
율은 잭의 비장한 표정에 덩달아 비장해졌다.
장갑을 낀 두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가서 꼭 쥐는 폼이...
"산타요?"
율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기웃거렸다.
산타를 믿는걸까...율은 잭의 동심을 파괴하지 않으려고 방긋거리며 웃었다.
"그렇네요!산타는 모두 다 아니까,우는 사람에겐 선물을 주지 않으시죠."
해냈다!
잭의 동심을 파괴하지 않고 동의해줬어!
"그래요?저도 들은것 뿐이니까...좀 더 많은 사람이 알아준다면,그것보다 더 좋은건 없겠죠."
죽여주는 명언이라는 말에 키득거린 율이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네!혹시라도 행운이랑 행복이 필요하면,절 찾아오세요!만약 없다고 하면,그림으로라도 그려드릴게요."
장난 가득한 말로 잔뜩 허세를 부리곤 고개를 끄덕인 율이었다.
"그냥,그림 그리다보면...문득 눈에 들어오거든요.네잎클로버..."
그리고 세잎클로버도 예쁜걸 발견하면 꺾어서 보관하기도 하고...
"고맙긴요!잭 선배님이 기쁘다면,그걸로 됐어요."
밤의 여왕 아리아,넬라 판타지아,대성당들의 시대...
율은 스케치북에 써놓은 세가지 목록을 보며 고심하고 있었다.
겨우 몇가지 추려낸 모양이다.
어느것이든 괜찮을것 같은데...
고등학교 축제니까 너무 어렵진 않으면서도...
"훤님,어떻게 할까요?"
딱히 대답은 바라지 않는 혼잣말이다.
율은 스케치북을 잡지 않은 손으로 휠체어를 끈다.
눈은 스케치북에 고정하고서 아무도 없는 복도를 지나간다.
축제준비에다 부활동까지 겹치면서 많이 늦었다.
"잭 선배님!"
그러다 잭을 발견하고 활짝 웃으며 휠체어를 끌던 손을 올려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뭐하세요?축제준비 하세요?"
오늘도 해맑고 시끄럽다.
✲
"네!율이예요!"
율은 해맑게 웃으며 자기가 맞다고 대답한다.
잭의 옆으로 영차영차 힘내서 휠체어를 끌고 다가갔다.
"네!성악이요!부활동이 성악부라서요!부원들이랑 뭘 할지 고민이 많아서...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큰일이예요!"
큰일이라는데 해맑게 웃으면서 말하고 있다.
"잭 선배님도 아직 정해지진 않았군요?생각해둔거...그런건 없나요?저도 같이 고민해볼게요!"
물론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
"그렇게 굉장한건 아니예요."
뭔가 쑥쓰럽다.
율은 부끄러운듯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곤 헤헤,웃었다.
"그렇죠?보여주고 싶은게 너무 많아서 뭘 골라야할지 모르겠어요!"
눈을 반짝거리며 말하는게 정말로 고민하는 사람이 맞나 싶지만..
...맞습니다.
"제3자가 보면 더좋은 아이디어가 나올지도요!"
기대감에 반짝이는 눈으로 잭이 생각해둔 것들을 들던 율이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어렵네요!...잭 선배님은 그중에서 더끌린다거나...하는건 없으세요?"
뭐가 좋을까.
전부 재밌어 보인다!
다리만 있었다면 음식점 대타도 할수있을텐데!
철학...은 전혀 모르지만!
문집...은...써본적 없지만...
...전혀 도움 안되잖아?!
✲
"학생들이 즐기는 축제인데 그정도로 빡빡할까요...?저도 그다지 잘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율은 눈을 이리저리 옮기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당당한 잭의 얼굴에 어색한 웃음도 지우고 키득거렸지만.
"네!다른 분들께 보여드릴수있어서 너무 기쁜걸요?"
처음 맞는 축제기도 하니까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
수학여행도 바다도 그랬지만!
처음하는 모든것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해서 기쁘다고 할까.
"토론이요?좋을것 같아요!"
박수를 짝 치고 눈을 반짝거린다.
"임시 계획이지만 잭 선배님이 하고싶은걸 했으면 좋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해맑게 웃는다.
그리고 잭의 말에 고개를 기웃거리며 대답했다.
"제가 맡은 파트는 소프라노이긴 해요!그래도 다른 음역대도 할수있어요!"
해맑은 자신감이다.
✲
당장 내일이라도 축제가 시작될것만같은 잭의 말에 율이 키득거렸다.
"네!그럴게요.열심히 잘 할게요!"
그리고 장단 맞추듯 고개를 끄덕인 율이 해맑게 대답한다.
"분명 성공할거예요!저만이 아니라 다른분들도 하는 공연이니까."
다같이 한다고 생각한다면 왠지 자신감도 되찾을수있는 기분이들었다.
되찾을 자신감도 없겠지만.
...이미 자신감이 차있다는 말이다.
"맞어요.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생각해봐요.혹시 더좋은 아이디어가 나올수 있을지도요!"
눈을 반짝이던 율이 잭의 말에 키득거린다.
"괜찮아요.성악부도 전통적인 느낌이니까.피아노 반주자와 성악가만 있을 예정이거든요."
해맑게 말하던 율이 덧붙인다.
"아.듀엣도 있을 예정이니까 많이 기대해주세요!"
기대감을 상승...시켰나?
✲
"실수는 하지 않을거예요!"
율은 주먹을 불끈 쥔다.
실수따윈 하지 않겠다는 강인한 의지가 돋보인다.
"아!물론 축제땐 구경만 해도 되는걸로 아니까요.저야 부활동 때문이지만 보통 부활동을 하지 않는 분들이리면 구경쪽으로도 많이 하시더라구요!그러니까 너무 부담갖지 마세요."
혹시 부담을 주었나싶어 덧붙인 율은 방긋 웃었다.
"일단은 부활동이니까요!다들 의지가 대단해서 말이에요."
키득거린 율이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아요!보러와주셔도 행복할테지만 이렇게 얘기하는것도 행복하니까!"
짓궂은 대꾸에 해맑게 대답하며 웃는다.
✲
"그러고보니...잭 선배님은 3학년이라고 하셨죠...고등학교 마지막 축제네요.그럼 더 후회없이 즐겨야죠!"
3학년이면 구경하는 쪽이 더 많을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3학년이면 귀찮을것 같기도 했고...2년동안 한게 있으니까 구경하는쪽이 더 맞을수도 있겠고...
"그래요?"
잭이 손가락을 튕기며 하는 말에 율은 키득거린다.
남이 볼정도로 좋다고 생각되면 좋은거겠지하고 생각된다.
"앗!정말이죠?저 무대에서 잭 선배님 찾을거예요!"
헤실거리며 넉살좋은 대답을 던진 율이었다.
"부활동은 강제가 아니니까요.잘 모르는게 당연할거예요.애초에 저희부도 부원이 많이 있는 편도 아니고요."
✲
"그래요?"
아직은 16살인 율에게 그이야기는 너무 어려운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감을 통 잡지 못하고 고개만 기웃거리는 모양이 그랬다.
"정말요?그럼 저 더 힘내서 연습할래요!잭 선배님이 보러오신다면 기쁠것 같아요!거기다가 제일 앞자리에 계신다고 하니...더욱 연습해야겠는걸요?"
율은 떨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반짝이는 눈으로 잭을 본다.
...못온다고 했으면 어쩔뻔했어.
자신만만한 잭의 표정에 해맑게 웃었다.
"만약 대학에 진학하실 생각이시라면...대학교에서도 동아리는 있잖아요?그때라도 용기내서 도전해보세요!원래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빠르다고 하잖아요."
해맑게 웃던 율이 덧붙인다.
"만약 아니더라도 요즘은 동호회같은것도 많으니까 같은 취미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것도 나쁘진 않은 선택일거예요."
또다른 선택지를 내민 율이 잭의 물음에 휠체어 등받이에 놓아둔 스케치북을 꺼냈다.
몇장 넘기더니 3개로 추린 곡을 보여주었다.
밤의 여왕 아리아,넬라 판타지아,대성당들의 시대...
"세개중에서 고민이예요!"
고민하는 얼굴이다.
밤의여왕 아리아 https://youtu.be/s7vJcUogrEI
넬라판타지아 https://youtu.be/B4_IJ0AzfbU
대성당들의 시대 https://youtu.be/aS-VJpebOFI
✲
"꼴사납다뇨.전혀 그렇지 않으니까요...후회도 시도해봤을때 느껴지는거잖아요?해보지도 않고 미련이 남는것보단 나으니까요."
묘하게 가라앉은 잭의 목소리가 들리자 율은 고개를 도리도리 내젓고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렇게 보여요?"
율은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가 키득거렸다.
"그럼요!앞자리에 못앉으면 펴엉생!미워할거예요?"
물론 장난이다.
얼굴 가득한 장난기를 보면...
율은 키득키득대며 작게 웃다가 결국 빵터졌다.
"아니,아니예요.전 누굴 미워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와주시는것만으로도 힘이날거예요.분명!"
잭의 새끼 손가락에 율도 따라 새끼 손가락을 올렸다가 내리곤...여전히 키득거리다가 헛기침을 했다.
"아리아말이죠?하긴,이런 곡이라면 다들 좋아해주실지도 모르겠네요."
율은 골똘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감사해요!참고할게요.잭 선배님."
스케치북에 적인 아리아의 옆으로 체크 표시를 해둔다.
✲
"깨달을 정도였어요?"
그런말을 했던가.
율은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웃었다.
"그런거예요?그럼 지금 너무 많이 받으면 안되는데...아직 줄게 없어서요!"
기브 앤 테이크라니!
받긴 했지만 줄게 없었다.
뭔가 평온하던 표정이 무너지는 듯한 잭의 표정에 키득거렸다.
"미워하는 사람이 생길리가 없어요."
사람이라면.
"음...그렇군요...좋아요...감사해요."
율은 잭의 말을 요약해서 아리아 옆에 적어두었다.
"조금이 아니라 엄청 도움이 됐어요!잭 선배님이 얘기해준걸 참고해서 부원들이랑 상의해서 구성해볼게요."
다시 스케치북과 연필을 등받이에 넣었다.
- 나승연
- 오늘은 또 어떤 그림을 그려볼까하고 생각한 참이었다. 요 며칠 사이 가까이 있는 풍경이라면 모두 그려버렸다. 고요하게도 흩어지는 풍경은 매시간 아름답기만 했다.
아, 오늘은 자수로 하자. 율은 문득 든 생각에 휠체어 등받이에 숨겨둔 스케치북을 꺼냈다. 도안 몇 개를 그릴 속셈이었다.
율은 모자, 목도리, 마스크, 옷가지, 담요 등을 확인한 후 곧장 휠체어를 끌었다.
볼 수 없었던 풍경, 볼 수 없었던 꽃, 볼 수 없었던 것들을 찾아 숲 깊숙이, 깊숙이 들어갔다. 한손엔 스케치북과 연필을 꼭 쥔채로.
"...리더님?"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린다고 느꼈더니 눈 앞에 승연이가 보였다. 율이 손에 꼽을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낯이 익은 사람이었다. 물론, 율의 입장에선 그렇다.
멀리서 승연이 뭘 하나 관찰했다. 허리춤에 차있는 레이피어를 뽑아서 괴물이라도 나타난건가? 하고 생각했지만 율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그리고... 음료수...?
율은 가볍게 소리내어 웃어 제 존재를 알리곤, 휠체어를 끌고 승연에게 다가갔다.
"뭐하세요, 리더님?"
율의 창백한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
율은 승연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럼에도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채 적당한 거리에서 멈춰섰다. 이 정도라면 말소리는 충분하게 들릴 거리겠지. 하고 율은 생각했다.
"오리 가족이요?"
그러나 율은 승연의 오리 가족이라는 말에 동공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조금 멀어서 안 보일지도. 율은 다시금 천천히 휠체어를 끌어 조금 더 가까이 갔다. 이정도면... 승연의 퍼스널 스페이스에 침입하지 않았겠지?
율은 상체를 조금 숙여 호수 가까이로 몸을 기울였다. 간만의 운동같은 느낌이라 힘들어 보이긴 했지만.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을 호수를 노려보듯 보았다. 오리 가족. 귀엽다.
"정말 귀엽네요."
율은 상체를 다시 휠체어 등받이에 기대고 짐짓 평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귀여운것을 본탓에 얼굴이 조금 상기되었다.
"아? 아뇨... 아! 엄밀히 말하자면 맞네요. 자수를 놓을까 해서 도안을 그리려던 참이었거든요. 아!"
율은 승연의 질문에 허둥지둥 정신을 차리고 활짝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무언가 까먹은 사람처럼 화들짝 놀랐다.
"혹시 제가 리더님의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한거라면 죄송해요!"
율은 어디 혼난 사람처럼 황급히 허리를 굽실거렸다.
✲
"일단 먼저 와계셨으니까요. 혼자만의 사색을 방해한거라면 별로 기분 좋지 않잖아요?"
아닌가. 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승연이 괜찮다고 했으니 좀 더 호수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혹시나 무거운 휠체어 통째로 호수쪽으로 빠지는 일은 없도록 조심해서.
"저도 별로 방해라고 생각 안해요."
율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스케치북을 펼쳤다. 여기저기 그려진 꽃들이나 나무들이 보였다. 이곳에 와서 그린 그림들도 한가득이었다. 왕게임에서 걸려 정현에게 보여준 그림도 언뜻 보였다.
스케치북의 빈페이지를 펼쳐 연필을 잡았다. 호수도, 호수 위를 참방참방 걸어다니는 곤충들도, 짹짹 우는 새들도,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꽃들도 모두 그릴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그곳으로 빨려들어간 율은 슥슥, 간결한 동작만으로 특징을 잡아내 그림을 그려냈다.
"대충 다 된것 같기도 하고... 훠.. 아, 아니다. 리더님 봐주시겠어요?"
율은 무의식적으로 부르려던 훤의 이름을 다시 집어넣고 승연을 향해 웃으며 물었다.
✲
율은 갑작스레 터진 승연의 기침소리에 놀란듯 보였다. 율은 한참을 승연을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걱정? 안쓰러움? 겉모습은 이미 아파보이는 사람에게 받는 눈빛은 어떤 느낌일까.
"예쁜 그림이라고 해주셔서 감사해요."
율은 승연의 말에 기쁜듯 웃어보였다. 마스크때문에 보이진 않겠지만, 눈은 확실히 접혔다.
"학교 주변의 꽃들, 그리고 이곳의 꽃들, 곤충들, 나무들, 여러가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모든걸 그리려고 노력해요."
율은 승연에게 스케치북을 건네면서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러다 왕게임 때의 청혼 이야기가 나오자 키득거리며 웃었다.
"제가 생각할 수 있는 한의 가장 로맨틱한 청혼 방식이었는걸요."
율은 잠깐 시선을 내렸다. 원래 있어야할 곳에 없는 그것을 바라보는 일은 조금 두려운 일이었다. 토끼모양의 담요를 바라보며 위안을 얻고 다시 승연을 바라보았다.
"재미있었어요. 왕게임. 리더님들이 그렇게 많이 걸릴줄은 몰랐지만요."
율은 처음과 같이 웃었다.
✲
율은 승연의 말에 환하게 웃었다. 감상을 물어볼때마다 '아름답구나.' 하고 항상 말하던 누군가가 생각나서일까. 승연의 심플하고도 느낀바를 그대로 말해오는 그 대답에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감사합니다. 리더님."
율은 환하게 웃으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감사인사를 하는건 좋은 말을 들려준 상대에 대한 율의 예의였다.
갑작스레 기침을하는 승연 덕에 율은 또 한번 놀란 표정이었다. 날카로운 눈매가 놀란듯 동그랗게 뜬것이 '괜찮으신가요?' 하고 물어보는듯 했다.
율은 승연을 가만히 바라보며 쿨럭거리면서도 전해오는 말을 천천히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생각했다. 물론 그들의 화려했던 왕게임 벌칙들을 기억하고 있긴 했지만 그걸로 놀린다거나 미래의 둘의 인상에 그게 큰 걸림돌이 된다거나 하진 않겠지만, 옆에 있는 당사자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나보다. 하고.
