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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태(딜레마의 배심원)

last modified: 2023-09-13 21:30:21 Contributors





1. 기본 프로필


출처
▶ S2 Portrait 출처
▶ S1 Portrait 출처
“처음부터 허락을 말지 그랬어.”

Keyword
무기력, 우울장애, 나사빠진

이름 나이
박권태 42
외관

헤어 세팅에 소모할 에너지가 없어 앞머리가 전부 눈을 찌른다. 마찬가지로 뒷머리 또한 묶지 않기에 산발 상태 그대로다. 구속이 추가된 구속복은 그가 팔을 직각 이상으로 들어올리는 것을 막는다. 두 손이 서로 연결된 상태이기에 크게 벌리는 것 또한 힘들어보이고. 누군가를 품에 안기 위해서는 자신과 상대 모두 평소 이상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는 이전까지 짓고 있던 웃음이 사라져 의욕 없는 무표정만 짓고 있다. 벌건 눈에 초점이 잡히지 않는 것이 앞은 잘 보이는지 의문스럽다.

▶ S2 Appearance 앞머리를 짧게 다듬고 길쭉하게 자란 뒷머리를 아래로 묶었다. 한쪽 앞머리를 옆으로 넘긴 헤어스타일은 유지하려는 듯 하다. 어느 정도 마음에 여유가 생겼음을 증명하는 걸까, 듬성듬성 나있던 수염을 매일 깔끔하게 면도한다. 힘없이 뜨고 다니는 눈빛이 달라지질 않아 인상에 큰 변화는 없겠지만. 구속복의 구속이 풀려 앞섶이 열렸다. 그 아래로 검은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게 보인다.
▶ S1 Appearance 새하얗게 새어서는 푸석해진 머리카락. 목을 넘어 어깨까지 넘을 정도로 길렀음에도 자르지를 않는다. 쭉 찢어진 붉은 눈은 총기를 잃어 흐리멍텅하다. 듬성듬성 난 수염을 자를 생각도 않고 자글한 주름마저 세월이 지나가는 대로 놔두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관리를 하지 않는 중년이다. 삶을 흐르는대로 놔두는 성정이 과연 옷에 미쳤을까? 지급된 구속복에는 손대지 않고 설렁설렁 다닌다. 주머니에서 담배 한 까치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늘상 달고 다니는 미소 사이로 들이넣는다. 내쉬는 숨이 길다. 속에 아무것도 들지 않을만큼 폐를 토하고 나자 남는 것은 놀리는 듯한 웃음 뿐이다.

성격

제 2심 폐정 이후 어느 순간부터 술에 손을 대지 않기 시작했다. 그 여파로 알코올을 통해 억눌러오던 우울감이 다시금 기어올라온다. 우울장애로 인한 무기력증은 술병으로 손 뻗는 것조차 힘들게 만든다. 이런 사이클도 좋다고 말할 수 있을련지.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 활동성이 줄어들고 의욕과 기력이 모두 없는 상태가 지속된다. 독방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거나 허공을 보며 잡생각에 빠져있고는 한다. 대화나 업무에 잘 집중하지 못 하기도 한다.
그나마 술을 마시면 이전같은 상태로 돌아온다. (이 점이 긍정적인지는 차치하고.) 매끄러운 상호작용을 원한다면 입에 술병 하나 꽂아주는 방법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 S2 Personality 크게 달라진 점은 없으나, 이전보다 자신감이 더 높아졌다. 기분이 좋을 때에는 다른 죄인들한테 더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나를 인정해준 사람이니까 더 챙겨줘야지"라고 생각하는 듯. 하지만 자신을 향한 공격은 예전만큼 능글맞게 웃어넘기기 힘들어한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는 빈도가 이전보다 더 늘었으며, 그만큼 상대를 향한 공격적인 언사 또한 같이 증가했다. 무언가를 불안해하는 듯이, 마치 위협받는 피식자처럼.
▶ S1 Personality 게으르고 나태하다. 무얼 하자고 해도 미적거리면서 술이나 한모금 더 마실 뿐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못 하는 게 아니고 안 하는 거다’라는 말을 달고 다니니 허세 하나만은 인정할 만 하다.
마주하기보단 피하기가 편하다. 갈등이 생기면 해결하려는 모습보단 피함으로써 눈 앞에서 치우는 방향을 택한다. 어쩌면 이것 또한 게으름의 일종일지도 모르겠다. 사람과의 대화는 피곤할 뿐이니까.
사람을 대할 때 웃음을 잃지 않는데, 호의에서 출발했다기보단 방어를 위한 목적임이 더 맞다. 웃는 얼굴에는 침 못 뱉는다고들 하지 않는가. 뭐, 뱉을만한 사람은 그래도 잘 뱉지만.

기타

왜 술을 마시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두 가지 반응이 돌아온다. 억울하다는 듯 꼬나보며 마시지 말라고 했지 않느냐고 말하거나, 기억해내기 위해 마시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얕은 두통을 달고 산다. 진통제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자주 발견된다.
수전증이 생겼다. 잘 보면 가만히 있을 때에도 손이 덜덜 떨린다.

▶ S2 Characteristic 피해자를 기억하느냐고 물으면 정색하고 화를 낸다.
세이카의 심문 이후 술을 덜 먹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기는 한데... 마음처럼 잘 되지는 않는 듯하다. 바깥에서는 손에 들린 게 담배 뿐이지만 그의 독방 앞을 지나면 술냄새가 진동을 한다.
▶ S1 Characteristic 술고래다. 술을 곁에서 떼어놓질 않는다. 게다가 술 종류를 가리지도 않는지 들고 있는 캔이나 병 종류가 항상 다르다.
내기를 좋아하는데 잘하는 편은 또 아니다. 심심하면 무언가를 걸고 게임하자며 찾아올지도 모른다.
자신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유인 즉슨, ‘기억에 없기’ 때문이라고. 시치미를 떼는 건지 정말로 기억을 못 하는 건지는...

가이드라인
뭐든지 조율없이 OK. 영구적 상해를 입히고 싶을 때만 말씀해주세요.



