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항목:에스터 힐데가르트.C(머리말)
- 첫 독백
공원. 계절에 맞지 않게 물총놀이를 하거나, 그런 아이들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보고 있는 보호자들. 왁자지껄한 분위기속에서 모두가 즐거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평화는 단숨에 깨진다.
"으아악! 불! 불이야!"
"누가, 누가 도와줘!"
갑작스럽게 나무에 불이 붙어 쓰러진다. 평화롭고 웃음이 가득했던 공원은 단숨에 화재현장이 되어버린다. 공원의 모두는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불에서부터 도망친다. 그 와중에 물총으로 진압을 시도하는 패기있는 아이도 있었으나, 수압이 약했다. 온몸이 불 그자체로 되어있는 빌런이 물총을 든 아이의 바로 근처에 다가온다.
"아, 아아아아아!"
불로 된 빌런은 씨익 웃더니 아이가 들고 있던 물총을 손에 쥔다. 물총이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녹아버린다. 다음엔 자신이 그렇게 될 차례라고 본능적으로 직감했는지 아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친다.
"하하하! 좋아. 더, 더 소리질러! "
자신이 주변인들의 공포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게 즐거운지 광소하며 빌런은 외친다. 주인잃은 물총만이 바닥에 널부러져있다. 울며 자신의 보호자에게 안기는 아이. 아이의 손을 잡고 도망치는 보호자들. 평화라곤 온데간데 없는 난장판이었다.
"쿠헉!?"
큰소리치며 낄낄대던 빌런은 문득, 등 뒤에 느껴지는 급격한 통증에 뒤를 돌아본다. 장발 장신의 누군가가 자신에게 물총을 겨누고 있었다.
"넌 뭐냐. 어서 저리 꺼지지 못해!"
한 손에는 다른 물총 몇개를, 다른 손에는 가장 큰 물총을 손에 쥔 에스터. 탁한 물색 머리카락은 원래 그런지 곳곳이 헝클어져있었다. 빌런은 분개하면서도 속으로 의문을 표한다. 이상하다. 원래 물총이 이렇게 강할리 없는데?
"히어로. 에스터 힐데가르트."
굳이 히어로 네임을 지어놓고 머리말이 아닌 본명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이유를 알수 없으나 아무튼 누구냐는 질문에 정직한 답변이 돌아온다. 낮은 목소리의 여자는 물총을 다시 잡더니 이어 말한다.
"너를 제압하겠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불타오르는 빌런은 에스터에게 달려들기 시작한다. 불꽃은 화르륵 하고 일렁거리더니 금세 그가 달려가는 바닥에 불꽃으로 길을 만들어낸다.
"네가 뭔데 감히! 나를 방해하지 마라!"
에스터는 가볍게 몸을 틀어 그의 돌진을 피한다. 바닥을 태우는 불꽃이 아스팔트길에 아지랑이를 잔뜩 피워놓는다. 피하는 동시에 에스터는 물총을 양손으로 갈긴다. 가히 물총이라기 보단 진압용 물대포같은 수압이다.
"푸왁훅욱와앟핫!"
공격이 정통으로 맞았다는 증거로 빌런 이상한 비명을 지른다. 불꽃도 조금은 약해졌는지 풍경의 일렁임이 얕아진다. 잠시 그대로 서 침묵하던 빌런은 몸을 떨더니, 그대로 다시 훨씬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다.
"이 녀석... 가만두지 않겠다!"
또 다시 원패턴으로 달려드는 빌런에 에스터는 마찬가지로 연사하며 회피한다. 빌런이 달려드는 길마다 타오르는 불꽃이 바닥을 삼키며 일그러트린다. 이런. 위험한데. 타오르는 불로 가득한 주변이 슬슬 견디기 힘들만큼 뜨거워져간다. 물을 피하며, 돌진하며, 태운다. 빌런의 능력이 공원 전체를 집어삼킨다.
연기와 불로 가득한 공원에서 에스터는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물총이 이 정도 화력을 내는것은 온전히 자신의 능력 때문이다. 불에 둘러싸인 에스터는 공격을 지속해내다가, 잠시 멈칫, 하더니 공격을 부자연스레 끊는다. 달각, 달각, 자신의 물총을 만지작댄다.
"......!"
빌런은 생각한다. 이때다. 분명 물총에는 한계가 있을 터. 아마 슬슬 저 어린애같은 디자인의 싸구려 물총의 물이 뚝 떨어진 거겠지! 다시한번 돌진한다. 에스터는 막는 시늉을 하듯, 팔을 십자로 만들더니...
촤아악.
최대 근접상태를 노린 에스터는 빌런이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상황을 유도했다. 물을 피하면서 돌진할때는 급소를 노리는 것이 힘들었으나, 상대를 끝낼 기세로 최대출력으로 돌진해올 땐 방어가 약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가장 가까이 온 순간, 가장 깊숙히 퍼붓는다. 극상의 수압으로 명치를 정통으로 맞은 빌런이 그대로 물대포와 함께 촥 밀려나간다. 한참을 그렇게 날아가던 빌런은 밀리고, 밀리고, 밀리다가... 어느새 그를 감싼 불꽃은 자취를 감추고, 물에 빠진 생쥐같은 가녀린 남자가 힘없이 쓰러져있다.
"와아아아아!"
에스터는 순간 놀라 뒤를 돌아본다. 빌런을 피해 숨어있던 시민들이 그녀를 향해 환호를 지른다. 화재의 열기 못지 않게 뜨거운 분위기였다. 에스터는 뿌듯하면서도, 조금 부끄러우면서도, 기뻐서, 그저 머쓱하게 긁적일 뿐이다. 에스터는 꾸벅 인사를 하곤, 아직 불타지 않은 물총들을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잠시후, 소방관과 이즈모의 출동으로 불도 빌런도 처리되고 공원은 다시 평화를 맞이한다.
이날 빌런 파이어맨은 이즈모 본부에 기절한 채 이송되었으며, 자신의 몸 전체를 발화시키는 발화능력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살인을 꺼리는 에스터의 조치로 즉각 사살은 면했으나, 히어로 본부에 이송되었으니 최후는 좋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20명 구조
ㅡ
- 엘리제를 위하지 못한 자여.
(리제 첫번째 일상 이후 시점)
"...그런 일이 있었다구요?"
동그란 안경을 낀 남색 머리카락의 남자는 찹쌀떡을 오물오물 먹고 있다. 나이에 비해 앳된 얼굴인 그는 에스터보다 딱 다섯 살이 어렸다. '이것은 그 분이 준 거니까 가보로 간직할 것이다.' 같은 무식한 말을 하는 에스터에게 딱밤을 한번 먹인 그는, 그녀와 마주앉아 이 맛있는 간식을 나눠먹고 있었다. 되도 않는 약한 딱밤이었지만 마음에 입은 타격이 컸던 모양이다. 그가 입은 흰 가운은 소매가 길어 조금 흘러내렸다.
"그렇다. 어떻게 생각해. 에릭."
"흐음- 만약에 오해받은 거라고 한다면 무척 억울하겠는데요. "
억울한 정도가 아니라 험악한 수준이지.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피냄새나느니, 인멸행위느니 하면서 본부 앞까지 끌고 갔으니까.
"거기다가 냄새나느니 하는 소릴 하다니, 잘못하면 성희롱이라고요. 그거!"
"그, 그런가."
"정말이지. 에스터씨는 여자 마음을 너무 몰라요."
"아니. 내 쪽이 여자고 네 쪽이 남자인데."
"음. 그럼 여자 마음이 아니라 사람 마음으로 정정하죠."
그렇죠. 성별이 문제가 아니라 배려심이 없어요. 에스터는 머쓱하다는 얼굴을 하나 싶더니 이내 고개를 숙인다. 큼지막한 손에 쥔 앙증맞은 찹쌀떡 반 쪽이 팥고물을 자랑하고 있다. 에릭은 시무룩해진듯 한 에스터의 얼굴을 흘깃 본다.
"...뭐- 하지만, 그런 저돌적인 면이 에스터씨의 강점이긴 하죠."
에릭은 찹쌀떡 하나를 앙 물고는 우물우물 씹는다. 에릭의 양 볼이 말랑말랑 쫄깃쫄깃한 흰 떡으로 가득 찬다. 아. 목이 막힌다. 물. 물.
"구에기대우에 저으 우해준거 아니엣어요."
"다 먹고 말해."
"그랬기 때문에 저를... 한거 아니겠어요."
의도적으로 키워드를 빠뜨리고 말한다. 아무래도 새삼 다시 입에 담기는 조금 쑥쓰러운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더 이상한 표현으로 들리잖아. 에릭. 에릭은 총총 부엌으로 걸어가서 찻주전자를 가져온다. 안에는 잘 우려낸 녹차가 가득 차있다.
"그러니까, 아마 그 감은 틀리지 않았을 거에요. 에스터씨는 조금 덜 떨어진 면도 있지만, 분명 근거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럴까."
불타는 소리. 의류가 타는 냄새. 막 사람을 죽인 것만 같은 비릿한 피 냄새. 어딘지 모르게 뻔뻔하게까지 느껴지는 그 태도. 분명히, 그날 밤에는 누군가가 칼에 찔렸다. 쪼르륵. 앙증맞은 디자인의 머그컵에 사랑스러운 녹색이 담긴다.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그 사람이 살인자였건 아니었건, 에스터씨가 일을 제대로 못 한것은 맞으니까."
"그 부분이 그 무엇보다도 가장 문제가 아닐까 싶다만."
살인자였다면 눈 앞에서 범인을 놓친거고, 그게 아니면 죄없는 민간인을 압박한 거니까. 어느 쪽이건 에스터가 잘 했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음-"
에릭은 짐짓 고민하는 시늉을 한다. 안경 너머의 똘망똘망하고 맑은 눈이 반짝거린다. 퀴즈 쇼의 부저를 대신하는 것 마냥 주먹으로 손바닥을 통 치더니, 에스터를 향해 신난듯이 말한다.
"그러면, 다음에 만나게 되면 성대하게 사과를 하는 거에요! 꽃다발이나 선물같은것도 들고서."
"아니..."
꽃다발이랑 함께 들고 가면 고백하는 것 같지 않을까. 그런 태클이 입속에서 맴돈다. 하지만 에릭은 에스터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는 빠릿빠릿하게 말해나간다.
"그리고, 그리고 진심어린 사과를 하는거에요! 만약 진짜 민간인이라면 사과를 하는거고, 살인마라면 당황시킬 수 있잖아요."
"...그런가?"
"그럴 거에요! 자. 그래. 꽃 종류는 이런 게 어떨까요?"
에릭은 빠르게 노트북을 키고 무언가를 검색한다. 에릭. 나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어. 에스터의 그런 지적은 에릭에게 들리지 않는다.
"...아니. 역시 조금."
"환상적이죠! 멋지죠! 아아. 역시 내가 해낸 생각이야! 나는 천재!"
"...내 말 좀 들어줘."
한 번 도취한 에릭을 말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에릭은 이렇게 천재적인 생각을 해낸 자신이 너무나도 기특해 죽겠다는 듯이 빙글빙글 한 바퀴를 돌았다. 황홀에 겨운 에릭에게 무대 조명이 반짝반짝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다음에 꼬옥 만나게 되면 사과하는 거에요! 그렇다고 일부러 찾아다니진 말고요. 스토킹하는 것 같으니까!"
"확실히 그러면 오히려 더 겁을 주는 꼴이 되겠지."
"도망칠지도 모르고요. 저기저기. 케이크는 뭐가 좋을까요?"
"에릭. 너 사과가 뭔지 정확하게 모르는 거 아니야."
"아아. 환상적이야..."
...밝은 소년이었다. 아니, 이제는 성인이지만. 에스터는 그런 에릭의 발랄한 면모가 결코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 명랑함을 다 받아주지 못하는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낄 뿐이었다.
"그리고, 초는 여섯개를..."
"이제 그만해..."
...부족할 뿐이었다.
- 에스터의 병문안
(진저에게 간 병문안. 아마 파크와의 일상도중 빌런에게 다친 시점...으로 추정.)
에스터는 잠든 진저의 병실에 들른다. 장발 장신의 그녀는 다친 당신이 잠든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에스터는 짐을 풀고는, 그 안에 있던 과일바구니를 그의 옆에 놔둔다. 안에는 수수한 무늬의 편지봉투가 있고, 봉투 안에는 영수증과 함께 두 장의 편지가 들어있다.
-영수증.
귤 20개.
사과 10개.
포도 5개.
쇠고기 1kg. <- 고기는 체력 보충에 좋다. (인쇄된 글씨 외에 추가로 적혀있는 글씨.)
배 5개.
-진중한 글씨로 적힌 손편지.
건강을 고려한 식단을 지키도록 해라.
매일 꾸준한 운동을 하도록 해라.
몸에 좋은 음식을 많이 먹도록 해라.
당신의 경호에 언제나 신세지고 있다.
아마 이즈모의 모두가 그렇겠지.
무리하지 말아라. 당신의 목숨이 당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라.
당신의 보호로 우리는 안전하다.
Ester Hildegard. C.
-발랄한 글씨의 손편지.
...네. 에스터 힐데가르트씨의 재미없는 손편지 읽으셨나요! 아니면 제 걸 첫번째로 읽고 계신가요!
만약 후자라면 유감. 꽝이오니 이 편지는 도로 집어넣고 재미없는 편지 먼저 읽고 오세요!
아. 읽고 오셨나요! 혹시 영수증을 편지로 착각한건 아니죠!?
물론, 에스터씨의 편지가 워낙 딱딱하기 짝이 없으니 출력된 글씨와 헷갈리는 그런 불운한 사태가 있을수도 있지만!
아무튼 에스터씨는 맹꽁이라구요... 맹꽁이라기 보단, 멍텅구리? 아이고. 어떤 호칭을 써야 어울릴지 모르겠네!
에스터씨가 너무 답답하기 짝이 없으니까 히어로 소속도 아닌 제가 나서서 편지를 쓰고있잖아요...
그렇습니다. 2차 편지! 저 영문모를 편지를 읽고 오잉? 이게 뭐지? 싶은 당신. 경비원 진저 그레이에게!
제가! 에릭 앤서니가! 친히 자필로 적어드리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해석본! 참고자료 첨부,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에스터씨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거에요. 늘 이즈모를 지켜주는 당신에게.
그리고, 요즘 유독 이리저리 구르느라 실려가는 일이 많은 당신에 대한 걱정의 인사? 무리하지 마세요!
건강은 젊은 시절에 길러놔야 하는 거라고요! ...뭐. 저는 그 말을 실감하기에는 아직 어리고, 그 이전에 병에 걸릴 일도 없지만. 히히.
만약 나중에 마주치게 된다면, 그러니까, 에릭 앤서니! 라는 끔찍하고 사랑스러운 이름을 보게 된다면,
그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런 편지도 보내는 친절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걸 기억해주세요.
그리고 이왕이면 퍼뜨려주세요. 히어로 지망 에릭 앤서니! 언제든지 일할 준비 되어있습니다! 아......
(뒤가 부자연스럽게 끊겨있다. 이 즈음에 펜을 뺏긴 모양이다.)
...두 번째 편지는 에스터가 빼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아무튼, 병실에 누워있는 당신이 일어난다면 쓸데없이 커다란 과일바구니...바구니라기엔 조금 많이 크고 과일이 아닌것도 들어있어, '과일바구니'의 기준이 과연 무엇인가 당신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며, 그것과 함께 이 편지 두개를 보게 될 것이다.
(26스레 전후)
- 유감스럽게도, 당신의 탓이다.
(블래스터 과거 독백 반응.)
"...그만둬."
"목소리가 너무 작은걸~? "
"키는 멀대같은 게, 힘은 다 어디로 가는지 몰라. 밥 먹었냐?"
고등학생. 어린 에스터는, 자신의 어린 강아지를 꼭 품에 안고 있다. 도베르만은 대형견에 속하는 견종이었지만,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새끼라 큰 치와와랑 구분이 안될 지경이었다. 그녀의 품에 꼬옥 안긴 또띠는 알알! 하고 하나도 위협적이지 않게 짖고 있다.
"그, 그만..."
"시끄럽고, 이리 내놓지 못해!"
그가 밀치자 마른 몸의 에스터는 힘없이 쓰러진다. 강아지는 더 세차게 짖는다. 자신의 주인을 걱정하는 거다.
"야. 앉아봐. 그런건 못 하냐?"
"이 새끼 완전 귀엽지 않냐? 확 깨물어먹고 싶네!"
"얘 팔면 얼마정도 벌까?"
조롱과 폭력. 자그마한 강아지가 갱들에게 둘러싸인다. 앞뒤 전부 막히니까 조금 겁먹었는지 귀를 뒤로 젖히면서도 지기 싫은지 큰소리로 짖는다.
"아. 젠장. 물었어!"
"저 쪼끄만게!"
"야. 나 입마개 만들수 있어."
"잘 됐다. 그거 줘봐..."
발악을 위해 꽉 깨물어 도망치려 했지만 체구가 작아 금방 붙잡혀버린다. 그리고 그들중 하나가 능력으로 입마개랑 목줄이랍시고 만들어낸 것은 도무지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곤 없는 무식한 디자인. 아, 안 돼...하지마... 라는 작은 목소리가 위협을 위해 콘크리트 바닥을 꽝꽝 내려치는 소리에 완전히 묻혀버린다.
"빨리 채워!"
"야. 우리도 만들어!"
"잠깐. 그거까지 만들려면 쿨타임 차야 해..."
"거 참 진짜 쓸데없네. 그 능력!"
"하, 지..."
철썩.
마지막 힘을 짜내 달려드는 에스터는, 그녀를 밀쳐내려던 갱 한명에게 크게 뺨을 맞는다.
"그럼, 네 능력은 얼마나 도움되는데!?시력 좀 좋으면 다냐!? 피하지도 못하는게..."
"너보다 낫다. 새끼야!"
"아. 안 된다. 야. 먹을 거 없어?"
"아오. 잉여새끼!"
얼얼한 볼이 확 달아오른다. 싫다. 눈물이 날 것 같다. 또띠에게 공원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인데, 이런 꼴이다. 처음 하수구에 다리가 끼어있던 또띠를 집에 데리고 왔을땐, 정말로 기뻤는데. 자신도 뭔가가에 도움이 되리라고, 쓸모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용기도 없다.
"아! 그러니까, 내가 아까 햄버거 먹쟀잖아! 배가 차야 쿨타임이 빨리 찬다고!"
"시끄러워. 이런 쬐끄만 강아지는 우리같은건 필요도 없어!"
"야. 우리 만들래니까 왜 쇠파이프 만들어!"
앞으로도 줄곧 이럴 것이다. 그 무슨 상황이 생기더라도, 에스터는 자신이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목표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생각하는 것도 약해빠진 멍청이. 그렇게, 에스터가 계속 자기 비하를 하고 있는 사이.
"어라? 나..."
한순간이었다.
"쇠파이프 같은건 만든 적..."
그런 그를 무자비하게 후려치는, 당신의 화려한 등장이었던 것이다.
"......!"
단말마의 신음과 함께, 갱 하나가 쓰러진다. 에스터는 당신이 능력으로 쇠파이프를 만들며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갱들은 당황한다. 뻗어있는 자 옆에 있던 그는 정말 눈이 좋긴 좋았는지 동료가 쇠파이프에 후려맞는 것을 또렷하게 봤던 것이다. 그게 동료의 능력실수라 예측한게 유감이지만.
"저 새끼가!"
"젠장. 잡아!"
그 후의 일 마찬가지로 순식간이었다. 에스터는 눈을 꽉 감았다. 당신이 달려드는 자의 배와 얼굴을 차례로 가격하고, 단검을 든 자를 쇠파이프로 돌려친 뒤, 도망치는 그 눈좋은 자의 뒷통수에 돌을 던져 가격할 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상황이 잠잠해졌는데도 눈을 뜨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에스터의 앞에, 또띠가 달려온다. 얼굴을 핥는 익숙한 감촉이 느껴지고서야 겨우 눈을 뜨고, 이 작은 강아지를 다시 꼬옥 안아준다.
"다행이야. 다행이야... 고마워..."
무척이나 두려웠을 텐데도 보호자를 달래주는 것을 우선한다. 에스터는 이 불쌍하고 기특한 강아지를 끌어안고, 한참을 쓰다듬는다.
"...아, 으응."
짐짓 거칠게 정신사나우니 꺼지라며 으름장놓는 당신에게 , 에스터는 고개를 끄덕인다. 고마워. 라고, 작게 소리내고는. 떠나려고 하는 당신에게, 에스터는 가느다란 용기를 쥐어짜 말을 건다.
"저, 저기... 이름..."
또띠가 당신을 말똥말똥한 눈을 뜨고 쳐다본다. 안심이 됐는지 얼굴이 웃는 상으로 변했다. 그리고 이어진 당신의 대답.
블랙 더 라이트.
에스터는 그 구원자의 이름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
"...그 뿐이 아니라, 담배가 늘었다. 비스트."
그리고 그 무력한 소녀는, 무력을 갖춘 듬직한 어른으로 자라난 것이다.
"스트레스받는 것은 알지만, 담배는 몸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차라리 그럴바에 운동을 해라. "
물론 운동도 많이 하고 있겠지만. 에스터의 잔소리가 이어진다. 그 몇년사이에 에스터는 자그마치 십센티가 넘게 자랐고, 현재 비스트보다 약 이 센치 크다. (몸에 대한 얘기라면, 운동을 아주 열심히 했다는 대답으로 답하겠다.)
"하나도 안 듣고 있었잖아."
뭐 당신은 조금 귀찮다고 느낄지 모르나 이것도 그녀 나름의 애정표현일 것이다. 당신은 어린 에스터의 영웅중 한 사람이니까. 다치지 말고, 고통받지 말고,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달라고?
"자. 다시. 그러니까..."
당신이 멋대로 구해냈으니, 그 책임을 져야 할 뿐이다. 우리는 공동체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 그치?
(27스레)
- 티 타임이 끝난 후
(녹턴과의 1번째 일상에서 이어짐. 28스레)
"....그러니까, 그래선 안 된다니까요!"
언젠가의 에릭의 목소리. 에스터는 그 때의 일을 떠올린다.
"에스터씨는, 자신이 강하다는 생각에, 주변 사람에게 의지하려 하질 않는다고요!"
에스터는 가만히 서서, 에릭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도 작군. 혹시, 이것도 능력의 영향인가?
"글쎄.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많이 약해보인다곤 생각하지만."
"그러니까 그게 그거잖아요!"
쨍알쨍알. 에스터는 별다른 불평도 없이 그것을 듣고 있었다.
"그게 다- 자만이라고요. 오만. 7대 죄악. 에스터씨.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강하다고 착각하는건 아니죠?"
"그런 적은 없어."
"애초에 에스터씨도 처음부터 강했던 것도 아니면서!"
"...그야 그렇지만."
그러고보니 그 때도 차 같은걸 마시고 있었던가. 마른 목을 축이듯 잔에 담긴 녹차를 호록 마시더니 에릭은 잔소리를 이어나갔다.
"에스터씨. 주변에 의지하도록 하세요."
그런 말이었다. 에스터는 완전히 부정하는 것도 동조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눈으로 에릭을 보고 있었다. 에릭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에스터를 쳐다본다.
"올곧고, 의지하지 않고, 혼자 모든걸 떠안으려고 하는 사람은, 언젠가 부러져요."
에릭은 인생경험을 말하듯 이야기했다. 자신보다 다섯살은 어린 나이에 저런 말을 어디서 들었을까. 고아원의 원장은 자상한 사람이었다. 혐오시설이라는 눈총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힘으로 고아원 아이들을 전부 돌봤지.
굽어지지 않는 사람은 부러지고 꺾인다. 부드럽고 강인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원장이 해주셨던 이야기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저를 의지해주세요. 저는 에스터씨 생각만큼 약하지 않아요."
당연히, 물리적으론 비교도 안되지만. 그렇지만 그런 뜻의 약함이나 강함이 아닐 것이다.
"약한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야 해요. 그것이 제가 배운 사회에요."
만인을 구하는 절대적인 히어로같은건 불가능하다. 에릭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에스터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약한 사람들은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강한 영웅이 필요하다고. 약자로서의 에스터가 자라면서 얻은 결론이었다.
"참고하도록 하지."
에스터는 그렇게 말하고는, 잘 우려진 녹차를 입에 대는 것으로 이 대화를 마친다. 그 후의 이야기는 시시콜콜한 것들이었다.
-
"에릭."
"네?"
"고맙다."
에릭이 먹던 오렌지주스를 베-하고 흘린다. 어느 아침드라마에서 걔 사실 그사람 딸이에요...같은 얘기를 들은 반응이 이랬던 것 같다.
"왜 그래."
"아니. 앞뒤 맥락이 전혀 없잖아요."
"...언제나 고맙다."
"언제나를 진작에 붙였어야죠."
꼴깍꼴깍. 다시 오렌지주스를 삼킨다. 더럽다던가 말하지 않고 에스터는 그냥 그를 지켜본다.
"많이 자랐네."
"...놀리는 거죠?"
"진심이다."
에스터는 근처의 티슈로 에릭의 입을 닦아준다. 그렇게 어린애취급하면서 그래봤자 설득력이 없다고요. 진심이니까 진심이라고 말할 뿐이야. 에스터씨는 말할 때 시동을 거는 법을 몰라요.
"내가 강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줘서, 고맙다."
무슨 이야기일까. 에릭은 눈을 말똥말똥 뜬다. 그러다가 문득, 배시시 웃는다. 정말 어린애같다.
"뭔진 몰라도, 에스터씨에게 도움이 됐다면 됐어요."
역시, 많이 자랐구나. 에스터는 속으로 생각한다.
- 짐승이 울부짖던 날
(31스레, 13레스 블래 독백에서 이어짐)
http://vocaro.wikidot.com/perturbed-heart-and-siren-on-navy-street-was-too-noisy
고동치는 군청색에 압도되어 울 것 같아도
눈을 뜨고 모든 것을 응시해
사이렌은 울려 「거짓말만 외치는 구나」
심장은 터져버릴 것 같아
...
독선적인 군청의 거리. 이 푸름은 필요없어 이젠
눈을 감고서 잠시 숨을 돌리고
사이렌은 울려 「거짓말만 외치는 구나」
계속계속 잊지 않을 거야
짙은 푸름에 가라앉는 이 거리를 나아가
Eight - 당황한 심장과 군청거리에 울려대는 사이렌이 너무나 시끄러웠다
-
연인을 잃은 짐승이 울부짖고, 하늘에는 구멍이 뚫린 듯 비가 내렸던 날. 마치 어떠한 영화나 소설의 위기 부분을 암시하는 불안하고 음침한 날이었다.
에스터는 우산을 접는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털썩. 주저앉는다.
"...욱, 우욱..."
목에서부터 헛구역질이 올라온다. 당신의 앞이었기에 억누르고 있었던 감정들이, 제자리를 찾는다. 트라우마였다.
싸늘하게 굳은 시체를 봤어. 또 다시, 나는. 그대로 엎드린다. 무언가를 토해내듯이 운다. 블래스터. 나는 인간이야. 짐승을 자처하는 그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콜록. 콜록.....
구하지 못했다. 다시 구하지 못했다. 지인의 연인이라는 다소 남에 가까운 관계긴 해도, 그녀는 상냥했다. 아름다웠던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그에게 결혼을 축복해주거나, 두 사람의 연애 얘기를 들으며 웃거나, 그런 것들을 떠올린다. 바보같다. 울렁거린다. 기침이 계속된다. 이내, 폭포수같은 눈물이 터져나온다.
"으아..으아아...아아아아아아!"
비명을 지른다. 쥐어뜯듯이 머리를 붙잡는다. 비틀비틀. 여전히 힘이 없다. 엎드린 자신을 지탱하고 있던 팔마저도 픽 쓰러져버린다. 그 날의 일이 겹쳐보인다. 너는 약해. 너는 그 누구도 구하지 못할거야. 너희 부모님은 살인자야. 누군가가 속삭이는 것만 같다.
다시금 비틀대며 어떻게든 팔로 상체를 일으킨다. 얼룩져 앞이 보이지 않는다. 무섭다.
아직까지도 시체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만 같다. 에스터는, 눈물색의 머리카락이 얄궂게만 느껴진다. 그러고보니 당신은 그런 얘기를 했던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색이라고. 블래스터. 당신에겐 어울리지 않을지 몰라. 하지만.
"......"
눈물지으며 완전히 흐려진 시야에 어떻게든 초점을 맞춘다. 손. 집의 바닥. 이 곳은, 나의 집이다. 평정을 되찾는다. 혼자뿐인 집. 그런데도 어째선지, 빗소리가 울린다. 머릿속이 멍하다.
"......블래스터."
복수를 한다는 너의 말에 거절하지 못했던 것은, 자신이 약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이런 고통을 다시 안겨준 그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끝에는, 어떤 결과가 되든 다시 시체를 보게 되겠지. 모순적이다. 허탈하게 웃는다.
창문을 치고 울리는 빗소리가 드디어 제 위치를 찾는다. 머릿속을 윙윙 울리던 소리가 가라앉고, 빗소리는 창 밖에서의 소리로 바뀐다. 이제서야 감각이 제대로 돌아온 느낌이다. 다시금 힘이 풀려서 엎어진다. 이제는 일어날 생각이 없다. 잠시, 이렇게 있자.
그녀의 죽음을 추모한다. 그의 빛이자, 동경했던 사람의 연인, 한없이 다정하고 밝은 사람이었어. 당신은.
- 당신을 기리며.
- (30스레)
당신을 기리며(1)
에스터는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뒷좌석에는 에릭이 품에 흰 꽃을 한아름 안은 채였다. 오늘따라 에릭은 조용했다. 오랜 정적 끝에, 에스터가 말을 걸어본다.
"에릭. 괜찮나?"
에릭은 말똥한 눈이었다. 차분한 목소리로, 에스터에게 대답한다. 그러고보면 에릭도, 이렇게 조용하게 있을때 보면 참 얌전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괜찮아요."
그렇지만 무언가를 생각하는지, 이후에도 에릭이 입을 여는 일은 없었다. 에스터는 조용히 차를 몰았다. 간간히 조금씩, 이 잔잔한 마음을 깨뜨리지 않을 정도로만 이야기를 건네거나 하면서. 차는 큰 길을 지나 점점 좁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지나간다. 덜컹, 덜컹. 불편하지도 않은지 에릭은 여전히 부동자세였다.
꽤나 오랫동안 가는데, 멀미도 나지 않는 걸까. 아. 혹시 이것도 능력때문인가. 그렇다며는 조금 부럽다. 어떤 상황에서도 밥만 잘 챙겨먹으면 최고로 건강한 몸이라는 건데, 운동만 하면 완벽하겠거늘. 에스터의 바람과 달리 안타깝게도 에릭은 몸을 쓰는 일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끼익. 차는 산길을 지나고 지나, 어느 외진 곳에 있는 묘소에서 정차한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네."
반년 전, 10년 기일을 맞이해서 간 날에는 봄인데도 불구하고 세찬 비가 왔더래지. 그 때는 추적추적한 비가 마음을 계속 쳐대는 탓에 에릭은 그만 울어버렸었다. 한참을 우는 에릭의 마음을 달래려고 에스터가 고생을 했었지.
"...원장님."
가장 가운데 있는 묘의 주인은 에릭의 고아원의 원장이었다. 언제나 따스한 사람이었고, 고아들을 위해 늘 애썼지만, 대정전이 오고 나서 혼란에 빠진 마을속에 사람들의 분노의 희생양이 되어 맞아죽었지.
그 전부터 고아원은 혐오시설이라는 마을의 컴플레인을 몇 번이나 받아왔지만, 오로지 원장의 완고함으로 인해 그녀 혼자 힘으로 운영되어왔다. 대정전이 불러온 혼란으로 세계의 감시의 눈이 캄캄한 어둠에 빠지자 사람은 그때를 틈타 힘없는 고아들을 밀치고 원장을 때려죽였었다. 집단이기주의란 무서운 것이다.
그 후의 기억은 약간 흐릿하지만 에릭은 고아원이 불타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자신만이 잘났다는 듯이 냄새나는 고아들을 사람답게 돌봐준 원장에 대한 증오는 깊었던 것이다. 증오라고 할까. 마음의 부유함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열등감과 질투였다고 할수도 있겠지.
어떠한 의식을 벌이는 것처럼, 마치 그녀같은 숭고한 존재가 있었던 흔적을 지우는 것처럼, 고아원은 불타버렸다. 다행히 아이들중에 위험 감지 능력이 발현된 아이가 불이 더 커지기 전 경보를 울려준 탓에, 고아원의 아이들은 '화재에서는' 무사했다. 하지만 그날 자신들이 살아온 장소와 부모같은 존재를 잃어버린 마음은 무사했다고 할 수 있을까.
엉엉 울었다. 에릭도, 아이들도, 모두. 고아원에서는 나이가 있는 편이었던 에릭도 그 때 아이들을 달래줄 자신을 갖지 못했다. 그 후에 친절해보이는 어른의 손에 이끌려 간 곳은 천국이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무참히 짓밟히고 아이들은 지옥의 입구에 발을 딛었다.
...그 지옥에서 살아남지 못했던 아이들과, 원장이 묻혀있는 묘였다.
시체는 고아원과 함께 불탄 뒤 찾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무덤은 빈 무덤이었다. 아무리 불탔다고 해도 뼈 한조각정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누군가가 가져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시신의 상태를 생각하면 이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연구소의 소장이라며 너희들이 살 곳을 마련해준다던 할머니는 마치 아이들의 원장을 연상시켰다. 인자한 미소와 느릿한 목소리가 그녀를 떠올리게 했다. 아니, 어쩌면 아이들은 잃어버린 사람을 그녀에게 투영해보이던 것 뿐일지도 모르겠다. 너무나도 어렸고, 상처입었고, 순진해서, 세상에는 아직 원장님과 같은 자상한 사람이 많이 남아있으리라 생각했다.
기대는 짓밟혀 산산히 조각나버렸다. 아이들은 지옥의 입구에 발을 딛었다.
그 후의 일들은, 지금 떠올리기에는 별로 좋지 않은 것들이겠지...
"...살아남은 사람이자, 에릭연구소의 일원이 된, 아이들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았던 에릭 앤서니가 여기 왔어요."
묘비 앞에서 자기소개를 건넨다. 흰 꽃 한송이를, 원장의 앞에. 그리고 죽은 아이들의 묘 앞에 하나하나 남은 꽃들을.
당신을 기리며(2)
다시 원장의 묘 앞으로 향한다. 담담한 목소리로, 원장에게 말을 건다.
"저. 이제 히어로의 일원이에요. 정식 히어로는 아니지만, 에릭 연구소는 히어로와 협력하게 됐어요."
에릭 연구소. 과거 아이들이 내딛었던 지옥에서 일어났던 인체실험의 피해자중 하나인 에릭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연구소였다. 지옥의 수장들이 힘을 잃고, 지옥이었던 곳이 분열하자, 그 곳의 의지를 잇고자 하는 사람은 이름을 바꿔서 그 곳을 유지해나갔다.
그리고 간부진들의 부도덕을 용서할 수 없었던 자들은 살아남은 실험 피해자 아이들을 보호하겠다는 방침으로 새롭게 에릭연구소를 만들었다. 어째서 에릭의 이름을 땄느냐 하면, 그 실험이 에릭의 능력을 위주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가치유능력이라는 탁월한 능력은 거의 웬만한 실험에는 그를 죽지 못하게 했다. 더군다나 자가치유능력과의 충돌로 인해 드러나지 않고 있던 또 다른 능력을 소장은 에릭의 몸에서 발견해낸 것이다. 그리고 그 이능력을 자신이 활용하기 위해 간부진들에 의한 수도 없는 강제적인 생체실험이 계속됐다.
"아직은 저는 힘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적어요. 그렇지만 앞으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계속 노력할게요."
실험동물들, 피실험자들, 모두가 더할나위 없는 끔찍한 방법으로 죽어갔다. 곁에 있던 친구들이 누군가의 욕심에 의해 하나하나 죽어나간다. 그런 나날이 계속되고 계속되면서, 제발 연구소가 자신을 죽여주기를 바랐다. 피가 나는 몸을 숨기거나, 밥을 일부러 먹지 않고 버리거나. 하지만 연구소는 절대 에릭이 쉽게 죽어버리도록 놔두지 않았고, 에릭은 지옥같은 나날속에서 안식을 맞이하지 못했다.
...그리고, 구원이 찾아온다.
에스터의 트라우마이자, 에릭의 구원이자, 소장과 클라인부부를 포함한 간부진들의 몰락이었던 날의 일이.
"사람이, 죽지 않도록 할게요."
이용당하지 않도록 할게요. 그렇게 덧붙인다.
당신을 기리며(3, 完)
그 말을 마치고, 한참을 서있던 에릭은 뒤돌아서며 미소를 지어보인다.
"이제 가요."
"괜찮겠나?"
애써 웃어보이는 에릭의 얼굴이 애잔하다. 에스터는 그 얼굴이 비춰내는 감정을 알고 있었으나, 묵인한다.
"이 정도면 됐어요. 그리고 에스터씨도, 그 날의 일에 계속 젖어있는건 좋아하지 않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러니까 돌아가요."
에스터에게 그 날의 일은, 깊은 트라우마이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들락날락했던 부모님의 일터 구석에, 그러한 끔찍한 시체들과 실험들이 있었으리라고는. 그 연구소에서 시체를 오랫동안 보관해뒀던 것은 즉각적으로 폐기하다간 들키기 때문도 있고, 사망후 반응을 보기 위해서도 있었다.
"기일에 방문한것도 아닌걸요. 예정 외의 날에 와서 원장님도 당황하셨을지 몰라요."
"......친구들에게 더 할말은 없나?"