"당연히 벌칙 수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걸요. 알겠어요. 잊어버리면 되는거죠?"
율은 잠깐 눈을 감았다가 "에잇!" 하더니 자기 머리를 두손으로 '콩' 하고 때렸다.
"이제 잊었어요!"
율은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승연을 바라보았다. 일종의 퍼포먼스였던 모양이다.
✲
"당연히요. 당사자가 싫어한다는데, 계속 한다면 괴롭힘아니겠어요?"
율은 승연의 말에 후후, 하고 작게 웃었다. 딱히 왕게임의 벌칙들이 생각나서 웃은건 아니었다. 율은 승연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승연이 보답한다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괜찮은데요..."
승연의 보답이란 말에 조금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바라고 한건 아니었지만 보답이라고 하니 괜히 설레는것은 어린 마음에서 비롯된것일지도 몰랐다.
율은 승연을 바라보았다. 거리를 벌리는가 싶었더니 본적 있는 레이피어가 나타났다. '오.' 하고 입모양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마스크덕에 보이진 않을것 같다.
율의 눈앞엔 그저 갑자기 물방울이 생기고 그 물방울이 얼어서 투명한 벚꽃이 되는 신기한 광경만이 있을 뿐이었다.
율은 굉장히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그 광경을 계속 바라보았다. 신기했다. 너무나!
"이런거라뇨! 정말 예쁜걸요? 굉장히 신기했어요. 리더님! 주신다면 감사히 받을게요."
율은 조금 상기된듯한 표정으로 승연과 투명한 벚꽃 얼음조각을 바라보았다.
✲
승연이 서서히 다가왔다. 천천히. 차가운 얼음조각을 들고! 아뿔싸. 율은 그제서야 자기의 잘못을 깨달았다. 따뜻한 날씨임에도 갖가지 옷들과 목도리 등으로 무장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얼음조각이란 아무리 조걱이라고 하더라도 얼음산만큼 차가운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미 손에 올려진 얼음조각을 피하는 일은 있어선 안됐다. 율은 잠깐 움찔거렸다. 그저 보통의 사람보다 조금 추위를 더 느낀다는것 이외엔 다를건 없었다.
율은 받은 얼음조각을 토끼가 그려진 알록달록한 담요 위에 소중히 놓아두었다.
"감사합니다. 소중히 간직할게요."
승연에게 감사인사도 잊지않았다. 승연의 레이피어가 다시 검집에 들어가는것도 보고, 승연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네. 이렇게 경치좋은곳에 모두와 함께 올수 있어서 기뻤답니다. 리더님의 안목, 높게 사고 싶어요."
율은 조금 장난스럽게 이야기하고서 승연을 따라 오리 가족을 바라보았다.
"리더님도 남은 시간,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랄게요."
율은 차분히 말하고선 휠체어를 끌었다. 호수 곁에 있느라 몸이 차가워진것 같았다. 안그래도 아파보이던 얼굴이 핼쓱해져 보이기까지 했다.
"도안도 다 그렸으니, 저는 이만 가볼게요. 리더님도 해 지기전에 들어가셔요."
율은 언제나의 미소를 잃지 않으며 승연에게 작별인사를 남기고 휠체어를 끌었다.
율은 어깨가 무거웠다. 그러니까...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옆에서 백이 어깨를 기대고 자고 있었다. 피자를 조금 먹는가 싶더니, 갑자기 기세가 올라서 다른 사람들과 게임에 참여해서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백님. 백님?"
율이 불러도 흔들어도 어떤 방법을 써서 깨우려고 해도 일어나지 않았다. 곤란했다. 그래서 그냥 멍하니 당근을 뜯어먹기로 했다.
와작와작. 오물오물.
먹는 동안 다른분들이 얘기하는거나 먹는거나 게임하는것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리더님!"
다행스럽게도 다른 테이블들의 상황을 보러 오는것 같은 리더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백을 테이블에 기대게 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율은 손을 들고 도움을 요청했다. HELP!
✲
"저는 괜찮아요. 감사해요. 리더님."
율은 드디어 백에게서 해방됐다. 도움을 준 리더 승연에게 감사인사를 꾸벅 날리고선 아주 살며시 미소지었다. 테이블에 기대 자고있는 백을 바라보다가 승연의 말에 푸스스 웃었다.
"물약 만드느라 힘들었다고 그러시더라구요. 아, 그래도 지금 자는건 아마 이 분위기에서 나가기 싫었을지도 몰라요. 저도 왠지 이 분위기가 좋아서..."
율은 들뜬듯 혼자 말을 잇다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승연을 바라보았다.
"너무 혼자서 말했죠? 아. 그리고... 지금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이 리더님뿐이라... 조금 곤란하시겠지만 도와주시겠어요?"
율은 잠깐 동공을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상당히 곤란하다는듯 승연을 바라보았다. 말하기 힘든 모양인지 잠깐 우물쭈물거리다가 승연에게 말을 이었다.
"계속 한자세로 있어서 불편했거든요. 원래는 백님이 하셔야하는데... 혹시 보셨을지도 모르겠지만 가끔 백님이랑 사람들이 안 보이는 곳에 들어가는것도 제가 부끄러워서 그런거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 저 좀 안아주시겠어요..."
율은 빙빙 돌려 말하다가 아무래도 부탁하기가 곤란했던 모양인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갈수록 목소리가 작아졌다.
한자세로 계속 있으면 욕창이 생깁니다.
✲
"네. 다들 굉장히 저에게 잘해주셨고, 백님도 좋으신 분이세요. MT때도 그렇고, 이렇게 회식에서도 다들 잘 챙겨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랍니다."
율은 승연의 말을 가만히 듣다가 살짝 웃었다. 재작년이라. 재작년을 생각하면 꽤 고달픈 인생이었다. 그땐 훤도 없었으니까.
"재작년에도 비슷한 분위기였군요? 그때도 있었다면 즐거웠을텐데 아쉽네요. 저는 이런 분위기 꽤 좋아하거든요. 뭐라고 할까요? 마음이 따뜻해진다? 세상에 혼자가 아닌느낌? ...아! 아직 어린 제가 이런 말을 하는것도 뭣하지만요."
율은 볼을 살짝 긁적였다. 괜히 분위기를 타서 이상한 말을 해버린게 아닐까, 하고. 승연의 눈도 못마주칠정도로 민망했다. 하지만 그 민망은 승연이 민망해하자 더욱 민망스러워졌다.
"그, 그, 그, 그, 부, 부, 부... 부끄러워서 그런거예요!"
율은 부끄러움에 몸서리를쳤다. 라고 해도 휠체어 위에서 두손을 꽉 쥐고 눈을 꼭 감고 소리칠 뿐이었다. 부끄러움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추운것도 아닌데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그.. 그게 나을것 같아요..."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엔 민망스러운 상황이었다. 다리 두짝이 없는 여자애를 안고 있는 리더라니. 부끄럽고 민망한 느낌은 물론이고 승연의 커리어에도 금이 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율은 허둥지둥 휠체어를 끌었다. 눈을 계속 감은채로도 능숙하게 휠체어를 끌 수 있는 몸이건만 왠지 마음이 급해져서 손이 헛나갔다.
"아으..."
백에게 처음 부탁했을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던것 같은데... 목에 칭칭 감겨있는 목도리로 얼굴을 완전히 감싸서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그.. 그래도... 훤님이나 백님 이외의 분은 처음이니까 민망해서요.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탓이겠죠."
그럼 차라리 훤을 불러내면 되는 일인데 MT때나 회식이나, 사실 사람은 사람들의 속에서 사는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어느 누군가의 의지가 율을 이렇게 만든것일지도 몰랐다. 사람 사이에 부대끼며 사는게 힘든일이겠지만 학교에서 익숙해져야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긴장하지 않을테니까.
"조, 좋아요. 의식하지 않고..."
율은 잠깐 심호흡을 하며 민망함을 애써 감췄다. 목도리를 살짝 내려 눈만 빼꼼 내민 후 살짝 실눈을 떴더니 어느새 부실 밖으로 순간이동 되어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져선 민망함도 잊어버리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승연을 바라보았다.
"가, 감사해요..."
제 할 일을 남에게 내어준 꼴이 아닌가. 율은 허둥지둥 감사인사를 하고... 승연의 말을 듣자 다시 얼굴을 붉혔다. 목도리 속으로 얼굴을 숨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주.. 준비를 좀 할게요..."
율은 애써 침착하게 무릎이 있었던 곳에 덮어둔 담요를 넓게 펼쳐 모서리와 모서리부분을 허리부근에 묶었다. 원래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것을 보는 사람들의 그 눈총들은 익숙했다. 그러니까 승연이 민망해하지 않도록...
또 다른 민망한 상황이 펼쳐지는것을 방지하기 위해선...
"모, 목도리로 얼굴을 가릴까요? 그게 낫겠죠?!"
목도리로 얼굴전체를 가려버릴 기세였다.
"아! 네. 그냥 안고만... 그... 꽤 안아주셔야 하거든요. 10분... 정도면... 네. 10분 정도면 되요! 무거우면 바닥에 놓으셔도 되요! 그냥 짐이라고 생각하시고요! 허리나 엉덩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잡으시면되요!"
율은 꽤 두껍게 챙겨입은 옷들을 톡톡 쳐댔다. 오늘은 전부 9겹의 두꺼운 옷을 입었으니 이불 정도로 생각해도 괜찮았다.
율은 승연을 향해 두팔을 뻗었다.
"잘부탁드립니다..."
뭘 잘부탁드리는진 모르겠지만.
✲
"리더님은 멋지시네요."
율은 진심으로 말했다. 하긴, 생각해보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도움을 주려했다. 아니, 도와주지 않아도 다른 표정으로만 보지 않는다면 그것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사실 이런 개인적인 일을 팀의 리더가 해줘야할 의무도 없긴 했다.
"혹시나 민망할까봐요..."
어쨌든 안고있는다는 행위 자체는 사람과 사람 사이가 가까워진다는 것이었으니까. 얼굴이 가까워질텐데 얼굴을 가릴 수단으로 사용할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생각한다면 백은 얼마나 민망함이 없는건지. 10분동안 잠들지 않으려고 혼자 재잘재잘 떠드는일도, 애써 밑을 바라보지 않는것도 율에겐 배려심 넘치는 행동이었다.
"네. 꽉 잡을게요."
휠체어에 타고 있을땐 높이에 맞춰 두껍게 접었음에도 휠체어의 발을 놓아두는곳까지 닿았기에 다리가 없다는 사실보단 휠체어에 앉아있는 사실에 눈길을 더 많이 받았지만, 담요를 펼치면 모든 방어기재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아무말도 하지 않아주는 승연에게도 고마움을 느꼈다.
"네. 높이는 괜찮은것 같아요."
율은 백보다 조금 더 높이 올라가는 눈높이에 살짝 웃었다. 이건 백에겐 비밀이었다.
"...그럼 실례할게요?"
율은 작게 속삭이듯 말하고선 두팔을 뻗어 승연의 목에 팔을 둘렀다. 최대한 승연이 힘쓸일 없게 배려한답시고 한 일이었지만, 앞선 일때문에 더욱 민망한 기분이었다.
아니요, 백님한테도 하는거니까 괜찮아요! 하고 율은 애써 마음을 잡았다.
✲
일단 부실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모든 신경이 예민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신경쓰이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혹시 부실에서 나오는 다른분들이 본다면 율은 어쨌든, 승연에게 엄청난 폐가 될 일이었다. 율은 애써 다른 생각을 하다가 승연의 말을 놓쳤다. 불편한 일이란 말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도리질쳤다. 아니, 안되지. 얼굴에 머리카락을 맞으면 안되니까 확실히 소리를 내야했다.
"아, 아뇨. 불편하지 않아요. 굉장히 편한걸요? 뭔가 더 넓은 기분..."
합. 율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이거 사람에 따라선 상당히 민망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 아니던가! 율은 민망한 기분을 숨길수가 없었던지 승연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렇게 꽁꽁 싸매고 있었음에도 율의 얼굴은 따뜻하다기 보다 차가운 느낌이었다. 율은 어색함에 파들거리며 승연을 알고 있던 두 팔에 힘을 주었다.
"무, 무겁진 않으세요?"
일단 다리 두게가 없는 상황을 가정해볼때, 율의 몸무게는 약 15~20kg 정도 되겠다. 무거운지 안무거운지는 잘 모르겠지만, 백이 들수 있을 정도라면 괜찮은 무게... 겠지?
율이 자기 몸무게를 걱정하고 있는 사이 승연의 말이 들렸다. 놀러간다! 이건 율의 눈을 초롱하게 뜨게 만들 요소였다. MT도, 회식도 즐거웠으니 분명 수학여행도 즐거울 것이었다.
"학년도 과도 관계없이요? 굉장히 즐거울것 같네요. 미리... 같이 놀 사람이라..."
율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백 말고 달리 같이 놀 사람이라고 한다면 앨리스나 에스텔 정도겠지만, 그 친구들에게 또 다시 자신이라는 귀찮음을 떠맡게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분명 자기들도 이런 짐짝 보다 같이 뛰어놀 수 있는 친구들을 원할지도 모를테니까. 율은 잠시 말이 없어졌다.
"혼자... 혼자 노는거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괜찮아요."
율은 밝게 웃으며 말했다.
✲
"검술과 사람들이 그렇게 커다랗고 무거운 검을 드는걸 보면 신기해요. 리더님의 검도 무거워 보이지만요."
검술과에선 만약 율이 검을 들고 있다면 덜덜 떨다가 놓쳐버리거나 아예 들지도 못할 검들이 가득하다는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검을 드는건 상당히 체력을 요구하는 거겠지. 율은 어깨에 묻은 얼굴을 들고 살짝 숨을 내뱉았다.
아. 너무 티가 난 모양이었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입이 방정이었다. 괜히 즐겁다고 이야기한탓에 리더님의 리더다운 잔소리를 듣게 되었으니 말이다. 율은 으음.. 하고 어색하고도 막힌 소리를 내더니 아주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익숙해서 괜찮아요."
이제 혼자 노는 것을 정말로 좋아하는건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해야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 날들이 계속 있었다. 짧은 인생일 뿐이었지만. 율은 가볍게 대답하고서 쿡쿡거리며 소리내어 웃었다.
"리더님은 정말로 마음이 넓고 따뜻한 분이세요. 팀 프로메테우스의 리더! 라는 느낌이네요."
본질적인 결함이든 신체적인 결함이든, 그런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감정을 줄 수 있다는건, 생각은 쉽지만 굉장히 힘겨운 실천이었다. 그 한걸음을 어떻게 뗐는지 몰라도 계속해서 해나간다는것도 대단해 보였다.
율은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스스로 남들을 멀리한다는데 동의할수 있을까? 율은 혼자 그 자리에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멋대로 가까이 왔다가 멀리 떨어져나갈 뿐이었는데. 아니면 이게 율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어리고 약한 율에겐 그보다 더 커다랗고 강한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율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럼 리더님께서 하나만 더, 도와주시겠어요? 제가 '스스로 남들을 멀리하는 것' 을 그만둘 수 있게요."
율은 가만히 미소지었다.
✲
"얼마나 더 마음이 넓고 따뜻한 사람이 될 생각이세요? 그럼 저 울어버릴지도 몰라요?"
율은 장난기를 가득담은 말투로 말하곤 쿡쿡거리며 웃어댔다. 아. 웃는게 조금 힘겨웠다. 갈비뼈가 아픈 느낌이다. 손에 꼽을 정도로 소리내어 웃는걸 반복했으니 운동도 안하고, 먹는것도 거의 없는 율에겐 힘든 일이었다. 살짝 심호흡을 하고 승연의 목에 두르고 있던 힘이 빠진 팔에 다시 힘을 주었다.
"리더님만이 할 수 있는 도움을 청해야겠네요."