2. 심문 기록


2.1. 제 1심


001  𝐓𝐑𝐈𝐀𝐋 𝟎𝟏 𝐉𝐔𝐃𝐆𝐄  - - -
Q. 01 시미즈 마사 살해한 것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말하라.
기억나는 대로 말해달라 해도 말이지. 이 아저씨,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고? 술을 너무 퍼마시면 필름 끊긴다고 하잖냐. 그런 거려나. 뭐, '살해한 것'은 인간이겠지? 아마도?
Q. 02 제제 르 귄 자신의 살인을 죄라고 느끼는가?
다른 사람들이 죄라고 판단했으니까 내가 이 곳에 있는 거겠지. 하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Q. 03 옥사나 하네즈카 가족 구성원은?
아내하고 딸아이 한 명. 지금은 없어. 이혼했거든. 부모하고는 절연한지 오래라 얼굴도 가물가물.
Q. 04 시미즈 마사 술김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면 죄가 가벼워질거라고 생각하는가?
죄가 가벼워지든 무거워지든 말이지- 기억 나지 않는 건 안 나는 거라고. 의심받다니 슬프네. 울어도 되냐?
Q. 05 제제 르 귄 범행 당시 취해 있었는가?
취했겠지. 애초에 나, 거의 항상 술 마시고 있다고?
Q. 06 제제 르 귄 피해자와 살해 이유를 추측해서 말하라.
...... 추측~ 추측 말이지? 뭐어, '나름대로 추측해보자면', 그 날 처음 본 사람이었으려나? 얼굴 보기 짜증나서 확! 이라는 느낌?
Q. 07 시미즈 마사 이전까지 술을 마시고 나서 폭행이나 협박 갈취 등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있는가?
음. 없네. 문도 안 열고 방안에만 처박혀 있었거든.
Q. 08 옥사나 하네즈카 수감자들 중 당신이 가장 꺼리는 수감자는?
가장 꺼리는 수감자... ...... 아직은 없네. 모두하고 대화해본 것도 아니라. 애초에 여기 전부 살인자들이잖냐? 나랑 똑같은 사람들인데 싫어할 이유가 없지?
Q. 09 제제 르 귄 술을 좋아하는가?
술 좋지~ 마시면 모든 시름을 잊을 수 있는 마법의 약이라고. 제제 꼬맹이는 아직 못 먹지만. 어른 되고 와라.
Q. 10 제제 르 귄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 하는가?
몇 번째 하는 말인지 모르겠는데, 기억 안 난다니까. 관심도 없었고.
Q. 11 제제 르 귄 원래 누군가의 얼굴이 보기 싫으면 살인을 하고 싶어하나?
글쎄, 원래 과격한 사람들은 싫어하는 사람 보고 죽인다! 죽었으면! 이라고 자주 말하지 않냐? 나도 딱 그 정도지.
Q. 12 옥사나 하네즈카 자기 자신이 마음에 드는가?
좋으냐 싫으냐로 따지면 싫어하는 쪽. 자기효능감이라든지 자존감이라든지, 그런 복잡한 거 생각하기 싫지만.
Q. 13 시미즈 마사 방 안에만 있었다고 말했는데 그 날은 어떻게 살해를 했는가?
나는 '살해를 한 날 이전'에는 술을 마시고 방안에 처박혀 있었단 뜻으로 말한 거야. 게다가 한동안 술 끊었을 때에는 밖에도 자주 다녔고. 그 날에는... 뭐, 심심해서 산책이라도 하고 싶었나보지?
Q. 14 시미즈 마사 그 날 약속을 한 사람이나 어딘가로 가야 할 예정이 있었는가?
약속도 없었고 약속 할 사람도 없다. 꼬마야. 내 편협한 인간관계를 무시하지 마라?
Q. 15 제제 르 귄 자신을 과격한 사람이라 판단하거나 판단했었는가?
내가 나를 과격하다 생각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굳이 따지자면 과격하다는 쪽이 맞지 않을까.
Q. 16 제제 르 귄 자신이 죄가 없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
누구든지 내 상황이었으면 나처럼 행동했을 테니까.
Q. 17 시미즈 마사 집으로 찾아올 만한 사람은 없는가?
없었어. 지금 사는 집에 누가 찾아온 적도 없네.
Q. 18 시미즈 마사 술을 마시게 된 계기는?
글쎄. 왜였지? 아. 이건 시치미가 아니라 정말 기억이 안 나서 이러는... 내 첫 술은 벌써 20년 넘게 지났다고?
Q. 19 옥사나 하네즈카 싫어하는 것은?
누군가가 내 것을 뺏어가는 거. 주로 누군가가 술 좀 그만 마시라고 내 술병을 뺏어갈 때 느끼고는 하지.
Q. 20 시미즈 마사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어떻게 생각하니, 꼬마야?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Q. 21 제제 르 귄 자신은 용서받아 마땅한가?
이성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욕심을 내보자면 나를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네.
Q. 22 옥사나 하네즈카 죽인 사람한테 사죄할 생각이 있는가?
아니. 오히려 죽은 쪽이 나한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Q. 23 시미즈 마사 거짓말은 보통 불리한 것을 숨기는 사람들이 한다. 모호한 태도는 자신을 불리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말야, 이 아저씨... 용서받든 안 받든 별로 신경 안 쓰는걸. 물 흐르는 대로 흐름에 몸을 맡길 생각인데, 그렇다면 물살에 타고 있는 동안 어떤 옷을 입을지 정도는 골라도 되지 않겠어?
Q. 24 미나미노하라 세이카 밖에 나간다면 제일 먼저 누구를 만나고 싶은가?
............ 내 딸 예담이. 그리고 예전 아내. 이은혜.
Q. 25 제제 르 귄 현재 심문에 이성으로 임하고 있는가?
그 둘을 구분하는 거,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쪽. 나는 내 머리에서 시키는 대로 말하고 있는 중~
Q. 26 옥사나 하네즈카 사람한테 원한을 품은 것은 용서받지 못할 행위라고 생각하는가?
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충분히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원한을 품은 것'만 따지자면.