에릭은 고아원 출신 아이들의 묘를 바라본다. 사실은 이 묘지들도 대부분이 비어있었다. 조금 안타까운 표정을 짓긴 했지만, 이내 밝게 웃어보인다.
"다음에 왔을때 해주면 되죠."
에릭의 그 말에, 에스터는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그렇지만, 그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래."
에릭은 각오를 다진다. 자신은 히어로의 일원으로서, 다시는 누군가의 희생을 만들지 않겠다고. 자신이건 타인이건, 그러한 지옥에 다시 손을 잡고 걸어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돌아가는 길에는, 에릭의 목소리가 조금이나마 밝아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종교
종교(1)
(31스레)
히어로 뉴스를 읽는다. 신흥 종교인 빌런교. 사이비종교.
"......"
신이라. 에스터는 무신론자였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믿지 않는다. 뭐, 무신론을 숭배하는 것은 아니니까 언젠가 설득당한다면 신을 믿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곤 해도 무엇보다 가장 믿는건 자기 자신이지만. 신문을 덮는다.
그러고보니, 최근에 조금 신경쓰이는 민간인을 본 적이 있는데. 에스터는 인상을 찡그린다. 기억을 되살려낸다. 그래. 그런 사람이 있었지.
빌런이 폭탄을 설치했다고 하는 테러현장에 갔을 때였다. 족히 서른명은 넘어보이는 사람들이 납치되어있었다. 아마 현직 코스츔이라는 히어로로 일하고 있는 과거 클라운의 모방범죄였던 것으로 추측됐다. 다행이라면 그보다 훨씬 더 허술했다는 점일까. 폭탄 해체나 발견은 제거반에게 맡기고, 자신은 퇴로 확보 밑 구조를 맡고 있었다. 벽을 연사하고 무너뜨려, 뻥 뚫린 문을 만들어버린다. 무식한 방법이지만 인력이 부족했다. 그런데,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곳으로 가는 사람이 있었지.
"...기다려."
다른 사람들이 퇴로를 향해 우르르 몰려가고 있을때, 어째선지 붙잡힌 빌런을 향해 가는 여성. 에스터는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한 쪽 팔이 붙잡힌 그녀는 에스터를 쳐다봤다.
"출구는 저 쪽이야. 그 쪽은 위험하다. 이리 오도록 해."
급한 상황이라곤 해도 팔을 붙잡아버린 것은 조금 거칠었을까. 에스터가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에스터의 손을 뿌리쳤다. 에스터는 예상못한 반응에 그녀를 쳐다본다. 그녀 또한 에스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를 걱정하시는 건가요?"
그녀는 그렇게 말한다. 눈이 어딘가 죽어있는 것 같았다. 시체의 눈 같아서 조금 무섭다고 여기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고 침착하게 말한다.
"당연하지. 민간인을 지키는 것이 히어로의 일이다."
에스터의 말에 싱긋. 그녀는 웃는다. 웃는 얼굴은 더더욱 사람같지 않아서 무서웠다. 아아. 하지만... 철컥. 총을 꺼내든다. 에스터는 당황한다.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눈다.
"나는 그들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어요!"
순간 놀라 에스터는 총을 겨눈다. 하지만 이미 늦었는지.
"탕-"
커다란 소리가 난다.
공포탄이었나. 에스터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킨다. 그녀는 빙긋 웃는다. 에스터의 반응에 만족했다는 듯이 싱글싱글. 그러고는 뒤늦게서야 만들어진 출구를 향해, 가벼운 몸짓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또 만나요. 시련."
그런 말을 했다. 빌런이 조금 씨익 하고 웃었던 것을 기억한다. 폭탄 해체는 완료되었고, 모방 클라운은 검거되었다. 자신을 2대 클라운으로 불러달라는 소리를 한 그 남자는, 이즈모에 검거되어갔다. 즉살명령이 있었지만, 바로 근처에 인권시위가 벌어지는 중이었기 때문에, 모양만일지언정 안전제압이 가능했지.
Dice(20,100) value : 100명 구출
종교(2)
렀다 오는 길이다. 이 보호소 역시 에릭연구소와 협력관계이다. 상당히 초기부터 협력했기 때문에 사실상 에릭연구소의 일부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동물들의 상태를 살피고, 산책이나 놀이활동을 한 시간쯤 도운 뒤, 연구소로 향한다.
연구소에서 에스터를 잘 아는 직원들의 반가운 인사가 건네진다. 아. 어서오세요 ~ 히어로 활동은 괜찮으신가요?로 시작하는 여러 시시콜콜한 안부인사가 오간 뒤, 에스터는 에릭이 있는 곳을 찾는다.
"와아. 에스터씨. 오랜만이에요!"
"하루만이다."
가벼운 만담이 인사를 대신해서 짤막하게 오고간다. 그야, 하루라고 하면 24시간, 분으로 환산하면 초초초절정 엄청난 시간이라고요!? 분으로 환산하지 않고 있잖아. ... 그리고, 두 사람 다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해 함께 점심상 앞에 앉는다.
"잘 먹겠습니다~"
꼭꼭 씹어먹고, 밥 먹을때 너무 재잘거리지 말아라. 네이네이. 에스터는 조용히 식사를 시작한다. 에릭은 와구와구와구 먹다 에스터에게 약간 지적을 받는다.
"요즘, 신흥종교가 난리라나봐요~"
"너도 빌런교의 얘기인가."
빌런교의 내용을 보면, 전의 그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하던 여자가 떠올라 신경쓰였다. 자신을 시련이라고 표현했던 것도. 직접적으로 종교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빌런을 위해 죽을수도 있다- 는 건 분명 신앙에 가까운 말이었지.
"대체 왜 신 같은걸 믿는 걸까요? 신은 과학적으로 결코 증명될 수 없는 허상이라는 게 분명한 사실이거늘."
"그렇게 생각하는 건 좋지만, 종교인 앞에선 말하지 말아라."
"그렇지만, 솔직히 그렇잖아요? 요즘같이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아직도 그런 걸 믿는다니 넌센스에요."
하긴, 뭐. 빌런교라는 이름과 교리는 에스터가 보더라도 우스꽝스러웠다. 저런 종교가 퍼져나갈 정도라니, 라오스의 민심은 괜찮은 걸까. 에릭이 밥을 먹으며 종교는~ 과학적으로~ 이렇게 해서~ 그런데 신자들은~ 같은 얘기를 조잘조잘대는데 십오분 가량이 걸렸다.
"...저도, 최근에 신자 한명을 만난 적 있고 말이에요~"
에스터의 젓가락질이 멈춘다. 그러더니 걱정스러운 눈으로 에릭을 바라본다.
"...괜찮았나?"
"당연히 괜찮았지요. 괜찮았으니까 여기 있지! 살아있나? 라는 질문만큼이나 바보같네요."
"아니. 그렇게까지 말할 일인가."
에릭은 에스터를 바라본다. 의아하다는 눈빛이다.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걱정됐을 뿐이야."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저는 에스터씨가 생각하는 것 보다, 강한 사람이라구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에릭은 으쌰으쌰! 하며 힘 세보이는 포즈를 지어보인다. 전에 스미모토가 비슷한 시늉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빌런교라면 적당히 말을 해서 돌려보냈어요. 저는 빌런교를 믿지 않는다고."
"그런 말을 했다가 위험해질까봐 걱정되니까 그렇지."
얼마나 위험사상인 녀석들인데. 기사 내용만 봐도 그렇다. 에릭은 해맑게 웃으며 다음 말을 잇는다.
"그리고 저는 에스터교를 믿고 있으니까, 빌런교랑은 대립할 수 밖에 없다고."
"그만둬."
...그렇다고 한다.
"...음. 힐데가르트교 쪽이 나았을까요?"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남의 이름을 빌려 마음대로 종교를 만들지 마."
"머리말교는 좀 이상해서..."
"맥락을 못 읽는구나."
"하지만, 이름만 빌린게 아닌걸요. 말 그대로 에스터씨를 신! 구원으로 모시는 종교에요!"
"그 쪽이 훨씬 더 문제잖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빌런교에 대적할 만한 새로운 종교의 신이 되어있다. 교주도 아니고 신이라니. 에스터는 한숨을 쉰다.
"그렇지만, 에스터씨의 이름으로 대면 빌런킬러인 에스터씨의 이름이 두려워서 물러나지 않을까요?"
"더 자극한다고 생각한다만."
즉살명령을 어겨가면서까지 불살을 표방했는데 에릭에게 자신은 킬러인 것인가. 물론 에릭은 그녀의 신념을 잘 알고있기때문에 농담으로 한 말일 것이다.
...어쨌든, 오늘도 밝아보이니 다행이다.
(32스레부터)
종교(3)
"아. 안녕하세요 - 잠시 좋은 말씀..."
"종교 안 믿어요."
즉답이 돌아온다. 포교를 전하려던 신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돌아온 답변에 당황한다. 에릭은 밝은 표정으로 싱글싱글 웃는다.
"그렇지만, 일단 한 번 들어보세요. 눈이 참 맑으시네요...!"
"싫어싫어싫어. 또 빌런굔가 뭐시긴가 하는 얘기잖아요! 안 믿어! 도 안믿어요! 곰돌신도 안 믿어요!"
"곰돌신께서 가로시되, 지금의 혼란은 단지 잠깐의 혼란일 뿐으로...!"
"아아아아 또 나왔다. 싫어! 싫어! 저리가요!"
하아...하아... 양 쪽에서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린다. 생산성없는 말싸움(비슷한것)을 하며 둘다 지친 모양이다.
"...그래도 말씀정돈 들어보실 수 있잖아요."
"그 말을 제가, 몇 번이나 들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에릭의 말투가 날카롭다. 에릭을 이렇게 짜증나게 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지금까지 에릭은 상대를 귀찮게 하는 쪽이면 또 모를까 귀찮은 짓을 받는 쪽은 아니었거늘.
"아무튼, 요즘같은 세상에 아직까지도 종교놀음같은걸 하는지 모르겠어요~ 21세기. 과학이 얼마나 발달했는데~"
"......"
"신? 인간? 이능력이란 발견된지 딱 십년밖에 안 됐는데. 만약 신이란게 정말 있다면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왜 제지하기는 커녕 가속시키고 있는건데요?"
".....알....."
"그러니까- 뭔가 믿을만한 구석이 있어야 신으로 떠받들어야지, 지금 이 혼란상황을 구경하며 들쑤시고 다니는게 무슨......"
신도의 얼굴이 험악해진다. 어라. 이게 아닌가. 에릭은 단순 신체능력이 일반인만 못한 수준이었고, 능력 자체도 평상시 긴박한 상황에 도움이 될 법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건장한 남자신도 하나랑 진심으로 다퉜다가는...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
신도는 전기충격기를 꺼내든다. 에릭은 순간 당황한다. 잠시만...이라고 하려는 사이 그것은 에릭의 복부를 정통으로 치고 간다.
"잠시, 만..."
에릭의 눈이 혼란과 당황으로 가득 찬다. 이내 곧 뒷골목에서는 쉴새없이 떠드는 남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단지 털썩, 하고 신을 믿지 않는 무례한 무언가가 넘어지는 소리가 울렸을 뿐이다.
"이제서야 신의 뜻에 거스르지 않는 아이가 되었군요."
에스터, 씨. 그런 목소리가 나오지 못하고 물거품이 된다.
-
"......"
에릭이 돌아오지 않는다. 무슨 일이지? 평소에도 에릭은 계획없이 즉흥적으로 싸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긴 하였으나, 이렇게까지 아무 연락도 없이 돌아다니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뭔가 재밌는 걸 발견하면 모를 수 없을 정도로 자기 하는 일을 알리고 다니곤 했는데. 급작스런 약속이 생긴건가?
"...하아."
A씨는 한숨을 쉰다. 에릭. 그 녀석 어렸을때 일도 있으면서,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는 거야. 집에 돌아오면 잔소리를 해줘야 겠네. 아니, 구태여 내가 잔소리할 필요도 없이 에스터씨에게 맡기는 게 나을 수도.
"소장님. 얼마전에 했던 신체검사 분석 결과 나왔는데요..."
"아. 그거, 거기다 내려둬."
에릭연구소의 소장인 A씨는 평화로운 낮을 보내고 있다. 무슨 일이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종교(4)
"...이런. 생각보다 빨리 눈을 뜨셨네요."
에릭은 갑작스레 확, 눈을 뜬다. 이런 식으로 기억이 끊긴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독한 인체실험때, 엿같을 정도로 많이 느꼈지. 그리고는, 자신을 향해 말을 거는 얄미운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든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간단한 실험이라고요? 저희가 하려는 건. 실험이 성공한다면 무사히 돌려보내드릴게요."
"빌어먹을 자식이..."
에릭은 눈을 치켜뜨고 상대를 노려본다. 이글이글한 레몬빛 눈이 상대를 향해 타오른다. 기본적으로 순한 인상인지라 에스터처럼 위압적이진 못했다. 자신을 납치해온 상대의 실험이라는 말에 에릭은 또 다시 인상을 쓴다. 몸을 움직여보나, 밧줄로 칭칭 감겨 꼼짝도 하지 않는다. 가운도 벗겨진 모양이었다. 호신용 약물도 쓸 수가 없다.
"개새끼! 소새끼! 쥐똥만도 못한 것들. 당장 나를 풀어줘!"
"하하하. 그거 욕이라고 하는 거에요? 귀여워라."
신도가 웃는다. 젠장. 눈에서 빔이라도 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아니면 하다못해 염동력이라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누군가가 걸어온다. 본 적 있는 아가씨다.
"당신은...!"
"일어나셨나요. 신자님?"
"그 때 전도했던 종교쟁이! ...끼리끼리 몰려다니는구나!"
그렇게 비아냥대지 말아요. 그대도 그대만의 신을 섬기는 것은 마찬가지잖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에릭의 머리칼을 쓸어내린다. 에릭은 손을 깨물어버리고 싶다.
"당신이 말한 에스터교라는게 뭔지 궁금해서 찾아봤어요. 어느 대단한 종교길래, 저희네들보다 믿을 가치가 있는지. 그런데, 그런 종교는 없고, 동명의 히어로만이 눈에 띄더군요?"
그녀는 한 발짝 물러서더니, 에스터의 사진을 에릭의 얼굴 가까이 댄다. 포교인을 쫓아내기 위해서 장난삼아 입에 담았던 이름. 에릭의 표정이 명백히 동요하는 것으로 바뀐다.
"...에스터씨!"
"어라, 당신의 신에게 그런 호칭이 괜찮은가요? 무례한 신도네요."
"닥쳐...왜 에스터씨를 조사한거야!"
에릭은 분노하는 표정이다.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짓는다.
"아까도 말했지만, 간단한 실험이에요."
그리고는, 양 팔을 벌린다. 모든것을 포용하겠다는 듯이.
"당신의 신은, 과연 다수의 목숨과 소수의 목숨중 어느 쪽을 구할까?"
"......!!"
에릭의 얼굴이 굳는다. 그녀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해나간다.
"전에도 이런 실험이 있었죠. 1대 300이었나? 유능하신 클라운님의 실험. 하지만, 이즈모의 간부급도 아니고, 애초에 이즈모 소속이라고 하기도 미묘한 당신을 위해~그 만큼을 희생시킬순 없고."
이미 에릭에 대한 조사도 끝난 걸까. 그리고 그녀는 손가락을 핀다. 오른손은 하나. 왼손은 다섯개.
"열다섯명 정도면, 당신에게 과분하겠죠?"
다시 웃는다. 얄밉다 못해 소름끼칠 만큼 환한 웃음이다. 키득키득대는 그녀에게 쇼크먹은 에릭은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미쳤어... 미친 사람들아...!"
"마음대로 지껄이세요. 어차피 실패한다면 그럴 수도 없게 될테니까."
소름이 끼친다. 정말로 미쳐있는 자들이다. 곰돌신이 어쩌니 주절댈때부터 그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그 자가 정말 신이라면~ 자신의 신도를 구하러 이 곳에 오겠지요. 아. 물론 당신의 신앙심이 진실했을때 얘기지만."
"......"
"아. 혹시 불안한가요? 신께서 당신을 구하지 않을까봐? 생판 모르는, 자신을 믿지 않는 열다섯을 구하러 갈까봐?"
"...신."
에릭은 중얼거린다. 그녀는 내려다보듯이 당신을 바라본다. 죽은듯이 초점을 잃은 레몬빛이, 당신을 보고 있었다.
"...신 같은건, 없어."
"아직도 그 소리네요.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단순히 곰돌신님을 믿지 않는 건가요?"
"신이 있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났을 리 없어..."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라도~? 당신은 어째, 모든 종류의 신을 믿지 않는 걸로 보이는 걸요."
에릭은 그 날을 떠올린다. 우리들의 사랑하는 앤서니가,시체조차 남기지 않고 추억이 담긴 집과 함께 파묻히고 불타버렸던 때.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이런건 억울하다.
"...왜, 왜 신은... 그렇게나 자신을 믿은 그녀를 구해주지 않았어!?"
독실한 신자였던 고아원의 원장. 고아원이 혐오시설로서 공격을 받고 욕을 먹어도, 자신의 행동은 신의 뜻에 의한것이라며 웃어넘기곤 했다. 신의 관대함을, 포용을 베풀지 않은 채 신의 이름을 빌리는 자들은 언젠가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그리고 이러한 진솔한 삶만이 신의 보호를 받게 해주는 것이라고.
그러나 천벌을 받은 것은 그녀였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남은 것은 그들이었다.
신의 이름을 가난하고 불쌍한 고아들의 삶의 장소를 무너뜨리는데 악용하고, 그 중심에 있던 원장을 때려죽인 채 건물안에서 불타게 방치해둔 자들. 그들에겐 그 이후에도 어떤 천벌도 내려지지 않았고, 고아들은 신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속아 인체실험의 현장으로 끌려갔다.
우리들을 지킨건 신의 보호 따위가 아니라, 신의 존재를 믿지 않고 비아냥거리던 그 애의 위험감지능력이었다.
신의 뜻을 거스른 능력. 세계 혼돈과 재앙의 징조. 그것이 우리들을 구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동안 인간들이 말하는 신이라는 존재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앤서니...원장님, 그렇게...상냥했는데."
울고 있는 어린아이에게도, 세상은 가혹하다. 아니. 더 이상 그는 아이도 아니었지만.
"그야. 그녀의 신앙이 독실하지 못했겠지요."
"닥치지 못 해...!"
"아~그래. 그녀는, 당신같은 사람을 지키려 애썼기 때문에 죽은거에요."
내밀어지는 손가락. 자신을 향해 뻗은 그것. 순간 메스처럼 느껴져서, 에릭은 숨을 죽였다.
"그녀가 아무리 선량한 신자였다고 해도, 밑에 있는 자들이 이 모양이라서야 소용이 없겠죠. 언제나 그렇잖아요? 밑사람들의 무능은, 집단 전체의 몰락을 초래하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언제나 맹목적인 저희만의 신도를 구하는 거에요."
탁. 빙그르르 하고 반 바퀴 돈 그녀가, 발을 미끄러뜨리며 난 소리이다. 다시 한 번 양 팔을 포용해내듯 벌린다.
"그렇기때문에 당신같은 신성모독자는, 이런 시련에 처하는 거고요."
"미친 놈들..."
"...당신은 정말, 이런 상황에서 입을 다물 생각은 없나요?"
유감스럽다는 듯이, 그녀는 자신의 볼에 손을 얹고 말한다. 그렇게 울먹이기까지 하면서, 입만은 동동 떠있네요.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자아. 그럼 실험의 시작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녀는 쾌활하게, 격앙된 목소리를 하며 외친다. 마치, 쇼의 시작을 알리기라도 하듯이.
"당신과 불신자들, 어느 쪽이 그녀에게 선택받을 것인가!"
...쾅.
그 말이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짜맞추기라도 한 듯이 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종교(신)
그녀는 그 곳을 바라보더니, 계획대로라는듯이 미소짓는다.
"그 사람들도, 에릭도,"
총알구멍들이 만든 문을 발로 차 무너뜨리고, 쇼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익숙한 탁한 하늘빛 머리카락. 뒤로 대충 묶은 긴 머리. 큰 체격과, 늘 굳어져있는 얼굴.
"단 한명도, 죽게는 두지 않아."
종교 (5, 完)
"오셨나요. 시련님?"
"...너는, 그 때 그 자로군."
빌런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다며, 자살시도을 했던 여자. 뭐, 공포탄을 이용한 페이크였지만.
"당신의 신도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자신의 신이 구원하러 오는 것을요."
"...난 신 같은게 아냐."
"그렇다면, 그를 구하러 온 이유는 뭐라고 설명할건가요~?"
에스터는 에릭을 쳐다본다. 겁먹은듯한 그의 얼굴이 눈에 띈다. 하지만 담담하게, 그리고 침착하게 대답한다.
"단 한명도 죽게 놔둘 수 없으니까."
"와아~!멋지셔라!"
명백히 빈정거리는 말투. 에스터는 인상을 찌푸린다. 울먹이는 듯한 에릭이 그녀를 바라본다. 말하지 않아도 무슨 심정인진 알 수 있을 터이다.
"그렇다면야, 약속대로 인질을 드릴게요. 저희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답니다?"
"...이리 와. 에릭."
"하지만 감동의 재회는 여기까지."
겨우 구속에서 풀려난 에릭은 즉시 에스터의 곁에 달라붙는다. 그녀는 박수를 친다. 뒤에 있던 남자 신도는, 스위치를 꾹 누른다.
"퍼-엉."
이 곳까지는 폭발음이 닿지 않는다. 에스터가 두 쪽 다 구출시도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거리를 떨어뜨려놓은 것이지. 그렇기에 그녀는 입으로 폭발소리를 흉내낸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활짝 웃으면서.
"자아. 이걸로 신도가 아닌 열 다섯명은 죽었습니다."
실험은 끝이에요. 신도의 웃음과, 에릭의 공황이 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신을 믿는 사람을 위해, 나머지 불신자들 열다섯을 죽이는 신이 된 심정은?"
"....."
"당신이라도 이제 신의 고충을 알았겠죠? 신이라는 게, 아무나 자처할만한 게 아니란 것도?"
"...나는."
"곰돌신님이, 얼마나 깊은 괴로움속에서 저희들을 구원하기로 택했는지를?"
그러나 에스터는 표정변화 없는 무표정. 계속 웃는 얼굴인 그녀와는 대조적이다.
"자아. 그렇다면 변변치 못한 몸이지만, 옛날이야기를 해보도록 할까요~!제가 어째서 당신을 시련이라 불렀는지. 왜, 빌런교라는 우스꽝스러운 종교를 만들었는지."
그녀는 팔을 뻗는다. 포용해주듯이라고 서술해왔지만, 이번에는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신의 영역에서의 구원을.
"대정전 때, 저의 부모는 죽었답니다. 사이킥 갱이라고 하는, 변변치 못한 자들에게 말이에요."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허공. 이미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신도, 에릭, 에스터, 그 누구도 그녀의 시선에 닿지 못한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자신의 신 뿐이다.
"그 때는 절망했죠. 괴로워했죠. 슬퍼했어요. 세상에 분노했어요...하지만 빌런이 생기며, 저는 모든 진리를 깨닫게 돼요."
그녀는 손을 움켜쥔다. 뭐라고 형용하기 힘든, 차분한 광기가 서려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그래요. 이러한 파괴만이 진정한 의미의 구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줄곧 차분하고 능글거리던 억양이 마치 비명지르는 것처럼 망가진다. 광기는 침착한 것에서, 격정적인 것으로 성질을 바꾼다. 소리치는 그녀의 모습이 공포스럽다. 저러한 것을 억누르며 생활해왔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ㅡ이 세계는, 파괴! 증오! 모든것은 그것을 위해, 완전한 무를 향해!"
"상처받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더 많은 살육을! 모두에게 공평해지는 세상을!"
"나의 부모도, 빌런의 활동도, 전부 그것을 위한 것! 모두가 모든 것을 잃고, 모두가 똑같이 외로워지는 세계를 위해서!"
"그래요. 그것을...그것을 위해서라면, 나는 그 무엇이라도 희생할 수 있어!"
자신의 목숨도! 타인의 목숨도! 인간다운 감정도, 기쁨도, 사랑받는 존재가 되는 일도! 전부 다, 완전한 파멸의 앞에서는 무의미한 일!
"그렇기에, 그렇기에 신인 당신도...히어로인데도 불구하고 소수를 택했지! 자신의 신도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봐."
"그래요. 즉살명령 또한...세계가 파괴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반증!"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오해라니, 뭐죠? 이제서야, 만인의 목숨이 어쩌니 하는 소리를 지껄일 셈인가요?"
그녀의 시선이 드디어 에스터를 향한다. 이미 제정신이 아님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는듯한 그녀에게, 에스터는 나지막히 말을 건넨다.
"나는, 열 다섯명을 구하지 않겠다고 한 적은 없다."
"또 그 소린가요?하지만 이미..."
그리고 이어 말한다. 그녀를 동요시킬 만한 이야기를.
"그리고 내가 말할 건, 히어로는 혼자가 아니라는 거다."
유일신이 아니라 말이지. 그 말에 그녀의 눈이 잠시 흔들린다. 광기어린 격앙이 담겨있던 표정이 어느새 혼란으로 바뀐다.
"그건, 무슨..."
"...교주님! 예상...예상치 못한 사태입니다!뉴스를 확인해주십시오!"
신도의 무전이 모두에게 들리는 소리로 울려퍼진다. 그녀는 황급히 티비를 키고, 생방으로 전해지는 오후 뉴스를 본다. 그 곳에는, 자신이 예상치도 못한 사태가 벌어져있었다.
-엿같은 백일몽도 끝이다.
-...내가 바로 진정한 클라운의 의지를 이어받은ㅡ
-죽지도 않은 사람을 죽이고...멋대로...
(파크 독백과 이어짐.)
"원조 클라운이, 2대 클라운을 제압하고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
"...분명히 에스터 힐데가르트에게만 시간내에 올 수 있는 위치를 전달하려 했으나, 위치 전달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빌런교측이 전원 제압, 인질들이 풀려났습니다!"
"어째서...왜..."
"...그의 능력인 폭발때문에 무전 등이 부서져 빠른 연락을 취할 수 없었습니다...부디...도주를!"
"어떻게...알아낸 거지?"
에스터는 후, 하고 비웃듯 한숨을 쉰다.
"남의 이름을 빌리고 다녔으면, 더 일찍 붙잡힐 각오도 했어야지. 그렇지 않나. 모방범죄자?"
"...이걸 예상하고 이 쪽을 선택한 건가?"
"예상이고 뭐고, 너희가 일 벌이기 시작할 때부터 코스츔이 발견한 모양인데."
"...젠장...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 코스츔은 없다. 클라운은 사악한 히어로들의 손에 죽었다!"
이번에는 그녀가 존댓말을 집어치우고 소리지른다. 에스터는 아무 반응 없이 그녀를 덤덤히 지켜본다.
"구조를 통한 구원따윈 없어. 오로지 파괴만이 진정한 구원을 불러일으킨다! 네녀석이 취하는 방침은 틀렸다. 엉터리야!"
"...그렇게 생각하나?"
에스터는, 그녀를 향해 한 발짝 다가간다. 위압적인 덩치에 그녀가 잠시 주춤한다. 하지만 에스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한다.
"만약에 네가 그 때의 부모를 구할 수 있었더라면, 네가 그런 것을 믿는 일도 없었을텐데."
".....!"
에스터는 하늘로 뻗어있던 그녀의 두 손을 잡는다. 그리고 겨우 초점을 찾은 두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더 일찍이,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나는...하지만..."
털썩.
이번에는 신성모독자가 아닌, 광신도가 쓰러질 시간이다. 다리에 힘이 풀린 그녀가, 스르르 에스터의 손을 놓는다. 그리고 줄 끊어진 목각인형처럼, 바닥에 내동댕이 쳐진다.
"뭐 하는...!"
"끝났어...나의 삶의 의미는 끝났어."
"...일어서. "
"이렇게 되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모두에게 끝없는 절망을. 공평하게 주어지는 고독을. 상처와 파괴로 빚어진 이상향을.
"구원으로...사람은 구조받을 수 없어."
"...교주님."
"...나는...그것을 믿고..."
눈물이 흘러나온다. 그런 이상적인 히어로따위, 존재하지 말아야 하는데. 모두를 구할 수 있는 존재따위, 없어야 하는데. 그래서, 자신은 모두를 공평한 파멸로 이끄는, 빌런신을.
"곧 있으면, 경찰차가 올 거다."
"......"
"뭔가 할 말은 없나?"
에스터의 질문에, 마지막 힘을 짜내듯이 그녀는 웃는다. 바닥에 엎어진 헝클어진 머리칼이 처연해보인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당신이."
"......"
"언젠가는 당신도, 나처럼 파괴를 수단으로 삼게 될거야."
"겨우 한다는 게 저주의 말인가."
피식, 웃는다. 구멍뚫린 풍선에서 마지막 바람이 새어나오듯. 그렇지만 다시금 눈물이 새어나온다. 결국엔 나약한 인간이었다는 거지.
"미안해...모두들..."
그것이 빌런교라는 어처구니없는 사이비종교의 교주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그 날, 교주와 함께 교도 한명이 잡혀갔고, 에릭 앤서니와 열 다섯명의 인질들은 모두 무사히 구출되었다.
-에릭 앤서니 구출.(1명)
종교(후일담)
신이라는 것은 의지할 곳 없는 나약한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 과학기술의 발달로 손쉽게 부정당해버리는 희미한 것.
그렇다면, 어째서 아직도 종교는 모습을 감추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분명, 인간이 너무나도 약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ㅡㅡㅡ
ㅡ에스터씨. 신체검사 분석 결과가.
에스터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멀뚱히 서있었다. 상황파악이 안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들은 말이 의미로 연결되지 않아서, 아까 들은 말을 다시 계속 물어보고 있다.
"뭐?"
"그러니까, 분석 결과가 나왔어요."
"아니. 거기까진 들었어. 그 다음."
"...벌써 세 번째 묻는 것 같은데, 에스터씨."
그동안 농담삼아 에릭이나 주변인들이 말하곤 했던 얘기이다만, 설마하니.
"신장 191cm, 나왔습니다."
정말로 안 닫힌건가. 성장판. 딱히 싫은 것 까진 아니지만 당황스러웠다. 지금 20대 후반인데. 남자들도 이 쯤되면 더 안큰다. 진짜 검사해봐야 하는거 아닐까. 성장 이능력?
"...저번하고 똑같은 기계로 잰 거지?"
"저희 연구소, 몇 달만에 기계를 바꿔치울만큼 그렇게 돈이 많지 않아요."
"그럼 혹시 고장났다던가..."
"아. 에스터씨. 저는 줄었다고요! 0.2센티!"
에릭의 불만이 뒤에서 터져나온다. 검사 결과를 전해주던 A씨와 에스터의 시선이 에릭에게 향한다.
"그 정돈 오차겠지."
"기분이 별로라고요!"
"연구하다 자꾸 엎드려서 자니까 그런 것 아닌가."
"그야, 일하다보면 어쩔 수 없다고요! 에스터씨 미워!"
에릭이 팔을 뻗고 분노를 나타내듯 버둥거린다. 얼마전까진 신이라고 했으면서. 어처구니가 없다. 태세 전환이 너무 빠르다.
"에스터씨, 제 키 먹으면서 자라는 거죠!빨리 토해내!"
"...진정해."
A씨는 그런 두 사람을 웃으며 지켜보고 있다. 역시 사이가 좋네. 두 사람.
ㅡㅡㅡ
교주가 이즈모에 연행되고, 에릭은 에스터에게 기대다시피 선 뒤 그것을 지켜본다.
"돌아가자."
"......"
"......?"
이미 눈물범벅인 에릭의 얼굴이, 또 다시 새로운 눈물로 뒤덮인다. 와아앙. 에스터씨! 무서웠다구요! 정도의 발랄한 반응을 기대한 에스터는 뒤이은 말에 당황한다. 가라앉은 목소리다.
"저는...약하고...무능해서...이번에도 에스터씨에게 폐를 끼쳤어요."
에릭은 에스터의 트라우마를 알고 있었다. 시체. 그리고 구하지 못하는 것. 만약 이번에 클라운이 출동하지 않았다면, 에스터는 어떻게 됐을까.
"...그래서...제가 바보같아서...그냥...저는..."
에스터는 그런 에릭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 기분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약함에 대한 고뇌. 하지만.
"...에스터씨?"
에스터는 두 팔을 벌려, 눈물짓는 에릭을 끌어안아준다. 울지 말라며, 등을 토닥이면서.
"너는 충분히 강해. 자신의 약함을 알면서도, 그에 맞춰 신념을 꺾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
"....."
"그리고, 아무리 상처입더라도, 언제나 너로서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저는..."
"이번의 교주는, 그런 자신의 나약함을 견디지 못해 이런 일을 저질렀지. 네가 못된 일에 손대지 않고 이렇게 무사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분명 너는 대단한 사람이다."
"...으...으..."
다시금 에릭이 훌쩍이기 시작한다. 눈물이 방울방울대며 뚝뚝 떨어져내린다.
"그리고, 약하다면 뭐 어때. 약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강한 자. 히어로의 일이다."
그러니까, 울지 마. 너는 어떤 부분에선 나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고, 이 일에선 내가 조금 더 강했을 뿐이다. 사람은 원래가 그렇게 강함과 약함을 나눠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일방적인 구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에릭.
한 명의 신도가, 자신의 신의 품에서 끊임없는 눈물을 훔친다. 종교가 부정당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진정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일까.
ㅡㅡㅡ
"191cm... 190대..."
에스터는 고뇌한다. 이 정도로 끝없이 크는건 되려 병 아닐까 걱정되는데. 에릭이 뒤에서 퐁퐁 투닥투닥 때리는 것은 무시다. 애초에 아프지도 않다.
"에스터씨. 이제 반응도 안해주죠! 미워! 이 못난이!"
"그거 욕이라고 하는거냐. 에릭."
"제가 진짜로 욕하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죠! 그 교주도 잠시 쫄았다구!"
물론 거짓말이다. 조금도 타격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비웃음당했지.
소장 A씨는 조용히 미소짓는다. 두 사람의 돈독한 사이는 언제나 보기 좋았다. 한동안은 이런 평화가, 계속 지속되어주면 좋겠네.
오늘도 에릭연구소는 평화롭다.
- 에스터,에릭 - 하나비의 선물
(하나비 일상에서 이어짐. 33스레 전후)
"......"
"......"
에릭과 에스터는 당신이 주고 간 선물을 바라보고 있다. 보들보들하고 따스한 목도리 두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이건..."
"...대...단해..."
에스터가 뭔가 말하려는 사이, 에릭이 갑자기 급격하게 눈을 반짝인다. 에릭? 에스터는 그런 에릭을 쳐다본다.
"스미모토씨...대형 소속사와 관련있는 사람이었군요!! 놀라워요!"
...아니. 스미모토의 약자겠지. 에스터가 작게 태클을 걸어본다. 에릭은 아랑곳하지 않고 목도리를 들고 빙글빙글 돈다.
"스미모토씨. 어디로 가신 걸까요? 산타였던 걸까요?"
어쩐지 머리색깔도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보였어요- 빨간 브릿지도 그렇고-...그런가. 에릭은 반쯤 농담 반쯤 진담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뭐, 즐거워보이니 다행이다.
ㅡㅡㅡ
다음날, 에스터는 평소와 같이 출근을 한다. 아니, 다른 점이 있다면, 패션 정도일까.
와이셔츠 위에 밤색 가디건을 입고, 하의로는 검은 레깅스와 롱스커트 차림이다. 그리고 목에는 작은 산타가 준 겨울 선물이 둘러져있다.
에릭은 언제나처럼 연구소 안이었고, 그에 걸맞는 연구원세트였으나, 마찬가지로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맞이하게 될 이번 겨울은 조금 더 따뜻할 것 같다.
- 에스터 과거
(33스레 전후)
에스터 과거(1)
소장은 체스판 위의 체스말들을 인형극의 인형마냥 움직이며 어린 에스터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였다. 그 대다수가 어린 아이가 좋아할 법인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에스터는 동화책에서는 들은 적 없는 이야기들이고, 체스말을 현란하게 움직이는 소장이 신기해서 나름대로 이 얘기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자. 그럼 이 얘기의 교훈은 뭐라고 생각하니?"
어린 에스터는 초등학생 또래치고 몸집이 작고, 소심한 성격이었다. 우물쭈물하며 자신 나름대로의 대답을 도출해낸다. 소장은 그런 그녀를 보며 미소짓는다.
"사...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는...많은 힘과...인기가 필요해요."
"흐음. 너는 그렇게 생각했구나?"
소장은 부드럽게 미소짓는다. 이럴때만 보면 자상한 할머니같은 분위기였다. 그녀는. 아마 에스터는 신뢰받는다... 는 표현을 아직 몰라서 인기라고 바꿔말한 거겠지.
"그 말도 정답이라고 할 순 있지만, 뉘앙스가 조금 달라. 아무 힘도 능력도 없는 인간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든다면 그 결과는 파멸일 뿐이라는 거지."
"니앙수...?"
"음. 그러니까, 집중해야 할 부분이 다르다고 할까? 말의 앞뒤 분위기가 다르다는 얘기야."
소장은 그렇게 말하곤 체스판의 흰 폰을 하나 손에 잡는다. 그리고 검은 비숍을 하나 손에 쥔다.
"이를테면, 한밤중이었는데 아빠가 뛰어다니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이건 왜일까?"
"...시끄러우니까."
"그렇다면, 네가 다리를 삐었을때 뛰어다니지 말라고 하면?"
"그건... 제 다리가 더 심하게 다칠까봐..."