율은 조용히 생각해보았다. 친구 사귀기? 그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율이 생각할 수 있는 다른 모든것도 율 혼자, 아니면 훤의 도움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예를 들어 옷 갈아입기라던가. 그건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일단은... 아! 이제 10분... 된 것 같으니까 괜찮을 것 같아요. 내려주셔도..."
율은 시간을 가늠하고서 허둥지둥 승연에게 말을 건넸다.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10분 동안 무언가 들고 있는 행위는 상당히 무리가 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음... 왠지 팀 프로메테우스의 리더님께 도움이 필요한 일은 오늘 같은 일이 아니면 없을것도 같아요."
예를 들어 훤도 없고, 백도 자고 있는 이 상황이 아니라면, 없을 것 같았다. 응. 없다! 율은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진짜 없을지, 율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유클리드의 검술과 나승연 선배님한텐 있을지도 몰라요? 예를 들어, 그림의 모델이 되어주세요. 하고 부탁한다던가?"
율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아. 갈비뼈가 아팠다.
✲
율은 다시금 낮아진 시선에 승연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승연이 팔을 푸는것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승연을 보지도 못하고 파들거리며 입을 열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다음엔 절대로 안아달라고 하지 않을게요!"
율은 자신에게도 다짐했다. 이제 훤이나 백 이외의 사람에게 안아달라고 하는건 금지다. 차라리 욕창이 생겨서 살이 썩어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율은 허리에 묶었던 담요를 풀어 재빨리 접어 다시 다리 부위를 가렸다. 이제 조금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알았어요, 참을게요! 참는거 잘 하거든요. 아니예요. 분명 리더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있을거예요. 제가 찾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율은 가볍게 다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승연을 바라보았다. 아, 그렇다고 도움을 요청할만한 일이 생기는건 조금 그랬다. 어떤 날이든 아무 일 없이 흘러갔으면 하는게 율의 바람이었다.
"네! 그럴게요. 처음은 훤이였고, 두번째는 백이었고, 세번째가 리더님이 되겠네요. 기대되요!"
율은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상당히 기대된다는듯한 표정도 함께였다. 갈수록 그림실력도 늘어나고 있으니 기대해볼만한 일이었다. 매일같이 꽃이나 풍경화를 그리느라 사람 얼굴은 별로일지도 몰랐지만.
율은 승연을 안고 있을때보다 당연하게도, 차가워진 몸에 겹겹이 싸인 옷을 여미다가 승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으로 들어가요. 고마웠어요, 오늘. 정말로."
율은 휠체어를 끌며 웃었다.
율은 여전히 책자를 보고 있었다.
박물관, 갔고! vr체험! 했고! 리조트의 맛있는 뷔페... 는 먹진않았지만 어쨌든 그 분위기는 즐겼고!
그렇다면 남은것은... 역시 대망의 '퍼레이드'겠다.
"기대되는데... 역시 혼자 보러 가는게 낫겠지?"
율은 고심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백님, 여전히 자는중. 다른 친구들도 바빠 보였으니까. 그럼 혼자로 결정!
여름이 다가오는 날씨이건만 여전히 중무장을 한 율은 휠체어를 가볍게 끌며 콧노래를 불렀다.
가는길에 풍경도 그릴겸 넉넉하게 시간을 잡아 나온 율은 구석으로, 사람이 적은 곳으로 향했다.
가끔 멈추어 서서 토끼 모양의 담요 위에 올려둔 스케치북과 스케치 도구로 풍경을 그리는것을 반복했다.
"리더님이다! 리더님! 리더님!"
그렇게 사람이 적은 곳으로 향하고 있다보니 반가운 얼굴도 보였다. 율은 멀리서 승연을 향해 소리쳤다. 스케치 도구를 들고 있는 손을 들어 해맑게 웃으며 인사했다.
✲
그리고 문득 예전일이 생각났다. 이거, 지금 마주치면 상당히 부끄러워지는 상대랑 만난게 아닐까? 율은 흔들거리던 팔을 멈칫하며 내렸다. 여전히 웃으면서 다가오는 승연을 바라보았다. 일단 말을 걸어버린건 이쪽이었으니 피하는건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승연의 말이 들려오기에 금방 잊어버린 율은 후후, 작게 웃었다.
"아뇨. 스케치가 목적은 아니었고, 퍼레이드가 목적이었어요. 책자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놀이동산의 꽃! 말이죠. 스케치는... 나중에 돌아가면 아쉬울까봐, 그리는 중이었어요."
율은 무척이나 더워보이는 목도리를 여미곤 웃었다. 덥지도 않은지 땀 한방울 흘리지 않는 율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꽁꽁 싸맸다.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마스크 때문에 보이진 않았겠지만, 율의 말투에서 느껴지듯 그녀는 꽤 이 수학여행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스케치가 목적은 아니었지만, 장소 추천은 받고 싶어요!"
율은 해맑게 웃었다. 일단 많이 알고 있으면, 무거운 휠체어를 끌고 돌아다니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드니까, 그건 율에겐 이득이었다.
"아, 그리고 퍼레이드 장소에 대한 정확한 위치를 알고 싶어요, 리더님!"
율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율은 승연의 격한 반응에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리고 밝게 웃음을 터트렸다. 입가에 마스크가 있긴 했지만 작은 손을 들어 입술이 있는 부근을 가리는것도 잊지 않았다. 승연의 말에 대답을 해야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보러 왔어요. 책자에 있는건 다 해 볼 생각이었거든요. 에스텔 언니랑 박물관도 다녀왔고, 빅토르님이랑 vr체험도 했고요. 오늘은 퍼레이드를 구경하러요. 이번년도 수학여행은 정말 추억이 많이 남을 것 같아요. 해보지 못한 것도 많이 했으니까요."
율은 곱게 눈을 접어 웃으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승연의 손가락을 따라 율의 고개도 돌아갔다. 저쪽의 회전목마, 롤러코스터, 그 위의 꽃밭! 율은 승연의 말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회전목마도 롤러코스터도 궁금했지만, 탈 수 없는걸 기대해 봤자 소용 없겠고, 꽃밭은 무척 기대됐다.
"감사해요. 리더님. 풍경이 꽤 예쁘다니...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이예요. 휠체어가 갈 수 있으려나."
율은 혼잣말을 흘리고 있다가 승연의 제안에 눈을 반짝 빛냈다. 같은 곳에 간다니, 그럼 길 잃어 버릴 염려도 없고 다행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시선이 한참 낮은 율에게 있어선 넓지 않은 시야에 불편한 점이 한두개가 아니었기에, 같이 가 줄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네! 그런 장소가 있다면 당연히 가보고 싶어요. 그리고 리더님이랑 가는거, 좋아요!"
율은 해맑게 웃으며 스케치북과 스케치 도구를 정리해 등 뒤로 숨겼다. 그리고 승연의 질문에 승연을 바라보는 까만 눈동자가 깜빡였다.
"아, 저 추위를 많이 타서 괜찮아요. 혹시 더워 보이나요, 저?"
율은 승연의 질문에 갈팡질팡했다. 조금 더워질거라고 해서 적당하게 7겹 정도 껴입었는데, 하는 혼잣말이 들렸다. 거기다 담요에다 목도리, 마스크까지... 쪄 죽는게 아닐까...
✲
율은 승연의 말에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곰곰이 생각하는 그 눈은 고요하기만 했다.
"그러게요.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율은 다시 생글 웃었다. 이어지는 승연의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러게요. 내년에도 가고, 내후년에도 가겠지만... 그래도 올해 수학여행을 좋은 추억으로 삼을래요."
내년은 내년, 내후년은 내후년, 사실 그때 없을지도 모르고,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율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현재를 충실하게 살겠다, 라는 말을 돌려말했다.
승연이 같이 가준다는 말에 율이 휠체어를 끌며 승연에게 조금 다가갔다. 아무것도 없는 이마쪽에 조금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네요! 또 누군가와 만났으면 좋겠어요. 퍼레이드는 다 같이 봐야 즐거울것 같고요! 그치만 리더님과 둘이서 봐도 재밌을것 같아요!"
율은 해맑게 웃었다.
"아! 저는 괜찮아요! 껴입은 옷이 보호막이 되거든요! 이 옷들, 보기보다 따뜻하고 두꺼워요! 피해라니... 리더님은 리더님 특성을 갈고 닦는데 힘써주셔야죠!"
율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 하고 깨달은듯 말했다.
"휠체어 때문에 퍼레이드 시간 늦을 수 있으니까 얼른 가도록 해요, 리더님!"
율은 씩씩하게 말하며 휠체어를 끌고 승연의 앞을 나가... 려고 했으나 길을 몰랐다.
✲
율은 아까부터 쿨럭쿨럭 거리는 승연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괜찮은걸까, 리더님. 아픈게 아니라면 좋을텐데...
휠체어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승연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제안하는 승연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여유가 있나요? 아... 그래도 조금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역시 조금 여유있게 도착하는게 낫겠죠? 자리도 잡아야 할테니까요."
율은 조금 고민하는듯... 했으나 금방 고개를 끄덕이며 도움을 요청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건, 그게 어떤 일이든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역시 리더님은 다르시네요. 그렇게 생각하실줄은... 그래도 전혀 피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춥다면 옷을 더 껴입으면 되는거고, 덥다면 옷을 벗으면 되는 일이고 말이죠. 그리고 제 옷은 따뜻해요!"
율은 자기 옷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났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하는 율의 모습은 열여섯살의 그것과 같았다. 목도리에 단단히 감겨 있는 긴 머리카락을 옆으로 모아 훑어 내렸다. 혹시라도 바람에 날려서 뒤에서 휠체어를 끌어줄 승연이한테 맞으면 안되니까. 머리카락에 맞는건, 생각보다 기분 나쁜 일이었다.
"리더님은 수학여행 기간 동안 뭐 하실 생각이세요? 아, 수학여행이니까 더 신경이 곤두서 있나요? 사실 학교에 비하면 통제가 안 되는 곳이기도 하잖아요."
율은 살짝 심각해졌다. 괜히 리더님한테 피해가 가면 안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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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것도 중요하지만, 리더님도 리더님이 생각하고 있는 기준을 잃지 않으셨으면 해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다보면, 그 기준을 어느샌가 잃고 말거든요."
율은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투엔 살짝 웃음기가 어려있었지만 앞을 바라보는 눈만은 진지했다.
"하지만 그런점은 왠지 리더님이랑 어울려요."
이제야 율은 진지한 눈까지 웃어보였다. 조금 아랫쪽으로 또렷히 들려오는 승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가요? 하긴, 다 같이 온 수학여행인데 리더님도 충분히 즐기고 푹 쉬는 시간을 가져야죠. 아마도 괜찮을거라고 생각해요."
확신은 없었다. 그래서 아마도라는 단서가 붙었다. 율은 사고치러다닐 성격이나 몸이 아니었으니 당연했겠지만 다른 분들은 모를 일이었다.
꺾고 꺾이는 길이 끝나자 곧 퍼레이드 장소가 나왔다.
"와아. 이런 장소를 알고 계셨군요. 리더님! 정말 좋아요."
율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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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는 리더님은 당연히 팀을 이끌어주는 멋있는 분인걸요. 물론, 개인적인 감상이라기 보단, 팀을 이끄는 리더님에 대한 감상이라고 하는게 낫겠죠?"
굳이 묻지않겠다는 승연의 말에도 자기 감상을 늘여놓다가 작게 웃었다. 남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은 가끔씩은 궁금한 법이었다. 항상 쿨한 모습을 보이는 리더님이라도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는 법이었다.
"리더님은 제가 그런걸 퍼트릴 사람처럼 보이나요?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퍼트릴 생각은 없었어요."
율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눈을 가늘게 뜨곤 승연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렇게 느꼈다면 실망할지도 모를일이었다. 아직 만난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리더님이라면 왠지 성향을 알고 있을거란 이기적이고도 막연한 믿음이었긴 하지만...
율은 살짝 눈을 도르륵 굴렸다. 조금은 장난스러운 느낌이었나? 싶어서 고개가 기웃거렸다.
그리고 천천히 보이는 퍼레이드의 모습은 정말로 황홀했다. 율은 생에 처음으로 보는 회려함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즐겁고 마음이 푸근해지는 하루였다.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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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은 쿨럭거리며 당황스러워하는 승연을 바라보았다. 언제 눈을 가늘게 뜨고 승연을 바라보았냐는듯, 어느새 율의 얼굴엔 언제나와같은 열여섯 소녀의 해맑은 미소가 걸쳐져있었다.
"사과라뇨! 아니에요! 정확한 파악은 아니었지만 대체적으로 맞는 파악이었어요. 그래도 거절...할 줄 알아요, 저! 마.. 마음씨가 따뜻하다고 칭찬해주신건 감사하지만요!"
칭찬은 언제나 들어도 부끄러운 기분이었다. 율은 열이 확 오르는 두 뺨에 차가운 손바닥을 가져다댔다. 허등지둥 말하다보니 말이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기분이었다. 눈을 꼭 감고 두 뺨을 아프지않게 찹찹 때렸다. 정신차려, 이 율!
그 사이 퍼레이드의 밝고 다양한 불빛들이 율의 얼굴에 반사되었다. 눈을 살며시 뜬 율에게도 그 화려함과 웅장함이 보였다. 금세 부끄러움을 잊은 율의 고양이 같은 눈이 동그랗게 떠져 반짝거렸다. 퍼레이드를 처음 본 어린애처럼 두손을 마주 꼬옥 잡았다. 두 다리가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신나게 제자리뛰기를 했을지도 몰랐다.
"우와! 리더님! 리더님! 저기 보세요! 대단해요! 멋져요! 저런 묘기가 가능하다니 얼마나 연습한걸까요? 와! 저런 마법은 처음 봐요! 너무 예뻐요! 앗! 저 마법소년, 마법소녀 인형들 그분들 아니에요?"
주변에서 시선을 보내올정도로 흥분한 율이 주체하지 못하고 옆에 있던 승연의 팔을 꼬옥 잡았다. 좋은 것은 같이 봐야 한다고, 같은 곳을 보면 좋을것 같아 자기가 보는것을 가리키며 눈을 반짝여댔다.
"네! 기대한것만큼 좋았어요! 아니, 기대한것보다 더 좋은걸요!"
승연의 질문에 그를 바라본 율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진짜 행복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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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랬을거예요. 물론 임기응변이나 눈치가 빠른 사람들도 있겠지만 분명 많은 연습을 했을거라고 생각되요. 실전이든, 퍼레이드를 위한 것이든 말이예요. 그래서 뭐든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하나봐요!"
율은 승연의 팔을 꼭 잡고 있으면서도 두 눈은 앞을 향하고 있었다.
"각기 다른 분들을 퍼레이드에서나마 한자리에서 볼수 있다는게 꿈 같아요. 굉장히 멋져요."
그리고 율은 두 다리로 서서 퍼레이드 제일 뒤에 걸어가는 헛된 상상도 조금 해봤다. 겨우 상상일 뿐이었지만 오히려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도 불타는듯 했다. 물론 저 사람들도 연기자일뿐이고 만약 율이 유명해져서 퍼레이드에 서게된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직접 하는 퍼레이드는 아닐것이었지만 단순히 상상일 뿐이니까!
"네. 이런 곳을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보러 와야겠어요! 분명 좋은 그림 소재가 될거예요."
그럼 다음엔 누구와 와야할까. 백님? 훤님? 앨리스? 에스텔 언니? 빅토르님? 아니면 아예 혼자 오는것도 나쁘진 않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율은 미소지었다.
"오늘은 정말 행복한 날이예요. 수학여행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런 좋은 퍼레이드를 누군가와 함께 보고 있다는것도 저에겐 너무나 행복한 일이예요. 그래서 감사해요. 리더님한테!"
율은 승연을 보고 활짝 웃었다. 그리고 이제야 깨달은듯 황급히 승연의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자각이 없었던 모양인지 순식간에 빨개진 얼굴로 까만 눈동자만 깜빡이다가 헤헤 웃었다.
"갑자기 잡아서 죄송해요. 리더님."