2.2. 제 2심


001  𝐓𝐑𝐈𝐀𝐋 𝟎𝟐 𝐉𝐔𝐃𝐆𝐄  O - -
Q. 01 시미즈 마사 지난번 심상 독백은 실제로 겪은 일인가, 아니면 상상 혹은 바람인가?
시작부터 내 마음을 후벼파는구나, 꼬맹이. 실제로 있던 일이야. 우리 딸 귀여웠지? 텍스트 뿐이었지만.
Q. 02 옥사나 하네즈카 피해자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 ... 기억 안 난다.
Q. 03 제제 르 귄 자신이 용서받아 마땅하다 생각하는가? 이전과 동일한가?
하하. 아니. 너희가 날 더 적극적으로 용서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Q. 04 시미즈 마사 전 아내를 아직도 사랑하는가?
물론 사랑하지. 내 아내, 내 딸, 둘 다, 이 세상 무엇보다도 더.
Q. 05 제제 르 귄 피해자는 전 아내를 찾아오던 그 사람인가?
...... ... 그럴 거야.
Q. 06 옥사나 하네즈카 인생의 의미가 있다면 무엇인가?
인생의 의미...? 그런 걸 왜 묻냐? 어. 글쎄. 내 가족 먹여살리는 거? 이 아저씨... 그런 거 생각해본 적 없는데.
Q. 07 시미즈 마사 전 아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 내 마음 후벼파는 데에 재미 들렸냐, 꼬맹이? ......... 아내를 만나서 설득해야지. 설득하려 했어. 너와 다시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어. 이건 진심이야.
Q. 08 제제 르 귄 가족은 자신을 현재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글쎄... 예담이, 그러니까 내 딸은 나를 원망하고 있지 않을까. 하루아침에 친아버지란 놈이 극악무도한 살인자가 된 거니까. ... 은혜는... ... 은혜는, 그러게,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자기의 삶에서 치워버리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으려나. 하하. 내가 말하고서도 아프네 이거...
Q. 09 제제 르 귄 살인이 일어난 적 없었던 것과 피해자가 다른 누군가한테 살해된 것 중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가?
살인이 일어난 적 없었던 것.
Q. 10 시미즈 마사 실제로 설득을 위해 전 아내를 만난 기억이 있는가?
기억이 있다고나 할까, 실제로 만났다.
Q. 11 옥사나 하네즈카 어른과 아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른은 책임을 질 능력이 있고, 아이는 그런 어른이 대신 책임을 져줘야 하는 대상이지.
Q. 12 시미즈 마사 전 아내를 만난 시점은 딸한테서 남자에 대해 들은 뒤였는가 이전이었나?
뒤. 그 전까진 아내가 만나고 싶지 않다 했으면 굳이 만나려고는 하지 않았었고......
Q. 13 제제 르 귄 살인에 대해 영원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생생히 기억하는 것,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가/
............ ...... 이것도 대답해야 하냐? 그래, 대답해야 했었지... ...... 언젠가는, 기억해야겠지만, 되도록 그 때를 뒤로 미룰 수 있을까......
Q. 14 미나미노하라 세이카 딸의 나이는?
예담이? 열두 살이야~ 꼬맹이들이랑 비슷한 나이지 않냐. 귀여운 건 우리 딸이 더 하지만?
Q. 15 시미즈 마사 전 아내의 집에 억지로 찾아갔는가?
...... ... 예담이한테 허락 맡고 찾아갔다.
Q. 16 제제 르 귄 가족을 다시 만나는 것이 두렵지 않은가?
두렵지. 두려운데,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더 보고싶어. 그 이후로는 정말로 예담이한테 짐이 되지 않게 조용히 쥐죽은 듯이 살아갈 생각이고...... 두 번 다시 보고싶지 않다고 하면 평생 꺼져줄 수도 있으니까.
Q. 17 시미즈 마사 만나서 설득했을 때 전 아내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 ...... ......... 안 믿을 것 같긴 한데. (한숨.) 그것도 기억 안 난다.
Q. 18 옥사나 하네즈카 자신의 살인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책임을 다 한 행동인가?
냉정하게 말해서 전혀 그렇지는 않지. ... 그래서 후회 중이야. 예담이한테 안 좋은 짓이었으니까.
Q. 19 시미즈 마사 전 아내와 만난 시점에 살해도 같이 일어났는가?
꼬맹이. 그거 정말 물어야겠냐?
Q. 20 미나미노하라 세이카 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 기억하는가?
... 부끄럽지만, 최근에 무엇이 되고 싶어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헤어져있던 기간이 길어서. 그래도 여섯 살 때에는 나비가 되고 싶다고 하면서 스케치북에 나비를 그리던데 그게 얼마나 잘 그렸던지 미술 쪽으로 나가면......
Q. 21 시미즈 마사 (전 아내의 만남과 살인에 대해) 물으면 안 될 이유가 있습니까?
...... 대답하기 싫다.
Q. 22 제제 르 귄 소원으로는 무엇을 바랄 것인가?
예담이가 나와 같이 살고 싶다고 하면 내가 예담이의 양육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 그리고... 예담이가 나와 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중산층 이상의 좋은 가정에 무사히 입양될 수 있도록 할 것.
Q. 23 제제 르 귄 살인 후에 가족을 본 적이 있는가?
살인 후에... ... 딸은 본 적 있어. 아마도. 봤던 것 같아. 정신을 차려보니 경찰서에 잡혀 있었지만.
Q. 24 제제 르 귄 피해자가 누구인지 확언할 수 있는가?
...... 확언 못 해. 추측은 가능한데, 전에 말했던 것 이상의 말은 못 해준다. 다시 해주랴?
Q. 25 옥사나 하네즈카 가장 좋아하는 술은?
술? 다 좋아하는데? 굳이 따지자면 마트에서 세일하는 술이다. 소주일 확률이 높지.
Q. 26 옥사나 하네즈카 가장 좋아하는 술과 어울리는 영화는?
글쎄, 내가 영화만 보면 자는 바람에 잘 안 보긴 하는데...... 아. 은혜랑 예담이가... 그러니까 내 아내랑 딸내미가 픽사 영화를 좋아했어. 월-E였던가? 그거 재밌더라. 술 먹으면서 볼만한 영화는 아닌데.
Q. 27 시미즈 마사 딸이 말한 '아저씨'는 누구였는가?
모른다. 그딴 놈 관심 없다. 아저씨라고 말했으니 남자겠지.
Q. 28 제제 르 귄 살인 후의 아내의 생사를 확언할 수 있는가?
........................ ............ 나는 몰라.
Q. 29 미나미노하라 세이카 이혼 사유는 무엇인가?
이혼 사유... 음, 내가 직장에서 짤리고 한참동안 술만 쳐먹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예담이 교육에 안 좋다면서 이혼하자 했지. 난 ok 했었고.
Q. 30 미나미노하라 세이카 이혼 당시 딸의 나이는?
그 때 예담이가 8살이었던가 9살이었던가......
Q. 31 시미즈 마사 소원에 대한 질문에서, 딸이 전 아내와 살길 바란다는 가정은 왜 하지 않았는가?
... 내 맘이다, 왜. 꼽냐?
Q. 32 시미즈 마사 전 아내는 딸을 학대하거나 양육의 책임을 지지 않았는가?
나도 잘 모른다.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Q. 33 옥사나 하네즈카 정상참작이나 집행유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 모른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뭐 달라지는 게 있긴 하냐? 그런 판결을 받을만한 놈이었으니까 그런 판결을 받는 거겠지...
Q. 34 시미즈 마사 이혼하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는가?
은혜... 내 아내 말이지? 아내에 대해 말하려면 심문 시간 한 시간이 모자란데... 현명하고 똑똑하고 사려 깊고 지혜롭고. 세상에 둘도 없을 완벽한 사람이었지. 관심 있으면 나중에 보고서로 정리해서 보내주랴?
Q. 35 미나미노하라 세이카 실직한 뒤 술을 계속 마셨는가?
술은 이혼한 뒤 끊었다. 바로는 아니고. ... 살인한 날에 다시 입에 댔어. 그 전까진 아니야.
Q. 36 미나미노하라 세이카 아내를 다시 찾게 된 건 몇 년 전이었는가?[1]
이혼한 뒤에도 몇 달에 한 번씩 가족이랑 만나긴 했었어. 아내는 한동안 나오지 않았었지만... 정확히 얼마만에 만났던 건지는 잘 모르겠네. 1~2년 정도 되지 않았을까.
Q. 37 제제 르 귄 용서받으리라 믿는가?
응. 당연하지. 나는 용서받을 거야. 너희가 날 용서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아. 제 1심에서도 나를 용서한다고 말했잖아, 너희가.
Q. 38 시미즈 마사 이혼하기 전의 박권태는 어떤 사람이었나?
이혼하기 전의 나... 방구석의 쓰레기였지. 솔직히. 진짜. 어후, 나조차도 상종하기 싫네.
Q. 39 시미즈 마사 '방구석의 쓰레기'란 표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라.
... 구직 활동도 안 하고 술만 쳐마시며 방바닥에 누워있기만 했다. 됐냐?
Q. 40 옥사나 하네즈카 자신이 용서받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나를 용서해도 너희한테 돌아갈 이득은 없겠지, 솔직히. 하지만... 까놓고 말해, 난 제 1심에서 용서받지 못 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나한테 용서를 준 건 너희들이었어. 받아들여진다는 게 달콤한 걸 알려준 게 너희들이었다고. 그랬던 너희가 나를 이번에는 용서하지 못 한다 말하는 건 나한테 너무 몹쓸짓을 한다고 생각되진 않아?
Q. 41 시미즈 마사 딸이 싫다고 말했고, 가족한테 어떤 피해를 입히고 있을지 모를 '아저씨'한테 정말 관심이 없었는가?
... 관심 없었다.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그 XX 질문 좀 나한테 안 하면 안 되냐?
Q. 42 미나미노하라 세이카 죄인이 용서받는다 해도 저지른 일이 없는 일이 되지는 않는다.
없던 일이 되어버리지는 않지만... 가벼운 일이 되기는 하겠지. 마음이 가뿐해지는 것만으로도 꽤나 큰 이득이지 않겠냐? 너도 느꼈겠지만.
Q. 43 시미즈 마사 대답하지 않은 질문에 대해 다시 대답할 기분은 들지 않는가?
그 날은 하나도 기억 안 나니까 그 질문 하지 말라고 했지 내가!!!