"그런 거야. 똑같은 말이라도 어느 상황에서 말하느냐에 따라 다른 말이 되지. 문장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과 전하고 싶은 부분이 다른 거야. 첫번째는 주변사람을 걱정하는 말이고, 두번째는 너를 걱정하는 말이지?"
에스터는 고개를 숙였다. 조금 알기 어렵고 알쏭달쏭했다. 소장은 미소짓더니, 갑자기 얼굴을 싹 굳히고 말한다.
"나는, 무능을 드러내는 것을 죄라고 생각한단다."
소장은 자상하게 이야기를 해주는 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 얼굴과 목소리가 싸하게 변할 때가 있었다. 에스터는 그것이 무서웠지만, 그런 소장을 완전하게 미워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럴 때만 빼면 언제나 자신에게 옛날얘기를 들려주는 좋은 할머니이고, 부모님과 다르게 자신과 늘 놀아주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약한 사람이 사람을 돕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해요?"
"아~? 그거야, 힘을 기르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지. 자신이 무능하게 행동하지 않도록."
그렇게 말하고는 뒷말이 이어졌다.
"아니면, 더 강한 사람을 위해 희생하던가."
그 무능함을 드러내지도 않도록. 에스터는 숨을 삼켰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잘 알수 없었다. 아무튼 그렇다면, 나는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얘길까.
입을 다문 아이가 사랑스러운지 소장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쿠키 먹을래? 같은 이야기를 건네면서. 아니. 너는 군것질을 싫어하는 어린아이였지? 특이하구나. 에스터 너는. 아주 얌전하고 착한 아이야.
부모 속을 썩이는 일따위는 절대 없겠네.
(37스레)
(2)
아아. 회오리바람이 놀고서는
아아. 푸른 하늘도 살며시 웃고 있어
그래. 어쩐지 나른한 오후에
사랑했었던 나의 묵크는 죽었어
Eight - 요츠야씨에게 잘 부탁해
ㅡ
...간부진 사이에서, 비밀리에 실험을 진행한다나봐. 비밀리에? 왜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극비사항이라 그렇다는데. ...뭐야. 우리를 동등한 연구원으로 취급 안 한다는거 아냐?...글쎄. 연구실에서의 소문이 수군수군. 에스터는 그것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조용히 다가온 에스터를 다른 연구원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저기... 라고 작은 목소리가 운을 띄우자, 그제서야 깜짝 놀라 인사를 건네준다.
"많이 자랐네. 에스터."
"...고, 고마워..."
고등학생인 에스터는 평균보다 큰 편이었다. 대정전 이후, 부모가 걱정되어 연구소에 발걸음을 향한 것이겠지.
"엄마아빠는...어디?"
"아. 클라인 부부라면 실험실에 있어."
"대~단하신, 간부님들의 실험이래서, 우리같은 일반연구원은 내용도 안알려준댄다."
A씨의 자상한 말과, B씨의 빈정거림이 이어진다.
"그러고보니 에스터는 대정전동안 혼자 있었겠네. 무서웠겠다..."
"괘, 괜찮아. 이제 고등학생이고... 다 컸는걸."
"고등학생이 뭐가 다 큰거야. 클라인 부부는, 실험보다 자기 딸래미를 더 신경써야 한다고~...그런의미로, 간부진들이 하는 실험 몰래 캐주지 않을래? 너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바닐라. 애에게 뭘 시키는 거야."
"다 컸다잖아~"
"네 입으로 아니라면서."
두 사람, 사이가 좋네... 에스터는 혼자서 그렇게 생각한다.
"...실험실에, 내가 들어가도 되는걸까...?"
"앗. 너네 아빠다."
B(바닐라 로제)씨는 그 말을 마치고는 잡아라! 라는 소리를 내며 미스터 클라인을 붙잡는다. 우당탕탕.
"뭐 하는거야! 중요한 실험재료를 들고 가는 참인데!"
"이 녀석! 혼자 출세했다고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말이야!"
"너, 연상에 대한 공경을 조금이라도 갖추지 못해!? 그 말투는 뭐야!"
"시끄러! 니 딸래미나 제대로 챙기고 말해!...어라?"
그가 떨어뜨린 상자 안에는 자그마한 강아지가 들어있다. 에스터와 A씨는 관심있다는 듯 상자에 모여들었다.
"귀여워..."
"...아앗! 뭐하는 거야!"
클라인은 강아지를 쓰다듬으려는 에스터의 손등을 탁 때린다. 아야. 그녀의 손등이 빨갛게 부어오른다.
"이 자식. 에스터에게 상냥하게 하지 못해!?"
"시끄러워! 중요한 실험 재료인데..."
"...재료?"
A씨는 클라인의 입에서 나온 말에 반응한다. 클라인은 하아, 하고 한숨을 쉰다.
"...간부진들끼리의 일이야. 너희가 알 필요 없어."
"아니. 알아야 해. 생명으로 실험을 하는거야? 일반 연구원들 몰래?"
"실험용 쥐나 해부용 개구리같은건 다들 흔히들 쓰잖아? 근데 왜 강아지에게만 동물실험의 도덕성을 운운하지?"
"...그건 그렇지만..."
A씨는 논리가 막혀 입을 다문다. 에스터는 이 중요한 대화 도중에도 강아지의 머리쪽 얼룩무늬가 신기하게 생겼다고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클라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강아지를 상자에 넣는다. 아. 저 무늬 기억해둘거야. 에스터는 혼자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비난할 거면 환경 개선이나 요구해줘. 그래야 실험동물들도 더 잘 살지."
"......"
"저..저기, 아빠."
"왜."
"그 강아지...죽지는 않는 거지...?"
클라인은 싸늘한 눈으로 에스터를 바라본다. 저 날카로운 눈매는 가족인 자신이 보기에도 다소 무서웠다. 에스터는 주춤한다.
"힘이 닿는다면."
그런 말을 남기고 그는 연구실로 들어간다.
......에스터가 시체의 산에서 그 독특한 머리얼룩을 발견하는건 조금 더 나중의 일이다.
(3)+현재...?
중학생의 에스터는, 비교적 평범한 신장의 그 나잇대 아이였다. 그 전까지 에스터의 앞에서 소장은 체스말들을 늘 동화 인형극을 위해 사용했으나, 무슨 일인지 어느 날 문득 체스를 가르쳐준다 나섰던 것이다. 에스터는 조심스레 말을 옮기며, 상대의 말을 잡는다.
"체크."
"...앗..."
"자. 이제 공격을 피해야지?"
에스터는 달달 떨리는 손으로 말을 움직인다. 나이트로 룩을 잡는다. 소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퀸으로 나이트를 잡아버린다.
"체크."
"......"
"왜 피하지 않니?"
"여, 여기서 퀸을 움직이면... 비숍이 잡혀버려요."
"하지만 네 퀸으로 나의 퀸을 잡을 수 있잖니. 킹을 지킬 수 있고 말이야."
에스터는 우물쭈물한다. 소장은 느긋하게 미소지으며 에스터를 본다. 자신없다는 목소리로 에스터는 말한다.
"하지만...그러면, 비숍을 버리게 되니까..."
"대신 퀸을 잡게 되잖니."
"...아까워서..."
"퀸이 더 가치가 높은 말인데도?"
에스터는 묵묵히 말들을 바라본다. 의기소침해진 얼굴이 처연하다. 소장은 그저 웃음지을 뿐이었다. 어리구나.
"체스는 더 많은 말을 살리는 게임이 아니야. 상대를 몰아가 체크메이트를 만들어내는 게임이지. 왕을 위기에 빠트리는 것, 그것만을 생각하렴."
"...죄송합니다."
"사과할 것이 뭐가 있니?"
에스터는 망설이더니, 조그맣게 말을 잇는다.
"저, 저는... 소장님이 이걸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자주 쓰고 그랬다보니..."
꼭, 말 하나하나가 이야기속의 등장인물같아서ㅡ버리기가 어렵다. 그런 이야기였다. 에스터가 말을 채 마치지도 못한 때, 소장은 웃음을 터뜨린다.
"...하하하하!"
"...소, 소장님...?"
"아니, 아니, 미안하구나. 나쁜 뜻은 없었단다!"
귀여운 아이로구나. 소장은 머리를 쓰다듬는다. 에스터는 쑥쓰러운지 얼굴을 붉힌다. 아직 앳되고, 순수한 티가 많이 남아있었다. 에스터의 머리칼을 쓸어내린 뒤에 소장은 계속 이야기를 진행한다.
"하지만 이야기속 인물들도 전부 도덕적으로 올바른건 아니었잖니? 죽어도 싸인 사람들도 있었을텐데."
"...그치만..."
"후후. 죽는 것이 무섭니?"
에스터는 침묵한다. 누군가가 죽는 이야기는 무서웠다. 꼭, 나중에 있을 그 사건의 영향이 아니더라도ㅡ사람이 죽는 것을 유쾌하게 바라볼 수 없는건 당연한 일 아닌가. 소장은 에스터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든말든 상관도 없다는 듯이, 그저 귀여워하는 눈으로 볼 뿐이었다. 사랑스럽고 어린 작고 무능한 자야.
"...너는, 나이트를 잘 활용하는구나."
"......네?"
소장은 에스터가 쥔 나이트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다른 손으로는 턱을 괸 채 미소지으며.
"나이트의 활용은 체스의 초보와 고수를 가르는 기준이 되지. 너는 비록 말을 버리진 못하지만, 나이트를 잘 쓸줄 아니 분명 실력이 뛰어나게 될 것이다."
에스터는 다시금 고개를 숙인다.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가, 감사합니다..."
"후후."
어느 때에는, 그런 평화로운 날들도 있었더래다.
ㅡ
"...씨."
에스터는 문득 정신을 차린다. 에릭과의 체스중이었다.
"에스터씨! 둘 차례라니까요?"
"...아. 미안."
"체스에는 무르기같은거 없다구요. 자. 빨리!"
그럼...어디. 에스터는 에릭의 말을 잡는다.
"체크메이트."
"와아앙! 에스터씨 미워."
"거 참. 그럴거면 두자고 하질 말든가."
"...우우. 두고 봐요. 다음엔 제가 이길테니까!"
에스터는 승리를 거머쥐었는데도 조금 어두운 표정이었다. 에릭은 의아한지 묻는다.
"...에스터씨. 왜 그러세요?"
"......어?"
"최근, 표정이 어두워보여요. "
"...아니. 생각하느라."
"정말이지. 실력도 늘었으면서, 절 이겼으면 좀 더 기뻐하란 말이에요. "
에스터씨 바보. 에릭의 그런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그녀는 다시금 고민에 빠져버리는 것이었다.
"......저기. 에릭."
"네?"
"...몇가지, 상담하고 싶은게 있는데."
"네! 뭐든지 말해보세요."
드디어 에스터가 자신을 의지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에릭은 기뻐서 외친다. 에스터는 이 와중에도 끊임없이, 뭔가를 고뇌중이었다. 그러더니 오랫동안의 침묵을 깬 채, 그런 말을 꺼낸다.
"하나는, 이즈모에 관한 일..."
ㅡ
(38스레)
과거 (4)
...무슨 상황이었더라?
그래. 분명 간부진만 들어갈 수 있는 연구실에...멋대로 들어왔지. 에스터는 미리 경찰에게 연구소의 대략적인 구조도를 줬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틈을 타 지하의 연구실로 쳐들어갔지. 간부진들끼리만의 연구가 진행중인...일반연구원들이 들어오려 할 경우 해고당할 수도 있다고...해고가 두렵지 않은 자신에겐 상관없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비밀연구실을 본 일반직원이 해고당했다는 이야기 이후, 그 직원의 신원은 불명이 되었다. 어딘가에서 자살했다는 소문이 가장 설득력있게 돌았었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자살이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스터는 바들바들 떨며 총을 들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소장을 겨눈다. 소장의 눈에는 희번득한 광기가 감돈다.
"그래. 고작 이런 것이 보고 싶어서 찾아온 거니?"
사방이 유리벽으로 된 방. 유리벽 안에 있는 수많은 우리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수많은 동물들과... 아이들. 어린아이 한 명은 실험대에 놓여, 구속된 채 거품을 물고 있다. 곳곳에 도무지 용도를 짐작하고 싶지 않은 도구나 약품들이 늘어져있다. 에스터는, 식은 땀을 흘린다.
"더 보여줄수도 있단다. 단지 그 댓가를 치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스무 살의 에스터는 아직 갓 성인이 된지 얼마 안 되어 앳된 티가 났다. 키는 170대에 달하는 큰 키였지만 몸만 컸지 아직 행동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불안정함이 보였다. 애초에 키는 컸지만 여전히 말랐고 약한 몸이었다. 에스터는 총을 겨누지만, 이것을 자신이 쏠 수 없단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약한 사람의 무능을 경멸한단다. 소장의 말.
'쾅-'
그러나, 때맞춰 경찰이 찾아왔다.
능수능란하게 차례로 간부진들을 제압하고 우리속의 아이들을 구조해낸다. 에스터는 순간 그 절도있고 멋진 모습에 넋을 잃지만, 이내 얼른 다른 방을 향해 뛰어간다. 더 구출되지 않은 아이들이 있을까봐. 그랬는데...
... 그 안에서 발견한 것은, 수많은 시체들이었다.
시체를 보관해두는 방인 듯한 그 곳에는, 수많은 시체들이 누워있었다. 투명한 유리관에 누워있는 시체들은 차마 눈뜨고 힘들 정도로 부패한 것들이 대다수였다. ...시체를 가지고도 어느 정도 시험을 이어서 하기 위해...혹은 시체들이 들키지 않도록 임시로 보관하고 있는 방이거나...어느 쪽이든 끔찍했다. 에스터는 충격적인 광경속에서, 멍하니 앞을 향해 걸어간다.
"......"
...고개를 돌리니 동물 시체들도 있었다. 인간을 보관하는 곳 보단 작았다. 도무지 살아있는 생물의 몰골이라고 알아보기 힘든 무언가가 눈에 꽂힌다. 머리에 그려진 유독 특이한 얼룩만이 그 때 봤던 그 강아지임을 확인하게 한다.
"...아, 으..."
에스터는 입을 틀어막는다. 헛구역질을 한다. 무섭다. 살아있었던 것들이, 인간이었던 것들이 저런 흉측한 몰골로 변해있다. 어중간하게 인간같은 그것이 이루말할수 없는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사람이 죽으면 원래 이렇게 되는 건가. 사방에서 코를 찌르는 시체냄새가 어질어질하게 한다. 이 방은, 너무 춥다. 몸을 덜덜 떤다.
...전부 다 어린이의 시체다. 인간의 것들은. ...에스터는 주저앉는다. 바닥 곳곳에 피로 얼룩진 자국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나는, 나는... 더 일찍 눈치챘어야 했다. 보고 싶지 않은데도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다. 대체, 무슨 짓을 하다가 죽으면...저 지경이 되지? 부들부들 떨린다.
"아, 아아아아..."
말이 되지 못하는 신음이, 터져나온다. 그저 눈물흘린다. 시체들의 방 한가운데, 무능하고 약한 자신이 무너져있었다. 구하지 못했다. 이렇게 많은 생명들이 희생당할 동안,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일상을 만끽하고 있었다. 더 , 일찍 알았어야 했는데. 무모하더라도...뭔가...했어야 했는데...마치 자신이 이 광경을 만들기라도 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끝없이 눈물이 터져나온다. 도무지 멈출 것 같지 않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린다. 이런 것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았는데도, 이 방 어딘가에 살아있는 것이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믿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이 죽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이 하고 있던 일이 이런 것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걸어갔다. 시체들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쳤다. ...적어도 눈이 남아있는 경우엔 그렇게 했다.
"......"
힘없는 눈물빛이 맥없이 쓰러진다.
(38스레)
과거(5,end)+테이프
"..."
눈을 떴을 때, 에스터는 자신이 쇼크로 기절했다는 것을 쉽게 추측했다. 오열할 수록 숨이 막혀가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얼마나 울었는지조차 충격에 가려져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머리가 띵하고 울릴 정도니 상당히 울었구나...추측할 뿐이었다. ...이윽고, 에스터는 어깨에 담요가 둘러 덮어져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구조자를 위해 준비해두는 것일까. 에스터는 담요를 만지작댄다. 그리고는 잠시 주위를 둘러본다. 여전히 연구소 안이다. 다만 시체들이 있던 방이나 인체실험이 일어나던 곳이 아니라 연구원이 생활하는 방인 모양이다.
"일어나셨나요?"
"...저. 이건..."
경찰분이 자상하게 안부를 물어온다. 에스터가 담요에 대해 알고 싶다는 눈치를 보이자 그는 대답대신 힐긋 한 여성에게로 눈길을 보낸다. 흑발의 안경을 낀 경찰관이었다. 에스터는 그녀를 쳐다본다. 아마 이것은 당신이 둘러준 것이겠지.
"용기내어 신고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에스터는 그런 말을 하는 그녀를 빤히 바라본다. 그러고보니, 신고할 때 녹턴 드네리스...라고 이름이 불리는 것을 들었던 것 같다. 에스터는 쉰 목소리로 뭔가 말하려다가, 다시금 울음을 터뜨린다. 저, 저는. 코끝이 저릿하다. 이렇게 울다간 눈이 녹아내려버리지 않을까...같은 징그러운 생각도 해본다. 인간은 약하다. 그것이 어떤 의미로든. ...이제는 어른이 되어가지고 이렇게 펑펑 울다니 징그럽다.
이 때 당신의 표정은 보지 못했다. 눈은 눈물로 흠뻑 적셔져 앞이 보이질 않았고, 귀는 계속 운 후유증인지 이명으로 멍멍했다. 그렇지만 분명히 그 목소리를 기억했다. 말투를 기억했다. 딱딱한듯 들려도 자신을 달래주려 하는 그 따스함과 구조자용치곤 보들보들한 담요의 감촉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신의 위로의 말이 귀를 울리고 간 것도.
"당신의 덕에 생명을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공입니다."
구하지 못했다며 펑펑 우는 자신을 달래려 애쓰던 것이 저릿할 정도로 기억에 남았다. 그 깊고 무서운 상처 속에서 당신이 나를 토닥여주었던 것이, 잊혀질 수 있을 리 없었다. ...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당신의 목소리를.
ㅡ
첫 번째 테이프의 다른 한 명의 목소리를 구제프라고 추측하였으나, 꽤나 예전의 것이기도 했기에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보다도, 구제프랑 직접 만나본 일 자체가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첫 테이프를 계속 다시 돌려듣는 것은 포기했다. 자신이 듣지 못한다 해도, 누군가는 알아들어 주겠지.
...에스터는 라디오에, 두 번째 테이프를 계속해서 재생하고 있었다.
"...그네들의 영웅놀이를 이즈모에서 공식적으로 도와주고 임금까지 지불해주는데..."
......
"활동 중 일어나는 피해 말입니까? 그건 그 개인의..."
...
"...저희는 그때마다 버리기 좋은 패들을 버리고, 다시 카드를 뽑으면 되는 겁니다."
달그락.
테이프가 멈춘다. 에스터는 다시 테이프를 꺼낸 뒤, 도로 라디오를 세팅한다. 그리고 또 다시 듣는다.
"채용 조건은 없습니다.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정하고, 다른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어떻게든 다르게 생각해보려 애써봤자,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와버린다. 갈 곳 없는 마음만이 줄곧 이 상태로 방황하고 있었다. ...에스터가 기억하지 못할 리 없었다.
자신이 잊을 수 있을리 없었다. 당신의 목소리를.
- 에피소드 5 에스터의 독백
(36스레, 에피5 이후)
이번 임무가 끝난 뒤, 에스터는 잠시 생각한다. 펜과 종이를 들고,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다. 테이프를 다시 돌려보고 있다. 증오에 찬 누군가의 말. 히어로라는 것이 생기기 전의 날짜, 히어로를 폄하하고 히어로가 지금 온전한 대우를 받지 못하도록 한 목소리. 제대로 들리지 않은 세번째 테이프. 거기에, 마지막에 나온 진저 그레이라는 이름.
선택이라는 단어 하나만이 달랑 놓인 채 지지직거리며 제대로 들리지 않는 세번째 테이프는 넘어가자. 우선 더 옛날 것인 두 테이프는 선명하다. 세 번째 테이프만이 소음이 선명한 것을 보아하니 오래되어서 망가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고로 망가졌거나, 인멸이겠지.
첫 번째 테이프는 누군가의 증오심 담긴 대화. 이런건 사생활이겠지. 자신과 모든 것에 증오를 품는 사람과, 그 자를 말리는 사람. 두 번째 테이프는, 히어로가 만들어지기 전의 것이다. 히어로가 정식으로 만들어지기 전, 그것을 일종의 얼굴마담, 장기말 수준의 영향력으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그리고 그것이 빌런측의 누군가에 의해 일어났다, 가 되겠지. 이 곳은 빌런의 아지트니까.
...네 번째 테이프는 진저 그레이에게 '잘 부탁한다' 고 하는 말. 빌런의 아지트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평면적으로 본다면 이것은 분명 그를 빌런으로 지목하기에 안성맞춤인 증거이다... ...그러나,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일단 이것만이 어제 막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테이프라는 점부터가 수상하기 짝이 없건만, 그것보다 먼저.
먼저, 다른 테이프와는 달리 유일하게 주어가 명확하다. 진저 그레이와 구제프가 서로를 빌런으로 지목한 시점에서, 빌런의 아지트에서 발견된 이 자료는 분명히 커다란 증거가 되겠지. 진저 그레이를 빌런으로 지목하는 데에.
...일단 진저 그레이가 빌런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떠나보자. 만약에 가드맨이 빌런측이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저 증거는 수상하기 짝이 없다.마지막 테이프에는 '어제'의 날짜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진저 그레이가 구제프에 의해 빌런으로 지목받은 것은, 그보다 더 전이다.
왜 굳이 진저 그레이가 의심받는 바로 그 시점에서, 진저 그레이를 지목하는데 증거로 쓰이기 딱 좋은 테이프를 만들었지?
분명 이상하지 않은가? 만약 그가 빌런측이라면, 빌런 진저 그레이가 선량한 히어로 구제프를 지목한 것은 히어로의 분열과 빌런측의 우세를 위해 분명 커다란 성과이다. 실제로 지금 구제프를 의심하는 사람과 진저를 의심하는 사람으로 나뉘어 히어로측은 상당한 혼란상태가 되었다. 이 상황에서 빌런측이 빌런인 진저랑 무의미하게 접촉하는 것은 진저가 빌런으로 의심받는 것을 가속시킨다. 거기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이름이 언급되는 테이프를 녹음해둔다니,가드맨이 다 차려놓은 밥상을 엎어버리는 거나 다름없겠지. (그러고보니 최상급 고기에 쓸데없이 글씨를 썼으니, 밥상을 엎을 수도 있겠다. 역시 빌런은 극악무도하다...)
마치, 빌런측이 진저 그레이를 작정하고 빌런으로 지목하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물론 빌런측이 어마무시하게 무능해서 '빌런 진저 그레이'가 열심히 해놓은 활약을 엎어버리게 된 걸수도 있지. 진저 그레이가 맨 처음부터 빌런이었다...혹은 진저 그레이가 배신하고 빌런측에 붙었다...고 말이야. 그렇지만 이 테이프가 미심쩍은 것은 이것뿐이 아니다.
그래. 만약 진저 그레이가 빌런이라는 증거를 찾아냈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것으로 인해 상황은 어떻게 되는가?
우선 구제프의 결백이 증명될 것이다. 빌런갱생프로젝트도 계속 인정받게 된다. 자신이 동경해 마지않는 사람은 이제 불안에서 벗어나게 되겠지. 더 이상 겁먹을 필요가 없다. 당신의 선량한 동생은, 단순히 배신자에 의해 끌어내려질 뻔 했을 뿐이다. 마침 진저는 빌런을 혐오하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빌런즉살에도 어느정도 긍정적이었으리라고 볼 수 있을것이다. 온건파의 힘이 강해지겠지... 그래... 이 증거물 하나때문에.
...그렇다면, 히어로의 혼란을 잠재워주기에 딱 좋은 증거를... 바로 '어제' 만들었다는 것이 아닌가? 그건 역시 이상하지 않은가?
왜? 굳이 진저와 만났지? 왜 진저 그레이라는 이름을 읊는 테이프를 만들어냈지? 누군가가 이 테이프를 발견하기만 하면, 이 테이프가 증거가 되기만 하면 모든 것을 전부 망쳐버릴텐데? 히어로측은 다시 평화로워지고, 빌런측에서 심혈을 기울여 심어놓은 스파이 진저 그레이는 추락할텐데? 왜 굳이 빌런측이 불리해지기 위한 증거만을 만들어냈나?
에스터는 하나의 가설을 세웠다. 이것은 진저 그레이가 빌런이건 아니건 적용될 수 있는 가설이다.
ㅡ빌런측은, 진저 그레이를 의도적으로 지목하기 위해 증거를 만들었다.
그래. 진저는 애초에 버리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가 선량한 히어로건, 배신자건 말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런 증거를 굳이 만들어서 그를 의심받게 할 이유가 없다. 빌런측의 진짜 목적은 진저 그레이를 통해 히어로측에 혼란을 주고 구제프를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어느 쪽이 진짜 빌런인지 모르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이즈모는 분열하고 그 상태는 분명히 빌런에게 이득이 있을텐데, 굳이 '진저 그레이'가 빌런임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증거를 만들었다.
만약에 진저 그레이가 빌런으로 지목된다면, 이 노골적인 증거에 의해 자연스럽게 구제프는 무죄가 된다. 이즈모 본부는 검정과 흰색이 구분되지 않는 회색지대가 아니게 된다. 흑백이 또렷하게 구분되는 체스판처럼 된다.
이로 인해 추측하는 빌런의 진짜 목적은, 구제프 진영의 영향력을 올린다. 지위를 확고하게 한다.
그것을 위해서 진저 그레이를ㅡ그가 빌런이건, 히어로건ㅡ버림말로서 사용한다.
애초에 테이프로 녹음한다...는 행위는, 보통 상대의 유죄를 위한 증거를 만들기 위함이 아닌가? 합법적이고 공식적인 활동을 하는 공적인 자리에서는 보통 한 말 하나하나를 녹음하곤 하지. 그러나 빌런은 자신들의 무엇이 기록으로 남건 자신에게 불리한 것들 뿐이다. 얼굴, 이름, 지문... 기록을 남기는 것은 '떳떳한 행위'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닌가. 당장 지금 이 가면을 받은 것도, 어찌됐건 '히어로가 한 일'임을 숨기기 위해서가 아닌가. 얼굴이 드러났을때 히어로에 대한 여론이 나빠질까봐 히어로임을 숨기기 위해서였지. ...본인은 전혀 숨겨지지 않았지만.
...아니. 자신의 신변이 숨겨지지 않았다는 것은, 오히려 기회 아닌가?ㅡ왜냐하면, 자신은 떳떳하지 않은 일은 하나도 한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즉살명령? 에스터는 원래부터 그런 걸 지킨 적이 없었다. 애초에 잘못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성향을 알면서도 이렇게 누군지 뻔히 보이는 차림만을 주고 뛰어들게 한 이즈모의 잘못이다. 하다못해 머리모양이라도 다 감춰지게 했어야지 하지 않겠나. 그리고 지금 자신의 모습이 감춰지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가 아주 노골적이라는 것... ...그것은, 자신이 이 현장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던 에스터는 펜을 멈춘다. ...하지만, 자신의 예측이 전부 사실이라면.
"......"
...당신은, 어떤 상태가 되는 걸까.
에스터는 녹턴의 마음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자신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고통이라고 여겼다. 직접 겪지 못한 막연한 고통이기에 압도적인 것으로 여겼다. 보통은 그 반대가 되곤 하거늘, 자신이 약한 사람이라는 흔적이자 증거였다. ...에스터는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말하는 것은 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상처입히더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이 올바른 일이라고 해도, 누군가를 상처입힐 수 있다.
"... 다시는 만나주지 않겠지. 나를. "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은 원래가 그런 사람이었다. 펜을 놓는다.
- 에스터의 메모
- (36스레, 에피5에서 이어짐)
(1)
1. 진저 그레이가 빌런이고, 구제프는 무고하다
->빌런측은 무능하게도 자신들에게 들어온 스파이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이렇게 분석된다.
기본적으로: 진저가 터뜨려준 기회를 잘 활용하려면 진저가 빌런이라는 증거를 최대한 남기지 않았어야 했다.((진저가 히어로측의 의심을 터뜨린 시점에서 진저를 도와주기 위해 가장 해야할 일은 ""가만히 있는 것""))
-그러나 굳이 진저가 히어로들의 불신을 키워낸 '이후'의 시점에서 진저와 접촉.
-심지어 진저 그레이를 부르는 것을 '기록'하기까지 했다.
-증거를 최대한 남기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
1-1 만약 이 사실이 그대로 밝혀지면 벌어지는 일
- 진저 그레이가 빌런임이 확실시되며, 구제프에 대한 의심이 타당하지 않게 됨. ☆☆1-2 만약 저 증거가 없었더라면 발생했을 일
- 이경우, 온건파의 흐름이 좀 더 강해진다. (근본: 진저는 빌런에 대한 강경파에 가까우며, 구제프는 온건파에 가까움.)<-아직 추측.
- 히어로는 누가 빌런이고 누가 무고한지 알지 못해 혼란과 의심에 빠진다.-> 저 증거만 없었으면 모든 것이 빌런에게 돌아갔다.
- 흑과 백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닌 회색지대에서 히어로들의 분열이 일어난다.
2. 진저 그레이가 빌런이 아니며, 구제프가 빌런이다.
- 그렇다면 저 증거는 조작된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가? 히어로가 이걸 가지러 올지 어떻게 알고?
@#!#$# (알 수 없는 낙서들이 되어있다. )
3. ============ 구제프가 빌런이다.
-진저 그레이의 자료는, 진저 그레이를 빌런으로 지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누군가가 볼 것을 엄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다.
-진저가 빌런측이었다면, 빌런측은 이 자료를 만들기 위해 손쉽게 진저와 접촉할 수 있다.
-☆☆((진저는 버리는 말이다.))
-모든 것은 ((구제프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 진저를 버림말로 쓴 것이다.
-> 진저 그레이가 빌런이라고 밝혀진다면, 단지 그가 빌런이라는 사실에 의해 ((빌런의 지목을 받은 구제프는 무고한 사람이 된다.))
과연 빌런측은 기회를 놓친 것인가? 히어로측에 스파이를 침투시켰으면서도, 그 기회를 이렇게 허무하게 놓칠 정도로 허술한 집단이었나?(그 외 구석에 알 수 없는 기록이 그려져있다. 힘없는 선이지만, 찻잔과 다과를 그린 것 같다. )
어느 쪽이 빌런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가?
(이 메모는 에스터만 볼 수 있게 꼭꼭 숨겨져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다.)
(2)
(메모 1이 사뭇 굵고 진지한 글씨로 되어있는 데 비해, 메모 2는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흘려쓴 글씨로 되어있다. 줄 구분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구제프가 빌런이라고 밝혀지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득은 무엇이지? 이것은 결국 그녀를 괴롭히는 증거가 아닌가?
!#$$# 어째서 나는 나에게 불리한 추측들을 더더욱 신뢰하고 있지? 무엇을 믿는 거지? 나는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
(홍차와 다과가 그려진 낙서.) ...무엇을 믿어야 하지? //당신은 이런 기분이었을까?//(일부러 알아보기 힘들게, 흘린 글씨로 써있다.)
나는 왜// /// //// $!@@!@#&*@ .... .....이 추측은 타당한가? 왜 이런 것을 추측하고 있지?
평면적으로 증거를 받아들이면 되는 것인가? 그거면 되는걸까? 생각을 멈추는 편이 나을까?
코끼리...고양이와코끼리...코끼리...(이 부분에 와서는 너무 심하게 흘려써져있다. 아마 쓰다가 졸았던 모양이다.)
(이 메모는 에스터가 방금 전부 조각조각 찢어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볼 수 없다.)
(3)
(메모 1과 이어지는 내용이다. 다시 굵고 진지한 글씨.)
""만약에 구제프가 빌런이라면, 파크는 어떻게 되는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여러가지 글씨들이 까맣게 일그러져 알아볼 수 없다.)
->만약에 파크가 나에게 유리한 증거를 준다면, 그것은 완전하게 증거로서 효용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말이 될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고양이와 코끼리가 그려져있다. 머리가 아픈 모양이다.)
- 어느 대화.
- ...정말이지. 에스터씨도 아직 어리다니까- 같은 말에 네가 할 말이냐고 대꾸해야 할 목소리는, 힘을 잃은 것 같았다. 괜찮아요. 에스터씨ㅡ사람이, ... 하는 데, ...같은 것은 ...거에요. ...그럴까. 에스터씨? 울어요? ...그럴 리 없잖아. 단지...
괜찮아요. ...에스터씨는 잘못하지 않았어요. 지금부터 할 일들도 그 무엇도 나쁘지 않으니까요. 에스터씨는, 이즈모의 위험을 막으려는 영웅이자ㅡ... ...한 사람인 거에요. 그 사람이ㅡ...라는 점에서는, 말리고 싶지만... ...는 전혀 나쁜 ... 아니에요. ... 그런가요ㅡ저도 그런 쪽은 잘 모르겠네요. 하긴, 선택할 수 있었으면ㅡ ...에스터씨 다운 일이겠지요.
눕혀진 체스말들 위 다정한 소년은 기사를 쓰다듬는다.
- 불살제압방법(에스터)
- 42스레.
불살로 제압하는 에스터 리퀘스트 요청으로 쓴 글(조건:모브 빌런의 능력은 상대의 심리적 약점을 간파해내는 말 많은 타입 빌런으로 고정)
"안타깝네. 머리말."
상대는 작은 체구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중학생 정도 나이처럼 보이는 빌런이었다. 앳된 얼굴인데도 눈은 어쩐지 죽어있어서, 그 때의 소장이 떠올랐다. 에스터는 총을 쥐고, 빌런을 향해 겨눈다. 하지만 소녀는 폭소하며 비웃는다.
"죽일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어. 그게 나의 능력이니까!"
에스터는 미간을 찌푸린다. 빌런은 에스터에게 더 가까이 다가온다. 총구를, 손으로 쥐어버린다. 에스터는 다가온 그녀의 뒤를 본다. 다섯명 정도의 학생들이 바들바들 떨며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 상황에서 촬영을 하는 여유만만한 녀석도 있군.
"너, 사람이 죽는 걸 무서워하지?"
"......"
에스터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는다. 침묵이 긍정이라는 말이 있던데, 진짜였나봐~ 그런 소리를 하며 소녀는 에스터의 목 뒤를 잡고 고개를 억지로 숙여서 자신의 얼굴을 들이댄다. 자. 한 번 쏴봐. 그렇게 말하면서.
"참고로 나는, 이대로 쏜다면 당장 죽겠지만~"
"......"
"어디 쏴보라고?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 너 같은 히어로를 맘대로 가지고 놀며 괴롭힐 수만 있다면~"
"...아."
"그렇게 해서 네가 충분히 상처입어주기만 한다면...나는 무척이나 기뻐!"
어디 쏴봐. 쏴보라니까? 그런 말을 하면서 소녀는 총을 자신의 이마에 들이댄다. 탕! 탕! 같은 효과음을 입으로 내면서. 싱글싱글 웃는다. 에스터는 조용히 침묵을 지키더니, 총을 소녀의 손에서 뺀다.
그리고는, 양 팔로 그녀를 그대로 꼭 감싸안아버린다.
"...!...!?"
"미안하군."
"잠깐. 뭐 하는...!"
"너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지만 말이야."
"......"
상대는 끌어안긴 채 팔을 바둥거린다. 에스터는 그러나 상대를 놔주지 않는다. 그대로, 점차 힘이 빠져가는 게 느껴지더니... ...상대는 쓰러진다.
"안타깝게도 이 쪽에서는 간단하게 제압할 수록 좋으니까."
등에는 마취제가 박혀있었다.
"나는 죽이지 않겠지만, 이즈모에 보내진다면 그 뒤의 일은 내 관할이 아니다. 유감이군. "
불살 제압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받아뒀던 마취제가 소용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느리고, 번거롭다. 상대를 확실히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상태이고, 상대가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하고, 근거리로 유도해야 하며, 마취제를 가지고 있을 때만 쓸 수 있는 방법인데. 오늘같은 날은 운이 좋았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볼까."
여전히 피해를 최소화하며 상대를 제압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 영세빌런의 독백
- (45스레)
나는 김영세. 영세빌런이다.
영세한 빌런이기도 하고, 영세이자 빌런이기도 하다. 능력은 손톱을 폭탄으로 바꾸는 것. 이것때문에 손톱을 깎아서 모으고 있지. 가끔 급할때는 즉석에서 깎아서 사용할 때도 있다. 고등학교때는 쇠로 된 물건을 만드는 능력이 있는 친구녀석이랑 함께 다니곤 했지. 지금은 이래저래 일이 있어서,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그래. 그 때는 좋았는데 말이야. 지나가던 사람을 능력으로 삥뜯거나, 가진 게 없어보이면 그냥 때리기도 하고, 비싼 거 가지고 있는 놈 옷을 훔쳐 달아나거나. 뭐 그러다보면 돈이 꽤 쏠쏠하게 모이기도 했고, 괴롭힘당하는 녀석의 얼굴을 보는게 즐거워서 자신이 뭐라도 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다 옛날일이지만.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놀러다닐 수 있을 때는 좋았던 것이다. 저런 일들은 지금에 와서는 전부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렸다. 크며 손털고 갱생해서 선량해졌다거나 뭐 이런 진부한 얘기는 아니다. 그러니까, 아마 그 때였지... 지금까지 언급한 '놀이활동'들을 하며 기고만장해져있던 우리들은 지나가던 같은 학교 학생의 개를 뺏어가려 시도했던 것이다...