황급히 손을 토끼 모양의 무릎 담요 위로 올려두었다.
✲
"그건 맞아요. 그래도 아는 사람을 우연히 만난것도 신기한 일인데, 같은걸 보러가고 있었다는건 더 신기한 일이잖아요?"
약속을 정한것보다 정하지 않고 나왔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사람과 목적지가 같았다! 율은 이 두 가지가 우연처럼 맞아 떨어진것에 대해 무척이나 신기해하고 있었다. 애초부터 혼자 보기로 생각하고 나온 퍼레이드인데다가,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물어 찾아간 퍼레이드 장소는 분명 이렇게 한적하면서 퍼레이드가 잘 보이는 장소가 아닐거니까. 율은 자신에게 인복이 있구나 하고 조금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몸에 갑자기 다른 사람의 손 같은게 닿으면 조금 그렇잖아요? ...아닌가...?"
율은 고개를 기웃거렸다. 음... 율은 작은 소리를 내며 승연을 빤히 바라보았다. 뭔가 저번부터 오늘도 여러차례 쿨럭거리는 승연이 걱정된다는 눈빛이었다.
"저번부터 말은 하지 않았지만... 리더님 혹시 감기 걸리신건가요?! 왠지 계속 차가운걸 드시고 계셨고요. 얼굴도 조금 빨간... 아! 그건 퍼레이드 불빛인가?"
율은 조금 중얼거리다가 눈동자를 도르륵 굴렸다.
"너무 차가운거 드시지마시고 따뜻한것도 가끔 드셔야해요? 옷도 따뜻하게 입고요... 리더님의 특성상 이런 말 하면 조금 어폐가 있는듯한 느낌도 들지만요. 어쨌든 리더님을 걱정하고 있다는 거예요!"
걱정의 눈빛으로 승연을 바라보며 조금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퍼붓다가 심호흡했다. 자기가 괜한 잔소리를 늘여놓은게 아닐까 싶가도 했다. 아무리 팀 멤버라지만 이건 조금 선을 넘어버린건 아닐까? 하고 마음이 쓰였다.
"리더님의 기분이 좋으셨다면 다행이예요. 편안하게 느끼게 해주신 리더님의 덕분이예요. 예전에도 말했지만, 리더님은 정말로 멋지고 좋은 분이세요. 그래서 무척 좋아하고 있어요! 본 받고 싶고요!"
율은 눈을 반짝 빛내며 승연을 바라보았다.
✲
"갑자기 하늘에서요?"
율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이다가 승연을 따라 어느새 하늘을 바라보았다. 진짜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던데, 진짜로 오면 양반은 아니라던데... 다행히 전리더님은 호랑이도 아니었고 양반이었나보다.
"그건 다행이네요. 건강은 챙길 수 있을때 챙기는게 좋은거거든요."
율의 말은 씁쓸한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신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금방 웃어넘겼다.
"저는 지금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리더님이 더욱 쿨하고 냉철한 리더님이 되시겠다고 하면, 응원해드릴게요!"
율은 후후 웃었다. 승연의 말에 다 끝나가는 퍼레이드를 한번 바라보았다가 다시 승연을 바라보았다.
"전 퍼레이드 끝나고 하는 불꽃놀이 보고 돌아갈게요! 리더님은 어떻게 하실건가요? 먼저 돌아가셔도 괜찮아요."
율은 씩씩하게 말하곤 생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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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은 고개를 기웃거렸다.
"리더님이 왜 '아직'이라고 말하는진 잘 모르겠지만... 목표가 있다면, 그 목표를 향해 가는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너무 그 목표만 쫓기보단 잠깐 쉬는것도 좋을거예요. 너무 한가지에 몰두하다보면 시야가 좁아지기 일쑤거든요."
율은 입을 다물고 살짝 웃었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당연히 괜찮아요! 선약은 없어요. 전 퍼레이드를 보고 이어 불꽃놀이를 보는것까지 계획하고 있었으니까요! 리더님이랑 같이 본다면 즐거울거예요."
율은 생글 웃었다. 승연이 돌아가게된다면 혼자서 볼 생각이 가득했었지만 퍼레이드를 보는것처럼 역시 혼자보단 여럿이 함께 보는것도 재밌을것이었다.
"그럴까요? 조금 위로 가는게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퍼레이드도 좋았지만 불꽃놀이는 열여섯 소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단어였다. 율은 승연을 재촉하듯 휠체어의 바퀴를 끌었다.
"얼른 가요! 리더님!"
✲
"어머... 그렇게 따끔거렸어요? 죄송해요... 하지만 필요하다면 언제나 악당이 될거예요!"
아니면, 괴물? 율은 잠깐 생각하며 활짝 웃었다. 악당이 될거라고 말하는것치곤 꽤 즐거워 보이는 느낌이었다. 불꽃놀이를 본다는거에 즐거워보이는것인진 잘 모르겠지만.
율은 승연의 말에 눈을 깜빡였다.
"오늘은 팀 프로메테우스의 리더님이 아니라 유클리드의 학생으로서 즐겨보는건 어때요? 수학여행이잖아요! 그럼 저도 오늘은 리더님... 말고 다른 호칭을 사용하는게 나을것 같네요. 괜히 리더님이라고 하니까 중압감이 있는것 같아서. 그럼..."
승연 오빠? 는 너무 격식 없어 보이고, 역시 승연 선배님? 이 나으려나. 율은 꽤 고민했다.
"아. 휠체어 끌어줘서 고마워요. 승연 선배님."
율은 소리내어 작게 웃었다. 바퀴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토끼 모양의 담요에 놓았다.
"네! 저 꽤 속도감 있는거, 좋아하거든요!"
만약 다리가 있었다면 카레이서가 되는것도 나쁘진 않았을텐데. 율은 괜히 오늘따라 더욱 떠오르는 두 다리의 부재가 아쉬웠다. 아니, 이렇게 안 좋은 생각만 하면 안된다니까, 이 율!
"저 테마파크 와본건 처음이라, 지리를 잘 모르니까... 승연 선배님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가도 상관없어요."
율은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경치좋은 곳에서 보는 불꽃놀이는 얼마나 즐거울까, 하는 얼굴이었다.
✲
"수학여행이 끝나기 전까지만 승연 선배님이라고 부를거예요. 수학여행 기간동안은 팀 프로메테우스의 리더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니까요. 수학여행은 누구든 재밌게 즐기라고 가는거잖아요? 그게 팀의 리더라고 하더라도요."
율은 생긋 웃었다. 승연이 휠체어를 끄는데 조금 더 속도감이 느껴지자 눈을 반짝였다. 휠체어 롤러코스터네!
율은 테라스에 도착하기 전 10분의 시간 동안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근데 잠깐만. 밀어주는 사람 따로 노래 부르는 사람 따로라니. 이거 완전 개미와 베짱이 아냐? 율의 콧노래 볼륨이 조금 줄어들었다. 결코 콧노래를 그만두겠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목적지인 테라스의 난간에 도착하자 와아! 하고 소리쳤다. 불꽃놀이는 시작도 안했건만 이미 야경에서 한방 먹었다. 진짜 너무 아름다웠다.
"네! 정말 예뻐요. 하늘도 예쁘다아. 네! 오늘이 맑은날이라서 다행이예요! 앞쪽이라서 불꽃놀이도 엄청 예쁘게 보일것 같아요."
율은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퍼레이드 사진 찍는건 놓쳤지만 불꽃놀이 사진 찍는건 놓지 않을거야! 그래도 그 전에 야경 먼저...
율이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자 찰칵거리는 소리가 몇번 들렸다.
그리고 들리는 승연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밤하늘보다 까만 눈동자가 승연을 바라보았다.
"혼자 지내는것도 좋아요. 그래도 사실은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모든 분들껜 고마운 마음이에요. 언제나 도와주시려고 하시고요. 승연 선배님이 안심이 된다면 같은 팀의 멤버로선 더할나위없이 기쁜 말이네요."
예전, 마녀를 보는듯한 그 표정은 아직도 잊을 수 없없다. 마녀에 대해서, 태생이 마녀는 아니었으므로 그 시선은 정확히는 잘 몰라도. 그러니까 유클리드에 들어오면서, 팀 프로메테우스에 합류하면서 율의 주변에서부터 율의 마음에 이르기까지 많은게 바뀌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혼자 지내는것에 거부감은 딱히 없었다. 그저 여럿이 지내는것에 대한 즐거움을 알았다는게 추가되었을뿐.
"아, 불꽃놀이! 시작할거 같아요, 승연 선배님!"
율은 저멀리 퍼레이드가 사라지는것을 보곤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반짝거리는 까만 눈은 어느새 하늘을 향해있었다.
✲
"그럼 둘 다 좋아하는게 맞나봐요. 혼자도 좋고, 둘도 좋고, 여럿도 좋으니까."
훤이 없었을 혼자, 훤이 있었던 둘, 팀 프로메테우스의 멤버들과 함께 하는 여럿, 모든게 좋아질것 같았다.
율은 기쁘게 웃음짓곤 하늘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을 수놓는 빨간 불꽃과 함께 셔터 소리가 들렸다. 적당한 시간차를 가지고 펑펑 터지는 불꽃과 함께 셔터 소리가 몇번 들리더니 금방 멎었다.
"진짜 예쁘다아..."
율은 중얼거리다가 승연의 환호성 비슷한 소리에 승연을 바라보았다. 웃지 않을수가 없었는지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계속 말하는거지만, 지금은 팀의 리더가 아니라 그냥 수학여행을 즐기러온 학생1이니까요. 승연 선배님. 오늘 한번 환호성을 지른다고 해서 쿨하고 냉철한 리더님이 사라지진 않는다구요?"
율은 승연을 보고 말갛게 웃곤 불꽃이 터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와아! 하고 시범보이듯 환호성을 질렀다.
"그렇죠? 퍼레이드를 보고 불꽃놀이를 보는 계획은 완벽했어요!"
율은 노래부르는듯 즐겁게 말했다. 그리곤 카메라를 동영상 모드로 돌려놓고 녹화를 시작했다. 밝게 터지는 여러가지 모양과 색의 불꽃들과 야경을 찍곤 카메라를 돌려 자기 모습도 찍었다.
"오늘을 절대 잊지 못할거야."
율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팔을 뻗어 난간을 붙잡았다. 마치 일어설것처럼 보였지만 그냥 잡은게 다였다. 허리가 아팠다.
✲
"네. 비밀이에요."
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약속하듯 새끼 손가락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확신을 주는 그 목소리는 조금 단호하게 들리기도 했다.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고 비밀로 하고 싶을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는 일을 피하고 싶으신걸까? 하고 율은 생각했다. 그녀로선 절대 못할 일이긴 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환호성을 지르는 승연을 보고 율은 소리없이 얼굴 전체에 웃음을 지었다. 조금만 더 하면 더 좋았을텐데, 무엇이 그를 그리도 억누르는지 바로 그만두는 승연의 모습이 아쉬웠다.
"아뇨. 위치는 딱 좋아요. ...그냥. 허리가 조금 아파서요. 계속 앉아 있었더니..."
율은 점차 작아지는 목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저번에 승연에게 안아달라고 부탁한 그 일 이후로, 절대 다른 사람에게 안아달라고 부탁하지 않기로 했었다. 허리 아픈거야 허리를 조금 돌려주면 괜찮지 않을까!
율은 허리를 살짝 돌리며 운동했다. 아파라...
"떨어지진 않을거예요. 난간이 제 키보다 더 큰걸요!"
율은 해맑게 웃었다.
✲
승연이 새끼 손가락을 들어보이자 율은 웃었다. 딱히 새끼 손가락을 진짜 걸고하는 약속이야라고 하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새끼 손가락을 흔들어 보인 율은 그대로 손을 내렸다.
율은 난간을 붙잡고 계속 불꽃이 터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난간 사이로 다리를 내놓고 달랑거리고 있을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율은 승연의 말에 고개를 돌려 승연을 바라보고 웃었다.
"그럴게 할게요. 승연 선배님. 리더님이 아니라, 한 학년 먼저 올라간 선배님한테요."
율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펑펑 터지는 불꽃놀이의 소리가 느려졌다. 이제 끝이 다가온다고 얘기하는것처럼.
"약간 아쉽다고 느껴져야 다음에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그래서 전 다음에 또 올거예요."
율은 방긋 웃다가 콜록거렸다. 난간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휠체어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이만 내려가보는게 좋을것 같아요. 불꽃놀이도... 다 끝난것 같으니까요."
가장 큰 불꽃이 하나 팡 하고 터지는것을 끝으로 사방이 고요해졌다. 율은 마지막 불꽃을 보고 난 후 승연에게 말하며 웃었다.
✲
"그렇네요. 마음만 먹으면 올 수 있는곳이죠."
놀이기구는 타지 못해도 테마파크니까 구경하는 재미도 있을것이고 나중에 또 온다면 또 다른 테마가 준비되어 있을지도 몰라. 다가올 미래가 즐거워졌다.
"오늘 계획은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보는게 나을것 같아요."
작게 기침을 한번 하고서 휠체어를 끌려고 했다.
"승연 선배님은 다른일은 없으신거예요? 바로 숙소로 가시나요?"
율은 고개를 기웃거렸다.
✲
"그렇네요! 저도 자기전까지 아까 찍어둔 동영상을 계속 볼지도 모르겠어요. 그럼 같이 돌아가요! 시간도 많이 늦었으니까요."
율은 불꽃놀이가 끝나자 하나둘 돌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승연을 보며 웃었다.
승연이 걸어가는 길을 따라 휠체어를 천천히 끌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문득 들려오는 승연의 말을 조용히 들으며 침묵을 지켰다.
"...알겠어요. 그럼 그것도 비밀인거예요."
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이라는듯 한참 소곤대는 목소리였다. 그러다 승연의 말에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저는요? 다른분들은요?"
분명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걸 알면서도 조금 장난을 치고 싶었나보다. 율은 콜록거리면서도 웃다가 조금 진정시키고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저도 승연 선배님이 좋다고 말해주셔서 좋아요. 감사해요."
약간의 웃음기가 어린 말투였지만 진심이었다.
✲
당연히 다 좋아한다는 승연의 말에 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엔 소리없는 미소를 띄우곤 잠자코 승연의 말을 들었다. 나오는 하나하나의 이름들에 율의 머릿속에서도 그 하나하나의 얼굴이 상상됐다. 같은 학년, 같은 나이인 친구들도, 다른 나이, 다른 학년의 선배들, 리더님, 전리더님까지 모두. 좋은 동료이자 율 또한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이제는 믿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율도 사람이라, 사람들 틈에서 살아야한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항상, 내쳐지더라도 항상, 자꾸만 그들의 품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었다. 예전엔 훤님도 그것을 바랐기에 어쩔 수 없다는 감상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율 스스로가 행하고 있었다.
"그렇죠. 당연히 사람이니까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죠...?"
한 걸음 나아가는 승연을 보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율은 휠체어를 끌던 손을 멈췄다.
"...어떻게 대답하는게 좋을까요?"
율은 고개를 숙여 토끼 모양의 담요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리더님은 언제나 다정하고 착한 사람이다. 안아달라고 부끄러운 부탁을 했을때도 들어줬고, 별거 아닌 실력이지만 그림 그리는데 협력해준다고도 했고, 다리 두개 없는 사람에게 아무런 편견도 없이 대해줬고, 배려해줬다.
율은 계속 스치는 생각들을 멈추곤 고개를 들어 승연을 바라보았다. 앞은 어둡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승연이 있는 그곳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럼 이렇게 대답할래요."
율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는 들었지만 시선은 토끼 모양의 담요에 고정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겉옷을 하나 벗고싶어졌다.
"저도 똑같은 마음이라고... 말이예요."
율은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다가 결국 목도리를 끌어올려 얼굴을 가렸다.
✲
율은 승연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얼굴을 가렸던 목도리를 살짝 내리곤 까만 눈을 깜빡였다. 알고 지낸 사람의 이면을 보는 기분은 참 묘했다. 그럼에도 그 묘함이 싫지 않았던것은 행동 하기 이전에 자신의 감정을 천천히, 차분하게 말해주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율은 승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스크에 가려진 입을 열었다. 차가운 숨이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 이전에 살짝 콜록거렸다. 하지만 이어 나온 목소리는 또렷하고 맑았다.
