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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출생이 평민이었는지 귀족이었는지 소녀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껍데기 태생이라 나자마자 버려졌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 단 두 가지, 소녀의 기억에서 확실한 점은, 어떤 명문 귀족가의 가주가 막 태어난 그녀를 품에 안고 갔다는 것, 그리고 소녀는 자신을 데려온 이의 저택에서 미천한 노예, 희귀한 유흥거리로 자라났다는 것. 어머니의 따스한 품과 아버지의 든든한 보호 따위는 소녀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소녀는 길거리의 개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 하찮은 껍데기였으니까. 햇빛조차 들지 않는 어두운 지하실에서 눈물로 밤을 지새며, 어린 소녀는 닉스인들에 대한 증오만을 품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고통 속에서 살아가기를 몇 년, 소녀는 자신을 노예로 부리던 더러운 귀족들의 저택을 겨우내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껏 탈출하면 무얼 하는가. 이제 제 발로 교수대나 실험실로 향하는 길 뿐인데. 소녀는 제 앞날에 드리운 어둠이 너무 거대하고 깊어서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몇 번을 울었다. 그래도 아직 일말의 행운이 남아있던 것이었던지, 한 청년이 소녀의 앞에 멈춰 서서 손을 내밀었다. 그 청년은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던 껍데기에 불과한, 말라 비틀어 죽어가는 작은 생명체에 연민이라도 느꼈던 것이었을까. 낯선 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며 소녀는 드디어 생지옥에서 벗어났다는 후련함을 느꼈다. 그리고 이대로 끌려가서 또 다시 노예가 되지 않을까 무서워했다.

청년은 현 영지의 신생 귀족 가문 소속으로, 선대 가주의 때아닌 요절로 젊은 나이에 가주직에 오른 귀족이었다. 고귀한 귀족 신분인 청년이 어째서 껍데기를 거두어들였는지 그 이유는 짐작할 수 없었다. 허나 그 이유야 무엇이 되었든 상관 없이, 청년은 길에서 데려온 껍데기 소녀를 매우 정성스럽게 교육시켰다. 대외적으로는 비싼 값에 사온 노예라며 둘러대었고, 뒤로는 뛰어난 무력을 갖춘 '기사'로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양녀로서.

오랜 세월이 지나, 소녀가 훌륭한 기사로 자라났을 때쯤, 닉스에는 혁명의 바람이 불었다. "가거라, 가서 그들을 도와라. 닉스의 자유를 위해서, 그리고 너의 복수를 위해서." 귀족 청년, 시간의 흐름을 이기지 못해, 이제는 머리칼이 희끄무레하게 세어버린 그가 그녀에게 나지막히 명령했다. 닉스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처럼 자신을 구원해준 이를 위해서, 그녀는 레지스탕스에 합류했다. 그녀 자신의 뜻이 아닌 오로지 '주인'의 뜻으로.

• 일상 테마
  

• 전투 테마
  

조국의 자유를 채 눈에 담지 못하시고 숨을 거두신 저희 주인님을 위해서,
그리고 모든 용의 어머니이신 베로니카 씨를 위해서.
저는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현 영지의 귀족 가문. 귀족 중에서도 드물게, 윈체스터 가문은 평화와 평등을 실천하는 가문이다. 혁명 활동이 끊이질 않는 닉스의 현 정세 때문에, 윈체스터 가문은 잠시 플로로 피신한 상태이다.
현재 윈체스터 가문은 가주와 그의 장녀 빼고 전부 사망한 상황이다. 세간에는 불행한 사고가 윈체스터 가를 습격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누구도 몰랐었지, 가주가 남몰래 키워온 껍데기 하나가 그런 비극을 불러일으켰을 줄은.

• 시즈 휴 윈체스터 (Cssiz Hugh Winchester)
  윈체스터 가문의 3대 가주. 원래는 전대 가주와 하녀 사이에서 난 사생아였다. 설상가상으로, 마력 인자도 미약한 수준으로 타고나 꼼짝없이 귀족들의 기사가 될 운명이었지만, 가주에게 거두어졌다. 그는 온화한 마음씨의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형제 중에서 유독 욕심 많고 포악한 성질을 지닌 이복누이에게 깊은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내 그는 자신의 누이 같은 폭군이 가주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거리낌없이 그녀를 암살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다른 이들을 모조리 제거하는, 다소 과격한 행보를 보이면서까지 가주 자리에 등극할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모든 악행을 인정하고 속죄하는 태도로 살아가는 중.
  타니스의 맹목적인 충성의 대상. 하지만, 그것은 분명 단순한 충성이 아닌 과거 일의 속죄와 후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한때는 뛰어난 검술 실력을 자랑할 정도로 정정했었으나,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쇠약해져감에 따라 지금은 잔병치레가 잦아졌다.
  레지스탕스의 여황 격파를 앞두고 결국 병으로 사망.
  
  
• 리타미아 윈체스터 (Litamia Winchester)
  시즈 휴 윈체스터의 부인. 현재 사망. 사인은 병사.
  본래는 가족도 없는 고아 출신에, 다른 영지에서 탈영한 기사였었다. 한없이 고귀한 귀족과 천하디 천한 기사가 혼인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이 모두가 너그럽고 친절한 마음씨를 가진 현 영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가일 틴 윈체스터 (Ghayl Tinn Winchester)
  장남. 현재 사망.
  강한 마력 인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때문에 틈만 나면 저택의 하인들을 조종해 노예 다루듯 제멋대로 부려먹기 일쑤였고, 그런 성품 때문에 부모의 핀잔도 많이 듣곤 했다. 마법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었던 만큼 자존심도 하늘을 찌를 만큼 높았기에, 자신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는 껍데기인 타니스를 혐오 수준으로 싫어했다. 그래서 저택의 지하에서 껍데기가 두 발 편히 뻗고 살고 있음을 세상에 고발하려 했지만, 역으로 제 아비에게 가주 계승권을 볼모로 협박당하다시피 했었다.
  
  
• 에쉬안 제드 윈체스터 (Eshian Zed Winchester)
  차남. 현재 실종 이후 사망.
  타니스와는 매우 친밀한 관계였었다. 함께 검술 연습을 하기도 했었고, 저택에서는 항상 둘이 붙어다녔던 등, 든든한 친구이자 가족이었던 존재였다. 그녀가 윈체스터 가문에서 가주와 그의 부인 다음으로 잘 따랐었던 이.
  
  
• 루사나 프레이 윈체스터 (Ruthana Freiy Winchester)
  가문의 막내이자 장녀. 사고로 두 눈을 실명했다.
  나이는 타니스보다도 한참 어려서, 때문에 그녀에게서 상당한 예쁨을 받았다.