대충, 걔가 누구냐면, 이름은 모른다. 성이 클라인이다. 여자애치고 키가 큰데, 성격은 좀 찐따같다고 해야 하나. 좀 고지식하고 소심한 성격이라는 것 같다. 나는 같은 반이 아니라 모른다. 시료쿠라고, 눈 좋은 놈이 그 녀석과 같은 반이었는데 대화한적은 없는 모양이다. 뭐, 둘다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니까. 그러고보니 시료쿠는 공부도 나름 하고, 딱히 돈이 부족한것도 아닌데, 왜 우리랑 같이 다녔지. 잘 모르겠다.
아, 그런데 걔는 우리가 해체된 이유에서 별로 중요한 인물은 아니다. ...다만 이 클라인의 경우 훗날 나에게 큰 충격을 준다는 시점에서 조금 중요하다. 그러니까, 그런 걸 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중학생?정도 돼보이는 놈이 쇠파이프를 들고 나타났지.
완전히 발렸다.
쇠파이프 든 중학생 하나에게, 우리 나름 이름있는 고등학생 사이킥 갱 집단이 볼링공처럼 무너져버린 것이다. 아니. 볼링공이 무너지는게 아니지. 볼링핀처럼. 레리즈가 쇠파이프에 기습적으로 등을 후려맞은 뒤 나는 두번째로 맞아 뻗은지라 자세한 상황은 모른다. 다만 나중에 병원에서 얘기를 들으니 다오는 쇠파이프에 배를 돌려맞고, 시료쿠는 도망가려다 돌을 맞고 쓰러졌다고 한다.
분했다. 치욕스러웠다. 복수하고 싶었다. 그러나 힘이 없었다. 무력감이 엄습해왔다. 처음으로 약자의 기분을 깨달았다. 이런 X같은 기분따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넷이서 덤벼도 한 명에게 그렇게 무력하게 쓰러질 수 있다는 사실이. 더군다나 상대는 아마도 기껏해야 중학생정도로 보였는데. ...겁났다. 남에게 힘을 휘두를때는 즐겁지만, 당하니까 이렇게 무서운 것이구나.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무섭다는 이유로 우리 사이킥 갱 집단(가칭 팝콘나쵸)은 해체되었다.
그야 당연하다. 우리는 힘으로 상대를 누르고 싶은거지 눌리고 싶은 게 아니다. 당하는 건 무서우니 해체할 수 밖에 없었다. 학교에선 사이킥 갱 집단이었던 것 때문에 이미지가 안 좋아 겉돌고, 괴롭히는 것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었다보니 졸업마저 힘들었다. 그 후 대학에 가지 못하고 , 알바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나쁜 짓하다가 이렇게 된 거란 이유로 아무도 동정해주질 않는다. 알바자리마저도 한 짓들이 있다 보니 툭하면 잘린다.
비참하다. 진짜 비참하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지금 당장 비행기 터뜨리고 건물 테러하던 놈도 히어로로 잘 살고 있는데, 고작 삥좀 뜯은 거 가지고 이렇게 안 좋은 시선을 받다니. 편의점 점장님은 최저시급 주면서도 싫다는 인상이고. 그런 비참함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중... 시료쿠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나, 두 번째 능력을 각성했다. 히어로와 싸울 수 있어."
연락을 듣고 나서 많이 놀랐다. 왜냐면 시료쿠는 나랑 그렇게 친하진 않았으니까. 안 친한건 아닌데, 중간에 아는 친구가 없으면 조금 어색해지는 그런 친구의 친구...같은 사이라고 할까. 뭔가, 우리 넷중 가장 날라리랑 거리가 먼 것도 있고, 곱상하게 생겨서 다가가기 힘들다. (그런 말 하니까 혹시 반한 거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다. 유감이지만 나는 스트레이트다.)
히어로와 싸워? 뜬금없이? 그 때 우릴 공격했던 그 녀석이 히어로였어? 아니, 애초에 어떻게 알아낸 건데? 온갖 의문이 머릿속에서 솟아올랐으나, 그 녀석은 대답해주지도 않고 그저 약속을 잡을 뿐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 녀석은 키가 꽤 커있었다. 안경을 껴서 능력을 통제하는 건 여전했으나, 지금은 한 10센치는 커서 꽤 장신이 됐다. 그 때는 클라인보다도 작았지. 뭐, 그 녀석이 유독 키가 큰 편이기도 했지만. 차분하고 곱상한 범생이같은 얼굴이나, 단정한 머리모양도 그대로였으나, 어쩐지 조금 차가워진 느낌이었다. 그 때는 뭐랄까 짜증은 많아도 귀여운 동생...같은 취급을 받았는데.
"오랜만이다."
"너 많이 컸네. 얼굴은 그대론데."
약속장소는 근처 카페였다. 그 녀석은 에스프레소, 나는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솔직히 말하자면 카페에 와본적이 없어서 아무거나 시킨거였는데, 먹고 좀 후회했다. 다음엔 무조건 코코아다. 그나저나 카페에서 부르다니, 정말 고상한 녀석이다. 나는 이런 곳은 커플들이 너무 많아서 간질간질하다. 카페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도 못 즐기겠다.
"...갑작스럽게 불러서 미안해."
"무슨 일이야? 다른 애들은 보이지도 않고."
"원은 이제 그런거 관둔다고 하고, 다오는 연락을 안 받아서 어쩔 수 없었어. "
"맞아. 레리즈..."
레리즈는 원이 성, 레리즈가 이름이다. 내가 이 무리중 유일하게 이름으로 부를만큼 꽤 친했던 녀석인데, 그 일 이후 충격받아 손을 털고 나가버렸다. 젠장. 그렇게 착한 척 하면 누가 알아주는 줄 아나.
"나는 지금 클라인이 히어로로 일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어. 그리고 그녀를 도운 영웅도. 그러니까 비교적 유명한 클라인을 때려눕혀서 정보를 얻을 셈이야."
"잠깐잠깐. 그런건 어떻게 알아낸거야?"
"이즈모에서 스파이짓을 하는 녀석에게 들었어. 그녀를 도와준 영웅이 이즈모에 있다고."
"...정확한 정보야?"
"확실한지 아닌진 몰라도 일단 그녀를 쓰러뜨리면 알게 될거야. 다른건 몰라도 그녀가 히어로인 것만은 사실이니까."
그 찌질이가 히어로라니, 대단하네~ 개미 한마리 못 죽일 것 같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입에 맞지도 않는 아메리카노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녀의 히어로명이 뭔데? 라는 내 물음에 답이 돌아올 때 까지는.
"유명할걸. 히어로 머리말."
"응?"
"에스터."
주륵.
아메리카노가 나의 입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조금 재치가 있는 사람은 '예나... 선정이 딸이에요.'같은 대사를 대신 넣어봐도 좋다. 아니, 나로서는 차라리 그런 출생의 비밀이 덜 놀라울 것 같다. 늘 무서워하던 히어로가 사실 내가 삥뜯은 동창이었다니.
"자,잠깐, 잠깐만. 그 에스터? 총기치트쓰는?"
"풀네임이 에스터 힐데가르트 클라인이잖아. 몰랐어?"
"아니. 나는 힐데가르트가 성인줄 알았지!"
에스터는 클라인이라는 성을 잘 쓰지 않는다. 보통 C라고만 표기하고 만다. 부모와의 사이 악화때문이랬는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부모가 범죄자여서 잡아넣었댔나. 얘기만 들어도 무섭군. 어쩌다가 그렇게 독한 자가 됐을까. 그 녀석. 덤으로, 이런 정보는 나중에 시료쿠에게 들은 것이다.
"나랑 너랑 힘을 합치면 이길 수 있을거야."
"아니. 못 이겨. 절대 못 이겨! 될리가 없잖아!"
"...왜?"
"그야, 딱봐도 에스터는 엄청 세고..."
그런 말을 하니 어쩐지 시료쿠는 어두운 표정이었다.
"...넌 분하지 않아?"
"응?"
시료쿠를 보니 결의에 차있었다. 나는 중학교때도, 고등학교때도 한 번도 저런 강인한 눈을 한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때 과자를 걸고 한 시합 게임에선 조금 비슷한 표정이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내가 가진 적 없는 눈을 하고 있는 그 녀석이 조금 부담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나...는 분하거나 하지는 않은데. 워낙 빨리 쓰러져서."
"나는 분해. 내가 약해서 너희들을 두고 도망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게 분해.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렇게나 비겁하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자신을 한 번도 용서할 수가 없었어. 너희는 목숨을 걸고 싸워 졌는데, 나는 비겁하게 도망치다 쓰러졌다는게."
무심코 그렇게 대답해버렸다. 사실, 분하지 않다는건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내가 약하다는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었고 우리가 패배했다는 것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그런 분함과 열등감을 누르고 아득하게 공포가 있었을 뿐이다. 차마 뭔가 해볼 생각조차 못 하게 하는, 공포.
"...그러니까...날 도와줬으면 좋겠어. 네가..."
"......"
시료쿠는 가끔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녀석이다. 당장 말했다시피, 왜 이런 우리같은 날라리들하고 노는지도 불명이다. 공부도 그럭저럭 잘하고, 집안도 유복한데. 얼굴도 저 정도면 멀끔하게 생겼고.
"저기. 그렇지만, 에스터는 말이야. 무지 강하다고. 그 때 총쏘는 거 못 봤어? 싸구려 권총인데 화력이. 와..."
"알아.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야. 하지만 내게 다 생각이 있어."
시료쿠는 커피잔을 들었다. 녀석의 에스프레소는 반 밖에 남지 않게 됐다. 그게 뭔데? 그는 커피잔을 놓는다.
"두 번째 능력."
새까만 커피는 컵 안에서 넘실대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울려퍼졌다.
카페는 고요하고 달콤한 공포의 냄새로 가득 찼다.
ㅡ
...일단, 도입부에서 말했다시피, 나는 빌런이다. 겁먹었다고 했지만, 완전히 시민으로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스케일이 싸이킥 갱 시절에 비해 훨씬 작아졌고, 눈에 띄는 활동은 피하게 됐을 뿐. 간간히 빌런들이 폭탄 테러를 벌이고자 할 때, 모아둔 손톱으로 폭탄을 만들어 파는 것이 내 업무다. 최근엔 이즈모의 높으신 분 때문인지 테러활동이 없어 손이 놀고 있었는데, 지금 일을 생각하면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자."
우선 이 만큼. 이라며 막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폭탄들을 건넨다. 설마 이 많은 양의 폭탄을 내가 쓰게 될줄은 몰랐는데. 시료쿠는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첫번째 능력은 시력 강화. 순간적으로 시력을 강화해 세상을 프레임단위로 보거나, 저 멀리 있는 것을 또렷하게 보는 데 쓸 수 있다. 다만 볼 수 있는거지 몸이 원하는 속도대로 반응하는 건 아니고, 통제가 어려워 되려 시야를 혼란시키기도 한다고. 그래서 자주 머리가 아프거나 하다고 한다.
"고마워."
"...저기. 정말로 할거야?"
무심코 내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온다. 멀리를 바라보던 시료쿠는 뒤를 돌아본다.
"그야, 물론이지. "
"그, 그치만..."
"설마 고작 복수때문에 죄없는 사람을 괴롭힐 순 없다...뭐 그런 선량한 소리를 하려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역시 아무리 그래도, 이 작전 무모하기 짝이 없잖아!"
작전의 내용은 이랬다. 폭탄 테러로 도발해 그녀를 유인한 뒤, 공격해오면 시료쿠의 두번째 능력인 공격반사로 제압한다는 것.
"만약 그 전에 다른 히어로가 오면 어쩔 건데!? 아예 그녀가 안 올지도 모르잖아!"
"걱정마. 반드시 그녀가 오게 돼있어."
"무슨 근거로..."
쾅.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굳어진 얼굴의 에스터 힐데가르트가 도착한 것이다.
"왔군. 히어로."
"거짓 편지를 보내다니, 무슨 속셈이지."
"거짓인 걸 알더라도 올거라고 생각했다."
"도발이로군."
나는 입을 쩍 벌린 채로 (비유하자면, 입을 네모로 표현한 이모티콘같은 얼굴로)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얼굴의 에스터와, 그런 에스터와 담담하게 대화중인 시료쿠. 둘다 괴물이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컸지!? 20센티는 큰 것 같은데!? 솔직히 키 말고도 태클걸고 싶은게 산더미긴 한데, 키가 근육도 아니고 운동으로 저 정도로 키울 수 있는게 아니잖아!? 애초에 고등학교땐...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대화는 계속된다.
"그 소년이 너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것 정돈 알고있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당신같이 정의감 넘치는 사람이라면 안 올리도 없다고 생각했고."
"본인들이 위험인물이라는건 알고 있다는 소리지?"
"그 정돈 돼야 와줄 것 아냐?"
잠깐. 뭔가 해둔 게 있다면 나에게도 미리 설명을 해줘야 할 거 아냐!? ...나중에 알고 보니, 에릭이라는 연구원의 신상을 가지고 협박을 했다는 모양이다. 안 오면 건물에 폭탄이 터져 다른 인질들도 죽는다는 말도 함께. ...뭐, 빈 건물이었지만. 최근에 실제로 그가 납치당한 일이 있어 예민해진 상태를 노렸다나.
"일을 벌였다면, 순순히 체포당할 각오는 되어있겠지?"
철컥. 에스터가 쌍권총으로 우리를 겨눈다. 아무리 계획대로라곤 하지만, 역시 위압적이다. 그러니까,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냐니까? 성격도 완전 다른 사람이잖아?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도 시료쿠는ㅡ걸려들었다는 표정으로 조용히 미소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겁을 먹어있는 사이,
일은, 이미 시작되어있던 것이다.
ㅡ
"...으아아아!"
사방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와, 연사되는 총성의 울림에,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로 시끄러운 이 곳이다. 아니, 소리만 시끄러운 거면 차라리 다행이었을텐데, 현재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총성과 폭발에 언제 휘말릴지 모르겠어서 불안하다. 저기, 피아구별 좀 해주라!? 아니, 에스터보다 네가 더 위협적인데!? 저쪽은 불살이기라도 하지!? 근데 진짜 불살일까!? 상대를 불사르고 오는 게 아니라!? 내 갸냘픈 비명이, 이 폭발적으로 다채로운 사운드 사이에서 살며시 묻혀간다. 고막이 터질 것 같다.
전투방식을 간단하게 설명해보자면, 기본적으로 둘 다 총을 쏘고 있다. 에스터는 양 손으로. 시료쿠는 한 손으로. 다만 총으로 즉시 살해하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없다고. 그래서 간접적인 공격을 위해, 주로 천장을 위주로 건물 곳곳에 폭탄을 설치해뒀다. 이를테면 천장에 붙여놨다면 그것을 고정시키는 쇠를 총으로 쏴서 폭탄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지는 타이밍을 이용해서 폭탄의 중심부를 겨눈다. 중심부를 맞은 폭탄은 충격으로 즉시 터진다. ...말이야 쉽지, 멀리서 폭탄의 주변부와 중심부를 정확하게 노리고 연속으로 명중시킬 수 있다는 가정하에 사용할 수 있는 미친 방법이다. 거기다 에스터의 위치까지도 고려해서. 그걸 시료쿠는 해내고 있다.
조금 부가설명을 하자면 내 폭탄은 즉시 터지진 않지만, 동시에 시간설정이라던가 스위치가 있다던가 뭐 그런 식으로 원하는 시간에 터뜨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정 이상 충격을 받아야 터지는 번거로운 구조다. 그렇기때문에 보통 여러 폭탄을 연결시켜둔 뒤 연쇄 폭발에 사용한다. 시한폭탄 하나가 터지면 그 충격으로 같이 터져나가는 것이다. 퍼퍼펑- 하고.
그걸 저런 미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니 여러가지 의미로 엄청나다. 덕분에 사방이 터져나가지만. 스스로도 자신의 폭탄이 저렇게 강할 수 있는지 몰랐다. 대단하다.
펑, 펑, 타타탕....아니, 콰과광? 모르겠다. 어쨌건 이 혼란스러운 상황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지. ...피한다! 나는 가까스로 비교적 안전한 자리를 찾는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건 이 정도밖에 없었다. 폭탄을 전부 내준 이상, 더 이상 할 수 있는게 없다고. 빈 건물 안 덩그러니 구석에 있던 컨테이너 뒤에 자리를 잡는 데 성공한 나는, 두 사람의 전투를 지켜본다.
"...와. 엄청나다."
나같은 범인으로선 그런 감상밖에 나오질 않았다. 총을 저렇게 쏴대며 폭발의 위치로부터 몸을 피하는 에스터도 에스터지만, 에스터의 사격을 좋은 시력 하나로 전부 피하며 공격해나가는 시료쿠도 엄청나다. 그 때만 해도 눈이 좋아도 피하질 못하니 무소용이었는데, 어느새 저 정도로 민첩해졌구나. 인간의 능력이 아닌 것 같은데. 애초에 눈에 보인다고 총을 피할 수가 있나? 초능력 하나 더 있는거 아냐? 거기다 지금 두 번째 능력은 본격적으로 발동도 안 했는데, 이 정도라니... 조금 승산이 생긴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상황에 조금 적응이 되자 나는 뒤에서 조용히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힘내라. 시료쿠! 우리들의 복수를 하는 거야! ...그러는 중, 공격을 계속해나가면서 에스터는 말을 건넨다.
"너, 눈이 좋군."
"어떻게 알았지?"
"공격과 동시에 회피하는 것을 보고. 그리고 안경도 미세하게 일반 안경과는 다르군. 시력강화계 능력자인가."
"역시, 보통 녀석은 아니군. 싸움 도중에 이런 걸 눈치채다니."
"한두번 싸우는 게 아니니까 말이야."
에스터는 노려보며 조소하듯 입꼬리를 올린다. 이에 맞서 시료쿠도 비웃음을 흘린다. 이 상황에서도 사격은 멈추질 않는다. 나는 여전히 컨테이너 뒤에서 덜덜 떨고 있다. 강자들 대단해.
"그렇다면, 이런 것도 이미 눈치챘을까?"
"......!"
시료쿠는 폭탄을 노리던 총을 돌려, 자신의 이마 가운데를 겨눈다. 이에 에스터는 약간 동요하더니 그의 손을 겨눈다.
타앙. 다시금 총성은 살갗을 태우며 번져나간다.
ㅡ
"......"
에스터의 어깨와, 왼쪽 가슴 윗부분이 붉게 터져나간다. 거의, 왼쪽 상반신이 일시적으로 불구가 된 듯이 보인다. 에스터는 자신의 왼어깨에 손을 댄다. 질척한 피가 묻어나온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는 앞을 노려본다.
"유감이군. 히어로."
진짜 악당같다. 그런 생각을 속으로 삼킨 채로 나는 그를 바라본다. 물론 나도 그도 진짜 빌런이므로, 이 말은 칭찬이다. 하지만 역시 유쾌한 기분이 들진 않는다. 이 정도로 피튀기는 광경은 너무 오랜만에 봤다. 오히려, 조금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그런 나약함을 억누르기 위해서 나는 미소짓고, 짐짓 돌아버린듯이 기쁜 체를 해보인다. 하. 하하하하하! 같은 악당웃음을 흘리며.
"...대단해. 시료쿠! 설마 그 상황에서 두 방이나 먹일줄은 몰랐다고! 하하하..."
"나도, 설마 이 상황에서 상대가 총을 쏴줄지는 몰랐는걸."
시료쿠는 약간의 미소와 함께 말한다. 억지로 웃어보이는 나와 달리, 진심으로 기쁜 걸 숨기지 못하는 것 같아 조금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드러내지 않는다. 얕보이기라도 하면, 빌런으로서 끝이니까. ...컨테이너 뒤에 숨어 관찰한다는 시점에서 이미 얕보였으려나.
"에스터 힐데가르트 클라인."
풀네임으로 불린 상대는 얼굴을 찡그린다. 좌측 상반신이 심하게 너덜너덜해 안쓰럽다. 동시에 약간 징그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 동료의 작품인데, 평가가 박한가. 찢어진 나뭇잎같은 왼쪽 상반을 손으로 가리고 에스터는 쳐다본다. 명백히 경멸하는 눈이다. 다시금, 시료쿠는 상대를 부른다.
"ㅡ클라인의 딸."
"...그렇게 부르지 마."
"네가 네 부모를 집어넣었다는 건 알고 있다."
시료쿠의 능력은 공격 반사. 자신을 향한 공격을 약 180도쯤 반대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다.
다만, 한 번 쓸때 신체에 드는 부담이 꽤 크고, 조준에 따라 역으로 본인이 더 큰 피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에 마구 써대진 못 한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그는 폭발피해를 노려가며 두 번째 능력 사용은 비장의 카드로 놔둔 것이다. 결국 이걸로 한 방 먹였으니 올바른 판단이었다.
"불살을 표방한다는 것도 그렇고, 어지간히 깨끗하고 싶은가보군."
"어디까지 지껄일 셈이지."
"...내 손을 쏜 것도, 그걸 위해서였나?"
에스터가 노린 것은 시료쿠의 손가락. 총을 쏴내기 전에 그를 막으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분명 그 반응을 보면 반사능력을 몰랐을텐데, 그런데도 손을 노리고 쐈다는건, 그렇겠지.
"네가 여기서 죽어버리는 것을, 가만 놔둘 순 없으니까."
"위선자."
이번에는 시료쿠쪽이 경멸조를 취한다. 에스터가 괴로운지 무너져내리듯 고개를 숙인다. 시료쿠는 내려다보는 눈이다. 나는, '저 정도면 곧 쓰러지지 않으려나.'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우리를 공격한 게 누군지 말해. 히어로측에 있다는 건 알고 있어."
"...무슨 근거지."
"이미 네 뒷조사는 어느 정도 끝났다. 발버둥쳐봤자 소용없어. "
"......"
"순순히 말해주면 죽이지 않고 놔주겠다. 빌런 측의 실력좋은 의사도 소개시켜주지. 네 어깨도 감쪽같이 낫게 할거야."
에스터는 침묵한다.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말할 수 없다."
"그렇게 나오는 건가."
"......"
죄없는 사람을 해치는건 이 쪽에서도 내키지 않아. 유감이군. 그렇게 시료쿠는 맘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그녀에게 다가간다. 총구가 그녀의 오른 어깨에 있다.
"......"
...탕.
총성이 울린 곳은, 어깨가 아닌 천장에서였다.
"......?"
그러니까, 시료쿠의 바로 등 뒤쪽에서. ...폭탄이 붙어있던 천장에서. 힘없이 허공으로 다쳐있는 왼팔을 쭉 뻗는가 싶던 에스터가, 그대로 쏴버린 것이다.
...그래. 그녀는 양 손에 총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탕.
"...뭐...!"
총성, 그리고 폭발소리.
폭탄은 원래보다도 훨씬 커다란 폭발을 일으킨다. 이것도 그녀의 능력 덕인지, 아니면 단순히 정통으로 맞아서 그런건지는 모른다. 시료쿠는 어마어마한 폭발에 휩쓸린다. 반사적으로 눈앞을 가리기 전 시료쿠가 본 것은, 아마 눈 앞에 있는 거대한 괴물의 모습이겠지. 어깨가 날아가고 피가 터져나와도 싸움을 멈추지 않는 괴물.
"2차전이다."
"젠장...!"
시료쿠는 다시 총을 든다. 폭발에 휘말린 탓에 잔뜩 쓸려나간 등에선 피가 주룩주룩 흘러나온다. 콜록. 기침을 한 시료쿠는 괴물을 노려보며 눈을 부릅뜬다. 마주 부릅뜬 괴물의 눈에선 흡사 안광이 번뜩이는 것처럼 보인다. 에스터는 시료쿠의 근접거리까지 계속 다가가며 무시무시한 기세로 그 뒤 폭탄들을 쏴댄다. 시료쿠의 공격수단이었던 폭탄이 이제는 에스터의 무기가 되었다.
폭발은 앞이고 뒤고 없으니까, 반사해봤자 소용이 없다. ...방향이 없으니까.
시료쿠는 에스터를 맞추려 하나, 연기로 인해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 것 같다. 멀리서가 아닌 가까운 곳에서 터지니까 당연한 거겠지. 더군다나 방금전의 폭발 피해로 인해 등이 쓸려나가, 반동을 견디기가 힘든 모양이다. 총기류 보정이 있는 에스터와는 달리 시료쿠는 반동 피해도 그대로 입고, 총알도 무한하지 않다. 점차 힘겨워보이는 그의 움직임이 서서히 느려진다.
이렇게 역이용당할 줄 알았으면, 조금만 적게 설치할 걸 그랬나. 폭탄. 그런 뒤늦은 후회를 해본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설마 저걸 쏴 터뜨리는 식으로 운용하는 미친 전략을 쓸 수 있는게 시료쿠 말고 있으리라곤 생각 못했으니까. 애초에 그 정신없이 싸우던 잠깐동안 시료쿠의 전투 스타일을 분석하고 모방한다는 것 부터 제정신이 아니고. 지금까지 에스터는 명중률 대신 능력빨로 밀어붙이는 전투스타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에스터의 명중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정확했다. 지금까지는 봐주고 있는 거였다! 그래. 그러고보니 유명한 불살주의 히어로라고 했지. 어떤 악인이라도, 자기 손으로 죽이진 않는.
...그러니까, 의도적으로 급소를 피하느라 명중률이 낮아보였다는 거다. 여태까지는. 괴물이다. 이건 괴물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시력 강화도 없이 저 폭탄을 천장에서 떨어지게 하는 지점과 터지는 지점을 정확하게 쏜다는 것도 그렇고, 불살제압을 위해 봐주면서 싸우면서도 그 정도 실력을 낸다는 것도 그렇다. 관찰력이 좋지 않은 나는 시료쿠가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나는 걱정스레 둘을 지켜본다. 다시금, 연쇄적으로 폭발이 일어난다.
나는 멍하니 그 싸움을 바라본다. 애초에 저 정도로 다친 팔로 총을 쏜다는 게 가능한가? 아니. 물론 반동 무시가 있으니까, 쏘는 건 가능하다고 치자. 근데 명중시키는 게 가능하다고? 어떻게? ...정말로 괴물인가? 시료쿠의 표정에 점점 다급함이 차오르는 것이 보인다. 이미 상황은 완전히 뒤집히고 있었다. 마치 공격이 반사능력으로 뒤집히듯이.
눈이 매워 잠시 앞이 보이지 않는다.
...연기가 그친 한참 후에야 겨우 눈을 뜬 내게 보인 것은, 아까와 반전되어있는 상황.
어깨가 다쳐있는 왼쪽 팔로 상대를 짓누른 에스터가, 다른 오른손으로는 그의 뒤에 떨어진 폭탄을 겨누고 있는 것. 그리고, 피칠갑한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채 쓰러져있는 시료쿠.
ㅡ
"...이...자식..."
"유감이군."
"......젠장!"
시료쿠는 그것을 시작으로 욕지거리를 쏟아붓는다. 곱상한 얼굴이라곤 했지만,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우리들의 동류이다. 젠장. ㅡ같은, ㅡ!ㅡ! 죽어, 죽어! ㅡ! 빌어먹을... 일그러진 얼굴이 온갖 종류의 상스러운 욕을 토해내는 것을 에스터는 무심한 듯 지켜본다. 아니, 어쩌면 무심한게 아니라, 동정하는 걸지도.
"죽이진 않겠다. 죄 있는 사람이라도, 해치는 건 내키지 않으니까."
"젠장... 젠장!"
"이야기를 계속해볼까. 왜 이런 짓을 했지?"
이미 상황은 뒤집혀있었다. 더 이상 시료쿠에겐 공격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이미 시료쿠는 정신적으로도 한계인 듯 보였다. 전술을 역이용당하고, 상대측에서도 봐주는 중이었단 사실을 깨닫고, 이렇게 무참히 패배하기까지 했으니.
"대답할까 보냐...젠장! ㅡ같은! ...빌어먹을!"
"욕지거리보단 나은 것 같은데. 이 쪽도, 의사의 정보라면 필요하거든. 상처가 심하니까."
"...그래봤자...이즈모에 회부하면 죽는 거잖아! 네가 죽이지 않아도!"
"......"
에스터는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대답을 말한다.
"네 대답에 따라서, 죽지 않을 수도 있다. 정보가 필요하거든."
"......"
"어떻게 생각하지?"
"...위선자."
그런 혐오담긴 멸시도,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받아낸다.
"위선이라고 해도, 나는 실질적인 인명피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려는 것이 뭐가 나쁘지?"
"...그래봤자, 히어로인 주제에."
"뭐가 문제지? 빌런."
이내 낮게 깔린 목소리가 그녀에게 증오를 쏟아낸다. ...힘이 다 빠져, 억지로 쥐어짜내듯이.
"...나는, 강하지 않아...! "
에스터는 다소 놀란 듯이, 시료쿠를 쳐다본다. 놀란 듯이...라는 서술이 알맞을지는 모르겠다. 눈을 크게 떴는데, 처음에는 부릅떴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후 상황같은 걸 보면 화난 건 아닌 것 같은니까. 아마도 놀란 게 맞을 것이다.
"너는...힘이 있으니까 사람을 죽이지 않고도 제압할 수 있고...정의를 택하면서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지만...나는 약해. 약하다고...!"
"......"
"나도 강해지고 싶었어. 더 강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고...! 약하다고 깔아뭉개지는 게, 싫고... 겁이 나서..."
열등감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여줘서 상대를 방심시키기 위한 전략같은게 아니라면. 그저 한심한 찌꺼기 말들일 뿐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렇게 자신만만했는데. 에스터를 때려눕히겠다는 기세의 열정 가득한 빌런은 어디가고 남아있는 것은 울부짖으며 자신의 무력함을 한탄하는 약해빠진 모브캐릭터 하나였다.
"나도... 나보다 약한 사람을 깔아뭉개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어. 단지...나 자신이 너무 약해서..."
"......"
"그래서...견딜 수가 없었다고. 나 자신이...할 줄 아는 것도 없고...즐거운 일도 찾지 못하고..."
시료쿠의 처참한 몰골이 보고싶지 않아도 나의 눈에 들어온다. 보기 싫은 것이 또렷하게 보이는 것은 이렇게나 기분나쁜 거구나. 시료쿠는 매일매일 세상을 보며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동정은, 빌런에게 어울리지 않는데.
"...혼자...아무것도 없는 채로, ...살아가는게... 너무 괴로우니까... "
나는 소름이 끼쳤다. 아까전 기쁜 얼굴을 봤을때의 이유와는 전혀 다른 이유였다. 지금 이렇게 에스터에게 자신의 속내를 따지듯이 토해내는 시료쿠의 모습이, 도무지 눈 뜨고 보기 힘들만큼 역겨웠다. 솔직히 말하면, 당장 이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마치, 자신의 민낯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앞뒤고 방향이고 없는 폭탄. 그것을 만들어내는, 그 폭탄과 꼭 닮은 능력자. 나아갈 길도 장래도 없고,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자신을 폭발시키는 것 조차 하지 못하지. ...진짜, 로.
...구제불능이다.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
"가지고 있는 것도...없어. 재능도 없고."
"시료쿠..."
"...그리고, 겨우 생긴 안식처마저도 빼앗기고 말았어."
안식처. 우리들의 싸이킥 갱 집단. 고등학생인 우리의 쾌락적인 모임. 하지만 실상은, 현실도피처였다.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것을 제외한다면,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 그녀에게 이런 말들을 쏟아내는 것 자체가 모순투성이라는 것 정도는.
그야, 왜냐하면.
"우습군. 그런 말을 네가 나에게 하다니."
"......"
"몰려다니는 사이킥 갱에게 위협당해서 강아지를 뺏기고 얻어맞은 쪽과, 그 몰려다니는 사이킥 갱. 어느 쪽이 더 약해빠졌을까?"
"...그건."
말문이 막힐 수 밖에 없다.
"애초에 그걸 알기 때문에 나에게 온게 아닌가?"
클라인은 빈정거린다. 하지만, 화난 말투는 아니었다. 뭐랄까. 저것은 정의롭고 강한 자의 자비에서부터 나오는 여유일까. 아니면 단지 우리들이 너무나도 한심하고 하찮기 때문에 최소한의 기분상할 가치조차 못 느끼는 걸까. 아니. 단순히, 어이없어하는 걸지도.
"약하기 때문에 괴롭다던가, 그런 것은 너희가 할 말이 아니야. 더 약한 사람들을 깔아뭉개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고 다닌 주제에."
경멸조로 말하던 시료쿠와는 달리, 경멸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한 목소리. 비아냥거리며 비난하는 말투인데도, 그 목소리에서 분명 증오심이나 분노같은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한심하게 여기기 때문이었다. ...한심하다 못해, 동정받을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지금 나에게 자신들은 약하느니 아무것도 없느니 소리쳐봤자, 너희들이 한 일을 약간이나마 돌려받았을 뿐이잖아?"
"...그만해."
"그렇다면 이 쪽에서 역으로 질문하지. 부모를 잡아넣은 극악무도한 클라인의 딸로서 말이야."
"...나는..."
아니, 실은 돌려받은 것도 아니었지. 저 쪽은 약자를 지킨다는 목적도 상대의 위험성이라는 명분도 완벽하게 타당한 상태였고, 우리는 정말 무고한 사람을 괴롭히고 다녔던 거니까. 시료쿠는 바들바들 떨며 힘없이 고개를 든다. 에스터는 그런 상대를 조금도 내려다보지 않은 채, ...오히려 고개를 숙여 눈을 맞추고 말한다.
"용기를 내는 것이 더 힘들었던 건, 누구였을까?"
...알고 있었다.
"......"
그랬기 때문에, 침묵만이 흘렀다.
괴롭히는 것에만 용기를 내오고, 자신들이 얻어맞는 것에는 용기를 내기 힘든 우리들이. 할 줄 아는 게 없고 약한 자신을 보지 않기 위한 안식처로, 우리와 똑같은 처지의 다른 사람을 괴롭히며 살아온, ...우리들이, 그 약자가 되었을때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말이 남아있나."
"...재능이 없었어. 어떤 것에도. 공부도, 운동도, 누구에게나 열등감을 가져왔어."
시료쿠가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린다. 한심하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시료쿠가, 자기자신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비명지르듯이 찌꺼기의 말들은 연결되어만 간다.
"아무리 계속 노력해나가도, 남들보다 모자라... 언제나, 자신이 가장 우위에 설 수 있는 자리따윈 없고..."
...계속 알 수 없었던 그의 본심을 이제서야 알 수 있었다. 그는 공부를 그럭저럭 잘 하는 편이었지만, '최고로' 잘 하진 못했으니까. 그래서 우리와 함께 사이킥 갱이 됐다는 거구나. 주변 사람을 깔보며 우월감을 얻기 위해서. ...하지만, 그렇다면 그 정도의 재능조차 없었던 나는 무엇이 되면 좋은 걸까. 세상 모든것에 열등감을 가지는 사람만큼의 재능도 가지지 못한, 나는.
"겨우겨우 사이킥 갱으로서나...즐거운 일이 생기고, 남을 깔봐야지만 자신을 마주보지 않을 수 있어서...그래서..."
이제 안경은 뿌옇게 번져버렸을 것이다. 그의 눈물이 너무나도 많이 흘러넘쳐버렸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꿋꿋하게 살아가서...히어로가 된 네가, 부러웠어."
"......"
에스터는 여전히 무표정이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같을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역시 죽일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니, 그래야 마땅하다. 사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강인한 사람의 생각따윈, 알 수 없었다. 아무튼 대답할 가치조차 못 찾았다는 것만은 알겠다. 이후의 대답을 보면.
"정보를 알려준다면 죽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즈모에서의 대응이 어떨지는 모르겠군."
...에스터는 경멸조차 하지 않으며, 우리들을 지나쳐가버렸다.
울리기 시작한 사이렌이, 우리들의 끝을 알린다.
ㅡ
나는 김영세. 영세빌런이다.
영세한 빌런이기도 하고, 영세이자 빌런이기도 하다. 아니, 이제 빌런이라고 할 순 없나. 현재 우리는 이즈모에 생포된 채 에스터에게 목숨줄이 쥐여있다. 원래라면 즉살명령으로 사망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닥터 구제프의 갱생프로젝트에 동참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전자야 에스터가 정보를 목적으로 우릴 살려뒀으니(사실, 정보가 아니더라도 에스터는 불살주의이므로 징계를 감수하며 빌런을 일반제압하고 있다고 한다. 뭐, 보통 이즈모에서 높은 확률로 죽이니 거기서 거기일지 모르지만.)그렇다치고 후자가 막힌 이유는 조금 복잡하다. 현재 구제프가 의심받느라 근신하고 있다나? 모르겠다. 히어로측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겠지.
우리들은 '증거'로서 쓰일거라고 하는데, 무슨 증거가 되는지는 모르겠다. 증인도 아니고 증거라니, 인간취급도 못 받는 거로군. 아무튼 그때까지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니, 운 좋게 생각해야 한다고. 잘만 하면 이용된 후에도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나는 어쨌든 죽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기뻐했는데, 시료쿠는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줄곧 어두운 표정이었다. 이즈모 본부에서, 감시를 받아가며 나는 그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저기. 시료쿠."
"왜."
냉담한 반응이 돌아온다. 말 걸기 싫어진다.
"아니. 그... 우리, 살아남았잖아?"
"......"
"그러니까, 조금 더...희망적으로 생각할 수 없나 싶어서."
"핸드...폰."
"응?"
넋이 나간듯이, 그는 중얼거린다.
"...빼앗겼어."
"...목숨을 빼앗기는 것보단 낫지 않아...?"
나름대로 농담을 해보지만, 닿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체념한 듯이, 아니면 허탈함으로 어딘가 이상해지기라도 한 듯이, 마구 웃어보인다. 어느쪽이든 내 농담에 웃는건 아닌 것 같지만.