"항상 쿨하고 냉철함을 유지하려고 했던 리더님이 감정적이라는건, 분명하진 않지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요. 이때까지의 대화를 돌아보면요. 저도 내색하진 않았지만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그건 리더님이 관철하기로 한 목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말하지 않았어요."
율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승연 선배님이 마녀와 마법소녀 사이에 태어난 존재라는건, 이제야 알게 된 거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율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눈동자를 도르륵 굴렸다. 꽤 고민는듯 침묵하고 있다가 입을 다시 열었다.
"그건 아버지와의 약속이었군요? 전 리더님에 대해서 모르는게 많았네요. 아니, 리더님이라는 그 지위에서도, 승연 선배님이라는 그 이름에서조차도."
율은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 조그맣게 흩어진 그 말을 뒤로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은 까만 눈동자가 다시금 승연을 바라보았다. 고개가 살짝 옆으로 기울었다.
"물론 당황스러운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 모습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아버님과 한 약속을 지키려고 한 것은 승연 선배 자신이잖아요? 약속, 그런건 그냥 깨버려도, 사실 아무도 모른다구요? 저도 그래요. 저도 저와 훤님과 한 약속이 있어요. 그런데 그 약속을 깨지 않은건, 훤님을 생각해서, 그리고 절 생각해서였어요. 훤님이 슬퍼하지 않길 바랐고, 제가 울면 안되니까."
율은 서늘한 레이피어의 소리와 냉기, 만들어진 얼음꽃을 바라보았다. 가로등 불빛에 빛나는 투명한 그것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저는 제가 내뱉은 말을 다시 주워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것은 부드러웠지만 확실한 어조였다.
✲
"그러네요. 승연 선배님의 아버지께 감사드릴일이네요."
율은 다시 열여섯살의 소녀로 돌아온 모습으로 웃었다. 지금이야 어쨌든, 그녀는 나름대로 인간이자 장애인이라고 국가적으로 공식인증을 받은 셈이긴 했지만, 승연의 경우엔 확실히 어려운 일이었다. 인간과 괴물 사이에서 태어난 마녀가 밑으로 내려와 마법소녀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도 이런 차별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마녀와 결혼한 마법소녀의 용기나,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마법소녀가 마녀와 결혼한 용기가 대단하다고.
그건 차별 속으로 제 발로 걸어들어가는것과 다름 없을텐데도.
율은 그럼, 이렇게 구체적으로 보이는 장애를 가진 저를 좋아하는 승연 선배님은 사실은 더 용기가 있는 사람이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다. 율에겐 아직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기에.
"네. 숙소로 돌아가요. 그리고... 제 옆에 서주신다면, 저야말로 감사한 일이에요. 승연 선배님은... 정말로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에요."
율은 차가운 손으로 휠체어를 밀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제 옆에선 그렇게 쿨해지려고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에요."
열심히 휠체어를 굴리다가 승연의 마지막 말에 멈추어섰다. 율은 승연을 보고선 마스크를 아주 살짝 내렸다. 입술 반쯤만 보이도록. 그리고 웃어보였다.
"따뜻하고 다정한, 쿨하고 냉철한 승연 선배님을 좋아해요. 제 안의 어둠이 승연 선배님의 빛에 화하여 사라질만큼."
이 보다 밝은 빛은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
"그냥 조금 놓아도 된다는 말이었어요. 그정도 타협으로요."
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완전히 그 약속을 놓으란 의미는 아니었다는듯했다. 다시 마스크를 올렸다.
열심히 휠체어를 끌다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쉽기도 하지만, 또 내일이 있을테니까. 숙소에 들어가게되면 오늘 찍은 사진들을 보고 동영상을 다시 보고 그림을 그리면 되니까.
"그럴까요...? ..."
로비에서 헤어지는건 아쉬운 일이었지만, 덧붙여 말하려고 했던 율은 마스크 안쪽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놀란 눈이 커다랬다.
"...그...다...다음에 또 보면 되니까요...."
고개를 돌린 승연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린 율이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길 이우도 없이 빨간 볼을 토닥거렸다.
"그럼...여...기서 헤어질까요? 그... 잘자요. 좋은 꿈 꾸고, 좋은 밤 보내세요. 승연 선배님."
율은 뻘뻘거리며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다가 아쉬운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휠체어를 끌고 방으로 돌아갔다.
즐거운 수학여행이 끝났다. 왜 즐거운 시간은 이렇게 빨리가버리는걸까. 물론... 괴물이 나타난건 그다지 기쁜 상황은 아니었다만.
"여름이네..."
율은 휠체어를 끌고 혼자 건물 밖까지 나온 상태였다. 오늘의 율은 혼자 있고 싶었으니까 훤은 부르지 않았다.
여름...그것은 쨍쨍한 햇빛의 계절...하지만 율은 여름을 좋아했다. 추위보단 나으니까. 대신 옷가지가 조금 줄어드는건 어쩔수없이 감수해야할 부분이었다.
율은 여름임을 알려주듯 목도리와 마스크, 모자를 벗은 상태였다. 대신 왼쪽 뺨 부분엔 흉터를 가려주는 커버시트가 붙어져있었다. 그리고 밑으론 아직도 목을 가려주는 니트를 입은상태로 갖가지 겉옷을 걸친 상태였다. 하반신엔 익숙한 두꺼운 토끼 모양 담요가 있었다.
장갑을 낀 손이 다시 휠체어 바퀴를 붙잡고 느릿느릿 움직였다. 여름이라 조금 더 다양한 꽃 도안을 그릴수 있을까 해서 산책길을 나왔다.
"어?"
율은 누군가를 보고 눈을 깜빡였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저 사람은...?!
리더님이네. 율은 재빨리 단정한 머리를 등받이에 둔 빗으로 황급히 빗어내렸다. 너무 황급히 하는 바람에 단정한 머리가 더 엉망이 됐다. 아...앞머리 너무 짧은것 같아.
율은 아무렇게나 잘린 앞머리를 매만지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 숨을곳....숨을곳 없나?!이렇게 이상한 모습 보여주면 안되는데!
✲
...도망갈 곳!
못 찾음. 실패.
율은 실패를 인정했다. 어차피 승연이도 발견하고 다가오는것 같으니까... 상관없을거라고 생각했다. 이 율, 뻔뻔해져라!
"안녕하세요. 리더님!"
율은 승연을 보고 반갑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후 웃었다.
그리고 들리는 물음은... 율을 당황시켰다. 아! 나 두리번거렸었지. ...왜그랬을까.
"아, 아뇨. 잃어버린건 전혀 없어요... 그...러니까...리더님을 보고 급한 마음에 그만...!"
급한 마음에 머리랑 정리하려다가요! 하고 소리칠 순 없었다.
율은 엉망이된 머리카락을 급하게 쓸어내리며 정리했다.
"리...리더님은 뭐하고 계셨어요? 산책하시려구요?"
아...덥다....
얼굴이 조금 빨개질것 같아 손으로 볼을 눌렀다. 차가운 장갑아, 고마워...
✲
율은 애써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승연을 바라보지 않았다. 제대로 눈을 못마주칠정도로 부끄러운 행동을 보였다.
다시 되묻는 승연 덕에 더더욱 부끄러워졌다. 어디 쥐구멍이라도 찾는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힐끗거리며 승연의 눈치를 살폈다.
뭔가 깨달은건지 갑자기 미소를 짓는 승연덕에 끙끙 앓으며 귀까지 빨개졌다.
"어...어차피 도망.... 못가는걸요...그래도...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해요."
도망 갈 두다리가 있는것도 아니고. 휠체어로 후진하다가 자빠지면 더 큰일이고...율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튀어나온 머리를 정리했다. 차분해져라, 차분해져라!
율은 승연을 보고 살짝 미소짓다가 승연의 대답에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리더님이세요. 아! 그렇군요? 타이밍이 잘 맞았던 모양이에요. 오늘은 왠지 리더님이 보고싶었다고 할ㄲ....!"
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본심에 황급히 입을 막았다. 한손으로 입을 가린채 남은손으로 손사레를 쳤다.
"저...전혀 더워서 리더님 찾은거 아니니까요! 오해하지 마세요!"
혹시 이상한 오해라도 할까봐 빨간 얼굴로 오해하지 말란 말도 덧붙여줬다. ...가만! 그렇게 된다면 그냥 보고싶었다는 말만 남게 되잖아?
승연이 뻗은 손을 가만히 바라보던 율이 손사레를 치던 손으로 그 손을 가만히 잡았다. 친절하게 풀어 말하자면, 장갑을 낀 손과 맨손이었다.
"조...좋아요. 리더님이랑 산책할래요!!"
새침한척하면서 대답해봤다.
✲
오해하지 말라는 말이 결국 진짜 의미를 남기면서 더욱 부끄러운 상황을 만들어냈다. 그냥 보고싶었다고 말한거면 그걸로 끝냐면 되지, 왜 그런 말을 덧붙였담!
"그....그....마...마,맞,맞아요... 보고싶었어요... 리더님이...기쁘다면 저도 기뻐요...."
율은 더듬거리는 말투로 말하다가 끝내는 심호흡을 하더니 아주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웅얼거렸다.
율은 슬쩍 승연의 얼굴을 보았다. 부끄럽지만... 보고싶으니까...얼굴!
자연스럽게 미소를 짓는 승연의 얼굴을 보고 율이 홍당무가 된 얼굴로 마주 웃어보였다.
마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풀리는 것에 조금 아쉬워했다. 보통의 연인들처럼 손을 잡고 걷는 상상을 아주 잠깐 했지만. 정말 이룰수없는 상상이었다.
"네! 천천히 산책해요. 온도는... 지금 딱 좋은걸요? 더우면 옷 벗으면 되니까요!"
율은 그저 산책에 신난 모양이었다. 정정. 승연이와 함께하는 산책에 신난 모양이었다. 율은 평소보다 느릿느릿하게 휠체어를 끌었다. 산책길이 짧진 않았지만 그래도 끝이 빨리오는건 아쉬우니까!
"저...저도 괜찮은걸요? 저는 이미 훤님한테 말해버려서...죄송해요! 동의도 없이... 이...일단은... 아! 저도 알고 있으니까요! 공과 사는 중요하죠!"
율은 횡설수설하며 대답했다. 훤에게 먼저 말해버린걸 미안해하는듯 했다. 승연의 마음도 이해하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따...딱히 비밀로 하지 않아도 괜찮다면 그러고 싶어요...무..물론 먼저 말하고 다니진 않겠지만요! 그래도... 뭔가... 알리고 싶다고 할까... 리더님의 여자...친...구가...저...라는걸....?"
쥐구멍에 들어갈만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
역시 리더님은 쿨했다. 율은 훤에게 말했다는 말에 쿨하게 괜찮다고 해주는 승연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겠다. 훤에게 말해버린 지난날의 안절부절함이여, 안녕! 훤에게 뭐든지 말해버리는 버릇도 고쳐야하는데 전혀 안됐다.
율은 미안해하는 표정을 금방 지우고 생글생글 웃었다. 마음의 짐도 덜었고, 옆엔 자신의 남자친구라고 말해주는 리더님도 있었...!
"흐와아아....네?...네!...네!"
율은 이상한 소리를 내뱉더니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친구에게 직접적으로 남자친구란 말을 들으니까 파격이 컸다. 거기다 이름+의 남자친구, 이름+이 자기 여자친구라는 단어의 조합이라니...승연은 율의 심장 파괴범이 분명했다.
율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휠체어를 끌었다. 하마터면 휠체어 끄는 방법까지 잊어버릴뻔 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리는 기분이었다.
쿨럭거리는 여러번의 기침 소리에 율이 얼른 승연을 바라보았다. 날씨가 따뜻하지만 이런때야말로 감기에 조심해야하는데!...그냥 쿨해지려고 하는 준비였던 모양이다. 다행이다!
율은 생글거리며 승연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앞을 바라보며 조심히 휠체어를 끌었다...
끌었....못 끌었다.
반칙이다. 심각할정도로 반칙이었다. 바로 레드카드를 들고 퇴장이라고 외치고 싶을만큼 반칙이었다. 리더님. 승연 선배님!
"...네...넷...?"
율은 눈동자를 깜빡이다가 멍하게 대답하며 혀를 깨물었다. 새삼스럽게 말해오는 그 말은 파괴력이 상당했다. 율은 아픈 혀를 가리려 입을 가렸다. 잠깐 생각을 정리하던 율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저.. 저도 좋아해요... 리더ㄴ...승연... 오빠....?"
고심 끝에 고른 호칭은...끝음 처리가 올라가버려 물음표가 되어버렸다.
✲
...역시 그건 조금 너무 나갔지?!응! 너무 빨랐어, 이 율!
흐아아....율은 끙끙거리며 속으로 참았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승연의 커다란 반응에 율은 토끼눈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곤 승연을 바라보며 눈을 몇번 깜빡였다.
...뭔가 저 반응은 지금까지 보던 승연의 반응 중에 top3 안에 들 정도로 격한 반응이지 않을까.
율은 문제의 오빠라는 호칭덕에 풍부해진 승연의 표정과 격해진 말투에 눈을 깜빡이며 웃었다.
"...오빠...?"
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승연을 향해 천천히 말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자기 입을 잘 보라는듯 입술의 움직임이 확실했다.
"그럼...둘이 있을땐 오빠...라고 불...러도 괜찮아요? 제가 부르고 싶고...또...기분이 좋으시다면요..."
율은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다가 승연을 보며 미소지었다.
다른 팀원들이 있을땐 분명 리더님이라고 부를테니까, 둘이 있을때만이라도 오빠라고 불러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저...저는 승연... 오빠가 율...이라고 이름....불러주시는거....좋아하거든요..."
율은 흘리듯 말하곤 다시 휠체어를 끌었다.
부끄러워서 도망가는거 아니다.절대로.
✲
"그럼...둘만 있을땐 오빠라고 부를게요. 승연 오빠."
율은 충분히 느릿느릿 달팽이처럼 오빠라고 불렀다. 오빠라는 말은 익숙하지도 않았고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빠라고 부를 사람이 승연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니까...오빠란 호칭은 율에게 있어선 무척 특별한 단어였다.
"알겠어요. 진짜라고 믿을게요!"
그래도 존댓말은 안 떨어질것 같다.
율은 계속해서 말해오는 승연을 향해 웃었다. 그렇게 반복해서 말하지 않아도 하나로 이어졌다. 그냥 좋다고 하는 그 감정에...
승연이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고 있단걸 아는지 모르는지 율은 그저 웃었다. 콜록거리는 승연의 기침소리에 다시 걱정스러워졌다.
"...그렇게 일부러 콜록거리면 목 안아파요...?아! 맞다!"
율은 승연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뭔가 생각난듯 휠체어 옆쪽을 뒤적거렸다. 하얀 양이 그러진 하늘색 주머니가 툭 튀어나오더니 승연에게 건넸다.
"배를 말려서 우린 차예요. 목 아플때 좋대요! 그...몸에 열이 많으신것 같아서....찬 성질인 배로 만들었거든요....계속 기침하면...목 상하기도 하고..."
율은 우물쭈물거리며 말했다. 괜히 쓸데없는 일을 한게 아닐까. 싶어서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보온병도 작은걸로 할걸... 너무 큰걸 했나? 싶기도 했다.
"원하는거 없어요! 정말로요! ...물론! 나중엔 생길수도 있겠지만요!"
율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음....네! 딱히 다치거나 하진 않았어요. 훤님이랑 백님이랑... 다른 멤버들도 잘 챙겨줬거든요!"
물론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는건 이야기하지 말자... 고 생각했다.
✲
"아, 목이 아프지 않다면 다행이에요. 그렇지만... 걱정되니까 제 앞에선 조금 자제하기예요. 승연 오빠?"