2.3. 제 3심

001  𝐓𝐑𝐈𝐀𝐋 𝟎𝟑 𝐉𝐔𝐃𝐆𝐄  O X -
Q. 01 제제 르 귄 기분이 어떤가?
방에 처박혀서 자고 싶은 기분. ... 자세히 말하기에는 너무 동정심 사려는 것 같아서 창피한데. 말해주길 바라? // 우울하고 축 처지고 징그럽고 소름돋고 다 때려치고 방에나 처박혀서 잠이나 자고 싶지... 술 한 잔 마시면 나을 감정이기는 해.
Q. 02 시미즈 마사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뭐, 이전과 다를 건 없어. 술을 좀 덜 마시기는 하나... ... 밖에 조금 덜 나돌아다니기는 했나.
Q. 03 옥사나 하네즈카 (범죄에 대해) 잊어버리니 편했는가?
...... ... 씨X. 존나 편하더라. 계속 잊고 싶었어.
Q. 04 시미즈 마사 (재판장에 가져온 술을 보고) 마실지 마시지 않을지는 자신의 자유지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 나는 너희가 나한테 '술을 마시지 마라'라고 말하는 줄 알았는데. 판결을 통해.
Q. 05 제제 르 귄 왜 자신이 2심에서 용서받지 못 한 것 같은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은 내가 너희가 보기에 쓰레기 새끼처럼 보여서 그렇겠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입만 살아서는 그딴 짓거리를 해버려서. 용서하지 못 한다고 말한 게 아닐까...
Q. 06 제제 르 귄 술을 줄인 이유가 있는가?
...... 술 줄인 건 너를 포함한 사람들이 도망치지 말라고 말했기 때문에. 판결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Q. 07 제제 르 귄 지금 와서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가?
...... 다른 사람이 되고싶은 건 포기한지 오래야.
Q. 08 제제 르 귄 이전에 잊어버린 것들을 조금이라도 기억해냈는가?
...기억하고 있어. 그러려고 최대한 심문 때까지는 술 안 마시려고 했고...
Q. 09 시미즈 마사 여전히 용서받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위함인가 딸을 위함인가?
용서받기 위해 뭘 해야 할지 이제는 잘 모르겠어서, 딱히 용서받고 싶다고 바라지는 않아. 그렇지만 굳이 따지자면...... ...... ...... 나를 위해서가 아닐까. 아마 예담이는 나같은 아비는 없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테니까?
Q. 10 옥사나 하네즈카 정신과 진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가?
정신과 진료... 응. 좀 오래 있지. 우울증으로, 조금.
Q. 11 제제 르 귄 자신한테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 ... 모르겠어. 내가 유일하게 붙잡고 달릴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여전히 내가 그걸 품고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Q. 12 시미즈 마사 살해 뒤 실제로 딸을 만난 적이 있는가?
만난 적... 있지. 저번의 그것같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 딸 말이야, 배려심이 정말 깊은 아이라 그런 식으로 남의 마음을 후벼파는 말은 하지 않는다고. 그 날도 내가 울고 있으니까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봐주기도 했고... 하하.
Q. 13 시미즈 마사 용서받은 다음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하라.
...... ... 우선은, 내 딸한테 찾아가서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보고... 그리고... 어...... ...... 모르겠다. 아마 복직도 못 할 텐데. 뭐 하고 먹고 살지. 지하철역에 박스 깔고 노숙자나 될까?
Q. 14 제제 르 귄 이전, '누구라도 자신처럼 행동했을 것'이라고 대답한 감정은 여전한가?
...... 그게 언제 그렇게 말했던 거더라. 뭐... 나같이 뇌를 구정물에 한번 빨아서 다시 끼워넣은 듯한 사람이 또 있다면 나처럼 행동했겠지.
Q. 15 제제 르 귄 제3자로써 자신을 심판한다면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
나는 성격이 나쁘니까, 아마 용서하지 못 한다고 했겠지.
Q. 16 시미즈 마사 (Q.13에 이어) 딸이 함께 살고 싶어한다면 같이 살겠다고 말하지 않았나?
예담이가 나랑 같이 살고 싶어할 리가 없잖아.
Q. 17 제제 르 귄 이곳에서 용서받지 못 한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죽인 것.
Q. 18 제제 르 귄 현재 자신이 가장 바라는 것은?
...... 어, 심문 빨리 끝나서 술 마시거나 자는 거.
Q. 19 옥사나 하네즈카 약은 제대로 챙겨멋었는가?
약... 언제부터, 를 말하는 거야. 체포당하고 난 이후로는 약을 입에 댄 적도 없어. 저거(술) 말고.
Q. 20 옥사나 하네즈카 일기를 쓰며 마주한 자기자신은 어땠는가?
일기. 썼어. 가져왔어. ... 쓸 때는 몰랐는데 진짜 인생 개차반으로 살던데. 이걸 몇 년을 해야 겨우 익숙해지는 거야?
Q. 21 제제 르 귄 자신의 아내를 살해했는가?
... 나는 아내를 죽이지 않았어. 하지만 나 때문에 죽은 건 맞아. 그 남자는 내가 죽인 게 확실하니까, 그래, 결론적으로 나 때문에 죽은 사람은 두 명이 되는 거겠네.
Q. 22 시미즈 마사 용서받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지 않느냐.
... 네가 잘 몰라서 하는 말이야. 나는 원래 이런 놈이었어. 도망치고 포기하는 것밖에 하지 못 하는 놈.
Q. 23 시미즈 마사 (Q.16에 이어) 용서받아 나간다면 어떻게 살 것인지 한번 더 생각해보라.
...... 산 속에 들어가서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할 법한 생활 하기?
Q. 24 옥사나 하네즈카 마약을 했는가?
저기. 내가 인간말종인 건 인정을 하겠는데 뽕이나 빠는 사람으로 만들진 말지...? 그냥, 체포될 때 내가 먹는 약을 못 챙겨왔을 뿐이야.
Q. 25 옥사나 하네즈카 이혼 사유를 자세히 설명하라.
이혼 사유...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나 싶기는 한데. ... 4년 전이었나 5년 전이었나. 그 때 즈음에 다니던 직장에서 잘리고... 재취직도 마음처럼 잘 안 되고 해서, 약 먹던 것도 효과가 없어서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그러고 밖에 하나도 안 나가니까... 은혜가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면서 예담이를 위해서라도 이혼하자고 해서...?
Q. 26 제제 르 귄 아내는 자살했는가?
실족사야. ... 천운이 따라서 기적적으로 구조되지 않은 이상.
Q. 27 제제 르 귄 용서를 받고 싶은가, 아니면 여기서 삶을 마감하고 싶은가.
어느 쪽이든 내가 결정할 소관은 아닌 것 같아서. 어떻게 되든 좋아. 그리고, 뭐랄까, 솔직히 자기 아내 사랑한답시고 죽여버린 사람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은 내가 봐도 잘 들지 않을 것 같아서. 이전처럼 무리한 걸 부탁하진 않아.
Q. 28 시미즈 마사 이혼 이전 구직 활동을 하지 않고 술만 마신 이유는 우울증 때문인가?
...... 어, 아마 그게 맞을걸...? ... 입원 치료 하고 나서는 다시 구직 활동 했으니까...? 그럴걸?
Q. 29 시미즈 마사 (성의와 의지를 보여달라는 당부와 함께 죄인의 뺨을 때린다.)
내가 살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게 너를 괴롭게 해? 왜? ... 결국 만난지 한 달 남짓밖에 안 된 남일 뿐인데.
Q. 30 옥사나 하네즈카 모두가 자신의 죄를 잊는 것과 자신이 죄를 잊어버리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가?
전자. ... 그렇게 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다시 시작하기에 더 편할 테니까.
Q. 31 제제 르 귄 아내의 생사를 아직 모르는가?
...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Q. 32 제제 르 귄 바라는 소원은 아직 그대로인가?
소원은... 응, 뭐. 대충 그대로네. 예담이가 나랑 같이 안 살려고 할 테니까 그냥 좋은 양부모를 만나게 해달라고만 해야겠지만.
Q. 33 제제 르 귄 여기서 자신이 가장 죽기를 바라는 자는 누구인가?
...... 다 좋은 사람이니까 다 무죄 판결을 받았으면 좋겠네. 그러니까, 나야.