"...하하, 하하하... "
"...시료쿠?"
"이젠 됐어. 내 추억도, 복수도..."
울부짖으며 말한다.
"전부, 시작점부터 잘못되어있었다고..."
닿을 수 없는 꿈. 그런 것이었다.
"...시료쿠..."
그거야, 처음부터 그랬는걸.
우리의 행복은, 미래는, 이어지는 나날들은 전부 다ㅡ남을 짓밟아야만 얻을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런 방식의 행복과 미래를 선택한 것은, 우리들이었다. ...멀지만 긍정적인 방식이 아닌, 눈 앞의 쾌락과 불안정한 행복만을 생각한 결과. 왜냐하면, 귀찮았으니까. 올바른 방법을 찾고, 깨끗한 행복을 위해 나아가는 것이.
그렇기때문에, 올곧은 길을 택한 인간에게 덧없이 무너지는 것이다. 천재와 범재의 차이같은 안타깝고 동정심가득한 말로 포장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애초에 올바른 길을 택했다면, 그녀와 싸울 일 조차 없었을 테니까. ...그렇다. 자신의 나약함을 가리기 위해 도피해온 길이, 처절하고 압도적인 데다 절대적인 패배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는 결말로 이어져있었던 것이다. 만약에 그 때 갱으로서 있지 않았다면, 약한 클라인을 괴롭히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구원자에 의해 처절하게 패배하는 일도 없었을테고, 그 후 복수를 위해 갔다가 나약한 클라인이 올곧게 자신을 갈고 닦아 우리들을 압도적으로 쓰러뜨린다는, 이런 최악의 결과에 닿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할나위없는, 권선징악의 이야기다.
하지만, 선하기 때문에 강하고 악하기 때문에 약한 것은 아니잖아?...나는 멋대로 망상을 하기 시작했다. 만약에 그 때, 클라인을 내가 지켰다면 어땠을까? ...아. 내가 괴롭히는 쪽이었지. 참. 자꾸 이상한 생각으로 흐르는구나. 지키지 못했더라도, 그 날의 사건 없이 시료쿠와 그녀가 그냥저냥 '괜찮은 관계'정도는 유지하는 클래스메이트로서 지냈다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언젠가 그녀에게 구해질 수 있었을까? ...구원받을 수 있었을까? 자신의 약함을 이겨내는 법을 배울 수 있었을까? ...만약 내가 선하고 약한 존재였다면, 그녀에게 구원받을 수 있었을까? 악하고 강한 존재가 될 수 없다면, 선택지는 그것 뿐인걸까? ...그렇지만, 그렇다면 강한 악이라면...괜찮다는 것 아닐까? 역시 강해졌어야 하는걸까? 그렇다면 이 얘기는, 악인의 승리로서 끝나는 것일까? ...자신의 나약함에서 평생 눈을 돌린 채로, 악으로서... ...더 강한 악... ...더 강한 선... 압도적인 강함... ......
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들을 퍼뜨려나간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로, 목숨이 부지되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빌런 2명 생포)
- 에스터 - 쓰러진 샤오화 반응
- (45스레)
......
이즈모 건물 앞, 에스터 힐데가르트는 익숙한 사람이 쓰러져있는 것을 발견한다.
"......!"
순간 숨을 죽인다. 헛구역질이 나오려는 것을 입으로 막는다. 식은 땀이 흐른다. 샤오화? 무슨 일이지? 등에 피가 흐른 채 건물 앞에 쓰러져있는 샤오화. 전투 도중 도망쳐나오려다가 힘이 다한 건가... 에스터는 고개를 낮추고는 무릎을 굽혀 앉는다. 긴장하여 불안으로 가득 찬 에스터는 두근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샤오화의 상태를 조심스레 확인해본다. 두근, 두근. 자신의 것이 아닌 심장소리. ...다행이야. 죽지 않았어.
에스터는 긴장한 마음을 다시금 차분히 가라앉힌다. 놀라 부릅뜬 채였던 눈이 다시금 원래 크기로 돌아간다. 그리고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샤오화를 조심스레 안으려다가... ...피가 너무 많이 흘렀다. 우선은 피가 더 흘러나오지 않게 하는게 먼저일까. 에스터는 고민하다가, 와이셔츠를 벗는다. 그리고 망설임없이 찢어 샤오화의 상처를 감는다 . 좋은 옷이었는데 말이지. 뭐, 몇 벌 더 있으니까. 일단 임시로 응급처치정돈 됐을까.
에스터는 잠시 고민하더니, 자세를 잡는다. 안아올리는 것 대신, 업고 가는 것을 선택했다. 둥글게 안아 등이 굽어져있는 자세에서는 등에서 피가 더 흘러나올 수 있으니까.
그렇게 이즈모 내부 의료시설의 침대에 샤오화를 급하게 눕히고, 의료진들에게 그녀를 맡긴다. 드디어 숨을 좀 돌릴 수 있겠다. ...자신의 품에서 온기가 사라져버릴까봐 안절부절 못하고 걱정한 것이다. 치료를 받으며 누워있는 그녀를 보고, 마침내 안심한다. 에스터는 그녀가 일어날 때 까지 기다리려고 하다가, 한 시간도 안 돼 급한 임무가 도착해서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옮긴다.
- 미움받는 영웅.
- ※의식의 흐름 기법 주의.
(48스레)
깨닫고 싶지 않은 감정들이 목을 졸라와도, 자신이 나아갈 길은 정해져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올바름을 향해서 가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정한 것. 일그러진 핏덩이들을 품에 끌어안은 채 울고 싶진 않으니까, 살아있는 자의 머리를 짓밟고 나아갈 뿐이다. 인간은 그 정도론 죽지 않는다. 고작 그 정도로 꺾여나가지 않는다. 나의 공포는 당신들을 진정으로 구원할 것이다.
자신은 강하지 않았다. 약하기 때문에 약한 사람을 돕고 싶다고 여겼다. 나약하고 의지할 곳 없는 삶은 두려운 것임을, 공포에 떠는 경험이 뼈에 사무치게 괴롭다는 것을, 알고 싶지 않을 만큼 삶에서 알아왔기에. 그러니까 구해내겠다고. 그런 경험을 겪지 않도록 모두를 지키겠다고. 강한 사람이 되어 그 공포를 막아내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감정을 누군가 구원해줄 수 있을까. 구원받는 것은 약한 자의 일이며, 자신은 다시 약해져서는 안 됐다. 그래서는, 모두를 구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생각을 마치는 동시에 무언가가 목을 졸라왔다.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자신을 보고 속삭이는 그것과 눈이 마주치고 만다. 악인을 심판하고, 약자를 구원하는 과정에 자신의 감정이 영향을 미칠 순 없었다. 감정과 의무는 언제나 따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타인에 대해 이성적인 평가와 감정적인 관계를 분리하려 노력한다고 해도, 타인이 그래주기를 원하는 것은 이기적인 일이다. 소장과 부모님을 신고하면서 경멸을 들었던 때부터,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이것과 직면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자신의 삶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것의 연속일 것이다. 목을 졸라오는 무언가는 '그것'을 속삭이고 있었다.
"미움받는 것에 익숙해져야 해."
익숙해질 것이다. 자신이 자신의 의무를 다할 때마다, 응당 치뤄야 할 희생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 누구도 자신의 눈앞에서 썩어 문드러지며 피흘리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경멸의 눈초리를 받게 되더라도 살려내야 한다. 구원해야 한다.
인생의 구원자들을 동경했다. 하지만 그들의 구원행위로 인해 누군가에게 당신들은 증오의 대상이 되었겠지. 비록 자신에게 있어서는 구원이었더라도 악인에게 있어서는 몰락이었다. ...악연이 깊었던 두 빌런을 생포한 일을 떠올린다. 만약 잡지 못했다면, 그는 그들에게 복수당했을까.
그리고 악인이 언제나 절대악이 아님을 알고 있다. 악한 면을 가진 인간이 누군가에겐 구원자이고, 누군가의 동경의 대상이고, 친구이고, 가족이며 사랑임을 알고 있다.
나는 구원자가, 동경의 대상이, 친구가, 가족이, 사랑이 악인일 가능성을 언제나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절대악이나 절대선이 아니며, 그들의 긍정적인 면이 악한 면에 면죄부를 부여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악한 면이 누군가를 찔러죽여 그들이 심판받아야 할 때가 올 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을 심판하는 자가 자신일 가능성도 엄두에 둬야 한다.
평생동안 부모님의 눈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악행을 저지른 그들에게 자신이 필연적으로 해야 하는 행동이었다. 아니, 더 빨리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런 노골적인 경멸이 자신과 평생을 함께 하게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쩔 수 없었다.
만약 모두의 증오를 받게 되더라도, 겉모습뿐인 위태로운 평화가 아닌 진정하게 올바른 정의를 향해.
- 차이 (에릭)
- (50스레)
죄인이라고 한대도 사랑한다니, 사람과 잘못을 분리해야 한다느니, 에스터씨는 그런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에스터씨만큼 올곧은 영웅이 아닙니다. 악한 것을 싫어하는 보통 사람입니다.
구제프씨에 대한 얘기를 끝까지 듣고 난 뒤엔, 아무리 동경했다고 해도 미워졌습니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논란글을 캐내는...그정도 심정이었을지 모릅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에스터씨이기에 도왔습니다. ...그리고, 구제프씨의 돌발행동을 듣고 그 동경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저는 그 정도 사람입니다. 성인이 아닙니다.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밉고, 아무리 동경했다고 해도 쉽게 실망해버려요. 특히, 이용당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에스터씨에게는 악인을 미워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배신에 실망할 자기존중이 필요합니다. 스스로를 희생하지 않는 몸사림이 필요합니다.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사람이기에 저를 구했다고 생각하면,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빗소리가 거셉니다. 12월이 되었는데, 라오스는 아직 눈이 오지 않는 걸까요. 빨리 에스터씨와 눈사람을 만들고 싶습니다.
- 팬입니다!
- (51스레)
"팬입니다!"
...?에스터는 자신에게 내밀어진 꽃다발을 어리둥절하면서 보고 있었다. 팬은 고개를 숙인 채 얼굴대신 꽃다발을 내밀고 당신의 반응을 기대한다. 흰 꽃으로 가득한 꽃다발은 수수하면서도 예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추모용처럼도 보인다고 이 팬에게 말할순 없겠지. 고마워, 라고 말하고 가볍게 받아든다.
"그 날, 저를 위험에서 구해주신 날 이후로 저는 에스터님의 팬이 됐어요!"
숨어있던 얼굴이 고개를 든다. 반짝대는 눈. 아. 기억에 있는 얼굴이다. 그 때 빌런이 인질로 잡고 있던 학생무리중 하나였지. ...모두가 공포에 떨고 있을때 혼자 사진을 찍고 있던 대범한 학생이었다. 행동력이 굉장한 학생이로군. 에스터는 속으로 생각한다.
"저. 싸인해주실 수 있나요!"
반짝반짝.
...에스터는 이러한 애정공세에 약하다. 마치 몇세기 전 중요문서에나 쓸 법한 진중한 글씨로 싸인을 건넨다. 돌고래같은 기쁨의 비명소리가 귀를 울린다.
ㅡ이후, 에스터가 꾸준히 그녀에게서의 선물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가 후일담으로 전해진다.
- 부디, 좋은 꿈을.
(55스레)
"...정의로운 길을 추구하려 할 때마다 정의롭지 못한 누군가를 무너뜨리게 돼도."
"..."
"...그래도 자기자신이 추구하는 정의와, 그 정의에 의한 행동은..."
"......"
"그리고 그 행동이 불러올 결과는...옳다고 생각했어."
"...에스터씨."
"......"
"에스터씨."
"나는, 무얼 위해... 뭘 위해 노력해왔지."
"...조금, 쉬어요."
"구해야 해... 지금 이 순간조차, 사람이 죽어."
"......"
"아무도 구하지 못한다면, 나는..."
"일단은, 쉬어요."
"...지금 쉬지 않으면, 에스터씨가 죽을 거에요."
"...그렇다해도, 상관없어."
"저는...상관없지 않아요."
"......"
"제가 무너지는 걸 보고 싶은 건 아니죠."
"...알았어."
"에스터씨. 우선 푹 쉬어요."
"...미안하다."
"미안해해야 할건 에스터씨가 아닌걸요."
"고마워 라고 해주세요."
"...고마워."
"좋아좋아요. 우리 아기."
"......"
"아. 이럴땐 응애- 라던지, 하다못해 누가 아기냐! 정도는 해줘야죠."
"...고마워."
"그 말, 아까 했다구요."
"푹 쉬어요. 에스터씨. 원래, 마음이 낫는 속도는 느린 거에요."
"...에릭."
"네!"
"...잘 자렴."
"네에. 에스터씨도."
안녕히 주무세요.
- 어느 연구실의 평화
- (56스레)
"최근 들어온 실험체 남자아이, 얘기 들었어?"
여자는 남자에게 묻는다. 냉정한 인상의 남자는 관심 없다는 듯이 대꾸한다.
"자연치유능력."
"그거 말고, 두 번째 능력."
플라스크를 기울인다. 스포이드를 손에 잡는다. 도무지 사람에게 써서는 안 될 법한 약이 완성되어간다. 하늘빛 머리카락의 여자는 인상을 찌푸린다. 성분을 분석하기 위한 행동이다. 그녀의 능력은 초분석. 눈 앞의 물질을 손쉽게 분석할 수 있다. 연구원으로서 일하는 데 상당히 도움되는 능력이었다.
"뭔데?"
"전방의 능력자들의 능력을 자신이 골라 사용할 수 있대. 이론상으로."
"이론상?"
"근데 첫 번째 능력과의 충돌때문에, 두 번째 능력은 없는거나 다름없다나봐."
남자는 아주 조금 관심이 생긴 모양이다. 여자는 찢어진 장갑을 갈아낀다.
"두 번째 능력이, 특수한 병원체를 통해 발현되는 거라서."
"그러면 능력으로 자동치유되잖아."
"그렇지."
뭐야 그게. 비타민을 파괴하는 효소와 비타민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오이 같은건가. 남자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이다. 쓸모없는 녀석이네.
"근데, 그 애가 살아있는 것 자체도 첫 능력 덕분이기도 해."
"무슨 소리야?"
"왜냐하면, 두 번째 능력을 연속해서 사용하다간ㅡ"
과거 겉으로 보기엔 평화로웠던 어느 연구실의 12시 56분.
- 뒷골목의 괴물
- (56스레)
"...뭐, 뭐야?"
"......"
싸이킥 갱은 자신의 손목을 잡은 장신의 덩치에 당황하고 있었다. 어느 새인지 뒤에서 다가온 에스터는 죽은 사람같은 눈으로 상대를 보고 있었다. 상대는 칼을 쥔 손목이 꽉 붙잡혀 움직일 수 없었다.
"이거 놓지 못해!"
"...죽어."
"...뭐?"
에스터는 상대의 손목을 비틀어버린다. 상대의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인적없는 뒷골목에 울린다. 싸이킥 갱에게 협박당하던 시민은 상황을 보고 있었다.
"...죽어버리는, 것은."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어딘가 광인 같은 모양새였다. 다른 사이킥 갱 무리가 그녀에게 달려든다. 두 사람이 양 팔을 각각 붙잡고, 한 사람이 손목이 비틀린 자에게서 칼을 받아 쥔다.
에스터는, 칼을 든 상대의 배를 짓밟듯이 무참하게 차버린다. 큰 키가 이럴 때 도움이 되었다. 칼이 바닥에 떨어진다. 오른팔을 잡은 이의 다리를 뒷발로 부러질만큼 세게 차고, 왼팔을 잡은 이의 머리를 벽에 박아버린다. 다리가 차인 자는 비명을 지른다. 다른 자는 그대로 쓰러진다.
자신의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버리는 것은 볼 수 없다.
...그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에스터는 칼을 줍는다. 그것을 두 손으로 벽에 힘껏 내리쳐 박아버린다. 나무로 된 손잡이를 손으로 금가게 해버리고, 아직 서있는 싸이킥 갱들에게 다가간다.
"으, 으아아아..."
"괴물! 괴물이다!"
초점잃은 눈과 초췌한 인상, 거대한 덩치의 괴력을 가진 사람이 중얼거리며 다가오는 모습은 그들에게 미지의 공포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기절한 사람 빼고는 모두가 사라진 자리에서, 인질이었던 자만이 멀뚱히 그녀를 보고 있었다.
"저, 저기..."
"......"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괴물은 그 자의 눈앞에서 사라진다. 어딘가 지쳐보인다고, 속으로 생각한다. 터덜터덜 걷는 뒷모습을 보면서.
1명 구출
- 다시 만난 팬입니다!
(57스레)
"에스터님!"
터덜터덜 걷던 에스터는 등 뒤에서 누군가의 기습을 받는다. 와악! 하고 놀래켜줄 의도였던 것 같다. 범인은 바로 예전의 그 팬이었다. 소녀는 깜짝 놀랐죠! 라며 미소지으려다, 이 별 것 아닌 공격에 털푸덕 쓰러진 에스터를 보고 어리둥절해있는다.
"...에스...터님?"
소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이명처럼 울린다. 목소리가 텅 빈 머리를 종처럼 치며 울리고 지나가는 느낌이다. 지금 들릴리 없는 환청도, 소녀가 실제 건네고 있는 말도, 전부 섞여 동등한 위치에서. 주마등을 소리로 구현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에스터는, 온갖 목소리 가득한 머릿속을 겨우 정리하고 상황을 맞이한다.
장난인가?라고 생각하려던 찰나, 에스터는 두 팔로 몸을 일으킨다. 돌부리에 긁힌 이마는 피가 흐르고 있다. 초췌한 몰골이 눈살을 찌푸린 채 흉하게 당신을 쳐다본다. 째려보는 것은 아니나, 그에 비견해도 될만큼 충분히 험악했다. 바닥과 에스터를 번갈아 쳐다보며 멍하니 있던 소녀는, 이제서야 상황을 파악한다.
"......"
"에스터님!?"
...소녀는 아무도 모르게 에스터를 기습하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자신조차 모르게.
ㅡ
공원의 벤치. 소녀가 건넨 음료를 받아든 에스터와, 머리를 조아리는 소녀.
"죄송합니다! 저는 그냥 더, 진짜...친해지고 싶어서!"
소녀는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를 건넨다. 아니. 그렇게까지 머리숙일 필요까진 없어. ...라고 말하고 싶으나, 말이 잘 나오질 않았다. 지쳐있기 때문인지, 이마가 너무 아픈 탓인지. 그래서 음료를 홀짝인다. 훗날 누군가의 배려가 그렇게 되듯.
"...괜찮아."
"하지만...하지만...피가! 흐르는데! "
"멎었다."
겨우겨우 짧게나마 입 밖으로 말을 낸다. 이마에는 동화를 캐릭터화한 것 같은 캐릭터 밴드가 붙여져있었다. 코와 볼의 심플한 흰 밴드에 비해 너무 눈에 띈다. 애초에 당장 밴드의 무늬를 가리다니 할 짓이 아니지만. 당연하지만 소녀가 붙여준 것이었다.
"으...으...저는 정말 바보같은 팬인거에요...바보...우푸 바보..."
"...우푸?"
"아. 네! 제 애칭이에요! 귀엽죠!"
"......"
에스터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갈색 머리칼의 소녀는 바로 밝게 표정을 바꾼다. 태세전환이 에릭수준이군. 속으로만 생각하며. 에릭. ...그를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조금 마음이 풀어지곤 했다. 언제나 너에게 의지하고 있구나.
"뭐. 저 말곤 아무도 그렇게 안 불러주지만!"
자칭이었나. 소녀는 에헷! 같은 소리를 내며 발랄하게 혀를 내민다. 만화같은 표정이다.
"귀엽네..."
"......! 그렇죠! 우푸! "
그러고보니 아직 제 이름도 얘기해드린 적 없네요! 우푸라고 불러주세요! ...아니. 애칭이라며? 원래 이름은 별로 귀엽지 않은걸요! 이런 바보같은 대화마저도 어쩐지 그가 떠올린다. 그 외에 자잘하지만 말하며 눈을 빛내는 부분이라던가.
"...우푸. 그러고보니 할 말이 있는데."
"......! 네! 말해주세요! "
아아! 에스터님이 나를 우푸라고 불러주셨어! 보이지않는 꼬리를 흔든다. 이 애. 좀, 뭐랄까, 개과인걸. ...머리에 왠지 뾰족한 귀가 솟아나보이는 기분.
"선물. 이제 그만...보내줘도 될 것 같아..."
"네?"
"마음은 고맙지만...너에게도 폐가 되고..."
"아...저는 상관 없는데."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많이 와서...처치곤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팬은 선물센스가 조금도 없었다. 에스터가 좋아하지도 않는 디저트 쿠폰들이나 흰 꽃으로 가득한 꽃다발같은 건 그렇다 치자. 붉은색 보자기인지 망토인지 구분도 안 되는 것을 대체 어디다 쓰라는 건가. 슈퍼맨인가. 역시 슈퍼맨을 생각한 건가? 차라리 응원이 담긴 셀카 사진을 받는 게 나았다. 그보다,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안거야. ...물론 감사의 선물을 받는 입장에서 이런 궁시렁대는 말을 건넬 수는 없었다.
"...나는, 디저트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네에에에에!?"
"그렇게 과장되게 놀랄 건 없잖아."
"하, 하지만! 단 걸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니...충격! 대충격인데요!"
...역시 어디서 많이 본 행동과 말투. 사실 에릭의 생이별한 남매였습니다! 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걸. 생각해보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닌가. 실제로 에릭은 친부모를 모르는 고아였으니까. 외모가 전혀 닮지 않았다는 게 문제지만.
당장 머리색도 남색과 갈색. 눈 색은 같은 노랑이긴 하지만 옅고 밝은 노랑인 에릭과 약간 초록기가 돌 정도의 진한 노랑. 외모만 보면 차분하게 생긴 에릭과 달리, 딱봐도 기운차게 생긴 외모.
"단 게 싫다기보단, 설탕이 싫다."
"예에에에에에!?"
"두 번 씩이나 놀라지 마."
또래에 비해 체구가 작은 에릭과 비교해서, 이 소녀는 체격이 여고생치곤 큰 편이었다. 에릭보다 조금 작은 키에다가, 운동을 했는지 탄탄한 몸. 전체적으로 귀여운 외모에 가려졌지만(그리고 애초에 아무리 탄탄해도 에스터 옆에 있으면 귀여운 수준이지만)잘 보면 제법 잔근육이 잡혀 다부진 편이었다. 체육을 하는 아이일까. 그래서 인질로 잡혔을 때도 혼자 사진을 찍을 용기가 있었을지도.
"...그, 그렇지만, 주변에 단 걸 좋아하는 사람은 있을 거 아니에요!"
...그 말이, 잠시 풀어졌던 에스터를 얼어붙인다.
"왜냐하면...단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에스터님...?"
그러고보니, 호칭도 그랬다. 아까전까진 전혀 생각을 못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를 향한 자신을, ...자꾸 떠오르게 해서. 머리가 아팠다.
"에, 에스터님...?"
"......"
머리를 부여잡는 에스터에게 소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만약 이 모습들이 전부 연기라고 한다면 감탄의 박수를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밝은 소녀였다. 그런데도, 어째서, 자신은 호의를 호의로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미안해."
결국 그런 말을 던진다. 더 이상 대화를 할 기운이 없었다. 지금은 지쳤다. 조금 쉬고 싶었다. 에스터님. 그 목소리마저도, 이명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굳어진 표정을 풀 자신이 없었다.
"나는...조금 지쳤어. 그러니까...쉬고 싶어서..."
"......"
소녀는 가만히 있다가, 일어선다. 에스터를 괴롭게 할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탁탁탁 뛰어가는 소녀의 뒷모습. 정말로 체육쪽을 하는지, 달리는 폼이 잡혀있었다. 쫓아내버렸다. 그저 나에게 고마워했을 뿐일 텐데. 하지만, 지금은 도무지 이야기를 나눌 기력이 없었다.
달이 떠있는 밤. 괴물은 슬픔을 집어삼킨다.
- 그 대화.
- (57스레)
"괜찮아요. 에스터씨."
말들이 전부 누워있는 체스판. 검은 나이트와 흰 킹만이 남아있었다. 나이트는 킹을 체크메이트한 채.
"에스터씨는 잘못하지 않았어요. 지금부터 할 일들도 그 무엇도 나쁘지 않으니까요."
"...어째서."
"에스터씨는, 이즈모의 위험을 막는 영웅이자ㅡ그저, 평범한 사람인 거에요."
떨리는 손. 내리깐 시선.
하나는 이즈모에 관한 일이고, 둘째는, ...사랑의 이야기.
"...어째서 그렇게 단언하지."
"그야, 당연한걸요."
언젠가의 기억이었다. 라디오테이프가 재앙을 떨어트린 어느 때의 것.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전혀 나쁜 일이 아니에요."
그 말에, 에스터는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뭐어. 그 상대가 죄인이라는 점에서는, 말리고 싶지만."
"......"
"...그러니까, 괜찮아요."
눕혀진 체스말들 위 다정한 소년은 기사를 쓰다듬는다.
- 조금 가라앉은 팬입니다!
- (59스레)
아마도, 이런 모습으로 재회하게 되리라곤 양 쪽 다 생각 못했겠지.
"......"
"...에스터님."
얼굴에 부어오른 자국이 있는 소녀가 에스터의 발걸음을 멈춰세운다. 억지로 웃어보이는 모습이 처량하다. 익숙한 호칭에 다시금 에스터는 움찔한다. 에스터는, 소녀의 볼에 시선을 두더니 오랫동안 침묵했던 입을 연다.
"...무슨, 일이."
"...그냥 좀, 맞았어요."
소녀는 고개를 돌린다.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부위라면 모를까, 얼굴이 부어올랐는데 변명을 할 수는 없었다. ...당신도 나를 한심하게 여기겠지. 바보같았다. 우는 것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보이는 거라고 했는데. 머리 나쁘단 얘기야 한 두번 듣는게 아니지만서도.
"......"
에스터의 떨리는 손길이 얼굴로 향한다. 손이 다가가자 소녀는 움찔한다. 그러다가, 볼을 쓰다듬어주는 것에 소녀는 당황하고. 다친 볼이 따끔따끔대면서도, 부드러운 손길에 놀라고 만다. 소녀는 자신보다도 슬퍼보이는 당신의 눈을 쳐다본다.
"...신고하자."
"안 돼요."
"......"
"...안 돼요."
단호한 목소리. 아마,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는 거겠지. 주로 이런 반응이라면, 가까운 사람이었을 확률이 높은가. 소녀는 눈을 피한다. 활기찬 표정이 전부 저물어버렸다.
"어째서."
"...저는."
"폭력은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이다."
"저는 에스터님만큼, 올곧고 강한 사람이 아니에요."
꿈틀. 무언가 울렁거린다. 언젠가의 그 녀석이 토해냈던, 바보같은 소리. 소녀는 그 때의 그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다시금 떠오르는 그 때의 광경들과, 더 과거에 겪었던 일들. 자신을 괴롭힌 주제에, 그런 뻔뻔스러운 소리를 해대면서.
"그러니까, 이 상처는 말할 수 없어요. ...바보같은 소리지만, 진짜에요."
"......"
"...화났어요?"
왜 화났냐는 이야기를 하는 걸까. 네가 대체 무엇을 잘못했다고. 지금껏 어떤 생활을 해왔었기에, 이런 상황에서 죄인인 듯이 구는걸까. 실상, 실제로 자신을 괴롭힌 사람은 뻔뻔스레 복수를 하겠다고 찾아와 협박했는데. 소중한 가족을 인질로 잡은 메세지를 보내며, 자신이 피해자인 양 소리지르기까지 하면서.
"......"
에스터는, 어쩔 줄 모른 채 서있는 소녀를 꼭 끌어안아준다.
히어로의 일이었다.
에스터님, 이라고 부르려는 목소리는 희미해진다. 부끄럽고, 슬프고, 괴로우면서도, 기뻐서, 눈물이 흘러나온다. 이런 감정은 약한 감정이야. 이런 것에 빠져선 안돼. 나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동경하는 팬이어야 하는데. 소녀는 잠시 그 따스함에 안기더니, 결국엔 덩달아 그녀를 끌어안고 만다. 흐느끼는 목소리가 추하게 울려퍼진다.
...전부, 잘 된 일일거야.
- 휴가
- (60스레)
(녹턴의 사형집행날.)
"......"
"에스터씨. 진짜 갈 거에요?"
에스터는 신발을 고쳐신으며, 출근을 할 준비를 마친다. 추워진 날씨 답게 꽁꽁 싸맨 모습이다. 검은색 더플코트에, 회색 목도리. 초인종이 울리는 문을 열어보니 히어로출신도 아닌 에릭이 배웅나와있었다.
"갈 거다."
"그렇지만, 오늘은 처형날이라면서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에릭이 팔을 벌려 에스터를 막는다. 에스터는 그것을 그저 바라본다. 단호한 표정이었다. 노란빛 눈이 오늘따라 유독 단단하게 보인다.
"휴가 신청을 하기 위해서라도, 회사에 가야 해."
"직접 가지 않아도 괜찮잖아요. 문자로 할 수도 있고."
"얼굴을 보고 직접 대면하는 것이 상사에 대한 예의다."
"그럼, 제가 직접 대면할게요."
흐리멍텅한 눈이 에릭을 바라본다. 에릭은 기죽지 않고 질세라 상대를 노려본다. 이 쪽은 딱히, 노려보려고 이런 눈을 한 건 아니었는데.
"내가 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에스터씨가 집에 있지 않으면 휴가의 의미가 없어요."
...강인하다. 강해졌구나. 에릭. 정말로 강해졌다. 이제는 자신이 아니라 네가 훨씬 강한 느낌인걸. 하지만 에릭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이 강해진 게 아니라, 에스터가 약해진 것이라고.
누구라도 총을 맞으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
"...제가 대신 갈게요."
"...맞대면해서, 정중하게."
"그런건 집어치워요."
에릭의 말에 날이 서있었다. 발랄하고 밝던 평소의 태도는 온데간데 없었다. 다친 사람이 약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에게조차 제압당할 기세인 에스터가, 지금 대체 어디를 간단 말인가. 상처를 일부러 쑤시는 것도 정도가 있지.
"제가 갈거에요."
"......"
"저도, 히어로의 일원이에요."
"...너."
"비록 정식 히어로는 아니지만, 히어로를 위해 지금까지 애써왔다고요."
에스터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목에서 차오르는 것을 느끼다가, 따끔대다가, 에릭의 눈을 쳐다보다가,
이내 관둬 버린다.
"...알았어. 대신, 정중하고 예의바른 태도로 가도록 해."
그 말에 드디어 에릭은 단단해진 표정을 풀고 부드럽게 씨익 미소짓는다.
"예의바름 하면 바로 저 아니겠어요."
- 빨간모자와 늑대
- ※위키의 에스터 항목 팬 관련 독백들(불살제압방법 포함). 그리고 미야와의 두 번째 일상에서 이어집니다.
새로운 집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안식처는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 곳의 총책임자인 당신에게 있어 무능력자인데다 머리도 나쁜 나는 아무 쓸모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당신이 나의 새로운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것 또한 마찬가지로 나 혼자만의 망상이었다. 그래도, 나의 살려달라는 말에 나를 구해줬을 때는, 당신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애정이 생기리라고 기대해버렸다.
"에스터 힐데가르트는, 잔혹한 히어로야."
당신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면서 지내왔기에, 그 영웅에 대한 내 첫인상은 '적'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당신의 세력의 입장에서는 그녀는 무지막지한 장벽중 하나였으니.
"자신의 부모조차도 감옥에 집어넣고, 애정을 준 이조차도 몰락시켜내려갔지."
이 곳의 이들이 나의 가족이라고 믿었다. 당신 또한 나의 가족이 되어주리라 믿었다. 내가 당신을 위해 움직이면 그것이 내게 애정이라는 보답을 가져다줄거라고.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당신만을 위해 일을 벌여왔다.
"그녀의 약점을 쥐고 흔들 무언가가 필요해."
그것이 악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ㅡ
처음 영웅을 직접 보았을때, 흩날리던 당신의 머리카락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죽이지 않는 히어로. 누군가는 그 머리카락을 하늘빛이라고 말하겠지만, 머리가 나쁜 나는 감히 물빛이라고 말해보겠다.
"미안하군."
물빛. 물빛이었다. 그것은 마치 끝없는 바다. 아니면 우물. 끝도 없이 상대의 숨을 막아가며 그 소금기를 들어마시며 질식하게 만드는 바다. 그런 압도적인 느낌을 느꼈다. '하늘'과 같은 자유는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심해가 아닌 얕은 바다였기에 파도를 쳐대며 상대를 겁주긴 해도 정말로 집어삼켜 자신의 안에서 죽여갈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 달랐다.
상대는 끌어안긴 채 팔을 바둥거린다. 에스터는 그러나 상대를 놔주지 않는다. 그대로, 점차 상대의 발버둥이 약해져가더니... ...상대는 쓰러진다. 마취제였다.
"나는 죽이지 않겠지만, 이즈모에 보내진다면 그 뒤의 일은 내 관할이 아니다. 유감이군. "
사람을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것이 약점이다.
학생들의 틈에 어떻게든 끼어들어가, 영웅에게 구해지기를 기다리며 숨어있었다. 양인 척을 하고 있었던 나는 마침내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최상의 타이밍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마침 저 빌런은, 그녀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지 무언가를 떠벌댔으니까.
그런 것을 생각하며 촬영을 하고 있었다. 이 노골적인 행위가 이상하게 보인다는 걸 그 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의심받게 하는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ㅡ
"팬입니다!"
밝은 목소리로 그런 소리를 하며 당신에게 달려들었다. 가식적인 표정과 미소로 꽃을 내밀며 당신을 속였다. 당신을 "편찮으신 할머니"의 탈을 쓴 늑대에게로 인도하기 위해서.
그녀와 친밀해져야만 그대가 꽃밭에서 헤매게 할 수 있다. 그래야지만 나는 "그 사람"의 신뢰와 애정을 받을 수 있다. 애정을 받기 위해 애정을 만들어낸다니, 정말 바보같은 얘기다. 하지만 이런 방법 말고는,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무능력자에다, 머리도 나쁜 나에게 허락된 건 무조건적인 복종 뿐. 배를 드러내며 그릉거리는 것이다. 애정공세를 쏟아내며, 상대가 약해지는 틈을 노리며. 계속해서 사랑의 선물을 보내간다.
당신이 무엇을 좋아할지, 무엇을 해야 당신에게 사랑받을지, 고민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애정으로 당신을 무르게 만들어 잡아먹을 수 있을 때를 노려나갔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숨기고서는 화사한 미소를 띄우며 웃었다.
ㅡ
"미안해."
에스터 힐데가르트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그런 소리를 했던 날.
"지금은 조금...지쳤어."
굳어진 얼굴이, 뜻하는 바는 명백하다고 생각했다. 자상한 말투를 노력하지만, 분명히 괜찮지 않은 얼굴. 가버리라는 듯한, 그 태도는 분명.
나의 실패.
"...쉬고싶은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너무나도 수상한 티를 많이 냈던 탓일까. 중학생의 나이때부터 가출했던 데다, 몇년간 계속 그런 곳에서 자란지라 평범한 상식이 부족했다. 당연히 좋은 선물이리라 생각했는데, 처치곤란이라는 말과.
적대하는 듯한 눈.
"...에스터님."
철렁 내려앉은 마음. 도무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관계. 임무의 실패다. ...그 사람의 도움이 될 순 없다. 당신의 도움이.
웃으며, 인사를 하고, ...도망친다. 나를 쳐다보는 눈들이 비난을 쏟아내는 것만 같은 느낌. 당신의 일을 실패해버렸다. 당신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신에게 미움받는다. 당신을 실망시킨다. ...당신을.
ㅡ
뺨을 때리는 소리가 얼얼하다.
"......"
당신에게 모든 것을 말했다. 그녀에게 접근한 것. 그녀의 정보를 알아내려 한 것. 그리고 실패한 것. 나를 밀어내는 그녀의 태도까지도.
경멸하는 눈이 나에게 돌아왔다. 나는 고개를 숙여 그런 당신의 눈을 피한다. 그녀에게 의심받지 않고 접근할 수 있는건 나에게 적격이었다. 무능력자고, 애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차마 의심하기 힘들만큼 멍청한 나. 한 번 의심받으면 두 번째 기회는 없다. 이미 의심의 싹은 터버린 상태일터니.
그리고 한 대가 더 날아오며,
"쓸데없는 짓을 했다."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는 듯이, 당신은 말했다.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나는 당신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나는. 부하로서. ...가족으로서. 하지만 당신에게 있어 나는, 부하로서의 가치도 없는 멍청이겠지. 알고 있었다. 전부 내 오만이라는 것을. 충돌한 볼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피맛보다도, 더 저릿하게 가슴이 아파오고 있었다.
"....님."
당신을 불러본다. 고개를 조심스레 들어보지만, 경멸의 눈길은 더더욱 거세진다. 평소의 자상한 얼굴과는 달랐다. 명백하게, 쓸모없는 것을 보는 눈빛이다. 너를 대체할 것은 널리고 널렸다. 약한 데다 무능하기까지 하다니, 최악이다. 그런 말이, 나를 찌르고, 찌른다. 당신의 목소리가 칼날처럼 날카롭게 느껴진다.
"다시 만나서 에스터를 이용하지 못한다면, 너는 끝이다."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감정들이 굳어져 쌓여간다. 나는 무거운 돌덩이를 삼킨다.
ㅡ
다시 만나는 날을 기대하지 못했다.