그래주실거죠? 하는 반짝거리는 눈이 승연을 바라보았다. 율은 금세 방긋거리며 웃더니 다시 돌아오는 보온병을 받아들고 멍하니 있었다.
"드... 드리는거니까요! ...승연 오빠를 생...생각하면서....만들었다고 해야할까요...?거기...주머니도...그렇고요....차는...다 마시면 또 만들어드릴게요! 배가 질리면 다른것도 있으니까요...!"
율은 당황스러움에 빨개진 얼굴로 다시 주머니 전부를 승연에게 건넸다. 가만보니...두꺼운 주머니도 그렇고 그려진 하얀 양도 털이 복슬복슬하게 그려진게 꽤 정성스럽다.
"물론...그림 모델을 부탁하고 싶긴 하지만...오늘은 승연... 오빠랑 얘기하는게 좋아요."
부끄러움에 얼굴을 숙이면서도 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낱낱이 승연에게 전달해주었다. 열여섯살 소녀여. 무서운 돌진능력!
그리고 율은 가만히 승연의 말을 들었다. 약속이란 말에 얼굴을 들자 승연과 눈이 마주쳤다. 부끄러워라...
"...네. 꼭 그럴게요. 숨김 없이 말할게요. 승연 오빠도 꼭이예요...? 약속이예요."
율은 새끼 손가락을 내밀며 진지하게 승연을 바라보다 배시시 웃었다.
얼굴만 바라봐도 좋아...보였다.
✲
"그야...한모금 마시는것도 괜찮겠지만...일단 만든거...기왕이면 다 드셨으면 했으니까요! 조금이에요. 조금. 승연 오빠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말이예요."
율은 손가락으로 조금...을 표현해봤다. 전혀 무슨 말인지 모를 계량법이었다.
키득거리며 웃던 율이 휠체어를 느릿느릿하게 움직였다. 산책길 예쁘다. 꽃이 많이 피었어. 같이 보는 사람이 있어서 좋아.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승연의 말에 승연을 바라보고 웃었다.
"저도 승연 오빠에 대해서 더 듣고 싶어요. 전에 알려주셨던 비밀들 이외에도 말이에요. 저도 승연 오빠가 궁금해하시는 거라면...답해드릴게요."
율은 생글 웃었다.
새끼 손가락에 걸려오는 승연의 새끼 손가락을 보며 웃곤 위아래로 살짝 흔들어 꼭꼭 약속했다.
"전혀 문제 없어요! ...아!그렇구나...소...손 말이죠...소온...."
휠체어를 한손으로 미는건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평생 해오던 일인걸. 뿌듯하다!
하지만 손이란 말에 허둥지둥거렸다. 장갑 꼈지만...괜찮겠지...?아닌가...그래도 아직 화상 흉터가 가득한 손을 보여주기엔 아직 아직 아직 많이 많이 많이 부끄러웠다.
"그...자...잡아도 되나요...?승연 오빠 손...말이에요...저도 산책할때 잡아보고 싶었거든요...앉아서 쉬거나..할때도 물론...잡아보고 싶고 말이에요..."
전의 상상이 헛된 상상이 아니면 좋겠다.
✲
"12월 11일..."
율은 승연의 말을 듣고 기억해두겠다는듯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사소한거 하나하나를 알고나면 정말로 한발짝씩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율은 방긋 웃으며 장난기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좋아하는 음식이랑... 좋아하는 색이랑! 좋아하는 꽃이랑...승연 오빠가 좋아하는 모든걸 알려주세요! 싫어하는건 아직 듣지 않을게요!"
장난스럽게 키득거리던 율이 손 위로 포개지는 승연의 손에 깜짝 놀랐다. 장갑 위로도 승연의 체온이 확실히 전해져 왔다.
휠체어를 끌던 남은 손이 잠깐 멈췄다. 율은 빨간 얼굴로 손을 바라보다가 승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그래도 부끄러운걸요...잡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얼마든지가 안되는걸요...!"
율은 조금 억울하다는듯 살짝 소리쳤다. 마음이야 항상 잡고 싶지만 행동하는게 어려운 소녀의 마음이었다.
이끌듯 끌어주는 승연을 따라 손을 잡은채 천천히 휠체어를 밀었다.
휠체어를 밀어도 정신은 온통 승연과 잡은 손에 팔려서 애써 정신을 차리곤 승연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승연 오빠 손 잡고 싶으니까..불편하지 않아요."
율은 배시시 웃으며 앞을 바라보았다.
...당당하게 말했지만 부끄러운걸. 불편한게 아니라 부끄러운것뿐이야! 응! 정신차려라, 이 율!
"아! 제 생일은 9월 20일이에요. 그렇게 막 춥지도 덥지도 않을때죠? 그래도 추위를 너무 많이 타서 큰일이에요."
한마디 덧붙인 율이 장난스럽게 키득키득거렸다.
✲
율은 일단 겉모습은 차분히 승연의 이야기를 들었다. 속으론....두부 요리! 백님에게 요리를 배워야하는 순간이야. 하얀색...?머리를 하얀색으로 탈색해버릴까? 튤립....튤립 그림을 선물해드릴까...
아주 진지하게 자신의 요리능력을 시험하고 머리를 탈색하려는 무서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승연이 좋아하는것을 마음속에 꼭꼭 담아두고서 율은 승연을 보며 웃었....기 전에 얼굴이 또 빨개지고 말았다.
"그...그건..."
율은 우물쭈물거리며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렸다. 갑자기 이렇게 훅 들어오면 곤란한데요!
"저...저도 꼭 기억해둘게요!"
12월 11일,두부 요리,하얀색,튤립,율!
...아,아니야!마지막은 빼!
정신차려, 이 율!
살아서 땀 한번 나지 않았던 몸에서 왠지 땀이 나는것 같았다. 익숙해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잡게 될 날이 오면 분명 하얀머리의 할머니가 될지도 모른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 그, 그, 그런 의도로 말한건 아니었어요!생일선물이라니..."
그렇게 말했지만 아직도 반년 남은 승연의 생일선물로 뭘 해줘야할지 고민이 깊었다. 그림?은 너무 뻔한가....뜨개질로 만든 목도리? 어렵다, 어려워.... 하지만 아직 천천히 생각할 시간은 많았다.
"제,제가 좋아하는거요...?음...저는 좋아하는 요리...라고 까지 할 정도는 아니고, 당근...좋아해요! 그리고 색은...역시 하얀색! 하얀 양을 그리고 하얀 토끼가 있는 담요를 갖고 있는 이유가 있거든요! 저한테 없는 색이라서어... 꽃은 배꽃을 좋아해요! 역시 하얀색이고 작고 앙증맞고 귀엽고..."
승연을 바라보며 주절주절 좋아하는 것을 말하다가 천천히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목소리 톤이 높아지던 율이 승연의 손을 꼬옥 잡았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까만 머리카락에 가려진 귓가가 빨갛다.
"스...승연 오빠랑 이렇게 얘기하면서 산책하는 시간도 좋아요..."
율은 웅얼거리는 말로 지나가듯 말을 했다.
부끄러운 모양인지 휠체어 바퀴를 굴리는 남은 손의 행동이 빨라졌다.
...남은 손이 누구의 손을 잡고 있는지 잊어버린 모양이다.
✲
"그,그럼 저도 승연 오빠가 놀라서 뒤로 넘어갈 정도로 챙겨드릴거예요!"
이상한 곳에서 이상한 투지가 불타올랐다.
너무 투지에 불타올랐는지 부끄러움에 빨갛게 물든 얼굴을 잊은채 승연을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휠체어 속도가 너무 빠른것같아 다시 천천히 움직이며 율은 고개를 끄덕.... 이려다 멈췄다.
데이트 신청이라니....사실은 이거 꿈 아냐? 환상? 승연 오빠를 너무 좋아해서 혼자 만들어낸 환청?!
...그러면 울지도...
하지만 손에 전해져오는 승연의 체온은 확실히 현실이란걸 알려주고 있었다. 휠체어를 밀던 손으로 볼을 살짝 꼬집어보니 아팠다.
"저...저...좋아요...학교 밖에서도 승연 오빠...만나고 싶은걸요."
휠체어를 끌고다니면 받는 시선들이 무서웠지만...거기다 일단 장애인과 일반인의 연애를 곱게 보지 않는 시선들이 많아 두려웠지만...어쨌든 승연과 함께 있으면 뭐든 극복할 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들었다.
기숙사가 보이는 길이 슬펐다. 리더님으로 대하는 시간보다 남자친구인 승연과 만남이 짧아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승연의 제안은 그런 아쉬움을 덜어낼 정도였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지!
"그...그...얼마든지라고 말하시면....귀, 귀찮을 정도로 전화, 해버릴지도 모른다구요...?"
그냥 작은 욕심이었다.
✲
"저..저도 수업 듣고 있을때나 숙제 중이 아니라면 언제든 괜찮아요...!"
아마 숙제도 괴물처럼 빨리 해치우고 배터리가 떨어질때까지 통화를 하려고 하지 않을까. 훤이랑 얘기할때도 밤을 샌적도 많기도 했고 말이다. 훤이 조금 쓸쓸해하지 않을까...라고 묻는다면 훤은 괜찮을것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율을 사랑하고 아끼지만 율이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걸 누구보다 원한 정령이었으니까.
잡고 있는 손에 온통 신경이 쏠려선 기숙사 앞까지 다가왔다는 사실이 무척 꿈만 같았다. 어딘가 순간이동 장치라도 숨겨진거 아니야?
"저도 언제라도 좋아요! 그...그러니까...승연 오빠가 편한 날짜에 편한 시간이면 괜찮을것 같아요..."
율은 차분한 분위기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어딨어요? 내 차분함 돌려줘요!
한번 느낀 온기가 빠져나가는건 정말로 큰 빈자리였다. 어중간하게 다시 잡히긴 했지만.
"다음에...네! 꼭이예요. 저도...갑자기 만나게 되어도 당황하지 않을거니까요!"
당황해서 머리를 빗어서 더 엉망으로 만들지 말자! 고 다짐했다.
"그...그런 욕심은...내도...괜찮으니까요..."
율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아쉽지만 이 손도 놓아야할 시간이었다. 율은 승연의 손을 조심스럽게 놨다. 아쉬움을 가득 담은 눈이 승연과 손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이렇게 있다간 절대로 절대로 헤어지려고 하지 않을게 분명했다.
"그럼...이만 들어가볼까요....?오늘 산책...정말 좋았어요....승연 오빠...그럼 다음에 또봐요...!"
아쉬워서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었다.
아쉬움이 가득한 눈으로 승연을 바라보다가 웃곤 씩씩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래도 여전히 아쉬움과 미련을 가득담은 눈이 승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그래도 가야해...눈을 질끈 감고 가는거야!
멀지 않은 곳에 율이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채 바다길을 따라 서성이는 모습이 혼자여도 바다에 들어가고 싶은것 같았다. 아직 바람을 빼지 않은 튜브를 꼬옥 붙잡은채로 바다를 보고 있었다.
바다의 짠내와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휠체어 바퀴길을 만들고 있다가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인영이 바다속에 있는것을 발견했다.
붙잡고 있는 튜브를 휠체어 뒤에 있는 손잡이에 걸어두곤 바람에 헐렁해진 머리를 황급히 다시 묶었다. 다시 꽈악 묶여진 똥머리를 점검하곤 두손을 들고 흔들었다. 활짝 웃는 모습은 덤이다.
"리더님! 리더님!"
이마에 손을 얹고 그늘을 만들면서 해맑게 승연을 불렀다. 바다에 있는 승연을 부러워하면서도 갈수없음에 왠지 한탄(?)스러웠다.
바다에 들어갈수 있도록 래쉬가드를 갖춰입고 있었으나 혼자서 바다로 들어갈수 없다. 그래서 바다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었지.
다리를 가리고 있는 토끼 모양의 분홍색 담요를 힐끗 보았다.
...혼자 내려갈 수 있어. 예전부터 해왔던 일인걸...하지만 혼자 휠체어 밑으로 내려가는걸 보여주는건 조금 부끄러워...
하고 율 혼자서 갈팡질팡했다.
✲
승연이 다가오자 혼자서 갈팡질팡하는게 눈에 보일정도로 부산스러워졌다. 뭔가 빠르게 다가오는것 같아 보이던 승연이 이내 천천히 다가오자 살며시 미소가 지어지는건 어쩔수 없는 일이겠지.
언제나 쿨하게 보이고 싶어하는 승연의 모습이 지금도 나타나는걸 보면 정말 승연 다웠다고 해야할까.
승연이 미소를 지어 손을 흔들어 보여주자 율도 따라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까만 방수 장갑을 낀 손이었지만 뭐.
"안녕하세요. 리더님! 네! 불렀어요!"
언제나 쿨하고 조용한 목소리의 승연과는 달리 율은 발랄하게도 언제나 자기 감정을 담은 목소리로 당당하게 말했다. 아주 당당하게...리더님을 불렀다고.
율은 고개를 기웃거리다 승연의 말에 볼을 살짝 붉혔다. 뭔가...바라봐주고 있다는게 잘 느껴져서 그런걸지도...
율은 목도리로 얼굴을 황급히 가렸다.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그자체로도 보여주기 싫은걸.
목도리가 아주 살짝 내려와 눈만 빼꼼히 보여주며 승연에게 웅얼거렸다.
"...그...스...승연 오빠도 잘 어울려요...엄청...멋있으신걸요...?"
율은 까만 두눈만 도르르륵 굴렸다. 왠지 갑자기 부끄러워서 바라볼수가 없었다. 바다를 즐기러 왔냐는 말에 주위를 둘러보던 율이 목도리를 풀어내렸다. 방수 커버시트가 왼쪽 뺨과 목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네! 아무도 없으면...바다에...들어가볼까...하고요..."
율은 애꿎은 휠체어 바퀴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니까....할 말이 있었던것 같은데 목에서 탁 걸려서 나오지 않는 느낌이었다. 토끼 모양 분홍 담요를 바라보던 눈이 승연을 바라본다.
"그....휠체어에서 내려오는거....보는 사람이 있으면...부끄럽기도 하고...그...그...러니까....이제 아무한테도 도와달라고 하지 않으려고....해...했는데에....도...도와주시겠어요....?....아...안는거....말이에요..."
아...부끄러워서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다아...
율은 횡설수설 빙빙 돌려말했지만 결국 예전에 했던 도움을 승연에게 한번더 요청했다. 튜브를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선 눈을 꾸욱 감은 얼굴을 튜브에 숨겼다. 어차피 가운데 뚫려서 다 보이긴 하겠지만...마치 자기만 안보이면 다 안보인다고 생각하는 어린애처럼 행동하던 율이었다.
✲
"그...그,그,그래도...부끄러우니까요....리더님....승연 오빠한테라면...더...부끄럽고 말이에요..."
율은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말에 비로소 실눈을 떴다. 튜브의 동그랗게 뚫린 구멍 사이로 승연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다가오는...승연의 모습에 부끄러움에 못이겨 튜브를 꾸욱 잡았다.
꾹 잡은 튜브를 한손으로 붙잡고 승연에게 안겼다. 한손으론 승연의 어깨를 살짝 잡곤 찰싹 달라붙었다. 부끄러움에 뛰어대는 심장이 승연에게 닿지 않길 바라면서.
율은 눈을 꾹 감고 승연에게 달라붙어선 승연의 말에 대답했다.
"저,저,저,전혀 불편하지 않아요...!....그,그럼 부탁드릴게요....제...남자친구인 승연오빠에게요..."
아무튼 이렇게 부끄러워하면 안되는데...율은 잠깐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바다에 들어가려는 승연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자,잠깐이라도 좋으니까...승연 오빠랑...이렇게...있고싶은데..."
율은 황급히 고개를 다시 흔들었다.
"아,아녜요...바다....들어가서 같이 놀고싶어요...승연 오빠랑."
이왕이면 둘다 하고싶지만, 너무 욕심부리면 안...되겠지...?
율은 어색하게 웃곤 손에 든 튜브를 다시 바로잡았다.
✲
"...네...이,이렇게요..."