3. 심상 독백

BGM

▶ 세레나데  사랑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을 이해해?

 말 그대로 모든 걸 하는 거야. 거기에는 아무런 장애물도 없어야 해, 도덕이나 법률, 금전, 심지어 나조차. 끔찍하고 꼴도 보기 싫은 나의 모습을 전부 던져버리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야 하지. 알아, 쉽지는 않아. 하지만 감내해야지.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는 나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바꿀 각오를 해야 해. 멍청한 나는 이 당연한 사실을 모든 걸 잃고 나서야 깨달았지만.

 "아빠."
 "예담, 이리 와. 오랜만이네."

 어느 한적한 공원에서 나는 내 딸을 품에 안아들었다. 반 년 전에 봤을 때보다 더 무거웠고 더 커다랬다. 아이들은 한 눈을 파는 사이 다 자라있다고 하더니... 그 말이 정말이었다.
 "예담이 엄마는?" 주위를 둘러봐도 전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예담이한테 물어보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늘은 만나고 싶지 않대."

 오늘도 얼굴 보기는 글렀다.
 쓰디쓴 한약을 삼킨 것처럼 입안이 씁쓸하다. 그래도 그걸 내색하지 않고, 대신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 그이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생각해도 이혼하기 전의 나는 정말... 쓰레기였으니까.

 그래도 언젠가, 내가 바뀌기 위해 노력한다는 걸 그이가 알아주는 날이 온다면. 그 때엔 한 번 더 나를 만나러 와주지 않을까?
 기약 없는 희망을 속에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아내와 딸아이를 위해 모든 걸 할 수 있었다. 그토록 즐기던 술을 끊는 것도, 변변찮지만 직장을 구하는 것도, 밝은 햇빛 아래에서 웃는 것까지.

 "아빠, 나 아이스크림 사주면 안 돼?"

 그리고 물론 딸아이 손에 간식을 쥐여주는 것도 할 수 있었다.
 나는 딸아이를 품에 안은 채 근처 슈퍼로 걸어갔다. 딸아이도 오랜만에 아빠를 만나 좋은지 다리를 동동거렸다. 술냄새가 나지 않아 좋다고 하자, 방금 그 말을 꼭 엄마한테도 가서 해달라고 했다. 관계 진전을 위한 약간의 청탁이다.

 "우리 딸, 아빠 없는 동안 어떻게 지냈어?"

 마음만 같아서는 가게 안에서도 안고 다니고 싶었는데, 공간이 크지 않아 바닥에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한 손은 예담이의 손을 잡은 채 가벼운 잡담을 건다. 학교 생활이 어떤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랐고, 그이가 어떻게 사는지를 알 수 있으면 행운이라 생각했다.

 예담이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듣자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간다.

 "별로였어..."
 "왜애?"
 "우리집에 엄마랑 만나려고 어떤 아저씨가 자꾸 놀러와서."

 아이스크림이 녹아 바닥에 떨어졌다.

 ...
 사랑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을 이해해?
 나는 잘못하긴 했지만 잘못되진 않았어.
 그렇지?



BGM

▶ 포도주  안녕, 우리 딸.
 술 냄새 많이 나지? 미안해. 우리 딸이 술냄새 싫어하는 거 알아. 그래서 최대한 참고 싶었는데... 마시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더라. 응. 미안해. 다 변명이지? 아빠도 알아. 그냥, 미안해. 아빠가 미안해. 전부 다. 미안해...
 