"......"
다시 만나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에스터님."
그것도, 이런 형태가 되는 것은 극구 사양이었다. 자기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무심코 미소를 띄웠다. 상대의 동요하는 얼굴이 눈에 어른거렸다. 뱃속에 쌓인 돌덩이들이 무거워지고, 아물지 않은 상처가 벌겋게 달아오르는 광경이었다. 나는, 부어오른 볼을 집어삼켜 먹어치워 이 곳에서 보이지 않게 하고 싶었다.
고개를 돌린다. 다른 부위라면 모를까, 얼굴이 부어올랐는데 변명을 할 수는 없었다. ...당신도 나를 한심하게 여기겠지. 바보같았다. 우는 것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보이는 거라고 했는데. 머리 나쁘단 얘기야 한 두번 듣는게 아니지만서도. 거기다가, 이런 얼굴을 들켰으니... ...수상하게 여기는 것도 더 심해지지 않을까. 꿀꺽. 또 다시 딱딱해진 괴로움을 삼키고.
......
...어째서, 나보다도 슬픈 표정을 지어주는 걸까.
"...무슨 일이."
"그냥 조금, 맞았어요."
"......"
나의 볼에 당신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은 예상치 못한 채였다. 나는 그 손길에 움찔, 하고 움츠러든다. 그러더니 당신은 굳어진 얼굴로 말한다. 강인한 말투였다.
"신고하자."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다.
무겁다. 돌덩이같은 절망을 잔뜩 삼켜서인지, 계속 무언가가 무겁다. 배가 터질 것 같다. 가슴이 내려앉는 것도,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탓임이 분명하다. 괴롭다. 당신은, 그 말이 나에게 무슨 의민지 알고 있을까.
"안 돼요."
몰려서인지, 말은 상상 이상으로 단호하게 나와버린다. 두근, 두근. 심장이 자신을 책망하는 소리를 무시하고는, 잘 한게 있다는 듯이 밀어붙인다.
"...안 돼요."
나는 눈을 피한다. 가짜 밝은 표정마저도 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왜,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거야.
"어째서."
마주볼 수 없다. 당해버릴 것 같다. 발을 간지럽히는 정도로 끝났어야 할 얕은 바닷물이, 자신을 축축히 젖힌 뒤 삼켜버릴 것 같다. 회색빛의 눈이, 나를, 죄인을 심판한다. 죄인을 향한 벌이 내려진다.
"...저는."
"폭력은 용서할 수 없는 죄다."
당신은 내가 얼마나 손을 더럽혀왔는지 알며 하는 소릴까. 모든 죄가 드러나보일것만 같은 수치심에, 그런, 약한 말이 나오고 말았다. 간접적인 죄의 인정.
"저는 에스터님만큼, 올곧고 강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 말에 혼란스러워하는 당신의 얼굴은, 분명 뭔가를 눈치채고 만 것이겠지. 입 밖으로 내지는 않지만, 이 관계의 끝장을 고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돌아오는 것은 익숙한 경멸의 말일 터이다.
"그러니까, 이 상처는 말할 수 없어요. ...바보같은 소리지만, 진짜에요."
"......"
"...화났어요?"
나는 뻔뻔스레 그런 말을 꺼내본다. 이제 곧 나의 정체는 다 들켜버리겠지만, 그 사람의 정보를 부는 것을 할 수 없었다. 그것이 부하된 자의 최소한의 도리였다. 그리고 그 상태로, 어쩔 줄 모른 채 서있는 나를 보더니, 당신은. 물빛의 사람은, 경멸조차도 내뱉지 않은 채로.
나를, 끌어안아주었다.
"......"
에스터님, 이라고 부르려는 목소리는 희미해진다. 부끄럽고, 슬프고, 괴로우면서도, 기뻐서, 눈물이 흘러나온다. 이런 감정은 약한 감정이야. 이런 것에 빠져선 안돼. 나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동경하는 팬이어야 하는데. ...당신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나는 잠시 그 따스함에 안기더니, 결국엔 덩달아 그녀를 끌어안고 만다. 흐느끼는 목소리가 추하게 울려퍼진다.
ㅡ
...전부, 잘 된 일일거야.
겨울이란 날씨에 맞지 않는 아이스크림 장수에게 빤히 시선을 가져가니, 당신이 묵묵히 돈을 내곤 그것을 내 손에 쥐여주었다. 사실은 늘 디저트 선물을 보내온 것 치곤 스스로가 사먹어본 일은 별로 없어 감회가 새로웠다.
"...정말로 위로해주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얼굴의 붓기가 언제쯤 빠지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루 정도면 괜찮으리라 생각했는데. 역시 어디가 터진건가? 잘 모르겠다. 상처가 났는데 그냥 방치하고 아무데나 누워서 잤더니 회복력이 떨어졌나.
"에스터님에게는 밝고 귀여운 팬이고 싶어요. 그게 제 역할인걸요. 왜냐하면, 저는 애초부터 그러기 위해서 에스터님을 좋아한 거니까."
거의 체념하듯이, 참회하듯이 말했다. 이미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척 해주는 걸까. 아니면 그만큼 나를 믿어주는 걸까.
"...맞은 것도, 저 때문이에요."
입술을 깨문다. 부은 눈이 따끔거리는 것 같다. 당신의 손이 나의 손 위에 올라오고, 나는 당신을 쳐다본다. 물기어린 눈으로 물빛의 머리카락을 바라봤다. 바다. 바다빛이라고 생각했다. 부드럽고 슬픈 눈동자를 가진, 물빛의 영웅.
"그런 말은 너 자신에게 가혹하지 않은가."
그 말에,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더라.
ㅡ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원래부터 그런 짓이라면 잘 하니까. 양 무리속에서나, 심부름을 가는 빨간모자를 따라가면서나, 그런 역할이었다. 내가 하곤 하는 것은. 더러운 일들이다. 그 곳에서, 당신과 누군가의 대화를 들었다.
"...나도 히어로 되서 언니야 무리하는지 안하는지 지켜볼거에요."
누군가의 말.
"...이즈모라는 직장은, 결코 좋은 곳이 아니야.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빌런보다 더 더러울지도 몰라."
당신의 말.
"...그리고 뭐... 빌런보다 위험하겠어요?"
"......이 되어준다면, 나는 그런 너를 지켜주도록 하지."
그런 대화들을 그저 듣고 있었다.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있었을 뿐이다. 무언가가 스스로의 안에서 무너지고 다시 만들어지는 것만 같았다. 짚으로 된 집과 나무로 된 집들을 부서뜨린다면 나에게 남은 것.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나무집과는 작별인사를 할 시간이야.
당신이 뒤늦게 나를 찾아오기 전에 사라져버리기로 했다. 벽돌로 된 집을 무너뜨릴 수 있는 재주는 없으니까. 나무집. 나무집에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도망이다. 숨을 들이마시고, 크게 뱉어내며. 나의 보금자리를 전부 무너뜨릴 각오를 한다. 이제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거야.
안녕. 할머니. 안녕. 빨간모자야. 주역이 되지 못한 멍청한 악역은 배드엔드를 맞을 차례다. 배에 돌이 꽉 들어차서, 이젠 우물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겠지. 어쩐지 물에서, 짭쪼름한 맛이 나는 것 같다. 전부 다 물을 향해 다가갔던 바보같은 늑대의 탓이다. 안녕히. 물빛의 사람.
소금기 어린 얼굴을 손으로 닦아낸다. 계속해서 물 속으로 가라앉게 된 것은 전부 내 탓이다. 덜덜 떠는 손이 핸드폰을 꺼내고, 차가운 바람이 나를 계속 채찍질한다. 할머니에게, ...그 분에게 전화를 해야지. 숨을 다 토해낸 탓에 이제는, 목소리까지 덜덜 떨려버리고는.
몇 번의 연결음이 울리다가 끊어진 뒤, 익숙한 목소리의 인사가 돌아온다. 나는 그 자상하고도 무정한 목소리에 선언하고 만다. 자신을 무너뜨릴 이야기를.
"임무, 실패했습니다."
나무로 된 집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가슴을 울린다.
'...그런가.'
"...네. 돌아가겠습니다."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한 목소리. 첫 번째 거짓말이니, 순순히 믿어주지 않을까. 당신이 있는 곳에 늑대가 나타나리라는 이야기를. ...그리고 담담하게 당신이 지어준 나의 이름이 울려퍼진다.
"연구소로 돌아오렴. 울프."
나는 대답할 뿐이다.
"...네. 소장님."
그리고 도망치는 곳이 어디인지는 알지 못한 채이다.
- 어린이제국 - 반응
- (61스레)
[(에스터 힐데가르트는 현재 나이빌런(가칭)의 능력으로 몸이 대정전 전의 나이로 돌아갔습니다.
현재 17살 정도입니다.)]
"진짜... 얼마전에 휴가 내놓고, 또 사건에 휘말려서 오시고..."
"...그렇게나 화났나."
"당연하죠! 이러다가 뒷치기라도 당하면 어떡할거에요!?"
"미안하다."
에릭은 돌아가는 내내도 계속 화를 내더니, 연구소에 온 뒤에도 쨍알거리고 있다. 연구소 내의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혹은 오랜만이라는 듯이 에스터를 둘러싸고 있다.
"그리운 모습이네."
"...반응이 너무 태평하잖아요."
"그렇지만, 어차피 휴가도 냈잖아. 돌아갈 방법이 생길때까지 한동안 이 상태로 연구소에서 지내면 되지 않을까?"
에스터의 집이 아닌 연구소로 향한건 이 이유였다. 이대로 혼자 살다간 위험하다는 에릭의 말 때문. 어려졌어도 총은 쏠줄 안다고 항의해보려고 했지만, 쏟아지는 쨍알거림에 항복한 채 순순히 끌려왔다. 뭐, 소장 A씨 말대로 어차피 휴가도 냈겠다, 상관은 없겠지. 에릭 또한 다른 연구원들의 온건한 반응에 기운이 빠졌는지, 맘대로 하라며 털썩 의자에 앉아버린다. 혼내주려고 데려왔더니, 다들 장난 취급하고 있어.
"...에릭."
"다들 멍청이! 멍청이야. 멍청이! 내가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도 이해 못하고!"
"괜찮다니까."
"뭔지 모를 공격에 당해서 힘이 쭉 빠지고 비실비실해진게, 뭐가 괜찮은데요!?"
"...쉬면 되는 일 아닌가."
"에스터씨가 안 쉴게 뻔하니까 그렇지!"
나는 이 정도로 신뢰를 잃었는가. 그 동안의 행적을 돌이켜본다. 그러니까,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을때... 원래 바로 휴가를 냈어야 하는데, 계속 미루다가... 일주일정도 지나버렸고...음. 그럴 만도 하군. 금세 납득했기에 입을 다물도록 한다. 순한 얼굴의 어린 에스터가 얌전하게 앉아있다. 근처의 연구원 B씨가 그녀의 볼을 꼬집는다.
"정말, 일주일전까지만 해도 테러로 고생하고! 어제도 녹턴씨의 사형중에 회사에 가려..."
"...에릭."
"...앗."
에릭은 말실수를 했다는 듯이 입을 다문다. 이런. 연구원들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는다. 에스터는 잠시 표정을 굳힌다. 에릭이 조심스럽게 에스터의 눈치를 살핀다.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죄, 죄송합니다. 에스터씨..."
"...아니."
"에스터씨에게 경각심을 주려고 하다보니..."
"...괜찮아."
이미 엎질러진 물은 돌아오지 않는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애써야 할 뿐이다. 어떡하지. 왜 굳이 이런 얘기를 꺼내서. 에릭은 어떻게든 화제를 돌리려고, 다른 이야기를 꺼내보지만...
"그, 그게, 저는 진짜 에스터씨가 걱정돼서... 그냥..."
"......"
"아. 그럼 다른 이야기 할까요. 최근에 블래스터씨가 금연했다고...!"
"에릭. 질문이."
...그리고 이후에 이어지는 에스터의 대답은, 분위기를 더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데에는 충분했다.
"...녹턴씨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였지?"
- 일시적 망각
(어린이제국 반응에서 이어짐)
"......"
줄곧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에릭에게, 에스터는 어린 목소리로 계속 말을 걸어와본다.
"...에릭. 그건 정말 말실수였어."
에릭은 자신의 방 침대 구석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숙인 채였다. 문 앞에서 에스터가 계속 걱정스러운지 말을 걸어와보지만, 없는 척이라도 하려는 듯이 입을 다물고 있다.
"나는 녹턴 자체를 기억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와 어떤 사이였는지 잊어버렸을 뿐이다."
"......"
"...대략적인 사항은 지금 막 기억이 났어."
단 것을 좋아했고, 뭔가 간식을 같이 먹었던 것 같고, 예전에 경찰이었다는 것은 기억이 났는데. 최근까지도 그 사람과 접촉이 있었었던가? 잘 모르겠다. 언제 봤던 경찰... 나를 도와줬었고... 사형... 죄를 지었던 건가.
"...결국,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에릭은 무릎을 더 세게 끌어안는다. 견고하게 지어진 자신의 성이었다. 성의 장벽을 넘어오는 것 조차 허락되지 않은 자는 그저 에릭을 목소리로 불러본다. 방 문 앞에 서서 알현하듯이 계속.
"...에릭."
"......"
"녹턴 드네리스는."
고개를 숙인다. 어차피 방 안이니까 그 모습이 에스터에게 보일리는 없는데도. 무언가를 숨기려는 듯이.
"...우리에게 많이 소중한 사람이었어?"
에릭. 그렇게 부른다. 에스터의 잘못이 아닌 걸 안다. 능력자 뭐시기의 능력 탓이겠지. 하지만. 상처받은 부분만이 이런 식으로 간단하게 잊혀버린다니.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기억이 없어져가다간ㅡ
...언젠가, 나마저도 잊어버리게 되는 걸까.
"...에릭."
"...에스터씨."
연구소에서의 광경이 에스터에게 어마어마한 상처였다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에릭 본인이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녹턴에 관한 일은 그 이상으로 상처였던 걸까. 아니면 시간이 오래 지나서 과거의 상처가 희석된 걸까. 사형 건은 최근 일이니까. 그렇게나 울고 괴로워하고 토해냈으면서, 어떻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미안해."
그 말에 다시금 울컥 해버린다. 당신이 뭔데 나에게 사과를 해요. 에스터가 잘못한 것이 없었기에 더더욱 화가 나고, 서러웠다. 걱정인 동시에, 자그마한 이기심이었다. 에스터씨는, ...나와의 첫만남을 기억하고 있을까? 두려웠다. 한 발을 내딛는 것이.
"...잘못한 거, 없으면서."
"......"
"그냥, 분위기때문에 사과하고 있고..."
나와의 첫만남은, 에스터씨에게 어느 만큼의 상처였을까?
"정말로, 미안하다."
"......"
"...에릭."
"에스터씨는, 바보."
알아내는 것이 두려웠다. 자신에게 구원이었던 첫만남이, 잊을 수 없던 사건이, 당신에게는 잊을 수밖에 없는 상처의 기억일까봐. 그리고, 만약에 잊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날의 오열이, 괴로움이, 최근의 일들보다 훨씬 못한 상처라면 당신은, 대체 얼마만큼의 상처를 입은 거냐고.
결론에 도달하는 일이 두려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고통에 저울질을 하는 사실이, 자신의 역한 이면을 드러내보이고 있었다. 그런 자신의 밑바닥을 보게 되니 다시금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나, 이기적이고 자기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야. 당장 에스터씨가 괴로워할 것보다, 그런 당신을 보는 자신의 괴로움에 집중하고 있는데다, 반대로 이렇게 에스터씨에게 사과까지 받고 있고.
에릭은 견고한 자신의 장벽속에 있었다. 무고한 당신의 사과를 맨 입으로 깨물어먹는 것 조차 하지 못한 채.
- 엔제 선물 반응(에스터)
"어라?"
에릭은 택배를 받아오는 에스터를 의아해한다. 에스터는 여전히 17살의 모습인 그대로다. 에릭은 기습적으로 에스터의 볼을 꼬집으려다 제지당한 뒤, 질문으로 말을 돌려본다.
"에스터씨. 그거 뭐에요?"
"글쎄."
에스터는 택배를 내려놓는다. 발신인을 보아하니, 엔젤리카인가. 선물? 에릭은 왠지 자신이 더 신나 말한다.
"오오. 선물이에요!?선물!? 빨리 열어봐요. 에스터씨!"
"알았으니까 흔들지 마."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것은...
"...스테로이드?"
"와하하. 에스터씨에게 딱이네요!"
"나를 생각해준걸까."
에스터는 약 병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상당히 고급품인걸. 에릭은 웃는다. 신경쓰지 않는다.
"답례라도 해야겠는걸. 어디...단 것도 너무 자주 주면 안 좋으려나."
"에스터씨. 답례로 프로틴같은거 보내요."
"시끄러워."
-...선물 고맙다. 답례라기엔 뭣하지만, 이걸 보낸다. 추운 겨울 부디 따뜻하게 보내길. 그런 편지가 적혀있는 선물상자가 엔제에게 보내진다. 안에는 보드라운 털모자가 들어있다.
- 2년후 에스터 맛보기 - 패러독스
- (63스레)
패러독스.4년 전부터 라오스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악명높은 연쇄살인마의 이명으로, 살해한 사람의 신체부위에 "PARADOX"라는 상흔을 새겨두어 붙여진 이름이다. 2년 전, ST관리부장 함시온을 끔찍하게 살해하며 존재감을 과시한 것으로 이즈모에서도 경계 대상이 되었다.
ㅡ그리고, 그 정체는 과거 히어로 관리부서 소속이었던 이도성. 헤이샤오화와, 피해자인 함시온하고는 각별한 친분이 있던 사이이기도 하다.
에스터는 최근 패러독스의 현장 기록을 무덤덤하게 넘겨보며 앉아있었다. 끔찍할 정도의 살해현장이 그녀의 회색 눈동자에 담담하게 담긴다. 도무지 사람이라고 알아보기 힘든 수준의 시체 상태. 거기에 자신의 이명을 상흔으로 새겨둔다는 우스꽝스러울 정도의 악취미적 행태. 그런 식으로 하루에 죽이는 사람만 평균 서른이 넘는다는 어마어마한 스케일. 에스터는 눈을 감는다. 그 때 자신을 조롱했던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격노했던 자신을 떠올린다. 그의 배에 총구를 박아넣으며 죽여버리겠다고 선포하고는, 돌아온 조롱에 마침내 눈밭을 그의 피로 물들였었다. 누군가에게 그가 끔찍하게 죽어버리기를 바라면서도, 돌아오는 길에 다시금 흉측한 시체를 상상하며 헛구역질을 했다지. 어리고 부족했던 시기의 일이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돌아갈 수 없지만.
부럽게도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에스터는 이즈모를 나선다. 수장으로서의 지위를 상징하던 개인 사무실에서 벗어나, 대충 걸어놓은 양복 자켓을 입고 전장으로 향한다. 무기라면 언제나와 같이 완벽히 준비되어있었다. 권총 두 자루와, 비정함과, 쓰라릴 뿐인 과거까지.
ㅡ
참혹할 정도의 살해현장. 시체에 새겨져있는 패러독스라는 상흔. 언제나와 같이 "일"을 하고 있는 에스터와 익숙한 얼굴.
이마를 노린 사격은 안타깝게도 빗나가 벽에 꽂혀버린다.
"유감이군. 대화할 시간이 생겨버려서."
어깨보다 길게 내려오는 풀어진 머리카락과, 얼굴을 가로지르는 크디큰 상처. 그리고 미세하게 큰 키가 그녀를 향한 시간의 흐름을 보여줬다. 탕. 다시금 일격이 당신을 향한다.
당신의 태도가 의외라는 감상이었는지, 혹은 단순 조롱과 비아냥이었는지, 어쩌면 언젠가와 같은 예의바른 태도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에스터는 그것을 들어줄 생각은 없는 듯 했다. 아니. 듣고 있으나 옛날처럼 격렬하게 반응하진 않았다. 안타깝게도, 2년 사이에 꽤나 재미없는 사람이 된 모양이다.
"이 쪽도, 몇 년간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말이야ㅡ"
그렇게 운을 뗀 에스터는, 총구를 당신을 향한 채 겨누고 있었다. 이제는 그 눈에는 분노의 빛깔은 찾아볼 수도 없이, 그저 회색 뿐이었다. 회색빛을 하고 있는, 무미건조한 눈.
"사사로운 감정은 넣지 않기로 했거든."
...언젠가의 것과 같은 총성이 울려퍼진다.
그녀는 자비를 배우게 되었다. 어떤 식으로든 대역죄인을 고통없이 죽여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 참수형
- (어린이제국 이벤트 이후 시점.)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잃어버렸던 기억도 되찾아냈다.)
"......"
원래대로 돌아온 것을 축하하기에는, 에스터의 상태가 그렇게 좋지 못했다. 그렇지. 이 상태가 원래 상태였으니까. 알고 있었지만, 에스터의 괴로움을 보는 것은 기분이 좋지 못했다. 에릭은 긴 머리를 풀어헤친 에스터의 머리카락을 만지작대고 있었다. 그렇지만 평소처럼 장난스러운 모습은 아니었다. 텅 빈 공허한 표정인 에스터와, 그런 에스터 뒤에서 무표정하게 그녀를 바라보는 에릭이 있었다.
"...잘라줘."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던 두 사람 사이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에릭이 아닌 에스터였다. 역시, 다짐한 걸까. 에릭은 고개를 끄덕인다. 미용가위를 한 손에 쥔 에릭은 다른 손으로는 에스터의 머리카락을 잡고 있었다. 에릭의 눈이 약간 가늘어진다. 자릅니다. 에스터는 작게 긍정을 표한다.
싹둑.
긴 머리카락 뭉텅이가 바닥에 떨어져내린다. 눈물빛의 잔해들이 바닥 곳곳에서 뒹굴고 있었다. 꽤나 오랫동안 기른 머리카락일텐데, 아쉽구나. 에릭은 에스터를 대신해 그런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이렇게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에스터씨도 뭔가 다짐했다는 증거겠지. 에릭은 다시금 머리카락을 잘라나간다. 끝을 다듬어가며, 단이 엉망이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가위질 하는 소리가 시원씁쓸하게 울려퍼진다.
"에릭."
다시금 입을 연 것 또한 에스터였다. 에릭은 네? 라고 가위질을 하던 도중 대답한다. 머리카락과 함께 무언가가 계속 잘려나간다. 불필요한 것들일까. 곪아있어 되돌릴 수 없는 것들일까. 그것들이 무엇이었던간에 이미 잘려나가는 이상 돌이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네."
답답했던 것들이 날카롭고 쓰라리게 떨어져나가는 느낌. 에스터는 말라붙은 입술로, 응어리진 채 박혀있던 어떤 말을 뱉어내본다.
"만약에, 네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옳지 못한 일을 저지른다면."
...에스터는 상념을 토해내본다. 그것이 에스터가 원하는 형태대로 만들어지는지는 고사하더라도. 그 사람의 죽음의 광경을 접해듣고 겨우 깨달았다. 분노에 갈기갈기 찢겨나간 당신을, 마지막으로 지키기 위해 내가 했어야 하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에스터는 입을 연다.
"...나는, 내 손으로 너를 죽이겠지."
에릭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동요하지도 않고, 그저 가위질을 계속 할 뿐이다. 긴긴 머리카락이 오랫동안 계속해서 잘려나간다.
- 에스터 산타의 크리스마스 선물
- (67스레)
에스터와 어느정도 호의적인 관계를 쌓아주신 당신.
어느 날 에스터 산타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당신에게 도착한다.
진중한 글씨의 손편지도 함께.
ㅡ
헤이샤오화에게.
잘 지내고 있었나?
전에 이즈모 앞에서 쓰러진 것을 봤을때부터 줄곧 너를 걱정하고 있었다.
거기다 최근에는 여러가지로 마음고생을 하는 것 같더군.
괴로운 일이 있으면, 혼자 쌓아두지 말도록.
주변에 의지해주길 바란다.
물론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은 알고있다.
하지만 네가 웃는 얼굴로 괜찮은 척을 하는 걸 보는건 마음이 아프군.
한동안은 푹 쉬도록.
그러고보니, 나이를 어려지게 하던 빌런을 생포하는 데 참여했다 들었다.
덕분에 나이를 되찾을 수 있었다. 고맙다.
전투는 익숙치 않았을텐데, 다친 곳은 없나?
부디 몸조심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밥을 꼭 챙겨먹도록 해라.
(마지막줄에는 밑줄이 쳐져있다.)
라벤더향 입욕제, 목에 빨간 리본을 단 순한 얼굴의 조랑말 인형.
ㅡ
비스트에게.
너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없어서 걱정했다.
이제서야 소식을 들었으니, 안심해도 되겠지. 다행이다.
최근 보이지 않는군. 어딘가로 사라진 건가? 일이 있었나?
모쪼록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
뭐, 너를 걱정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일도 없을테지.
네가 충분히 강하다는 걸 알고 있다.
몸은 그렇다 치고, 정신이나 잘 간수하도록.
자신을 몰아붙이는건 적당히 해라. 지켜보는 나를 생각해라.
꽃다발의 답례로는 부족할지 모르나, 선물이다.
ps:네가 준 총, 고맙긴 하지만 너무 많다.
아주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겠다는 선포인가? 아니면 내가 전쟁을 준비하길 바라는 건가?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차분한 향기의 보라색 향초. 회색 가죽장갑.
ㅡ
밤비에게.
어려운 결정을 내려줘서 고맙다. 네 말을 듣고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 때는 추태를 보인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군. 부디 잊어주길 바란다.
현재는 많이 나아졌다. 상담도 다니고 있고, 내면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너에게 부디 나쁜 일과 괴로운 일이 없길 바란다.
너에게서 이것저것 선물을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었는데 잘 됐는지 모르겠군.
선물이 쓸데없다고 생각하면 반송하거나 버려도 좋다. 여차하면 기부하는 것도.
메리 크리스마스. (삐뚤게 그린 산타그림이 있다. 직접 그린 모양이다.)
(산타그림 옆에 화살표로 글씨가 있다. "망쳤다. 미안하다.")
파티용 안경과 피리, 파티모자. 고양이 머리띠.
ㅡ
알렌에게.
이전의 시계 잘 쓰고 있다. 감사한다.
빌런하고 싸우느라 크게 부딪혔는데도 멀쩡하군. 무슨 재질로 되어있는 거지?
최근에도 과로중인가. 고생이 많군. 빌런 활동이 많이 줄었으니, 앞으로는 괜찮기를 바란다.
나중에 내 몸이 못 쓰게 돼버린다면 너의 일을 돕고 싶다. 괜찮겠나?
팬케이크는 건강한가? 또띠는 아주 건강하다.
얼마전에 그녀가 에릭의 도미노를 무너뜨려서 에릭이 3일째 삐져있다. 슬슬 그만둘때도 됐는데.
시계에는 못 미치지만, 선물이다. 연말에는 그대가 좀 쉴수 있으면 좋겠군.
강아지용 쿠션. 원반. 사람용 담요. 심플한 디자인의 수면안대.
ㅡ
(해외에 있으므로, 손편지가 아닌 문자메세지다.)
(첫번째 문자.)
엔젤리카에게.
이전의 선물 고맙다. 답례인 털모자는 이미 보냈지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새 선물을 주는것도 괜찮겠지.
또, 상담해준 것에 대한 답례도 있고 말이야.
그 쪽은 요즘 어떤가? 라오스는 빌런 활동이 위축되었다. 수장의 실종 때문이지.
자신은 최근 머리를 잘랐다. 오래 길러온 머리라 약간은 아깝지만, 새로운 마음가짐을 위해서다.
(숏컷을 한 에스터의 사진이 첨부되어있다.)
너는 강인한 자니까, 그 쪽에서도 잘 해내리라고 미는다.
(전국 어디에서든 갈 수 있는 유명한 카페 브랜드의 조각케이크 교환권.,)
(두번째 문자)
믿느다.
(세번째 문자)
핸드폰으로 쓰는 편지는 자꾸 오타가 난는군.
미안하다.
ㅡ
가드맨에게.
최근엔 어떻게 지내나? 휴가중이라서 이즈모에 도통 가질 못했군.
뭐. 어려졌을 때에 많이 들락거렸으니 괜찮을 법도 하지만.
에릭이 너와의 첫만남을 기대하고 있다.
(옆에 소고기와 신난 개구리가 그려져있다. 에릭의 작품같다.)
이 쪽은 빌런 생포로 인해 나이를 되찾았다. 기억도 빠진 곳 없이 다시 떠오르게 됐지.
생포에 그쪽도 참여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감사인사를 전하겠다.
나를 대신해서 고생해주었다. 감사한다.
테러때도 그렇고, 그 쪽에게는 늘 신세를 지게 되는군.
바나나칩의 답례로, 선물과 간식거리를 준비해봤다.
단 건 너무 먹으면 몸에 좋지 않으니, 적당히 먹도록.
커다란 마쉬멜로 한 봉지. 빨간색 털장갑.
ㅡ
포에버 러빙 유에게.
그대에게 좋은 소식일지 나쁜 소식일지.
나는 나이를 되찾았다. 이제 근육질의 몸으로 너를 끌어안아줄 수 있지.
뭐. 그 때는 전투중이 되겠지만.
전에는 실례를 했다. 추태를 보였군.
누구보다 안정을 취해야 할 환자에게 도리어 위로받아버리다니.
이것은 그 때의 답례라고 생각해도 좋다.
나는 여전히 그대와 그대의 주인의 멱살을 잡고 끌고와 둘다 히어로로 만들고 싶은 계획을 가지고 있다.
갱생프로젝트는 거짓이었다지만, 실제 갱생사례가 있는 만큼 완전히 의미없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대는 히어로측에 필요한 인재니까.
빨간 하트모양 커다란 쿠션. 분홍색 앞치마.
ㅡ
코스츔에게.
나이를 조작하는 빌런 생포에 힘써줬다는 얘기를 들었다.
덕분에 나이를 되찾을 수 있었다. 고맙다.
그대는 나이를 되돌려줬는가?
굉장한 성장이었다. 너의 미래는 밝구나.
최근, 뭐랄까 너에게는 부끄럽게도 꼴사나운 모습만 보여준 것 같군.
재판장때 이후로 줄곧 말이야. 미안하다.
모범이 되는 선배가 되어야 하는데, 약해진 채로 골골대고 있었으니.
아무튼, 여러가지로 실례했다. 그 답례다
ps: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술담배를 하다간 가만 안 두겠다.
성인이 된 후에도 웬만하면 하지 마라.
편안한 자장가가 흐르는 오르골. 쿠션으로 쓰이곤 하는 코끼리 인형.
ㅡ
레이나에게.
나이빌런이 생포되었다고 한다. 잘 된 일이다.
그대는 원래대로 돌아갔는가? 이즈모 앞에서 부스를 열고 있다고 하더군.
아마 당신이라면 휴가중인 나보다 빨리 소식을 접했겠지.
당신하고는 전부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완전하게 올곧은 정의를 추구하는 자는 히어로중에서도 많지 않으니까.
그 점에서 동경이랄까, 관심같은 것이 생겼던 것이다.
과한 사담이로군. 미안하다.
동생에게도 안부를 전해주길.
빌런 생포에 도움을 줬다 들었다. 감사한다.
동봉된 선물은 그대와 그대의 동생을 위한 것이다.
ps.
...어려졌을 당시 자신이 프릴드레스를 입은 사진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혹시 에이든이 한 일인지 물어줄수 있나? 이런식으로 자신의 사진이 떠돌아다니는 것은 원치 않는다.
향수. 복실복실한 귀마개. 겨울 분위기의 책갈피.
빨간색과 파란색의 목도리 두 쌍.
ㅡ
수현에게.
(편지지 곳곳에 발랄하게 개구리가 그려져있다...)
전에 치료해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
덕분에 일에 빠르게 복귀할 수 있었다.
아마 그 때 치료받지 않았다면 테러가 일어난 날 나는 죽었을지도 모르지.
답례를 하고 싶다.
자신을 희생하여 타인을 구해낸다는 행위는 의료인으로서도,
히어로로서도 본받아야 할 태도라 생각한다.
에릭이 그대와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다.
곳곳에 그려진 개구리는 에릭의 짓이다. 만나고 싶음의 표시라고 한다.
당신에게 치료받은 것을 비밀로 하고 싶었는데, 편지를 쓰던 도중 들켜버렸다.
난잡한 편지지가 되어버려 미안하다. 대신 사과한다.
ps.당신과 만나 한 얘기는 에릭에게 말하지 않았다.
이건 나의 일에 관한 일이고, 말할 생각이 없다.
(이 글씨 옆에 있는 개구리는 유독 시무룩한 얼굴이다.)
티 파티를 위한 찻잔 세트. 홍차 티백.
- 선물 답례의 반응
- (67스레 이후무렵인듯)
- 엔제
우웅-문자가 울린다. 우웅 우웅 ?? 3연속?
문자를 보니 답례가 오고 있다는 문자 내용이 보인다.
이 쪽은 카르텔을 정리하느라 좀 바쁘긴 합니다.
전송 그리고 이어서 다시 문자를 보낸다
숏컷도 잘 어울리시네요 에스터 언니. (방긋 웃는 이모티콘이 첨부되있다)
사진(에스터가 보내준 털모자를 쓴 채로 조각 케이크를 먹고있는 사진)
총 이렇게 3번 전송하고는 눈 앞의 카르텔 두먹의 목을 서걱하고 베어버린다.
ㅡ
(에스터)
바쁘구나. 그럴 만도 하지. 카르텔 정리라. 뭔가 군기를 잡는 것과 비슷한 걸까. 그런 것은 별로 좋진 않은데. 어린 나이에 분위기를 잘 잡을 수 있을지도 걱정되고. 뭐. 엔젤리카라면 잘 해낼 것이다. 다정하면서도, 엄격한 아이니까. 그녀의 강인함을 에스터는 잘 알고 있었다. 그 뒤에 있는 모습까지는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엔젤리카가 보내준 사진에 에스터는 미소짓는다. 잘 지내고 있구나.
다시 답장을 보내보려다가, 끝없는 오타의 향연에 지쳐서 포기한다.
- 파크 - 손편지
에스터누나 에게.
손편지를 쓰는건 뭔가 어색하군요.
일단 나이를 되돌려 주긴 했습니다만 뭔가 키가 줄어드니 어색하군요. 에스터누나는 나이를 잘 돌려 받으셨나 보네요. 기쁩니다.
에스터 누나가 그렇게 말하시니 들뜨군요. 누가 뭐라하셔도 에스터누나는 불살 히어로의 대명사시니깐요. 누나는 저의
롤 모델인 만큼, 그런 종류의 칭찬이 어떤 사람보다 더 깊게 와닿습니다.에스터누나는 충분히 잘 해주셨어요. 저에게는 에스터 누나가 아군이라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생길만큼.
그러니깐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선물 마음에 쏙드네요. 매일매일 쓸게요. 요새 날씨가 추우니 소박하지만 저도 보내보겠습니다. 술과 담배는......노력해보죠.
ps.그리고 파크라 불러주세요. 헷갈리네요.
(기모 벙어리장갑과 겨울용 귀마개가 동봉되어 있다)
ㅡ
(에스터)
"......"
파크에게, 자신이 사람을 죽일 각오를 마쳤다고 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언제나 생긴다고, 에스터는 깨달아버렸다.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죽음이 구원이 되는 때가 있다는 것을. 자신의 죄에서 도피하고 벗어나려고 발버둥칠수록 그 끝은 점점 참담해지고, 나아가는 과정속에 있는 모든 것이 자신을 괴롭혀가는. 아무리 발악해도 그 끝이 점점 괴로워질 뿐이라면, 그 죄인을 구원해야 한다. ...자신의 손으로.
동경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데 동경받는것은 이런 괴로운 느낌이었나. 동경이라는 말의 무게는, 자신에게는 많이 무거운 모양이다. 에스터는 코스츔 대신 파크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위해 파크, 파크를 몇 번이나 반복해본다. 보들거리는 벙어리장갑과 귀마개를 만지작거리며.
그와 별개로 술담배는 부디 노력해줬으면 좋겠다. 노력이 아니라, 하지 마.
- 헬렌(블래스터 대리)
- ※블래스터는 현재 집에 없음.
어머. 나이트(Knight). 아쉽게도 블랙은 받을 수 없는 상태라 대신 받았단다. 후훗. 그러고보니 블랙이 만든 총은, 어떤 의미일까? 밤을 새워가며 만들던데. 당사자만이 알겠지?
P.S 블랙은 하지 못하는 말을 전해줄게. 메리크리스마스.
(헬렌의 필체로 적혀있다. 동봉된 고급 체스판과 함께)
ㅡ
(에스터)
"......"
비스트에게 보냈던 편지가 전혀 다른 사람에게 읽혀버렸다. 그 자는 자신을 나이트라고 불러왔다. 그러고보니, 전에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분명 그녀는 그를 알고 있었지... ...그나저나, 남에게 준 편지를 맘대로 읽어버리다니 다소 예의가 부족한 사람이군. 비스트의 사생활이 걱정된다. 체스말로 사람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예전의 소장이 떠오르기도 하는군.
동거인인가. 가족인가? 새로운 연인? ...그의 반응은 꽤나 불만스러운 느낌이었으니, 연인보단 가족 쪽이 맞으려나. 밤을 새워가며 총을 만들었다는 것에 새삼 감동해보지만, 그렇게 많이는 필요없었다. 능력이 있으니까. 비비탄 총을 주워와서 쏴도 실탄급의 성능을 낼 수 있는 자신이었다. 물론, 더 좋은 총일수록 더 강하긴 하지만. 위력도 일정 이상 되면 그다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몸이란 생각보다 약하니까. 뭐, 건물을 부수거나 하는 데에 필요할 수도 있지만. ...기물파손도 최소화하는 게 좋다.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네요."