율은 눈을 꼭 감고 승연에게 안겨있었다. 귓가에 들리는 심장소리가 자기것이 아니길 바랐다. 역시 이렇게 안고 있는것도, 승연이와 함께 바다에 들어가서 같이 노는것도 둘 다 하고싶었다.
...다른 사람에게 욕심쟁이라고 불려도 말이지...하지만 어쩔수 없잖아...좋은걸!
율이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들려오는 승연의 말에 들고 있던 튜브를 툭하고 놓쳐버렸다. 갑자기 힘이 빠진 기분이 들었다.
"..."
가만히 승연의 말을 듣고 있던 율이 얼굴을 홍당무처럼 화악 붉히며 눈을 꼭 감고 승연을 꽉 안아선 승연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다,당연히 괜찮아요! 저,저,저도....그렇게...하고 싶어서어...승연 오빠랑...떨어지기 싫어요..."
나쁜게 아니라면, 조금 더 욕심 부려봐도 괜찮은거...겠지?
율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추지도 않고선 승연의 어깨에 묻은채로 끄응거리다가 소리내어 웃었다.
"그...럼...바다에 들어가서도 이렇게...안아주세요..."
율은 해맑게 웃으면서도 부끄러운듯 소근거렸다. 햇볕이 비치는 바다보다 빛나는 사람과 함께 있어서 기뻤다. 이렇게 가까이 있음에 부끄러워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었다.
✲
"아!...가,감사합니다..."
마치 목걸이처럼 걸리는 튜브를 이젠 떨어지지 않게 살짝 붙잡았다.
승연의 말에 작게 키득거렸다.
"승연 오빠가 떨어지라고 할때까지...안떨어질거예요..!"
율은 잠깐 욕심을 내어보며 당당하게 말해봤지만 역시 부끄러움을 숨길 순 없었던지 튜브에 얼굴을 가렸다.
천천히 바다로 걸어가는 모습이 발밑으로 보였다. 찰박찰박거리는 바다 소리가 들리고 점점 바다의 수면이 다가왔다.
승연이 무릎을 굽히자 차가운 바다물이 파도치는 물결을 따라 율의 몸에 부딪혔다.
"차가워...!"
율은 해맑게 웃으며 손으로 바다의 수면을 아주 살짝 찰박거렸다. 목에 걸려있던 튜브가 조금 거슬렸다. 율은 조심스럽게 튜브를 목에서 빼내곤...승연에게 튜브를 씌웠다. 작은 공간이 남은 사이로 율도 쏘옥 들어가선 헤실헤실 웃었다.
"시원해요!...스,승연 오빠랑 같이 있으면...따뜻할지도요..."
튜브는 둘이 들어가도 넉넉했다.율의 몸이 작은 탓도 있었겠지만.
율은 해맑게 웃다가 부끄러운듯 말끝을 웅얼거렸다.
물론 승연은 수속성인데다 쿨하려고 하는 사람이라 따뜻하다는 말에 부정할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오,오히려...조,좋다고 해야할까...요....?...응...조,좋아요..."
율은 해맑게 웃으며 까만 눈을 반짝이다가 승연의 눈과 마주치자 반사적으로 고개를 휙 돌리곤 얼굴을 홍당무처럼 물들이곤 웅얼거렸다.
✲
"...!"
좁은 공간 안에서 더욱 끌어안기자 율은 깜짝 놀라선 까만 눈만 커다랗게 떴다. 승연은 율을 바라봤지만 율은 차마 부끄러워 눈을 보지 못했다. 율은 그냥 가만히 승연을 끌어안았다.
"...네에. 떨어지지 않을게요. 꼭...달라 붙어있을게요."
부끄러웠지만 정말로 그러고 싶었으니까. 율은 승연을 보며 생글거리며 웃었다. 웃는 얼굴은 여전히 홍당무처럼 빨간색이었다.
천천히 바다 안으로 들어가는 승연을 따라 몸이 저절로 따라간다. 뭐...도망갈수도 없이 승연이랑 같이 있으니까 그건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지만.
"...저,저도...승연 오빠랑...둘이서만 있어서...조,조,좋아요...아...아!무,물론 다른 분들과 있는게 싫은건 아니구요...!"
횡설수설하며 있었더니 갑자기 허리에 승연의 손이 느껴졌다. 조금 더 강하게 감아오는 승연의 팔 힘에 놀랐다가도 몸에 뿌려지는 차가운 바다물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앗, 차가워!"
율은 당황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승연을 바라보다가 금방 장난가득 웃어버렸다.
"에잇!"
율은 복수라고 할 생각인지 승연에게 물을 뿌려댔다. 율이 소리내어 웃으며 찰박찰박거리는 물 소리가 몇번 들렸다.
✲
복수라는 말에도 율은 해맑게 웃었다. 어차피 장난이란걸 알고 있고....정말로 공격하는것도 아니니까.
서로 뮬을 뿌려대다가 갑자기 승연이 먼저 물뿌리기를 멈추고 쿨하고 침착한 목소리를 냈다.
...쿨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파괴력이 상당한 이야기를 하자 율은 그만 홍당무 같은 얼굴을 만들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가,가,가,갑자기 그런 말을 해버리시면..."
장난치다가 갑자기 그런말을 들어버리면 정말 부끄럽구나.
율은 우물쭈물거리며 막 대답을 하려던 찰나에,
...볼에 닿았다. 뭐가? 승연 오빠의...승연 오빠의? 입술...입술?
...입술!
아주 짧은 입맞춤에 지나지 않았으나 율의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게 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율은 고개를 푹 숙이곤 흐으으,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승연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바,바,반칙이라구요..."
겨우겨우 꺼낸말은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다.
율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승연의 말에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승연의 쓴 웃음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부끄러움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율은 으음, 하고 깊게 생각하는듯 말을 늘이다가 웃었다.
"저도 만약 리더라는 입장이었다면...그랬을것 같아요...아,아무리 공과사를 구분한다곤 하지만...정말로 동떨어져서 구분할순 없을것 같아서...그래도, 승연 오빠는 잘하고 계신걸요?저라면 진작에 다른 분들께 들켰을지도 몰라요."
율은 조금 헤실거렸다. 그리고 승연이에게 용기라도 주고싶었던 모양인지 승연의 손을 잡고선 꼬옥 쥐었다.
"조,좋...좋아하니까 어쩔수없어요...좋아해요, 승연 오빠..."
어쩔수없다는 억지를 조금 부려서라도 승연이 자책감에 빠져들지 않았으면 했다.
율은 승연을 보며 해맑게 웃었다. 승연이 빨리 돌아와줬으면 좋겠으니까, 승연의 몸에 물장난도 한번 쳤다.
✲
율은 승연의 말에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기분이 상하다니,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을 듣는거나 스킨십을 받는걸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율은 당황을 한가득 담은, 홍당무처럼 빨간 얼굴로 승연을 보았다.
"기분은 상하지 않았어요!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아요.오히려...그렇게 말해주시면 기뻐서..."
소근거리는 목소리도 기뻐서 어쩔줄 모른채로 율은 소근거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쉬움을 가득 담은 승연의 목소리엔 동감한다는듯 율의 얼굴에도 아쉬움이 가득찼다.하지만 그 감정에 공감한다고 하더라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승연이 자책감이나 무력감에 빠지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그,그래도...승연 오빠가 3학년일때 만나지 않아서 좋은걸요...저는 승연 오빠가 2학년일때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제가 2학년때 만났다면,정말 아쉬울것 같아서..."
율은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다가 헤실헤실 웃었다. 승연이 조용히 속삭이듯 말하는 목소리가 너무 좋았다. 이렇게 껴안고 있는것도, 물장난을 치고 있는것도 모두다.
"매일 만나자고 할지도 모른다구요?"
율은 장난가득 웃으면서 승연의 말에 고개를 기웃거렸다.
눈을 감아달라는 요청에 조그만 물음표가 얼굴에 떠다녔다.
그리고 승연의 말대로 율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
"증명이요...?"
짧은 물음이 끝나고 3초도 안되는 시간. 사실 잘 모르겠다. 율이 느끼기엔 그것은 긴장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재빠른것 같기도 했고 오히려 얼굴을 붉힐 시간이 있을정도로 너무나 느린것 같기도 했다.
승연의 엄지 손가락이 입술을 훑는 시간 보다 더 짧게만 느껴진 입맞춤이 지나면 율의 까만 눈동자가 화들짝 놀라 뜨인다.
까만 장갑을 낀 손이 자기 입술을 가리곤 얼굴을 완전히 붉혔다.
누구의 얼굴이 더 붉어졌을까. 대결하는건 아니었지만 대결하는듯 얼굴을 붉힌 율이 우물쭈물거렸다. 까만 눈이 물을 뿌리는 승연을 피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무,무,무,물론....아,아,안믿는건...아니었지만요..."
우물쭈물거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던 율이 조심스럽게 승연을 올려다보곤 빨간 얼굴로 해맑게 웃었다.
"충분했어요. 다른 증명은...필요 없어요."
율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조심스럽게 승연을 껴안았다.
귓가에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승연에게 말했다.
"서로 바쁘지 않다면 꼭 만나요. 약속이에요...저는 항상 승연 오빠를...좋아하니까,좋아한다고 말할거예요...만나고 싶으니까, 만나자고 말할거예요."
뭐든 어린애처럼 감정을 드러내면 안된다고 했었는데,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할것 같아요.
율은 머릿속에 짧게 스쳐간 생각을 넘기곤 승연을 꼬옥 안았다.
✲
율은 승연의 말에 해맑게 웃었다.
"물론 없어요!"
거절한 이유는 없다. 물론 승연이 먼저 말했다는것도 있었지만, 율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었다.
아직도 두근거리는 심장을 조금 모른척 하기로 하고 승연을 따라 해변가를 보았다.
"아! 그렇네요...결국 물장난은 조금밖에 못 쳤지만요...승연 오빠한테 안겨있어서 좋았어요."
껴안고 있느라 깨닫지 못한것인지, 여름이라 햇볕이 따가워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추위는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애초에 살이 전부 보이게 내놓고 다닌건 아니어서...별로 상관 없나?
율은 해맑게 웃으며 승연을 꼬옥 안았다. 약간은...열여섯처럼 투정도 부려보고...싶었다.
"승연 오빠한테 안겨있는게 좋았는데...떨어지는건 조금 아쉽지만요."
장난가득한 웃음을 짓고 승연에게 말했다.
바다가 아니라 다른곳에서도 할수있는 일이니까...하는 생각을 위안삼았다.
"아,맞아!저 가는길에 아이스크림 사먹고 싶어요,그래도 되죠?"
여름하면 시원한 바다!바다하면 뜨거운 태양!태양하면 차가운 아이스크림!
율은 아이스크림 생각에 신나보였다.
✲
"저도 승연 오빠한테 꼭 붙어있을거니까...떨어지진 않을거예요."
율은 승연의 말에 고개를 푹 숙이곤 부끄러워했다.
부끄러워서 빨개진 얼굴은 가라앉을줄 몰랐다.
"그...그럼 다음에도 꼭 안아주세요..."
뭔가 안지 못해 죽은 귀신이라도 달라붙은걸까 싶을 정도로 왠지 집착하는것 같았지만...사실 훤이나 백 이외에 안긴건 승연이 처음이고...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안길 이유도 없을것이었다.
아쉽게 바다가 멀어지고 승연에게 떨어져 휠체어에 타자 분홍색 토끼 모양 담요로 얼른 다리를 가렸다. 그리고 가져온 마른 수건으로 젖은 얼굴을 살짝 닦아내곤 우물쭈물거리며 승연에게 말했다.
"수건...빌려드릴까요?몸...차가워지면 감기걸리니까요..."
수건을 건네는 손이 부끄러움에 우물쭈물거렸다.
아이스크림으로 대화가 넘어가자 정신을 차리고 해맑게 웃었다.
"아이스크림....바닐라...음...저는 오늘은...초코가 좋아요!"
초콜릿맛 아이스크림!물론 바닐라도 딸기도 전부 좋다.하지만 오늘은 초콜릿이 끌려!
"그럼 갈까요?"
휠체어를 조심스럽게 밀며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하려고 했다.
✲
"아...괘,괜찮은데...저도 쓴거 드린거니까..."
살짝 토닥거린거지만 일단 닦긴 한거니까 괜찮았는데 정말로...
율은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면서도 너무 느려지지 않게, 승연이 적당한 걸음으로 올수있게끔 적당한 속도로 휠체어를 미는것도 잊지 않았다. 갑자기 멈추면 그것도 나름대로 사고로 이어질수...있지 않을까?그건 너무 민감할지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모래밭을 지나 펜션을 지나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였다.
율은 언제 심각한 고민을 했냐는듯 금방 해맑게 웃으며 기대하는 얼굴이 되었다.
"사,사주신다구요?대...대신으로 한입..."
사준다는 말에 한번 놀라고 대신으로 한입 달라는 말에 두번 놀랐다.
율은 눈을 깜빡깜빡거리다가 순식간에 홍당무처럼 얼굴을 붉히곤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괘,괜찮아요...아,저도..."
이게 바로 연인들끼리하는 한입만?!
율은 부끄러움에 어쩔줄 모르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가게 주인이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넋을 놓고 보고 말았다.
✲
자기 아이스크림은 자기가 받고싶었지만,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몸으론 할수없으니 율은 얌전히 승연이 건네는 초콜릿맛 아이스크림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승연 오빠!"
아이스크림을 바라보는 율의 눈이 반짝인다. 해맑게 웃으면서도 조금 흥분한듯 얼굴을 살짝 붉혔다.
"앗,네!가,감사해요...그,그럼 먼저 실례할게요..."
바닐라맛 아이스크림이 얼굴 가까이 다가오자 흥분한듯 빨개진 얼굴과는 다른 열기가 올라오는것 같았다. 율은 부끄러워 눈만 깜빡거리다가 가까이 온 아이스크림에게 실례의 말을 남기며 눈을 딱 감고 바닐라맛 아이스크림을 한입...아주 작게 베어물었다.
"엄청 차가워요! 그,그리고 엄청 달콤하고 맛있어요...!초코도 드셔보세요,승연 오빠!"
차갑다!고 느끼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승연을 바라보던 율이 잔뜩 흥분한 자기 모습을 깨달은것인지 갑자기 부끄러워하며 우물쭈물거렸다.
들고 있던 초콜릿맛 아이스크림을 승연에게 내밀었다.
"다,다,당연히 할거예요...!저...!의외로 그런거....요,욕심 많으니까요...승연 오빠랑 다 할거니까..."
욕심 보단 부끄러움이 더 많은것 같았지만...
✲
...베어 물었다!
누가?
승연 오빠가!
무엇을?
초콜릿 아이스크림!
율은 승연이 배어문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멍하니 보았다. 깜빡깜빡...율의 눈이 깜빡거리더니 얼굴을 순식간에 홍당무처럼 만들었다.
신세계에 들어선 느낌...!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정말로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느낌...!
율은 승연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보고 있던 멍한 눈이 승연을 바라보며 반짝거렸다.
"저,저도...승연 오빠가 줘서 맛있었어요...바닐라 아이스크림...그,그리고 자기감정에 솔직한것도 쿨하고...머,멋진 사람이지 않을까요...?"
그게 아니더라도 솔직한 자기감정을 표현해주는 승연은 정말로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율은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작게 배어물었다.
"승연 오빠가 그렇게 말해주신다면....마음껏 욕심 부릴래요...!"
율은 해맑게 웃으며 말하고선 승연을 따라 열심히 휠체어를 굴렸다. 승연의 속삭임에 여전히 빨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즐거웠어요.승연 오빠!항상 짧은것 같아서 아싑지만요...그래도 돌아가야죠!"
율은 씩씩하게 말하며 웃었다.
다시 펜션이 가까워지는건 아쉬웠지만 오늘 헤어짐이 마지막이 아니라는걸 아니까 괜찮았다.
오늘도 훤님에게 말할게 잔뜩이어서 그냥 기뻤다!