 ......
 그런데 예담아. 예담이 엄마는 어디 있니? 엄마가 우리 예쁜 예담이만 집에 혼자 두고 어딜 갔을까?
 
 그래... 예담이도 모른다고.
 ......
 아니. 아니야.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엄마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를 아빠가 알고 있을 리 없잖아. 애초에 이 집에 와본 것도 오늘이 처음이고...
 
 ... 응. 오늘.
 2년 만에 다시 술을 마셨던 날.
 
 그 날, 내 아내는 예담이를 왜 집에 혼자 두었던 걸까.
 
 나의 전 아내, 이은혜가 애인을 사귄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한 생각은 정말 별 게 아니었다. 딱 한 번이어도 좋으니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로는 안 되는 거냐고, 나를 선택해달라고, 바뀌기 위해서 정말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재결합을 원한다는 의사를 전하고 싶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맞아, 나를 다시 선택해달라고 매달리고 싶었다. 몇 달에 한 번 얼굴을 겨우 볼 수 있는 정도로는 나의 사랑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 가족을 사랑하기에 모든 걸 뜯어고칠 수 있다고. 그러니 그런 떨거지 말고 나를 선택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런 마음은 품어도 된다고 말했잖아, 그렇지?
 
 그래서 나는 딸아이와 아내가 둘이서 사는 집에 들어왔다. 우리는 서로의 손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예담이는 자기가 사는 집에 내가 들어왔다는 게 기쁜지 나한테 여러가지 장난감을 들고왔다. 하지만 나는 예담이와 놀아주면 놀아줄수록 초조해지기만 했다. 시간이 흐르고 해가 넘어갈 즈음이 되어도 아내가 돌아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안일지 두려움일지 모를 감정을 견디지 못 한 나는 결국 냉장고에서 맥주캔을 하나 꺼낼 수밖에 없었다. 아내한테 말도 꺼내기 전에 심장이 터져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 그러게, 예담이 말대로... 은혜도 술을 마시고 있었네.
 나한테는 술 마시는 모습이 예담이 교육에 안 좋다고 말했었는데. ... 그걸 부정하는 건 아냐. 이런 모습이 우리 가족한테 안 좋다는 건 알고 있어. 내가 슬픈 건 은혜가, 예담이를 위해 이혼하자 말했던 내 아내가, 예담이한테 안 좋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야.
 
 내가 있으면 예담이가 올바른 사람으로 자라지 못 할 거라고 말했잖아.
 우리 모두를 위해 이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었잖아.
 사실은 좀 더 곁에 있고 싶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버리고 싶지 않았어, 떠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내가 계속 붙잡고 있으면 더 비참해진다고 했으니까 포기했던 건데. 이혼이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니까 나도 받아들였던 건데.
 
 그렇게 말했던 네가 밤이 늦도록 예담이를 집에 혼자 두고 있으면 내가 뭐가 되는데?
 
 저기, 예담아. 네 엄마는 어디에 있니?
 
 ... 잘 모른다고. 그래. 그럴 수 있지. 괜찮아, 아빠 화내는 거 아니야. 아빠는 우리 예담이랑 엄마한테 화내고 싶지 않아. 진심이야. 화 내지 않을 거야.
 
 ......
 
 나는, 모른다고, 말 했어.
 
 ......
 
 그러게. 그 날도 이렇게 맑은 날이었어. 날짜가 넘어갈 즈음이 되어도 은혜는 집에 돌아올 것 같지 않았고... 나는 술김에 집 밖으로 나섰어. 은혜가 근처에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서였지.
 
 낮에 예담이와 만났었던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 가로등 불빛이 와닿지 않는 어슴푸레한 구석에서 나는 은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낯선 남자와 입을 맞추고 있는 나의 전 아내를.
 
 우리의 딸을 위해 나를 버릴 거라고 말했잖아.
 예담이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했잖아.
 그렇게 말했던 네가, 예담이를 혼자 둔 채 저 남자를 선택하는 거야?
 
 그럴 거면 나를 선택해.
 
 나를 선택해줬으면 했어.
 ......
 
 이런 마음은 품어도 된다고 말했잖아, 그렇지?
 
 이런 마음으로 저 남자를 죽인 건 좋다고 말한 거지?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한 게 맞지?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인정해줬잖아. 내가 나쁜 게 아니라고 용서해줬어...
 
 ......
 예담아.
 네 엄마는 아직 집에 안 들어왔니?
 
 그 때 있었을 일이 기억나지 않아. 분명 누군가를 죽였으니 여기에 끌려온 걸 텐데, 누구를 죽였는지조차 전혀 모르겠어. 나는... 내가, 그 남자를 죽인 게 맞겠지?
 봐, 나는 이렇게나 그 이를 사랑해! 은혜를 사랑하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은혜한테 선택받기 위해서 나 자신을 바꾸기까지 했었다고! 무- 물론 잠깐 섭섭한 마음이 들기는 했어. 하지만 그게 은혜를 죽일 정도까진 아니었어! 그러니까 분명 그 날 죽은 것도 그 처음 보는 남정네였을 거야. 내가 내 아내를 죽였을 리가 없잖아!
 
 아무도 나한테 내가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해주지 않았어. 혹시라도 내가 은혜를 죽여버렸을까봐 두려워서 죽을 것 같아.
 그 남자를 죽여도 괜찮다며 용서받았는데도 전혀 용서받은 것 같지가 않아. 그 남자 말고 만약 은혜가 죽었다면 용서받지 못 할까봐 너무 무서워. 내가 잘못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예담아, 제발.
 은혜가 어디 있는지 말해줘.
 
 “아빠는 알고 있잖아.”
 
 아냐. 난 몰라.
 
 “마주하기 싫어서 도망치고 있는 거야. 아빠는 항상 그랬으니까.”
 
 ... 그건, 맞네. 인정받지 못 하는 게 두려워서 늘 움츠러들기만 했지.
 언제나 나는 확신받지 못 하면 움직이지 못 하는 겁쟁이었으니까.
 
 “진실을 깨달을 용기가 없으니 계속해서 눈을 피하자.”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캔 꺼내오렴, 사랑하는 내 딸아.
 선택받을 때까지 나는 나의 입에 포도주를 흘려부으련다.
 



BGM

▶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아내는 어디에 있습니까?"
 
 상담사가 당황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내 말을 못 알아들었는지 무어라 말했느냐 반문하길래, 나는 방금 했던 말을 천천히 되풀이해주었다.
 
 "내 전 아내요. 이은혜. 은혜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습니다."
 
 한동안 가라앉았던 수전증이 다시 도졌다.
 실은 잘 모르겠다, 손이 아니라 내 몸이 떨리고 있던 걸지도.
 
 "발견됐습니까?"
 