에릭이 비스트에게 받은 총으로 도미노를 시도하며 말했다. 저걸 세울 생각을 하다니. 다섯개 쯤 쌓았는데 무너지지 않는다. 재주도 좋다. 에스터는 에릭을 제지한다.
"에릭. 남이 받은 선물로 장난치지 마라."
"네에에. 하지만 워낙 많아서."
시무룩해진 에릭이 총들을 정리한다. 에스터는 선물받은 고급 체스판을 꺼내본다.
"그런 것 보다는 같이 체스를 하는건 어떻겠나."
에릭이 활짝 웃는다. 네! 라는 발랄한 대답이 돌아온다.
- 진저-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산타스터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은 매우 무난하고 형식적이며 답이 빤히 정해져있지. 그래서 하기도 받기도 좋아한다. 곧 루머에 휘말릴지도 모른단 사실이 불안하고 교통사고로 아버지의 유산인 차를 폐차해야 했으며 한치 앞 일을 모르고 있지만 썩 잘 지내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해서 누구 좋으라고. 나는 안전한 대답을 택한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To. 에스터
오늘도 이즈모는 안전합니다. 안심해도 좋습니다
당신의 휴가가 즐겁기를 바랍니다.
나이를 무사히 되찾았다는 소식을 들어 기쁩니다.
마땅히 해야할 일을 했으니 감사를 들을만 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선물과 간식은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에릭씨와의 첫만남을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동봉된 과자 세트는 에릭씨에게, 그리고 말 인형은 명함꽂이로 쓰는 겁니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기를.
(펜으로 그려진 동그란 행성같은 도형 몇개와 콜라병 같은 것이 보인다..상상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이것들이 정성들여 그린 샤베트와 마카롱임을 발견할 것이다.)
동봉된 것은 잘 포장된 마카롱 맛집의 마카롱 12개입 세트. 말 모양의 목재 공예품(등에 명함을 보관하는 구멍이 나 있다. 굳이 말 모양으로 고른 것은 당신의 눈치없는 동료가 이명 머리말을 오해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소고기 색이네. 털장갑을 손에 끼워보려 하지만 붕대가 감긴 오른손은 평소보다 굵직해져 들어가지 않았다. 천만다행으로 왼손은 딱 맞으니 근무할 때에 끼면 되겠다. 마침 크리스마스에도 당직이었지. 단것을 먹기에 적당한때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이지. 마쉬멜로 봉투를 터트려 하나를 이빨로 꾹 눌러본다. 이 에어백같은 탄성감. 좋다. 안정적이다. 달짝지근한 과자를 마저 씹으며 털장갑을 두른 손으로 편지를 부친다.
ㅡ
(에스터)
에릭은 마카롱 세트를 받아들고 행복해하는 모양이다. 에스터는 명함꽂이인 말 모양의 목재 공예품을 바라보고 있다. 센스가 좋군. 그와는 어쩐지 대화 없이도 혼자서 친밀감을 키워나간 사이이다. 덕분에 대화했을 때는 몇 년은 알고 지낸 것 같은 친밀감이 되어버렸지.
...하지만, 이 그림은 무엇일까.
"...이 그림은 뭐지?"
"아. 이거 딱 봐도 마카롱 행성과 희망의 음료잖아요!"
"그게 뭔데..."
아마 진저와 에릭이 자신이 알지 못하던 사이 마카롱 행성에 대한 계획을 세운 모양이다. 에스터는 그런 결론을 내린다.
- 헤이샤오화 - 미리메리크리스마스
라벤더 향이 공백을 채운다. 흑소화는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대충 털어놓은 뒤 다시금 당신의 편지를 읽었다. 걱정시키고 있었던가. 밥을 잘 챙기라는 추신에는 결국 픽, 하고 힘없는 미소를 흘려내고야 말았다. 참 좋은 사람들이라니까, 돌아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좋은 사람들아.
가운을 잘 여민 뒤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휴대폰을 들어 제 모습을 찍는다. 찰칵, 하는 셔터음에는 순간 소름이 끼쳤으나 머지않아 괜찮다고 스스로를 도닥였다. 내 서프라이즈는 당일이에요. 해서 문자가 낫겠다고 판단, 연락처에서 당신의 이름을 찾는다.
트리 아래에서 당신의 이름을 찾아주세요, 히어로 머리말 씨.
덜 마른 머리카락을 제멋대로 흩뿌리며 침대에 몸을 뉘인다. 오늘 밤도 외로울테지만, 그래도 새 식구가 늘었으니 어제보다는 좀 덜할까. 흑소화는 작은 조랑말의 주둥이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머리말이 선물한 조랑말이라니, 재밌네요. 귀여워. 오늘 밤은 새 친구를 껴안고 잠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흑소화는 나른한 제 두 눈을 천천히 깜빡인다.
라벤더 향이 공백을 채운다.
(에스터 - 크리스마스 샤오화 선물 확인 독백으로 이어짐)
- 🎄 Forever (러브)
여전히 입원중인 메이드씨에게도 크리스마스 선물은 어김없이 도착했다.
그 선물을 준 산타는 다부진 체격에 수염은 없고 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겠지만,
선물과 함께 온 편지를 보며 미소짓던 메이드씨는 곱게 접힌 분홍색 앞치마를 보고서 그녀를 만나러 갈 때에는 이것을 착용해볼까, 싶었지만 금방 그만두었다.
그러다가 싸움으로 이어지면 가일로프제가 아닌 이상 선물받은 앞치마가 상해버릴게 분명했으니까...
커다란 하트쿠션을 품에 안고서 무언가를 고민하던 메이드씨는 어떤 소녀를 불러 싱긋 웃어보였고, 그 소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웃어보이곤 상자 두개를 나르며 밖으로 나섰다.
「최고의 히어로, 에스터씨께...
최고, 라는 말을 쓰자니 당신은 분명 최고가 아니다. 라고 무덤덤하게 말씀하실 것 같지만... 저에게 있어선 당신만한 사람을 라오스에서 만나보지 못했으니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나이가 돌아오신것에 대해선 축하할 일인데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걸요? 후후훗...♥ 강인한 당신의 팔에 휘어잡혀서 땅에 메꽂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은데요?
답례라면 감사드려요! 하지만 그때의 당신은 제게 있어서 실례도 추태도 아니랍니다. 물론 앞으로도 아닐 거고 말이예요...
누구나가 고민을 안고 있는 것은 사람으로써 당연한 일인데다 당신은 누구보다도 평화로운 미래를 바라고 계시잖아요? 그런 당신의 고뇌나 의지에 반하는 행동에서 오는 슬픔, 그럼에도 굳건하게 나아가려는 모습의 일면을 부정적으로 바라볼 생각은 없으니까요.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에스터씨는 충분히 누군가에게 위로받으실수 있는 분인걸요? 만약 그런 분이 지금도 곁에 계시다면, 부디 그 인연이 무너지지 않도록 굳건하게 지켜주시길 바라요.
당신의 의지는 분명,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랍니다.
빠르진 않더라도 천천히 굳어져가면서...
그 옛날 강대국이었던 로마도 하루아침에 일어난 나라는 아니잖아요? 후후훗...♥
히어로에 관련해선... 조금 생각해볼게요. 당신이 저나 제 주인님을 갱생시켜주신다면 더할나위없이 감사한 일이겠지만... 라오스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테니까요. 저 역시 주인님께서 먼저 움직이지 않으신다면 움직일 생각이 없답니다.
더욱이, 모두를 배신한 제가 이제와서 히어로를 운운한다는건... 너무 이기적이잖아요?
후후후훗... 너무 무거운 주제인것 같네요~ 그냥 엄청 긴 휴가를 보내는 거라고 생각해주세요♥
저도 가끔은...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은 법이니까요?
그럼 또 언젠가 어디에선가... 당신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할게요.
설령 그곳이 전장이라 하더라도... 제 사랑은 변함없을테니까요♥
메리 크리스마스예요. 에스터씨♥
당신의 동료이자 영원한 메이드인 Forever Loving You로부터」
- 편지와 함께 크리스마스 포장을 한 상자 두개가 에스터에게 전해졌습니다.
[상자 하나는 총기손질을 위한 여러 키트들이 잔뜩 묶여있었고 다른 상자 하나에는 3단 케이크 모양의 떡이 들어있다.
맨 윗부분에는 떡에 사용되는 토핑재료로 당신의 어릴적 얼굴을 그려낸 것 같은데 그 상태가 상당히 정교해서 또 다른 당신이 바라보는 것만 같다.]
ㅡ
(에스터)
편지를 읽으며, 당신의 다정함과 태도에 안도한듯 미소짓는다. 언젠가 다시 동료로서 싸울 날을 기대해보지. 그나저나, 도입부의 '최고의 히어로'에 대해 '최고가 아니다.' 라고 속으로 생각했건만 진작에 예측된 모양이다. 어떻게 간파한거지. 이능력인가.
"케이크다! 케이크! 케이크!"
"에릭. 진정해라."
에스터는 러브에게서 받은 케이크 상자의 포장을 뜯는다. 어린 자신의 얼굴이 있어 문득 '우와악'하고 속으로 놀라버린다. 주문제작인가? 아니면 수제인가? 어느쪽이건 굉장한 정성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후자라면 손재주가 굉장하군. 대단하긴 한데, 약간 부담스럽다.
"이...이럴수가. 이거 아까워서 먹을수가 없어요."
"먹어라."
"이게 그건가요. 내 살과 피를 먹어라... 포도주와 빵을...어쩌구..."
"에릭. 신성모독은 그만둬."
에릭이 자꾸 필요이상으로 위험발언을 한다. 무신론자가 아니라 유신론 혐오 수준인데. 에릭은 케이크의 토핑을 건드려가며 어린 에스터의 얼굴에 홍조를 만들어준다. 어때요? 만족스럽고 뿌듯하다는 듯이 에스터를 바라본다. 돌아오는 것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총기손질용 도구들은 아주 쓸만해보인다. 언젠가 전투하게 될지 모르는 상대에게 선물과 편지를 보내는 자신도 자신이지만, 그런 자신에게 답례로 이런 것을 보내는 당신도 당신이다. 선물 고맙다. 잘 손질한 도구로 너의 어깨를 날려버리도록 노력하지! ...같은 살벌한 인사가 문득 떠오른다.
- 레이든
- (68스레)
"진짜 뿌림?"
"ㅇㅇ"
"얼마 받고?
"어떤 히어로인가 빌런인가가 3억주고 사갔음."
"잘했네"
"ㅇㅇ"
"사본은?"
"그냥 뿌림"
"5만원 정도는 받지 그랬어?"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ㅡ
(에스터 - 문제의 사진에 대해서)
"......"
어떤 사람이 내가 어려졌을때 사진을 경매에 부쳤는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것을 3억으로 산 사람이 있다는게 더 놀랍다. 대체 누가... 왜...? 이게... 무슨...? 건강운을 좋게 해주는 부적 같은건가. 그런거면 큰 뒤의 모습이 나을 거라 생각하는데. 에스터는 고뇌한다. 이 모습이... 귀엽...나? 에스터는 인터넷에 잔뜩 뿌려진 사진을 바라보며 갸웃거린다. 에릭에게 상담하러 가볼까...
...상담하러 가보니 에릭이 문제의 사진을 들고 분개하고 있다.
"이게 뭐에요! 에스터씨. 이게 뭐에요!"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이런 게 왜 에스터씨도 모르게 3억이라는 거금에 팔린 거에요!"
진정해라. 에릭. 그런 말을 하려던 찰나, 에릭의 뒷말이 이어진다.
"이럴줄 알았으면 진작에 에스터씨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건데!"
"아니. 그 부분이 문제였나."
"에스터씨. 지금이라도 생각 없으세요!?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지금이 때에요! 늦었지만서도 저희도 공식 굿즈를 팔아서...!"
"...거절한다."
왜죠!?분명 이거, 엄청나게 장사 잘 될 텐데...! 에스터는 에릭의 야망을 저지한다. 오늘도 라오스는 보이지 않는 히어로의 활약에 의해 평화롭다.
- 밤비의 메리 크리스마스
- (68스레)
초코칩 쿠키를 맛있게 먹으며 핸드폰은 보고있는데 딩동, 하는 소리가 울린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사람은 없고 선물 상자만 있는게 아니겠나. 마지막 남은 쿠키를 입에 물고 양손으로 상자를 들어 올린다.
"보낸... 보낸 사람..."
책상 위에 상자를 올려두고 깔끔하게 입에 문 나머지를 처리해 버린다. 본 목적은 발송인 확인이지. 응. 아무래도 상자 겉면엔 없는 것 같으니 뚜껑을 열어본다.
"잠깐만, 에스터? 에스터 언니야가 보낸거야?!! 진짜???! 어쩜 좋아~!!"
편지를 읽고 난 후, 양손으로 입을 막고 발을 동동 구른다. 너무 귀여워!!!! 산타 그림도, 옆에 망쳤다고 적은 글씨도, 파티 용품이랑 고양이 머리띠도 전부 센스가 귀여워!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오늘 너무 행복해!! 소리없는 함성을 지르고 빠르게 침대 위의 핸드폰을 집어든다. 감사인사 해야지!
- 에릭귀여워 - 에스터선물 (수현)
"귀여워."
수현은 웃음 소리가 새어나오는 입을 막았다. 하지만 손은 눈이 휘어지는 것 까지는 막지 못했다. 대체 무슨 택배인가 했더니. 편지에 그려진 귀여운 개구리 그림 덕분이었다.
처음 택배를 받고 편지를 읽던 수현은 제가 치료한 히어로 성격에 이런 아기자기한 편지지를 쓸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의외로 이런 취향일 수도… 그리고 편지를 쭉 읽어내리다, 결국 에릭이 개구리를 그렸다는 걸 알고는 웃어버리고 만 것이다. 만나고 싶음의 표시라니. 물론 나를 다시 알게 되었다는 것-존재를 상기시켰다는 것-은 불안하지만, 수현은 오늘만큼은 순수하게 기뻐하기로 했다. 에릭은 제게도 좋은 인연이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에릭을 만나 개구리 그림 고맙다고 이야기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걸 잘 알았다. 여전히 착한 아이인가 보구나.
분명 빌런에게 치료를 받았다는 것에 대해 기분 나빠하거나, 잊고 싶어하거나,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거나. 이 세 반응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치료의 대가로 받은 히어로의 대답은 감사 인사였다. 정말 단단한 사람이었지. 빌런인 닥터 드림이자 이 수현은 작게 미소지었다. 아까워서 쓰지 못할 것 같은 찻잔 세트, 그리고 홍차. 가장 좋아하는 차가 홍차라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
선물을 해준 히어로, 에스터와 에릭에게 감사인사를 전해야할텐데. 잠시 고민하던 수현은 결국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
「 선물 잘 받았어요. 정말 감사해요.
덕분에 기분 좋은 하루 될 것 같네요.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없지만,
혹시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그리고, 에릭에게도 보고싶다고 전해주세요.
- 이 수현 - 」
- 크리스마스 선물
- (67스레)
"이제 곧 크리스마스네요- "
"그렇군."
"에스터씨. 크리스마스 파티때 뭐 먹을까요? 역시 칠면조!? 아. 하지만 저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먹고 싶은데...!"
눈이 쌓인 거리를 소복소복 걸어간다. 에스터는 붉은색과 녹색 줄무늬로 된 목도리에, 파크가 준 귀마개와 벙어리장갑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길러왔던 머리카락이 사라지니 역시 허전하다. 날씨도 춥다보니 그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에스터는 잘려나간 뒷머리를 만지작거려본다.
"아. 그러고보니 에스터씨...!"
"에릭."
갑자기 불러세우는 에스터의 목소리. 네? 순간 에릭은 자신이 평생동안 저지른 모든 잘못들이 떠오른다. 진저씨가 준 마카롱 벌써 너무 많이 먹었다고 혼나는 건가.
"크리스마스 선물."
"아. 네? 저는..."
"...을, 주고 싶다."
크리스마스 당일이 아니니 아직 줄 수 없다는 말을 꺼내려던 에릭은, 에스터의 말에 멍하니 있는다. 크리스마스 선물! ...을 주는데도 저런 진지한 자세라니, 놀랐잖아. 오랫동안 함께 지냈다 보니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에릭의 적응력이 문제일까. 에스터의 비장함이 문제일까.
"나다."
"네?"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은 나다."
네? 에릭의 머릿속에서 용수철이 튀어나가는 효과음이 떠오른다. 으잉? 이게 뭔소리지. 에스터의 진지한 성격과 표정때문에 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더욱 모르겠다.
"...그 동안 너에게는 굉장히 많이 폐를 끼쳤는데, 나는 너를 위해 마땅한 선물을 고르지 못했다. ...그래서..."
"어...저기."
"크리스마스 하루동안은 네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겠다."
띠용! 용수철이 한번 더 튀어나간다. 이게 뭐지! 이제 곧 익숙한 알람이 울리며 아 xx 꿈을 외치게 되는 것인가! 나의 에스터씨는 저러지 않는데! ...에릭이 당황하고 있으니, 에스터는 한번 더 이야기를 이어간다.
"최근에도 심란한 얘기를 했고, 테러 직후에도 너에게 폐를 끼쳤고, 어려졌을때도 너에게 괴로움을 줬는데..."
"아, 아니...저기요."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다, 고작 선물가지곤 답례가 전해지지 않는다."
"저기..."
그리고 에스터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 나를 주겠다."
네에에에에. 아니, 물론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자신이긴 한데! 그걸 에스터씨가! 에릭은 이게 꿈인가 싶어서, 에스터의 볼을 꼬집어본다.
"왜 그러지. 에릭."
"아니... 꿈인가 싶어서..."
"그럼 네 볼을 꼬집어야지."
에릭은 에스터의 다른 쪽 볼까지 꼬집는다. 그마애아. 느에에. 에스터도 에릭의 볼을 꼬집는다.
"내 볼."
"...뭐 하는 거지."
"아니. 제 에스터씨는 그러지 않는다고요. 역시 꿈 아니에요? 아니면 캐붕?"
"사람을 캐릭터취급 하지 마."
캐릭터 붕괴를 논하는 에릭에게 에스터의 강경한 태클이 들어간다. 그렇지만. 에스터씨가 저런 대사 할리가 없는데. 내가 아는 에스터씨는 '선물은 나!' 같은 소리 하면 '...인신매매는 중범죄이다.' 같은 소리 할 사람인데. 변신능력자? 사칭인가?
"1년동안 고마웠다."
"에스터씨..."
"...너에게 너무 많은 폐를 끼쳤다."
"......"
"언제나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많은 빚을 져서..."
에릭은 말을 하지 않는다. 묵묵히 에스터의 말을 듣고 있다가,
"그 동안의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와락.
"......?"
...에릭은 갑자기 에스터에게 끌어안긴다. 두 사람의 키차이 때문인지 조금 고개를 숙여 끌어안자 거의 허리춤을 끌어안는 수준이다. 에스터는 에릭의 돌발행동에 말을 멈추고 그를 바라본다.
"에릭?"
에릭은 침묵한다. 그저 꽉 끌어안는다. 놓쳐 잃어버리기라도 할까 두려운 듯이 힘껏. 꽈악. 허리춤에 쥐어진 힘에 당황해 에스터는 에릭에게 묻는다. 왜 그래. 에릭.
"...에스터씨. 선물같은건 필요없으니까."
에스터는 문득, 에릭이 의도적으로 얼굴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울먹이는 눈과 발개진 눈가를 숨기기 위해.
"언제까지고 저의 곁에 계속 있어주세요."
나의 종교. 신을 믿지 않는 자신에게, 성탄절의 유일한 의미. 평생동안 은혜갚기를 해도 괜찮으니까. 언제까지고 다 갚지 못해도 상관없으니까. 아니. 오히려 내 쪽이 빚을 졌다고 해도, 영영 당신에게 그 빚을 갚아갈 뿐인 삶이라도 괜찮으니까.
...떠나버릴 것만 같은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눈이 오는 이브. 의동생에게 안겨준 커다란 선물은 아이를 울린다.
- 크리스마스 당일
- (67스레)
산타께서 주었던
실탄이 들어있는 리볼버를
눈 앞에 있는 그대에게 겨눴어
안녕히. 사랑스런 사람
-최후의 리볼버(mothy)
ㅡ
있지도 않은 연인을 쏴서 죽이는 꿈을 꿨다.
"......"
크리스마스 첫날 꿈이 이런거라니, 찝찝하군. 에스터는 뒷머리를... 아. 이제는 잘랐다.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에스터는 부스스한 머리를 큰 손으로 헝클어뜨린다.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밀크티를 데워본다.
따스한 차가 에스터의 입술에 닿는다. 발에는 폭신한 라x언 캐릭터 털슬리퍼가 신겨져있다. 에릭의 선물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에스터씨! 아. 그러고보니 오늘은 내가 선물이었지. 빨리 가야 겠군.
길을 나서니, 에릭이 자신을 맞이해주고 있다.
"에스터씨!"
크리스마스 첫날 꿈 뭐였어요? 저는 산타 에스터씨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선물을 나눠주는 꿈을 꿨어요! 아. 있지도 않은 연인을 죽이는 꿈이었다. 뭐야 왜이리 험악해요. 꿈이니 어쩔 수 없지 않나. 그런 말을 화기애애하게 나눈다. 에릭은 방방거리며 에스터 곁에서 말한다.
"오늘은, 에스터씨가 제 선물이니까, 하루종일 저랑 크리스마스 파티 해주는거에요?"
"알았다. 하지만 그 전에 이즈모에 한번 들러야 해."
"엑. 에스터씨 워커홀릭!"
"그게 아니라, 샤오화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했단 말이야."
...샤오화? 아. 혹시 그 헤이샤오화요!? 피겨선수 했던...! ...이미 아는거 아니었나? 몇 번 얘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아아. 그러고보니 전에 이즈모에서 본적 있는 얼굴 정체가...! 피겨 건으로는 너무 들먹이지 마. 뭔가 사정이 있는 것 같으니까. ...에릭이 드디어 미모의 연구원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이다.
두 사람은 눈쌓인 길을 소복소복 걸어간다. 누군가가 만든 산타모자의 눈사람과, 크리스마스 기념 장식들이 되어있는 가게들을 지나간다. 울려퍼지는 캐롤이, 새로운 시작을 암시한다.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멋진 크리스마스다.
"메리 크리스마스다. 에릭."
에스터는 살짝 미소를 띈다. 이에, 에릭은 활짝 미소짓는다.
"메리 크리스마스에요. 에스터씨."
신을 믿지 않는 두 사람에게도 성탄절의 축복을.
- 샤오화 선물상자 에스터 확인
- (67스레)
...샤오화인가. 트리를 먼저 보고 든 생각은 그거였다. 애초에 몇 시간 후 공개된다고 할때부터 예견했던 사실이다만. 아무튼, 기운 넘치는 아이다. 최근 힘이 없어보여 걱정했건만, 이런 일을 벌일 정도의 기운은 되찾은 모양이다. 아니면 조금이라도 기운을 내기 위해 이런 일을 벌였거나. 어느쪽이건 다행이다.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아서.
에릭은 이즈모 앞에서 나이빌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협박이라도 하는건 아니겠지. 에스터는 장식 볼펜을 트리에서 떼어낸다. 한 손에는 메모지가, 다른 손에는 볼펜이 들려있다. 소원이라고 한다면 역시 이거지. 에스터는 진중하고 굵직한 글씨체로 별 모양 메모지에 소원을 담는다.
'세계평화.'
...사람 손이 닿기 어려울 만큼 트리 위쪽에 적힌 강렬한 네글자가 이즈모 사람들의 시선을 뺏는다. 에스터는 뿌듯한듯이 다음 행동으로 옮겨간다. 어디보자. 나를 위한 선물이...
(68스레)
<에스터 힐데가르트 C.>
은으로 만든 화려한 헤어브러쉬에는 연푸른 빛깔의 동그란 보석이 박혀 있었습니다. 당신의 긴 물빛 머리카락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혹은 짧아진 머리카락도 잘 빗어주어야 상하지 않는다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어느 쪽이건 화려한 문양은 전등불이 반사되어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에스터 힐데가르트 C. - 은제 헤어브러쉬 전달
헤어브러쉬 옆에는 귤색의 갈기 없는 사자 캐릭터가 엎드린 모양의 블루투스 스피커가 놓여 있습니다. 문득 기억난 연구원 님에게 전할 선물이었을까요, 사자 캐릭터의 배에는 <이건 약물성분검사 해 주신 분께 전해주세요 >:3 > 라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습니다.
에릭 앤서니 - 블루투스 스피커 전달
ㅡ
(반응)
당신이 준 선물을 만지작댄다. 자신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아름답다.
"......"
이런 곱고 예쁜 헤어브러쉬를 자신이 쓸 수 있을까. 거기다가 고급지기까지. 선물에게 압도당했다. 헤어브러쉬를 위급상황에 칼 대용으로 쓸 수 있는 기능이 있으면... ...아니. 왜 자신의 사고는 이런 식으로만 흘러가는 걸까. 섬세한 구석이라곤 없는 이런 투박한 인간에겐 어울리지 않는 고상한 선물이다. 미녀와 야수같다고 할까.
화려한 문양을 바라보고 있다. 정말 센스가 좋구나. 안타깝게도 미녀의 진정한 사랑으로 야수는 원래의 고운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짠! ...같은 설정은 자신에게 없었기 때문에, 고급 머리빗을 선물받아도 고급 머리빗을 사용하는 야수가 될 뿐이다.
뭐. 야수도 나쁘지 괜찮지 않은가. 여리여리한 왕자보단, 야수가 좀 더 강해보인다. 실제로 자신은 어릴때 왕자보단 야수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이상하다는 핀잔을 들어서 울었지만. 아무튼 브러쉬를 선물받았으니, 툭하면 엉키는 이 머리카락을 관리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에스터는 이즈모 밖으로 나온다.
"...그러니까, 피카츄보다 팽도리가 더 귀엽다니까요!"
"에릭."
...나이빌런과 대화를 한다던 에릭이, 전혀 어찌되든 상관없는 화제로 싸우고 있다. 싸우진 않을까 걱정하긴 했지만, 저런 방향일줄은 또 몰랐는데.
"하지만, 팽도리보다 피카츄가 더 인기가 많단 말야!"
"어이."
그런 걸 또 진지하게 대꾸해주지 마. 맨얼굴을 한 나이빌런이 에릭에게 왠지 덩달아 분노하고 있다. 자신이 선물을 갖고 오던 사이에 대체 무슨 얘기를 했길래 저기까지 흘러간거야. 진심으로 묻고 싶다. 에스터는 에릭의 옷 뒤를 텁 하고 잡는다.
"선물 가져왔어. 가자."
"아. 하지만...!"
"...뭐가 하지만이야."
"에스터씨. 에스터씨는 이 분의 가면중 팽도리 가면이 하나도 없다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알 바 아니다."
"너무해!"
하하! 나의 승리다! 라고 외치는 빌런의 목소리가 멀어져간다. 대체 어떻게 그런걸로 그렇게 열심히 싸울 수 있는거야. 신기할 지경이다. 그 천진난만함을 자신도 본받고 싶다.
"자."
"?"
"샤오화가 줬다."
라x언 캐릭터 스피커를 받아든 에릭의 얼굴에 물음표가 수십개 떠오른다.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을 숨기지를 못하는군. 표정만 보는데 시끄럽다. 우오아...우오아아아...와아아아아아아!라고 에릭이 얼굴로 말하고 있다. 가까스로 목에서 나는 소리를 참는다. 으으읏 하고 자그마한 신음소리가 난다. 바들바들 손을 떨고 있다.
"크으읏..으읏.."
"진정해라. 에릭."
"으읏...으으읏..."
에릭은 흥분하더니, 거의 얼굴로 효과음을 내는 수준으로 밝아졌다.
"아아아아아!"
"진정."
"에스터씨...저는...샤오화씨하고 끝장이라고 생각했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리고는 에릭은 평소보다도 한층 더 발랄한 얼굴로 조잘대기 시작한다. 에스터씨. 제가 그 때 샤오화씨를 처음 만났을 때 말이에요...! 그래. 그래.
- 조화
- (69스레)
(1)
파랑새
蒼い鳥
泣くことなら たやすいけれど
우는 것 쯤은 아무렇지 않지만
悲しみには 流されない
슬픔에는 휩쓸리지 않아
恋したこと この別れさえ
사랑했던 것 이 이별마저
選んだのは 自分だから
선택한 건 나 자신이니까
ㅡ
弔花 : 조의를 표하는데 사용하는 꽃.
造花 : 인공으로 만든 꽃.
ㅡ
...에스터는, 당신의 묘 앞에 서있었다. 길던 머리카락이 싹둑 잘려나갔고, 오랜 기간 연약하기 짝이 없던 자신에게도 작별인사를 했다. 마지막 상념을 위한 소박한 장례식을 치뤄야 할 차례이다. 품에 한아름 안겨있는 것은 종이로 된 백합과 백목련. 당신의 빛깔을 닮은 흰 꽃이다. 그것들을, 당신의 무덤 앞에 잔뜩 뿌린다.
종이를 띄울 수 있는 염동력이니, 당신이 살아있었다면 이것들을 팔랑팔랑 띄워주는 광경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같은 부질없는 생각도 해본다. 이제 돌아갈 순 없는데. 자신의 정의를 깰 수 없다면 당신을 벌할 각오가 되어있어야 했던 것이다. 문드러진 케이크를 깨끗이 처리해주던 당신을 떠올려본다. 하하. 무심코 웃음이 나올것만 같다. ...
...나의 울음은 당신의 앞에서는 유독 헤퍼지는 것 같다.
"녹턴님."
문득 다리에 힘이 풀려서, 휘청대면서 겨우 바닥을 짚었다가ㅡ무릎을 꿇은 채, 결국 팔의 힘도 사라지고 말았고ㅡ결국 완전히 엎드리고 만다. 조화造花에서 날 리 없는 백합 향이 지독하게 코를 찌른다. 어질어질하고, 저릿거린다. 머리를 꽃에 파묻고는 소리없이, 그저, 흘려낼 뿐이다. 상념을. 후회를. 욕망을. 방해되는 감정들을.
신음소리가, 작다. 바닷물 내음이 조화더미에 새겨진다. 이 부조화 가득한 머릿속은 어떡하면 좋을까. 바들바들 떨고, 목 바깥으로 소리를 내지 못한 채 운다. 추하다. 더 이상 무얼 더 쥐어짜내려고 온건지.
조화를 짓뭉개듯 쥔 채 떨리던 손에서는 이윽고 힘이 빠지고, 엎어져있는 어리석은 클라인만이 존재한다. 어리석구나. 어리다. 어른거리는 당신의 모습을 떨쳐내지 못하고, 어른으로서의 태도를 관철하지 못한다. 흐느끼며, 말한다.
"울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꽃에 묻은 채 숨기며 말한다.
"동경해왔습니다."
동경이라는 말에 너무나도 무거운 단어들을 숨겨왔다고. 이미 들켜버렸건만. 하지만 한 번 뱉어낸 것이니 다시 한 번 늘어놓고 싶지는 않았다. 겨우 뛰쳐나오지 않을 정도로는 정리해뒀는데 다시 꺼내놓고 내보이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몰골이었다. 이제는 그것들을 삼켜 분해시킬 일만 남은 거지.
에스터는 자신의 얼굴로 손을 가져간다. 눈가를 꽉 쥔 채 다시 터져나오는 것을 막는다. 토해내고, 수치를 드러내고, 참회하고, 당신의 앞에서는 온전히 안정되어있던 일이 없구나. 언제나 죄를 지은 사람이었다. 자신은. 나는 이 무죄판결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이 처형당했으니 누구에게 판가름을 요구하면 좋을까. 기실, 처형당해야 하는 사람임엔 다름이 없는 것을.
죄인을 믿는 것 또한 죄입니까?
죄인을 사랑하는 것 또한 죄입니까?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죄인입니까?
...이미 판결은 내려졌고, 죄인은 억울하게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죄를 물어야 할 사람은 살해당했으니, 자신은 뻔뻔스레 고개를 든 채 살아갈 뿐이다.
ㅡ
백목련의 꽃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2)
그렇게 한참을 일어서지 못한다. 미동없는 시체마냥 무덤앞에 꼴사납게 엎어져있다. 더 이상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데도, 뭐가 그리 미련이 남았기에 꽃들에 머리를 박고 있을까.
"......"
그리고 모든 감정은 뒤늦게 조화를 이룬다.
에스터는 오랫동안 엎어져있던 몸을 느릿하게 일으키고, 조심스레 몸과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낸다. ...머리카락에도 꽃이 하나 붙었다. 누가 본다면 우스웠을 꼴이다. 붉어진 눈가가 짜디짠 바닷물에 쓰라려도, 다시금 자신은 뛰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 속으로. 바다괴물을 잡으려면, 심해에 가라앉을 수밖에 없지. 그래. 이즈모로.
에스터는 입에 붙은 흰 꽃잎을 페 하고 뱉어낸다. 그리고 아까보다는 단호한 얼굴로 말한다. 얼굴에는 전과 다른 강인함이 새겨져있다. 지금껏 녹턴에게 보여준 적 없던, 강건한 모습이다.
"저는 녹턴님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생각입니다."
히어로의 처우 개선. 이즈모 내 온건 세력의 지위 확보. 즉살명령폐지. 해야 할 일이 한두개가 아니겠지. 이것이 당신이 바라던 일이었나? 알 수 없다. 그저, 2016년의 당신과 그 이후의 당신이 보여준 행보의 모순점으로 막연하게 추측해볼 수 밖에. 그 시작이 무엇이었던, 당신의 모든 것이 위선은 아니었다고.
"어쩌면 그 때의 녹턴님과는 적대하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당신을 처형대에 몰고 가놓고 이제와서 무례를 범하느니 하는것도 우습지 않습니까?"
에스터는 입가에 미소를 띄운다. 아까까지 우느라고 붉어진 얼굴로 그런 당당한 표정 지어봤자 우스낄 뿐이건만. 뭐, 보여주기 위해 짓는 미소도 아니니 상관은 없을 터이다. 에스터는 흐트러진 꽃들을 잘 정돈한다. 다시 한 번 이 무덤에 조화를 만들어낸다. 방금전까지에 비하면 보기 좋은 모습이다.
"인지부조화에서는 벗어날 때입니다. 당신의 죄인된 면모, 당신이 제게 보여줘온 모습, 전부 당신이었습니다. 죄인된 당신이 치뤄야 할 형은 끝났으니, 이제 저는 평가되지 못했던 당신의 모습을 새겨두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한다. 눈동자에는 결의가 들어있었다. 당신과 같은 회색빛의 눈은 어떠한 의지를 가지고 타오르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무엇을 정의라 말할 수 있는가? 자신의 정의는 무엇이었나? 당신과 했던 대화를 다시금 떠올리면서.
"녹턴님. 동경했습니다."
방금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정갈한 울림이다. 에스터는 동경이라는 말에 담아둔 무게를 덜어내고, 본래의 뜻을 다시금 상기하며 말한다. 그 시선의 끝에 향해있는 건, 분명 어마어마한 야망일 것이다. 히어로로서, 정의로운 자로서, 에스터가 관철하고자 한 대의.
"이제는 폐를 끼치지 않을 겁니다."
그런 말을 마지막으로 한 채 침묵한다. 바람이 불어오나 잘려나간 머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정리된 꽃들을 다시 한 번 훑어보고, 못 쓰게 뭉개진 것들을 골라낸다. 이제는 쓸모없게 되어버린 불순한 덩어리들을 손으로 쥐어 짓뭉개며 당신의 무덤에서 가져간다. 그러고보니, 백합의 꽃말은 '순수'라고 했지. 그렇다면 순수하지 못하게 된 것들은 치워버리는 것이 옳았다. 당신과, 당신의 추모를 위해서.
에스터는 뒤돌아선다. 더 이상 울며 지새우던 어린아이는 없었다. 당신이 없는 밤을 받아들여야 할 때였다. 야상곡(Nocturn)이 울려퍼지지 않는 밤의 고요를, 순수히 아름답다고 여기기 위해.
클라인의 딸이었던 과거를 완전히 짓밟으며, 힐데가르트는 다시금 한층 자라나간다. 언젠가 그 하늘빛은 하늘에 닿을지도 모르지. 야망을 계속 이어나간다면.
ㅡ
群れを離れた鳥のように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새처럼
明日の行き先など知らない
내일의 행선지를 알 수 없어
だけど傷ついて
하지만 상처입고
血を流したって
피를 흘린다 해도
いつも心のまま
언제나 마음가는 대로
ただ羽ばたくよ
그저 날개짓 할 뿐
蒼い鳥
파랑새
もし幸せ 近くにあっても
혹시 행복이 가까운 곳에 있더라도
あの空へ 私は飛ぶ
저 하늘로 나는 날아올라
未来を信じて
미래를 믿으며
あなたを忘れない
당신을 잊지 않아
でもきのうにはかえれない
하지만 어제로 돌아갈 수는 없어
ㅡ
조화調和 :서로 잘 어울림.
조화造化: 만물을 창조하고 기르는 대자연의 이치.