"그럼 다음에 봐요,승연 오빠!"
해맑게 웃으면서 승연을 씩씩하게 보내주었다!
장하다, 이 율!
율은 비장한 표정으로 휠체어를 끌었다.
어딜가냐고 물으면... 답은 하나겠지.
문자를 보냈던 대답을 들으러 가야겠다.
미안하다는 말도 문자론 봤지만 직접 봐야 의미가 있겠어.
율은 웃음기 없는 험악한(?)얼굴로 부실 앞에 휠체어를 멈춘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번 하고...부실 문을 두드렸다.
"계세요...?"
비장한 표정치곤 문을 두드리는 모습이나 목소리는 약간 힘이 없고 떨리는것 같았다.
안에서 대답이 들리면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그대로 헥토파스칼 킥...을 날리진 못하겠지만 그와 비슷한 심정으로 안에 있을 사람에게 날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
안에서 승연의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율은 부실문을 벌컥 연다.
성큼...걸어갈순 없지만 휠체어를 밀고 들어간 율은 승연의 얼굴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율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푹 숙인 고개로 심호흡을 한번 하곤 아주 사알짜악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승연..."
오빠 하고 말해야하는데 승연의 얼굴을 보니 말이 나오질 않았다.
율의 까만 눈에 눈물이 고이는건 순식간이었다.
그래도 꾹 참고 있긴 하지만 떨리는 손을 감추긴 어려웠는지 두손을 꼭 잡고 승연을 보았다.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겨우겨우 나온말이 아주 작게 나왔다.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
눈을 깜빡이자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면서도 승연의 얼굴을 보는건 어려운듯 푹 숙이고 있었다.
"...정말...큰일 나는줄 알았어요...정말...제가 얼마나..."
율은 떨리는 목소리로 제대로 이어지지 읺는 문장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
잘되진 않는것 같지만.
"승연...승연 오빠..."
율은 승연의 이름을 부르며 이제야 고개를 들고 승연을 본다.
손을 들어 눈가를 닦아주려고 하는 승연의 양손을 잡는다.
승연의 손이 따뜻하게 느껴질정도로 율의 손은 차가운 느낌이다.
율은 손을 부들거리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
"승연 오빠...오빠.진짜 너무해요.저도 오빠가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하지만...미워요.미워할거야."
율은 자기도 뭐라고 하는지 모를정도로 엉망인 말을 하면서 승연의 팔을 잡고 바들거렸다.
결국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전부 쉐도우의 잘못이라는걸 알고 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았다.
✲
율은 히끅거리며 승연의 품에 얌전히 안긴다.
완전히 빨개진 눈가가 눈물로 뭉개져 따가웠다.
"몰라요.진짜 미워...정말 걱정했단 말이예요.영영...못돌아오면 어쩌나 하고..."
그동안 상상의 나래를 열심히 펼친 덕분에 온갖 안좋은 생각만 난 모양이다.
"...이제 아무한테도 지배받으면 안되요...?아셨죠.꼭...제가 아는 승연 오빠로 있어주기예요."
율은 승연을 꼭 안고 코를 훌쩍거렸다.
"안아...안아주세요...네?승연 오빠...바닷가에서 처럼...승연 오빠 얼굴...보고 싶으니까..."
율은 조금 투정부리며 승연에게 말했다.
✲
"약속이예요."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지만,쉐도우가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다는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남자친구가 안심시키려는듯 말하는데 거기다 대고 아니야!라고 할수도 없는것이고,믿지 않으면 누가 믿어준다고.
율은 승연의 단호한 한마디에 점점 안심하며 이제 눈물을 그친다.
...그래도 약속이니까!
율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승연 오빠...승연 오빠."
승연이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자 그대로 승연의 목덜미에 대롱대롱 매달린 율은 승연의 몸을 부서져라 껴안았다.
...물론 그정도 힘으로 부서지진 않겠지만.
율은 의미없이 승연의 이름을 부른다.
계속.
"...승연 오빠가 그만 보라고 할때까지 볼거예요.계속..."
율은 승연의 말에 대답하면서 얼굴을 살짝 떨어뜨려 승연을 보았다.
빨개진 눈가는 부끄러운지 허둥거리며 가리려고 하면서도 승연을 보는건 멈추지 않았다.
아이참,왜 울었던 거야!부끄럽게,이 율!
✲
좋아...!이제 약속했는걸.그러니까 남은건 믿는것 뿐이야.
...물론 약속한 상황이 깨지더라도 믿음이 깨지는것은 아니다.
저항하고 저항한 사실은 거기 있는 팀 멤버라면 모두 아는 사실일테니까.
"...그만 보라고 할때까지라고 말하긴 했지만...역시 그만 보라고 해도 계속 볼거예요."
그리고 그런 말을 안한다면 정말 뚫어버릴 정도로 볼수도 있겠다 싶다.
눈물방울을 닦아주는 승연의 손에 어리광 부리듯 얼굴을 살짝 부볐다.
좋아하는것을 찾은 고양이처럼 갸르릉 거리...진 않았다.
"제 마음이 풀릴때까지 어리광 부릴거예요."
율은 다시 승연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이대로 승연이가 숨이 막혀 죽는게 아닐까...?싶었다.
율은 마음이 진정될때까지 그렇게 있기로 했나보다.
진정되지 않는 심장소리가 전해질정도로 꼭 끌어안았다.
"울어서 얼굴이 엉망이 되어버렸다구요?...오늘은 만나면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승연 오빠 모습을 보니까 눈물이 나버렸어요.바보같이..."
누군가 봤다면 놀렸지 않았을까?
...백님이라던가...백이라던가...2학년 지원과 백선배님이라던가.
✲
율은 승연의 말을 들으면서도 떨어지지 않으려는듯 목을 꽉 끌어안고 있었다.
...코알라...?...캥거루...?
승연이 등을 토닥여주자 헤헤,하고 웃었다.
"승연 오빠를 리더님으로 보려고 해도...잘 안되요.그래도...승연 오빠의 마음을 아니까 노력하고 있어요."
조금 툴툴거리면서 한숨섞인 앓는 소리를 낸 율은 고게를 들고 승연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쉐도우도 걱정이지만 승연 오빠가 더 걱정이에요.쉐도우가 또 승연 오빠를 노릴까봐..."
율은 승연에게 말하면서 승연의 볼을 만지려고 했다.
뭔가 닿지 않으면 사라질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걸지도 몰랐다.
"알겠어요...이제 울지 않을게요."
그래,언제까지고 어린애처럼 있으면 안된다고,이 율!
율은 승연을 꼭 끌어안으면서 승연이 등을 토닥여주는것을 가만히 받고 있었다.
"축제때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지켜줄게요."
이제 조금 장난기가 섞인 목소리로 승연에게 말했다.
✲
"그야...리더님은 그렇겠지만..."
율은 우물쭈물거리며 말하다가 승연의 볼을 아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저는 승연 오빠를 걱정한 말이라구요."
팀 프로메테우스의 리더가 아니라 남자친구에게!
율은 부끄러운건지 볼을 빨갛게 만들고 웃었다.
"저도 그렇게 믿고싶어요."
왠지 지켜지지 않을것같은 불안함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율은 승연의 볼을 만지는것을 그만두고 다시 승연을 끌어안았다.
지금은 아무런 걱정도 생각도 없이 승연의 품에 있고 싶었다.
"승연 오빠...보고 싶었어요.왠지 오랜만에 보는것 같은 기분이에요."
같이 있어도 보고싶은 그런 기분.
하루를 떨어져도 10일은 못본것 같은 그런 기분.
율은 가만히 승연의 품에서 숨만 쉬고 있었다.
숨만 쉬어도 좋은 기분이란 이런 기분이겠지.
✲
"저한텐 오랜만인걸요.리더님이 아닌 승연 오빠라고 부르는 거라던가...승연 오빠의 품이라던가..."
율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율은 지금 승연과 둘이서 있는 이 상황이 꽤 좋은것 같았다.
"그렇네요. 슬슬 가을이네요."
율은 승연을 껴안은 그 상태 그대로 말을 했다.
단순히 날씨를 말하는건가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답하던 율이 승연의 이어지는 말에 얼굴을 조금 빨갛게 물들여버린건...
"...그,그,그,그...그래도 괜찮아요....?리더님으로써 일은...없는거예요....?저...저,저랑 다녀도 괜찮아요...?"
율은 미묘한 곳에서 조심스러워했다.
아무래도 축제때 둘이서 다닌다면 눈에 띄일거고....
무...물론 데이트 신청이라면 받아들이겠지만!
✲
"그,그렇군요!"
승연이 그렇게 말해준다면 괜찮지 않을까.
율은 꽤 심각한 이야기를 들은듯 했지만.
"저,저,저는 괜찮은데...혹시라도 승연 오빠가 곤란해질까봐서...다른 사람들이 둘이서만 개인적인 시간을 즐긴다던가...하면요..."
아무튼 승연은 팀의 리더라는 입장이고 그전에도 방금전에도 그입장을 확실히 하는 사람이었으니까...율은 꽤 고민했다.
"저는 정말 좋아요!승연 오빠랑 둘이서 축제를 즐기고 싶은걸요."
혹시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쓴다는 말을 듣지않도록 덧붙이고서 승연을 꽉 끌어안았다.
"...이렇게 좋아하는데...싫어할리가 없어요..."
율은 승연에게 속삭이듯 말하면서 말했다.
"승연 오빠가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
괜찮다 정도인가!기뻐서 없는 다리가 생겨날 정도였다.
✲
"사,사과라뇨...저,저는 승연 오빠를 보는걸로도 한시름 놨고 마음도 다 풀렸어요...정말이에요.그러니까...승연 오빠도 그렇게 마음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조금 당황스러워하면서 승연의 마음을 먼저 달래주고 싶었다.
"네...저는 좋아요."
그때보단 지금 더 승연을 안고 싶어지는건 사실이었기에 끌어안은 팔 힘을 느슨하게 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이건...승연을 잃어버릴것만 같았던 율의 마음 더하기 지금 승연을 본 것에 대한 안도감의 표현이니까!
"네!약속이에요."
내미는 승연의 손가락에 웃으며 새끼 손가락을 걸고...
그것과 또다른 표시라니!
율은 뺨에 입을 맞추는 승연 덕에 순식간에 뺨을 붉히고 동공지진을 일으켰다.
까만 눈이 이리저리 구르다가 승연을 본다.
"그,그,그,그러니까..."
율은 말이 제대로 나오진 않는듯 열심히 말을 더듬었다.
"다,다른 약속의 의미의 대답이에요..."
율은 승연의 뺨에 아주 짧게 입을 맞추려고 했다.
✲
...너무 부끄럽다!
부끄러워도 너무 부끄러웠다.
미쳤어,이 율!무슨 짓을 한거야!분위기 너무 탔어!
"...진정했는걸요."
진정하고도 남았다.
율은 파들거리는 승연의 입꼬리에 미소를 감추기 어려웠다.
"그럴래요."
지금은 승연의 온기를 더욱 느끼며 꼬옥 껴안아 주고 싶었다.
한참을 껴안고 있다가 율은 승연에게 말한다.
"...승연 오빠를 봐서 다행이에요."
율은 아쉬운듯 승연의 얼굴을 보았다.
"그래도 이제 가봐야할것 같아요...마음같아선 하루종일 보고 싶지만...그건 승연 오빠도 곤란할테니까."
그러니까 아쉬워도 어쩔수없다.
"...승연 오빠가 건강하다는걸 알았으니 이제 한시름 놓고 가보도록 할게요."
승연의 도움으로 휠체어에 다시 자리잡은 율은 부실을 빠져나와 기숙사로 향했다.
8.3. 독백 ¶
- 율 : 유리
- 너는 나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였고,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등을 맞대고 싸울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동료였으며, 가장 사랑하는 존재이자,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또 다른 나, 그 자체였다.
너는 나 ― 나는 너.
―xxxx.xx.xx o에게.
바스라져가는 일기장에서.
- 율 : 훤을 만난 봄
- 훤이 율을 처음 만난것은 생각보다 그렇게 오래 전은 아니었다.
정령과의 수업이라고 했었나, 나중에 들어 본 바에 의하면.
멀리 앉아 있는 인간 아이들에게 먼 시선을 던지다 날 소환한 아이를 바라봤을때 난 실소를 지을수밖에 없었다.
앳된 얼굴은 더없이 어려보였고, 앞에 나와 있었음에도 너무나 작아 한참이나 더 커야 할 어린 인간 하나.
원래보다 한참이나 적은 힘은 그 소녀의 것이었다. 그 적은 힘으로 용케 날 소환해내고서 그 핼쓱한 하얀 얼굴로 웃어보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바깥은 이미 봄이건만, 개나리는 피고 지고, 이름 모를 하얀꽃, 빨간꽃,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났건만, 작은 소녀는 아직도 겨울인듯 온 몸을 싸맨채였다. 그리고 시선을 조금만 밑으로 내려보면... 그 작은 소녀가 왜 앞에 나와있음에도 그리도 작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이거, 줄게요!"
훤이 율을 한번 훑어 볼 동안, 청아하고도 낭랑한 목소리가 고요한 교실 안에 울려퍼졌다. 율은 눈을 반짝 빛내며 하나로 묶여 있던 머리에 손을 댔다. 마치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피부는 여기 눈 주위 뿐이야. 라고 말하는것처럼 손마저도 장갑으로 가려져 있었다.
까만 머리카락을 타고 내려오는 손은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어 주었던 붉은 댕기를 한번에 풀어내렸다.
찰랑거리며 부드럽게 쏟아지는 까만 머리카락은 밤하늘보다 까맸고, 밤하늘보다 아름다웠다.
율은 풀을 먹여 잘 관리한 덕에 아직도 빳빳한 댕기를 훤에게 건넸다. 훤이 그 의미를 몰라 고개를 기웃거릴때 다시 한번 그 목소리는 낭랑하게도 울려퍼졌다.
"머리, 묶는게 예쁠것 같으니까요. 제가 직접 수 놓은거예요."
소녀의 몸은 아직 겨울이건만, 봄햇살보다 반짝이는 그 까만 눈동자와 낭랑하고 밝은 목소리와 그 따스한 마음은 봄이었다.
그날을 시작으로 율과 훤은 어딜가나 함께였다. 한동안은 꽃이 예쁘게 수 놓인 붉은 댕기를 하지 않던 훤도, 율이 훤의 긴 머리카락을 땋아 손수 댕기를 묶어주었을때야 마지못해 한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도 오랜 시간 같은 곳에 묶여 있는 댕기는, 마지못해 한것이라고 치부하기란 어려워보였다.
그 이후에 율은 훤에게 손수 만든 두루마기를 선물했고, 그것은 군말없이 걸친 훤이었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생활이었다. 휠체어를 끄는것이 이젠 율이 아니라 훤의 담당이 되었다는것, 율이 그림을 그리면, 감상하고 평가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 그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듣는 귀도 두 쌍이 되었다는것, 율이 뜨개질을 할 때 줄 사람이 생겼다는것, 페인팅을 할 때 가끔 의견충돌이 생길 사람이 생겼다는것, 자수를 놓을 때 옆에서 지켜봐주는 사람이 생겼다는것, 그림을 그릴때 모델이 되어줄 사람이 생겼다는것, 율이 웃게 되면 같이 웃어줄 사람이 생겼다는것, 가끔씩 눈물이 쏟아질때 옆에서 위로해줄 사람이 생겼다는것...
만남은 짧고 강렬했지만 이후의 삶은 천천히, 하지만 오래토록 함께 할 존재가 생겼다는걸 알게됐다.
율은 그 사실이 너무나 기뻤다. 훤은...율이 기쁘다고 한다면 기뻤다. 활짝 핀 꽃과 같이 밝은 웃음을 지켜주고 싶은건, 그 첫만남이 너무 강렬해서였을까, 아니라면 파도처럼 사정없이 밀려들어오는 그 뜨거운 마음 때문이었을까.
알 순 없었지만, 한가지 알 수 있었던건, 밀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느껴질만큼 벌써 마음 속 깊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