 취조 담당자가 형사에서 심리상담사로 바뀐 것은 우울장애를 심하게 겪는 피의자한테서 진술을 끌어내기가 전문 지식 없이는 힘들 것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전 취조에서 나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었다. 말을 하고 싶어도 입을 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뜻은 내가 체포된 뒤 가장 먼저 한 말이 아내가 어디 있냐고 물었단 거라는 뜻이다.
 내 말을 받아적는 상담사의 손이 바쁘다. 수첩을 뒤지던 상담사가 눈썹 끝을 떨구며 나한테 한 말은 내가 원하지 않던 대답이었다.
 
 “유감이에요.”
 
 위로는 필요 없으니까 은혜가 어디 있는지나 말 해.
 대꾸할 힘도 없다. 그냥, 눈을 감았다.
 

 시뻘겋게 물든 스크린을 한참동안 올려다보았다.
 우울증의 가장 개같은 점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개같긴 하지만, 이 놈의 생각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단 거다. 뇌에 알코올이 들어가면 알딸딸한 기분에 신경이 돌아가는 속도도 늦춰지지만... 그것마저 한계가 있다. 생각을 그만둘 수 없다. 사색을 멈추기 힘들다. 고민하기 싫은데, 범람하는 우울함에 침몰되기 싫은데, 나의 두 눈은 스크린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나는 왜 너희한테 용서받지 못 했을까.
 

 비가 왔던 건 기억한다.
 아마 나는 그 남자를 때려서 죽인 것 같다.
 
 은혜와 붙어있는 게 꼴도 보기 싫어서 처음에는 그냥 떼어놓으려고 했었다. 뒷덜미쪽 옷깃을 잡고 거칠게 잡아끌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침을 뱉으며 위협과 욕설을 하기 시작했고, 앵앵대는 목소리가 짜증이 나 입을 다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른손이 목젖을 누르고 있던 건 아마 이 때문일 거다. 내 왼손 손가락의 손등쪽 피부가 다 까진 건 그 남자가 제 분수를 모르고 저항을 했기 때문일 거고.
 
 솔직히 잘 모르겠다. 모든 걸 보고 있던 은혜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은혜는 나보다 기억력도 더 좋고 훨씬 똑똑하니까...
 
 “......”
 
 은혜는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나? 아마 그랬던 것 같다. 한껏 크게 뜬 눈과 커진 동공으로 나를 올려다보았지. 내가 달뜬 숨을 색색거리자 은혜는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아니야, 은혜야. 나는 네가 그런 표정을 짓길 바라지 않았어.
 
 “잘못했어......”
 
 그런 말을 듣고 싶던 게 아냐.
 
 “... 사, 살려줘......”
 
 아니야. 이게 아냐.
 제발 그러지 마.
 
 은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은혜가 몸을 완전히 뒤로 돌렸다. 나는 은혜의 이름을 불렀다. 내 말을 좀 들어달라고, 이러려던 게 아니라고 매달리듯 외쳤다. 하지만 은혜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내 아내는 떨리는 다리로 겨우 일어나 도망치기 바빴다. 빗줄기의 비린내가 우리 사이를 가로막았다.
 
 나와 평생을 약속하던 입술에선 공포에 질린 비명이 터져나왔다.
 나를 부드럽게 마주보던 초록빛 눈동자는 무서운 괴물이 뒤쫓는지를 끊임없이 살펴보았다.
 내 곁으로 늘상 걸어오던 다리는 이제 나한테서 멀리 도망쳐갔다.
 
 우리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게 두려워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은혜야!!”
 
 그리고 은혜가 아래로 떨어졌다. 앞을 보지 않고 달리다가 다리 위에서 발을 헛디뎠다.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불어난 강물이 집어삼켰다.
 

 나는 왜 용서받지 못 했을까.
 분명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모두는 서로한테 용서받았다. 그랬건만 이 결과는 2심에 들어서며 바뀌었다. 나와 제제, 우리 둘만은, 용서받지 못 한 채 2심이 끝나버렸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어떤 점 때문에 용서받지 못 한 거지?
 
 “내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지만...”
 
 취조실 건너편에 앉아있던 아내가 해맑게 웃는다.
 처음 만났을 적부터 웃음이 정말 예뻤는데.
 
 “자기가 나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닐까?”
 “... 아.”
 
 일리 있는 말이다.
 
 “복수의 일환도 아니었고... 내가 자기를 괴롭혔던 것도 아니었고.”
 “그랬지. 내가 너를 죽인 건,”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치?”
 “사랑한다면 죽이지 말았어야지.”
 
 사랑하는 목숨으로써 그러면 안 됐던 거다.
 
 “처음부터 자기가 날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야.”
 “...... 그런 거야?”
 “네가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다 망해버렸잖아!”
 
 재미있다며 깔깔 웃는 소리가 재판장 안에서 메아리친다.
 어느새 내가 있는 곳은 재판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판사석에 앉아 피고인석의 나를 내려다보는 은혜. 들고 있는 의사봉은 마치 나의 머리를 내려치는 망치와도 같다.
 
 “자기는 언제나 그랬어.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 하고 모든 걸 망치기만 해! 우울증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소홀히 대했던 건 의도가 아녔다고? 웃기지 마! 처음부터 원래대로 돌릴 수 있었는데도 눈을 돌려 피하고 있었을 뿐이잖아!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를 봐!”
 
 스크린이 붉게 물든다.
 재판장이 붉게 물든다.
 
 “너는 절대 구원받지 못 할 거야.”
 
 쾅. 의사봉을 내리친다.
 
 “나를 죽여버린 너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쾅. 내리치는 소리가 나를 부수는 소리처럼 들린다.
 
 “너는 두 번 다시 누군가를 사랑해선 안 되는 거야.”
 
 쾅.
 선고가 내려졌다.
 

 딩동.
 
 “아빠야?”
 “......”
 “아빠, 우산 안 가지고 나갔었어? 밖에 비 온다고 말 했잖아.”
 
 예담이가 문을 열어줬다. 온몸이 물에 푹 젖은 나는 현관에 물을 뚝뚝 흘리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 왔을 때는 미처 눈치채지 못 했는데, 이 집의 여기저기에 은혜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그것이 사랑스러워서 죽을 정도로 괴롭다.
 
 “헙. 아빠 다쳤네? 어디서 다쳤어? 넘어졌어?”
 “......”
 “응? 아빠? 앗, 혹시 엄마랑 싸웠어? 그래서 손도 아야한 거야? 나는 괜찮아. 엄마랑 아빠랑 싸웠어도 엄마는 집에 꼭 들어왔으니까. 그래서 괜찮아.”
 “......”
 “나 괜찮아, 아빠. 진짜야.”
 
 나한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았다. 해야 할 말만 전하고 바로 나왔어야 했다.
 그래도... 자신도 엄마가 보고싶어 힘든 아이가 나를 먼저 걱정해주고 있는데. 이런 모습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부모라고 할 수도 없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어린 딸을 내 품에 안아버렸다.
 
 “......”
 “... 아빠? 왜 그래? 많이 아파?”
 “예담이.”
 “으응.”
 