ㅡ
목련의 꽃말: 숭고한 정신
ㅡ
(+독백 본문에 쓰지 못한 뒷부분 가사)
窓から見る光る海より
창밖으로 보이는 빛나는 바다보다
波の中へ飛び込みたい
파도 속으로 뛰어들고 싶어
引き止めてる
붙잡아 세우는
腕をほどいて
팔을 뿌리치고
行くべき場所
가야할 곳
どこかにある
어딘가에 있어
あなたの腕の鳥かごには
당신의 품 안의 새장에서는
甘い時間だけが積もる
달콤한 시간만이 쌓이지
だけど紅い実を
하지만 붉은 열매를
いま捜すしに行く
지금 찾으러 가네
いつかこの別れを
언젠가 이 이별을
そう悔やんでも
그래, 후회할지라도
蒼い鳥
파랑새
自由と孤独
자유와 고독
ふたつの翼で
두 개의 날개로
あの天空(そら)へ 私は飛ぶ
저 하늘로 나는 날아 올라
遙かな夢へと
아득한 꿈을 향해
この翼もがれては
이 날개 없이는
生きてゆけない私だから
살아갈 수 없는 나니까
蒼い鳥
파랑새
もし幸せ近くにあっても
혹시 행복이 가까운 곳에 있더라도
あの空で
저 하늘에서
歌を歌う
노래를 부를거야
未来に向かって
미래를 향해서
あなたを愛してた
당신을 사랑했어요
でも前だけを見つめてく
하지만 앞만을 바라보겠어요
- 파크머리 반응
- (70스레)
아무래도 머리카락이 짧게 싹둑 잘렸으니, 조금 놀랄지도 모르겠다. 머리카락이 좌우하는 인상의 차이라는 것도 상당히 큰 편이다. 상당히 오랫동안 길러온 머리카락인 만큼 스스로도 문득 거울을 볼때마다 실감하고 있다. 확실히 짧은 쪽이 편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서 에스터는, 주변 사람을 이 모습으로 다시 만났을때 어떤 리액션을 받게 될 준비라도 되어있었다. 그래. 충격적인 변화일 테니...
...충격적인, 변화...
...저거, 누구지? 변한 코스츔을 멀리에서 봤을 때 처음 가진 인상이었다. 코스츔이 저 쪽에 있대서 왔는데. ...덩치를 보면 확실히 본인이지만. 자신이 휴가였던 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머리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저정도로 길지 않는다. 그보다, 색 자체도 전혀 달라져버렸잖아. 가발인가? 아니면, 빌런의 짓인가? 최근 나이 빌런의 일이 있었다보니, 전혀 신빙성없는 추측은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머리 색과 길이를 바꾸는 능력을 어떤식으로 악용할 수 있지? 당장 생각난 것은 미용실에 취직하면 돈 잘벌리겠다 정도.
아. 에스터가 혼란에 빠져있는 사이 코스츔(으로 추정되는 은색 장발의 남자)이 그녀를 눈치챘다. 에스터는 침착하게 언제나같은 진지한 얼굴로 안녕 이라며 손을 흔든다. 당신이 준 기모 벙어리장갑과 귀마개를 한 모습이다.
- 성격반전이벤트
- (72스레)
아마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의 에스터와 만난다면 그리 나쁜 인상은 아닐 것이다. 늘 싱글싱글 웃는 얼굴의 그녀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처음 본 사람에게도 오랜 사람처럼 장난을 건네곤 한다. 그 능글맞은 부분이 별로일 사람도 있겠지만서도 전체적으로는 꽤 호감형인 인상이었다. 큰 키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을 줄이려는 건지, 더욱 친근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의외로 맡은 일은 착실히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처리를 할때도 미소를 잃지 않으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귀찮은 내색도 없이 다정함을 보여준다. 공무원의 귀감이라고나 할까. 적을 만났을때도 그 성격은 변하지 않아, 능글맞은 농담을 건네면서 싸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 일에 있어서도 무척 착실하고 좋은 사람이다. 정말 좋은 사람...
...사람을 죽이면서 희열을 느끼는 살인광이라는 점을 빼면.
'트리거 해피'. 그녀의 능력과 행동거지로 인해 이명과 별개로 붙여진 별명이다. 뜻은 방아쇠를 당기면서 행복을 느낀다. 이 또 다른 별명을 아는 사람은 일반인중에서는 거의 없으나, 이즈모 내에서는 제법 유명해져있는 사실이다. 능력때문에 어떤 패널티나 한계 없이 총을 연사할 수 있다는 점. 표적을 발견하면 무슨 수를 써서도 끝장낸다는 점. 그리고 제압을 빙자한 살인행위에서 희열을 느낀다는 점. 이 요소들이 모여서, 법률의 심판을 피해가는 살인귀가 완성된 것이다ㅡ
어찌보면 즉살명령의 모순과 한계를 한몸으로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살인을 기뻐하고 학살을 즐긴다는 끔찍한 성품에도 불구하고, 히어로라는 감투를 쓴 채 성실하고 올바른 히어로 시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그녀는 자신을 "올바른 히어로"라고 여기고 있었다. 설령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가도, 시민을 지킨다는 명분만 달성한다면ㅡ심지어 그 시민마저도 증거인멸을 위해서라면 죽일 각오가 되어있었지만!
모든 것은, 정의를 위해서 필요한 희생. 즉 필요악이라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다. 허나 실은 이마저도 변명이었고, 자신의 일을 방해한다면 언제든지 엎을 준비 되어있는 논리이며 사상이었다ㅡ 에스터 H.클라인은 그런 사람이었다. 만약에 자신이 만민에게 악으로 공인된다면, 악을 합리화할 방안을 찾아내겠지.
ㅡ
"하나, 둘, 셋..."
그녀는 시체를 헤아리고 있었다. 검은 롱코트가 인상적인 제복을 입은 에스터는, 장화의 뒷굽으로 사람의 머리를 짓뭉개듯 밟은 채였다. 머리가 높네. 조금 떨리는 머리통에서는 잘 들어보니 신음소리가 새어나온다. 에스터는 의아한 채로 그를 쳐다본다. 아직 살아있었나.
"크...크으..."
"살아있었나?"
"네, 녀석... 히어로라는 이름으로 이런 짓을..."
그녀는 말을 멈추고, 그에게 무릎을 굽힌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자하게 미소짓는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들린 총은, 그의 어깨를 향한다...
ㅡ총성이 울려퍼진다.
잔학스러운 폭발음과 함께 어깨는 박살나버린다. 부드럽게 틀어막힌 입에서는 비명조차도 지르지 못한다. 아. 아아아. 으으으으. 그런 소리들이 겨우겨우 새어나올랑말랑할 때, 에스터는 빙긋, 그의 목구멍에 총을 박아넣고.
타앙.
그를 대신하여 화려한 총성이 다시금 소리지를 뿐.
...에스터는 남자였던 것의 머리채를 쥐어든다. 이제 진짜 죽었으려나? 달달거리며 흔들어본뒤, 만족스러워한다. 임무 내내 얼굴에 띈 미소를 잃지 않은 채였다. 바람직한 공무원의 태도지. 그리고는 무전을 켠다.
"이 쪽은 머리말. 열한 마리 모두 다 처리했어."
무전 너머에서 익숙한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적당히 하지 않으면 이 쪽의 일거리가 늘어나지 않습니까."
"아하하. 내 얼굴을 봐서 용서해달라니까- 그럼, 뒷처리좀 하다 갈게."
"부디 귀찮은 일은 만들지 마세요."
"알았어ㅡ"
뚝.
무전과 함께, 시체의 손가락 하나가 끊어져버린다. 에스터는 장갑낀 손으로 뜯어낸 그것을 만지작대며 보다가, 집어던져버린다. 오늘건 질이 별로네. 하늘빛은 피투성이 대지에서 벗어나, 자신의 거처를 향해 돌아가버린다.
- 기타 에릭과의 만담들 및 가벼운 썰들
(가벼운 썰들이므로, 캐릭터 및 설정 붕괴의 가능성 있음.)
-26스레 전후-
11.18
이즈모 본부에 엘리가 생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역시 살인마 맞았잖아!' 라며 뒤늦게 속으로 태클을 걸어보는 아침 7시 7분.
에스터:이명을 지으라니, 어떻게 지으면 되는 거지.
에릭: 또띠 이름 짓듯이 해요!
에스터:강아지 이름 짓는 것과 같을 리가 없잖아.
에릭: 아- 어쩔 수 없네요! 그렇다면 이 초☆천재 슈퍼 큐티 인텔리 사이언티스트 에릭 앤서니가 이름을...
에스터:좋아. 머리말로 하자.
에릭:그, 그렇게 대충짓지 말아요.
사람들:구제프가 세뇌를 써서 사람을 고친다는 소문이 있대.(소근소근)
에스터:(에이. 설마.)
사람들:친구의 친구가 그랬는데 녹턴 머리는 염색이 아니라 힘들어서 센거래.(소근소근)
에스터:(세상에........그럴수가...........)
27스레
28스레
1.레리즈 원
쇠로 된 물건을 만들 수 있다.
단, 쿨타임이 있으며, 이 쿨타임은 공복도에 비례해 커진다.
좋아하는 음식은 햄버거.
2. 김영세
몸에서 분리돠 손톱을 폭탄으로 바꿀 수 있다.
레리즈와 늘 같이 다닌다. 손톱깎기가 있어야 하니까.
훗날 에스터와 조우하나, 그때 그 개주인이리라곤 전혀 상상도 못한다.
3.서니보인 다오
단검을 들고다닌다.
이 단검은 간지나보여서 샀으나, 블래스터에게 맞은 뒤 집에서 화나서 휘두르니 손잡이가 빠졌다고 한다.
바닥을 가볍게 굴러 꽝꽝 소리를 낼 수 있다.
능력짜기 귀찮다.얘 능력은 님들이 짜주세요.
4. 시료쿠 이이나
시력이 좋다.
시력을 최대 강화해서 세상을 슬로우모션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시력이 강화되는 거지 몸이 따라간단 뜻은 아니다.
(녹턴일상 이후)
따스한 우유를 마시고도 무사히 잠들지 않는데 성공한 에스터가 녹턴의 말들을 다시 떠올리는 부드럽고 포근한 10시 55분.
(에릭 레스에 이어짐)
쩍.
대체 굳이 왜 이런 짓을? 이라곤 생각하지만 에릭의 부탁으로 에스터가 열심히 맨손으로 사과를 쪼개는 4시 25분.
에스터는 수박을 쪼개줄까?
수락1/거절2 Dice(1,2) value : 1
Dice(1,100) value : 75
회피시 실패. 경상시 금감. 중상시 쪼개기 성공. 치명상시 산산조각.
29스레
에스터:왜 일찍일찍 제 시간에 잠들지 않는거야. 낮에 피곤해지지 않나.
에릭:그치만.... 이런 행동이 아니면 오네-쨩....나에게 관심도 없는걸!
에스터:?
에스터가 유행을 이해하지 못하는 12시 6분..
(31스레)
#자캐별로_내게_죄가_있다면
에스터
당신을 사랑한 죄:
내가 아름다운 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죄: V
내가 살아있는 죄:
정말로 범죄:
죄는 무슨 나에게 죄따윈 없다:
#자캐의_운전_타입은
에스터
안전운전형:V
밟는거야 엑셀형:
드리프트 장인 카트라이더형:
운전대만 잡으면 제 3의인격이 나타나지형:
유연한 움직임 물흐르는 고품격 운전기사형:
(메이드 이벤트)
(에스터 - 메이드)
"어서 와라."
188센티의 건장한 체격, 드문드문 근육이 드러나보이는 거대메이드가 당신을 반기고 있다.
탁한 하늘빛 장발을 뒤로 대충 묶은 것이나, 체격이나 성격 모두 그대로이나, 이 에스터는 메이드이다. 주인을 위해 봉사한다. 메이드복의 파인 부분으로 근육 가득한 등짝이나 짧은 소매 밑 팔근육같은게 도드라져, 평상복을 입었을때보다 우락부락한 느낌이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겉은 딱딱 속은 물렁한 우리의 에스터다!
오늘도 프릴 가득한 메이드복을 입고 주인님을 기다리고 있다.
근육메이드를 겁내는 사람들이 많아, 에스터가 조금 시무룩해진 이벤트중의 6시 8분.
에스터와 에릭(메이드)
"어째서 이런 옷을 입고 일해야 하는거지...?"
"그야 메이드니까요!"
"이런 옷은 일에 효율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만..."
"귀여운걸요!"
"...나는 이 옷을 입어도 귀엽지 않아."
"멋진걸요!"
에스터와 에릭이 메이드에 대해 고찰하며 먼지를 터는 7시 50분.
(34스레)
1. 캐릭터는 휴대폰으로 주로 뭘 하나요? (없는 캐릭터들은 있다는 가정 하에)
에스터:...?연락....(핸드폰으로 연락 말고 뭘 한다는 소리지?라는 톤.)
에릭:연락,사진찍기,메신저,SNS,폰게임 할거야 많죠!! 평소엔 연구소분들이나 에스터씨에게 재잘재잘거리는데 사용하거나, 또 셀카나 음식사진도 찍어서 인별에 올리고! 아, 그리고 폰게임으로 랭킹 깨기를 노리거나... 아니면...(재잘재잘)
2. 추위에 약한 편인가요 더위에 약한 편인가요? 혹은 둘 다에 약하거나 강한가요?
에스터:...딱히. 옛날에는 추위에 약했지만...지금은 괜찮아.
에릭:추운건 싫어요! 근데 딱히 약한 건 없는거같아요! 아, 그래도 여름이 좀 더 좋아요...근데 여름이 오면 반대가 되려나!
3. 캐릭터의 대학 다닐 적 모습을 서술해주세요. (이것도 안 다닌 캐릭터들은 다녔다는 가정 하에)
에스터는 지금과 딱히 다른건 없었을거같아요. 인상땜에 먼저 다가오는 사람 적지만 지내다보면 좋은사람이고... 적당히 성실하게 대학생활 하고...
에릭은 만약 대학에 다녔다면 캠퍼스 라이프를 만땅 만끽하는 인싸였을거같네요!!
음... 지금도 대학 정식으로 다니려고 공부중일지도 몰라요! 히어로 협력 특별전형 창설을 바라며.
4. 귀를 뚫었거나 뚫은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몇 개?
둘다 없음!
에스터는 꾸미는거에 취미가 없고, 에릭은 자기 몸에 손대는거 안좋아해서.
5. 아기 고양이가 캐릭터 뒤를 졸졸 따라온다면 캐릭터들의 반응은?
에스터:(당황)(어떡하지)(;;;;;;;)(잠깐)(굳어짐)(경찰이나...주변인에게 맡긴다...붙잡으며 덜덜 떠는건 덤)
에릭:망설임없이 연구소에 데려와서 소장님!!저희 고양이 키워요!!(반짝반짝)(A씨:!?)
1.캐릭터들이 제일 행복했던 기억은?
에스터의 경우 음... 또띠를 처음 구출하고 보냈던 날들? 일까? 또 에릭을 구출하고 가족이 된 일? 행복이라는 안정적인 말보단 뭐랄까, 격앙된 기쁨...같은 느낌이네요. 에스터가 겪은 일들은. 그렇지만 굳이 제일을 꼽을 필요 없이 즐거운 일들이 꽤 많이 생겼어요!
에릭같은 경우 역시 에릭연구소와 에스터와 보낸 즐거운 나날들 그 자체.
2.좋아하는 노래 장르는?
에스터: 클래식? 노래감상을 딱히 즐기는 타입은 아님.
에릭:일렉트로닉. 팝. 아이돌.
3.강아지파? 고양이파?
에스터:강아지.
에릭:고양이! (라곤 해도, 귀여운건 다 좋긴 하다!)
4.제일 잘하는 게임 장르!
에스터:격투? RPG? 굳이 따지면 그러려나? 기본적으로 딱히 게임을 잘 하지 못함. 일단 어릴때부터 한 체스 실력만 봐도....
에릭:두뇌 쓰는 게임. 전략성! 실력 무관하게 웬만한 게임은 다 좋아한다.
1. 캐릭터가 좋아하는 최애 색깔!
에스터:갈색. 그 외 차분한 색 계통.
에릭:흰색!
2. 정확히 적어보자 캐릭터에 주사!!!!
에스터:운다. ㅎㅡ엉..꺼이꺼이...하며 운다. 주량 한잔
에릭:능력이 독에도 반응해서 안☆취☆함
3. 지각을 했다면 택시? 아니면 포기하고 잠자기?
에스터:무조건 택시. 전력을 다해 지각은 피한다. 아니면 더 늦는건 피한다. 차가 못들어가서 어쩔수 없이 걸어야 하는 구간에선 전력질주.
에릭:직장이 집이라 지각할일이 없다. 지각하면 이왕 늦잠잔거 도로 자다가... 귀잡혀 끌려가겠지.
다른 직장이었다면 헉!!지각!!하고 놀라 좀 늦을거같다고 연락하고 안절부절못하긴 하나...그냥 안절부절 못하기만 하고 딱히 택시를 타는 수준의 정성은 보여주지 않는다. 버스에서 안절부절.
4.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서 무엇을?
에스터:더 일찍, 실험을 막을 것.
에릭:원장님을 사건 전에 대피시키거나, 퀸즈랩에 따라가지 않거나, 여러가지 후회되고 되돌리고 싶은 것들은 많지만... 아마 그 모든 일들이 없었더라면 에스터랑 만나지도 못했고, 지금의 자신이지도 못했겠지. 그러니까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던 최선이었다. 자책하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는 그냥 만약으로만 생각해둔다.
37스레
책상에서 눈을 뜬 에스터가 잠결에 그린 코끼리와 고양이를 발견해 어이없어하는 7시 15분.
#자캐가_영화관에서_영화를_볼_때
"에스터씨."
"왜지."
"저희가 고른 영화, 분명 스릴러 아니었어요?"
"그랬던 것 같군."
"근데 왜 두근두근☆알콩달콩 곰순이의 마법여행이라는 제목이 나오죠?"
"그러게."
"당장 관객들도 다들 어린이잖아요."
"...잘못 예매했나보군."
"...뭐. 감동적인 영화였으니 괜찮지만요."
"...울었나. 에릭?"
#자캐가_영화관에서_영화를_볼_때2
"결국 후속편까지 보러 와버린건가."
"그렇지만, 너무 감동이었다구요. 애들영화가 아니에요."
"확실히 이번에 관객은 어른들 뿐인것 같긴 하군..."
"...어? 저런 제목 아니었는데."
"아. 저번에 예매하려고 했던 그건가."
"뭐. 어차피 저번에 보려고 한거였으니까요!"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다시는 스릴러영화 안 봐."
"...에스터씨. 울어요?"
(39스레)
레몬
"...? 에릭. 그 레몬은 뭐지?"
"레몬이에요."
"아니. 그 레몬은 뭐지 라고 물었잖아."
"그거 아시나요. 에스터씨!? 레몬 한 개에는, 무려 레몬 한 개 분량의 비타민이 들어간다는 거!"
"그거야 당연하지."
두 사람의 일상적인 만담이다.
"제 눈은 상큼한 레몬색이잖아요!?그리고 레몬은 상큼, 저도 상큼! 그러니까 제 마스코트를 레몬으로 삼기로 결정했어요!"
"그런가."
"그런의미로, 늘 가지고 다닐 거에요!"
"그럴 필요까지는."
"거기다, 레몬의 효능은 이 뿐만이 아니라고요! 이렇게 해서 눈에 뿌리면..."
찍.
"아! 따가워!"
"호신용으로!"
"......"
"어라?에스터씨, 그거 제 안경...그리고 제 레몬..."
찍.
"아! 따가워!"
...따라하지 말자.
ㅡ
(41스레)
에스터:에릭. 다 쓴 달력 뒤에 물고기를 그리고 있군.
에릭:종이가 아까운걸요! 어릴땐 자주 이렇게 했어요.
에스터:......
에릭:아앗. 에스터씨. 고양이 그리시면 어떡해요.
에스터:안 되나?
에릭:제 물고기가 잡아먹혀버리면 어쩌려구요.
에스터:그, 그런가......
긴장상황 속에서도 오늘도 평화로운 두 사람.
ㅡ
에릭:꿈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
에릭:그 날의 슬픔마저도!!! 그 날의 괴로움마저도!!! 그 모든것을 사랑했던!!! 그대와 함께!!!
에스터:?
에릭:마음속에 남아 사라지지 않는 레몬향기!!!!
에스터:(내가 온지 모르는 모양이다...부끄러울테니모른척 해줘야 하나)
에릭:!(에스터 발견)
에스터:!
에릭:비가 그칠 때까지 돌아갈 수 없어!!!
에스터:(그대로 부르는건가)
에릭:지금도 그대는 여전히!?
에스터:나..나의 빛!!
에릭:와아!!!
(자연스럽게 동참시켜버렸다.)
ㅡ
"키가 그 정도밖에 안 돼?"
에스터: (?
?????
???????????
농담인가?????)
(191cm 여성.)
"그 말투를 쓰게 된 계기는?"
에스터: ...원래는 우물쭈물하며 그 말을 이렇게 해야할지 저렇게 해야할지 고르다가, 결국 꼭 해야할 말도 놓쳐서 자책하곤 했어. 그러니까 '꼭 좋은 문장이 아니더라도 해야 할 말은 하자!' 고 생각. 그런 탓에 '용건을 전한다. 문장을 완성시킨다. 간결하게 말한다' 이 셋을 신경쓰다 보니 지금의 딱딱한 말투가 되었다.
"어떤 부분에 성적인 감정을 느껴?"
에스터: 그, 그그, 그런 얘기, 갑자기 무슨 소린가! (얼굴 붉힘)(당황)
(43스레)
"그러니까, 지금껏 잃어버렸던 시간만큼. 아니, 그 이상."
소년은 빙글 돌았다. 실험실에서는 지을 수 없었던, 환한 미소였다. 영웅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즐거운 일들을 잔뜩 쌓을 거에요."
에스터 힐데가르트가 언젠가의 에릭을 회상하는, 9시 16분.
(46스레)
(마법소녀 페러렐 예상)
"...그래서, 네가 그 마법소녀 머리말?"
"그,그그, 그런데..요.."
"...총 갈기고 빌런 제압하다 바닥 부순?"
"네, 네에..."
"그 시크하고 인상 험악했던 거대한 사람이 사실 너?"
"그렇...습니다..."
"......"
"(히익...)"
변신전=진화전 고딩에스터.
변신후에만 시크 무뚝뚝 강려크하고 듬직한 근육아가씨가 된다
(47스레)
에스터가 엔제에게 아침식사로 무엇을 추천해줄지 고민하는 10시 22분.
(50스레)
보드게임 대사(를 넣는다면)
에스터:(선택시)...잘 부탁한다.(고개를 끄덕인다.)
에스터:(총기류 보정)유감이군.
에스터:(불살주의 발동시) ...죽게는, 놔두지 않아.
에스터:(승리시)자. 돌아갈까.
에스터:(사망 시)구하, 지, 못했어...
위태로운 채 지속되는 표면뿐인 평화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잠시 휘청거리더라도 진짜 문제를 끝장내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생각해. 겉 뿐인 평화 뒤에선 수없는 사람이 죽어가니까.
에스터씨는 그렇게 말했지만, 어딘가 힘이 쭉 빠지고, 쓸쓸한 것 처럼 보였습니다.
(54스레)
상황이 종료되고 머릿속이 어떻게 되어버릴것만 같았던 에스터가, 문득 핸드폰을 뒤늦게 확인하고 밤비의 셀카를 눈치채 쓴웃음을 짓는 9시 3분.
(56스레)
"그러고보니, 에릭, 원래는 두번째 능력이 있었다고 했지."
"있었어요! 아마도!"
"...아마도?"
"자연치유 능력으로 무효화되니 소용없지만요!"
"...그런가."
"애초에 지금은 끝없는 무효화로 사용하지 못한 끝에 완전 소멸했고요! 자연치유의 승리!"
"아쉽지는 않나?"
"아쉽지 않아요!"
왜냐하면ㅡ
에스터가 꽤나 강인해졌던 무렵 어느 날의 1시 10분.
(57스레)
1. 캐릭터가 아침에 일어날때마다 하는 생각은?
2. 캐릭터는 수영을 잘 하나요?
3. 캐릭터의 초기안은 어땠나요?
4. 캐릭터 짤 때 얼마나 걸리셨나요?
5. 캐릭터는 혀로 체리 꼭지?줄기?를 묶을 수 있나요?
6. 현 시점에서 캐릭터가 배우고 싶어 하는 게 있나요?
7. 지금 이 시간 캐릭터가 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1. 일해야지.. 또는 몇시지...정도? 아침에 일어났을때 보통 생각을 하나요? 전 졸리단 생각밖에 안하는거같은데()
2. 수영...은 해본 적 없을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땐 확실히 못했고, 애초에 수영복 자체가 몸매가 확 드러나다보니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요. 그래도 배우면 곧잘하지 않을까?
3.좀 더 정통 쿨데레! 걸크 쿨데레 보이쉬 여캐. 지금과 다른 점은 근육량과 갭 양? 지금과 달리 여리거나 물렁한 부분은 한 20프로정도밖에 안되는 쿨데레였습니다. 그 외 디자인은 비슷.
4.시간 날때마다 틈틈히 잉여력을 담아 짜왔습니다. 그래서 기간측정 불가.
5. ? 그걸 어케하지
6. 지금 필요한 것은 거의 다 배워서 딱히 없을 것 같네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법? 상처입지 않는 법?
으엄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법 고급편?
7. 감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
(58스레)
(녹턴 세번째일상 이후)
"어떻게 됐어요!?"
"어째 네가 더 신난 느낌인데."
"그래서!? 그래서!?"
"차였다."
"......"
"왜 그래?"
에릭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분노로 바뀐다.
"...그 사람 보는 눈이 어떻게 된거 아니에요!?어떻게 에스터씨를 찰수가 있어!? 역시 이상한 사람이죠!? 분명 속은 시커멓고 곳곳이 뒤틀려있는 사람일거야!"
"그 분을 욕하지 마라!! 나를 미워하지도 않고 용서해줬단 말이다!! "
"웃기네! 에스터씨가 용서해줘야죠! 왜 그쪽이!"
"다시한번 그 분을 모욕했다가는...!"
...그리고 에스터가 아까운지 상대가 아까운지로 에릭과 에스터의 말다툼이 한시간 째 이어졌다.
그리고 에스터가 아직도 휴가를 내지 못한 2018년 12월 13일.
테러직후(헷갈리니 일요일이라고 치자):조만간 휴가 내야지
월:곧 휴가 내야지
화:휴가 빨리 내야지
수:얼른 내야지
목:내일은 꼭 내야지.........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챙겨줘서 고마워"
"^ ^"
"^ ㅡ ^ "
에스터가 답장을 보내는 2시 23분.
(61스레)
(나이빌런 이벤트중)
"....머하는거디. 애릭."
"...이왕 이렇게 된거, 저도 그냥 즐기기로 했어요."
"나애대항 워망으 드러나느거인가?"
"아뇨. 그냥 볼이 꼬집고 싶을 뿐이에요."
아무튼 에릭이 다시 밝아진것 같아 안심하는 12시 51분
(64스레)
질문: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에스터: 사람다운 사고방식.
에릭: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
배설물을 밟았을때
에스터: (인상을 찡그린다.)
에릭: (초췌한 인상이 된다...)
유언
에스터: ...아직, 더, ...구해내야.
에릭: ...에스터, 씨.
외모
에스터: 본인의 외모에 대해서 어떤 의미로든 크게 자각하지 못하는 편. 잘생겼느니, 험악하느니, 귀엽느니 등등. 주변의 평가를 들어야지 조금 그런가? 라고 생각. 아무래도 외모가 여러번 격변했다 보니 더 그런듯 하다.
에릭:나는... 귀여워.
에스터:1번하고 마찬가지.
에릭:귀여워... 난....
(66스레)
에스터:
179 엄살의 정도는?
저언혀 피우지 않는다. 제발 엄살좀 피워요. 에스터씨! (...라고 누군가가 대신 대답해주고 갔다.)
285 한 번 만난 사람을 잘 기억하나요?
잘 기억하는 편.
238 캐릭터의 신발을 묘사해주세요 (색상, 디자인, 닳은 정도 등)
검은 단화. 닳은 편이려나.
ㅡ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에릭."
에스터가 부드러운 미소를 배운 것은 기쁘지만, 그것이 안심시키기 위한 미소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안심하지 못하는 10시 22분.
ㅡ
(헬렌과 샤오화 일상 관전중)
헬렌과 샤오화 사이 낀 에스터 망상
에스터:(이용?)
에스터:(그 남자를 잡아? 생포?)
에스터:(몸을 허해? 맞는건가?)
에스터:(어색)(조용히 차를 마신다.)
ㅡ
에스터 tmi
1. 머리 오랫동안 기른 이유:성별 오해 좀 덜받으려고.
2. 숏컷인동안 치마 자주 입고다니는 이유도 동일.
3. 시력 2.0
4. 요즘 조금 미소가 늘었다.
(67스레)
1. 캐릭터를 짤때 제일 먼저 무엇을 중요시 여기시나요???
음.. 캐릭터가 내 취향인가? (응?)
서사... 입체성? 이 캐릭터가 왜 이렇게 행동하냐 라고 하는 동기가 뚜렷한쪽이 좋습니다. 이 과거가 있으면 이것이 이 캐릭터의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나? 같은거.
2. 캐릭터가 클쓰마스에 받구 싶어하는 선물!
에스터: ? (딱히 생각 안해봤음.)
에릭: 커-다란 곰인형이요!!! 지퍼를 열어보면 그 안에는 내가 있는거야!! 아. 그러면 제가 받을수가 없겠네요!!
3. 캐릭터의 나이를 그러케 정한 이유!!!!!
별생각 없었습니다!(두둔!)
음... 히어로 자체가 많이 구르니까, 적어도 성인... 사회초년생 아닌 나이를 잡아줘야 겠다 하면서도 또 너무 다 큰 나이는 아닌...? 나이를 정하기 위해 27살이었던거같습니다.
에릭은 원래 에스터랑 동갑이었는데, 굴리면 굴릴수록 앳된 느낌이 돼서 나이를 깎았습니다. 그래도 "나이에 비해 동안"설정은 유지하고 싶어서 성인으로.
4. 캐릭터가 제일 싫어하는 것/ 젤 조아하는 것
에스터: 딱히 생각나는게 없다. /......또띠?
에릭: 에스터씨를 괴롭히는 환경. 인체실험/ 에스터씨!!
에릭:에스터씨 미워.
에스터:아, 아니. 너는 당연히 가장 소중하니까 말하지 않는것 아니겠나... 보통 좋아하는 것 이라고 하면 사람을 말하지는....!!
에릭:(힝구)
5. 캐릭터가 지금 제일 후회하는것~~
에스터: 내 손으로 단숨에 죽였어야 했다.
에릭: 히어로같은거, 그만두게 했어야 하나봐.
6. 캐릭터를 짤때 만들어 두었떤 이름 후보가 있나요???
이름 후보... 는 아니고, 원래 에스터 이름 모티브는 Aster 였습니다!
근데 제가 스펠링을 까먹어서 걍 에스테르쨩이 되어버렸지!
에릭의 경우 그 동화작가 에릭칼이 이름 모티브였습니다! 이유는 딱히 없음!
ㅡ
캐릭터들은 무슨 케이크 제일 좋아할까요?
에스터: 안 단거. 몸에 안 나쁜거. 떡케잌같은거.
에릭:화려하고 예쁜거!!! 파티분위기 왕창 나는거!!!!우오아아아아!!!!!!!
(68스레)
1.이 캐릭터에 대해 캐릭터 본인은 모르지만 당신은 알고 있는 정보는 무엇인가요?
에스터:
미움받고 있는 위치에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두곤 한다는 것.
하지만 사실 그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는 것.
에릭:
밝은 상태로 있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
2.이 캐릭터의 가장 큰 흠은 무엇인가요?
에스터:이상을 위해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계산에 넣지 않는 것.
에릭:에스터라는 인간의 존재 그 자체가 에릭의 가장 큰 자산이자 약점.
3.이 캐릭터가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은 무엇인가요?
에스터: 필요악이 존재한다는 말.
에릭: 신의 존재. 다수,세계,발전이든 무언가를 위해 희생이 필요하다는 말. 그것이 자기희생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
4.이 캐릭터의 가장 큰 자산은 무엇인가요?
에스터: 힘. 올곧음. 사격실력. 주변인들.
에릭: 밝음. 회복력. 긍정적 사고.
5.자신의 정체성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캐릭터는 그렇게 할까요, 하지 않을까요?
둘 다 하지 않는다.
(70스레)
1.햄스터 발견시 자캐들의 반응
에스터:(!?)(으악)(만졌다가 찌그러질거같아..)(귀여운데 무서워)
에릭: 쓰담쓰담쓰담쓰담말랑말랑말랑말랑
2.다 된 밥을 손이 미끄러져 엎어버렸을때 자캐들의 반응
에스터: 세상에서 가장 허탈한 감정을 느끼고 자괴감을 느끼다가 터덜터덜 다시 밥을 하러 간다.
에릭: ... ...보는 사람이 없고 모양이 멀쩡하면 주워먹어볼까 진지하게 고민한다. 능력이 있으니 병은 안 날테니.
주워먹을 수 없는 종류의 반찬이면 슬프게 포기한다.
이후, 상황을 봐서 에스터에게 식사제작을 부탁하거나 시켜먹는다.
둘다 불가능하면 굶는다.(덤으로 굶은걸 들키면 에스터에게 혼난다.)
3.자캐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이거엔 자신있다!"
에스터:사격.
에릭:귀여움! (당당)
4.노래방에 간 자캐는?
에스터:조용히 곡을 찾는 척 하며 배경과 동화되려 애쓴다...
에릭:이 노래방의 최전선을 차지하겠다!!! 탬버린도 노래도 포기할 수 없다!!!
5.집구석에 벌레가 있다면 자캐는?
에스터:(히익) 좀 징그러워하지만 무리없이 잡는다.
에릭:
종류에 따라 다르다.
안무서워하는 벌레는 와아!
무서워하는 벌레는 일단 세상에 없을 스피드로 책상위에 올라간다.
근데 집에서 나오는 벌레면 보통 안무서울리가 없지...
6.아동추천도서라 읽었는데 동심파괴적인 내용이었을때 자캐의 반응
에스터: ...왜? 라고 진지하게 생각한다.
에릭: 의외로 담담.
1.비 오는 날의 자캐
에스터: 길이 미끄럽겠네... 라고 생각한다. 주변에 연락할때 조심하라는 얘기를 덧붙이는 정도
에릭: 비 오는 날의 약간 가라앉은 감성을 즐긴다.
2.종교권유에 대한 자캐 반응
에스터:아. 미안하다... 종교에는 흥미가 없어서...(정중히 거절)
에릭: 아 죄송합니다 저는 에스터교 믿어요 ㅎㅎ(에스터:이 녀석아)
3.어린 자캐는 인형과 로봇중 어느걸 좋아했나?
에스터:인형!!!! 봉제인형!!! 어릴때부터 보들보들 폭신폭신한 봉제인형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부모님은 원래 자주 집 비웠다보니 애착담요 끌어안곤 했던것도 이 성향에 대한 영향일지도. 실제로 가진 인형은 많지 않다. 큰 분홍색 토끼인형정도? 낡아서+이제 인형가질 나이 아니니까 라며 중학교 졸업할 무렵 부모님이 버렸다... 샤오화랑 파크에게 인형준것도 이런 이유도 있었을듯. 자기는 인형 가질 시기 지나버렸으니 선물용으로 구매하며 대리만족.
에릭: 지금은 인형을 더 좋아하지만, 어릴땐 로봇을 좋아했을거같다! 부웅~ 부웅~~하면서.
4.자캐가 산타의 정체를 처음 안 때
에스터: 7~8살때? 별건 없었고 다들 알게 되니 본인도 알게 됐을 듯.
에릭: 음... 언제지? 원장님 살아계셨을때 더 어린 동생들을 위한 선물 사는거 도우면서 자연스럽게 알았을거같기도 하고. 그래도 원장님 살아있을땐 신의 존재와 비슷하게 좀 관념적인 존재로서의 산타? 를 믿었을거같긴 하다. 원장님이 선물을 사는 것은, 산타의 대리인이기 때문이야! 이런 다정한 원장님에게 언젠가 산타가 선물을 주고 갈지도 몰라! 같은. 원장님 죽고나서는 완전히 부정하게 됐겠고.
(71스레)
"...닥터 구제프와 에스터씨중 하나를 고르라면, 저는 에스터씨의 편이에요."
"에스터씨를 믿어요."
"...다시는 에스터씨 말고 다른 사람을 믿고 싶지 않을 정도에요."
에스터가 괴로움에 처해있던 나날속, 어느 대화.
(72스레)
1.이 캐릭터를 동물에 비유한다면!
에스터: 처음에는 뭐랄까 큰 개...같은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잘 모르겠다. 늑대? 늑대만한 개? 사자도 어울리나? 전에 뭐 떠오른거 있었는데. 곰? 곰도 어울리는거같기도 하고.
에릭:아기고양이... 또는 생쥐! 햄스터? 기니피그?
...다들 개구리라고 생각하시겠지?
2.캐릭터의 글씨체 묘사.
에스터:진중한 글씨. 뭘로 써도 붓으로 쓴 궁서체처럼 됨.
에릭:깜찍발랄. 동글동글.
3.이 캐릭터를 직접 굴리기 전까진 예상 못했던 부분이 있다면?
에스터:이 정도로 물렁해질줄은 몰랐다. / 이정도로 멘탈 깨트리게 될줄은 몰랐다...
에릭:이렇게까지 통통 튀는 발랄이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
4.아침에 일어났더니 동물귀와 꼬리가 생겨있다! 반응!
에스터:? !? ?????? 당황한다. 모자를 쓰긴 하는데, 엄청 열심히 숨기진 않을거같고...이즈모에 보고하지 않을까.
에릭:당황하지만, 즐긴다. 나는 귀여워.
5.이 캐릭터의 의외인 면이 있다면?
에스터:...요리를 잘한다?
에릭:천재 연구원을 자칭하는것치곤 의외로 자존감이 생각만큼 높지 않다는것.(어제 파크에게 털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