 눈물이 목으로도 흐르던가? 가슴이 꽉 막혀서 말을 하기 힘들다.
 
 “아빠랑 엄마, 일이 있어서 한동안 집에 못 올 거야. 집에서 씩씩하게 혼자 있을 수 있어?”
 “응. ... 빨리 올 거야?”
 “...... 아마 정말 많이 늦을 거야.”
 “으으응... 알겠어. 괜찮아.”
 
 예담이의 등을 도닥여줬다. 아직 덜 큰 내 딸은 정말로 작았다. 예담이 두어 명을 더 안아도 거뜬할 정도로.
 
 “아빠도 잘 모르는데... 경찰 아저씨들이 와서 예담이를 좋은 집에 데려가려 할 수도 있어. 경찰 아저씨들이 오면 어른들 말 잘 듣고...”
 “왜? 엄마랑 아빠랑 같이 살면 안 돼?”
 “......”
 “다같이 살기 싫으면 나, 한 명이라도 같이 있으면 안 돼? 모르는 사람이랑 같이 살기 싫은데...”
 “......”
 
 내가 저지른 짓을 안다면 그런 말을 못 할 거야.
 미안하다고 전해주어야 했다. 그게 인간 된 도리였다. 하지만 나는 그 흔한 사과 한 마디 해주지 못 했다. 어리석게도, 유일한 가족과 헤어지기 무서워서. 더 이상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그럴 자격 따위 이미 잃은지 오래인데도.
 그럼에도 욕심쟁이인 나는... 해야 할 말 대신 다른 말이나 주워섬기기 바빴다.
 
 “... 알겠어. 그럼 아빠, 나중에 데리러 올 테니까.”
 “응.”
 “그 때까지 울지 않고 씩씩하게 기다릴 수 있지?”
 “그럴게.”
 “약속.”
 “약속.”
 
 예담이가 내 목에 팔을 둘렀다. 나를 마주 안아주었다.
 내 숨통을 조여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되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예담아. 아빠가 많이 사랑해.”
 
 아, 하느님. 이 어린 생명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 있습니까.
 정녕 나는 그 누구도 사랑해서는 안 되는 존재란 말입니까......
 








4. 재판 경과

제 1심 판결

배심원 투표 
용서한다 3 : 1 용서하지 않는다

관전자 투표 
용서한다 4 : 1 용서하지 않는다

용서한다 용서하지 않는다

─ 그는 이런 결과를 원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용서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 사람을 살해했지만 아무리봐도 상황상 우발적인 살인에 제대로 기억도 못하는 점을 보면 사형보단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함.
─ 알코올 의존증으로 책임능력이 없고 심상 독백을 보아 개선의 여지가 존재한다고 여겨짐.
─ 인생이 너무 불쌍해요... 그리고 또다시 살인을 할 것 같지는 않아요...

─ 심문받는 태도가 불성실했으며 살해 당시의 기억을 감추고 있을 여지가 있음. 사랑으로 인해 아내와 만나는 남자를 살해했을 것으로 추정됨. 그 남자가 아내와 딸에게 해악을 끼치고 있었을 여지도 있으나, 재판장에서의 거짓말을 하는 듯한 불성실한 태도로 인해 심증만 있을 뿐, 지금까지 보여진 것으로는 용서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음.
─ 피해자가 아이의 어머니나 아이에게 특별히 가해를 한 정황도 없기에 정상참작의 여지도 없다고 판단함.

 분명 지난 정기 방송까지만 하더라도 배심원 의견이 2:2로 동점이었는데 말입니다. 투표가 마무리될 때까지 결론이 나지 않을 듯하여 외부 판정단 분들께 도움을 요청했는데... 막판에 의견을 바꾼 배심원이 있는 모양이더군요.
 호오. 이 죄인에 대해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으셨습니까? 아니면, 심문을 겪으며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던가? 어느 쪽이든 재미있군요.
 심문에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음에도 그에 흔들리지 않고 ‘용서한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죄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냉정하게 상황을 볼 줄 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자랑스럽게 여기셔도 될 듯 합니다.
 ─ 간수장 사마엘

제 2심 판결

배심원 투표 
용서한다 2 : 2 용서하지 않는다

관전자 투표 
용서한다 0 : 1 용서하지 않는다

용서한다 용서하지 않는다

─ 그가 잘못한 것은 없다는 위로의 말, 그리고 뒤를 마주할 용기를 가지길, 이라는 말.
─ 잘못이 없지는 않지만, 그가 나아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그에 대한 후회를 하고 있다 판단되어, 사형의 판결은 너무 큰 처벌이라 생각.

─ 모른다고 하는 말로 도망칠 수 있다면 좋겠네요.
─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술을 마시고 제정신이 아닌 채로 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이 없지 않음. 술을 완전히 끊었을 때에 판결을 재고할 여지가 있음.

 축하드립니다, ‘용서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받은 첫 번째 죄수가 나왔군요. 이전 재판에서 전원 용서 판정을 내렸던 여러분의 선악 판단 능력에 하자가 없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이 사마엘이 가지고 있던 일말의 불안마저 씻겨 내려갑니다.
 자신을 용서해달라는 주장을 상대적으로 강하게 하던 죄인한테 반대로 용서하지 않는다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 지점이 상당히 흥미롭지 않습니까. 과연 죄인의 주장이 배심원한테 영향을 미쳤을지, 아니면 그저 우연에 불과할지.
 그리고 용서받지 못 했음이 용서를 원하던 죄인한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후후. 기대해도 좋지 않겠습니까.
 ─ 간수장 사마엘

제 3심 판결

배심원 투표 
용서한다 4 : 0 용서하지 않는다

관전자 투표 
용서한다 0 : 4 용서하지 않는다

용서한다 용서하지 않는다

─ 그는 용서받아야할 필요가 있다.
─ 딸을 만나봐야 하지 않은가. 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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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혼한 이전 아내가 만나던 애인을 살해하고 그 뒤로 아내를 쫓아간 끝에 그 아내마저 강물에 휩쓸려 사망하게 한 죄인, 박권태. 여러분은 그한테 ‘용서한다’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모습이 불쌍해 보이셨습니까? 혼자 남을 그의 딸을 돌볼 사람이 필요했습니까? 그도 아니라면... 피해자들이 죽어 마땅했다 생각하셨습니까? 이마저 아니라면, 사람을 둘이나 죽여버린 살인자한테도 남을 사랑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겠네요.
 저로서는 살인자가 사랑을 한다는 것이 이해하기 힘든 주장입니다만... 그것이 여러분의 대답이라면. 저를 포함한 밀그램 시스템은 이를 수용하겠습니다. 앞으로는 그릇된 사랑 말고 올바른 사랑을 할 수 있기를.
 ─ 간수장 사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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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몇 년 만에 아내를 다시 만났느냐고 권태주(캡틴)가 오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